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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6'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1.06 2015-002 만인보 ④

2015-002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2

 

811.6

고67만  4

 

창작전작시-------------------------------------------------------------

 

나는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씨름꾼이나 엿장수, 매맞는 아이, 엿보는 소악패, 늙은 부부, 장에 가는 농민, 음흉한 양반 등등 거기 살아 있는 백성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승의 엄숙함을 느낀다. 이런 점은 중동이나 인도의 벽화 또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느끼며, 특히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뚜렷한 의도를 지니고 당대의 잡다한 민중을 모든 가치와 관념과 인식의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눈치를 채게 된다. 『만인보』는 마치 들꽃이나 잡초처럼 강산에 번성하고 스러져간 당대인의 모습을 시인 자신의 체험적 스냅사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 시'이다. 작은 수백 수천의 조약돌을 모아 바다를 형성화해내듯이 그의 이러한 작업은 서사시가 흔히 놓치게 되는 서정성과 개개인의 자상한 인생 체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오히려 시인 고은의 전생애와 동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대하 서사시의 성과를 얻게 하고 있다.

- 소설가 황석영

 

신명의 언어로 충만한 시인 고은, 그의 신명의 언어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하나 하나와 살아서 만날 때 낳아지는 것이 『만인보』 연작이다. 그 만남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 지혜로 시인은 "사람의 추악까지 포함하는 승엄성"을 포착해내고 민중적 생명력의 온전한 모습을 길어내어 생동하는 한국어의 급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싣고 있다. 『만인보』의 만남이 거듭할수록 시인의 신명은 더욱더 살아 뜀뛸 것이다. 그가 시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한.

- 문학평론가 성민엽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작자의 말

정약전 / 찬밥네 / 미제 조막손이 / 판도 마누라 / 정순이 에미 / 효자 태현이 / 낙곤이 / 재동이 아저씨 막내아들 / 원당리 삼덕이 할머니 / 수레기 신딸 / 일  연 / 가사메 염전 / 새터 째보 모녀 / 염전꾼 박재걸 / 송만옥 영감 / 박해동이 장모 / 박해동이 / 주걱네 아들 / 아래뜸 김상선 / 조정규 / 아들 생각 / 옥정골 용술이 / 염전 우식이 / 중뜸 쪼까니 / 외할머니 동무 / 퉁  소 / 조장로 마누라 / 재천이 아저씨네 김치 / 미제 진필식 영감 / 남원옥 숙수 / 이인로 / 개야도 심청이 / 거지 내외 / 잿정지 과수댁 / 매  자 / 네 할아버지 / 기창이 둘째고모 / 외할아버지 / 명주 두루마기 / 두번째 마누라 / 옥정골댁 / 수동이네 제비 / 줄포댁 / 관여산 묘지기 / 노인단 / 소경 분례 / 월명암 화상 / 김창규 / 며느리 노릇 / 김유태 / 양증조할아버지 / 신자 누나 / 병술이 아버지 / 홍  련 / 영래 마누라 / 독점 사돈 / 칠룡이 / 정두 어머니 / 우  렁 / 술꾼 도술이 / 탄금대 / 창수네 집 / 혹부리 황아장수 / 동고티 오막살이 / 쌍무지개 / 그려 그려 / 쇠정지 재순이 / 윤  태 / 백제 소녀 / 윤사월 / 칠봉이 / 갈치장수 아주머니 / 상렬이 각시 / 지곡리 어르신 / 남복이 큰아기 / 고사떡 / 서자 강변 7우 / 길남이 / 미제 선술집 / 관옥이 / 관옥이 아버지 / 현조 현각 / 용섭이 어머니 / 두 동네 아이들 / 이  모 / 임  호 / 옥순이 / 남생이 의붓아버지 / 상철이 / 희  자 / 당북리 사람 / 청해진 / 참만이 / 묵은 소나무 / 백정 김태식 / 근봉이네 빚장이 / 성모 염복 / 진  수 / 이모부 한용산 / 수건이 여편네 / 막금이 / 묵은장 생선집 / 개바위 할아버지 / 이선구 / 상놈 달봉이 / 간장 거지 / 집 짓는 날 / 평안도 나그네 / 채순이

 

정약전

 

험준한 때 이 땅의 강기슭에 태어나

형제가 혹은 장살당하고

혹은 유배당하였다

신유사옥으로

정약전 그도 아우 약용과 더불어 유배당하여

최원악지 흑산도로 귀양갔다

그는 흑산이라는 이름이 무서워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갈아

자산이라 하고 지냈다

그런 유배 16년 동안 파도에 에워싸여

날마다 미친 바다에는

배 한 척 뜨지 않는데

시를 쓰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노래하겠는가

그것도 헛것이매 그만두고

섬 안에 창대라는 그장이 하나 있어

그와 함께 지내며

흑산도 아니 자산도 바다 물고기에 정들었다

바다물새와 바다짐승 바다풀 바다벌레를 익혀나갔다

이로써 흑산어보 아니 자산어보가 이루어졌다

거기에 한마디 덧붙이기를

후세 사람이 이를 고치고 바로잡으면

이 책은 치병에도 이용에도 이치에도

물음에 답하는 태도 쓰이리라

또한 시인들도 이로써 이제까지 미치지 못한 바

그것을 노래할 수 있으리라

 

노랑가오리

모양은 청가오리와 비슷하나

등이 노랗고 간에 기름이 많다

멸치

 

'사기' 화식전에는 추천석이라 하고

'정의'에는 잡소어

'설문'에는 추백어

'운편'에는 소어라 하였다

지금의 멸치가 이것이다

이에 앞서

선물용으로는 천한 고기이다

 

바다벌레 바다좀

크기는 밥알만하고

새우처럼 곧장 뛰지만 수염은 없다

항상 물 밑바닥에 있다가

죽은 물고기를 보면

그 뱃속에 들어가 취식한다

 

이렇듯이 노랑가오리 배도 갈라보고

아쉬운 대로 고서도 뒤져 밝혀내고

바다 밑 물속까지 살펴보며

그 16년 동안 질도 귀양살이 가운데

눈감을 때가 와서

그저 눈 스르르 감으니

그의 죽음 슬퍼하는 자

오로지 파도소리

파도소리

파도소리

 

일  연

 

오랜 무신란 무도한 권세로 나라가 피폐하고

오랜 몽고 침노로 황폐하여

백성이 흘러다니고

무덤이 떠도는 세월이라

옛것 한 가지 남을 길 없는데

이때

여기저기 눈여겨보며

찾아다니며

옛 시절의 자취 모아

이윽고 아홉 권 유사를 지어냈으니

그대가 최씨 무신 권세 지나

원나라 복속 그 시절일망정

충렬왕의 부름받아 국사 된 것보다

얼마나 영화인가

국사임에도

국사 노릇으로 큰 도리 떨치기보다

늙은 어머니 봉양을 빌미로

개경 떠나 외시골로 숨어들어

늙은 어머니 시든 눈빛에 든 옛 시절도

옛 시절의 운행도 깨쳤으니

그 얼마나 영화인가

천년 뒤 그대가 모아 남긴 노래 태어나

 

간 봄 그리우매

모든 것 읊어 시름하여라

아름다우신 모습

주름 지니시려 하여라

눈 돌이킬 사이

만나고 지어라

님이시여 님 그리운 마음 가는 길

어느 다북쑥 마을에 잘 밤 있으오리

 

조정규

 

생육신 조려의 16대손 조정규와

그의 아내 박필양 사이

여섯 아들

용하

용은

용주

용한

용진

용원

 

이 아들 여섯형제 고스란히

한말 이후 왜의 침노에 맞서

혹은 태평양에서

혹은 중국땅에서

혹은 국내에서

나라 독립을 위해 활약하며

온갖 망명 투옥 투쟁을 되풀이하는데

이 여섯 아들에게 질세라

아버지 스스로도 우국지사라

 

이렇게 아들 여섯형제를 나라에 바친 아버지 있어

이 땅이 가망의 땅이거늘

그 아들 가운데

둘째아들이 곧 소앙 조용은이라

절대 평등의 삼균주의 부르짖은 조소앙이라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인류의

무지와 무력과 무산이 혁명된

화평하고 안전하고 자유스러운 삼균주의 사회를 실현하라

바로 그 조소앙이라

 

이인로

 

세상 볼장 다 보아버린 듯

영 어질어질할 때는

머리 깎고 중으로 숨었다가

다시 나오기도 하고

여러 해좌파 묵객과 사귀기도 하였으나

이인로

성깔 하나 급하여

환로에 나아갔다가 그만두어

어느 자리 궁둥이 풀 나본 적이 없구나

그러고 나서

선경에 들기 위하여

왠놈의 지리산 청학동을 헤매다 그만두기도 하여

느는 것이야 술이었구나

탄식이었구나

그러나 글과 글씨 수승하니 어쩌랴

정중부가 선비 다 죽이고 권세 잡고

정중부를 죽인 경대승이

권세 잡고

경대승 뒤 이의문이 잡고

몇 곱절 포악하다가

이의문을 죽인 최충헌 형제가

권세 잡아서 학정을 자행하다가

최충헌이 아우 충수를 죽이고

소위 최씨 세습 권세의 세상이 되어

학정이 쌓이고 쌓이는데

이런 때의 묵객

세상을 등지는 바 있을 법하여

술이나 먹고

잠이나 잘 법하여

분연히 궐기하여 세상에 나갈 뜻 죽일 법하여

 

에라 파한집 전편

마음에 드는 시만 논함이여

그 뒤로 파한집을 보완한다 하여

최자 보한집이 이어질 법하여

 

김창규

 

아래뜸 김동규는 자랑할 것 없으니

마마자국깨나 자랑하는 낯짝인데

영 남부끄러움 한 조각 그린 바 없는 낯짝인데

남의 물건 그냥 갖다가 쓰기가 일쑤인데

그 형에게 질세라

동생 창규는 한술 더 뜨는 인간인데

그 창규는

또 일본놈만 보면 사족 못 써

비 온 뒤 발 빠지는 진흙길에서도

넙죽 큰절을 해댄다

신풍리 방앗간 갔다 돌아오는 길

일본놈 자전거 타고 가는데

거기다 대고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 드렸다

그런데 그 큰절에 운 들어

그 창규는

대번에 군산부청 소사로 취직되어

부청 재무국 사무실 청소하고

출근부 챙기고

때로는 결재 맡으러

결재 서류 들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버지 제사날이나

욕장이 어머니 생일날

집에 오면

동네 어른들 보아도

턱만 보이며 거드름깨나 피워댄다

담배도

말아 피우는 담배 아니다

 

김유태

 

김병천 이사장 큰아들 유태 도련님

눈썹과 눈썹 사이 길목에

큰 점 하나 박혀

눈 꿈적거릴 때마다

그 점도 함께 끔적거린다

말소리는 쌀쌀맞은 편

우박 쏟아지는 날

아 거기 있지 말고 우리집으로 들어와

하고 말해도 말소리는 쌀쌀맞은 편

그러나 누구하고 손톱만큼 다툰 적 없다

공깃돌 열 벌이나 만들어

이놈으로 공기 놀고

저놈으로 공기 놀고 하다가

동생 봉태한테도 주고

동네 아이한테도 준다

눈자위 한번 허여번뜩한데

그 눈으로 쳐다보면

탱자나무 가시 사이 탱자 걸려 있다

그 겨울 지나

아무도 못 보는 매화꽃 있다

무엇이든지

맨 먼저 본다

남쪽 하늘에 새인지 점인지 하나

 

임  호

 

원당리 임호 양반

호걸 양반

과연 우행호시라

소 같은 위엄으로 느릿느릿 걸어가고

호랑이같이 눈빛 형형하여

그 양반 나서면

오리 십리가 빛나는데

게다가 한번 입 떼는 날이면

가는 테마다 청산이요

청산 따라 백운인데

경성 가서 전문학교 다니다가

원당리 돌아오면

그 사각모 쓰고 돌아오면

동네 어른들

원당리에서 인물 났다고 자랑인데

그 호걸 양반

전문학교 졸업 이후

경성에서 큰일 한다고 소문도 떠들썩했지만

그냥 내려와 구들 차지하고 뒹굴 뿐

밥만 축내는 식충일 뿐

8 · 15 이후에도

그 하고많은 군소 단체에도 나가지 않고

밥만 축내고

물만 축내는 수충일 뿐

노는 괴로움만 실컷 맛보다가

늙어가는 부모 앞에서

어느 날 먼저 세상 떠났다

그 호걸 양반이 남긴 책 스무 권

그 책들도 함께 묻었다

 

이선구

 

서수면 선구 아가씨

그 아가씨 걸어가면

온통 세상이 소리나는데

2월 추운 날도

그 황량한 밭두렁도 빛나는데

그만 일찌감치 사랑에 눈떠버려

바람둥이한테 첫사랑 바치고는

달밤에 몸도 바치고는

여자 중학교 4학년 퇴학해버리고

교복 세일러복 벗고

수수한 깨끼저고리에 몽당치마 입어도

어찌 그리 거룩하고 아리따운지 착한지 슬픈지

나이 18세에 마음 하나 늙어서

성난 오라버니가 강제로 보낸 시집 가서

한 달도 못 살고

청미래덩굴 깔린 친정 뒷산에 와

어릴 때 잘 놀러갔던 소나무

그 소나무에 목 매달고 늘어져버렸다

바람에 좀 흔들리며 매달렸다

 

어디에 한산이씨선구지묘 있겠느냐 그냥 흙 아니겠느냐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