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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1'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8.21 2014-080 서원 건축
2014. 8. 21. 16:11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80 서원 건축


글, 사진 / 김봉렬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44


082

빛12ㄷ  222


빛깔있는 책들 222


김봉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에는 건축연구소 아키반과 삼정건축에서 실무를 익혔다.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 김수근 문화재단 전문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건축 - 전통 건축편』『법주사』『한국 건축과 만남』(전3권) 등이 있고, 한국 건축에 관한 30여 편의 연구 논문과 다수의 현대 건축 비평들이 있다.

도면 작성에 도움 주신 분

서울대학교

영월대학

삼성건축

도용호

김은중

조상순


|차례|


서원, 성리학 그리고 사림파

성리학적 정신과 서원 건축

서원 건축의 입지와 배치 형식

서원의 기능과 건물

서원 건축의 역사

서원 건축 순례

소중한 건축 자산, 서원

참고 문헌

도동서원 강당

안향 영정  백운동서원(소수서원)에는 성리학을 이 땅에 최초로 수입한 회헌 안향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흥암서원 전경  교육 시설과 종교 시설이 결합된 서원 건축은 사람들의 성리학적인 정신 세계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도산서당에서 도산서원으로 연결되는 진입로  앞쪽의 도산서당 영역에서 뒤쪽의 서원으로 연결되는 진입로의 한쪽을 벽과 담의 수직면으로 구성하였고, 다른 한쪽은 수평적인 화단으로 중첩시켜 자연스럽다.

도동서원 강당의 원장석에서 바라본 전경  강당의 원장석에 앉아 앞을 내다보면 안산을 향해 배열된 누각과 정문의 축선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병산서원 강당  서원의 마당은 철저하게 인위적인 건물들로 둘러싸인 인공적인 장소이다. 누각에서 본 강당 기단부의 커다랗게 뚫린 아궁이와 돌출된 계단이 주요한 형태 요소가 된다.

대둔사 대웅전  사찰의 대웅전에서는 뒤로 산이 배경을 이루어 건물과 자연이 일체화되고 있으나 서원에서는 주변 자연을 인지할 수 없도록 건물 위치를 정하고 거리를 조절한다.

도산서원도 부분  서원이 자리잡을 이상적인 장소는 교육과 연구를 위해 번화한 곳에서 격리된 한적한 곳이어야 한다. 강세황. 175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필암서원 풍수형국도  서원은 강이나 내를 앞으로 면하고 나머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에 입지한다.

무성서원 강당에서 본 사당  서원은 대개 앞쪽에 강당을 중심으로 한 강학 공간을, 뒤쪽에 사당을 중심으로 한 제향 공간을 배열한 건축 형식이다.

도동서원 전경  오른쪽부터 누각, 정문, 강당, 사당(소나무에 가려진 부분)이 일직선상에 배치되고 강당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대칭으로 놓여 있다.

1.강당(중정당)  2.사당  3.외삼문과 수월루  4.환주문  5.동재(거인재)  6.서재(거의재)  7.장판각 8.내삼문  9.증반소  10.일각문 11.사주문  12.전사청  13.문간채  14.곡간채  15.변소 16.비각  17.서원목(행단)

도동서원 구성도

남계서원 강당과 재실  강당은 강회의 공간으로 사용되며 평상시에는 학생 접근이 제한되는 교수진 전용의 건물이다. 강당 좌우로는 유생들의 기숙사에 해당하는 2개의 재실을 놓는다.

창절서원 문루  누각은 학생들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때때로 누각 위에서 사회를 열어 서원 구성원들의 풍류를 겨루기도 하였다.

도산서원 장판각  목판본이나 서책류가 습기에 노출되면 쉽게 상하기 때문에, 장판각이나 장서각 건물들은 흔히 판벽의 나무집으로 만들어진다. 사방을 둘러싼 나무판들이 내부의 습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산서원 경각  학문 도야에 필수적인 것은 서적이며, 서적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 역시 교육 기관의 필수 기능이다.

무성서원의 사당

홍살문  선현들의 위패를 봉안한 신성한 지역임을 의미하는 유교적 시설물로 서원 입구에 세워진다. 필암서원의 홍살문 뒤로 확연루가 보인다.

도동서원의 차(炊)  이중으로 쌓은 담장의 굴뚝 같은 구멍 속에 제문을 넣고 불태우는 일종의 망료위다.

도난문화재 편집사진자료

회연서원의 정료대  밤중에 관솔불을 밝히기 위해 강당 앞에 세워 둔 옥외 조명 장치이다.

소수서원 전경  소수서원을 비롯한 초기의 서원 건축은 형식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서원이 갖추어야 할 최소의 기능인 강당, 사당, 기숙사, 장판각 등은 구비되었지만 이들 사이의 규범적인 질서를 찾아내기는 무척 어렵다.

병산서원 구성도

필암서원  급증기의 서원들은 완전한 건축 형식적 틀을 구축하게 된다. 중심축선상에 누각과 대문, 강당, 사당을 일렬로 세우고 필요 시설들을 여기에 부가하는 형식이다.

필암서원 전도  출전 『필암서원지』

월봉서원 전경  19세기 말 이후에 복원된 서원의 전형을  보여 준다. 동서재의 교육 기능은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향사 기능만 유지되어 사당이 가장 높은 위계를 차지한다. 건물들의 배열이 극히 형식적이고 외부 공간의 짜임새가 흐트러졌다.

경렴정  유생들의 휴식을 위해 개울가에 세워진 정자 안에는 유명 시인과 묵객들의 시구들이 걸려 있다.(소수서원)

소수서원 배치도

일신재와 직방재  3칸씩의 일신재와 직방재는 하나의 건물로 연결된 '연립형 기숙사'다.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방으로 된 양재는 좌우 대칭으로 구성되었다.(소수서원)

명륜당  건축적인 형식을 모색하던 초기의 서원에서는 관학인 향교 건축의 명칭들도 사용하였다.(소수서원)

지락재  학구재와 지락재에서는 건물 자체의 완결성보다는 건물을 무엇인가 담기 위한 틀이요, 그릇으로 생각한 초기 성리학자들의 건축관을 읽을 수 있다.(소수서원)

남계서원 배치도

남계서원의 홍살문과 정문 누각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어귀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서 있어 품격을 더해 준다.

시습당에서 바라본 영귀루  평지에 조성된 서원답게 건물들의 높이가 낮고 옆으로 길쭉한 수평적인 형태를 취하였다.(서악서원)

시습당 내부  시습당의 대청 쪽으로 난 방의 개구부는 모두 창이다. 출입은 정면 벽에 난 문으로 가능하다.(서악서원)

읍청루  급한 경사지 위에 위치하여 3칸의 문루가 더욱 높아 보인다. 입지와 건물 구성에서 상주와 선산 지역 서원과 향교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금오서원)

7조 규약  금오서원 강당에는 서원 내에서 지켜야 할 7가지 금기 사항들을 적어 놓았다.

옥산서원 배치도

독락당 계정  이언적이 낙향 은거하여 경영하던 독락당은 옥산서원과 동일한 건축적 어휘를 가진 곳으로, 옥산서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아야 할 필수적인 건축물이다.

체인묘  정교하게 축조된 기단과 계단이 사당 마당의 정숙함을 고양시킨다. 체인묘의 북쪽에는 희재의 신도비를 위한 비각이 있다.(옥산서원)

구인당에서 무변루를 본 모습  바깥의 경승을 폐쇄적인 문루 건물이 가로막고 있다. 옥산서원 전반에는 폐쇄적인 공간 개념이 배어 있다.

도산서원 배치도

전교당  4칸으로 구성된 규모가 이채롭다. 통상적으로 있어야 할 오른쪽의 원장실이 없으며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퇴계의 사당인 상덕사가 나타난다.(도산서원)

농운정사  창과 문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으며 오른쪽이 상급반인 상재이고 왼쪽이 하재이다. 창호의 구성에서도 상하재 간의 위계가 나타난다.(도산서원)

도산서당  퇴계가 직접 설계한 건물로 퇴계의 소박하면서도 엄격한 건축적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두 칸 마루 가운데 왼쪽 것은 고정 마루, 오른쪽은 가설 마루의 개념을 보여 준다.(도산서원)

도동서원  질서와 규범의 정신으로 꽉 짜여져 조직된 건축물이다. 18개의 좁고 긴 석단들로 비교적 급한 경사지의 터를 닦았다.

도동서원의 집합적 입면도(위), 주축 단면도(아래)

입교당 내부  강당인 입교당 내부의 대청과 방 사이에 난 개구부이다. 왼쪽이 창이고 오른쪽은 문이다. 문 뒤에는 방의 이름인 경의재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병산서원)

존덕사 내부  사당의 내부는 술잔과 향로와 제수를 진설하는 크고 작은 3개의 제상으로 구성되었다. 오른쪽의 것은 류성룡의 아들인 류진의 위패와 제상이다.(병산서원)

병산서원 배치도

만대루  만대루는 외부 경관에 대한 시각적 틀이다. 강당 대청 가운데 원장 선생의 자리에 앉으면 만대루의 마루면과 지붕 사이로 낙동강의 흐름이 포착된다.

흥암사  흥암서원의 사당으로 장대석 3벌대의 당당한 기단이 인상적이지만 상부 건물의 구조와 부재는 빈약하다. 아래는 현판.

진수당 내부의 지붕틀  대들보 위에 세워진 항아리 모양의 동자대공이 장식적이다.(흥암서원)

청월루에서 본 온휘당  전형적인 5칸 강당이며 동서재가 없다. 사당이 강당에 비해 크고 높아서, 제향 중심으로 기능이 변한 18세기 초 서원 건축의 형식을 대표한다.(옥동서원)

청월루  옥동서원의 가장 특징적인 건물이다. 회보문이라는 이름의 아래 출입구는 3칸, 위의 누각부는 5칸이다. 양 옆 축대 위에 다리를 놓듯이 세운 복합 건물이다.

돈암서원 배치도

내삼문  사당 영역에 들어가는 안대문이다. 보통은 3칸의 소슬대문 형식으로 구성되지만 돈암서원에서는 3개의 문으로 분리시켰다. 들어갈 때는 동쪽문, 나올 때는 서쪽문을 사용하는 '동입서출'의 예법을 따랐다.

응도당  칸살이 넓고 높이가 훤칠한 건물이다. 본체는 매우 높은 맞배지붕을 이루며, 양 측면에 가적지붕을 단 희귀한 형태를 취하였다.(돈암서원)

응도당의 장식 부재  구심포 구조의 첨차와 화반들이 마치 절집에서 표현되는 것과 같이 매우 장식적이다.(돈암서원)

노강서원 강당  돈암서원의 응도당과 같은 형식이다. 5칸의 맞배지붕의 몸체 좌우로 가적지붕이 붙고, 높은 바닥면 등이 이 지방 강당 건축의 지역적인 형식을 엿보게 한다.

강당의 장식 부재  공포 형식은 익공계가 변형된 주심포식이며 기둥 사이에 복화반을 설치하여 장식적인 경향을 드러낸다.(노강서원)

노강서원 배치도

우동사 쪽에서 본 청절당  앞면 전체에 분합문을 달아 여름에 모두 들어올리면 확연루에서 사당까지 시선이 통과하게 된다.(필암서원)

필암서원 배치도

무성서원  무성서원 강당인 명륜당의 대청은 앞뒤가 완전히 개방되어 마치 카메라에 포착되듯 사당의 전경이 드러난다. 무성서원과 같은 구성은 제향 기능이 위주가 된 후기의 서원 건축에서 나타나고, 사당에 강당이 부속된 듯 보인다.

무성서원 배치도

창절서원 육신사  전면 5칸의 규모로, 조사된 서원의 사당 가운데 가장 크다.

파산서원 사당  한국전쟁 때에 서원 전체가 불타 버린 후 사당 부분만 복원되었다.

자운서원의 사당과 묘정비  남한에 있는 율곡의 서원 가운데는 가장 유명한 곳으로 대원군 때 훼철되었다가 뒤에 제향 공간만 복원되었다(위). 사당 옆에는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비석이 있는데 당대의 명필이며 노론의 영수였던 김수증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아래)

우저서원 여택당  4칸의 흔치 않은 규모지만 좌우에 온돌방을 들였다. 방의 벽 하부에는 경기, 충청 지방에서 유행한 방화벽을 덧붙여 마치 일상적인 살림집 형태같이 되었다.

심곡서원 내삼문과 사당  외삼문과 강당, 내삼문, 사당을 중심축선상에 배열하였다. 3칸의 사당은 사각 초석 위에 사각기둥을  쓴 소락한 모습이다.

용연서원  정문, 강당, 사당만으로 이루어진 가장 간략한 규모의 서원 건축이다. 한국전쟁 때 사당만 남고 모두 훼손되었는데 최근 강당과 정문을 복원하였다.

내삼문과 기단부  초석과 기단석, 계단석을 정교하게 다듬은 솜씨나 정치한 결합법 등은 이 서원이 당시에 최상급의 건축이었음을 입증한다.(덕봉서원)

덕봉서원  5칸의 길쭉한 모습으로 1960년대 고쳐 지어 원형이 많이 바뀌었지만, 전면의 높은 사각초석은 경기 지역의 고급 건축에 자주 쓰였던 궁궐 형식을 엿보게 한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