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today
  • yesterday
2014. 6. 25. 17:1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7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천양희 詩로 쓴 영혼의 자서전

1998, 작가정신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358

 

811.6

천636그

 

시인 천양희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내색 않는 바위를 스승으로 삼아 동짓밤 같은 긴 침묵을 지켰다. 고통의 숟가락으로 자기 삶을 파먹으며 속 없는 공어空魚처럼 자기를 비우려 했다. 그것은 기다림이었고 천양희에겐 기다림이 곧 사는 것이었다. 죽은 듯한 겨울나무에서 봄꽃이 피지 않던가. 고독은 순수조차 진창에 빠지게 하지만 천양희는 결코 고독과 타협하지 않았다. 집념이라 할지라도, 선인장처럼 가시로 자신을 지키며 형벌 같은 사막에서 꽃이 피길 기다렸다. 긴긴 낮 하지에 수도승처럼 면벽하고, 정신의 시퍼런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독의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는 심연에서 잠언을 캐어와 현자처럼 우리에게 들려준다.

- 강석경(작가)

 

천양희 선생은 맨발로 물 위를 걷는 시인이다. 그는 물 위를 걷다가 물 속으로 발이 쑥 빠질 때마다 시를 쓰면서 다시 묵묵히 물 위를 걸어갔다. 시로 쓴 이 영혼의 자서전은 그가 일찍이 물 위를 걷다가 우리들에게 남겨놓은 고독의 신발 한짝이다. 나는 그 신발을 신고 물 위를 걸어가본다. 한번씩 발이 물에 쑥쑥 빠질 때마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인간의 외딴섬이 보인다. 고통스러우나 견딜 만한 인생의 비밀이 보인다. 쓸어도 쓸어도 늘 가슴이 아픈 사람들은 이 책을 가슴에 안고 길고 긴 밤을 맞으라. 아침이 되면 햇살처럼 맑고 따스한 시인의 손길이 당신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을 것이다.

- 정호승(시인)

천양희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정원 한때> 등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으며, 소월시문학상(1995), 현대문학상(1998)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는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사람 그리운 도시》《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이 있다.

 

차례

 

서문

침묵 / 한마디 / 외길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시간이 필요하다 / 사람의 일 / 여행 / 하루살이 / 외딴 섬 / 한잔 술 / 그때 / 너에게 쓴다 / 나의 숟가락 / 20년 동안 / 기차 / 탓 / 가시나무 / 자리 / 추억 / 관계 / 하루 / 숨바꼭질 / 봄 / 혼자서 가느냐? / 나의 변辨 / 나는 누구인가 / 붉은머리 오목눈 / 집 / 나무의 꿈 / 나는 공어空魚 / 나의 잔 / 아이 생각 / 아비 / 꽃점 / 파문 / 혼자되다 / 어둠 / 축복 / 허기 / 교감 / 여식女息 보아라 / 우두커니 / 닦는 일 / 근시 / 날씨 / 손 / 못 / 마음아 / 비 / 벽 / 귀뚜라미 / 시작과 끝 / 자취 / 몰두 / 동행 / 한 쌍 / 상실 / 지혜 / 어깨동무 / 계단 / 나의 거울 / 중요한 얘기 / 나는 알지요 / 자연 / 바람 부는 날 /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들 / 진실 / 반딧불 / 친구 / 길 / 실패 / 생각하는 사람 / 답答 / 밥 / 바보 / 주인공 / 차이 / 상처 / 하나밖에 없다 / 오래된 미래 / 결론 / 지독한 사랑 / 옷 / 눈 / 바위 / 말 / 단 한 번 / 열쇠 / 감 / 붉은 우체통 / 누가 내게 묻는다면 / 악수 / 무소새 / 마음에 점찍기 / 그 사람 / 화석 / 수족관 / 나의 기원 / 나이 / 가치 / 사람 / 발전소 / 연어 / 부재不在 / 폐허 / 중년 / 얼굴 / 마침표 / 좌우명 / 나의 죄 / 독신

고독의 심연에서 캐낸 영혼의 기록 / 강석경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그땐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계단

 

빛을 너무 옹호 마라

빛은 어둠을 통해서 왔거니.

매혹을 너무 탐하지 마라

매혹은 환멸을 통해서 왔거니.

행복을 너무 축복 마라

행복은 불행을 통해서 왔거니.

사랑을 너무 찬탄 마라

사랑은 이별을 통해서 왔거니.

죄를 너무 비난 마라

죄는 삶을 통해서 왔거니.

삶을 너무 믿지 마라.

세상은 끝간 데 없는 계단이니까.

 

 

 

posted by 황영찬
2014. 6. 24. 10:05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6 산신도

 

글, 사진 / 윤열수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8

 

082

빛12ㄷ  216

 

빛깔있는 책들 216

 

윤열수-------------------------------------------------------------------------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불교미술사 전공을 마치고 동국대학교 불교미술학과, 경기대학교 사학과,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강사를 지냈다. 에밀레 박물관과 삼성출판 박물관 학예실장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가천박물관 학예실장으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한국의 호랑이』『통도사의 불화』『괘불』『민화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설화와 산신신앙

조선 후기 사회상과 산신도

산신각과 산신도

산신도의 종류

맺음말

참고 문헌

산신도  서울 불교박물관 소장.

산신각 가람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산신각에 모셔진 산신은 일반 대중들의 선호처이며 산속 생활의 외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경북 송림사 산령각.

신원사 중악단 조선 후기 오악 숭배 신앙처 가운데 유일하게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 산신탱화와 함께 목패가 남아 있어 초기 산신신앙 형태를 알 수 있다. 퉁남 계룡산 신원사.

칠성탱화 불교와 융합되었던 여러 민간신앙 가운데 산신신앙과 칠성신앙이 호법신중의 하나로 활성화되었음이 여러 가지 자료에서 보인다. 경남 양산 통도사 안양암 소장.

독성탱화 조선 후기는 마음을 밝히고 해탈을 구할 것을 가르치는 출세간적 스승인 부처님의 교리보다 구복 측면의 민간신앙이 불교에 수용되는 시기로 재물과 복을 비는 독성 등이 이 시기에 성행하였다. 경남 진양 청곡사 소장.

조선민화 박물관 산신도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산신각 또는 산신의 성격을 띤 신앙이 전국의 명산이나 사찰, 마을 단위나, 가가호호까지도 모셔지면서 확고한 민족의 종교와 같은 성격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조선민화 박물관 소장.

상주 남장사 금륜전.

경북 군위 인각사 산신각.

해인사 산신도 사원 경내에 안치된 산신각의 산신은 깊은 산 골짜기의 넓은 반석 위에 착하고 순하게 길들여진 호랑이를 거느리고 앉아 있다. 경남 합천 해인사 소장, 1831년.

은해사 박물관 산신도 화원 관보의 작품이다. 호랑이가 보이지 않고 소나무를 배경으로 괴석 위에 한발을 내려뜨린 반가부좌로 바위에 걸터앉아 있으나 약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경북 영천 은해사 박물관 소장.

용문사 산신도 은해사 박물관 산신도를 중심으로 자세, 얼굴 표정, 의관, 복장의 문양, 채색 등을 살펴보면 초기 산신도의 유형과 점차 변모되어 가는 양식을 밝힐 수 있다. 경북 예천 용문사 소장. 1853년.

통도사 칠성도 가장 보편적인 민중신앙인 칠성신앙은 민간은 물론이고 궁중에서부터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중심적인 신앙이었으며 삶의 모든 일을 칠성신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경남 양산 통도사 소장.

직지사 산신도 신장 팔부중의 하나인 용왕신 탱화도 처음에는 위패를 모셔 놓고 제를 올리던 것이 18~19세기경의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그림으로 모셔졌다. 경북 김천 직지사 소장.

동학사 산신상 곱상한 미모에 붉은 댕기를 한쪽으로 비스듬히 맨 머리에 흰 도포를 입고 손에는 불로초를 부채처럼 들고 있다. 충남 공주 동학사 소장.

암각 산신도 바위는 정령숭배의 대상으로 민간신앙에서는 바위 전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북한산 심곡사.

 

 

 

 

 

 

posted by 황영찬
2014. 6. 23. 10:20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5 화석 - 사라져버린 세계의 흔적들

 

이베트 게라르 발리 지음, 강금희 옮김

1995,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7197

 

082

시156ㅅ 10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10

 

우리의 선조들은 바위에 남아 있는

엄청나게 큰 물고기나 새의 흔적을 보고 경배하면서

온갖 신화를 만들어 왔다.

외눈박이 거인의 뼈라든가, 하늘에서 떨어진

호박이라든가, 새의 눈물방울이라든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신화의 베일이

벗겨지고 과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화석이 된 생물체들은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체들의 먼 조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900년 8월 동부

시베리아, 베레조프카 강변에서 라무트족 사냥꾼

두 명이 매머드의 사체를 발견했다

꽁꽁 얼어붙은 매머드는 전혀 부패되지 않은 채

완전한 골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방 행정관은 이 사실을 이르쿠츠크 총독에게 알렸고,

총독은 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에 보고했다.

 

1901년 5월 페테르부르크,

헤르츠, 세바스티아노프, 피첸마이어라는

세 명의 여행객이 이르쿠츠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들은 과학 아카데미가 파견한 과학자들로,

매머드의 사채를 옮겨갈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들의 수중에는 1만 6,000루불의

조사비용이 들어 있었다. 이르쿠츠크에서 내린 그들은

또다시 썰매로 갈아타고 베레조프카까지

6,000km나 되는 거리를 달려갔다.

긴 여정이었다. 9월 2일, 마침내 일행은

콜림스크에 도착했다.

 

9월 14일, 낙엽송 사이로 허공을 가리키고 있는 매머드의 사체가

보였다. 코와 다리는 흙과 얼음 속에 파묻혀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사체를 파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랜 숙의 끝에 해결책이 강구되었다. 비면을 데워서 얼음을

녹이기로 했다. 그들은 매머드 주위에 통나무집을 지었다.

두 개의 화덕을 이용해서 언 땅을 녹이기로 했다.

통나무집은 사우나실 같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악취가 심해졌다.

살점이 물러지면서 피부가 떨어져 나가고 내장이 드러났다.

위장 속에는 백리향과 미나리아재비, 그리고 용담 등이 남아 있었다.

매머드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물이었다.

땅 속에는 털이 잔뜩 흨어져 있었다.

세 명의 과학자들은 해체작업을 하는 데 무려 6주를

소비해야 했다. 10월 10일, 마침내 작업이 끝났다.

큰 덩어리는 가죽 포대에 집어 넣고 꿰매기로 했다.

 

하지만 1,000kg이나 되는 뼈와 살, 그리고 내장 따위를

어떻게 운반할 것인가. 시베리아의 추위가 해답을 가져다 주었다.

통나무집에서 꺼낸 부대들을 다시 얼리는 데는

단 하룻밤이면 족했다. 그렇게 해서 10월 15일 아침에

역사적인 광경이 빙원 위에서 전개되었다.

말이 끄는 여러 대의 썰매 위에 인간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매머드가 실려 가고 있었다.

 

Les fossiles, empreinte des mondes disparus

 

차례

 

제1장 신화와 전설

2장 화석의 비밀을 찾아서

3장 과학자의 시대

제4장 선사시대의 제왕

제5장 애호가와 전문가

제6장 공룡쟁탈전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이베트 게라르 발리 Yvette Gayrard-Valy

국립 과학연구소(CNRS)에 소속된 파리 자연사 박물관 고생물학 연구실에 근무하면서 화석에 관한 연구를 했다. 그녀는 PUF사에서 발행한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라는 시리즈 가운데서 <고생물학>을 집필했다.

 

옮긴이 : 강금희

1949년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프로방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그리고 나의 남은 이야기> <낮은 땅의 사람들> 등이 있다.

 

제1장

신화와 전설

 

생물의 역사는 수십억 년에 이른다. 그렇게 볼 때 인류는 갓난아기에 불과하다. 인류의 탄생 이전에도 지구에는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고 잇었다.

생물은 죽어서 돌이 되었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돌이 된 생물에게 매력을 느껴 왓다. 길가나 모래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상한 돌을 바라보면서 끝없는 공상에 빠져들었고, 다양한 전설을 만들어 냈다. 신과 악마, 그리고 괴수의 전설……

죽음을 초월한 생명의 자취. 죽은 물고기를 둘러싸고 있던 모래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돌로 변했다. 물고기의 흔적을 남긴 채…….

1875년 그리말디(이탈리아)의 그로타 데이 판시올리동굴('아이들의 동굴'이라는 뜻)에서, 두 사람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한 사람은 나이 든 여자였고 다른 사람은 젊은 남자였다. 그들은 무릎을 접은 채 앞뒤로 포개져서 묻혀 있었으며, 그들 곁에는 부싯돌이 놓여 있었다. 뼈는 붉은색을 띠었고 척추와 두개골에는 작은 조개 따위 화석이 줄지어 붙어 있었다. 무덤은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한다. 이 뼈는 3만 5,000년 전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의 유골로 이때는 매머드와 순록, 영양들이 스텝과 툰드라에서 마음껏 뛰놀던 제4빙하기 말기에 해당한다. 반면에 인간은 동굴과 바위 밑 등에 숨어서 생활했다.

전설에 따르면, 색슨족 수녀원장 성녀 힐다가 휘트비 지방에 수도원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저주받은 그곳에는 작은 뱀들이 우글거렸는데, 힐다가 뱀들의 목을 베어서 돌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위의 암모나이트 화석은 너무도 교묘하게 위조되어 사람들은 암모나이트에 뱀의 머리가 달려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성녀 힐다의 전설을 기리기 위해 휘트비시 문장에는 뱀의 머리가 달린 암모나이트가 새겨져 있다.

외눈박이 거인의 형상. 판화, 슬뤼페리우스 작, 1572년, 파리 장식미술관.

 

"우리는 무법자 키클로페스의 나라에 도착했다. 그는 불사신이 되고자 하는 욕심쟁이 거인으로, 밭을 갈지도 않았고 씨를 뿌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서 월계수 그늘에 가려진 동굴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염소와 양 등 수많은 짐승들이 높은 울타리에 갇힌 채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울타리 주위에는 옥석과 쭉 늘어선 소나무 그리고 잎이 무성한 떡갈나무가 있었다. 바로 그곳에 엄청나게 큰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양을 기르면서 다른 거인들과 멀리 떨어져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을 방문하지 않았으며, 이 세상의 법률 따위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거인은 키가 하도커서 마치 구름을 뚫을 듯했다. 도무지 빵을 먹고 사는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가 않았다. 그는 우뚝 솟아 있는 산마저도 내려다봐야 할 만큼 키가 컸다. 그래서 그를 쳐다보고 있으면 높이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올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호머 《오디세이》

 

악당으로 알려진 유럽의 용은 연기와 불을 내뿜는 끔찍한 대형 파충류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헤라클레스, 성 미카엘, 성 조지 같은 영웅들이 용을 물리쳤다고 한다. 나바호 인디언의 전설에 따르면 애리조나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규산화된 나무둥치들은 그들의 조상이 이 지역에 살기 시작했을 때 처치한 거인 예트소(Yetso)의 유해라고 전한다. 다른 인디언 부족의 전설에서는 천둥신이 쏜 화살대이거나 신과 거인 사이에 벌어진 싸움에서 파괴된 무기의 잔해라고 한다.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성게의 껍질은 마법의 힘을 가진 뱀알이라는 이유로 수집대상이 되었다 한다. 사람들은 성게의 껍질이 왕에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도와준다고 믿었다.

약으로 사용된 두꺼비돌. 사람들은 다른 화석과 마찬가지로 두꺼비돌(실제로는 물고기의 이빨)이 마력을 갖고 잇으며, 이 돌은 두꺼비의 머릿속에서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귀부인과 유니콘. 유니콘의 뿔(실제로는 코끼리나 코뿔소, 또는 일각과 고래의 어금니)은 기적의 묘약으로 여겨졌다.

날개 달린 용을 표현한 17세기 목판화.

 

"태양이 지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구름이 몰려온 것처럼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거대한 새가 만든 그림자였습니다. 커다란 새는 우리 쪽으로 날아왔습니다. 나는 전에 선원이 말했던, '로크(roc)'라는 새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전에 보았던, 둥근 모양의 거대한 지붕이 로크새의 알임을 깨달았습니다. 내 생각이 옳았습니다. 어미 로크는 둥근 지붕에 내려앉더니 알을 품었습니다. 새가 가까이 날아왔을 때, 나는 알에다 몸을 바짝 기대고 있었습니다. 눈앞에 커다란 나무둥치와 같은 것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나무둥치가 아니라 새의 발이었습니다. 동이 트자 로크새는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땅을 쳐다볼 수가 없을 만큼 높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서 말입니다."

《천일야화》

 

제2장

화석의 비밀을 찾아서

 

마을에 전설이 쫙 퍼져 있었다. 학자들은 질문을 계속한다. 수수께끼 돌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 생겨난 것인가? …… 하지만 사람들의 탐구와 관계없이 돌은 좀처럼 비밀을 드러내지 않았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훌륭한 진품진열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래서 거기에다 상당히 많은 재산을 쏟아 부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합스부르크가(家) 사람들이 다양한 진품을 수집했다. 그 같은 유행은 18세기가 되자 최고조에 달했다. 파리에서만 수집품을 쌓아 놓은 방의 숫자가 1742년에는 17개, 1757년에는 21개, 그리고 1780년에는 60개에 달했다. 특히 유명한 것은 백만장자인 조제프 보니에드 라 모송의 것이다. 루알지방의 루드성에는 깜짝 놀랄 만큼 귀중한 진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수집실이 오늘날 박물관의 원형이 되었다.

게스너가 쓴 《화석의 모든 것》의 표지. 1558년, 취리히.

설석이 무시무시한 상어의 이빨로 판명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흘러야 했다. 이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설석의 마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설석의 마력이 다소 과장되어 잇음을 인정하면서도, 치통을 가라앉히는 힘이 깃들여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1665년에 닐스 스텐센은 피렌체에 머물고 있었다. 메디치가의 대공(大公) 페르디난트 2세의 비호를 받으면서 병원에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대공은 그에게 상어 머리를 전달했다. 그것을 분석한 후, 그는 설석이 상어의 이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수회의 수도사 아타나시우스 키르허는 판화집 《지하의 세계》에서 거대한 뼈의 목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거인의 전설을 믿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보카치오가 91m라고 주장했던 폴리페무스의 신장을 9m로 끌어내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납득하기가 쉽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거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위엄이 크게 손상된 것이지만……. 키르허로 인해서 거인의 전설도 종말을 맞게 된다.

유니콘을 복원한 그림. 사라진 동물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17세기에도 있었다. 게리케는 1663년 독일에서 발견된 코뿔소의 뼈와 매머드로 추정되는 동물의 뼈를 짜 맞춰 아래와 같은 이상한 그림을 그렸다. 이 동물은 뒷다리가 없고, 이마 한가운데에는 6m쯤 되는 뿔이 나 있다.

동식물 화석에 관해서 많은 책을 저술했던 쇼이히처는 화석이 원래 생물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화석에 관한 지식을 일반인에게 널리 알렸다. 그는 동시대의 학자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들 중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열렬한 홍수파였던 의사 존 우드워드와 철학자 라이프니츠도 포함되어 있었다. 1731년 쇼이히처는 《신성한 자연과학》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성서》에 대한 과학적 주석서라고 할 수 있다. 홍수 때문에 무고하게 죽어 간 물고기 화석의 그림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쇼이히처에 의해서 홍수의 증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1.2m 길이의 이 뼈는 콘스탄스 호수 근처의 오닝겐에서 1725년에 발견되었다. 이 화석은 종신세의 토탄층 속에 묻혀 있었다. 이 뼈의 조사를 의뢰받은 쇼이히처는 이것이야말로 '홍수의 증인'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1731년. 그는 그림을 덧붙인 상세한 설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홍수가 역사적 사실로 존재한다는 것은 수세기 전부터 인정되어 왔지만, 지금처럼 분명해진 적은 없다." 그뒤에 대형 도롱뇽으로 판명된 '홍수의 증인'은 오늘날 네덜란드 할렘시에 있는 테일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측은 화석의 이름을 안드리아스 쇼이히처라고 붙였다.

1776년 네덜란드 마에스트리히트 근처 생피에르산에서 거대한 동물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단단한 턱에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뾰족한 이빨이 죽 늘어서 있었다. 뼈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발굴지휘를 맡은 사람은 전직 군의관이자 화석수집가인 호프만이었다. 하지만 교회는 그에게 그 땅의 주인이자 교회의 임원이기도 한 고딘에게 뼈를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18세기에도 동식물의 분류법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세계 각국의 표본을 모은 수집품은 하루가 다르게 풍부해져 갔다. 그러나 표본은 정리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었다. 학자들은 일정한 기준도 없이 화석과 살아 있는 생물을 비교했다. 이때 카를 폰 린네가 《자연의 체계》(1735년)에서 '이명법(二名法)'을 소개했다. 이것을 이용하여 속명(屬名)과 종명(種名)에 따라 체계적인 분류를 함으로써 최초의 과학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명법은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제3장

과학자의 시대

 

1796년 1월 파리. 한 청년이 과학진흥협회의 저명인사들 앞에서 행할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르주 퀴비에. 몽벨리아르에서 태어난 그는 26세였다. 파리에 도착한 지 6개월이 채 안 되었지만, 그의 이름은 이미 청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박물학자로서의 경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나는 미래의 위대한 박물학자를 위해 자료를 수집한다. 어느 날 그가 나타나 이런 준비를 해둔 나를 칭송할 것이다."(조르주 퀴비에)

1802년. 자연사 박물관의 동물해부학 교수 자리가 비자 퀴비에가 곧바로 교수로 임명되었다. 비록 젊은 나이였지만 그에게는 이미 팡테옹 중앙 학교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박물학을 강의한 경험이 있었다. 교수가 되자 퀴비에는 자신의 강좌에 비교해부학이라는 강의명을 붙였다.

퀴비에가 그린 매머드 골격.

 

"그의 강의실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열의에 넘친 젊은이들 대부분은 해부학을 배우려는 의대생들이었다. 강의 도중에는 예전에 노르망디에서처럼 해부를 해 보이고, 그것이 끝나면 뼈를 모아서 보존했다."

루이 룰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고대동물의 뼈가 파리 주변의 채석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치 현대인에게 과거의 일을 알려 주기 위해서, 자연이 특별히 보존해 두기라도 한 것처럼……."

조르주 퀴비에

1788년. 코끼리만큼이나 거대한 뼈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발견되었다. '파라과이의 동물'이라고 이름붙여진 뼈는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3세에게 보내졌고, 자연스러워 보이게끔 조립되어 전시되었다. 뼈의 모양을 그린 스케치가 유럽 전역에서 대량으로 나돌았다. 퀴비에도 그것을 입수할 수가 있었다. 그는 그것에 메가테리움 아메리카눔(Megatherium americanum)이라고 이름붙였고, 나무늘보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그 무리로 분류했다. 그것은 오늘날 빈치류유모(貧齒類有毛, gravigrade) 아목(亞目)으로 분류되어 있다.

몽마르트르에서 발견된 뼈를 토대로, 퀴비에는 맥과 비슷한 동물을 재현해서 팔라에오테리움이라 이름붙였다.

늙어서 두 눈을 잃어버린 라마르크는 1829년에 고독하게 생애를 마쳤다. 하지만 그의 저서는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다윈 사상의 원천이 되었다.

프로테록토푸스(proteroctopus). 낙지의 화석. 프랑스 론알프 지방. 주라기 퇴적암에서(1억 5,000만 년 전), 이 화석은 현재 알려져 있는 낙지 화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내장과 다리, 빨판 등의 흔적이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다.

 

캄필로그나투스(Campylognathus). 공중을 날아다니는 파충류, 또는 익룡류, 독일 바이에른 지방 주라기 편암에서(1억 3,500만 년 전), 거대한 날개는 비상할 때만 사용되었다. 육식성인 이 동물은 하늘을 날면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아르케옵테릭스(Archaeoptryx). 가장 오래된 조류, 시조새,. 독일 바이에른 지방 주라기 지층에서(1억 5,000만 년 전). 시조새는 파충류에서 조류로 바뀌는 이행기릐 생물이다. 이 화석을 보면 이 새는 이행기의 형태로 파충류의 특징, 예를 들어 이빨, 발톱, 긴 꼬리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보존된 화석에서 볼 수 있듯이 새의 날개와 깃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타르보사우루스(Tarbosaurus). 몽고 백악기에 출토된 공룡. 타르보사우루스 속은 육식성이며 북아메리카의 티라노사우루스 속과 같은 무리이다. 몽고 중앙부는 화석 척추동물의 무덤이다. 국제 연구팀이 이곳을 정기적으로 탐사하고 있다.

세이무리아 바이로렌시스(Seymouria baylorensis). 양서류. 미국 텍사스 석탄기(2억 9,000만 년 전). 세이무리아 바이로렌시스 속은 석탄기 때 갯벌에서 서식하고 있었다. 사진의 세이무리아는 진흙 밑을 걷고 잇는 모양으로 화석이 남아 있었다.

아다피스 마그누스(Adapis magnus)의 머리 부분. 프랑스. 피레네 지방 케르시 제3기 시신세의 인회토에서(4,500만 년 전). 아다피스 과는 화석으로만 존재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장류에 속한다.

오른쪽부터 다윈, 라이엘, 후커.

 

지구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 라이엘의 생각이었다. 이럴 경우 멸종된 생물이 언젠가는 지구상에 다시 출현할 것이다. "숲 속에서는 이구아노돈을, 바다에서는 이크시오사우루스를, 그리고 나무고사리 사이에서는 프테로닥틸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지질학 원리》에서 서술하고 있다.

1825년. 도르비니는 고생물학에 관한 초기 연구성과를 책으로 펴냈다. 남아메리카에서 돌아온 뒤 도르비니는 층서(層序) 고생물학 연구에 전념하여 무척추동물 화석의 층서학적 의의를 밝혔다.

찰스 다윈을 풍자한 그림.

 

제4장

선사시대의 제왕

 

퀴비에의 방법을 이용함으로써 베일에 싸여 있던 동물의 존재가 차례차례 밝혀지게 되었고, 마침내 공룡의 존재도 밝혀지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도마뱀(Dinosauria)'이라고 불렸던 공룡은 1억 6,000만 년이나 지상에서 군림했다. 그리고 영원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영국의 별난 화석수집가 토머스 호킨스는 삽화가 곁들여진 자신의 책에다 《바다의 큰 용》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19세기 초, 이크시오사우루스와 두 마리의 플레시오사우룻의 싸움은 고뇌하는 세대에게 악몽을 꾸게 만들었다.

버클랜드는 화석이 홍수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애썼다. 그는 모든 발견물을 이 같은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소와 사슴 뼈 옆에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코뿔소의 해골을 발견했을 때 그는 홍수의 격류가 구덩이 속으로 코뿔소를 몰아넣었고 그때에 진흙과 자갈이 구덩이를 가득 메웠다고 주장했다. 그림은 코뿔소의 유해를 발굴하는 장면.

버클랜드 《홍수의 유물》

맨틀은 루이스라는 작은 도시의 개업의였다. 화석 수집품으로 가득한 그의 집은 마치 박물관 같았다. 1833년에 그는 브라이턴의 해수욕장 근처에다가 넓은 집을 마련햇다. 그리고는 가족과 화석을 모두 이동시켰다. 하지만 그는 취미에 정신이 팔려서 본업에 태만했다. 그 결과 자신의 저서인 《지질학의 불가사의》가 출간된 해에 귀중한 수집품을 4,000파운드에 대영박물관에다 팔아야만 했다. 귀중한 화석을 빼앗기고, 가족들에게마저 버림받은 맨틀은 런던에서 고독하게 인생을 마감했다. 루이스에 남아 있는 그의 집에는 '그는 이구아노돈을 발견했다.'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리처드 오언은 1804년 영국 랭카스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의학을 공부한 후에 모든 정열을 해부학에다 쏟아 부었다. 그리고 1836년에 교수로 임명되었다. 여러 권의 연구서를 저술했던 그는 영국 과학계의 지도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1853년 12월 31일. 수정궁에서 만찬회가 열렸다. 이구아노돈의 모형 속에다가 연회용 테이블을 놓고 그 주위에 손님들이 둘러앉았다.

수정궁은 원래 1851년에 개최될 만국박람회를 위해서 건축된 것이었다. 하지만 인기가 너무 좋아서 3년 후에는 런던 교외로 옮겨지게 되었다. 정원에는 태곳적 영국 동물의 복원품을 재현해 놓자는 의견이 채택되었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워터하우스 호킨스가 오언의 지도를 받아 공룡의 모형을 제작했다.

베르니사르의 화석 지층에서는 완전한 이구아노돈의 뼈 화석 열 개와 여러 개의 불완전한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체들이 왜 한 곳에 몰려 있는 것일까. 초식성인 이구아노돈은 무리를 이루고 사는 동물이었다. 1억 2,000만 년 전. 이 지방의 기후는 습하고 따스해서 늪지가 많았다. 위험에 직면한 이구아노돈 무리가 도망치다가 늪지에 빠진 게 아닐까. 아니면 비교적 건조한 시기에 물을 구하러 갔다가 진흙에 발을 헛디뎠던 게 아닐까.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제5장

애호가와 전문가

 

상상 속에서 괴물을 그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의 세계를 초월하고 잇었다. 공룡은 상상 속의 어떤 거인보다도 덩치가 컸다. 아직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는 수수께끼의 세계로 한 발자국씩 내딛으면서, 고생물학은 최후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이 문제에서만큼은 직업적 전문가와 아마추어 애호가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 있었다.

광부와 화가들도 고생물학 연구에 공헌했다. 광부는 갱도에서 태곳적 산물을 발견했고, 화가는 사라진 동물을 소생시켰다. 그림은 찰스 나이트가 그린 매머드의 모습이다.

1억 년 전 텍사스주에서는 플레시오사우루스의 끔찍한 싸움이 벌어졌다. 보물과 같은 그들의 골격이 댈러스 근교 티드웰의 소유지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고생물학의 발전은 이처럼 우연한 발견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애호가가 중요한 것인데, 그들이 무턱대고 화석산지를 파헤치는 폐해도 생겨났다.

매어리 애닝은 주로 라임 레지스 해안을 따라서 화석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화석이 발견되면 그 지점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개에게 지키게 하고 도와 줄 사람을 데리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사람을 부르러 간 사이에 토사가 붕괴되는 바람에 개가 깔려 죽고 말았다.

1908년 6월 15일 디플로도쿠스 전시가 시작된 날. 파리의 자연사박물관 고생물학 전시실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베풀어졌다. 차림표는 주라기와 에리온 포터주, 고생물학풍의 오드블, 올리고새(漸新世)의 혀넙치, 엔텔로돈의 등심 페리에 소스, 화산 모양 얼음과자, 디저트 등이었다.

1907년, 앤드류 카네기는 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우호증진을 위해서 디플로도쿠스 복제골격을 프랑스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1908년 4월, 뼈가 들어 있는 34개의 상자가 파리 자연사박물관에 도착했다. 카네기 박물관의 관장 홀랜드 교수와 그의 조수가 프랑스로 건너왔다. 그리고 그들은 복제품 조립과정을 감독했다.

미지의 동물을 복원하는 데, 학자와 예술가의 상상력이 많이 동원되었다. 수정궁의 코뿔소(16세기), 아베르티니의 유니콘(18세기) 등은 상상이 낳은 산물이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제멋대로의 공상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화석동물의 본래 모습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워터하우스 호킨스(위)나 C. 나이트(아래)의 작품에는 아직도 공상적인 요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부학적으로 볼 때 납득할 만한 복원이 가능해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제6장

공룡쟁탈전

 

1800년대 후반, 북아메리카의 고생물학자들은 그때까지 사람들이 살지 않던 광활한 지역으로 탐사를 나섰다. 일찍이 유럽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 거인과 괴물들이 피난처로 삼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 땅은 풍부한 화석산지임이 밝혀졌다.

즈드네크 뷔리앙(Zdenek Burian)이 그린 디플로도쿠스.

조지프 레이디는 미국에서 척추동물 화석을 최초로 연구했던 사람이다. 그의 옆에 있는 것은 북아메리카에서는 최초로 발견되었던 공룡, 하드로사우루스(Hadrosaurus)의 뼈 화석이다.

에드워드 히치콕은 평생동안 코네티컷 계곡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이 거대한 새의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그는 그가 발견한 화석이 암허스트 대학의 애플턴 캐비넷에 전시된 화석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새의 발구조와 아주 유사했던 초기 공룡의 발자국으로 판명되었다.

마스토돈의 발굴

1799년, 오렌지 지방의 농장주인 존 메이스튼이 토탄(土炭) 지층을 파헤치다가 한 무더기 거대한 뼈를 발견했다. 그는 100명쯤 되는 이웃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땅을 파내고 뼈를 발굴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서둘러서 작업하는 바람에 많은 뼈들이 손상되었다. 2년 후,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화석스집가 찰스 윌슨 필이 이곳을 발굴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메이스튼한테 100달러를 주고 문제의 토탄지를 양도받았다. 그는 펌프와 커다란 바퀴가 달린 정교한 기구를 이용해 배수작업을 했다. 호기심에 가득 차 몰려든 사람들이 필이 마스토돈의 골격을 끌어올리는 것을 구경했다. 필이 발굴해 낸 골격은 완벽했다. 그런데 아래턱뼈가 보이지 않았다. 분실된 뼈를 찾아 주변을 샅샅이 뒤진 발굴단은 마침내 그것을 발견했다. 거대한 이빨을 보고 사람들은 뼈의 주인공이 육식동물이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그 같은 생각은 오류임이 판명되었다. 어느 시대에 살았든 간에 장비류(長鼻類) 동물은 모두가 초식성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금방이라도 공룡사냥을 떠날 준비를 마친 듯 장총을 들고 있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마시(뒷불 중앙).

커머 블러프에서 아서 레익스는 작업반장인 리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레익스는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발굴작업을 해 나갔다. 그는 모든 화석을 그림으로 그리고 나서 주석을 달았다. 그런 그를 보고, 리드는 게으르다고 비난했다. 레익스가 곡괭이보다는 붓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수채화 시리즈 덕분에 공룡사냥꾼의 일상생활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림은 레익스가 그린 것으로, 화석을 조사하고 있는 마시 교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커머 블러프의 나인 마일채석장에서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들이 공룡을 운반하기 전에 석고로 보강하고 있는 장면이다. 보강재료로는 석고 외에 쌀을 삶아 만든 풀이 이용되었다.

고생물학자인 바넘 브라운은 레드디어강 유역에서 완전한 화석을 여러 개 발굴했다. 1912년에 찍은 이 사진은 코리토사우루스의 화석을 파내고 있는 장면이다. 코리토사우루스는 백악기가 끝날 무렵에 서식했던, 벼슬이 달린 거대한 공룡이다.

모사사우루스와 프테라노돈

즈드네크 뷔리앙은 《선사시대 동물》(1941년)을 발표함으로써 고생물학의 최신 가설을 시각화했다. 헤엄치고 있는 두 마리의 동물은 몸길이가 8m에 이르는 파충류 모사사우루스이다. 육식성인 이 동물의 추진력은 강력한 꼬리에 있다. 바다 위를 날고 있는 익룡은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서 체구가 가장 큰 프테라노돈(날개를 폈을 때의 길이가 16m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이다. 프테라노돈은 거대한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머리 뒤쪽에 이상한 돌기가 나 있는데 이것은 거대한 부리의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모사사우루스와 프테라노돈 역시 공룡과 마찬가지로 백악기 말기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풍부한 상상력이 동원되어 제작된 1886년의 판화로 선사시대의 거대한 동물을 묘사하고 있다.

쥘 베른의 초상. 사진. 촬영자 미상, 19세기.

맨틀이 공룡 화석을 발견하고 복원작업을 시작할 무렵, 독일의 식물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프란츠 웅거는 이 괴물을 그렸다. 순수한 상상력의 산물인 괴물은 19세기 표현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티라노사우루스, 프레스코화, 찰스 나이트 작.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

바다의 괴물. 뷔리앙 작, 《선사시대 동물》, 1941년.

물고기 화석. 판화. 18세기, 파리 국립도서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 토리노 왕립도서관.

팔리시의 초상화.

바랑드의 초상. 사진. 촬영자 미상, 19세기.

제막식 직던에 고생물학 전시실에서 촬영한 사진. 중앙에 있는 사람이 카네기 박물관의 관장인 홀랜드 교수. 그 오른쪽이 파리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 교수인 마르슬랭 불.

고생물학 전시실의 디플로도쿠스. 사진.

었다.

 

 

 

posted by 황영찬
2014. 6. 21. 13:03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4-2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 강의 논어 1

 

101강 이름과 실상의 부합

 

고가 고답지 않으면 고이겠는가, 고이겠는가!

「옹야」 제23장 고불고(觚不觚)

 

觚不觚 觚哉 觚哉아.

 

102강 예로 요약한다

 

군자가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한다면 역시 도에서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옹야」 제25장 박문약례(博文約禮)

 

君子 博學於文이오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인저.

 

103강 중용의 덕

 

중용의 덕이 참으로 지극하다! 백성 중에 이 덕을 지닌 이가 드물어진 지 오래이다.

「옹야」 제27장 민선구의(民鮮久矣)

 

中庸之為德也 其至矣乎인저

民鮮니라.

 

104강 베푸는 것이 먼저

 

어진 사람은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고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 한다. 가까운 데서 미루어 빗대 볼 수 있다면 인을 추구하는 방법이라 이를 만하다.

「옹야」 제28장 박시제중(博施濟衆)

 

夫仁者 己欲立而立人하며

己欲達而達人이니라.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라.

 

105강 옛 도를 전술할 따름

 

전술하되 창작하지 않으며 옛 도를 믿어 좋아하기에 가만히 나 자신을 노팽에게 견준다.

「술이(述而)」 제1장 술이부작(述而不作)

 

述而不作하고 信而好古

竊比於我老노라.

 

106강 참된 교육자

 

말없이 마음에 새겨 두고, 배우되 싫증을 내지 않으며, 남 가르치길 게을리하지 않는 일이라면 무슨 어려움이 내게 있겠는가.

「술이」 제2장 묵이지지(黙而識之)

 

默而識之하며 學而不厭하며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107강 선비의 행동 방식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며 인에 의지하고 육예에 노닌다.

「술이」 제6장 지어도(志於道)

 

志於道하며 據於德하며

依於仁하며 游於藝니라.

 

108강 가르침을 청하는 예

 

묶은 고기 한 다발 이상을 가져온 사람에게 학문을 가르치지 않은 적은 없다.

「술이」 제7장 자행속수이상(自行束脩以上)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로라.

 

109강 교육의 방법

 

통하려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펴 주지 않되, 한 귀퉁이를 들어 주는데도 남은 세 귀퉁이로 반응하지 않으면 다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술이」 제8장 불분불비(不憤不悱)

 

不憤이어든 不啓하며 不悱어든 不發하되

舉一隅 不以三隅反이어든 則不復也니라.

 

110강 남을 생각하는 마음

 

공자께서는 상을 당한 사람의 곁에서 식사를 할 때는 배불리 잡숫지 않으셨다. 공자께서는 곡을 한 날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술이」 제9장 자식어유상자지측(子食於有喪者之側)

 

子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러시다.

子於是日則不歌러시다.

 

111강 때에 맞는 처신

 

공자가 안연에게 말했다. "쓰이면 도를 행하고 버림받으면 은둔하는 태도를 오직 나와 너만이 지니고 있다."

「술이」 제10장 용행사장(用行舍藏)

 

子謂顏淵曰, 用之則行하고

舍之則藏 惟我與爾 有是夫인저.

 

112강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부라는 것이 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 휘둘러 앞길 트는 역부의 미천한 일이라 해도 나는 할 것이다. 만약 구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

「술이」 제11장 종오소호(從吾所好)

 

富而可求也인댄 雖執鞭之士라도

吾亦為어니와 如不可求인댄

從吾所好하리라.

 

113강 가치의 추구

 

인을 추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얼 원망했겠는가?

「술이」 제15장 구인이득인(求仁而得仁)

 

求仁而得仁이어니 又何怨乎리오.

 

114강 곡굉지락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구부려 베고 눕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으니, 외롭지 않으면서 부유하고 고귀한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

「술이」 제15장 반소사음수(飯疏食飮水)

 

飯疏食飲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이니라.

 

115강 당장의 근심을 잊다

 

그 사람됨이 발분해서 밥 먹는 것조차 잊고 도를 좋아해서 근심을 잊으니 늙음이 장차 이르러 옴도 알지 못한다.

「술이」 제18장 발분망식(發憤忘食)

 

其為人也 發憤忘食하며

樂以忘憂하여 不知老之將至로다.

 

116장 배움의 자세

 

나는 나면서부터 저절로 안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옛것을 좋아해서 부지런히 찾아 배운 사람이다.

「술이」 제19장 호고민이구지(好古敏以求之)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로라.

 

117강 인간답게 사는 길

 

공자께서는 괴이한 일, 무력으로 하는 일, 패륜적인 일, 귀신에 관한 일을 말씀하시지 않았다.

「술이」 제20장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子不語怪力亂神이러시다.

 

118강 길에서 찾는 스승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거기에 나의 스승이 있으니, 선한 것을 가려서 따르고 선하지 못한 것은 가려서 고친다.

「술이」 제21장 삼인행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

 

三人行에 必有我師焉이니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니라.

 

119강 생명에 대한 애정

 

공자께서는 낚시질은 했으나 그물질은 하지 않으셨고, 주살질은 했으나 잠자는 새를 맞추지는 않으셨다.

「술이」 제26장 자조이불강(子釣而不綱)

 

子釣而不綱하시며 弋不射宿이러시다.

 

120강 지식을 얻는 방법

 

많이 듣고서 그 가운데 좋은 것을 가려서 따르고 많이 보고서 기억해 둔다면 완전한 지식의 버금은 될 것이다.

「술이」 제27장 다문다견(多聞多見)

 

하여 擇其善者而從之하며

多見而識之 知之次니라.

 

121강 인은 가까이 있다

 

인이 멀리 있는 것일까? 내가 어질고자 하면 인이 이르러 온다.

「술이」 제29장 아욕인(我欲仁)

 

仁遠乎哉. 我欲仁이면 斯仁 至矣니라.

 

122강 경계를 허물다

 

공자께서는 남과 노래를 부르다가 그가 잘 부르면 반드시 다시 부르게 하고 그런 뒤에 그와 맞추어 부르셨다.

「술이」 제31장 자여인가(子與人歌)

 

子與人歌而善이어든 必使反之하시고

而後和之러시다.

 

123강 하늘의 뜻

 

자로가 "뇌문에 '너를 상하 신명에게 기도한다."라고 했습니다." 하자, 공자께서는 "그런 기도라면 나의 기도는 오래되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술이」 제34장 구지도구의(丘之禱久矣)

 

曰, 禱爾於上下神祗 하도소이다.

子曰, 丘之禱 久矣니라.

 

124강 군자의 마음

 

군자는 마음이 평탄하고 넓디넓으며 소인은 늘 근심만 한다.

「술이」 제36장 군자탄탕탕(君子坦蕩蕩)

 

君子 坦蕩蕩이오 小人 長戚戚이니라.

 

125강 예가 없다면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고달프고, 신중하되 예가 없으면 두려우며, 용맹하되 예가 없으면 문란하고, 강직하되 예가 없으면 박절하다.

「태백(泰伯)」 제2장 공이무례즉로(恭而無禮則勞)

 

恭而無禮則勞하고 慎而無禮則葸하고

而無禮則亂하고 直而無禮則絞이니라.

 

126강 몸을 소중히 하라

 

이불을 젖혀 내 발을 살펴보고 내 손을 살펴보아라. 시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하며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하라." 했는데, 이제야 내 몸이 다치는 죄를 면했음을 알게 되었구나, 제자들아!

「태백」 제3장 계족계수(啓足啓手)

 

啓予足하며 啓予手하라.戰兢兢하여

如臨深淵하며 如履薄氷이라 하니

而今而後에야 吾知免夫로다 小子!

 

127강 바른 말을 남기다

 

새가 죽을 때는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말하는 것이 착하다.

「태백」 제4장 동용모(動容貌) 1

 

鳥之將死 其鳴也哀하고

人之將死 其言也善이니라.

 

128강 자기완성의 세 방법

 

몸가짐을 갖출 때는 포악하고 거만한 태도를 멀리하고, 얼굴빛을 바르게 할 때는 신실에 가깝게 하며, 말을 할 때는 비루하고 어긋난 말을 멀리해야 한다.

「태백」 제4장 동용모 2

 

動容貌 斯遠暴慢矣

顏色 斯近信笑

出辭氣 斯遠鄙倍矣니라.

 

129강 지식인의 책임

 

선비는 조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되니, 짐이 무겁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았으니 정말로 막중하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그만둘 것이니 정말로 멀지 않은가!

「태백」 제7장 사불가이불홍의(士不可以不弘毅)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이니라.

仁以為己任이니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130강 배움의 순서

 

시에서 도의적 감흥을 돋우고, 예에서 인륜의 규범을 바로 세우며, 악에서 품성을 완성한다.

「태백」 제8장 흥어시(興於詩)

 

興於詩하며 立於禮하며 成於樂이니라.

 

131강 대중의 속성

 

백성은 도리를 따라 행하게 할 수는 있어도, 도리의 원리를 일일이 알게 하기는 어렵다.

「태백」 제9장 민가사유지(民可使由之)

 

可使由之 不可使知之니라.

 

132강 극단을 경계한다

 

용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면 난을 일으키고,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한 자를 너무 미워해도 난을 초래한다.

「태백」 제10장 호용질빈(好勇疾貧)

 

好勇疾貧 亂也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니라.

 

133강 중도를 행하는 법

 

독실하게 믿으면서 학문을 좋아하고 죽음으로 지키면서 도를 잘 행한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가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태백」 제13장 독신호학(篤信好學)

 

篤信好學하며 守死善道니라

危邦不人하고 亂邦不居하며

天下有道則見하고 無道則隱이니라.

 

134강 자기 일에 전념하라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에 대해 논하지 말아야 한다.

「태백」 제14장 부재기위(不在其位)

 

不在其位하얀 不謀其政이니라.

 

135강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듯이

 

배움은 미치지 못할까 여기듯이 하고, 또한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태백」 제17장 학여불급(學如不及)

 

學如不及이오 猶恐失之니라.

 

136강 인재 얻기의 어려움

 

순임금은 신하 다섯을 두었는데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주나라 무왕은 "내게는 세상을 다스릴 신하가 열 명이 있다."라고 말했다. 공자께서는 "인재는 얻기 어렵다더니 정말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씀하셨다.

「태백」 제20장 순유신오인(舜有臣五人)

 

舜有臣五人하여 而天下治하니라.

武王曰, 予有亂臣十人호라.

孔子曰, 才難 不其然乎아.

 

 

 

 

 

 

 

posted by 황영찬
2014. 6. 19. 14:1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4-1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 강의 논어 1

 

盡善

051강 진선진미

 

공자께서 소악(韶樂)을 평하여 "극진히 아름답고 또 극진히 좋다." 하셨고, 무악(武樂)을 평하여 "극진히 아름답지만 극진히 좋지는 못하다." 하셨다.

「팔일」 제25장 자위소(子謂韶)

 

子謂韶하사되 盡美矣 又盡善也 하시고

謂武하사대 盡美矣 未盡善也 하시다.

 

052강 윗사람의 도리

 

남의 위에 있으며 관대하지 않고, 예식을 거행하며 공경하지 않으며, 상례에 임해 슬퍼하지 않는다면 무어 볼 만한 것이 있겠는가?

「팔일」 제26장 거상불관(居上不寬)

 

居上不寬하며 為禮不敬하며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리오.

 

053강 인에 거처한다

 

인(仁)에 처하는 것이 훌륭하니, 이럴까 저럴까 고르면서 인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이인(里仁)」 제1장 이인위미(里仁爲美)

 

里仁이 為美니 擇不處仁이면 焉得知리오.

 

054강 인을 편안히 여긴다는 것

 

어질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곤궁함에 처할 수 없으며 장구히 즐거움에 처할 수 없으니, 어진 사람이어야 인을 편안히 여기며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인을 이롭게 여긴다.

「이인」 제2장 인자안인(仁者安仁)

 

不仁者 不可以久處約이며

不可以長處樂이니

仁者 安仁하고 知者 이니라.

 

055강 남을 제대로 미워하라

 

오직 어진 사람이어야 남을 제대로 좋아하고 남을 제대로 미워할 수 있다.

「이인」 제3장 유인자능호인(惟仁者能好人)

 

唯仁者라야 能好人하며 能惡人이니라.

 

056강 인에 뜻을 둔다

 

진실로 인에 뜻을 두면 악함이 없다.

「이인」 제4장 구지어인의(苟志於仁矣)

 

苟志於仁矣 無惡也니라.

 

057강 인에서 떠나지 말라

 

부(富)와 귀(貴)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으면 처하지 않으며, 빈(貧)과 천(賤)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상적인 이유로 얻지 않았다 하더라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군자가 인(仁)에서 떠난다면 어찌 군자로서의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인」 제5장 부여귀(富與貴) 1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어든 不處也하며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라도 不去也니라.

君子 去仁이면 惡乎成名이리오.

 

058강 인을 어기지 말라

 

군자는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인을 떠나는 일이 없다. 경황이 없을 때에도 반드시 여기에 입각하고 위급한 때에도 반드시 여기에 입각해서 행동한다.

「이인」 제5장 부여귀 2

 

君子無終食之間 違仁이니

造次 必於是하며 顛沛 於是니라.

 

059강 허물을 보면 안다

 

사람의 과실은 각기 그 부류에 따르니, 그 사람의 과실을 보면 어진지 어질지 않은지 알 수 있다.

「이인」 제7장 인지과야각어기당(人之過也各於其黨)

 

人之過也 各於其黨이니

觀過 斯知仁矣니라.

 

060강 도를 듣는다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인」 제8장 조문도(朝聞道)

 

朝聞道 夕死라도 可矣니라.

 

061강 먹고 입는 일에 괘념치 말라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더불아 도를 의논할 수 없다.

「이인」 제9장 치악의악식(恥惡衣惡食)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

未足議也니라.

 

062강 의를 따른다

 

군자는 천하의 일에서 오로지 주장하는 것도 없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으니, 의를 따를 뿐이다.

「이인」 제10장 무적무막(無適無莫)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하여 義之於比니라.

 

063강 덕을 생각한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처한 곳의 편안함을 생각하며, 군자는 형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은혜를 생각한다.

「이인」 제11장 군자회덕(君子懷德)

 

君子 懷德하고 小人 懷土하며

君子 懷刑하고 小人 懷惠니라.

 

064강 이익만 좇지 말라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

「이인」 제12장 방어리이행(放於利而行)

 

放於利而行이면 多怨이니라.

 

065강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라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지위에 설 자격을 걱정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고자 해야 한다.

「이인」 제14장 불환무위(不患無位)

 

不患無位 患所以立하며

不患莫己知 求為可知也니라.

 

066강 진정한 배려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서일 따름이다."

「이인」 제15장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

 

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니라.

 

067강 군자인가 소인인가

 

군자는 도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이인」 제16장 군자유어의(君子唯於義)

 

君子 喻於義하고 小人 喻於利니라.

 

068강 어진 이를 본받아

 

어진 이의 행실을 보면 그와 같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의 행실을 보면 안으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이인」 제17장 견현사제언(見賢思齊焉)

 

見賢思齊焉하며 見不賢而內自省也니라.

 

069강 완곡히 간하라

 

부모를 섬길 때는 완곡하게 간하며, 내 뜻을 따라 주지 않을지라도 다시 공경하고 어기지 말고,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마라.

「이인」 제18장 사부모기간(事父母幾諫)

 

事父母하되 幾諫이니 見志不從하고

又敬不違하며 勞而不怨이니라.

 

070강 부모 곁을 떠날 때는

 

부모가 생존해 계시거든 멀리 가지 말며, 갈 때에는 반드시 일정한 방향이 있어야 한다.

「이인」 제19장 유필유방(遊必有方)

 

父母在어시든 不遠游하며 游必有方이니라.

 

071강 부모님 연세를 아는가

 

부모의 연세는 알지 않으면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뻐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워해야 한다.

「이인」 제21장 부모지년불가부지야(父母之年不可不知也)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니라.

 

072강 말을 쉽게 내지 마라

 

옛날에 함부로 말을 내지 않은 것은 실행이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이인」 제22장 치궁지불체야(恥躬之不逮也)

 

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니라.

 

073강 스스로를 단속한다

 

약(約)함으로써 잘못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인」 제23장 이약실지(以約失之)

 

以約失之者 鮮矣니라.

 

074강 행동을 민첩히 하라

 

군자는 말을 신중하게 하고 행동에 민첩하고자 한다.

「이인」 제24장 군자욕눌어언(君子欲訥於言)

 

君子 欲訥於言 而敏於行이니라.

 

075강 덕인은 외롭지 않다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이인」 제25장 덕불고(德不孤)

 

德不孤 必有鄰이니라.

 

076강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나는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하거늘, 나를 따를 사람은 아마도 유(由)일 것이다.

「공야장(公冶長)」 제6장 도불행승부(道不行乘桴)

 

道不行이라 乘桴하여 浮于海하리

從我者由與인저.

 

077강 게을리 말라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으니, 재여에게 무엇을 책망하랴!

「공야장」 제9장 재여주침(宰予晝寢)

 

朽木 不可雕也 糞土之 不可朽也

於予與 何誅리오.

 

078강 상대방의 처지에서

 

자공이 "저는 남이 저에게 억지로 가하는 것을 바라지 않듯 저 또한 남에게 가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자, 공자께서는 "사야, 네가 미치는 바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공야장」 제11장  아불욕인지가저아야(我不欲人之加諸我也)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하노이다.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니라.

 

079강 네 가지 도리

 

공자께서 자신을 평하여, 그에게는 네 가지 군자의 도가 있으니 몸가짐이 공손한 점, 윗사람을 위해 경건하게 일하는 점, 백성을 은혜롭게 기르는 점, 백성을 의롭게 부리는 점이 그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공야장」 제15장 자위자산(子謂子産)

 

子謂子產하사되 有君子之道四焉이니

其行己也恭하며 其事上也敬하며

其養民也惠하며 其使民也義니라.

 

080강 주저하지 말라

 

계문자가 세 번이나 생각한 뒤에 실행하자 공자께서 그 일을 들으시고 두 번 생각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공야장」 제19장 재사가의(再斯可矣)

 

季文子 三思而後하더니

子聞之하시고 曰, 再斯可矣니라.

 

081강 어리석음의 지혜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롭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으니, 지혜로움은 미칠 수 있으나 어리석음은 미칠 수 없도다.

「공야장」 제20장 영무자방유도즉지(寗武子邦有道則知)

 

甯武子 邦有道則知하고 邦無道則愚하니

其知 可及也어니와 其愚 不可及也라.

 

082강 뜻이 큰 사람과 함께

 

공자께서 진(陳)나라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 돌아가야겠다. 돌아가야겠다. 우리 무리의 소자들이 뜻은 크나 일에는 소략하므로, 찬란하게 문장을 이루었으되 그것을 마름질할 줄 모르는구나."

「공야장」 제21장 자재진(子在陳)

 

在陳하사 曰, 歸與인저 歸與인저,

吾黨之小子 狂簡하여 斐然成章이오

不知所以裁之다.

 

083강 고쳤으면 됐다

 

백이와 숙제는 사람들이 전에 저지른 악행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원망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공야장」 제22장 백이숙제불념구악(伯夷叔齊不念舊惡)

 

伯夷叔齊 不念舊惡이라 怨是用希니라.

 

084강 정직이란 무엇인가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고 하겠는가? 그는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려 달라고 하자 그것을 이웃에서 빌려다 주었다.

「공야장」 제23장 숙위미생고직(孰謂微生高直)

 

孰謂微生高直,

乞醃焉이어늘 乞諸其鄰而與之온여.

 

085강 부끄러워하는 마음

 

말을 듣기 좋게 하고 얼굴빛을 잘 꾸미며 지나치게 공손하게 구는 것을 옛날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는데, 나 또한 이것을 부끄러워하노라. 원망을 감추고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는데, 나 또한 이것을 부끄러워하노라.

「공야장」 제24장 교언영색주공(巧言令色足恭)

 

巧言令色足恭 左丘明 恥之러니

丘亦恥之하노라. 匿怨而友其人

左丘明 恥之러니亦恥之노라.

 

086강 노인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노인을 편안하게 해 주고 붕우를 믿어 주며 젊은이를 감싸 주겠다.

「공야장」 제25장 합언각지(盍言各志)

 

老者 安之하며 朋友 信之하며

少者 懷之니라.

 

087강 자신을 꾸짖으라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아직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안으로 자책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공야장」 제26장 내자송(內自訟)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케라.

 

088강 배움을 좋아한다

 

열 집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만큼 충후하고 신실한 자가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

「공야장」 제27장 십실지읍(十室之邑)

 

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이어니와如丘之好學也니라.

 

089강 아끼는 이의 죽음

 

안회는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고 잘못을 두 번 거듭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옹야(雍也)」 제2장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貳過)

 

有顏回者 好學하여 不遷怒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라.

 

090강 곤궁한 이를 돕는다

 

공서적이 제나라로 갈 때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고 갔다고 한다. 내가 듣기에, 군자는 곤궁한 사람은 도와주되 여유 있는 사람에게 보태 주지는 않는 법이다.

「옹야」 제3장 군자주급(君子周急)

 

赤之適齊也 乘肥馬하고輕裘하니

聞之也호니 君子 周急이오 不繼富호라.

 

 

091강 출신보다 능력

 

얼룩소의 송아지가 털이 붉고 뿔이 곧으면, 제사에 쓰지 않으려 해도 산천이 내버려 두겠는가?

「옹야」 제4장 성차각(騂且角)

 

犁牛之子 騂且角이면

雖欲勿이나 山川 其舍諸.

 

092강 안빈낙도

 

한 대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추한 거리에서 살면 남들은 그 근심을 참지 못하거늘 안회는 자기의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회여!

「옹야」 제9장 불개기락(不改其樂)

 

一簞食 一瓢飲으로陋巷

人不堪其憂어늘 回也 不改其樂하니

賢哉 回也.

 

093 금을 긋지 말라

 

힘이 부족한 사람은 길을 가다가 쓰러지나니, 지금 너는 금을 긋고 있다.

「옹야」 제10장 금여획(今女畫)

 

力不足者 中道而廢하나니 今女이로다.

 

094강 진정한 학자

 

공자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다운 학자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옹야」 제11장 여위군자유(女爲君子儒)

 

子謂子夏曰, 女為君子儒

無為小人儒하라.

 

095강 자만하지 말라

 

맹지반은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패주하면서 후미에 처져 있다가 도성 문을 들어올 적에 말을 채찍질하며 "내가 감히 뒤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이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옹야」 제13장 맹지반불벌(孟之反不伐)

 

孟之反 不伐이로다.

奔而殿하야 將入門할새其馬하며

曰, 非敢後也 馬不進也라 하니라.

 

096강 바탕과 문체

 

바탕이 문채보다 두드러지면 촌스럽고 문채가 바탕보다 두드러지면 매끈하기만 하니, 바탕과 문채가 어우러져 빛을 내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옹야」 제16장 문질빈빈(文質彬彬)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 然後 君子니라.

 

097강 삶의 본질

 

사람의 삶은 정직함을 본질로 하니, 정직함 없이 사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한 것일 뿐이다.

「옹야」 제17장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

 

人之生也直하니 罔之生也 幸而免이니라.

 

098강 즐기는 것이 최고지만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옹야」 제18장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니라.

 

099강 솔선하라

 

번지가 지(知)에 대해 여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지라 말할 수 있다." 다시 인(仁)에 대해 여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진 사람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니, 이렇게 한다면 인이라 말할 수 있다."

「옹야」 제20장 번지문지(樊遲問知)

 

樊遲 問知한대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 可謂知矣니라.

問仁한대 曰, 仁者 先難而後獲이면

可謂仁矣니라.

 

100강 요산요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즐기고 어진 사람은 산을 즐긴다.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옹야」 제21장 요산요수(樂山樂水)

 

知者 樂水하고 仁者 樂山이니

知者하고하며

知者하고 仁者하니라.

 

 

posted by 황영찬
2014. 6. 16. 10:35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4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 강의 논어 1

 

심경호

2013, 민음사

 

 

대야도서관

SB093230

 

148.3

심14ㄴ  1

 

옛글을 읽으며 새로이 태어난다

 

찬란히 빛나는 2500년 동양의 지혜

매일 한 강의씩 펼쳐 보고 새겨 읽는 『논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나를 세운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는 2500여 년에 걸쳐 읽히고 있는 동양 고전의 정수이다. 한문 고전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로 정평이 난 심경호 교수가 『논어』 읽기에 첫발을 내딛는 초행자를 위해 곧은길을 안내한다. 매 구절, 전아하고 뜻깊은 해설과 함께 오늘날 우리가 성찰해 볼 만한 논점이 제시된다.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현실 구원의 의지를 굳게 지켰던 공자, 그의 사람됨과 사상을 충실히 담은 『논어』 강의 첫째 권에서는 옛 글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 가는 기쁨을 음미해 본다.

심경호 沈慶昊

1955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일본 교토(京都)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중국문학)을 수료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8년 국문학연구회 논문상, 2002년 성산학술상, 2006년 일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 靜) 선생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 2010년 우호인문학 학술상, 2011년 연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선정 제1회 인문사회과학분야 우수학자로 뽑히기도 했다.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공저), 『조선 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국문학 연구와 문헌학』, 『다산과 춘천』, 『한문 산문 미학』, 『한국 한시의 이해』, 『한시의 세계』, 『한시의 서정과 시인의 마음』, 『김시습 평전』,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한시 기행』, 『산문 기행: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내면 기행: 선인들 묘지명을 스스로 쓰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선인들의 자서전』,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 문학』, 『국왕의 선물』, 『참요』, 『한국 한문 기초학사』(전 3권) 등이 있고 역서로 『주역 철학사』, 『불교와 유교』, 『일본 한문학사』(공역), 『금오신화』, 『한자학』, 『역주 원중랑집』(공역), 『한자 백 가지 이야기』,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일본서기의 비밀』, 『문자강화 1』, 『증보역주 지천선생집』(공역), 『서포만필』, 『삼봉집』 등이 있으며 『자기 책 몰래 고치는 사람』, 『책, 그 무시무시한 주술』, 『오늘의 고전』 등의 수필집을 썼다.

 

차례

 

동양 고전 강의를 시작하며

일러두기

 

학이(學而)

001강  배움이란 무엇인가  학이시습(學而時習) 1

002강  벗과 함께하는 즐거움  학이시습 2

003강  근본에 힘써야  효제위인본(孝弟爲仁本)

004강  위선을 경계한다  교언영색(巧言令色)

005강  매일 반성하다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006강  나라 다스리는 길  도천승지국(道千乘之國)

007강  실천을 앞세워야  행유여력즉이학문(行有餘力則以學文)

008강  배움의 진정한 뜻  현현역색(賢賢易色)

009강  중후해야 학문도 견고하다  군자부중즉불위(君子不重則不威) 1

010강  허물을 고치라  군자부중즉불위 2

011강  추모의 마음을 다하여  신종추원(愼終追遠)

012강  정치 참여의 자세  부자온량공검(夫子溫良恭儉)

013강  사람을 보면 안다  부재관기지(父在觀其志)

014강  조화가 귀하다  예지용화위귀(禮之用和爲貴)

015강  사귐의 태도  신근어의(信近於義)

016강  민첩히 행하라  식무구포(食無求飽)

017강  빈부를 초월하여  빈이무첨(貧而無諂) 1

018강  갈고 닦으라  빈이무첨 2

019강  남을 제대로 알라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위정(爲政)

020강  덕으로 하는 정치  위정이덕(爲政以德)

021강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야  사무사(思無邪)

022강  왕도 정치  도지이덕(道之以德)

023강  덕을 완성하는 길  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

024강  효란 무엇인가  맹무백문효(孟武伯問孝)

025강  공경해야 참된 효  자유문효(子游問孝)

026강  말없이 밝히는 도  오여회언종일(吾與回言終日)

027강  사람 알아보는 법  시기소이(視其所以)

028강  온고지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029강  군자의 도량  군자불기(君子不器)

030강  먼저 실천한다  자공문군자(子貢問君子)

031강  두루 사랑한다  군자주이불비(君子周而不比)

032강  배움과 생각함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033강  앎이란 무엇인가  회여지지호(誨女知之乎)

034강  난문은 제쳐 둔다  다문궐의(多聞闕疑)

035강  사람 쓰는 법  거직조제왕(擧直錯諸枉)

036강  지도자는 장중해야  임지이장즉경(臨之以莊則敬)

037강  효가 정치의 근본  서운효호(書云孝乎)

038강  의로운 일에 용감하라  비귀이제지(非鬼而祭之)

 

팔일(八佾)

039강  명분을 바로잡는 일  팔일무어정(八佾舞於庭)

040강  예악보다 마음  인이불인(人而不仁)

041강  예의 근본  예여기사야영검(禮與其奢也寧儉)

042강  군자의 경쟁  군자무소쟁(君子無所爭)

043강  바탕이 중요하다  회사후소(繪事後素)

044강  제사의 태도  제여재(祭如在)

045강  명분의 중요성  여기미어오(與其媚於奧)

046강  차이를 인정해야  사불주피(射不主皮)

047강  군주와 신하  군사신이례(君使臣以禮)

048강  감정을 조절해야  관저낙이불음(關雎樂而不淫)

049강  기왕지사는 기왕지사  성사불설(成事不說)

050강  목탁 같은 존재  천장이부자위목탁(天將以夫子爲木鐸)

051강  진선진미  자위소(子謂韶)

052강  윗사람의 도리  거상불관(居上不寬)

 

이인(里仁)

053강  인에 거처한다  이인위미(里仁爲美)

054강  인을 편안히 여긴다는 것  인자안인(仁者安仁)

055강  남을 제대로 미워하라  유인자능호인(惟仁者能好人)

056강  인에 뜻을 둔다  구지어인의(苟志於仁矣)

057강  인에서 떠나지 말라  부여귀(富與貴) 1

058강  인을 어기지 말라  부여귀 2

059강  허물을 보면 안다  인지과야각어기당(人之過也各於其黨)

060강  도를 듣는다면  조문도(朝聞道)

061강  먹고 입는 일에 괘념치 말라  치악의악식(恥惡衣惡食)

062강  의를 따른다  무적무막(無適無莫)

063강  덕을 생각한다  군자회덕(君子懷德)

064강  이익만 좇지 말라  방어리이행(放於利而行)

065강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라  불환무위(不患無位)

066강  진정한 배려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

067강  군자인가 소인인가  군자유어의(君子唯於義)

068강  어진 이를 본받아  견현사제언(見賢思齊焉)

069강  완곡히 간하라  사부모기간(事父母幾諫)

070강  부모 곁을 떠날 때는  유필유방(遊必有方)

071강  부모님 연세를 아는가  부모지년불가부지야(父母之年不可不知也)

072강  말을 쉽게 내지 마라  치궁지불체야(恥躬之不逮也)

073강  스스로를 단속한다  이약실지(以約失之)

074강  행동을 민첩히 하라  군자욕눌어언(君子欲訥於言)

075강  덕인은 외롭지 않다  덕불고(德不孤)

 

공야장(公冶長)

076강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도불행승부(道不行乘桴)

077강  게을리 말라  재여주침(宰予晝寢)

078강  상대방의 처지에서  아불욕인지가저아야(我不欲人之加諸我也)

079강 네 가지 도리  자위자산(子謂子産)

080강  주저하지 말라  재사가의(再斯可矣)

081강  어리석음의 지혜  영무자방유도즉지(寗武子邦有道則知)

082강  뜻이 큰 사람과 함께  자재진(子在陳)

083강  고쳤으면 됐다  백이숙제불념구악(伯夷叔齊不念舊惡)

084강  정직이란 무엇인가  숙위미생고직(孰謂微生高直)

085강  부끄러워하는 마음  교언영색주공(巧言令色足恭)

086강  노인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합언각지(盍言各志)

087강  자신을 꾸짖으라  내자송(內自訟)

088강  배움을 좋아한다  십실지읍(十室之邑)

 

옹야(雍也)

089강  아끼는 이의 죽음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貳過)

090강  곤궁한 이를 돕는다  군자주급(君子周急)

091강  출신보다 능력  성차각(騂且角)

092강  안빈낙도  불개기락(不改其樂)

093강  금을 긋지 말라  금여획(今女畫)

094강  진정한 학자  여위군자유(女爲君子儒)

095강  자만하지 말라  맹지반불벌(孟之反不伐)

096강  바탕과 문채  문질빈빈(文質彬彬)

097강  삶의 본질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

098강  즐기는 것이 최고지만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099강  솔선하라  번지문지(樊遲問知)

100강  요산요수  요산요수(樂山樂水)

101강  이름과 실상의 부합  고불고(觚不觚)

102강  예로 요약한다  박문약례(博文約禮)

103강  중용의 덕  민선구의(民鮮久矣)

104강  베푸는 것이 먼저  박시제중(博施濟衆)

 

술이(述而)

105강  옛 도를 전술할 따름  술이부작(述而不作)

106강  참된 교육자  묵이지지(黙而識之)

107강  선비의 행동 방식  지어도(志於道)

108강  가르침을 청하는 예  자행속수이상(自行束脩以上)

109강  교육의 방법  불분불비(不憤不悱)

110강  남을 생각하는 마음  자식어유상자지측(子食於有喪者之側)

111강  때에 맞는 처신  용행사장(用行舍藏)

112강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종오소호(從吾所好)

113강  가치의 추구  구인이득인(求仁而得仁)

114강  곡굉지락  반소사음수(飯疏食飮水)

115강  당장의 근심을 잊다  발분망식(發憤忘食)

116강  배움의 자세  호고민이구지(好古敏以求之)

117강  인간답게 사는 길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118강  길에서 찾는 스승  삼인행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

119강  생명에 대한 애정  자조이불강(子釣而不綱)

120강  지식을 얻는 방법  다문다견(多聞多見)

121강  인은 가까이 있다  아욕인(我欲仁)

122강  경계를 허물다  자여인가(子與人歌)

123강  하늘의 뜻  구지도구의(丘之禱久矣)

124강  군자의 마음  군자탄탕탕(君子坦蕩蕩)

 

태백(泰伯)

125강  예가 없다면  공이무례즉로(恭而無禮則勞)

126강  몸을 소중히 하라  계족계수(啓足啓手)

127강  바른 말을 남기다  동용모(動容貌) 1

128강  자기완성의 세 방법  동용모 2

129강  지식인의 책임  사불가이불홍의(士不可以不弘毅)

130강  배움의 순서  흥어시(興於詩)

131강  대중의 속성  민가사유지(民可使由之)

132강  극단을 경계한다  호용질빈(好勇疾貧)

133강  중도를 행하는 법  독신호학(篤信好學)

134강  자기 일에 전념하라  부재기위(不在其位)

135강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듯이  학여불급(學如不及)

136강  인재 얻기의 어려움  순유신오인(舜有臣五人)

 

『논어』를 읽는 분들에게

 

참고 문헌

 

2권에 수록된 편명

자한(子罕) · 향당(鄕黨) · 선진(先進) · 안연(顔淵) · 자로(子路) · 헌문(憲問)

 

3권에 수록된 편명

위령공(衛靈公) · 계씨(季氏) · 양화(陽貨) · 미자(微子) · 자장(子張) · 요왈(堯曰)

 

001강 배움이란 무엇인가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면 기쁘지 아니한가!

「학이(學而)」 제1장 학이시습(學而時習) 1

 

學而時習之 不亦說.

 

002강 벗과 함께하는 즐거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학이」 제1장 학이시습 2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

 

003강 근본에 힘써야

 

유자가 말했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인의 도가 발생한다. 효와 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 하겠다."

「학이」 제2장 효제위인본(孝弟爲仁本)

 

有子曰. 君子는 務本이니 本位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인저.

 

004강 위선을 경계한다

 

말 잘하고 얼굴빛 꾸미는 자 가운데 어진 사람이 드물다.

「학이」 제3장 교언영색(巧言令色)

 

巧言令色 鮮矣仁이니라

 

005 매일 반성하다

 

증자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의 몸을 살핀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불충하지 않았나, 벗과 더불어 사귀면서 불성실하지 않았나, 전수받은 것을 못 익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학이」 제4장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曾子曰, 吾日三省吾身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006강 나라 다스리는 길

 

천승의 나라를 다스리려면 일을 삼가고 미덥게 하며, 재물 쓰기를 절도 있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부리기를 때에 맞춰 해야 한다.

「학이」 제5장 도천승지국(道千乘之國)

 

道千乘之國 敬事而信하며

節用而愛人하며 使民以時니라.

 

007강 실천을 앞세워야

 

제자들은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신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 해야 하니, 이것이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

「학이」 제6장 행유여력즉이학문(行有餘力則以學文)

 

弟子入則孝하고 出則弟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하되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則以學文이니라.

 

008강 배움의 진정한 뜻

 

자하가 말했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을 바꿔서 하며, 부모를 섬기되 그 힘을 다할 줄 알며, 군주를 섬기되 그 몸을 바칠 줄 알여, 붕우와 더불어 사귀되 말할 때 성실하게 하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가 배웠다고 하겠다."

「학이」 제7장 현현역색(賢賢易色)

 

子夏曰. 賢賢 易色하며

事父母 能竭其力하며

事君 能致其身하며

與朋友交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라도 吾必謂之學矣리라.

 

009강 중후해야 학문도 견고하다

 

군자는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학문도 견고하지 못하다.

「학이」 제8장 군자부중즉불위(君子不重則不威) 1

 

君子 不重則不威 學則不固니라.

 

010강 허물을 고치라

 

충신(忠信)을 주로 하고, 자기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말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학이」 제8장 군자부중즉불위 2

 

主忠信하며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니라.

 

011강 추모의 마음을 다하여

 

증자가 말했다. "어버이 상을 당했을 때 신중하게 치르고 돌아가신 먼 조상님을 정성껏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한결 돈후해질 것이다."

「학이」 제9장 신종추원(愼終追遠)

 

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 歸厚矣리라.

 

012강 정치 참여의 자세

 

자공이 말했다. "부자께서는 온후하고 어질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겸양하므로 이것을 얻으시는 것이니, 부자께서 벼슬을 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이 벼슬을 구하는 것과 다르다."

「학이」 제10장 부자온량공검(夫子溫良恭儉)

 

子貢曰. 夫子 溫良恭儉讓以得之시니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인저.

 

013강 사람을 보면 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그 뜻을 살피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 행동을 살피되, 삼 년 동안 부모의 도를 고치지 않아야 효라 이를 수 있다.

「학이」 제11장 부재관기지(父在觀其志)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이나

三年 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014강 조화가 귀하다

 

유자가 말했다. "예의 쓰임에서는 조화를 귀하게 여기니,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 작은 일과 큰 일에서 모두 이것을 따랐다. 일이 제대로 행해지지 못할 수도 있으니, 화합할 줄 알고 화합을 위주로 하되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역시 행해질 수 없다."

「학이」 제12장 예지용화위귀(禮之用和爲貴)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하니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니라.

有所不行하니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니라.

 

015강 사귐의 태도

 

유자가 말했다. "약속이 의리에 가까우면 그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으며,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주인을 정할 때 친할 만한 사람을 제대로 친하면 그 사람을 끝까지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학이」 제13장 신근어의(信近於義)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이면 亦可宗也니라.

 

016강 민첩히 행하라

 

군자가 먹을 적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거처할 적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을 민첩히 하고 말을 삼가며, 도 있는 이에게 찾아가 질정한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학이」 제14장 식무구포(食無求飽)

 

君子 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이오 就有道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니라.

 

017강 빈부를 초월하여

 

자공이 "가난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라고 여쭈자, 공자께서는 "좋기는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기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씀하셨다.

「학이」 제15장 빈이무첨(貧而無諂) 1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하되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018강 갈고 닦으라

 

자공이 "시에 '골각은 용도에 맞게 자른 뒤 정밀하게 갈고 옥석은 용도에 맞게 쫀 뒤 정밀하게 간다.'라고 한 것은 아마도 이것을 이른 것이군요."라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와는 이제 시를 함께 말할 수 있겠다. 지나간 것을 말해 주니 아직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아는구나!"

「학이」 제15장 빈이무첨 2

 

子貢曰, 詩云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 하니 其斯之謂與인저.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019강 남을 제대로 알라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학이」 제16장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니라.

 

020강 덕으로 하는 정치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 뭇별들이 그쪽으로 향하는 것과 같다.

「위정(爲政)」 제1장 위정이덕(爲政以德)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이어든

而衆星共之니라.

 

021강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야

 

시 삼백 편의 뜻을 한마디로 총괄할 수 있으니,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라는 말이다.

「위정」 제2장 사무사(思無邪)

 

詩三百 一言以蔽之하니 曰, 思無邪니라.

 

022강 왕도 정치

 

백성을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가지런하게 하면 백성은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또한 바르게 된다.

「위정」 제3장 도지이덕(道之以德)

 

道之以德하고 齊之以禮 有恥且格이니라.

 

023강 덕을 완성하는 길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했으며, 마흔 살에 사리를 의혹하지 않게 되었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위정」 제4장 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니라.

 

024강 효란 무엇인가

 

맹무백이 효에 대해서 여쭈자 공자께서는 "부모는 그저 병들까 걱정할 따름이네."라고 말씀하셨다.

「위정」 제6장 맹무백문효(孟武伯問孝)

 

孟武伯 問孝한대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시니라.

 

025강 공경해야 참된 효

 

자유가 효에 대해 여쭈자, 공자께서는 "지금의 효라는 것은 봉양을 잘함을 두고 말한다. 하지만 견마에게도 모두 길러 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부모 봉양이 견마 기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위정」 제7장 자유문효(子游問孝)

 

子游問孝한대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026강 말없이 밝히는 도

 

내가 회(回)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인 듯했으나, 물러간 뒤에 그 생활을 살펴보니 충분히 내 가르침을 발명했으니, 회는 어리석지 않구나!

「위정」 제9장 오여회언종일(吾與回言終日)

 

吾與回 言終日 不違如愚러니

退而省其私한대 亦足以發하나니

回也不愚로다.

 

027강 사람 알아보는 법

 

그 하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살피며 그 편안히 여김을 살펴본다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위정」 제10장 시기소이(視其所以)

 

視其所以하며 觀其所由하며 察其所安이면

人焉廋哉리오 人焉廋哉리오.

 

028강 온고지신

 

옛것을 탐구하면서 새것을 알아 나가면 스승이 될 수 있다.

「위정」 제11장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不器

029강 군자의 도량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위정」 제12장 군자불기(君子不器)

 

君子 不器니라.

 

030강 먼저 실천한다

 

자공이 군자에 대해 여쭈자, 공자께서는 "말할 것을 먼저 실행하고 나서 말이 행동을 따르게 하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위정」 제13장 자공문군자(子貢問君子)

 

子貢 問君子한대

子曰, 先行其言이오 而後從之니라.

 

031강 두루 사랑한다

 

군자는 두루 사랑하되 편당하지 않으나, 소인은 편당하되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위정」 제14장 군자주이불비(君子周而不比)

 

君子 周而不比하고

小人 比而不周니라.

 

032강 배움과 생각함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위정」 제15장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

 

033강 앎이란 무엇인가

 

유(由)야! 너에게 앎에 대해 가르쳐 주겠노라.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

「위정」 제17장 회여지지호(誨女知之乎)

 

誨女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니라.

 

034강 난문은 제쳐 둔다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을 제쳐 놓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제쳐 놓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니, 말에 허물이 적고 행실에 후회할 일이 적으면 녹봉이 그 가운데 있다.

「위정」 제18장 다문궐의(多聞闕疑)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면 則寡悔

言寡尤하며 行寡悔 祿在其中矣니라.

 

035 사람쓰는 법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굽은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들이 복종하며, 굽은 사람을 들어 쓰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위정」 제19장 거직조제왕(擧直錯諸枉)

 

擧直錯諸枉하면 則民服하고

擧枉錯諸直하면 則民不服이니이다.

 

036강 지도자는 장중해야

 

백성을 대하길 장엄한 태도로 하면 백성이 공경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백성을 사랑하면 백성이 충성하며, 잘하는 자를 들어 쓰고 못하는 자를 가르치면 권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정」 제20장 임지이장즉경(臨之以莊則敬)

 

臨之以莊則敬하고 孝慈則忠하고

擧善而敎不能則勸이니라.

 

037강 효가 정치의 근본

 

『서경』에서 효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가!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치에 베푼다."라고 했으니, 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어찌 지위에 있어야만 정치를 하는 것이겠는가?

「위정」 제21장 서운효호(書云孝乎)

 

書云 孝乎인저 惟孝하며 友于兄弟하여

施於有政이라 하니 是亦爲政이니

奚其爲爲政이리오.

 

038강 의로운 일에 용감하라

 

제사 지내야 할 귀신이 아닌데 제사 지냄은 아첨하는 것이요, 의로운 일을 보고도 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위정」 제24장 비귀이제지(非鬼而祭之)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니라.

 

039강 명분을 바로잡는 일

 

공자께서 계씨를 논평하여 말씀하셨다. "천자의 팔일무를 뜰에서 추게 하다니, 이 일을 감히 한다면 무엇을 감히 하지 못하겠는가?"

「팔일(八佾)」 제1장 팔일무어정(八佾舞於庭)

 

孔子하사대 八佾 舞於庭하니

是可忍也인댄 孰不可忍也이리오.

 

040강 예악보다 마음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면 예(禮)를 어떻게 하며,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면 악(樂)을 어떻게 하겠는가?

「팔일」 제3장 인이불인(人而不仁)

 

人而不仁이면 如禮에 何

人而不仁이면 如樂에 何.

 

041강 예의 근본

 

예는 외관상 성대하게 거행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는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이 낫다.

「팔일」 제4장 예여기사야영검(禮與其奢也寧儉)

 

禮與其奢也 寧儉이오

喪與其易也 寧戚이니라.

 

042강 군자의 경쟁

 

군자는 경쟁하는 일이 없으나 만일 한다면 활쏘기에서는 경쟁할 것이다. 상대방에게 읍례하고 사양하며 당에 올라갔다가 활을 쏜 뒤 내려와 술을 마시니, 이러한 경쟁이 군자다운 경쟁이다.

「팔일」 제7장 군자무소쟁(君子無所爭)

 

君子無所爭이나 必也射乎인저,

揖讓而升하여 下而飲하나니 其爭也君子니라.

 

043강 바탕이 중요하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 마련하는 일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팔일」 제8장 회사후소(繪事後素)

 

繪事後素니라.

 

044강 제사의 태도

 

조상신을 제사 지낼 적에는 선조가 계신 듯이 하셨고, 신을 제사 지낼 적에는 신이 계신 듯이 하셨다.

「팔일」 제12장 제여재(祭如在)

 

祭如在하시며 祭神如神在러시다.

 

045강 명분의 중요성

 

집 안 서남쪽 구석의 신에게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부뚜막신에게 아첨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팔일」 제13장 여기미어오(與其媚於奧)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하니

잇고.

 

046강 차이를 인정해야

 

활쏘기에서 과녁 뚫는 것을 위주로 하지 않음은 힘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의 활 쏘는 도는 이러했다.

「팔일」 제16장 사불주피(射不主皮)

 

射不主皮 為力不同科

古之道也니라.

 

君臣

047강 군주와 신하

 

군주는 신하를 부리기를 예로써 하고, 신하는 군주를 섬기기를 충으로써 해야 합니다.

「팔일」 제19장 군사신이례(君使臣以禮)

 

君使臣以禮하며 臣事君以忠이니이다.

 

048강 감정을 조절해야

 

시 삼백의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화평한 기운을 해치지 않는다.

「팔일」 제20장 관저낙이불음(關雎樂而不淫)

 

關睢 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니라.

 

049강 기왕지사는 기왕지사

 

벌써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고, 다 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은 탓하지 않는다.

「팔일」 제21장 성사불설(成事不說)

 

成事 不說하며 遂事 不諫하며

既往이라 不咎로다.

 

木鐸

050강 목탁 같은 존재

 

의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 선생님께서 벼슬 잃으신 것을 걱정하는가. 천하에 도가 없은 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님을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

「팔일」 제24장 천장이부자위목탁(天將以夫子爲木鐸)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

為木鐸이시리라.

 

 

 

 

posted by 황영찬
2014. 6. 12. 16:54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3 김치

 

글 / 이춘자, 김귀영, 박혜원●사진 / 배병석

1999,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7

 

082

빛12ㄷ  215

 

빛깔있는 책들 215

 

이춘자-----------------------------------------------------------------

수원여자대학 식품조리과 겸임 교수. 88올림픽 문화행사 "한국음식문화5천년전" 준비위원

 

김귀영----------------------------------------------------------------

상주산업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박혜원---------------------------------------------------------------

신흥대학 호텔조리과 교수

 

배병석-------------------------------------------------------------------------

88올림픽 문화행사 "한국음식문화5천년전"과 온양민속박물관 유물 촬영 및 도록 발간의 사진작업을 담당하였다.

 

그릇 협찬 - 우성보 도요(일월요), 행천자기

자료 협찬 - 중앙 종묘 홍보실

 

|차례|

 

한국인과 김치

김치의 어원과 역사

김치가 만들어낸 문화

특이성 김치와 향토 김치

김치의 특성

김치 담그기

김치를 이용한 음식

맺음말

찾아보기

참고 문헌

 

무우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 앞내에 정히 씻어 함담(鹹淡)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박이 무우 알암밤도 얼잔케 간수하소.

- 「농가월령가」 시월의 노래

물 긷는 아낙  평안도 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용두레 우물에서 물을 긷는 고구려의 여인을 표현하였는데 우물 주변에 여러 개의 큰 독이 보인다. 황해도 안악 3호분.

속리산 법주사의 돌항아리  사찰에서 대형 토기를 묻어 두고 겨우살이에 대비한 김장독과 같은 용도로 사용하였다. 법주사 경내에 있는 큰 돌항아리에서 김장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겠다.

석류김치  마치 석류가 익어 벌어진 듯한 모양으로 무에 바둑판처럼 칼집을 넣어 절인 다음 소를 채워 만든 국물이 넉넉한 김치이다.

사찰 열무김치(위)와 배추김치(아래)  사찰 김치는 종류가 다양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김치를 담글 때에도 오신채에 해당하는 자극적인 채소와 양념, 젓갈도 사용하지 않는다.

유기에 담긴 제사 김치  제사 김치는 익히지 않은 날것으로 배추김치를 썰 때에는 어른의 진짓상처럼 통배추를 썰어 중간 부분을 세워 제기에 올린다.

너와집  태백산을 중심으로 영서와 영동으로 나누어지는 강원도는 음식이 소박하고 먹음직스러우며 육류보다 조개류, 멸치 등으로 맛을 낸다. 강원도 삼척 신리.

대구아가미깍두기  강원도는 다른 지방과 달리 오징어, 명태 등의 해산물이 김치 재료로 많이 이용된다. 특히 곡물과 채소와 함께 버무려 삭힌 식혜가 유명하다. 창란젓깍두기, 오징어무말랭이김치 등도 있다.

콩잎김치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매운 편인데 음식에 별로 모양을 내지 않는 소박함이 특징이다. 수확기의 누런 콩잎을 따서 김치를 담갔다가 다음해까지 밑반찬으로 이용한다.

백김치  겨울이 긴 고장이라서 김치가 더디 익기 때문에 싱겁고 맵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김치에 양념과 부재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 국물 맛이 담백하다.

동치미  무를 넉넉히 넣고 배와 삭힌 고추, 청각 등을 넣어 익혀서 만들어 국물이 시원하기 때문에 김장할 때 빠뜨리지 않고 담근다.

가자미식해  함경도에는 특산물인 생선을 이용한 김치가 많으며 채소와 곡물밥, 생선을 넣어 함께 발효시킨 가자미식해가 유명하다.

해물김치  제주도 음식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음식을 많이 차리지 않는다. 해산물을 원료로 한 전복김치, 해물김치, 동지김치, 나박김치 등이 있다.

수삼나박지  수삼 잔뿌리를 갈아 맛을 낸 국물에 수삼, 배, 무를 넣어 하루 정도 지난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낸다. 약리 효과도 있는 개성 지방의 향토 김치이다.

수라상에 놓인 김치  음식이면서 예술의 경지까지 도달한 김치는 우리의 훌륭한 문화 유산이다. 소박한 서민의 밥상에서 임금님의 수라상에까지 빠지지 않았던 김치는 이제 세계인의 음식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4. 6. 12. 11:37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2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장순금 시집

2013, 문학아카데미

 

 

대야도서관

SB080205

 

811.6

장56ㄱ

 

문학아카데미 시선 247

Literature Academy Poem Book Series(1989)

 

사랑과 화해의 아름다운 시세계

무구 무욕의 시편

 

이 시집의 울타리 안은 대체로 그윽하고 평화롭다. 저 제천 배론성지의 소나무 그늘ㅇ이나 보령 갈매못 성당 앞 석양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집주인 장순금의 성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무구(無垢)와 무욕(無慾)의 시편들이다. 겸허히 자신의 육신을 들여다보고, 묵연히 천지간을 관조하는 시인 앞에 삼라만상이 무등(無等)의 진경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덕에 우리는 '어머니의 틀니'에서 '은하계로 흘러들어간 가지런한 별들'을 본다. '알몸들이 에덴동산처럼 자유롭'고 '산과 바다가 수평'이 되는 순간과 새삼스럽게 조우하며 모든 생명의 외경을 경험하게 된다. 뿐인가, '흑염소가, 은하수를 건너가는' 풍경을 목도하고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 거꾸로 쳐들고는 나를 탈탈털'어대는 놀라운 순간과도 만난다. 희망한다면 하늘 가까운 시인의 골방에서 고해의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귀가 밝은 사람이라면 '눈물 속에서' 천상의 '악기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 윤제림(시인, 서울예대 교수)

 

장순금 시인의 작품을 읽다보면 거침없는 상상력과 생동감 넘치는 언어에 푹 빠져든다. 세상의 뒷길에서 잊혀지고 버려진 것들과 한가족이 되는 사랑과 화해의 아름다운 시세계도 일품이지만 언어의 내밀한 자력과 상상력의 외연을 최대한 증폭시켜 삶의 상처와 결핍을 위무하고 치유하는 친화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상선약수인양 바닥으로 낮게 흐르는 물의 힘.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대로 스며들어 한몸이 되는 통달무애의 시편들을 읽으며, 시인과 함께 머잖아 유마의 불이선을 즐길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 박제천(시인, 문학아카데미 대표)

시인 장순금

 

부산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시집 : 『걸어서 가는 나라』 『비누의 슬픔』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낯선 길을 보다』 『햇빛 비타민』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6권 상재

수상 : 동국문학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현재 : 한국가톨릭문인회 사무국장. 『시와 소금』 편집위원, 한국시협, 펜, 목월포럼 회원

 

jang24k@hanmail.net

 

Poet Chang, Soon-Keum

 

Twelve Animals

 

Twelve animals roam about within me.

The pasture's gentle sheep whirl down the hills

and race as wild horses,

On some days like cats with drooping heads and

closed eyes.

 

Twelve devils dwell within me.

Don't trust the words that change from moment to moment,

mumbling, "Let love come, let eternity prevail."

Devils I cannot exorcise for myself

swarm in and outside myself like ghosts.

 

Different bodies from diverse universes

have come and now hide among my ribs.

Gleaming in my eyes,

they want to become bigger than me,

deeper than me, -- all within me.

 

Finally, I come out of my body locking it up.

Red bodies, blue bodies and black bodies

mix and struggle one with another.

In the end they become friends and play together.

Like this I fold my arms, and peer into my inside.

 

trans. Ko, Chang Soo

 

12축생

 

내 속에 열두 마리 짐승이 돌아다닌다

초원의 순한 양이

야산을 휘몰아쳐 야생마로 달리다

어느 날은 고개 파묻고 눈 감은 고양이처럼,

 

내 속에 도깨비 열두 마리 산다

방망이 뚝딱, 사랑 나오라 영원하라, 조석으로 바뀌는 소리

믿지 마라,

나도 내쫓지 못한 나 모르는 도깨비

유령처럼 내 안팎을 드나든다

 

각기 다른 몸들이 다른 우주에서 와

늑골에 숨었다 눈 속에 어른거리며

내 속에서

나보다 커지고 나보다 깊어지고 싶어 해,

 

급기야 나는 몸에 자물통을 채우고 나와 버렸다

빨간 몸 파란 몸 검정 몸들이 섞여 서로 티걱거리다

종내에는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팔짱을 끼고 오래 내 속을 바라보는 중이다

 

赤ぃ部屋

 

誰しも体の中に赤い部屋の一間ずつは保っている

左心房右心房その後ろ, 最も深く剃刀の刃で隱しておいた部屋

夢が赤く, 赤くて死ぬはずがない

熱望に爛れて哀しい斑点のように刻まれた部屋

花蘂にまで赤い絵の具を注いだ血のような部屋

空嘔で息咳きながら抱き込んでいた部屋

熱い血を激しく下しながらも私の部屋だと言い張った

花びら, その血の香り

 

氷を抱えゐ零下10度の体感にてさえ

明かりが消え去ゐことのない部屋

 

その赤い部屋を支えた不屈の芯の気が

地獄の火脚を通り過ぎて

明かりが消えた私を蘇らせた

 

詩  張舜琴

日訳  高貞愛

 

붉은 방

 

누구나 몸속에 붉은 방 하나씩은 갖고 있다

좌심방 우심방 그 뒤, 가장 깊이 면도날로 숨겨놓은 방

꿈이 붉어, 붉어서 죽지 않는

열망으로 짓물러 서러운 반점처럼 찍힌 방

꽃술까지 붉은 물감 쏟은 피 같은 방

헛구역질 헉헉대면서도 끌어안고 있던 방

뜨건 하혈 무섭게 쏟아내도 내 방이라 우기던

꽃잎, 그 피의 향기

 

얼음 껴안은 영하 10도의 체감으로도

불 꺼지지 않는 방

 

그 붉은 방을 지탱한 독한 심지의 기운이

 

지옥 불길 속을 지나

불 꺼진 나를 살렸다

 

詩人의 말

시간이란 말이 절실했다.

야생으로 시간이 떠돌던 때에도

詩神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사이

싱싱하게 자란 조그만 잎맥 하나가

골방 창문으로 하늘과 내통하며

시간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2012년 가을

장 순 금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흑염소, 은하수 건너가는

프린트하다 / 제왕 / 평화고물상 / 바닥론 / 그 남자의 연애법 / 흑염소, 은하수 건너가는 / 웨딩마치 / 12축생 / 수정로타리 / 뻥 할아버지 / 아날로그, 당신 / 살풀이 / 오래된 사진 / 무릉노인정 / 영락공원

 

제2부 붉은 방

입춘부 / 새집 태몽 / 에덴목욕탕 / 붉은 방 / 꽃팬티 한 생 / 내 탯줄 인제 끊겼다 / 속죄 의식 / 수면 내시경 / 종합비타민 / 지옥과 악수하다 / 첫 술 / 틀니 / 껍데기 / 위독 / 눈물밥 / 배꼽 매듭

 

제3부 나무 코끼리

벚나무 나이테 / 도장 / 바톤 터치 / 봉오리 터지기 직전, / 태풍 / 흑백풍경 / 해독불명 / 흉터 / 나무 코끼리 / 낯선 손등 / 비밀번호 / 이명 / 숟가락 / 들판, 그루터기 / 사과 / 십장생

 

제4부 사람의 아들

아름다운 청빈 / 허물 / 가락지 /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 환골탈태 / 맨밥 / 계단이 출렁거렸다 / 직거래 / 그의 혀는 늘 햇빛의 문자를 꿈꾼다 / 희망 감옥 / 내가 일용할 양식 / 사람의 아들 21 / 사람의 아들 22 / 사람의 아들 23 / 사람의 아들 24

 

 

프린트하다

 

목욕탕에서

허리에 나비 문신한 여자를 보았다

살이 잉크를 빨아먹고 나비가 되었다

나비 앉은 자리에서 허리로 날개가 돋았다

집으로 돌아와

프린트기 전원을 켜고 시 한 편을 클릭했다

백지가 온몸으로 잉크를 빨아들여

한 획씩 문신을 박아 나왔다

시 한 편이 백지의 살을 뚫고

내 이름에 문신을 새겨 나왔다

시를 제 살 속에 박고 사는 시인은

나비다

허리 동그랗게 고요를 가두었다 창공을 오르는

나비 발개다

목욕탕에서, 살에

프린트한 시 한 편이 지나갔다

 

껍데기

 

알몸 둘이

축 처진 거죽 몇 겹 안고

목욕탕 문을 밀고 들어왔다

 

더듬더듬 앉아

마른 명태 같은 팔로 허우적, 허공 웅덩이에서 물을 퍼낸다

수분이 다 빠진 굽은 고목 둘이

서로 형님 동생 그러며 근근이 등 밀어 준다

손닿지 않는 것이 어디 등뿐이랴,

 

허연 실타래 같은 굽이친 머리에

흰 거품 뭉게뭉게 피워 올려 구름 동산 만들려나,

팔 다리 얼룩덜룩 저승꽃

하얗게 거품꽃 부풀려 빈 몸에 입혀본다

 

거품 같은 한 시절,

물 몇 바가지 퍼부어주니 순식간에 하수구로 흘렀다

 

나도 그 하수구에

누더기 껍데기 하나, 내던지고 왔다

 

평화고물상

 

아파트 뒷길에 고물상이 생겼다

잊혀지고 버려진 것들이 하나씩 서로 곁을 내주더니

뒷길도 한통속이 되었다

처음에는 모두 순한 새 것으로, 처음에는 선물로 세상에 왔는데

바람에 넘어지고 구름에 밀리고 허공에 밟히고 시간에 잊혀져

날선 자존감도 빛나는 기억도,

마침내는 그늘 한 뼘마저 세상의 뒷길에 내놓았다

그냥 한가족이 되어서

금간 것들끼리 서로 문지르며 평화 한 줌을 나누어 갖는다

밤이면 평화고물상 앞으로 한 수레씩 배달되는 별빛 달빛

 

입춘부

 

여덟 살에 수술 받고 학교를 쉴 때

햇살이 길게 누운 마루 끝에 앉아

공중에 떠도는 먼지를, 그 안에 반짝이는 빛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고 쓴 한약을 마셨다

 

대문 밖 아이들이 가방 메고 가는 꽃길,

약냄새를 밥내처럼 맡으며

아이들의 봄을 숨어서 보다

울다

거품이 빠져나간 내 봄을 메고

아홉 살 지나 첫, 학교 가는 길에

 

나는 얼음 같은 햇살에 데었다

 

발바닥이 얼얼하도록 온몸의 살이 땡기도록

내 살갈피를 책갈피처럼 열어젖히는

그 어린 날, 얼음처럼 차갑고 뜨거운 햇살이

 

흐물흐물 몸뚱이 버리고 싶은 오늘

정신날 시퍼렇게 일으키는 복부 오른쪽

통증이

그 햇살을 메고

다시 나를 찾아왔다

 

제왕

 

경부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 입구

좁은 병목에 한데 몰려

위태롭게 엉키며 다칠세라 기어가는 자동차들

 

그 사이,

길을 가로질러

골판지 넘치게 싣고 나타난 리어카,

홀로 당당히 유유자적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길을 가르고

양 옆으로 만조백관 거느리고

등극하듯

낡은 밀짚모자 왕관이 빛난다

 

모두들 일시에 숨 멈추듯 제자리서

경례하듯

거리의 제왕을 올려다본다

 

뻥 할아버지

 

금요일마다 오는 동네 뻥튀기 할아버지

반평생을 뻥치다, 헛살았다고

느즈막에 진짜 뻥튀기며 산다는 뻥 할아버지

 

귀 막고 살아보니 하늘이 잘 보이더라고

질곡의 모서리를 돌아온

회오리바람 같은,

30촉짜리 전구 같은 할아버지

 

낟알 귀한 줄 아는,

불화로 속에서 그 삶이 삭히고 발효되어

연기 속에서 부화하듯

낟알 튀는 순간

팝콘 같은 나비들이 빙 둘러서서 탄성을 질렀다

불빛 속에서 꽃들이 활짝 익었다

 

뻥이, 세상 읽는 경전이 되었다

 

흑염소, 은하수 건너가는

 

흑염소즙을 주문하려고 건강원 문을 밀고 들어섰다

여기저기 흑염소 사진, 너머 뭉게구름 흘러가고

치켜뜬 눈, 빳빳이 쳐든 뿔,

흑염소는 지금 하늘을 바삐바삐 걷는 중이다

 

발바닥 물들인 초원의 풀빛들

해와 달로 여물게 뿔을 다지던 기억들

다 풀어놓고

먼저 간 친구들 찾아가는 중이다

 

몸이야 어차피 보시했으니,

이왕이면 햇살과 바람 구름과 함께 흐물흐물하도록 고아

아침마다 푸른 들판 한 잔씩 진하게 마시라고,

 

울컥 치빋고 싶은 날은

즙 속의 치켜든 뿔 불러내 들이받으라고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반가운 얼굴 만나러 가는 중이다

뿔로 노 저으며 은하수 건너가는 중이다

 

그렇게 나도

흑염소 한 점 가물가물…

그 뒷모습 찾아가는 낮달의 반짝임을 보는 중이다

 

나무 코끼리

 

내 방에 사는 아기코끼리들을 아시는지요

열대나무들이 제 어미랍니다

 

햇빛이 몸을 만들어 주었고

비와 바람이 속을 채워 주었지요

 

어미가 그리울 때면

열대림의 섭씨 40도의 기억을 긴 코에 말아 넣고

한 발, 또 한 발 올렸다 놓으며

코끼리 춤을 춘답니다

 

장대비 쏟아지는 날은

아기 코끼리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

어미 냄새나는 그 숲의 빗줄기가

방 안으로 쏟아집니다

 

제 어미, 열대나무로 서로 부비며

짙푸른 잎사귀 방 안에 펼쳐

바람 한 점 없는 열대야의 내 여름도 불러들여

한바탕 코끼리 춤을 춘답니다

 

사람의 아들 · 21

 

예루살렘에는 예수가 없었다

이천 년 동안 닳고 닳아 겨자씨만 해졌다가

내가 예루살렘에 간 날 없어졌다

예수가 밟았다는 전설 같은 돌계단 사이

긴 옷자락 부여안은 흙먼지 켜켜이 쌓여

내 발목을 붙들었다

달빛 아래,

시신 염한 차가운 돌 위에

꿈결같이 젖은 바람과 함께 내가 누웠다

나르드 향료 한 방울이

시공을 진동하며 내 위에 떨어졌다

천리향이

예루살렘이 건네 준 사랑 한 장 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예수가 먼저 와

묵은 먼지를 몰래 털어내고 있었다

방안 가득 출렁이는

갈릴레아 호수가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나를 지켜보았다

 

사람의 아들 · 22

 

날마다 내 속에서 유다가 태어났다

하루는 입 속에서 하루는 늑골 밑에서 걸어 나와

태연히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입술이 닭벼슬처럼 빨간 유다는

이스라엘의 꼬꼬성당 담벼락에서도

세 번의 검은 눈물로 태어나

스스로 붉은 혀를 지옥도에 그려 넣었다

 

유다는

은화 서른 냥에

귀도 눈도 팔고 혀도 팔고

하늘도 팔았다

하늘의 심장도 팔았다

 

입술이 닭벼슬처럼 발갛게 번져 가는 동안

지옥도의 붉은 혀가 걸어나와

천둥 번개의 눈치를 보며 돌아다녔다

 

어디선가 많이 본 그림이었다

 

그분의 유다였던 나를 보았다

 

사람의 아들 · 23

 

예수가 서울에 왔다

그가 살던 이스라엘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맨몸에 십자가 하나 달랑 메고

불빛 속 하늘로 삐져나온

서울의 옥탑방으로 이사를 왔다

밤에는 십자 별천지

지상이 아름답고 눈이 부셔

예수는 선글라스를 꼈다

 

낮에도 야광처럼 번쩍이는

사랑 메시지는 지하철 안에서 길거리에서

서울로 덮고도 남아

옥탑방 꼭대기까지 밀려와 문을 두드렸다

사랑 팝니다

무료로 팝니다 무료로 사세요

 

예수는 뾰족한 종탑에서 종탑으로

이천년을 끌려다니며 종소리로 울다가

서울로 와서도 계속 소리 높여 기도해야 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사람의 아들 · 24

-고 이태석 신부

 

아프리카 수단에 예수가 다녀갔다

하늘도 흙도 얼굴도 까만 땅에 와서

우유빛 눈물을 꺼내놓고 갔다

한센 환자도 아이도 노인도 군인도

예수가 놓고 간 눈물을 먹으며

 

눈 속에 음각된 눈물을 오래 생각했다

눈물 속에서 악기 소리가 나고

터진 발톱이 보이고

꿈같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던

아이들은

성당보다 먼저 지은 학교로 모여

빈 집 같은 책을 폈다

 

하얀 치아, 하얀 손바닥으로 서로 맞잡고

예수가 잠시 살다간 땅에서 하늘 보는 법을 배웠다

밀알이 방울방울 떨어져 온 나라에 양식이 퍼졌다

눈물을 놓고 간

아프리카로

예수의 친구들이 부지런히 오고 있는 중이다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혼자 겨우 들어가는 혼자만 아는 골방, 때론 쉬어가고 울다 가고 얼굴 묻은 방, 내가 조그만 알처럼 둥글게 되는 좁은 방에 들어서면 산도 구름도 낮아지고 달빛도 내려와 두 손을 모은다

 

골방에선 일생을 걷던 내 발이 보이고 감춰둔 발톱도 보인다 더 크게 더 자세히, 갈라지고 튼 뒤꿈치로 걸어온 길, 길의 튼 살이 보인다

 

무념무상의 얼굴로 골방이 나를 본다 나도 깃털처럼 앉아 골방의 복부를 연다 골방은 침묵하는 수다쟁이, 내가 하지 않은 말까지 다 말해 버린다 나는 몸을 숨긴다

 

골방 속에서도 또 몸을 숨기는 나의 골방

 

몸에 꼭 맞는 골방에 꿇어앉으면 꿇어앉은 당신이 보인다

 

 

 

 

posted by 황영찬

2014-061 제주도 음식

 

글 / 김지순●사진 / 안승일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6

 

082

빛12ㄷ  214

 

빛깔있는 책들 214

 

김지순-------------------------------------------------------------------------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제주전문대학 가정과 전임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제주도 지부장, 김지순요리학원 원장, 제주전문대학 관광호텔조리과 전임교수로 있다.

 

안승일-------------------------------------------------------------------------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 사진학과를 중퇴하였다. 1969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산악사진전'을 가졌고, 1995년 일본의 이와하시와 함께 '백두산 2인전'을 열었다. 1977년부터 '그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산악사진가회 회원으로 있으며 사진집으로는 「산」(1982) 「삼각산」(1990) 「한라산」(1993) 「백두산」(1996) 「굴피집」(1997)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제주도의 자연 지리적 환경

알뜰하고 소박한 식생활

제주도의 고유 음식

절기 음식과 의례 음식

맺음말

부록 - 부엌 세간

삼성혈  제주 개국 신화의 발상지로 고, 양, 부씨의 시조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솟아났다는 구멍이다.

천지연 폭포  폭포의 규모나 경관이 뛰어나 관광객들의 발길을 묶어둔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폭포 주위에는 상록수와 난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오름  제주도에서는 화산의 중턱이나 기슭에 새로 분화하여 생긴 기생화산을 오름이라고 부른다.

성산일출봉  제주도의 동쪽 끝머리에 위치한 기생화산으로 영주십경 중 제1경인 성산일출로 유명하다.

한라산  한라산은 제주도의 중앙에 솟아 있는 화산으로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제주 전역을 지배하는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의지처 역할을 한다.

메밀밭  하얀 꽃이 충성한 제주도의 메밀밭은 관광객들에게 서정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제주 사람에게는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해녀  밭일에 물질에 집안일까지, 제주 여인들은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힘겨운 생활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왔다.

빗물받이  먹을 물이 귀하였던 제주도에서는 한 바가지의 물이라도 헛되게 쓰지 않았다. 먹을 물은 길어 왔지만 그 외의 생활용수는 빗물을 받아 사용하였다.

허벅을 지고 물을 길어 오는 아낙  제주도에서는 물을 긷기 위해 몇 킬로미터씩 걷는 것이 보통이다. 허벅을 진 제주 여인의 모습은 제주를 대표하는 풍경 중의 하나이다.

낭푼밥상  다른 지방과 달리 제주에서는 밥을 가족 수대로 따로 뜨지 않고 낭푼이라 부르는 놋그릇 하나에 담아 밥상 가운데 두고 가족들이 같이 먹었다.

톳 채취  밥이나 국, 반찬에 두루 넣어 먹을 수 있는 톳은 제주도의 중요한 저장 식품 가운데 하나이다.

동지짐치  겨울이 지난 후 김치가 시어져 맛이 없어질 때쯤이면 싱싱한 동지나물이 나와 산뜻한 봄을 느끼게 한다.

호박잎국  다른 야채에 비해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된다.

자리물회

자리돔을 제주에서는 ‘자리’라고 부른다. 제주 가까운 바다에서만 잡히는 생선 가운데 하나로 5월과 8월 사이에 많이 잡힌다. 특히 알을 배고 있는 시기인 음력 5월에서 6월 사이가 가장 맛있다.

자리는 강회, 물회, 구이, 조림, 젓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지만, 시원하면서도 진한 국물맛이 일품인 자리물회가 별미로 꼽힌다.



-. 자리물회 만들기

재료/ 자리, 오이, 파, 깻잎, 미나리, 부추, 풋고추, 재피잎, 마늘, 토장, 초고추장이나 고춧가루, 깨소금, 식초, 후추, 참기름, 설탕

만드는 방법/

1. 자리 손질하기 : 비늘을 긁어내고 양쪽 지느러미를 잘라버린다. 머리는 눈 있는 쪽으로 내장 있는 데까지 비스듬히 자른다. 꼬리는 자르지 않는다. 이렇게 손질하면 못 먹는 내장이 제거된다. 손질한 자리를 살짝 씻어 머리쪽은 곱게 다진다. 몸쪽은 등쪽으로 어슷썰기를 하면 가슴의 작은 뼈가 잘게 잘라진다.
2. 썰어놓은 자리에 식초를 약간 뿌려둔다.
3. 오이는 채 썰고 다른 야채들은 잘게 썬다.
4. 양념에는 꼭 토장을 써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재피잎은 향도 좋고 비린내도 가시게 하는 야채다.
5. 자리에 모든 야채와 양념을 넣고 무친 후 물을 붓는다.

우럭콩조림  콩에 밴 우럭의 맛이 구수한 우럭콩조림은 영양가가 매우 높은 음식이다.

구살젓 영양이 풍부한 구살젓은 밥에 비벼 먹기에 좋다.

구쟁기구이  소라를 그대로 불에서 구우면 되므로 특별한 손질이나 양념이 필요 없다. 먹을 때는 쓴 부분을 빼고 먹는다.

전복죽  전복은 오래 전부터 뛰어난 맛과 영양을 널리 인정받은 귀한 음식 재료이다. 전복죽은 임산부나 어린아이, 노인, 환자의 영양식으로 인기가 높다.

 

보리쉰다리

보리쉰다리는 제주 사람들이 식생활에서 보여 준 알뜰한 지혜의 산물이다. 여름에 보리밥을 먹다가 그대로 두면 쉬기 쉬운데 제주 사람들은 이것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다른 음식으로 만드는 생활의 지혜를 보여 주고 있다.

재료  보리밥, 누룩.

만드는 법  하루나 이틀쯤 지난 보리밥이 부패하기 시작하면 밥에 손가락을 넣어서 쑥 들어갈 정도가 되었는지 살펴본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가 되면 보리밥에 물과 잘게 부순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다. 여름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 겨울에는 5, 6일 정도 발효시킨다. 밥이 발효되어 뭉글뭉글하게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것을 체로 걸러서 끓여 마신다.

설탕을 첨가하기도 하는데 설탕의 양에 따라 신맛이 조절된다. 기호에 따라 끓이지 않고 먹기도 하는데 끓일 때보다 새콤한 맛이 더 강하다. 이 고장 사람들이 여름에 마실 수 있었던 유일한 음료이며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즐겨 마셨다.

갈치호박국  가을갈치에 가을호박으로 끓인 갈치호박국은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아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음식이다.

고구마차조밥  곡식이 귀한 제주도에서는 고구마 등으로 밥의 양을 불러 허기를 채웠다.

꿩토렴  꿩의 가슴살로 만든 꿩토렴은 먹는 방법이 샤브샤브와 비슷하다.

오메기술

제주고유의 술은 제조방법에 따라 ‘닦은 것’과 ‘생으로 한 것’ 두 가지가 있다.

닦은 술은 누룩으로 빚어 익혔다가 고소리에 내린 증류주인 ‘소주’가 있고, 생으로 한 것에는 감주, 청주, 탁주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주와 탁주를 많이 먹었다.
‘골감주’라고도 부르는 감주는 가장 귀하게 여기는 술이었다. ‘골’은 단맛을 내는 엿기름을 일컫는 것이다. 감주는 제사나 명절 때 제주로 올렸다.

청주는 좁쌀가루로 빚은 오메기술에서 떠낸 술이다.
노릇노릇한 기름이 위에 도는 청주는 귀하게 여겨 잔치, 제사, 굿 등에 쓰이고 ‘탁배기’라 부르는 탁주는 농주로 이용했다. 순 곡주여서 영양이 풍부하고 특별한 안주 없이도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차조로 빚는 오메기술은 쌀로 빚은 술과는 달리 좁쌀의 독특한 양기와 새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허기나 갈증을 없앨 뿐만 아니라, 피로회복에도 좋다. 오메기술은 1983년 국세청에서 제주도지방민속주로 지정했다.

-. 오메기술 만들기

오메기술은 10월에서 1월 사이에 만드는데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다.

재료/ 차조가루와 누룩을 3대 1의 비율로 준비한다.

만드는 방법

1. 차조가루를 반죽해 둥글게 빚어서 가운데 구멍을 내고 끓는 물에 넣어 삶는다. 이때 솥 밑에 떡이 눌어붙지 않게 잘 저어준다.
2. 떡이 익으면 물 위로 떠오르는데, 차례로 건져서 뜨거울 때 떡 삶은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잘 푼다.
3. 누룩을 잘게 부수어 넣는다. 좁쌀의 양이 3이면 누룩의 양은 1이 되도록 한다.
4. 된죽보다 조금 묽게 잘 섞여진 반죽을 술독에 넣고 뚜껑을 덮는다.
5. 온도의 변화가 적도록 옷이나 이불로 싸서 한 달쯤 발효시키는데, 잘 발효되도록 하루에 몇 차례씩 저어준다.
6. 어느 정도 발효돼 술이 괴기 시작하면 덧술을 한다. 발효되는 과정에서 위의 것을 청주라 하고 밑에 있는 것을 탁배기라고 한다. 한두 달 뒤에 먹기 시작한다.

몸국(모자반국)

제주에서는 모자반을 ‘ㅁ·ㅁ’ 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큰일이라고 해서 혼례식이나 장례식, 소기, 대기 등에 돼지를 잡는다. 큰 가마솥에서 돼지와 순대를 삶고 나면 국물은 진한 육수가 된다. 이 육수를 가지고 국을 끓인다. 모자반은 지방을 흡수하고 비계의 역한 냄새를 없애주므로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
혼례식의 잔치 전날인 가문잔치에도 국은 꼭 먹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영양이 풍부한 몸국은 마을사람들의 구수한 인정을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국 만들기
재료/ 돼지고기 삶은 국물, 모자반, 김치, 미역귀(돼지 내장인 장간막), 소금, 후추, 메밀가루나 보릿가루 또는 밀가루

만드는 방법

1. 모자반은 말린 것을 빨아 사용하는데, 제철일 때는 데쳐서 사용하기도 한다. 햇몸으로 끓인 국은 ‘몸국’ 이라 해서 별다른 맛으로 친다.
2. 돼지를 삶고 난 육수에 모자반을 넣고 김치도 있으면 약간 넣고 돼지내장인 미역귀를 썰어 넣어 끓인다.
3. 메밀가루를 푼다.

느르미전  제사상에 올리는 전으로 실파와 고사리가 주재료이다.

빙떡  메밀의 담백한 맛과 속재료로 사용한 무채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빙떡을 지질 때 감귤이 옆에 있거나 보관중인 메밀가루 옆에 감귤을 놓아 두면 빙떡이 잘 지져지지 않는다고 한다.

곰박

양념단지(네성제단지)

구덕에 담긴 허벅

 

 

 

posted by 황영찬

2014-060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안숙경 시집

2007, 천우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03281

 

811.6

안56보

 

첫 월경이 터진 날부터 보름달을 그려 놓고, 그 안에 맨드라미를 심었다.

꽃이 필 때마다 헛꿈인 줄 모르고 꿈만 키웠다.

가슴은 보름달만큼 커지고, 눈은 작아지고, 귀는 멀어지고, 손발은 떨어져 나간다.

입만 살아서 골목을 죽이고, 길을 만들고 싶은 맨드라미는 울다 웃다 족보에 갇힌 술꾼이 되었다.

아버지 닮은 발가락은 떠도는 별이 되었다. 치매에 걸린 유년의 목걸이만 가슴을 치고 있다.

 

안숙경 詩人

 

부산 출생

쥬리아 소네트 공모전 동상(1993)

『문예한국』 「화장을 지우고」로 등단(1993)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시상문인 회원

시인의 세상 초대작가

공저시집 『사랑의 노래 소네트』

             『빈 가지에 이는 바람소리』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2동 184-107

         청림파크빌라 나동 301호

이메일 : sundance425@hanmail.net

 

차례

 

■ 시인의 말

 

1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나 / 숫자판에 없는 번호표 / 밤…춤 / 빵 /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 젖몸살을 앓는 여자 / 모자 속에 갇힌 여자 / 저 별이 위독하다 / 내 사랑 황소자리는 잠들고 / 아스피린 두 알 / 이 가을엔 삼나무 숲에 숨고 싶다 / 돼지꿈을 꾸고 싶은 날 / 아니면 말지 / 바람이 바람나면

 

2 골목 안의 죽음은 신문에 샬리지 않는다

어딘가에 /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 뒤꿈치가 권태로운 오후 다섯 시 / ?실화입니다 / 그래도 날개가 있는데 / 첼로 / 모기 / 바퀴벌레 / 늦가을 저녁 / 가을 남자 / 길에게 묻다 / 인사동 만다라 / 시(詩)방 / 골목 안의 죽음은 신문에 실리지 않는다 / 박쥐 / 당분간은

 

3 사주 도둑은 없다

사주 도둑은 없다 / 추락한 손금 / 전화가 묻는다 / 사철나무의 노래 / 연(緣) / 업(業) / 맛있는 죽음 / 맨발로 아침을 부른다 / 마침표 화가와 쉼표 여자 / 기억에도 없는 날들로 / 얼지 마 / 비상구가 없다 / 한번 흔들어봐 / 이사 가고 싶다 / 이 시대의 귀신

 

4 서울 집시, 2006

11월의 꿈은 바람도 피해 간다 / 봄비를 밟으면서 / 삼팔따라지 / 야단법석 · 1 / 야단법석 · 2 / 야단법석 · 3 / 야단법석 · 4 / 야단법석 · 5 / 정동진 / 방패연 / 아쟁 산조 / 신들린 뒤꿈치 / 너름새에 흥을 박고 / 노을로 태어난 춤꾼 / 서울 집시, 2006

 

5 위장은 춥다

오월의 숲 / 위장은 춥다 / 가을은 / 통조림 음악 / 황지우 조각전(展)에 부치다 / 달팽이 / 밥그릇 / 귤은 이 맛이 아니야 / 그는 · 1 / 그는 · 2 / 그는 · 3 / 이웃 / 지하철 2호선을 타본 적이 있나요 / 유리창에 핀 백합 / 어금니가 흔들린다 / 푸닥거리 / 화장을 지우고 / 병실에서 / 수제비에 관한 기억 / 거울 / 한 방울 안약 / 사철나무의 노래 · 3 / 밤의 기별 / 죽었니, 살았니 / 출입 금지 / 홀로 춤을

 

…춤

 

벗었지 모두 벗어 버렸지 가슴 한쪽에서 보라색 무덤이

커지고 있는 걸 느꼈지

 

꿈에 시달리는 기타 울음을 달래려고, 발이 예쁜 그 여자는

맨발로 춤을 추지

 

열매에 빛을 저장한다는 일월 달밤에, 인디언 소녀처럼

긴 머리 팔랑거리며 춤을 추지

 

생명을 수혈받은 팔과 다리는, 별꽃이 만발한 별밭으로

날아다니며 춤을 추지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첫 월경이 터진 날부터 보름달을 그려 놓고, 그 안에 맨드라미를 심었다. 꽃이 필 때마다 헛꿈인 줄 모르고 꿈만 키웠다. 가슴은 보름달만큼 켜지고, 눈은 작아지고, 귀는 멀어지고, 손발은 떨어져 나갔다. 입만 살아서 골목을 죽이고, 길을 만들고 싶은 맨드라미는 울다 웃다 족보에 갇힌 술꾼이 되었다. 아버지 닮은 발가락은 떠도는 별이 되었다. 치매에 걸린 유년의 목거리만 가슴을 치고 있다.

(아아 가슴만 살아서 움직이네)

 

내 사랑 황소자리는 잠들고

 

노인네 씻기고

젊은 애 깨우고

주변의 초상화를 닦고, 쓸고

하루는 멀고, 내일은 지루하고

카페인에 담금질하면서

삶의 풍경에 주리를 뜰면

혼자만의 놀이에 하품이 비명이 된다

 

비틀어 잠가도 새어 나오는 수돗물처럼

흐르는 꿈에서 썩은 사과 냄새가 난다

 

토하는 일상의 권태로움

리듬을 타고 책 보따리 품었다 쌓았다

먼지로 가슴을 적시면

폐병 말기 환자처럼 기침이 나를 깨운다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내 안에서 펄떡이는 것들을

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내는 일

그것이 오후 4시에 해야 하는 일

제 몸 끓여가며 불과 싸우는 건

체념이 아니고

길들여가고 있는 한낮의 햇살 같은 것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희망 같은 것

 

끓고 있는 냄새가 방 안 가득 채운 동안

젓가락이 필요 없는 국물은

또 다른 이름으로 7시를 만난다

 

땅거미가 찾아온 창문 너머

잠깐 눈 맞춤 했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첼로

 

젖은 살결처럼 흐르는 아다지오

잿빛 그리움 타고 스며든다

자색 등꽃 터널을 빠져나온 나비 한 마리

구름에 떠밀리어

이슬로 바람 카고 흐른다

음(音)의 무게로 끊어진 혼자만의 날갯짓

금 간 손바닥으로 시린 가슴 쓰다듬으며

짙은 비음으로 깨우는

오늘의 장애, 내일의 장애

 

시(詩) 방

 

늘 깨어 있어 밤이 없는 방

책벌레가 춤을 추면 연필이 추임새를 넣고, 종이가 소리를 한다

진통은 신이 난 듯 산달을 채근한다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그 방은, 자음과 모음이 꽃으로 피는가 하면

곧 시들기도 한다

 

전화가 묻는다

 

집으로 전화를 한다

울리던 신호음 끝나고

- 지금은 외출 중이니 말씀을 남겨 주십시오 -

또 다른 목소리는 남겨지지 않았다

외로움이 똬리를 틀고 있는 전화기

피아노곡 유령이 살고 있는 방

목소리의 유령이 녹음되고 있다

만질 수 없는 음(音)이 손가락으로 들어와

카타쥘리처럼 굳은 몸을 두드린다

불행에 맞추어 방을 슬프게 하는 조명들

울음에 맞추어 방을 눈물 젖게 하는 소리들

지나가는 여인 2가 욱음을 던져준다

 

평생은 얼마 만큼인가

전화가 묻는다

 

이사 가고 싶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신음 때문에, 방바닥은 갈라지고, 시(詩)는 버려지고, 머리카락은 까치집을 짓다 허연 가루를 밤새도록 깔아 놓는다. 긁어 부스럼 만든 손가락은 연필을 부러뜨리고, 절망은 벽을 타고 창문을 넘다가 피 흘리며 짜증과 욕설로 원고지를 찢는다.

 

   왼손은 왼발을 찍고, 오른손은 오른발을 찍는 나를 처형시키는 다락방에는 음악만 살아서, 트럼펫이 또 한번 죽여준다. 항아리 속에 갇힌 빗물처럼 부패한 감성.

 

   예매가 필요한 시어(詩語). 줄서기를 포기한 절름발이 시간 탓이야, 언젠가는, 언젠가는 되풀이하며, 게으른 미래를 점(占)치는 불길한 다락방.

 

야단법석 · 4

- 그냥 시인의 장례식

 

이 세상아 나는 빈손으로 간다 공수래 공수거

오복은 물복이다 술 석 잔은 살아도 석 잔, 죽어도 석 잔

간다 간다 한날한시를 모르는 세상아 춤을 추어라

산 사람 마음 풀고, 죽은 사람 마음 풀어

도깨비타령 진양조로 칠흑 같은 세상 가르네

한바탕 놀음으로 춤을 추어라

이 세상아 고부라지게도 질긴 세상아

 

꽃상여를 타고 떠나는 길손아

첫 잔은 사랑을 기억하는 맛이오

둘째 잔은 시(詩)의 행(行)을 가르는 맛이오

셋째 잔은 묶이고, 벗기고 푸는 맛이오

가오, 가오, 그냥 가오

폭죽을 터뜨리는 오월의 장미에 누워서

 

너름새에 흥을 박고

 

- 으이, 얼시구 -

 

고수의 추임새에

자귀나무에 앉아 있던 나비

노랑머리 풀어헤치고 요사를 떤다

쟁쟁 울리는 바람결

계면조로 풀리더니

두레박에 숨어 있던 어제의 내가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춤을 춘다

신명을 연필도 장단을 맞추고

소리꾼 북채 휘두르니

흥에 젖고 땀에 젖은 오늘의 詩가

나비 되어 날아다닌다

 

오월의 숲

 

나무는 서로 말한다

천년을 돌아 그 자리에서 약속도 없이

비 내리는 오월에 웃음으로 만나고 있다

선명한 사랑으로 젖은 잎사귀는 숲이 되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만나는 크고 작은 나무 사이로

구름이 떠돌아다닌다

고요와 함께 내리는 비에 젖은 해맑은 그리움은

부풀어 오월의 마지막을 아쉬워한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생긴 삶의 산등성이를

걸어서 퉁퉁 부어오른 발등

나무에 기대어 젖은 잎으로 얼굴을 숨긴다

나무는 말한다

누구나 등에 지니고 다니는 인연으로

사람은 점점 작아진다고

몸 안으로 밖으로 굴러다니던 바퀴는

삶의 은유로 길을 트는 나무 사이로 굴러간다

완전한 자유로 숲은 하늘을 덮는다

 

화장을 지우고

 

누군가에 의해 다리는 잘리고

그 눈길은 심장을 가르고

입술을 트게 만들었다

 

떠도는 숨결은

숨겨진 또 하나의

껍질을 벗긴다

 

화장을 지운 얼굴은

속까지 드러내며

세수를 한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가지런한 눈썹은

눈 뜨기를 거부하며

손바닥에 눈물을 심는다

 

골목 안의 죽음은

신문에 실리지 않는다

 

새벽 5時인지, 오후 5時인지 판토마임을 하는 세상

손짓, 발짓은 허무의 개그였다

허연 거품으로 몸치장을 하고

어둠의 박자를 긁어내듯 블루스로 움직인다

 

뼈까지 뒤틀리는 하루하루가

장애로 365日을 모두 삼켰다

 

네가 인제는 지겨워

치매 중인 세상 혼자만의 연기는 서툴다

만들어진 비극에는 재수 없는 이유만 등장했다

아니면 말지

 

못숨 걸고 덤빈다는 건 거짓말이다

울지 마 눈물은 마음을 마르게 하지

심장 뛰는 대로 살게 내버려둘걸 그랬나

즉석 사진기에 버려진 사람들의 증명사진에

내 얼굴이 찢어져 있다

 

모든문예지의등용문은전쟁중이다창칼에목이잘려도골목안의죽음은신문에실리지않는다

 

사주 도둑은 없다

 

   맥반석에서 구워지는 한치처럼, 가을 햇살이 가슴 속에서 구워지고 있는 종로에서, 늘 소풍 가는 여자가, 보따리를 풀고, 피리를 불며 춤을 추고 있다. 볼장 다 본 사람들만 모여 박수를 치고 있다. 며칠째 세수도 안 한 그들은 마음 안에 숨겨 논 것을 토하며, 생명이 된 눈물의 춤을 추고 있다. 이불로 포갰던 신문들이 찢어지며, 바람개비로 돌고 있다. 가난은 게으른 자의 책임이라고, 기사를 썼던 기자의 얼굴이 찢어져 종로 거리를 돌고 있다.

 

   가장 많은 이웃을 가진 시청 지하도의 식구들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어젯밤 자고 간 여자를 보내려고 박수를 치고 있다. 그 소리에 나무젓가락들이 쏟아지며, 다른 세상의 다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전생에 안개를 사랑했다가, 안개를 임신해, 다시 거리의 안개로 태어난 그들은 집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구워진 햇살로 다리를 감싸고 있는 그들은.

 

서울 집시, 2006

 

효자동 단발머리로 6년, 긴 머리로 4년을 걸어 다니면서도

4 · 19도 모르고, 5 · 16도 모른다

하이네 베끼고, 슈베르트 귀에 걸고, 니이체 가슴에 품고

세상은 몰라요 다

 

산(山)이 한 번 넘자 북한산이 보였고

산(山)이 또 한 번 넘자 이순신 장군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날마다 경례를 하면서 광화문을 떠돌았다

꿈과 이상이 소박맞고, 사람들에게 뺨 맞고, 화가 찬 마음 풀려고

화간을 쓰고, 화풀이 굿을 벌리고 싶어, 경복궁 은행나무를 안고 다녔다

 

빌딩숲에 갇혀 숨이 막혀도

실존의 단비 자판기 커피 맛과, 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오후 햇살의 게으름을 만나는 여유로 살고 있다

 

삶의 숨결 하나가 트였다

청계천에 한을 품었던 아들아 풀어라

둥글둥글 어울려 서로 도와 축축하게 살자

박수를 쳐라, 웃다 보면 즐겁고, 울다 보면 슬프다

사람들아, 서울아

신분을 죽여라 감탄사를 아끼지 마라

세상이 춤을 추고 있지 않니

긴 치맛자락에 붙어 다닌 독한 스트레스가

춤을 추고 있지 않니

 

위장은 춥다

 

밥알이 위벽을 부순다

구역질을 비린내가, 쉰내까지 게워내며

망가진 위장을 안고 병원 침대에 눕는다

빨간 꽃이 만발한 위장

신물로 채운 하루하루가

화살표 없는 위장은 하수구가 되었다

밥맛없는 삶은 밥만이 좋은 무기

예민한 위장을 무시한 죄

 

약 봉투를 들고 5층 계단을 내려올 때까지

귀찮게 따라다니는 구역질

삶을 기만한 죄

 

거리는 좋은 시절 만난 듯 가지마다 새순이 돋았다

봄의 설법으로 시방세계가 춤추는 바람으로 가볍다

그 바람결에 보이는 삶은 한 움큼의 절망이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