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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 13:01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11 HOW TO READ 라캉 Jacques Lacan


슬라보예 지젝 지음 | 박정수 옮김

2007,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818


082

하66ㅇ v. 8

 

라캉의 관점에서, 신경증, 정신병, 도착증 같은 병리적 형식들은

근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철학적 태도들을 지니고 있다.

만약 내가 신경증을 앓고 있다면, 이 '질병'은 현상에 대한 내 모든 관계를

물들이고, 내 인격의 전체 구조를 결정한다.

라캉이 다른 정신분석학과를 비판하는 초점은 그들의

임상적 편향에 맞춰 있다. 라캉에게 정신분석 치료의 목적은

환자의 복리나 성공적인 사회생활 내지 개인적인 자기성취가 아니라,

환자로 하여금 욕망의 기본 좌표와 곤경을 대면하도록 하는 것이다.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탐욕스러운 독자이자 해석자, 라캉

 

라캉에게 정신분석학은 근본적으로 심리적 장애를 다루는 이론이나 기법이 아니라, 개인들을 인간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영역과 대면시키는 이론이자 실천이었다. 저자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은 읽는 좋은 방법은 그의 독법을 실천하여 라캉으로 다른 텍스트를 읽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지젝은 라캉으로부터 CIA 일화,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에일리언> <카사블랑카>,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보보크>, 테러리스트 부예리의 편지 등 다른 분야의 텍스트로 이행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지젝은 이 책에서 특유의 논리로 라캉의 '어려운' 개념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 혹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현재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 연구원, 슬로베니아의 주간지 <믈라디나>의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삐딱하게 보기 : 대중 문화를 통한 라캉의 이해》《부정태와 함께 체재하기 : 칸트, 헤겔,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 등이 있다.

 

박정수

서강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현대 소설과 환상》이 있고, 옮긴 책으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민족주의와 섹슈얼리티》(공저)가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우리 뇌를 씻어내자

 

1. 알맹이가 없는 텅 빈 제스처

    : 라캉, CIA 음모와 대결하다

2. 진짜와 가짜

    : 라캉, 마니차를 돌리다

3. 환상의 주문에서 깨어나기

    : <아이즈 와이드 셧>과 함께 라캉을

4. 실재의 수수께끼

    : <에일리언> 관객으로서의 라캉

5. 초자아적 명령 "즐겨라!"

    : <카사블랑카> 관객으로서의 라캉

6. 신은 죽었다. 하지만 신은 그걸 모른다

    : 라캉, <보보크>와 놀다

7. 진실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

    : 라캉, 테러리스트의 편지를 읽다

 

■ 주

■ 라캉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역자 후기 : 이데올로기의 전쟁터에서 정신분석학은 어느 편인가?

 

1

알맹이가 없는

텅 빈 제스처

: 라캉, CIA 음모와 대결하다

 

"왠 호들갑인가? 우리는 단지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항상 해왔던 일을 공개적으로 승인하자는 것뿐이다.

그들에 비하면 오히려 우리는 훨씬 덜 위선적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미국 고위 관료들이 의도한 게 단지 그것이라면 왜 그걸 말하는 거지?

왜 그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은밀하게 그 짓을 하지 않는 거지?"

제기되어야 할 물음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 진술을 하게 만든 진술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진짜와 가짜

: 라캉, 마니차를 돌리다

 

티베트의 마니차는 기도문이 쓰인 종이를 원통 속에 넣고는 기계적으로 돌리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바퀴가 대신 기도를 해준다.

비록 내가 음탕한 성적 환상에 빠져 있을지라도,

나는 스탈린주의자들의 말처럼 "객관적으로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3

환상의 주문에서 깨어나기

: <아이즈 와이드 셧>과 함께 라캉을

 

니콜 키드먼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범람하는 환상들을 틀어막기 위해,

또다시 환상들이 우리를 압도하기 전에 빨리 섹스를 하자.

꿈속에서 대면한 실재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현실로 깨어난다는 라캉의 생각은

성행위에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적용된다.

섹스를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섹스에 관한 꿈을 꾸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덮칠지도 모를 꿈의 과잉성을 억누르기 위해, 그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이다.

 

4

실재의 수수께끼

: <에일리언> 관객으로서의 라캉

 

영화광이라면 이 모든 것을 언젠가 한번 본 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라캉의 묘사는 단지 공포 영화의 끔찍한 창조물을 상기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라캉의 묘사는 10여 년 후에 나온 영화,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의 장면들을

조목조목 기술하는 것처럼 읽힌다. 이 영화의 기괴한 외계 생명체는 라캉의 라멜라와 닮았는데,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라캉이 이 영화를 본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5

초자아적 명령

"즐겨라!"

: <카사블랑카> 관객으로서의 라캉

 

자아 이상(여기서는 공중의 상징적 법, 공적 발화 속에서 우리가 따르고 있다고 가정되는 규칙의 집합)의

차원에서는 문제 될 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텍스트는 깨끗하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차원에서 텍스트는 관객에게 "즐겨라!"라는 초자아적 명령을 퍼붓는다.

즉 우리의 더러운 상상의 길을 터준다.

 

6

신은 죽었다. 하지만

신은 그걸 모른다

: 라캉, <보보크>와 놀다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린 장면이 신 없는 세계의 장면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하는 시체들은 (생물학적으로) 죽고 난 이후 그들의 삶을 경험하는데,

그 자체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신은 여기 있다.

죽고 난 이후에도 우리를 살아 있게 함으로써 그것이 그들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이유다.

 

7

진실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

: 라캉, 테러리스트의 편지를 읽다

 

테러리스트 부예리가 단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죽음을 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착증자는 "만약 당신이 진실하다면 당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로부터

"만약 죽음을 원한다면 당신은 진실되다"로 이행한다.

이 단락은 타인의 소망을 대신 떠맡는 놀라운 수사로 끝난다.

"나는 당신을 대신해서 이 소망을 소망할 것이오."

 

라캉의 생애

 

1901년 4월 13일 라캉(Jacques-Marie-Emile Lacan)은 파리의 엄격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

            다. 예수회 학교 콜레주 스타니슬라스(College Stanislas)에서 교육받았고 바칼로레아를

            치른 후 처음에는 의학, 나중에는 정신의학을 공부했다.

1927년 생트 안느(Sainte-Anne) 병원에서 근무, 임상 훈련을 시작했다. 1년 후 클레랑보

             (Clerambault)가 연 특별 진료 서비스(Special Infirmary Service)에서 근무했다.

1932년 <인성과의 관계에서 본 편집증적 정신병 De la psychose paranoiaque dans ses

             rapports avec la personalite>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33년 그 이론적 풍부함으로, 특히 에메(Aimee) 사례에 대한 분석으로 초자연주의자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1933년과 1939년 사이에 고등 연구원에서 열린 코제브(Alexandre Kojeve)의

             '헤겔 독해를 위한 입문' 강연을 들었다.

1934년 카롤린, 티보, 시빌르를 낳게 될 블롱댕(Marie-Louise Blondin)과 결혼했다. 뢰벤슈타인

             (Rudolph Loewenstein)과의 분석 작업 동안 파리정신분석협회(S. P. P.)의 멤버가 되었

             다.

1940년 파리의 군 병원 발 드 그라스(Val-de-Grace)에서 근무. 독일 점령기 동안 어떤 공식 활동

             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1946년 S. P. P.가 활동을 재개하고 라캉은 나흐트(Nacht), 라가슈(Lagache)와 함께 훈련 분석과

             지도 감독의 책임을 맡았으며 중요한 이론적, 제도적 역할을 맡았다.

1951년 S. P. P.가 라캉의 '짧은 시간 면담'이 표준적인 분석 시간에 위배된다며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1953년 1월에 라캉은 S. P. P. 대표로 선출되었다. 6개월 후 S. P. P. 대표직을 사임하고 라가슈,

             돌토(F. Dolto), 부토니에(J. Favez-Boutonier)와 함께 프랑스정신분석협회(S. F. P.)에 가

             입했다. 라캉은 국제정신분석협회(I. P. A.)로부터 프랑스의 공식 기관인 S. P. P.를 사임하

             고 다른 단체에 가입한 것은 위법이라는 통지를 받는다. 바꾸어 말하면 라캉이 더 이상 I.

             P. A.의 회원이 아니라는 뜻이다. 로마에서 <말과 언어의 장과 기능 Fonction et champ

             de la parole et du langage>을 발표했다. 7월 17일 주디스(Judith)를 낳게 될 마클레스

             (Sylvia Makls)와 결혼했다. 그해 가을 라캉은 생트 안느 병원에서 세미나를 하기 시작했

              다.

1954년 처음 열 번의 세미나는 정신분석 기법과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 그리고 정신분석의 윤리

             에 대한 생각을 다듬었다. 이 시기 라캉은 자신의 세미나, 회의, 구두 강연에 기반을 두고

             1966년 《에크리》에 실린 중요 텍스트들을 집필했다.

1956년 저명한 지식인들이 세미나에 참여했다(첫 번째 세미나 동안 프로이트의 '부정

             Denegation'에 관한 논문을 장 이폴리트가 분석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플라톤에 대해 코

            이레(Alexandre Koyre)가 강연을 했고, 레비스트로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그리올(Marcel Griaule), 민족학자 방브니스트(Emile Benveniste) 등이 라캉의 강

            의에 참석했다.

1962년 S. F. P. 회원들이 I. P. A.의 승인을 원했다. I. P. A.는 라캉의 이름이 훈련 교사 목록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허락했다.

1963년 I. P. A.가 정해놓은 최종 기한(8월 31일) 2주 전 S. F. P.의 훈련 교사 위원회는 1962년의

            용감한 입장을 포기하고, 금지령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했다. 라캉은 더 이상 훈련 교사의

            일원이 아니게 되었다. I. P. A.로부터 제명된 것이다.

1964년 공식적으로 프랑스 정신분석 학교를 창립하기 전까지 클라브뢸(Jean Clavreul)을 비롯한

            라캉 추종자들이 정신분석에 대한 스터디 그룹을 조작했다. 프랑스 정신분석 학교는 곧바로

            라캉이 세운 파리 프로이트 학교(E. F. P.)로 재편되었다. 레비스트로스와 알튀세의 지지 속

            에서 그는 고등연구원(Ecole Pratique des Hautes Etudes) 강사로 임명되었다.

1965년 1월 라캉은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에서 '무의식의 내 가지 기본 개념

            들'에 대한 새로운 세미나를 시작한다. 이 세미나의 청중은 분석가들뿐 아니라 고등사범학

            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젊은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밀레(Jacques-Alain

             Miller)가 있었다.

1966년 《에크리》(Paris, Seuil, 1966) 출간. 이 책은 지식인 계층을 넘어 폭넓은 학생 대중의 관

            심을 끌었다.

1967년 라캉은 E. F. P.의 정초 행위(Acte de Fondation)를 제시했다. 이것의 새로움은 통과

            (passe) 절차에 있다. '통과'는 두 명의 안내자(passeur) 앞에서 하는 테스트로 구성되는

            데, 자신의 피분석자로서의 경험과 특히 피분석자의 위치에서 분석가의 위치로 이행하는 중

            요한 순간을 설명하는 것이 주된 과제다. 안내인들은 통과자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이번에는

            교장, 라캉 그리고 몇몇 지도교사로 구성된 승인 위원회 앞에서 그들이 들은 내용을 증명한

            다. 이 승인 위원회의 기능은 학교의 분석가를 선발하는 것뿐 아니라 선발 절차 이후 '학설

            의 작업'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1969년 통과에 관한 문제가 E. F. P.의 운명을 위협하게 되었다. 라캉의 분석가 훈련 방법과 승인

            과정에 반대하면서 E. F. P.에서 사임한 사람들 주위에 '제4의 그룹'이 형성된 것이다. 라캉

            은 1968년 5월로 이어지는 대학의 붕괴 속에 놓여 있었다. "만약 정신분석이 지식으로 개진

            되고 그 자체로 가르쳐질 수 없다면 그것은 대학에서 아무런 위상도 갖지 않습니다. 대학은

            오직 지식의 문제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고등사범학교의 교장 플라셀리에르(Flaceliere)

            는 학기가 시작될 무렵 라캉에게 고등사범학교는 더 이상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핑계를 찾은 것이다. 게다가 《분석 노트 Cahiers pour l'Analyse》 역시 출판을 멈춰야 했

           다. 하지만 뱅센(Vincennes) 대학(파리 8대학)은 달라 보였다. 푸코는 라캉에게 뱅센 대학

           에 정신분석학과를 만들고 지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라캉은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감사의 표

           시로 팡테옹(Pantheon)의 법률 학교로 세미나 장소를 옮겼다.

1974년 뱅센 대학의 정신분석학과가 '프로이트파의 장(Le Champ freudien)'이라고 이름을 바꿨

           다. 라캉이 학과장으로, 밀레가 학장으로 취임했다.

1980년 1월 9일 라캉은 E. F. P.의 폐교를 선언하면서 그와 함께 작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를 글로 진술하라고 요청했다. 일주일 만에 1000통의 편지가 그에게 배달됐다. 2월 21

           일 라캉은 '프로이트적 대의(La Cause freudienne)'를 창설했다. 이 학교는 나중에 '프로이

           트 대의 학교(L'ecole de la Cause freudienne)'로 이름을 바꿨다.

1981년 9월 9일 파리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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