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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6'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11.06 2015-093 포옹 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
2015. 11. 6. 10:51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93 포옹 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

 

문태준 엮음

2008, 해토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2861

 

811.6

문883ㅍ

 

차례

 

제1부 그 처음에 사랑이 사랑을 만나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

낮은 목소리 · 장석남

사랑에게 · 정호승

부부 · 함민복

여백 · 도종환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 복효근

뒤편 · 천양희

옆모습 · 안도현

반듯하다 · 박철

강릉, 7번 국도 · 김소연

심경 11 · 이창기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 이문재

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사람이 먹고 · 하종오

신생아 2 · 김기택

얼음나라 체류기 · 유홍준

 

제2부 기다림이라는 말의 대륙이여

 

소금인형 · 류시화

14K · 이시영

물을 뜨는 손 · 정끝별

종소리 · 서정춘

장도열차 · 이병률

두고 온 소반 · 이홍섭

첫눈 · 정양

오  리 · 우대식

그림자 · 최승호

의문 · 유승도

사랑이 올 때 · 신현림

옛날 국수 가게 · 정진규

나도 왕년에는 · 강연호

가는 길 · 허형만

손 털기 전 · 황동규

오리 한 줄 · 신현정

소사 가는 길, 잠시 · 신용목

이 시대의 변죽 · 배한봉

 

제3부 따뜻하고 넉넉하고 느슨하게

 

흑명 · 고재종

그랬다지요 · 김용택

산머루 · 고형렬

각축 · 문인수

문병 가서 · 유안진

슬픈 국 · 김영승

얼음 호수 · 손세실리아

대추 한 알 · 장석주

주인여자 · 윤제림

신혼 · 장철문

살가죽구두 · 손택수

양파 · 조정권

자주 한 생각 · 이기철

키 큰 남자를 보면 · 문정희

빗방울 셋이 · 강은교

비스듬히 · 정현종

게 · 권대웅

봄의 금기 사항 · 신달자

부자서신 · 고운기

누가 주인인가 · 홍신선

 

제4부 나는 수선화 핀 것을 보았네

 

쌀 · 정일근

동지 다음 날 · 전동균

톡  톡 · 류인서

허공장경 · 김사인

집 · 김명인

학생부군과의 밥상 · 박남준

뒷짐 · 이정록

내가 천사를 낳았다 · 이선영

화남풍경 · 박판식

군불 때는 저녁 · 김창균

있는 힘을 다해 · 이상국

섬들이 놀다 · 장대송

섬 · 고찬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희덕

내린천을 지나 · 최하림

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태준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햇볕에 드러나면 슬픈 것들

이문재

 

햇볕에 드러나면 짜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햇살이 닿으면 왠지 슬퍼진다

실내에 있어야 할 것들이 나와서 그렇다

트럭 실려 가는 이삿짐을 보면 그 가족사가 다 보여 민망하다

그 이삿짐에 경대라도 실려 있고, 거기에 맑은 하늘이라도 비칠라치면

세상이 죄다 언짢아 보인다 다 상스러워 보인다

 

20대 초반 어느 해 2월의 일기를 햇빛 속에서 일어보라

나는 누구에게 속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나는 평생을 2월 아니면 11월에만 살았던 것 같아지는 것이다

 

물을 뜨는 손

정끝별

 

물만 보면

담가보다 어루만져보다

기어이 두 손을 모아 뜨고 싶어지는 손

 

무엇엔가 홀려 있곤 하던 친구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북한산 계곡 물을 보며

사랑도 이런 거야, 한다

 

물이 손바닥에 잠시 모였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물이 고였던 손바닥이 뜨거워진다

 

머물렀다

빠져나가는 순간 불붙는 것들의 힘

 

어떤 간절한 손바닥도

지나고 나면 다 새어 나가는 것이라고

무연히 떨고 있는 물비늘들

 

두 손 모아 떠본 적 언제였던가

 

오리 한 줄

신현정

 

저수지 보러 간다

 

오리들이 줄을 지어 간다

 

저 줄에 말단末端이라도 좋은 것이다

 

꽁무니에 바짝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

 

한 줄이 된다

 

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

 

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

 

그저 뒤따라가면 된다

 

뒤뚱뒤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급기야는 꽥꽥대고 싶은 것이다

 

오리 한 줄 일제히 꽥 꽥 꽥.

 

산머루

고형렬

 

강원도 부론면 어디쯤 멀리 가서

서울의 미운 사람들이 그리워졌으면.

옛날 서울을 처음 올 때처럼

보고 싶었던 사람들, 그 이름들

어느새 이렇게 미워지고 늙었다.

다시 진부 어디쯤 멀리 떨어져 살아

미워진 사람들 다시 보고 싶게

시기와 욕심조차 아름다워졌으면.

가뭄 끝에 펑펑 쏟아지는 눈처럼

서울 어느 밤의 특설령처럼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랑이 되었으면.

그러나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다.

 

부자서신父子書信

고운기

 

   - 마흔 중반의 아들이 여든 가까운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의 일부분을 들려주었다. 내게도 느낌이 없을 수 없어 몇 자 적는다.

 

바다 가까운 마을에 사는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맡에 아직도 바다를 두고 있다

가슴으로 앓았던

바다의 생리生理와, 부서지고 되돌아가는 파도와, 수평선에서 넘치지 않는 수위水位와

그래서 머리에 담겨진 바래지 않는 기억

 

사막에서 별을 헤는 아들의 편지는 끊겼다

 

답신 없는 편지가 몇 번이고 바닷물을 퍼다 날랐다

우편배달부의 가방이 하냥 물에 젖는다

바다가 그랬듯이

언젠가 사막이

사막의 모래가 그 가방을 채울지도 모른다.

 

정일근

 

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또 살을 발음해보세요, 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농사짓는 일을 하늘의 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의 농사가

쌀 한 톨 제 살점같이 귀중히 여겨온 줄 알지 못하고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라는 비밀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

 

고찬규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와

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은

서로를 서로이게 하는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고

천 년을 천 년이라 생각지도 않고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