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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7. 16:35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82 서양 고전음악 감상법


글, 사진 / 조성진

1999,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45


082

빛12ㄷ 223


빛깔있는 책들 223


조성진-------------------------------------------------------------------------

1947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과 빈국립음대, 독일 함부르크대학과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학, 음악학, 오페라 연출을 전공하였다. 1980년부터 「아이다」를 시작으로 「꿈」,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앨버트 헤링」 등 많은 오페라를 연출하였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예술의전당 초대 예술 감독으로 재직하였다. 저서에는 『오페라 감상법』이 있다.


|차례|


머리말

고전이란 무엇인가

감상의 시작

고전음악의 장르

음악사의 큰 산맥들

올바른 감상을 위하여

연주회장에서의 매너

감상과 병행할 일들

음악 발전을 위하여

부록 - 1600년 이후의 주요 작곡가

마르타 아르헤리치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1960년대 중반에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로서 세계에 소개된 이후 오늘날까지 그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

18세기의 오페라 공연  하이든이 오래 재직했던 에스터하지 궁에서 자신의 오페라를 공영하는 광경. 이처럼 귀족이 존재했던 시기의 작곡가들은 대개 귀족이 소유한 개인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다.

1780년경의 모차르트 가족  볼프강 아마데우스와 손위 누이 마리아 안나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고 그 앞에 자녀를 위해 헌신적이었던 부친 레오폴트가 바이올린을 들고 있다. 벽에 걸린 초상화는 작고한 모친 안나 마리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을 대표할 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권위있는 오케스트라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주무대인 베를린 필하모닉 홀은 전통에서 벗어난 현대적 스타일의 콘서트 홀을 대변한다.

멜로스 현악 4중주단  19세기 독일 작곡가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 현재 독일을 대표하는 중견 현악 4중주단이다. 왼쪽부터 빌헬름 멜허, 게르하르트 포스, 헤르만 포스, 페터 부크.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20세기 러시아의 작곡가로 리스트처럼 피아노의 대가였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이 무지치

리카르도 무티

레너드 번스타인

모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볼프강 자발리쉬

주빈 메타

구스타프 말러의 지휘 모습  1899년 빈의 신문에 나온 말러의 모습이다. 말러는 빈의 왕립 오페라 하우스를 이끌면서 타협을 모르는 지휘로 뛰어난 작품 해석을 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유럽에서 가장 전통적이자 가장 보수적인 성향의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연주를 뒷받침해 주는 데 주연주장인 빈의 무직페라인 홀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무직페라인 홀은 유럽에서 가장 음향이 좋은 몇 안 되는 전통적인 연주장 중의 하나이다.

칼 뵘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를 중심으로 독일계 음악을 주된 레퍼토리로 하는 오스트리아 지휘자이다. 거의 전적으로 음악적인 바탕 위에서 출발하는 오스트리아풍의 꼼꼼한 지휘를 대표한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기돈 크레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1850년의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  클라라는 뛰어난 현역 피아니스트였고 두 사람은 부부애로도 유명했다. 슈만의 피아노곡들은 거의 모두 표제음악들이다.

현악 4중주  20세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도 현악 4중주는 전통적인 실내악의 중심을 이룬다. 세계적 현악 4중주단인 독일의 멜로스 현악 4중주단.

후고 볼프  오스트리아 작곡가 로거의 가곡에만 전념했고 독일어의 언어 멜로디를 파고들어 독특한 경지를 이룩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독일 출신이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약했다. 18세기 오페라의 거장이었다가 말년에는 「메시아」를 비롯한 걸작 오라토리오들을 썼다.

17세기의 오페라 하우스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1637년 상업적인 오페라 하우스를 만들어 귀족과 평민을 한꺼번에 관객으로 받아들였다. 헨델이 오페라 작곡가로 활약할 당시의 런던 코벤트 가든 오페라 하우스.

헨리 퍼셀  음악사에서 영국은 대륙에 견줄 만한 작곡가들을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헨리 퍼셀은 근대 음악 초창기에 이미 우뚝 선 대가이다.

안토니오 비발디  비발디의 화려하고 부담없는 곡들은 1960년대 초부터 일반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세 명의 아들들  바로크 음악의 마지막 대가 바흐(왼쪽)와 아들 세 명의 1730년경 모습이다. 바흐의 아들들은 바로크 음악이 고전주의로 넘어가던 시기에 변화를 잘 이끌어 나간 작곡가들이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작품 세계는 인류 문화사상 드물게 균형미를 보이고 있다. 모차르트의 처남이었던 요셉 랑게가 1789년에 그린 미완성 유화.

18세기의 오스트리아 빈  라틴 문화와 게르만 문화가 만나는 시점에 음악의 중심지가 된 이곳은 과거에는 동양 문화를 만나는 통로였고 19세기에는 동유럽 문화가 접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18세기 말에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을 중심으로 이른바 '빈 고전주의'가 형성되었다.

요제프 하이든  18세기 말의 대가로 특히 1780년 이후 교향곡과 현악 4중주의 걸작들을 내놓으면서 프랑스 혁명 전야의 세대로부터 추앙받았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귀족 사회가 존재하던 시절에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지만 그의 대작들은 귀족의 몰락 이후에 나왔다. 자신의 개성적인 예술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19세기 최초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19세기 작곡가들의 우상이 되었다.

프레데리크 쇼팽  섬세한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거의 모두 주옥 같은 피아노곡들을 남겼다. 슈만의 피아노곡과 달리 쇼팽의 곡들은 표제음악이 없다.

로베르트 슈만  낭만주의적 상상력과 확고한 음악적 기반의 조화를 적절하게 이루어 피아노곡뿐 아니라 모든 장르에 깊이 있고 섬세한 명곡을 남겼다.

프란츠 리스트  화려한 기법의 피아노 연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그는 오늘날 피아노 연주의 뿌리이다.

슈베르트와 그의 연주를 들으러 온 친구들  슈베르트는 세속적인 야심없이 친구 집을 전전하며 살았고 그런 슈베르트를 중심으로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엑토르 베를리오즈  프랑스 낭만주의를 가장 극명하게 대표하는 작곡가로 작품수는 많지 않으나 거의 모두 이전의 전통적인 기법을 탈피해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려 했다. 1846년 빈의 신문에 난 이 캐리커처는 베를리오즈가 전통 음악에 익숙했던 청중에게 충격을 주는 장면을 풍자하고 있다.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  '러시아 5인조' 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곡을 발표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긴 동료의 곡들을 틈틈이 마무리해 발표하는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러시아 민족 음악을 대변했던 '5인조' 중의 한 사람이다. 음악적 기법의 기초가 약했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러시아의 원초적인 정서를 담은 독특한 곡들을 남겼다.

얀 시벨리우스  전세계에서 애호를 받는 거의 유일한 핀란드 작곡가이다. 그의 음악은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면서도 핀란드의 분위기를 빼놓지 않는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안토닌 드보르자크  체코 출신의 작곡가로 19세기 후반 이전까지 주변에 머물러 있던 동유럽 음악들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몫을 했다. 그의 음악은 확고한 음악적 기반 위에 대중적인 친화력을 가지고 있어 아직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베드르지히 스메타나  드보르자크와 더불어 동유럽의 정서를 정감있게 보여 준 체코 작곡가이다. 드보르자크가 기악곡을 위주로 한 데 반해 스메타나는 오페라를 여러 편 남겼다.

빈에 있던 브람스의 작업실  북독일 함부르크 출신인 브람스는 1872년부터 죽던 해인 1897년까지 오랜 세월을 빈에서 살았다.

요하네스 브람스  19세기 후반 독일 음악의 보수적 맥을 이은 대표자이다. 음악의 모든 장르에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단 한 편의 오페라도 쓰지 않은 것은 과연 바그너 반대 진영의 우두머리다운 인상을 준다.

구스타프 말러  독일 현대 음악의 문을 연 작곡가이자 20세기 지휘의 기초를 닦은 연주가로 1차 대전 전야의 불안한 정서를 대변하는 대규모의 교향곡들을 남겼다.

안톤 브루크너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종교적 성찰을 담은 깊이 있고 규모가 큰 교향곡들을 남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20세기의 작곡가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고 일찍 작품 활동을 시작해 많은 곡들을 남겼다.

클로드 드뷔시  프랑스 작곡가로 전통적인 화성을 벗어나 독특하고 새로운 경지를 보여 줌으로써 20세기 음악의 문을 열었다.

프란츠 슈베르트  정장을 한 그림의 인상과는 달리 실제의 슈베르트는 세속에 초연한 자세로 살았던 사람이다. 빌헬름 리더가 1825년에 그린 그림이다.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악보 표지

바이올리니스트 안네소피 무터와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무터는 13세 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데뷔하여 세계적 재능으로 소개된 이후 성장 시기를 잘 극복했고 개인적인 고뇌도 겪으면서 현재 세계를 대표하는 여성 연주가의 하나가 되었다.

게오르크 솔티

니콜라 랑크레의 음악 레슨  18세기 전반 프랑스 귀족의 음악 생활을 보여준다. 이런 사실적인 그림들은 당시의 풍속뿐 아니라 악기의 모양과 연주법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니콜로 파가니니  생전의 파가니니는 피아노의 리스트처럼 눈부신 기법의 화려한 연주로 유명했다. 그림은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의 현이 끊어지도록 열정적인 연주를 하는 모습이다.

오토 클렘페러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1914년 초창기 음반 녹음  녹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줄여야 했고 곡의 길이도 짧게 했다. 사진의 지휘자는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

피아노 4중주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와 아마데우스 현악 4중주단의 멤버들이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를 연주하고 있다. 피아노 4중주는 특히 피아노와 현악기들의 사운드 균형이 중요하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  1840년 빈의 화가 요셉 단하우저가 그린 그림으로 예술인들이 자주 모이던 전형적인 파리의 살롱이다. 왼쪽부터 문학가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 조르지 상드, 뒤쪽에 파가니니와 로시니, 등을 돌리고 앉은 여인은 리스트의 애인이었던 마리 다구이다.

영국 버밍햄에 있는 인터내셔널 컨벤션센터 심포니 홀  연주회에 가는 이유는 단순히 음악적 지식을 얻거나 선율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상과는 다른 고양된 체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전통있고 수준 높은 독일의 지방 오케스트라인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993년에 개관된 콘서트 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오브 에이틴스 센튜리 오케스트라  바로크 음악뿐 아니라 19세기 초까지의 음악도 과거 악기로 연주하는 단체가 많아졌다. 지휘자는 프란스 브뤼헨.

영국왕 조지 1세와 헨델  헨델의 「물 위의 음악」은 왕의 노여움을 풀어 주기 위해 헨델이 템즈 강에서 왕의 배를 따라가면서 연주하도록 한 곡이라는 일화가 있다.


고전음악 감상의 10계명


1. 음악을 듣는 계층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2. 지식에 의존하지 말고 자유로운 느낌을 가지라.

3. 그러나 지식을 섭취하면서 감상하라.

4. 시간이 있을 때 듣지 말고 시간을 만들어서 들으라.

5. 흥미가 연결되도록 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

6. 인격이 높은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듯한 자세로 들으라. 결코 수동적이지 말고 질문하라.

7. 취한 상태,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듣지 말라.

8. 음반을 들을 때는 연구하는 자세로 들으라.

9. 음반을 들으면서 반드시 실제 연주를 들으라.

10. 연주가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



posted by 황영찬
2014. 8. 25. 09:15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81 코끼리 - 세계의 기둥


로베르 들로르 지음, 이한헌 옮김

1995,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19


082

시156ㅅ  14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14


4천 년 동안이나 인간과 공존해 온 코끼리,

인간 대신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충실한 일꾼으로,

귀중한 상아의 제공자로, 서커스 공연에선

빼놓을 수 없는 재간동이로 코끼리는

인간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결과는 참혹하다.

코끼리의 수는 격감되고 있고, 이대로 계속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들은 박제된 코끼리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


티무르의 후예 바부르(Babur : 1483 - 1530)는

장차 인도를 지뱌하게 될 무굴 제국을 창건하였다.

뛰어난 정치가이자 군사 전략가, 역사가, 시인으로

이름을 날린 그의 진면목은 투르크어로 씌어진 그의

자서정 <바부르나메 Babur-nameh>에 잘 나타나 있다.

세계의 명저 중 하나인 그의 자서전 속에는

코끼리가 자주 등장한다.


"인도인들이 하티(Hati)라고 부르는 코끼리는

인도의 특이한 동물 가운데 하나이다. 코끼리는

거대한 체구와 뛰어난 지능을 갖춘 동물이다.

이 동물은 사람의 말을 모두 알아듣고,

사람의 명령을 그대로 따른다."


"인도의 군대에는 코끼리를 보유한 사단이 있으며, 이들은 코끼리와 함께 전투에 참가한다. 무거운 짐을 싣고서도 코끼리들은 강과 급류를 쉽게 건넌다. 그러나 코끼리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료를 필요로 해, 두 무리의 대상(隊商)에 속해 있는 낙타들이 먹는 만큼 먹어 치운다."


"나는 코끼리와 코뿔소가 서로 맞닥뜨리면 어떤 행동을 보일까 궁금해했다. 코끼리 조련사가 코끼리를 계속 앞으로 몰아붙이자, 코뿔소는 그만 견디지 못하고 반대쪽으로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식사 전에 사람들이 나에게 선물을 바치는 동안, 우리들 정면에 있는 섬에서는 성난 낙타들과 코끼리들이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격투장 한쪽에서는 숫양끼리 맞서기도 했고, 다음은 격투사들의 차례였다." (아그라에서)


바부르는 기병대와 함께 코끼리를 전투부대로 편성하기도 했다.


차례


제1장 코끼리의 가계

제2장 아시아와 아프리카, 양면성을 띤 하나의 이미지

제3장 서구의 기억

제4장 사냥에서 살육으로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로베르 들로르 Robert Delort

문학 박사이자 이학 학사인 로베르 들로르는 파리 제8대학과 제네바 대학에서 중세 역사를 가르쳤으며, 중세에 관한 수많은 저서들을 펴냈다. 그가 동물사의 기초를 세우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쓴 <동물들은 역사를 갖고 있다>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 출간되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다. 현재 그는 생태환경사를 연구하고 있다.


옮긴이 : 이한헌

1958년 광주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현재 외국어대학교와 강원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에릭 루이의 <인간과 언어예술> 등이 있다.


제1장

코끼리의 가계(家系)


"매머드가 울하므르족을 가로막았다. 매머드는 부드러운 풀을 뜯어먹고 짓밟으며 뿌리째 뽑아 버렸다. 세 사람의 눈에 비친 매머드들은 행복하고 위험을 모르는 멋진 존재였다. 매머드의 거대한 발 밑에서는 큰 사자도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나 다름 없었다. 매머드의 상아는 떡갈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릴 수도, 화강암처럼 단단한 머리는 나무를 산산 조각 낼 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부드러운 코를 가진 매머드를 보면서, 나오(Naoh)는 '매머드는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스니, 《불을 찾아서》

왼쪽부터 모에리테리움(Moeritherium), 피오미아(Phiomia), 팔라에오마스토돈(Palaeomastodon), 곰포테리움(Gomphotherium), 데이노테리움(Deinotherium), 마스토돈(Mastodon), 맘무투스(Mammuthus), 록소돈타(Loxodonta) 등이 보인다. 이들은 모에리테리움의 가계를 형성한다. 모에리테리움은 매머드나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더 큰 마스토돈보다 예닐곱 배 작다. 데이노테리오이데아(Deinotherioidea)는 19세기 과학자들의 눈에 그 최후 생존자들의 모습이 무서운 형상(deinos)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엘레판토이데아(Elephantoidea)는 경직성을 뜻하는 'gomphos'와 야생동물을 뜻하는 'therion'이 결합된 곰포테리오이데아(Gomphotherioidea)를 포함한다. 마스토돈은 원형돌기(mammelon) 형태의 어금니네서 착상해 퀴비에가 붙인 이름이다.

선사시대인은 매머드를 즐겨 그렸다. 프랑스의 페슈메를에서 발견된 이 벽화도 그러한 예들 중 하나이다. 둔부에서 뒷머리로 흐르는 선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자못 흥미롭다.


제2장

아시아와 아프리카,

양면성을 띤 하나의 이미지


수천 년 동안 아시아는 코끼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아이사에서 코끼리는 신성시되거나 신격화되었고, 우수한 투사로서, 사냥의 동반자로서, 때로는 다정하고 충성스런 친구로서 인간과 공존해 왔다. 반면에 아프리카 문명권에서는 코끼리를 동물의 왕으로 존중하면서도, 코끼리와 목숨을 건 격렬한 싸움을 계속해 왔다.

아프리카를 비유한 시칠리아의 벽화.

아시아에서 코끼리는 숲 속 황무지를 개간하거나 습지에서 작업하는 데 주로 이용된다. 코끼리는 전력을 다해 이마로 나무를 들이받아 쓰러뜨린다. 그래도 나무가 쓰러지지 않으면 앞발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단 뿌리가 뽑힌 나무는 가지를 잘라 내고 통나무 형태로 자른다. 그러면 코끼리가 코로 말아 올려 상아 위에 올린 다음 운반한다. 그러나 매우 무거운 통나무들은 모래 위나 진창 속을 지나 뗏목을 흘려 보낼 수 있는 강이나 선창가까지 끌고 간다. 통나무를 끌고 가는 코끼리는, 긴 상아와 그 나이와 함께, 막강한 힘과 많은 경험을 추측케한다. 조련사의 감시를 받으며, 쌍둥이처럼 함께 일하고 있는 두 마리의 젊은 코끼리들은 암컷이다.

사로잡힌 수컷 한 마리가 나무에 매여 있다. 악바르가 코끼리를 살펴보고 있다. 수많은 하인들이 그를 수행하고 있고, 그 코끼리를 길들이는 데 이용할 길들여진 코끼리들도 대동하고 있다.


제3장

서구의 기억


1886년 찰스 F. 홀더의 뛰어난 저서 《상아의 왕》은, 오랜 옛날부터 중요한 상아 공급원이었던 아프리카코끼리에게 25장 중 단 한 장만을 할애했다. 그후 93년 뒤인 1979년 월트 디즈니는 너무도 진부한 다음과 같은 말을 편지에 적어 보냈다. "모든 코끼리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에도 역시 코끼리가 있다."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서구 문명은 코끼리 이야기가 나오면 아시아를 '망각'한 채, 우선 흑아프리카를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이다.

<피지올로구스(Physiologus)>는 12~15세기에 서구에 널리 전파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따르면 코끼리가 새끼를 낳으려면, 신부인 암컷이 마치 이브처럼 먼저 맛을 본 뒤 건네준 맨드레익(mandrake, 중세에 마법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가지과의 약용식물 : 역주)의 열매를 수컷이 받아먹어야 한다. 곧바로 수태가 된 암컷은 커다란 호수를 찾아가서, 그곳에서 악마의 화신인 용의 방해를 이겨내고 새끼를 낳는다.

파라오 프삼틱 3세는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에게 펠루지움 전투(B.C. 525년)에서 패배한 후, 포로가 되어, 정복자의 명령에 따라 처형되었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아래서 이루어진 이집트 정복은 동쪽에서 데려온 수많은 코끼리들 덕분에 가능했다. 이 그림의 '전형적인' 세부사항은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가져온 19세기의 '역사적 문화유산'과 미술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둔 것이다.

에트루리아 접시는 코끼리 등에 망루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 피루스가 공격에 이용했던 아시아코끼리를 형상화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에 묘사된 아시아코끼리(귀가 작고 등이 둥근 것을 통해 알 수 있다)의 암컷은 아프리카코끼리에게서나 볼 수 있는 특징들(상아와 긴 꼬리)을 지니고 있다.

B.C. 255년, 아프리카에 상륙한 로마의 집정관 레굴루스는 카르타고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평화조건을 강요했다. 카르타고의 크산티포스는 기병대로 하여금 로마 군단을 포위토록 했다. 로마군은 깊숙이 돌진해 온 코끼리 100마리에게 쑥밭이 되었고, 뒤를 이어 카르타고 보병이 로마 군단을 철저히 격파했다. 그러나 B.C. 202년 자마 전투에서는 제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카르타고의 코끼리들이 등을 돌려 자기 군대에게로 덤벼들었고, 덕택에 로마의 동맹군인 누미디아 기병대는 마음놓고 카르타고군을 칠 수 있었다. 후세에 많은 화가들이 이 전투를 화폭에 담았다.

한니발의 원정 당시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자연이었다. 코끼리는 고여 있는 물에서는 헤엄을 잘 치지만, 론강처럼 흐르는 물에서는 오랫동안 버티지 못한다. 따라서 뗏목을 둘씩 연결해서 일종의 부교를 만들어야 했다. 폭이 30m, 길이가 60m에 달하는 부교는 바닥에 흙을 깔아 놓아, 코끼리들이 땅 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여 부교가 흔들리더라도 놀라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암컷들이 앞장을 선 코끼리들은 마침내 반대편 강둑에 무사히 도달하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공포의 순간이 있었다. 겁에 질린 일부 코끼리들은 감히 뗏목을 벗어날 엄두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별탈없이 강을 건넜다. 그러나 나머지 코끼리들은 흐르는 강물 속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기 시작하더니 제각기 반대편 제방에 도달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몇몇 조련사들이 익사했지만 57마리의 코끼리는 모두 강을 건너 알프스 산맥을 넘을 채비를 했다.

B.C. 217년 트레비아 전투에서, 삼중으로 전선을 형성한 로마 군단을 향해 카르타고 코끼리들이 무시무시한 공격을 가했다. 앞세대의 병사들이 코끼리와 싸운지 30년이 흐른 지금, 로마 군단의 대부분 병사들은 이 괴물 같은 코끼리와 맞서 싸우는 것이 처음이었다. 조련사들이 변덕스러운 코끼리가 대오를 벗어나지 못하게 조종하는 동안, 버드나무 잔가지 따위로 만든 망루 속의 사수들이 로마 보병의 기세를 꺾었다. 뒷걸음질 치던 로마 군단의 보병들은 매복해 있던 카르타고 기병대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승리한 집정관들에게는 로마에서 개선행진을 벌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집정관이 승리한 군대의 맨 앞에 서고, 적군들의 포로들이 뒤를 따랐다. 베네벤토에서 피루스를 물리친 쿠리우스는 사로잡은 여덟 마리 코끼리 중 네 마리를 자신의 개선행진에 동원했다.

로마에서는 대(大) 중개상인들이 거래를 통해 야생동물을 원형경기장에 넘겼다. 피아자 아르메니아의 큰 별장을 묘사한 모자이크화를 통해 로마의 중개상인들 중 일부는 시칠리아에서 온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그림의 상징체계는 간단하다. 인사라도 하려는 듯이 코를 치켜 올린 채 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대결자세를 취하고 있는 무모한 코끼리의 모습을 그린 듯하다. 그러나 그림의 구도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과 잔뜩 구름이 낀 하늘 사이에 우뚝 선 어두운 빛깔의 코끼리를 부각시키고 있다. 기다란 코를 들어올린 코끼리의 모습은 자그마한 인간들이 살생무기 주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창백한 빛깔의 납작한 배를 압도한다. 사정거리가 너무 짧아 포격은 코끼리에게까지 미치지 못한다. 포격으로 생긴 물기둥은 그림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서, 코끼리 코와 배의 상층부 사이의 수직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1858년 이 그림을 그린 영국 확가 바네스의 의도는 이러한 대립관계를 통해 단지 식민지 개척이 기승을 부렸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좀더 심오한 다른 의미가 부여될 수도 있다. 탁월한 기법과 재능을 갖춘 화가는 그림을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 나름대로의 판단과, 뇌리를 떠나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코끼리가 일상생활 속에 도입되었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 담배종이의 선전광고.

코끼리 - 왕의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은 <바바르>의 수백만 어린이 독자들에게 다소 의도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제4장

사냥에서 살육으로


현재 생존해 있는 코끼리의 수를 조사하는 일은 끈기 있는 노력을 요구하는 역동적인 작업이다. 생식 가능 기간이 대단히 길기 때문에 코끼리 암컷 한 마리는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포식동물로부터 잘 보호된 어린 코끼리는 다수가 성년기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남획과 자연의 황폐화로, 현재 코끼리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함정을 이용한 사냥은 길들여진 코끼리와,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장성한, 따라서 위험스러운 수컷이 좁고 둥근 함정에 빠졌다. 함정 안에서 독을 바른 예리한 말뚝이나 다른 코끼리 살생도구를 찾아볼 수는 없다. 가죽띠나 가죽끈과 밧줄을 이용하는 것은 코끼리를 함정에서 끌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실 수십 명의 사람으로도 역부족이고, 투박한 도르래로 사용되는 커다란 통나무도 코끼리의 무게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동원된 사냥도구들은 모두 코끼리가 밖으로 나왔을 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함으로써, 코끼리가 사람들을 상아로 꿰뚫거나 코로 후려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림에서도 사람들은 삽을 이용해서, 팠던 흙으로 함정을 조금씩 메우고 있다. 이렇게 해서 함정 밖으로 나온 코끼리는 이미 붙잡혀 매여진 동료들과 다시 얼굴을 맞대게 된다.

레스푸그의 상이나 빌렌도르프의 상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매머드 골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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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4. 8. 21. 16:11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80 서원 건축


글, 사진 / 김봉렬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44


082

빛12ㄷ  222


빛깔있는 책들 222


김봉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에는 건축연구소 아키반과 삼정건축에서 실무를 익혔다.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 김수근 문화재단 전문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건축 - 전통 건축편』『법주사』『한국 건축과 만남』(전3권) 등이 있고, 한국 건축에 관한 30여 편의 연구 논문과 다수의 현대 건축 비평들이 있다.

도면 작성에 도움 주신 분

서울대학교

영월대학

삼성건축

도용호

김은중

조상순


|차례|


서원, 성리학 그리고 사림파

성리학적 정신과 서원 건축

서원 건축의 입지와 배치 형식

서원의 기능과 건물

서원 건축의 역사

서원 건축 순례

소중한 건축 자산, 서원

참고 문헌

도동서원 강당

안향 영정  백운동서원(소수서원)에는 성리학을 이 땅에 최초로 수입한 회헌 안향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흥암서원 전경  교육 시설과 종교 시설이 결합된 서원 건축은 사람들의 성리학적인 정신 세계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도산서당에서 도산서원으로 연결되는 진입로  앞쪽의 도산서당 영역에서 뒤쪽의 서원으로 연결되는 진입로의 한쪽을 벽과 담의 수직면으로 구성하였고, 다른 한쪽은 수평적인 화단으로 중첩시켜 자연스럽다.

도동서원 강당의 원장석에서 바라본 전경  강당의 원장석에 앉아 앞을 내다보면 안산을 향해 배열된 누각과 정문의 축선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병산서원 강당  서원의 마당은 철저하게 인위적인 건물들로 둘러싸인 인공적인 장소이다. 누각에서 본 강당 기단부의 커다랗게 뚫린 아궁이와 돌출된 계단이 주요한 형태 요소가 된다.

대둔사 대웅전  사찰의 대웅전에서는 뒤로 산이 배경을 이루어 건물과 자연이 일체화되고 있으나 서원에서는 주변 자연을 인지할 수 없도록 건물 위치를 정하고 거리를 조절한다.

도산서원도 부분  서원이 자리잡을 이상적인 장소는 교육과 연구를 위해 번화한 곳에서 격리된 한적한 곳이어야 한다. 강세황. 175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필암서원 풍수형국도  서원은 강이나 내를 앞으로 면하고 나머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에 입지한다.

무성서원 강당에서 본 사당  서원은 대개 앞쪽에 강당을 중심으로 한 강학 공간을, 뒤쪽에 사당을 중심으로 한 제향 공간을 배열한 건축 형식이다.

도동서원 전경  오른쪽부터 누각, 정문, 강당, 사당(소나무에 가려진 부분)이 일직선상에 배치되고 강당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대칭으로 놓여 있다.

1.강당(중정당)  2.사당  3.외삼문과 수월루  4.환주문  5.동재(거인재)  6.서재(거의재)  7.장판각 8.내삼문  9.증반소  10.일각문 11.사주문  12.전사청  13.문간채  14.곡간채  15.변소 16.비각  17.서원목(행단)

도동서원 구성도

남계서원 강당과 재실  강당은 강회의 공간으로 사용되며 평상시에는 학생 접근이 제한되는 교수진 전용의 건물이다. 강당 좌우로는 유생들의 기숙사에 해당하는 2개의 재실을 놓는다.

창절서원 문루  누각은 학생들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때때로 누각 위에서 사회를 열어 서원 구성원들의 풍류를 겨루기도 하였다.

도산서원 장판각  목판본이나 서책류가 습기에 노출되면 쉽게 상하기 때문에, 장판각이나 장서각 건물들은 흔히 판벽의 나무집으로 만들어진다. 사방을 둘러싼 나무판들이 내부의 습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산서원 경각  학문 도야에 필수적인 것은 서적이며, 서적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 역시 교육 기관의 필수 기능이다.

무성서원의 사당

홍살문  선현들의 위패를 봉안한 신성한 지역임을 의미하는 유교적 시설물로 서원 입구에 세워진다. 필암서원의 홍살문 뒤로 확연루가 보인다.

도동서원의 차(炊)  이중으로 쌓은 담장의 굴뚝 같은 구멍 속에 제문을 넣고 불태우는 일종의 망료위다.

도난문화재 편집사진자료

회연서원의 정료대  밤중에 관솔불을 밝히기 위해 강당 앞에 세워 둔 옥외 조명 장치이다.

소수서원 전경  소수서원을 비롯한 초기의 서원 건축은 형식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서원이 갖추어야 할 최소의 기능인 강당, 사당, 기숙사, 장판각 등은 구비되었지만 이들 사이의 규범적인 질서를 찾아내기는 무척 어렵다.

병산서원 구성도

필암서원  급증기의 서원들은 완전한 건축 형식적 틀을 구축하게 된다. 중심축선상에 누각과 대문, 강당, 사당을 일렬로 세우고 필요 시설들을 여기에 부가하는 형식이다.

필암서원 전도  출전 『필암서원지』

월봉서원 전경  19세기 말 이후에 복원된 서원의 전형을  보여 준다. 동서재의 교육 기능은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향사 기능만 유지되어 사당이 가장 높은 위계를 차지한다. 건물들의 배열이 극히 형식적이고 외부 공간의 짜임새가 흐트러졌다.

경렴정  유생들의 휴식을 위해 개울가에 세워진 정자 안에는 유명 시인과 묵객들의 시구들이 걸려 있다.(소수서원)

소수서원 배치도

일신재와 직방재  3칸씩의 일신재와 직방재는 하나의 건물로 연결된 '연립형 기숙사'다.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방으로 된 양재는 좌우 대칭으로 구성되었다.(소수서원)

명륜당  건축적인 형식을 모색하던 초기의 서원에서는 관학인 향교 건축의 명칭들도 사용하였다.(소수서원)

지락재  학구재와 지락재에서는 건물 자체의 완결성보다는 건물을 무엇인가 담기 위한 틀이요, 그릇으로 생각한 초기 성리학자들의 건축관을 읽을 수 있다.(소수서원)

남계서원 배치도

남계서원의 홍살문과 정문 누각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어귀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서 있어 품격을 더해 준다.

시습당에서 바라본 영귀루  평지에 조성된 서원답게 건물들의 높이가 낮고 옆으로 길쭉한 수평적인 형태를 취하였다.(서악서원)

시습당 내부  시습당의 대청 쪽으로 난 방의 개구부는 모두 창이다. 출입은 정면 벽에 난 문으로 가능하다.(서악서원)

읍청루  급한 경사지 위에 위치하여 3칸의 문루가 더욱 높아 보인다. 입지와 건물 구성에서 상주와 선산 지역 서원과 향교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금오서원)

7조 규약  금오서원 강당에는 서원 내에서 지켜야 할 7가지 금기 사항들을 적어 놓았다.

옥산서원 배치도

독락당 계정  이언적이 낙향 은거하여 경영하던 독락당은 옥산서원과 동일한 건축적 어휘를 가진 곳으로, 옥산서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아야 할 필수적인 건축물이다.

체인묘  정교하게 축조된 기단과 계단이 사당 마당의 정숙함을 고양시킨다. 체인묘의 북쪽에는 희재의 신도비를 위한 비각이 있다.(옥산서원)

구인당에서 무변루를 본 모습  바깥의 경승을 폐쇄적인 문루 건물이 가로막고 있다. 옥산서원 전반에는 폐쇄적인 공간 개념이 배어 있다.

도산서원 배치도

전교당  4칸으로 구성된 규모가 이채롭다. 통상적으로 있어야 할 오른쪽의 원장실이 없으며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퇴계의 사당인 상덕사가 나타난다.(도산서원)

농운정사  창과 문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으며 오른쪽이 상급반인 상재이고 왼쪽이 하재이다. 창호의 구성에서도 상하재 간의 위계가 나타난다.(도산서원)

도산서당  퇴계가 직접 설계한 건물로 퇴계의 소박하면서도 엄격한 건축적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두 칸 마루 가운데 왼쪽 것은 고정 마루, 오른쪽은 가설 마루의 개념을 보여 준다.(도산서원)

도동서원  질서와 규범의 정신으로 꽉 짜여져 조직된 건축물이다. 18개의 좁고 긴 석단들로 비교적 급한 경사지의 터를 닦았다.

도동서원의 집합적 입면도(위), 주축 단면도(아래)

입교당 내부  강당인 입교당 내부의 대청과 방 사이에 난 개구부이다. 왼쪽이 창이고 오른쪽은 문이다. 문 뒤에는 방의 이름인 경의재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병산서원)

존덕사 내부  사당의 내부는 술잔과 향로와 제수를 진설하는 크고 작은 3개의 제상으로 구성되었다. 오른쪽의 것은 류성룡의 아들인 류진의 위패와 제상이다.(병산서원)

병산서원 배치도

만대루  만대루는 외부 경관에 대한 시각적 틀이다. 강당 대청 가운데 원장 선생의 자리에 앉으면 만대루의 마루면과 지붕 사이로 낙동강의 흐름이 포착된다.

흥암사  흥암서원의 사당으로 장대석 3벌대의 당당한 기단이 인상적이지만 상부 건물의 구조와 부재는 빈약하다. 아래는 현판.

진수당 내부의 지붕틀  대들보 위에 세워진 항아리 모양의 동자대공이 장식적이다.(흥암서원)

청월루에서 본 온휘당  전형적인 5칸 강당이며 동서재가 없다. 사당이 강당에 비해 크고 높아서, 제향 중심으로 기능이 변한 18세기 초 서원 건축의 형식을 대표한다.(옥동서원)

청월루  옥동서원의 가장 특징적인 건물이다. 회보문이라는 이름의 아래 출입구는 3칸, 위의 누각부는 5칸이다. 양 옆 축대 위에 다리를 놓듯이 세운 복합 건물이다.

돈암서원 배치도

내삼문  사당 영역에 들어가는 안대문이다. 보통은 3칸의 소슬대문 형식으로 구성되지만 돈암서원에서는 3개의 문으로 분리시켰다. 들어갈 때는 동쪽문, 나올 때는 서쪽문을 사용하는 '동입서출'의 예법을 따랐다.

응도당  칸살이 넓고 높이가 훤칠한 건물이다. 본체는 매우 높은 맞배지붕을 이루며, 양 측면에 가적지붕을 단 희귀한 형태를 취하였다.(돈암서원)

응도당의 장식 부재  구심포 구조의 첨차와 화반들이 마치 절집에서 표현되는 것과 같이 매우 장식적이다.(돈암서원)

노강서원 강당  돈암서원의 응도당과 같은 형식이다. 5칸의 맞배지붕의 몸체 좌우로 가적지붕이 붙고, 높은 바닥면 등이 이 지방 강당 건축의 지역적인 형식을 엿보게 한다.

강당의 장식 부재  공포 형식은 익공계가 변형된 주심포식이며 기둥 사이에 복화반을 설치하여 장식적인 경향을 드러낸다.(노강서원)

노강서원 배치도

우동사 쪽에서 본 청절당  앞면 전체에 분합문을 달아 여름에 모두 들어올리면 확연루에서 사당까지 시선이 통과하게 된다.(필암서원)

필암서원 배치도

무성서원  무성서원 강당인 명륜당의 대청은 앞뒤가 완전히 개방되어 마치 카메라에 포착되듯 사당의 전경이 드러난다. 무성서원과 같은 구성은 제향 기능이 위주가 된 후기의 서원 건축에서 나타나고, 사당에 강당이 부속된 듯 보인다.

무성서원 배치도

창절서원 육신사  전면 5칸의 규모로, 조사된 서원의 사당 가운데 가장 크다.

파산서원 사당  한국전쟁 때에 서원 전체가 불타 버린 후 사당 부분만 복원되었다.

자운서원의 사당과 묘정비  남한에 있는 율곡의 서원 가운데는 가장 유명한 곳으로 대원군 때 훼철되었다가 뒤에 제향 공간만 복원되었다(위). 사당 옆에는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비석이 있는데 당대의 명필이며 노론의 영수였던 김수증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아래)

우저서원 여택당  4칸의 흔치 않은 규모지만 좌우에 온돌방을 들였다. 방의 벽 하부에는 경기, 충청 지방에서 유행한 방화벽을 덧붙여 마치 일상적인 살림집 형태같이 되었다.

심곡서원 내삼문과 사당  외삼문과 강당, 내삼문, 사당을 중심축선상에 배열하였다. 3칸의 사당은 사각 초석 위에 사각기둥을  쓴 소락한 모습이다.

용연서원  정문, 강당, 사당만으로 이루어진 가장 간략한 규모의 서원 건축이다. 한국전쟁 때 사당만 남고 모두 훼손되었는데 최근 강당과 정문을 복원하였다.

내삼문과 기단부  초석과 기단석, 계단석을 정교하게 다듬은 솜씨나 정치한 결합법 등은 이 서원이 당시에 최상급의 건축이었음을 입증한다.(덕봉서원)

덕봉서원  5칸의 길쭉한 모습으로 1960년대 고쳐 지어 원형이 많이 바뀌었지만, 전면의 높은 사각초석은 경기 지역의 고급 건축에 자주 쓰였던 궁궐 형식을 엿보게 한다.


posted by 황영찬
2014. 8. 19. 09:10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9 공명의 시간을 담다


구본창

2014, 컬처그라퍼



대야도서관

SB099966


660.4

구45ㄱ


사물의 영혼을 훔치는

한 사진가의 필름 속에 스며든

시간과 인연의 기억


사라져 가는 일상의 순간순간을 기록하며

그 매 순간의 공명을 담아내는 것이 사진가의 일이다


"잘 들리지 않는 떨림이나 사소한 일상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들, 삶의 표면 아래 감춰진 자국들, 스쳐 지나기 쉬운 수많은 이야기를 사전에 담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 사진가로서 나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사진 매체의 실험적 가능성을 개척해 온 국내의 대표 사진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후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 디플롬 학위를 취득하였다. 계원예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하였고 현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로댕 갤러리(2001), 피바디에섹스 박물관(2002), 국제 갤러리(2006), 필라델피아 미술관(2010) 등 국내외에서 4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휴스턴 뮤지엄 오브 파인아트, 교토 가히츠칸 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등 다수의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으며, 작품집으로는 한길아트에서 출간된 『숨』, 『탈』, 『백자』, 일본 Rutles에서 출간된 『白磁』, 『Everyday Tresures』 등이 있다.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차례


프롤로그 \ 사진가로 산다는 것


01 낡은 시간을 수집하다

02 비상飛上

03 자신의 사진을 찍으라

04 나와 화해하는 방법

05 운명 속의 존재들

06 슬로우 토크

07 목적이 있는 것과 없는 것

08 도구와 방법

09 사진가의 여행

10 사물에 귀 기울이다

11 일상의 보석

12 잃어버린 얼굴들

13 마음의 그릇

14 비어 있기에 아름답다

15 상흔傷痕

16 내 마음속의 폴더들

17 볼 수 있는 만큼 보인다

18 교감의 통로


에필로그 \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독


ⓒAxel Beyer



함부르크. 1980

독일 유학 시절에 찍은 스냅사진들, 구도와 명암 대비가 부각된 간결함을 추구하였다.

함부르크 전철역. 1980

처음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 <일 분간의 독백> 시리즈. 1980-1984

<긴 오후의 미행> 시리즈. 1985-1990

<기억의 회로> 시리즈. 1988

<탈의기> 시리즈. 1988

<열두 번의 한숨> 시리즈. 1985

<생각의 바다> 시리즈. 1990

<빛을 찾아서>. 1982

유학 시절 집 안에 들어온 빛에 비친 그림자를 촬영하였더니 옆 모습이 밥 딜런의 앨범 사진을 연상기키는 셀프 포트레이트가 되었다.


<굿바이 파라다이스> Box 시리즈. 1993

<굿바이 파라다이스> Blue 시리즈. 1993

<굿바이 파라다이스> 전시. 서미 갤러리. 1993

<태초에> 시리즈. 1995-1996

<태초에> 시리즈. 1998

<태초에> 시리즈. 1994

<태초에> 시리즈. 1991

<태초에> 시리즈. 2002

<숨> 시리즈. 1995

<숨> 시리즈. 1995

<시간의 그림> 시리즈. 1998

<오션> 시리즈. 2002

<리버 런> 시리즈. 1998

<자연의 연필> 시리즈. 2000

<화이트> 시리즈. 1999

<스노우> 시리즈. 2011

<스노우> 시리즈. 2001


ⓒ《보그》. 2002년 12월 호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주연배우 황신혜


로마. 1983

<사진 새시좌전> 포스터.

런던 트래펄가 광장. 1983

<백자> 시리즈.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2006

도쿄 이타미 준 건축설계 연구소에서 그의 백자 컬렉션을 촬영하는 장면. 2010




<비누> 시리즈. 2006

<비누> 시리즈. 2004

<비누> 시리즈. 2006

<샤스루> 시리즈. 2003-2004


<탈> 시리즈. 가산오광대. 1998-2003

<탈> 시리즈, 북청사자. 1998-2003

<탈> 시리즈. 강릉관노. 1998-2003

<탈> 시리즈. 가메 탈. 2009

<백자> 시리즈.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2006

<백자> 시리즈. 서울 리움미술관 소장. 2005

<백자> 시리즈.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2005

<백자> 시리즈.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2006

<백자> 시리즈. 서울 리움미술관 소장. 2005

<백자> 시리즈. 교토 고려미술관 소장. 2004

<인테리어> 시리즈. 2003

<인테리어> 시리즈. 2004

<곱돌> 시리즈. 도쿄 민예관 소장. 2007

<침묵의 무기> 시리즈. 2010

왼쪽  \ <침묵의 무기> 시리즈. 6.25 당시 아들이 전사한 101세 박외연 할머니. 2010

오른쪽 \ <침묵의 무기> 시리즈. 1953년 4월 12일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故김종철 하사가 전쟁터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2010










posted by 황영찬
2014. 8. 11. 16:42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8 마곡사


글 / 조명화, 김봉건, 이은희●사진 / 박보하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43


082

빛12ㄷ  221


빛깔있는 책들 221


연혁 - 조명화-------------------------------------------------------------------

서울대학교에서 중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이다. 저서로는 『돈황강창문학의 연구』가 있고 「중국불교와 전기문학」 「중국불교의 송찬문학」 「범패와 전독」 등의 논문이 있다.


건축 - 김봉건-------------------------------------------------------------------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학교 도시계획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실장으로 재직중이다. 「전통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연구」「닫집에 관한 연구」「한국의 전통유교건축」「조선초기 다포집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이 있고 『한국의 고건축 : 10 - 19호』『불교상식백과』『건축학전서2 - 한국건축사』 등의 저서가 있다.


유물 - 이은희-------------------------------------------------------------------

성균관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실에 근무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고려 충렬왕대의 사경연구」「고려사경 변상도에 나타난 신장상 연구」「운흥사와 화사 의겸에 관한 고찰」「조선후기 미륵 보살도 연구」 등이 있다.


사진 - 박보하-------------------------------------------------------------------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네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3년 『월간 사진예술』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사진가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에는 코리아헤럴드에서 발행한 『Korean Culture』의 사진 촬영으로 한국일보에서 주관하는 한국출판문화상 사진예술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사진들을 주로 촬영하고 있다.


|차례|


봄의 사찰, 마곡사

마곡사의 연혁

가람 배치와 건축

마곡사의 유물

마곡사 가는 길

참고 문헌

대광보전 일곽  자장 율사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마곡사의 규모와 전통은 여느 절 못지않게 자랑할 만하다.

자장 율사의 영정  「사적입안」에 따르면 자장 율사가 당에서 돌아와 창건한 7대 가람 가운데 세 번째 절이 마곡사라고 한다. 통도사 소장.

5층석탑의 상륜부  청동으로 만든 둥근 복발의 독특한 양식은 고려 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영산전 전경과 현판  세조가 이 절에 다니러 오셨다가 '靈山殿'이라는 세 글자를 써서 내리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도 영산전 현판에는 '세조어필(世祖御筆)'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금호 약효 영정

남원과 북원을 이어 주는 극락교  마곡사는 사찰 중간을 흐르는 하천을 경계로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남원과 대광보전을 중심으로 한 북원으로 나누어진다.

1920년대 마곡사 전경  절 뒤쪽의 국사봉과 서쪽의 옥녀봉, 동쪽의 무성산 등 나지막한 산들이 절을 에워싸고 있다. 『조선고적도보』.

마곡사 가람 배치도

대광보전 일곽  대광보전은 화엄 사상에 근거를 둔 불전으로 대중들의 교화를 상징한다. 길게 수평으로 깔린 대광보전과 그 뒤쪽으로 중층 건물인 대웅보전의 수직적 요소가 강한 대비를 이루며 중첩되어 시야에 들어온다(위). 대광보전의 동쪽 담장 너머로 영각과 중층 창고의 지붕, 재래식 굴뚝이 보인다.(아래)

5층석탑의 사방불  사방불 개념은 밀교와도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 대광보전 앞에 있는 5층석탑 탑신에도 사방불이 새겨져 있다.

영산전의 측면  남쪽 수행 지역의 중심 불전으로 북원의 불전들과는 달리 동향으로 놓여 있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놓는 주심포계이며 살미 끝을 올린 듯한 독특한 공포 장식에서 당시 공사를 담당하였던 장인의 독창성을 느낄 수 있다.

영산전 천장과 불단  천연스럽게 흰 부재를 대들보로 사용하였고 우물천장 방식으로 내진을 외진보다 한 단 높게하였다.(위) 'ㄷ'자형 불단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 보처불 등의 칠불과 소형 불상들을 봉안하였다.(아래)

대광보전  네모지게 다듬은 자연석을 가지런히 쌓아 한 단의 기단을 축조하고 그 위에 건립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장방형 건물이다. 전면 길이가 길어 불전보다는 마치 강당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귀공포의 살미

용 머리 안초공

도리의 학 문양

대광보전 바닥의 삿자리  대광보전의 바닥에는 어떤 앉은뱅이가 비로자나불에게 백일 기도를 드리면서 정성껏 짯다고 하는 참나무 삿자리가 깔려 있다.

쌍아자형의 닫집  빈틈없이 꽉 짜인 공포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용, 기둥 사이를 장식한 돋을새김(낙양각)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대광보전 측면의 벽화  남방 화소인 마곡사는 대대로 많은 화승을 배출하였으며 이를 반영하듯 건물 내외부에 금강역사(위)와 인물도(아래) 등 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대웅보전  위층의 툇간 한 칸을 체감한 온칸물림 방식으로 처리하였으나 위아래층의 체감률이 지나치게 크고 건물 규모가 대지에 비해 협소하다.

대웅보전의 불단  왼쪽에 서방의 아미타여래를, 온른쪽에 동방의 약사여래를,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셨으며 삼존 모두 목불이다.

해탈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장방형 건물로 출입을 위하여 중앙의 어간을 개방하고 나머지는 판장벽(板張壁)으로 막아 마감하였다.

보현동자와 문수동자상  좌우 협간에 홍살대를 꽂아 출입 통로와 구분하고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상(위)과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상(아래)을 봉안하였다.

천왕문  중앙 한 칸을 개방하여 출입 목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익공계 맞배지붕이고 옆면에는 바람막이판인 풍판을 대었다.

사천왕상  천왕문의 서쪽에는 동방 지국천왕(첫번째)과 남방 증장천왕(두번째)을, 동쪽에는 서방 광목천왕(세번째)과 북방 다문천왕(네번째)을 봉안하였다.




posted by 황영찬
2014. 8. 11. 16:0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7 느리게 느리게 걸어유 충남도보여행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지음

2014, 상상출판



대야도서관

SB099948


981.17502

한16ㄱ


길 위에 섰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한 사람 살아서 숨 쉬는 인간이 된다. 사람마다 길을 되찾아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다시 한 번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건강하게 사는 길이다. 길이 참으로 우리의 길이다.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바로 세우고 우리를 건강하게 이끄는 길이다. 길과 함께 했을 때 우리의 인생은 고행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행이 되리라. 이러한 생각과 소망에 바탕에 두어 우리 충청남도에 도보길이 열리고 그것을 알리는 책자가 나온다는 것을 매우 반갑고 고맙고 고무적인 일이다. 쾌거다.

- 나태주 시인, 공주문화원장


이 세상에는 바닷길, 산길, 숲길, 돌담길, 오솔길 등 많은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일상처럼 걷는 길이 있고, 일부러 찾아가서 걷는 길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힘든 길이 있고, 걸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길도 있습니다. 골목길이나 논둑길처럼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길도 있습니다.

- 송일봉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저자 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협회는 2001년에 창립한 국내에서 유일한 국내 전문 여행작가들의 모임이다. 우리나라의 숨은 여행지를 발굴하고 보석 같은 여행지를 취재해서 신문, 잡지, 방송, 사보, 블로그, 카페 등의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거나 소개하고 있다. 이 땅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각 고장의 특색 있는 별미와 내력 깊은 역사 유적 등을 맛깔스러운 글과 멋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은 이들의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이들 모두가 스스로 보고 느낀 우리 땅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여러 분야에 다채로운 방식으로 널리 알리고 나누는 여행전문가다. 한국여행작가협회에서는 2003년 『7인 7색 여행 이야기』를 시작으로 『잊지 못할 가족 여행지 48』 『가족 체험여행지 45』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여행』 『호젓한 여행지』 『1박2일 실버여행』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대한민국 머물기 좋은 방 210』 등의 도서를 공저로 해마다 한 권씩 세상에 내놓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전문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 「행복」 전문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비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 「선물」 전문


목차


01 바다와 함께 걷는 길

태안 바라길 1구간(학암포~신두리해변) · 바다와 사막이 이어진 길

태안 바라길 2구간(신두리해변~의항해변) · 질퍽한 갯벌을 곁에 두고 걷는 길

태안 바라길 3구간(의항해변~파도리해변) · 십리에서 만리로 이어지는 바닷길

태안 솔향기길 1코스 · 치유와 소통의 길에서 명품 도보길로 거듭나다

태안 솔향기길 2코스 ·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 속의 길

태안 해변길 솔모랫길 · 곰솔숲과 해안사구를 걸으며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다

태안 해변길 노을길 · 그림 같은 풍광의 끝에서 황홀한 해넘이를 만나다

태안 태배길 · 고난의 세월을 지나 상생과 희망을 노래하다

당진 바다사랑길 · 서해대교를 한눈에 바라보며 걷다

당진 대난지도 둘레길 · 난초와 지초가 많이 자생한다는 당진시의 유일한 섬

보령 외연도 둘레길 · 천연기념물 당산 숲과 낙조가 아름다운 걷기 천국

보령 삽시도 둘레길 · 바다가 감춘 숨은 보물찾기

서산 아라메길 3-1구간 · 서해의 한려수도를 발아래 두고 걷는 삼길포 봉수대길

서산 아라메길 4구간 · 산길, 호수길, 바닷길이 어우러진 아라메길 4구간


02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걷는 길

백제큰길 부여 구간 · 사비백제시대의 맥을 찾는 길

백제큰길 공주 구간 · 찬란한 백제문화를 찾아가는 비단강길 여행

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 백제의 고도 공주의 상징을 거닐다

당진 내포문화숲길(백제부흥군길) · 산길, 밭길, 둑길 따라 걷다보면 모든 상념 사라진다

당진 버그내 순례길 · 역사 깃든 천주교 성지 따라 순례에 나서다

부여 사비길 · 1400년 전 백제로 떠나는 시간여행

홍성 홍주성 천년여행길 · 옛 성곽과 장터, 과거와 현재의 흥겨운 어우러짐

예산 내포문화숲길(원효 깨달음의 길) · 길을 걸으며 마음을 비우고, 길을 걸으며 깨달음을 얻는다

예산 느린꼬부랑길 · 느린 걸음으로 삶의 지혜를 배운다

서산 아라메길 1-1구간 · 백제의 미소를 품으며 걷는 천년 숲길

서산 아라메길 2구간 ·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자길


03 경관이 아름다운 길

천안 태조산 솔바람길 · 후삼국 통일의 기틀을 다진 산, 태조산 솔바람길

아산 봉곡사 솔바람길 · 새 소리, 바람 소리 벗 삼아 걷는 반나절의 행복

논산 계백혼이 살아 숨 쉬는 솔바람길 · 충효정신을 그리며 걷는 서원 순례길

계룡 사계 솔바람길 · 선비를 따라 느긋하게 산책하는 길

금산 금강 솔바람길 · 투박한 산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

부여 성흥산 솔바람길 · 옛날은 가고 없어도 새삼 마음 설레라

청양 칠갑산 솔바람길 1구간 · 길에서 만나는 '느림의 미학'

청양 칠갑산 솔바람길 2구간 · 충북 알프스 칠갑산 최고 코스

홍성 거북이마을 솔바람길 · 명당 내현을 감싸는 보개산의 명품 솔숲길

예산 온천과 함께하는 솔바람길 · 솔향기 따라 걷고 600년 전통의 보양온천도 즐긴다

공주 마곡사 솔바람길 · 솔바람길 따라 마곡사의 신록을 노래하다

서천 천년 솔바람길 · 천년 솔바람길에서 느낀 옛사람들의 향기


04 물길 따라 걷는 길

서천 철새 나그네길 · 서천 바닷가 생태 탐방로, 부사호에서 다사항까지

서천 금강2경 도보여행길 · 습지의 꽃, 갈대를 만나는 금강2경

서천 봉선지 둘레길 · 봉선지 물가를 노닐다가 월명산에 오르다


05 생태체험 길

아산 천년비손길 · 산길, 들길, 호수길, 숲길, 시골길 모두 걷자!

금산 금성산 술래길 · 한적한 숲길을 걷는 재미에 빠지다

부여 장암 송죽 억새길 ·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건너는 은빛 억새바다

서천 장항 성주산 탐방로 · 오래된 항구 도시를 만나다

청양 남산 녹색둘레길 · 이 길 있어 청양 사람들 좋겠네~!

예산 가야구곡 녹색길 · 가야산 자락에 감춰진 아름다운 무길

태안 안면도 안면송길 · 진한 솔 향기와 화사한 수련꽃에 취하다

보령 오서산 억새길 · 은빛 억새, 금빛 노을 춤추는 '서해의 등대'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