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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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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18. 09:0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44 오렌지 햇빛

 

서인숙 시집

2001, 문학아카데미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1710

 

811.6

서6819오

 

문학아카데미 시선 148

Literature Academy Poem Book Series(1989)

 

회감의 서정과

불멸에의 동경

 

서인숙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을 보니 제1부에서 신라 토기나 토우, 조선백자, 백제 와당, 청동거울 등 박물관을 순례하며 얻은 소재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러한 유물들을 통해서 잃어버린 역사와 자아를 탐색하며 '나'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층위들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박물관이란 고요한 적막 속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시의 화자는 오염되고 훼손된 현재의 시간을 넘어 선 잃어버린 기억들을 떠올린다. 우리의 육신이 갇혀 있는 유한한 시간을 넘어선 '마음이 살고 있는 나의 집'으로 나아가서 찬란하게 빛나던 순수한 시간을 모색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간들을 동경한다. 마음의 이상향인 '보이지 않는 별'을 찾기 위해 오늘도 그는 고통스런 생의 중심에서 '바르르 손을 내밀며'(「수련」) 간절하게 사무치는 그리움의 시를 쓴다. …중략…시를 쓰는 일이란 결국 고독과 적막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 곱게 길러내 하늘에 바치는' 행위이며 '별처럼 반짝이는 연분홍의 수련' 몇 송이 피워내는 일인 동시에, '빛나는 시간들'을 저 먼 곳에서 끌어와 가슴에 묻는 행위, 또는 '보이지 않는 별'을 부르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 소나무는 사철 푸르러 우리의 눈과 정신을 시원하게 해 줄 것이며, 돌 연못에 솟아오른 수련 몇 송이는 지친 우리의 삶을 위무해 줄 것이다.

- 고명수(시인, 동원대 교수)

 

시인 서인숙

1965년 『현대문학』에 수필 「바다의 언어」로 등단.(평론가 조연현 추천)

1979년 『현대문학』 시 「맷돌」을 발표하면서 詩作 활동.(평론가 조연현 추천)

詩集 『살아서 살며』 『먼 훗날에도 백자는 그리움이 남긴 자리』 『세월도 인생도 그리 하거늘

隨筆集 『타오르는 촛불』 『최후의 지도』 『태고의 공간』 『영원한 불꽃』 『마지막 빛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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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문화상(예술분과) 본상 수상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무봉문학상 수상

마산시 문화상 수상

 

국제펜클럽 한국위원(현)

한국시인협회 회원(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현)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여류수필가협회 회장

마산 문인협회 회장

 

여인은 수틀 속 하얀 천에

수를 놓고 있네

불빛 없어도

마음 빛으로

밤새 꽃발을 일구네

함바꽃, 도라지꽃, 접시꽃

꽃씨 터뜨리며

온 마을 불태우네

- 서인숙 「등잔」전문

 

■ 독자를 위하여

 

행복하다.

이 외마디 소리를 하늘과 땅을

향해 외치네.

돌아보면 詩를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름다움이 있었고, 괴로움과 어둠이

있었고, 알 수 없는 처절한 고독의

광장이었다.

목숨의 환희였다.

삶의 충만이었다.

열정을 품어 내는 흙이었다.

이렇게, 소리내어 다스리며

또 다시 이 길을 가야 하는

내가 여기 있다.

세상을 보며

나를 보면서.

 

바다에서

서인숙

 

서인숙 시집

 

Ⅰ. 조선 사발

조선 사발-환생 / 조선 사발-무상 / 말의 도요지에서 / 등잔 / 신라 토기 / 민화 / 토우 / 백제 땅 / 보자기 / 빛살무늬 / 백자의 넋 / 청동거울 1 / 청동거울 2 / 석등 / 박물관 산책 / 함지박 / 달항아리 / 시원의 꿈 / 떡살 / 백제 와당 / 나이테의 부름 / 천전리에서 / 물로 말하는 / 고대 답사 / 토기 1 / 토기 2 / 화로 / 만세 소리 / 순간의 영원

 

Ⅱ. 동백숲

바다 / 노을 / 오렌지 햇빛 / 햇빛값 / 눈꽃 / 벽화 / 목숨 / 침묵 / 뷔페의 죽음 / 수련 / 샐비어 / 가을 햇살 / 섬 / 말 / 지구의 밖 / 잎맥 / 돌 / 꽃이 핀다 / 씨앗 / 동백숲 / 비

 

Ⅲ. 말의 꽃

말의 꽃 / 계단 / 유년의 봄 / 고인돌 / 샛강 / 가을강 / 만남 / 부석사 / 간이역 / 혼불 / 물음의 화살 / 집 / 퓨전 시대 / 적막의 자유 / 풍란 / 비가 / 시련의 늪 / 믿음

 

Ⅳ. 시인의 에스프리

고명수 해설 / 회감의 서정과 불멸에의 동경

 

수련

 

드디어 피었구나

돌연못에 솟아오른 수련 몇 송이

별처럼 반짝이는 연분홍

빛나는 시간들을 저 먼 곳에서 끌어와

놓칠 세라 가슴에 묻었다

 

이제 꽃은 시들었는가

퇴색한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잎새들

바람이 아무렇게나 건드리고 간다

 

그림자 같은 검은 잎사귀 하나

바르르 손을 내밀며

보이지 않는 별을 부르고 있다

 

고대 답사

 

드러나는 인골人骨마다

격렬한 전쟁이 휘몰고 간 상흔,

선사시대가 열려 있다

 

죽은 자는 한을 말한다,

고백한다

 

붉은 흙과 흙의 끝없는 사막,

태양은

불은 토하고

역사의 내부를 향해

비밀을 해치고 찾아 내는 아득한 뿌리의 길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아직 갈 길이 아닌데,

두려움의 감동은

샤보텐꽃으로 피어 과거와 현재

미래마저 물들이고 있다

 

순간의 영원

- 스메타나 교향곡 나의 조국

 

울림이여! 더욱 울려라 하늘 땅을 향해

울림이여! 쏟아져라

쏟아지다 토기에 닿으면

신라는 빗살로 솟아올라

천 사백 년을 연다

저 토기를 뚫어라

내 가슴을 뚫고 지나는 신라의

바람처럼

울림과 빗살의 화음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신세계

전쟁이 싸움으로 가지 않고

스스로를 겨냥하는 도전

온통 울림이다

바다, 산, 사람 모두

하나 되어라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의 순간

나는 그 세상에 살고 있나니,

 

박물관 산책

 

죽음으로 살아 남은 사연들이 남긴 흔적

역사의 표정들이 넘치고 있다

 

개미만한 발자욱은

생애를 다해

마음 열어 귀 기울여 유물의 터널을 뚫는다

 

마음의 강 그 깊이에

울음같은 슬픔은

느닷없이 스며오는 외로움

그 허무함 때문일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혼백만 떠도는어둠에서

어딘가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깊은 적막,

 

조선 사발

- 무상

 

비로소

텅텅 빈 오백 년 세월을 보았다

하얗게 하얗게 소리치는

허허한 자유를 보았다

 

저 창 너머

언제나 그리워하던 붉은 노을

여기 가득 고여 있음을,

 

저 창 너머

언제나 그리워하던 붉은 노을

여기 사라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모습도 소리도 없는

나를 보았다

 

조선 사발

- 환생

 

푸르게 물든 그늘에 누워

풋잠 들었을 때

오백 년 세월은 나를 휘감는다

내 짧은 목숨마저 분분이 날아 떨어지면

내 아픔은 목단꽃으로 피어난다

조선 여인의 넋으로 깨어난다

피빛의 선명한 꽃무늬들이

진흙 속에 새겨지면

또 한 세상 살아나는,

살아나는 소리

그 어느 모퉁이

내 사랑 펴놓고

너를 닮은 내가 되고 싶다.

녹음이 짙어지면

그 깊은 곳에서

그대를 만나듯.

 

청동거울 1

 

푸른 빛을 풀어 수천년을 보인다

 

때로는 과거로 앉아

수많은 얼굴을 스친 산사山寺 같은 모습

 

나도 어언 너를 닮아 푸른 날개 펄럭이며

수천년을 산 듯 거울 속에 앉아 있다

 

죄를 씻고 또 씻어낸 신의 말씀

 

구름을 부르고 꽃을 피우며 설레임을 안고

네가 살아왔던 곳을 찾아 헤맸다.

 

내 삶 어느 곳에

스승같은 길잡이

고대를 배우게 한다

 

신라 토기

 

목숨 깊이 새긴

사라져도 사라질 수 없는 부활의 꿈

 

신라의 역사 앞에서

토기의 세월로

마음 열어 한 생애

 

숲 속의 고목 되어

잎새 거느리는

뿌리 깊이

어디론가 흘러가누나

 

멀리 강물소리에 추억 넘쳐

아픈 상처 꽃잎처럼 떨면

단풍진 낙엽 하나 겨울로 가는

 

한 줌

선조의 넋에서 무한을 펼쳐본다.

 

백자白瓷의 넋

 

하얀 색, 하늘에서 흘러온 빛인가

빛과 빛이 마주쳐 하나의 원을 이룰 때

 

시작과 끝, 끝없는 무한의 색으로

태양과 맞서보는 조선의 오백년

우리들 가슴에 묻고 있는 백자여!

너를 닮고 싶구나

 

때로는 초라한 누더기를 음악으로 씻으며

삶을 닦을 때

홀연히 돌아보는 나의 모습

너를 닮고 싶구나

네 빛이 품어내는 무수한 세월의 흔적 속

내가 잃은 시간을 찾아

 

오늘도

너를 따라 나선다.

 

샐비어

 

붉은 강

 

죄 없이

어찌,

이 한 생을 살리

 

에덴의 원죄가

뿌리를 내리고

군락을 이뤄

도도히 흘러가고 있는

저 원색의 뜨거운 욕망들

 

오렌지 햇빛

- 해연에게

 

오렌지나무가 다가와

그리움의 열매를 보여 준다

 

노랑 열매 주렁주렁 청바지에 매단,

아버지의 정원을 잊지 못해 심어나가는

너의 정원,

그 옛날 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처럼

내 마음에 가득 찬다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태평양 파도의 숨결을 마시며

한국과 미국을 한 줄로 긋는다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핏줄의 인연

훌훌이 떠난 정들이

더욱 아프게 가슴을 훑어내는

이 봄,

 

오렌지나무의 햇빛으로 달래본다.

 

목숨

- 델리만曲

 

햇살에 젖은 음향

그 깊고 우람한 터널을 헤치면

낙엽 되어 바람에 날고 잇는

아픔을 본다

 

살아온 세월과 만난다

지워도 지워도 한사코 매달려 있는

꿈을 본다

 

스스로 자맥질하던 붉은 심장이

죄 아닌 죄의 사슬을 감고

속죄하는 목숨

 

한 소절 음률로 피어날까.

 

씨앗

 

지난 봄

하늘을 불러와 하늘빛으로

바다를 불러와 바다빛으로

씨앗을 뿌려 놓았다

 

작은 몸뚱이 속에

꿈 하나

깊은 상념 하나

사랑 하나

그리움 하나

추억으로 가득차,

 

이 작은 테라스에

꽃으로, 잎으로 피어나

제 속의 모든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적막의 자유

- 바하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음률이 끝난 적막은

새로운 영혼을 탄생하여 무한으로 흐르게 한다.

끝없는 시작, 시작없는 끝없음이

저 지평선을 돌아돌아 오면

 

사람은

그리움으로 꽃을 피우고

꽃은 씨앗을 낳아 영원을 약속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일을 가슴에 묻으면

 

아무래도 좋은

자유가 된다.

 

한 소절 음향으로 울린다.

 

꽃이 핀다

 

네 피기까지

모든 것은 그리움이었다.

너를 가꾸었던 나의 눈빛이

너로 하여

나를 알게 하는

네 모습아

더욱 아름다운 빛으로

나를 설레게 했던,

꽃이 핀다

 

꽃이 핀다

그러나 다시 만날 약속은 하지 말자

 

그리움은 남겨두자

 

보자기

 

동화같은 소박한 수를 놓아

나를 싸고

너를 싸서

어딘가 날고 싶다

 

소중한 나의 것, 네 것, 우리 것

모두모두 싸서

전쟁이 없는 어느 땅에서

하느님을 믿으며 살고 싶다

 

목숨하나를 싸고 싶다

죽음을 걸 사내를 싸서

선사시대로 돌아가 원시인처럼

살고 싶다

 

임진왜란 때 도공을 빼앗기지 않으려

조선 여인들은 우리 땅 만큼

보자기를 만들었다.

 

천전리에서

 

천전리 각석이 있는 골짝에 갔다.

 

공룡의 발자국을 딛고 서서

거대한 바위벽에 새겨진

원시의

말을 보았다.

나무, 고기, 우렁무늬, 물결무늬

어느새 노래로 불렀다.

 

해가 지는 능선마다 놀 피고

산새들

돌아와 나무에 앉았다.

 

어디선가

우람한 바람소리

아득한 소리 소리

선사시대는 내 안에 맑고 순수한

지구 하나를 만들었다.

 

 

억만년의 빙하시대를 지나온

강변의 돌

비바람이 새긴 표정들

벌레로, 꽃으로, 나무로

세상이 잃어버린 꿈을 그리고 있느니

 

옛날이여

그 넋의 소리를 다시 들려다오

보탬도 잃음도 없는 영점의 벌판에서

원점을 찾고 있는

세기말의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꿈들을 다시 돌려다오

 

말의 도요지에서

 

빚어도 빚어지지 않는

흙의 흔들림

알아도 알 수 없는

보고도 볼 수 없는

우람한 침묵

펑펑 뚫린 구멍

도공은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은

가마에다 불을 지핀다

활활 붉게 타는 아궁이에서

비로소

싸늘한 언어들이 쏟아진다.

 

혼불

 

내 이름 하나 똑바로 적지 못한다

책더미 속에서 일자 무식꾼이다

 

꿈 하나 이루기 위해

언제나 그

언저리에 서성이며 꽃송이를 피운다

 

혼을 태우고 삶을 태우는

자유였다

 

그 혼불은

컴퓨터 앞에서도

끄덕않는

존재 그것이다.

 

 

아득한 꿈처럼

마음 속에 숨겨둔 집,

섬은

고독과 적막

그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 곱게 길러낸

하늘에 바친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