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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자신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마음속에 자신만의 규칙과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해도 결코 쉽게 실패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성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법 또한 알아야 한다. 즉,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현대사회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으며,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성공 비결이 '내일 할 일을 오늘 하는' 습성에 잇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내일 할 일을 오늘 할 수 있을까?

첫째, 내일 해야 할 일과 관련된 사전 준비를 한다. 책상 위에 CD와 문서가 질서 정연하게 준비되어 있어야만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갖춰지면 필요한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잇고, 속도를 늦추거나 일을 중단할 필요가 없다.

 

둘째, 메모지는 정해진 위치에 놓아두고 날짜별로 기록하여 필요할 때마다 신속히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셋째, 해야 할 일의 순서를 반드시 숙지한다. 'To Do List'처럼 합리적인 순서로 체계화해 놓는다면 원하는 것을 바로 얻을 수 있다. 만약 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지금 당장 계획을 세워애 한다.

넷째, 충분한 수면과 올바른 식습관으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워 놓은 계획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체력 관리는 자기 통제의 기본이다.

다섯째, 시간을 활용한다. 언제, 어디서 도움이 필요한 지 빨리 판단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적시에 계획적이고 합리적으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

여섯째,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도움이 필요할 때 주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도와줄 수 있도록 평소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급자나 고객과의 관계에서 그들이 요청한 일을 일관되게 잘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그들과의 신뢰를 쌓아간다면 만약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그들에게 "아니요!"라고 말하더라도 충분히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먼저 하루의 계획을 세워라.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면 그 일에 따른 신속한 조치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행동해야만 내일 해야 할 일을 오늘 마무리할 수 있다.

여덟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즐겨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황 상태에 빠져 불안해 하지 말고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라. 당신이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훗날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는 당신이 감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다.

 

posted by 황영찬

003 눈 깜짝할 사이에 운명이 결정된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 베풀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쓸데없는 의존도만 기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자신의 운명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는 것과 같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습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생존의 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대응할까?

다른 사람이 베풀어 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어려움에 직면하면 자신의 운명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갈팡질팡하기 일쑤이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두 사람이 한 노인에게서 낚싯대 하나와 광주리 안에 담겨 잇는 크고 신선한 생선을 얻었다. 한 사람은 생선이 담겨 있는 광주리를, 다른 한 사람은 낚싯대를 갖고 각각 제 갈 길을 가게 되었다. 생선을 얻은 사람은 즉시 땔감을 이용하여 모닥불을 지피고 생선을 구운 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빈 생선 광주리 옆에서 굶어 죽었다.

낚싯대를 가져간 또 다른 사람은 낚싯대를 짊어지고 끊임없이 걷기만 할 뿐, 굶주림을 묵묵히 참았다. 겨우 바닷가에 도착한 그는 마지막 온 힘을 다해 바다로 낚싯대를 던졌다. 그러나 광주리를 가져갔던 남자보다 삶을 조금 더 연장했을 뿐, 그 역시 바닷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일하지 않고 생선을 먹어 치운 사람도 곧 죽었지만, 먹지 않고 일만 한 사람 또한 오래 살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간 안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터득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다른 사람에게 거저 받은 것에만 익숙한 사람은 자신 앞에 주어진 훌륭한 재료를 가지고도 삶을 개척해 나가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그 재료들을 발견하지도 못한다.지혜로운 사고나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하등 소용이 없다. 인간이 지닌 최고의 무기는 두뇌, 정신, 그리고 행동할 수 있는 손과 발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부여되는 것으로서 누가, 얼마나 많이 이것들을 사용하고 발휘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posted by 황영찬

002 자신에게 관대하라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가사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을 배우는 길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세상에 결점 없는 사람은 없듯이, 하룻밤 사이에 스스로가 완전무결한 사람으로 변하기를 바라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자신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 위한 첫 번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단점'이 없다면 '장점'이란 말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실수투성이일지라도 자신을 실망하고 자책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이 했던 지난날의 어리석은 실수들을 호탕하게 웃어넘겨라. 자신에게 관대하다는 것은 당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너그럽게 용서할 줄 안다는 것과 같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패했다면 그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그것을 거울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듯이 자신의 실수를 미래의 성공을 위한 거름으로 여겨 관대하게 바라볼 줄 아는 습관이 필요하다.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에게서도 사랑받을 수 없다. 거만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자신감, 이기적이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자기 사랑, 그리 쉽지 않은 세상을 무사히 살아 나가고 있는 당신은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에게 관대하라.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자기에게 관대하고 자기를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관용을 베풀 수 있다. 과거의 잘못에 묶여 죄의식에 사로잡힌 채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지금 당장 거울을 보고 자신과 사랑에 빠져라. 자신의 아픈 곳을 스스로 어루만져 주어라. '그럭저럭 살 만한 세상'은 어느새 '살맛나는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posted by 황영찬

001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라

 

"갈채를 보내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격려하라."

이는 어느 유명 인사의 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 감정의 불균형,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힘겨워하고 한탄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근본적인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보다는 외적으로 보이는 조건들을 바꾸기 위한 노력에 치중할 뿐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내적인 '나'를 돌아볼 여유 없이 긴박함 속에서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즐겁고 행복한 삶은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쁜 생각을 하면 불행해지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매사가 잘 풀리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긍정적인 말을 되뇌면서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투덜댈 게 아니라, 나는 매우 용감하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격려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비결을 본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를 기울여 생각을 밝고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가능하다는 생각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늘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마음이 더욱 여유로워지고, 세상을 보는 시야 또한 넓어질 것이며, 건강한 정신에서 우러나온 건강한 신체로 인해 유쾌하고 긍정적인 삶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4. 4. 29. 09:12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47  365 매일 읽는 행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

 

유영 · 강민구 지음

2010, 눈과마음

 

Good Habit Bring

     You Good Luck

 

실천하는 습관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

 

좋은 책을 읽고 사색하는 사람은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이렇게 형성된 좋은 습관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좋은 습관은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항상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만이 인생에서 성공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이 모든 습관의최종 목적지는 실천에 있음을 기억하라.

 

생각이 바뀌며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_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C · O · N · T · E · N · T · S

 

프롤로그_ 좋은 습관, 즐거운 삶

성공한 사람들의 34가지 좋은 습관

당신에게 이런 좋은 습관이 있는가?

 

1. 행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 _ 자신을 돌아보라

001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라

002 자신에게 관대하라

003 눈 깜짝할 사이에 운명이 결정된다

004 자신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005 분주하게 일하지 말라

006 독선적인 마음을 버려라

007 자신감이야말로 모든 것의 기초이다

008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

009 하고 싶은 일은 즉시 행동으로 옮겨라

010 주도권을 가져라

011 적절한 시기에 자신의 특기를 나타내라

012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과 대화하라

 

2. 행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 _ 일을 돌아보라

013 돈의 노예가 되지 말라

014 포기란 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015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016 어떤 일이든 성취할 가치가 있다

017 일하는 즐거움을 찾아라

018 부지런히 일하라

019 전심전력을 다하는 습관을 길러라

020 전진하기 전 상사에게 먼저 배워라

021 능동적으로 일하라

022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

023 직장 내에서 볼 수 있는 뛰어난 인재의 습관

024 뛰어난 관리자의 습관

025 유능한 CEO의 습관

 

3. 행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 _ 더 나는 나를 위해 삶을 돌아보라

026 현재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라

027 매일 자신에게 한 시간의 여유를 줘라

028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라

029 재테크를 위한 여섯 가지 좋은 습관

030 주변의 화초나 수목에 관심을 기울여라

031 슬플 때는 바쁘게 움직여라

 

4. 행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 _ 학습을 돌아보라

032 책은 가장 좋은 친구이다

033 좋은 책을 많이 읽어라

034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중시하라

035 다른 사람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라

036 학습에 대한 열정을 품어라

037 유능한 사람의 업무 처리방법을 배워라

 

5. 행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 _ 사무 처리 능력을 돌아보라

038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라

039 성공을 위한 일곱 가지 태도

040 사소한 일도 소홀히 하지 말라

041 부드러운 태도는 행운을 가져온다

042 성공은 폭넓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043 5분의 여유가 미래의 원동력을 만든다

044 목표를 세워 일하라

045 적을 만들지 말라

 

6. 행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 _ 마음을 돌아보라

046 항상 즐거운 마음을 가져라

047 맑고 깨끗한 두뇌를 유지하라

048 '잃어버리다'를 '버리다'로, 사고를 전환하라

049 탐욕은 적정선에서 멈추어라

050 인내는 미덕이다

051 스트레스를 삶의 원동력으로 변화시켜라

052 항상 큰소리로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라고 외쳐라

053 항상 미소를 띠어라

054 "해결할 방법은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라

 

7. 행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 _ 자신의 한 말을 되새겨 보라

055 말은 항상 신중히 하라

056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라

057 말을 할 때는 조리 있게 논리를 펴라

058 원수나 경쟁자를 사랑하라

059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라

060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사고방식을 가져라

061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려라

062 이성을 이해하는 것도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063 자신이 최고임을 믿어라

064 소망을 열망으로 변화시켜라

 

8. 행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 _ 희망을 메모하고 실행하라

 

성공한 사람들의 34가지 좋은 습관

 

1. '불가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2. 일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변명'을 찾는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는 것이다.

3. 좌절을 겪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차라리 잘됐어!"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4. 타인의 말이나 감정에 현혹되지 않고, 고난에 직면하게 되면 정면으로 부딪쳐 적극적으로 처리한다.

5. 모든 일에 앞서 우선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해 그 '꿈'을 실현한다.

6. 모든 일에 앞서 우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체계적으로 실행한다.

7. 1분, 1초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일에 매진한다.

8. 사람을 기다릴 때, 줄을 설 때와 같은 자투리 시간을 수시로 이용한다.

9. 시간을 준수한다.

10. 지나치게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는다.

11. 떠오르는 영감은 그때그때 메모한다.

12. 중요한 관념이나 방법을 메모해서 붙여놓고 수시로 확인한다.

13. 발끝에 힘을 주고 힘차게 걷는다. 신체는 활력이 넘치되 산만하지 않도록 한다.

14. 매일 집을 나서기 전 거울에 자신을 비추고 당당한 미소를 짓는다.

15. 매일 한 번씩 자신에 대해 반성한다.

16. 매일 운동한다.

17. 중요한 일을 하기 전, 피곤할 때, 마음이 울적할 때, 긴장했을 때에는 1분 동안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안정을 취한다.

18. 회의에 참석할 때에는 앞줄에 앉는다.

19. 자주 미소를 짓는다.

20. 상대방의 말을 주의하여 듣고, 적절히 질문하며 보조를 맞춘다.

21. 말을 할 때에는 음성에 힘을 실어 자신의 목소리가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잇도록 힘차게 말한다.

22.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한다.

23. 매일 의미 있게 진심을 담아 다른 사람을 세 번 이상 칭찬한다.

24. 제때에 맞춰 감사의 편지를 직접 쓴다.

25. 훈계하듯, 또는 질책하는 듯한 말투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

26.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으례 보이는 다소 공격적인 반응을 스스로 제어한다.

27. 맡은 일 외의 활동도 겸한다.

28.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29. 15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늦게 퇴근한다.

30. 퇴근하기 전, 5분의 시간을 이용하여 하루의 일을 정리한다.

31. 정기적으로 예금한다.

32. 절약한다.

33. 항상 두뇌를 창의적으로 활용한다.

34. 철저하게 신용을 지키며, 이미 약속한 일은 무조건 실천에 옮긴다.

 

당신에게 이런 좋은 습관이 있는가?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상황들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아래의 질문들을 통해 당신의 평소 습관을 되짚어 보라.

1. 일상생활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 당신은?

2. 인생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 당신은?

3. 체력에 이상이 있다고 느낄 때, 당신은?

4. 일을 하면서 피곤함을 느낄 때, 당신은?

5. 자신의 태도가 오만불손하다고 느껴질 때, 당신은?

6. 뜻을 이루어 득의만만할 때, 당신은?

7. 돈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낄 때, 당신은?

8. 슬럼프에 빠졌다고 느낄 때, 당신은?

9. 스스로에게 의구심이 들 때, 당신은?

10. 가족을 등한시했다고 느껴질 때, 당신은?

11.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당신은?

12.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당신은?

13. 스스로가 안하무인이라 느껴질 때, 당신은?

14.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 당신은?

15.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당신은?

16. 책임을 전가한다고 느낄 때, 당신은?

17. 사고 회로가 정지한 것처럼 느껴질 때, 당신은?

18. 실의에 빠졌을 때, 당신은?

19. 상사가 두려울 때, 당신은?

20.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 때, 당신은?

21. 실적이 나쁘다고 느낄 때, 당신은?

22. E-mail을 받았을 때, 당신은?

 

※ 참고 답안

1. 최대한 집중력을 키운다.

2. 유머 감각을 키운다.

3. 운동으로 심심을 단련한다.

4. 휴식을 취한다.

5. 분수에 맞게 처신한다.

6.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7. 재테크를 한다.

8. 스스로를 격려한다.

9. 자신감을 키운다.

10. 가족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는다.

11. 양서를 많이 읽는다.

12. 여유를 가진다.

13. 끊임없이 자신을 파악하고 공부한다.

14.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전력을 쏟는다.

15.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다.

16. 스스로 나서서 과감하게 책임지고 처리한다.

17. 사고방식을 전환한다.

18. 개선점을 찾는다.

19.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다.

20.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다.

21.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22. 답장을 보낸다.

 

깨달아야 할 점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습관과 부족한 습관을 체크해 두었는가? 만약 당신의 답안에 반 이상의 빈칸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부터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한다. 이 책을 모두 읽은 후, 그 반 이상의 빈칸을 채울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어떠한 일의 수행에 앞서 마음속에 자신만의 규칙을 세워 둔다면, 확고한 신념을 굳건히 할 수 있기에 쉽게 실패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와 동시에 성공을 향해 가는 기나긴 여정 중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자신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성공을 위한 지름길은 비록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할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주어진 일이나 목표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라면 당장은 남보다 뒤처지고 느릴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결실을 맺기 마련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꿋꿋이 전진해 나아갈 때 부와 성공은 자연적으로 따를 것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있다. 항상 우울한 감정에 휩싸인 채로 세월을 낭비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당신의 모습은 수심이 가득한 불운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반대로 삶 속에서 사소한 일에도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표정은 늘 밝게 빛날 것이다.

우리에게 할당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그 귀중한 시간을 후회로 얼룩지게 해선 안 될 것이며, 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삶으로 알차게 꾸려 가야 할 것이다. 즐거움은 내면의 자아를 표현한다. 또한 성공하는 사람은 얼굴에서부터 자신감이 배어 나온다. 생각을 바꾸고 관념을 바꾸면 삶은 더욱 희망차게 다가올 것이다.

 

책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도구이다. 암흑과 같은 막막함이 앞을 가로막을 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잇는 것이 바로 책이다. 옛말에 '책 속에는 황금을 만들어내는 집과 옥을 만들어 내는 집이 있다'고 했다. 당신도 책 속에서 '금과 옥'을 발견해 보라.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보완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지 등을 분석한 후 이에 맞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섣부른 욕심과 의욕을 앞세우기 전, 잠깐의 여유를 갖고 나를 돌아볼 줄 아는 자세가 성공을 위한 바탕임을 잊지 말자.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면 영원히 실패하지 않는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할 때 반드시 이와 같은 믿음을 가져라. 힘의 원천은 성공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확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신념이 약하면 난관들을 극복하기 어렵고, 어느 순간 도전의지 마저 꺾여버리고 만다. 따라서 굳건한 의지를 마음속에 새겨 둔다면 목표를 향한 여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불시에 닥칠지라도 순조롭게 처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은 국적이나 언어를 불문하고 모든 이의 마음을 열 수 있다. 겉으로만 호의를 표현하며 거짓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면 마음에 없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도 그 느낌이 전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 사람과 당신과의 관계는 소원해질 것이다. 다른 이와 대화할 때는 진심을 담아 말하라.

 

마음속에 새긴 목표와 꿈은 책 속에 적힌 한 줄의 격언과도 같다. 그것은 실행하지 않으면 곧 힘을 잃고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당신을 성공의 길로 이끌 행운의 습관들을 매일매일 메모하고 실천하라. 당신이 의식하며 만들어낸 좋은 습관들은 조금씩 당신의 하루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한 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일 년이 되고, 그렇게 당신의 인생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065

인생의 최고 불행은 인간이면서 인간을 모르는 것이다.

_ 파스칼

 

066

항상 나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

_ 성경

 

067

불평은 지는 놈의 소리요, 짜증은 종의 버릇이다.

_ 함석헌

 

068

두려움은 당신을 가둬 두지만 희망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_ 쇼생크 탈출

 

069

이 세상에는 행운도 불운도 없다. 다만 생각하기에 달렸다.

_ 세익스피어

 

070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_ 마이클 카미

 

071

희망은 우리 일생의 어느 시기에도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 스티븐슨

 

072

망하자마자 행동하는 사람, 그것이 가치 잇는 사람이다.

_ 엔니웃스

 

073

우리의 하루는 옷 가방과 같다. 크기가 모두 똑같은 옷 가방을 가지고

어떤 이는 다른 이보다 더 많은 옷을 집어 넣는다.

_ 엔델

 

074

노여움은 무모함에서 시작되어 항상 후회로 끝을 맺는다.

_ 피타고라스

 

075

가난한 것은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갈망하는 사람이다.

_ 세네카

 

076

습관은 나무껍질에 새겨 놓은 문자 같아서

그 나무가 자라남에 따라 함께 커진다.

_ 사무엘 스마일즈

 

077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도 편안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_ 명심보감

 

078

수명을 잘하는 사람은 물에 빠지고, 말을 잘 타는 사람은 말에서 떨어진다.

_ 회남자

 

079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이다.

죽음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한순간의 일이다.

_ 보즈웰

 

080

역경은 청년에게 있어서 빛나는 기회이다.

젊은 시절 고생은 발전의 밑거름이다.

_ 에머슨

 

081

부당한 이득을 얻지 말라. 그것은 손해와 같은 것이다.

_ 헤시오도스

 

082

늙어 가는 법을 안다는 것은 지혜의 걸작으로,

위대한 삶의 예술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장에 속한다.

_ 아미엘

 

083

가난은 일시적인 결함이지만, 지나친 부유함은 영원한 질병이다.

_ 칼릴 즈브란

 

084

고난과 불행이 찾아올 때에 비로소 친구가 친구임을 안다.

_ 이태백

 

085

차면 비고, 부풀면 줄어들고, 올라가면 내려온다.

파괴하려거든 끝까지 몰고 가고 본조하려거든 중용을 지켜라.

_ 도교

 

086

지나간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즉 과거에 구애되지 않고 또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에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_ 장자

 

087

평화는 폭력에 의해서 유지될 수가 없다.

그것은 오직 이해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가 있다.

_ 알버트 아인슈타인

 

088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서는 쾌감을 알지만

패자는 넘어지면 재수를 탓한다.

_ J. 하비스

 

089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

_ 노자

 

090

인생의 최고 불행은 인간이면서 인간을 모르는 것이다.

_ 파스칼

 

091

가장 고귀한 복수는 관용이다.

_ H. G. 보운

 

092

인생 최고의 보람은 일을 즐겁게 하는 데 있다.

_ 엔터니 로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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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4. 4. 28. 12:44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91-1 길 위에 서서

 

백수 이야기

 

백수라고 해서 다 같은 백수가 아니다. 백수도 구분하면 화백, 반백, 불백, 가백, 그리고 마포불백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셨는가.

 

* 화백 : 백수이긴 하지만 골프, 여행은 물론 애인과 밀회도 즐기는 '화려한 백수'

* 반백 : 골프, 여행이나 애인과의 밀회 중에서 한 쪽만 즐기는 '반쪽 화백'

* 불백 : 집에서 칩거하고 있다가 누가 '불'러주면 나가서 밥을 같이 먹거나, 어쩌다 자기가 친구를 '불'러내어 자리를 마련하는 '불쌍한 백수'

*가백 : 주로 집에만 칩거하면서 손주 봐주고, 마누라가 외출하면서 '집 잘보라'고 당부하면 '잘 다녀오세요'라고 대답하는 '가정에 충실한 백수'

* 마포불백 : 요즘 새롭게 등장한 백수.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결혼한 남자들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보다 오래 산다. 그러나 결혼한 남자들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보다 빨리 죽고 싶어 한다."

 

술 이야기

 

두보는 '곡강曲江'에서 이렇게 술을 읊었다.

"꽃잎 하나 지면 봄이 그만큼 덜어지거늘 바람에 펄펄 꽃잎이 날리니 이를 어찌하랴. 꽃이야 피었다 금세 또 지는 것, 몸에 병 많다 술 마심 주저하랴."

 

공자는 논어에서 음식 예절을 논하며 술에 대해 말했다.

유주무량 불급란惟酒無量 不及亂.

"오직 술만은 양을 정하지 않고 마시되, 취하여 난잡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후세 사람이 이 말을 패러디했다.

"오직 술만은 양을 정하지 않고 마셔서, 양에 차지 않으면 난동을 부려라.(유주무량惟酒無量이니 불급不及이면 난亂하라.)"

 

고은 시인은 두주불사다. 시인의 말씀인즉,

"나는 깨닫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취하기 위해 왔다."

"술도 언어다. 우리를 비약시키고, 착각하게 만들고, 때로 거칠게 만드는 오묘한 언어다."

 

어느 마당극에서 술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한 잔 술에 꿈을 꾸고, 두 잔 술에 사랑을 하지."

 

"꽃을 감상할 때는 반쯤 피어 있는 게 좋고, 술을 마실 때는 얼큰한 정도가 좋다. 이 가운데 아름다움과 멋이 잇다. 꽃이 활짝 피고 술에 흠뻑 취하면 도리어 추악한 지경에 이르니 가득 찬 상태에 잇는 이는 이를 생각할 일이다."

 

아담이 포도주를 빚을 때 포도주에 사자, 양, 돼지, 원숭이의 피를 차례대로 섞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처음에는 사자처럼 용감해진다. 다음 단계에는 양처럼 온순해진다. 술을 더 마시면 돼지처럼 지저분해진다. 그래도 술을 더 마시면 원숭이 처럼 광대짓을 하게 된다.

- 탈무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잇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과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킴벌리 커버거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세르반테스, <돈티호테>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마음이 울렁거리는 일.

바람 불면 그곳이 어디든 따라나서고 싶고,

바람 들면 온몸이 저절로 살랑살랑 나부끼게 되고,

바람나면 불타는 두 눈에 세상 보이는 것 아마 없으리.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사무치는 일.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부재와 상실,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리고 뼛속까지 시리리.

그리고 바람을 생각하는 일이란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

물처럼 세월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으리.

-------------------------

 

강처럼 흘러간다.

모든 삶들이

그렇게 흐르다 우연히 만난다.

잠시 섞여 흐르다가 헤어진다.

어떤 삶들은.

 

강처럼 흘러야 다시 만날 수 있을 텐데…

삶이 자꾸 멈춘다.

자꾸 가뭄 드는 삶.

바짝 말라 강이 흐른 후 흔적만 남겨지는 삶.

어디선가 샘이 솟아주어야 할 텐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

차고 맑은 물 솟아오르는 샘 하나.

그렇게 솟아

아주 오래,

아주 멀리,

아주 천천히,

흐르는 강물도 하나…

- 조병준 시인의 여행기 중에서

 

봄비가 온 뒤라 더욱 천지간에 생기가 느껴집니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도 알맞게 살랑입니다. 나무에는 새순이 돋아나고, 이제 곧 생강나무며 진달래 등의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 와수다 산악회 벗들이 아름답고 아늑한 산 청계산에 올해 시산제를 지냅니다. 조촐한 상차림이지만 정성을 갖추어 산신령님께 예를 드립니다.

- 와수다 산악회 시산제 축문

 

기본적인 명상 방법

 

1. 명상의 목표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짧은 단어나 문장에 집중함으로써 마음속의 재잘거림을 차단하라.

2.의자에 편안히 앉아 어깨의 긴장을 풀고 발을 바닥에 붙인 후, 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두고 눈을 감아라, 등의 긴장을 풀고 싶다면 무릎을 조금 세운 자세로 바닥에 누워라. (하지만 잠들지는 마라.)

3. 몇 번 깊이 심호흡을 해라. 그런 다음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숨을 쉴 때마다 사랑, 평화, 안정, 고요 등과 같이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드는 단어 하나를 골라 마음속으로 되뇌어라. 단어 대신 가장 좋아하는 기도문의 한 구절을 반복해도 좋다.

4. 쓸데없는 생각들이 마음속에 하나 둘 떠오를 것이다. 그때마다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라. 마음을 완전히 고요하게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 걱정하지 마라.

5. 20분간 명상을 지속해라. 잠든 것도 아니고 완전히 깨어 있지도 않은 편안한 상태에서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짧게나마 명상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6. 명상이 다 끝나더라도 곧바로 일어나지 말고 1, 2분 정도 더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라.

7. 하루에 한 번 명상을 습관화해라. 짬짬이 짧게나마 시도해도 좋다. 예를 들어 책상에 앉아 일을 할 때나, 회의하기 전에 조용히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내쉰 후 몇 분 동안만이라도 명상을 해라.

8. 연습하면 할수록 마음이 고요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짧아지며 명상의 효과를 최대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속의 시끄러운 재잘거림을 잠재우고 고요함에 빠져 보아라!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갖고 싶은지 결정하라.

그것을 생각하고

그 주파수의 파장을 보내면

비전이 현실이 될 것이다.

- <시크릿>

 

이제부터는 그냥

웃기만 하기로 했다.

실성했다 해도

허파에 바람 들었다 해도

이제부터는 그냥

웃기만 하기로 했다.

내가 가는 길

훤히 트이어 잘 보이므로.

- 허형만, <가는 길>

 

나는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믿어.

신화가 역사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나는 믿어.

꿈은 현실보다 더 강력하지.

희망은 언제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줘.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웃음인 거, 당신 알아?

그리고 사랑은 죽음보다도 더 강한 무엇이야.

- 로버트 풀림, <인생신조>

 

빈배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 배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그 배에 부딪쳤습니다.

그 사람 성질이 급한 사람이지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떠내려오던 배에

사람이 타고 잇으면

당장 소리치며

비켜가지 못하겠느냐고 합니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다시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결국 세 번째 소리치는데,

그 땐 결국 욕설이 따르게 마련.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다가

지금와서 화를 내는 것은

처음에는 배가 비어 있었고

지금은 배가 채워져 있기 때문.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해하겠습니까?

- 장자

 

 

 

 

posted by 황영찬
2014. 4. 26. 09:50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46 한국의 풍어제

 

글, 사진 / 하효길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2

 

082

빛12ㄷ  210

 

빛깔있는 책들 210

 

하효길-------------------------------------------------------------------------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 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문화체육부 문화재전문위원과 서울특별시 문화재위원, 경기도박물관 유물감정위원, 민속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한국전설연구」「위도의 민속」「강사리 범굿」「한국의 귀신」「민간신앙에서 본 죽음의 문제」 등 여러 편이 있다.

 

|차례|

 

풍어제란 무엇인가

뱃고사

동해안별신굿

남해안별신굿

서해안별신굿

위도띠뱃놀이

맺음말

서해안 위도띠뱃놀이의 띠배와 용왕상.

 

앞바다도 열두바다

뒷바다도 열두바다

이십사강을 다닐적에

바람광풍 가라앉고

                         -중략-

간데마다 생기지방(생선이 많은 곳)

선곳에 닻을놓으면 생기(생선)더미가 되야

                       -중략-

고기더미 닻을놓을제

들물에 천여동 쓸물에도 만여동

갈치더미 닻을주고

조기더미 닻을두고

                   -중략-

괘등  긴 대나무 가지에 5색 종이로 만든 등을 높이 달아서 굿당 밖에 세운다.

 

범굿 사설

 

삼각산을 건너 지리산을 지나서 어허어~아

대동강을 찾아들고 어허~아 강사리 대동안에

드글드글 넘어서야 찾아서 왔고나~야

가보자 걸어보자 왔는데 인제 이 강원도의

이 범을 잡아야 될거라          -중략-

원당 안에 12서낭을 모시고 있다.

띠배와 용왕상  띠배에 오방기를 꽂아 놓고 용왕상과 함께 용왕제에 차렸던 제물을 싣는다.

띠배를 끌고가는 모선  띠배가 모선에 연결되면 농악대와 노래 부를 몇 사람이 모선에 오른다.

 

 

posted by 황영찬
2014. 4. 21. 09:13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45 반 고흐 태양의 화가

 

파스칼 보나푸 지음 / 송숙자 옮김

1997,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463

 

082

시156ㅅ 7  c.2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07

 

성직자의 길을 열망했던 반 고흐.

한때는 광산촌에서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해 정열을

불태웠지만 그의 운명은 캔버스를 떠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빛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희롱을

화폭에 담고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빛과 그림자가 소용돌이치는

화면을 통해 숱한 사람들의 비어 있는 내면을 향해 말을

걸어 왔다. 태양의 화가 반 고흐,

영혼의 화가 반 고흐의 그림에는 삶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진한 애착과 영혼을 꿰뚫는 투명한 관조가 넘쳐난다.

운명은 가혹했다.

그러나 영광은 계속된다. 반 고흐는 8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그는 경멸당했고 조롱받았으며

몰이해의 차가운 시선 속으로 던져졌다.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응시했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림은

그를 응시했다. 자화상에서 그는 인간을

좇았고 몰아붙였다. 자신을 던져버린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을 되찾았음을 깨달았다.

 

빈센트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신했고, 순수한 감성의

덩어리 속에서 희망을 그렸다.

쇄도하는 빛에 흔들리지 않는 그의 두 눈은 무언가를

확신하는 것 같았다. … 화가는 '인간'을 그렸다.

그리하여 그가 그린 자화상의

이면에는 운명을 향한 비극적이고 보잘것없으며

피할 수 없는 여정이 담기게 되었다.

자화상, 파리, 1886년.

자화상, 파리, 1887년.

자화상, 파리, 1887년.

회색 펠트 모자를 쓰고 있는 자화상, 파리, 1887년.

밀짚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 아를, 1888년.

자화상, 아를, 1888년.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 아를, 1889년.

자화상, 생레미, 1889년.

 

차례

 

제1장 불확실함과 고독

제2장 전도사와 스케치

제3장 가난과 초상화

제4장 노란색을 찾아서

제5장 발작 속의 한 가닥 빛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파스칼 보나푸 Pascal Bonafoux

파스칼 보나푸는 1949년에 출생했으며, 작가이자 미술사학자이다. 1980년과 1981년에는 메디치 별장에 기거하면서 박사학위 과정에 필요한 연구를 하였는데, 그가 택한 '서양화에서의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사를 섭렵할 수 잇게 해주는 대단히 매혹적인 주제였다. <화가와 자화상> <렘브란트 자화상> <인상주의 화가들, 초상화와 뒷이야기들> <빈센트가 그린 반 고흐>와 같은 초상화에 대한 저술을 주로 남겼고, <중상>이라는 소설도 발표했다.

 

옮긴이 : 송숙자

1951년 서울 출생.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파리에서 불어연수를 받았다. 현재 불어 및 영어 동시 통역관으로 일하고 잇으며, 전문 번역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잇다. 번역서로는 <새를 위하여> <현대 화가 비평선> <아방가르드와 노총각들> 등이 있다.

기숙학교에서 외로운 시절을 보내던 열세 살 때의 빈센트.

 

제1장

불확실함과 고독

 

1853년 3월 30일,

그루트 준데르트의 장로교 목사 사택에서는 사람들이 기대감에 들떠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테오도루스 반 고흐 목사의 부인 안나가 이제 막 아이를 낳으려는 참이었다.

1년 전 같은 날 그녀는 빈센트 윌렘이라고 이름지어 준 아기를 사산했는데, 이날 새로 태어난 아기 이름도 똑같이 빈센트 윌렘 반 고흐라고 지어 주었다.

브라반트 북쪽에 있는 빈센트의 생가.

빈센트의 부친 테오도루스 반 고흐. 검소한 칼뱅파 목사로 평생을 바쳤다.

빈센트의 모친 안나 코르넬리아 카르벤투스.

빈센트가 어렸을 적에 그린 작품이 몇 점 남아 있으나 그 작품들에서는 빈센트의 천재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천재성은 뒤늦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1862년에 그린 이 그림은 아홉 살 된 소년의 솜씨로는 놀랄만한 재능을 엿보게 해 과연 그의 작품인가 하는 논쟁이 일었다.

열여덟 살 때의 빈센트.

<물에서 탄생하는 비너스>라는 이 작품에는 "1808년에서 1848년까지 앵그르가 그린 작품"이라고 쓰여 있다. 작품을 처음 시작한 지 40년 만에 완성한 것이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린 스케치로서 램스게이트에 있는 스톡스의 학교 교실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최근에 런던의 모습을 묘사한 도레의 그림을 보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였소. 그리고 걸인들의 야간숙소를 묘사한 그림에서는 고결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오."

라파르트에서

1882년 9월

빈센트가 찬미했던 작품으로 램브란트가 1648년 그린 <엠마오집에서의 성찬>. 그가 이 그림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은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신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또 램브란트를 신을 증거해주는 화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작품은 언제나 변함없이 고귀하고,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하며, 영원으로 승화되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시적인 차원에서 작업하고 스스로 시인이었던 램브란트는 자연에 충실한 작업 이상의 것을 이루었던 창조자였다."

1876년 11월에 쓴 편지 여백에 빈센트가 펜으로 스케치한 아이슬워스에 있는 피터햄 교회와 턴햄 그린 교회.

루벤스의 영향을 받은 렘브란트의 1633년 작품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러나 루벤스와 달리 렘브란트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의 묘사보다는 거친 듯한 사실주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빈센트는 렘브란트의 그런 기법을 무척 좋아했다.

1884년 작품 <누에넨교회를 나서는 사람들>.

 

제2장

전도사와 스케치

 

빈센트의 믿음은 승리를 거두었다. 신앙심에 불타던 빈센트는 부친과 조부를 따라 목사가 되기로 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신학대학을 졸업해야 했고, 따라서 오랜 동안 고된 입학시험 공부를 해야 했다. 반 고흐 목사는 아들에게는 헌신적이었으나 빈센트의 공부를 위한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빈센트가 하려는 일이 가문의 전통을 잇는 일이라고 판단한 숙부들은 암스테르담에 온 빈센트를 반갑게 맞이해 주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1857년 5월 1일 그루트준테르트에서 태어난 테오는 빈센트의 유일한 형제였다. 그는 끊임없이 빈센트를 돌보아 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었다.

1827년 해군 장교였던 요한네스 숙부는 얼마 전에 부인을 잃고 조선소와 가까운 곳에 있는 대저택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성인이 된 자녀들을 모두 떠나 보낸 숙부는 조카인 빈센트가 집에 거처하면서 신학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1878년 4월 30일 테오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와 함께 보낸 스케치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암스테르담 인근의 전원풍경을 서투르게 묘사한 풍경화이다.

1879년 여름, 빈센트가 보리나주에 체류할 때 그린 <어깨에 삽을 메고 있는 사람>. 1880년 9월 24일 빈센트는 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적어 보냈다. "광부나 방직공은 아직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많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이들의 모습을 그리게 되고 그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가 있다면 매우 행복할 것이다. 깊이 좌절한 이 사람은 광부이다. 그리고 꿈꾸는 듯한 분위기, 조금은 생각이 없는 듯이 보이며 거의 몽유병자와 같은 사람들은 옷감을 짜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들과 2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살아오면서 그들의 독특한 성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878년 11월 빈센트가 그린 <채탄광>이다. 이곳은 광부들이 자주 드나들던 주막집으로 예인선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빈센트가 거주하던 샤를드쿠룩이라는 광부의 집으로 작자는 미상.

1881년 4월 빈센트가 스케치한 <귀가하는 광부들>. 피로에 지친 이들의 모습은 단순히 선택한 그림의 주제라기보다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생활하면서 매일 그가 목격했던 삶의 실상이었다.

1885년 10월 그린 <성서가 있는 정물>. "마네의 습작에 관한 너의 이야기의 답장으로 검은 바탕에 가죽 제본이 되어 있는 성경이 펼쳐진 정물을 보낸다. 앞면 배경은 황갈색과 레몬빛으로 처리했는데 어느 날 단숨에 그린 것이다."

"매우 긴 시간 동안 외로움이나 걷는 자유조차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은 분명 오랫동안 굶은 것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가정, 우정, 애정 그리고 우정어린 교감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나는 소화전이나 가로등과 같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현명하고 인격을 갖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허감과 무엇인가 결핍된 감정을 가지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네가 나를 찾아와 준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그러면 내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둘이 서로 이질적인 느낌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족들과도 소원해지지 않을 수 있겠지. 그러나 당분간은 가족과 함께 있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곳에 더 머물러 잇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테오에게

1879년 10월 15일

1859년 쥘 브레통이 그린 <이삭 줍는 여인들>. 빈센트에게 브레통이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은 그가 다른 화가들처럼 고대역사, 신화 등을 주체로 선택하기보다는 농민들을 주로 그렸다는 점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자신이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스케치를 그려 보냈다.

"눈이 오는 날 아침. 어슴푸레한 새벽 가시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선 오솔길을 따라 갱도로 향하는 석탄 줍는 여인과 남자의 모습을 서투른 솜씨로 스케치해 보았다. 배경에 희미하게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건물은 광산 건물이다."

테오에게

1880년 10월 20일

"눈이 오는 날 아침. 어슴푸레한 새벽 가시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선 오솔길을 따라 갱도로 향하는 석탄 줍는 여인과 남자의 모습을 서투른 솜씨로 스케치해 보았다. 배경에 희미하게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건물은 광산 건물이다."

테오에게

1880년 10월 20일

빈센트가 반복해서 그린 광부들은 여러 해 뒤 에밀 졸라가 쓴 《제르미날》이라는 소설의 주제가 되었다.

 

제3장

가난과 초상화

 

1880년 10월, 빈센트는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그는 구필 화랑 브뤼셀 지점 책임자인 슈미트를 찾아가서 화가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슈미트는 한때 구필 화랑에서 일했던 빈센트를 정중하게 맞았으나, 예술가로서의 뒤늦은 출발에 회의를 가졌다.

"팔레트를 하나 쓰는 것이 작업하기에 더 편리하고 색깔도 훌륭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랫동안 빈센트는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인물화'라고 불렀던 그림만을 그렸다. 그 속에는 사람들의 외모보다는 움직임과 자세가 일하는 모습을 통해 묘사되었다. 1882년에 그린 <울고 있는 노인>은 노인의 초상화가 아니라, 한 남자의 절망을 그리고 있다.

연필 스케치에 그림물감을 가미한 <피로>는 한때 라파르트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병든 노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빈센트는 자신이 쉬지 않고 스케치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다 스케치를 해 넣곤 했다.

1881년 사촌 모베의 화실에서 지도를 받으며 그린 <양배추와 나막신>. 빈센트가 처음으로 그린 유화작품이다.

안톤 모베는 헤이그파(派)를 이끄는 화가 중의 하나였다.

안톤 모베가 1876년에 그린 <슈베닝겐 해안의 고기잡이배>. 빈센트도 헤이그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서 해변가의 배와 어부를 정기적으로 그렸다.

1882년 4월 헤이그에서 그린 <위대한 여인>. 작업 중 빈센트는 테오에게 이렇게 적어 보냈다. "동봉한 그림은 큰 작품에서 간결하게 스케치한 것이다. 토머스 후드가 지은 시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이 부자임을 부끄러워하면서 밤잠을 못 이루는 부잣집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그 여인은 옷을 사러 나갔다가 비좁은 방에서 결핵에 시달려 창백하게 여윈 여자 재봉사를 보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 그림은 고민에 싸여 잠들지 못하는 창백한 여인의 모습을 그렸다.

1886년 빈센트가 석고상을 모델로 그린 그림.

빈센트는 동거하던 크리스틴의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크리스틴은 1882년 7월 2일 윌렘이라는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 외에도 다섯 살 된 윌렘미나라는 딸이 있었다. 1883년 3월 요람에 있는 아기와 소녀를 스케치했다. 당시 빈센트는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평생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화실에는 아기요람과 어린이용 의자가 하나 있다. 이제 우울한 분위기란 찾아볼 수 없다. 생명력과 활기가 충만한 집안은 청결하고, 명랑하며 밝고 쾌활하다. 꼭 필요한 가구와 침구, 그림에 필요한 재료가 모두 구비되어 있다. 물론 네 도움이 없었다면 새 화실을 마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네 덕분에 더 열심히 작업할 수가 있다."

1882년 10월에 그린 <교회 안에서>. 빈센트가 복음전파를 소망했던 신자들이 모델이 되어 주었다.

1882년에 그린 <비탄>. 얼굴을 파묻은 나체의 여인. 크리스틴은 잔뜩 웅크리고 있다. 빈센트의 가족은 크리스틴을 받아 주지 않았고 빈센트도 어쩔 수가 없었다. 빈센트가 이 작품에서 시도했던 것은 사실주의적 기법이 아니라 상징과 신화적인 특성이었다. 그는 <비탄>이 알브레히트 뒤러의 <서글픔>에 비견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드렌테에서 빈센트는 자연을 화폭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1883년 9월에 그린 <농가>(위). 이보다 한 달 먼저 제작한 어부(아래).

밀레가 1857년에 그린 <만종>.

"밀레는 모든 면에서 귀감이 된 젊은 화가들의 아버지이다. 나 역시 그에 동의하고 단순성에 대한 그의 신조를 믿는다."

테오에게

1885년 4월

1883년 10월에 제작한 <토탄을 채취하는 여인들>. 드렌테에 머무는 동안 빈센트가 사용했던 어두운 색체가 두드러져 보인다. 빈센트의 목표는 그림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화폭에 담는다는 것, 또 그들을 위해 그린다는 것이었다.

<누에넨 농촌여인의 얼굴>(1885년, 위)과 <바느질하는 농촌여인>(1885년, 아래). 어느 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밖으로 나간 빈센트는 그루트라는 농부의 집을 지나게 되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그 집에 들어갔을 때는 가족이 식사를 하려는 참이었다. 빈센트는 섬광과 같은 신비감을 느꼈다. 빈센트는 보리나주에 있을 때부터 '평범한' 인간의 비극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품성에 깊이 매혹되어 왔다. 그는 즉시 '이 평범한 노동자'를 그려 나갔다.

"이번 주에는 저녁 또는 낮, 아니면 밤낮을 동시에 해도 상관없겠지만 감자 접시를 놓고 둘러앉아 있는 농촌사람들을 그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성공할지 혹은 실패할지 알 수는 없지만 각기 다른 형태로 스케치를 시작할 예정이다."

테오에게

1885년 4월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처음 스케치할 때부터 빈센트는 오두막 내부의 어둠이 주는 뉘앙스를 강조하고 싶었다. 정신적 기둥인 렘브란트와 할스가 이룩했던 것처럼 어둠을 만질 수 있는 구체로 형상화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램프 불빛 아래서 감자 접시 하나를 두고 감자를 집어 먹는 사람들을 강조하고 싶었다. 몸소 일하면서 정직하게 식량을 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다."

테오에게

1885년 4월

"프란스 할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 그것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전혀 다르다. 작품 곳곳이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다." 빈센트가 암스테르담에서 보았다는 그림은 사실 <행복한 주정꾼>(부분,)이라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이와 비슷한 할스의 그림이었다.

<추수하는 사람>(1885).

"내 자신이 농민화가라는 생각이 틀림없는 사실로 느껴진다. 너 또한 언젠가는 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광부나 토탄 채취꾼, 농부, 직조공의 집 난롯가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물론 생각하기조차 피곤한 때는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테오에게

1885년 4월

<선착장>(위), 앤트워프 인근 로이어 제방 아래쪽을 묘사한 1885년 작품이다. 이 그림을 그릴 때만  하더라도 빈센트는 색체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아 그가 사용하는 색체는 흐릿한 중간 색조에 머무르고 있었다. <뒤에서 본 집>(아래)은 앤트워프의 집을 그린 것으로 이때부터 밝은 색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화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낡은 집의 뒷부분을 밝은 색조로 처리했기에 빈센트의 전체 작품목록을 만든 파유조차 이 그림을 파리 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착각했다. 어두운 색조로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 이후로 빈센트는 차츰 밝은 색채를 사용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탬버랭이라는 선술집에서 빈센트가 그린 아고스티나 세가토리의 모습.

 

제4장

노란색을 찾아서

 

1886년 2월 20일, 테오는 몽마르트 거리 19번지에 있는 구필 화랑에서 빈센트가 보낸 짧은 전갈을 받았다. 그 내용은 빈센트가 파리에 막 도착했으며, 루브르에 있는 살롱 카레에서 가능한 한 빨리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빈센트가 그처럼 서둘러 파리에 온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테오와 같이 생활하면 생활비를 절약할 수가 있고, 다른 한 가지는 코르몽의 화실에서 그림수업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클러시 거리. 정원과 포도밭에 둘러싸인 몽마르트르의 풍차 그리고 파리의 지붕은 빈센트가 즐겨 그렸던 소재이다.

1886년 상반기나 1887년 여름 파리에서 그린 자화상.

코르몽이 작업하고 있는 캔버스 뒤에 모자를 쓴 툴루스 로트렉이 앉아 있다. 학생들, 뒤편에 에밀 베르나르의 모습이 보인다.

빈센트는 1887년 코르몽의 아틀리에에서 로트렉을 만났다. 로트렉이 파스텔로 그린 빈센트의 초상화. 두 사람은 화실과 카페에서 우정을 나누었다.

존 러셀이 유화로 그린 빈센트의 초상화.

1887년 봄. 빈센트는 레픽거리에 있는 화실에서 바라본 전경을 묘사했다.

당시 인기 있던 일본파의 화풍은 빈센트를 매료시켰고 그의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배우>.

빈센트가 정기적으로 베르나르를 만나러 가곤 했던 아니에르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의 발자취를 따라 빈센트도 1887년 여름 이곳에 이젤을 세우고 <아니에르 강변 도로>를 그렸다.

1887년 여름 파리에서 그린 자화상 습작 중 하나이다(왼쪽 위는 본래 잘려져 나갔다).

빈센트는 아를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주제인 전원풍경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아를의 밀밭>(위)과 <추수>(아래)에서는 빛의 처리와 색체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제 색채와 빛이 충만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1888년 4월과 5월 사이에 그린 <꽃이 핀 과수원>. 프로방스에서는 과일나무들이 일찍 꽃을 피웠다. 빈센트는 새로운 환경에 매혹되어 흐드러지게 꽃이 핀 편도나무, 벚나무, 복숭아나무들을 풍부한 색채로 완성했다. 모베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베를 회상하며'라는 글을 써 넣은 작품도 이것과 유사하다.

1888년 9월에 그린 아를에서 빈센트가 살았던 집. 이 집은 단순히 작업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른 화가와 생활하면서 미래의 그림을 완성하겠다는 그의 꿈을 실현시켜 준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1888년 9월 18일부터 1889년 2월 9일까지 반년도 채 살지 않았다.

"오늘 나는 이 건물의 오른 채에 세 들었다. 방이 네 개 있는데 두 방에는 캐비닛이 갖추어져 있다. 볕이 잘 드는 이 집의 외부는 노란색, 내부는 흰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월세는 15프랑이다. 2층 방을 침실로 만들어 그곳에서 잠들고 싶다. 밖은 노란색, 안은 흰색, 햇빛을 한껏 받으며 캔버스를 마주할 수 있다니 운이 좋은 것 같다."

테오에게

1888년 5월 1일

빈센트가 1888년 12월에 그린 <고갱의 의자>는 고갱의 부재에 따른 빈센트의 후회와 절망을 나타낸다.

1888년 10월에 그린 <빈센트의 침실>은 후에 빈센트가 병원에 있는 동안 두 번이나 복제했던 그림으로 노란 집에서의 행복했던 시절의 상징이기도 하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빈센트의 화법은 완전히 변화했다. 슈베닝겐 시절 그는 색채가 없는 윤곽을 선호했다. 그러나 1888년 6월 생트마리 해안에서 그린 <해변가의 고기잡이배>에서는 색채가 그림에 윤곽을 주고 잇음을 알 수 있다. 위에 보이는 스케치는 같은 해 편지에 그려 넣은 것이다.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빈센트는 작업중인 그림의 스케치를 그려 넣곤 했다. 1888년에 완성한 <생트마리 거리>의 스케치를 보낼 때에는 테오가 이해하기 쉽도록 색채계획을 삽입해 넣어 눈길을 끈다.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9월, 빈센트는 램프와 밤하늘의 별 따위 모든 종류의 빛을 이용하여 작품의 빛을 창조하고 싶어했다.

빈센트가 아를에 체류하던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조제프 롤랑을 그린 <우체부 롤랑>. 1889년 1월과 2월에 여섯 차례나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자화상에서 고갱은 자신을 장 발장처럼 고귀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닌 모습으로 묘사하고 싶어했다.

해바라기는 빈센트의 상징이었다. 빈센트는 1888년 8월 28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더욱 단순한 기법으로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고 썼다. 오랜 동안 빈센트가 남긴 열 점의 <해바라기>에서 단순미를 발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87년 그중 한 점이 4천만 달러에 팔렸다.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빈센트>. 1888년 11월 고갱작. 이 그림을 보고 빈센트는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그런데 광인의 모습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귀를 자른 지 불과 한 달 후, 1889년 1월에 그린 자화상(위). 빈센트는 광기를 다스리기 위해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빈센트가 귀를 자른 소식을 다룬 1888년 12월 30일 자 《공화주의자 소식》(아래).

오베르에 있는 교회. 1890년.

 

제5장

발작 속의 한가닥 빛

 

1888년 12월 25일. 최악의 날이 오고야 말았다. 심한 정신착란 증세로 고통을 받고 있던 빈센트는 아를 시립병원 독방에 감금되었다. 파리에서 형의 소식을 듣고 서둘러 아를에 온 테오도 기진맥진해 있었다.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 죽어 가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 고통스럽다."

꽃이 핀 가지의 스케치.

1889년에 그린 <아를요양원 정원>. 시립병원의 의사들은 빈센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가 '감금되기' 전까지 짧은 기간 동안 그는 병원 정원을 즐겨 다루었다.

빈센트가 아를에서 치료를 받던 시절에 찍은 닥터 레의 사진(아래). 병원에서 퇴원하고 나서 빈센트는 닥터 레의 초상화를 그려 주었는데 닥터 레의 모친은 그 초상화를 무척 싫어해 닭장 울타리에 난 구멍을 막는 데 사용했다.

1890년 5월 작품 <양손에 얼굴을 묻고 있는 노인>(아래). 이보다 8년 전에 빈센트는 헤이그에서 울면서 앉아 있는 한 노인을 스케치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버림받은 노인의 모습을 빈센트가 끊임없이 주제로 삼은 것은 자신의 혼란과 처지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준다. 위의 그림은 생레미 요양원의 광고이다.

생폴 드 무솔 요양원의 모습으로 현관(위), 빈센트의 방(가운데)과 창문(아래)이다.

1890년 4월에 그린 <양귀비 밭>. 색채가 형태를 구성하면서 빛과 공간감을 전달해 준다.

1889년 생레미 요양원에서 찾아낸 소재를 그린 <붓꽃>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그의 환각증세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889년 9월에 그린 <별이 빛나는 밤>. 아를에 머무는 동안 빛의 힘을 발견했던 빈센트에게 이 작품은 그의 예술에 향한 도전이었고 꿈의 실재화였다. 그보다 1년 전에 테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도시와 마을을 상징하는 지도의 검은 점들이 나를 꿈꾸게 만들듯이 별은 나를 꿈꾸게 한다.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1890년 1월에 그린 <낮잠>. 생레미 요양원에서 외출을 금지당한 채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빈센트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견딜 수가 없었고,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도레 등과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모방했다. 이 작품은 라비에유가 밀레의 <오후 4시>라는 작품을 판화로 제작한 것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프로방스에 머물던 마지막 시기에 그린 실편백나무. 이곳에서 빈센트는 아를에서 집중적으로 그렸던 과일나무 대신에 이 나무를 즐겨 그렸다.

"그것은 햇빛 찬란한 풍경에 찍혀진 검은 얼룩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상상해 낼 수 있는 가장 흥미롭고 어려운 검은 점이다. 이것은 파란색 바탕,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파란색 속에서 보아야 한다."

"실편백나무는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다. 해바라기를 그리기 위해서 그랬던 것처럼 실편백나무를 그리기 위해서 캔버스를 만들어야겠다. 그 이유는 실편백나무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놀랄 만한 균형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품위있는 푸르름이란……."

테오에게

1889년 6월 25일

1890년 6월 오베르에서 그린 <닥터 가셰의 초상>. 가셰는 흥미로운 인물이었으나 빈센트는 그를 절대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친구였던 그는 피사로, 세잔을 비롯해서 많은 화가들을 자신의 집에 초청하여 머물도록 했다. 가운데 판화는 가셰가 직접 제작한 것이고, 위의 것은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스케치이다.

1890년 7월에 그린 <오베르 들판>. 오베르에 머무는 동안 끊임없는 창작열은 그를 괴롭혔다. 당시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5월 21일과 7월 23일 사이에 수십 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작품 가운데에는 뛰어난 것도 있다. 닥터 가셰와 그의 딸, 라부의 딸 초상화, 인물없는 풍경화 등이 그것이다.

1890년 6월에 그린 <오베르성>. 지난 100년 동안 이곳의 풍경은 현저하게 변화되었다. 그러나 막상 빈센트가 이젤을 세웠던 장소들을 찾아가 보면 빈센트가 그림에서 묘사했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890년 7월에 그린 <푸른 하늘과 흰구름>. 빈센트의 후기 그림에 영향을 준 일 드 프랑스의 하늘은 프로방스의 청명한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고 끊임없이 변화했다. 빛 속에서 감도는 작은 회색 구름은 빈센트가 좋아했던 코로와 부댕의 그림에서 묘사된 그것과 연관성이 있다.그러나 빈센트는 배가 앞으로 항해해 나가듯이 구름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 즉 사슬처럼 연결하는 형태로 묘사했다.

1890년 오베르에서 그린 <초가집>. 빈센트가 오베르에 도착한 해 5월 21일, 빈센트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림에 묘사된 장소에 대해 "이곳은 매우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요즘 점차 찾아보기가 어려운 초가집이 많다는 것이다." 이어 "아름다움이 깊이 배어 있는 이곳을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다."라고 쓰고 있다. 빈센트는 그림의 소재가 될 만한 곳을 찾아 오베르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오아즈 제방에서 해가 저물기 전까지 "낡은 초가지붕과 완두콩밭, 꽃이 피어 있는 앞마당, 그리고 밀밭이 있는 뒤편 언덕 등을 묘사한" 그림을 그렸다.

1890년 오베르에서 그린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 빈센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서신에서 그러한 사실을 증명할 만한 내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지방 신문에 게재되었던 빈센트의 사망 기사. 빈센트가 세상을 떠난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그토록 형을 사랑했던 테오도 우트레히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1914년 테오의 화장된 유해는 오베르에 옮겨져서 형의 무덤 옆에 안치되었다.

1888년 10월 테오에게 보낸 스케치가 그려진 편지.

빈센트가 살아있던 마지막 몇 주일 동안 노트에 연필로 그린 스케치.

1889년 작품으로 고갱의 자화상.

 

 

1878년 7월 빈센트가 그린 에텐과 그 주변 지역 지도.

드니의 집.

누에넨에 있던 목사관.

파리 레픽 거리에 있던 화가의 아파트.

1887년부터 1888년까지 빈센트가 아를에서 살았던 집.

제2차 세계대전중에 파괴된 아를의 랑글로아 다리.

생레미 드 프로방스에 있던 생폴 드 무솔 요양원.

빈센트가 그린 요양원 정원.

생레미 드 프로방스 요양원 정원.

오베르에 있는 카페를 겸한 집으로 이곳에서 빈센트가 세상을 떠났다.

 

 

posted by 황영찬
2014. 4. 18. 09:0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44 오렌지 햇빛

 

서인숙 시집

2001, 문학아카데미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1710

 

811.6

서6819오

 

문학아카데미 시선 148

Literature Academy Poem Book Series(1989)

 

회감의 서정과

불멸에의 동경

 

서인숙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을 보니 제1부에서 신라 토기나 토우, 조선백자, 백제 와당, 청동거울 등 박물관을 순례하며 얻은 소재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러한 유물들을 통해서 잃어버린 역사와 자아를 탐색하며 '나'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층위들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박물관이란 고요한 적막 속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시의 화자는 오염되고 훼손된 현재의 시간을 넘어 선 잃어버린 기억들을 떠올린다. 우리의 육신이 갇혀 있는 유한한 시간을 넘어선 '마음이 살고 있는 나의 집'으로 나아가서 찬란하게 빛나던 순수한 시간을 모색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간들을 동경한다. 마음의 이상향인 '보이지 않는 별'을 찾기 위해 오늘도 그는 고통스런 생의 중심에서 '바르르 손을 내밀며'(「수련」) 간절하게 사무치는 그리움의 시를 쓴다. …중략…시를 쓰는 일이란 결국 고독과 적막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 곱게 길러내 하늘에 바치는' 행위이며 '별처럼 반짝이는 연분홍의 수련' 몇 송이 피워내는 일인 동시에, '빛나는 시간들'을 저 먼 곳에서 끌어와 가슴에 묻는 행위, 또는 '보이지 않는 별'을 부르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 소나무는 사철 푸르러 우리의 눈과 정신을 시원하게 해 줄 것이며, 돌 연못에 솟아오른 수련 몇 송이는 지친 우리의 삶을 위무해 줄 것이다.

- 고명수(시인, 동원대 교수)

 

시인 서인숙

1965년 『현대문학』에 수필 「바다의 언어」로 등단.(평론가 조연현 추천)

1979년 『현대문학』 시 「맷돌」을 발표하면서 詩作 활동.(평론가 조연현 추천)

詩集 『살아서 살며』 『먼 훗날에도 백자는 그리움이 남긴 자리』 『세월도 인생도 그리 하거늘

隨筆集 『타오르는 촛불』 『최후의 지도』 『태고의 공간』 『영원한 불꽃』 『마지막 빛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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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문화상(예술분과) 본상 수상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무봉문학상 수상

마산시 문화상 수상

 

국제펜클럽 한국위원(현)

한국시인협회 회원(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현)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여류수필가협회 회장

마산 문인협회 회장

 

여인은 수틀 속 하얀 천에

수를 놓고 있네

불빛 없어도

마음 빛으로

밤새 꽃발을 일구네

함바꽃, 도라지꽃, 접시꽃

꽃씨 터뜨리며

온 마을 불태우네

- 서인숙 「등잔」전문

 

■ 독자를 위하여

 

행복하다.

이 외마디 소리를 하늘과 땅을

향해 외치네.

돌아보면 詩를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름다움이 있었고, 괴로움과 어둠이

있었고, 알 수 없는 처절한 고독의

광장이었다.

목숨의 환희였다.

삶의 충만이었다.

열정을 품어 내는 흙이었다.

이렇게, 소리내어 다스리며

또 다시 이 길을 가야 하는

내가 여기 있다.

세상을 보며

나를 보면서.

 

바다에서

서인숙

 

서인숙 시집

 

Ⅰ. 조선 사발

조선 사발-환생 / 조선 사발-무상 / 말의 도요지에서 / 등잔 / 신라 토기 / 민화 / 토우 / 백제 땅 / 보자기 / 빛살무늬 / 백자의 넋 / 청동거울 1 / 청동거울 2 / 석등 / 박물관 산책 / 함지박 / 달항아리 / 시원의 꿈 / 떡살 / 백제 와당 / 나이테의 부름 / 천전리에서 / 물로 말하는 / 고대 답사 / 토기 1 / 토기 2 / 화로 / 만세 소리 / 순간의 영원

 

Ⅱ. 동백숲

바다 / 노을 / 오렌지 햇빛 / 햇빛값 / 눈꽃 / 벽화 / 목숨 / 침묵 / 뷔페의 죽음 / 수련 / 샐비어 / 가을 햇살 / 섬 / 말 / 지구의 밖 / 잎맥 / 돌 / 꽃이 핀다 / 씨앗 / 동백숲 / 비

 

Ⅲ. 말의 꽃

말의 꽃 / 계단 / 유년의 봄 / 고인돌 / 샛강 / 가을강 / 만남 / 부석사 / 간이역 / 혼불 / 물음의 화살 / 집 / 퓨전 시대 / 적막의 자유 / 풍란 / 비가 / 시련의 늪 / 믿음

 

Ⅳ. 시인의 에스프리

고명수 해설 / 회감의 서정과 불멸에의 동경

 

수련

 

드디어 피었구나

돌연못에 솟아오른 수련 몇 송이

별처럼 반짝이는 연분홍

빛나는 시간들을 저 먼 곳에서 끌어와

놓칠 세라 가슴에 묻었다

 

이제 꽃은 시들었는가

퇴색한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잎새들

바람이 아무렇게나 건드리고 간다

 

그림자 같은 검은 잎사귀 하나

바르르 손을 내밀며

보이지 않는 별을 부르고 있다

 

고대 답사

 

드러나는 인골人骨마다

격렬한 전쟁이 휘몰고 간 상흔,

선사시대가 열려 있다

 

죽은 자는 한을 말한다,

고백한다

 

붉은 흙과 흙의 끝없는 사막,

태양은

불은 토하고

역사의 내부를 향해

비밀을 해치고 찾아 내는 아득한 뿌리의 길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아직 갈 길이 아닌데,

두려움의 감동은

샤보텐꽃으로 피어 과거와 현재

미래마저 물들이고 있다

 

순간의 영원

- 스메타나 교향곡 나의 조국

 

울림이여! 더욱 울려라 하늘 땅을 향해

울림이여! 쏟아져라

쏟아지다 토기에 닿으면

신라는 빗살로 솟아올라

천 사백 년을 연다

저 토기를 뚫어라

내 가슴을 뚫고 지나는 신라의

바람처럼

울림과 빗살의 화음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신세계

전쟁이 싸움으로 가지 않고

스스로를 겨냥하는 도전

온통 울림이다

바다, 산, 사람 모두

하나 되어라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의 순간

나는 그 세상에 살고 있나니,

 

박물관 산책

 

죽음으로 살아 남은 사연들이 남긴 흔적

역사의 표정들이 넘치고 있다

 

개미만한 발자욱은

생애를 다해

마음 열어 귀 기울여 유물의 터널을 뚫는다

 

마음의 강 그 깊이에

울음같은 슬픔은

느닷없이 스며오는 외로움

그 허무함 때문일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혼백만 떠도는어둠에서

어딘가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깊은 적막,

 

조선 사발

- 무상

 

비로소

텅텅 빈 오백 년 세월을 보았다

하얗게 하얗게 소리치는

허허한 자유를 보았다

 

저 창 너머

언제나 그리워하던 붉은 노을

여기 가득 고여 있음을,

 

저 창 너머

언제나 그리워하던 붉은 노을

여기 사라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모습도 소리도 없는

나를 보았다

 

조선 사발

- 환생

 

푸르게 물든 그늘에 누워

풋잠 들었을 때

오백 년 세월은 나를 휘감는다

내 짧은 목숨마저 분분이 날아 떨어지면

내 아픔은 목단꽃으로 피어난다

조선 여인의 넋으로 깨어난다

피빛의 선명한 꽃무늬들이

진흙 속에 새겨지면

또 한 세상 살아나는,

살아나는 소리

그 어느 모퉁이

내 사랑 펴놓고

너를 닮은 내가 되고 싶다.

녹음이 짙어지면

그 깊은 곳에서

그대를 만나듯.

 

청동거울 1

 

푸른 빛을 풀어 수천년을 보인다

 

때로는 과거로 앉아

수많은 얼굴을 스친 산사山寺 같은 모습

 

나도 어언 너를 닮아 푸른 날개 펄럭이며

수천년을 산 듯 거울 속에 앉아 있다

 

죄를 씻고 또 씻어낸 신의 말씀

 

구름을 부르고 꽃을 피우며 설레임을 안고

네가 살아왔던 곳을 찾아 헤맸다.

 

내 삶 어느 곳에

스승같은 길잡이

고대를 배우게 한다

 

신라 토기

 

목숨 깊이 새긴

사라져도 사라질 수 없는 부활의 꿈

 

신라의 역사 앞에서

토기의 세월로

마음 열어 한 생애

 

숲 속의 고목 되어

잎새 거느리는

뿌리 깊이

어디론가 흘러가누나

 

멀리 강물소리에 추억 넘쳐

아픈 상처 꽃잎처럼 떨면

단풍진 낙엽 하나 겨울로 가는

 

한 줌

선조의 넋에서 무한을 펼쳐본다.

 

백자白瓷의 넋

 

하얀 색, 하늘에서 흘러온 빛인가

빛과 빛이 마주쳐 하나의 원을 이룰 때

 

시작과 끝, 끝없는 무한의 색으로

태양과 맞서보는 조선의 오백년

우리들 가슴에 묻고 있는 백자여!

너를 닮고 싶구나

 

때로는 초라한 누더기를 음악으로 씻으며

삶을 닦을 때

홀연히 돌아보는 나의 모습

너를 닮고 싶구나

네 빛이 품어내는 무수한 세월의 흔적 속

내가 잃은 시간을 찾아

 

오늘도

너를 따라 나선다.

 

샐비어

 

붉은 강

 

죄 없이

어찌,

이 한 생을 살리

 

에덴의 원죄가

뿌리를 내리고

군락을 이뤄

도도히 흘러가고 있는

저 원색의 뜨거운 욕망들

 

오렌지 햇빛

- 해연에게

 

오렌지나무가 다가와

그리움의 열매를 보여 준다

 

노랑 열매 주렁주렁 청바지에 매단,

아버지의 정원을 잊지 못해 심어나가는

너의 정원,

그 옛날 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처럼

내 마음에 가득 찬다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태평양 파도의 숨결을 마시며

한국과 미국을 한 줄로 긋는다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핏줄의 인연

훌훌이 떠난 정들이

더욱 아프게 가슴을 훑어내는

이 봄,

 

오렌지나무의 햇빛으로 달래본다.

 

목숨

- 델리만曲

 

햇살에 젖은 음향

그 깊고 우람한 터널을 헤치면

낙엽 되어 바람에 날고 잇는

아픔을 본다

 

살아온 세월과 만난다

지워도 지워도 한사코 매달려 있는

꿈을 본다

 

스스로 자맥질하던 붉은 심장이

죄 아닌 죄의 사슬을 감고

속죄하는 목숨

 

한 소절 음률로 피어날까.

 

씨앗

 

지난 봄

하늘을 불러와 하늘빛으로

바다를 불러와 바다빛으로

씨앗을 뿌려 놓았다

 

작은 몸뚱이 속에

꿈 하나

깊은 상념 하나

사랑 하나

그리움 하나

추억으로 가득차,

 

이 작은 테라스에

꽃으로, 잎으로 피어나

제 속의 모든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적막의 자유

- 바하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음률이 끝난 적막은

새로운 영혼을 탄생하여 무한으로 흐르게 한다.

끝없는 시작, 시작없는 끝없음이

저 지평선을 돌아돌아 오면

 

사람은

그리움으로 꽃을 피우고

꽃은 씨앗을 낳아 영원을 약속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일을 가슴에 묻으면

 

아무래도 좋은

자유가 된다.

 

한 소절 음향으로 울린다.

 

꽃이 핀다

 

네 피기까지

모든 것은 그리움이었다.

너를 가꾸었던 나의 눈빛이

너로 하여

나를 알게 하는

네 모습아

더욱 아름다운 빛으로

나를 설레게 했던,

꽃이 핀다

 

꽃이 핀다

그러나 다시 만날 약속은 하지 말자

 

그리움은 남겨두자

 

보자기

 

동화같은 소박한 수를 놓아

나를 싸고

너를 싸서

어딘가 날고 싶다

 

소중한 나의 것, 네 것, 우리 것

모두모두 싸서

전쟁이 없는 어느 땅에서

하느님을 믿으며 살고 싶다

 

목숨하나를 싸고 싶다

죽음을 걸 사내를 싸서

선사시대로 돌아가 원시인처럼

살고 싶다

 

임진왜란 때 도공을 빼앗기지 않으려

조선 여인들은 우리 땅 만큼

보자기를 만들었다.

 

천전리에서

 

천전리 각석이 있는 골짝에 갔다.

 

공룡의 발자국을 딛고 서서

거대한 바위벽에 새겨진

원시의

말을 보았다.

나무, 고기, 우렁무늬, 물결무늬

어느새 노래로 불렀다.

 

해가 지는 능선마다 놀 피고

산새들

돌아와 나무에 앉았다.

 

어디선가

우람한 바람소리

아득한 소리 소리

선사시대는 내 안에 맑고 순수한

지구 하나를 만들었다.

 

 

억만년의 빙하시대를 지나온

강변의 돌

비바람이 새긴 표정들

벌레로, 꽃으로, 나무로

세상이 잃어버린 꿈을 그리고 있느니

 

옛날이여

그 넋의 소리를 다시 들려다오

보탬도 잃음도 없는 영점의 벌판에서

원점을 찾고 있는

세기말의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꿈들을 다시 돌려다오

 

말의 도요지에서

 

빚어도 빚어지지 않는

흙의 흔들림

알아도 알 수 없는

보고도 볼 수 없는

우람한 침묵

펑펑 뚫린 구멍

도공은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은

가마에다 불을 지핀다

활활 붉게 타는 아궁이에서

비로소

싸늘한 언어들이 쏟아진다.

 

혼불

 

내 이름 하나 똑바로 적지 못한다

책더미 속에서 일자 무식꾼이다

 

꿈 하나 이루기 위해

언제나 그

언저리에 서성이며 꽃송이를 피운다

 

혼을 태우고 삶을 태우는

자유였다

 

그 혼불은

컴퓨터 앞에서도

끄덕않는

존재 그것이다.

 

 

아득한 꿈처럼

마음 속에 숨겨둔 집,

섬은

고독과 적막

그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 곱게 길러낸

하늘에 바친다

 

 

 

 

posted by 황영찬
2014. 4. 15. 09:3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43 한국의 화폐

 

글, 사진 / 장상진

1999,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1

 

082

빛12ㄷ  209

 

빛깔있는 책들 209

 

장상진-------------------------------------------------------------------------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화폐 금융)를 취득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화폐 금융)을 이수하고 전주대학교에서 재정학을 강의하였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편찬(화폐 금융분야)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교육부 산하기관의 교육행정사무관으로 재직하였고, 1991년부터 1995년까지 경제기획원 예산실에서 내무부, 통상산업부 등의 예산 편성 업무를 담당하였다.

1996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과 독점국에서 각종 불공정거래행위 감시와 독과점시장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잇으며 현재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 재직중이다.

 

|차례|

 

머리말

우리나라 화폐의 발달과 유통

북한의 화폐

외국 화폐의 유통

유사 화폐의 발달과 유통

조폐 기관

화폐에 관한 생각의 흐름

참고 문헌

현재(1999년) 사용하는 신권 3종.

 

돈에 관련된 속담

 

이들 속담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류하여 살펴볼 수 있겠지만 대개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돈을 제대로 벌고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주인 입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김매는 주인이 놉 아흔아홉 몫을 한다", "병신 주인이 일꾼 열 몫을 한다", "망하는 집 머슴은 배부르고 부자가 되는 집 머슴은 배곯는다", "날일에는 장승이고 도급에는 귀신이다" 등이 있는데 곧 일당을 주는 날일(날삯을 받고 하는 일)로 맡기면 장승처럼 서 있고 빈둥빈둥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면서 마지못해 일하지만 여기까지 하면 얼마 준다는 도급으로 맡기면 성의껏 빨리 끝낸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우러나와서 주인 의식을 갖고 정성껏 일하다 보면 돈이 모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설명한 내용이다.

둘째,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면서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돈은 많아도 걱정이요 적어도 걱정이다", "돈이면 산 호랑이 눈썹도 뽑아 온다", "돈 나는 모퉁이 죽는 모퉁이"(힘들이지 않고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하면 자칫 목숨까지 잃을 우려가 있으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돈을 버는 것이 부자가 되는 왕도라는 것을 시사함), "돈 있는 사람이 돈 걱정 더 한다",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하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돈 한 푼 손에 쥐면 손에서 땀이 난다", "돈만 잇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다", "돈 없으면 적막 강산이요, 돈 있으면 금수강산이라" 등이 그러한 내용으로 돈의 위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돈을 함부로 할 때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셋째, 돈은 알뜰하게 모으고 쓸 때는 아껴서 써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나무를 아껴 때면 산신령이 복을 준다", "바닷물도 쓰면 줄어든다", "조밥도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 "없을 때 참아야 하고 있을 때는 아껴야 한다", "입하고 주머니는 동여매야 한다", "입과 곳간은 닫아 두어야 한다", "싸라기 한 말에 7푼 5리라도 5리 없어 못 먹는다". "한 푼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한 푼때문에 운다", "가마 안 천 냥이 가마 밖 만 냥보다 낫다", "내 돈 서푼이 남의 돈 400냥보다 낫다", "못 쓰면 끈 달아 쓰라",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일찍일찍 일어나면 부자된다", "초생달은 부지런한 며느리만 본다" 등이다.

이들 속담은 적은 돈부터 모아야 부자가 되는 것이고 이렇게 모아야 없을 때 당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구두쇠가 되라는 것은 아니고 쓸 때는 때를 놓치지 말고 써야 한다는 속담도 많다. 예를 들면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는다", "새 잡아 잔치할 것을 소 잡아 잔치한다", "좁쌀만큼 아끼다가 담장돌만큼 손해본다", "돈 지고 저승 가는 사람 없다"(돈은 죽은 뒤에는 못 쓰는 것이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구두쇠 노릇만 하지 말고 쓸 데는 쓰라는 뜻),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등이다.

넷째,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어렵고 소중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오는 복은 기어오고 나가는 복은 날아간다", "재물은 모으기보다 지키기가 어렵다", "도깨비가 가져다 준 돈은 땅을 사라", "돈 번 자랑말고 쓴 자랑하랬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쉽게 벌면 쉽게 나간다", "부자 3대 안 간다", "돈 많으면 자식 망친다", "이세상에서 적선하면 저세상 가서 복 받는다", "돈을 가두어 두면 썩어 귀신이 되어 주인을 해코지한다", "돈 모아 줄 생각말고 자식 글 가르쳐 주랬다", "자식에게 금 상자 물려주는 것이 책 한 권 물려주는 것만 못하다", "자식에게 천금을 주는 것이 한 가지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만 못하다" 등이다.

다섯째, 돈보다 소중한 것이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 지개(志槪)이다"(돈으로 모든 물건을 살 수 있으나 사람의 의지와 기개는 살 수 없다는 뜻), "사람이 돈을 이겨야지 돈이 사람을 이겨서는 안 된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검게도 만든다", "돈이 있는 집은 입만 보아도 알고, 덕이 있는 사람은 겉만 보아도 안다"(돈이 있는 사람은 그가 살고 있는 집만 보아도 알 수 있고 덕이 있는 사람은 그의 외모와 언행만 보아도 알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돈보다는 덕이 중요함을 시사함) 등이다.

여섯째, 금전 거래는 신중하고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돈 빌려 주고 친구 잃는다", "돈은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 "빚 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마라", "빌려 간 사람은 잊어버려도 빌려 준 사람은 안 잊는다", "오뉴월 품앗이도 먼저 갚으랬다", "삼 년 벼르던 전답도 다시 돌아보고 산다", "아랫목에서 받은 돈도 윗목에서 세야 한다""금은 달아서 받고 돈은 세어서 받는다" 등이다.

조선시대의 상평통보.

무문전(無文錢)  고려 초기에 주조된 무문철전으로 두드려 만들었기 때문에 만들기가 쉬웠다. 유통 수단보다는 부장용(副葬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소은병  은병의 불법 주조로 인한 가치 하락 때문에 제조된 것으로, 실질 가치는 구은병보다 약 50퍼센트 높게 평가되었다. 실물은 전하지 않는다.

대전통편  조선시대의 법전으로 '호조'편에 저화의 가치를 서술한 부분이 있다.

당백전  격심한 재정란을 해결하고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1866년 호조에서 주조된 '대(大) 자' 당백전이다.

대동3전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최초의 서양식 주화로 뒷면의 작은 원 안에 호조에서 제조되었음을 알리는 '호(戶)' 자가 있다. 1882년에 주조되었다.

최초로 발행된 신식 화폐  1888년 '개국 497년'의 연호로 10문(위), 5문 적동화(가운데) 및 1환 은화(아래)를 발행하였다.

5냥 은화  은본위 제도로 전환하고자 「신식 화폐 조례」를 제정하여 1892년에 본위 화폐인 5냥 은화를 주조하였다. 이것은 해관세 수납이나 외국과의 교역에 주로 쓰였다.

보조 화폐  2전 5푼(위), 5푼(두번째), 1푼(세번째, 네번째) 동화는 표준 화폐인 1냥 은화의 보조 화폐로서 주조, 유통되었다.

1냥 은화  1892년에 국내 유통을 목적으로 주조되었고 본위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

권틀  50냥을 주조할 수 있는 호조태환권을 찍어 낼 수 있는 틀이다.

10전 은화

5전 백동화

1전 청동화

반전 청동화

20환 금화

10환 금화

5환 금화

반환 은화

20전 은화

다이이치은행 주조 화폐  1905년(광무 9) 1월 「화폐 조례」를 공포, 최초로 근대 화폐 제도로서의 금본위제가 실시되었다. 발권은행은 일본의 다이이치은행으로 모두 9종이 주조되었다. 10전의 은화, 5전의 백동화, 1전과 반전의 청동화, 20환 · 10 · 5환의 금화, 반환 · 20전의 은화가 있다. 위의 화폐는 1905년에서 1908년 사이에 주조된 것이다.

한국은행권 3종  1910년 12월에 1원권을 필두로 5원권, 10원권이 발행되었으나 다이이치은행권의 양식과 큰 차이는 없었다.

을 10원권.

병 10원권.

정 10원권.

을 100원권.

병 100원권.

미 군정기의 은행권  1945년 9월에 을 100원권(네번째)을 시작으로 을 10원권(첫번째), 병 100원권(다섯번째)이 나왔고 이듬해에는 병 10원권(두번째), 정 10원권(세번째)이 발행되었다.

신 10원권과 5원권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9월에는 급격한 통화 팽창에 따라 조선은행 중심권의 종류가 고액권으로 이행되었다.

신 소액 은행권  1949년 11월에 50전, 10전, 5전권 등의 소액권을 발행하며 화폐 제도의 정비를 꾀하다가 1950년 '한국은행'이 발족되었다.

한국은행권  정부는 적성 통화의 유통을 막아 적군의 경제 교란 행위를 봉쇄하기 위해 '제1차 통화조치'를 취하였다. 위는 500원권과 1,000원권이다.

신 한국은행권  한국조폐공사는 1951년 10월 신 100원권과 신 1,000원권을 인쇄함으로써 조폐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미 연방 인쇄국 제조은행권  전란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고 통화 안정을 위해 '제2차 통화조치' 때 미국에서 제조하여 반입된 은행권이다.

1환권과 5환권  1953년 2월 '원'에서 '환'으로 개칭한 다음 10환, 100환, 1,000환권을 발행하였다. 이때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형광 물질을 넣어 자외선을 비추면 색이 바뀌도록 특수 제조되었다.

1962년의 고액권  구 환화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화폐 단위를 '원'으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3차 통화조직'가 있었다.

1962년의 소액권  '제3차 통화조치'의 결과로 발행된 소액권에는 1원권, 5원권, 10원권 3종이 있다.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주화  1966년에는 구 환화에 대체할 목적으로 원화 표시 주화가 순수한 국내 기술에 의해 주조되었다.

최초의 은화 삽입 은행권  5,000원권에는 율곡 이이, 1만원권에는 세종대왕을 은화로 삽입하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금속선을 삽입하였으며 자외선 감지 요소를 인쇄하였다.

표준 영정  고액권 용지의 국산화와 표준 영정 채택을 위해 신 5,000원권과 신 1만원권을 발행하였다. 은행권의 지질도 1979년부터는 내구성과 인쇄 적성이 개선된 면섬유를 사용한 새로운 용지로 대체하였다.

한국은행 최초의 주화  1959년 10월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국에서 제조한 100환 니켈화, 50환 백동화, 10환 청동화이다. 이승만 대통령 초상과 거북선, 무궁화 등을 도안하였다.

한국은행 최초의 국내 제조 주화  1966년 8월, 환에서 원으로 단위가 바뀌었으며 순수한 국내 기술에 의해 동과 아연으로 1원화와 5원화, 10원화가 주조, 발행되었다.

제42회 세계 사격 선수권 대회 기념 주화  1978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대회의 기념 주화로 5,000원화 10만 개, 500원화 99만 7,000개를 발행하였다.

광복 30주년 기념 주화  1975년 8월 15일, 국내 기술로는 처음으로 발행한 기념 주화이다. 100원 백동화 500만 개를 한국조폐공사에서 직접 제작하였고 2,000개는 프루프화로 제조되었다.

제1차 화폐 개혁의 15전권.

제1차 화폐 개혁의 20전권.

제1차 화폐 개혁의 50전권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토대를 구축하고 남한으로부터의 화폐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화폐 개혁을 실시하였다.

보조 주화 3종  1959년 보조 화폐와 같이 발행하였던 1전, 5전, 10전의 보조 주화이다.

제2차 화폐 개혁의 10원권  인플레이션과 새 경제 체제에 따른 투자 재원의 확보를 위해 제2차 화폐 개혁에서 6종의 은행권과 3종의 주화를 발행하였다.

제2차 화폐 개혁의 50원권.

제2처 화폐 개혁의 100원권.

제3차 화폐 개혁의 50원권  1979년 4월에 있었던 제3차 화폐 개혁에서는 종전의 조선 중앙은행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으로 이름이 바뀌고 은행권 5종과 주화 50전짜리를 새로이 발행하였으며 구 은행권의 유통을 금하였다.

제3차 화폐 개혁의 100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1원권  제4차 화폐 개혁으로 5종의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1979년 발행하였던 동일 액면의 구 은행권의 유통은 금지하고 신 은행권과는 1 대 1로 교환하였다. 그러나 종전의 일반 주화는 그대로 유통시켰다.

제4차 화폐 개혁의 5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10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50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100원권.

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1979년에 발행된 특수 화폐의 일종이다. 위는 내국인용이고 아래는 외국인용이다.

비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1979년에 발행된 특수 화폐의 일종이다. 위는 내국인용이고 아래는 외국인용이다.

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1988년에 무역은행에서 발행한 특수 화폐의 일종으로 적색이며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별 없이 쓰인다.

비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녹색으로 앞면에는 외화와 바꾼돈표라는 문구와 북한을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가고 앞뒷면에 동일하게 숫자가 들어간다.

1원 은화  개항이후 개항장에는 일본 상인이 건너와 일본의 본위 화폐인 1원 은화를 대량 유통시켰다.

마제은  1894년 전후에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대규모 상거래에서 주요 사용하던 말굽 모양의 은괴이다. 그러나 유통액도 그리 많지 않았고 부의 저장 수단으로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기 어음  금전출납부 형식으로 특이하게 어음을 책에 붙여 놓아 당시의 어음 상황을 알 수 있다.

어음  금액을 적어 반으로 나눠 채무자와 채권자가 한 편씩 나눠 갖는다. 차용 증서 대신 작성, 교부하며 지급일이 되면 맞추어 보고 현금을 지급한다.

인천전환국  1892년 당시의 모습이다. 인천전환국을 신설한 이유는 일본의 영향이 강한 곳에 전환국을 설치하여 우리의 화폐권을 보다 용이하게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주머니형 열쇠패  별전의 일종으로 길이는 9센티미터이고 총길이는 49센티미터이다. 조선 말기인 고종시대에 만들어진 열쇠패는 당시 상류사회에서 신부의 귀중한 혼수품이 되었으며 가보처럼 소중히 여겨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별전  높이 18센티미터, 너비 15센티미터의 별전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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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