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14. 3. 26. 14:1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8 마야 - 잃어버린 도시들

 

클로드 보데 / 시드네이 피카소 지음, 김미선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7199

 

082

시156ㅅ  6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06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을 헤매던 한 탐험가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서는 순간 웅대한

피라미드가 그의 시선에 포착되었다.

수수께끼 같은 이 문명은 신의 작품인가, 인간의 작품인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예술가, 사진작가, 고고학자 들은

조각그림을 한데 모아 맞추어 보기 시작했고,

막연한 낭만적 추측 대신 과학적 연구가 자리 잡았다.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정교하고도

웅장한 도시의 건축 비법과 마야 문명의

진실에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잃어버린 도시,

살아 있는 자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도시,

오랜 세월 이름조차 사라졌던 도시.

찬란한 황금기가 지나고 9세기에 접어들면서 마야는

기근과 전쟁, 인구 감소현상을 겪었다. 그리고

마야인은 도시를 버렸다. 밀림이 도시를 뒤덮기

시작했다. 나무뿌리는 돌기둥을 친친 감아 무너뜨렸고,

나뭇가지는 신전 벽을 부수고 지붕을 뚫었다.

거의 800년이 흘러 밀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여행자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잔뜩 뒤엉킨

수풀을 비집고 쏘아보는 석상의 눈빛과 마주쳤다.

그것은 꿈이었다. 누가 이토록 정교한

기념물을 세웠단 말인가?

 

군주와 총독은 탐험대를 파견했다. 그리고 화가와 시인,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이 그뒤를 따랐다. 19세기의 모험가들은

미지의 문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알프레드 퍼시벌 모슬레이는 팔렌케, 코판,

치첸 이트사, 키리과를 여행했다. 그는 밀림을

밀어 버리고 사진을 찍고 평면도를 작성했다. 주석이 달려

있는 모슬레이의 평면도는 놀라운 정확성을

지니고 있다. "치첸 이트사의 수녀의 집은 멋진 숙소를

주었다. 우리는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키리과에서 우리는 2월 초에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건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도르레와 임시로 설치해 놓은 기중기를 이용해 돌기둥을 바로 세울 수 있었고, 거기에 새겨 있던 상형문자의 탁본을 뜰 수 있었다."(코판)

 

"2층, 3층, 그리고 맨 위층의 사방벽에는 각각 거대한 창과 문이 나 있다. 창과 문에는 원래 나무로 된 성인방이 걸쳐져 있었다."(팔렌케)

 

"팔렌케 유적에 도착했을 때, 동쪽 뜰과 서쪽 뜰이 주변의 건물에서 무너져 내린 돌덩어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팔렌케의 이 건물은 궁전 동쪽 지역의 북쪽 중간 지점에 있다. 중앙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평행한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팔렌케 태양신전의 소벽(小壁) 장식은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뱀의 몸통과 머리의 일부분은 식별할 수 있었다."

 

"막대한 양의 돌덩어리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치첸 이트차에서 카스티요의 정확한 크기를 측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고된 작업과 말썽을 일으키는 일꾼들, 끊임없이 괴롭혀대는 열병……. 그렇지만 치첸 이트차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면 언제나 즐거워진다."

 

|차례|

 

제1장 정복자와 선교사

제2장 예술가와 모험가

제3장 학자의 시대

제4장 탐험을 떠난 사진작가

제5장 돌에 새긴 상징

제6장 관념에서 현실로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클로드 보데 Claude Baudez

클로드 보데는 탁월한 고고학자이자 프랑스 국립중앙 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코스타리카와 온두라스에 남아 있는 폐허를 연구해 왔다. 1971년 이래 마야 문명 탐구에 전념하기 시작한 그는 멕시코 토니나의 발굴작업과 온두라스 코판에 대한 탐사와 복원작업을 이끌었다.

 

시드네이 피카소 Sydney Picasso

시드네이 피카소는 라고아 산타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를 수행한 공식 사진 작가이다. 그는 현재 국립중앙 과학연구소에서 남아메리카의 바위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옮긴이 : 김미선

1964년 출생. 한국 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를 졸업한 후 불문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연인> <검은 탱고> <살갗 위의 소금> 등이 있다.

18세기 말에 그려진 이 그림은 정복자의 시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스페인인이 화폭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디오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배경으로 밀려나 있다. 중앙에 있는 인물은 후안 데 그리할바로 거만하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타바스코족 추장을 축성하고 있다. 맨발과 짧은 치마, 깃털장식을 한 '선량한 야만인'의 전형적인 모습인 이 인디오는 벌벌 떨면서 복종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

 

제1장

정복자와 선교사

 

1502년, 마야력으로 4아하우와 카툰의 두번째 해였다. 커다란 나무를 파서 만든 카누에 25명의 인디오가 타고 있었다. 그들은 과나하섬으로 가는 길이었다. 온두라스만에서 그 특이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히스파니올라의 콰칸드간 족장에게 선물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아메리카》 제4권의 판화. 테오도르 드브리. 1594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신세계를 찾아 헤매는 데 전생애를 바쳤다. 그는 중국과 일본에 발을 딛겠다는 꿈을 꾸었다.

신세계 탐험대에서 앞선 여러 약탈자들과 사뭇 다르게 에르난 코르테스는 자신이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막강한 권한과 위대한 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계략, 또한 훌륭한 외교관으로서의 판단력과 수완을 겸비하고 있었다.

 

제2장

예술가와 모험가

 

1746년, 안토니오 데 솔리스 신부는 형제들과 그들의 아내, 그리고 여러 명의 조카를 이끌고 팔렌케의 산토도밍고에 발을 디뎠다. 농사지을 땅을 찾아 숲 속을 헤매던 그들 일행은 노래 전에 버려졌음직한 석조 건축물과 마주쳤다. 놀랍게도 그들은 가장 환상적인 마야의 유적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이 되었다.

유카탄에는 강이 없기 때문에 석회질층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천연 샘 세노트(마야어로 조노트)에서 식수를 얻었다. 샘은 일반적으로 땅속 깊이 있었다. 예를 들어 볼론첸에서 인디오는 물을 길러 내려가기 위해서 거대한 사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제3장

학자의 시대

 

마야 문명의 진정한 발견자로 생각되는 존 스테판스는 1805년 뉴잉글랜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앙아메리카 유적의 최초 발견자는 아니었지만, 글을 통해 대중에게 이 문명을 널리 소개한 공로는 그에게 돌아갔다. 스테판스의 등장과 더불어 마야 문명에 대한 낭만적 접근방식은 종말을 고했다.

욱스말에는 총독 궁전이라는 건물이 있다. 그 기능에 충분히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궁전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잇다. 중심부의 정면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는데 그중 세 개가 중요한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앙에 있는 문 위에는 성좌 위에 앉아 있는 왕자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양 옆의 작은 회랑들이 아치형 통로를 중심으로 분리되어 있다. 캐서우드의 판화에서 보듯 이 통로들은 나중에 폐쇄되었다.

카스티요

10세기 말 치첸 이트차는 거대도시로 성장했고 많은 이방인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이방인들 중 일부는 '깃털 달린 뱀'의 전설을 가진 케찰코아틀에 의해 이끌어지는 중앙멕시코의 톨테크족이었다. 이들은 경쟁세력에 의해 툴라(멕시코시티 북쪽에 위치한 톨테크족의 수도)에서 쫓겨났다. '카스티요'(성이라는 뜻,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그 시대의 건축양식이 '깃털 달린 뱀'의 테마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중심부의 정면뿐 아니라 피라미드의 각 면에는 머리가 경사면 아래로 향한 뱀 모양의 조각이 있다. 캐서우드의 그림에 이러한 뱀의 머리 중 하나를 볼 수 있다. 사원의 주요 입구는 세 개로 되어 있는데, 각 입구는 뱀 모양을 한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잇다. 뱀의 입 부분은 땅을 향해 있고 몸통은 기둥을 이루고 있으며 꼬리 부분이 상인방을 받치고 있다.

라브나의 아치형 문

유카탄의 푸크 지역에 있는 마야의 유적에서는 가운데 안뜰을 중심으로 네 개의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이 복합 건축물을 '사변형(quadrangle)'이라 부른다. 라브나에서는 인접해 있는 두 개의 사변형 건물이 대단히 큰 아치형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방문객들은 종종 이것을 개선문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통로의 각 면에는 방이 하나씩 있으며, 이 방문의 위쪽으로 오두막 모양의 벽감에 회반죽 조각상을 놓기도 했다. 오두막은 지금도 유카탄 지역의 원주민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초가지붕을 한 집들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모양이다. 이런 것들은 옥스말의 여승원 남쪽에 있는 건물에서도 볼 수 있는데, 스페인인이 '여승원'이라고 부른 이유는 수녀원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카탄의 툴룸

스테판스와 캐서우드가 툴룸에 있는 프레스코 신전을 측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복되기 바로 전에 건설된 카리브해 연안의 이 작은 도시는 방어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대부분의 가옥은 주요 도로의 양옆에 있었으며,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다. 툴룸의 두 사원에는 검은색 바탕에 청록색으로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림들의 주제는 대개가 신화에서 특히 비의 신인 자크와 이스첼 여신을 그리고 있는데, 이 여신은 스페인인이 밀려올 무렵에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었다. 원주민들은 툴룸 북동쪽으로 50km에 있는 코주멜섬의 성전으로 순례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사말의 이트참나

이사말에 있는 건축불 중 하나에는 높이가 2m 넘는 회반죽 마스크가 잘 보존된 상태로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장식기법은 마야 건축에서 널리 사용되었지만, 공기에 노출된 상태에서 원형을 유지한 몇 안 되는 예들 중의 하나여서 스테판스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장면에 생동감을 주고 이상한 마스크가 새겨진 거대한 벽에 극적인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캐서우드는 어둠 속으로 도망가는 표범을 쫓고 있는 인디오와 사냥꾼을 그려 넣었다. 한편 디에고 데 란다가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원과 성당을 건립한 곳도 바로 고대 마야 도시의 파괴된 피라미드 지역 중의 하나인 이곳 이사말이었다.

환히 빛나는 제단 뒤로 신비스러운 비석 하나가 어렴풋이 보인다(위). 아무리 형태를 충실히 재현했다 하더라도 캐서우드는 때때로 코판의 돌무더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표현하기 위해 극적인 빛의 효과에 의존했다. 아래의 조각은 비석의 뒷면에 있는 비문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린 것이다.

이 곳 사바크체처럼 마야의 모든 마을에서 우물은 여자들의 사교공간 역할을 했다. 여자들은 물을 긷고, 모을 씻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식을 나누기 위해서 우물로 모이곤 했다. 캐서우드는 《성서》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분위기로 우물가를 묘사하고 있다.

 

"이 부락은 우물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우물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문명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최고급 호텔에서 느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쾌적해 보인다. 우리는 가시에 할퀴고 진드기에 물려 욱신욱신거렸으나 그럴수록 더욱 시원한 물에 목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말도 우물에서 아주 시원하게 목을 축였다. 여기서는 브러시나 빗이 없기 때문에 말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목욕을 시켜야 했다. 이 우물은 지금 이용하는 주민들이 만든 것이지만 예전에는 여기서 약 9km나 떨어진 타비까지 물을 길러 다녔다고 한다."

스테판스

《유카탄 여행기》

 

제4장

탐험을 떠난 사진가

 

1839년 8월, 은판 사진술의 출현으로 지식인 세계는 희망에 부풀었다. 사진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사진기를 동반한 탐험가 세대가 출현했으며 그들은 '객관적인' 진실을 찾아 나섰다.

 

제5장

돌에 새긴 상징

 

스테판스를 사로잡았던 다음과 같은 감동은 팔렌케 비문 신전에서 온통 상형문자로 덮인 석판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비록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 그림들을 보면서 느낀 감동을 굳이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뱀을 표현한 다양한 그림문자

 

제6장

관념에서 현실로

 

1944년 사진작가 질르 힐리는 라칸하강 서쪽의 치아파스 밀림지대를 향해 출발했다. 유나이티드 프루트사의 간부가 이 깊은 계곡에 모여 사는 마야의 라칸돈족 사진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들은 고대의 전통을 거의 손상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그곳까지 찾아 들어간 탐험가는 거의 없었다.

1948년 재건한 테헤다 제2실의 북쪽 벽에서 볼 수 있는 그림. 왕과 신하가 죄수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벌거벗기고 손톱이 뽑힌 죄수들이 먼저 제물로 바쳐진다.

계단의 아래 부분에서는 전사들이 감시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위 부분에는 화려하게 치징한 귀족들이 왕을 중심으로 주위에 서 있다. 위 부분에 있는 띠 모양의 조각은 하늘을 나타낸 것으로 몇몇 별자리들의 기호이다.

석관의 뚜껑에 새겨진 죽은 왕의 모습. 이것은 대지의 신의 입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장면이다. 대지의 신의 입은 턱뼈로 만들어진 네모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왕의 몸 가운데에서 커다란 천국의 새에 덮여 있는 세상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왕은 죽음의 순간에 두 신의 속성을 갖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매년 부활을 상징하는 옥수수신이다.

상형문자 '치통'. 이것은 머리 주위를 싸맨 띠 때문에 그렇게 불렸고, 왕의 즉위를 상징했다.

 

 

 

'내가 읽은 책들 > 2014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40 이불 속의 쥐  (0) 2014.04.04
2014-039 탄트라 秘典 Ⅰ  (0) 2014.04.02
2014-037 과학으로 여는 세계 불가사의 1  (0) 2014.03.22
2014-036 통과 의례 음식  (0) 2014.03.21
2014-035 쉬!  (0) 2014.03.21
posted by 황영찬
2014. 3. 22. 11:22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7 과학으로 여는 세계 불가사의 1

 

이종호 지음

2006, 문화유람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1666

 

001.44

이75세 1 c. 2

 

신과 미지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인간들의 이야기

 

이종호

과학자이자 고대 문명 탐사가.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탐사하며 연구를 시작해 기초 없이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 등으로 20여 개 국가에서 특허권을 얻는 등 지금도 문명과 과학 · 역사를 넘나들며 많은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프랑스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 취득

·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 제출상 수상

· 해외유치 과학자로 귀국

· 한국과학기술연구소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활동

· 과학기술처장관상 · 태양에너지학회상 ·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저서>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현대과학으로 다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박택규 공저)

『피라미드 과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물리, 화학, 생리 의학)』 등 다수

 

contents

 

머리말

 

1부 전설의 시작

1장 | 왕들의 계곡에 내린 파라오의 저주

2장 | 계속되는 피라미드의 미스터리

3장 | 스핑크스는 초고대문명의 흔적인가

4장 |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를 향해

 

2부 신화의 무대

5장 | 플라톤과 아틀란티스

6장 | 남극지도의 전혀 다른 진실

7장 | 소돔과 고모라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8장 | 한니발과 카르타고의 비밀의식

9장 | 바이킹, 미지의 땅을 향한 공포의 열정

 

3부 잃어버린 지혜를 찾아서

10장 | 크로마뇽인들과 동굴벽화

11장 | 스톤헨지를 세운 사람들

12장 | 나스카 문양, 땅에 새긴 하늘의 암호인가

13장 | 이스터 섬에서 일어난 일

14장 | 연금술, 욕망과 지적 열망 사이에서

 

미주

참고문헌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왕들의 계곡. 사진은 그 중에서 투탕카멘 무덤 입구의 모습이다. 왕들의 계곡에는 이집트 제18왕조부터 제20왕조까지 파라오 60여 명의 무덤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대부분의 무덤들이 도굴되었는데 투탕카멘 무덤은 무덤을 축조할 당시의 모습과 유물을 간직한 채 발굴되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최근에도 이곳에서는 미라가 발견되었고, 새로운 파라오의 무덤을 찾기 위한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왕들의 계곡에서 발견된 람세스2세의 미라.(위)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로 추정되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미라는 이미 오래전에 도굴되었고, 19세기 후반에 다시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영생을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제조하며 약품을 쓰는 기술, 해부학, 의학, 등을 발전시켰다. 미라를 만들 때는 썩기 쉬운 내장을 시신에서 꺼내 카노픽(아래)이라는 항아리에 나누어 보관했다. 카노픽은 4개의 항아리가 한 세트였는데 항아리 뚜껑에는 사람, 원숭이, 자칼, 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었다.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 항아리에는 간을, 원숭이가 조각된 항아리에는 폐를, 자칼 항아리에는 위를, 매 항아리에는 창자를 담았다.

역사적인 투탕카멘 무덤 발굴의 두 주인공인 카터와 카르나본 경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투탕카멘 무덤에서 카터와 카르나본 경이 금이 도금된 문을 열고 궤를 살피고 있다. 이 안에서 석관, 미라형 관, 황금 마스크를 쓴 왕의 미라가 발견됐다. 이들이 발굴한 투탕카멘 무덤은 금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발굴 사건으로 꼽힌다. 옛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고대 이집트 세계의 신비를 푸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투탕카멘의 관을 살피는 카터.

투탕카멘 황금관.

투탕카멘 왕의 미라를 조사하는 과학자들. 투탕카멘 무덤을 발굴한 사람들의 죽음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며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러한 의문의 죽음들이 일어난 것은 미라나 과일들에 기생했던 곰팡이들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때 제기되기도 하였다.

아마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투탕카멘 왕의 미라. 이집트인들은 장기를 따로 분리하고 나트론으로 시신을 채워 더 이상 썩지 않게 한 뒤 아마포로 감아 미라를 만들었다.

투탕카멘 미라를 CT(컴퓨터단층촬영기)로 촬영하고 있다.

투탕카멘 미라의 머리 부분을 X선으로 촬영한 모습. 사진에서 X로 표시된 흰 부분은 미라를 제작할 때 주입한 수지이다. A 흔적 때문에 외부의 타격에 의해 투탕카멘이 살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투탕카멘의 얼굴을 복원한 그림. 3,3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소년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모습을 미라 CT(컴퓨터단층촬영기) 촬영 등의 자료를 통해 재현했다. 이 작업은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와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가 주관했다.

발굴 당시 투탕카멘 무덤의 내부 모습으로 아누비스 조각상이 보인다(위). 아래 사진은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들. 이집트인에게 이누비스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고 오시리스의 법정으로 인도해,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삶을 판정하는 존재였다. 죽음의 의식과 사후 세계를 주관했기 때문에 미라를 만드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흔히 자칼의 얼굴을 한 이누비스신이 등장한다.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 때 다른 장기는 분리해 카노픽 항아리에 나눠 보관하면서 심장 만큼은 분리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집트 카이로 남서쪽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로 지상 최대의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특히 기원전 26세기 경에 쿠푸 왕이 쌓은 피라미드는 가장 그 규모가 크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필론이 이야기했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피라미드는 웅장한 규모뿐만 아니라 정교한 건축술 등으로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고대 역사에 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대피라미드의 쿠푸 왕 현실로 들어가는 대회랑의 모습. 아래 사진은 비밀의 문. 대피라미드의 쿠푸 왕 현실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청난 보물을 간직한 쿠푸 왕의 현실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1985년에는 프랑스의 건축가인 도르미옹과 골뎅이 대피라미드의 구조상 알려지지 않은 다른 찾기 위한 탐사를 펼쳤는데 아래 사진은 독일 탐사팀이 로봇을 이용해 찍은 사진으로 비밀의 방 입구라고 주장되는 곳이다.

이집트 기자에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와 함께 이집트의 고대 문화유산을 대표한다. 스핑크스를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학설이 분분하나 피라미드를 보호할 목적에 세워졌다는 의견이 많다. 스핑크스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조각상이다.

케프렌 조각상(위)과 스핑크스 정면 모습(아래). 케프렌 조각상은 이집트 유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이다. 케프렌은 스핑크스를 세운 파라오로 알려졌는데 스핑크스의 얼굴이 케프렌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주장 때문에 조각상과 스핑크스의 얼굴을 비교하는 연구가 있기도 하였다.

스핑크스 앞발 바로 앞에 있는 스핑크스 신전. 기자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주변에는 거대한 신전이자 건설 노동자들의 숙소가 있었다.

건조한 지대에 비교적 큰 전쟁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집트의 문화유산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인간들에 의한 자연 파괴 때문에 유산 보존이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나일강에 아스완 댐이 건설되면 수몰 위기에 처하자 그 위치를 높은 곳으로 옮겨 다시 세우게 된 아부심벨 신전.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6~1541).

사생아(私生兒)로 태어나 글도 배우지 못했던 피사로는 용병(傭兵)생활을 마친 뒤 신대륙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발보이가 죽은 뒤 후계자가 되어 파나마를 건설하고 콜롬비아를 탐험했던 피사로는 잉카제국의 정보를 입수한 뒤에 일시 귀국했다. 그리고 에스파냐 왕실의 원조를 받는 등 준비를 갖춘 뒤 1531년 기마병을 포함해 부하 180명을 거느리고 중남미로 돌아왔다. 다음해 잉카의 내란을 탐지한 그는 잉카의 황제 아타왈파(Atahualpa, 재위 1525~1533)와의 회견 자리에서 황제를 납치했다. 아타왈파가 황금을 대가로 풀어달라고 제의하며 엄청난 황금을 제공받았으나 반란이 두려웠던 피사로는 1533년 아타왈파를 우상숭배와 근친혼, 그리고 일부다처제의 죄를 물어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했다.

아타왈파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잉카의 신앙에 따르면 화형은 영혼 소멸을 뜻하기에 화형을 면하고자 기독교로 개종하고 교수형을 당했다. 총이나 말(horse)을 몰랐고, 그들이 숭배하는 신이 흰색이었던 강력한 제국, 잉카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군대에 의해 멸망하고 만 것이다. 피사로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점령하고 잉카제국을 에스파냐 왕에게 바쳤다. 1535년부터 새 수도 라마의 건설을 시작했다. 문맹이면서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피사로였지만 그 역시 동료와의 싸움에서 비참한 최후를 당했다.

페루의 쿠스코(Cuzco)와 쿠스코 주변에 남아 있는 잉카제국의 흔적. 인구가 29만을 조금 넘는 이 도시는 페루 리마의 동남쪽 580킬로미터, 해발고도 3,400미터로 인데스산맥에 위치하며 기후가 쾌적하다. 13세기 초에 건설되어 16세기 중반까지 중앙 안데스 일대를 지배한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피사로와 에스파냐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번영의 절정기를 맞이했던 당시의 쿠스코는 반듯한 시가지, 아름다운 건물, 거대한 신전 등으로 정복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도시는 정복된 후 파괴되어 에스파냐풍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으나 주변 곳곳에는 아직도 잉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잉카제국이 번창하던 시절 쿠스코에 있던 태양의 신전. 광장을 중심으로 태양, 무지개, 달, 별, 천둥과 번개, 희생의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방들은 아름답고 단단한 돌벽으로 되어 있었는데 움푹 들어간 자리엔 금이나 은 장식물이 있었다고 한다. 신전은 벽에서 나오는 황금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는 한 에스파냐 정복자의 글이 전하기도 한다.

잉카가 멸망한 이후 에스파냐인들은 신전을 파괴하고초석만 남긴 채 그 위에 에스파냐풍의 교회를 세웠다. 지금도 전하는 잉카 때의 초석은 큰 지진을 견디며 지금도 남아 잉카 건축술의 정교함과 견고함을 증명해주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 해발 2,280미터 정상에 자리잡은 마추픽추는 그야말로 '공중도시'이다. 잉카의 마지막 황제 망코가 에스파냐인들에게서 도망쳐 빌카밤바라는 잉카 최후의 수도를 세우고 엄청난 보물을 숨겼다는 전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도시를 찾았는데 마추픽추를 그 전설의 빌카밤바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의 정치가였던 이그나티스 도넬리(1831~1901). 세계 각국의 유적이나 신화, 문화 등을 통해 아틀란티스가 실재했음을 주장하는 그의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중해 크레타 섬에 있는 크노소스 궁전으로 고대의 왕궁 중에서도 그 규모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해 1,000개를 훨씬 넘는 방들이 있는데,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이 미궁(迷宮) 깊숙이 살고 있는 괴수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왕녀 아리아드네와 함께 섬을 탈출했다는 신화의 무대이기도 하다.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 있는 벽화로 달려오는 황소를 넘는 경기를 묘사했다. 고대 크레타인들의 이러한 풍습은 플라톤이 말하는 아틀란티스의 이야기와 관련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크노소스궁의 내부를 복원한 그림.

미국 칸주립대학의 찰스 햅굿 교수는 중세에 제작된 지도를 연구하다. 이 지도가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정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도가 제작되던 때에는 탐사조차 되지 않았던 땅들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많은 중세 지도에 수 킬로미터 두께의 얼음에 파묻힌 남극 대륙이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에 큰 흥미를 느꼈다. 19세기 초반에 남극 대륙이 발견되고 20세기에 들어와 남극점이 정복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햅굿은 이들 지도들이 그 이전부터 전해오던 원본을 짜집기해서 제작된 것이 틀림없다고 보았다. 고대에 발전했던 과학기술이 이후 중세를 거치면서 잊혀졌다는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스만제국의 해군 제독을 지냈던 피리 레이스가 1513년에 제작한 지도는 놀라웠다. 수천 미터 만년설과 얼음 밑에 있는 남극 대륙의 산맥과 강 등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피리 레이스는 당시에 전해지던 지도를 베껴서 지도를 제작했다. 이에 햅굿은 오래전에 고도의 문명을 유지했던 사람들에 의해 지도가 처음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펼쳤다.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지도로 네모 선 안이 남극 대륙에 해당한다. 피리 레이스의 지도가 제작되고 18년이 지난 1531년에 제작된 오론테우스의 지도에는 남극이 더 정확하게 묘사되어 잇다. 20세기 중반에야 알려진 남극의 얼음 밑의 산맥과 섬이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극 대륙을 인공위성에서 본 모습. 과거의 정설은 지구의 공전궤도와 자전축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면서 남극 대륙에 빙하기가 도래했다는 것이지만 햅굿은 양 극점 위의 얼음이 임계질량에 도달하면 그 무게로 지구의 외피인 지각판(각 대륙이 지각판 위에 얹혀 있다)이 균형에 도달할 때까지 이동한다는 이론을 폈다.

키르허의 지도.

나르메르 왕의 승전을 기념하는 그림이 새겨진 판(기원전 3100년경 제작,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나르메르가 나일강 일대의 도시국가를 통합해 최초로 이집트 통일왕국을 세우면서 이집트 제1왕조가 시작된다. 이집트 문명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은 나르메르의 정복전쟁과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이집트 등에 영향을 준 남극 문명 유적의 건설 연대가 1만 2,000년 전이라고 한다면 이집트 문명이 시작된 기원전 3000년경까지의 시간이 공백으로 남는다.

롯의 두 딸과 아내가 소돔을 탈출하는 모습. 그러나 아내는 천사의 훈계를 어기고 뒤를 돌아다봄으로써 소금 기둥이 된다.

모헨조다로 유적.

1908년 여름의 초토화된 러시아 퉁구스카 삼림지대로 나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쓰러져 잇다. 퉁구스카에서 일어난 대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컸던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영국에서는 한밤중에도 신문의 작은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시베리아 대폭발'로 알려진 사건이다.

카르타고의 디도 여왕과 동거 생활을 하던 아이네이아스가 여왕에게 이별을 고하고 카르타고를 떠나는 장면. 이때 디도 여왕은 "카르타고와 아이네이아스의 도시는 영원히 원수가 되어 증오하리라, 전쟁하리라"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훗날 아이네이아스가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선조가 됨에 따라 카르타고와 로마는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관계가 되었다.

무역에 능했던 고대 페니키아인이 지금의 북아메리카 튀니지에 세운 도시국가인 카르타고.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다른 주요 도시들이 쇠퇴하는 동안 지중해 일대의 강자로 떠올랐고, 지중해를 사이에 둔 채 로마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제2차 포에니전쟁의 영웅, 한니발(Hannibal, 기원전 247~183)

제2차 포에니전쟁 때 한니발의 군대는 코끼리까지 동원한 채 바다와 강을 건너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까지 2,700여 킬로미터를 진군한다.

스키피오(Scipio, 기원전 236~184)와 로마군. 고대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스키피오는 '대(大)아프리카누스'로 불리기도 한다. 명문 스키피오 가문 출신으로 제2차 포에니전쟁에 참전해 에스파냐의 카르타고군을 격파하였고, 로마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204년에는 아프리카로 군대를 진격시켰다. 기원전 202년, 아프리카의 자마에서 한니발을 무찌르고 제2차 포에니전쟁을 종결시키며 '아프리카누스'란 칭호를 얻었다.

카르타고에 남아 있는 로마의 흔적. 포에니전쟁에서 패하며 카르타고는 철저히 파괴되고 로마의 문화가 유입된다.

카르타고인들이 숭배했던 하늘의 여신 타니트신전(神殿)의 유적.

신을 위해 희생된 자들의 비석. 가히 지옥의 신전(神殿)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만 명이 넘는 어린아이들의 목숨이 카르타고의 신을 위해 사라졌다.

바이킹이 쓰던 전함.

캐나다 뉴펀들랜드에 있는 바이킹 유적지. 역사학자들은 13~14세기에 발간된 플래티북(Flatey Book)의 기록을 토대로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믿었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1961년 헬게와 안네 잉스타드 부부는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북쪽에 있는 랑스오메도우에서 마침내 바이킹의 유적지를 찾는다.

1492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그의 일행.

실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진 알타미라 동굴벽화.

프랑스 도르도뉴의 몽티냐크 마을에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 1940년 마을의 소년들이 우연히 발견했는데 동굴에는 들소 · 야생마 · 사슴 · 염소 등의 그림이 많았고, 주술사 등도 그려져 있었다.

프랑스 남쪽 아르데슈 지방의 콤브다르크에서 발견된 쇼베 동굴과 쇼베 동굴벽화. 이 유적의 이름은 1994년 12월 처음 발견한 이 지방 고고학분과의 공무원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멸종한 유럽 들소 그림을 포함해 매머드, 동굴사자, 동굴곰 등 다른 선사시대 벽화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동물들의 그림도 있다. 프랑스의 벽화 전문가인 클로트는 그림들이 사냥을 위한 마법의 의미보다는 동물들의 영혼을 드러내기 위한 주술적인 의식(儀式)에 쓰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벽화전문가들은 이 동굴 유적이 라스코나 알타미라의 동굴벽화 이상으로 뛰어나다고 평했다.

라스코 동굴은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를 대표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보면 말 그림이 6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러나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의 뼈를 보면 순록이 90퍼센트에 이른다. 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과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들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 중 유일하게 사람 형상을 한 그림. 투창에 상처를 입고 내장이 나온 들소 앞에 새의 얼굴을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학자들 중에는 사냥 중 일어난 사고라고 하는가 하면 수렵의식의 황홀경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라스코 동굴벽화 중 많은 사람들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는 그림이다.

7만여 년 전에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추상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중석기 지층에서 발견된 이 추상화는 철광석의 일종인 '오커(적토)'의 두 표면을 평평하게 한 다음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균등한 간격으로 대각선 여러 개를 긋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대각선을 그어 마름모꼴과 삼각형을 표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추상화에는 하나의 체계가 있으며 지금 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당시 사람들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상징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대의 거석 기념물인 스톤헨지. 영국 월트셔주(州) 솔즈베리 평원에 있다. 1986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되었다.

중세인들은 거대한 돌들이 서 있는 스톤헨지를 보며 키가 5미터나 되는 거인의 묘라고 생각하거나 노아의 홍수 이전에 살고 있던 악마나 마법사의 소행이라고 보았다.

스톤헨지를 하늘에서 본 모습. 돌과 그 주변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스톤헨지의 돌 배치가 우연이 아니라 태양과 달 등의 천문 지식을 활용한 점이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를 둘러싸고 스톤헨지의 비밀을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스톤헨지 건설에 천문지식이 깊이 활용되었다면 이는 경제와 종교, 의술, 정치 등에 영향을 미쳤던 천문학자 즉 사제계급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영국의 거석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솔즈베리 대사원(위)과 실베리힐(아래).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의 수수께끼로, 논란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스톤헨지.

영국의 스톤헨지에서 30킬로미터쯤 북쪽에 있는 에이브베리에도 거석문화의 유적이 전한다.

프랑스 카르나크에 있는 거석문화의 유적으로 약 3킬로미터에 걸쳐 돌들이 놓여져 있다.

페루 리마 동남쪽 약 37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나스카평원으로 해발고도는 700미터쯤 된다. 근처에는 9세기경에 가장 번영했던 프레잉카의 유적이 있는 등 남아메리카 고고학 연구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본 거미 모양의 나스카 문양.

나스카평원에 그려진 벌새 문양.

하늘에서 본 우주인 모양의 나스카 문양.

나스카평원에서 가까운 페루 해안의 또 다른 지오글리프(geoglyph, 땅그림).

나스카인들에게 물을 공급하던 시설.

활주로 모습을 한 나스카 문양.

사람 얼굴을 한 거대한 조각상 모아이 이들은 주로 1200~15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아이는 씨족별로 세워지고 각각의 이름을 갖는데 가장 큰 것은 높이가 20여 미터에 이른다.

붉은색 모자를 쓴 모아이.

라노카오 분화구.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이스터 섬의 주민들은 모아이의 석재로 조각하기 쉬운 화산암을 이용하였다.

주로 해변을 끼고 서 있는 이스터 섬의 모아이들.

이스터 섬에 살던 주민들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적지.

이스터 섬의 신성한 공간인 아후, 길이가 50미터에 이르는 곳도 있다.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장소로 추정되며 석상과 그 주변은 성소(聖所)로 보호되었고, 사람들이 죽으면 뼈를 묻기도 했다.

조지프 라이트 어브 더비가 1770년에 그린 <연금술사>.

<미다스의 형벌>. 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큰 형벌을 받아야 했던 미다스 왕의 이야기는 인간의 금에대한 오랜 집착을 잘 말해준다.

투탕카멘 황금 마스크. 금은 그 특유의 성질로 인간들에게 오랫동안 귀중품이 되어 왔다.

이집트 덴데라의 하토르 연신을 모시는 신전에서 발견된 그림. 이집트인들이 커다란 전기 램프를 들고 있는데 전기 램프는 한편에서 제드라고 하는 기둥이 받치고 있고, 한쪽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연금술이 행해지던 방. 연금술사들은 한편에서 세상의 비밀을 풀고자 한 철학자들이자 낯선 세계를 노크하는 탐구자였다.

1862년 이집트의 테베에 있는 무덤에서 발견한 파피루스 에버스(Papyrus Ebers). 연금술에 관한 내용을 담은 가장 오래된 저술로 기원전 16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학자들은 연금술이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실제 이집트의 연금술 지식은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파피루스 에버스가 제작될 당시 이집트에서 연금술을 행하는 장면.

니콜라 플라멜과 그가 살던 파리의 집. 니콜라 플라멜은 연금술 역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인물이다. 아내와 함께 책장사와 대서업으로 큰돈을 벌어 빈민구호소를 운영하던 그는 천사의 예언대로 낯선 사람에게서 이상한 책을 받는다. 그 부부는 이후 이 책을 해독하는 데 21년을 보냈고 그 과정에서 연금술을 익힌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1382년 1월 17일 정오에 수은(Hg)을 은(Ag)으로 변화시켰고, 3개월 후인 4월 25일 오후 5시에는 수은(Hg)을 금(Au)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1407년에 지어진 그의 집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알려져 있다.

거짓말을 한 연금술사를 교수형에 처한다는 발표문(뮌헨박물관 소장).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212).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시라쿠사 출신. 지렛대의 원리에 능통했던 그는 시라쿠사 왕 히에론 앞에서 "긴 지렛대와 지렛목(支點)만 있으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이겠다"라고 장담했다. 하루는 왕이 자신의 금관에 은이 섞였다는 소문을 듣고 아르키메데스에게 이를 감정하라고 명했는데 그는 이 문제를 풀면서 중요한 원리를 발견한다.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카르타고와 로마의 제2차 포에니전쟁(기원전 218~201) 때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의 편을 들어 로마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게 되었다. 이때 아르키메데스는 70세를 넘긴 나이였지만 각종 투척기나 기중기 등 지렛대를 응용한 신형 무기를 고안해 로마의 대군을 크게 괴롭혔다. 몇 년 뒤 시라쿠사가 함락되었는데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기하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아르키메데스는 뜰의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며 기하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다가오는 사람의 그림자가 로마 병사 것인 줄도 모르고 도형이 망가진다고 물러나라고 외쳤다. 로마 병사 역시 그를 몰라보고 그의 목을 쳤다.

로버트 보일(1627~1691). 그는 모든 물질의 순수한 1차 구성 성분인 원소를 발견함으로써 오랜 연금술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연금술을 상징하는 그림. 연금술은 실패했으나 과학의 발전에 남긴 공은 지대하다.

 

 

 

'내가 읽은 책들 > 2014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39 탄트라 秘典 Ⅰ  (0) 2014.04.02
2014-038 마야 - 잃어버린 도시들  (0) 2014.03.26
2014-036 통과 의례 음식  (0) 2014.03.21
2014-035 쉬!  (0) 2014.03.21
2014-034 한국의 버섯  (0) 2014.03.14
posted by 황영찬
2014. 3. 21. 12:14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6 통과 의례 음식

 

글 / 이춘자, 김귀영, 박혜원●사진 / 배병석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29

 

082

빛12ㄷ  207

 

빛깔있는 책들 207

 

이춘자-------------------------------------------------------------------------

수원여자전문대학 식품조리과 겸임 교수, 88올림픽 문화행사 "한국음식문화5천년전" 준비 위원

 

김귀영-------------------------------------------------------------------------

상주산업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박혜원--------------------------------------------------------------------------

신흥전문대학 호텔조리학과 교수

 

배병석-------------------------------------------------------------------------

88올림픽 문화행사 "한국음식문화5천년전"과 온양민속박물관 유물 촬영 및 도록 발간의 사진작업을 담당했다.

 

도움 주신 분-----------------------------------------------------------------

한명희  전 성균관 전례부장

이상희  전통 떡음식 전문가

정혜상  전통 떡음식 전문가

조경철  "한국음식문화5천년전" 음식부

안인숙  "한국음식문화5천년전" 음식부

이덕연  숙수

 

|차례|

 

통과 의례와 음식

출생 의례

백일

생일

책례

성년례

혼인례

수연례와 회혼례

상장례

제의례

맺음말

참고 문헌

백일상  아기가 태어나 백일째 되는 날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겼음을 축하하기 위해 차리는 상으로 흰밥, 미역국, 백설기, 수수팥경단을 올린다.

큰상을 받은 신랑 신부

회혼례도 부분  회혼수는 우리 선조들이 가장 누리고 싶었던 수로 특별히 더욱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었다.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33.5×45.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삼신상(출산 전)  산달이 되어 산기가 시작되면 산실의 웃목에 깨끗한 쌀과 장곽 그리고 정화수를 준비하여 삼신상을 차린다.

삼신상(출산 뒤)  해산을 하면 금줄을 치고 출산 전 삼신상에 올려졌던 쌀과 미역으로 밥을 짓고 소미역국을 끓여 정화수와 함께 차린다.

오색송편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다양한 색으로 송편을 빚는다. 송편은 두 가지로 빚는데 하나는 실속 있으라고 속이 꽉 차게 빚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 넓으라는 뜻에서 속이 비게 만든다.

남아 돌상  돌잡이는 돌상 앞에서 아기가 자유 의사에 따라 물건을 잡게 하고 그 잡은 물건에 따라 아기의 장래를 예측하는 행사이다. 남자에겐 활과 천자문을 놓는다.

여아 돌상  여자 아이는 바느질 솜씨와 손재주가 좋으라는 뜻으로 바느질자 · 가위 · 색실을 상에 놓는다. 한편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기가 쉽게 잡을 수 있는 곳에 연관된 물건을 놓기도 한다.

관례  옛날에는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될 때 일정한 의식을 거쳤는데 남자 아이는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관을 씌우는 관례를 행했다.

 

 

 

'내가 읽은 책들 > 2014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38 마야 - 잃어버린 도시들  (0) 2014.03.26
2014-037 과학으로 여는 세계 불가사의 1  (0) 2014.03.22
2014-035 쉬!  (0) 2014.03.21
2014-034 한국의 버섯  (0) 2014.03.14
2014-033-1 옛길을 가다  (0) 2014.03.14
posted by 황영찬
2014. 3. 21. 10:27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5 쉬!

 

문인수 시집

2006, 문학동네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2127

 

811.6

문68쉬

 

홀로 가는 외뿔의 시심

 

문인수의 시에서는 홀로 가는 외뿔의 시심(詩心)이 가감 없이 읽혀진다.

사물 속으로 자신의 전부를 투사하는 이 실재(實在)는 거친 각질이 느껴지는 그대로

단숨에 시적 대상을 요약해 보인다. 미처 우리가 돌아보지 못한 곳을 바라보는

그의 깊고 그윽한 시선은 사물이면 사물, 사람이라면 사람, 어느 것에라도

진솔하게 가 닿는 마음의 파문이 되어 독자들의 가슴에도 사무치는데,

우리는 그런 친화를 감동이라는 말로 고쳐 불러도 좋으리라.

진정한 타자성이야말로 문인수 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잇다.

 

나는 어린 시절 동네의 풍물마당에서 만났던 한 북재비 사내의 채질을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의 신명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그어대는 일자일획(一字一劃)의 붓질이었다.

문인수의 시편 속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놀이에 파묻히는, 제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몰두와 통찰이 스며 있다. 그의 북질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이 되어

마침내 마음을 쓰다듬으니, 누더기를 깁느라 자신도 누더기가 되어본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너덜너덜함을 애써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변두리로만 한없이 흘러가던 길이

어느 순간에 들판으로 툭 틔워, 감추었던 내장을 모두 쏟아내는 그 후련함은

그가 사물이나 사람과 사귀는 데 진정을 다했음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구름 속에서도 내처 흘러온 조각달처럼 하염없는 세월의 심상을 간직하지만,

날카로운 날(刃)을 함께 품고 있어서 마침내 서늘한 부재(不在)까지 꽉 찬 여백으로

돌려놓는다. 젊지 않았던 나이에 노래를 익혀 어느새 득음(得音)의 경지를 열어젖힌

그의 내공은 그 동안의 각고가 간단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김영인(시인,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85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뿔』『홰치는 산』『동강의 높은 새』 등이 있다.

E-mail : insu3987@hanmail.net

 

自序

 

'재미'라는 말 안에 인생 전부,

전반을 우겨넣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해본다면

나는 아직 시 쓰려는 궁리,

쓰는 노력보다 더 그럴듯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이 한 욕심이 참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는 줄 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시를 쓴다.

가끔,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끝장낼 수 없는 시여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

 

차례

 

自序

 

1부

달북 / 쉬 / 덧니 - 이성선 시인을 추모함 / 벽의 풀 / 고인돌 / 고인돌공원 / 성밖숲 / 꽃 / 원서헌의 彫像 / 낮달이 중얼거렸다 / 樹葬 / 저 할머니의 슬하 / 새벽 / 뿔, 시퍼렇게 만져진다 / 우렁각시

 

2부

그림자 소리 / 바다책, 채석강 / 바다책, 다시 채석강 / 등대 / 등대도 팔 힘을 쓴다 / 소나기 / 청령포 / 항해 / 꽉 다문 입, 태풍이 오고 있다 / 꽉 다문 입, 휴가 / 2박 3일의 섬 / 모항 / 민박 / 바다 가는 길 / 땅끝 / 그리운 북극 / 나비

 

3부

그늘이 잇다 / 철자법 / 산길에서 늙다 / 정취암엔 지옥도가 있다 / 각축 / 고양이 / 집 근처 학교 운동장 / 오지 않는 절망 / 발톱 / 새해 / 밝은 날 명암이 뚜렷하다 / 저수지 / 황조가 / 밝은 구석 / 서쪽이 없다 / 집에 전화를 걸다 / 끝

 

4부

짜이 - 인도소풍 / 기차가 몰고 온 골목 - 인도소풍 / 빨래궁전 - 인도소풍 / 말라붙은 손 - 인도소풍 / 먹구름 본다 - 인도소풍 / 굴렁쇠 우물 - 인도소풍 / 싯타르를 켜는 노인 - 인도소풍 / 모닥불 - 인도소풍 / 모닥불 1 - 인도소풍 / 모닥불 2 - 인도소풍 / 기차를 누다 - 인도소풍 / 갠지스 강 - 인도소풍 / 새 - 인도소풍 / 불가촉천민 - 인도소풍

 

달북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달,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데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암흑의 밑이 투둑, 타개져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까지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대답이 두둥실 만월이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고인돌

 

   죽음은 참 엄청 무겁겠다.

   깜깜하겠다.

   초록 이쁜 담쟁이넝쿨이 이 미련한, 시꺼먼 바윗덩이를 사방 묶으며 타넘고 있는데, 배추흰나비 한마리가 그 한복판에 살짝 앉았다.

   날아오른다. 아,

   죽음의 뚜껑이 열렸다.

   너무 높이 들어올린 바람에

   풀들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나왔다.

   그 어떤 무게가, 암흑이 또 이 사태를 덮겠느냐, 질펀하게 펼쳐지는,

   대낮이 번쩍 눈에 부시다.

 

그림자 소리

 

지수제 난간에 어떤 남녀가 서 있다.

두 그림자 물에 길게 넌다. 막돌들 들여다보이는

얕은 시냇물, 빠짐없이 밟히는 것들의 물그늘 마르지 않고

관계란 참 마음 아픈 데가 옹기종기 너무 많은 것 같다.

또 불어 한통속으로 힘껏 짜내는,

빠져나가는 물소리 물소리 하염없다.

 

그늘이 있다

 

광명에도 초박의 암흑이 발려 있는 것 같다.

전깃불 환한 실내에서 다시

탁상용 전등을 켜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분명, 한 꺼풀 얇게 훔쳐 감추는 휘발성분 같은 것

책이나 손등, 백지 위에서 일어나는

광속의 투명한 박피현상을 볼 수 있다.

사랑한다, 는 말이 때로 한순간 살짝 벗겨내는

그대 이마 어디 미명 같은 그늘,

그런 아픔이 있다. 오래 함께한 행복이여.

 

짜이

- 인도 소풍

 

인도에서는 마시는 차를 '짜이'라 부른다.

무슨 가축의 젖을 원료로 쓴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달착지근하니 약간은 비린 맛을 풍긴다.

 

내가 아, 빤히 올려다보며 빨아먹은 어미는 도대체 몇왕생 몇몇이었을까

윤회를 믿는 신비한 나라,

인도 미인들의 검은 누은 깊고 그윽하다.

 

 

 

 

'내가 읽은 책들 > 2014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37 과학으로 여는 세계 불가사의 1  (0) 2014.03.22
2014-036 통과 의례 음식  (0) 2014.03.21
2014-034 한국의 버섯  (0) 2014.03.14
2014-033-1 옛길을 가다  (0) 2014.03.14
2014-033 옛길을 가다  (0) 2014.03.13
posted by 황영찬
2014. 3. 14. 13:12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4 한국의 버섯

 

글, 사진 / 조덕현

1999,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28

 

082

빛12ㄷ 206

 

빛깔있는 책들 206

 

조덕현-------------------------------------------------------------------------

경희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영국 레딩대학교 식물학과, 일본 가고시마대학교 농학부, 일본 오이타현의 버섯연구지도센터에서 연구하였으며 광주 보건전문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우석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물학과 교수로 있다. 『균학개론』『생물학』『고등학교 생물 』 등 10여 권의 주요 저서와 「한국산 외대버섯속의 분류학적 연구」「외대버섯의 포자 발생」「백두산의 균류상에 관한 연구」「지리산의 균류상」 등 국립공원에서 자생하는 균류의 생태, 분류에 관한 10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차례|

 

머리말

버섯은 어떤 생물인가

한국의 버섯

버섯의 채집과 관찰

용어 해설

찾아보기

참고 문헌

노란다발

Naematoloma fasciculare (Hudson : Fr.) Karst.

담자균류의 독청버섯과에 속하는 독버섯으로 처음에는 전체가 노랑색이어서 아름답다.

갈색먹물버섯

Coprinus micaceus (Bull. : Fr.) Fr.

담자균류의 먹물버섯과에 속하며 어릴 때는 먹을 수 있다. 성숙하면 먹물처럼 녹아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끈적뱅어버섯

Multiclavula mucida (Pers. : Fr.) Petersen

담자균류의 국수버섯과에 속하며 식독 불명 버섯이다.

말똥진흙버섯

Phellinus igniarius (L. : Fr.) Quel.

담자균류의 진흙버섯과에 속하며 중국에서는 상황버섯이라고도 한다. 항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잔버섯

Sarcoscypha coccinea (S. F. Gray) Lamb.

자낭균류의 술잔버섯과에 속하며 색깔이 매우 아름다운 버섯이다.

새주둥이버섯

Lysurus mokusin (L. : Pers.) Fr.

담자균류의 바구니버섯과에 속하는 것으로 먹을 수 없다.

털작은입술잔버섯

Microstoma floccosa (Schw.) Rait.

자낭균류의 술잔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넓적콩나물버섯

Spathularia clavata Pers. : Fr.

자낭균류의 콩나물버섯과에 속하는 것으로 먹을 수 없다.

이끼살이버섯

Xeromphalina campanella (Batsch. : Fr.) Maire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는 버섯으로 먹을 수 없는 버섯이다.

주름찻잔버섯

Cyathus striatus Willd. : Pers.

담자균류의 찻잔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흰주름버섯

Agaricus arvensis Schaeff. : Fr.

담자균류의 주름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고 인공 재배도 가능한 버섯이다.

밀짚색무당버섯

Russula laurocerasi Melzer

담자균류의 무당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고 쓴맛과 불쾌한 냄새가 난다.

좀벌집버섯

Polyporus arcularius Batsch. : Fr.

담자균류의 구멍장이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붉은덕다리버섯

Laetiporus sulphureus var. miniatus (Jungh.) Imaz.

담자균류의 구멍장이버섯과에 속하는 것으로 어릴 때는 먹을 수 있다.

갈색꽃구름버섯

Stereum ostrea (Bl. & Nees) Fr.

담자균류의 고약버섯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주름버섯

Agaricus campestris L. : Fr.

담자균류의 주름버섯과에 속하는 것으로 먹을 수 있으며 인공 재배도 가능한 버섯이다.

소혀버섯

Fistulina hepatica Schaeff. : Fr.

담자균류의 소혀버섯과에 속하는 것으로 먹을 수 있으며 외국에서는 진귀한 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나팔버섯

Gomphus floccosus (Schw.) Sing.

담자균류의 나팔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다.

애기버섯

Collybia dryophila (Bull. : Fr.) Kummer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다.

연지버섯

Calostoma japonicum P. Henn.

담자균류의 연지버섯과에 속하며 연지처럼 붉은색이 있어서 아름다운 버섯이다.

젖비단그물버섯

Suillus granulatus (Fr.) O. Kuntze

담자균류의 그물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다.

동충하초

Cordyceps militaris (Vuill.) Fr.

자낭균류의 동충하초과에 속하며 한약방에서는 강장제로 쓰인다.

난버섯

Pluteus articapillus (Batsch) Fayod

담자균류의 난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꾀꼬리버섯

Cantharellus cibarius Fr.

담자균류의 꾀꼬리버섯과에 속하는 버섯으로 살구 같은 향기가 나며 유럽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맛이 좋은 식용 버섯이다.

피젖버섯

Lactarius akahatsu Tanaka

담자균류의 무당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다.

자주졸각버섯

Laccaria amethystea (Bull.) Murr.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는 버섯으로 먹을 수 있으며 매우 아름답다.

목이

Auricularia auricula (Hook.) Underw.

담자균류의 목이과에 속하는 버섯으로 먹을 수 있으며 중국 요리에 많이 쓰인다.

민자주방망이버섯

Lepista nuda (Bull. : Fr.) Cook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고 인공 재배도 가능하다.

분홍망태버섯

Dictyophora indusiata (Vent : Pers.) Fisch. f. lutea Kobay.

담자균류의 말뚝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는 버섯이다. 망태버섯과 균모와 자루가 비슷하지만 색깔이 노란색인 것이 차이점이며 고약한 냄새로 곤충 등을 유인하여 포자를 퍼뜨린다.

버섯자루의 위에 있는 종형의 균모 내부에서 노란색, 등황색, 연한 홍색을 띠는 그물모양의 레이스와 비슷한 망토가 펼쳐진다.

들주발버섯

Aleuria aurantia (Fr.) Fuckel

자낭균류의 접시버섯과에 속하는 것으로 독성은 없고 색이 화여해서 매우 아름답다.

껄껄이그물버섯

Leccinum extremiorientales (L. Vass.) Sing.

담자균류의 그물버섯과에 속하는 대형 버섯으로 먹을 수 있다서양에서는 주로 수프로 만들어 먹는다.

곰보버섯

Morchella esculenta (L. : Fr.) Pers.

지낭균류의 곰보버섯과에 속하며 맛이 좋은 버섯이다.

볏짚버섯

Agrocybe praecox (Pers. : Fr.) Fayod.

담자균류의 소똥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다.

갈황색미치광이버섯

Gymnopilus spectabilis (Fr.) Sing.

담자균류의 끈적버섯과에 속하는 독버섯으로 신경 계통을 자극하여 환각 증상을 일으킨다.

보라땀버섯

Inocybe geophylla (Sow. : Fr) Kummer

담자균류의 끈적버섯과에 속하는 독버섯이다.

등색껄껄이그물버섯

Leccinum versipelle (Fr.) Snell.

담자균류의 그물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다.

황금싸리버섯

Ramaria aurea (Schaeff. : Fr.) Quel.

담자균류의 싸리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는 있으나 먹으면 설사를 일으키기 때문에 독버섯으로 취급한다.

검은인편끈적버섯

Cortinarius nigrosquamosus Hongo

담자균류의 끈적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잣버섯

Lentinus lepideus (Fr. : Fr.) Fr.

담자균류의 느타리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고 인공 재배도 가능한 버섯이다.

치마버섯

Schizophyllum commune Fr. : Fr.

담자균류의 치마버섯과에 속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먹지 않으나 중국에서는 식용한다.

먼지버섯

Astraeus hygrometricus Morgan

담자균류의 먼지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쇠뜨기버섯

Pamariopsis kunztei (Fr,) Donk

담자균류의 싸리버섯과에 속하는 것으로 먹을 수 없다.

배젖버섯

Lactarius volemus (Fr.) Fr.

담자균류의 무당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으나 신맛이 난다.

혀버섯

Guepinia spathularia (Schw.) Fr.

담자균류의  붉은목이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는 버섯이다.

뽕나무버섯

Armillariella mellea (Vahl : Fr.) Karst.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먹으나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독버섯으로 취급하여 먹지 않는다.

말불버섯

Lycoperdon perlatum Pers.

담자균류의 말불버섯과에 속하며 어릴 때는 먹을 수 있다.

큰낙엽버섯

Marasmius maximus Hongo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기와옷솔버섯

Trichaptum fuscoviolaceum (Fr.) Ryv.

담자균류의 구멍장이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깔때기버섯

Clitocybe gibba (Pers. : Fr.) Kummer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나 미국과 유럽에서는 독버섯으로 취급한다.

마귀광대버섯

Amanita pantherina (DC. : Fr.) Krombh.

담자균류의 광대버섯과에 속하며 독버섯이다. 시골에서는 이 버섯을 밥알과 이겨 놓아 파리를 잡는 데 이용하기도 하므로 파리버섯이라고도 한다.

비늘버섯

Pholiota squarrosa (Fr.) Kummer

담자균류의 독청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는 있으나 사람에 따라 중독(소화기 장애)을 일으키기도 하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붉은산벚꽃버섯

Hygrocybe conica (Scop. : Fr.) Kummer

담자균류의 벚꽃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다.

노린재동충하초

Cordyceps nutans Pat.

자낭균류의 동충하초과에 속하며 한약에서느 강장제로 쓰이는 버섯이다.

목도리방귀버섯

Geastrum triplex (Jungh.) Fisch.

담자균류의 방귀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노란꼭지외대버섯

Entoloma murraii (Berk. & Curt.) Sacc. = Rhodophyllus murraii (Berk. & Curt.) Sing.

담자균류의 외대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고 버섯 전체가 황색이다.

부채버섯

Panellus stypticus (Bull. : Fr.) Karst.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는 것으로 먹을 수 없다.

구름버섯

Coriolus versicolor (Fr.) Quel.

담자균류의 구멍장이버섯과에 속하며 항암 성분이 최초로 발견된 버섯으로 끓여서 마실 수 있다.

자주국수버섯

Clavaria purpurea Muell. : Fr.

담자균류의 국수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다.

고리버섯

Cyclomyces fuscus Kuntze

담자균류의  소나무 비늘 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굴털이

Lactarius piperatus (Fr.) S. F. Gray

담자균류의 무당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다. 매우 매운 맛이지만 물에 담갔다가 먹으면 괜찮다.

단풍꽃구름버섯

Stereum spectabile (Klotzsch) Boidin

담자균류의 구멍장이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는 없다.

달걀버섯

Amanita hemibapha (Berk. & Br.) Sacc. subsp. hemibapha

담자균류의 광대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데 구우면 구수한 냄새가 난다.

불로초(영지)

Ganoderma lucidum (Leyss. : Fr.) Karst.

담자균류의 불로초과에 속하며 보통 영지라고 부르고 항암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서 약용으로 이용하며 인공 재배도 행해져 건강 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세발버섯

Pseudocolus schellenbergiae (Sumst.) Johnson

담자균류의 바구니버섯과에 속하는 아름다운 버섯이다.

갈색고리갓버섯

Lepiota cristata (Bolt : Fr.) Kummer

담자균류의 주름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는 버섯이다.

독청버섯

Stropharia aeruginosa (Curt. : Fr.) Quel.

담자균류의 독청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침낭피버섯

Cystoderma amianthinum (Scop. : Fr.) Fayod

담자균류의 주름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다.

가는대눈물버섯

Psathyrella gracillis (Fr.) Quel.

담자균류의 눈물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는 버섯이다.

애기낙엽버섯

Marasmius siccus (Schw.) Fr.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말뚝버섯

Phallus impudicus L. : Pers.

담자균류의 말뚝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점박이애기버섯

Collybia maculata (Alb. & Schw. : Fr.) Quel.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다.

긴대안장버섯

Helvella elastica Bull. : Fr.

자낭균류의 안장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다.

솔버섯

Tricholomopsis rutilans (Schaeff. : Fr.) Sing.

담자균류의 송이과에 속하는 것으로 먹을 수 있으나 설사를 종종 일으키기도 하는 버섯이다.

메꽃버섯부치

Microporus vernicipes (Berk.) O. Kuntze

담자균류의 구멍장이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먹물버섯

Coprinus comatus (Mull. : Fr.) Pers.

담자균류의 먹물버섯과에 속하며 어릴 때는 먹을 수 있다.

족제비눈물버섯

Psathyrella candolliana (Fr. : Fr.) Maire.

담자균류의 눈물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다.

제주쓴맛그물버섯

Tylopilus neofelleus Hongo

담자균류의 그물버섯과에 속하며 맛이 아주 쓰다.

노란귀버섯

Crepidotus sulphurinus Imaz. & Yoki

담자균류의 귀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없다.

노란길민그물버섯

Phylloporus bellus (Mass.) Corner

담자균류의 그물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다.

큰갓버섯

Macrolepiota procera (Scop. : Fr.) Sing.

담자균류의 주름버섯과에 속하며 먹을 수 있는 버섯이나 맛은 좋지 않다. 제주도에서는 초이버섯이라고도 한다.

 

 

 

'내가 읽은 책들 > 2014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36 통과 의례 음식  (0) 2014.03.21
2014-035 쉬!  (0) 2014.03.21
2014-033-1 옛길을 가다  (0) 2014.03.14
2014-033 옛길을 가다  (0) 2014.03.13
2014-032 쪽물들이기  (0) 2014.03.13
posted by 황영찬
2014. 3. 14. 12:07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3-1 옛길을 가다

둘째 마당

삼남대로(해남대로) 970里

 

삼남대로라고도 불리는 《대동지지》의 해남대로는 문내면 선두리인 전라우수영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부부가 이곳 관두포부터 길을 시작하는 것은 제주까지 포함하여 걷고 싶은 희망에서다. 물론 제주 바닷길은 맘속으로 걸어야 하지만, "자, 이제 한양 천리 출발이다. 가자, 한양 천릿길!" 바다에 목청 높이 출발을 외친다. 그런데 잡생각을 넘 많이 했나? 갑자기 배가 고프다. 첫걸음부터 고픈 배를 움키고 걷게 되려나 하며 바닷가에 달랑 인 집으로 무턱대고 들어서니 라면 정도는 준단다. 그나마 배를 채우고 시작할 수 잇으니 다행이렷다. 끓여 준 라면은 '삼천리표 꿀라면'

 

삼남대로 1 국토는 지금도 늘어나는 중

 

해남 관두포-영산리 [26km]

 

해남 화산군 관두포-화산중학교-해창마을-어성교-해남(녹산역)-우슬재-영신마을(영신원)

 

삼남대로라고도 불리는 《대동지지》의 해남대로는 문내면 선두리인 전라우수영에서 시작한다.

 

삼남대로 2 생명의 길, 상생의 길

 

해남 영신리-영암 [32km]

 

영신마을-성진(별진역)-용호마을-성전(석제원)-신풍마을(두여원)-월남마을(월남원)-누릿재(230미터)-영암(영보역)

 

길은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이라는 점과 점이 이어지면 마을이 되고, 다시 마을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 그렇듯 동물도 그들의 가족과 무리를 잇는 길이 있음에, 길을 만든다며 다른 길을 허투루 끊어도 되는 것인지.

 

삼남대로 3 조선 여인을 닮은 땅

 

영암-나주 영산포 [31km]

 

영암(영보역)-영보마을-여운재(미터)-금정-세지면 동창사거리(오림역)-나주시 영산포(금강원)

 

삼남대로 4 율정삼거리에서 다산 형제를 만나다

 

나주 영산포-광주 하남 [34km]

 

영산포-성북동 석당간-동신대학교-율정삼거리(연화원)-노안-광주 평동-선암마을(선암역)-절골마을-하남

 

삼남대로 5 인도 가는 중

 

광주 하남-장성 북이 [31km]

 

광주 하남-장성 승가마을(행인원)-못재-장성 성전-야은삼거리(득량원)-백계마을(단암역)-북일-장성사거리

 

걷는다는 것! 걸음은 곧 만남이다. 걸으면 내 밖의 세상과도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옛길은 옛사람과도 만날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인공위성이 알아서 길을 가리켜주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원하는 모든 곳에 데려다 주는 시대에 가장 원시적인 수단으로, 그것도 종이 나부랭이 지도 한 장 들고 옛길을 찾아 걷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삼남대로 6 어여쁜 눈썹바위, 가래를 찾아라

 

장성 북이-정읍 [21km]

 

장성 북이-원덕마을-신목란마을-갈재-정읍 입암 천원사거리-왕심마을(왕신원)-정읍(영지원)

 

삼남대로 7 천사와 함께 하는 여행

 

정읍-태인 [16km]

 

정읍(영지원)-북면 화해리-파출소삼거리-학동마을-동구네(태거원)-거산마을(거산역)-태인

 

삼남대로 8 심청이도 함께 걷는 길

 

태인-삼례 [38km]

 

태인-송월마을(정어원)-솥튼재-원평마을(홍인원)-김제 금구-이서-원동마을(허고원)-월곡마을(비산원)-완주 삼례(삼례역)

 

삼남대로 9 이몽룡의 흔적을 좇아서

 

삼례-연무 [30km]

 

삼례-김제 왕궁-용남마을-도순리 연봉정마을-원수리 새술막마을-여산(양재역)-마전리 구양마을(여산역)-황화정마을-연무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통영에서 출발한 통영별로는 경상도 서남부지역인 고성, 사천, 진주, 단성, 산청, 함양, 운봉을 거쳐 전라도 땅으로 들어 남원, 임실, 전주고을을 거쳐 삼례에서 한양으로 향한다. 또 남해, 하동마을에서도 남원에서 만나 삼례로 오른다.

 

삼남대로 10 외로움을 아는 길

 

연무-계룡 [32km]

 

연무-은진-초포교(풋개다리)-노성-상월-경천(경천역)-공주 계룡

 

비석은 문화재이기도 하지만 길의 이정표이기도 하기에 제 곳에 있어야 진정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니 아무쪼록 안녕하기를 바라며 다음 길을 잇는다.

 

삼남대로 11 농민이 꿈꾼 세상을 넘어

 

계룡-공주 [14km]

 

계룡-화은리 거사원마을(거사원)-효가리(효가리원)-공주

 

삼남대로 12 엉터리 대동여지도

 

공주-광정 [22km]

 

공주-일신마을(일신역)-의당-오인리 모란마을(모로원)-정안면 석송리-운궁마을(궁원)-광정(광정역)

 

읍치는 동그라미에 써 놓아, 동그라미 하나는 읍성이 없는 곳이고 동그라미를 겹으로 그린 곳은 성이 있음을 알려준다. 공주는 성이 있으니 동그라미 두 개이다.

 

삼남대로 13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정안-천안 [30km]

 

공주 정안면 광정(광정역)-인풍정마을(인제원)-차령(180미터)-천안 원터마을(원기원)-대평리(대평원)-행정리(덕평점)-연기군 소정리-대곡리 역말마을(김제역)-도리치(93미터)-천안

 

삼남대로 14 흥타령은 길타령에 묻히고

 

천안-평택 칠원 [28km]

 

천안(신은역)-애고개-직산 시름새(수헐원)-성환(성환역)-홍경원-평택 소사마을(소사점)-칠원마을(칠원)

 

지도로 길을 찾는 여행은 점과 점을 잇는 것이기에 이렇게 점 하나를 찾지 못하면 다음 길을 이을 수 없다.

 

삼남대로 15 헌길 줄께 새길 다오

 

평택 칠원-수원 [30km]

 

평택 칠원(칠원)-대백치-소백치-진위-청호마을(청호역)-오산-병점-수원

 

삼남대로는 호남과 영남, 충청을 말하며, 우수영을 출발한 해남대로는 삼례에서 올라온 '통영별로'와 함께 한다. 그리고 충청수영이 있던 충청남도 보령의 오천항에서 올라오는 '충청수영로'를 조금 전의 칠원에서 만나 삼남을 아우르며 한양으로 가는 길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삼남대로 16 화성은 안녕하신가

 

수원-과천 [24km]

 

수원-화성-노송지대-지지대고개-의왕-갈산(갈산점)-인덕원-갈현-과천

 

신경준의 《도로고》는 6대로를, 김정호의 《대동지지》는 9대로라 통상 말하지만 《대동지지》에는 정조의 능행로를 '수원별7대로'라 따로 적어 모두 10대로라 하였으니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삼남대로 17 길 위의 나날들

 

과천-서울 숭례문 [19km]

 

과천-남태령-동작진-이촌전철역-석우참-청파역-숭례문

 

셋째 마당

도보여행 이렇게 떠나자

 

고산자 김정호가 집필한 《대동지지》에는 모두 열 개의 대로가 있다. 이 중 서울-부산의 '동래대로(영남대로)'와 서울-해남의 '해남대로(삼남대로)', 지금은 경상북도에 편입된 평해부터 동해안을 따르다 강릉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평해대로'가 국토를 걸으며 종 · 횡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옛길이다. 여기에 '봉화대로'인 서울에서 충주, 죽령을 넘어 안동을 거쳐 울산 또는 부산까지 이을 수 있는 '영남좌로'가 있으며, 삼군 통제영이 있던 통영에서 출발하여 남원을 거쳐 전주 삼례에서 해남대로와 만나 상경하는 '통영별로'가 있다.

 

■ 의주대로 : 서울부터 의주까지로 현재 남쪽 구간은 판문점까지이나 걸음은 임진나루까지 64km를 갈 수 있다.

서울-무악재-구파발-숫돌고개-고양-혜음령-광탄-파주-임진나루

■ 경흥대로 : 북관대로로 불리며 한반도 북쪽 끝이자 6진이 있었던 경흥까지의 구간으로 현재는 김화까지 95km를 걸을 수 있다.

서울-보제원-누원-의정부-축석령-송우리-포천-만세교-영평-운천-갈현-김화

■ 평해대로 : 관동대로로 불리며 너른 동해바다와 백두대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경로이다.

서울 동대문-망우리-양평-지평-원주-안흥-운교-방림-대화-진부-횡계-대관령-강릉-삼척-평해

■ 봉화대로 : 죽령을 넘어 봉화까지 경상도 동북부 지역을 잇는 경로이며 영주에서 안동, 울산으로 이어져 영남좌로로 불린다.

서울-진관교-송파-남한산성-광주-곤지암-이천-장호원-충주-수산-단양-죽령-풍기-영주-내성-봉화

■ 강화대로 : 고려시대의 삼별초 항쟁에서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구간이다.

서울-양화진-양천-김포-통진-갑곶진-강화-인화석진-교동도

■ 수원별로 : 정조의 능행로, 효행로로 불리는 길로서 창덕궁을 출발하여 융, 건릉까지 62km이다.

서울-노량진-시흥-안양-수원-건릉

■ 충청수영로 : 충청수영이 있던 보령의 오천항부터 충청도를 가르고 올라오는 경로이다.

서울-평택-음봉-신창-예산-광천-오천

■ 통영별로 : 남해 통영부터 지리산자락을 거치는 길이다.

서울-삼례-전주-만마관-임실-남원-여원치-운봉-팔랑치-함양-산청-단성-진주-사천-고성-통영

 

 

 

'내가 읽은 책들 > 2014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35 쉬!  (0) 2014.03.21
2014-034 한국의 버섯  (0) 2014.03.14
2014-033 옛길을 가다  (0) 2014.03.13
2014-032 쪽물들이기  (0) 2014.03.13
2014-031 그리스 문명의 탄생  (0) 2014.03.11
posted by 황영찬
2014. 3. 13. 14:49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3 옛길을 가다

 

|김재홍 · 송연 지음|

2005, 한얼미디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8191

 

981.102

김73옛

 

영남대로 950리 삼남대로 970리

 

자  유  촌  부  부  의  우  리  땅  이  야  기

 

《대동지지》 영남대로 950리, 삼남대로 970리를 가다

아름다운 우리 옛길과 마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다

---------------------------------------------------------------------------------

조선시대의 옛길이란 지금의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길로,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지지》에 모두 열 개나 되는 큰길(大路)이 경로별로 자세히 적혀 있으나 수십 갈래로 변한 오늘의 길에서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자동차시대에 들어서 10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수백 년 동안 걸어 다니던 옛길의 어떤 정보도 남겨놓지 않고 있으니 그야말로 '맨 땅에 이마 찢득' 옛 지도와 문서를 직접 뒤져 자료를 찾아내야 했다.

 

그 열 개의 대로 중 서울 - 부산의 '영남대로(동래대로)'와 서울 - 해남의 '삼남대로(해남대로)', 지금은 경상북도에 편입된 평해부터 동해안을 따르다 강릉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평해대로'가 국토를 걸으며 종 · 횡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옛길이다. 여기에 '봉화대로'인 서울에서 충주, 죽령을 넘어 안동을 거쳐 울산 또는 부산까지 이을 수 있는 '영남좌로'가 있으며, 삼군 통제영이 있던 통영에서 출발하여 남원을 거쳐 전주 삼례에서 해남대로와 만나 상경하는 '통영별로'가 있다. 국토 종단을 한다면 서울에서 임진각까지 '의주대로'를 더하거나 '경흥대로'를 통해 김화까지 이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땅을 걷겠다는 데 좋고 나쁜 길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 땅 어느 길이든, 그 길에는 역사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다.

 

우리 부부는 매일 밤 옛사람과 함께 개성과 평양을 지나 의주까지, 그리고 백두대간을 따라 원산, 함흥을 걸어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을 만나는 꿈을 꾼다. 그곳이 비로소 대륙으로 나아가는 관문이자 해외여행을 떠나는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길을 나서면 곧바로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따라서 옛길을 걷는다는 것은 옛사람과 가장 원시적인 걸음으로 미래로 향하는 가슴 따뜻한 여행이자 끝이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같은 하나의 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이라는 점과 점이 이어지면 마을이 되고, 다시 마을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 마치 몸의 핏줄기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고유의 길이 있었지만, 어느덧 잊혀지고 사라져간다.

 

지은이

김재홍 · 송연

 

부부 사이이자 옛길을 걷는 동지이기도 한 김재홍과 송연은 각각, 1958년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현 의정부시), 1969년 경기도 양주군 샘내에서 태어났다. 2000년, 김재홍 · 송연 부부는 내면의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 인도 배낭여행을 계획, 그 전초전으로 동해안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동해안과 서해의 태안반도, 그리고 민통선을 고루 걸으며 우리 땅이 매력적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길로 도보여행가로 나섰다. 길을 걸으며 우리의 고유한 옛길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길을 이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 속에서 옛길 탐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동여지도》, 《해동지도》와 같은 옛 지도와 옛 문헌을 사전조사하고, 마을에 가서 어르신들의 구술을 받아 옛길의 흔적을 좇았다. 김재홍 · 송연 부부가 함께 걸은 길은 '영남대로', '삼남대로' 옛길을 포함하여 무려 4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부부는 현재 생업에 복귀, 의정부에서 '옛길 따라'라는 주막집을 운영한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경흥의 서수라까지 연결했던 옛 경흥대로가 뻗어 있다는 이유로, 건물 3층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가게 자리를 얻었다. 또한 발로 모은 옛 지도와 자료, 그리고 생생한 경험이 담긴 여행기를 누리집 '자유촌(www.jayuchon.com)'에 올려 옛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다.

 

새재의 험한 산길 끝이 없는 길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가네

차가운 바람은 솔숲을 흔드는데

길손들 종일토록 돌길을 오가네

시내도 언덕도 하얗게 얼었는데

눈덮인 칡덩굴엔 마른 잎 붙어있네

마침내 똑바로 새재를 벗어나니

서울 쪽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네

- 다산 정약용(문경새재 옛길에 있는 시비)

 

|차례|

 

들어가며 가장 원시적으로 미래를 걷는 여행

 

첫째 마당 영남대로(동해대로) 950里

 

영남대로 1  동래-양산-물금 [28km] 출발기점을 찾아라

영남대로 2 물금-삼랑진-밀양 [36km] 목숨 걸고 뛰려무나

영남대로 3 밀양-청도-화양 [33km] 옛길만 찾고 돈길은 언제 찾을낀데

영남대로 4 화양-팔조령-대구 [33km] 장마전선, 쫓기는 몸과 마음

영남대로 5 대구-칠곡 [11km] 도보여행의 적, 장맛비

영남대로 6 칠곡-구미 사창 [33km] 길을 끊는 길, 길을 잇는 길

영남대로 7 구미-상주 낙동 [33km] 반갑다, 서울나들길

영남대로 8 상주- 점촌 [36km] 길에서 만난 행운의 전령들

영남대로 9 점촌-문경 [24km] 문경 가는 날

영남대로 10 문경- 충주 살미 [32km] 문경새재, 새야 새야 쉬어가렴

영남대로 11 충주 살미-용원 [32km] 주전들의 허수아비 아내

영남대로 12 용원-생극-죽산 [32km] 조선시대 십 리는 몇 킬로미터일까

영남대로 13 죽산-용인 [35km] 세상에 우산 쓰는 짐승 사람밖에 없다

영남대로 14 용인-성남 옛골 [31km] 옛이야기와 함께 넘는 고갯마루

영남대로 15 성남 옛고-서울 [20km] 비로소 시작이었네

 

둘째 마당 삼남대로(해남대로) 970里

 

삼남대로 1 해남 관두포-영산리 [26km] 국토는 지금도 늘어나는 중

삼남대로 2 해남 영신리-영암 [32km] 생명의 길, 상생의 길

삼남대로 3 영암-영산포 [31km] 조선 여인을 닮은 땅

삼남대로 4 나주 영산포-광주 하남 [34km] 율정삼거리에서 다산 형제를 만나다

삼남대로 5 광주 하남-장성 북이 [31km] 인도 가는 중

삼남대로 6 장성 북이-정읍 [21km] 어여쁜 눈썹바위, 가래를 찾아라

삼남대로 7 정읍-태인 [16km] 천사와 함께 하는 여행

삼남대로 8 태인-삼례 [38km] 심청이도 함께 걷는 길

삼남대로 9 삼례-연무 [30km] 이몽룡의 흔적을 좇아서

삼남대로 10 연무-계룡 [32km] 외로움을 아는 길

삼남대로 11 계룡-공주 [14km] 농민이 꿈꾼 세상을 넘어

삼남대로 12 공주-광정 [22km] 엉터리 대동여지도

삼남대로 13 공주 광정-천안 [30km]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삼남대로 14 천안-평택 칠원 [28km] 흥타령은 길타령에 묻히고

삼남대로 15 평택 칠원-수원 [30km] 헌길 줄께 새길 다오

삼남대로 16 수원-과천 [24km] 화성은 안녕하신가

삼남대로 17 과천-서울 숭례문 [19km] 길 위의 나날들

 

셋째 마당 도보여행 이렇게 떠나자

 

1. 밑그림 그리기

2. 색칠하기

3. 짐 꾸리기

 

부록 1 《대동지지》의 옛길 경로와 현재 지명 비교

부록 2 한글대동여지도

 

첫째 마당

영남대로(동래대로) 950里

 

점과 점을 잇는 도보여행에서 출발기점을 잡는 것이 이렇듯 가끔 고민을 안겨주지만 이 걸음은 옛길을 찾아 걷는 여행이라 출발지를 잡는데 소홀할 수 없는 노릇. 그러나 예전에 부산에서 서울을 간다면 읍성에서 출발을 할 것이고 그렇다면 도성의 관문인 숭례문까지가 그 종착지가 될 터이다. 그러기에 일단 동래읍성을 출발기점으로 하기로 한다. 부산에서의 첫날 일정부터 나름의 고민을 하는 것은 이번 여행이 나 홀로 여행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하는 여정이어 그랬다. 더구나 바다도 구경하지 못하고 일정을 시작한다는 것도 찜찜하다.

 

영남대로 1 출발기점을 찾아라!

 

동래-양산-물금 [28km]

 

동래읍성-문예회관-명륜로-부곡교차로(민영환공덕비)-구서갈림목-브니엘고등학교-하정마을(소산역)-요금징수소(조재민공덕비)-노포마을-사배고개-내송마을-양산시청-버스터미널(읍성서문)-영대교-범어리-물금

 

영남대로 2 목숨 걸고 뛰려무나

 

물금-삼랑진-밀양 [36km]

 

물금-물금취수장(황산역)-용화사-임경대-토교마을-뻘등-원등-용당마을 가야진사-작천잔도-삼랑진-밀양강- 인전마을-밀양

 

옛길이란 역과 역을 잇는 역로(驛路)이기도 하며, 물금취수장은 이 일대의 16개 역을 관장하던 황산찰방역(黃山察訪驛)이었던 자리이다.

 

영남대로 3 옛길만 찾고 돈길은 언제 찾을낀데

 

밀양-청도-화양 [33km]

 

밀양기차역-용두교-영남루-밀성고등학교-제사고개-빈지소-유천마을(유천역)-원동마을-청도기차역-청도군청-범곡리 송북삼거리-화양 도주관

 

영남대로 4 장마전선, 쫓기는 몸과 마음

 

화양-팔조령-대구 [33km]

 

화양-유등초등학교-군자정-양원리 샛별장터-팔조령-가창-상동교-대봉네거리-대구

 

영남대로 5 도보여행의 적, 장맛비

 

대구-칠곡 [11km]

 

달성네거리-달성초등학교-팔달시장-팔달교-매천교-대구보건대학교-관음공원-칠곡

 

영남대로 6 길을 끊는 길, 길을 잇는 길

 

칠곡-구미 사창 [33km]

 

칠곡-동명-소야고개(248미터)-다부리(다부원)-천평삼거리-하판네거리-장천-사창마을

 

길이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것이다. 마치 몸의 핏줄기와도 같은 것이다. 모름지기 길이 길을 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영남대로 7 반갑다, 서울나들길

 

구미-상주 낙동 [33km]

 

사창마을-서울나들길-괴곡삼거리-해평-낙산 고분군-일선 삼거리-낙단교(낙동강)-상주 낙동마을

 

국토순례의 경로로 애용하는 길들 중의 하나가 땅끝에서 임진각까지인데 이때도 아쉬운 점은, 그 경로를 정할 때 옛길인 삼남대로를 거쳐 서울까지 당도하고, 서울부터 임진각까지는 의주대로를 이어 걷는다면 옛길과 함께 국토종단을 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영남대로 8 길에서 만난 행운의 전령들

 

상주-점촌 [36km]

 

낙동마을-부치댕이고개-백두점마을-성동고개-서울나들이길-병성천-나원마을-하덕가마을-서낭당고개-봉황대마을-덕통마을-윤직마을-때따리-점촌

 

아름다운 길과 마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우리 옛길을 닮아있다.

 

영남대로 9 문경 가는 날

 

점촌-문경 [24km]

 

점촌-유곡마을-원곡마을-토끼벼루-고모산성-신현마을-연작살마을-문경

 

문경 가는 길.

수백 년 옛길인 토끼벼루가 있다. 그리고 자동차가 지나도록 처음 만든 옛 찻길과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길이 나란히 달리고 있다. 그 위로 빠르게, 그보다 더 빠르게 가라고만 하는 새길과 고속도로가 그어져 있다. 여기에 태고부터 주인이자 물고기의 길이기도 한 물길도 있다. 모두 여섯 개의 길이 제멋대로 이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동무하고 있다. 이런 곳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부부는 이곳을 감히 '길의 박물관'이라 이름 짓는다.

 

영남대로 10 문경새재, 새야 새야 쉬어가렴

 

문경-충주-살미 [32km]

 

문경-새재(642미터)-충주 고사리(신혜원)-소조령(372미터)-대안보(안부역)-수안보-수회리-장고개-살미

 

영남대로는 좌도인 죽령을 넘는 길과 영남우도인 추풍령을 넘는 길이 있으며 문경새재는 영남대로의 중추 길목이다. 동쪽의 죽령을 우로로, 서쪽인 추풍령을 좌로로 바꿔 부르는 것은 지금의 방위 개념과 달리 조선에서는 한성을 중심으로 보았기에 한성에서 남쪽을 보면 좌, 우가 바뀌게 된다.

 

영남대로 11 주전들의 허수아비 아내

 

충주 살미-용원 [32km]

 

충주 살미-유주막삼거리-달천교(달천나루)-대소원마을-용원(용안역)-신덕저수지(숭선참)

 

당시 조선에서는 왜인이 상경하는 길을 지정해주었는데 그 대표적인 길이 영남좌로로 죽령을 넘게 하였고, 충주부터는 여주의 남한강을 건너 양평으로 들게 하였다. 이 길을 '왜인내왕로' 또는 '사신로'라 불렀는데 그들로서도 그만큼 익숙한 길이었을 것이다.

 

영남대로 12 조선시대 십 리는 몇 킬로미터일까?

 

용원-생극-죽산 [32km]

 

용원-모도원마을-생극-아홉사리고개-석원-석교촌-용산동-장암리 광천마을-안성시 죽산

 

조선의 3대 파발로는 한성-동래의 남발과 함경도 경흥의 북발, 그리고 평안도 의주까지의 서발이 있는데, 명나라로 향하는 서발은 기발이고 남발과 북발은 보발이다.

 

영남대로 13 세상에 우산 쓰는 짐승 사람밖에 없다

 

죽산-용인 [35km]

 

죽산-미륵당마을-분행마을(분행역)-백암-좌찬고개-양지-용인

 

영남대로 14 옛이야기와 함께 넘는 고갯마루

 

용인-성남 옛골 [31km]

 

용인-멱조현마을-메주고개-어정개-동진원마을-아차현-구성 하마비마을-수지-너더리마을(낙생역)-금토동-월천현(달래내고개)-성남 옛골마을

 

영남대로 15 비로소 시작이었네

 

성남 옛골-서울 [20km]

 

옛골마을-원지동(원터마을)-양재역-싸리고개-한남대교(한강진)-보광동길-장문고개 대사관거리-반포로-해방촌-후암동길-숭례문

 

 

 

posted by 황영찬
2014. 3. 13. 12:54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2 쪽물들이기

 

글, 사진 / 한광석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27

 

082

빛12ㄷ  205

 

빛깔있는 책들 205

 

한광석-------------------------------------------------------------------------

전남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1098-2번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1993년 봄 우리나라 최초로 '전통염색전시회'를 인사동 학고재 화랑에서 하고, 1997년에 또다시 전시회를 가져 사람들에게 우리 색의 아름다운 맛을 보여 주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숙명여대박물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차례|

 

들어가면서

전통 염색이란

전통 염색의 역사적 배경

쪽이란 무엇인가

쪽물들이기

맺음말

참고 문헌

프랑스의 라스코(Lascaux) 유적의 황소들(The Hall of Bulls)  기원전 15000내지 13000년경. 도르도뉴 몽티냐크 근처 베제르 계곡의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는 선사 유적. 가장 주목받는 벽화 가운데 하나인 뿔이 '비틀린 화법'으로 묘사된 세 마리의 거대한 들소가 있다. 이외에도 황소, 말, 숫사슴 등의 동물들이 이야기체로 구성되어져 잇고 주위에 그려진 화살과 덫으로 볼 때 사냥과 주술 의식을 행한 중심지로 믿어진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 가운데 들소의 세부  지붕에 주로 그려져 있는 붉은색, 검은색, 보라색의 장엄하고 생생한 들소 그림이다. 동굴 벽에는 맷돼지, 말, 암사슴 외에도 여러 동물의 모습이 간결하게 그려져 있다.

칠쟁반과 귀잔[耳杯]  평양 정백리 127호묘 등에서 발견된 낙랑의 유물. 1내지 3세기. 큰 것의 지름이 22.4센티미터이다.

천마도  경주 황남동 천마총에서 출토된 6세기경 신라시대의 유물.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障泥] 겉면에 신수(神獸)인 천마(天馬)를 그리고, 그 외곽에 인동당초문을 채색해 넣었다. 국보 제20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7 변상도  설법의 변상도가 세필의 금니로 아름답고 격조 높게 그려져 있다. 변상도 외곽에는 금강저문양이 장식되었고 경문은 정성껏 은서되어 있다.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7  사기(寫記)가 없으나 주본 화엄경 가운데 권37의 잔권으로 전래되었다.

 

 

 

 

posted by 황영찬
2014. 3. 11. 11:43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피에르 레베크 지음, 최경란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7202

 

082

시156ㅅ  5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05

 

호머, 피타고라스, 헤로도토스, 소크라테스 같은 영웅을

낳은 문명, 철학과 수학의 기초를 제공하고

민주주의의 시범을 보여 주었던 문명,

오늘날에도 조각과 건축의 탁월한 아름다움으로

찬탄을 자나내는 문명, 하여 고대 그리스 문명을 이해하는

것은 곧 서구 문명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지고한 관념의 체계를 세웠지만 동시에

그 비극적인 좌절도 맛보았던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그 역사를 더듬는 일은 서구 문명의 모태를

찾아 떠나는 흥미진진한 지식의 대탐험이 될 것이다.

 

크노소스 궁전은 강대하면서도 평화지향적인 민족이 이룩한 웅장한 문화와 정신적 균형감, 그리고 전성기의 모습을 웅변하고 있다. 크노소스는 밝고 화려하며 건강한 생활과 건전한 정신으로 충만되어 잇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집트 문화의 영향과 단순하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에트루리아 문화의 충동적인 성향, 그리고 공동체 조직에서 잉카인이 보여 준 뛰어난 재능과 지혜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시대의 폐허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떤 느낌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명확하게 확언할 수는 없었지만, 이 지역이 과거 여러 세기 동안 평화를 누렸으리라는 생각이었다. … 크노소스인은 현실지향적이었다. 그들은 현세에 충실했고, 사후세계라는 관념에 오염되지 않았으며, 선조숭배를 필요 이상으로 과장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속하거나 질식케 하지 않았다. 그들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최대한의 효용을 찾았으며, 끊임없이 흘러가는 매순간에서 인생의 정수를 추출해 냈다.

헨리 밀러 <마루시의 거상>

 

차례

제1장 화려한 청동기 시대

제2장 아르카이즘, 태동하는 창조력

제3장 고전적 균형, 그 이상과 현실

기록과 증언

연대표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피에르 레베크 Pierre Leveque

피에르 레베크는 프랑슈 콩테 대학의 그리스 교수로 있으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이고 잇다. 그는 <그리스의 운명> <그리스 대신(大神)들> <제국 그리고 야만성> 등 대중을 위한 저서를 많이 발표했다. <우리는 그리스를 향해 떠난다>는 그리스와 시칠리아에 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최근에 발표한 <동물, 신, 그리고 인간> <분노, 성(性), 해학, 고대 신화로 본 일본>은 종교를 주제로 한 저서들이다.

 

옮긴이 : 최경란

1963년 출생. 파리 제10대학 언어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앗다. 현재 불어 동시 통역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단편작가 선집을 불어로 옮기는 작업도 하고 있다.

레르네(Lerna)의 히드라(Hydra)를 무찌르는 헤라클레스, 레니(Reni) 작, 루브르박물관 소장.

 

제1장

화려한 청동기시대

B. C. 2000년경 최초의 그리스인이 그리스 본토로 들어오면서 기존의 사회구조가 뒤집혔다. 그리고 견고한 수비망을 갖춘 궁전과 호화로운 분묘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건축물은 새로 전개되는 궁전문명의 세련미와 이 문명의 놀라운 발전을 확연히 보여 준다. 궁전문명은 이후 미케네 왕조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바피오의 황금잔. 미케네인의 찬란했던 금은세공술을 보여 주는 이 술잔에는 당시의 농경생활이 묘사되어 있다.

미케네의 항아리는 대부분 양식화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여기 보이는 전사들의 행진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도 있다.

테라 궁전에서 발견된 이 그림은 궁전을 배경으로 배가 출항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해상왕국으로서의 크레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위용에 찬 제우스와 그에게 탄원하는 테티스(바다의 여신으로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 이 위엄 있는 그림은 앵그르의 작품이다.

이것은 모신(母神)의 모습을 형상화한 우상이다. 모신은 생명의 원천으로 여겨져서 청동기시대에는 지중해 전지역에서 가장 많이 숭배되었다.

두 여신(데메테르와 코레)과 한 어린 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군상(群像)은 미케네 궁전의 성단에서 발견된 것으로 그들의 종교적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다. 깊은 애정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신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샘터의 여인들, 아티카 지방의 항아리 일부, B. C. 6세기, 바리 고고학 박물관 소장.

 

제2장

아르카이즘, 태동하는 창조력

 

암흑기는 빈곤과 무질서의 시대이다. 그러나 점차 조직화된 공동체들과 호머 왕국이라는 국가들이 구성되기 시작하면서, B. C. 800년 무렵부터 도시국가가 발생하였다. 헬레네 세계는 이렇게 하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식민지가 확장되었고,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창조되었다.

19세기의 그리스  "호머는 지도자이다." 페기(프랑스의 시인이며 작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르누아르의 작품인 이 그림에서 호머는 이오니아 지방의 뜰에서 직접 하프를 연주하며 트로이 전쟁의 영웅담을 노래하고 있다. 실제로 19세기의 이 같은 풍속화에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주제로 한 것이 매우 많다.

<장닭을 싸움 붙이는 그리스 청년>  제롬 작.

<샘터의 그리스 여인들> 파페티 작.

아테네 시민들의 반대에 대항하여 자신의 법이 정당함을 주장하고 있는 솔론. 코이펠(Coypel) 작, 1699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

날개 달린 뮤즈 여신은 젊은 헤시오도스의 시적 영감을 상징한다. 뮤즈 여신이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는 헤시오도스의 모습은 실로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상징파 화가 구스타브 모로 그림이다.

그리스 연극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했다. 위는 비극연기에 아래는 희극연기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키타라 연주자의 환희에 찬 표정을 잘 나타낸 도자기 그림은 그리스인의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 준다.

레슬링 선수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레슬링 연습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 율동미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육체미에 대한 영원한 찬가처럼 보인다.

상품의 무게를 재는 사람들이 평온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작업이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 그리스 경제의 바탕이 되었던 상업교류의 단면을 보여 주는 이 그림에서 헬레네 사상의 바탕에 깔린 '교류'와 '균형'을 엿볼 수 있다.

델포이 신전에서 아이게우스가 아폴론의 신탁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신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듯 깊은 명상에 잠겨 있다.

이 술잔 바닥에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배에 실려 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빅스(Vix)의 무덤에서 발견된 대형 술잔.

 

제3장

고전적 균형, 그 이상과 현실

B.C. 6세기 말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초기 형태가 보인다.

그러나 클레이스테네스 치하의 아테네에서 탄생한 이 진보적 도약은 그 운명이 순조롭지 못했다. 페르시아의 침략과 주도권 장악을 둘러싼 도시국가들 사이의 만성적 갈등이 전개되었다.

B.C. 480년,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소규모의 스파르타 분견대는 막강한 페르시아 전사들을 막아냈다. 다비드는 이 역사적인 장면을 힘있는 필치로 그림에 담았는데,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의 지휘 아래 최후의 한 사람까지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로 뭉친 장갑보병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위의 조각상은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제작된 흉상으로 레오니다스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아테네의 병력은 주로 삼단노의 갤리선으로 구성된 해군력에 의존하였다. 날렵한 모양의 이들 순양함은 사공들이 3열 중첩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엄청난 추진력과 빠른 속도를 자랑하였다. 아테네 해군은 장거리 원정을 나갈 만반의 태세를 갖춘 수백 척의 갤리선을 보유하고 잇었다.

도시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인물을 도편추방할 때 투표에 사용되었던 도자기 파편들이다.

사령관 모자를 쓰고 있는 페리클레스의 모습. 페리클레스는 마치 자신이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 체제를 관조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B.C. 4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회랑 아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이다. 라파엘의 작품인 <아테네 학당>은 지금 바티칸 궁전에 있다.

데모스테네스의 흉상. 그는 아테네의 애국자였으며 매우 뛰어난 연설가이기도 하였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서로 등을 대고 있는 조각상. 그들이 역사학을 정립하였던 한 세기는 실로 명철한 역사학의 시대로서,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시대의 운명에 대해서 심사숙고하였다.

트립톨레모스의 부조상. 페이디아스의 B.C. 5세기 작품 중 가장 감동적인 걸작이다.이 작품에서 농경의 시초를 볼 수가 있다. 자비로우며 인간을 사랑하는 테메테르와 코레 여신이 이 젊은 신에게 최초의 밀알을 건네주려는 순간이다. 이 무렵 인류의 문화수준은 겨우 야만상태를 벗어난 정도였다.

범아테네 신전에서는 '여신의 찬양'이라는 일관된 정신 아래 모든 도시국가들이 일체를 이루었다. 아테네 숭배의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여신상을 새롭게 장식할 직물을 들고 케라메이코스에서 출발하여 아크로폴리스 언덕까지 올라가는 긴 행진이었다.

페이디아스는 외국인도 포함하여 도시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이 참가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던 행렬장면을 매우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행렬은 종교음악에 맞추어 신전의 정면을 향했다. 그곳에서는 올림포스 향연에 참석한 신들이 시민을 맞이해 주었다.

범아테네 제전에 참석한 신들의 모습.

어린 디오니소스를 안고 있는 헤르메스. 프락시텔레스 작.

페이디아스의 걸작, 금과 상아로 만든 <아테네 여신상>이다.

페이디아스가 제작한 <바르바키온의 아테네>이다.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날리고 있다. 포세이돈의 힘과 균형감각, 자아조절 능력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청동상이다.

포세이돈상이 제작되었던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대그리스에서 제작된 신비스러운 광경을 담은 작품이다. 바다에 뛰어들고 있는 사람은 뛰어드는 것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고, 또한 죽음과 동시에 영원의 세계로 뛰어든다고 한다. 사람들은 영원의 세계에서 생명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망루에 선 아폴론>. 4세기 후반에 제작된 그리스 조각품이다.

13세기 디필론 항아리.

프랑수아 도자기.

아테네 시민들은 30여 년 동안 페리클레스가 이끄는 대로 그의 지도를 따랐다. 그의 뛰어난 지혜와 웅변술은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다.

 

 

 

 

posted by 황영찬
2014. 3. 11. 10:4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0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2005, 오래된미래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4520

 

811.6

류58사

 

치유와 깨달음의 시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 잘랄루딘 루미(회교 신비주의 시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에 이은 또 한 번의 시에의 초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서기관에서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에 이르기까지 41세기에 걸친 유명, 무명의 시인들이 들려주는 치유와 깨달음의 시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행복과 고통은 다른 세세한 사건들과 섞여들어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 시련도 그 무늬를 더해 주는 색깔이 된다.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그 무늬의 완성을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 휘트니 오토, <아메리칸 퀼트>의 저자

 

시는 인간 영혼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을 멈추고 듣는 것'이 곧 시다. 스페인의 철학자 미구엘 드우나무노는 '슬픔의 습관을 떨쳐 버리라. 그리고 그대의 영혼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좋은 시는 치유의 힘, 재생의 역할을 하며 읽는 이의 영혼의 심층부에 가닿는다. 인간의 가슴은 돌과 같으며, 그것은 다른 돌에 의해서만 깨어질 수 있다.

생을 다 보낸 뒤, 어느 날 우리는 '육체라는 이 이상한 옷'을 벗어던진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옷깃이 해지고 단추가 떨어져 나간……. 당신이 아직 젊다면 이 진실을 가슴에 새겨야 하리라. 삶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만일 당신이 이미 이것들을 경험할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면 이 진리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비슬라바 쉼보르스카가 썼듯이 삶에 '두 번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 /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 실습 없이 죽는다. / 어떤 하루도 되풀이되지 않고 / 서로 닮은 두 밤도 없다. / 같은 두 번의 입맞춤도 없고 / 하나 같은 두 눈맞춤도 없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자

 

한 편의 좋은 시가 보태지면 세상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다. 좋은 시는 삶의 방식과 의미를 바꿔 놓으며,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시는 인간 영혼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그 상처와 깨달음을, 그것이 시가 가진 치유의 힘이다. 우리는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다.

얼음을 만질 때 우리 손에 느껴지는 것은 다름 아닌 불이다. 상처받은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밀라. 그리고 그 얼음과 불을 동시에 만지라. 시는 추위를 녹이는 불, 길 잃은 자를 안내하는 밧줄, 배고픈 자를 위한 빵이다.

 

"나와 함께 시집을 엮기로 약속하고서 멀리 여행을 떠난 정채봉 선생께 이 시집을 바친다. 누구보다도 삶과 시를 사랑했던 그에게, 우리는 입 속의 혀처럼 삶에 묶여 있으나 그는 시간의 틈새로 빠져나갔다." - 류시화

 

차례

초대 / 여인숙 / 생의 계단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슬픔의 돌 / 기도 / 삶을 위한 지침 / 그때 왜 / 너무 작은 심장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봄의 정원으로 오라 / 금 간 꽃병 / 눈물 / 인생 거울 / 생명은 / 나는 배웠다 / 침묵의 소리 / 생이 끝났을 때 / 중세기 회교도의 충고 / 별들의 침묵 / 사람과의 거리 / 천 사람 중의 한 사람 / 첫눈에 반한 사랑 /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말 / 사막 / 게 / 농담 / 옹이 / 이별 / 나의 시 /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 여행 / 이누이트 족의 노래 / 의족을 한 남자 / 사이치에게 남은 것 / 이제 난 안다 /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가 / 내가 알고 있는 것 / 무사의 노래 / 사랑 / 나에게 바치는 기도 / 자연에게서 배운 것 / 세상의 미친 자들 / 내가 태어났을 때 / 나는 누구인가 / 뒤에야 / 세례를 위한 시 / 단 하나의 삶 / 선택의 가능성들 / 태초에 여자가 있었으니 /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 예수가 인터넷을 사용했는가 / 신을 믿는 것 / 회교 사원 벽에 씌어진 시 / 사막의 지혜 / 어부의 기도 / 당신의 손에 할 일이 있기를 / 한 방울의 눈물 / 옳은 말 / 진정한 여행 / 나이 / 죽음이 집에서 나를 기다린다 / 여섯 가지 참회 / 구도자의 노래 / 신과의 인터뷰 / 

해설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시인들

 

살아 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놓지 마라.

 

더글러스 던

서문을 대신해 . 엮은이 류시화

 

눈물

 

만일 내가 무엇인가로 돌아온다면

눈물로 돌아오리라.

너의 가슴에서 잉태되고

너의 눈에서 태어나

너의 뺨에서 살고

너의 입술에서 죽고 싶다.

눈물처럼.

 

작자 미상

 

옹이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치어나지 못했으니

 

류시화

 

신과의 인터뷰

 

어느날 나는 신과 인터뷰하는 꿈을 꾸었다.

신이 말했다.

'그래,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구?'

내가 말했다.

'네, 시간이 있으시다면.'

 

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의 시간은 영원,

내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무슨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가?'

 

내가 물었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신이 대답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신이 나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 다음 내가 겸허하게 말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자식들에게 그 밖에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 있음을 기억하기를,

언제나, 모든 방식으로.'

 

작자 미상

 

우리 시대의 역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피우며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잇고 너무 지쳐서 일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안의 세계는 잃어버렸다.

공기 정화기는 갖고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한다.

 

자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관계는 더 나빠졌다.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얘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 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 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 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제프 딕슨이 처음 인터넷에 이 시를 올린 뒤, 많은 사람들이

한 줄씩 덧보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충고들

 

고통에 찬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충고하려 들지 말라.

그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올 것이다.

너의 충고는 그를 화나게 하거나 상처 입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선반 위로 제자리에 있지 않은 별을 보게 되거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

풀과 돌, 새와 바람, 그리고 대지 위의 모든 것들처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시계추에게 달의 얼굴을 가지고 잇다고 말하지 말라.

너의 말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너의 문제들을 가지고

너의 개를 귀찮게 하지 말라.

그는 그만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장 루슬로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라.

행복과 고통은

다른 세세한 사건들과 섞여들어

정교한 무늬를 이루고

시련도 그 무늬를 더해 주는 색깔이 된다.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그 무늬의 완성을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 영화 <아메리칸 퀼트> 중에서

 

매순간

인간의 손으로 지어지지 않은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라.

 

하나의 산, 하나의 별

구불거리는 강줄기

그곳에서 지혜와 인내가

너에게 찾아오리니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 시드니 레베트

 

너무 늦기 전에 자신의 삶을 살라

 

한 장의 잎사귀처럼 걸어다니라.

당신이 언제라도 떨어져내릴 수 잇음을 기억하라.

자신의 시간을 갖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라.

 

- 나오미 쉬하브 니예

 

사랑이 끝난 뒤의 사랑

 

너는, 너 자신의 집 문 앞에 도착한

너 자신을 맞이하게 되리라.

그리고 두 사람은

미소 지으며 서로를 맞아들일 것이다.

 

- 데렉 윌코트

 

초대

 

당신이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몇 살인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다만 당신이 사랑을 위해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

주위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행성 주위를 당신이 돌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슬픔의 중심에 가닿은 적이 있는가

삶으로부터 배반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래서 잔뜩 움츠러든 적이 있는가

또한 앞으로 받을 더 많은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은 적이 있는가 알고 싶다.

 

나의 것이든 당신 자신의 것이든

당신이 기쁨과 함께할 수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미친 듯이 춤출 수 있고, 그 환희로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까지 채울 수 있는가

당신 자신이나 나에게 조심하라고, 현실적이 되라고,

인간의 품위를 잃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 않고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당신의 이야기가 진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에게는 진실할 수 있는가

배신했다는 주위의 비난을 견디더라도

자신의 영혼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알고 싶다.

 

어떤 것이 예쁘지 않더라도

당신이

그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가

그것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 나는 알고 싶다.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고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당신이 슬픔과 절망의 밤을 지샌 뒤

지치고 뼛속까지 멍든 밤이 지난 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나와 함께 불길의 한가운데 서 있어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내면으로부터 무엇이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자기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가

고독한 순간에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 알고 싶다.

 

-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나는 당신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내 손바닥에 삶의 불꽃으로 쓴 초대장을.

 

내게 보여 달라,

아픔 속 아픔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떨어지면서도

당신이 당신의 가장 깊은 바람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가를.

그러면 내가 날마다 어떻게 내면에 가닿고,

또한 바깥을 향해 문을 열어 삶의 신비의 입맞춤을

어떻게 내 입술에 느끼는가를 말해 줄 테니.

 

당신의 가슴속에 온 세상을 담고 싶다고 말하지 말라.

다만 당신이 상처를 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을 때

어떻게 자신을 버리지 않고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는 일로부터 등을 돌렸는가 말해 달라.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내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들 속에서

내가 진정 누구인가를 보아 달라.

내게 말하지 말라,

언젠가는 멋진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 대신 마음의 흔들림 없이 위험과 마주할 수 있는가를

내게 보여 달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영웅적인 행동을 한 전사 같은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다.

하지만 벽에 부딪쳤을 때 당신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가,

당신의 힘만으론 도저히 넘을 수 없었던 벽에 부딪쳤을 때

무엇이 당신을 벽 건너편으로 데려갔는가를

내게 말해 달라.

무엇이 자신의 연약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는가를.

 

당신에게 춤추는 법을 가르쳐 준 그 장소들로

나를 데려가 달라.

세상이 당신의 가슴을 부수려고 했던 그 위험한 장소들로.

그러면 나는 내 발 아래 대지와 머리 위 별들이

내 가슴을 다시 온전하게 만들어 준 장소들로

당신을 데려가리라.

 

함께 나누는 고독의 긴 순간들 속에 내 옆에 앉으라.

우리의 어쩔 수 없는 홀로 있음과

또한 거부할 수 없는 함께 있음으로

침묵 속에서, 그리고 날마다 나누는 작은 말들 속에서

나와 함께 춤을 추라.

 

우리 모두를 존재 속으로 내쉬는 위대한 들숨과

그 영원한 정지 속에서

나와 함께 춤을 추라.

그 공허감을 바깥의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말고

다만 내 손을 잡고, 나와 함께 춤을 추라.

 

-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 릴케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 메이 사턴

 

기러기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 육체 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

내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 그러면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비는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위로,

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세상은 당신을 초대하고 잇다.

 

- 메리 올리버

 

류시화

 

이 시집의 엮은이로,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인도, 네팔, 티베트를 여행하는 한편 명상에 관련된 책들을 번역 소개했다. 미국, 인도,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시집으로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과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가 있다. www.shivaryu.co.kr

 

 

 

'내가 읽은 책들 > 2014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032 쪽물들이기  (0) 2014.03.13
2014-031 그리스 문명의 탄생  (0) 2014.03.11
2014-029 무대 미술 감상법  (0) 2014.03.05
2014-027-2 오직 독서뿐  (0) 2014.03.05
2014-028 無로부터의 우주  (0) 2014.03.04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