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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에 해당되는 글 173건

  1. 2012.12.28 2012-174 관우의 의리론
  2. 2012.12.21 2012-173 한라산
  3. 2012.12.15 2012-172 지리산 1
  4. 2012.12.11 2012-171 조선 선비 살해사건 2
  5. 2012.12.11 2012-170 북한산 1
  6. 2012.12.10 2012-169 왕초보, 불교박사 되다 1
  7. 2012.12.07 2012-168 1분의 지혜 1
  8. 2012.11.30 2012-167 조선 선비 살해사건
  9. 2012.11.29 2012-166 풍수지리(집과 마을)
  10. 2012.11.29 2012-165 사진 입문
2012. 12. 28. 09:34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74 관우의 의리론

 

나채훈 지음

2012, 보아스

 

시흥시대야도서관

B066819

 

191.1

나82ㄱ

 

關羽

義理

 

왜 지금 관우를 다시 봐야 하는가!

 

관우 같은 사람이 되라. 세상이 당신을 기억할 것이다.

관우 같은 사람을 만나라. 배반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 사랑의 바탕이 되는 충절忠節

공동분배의 바탕이 되는 치인治仁

경제생활의 바탕이 되는 신의信義

인간 사이의 합심이 되는 협기俠氣

충인의협忠仁義俠의 상징인 관우를 만나다!

 

『삼국지』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의리를 지킨 관우의 마지막 모습을 읽고 흘린 눈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이후 관우는 내 인생의 멘토가 되었다.

가식이 없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용기, 어떤 재물로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는 대나무 같은 강직함, 한 번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의를 모두 갖춘 인물은 관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용맹, 인간 됨됨이. 의리는 가히 최고다.

『관우의 의리론』은 조조, 제갈량, 유비 등에 가려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관우를 재발견한 책이다. 관우를 통해 '의리의 가치', '의리의 중요성'을 알려준 이 책은 독자에게 인생의 새로운 기준을 보여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것이 옳은 길인가?'에 대한 명료한 해답을 알고 싶다면 관우를 만나라.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 윤증현 | 전 기획재정부 장관

 

나채훈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주부생활>, <여원>, <리빙뉴스>에서 기자를 거쳐 편집국장을 지냈다. 현재 한중역사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대학교에서 중국 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중국 고대 사상의 역사 자료를 두루 섭렵했으며 특히 『삼국지』 연구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현대인에게 필요한 지혜를 전달하는 일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 『정관정요』, 『성공하는 사람은 발상이 다르다』, 『삼국지신문』, 『카리스마 리더 조조』, 『양귀비의 사랑과 배반에 관한 보고서』, 『누구도 나를 버릴 수는 없다』, 『조조와 유비의 난세 리더십』 등 중국 관련서 40여 종이 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대만,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사당이 세워지고 신앙의 대상으로 우뚝 선 인물은 관우가 유일하다.

한 나라의 수장首長이 아닌 일개 무장인 관우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떠한 유혹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의리. 평생을 지켜온 곧은 충성심, 최후의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함을 가진 대장부 관우의 모습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관우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바탕으로 혼탁한 시대 속의 우리에게 '의리 하나로 평생을 초지일관하게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차례

 

책머리에 | 관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응원가

 

1장 오직 인간이 세상을 구원한다

    1. 사람을 보는 '눈'과 '마음'

    2. 참다운 도리가 무엇인가?

 

2장 비겁한 시대에 협俠으로 맞서다

    1. 관우가 태어나 자란 시대

    2. 살인하고 고향을 떠나다

 

3장 도원결의桃園結義의 의미

    1. 탁주에서의 새로운 인연

    2. 영웅본색이 나타나다

 

4장 시련 속에서 지킨 신의信義

    1. 또 하나의 만남과 이별

    2. 영웅이 영웅을 알아본다

 

5장 새친구를 얻기 위해 옛 친구를 버릴까

    1. 관우의 세 가지 항복 조건

    2. 은혜를 갚고 옛정을 찾아가다

 

6장 도리를 지키며 산다는 것

    1. 오관참장五關斬將의 위용

    2. 운명의 땅, 형주로

 

7장 사나이에게 목숨보다 귀한 것이 있다

    1. 은혜를 모르는 인간은 싫다

    2. 상대의 허점을 이용하지 않았다

 

8장 승자의 길과 패자의 길

    1. 관우와 제갈량의 차이점

    2. 형주는 '계륵'과 같았다

 

9장 목숨을 잃고 역사를 얻다

    1. 변하지 않는 자존심

    2. 권모술수에 배신당했다

 

10장 관우를 다시 본다

    1. 혼탁한 시대, 원칙 없는 권력 아래서

    2. 의연한 삶과 건강한 정신 구조

 

11장 장군에서 황제로, 그리고 신神이 되기까지

    1. 관우를 죽인 자들이 역사에서 이겼을까?

    2. 민중 신앙의 대상이 되다

 

부록

1. 한반도의 관제 신앙, 유래와 개괄

2. 정사正史 진수의 『삼국지』 <촉서, 관우전關羽傳>

3. 관우와 연관된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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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용기있는 사람들에게서 너무나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

여기서 용기는 육체적 용기가 아니라 정신적 용기다.

육체적으로 인간은 불독에 맞먹지만

자기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는 용기,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용기가 세상을 밝게 이끌었던 것이다.

 

뱃사람의 용기는 폭풍우가 칠 때에 알 수 있고,

장수의 용기는 결전의 현장에서 나온다.

우리는 가장 위험한 순간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진정한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당신의 일생에서 가장 많은 피가 흘러도

거짓의 장애물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시대가 반드시 열릴 것이다.

불의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바로 그 본질이다.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발휘하지 않으면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자신의 능력을 소신껏 발휘할 때

그것이 어떤 곤란을 초래할지라도 진정 기쁜 것이다.

사람이 힘든 것은 부지런히 일을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있을 때다.

뜻한 바를 가지고 움직일 때 생명력과 기쁨과 자신을 얻는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유혹에 맞설 수 있는 용기,

진실 편에 서서 행동할 수 있는 용기,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는 용기는 살아있는 보람이다.

인간 세상에서 발생하는 많은 불행과 부도덕함은

대부분 용기의 부족에서 나온다.

참고 견딜 줄 아는 것도 미덕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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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과 관료들이 모여 역사서를 편찬할 때

'민족의 발상시대', '민족의 발달시대', '민족의 중흥시대' 따위의 나무랄 데 없는 제목을 잡으려고 하는데

그 호의에는 감사하지만 표현방식이 복잡하다.

좀 더 직설적이기를 부탁하고 싶다면서 노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노예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시대

2. 당분간 노예로 안온하게 살 수 있는 시대

이 순환을 두고 일치일란이라는 말은 과하다.

 

어떻게 하면 천만 칸의 고대광실(高臺廣室)을 얻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 얼굴에 웃음이 피고

비바람 없이 산처럼 편안해질 수 있으리오.

아! 아! 언젠가 이런 집을 눈앞에 볼 수 있다면

나는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에서 얼어 죽어도 좋으리라.

 

패배하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 투쟁의 운동가,

편견에 가득한 적들이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죽음의 형장으로 향하는 순교자.

동료들의 포기하라는 압력을 견뎌내는 탐험가.

이들은 가시적으로 완벽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보다

더 깊은 감동과 숭고한 정신의 표본이 된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고 광적인 흥분 속에서

죽어가는 병사를 양산하려는 병법가나

선동하는 기술을 발휘하여 대중을 용맹하게 만드는 정치가나

재능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속이려는 책사란

긴 역사에서 보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역사의 무대에서 민중이 받드는 것은

그런 인물들의 얄팍한 재능이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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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 싸우면

나쁜 사람이 좀 더 대담하기 때문에 이긴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이긴 자를 좋아하고

어리석게도 그 편에 가담한다.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부당함에 무관심할 수 없다.

 

빙빙 돌려서 말해 착각을 유도하는 거짓을

'진실의 우회적 표현'이라고 프랑스인들은 불렀다.

다의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영리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편협하고 부정직하다.

다만 그들은 교묘히 감추는 능력이 뛰어났을 뿐이고

언제나 도망칠 뒷구멍을 만들어 놓는다고 영국인들은 말한다.

 

지위가 높고 부유하며 교양있는 사람들이

무식한 일반 평민들 앞에 머리를 숙일 때는

무서운 욕심을 속으로 감추고 있을 때다. 

아첨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죽은 물고기도 강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헤엄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아첨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지혜와 힘이 필요한 법이다.

 

"가장 세속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의미에 있어서

인기는 사실 소유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고 양심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라.

가장 숭고하고 고차원적인 의미에서의 인기를

추구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라"고 인격체의 의미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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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인물도 완전무결하지는 않다.

약점도 많고 비뚤어진 부분도 있으며 광적인 면도 있다.

그들에게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결함 때문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거의 신과 같이 보이는 존재도

가까이 가보면 불완전한 인간이다.

 

벤덤은 어릴 적에 『텔레마쿠스』를 읽은 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예닐곱 살의 나는 자신과 그 영웅을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는 내게 완벽한 이상향처럼 보였다.

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왜 텔레마쿠스처럼 될 수 없을까를 궁금해 했다.

내가 공리주의를 처음 생각한 것도 바로 그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동양의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토양이 이런 말을 했다.

"장미가 나에게 뿌리를 내리기 전에

나는 평범한 흙에 지나지 않았다."

 

니부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친구인 페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천하고 사악한 모든 이들에게는 공포였고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였으며

젊은이들에게는 친구이자 조력자였다.

누군가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면

그의 초상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악한 생각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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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재능이란 그리 진귀한 것이 아니다.

진실함, 정직함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지적 재능이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이다.

진실함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기억되는 것이다.

천재성보다 대접받아 마땅한 것이 양심적 행동이고 결단력이다.

 

인생의 길은 의지가 만든다.

자아를 단련하여 싸워 극복해야 할 대상에게 맞설 때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유혹에 부딪칠지 모르겠으나

결코 걱정하면서 미리 절망해서는 안 된다.

강한 정신과 올바른 마음을 갖고 있다면

또한 인격적으로 부족하다 할지라도

성실하게 나아가면 모든 고난이 해결된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길거리에 내쫓긴

제레미 테일러는 이렇게 썼다.

'나는 채권자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그들은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내 주변을 둘러보자. 내게는 태양과 달,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 나를 불쌍히 여기는 친구들,

아직도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자고 묵상한다.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많은데도 사람들은 후회의 불평을 즐긴다.

그들은 쾌락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늘 전전긍긍한다.'

 

최고의 강심제는 밝은 마음이고 밝은 성격이다.

모든 질병의 최고 치료제는 밝은 마음과 용기이고

순수한 즐거운 마음과 이성적인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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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뵈브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를 존경하며 믿고 있는지 말해보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재능과 기호, 성격이 어떤지 맞출 수 있소."

머리 좋고 지위가 높은 사람을 존경하며 믿는다고 해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열한 인간을 존경하는 사람은 비열한 성격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다.

용감하며 남자다운 사람을 존경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그런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남의 결점을 지적하느라 바쁜 사람이 정직한가?

자신의 실책을 변명하기 위해 다른 이의 결점을 찾느라

분주한 사람일수록 가혹한 성품의 소유자다.

현명한 사람의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바보들에게는 정말 가혹한 일이다.

이런 속담이 있다.

'정직과 신의는 백 년 스승이다.'

 

처참하게 실패한 것처럼 보였던 많은 이들이

계속 성공의 기도를 달린 사람들보다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나라에 영향을 미친 예는 너무나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명분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사람들이

후세에 열어준 길은 찬란했다.

 

거칠고 무례하더라도 얼마든지 믿을 수 있고

선량한 품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지위가 낮거나 부자가 아닌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상대가 아무리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을 갖고 있어도

그들에게 아첨하지 않는 자세는 고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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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능력을 갖지 않았어도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엄청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순수한 열정과 신중을 더한 것이라면

역사의 한 줄기 청량감 있는 샘물처럼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파멸이다.

 

인생을 유익한 노력의 공간, 소신과 의지가 살아 있는 공간,

자신의 이익 못지 않게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은 희망적인 것이 된다.

그 반대로 이기심과 쾌락, 자기 세력의 확대,

자기의 지적 능력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여긴다면

세상은 실망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진실로 올바른 사람은 삶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가치 있는 방법으로 성공을 추구하고 실패에 대비하며

기쁘게 마음을 열어 놓고 괴로움을 참을성 있게 견딜 것이다.

 

시련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이 세상이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행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의무만이 진실한 것이다.

진정한 기쁨은 의무를 다했음을 깨닫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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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워턴은 외교관을

주국을 위해 타국에 나가 거짓말을 하는 남자로 묘사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무기는 정직한 생각이었고

단순한 진실이 최고의 기술이어라."

 

기분 나쁘게 진실을 말하느니 침묵이 낫겠다.

그것은 훌륭한 음식에 맛없는 소스를 뿌리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진심을 거짓으로 위장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상대가 속아주기를 기대하는 침묵은

죄를 짓는 거짓말만큼 나쁘다.

 

한 사회의 번영을 결정짓는 요소에

풍부한 재정이나 난공불락의 요새, 아름다운 건물과 조형물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겠지만

가장 큰 힘은 깨어있는 양식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이다.

즉, 공동체의 이익은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격체가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만 이룰 수 있다믄 사실이다.

 

힘은 시대의 중심이 된다. 하지만 힘만으로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존경을 받는 것은 적절하게 힘을 제어하고

양심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인데

이를 우리는 인격과 품위 있는 교양에서 찾을 수 있다.

지적능력이 있다고 힘없는 사람 앞에서 오만방자하고

잔꾀를 숭상하는 인물이 시대를 풍성하게 만든 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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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난관에도 대담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와

험담과 비방에도 굴하지 않는 소신을 갖고

목숨을 건 상황에서 할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류의 역사는 진보를 이룩했다.

 

존경받을 만한 위인들이 얼마나 많이 참혹한 죽음을 맞았는가,

사형을 선고받은 과학자는 당당히 말했다.

"유죄를 언도한 당신들이 사형을 언도받은 나보다 더 떨고 있구려."

한 철학자는 사형을 선고한 재판관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나는 죽고 너희들은 살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것이 진정한 운명인지는 신만이 아신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우리에게 모두 고통이다. 떠난 이들을 비난하지 말라.

살아남을 자들은 떠난 이들이 무엇에서 실패를 했느냐

혹은 무엇 때문에 고통당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이루어냈느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낡고 닳은 영혼의 어두운 오두막집에는

세월의 흐름에서 생겨난 작은 틈새들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슬픔과 고통을 기회로 생각하라.

그것은 우리의 정신을 침착하게 하고

우리의 태도를 굳세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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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은

실제보다 지혜로운 척하거나 부자인 척하거나 힘이 센 척하거나

분수에 넘치는 생활 방식이나 태도를 추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지혜, 다른 사람의 재산,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살려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범위 내에서 성실히 살아가려는 진실과 용기를 갖고 있다.

 

짙은 먹구름 속에서 환히 빛나는

정신적인 빛을 빨리 가려내는 이가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불행 속에서 나중에 이익이 될 것을 찾아내며

고통 속에서 회복할 방법을 찾아낸다.

시련 속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영원히 살기 위한 길을 알아낸다.

 

'옳고 그름'의 도덕적인 문제, '이기고 짐'의 승패의 문제,

'일어서고 쓰러짐'의 인생살이 문제, '기억되고 망각됨'의 장래의 문제,

이런 문제에서 정답을 얻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적어도 생각하고 헤아려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바드의 비문'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독자들이여 주목하라.

 

      당신의 영혼이 북극성 넘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지

      아니면 저속한 것을 찾아 어둠 속에서

      땅을 파헤치고 있는지 깨달아라.

 

신중하고 분별 있는 처신이 모든 지혜의 근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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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들이 관우를 수호신으로 모신다면 믿을 수 있는가.

또한 재신財神이 되어 받들어진다.

심지어 결혼중개소, 조폭들의 모임, 재판정, 경찰서에서도

'애정'으로, '의리'로, '공정'으로, '신속'으로

신처럼 받들어 지고 모셔지고 있다.

이 현상 속에서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관우를 믿고 떠받들고 숭상하고 싶은 마음이다.

 

'제갈량에게 매우 치명적이었던 대인관계의 미숙성은

역시 만만찮은 뒷탈을 남겼다.

그는 주로 타인을 날카로운 논리나 예리한 비판으로 제압하려 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꾀를 써서 타인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고 조종하려 했다'고

심리학자 김태형은 지적하고 있다.

 

'190년에서 200년까지 10년간

진정한 난세의 영웅은 오직 조조뿐이었다.

나머지 거물들과 각지의 제후들은 기껏해야

정객政客에 지나지 않아

연기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이중텐 교수는 『품인록』에서 말하고 있다.

 

"영웅적 행위의 본질은 자신(自信)이다.

그것은 전쟁에 의한 기백의 상태이다.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거짓과 잘못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며

악인이 가하는 모든 것을 견디어내는 힘이다"라고

에머슨은 『Heroism』에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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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2. 12. 21. 09:17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73 한라산

 

글 / 현길언●사진 / 고길홍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99

 

082

빛12ㄷ 143

 

빛깔있는 책들 143

 

현길언-------------------------------------------------------------------------

제주도 남원읍에서 태어나서 제주대학을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 한양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도문화상을 비롯,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제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한양대학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소설집으로는 「용마의 꿈」「닳아지는 세월」「껍질과 속살」 등 여러 권과 장편 「투명한 어둠」「여자의 강」 그리고 제주설화 연구서로 「제주도장수설화」가 있다.

 

고길홍-------------------------------------------------------------------------

1943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제주지부장, 제주적십자산악안전대장 등을 역임했고, 대한민국사진전람회 초대작가, 한국산악사진가회 회원, 한국사진작가협회 이사로 있다.

 

|차례|

 

개관

산세(山勢)

    한라산의 다양한 얼굴과 표정

    산세와 기후

    희귀한 식물이 자라는 한라산

    맹수가 없는 산

    메마른 산 정상의 그 신비한 언어

한라산의 아름다운 명소들

    백록담

    한라산의 설경

    영실 기암(靈室奇岩)

    왕관릉(王冠稜)

    어리목 계곡

한라산과 제주 사람들

    한라산과 사람들 삶의 양식

    한라산과 제주 역사

    한라산과 사람들의 욕망

    한라산 등반과 산의 훼손

    한라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

한라산의 의미

맺음말

 

항상 먼 별빛 그리움에 이마 높푸르다

숱한 폭풍우 가슴에 재우고

잠들지 못하는 눈꺼풀도 차곡차곡

쌓아 놓자니 만상이 내게도 이르는구나

이제 나는 충분히 자유롭다

별을 헤아려 노래 부르게 하고

새들을 날려 하늘 깊숙히

되돌아오게 하는 법을 안다

- '한라산'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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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2. 12. 15. 14:10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72 지리산

 

글 / 최화수●사진 / 김근원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98

 

082

빛12ㄷ 142

 

빛깔있는 책들 142

 

최화수(崔和秀)--------------------------------------------------------------

경남 밀양 출생, 부산대 상대 경영학과 졸업. 1982년 '신동아' 논픽션공모 입상, 부산소설가협회, 부산문인협회 회원이며 현재 부산 국제신문기자로 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오후가 길어지는 계절」, 산 에세이집 「달따러 가자「나의 지리산 사랑과 고뇌」, 기타로 「해강 김성곤」「최화수 문화기행」「우아한 그대」「양산박」「사랑의 랍소디」「지리산 365일」(1, 2, 3, 4권)「아버지의 목소리」, 「부산문화 이면사」 등 다수가 있다.

 

김근원-------------------------------------------------------------------------

1922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한국산악회 회원, 대한스키협회 회원이며, 한국산악사진가회 고문으로 있다. 1956년 '울릉도, 독도보고전'을 비롯하여 '스키사진전' '한라산 하기등반보고전' '설악산기록전' '지리산동기등반보고전' 'The ALPS' '북한산전' '소백산전' '태백산맥전' 등 20여 차례의 사진전을 가졌으며 한국스키박물관에 스키 관계사진 50여 점을 기증했다. 작품집으로는 「명산」「한국의 산」「주기도문」등이 있다.

 

|차례|

 

개관

    사람의 산

    신앙의 산

    아픔의 산

    생명의 산

자연 지리

    맑은 날에도 구름

    되살아난 식물 왕국

    사향노루 다시 뛰놀아

인문 지리

    광명에서 반역까지

    마한 피란으로 개산

    양왕릉의 수수께끼

    운상원의 옥피리

    천년 온돌방과 차향

    피로 물든 석주관

    폭파돼 누워 있는 대첩비

    남명 조식과 매천 황현

    마지막 보물 화엄사 석경

    지리산 10경

    지리산에 얽힌 전설

오늘의 지리산

    주요 등산로만 50개 이상

    개발과 보존의 역함수

    자연은 자연 그대로

지리산 등산 코스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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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1. 11:19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71 조선 선비 살해사건 2

 

이덕일 지음

2006, 다산초당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1360

 

911.05

이24조 2

 

시대의 풍운아 조광조가 약사발을 앞에 두고 앉아서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했고, 나라를 내 집처럼 금심했네. 해가 아래 세상을 굽어보니,

충정을 밝게 비추리." 기묘년이 저물어가는 12월 30일. 만 37세의 젊은 나이였다.

 

"신은 38세의 선비로 이 세상에 믿은 것은 전하의 마음뿐이었습니다. 국가의 병통이 가짜로 공신이 된 신료들이 사욕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를 막아 국가의 명맥을 길이 새롭게 하고자 했을 뿐 조금도 사심이 없었습니다."

_기묘사화 때 국청에 나간 조광조의 말

 

"슬프다, 우리 자손이 종자가 남지 않겠구나. 어머니가 죄도 없이 죽음을 당했으니 아들이 훗날에 어찌 원수를 갚지 않겠는가?"

-연산군의 친모 폐비 윤씨게게 사약을 전한 승지 이세좌 부인이 한 말

 

오늘밤 저승으로 갈 사람들, 속절없이 밝은 달만 남아 인간을 비추네 / 흰구름에 백골을 묻으면 영원히 그만인데, 공연히 흐르는 물만 남아 인간을 향하네 / 긴 하늘 달 밝은 밤 / 추운 겨울 작별을 아쉬워하는 때

_옥사에서 김정과 김구가 주고 받은 시

 

먼 섬에 버려져 고혼이 되는구나 / 어머니를 남겼으니 천륜이 막혔다 / 이런 세상을 만나 내 몸을 잃으니 / 구름을 타고 가 상제를 찾을까 / 굴원을 따라 높은 곳에 거닐까 / 기나긴 밤 어둡구나 언제 밝을꼬 / 붉은 충성 빛났건만 풀더미 속에 묻히는구나 / 당당하던 뜻이 중간에 꺽이고 마는구나 / 오호라, 먼 훗날에는 나를 슬퍼하리.

_김정의 절명사

 

이덕일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동북항일연군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객관적이고 풍부한 사료와 흡인력있는 문체를 토대로 대중역사서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그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저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있다.

한국사의 디양한 쟁점을 소재로 한 저서들 중 특히 《조선 왕 독살사건》은 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과 소현세자 등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독살설에 휘말린 조선 왕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역사서 붐을 일으켰다. 역사의 이면을 넘어 그 의미까지도 생각하게 해준 《조선 왕 독살 사건》은 역사저술가로서의 그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킨 역작이다. 그 외 조선 당쟁사의 심장부를 다룬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의 고백》,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의미를 보여준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비롯하여 불운한 천재나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인물들을 복원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이덕일의 여인열전》, 《조선 최대의 갑부 역관》, 《장군과 제왕》등의 저서가 있다.

 

2권 주요 등장인물 _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윤필상尹弼商 1427~1504

1455년 호조좌랑으로 원종공신 이등에 책록된 뒤 형방승지, 도승지 등을 역임하면서 세조의 신임과 총애를 받앗다. 특히 형방승지로 있을 때 날씨가 매우 춥자 경향에 있는 죄수들을 낱낱이 상고하여 작은 책자에 기록해 두었다가 세조가 죄수의 현황을 묻자 즉시 응답해 신임을 두터이 하였다. 이시애의 난 때 왕명을 신속히 처리하여 우참찬에 특배되고 적개공신 일등에 녹훈되었다.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인 윤비의 폐비를 막지 않았다 하여 사사의 명을 받았으나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

세조 5년(1459)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정자 등의 관직을 역임햇다. 성종 때는 경연관이 되어 성종에게 성리학을 역설했다. 길재의 학통을 이은 아버지 김숙자를 사사하여 성리학의 학통을 이은 것으로 평가된다. 영남 사림파의 종조로 많은 문인들을 관계에 진출시켜 훈구파에 맞서는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다. 그가 지은 <조의제문>이 사후에 무오사화를 일으키는 단서가 되었다.

 

소혜왕후(昭惠王后. 인수대비) 한씨韓氏 1437~1504

서원부원군 한확韓確의 딸. 세조 1년에 의경세자의 빈인 수빈粹嬪에 책봉 되었으나 의경세자가 요절함으로써 사가로 물러났다. 예종이 죽은 후, 시어머니 정희왕후 윤씨 ·사돈 한명회와 짜고 둘째아들을 성종으로 즉위시킴으로써 인수대비에 책봉되었다. 성종의 계비 윤씨의 투기에 강경한 조처를 취해 윤씨를 폐출시키고 사약을 내림으로써 갑자사화의 단초를 제공했다.

 

유자광柳子光 ?~1512

서얼 출신이나 이시애의 난 때 공을 세워 병조정랑이 되었다. 예종 때 남이의 옥사를 주도한 공으로 익대공신 일등이 되었다. 성종 때는 한명회와 대립하다가 파직되기도 했다. 김일손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을 기화로 이극돈과 함께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중종반정 후에도 정국공신 일등에 봉해졌으나, 대간과 홍문관의 잇단 탄핵으로 관작이 삭탈되고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

김종직의 문하에서 《소학》을 배워 스스로를 '소학동자'라 일컬었고, '소학의 화신'이란 평을 받았다. 이극균의 추천으로 남부참봉에 제수된 후 사헌부 감찰 등을 역임하다가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당黨이란 죄목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 희천에서 조광조에게 성리학을 가르침으로써 조선 성리학의 학통을 잇게 했다. 이후 갑자사화 때 무오당인戊午黨人이란 죄목으로 사약을 받았다.

 

이심원李深源 1454~1504

태종의 현손玄孫으로 학문을 좋아해 사림파로 자처하니 문인들이 많이 따랐다. 임사홍이 고모부였으나 성종에게 그를 탄핵하여 조부와 사이가 갈라졌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아들 유녕幼寧과 함께 사형되었다. 중종 때 흥록대부興祿大夫 정1품으로 추증되었다.

 

임사홍任士洪 ?~1506

두 아들이 각각 예종과 성종의 부마인 외척으로 권세를 누렸다. 궁중파宮中派의 핵심 인물로서 부중파府中派를 제거하기 위해 폐비 윤씨 사건으로 연산군을 부추겨 갑자사화를 일으켰다. 부중파는 물론 사림파도 대거 살육했다가 중종반정 때 처형되었다.

 

유순정柳順汀 1459~1512

목사 양攘의 아들로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다. 성종 18년(1487)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사간원 헌남, 이조판서 등을 역임햇다. 1503년에 공조참판으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에는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때 연산군의 밤사냥에 대해 진언하였다가 임사홍의 모략으로 추국당했다. 1506년, 박원종 · 성희안과 함께 중종반정을 일으켜 '반정 삼대장'으로 불렸으며 중종반정 후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한재寒齋 이목李穆 1471~1498

김종직의 문인으로서 연산군 1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영안도평사永安道評事 등을 역임했다. 성균관 유생 시절 훈구파의 핵심인 영의정 윤필상을 '간귀'라고 비난했다가 무오사화 때 김일손 · 권오복과 함께 사형되었다.

 

지족당知足堂 남곤南袞 1471~1527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 좌부승지 등을 역임햇다. 중종 때 이조참판, 대사헌, 이조판서, 좌찬성, 대제학 등에 올랐으나 조광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원래는 사림파의 종주인 김종직의 문인이었으나 훈구파 심정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제거했다. 이후 이를 후회하여 자신의 글을 모두 불태웠다. 중종 22년 사망하자 문경文敬이란 시호를 받았으나 명종 때 관작을 삭탈당했다.

 

소요정逍遙亭 심정沈貞 1471~1531

150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수찬이 되었다가 중종반정에 참가해 정국공신이 되었다.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며 훈구파의 거물로 성장해 남곤과 함께 사림파를 대거 살육하는 기묘사화를 일으켰다. 복성군福城君의 옥사 때 김안로의 공격을 받아 강서에 유배되었다가 박빈朴嬪과 내통한 혐의로 사사되었다.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1478~1543

김굉필의 문인으로서 연산군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박사 등을 역임했다. 중종 때 좌찬성, 대제학, 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을 역임했다. 경상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여씨향약》, 《오륜행실도》, 《소학》 등을 널리 보급하여 사림파의 성장에 많은 공을 세웠다. 기묘사화 때 파직되었지만 조광조의 급격한 개혁에 반대한 온건개혁론자였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평안도 희천에 가서 귀양와 있던 김굉필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당시는 사화 직후여서 천지들은 성리학에 몰두하는 그를 '화태'라고 부르며 멀리하기도 했다. 1510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 등을 역임하다가 경연 시독관이 되어 중종에게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그는 성리학적 도학정치道學政治,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추구해 《여씨향약》, 《주자가례》 등을 보급했다. 대사헌에 올라 중종의 신임을 바탕으로 정권을 잡고 현량과를 실시하여 사림파를 대거 등용했다. 반정공신 중 가짜가 많다 하여 위훈 삭제를 주장해 4분의 3에 달하는 공신을 박탈했는데, 이로 인해 훈구파의 반격을 받아 기묘사화 때 사형되었다. 선조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정우당淨友堂 김식金湜 1482~1520

중종 14년 조광조의 주도로 실시된 현량과에 장원하여 부제학이 되었고, 사림파의 강력한 천거로 대사성에 전임되었다. 조광조 등과 사림정치 실현에 힘쓰다가 선산에 유배되었으나 도망한 후 <군신천세의>라는 시를 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충암沖菴 김정金淨 1486~1520

중종 2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순창군수로 있으며 담양부사 박상과 함께 폐비 신씨愼氏의 복위를 주장했다가 훈구파에 의해 보은에 유배되었다. 중종 11년에 풀려나와 사림파가 중용됨에 따라 도승지와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조광조와 함께 도학정치 · 지치주의를 추구하다가 중종 14년(1519) 기묘년에 훈구파의 반격을 받아 금산에 유배되었다가 그 이듬해 제주에서 사사되었다.

 

자암自庵 김구金絿 1488~1534

중종 6년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를 거쳐 부제학이 되었다. 기묘사화 때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10년 만에 석방되었다. 그후 향리 예산에서 학문에 몰두하다가 병사했다. 선조 때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남해 유배 시절에 지은 <화전별곡花田別曲>은 시가詩歌로 이름이 높다.

 

윤임尹任 1487~1545

대윤의 영수.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오빠다. 무과에 급제하여 경주부윤,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여 자신의 외조카인 인종을 보호하려 애썼다. 인종이 즉위하자 사림파를 등용하기 위해 애썼다. 인종이 죽고 12세의 어린 명종이 즉위하여 문정왕후가 섭정하게 되면서 그녀의 동생인 소윤 윤원형이 주도한 을사사화를 맞아 사형되었다.

 

윤원형尹元衡 ?~1565

소윤의 영수.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문과에 급제한 후 사헌부 지평, 응교 등을 역임했다. 문정왕후의 소생인 명종이 즉위하자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임이 이끄는 대윤을 제거했다. 그후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며 정권을 장악했으나, 명종 20년 문정왕후가 죽자 실각하여 관직을 삭탈당하고 강음에 유배되어 죽었다.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尹氏 1501~1565

영돈녕 부사 윤지임尹之任의 딸로, 장경왕후가 죽은 후 계비로 책봉되었다. 자신의 아들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했다. 그동안 동생 윤원형과 함께 을사사화를 일으켜 대윤과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 불교를 신봉해 승려 보우普雨를 병조판서에 등용하고 선 · 교 양종을 부활하는 등 불교를 강화해 사림파의 비난을 샀다.

 

차례

 

2권 주요 등장인물

 

11 왕권을 압도하는 신권

    형을 제치고 국왕이 된 성종

    단종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제안대군과 월산대군의 운명

    누구를 위한 공신 책봉인가?

 

12 사림파의 등장

    한씨 조선인가, 이씨 조선인가

    승정원에 붙은 익명서와 대비의 퇴진

    김숙자와 아들 김종직

    훈구파, 토지를 독식하다

 

13 신진 사림, 훈구 공신들과 격돌하다

    원상제를 폐지하다

    개혁의 전위기관 홍문관

    대간과 임사홍의 대결

    훈구파와 사림파 사이에서 줄을 타는 성종

 

14 파란의 연산군시대

    낮에는 요순, 밤에는 걸주

    연산군의 즉위

    연산군, 대간들과 충돌하다

 

15 사림파의 첫 번째 시련, 무오사화

     사초 때문에 충돌하다

    훈구파의 역공세

    피바람의 전주곡, '조의제문'

    세조를 비난한 '술주시' 사건

 

16 금삼의 피

    폐비 윤씨와 선왕의 후궁들

    연산군의 과거사 청산, 폐비 윤씨 사건 재조사

    사림파에게 튄 불똥

 

17 연산군의 무한권력

     연산군의 엽색 행각

    내관 김처선의 비극

    고립된 연산군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다

    무르익은 반정의 꿈

    연산군의 뒤늦은 후회

    연산군은 독살되었는가?

 

18 힘없는 군왕 중종과 조광조의 등장

    조강지처를 쫓아낸 임금

    새로운 특권층이 등장하다

    전권을 장악한 반정 삼대장

    반정 삼대장의 죽음과 조광조의 등장

 

19 조광조의 도전

    소학동자 김굉필과 제자 조광조

    조광조, 중종의 눈에 들다

    사림파의 작은 승리, 그리고 그들의 한계

 

20 사림파의 개혁정치

    사림파의 등용문 현량과

    누구를 위한 토지개혁인가?

    돌아올 수 없는 강, 위훈 삭제

 

21 기묘사화, 훈구파의 반격과 중종의 배신

    주초위왕

    "우리의 죄가 무엇입니까?"

 

22 마지막 시련, 을사사화

    대윤 대 소윤

    윤임, 제거되다

    계림군의 비극

    양재역 벽서 사건

    문정왕후의 죽음과 소윤의 몰락

 

23 사림파, 최후의 승자가 되다

    막을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사림파의 집권

    사림파 집권의 토대를 다진 이황

    야당에서 여당으로 :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

 

참고자료

    이 책의 배경이 된 주요 정치일지

    조선 전기의 공신

    조선 전기의 피화자

 

대저 이른바 공신이라고 하는 자는

반드시 그 공이 사직社稷에 있으며 그 덕을

생령(生靈, 백성)에게 입힌 다음이라야 나라에서 이론이 없게 되며,

사람들도 더불어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금일의 좌리공신 70여 인은

과연 무슨 공이 있었는지 신 등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_《성종실록》2년 3월 28일

 

▲ 한명회의 묘  한명회는 세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으나,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윤씨 폐사廢死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되었다가 신원되었다. 현재의 묘는 이장된 곳이다. 충남 아산시 소재.

▲ 어우야담  광해군 때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한국 최초의 야담집野談集으로 야사野史 · 항담향巷談 · 가설街說 등을 수록하여 조선 중후기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형은 무슨 일로 세월을 보내실까.

아마도 거문고와 노래겠지.

問兄何事送  想洋琴與渭歌

- 성종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 월산대군

▲ 희우정  원래 이름은 합강정合江亭이었으나 세종이 농정을 살피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 마침 단비가 내려 이를 기뻐한 세종이 희우정喜雨亭이라 고쳐 사패했다. 그후 월산대군이 이곳을 대폭 수리한 후 '경치를 멀리 내다볼 수 있다'는 뜻에서 망원정望遠亭으로 개칭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온 나라의 번거로운 사무로 성체聖體를 수고롭게 하는것도

또한 편안히 봉양하는 도리가 아니므로, 이에 마지못해서

지금부터는 무릇 국가의 모든 정사는 내 뜻으로써 결단하고

다시는 대왕대비에게 아뢰어 처결處決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_ 《성종실록》 7년 1월 13일

 

▲ 경국대전  세조는 고려부터 조선 초까지 100여 년에 걸쳐 반포된 법전, 교지, 조례, 관례 등을 총망라하여 법전편찬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완성된 법전이 경국대전이다. 성종 때 경국대전이 반포됨으로써 조선은 최초로 정비된 법전을 가진 왕조가 되었다.

▲ 신숙주

▲ 추원재  김숙자金叔滋 · 김종직 부자父子의 집터. 경남 밀양시 소재.

▲ 학사루  통일신라시대의 누각. 사림파의 거두 김종직이 현감으로 부임했을 때 이곳에 걸린 유자광의 현판을 철거한 것이 무오사화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경남 함양군 소재.

 

대저 창업하는 임금은 뜻이 성공에 있으므로

비록 한 가지의 재예才藝를 가진 자라도 모두 거두어 쓰지만

수성하는 임금은 이와 달라서 모름지기 재주와 덕이 겸비된 뒤에야 쓰는 것입니다.

세조조에는 한 가지 재주만 있어도 단점보다는 장점을 헤아려 임용했으며,

인연으로 공을 얻어서 훈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하께서 옛 훈신이라고 하여 녹용錄用하였으니,

그 녹용된 자들이 필시 다 어질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_ 《성종실록》 9년 4월 9일

 

▲ 창덕궁 선정전

▲ 이심원 충신정려현판  주계군 이심원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에 내려진 현판으로 충남 계룡시 소재.

▲ 이목의 묘  전주이씨 서원군파의 묘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목의 묘. 이 묘역에는 효령대군의 둘째 아들인 서원군과 효령대군의 5대손 이신성, 그의 아들 이목, 손자 이지함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 소재.

 

……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려 자결하게 했는데,

윤씨가 눈물을 닦아 피 묻은 수건을 그 어머니 신씨에게 주면서,

'우리 아이가 다행히 목숨을 보전하거든 이것으로

나의 원통함을 말해주고, 또 나를 거둥하는 길옆에 장사하여

임금의 행차를 보게 해달라'고 유언하므로 건원릉健元陵 길 왼편에 장사했다.

_ 《기묘록

 

▲ 선릉  조선 성종과 그의 계비인 정현왕후 윤씨가 묻혀 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소재.

 

나의 사초史草에, 이극돈이 세조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된 것은

불경을 잘 외웠기 때문이라고 쓴 것과 정희왕후의 상을 당했을 때

향香을 바치지도 않고 장흥長興의 관기 등을 가까이한 일을 기록하였는데,

이극돈이 이 조항을 삭제하려다가 실패했소.

…… 지금 내가 잡혀가는 것이 과연 사초에서 일어났다면

반드시 큰 옥獄이 일어날 것이오.

_ 《연산군 일기》 4년 7월 12일

 

▲ 자계서원  김일손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자계사紫溪祠는 선조 9년(1576) 서원으로 승격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광해군 7년(1615) 중건되어 김극일金克一 · 김대유金大有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현종 2년(1661) '자계'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경북 청도군 소재.

▲ 김종직

▲ 김종직의 묘  경남 밀양시 소재.

▲ 김일손의 묘  경북 청도군 소재.

 

무오년 사초 사건으로 그 도당이 대부분 외방으로 정배되었으나,

그때 삼공三公이 모두 간흉한 무리들로서 사심을 끼고 사정을 써

죽을 자가 살게 되고 살 자가 도리어 죽기도 했다.

그러니 이 무리들을 두었다가 어디 쓰겠는가? 모두 잡아오도록 하라.

_ 《연산군 일기》 10년 9월 26일

 

어제 어머니 사당을 배알한 일에 생각이 달려가네.

존귀한 작호를 올려도 자리를 적시는 눈물 거두기 어렵도다.

간절히 다가오는 정희를 다하기 어렵도다.

영령이여! 정성스럽고 진실된 이 마음을 돌아보소서.

昨趨思廟拜慈親 尊爵難收淚滿茵

懇迫情悔難紀極 英靈應有誠眞

- 연산군

▲ 회묘(회릉)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던 폐비 윤씨의 무덤은 처음에는 '회묘懷墓'라 불렸으나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후 왕릉으로 승격, '회릉懷陵'으로 바뀌었다가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다시 '회묘'가 되었다. 그러다가 1967년 무덤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나는 술을 스승으로 삼으나 성인(청주)도 현인(탁주)도 아니고

증거움 그 자체를 즐긴다.

마음으로 즐기면 장차 늙음이 닥쳐옴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어찌 즐거움의 남는 것이 술임을 알겠는가.

我乃師酒  非聖非賢  樂其樂者  樂終心

不知老之將至  人孰知餘之樂是  酒也

- 정희량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는 그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야 하거늘,

요사이 간사한 내시 김처선이 임금의 은혜를 잊고

변변치 못한 마음을 품고서 분부를 꺼리고 임금을 꾸짖었으니,

… 이에 중죄로 처치하고 그 자식에게까지 미치게 하며

그 가산을 적몰하고 그 가택을 못으로 만들고 살던 고향을 아울러 혁파하여,

흉악하고 간사한 것을 씻어내서 뒷일을 경계하노니, 중외에 효유하라.

_ 《연산군 일기》 11년 4월 4일

 

▲ 서오릉  풍수적인 길지吉地에 왕실의 족분族墳을 만든 것으로 경릉敬陵 · 창릉昌陵 · 익릉翼陵 · 명릉明陵 · 홍릉弘陵의 다섯 능을 일컫는다. 이 중 경릉은 세조의 세자 장(璋 : 德宗)과 그 비妃 소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세상사 매달려도 뜬구름만 못하다.

생각하면 인간사 꿈속만 같구나.

애써 좇는 공명 모두가 허망해

꽃 속에 파묻혀 취하는 것만 못하구나.

深推物理勝雲空  暗度人間似夢中

謾糾功名徒誕妄  不如長醉賞群紅

- 연산군

 

▲ 금표비  연산군이 사냥에 방해가 된다며 '금표내에 들어오는 자는 참한다'는 내용을 한자로 새겨 넣은 화강석 비이다. 금표 구역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 파주시 · 양주군 · 포천군 · 남양주시 · 광주군 · 구리시 · 김포시 등이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백성에게 잔인하기 나보다 더한 이 없건

내시가 난여(임금)를 범할 줄이야.

부끄럽고 통분해 정서 많아서

바닷물에 씻어도 한이 남으리.

殘薄臨民莫類予  那思姦閹犯鸞輿

羞牽痛極多情諸  欲滌滄浪恨有餘

- 연산군

 

요순을 본받으면 저절로 태평인데

진시황은 무슨 일로 백성들을 괴롭혔나.

화가 집안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오랑캐 막으려고 헛되이 만리장성 쌓았구나.

祖舜宗堯自太平  秦皇何事苦蒼生

不知禍起蕭墻內  虛築防胡萬里城

- 임희재

 

어진 이들과 화정에 모여서 연회 베푸는 것을 시절이 허락하니

꽃과 술에 한가롭게 기대어 태평성대를 깨닫겠네.

어찌 이들이 사사롭게 은혜를 입는 것만 좋아하리.

모두 충성과 정성을 바칠 것을 생각하기 바라노라.

時許群賢宴畵亭  閑憑花酒覺昇平

何徒爭喜鴻私厚  咸欲思忠獻以誠

- 연산군

 

농민들의 집을 헐어 정자 만들고

많은 여자 뽑아서 운평 만들었네.

원훈은 죽이고 대간들은 도륙하고

내시들만 남겨서 충성하게 하였네.

撤人盧舍摠爲亭  採却靑紅作運平

誅盡元勳屠諫輔  只留皀帽表忠誠

- 조신曺伸

 

푸른 이슬 밤에 맺혀 비단치마 적시고

가을바람 소슬하여 애간장을 녹이누나.

난간에 기대 기러기 소리 들으니 달빛이 차갑고

눈물 가득 찬 눈시울은 슬픈 마음 이기지 못하네.

翠露凝宵濕絳裳  金風蕭瑟斷芳腸

憑闌聞雁蟾光冷  淚滿星睚不勝傷

- 연산군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는 것.

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

- 연산군

 

▲ 금호재琴湖齎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로 중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금헌琴軒 이장곤李長坤의 재실齋室이다. 재실은 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을 일컫는다. 경남 창녕군 소재.

 

화난禍難 닥치리라 미리 헤아려 딴 놈에게 붙고

흉하게도 고식적인 생각으로 깊은 산에 숨었구나.

어버이 임금 버리고 어디서 용신容身 할꼬.

고금에 완악하기 이보다 더한 놈 없도다.

先度終難掩附攀  兇思姑息隱幽山

離親葉主容何地  今古難逾此惡頑

- 연산군

▲ 박원종의 묘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하고 있다.

▲ 연산군 교동유배지  연산군은 중종반정 이후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어 이곳에서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았다. 현재 밭으로 변해 버린 집터에는 '연산군 잠저 지'라고 새긴 자그마한 비가 세워져 있다.

▲ 연산군 묘  연산군과 폐비된 거창군부인居昌郡夫人 신씨가 매장되어 있다. 서울시 도봉구 소재.

▲ 연산군 부부상  연산군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폐비 신씨가 보고 싶다"였다. 폭군이었던 연산군도 부인에 대한 애정만큼은 그렇게 각별했다고 한다.

 

"거사할 때 먼저 신수근을 제거한 것은 큰일을 성취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지금 수근의 친딸이 대내大內에 있습니다. 만약 궁곤(왕비)으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해지고 인심이 불안해지면 종사에 관계됨이 있으니,

은정恩情을 끊어 밖으로 내치소서."

"아뢰는 바가 심히 마땅하지만, 조강지처인데 어찌하랴?"

"신 등도 이미 요량하였지만, 종사의 대계로 볼 때 어쩌겠습니까?

머뭇거리지 마시고 쾌히 결단하소서."

"종사가 지극히 중하니 어찌 사사로운 정을 생각하겠는가.

마땅히 여러 사람 의논을 좇아 밖으로 내치겠다."

_ 《중종실록》 1년 9월 9일

▲ 조광조

 

신 등이 성균관에서 천거한 유생 중 조광조는

조행(操行, 조신스런 행실)이 있으나 나이 30이 못 되어,

한창 학업에 큰 뜻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 만일 그의 뜻을 갑자기 빼앗아 미관微官에 서용한다면,

그 학업을 폐지하게 되고, 그 또한 나와서 벼슬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을 것이니,

국가에서 인재를 배양하는 도리에 결함이 되겠습니다. 갑자기 서용하지 말고,

평생의 뜻을 펴게 해서 입신성명立身成名한 후에 쓰더라도 늦지 않습니다.

_ 《중종실록》 6년 4월 11일

 

글을 업으로 삼았어도 천기天機를 몰랐는데

《소학》을 읽던 중 이전의 잘못을 깨달았네.

業文猶未識天機  小學書中悟昨非

- 김굉필

 

▲ 경복궁 사정전

▲ 삼인대  강천사剛泉寺 앞 내를 건너 남쪽에 있는 비각으로 내부에는 삼인대 비(碑)가 세워져 있다. 반정 후 새로 중종의 왕비가 된 장경왕후가 10년 만에 죽자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柳沃은 이곳에 모여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신씨를 복위시킴이 옳다고 믿어, 각자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전북 순창군 소재.

▲ 월인천강지곡  세종이 소헌왕후 심沈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 대군이 석가의 일대기를 국문으로 엮은 <석보상절>을 보고 지은 장편 서사시이다.

 

토지를 겸병하는 무리들의 땅은 그 밭둑이 한없이 연이었고,

가난한 자들은 송곳 세울 땅도 없습니다.

백성들의 곤궁은 바로 여기에 연유되는 것이니 이 또한 금하고 눌러야 합니다.

앞으로는 원래의 토지가 50결 이상인데도 다시 더 차지하는 자가 있으면

그 지방 수령으로 하여금 규찰하여 금하게 하고

몰래 타인의 이름으로 바꿔 놓은 자 역시 법에 따라 엄격히 규제해야 합니다.

_ 《중종실록》 13년 5월 28일

 

▲ 경현당  미원서원에는 조선 12유현을 기리는 경현단景賢壇이 있다. 이 단지壇地에는 전면 중앙에 조광조와 김식의 단비가 있고, 왼쪽으로는 남언경 · 김육 · 박세호 · 남도진 · 김평묵, 오른쪽으로는 이제신 · 김창옹 · 이원충 · 이항로 · 유중교의 단비가 있다. 경기도 가평군 소재.

▲ 심곡서원  효종 1년(1650) 조광조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세운 서원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경기도 용인시 소재.

 

…… 임금이 있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을 헤아리지 않아서

우리 임금이 요순 같은 임금이 되게 하고자 한 것인데,

이것이 어찌 제 몸을 위한 꾀이겠습니까?

천일天日이 비추는 아래에 다른 사심이 없었습니다.

신 등의 죄는 만 번 죽어도 마땅하나, 사류의 화가 한번 시작되면

뒷날의 국가의 명맥이 염려되지 않겠습니까?

천문天門이 멀어서 생각을 아뢸 길이 없으나

잠자코 죽는 것도 참으로 견딜 수 없으니,

다행히 친히 한번 국문해주시면 만 번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뜻은 넘치고 말은 막혀서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_ 《중종실록》 14년 11월 16일

 

▲ 신무문  경복궁의 북문으로 복쪽을 상징하는 현무에서 따온 이름이다. 세종 15년(1433)에 세운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중건되었다. 북쪽은 음기가 많다고 하여 평소에는 닫아두었다.

오늘밤 저승으로 갈 사람들,

속절없이 밝은 달만 남아 인간을 비추네.

重泉此夜長歸客  空照明月照人間

-김정

 

흰 구름에 백골을 묻으면 영원히 그만인데,

공연히 흐르는 물만 남아 인간을 향하네.

埋骨白雲長巳矣  空餘流水向人間

- 김구

 

긴 하늘 달 밝은 밤.

明月長天夜

- 김구

 

추운 겨울 작별을 아쉬워하는 때.

嚴冬惜別時

- 김정

 

▲ 적려 유허비  적려란 귀양 또는 유배되어 갔던 곳을 이르며, 유허비는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히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두는 비를 말하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종 때 이곳에 유배당한 조광조의 옛 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비를 제작한 시기는 현종 8년(1667)으로, 당시 능주목사를 지내던 민여조가 건립하였으며,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전남 화순 소재.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했고,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했네.

해가 아래 세상을 굽어보니,

충정을 밝게 비추리.

愛君如愛父  憂國如憂家

自日臨下土  昭昭照丹衷

- 조광조

 

해가 져서 하늘은 먹같이 어둡고,

산이 깊어 골짜기는 구름 같구나.

군신의 의리는 천년토록 변치 않는 것.

섭섭하다 이 외로운 무덤이여!

日落天呂墨  山深谷似雲

君臣卑載義 怊悵一孤墳街

- 조광조

 

▲ 조광조의 묘  경기도 용인 소재.

 

근심과 병은 귀밑까지 이르고,

바람과 서리 차건만 옷도 주지 않네.

생각하면 임금은 밝은 달인가,

하늘가에도 멀리 비치네.

- 김정

 

먼 섬에 버려져 고혼이 되는구나.

어머니를 남겼으니 천륜이 막혔다.

이런 세상을 만나 내 몸을 잃으니

구름을 타고 가 상제를 찾을까.

굴원을 따라 높은 곳에 거닐까.

기나긴 밤 어둡구나 언제 밝을꼬.

붉은 충성 빛났건만 풀더미 속에 묻히는구나.

당당하던 뜻이 중간에 꺾이고 마는구나.

오호라, 먼 훗날에는 나를 슬퍼하리.

投絶國兮作孤魂  遺慈母兮隔慾天倫

斯世兮余身  乘雲氣兮歷帝

從屈原兮高逍遙  長夜暝瞬兮何時朝

炯丹衷兮埋草  堂堂壯志兮中道

鳴呼千秋萬世兮應我哀

- 김정 <절명사絶命辭>

 

먼 변방도 강산은 고국과 같구나.

하늘가에 눈물 흘리며 외로운 배에 의지했네.

밀물소리 적막한데 관문關門은 닫혔고,

나뭇잎 떨어져 쓸쓸한데 성곽은 비었다.

들길은 가을 퓰 밖으로 가늘게 뻗어 있고

인가人家는 멀리 석양 속에 있구나.

만 리 길 가는 배 돌아오는 돛대는 없으니,

푸른 바다 아득한데 소식도 통할 수 없네.

- 김정

 

▲ 김정 적려비  제주 오현단 경내 소재.

 

날은 저물어 천지는 어두운데

빈 산사엔 구름만 걸쳐 있네.

군신은 천 년의 의리가 잇다 하는데

어느 곳에 외로운 무덤을 삼을까.

日暮天含黑  山空寺八雲

君臣千歲義  何處有孤墳

- 김정 <군신천세의君臣千歲義>

 

조광조 등의 일은 내가 늘 마음속에서 잊지 않았으나

선왕께서 전에 허락하지 않으셨으므로

내가 감히 가벼이 고치지 못하고 천천히 하려 하였다.

이제는 내 병이 위독하고 날로 심해져서 다시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으므로

비로소 유언하여 뒤미처 인심을 위로하니,

조광조 등의 벼슬을 일체 전일의 중의衆議처럼 회복할 수 있으면 다행하겠다.

현량과도 전에 아뢴 대로 그 과를 회복하여 거두어 등용하도록 하라.

- 《인종실록》 1년 6월 29일

▲ 죽도 인종이 손수 그린 그림.

▲ 태릉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모후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문정왕후의 릉이다. 서울시 노원구 소재.

 

지난날 이언적을 평하여 부족한 데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

스스로 탄식하여 생각해 본다. 지금 사람들은 아무런 일이 없는 평지 위에 서서

자기 생각에 따라 옛사람의 시비득실을 점검한다.

이는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일이 실제로 자신에게 당도했을 때

어찌 옛사람의 발꿈치인들 따라가겠는가.

말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흉을 찾아내려 한다면

천하에 어찌 존경하고 숭상할 만한 현인군자가 있겠는가?

_ 유성룡

 

▲ 이황

 

▲ 성학십도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황이 지어바친 책으로 성학聖學의 개요를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십도十圖란 태극도太極圖 · 서명도西銘圖 · 소학도小學圖 · 대학도大學圖 ·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 인설도仁說圖 · 심학도心學圖 · 경재잠도敬齋箴圖 ·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로 사진은 1도 태극도와 10도 숙흥야매잠도이다.

▲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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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70 북한산

 

글 / 박인식●사진 / 안승일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97

 

082

빛12ㄷ 141

 

빛깔있는 책들 141

 

박인식-------------------------------------------------------------------------

195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산악부원으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산하를 무수히 쏘다녔다. 조선일보사 기자(1981~1989년)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월간 '사람과 산'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다. 월간 '사회체육'에 장편소설 '만년설'(1985~1986년)을 연재한 바 있고, 창작집 「사람과 산」(1985년, 예문사)과 산악희곡집 「서문동답」(1987년, 문성당) 등의 저서가 있다. 미술평론에도 관심을 가져 '정기호론' '이존수론' 등 여러 화가의 작가론을 쓰기도 했다.

 

안승일-------------------------------------------------------------------------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라벌 예대 사진과를 중퇴했다. 1969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산악사진전'을 가졌고, 1977년 광고사진 스튜디오 '그린스튜디오'를 개업했다. 한국산악사진가회 회원이며 사진집으로는 「산」(1982년), 「삼각산」(1990년), 「한라산」(1993) 등이 있다.

 

|차례|

 

개관

    산악 신앙이 된 북한산의 거석 체험

    대서문에서 닫혀지는 북한산성의 폐쇄 회로

북한산의 역사와 지리

    삼국시대의 격전장에 쌓여진 북한산성

    북한산을 차지하면 천하를 얻었다

    북한산의 축성

    을축년 대홍수와 시구문

    북한산의 근현대사가 각인된 북한리

    북한산속에 사는 '성안' 사람들

    산삼으로 증명된 북한산의 정기

    식민 정책에 의해 왜곡된 북한산의 풍수지리

오늘의 북한산

    한국 산악 운동의 요람인 수도의 진산

    한해 440만 명이 찾는 북한산 국립공원

북한산의 등산로

    주능선길

    우이동 기점

    4 · 19탑 기점

    정릉 기점

    세검정 기점

    구파발 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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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69 왕초보, 불교박사 되다

 

석지현 · 윤창화 · 일  지 지음

2002, 민족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1151

 

220

석76왕

 

우리가 알아야 할 불교상식 150가지

 

차례

 

가사장삼은 언제 입는 법복입니까

결제, 해제, 동안거, 하안거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경전

    경전은 모두 몇 종류나 됩니까

    경전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 졌습니까

    경전은 왜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까

    경전은 어떻게 읽고 독송해야 합니까

    불자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경전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1) 관음경

        2) 금강경

        3) 묘법연화경

        4) 반야심경

        5) 법구경

        6) 아미타경

        7) 아함경

        8) 지장경

        9) 천수경

        10) 화엄경

    팔만대장경, 고려대장경, 신수대장경은 어떻게 다릅니까

를 받을 때 연비는 왜 합니까

공양은 식사와 같은 뜻입니까

관세음보살은 어떤 분입니까

극락지옥은 정말 있습니까

극락전, 관음전, 지장전, 칠성각 등 절 건물의 명칭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깨달으면 부처나 나나 다 똑같다고 하는데 어째서입니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무슨 뜻입니까

다기 물은 왜 올립니까

다라니란 무슨 뜻입니까

다비(식)란 어떤 것입니까

단청은 왜 합니까

달마대사는 어떤 분입니까

대선사, 대종사, 대화상 등 스님의 존칭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卍)자 표시는 무엇을 뜻합니까

만다라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목탁, 요령, 풍경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무속

    점쟁이와 무당은 불교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산신9山神)신앙과 불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칠성(七星)신앙과 불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문수보살보현보살은 어떤 분입니까

바라춤승무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발우, 발우공양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방생은 왜 합니까

방장스님, 조실스님은 어떤 분입니까

백팔번뇌란 무엇입니까

법당대웅전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법문을 마치면서 왜 '(억)' 하고 큰소리를 냅니까

보살

    보살은 어떤 분입니까

    여성 신도를 왜 '보살님'이라고 부릅니까

보시, 법보시는 무슨 뜻입니까

부도는 왜 세웁니까

부전, 지전, 노전스님은 무엇이 다릅니까

부처님

    부처님은 어떤 분입니까

    부처님은 몇 분이나 됩니까

        1) 미륵불

        2) 석가모니불

        3) 아미타불

        4) 약사여래불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 음식은 왜 올립니까

    부처님 앞에 향을 피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처님 오신날 등을 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처님 머리 위에 왜 물을 붓습니까

    부처님을 왜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요

    부처님 오신날은 언제부터 기념하게 되었습니까

불교

    한국불교의 종파는 몇 개나 됩니까

    불교를 믿는 나라는 몇 곳이나 됩니까

불교기(佛敎旗)는 무엇을 상징하며 언제부터 사용하였습니까

불기(佛紀)는 언제를 기준으로 정해진 것입니까

불사란 무슨 말입니까

불상

    불상은 언제부터 모시게 되었습니까

    불상은 왜 황금빛입니까

    불상 앞에 왜 절을 합니까

불자들은 인사할 때 왜 "성불하십시오"라고 합니까

불자로서 알아 두어야 할 기본 예절은 무엇입니까

    처음 불교를 믿고자 하는 분의 경우

    이미 절에 다니고 있는 분의 경우

    절에서의 행동거지와 예불, 공양 시간

    절하는 방법

불전은 얼마나 놓아야 합니까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란 호칭은 무엇이 다릅니까

(寺), (庵), 정사(精舍), 선원(禪院)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사리(舍利)란 무엇입니까

사바세계란 어느 곳을 가리킵니까

사대부중이란 무슨 뜻입니까

사시마지란 무슨 뜻입니까

사십구재, 천도재, 예수재는 왜 지냅니까

사찰을 왜 '절'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까

사천왕은 어떤 분입니까

삼귀의, 사흥서원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새벽에 목탁을 치면서 도량을 도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스님

    스님이 되자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합니까

    스님이 되면 정말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어야 합니까

    스님은 왜 결혼하지 않습니까

    스님은 왜 세속을 떠나 스님이 되었습니까

    스님들의 하루 일과를 알고 싶습니다

    스님의 성이 주로 석(釋)씨인 까닭은 무엇입니까

    스님은 왜 술과 고기를 먹지 않습니까

    스님은 왜 파 마늘 등 오신채를 먹지 않습니까

    스님의 옷은 왜 회색입니까

    '스님'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게 되었습니까

십대제자

    부처님의 십대제자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1) 가섭존자

        2) 목련존자

        3) 사리불존자

        4) 아난존자

이란 무엇입니까

연꽃은 불교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염라대왕은 어떤 분입니까

염불은 왜 합니까

염주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영단은 어떤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예불은 왜 합니까

오계십계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옴 마니 반메 홈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우담바라는 어떤 꽃입니까

우란분재(백중)는 어떤 날입니까

울력은 무엇입니까

원주, 별좌, 도감, 회주스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입니까

윤달과 불교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인연, 인연법이란 무슨 말입니까

일주문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적멸보궁은 어떠한 곳입니까

전생내생은 정말 있습니까

은 왜 산속에 있게 되었습니까

제등행사(렬)는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종(범종)과 북(법고)은 왜 칩니까

종정스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입니까

주지스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입니까

죽음열반은 어떻게 다릅니까

중생이란 말 속에 짐승도 포함됩니까

지장보살은 어떤 분입니까

찬불가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참선, 좌선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참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처사, 거사, 청신사, 청신녀, 건명, 곤명은 어떻게 다릅니까

천왕문, 불이문, 요사채는 어떤 곳입니까

촛불은 왜 켭니까

총림, 선원, 율원, 강원은 어떤 곳입니까

총무원장, 종회의장스님은 무엇을 하시는 분입니까

축원을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출가일, 성도절, 열반절은 어떤 날입니까

코끼리는 불교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탁발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塔)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이나 법당 앞을 지나갈 때 왜 합장을 합니까

탱화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행자생활은 어렵습니까

화두란 어떤 것입니까

화장(火葬)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회심곡은 어떤 노래입니까

 

그 밖에 꼭 알아야 할 간단한 불교용어

 

  가람 / 가부좌 / 강원 / 거사 / 건명 / 고려대장경 / 곤명 / 공양주 / 관음전 / 교육원

  노스님 / 노전스님

  대웅전 / 대종사 / 대중공사 / 대중공양 / 대화상 / 도 / 도감스님 / 도량 / 도반 / 동안거 / 동참 / 득도

  목어

  바랑 / 범부 / 범어 / 범종 / 법 / 법고 / 법공양 / 법랍, 승랍 / 법륜 / 법명 / 법문 / 법보 / 법보시 / 법복 / 법사 / 법어 / 법어집 / 법회 / 별좌스님 / 보리 / 보살행 / 보현보살 / 부목 / 불법 / 불이문 / 불자 / 비구니

  사경 / 사대 / 사미 / 사미니 / 사숙 / 사형 / 사홍선원 / 삼보 / 삼보사찰 / 상노스님 / 상좌 /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칭 / 선방 / 선원 / 선원 / 선지식 / 설법 / 성도절 / 성불 / 수좌 / 승무 / 시달림 / 시자, 시봉 / 시주 / 신수대장경 / 십계

  암자 / 역경 / 열반 / 열반절 / 영가천도 / 예수재 / 요령 / 요사채 / 원로회의 / 윤회 / 율원 / 은사 / 입산

  장삼 / 장좌불와 / 정근 / 정사 / 조실스님 / 종단 / 종무소 / 종회 / 종회의장스님 / 좌선, 참선 / 주장자 / 죽비 / 지옥 / 지장전 / 지전스님 / 진언

  채공 / 천도재 / 천수물 / 청신녀 / 청신사 / 총무원 / 출가 / 칠성각

  토굴

  포교당 / 포교사 / 풍경

  하복대야, 상복대야 / 하안거 / 할 / 합장 / 해우소 / 행전 / 화주 / 환속 / 회주스님 / 회향

 

더없이 깊고 넓고 미묘하신 가르침

기나긴 세월 흘러가도 만나기 어렵네

제가 지금 듣고 보고 마음깊이 지니오니

부처님의 참뜻을 깨닫게 해 주소서

- 《천수경》의 개경게(開經偈)

 

얇은 사(絲)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

- 조지훈 <승무>

 

한 줄기 향을 사르오니

당신을 향하는 마음이여, 내 마음이여

누리 이 누리 구석까지 뻗어 나가라

하늘에서 땅의 끝까지

- 《석문의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꽃빛은 찬란해도 지고야 마네

이 세상 어느 뉘라 죽지 않으리

덧없이 깊은(아집의) 산 오늘 넘어서

헛된 꿈 꾸지 않고 깨어 있으리

- 공해(空海)

 

이 세상 살아가길 허공처럼 하라

저 연꽃이 진흙 물에 때묻지 않듯

그렇게 집착 없이 살아가거라

- 《석문의범(釋門儀範)

 

5계

 

첫째, 살생하지말아라.

둘째, 남의 것을 훔치지 말아라.

셋째, 음행(잘못된 남녀 관계)하지 말아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아라.

다섯째, 술을 마시지 말아라.

 

10계

 

5계에 이어

여섯째, 꽃다발을 쓰거나 향수를 바르지 말아라.

일곱째, 노래와 춤 풍류를 즐기거나 보지 말아라.

여덟째, 높고 넓은 큰 평상에 앉지 말아라.

아홉째, 공양 때가 아니면 먹지 말아라.

열째, 금 은 등 보화를 갖지 말아라.

 

저녁, 어둠이 내리고

옛 탑의 어깨에 초승달이 걸리면

아, 아, 나는 또, 내 마음은 또

어느 마을을 찾아 헤매는가

아직도 끝맺지 못한

인연의 마무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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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2. 12. 7. 14:47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8 1분의 지혜

 

고진하 지음

2004, 꿈꾸는 돌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0957

 

199.1

고7819일

 

그대가 만나는 모든 것이

                    그대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스승이 된다

 

그대 존재의 바깥을 기웃대며

배회하지 말라.

 

그대가 찾는 보화는

바로 그대 안에 있나니.

 

'깊은 못은 맑고 고요해 물결에 흐려지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듣고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진다.'는 법구경의 구절이 떠오른다. 혼탁한 세상에서 만나는 고진하 목사님의 고요한 외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넌지시 깨우쳐 준다. 가끔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싶을 때, 크진 않지만 강한 외침으로 우리를 일깨워 줄 책이다. 마근 스님(신흥사 주지)

 

시와 종교는 얼핏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언어를 통해 영혼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동역자이기도 하다. 『1분의 지혜』는 고진하 시인 안에 동거해 온 두 동역자의 합작품이다. 여기에 담긴 짧은 이야기들은 종교적이면서 시적이다. 빈 항아리처럼 자신을 비우는 법을, '늦으면 깊은 법'을 가르쳐 주는 이 지혜의 한 페이지를 읽는 데는 1분이면 족하다. 그러나 읽는 순간 삶을 근본적으로 돌이키게 된다면 그때의 1분은 아주 길고 풍요로워진다. 짧게 읽고 오래 생각하는 것, 이것이 『1분의 지혜』를 통해 '영성지능(SQ)'을 높여가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

 

모든 삶, 모든 사람, 모든 생물, 모든 종교를 따뜻하게 포용하는 목사님의 삶의 태도가 책 안에 그대로 녹아 있다. 당신은 이 책을 통해 당신의 인생을 사랑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타인의 삶,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삶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안에 갇혀서 하루하루 상처받고 사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크나큰 선물이다. 방상복 신부님(안성 유무상통마을)

 

고진하

고진하는 원주 치악산 기슭에 둥지를 틀고 그 산빛의 다채로운 변화를 즐기며 한가로이 살고 있다. 물소리 듣는 것도 좋아해 매일 개울가로 나가 방죽을 걷는다. 요가를 하는 아내와 아침 저녁으로 몸을 다스리고, 틈틈이 붓장난질도 하고, 금년에 들어서는 가까운 후배들과 『노자』를 비롯한 동양 경전들을 읽고 있다. 모처럼 지난겨울에는 인도 · 네팔 여행을 다녀왔는데, 옛 사원들을 순례하는 중에 그 울타리 안에 사람을 가두지 않는 그들 종교의 열린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인도 종교와 철학쪽으로도 마음공부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주로 강원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그는 1987년 『세계의 문학』에서 시인으로 데뷔했으며, 감리교신학대학과 동대학원을 나와 여러 곳에서 목회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가 지은 책으로는 시집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얼음수도원』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나무신부님과 누에성자』, 『내 영혼의 웰빙』 등과 여러 권의 번역서도 있다. 1997년에는 김달진문학상을, 2003년에는 강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생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을 여윈 순결한 사랑이

아침 노을처럼 곱게 피어오를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지니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온몸을 감쌀 때,

 

그대의 길을 떠나라.

 

「상쾌해진 뒤에 떠나라」(부분) 고진하

 

차례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고진하

 

1 생의 진미를 체험하라

여행자 / 꽉 찬 삶 / 항아리 속의 달 / 정말로 살기 시작한 것은 / 콩 서 말은 콩이 몇 개일까? / 머슴 / 생의 진미(眞味)를 체험하라 / 장식이 필요한 이유 / 머저리 / 화사한 사월이 있거늘 / 왕과 악사 / 생일 파티 / 무희 / 저 파란 새 좀 봐 / 정신병자 / 보물 / 팔방미인 / 자궁 속의 대화 / 비난 / 당신 생의 전부를 걸라 / 구걸자 / 포대화상 / 영성(靈性), 내맡기는 것 / 영감만 기다리면 영감이 된다 / 어디로 갔지? / 향기의 원천 / 인생을 가볍게 사는 방식 / 아침 산책

 

2 스승을 어디서 찾을까요?

모월산 / 거북의 등딱지가 갈라진 이유 / 바보의 조롱박 / 스승을 어디서 찾을까요? / 누렁이 / 날 찌르느라 얼마나 힘들었느냐? / 가장 비싼 것 / 참 도인 / 그림자 잡기 / 겁(劫), 겁나게 긴 시간 / 스승 / 목검과 진검 / 생명의 확률 / 아기의 숨쉬기 / 너는 무슨 경전이냐? / 빼어난 길 / 짚신 세 벌 / 개 이빨에서 광채가 / 할아버지의 긴 수염 / 신의 빛깔 / 보물 창고에 갇힌 죄수 / 행복의 비밀 / 어흥 / 나는 고요한 호수 / 나는 너를 업고 걸었다 / 덫에 앉지 마라 / 사과나무가 나의 스승

 

3 머리가 가슴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내 마음이 먼저 다다랐다오 / 그대는 단지 화장품을 사랑했는가? / 마음의 요정 / 팝콘과 병아리 / 자네 헌법을 아나? / 머리가 가슴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 삶의 잣대 / 신의 놀이마당 / 새의 자격증명서 / 그대의 영혼을 공테이프처럼 / 고놈, 이빨 하나는 희구나 / 은자(隱者)의 눈물 / 가장 좋은 말 / 잠재력 일깨우기 / 영적인 사랑 / 살찐 여우와 사자 / 쌀 십만 톨 / 여자의 뼈 / 들을 귀를 가진 식물 / 오르막길, 내리막길 / 꿀잠 / 눈먼 성자 / 공생 / 무지개빛 까마귀 / 살아 있는 부처 / 나무들의 결혼 / 맞절 / 붕대 / 얼간이 제자

 

4 신들의 손톱으로 판 호수

호랑이의 줄무늬는 바깥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 나는 생명을 나르는 수레 / 왕도(王道) / 쇼크사 / 꿀벌 / 신들의 손톱으로 판 호수 / 황금 자루 / 바른 믿음의 궁수 / 시래기 잎 하나 / 과시 / 달팽이와 기차 / 무덤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 / 당나귀를 위한 순교 / 신의 분배 방식 / 황금보다 물을 / 조상(彫像) / 그대 영혼의 수심(水深)은? / 널빤지 / 옷을 지키는 사람 / 계도(戒刀) / 달빛 빗장 / 살아 있는 시신 / 어떤 인터뷰 / 옷도 주인을 알아보거늘 / 탐욕의 집 / 가장 훌륭한 설교 / 신이 맡기신 보석 / 암9癌)도 내 몸일세

 

생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을 여윈 순결한 사랑이

아침 노을처럼 곱게 피어오를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지니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온몸을 감쌀 때,

 

그대의 길을 떠나라.

 

- 고진하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부분

 

삼가 모든 어머니 앞에 머리를 숙이자.

어머니는 모세를 낳았고,

마호메트를 낳았으며,

예수를 낳았다.

지칠 줄 모르고 위대한 인물을 이 세상에 낳아 준

어머니에게 머리를 숙이자.

위대한 인물은 모두 어머니의 자식이며,

그 젖을 먹고 자랐다.

- 막심 고리끼

 

빠름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곳에서

느림은 경시된다.

속도는 창조력이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회를 파괴하는 폭력이 된다.

우리 사회에 점점 가속이 붙으면서

세심함, 부드러움, 사려 깊음, 생각,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 칼 하인츠 가이슬러의 「시간」에서

 

누가 세상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동시에 제 영혼을 잘 간수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 지혜자는 이렇게 가르친다.

젊은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기뻐하여

네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감각이 바라는 바를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느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리라는 것을 기억하라.

- 전도서 11:9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고요한 호수.

충실하게 하늘을

비춰 주는.

보아라, 내 가슴에

떠 있는 둥근 달,

보살의 환한 보름달.

숨을 내쉬면서

내 마음 거울로

세상을 옹글게 비춰 준다.

- 틱낫한의 시 「호흡」에서

 

그대의 머리가

그대의 가슴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 영화 「아이큐」에서

 

전쟁에서 수천 명의 적과 싸워 이기는 자보다

자신을 이기는 자가

용감한 전사 가운데 최고의 전사이다.

- 「법구경」에서

 

小人閑閑(소인한한)

大人閒閒(대인한한)

 

하늘땅은 나와 같은 뿌리이며[天地與我同根]

우주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다[萬物與我一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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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30. 12:58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7 조선 선비 살해사건

 

이덕일 지음

2006, 다산초당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1359

 

911.05

이24조 1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4대 사화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역사 드라마.

그동안 몰랐던 4대 사화를 둘러싼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과 반목을

손에 땀이 날만큼 생동감 있고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그만두어라. 어찌 나 혼자 살자고 상왕 전하와 동지들을 배신하겠는가."

_박팽년이 회유하는 세조에게 전한 말

 

"나리가 나라를 도둑질하여 빼앗지 않았소. 나 삼문은 남의 신하가 되어 차마 군부가 폐출당하는 것을 볼 수 없어 상왕 전하를 다시 복위시키려 한 것이오. 나리가 평일에 자신을 곧잘 주공에 비유했는데 주공이 어린 조카의 왕위를 뺏은 적이 있었소? 내가 이 일을 한 것은 하늘에는 두 해가 있을 수 없고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오. 나는 상왕 전하의 신하이지 나리의 신하가 아니오."

_국청에 나간 성삼문이 남긴 말

 

둥둥 치는 저 북소리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네 /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해는 이미 기울었네 / 황천길에는 주막 하나 없다 하니 / 오늘밤에는 누구의 집에서 잘꼬

_성삼문이 형장으로 향하면서 읊은 시

 

임이 주신 밥 먹고 옷을 입었으니 / 일평생 그 마음을 어길 수 있으랴 / 한 번 죽음이 충의인 줄 나는 아네 / 현릉의 소나무 잣나무가 꿈속에 아른아른거리누나

_성승의 절명시

 

우 임금 솥처럼 정사가 무거울 때는 삶 또한 크지만 / 기러기 털처럼 가벼울 때는 죽음 또한 영화로세 / 새벽도 덜 깼는데 문 밖에 나서니 / 현릉 송백만이 꿈속에도 푸르구나

-이개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시

 

이덕일

숭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동북항일연군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객관적이고 풍부한 사료와 흡인력있는 문체를 토대로 대중역사서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그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저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 있다.

한국사의 디양한 쟁점을 소재로 한 저서들 중 특히 《조선 왕 독살사건》은 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소현세자 등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독살설에 휘말린 조선 왕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역사서 붐을 일으켰다. 역사의 이면을 넘어 그 의미까지도 생각하게 해준 《조선 왕 독살 사건》은 역사저술가로서의 그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킨 역작이다. 그 외 조선 당쟁사의 심장부를 다룬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사도세자의 고백》,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의미를 보여준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비롯하여 불운한 천재나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인물들을 복원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이덕일의 여인열전》, 《조선 최대의 갑부 역관》, 《장군과 제왕》등의 저서가 있다.

 

1권 주요 등장인물_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온건개혁파의 영수. 고려 말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으로 불렸던 성리학자. 공민왕 때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고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성리학 발전에 공이 있었다. 이성계가 즉위한 후 한산백韓山伯으로 봉하며 출사를 종용했으나 끝내 거절해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켰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온건개혁파 신흥사대부의 영수. 공민왕 9년(1360)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1362년 예문관 검열수찬으로 관적에 진출했다. 1380년에는 조전원수助戰元帥로 이성계를 도와 전라도 운봉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했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지지했으며 우왕을 축출하고 공양왕을 지지한 공로로 익양군충의군에 봉군되었다. 고려 왕실의 존속을 주장한 그는 역성혁명과 신흥사대부가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이성계를 제거하려다가 이방원의 문객인 조영규 등에게 선죽교에서 살해되었다. 태종 5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42~1398

조선 개창을 주창한 개혁사상가이자 혁명가.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진출했으나 배원친명정책을 주장하다가 친원파에 의해 유배되었다.

약 8년에 걸친 귀양 및 유랑생활 후 스스로 이성계를 찾아가 그의 참모가 되었다. 이성계에게 새 왕조 개창의 당위성을 주장했으며 위화도회군 이후 실권을 장악했다. 권문세족의 토지 몰수와 농민에 대한 토지 분배를 주장했으나 보수파의 반발에 밀려 신흥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과전법을 시행하는 데 머물렀다. 개국 일등공신으로서 그는 불교를 비판하고 성리학을 새로운 사회 지도 이념으로 내세우려 했다. 명나라의 부당한 간섭에 반발해 요동정벌을 추진하면서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인 방석의 왕위계승을 지지하다가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인 방원에게 살해되었다.

 

우재吁齋 조준趙浚 1346~1405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조인규의 후손으로, 권문세족이었으나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지지했다. 위화도회군 이후 대사헌으로 문란한 토지제도의 개편을 주장했다. 공양왕 3년(1391)에 정도전과 함께 사전개혁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과전법을 단행함으로써 신흥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다. 조선 개국 일등공신에 책봉된 후 왕위계승문제와 요동정벌문제에서 정도전에 반대하고 이방원을 지지했다. 태종 즉위 후 영의정부사에 올랐다.

 

박포朴苞 ?~1400

조선 개국 후 제1차 왕자의 난 때 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으나 정사공신 이등에 봉해지자 불만을 품었다. 태조의 4남 방간과 함께 방원을 제거하려고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패배하여 참수되었다.

 

하륜河崙 1347~1416

공민왕 때 벼슬길에 올라 1388년 최영이 요동을 공격할 때 이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으나 위화도회군 이후 복관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후 명나라와 표전문 시비가 일자 명나라의 요구대로 정도전을 보내자고 주장해 이후 정도전의 미움을 받아 좌천되기도 했다. 방원을 적극 지지해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사공신 일등이 되고,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 일등이 되었다. 그뒤 영의정부사 · 좌정승 · 좌의정을 역임했는데, 인사 청탁을 많이 받고 고양포高陽浦의 간척지를 착복해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나 공신이라 하여 묵인되었다.

 

심온沈溫 1375~1418

세종의 비 소헌왕후 심씨의 아버지. 문과에 급제해 대사헌,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후 태종이 상왕으로 있던 세종 즉위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을 때 강상인의 옥사에 연루되어 태종에 의해 사형되었다. 세종의 친정 이후인 1426년에 관작에 복구되었다.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 1365~1420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 제1차 왕자의 난 때 남편 방원을 도운 공이 컸다. 1400년 11월에 방원이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즉위 초부터 후궁문제로 태종과 불화를 빚었으며, 동생인 민무구 형제의 옥사를 계기로 태종과의 관계가 더욱 심각해졌다. 민무구 형제가 끝내 대역죄로 몰려 죽게 된 것은 원경왕후의 지나친 투기와 불평 때문이기도 했다. 그뒤로도 자주 불손한 말을 함으로써 태종의 분노를 사 폐비될 뻔하기도 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해 후덕왕대비로 봉해졌다.

 

민씨閔氏 형제

태종비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인 무질 · 무구 · 무휼 · 무희를 이른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대장군과 장군으로서 매형인 방원을 도와 방석을 지지하는 정도전 세력을 거세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방원이 즉위한 후 외척의 발호를 경계하여 4형제를 모두 사사했다. 원경왕후도 폐비될 뻔했으나 세자 양녕과 충녕 등의 친어머니인 점이 감안되어 무사했다.

 

이숙번李叔蕃 1373~1440

태조 2년(1393) 문과에 급제한 뒤 방원을 도와 사병을 출동시켜 세자 방석과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워 정사공신 이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박포가 방원과 반목하던 방간을 충동하여 거병하자 군사를 동원해 이들을 제거한 공으로 좌명공신 일등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공과 태종의 총애를 믿고 국왕에게 불충하고 동료들에게 무례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대간의 탄핵을 받아 결국 관작을 삭탈당하고 태종 17년(1417)에 경상도 함양으로 유배되었다.

 

절재節齋 김종서金宗瑞 1390~1453

태종 5년(1405)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 정언正言을 역임한 후 세종 15년(1433) 함길도 관찰사로 여진족의 국경 침입을 물리치고 6진을 개척해 국경선을 두만강까지 넓혔다. 병약한 문종의 유명遺命을 받아 정승의 지위로 단종을 보좌했으나, 계유정난 때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영조 22년(1746)에 복관되었다.

 

압구정鴨鷗亭 한명회韓明澮 1415~1487

수양대군의 모사. 단종 1년(1453) 음보蔭補로 태조의 개경 잠저를 지키는 경덕궁직敬德宮直이 되었으며, 현실에 불만을 품고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을 도왔다. 계유정난 때 살생부를 작성해 단종을 보좌하는 구신舊臣들을 살해했다. 정난 후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을 좌절시켰다. 예종비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성종비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아버지이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했으며 권력의 정점에 섰다. 세조가 죽은 뒤 원상院相으로서 서정庶政을 결재하여 왕권을 능가했다. 한강변에 압구정을 지어놓고도 은퇴하지 않는다는 풍자를 받기도 했다.

 

권람權擥 1416~1465

활을 잘 쏘고 문장에 뛰어났으나 일찍이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명산고적을 떠돌며 한명회 등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지으며 회포를 나누었다. 1450년 향시와 회시에 모두 장원급제했다. 《역대병요》를 편찬할 때 수양대군과 가까워졌다. 수양이 동지를 규합할 때 한명회의 부탁을 받고 무사들을 규합해 김종서, 황보인 등 대신들을 제거하고 세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해 정난공신 일등에 책록되었다. 세조를 도와 여러 차례 공을 세운 덕으로 만년에는 높은 지위와 많은 재산을 누렸다.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세종 20년(1438)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에 들어간 후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웠다. 대부분의 집현전 학사들이 수양대군의 즉위에 반대했으나 그는 세조를 지지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후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남이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이 되었다.

 

사육신死六臣

세조 2년(1456), 수양대군에 의해 쫓겨난 단종의 복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사형된 여섯 신하들. 박팽년 · 성삼문 · 유성원 · 유응부 · 이개 · 하위지를 이른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도 사형되었으나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추강 남효온의 《육신전》과 조선 후기 송시열의 《육신사기六臣詞記》등의 영향으로 사육신에서 빠졌다. 이들은 모두 무덤이 없으나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근처를 '사육신묘死六臣墓'라고 부르는 까닭은 정조 6년(1782)에 그곳에 '육신묘비六臣墓碑'를 세웠기 때문이다.

 

생육신生六臣

사육신에 대칭하여 세조 밑에서 벼슬하지 않고 단종에게 절의를 지킨 여섯 신하들. 곧 김시습 · 원호 · 이맹전 · 조려 · 성담수 · 남효온을 이른다. 이들은 세조 즉위 후 관직을 그만두거나 아예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세조의 즉위를 부도덕한 찬탈행위로 규정하고 비난하며 지내다 죽었다. 중종반정 후 사림파가 등장해 사육신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오면서 이들의 절의 또한 새롭게 조명되었다.

 

이시애李施愛 ?~1467

함북 길주의 토호. 전통적으로 북도北道의 수령은 지방 토호가 임명되었는데, 세조가 중앙에서 수령을 파견하고 호패제도를 강화하는 등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자 아우 이시함과 지방세력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기세를 떨쳤으나 귀성군 준과 남이 등이 이끄는 토벌대에게 패배한 후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홍윤성洪允成 1425~1475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 등을 역임하다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가담해 정난공신이 되었다. 이후 예조판서, 우의정 등을 지내면서 공신의 직위를 남용해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예종 즉위 후 좌의정과 영의정을 역임했다.

 

남이南怡 1441~1468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의 손자로서 태종의 외증손이다. 이시애의 난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 1등에 책봉되었고, 세조의 총애를 받아 27세의 나이에 병조판서가 되자 세자인 예종이 그를 꺼렸다. 예종 즉위년에 유자광의 모함으로 강순康純 등과 함께 사형당했다.

 

차  례

 

선비정신의 부활을 꿈꾸며……

1권 주요 등장인물

 

01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정도전과 이성계, 역사를 바꾼 만남

공민왕 시해사건과 명 사신 살해사건

천민마을에서 싹튼 혁명사상

정도전의 승부수

 

02 낡은 세력의 몰락

폐가입진의 논리

최영의 최후

조민수를 제거하라

토지문서를 불사르다

 

03 고려를 구하려는 마지막 몸부림

이성계를 제거하라

동지에서 정적으로

 

04 새 왕조의 개창

이성계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 삼부자의 최후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

 

05 부서진 제국의 꿈

개국공신들의 회맹

사병을 혁파하라

정도전의 위기

중원의 황제를 꿈꾸다

제1차 왕자의 난과 정도전의 죽음

 

06 백주에 벌어진 왕자들의 시가전

갈리는 개국공신들의 운명

형제의 서로 다른 야심

제2차 왕자의 난

개혁은 사라지고……

 

07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의 나날

태종 부부의 동상이몽

태종의 양위 소동

민씨 집안의 비극

사사된 민씨 형제

남은 두 형제마저……

대궐 담을 넘은 세자의 풍류행각

장인은 사사되고 장모는 노비가 되다

 

08 태평성대의 그늘

악법도 법이다?

태종의 최대 치적은 '세종'

조선의 르네상스

 

09 요절한 성군 문종과 비극의 소년왕 단종

병약한 형과 강성한 동생들

재상들의 섭정

풍운아 한명회, 수양대군을 만나다

북경으로 간 수양대군

명분 없는 쿠데타와 살생부

피의 대가

 

10 선비가 사라진 공신들의 나라

바람 앞의 촛불

상왕 복위 계획

영월을 적신 슬픈 노랫소리

자기 정당화를 위한 신화들

끝없는 반란과 옥사

 

01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왕이 말했다.

"내가 내일 창릉昌陵에 배알하고 거짓으로 주정을 부려

홍륜의 무리를 죽여서 입을 막겠다. 너도 이 계획을 알고 있으니,

또한 마땅히 죽음을 면하지 못할 줄 알아라."

만생이 두려워하여 이발 밤에 홍륜, 권진, 홍관, 한안, 노선 등과 모의하고

왕이 술에 몹시 취한 것을 틈타 칼로 찌르고는 부르짖었다.

"적이 밖에서 들어왔다."

_《고려사절요》'공민왕 23년 6월'조

 

▲ 공민왕  충숙왕의 둘째아들로, 원나라에 의해 충정왕이 폐위된 후 왕위에 올랐다. 원나라가 쇠퇴하자 원나라 배척운동을 일으키고, 원에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1365년 부인인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결국 홍륜 · 최만생 등에게 살해되었다. 그림에 뛰어나 고려의 대표적 화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며 글씨에도 능하였다.

▲ 도담 삼봉  정도전은 단양 도담 삼봉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이따금 찾아와서 경치를 구경하고 풍월을 읊었다고 한다.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한 것도 도담 삼봉에 연유한 것이다.

▲ 나옹대사와 무학대사  고려말의 고승이었던 나옹대사(위)와 제자인 무학대사의 모습. 특히 무학대사는 1392년 조선 개국 후 왕사가 되어 조선의 도읍을 정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02

낡은 세력의 몰락

 

조민수는 어찌할 줄 모르고 단기單騎로

태조(이성계)에게 나아가 눈물을 흘리면서

공이 가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고 말했다.

_《고려사절요》

 

공양왕 2년(1390) 9월

기존의 모든 토지문서[公私田籍]를

도성 한복판에 쌓은 후 불을 질렀다.

그 불이 여러 날 동안 탔다.

_《고려사》'석화'조

▲ 위화도  압록강의 하중도河中島로 의주 하류 쪽에서 2km, 신의주에서 상류 쪽 2km 지점에 위치한다. 고려시대에는 대마도大麻島라 하여 국방상 요지였다. 우왕 14년(1388) 5월 요동정벌에 나선 우군도통사 이성계가 이곳에서 회군을 단행함으로써 조선 개국의 계기를 마련했다.

▲ 최영

▲ 최영의 무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신념을 지키며 평생 청렴하게 살았던 최영의 무덤에는 그가 죽기전에 남긴 말처럼 조선왕조 500년간 정말로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 개성 만월대  고려의 궁전터. 중앙에 회경전會慶殿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궁성 동쪽 벽까지 약 135m, 서쪽 벽까지 약 230m이며, 남쪽 벽의 성문인 승평문昇平門까지 약 250m이다. 1361년 모두 불탄 후에 폐허로 남아 있다.

▲ 가을 들판  무신란 이후 고려의 토지제도는 권문세족들의 농장확대와 사원전寺院田의 팽창으로 문란하기 이를데 없었다. 위화도회군 이후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공양왕 2년(1390)에 종래의 공사전적을 모두 불살라버리고 이듬해 새로운 전제의 기준이 되는 과전법을 공포, 새 왕조 개창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03

고려를 구하려는 마지막 몸부림

 

회군한 뒤에……

왕씨를 세우려는 의논을 저해하여

마침내 창昌을 세워서 왕씨를 부흥하지 못하게 한 자가 있으며,

신우辛禑를 맞아다가 길이 왕씨를 끊어버리려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는 난적의 무리로서 왕법王法에 용납되지 못할 바입니다.

_《삼봉집》'공양왕에게 올리는 상소'

▲ 조민수의 묘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을 반대하여 창녕에 유배된 조민수는 창왕의 생일에 특사로 풀려났으나, 우왕의 혈통을 에워싼 논쟁으로 이성계 일파에 대항하다가 서인으로 강등되고, 이듬해 다시 창녕으로 유배, 배소에서 죽었다.

▲ 무열사  조선 정조 21년(1797)에 나주 유림의 발의와 전국 각 향교의 도움으로 건립된 사당으로 통합 삼한 일등공신 무열공 배현경(?~936), 금헌 배정지(1259~1322), 조선개국 일등공신 정절공 배극렴(1335~1401)의 삼위를 모셨다. 전주 나주 소재.

▲ 선죽교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하고 오다가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 의해 숨진 곳. 처음 1216년 이전에 다리를 만들었을 때는 '선지교'라 불렀다가 사건 후 주위에 충절을 뜻하는 대나무가 돋아 '선죽교'라고 불리게 되었다.

 

04

새 왕조의 개창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막는 것이 《춘추春秋》의 의리입니다.

신 등이 지난번에 공양군 삼부자에게 천주天誅를 가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였으니 낭패를 견딜 수 없습니다.

…… 즉시 유사로 하여금 위 사람들과 그 처자, 동생, 조카까지

섬으로 옮겨 사단을 미연에 방비한다면 종사에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_《태조실록》3년 2월 21일

▲ 이성계

▲ 공양왕릉  신종神宗의 7대손으로 이성계에 의해 창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공양왕은 과단성이 없는 성품으로 이성계에게 완전히 실권을 빼앗겼다가, 정몽주가 살해된 후 덕이 없고 어리석다는 이유로 폐위당하였다. 이로써 고려는 34대 475년 만에 망하였다. 공양왕은 폐위된 뒤 원주로 추방되어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에 삼척三陟에서 살해되었다.

▲ 선원록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또는 '선원보략璿源譜略'이라고도 불리는 왕실의 족보.

▲ 공주 동학사 삼은각  원래 이곳은 고려의 유신遺臣 길재가 동학사의 승려 영월影月 · 운선雲禪과 함께 단을 쌓고 고려의 태조, 충정왕, 공민왕의 초혼제를 지낸 곳이다. 그러다 고려의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정종 1년(1399)에 이곳에서 정몽주와 이색의 초혼제를 지내고, 세종 3년(1421)에 유방택柳芳澤의 아들 유백순柳伯淳이 길재를 추가로 모셔 삼은각이라 불리게 되었다.

▲ 정선 칠현사  전오륜全五倫, 김충한金仲漢, 고천우高天祐, 이수생李遂生, 신안申晏, 변귀수邊貴壽, 김위金瑋 등 고려의 일곱 충신이 은거하던 거칠현동 어귀에는 칠현을 기리는 비석과 사당 칠현사七賢祠가 세워져 있다.

 

05

부서진 제국의 꿈

 

태상왕이 종이와 붓을 가져다 조준에게 주며

이방번의 이름을 쓰게 하니, 준이 땅에 엎드려 쓰지 아니하였다.

이리하여, 태상왕이 마침내 강씨의 어린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삼으니,

조준 등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_《태종실록》5년 6월 27일. '영의정부사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준의 졸기'

 

소근 등이 꾸짖어 칼을 버리게 하니,

도전이 칼을 던지고 문 밖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청하건대 죽이지 마시오. 한마디 말하고 죽겠습니다."

소근 등이 끌어내어 정안군의 말 앞으로가니, 도전이 말하였다.

"예전에 공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또한 살려주소서."

_《태조실록》7년 8월 28일

▲ 남재왕지  동생 남은과 함께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남재는 동생과는 달리 평탄하게 영의정까지 지냈다. 이 문서는 태종 15년(1415) 남재에게 '수문전대제학세자시修文殿大提學世子侍'라는 관직을 제수하는 국왕의 명령서로서, 원본은 아니고 나중에 베껴 쓴 것이다.

▲ 개국원종공신녹권  태조 6년(1397) 10월 왕명으로 내린 문서로, 사재부령司宰副令 심지백에게 개국원종공신 3등에 봉하고 내린 녹권이다. 공신은 정공신과 원종공신으로 구분되고 정공신은 1등에서 4등, 원종공신은 1등에서 3등으로 나뉘는데 조선 초기, 정공신에게는 교서와 녹권을 함께 주었으나 원종공신에게는 녹권만 주었다.

▲ 주원장  한반도가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조선왕조가 새로 들어서는 과도기에 있을 때 중국 대륙 역시 이민족이 세운 원왕조가 쇠퇴하고 한족이 세운 명 왕조가 세력을 키워가는 과도기에 있었다. 그림은 빈농 출신으로 각지의 군웅을 굴복시키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모습이다.

▲ 정도전

 

06

백주에 벌어진 왕자들의 시가전

 

방간이 선죽교에서 가조가可祚街에 이르러 군사를 멈추고, 양군이 교전하였다.

방간의 보졸 40여 인은 마정동馬井洞 안에 서고,

기병 20여 인은 전목 동구典牧洞口에서 나왔다.

정안공(방원)의 휘하 목인해睦仁海가 얼굴에 화살을 맞고,

김법생金法生이 화살에 맞아 즉사하였다.

방간의 군사가 다투어 이숙번을 쏘았다.

이숙번이 10여 살을 쏘았으나 모두 맞지 않았다.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다.

_《정종실록》2년 1월 28일

▲ 진양부원군 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 등의 업적을 기록하여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이다. 경남 진주시에 소재한 이 비는 하륜의 아버지인 하윤린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이 비를 세운 이후 왕실주변의 권력층을 중심으로 신도비를 세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게 된다.

▲ 양촌삼대부조묘  고려말, 선초의 학자로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큰 공을 세웠던 권근(1352~1409)의 묘역. 권근의 묘역에는 아들 권제와 손자 권람의 묘도 함께 있는데 권제는 세종대에 집현전 부제학, 대사헌, 한성부윤, 경기도 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지냈고 정인지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권람은 계유정란의 일등공신으로 좌의정까지 지냈다.

 

07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의 나날

 

집안과 나라 다스리는 일을 논한다면

궁궐 가까이에 외척을 들이는 것은 임금의 소견이 좁은 탓이다.

지금 나라가 평안하여 내외에 걱정할 것이 없지만

외척의 폐단을 잊으면 훗날 다시 발생할 것이다.

_태종이 내린 교지

 

"과연 내가 전일에 말한 바와 같이 그 진상이 오늘날에야 나타났구나.

마땅히 대간大姦을 제거하여야 될 것이니, 이를 잘 살펴 문초하라."

_《세종실록》즉위년 11월 23일

▲ 이거이의 묘  이거이는 조선 왕조 건국에 공이 있어 태조 2년(1393)에 우산기상시에 임명되었고, 그 뒤에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정종 2년(1400)에는 사병제도 혁파에 반대하다가 계림부윤으로 좌천되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 직후에 공신이 되었고, 이후에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 태종실록

▲ 숭례문 현판  양녕대군의 글씨. 전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이 현판이 없어져서 다른 현판을 달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써도 현판이 붙어 있지 않아 한동안 남대문에는 현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광해군 때 청파의 배다리란 곳에 있는 웅덩이에서 서기瑞氣가 올라와 물을 퍼내니 밑바닥에 양녕대군이 친히 쓴 숭례문의 현판이 나왔고 이 현판을 남대문에 달았더니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 태실  조선 왕실은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태실도감을 설치하고 명당을 물색하여 태를 묻었다. 경북 성주군의 이 태실은 세종대왕이 적서 18왕자와 단종의 태를 안장한 곳이다.

▲ 창덕궁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 사신 접견 장소로 사용되었고,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때에도 이용되었다. 또한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는 등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에도 왕은 이곳에서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 심온의 사당  심온은 세종의 장인으로 1418년 태종이 선위하여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으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 이때 심온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걱정한 태종과 좌의정 박은의 무고로 귀국 후 사사되었다. 사진은 경기도 소재한 심온의 사당이다.

 

08

태평성대의 그늘

 

"지금 임금이 착하지 못하여서 이와 같은 수령을 임용했다."

_《세종실록》6년 4월 4일

 

"간원들이 이선을 서열이라 하여 과거의 응시를 정지시키라고 주청하였다.

임금의 자손을 서얼이라 일컬어 벼슬길을 닫아 막으려고 하였으니,

그들의 정상과 사유를 추국推鞠하여 아뢰어라."

_《세종실록》14년 4월 4일

▲ 낙천정  태종이 왕위를 물려준 후 수시로 머물던 이궁離宮. 좌의정인 박은이 주역계사周易鷄捨의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를 따서 낙천정이라 이름 붙였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 소재.

▲ 용비어천가

▲ 자격루

▲ 측우기

▲ 앙부일구

▲ 휴대용 앙부일구

▲ 혼천의

태종 최대의 치적은 '세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세종의 업적은 두드러진다. 세종은 유교 정치의 기틀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조선 왕조의 기반을 마련했고 한글 창제를 비롯, 조선 시대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과학 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09

요절한 성군 문종과 비극의 소년왕 단종

 

문종이 승하할 때 세자는 어리고 종실은 강성한 것을 염려하여

황보인皇甫仁 · 김종서에게 특히 명했다. "유명遺命을 받아 어린 임금을 보필하라."

_《야언별집

 

"두루 옛날의 일을 보건대, 국가에 어린 임금이 있으면

반드시 옳지 못한 사람이 정권을 잡았고,

옳지 못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여러 사특한 무리가 그림자처럼 붙어서 불우不虞한 화가 항상 일어났습니다.

그때 충의로운 신하가 있어서 일어나 반정反正을 한 뒤에야

그 어려움이 곧 형통해지니, 이는 천도天道의 자연스러움이라고 하겠습니다."

_《단종실록》1년 3월 21일

《해동명적》에 실려 있는 문종의 글씨

 

10

선비가 사라진 공신들의 나라

 

"사기, 즉 《세조실록》에 말하기를

'노산이 영월에 있다가 금성대군의 옥사를 듣고 자진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여우나 쥐 같은 놈들의 간악하고 아첨하는 불장난이다.

도대체 훗날 실록을 편찬한 자들은 모두 당시에 세조를 좇던 무리들 아닌가."

_《음애일기

 

▲ 경복궁 전경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 경복궁 수정전  경회루 남쪽에 자리한 수정전은 국왕이 일상적으로 기거하는 곳, 혹은 편전 등의 용도로 쓰였던 건물이다. 세종 때는 집현전을 설치하여 세종 28년(1446) 9월 이곳에서 훈민정음이 창제되기도 했다.

▲ 오공신회맹축  세조 2년(1456)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한 후 세조는 민심을 다잡기 위해 개국 · 정사 · 좌명 · 정난 · 좌익공신 등 개국 이래 모든 공신들을 소집하여 회맹고유문을 작성하고 양녕 · 효령 · 임영 · 영응대군 등 종친을 비롯, 정인지 · 신숙주 · 권람 등 모두 157명의 서명을 받아 오공신회맹축을 완성했다.

▲ 청령포  영월 8경의 하나로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유배되었다. 단종은 동 · 북 · 서쪽이 깊은 물로 막히고 남쪽은 육륙봉의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는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한 바 있다.

▲ 자규루(매죽루)  단종이 영월에 유배된 그해 여름에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 일대가 침수되자 단종은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기고 자규루子規樓에 올라 시를 읊으며 한을 달래다 같은 해 10월 눈을 감았다.

▲ 금성대군의 금성단(단소)  단소는 시신 없는 무덤이나 죽은 자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 금성단은 숙종 45년(1719)에 설치되었다. 경북 영주 소재.

▲ 호패  지금의 신분증명서와 같은 것이다. 그 기원은 원元나라로 태종 13년(1413)에 처음 전국적으로 시행되어 호적법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목적은 호구戶口를 명백히 하여 민정民丁의 수를 파악하고, 계급을 분명히 하는 한편,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 남이

 

 

posted by 황영찬
2012. 11. 29. 12:46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6 풍수지리(집과 마을)

글, 사진 / 김광언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96

 

082

빛12ㄷ 140

 

빛깔있는 책들 140

 

김광언-------------------------------------------------------------------------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와 문리대 고고인류학과를 거쳐 일본 동경대학 대학원 사회학 연구과(문화인류학 전공)를 졸업했다. 전북대 조교수와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하대 교수 및 박물관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농기구「정읍 김씨집」「한국의 옛집「한국의 민속놀이」「한국농기구고」(출판문화상 저작상 수상)「한국의 주거민속지」「민속놀이」등이 있다.

 

|차례|

 

앞글

풍수(風水)란 무엇인가

풍수설의 흐름

집터와 마을터 풍수

    전국의 형국

    형국에 따른 비율

    지역적 차이

형국의 뜻과 사람의 생각

    동물형

    물질형

    식물형

    인물형

    문자형

뒷글

참고 문헌

 

▲ 충북 보은 선씨 집 솟을대문채와 조산  조산이 집을 감싸듯 지켜서 있다.

▲ 도선 국사의 화상  선종과 풍수는 수행방법이 비슷하고 직관을 우선하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도선 국사의 풍수설은 신라 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 도선 국사 신도비  현재 전남 영암군 도갑사에 보존되어 있다.

▲ 동대문  도성의 허술한 동쪽을 도우려고 "흥인지문(興仁之門)"의 넉 자를 쓴 현판을 걸었다. 또한 앞에 옹성을 쌓았기 때문에 문이 보이지 않는다.

▲ 광화문 앞의 해태상

▲ 거북 모양의 맷돌  거북 모양으로 깎은 맷돌.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유씨 집.

 

 

 

 

 

 

 

 

 

 

 

 

 

 

 

 

 

 

 

 

 

 

 

 

 

 

 

 

 

 

 

 

 

 

 

 

 

posted by 황영찬
2012. 11. 29. 11:42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165 사진 입문

 

글, 사진 / 홍순태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995

 

082

빛12ㄷ 139

 

빛깔있는 책들 139

 

홍순태-------------------------------------------------------------------------

1934년 서울 태생으로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국전 초대작가이며, 덕성여대, 성신여대, 홍익대 강사, 『사진예술』지 편집주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사진가, Expo70 한국관 사진담당을 지냈다. 1976년부터 지금까지 개인전과 그룹전을 20여회 가졌으며, 현재 신구전문대학 사진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아메리카』『풍경사진』『현대사진의 조류』『현대 일본사진가』『사진예술론』『티베트』『사진 입문』등이 있다.

 

|차례|

 

카메라의 종류와 선택

렌즈의 종류와 성능

필터의 종류와 성능

필름의 종류와 성능

사진의 창작법

시각 훈련

사진의 구도

채광(lighting)

풍경 사진

인물 사진

현대 사진의 방향

 

▼ 거리 연동계 카메라(range finder camera)

 Nikon RD2

Leica M6

▼ 일안 카메라(single lens reflex camera)

Nikon F4 AF

Leica R4

Nikon E3

Nikon F-801 AF

▼ 중형카메라

Rolleiflex SL 66

Mamiya RB 67

Hasselblad 205 TCC

▼ 특수 카메라 및 대형 카메라

Nikonos-v(수중 카메라)

린호프 마스타테크니카 4×5(대형 카메라)

Fujica GS 617(파노라마 카메라)

Sinar f2 4×5(대형 카메라)

▼ 렌즈의 종류

AI Nikkor 55mm F1.2S

AI Nikkor 28mm F2S

AI Nikkor 20mm F2.8

AI Nikkor 20mm F3.5S

Nikkor 135mm F2.8S

Nikkor 135mm F3.5S

Nikkor ED 180mm F2.8S

Nikkor 200mm F4S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