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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15. 09:3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43 한국의 화폐

 

글, 사진 / 장상진

1999,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1

 

082

빛12ㄷ  209

 

빛깔있는 책들 209

 

장상진-------------------------------------------------------------------------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화폐 금융)를 취득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화폐 금융)을 이수하고 전주대학교에서 재정학을 강의하였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편찬(화폐 금융분야)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교육부 산하기관의 교육행정사무관으로 재직하였고, 1991년부터 1995년까지 경제기획원 예산실에서 내무부, 통상산업부 등의 예산 편성 업무를 담당하였다.

1996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과 독점국에서 각종 불공정거래행위 감시와 독과점시장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잇으며 현재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 재직중이다.

 

|차례|

 

머리말

우리나라 화폐의 발달과 유통

북한의 화폐

외국 화폐의 유통

유사 화폐의 발달과 유통

조폐 기관

화폐에 관한 생각의 흐름

참고 문헌

현재(1999년) 사용하는 신권 3종.

 

돈에 관련된 속담

 

이들 속담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류하여 살펴볼 수 있겠지만 대개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돈을 제대로 벌고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주인 입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김매는 주인이 놉 아흔아홉 몫을 한다", "병신 주인이 일꾼 열 몫을 한다", "망하는 집 머슴은 배부르고 부자가 되는 집 머슴은 배곯는다", "날일에는 장승이고 도급에는 귀신이다" 등이 있는데 곧 일당을 주는 날일(날삯을 받고 하는 일)로 맡기면 장승처럼 서 있고 빈둥빈둥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면서 마지못해 일하지만 여기까지 하면 얼마 준다는 도급으로 맡기면 성의껏 빨리 끝낸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우러나와서 주인 의식을 갖고 정성껏 일하다 보면 돈이 모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설명한 내용이다.

둘째,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면서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돈은 많아도 걱정이요 적어도 걱정이다", "돈이면 산 호랑이 눈썹도 뽑아 온다", "돈 나는 모퉁이 죽는 모퉁이"(힘들이지 않고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하면 자칫 목숨까지 잃을 우려가 있으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돈을 버는 것이 부자가 되는 왕도라는 것을 시사함), "돈 있는 사람이 돈 걱정 더 한다",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하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돈 한 푼 손에 쥐면 손에서 땀이 난다", "돈만 잇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다", "돈 없으면 적막 강산이요, 돈 있으면 금수강산이라" 등이 그러한 내용으로 돈의 위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돈을 함부로 할 때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셋째, 돈은 알뜰하게 모으고 쓸 때는 아껴서 써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나무를 아껴 때면 산신령이 복을 준다", "바닷물도 쓰면 줄어든다", "조밥도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 "없을 때 참아야 하고 있을 때는 아껴야 한다", "입하고 주머니는 동여매야 한다", "입과 곳간은 닫아 두어야 한다", "싸라기 한 말에 7푼 5리라도 5리 없어 못 먹는다". "한 푼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한 푼때문에 운다", "가마 안 천 냥이 가마 밖 만 냥보다 낫다", "내 돈 서푼이 남의 돈 400냥보다 낫다", "못 쓰면 끈 달아 쓰라",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일찍일찍 일어나면 부자된다", "초생달은 부지런한 며느리만 본다" 등이다.

이들 속담은 적은 돈부터 모아야 부자가 되는 것이고 이렇게 모아야 없을 때 당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구두쇠가 되라는 것은 아니고 쓸 때는 때를 놓치지 말고 써야 한다는 속담도 많다. 예를 들면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는다", "새 잡아 잔치할 것을 소 잡아 잔치한다", "좁쌀만큼 아끼다가 담장돌만큼 손해본다", "돈 지고 저승 가는 사람 없다"(돈은 죽은 뒤에는 못 쓰는 것이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구두쇠 노릇만 하지 말고 쓸 데는 쓰라는 뜻),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등이다.

넷째,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어렵고 소중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오는 복은 기어오고 나가는 복은 날아간다", "재물은 모으기보다 지키기가 어렵다", "도깨비가 가져다 준 돈은 땅을 사라", "돈 번 자랑말고 쓴 자랑하랬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쉽게 벌면 쉽게 나간다", "부자 3대 안 간다", "돈 많으면 자식 망친다", "이세상에서 적선하면 저세상 가서 복 받는다", "돈을 가두어 두면 썩어 귀신이 되어 주인을 해코지한다", "돈 모아 줄 생각말고 자식 글 가르쳐 주랬다", "자식에게 금 상자 물려주는 것이 책 한 권 물려주는 것만 못하다", "자식에게 천금을 주는 것이 한 가지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만 못하다" 등이다.

다섯째, 돈보다 소중한 것이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 지개(志槪)이다"(돈으로 모든 물건을 살 수 있으나 사람의 의지와 기개는 살 수 없다는 뜻), "사람이 돈을 이겨야지 돈이 사람을 이겨서는 안 된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검게도 만든다", "돈이 있는 집은 입만 보아도 알고, 덕이 있는 사람은 겉만 보아도 안다"(돈이 있는 사람은 그가 살고 있는 집만 보아도 알 수 있고 덕이 있는 사람은 그의 외모와 언행만 보아도 알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돈보다는 덕이 중요함을 시사함) 등이다.

여섯째, 금전 거래는 신중하고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돈 빌려 주고 친구 잃는다", "돈은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 "빚 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마라", "빌려 간 사람은 잊어버려도 빌려 준 사람은 안 잊는다", "오뉴월 품앗이도 먼저 갚으랬다", "삼 년 벼르던 전답도 다시 돌아보고 산다", "아랫목에서 받은 돈도 윗목에서 세야 한다""금은 달아서 받고 돈은 세어서 받는다" 등이다.

조선시대의 상평통보.

무문전(無文錢)  고려 초기에 주조된 무문철전으로 두드려 만들었기 때문에 만들기가 쉬웠다. 유통 수단보다는 부장용(副葬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소은병  은병의 불법 주조로 인한 가치 하락 때문에 제조된 것으로, 실질 가치는 구은병보다 약 50퍼센트 높게 평가되었다. 실물은 전하지 않는다.

대전통편  조선시대의 법전으로 '호조'편에 저화의 가치를 서술한 부분이 있다.

당백전  격심한 재정란을 해결하고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1866년 호조에서 주조된 '대(大) 자' 당백전이다.

대동3전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최초의 서양식 주화로 뒷면의 작은 원 안에 호조에서 제조되었음을 알리는 '호(戶)' 자가 있다. 1882년에 주조되었다.

최초로 발행된 신식 화폐  1888년 '개국 497년'의 연호로 10문(위), 5문 적동화(가운데) 및 1환 은화(아래)를 발행하였다.

5냥 은화  은본위 제도로 전환하고자 「신식 화폐 조례」를 제정하여 1892년에 본위 화폐인 5냥 은화를 주조하였다. 이것은 해관세 수납이나 외국과의 교역에 주로 쓰였다.

보조 화폐  2전 5푼(위), 5푼(두번째), 1푼(세번째, 네번째) 동화는 표준 화폐인 1냥 은화의 보조 화폐로서 주조, 유통되었다.

1냥 은화  1892년에 국내 유통을 목적으로 주조되었고 본위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

권틀  50냥을 주조할 수 있는 호조태환권을 찍어 낼 수 있는 틀이다.

10전 은화

5전 백동화

1전 청동화

반전 청동화

20환 금화

10환 금화

5환 금화

반환 은화

20전 은화

다이이치은행 주조 화폐  1905년(광무 9) 1월 「화폐 조례」를 공포, 최초로 근대 화폐 제도로서의 금본위제가 실시되었다. 발권은행은 일본의 다이이치은행으로 모두 9종이 주조되었다. 10전의 은화, 5전의 백동화, 1전과 반전의 청동화, 20환 · 10 · 5환의 금화, 반환 · 20전의 은화가 있다. 위의 화폐는 1905년에서 1908년 사이에 주조된 것이다.

한국은행권 3종  1910년 12월에 1원권을 필두로 5원권, 10원권이 발행되었으나 다이이치은행권의 양식과 큰 차이는 없었다.

을 10원권.

병 10원권.

정 10원권.

을 100원권.

병 100원권.

미 군정기의 은행권  1945년 9월에 을 100원권(네번째)을 시작으로 을 10원권(첫번째), 병 100원권(다섯번째)이 나왔고 이듬해에는 병 10원권(두번째), 정 10원권(세번째)이 발행되었다.

신 10원권과 5원권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9월에는 급격한 통화 팽창에 따라 조선은행 중심권의 종류가 고액권으로 이행되었다.

신 소액 은행권  1949년 11월에 50전, 10전, 5전권 등의 소액권을 발행하며 화폐 제도의 정비를 꾀하다가 1950년 '한국은행'이 발족되었다.

한국은행권  정부는 적성 통화의 유통을 막아 적군의 경제 교란 행위를 봉쇄하기 위해 '제1차 통화조치'를 취하였다. 위는 500원권과 1,000원권이다.

신 한국은행권  한국조폐공사는 1951년 10월 신 100원권과 신 1,000원권을 인쇄함으로써 조폐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미 연방 인쇄국 제조은행권  전란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고 통화 안정을 위해 '제2차 통화조치' 때 미국에서 제조하여 반입된 은행권이다.

1환권과 5환권  1953년 2월 '원'에서 '환'으로 개칭한 다음 10환, 100환, 1,000환권을 발행하였다. 이때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형광 물질을 넣어 자외선을 비추면 색이 바뀌도록 특수 제조되었다.

1962년의 고액권  구 환화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화폐 단위를 '원'으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3차 통화조직'가 있었다.

1962년의 소액권  '제3차 통화조치'의 결과로 발행된 소액권에는 1원권, 5원권, 10원권 3종이 있다.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주화  1966년에는 구 환화에 대체할 목적으로 원화 표시 주화가 순수한 국내 기술에 의해 주조되었다.

최초의 은화 삽입 은행권  5,000원권에는 율곡 이이, 1만원권에는 세종대왕을 은화로 삽입하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금속선을 삽입하였으며 자외선 감지 요소를 인쇄하였다.

표준 영정  고액권 용지의 국산화와 표준 영정 채택을 위해 신 5,000원권과 신 1만원권을 발행하였다. 은행권의 지질도 1979년부터는 내구성과 인쇄 적성이 개선된 면섬유를 사용한 새로운 용지로 대체하였다.

한국은행 최초의 주화  1959년 10월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국에서 제조한 100환 니켈화, 50환 백동화, 10환 청동화이다. 이승만 대통령 초상과 거북선, 무궁화 등을 도안하였다.

한국은행 최초의 국내 제조 주화  1966년 8월, 환에서 원으로 단위가 바뀌었으며 순수한 국내 기술에 의해 동과 아연으로 1원화와 5원화, 10원화가 주조, 발행되었다.

제42회 세계 사격 선수권 대회 기념 주화  1978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대회의 기념 주화로 5,000원화 10만 개, 500원화 99만 7,000개를 발행하였다.

광복 30주년 기념 주화  1975년 8월 15일, 국내 기술로는 처음으로 발행한 기념 주화이다. 100원 백동화 500만 개를 한국조폐공사에서 직접 제작하였고 2,000개는 프루프화로 제조되었다.

제1차 화폐 개혁의 15전권.

제1차 화폐 개혁의 20전권.

제1차 화폐 개혁의 50전권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토대를 구축하고 남한으로부터의 화폐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화폐 개혁을 실시하였다.

보조 주화 3종  1959년 보조 화폐와 같이 발행하였던 1전, 5전, 10전의 보조 주화이다.

제2차 화폐 개혁의 10원권  인플레이션과 새 경제 체제에 따른 투자 재원의 확보를 위해 제2차 화폐 개혁에서 6종의 은행권과 3종의 주화를 발행하였다.

제2차 화폐 개혁의 50원권.

제2처 화폐 개혁의 100원권.

제3차 화폐 개혁의 50원권  1979년 4월에 있었던 제3차 화폐 개혁에서는 종전의 조선 중앙은행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으로 이름이 바뀌고 은행권 5종과 주화 50전짜리를 새로이 발행하였으며 구 은행권의 유통을 금하였다.

제3차 화폐 개혁의 100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1원권  제4차 화폐 개혁으로 5종의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1979년 발행하였던 동일 액면의 구 은행권의 유통은 금지하고 신 은행권과는 1 대 1로 교환하였다. 그러나 종전의 일반 주화는 그대로 유통시켰다.

제4차 화폐 개혁의 5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10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50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100원권.

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1979년에 발행된 특수 화폐의 일종이다. 위는 내국인용이고 아래는 외국인용이다.

비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1979년에 발행된 특수 화폐의 일종이다. 위는 내국인용이고 아래는 외국인용이다.

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1988년에 무역은행에서 발행한 특수 화폐의 일종으로 적색이며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별 없이 쓰인다.

비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녹색으로 앞면에는 외화와 바꾼돈표라는 문구와 북한을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가고 앞뒷면에 동일하게 숫자가 들어간다.

1원 은화  개항이후 개항장에는 일본 상인이 건너와 일본의 본위 화폐인 1원 은화를 대량 유통시켰다.

마제은  1894년 전후에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대규모 상거래에서 주요 사용하던 말굽 모양의 은괴이다. 그러나 유통액도 그리 많지 않았고 부의 저장 수단으로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기 어음  금전출납부 형식으로 특이하게 어음을 책에 붙여 놓아 당시의 어음 상황을 알 수 있다.

어음  금액을 적어 반으로 나눠 채무자와 채권자가 한 편씩 나눠 갖는다. 차용 증서 대신 작성, 교부하며 지급일이 되면 맞추어 보고 현금을 지급한다.

인천전환국  1892년 당시의 모습이다. 인천전환국을 신설한 이유는 일본의 영향이 강한 곳에 전환국을 설치하여 우리의 화폐권을 보다 용이하게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주머니형 열쇠패  별전의 일종으로 길이는 9센티미터이고 총길이는 49센티미터이다. 조선 말기인 고종시대에 만들어진 열쇠패는 당시 상류사회에서 신부의 귀중한 혼수품이 되었으며 가보처럼 소중히 여겨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별전  높이 18센티미터, 너비 15센티미터의 별전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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