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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7 2014-006 만인보 ⑥
2015. 1. 17. 10:42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06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4

 

811.6

고67만  6

 

창비전작시---------------------------------------------------------------------

 

나는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씨름꾼이나 엿장수, 매맞는 아이, 엿보는 소악패, 늙은 부부, 장에 가는 농민, 음흉한 양반 등등 거기 살아 있는 백성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승의 엄숙함을 느낀다. 이런 점은 중동이나 인도의 벽화 또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느끼며, 특히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뚜렷한 의도를 지니고 당대의 잡다한 민중을 모든 가치와 관념과 인식의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눈치를 채게 된다. 『만인보』는 마치 들꽃이나 잡초처럼 강산에 번성하고 스러져간 당대인의 모습을 시인 자신의 체험적 스냅사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 시'이다. 작은 수백 수천의 조약돌을 모아 바다를 형성화해내듯이 그의 이러한 작업은 서사시가 흔히 놓치게 되는 서정성과 개개인의 자상한 인생 체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오히려 시인 고은의 전생애와 동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대하 서사시의 성과를 얻게 하고 있다.

- 소설가 황석영

 

신명의 언어로 충만한 시인 고은, 그의 신명의 언어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하나 하나와 살아서 만날 때 낳아지는 것이 『만인보』 연작이다. 그 만남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 지혜로 시인은 "사람의 추악까지 포함하는 승엄성"을 포착해내고 민중적 생명력의 온전한 모습을 길어내어 생동하는 한국어의 급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싣고 있다. 『만인보』의 만남이 거듭할수록 시인의 신명은 더욱더 살아 뜀뛸 것이다. 그가 시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한.

- 문학평론가 성민엽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성계육 / 관여산 조봉래 / 혹부리 / 입분이 / 천서방 / 임방울 / 두희종 영감 / 효부 / 쌍가매 / 박춘보 / 형제 머슴 / 춘  자 / 신  자 / 이삼만 / 양녕대군 / 진달룡이 / 달봉이 / 진달룡이 어머니 / 송만복이 / 기호 할머니 / 김규식 / 당북리 혹부리 / 왕눈이 가시내 / 육복술씨 / 나운리 방앗간집 마누라 / 광개토대왕 / 월명동 미인 / 기선이 / 재근이 / 오줌싸개 / 외사촌 용섭이 / 점  례 / 이종사촌 한선우 / 새말 조인구 아버지 / 이광수 / 개사리 문점술이 / 새말 조길연이 딸 / 김재선 영감 / 새터 울음보 / 용둔리 찐득이 / 독점 오복녀 / 삼형제고개 / 설소년 / 따따부따 / 백제 유민 부례 / 수복이 / 원당리 노망 / 독점고개 강도 / 눈에 홀린 총각 / 미제 황소아들 / 김종술이 / 재봉이네 장닭 / 도  선 / 수  염 / 호락질 / 미제 창순이 / 완  도 / 이차돈 / 형사 조태룡 / 홍종우 / 지곡리 서당 전총각 / 명산동 잡화상 며느리 / 신흥동 껄렁패 / 강집사 / 윤봉재 / 길남이 / 김시습 / 권오술이 여편네 / 선제리 도둑 / 관전이 외할아버지 / 귀녀 아버지 / 어린 완규 / 새터 상술이 어머니 / 미제 술집 심부름꾼 / 옥정골 고남곤이 / 하이하이 아낙네 / 황희 / 갈뫼 애무덤 / 아래뜸 우식이 / 시청 산업계장 김주갑 / 지서장 김충호 / 미제 공순이 / 창순이 아버지 / 산삼 재상 / 큰작은어머니 / 작은작은어머니 / 소래자 / 중식이 아버지 / 양반 나그네 / 정  철 / 김세규 서모 / 칙간 귀신 / 양귀비꽃 / 참판 똥 / 고려의 끝 / 원당 김상래 / 미제 김상래 / 가사메 전한배 / 전익배 / 어느 어머니 / 전상모 / 지곡리 강칠봉 / 전대복이 / 우하룡 / 말  례 / 가네무라 가네마쓰 / 문행렬이 아저씨 / 김도술 / 김덕구 마누라

찾아보기

 

관여산 조봉래

 

늘 우는 소리

웃방 흙바닥 나락 여덟 가마나 쟁여두고

아이고 뭘 먹고 살 것인가 하고

우는 소리

누가 인기척 내며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이고 목구멍에 거미줄 칠 날이

내일 모레여 하고

누가 양식 꾸러 온 것도 아닌데

지레짐작으로

두 끼 굶었다고

물만 먹고 앉았다고

남우세 모르고

우는 소리

임오년 계미년 모진 시절이건만

관여산 위아래 마을 어느 집도

그런 봉래네 집으로

양식 꾸러 가지 않았다

양식은커녕 삽 한 자루 빌러 가지 않았다

온 동네 짬짜미로

조봉래 따로 돌려놓아 버리고

어디 보자

봉래 너 아쉬운 때 있으리라

부엌 아궁이 재 가득해도

당그래 하나 못 빌고 올 날 있으리라

 

당북리 혹부리

 

당북리 혹부리 권오식이

만만치 않은 입심이라

 

왼쪽 볼에 척하니 하나 매달린 혹이라

동네 어른이 심심하던지 한마디

자네는 소 뒷다리 밑에 달린 것을

얻어다 달고 다니나 하자

영감님은 남의 부랄 떼어다

차고 다니십니까

그것도 하나 아니라 두 개씩이나

괜히 한마디 했다가 본전치기 못하고 말았다

 

말대꾸에 보리카락 들어가는 권오식이

그러나 저 혼자야 한없이 싱거운지라

한번 지게 받쳐놓고

지겟짐 그늘에 들어가 쉬기 시작하노라면

햇빛에 그늘 옮겨가는 대로

옮겨 앉아

일어설 줄 모르는 권오식이

 

눈앞에 두벌김 맨 검푸른 모 자라

왜가리 따위 앉을 데 두지 않는데

벌써 이른벼 나락 모가지 여무는데

찰벼 사납게 패는데

 

나운리 방앗간집 마누라

 

미룡리 신풍리 사이

나운리 방앗간집

방앗간은 헌 집 사서 자꾸 달아내고 올리고 하여

이층인지 삼층인지 모르고

두 채인지

몇 채인지 모르게 늘어나기만 한다

 

그 방앗간집 주인 영감은

방앗값 떼어내는 데 귀신이라

한 말 떼면

그게 한 말 가웃이다

그렇게 부자 되니 무엇하나

밤이나 낮이나

방앗간 먼지 속에서

누구 하나 못미더워라

눈에 불 켜 달고

여기저기 두리번댄다

 

손수 아시 찐 쌀 살펴보고

발동기 용수철 기름칠하고

언제 안채 들여다볼 겨를 있는가

 

겨우 늦은 점심에

소금김치 한 가닥 얹어

쌀 보리 섞은 밥 뚝딱 먹고 나면

담배 한 대 물고 나와버린다

 

그런지라

안채 마누라는

노상 얼굴 단장이나 하고

머리 가리마 짜르르 미끄러진다

뒤에서 보면

이게 어느 집 기생인가

 

어여쁜 낭자 지어

분냄새에 대낮에 모기 운다

바깥 방앗간 영감과 15년 차이라

저 혼자 나선 길에

군산 희소관 가서

일본 활동사진 보고 오는 길

 

그래도 미안스러운지

영감 주려고 궐련 두 갑 사온다

영감은 그냥 봉지담배 뜯어

종이에 말아 피우는데

 

월명동 미인

 

군산 월명산 밑 월명동은

언제나 인기척 귀한데

집집마다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하기야 3 · 1절날 깃발도 적적한데

그런 주택가 가로수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데

어쩌다가 미면 소달구지가

멋모르고 그 거리 들이닥쳐

쇠똥 질턱질턱 싸놓으며 지나간 뒤

그 쇠똥 꼬들꼬들해질 무렵

저녁 나절이라

그 누가 보아야지

그 누가 보아야지

월명동 미인 가네무라 히사꼬

양산 받고 바람 쐬러 나온다

소문으로는 몹쓸 병 걸려

죽는 날짜 받아놓았다 하나

세월이 갈수록

그 아름다움 무르녹아

그 히사꼬 한번 보면

그날 하루 내내

다른 것 보아서는 안된다 눈 버린다

그 깎아 박은 듯한 콧마루

그 코 아래

검은 점은 일부러 찍은 점이라거니

태어날 때

삼시랑 할머니가

보름달에 푸접하라고 찍어준 점이라거니

그 히사꼬 지나가는 거리

이제까지 그렇게도 적적하다가

이 집 창 드르륵 열리고

저 집 창 열리고 열려

월명동 미인 구경하는 늙은이 있고

일찍 돌아온 사내 있고

덩달아 휘익 휘파람 부는 아이도 있고

제 동네 미인한테 눈팔고 있다

한 눈이 아니라

두 눈 다 쏘옥 팔아버리고 있다

벌써 시청 쪽으로 가고 없다

월명동 미인

못이 되었으면

그 미인 치마라도 걸어두는

못이 되었으면

 

새말 조인구 아버지

 

봄볕에 나와

해바라기하다 그대로 앉아 죽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다 저녁때 아들이 가 흔들어 깨웠으나

이미 굳을 대로 굳었다

굳은 뼈 우드득우드득 분질러 눕혀놓고

아이고오 아이고오

곡성 냈다

늙은 아버지 세상 떠나도

슬픔 하나 없는 아들 조인구

 

하기야 사람 때리고 패는 데만 이골이 났지

어찌 슬픔 알겠느뇨

어찌 생사의 뜻 알겠느뇨

억지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개사리 문점술이

 

문점술이

웃통 벗으면

그런 장사 없는데

괴적삼 입으면

언제나 꾀죄죄한 꼬라지라

다른 동네사람 멋모르고

멱살 잡고 떵떵거리다가

순하디순한 점술이 한번 화나면

그냥 상대방 번쩍 들어 개골창에 내던져버린다

 

체 언 빨래만도 못한 것이

나대기는

말복 풍뎅이 불에 대들 듯하고 있네

한마디 투덜

 

밥 세 사발 먹고도 서운한지

숭늉 두어 사발 먹는 점술이

일 나와

그렇게 먹어야

배 주릴 때 견디는 점술이

 

동네 조무래기들이

업어 달라고 졸라대면

셋이고 넷이고 한꺼번에 겹겹으로 업고

큰길까지 나가주는 점술이

 

순하디순하여

동네 아낙네도 내외하지 않고

하소 하소 하고

어이없는 반말 쌍말에도

꼬박 예 예 예에 하는 점술이

상고머리 희끗희끗

보리 베고 난 빈 밭에서

석양머리 붉은구름 한동안 보고

히죽 웃는 점술이

 

새말 조길연이 딸

 

허퉁하고 폭폭한들

어디에 대고 그 속 풀 곳 없다

새말 조길연이 딸 아리따운 처녀 양순이

왜 그런지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하고

여기서

저기서

고약한 헛소문만 떠도는데

아무개하고 붙었다더라

아무개하고 헛간 검불 속에서 붙었다더라

군산 묵은장 장돌림녀석하고 눈맞아

당장 여관 가서 치마 말기 풀지도 않고

그냥 나딩굴었다더라

이런 몹쓸 소리에

시집 길 꽉 막혀

어디서 멋 모르고 선보러 왔다가도

더는 발길 끊어지고 만다

 

그러나 정작 당자인 양순이는

늘 애벌레같이 굼실거리는

그 잘 생긴 입술에

흰 이빨 살짝 내보이며 웃을 뿐

세 또래 처녀가 귀뜀해 주어도

어디 남의 말 석 달 가랴

 

눈 지그시 감고 입술 지그시 깨물고만 있을 뿐

그년의 속 한번

천길도 깊어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동네 웃말 전두수 아들한테

느지막이 시집갔다

시집가던 머리로

아이 들어 배가 불렀다

동네 흙빛 한번 새삼 붉었다

 

새터 울음보

 

아빠 한섭이는

좀도둑질하다가 잡혀

형무소 가고

엄마는 집 나가 소식 모르고

할머니 손에 닿아 자라는 아이

새터 울음보

 

울다

울다

울다 지치면

잠자고

잠깨면

목 쉬어 울어대는데

 

어린아이가 목 쉬다니

천벌이야 !

 

그 시절

그 마을 모두가 천벌 맞은 것이야 !

 

용둔리 찐득이

 

박석태

이 찐득이

죽은 지 3년 된다

찐득이 제사날

동네 우물마다

오늘이 찐득이 제사날이여

찐득이 제사날이여

 

오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꾸역꾸역 판에 끼여들어

두부 다 먹고

김치 다 먹고

술도 다 먹고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 다 듣고

 

밀어내어도

밀려났다가 다시 오고

또 밀어내어도

또 밀려났다가 다시 오고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잔치에

찐득찐득 늘어붙어

실속 차릴 것 다 차리는 찐득이

 

그러다가 젊은이한테 맞아

코피 주르륵 흘려도

쑥잎으로 콧구멍 막고

다시 들어서서

잔칫상 한 자리 차지하고

굴비 찐 것 건드리고

부꾸미 한장 걷어 먹고

쇠고기산적 먹고

끄르륵 트림한다

 

그렇게도 홀대받아도

그렇게도 괄시받아도

그런 것 막무가내로

제 실속 차리는 찐득이

 

누군가가 그 성질 간파하여

못 받을 빚 받아오라 해서

빚진 집에 가서

아무리 몰아내고

도망치고

몽둥이로 쳐 몰아내어도

기어이 들어가

아랫목 차지하고

사흘 누워 있다가

밥도 안 먹고 누워 있다가

기어이 돈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 찐득이 박석태 죽어

제사날이었다

오마나

찐득이 귀신 우물 속에 있는가

두레박이 안 올라오네

 

원당리 노망

 

원당리 홍달표 할아버지 노망 들어

아직 깜깜한 꼭두새벽인데

아 큼큼

하고 일어나

이 방 저 방 문 열어젖히며

잠긴 문 문고리 흔들어대며

아아니 아직도 일어날 생각 없느냐

방고래 오래 지면

그 죄가 살인죄 다음이여

아아니

이러고서

어찌 삼시 세때

아가리에 밥 넣고 살겠느냐

이렇게 시작해서

한동안도 입 가만두지 않고

그 말라깽이 어디에

그렇게 잔 사설 가득 들어 있는지

 

하기야 노망들기 전에도

저 혼자도 늘 입 놀리기를 쉬지 않더니

밥 먹을 때나 좀 뜸한데

아니나다를까

어찌 내가 밥 먹는데도

말을 시킨단 말이냐

밥에 돌 섞어주고

반찬에 머리카락 넣어주는 년이

어디 내 며느리냐

나 죽이려고 양잿물 안 넣은 것만도 다행이다

아아니 이런 년하고 사는 놈이

어디 내 자식이냐

 

그것으로 모자라 청승으로 나아가는데

아이고 죽은 마누라가 알면

제사날

제사밥 얻어먹으러 와서

눈물바람으로 돌아가겠구나

우리 영감 불쌍하다고

 

고깃국 나오면

아들 국건더기까지

떠다 먹는 달표 할아버지

어찌 한마디 없을소냐

제 서방한테 주는 고기는 먹기 좋구나

못된 년 같으니라고

 

나 오늘 죽을 테니

너희들 일 나가지 말고 집에 있거라

이 연놈들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그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곡리 서당 전총각

 

옥구들판에는 고씨 두씨 문씨 전씨라

지곡리에도 전씨 몇 가호 있다

지곡리에도 전씨 몇 가호 있다

지곡리 서당 이른 아침

학동들 서당에 올 무렵

먼저 와서

덩다랗게 팔짱 끼고 서 있는데

길게 딴머리하고 서 있는데

그게 누구냐 하면

지곡리 전씨네 아들

이 딱한 총각하고서는

서당 학동들 오는 길 막고

 

너 가지고 온 깜밥 내놔

너 가지고 온 먹 내놔

너 가지고 온 제기 내놔

 

글읽기는 동몽선습 첫줄부터 졸기 시작하는데

 

전총각 어머니 태몽에

거머리 꿈꾸고

전총각 뱄다는데

 

그렇게 다닌 서당이라

다른 아이들

어린아이들

사서삼경 다 떼었는데

전총각은

겨우 소학에서 졸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갈 것이야

아이들 등쳐먹고

공갈하는 재조는 익혔으매

 

명산동 잡화상 며느리

 

군산 새장터 가는 길

벼랑길 지나

언제나 정갈한 곽씨네 잡화가게 있다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게

갖가지 물건이 잘도 차려져 있다

하얀 머리 상고 친 할아버지가

연한 옥색 조끼 입고

날 듯이 나와

물건 다독거리며 내주고

값을 받아도

정중하게 받는다

나이 어리면

잘 가거라

나이 어중뜨면

잘 가시게

인사성 하도 좋아

아나 하루살이야

절 받고 싶거든

문안인사 받고 싶거든

곽씨네 점방 가거라 할 정도인데

어쩌다 그 곽씨

볼 일 있거나

누워야 할 병 들거나 하면

그 시아버지 대신

며느리가 나온다

아서라 동백꽃 같은 그 며느리

검은 머리에 붉은 댕기 섞은 낭자머리

남치마에 흰저고리

자주고름아

어느새 봄이 와

저쪽에서 풋풋이 봄바람 온다

남편은 서울 유학 가서

방학까지는 독수공방

방 그슬린다고

참기름불만 조금 켰다가 꺼버리는 독수공방

깊은 밤

그 방의

그 며느리의 꿈속에 들어가고 싶은

몹쓸 소원이여

 

신흥동 껄렁패

 

군산에는 흥남동 개복동 신흥동

오룡동 명산동에

그 언덕바지 따라

일본사람들한테 밀려난 가난뱅이들이

올라가 이룬 산동네

식민지 달동네

초가집 빼곡이 덮인 언덕동네 있다

 

1920년 이래

조가비 겹겹으로 엎어둔 듯한

그 초가집 골목길 올라가면

몇 걸음에 숨이 차다

 

신흥동 오르막길 잘도 올라가는

아무일이 어머니

쩔뚝발이건만

아들 무일이 하나는

키다리로 길러낸 홀어미

 

그 홀어미 자식 무일이

아비 없는 놈이라

일찌감치 껄렁패 되어

옆구리 칼로 그어 흉터 만들고

새 옷도 생기면 찢어 꿰매어 입고

남의 옷도 새로 입고 나오면

임마 이리 와

너 나를 본떠라

하고 그 옷 쫘악 그어준다

 

그 무일이가 중학교 들어와

제일 뒷자리에 앉아

방인근 소설 「마도의 향불」 읽고

공부만 하는 놈 눈에 거슬리면

그 학생 도시락에

뱀 잡아 토막내어

밥에 박아두었다가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 열다가

기절초풍하게 만든다

껄껄껄 웃는다

 

훈육선생이

너는 아비 없는 놈이라는 소리

듣기 좋으냐 하면

아비 없는 놈이

아비 있는 놈 되면

그럼 우리 어머니가 똥갈보란 말이요

우리 아버지 말고

딴 놈 붙어먹었단 말이요

하고 대드는 무일이

 

아무래도 무서운 곳 없다

경찰서 앞 지나갈 때도

다른 사람들 괜히 무서운데

무일이

이무일이

아비 없는 무일이는 당당하다

 

그러나 시험 때

시험 답안지 보여주면

그 학생한테는

그 무서운 낯짝에서

칼자국 난 낯짝에서

모처럼 달맞이꽃 웃음이 나온다

무일이 얼굴에도 웃음이 나온다

어려서 싸우다 빠진 이빨 해넣어

그 금니빨 빛나는 웃음 나온다

 

누가 군시렁거렸다

쳇 늑대도 웃을 때 있다

늑대인 줄 알았더니 여우밖에 안되는구나

 

그 무일이

인공 때 한탕 하고 나서

수복되고 붙잡혀

아침이슬이었다

 

늘 눈자위 붉은 기운찬 무일이

 

선제리 도둑

 

도둑질 떠나는 날

할아버지 무덤에 간다

할아버지 다녀오겠읍니다

할아버지 손자 잘 보살펴주십시오

 

그래서인가

도둑질 열 번 넘었는데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 다니는 아이놈이

학교에서 도둑질하다가 들켜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들켜

할 수 없이 퇴학맞았다

 

아버지도 스무 번 못 채우고 쇠고랑 찼다

 

도둑 마누라

도둑 어미

형무소 가서 울고 오랴

자식 손모가지

빨랫방망이로 찧어

손가락 병신 만들으랴

 

새터 상술이 어머니

 

상술이 어머니

입 삐죽이 기울어져

남의 이야기 아니면

그 입에서 나오는 것 없다

이 사람 만나

저 사람 이야기

저 사람 만나

이 사람 이야기

이렇게 남의 이야기로만 사는데

무슨 기생 풍류 잡힌다고

낭자 앙똥히 쪽지어

거기 귓발 파내는 귀지개 꽂고

성냥개비도 하나 꽂고

이 사람 이야기

저 사람 이야기

부엌 아궁이 재 퍼내다가

딴 생각에 빠져

재 둘러쓰고 넘어졌다는 이야기까지

생선에 환장하여

생선 가시까지 삼키다가

생밥 몇 숟갈 떠먹고

그 가시 가까스로 넘겼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그런데 그렇게도

남의 이야기 할 수 없는 밤중에는

잠자는 밤중에는

우줌을 푸짐하게 싸므로

큰 요강 두 개나 들여다놓아야 한다

함께 늙어가는 며느리

저녁마다 요강 두 개 들여다놓으며

아이고 우리집 거름 하나 걱정 없다

 

상술이 아버지는 두어 번 싸는데

상술이 어머니는

요강깨나 커야 한다

그래서렷다

상술이네 집 마늘밭

마늘 한번 잘된다

다른 집 것 반뼘인데

그 집 것은 뼘반이나 크다

 

옥정골 고남곤이

 

언제 자고

언제 오줌 싸는지

그저 일에 늘어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옥정골 고남곤이 아저씨

이마에 흉터 하나 번득이며

밭일 끝나면

밭두렁 풀 깎는 일

밭두렁 물러서자마자

산으로 가

푸장나무 대번에 한 짐 해 내려온다

얼굴에 땀 먹어

햇빛에 번득이며

 

그러나 종일 입 하나는

밥 먹는 것 말고는

열어본 일 없다

쉬어터졌나

바람 불어도

어 그놈의 바람 시원하다

한마디 없다

도대체 평생 말 몇마디 하고 죽을 것인가

이사람아 쓰다 달다 해보아

남의 밥 그냥 먹기만 하지 말고

해도

 

그 고남곤이 아저씨

입으로 말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눈으로도

속으로도 말없다

 

하기야 말이란 한번 하기 시작하면

그 말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이 마을 저 마을 무덤들이 다 그런 무덤 아닌가

 

아래뜸 우식이

 

어릴 때 만주로 떠난 아버지 얼굴 모르고

열두살에 어머니마저 세상 작파했으니

그 어린 우식이사 나서서

집안 꾸려가야 했다

아래로 동생 우종이 있고

우만이 있는데

밥 해서

어린 삼형제 밥 먹는다

동네 아낙네들

처음에야 반찬도 나누어 주고

어쩌고 하지만

그게 어디 긴 세월 정성이겠는가

 

추운 날 문구멍 뻥뻥 뚫린 문으로

바람 들어오는 아침

그 추위에 지지 않고 일어나

마당 눈 쓸고

얼음 깬 항아리물 퍼

세수하고

세수한 얼굴에서 김 나고

우종아 일어나

우만아 일어나

그 소리

지나가는 사람이 듣고 빈 소리

아 그놈들 삼형제 잘도 살아가누나

 

한식날 어머니 무덤에 가서

우식이 서럽게 울고

우종이 멀뚱거리며 서 있고

우만이도 마른 풀 뜯으며 앉아 있고

엄마 엄마

실컷 불러보지 못하고 자라나서

먼 데 바라보고

 

이렇게 우식이 실컷 울고 내려오면

새로 힘 난다

아무리 이 세상 벅차도

뚫어

굴 만들 수 있는 힘 난다

우종아

저기까지 누가 먼저 가나 내기하자

요이 똥 !

 

요이 똥은 일본말인가

 

원당 김상래

 

미제 김상래하고

성도 이름도 똑같은

원당리 김상래

 

그러나 원당 김상래는 딴판이라

불알 두쪽 달랑거릴 뿐

가랑이로 찬바람 빠져나갈 뿐

 

어쩌다가 미제 신작로 네거리에서

미제 김상래 만나면

엄지손가락 끝으로

왼 콧구멍 눌러

오른 콧구멍에서 콧물 쏘아낸다

흥 !

 

소달구지 끌다가

소 잃고

달구지 팔고

그냥 깝깝하면 미제 네거리 나오는데

 

그 겉인사성 좋은 미제 김상래도

원당리 김상래한테는

지레 굳어져

말 한마디 헛쓰지 않는다

무엇하러 나왔어 ?

한마디가 인사

 

그러나 벌써 저만치 가버린 원당 김상래

그 뒷모습 당당하다

가진 것 없으나

기 죽어보지 않고

이 세상 괜스러이 자랑스럽다

때는 이른봄 뚝새풀 푸릇푸릇

미제 김상래는 논이 세 개나 있어

벌써부터 농사 걱정

못자리할 걱정

큰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자식 걱정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술 한잔 못 사먹는 쫌뺑이다

 

가사메 전한배

 

만경강 하구 짠바람 갯바람

가사메까지 와

더는 오지 않는다

그 가사메 뒷산

꼭 늙은 누에 한 마리로 누워 있는데

거기 해송 솔바람소리에 가면

잠꾸러기 전한배 꼭 늘어지게 자고 있다

 

말 하나는 늘 다정다감하여

자네 참 오래간만이네그려

자네 춘부장님께서 기간 기체 안녕하신가

어쩌고 양반 행세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자네 신수 훤해지셨네 그려

 

그러나 아무데서나 낮잠 자면

낮모기 뜯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가 네다리 들어가도 모른다

그 코고는 소리 있어

비로소 천하태평 거기 잇다

 

한잠 실컷 자고 나

멍청하게 만경강 앞 염전을 바라다보며

아이고 어디 갈 데도 없구나

하고 다시 누워버린다

 

집에야 멍석에 넌 보리 새가 다 먹어도

서생원이 새끼 데리고 와 먹어도

 

지곡리 강칠봉

 

이것 봐라

이것이 미물하고 한 동아리인 주제

이것이

어렵쇼 천하를 논하는구나

 

지곡리 뒷산 소나무 그늘 낮에도 침침한데

거기 나뭇지게 뉘어놓고

가로되

앞으로 백년 지나면

뽕나무밭이 바다 될 것이여

 

부자 가난해지고

저기 저 가난뱅이 박명순이네 집에

고래등 기와집 설 것이여

 

입담은 척척 늘어붙는데

배운 것이 없어 그게 원수로다

그럴 바에야

김제 금산사 밑으로 가서

고수부 제자한테

그 무엇 좀

그 무슨 후천개벽 좀 배우고 오면 될 텐데

 

나무하느라 갈 수 있는가

나무도

산 주인 눈 피하여

도둑나무하느라

어디 갈 수 있는가

 

눈 하나 형형하니

나무하다가

갑자기 낫으로 땅 찍고

내가 이놈의 나무나 하고

풀이나 깎고

밤에 빈대나 실컷 물리고

 

과연 천하는 논할 만한데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