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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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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30. 14:0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22 셰익스피어 - 비극의 연금술사

 

프랑수아 라로크 지음 | 이종인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28

 

082

시156ㅅ  23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3

 

Shakespeare, Comme il vous plaira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은 여왕을

정점으로 하여 궁신, 군인, 탐험가, 시인, 학자들이

모두 제몫을 해준 한 판의 멋진 가장행렬이었다.

이 융성한 시대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한 극작가의 손끝에 의해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이 극작가는 런던으로 진출하여 당시 흥성하던

연극계에서 출세를 했고 영문학사상 불멸의

금자탑이 된 걸작들을 남겼다.

 

"대사는 나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해야 돼.

여느 배우들처럼 큰 소리로 그저 대사만

주워섬기는 거라면 거리의 방물장사를 불러다가

시키는 게 낫지. ……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은

연극의 본질을 벗어나는 일이니까.

연극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뭐라고 할까.

자연에다 거울을 비추는 거야.

선은 선, 악은 악, 있는 그대로를 비춰 내며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지."

 

차례

 

제1장 스트래트퍼드 어펀 에이븐

제2장 런던

제3장 연극의 세계

제4장 엘리자베스 1세, 신화와 과대선전

제5장 새로운 세계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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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라로크 Francois Laroque

현재 파리 소르본 대학 영문학 교수인 프랑수아 라로크는 셰익스피어가 전공이다. 그는 프랑스 몽펠리에에 위치한 폴 발레리 대학 부설 '엘리자베스 시대 연구소'의 정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풍습 및 민속에 대하여 여러 편의 무게 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의 축제의 세계 : 엘리자베스 시대의 계절적 오락행사와 연극무대>가 있고, <영문학선집>을 공동으로 편찬했다.

 

옮긴이 : 이종인

1954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브리태니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절망이 아닌 선택> <증발> <때로는 낯선 타인처럼> <문자의 역사> 등이 있다.

 

제1장

스트래트퍼드 어펀 에이븐

 

셰익스피어는 전세계적으로 천재라고 인정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어디서나 읽히고 공연된다. 그러나 장갑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남들보다 많은 교육을 받은 편이 아니엇다. 주변 세계에 강렬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셰익스피어는 나중에 희곡을 쓸 때 어릴 적부터 기억하고 있던 장면을 많이 이용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는 시골의 풍습과 미신, 시장, 대중적 오락행사 등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은 왕과 귀족들의 이야기만큼 드라마의 소중한 재료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화가 데이비드 빙크분스가 그린 <마을 장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연극은 16세기의 대중오락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세례받은 사실을 기록한 날짜와 몇 마디의 말. 그가 실존인물이라는 기본적인 증거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극에서 학교선생을 웃기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휴 에번스라는 선생이 윌리엄 페이지라는 소년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다음 대화를 한번 보라.

"에번스 : 라틴어 라피스는 무슨 뜻이지, 윌리엄?

윌리엄 : 둘이라는 뜻입니다.

에번스 : 그럼 둘은 뭐지, 윌리엄?

윌리엄 : 자갈입니다.

에번스 : 아니, 라피스지. 그걸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란 말이야."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4막 1장)

엘리자베스 시대의 학교를 그린 이 그림에서, 선생은 지나치게 크게 그려져 있고, 반면 학생은 작게 스려져 있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것은 당시의 선생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가를 반증한다.

 1607년에 발간된 라틴어 입문서 속표지에 나온 일곱 사람은 일곱 개 문과과목을 상징한다.


"갈라진 혓바닥에 점이 박인 배암들아, 가시 돋친 고슴도치, 도룡뇽이나 도마뱀도 물러가거라. 요정여왕 주무신자."

《한여름밤의 꿈》, 2막 2장


뱅코의 망령이 나타날까 두려워하는 맥베스는 그 망령에게 나올테면 나오라고 도전한다. 바로 그 대사에 당시의 그림에 나와 있는 뿔 달린 물소도 거명된다. "험악한 러시아 곰이건, 뿔 달린 물소건, 허케이니어의 호랑이건, 무엇이든지 나오너라."

(《맥베스》, 3막 5장)


셰익스피어의 극 중에는 180가지의 서로 다른 동물들 - 실존하는 혹은 상상 속의 - 이 3,000번 정도 언급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가 등장시킨 전설적인 동물들은 동물우화집이나 전설에서 직접 나온 것이다. 여기에 나온 동물들은 에드워드 톱셀의 논문 <뱀의 역사>(1608)와 <네발 달린 동물의 역사>(1607)에서 나온 것이다. 바다뱀(가운데)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항해자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존재였다. 히드라(아래)는 《코리올레이너스》에서 다양성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가이 마천트의 그림은 《목자의 달력과 퇴비》라는 책자에서 나왔는데, 행성이 인체 각 부위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있다. 해골의 다리 사이에 그려져 있는 바보는 15세기 도덕극을 지칭한다.

리치먼드 근처의 템스 강변에 모여 선 모리스 춤꾼들.

1591년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을 위해 수상 스포츠를 개최한 허트퍼트 백작을 방문했다. 백작은 엘리자베스 1세에 즐겨 비견되던 달의 여신 다이애나를 상징하는 초생달 모양으로 연못을 특별히 축조하여 거기서 수상 스포츠를 열었다. 그림은 여왕이 신하들에 둘러싸여 수상 스포츠를 구경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스트래트퍼드의 길드 제품 교회에 있는 최후의 심판 그림에는 악마가 타락한 자들을 지옥에 처넣는 장면이 등장한다. 종교개혁시대에는 이 그림이 독실한 신자에게는 오히려 해롭다고 판단해 하얗게 지웠다 한다.(이 수채화는 1807년 당시에 남아 있던 그림을 보고 다시 그린 것이다.)

겨울은 향연과 실내오락의 계절이었다. 이 17세기 수채화는 식사(위)와 카드놀이(가운데)를 보여 주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배우나 바보들이 귀족의 저택에서 즉흥공연을 해 보였다. 주로 간단한 즉흥극이나 아침연주 같은 것이었다. 가면을 쓴 배우(아래)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작 부분, 즉 로미오와 머쿠쇼,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변장을 하고 캐풀릿의 무도회에 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오늘 밤 우리 집에서는, 전부터 노상해오던 연회를 열기때문에 친한 손님을 많이 청해 놓았소. 집은 누추하지만, 어둔 밤을 빛내는, 기라성 같은 여인들을 많이 볼 거요. (로미오, 머쿠쇼, 벤볼리오와 또 다른 대여섯 명의 가면 무도자 등장.)"(《로미오와 줄리엣》, 1막 2~4장)

시가행렬

중세 런던 거리에서 즐겨 벌어진 화려한 민간행렬은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종교개혁 이전에 종교적 목적을 위해 자주 벌어진 '화려한 행렬'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시가행렬은 4월 23일 성 조지의 축일, 6월 24일 성 요한의 축일, 그리고 10월 29일 시장의 날 등에 실시되었다. 기괴한 모습을 한 행렬이 시가를 걸어 내려가면 단봉낙타, 일각수, 용 따위 전설적인 동물들이 수레를 끌고, 배우나 천사로 분장한 아이들은 수레 위에서 연극을 했다. 행렬을 이끌고 가는 인솔자는 전통적으로 야만인으로 분장하여 횃불이나 화인(火印)을 들고 있었다. 그것은 군중들 사이로 길을 내기 위한 소도구였다. 이런 시가행렬은 처음으로 조직한 것은 길드였는데, 그들은 이 기회를 통해 자신들의 부와 권세를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극작가가 이 행사를 주관했다. 1615년에 제작된 이 그림은 데니스 반 아스루트의 작품인데 이사벨라 여왕(1566~1633)의 브뤼셀 입성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이사벨라는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총독인 앨버트와 결혼했다.)

헨리 언턴 경의 화려한 기억

1596년에 무명씨가 그린 이 그림은 외교관이었던 헨리 언턴 경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그림은 언턴의 집에서 벌어진 가면극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 속에서 행렬은 나선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 그룹으로 나뉜 여자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그들은 손에 사냥꾼의 활과 꽃을 쥐고 있다. 가운데에는 서너 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있다. 그들 위에는 날개 달린 머큐리가 다이애나 옆에 서 있다. 여신은 달 모양의 머리 장식을 하고 손에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있다. 열 명의 큐피드 - 다섯 명은 까만데 이것은 낮과 밤의 풍유이다 - 는 횃불을 들고 신비한 빛을 던져 주고 있다. 나머지 그림들은 언턴의 출생과 활동, 장례식과 무덤을 그리고 있다.

16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요리스 후프나헬의 작품은 결혼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야 할 인생의 가장 중요한 행사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이 1639년 그림에서 보이는 요정은 퍽으로도 알려져 있는 로빈 굿펠로를 그리고 있다. 요정은 친구들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가운데 춤을 춘다. 그는 양성(兩性)의 모습과 악마적 성격을 가진 목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청교도들은 켈트의 전설에 나오는 이런 존재들을 악마의 화신이라고 보았다.

 

 

모리스 춤꾼을 그린 이 그림은 18세기에 출간된 셰익스피어 전집 속표지에 수록되었다.

 

유랑극단이 마련한 무대를 그린 그림. 몇몇 특권층 사람들만이 가까운 술집 창문에서 연극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것은 16세기에 피터 브뢰겔이 성 조지 축일의 축제를 그린 것이다. 조잡하게 가설된 무대는 셰익스피어의 어린 시절 스트래트퍼드에 설치된 무대와 유사하다.

 

토머스 키드의 희곡 《스페인의 비극》(그림은 그 표지이다)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늙은 히에로니모가 자신의 아들이 정원으로 나 있는 창문에 목을 매달고 죽은 것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철저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히에로니모는 범인을 죽이기 위해 연극 중에서 연극을 한다. 미친척하는 것이다. 이 연극은 인기를 끌었고 셰익스피어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와 《햄릿》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엘리자베스 풍의 보닛과 목도리를 한 여자를 그린 것인데 앤 해서웨이(셰익스피어의 아내)일 것으로 추측된다.

제2장
런던

1592년, 셰익스피어는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수도의 매력적인 모습에 사로잡혔다. 헨리 8세 치세기(1509~1547)에는 인구가 5만밖에 되지 않던 작은 도시 런던은 농촌 인구의 끊임없는 유입으로, 엘리자베스 1세 치세기(1558~1603)에 인구 20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인구가 넘쳐나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런던이었지만, 그곳에는 다양한 활동과 볼거리. 그리고 연극이 있었다.

일요일이면 대중은 성 바오로 대성당에 모여 설교를 들었다. 무명씨의 1616년 그림(아래)은 성당에 모인 대중을 묘사했다. 1572년에 나온 런던 시가도(위)를 확대한 이 지도는 주요 도로들이 가로지르는 건물 밀집 지대와 도시 외곽의 공한지와 정원을 보여 주고 있다.

템스강의 남쪽 둑은 1588년에는 대부분 공한지였다. 그 무렵 그려진 이 수채화는 뱅크사이드의 우범지대와 동물격투장을 보여 준다. 로즈 극장과 글로브 극장은 이 격투장 옆에 세워졌다. 북쪽 둑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벽으로 둘러싸인 런던탑, 런던 브리지, 성 바오로 대성당의 옆모습이 보인다. 서쪽으로 더 가면 귀족들의 저택이 나오고 이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등장한다. 맨 왼쪽에 첨탑이 보이는 곳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1620년에 제작된 플랑드르파의 그림. 그리니치에서 런던 쪽을 바라본 것이기 때문에 런던은 '개들의 섬' 너머로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런던시 성문을 나서면 바로 전원지대가 이어졌고 시내에도 곳곳에 공원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흑사병의 창궐을 막을 수는 없었다. 피를 빼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었고 로즈마리 꽃을 귀와 코에다 꽂았을 정도였다. 흑사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 집은 판자로 둘러막고 붉은 십자가 표시를 했다. 그리고 그 집의 다른 가족들 또한 감염되지 않아도 외부세계와 격리되어야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존 신부는 줄리엣이 죽은 척하는 사연을 알리는 편지를 로미오에게 전하려 하나 실패한다. 만추아의 검역관이 흑사병에 걸렸는지 의심했기 때문이다. "검역관이, 우리 두 사람이 그 전염병 환자 집에 같이 있었다고 의심을 해서, 문을 봉하고 우릴 밖에 내놓지 않아서, 그만 급한 만추어 행도 못하고 거기 머물렀어요." (5막 2장)

대역죄인들은 런던탑에 투옥되었다. 암울한 역사를 지닌 이 거대한 성채 그림은 웬세슬라우스 홀라의 17세기 작품이다. 《리처드 3세》에서 형인 에드워드 4세는 클라렌스 공작을 런던탑으로 보낸다. 여기서 에드워드 4세의 또 다른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후의 리처드 3세)은 사람을 시켜 클라렌스를 죽인다. 글로스터 공은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에드워드 4세의 아들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글로스터 공은 황태자에게 "왕이 되실 몸이니 2~3일 런던탑에 쉬셨다가 가시지요."라고 말하는데, 황태자는 "하필이면 런던탑, 거기는 싫소. 그 성은 줄이어스 시저가 지었다면서요?"라고 대꾸한다.(3막 1장). 르네상스 시대의 런던탑에는 왕실동물원이 있었다.

런던 브리지(이 그림은 1615년경 제작)는 한때 템스강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며, 다리 양쪽에 주택과 가계가 죽 늘어서 있었다. 대역죄인의 머리를 잘라 꼬챙이에 꽂아서는 다리 입구 위에 걸어 놓곤 했는데, 이것은 왕권의 엄중함을 시민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그림은 1616년에 제작된 것이다. 1599년 스위스의 여행가 토머스 플라터는 친구들과 함께 런던 브리지로 강을 건넜고 이엉을 엮은 지붕이 있는 건물(글로브 극장)에서 《줄리어스 시저》를 보았다고 여행기에서 썼다.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신문이 없었다.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은 별로 돈을 벌지 못했다. 궁정에서 지원을 받는 것 이외에,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많은 관객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연극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객 동원에 성공한 작품 중의 하나로는 박식한 파우스투스 박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파우스투스 박사는 학문이 지겨워지고 우주의 신비를 알아내고 싶어서 세속적인 권력과 쾌락을 얻는 조건으로 악마에게 자기 영혼을 팔았다.

크리스토퍼 말로의 초상화(위)는 1585년에 제작되었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에 왔을 때 말로의 강력한 대사가 로즈 극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캔터베리 구두수선공의 아들인 말로는 조숙한 천재였는데 스물일곱 살 때 자신의 대표작을 썼다. 국왕이 그를 스파이로 이용했기 때문에 그의 피살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말로의 뒤를 잇는 극작가가 되었다. 《헨리 6세》 3부작은 셰익스피어가 말로의 웅변술에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아래는 셰익스피어의 찬도스 초상화이다.

레이플 홀린셰드의 《연대기》 초판(1577)에 들어 있는 그림에서처럼 죄수의 처형은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죄수는 죽기 전에 대중 앞에서 마지막 유언을 할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와 《리처드 3세》에서 이 유혈낭자한 장면을 등장시켰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대한 흥미는 《루크리스의 능욕》이라는 설화시(1594)의 어두운 주제에서 잘 드러난다.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1594)의 속표지.

이 그림(1595년)은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에 상연된 연극의 한 장면을 그린 그 시절의 그림 중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 중 약 40줄이 담겨 있는 페이지에 나온다. 중앙에 있는 여자는 고트족의 여왕인 타모라인데 타이터스에게 두 아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빌고 있다. 오른쪽에는 무어인 아론이 왼손에 칼을 들고 서 있다. 타이터스와 타모라가 입고 있는 옷은 고증이 제대로 안 된 것 같고 위병들의 복장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것이다.

사우샘턴 백작인 헨리 로트슬리(위)는 흑사병이 창궐해 연극 공연이 중단되었던 시기에 쓴 두 편의 장시를 헌정한 인물이다. 셰익스피어에게 하사된 문장에 관련된 글(아래). 1598년에 작성된 이 글의 뜻은 이렇다. "검은 바탕에 황금의 밭이 있고 멋진 창이 대각선을 그리며 위쪽으로 날아가 은을향한다. 그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편 매가 문장을 지그시 누르며 앉아 있다. 문장 속에 새겨질 글씨는 "Non sanz droict(자격 없이 얻어지지 않는다)."이다.

 

제3장

연극의 세계

 

젠틀맨, 극작가, 배우, 챔벌린 극단의 주주, 셰익스피어는 당시 연극계가 가지고 있던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작품은 다양한 무대, 다양한 등장인물, 각양각색의 관중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글로브 극장을 그린 이 수채화(위)는 1616년에 제작되었다. 극장 정면에는 '온 세상이 무대'라는 라틴어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1659~1665년에 제작된 톰 스켈톤의 초상화(아래)는 알록달록한 색깔이 특징인 바보의 복장을 보여 준다.

동시대의 그림을 보면 셰익스피어 시대의 런던 극장들에 대한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위 그림은 커튼 극장을 그린 것인데 극장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어 연극이 공연중임을 알 수 있다. 시가도는 당시의 여러 극장의 위치를 보여 준다.

조지 셰퍼드가 글로브 극장을 그린 수채화.

당시 인기 있던 오락 '황소 괴롭히기'를 그린 그림.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5막 7장)에서 터사이테스가 패리스와 메넬라우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외친다. "자, 황소! 자, 개! 패리스. 저런, 아, 두 마리 암탉에 맞서는 참새! 앗, 패리스가! 황소가 이길 것 같은데, 뿔을 조심해!"

곰 괴롭히기(아래)는 셰익스피어가 즐겨 쓰는 이미비 중의 하나이다. 이 놀이에서는 링 가운데 설치한 막대에 곰을 묶어 놓고 개에게 공갹하게 한다. 곰은 개를 여러 마리 죽이지만 결국은 개에게 씹혀 죽고 만다. 이 16세기 그림(위)은 곰 괴롭히기 스포츠가 벌어지던 두 운동장을 그리고 있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옥타비우스는 외친다. "우리는 막대에 묶여 있고 수많은 적들이 공격해 오고 있다."(4막 2장) 《맥베스》에서 맥베스가 맬컴의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같은 이미지가 사용된다. "그들은 나를 막대에 묶어 놓았다. 나는 달아날 수가 없고 곰처럼 끝까지 싸워야만 한다."(5막 7장)

스완 극장을 그린 이 그림은 네덜란드 사람 아렌드 반 부셸의 작품이다. 그의 친구인 요하네스 드 위트가 1596년에 스케치한 것을 보고 그린 것이라고 한다. 반 부셸은 이렇게 말했다. "런던의 극장 중에서 가장 크고 멋있는 것은 스완 극장인데 3,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글로브 극장은 훨씬 정교하게 지어진 로즈 극장(그림)보다 더 비좁았다. 이것은 《헨리 5세》의 프롤로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쟁쿠르의 하늘을 뒤흔든 투구의 용사들을 이 목조의 원형 속에 어떻게 몰아넣으리요?"

영국인 의사 로버트 플라드는 기이하고 상상력 넘치는 무대그림을 남겼다. 이 그림은 글로브 극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미지에는 기억을 돕는 무엇이 있다. 무대 쪽으로 열린 다섯 개의 문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의미(작품에 대한)를 나타내는 것 같다. 바닥에 그려진 다섯 개의 원형과 마름모꼴은 더욱 신비롭다.

 

"태어날 때 우리는 도착했음을 운다. 아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리어왕》, 4막 3장

1632년에 발간된 윌리엄 엘러베스터의 희곡 《록사나》의 표지에 그려진 무대.

 

"요컨대 동작을 대사에, 대사를 동작에 맞추라는 것인데, 다만 명심할 것은 자연의 절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거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은 연극의 본질을 벗어나는 일이니까. 연극의 목적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과거나 현재나 뭐라고 할까, 자연에다 거울을 비추는 거야."

《햄릿》, 3막 2장

이 그림은 프랜시스 커크맨이 인기 있는 연극의 희극적인 장면만을 모아 놓은 책인 《기지 모음집》(1673)의 속표지에 수록된 것이다.


《한여름밤의 꿈》에 나오는 희극적인 장면(1막 2장)에서, 아테네의 장인들은 '피라무스와 티스베'의 이야기를 궁중에서 공연하고 싶어 안달이지만 서로 여자 역은 안맡겠다고 주장한다.

"퀸스 : 플루트, 티스베 역을 자네가 맡지?"

플루트 : 티스베는 어떤 역이지? 유랑하는 기사인가?

퀸스 : 피라무스가 사랑한 여자라네.

플루트 : 아니, 여자 역이라고? 난 시키지말게. 난 수염이 나오려고 하니까 말이야."

존 스코토가 1588년경에 그림 그림. 여왕이 좋아했던 광대인 리처드 탈턴이 농부복장을 하고 피리와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광대 윌리엄 캠프는 런던에서 노리치까지 오는 동안 계속 춤추었다(위). 이 그림은 그의 책 《9일 동안의 경이》(1600년)에 나온다. 드루리 부인이 17세기 초에 그린 광대 그림(아래)은 풀무를 가지고 노는 전형적인 광대를 다룬다. 풀무는 라틴어로 follis라고 하는데 시사풍자극 'follies'라는 단어와도 시각적으로 어울린다.


인기 있는 우화(寓畵)

드루리 부인은 서퍽의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 호스테드에서 여러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들은 제프리 휘트니(1586)와 클로드 파라딘(1591)의 우화집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우화는 모두 똑같은 패턴을 따르고 있다. 한 페이지에 그림이 하나 들어 있고 맨 위에는 라틴어 격언이 적혀 있으며, 가운데에는 도덕, 풍자, 수수께끼 등이 담긴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림 밑에는 간단한 논평이 적혀 있다. 드루리 부인의 그림에는 간단한 라틴어가 쓰여 있다. 위의 그림 속에 있는 잠자는 인물은 게으름을 나타내고 있다. 또 《한여름밤의 꿈》에서 당나귀로 바뀐 직조공 보텀을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아래의 그림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24의 중심 은유를 상기시킨다. "내 눈은 화가가 되어 그대의 미모를, 내 가슴의 화판에 옮겨 놓았네. 내 몸은 그 그림의 틀, 최상의 화가의 기술인 원근법을 썼노라."



광기 속의 지혜

휘트니의 우화 중에 <에티오피아인 씻기기>가 있다. 이 우화의 주제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자연이 내려준 피부색을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주제가 위의 드루리 부인의 우화가 드러내려는 것이다.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4막 2장)에서 사악한 무어인 아론은 자기의 피부색을 변호하고 나섰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가 고트족의 여왕인 타모라에게서 낳은 사생아의 피부색을 옹호한다. "석탄과 같은 검은빛이 다른 빛보다도 더 낫다. 검은빛은 다른 빛에 물들지 않는다. 백조의 검은 발은, 대양의 물을 다 퍼부어도 하얘지지 않는다. 비록 끊임없이 발을 씻는다고 해도 그렇다."

고래 때문에 뒤집어지려는 배 그림(가운데)에는 "약속이란 믿을 수 없다."라는 라틴어 격언이 쓰여 있는데 《템페스트》의 첫 머리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에서 안토니오와 밀라노의 궁중신하들은 놀랍게도 거친 파도가 왕의 위엄을 조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노인(아래) 옆에는 "내 지혜로 인하여 나는 어리석어졌노라."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노인은 불모의 황야에 서 있는 리어왕을 연상시킨다.

재능 있는 예술가 리처드 버비지의 자화상. 시어터 극장을 건립한 제임스 버비지의 아들인 그는 챔벌린 극단의 스타급 배우가 되었다. 리처드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을 도맡아서 공연했다. 존 매닝햄은 1602년에 이런 일화를 남겨 놓고 있다. 버비지가 《리처드 3세》를 공연하고 있을 때 연극을 관람한 한 귀부인이 버비지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이것을 엿들은 셰익스피어는 리처드보다 먼저 그 귀부인의 집에 갔다. 마침내 그 부인의 집에 나타난 버비지는 정복왕 윌리엄이 리처드 3세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말을 셰익스피어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동시대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고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육필 원고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프랜시스 미어스의 《팔라디스 타미아》에서 발췌한 문장.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이 읽혀지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상연되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소네트》(1609년 판의 속표지)는 별도의 문제였다. 소네트에 대해서 시인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어쩌면 내가 그대의 묘비를 쓰게끔 오래 살지도 모르고, 어쩌면 내가 흙 속에서 썩고 있을 때 그대 살아 있을 것이라. 어쨌든 그대의 기억은 죽음도 빼앗아 가지 못하리라. 내게 속하는 모든 것이 다 잊혀진다 해도, 그대의 이름은 이 시로 영생하리니, 나는 한번 죽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나지마는……. 그대는 언제나 살리라. 내 붓은 그런 힘이 있나니, 숨결이 약동하는 곳, 사람의 입 속에서."

(《소네트》, 81)

셰익스피어가 출판을 승인한 권위 있는 텍스트인 '굿 쿼르토' 중 한 권의 속표지.

수수께끼 인물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누구였을까? 많은 비평가들은, 1623년 퍼스트 폴리오 판에 수집된 뛰어난 작품들을 쓴 사람과 배우 셰익스피어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다. 어떻게 장갑제작자의 아들이 작품 속에 보이는 뛰어난 고전, 법률, 기술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궁정신하들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었을까? 철학자, 저자, 정치가인 프랜시스 베이컨과 더비 백작, 옥스퍼드 백작, 에섹스 백작 등이 실제의 셰익스피어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추측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추측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에 모아 놓은 초상화는 모두 셰익스피어를 그린 것이다. 첫번째 것이 '플라워' 초상화이고 두번째가 '엘리 팰리스' 초상화, 네번째는 워싱턴 D.C.의 폴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초상화이고, 세번째는 제라드 소스트가 그린 초상화이다.

서적 판매업은 런던의 성 바오로 대성당 주변 지역에서 번성했다. 셰익스피어는 이 지역에서 잠깐 살았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도 살앗다. 책의 초판은 보통 몇백부에 불과했고 《성서》나 종교서적 같은 경우에는 몇천 부까지 찍기도 했다. 서점을 그린 이 그림은 1689년 작품이다.

 

제4장

엘리자베스 1세, 신화와 과대선전

 

신민(臣民)이 자신을 처녀 여왕(Virgin Queen)으로 알아 주기를 바란 엘리자베스 1세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이미지를 이용했다. 여왕은 로마 시대의 달의 여신이며 순결한 사냥꾼인 다이애나에, 정의와 순결의 여신인 아스트라이아에 비유되는 것을 좋아했다. 당대의 모든 작가들이 그랬듯이 셰익스피어도 여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했다.

 1588년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의 명령을 받고 영국 침공을 감행한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대패하고 말았다. 이 역사적 사건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구교 세력을 무찔렀다는 상징으로 작용한다. 위의 그림은 개선군을 격려하기 위해 템스강 하구의 틸버리를 방문하는 여왕을 그리고 있다. 그림 배경에서 불타고 있는 것은 적함들이다. 전사 여왕의 이미지와 대조적으로 작은 초상화(아래)는 우아미를 간직하고 있다.

니콜라스 힐리어드가 제작한 보석의 앞면(위)에는 순결의 상징인 튜더가의 장미가, 뒷면(아래)에는 성스러운 대피소를 뜻하는 노아의 방주가 그려져 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퇴하고 난 뒤 반(反)구교 선전행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여왕은 이때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제로 칭송되었다. 무명씨가 그린 이 '아마다' 초상화(1588년경 제작)에서 여왕은 지구의에 오른손을 얹고 있다. 악마의 세력을 물리친 여왕은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여왕의 초상화

위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화는 치세시에 여왕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무척 화려한 여왕의 옷과 장식품들은 여왕의 미덕과 권세를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여왕이 손에 쥐고 있는 체와 깃털(첫번째, 두번째)과 옷에 장식된 하얀꽃(다섯번째)은 순결의 상징이다. 가슴에 놓인 손과 손에 쥔 무지개(세번째, 네번째)는 여왕의 광휘를 한층 더 빛내 주고 있다. 마커스 기어라어트 2세가 그린 초상화(다섯번째)는 여왕이 헨리 리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왕은 이 초상화에서 지구를 밟고 서 있고 여왕의 발은 리의 저택이 위치한 옥스퍼드셔를 가리키고 있다. 여왕은 치세 초기에 고대신화 속의 여러 인물들과 비견되었다. 무명씨가 그린 다섯번째 그림은 비할 데 없는 권세와 지혜와 아름다움을 지닌 세 여신 엘리자베스가 등장하자 주노, 아테나, 비너스가 무색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잔치와 무용을 좋아하는 활기찬 여왕이었다. 그래서 잔치와 무용은 궁중생활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다. 잔치 장면을 다룬 다룬 이 그림에서 여왕이 가보트(gavotte) 춤을 추고 있다. 《헨리 5세》(3막 5장)에서 영국군의 맹추격을 받아 퇴각하는 프랑스 병사들이 나누는 아니러니컬한 대사를 보면 이 춤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를 살필 수 있다.

"도핀 : 사실이오. 귀부인들이 우리를 비웃겠는걸…….

부르봉 : 우리에게 영국 무용학교에 가서 높이 뛰는 라볼타 춤이니. 속도가 빠른 코란토 춤을 가르치라고 할 겁니다. 우리는 발꿈치에 유일한 특기를 지닌 날쌘 도망꾼이라고 하면서."

갑옷을 입은 서섹스 백작의 초상화는 1593년에 제작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기거하던 궁전 중 이름이 높았던 서리의 논서치궁(요리스 후프나헬 그림)이다. 논서치궁은 1680년에 철거되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정원

엘리자베스 시대의 정원은 엄격한 원칙에 따라 조성되었다. 화단은 네모꼴 혹은 매듭꼴로 만들어졌다. 그 같은 장식적 효과는 17세기 초의 정원 디자인(아래)에 잘 드러나 있다.위의 정원도는 조스 드 몸퍼가 1633년에 그렸다. 화단의 꽃과 야채는 색깔, 꽃피는 시기, 열매 맺는 시기 등을 감안하여 선택되었다. 생울타리는 기하학적 문양이나 동물의 모습을 모형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귀족의 저택 정원에는 미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극 중에는 '닫힌 정원'의 이미지를 즐겨 쓰고 있는데, 특히 《리처드 2세》(3막 4장)에서는 이 정원이 난맥을 이룬 그의 왕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쓰였다. "이렇게 울타리에 둘러싸인 마당 안에서, 뭣 때문에 법이다 형식이다 균형이다 하고 까다로운 걸 지키고, 설계도처럼 우리들의 조건을 구태여 내보일 필요가 뭐 있습니까? 바다에 둘러싸인 정원인 이 나라 전체가, 잡초투성이이고, 제일 고운 꽃들은 숨이 막히고, 과일나무는 손질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고, 생나무 울타리는 다 못 쓰게 되고, 잘 꾸민 화단은 다 볼품도 없이 되고, 좋은 초목이 다 벌레투성이가 된 이때에,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로버트 플라드는 대우주(우주)와 소우주(인체)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심오한 논문을 썼다.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1막 3장)에 나오는 율리시스는 그런 우주관을 갖고 있다. "유성과 지구, 아니 천체 그 자체도, 계급, 선후관계, 위치, 방침, 방향, 사철, 형태, 직권, 습성을 질서 있게 준수하는 법입니다. 오, 모든 고상한 계획으로 이끄는 사다리와도 같은 이 질서가 흔들리면, 일은 글러 버립니다.

여왕의 상징적 영토를 그린 1588년의 그림.

아이작 올리버가 1590년 무렵에 그린 젊은 젠틀맨의 그림은 셰익스피어 극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의 지치고 우울한 모습을 잘 보여 준다. 특히, 《좋으실대로》(4막 1장)에서 제익스가 대표적이다. "내 우울증은 경쟁심에서 오는 학자의 우울증도 아니요. 음악가의 변덕스러운 우울증도 아니며, 벼슬아치의 거만한 우울증, 야심에서 오는 군인의 우울증, 법률가의 교활한 우울증, 아낙네의 까다로운 우울증, 또는 이것들을 다 합친 연인의 우울증도 아니거든, 그것은 여러 가지 물체에서 뽑아 낸 많은 성분이 합성된 특유한 거야. 나는 늘 여행에서 보고 들은 일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데, 그때마다 야릇하게 울적해진단 말이야."

셰익스피어 시대의 의술은 고문이나 별다를 바가 없었다. 배냇점은 악마의 소행이라고 인식되었고, 존 디 같은 학식 높은 점성술가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혼란스러워할 정도였다.

 

제5장

새로운 세계

 

엘리자베스 1세가 죽고 제임스 1세가 뒤를 이었다. 마키아벨리즘이 승리를 거두었고 반대의견은 설땅을 잃고 말았다. 이제 셰익스피어는 더 이상 낙관주의자일 수 없었다. 불안, 불확실성, 환멸이 연극계를 지배했다. 인생은 한낱 가면극에 지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1세의 죽음은 셰익스피어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여왕의 치세 말기에 이미 명성이 확립되어 있던 셰익스피어는 재코비언 시대에도 계속 극을 써 나갔다. 이 그림은 1623년에 발간된 퍼스트 폴리오의 속표지이다.

1567년부터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1세는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가 타의에 밀려 양위하자 1603년에 영국의 왕이 되었다. 이 초상화는 1610년에 존 드 크리츠 1세가 그렸다.

장엄한 행렬이 따르는 가운데 1603년 4월 28일에 여왕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위, 가운데) 군중이 말의 뒤를 좇았고 만장이 하늘 높이 날렸으며 미늘창은 땅을 향했다. 장례식 직후 흑사병이 또다시 런던 지역을 덮쳤다. 제임스 1세(아래)는 1604년이 되어서야 런던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헨리 6세》 제1부 서두에서 베드퍼드 공이 이렇게 외친다. "하늘에 검은 휘장을 쳐서 낮을 밤으로 하여 주시옵소서. 시국의 변을 알리는 혜성이여! 너의 수정 같은 머리털을 공중에 휘둘러 헨리왕의 죽음을 꾀하도록 한 반역의 나쁜 별들을 채찍질해 다오. 성덕이 지극하여 단명하신 헨리 5세 왕이여!" 그의 대사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에서 그대로 읊조린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제임스 1세 치세 초기에 쓴 극들은 회의, 환멸, 심지어 비관주의까지 드러내고 있다. '문제극' 중 하나인 《법에는 법으로》에는 부패한 빈 사회가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이사벨라의 냉정한 미덕은 안젤로의 위선적인 악덕만큼이나 혐오스럽다. 새로운 군주 제임스 1세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작은 비록 막후에서 전체적인 선(善)을 위해 노력하지만 베일에 가려 남아 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퇴락의 과정 속에서도 매혹과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런 느낌이 결국에는 승리하여 두 주인공을 파괴시킨다.

가이 포크스와 그 일당(1625년 그림)

벤 존슨은 자신의 첫 희곡을 셰익스피어 극단에게 주어 상연했는데 그의 명성은 제임스 1세 시대에 들어와 더욱 높아졌다. 왕은 벤 존슨에게 겨울동안 궁중을 즐겁게 하기 위한 가면극의 극본을 의뢰했다. 박식한 고전지식, 시인으로서의 명성, 그리고 경쟁의식이 없었던 셰익스피어와의 친교 등이 원인이 되어 벤 존슨은 저명인사가 되었다. 이 초상화는 에이브러햄 밴 블라이엔바치의 그림을 모방할 것이다.

후에 영국의 국왕 제임스 1세가 되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쓴 《악마학》 논문의 속표지.

벤 존슨은 소도구와 무대장치를 담당한 이니고 존스와 협력하여 약 30편의 가면극을 썼다. 이 화려한 극은 대부분 단발 공연으로 그쳤다. 이니고 존스가 그린 이 두 점의 수채화에서 보이는 화려한 의상은 귀족들, 왕 또는 왕비가 그 비용을 지원했다. 왕과 왕비는 연극에 직접 참가한 적도 있었다. 우아한 의상, 세련된 부대장치, 기발한 기계장치, 그리고 아라베스크(arabesque, 한쪽 발을 뒤로 곧게 뻗고, 한쪽 팔을 앞으로, 다른 팔은 뒤로 뻗치는 자세) 동작과 어우러지는 화려한 빛깔의 전개마저 곁들여져 벤 존슨은 그 가면극을 '궁중의 상형문자'라고 불렀다.

엘리자베스 시대는 위대한 여행가의 시대였다. 월터 롤리 경(위, 1585년경에 니콜라스 힐리어드가 그린 초상화)은 1595년에 버지니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기대하던 황금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미지의 식물이던 담배를 발견했다. 담배는 새로운 악이 되었고 청교도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1608년에는 존 스미스 선장이 체사피크만을 탐험했는데, 그는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를 데리고 귀국했다. 아래 그림은 버지니아를 그린 17세기 지도.

블랙프라이어즈 극장은 런던의 다른 건축물, 즉 미들 템플(위)과 차터하우스(아래)를 닮았다.

그가 속해 있던 극장이 불타 버릴 즈음 셰익스피어는 런던을 떠나 뉴 플레이스로 은퇴했다. 이곳은 그에게 많은 은전을 베풀었던 스트래트퍼드의 휴 클롭턴 경이 전에 살던 집이었다. 이 17세기 그림은 뉴 플레이스 저택이 박공이 다섯 개나 되는 거대한 3층 건물이었음을 증언해 준다.

극적인 장관

19세기 역사화의 전통을 충실하게 지켰던 화가 대니얼 매클리스는 햄릿이 네덜란드 궁정에서 '곤자고의 살해'를 실연하는 그 유명한 장면을 화폭에 옮겼다. 햄릿은 그 연극의 진행과정에서 아버지의 망령이 가르쳐 준 대로 왕을 죽인 범인이 숙부 클로디어스라는 사실이 폭로되기를 바란다. "죄지은 놈이 연극을 보다가, 하도 근사하게 꾸며졌기 때문에 그만 감동되어 제 죄상을 다 털어놓은 일이 있다지, 흔히 있는 이야기, 살인죄는 입이 없어도 스스로 실토하게 마련이거든, 신기한 노릇, 아까 그 배우들을 시켜, 숙부 앞에서 아버님 살해 장면을 연기하게 해야겠다. 그때 눈치를 살펴 급소를 찔러 보는 거야. 그래서 움찔이라도 한다면 더 이상 주저할 것 없지."(《햄릿》, 2막 2장)

셰익스피어는 워윅 변호사 프랜시스 콜린스가 작성한 석 장에 달하는 유언장에 모두 서명했다.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친필이다.

스트래트퍼드에 있는 셰익스피어 기념비.

 

"태양의 열도 겨울의 혹독한 추위도 겁낼 것 없네. 이 세상에서 그대의 시련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갔네.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먼지 쓸 듯 다 지나가는 길."

《심벨린》, 4막 2장

1623년에 출간된 《퍼스트 폴리오》의 페이지들.

셰익스피어 유언장의 맨 마지막 페이지. 맨 밑에 입회인들의 이름이 보인다. 유언장은 변호사가 작성했고, '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만이 그의 친필이다.

1988년 발굴 당시의 로즈 극장 기초 부분(사진 위쪽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콘크리트 슬래브와 기둥은 현대식 사무실 건물에 속하는 것이므로 무시할 것). 주요 흔적으로는 외벽, 복도의 내벽, 관객들이 서 있던 공간, 원래 무대 자리, 극장이 북쪽으로 확장되면서 무대가 늘어난 자리 등을 들 수 있다.

1609년 발간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집》에 부친 신비한 헌정문.

1594년에 발간된 《루크리스의 능욕》의 헌정사 페이지.

앤더슨이 분장한 맥베스.

《코델리아의 시체를 붙들고 통곡하는 리어왕》, 제임스 배리의 그림을 모사한 18세기 판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포샤의 정원. 윌리엄 호지스의 그림을 모사한 1795년 판화. 이 그림의 고전적인 구도는 니콜라 푸생에게 영감을 받은 것이다.

리처드 3세로 분한 데이비드 개릭. 윌리엄 호가스의 원작을 모사한 판화(1745년). 전투 전에 잠이 들었다가 악몽을 꾸고 깨어나는 리처드 3세를 보여 주고 있다.

낭만적 화풍으로 그린 햄릿과 그의 아버지의 망령. 헨리 푸셀리의 그림을 흉내내어 그린 18세기 후반의 그림.

조슈아 레이놀즈 경이 1773년경에 그린 리어왕.

오펠리아의 죽음을 사실적으로 그린 존 에버렛 밀레이스의 유명한 그림(1851~1852). 《햄릿》에서 여왕이 오펠리아의 죽음을 묘사한 말을 그림으로 재현한 것.

햄릿으로 분장한 존 필립 켐블(1783).

햄릿으로 분장한 존스턴 포브스 로버트슨.

햄릿으로 분장한 존 길거드(1934).

헨리 5세로 분장한 로렌스 올리비에(1944).

피터 그리너웨이가 연출한 《프로스페로의 책》(1991)에 출연한 존 길거드.

그대로 보존된 셰익스피어 생가. 1769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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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 HOW TO READ 성경 Bible

 

리처드 할로웨이 지음 | 주원준 옮김

2007,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820

 

082

하66ㅇ v. 10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내부에 이미 강력한 힘이 깃든 거룩한 책, 성경

 

어떻게 읽으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해 잇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생애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는 시작, 약속, 연관, 유배, 고통, 구원자, 도전, 비유, 사도, 종말이라는 키워드로 성경 속에 담긴 무한하고 거부할 수 없는 진리를 탐구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제기된 문제들, 즉 사회적 평등, 국가적 평등, 양성 평등, 전쟁과 평화, 핵, 환경오염, 동성애, 낙태, 통일, 종교 간의 대화 같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사안들에 대해 과연 성경은 무어라 하는지, 또 독자들은 어떻게 알아듣고 있는지 살펴본다. 현대사회에 제기된 이와 같은 문제들이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성경에 관한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리처드 할로웨이 Richard Holloway

에든버러와 그레섬의 주교이자 신학부 교수이다. 영국 왕립 자연과학학회의 특별회원이며 스코틀랜드 예술평의회의 의장이기도 하다. 현재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하느님이 빠진 윤리》《회의와 사랑》《거리 두고 보기》 등이 있다.

 

주원준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구약성경을 전공했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의 언어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남성서연구소 연구원이며, 지은 책으로 《한국의 종교문화와 뉴에이지 운동》이, 옮긴 책으로 《고대 신화와 성서의 믿음-성서가 수용한 고대 근동 신화》《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등이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생애 꼭 한번 읽어야 할 책, 성경


1 시작, "너 어디 있느냐?"

    : <창세기>

2 약속,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탈출기>

3 연관, 종교와 사회적 윤리

    : <신명기>

4 유배, 오래된 갈등의 역사

    : <이사야서>

5 고통, 성경의 가장 어려운 주제

    : <욥기>

6 구원자, 메시아의 출현

    : 4대 복음서

7 도전, 산상설교

    : <마테오 복음서>

8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

    : <루카 복음서>

9 사도, 이방인들의 사도

    : <사도행전>

10 종말, 최후의 심판

    : <요한 묵시록>


■ 주

■ 연대표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역자 후기 : 인간의 삶 속에서 거듭나는 영원한 진리

 

1

시작,

"너 어디 있느냐?"

: <창세기>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알려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2

약속,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탈출기>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습니까?


3

연관,

종교와 사회적 윤리

: <신명기>


오늘날 우리는 종교와 사회적 윤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시대에는 매우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강자가 약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인간적 연대성의 윤리를 모든 권능의 원천이신 하느님과 연결시키는 것은, 윤리의 발달사에서 한 단계 굵은 선을 그으며 도약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4

유배,

오래된 갈등의 역사

: <이사야서>


이사야서는 과거를 예언자의 시각에서 성찰하며 남왕국의 위대한 이야기 세 토막을 전해준다.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한 유다에 경고하고, 예루살렘의 패망은 피할 길이 없으며 뒤따라 유배가 올 것이고, 그러나 그들이 유배지로 내쫓긴 곳에서 돌아와 나라를 다시 찾을 것이란 희망이다.

이사야서는 한 시대를 기술하는 단일한 책이 아니라, 적어도 두 권이나 세 권의 책이 합쳐진 것으로서 약 200년간의 역사를 다룬다.


5

고통,

성경의 가장 어려운 주제

: <욥기>


욥은 사람을 억누르는 권력을 지닌 공식적 사상에 맞선 역사의 숭고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그 공식적 사상엔 하느님에 대한 사상도 포함되었다.

욥기는 이런 저항의 전통을 낳아 히브리 지적 전통을 더 풍부하고 용기 있게 만들었다.

욥은 신앙인이 당하는 고통이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은 하느님께서 악인에게 내리시는 벌이라는, 질기게 남아 곤경에 빠진 사람의 발목을 잡는 이 이론을 효과적으로 파괴해버린다.


6

구원자,

메시아의 출현

: 4대 복음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7

도전,

산상설교

: <마태오 복음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8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

: <루카복음서>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타적 선을 실천한 훌륭한 모범이다.

곤란한 형편에 빠진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단체 가운데는 이 이름을 딴 것도 있다.

'인정 없는 위선자'는 사람들 생각에 종교의 특징이 되었고, 그런 위선자를 가리키며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버렸다"란 말을 쓰곤 한다.

아마 한 번쯤 이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하길 '이런 사람들은 말로는 이것이라 하지만 행동은 저것을 한다.'

곧 '그건 바로 위선이다'.


9

사도,

이방인들의 사도

: <사도행전>


우리가 그의 신학을 어떻게 이해하든, 이 나이 든 한 인간의 사상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숭고하고 감동적인 면이 있다.

절박한 마음으로 선교에 생애를 바치고, 초췌해진 뒤에도 죄수 신분으로 쇠사슬을 두르고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러 간 것이다.

그 나머지는 과장된 요소 없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다.


10

종말,

최후의 심판

: <요한묵시록>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posted by 황영찬
2014. 12. 26. 10:1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20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1

 

811.6

고67만 3

 

창비전작시---------------------------------------------------------------------

 

"우선 내 어린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고 한 작자의 말대로, 이번 세 권은 주로 어릴 때 알던 고향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들을 제대로 논하려면 마땅히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당장의 뿌듯한 감회는, 어떠한 가난이나 고난 속에서도 끊길 줄 모르고  이어져온 이땅 위 삶의 기쁨과 보람이다. 또한 이 기쁨과 보람을 담은 시인의 말, 겨레의 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며, 작자 자신도 이야기한 바 그 말 앞에서 삼가는 마음이다.

『만인보』의 서사적 풍요는 차라리 소설문학의 성취를 떠올린다. 그리고 고은 자신의 『전원시편』에 비해서도 "첫가을에 백리가 트인다"는 그의 시구대로 무언가 툭 트였다. 더러 장황하던 대목이 크게 가셨고 농사꾼의 일하는 기쁨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어떤 착심 같은 것도 자취를 감추었다.

- 백낙청(발문 중에서)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서문 밖 / 추석날 / 웃말 사람 / 뒤엄 / 선묘 / 도식이 아저씨네 집 / 잿정지 호박밭 / 김병천 / 도깨비불 / 굼벵이 새끼 / 외할머니 단짝 / 상술이 아버지 / 한 고려 군수의 풍류 / 반나절고개 / 나운리 가게 / 천읍 / 장마 뒤 / 똘 / 변산 대도 / 면장 고수장 / 옥정골 미친년 / 김양규 / 옥남이 어머니 / 신라 대안 / 이년아 / 산북리 아이들 / 모 심을 때 / 막내딸 / 효조지 마누라 / 턱점백이 / 갈퀴손 / 김기태 / 말봉이 어머니 / 유대치 / 턱점백이 신랑 / 동네 도둑 / 천덕꾸러기 / 2학년 담임선생 / 기생 초월 / 문옥자 / 벽 / 상복이 마누라 / 수진이 아버지의 풍류 / 정거장 / 미제 방죽 / 묵은 장 / 관노 또쇠 / 사랑재 사람 / 굶는 집 / 옹달샘 / 고조할아버지 / 삼 년 가물 / 노랑머리 / 자장 / 진구 에미 / 윗뜸 우열네 집 / 상묵이네 밭 / 도식이 할머니의 잔소리 / 사행이 아저씨의 아버지 / 진표 / 널뛰기 / 소반장수 / 차천자 / 이모부 동생 / 원수 / 나까무라 요네 선생 / 백광운 / 서낭당 / 상필이 형제 / 미쓰이 백화점 / 기백이 마누라 / 왕산악 / 개마고원 사냥꾼 / 귀녀 / 두문동 / 아베 교장 / 물캐똥이 / 병만이 아버지 / 종달새 / 은석이 누이 / 늙은 혁명가 걸걸궁상 / 이종남 / 논두렁 / 영창대군 / 허수아비 / 눈먼 상식이 어머니 / 두렁쇠 / 귀신 / 궁녀 옥야 / 고모네 집 뱃노래 / 진골 노름꾼 / 논개 / 칠성암 주지 / 아이들 싸움 / 백결선생 / 개똥벌레 / 한냥고개 / 옥정골 오리나무 / 신촌 예배당 / 소금장수 김두원 / 태성옥

跋文 『만인보』를 읽으며

찾아보기

 

서문 밖

 

옥정골 재 넘으면

서너 가호 뜸마을 있지요

에미는 생것장수로

박대 도다리 따위 함지박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도는데

어린아이 호묵이란 놈

에미 대신

솔가루나무 한 구럭 다지고 다져 해오지요

신통하기도 하지요

신통방통하기도 하지요

제법 두메라

금낭화 족도리꽃 호젓이 피는데

어린 호묵이란 놈 콧구멍 할미 들락날락하는데

나무 한 구럭 지고 내려오는데

느닷없이 뛰어가는 놈

산토끼 한 마리에

그만 놀라 나무 구럭 기우뚱 넘어지고 말았지요

순한 것끼리도 심심풀이로다가

달아나고

넘어지고 하지요

 

잿정지 호박밭

 

처서 무렵

늦호박꽃 뒤덮인 밭

비탈 일구어

척박한 비탈에는

호박이 제격이지

호박꽃뿐 아니라

호박깨나 열려 있는데

미운 맏며느리 뒤통수로 열렸는데

그 가운데

애호박도 눈에 번쩍 하는데

애호박 따는 큰애기 덕순이 홑적삼에 땀 들어간다

여름 다 갔구나

그 큰 여름 다 갔구나

중매 들어올 때마다

어느 귀신이 어깃장 놓는지

혼사마다 틀어지고 마는 덕순이

암 올해 동지까지는

호박떡 호박죽 호박고지 먹고

내년 춘삼월에는 시집가야지

어릴 때 떼 잘 써서

떼장이였던 덕순이

이제 눈에 세상 들어가

오마나 소리도 없이

눈 속에서 아귀 트는 겨울풀 보아도

오마나 소리도 없이

입 무거운 덕순이 시집가야지

 

반나절 고개

 

나운리 미제 사이 독점고개

황톳길

눈 녹는 날

그 고개 넘으려면

발 푹 빠져 반나절 걸린다

그래서 반나절고개

비 온 뒤

그 고개 넘으려면

반나절도 더 걸린다

그래서 반나절고개

진흙이 사람 발 안 놓아준다

빠졌다가 자빠졌다가

천하에 둘 없는 양반 거들먹거리는 양반

나운리 김재홍 영감땡감아

독점고개 한번 넘어보아라

네가 양반인지

황토구더기 진흙인지

반나절고개 넘어서

자갈길 나서면

토탄 캐는 논 바라보며

자갈길 나서면

그때의 맛이라니

살맛이라니

걸음에 새 힘 나서 성큼성큼

발굽에 바람 나서

김재홍 영감땡감 손자 손녀야

너희들일랑 제발 우자부리지 말어라

이 세상은 함께 사는 세상일 터

제발 덕분 버티지 말어라

땅 밟는 주제에

땅에 묻힐 주제에

 

변산 대도

 

예로부터 부안 변산

백제 유민들

세상 등져 살던 곳이렷다

백사 청송길 올라가

내변산 외변산은

대대로 독립처사 산채 가는 길이렷다

거기에

사천왕상이라기도 하고

장각 비각이라기도 하는 큰 도적이 있었으니

성이 박씨라 박장각이렷다

어찌나 걸음 하나 날으는지 장각이요 비각이렷다

하루 5백리 달리고도

소매자락 바람소리 자면 섭섭하렷다

본디 남의 싸움 말리다가

사람 죽인 뒤

늙은 어머니 업고

변산 골짜기 숨어들어

화전 일궈

사냥질 해먹고 사는데

거기에 도적떼 나타난 이래

그 도적에 끼어들어

상수리나무 하나 뽑아올려

땅이 맷방석만치나 솟아오르며 뿌리째 뽑아올려

마침내 산채 두령이 되어

3백 도적 거느리고 나섰것다

소두령 거느리고

졸개 거느리고

산채 식구들 다 거느리고

말 타고 견마 잡혀

부담농 실은 구종별배 거느리고

위엄 떨치며

대낮에 부자집 들어가 다 털었것다

누가 보기에도

그 집에 세도대가 빈객이 왔지

어찌 도둑 일행이겠느냐

이런 행차로

산채에 물화가 풍족하니

못 먹어 도둑 된 식구들 목구멍 원 푸는데

그러다가 졸개들이

영장 토포사에 무더기로 잡혀버리니

그들을 풀 생각에

영장나으리하고 담판하여

도적질 그만두어버렸것다

변산 빈 산채

누가 또 들어가 대대로 도적질 이어가렷다

 

천축 성현이여

곡부 성현이여

이 세상에 도적 없는 때 언제더이까

 

정거장

 

군산역 첫차 타고

떠나는 삼촌

그 삼촌 손 들어 작별하던 곳

얼마나 멋지던지

잿정지 길상이

아버지하고 돌아오며

연신 산에 대고

손 흔들었다

매놓은 소 보고

손 흔들었다

정거장 한번 다녀오면

그것이 큰 자랑이라

한 달 두 달은

그 자랑으로 살 만했다 신났다

나는 길상이가 부러웠다

우리집은

백년 가야

누가 정거장 갈 일 없다

떠나는 사람 없다

그것도 가난이라

그러나 길상이 그애가

미친개 물려

미친개처럼 마구 짖어댔다

나는 길상이가 무서웠다

할미산에 올라가

기적소리

기차 연기 바라보다가

정거장 생각하다가

미친 길상이 생각나자

다 그만두고 내려와버렸다

집에 와

술 취한 할아버지 보고 마음 놓았다

 

미제 방죽

 

미제 방죽 연꽃 다 떠나가버리고

그냥 맨물만 남아 가득할 때

여름마다

비 온 뒤 피던 연꽃 못 보고

그냥 맨물 가득할 때

거기에 돌 하나 던져

툼벙 ! 물소리 난 뒤

미제 아이들

용둔리 아이들

뚝길에 모여

연꽃 와라 연꽃 와라 연꽃 와라

외쳐댔지만

1945년 이래

비 오는 날

연잎사귀로 우산 받던 연 오지 않았다

연이 오기는커녕

물 속에서 마른 연줄기들이 썩어버렸다

그리고 6 · 25가 왔다

사람들이 서로 죽였다

우익과 좌익이여

 

묵은 장

 

새 장터보다

묵은 장에 더 먹을 것 푸짐하다

그러나

빈털터리 아버지 따라간

상진이

그 많은 먹을 것 그냥 지나간다

침도 못 삼키고

눈만켜고

이 세상은 절대로

먹고 싶은 것 공짜로 먹을 수 없다

돈 없이 먹을 수 없다

어린 상진이

열두 살에

진리 깨쳤다

배고팠다

 

옹달샘

 

용둔마을 옹달샘 하나 없었다면

무얼로 마을 삼으랴

그 옹달샘 어두운 물에

함박눈 하염없이 내려

없어지는데

그 고요 고요 고요

하필 눈 맞고

물 길러 간 양술이네 쪼깐이

작은 물동이 내려놓고

물 긷는 쪽박 든 채

눈송이 죽는 것 보는

고요 고요 고요

 

서낭당

 

서낭당에 돌 던져

 

가는 길 무사하기를 빈다

아버지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네 살만 되면 돌 던진다

서낭당에 돌 던져

미운 사람 잘못되기를 빈다

손해보기를 빈다

그러나 미운 사람 죽기를 빌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농사꾼의 묵은 저주이며

아무리 모진 사람도

여기까지가 저주이다

그런데 일제 말

배 곯을 때

눈 뒤집힌 사람들

걸핏하면 돌 하나 던져

부자 아무개 자식 죽게 해달라고

부자 아무개 애비 고종명하지 말게 해달라고

빌어 마지않았다

서낭당 돌무더기 자꾸 쌓였다

그 비는 것

박대곤이 여편네가

부자집에 고자질해서

빈 사람 수동이 녀석

부자집 가네오까네 바깥마당에 불려가서

그 집 머슴에게

그 집 큰아들 가네오까 다로에게

몽둥이찜질 당하였다

그 뒤 수동이 녀석

한밤중 부자집 가네오까네 집에 돌 던졌다

서낭당에 던지는 대신

던지며 비는 대신

귀신 형용으로

부자집 안방 창호지 뚫었다

그러다가 주재소에 잡혀갔다

콩밥 먹었다

한 달 콩밥 먹고 돌아왔다

늘 울었다

개가 짖었다

 

미쓰이 백화점

 

군산 3층 미쓰이 백화점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무서웠다

처음 보는 찬란한 물건들이 무서웠다

일본사람 조선사람이 무서웠다

기어이

아버지와 나는

백화점 여자에게 쫓겨났다

이 백화점에는

당신들이 살 것이 없다고

묵은 장에 가라고

새 장터에 가라고

아버지는 쫓겨나와 웃었다

백화점 돌아다보고

야 오라고 해도 안 가겠다

나를 보고

저기 가 국밥 사 먹자

도회지는 무서웠다

2층 창으로 일본아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얼굴이 하얀 아이

좋은 옷 입은 아이

나는 그애가 무서웠다

뚜우 하고

항구의 기적소리가 났다 무서웠다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 건

우리 동네 풀이다 잔소나무다

우리 동네 짖을 줄 모르는 개들이다

 

두문동

 

송도 부조현 고개 너머

칙칙한 솔밭

개풍 광덕산 밑 두문동입니다

이른바 고려 유신 72현 두문동입니다

신씨 조씨 고씨 서씨 임씨 맹씨들의 두문동입니다

이성계 등극에 등돌려

제 자식 제 손자 대대에 이르기까지

농사 장사에

망한 족속의 삶을 걸었읍니다

여기서 개성상인도 나고

여기서 개성 인삼재배도 나왔읍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망한 나라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 망친 나라가

고려입니다

섣불리나마 칼 한 자루 들어보지 않고

어허 슬프고녀 슬프고녀 하고

사라진 왕조의 쑥밭 쪽에 대고

슬픈 노래 읊조리고만 있었읍니다

그들 72현은 그렇다 치고

그들의 자식 손자는 왜 두문동 처사로만 있게 하였읍니까

고려 유신 72현이 아니라 72인 어리석은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나 거기서 장사 기술 썸뻑 익히고

인삼 재배 솜씨 으뜸이 되었으매

결국은 어진 사람은 어진 사람이었읍니다

보시지요 어느 나라에도

그 나라 중견 관리의 충성은 이것입니다

이것밖에는 더도 덜도 아닙니다 72현입니다

 

논두렁

 

두벌 김매는 날

아버지 정두네 김매는 날

점심때 되면

어머니는 그 집 밥광주리 이고 가고

나도 따라가

우선 두 식구 점심은 잘 때운다

농사꾼 밥 인심 하나 있어

굶는 집이야 모르쇠하건만

이런 들밥 인심 좋아

고봉밥 쌀 섞은 밥 한 사발 베어먹으며

찐 갈치토막 떼어먹으며

돼지비계국 마시다가 입 떼며

배부르고 나서 헤픈 웃음

누가 싱건지 같은 소리만 해도

나오는 눗음

그러나

정두네 김매는 날

정두 할아버지

양산 받고 논두렁 나와

김매기 앞장선 풍장꾼 셋더러

풍장 그만 치게 하고

그 세 사람도 김매게 한다

푸짐하던 풍장소리 뚝 끊기자

잘 되던 일

흥겹던 일 맥 놓아버리는데

불볕은 더 내리꽂히는데

 

한냥고개

 

화성 십 리 밖에 지지대가 있것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 다녀가다가

돌아다보고

돌아다보고 하는 곳이어서

신하들이 일부러 어가 행렬을 늦췄것다

그런데 이 고개가

임금고개 지지대고개 되기 전에는

한냥고개 도적고개였것다

과객이 고개 넘을 때마다

어디서 말소리 들리는데

그 소리인즉

한 냥만 내고 가거라

그냥은 못 넘어간다

어떤 사람은 갖은 꾀 다 내어

그저 다섯번째 넘는 판인데

이 거사야

다섯 번이나 공짜배기로 넘어가느냐

한 냥만 내고 가거라

화성고을 백성들 일컫기를

한냥고개 도적은 도적이 아니라

미륵당 미륵불이라 하였것다

때는 중종 조광조파가 무너지고

남곤이 권세 잡았으니

호조 창고에 곡식이 없어도

남정승 창고에는 쌀이 썩어나는 판이렷다

6도 재물이 다 들어와 썩어나는 판이렷다

바로 이때

한냥고개 한냥도적 뜻한 바 있어

이 고개 작파해버리고

관악산 도적 백 명을 거느려

남정승 집 탈탈탈 털어버렸것다

두목 배서방이 바로 한냥고개 도둑이렷다

그 뒤로 도둑고개가

지지대 임금고개 되었것다

그 뒤로 임금고개가

아리 아리 아리랑고개 되어

뭇 백성 넘었것다

넘어 간도땅으로 숟가락몽댕이만 가지고 갔것다

 

신촌 예배당

 

신촌 앞산 예배당은

기역자로 되어

저쪽은 여자

이쪽은 남자

기역자 모서리에 목사님 섰다

목사님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면 저쪽에서는 우는 소리 나는데

이쪽은 싱겁다

목사님이 기도하면

저쪽에서는 아멘하는데

이쪽은 가만히 있다

그 뒤 목사님 떠나버리고

신촌 조달연씨가 장로로 예배 보았다

조는 사람이 많았다

일하는 사람들이라

앉아 있으면 잠이 왔다

장로 조달연씨가 목사보다 좋았다

꾸벅꾸벅 조는 사람 깨지 않게

설교도 기도도

큰 소리 내지 않고 마쳐주었다

꿩 대신 닭이 좋았다

다 해진 성경책이라

다른 사람의 것 빌려다 보는

조장로님이 좋았다

아이들도 좋아했으나

동네 개들도 좋아해 꼬리 내둘렀다

눈 펄펄 내리는 날

주일날

내앵 내앵 종소리 나면

동네 아이들하고 개하고 함께 뛰어갔다

앞산 예배당

떡 주는 예배당

기역자 예배당

조는 예배당

아이고 좋아 아이고 좋아

 

 

 

posted by 황영찬
2014. 12. 23. 21:57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19 일본화 감상법

 

글, 사진 / 이성미

2004,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08

 

082

빛12ㄷ  231

 

빛깔있는 책들  231

 

이성미-------------------------------------------------------------------------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동양미술사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수와 박물관장을 지냈으며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원 · 명의 회화』, 『장서각소장 가례도감의궤』(공저), 『조선시대 어진관계도감 의례연구』(공저)가 있고 번역서로 『일본회화사』가 있으며 이 밖에 국문 및 영문 논문이 다수 있다.

 

|차례|

 

머리말

일본 회화의 큰 흐름

가장 일본적인 회화란

일본 회화의 발달

    초기 불교 회화와 외래 양식

    일본적 특징이 강한 불화

    신도 신앙과 그림

    두루마리 형식 그림의 발달

    수묵화의 발

    모모야마시대와 에도시대의 새로운 건축 양식과 장병화

    에도시대 회화의 여러 경향

    일본의 남화

맺음말

참고 문헌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카시와기' 장  12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높이 21.9센티미터, 토쿠가와 레이메이칸(德川黎明館) 소장

「겐지모노기타리」 에마키, '야도리기' 장  12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높이 21.9센티미터, 토쿠가와 레이메이칸 소장.

뵤오도오인 효오오도  쿄오토오 부근 우지 소재

「명황행촉도(明皇幸蜀圖)」  작자 미상, 족자 비단에 설채(設彩), 55.9×81센티미터, 대북고궁박물원 소장

「홍백매도(紅白梅圖)」  오가타 코오린, 금지에 채색, 각 병풍 155.6×172.7센티미터, 세계구세교(世界救世敎), 시즈오카현(靜岡縣) 아타미미술관(熟海美術館) 소장

「추동산수도(秋冬山水圖)」 '동경산수도'  셋슈우 토오요오, 15세기 후반, 족자 종이에 수묵, 46.3×29.3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송림도」  하세가와 토오하쿠(長谷川等伯), 종이에 수묵, 전체 155.9×346.7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茶羅繡帳)  아스카시대, 나라 추우구우지 소장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  7세기 중엽, 64.8×35.6센티미터, 호오류우지 소장, 타마무시즈시 수미좌(須彌座) 그림

「아미타여래 삼존도」 '관음보살' 부분  7세기 말~8세기 초, 313×267센티미터, 호오류우지 금당 제6호벽

「비천」  7세기 말, 전체 벽 75.6×139.1센티미터, 나라 호오류우지 금당 천장 밑

안악2호분 「비천」  고구려, 황해도 안악군 소재

「여인군상」  7세기 말~8세기 초, 높이 약 40센티미터, 나라 근처 아스카무라 소재 타카마츠즈카 서벽

쌍영총 벽화  고구려, 6세기, 평남 용강군 소재

「키치죠오텐」  비단에 설채, 53.5×32센티미터, 나라 야쿠시지 소장

「잠화사녀도」  주방, 8세기 중엽, 두루마리 비단에 채색, 요녕성박물관 소장

「수하미인도」  나라시대, 종이에 먹과 채색, 각 폭 136×56센티미터, 나라 토오다이지 쇼오소오인 소장

「수하미인도」  9세기 중엽, 돈황 제17굴 북벽

「마포보살상」  8세기 중엽, 삼베에 백묘, 138.1×133센티미터, 나라 토오다이지 쇼오소오인 소장

「아미타 내영도」  12세기 초, 비단에 채색, 중앙 폭 210.3×210.3센티미터, 코오야산 소재

「석가열반도」  1086년, 족자 비단에 설채, 267.3×271.1센티미터, 코오야산 콩고오부지 소장

「소조 나한상」  나라시대, 호오류우지 오중탑

「다이이토쿠 묘오오」  11세기, 비단에 채색, 194×118.1센티미터, 보스턴미술관 소장

「보현보살도」  헤이안 후기 12세기 전반, 족자 비단에 실채, 159.5×74.5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헤이케노쿄」  1160년, 두루마리 종이에 채색, 25.8×28.8센티미터, 히로시마 이츠쿠시마신사 소장

「선면법화경책자」  12세기 후반, 각 세로 25.5×위 41.2×아래 19.4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카마쿠라 대불」  13세기, 11.5미터, 카나가와(神奈川) 코오토쿠인(高德院) 소재

 고승 초오겐 쇼오닌 초상  13세기 전반, 목조, 높이 82.2센티미터, 나라 토오다이지 소장

「카스가 만다라」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나치노타키」  카마쿠라시대, 족자 비단에 설채, 159.5×58센티미터, 토오쿄오 네즈(根津)미술관 소장

「화인과경」  8세기, 종이에 채색, 높이 26.2센티미터, 쿄오토오 조오본렌다이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글씨 부분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미노리' 장  12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높이 21.9센티미터, 토오쿄오 고토미술관 소장

「시기산엔기」 '날으는 쌀창고'  12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높이 31.4센티미터, 나라 초오고오손시지 소장

「케에곤엔기」 부분  전(傳) 에니치보 죠오닌, 카마쿠라시대 13세기,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담채, 31.5×1,220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케에곤엔기」 부분  전 에니치보 죠오닌, 카마쿠라시대 13세기,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담채, 31.5×1,556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키타노텐진엔기」 '황궁에 떨어진 벼락' 부분  종이에 채색, 높이 52.1센티미터, 쿄오토오 키타노텐만구(北野天滿官) 소장

「헤이지모노가타리」 에마키, '산죠오전의 화재'  13세기 말, 종이에 채색, 높이 41.3센티미터, 보스턴미술관 소장

「쵸오쥬우기가」 제1권 부분 '토끼와 개구리의 씨름'  12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높이 31.8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쵸오쥬우기가」 '개구리 불상'  12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높이 31.8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지고쿠 조오시」 '거대한 수탉'  12세기 말, 종이에 채색, 높이 26.4센티미터, 나라국립박물관 소장

「효오넨즈」  죠오세츠, 1415년,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111.5×75.8센티미터, 쿄오토오 타이조오인(退藏院) 소장

「죽재독서도」  전(傳) 슈우분, 15세기 중엽,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고산승경」  텐유우 쇼오케이, 15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담채, 124.1×34.3센티미터, 쿄오토오국립박물관 소장

「발묵산수」  셋슈우 토오요오, 1495년, 종이에 수묵, 149.2×32.7센티미터, 토오쿄오 국립박물관 소장

「아마노 하시타테」  셋슈우 토오요오, 1502년~6년, 종이에 수묵담채, 90×168.6센티미터, 쿄오토오국립박물관 소장

카츠라 릿큐우 정원의 '아마노 하시타테'  1647년 완성, 쿄오토오 소재

「관폭도」 부분  게이아미, 무로마치시대 1480년,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106×30.3센티미터, 토오쿄오 네즈미술관 소장

「산수도」  카노오 모토노부, 종이에 수묵담채, 177.8×118.1센티미터, 쿄오토오 묘신지 레이운인 소장. 미닫이문 그림

히메지성  모모야마시대, 효오고오(兵庫) 소재

「산수화조도」  카노오 에이토쿠, 쿄오토오 다이토쿠지 쥬우고오인 소장

「히노키 병풍」  카노오 에이토쿠, 모모야마시대, 종이에 금지 설채, 8첩 1척 병풍, 169.5×460.5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소나무와 가을풀」  하세가와 토오하쿠와 그의 제자들, 1592년, 금지에 채색, 약 200×600센티미터, 원래는 쇼오운지 미닫이문, 현재 쿄오토오 치사쿠인 소장

「단풍나무」 부분  하세가와 토오하쿠와 그의 제자들, 1592년, 금지에 채색, 약 200×600센티미터, 원래는 쇼오운지 미닫이문, 현재 쿄오토오 치사쿠인 소장

「모란도」  카이호오 유우쇼오, 1595~1600년, 금지에 채색, 177.8×361.3센티미터, 쿄오토오 묘신지 소장

「차쟁도」  카노오 산라쿠,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세키야' 장  타와라야 소오타츠, 금지에 채색, 151.8×354.3센티미터, 토오쿄오 세이가도(靜嘉堂) 소장

「마츠시마 병풍」  타와라야 소오타츠, 금지에 채색, 166.1×367.7센티미터, 워싱턴 프리어갤러리 소장

「연자화도 병풍」  오가타 코오린, 토오쿄오 네즈미술관 소장

「요시와라의 정경」  히시카와 모로노부, 에도시대, 종이에 스미즈리(墨摺), 29.1×42.3센티미터, 토오쿄오 국립박물관 소장

「낙중낙외도」  카노오 에이토쿠, 오오야마시대 1547년, 금지에 채색, 6폭 병풍, 160.5×323.5센티미터

「벚꽃놀이 병풍」  카노오 나가노부, 종이에 채색, 149.2×355.6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새를 든 여인과 소녀」  토리이 키요마스,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신요시와라좌」  후루야마 모로마사,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떠돌이 악사들」  이시카와 토요노부, 토오쿄오 히라키콜렉션 소장

「오오카와바타 석량도(大川端夕凉圖)」, '하마쵸오에서 더위를 식히는 여인들'  토리이 키요나가, 1781~9년, 38.1×25.4센티미터, 릭카미술관 소장

「부인상학십체」 '들뜬 모습'  키타가와 우타마로,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세가와 키쿠노죠오」  토오슈우사이 샤라쿠, 1794년,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붉은 후지산」 카츠시카 호쿠사이, 1825년경, 니시키에, 27.3×34.6센티미터, 세계구세교, 시즈오카현 아타미미술관 소장

「사루바시」  안도오 히로시게, 니시키에,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신요시와라의 밤 벚꽃」  이노우에 야스지, 1881년,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설송도」  마루야마 오오쿄, 1765년, 비단에 수묵담채, 123.2×71.8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수탉과 선인장」  이토오 쟈쿠츄우, 금지에 채색, 각 미닫이문 176.5×91.4센티미터, 오오사카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미닫이문 그림의 부분

「타카미 센세기상」  와타나베 카잔, 에도시대, 족자 비단에 먹과 채색, 116×58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십편첩」 '조편'  이케노 타이가, 1771년, 종이에 수묵담채, 17.7×17.7센티미터, 카와바타 야스나리 기념회(川端康成記念會) 소장

「십편첩」 '관원편'  이케노 타이가, 1771년, 종이에 수묵담채, 17.7×17.7센티미터, 카와바타 야스나리 기념회 소장

「십의첩」, '의풍'  요사 부손, 1771년, 종이에 수묵담채, 17.7×17.7센티미터, 카와바타 야스나리 기념회 소장

「소상승개도」 부분  이케노 타이가, 에도 시대, 종이에 수묵담채, 6첩 1척 병풍, 84.6×300센티미터, 개인 소장

「황산효운」  히가시야마 카이이, 1980년, 종이에 수묵담채, 각 180×376.5센티미터(왼쪽 2칸), 각 191.5×377.5센티미터(오른쪽 2칸), 토오쇼오다이지 소장. 미닫이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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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8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0

 

811.6

고67만 2

 

창비전작시---------------------------------------------------------------------

 

"우선 내 어린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고 한 작자의 말대로, 이번 세 권은 주로 어릴 때 알던 고향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들을 제대로 논하려면 마땅히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당장의 뿌듯한 감회는, 어떠한 가난이나 고난 속에서도 끊길 줄 모르고  이어져온 이땅 위 삶의 기쁨과 보람이다. 또한 이 기쁨과 보람을 담은 시인의 말, 겨레의 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며, 작자 자신도 이야기한 바 그 말 앞에서 삼가는 마음이다.

『만인보』의 서사적 풍요는 차라리 소설문학의 성취를 떠올린다. 그리고 고은 자신의 『전원시편』에 비해서도 "첫가을에 백리가 트인다"는 그의 시구대로 무언가 툭 트였다. 더러 장황하던 대목이 크게 가셨고 농사꾼의 일하는 기쁨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어떤 착심 같은 것도 자취를 감추었다.

- 백낙청(발문 중에서)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죽은 개 / 조무래기들 / 대보름 뒤 / 안 부 / 아기바위 개바위 / 깽매기 소리 / 걸인독립단 / 백제 성왕 / 이야기 할아범 / 병옥이 / 병술이 동생 / 가사메댁 / 꼬부랑 종증조할머니 / 기생독립단 / 미제 진필수 / 옥 배 / 김인규 / 이 황 / 봉 태 / 수동이 어머니 / 을지문덕 / 이빨 빠진 노장군 / 달 밤 / 시인 정지상 / 김부식 / 미제 대장장이 / 똥가래 밭가래 / 재숙이 /원당리 홍성구 / 우 물 / 문개평 / 여자 이홍광 / 조필우 부자 / 재술이네 헛청 / 만순이 / 편 지 / 황진이 / 동수네 5형제 / 반남 박씨네 무덤 / 미제 두 복동이 / 서문 밖 한약방 / 김창숙 / 쌍동이 어머니 / 옥정골 고중돈 / 아우 충조 / 함박눈 / 용술이 삼촌 /김일태란 놈 / 나 철 / 중복날 / 지 붕 / 개사리 개장수 / 문수원 / 기마상 / 벌 초 / 지렁이 /오촌 종식이 / 육손이 / 양증조할아버지 / 은적사 어린 중 / 피서방 내외 / 당고모 / 화엄 의상 / 어린 은태 / 홍어 한 마리 / 화양동 서원 / 종조부 / 황소바람 / 단지결사대 / 함덕리 백씨 / 화양댁 / 연장 무덤 / 황 희 / 권학자님 / 판섭이 오촌 / 어떤 어머니 / 검둥이 / 진안이 / 장덕곤이 / 상구두쇠 / 관여산 복술이 / 재문이 아저씨 / 솔잎 향내 / 다릿집 / 선제리 멋장이 / 영감마누라 / 죽은 나무 / 김백선 / 새터 한서울댁 / 돼지 오줌깨 / 병만이 할아버지 / 고구려 보덕 / 김 구 / 신촌 조남현 / 개똥이 할아버지 / 좋은 날 / 앵두꽃 / 밀양 백중놀이 / 고행덕이네 집 / 그 네 / 죽었다 깨어난 사람

 

백제 성왕

 

무령왕의 아들로 즉위하자마자

북녘 패수의 고구려 치고 신라와 교빙하였다

즉위 15년 웅진을 버리고

백마강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겨

국호도 남부여로 고쳤다

큰 땅 부여의 기상이었다

비로소 중앙 22부 지방 5부 5방의 틀이 잡혔다

그러나 그의 만년

오랜 나제동맹 깨어지고

속임수 많은 신라 치려고

왕자 여창을 데리고 나가 싸웠으나

신라 신주군주에게 크게 패하여

관산성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그 성왕의 시체

신라 군대가 끌고 가서

서라벌 중앙정청 문 밖에 묻으니

신라 벼슬아치들 출근 퇴근 때마다

성왕 시체를 밟아댄 것이다

이 짐승만도 못한 죄악이여 죄악이여

이런 죄로

어찌 아미타세계 서방정토 찾는단 말인가

사천왕 도리 도솔천 찾는단 말인가

아 고대사의 야만이여

 

이    황

 

조선 양반의 자랑이거니와

해동 주자이거니와

이는 조선 만백성의 허깨비였느니라

 

퇴계 성리학은 뭔가

오 성학도

해와 달 누렇게 도는데

백성은 도탄에 푹 빠졌는데

사단이발칠정기발설이 뭔가

배고파

애기 먹은 에미나이

종년이야

서방이 담 안에 열 담 밖에 열

이런 양반의 지랄에

여봐라

여봐라

도산 열두 굽이 막막하구나

 

을지문덕

 

고구려 하호 출신이라 상놈이라

왕족 건무의 모욕도 받았으나

 

장수 을지문덕이 돌아올 때는

평양성 백성이 우르르 나와 맞아들였다

시아버지처럼

서방님처럼

시아재비처럼

단내 나며 맞아들였다

그의 뒤 따라 돌아오는 장한 군사 맞아들였다

을지문덕! 이 이름 부르면

녹은 개울물이 잘 흐르고 하는 일도 잘 되었다

복사꽃 피었다

수나라 수군 삼십만 백만 없애고

겨우 2천 7백 명 남겨 쫓아보낸 장수인지라

백성과 하나 된 장수인지라

금으로 옷을 덮고

귀인이 엎드려야

그 등 밟고 말 타는 개소문 아닌지라

백성들 숨어버리는 개소문 아닌지라

고구려 동맹 잔치 참된 장수인지라

싸우는 자와

뒤에 있는 자 하나일 때

그 싸움 이기고 오는 장수인지라

 

김부식

 

송나라 동파거사는

고려 사절 따위 내쫓아버렸다

고렷놈들 이 천한 오랑캐들! 하고

 

그런 동파거사 흠모하여

제 이름을 동파 소식의 식자 따서

부식이라 고치고

그걸로 성이 안 차

제 아우의 이름도 소식의 아우 소철의 철자 따서

부철이라 고쳐주고

만약 동파거사께오서

손위 형들이 있었다면

부필 부일마저 그 이름자로 고쳐야 했것다

시와 학문에 뒤진 것으로

정지상 윤언이 죽여버리더니

묘청 역적이라 들씌우더니

어찌 이뿐이겠는가

늙어 써 올린 삼국사기 가로되

거기에는

고구려 승전고도 울리지 않고

발해도 없고

오로지 신라가 제일 먼저 세워진 듯이

세발 네발 가로되

 

황진이

 

송도 달밤

갈보 하나이 이 나라 사랑을 도맡아버렸구나

한심한 사내들아 계집아

이불 차고 나오너라 너훌너훌 춤추어라

 

김창숙

 

싸가지 없는 이승만 꼬라지

진작부터 알았다

상해 임정 때도

이승만 노는 것 미워했다 싸웠다

이 싸움 내내 시들지 않아서

1950년대 성균관 관장 자리도 쫓겨나게 되었다 

긴 세월

16년 감옥살이

고문으로 다리병신 되어

제 걸음 걷지 못하는 세월

 

조선 유교

이만한 사람 있기 위하여

5백 년 수작 헛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사나이 눈물이 있고

사나이 노기 있고

사나이 쓰라린 기상 잇다

 

저기 저 사이비 군사들

맹세코 이 땅에서 쓸어버리리

길에서 죽기로니 무슨 한이리

 

나   철

 

조선말기에 태어난 사람 역마살 한 짐 지고 나왔다

나철 선생이 누구인고

을사조약 체결되자

그 조약 주도했던 매국노 암살에 나선 사람

벼슬이고 뭐고 버리고

테러리스트로 나선 사람

그 뒤로 섬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왜국 조야에 담판하러

현해탄 돛배 타고 건너갔다 돌아와

그로부터 백두산 백봉도사 만나

이 땅 역대의 그늘 속으로 이어진 단군 종교로

대종교 새로 연 사람

그 사람이 나철이라

조선땅 곳곳이요 방방곡곡이요

만주벌판 드넓은 산과 들이요

백두산을 한복판으로

화룡현 청파호 물가에

대종교 총본사 두어

단군 고토 9만리 신국이라

동서남북 4도교구 두어

대종교도 30만으로 불어났다

조선동포 8할이었다

게다가 김동삼 김규식 이시영 김좌진

이동휘 신채호 조소앙을 망라하고

이상설 이동녕 신규식 서일 강석화로

교구를 맡게 하여

대종교 사람으로 조직을 삼고

대종교 돈으로 총포 사들여서

청산리 큰 싸움 앞서 크고 작은 싸움으로

대종교가 이렇게 떨치는데

왜적이 그저 두고 볼 일인가

대종교 해체를 명령하자

1916년 국내로 돌아와

구월산 삼성사에서

추석날 북으로 백두산에 절하고

남으로 고향 벌교 선영에 절하고

폐기법으로 숨 끊어 자결하였다

사 없이

공으로 살고 공으로 죽은 사람

조선땅 좁아라 하고

고조선 드넓은 땅 달린 사람

그가 죽자

대종교 비밀교단

발해 상경 동경성에 총본사 두고

제자 김헌 윤세복 서일이 이끌어가다가

그들 역시

독립군 거덜나면서 바닥났다

간도 의병과 독립군 시대 지나서

그 뒤로 유격전 시대 들어서자

나철의 고토노선 고조선노선이

새 노선으로 돌아섰다

이 싸움의 전환에 나철 선생이 달려온 것이다

대종교 나철 !

그냥 나철 !

첫째 그는 도덕 자체였다 꿈 자체였다

 

화엄 의상

 

서라벌 귀족의 자식으로

스무 살에 중이 되어

서른 살에 원효를 형으로 섬긴다

원효는 바다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효하고 의상이

당나라 들어가기를 작정하는데

고구려땅 육로를 잡아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신라 간첩 혐의로 잡혔다가

신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백제땅 당진 나루 뱃길을 잡아 나섰다

나루에 이르러

원효는 아무래도 당나라까지 갈 까닭이 없었던지

깜깜절벽 밤중에

해골바가지 물 마시고

다음날 아침

이 세상 마음이 짓는다 깨치고 돌아가고

의상 혼자 바다 건넜다

의상은 바다를 좋아했다

그가 뒤에 돌아와 동해 낙산사에 산 것도 그 때문이다

의상은 중국 등주땅 처녀 선묘와 눈이 맞았다

그 중국 처녀가

의상의 옷 지어주고 쓸 물건도 대주었다

종남산 지상사 화엄대가 지엄의 제자 되어

지엄과 도선의 인가 받고

현수법장과 함께 큰제자가 되었다

의상의 화엄가는 신묘하구나

한번 읊으면

마음 가득 우주가 찬다 법이 찬다고 자자했다

그러나 이 당나라 화엄학이 귀족의 것인지라

만백성에게는 도대체 허깨비이다

당나라가 백제 고구려를 멸한 뒤

신라까지 멸하려 할 때

그때 화엄 의상  황급히 돌아왔다

애인 선묘도 두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신라 귀족사회에 몸을 두지 않고

혼자 동해의 고독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동해 이후 그의 화엄학 펴기 위하여

우선 소백산 밑 영주땅에 절을 지으려는데

그때 바다 건너 임 찾아온 선묘가

돌을 날라다 주어

뜬 돌의 가람 세웠다

하필 일본 고산사 그림에

화엄조사 그림이 전해오는데

화엄 의상과 아름다운 선묘의 사랑 전해오는데

아 2백 10자의 해인삼매 법성계 한번 읽어보건대

신묘하구나 신묘하구나

평생 한 벌 옷 한 개의 병

한 벌 밥그릇밖에 가진 것 없이

문무왕이 주는 논밭도 노비도 다 돌려보내고

오로지 불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고

사람의 귀천이 본디 맞지 않은데

어찌 나에게 종이 있을까보나 재물을 독차지할까보냐

무엇에 쓰리 무엇에 쓰리

중이야 법계 우주를 집으로 하고

밥그릇 한 벌 차려 농사지어 살아감이여

쇠로 성을 쌓더라도 재앙이 그치지 않음이여

추운 늦가을밤 달빛의 차가움이여

그 차가움에 화엄 의상의 흔들릴 줄 모르는 눈빛 있음이여

 

황   희

 

영의정 황희는

노비 새끼들이 수염을 잡아다리고

옷자락 잡아다리고

등때기도 볼따귀도 치기도 해도

그냥 아프다 아프다 할 따름이었다

술상 차려 가면

지지리 못생긴 여종마저

버르장머리 없이

술상 차려 탕 내려놓으면

그나마 안주 뿌시러기 그 새끼들이 먹어치운다

한평생을 관운이 들어 재상노릇만 한 사람

한평생을 가랑이 찢어지게 가난노릇만 한 사람

그러나 그는 노비 풀고

평민 풀어

한줌도 안 되는 양반노릇 그만두고

새 세상 하나 열 줄 몰랐다

다만 잉어 한 마리 흐를 데 없는 물 속에서

홀로 인자하였구나

홀로 한빈하였구나

애석하구나 궁 딱 ! 딱 !

 

김백선

 

을미 참변에 이 땅의 노여움 치솟아

위정척사 패거리

양반 패거리 들고일어서는데

천하 상놈 여기저기 들고일어서는데

두메산골 지평땅에서

의병 5백을 거느리고

제천땅 유인석 휘하에 들어간 사람

그 사람 용맹 떨치니

선봉장이 되었구나

상놈 김백선이

빛나는 선봉장이 되었구나

충주싸움 가흥싸움 가는 데마다

왜병을 무찌르니

그 기상 왜병은 물론 관군도 물러섰구나

그러다가 제천 독송정 본진에 달려가

머뭇거리는 의병장 유인석에게

왜 한양 진격을 감행하지 않느냐고

꾸짖으며

칼 빼들었다가

감히 양반에게

상전에게 거역하였다 하여

의병 군율 총살형으로 총맞아 죽었다

1895년

이때부터 양반 의병과

백성 의병이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백성의 반봉건과

양반의 위정척사가 맞서기 시작하였다

 

실로 역사의 벼랑인지고

앗흐 ! 찬바람 치솟아오르는 천 길 벼랑인지고

 

고구려 보덕

 

고구려 용강고을에 태어나

성으로 가는 길

그 길 꺾고

대보산 깎아지른 벼랑 아래

벼랑의 중이 되어

젊은 보덕화상

고구려 불법 널리널리 펴는데

그놈의 보장왕 도교에 파묻혀

불법 보기를 연생이 보듯 내치기 시작하였다

에라 뜨리라

고구려 보덕 백제땅으로 내려와

백제 완산주 고대산 허리에 절 짓고

불법을 널리 펴니

그 소문에

원효가 되기 전의 서당도 어린 의상도 찾아왔다

삼국의 밝은 젊은이 모여들어

고대산 보덕굴 불때지 않은 방도 추운 적 없었다

사람만이 아니라

삼국의 까마귀들도 모여들어

고대산 일대의 겨울은 까마귀로 가득찼다

보덕화상 그 까마귀 불러

삼계에 두루 걸리는 바 없음이여

너 까마귀로다

 

김   구

 

백범 김구 !

이 사람 있어

이 땅이 사람 태어나는 곳이구나

남에도

북에도

우선 이 사람 있어

이 땅이 사람 죽는 곳이구나

8 · 15 이후 돌아와 70 평생 그 걸음으로

윤봉길 댁 찾아가서

윤봉길 아내한테

넓죽 큰절 드리는 사람

오늘 따라 그리운 곳이구나

이 땅이 그리운 사람 있는 곳이구나

험한 오늘과 내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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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0. 10:19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17 HOW TO READ 데리다 Jacques Derrida

 

페넬로페 도이처 지음 | 변성찬 옮김

2007,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819

 

082

하66ㅇ  9

 

2004년 프랑스 대통령실은,

'우리시대 지성계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일흔네 살의 철학자

데리다의 죽음을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데리다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프랑스 철학자로 받아들여진다.

교육, 성(gender), 법, 문학, 수학, 정치학, 심리학 등 많은 연구 분과와 영역에

영향을 미친 데리다는 찬양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낯설게 만들기를 좋아한 데리다의 저작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현대의 모든 학문을 넘나든

해체주의자, 데리다

해체는 종종 분해 또는 원상 복구로 여겨지곤 한다. 해체는 우리에게 친숙한 텍스트와 주장들이 포함하고 있는 숨겨진, 그리고 예기치 못한 유보들과 내적 저항의 지점들, 그리고 담론들과 선택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데리다는 이러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우리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자원들로 여기고 있는 친숙한 것들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켰다. 해체는 때때로 부정적인 또는 심지어 허무주의적인 운동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데리다는 해체가 긍정적이며, 변형의 잠재력을 갖춘 독해 방식임을 강조했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페넬로페 도이처 Penelope Deutscher

노스웨스턴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20세기 프랑스 철학과 성 철학(philosophy of gender)에 대한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성 산출하기 : 여성주의》《해체와 철학의 역사》《불가능한 차이의 정치학 : 루스 이리가리의 후기 연구》 등이 있다.

 

변성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씨네 21> 평론상 당선 후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영화 관련 강좌 및 세미나를 운영하는 한편, 철학과 영화 그리고 자연과학(생물학)에 대해 공부 중이다. 저서로 《우리 시대의 美를 논한다》(공저)가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현대의 모든 학문을 넘나든 해체주의자

 

1. 해체주의적 독해

    : 《산종》

2. 해체는 개입이다

    : 《타자의 단일언어》

3. 차연, 동일성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지연

    :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4. 둘 다임과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5. 문화, 성, 그리고 정치

    : 《다른 진로》

6. 의사소통의 오해 법칙

    : 《유한회사》

7. 순수한 애도와 환대는 없다

   : '환대와 정의와 책임성'

8. 순 수한 선물과 용서도 없다

    : 《주어진 시간》

9. 정의와 법의 결정 불가능성

    : 《법의 힘》

10. 진보는 무한하다

    : 《테러의 시간에서의 철학》

 

■ 데리다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참고 문헌

■ 역자 후기 : '데리다'로 이끄는 세심하고 균형있는 안내서

 

1

해체주의적 독해

: 《산종

 

해체적 시각으로 글에 대한 이러한 양가적인 평가절하를 독해하게 되면, 우리는 《파이드로스》가 글로 인해 분명한 위험에 빠지게 된 어떤 이상을 환기시키고 있음을 보게 된다(대리 임신이 '자연적인' 모성을 명백히 위협하고, 약물이 '자연적인' 신체를 명백히 위협하는 것처럼). 우리는 말이 자식을 보증해준 적이 있는지, 또는 분명히 말의 증언적 가치가 글에 의해 위협받은 적이 있는지, 그리고 말에 덧씌워진 그 신비한 분위기와 말이 제공하는 그 명백한 약속을 제거할 수 있는지를 질문해야만 한다.

 

2

해체는 개입이다

: 《타자의 단일언어

 

데리다가 해체는 개입이라고 주장할 때, 자신의 정치적 활동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안장성, 모순,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불안정한 힘들에 대한 면밀한 주의를 통해서, 다르게 읽으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데리다는 우리에게 가령, 타고난 권위와 소유권과 특권에 대한 어떤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다르게 읽을 수 있을지를 질문한다.

그는 우리에게, 그것이 정치, 역사, 철학, 현대 문화 그 어느 것에 관한 것이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관념들과 주장들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보다 비판적으로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

 

3

차연, 동일성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지연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차연'은, 그가 '간격두기'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리고 어떠한 기호도 자기 폐쇄적인 동일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그런 미분화를 가리키는 데리다의 신조어다. 차연은 누구나 특정한 용어에 귀속시키고 싶어 할 수도 있는 동일성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지연이다. 개를 위한 완전히 고정된 의미는 결코 분명하게 도래하지 않는다. 의미는 끊임없이 '달라지고', 의미의 그 어떤 기원적인 현존도 끊임없이 '지연된다'.

 

4

둘 다임과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대리 보충'이라는 용어는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루소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같이, '결정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데리다에 의해 발견 또는 발명된 결정 불가능성은, 이항 대립의 양극들 그 어디에도 용이하게 들어맞지 않는 하나의 항이다. 마치 차연이 '현존'도 '부재'도 아닌 것처럼, '동일성'도 '차이'도 아닌 것처럼, 대리 보충이 충만도 결핍도 아닌 것처럼.


5

문화, 성, 그리고 정치

《다른 진로》


데리다는 상황 속에서의 차이에 민감한 철학자이지만, 사회적 행동주의(여성주의, 인종, 민족, 문화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위 정체성의 정치에 대해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2장에서 그가 오로지 낮았던 것을 높이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전복의 전략들에 대해 그가 표명하고 있는 유보를 본 적이 있다. 그의 목표는 정체성이라는 이상들을 고정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 적이 있다.

"나는 여성운동을 포함하여 모든 곳에서 발전하고 있는, 소수자들의 나르시시즘을 향하는 경향이 있는 이러한 운동에 저항한다."


6

의사소통의 오해 법칙

《유한회사》


그는 하나의 대안으로 "'오해(mis)'의 법칙"을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어떤 성공적인 의사소통도 언제나 다른 실패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아무리 남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의사] 교환은 우리 사이의 잘못된 의사소통의 가능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새로운 토론의 윤리학이 열리게 된다. 우리는 강한 확신 또는 낙관의 순간에조차, '오해'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의사소통의] 목적은 오류를 근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타협하는 것이 될 것이다.


7

순수한 애도와

환대는 없다

: '환대와 정의와 책임성'


나라의 국경이나 가정의 영역이 손님들이나 이민자들에게 개방될 때, 조건적인 환대는 우리를 불가능성과의 관계 속에 자리잡게 한다. 우리는 보다 큰 관대함을 저버린 것이고, 그 불가능한 더 커다란 관대함은 조건적 환대라는 우리의 행위 속에 깃들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의도들을 갖고도 내가 불가피하게 타자의 차이에 개방적이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실패할 때, 그 불가능성은 나의 시도 속에서 거주하는 것이고, 나를 해당 타자와의 다른 종류의 관계 속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불가능성이 어떠한 '일'도 수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중재하고, 내 정체성의 복합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8

순수한 선물과

용서도 없다

《주어진 시간》


우리는 우리를 중재하거나 [미]분화시키고 있는 불가능성이라는 형식 속에서 타자와 함께 살고 있다.

이것이 자기만족(다시 말해서, 자신이 [누군가를] 환대한 적이 있고, 선물을 준 적이 있으며, 만족스러울 정도로 용서한 적이 있다고 하는 자기만족적인 개인적 또는 정치적 확신)을 촉진시킬 수 있다.

그런 만족은 불가피한 실패다.


9

정의와 법의

결정 불가능성

:  《법의 힘》


법적 판단은 소위 '결정 불가능성이라는 시련'을 겪어야만 한다.

그것은 법을 보존해야 하지만(우리는 법을 무시하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 판결이 노예처럼 선례나 법 문서들을 따르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법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존경심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10

진보는 무한하다

《테러의 시간에서의 철학》


데리다는 완전성의 본질이 끊임없이 교정되어야만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완전성은 언제나 '무한한 진행'의 상태 속에 있다. 진보는 결코 멈추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데리다가 변형이자 타자성이지만 어떤 이상, 즉 고정되고 규정적이고 기원적이거나 정점에 달한 순간은 아니라고 묘사한 그런 영역 속에 놓이게 된다.

우리는 진보를 상징하는 완전성을 계속해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 속에 들어서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보는 무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생애


1930년 7월 15일 알제리 엘비아르에서 출생.

1942년 독일 점령기 알제리에서 광폭하게 시행된 프랑스의 반셈족주의와 페탕 정책(벤 아크눈Ben 

            Aknoun에서 유대인 학생 7퍼센트로 제한)으로 벤 아크눈 중등학교에서 쫓겨남.

1942~1943년 유대인 학생들과 선생들만을 따로 수용하는 에밀 모파스(Emile-Maupas) 중등학교

           에 등록.

1948년 고티에(Gauthier)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학 자격시험 통과, 알제리에서 준비반 수업을 마치

           고 철학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옮김.

1952~1953년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에서 공부.

1957년 신경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말썽 많았던 학창 시절을 보낸 후(1942~1942년의 결석, 

          1947년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 낙제, 1949년과 1951년의 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 낙제, 1955

          년 교수 자격시험 낙제), 교수 자격시험 통과.

1957년 하버드 대학교 청강생으로 미국 거주. 정신분석가 오쿠튀리에(Marguerite Aucouturier)와 

           결혼.

1957~1959년 알제리 전쟁 중, 알제리에서 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는 방식으로 군복무.

1962년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 Origin of Geometry》 불어 번역본 출간. 100쪽에 이르는 역자 서

           문으로 장 카바예스 상 현대 인식론 부문 수상.

1963년 아들 피에르(Pierre Derrida) 출생.

1964년 고등사범학교 철학사 강사로 취임. 이후 1984년까지 이 직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많은 대학교(존 홉킨스 대학교, 예일 대학교, 어빈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코넬 대학교,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방문 교수로 경력 쌓음.

1967년 아들 장(Jean Derrida) 출생. 세 개의 주요 저서, 《목소리와 현상 Speech and 

       Phenomena》《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Of Grammatology》《글쓰기와 차이 Writing and 

       Difference》 출간.

1970년 아버지(Aime Derrida) 사망(알제리 독립 후 데리다 가족은 니스로 이주).

1972년 두 번째 세 개의 주요 저서 《입장들 Positions》《산종 Dissemination》《철학의 가장자

           리 Margins of Philosophy》 출간.

1980년 파리 제1대학(소르본)에서, 출판된 저작들 중에서 선별한 글들을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국

          가 박사 These d'Etat》변호. 프랑스에서 그의 저작에 대한 회의(Les fins de l'homme)가 조

          직됨. 《우편엽서 The Postcard》 출간.

1981년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학자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프라하 방문 중, 마약 소지 및 밀수 

          혐의로 오인 받아 구류, 미테랑 대통령의 노력으로 석방.

1982년 프랑스의 연구 및 기술 장관이 데리다에게 비전통적인 학문 기관인 국제 철학 대학

          (College intermationale de philosophie) 설립 제안. 이 대학은 프랑스의 학문 제도의 제약

         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학자들이 교류하고, 모두가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지만 학위는 수여되

         지 않는 철학 및 학제 간(interdisciplinary) 세미나를 위한 기관임.

1983년 파리에서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의 새로운 직위에 선출.

1984년 아가친스키(Sylviane Agacinski)와의 사이에서 아들 다니엘(Daniel Derrida) 출생.

1985년 건축 이론 분야에서 해체와 관련 있는 건축가 추미(Bernard Tschumi) 및 아이젠만(Peter 

          Eisenman)과 파리의 대규모 공원(Parc de la Villette) 디자인을 위해 공동 작업. 다른 분과

         를 넘어선 공동 작업들은 1982년 영화 <유령의 춤 Ghost Dance>, 1987년 비디오 <유희들 

         Plays>을 볼 것.

1987년 《회화에서의 진실 The Truth in Painting》 출간. 고도로 병합된(mediatized) 논쟁들 벌어

         짐. 그 논쟁 과정에서, 1940~1942년 사이 드망(Paul de Man)에 의해 벨기에의 한 신문에 발

        표된 글들과 파리아스(Victor Farias)의 《하이데거와 나치즘 Heidegger and Nazism》의 출

        판 때문에, 해체는 (가장 무례한 방식으로)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와 연루됨,

1991년 어머니(Georgette Derrida) 사망.

1992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명예 교수직 수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짐. 대학의 일부 구성원들(그리고 

          국제 철학자들 중 일부 집단)이 항의, 데리다가 투표에서 336대 204로 이김.

1994년 《우정의 철학 Politics of Friendship》 출간.

1999년 파티(Safaa Fathy)의 <데리다의 다른 곳 Derrida's Elsewhere> 상영.

2001년 프랑크푸르트 시의 아도르노 상 수상.

2002년 딕(Kirby Dick)과 코프만(Amy Ziering Kofman)의 영화 <데리다> 상영.

2004년 《불량배들 Rogues》 출간.

2004년 10월 8일 그의 나이 74세, 췌장암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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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4. 12. 15. 20:15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16  만인보

 

高銀

200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89

 

811.6

고67만  1

 

창비전작시---------------------------------------------------------------------

 

"우선 내 어린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고 한 작자의 말대로, 이번 세 권은 주로 어릴 때 알던 고향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들을 제대로 논하려면 마땅히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당장의 뿌듯한 감회는, 어떠한 가난이나 고난 속에서도 끊길 줄 모르고  이어져온 이땅 위 삶의 기쁨과 보람이다. 또한 이 기쁨과 보람을 담은 시인의 말, 겨레의 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며, 작자 자신도 이야기한 바 그 말 앞에서 삼가는 마음이다.

『만인보』의 서사적 풍요는 차라리 소설문학의 성취를 떠올린다. 그리고 고은 자신의 『전원시편』에 비해서도 "첫가을에 백리가 트인다"는 그의 시구대로 무언가 툭 트였다. 더러 장황하던 대목이 크게 가셨고 농사꾼의 일하는 기쁨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어떤 착심 같은 것도 자취를 감추었다.

- 백낙청(발문 중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 례


작자의 말

서시 / 할아버지 / 머슴 대길이 / 애꾸 양반 / 내시 처선 / 동고티 무덤 / 삼만이 할머니 / 대바구니 장수 / 나그네 / 신라 사복 / 당숙모 바그메댁 / 사행이 아저씨 / 어머니 / 또섭섭이 / 고모부 / 장복이 / 곽낙원 / 대기 왕고모 / 삼거리 주막 / 아버지 / 정태란 놈 / 혈의 루 / 귀섬 여편네 / 관묵이 아저씨 / 고모 / 땅꾼 도선이 / 떠나간 작은어머니 / 진달래 / 고주몽 / 싸움꾼 기백이 / 외할머니 / 엿장수 / 큰집 고모 / 이동휘의 꾀 / 난산마을 아저씨 / 옥정골 철곤이 / 죽은 소금례 / 대보름날 / 아리랑 영감 / 당숙모 / 외삼촌 / 코피 / 의병 정용기 / 기생들 / 강도들 / 작은고모 / 사정리 할아버지 / 수레기댁 / 용녀 / 보리밭 문둥이 / 백제 혜현 / 수양 영감 / 일만이 아버지 / 사정리 할머니 / 김성숙 / 딸 / 개사리댁 / 초례청 / 절름발이 떠돌이 / 기창이 고모 / 할머니의 울음소리 / 재학이 아저씨 손가락 / 필례 / 지관 오창봉 / 학배 / 정안수 / 맹식이 삼촌 / 쌍놈 기철이 / 효조지 영감 / 고대 혜공 / 방앗간집 며느리들 / 복만이 아저씨 / 두 가마니 반 / 큰외숙모 / 딸그마니네 / 태욱이 아저씨 / 정여립 / 봉태 누나 / 도요하라 / 개똥벌레 / 감꽃 / 영규스님 / 금자 / 지랄병 / 애꾸 아주머니 / 진평구 이야기 / 홍식이 작은아버지 / 새벽닭 / 기호 / 임제 / 염훈장 / 호열자 / 소도둑 / 장타령 / 백두개 도깨비 / 선제리 아낙네들 / 한식날 밤 / 을밀대 / 연 / 개살구꽃 / 외톨박이 권오종

서시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할아버지

 

아무리 인사불성으로 취해서도

입 안의 혓바닥하고

베둥거리 등때기에 꽂은 곰방대는

용케 떨어뜨리지 않는 사람

어쩌다가 막걸리 한 말이면 큰 권세이므로

논두렁에 뻗어 곯아떨어지거든

아들 셋이 쪼르르 효자로 달려가

영차 영차 떠메어 와야 하는 사람

집에 와 또 마셔야지 삭은 울바자 쓰러뜨리며

동네방네 대고 헛군데 대고

엊그제 벼락 떨어진 건넛마을

시뻘건 황토밭에 대고

이년아 이년아 이년아 외치다 잠드는 사람

그러나 술 깨이면 숫제 맹물하고 형제 아닌 적 없이

처마 끝 썩은 낙수물 떨어지는데

오래 야단받이로 팔짱끼고 서 있는 사람 고한길

 

그러다가도 크게 깨달았는지

악아 일본은 우리나라가 아니란다

옛날 충무공이 일본놈들 혼내줬단다 기 죽지 말어라

 

집안 식구 서너 끼니 어질어질 굶주리면

부엌짝 군뷸 때어 굴뚝에 연기 낸다

남이 보기에 죽사발이라도 끓여먹는구나 속여야 하므로

맹물 끓이자면 솔가지 때니 연기 한번 죽어라고 자욱하다

 

삼 년 원수도 술 주면 좋고 그런 술로 하늘과 논 삼아

8월 땡볕에 기운찬 들 바라본다

거기에는 남의 논으로 가득하다 작년 도깨비불도 떠오른다

 

이 세상 와서 생긴 이름 있으나마나

죽어서도 이름 석 자 새길 돌 하나 없이

오로지 제사 때 지방에는 학생부군이면 된다

실컷 배웠으므로

실컷 배웠으므로

 

어머니

 

하루내내 뼈도 없고 뉘도 없는 만경강 갯벌에 가서

그 아득한 따라지 갯벌 나문재 찾아 발목 빠지다가 오니

북두칠성 푹 가라앉은 신새벽이구나 단내 나는구나

곤한 몸 누일 데 없이 보리쌀 아시 방아 찧어야지

도굿대 솟아 캄캄한 허공 치고 내려 찧어 땅 뚫는구나

비오는 땀방울 보리쌀에 뚝뚝 떨어져 간 맞추니

에라 만수 그 밥맛에 어린것 쑥 자라나겠구나

여기말고 어디메 복받치는 목숨 따로 부지하겠는가

아 땅의 한 아낙의 목숨이 어찌 만 목숨 살리지 않겠는가

충청도 장항에서 흐린 물 느린 물 건너

삐그덕 가마 타고 시집 온 이래 그 고생길 이래

된장 간장 한 단지 갖추지 못한 시집살이에 몸 담아

첫 아들 낳은 뒤 이틀 만에 그놈의 보리방아 찧어

두벌 김매는 논에 광주리 밥 해서 이고 나가니

산후 피 펑펑 쏟아 말 못할 속곳 다섯 벌 빨아야 했다

그러나 바지랑대 걸음걸이 한번 씨원씨원해서

보라 동부새바람 따위 일으켜 벌써 저만큼 가고 있구나

갖가지 일에 노래 하나 부르지 못하고 보리고개 봄 다 가고

여름 밭 그대로 두면 범의 새끼 열 마리 기르는 폭 아닌가

우거진 풀 가운데서 가난 가운데서 그놈의 일 가운데서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어찌 나의 어머니인가

 

고모부

 

고모부 강일순은 하필 강증산하고 한 이름이라

괜히 그놈의 무극대도 믿어

이따금 눈 감고 빈 입으로 중얼댔지요

그러다가 정작 병들어 누우니

이 노릇도 작파해버리고

서래 선창 갈대밭 사이 나가는 배 뱃노래 듣다가

어린아이 다 되어 눈물바람 적시더니

부엌데기 고모 불러서

이 사람아

나 죽으면 심심할 테니

이것이나 배워보소

피우던 담배 여차여차 건네니

고모는 억지로 담배 빨고 기침했지요

그 뒤 고모부 세상 떠난 뒤

홀어미 된 늙은 고모 담배 연기 길게 길게 내뿜었지요

그게 어디 담배 연기뿐이리요 죽은 영감 담배 연기 아니리요

 

아버지

 

강 건너 내포 일대

대천장 예산장 서산장

아무리 고달픈 길 걸어도

아버지는 사뭇 꿈꾸는 사람이었읍니다

비 오면 두 손으로 비 받으며

아이고 아이고 반가와하는 사람이었읍니다

 

고모

 

서래 나루 시집간 고모

예복이 고모

그 웃음

찬 콩나물국 같은 웃음

예복이 고모

실컷 울고 나 추운 고모

 

외할머니

 

소 눈

멀뚱멀뚱한 눈

외할머니 눈

 

나에게 가장 거룩한 사람은 외할머니외다

 

햇풀 뜯다가 말고

서 있는 소

 

아 그 사람은 끝끝내 나의 외할머니가 아니외다

이 세상 평화외다

 

죽어서 무덤도 없는

 

 

당숙모

 

큰집 아주머니는

내 육촌누이 덕순이 하나 낳고는

덕순이 영 터를 안 팔아

큰당숙한테 자식 못 낳는다 구박깨나 받더니

기어이 일 났구나

바로 문 하나 달린 윗방으로 밀려나고

아랫방 아랫목에다 시앗 보아야 했다

밤마다 아랫방에서

새로 온 각시하고 영감하고

미주알고주알 알랑방구 뀌는 것 다 들어야 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아들은커녕 딸내미 하나 못 두고

그만 그 각시 떠나버리더니

큰당숙도 세상 떠나고

딸 하나 있는 것 덕순이도 시집가고

혼자된 큰집 아주머니

대밭에 눈더미 툭툭 떨어지는 소리 나도 그만

개 매달아 불태워 잡을 때

그 개 울부짓는 소리도 그만

담 끼고 가노라면

담 넘어 본 일 없는 난장이 키에다가

밭에 있으면

밭두렁하고 딱 맞는 큰집 아주머니

10년이나 안 먹고 둔 곶감 같은 큰집 아주머니

 

외삼촌

 

외삼촌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갔다

어이할 수 없어라

나의 절반은 이미 외삼촌이었다

가다가

내 발이 바큇살에 걸려서 다쳤다

신풍리 주재소 앞에서 옥도정기 얻어 발랐다

외삼촌은 달리며 말했다

머슴애가 멀리 갈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상해에 갔다가

북경에 갔다가

만주 지지하루로 갈 것이다

그 다음은

남으로 남으로 바다 건너

야자수 우거진 자바에 갈 것이다

이런 답답한 데서

어떻게 한평생 산단 말이냐

갈 것이다

갈 것이다

나중에는 너도 데려다 함께 살 것이다

외삼촌은 자전거를 더 빨리 내몰았다

나는 쌩쌩 바람에 막혀 숨이 막혔다

나의 절반은 외삼촌이었다

스치는 십리길 전봇대여 산의 무덤들이여

그 뒤 세세년년 북국 5천 킬로 무소식의 외삼촌이여

 

작은고모

 

큰고모 등짝에서

나문재 뜯으러 간 어머니 기다리는 등짝에서

배고파 울다가 말다가 하는 등짝에서

나는 별을 처음 보았다

별이 아니라 밥이었다

별 따먹으면 배부르겠다고

별 따줘 별 따줘 새로 울었다

작은고모 야문이는

나 한번 업지도 못하고

뽕나무 선 오디 찾아다녔다

그러더니 이질에 걸리자마자 세상 떠났다

할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렸다

네년이 야문이를 안 먹여 죽었다고

약 한 첩 못 써 죽었다고 때렸다

어머니는 키로 막다가 실컷 맞고 굴뚝에 가 울었다

 

 

산토끼몰이 잘하던 남수영감 죽은 이튿날

시집간 딸 옥순이가

마을 밖 오릿길에 접어들면서

머리 풀고 세상 떠나가게 곡성 내니

눈물이 앞을 가려

앞 못 볼 지경으로 곡성을 내니

마을에 들어서자

이 집 저 집 아낙네들 다 나와

 

쯔쯔쯔 혀 차다가

그네들까지 함께 곡성을 내어주니

온 마을에 슬픔 한번 커다랗구나

이만하면 죽은 영감 두 다리도 다시 한번 쭉 뻗겠구나

그렇지

슬픔이라도 풍년 들어야지

 

큰외숙모

 

어쩌자고 외할아버지께서는

큰아들 상룡이는 날 보듯 해서

집 내어 보낸 뒤로

그 집 가려고 두루마기 떨쳐입은 적 없다

군산 명산동 벼랑 말랭이 다락집에는

밤새도록 콜록댄 큰외삼촌 상룡이 누렇게 썩어가고

눈썹 검고 눈동자 검은 큰외숙모가

생것 광주리장수로

이 집 저 집 박대 팔아 죽이라도 대는데

아들 하나 있는 것

명산동 벼랑에서 삘기 뽑다 헛디디어

스무 길 밑으로 떨어져 피죽사발 되어버렸다

뒤이어 큰외삼촌도 죽어버렸다

식은 방바닥 치며

울음 막혀 울지도 못하는 큰외숙모 혼자 남아

생것 광주리 두어 번 이고 다녀보다가

그도 또한 양잿물 먹고 죽어버렸다

스무 길 벼랑 찬바람에 산 사람들이야 고뿔 들어

입마개하고 종종걸음으로 지나간다

 

 

 

posted by 황영찬
2014. 12. 11. 19:45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15 갑사와 동학사

 

글 / 박남수, 심대섭, 최응천●사진 / 박보하

1999, 대원사

 

 

시흥시립도서관

SA002639

 

082

빛12ㄷ  230

 

빛깔있는 책들 230

 

연혁 - 박남수------------------------------------------------------------------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동국대 · 경기대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로 있다. 저서로는 『일본6국사 한국관계기사』(공역)가 있고, 연구논문으로 「신라 화백회의의 기능과 성격」, 「신라 상대 수공업과 장인」, 「신라 승관제에 관한 재검토」 등 10여 편이 있다.

 

건축 - 심대섭------------------------------------------------------------------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고건축설계사무소와 시공회사를 거쳐 현재 대원고건축연구소 대표로 있으며 연세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한식목조건축의 공포에 대한 논문과 경기도 지정문화재 등의 실측조사 및 중수공사보고서를 다수 집필하였다.

 

유물 - 최응천------------------------------------------------------------------

동국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전남대, 건국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강사를 역임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과 조계종 성보문화재 전문위원을 겸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불교미술대전』(공저)과 『박물관 밖의 문화유산 산책』이 있으며 「고려시대청동금고의 연구」, 「조선시대 운판에 대한 고찰」, 「일본에 있는 한국 범종」 및 「한국 범종의 특성과 변천」 등 논문이 다수 있다.

 

사진 - 박보하------------------------------------------------------------------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네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3년 월간 『사진예술』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사진가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에는 『Korean Culture』로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사진예술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사진들을 주로 촬영하고 있다.

 

|차례|

 

1 갑사

 

갑사의 연혁

갑사의 건축

갑사의 유물

갑사 대웅전 전경

천진보탑  보탑은 거북 형상을 이룬 자연석으로 머리 부분은 수정봉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에 얽힌 전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초기 불교가 전통적인 자연물 숭배사상과 관련이 잇음을 준다.

대적전 요사  갑사의 대적전 건물 앞쪽과 좌우에는 통일신라기로 여겨지는 건물의 초석이 널려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어느 때인가 현재의 대적전 자리 주변에 당우가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계룡산과 갑사  갑사는 나말려초에 화엄사찰로서 명성을 떨쳤는데 이는 일찍부터 우리나라에서 계룡산이 중요하게 여겨졌던 사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표충원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휴정과 유정, 영규의 뜻을 기려 표충원에 그들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표충원 내부  갑사의 거듭된 중창에는 무염, 도선, 해명 등 여러 고승들이 관련되어 있다.

갑사 입구

갑사 대웅전  작은 석재로 낮은 하부 기단을 만든 다음 뒤로 약간 물려 상부 기단을 구성하였다. 상부 기단은 장대석들 사이사이에 작은 자연석들을 끼워 넣어 대웅전의 위엄을 한층 드높이고 있다.

대웅전 내부  1고주5량가를 기본으로 하여 출목도리를 보강한 형태이다. 내부에 세워진 고주는 구조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후불벽과 불단을 설치하고 불상을 안치하여 불전을 위엄있게 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다.

강당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칸에는 가운데에 고주가 1개씩 세워져 있어 2칸으로 되어 있다. 측면에는 공포가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풍판이 없어 가구의 구성 모습을 확연히 파악할 수 있다.

강당의 공포  살미의 쇠서는 초제공과 이제공은 앙서로 되어 있고 삼제공은 연꽃을 조각하여 최상단의 쇠서가 수서 형태로 되어 있는 통상적인 형태와는 다르다.

삼성각  대웅전 남쪽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져 있다.

삼성각 내부  배면 벽에 붙여 불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불단에는 중앙에 칠성탱화, 좌우로 산신탱화와 독성탱화를 봉안해 놓았다.

대적전  현재의 갑사 경내에서 계곡 건너편 금당터로 추정되는 곳에 요사체 1동과 일곽을 이루면서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봉안해 놓아 건물 명칭과는 맞지 않는다.

팔상전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을 서향하여 세웠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정면 3칸에는 삼분합띠살문을 칸마다 설치하였다. 내부에는 석가모니 불상만이 봉안되었고 북쪽 벽에 쌍림열반상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표충원  영각에는 서산 · 사명 · 영규대사 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이들이 임진왜란 당시 국란 극복에 미친 영향을 기리는 뜻에서 표충원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대웅전 불상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여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의 삼존을 봉안하고 있으며 이 삼불을 중심으로 대세지보살과 문수 · 관음 ·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대웅전 석가모니불  대웅전의 삼존불은 수인을 제외하고 거의 동일한 모습이며 모두 소조로 만들어져 있다.

대적전 석가모니불 좌상  팔각 목조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짧은 목과 좁은 어깨, 신체에 비해 비대해진 얼굴 등 조선 후기 조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대적전 문수 · 보현보살상  거의 동일한 형태의 좌상으로 손에는 연꽃을 잡고 있다. 높은 형태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양 어깨에는 통견의 천의 위에 보발이 길게 흘러내렸다.

석조 보살입상  유일한 삼국시대의 작품이다. 화강석재로 만들어졌으며 목 이하가 절단된 것을 붙여 놓았는데 머리 뒤에 표현된 보주형 두광은 얼굴과 한 돌로 조각된 것이다.

석조 약사불입상  둥그스름한 얼굴의 이마 중앙에는 깊게 파인 백호가 표현되었고 반쯤 뜬 눈과 작게 오므린 입술엔 미소가 느껴지지만 코 부분은 일부 마멸되어 있다.

삼신불 괘불탱  삼신불의 표현과 더불어 육방불보살 11구와 십대제자, 사천왕, 사금강 등 모두 36위의 존상이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밝고 화려한 채색에 섬세한 필법을 갖추었다.

대웅전 영산회상도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화면 중앙에는 키형의 거신광 안으로 두광과 신광을 지닌 석가모니불이 화려한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대웅전 삼장보살도  평행으로 배열된 구도에 많은 권속들이 빽빽하게 둘러싼 전형적인 군도 형식으로 오른쪽에는 이중의 원형 두광과 신광을 두른 지장보살이 앉아 있다.

대적전 석가삼존불화 중앙 탱화  삼세불이 그려진 중앙 탱화는 위아래 2단으로 구분하여 윗단에는 삼세불을 비롯하여 십대제자, 천녀, 동자, 판관을 배치하고 아랫단에는 삼세불의 협시와 여러 보살들을 배치한 평행 배열 구도이다.

대적전 석가삼존불화의 사천왕상  위의 위로부터 보탑을 든 다문천왕과 용과 여의주를 잡은 광목천왕을, 그리고 아래에는 비파를 든 지국천왕과 보검을 잡은 증장천왕을 위아래로 2구씩을 배치하여 앞 시기의 불화들과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팔상전 팔상도  팔상도는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입멸에 이르기까지 일생의 중요 장면을 8폭으로 나누어 그린 것이다. 색체와 필선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팔상도의 기본 형식을 충실히 따른 20세기 초기의 좋은 자료이다.

갑사 금고가  용가 형식을 취한 국내 유일의 작품이다.

만력명 범종  종신의 외형은 위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점차 넓게 퍼진 원추형을 이루었다. 정상부에는 하나의 몸체로 이어진 두 마리의 쌍룡으로 구성된 용뉴가 배치되었는데, 갈기와 비늘까지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범종 세부  이중의 테두리로 둘러진 원형의 당좌는 내구에 작은 자방으로 구성된 연판을 배치한 뒤 그 바깥을 파도무늬와 같은 엽문으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몸을 옆으로 돌린 채 소발을 한 승려형의 입상이 1구씩 모두 네 곳에 부조되었다.

건륭 39년명 요사 동종  불룩하게 솟아오른 천판 위로 하나의 몸체로 이어진 쌍룡의 용뉴를 갖추고 있다. 연곽 사이마다 부조된 보살입상은 원형 두광을 지녔으며 유려하게 흘러내린 천의가 돋보인다.

선조 2년간 월인석보 판목  총 24권 가운데 권 21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래 57매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46매만이 전한다. 보물 제582호.

계룡갑사 현액  강당에 걸려 있는 현액으로, 단아하면서도 웅건한 맛을 준다.

중사자암터 3층석탑  대웅전의 북쪽 응향각 옆에 세워져 있는데, 기단은 일부가 결실되어 하층만 남아 있고 위에는 탑신과 옥개를 하나의 돌로 결구한 3층의 탑신부로 구성되어 있다.

공우탑  대웅전에서 대적전으로 가는 길 계곡 옆에 위치하고 있다. 방형의 기단과 탑신, 옥계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석탑의 형식을 갖춘 이형의 부도이다.

철당간과 석조 지주  여러 마디로 된 지름 50센티미터의 철통을 두 개의 석조 지주 사이에 세운 것으로 다섯 번째 마디 부분을 3줄의 철심으로 묶어 지주에 고정시켰다.

사적비  자연의 암반 위에 정방형의 비좌를 마련하고 그 앞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비신의 4면에는 갑사의 창건과 연혁 등에 관한 내력을 기록하였다.

대적전 앞 팔각 부도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고려시대 부도로 지대석과 탑신, 옥개 등이 팔각을 이룬 팔각원당형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팔각 부도 세부  몇 개의 돌로 구성된 팔각의 높은 지대석 위에 올려진 3층의 기단부 가운데 하대는 아래로부터 크기를 줄여가며 연잎, 사자와 동자상, 구름무늬를 입체적인 부조로 조각하여 매우 화려하게 꾸몄다.

갑사 부도군  입구에서 본전 쪽으로 500미터 거리에 있는 부도골이라는 계곡에는 16기의 부도가 세워져 잇다. 이들 부도는 조선 후기 승탑 형태인 석종형 부도 양식을 따르고 있다.

 

2 동학사

 

동학사의 연혁

동학사의 건축

동학사의 유물

 

 

숙모전의 단종 위패  동학사는 고려 역대 왕과 조선 단종 및 심온, 사육신 등 역대 충혼들을 제향하는 곳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 왔다.

동학사 전경

동학사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배면 벽쪽에 붙여 불단을 설치하고,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셔 삼세불을 봉안하였으며 후불탱을 목각으로 제작하였다.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이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들이고 불단을  설치한 뒤 칠설, 산신, 독성을 봉안하였다.

숙모전  단종을 비롯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참형을 당한 충신 200여 위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한 제단이 잇던 곳으로 초혼각이 세워져 있었다. 현재의 숙모전은 고종 때(광무 8년)에 재건된 것으로 예전의 초혼각을 고쳐 숙모전이라 사액하였다.

대웅전 삼존불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의 삼세불을 봉안하고 있다. 19세기 불상에 새로운 근대 조각 양식이 가미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대웅전 약사탱화  결가부좌하고 양손에 약호를 든 약사불상을 중앙에 크게 배치하였다. 본존 주위에는 육보살과 십대제자가 배치되었는데, 그 전체가 하나의 둥근 테두리 속에 수용되었다.

대웅전 앞 3층석탑  현재의 탑은 계룡산 전각골의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 전한다. 탑신에 보이는 문의 장식이나 4단의 옥개석 층급받침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동화사 부도군  대웅전 서쪽 뒤편에 있는 6기의 부도로 모두 조선시대 후기 작품이다. 이 가운데 세 번째 작품(아래)은 동학사 부도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추면서도 세부 조각이 뛰어난 수작이다.

남매탑  백제국이 멸망한 뒤 어느 남매가 와서 수도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2기의 석탑은 각각 5층과 7층으로 쌍탑의 배치를 보이지만 양식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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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4. 12. 10. 12:37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14 아마존 - 상처받은 여전사의 땅

 

알랭 게르브랑 지음, 이무열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27

 

082

시156ㅅ  22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2

 

발 디딜 틈이 없는 빽빽한 숲,

바다만큼이나 깊고 넓은 어마어마한 강,

악몽 속에서나 나타날 법한 징그럽고 괴상한 동물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태초의 땅 아마존을 얘기할 때면

사람들은 그곳을 녹색의 지옥처럼 공포스러워했다.

그러나 이제 여전사 아마조네스들의 후손들과,

아마존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식한 나라들은

개발과 환경 보존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으며

새로운 아마존을 창조하고 있다.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해군 군의관 쥘 크레보는

아마존강과 오리노코강 유역으로 탐사를 떠났다.

그의 모험담은 석판화로 기록되어

프랑스의 <세계 여행>지에 1880~1881년 동안

소개되었다. 크레보는 1882년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마존 행을 시도하다가

토바족 인디오에게 살해당했다.

 

"여행을 서두르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나는 지금 신의 은총으로 여기에 와 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서 주의 깊게 자연을 조사해야 한다.

다시는 이 물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벤치에 앉아 있다.

내 앞에는 배의 나침반이 있고 무릎에는 노트가 있다.

나는 우리가 나아가는 길을 기록하는 중이다."

본능은 어서 빨리 급류를 타고 떠나라고 하는데,

이성이 나를 제지한다. 탐험가가 미지의 땅을 급히 지나가는 것은

적에게 등을 돌리고 달아나는 것과 같다."

 

"처녀림 -- 기아나에서는 '거대한 숲'이라고

부른다 --의 표정이 차갑고 무시무시하다.

30~40m는 됨직한 열주(列柱)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그 속에서 비할 데 없이

화려한 것을 가진 새들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우아나카가 옆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는 가늘고 긴 막대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막대 끝에는

밧줄로 만든 올가미가 매여 있었다.

그는 동물의 목에 올가미를 척 걸고는

홱 잡아당겼다."

 

"움직이는 숲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법한 인디오 한 무리가

태평스레 우리 옆을 계속

따라왔다."

 

L'Amazone, un geant blesse

 

차례

 

제1장 천지에 널린 계피

제2장 살아 있는 전설

제3장 이성의 시대가 열대우림 속을 파고들다

제4장 거대한 고무산업

제5장 인디오와 열대우림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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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게르브랑 Alain Gheerbrant

1920년 파리 태생인 알랭 게르브랑은 시인이자 영화제작자이고 탐험가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그는 한때 아방가르드 출판인으로 일하다가 보고타로 떠나 거기서 오리노코-아마존 탐사대를 조직하여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아마존 탐사에 나섰다. 그는 시에라파리마 산맥을 넘어 야누마미족(당시에는 과하리보족으로 알려짐)과 최초로 평화적인 만남을 가졌다. 그후 세계를 두루 여행하며 연구와 집필을 거듭하여 이를 토대로 수많은 책과 영화를 만들었다.

 

옮긴이 : 이무열

1958년 전북 익산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북스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번역 및 저술에 종사하고 있다. 저서로는 <러시아사 100장면>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정보 고속도로 길라잡이> <1980년대 러시아>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언어> 외 다수가 있다.

 

제1장

천지에 널린 계피

 

"인디오들은 왜 이런 식으로 방어를 할까? 그것은 그들이 아마존의 신민(臣民)이라는 것말고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우리가 왔다는 게 알려지자 인디오들은 그들에게 가서 도움을 구했고, 곧 열 명 남짓한 아마존이 왔다. 아마존들은 여자 대장으로 인디오 남자들 앞에 서서 정말 용감하게 싸웠다. 인디오들은 감히 등을 돌릴 생각을 못 했는데, 그런 경우에는 아마존들이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쳐죽였다."

가스파르 데 카르바할

"정복자들은 눈을 크게 뜬 채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섬망 상태 속에서 살았다."

장 데스콜라

잉카 제국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

키토 고원 지대 한쪽에는 안데스 산맥의 화산 봉우리 중 53개가 우뚝 솟아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산기슭이 낮은 경사를 이루며 아마존 지역으로 뻗어 내려간다.

페루는 20년도 채 못 돼서 온 유럽을 휩쓸고 그 지정학적 균형까지도 깨뜨려 버린 황금강의 발원지였다. 강의 시원은 안데스 산맥이었는데, 잉카 신전에서 약탈한 보석과 신성한 그릇과 조각품들이 스페인인이 만든 용광로 속에서 주괴로 변했다. 야마들을 징발해 보물로 탈바꿈한 상품들을 해안으로 실어 나르면, 거기서 황금막대들을 캘리언선에 실었다.

안데스 산맥을 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인의 말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인디오들도 특수 훈련을 받은 개한테는 완전히 혼비백산했다. 피사로는 탐험에 사나운 인디오 공격용 개 2,000마리를 대동했다.

배를 만드는 스페인인.

오레야나가 돌아온 지 45년 뒤인 1587년, 지도 제작자 호안 마르티네스는 라플라티강 근처에다 파타고니아를 그려 넣고, 기아나 고지가 안데스 산맥에 이어진 것처럼 그렸으며, 오리노코강과 아마존강을 하나의 거대한 히드라처럼 만들어 바다로 빠져 출구가 적어도 둘인 것처럼 묘사했다. 오리노코강 하류가 분명한 위쪽 가지는 오레야나강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마라뇬강에서 뻗어나온 아래쪽 가지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두 강 사이에 아마존의 땅이 거대한 섬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가스파르 데 카르바할은 여자 전사들이 분명히 북쪽에서 공격해 왔다고 기술했다. 이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잉카 제국 시인의 지혜가 떠오른다. 시인은 제국의 주변 숲을 휘감으며 미끄러져 내리는 이 물길을 아마루-마유, 즉 '거대한 뱀-인간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들이 바삐 활을 다루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벌거벗은 몸에 팔장식도 두르지 않은 모습으로 어찌나 빨리 화살을 뽑아 쏘아대는지, 솜씨가 영국인 명궁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의 야만인들은 활을 쥔 손으로 화살통을 잡은 채, 시위를 여섯 번 당겼다 놓았다 싶은 동안에 12개의 화살을 날려보냈다."

장 드 래리


"황금 투구를 쓰고 번쩍이는 무기를 찬 전사들을 바라보는 데서 얻은 어떤 만족감도 그 야만인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에 비길 수는 없었다.

가스파르 데 카르바할


1602년 동판화에 묘사된 브라질 해안.

카를로스 5세는 브라질이 발견된 바로 그해에 태어났으나, 선제인 페르디난드나 이사벨 여왕만큼 아메리카 인디오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 신세계로부터 금이 대거 유입되는 데에 맞추어 자신의 새로운 본토 전략을 시행하는 데만도 너무 바빴던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인디오의 노예화를 금지하고 그 신분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신법의 반포(1548년)는 그의 통치와 신세계의 역사에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명령이 법적 구속력을 얻기까지는 몇 세기가 걸렸다.

곤살로 피사로의 처형을 그린 이 동판화는 운명의 장난에 대한 부정적인 교훈을 담고 있겠지만, 작가의 무대 연출 기교는 연극보다도 뛰어나다.


제2장

살아 있는 전설


나뭇잎이 나비로 변하고 열대 덩굴이 뱀으로 변하며 뱀이 덩굴로 변하는 등, 동물과 식물과 광물, 공기와 물, 빛과 그림자의 구별이 모호한 데서 야릇한 즐거움을 맛보는 세계에서, 어디서 현실이 떠나고 어디서 상상이 시작되는가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16세기와 17세기에 아마존 일대를 덮고 있는 우림은 숨을 죽인 채 환상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빚어 내는 모험 가득한 대서사시를 지켜보았다.

엘도라도는 마누아에 사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그 규모가 전설의 도시에 어울렸다. 월터 롤리 경에 따르면, 후안 마르티네스는 하루 종일 걷고도 더 걸어서야 황궁에 도착했다고 한다.

아무도 본 적이 없다 보니 점점 신비에 싸여, 파리마호수(그림은 1630년에 네덜란드인이 그린 지도)는 지도제작자들이 저지른 속임수 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사실로 믿어졌다. 지도에서 호수가 사라지기까지는 2세기가 걸렸다.

런던탑에서 13년 동안 고생을 한 뒤에, 월터 롤리는 가장 커다란 모험을 찾아서 신비의 땅, 엘도라도로 2차 항해를 떠낫다. 그는 후에 영국으로 돌아와 단두대에 세워졌다.

16세기의 판화에서처럼 환영하는 인디오들을 만나고 혼 후, 롤리는 런던탑에서 자신의 기념비적인(그러나 불행하게도 끝맺지 못한) 《세계사》를 쓰기 시작했다.

에와이파노마족(아세팔리, 즉 '머리없는 인간'으로도 불렸다)은 지금의 북베네수엘라에 사는 카리브 부족의 하나인 에콰나족이었는지도 모른다.

16세기에 아마조니아의 '야만인'들을 찾아 나선 광신적인 선교사들은 인디오들이 대거 내륙으로 도피해 들어간 데에 큰 책임이 있다. 자신들의 관습과 믿음을 악마 숭배라 하여 추방시키려는 조직적인 공격에 맞서 자신들을 힘으로 지키기 위해서, 인디오들은 마지못해 적합한 시기를 택하여 지나치게 열심인 침입자들을 참살했다. 선교사들은 반대로 이것을 순교자의 왕관을 쓸 기회로 받아들이고 더 한층 고무되어 오히려 노력을 배가했다(그림은 1611년의 스페인인 선교사 페레르). 어처구니없는 이 싸움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가 모든 사람의 서로 다른 권리를 인정하고 나서부터였다.

아르마딜로에 관한 월터 롤리 경의 기록이다. "스페인인이 아르마디야라고 부르는 짐승은 레노세로 비슷하게 생긴 작은 접시 위에 줄무늬를 넣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꽁무니에 거대한 사냥용 나팔만큼이나 큰 하얀 뿔이 자라나 있다. 그 뿔은 휘감는 데 쓰였는데, 외과의사인 모나르두스는 그 뿔에서 나온 가루가 귀에 조금만 묻어도 귀머거리가 된다고 쓰고 있다."

결국에는 도시의 건설자로 변신하지 않은 정복자가 어디 있던가? 스페인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피사로는 잉카제국을 장악하자마자 곧 그 성형 수술을 꾀하기 시작했다. 아타왈파는 1533년에 죽었고, 그와 더불어 그의 왕조는 사라졌다. 1534년, 피사로의 부관인 세바스티안 데 베날카사르는 수도를 파괴하고 스페인식 격자 모양의 거리를 가진 새로운 키토를 설계했다. 예수회 교단의 건축가가 해발 2,000m에다 세운, 마치 산꼭대기에 박힌 보석과도 같은 이 귀중한 유적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고전풍의 괴기스런 이 그림은 신세계 탐험가의 스케치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긴다. 장 드 래리의 브라질 항해(1555~1558년)기록 속에 들어 있는 이 삽화는 이름난 식인종 투피남바의 생활을 묘사한 장면이다.


"커다랗게 외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마치 개나 늑대의 울부짖음처럼 들리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그가 죽었어요!' 몇몇이 구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그는 매우 용감해서 우리들에게 많은 포로들을 먹을 수 있게 해주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응답한다. '그는 정말 훌륭한 사냥꾼이고 뛰어난 낚시꾼이었는데!' 다시 한 명이 외친다. '오, 우리의 원수를 갚아 주던 사람이여, 우리의 용감한 포르투갈인 살육자여!'"

장 드 래리

우아하기 그지없는 고전풍의 이 그림은 '고상한 야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본 장 자크 루소와 동시대인이 그렸다. 인디오들을 미화시켜 그린 것으로 이보다 더한 것은 찾아볼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역설적이게도, 신대륙에 관한 객관적인 기록이 부쩍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여전히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1616년 1월 20일의 벨렘 요새 축성은 포르투갈의 아마조니아 병합의 신호탄이었다. 다른 유럽인들이 철수하고 테이셰이라 선장이 키토 왕복 여행을 완수한 후, 포르투갈인들은 다음 단계의 침투에 착수하여 바라(현재의 마나우스) 요새를 쌓았다(1669년).

 

제3장

이성의 시대가 열대우림 속을 파고들다

 

"어떤 장벽이라도 넘겠다는 열정으로 그들은 안데스를 넘고, 컴컴한 신비의 강을 기어내려가고, 짐수레를 끌고서 사막을 가로지르고, 반딧불 반짝이는 뱀처럼 얽힌 정글을 헤치며 나아갔다 ……. 그들이 그런 식으로 조사하고 정리하고 문자화한 결과, 아메리카는 300년 동안 무성하던 환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빅토르 볼프강 폰 하겐

《남아메리카가 그들을 불렀다》

쿠라레 독액에 관한 샤를 마리 드 라콩다민의 기록. "자기네들의 복수심이나 질투심, 증오감을 만족시키는, 그렇게도 확실하고 효과 빠른 도구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이 원숭이나 새들에 한해서만 치명적인 수단으로 쓰인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자신의 새로운 신도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종종 증오의 대상이 되는 선교사가 ……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나 불신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결단을 자아낸다."

 

1745년의 판화에 나타난 아마존강의 협곡.

"오늘 아침 몇 시간 동안 훔볼트와 함께 있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를 안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느낀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다재다능한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그 어떤 주제가 화제에 오르더라도 그는 지극히 편안한 자세로 자신의 지식 창고에서 숱한 보물을 꺼내 우리 위에 쏟아붓는다. 그는 엄청난 물줄기를 쏟아 내는 분수와도 같다. 우리는 마를 줄 모르는 값진 물줄기를 받아 담을 그릇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안데스 산맥을 넘는 훔볼트. 19세기의 동판화.

19세기 중엽 영국에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새로운 종류의 과학연구자들이 등장했다. 바로 이권에 좌우되지 않는 과학자들이다. 자연과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여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헨리 월터 베이츠와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를 생각해 보라. 그들이 처음 만나 서로가 모험의 꿈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하나는 측량기사의 조수였고 하나는 속옷가게의 점원이었다. 대영박물관은 그들에게 곤충과 식물 표본의 채집을 의뢰했다. '팔 수 있는 상태로' 가져온 종 하나마다 3펜스를 준다는 조건이었다. 1848년, 그들은 열정 외에는 이렇다 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벨렘에 상륙했다.

동물지리학회의 아버지.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네그루강에서 4년을 보냈다. 진화론의 선구자였던 그는 다윈에게 자연선택에 관한 자신의 논문을 보냈고, 그 논문은 동시에 런던 린네 협회에 보고, 낭독되었다. 그 유명한 《종의 기원》의 첫번째 초안이었다.

아마조니아의 물에서 가장 장관인 두 괴물 중 하나인 악어를 잡는 헨리 월터 베이츠. 검은 카이만악어는 몸길이가 5~6m에 이른다. 카리브 해안에 사는 그 사촌, 크로코딜루스 인테르메디우스는 8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아나콘다 중에는 몸길이 약 12m, 몸무게 150kg 이상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리오브랑코 인디오

쿠니부시 인디오

마유루나시 인디오

마쿠시 인디오

철학여행

1783년에서 1792년 사이에 일군의 포르투갈인 탐험자-학자들은 아마조니아 인디오들과 동물상을 그린 당세기의 가장 귀중한 그림첩을 만들어서 명성을 얻었다. 알렉산드레 로드리게스 페레이라는 코임브라대학의 '자연철학' 박사였고, 그의 여행 동반자 주아킴 주세코디나와 주세 주아킴 프레이레는 리스본 왕립 자연사 수집소 소속의 화가였다. 그들은 9년동안 네그루강, 브랑코강, 마데이라강, 과포레강, 마모레강을 따라 4만km(지구의 둘레에 해당하는 거리이다)를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가는 곳마다 놀라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인디오를 처음 본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사진처럼 정확하게 인디오에 관한 기록을 처음으로 남겼다. 그러한 발견 가운데에는 화살이나 창을 쏘는 데 쓴 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활보다도 앞서는 인류의 가장 오랜 무기 가운데 하나였다.

 

제4장

거대한 고무산업

 

"'에베'라고 불리는 나무는 에스메랄다스 지방에서 자란다. 단 한 번만 쭉 그어도 나무는 우유 같은 환액을 분비하는데, 공기와 접촉하면서 이 액은 차츰 굳어지고 색깔이 짙어진다. …… 마야족은 거기서 얻는 수지를 '카우추'라고 부르는데, '눈물을 흘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샤를 마리 드 라콩다민

아마조니아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야생 고무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19세기에 오마과 인디오는 포르투갈인들에게 고무 시린지의 사용법을 시험해 보였다.

 

악순환

우기가 닥쳐 고무액 채취를 할 수 없게 되면 세링게이루는 자신의 수확물을 강 위에 띄우고아비아도르(중개인)가 기다리고 있는 마나우스로 내려간다(위). 펠레를 쪼개어 등급을 매기고(가운데) 무게를 단 후에(아래) 중개인은 자신의 고객과 새로운 계약에 서명한다. 물론 거래 실적표에서 그의 수입을 산출해 낸 뒤의 일이다. 아비아도르의 창고에는 통조림, 음료, 옷가지, 그리고 불쌍한 채취꾼들이 우기의 괴로운 몇 달 동안을 보내는 데 있으면 좋겠다 싶은 갖가지 물건들이 그득하다. 그러니 세링게이루가 올 때마다 늘상 아비아도르에게 더 많은 빚을 지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해를 거듭하면서 채취꾼은 '자유'를 꿈꾸지만, 결과는 그와 무자비한 주인 사이에 채무 관계의 사슬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뿐이다.


제5장

인디오와 열대우림


"내 뒤를 이을 국왕, 내 딸인 공주, 내 아들인 왕자가 하는 모든 일, 하도록 허락되는 모든 일이 섬이나 육지, 어느 곳에 사는 인디오들, 그 생명과 재산 어느 것에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공평하고 친절한 대접을 받는 것을 그들이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라노라."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마지막 유언




걷는 법 배우기

보토쿠도족 인디오들은 인종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레가 자신이 머물던 땅의 주인인 아셰족에게 숲으로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했을 때 배운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아셰족들은 멈칫했다. "그들의 가장 큰 염려는 나 때문에 일행의 속도가 늦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내가 동행하는 데 동의했고, 나는 곧 그들의 염려가 근거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 때문에 '길을 우회하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은 날랜 동작으로 걸었고, 나는 자꾸만 뒤로 처졌다.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나무덩굴이 비록 꼼짝 못하게는 아닐지라도 계속해서 길을 막았고, 때로는 덩굴이 갑자기 나를 휘감아 나무줄기에 내동댕이치곤 했다. 옷이 가시에 걸리면 가시를 떼어 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나는 뒤로 처지는 데 그치지 않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아셰족은 말이 없고 날렵하고 능숙했다. 오래지 않아 나를 뒤처지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옷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뭇가지와 덤불은 벌거벗은 인디오의 피부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그들처럼 하기로 작정하고 옷을 벗어 던졌다."

세균전

아마존강의 양대 지류인 주루아강과 푸루스강은 페루, 볼리비아와 경계를 이루는 브라질의 아크레주를 관통하여 흐른다. 두 강은 전장에 걸쳐 항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강의 원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의 역사가 19세기 초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이 지역에 살았던 인디오들은 탐험가들을 평화로이 맞았다. 그런데 고무 붐이 일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이 지역에 야생 고무나무가 풍부하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인디오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수아레스가 자신의 제국 건설에 착수했다. 인디오들을 되도록 신속하게 없애 버리기 위해 세랑게이루(투기꾼)들은 18세기에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북아메리카 인디오들에게 시도하여 성공한 방법을 원용했다. 심지어는 병균에 감염된 옷을 건네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오늘날 이 사람들은 실제로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전세계의 다른 사람들처럼 인디오들(위는 카마칸족 인디오)도 춤을 언어와 축제, 둘 다로 생각했다. 신성과 세속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없는 시대로의 일종의 회귀인 셈이다. 언어보다도 오래된(새들의 짝짓기 군무를 보라) 춤은 언어를 초월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광란하며, 시간을 뛰어넘는 몰입으로 이중성 - 육체와 영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을 쓸어 없애고 존재를 다시 하나로 묶어 내면서, 춤은 생명 본능을 표현한다. 흔히 축제로, 이따금씩은 내키는 대로, 셀 수 없이 벌어지는 인디오들의 춤판은 출생, 사춘기, 죽음, 전쟁, 결혼, 집짓기, 새로운 땅의 개척 등등, 기념할 만한 일에서부터 일상적인 일까지, 인생 행로의 마디마디에 구두점을 찍는다.

인디오 공동체가 바깥 세계에 포위되어 공동체의 존속 자체를 위협받게 되었을 때, 샤먼의 지속적인 존재는 집단의 결집력과 나아가 존재 자체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증이었다 - 인종학자와 선교사들이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이다. 예언자와 사제와 치료자가 하나로 뭉쳐진 샤먼은 부족원 개개인의 건강을 지키고 부족의 안녕과 행복에 관계된 모든 일에 자문을 한다.


"주민들의 발가벗은 몸은 풀로 이어짠 푹신한 바람벽과 야자나무의 술로 보호받는 것 같았다. 원주민들이 오두막에서 미끄러져 나올 때면, 마치 거대한 타조 깃으로 만든 덮개를 벗어 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몸과 보드라운 상자에 담긴 장신구들은 정교한 본을 따르고 있었고, 몸의 화장과 칠이 화려하다 보니 오히려 살색이 돋보였으며, 몸의 요란한 칠은 또한 깃털과 꽃 사이에서 밝고 오묘한 섬광을 발하는 야생동물의 이빨 등, 그보다 더 휘황찬란한 장식물들이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배경 효과를 노린 것 같기도 했다. 그 광경은 마치 문명 전체가 삶의 형태와 내용과 색깔에 대한 단 하나의 뜨거운 애정에 전폭적인 협력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18세기 포르투갈인의 그림에 묘사된 쿠루추족 인디오의 공동의 집.

브라질과 콜롬비아, 페루의 교차로에 사는 제법 큰 규모의 인디오 부족인 술리몽스 강변의 투쿠나족(위)은 지난 2세기 동안, 용케도 자기네 사회문화적 통합력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웃 백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그러나 국제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그들마저도 브라질 쪽에서의 잔인한 습격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브라질령 아마존 지역의 인디오들이 사는 다양한 형식의 움막들.

 

"오셀롯 귀신아, 나한테로 내려오너라! 헤쿠라여, 당신은 나를 돕지 않았나이다. 나는 며칠 밤을 지새며 복수할 방법을 궁리했노라. 나는 수리 귀신과 딜 귀신을 보았노라. 달 귀신이 인간의 육체를 탐하여 움막 속에 들어왔다가 수이리나의 화살에 맞았구나. 그 상처와 흘린 피에서 살을 뜯어먹는 무수한 귀신들이 태어났도다. 달 귀신아, 수리 귀신아, 너희들은 식인종이다. 수리야, 네 머리는 피로 물들었고, 네 콧구멍에는 벌레들이 들끓는도다. 하늘에 잠자리들이 모여드는구나. 오마웨가 화살로 땅을 뚫었구나. 구멍 속에서 솟아나온 물줄기가 하늘에 닿아 하늘 뚜껑을 이루었도다. 그 위에서 잠자리들이 번식하는구나. 그 위에 목마른 자들이 산다! 그들을 나한테 내려오게 하라! 오마웨가 나의 혀에 불을 붙였도다! 그들로 하여금 내 혀를 적셔 새롭게 만들게 하라! 악마에게 우리 아이들을 잡아가도록 명령한 자들은 내 복수를 받으리라. 그들이 어디 있다하더라도."

한 아이의 죽음에 부친 야누마미족 샤먼의 주문

자크 리조 기록

만일 브라질인 투기꾼들이 우연히 시에라파리마 산맥의 아마존 쪽 사면에서 다량의 금과 다이아몬드 퇴적물을 발견하지만 않았더라면, 야누마미족은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에서 살아갔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유명한 모험가이자 런던탑에 갇힌 죄수였던 월터 롤리 경이 400년 전에 찾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엘도라도가 다시 태어났다. 1987년에 시작된 이 골드 러시는 4만 명의 사람들 - 그리고 그 문화와 질병 -을 야누마미 땅으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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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5. 22:02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13 우리 옛 질그릇

 

글, 사진 / 윤용이

1999, 대원사


 

시흥시립도서관

SA002624

 

082

빛12ㄷ  229

 

빛깔있는 책들 229

 

윤용이-------------------------------------------------------------------------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사 및 학예관을 거쳐 문화재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 원광대학교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도자사연구』『아름다운 우리 도자기』『한국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공저) 『우리 옛 도자기』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선사시대 질그릇

   신석기시대 질그릇

   청동기시대 질그릇

   초기철기시대 질그릇

역사시대 질그릇

   원삼국시대 질그릇

   삼국시대 질그릇

   통일신라시대 질그릇

   고려시대 질그릇

   조선시대 질그릇

맺음말

참고 문헌

우리나라 질그릇 역사 연표

덧무늬 질그릇발  양양 오산리 출토, 높이 16.5센티미터, 입지름 23.6센티미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손톱무늬 질그릇발  양양 오산리 출토, 높이 27.7센티미터, 입지름 37.5센티미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주구달린 덧무늬 질그릇발  부산 소선동 패총 출토, 높이 12센티미터,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덧무늬 질그릇발  김해 수가리패총 출토, 높이 20.6센티미터,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빗살무늬 질그릇발  서울 암사동 출토, 높이 40.5센티미터, 경희대학교박물관 소장.

빗살무늬 질그릇발  서울 암사동 출토, 중 · 소 · 대, 높이(대) 47.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빗살무늬 질그릇의 분포도

북방식 고인돌  강화도 부근리 소재

청동기 유물  화순 대곡리 출토, 지름(큰 거울) 18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민무늬 질그릇발  광주 미사리 출토, 높이 44.6센티미터, 경희대학교박물관 소장.

민무늬 질그릇발  서울 가락동 주거지 출토, 높이 35센티미터,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각종 철기  초기철기시대, 위원 용연동 출토, 길이(창) 32.6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흑도 장경호  대전 괴정동 출토, 높이 22.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점토대 질그릇발  대전 괴정동 출토, 높이(왼쪽) 1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점토대 질그릇발  출토지 미상, 높이(왼쪽) 15.1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손잡이달린 흑도 장경호  원삼국시대, 경주 조양동 출토, 높이 32.6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돌무지무덤  고구려시대, 중국 퉁구 장군총 전경.

손잡이달린 질그릇호  고구려 6~7세기, 대동 송신리 출토, 높이 17.1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질그릇 단지  고구려 6~7세기, 높이 35.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몽촌토성 전경  서울 방이동(현 올림픽공원), 전체 길이 2,285미터.

삼족도기 백제 5세기, 서울 몽촌토성 출토, 입지름 24.9센티미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원통형 질그릇  백제 5세기, 서울 몽촌토성 출토, 높이 54센티미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백제 기와 가마터 전경  백제 6~7세기, 부여 정암리 소재.

백제 도용  백제 6~7세기, 부여 정림사터 출토,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도제 불상대좌  청양 본의리 가마터 출토, 높이 100센티미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가야 금관  가야 5~6세기, 전 고령 출토, 높이 11.5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기마인물형 질그릇  가야 5세기, 전 김해 출토, 높이 23.2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집 모양 질그릇  가야 5~6세기, 높이 35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오리형 질그릇  가야 5~6세기, 전 경상남도 출토, 높이 15.7센티미터(왼쪽), 16.5센티미터(오른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령 지산동고분 발굴 모습

금제 태환식 귀고리  경주 보문동 부부총 출토, 신라 5~6세기, 길이 8.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남자인물상 도우  신라 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질그릇 장경호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고분출토, 높이 34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배 모양 질그릇  신라 5~6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높이(왼쪽) 12.6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마인물형 질그릇  신라 5~6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높이 23.5센티미터(주인), 21.2센티미터(시종),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굴암과 본본불상  통일신라 8세기, 경주 토함산.

얼굴 모양 수막새  통일신라 7세기, 경주 사정동 영묘사터 출토, 높이 14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여인상 도용(세부)  통일신라 7세기, 경주 황성동고분 출토, 높이 16.5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문관상 도용  통일신라 8세기, 경주 용강동고분 출토, 높이 17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녹유 도기 인화문합  통일신라 8세기, 경주시 출토, 총높이 16.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주 안압지 전경

질그릇 묵화문합  통일신라시대, 경주 안압지 출토, 입지름 11.3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각종 질그릇  고려시대, 연세대학교박물관 소장.

장독대(버선본 붙인 독)

소래기  높이 31.5센티미터

전라도 지방의 독  높이 100센티미터

경기도 지방의 독  높이 97센티미터

경기도 지방의 독  높이 94센티미터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