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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28. 15:34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44 한국의 샘물


글, 사진 / 민병준

2000,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5


082

빛12ㄷ  238


빛깔있는 책들 238


민병준-------------------------------------------------------------------------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사람과 山』 편집장을 지냈다.  1996년 한국잡지탄생 100주년 기념 제30회 한국잡지언론상 기자부문을 수상했으며, 1997년에는 파키스탄 펀잡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밧(8,125미터)을 등반하기도 했다.

현재는 『주간 조선』 등 주간지와 월간지, 사보 등에서 여행과 관련된 기사를 기획 · 집필하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약수』(대원사)와 등반 보고서인 『아름다운 낭가파르밧』이 있다.



|차례|


샘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샘물 약도

참고문헌

장릉  제사를 지낼 때 쓰이던 영천이 있다.

영월 청령포  단종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삼부연폭포  깊은 협곡에서 쏟아지는 폭포수가 마치 그림 같다.

황지  태백에서 솟아난 이 물은 낙동강의 발원이다.

검룡수  하루 1 내지 2톤의 용출량을 자랑하는 검룡수는 일년 내내 수온이 일정하다.

태백산 용정  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제사에 쓰이는 유서 깊은 샘물이다.

오대산 수정암  우통수 물이 마르기 시작 한 뒤부터는 석간수를 쓰고 있다.

오대산 우통수  관리가 잘 안 돼 물이 마르긴 했으나 여전히 물빛이 푸르스름하고 그윽한 맛을 지니고 있다.

오대산 적멸보궁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보궁의 어디에 진신사리를 안치했는지 알 수 없어 더욱 신비로운 곳이다.

보현청수  도둑머리고개라고도 불리는 험준한 고갯마루에 있는 또 하나의 맑은 샘물이다.


산따라 위험한 다리 건너

발을 포개며 좁은 길 걷네

위에는 백 길의 산마루가 있으니

원효가 일찍이 절을 지었네

신령한 자취는 어디로 가고

초상만 흰 비단 폭에 남았구나


차 끓이던 샘에 찬물이 고여

마셔 보니 젖갈이 맛있네

이곳에 예전에 물이 없었다면

스님들이 살기 어려웠을 것인데

원효가 와서 거처하매

단물이 돌구멍에서 솟았네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원효가 찾아드니 돌 틈으로 단물이 솟고」


원효샘  자재암 입구에 있는 샘으로 무색, 무미, 무취의 단아한 물맛을 갖고 있다.

자재암 나한전  원효샘은 나한전으로 바뀐 동굴 안에서 흘러 나오는 석간수였다.

 

숭의전  고려 태조 왕건과 7명의 임금, 정몽주를 비롯한 고려 공신 16명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연천 어수정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운 왕건이 마시던 물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만어사의 종석너덜  1만 마리의 물고기가 변해서 된 것이라는 만어사 둘레의 돌들은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를 낸다.

보물 제564호인 영산 만년교  1780년 석수 백진기가 축조하고 1892년 현감 신현조가 석수 김내경을 시켜 중수했다고 한다.

세석평전  호야와 연진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는 철쭉이 고와 애잔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지리산 천왕봉  지리10경 가운데 첫손가락에 꼽히는 천왕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성모석상  천년 전부터 지리산 천왕봉에 있었던 이 석상은 역사의 파란과 더불어 숱한 수난을 겪어 왔다.

지리산 천왕샘  천왕봉 바위 틈에서 흘러 나오는 이 샘물은 백두대간의 정기를 갈무리한 원시의 물 그 자체이다.

학사루  최치원이 함양에 부임하면서 지어 자주 올랐다고 전하는 누각이다.

함양 상림  신라시대에 조성된 호안림(護岸林)으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공 숲이다.

농산정  홍류동계곡의 아름다움에 취한 고운 최치원이 노닐던 정자로 그가 지은 시와 함께 남아 있다.


첩첩한 산을 호령하며 미친 듯이 쏟아지는 물소리에

사람의 소리는 지척 사이에도 분간하기 어렵네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모두 귀 막게 했구나

- 고운 최치원 「제가야산독서당시(題伽倻山讀書堂詩)」


삼룡변어정과 모전석탑(국보 제30호)

과하천  김천의 명주인 과하주를 빚을 때 쓰는 샘물이다.

조령관  포장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지막 고갯마루에서 조령관을 만날 수 있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맹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맹이 팔자 좋아

큰애기 손질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갈 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 영남을 오가는 길손들이 문경새재를 넘어가며 부르던 민요

 

조령약수  문경새재를 넘나들던 선비와 장사꾼들의 목을 축여 주었던 중요한 샘물이다.

천일각  다산이 고향이 그리울 때면 올라가 구강포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던 곳이다.

백련사 동백숲과 부도  해마다 봄이 되면 붉은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 장관을 연출한다.

다산초당 약천  차를 사랑했던 다산이 차를 끓일 때 이용했던 샘물로 여전히 맑은 물이 솟구쳐 오른다.

 

산골 물 차가운 소리 대밭에 감싸이고

봄 기미는 뜨락의 매화가지에 감도네

아름다운 가락이 이 속에 있으련만 달랠 곳이 없어

여러 번 어정거리다 마네

산의 정자엔 도시 쌓아 둔 책은 없고

오직 이 와경과 수경뿐이라네

새 비가 내린 귤숲은 자못 아름답구나

바위 샘물을 손수 떠서 찻병을 씻네

약 절구질 잦아지니 번거로운 곰팡이는 없건만

드물게 달이는 차풍로엔 먼지만 있네

- 다산 정약용

 

천은사 일주문의 현판  조선의 4대 명필 가운데 한 사람인 이광사가 쓴 것으로 이것을 일주문에 건 후에는 더 이상 절에서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 감로천  샘물이 담겨 있는 석조가 너무 커 물을 마시는 사람까지 압도하는 것이 아쉽다.

상사마을 당몰샘  수질 검사에서 대장균 없는 최상의 물로 판명되기도 한 당몰샘의 물맛은 매우 청정하다.

한국 제일 장수촌 기념비  상사마을 들머리에 서 있는 이 표석에서 당몰샘을 사랑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구례 화엄사  지리산 자락의 이름난 사찰 가운데 가장 크고 장엄한 절이다.

낙안읍성 돌샘  예전에는 고을 수령은 물론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 샘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도갑사 석조  조선 숙종 때 커다란 화강암을 파서 만든 것이다.

영암 성천  월출산이 배출한 위인 왕인박사를 키워 낸 샘물로 이 물을 마시면 왕인박사와 같은 큰 인물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일지암  초의선사는 작고 소박한 초막을 짓고 김정희, 정약용 등 당대의 지식인과 사귀며 다도와 선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일지암 유천  초의선사가 강조한 물의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춘 샘물이다.

달마산 금샘  바위에 뚫린 작은 굴 속에서 흘러 나오는 돌샘은 금빛으로 반짝인다는 것 때문에 더욱 신비롭다.

미황사 부도전

태안사의 현관 역할을 하는 능파각

태안사 경내의 석탑  지름 20미터 정도의 큰 연못 한 가운데 있는 이 석탑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고창 효감천  하늘이 오준이라는 사람의 효성에 감복해 내려 준 선물이다.

선운산 동불암 마애불  이 마애불의 배꼽에는 세상을 바꿔 놓을 비결이 봉해져 있었다고 전한다.

고창읍성

옥출약수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순창 고추장의 맛 비결이 바로 맑은 샘물에 있다.

강천사  기암절벽과 아기단풍의 절경으로 사랑받는 강천산에 자리잡은 비구니 도량처이다.

진안 풍혈냉천  삼복 더위에도 입김이 시릴 만큼 차가운 풍혈과 위장병, 피부병 등에 특효가 있다는 냉천은 한 쌍을 이뤄 불릴 만큼 유명하다.

진안의 진산 마이산  말의 귀를 닮은 독특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개태사  논산8경의 하나인 개태사는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창건한 절집이다.

고란사  백제의 멸망과 함께 소실되었던 것을 고려 현종이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

낙화암  백제의 멸망과 함께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일화 때문에 숙면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고란사약수  백제 왕들이 고란초를 띄워 마셨던 샘물로 왕이 마셨다고 해서 어정이라고도 한다.

만수산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이 마지막으로 몸을 눕힌 곳이다. 신라시대 범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나 절집의 방향, 위치, 와당, 석조 유물 등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량사 돌탑

무량사 샘물  차를 사랑했던 김시습이 말년에 무량사에 머물면서 차를 달일 때 썼을 샘물로, 꽤 깊은 맛을 풍긴다.

도담삼봉  단양8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제1명소이다.

김유신 장군 생가 터

연보정  김유신 장군이 마시던 샘물이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탄금대에서 본 남한강  탄금대는 임진왜란 때 장렬히 전사한 신립 장군의 한이 서린 곳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5. 4. 28. 11:45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43 태초 먹거리

 

이계호 지음

2013, 그리심

 

 

대야도서관

SB101015

 

517.54

이14ㅌ

 

기본이 회복되어야 한다.

 

"자연스럽고 단순한 것이 가장 좋다."

 

오늘도 여전히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아픔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5년, 10년, 20년 뒤에 심각한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젊은 사람들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수많은 이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책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숙제다.

 

[기본이 회복되어야 한다.]

기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도하는 모든 것들은 오히려 몸을 망친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먹거리, 환경, 생활습관을 통해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 이것이 태초먹거리다.

 

이 분은 태초먹거리 학교를 여셨습니다. 뭔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그런 먹거리 학교는 틀림이 없는데, 사실은 이 태초먹거리 학교가 태어나게 된 데는 굉장히 가슴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2012. 3. 16_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전 아나운서 손석희

 

강의를 들으니 우리에게 습관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강연 중 내용을 메모하신 분들도 많은데요. 실천에 옮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12. 7. 20_KBS 1TV <강연 100도씨> 中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자연과학(화학)을 전공한 학자의 연구가 들어있습니다.

정성과 전문성이 절실함이 있는 충실한 책 한 권,

건강 잃고 고통 받는 당신 손에 쥐어드리고 싶습니다.

추천글_방송인 이금희


올바른 먹을거리에 대해서 얼마나 아세요? 이 분에게 배우면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분은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서 올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학교를 운영하고 계세요.

2012. 9. 27_KBS 1TV <아침마당 '목요특강'> 中

 

결국은 이론에 불과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개선하지 않으면

암의 치료도 없다는 것, 그 교훈을 주셔서 참 기본적인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2013. 5. 14_MBN TV <엄지의 제왕> 자연치료 전문의 서재걸

 

돌아가고 싶은 어제와 고통스러운 오늘,

막막한 내일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계호 교수는 영남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레곤주립대학교(OSU)에서 분석화학, 이학박사 학위(Ph. D)를 받았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UIUC)에서 박사 후 연구원(Postdoc.)으로 근무하였으며 미국 인디에나대학교(IU)의 방문교수로 지냈다.

 

현재는 한국분석기술연구소의 소장이자 충남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태초먹거리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 TV방송 및 라디오 출연

· KBS TV <강연 100도씨>

· KBS 1TV <아침마당>

· MBN TV <황금알>

· MBN TV <엄지의 제왕>

· MBC TV <허참의 토크&조이>

·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 MBC 라디오 <성경섭이 만난 사람>

· 대전 극동방송 FM 93.3 (매주 월요일 오후 6시 20분)

태초먹거리 학교에서는 경제성, 상업성, 편리성에 의하여 변질된 현대먹거리를 태초먹거리로 변경하여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일 프로그램|

태초먹거리의 기초과정으로 건강한 삶의 회복을 시작하는 프로그램

 

* 옥천 태초먹거리 학교

· 일시 : 매월 둘째주 토요일 11:00~17:00

· 장소 : 충북 옥천군 청성면 양저리 97-3번지

 

* 대전 태초먹거리 학교

· 일시 : 매월 넷째주 툐요일 11:00~17:00

· 장소 : 대전시 유성구 반석동 642-1번지 온고을 빌딩 5층

 

|숙박 프로그램|

태초먹거리 식단에 대한 구체적인 실습, 강의, 나눔, 자연농업 실습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

 

* 일시 및 장소 : 신청자에 따라 결정

 

|리더양성 프로그램|

2박 3일 과정으로 태초먹거리에 대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국내 · 외에서 태초먹거리 강의를 할 수 있는 리더양성 프로그램

 

* 일시 및 장소 : 산청자에 따라 결정

 


|등록방법|

www.itbfood.net

itbfood@naver.com

070.8270.8333


 

차례

 

시작하면서         감사합니다

                              태초먹거리 학교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학교도 함께 지었다

 

과거                     흙집

                              먹거리란 무엇인가

                              인간의 수명

                              인간의 원래 모습

                              인간의 정신과 육체

 

현재                     현재 우리의 모습

                             실패한 성공자

                             상대적 빈곤감

                             먹거리 안전은 생존경쟁

                             먹거리는 전쟁이다

                             침묵의 살인자

                             먹거리 변질

                             주요 영양소와 미량 영양소

                             화학비료와 농약

                             사과 40개를 먹어야 하나?

                             색깔과 보기가 좋아야 한다

                             녹색 잎채소의 유혹과 진실

                             토양이 죽어가면서 신음하고 있다

                             케이지 사육

                             보암직 먹음직

                             홍시와 곶감

                             자연식품과 정제식품

                             정상인과 암환우의 차이

                             암환우의 시행착오

 

미래                    회복하기

                            자연치유력

                            기본이 회복되어야 한다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바뀌었다

                            현대의학과 민간요법

                             인간의 한계

                             후성유전학

                             일류대 다람쥐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비워야 산다

                             물이 회복의 시작이다

                             정수기 종류

                             물의 종류

                             착한 먹거리

                             친환경 농업과 자연농업

                             잡초는 잡초가 아니다

                             자연농업

                             전체식

                             많이 씹자

                             다이어트

                             태초현미식

                             진액과 효소의 진실

                             단맛의 종류

                             당 지수

                             생식과 화식

                             입과 위에서 일어나는 일

                             췌장을 도와주자

                             소장과 대장

                             변비는 만병의 시작이다

                             탄수화물

                             고기가 필요하지 않다

                             지방

                             오메가3와 오메가6

                             식이섬유

                             발효식품과 술

                             식품첨가물

                             채식과 육식

                             색깔을 먹자

                             황산화지수

                             스트레스를 이렇게 풀어라 Ⅰ, Ⅱ

                             균형식이 내가 살 길이다

                             단순한 삶

                             채움과 비움

                             몸이 따뜻해야 한다

                             짬짬이 운동

                             기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마무리하면서   자연스럽고 단순한 것이 가장 좋다

                             잇비 : 회복하는 운동이다

 

부록                      태초먹거리로 온 편지

 

우리는 걸어 다니는 "흙집"이다.

그래서 반드시 "관리"를 해야 한다.

 

세상에 휘둘리며 사는 삶이 아닌 자연에 동화되어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삶, 그것이 자연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기쁨을 찾아 행복을 누리며 사는 과정이다. 사람다운 기쁨이 주는 값있는 행복이야말로 사람의 가장 처음 모습인 '자연인'으로의 삶을 사는 근본적인 해답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조화.

사람의 정신과 육체가 순리대로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무조건 많이, 무조건 저렴하게!'를 외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아니라 "어떤 것을 얼마나 건강하고 가치있게 먹느냐"이다.

 

시간이 지나 색이 변하고 맛깔스러움이 덜 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생산, 가공, 유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우리 스스로 자연스럽고 볼품이 좀 없어도 영양이 듬뿍 담긴 음식을 선택하는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암환우들은 잘못된 습관 때문에 심각한 질병에 노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등 단기간의 병원치료 후 원래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계속 잘못된 습관을 고치지 않고 생활한다면, 언젠가는 암이 재발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글 중에서

-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

- 음식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

- 지나치게 먹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속을 텅 비워 버리는 편이 좋은 때도 있다. 병의 힘이 최고조에 도달하지 않은 한은, 공복인 채로 있는 쪽이 병이 치료되는 것이다.

- 원래 인간은 병을 치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의사는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만일 육체의 대청소가 되지 않은 채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으면, 그만큼 몸에 해가 된다. 병자에게 너무 먹게 하면 병마저 키워 가는 것이 된다. 모두 정도를 넘긴다는 것은, 자연에 반하는 일이라고 똑똑히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한다.

- 병을 고치는 것은 환자 자신이 가진 자연 치유력뿐이다. 의사가 그것을 방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병을 고쳤다고 해서 약이나 의사 자신의 덕이라고 자랑해서는 안 된다.

 

아래의 예시에 속하는 환우들은 절대로 금식과 단식을 해서는 안 된다.

- 지난 몇 개월 동안 지속해서 체중이 감소하는 환우 중에서 복부에 있는 지방 등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팔 근육[이두박근, 삼두박근 등], 다리근육[허벅지근육, 대퇴부 등] 등이 말랑말랑해지면서 체중이 감소하는 경우

- 설사를 자주 하거나 술, 담배를 많이 했던 환우자

- 평소 추위에 많이 약했던 환우

 

인체에 물이 부족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 원인없이 피곤한 경우

- 쓸데없이 화를 자주 내고 긴장하는 경우

- 몸에 힘이 없고 머리가 무거운 경우

- 잠을 잘 못자는 경우

- 원인없이 숨이 가쁜 경우

- 인내심과 집중력이 부족한 경우

- 음료가 심하게 먹고 싶을 경우

- 물에 관련된 꿈을 많이 꾸는 경우

 

요즘은 물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생수, 약수, 육각수, 약알칼리수, 수소풍부수, 환원수, 자화수, 해양 심층수 등 골라먹기도 힘들만큼 다양한 종류의 물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체에 필요한 양을 얼마나 정기적으로 섭취하느냐는 것이다. 물을 먹는 것이 가장 어렵고 잘 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을 섭취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연에 순종하는 방법이라는 점, 이 한 가지만 기억해두면 좋겠다.

 

* 태초현미식

태초현미식은 소화가 잘되도록 밥과 죽의 중간 형태로서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도록 요리하는 방법인데, 물의 양을 조절하여 원하는 형태로 취사하면 된다. 슬로우쿠커를 이용하여 '저온'에서 7시간 동안 조리하여 영양성분이 최대한 작게 파괴되도록 조리하는 방법이다.

각자의 기호에 따라 된밥이나 진밥에 맞춰 물의 양을 조절하면 된다. 식사하고 남은 태초현미식은 냉장고에 3~4일 동안 보관할 수 있고, 자연해동 후에 먹을 수 있다. 자연해동이란 전자레인지 등을 사용하지 않고, 저녁에 식탁에 놓아두면 아침 식사를 할 때 자연적으로 해동되는 방법을 의미한다.

 

수수, 기장과 같은 다른 잡곡류를 추가하는 것도 좋다. 고소한 맛을 원하는 경우 잣 등을 추가하고, 기호에 따라 첨가물을 추가해도 좋다.

 

검은콩은 단백질을 공급하고 율무는 항암작용, 그리고 녹두는 해독작용의 기능이 있다. 통 들깨는 두 가지 기능을 하기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첫 번째로 통 들깨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먹거리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의도적으로 많이 먹어야 하는 먹거리이다. 오메가6 지방산이 많이 포함된 참기름, 콩기름 등을 주로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메가3 지방산을 보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태초현미식을 할 때 씹는 횟수를 "하나, 둘, 셋…." 헤아릴 필요가 없이 입안에서 현미식을 씹을 때 통 들깨가 "탁탁"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까지 씹으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기밥솥 계량컵[1컵 = 160ml]을 사용하면 된다.

 현미 : 160g [1컵]

 검은콩 : 40g [1/4컵]

 율무 : 40g [1/4컵]

 녹두 : 40g [1/4컵]

 통 들깨 : 53g [1/3컵]

 물 : 640ml [4컵]

+ tip : 수수, 기장 등을 추가하는 것이 좋다.

 

2. 요리방법

태초현미식의 요리 방법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할 수 있을 만큼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 좋다.

 

- 통 들깨는 물에 담그면 물 위로 뜨기 때문에 통 들깨를 제외한 모든 곡류를 한꺼번에 깨끗이 씻는다. 돌을 제거하기 위해 조리질한다. 통 들깨는 따로 깨끗이 씻는데, 두 손으로 비비면서 씻어 흙, 먼지, 지푸라기 등을 제거한다. 여름철에는 사용하고 남은 잡곡류를 반드시 김치냉장고 등에 냉장 보관한다.

- 슬로우쿠커에 넣고 물을 붓는다.

- 온도는 '저온'으로, '7시간' 동안 천천히 조리한다.

 

* 태초현미쑥설기

1. 재료 : 20~30인분

- 현미 : 2kg

- 통 들깨 : 250g [기호에 따라 더 많은 양을 넣어도 좋다.]

- 쑥 : 적당량 [떡집에서 구입 시에는 쑥은 농약을 뿌리지 않은 곳에서 채취한 쑥을 사용하도록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봄철에 가족과 함께 야외로 나가 농약을 뿌리지 않은 땅에서 직접 채취한 쑥을 씻은 후 삶아서 냉동고에 오랫동안 보관하는 것이 좋다.]

- 기호에 따라 콩, 건대추, 곶감, 건 호박 등을 추가해도 좋다. 변비가 심한 경우에는 취나물을 추가하는 것도 좋다.

- 단맛을 좋아하는 경우는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건포도를 적당량 사용한다.

 

2. 조리방법

인근에 있는 떡집에서 쑥설기를 만들어 40개로 나눈다. 냉동고에 보관하면서 자연 해동하여 섭취한다. 마찬가지로 통 들깨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씹어서 먹는다.

 

혀를 즐겁게 하는 먹거리는 몸이 괴롭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단맛도 적당하게 즐겨야 한다.

 식품종류

GI

포도당 = 100 

 식품종류

GI

포도당 = 100 

 쌀밥

92 

과일류 

20~60 

 현미밥

 66

 사과 (중간크기)

 38

 보리

 25

 배 (생것)

 38

 호밀

 34

 바나나

 52

 프렌치 바게트

(흰색의 단순한 것)

 95

 복숭아 (큰 것 한 개)

 42

 베이글

 72

 수박

 78

 통 밀가루 빵

 73

 오렌지 (생것)

 42

 흰 밀가루 빵

 73

 파인애플 (생것)

 66

 감자 (삶은 것)

 78

 포도 (생것)

 25

 고구마

 44

 망고

 51

 검은콩

 30

 키위

 58

 강낭콩

 28

 자두 (생것)

 39

 5분 동안 삶은 흰 면

 38

 살구

 57

 쌀국수 (삶은 것)

 40

 아이스크림

 61

 메밀국수

(인스턴트 재가열)

 46

 산딸기 요구르트,

저지방 제품

 31

 우동

 55

 우유

 41

 -

 -

 탈지유

 32

 

위장에 좋다는 유산균 음료나 건강식품을 먹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씹는 것임을 기억하자.

 

자율신경에 의해 작동되는 모든 장기들은 나름대로 규칙에 의하여 질서 있게 작동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의 나쁜 습관으로 현대인의 모든 장기는 혹사당하고 있다. 혹사당한 모든 장기들을 위하여 나쁜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건강 회복의 시작이다.

 

정상적으로 배변활동을 하려면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으로 바꾸어야 하고, 식이섬유가 많이 포함된 식사를 천천히 꼭꼭 씹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적당량의 물을 항상 마시고 매일 가벼운 운동을 하여 장의 연동운동을 활성화하여야 한다.

 

육식과 채식도 균형 있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식사하는 것이 좋다.

- 동물도 동물답게 방목하여 물을 많이 먹고 자란 동물의 고기를 섭취한다.

- 전체 식사량의 12.5% 이하로 단백질을 섭취하는데, 콩, 잡곡류에 많이 포함된 식물성 단백질도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양만큼,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을 줄여서, 전체가 12.5% 이하가 되도록 한다.

- 질 좋은 고기를 소량 섭취할 때도 항산화 성분인 비타민C와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는 각종 채소를 함께 섭취한다. 식이섬유와 비타민C는 동물성 단백질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극물을 중화하고 체내에서 머무는 시간을 단축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기에 고기를 먹을 때는 필수로 함께 먹어야 한다.

 

스트레스는 색깔 있는 채소와 과일로 해결하자!

 

하루에 몇 번을 히죽거리면 좋을까? 가끔 실없어 보일지라도 기회가 되는 대로 히죽거리며 수시로 웃는 것! 그것이야말로 값없이 얻는 건강의 첫 걸음인 셈이다.

 

무질서해진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진짜 행복을 찾는 첫 걸음이다.

 

기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현재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관계없이….

 

 

 

posted by 황영찬
2015. 4. 16. 12:09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41 萬人譜 17 사람과 사람들

 

高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5

 

811.6

고67만 17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벽계정심 / 원혼 / 그 노파 / 공대순 영감 / 변계량 / 주철규 소령 / 논 / 파트너 / 임재열 / 머슴 장도셉이 / 김금덕 / 서울 3일 / 미리 온 사람들 / 신윤복 / 빨래 / 새 모닝코트 / 하달봉 / 두 사람의 죽음 / 고려 현종 / 꽃 / 미스 최 / 뒷동산 / 드골 장군 / 새벽 미아리고개 / 박응서 / 여관 풍경 / 아방궁 / 김황원 / 이인수 / 양소진 / 그들의 경어 / 눈싸움 7시간 / 김명순 / 국도극장 / 부자 이종두 / 적막 / 술 / 작은 의병들 / 어느 후손 / 오랜만의 방 / 외국 군대 / 현신규 / 서해 갯벌 / 어떤 김소희 / 난초 그림 / 후백제 견훤 / 달빛 / 두 소녀 / 어느날 / 또 어느날 / 오숙례 / 박낭자 / 신노인 / 구창서 씨 / 간첩신고 / 김학수 / 빈대떡집 / 명동의 밤 / 양지다방 철학자 / 유관옥 여사 / 근체시 한 보따리 / 머저리 / 창녀 금이 / 마이산 이갑룡 옹 / 선홍이 / 남산 이승만 / 이종락 / 귀향 / 파고다공원 / 이정의 무덤 / 육군 소위 이갑수 / 경기도 부천 아이들 / 김제남 / 미인 황정란 / 홍제동 화장터 / 열쇠장수 / 무덤 / 중학 동기 / 영도다리 / 무당 남공작(男孔雀) / 고아 이요한 / 지네춤 / 김진세 / 유정길 / 판잣집 보금자리들 / 소년 / 수원 남문거리 / 칠석 / 심혜숙 / 청계천 / 유시택 씨 / 여관 / 동우수첩(東尤手帖) / 기섭이 / 남산 공원 / 오산 상이군인 신영도 / 북만주 취원장 / 조국 / 무당 필례 / 그해 종이 태극기 / 영친왕 / 달팽이집 / 흑석동 / 정재호 / 고려 문종 / 넝마주이 짝꿍 / 서울역 지게꾼 / 김칠성 / DDT / 다섯 아버지 / 기섭 동무 / 장옥산 / 1920년 경신참변 / 소사역 / 삼피(三避) / 차일만 할아버지 / J. 하우스만 / 홍진수 / 신민회 / 어떤 풍경 / 김오남의 소설 / 그 아이 / 김재선 / 석주 이상룡 / 화전민 신두방 / 해당화 / 치순이 / 오대산 상원사종 / 바위 마을 / 구미 허씨들 / 허형식 / 권숙희

 

변계량

 

네살에 시를 달달 외웠다

여섯살에 시를 지었다

열세살에 진사시 급제

열네살에 생원시 급제하였다

 

이색의 제자 변계량

고려가 가고 조선이 왔다

 

태조

정종

태종

세종 4대를 잘 먹고 잘살았다

살기를 탐내고

죽기를 피하는 사람이라고 누가 말했다

 

시조 몇수도 있다

밋밋하고

그저 바르기만 했다

바른 바가 무엇인고 마른 꽃 아니던고

 

스승도 독살되고 동료도 척살되는데

그는 아무 탈 없이

대대로 살았다 살다가 스르르 눈감았다

 

방바닥 파리의 다리 넷인가 여섯인가 열인가


신윤복


아버지 신한평도 환쟁이

아들 신윤복도 환쟁이

아버지와 아들 술 취하면

어깨춤이 닮았다


건달을 그렸다

기생을 그렸다

다음날

옷 벗은 아낙과

그 아낙 몰래 보는 사내를 그렸다


신 오른 무당도 그렸다

어스름 달밤에

숨겨둔 임 만나러 가는 참판댁 마님도 그렸다


인간은 정숙하지 않아

인간은 경건하지 않아

속임수가 있어

인간은 야해 야하고말고

조선 주자학 임종 여기

조선 사대부의 허위 여기

인간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고

뭇 짐승의 한 핏줄 여기


박응서


영의정 박순의 서자 박응서

읽는 시마다

줄줄 외웠다

화술 뛰어나고 변론 힘찼다

시가 막힘없이 쏟아졌다

소나무 보면

소나무 시가 바로 나왔다

복숭아나무 보면

복숭아나무 시가 바로 나왔다


같은 산세

대감네 서자

참판네 서자

첩의 자식들 갈수록 세상 등져

술 질펀하고

시 흥건했다


그러다가 세상을 바꾸자고 뜻을 세웠다

 

그런 뜻이

우선 문경새재 은 장사꾼 죽이고

은 7백냥을 강탈했다

그 자리서 잡혔다

 

마침 조경의 모사 이이첨의 술수에 넘어가

어린 영창군을 옹립할 자금 때문에

은 강도 짓을 했다고 허위자백

 

이로 인해

어린 영창 죽고

여러 권신들 죽어갔다

 

이 참변 속에서

박응서 살아났으니

그뒤의 인조반정 주동자 왈

함께 뜻한 사람들만 죽고

어찌 네놈만 살았느냐

 

죽어야 했다

 

이인수

 

인문은 야만의 도구가 된다

인문은 재물이다

식민지시대

영국 옥스퍼드대 영문학 전공의 수재 이인수

해방 후

그가 돌아왔다

고려대 영문학부의 자랑이었다

 

목포의 한 영어교사가

그를 보러

이틀 동안 열차를 타고 서울에 왔다

한국 영문학의 자랑이었다

면도자국이 서늘하였다

입에는 과묵을 매달아두었다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다

학교와 집 사이를 오고갔다

전쟁이 났다

피난을 하지 못했다

인공 3개월간

월북했던 김동석이 내려왔다

그의 강권으로

대 미군 영어방송을 했다

변형태도 이인수의 영어를 따르지 못했다

 

수복 후

그가 검거되었다

고려대 김성수도

이승만에게 청원했다

여러 사람이

구명활동을 했다

 

신성모가 눈치 빠르게 처형해버렸다

 

영국 시절

이인수는 화려한 연구자였고

신성모는 거친 파도 선장이었다

늘 이인수가 원수였다 그때부터

키 작은 신성모가

키 큰 이인수를 없애버렸다 기어코

 

양소진

 

열두살

밤길 무서운 줄 모르고 걸어가며

혼자 춤을 추었다

혼자 바람소리 노래하였다

도랑에 빠졌다

 

도깨비도 만나 길을 잃어버렸다

 

저 해주 관석정 폭포 밑

소리

소리

새벽 빨래꾼들 올라올 무렵에나

소리 멈추고 내려갔다

 

장구없으면

몸이 장구였다

싸리나무 가지 장구채 되어

제 몸 장구치며 노래 달았다

 

일찍이 서방 잃고

아이 기르다

못 견뎌

못 견뎌

 

나이 마흔에 장구솜씨 노래솜씨 춤솜씨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그린 눈썹 지우면

눈썹 없는

심심한 눈

그 눈으로

인천 앞바다 오는 배 바라보았다

 

못 견뎌

못 견뎌

 

나이 예순에

벌렁벌렁

저녁 가슴 춤이 드는

밀물이었다

 

현신규

 

30년대 조선 총독주 임업시험장 기수

40년대 미 군정청 임업시험장장

50년대 휴전 뒤 학술원 첫 회원

60년대 서울대 농과대학 교수

 

일본 유학에도

미군정에서도

그 이후에도

늘 농담 한마디 없는 모범이었다

 

리기다 소나무 잡종송 종자를 퍼뜨렸다

양황철을 길러냈다

무엇보다 박정희 근대의 나무

희뿜한 잎새

은수원사시나무가 아니라

현신규

현사시나무라 했다

 

70년대 현사시나무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웃자랐다

빨리 뿌리내리고

빨리빨리 자랐다

바람 속에 떼지어 흔들렸다

 

유신시대의 영광 현사시나무였다

 

바로 뒷시대에는 눈병 부르는 나무 베어내는 나무였다

 

김학수

 

그믐밤

지리산 시루봉이 엉엉 울었다 한다

다음다음날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전과가 발표되었다

아이 김학수

학생복을 벗겨 태웠다

 

인월 고모네집에 다니러 왔다가 공비로 죽어야 했다

순창국민학교 4학년

작문이 자주 뽑혔다 습자시간을 좋아했다

눈이 컸다 잘 울었다

짜아슥 사내자슥이 울기는…… 한두번 아버지가 나무랐다

 

아버지는 공비 가족으로 다섯번 조사 받았다

끝내 아버지는 미쳐버렸다 

 

이종락

 

나라를 반드시 되찾겠다고 나선 망명이다

 

어느날 새벽 이종락은

고국의 가족이

하얀 옷들을 입고 손짓하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뒤 병을 앓기 시작했다

 

독일인 병원

일본인 병원을 전전했다

일본인 병원에서 죽기 싫다고

불란서 조계

병원으로 옮겼다

 

어느날

안창호가 병원을 찾았다

기독교를 믿으라 했다

병든 이종락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을 수 없으니

병이 나은 뒤 건전한 마음으로 믿겠다고 대답했다

 

어느날

동지 정화암에게 조용히 말했다

화암 이제 죽나보오 내 몫까지 싸워주시오

그는 동지의 손을 잡은 채

눈감았다

 

아직 이렇다 할 독립운동도 하지 않은 채

 

힘준 팔뚝에 송곳을 찔러도 찔러지지 않는 사람

바이올린에 능하고 스포츠에 능하고

술자리 노래도 유창한 사람

그 이종락이 시대의 모퉁이에 잠시 왔다 갔다

 

김제남

 

선조의 젊은 계비 인목대비의 친정아버지

김제남

 

선조 승하

광해군 등극

 

서궁으로 나앉은 인목대비 뒤에

친정아버지라도 있어야 했다

 

어린 외손자 영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누명 씌워

사약을 받아야 했다

 

사약 한사발 비우고

앉은 몸이 무너졌다

 

묻혔다

 

묻힌 뒤 3년

 

묻힌 몸 파헤쳐서

백골이 토막토막 잘리는

부관참시형을 또 받아야 했다

 

뒷날 광해군 밀어냈다

인조 등극 직후

옛 관직이 복귀되어야 했다

복귀되어 뭘 해

불운의 극한 다른 것이 되지 못한다

 

김진세

 

동지들 체포되었다

중국 천진으로 스며들었다

중국인 빈민굴

 

독립운동가 김규식

그의 아내 김순애

그의 아들 김진세

 

아버지도

어머니도

1928년생 아들한테 조선말을 가르치지 않았다

 

행여

중국아이들과 놀다

조선말이 튀어나오면 끝장

일본군 특무는

중국인 빈민굴에도 손을 뻗쳤다

 

김진세가 조국의 말을 배운 것은 서른살 뒤

 

상해에서

중경에서

임시정부 동포 사이에서

아주 서투른 조선말을 배웠다

 

중국말이 훨씬 좋았다

 

유정길

 

연탄은

대한민국 산천을 살렸다

대한민국 나무와 풀을 살렸다

 

연탄은

자주 대한민국 서민을 죽였다

 

유정길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김치멀국을 실컷 먹었다

병원으로 실려갔다가 돌아왔다

 

정릉 청수장 아래 방 두칸 자택

 

아내는 일하러 가고

딸은 고등학교

아들은 중학교 갓다

 

종일 멍청한 눈 뜨고

정릉천 물소리를 들었다

비 온 뒤

물소리 맹렬했다

콧구멍 터럭이 길게 뻗어나왔다

손톱도 길고 길었다

왕년의 어깨 유정길

연탄가스 중독 반신불수로 물소리를 들었다

 

길 건너 『순애보』의 작자 뚱보 박계주 씨도

연탄가스 중독으로 물소리를 들었다

 

심혜숙

 

전주 지방법원

법원장 딸 심혜숙과

버스 45대

전북 제일여객주식회사

사장 아들 오진구

 

오늘 맞선을 본다

법원장 부인

사장 부인 함께 있다가

두 사람 두고 자리를 떴다

 

심혜숙 머리를 들지 않는다

오진구 다른 데 보고 있다

반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 괜히 화가 났다

반 시간이 넘었다

 

심혜숙은 오줌을 참고 있었고

오진구는 피우고 싶은 담배를 참고 있었다

 

다방 가고파

현인의 「베사메무쵸」가 번들번들 들리고 잇었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일어섰다

 

그뒤로

심혜숙은 아버지 임기마다 맞선을 보았다

맞선 스물세번

스물세번째 사내

고시생과

결혼했다

처가살이 고시생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녀에게 추억이란 맞선 본 수많은 사내들

 

정재호

 

스카치 온더락스

얼음 세 조각 서걱이거라

괘종시계

열시를 쳤다

 

한모금 입안에 번졌다

괘종시계

똑딱

똑딱

바쁘다 온몸 안개 자욱하다

 

오늘은 마닐라 목재 두 척 들어왔다

내일은

일본 코오베에서

석탄6천톤 들어온다

 

전투가 치열할수록

후방에서

재벌은

더 치열한 재벌이 되어간다

 

정재벌 정재호 사장께서는

오늘도

취침 전 한잔을 잊지 않았다

 

김칠성

 

담벼락 밑

헌 구두 삐까번쩍 닦아서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구두들

벌받는 국민학교 아이들 같다

그 가운데

하얀 헌 운동화 한 켤레도

꼼짝없이 벌 받고 있다

여자 슬리퍼 한 켤레도

 

아예

남의 집 담벼락에 못을 박아

우산도 걸어두고

가죽가방도 걸어놓았다

데릴사위 같다

데릴사위 같다

 

모두 착하디착하다

 

해지면

구두를 지고 갈

큼지막한 륙색도 배고픈 채 걸려 있다

쪼그라진 파나마 모자 쓴 구두장수 김칠성

두꺼운 입술

째진 눈

날선 광대뼈

어디에도 서러움 따위 모른다

 

세살배기 딸이

천연두 앓으며

죽어가는데도

담배 한대 피우고 잊어버렸다

 

없던 것이

잠시 있는 것인가

 

홍진수

 

별명 자벌레

풀매는 날

하루 내내 말 한마디 없다

누구는

혼자 일할 때도

구시렁

구시렁

씻나락 까먹는데

자벌레 홍진수는 말 한마디 소용없다

해오라기 저쪽에서 왔다가 다시 간다

 

1951년 2월

제2국민병 징발 직전

마을 청년들

아주까리 기름 먹고 설사했다

몸무게를 줄여야 했다

45킬로그램 이하면 무종 불합격

 

그러다가 뒤로 가며

40킬로그램이건 30킬로그램이건 다 을종 합격으로 입대시켰다

자벌레는 오른손 검지 한도막

자귀로 찍어냈다

잘린 검지도막 뒷산에 묻었다

 

열이틀 뒤 검지 아물어들었다

신체검사 병종 불합격

 

안심하고 두부장수로 나섰다

두부판 어깨에 메고

식전 걸음

두부 사려

두부 사려

저녁 걸음

두부 사려

두부 사려

 

아버지 어머니 세상 떠난 뒤

어린 동생 넷의 입에 밥을 넣어주었다

팔고 남은 두부도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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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8 금산사  (0) 2015.04.07
posted by 황영찬
2015. 4. 10. 16:20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40 Gustav Klimt 구스타프 클림트


지은이 | 니나 크랜젤 / 옮긴이 | 엄양선

2007, 예경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19875


650.8

아887ㅇ


ART SPECIAL 1


"나 스스로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가련한 바보라는 사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진정한 사랑에 두려움과 존경심마저 느낀다."

- 구스타프 클림트


이 책은 귀한 사진 자료들과 독특한 지면 구성을 통해 "여자들이 주요 작품"이라고 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다양한 작품세계, 최고와 바닥을 오르내린 그의 예술에 대한 평가와 한때 비밀에 싸였던 그의 삶을 조망한다. 또한 그의 작업실에서 피어난 스캔들로부터 오늘날 하늘을 찌를 듯한 그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영화 <클림트-빈의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들을 매혹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 Gustav Klimt(1862 - 1918)

퇴폐적인 세기말의 분위기가 지배하는 빈에서 찬란한 황금빛과 화려한 색채의 회화를 창조한 재능 있는 화가 클림트. 빈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장식하는 고전적인 회화로 단숨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는 당대의 도덕적 규범 안에서 수용하기 힘든 강도 높은 에로티시즘을 표출하면서 하루 아침에 여론의 뭇매를 맞는 패륜아로 전락한다. 위선적인 여론에 실망한 클림트는 사회적인 명예보다는 예술의 자유를 선택하면서 '금색 시기'부터 추상에 가까워지는 풍경화까지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이루어냈다.


지은이 | 니나 크랜젤 Nina Kransel은 미술사를 전공했고, 기자 및 음악가로 활동 중이다. 현재 뮌헨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다.


옮긴이 | 엄양선은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뮌스터의 베스트팔렌 빌헬름 대학에서 수학했고, 지금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독일어 책 번역 모임 '나누리'와 함께 좋은 책을 우리 글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미래의 권력》, 《아름다움의 제국》, 《히스테리》,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린 마술그림》,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즐거운 지식여행 - 춤》 등이 있다.


차례


그때 그 시절

근대 예술의 초점, 빈


최고가 되기까지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예술

찬란한 황금빛과 화려한 색채


"비범한 깊이의 인간"


사랑

"여자는 나의 주요 작품"


지금도 우리 곁에

클림트의 세계


작품의 변천 과정

클림트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화가로서 성장하는 과정이 한눈에 드러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사실주의로부터 '금색 시기'를 거쳐 찬란한 색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엄격한 아카데미즘으로부터 클림트만의 자유로운 양식으로 변화한다.


초상화

1891

1898

1900-01

1907

1916


"나는 그림의 소재로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 그들의 색다른 모습에 훨씬 더 흥미 있다."(구스타프 클림트, 작품의 모티프에 대해서)


알레고리화

1883

1895

1905

1907-08

1916


"나는 매일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구스타프 클림트, 자신의 작업에 대하여)


풍경화

1881

1896-97

1900

1907

1916


"……조금씩 그림을 그린다오. 해가 날 때는 호수를, 흐린 날에는 내 방 창문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을 그리지……."(구스타프 클림트, 잘츠카머구트에서 보내는 여름 휴가에 대하여)


소묘

1911-1912

1914-1916


"나는 회화와 소묘 작업을 할 수 있다.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몇몇 사람들도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 확신이 없다."(구스타프 클림트, 자신의 재능에 대하여)


차례


그때 그 시절

근대 예술의 초점, 빈


최고가 되기까지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예술

찬란한 황금빛과 화려한 색채


"비범한 깊이의 인간"


사랑

"여자는 나의 주요 작품"


지금도 우리 곁에

클림트의 세계

 

그때 그 시절

 



"빈, 수수께끼처럼 남김없이

을 흡수하는 대기에 싸여,

마법이 마르지 않는

경이로운 도시"

후고 폰 호프만스탈

 

빈의 모더니즘은

… '세기말'과 함께 시작된다. 도나우 강변의 이 도시는 1890-1910년 사이에 예술, 문화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12음 음악, 의사이자 극작가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심리 묘사'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빈, 아니 이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세기말'

현재 '세기말'이라는 단어는 주로 끓어오르는 창조성과 언제나 데카당스로 끝맺게 되는 낭비벽이 만연했던 1890년부터 1914년까지 약 25년간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세기말'을 묵시록에 등장하는 재앙이 나타나기 전 시기로 여겨 두려워했고, 풍요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의 뒤를 잇는 피하기 어려운 몰락으로 받아들였다. '세기말'은 프란시스 드 주브노와 H. 미카르의 연극 제목으로 쓰이면서,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1890년 무렵 문화의 중심지 빈. 새로지은 궁정극장인 부르크 극장과 시내가 보인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1888년에 완성한, 문자 그대로 사교계의 초상. 이 그림은 옛 부르크 극장의 철거가 결정된 뒤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클림트는 수많은 빈의 귀족, 명사들을 마치 사진처럼 모사했다.


"충동 이론은 소위 우리의 신화다. 충동은 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신화적인 존재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헤르만 바르. 뛰어난 수필가이자 비평가였던 그는 클림트와 절친한 사이였다.

작가 아르투르 슈니츨러는 빈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했다.

나일강에서의 사냥 | 거장 한스 마카르트는 19세기 빈에서 사장 인기 있던 예술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화려한 역사화는 젊은 구스타프 클림트에게도 모범이 되었다. 마카르트가 이집트 여행 후에 그린 <나일강에서의 사냥>은 동양에 대한 이국적 묘사로 유럽 관람객의 환상을 부추겼다.

마카르트를 추종한 초기 작품 | 구스타프 클림트의 초기 작품들은 특히 한스 마카르트에 의해 각인된 당시 지배적인 성향을 강하게 보인다. 하지만 클림트가 21살 때 그린 <우화>의 나체 여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연상시키며, 그의 후기작에 등장하는 '팜 파탈'의 이미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최고가 되기까지

 

"너의 행동과 예술작품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 없다면,

소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하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은 잘못이다."

- 프리드리히 실러, 구스타프 클림트의 <벌거벗은 진실>에 적힌 어구

 

시대를 앞선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은 시대를 앞서갔다. 그는 모질고 격렬한 비판과 거부를 받았고, 그의 작업은 빈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클림트는 성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보수적인 사고를 뒤흔들고 금기를 깨뜨렸으며, 계속해서 대중들을 모욕했다. 그럼에도 그는 세기말 오스트리아의 예술계를 선두에서 이끌었으며, 이후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빈 사람들에게는 너무 도발적이었던 <철학>의 일부.

 

빈 분리파

19세긱 말 무렵 빈 미술가협회에서 진보적인 회원들과 보수적 회원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클림트를 비롯한 몇몇 회원들은 빈 미술가협회에서 탈퇴하고 독자적으로 '분리파'를 결성했다. 이들의 목표는 진리 추구와 건축, 회화, 조각이 통합된 종합미술작품의 창작이었다.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는 클림트를 중심으로 모인 예술가들을 위해 1897-98년에 걸쳐 분리파 전시관을 세웠다.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가 있는 빈 분리파 전시관 홀 전경. 1992년경.

 

"나는 공격에는 매우 둔감하다. 하지만 주문한 사람이 내 작품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더욱 민감해진다."

- 구스타프 클림트

'예술가 컴퍼니'에 들어온 주문! 구스타프와 에른스트 클림트, 프란츠 마치는 부르크 극장의 계단실을 시칠리아 섬 타오르미나의 고대 극장을 묘사한 그림으로 장식했다.

<법학>에서 클림트는 대학당국이 요구한 법의 승리 대신 적대와 불안의 상태를 그렸다. 세 점의 학부 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되었다.

<탕가라 소녀>는 '고대 그리스'를 구현한다고 했다(탕가라는 고대 그리스의 지방이름이다-옮긴이). 그러나 클림트는 바로 당대의 여인을 묘사했다. 많은 관람자들은 이 그림을 보고 빈의 화류계 여성을 떠올렸다.

헤르만 바르는 제1회 분리파 전시회를 두고 "나쁜 그림은 하나도 없는 전시회"라고 호평했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가 벌거벗고 싸우는 모습을 그린 분리파 전시회의 포스터는 검열을 받아 여기서 보는 두 번째 포스터에서는 나무에 성기가 가려졌다.

탁월함! 클림트는 <죽음과 삶>으로 로마 국제미술전시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많은 관람객들의 추측에 의하면,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어머니(상부 가운데)는 클림트의 평생 반려자인 에밀리 플뢰게이다.

클림트는 딱 두 번 성경의 주제를 다룬다. 이 작품 <아담과 이브>는 그의 후기 작품 중 하나이다. 밝게 채색된 이브와 어두운 그림자 안쪽의 아담을 그린 이 작품에서는 여성을 전문적으로 그렸던 클림트 그림의 특징이 나타난다.

사랑의 힘 |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베토벤 프리즈>는 분리파 전시관에서 열린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에게 헌정된 전시회를 위해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클림트가 꿈꾼 유토피아의 실현, 즉 예술과 헌신적인 사랑을 통한 인간 구원을 나타낸다.

구원 | 학부 그림의 주요 주제가 상실과 혼돈이라면 <베토벤 프리즈>에서는 이러한 긴장이 해소된다. 분명 행복을 갈망하며 적대적인 무력의 위험을 뚫고 온 영웅은 연인과 포옹함으로써 구원받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 <전 세계의 키스>로!

 

예술

 


"나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인물화, 풍경화, 간혹

초상화도 그린다."

- 구스타프 클림트

한스 마카르트가 그린 나신.

장식이란?

'장식하다, 치장하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오나레(onare)에서 유래한 장식은 반복되는 무늬를 가리키며, 추상적인 무늬가 많다. 천, 건축물, 그림, 카펫, 기둥의 표면을 치장하는 데 쓰인다. 장식은 연속되는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지 않고 표면에 한정된다. 전체적으로 자연주의적이며 조형적이라 해도 장식의 주요 기능은 꾸미는 것이다.

클림트는 <처녀>를 그렸을 때 처음으로 노화의 징후를 느낀 듯하다. 그러나 청춘에 헌정한 이 작품에는 태평하게 단꿈에 빠진 여인들을 보면 저절로 미소 짓게 되는 무심한 경쾌함이 가득하다. 클림트는 피라미드 형 구성에서 혼합하지 않은 순색만 썼다!

클림트는 미묘한 에로티시즘의 화가다. 화려한 색과 장식의 우주 안에서 선정적인 <물뱀>들이 꿈틀댄다.

 

"나는 회화와 소묘 작업을 할 수 잇다.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몇몇 사람들은 자기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확신할 수 없다."

- 구스타프 클림트

<조각의 알레고리>, 1896. 사과를 손에 든 이브는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조형예술을 나타낸다. 두 여인의 얼굴은 에로틱하고 생동감 있으며 현실적으로 보이는 반면, 그 뒤에 있는 고전적 조각상의 시선은 공허하게 허공을 향하고 있다.

클림트는 모델들을 보고 수많은 관능적 스케치를 완성했다. 그는 여인들이 취했던 유혹적인 포즈를 몇 개의 간결한 선으로 확실하게 포착했다.

클림트는 귀족부인 로제 폰 로스트호른 프리트만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녀는 사교계에서 아름답고 지적이라고 소문이 자자햇다. 클림트는 발그스레하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통해 이 작품에 에로티시즘의 색채를 부여했다.

닉스(게르만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옮긴이)의 얼굴에서는 로제 폰 로스트호른 프리트만의 특징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렇게 귀족 출신 팜 파탈이 탄생했다. 클림트가 그녀의 동의를 구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이 그림은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다. 빈 사람들은 그러한 추측과 험담 거리를 좋아했던 것이다.

<여성의 세 시기>에서 클림트는 선정적인 아름다움과 관능적 분위기가 여자의 인생에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주제로 다루었다.

클림트는 얼핏 보면 '야생의' 자연을 암시하듯 보이는 것들을 잘 계산하여 배열하고 세부적인 즐거움을 많이 장치했다. <닭이 있는 정원 길>은 1945년 오스트리아 임멘도르프 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모자와 모피 목도리의 숙녀 | 클림트는 <키스>보다 2년여 후에 이 수수께끼 같은 여인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는 빈의 젊은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와 에곤 실레의 영향이 나타나면서, 금색을 비롯한 장식 요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은 이전 작품보다 더 단순하고 더 표현주의 성향을 보이며 비밀과 암시로 가득 차 있다.

색채에 축배를! |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에밀리 플뢰게를 제외하면 클림트가 여러 번 초상을 그린 유일한 여인이었다. 두 번째 초상화에서는 황금 대신 색채를 풍부하게 썼다. <유디트 Ⅰ>도 아델레가 모델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부유한 실업가의 부인인 아델레가 오랫동안 클림트의 연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산봉우리 위에 빛나는 하늘 | 이 작품은 클림트의 풍경화에서도 보기 드문 유형이다. 일반적으로 클림트는 원근법적 깊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호수 가운데서 시점이 시작되는 이 그림에는 어느 정도 공간성이 보인다.

아터 호숫가의 운터라흐 | 호수 연안에 집들이 층층이 '겹쳐졌다.' 밀교 이론에서 특히 조화로운 형태로 간주되었던 정사각형은 건물들이 조각조각 잇닿아 있게끔 단면의 선택을 제한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특별히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강한 개성의 소유자'

클림트 시대의 빈에서는 그를 이렇게 평했다. 그는 강철 같은 작업 의지와 엄격한 원칙으로 똘똘 뭉친 위대한 재능을 타고 났다. 클림트는 스스로를 '별로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물보다는 자신의 작품을 보라고 권한다. 클림트에 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림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안에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알아내야" 한다.

 

 

 

"노 코멘트!"

클림트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하지 않은 사실에 한층 더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클림트를 둘러싼 추측과 험담, 비방, 전설은 끊이지 않았다. 그의 인간관계와 연애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클림트의 생애를 추적하는 진정한 그림의 원천이 되는 사건들은 그가 세상을 뜬 후에야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했다.

1912년 무렵 에곤 실레는 자신의 위대한 우상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를 파란색 작업 가운을 입은 모습으로 영원히 남겨놓았다.

사진작가 모리츠 내어는 클림트의 평생지기였다. 1910년 무렵 내어는 클림트의 작업실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나에 관해 알고 싶다면…… 내 그림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안에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알아내면 될 것이다."

-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는 지금은 빈 14구역이 된 린처슈트라세 247번지에서 태어났다. 클림트 가족은 대문 오른쪽 바로 옆방에 살았다. 이 사진은 1900년에 촬영했고 이 건물은 1967년 철거되었다.

클림트가 공예를 배웠던 장소. 빈 링슈트라세에 위치한 응용미술학교와 미술 및 산업 박물관.

1880년 빈 응용미술학교 회화반의 사진. 앞줄 왼쪽에 라우프베르거 교수와 그 옆에 구스타프와 에른스트 클림트가 앉아 있다. 맨 뒷줄에 검은 양복을 입은 프란츠 마치가 서 있다.

클림트는 1890-92년에 <협죽도(夾竹桃)와 두 소녀)>를 그렸다. 이 초기 작품에는 아직 고대 생활상 그리기를 좋아하는 취향이 많이 보인다.

구스타프와 에른스트의 동생 게오르크는 다른 가족들처럼 '기꺼이' <세익스피어 극장>의 로미오 역 모델이 되어주었다.

이곳 베스트반슈트라세 366번지에 클림트가 살았다. 클림트의 방은 4층 왼쪽 두 개의 창에 해당한다.

에른스트 클림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와 헬레네의 딸은 태어난 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 구스타프는 후견인이 되어 평생 이 아이를 사랑해주고 금전적으로 보살폈다. 이 그림은 헬레네가 여섯 살 때 그린 초상화이다.

귀부인의 초상 | 이 초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오늘날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작품이 그려진 1894년 무렵에 클림트는 개인 고객의 초상화를 그렸다. 2년 전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으로 대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던 클림트는 이러한 초상화 주문으로 수입이 늘어나 기뻐했다.

기품 있는 아우라 | 1899년 구스타프 클림트는 부유한 기업가 아우구스트 레더러의 부인 세레나를 그렸다. 레더러는 클림트의 열광적인 후원자가 되어 곧 클림트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수집가가 되었다. 실물보다 큰 이 그림에서 세레나 레더러는 품위 있고 부드러운 인상이다. 하늘하늘 늘어지는 옷에 감싸인 그녀는 밝은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듯하다.

피아니스트 |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요제프 펨바우어는 클림트 형제를 비롯해 미술가와 배우들이 모였던 '펨바우어 협회'의 창립자이다. 1890년에 그린 이 펨바우어 초상화는 협회의 회의실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식 테두리와 간소한 배경 장식이 인물을 두드러지게 한다.

황금 애호가 | 클림트는 1906년경 <프리차 리들러의 초상>을 통해 '금색 시기'를 시작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를 암시하는 프리차는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무늬로 표현된 안락의자에 녹아들 듯한 느낌을 준다. 곧은 자세, 놀란 듯한 시선, 비스듬하게 포갠 두 손으로 인해 프리차는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보인다.

벌거벗은 진실 | 1899년 작 <벌거벗은 진실>은 빈 분리파 화가들의 노력을 형성화했다. 그의 동료들은 타협하지 않고 진리 수호라는 의무를 수행하는 예술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바로 이런 <진실>을 구현한 나체의 여인은 관찰자를 향해 거울을 들고 자신의 진실을 검토하라고 요구한다.

팔라스 아테네 | 아테네는 빈 예술가들을 감시해야 한다. 분리파 회원들이 그룹의 수호신으로 뽑은 '팔라스 아테네'는 진지하고 투쟁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문양으로 장식된 액자가 특이한 단면을 보여주는 그림을 감싼다. 1898년에 그린 이 작품에서 클림트는 전쟁과 지혜와 예술의 여신에게 비밀스럽고 유혹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클림트의 작업실. 가꾸지 않아 무성하게 자란 정원은 작업실을 자연과 친숙한 은신처로 만들어주었다.

클림트는 자신의 여러 모델들을 보고 수많은 관능적인 스케치를 그렸다.

미치 침머만. 그녀는 클림트의 모델이자 애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구스타프와 오토의 어머니였다.

1874년에 태어난 에밀리 플뢰게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자 인생의 반려자였다.

해바라기 그림은 모자이크처럼 구성되었다. 클림트는 여인들을 그리는 방식으로 꽃을 그렸다. 해바라기는 조용히 빛을 발하며 중심에 서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 에밀리 플뢰게, 그녀의 언니 헬레네. 1905년경 아터 호에서, 해마다 가는 휴가여행은 클림트 생활에서 중요한 일정이었다.

여럿이 어울린 시골파티. 야외 주점으로의 소풍, 산책은 클림트의 여름휴가에서 중요한 사교 활동이었다. 물론 그림 그릴 때는 반드시 혼자 있기를 요구했다. 그때는 사진 촬영도 허용되지 않았다.

낭만주의 | 1895년에 만들어진 이 <사랑의 알레고리>는 걸작 <키스>의 전신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에서는 아직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서서히 유켄트슈틸 시기에 가까워짐을 보여준다. 사랑에 대한 영원한 상징인 장미가 그림 안에 보일 뿐 아니라 양 옆의 금색 평면 위로 줄기를 뻗는다.

부드러운 금발 | 1891년 17세의 에밀리 플뢰게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구스타프 클림트는 이 초상화를 그렸다. 그의 제수 헬레네의 동생인 에밀리를 그린 이 작품은 그의 초기 초상화 가운데 하나다. 헬레네와 에밀리는 셋째인 파울리네와 함께 '플뢰게 패션살롱'을 운영하며 자신들이 디자인한 옷을 팔아 성공을 거두었다.

사랑을 나누는 소녀들 | 클림트가 <물뱀>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두 여자를 그린 이 그림은 분명히 사랑을 나누는 두 소녀를 보여주고 있다. 클림트의 스케치들 가운데는 여성들의 동성애를 그린 작품이 수없이 많다. 그는 관객으로서 그들의 쾌락을 탐닉한 듯하다. 그림 아래쪽의 물고기는 남성 관찰자의 상징일까?

황홀경 | 감옥에 갇힌 <다나에>를 황금비로 변신한 제우스가 '방문'한다. 클림트는 이 그리스 신화를 차용해 삶에서 가장 은밀한 순간을 표현한다. 천에 감싸여 누워 있는 붉은 머리 여인의 다리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황금 빛 실이 에로티시즘이 감도는 분위기를 강조한다.

비밀에 싸인 늪 | 클림트는 풍경화에서 대부분 정사각형 화폭을 선택했다. 이 작품 <늪>의 구성은 단면과 색채의 효과를 강조한다.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하늘과 늪 주변의 풍경을 비추며, 인상주의 기법으로 나타난 각각의 색 점들은 생기를 부여하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내는 데 기여한다.

사랑하는 아터 호수 | 클림트는 자연, 식물, 날씨를 좋아했다. 이것들은 그의 편지나 엽서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주제였다. "찬란한 태양이 비치고, 마치 축제일 같소!" 그는 에밀리에게 이렇게 썼다. 특히 클림트는 자신이 좋아했던 아터 호수를 수없이 많이 그렸다. 그림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명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든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브뤼셀에 지은 기업가 아돌프 스토클레 저택의 실내 장식을 맡았다. 저택의 설계는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이 맡았다.

클림트는 스토클레 저택의 22명이 앉을 수 식탁이 갖춰진 식당에 <스토클레 프리즈>를 제작했다. 스토클레는 이 <프리즈> 제작에 든 비용을 비밀에 붙였고, 심지어 관련 서류들을 모두 폐기했다.

<스토클레 프리즈>의 부분. 클림트가 준비 작업으로 그린 작품이다. 여기에는 인물 묘사가 전혀 없으며, 이는 추상으로 발전하는 전조로 평가된다.

자기 작업실 앞에 있는 클림트. 고양이를 안고 포즈를 취했다.

클림트 특유의 파란색 작업 가운은 현재 빈 시립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클림트는 56세에 뇌졸증을 맞아 사망했다. 병원에서 면도를 해서, 데스마스크에는 턱수염이 없다.

약간의 익살을 곁들인 인사. 클림트의 캐리커쳐 자화상.

기대 | 클림트는 <스토클레 프리즈>를 디자인하는 데 4-5년이 필요했다. 클림트가 완성한 시안을 빈 공방 회원들이 브뤼셀의 스토클레 저택에 모자이크로 옮겨놓았다. 인물의 옆모습과 손 모양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클림트는 이집트 양식 표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충만 | 클림트는 <스토클레 프리즈>에서 공예품에 대한 애호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다. 그의 시안을 대리석에 옮겨놓았다. 재료로는 구리, 은박, 산호, 보석, 에나멜, 금박을 썼다. 클림트는 빈 공방의 작업을 감독햇으며, 여기서는 <기대>가 <충만>으로 변했음을 볼 수 있다.

자포니즘 | 프리데리케 마리아 베어는 1915-16년에 클림트에게 초상화를 주문했다. 그녀는 빈 미술계의 후원자였고 이미 실레에게도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실레가 그린 초상화가 있는데 왜 자기에게서 또 초상화를 원하느냐는 클림트의 질문에 그녀는 '클림트의 그림으로 남아야 비로소 영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배경의 모티프들에서 일본 미술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매혹적인 여인들 | '여자 친구들'이 친밀하게 서로 기대고 있다. 부드러운 붉은색조가 그림 전체에 은밀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두 사람은 이국적이며 감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관람자는 울타리 밖으로 물러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밀은 자기들끼리 지니는 것이다! 여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자극적이며, 약간은 관음증적 시선은 일생동안 클림트를 사로잡았다!

 

사랑

"나 스스로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가련한 바보라는 사실이다.

나는 진정한 사랑

두려움과 존경심마저 느낀다."

구스타프 클림트

 

수많은 연애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을 장식했지만 그는 어느 한 사람과 지속적인 연인관계를 맺거나 결혼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는 두 명의 모델에게서 그가 인정한 자식들을 두었으며 사교계의 부인들과는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인은 에밀리 플뢰게로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사이였지만, 여러 가지 미묘한 이유에서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머물렀다.

"팜 파탈"

미모와 성적 매력을 무기로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성향을 지닌 여성, 19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에서 이러한 뜻에서 '팜 파탈' 개념이 생겨났다. 클림트의 그림에는 남자들을 불안으로 몰아가고 옭아매는 이러한 여자들이 항상 있다. 또한 문학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데, 옥타브 미르보의 <시련의 뜰>이나 사드의 <쥐스틴> 같은 작품은 '팜 파탈'을 주제로 다루었다.

 

파란 베일의 <소녀>로 표현된 아름다운 미지의 여인처럼 여자들은 구스타프 클림트에게 대단한 매혹의 대상이었다.

파트너, 친구, 연인?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밀리 플뢰게가 어떤 관계였는지는 확언하기 힘들다.

 

"나는 그림의 주제로서 나 자신에는 흥미가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흥미가 잇다. 특히 여자들에게."

구스타프 클림트

플뢰게 자매가 운영한 패션살롱은 현대적이고 편리한 설비를 갖추엇다. 실내 디자인과 시공은 빈 공장이 말았다.

어느 여름 아터 호수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클림트는 두 사람이 함께 디자인한 혁명적인 의상을 입은 에밀리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에서 에밀리는 클림트가 그녀를 위해 주문한 하트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걸었다.

1902년 레미기우스 가일링은 이 과장된 클림트의 캐리커쳐를 그렸다. 클림트는 <철학>의 스케치를 옮겨 그리면서 두 여인의 시중을 받고 있다.

알마 말러 베르펠(결혼 전 성은 쉰들러)은 많은 예술가들의 아내였고 친구이자 애인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정원 풍경 | 클림트가 그린 에밀리의 두 번째 초상화는 클림트 작품에서 초기에 해당하며, 역사화를 위한 습작으로 그려졌다. 에밀리는 고전적 의상을 입고 협죽도 앞에 서 있다. 에밀리는 요제프스테터슈트라세에 있던 클림트 작업실의 수풀이 무성한 정원에서 모델을 섰다고 추측된다.

미디의 초상화 | 구스타프가 그린 에밀리. 1902년의 이 그림이 에밀리의 마지막 초상화다. 이 그림은 에밀리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미디'에게 쓴 편지를 보면 클림트가 이 그림을 팔았을 때 어머니(그의 어머니인지 에밀리의 어머니인지는 확실치 않다)에게서 질책을 받았고 빨리 하나를 그려 놓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썼다! 물론 다음 초상화는 그려지지 않았다.

희망 | 클림트는 이미 빈 대학교의 학부 그림을 그렸을 때 임신부를 묘사하여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물론 알레고리화 <희망>은 주문받는 작품이 아니었다. 화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었고, 붉은 머리칼, 아름다운 각선미 같은 '팜 파탈'의 특징을 만삭의 여인과 연결했다.

생성되는 생명 | <희망 Ⅱ>, <희망 Ⅰ>보다 4년 뒤에 그려진 이 그림은 생명의 순환에 대한 상징이 집약되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임신부의 시선이 감춰진 자신의 배를 향한다. 전작에서 위협적으로 보이던 찡그린 얼굴과 해골이 사라졌다.

오토는 클림트와 미치 침머만 사이에서 태어난 두 번째 아이로, 두 살 즈음 사망했다. 클림트는 1903년 이 아들을 스케치했다.

<유디트 Ⅰ>을 위한 스케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가 모델이다. 이 그림은 그들의 연인 관계에 대한 증거였고 스캔들이 되었다.

클림트가 관능적인 스케치에 표현한 모델들의 이름은 알 수 없다. 오히려 그가 포착했던 감정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충만한 육체적 몰입.

아름답고, 당당하고, 위험한 | 빈 '팜 파탈'의 전형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는 1899년 즈음 성경의 인물 <유디트>를 위해 모델을 섰다. 이것은 공식적인 초상화가 아니지만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통해 아델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목걸이는 부유한 제당회사 사장 페르디난트 블로흐 바우어가 아내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 황금으로 치장한 걸작 <유디트>가 발표된 지 8년 후 클림트는 또 하나의 <유디트>를 그렸다. 이번 작품도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황홀경에 빠져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여인이므로 이 작품의 제목을 <살로메>로 붙여도 좋을 것이다. 살해한 후 극도로 흥분한 이 <유디트>는 방탕하고 피에 굶주린 듯 보인다.

수수께끼 같은 흐름 | 1903년의 <도깨비 불>은 비밀에 싸여 부드럽게 반짝인다. 굽이치는 머리카락을 이루는 유려한 선, 희망이 가득한 여인들의 얼굴, 유혹적으로 빛나는 나체들이 뻗어나가며 이 작품의 특별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사소한 복수 | 클림트는 원래 이 그림에 <나의 비평가들에게>라는 제목을 달았다. 빈 대학교 학부 그림이 거부당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가득한 분노! 풍만한 엉덩이를 보이는 붉은 머리 여인의 대담한 시선이 매우 직설적이다. 클림트는 친구들의 설득으로 <금붕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그 메시지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생명의 원천 | 1917-18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미완성작이다. 요람에 누인 아기는 여러 면에서 생명의 시작을 보여준다. 산위에 있는 이 젖먹이는 이제 무덤으로 내려갈 일만 남아 있는 산 정상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탄생은 순환하는 인생의 즐거운 절정일까?

무희 | 관능적인 표현에 대한 클림트의 취향은 화려한 색채로 이루어진 후기 작품까지 이어진다. 아름다운 <무희>가 입고 있는 옷의 다채로운 무늬는 배경과 하나가 되어 시선을 깊이 끌어들인다. 왼쪽에 있는 아시아인들의 모습에서 극동 예술에 심취했던 클림트의 취향을 되짚어볼 수 있다.


지금도 우리 곁에



"나는 클림트라는 인물을

아르투르 슈니츨러

이야기한 방식으로

짜 맞추려고 시도 했다."

라울 루이즈 (<클림트-빈의 환상>의 감독, 위는 구스타프 클림트 역의 존 말코비치)


그 어느 때보다

…세계는 지금 더 클림트에게 관심을 쏟고 잇다. 빈이 낳은 유명한 예술가 클림트가 만약 지금 자신의 작품이 얼마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볼 수 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는 지금 오스트리아 예술의 간판스타로 이름을 올렸고, 그 당시 격렬한 논쟁의 대사이었던 그의 작업 방식은 일상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한편 그가 직접 그린 작품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클림트를 찾고자 하는 이는 어느 곳보다도 그의 고향에서 클림트를 먼저 발견할 것이다.




위에서 바라본 빈의 오버 벨레데레 궁전. 오늘날 미술관으로 쓰이는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나는 클림트 자신이 만들었을 법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라울 루이즈

1984년 미국의 팝스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디자이너 레이 아가안에게 아주 특별한 드레스를 만들게 했다. 이 의상은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Ⅰ>을 본 따 만들었다.

클림트의 열렬한 팬이라고 고백한 영화배우 샤론 스톤.

감독 라울 루이즈. 루이즈는 이미 여러 차례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다수의 영화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로 분한 존 말코비치가 <여자 친구들>을 그리고 있다.

카리스마 | 니콜라이 킨스키가 에곤 실레 역을 연기했다. 영화는 클림트의 임종 침상에서 시작된다. 젊은 실레는 존경하는 대가의 초상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싶어 한다. 그가 연필을 잡자 클림트가 갑자기 눈을 뜬다…….

우정의 끈 | 에밀리 역의 베로니카 페레스와 구스타프 클림트 역의 존 말코비치. 라울 루이즈의 화려한 영화 속에서도 두 사람은 영원히 맺어지지 못하고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한 쌍으로 남는다.

클림트 당시의 작업실 | 구스타프 클림트가 마지막 작업실에 있는 매혹적인 정원을 거닐고 있다. 자연에 근접한 작업실은 그가 제2의 집으로 삼았고, 창의력을 북돋워 주는 이상적인 은둔처였다.

현재의 유산 | 그 사이 개축된 작업실은 오늘날 '구스타프 클림트 기념사업회'가 관리한다. 기념사업회는 이 장소를 클림트 순례자들이 관람하게 하고, 여러 가지 문화 프로그램으로 클림트의 유산을 생생하게 보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5-039 재즈 - 원초적 열망의 서사시


아르노 메들랭, 프랑크 베르제로 지음, 장동현 옮김, 성기완 감수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34


082

시158ㅅ 29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9


L'epopee du jazz, Au-dela du bop


마일즈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찰스 망거스,

오네트 콜먼, 그들의 이름은 곧 재즈이다. 열정과 회환이

녹아 탄생한 재즈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의

전성기를 거치며 흑인들의 리듬에서 전세계인의 음악으로

성장하였다. 이 시기에 프리 재즈, 웨스트 코스트 쿨,

하드 밥, 모들 재즈, 퓨전과 같은 다양한 재즈 스타일이 수많은

재즈 귀재들과 함께 태어났다. 새로운 음악 형식들이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가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유독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재즈 - 아마도 그것은

문자 그대로 아무 의미 없는 음악일 것이다.

아니면 의미와는 작별을 했으리라,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기 위해서."


알랭 제르베르,

<Le Matin>, 1982년 7월 9일


차례


제1장 비밥에서 무엇이 나올까?

제2장 하드 밥과 모던 재즈를 향해서

제3장 자유로 가는 길

제4장 변화로 가는 길

제5장 조각조각 찢어진 재즈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아르노 메를랭 Arnaud Merlin

1963년생인 아르노 메를랭은 소르본 대학과 파리고등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잡지 <재즈 오 Jazz Hot> <재즈 아 파리 Jazz a Paris> <몽드 드 라 뮈지크 Monde de la Musique>에 참여했으며, <재즈의 비망록> <프랑스에서의 재즈>를 공동 집필했다.


프랑크 베르제로 Franck Bergerot

1953년생인 프랑크 베르제로는 일찍이 대중음악과 재즈에 심취하였다. <재즈 오> <몽드 드 라 뮈지크>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파리 제10대학에서 재즈의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옮긴이 : 장동현

1959년 안동 출생.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 바흐> <시간의 도둑> <작지만 소중한 것들> <성공기업을 창출하는 폴러어십과 리더십> 등을 번역하였다.


감수 : 성기완

1967년생.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재즈 평론가로 활동중이다. <뉴스 플러스> <월간 음악> <상상> 등에 재즈와 록에 관한 글을 기고하였으며 <뮤직 비디오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공동 번역하였다.


제1장

비밥에서 무엇이 나올까?


부분적으로 흑인 노예들이 불렀던 영가에서 발전한 재즈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발생한 음악형식이다. 그것은 흑인이 창조한, 흑인을 위한 음악이었다. 오랫동안 재즈는 단순한 오락거리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나 1940년대 비밥의 출현과 함께 젊은 재즈 음악가들이 아방가르드에 합류했다. 밥이 모던 재즈의 문을 연 것이다. 이제 재즈의 기원과 아무 상관도 없는 아티스트들이 이 특별한 표현방식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찰리 파커(섹소폰을 불고 있는 사람)가 1949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교사였던 레니 트리스타노 및 다른 연주자들과 연주를 하고 있다.

마일즈 데이비스, 리 코니츠, 제리 멀리건(왼쪽부터)이 캐피틀 레코드사에서 《쿨의 탄생》을 녹음하고 있다.

위의 앨범을 발매한 프레스티지 레코드사는 스탠 게츠, 제리 멀리건, 마일즈 데이비스(첫번째 LP판을 위한 연주에서), 리 코니츠 6중주단(조지 러셀의 초현대적 작곡에 기초한, 전설적인 앨범 《에즈 세틱(Ezz-thetics)》에서)의 작품을 통해서 일종의 새로운 개념을 보여 주었다.

포 브러더스. 테너 섹소폰 세 사람과 바리톤 섹소폰 한 사람, 즉 스탠 게츠, 알 콘, 주트 심스, 서지 찰로프샘 마로비츠의 반주로 연주를 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는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레스터 영의 백인 웨스트 코스트 추종자 가운데 진정한 형제들이었다.

리 코니츠원 마시는 레니 트리스타노 문하에 속했다. 트리스타노의 냉정함과 지적인 접근법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즉 그의 주관심사가 내적인 집중, 상호간의 듣기, 끝없는 상상, 일상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진정한 화법이라는 점을 모두가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아트 페퍼 + 일레븐(Art Pepper+Eleven)》은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전형이다. 음반을 만들어 낸 음악가들(피트 캔둘리, 잭 셸든, 버드 생크, 빌 퍼킨스, 리치 카뮤카, 러스 프리맨, 멜 루이스)의 면면이 그렇고, 이스트 코스트 밥(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셀로니어스 몽크의 작품들)과 비교되는 면이 그렇다.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아 편곡가들이 공유한 소리의 우아함을 볼 때도 그렇다. 이 음반 안에는 웨스트 코스트 음악의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일부 음악가들이 안락하게 돈을 벌던 할리우드와, 아트 페퍼가 마약 중독자로서 일생을 보낸 샌 퀜틴 형무소 사이 어딘가에.

데이브 브루벡(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극단적인 예인 유명한 <테이크 화이브(Take Five)>의 작곡가)은 다리우스 미요와 함께 공부했다. 그는 빌 스미스, 조 모렐로, 폴 데스먼드 같은 동반자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공동체의 외연을확대시켰다.

제임스 딘 같은 외모, 긴장이 풀린 듯한 스타일, 순수한 서정주의의 소유자였던 트럼펫 주자 쳇 베이커는 처음에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신통치 않은 모방자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후일, 루이 암스트롱 이후 최고의 즉흥연주가로 인정받았다.

펭귄 그림으로 유명한 드러머 셸리 만의 앨범 《더 스리 앤드 더 투(The Three & the Two)》는 현재 수집가들의 애호품이다. 이 실험성 강한 음악은 디지 길레스피의 빅 밴드와 마일즈 데이비스 9중주단에서 편곡가로 일하던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의 열정어린 피아노 연주에 힘입은 바 크다. 루이스는 자신의 《모던 재즈 4중주단(The Modern Jazz Quartet)》(아래, 앨범 표지)과 함께 클래식 음악의 캐논 형식을 다시 찾았고, 작곡가 군터 슐러와 함께 '제3의 물결'을 만들어 냈다. 이 제3의 물결은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 재즈의 즉흥연주와 필링을 결합한 것이다.

덱스터 고든은 쿨에 레스터 영의 가르침을 동화시킨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 냈다.


제2장

하드 밥과 모던 재즈를 향해서


쿨이 웨스트 코스트에서 인기를 얻고 있을 때, 이스트 코스트의 흑인 음악가들 역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밥을 대규모 앙상블에 적합하게 만들었고, 형식을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표현기법을 마스터했고, 새로운 리듬을 실험하고 있었다. 1950년대 중반이 되자, 그들은 미국 흑인 음악의 특징을 보존하기 위해 블루스와 흑인 영가에서 끌어낸 하드 톤(hardened tone)을 개발해 냈다.

마일즈 데이비스(위)와 셀로니어스 몽크(아래). 비범한 두 사람은 1950년대 중반 미국 흑인 음악을 풍요롭게 하는 데 주역이 되었다.

디지 길레스피의 빅 밴드(위)는 신세대 편곡가들과 일했다. 길 풀러, 조지 러셀, 존 루이스, 치코 오패릴, 테드 다메론(아래)이 그들이다. 다메론의 작품에는 오늘날 빅 밴드의 특징을 예고하는 유연함이 깃들여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밥 음악가들은 프랑스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1963년 녹음된 《파리의 버드 파웰(Bud Powell in Paris)》(위). 토미 포터, 보리스 비앙, 케니 도햄, 줄리엣 그레코, 마일즈 데이비스, 미셸 비앙, 찰리 파커, 1949년(아래).

패츠 나바로는 동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코드 진행(chord progression)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이 코드 진행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될 때, 코드 진행에 대해서 편안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모던 재즈를 만들게 될 것이다." 찰리 파커의 메시지에 들어 있는 근대성이 완벽하게 흡수된 것은 패츠 나바로와 그의 영향을 받은 클리포드 브라운을 통해서이다.

"그가 '내' 뒤에서 연주하는 것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몽크하고 같이 연주하려면 콜트레인처럼 연주해야 한다. 그 빈 공간하며 흐트러진 주법, 그는 늘 그런 식으로 연주하곤 했다."

마일즈 데이비스

《마일즈, 자서전》

1954년 12월 24일, 몽크와 마일즈 데이비스가 <와츠 뉴(What's New)>를 프레스티지사에서 함께 녹음했을 때 클리포드 브라운은 이 곡을 가수 헬렌 메릴을 위해서 즉흥연주를 했다. 이 곡은 재즈 역사에서 걸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같은 해 브라운은 드러머 아트 블래키와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와 함께 하드 밥의 리더가 될 재즈 메신저스(Jazz Messengers)의 첫번째 공연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클리포드 브라운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 당시 드러머인 맥스 로치와 함께 있었다. 그때 맥스 로치는 색소폰 주자인 소니 롤린스도 포함되어 있는 5중주단을 이끌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트럼펫 주자 가운데 브라운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윈턴 마살리스의 초기 레코드를 보면 그 점이 매우 두드러진다.

메카시 상원의원(위)이 미국의 공산당 세력 확대에 대해 지도를 펴놓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마녀 사냥'은 반동의 물결에 휩싸인 미국 사회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얼마 후에 매카시즘은 퇴조했지만 흑인에 대한 대우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1959년 8월 26일,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가 일하던 버드랜드 앞에서 "지나가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난폭하게 체포되었다(아래).

이 포스터의 사이키델릭한 느낌은 1960년대의 팝 음악 청중이 솔에 보여 준 관심을 증명하고 있다.


제3장

자유로 가는 길


존 콜트레인은 1960년대 초반 모던 재즈의 주역이었다. 그는 자신들의 음악을 지배적인 백인 문화에서 해방시키려는, 분노한 젊은 흑인 음악가들의 리더였다. 흑인 인권운동을 배경으로, 재즈 음악가들은 미국 사회 주류의 심미안을 거부하고 프리 재즈라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

찰스 밍거스는 프리 재즈의 가혹한 비판자였다. 그는 프리 재즈가 이룩한 내용보다 그 업적에 더 비판적이었다.

첫번째 녹음(위, 《블루 트레인(Blue Train)》, 1957년, 블루 노트사) 후, 존 콜트레인은 비밥의 하모니 체계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했다. 빌 에번스와 마일즈 데이비스(대표작으로 《카인드 오브 블루》, 1959년)의 모들 경향에서 그는 어렴풋이나마 해결책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해결책 위에서 1961년, 그는 매코이 타이너, 지미 개리슨(아래), 앨빈 존스와 함께 유명한 4중주단을 결성한다.

콜트레인의 앨범 《옴(Om)》(위)과 파로아 샌더스의 《타우이드(Tauhid)》(가운데). 콜트레인의 1966년 이후의 밴드(아래).

《프리 재즈(Free Jazz)》

피아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콜먼과 돈 체리는 여전히 비밥에 등을 돌렸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두 악기 사이의 완벽한 앙상블을 유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역동적이고 자발적인 관계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사이에 미국 대도시에서는 흑인 거주 지역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다. 1960년대에 와서 집단 거주 지역은 격렬한 인종폭동의 발원지였고, 이따금 경찰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장소가 되었다. 인종차별(아래) 폐지에 대한 오랜 청원 끝에 지도자들은 단호한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회적 평등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존중을 얻기 위한 투쟁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는 운동까지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정도였다(위).




마틴 루터 킹 목사(첫번째,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는 1963년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워싱턴에서 25만명이 참여한 비폭력 행진을 벌인 것이다. 비폭력보다 대항 폭력을 선호한 맬컴 X(세번째)는 '블랙 파워' 운동의 선구자였다. 그 운동은 스토클리 카마이클과 '블랙 팬서즈'에 의해 전파되었다(네번째, 행진하고 있는 블랙 팬서즈).

많은 재즈 음악가들이 둘 이상의 악기를 연주했다. 대개 색소폰 주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소프라노 색소폰에서 바리톤 색소폰, 심지어 플루트까지 다루었다. 프리 재즈는 이 현상을 체계화시켰다. 비록 '새로운 것'의 가장자리에 있었지만 롤랜드 커크는 둘 이상의 악기로 연주에 변화를 주었다. 그는 동시에 세 개의 색소폰을 불었고, 플루트로도 연주했으며, 호루라기와 사이렌을 이용하기도 했다.

두 개의 역사적인 프리 배즈 음반.

《오 예(Oh Yeah)》(위)는 찰스 밍거스가 취입한 고전적인 앨범인데 흑인 교회에 모인 청중들의 감탄사나 후렴구를 상기시키는 타이틀이다. 1959년 컬럼비아사에서 녹음해 혹평을 받은 유명한 <페이블즈 오브 포버스(Fables of Faubus)>는 《밍거스 아움(Mingus Ah Um)》(아래)에 들어 있다. 격렬한 풍자투의 가사는 아칸소 주지사 오벌 포버스가 1957년 리틀록에서의 학교 통합에 반대한 것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아웃 투 런치(Out to lunch)》

1960년대 후반, 앤서니 브랙스턴은 구조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프리 재즈가 이룩한 성과와 화해시켰다. 그의 악보(아래), 제목과 앨범 표지(위)는 그의 작업을 증명해 주고 있다.

1930년대 유럽 재즈의 선봉에는 미국의 즉흥연주들의 선도 아래 장고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색소폰 주자 가토 바르비에리(위)는 돈 체리의 유명한 《컴플리트 커뮤니언(Complete Communion)》에서 오네트 콜먼과 합류하여 유명해졌다. 그는 1968년 남아프리카의 피아니스트돌라 브랜드를 만나 결정적으로 변신했다. 어릴 때 남아프리카의 크호사족과 접촉한 적이 있는 피아노 주자 겸 밴드 리더인 크리스 맥그리거(아래)는 1964년 다인종 6중주단인 블루 노츠(Blue Notes)와 함께 아파르트헤이트를 피해 탈출했다. 유럽에 정착한 그는 브라더후드 오브 브레스(Brotherhood of Breath)를 만들었다.

 

제4장

변화로 가는 길

 

 

1960년대와 그 이후에 프리 재즈의 선구자들이 거부했던 것들을 흡수하려는 음악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테크닉을 감정의 방해물로 보는 대신 포용했다. 재즈는 세계 곳곳에서 마주치는 록, 클래식, 기타 전통음악 형식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 지평을 넓혀 갔다.

두 앨범 표지. 위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네페르티티(Nefertiti)》이고, 아래는 조 핸더슨의 《인 앤 아웃(In'n Out)》이다.

어느 날 누군가가 듀크 엘링턴에게 아방가르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간단하게 대꾸했다. "아방가르드라면 나에게는 폴 곤잘레스가 있습니다."  이 말을 인용하면서 색소폰의 데이비드 머레이는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서정주의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폴 곤잘레스가 바로 그 화신입니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곤잘레스는 재즈사를 다룬 책들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빌 에번스는 1929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나중에 뉴올리언스에서 공부할 때 피아노로 바꿨다. 그는 1954년 무렵 하모니와 작곡을 마스터했다. 에번스는 1956년, 《뉴 재즈 컨셉션즈(New Jazz Conceptions)》에 이어 《에브리바디 디그즈 빌 에번스(Everybody Digs Bill Evans)》를 녹음했다. 그의 트리오 경력이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1961년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에서 가진 라이브 녹음판이었다. 또한 1962년에 《인터플레이(Interplay)》에서 작은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1965-1968년은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엄청난 창조의 시간이었다. 1965년의 《이에스피(E.S.P.)》, 1967년의 《소서러(Sorcerer)》, 1968년의 《피에 드 킬리만자로(Filles de Kilimanjaro)》가 바로 증거품이다. 그의 아내들-댄서인 프랜시즈 테일러, 배우인 시실리 타이슨, 가수인 베티 메이브리-의 얼굴이 차례대로 앨범 표지에 실렸다.

지미 핸드릭스(위)와 슬라이 스톤(아래)의 도움으로 마일즈 데이비스는 새로운 소리들과 리듬 스타일을 개발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1969년 8월에 녹음한 《비치즈 브루(Bitches Brew)》는 그가 몇 달 전 《인 어 사일런트 웨이》에서 시도한 방향전환을 확인해 주는 음반이다. 이후 그는 몇 시간 동안이고 계속해서 모음곡들을 연주했다. 물론 녹음하기 위해서는 편집을 해야만 했다. 그는 록 스타들(그들의 제한된 테크닉을 경멸하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확실했다.)과 함께 무대에 선 대규모 페스티벌에서 청중을 압도했다. 이 음악에 감명을 받는 백인 재즈 음악가들의 수가 늘어갔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개리 버틴과 그의 더블 베이스 주자 스티브 스왈로는 컨트리 뮤직의 뿌리로 돌아가 밥 딜런의 초기 포크 록을 재해석했다. 기타 주자 래리 코리엘은 강력한 증폭기를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새처레이션(saturation)과 피드백의 효과를 탐험했다.

재즈 록의 등장과 아울러, 재즈 페스티벌은 그 모습이 많이 변했다. 전자악기들이 무대 위에 등장했고, 그럼 섹션의 장관을 자랑하기 위해 테크닉에서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자리도 더욱 확대하였다.

웨더 리포트는 네번째 앨범 《미스티리어스 트레블러(Mysterious Traveler)》로 일반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컬럼비아 레코드사의 전폭적인 후원도 얻었다. 그룹의 상업적 야망은 1976년의 《블랙 마켓(Black Market)》으로 이어졌다. 그 앨범은 아프리카와 브라질 음악의 영향이 최고조에 달한 작품이다. 다음 앨범은 저 유명한 <버드랜드(Birdland)>가 들어있는 《헤비 웨더(Heavy Weather)》이다. 1980년에 나온 《나이트 패시지(Night Passage)》는 파스토리어스와 어스카인의 연주기량이 절정에 오른 작품이다. 새 리듬 섹션(빅터 베일리, 오마르 하킴)이 가세한 그들의 마지막 앨범 《스포팅 라이프(Sportin' Life)》는 1980년대 수작이었다.


제5장

조각조각 찢어진 재즈


이제 20세기가 시작되면서 탄생한 재즈의 현재 위치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가장 최근에 나타난 흐름들은 과연 재즈의 숨이 끊어져 가고 있다는 신호일까 아니면 전통이 확대된다는 신호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재즈가 전세계적으로 주류에서 벗어난 다양한 음악 유형들에 영감을 주어 왔다는 사실, 즉 그것들이 이제 마감하려 하고 있는 세기를 위해 팡파르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앨범 《더 매저스티 오브 더 블루스(The Majesty of the Blues)》

'멀티컬러 필링'인 빌 프리셀, 제리 곤잘레스, 식선.

마일즈 데이비스와 디지 길레스피.

마일즈 데이비스.

셀로니어스 몽크.

아트 블래키.

가토 바르비에리.

 




posted by 황영찬

2015-038 금산사


글 / 김남윤, 이응묵, 소재구●사진 / 손재식

2007,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4


082

빛12ㄷ 237


빛깔있는 책들 237


김남윤(연혁)-------------------------------------------------------------------

전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 및 동덕여대, 경기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연구 논문으로는 「신라 법상종 연구」, 「진표의 전기자료 검토」, 「신라 미륵신앙의 전개와 성격」, 「고려 중기 불교와 법상종」 등이 있다.


이응묵(건축)-------------------------------------------------------------------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건축공학과와 단국대 대학원을 졸업하셨다. 오랫동안 한국 전통 건축 분야의 설계와 조사 연구 활동을 해 오셨다. '새한 건축 문화연구소'를 경영하며 문화재관리국 등의 의뢰로 '금산사', '마곡사', '장곡사', '흥천사', '화엄사' 등의 「실측조사보고서」를 집필 간행하였다.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역사분과 상임위원과 대한건축사협회 전통건축연구원으로 계시다 1999년 타계하셨다.


소재구(유물)-------------------------------------------------------------------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에 근무하고 있으며 「원각사지 10층석탑의 연구」, 「동문선의 불탑자료」, 「우리나라의 불탑」, 「고달원지 승탑편년의 재고」 등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손재식(사진)-------------------------------------------------------------------

1956년생으로 신구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불교 문화와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업을 주로 해오고 있다. 그동안 십여 권의 빛깔있는 책들에 이와 관련된 사진을 실었고 웅진출판사의 『한국의 자연탐험』 작업에 참여하였다. 현재 『사람과 산』의 객원 편집위원으로 있다.

|차례|


미륵 신앙의 본산, 금산사

금산사의 역사

금산사의 건축

금산사의 유적과 유물

금산사 가는 길

참고 문헌



금산사 전경

진표율사 부도  금산사 부도전 안에 안치되어 있는 이 승탑(부도)은 선암사 소요대사탑을 본떠 제작하였다.

석성문  '견훤성문'이라고도 하는 이 석성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관문으로 예부터 금산사를 수호하던 성문이다.

원명대사비  금산사에서 출가하고 수학한 중창주 원명대사 혜원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원명대사비는 부도전 안에 안치되어 있다.

뇌묵 처영의 진영  어려서 금산사에서 출가하였던 처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산사를 중심으로 승병을 모아 각종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해남 대둔사의 표충사에 봉안되어 있다.

미륵전  절의 중심 금당으로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줄어들었다.

미륵전의 서쪽 벽과 벽화  공포와 공포의 사이 벽에는 불교 설화를 그린 벽화들로 채워져 있다.

미륵전 내부  건물 외관은 3층이지만 전체가 터져 있는 내부에는 약 1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불상을 안치하기에 알맞다.

대적광전  화재로 불타버린 후 1994년에 복원된 대적광전은 정면이 7칸이나 되는 긴 건물로 처마 끝이 하늘로 향하고 있으며 넓은 대지에 착 가라앉은 듯한 차분함이 있다.

대적광전 내부  불당 면적이 90여 평이나 되는 건물 내부 또한 트여 있어 넓어 보이는데, 기다란 불단 위에는 5부처 6보살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대장전과 지붕의 상륜 부재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대장전 지붕의 용마루에는 목탑 부재로 보이는 장식(복발, 원추형 쇠뚜껑, 보주 등)이 있다.

대장전 불상  목조의 거신광배 앞에는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었다.

대장전 문살과 수미단  높이 1.07미터, 길이 4미터, 측면 1.8미터인 수미단에는 정교한 장식문이 투조되어 있다.

옛 금강문  사찰 경내의 진입로에 위치한 단칸으로 된 옛 금강문은 출입하지는 않고 금강신의 화상을 안치한 가람 수호 신문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금강문  금강문은 1994년에 절의 입구를 변경하면서 옛 금강문 왼쪽 앞에다 새롭게 세운 것이다.

명부전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씩이며 기둥마다 공포를 올린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다.

명부전 내부  명부시왕상과 지장보살 후불탱화가 봉안된 명부전은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나한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80년대 후반에 소실된 뒤 1995년에 대적광전 뒤쪽으로 새로 이전하여 건립하였다.

나한전 내부  석가삼존불과 십육나한(위), 그리고 수십 기의 수행 아라한상(아래)을 한 곳에 봉안하고 있다.

적멸보궁  옛 나한전 자리에 세워진 계단 예배각으로, 이곳에서는 유리벽을 통해 방등계단에 있는 사리탑을 경배하며 예불을 드린다.

삼성각  적멸보궁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은 건물이다.

금산사 방등계단 북서쪽에서 본 전경  방등계단과 5층석탑이 나란히 배치되었고, 남동쪽에 미륵전이 있으며, 동쪽의 팔작지붕 건물이 나한전이다.

미륵장륙삼존불  3층까지 모두 트인 내부를 꽉 채우듯 서 있는 거대한 이 삼존불상은 가운데의 본존미륵불상(11.8미터)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보살 입상(8.8미터)이 봉안되어 있다.

협시 보살상  신체에 비해 얼굴이 약간 큰 보살상은 머리 위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방등계단 위에 있는 석종  인도 불탑의 형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계단 형식의 이 석종형 사리탑은 고려시대에 들어 완성된 형식으로 벽면의 돋을 새김 장식이나 탑신에 새겨진 용머리 장식 등은 금산사 석종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석종  받침 돌판의 네 귀에는 사자 머리를 새겨 놓았으며 돌판의 한가운데에는 연꽃잎을 둥그렇게 새겨 두르고 그 안쪽 테두리에 맞추어 탑신을 받도록 하고 있다.

5층석탑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이 석탑은 상륜부에서 보이는 이국적 스타일이나 석종 사리탑 앞에 탑자리를 마련한 것 등에서 고려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련대  육중한 돌덩어리를 깎아 우아한 연꽃의 자태를 간직한 불상 대좌로 만든 보물 제23호인 이 석련대의 대좌 위에는 불상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6각다층석탑  점판암을 주된 재료로 사용한 이 탑은 기단부 위에 얹혀지는 탑신부를 부처님의 신체로 여겨 기단부를 연꽃 대좌 형식으로 만들었다.

노주  석조 대좌의 생김새, 두줄새김 기법의 사용, 그리고 인상, 연꽃의 표현 방식 등에서 고려 전기의 조형 양식을 보이고 있는 이 석조물은 원래 다른 석조물의 장식 부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등  이 석조물은 기둥돌이 짧고, 연꽃무늬가 질박하며, 지붕 처마선이 곡선적이고, 상륜부가 과장된 점 등에서 고려 전기에 유행하던 석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당간지주  탄탄하고 단정한 자세에 간결하고 갈끔한 장식과 야무진 돌다듬새가 돋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금산사에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혜덕왕사진응탑비  바닥돌과 돌거북을 한 덩이의 돌에 새긴 조형미가 돋보이는 이 비의 빗돌은 크게 손상을 입어 글 전체를 읽기가 어렵다.

심원암 북강 3층석탑  이 석탑의 지붕은 금산사 5층석탑과 닮은꼴인 데다 층단받침이 한 단 새겨져 있어 5층석탑보다 먼저 세워졌으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부도전  금산사에서 심원암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부도전 안에는 혜덕왕사진응탑비와 고려 후기의 중창주인 원명대사비 등 2기의 석비와 12기의 승탑(부도)이 안치되어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5-037 나에게 힘이되는 말의 선물


후지와라 히로시 지음 / 강성욱 옮김

2014, 함께BOOKS

 



대야도서관

SB101318



199.1

후78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248가지 말

 

THE WORLD WISDOM

성공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그 점에 흥미를 갖고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저의 인생 경험에 더하여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보다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살기 위하여

세상의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지

짧은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책속에는 그런 248가지의 말이 담겨 있습니다.

 

후지와라 히로시

현대미술 아티스트.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 출생. 유년기부터 미술, 특히 일본화와 친숙하게 지내면서 다도를 배웠다. 중학교 시절, 유럽의 현대사상가의 말을 접하고 말이 지닌 소중함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후 저명인에 국한하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들은 말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대학 졸업 후에는 현대미술 아티스트로 부유층을 주 고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로 부터 배운 것을 바탕으로 본서를 저술하였다.

 

강성욱

일본의 니혼 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잡지사 기자를 거쳐 출판사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를 비롯하여 '7일간의 습관', '언어의 마술', '체인지 마이 라이프', '현명한 선택', '게으름의 기술', '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변한다', '신데렐라 프로젝트',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위한 인테리어', 마음을 맛있게 채워즈는 일본 사찰 요리', '100가지 기본' 등이 있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과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비밀의 숲', '재즈의 초상' 등의 초역과 감수를 맡았다.

 

contents

 

제1장

나를 다스리는 말

 

1. 중요한 것은 언제나 심플하다

2. 개성이란 무엇인가

3. 지금보다 좋은 지금을 만들기 위해

4. 과거와 현재와 미래

5.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6. 좌절로부터 얻는 것

7. 외면의 아름다움이 퇴색하기 전에

8. 자신의 행동은 반드시 무의식이 보고 있다

9. 사람은 본능적으로 퇴화를 싫어한다

10. 재능보다 노력하는 자세를 칭찬하라

11. 질이 좋은 것은 사람에게 배움에 대해 가르친다

12. 아름답지 못한 것의 이유

13.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다

14.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찾는 것이 성장을 낳는다

15. 마음을 진보시키는 것과 퇴화시키는 것

16. 의견을 말해주는 사람을 소중히 한다

17. 사람은 취미에서도 자기 자신을 느낀다

18.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는 일의 어려움

19. 충실감은 곤란의 앞에 잇다

20. 성격의 좋고 나쁨이란

21. 커뮤니케이션과 성격의 관계

22. 의식과 성장 속도

23. 자기현시욕은 만족을 주지 않는다

24. 성장해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자신이다

25.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교만이다

26. 도움을 청할 힘을 갖춰라

27. 놀라움이 없으면 매력도 없다

28. 실력과 결과는 반드시 균형을 이룬다

29. 실력이란 결과를 낳는 힘이다

30.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의 중요함

31. 운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

32. 인사(人事)와 천명(天命)의 관계

33. 거울은 누구를 위해 보는가

34.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

35. 성장으로 이어지는 실패, 해서는 안 되는 실패

36. 매력이란 무엇인가

37. 인상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합계치로 정해진다

38. 새로운 지식을 얻는 일이란

39. 품성을 결정하는 것은 생활태도이다

40. 재능은 사악한 마음에 깃든다

41.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42. 재능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존심이 세다

43. 매력과 노력

44. 유명하게 사는 일의 어려움

45. 세상에는 두 종류의 패자가 있다

46.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47. 상대(相對)된 것의 매력

48. 선행(善行)의 색깔

49. 타인의 휸내는 자신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제2장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말

 

50. 긴 안목으로 인생을 바라보라

51. 산다는 것

52. 괴로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53. 자신의 손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자신에게 달렸다

54. 유머는 배려에서 생긴다

55. 평소의 반복이 지닌 강한 힘

56. 위급상황의 원인은 평소 나태함의 축적이다

57. 마음의 즐거움과 행복

58. 부과된 세 개의 의무

59. 자유는 마음속에 존재한다

60.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충실감

61. 인상은 바꿀 수 있다

62. 감사의 근본은 자기희생이다

63. 사람을 빈곤한 환경으로 이끄는 것

64. 주위의 모든 것은 정신에 영향을 준다

65. 원한은 절대로 풀 수 없다

66. 선량함을 빛나게 하는 것

67. 사회는 사람이 만든 인공물에 지나지 않는다

68. 질과 양, 무엇이 중요한가

69. 사랑과 경의는 얻기 어렵고, 혐오와 증오는 얻기 쉽다

70. 그림자는 빛의 반대 방향에 있다

71. 행복은 친한 사이가 아니면 알 수 없다

72. 외견은 내면과 똑같이 중요하다

73. 기회는 설명서가 없는 선물이다

74. 친구와 연인에게 불만이 있을 때

75. 평범한 생활이 지닌 비용대비 효과

76. 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원하지 않기 위해

77. 인생의 의미를 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78. 질이 나쁜 것을 좋아하는 일의 폐해

79. 인간의 행운은 역경으로 시험받는다

80. 온화한 표정과 목소리는 지성적인 생활의 증거

81. 놀이와 쾌락의 조절

82. 돈과 시간은 사치스럽게 사용한다

83. 문제의 발견을 해결로 이어가기 위해서

84. 많은 인맥이 제공하는 선택의 안정성

85. 사람과 물건의 가치는 사용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86.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의 코스트 퍼포먼스

87. 단점을 미화하면 결과는 멀어진다

88. 보다 많은 힘과 재력을 가지면 보다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89.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90. 선택하는 쪽은 선택받는 쪽보다 우위에 있다

91. 바른 선택지를 준비하는 일의 중요성

92. 타인의 불행에서 자신의 행복이 생기지 않는다

93. 행운은 슬픈 느낌의 장소나 사람을 싫어한다

94. 싫어하지 않는 것의 공과(功課)

95. 정말 위험한 상황이란

96. 계획의 중요성

97. 행복을 유지하는 어려움

98. 매력 있는 사람이란

99. 부모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100. 참는 것이 싫다면

101. 자신이 만족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102. 무슨 일이건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 하라

103. 뛰어난 재능에 뒤따르는 사명과 권리

104. 아름다운 것의 힘

105. 추함이 불러오는 감정

106. 길의 정오(正誤)를 확인하는 방법

107. 어떤 길을 선택해도 만족할 수 없을 때

108. 풍요로운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환경

109. 아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

110. 물건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로 판단하라

 

제3장

인간관계를 좋게 하는 말

 

111. 자신감이 없고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에게

112. 자신의 행동이나 재능은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

113. 뒤끝의 중요성

114.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115.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의 필수 요소

116.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

117. 타인에 대한 무관심의 폐해

118. 궁합에서의 상호보완

119. 자신의 감정을 꾸미지 마라

120. 타인의 컨트롤에 대해 품는 감정

121.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이 힘을 과시하는 것을 싫어한다

122.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

123. 사람은 명칭만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124. 사람은 항상 선인과 악인을 찾고 있다

125. 남성다움, 여성다움

126. 성격이 나쁜 사람, 성격이 좋은 사람

127. 아부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128. 대외적인 관계성을 만드는 방법의 종류와 차이

129.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130. 상대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131. 들은 말은 나중에 자신의 입에서 나온다

132.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힘

133. 시의심(猜疑心)이 초래하는 결과

134. 개성은 일로 표현하라

135. 형태가 없는 것의 컨트롤

136. 상대의 의견을 듣는 것의 중요함

137. 서로 닮은 사람끼리 무리를 이룬다

138. 소문의 무서움

139. 만남에 대해서

140. 취미의 유사함이 갖는 친근감

141. 말이 지닌 힘의 강력함에 대해서

142. 운은 함께 있는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

143.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행동에 대해서

144. 적을 만들기는 쉽고, 내 편을 만들기는 어렵다

145. 타인에게 헌신하는 사람과 타인에게 용서받는 사람

146. 대인관계에서의 초인트

147. 말투나 성격은 만나는 빈도가 높은 사람을 닮는다

148. 지성의 정도를 증명하는 방법

149. 비웃음에는 이점이 없다

150. 타인의 곤란함에 관심을 갖는다

151. 상대를 판단할 때의 방법

 

제4장

일에 도움이 되는 말

 

152. 일을 즐기는 마음을 소중히 하라

153. 곤란한 상황에서의 대응이 그 후를 좌우한다

154. 위대한 기술과 재능은 후세에 계승된다

155. 난이도가 높은 일에 뒤따르는 위험성

156.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157. 동기는 일에 짙게 투영된다

158. 아름다움의 추구는 주위에 대한 봉사이다

159. 질이 높은 일의 정의

160. 사람은 재미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을 칭찬한다

161. 완벽은 그것을 지향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162. 일을 계속하는 것은 대사(代謝)이다

163. 인품으로 일을 보완할 수 없다

164. 자신의 방식과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

165. 작품을 기억에 남기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서

166. 열심히 했다는 만족감의 위험성

167. 무언가를 해준다는 생각의 폐해

168. 허세나 무리는 영속성이 없다

169. 선택지가 늘어나면 일의 질은 향상된다

170. 목적이 없으면 정답도 없다

171. 문제가 복잡해지지 않게 하라

172. 큰 문제는 분해해서 대처하라

173. 동경심으로 일을 선택하는 위험성

174. 사람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형태

175. 낭비가 없는 힘은 시각적으로 아름답다

176. 예술 감각과 비즈니스 감각

177. 예술과 비즈니스

178. 감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생긴다

179.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란

180.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

181. 재능이라는 봉투에 담는 것

182. 상대의 지식과 지성에 관계없이 전해지는 것

183.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권리가 있다

184. 사람은 무지한 분야일수록 바로 판단한다

185. 평가는 사용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186. 경험이 얕을수록 알기 쉬운 것을 선호한다

 

제5장

성공을 생각하는 말

 

187. 모든 일에는 일어난 이유가 있다

188. 성공은 출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189. 진정한 천재란

190. 과정의 중요성

191. 충실한 수확을 위해

192. 목적 달성은 동기의 강도에 달려 있다

193. 초조함은 질투를 낳고 성장을 저해한다

194. 사람은 서툰 것을 싫어한다

195. 좋고 나쁨을 아는 일의 중요함

196. 운명의 힘

197. 선악의 종류

198. 선악과 인과

199.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속도의 무서움

200. 혼잡은 커다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201. 매력적인 것에는 동등한 희생이 따른다

202. 사랑과 질투, 선망과 시기는 표리일체이다

203. 사는 장소가 주는 영향

204. 성공은 안심감이 아닌 공포감을 증가시킨다

205. 성공한 사람일수록 겸손해진다

206. 자신에게 있어서의 성공

207. 기운(機運)을 타기 위해서

208. 흥미가 없는 일을 계속하는 것의 폐해

209. 적합한 규모는 사람마다 다르다

210. 미심쩍은 일이 있다면

 

제6장

욕망에 관한 말

 

211. 욕망이 동기인 관계는 위험하다

212. 강한 힘을 갖는 것의 무서움

213. 독점욕과 질투심

214. 사람이 가장 추하게 느끼는 모습

215. 욕망의 도움닫기 기간에 대해서

216. 소유와 영원은 환상이다

217. 욕심을 버려야 할 때

218. 욕망은 가진 순간부터 겉으로 드러난다

219. 사람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220. 나쁜 사람에게 매료되는 심리

 

제7장

사랑에 관한 말

 

221.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222.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란

223. 사랑과 경의와 호의의 차이

224. 애착의 위대함

225.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란

226. 사랑과 경의

227. 가족의 소중함

228. 사랑은 사랑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229. 사랑받는 일의 중요함

230. 상대에게 애정을 받고 싶다면

231. 마음의 중요함에 대해서

232. 사람을 브랜드로 판단하지 마라

233.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영향

234. 자기애의 예외

 

제8장

감정을 다스리는 말

 

235. 위기감과 공포감의 차이

236. 공포심은 사전에 실패를 피하기 위해 존재한다

237. 감정은 전파된다

238. 화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감정이다

239. 선망을 느낄 때

240. 자존심을 제어하지 못하는 두 가지 원인

241. 인간은 비합리적인 생물이다

242.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243. 인류가 쌀아온 지성적인 생활의 진보를 위하여

244. 생각하는 것과 고민하는 것의 차이

245. 현실을 보지 않으면 공포는 증식한다

246. 상상력이 지닌 위험성

247. 공포를 행동의 동기로 삼지 마라

248. 완고(頑固)의 원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과거에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현재이며, 현재부터 어떤 노력을 하는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미래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를 바꾸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좌절로부터 얻는 것

 

좌절은 그 후의 인생을 냉정하게 생각할 좋은 기회이다.

 

외면의 아름다움이 퇴색하기 전에

 

외적인 아름다움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도금처럼 벗겨지고 떨어진다.

빛나는 도금이 벗겨지기 전에 그 안을 빛내지 않으면 그 빚은 언젠가 사라져 버린다.

 

마음을 진보시키는 것과 퇴화시키는 것

 

사람의 마음을 진보시키는 것은 감동과 신선함이며, 퇴화시키는 것은 싫증과 식상함이다.

항상 지금보다 위를 지향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 정신을 젊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결이다.

 


 

다른 사람에겐 쉽게 찾아가는 기회가 당신에게만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의 때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매 순간 당신의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기대감을 품으세요.

당신의 때가 오고 있습니다.

 


 

놀라움이 없으면 매력도 없다

 

타인이 보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물건, 사람, 행위 등에서는 매력이 생기지 않는다.

매력은 항상 놀라움이나 신선함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실력이란 결과를 낳는 힘이다

 

실력이란 결실을 맺는 힘, 즉 결과를 낳는 힘이다.

장기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힘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힘이라도 실력에 포함되지만,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힘은 실력에 포함되지 않는다.

 

품성을 결정하는 것은 생활태도이다

 

사람의 품성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생활수준이 아니라 생활태도이다.

 

유명하게 사는 일의 어려움

 

무명에서 유명해진 사람은 많지만, 그 수에 비해 그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은 적다.

무명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유명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패자가 있다

 

세상에는 패자로 살아가는 패자와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패자가 있다.

승자는 항상 후자의 패자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정말로 곤란할 때 누군가 도와주기를 바라고, 그때 반드시 자신을 도와주는 한 사람이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강한 마음이나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재능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도 반드시 자신을 도와준다.

 

상대(相對)된 것의 매력

 

새로움과 그리움, 온후와 냉철, 용기와 겁 등과 같이 상대된 성질을 동시에 지닌 것에 매력을 느낄 때가 있다.

 

자신의 손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자신에게 달렸다

 

자신의 손을 쥐면 주먹이 되고, 상대의 손을 쥐면 악수가 된다. 즉 자신의 힘은 상대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협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손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부과된 세 개의 의무

 

식욕과 성욕, 그리고 수면욕은 인간이 풍요롭고 건강한 생활을 보내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만 하는 세 개의 의무이다.

 


 

가슴속에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을 놓치지 마세요.

사소한 즐거움들을 누리는 것 또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사람을 빈곤한 환경으로 이끄는 것

 

빈곤은 태만과 무지,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인해 생겨난다.

 

원한은 절대로 풀 수 없다

 

원한을 완전히 풀기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로 복수해도 잃어버린 것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빛의 반대 방향에 있다

 

빛에서 얼굴을 돌려서 뒤만 바라보면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림자만 보는 것이 싫다면 눈이 부셔도 빛이 빛나는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따금 우리의 삶에서는 게으른 사람들이 더 즐거워 보입니다.

그래서 열정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끔 이러한 상황이 당황스럽고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게으르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은 결코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실함을 유지하세요.

때가 차면 우리가 지난날 땀으로 쌓은 노력과 열정들이 그 진정한 가치를 드러낼 것입니다.

 


 

많은 인맥이 제공하는 선택의 안정성

 

자신이 직접 새로운 만남을 만드는 것은 시간과 수고가 들지만,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를 늘려준다는 의미에서는 대단히 유효한 일이다.

 

계획의 중요성

 

인생은 계획이 있어도 곤란한 것이다. 그러니 계획이 없으면 더욱 곤란해지는 것은 명백하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어도 인생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명확하고 유연한 계획이 중요하다.

 

행복을 유지하는 어려움

 

상당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행복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만 태어나는 것이다.

 

무슨 일이건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 하라

 

무언가가 너무 많아서 곤란한 것이나, 너무 없어서 곤란한 것이나 곤란함에는 변함이 없다.

무슨 일이건 곤란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추함이 불러오는 감정

 

사람은 본능적으로 추한 것을 기피하고 철저하게 배척하려고 한다.

추함은 그것을 본 사람에게 이유 없이 불안을 줄 만큼 대단히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길의 정오(正誤)를 확인하는 방법

 

길을 잃었다면 주위를 둘러보라.

만일 주위에 존경할 수 없는 유형의 사람밖에 없다면 그 길은 당신에게 잘못된 길이다.

 

자신의 감정을 꾸미지 마라

 

자신의 본연의 감정이나 성격을 가장하고 계속 억누르면 타인과 잘 지낼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본래 감정과 성격을 억누르지 않고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맞지 않는 상대와의 관계일수록 화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상대는 냉정하게 대처하면서 거리를 유지하면 쓸데없는 다툼이나 싸움을 피할 수 있다.

 

들을 말은 나중에 자신이 입에서 나온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타인이 자신에게 한 말이다.

칭찬을 받는 사람은 상대를 칭찬하고, 경멸받는 사람은 상대를 경멸한다.

 

서로 닮은 사람끼리 무리를 이룬다

 

성격, 가정, 일, 센스, 수입 등이 닮은 사람끼리 커뮤니티나 집단을 형성한다.

 

지성의 정도를 증명하는 방법

 

타인에게 자신의 지성의 정도를 증명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무엇이 진정한 지성인가를 자기 나름대로 정의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자세를 표현하는 것이다.

 

타인의 곤란함에 관심을 갖는다

 

타인이 겪고 있는 곤란함을 경청하고 해결방법을 세우는 일은 타인뿐 아니라 앞으로 똑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 일어났을 때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곤란한 상황에서의 대응이 그 후를 좌우한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이라고 해도 굴하지 않는 열정을 잃지 않고 냉정한 태도로 대처하며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온정을 줄 수 있는 강인함이 남아 있다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그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전부 돌아온다.

 

위대한 기술과 재능은 후세에 계승된다

 

위대한 공적이나 재능, 기술 등은 후세까지 계승된다.

육체는 죽어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위업을 남긴 사람의 예지는 형태를 달리해서 후세까지 살아 숨 쉰다.

 

질이 높은 일의 정의

 

질의 높음이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의 강력함이며,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이나 돈이 있어도 질이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사람은 재미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을 칭찬한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이 훨씬 적다.

사람은 항상 따분함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나 재미있는 무언가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는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근거 없는 비난과 부정적인 말에 휘둘리지 마세요.

어떤 자아상을 선택할지는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당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인품으로 일을 보완할 수 없다

 

일은 잘하지만 성격이 나빠서 평소에 불필요한 적을 만든다면 마이너스밖에 되지 않지만, 반대로 일을 못하는 것을 좋은 인품으로 보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선택지가 늘어나면 일의 질은 향상된다

 

모든 일은 항상 선택지를 늘리도록 행동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선택지를 많이 보유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갖추고, 늘어난 선택지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일의 질은 향상되고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사람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형태

 

직사각형, 정사각형, 타원형, 원형은 사람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형태이다.

 

예술과 비즈니스

 

예술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삼으려 한다면 비즈니스라는 행위 자체에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능이라는 봉투에 담는 것

 

재능이란 노력과 경험을 담는 봉투와 같은 것이다. 봉투는 작아도 그 안에 넣는 노력과 경험으로 인해 점점 커진다.

봉투는 크지만 그 안을 채우는 노력과 경험이 적으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권리가 있다

 

인간은 도저히 자연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대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위대한 권리를 가지고 잇다.

 

모든 일에는 일어난 이유가 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는 그것이 일어난 이유가 잇으며,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결과와 관계되는 원인이 있다.

 

과정의 중요성

 

결과가 중요한 것은 명백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과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도 결과와 똑같이 중요하다.

 

목적 달성은 동기의 강도에 달려 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으면 목표의 높이에 호응하는 강한 동기를 지녀야 한다.

동기의 강도는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인내의 강도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좋고 나쁨을 아는 일의 중요함

 

무언가를 구별하려고 할 때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

좋은 것은 나쁜 것을 알아야 비로소 좋은 점을 알 수 있고, 나쁜 것은 좋은 것을 알아야 비로소 나쁜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의 힘

 

노력없이는 운명을 개척할 수 없지만, 사람은 운명 앞에서 무력하다.

 

선악의 종류

 

선과 악에는 시대에 따라 판단이 바뀌는 것, 그 사람이 쌓은 공적에 따라 판단이 바뀌는 것, 그리고 어느 시대에도 판단이 바뀌지 않는 보편적인 것 세 가지가 잇다.

 

사랑과 질투, 선망과 시기는 표리일체이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듯이 사랑이 크면 질투도 강하고, 선망이 클수록 그만큼 시기심도 강하다.

 

사는 장소가 주는 영향

 

만일 성공을 원한다면 성공한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

사는 장소가 지닌 분위기가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있어서의 성공

 

성공과 자유는 성질이 대단히 닮앗다.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른 것처럼 자신에게 있어서 성공이 무엇인지, 어떻게 되었을 때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미심쩍은 일이 있다면

 

진위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일단 해보거나 아니면 실제로 보고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자 후회하지 않을 방법이다.

 

독점욕과 질투심

 

감정 중에서 특히 주의해서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 독점욕과 질투심이다.

이런 감정은 상대에게 커다란 불쾌감이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다.

 

사람이 가장 추하게 느끼는 모습

 

사람이 가장 추하게 느끼는 모습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먼저 행복을 결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해지고 싶은지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당신은 얼마나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욕망은 가진 순간부터 겉으로 드러난다

 

욕망은 지닌 순간부터 영향을 발휘하기 때문에 말투나 말하는 내용, 행동과 같이 겉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욕망은 자신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숨기는 일은 어렵다.

 

사람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갈망하는 것은 그가 유년기나 사춘기에 얻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은 사춘기를 지날 무렵까지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을 계속 추구한다.

 

나쁜 사람에게 매료되는 심리

 

나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惡)을 부정하고 싶어 하며, 더 큰 악으로 그것을 감춤으로써 자신의 악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랑과 경의

 

타인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사랑과 경의를 함께 가질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해야 한다.

사랑이 없는 경의와 경의가 없는 사랑은 어느 하나가 결여 되면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의 소중함

 

세상에서 가장 행복을 주는 존재는 가족이다.

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길이, 사랑의 깊이가 당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가져다준다.

 

마음의 중요함에 대해서

 

생활력이 있으면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과 선함이 없어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지만, 마음이 없으면 인생은 무의미해진다.

 

자기애의 예외

 

대부분의 경우 자기애는 혐오를 받지만, 타인을 빛내는 매력과 조합을 이루면 오히려 그 매력을 증가시키는 힘이 있다.

 

화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감정이다

 

사람이 화를 내는 이유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가령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화를 낸다', '이럴 때 화를 내는 것은 옳은 일이다' 등과 같이 자신이 설정한 화의 정당성을 계기로 삼아 화를 느끼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외로움이 있었기에 기쁜 것입니다.

휴식의 평안함은 치열한 삶이 있었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성공의 단맛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그와 반대되는 고통이 있기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은 당신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선망을 느낄 때

 

사람은 자신이 하려고 생각하면 할 수 있지만, 굳이 하지 않는 일을 타인이 할 때에는 선망을 느끼지 않는다.

선망은 자신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을 타인이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언제나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인생을 즐겁게 만들거나 괴롭히는 것도, 자신을 속박하거나 자유롭게 하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다.

 

공포를 행동의 동기로 삼지 마라

 

행동의 동기가 공포에서 연유하면, 행동의 실행 여부에 상관없이 공포도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행동을 하는 동안 공포와 권태감 사이에서 계속 갈등을 겪게 된다.

 

완고(頑固)의 원인

 

약한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초조함이 긴장을 낳고, 그것이 완고의 원인이 된다.

 

 

 

 

 

 

posted by 황영찬

2015-036 태양계 연대기

 

파토 원종우 지음

2015, 유리창


 

대야도서관

SB102105

 

440.4

원75ㅌ

 

과학과 역사, 우주적 상상력이 결합한

다큐멘터테인먼트

 

지구와 그 주변의 잊혀진 역사를 찾아서

 

B.C. 1만 500년, 지구와 화성, 행성 Z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고고학 유물, 역사 문헌, 고대 문학작품, 성서 등과 현대 천문학 연구결과를 집대성하여

지구와 태양계 행성의 고대사를 재구성한 인문과 자연의 우주적 판타지!

 

이것은 SF 한류의 창세기,

이 책의 영어번역을 금지시켜라!

 

한국의 드라마는 SF 속 상상력에서 많은 이야기를 빌려왔다. 이제 그 빛을 갚을 기회가 왔다. 원종우의 《태양계 연대기》. 이 하나로 한국의 SF는 그간 해외 작가들에게 진 빚을 갚는다. 한국이 만든 상상력의 산물 중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구라를 만나보시라. 이것은 SF 한류의 창세기다.

■ 김민식(MBC 드라마 PD, <뉴 논스톱> <내조의 여왕> 연출)

 

이 정도의 설득력이라면, 외계인은 존재해줘야만 하는 거다.

■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이 흥미진진한 책에 실린 내용을 믿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을 즐기지 못하는 자는 고정관념의 노예임이 분명하다.

■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연재 때부터 밤을 세워 읽은 우주적 상상력. 스필버그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할 한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어 번역을 금지시켜야 한다.

■ 신철(영화제작자, 신씨네 대표)

 

과학은 증거에 기반하지만 새로운 과학은 상상력에서 나온다. 과학적 상상력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라!

■ 이강환(천문학 박사, 과천과학관 연구사)

 

파토 원종우는 줄타기의 달인이고, 그가 발명한 구라논픽션은 사람들의 마음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줄타기다. 그가 줄을 타면 이야기는 사실과 구라 사이를 오가면서 출렁출렁한다. 그 출렁거림이 커지면 커질수록 파토는 한걸음 물러선다. 이 책은 거리두기의 미학을 아는 구라엔터테이너 원종우가 흔들어대는 거대한 줄타기 한마당이다.

■ 이명현(천문학 박사, SETI외계지적생명체탐사기구 코리아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나는 태양계 안에 외계문명이 존재한다든지 외계생명체가 지구에 왔다든지 하는 이야기에는 코웃음조차 아까워하는 과학자다. 하지만 파토 원종우의 《태양계 연대기》를 읽고 있노라면 그 세계에 푹 빠져들고 만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일단 이 책을 집어 든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엄청난 속도로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에 휩쓸리다 보면 머릿속에 빅뱅이 일어나고 결국엔 '멘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맨탈 붕괴의 즐거움!

■ 장준환(영화감독, 《지구를 지켜라》 《화이》 연출)


원종우

필명 파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다가 20대 중반에 인디레이블 운동을 주창, 스스로 록 뮤지션으로 데뷔하고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이후 영국에서 다시 음악을 전공했다.

1999년 딴지일보에 합류, 15년 동안 음악, 문화, 역사, 과학 등을 주제로 수백 편의 글을 썼으며 2008년 SBS 창사 특집 환경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작가로 휴스턴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 유럽편》을 출간해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최근에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전념해 팟캐스트 방송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로 1년 만에 2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과학자, 작가,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과학 전시와 강연, 공연도 만들고 있다.

주변에서 '르네상스적 관심을 가진 지식인'으로 평가한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

만약 우리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것이다.

- 칼 세이건


차례


추천사 이것은 SF 한류의 창세기

머리말 초고대 문명과 은비주의

개정증보판을 내며 과학적 사실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


Chapter 1

외계인들은 지구 가까이에 있다


외계 생명체는 분명히 존재한다

UFO 현상에 대한 기본 전제

과학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항성간 여행의 구체적 문제점들

과학 박스 - 세계의 외계행성 탐색 망원경


외전 1 : 외계인의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Chapter 2

화성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화성에도 생명과 문명이 있었다

무인 탐사선들의 활약

과학 박스 - 화성 탐사선과 탐사 로봇


Chapter 3

한때 풍요로 가득했을 화성, 누가 살해했나?


가로로 길게 그어진 거대한 흉터

경천동지의 대참사

화성의 생명체들은 살해된 것일까

과학 박스 - 화성의 과학적 팩트


Chapter 4

사라진 또 하나의 행성


티티우스 - 보데의 법칙

행성이 파괴되면서 벌어진 일

소행성 에로스의 비밀

과학 박스 - 소행성의 이해


Chapter 5

화성과 행성 Z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아페투스의 비밀

행성 간 문명 교류가 있었을까

과학 박스 - 외행성 탐사선 열전


Chapter 6

달의 정체를 밝혀라


달의 미스터리

달은 고대 외계인이 만든 강력한 무기였을까

지구와 행성 Z는 동맹관계였을까

고장 난 데쓰스타 이아페투스

과학 박스 - 아폴로 계획과 달 탐사


Chapter 7

BC. 1만 500년,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구상의 모든 문명권에 대홍수의 기억이

신화와 전설로만 남은 초고대의 고등 문명

초고대의 우주전쟁

화성의 우주기지 이아페투스, 행성 Z의 우주기지 달

인류 문명은 5000년 전에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과학 박스 - 지구에서 벌어진 대재앙과 멸종


외전 2 : 초고대문명과 외계인의 증거들


Chapter 8

피라미드와 외계 생명체


인류 최대의 불가사의, 기자의 대피라미드

피라미드에 재기되는 의문들

현대과학과는 다른 초고대의 과학기술

대재앙 이후에도 회계인들은 지구를 방문했다

암벽화에 남아 있는 외계 생명체 방문의 증거

과학 박스 - 오리온자리


Chapter 9

모세의 정체를 찾아서


모세는 누구인가

모세는 왜 굳이 출애굽을 결행한 걸까?

모세와 외계인의 밀월과 결별

모세는 바보가 아니었다

초고대의 사상과 기술로 만들어진 유대교

과학 박스 - 원자력 이야기


Chapter 10

누가 화성적 세계관에 맞설 것인가


인류 고대사에 화성인이 나타났다

행성 Z와 예수

화성인이 지구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

석공 조합, 프리메이슨의 역사

프리메이슨이 근대를 개발했다

과학 박스 - 암석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건축의 차이


Chapter 11

화성인과 행성 Z인, 그리고 지금 우리


그들은 외계인이 아니었다

태양계 제국의 영광과 상처

대재앙 후의 태양계, 그 현재의 모습

과학 박스 - 네안데르탈인


외전 3 : 단편 《기나긴 노을 : Z의 이야기》


에필로그 우주적 신화 엔터테인먼트


<수태 고지>, 1486년, 카를로 크리벨리 작,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 공중의 물체에서 성모의 머리로 금색 광선이 발사되고 있다.

<십자가 처형>, 1350년, 코소보의 비오스키 데카니 교회 소장. 좌우측 상단에 특이한 비행체들이 보인다.


위 그림의 비행체들을 확대한 모습.

<예수의 세례>, 1710년, 아트 데 겔더 작, 영국 케임브리지 피츠 윌리엄 박물관 소장. 전형적인 원반형 UFO가 광선을 발사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탈리아 몬탈치노의 산 로렌초 성당의 그림, 1600년. 인공위성 혹은 전파 송신기를 닮은 저런 기계장치는 17세기 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약 8000년 전의 아프리카 암각화.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도 흥미롭지만, 당시에는 그림에서 보는 목주름이 만들어질 수 있는 천의 세밀한 직조기술이 없었다.

케플러 우주 망원경

외계행성 탐색 시스템 KMTNet

거대 마젤란 망원경 GMT

2009년 12월 9일 새벽, 북구의 대자연에 둘러싸인 노르웨이 북단의 한 군사기지에서 놀라운 광경이 목격되었다.

 

1976년 바이킹이 찍은 이 사진은 인공적으로 만든 얼굴상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마스 글로벌 서베이어가 촬영한 인면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얼굴상과는 거리가 있다.

화성인의 기계 장치.

화성의 석상.

화성의 튜브.

미국 잡지 《놀라운 이야기들》.

화성의 아라비아 테라 지역.

이란 사사니안 플레이스의 매몰 유적.

화성의 비석.

포보스의 제단.

화성 표면의 금속성 잔해.

화성 표면의 강이 흘렀던 흔적.

화성 탐사 로봇의 크기 비교. 가운데 작은 것이 소저너, 왼쪽이 스피릿 오퍼튜니티, 오른쪽이 큐리오시티. 소저너와 스피릿 오퍼튜니티가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데 반해 덩치가 큰 큐리오시티는 원자력 전지를 탑재하고 있다.

화성의 모습.

매리너스 협곡.

그랜드캐니언의 위성 사진.

올림포스 산.

화성의 거대 화산들.

화성의 고도 분석 사진.

에로스 표면의 구조물을 3D로 형상화한 추정도.

화성의 위성 데이모스. 긴 쪽의 지름이 7.8킬로미터에 불과한 바위 덩어리다.


태양계의 행성들.

소행성대. 화성과 목성 사이의 너른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

소행성대에 존재하는 유일한 왜소행성 세레스. 지름 974킬로미터로 외부 구조는 대부분 물이 언 얼음이다.

오르트 구름을 포함한 태양계. 실제 오르트 구름의 영역은 이곳에 표현된 것보다 훨씬 크다.

아이페투스 근접 촬영 사진.

<스타워즈> 시리즈의 데쓰스타.

파이어니어호에 부착된 금속판. 인간 남녀의 모습과 지구의 위치, 전파망원경 등이 그려져 있다.

보이저 2호가 찍은 해왕성.

호이겐스 착륙선이 짝은 타이탄의 표면. 물처럼 보이는 호수는 액체 메탄이다.

달 표면의 '성'.

우주 전함.

아폴로 15호가 촬영한 유사 물체.

카시니 탐사선이 촬영한 아이페투스.

아폴로 계획의 로고.

아폴로 8호가 찍은 달에서 본 지구.

플로리다 주의 케이프 캐너배럴에서 발사되는 새턴 V 로켓.

아라랏 산의 노아의 방주.

기자의 피라미드군.

중국 시안의 피라미드군.

아틀란티스의 상상도.

로제타스톤. 1799년에 이집트 로제타에서 발견된 로제타석의 상형문자가 19세기 샹폴리옹에 의해 해독됨으로써 2000년 만에 이집트 문헌과 기록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BC. 1600년경의 은허 유적지에서 출토된 갑골문. 지금의 한자와는 달리 다분히 원시적인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BC. 3000년경 이집트 제1왕조의 암벽화. 몸통을 정면, 머리는 측면으로 묘사되는 인물이나 머리 위를 장식하는 뱀 조각, 매와 자칼 등 수천 년간 지속된 형식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나타나 있다.

뿔이 달린 특이한 형태의 삼엽충. 아문이 많아 형태도 다양했고 원체 개체가 많았기 때문에 화석도 많이 남아 있다.

유카탄 반도에 묻혀 있는 대형 크레이터의 위치.

화성의 고도 사진. 헬라스 크레이터의 가공할 크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미스터리 고대 유적.

중국에서 발견된 드로파 스톤.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돌 속의 X-레이 사진.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날개 가진 동물은 모두 이처럼 등 쪽에 날개가 붙어 있다.

엔진의 힘이 비교적 약한 프로펠러기들도 이처럼 날개가 위쪽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1937년 캐나다 밴쿠버 시청 근처에서 찍힌 UFO.

1927년 미국 오리건에서 촬영된 UFO.

1970년 미국 뉴햄프셔의 워싱턴 산에서 찍힌 시가형의 UFO.

피라미드 내부 투시도. 좁은 길들이 가파른 경사로 연결되어 있다. 위쪽에 Shaft라고 표기된 V자 형태 통로 두 개는 좁은 환기구멍으로 사람이 오갈 수 없다. 가운데 층층이 보이는 공간이 소위 왕의 방과 여왕의 방. 기울어진 검은 사각형으로 표현된 것이 소위 대회랑으로, 26도 각도로 우측으로 내려온다.

바알베크Baalbek의 '임산부의 돌'. 무게 1천 톤으로 추산되는 이 바위는 현대 과학 기술로도 옮길 수 없다.

이집트 아스완에 남아 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 깎는 도중 금이 가서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길이 40미터 무게 1185톤. 이것을 정말 이동시켜서 세울 생각이었을까.

바그다드의 전지 항아리. 수천 년 전 인공적으로 전기를 만들었던 사실이 이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러나 단편적인 기술의 발견과 이를 통한 문명의 재편은 별개의 문제다.

8000년 전의 암각화.

이탈리아의 동굴벽화.

페루의 암벽화.

고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인물화.

탄자니아의 암벽화.

멕시코의 벽화.

오리온자리.

수성에서 VY 카니스 마조리스까지의 크기 비교.

아기 모세의 구출.

모세의 출애굽 상상도.

구약성서의 모세오경, 토라.

모세와 유대인의 방랑 궤적. 모세가 이끄는 유대인들은 이 붉은 선을 따라 40년이나 헤맨 끝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모세의 언약궤.

새로운 예언자.

미 해군 핵항모 USS 니미츠. 322.8미터의 길이에 6000명의 승조원을 실은 이 거대 함정은 연료 보급없이 20년간 운항 가능하다.

네바다 사막의 핵실험. 군인은 물론 민간인까지도 보호 장구 없이 관람했다.

위는 오리온 자리의 삼태성, 가운데는 기자 피라미드, 아래는 삼태성과 기자 피라미드를 슈퍼임포즈한 사진. 계산에 따르면 두 위치가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BC. 1만 500년이었다.

외계인 모습의 사제. 외계인들이 지구에 간여하는 방식은 이런 형태가 아닌, 인간과의 제휴를 통한 간접적인 것이다.

프리매이슨의 문장.

솔로몬 성전의 복원 모형.

알 악사Al Aqsa 모스크. 성당기사단의 본거지였던 이곳은 솔로몬 성전이 붕괴된 후 그 자리에 세운 것으로, 지금은 이슬람 사원이 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곳의 지하에 많은 유물들이 숨겨져 있다고 믿어왔다.

바포메트.

1달러 지폐에 그려진 마스터 프리메이슨 워싱턴과 뒷면의 피라미드.

조지 워싱턴 기념탑. 1885년에 완성된 높이 170미터, 무게 9만 854톤의 이 탑은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건축물이었다. 이런 이집트 오벨리스크의 형태가 어째서 워싱턴 기념탑이 되어야 하는지는 프리메이슨과 고대의 커넥션이 아니면 이해될 수 없다.

공사현장에서 사용되는 현대의 복합 도르래.

수원 화성 공사에 사용된 거중기.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높이 318m, 102층. 1931년에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마천루다. 1972년 세계무역센터가 완공되기 전까지 40년간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다.

수단.

중국 시안.

보스니아.

멕시코.

미국.

프랑스.

카자흐스탄.

여호와의 문양.

네안데르탈인 추정도.

 

 

 


posted by 황영찬

2015-035 萬人譜 16 사람과 사람들

 

고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4

 

811.6

고67만 16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시인의 말

그 아낙 / 무명씨 / 김일성 / 마라도 애기무당 / 승렬이 무덤 / 에레나 / 최항 / 신건호 / 타인의 눈 / 홍길동 / 두 강물 / 제삿날 / 심유섭 영감 / 김동삼의 자손 / 호수 / 절망 / 노고단 밑 / 노예시인 / 아기 울음소리 / 소년 준호 / 신혼부부 / 김총각 / 만수 할머니 / 군고구마 장수 / 너와집 / 연애 / 귀향 / 가야금 / 수씨 딸 / 양형모 / 쯔쯔 영감 / 사진 한 장 / 고명욱 영감 / 설석우 / 그 홀아비 / 옥순이 옥분이 자매 / 엄면장 마누라 / 제석 / 신현구 / 5대의 피리 / 그해 8월 / 이휘소 / 어느 결혼 / 설악산 / 송탄 피난민수용소 / 다섯 시간의 결혼식 강좌 / 춘정 / 나 보기가 역겨워 / 사마귀 / 용돌리 두 집 / 이정순의 넋 / 사미승 등명 /과부 문씨 / 성혜랑 / 그해 겨울 들판 / 김석원 장군 / 여자 몸값 / 어느 부부 / 한 부엌 / 주저앉은 사람 / 고향 / 신국이 할아버지 / 노처녀 기명실 / 오르테가 킴 / 남자현 / 외팔이 박 / 국군 군번 1번 / 채병덕 / 신성모 / 다섯살 용식이 / 홍총각 / 수복 이후 / 폐허의 아기 / 빨갱이 1 / 빨갱이 2 / 빨갱이 3 / 빨갱이 4 / 꽃 금각(琴恪) / 교장 신진섭 / 여원재 / 변영재 / 한홍철 / 어떤 인민군 / 이종찬 / 허황후 / 김종원 / 거창 이복남 / 왕건 / 신중목 / 임채화 / 왕작제건의 씨 / 박영보 면장 / 시시한 원한인데 / 어떤 대동청년단 / 배꼽 깊은 사람 / 1 · 4후퇴의 아기 / 젖먹이 신이 / 이규완 자손 / 나, 김우남 / 할머니 / 간첩시절 / 김선기 / 돼지고기 세근 / 보안사 사병 정우신 / 제주도 중산간마을 / 옹기장수 맹길이 / 어떤 한약방 / 정순산 / 소위 학도병 / 망우리 묘지 / 칠석 장군 / 1950년 10월 3일 / 김윤근 / 인민군 / 추교명 / 최익환 / 다시 수복 / 나물도 이장 오영감 / 나물도 옆 무인도 / 장사꾼 오세도 / 늙은 농부 / 장봉도 / 영호 / 영호 누나 / 준모 고모의 마지막 밤 / 어떤 거지 / 경찰서 감방 10호 / 지장암 단풍 / 김춘보 / 이극로 / 이날치 / 상해 현계옥 / 남산 허백당 / 나윤출 / 이승태 / 사랑 / 노예 단천아 / 퇴계 모친 박씨

 

그 아낙

 

산정리 비탈

쉬웅! 꽝!

중포탄이 터졌다

돌덩이들

흙들

군용트럭에 탄 인부들

산산조각으로 솟아올랐다

솟아올라 흩어져 다 떨어졌다

 

자욱이 먼저 내려앉았다

 

한 아낙이 처박힌 머리 들고 일어섰다

왼쪽 팔이 남아 있다

어서 피 멎어라

 

타인의 눈

 

그 전쟁은

모르는 사람과도 주고받던 인삿말을 앗아갔다

느린 말씨도

순하디순한 말씨도 앗아갔다

말들이 빨라졌다

말들이 날섰다

가을 썬득썬득한 바람 속

사람들의 해맑은 눈빛들도 앗아갔다

차츰

사람뿐 아니라

소와 말의 눈도 자갈밭 머리에서 충혈되어 사나웠다

 

대전역전

껌팔이 아이 하나가

다른 아이 하나를 죽도록 패대고 있었다

삥 둘러서서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바람이 먼지를 일으켜세웠다

 

누구에게도

고향산천의 정든 얼굴은 없었다

 

너와집

 

밥 짓는 저녁연기 거룩하고 거룩하다

1945년 8월 10일 이전까지

한반도는 하나였다

1945년 8월 10일 이후

한반도는 둘이었다

북위 38도선을 그어

남쪽은 미군이 진주하고

북쪽은 소련군이 진주하기로 미국이 제안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은

한반도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이었다

 

한반도의 허리

강원도 인제군 소양강 언덕배기

옛 화전민

너와집 한 채에

북위 38도선이 지나갔다

 

북쪽 경비대가 차지했다

남쪽 경비대가 대들었다

서로 우리 집이라고

우리 땅이라고 외쳤다

공포를 쏘아대며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묘안이 나왔다

이 집을

아예 허물어버리자

그러자

 

증조할아버지 적부터 살아온

두메산골 너와집이 없어졌다

그 집 주인

임봉술이 영감 62세

손녀 임가시나 14세

두 사람 이불짐 지고 떠났다

 

할아버지는 눈물도 없이 내내 울었고

손녀는 울지 않았다

다시 못 볼

저 아래 소양강을 보았다

 

사진 한 장

 

황해도 평산 젊은이 신도준이

1951년 8월

서부전선 임진강물

신새벽에 건넜다

아버지 어머니 젊었을 때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입에 물고

곧장 헤엄쳐 강을 건넜다

 

남쪽나라 서울이었다 폐허였다

거지노릇으로

남쪽 사람이 되었다

거지 작파하고

왕대폿집 심부름꾼이다가

구두닦이

구두 날라다주는 심부름꾼이다가

구두닦이 되어

 

판잣집 한 채 샀다

 

북의 고향 떠난 지 15년 뒤

그는 서울 충무로 3가 배우학원 이사장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사진 확대해서

벽에 걸어두었다

누가 물었다

어느 시대 영화배우들이냐고

 

그 홀아비

 

1955년 겨울 영동 두메

경부선 기적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기적소리 있으면

세상은 아직 세상 그대로였다

산들이 서로 벌거숭이

밤에는 덜덜 떨겠지

산들이 서로 벌거숭이 닮아

누가 누군지 몰랐다

 

오천산

미륵산

촛대봉

앞산

쌍봉리 뒷산

누가 누군지 몰랐다

 

아이들이 그리는 것은

벌거숭이 붉은 산

황토산

그리하여 황소 울음소리도

붉은 울음이었다

 

그런 산등성이 석양머리

한 사람 지친 걸음이 넘어온다

누굴까?

누구기는 누구

절반은 돌아버리고

절반은 제정신인 그 사람

 

마누라와

아이 둘 한꺼번에

박격포탄에 맞아죽고

황소 한 마리도 죽어버리고

혼자 살아남은 사람

머리숱 많은 이종수 그사람

 

소리는 기러기 소리인 듯

높은 소리였다

 

어허 3년 전쟁으로 몇백만명이 죽어갔다

그 죽음 가운데

이종수의 가족도 있었으니

빈 외양간 들어가

여보 마누라 여보 마누라

그리고

장섭아

차선아

차섭아

이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그 사람

 

어느 결혼

 

결혼이 독립운동가 결합이고

신혼생활이 각각 독립운동이었다

아직 그들에게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동지였다

 

1919년 1월 중국 남경

남경의 선교사 사택 한 방을 빌렸다

3 · 1운동 직전 창립한

신한청년당 당수 서병호

서간도와 북만 독립운동가 김필순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김규식과 김순애의 결혼식

맞절을 했다

그리고 사진관에 가서 결혼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병호는

김규식의 손윗동서

김필순은

김규식의 처남

독립운동 가계의

동서가 되고

처남매부가 되었다 순수의 시대였다

 

신혼부부는 첫날밤 합방도 하지 못한 채

신랑은 제1차 세계대전 청산을 위한 빠리 강화회의에 갈 준비를 서두르고

신부는 빠리 강화회의를 받쳐줄

국내 봉기를 위해

부산으로 가야 했다

 

강연원고와 활동 구상 그리고 여권수속 배표 구하기

옷을 꿰매기

짐싸기로

며칠 밤낮이 지나갔다

 

하객 서병호는 본국으로

김필순은 만주와 연해주로 떠났다

1919년 3월이 오고 있었다

 

어느 부부

 

서울 후암동 일본인 병원 자리 한 내과의원에는 입원실이 셋이었다

입원환자 아홉

전쟁이 났다

으레 있어온 38선 충돌사건이 아니었다

사흘 뒤

나흘 뒤

서울을 내주어야 했다

 

환자들 하나둘 나갔다 의사도 떠났다

남은 늑막염 환자 백수길

나이 서른하나

몸 약한 아내의 간호밖에는

약도 없었다

 

6월 30일 콩나물국이 먹고 싶다 말하고 눈을 영영 감았다 야간중학 교사였다

서울 중앙청에는 인공기가 내걸렸다

아내는 다음다음해

피난지 칠곡 과수원 부근 판잣집에서 눈감았다

친정언니네가 입은 옷 그대로 종이같이 가벼운 시신을 묻었다

이런 죽음들 이런 삶들 전란 중에 있으나마나

슬픔도 별로 필요없었다

 

어떤 인민군

 

거창고을 산중에도

인민군이 왔다

인민군 몇명이

몇단위로 왔다

 

열아홉

열여덟

열여섯살짜리 풋내기였다

 

순 촌놈들이라

몇마디 말 오고가면

영락없는 산골아이들

밤 박꽃처럼

순박한 아이들

 

군기는 제법 엄했다

 

한 녀석이 외딴 마을에 가서

소녀를 꼬드겨 일을 벌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전우들의 심판으로

총살당했다

 

인민군은

국민학교 아이들에게

아니

인민학교 아이들에게 열심히 노래를 가르쳤다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이긴……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태백산맥에 눈 내린다 총을 들어라 출정이다

 

그리고 「김일성 장군의 노래」도 가르쳤다

가르치다가

가르쳐

함께 노래 부르다가

그 여름날과 함께

어느날 사라졌다

 

그뒤 국군이 왔다 무거운 철모 쓴 국군이 왔다

우물물 검사한 뒤

우물물 실컷 마시고 싸움터로 떠났다

 

어떤 거지

 

식민지 후기

대구에는 대동단 사건의 주동자

이동하(李東廈)가 경영하는

하해(河海)여관이 있다

 

경북 유림단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온

이봉노(李鳳魯)가 경영하는

이화(李華)여관이 있다

 

또 하나 항일운동가

윤홍렬(尹洪列)과 황옥(黃鈺)이 묵고 있는

본정(本正)여관이 있다

애국자 뒷바라지 황봉이(黃鳳伊) 여인이 경영한다

 

고등계 형사 감시를 받는다

자주 그 여관에

예비검속 나와

붙잡혀가면

일주일도

10여일도 갇혔다 온다

 

그런 여관거리에

거지 행색의 사람

몇번씩 오락가락한다

애국자 이상훈(李相薰)이다

 

저게 누구야

저 거지 누구야

물으면

바로 저분이

독립운동가 이상훈 선생이시다!

 

사람들은 그 거지가

대구거리를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독립운동을 한다고 말한다

 

세 여관에는

이상훈

신재운

김찬기

허영 들이 자주 묵었다

하루 1원 정도의 숙박비 밀리기도 한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