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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9. 15:16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6 신정일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

신정일

2003, 생각의 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2377

 

981.102

신746낙

 

탐사와 산책 19

 

사라진 강 길을 따라 홀로 떠난 낙동강 천 삼백 리 역사찾기의 도정

 

물의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물을 마셔라.

선종

 

강대국이 강의 하류와 같다면, 모든 것이 그에게 흘러 갈 것이다. 그에게서 세상의 여성적인 것이 구현될 것이며, 여성적인 것은 잔잔함을 통하여 영원히 남성적인 것을 이길 것이다.

- 노자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 괴테 『파우스트』에서

 

차례

 

추천의 글 임재해

길머리에

 

제1구간 낯선 곳에선 길을 물을 사람도 없다 _너덜샘에서 단천리까지

 

1일 강물이 흐르듯 내 마음도 따라 흐르고

      흔들리며 홀로 떠난다 | 너덜샘에 비가 내리고 | 황부자의 전설이 서린 황지

      낙동강 천삼백 리 예서부터 시작되다 | 구무소를 지난 강물 | 여울져 흐르는 강물이 석포에 접어들고

      전화는 불통이고 빈집들만 남아 있다 | 죽느냐 사느냐 그게 문제로다 | 정향사에는 스님의 그림자도 없다

 

2일 길을 물을 사람도 없는데

      풍애터널을 통과하다 | 모든 나무의 으뜸인 춘양목 | 걸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을 | 삶도 죽음도 도처에 있다

      삶도 죽음도 도처에 있다 | 낯선 곳에선 길을 물을 사람도 없다 | 혼자서 가라, 그 길을 | 합강 나루엔 빈 배만 매어 있고

 

3일 청량산 자락을 흘러가는 낙동강

      청량산에서 바람이 소리를 만나다 | 바위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벌어져 있고 |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지는 산

      선비의 고장 안동에 접어들다 | 길이란 무엇인가 | 넓고도 넓은 낙동강을 건너다

 

제2구간 흐르는 저 강물 천리를 흐르는데 _단천리에서 삼강 나루까지

 

4일 안동댐을 지나 병산서원으로 가는 물길

      낙동강에서 물수제비를 뜨다 | 도산서원 앞으로 낙동강은 흐르고

 

5일 작살로 찔렀다 하면 은어가 올라오고

      작살로 찔렀다 하면 은어가 올라왔다 | 배나들에는 주진교가 떠 있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임청각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다

      왕건과 견훤의 싸움터였던 안동 | 하늘로 흐르는 강 | 고구려식이라는 봉정사 극락전

     요사채로 남은 고금당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낙동강 변에는 메밀꽃들이 피어 있고 | 병산서원에서의 하룻밤

 

6일 하회 앞에서 물은 휘돌아간다

      만대루에 올라서서 낙동강을 굽어보다 | 그토록 맑은 물에 우뚝 솟은 절벽 | 연화부수형 하회 마을

      가버린 옛시절이 떠오르는 낙동강 | 한사코 길이 없다고?

 

제3구간 시간이 있거든 강물을 보고 배우시게 _삼강 나루에서 고령교까지

 

7일 한 배 타고 세 강을 건너던 삼강 나루

      내성천과 금천이 합쳐지는 곳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 비경 중의 비경 | 의성포 물도리동 | 꽃게 나루엔 배가 없다

      낙동강의 제일 절경 경천대 | 길만 나 있어도 행복하다 | 문득 바람이 세차게 일어나고 | 내가 오늘 갈 것이다

      나각산에 설치된 뱀 그물 | 낙동강에서 제일 큰 낙동 나루 | 신라 최초의 절 도리사 | 바람 부는 강변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8일 두 갈래 길에서 흔들리는 내 마음

      낙동강이 안개 속에 숨어 있고 | 인재의 고장 선산 | 신검이 진을 쳤던 송림 | 두 갈래 길에서 내 마음은 흔들리고

     페놀사태와 낙동강 | 길은 포기하는 순간 없어지고 | 워커라인으로 불렸던 낙동강 방어선 | 왜물고

      퍼내도 펴내도 생기는 모래

 

9일 비를 맞으며 걷는 강길

      젊은 사람이 오토바이도 못 타 | 낙동강의 오염벨트 대구 일대 | 어느 날 문득 강이 내게로 왔다

 

제4구간 한가함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 _고령교에서 삼랑진 나루까지

 

10일 내가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지도 위에도 길은 없다 | 현풍에서 비슬산을 바라보다

      낙동강은 푸른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하고 | 홍의 장군 곽재우가 잠든 곳

      참을 수 없는 집의 가벼움 | 최치원이 즐겨 놀았던 청량사

      해인삼매에서 유래된 해인사 | 오광대놀이가 시작된 율지 나루 | 우포늪이 멀지 않다

 

11일 정암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

      박진나루엔 빈 배만 매어 있고 | 낙동강으로 남강이 접어들다 | 고려 말의 혁명가 신돈이 태어난 곳

      세상을 내려다보는 용선대의 부처님 | 본포 나루에서 해가 저물다

 

12일 길은 없다, 그러나 길은 있다

      아침 강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 철새들의 낙원 주남 저수지 | 밀양강이 낙동강에 몸을 풀고

      강낭콩보다 푸른 절개

 

제5구간 낙동강은 그래도 낙동강이다 _삼랑진에서 을숙도까지

 

13일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리

      까마귀 두 마리를 잡은 사내 | 물금 나루에서 강은 바다와 같다 | 불보사찰 통도사

      금관가야의 중심지, 김해 |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다 | 구포 나루는 흔적도 없고 | 낙동강에 그래도 희망은 있다

 

참고문헌

 

나는 걸르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

- 키에르케고르

 

훌쩍 떠나온 것이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친구여! 인간의 마음이란 대체 어떠한 것일까?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헤어지길 섭섭해 했던

자네 곁을 이렇게 떠나와서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니!

-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의 첫 구절

 

발원지 태백시 화전동에서 정선군 고한읍으로 넘어가는 싸리재를 사이에 두고 금대봉과 함백산 사이 천의봉 너덜샘에서 낙동강이 발원한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추전역에는 일반 객차가 쉬지 않는다. 다만 대처로 실려 가기 위한 석탄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며 그 때문인지 온 천지가 시커멓다.

 

경상도의 낙동강은 태백산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꺾어져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서 한 도[一道]의 중간을 그었으며, 또 동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태백산 동쪽 줄기는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흐르고 서쪽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으로 꺾어지며, 남쪽은 지리산에 이르고 다시 동쪽으로 가서 김해에 이른다. 경상도의 한 도는 모두 한 수구水口를 이루니, 낙동강은 상주 동쪽을 말함이다. 낙동강의 상류와 하류는 비록 지역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통틀어 낙동강이라 부르며, 이 강은 '가야진伽倻津'이라고도 한다. 강 동쪽은 좌도左道가 되고, 강 서쪽은 우도右道가 된다. 고려 때에는 이 강과 호남의 섬진강과 영산강을 배류背流한 삼대강三大江이라고 하였다.

- 이긍익 『연려실기술』 「지리전고」 낙동강에 대해

 

황수黃水는 태백산 황지에서 시작한다. 서남으로 흘러 3백 리 함창에 닿고 동으로 굽이쳐 남으로 또 3백 리 함안에 이른다. 북향으로 꺾어 동류東流 1백 리 김해의 동북 황산포구에 이른다. 여기서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낙동이라 함은 가락의 동쪽이라는 말이다.

- 다산 정약용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 낙동강에 대해

 

태백산의 황지는 산을 뚫고 남쪽으로 나와서 봉화奉化에 이르러 매토천買吐川이 되며, 예안禮安에 이르러 나화석천羅火石川이 되고 손량천損良川이 된다. 또 남쪽으로 흘러 부진浮津이 되며, 안동安東 동쪽에 이르러 요촌탄寥村灘이 되며, 물야탄勿也灘이 되고 대항진大項津이 된다. 영양英陽 · 진보眞寶 · 청송靑松의 여러 냇물이 모두 합하여 서쪽으로 흘러 용궁龍宮의 비룡산秘龍山 밑에 이르러 하풍진河豊津이 된다. 풍기豊基 · 순흥順興 · 봉화奉和 · 영천英川의 물은 합하여 예천禮泉의 사천沙川이 되고, 문경聞慶 · 용연龍淵 · 견탄犬灘의 물은 남쪽의 함창咸昌에 와서 합쳐 곶천串川이 된다.

상주 북쪽에 이르러 송라탄松蘿灘이 되며, 상주 북쪽 동북 35리에 이르러 낙동강이 되며, 의성義城 · 의흥義興 여러 냇물은 군위軍威 · 비안比安을 거쳐 와서 합쳐진다. 선산善山 북쪽에 이르러 견탄이 되며, 선산부善山府 동쪽에서는 이매연이 되고 여차니진餘次尼津이 되며, 선산부 동남쪽으로 보천탄寶泉灘이 되었다. 속리俗籬 · 황악黃岳 동쪽 물은 지례知禮의 감천甘川이 되어 금산金山 · 개령開寧을 거쳐 합친다.

인동仁同 서쪽에 이르러 칠진漆津이 되며, 성주星州 동쪽에 이르러 소야강所耶江이 되고 동안진東安津이 되니, 곧 대구 서쪽 경계이다. 영천永川 · 신령新寧 · 하양河陽 · 자인慈仁 · 경산慶山과 합하여 동쪽으로 흘러서 다시 합친다.

초계草례溪 동쪽 창녕昌寧 서쪽에 이르러 감물창진甘勿倉津이 되며, 거창居昌 덕유산德裕山 동남쪽 여러 냇물은 합하여 합천陜川의 남강南江이 되고, 또 초계의 황둔진黃芚津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가서 합한다.

영산靈山 서쪽에 이르러 기음강岐音江이 되어 촉석강矗石江과 합하여진다. 영산의ㅣ 기음강에 이르러 낙동강과 합하고, 칠원漆原 북쪽에 이르러 모질포毛叱浦가 된다. 이 물은 다시 흘러서 매포買浦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무포라고도 한다. 창원昌原 북쪽에 이르러 주물연진主勿淵津이 되며, 밀양 남쪽 30리, 김해 북쪽 50리 경계에 이르러서 뇌진磊津이 되는데, 이속은 해양강海陽江이라고도 한다. 청도淸道와 밀양의 물은 응천凝川이 되어서 영남루嶺南樓를 남쪽으로 돌아서 합쳐진다.

또 동쪽으로는 삼랑창三浪倉이 있고 남쪽으로 흘러 왕지연王池淵 황산강黃山江이 된다. 또 남쪽으로 양산梁山의 동원진東院津이 되며, 또 남쪽으로는 세갈래 물이 되어서 김해부金海府 남쪽 취량鷲梁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 이긍익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 낙동강에 대해

 

이정표 누구도 흐르는 물과 내 발걸음을 중단시키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낙동강의 하구인 을숙도에 도착할 것이다.

 

때로는 산봉우리에 내리는 눈이 되어 때로는 서리나 이슬이 되어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물의 성질이라 아무도 그 뜻을 막을 수 없다.

- 게오르그

 

강물

 

오세영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푸르고 푸른데 어찌 태백이라 하였던가. 그 위에 당집을 짓고 천왕이라 이름하였네. 신라 고려 때부터 숭상하여 믿었고, 모두 무당과 박수의 도회로세. 저 동쪽을 바라보니 팽나무도 많고 저 남쪽을 돌아보니 크고 높은 언덕도 많네.

- 『삼척진주지』 「척주부」에서 태백산에 대해

 

천하의 명산이 삼한에 많고 삼한의 명승은 동남쪽이 가장 뛰어나며, 동남쪽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태백

- 최선(고려 때)의 예안 『용수사기』에서 태백산에 대해

 

멀고 아득한 태백산을 서쪽에서 바라보니, 기암괴석이 구름 사이에 솟아있네. 사람들은 신령님의 영험이라 말하는데 분명코 천지의 조화로세

- 매월당 김시습 「망태백산望太白山」

 

구무소 메밀뜰 마을을 지나 혈내촌에 다다르면 그곳에 구무소가 있다. 강이 산을 뚫고 지나가는 도강산맥이라는 세계적으로 진귀한 지형인 구무소는 '구멍' '굴'의 고어인 '구무'와 늪을 뜻하는 '소'가 어우러져 지어진 이름이다.

구무소 위의 정자 나는 구무소를 바라보며 "천하에 물보다 더 유약한 것은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이보다 앞설 것이 없다.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가장  딱딱한 것을 부린다"는 노자의 『도덕경』을 떠올린다.

 

그칠 줄 모르는 시냇물 같이

시간은 그 시간의 아들들을 싣고

떠나가 버린다

시간의 아들인 만물은 동트면 사라지는 꿈과 같이

망각의 피안으로 옮겨간다

- 『시간의 정복』을 지은 웰즈

 

누구 한 사람 알아주는 이 없는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닐 때만큼 고독을 느끼는 경우도 없다고

- 괴테 『이탈리아 기행』에서

 

천천히 삶을 즐겨라, 너무 빨리 달리면 경치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놓치게 된다

- 에디캔터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퍼센트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퍼센트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퍼센트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거이다

- 어니 젤린스키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잇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죽음이란 저기 또는 여기에 있지 않고 모든 길 위에 있다. 너의 그리고 나의 내면에 깃들어 있다.

- 헤르만 헤세

 

삶이 때때로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삶의 시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삶은 언제나 매일 매일 다시 시작된다.

- 장 그르니에 『지중해의 영감』 중에서

 

근심할 것과 근심하지 말 것을 분별케 하소서, 조용히 앉아 있기를 가르쳐 주소서.

- T. S. 엘리엇

 

찬란한 노을이 아름다워도 잠깐 사이에 스러지고 만다. 흐르는 물 소리가 듣기 좋지만 들을 때 뿐 듣고 나면 그뿐이다. 사람이 찬란한 노을을 통해 여생을 헤아린다면 허물이 가벼워지리라. 사람이 흐르는 물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잇다면 정신에 유익함이 있게 되리라

- 도륭(명나라 때 문인) 『파라관청언』

 

나는 걸으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

- 키에르케고르가 1847년 제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든 여행은 그 속도가 정확하게 결정되는 것에 따라 지루해진다.

- 러스킨(영국의 예술비평가)

 

책을 불살라 버려라. 강변의 모래들이 아름답다고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원컨대 그것을 맨발로 느끼고 싶은 것이다. 어떠한 지식도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면 아무런 값어치가 없다.

- 앙드레지드

 

분천역

갓바위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갓바위라고 부르는 낙동강 가에는 깊디 깊은 갓바우 소가 있고 갓바위 다리를 지나자 음내마을에 이른다.

 

강물이 될 때까지

 

신대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

흐린 강물이 되어 건너야 하리

 

디딤돌을 놓고 건너가려거든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디딤돌은 온데 간데 없고

바라볼수록 강폭은 넓어진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우리가 만난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디딤돌이다

 

그리고 강물 소리는 불타는 듯한 그리움과 탄식과, 아무리 해도 멈출 줄 모르는 욕구로 가득 차서 울려왔다. 강물은 목표를 향해 애쓰며 나아가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 강물이 바삐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자신과 그의 육친과 그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 강물은 황급히 흘러갔다. 모든 물결은 고뇌하며 목표를 향해 빠르게 흘러갔다. 그것들은 수많은 목표를 향해, 폭포를 향해, 호수를 향해, 여울을 향해, 그리고 대해를 향해 흘러갔다. 그리하여 모두가 목표에 도달하지만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흘러가는 것이다.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비가 되어 다시 떨어져 샘물이 되고, 시냇물이 되고, 다시 강물이 되어 거듭거듭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움에 찬 소리는 변했다. 그 소리는 여전히 고뇌하고 그리워하는 음색이었지만, 거기에는 다른 소리들이 섞여 잇었다. 기쁨과 슬픔의 소리, 선한 소리와 악한 소리, 웃음소리와 탄식의 소리,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소리들이 뒤섞여 있었다.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도보로 산책하는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여야 한다. 단체로, 심지어 둘이서 하는 산책은 이름뿐인 산책이 되고 만다. 그것은 산책이 아니라 오히려 피크닉에 속하는 것이다. 도보로 하는 산책은 반드시 혼자 해야한다. 왜냐하면 자유가 그 내재적 속성이기 때문이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멈추거나 계속하여 가거나 이쪽으로 가거나 저쪽으로 가거나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걷기 챔피언 옆에서 뛰다시피 따라 걷거나 데이트하는 처녀와 함께 느릿느릿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보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 스티븐슨

 

확신하거니와, 내가 만약 산책의 동반자를 찾는다면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어떤 내밀함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 결과 나의 산책은 분명 더 진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취미는 자연을 멀리함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산책에서 얻게 되는 저 심오하고 신비한 그 무엇과도 작별인 것이다.

-소로

 

발걸음의 문화는 덧없음의 고뇌를 진정시켜 준다. 걸어서 하루에 30킬로미터를 갈 때 나는 내 시간을 일 년 단위로 계산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3천 킬로미터를 날아갈 때 나는 내 인생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다.

- 레지스 드브레

 

해동 여러 산중에 웅장하기는 두류산(지금의 지리산0이고 청결하기는 금강산이며 기이한 명승지는 박연폭포와 가야산 골짜기다. 그러나 단정하면서도 엄숙하고 밝으면서도 깨끗하며 비록 작기는 하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청량산이다.

- 주세붕(조선조) 「청량산록」에서 청량산에 대한 예찬

 

청량산 옥류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 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 퇴계 이황

 

이 산은 둘레가 1백 리에 불과하지만 산봉우리가 첩첩이 쌓였고 절벽이 층을 이루고 있어 수목과 안개가 서로 어울려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또 산봉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나약한 자가 힘이 생기고, 폭포수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질 것 같다. 총명수를 마시고 만월암에 누워 있으면 비록 하찮은 선비라도 신선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 주세붕 「청량산 예찬」

 

길가의 무덤

 

길가에 외로운 무덤이 하나

자손들 지금은 어디에 있나.

- 김상헌 「노방총路倣塚」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물을 안다는 것은 우주와 대자연, 생명의 모든 것을 아는 것과 같다.

- 에오토 마사루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쾌락은 우리를 스스로에게서 멀리 떼어놓는다.

그런데 여행은 우리를 제자리로 데리고 가는 하나의 고행이다.

- 카뮈

 

청포도

 

이육사

 

내고장 칠원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흠뻑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전교당 도산서원 앞에 있는 전교당은 보물 제210호로 지정되었다.

도산서원 도산서원이 세워진 것은 선조 7년이었다. 서원을 창건하여 퇴계 이황을 배향하고, 그 다음 해에 사액을 받았다.

시사단 서원을 나와 낙동강을 보면 강 한 가운데에 작은 집 한 채가 서 있다. 시사단이라 부르는 이곳은 1792년 3월에 정조영남사림을 위해 도산서원 앞에서 과대인 별시를 베풀었던 것을 기념하여 단을 쌓고 정자를 세운 곳이다.

 

흐르는 저 강물 삼천 리나 되는데 집에서 온 편지는 겨우 열 다섯 줄

줄마다 줄마다 별다른 말 없고 고향으로 어서 돌아오란 말뿐.

- 원개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내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성경

 

안동댐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안동댐을 바라본다. 안동댐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 중가구리의 낙동강 본류를 가로막은 다목적댐이다.

안동기념탑 1971년에 착공된 안동댐은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 겸용 발전소이다.

신세동 7층전탑 법흥동 중앙선 열차가 지나는 곳에 나라 안에서 제일 큰 신세동 7층전탑이 있다.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 탑은 통일신라 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뜻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임청각 보물 제182호로 지정된 임청각에 올라서 바라보면 멀리 낙동강이 보이고 동쪽의 작은 연못에는 수련이 피어 있다. 김수근은 이 집을 가리켜 '인간적인 치수를 반영하여 지은 집'이라고 극찬했다.

의성 김씨 종가 보물 제450호로 지정된 의성 김씨종가는 일반 형식에 궁전 형식을 덧보탠 것으로 고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비원 석불 신라 때 도선국사가 새겼다고 전해지는 이 석불은 11미터 높이의 화강암 암벽을 이용하여 몸통을 만들고 2미터 높이의 바위로 부처의 머리를 만들었다.

 

매년 음력 정월보름 열엿새에 부 내에 사는 사람들이 부의 중앙에 있는 내를 경계선으로 하여 좌우편으로 패를 나누어 돌을 던져서 서로 싸워 승부를 결정한다. 정오년 왜적을 토벌할 때 석전을 잘하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선봉으로 삼았더니 적이 감히 전진해 오지 못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석전에 대해

 

영호루 언제 지어졌는지 알 길이 없는 영호루에서 공민왕은 뱃놀이를 즐겼다.

봉정사 극락전 천등산 기슭에 있는 이 절에는 빼어난 문화재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다.

 

어녀윤에 청계상에 놋다리야 놋다리야. 이 터이는 누터이로 나라님의 옥터일세

- 놋다리 노래

 

개목사 영산암에서 등산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개목사에 닿는다. 인삼밭 너머로 살며시 몸을 드러낸 개목사는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한 절이다.

 

안동부 서쪽 30리쯤 천등산 기슭에 절이 있어 봉정사라 일걸으니 절이 앉은 자세가 마치 봉황이 머물고 있는 듯하여 이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됐다. 이 절은 옛날 능인대덕이 신라 때 창건하고 이후 원감, 안충 등 여러 스님들에 의해 여섯 차례나 중수되었으나 지붕이 새고 초석이 허물어져 1363년(공민왕 12년)에 용수사의 대선사 축담이 와서 중수했는데 다시 지붕이 허술해져서 수리하였다.

- 봉정사 극락전 상량문

 

마애동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바위에 새긴 부처가 있으므로 마애 또는 마라라고 부르는 마애리의 소나무 숲에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7호인 마애동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고 마애불 앞에는 진성 이씨가 그 조상 이돈과 이희보 부자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산수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낙동강

 

안도현

 

저물녘 나는 낙동강에 나가

보았다, 흰 옷자락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정든 하늘과 물소리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강은

눈 앞에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내 이마 위로도 소리 없이 흐르는 것을 알았다

 

어릴 적의 신열처럼 뜨겁게,

어둠이 강의 끝부분을 지우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번져오고 있었다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낡은 목선을 손질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그물 한 장을 주셨다

 

그러나 그물을 빠져 달아난 한뼘 미끄러운 힘으로

지느러미 흔들며 헤엄치는 은어떼들

나는 놓치고, 내 살아온 만큼 저물어가는

외로운 세상 강변에서

문득 피가 따뜻해지는 손을 펼치면

 

빈 손바닥에 살아 출렁이는 강물

아아 나는 아버지가 모랫벌에 찍어 놓은

발자국이었다. 홀로 서서 생각했을 때

내 눈물 웅얼웅얼 모여 흐르는 낙동강

그 맑은 마지막 물빛으로 남아 타오르고 싶었다

 

 

먼 훗날 다시 낙동강에 나갈 때 아우야 강물이 스스로 깊어진 만큼

우리도 내아가 부끄럽지 않고 서글프지 안은 물줄기 이루었을까.

- 안도현 「다시 낙동강」에서

 

병산서원  서원은 본래 선현을 제사하고 지방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거나 후진들을 가르치던 곳이었으나 갈수록 향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사림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제 병산서원은 우리 나라내로라 하는 다른 서원과 비교해 보면, 소수서원과 도산서원은 그 구조가 복잡하여 명쾌하지 못하며 회재 이언적李彦迪의 안강 옥산서원은 계류에 앉은 자리는 빼어나나 서원의 터가 좁아 공간 운영에 활기가 없고, 남명 조식의 덕천서원은 지리산 덕천강의 깊고 호쾌한 기상이 서렸지만 건물 배치 간격이 넓어 허전한 데가 있으며, 환훤당 김굉필의 현풍 도동서원은 공간 배치와 스케일은 탁월하나 누마루의 건축적 운용이 병산서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흠이 있다. 이에 비하여 병산서원은 주변의 경관과 건물이 만대루를 통하여 혼연히 하나가 되는 조화와 통일이 구현된 것이니, 이 모든 점을 감안하여, 병산서원이 한국 서원 건축의 최고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유홍준

 

유성룡 씨 고택 유성룡은 총명했지만 정여립 같은 과격한 성품은 아니었고, 동인과 서인이 첨예하게 맞서 있을 때에도 동인에 속해 있었지만 서인에게도 항상 온건한 태도를 취했다.

 

천자가 총명하고 기상이 단아했다. 학문을 열심히 익혀 종일 단정히 앉아 있으면서 몸을 비틀거나 기댄 적이 없으며, 남들을 대할 적에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고 말수가 적었다.

- 실록의 사관의 유성룡에 대한 평가

 

하회 마을 안동 하회 마을은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민속마을로 중요 민속자료 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회 장승 하회 마을은 조선 전기 이후 전통적 가옥군의 존재와 영남의 명기라는 풍수적 경관과 아울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은룡 고택 하회 마을에서 유서 깊고 규모가 갖추어져 보물 또는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들은 모두 풍산 유씨의 소유이다. 그중에서도 유운룡과 유성룡의 유적이 중추를 이루고 잇어 유씨 동족마을의 형성시기와 역사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부용대 부용대는 저우리 동쪽 낙동강 가에 있는 대로서, 60미터가 넘는 기이한 바위가 깎아지른 듯 병풍같이 서 있다.

 

다시 낙동강

 

안도현

 

아우야

우리가 흰 모래밭 사금파리 반짝이는 소년이었을 때

앞서거니 뒤서거니 땅으로만 기어 흐르던 낙동강이

오늘은 저무는 경상도하늘 한 끝을 적시며 흐르는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말로

강물이 하나의 회초리라는 것을

우리 어린 종아리에 감기던 아버지 싸리나무 푸른 매

강물도 하회 부근에서 들판의 종아리를 때리며 가는구나

아우야

아버지 수십 년 삽질로도 퍼내지 못한 낙동강이

아직 철들지 않은 물고기들 하류로 풀어 보내며

조심하여라 조심하여라 웅얼대는 소리 듣느냐

아버지 등줄기에 흐르던 강물 보았느냐

그 곳을 거슬러 올라 헤엄치던 어린 날 우리는

그렇지 한 마리씩 빛나는 은어였을 것이다

 

먼 훗날

다시 낙동강에 나갈 때 아우야

강물이 스스로 깊어진 만큼 우리도

나이가 부끄럽지 않고 서글프지 않은 물줄기 이루었을까

저무는 강가에 아버지가 되어

푸른 매가 되어 돌아와 설 수 있을까

아우야

 

 

삶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런 삶이 아니라면 시간의 헛된 흐름일 따름이다.

- 헬렌 켈러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 기형도 「여행자」

 

길은 또 없다! 주위는 심연! 그리고 죽음의 정적! 너는 그것을 바랐고 너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길을 버렸다. 이제야말로 방랑자여, 냉정하고 명쾌하게 보아야 한다! 너에게는 파멸이 있을 뿐-만일 네가 위험의 존재를 믿는다면.

- 니체 『즐거운 지식』에서 토로한 방랑자

 

무엇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은 방황하게 되고,

방황하는 사람은 결국 잘못을 저질러도 구원받는다.

- 괴테

 

고향을 알기 위해서는 타향으로 가야한다.

- 프란츠 카프카

 

서산에 해지기를 기다리느냐

인생이 꿈 같은 걸 알고 있느냐

- 영화 <꿈>

 

부석사 내성천의 지류 중 하나인 낙화암천 끄트머리에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는 어느 때 어느 계절에 가든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절 중의 절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하룻밤을 지내며 겨우 몇 시간 머무른 내가 부석사의 무엇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선묘 낭자의 의상을 향한 사랑도 무량수전 뒤편의 뜬 돌이나 무량수전 앞의 석등에서 바라보는 안량루도 그리움으로만 남겨 두어야지.

금성단 부석사 부근 소수서원 근처에 있는 금성단은 세종대왕의 여섯 째 아들이고 세조의 동생이었던 금성대군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의성포가는 철다리 철다리를 건너면 천하 비경 물도리동에 닿는다. 아직까지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

내성천의 회룡포 물도리동 내성천은 봉화군 물야면 북쪽 선달산과 옥석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봉화면 포저리에 이르러 서쪽으로 꺾여 흐른다.

장안사 내성천을 건너면 비룡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1킬로미터쯤 올라가면 이곳 사람들이 남산절이라 부르는 장안사가 있다.

공갈못 노래비 고령 가야국 시대에 축조된 공갈못에는 '상주함창 공갈못 노래'가 전해온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이 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가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줌세

백년 언약 맺어다오

백년 언약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진다

- '상주함창 공갈못 노래'

 

경천대 크지 않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경천대 국민 관광지

 

감나무는 한국 · 중국 · 일본 밖에서는 아무리 옮겨 심어도 살지 않는, 고집 있고 주체성이 대단한 동양의 나무다. 그래서인지 감나무를 칭송하는 예찬도 많다. 이를테면 감나무에는 사람이 따를 수 없는 오절 · 오상이 있다 했다. ① 수 - 몇백 년을 사니 목숨이 길고 ② 무조소無鳥巢 - 새가 깃을 들이지 않으며 ③ 무충 - 벌레가 꾀질 않고 ④ 가실嘉實 - 열매가 달길 그보다 더한 것이 없으며 ⑤ 목견木堅 - 나무가 단단하길 역시 비길 나무가 없다는 것이 감나무의 오절이다. 또 단풍 든 감나무 잎을 시엽지枾葉紙 또는 자연전自然箋이라 하여 글쓰는 종이가 되므로 '문'이 있고, 또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쓰였다 하여 '무'가 있으며, 만천하의 과실 가운데 속과 겉이 다르지 않고 똑같이 붉은 것은 감밖에 없다 하여 표리부동의 '충'이 있고, 이빠진 노인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과실이라 하여 '효'가 있으며, 또 서리를 이기고 만추까지 유일하게 버티니 '절'이 있다 했다. 문 · 무 · 충 · 효 · 절. 이것이 감나무의 오상五常이다. 또한 나무가 검고(흑) 잎이 푸르며(청) 꽃이 노랗고(황) 열매가 붉으며(적) 말린 곶감에서 흰가루(백)가 난다 하여 오색 · 오행 · 오덕 · 오방을 두루 갖춘 유일한 나무라 하여 우러러보기도 했다.

- 이규태, 감나무에 대하여

정기룡 경천대 남쪽 2백 미터 지점에는 바위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정기룡 장군이 이곳에서 용마를 타고 훈련하겠다고 전해진다.

화달리 삼층석탑 조촐하지만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사벌국 왕릉 옆에 신라 탑의 모습을 지닌 화달리 삼층석탑이 있다.

사벌국 왕릉 사벌면 화달리에 있는 사벌국의 왕릉은 정사에서는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야사에만 등장한다.

 

가장 뚜렷한 침묵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 알베르 카뮈

 

인각사 선덕여왕 1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인각사에서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봄날의 구름은 산이라야 걸맞고, 여름 구름은 나무라야 어울린다. 가을 구름은 흐르는 물 위에, 겨울 구름은 드넓은 들판이라야 제격이다.

- 오종선 「소창지기」의 한 구절

 

낙동나루의 관수루 옛 시절의 낙동나루는 영남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용무를 보러 가거나 과거를 보러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중요한 길목 중 하나였다.

 

백만 번이나 굽어진 푸른 산 속에

한가하게 행하여 낙동을 지난다

풀이 깊으니 아직도 이슬이 있고

솔이 고요하니 스스로 바람없는 것이다

가을 물은 오리 머리같이 푸르고

새벽놀은 성성의 피같이 붉도다

게을리 노는 손이 사해로 떠도는 한 시옹詩翁인 것을 누가 알리!

- 이규보

 

황지의 근원 물은 겨우 잔에 넘치는 데

냅다 흘러 예 와서는 넓기도 한지고

한 줄기에 예순 고을이 갈리고

나루 곳곳엔 돛대가 너울 너울

바다까지 곧바로 내려가길 사백 리

관풍에 왕래하는 장사꾼 배들

아침에 월파정을 떠나

저녁에 관수루에 묵네

누각 아래 배에서는 천만량을 실었으니

남민들이 혹독한 조세를 어찌 견디리

쌀독은 비고 도토리 밥도 없는데

강가에선 노래와 풍류 살찐 소를 잡는구나

나라의 사신들은 유성과 같건마는

강가의 해골들은 누가 허물이나 묻겠는가

- 김종직 '낙동요'

 

삶이 반복이며 삶의 아름다움이 반복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살하며 (그에게 갑자기 닥쳐왔듯이) 파멸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희망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과일처럼 손짓하며 기억은 충분하지 않은, 쪼들리는 여비이지만 반복은 축복으로 만족시켜주는 매일매일의 빵이기 때문이다. 생을 마감하게 될 때면 그 사람이 삶은 반복이며 반복을 기다리는 기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드러난다.

- 키에르케고르 반복의 개념에서

 

갈꽃이 피면

 

송기원

 

갈꽃이 피면 어이하리

함성도 없이 갈채도 없이, 산등성이에

너희들만 눈부시면 어이하리

눈멀고 귀 멀어 하얗게 표백되어

너희들만 나부끼면 어이하리

아랫녘 강어귀에는 기다리는 처녀

아직껏 붉은 입술로 기다리는 처녀

 

도리사 어느 날 신라의 스님 아도가 경주에 갔다가 돌아와 냉산 밑에 이르니 눈 덮인 겨울이었는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도 스님은 그곳에 절을 짓고 그곳을 '도리사'라 불렀다.

도리사 석탑(위)과 도리사 사리탑(아래) 1977년, 도리사에서 세모 사리탑이 발견되면서 도리사는 전국 불교 신자들의 명소가 되었다.

 

도리사 앞에는 도리꽃 피었더니

묵호자 가버린 뒤 아도가 왔네

뉘 알리요, 빛나던 신라 때 모습

모례의 움집 속엔 재뿐인 것을

- 김종직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

 

낙산동 고분 이곳에는 2~6세기에 만들어진 가야 · 신라시대의 고분인 2백5기의 무덤이 있다.

죽장동 5층석탑 선산읍 법륜사에 있는 죽장동 5층석탑은 우리나라에 있는 5층석탑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커서 우러러 보아야 한다.

낙산동 3층석탑 보물 제469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탑은 바로 뒤편에 자리 잡은 병산과 어우러져 잔잔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야은 길재

 

팔공산 오동나무 숲에서 견훤에게 크게 졌던 왕건은 그로부터 8년 뒤인 935년에 지금의 선산 땅인 일선군의 숭신산성에 병력 10만 명을 모아 지금의 일선교 둘레인 태조 방천으로 불리는 낙동강 연안에서 견훤과 후삼국 통일을 위한 싸움을 벌여 크게 이겼다. 고려 태조 왕건은 이곳의 나루를 지나며 전승을 기려 '나의 나루'라는 뜻으로 '여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이듬해인 936년에는 견훤의 아들 신검이 고아면 관심리 앞들에서 왕건과 최후의 결전을 벌였는데 왕건이 이곳에서 신검을 막기 위해 병력을 주둔 시킨 곳이 '어검 평야', 곧 지금의 '어갱이'이고 그가 진을 쳤던 곳은 '장대'라고 불린다. 신검은 송심리 앞들에 진을 치고 잇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군사를 거두어 괴평리로 옮겨 배수진을 쳤다. 송림리의 앞들은 지금도 이곳 사람들이 '발갱이', 곧 신검의 기세를 뿌리뽑았다고 하는 발검 평야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들이 옛 역사를 알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또 왕건이 매봉산 서쪽 낮은 구릉으로 기습하여 신검을 사로잡은 곳은 점검 평야로서 지금의 '점갱이'가 되었다.

- 향토 사학자 김수기

 

걸어보지 못한 길

 

프로스트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간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 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으로 내 운명이 달라졌노라고

 

 

큰 고통이야 말로 정신의 마지막 해방지다. 이 고통만이 우리를 최후의 깊이에 이르게 해준다.

- 니체 『즐거운 지식』에서

 

고통과 고뇌는 위대한 자각과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잇는 사람에겐 늘 필연적인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에서

 

우리들의 후방에는 더 이상 물러설 방어선이 없다. 우리 부대들은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 균형을 깨뜨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역습을 감행해야 한다. …… 부산으로 철수한다는 것은 사상 최대의 살육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 우리들은……차라리 같이 싸우다가 죽을 것이다.

- 워커 중장

 

왜관 기념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통일의 그날은 아직도 요원하고 전쟁 기념물로 보존되고 잇는 왜관 인도교 밑을 낙동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영령들이여!

우리는 보았노라, 들었노라, 기억하노라. 이곳 유학산 봉우리에

그리고 낙동강 기슭에 남긴 그때 그날, 그들의 희생을

고귀한 피의 발자욱을 우리 겨레는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하리라

- 왜관 전적기념관 비문

 

한 줄기 낙동강 물에 조국의 운명을 걸어놓고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느냐 노예와 사막의 구렁에 빠지느냐? 피가 끓고 살이 튀는 화랑 정신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 지역의 전투에서 생생하게 아로새겼다

-다부동 승전비

 

다부원에서

 

조지훈

 

한 달 농성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 해 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리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을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마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으랴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함께

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하엽정 고개를 넘어 하빈면 묘리에는 박팽년의 11대 손인 박성수가 1747년에 세운 삼가헌이 잇고, 연꽃이 만발한 곳에 자리잡은 하엽정이 있다.

물과 같은 선을 실천하는 사람은 처신은 겸손하게 하고, 마음가짐은 고요하게 하며, 널리 베풀되 보답은 바라지 않고, 말은 진실되어 망녕되지 않게 하며, 정치에서는 좋은 성과를 얻고, 일에서는 좋은 효과를 거둔다. 또한 행동은 좋은 시기를 선택해서 한다. 그는 남과 다투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잘못이 없다.

- 노자

 

자연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에 대해서는 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이 자연이라는 사실을-따라서 자연은 우리가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 니체 『망각된 자연』(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에서

 

걷는다-멈춘다-걷는다. 이것이 이상적인 존재 방식이다.

- 한트케 『연필의 역사』에서

태고정 묫골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3대 정문인 삼충각三忠閣이 있고 묫골 북쪽에는 태고정太古亭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사느니라.

- 『논어』

 

금호琴湖는 영천시 서쪽 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데 금호읍 남쪽과 북쪽이 구릉지로 호수와 같아 갈대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비파 소리와 같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하여 금호라고 불렀다고 한다.

- 경상북도 『지명유래총람』(1984, 경북 교위)

 

낙동강 오염의 핵심 지역은 대구를 중심으로 한 김천, 구미, 달성과 구지쪽 중류권이다. 이곳엔 김천공단, 구미 국가 1~4공단, 왜관공단, 대구3공단, 다산주물공단, 서대구공단 등 지방공단급 이상의 중 · 대규모 공단이 밀집해 있다. 여기에다 대구 2백48만 5천, 김천 15만, 구미 29만, 달성 12만 5천 명 등 3백만 명 이상의 밀집 인구가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일 1백만 톤의 생활 하수가 나온다. 1991년 페놀이 유출된 것을 비롯해 낙동강으로 흐르는 중금속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을 '낙동강 오염 벨트'라고 부르고 있다. 낙동강 오염 벨트 지역은 대구 · 경북의 산업개발과 이에 따른 부산 · 경남의 수질 피해가 맞부닥치는 '딜레마' 지역이 된 셈이다.

- 《한겨레》 2001년 8월 8일자

 

사람들은 흐린 물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과 깊은 물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을 혼동하곤 한다

- 니체

 

가야산의 노을 붉게 물들고

금호강의 달밤 어부들의 피리 속에 깊어간다

늙고 늙은 강에 계수나무 솟은 듯

낙동강 물 헤치며 돛단배 하나 포구를 찾는다

- 작자 미상 「배성십경

 

어느 날 문득 강이 내게로 왔다.

- 『논어』「옹야」편

높은 곳에 오르는 뜻은 마음 넓히기를 힘씀이지 안계를 넓히기 위함이 아니다.

- 정구, 『가야산 기행』

 

현풍을 지나며

 

김지하

 

산 아래

구름 있어

 

현풍이다

 

바람도 바람

검은 바람

 

내 배 아래 바람

누이 바람

 

산 위에

물 있고

 

물 아래 산 있어

 

기이하다

 

오늘

여기 지나는

인연이 기이하다

 

훗날

다시 오는 날

 

흰 구름이

발끝을 적시리

 

산 위에

내 넋

높이 떠나리

 

박소선 할머니 전국적으로 알려진 현풍할매곰탕의 역사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소선 할머니가 달성군 유가면에서 '일성식당'이라는 이름으로 가마솥에 끓여 뚝배기에 담아 팔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절 하나 연기와 안개 아무 일도 없는 속에 서 있으니, 어지러운 산 푸른 물방울 가을빛이 짙었네. 구름 사이 끊어진 돌층계 6, 7리요, 하늘 끝 먼 멧부리 천만경일세. 차 마시고 나니 솔처마에는 달 걸려 있고, 경 읽는 것 한참인데 바람부는 탑에 쇠잔한 종소리 들리네. 흐르는 시냇물 응당 옥띠玉帶 띤 손을 웃으리. 씻으려도 씻을 수 없는 이 티끌 속 발자취로다

- 김지대金之代 유가사에 대해

 

도동서원 선조 38년에 창건한 도동서원에는 한훤당 김굉필을 봉안하였다.

 

사람이 한가함보다 즐거움이 없다는 말은 아예 할 일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가하면 책을 읽을 수가 있고, 명승을 찾아노닐 수도 잇으며, 유익한 벗과 사귀기도 하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책을 저술할 수도 있다. 천하의 즐거움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이 잇으랴.

- 유몽영

 

그들은 신의 창窓들을 과조하고 있다.

- 체코의 격언(고요한 한가로움에 대해)

 

에드거 포우의 '행복의 네 가지 조건'

첫 번째 '야외 생활'

두 번째 '어떤 존재에 대한 사랑'

세 번째 '모든 야심으로부터의 초월'

마지막 '창조 행위'

 

곽재우 장군의 묘 곽재우의 묘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시 전란이 소용돌이 치고 간 뒤 어느 누가 곽재우 장군의 무덤을 기억이나 했을까.

진흥왕 척경비 우리나라에서 세운 최초의 비인 평남 용강군 점제현의 신사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이 비는 화앙산 기슭에 묻혀 있다가 1914년에 발견되었다.

 

가야의 산들

 

김지하

 

가야의 산들

심상치 않다

 

겨울 흰 햇살

너른 들에 우뚝 선

검은 봉우리

 

신내려

떨림

 

아아

가야여 가야여

 

망한 옛

동이의 아득아득한

솟대여

 

봉화군 명호면의 청량사 유리보전

해인사 대적광전 해인사의 이름은 '세계 일체가 바다에 찍히는 삼매'를 말한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유래하였다.

 

중첩한 산을 호령하며 미친 듯이 쏟아지는 물소리에

사람의 소리는 지척사이에도 분간하기 어렵고

시비의 소리 귀에 들릴까 언제나 두려움에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모두 귀먹게 했구나.

- 최치원

 

그림 같은 무지개다리 급한 물결에 비치는데

다리위 지나는 사람 발길을 조심한다

나의 옷 걷고 물 건너려는 것

그대는 웃지마소

고운이 어찌 위태로운 길 밟았던가

- 김종직

 

조사祖師인 순응대덕은 신림대사에게서 공부하였고 대력(大曆, 766~779) 초년에 중국에 건너갔다. 마른나무 족에 의지하여 몸을 잊고 고승이 거처하는 산을 찾아가서 도를 얻었으며, 교학을 탐구하고 선禪의 세계에 깊이 들어갔다. 본국으로 돌아오자 영광스럽게도 나라에서 선발함을 받았다. …… 정원貞元 18년(802년) 10월 16일에 동지들을 데리고 이곳에 절을 세웠다. …… 이때 성목왕태후聖穆王太后께서 천하의 국모國母로 계시면서 불교도들을 아들처럼 양육하시다가 이 소문을 듣고 공경하며 기뻐하시어 날짜를 정하여 귀의하시고 좋은 음식과 재물을 내리셨다. 이것은 하늘의 도움을 받은 것이지만 사실은 땅에 의하여 인연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안개처럼 모여들 때 스님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하여 이정선백利貞禪伯이 뒤를 이어 공적을 세웠다. 중용의 도리를 행하여 절을 잘 다스렸고, 주역 대장大壯의 방침을 취하여 건축을 새롭게 하니 구름이 솟아오르듯, 노을이 퍼지듯 날마다 새롭고 달마다 좋아졌다. 이에 가야산의 빼어난 경치는 도를 성취하는 터전에 알맞게 되었으며 해인사의 귀환 보배는 더욱 큰 값어치를 지니게 되었다.

- 최치원 「신라가야산해인사 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 善安住院壁記」

 

팔만대장경 국보 제52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장경판고는 8만1천2백58매의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을 간직하고 있는 조선 초기의 건물로서, 여러 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소실됨 없이 보존되고 있다.

 

가능한 한 앉아 있지 마라. 야외에서나 자유로운 움직임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면 믿지 마라. 모든 선입견은 내부에서 나온다. 오래 앉아 있는 것은-다시 한 번 강조한다-성령을 거스르는 죄이다. 단지 행동으로 옮긴 생각만이 가치를 갖는다.

- 니체

 

우포늪 우포늪은 우리나라 유일의 배후습지다. 이 늪은 1983년 식물학자인 정영호 박사에 의해서 자연늪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태어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사라져 가는 우리

그 사이의 빛나는 시간이 우리의 일생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만년교 영산에는 그냥 지나치면 서운할 아름다운 돌다리가 남아 있다. 물 속에 드리운 보름달 같은 돌다리의 아름다움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연지못

 

낙동강

 

양우정

 

낙동강은 700리

몇 굽이더냐

눈물이라네

태백산太白山, 산골짜기

어린 초부樵夫의

구슬픈 노래 싣고

고이 흐르지

에-헤루 흘러서

어데를 가나

원정願情 말할 동무 찾아

흘러가지요

 

700리 강두던에

가을이 오면

낙엽이 주루루

강에 떨어져

다시 못을 고향길

뒤돌아보며

머나먼 700리를

길 떠나지요

에-헤루 흘러서

어데를 가나

구포 나루 님을 찾아

흘러간다내

 

낙동강은 700리

몇 나루더냐

나루마다 서러운

눈물이라네

 

덕천서원 덕천서원은 민족의 성산 지리산 자락에 있다. 그 아래로 진주 남강이 도도하게 흐른다.

정암나루 "정암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 우리님 오시는데 마중갈까나. 아이고데고 성화가 났네."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을 하고 싶어한다. 때로는 들판을 가로질러서 때로는 종이 위에서 발은 자유롭고 견실하게 제몫을 담당해내고 있다.

- 니체

 

화왕산 남쪽에 있다. 고려 신돈의 어머니는 바로 이 절의 종이었다. 신돈이 죽음을 당하자 절도 폐사되었으니 고쳐 지으려다가 완성되기도 전에 돈의 일로 해서 다시 반대가 생겼기 때문에 헐어버렸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27권 「창녕현」편 불우조 옥천사

 

관룡사 용선대 관룡사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은 용선대의 석가여래좌상에서 받은 강한 인상 때문일 것이다. 요사채의 담길을 따라 한적한 산길을 20여 분쯤 오르면 커다란 암벽 위에 부처님 한 분이 날렵하게 앉아 있다.

관룡사 돌장승 관룡사로 가는 좁은 산길을 오르다 보면 돌장승 한 쌍이 길손을 맞는다. 커다란 왕방울눈에 주먹코가 인상적이다.

곽재우 비 임진왜란 때 세운 공을 인정받아 경상좌방어사로 재직하던 곽재우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창녕의 화왕산성에서 왜군과 맞섰고 그 싸움에서 왜군 수천 명을 무찔렀다.

 

방랑과 변화를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 바그너(독일의 작곡가), 여행에 대해

 

내게 여행은 정신의 젊음을 되돌려주는 샘물이다.

- 안데르센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책을 한 페이지밖에 읽지 않은 것이 된다.

- 아우구스티누스(로마)

 

햇빛 속에 이따금 머물 줄 아는 것만이라도 사람의 흐르는 세월은 다 흐린 것이리라, 다 흐린 것 아니다.

- 박재삼, 「남강 가에서」

 

주남 저수지에 와서

 

정일근

 

죽어 썩어가는 철새들의 주검과

등이 휘어진 기형 물고기들을 본다

우리나라 애국가 속으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속으로

무리지어 힘차게 날아가던 저 새들이

딸아이의 동화 속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하던 어린 물고기들이

여기저기 죽어 떠다닌다

보아라 어느 시인이

물의 안식과 사랑을 노래할 것인가

기쁨과 평등과 희망이 출렁이던 물에는

수은, 납, 구리, 카드뮴, 아연이 녹아 출렁이고

마산 앞바다에서 온산에서 금호강에서

아프다 아프다 하며 죽어가는 물과 강과 바다

이제 새와 물고기들은 우리 곁을 떠나리라

시인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못하리라

물과 산이 마르고

나무들 또한 꽃 피고 열매 맺지 못하리라

병이여 깊은 이 강산의 병이여

날개 꺾인 새들의 울음소리

등뼈가 휘어지는 고통의 소리

내 몸 속에서 내 몸이 썩어 들끓어 오르는

저주와 회한의 소리 듣는다

주남 저수지에 와서

 

문창축제 굿이요 동네 사람 다 모이소

지신 봅자 지신아 어연아 지진아

천년이나 울리고 만년이나 울리소이

…… 금일 명장 시헌공 극락 세계로 가옵시고

금년 농사짓거든 대풍년이 되시옵소서

아들딸을 잘 길러 효자 충신 점지하소서

우리 동네 농부들 동서남북 다 뎅기로

관제 구설 다 막아서 하늘같이 넘기소이

조푸굿에 집 나간다 어서 치고 술 묵자

- 문창제놀이 중 '성신신고'

 

영남루 수많은 사연을 지닌 채 흘러온 밀양강을 아름다운 절집 청도 운문사와 제약산 자락의 표충사 그리고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한 곳이며 영남 제일루인 영남루(보물 제174호)가 하직인사를 보냈으리라.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이 흘러라

아리답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맞추었네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 길이 푸르르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아니 흐르랴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남강 가에서

 

박재삼

 

강 바닥 모래알 스스로 도는

진주 남강 물 맑은 물같이는,

새로 생긴 흔이랴 반짝어리는

진주 남강 물빛 밝은 물같이는,

사람은 애초부터 다 그렇게 흐를 수 없다

 

강물에 마음 흘린 사람 두엇

햇빛 속에 이따금 머물 줄 아는 것만이라도

 

사람의 흐르는 세월은

다 흐린 것 아니다, 다 흐린 것 아니다.

 

그런 것을 재미 삼아 횟거리나 장만해 놓고

강물 보는 사람이나 맞이하는 심사로

막판에 강가에 술집 차릴 만한 세상이긴 한 것을

가을날 진주 남강 가에서 한정없이 한정없이 느껴워한다.

 

 

대지는 아직도 위대한 영혼들에게 열려 있다. 거기에는 의로운 사람들을 위한 장소, 하나 혹은 두 사람을 위한 자리, 침묵의 바다 냄새가 풍겨오는 그러한 장소들이 남아 있다.

- 니체

 

 

낙동강역 낙동강역은 작지만 아름다운 역이다. 일제 때인 1906년에 지어졌다.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리

임을랑 보내고 나 어찌 살라고

아이고데고…… 성화가 났네

- 뒷기미 뱃노래

 

 

부의 동쪽 41리에 있다. 원으로부터 남으로 5~6리 가면 낭떠러지를 따라 진도가 있어 매우 위험한데 그 한 구비는 돌을 깨고 길을 만들었으므로 내려다보면 천길의 연못인데 물빛이 짙은 푸른빛이고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조리고 두려운 걸음으로 지나간다. 예전에 한 수령이 떨어져서 물에 빠진 까닭에 지금까지 원추암이라고 부른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역원」조 작원酌院에 대해

 

물소리에 귀를 모을 일이다.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이고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갈 곳이 어디인가를 소리 없는 소리로 깨우쳐줄 것이다."

- 법정 스님 『말없는 관찰』

 

가야진사伽倻津祠

 

물금역

 

낙동강의 바람

 

강은교

 

그대 있는 곳을

나는 아네.

그러게 이리 정신없이

몸 흔드는 게 아닌가.

 

그대 잠들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아네.

그러게 이리 한많은 소리로

뼈 부서지는 게 아닌가.

 

살이 살을 뜯는 거리에서

울음떼 무성한 언덕쯤에서

출렁임이 또 한 출렁임 낳아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이여.

 

오늘은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끼리

저무는 해를 만지고 있는데

그대 가는 곳을

나는 아네.

얼었다 녹으며

녹았다 얼며

 

이 구름 밑

살지 못해 죽는 그대

오, 죽지 못해 사는 그대.

 

김수로왕릉 지금의 김해시가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듯이 김수로왕과 그의 아내였던 허씨의 무덤이 김해시에 남아 있다.

 

통도사 통도사의 대웅전은 금강계단을 등지고 서 있다. 부처의 형상이 놓이지 않았더라도 대웅전의 불단 자리를 보고 예배를 하면 석가여래 사리탑에 예배를 하는 형식이 되도록 되어 있다.

 

닮은 것과 닮은 것 사이에 마음이 흐른다.

- 인도의 잠언시

 

사람을 대하는 곳에 세상을 기화할 수 있고, 물건을 접하는 곳에 천지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나니라. 만일 이 두 가지 길을 버리고 도를 구한다면, 이는 허무에 가깝고 실지를 떠난 것이니 천만 번 법경을 외운들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 최시형(동학의 2대 교주) 강원도 영월군 직곡리 박용걸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대인접물'에 대해

 

1875년의 부산의 모습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대창동, 남포동 일대는 그 뒤에 매축한 곳으로 그때는 모두 바다였다. 번화가로 알려진 광복동 같은 곳도 그때는 한복판에 도랑이 있고 풀만 무성하여 여우라도 나올 듯했다.

- 오이케가다스케 『부산 개항 50주년 회고록』(1926년 11월)

 내가 첫발을 들여놓은 부산항은 흰 모래와 푸른 솔의 해안에 종일 파도가 밀려 왔다갔다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어촌이었다. 육지에는 한국인들이 소뼈와 소가죽을 햇빛에 말리고 있었을 뿐이다. 배를 매어둘 만한 부두조차 없었다.

- 오쿠라 가하치로

 

나가사키항에서 한국의 부산항까지는 증기선으로 열다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부산에서 1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입구가 있는 낙동강은, 수심 1.5미터의 물을 거슬러 밀양에서 80틸로미터를 증기선으로 항해할 수 있고, 수심 1.2미터의 물을 거슬러 정크선으로 사문까지 1백60킬로미터를 더 갈 수 잇으며, 거기서는 짐을 가벼운 견인 포트에 옮겨 싣고 연안으로부터 2백74킬로미터 떨어진 상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이용 가능한 수로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서울-부산간 철도가 곧 이루어지리라는 어렴풋한 전망과 더불어부산은 상업의 중요한 중심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부산을 포함하고 있는 경상도 지방은 여덟 개의 지방(현재는 행정적인 목적으로 13개임)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또 경상도 지방은 전라도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번창하고 있는, 비옥한 지방임이 확실하다…… 나는 증기선 갑판의 먼 거리에서 한국인들을 처음 보았다…… 한국인들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평균 신장은 1백63.4센티미터이지만, 부피가 큰 흰옷 때문에 키가 더욱 커 보인다. 또 벗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는 높다란 관 모양과 모자 때문에도 키는 더 커 보인다.

-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 부산과 낙동강에 대해

 

을숙도

 

박라연

 

몇몇은 공중에 둥지를 틀었다

가난은 깃털 같은 죄라며

아직도 물이 두려운 사람들

대낮에도 발이 빠진다

오랜 설움 안으로 안으로만 삭여온 녹슨 종처럼

눈물꽃 송이송이 목마른 갈대숲 적시고

삐삐꽃 쑥부쟁이 떠난 자리에

죽어도 죽지 않는 풀뿌리들 돋아나

동행을 재촉한다 모두가

잊혀진 어제는 눈발에 젖어

상처만큼 깊어지는 강물이 되어

한 세상 눈시린 풍경으로 떤다

뼈아픈 그림자 허옇게 드리운 채

속죄하며 흔들리는 늪

어둡고 쓸쓸한 지상의 한 끝에서

우리를 잠시 취하게 하는 가을산의 어스름

하염없이 울고 가는 두루미떼 따라가면

밀물과 썰물이 무작정 섞여지듯

우리들 인심도 그렇게 섞일 수 있을까

그대 묻힐 땅 한 뼘 없어도

을숙도의 뿌리 끝에

해마다 새끼를 치는 희망을 치는

강줄기 따라 만나고 헤어진 이웃들

한 해의 철새가 되어 그 저녁 하늘로 날아들면

우리도 등뼈에 묻어둔 비밀 몇 포기씩 안고

높이 더 높이 날아올라

만삭의 죄를 풀고 가벼이 아침을 따라 내려오리라

외로운 직립의 투박한 을숙도 뿌리 곁으로

 

낙동강

 

이동순

 

…… 잠시도 쉬지 않고 퍼부어대는 저 독하디 독한

강가의 쓰레기 매립

가축 분뇨 댐 공사에 광산 폐수

농약 생활 하수 가두리 양식 찌꺼기…… 탁한 강물을 마셔서

마음조차 흐려진 이곳 강 유역의 주민들은…… 밤마다 그들의 목을 휘감아오는

저 차고 무거운 쇠사슬이

사실은 죽은 강줄기의 망령임을

소스라쳐 깨어서도 눈치채지 못한다

 

낙동강

 

이기철

 

마흔몇 해를 낙동강 가에 살면서 나는 낙동강을 한 번도 노래하지 못했다

아카시아 그루터기같이 가시만 성성한

내 여름 몸살 같은 낙동강

내 송곳니 빼어서 던지며 예쁜 새 이 나 달라고 물살 세던 낙동강

댕기머리 내 누미 삼베옷 빨아 말려 입던 낙동강

지금은, 뒤웅박이 쌀 팔아 내 중학등록금, 검정운동화 사주시던

어머니 무덤만 황혼 속에 잠들어 있는 낙동강

 

낙동강이여, 부르면 몇 년 추억인 낙동강

거기서 스탠더드 영어책 배우고 페니실린 주사 맞아 말라리아 쫓아내고

거기서 쇠똥종이 공책 찢어 싸리꽃 같은 순이한테 편지 쓰던 낙동강

 

노을이여, 아무리 아름답게 걸려도, 그 드리운 치마폭엔 절로 한숨이 배어 있는 낙동강 노을이여

왜 피 같은 거, 죽음 같은 거, 왜 못견디게 그리운 것들만 네 곁에 서면 도라지꽃으로 피어오는지

서른아홉 해 전의 소련제 장총과 함경도 방언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왜 너는 말하지 않느냐

아직도 탄피 묻힌 골짜기엔 원추리꽃 피고

네 곁에 공장 짓고 학교를 세우던 사람들도,

너의 맨살 배고 잠들었던 너를 가로질러 한 달에 한 번 월급 받는 나도

장롱 속에 담요를 내 아이 덮어주듯 네 추운 강자락 덮어주지 못했다

부디 너는 손톱 밑에 흙 넣지 말고 살거래이, 제발 너는 애비처럼

손등이 누릉지기 되지는 말거래이, 어머니 소원이던 나는 지금 흙 대신 분필을 만지는 선생이 되어 끝없는 회의의 교실을 오고 가지만

복도를 오가면서 저 스무살들의 남방과 블라우스 속에 감춰진 분노가 무엇인지를

그들 분노의 심연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면서도 그들의 연못 속에 발을 꽂진 못했다

강원도의 물줄기 불러모아, 봉화 청송을 마음 급해 쫓아오다가 돌밭에 가슴 찢긴 낙동강

 

금호강 남강 그 옷고름 같은 지류들도 다독거리며

물으면 터질까봐 입 다물고 흘러가는 낙동강

남원 거창 합천을 쓸어모아 남해로 달려갈 때

네 물결에 발을 씻고 잠드는 농부 있거든

낙동강이여, 보습날에 다친 그들의 발목 아물게 하라

네 흐르는 물소리 속에 첫밤을 맞는 신부 있거든 그녀에게 해 같은 첫 아일 갖게 하라

 

내 낙동강이라 부르지 않을 때 이 땅의 것 아닌 낙동강이여

내 낙동강이라 부르면 어느새 달려와 소나무 껍질 같은 내 삼촌의 목소리 되는 낙동강이여

 

마흔이 되어서도 겁 많은 사내 하나를 질타하라

닦아도 닦아도 닦이지 않는 사내 하나의 녹슨 심장을 난타하라

욕망에 눈먼 사람들이 네 위에 열 번 나라를 허물고 세워도

천년을 길 바꾸지 않는, 천년을 낙동강일 뿐인

댕기풀과 다람쥐와 내 맨발의 무덤일 낙동강.

     

 

 

posted by 황영찬
2016. 11. 18. 17:07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5 신정일의 한강역사문화탐사

 

신정일 지음

2002, 생각의 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8567

 

981.1

신73한

 

탐사와산책 14

 

역사와 삶의 궤적을 쫓아, 천삼백 리 한강의 물길을 따라 걷다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___니체

 

신정일

1954년생. 문화사학자로 역사 관련 저술활동을 전개해 가고 있는 작가이자 도보여행가이다. 그는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펼쳤고,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사업회에 참가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손화중 장군 추모사업회를 조직하여 덕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는 데 노력하기

 

차례

 

발문 | 길을 떠나면서

 

제1구간 잠시 맡겼다가 돌아갈 뿐이다___검용소에서 아우라지까지

 

1일 봄물 드는 버들강아지를 바라보며 33km

      태백으로 가는 길 | 내린 눈 다 녹지 않고 | 보통 물보다 무거운 우통수 물 | 한강의 발원지 아래 첫 마을 안창죽 | 흔들흔들 구름다리를 지나 | 나는 신랑 얼굴도 몰라 | 그렇게 좋으면 와서 살아봐 | 석유를 배 아플 때 먹는 약이라고 여기던 시절

 

2일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서 있는 것도 위험하고 36km

      골지리가 아니고 고기리이다 | 흰구름 뜬 고개 위에 | 그림 같은 구미정 아래 강물은 흐르고 | 받아들인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

 

3일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아리랑 아라리요 13.5km

      사라진 물줄기 | 아우라지에 접어들다

 

제2구간 일백번 굽이친 강물은 멀리 바다로 흐르고___아우라지에서 문산나루까지

 

4일 얕은 내도 깊게 건넌다 38km

      아우라지에서 배를 타다 | 강가에는 수진달래가 피어 있고 | 시냇물에는 멈춰선 물길이 없다 | 낯선 곳에서 만난 남난희 씨| 꿩꼬치산적은 사라지고

 

5일 기억의 강, 망각의 강 35km

      잊어버릴 줄 모르는 이 마음이 슬픔 | 하늘이 낮아 재 위는 겨우 석 자 높이 | 일천 산엔 겹겹 푸르름이 가로놓였고 | 지루하고 가파른 산길만이 이어지다 | 떼돈을 벌었던 떼꾼들은 사라지고

 

6일 동강의 섬 절매마을에 갇혀서 12km

      백룡동굴은 강 건너에 | 황새여울에는 강물만 흘러가다 | 돌아가자 돌아가자 산을 휘돌아 돌아가자

 

제3구간 얕은 물은 요란스럽게 흐른다___어라연에서 충주나루까지

 

7일 동강의 절경 어라연 43km

      강가의 뽕나무엔 오디가 주렁주렁 | 떼꾼들의 무덤 된꼬까리여울 |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 꽃밭여울에 강물은 흘러가고 | 정조의 태실이 있는 계족산 | 상리나루에서 온달의 장사를 지내고 | 남한강변에 어둠이 내려앉다

 

8일 오른 만큼 내려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 28km

      온달산성에는 안개가 지욱하고 | 물맛이 단 단물내기 | 곳곳에 온달의 전설이 남아 | 올 때도 문득 오고, 갈 때도 문득 간다 | 도전리에서 태어난 삼봉 정도전

 

9일 나그네 꿈이 땅울림에 놀라 깨니 12km+배타고 40km

      수몰지에 얽힌 사연 | 꽃거리에 꽃은 없다 | 하늘로 통하던 다리 우화교 | 열 걸음을 걷는 동안에 아홉 번을 뒤돌아본다 | 물은 갈수록 겹겹이요, 또 산은 거듭거듭

 

제4구간 강산은 만고의 주인 사람은 백년의 손님___충주나루에서 이포나루까지

 

10일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32km

        어디로 날아가는 새들이여! | 탐금대에는 신립의 자취가 남아 | 충주 달천의 물이 천하에 으뜸가는 물맛 | 나라의 중앙에는 중앙탑이 남아 | 목계나루에는 나룻배가 없다 | 강산은 만고의 주인 사람은 백년의 손님

 

11일 진리가 샘물처럼 솟아나다 30km

강여울에 떠가던 떼배는 사라지고 | 남한강으로 섬강이 접어들다 | 도는 어디로 뻗어 있는가 | 전국의 3대 선원 고달선원 | 고달사지에는 석물만 남아 있고 | 이색의 마지막을 지켜본 남한강 | 강물은 유유히 흘러서 가고

 

12일 그 아름다운 물집에 관한 보고서 20km

       열일곱 개의 물집 | 아파트 쇠창살 안에 갇힌 청심나루터 | 여주에서 북간도마을을 만나다 | 이포나루에서 여정을 풀다

 

제5구간 남한강과 북한강이 몸을 합하고___이포나루에서 뚝섬까지

 

13일 혼자 감당해 낸 그 세월의 그림자들 33km

파사산성에 피어난 달맞이꽃 | 진달래꽃이 많이 피는 꽃봉 | 양근포구에는 물결만 일렁이고 | 상심이나루와 한여울나루 | 드디어 두물머리를 만나다 | 서거정이 극찬한 수종사

 

14일 드디어 한강으로 거듭나다 32km

        다산의 탯자리 능내리 | 천주교의 은인 정약용 | 다시 꽃밭을 지나며 | 더 멀리 뛰기 위해 몇 걸음 뒤로 물러선다 | 길가에 열려 있는 천도복숭아 | 배암드리성이 바람드리성이 되다

 

제6구간 어머니의 젖줄 같은 달디단 강물___압구정동에서 보구곶리까지

 

15일 나루터마다 놓인 저 다리들 35km

       압구정에는 무지개 개울이 있다 | 뽕나무가 많았던 잠실 | 노량진에는 배다리가 설치되었다 | 마포 새우젓 장수 왕십리 미나리 장수 | 고려시대 귀양지 여의도 | 안양천에서 유전油田을 보다 | 방화대교 아래에서 고기를 낚다

 

16일 휴전선은 강물 위에도 있다 28km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보이다 | 적은 이곳을 보고 있다 | 애기봉을 목전에 두고 | 한강의 하구 보구곶리

 

참고문헌

 

쾌락은 우리를 스스로에게서 멀리 떼어놓는다.

그런데 여행은 우리를 제자리로 데리고 가는 하나의 고행이다. --- 카뮈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 니체

 

한강漢江은 도성 남쪽 10리 지점 곧 목멱산木覓山(남산) 남쪽(한남동)으로 옛날에는 한산하漢山河라 하였다. 신라 때에 북독北瀆, 고려조에서는 사평도沙平渡라고 하였는데 민간에서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 이름하였다. 그 근원이 강릉부의 오대산 우통于筒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충주 서북쪽에 이르러 안창수安倉水(섬강)와 합하고 양근군楊根郡 서쪽에 이르러 용진龍津과 합하며 광주 지경에 이르러 도미진渡迷津이 되고 광진廣津(광나루)이 되고 삼전도三田渡가 되며 두모포豆毛浦(두뭇개)가 되며 경성 남쪽에 이르러 한강도漢江渡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흘러서는 노량이 되고 용산강이 되며 또 서쪽으로 가서 서강西江이 되고 시흥현 북쪽에 이르러서 양화도楊花渡가 되며 양천현 북쪽에서 공암진孔巖津이 되며 교하군 서쪽에 이르러 임진강과 합하고 통진부 북쪽에서 조강祖江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 한강 『동국여지승람』

 

오대산 서대西臺 장령長嶺 밑에 샘물이 솟아나는데 그 빛깔이나 맛이 특이하였다. 무게도 보통 물보다 무거웠고 사람들은 그 샘물을 우통수于筒水라고 불렀다. 우통수는 바로 한강의 수원이다. 사람들은 우통수의 빛과 맛이 변하지 않음이 마치 중국 양자강의 경우와 마찬가지라는뜻에서 중령中泠이라고도 불렀다. 중령이란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물 이름인데 여러 줄기의 냇물이 모여서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지만 중령의 물만은 다른 물과 어울리지 않고 그 찬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고사를 말하는 것이다.

- 우통수 권근, 기문記文

 

걷는 것과 사고하는 것은 두 가지 형태의 동일한 개념이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다. 걷기를 선호하는 사람은 생각하기를 선호한다고. --- 토마스 베른하르트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맑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 공자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 벌판으로 몰고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 <한라산> 시인 이산하

 

 

풀리는 한강가에서

 

서정주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은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니풀 같은 것들

또 한 번 고개 숙여보라 함인가

황토언덕

꽃상여

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 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걸쳐놓은 하나의 밧줄이다.

하나의 심연을 건너가는 밧줄인 것이다.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그 위에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를 돌아보는 것도 위험하다. --- 니체

 

봉산리 강가의 구이정(구미정?)에서 목을 축이고

조선 숙종 때 이조참의를 지냈던 이치가 기사사화를 피하기 위해 이곳 봉산리에 은거하면서 세웠다고 한다.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귀거래사

 

도연명

 

그만 두어라

이 우주간에 몸 맡길 날이 얼마나 남았는가

어찌 마음대로 머물고 나아가지 못하는가

무엇을 위하여 허겁지겁 어디로 가려는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

기분이 좋을 때는 홀로 나다니고

대대로 지팡이 꽂아놓고 김을 매노라

……

잠시 자연에 맡겼다가 돌아갈 뿐이다

 

침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은 어렵다. --- 니체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 루소

 

봄 강에 홀로 낚싯대 드리우다

 

대숙륜

 

홀로 봄 강에 낚싯대 드리우니

봄 강의 흥취가 마냥 길구나

풀밭에 서린 안개 파랗고

꽃잎 떠가는 강물 향기롭다

마음은 백사장과 갈매기와 같아

뜬구름 같은 인생을 쪽배에 실었노라

연잎 옷은 애당초 먼지에 물들지 않았으니

무삼 창량수에 빨래를 하랴?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상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 정선아리랑

 

아우라지나루의 처녀상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옛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아우라지 건너편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연애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유천리에 있는 싸리골에서 서로 만나곤 하였다. 그러나 어느 가을에 큰 홍수가 나서 아우라지에 나룻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그 처녀는 총각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 부르게 된 것이란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 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서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정선읍내 일백오십 호 몽땅 잠들여놓고서

이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저 건너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날과 같이 또 한 해 묵네

 

당신은 나를 흙싸리 껍질로 알아도

나는야 당신을 알기를 공산명월로 알아요

- 정선아리랑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어떠한 굳세고 강한 것도 물을 이기지는 못한다.

- 노자

 

모래내

 

김지하

 

목숨

이리 긴 것을

가도 가도 끝없는 것을 내 몰라

흘러 흘러서

예까지 왔나 에헤라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한없이 머릿속으로 얼굴들이 흐르네

막막한 귓속으로 애 울음소리 가득 차 흘러 내 애기

핏속으로 넋 속으로 눈물 속으로 퍼지다가

문득 가위소리에 놀라

몸을 떠는 모래내

철길에 누워

 

한 번은 끊어버리랴

이리 긴 목숨 끊어 에헤라 기어이 끊어

어허 내 못한다 모래내

차디찬 하늘

 

흘러와 다시는 내 못 가누나 어허

내 못 돌아가 에헤라

별빛 시린 교외선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어떠한 굳세고 강한 것도 물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것은 물보다 더욱 약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을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단지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 노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시냇물에는 멈춰선 물길이 없다.

- 곽백

 

청학동에 사는 남난희

- 내가 걷는 백두대간 28

 

이성부

 

세석에서 내려오니 남난희가 있더라

키를 넘는 산죽발 헤쳐서 몇 십 리

삼신봉 아래 청학동 골짜기

물어물어 찾아드니 그녀는 찻집 주인

다섯 살짜리 아들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내 마음 어디로 가는 길을 잃었구나

사람이 바라보는 것이 반드시

예전 그 자리 그대로는 아닌 것처럼

보여지는 것 또한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음을

산에 와서 내가 배운다

녹차 한 잔 마시고 책 한 권 빼어들고

뒤돌아보며 손짓하며 내려간다

내 슬픔도 포개어 배낭에 넣어두고

천천히 청학동을 내려간다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산 너머 고개 너머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나는 남따라 따라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왔네.

산 너머 고개 너머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 칼 부세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두보

 

좋은 비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곧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스며들어

소리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신다

들판 길 구름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의 불만이 밝다

새벽녘 분홍빛 비에 젖은 곳 보니

금관성錦官城에 꽃들 활짝 피었네

 

동강 12경

 

1경 - 가수리 느티나무와 마을 풍경

2경 - 운치리의 수동(정선군 신동읍) 섭다리

3경 - 나리소와 바리소(신동읍 고성리~운치리)

4경 - 백운산(고성리~운치리, 해발 882.5m)과 칠족령(덕천리 소골~제장마을)

5경 - 고성리 산성(고성리 고방마을)과 주변 조망

6경 - 바새마을 앞 뼝대

7경 - 연포마을과 홍토 담배 건조막

8경 - 백룡동굴(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9경 - 황새여울과 바위들

10경 - 두꺼비바위와 어우러진 자갈, 모래톱과 뼝대(영월읍 문산리 그무마을)

11경 - 어라연(거운리)

12경 - 된꼬까리와 만지(거운리)

 

가수리마을의 700년 된 느티나무 700여 년 전 강릉 유씨가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평화로운 정경을 자아낸다.

 

꽃은 누구를 위하여 피고 지는가

 

엄운

 

봄볕 아장아장 어디로 돌아가는가

새삼 꽃 앞에서 술잔 잡아들었네

종일토록 꽃에게 물어도 꽃은 말이 없는데

누굴 위하여 시들고 누굴 위하여 지는가

 

가자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 김수영

 

숲에서 혼자 그렇게 걸었다

아무것도 찾지 않으면서

그것이 내 의도였다

- 괴테

 

일천 산엔 겹겹 푸르름이 가로놓였으니 한 가닥 길은 푸른 공중으로 들어간다

- 이색

 

벼랑을 따라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길이 있구나.

옛 읍이 산을 의지하였는데 산은 성을 이루었네

- 한철중

 

하늘 모양은 작기가 우물 속에 비쳐서 보이는 것 같고 산의 푸르름은 멀리 구름 위에 가로놓였다.

- 정추

 

산마을에 돼지 배부름은 반드시 새벽에 물 먹인 것이 아니요 이웃집 닭이 살쪄도 날마다 훔쳐가는 자 없다

- 안축

 

피곤한 말이 실 같은 가는 길을 뚫고 가기를 근심하니 어지러운 산봉우리들이 높고 깎아지른 듯하여 겹으로 된 성과 같구나. 바람이 바위틈에서 나오니 대포의 수레가 구르는 것 같고, 물이 마을을 안고 흘러 한 필 흰 비단 가로놓은 것 같다. 몸은 이 세상 백 년에 두 귀밑이 희어졌고, 물과 산 처리 길에는 벼슬살이하러 다니는 심정이 서럽구나. 난간에 의지해 앉아 동산의 달을 기다리노니, 밤이 고요하여 시 생각이 오랠수록 더욱 맑아진다.

- 성현

 

물에는 원래 동쪽으로 흐르는 물, 서쪽으로 흐르는 물이라는 구분이 없다. 그러나 위로 흐르는 것,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는 구분도 없는가? 인간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 않는 물이 없다. 지금 만일 물을 손바닥으로 쳐서 튀어오르게 한다면 사람의 이마 위로 넘어가게도 할 수 있고 또 물길을 막아서 역류시킨다면 산 위로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그것은 단지 외부적인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일 뿐이다. 사람도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악한 짓을 할 수 있지만, 그 본성은 역시 물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 맹자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나룻배와 행인」

 

 

우리집의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셨나

 

 

강물은 돌고 돌아 바다로 나가지요.

이내 몸은 돌고 돌아 어디로 가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 정선아리랑

 

한가한 사람이 아니면 한가함을 얻지 못하니

한가한 사람이 바로 등한한 사람은 아니라네.

- 『문가유림』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가지만

돈으로 사귄 정은 잠깐이라네

돈 쓰던 사람 돈 떨어지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 맞은 국화라

놀다 가세요 쉬다 가세요

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 띄워놓았네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놓게나

 

 

나는 누구냐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미친 듯이 소리쳐 옛 사람에 물어보자

옛사람도 이랬더냐 이게 아니더냐

산아 네 말 물어보자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림자는 돌아다봤자 외로울 따름이고

갈림길에서 눈물 흘렸던 것은 길이 막혔던 탓

삶이란 그날 그날 주어지는 것이었으며

살아생전의 희비애락은 물 위의 물줄 같은 것

그리하여 말하지 않았던가

이룩한 미완성 하나가 여기 잇노라고

혼이여 돌아가자 어디인들 있을 데 없으랴

- 매월당 김시습

 

원통한 새가 되어서 제궁을 나오니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밤마다 잠들려 해도 잠 못 이루어

어느 때 되어야 이 한이 다 할꼬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 흘러서 봄꽃은 붉다

하늘도 애끓는 소리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시름에 찬 내 귀에는 잘도 들리는고

- 단종 <자규시>

 

남한강에서

 

김지하

 

덧없는

이 한때

남김없는 짤막한 시간

머언 산과 산

아득한 곳 불빛 켜질 때

 

둘러봐도 가까운 곳 어디에도

인기척 없고 어스름만 짙어갈 때

오느냐

이 시간에 애린아

 

내 흐르는 눈물

그 눈물 속으로

내 내쉬는 탄식

그 탄식 속으로

네 넋이 오느냐 저녁놀 타고

 

어둑한 하늘에 가득한 네 얼굴

이 시간에만 오느냐

남김없는 시간

머지않아 외투깃을 여미고

나는 추위에 떨며 낯선 여인숙을

찾아나설 게다

 

먼 곳에 불빛 켜져 주위는

더욱 캄캄해지는 시간

이 시간에만 오느냐

짤막한 덧없는 남김없는

이 한때를

애린

 

노을진 겨울강 얼음판 위를

천천히 한 소년이

이리로 오고 있다

 

 

이렇게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어느 날 문득

삶의 길에서 죽음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태어남, 만남,

그리고 죽음들이 길 위에서 비롯되고 길 위에서 끝맺음을 하니.

 

온달산성에 올라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의 사람이다. 얼굴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으나 속마음은 아주 맑았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구걸한 음식으로 어머니를 봉양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 공주가 장성하자 왕은 상부의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였다. 공주는 "대왕께서는 항상 '너는 필시 온달의 아내가 되리라'고 말씀하시더니 지금은 어찌 예전의 말씀을 고치십니까? 지금 대왕의 명령이 전과 틀리시니 저는 감히 따르지 못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 『삼국사기』 온달전에서

향산사의 삼층석탑 향산사는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가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을 꾼 후 세워졌는데, 그가 입적한 후 그의 제자들이 부도를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말이 전해진다.

가곡면의 홍수 흔적 기념비 1990년 9월 9일에 일어난 홍수 때 이 도로까지 물이 가득 찼다고 한다. 그 홍수 때 이 지역의 집 89채가 잠겼고 소, 돼지가 이 강물에 숱하게 떠내려갔다고 한다. 대단한 일이다. 이 길목까지 물이 찼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조마조마했을까?

단양팔경의 시작 도담삼봉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에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지난 뒤 을사년 장마 때 이곳까지 흘러흘러 왔는데 정선 땅의 관리들이 삼봉을 찾아 이곳으로 와서는 자기들의 것이라며 산세로 해마다 쌀 여섯 섬을 세금으로 걷어갔다. 그러던 어느 해 정선에서 관리들이 세금을 거두러 오자 정선의 한 아이가 나서서 "저 삼봉은 우리가 불러서 온 것이 아니고 제멋대로 온 것이요. 그렇게 중요하다면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

 

 

산은 붉은 단풍잎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삼봉엔 저녁노을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 잘 적에

달과 별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진다

- 퇴계 이황

 

 

떠나고 돌아오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세상이리라.

 

야이차의 공을 표창하다, 단양적성비 적성산성을 조사하던 중 비 하나를 발견했다. 비문은 모두 440자 가량으로 추정되지만 288자가 남아 있었다. 그 내용은 진흥왕이 이사부, 이간, 내예부, 대야간, 무력 등 10여 명의 고관에게 일러 야이차의 공을 표창하여 앞으로도 야이차와 같이 신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포상을 내리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장회원에 이르러 다시 말을 타고 길을 나서면 더욱 가경으로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 가득 버섯처럼 자라는 돌무더기를 발견했다. 산봉우리에서 봉우리를 연결한 푸른 아지랑이는 좌우와 동서를 분간하지 못하리란 말에 현혹하여 어떤 마술사의 기교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가은암 앞에 말을 세웟다. 아까보다 더 찬란한 연하는 더욱 길을 흐리게 하여 남가산의 꿈 같은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절경에 명칭이 없는 것이 매우 어색하여 대뜸 단구협丹丘峽이라 명명했다.

- 김일손

 

거북을 닮은, 구담봉 남한강 줄기를 따라 깍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괴석으로 그 형상이 거북과 같다고 하여 구담봉이라 부른다. 구담의 뱃놀이는 천하제일의 흥취로 꼽혔다.

비온 뒤의 죽순처럼, 옥순봉 봉우리들이 마치 비온 뒤의 죽순처럼 솟아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운다. 옥순봉 아래에는 물살이 급하여 벽력 같은 소리가 닜다고 하는 돌내기여울이 있었다고 하나 이미 지나간 옛일일 뿐이다.

 

나그네 꿈이 땅 울림에 놀라 깨니

가랑잎만 어지러이 창문을 두드리네

모를레라 이 밤에 강물로 흐른 비

구봉을 얼마나 깍아내는지

- 이인상

 

겨드랑이 밑에 절벽을 끼고

강물 위를 미끄러져 간다

누구나 나를 보면 하늘에서 온 줄 알리

구담에 비친 그림자

들여다보다 나도 속았네

구담봉 옛 주인은

어디 가 계시는고

나무학 타고 올라

바람 몰고 다니더니

그날에 학채 구름채

구름 속으로 갔나 보다

-율곡 이이

 

제 몫으로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 생각하라.

얼마나 무거워야 가벼워지는지를.

내가 아직 자유로운 영혼,

들새처럼 영혼의 힘으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 짐이 아직 충분히 무겁지 못하기 때문이다.

- 정현종

 

충주댐, 「홍수와 가뭄 다목적댐이 막아줍니다」 충주댐의 건설은 서울과 인천을 포함한 한강 유역권에 사는 사람들의 물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그 혜택은 외지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탄금대비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장병 8,000명과 함께 배수진을 치고 왜군을 맞아 싸운 전적지인 탄금대 내에는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탄금대비, 우륵추모비, 궁도장, 신립 장군 순절비, 탄금정 등이 있다.

중앙탑 신라 문성왕 때에 나라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신라 땅의 남쪽과 북쪽 끝에서 각각 출발한 두 사람이 이 탑에서 만났다고 한다. 이 중앙탑은 이 고장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사는 곳이 우리나라의 중심지라는 의삭을 심어주었다.

중원 고구려비 장수왕의 아들 문자왕 때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석은 고구려와 신라가 충돌하였으며 또 신라와 백제가 모의하여 고구려와 싸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충주를 포함한 이 고장은 고구려가 남쪽으로 뻗어내려 오면서 '나라의 들'이라는 국원성으로 불렸을 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곳이었다.

 

 

자연을 따르고 자연의 이치에 맞게 행동하라.

 

 

인간은 자연에 복종할 때에만 자연에 명령할 수 있다.

- 프랜시스 베이컨

 

목계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다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있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목계장터 시비

 

길이라는 것은 그렇다. 길이 없을 듯싶은데

어느 순간 문득 길이 환하게 열린다.

 

 

눈 덮인 산길을 어지러히 걷지 말라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리니

- 서산대사 휴정

 

석불대좌(보물 8호) 고달사지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석조유물이 석불대좌이다. 불상 없이 대좌만 있는데 보물 제8호로 지정된 것으로 보아 그 수법이 뛰어남을 짐작할 수 있다.

원종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보물 6호) 975년에 세워진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비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 위에 얹혔던 이수. 거북을 비의 받침으로 삼으니 귀부, 이무기를 지붕으로 삼으니 이수라 한다.

고달사지 부도탑(국보 4호) 혜목산문의 개산조였던 원감국사의 사리탑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팔각원당형 부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안정감이 잇는 빼어난 작품이다.

원종대사 부도탑(보물 7호) 하늘에서 춤을 추며 날아가는 듯한 비천상들과 금방이라도 살아움직일 것 같은 다섯 마리의 용의 모습에서 옛날 장인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원종대사가 입적한 지 19년이 되던 고려 경종 2년(977년)에 만들어졌다.

신륵사 대웅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봉미산 기슭에 위치한 이 절은 신라 진평왕 때 원화스님이 창건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절 신륵사가 유명해진 것은 고려 말의 고승 나옹선사가 이 절에서 열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륵사 대장각기비 고려 말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선사의 문도와 함께 대장경을 인출印出하고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사실을 기록한 비문이다.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225호) 흰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신라나 고려의 석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룡문과 연화문, 그리고 물결 무늬와 구름무늬의 조각들이 빼어난 솜씨를 자랑하며 새겨져 있다.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226호) 아래로 남한강이 굽어보이고 강 건너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경치 좋은 바위 위에 이 전탑이 세워져 있다.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른다.

신륵사 조사당 조선 초기 예종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고려 말 기울어가는 불교계에 한 가닥 빛이 되었던 소위 '3화상和尙'이라 불리는 지공 · 나옹 · 무학의 덕을 기리고, 또 그들의 법력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중앙에 나옹, 그리고 좌우에 지공과 무학 선사의 영정을 봉안해 두고 있다.

나옹선사 석종부도 신륵사 조사당을 지나, 양지바른 구릉을 오르면 보제존자 나옹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가 있다. 부도는 종 모양을 닮았다 하여 석종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석등(보물 231호) 석종부도 앞에 있다. 부도의 주인에게 등불 공양을 올리는 공양구로 부도를 장엄하게 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규모는 자그마하지만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고려 말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인생이 무어 별건가. 오지 않는 내일 오지 그 무엇을

기다리다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도보 여행자에게는 신발이 전부다. 모자니 셔츠니 명예니 덕목이니 하는 것은 모두 그 다음의 문제다.

- 퇴퍼 『지그재그 여행』의 저자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잠자리에 들 때 촛불의 그을음을 알코올에 타서 그걸로 발을 문지르면 된다. 그러면 다음날 물집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차츰차츰 구두가 발에 익숙해지거나 발이 구두에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많이 쩔뚝거렸지만 굳은살이 단단해져서 이제는 오랫동안 걸어도 아프지 않다.

- 카크란

 

영월루 18세기 말의 건물로 추정된다. 원래 군청의 정문이었는데 1925년경 군청 이전 때 군수가 현 위치에 누각을 다시 세웠다. 마암 언덕에 서 있다.

 

여주 팔경 - 『동국여지승람

 

반도낙안 - 여강 언저리에 내려앉은 기러기

동대만월 - 동대인 청심루에서 바라본 달

연탄귀범 -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모연 - 학동의 저녁 연기

신륵종성 - 신륵사의 종소리

마암어화 - 마암 아래에 떠 있는 고깃배의 등불

어릉춘수 - 두 영릉의 신록

자수장림 - 팔대수의 우거진 숲

 

세종대왕 영릉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를 합장한 영릉英陵.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능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합장릉이므로 2개의 상석이 있다. 주위는 12개의 돌기둥을 세워 12간지를 표시했고 돌난간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행하고 가더라도 살아생전 젊은 여자가 잠자리를 같이 하고자 간청했을 때 거절한 남자는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 『희랍인 조르바』 조르바 이야기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걸으면 나무도 숲도 외롭다.

- 헤르만 헤세

 

삼국시대 때 축성된 파사산성 천서리 파사산의 능선을 따라 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파사산이라는 이름의 연유는 옛날 파사국이 있었던 자리라서 그렇다는 설과 신라의 왕이었던 파사왕이 이곳에 성을 쌓아서라는 설이 있다. 산정에 오르면 여주, 이천, 양평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십 리 밖, 혹은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고, 혹은 유숙한 다음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장만해 둔다면 이것은 자손대대로 이어나갈 만한 방법이다. 옛날에 주부자朱夫子가 무이산武夷山의 산수를 좋아하여 냇물 굽이와 봉우리 꼭대기마다에 글을 지어서 빛나게 꾸미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다 살 집은 두지 않았다. 그는 일찍이 '봄 동안에 저곳에 가면 붉은 꽃과 푸른 잎이 서로 비치어서, 또한 제대로 나쁘지 않다' 하였다. 후세 사람으로서 산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을 본으로 삼을 일이다.

- 이중환 『택리지』 생리편

 

군읍의 15리 서쪽, 즉 파내탄波乃灘 하류에 대탄이 있다. 돌이 강 중간에 가로누워 있어 물이 넘치면 바위가 보이지 않고 물이 얕아지면 파도가 인다. 강물이 사납게 흘러내려 하도下道(영남지방을 의미함)의 조운선槽運船들이 자주 파선된다.

고려 때 왕강王康이 건의하여 암초를 조금 파냇으나 공사가 어려워 중단했는데 그 뒤로 물살이 더 심해졌다. 세조 때 구달충具達忠을 시켜 다시 파게 하였다. 물 가운데에 있는 그 돌의 둘레를 나무로 막고 물을 퍼내면서 팠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염여퇴艶澦堆와 비교한다.

- 대탄에 대해

 

양수리에 가면

 

김승희

 

가을이면

양수리에 닿고 싶어라

가을보다 늦게 도착했을지라도

양수리에 가면

가을보다 먼저

물과 물이 만나는 것을

볼 수 잇으니

 

가장 차갑고

가장 순결한

물과 물이 만나

그저 뼈끝까지 가난하기만한

물과 물이 만나

외로운 이불 서로 덮어주며

서러운 따스함 하나를 이루어

다둑다둑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가난한 것을

왜 그저 외롭다고만 하랴

외로운 것을

왜 그저 서럽다고만 하랴

 

양수리에 가면

가을보다 늦게 도착했을지라도

가을보다 먼저

물과 물이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헐벗은 가을나무

제 유언을 풀 듯

조용히 물그림자 비추어

스스로 깊어지는 혼자 외로움

겨울같이 전신으로 대면하고 있으니

 

가을이면

양수리에 가고 싶어라

어디선가 나뉘었던

물과 물이 합하여

물빛 가을이불 더욱 풍성해지고

가을나무 물그림자

마침내 이불 덮어 추위롭지 않으리니

 

홀로 서 있다 하여

어찌 외롭다 하랴

하늘 아래 헐벗었다 하여

 

어찌 가난하다고만 하랴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아담하면서도 화려한 탑신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기품이 있어 보이는 석탑이다. 62년도에 탑을 이전할 때 18점의 보물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양수리 수종사

 

서거정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하계下界에서는 연기와 티끌을 피할 곳이 없건만

상방上方(절)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네

흰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거나

누런 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내 동원東院에 가서 참선 이야기 하려 하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 울게 하지 말아라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 수종사 수종사는 운길산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절에서 보면 양수대교를 비롯한 양수리와 북한강 일대가 확연히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 장 루슬로

 

1925년 홍수 때 떠내려 갔던 것을 1975년 새로 복원한 다산의 생가

다산과 그의 아내 숙부인 풍산 홍씨를 합장한 묘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정양용은 학문을 실생활과 연관시키는 한편, 실학의 학문적 입장을 정리하는 데 힘썼다. 그는 서학과 청대의 고증학까지 수영하여 학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여 기존의 유학에서 독립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바다나루에서 팔당댐 호수 둘레에 당집이 여덟 군데가 있었다고 해서 팔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또 한편에선 한강가에 넓은 나루가 있었으므로 바다나루, 바대이, 바당이 하다 팔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팔당대교 팔당대교를 벗어난 물은 한강으로 흐를 것이다. 예로부터 한강을 낀 중부지방은 이 나라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한강을 얻으면 흥하고 빼앗기면 망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삼국시대의 전략 요충지 아차산성 이 성은 삼국시대의 전략 요충지로 삼국의 쟁탈대상이었다. 백제가 초기 광주에 도읍을 두었을 때 고구려의 남진에 대비하여 쌓았다고 한다.

삼전도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 김상헌

 

경복궁의 역사役事가 언제나 끝나 그리던 가속을 만나볼까

에에헤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도편수의 거동을 봐라 박통을 들고서 갈팡질팡한다

- <경복궁타령>

 

왕십리 처녀는 풋나물 장수로 나간다지 고비 고사리 두릎나물 용문산채를 사시래요

건드렁 건드렁 건드렁거리고 놀아보자…… 애오개 처녀는 망건 장수로 나간다지

인모망건 경조망건 곱쌀망건을 사시래요

- <건드렁타령>

 

한강수라 맑고 깊은 물에

풍덩실 빠져 애고 나는 못 죽어

- <한강수타령>

 

한강수 푸른 물아

너는 어찌 늙지 않어

만고불변 한결같이 흐르는데

…… 에헤야 무정할 손

사람만이 늙는구나

- <한강수타령> 평택지방

 

다리는 권력의 영역이 공간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모습이다.

- 헤겔

 

한강의 다리 노량나루에는 제1한강교가 놓여졌고, 양화나루에는 제2한강교가, 한강나루에는 제3한강교가, 송파나루와 광나루 부근에는 잠실대교와 천호대교가 놓여지며, 한강의 나루는 점차 없어져 간다.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산모롱이 사이로는 낚싯배가 아련하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남산에서 오르네

- 이병연

 

이태원이 목멱산 남쪽에 잇다. 입으로 전하는 말로는 임진왜란 후에 항복하고 귀순한 왜인들을 숭례문 밖 남산 아래에 살게 함에 스스로 한 마을을 이루고, 그 마을 이름을 이타방異他邦이라고 하던 것이 후에 이태원으로 바뀌었다.

- 『동국여지비고』 역원조

 

동東잠실이 성동 아차산 아래에 있다. 내시가 맡아본다. 지금 새로 새잠실을 한강 아래 원단동에 설치하고 역시 내시로 하여금 맡아보게 하고 있다.

서西잠실은 도성에서 서쪽으로 10여 리쯤에 있다. 곧 옛날의 연희궁이다.

이들 잠실마다 별좌別坐 2인으로 전담하게 하다가 별좌를 상의원尙衣院에 예속시키고 여름철에 현지로 가서 누에를 치고 그 일을 마치면 상의원으로 돌아와서 근무하게 하였다. 동서 잠실로 하여금 제각기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승정원에 납품하게 하고 이것을 검사하여 잘 되고 못 된 정도에 따라 상도 주고 벌하기도 한다.

남강에 있는 밤섬에서도 여러 가지 종류의 뽕나무를 심고 해마다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친다. 지난날에는 도성 안 지체 높은 집이라도 겨우 서너 집 정도가 누에를 치더니, 이제는 지체 높은 집뿐만 아니라 가난한 집 부녀자까지도 누에를 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므로 자연히 뽕잎 값이 폭등하여 요즈음에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뽕나무를 심어 이득을 챙긴다.

- 『용재총화』, 10권

 

강원도 뗏목장수 뗏목 빼앗긴 채 울고 가고 전라도 알곡장수 통배 빼앗기고 울고 가면 삼개(마포) 객주 발 뻗고 울고 노들나루 색주가 머리 잘라 판다.

- <한강원가>

 

성삼문 등 여섯 충신이 사형을 당할 당시 서울은 형용할 수 없을 지경으로 혼란에 빠졌던 까닭에 그들의 시체를 묻을 겨를조차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밤중에 남몰래 이곳에 시체를 모시었으니 창망중에 그 시체들이 제대로 챙겨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사육신 신도비

 

노량진의 사육신묘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사육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묘.

 

마포 8경

 

용호제월 - 용산강 물 위로 뜨는 달

마포귀범 - 마포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방학어화 - 강 건너 방학 언덕의 밤낚시

율도명사 - 밤섬의 깨끗한 모랫벌

농암모연 - 동바위마을의 저녁 연기

우산방축 - 와우산의 소 말 방축

양진낙조 - 양화나루의 석양 무렵의 낙조

관악청람 - 관악산의 맑은 날의 아지랑이

 

조선시대에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로 목덜미가 까맣게 탄 사람은 왕십리 미나리장수, 얼굴이 까맣게 탄 사람은 마포 새우젓장수라 하였다. 그 이유는 왕십리에서 아침에 도성 안으로 미나리를 팔러 오려면 아침 햇빛을 등뒤에 지고 와 목덜미가 햇빛에 탔기 때문이고, 마포에서는 아침에 도성 안으로 새우젓을 팔러 오려면 아침 햇빛을 앞으로 안고 와 얼굴이 햇빛에 새까맣게 탔기 때문이다.

- 『동명연혁고』 마포구편

 

한강 개발과 여의도 건설의 일환으로 하구를 넓혀 한강 물이 잘 흐르도록 총 17,393평의 밤섬을 폭파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부군당을 모시는 사당을 만들어 17대를 살아온 62가구 443명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어업과 도서업에 종사하고 있다. 밤섬은 주로 돌산으로 되어 있는데 서울특별시는 이 섬을 폭파하고 여의도 축석에 필요한 잡석 114,000㎥를 캐낼 방침이다. 서울특별시는 거주민에게 토지와 건물 보상비를 지급,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청평 대지에 연립식 주택을 건설하여 5가구씩 살게 할 방침이다.

- 동아일보 사회면 1968년 2월 10일자

 

밤섬에서는 친척끼리도 당사자들이 마음만 맞으면 시집도 가고 장가도 든다. 비록 4촌 5촌간의 근친이라 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홀아비나 과부가 생기면 따로 혼처를 구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을 조금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사방이 강물로 둘러서 이웃한 마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행하는 일이 남의 이목에 띄지 않는 것을 기화로, 깊고 얕은 강물을 건너 섬을 드나들 때면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는 등 음란하기 이를 데 없다.

- 《명종실록》 11년(1556년) 4월 초 당시 밤섬 풍습

 

찾으니 장강長江인데 강 건너 은모래벌

벌 지나 뫼이온데 뫼 넘어 구름일세

천지의 봄바람이 불어 왕래하더라

- 노상 이은상

 

천하엔 본시 일이 없건만

속인이 제 스스로 소란스럽네

 

이 시구는 정말 빼어나다. 그러나 속인이 소란스러운 것이야 그렇다 해도 지혜 있다는 자가 소란스럽게 되면 그 재앙이 크고 작음에서 반드시 구별이 있는 법이다.

- 주국정朱國禎 『자술』중에서

 

양화진의 절두산 마치 누에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어서 잠두봉이라 하였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정경은 그림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경치는 대원군에 의해 천주교인의 대량 처형장소가 되면서 지금은 절두산 천주교 성지가 되었다.

 

한강의 옛 나루터 양화라고 하는데

좋은 경치 골라 지으니 물가 가까우네

문득 들으니 우는 기러기 모래판에서 일어나네

- 예겸

 

경기지방의 경치로는 한강이 으뜸이다. 누대가 높이 구름을 막고 물이 푸르러 거울이 떴다. 나루로는 양화도가 있는데 물살이 번성하여 팔도의 물산을 모으고 나라의 빼어난 경치와 그 중요한 구실을 밝혀주고 잇고 옷깃과 같이 중요한 부분이 된다.

- 『동국여지승람』

 

양화도 어귀에서 뱃놀이 하니

별천지가 바로 예로구나

어찌 신선과 학을 타고 놀아야만 하는가

해가 서산마루에 지면서

황금의 물결 이루노니

흥이 절로 인다

- 서거정

 

한강변 최대의 명소 망원정 합정동에 위치하고 있는 옛 모습의 정자로서 1925년 큰 홍수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9년에 복원되었다. 세종의 형이었던 효령대군이 별장을 지어 강상의 풍경을 즐기던 곳이었다.

 

한강

 

박노해

 

한강의 가슴을 연다

여윈 여미의 가슴처럼

주름진 강심江心이 소리 없이 열려 흐른다

 

얼어붙은 겨울 속으로

숨죽이며 흐느낌으로 흐르던

눈물 강물

 

봄은 멀은데

병든 가슴, 지친 노동에

탄식하며 탄식하며 쓰러져

몰아치는 찬바람에

다시 아귀찬 이를 물며 일어서 흐르는

사랑이여 모진 생명이여

 

강물은 흐르고

더러움과 오욕에 뒤섞여

 

거칠게 한강은 흐르고

살얼음을 뒤척이며

어두운 겨울 속으로

봄을 부르며

봄을 부르며

 

소리 없이 열려 흐르는

눈물이여 강물이여

 

고려 공민왕 때에 평민 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워서 형에게 하나 주었다. 나루터에 와서 형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는데, 아우가 갑자기 금을 물 속에 던지므로 형이 괴이하게 여겨서 물으니, 대답하기를 "제가 평소에 형님을 독실하게 우애하였는데, 금을 나누어 가진 다음에는 형님을 꺼리는 마음이 갑자기 생깁니다.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니, 강에 던져서 잊어버리는 것이 낫겠습니다" 하였다. 형이 말하기를 "네 말이 참으로 옳다" 하고, 형도 또한 금을 물에 던졌다. 그때 같은 배를 탔던 자는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던 까닭에, 그 형제의 성씨와 거주하는 마을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 『동국여지승람』 투금탄(안양천 앞 한강여울)에 대해

 

방화대교 인천 영종도 국제공항과 육지를 연결한다. 한강 다리 중 가장 길며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행주대첩비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로, 행주치마의 전설을 안고 있는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비.

 

강 1

 

이성복

 

남들은 저를 보고 쓸쓸하다 합니다

해거름이 깔리는 저녁

미루나무숲을 따라갔기 때문이지요

 

남들은 저를 보고 병들었다 합니다

매연에 찌들려 저의 얼굴이

검게 탔기 때문이지요

저는 쓸쓸한 적도 병든 적도 없습니다

서둘러 그들의 도시를 지나왔을 뿐입니다

 

제게로 오는 것들을 막지 않으며

제게서 가는 것들을 막지 않으며

그들의 눈 속에 흐르는 눈물입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흙탕물에 젖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 파타

 

 

황지우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 보면

조선팔도,

모든 명당은 초소다

 

한려수도, 내행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 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닻이었구나

 

휴전선의 남쪽 끝, 애기봉 쑥갓머리산에는 평안감사와 사랑을 나누었던 애기의 슬픈 사연이 서려 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봉에 비를 세웠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맹자

 

한강

 

이근배

 

내일로 흐르는 강

호랑이처럼 내닫고

용이 되어 오르는 강

꺼지지 않는 불꽃의 강

우리들의 비원인

통일을 실어오는 강

 

오오 일어서라

 

천둥처럼 지축을 흔들고

가슴에 담은 산 같은 기쁨 터뜨려

이 땅에 가득하리라

종소리가 되리라

목숨이 되리라

 

 

 

posted by 황영찬
2016. 11. 8. 17:27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3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2

 

금난새 지음

2007, 생각의나무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07096

 

670.15

금19219클 2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012

 

클래식 음악 입문자들을 위한 가장 재미있고 훌륭한 안내서

금난새

 

행복을 선사하는 무대 위의 나는 새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 음대에서 라벤슈타인에게 사사했다. 1977년 최고 명성의 카라얀 콩쿠르에 입상한 후 KBS교향악단과 수원시향의 지휘봉을 잡았으며, 1998년 '벤처 오케스트라' 유라시안 필하모닉을 창단했다.

연주회마다 선보인 '파격'과 '독특한 시도'는 클래식 음악회는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특히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는 지휘자 금난새를 스타덤에 올린 간판 프로그램으로 6년간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도서관 음악회', '해설이 있는 오페라', '포스코 로비 콘서트', '캠퍼스 심포니 페스티벌', '뮤직 인 잉글리쉬' 등 철저한 고객지향의 프로젝트로 큰 호응을 얻었으며, 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사업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고 있다. 기업과 예술의 호혜적 파트너십을 이루어낸 공적으로 2006 한국 CEO 그랑프리 문화예술부붐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06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였으며, 경희대 음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신선한 발상으로 늘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지휘자 금난새는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정다운 메신저로서 무대와 청중을 찾아 정력적인 활동을 계속 펼쳐 가고 있다.

 

1970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1974년    카라얀 국제 지휘콩쿠르 입상

1980년    KBS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1989년    KBS교향악단과 국내 최초 오케스트라 녹음 출반.

             (생상 '동물의 사육제', 프로코피에프 '피터와 늑대')

19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1994년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 기획 · 진행

19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2002년    CJ그룹과 오케스트라 후원 계약 체결,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

2005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충무아트홀 상주(~2006. 12. 31)

2006년    베르사유 특별연주, 류블리아나 뮤직페스티벌 총청연주

             경기필하모닉 예술감독 취임

 

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경희대 교수

 

차례

 

머리말

 

1 체코 민족의 자긍심을 음악으로 드높인

    드보르작 vs 스메타나

보헤미아의 브람스, 드보르작 |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 | 정육점집 아들에서 국민 작곡가로 | 스메타나의 지극한 나라 사랑 | 신세계에서 고향을 그리다 | 불행으로 점철된 비운의 생애

|금난새의 추천음악|

 

2 오스트리아 최후의 낭만적 심포니스트

    말러 vs 부루크너

20세기에 불어온 말러 열풍 | 네번째 위대한 B, 브루크너 | 작곡가이자 지휘자로서의 '이중생활' | 초등학교 선생님에서 늦깎이 작곡가로 | 영원한 주제, 삶과 죽음 | 성스럽게 쌓아올린 9개의 교향곡 | 교향곡 9번의 징크스

|금난새의 추천음악|

 

3 맑고 투명한 북구의 서정 시인

   시벨리우스 vs 그리그

핀란드의 음악 영웅, 시벨리우스 | 북구의 쇼팽, 그리그 | 법학도에서 작곡가로 | 친구를 만나다, 민족음악에 눈뜨다 | 러시아가 두려워한 금지곡 <핀란디아> | 별장 '아이놀라', 그리고 30년의 침묵 | 솔베이그의 노래, 그 지고지순한 사부곡

|금난새의 추천음악|

 

4 스탈린 시대를 견뎌낸 러시아 현대음악가

    쇼스타코비치 vs 프로코피에프

스탈린 체제하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운동 | 조국 러시아를 지키다 | 망명의 길을 떠나다 | 스탈린의 탄압을 극복하고 | 돌아온 탕아, 걸작을 쏟아내다 | 영화 음악과 재즈에도 관심 |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쓴 음악동화

|금난새의 추천음악|

 

5 프랑스 음악계의 아름다운 아웃사이더

    비제 vs 생상

로마 대상을 거머쥔 비운의 작곡가 | 로마 대상에서 낙방한 '프랑스의 모차르트' | 근대 프랑스 음악의 아버지 | 니체도 탄복한 오페라 <카르멘> | 오페라 속의 팜파탈, 카르멘과 델릴라

|금난새의 추천음악|

 

6 현대음악의 두 거목

    스트라빈스키 vs 바르토크

파리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놓다 | 민요 채집에 정열 쏟은 현대음악가 | 흥행 천재 디아길레프와의 운명적 만남 | 알아주는 이 없는 외로운 창작의 길 | 평생 떠돌이 이방인으로 살다 | 천재, 백혈병에 걸리다

|금난새의 추천음악|

 

7 한 폭의 그림처럼 한 편의 영화처럼

   무소르그스키 vs 라흐마니노프

러시아 5인조의 백미 | 최후의 낭만주의자, 라흐마니노프 | 죽은 친구의 그림을 음악으로 | 신경쇠약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 알코올 중독과 처절한 만년 | 돌아오지 못할 망명의 길

|금난새의 추천음악|

 

서양사와 음악사 연대표

CD 수록곡 해설

 

1882년의 안톤 드보르작. 그는 브람스의 은혜를 입어 작곡가로서 성공가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짐로크 사의 상업적 기획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슬라브 무곡집>의 타이틀 페이지(위)와 드보르작의 자필이 담긴 악보 첫 페이지(아래). 이 작품집으로 드보르작은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스메타나의 <체코 무곡집> 타이틀 페이지. 그는 오페라에 민족적 요소들을 도입했는데 특히나 폴카, 프리안트 등의 민속무용 리듬을 즐겨 차용했다.

1866년 5월 30일 체코 프라하 가설 국민극장에서 초연된 <팔려간 신부>의 상연 프로그램.

190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된 <팔려간 신부>에서 신부 역을 맡았던 소프라노 에이미 데스틴. 이 공연에서는 말러가 지휘를 맡아 <팔려간 신부>를 미국 청중에게 처음으로 소개했다.

말년의 드보르작. 귀국 후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 상원의원을 지냈고, 프라하 음악원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간장병으로 1904년 5월 1일에 숨을 거두었다.

프라하 거리를 지나 위대한 체코인들의 안식처인 비세라드 성의 묘지로 향하는 드보르작의 장례 행렬.

1860년에 결혼한 스메타나와 그의 두번째 아내 베티나 페르디난도바.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고, 스메타나는 말년 내내 전처와 두 딸을 그리워하는 나날을 보냈다.

스메타나의 후기 작품들인 <비밀>과 <악마의 벽>을 초연한 체코 국민극장 내부.

말년의 스메타나. 그는 정신착란 증세에 시달리다가 60세의 나이에 프라하 정신병원에서 최후를 맞는다. 이 사진은 마지막 정신착란이 엄습하기 직전의 모습을 담았다.

빈 국립가극장 복도에 세워진 말러의 흉상. 이 흉상은 1909년 말러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오귀스트 로댕이 빚은 것이다. 말년의 말러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그는 2년 뒤인 1911년에 숨을 거두었다.

6세 때의 말러. 그는 1860년 보헤미아 칼리슈트(현 체코령)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독일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모라비아로 이주한 그는 유년시절부터 음악에 눈떴고, 열다섯 살부터 빈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페리 베라턴이 그린 안톤 브루크너의 초상화. 그의 나이 64세였던 1888년에 그려졌다. 그는 베토벤과 말러 시대 사이의 가장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로 꼽힌다.

1892년 런던 코벤트가든에서 함부르크 가극단과 함께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전곡 연주 지휘했던 시절의 말러.

말러를 만나기 전부터 전도유망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친 말러의 부인 알마. 그러나 말러는 아내의 활동을 지지하지 않았고, 알마는 남편이 자신의 재능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결혼 후부터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성 플로리아누스 수도원의 파이프 오르간. 브루크너는 이곳에서 음악교육을 받은 뒤 오르간 주자로 일했다. 이곳에서 작곡을 시작한 브루크너는 수도원에 큰 애정을 품고 있었고, 10년간 이곳의 오르간을 쳤다. 현재 이 오르간은 '브루크너의 오르간'으로 불린다.

오르간 앞에 앉은 만년의 브루크너를 묘사한 오토 벨러의 실루엣화. 브루크너는 작곡가 이전에 오르가니스트로 명성이 높아 런던과 파리에서 연주를 했는데, 그중에서 런던의 크리스털 팰리스(수정궁)에서의 콘서트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1907년 빈 가극단의 음악감독 자리를 사임하기 직전의 말러. 그는 그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객원지휘자로 일했고, 나중에는 뉴욕 필하모닉 협회의 지휘자가 되었다. 그는 타협을 모르는 투사였고, 다혈질이었으며 완벽주의자였다.

1863년 39세 때의 브루크너. 이 해에 바그너의 <탄호이저>가 린츠에서 공연되었고, 브루크너는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아 바그너를 찾아가 자신의 악보를 보여주기도 했으나 사실 그와 바그너는 음악적으로 거의 대척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브루크너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에게 큰 감명을 준 작곡가 바그너. 그는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오페라와 달리 연극적 요소를 더 강하게 부각시킨 악극(Musikdrama)의 창시자로, 독일 민족주의를 고취시켜 당대 지식인 사회와 지배층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11년 말러의 장례식을 그린 쇤베르크의 그림.

핀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악세리 갈렌 칼레라가 1894년에 그린 시벨리우스의 초상화.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국보급 음악가다.

'북구의 쇼팽'이라 불리는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 그는 노르웨이 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렸을 뿐 아니라 프랑스 인상파 음악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그에 대한 노르웨이 국민들의 애정은 각별하고 극진하다. 오늘날 세계 주요 음악제 중 하나인 베르겐 음악제가 노르웨이에서 최초로 열렸을 때 60세를 맞은 그리그는 축제의 주인공이었다.

헬싱키 음악원 바이올린 반의 시벨리우스(뒷줄 왼쪽). 이곳에서 시벨리우스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마르틴 베겔리우스로부터 작곡을 배웠는데,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했던 시벨리우스는 그 영향으로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문호 헨릭 입센. 입센과 그리그는 그리그의 청년 시절, 로마에서 만났고, 이 만남에서 <페르 귄트>라는 걸작이 탄생한다.

그리그의 고향 베르겐에 위치한 그리그 자택의 작업실.

화가 악세리 갈렌 칼레라가 그린 시벨리우스(맨 오른쪽)와 핀란드 작곡가 로베르트 카야누스, 그리고 화가 자신.

1907년 아이놀라 별장의 시벨리우스. 그는 1904년 헬싱키 근교에 이 별장을 짓고 아내의 이름을 딴 애칭을 붙였다.

아이놀라 별장에서 시벨리우스와 지휘자 유진 오먼디. 오먼디는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미국에 처음 소개하여 격찬을 받았다.

1898년 경의 그리그와 그의 부인 니나를 그린 그림. 성악가였던 니나 하구르프는 남편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스탈린의 전체주의에 의한 '즈다노프 비판'의 첫번째 희생양이었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천명될 즈음 그가 무대에 올렸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금지곡이 되어 29년 동안이나 암흑 속에 묻혀 있어야 했다.

교향곡 제7번을 작곡중인 쇼스타코비치. 그는 서방으로 망명한 많은 작곡가들과는 달리 끝까지 고국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결국 스탈린이 죽은 후 다시 복권되었다.

<빈대>의 상연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쇼스타코비치, 시인 마야코프스키, 연출가 메이어홀드 등 당대 러시아 최고의 예술가들.

소련 작곡계의 총아로 떠올랐던 젊은 시절의 쇼스타코비치. 브루노 발터,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은 그의 교향곡을 앞 다투어 소개했다.

1934년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유년시절의 프로코피에프.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운 그는 다섯 살에 즉흥연주를 했으며 아홉 살에 오페라를 작곡하는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다.

러시아를 떠나기 직전의 프로코피에프. 짧은 일정을 예정하고 고국을 떠났던 그는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18년 동안이나 외국을 떠돌게 된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의 공연 DVD. 스탈린은 이 작품을 관람하던 도중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리하여 작품은 러시아 제일의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연출했던 1934년의 초연 이후 내내 금지 되었다가 흐루시초프가 집권한 이후에야 다시 무대에 올려질 수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를 전체주의와 싸우는 투사로 묘사한 미국 《타임》지. 냉전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서방 작곡가들은 너도나도 그의 작품을 연주하려 했다.

영화, 연극, 발레에 두루 관심을 가졌던 프로코피에프의 또다른 작품,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러시아 영화사에 길이남을 에이젠슈타인과 프로코피에프의 협력작들. 영화 <이반대제>(위)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아래).

'형식주의자'로 매도당했던 러시아의 위대한 세 음악 거장. 왼쪽부터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19세에 로마 대상을 수상하며 프랑스 음악계의 천재로 떠올랐던 작곡가 조르주 비제. 그러나 야심작 <카르멘>의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36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했다.

로마 대상을 수상할 당시 열아홉 살의 야심만만한 비제. 그는 열여덟 살에 <다윗>이라는 칸타타로 로마 대상에 도전했으나 2위 입상에 그쳤고, 다음해에 칸타타 <클로비스와 클로틸드>로 재도전, 마침내 로마 대상을 거머쥐고야 만다.

프랑스 및 전 세계의 유명 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파리 페르 라 셰즈 묘지에 있는 비제의 무덤.

비제와 동시대를 살았던 또 한 사람의 음악 천재 생상. 그의 재능은 비단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그림과 시, 철학, 천문학 등 다방면에 대단한 식견을 보였다.

10세 무렵의 생상. 그는 1846년 5월 파리의 살 프레이엘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협주곡을 연주하여 '신동'으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23세 때의 생상. 당시 그는 파리 음악원의 일등상을 수상한 뒤, 파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들렌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자리에 오름으로써 프랑스에서 가장 인정받은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또한 그해에 파리 박람회에서 주최한 작곡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그린 사라사테의 초상 <흑의 습작>. 생상이 최초로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스페인의 연주자 겸 작곡가에게 바친 것이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공연 포스터. 초연 때 파리 시민들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한 이 작품은 현재 세계 3대 오페라 중 하나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이 되었다.

후대의 디아길레프가 무대에 올린 <카르멘>의 무대 의상 스케치.

스페인 감독 카를로스 사우라가 현대판으로 각색하여 만든 영화 <카르멘>. <카르멘>을 무대에 올리려는 배우와 연출가가 극의 내용과 똑같은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는 '극중극' 형식을 차용해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카르멘 역을 맡았던 19세기 미국 메조소프라노 미니 호크. 그녀는 1877년 브뤼셀 무대에서 이 역할을 처음으로 맡아 이후 500회가 넘도록 프랑스, 이탈리아, 영어 버전으로 공연하였다. 그녀는 미성(美聲)의 소유자는 아니었으나 팜 파탈인 카르멘 역할에 요구되는 강렬함과 관능적 표현의 대가였다고 전해진다.

생상의 이국취향과 신화에 대한 관심은 <삼손과 델릴라> <나일 강가에서> 등의 대표작에 반영되었다. 그림은 귀스타브 모로가 그린 <오르페우스의 목을 쥔 파코스의 무녀>(1865).

<삼손과 델릴라>의 클라이맥스 장면. 이 작품은 1877년 바이마르에서 먼저 초연되었고, 1892년이 되어서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상연할 수 있었다.

큐비즘 화가 알베르 그레즈가 그린 스트라빈스키의 초상. 스트라빈스키는 <봄의 제전>에서 혁신적인 퀴비즘 예술 강령을 따랐으며 또한 퀴비즘을 선포한 여러 예술가들과 친분을 나누었다.

에른스트 폰 도흐나니, 졸탄 코다이와 함께 서영음악계의 변방이었던 헝가리의 음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

니콜라스 레리히가 그린 발레 <봄의 제전>의 의상 스케치. 1913년 파리 상젤리제에서 초연된 이 작품의 의상은 러시아 민속의상에서 모티프를 차용했다.

레온 박스트가 디자인한 <불새>의 의상. <불새>는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의 첫 협력작으로, 이후 두 사람의 공동작업은 전 유럽에 러시아 발레와 음악 붐을 일으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부다페스트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의 젊은 벨라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왼쪽)와 최근 작고한 첼리스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영국 BBC교향악단을 지휘하는 말년의 스트라빈스키. 그는 작곡가로 서뿐만 아니라 리듬을 자유자재로 살리는 리드미컬한 지휘자로서도 유명했다.

유년기와 청년기의 바르토크.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 처음으로 음악에 눈뜬 그는 오스트리아의 명문 빈 음악원의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결국 유럽 음악의 중심지인 빈으로 가지 않고 자국의 부다페스트 음악원을 선택한다.

베니 굿맨, 요제프 시게티와 함께 <컨트라스트>를 녹음하는 벨라 바르토크. 1943년 백혈병 진단을 받은 그를 위해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예후디 메뉴인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새로운 작품들을 의뢰했다.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등 걸작을 쏟아냈다.

러시아 음악비평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의 초상화(일리야 레핀 그림). 스타소프는 러시아 5인조 음악가들을 '막강한 소수'라 불렀으며 그들을 이론적으로 대변했다.

'최후의 낭만주의자' 라흐마니노프(보리스 샬리아핀이 그린 초상화). 190센티미터의 거구에 걸맞게 연주 스케일이 유달리 컸던 그는 모든 피아노 기법을 구사하는 천재였으며, 작곡한 피아노곡 역시 스케일이 크고 음역이 넓은 고도의 기교가 필요한 곡들이었다.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이 그린 <춤추는 남녀>. 이들은 우크라이나 민속무용인 고파크를 추고 있는데, 러시아 문호 고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 <소로친스카야 시장> 등도 이 고파크 무용곡의 특색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러시아가 낳은 불세출의 명가수 표도르 샬리아핀.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친구였으며, 무소르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 러시아 음악의 매력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러시아 음악의 전도사였다.

글라주노프의 성의 없는 지휘로 첫 공연이 실패로 돌아가 의기소침해 하던 시절의 라흐마니노프. 그는 이 시절 작곡을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했으나 최면요법으로 이를 극복하고 4년 뒤 재기하여 격찬을 받았다.

세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집필할 당시의 라흐마니노프.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던 만년의 무소르그스키 초상. 그는 과음한 끝에 42세 생일 직후 숨을 거두었다.

근위대의 사관학교에 입학한 13세의 무소르그스키. 귀족 자제가 군대에 복무하는 것은 당시 러시아에서는 당연한 코스였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근위대에 입대한 17세의 무소르그스키는 이곳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보로딘과 발라키레프를 만나 그들과 자연스럽게 러시아 5인조를 형성하게 된다.

아들 라흐마니노프에게 일찍부터 피아노와 음악을 가르친 어머니 류보피 부타코바(위)와 가산을 탕진하고 파산한 부친 바실리 라흐마니노프(아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유년기의 라흐마니노프. 그는 엄격한 레슨으로 유명한 피아노 교수 니콜라이 즈베레프에게 피아노를 사사했는데, 즈베레프와 그의 문하생들은 안톤 루빈슈타인이나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거장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특권을 누렸다.

 

 

posted by 황영찬
2016. 10. 31. 14:56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2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여행

 

금난새 지음

2003, 생각의 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7721

 

670.15

금19219클

 

"클래식음악이 대체 뭐길래 공부까지 해야 한다는 거야? 귀찮게시리."

지오디(god) 노래는 아무 준비 없이도 신나게 들으며 즐길 수 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클래식은 룰을 알고 즐기는 야구 게임과 같다"라고.

룰을 모르고 보면 아무 흥미도 가질 수 없는 게임에 불과하지만 몇 가지 룰을 익히면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야구게임 말입니다.

클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 없이 들으면 어렵고 막막한 것에 불과하지만

조금만 공부를 하고 들으면 음악이 주는 환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답니다.

지오디(god)의 노래가 특별한 룰을 알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공놀이라면,

클래식은 룰을 알아야 즐길 수 있는 야구경기인 셈입니다.

 

금난새

 

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경희대 교수

행복을 선사하는 무대 위의 나는 새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 음대에서 리벤슈타인에게 사사하였다. 1977년 최고 명성의 카라얀 콩쿠르에 입상하였고, KBS 교향악단과 수원시향의 지휘를 맡아 활약했다.

연주회 때마다 선보인 '파격'과 '독특한 시도'는 클래식 음악회는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는 지휘자 금난새를 스타덤에 올린 대표적인 간판 프로그램으로 6년간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휘자 겸 음악감독이자 '기업형 오케스트라'의 CEO로 각종 기업체 공연과 '도서관 음악회', '베토벤 페스티발', '포스코 로비 콘서트' 등 탁월한 기획력과 철저한 고객지향 서비스로 민간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새로움에 대한 부담보다 '도전' 그 자체를 즐기는 지휘자 금난새는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정다운 메신저로서 새로운 무대 창출로 클래식 대중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1947년   부산 출생

1970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1974년   베를린 음대 유학

1977년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 입상

1980년   KBS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1989년   KBS교향악단과 국내 최초 오케스트라 녹음 출반

             (생상 '동물의 사육제', 프로코피에프 '피터와 늑대')

19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1994년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 기획 · 진행

19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2002년   CJ그룹과 오케스트라 후원 계약 체결,

             한국기업메세나 협의회 홍보대사

 

차례

 

머리말

 

1  클래식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질문

 

클래식 음악이란? | 클래식 음악은 서양음악을 뜻한가? | 클래식은 어렵다? | 클래식만이 고급음악이다? | 클래식을 권하는 이유

 

2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

      바흐헨델

 

요한 제바스티한 바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음악명문 출신 바흐, 의사의 아들 헨델 | 교회음악가 바흐 | 사업가 헨델 | 코스모폴리탄 헨델 | 진지한 바흐, 대중적인 헨델 | 스무 명의 자녀를 둔 바흐, 평생 독신으로 지낸 헨델 | 닮은꼴 죽음 | 고전음악의 모태, 바로크 | 탐험시대가 낳은 아이, 바로크 | 바로크 음악의 특징

| 쉽게 풀어쓴 음악상식 |   | 금난새의 추천음악 |

 

3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 대장간 집 아들 하이든 | 아이 같은 모차르트, 아버지 같은 하이든 | 마지막 궁정 음악가 | 교향곡의 아버지 | 자유를 갈망한 모차르트 | 모차르트의 오페라 | 너무 일찍 떠난 천재 | 하이든의 나라사랑 |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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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뇌하는 예술가 베토벤

      음악의 미식가 로시니

 

루트비히 판 베토벤, 조아키노 로시니 | 가혹한 어린시절 | 짧은 학력, 넘치는 학구열 | 계몽사상 | 프랑스 대혁명 | 빈으로 간 베토벤 | 당당한 음악가 베토벤 | 시련에 맞선 투쟁 |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말년 | 이탈리아 천재소년 로시니 | 청중의 인기를 한 몸에 | 작품과 작곡가 그리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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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난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

      귀공자 멘델스존

 

프란츠 페테르 슈베르트,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 뛰어난 재능을 보인 소년 슈베르트 | 축복 받은 탄생, 멘델스존 | 가난한 방랑자의 길을 택하다 |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잇는 다리 | 천진난만한 예술가 | 바흐를 부활시키다 | 가곡의 왕 슈베르트 | 지휘자 멘델스존 | 생의 끄트머리에서 남긴 걸작, <겨울 나그네> | 낭만파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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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피아노의 시인 쇼팽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인기스타 리스트

 

피아노를 사랑한 쇼팽과 리스트 | 수줍은 음악 천재 | 영원한 조국사랑 | 파리를 떠들썩하게 한 천재음악가 | 피아노의 시인 |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 | 헝가리의 천재소년 | 오빠부대를 이끈 인기 스타 | 교향시와 피아노곡 | 성직자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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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전적 낭만주의자 브람스

      종합예술가 바그너

 

브람스파 vs 바그너파 | 가난한 천재, 브람스 | 일생을 바꾼 두 번의 기회 | 스승의 아내를 향한 일편단심 | 고전적 낭만주의 | 바그너와의 대립 - 표제음악과 절대음악 | 클라라를 뒤따른 죽음 | 바그너, 불우한 어린시절 | 오페라 카펠마이스터 | 혁명 그리고 도피 생활 | 종합예술론 | 바그너의 여인들 | 편안한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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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러시아 음악의 선구자

      차이코프스키림스키-코르사코프

 

러시아 음악의 발전 |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감추고 |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음악가의 길로 | 내성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차이코프스키의 사랑 | 후원자 메크 부인 | 러시아 음악을 세계로 |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교향곡 <비창> | 음악을 사랑한 해군장교 | 전문적인 음악가로 | 그림 같은 음악, 토속적인 음악 | 국민주의 음악과 5인조 | 황제에게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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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프랑스의 자존심을 되살린

      드뷔시라벨

 

프랑스 음악의 자존심을 회복하다 | 형식을 거부한 반항아, 드뷔시 |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 | 인상주의와의 만남 | 다양한 음악에 대한 관심 | 전통을 계승하여 현대를 이끌어낸 라벨 | 신고전주의 | 관현악의 마술사 | 다양성과 조화의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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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와 음악사 연대표

CD 수록곡 해설

바이올린과 기타, 곤잘레스, 1913

음악은 미술뿐 아니라 다른 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는 클래식 음악도 음악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속한 하나의 분야이지, 별개의 것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성녀 세실리아

음악의 수호성인인 세실리아에 관한 그림은 많이 그려졌다. 왼쪽은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미힐 반 코크셰의 작품이며, 오른쪽은 20세기 화가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이다. 시대에 따라 그녀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연주하는 악기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클래식 음악이 어렵다는 편견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일지 모른다.

음악 파티, 필림 메르시

대개 클래식을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클래식도 당대에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하나의 문화였다. 우리도 약간의 준비만 갖춘다면 누구라도 클래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캐나다 전자음악 앙상블

기계적 장치에 의한 음악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클래식은 어렵고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클래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취향과 다른 것이지 음악 그 자체가 고급스럽다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악기 모양 과자들

18세기 후반 이후 사용된 과자 제조용 틀이다. 여러 가지 악기모양을 볼 수 잇다. 이런 틀을 보면 당시 클래식이 일상생활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 무덤에 그려진 벽화, 기원전 1400년경

활 모양의 큰 하프를 연주하는 음악가와 목이 긴 류트를 부는 동료가 그려져 잇다. 이처럼 오래된 음악의 역사 속에는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17세기에서 19세기 정도까지의 음악도 들어 있다. 클래식 음악도 피라미드, 스핑크스와 같이 오래도록 아끼고 소중히 해야 할 무형(無形)의 문화유산이다.

중국 당나라 때의 피리 부는 부인들

서양의 것이라고 클래식 음악을 폄하하거나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이다. 서양 고전인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우리의 국악이나 다른 여러 나라의 고전 음악은 지금의 음악이 있게 한 근원이며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멜포메네와 에라토, 풀림니아, 르 쉬외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뮤즈 중 멜포메네, 에라토, 풀림니아를 그린 그림. 멜포메네는 비극을 주관하며 에라토는 서정시 또는 노래를 주관한다. 풀림니아는 찬가와 무악을 담당한다.

바흐의 초상화, E. G. 하우스만, 1746년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이 <3성의 카논> 악보이다.

오르간용 코랄 <샛별은 아름답게 빛나고> BWV 739

바흐의 자필 악보 중 현존하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가 아른슈타트의 오르간 주자로 있던 1705년경에 씌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중년의 헨델, 필립 메르시에, 1720

헨델은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배워 오페라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메시아> 등이 있다.

<수상음악>의 초판 표지

<수상음악>은 20개의 관현악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이다. 전체적으로 명랑하며 화려한 느낌을 준다.

바흐의 초상화, 1715년

바이마르에서 궁정악단의 악사장으로 승진한 바흐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드레스덴 풍경, 베르나르도 벨롯토, 1748년

독일의 남동부 작센주에 위치한 드레스덴은 바흐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바흐는 드레스덴의 카톨릭 교회를 위해 <마태 수난곡>을 작곡하였고, 칸타타를 다수 작곡하였다. 1736년에는 드레스덴에서 궁정 작곡가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바흐의 막내 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바흐의 아들들 대부분이 음악가가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막내 아들은 '런던의 바흐'라고 불릴 만큼 이름을 떨쳤다.

템즈강의 불꽃놀이

국왕이 참석한 가운데 1749년 5월 15일에 화이트홀 부근 템즈 강 위에서 행해진 불꽃놀이를 그린 그림. 이를 위해 헨델은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을 작곡했다. 이 곡은 <수상음악>과 함께 헨델의 곡중 가장 유명한 관현악 작품으로 손꼽힌다.

17세기 악기를 그린 정물화

종교 음악 중심이었던 음악이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변화되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등장으로 세속 음악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이러한 음악들이 바로크 시대를 이끌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악기도 다양해졌는데 첼로, 바이올린, 만돌린 등이 그림에 보인다.

모차르트의 미완성 초상화, 요제프 랑게, 1782년경

모차르트와 의형제를 맺은 요제프 랑게가 그리다 만 미완성 초상화로 1782년부터 1783년 사이의 겨울에 그려졌다. 모차르트는 뛰어난 재능으로 인류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하이든의 초상, 루트비히 구텐브룬, 1770년경

같은 시대 활동했던 모차르트와 달리 하이든은 '파파 하이든'이라고 불릴만큼 점잖고 모범적인 성품으로 존경을 받았다.

1766년 여름 파리의 콩티 공(公) 살롱에서

모차르트가 반주를 하기 전 조율을 하고 있다(화면 왼쪽).

모차르트 일가, J. N. 델라 크로체, 1780년경

벽에 걸린 초상화는 1778년 7월 3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모친이다.

모차르트의 두 아들 칼과 볼프강

모차르트 사후 각각 13세, 6세 때의 모습.

콘스탄체 모차르트, 요셉 랑게, 1782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를 그린 초상화. 그녀의 형부인 요제프 랑게가 그렸다.

궁정 의상을 입고 있는 모차르트(위)와 난넬

이 의상은 1762년 가을에 여제가 하사한 옷이다. 난넬은 모차르트의 누이이다. 그녀 역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다.

하이든 초상화, 크리스찬 루트비히 제하스, 1785년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릴만큼 많은 교향곡을 작곡한 하이든. 그는 고전주의의 이상인 '균형과 조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 형식이 교향곡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교향곡을 좋아했다.

작은 새를 쥐고 있는 소년 모차르트, 조포니, 1764년

음악적으로 재능이 뛰어난 모차르트였지만 철없는 어린애 같은 행동과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시기로 유달리 적이 많았다고 한다.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 후작(Paul Anton Esterhazy, 1711~62)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형으로 하이든을 부악장으로 고용하는 계약을 맺고 궁정의 음악적인 기초를 닦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하이든의 하프시코드

하이든이 런던에 머물 당시 사용하던 것이다. 이무렵 하이든은 때때로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천지창조>의 2개국 공용 악보

1800년 하이든 자신이 출판한 것이다. 헨델의 <메시아>와 함께 최고의 오라토리오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헨델의 <메시아>를 듣고 감동 받아 작곡하게 되었다. 전체 31부 32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친숙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는 그의 종교적 믿음과 낙천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우구스트 폰 클뢰버가 1817년 메들링에서 그린 초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베토벤 석판화

처음으로 빈을 찾은 베토벤은 먼저 피아노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치고자 결심했다. 그 노력은 열매를 맺어 베토벤은 전통 깊은 빈 음악계에서 피아노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13세의 베토벤

어린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한 아버지 때문에 베토벤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베토벤을 그린 세밀화, 크리스티안 호르네만, 1803

빈의 귀족 살롱에서 세련되고 우아한 연주가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의 베토벤의 모습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루아, 1830년경

18세기 말, 귀족 계급의 황포로 평민들은 기아에 허덕였고 귀족들도 세금을 내야한다는 평민들의 주장에 군대는 총칼을 들이댔다. 평민들의 분노는 폭발하였고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혁명 정신은 개인의 권리와 감성을 존중하고 평등에 입각한 사상으로 많은 예술에 영향을 미쳤으며 음악에서는 낭만주의가 도래하게 되었다.

<열정 소나타> 자필 악보 첫 장

1805년경 베토벤은 리히노프스키 후작을 위해 이 작품을 썼다. 그러나 후작이 무리한 요구를 하자 뛰쳐나와 이 악보를 들고 비오는 밤길을 걸어 트로파우로 갔다. 악보 위의 얼룩은 그때의 빗방울 자국이다. <열정>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운명>이 초연된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

<운명>은 엄격하고 절제된 짜임새로 고전파의 맥을 잇는 동시에 작곡가의 내면 감정을 잘 표현하여 낭만파 음악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베토벤의 장례행렬, 1827

장례식에는 2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체르니, 슈베르트 등은 관 뒤에서 횃불을 들고 뒤따랐다.

젊었을 때의 로시니, 빈첸조 카무치니, 1816년경

로시니는 18세 때부터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오페라는 듣기 좋고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젊은 날의 슈베르트, 작자 미상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 그가 남긴 아름다운 음악들은 우리 곁에 남아서 오랫동안 그를 기억하게 한다.

멘델스존의 초상화, 제임스 워튼 차일드, 1829년

멘델스존이 처음으로 런던을 방문했을 때 그려진 그림. 멘델스존은 유복한 집안에 교양 있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상류 사교계에서 인정을 받아, 곧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12세 때의 멘델스존, 칼 베가스, 1821

멘델스존은 슈베르트와 달리 경제적으로 부유한 아버지와 음악적 재능이 풍부한 어머니를 둔 행운아였다. 그는 괴테와 절친한 음악가였던 첼티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

그린 더럼 대성당, 멘델스존, 1829년

멘델스존은 평생동안 조그만 화첩을 가지고 다녔는데 거기에는 그가 보고 들은 풍경을 그린 여러 가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마왕>, 모리츠 폰 슈빈트, 1828년

괴테의 시 「마왕」은 여러 예술가들에게 작품의 소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슈베르트 역시 1시간만에 신들린듯이 <마왕>을 작곡했다고 한다.

멘델스존의 초상화, 작가 미상, 1835년

이 해에 그는 당시 독일의 가장 중요한 음악 중심이었던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지휘자에 취임했다.

피아노 치는 슈베르트, 그 뒤에서 노래하는 미하엘 포글, F. G. 발트 뮐러, 1827년

슈베르트의 많은 가곡들이 이런 형식으로 발표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슈베르트의 초상화, W. A. 리더, 1825년

슈베르트는 명예나 돈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생전에는 그 예술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실을 잣는 그레트헨>의 자필 악보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 1816년 이 작품의 사본을 만들어 괴테에게 보냈으나 괴테로부터 답은 없었다. 슈베르트는 괴테의 수 많은 시에 곡을 붙였으나 생전에 괴테와 만나지는 못했다.

슈베르트의 초상화, 요제프 밀러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라고 불릴정도로 많은 가곡을 남겼고 그가 만든 가곡의 가사와 곡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침대 위의 영면한 멘델스존, 에두아르트 벤데만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누이 파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멘델스존은 누이가 죽은 후 약 6개월 뒤에 별세했다.

쇼팽 초상화, 아리 셰퍼, 1847년

쇼팽은 마치 시인이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쓰듯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섬세한 방법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자 애썼다.

리스트의 초상화, 빌헬름 폰 카울바하

리스트는 거의 19세기 전체에 걸쳐서 살았고, 베토벤과 살리에리, 체르니, 그리고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많은 음악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파리 몽소 공원에 있는 쇼팽과 상드의 상, 자크 프로망 무리스 제작

쇼팽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상드가 그 음색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쇼팽은 낭만파에 속했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음악 자체로의 아름다움을 중요시 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매우 서정적이다.

임종의 자리에 누운 쇼팽, 크비아트코프스키

상등의 죽음 이후 건강이 나빠진 쇼팽은 1849년 10월 17일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프란츠 리스트, 1824년의 석판화

빈을 찾아간 신동 리스트는 베토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여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남긴 피아노 음악의 유산을 이어받아 그 시대를 이끌며 낭만파로 넘어가는 다리 구실을 했으며, 피아노 음악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1836년의 리스트

20대 중반의 리스트이다. 리스트는 잘생긴 외모에 신들린 듯한 피아노 연주 솜씨로 많은 여성팬들의 인기를 얻었다.

헝가리 민족의상을 입은 리스트, 1839

이탈리아 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파가니니는 리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기교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리스트는 스스로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의 모습을 그린 수많은 스케치와 만화 가운데 하나

리스트는 바흐의 음악이나 오페라, 교향곡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피아노 한 대로 표현해 보였고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부르크 극장의 객석 풍경, 구스타프 클림트, 1888년

부르크 극장이 폐쇄되기 직전에 그린 구(舊) 브루크 극장의 내부 전경이다. 부르크 극장은 1741년 궁정 무대로 설계된 것으로 부르크 왕궁 옆에 위치하고 있어 부르크 극장이라고 불린다. 표준 독일어 발음 공연으로 유명하며 독일어권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극장으로 유명하다.

20세의 브람스

슈만의 부탁으로 프랑스의 음악가이자 화가인 J. J. B. 로렌스에 의해 그려진 연필화. 1853년 뒤셀도르프에서 슈만과 브람스는 처음 만난다. 이후 슈만은 브람스의 음악적 선배이자 재정지원가가 되어 브람스를 후원한다.

58세의 요하네스 브람스, 루트비히 미할레크

브람스는 낭만주의의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전주의의 맥을 이은 고독한 음악가였다.

바그너 초상, 렌 바하, 1873

바그너는 대담한 화성과 강렬한 감정 표현, 그림을 보는 듯한 회화적인 묘사를 중시하는 표제음악을 추구하면서 급진적 낭만주의 음악을 이끌었다.

반프리트에서 공상에 젖어 있는 바그너, 렌바하

바그너는 <지그프리트>, <라인의 황금>, <로엔그린>, <탄호이저> 등 여러 곡의 오페라를 남겼으며 이런 오페라들은 중세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그너와 코지마, 1872

바그너와 코지마가 빈에 머물 당시 그려진 그림이다. 코지마는 아버지 리스트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그너와 결혼했다.

바이로트축제극장

1875년 독일 바이로트시에 독일 오페라 작품 상연을 위해 건립되었다. 바그너가 구상하고 루트비히 2세의 후원을 받아 건립되었으며 완공된 이듬해에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가 초연되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사망한 해에 니콜라이 쿠즈네초프가 그린 작품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때로 서유럽 중심의 고전 음악 창작을 뛰어넘어 러시아 특유의 정서와 감성을 담고 있다.

차이코프스키 가족, 1848

차이코프스키가 여덟 살 때 찍은 사진으로 왼쪽 끝의 아이가 차이코프스키이다.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원과 차이코프스키 동상

깊은 애수와 어두운 분위기가 풍기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예민하고 심리적 · 내적 갈등이 많은 그의 성격과 연관이 있다.

메크 부인

메크 부인은 평생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로 그가 생계 걱정 없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차이코프스키 최후의 사진 중 하나

차이코프스키는 발레음악을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백조의 호수>는 장대한 짜임새와 아름다운 선율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초상화, 발렌틴 세로프

그의 작품은 "색채적이고 명쾌하여 이해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관현악기의 특징을 잘 살렸기 때문이다.

1885년의 림스키-코르사코프

이 해 그는 해군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이후 모든 시간을 음악에 바쳤다.

림스키-코르사코프 부인의 초상, 프란츠자베르 빈터할터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전문적인 음악 애호가였던 그녀에게서 많은 음악적 지원을 받았다.

수중왕국의 사드코, 일리야 레핀, 1876

<사드코>는 11세기 노브고로트의 전설을 바탕으로 주인공 사드코가 원양항해에서 겪게되는 여러가지 모험담을 그린 것이다. <금계와>와 함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금계>의 의상 디자인, 빌리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마지막 오페라인 <금계>의 의상으로 위는 세마한의 여왕의 의상이고, 아래는 도도왕의 의상 디자인이다. <금계>이야기는 푸시킨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바탕을 두었다. 내용이 당시 제정 러시아를 비판한 것이라 하여 상연이 금지되었다.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 5인조 중의 보르딘과 무소르그스키

국민주의 음악은 자기 민족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 오는 민요나 춤곡, 옛 이야기를 주제로 음악을 만들었다.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 5인조는 러시아의 음악적 특징을 유럽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야만의 음악, 폴 고갱, 1892

19세기 말은 민족 음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아울러 일부 작가들에 의해 이국적 음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었다. 특히 드뷔시, 라벨 등은 자바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가믈란의 이국적 음향이나 동인도의 '관현악' 합주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드뷔시의 초상화, 마르셀 바셰, 1884

프랑스가 낳은 20세기의 세계적인 음악가인 그는 인상파 음악의 창시자이다. 그는 형식적인 화상법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개척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펠리아드와 멜리장드> 등이 있다.

보디첼리의 <봄>

드뷔시는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봄>이라는 곡을 만들었다. 인간과 자연이 서서히 피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개화하는 폭발적인 기쁨을 묘사한 이 작품은 당시의 다른 음악들에 비해 새롭고 독특하였다.

눈덮인 루앙 성당, 클로드 모네, 1894

틀에 박힌 음악보다는 자유롭고 참신한 것을 좋아했던 드뷔시는 미술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인상주의와 문학의 새로운 사조인 상징주의에 빠져들었고 그 자신이 최초의 인상주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공연을 위한 박스트의 무대 디자인

드뷔시가 작곡한 이 작품은 최초의 인상주의 음악이라고 불린다. 시인 말라르메의 시에 드뷔시가 곡을 붙인 것이다. 이 곡은 기존의 낭만주의 음악과 전혀 다른 독창적인 음악이었다. 내용면에서는 줄거리 전달이 아니라 느낌이나 분위기 전달을 위주로 하였으며 형식에 있어서도 선율, 화성, 음색, 리듬 등 형식상의 원칙을 과감히 탈피하였다.

드뷔시의 초상화, 자크 에밀 블랑슈, 1902년경

드뷔시는 색다른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동양 음악에 매료되었으며 이국적인 음악을 많이 작곡하였다.

파자마를 입은 라벨의 초상, 이실 우브레, 1909년

드뷔시보다 13세 연하인 라벨은 스페인 바스크 출신인 어머니로부터 정서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런 이유로 스페인의 춤곡인 볼레로에 영감을 얻어 나중에 발레음악 <볼레로>를 작곡하게 된다. 그 역시 드뷔시와 같이 인상주의 음악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1941년 12월 초연된 <볼레로>의 의상 디자인

<볼레로>는 당시 최고의 발레리나였던 이다 루빈스타인 부인의 의뢰로 1928년에 작곡되었다. 스페인의 춤곡 '볼레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는데 15분에 걸쳐 같은 멜로디가 무려 169회나 반복되는 음악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곡이다.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라벨의 음악은 유희적인 놀이와 고풍스러운 멋, 감각적인 것가 기계적인 것이 잘 조화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라벨의 임종

1937년 12월 28일 알베르 모로가 그린 것. 라벨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수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사망하였다.

라벨의 오페라 <아이와 마법>의 초판본을 위한 앙드레 엘레의 표지 디자인.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작곡되었다. 상당한 규모의 관현악을 수반하고 있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선율이나 음색을 제거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이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6. 10. 31. 14:42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1 그림에 차려진 식탁들

 

이여신 지음

2016, 예문당

 

대야도서관

SB108232

 

650.4

이64ㄱ

 

역사 속의 명화에 담겨진 톡톡 튀는 음식 문화 이야기

 

브레첼에서 숯불고기까지

화려한 음식들의 향연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선생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의, 식, 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우리는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지.

"맞아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그저 단순한 '먹을거리'로만 생각하기는 어려워.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결국 인류는 배불리 먹기 위해 행동을 한 경우가 많이 있거든. 음식은 인류가 탄생한 순간부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단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살던 원시 인류는 먹을 것을 찾아 다른 대륙으로 이동했고, 그러면서 세계 곳곳에 문명을 탄생시켰지. 그뿐이 아니야. 음식은 정치, 경제, 사회의 많은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어.

"우와! 음식이 역사에 미친 영향력이 엄청나네요."

그래,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단다.

- 본문 중에서 -

 

지은이 이여신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졸업. 역사콘텐츠연구회 '어제그리고오늘'을 통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저서로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 『미래를 열어주는 세계 역사박물관』, 『특목고 엄마들』, 『어린이를 위한 고대문명사』, 『위인들의 재능이야기』 시리즈, 『천하무적 속담왕』 등이 있고, EBS 초등영어교재 『요요플레이타임』, 『똑똑 영어놀이터』를 기획한 바 있다.

 

차례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1ST DAY 식사준비를 해볼까?

 

빵 굽는 사람들  갓 구운 빵이 나왔습니다!

빵 굽는 사람(욥 베르크헤이데), 빵장수 부부(얀 스테인)

 

폴렌타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는 나라

폴렌타(피에트로 롱기)

 

쌀밥  한국인의 영원한 밥

벼타작(김홍도)

 

파스타  누가 이탈리아에 파스타를 전했을까?

국수 만들기(중세의 건강서적 Tacuinum Sanitatis)

 

시장 구경  왁자지껄한 중세 유럽의 시장

시장풍경(피테르 아르트센), 시장 물건을 파는 농부들(피테르 아르트센)

 

저잣거리  조선 시대 저잣거리의 풍경

저잣길(신윤복)

 

봄나물 캐는 여인  오늘은 무슨 나물을 캘꼬

나물캐기(윤두서)

 

분주한 부엌  다듬고, 만들고, 차리고

부엌의 모습(빈센초 캄피), 밥상 준비(김준근)

 

수수께끼 레시피  전문 요리사와 요리책의 등장

기적의 양념(제안 조르주 비베르)

 

푸줏간 풍경  아무나 먹을 수 없었던 귀한 고기

푸줏간(안니발레 카라치), 푸줏간의 진열대(피테르 아르트센)

 

인스턴트  현대인의 식탁을 점령한 즉석요리

캠벨수프(앤디 워홀)

 

2ND DAY 차려진 식탁 엿보기

 

고구려의 밥상  고구려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무용총 접객도, 안악 3호분-부엌

 

그리스와 로마의 만찬  향락과 식사 사이

파에스툼 유적의 프레스코화

 

영주의 식사  중세 귀족의 식단

베리 공작의 화려한 기도서(랭부르 형제)

 

무도회의 만찬  바이킹의 식사법, 뷔페

무도회의 만찬(아돌프 폰 멘첼)

 

소박한 식탁  감자와 콩을 먹는 사람들

감자를 먹는 사람들(빈센트 반 고흐), 콩 먹는 사람(안니발레 카라치)

 

추수감사절  아메리카 인디언과 '터키 데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장 레온 제롬 페리스)

 

농가의 결혼식  중세 시골 마을의 흥겨운 결혼식

농가의 결혼식(피테르 브뢰겔)

 

성 니콜라스 축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사람들

성 니콜라스 축제(얀 스테인)

 

새색시의 큰상  '큰상'을 받은 새색시의 마음가짐

신부연석(김준근)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회갑연을 차린 정조의 효성

봉수당진찬도(김득신 외)

 

개화기의 만찬  식탁 위에 올라온 낯선 서양음식

조일통상장정기념 연회도(안중식)

 

돌잔치  돌 맞은 아이는 무엇을 쥐었을까?

돌잔치(김홍도)

 

3RD DAY 디저트를 먹어볼까?

 

디저트  '식탁을 치우다'는 뜻에서 비롯된 말

빵과 과자가 있는 정물(게오르크 플레겔)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최초의 과자

씨름(김홍도), 엿 만들기(김준근)

 

치즈의 유혹  하늘이 내린 맛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빈센초 캄피)

 

청어와 맥주  기름진 청어와 시원한 맥주 한 잔

청어와 맥주가 있는 정물(피테르 클레즈)

 

커피 한 잔  '이슬람의 와인', 커피

커피를 즐기는 투르크 여인, 커피 한 잔(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

 

초콜릿 소녀  올멕 문명에서 밀크 초콜릿까지

초콜릿 소녀(장 에티엔 리오타르), 초콜릿을 마시는 여인(장 에티엔 리오타르)

 

우유  태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

우유를 따르는 여인(요하네스 베르메르), 채유(조영석)

 

4TH DAY 밖에서 즐기는 식사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화려한 파리의 술집에 가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두아르 마네)

 

파리의 레스토랑  '그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

파리 레스토랑의 실내(빈센트 반 고흐)

 

카페의 화가들  커피, 문학과 예술, 만남이 있는 곳

그레코 카페의 화가들(루트비히 요한 파시니)

 

풀밭 위의 휴식  야외에서 즐기는 티타임

휴일(제임스 티소)

 

새참 먹는 사람들  잠깐 일손을 멈추고 새참을 먹자

새참(조영석), 들밥(김홍도)

 

주막집  주막에서 술잔을 들고

주막(김홍도), 주사거배(신윤복)

 

어부들의 식사  생선찜과 한 잔 술에 피로를 풀다

강변회음(김득신)

 

난로회  야외에서 먹는 숯불고기의 맛이란!

야연(성협)

 

참고문헌

 

<빵 굽는 사람> 욥 베르크헤이데, 1681년, 메사추세츠 우스터 미술관 소장

 

<빵장수 부부> 얀 스테인, 1658년

 

브레첼은 빵을 만들고 남은 반죽을 얇고 길게 밀어서

꼬불꼬불한 하트 모양으로 만든 뒤 굵은 소금을 살짝 뿌려서 구워낸단다.

바삭바삭하면서도 짭짤하며, 씹을 때 쫄깃쫄깃한 맛이 나서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지.

 

<폴렌타> 피에트로 롱기, 1740년경, 카 레초나코 미술관 소장

 

폴렌타는 끓는 물에 옥수수가루 등의 곡물가루를 넣고 끓인 '죽' 형태의 이탈리아 요리란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많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지.

 

<벼타작> 김홍도, 무기년(1775~1780년) 추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농사가 '천하지대본(모든 일의 근본)'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쌀이 재산의 가치로 매겨질 만큼 소중한 존재였단다.

오늘날처럼 쌀이 외면당해 남아도는 현실을 옛 사람들이 보면 어떤 심정일까 궁금해져.

 

<국수 만들기> 작자 미상, 연대 미상, 중세의 건강서적 『Tacuinum Sanitatis』 수록

 

스파케티는 이탈리아 국수인 파스타의 한 종류야.

파스타는 라자니아, 라비올리 같은 밀가루로 만든 이탈리아 국수를 아우르는 명칭이지.

마카로니 같이 길이가 짧고 안에 구멍이 뚫린 면도 파스타의 일종이란다.

 

<시장풍경> 피테르 아르트센, 1550년,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 소장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던 광장인 아고라나 포룸이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했지. 당시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적인 기능만 했던 곳이 아니야. 항시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역할도 했지.

 

<시장 물건을 파는 농부들> 피테르 아르트센, 빌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소장

 

<저잣길> 신윤복, 18세기 말 추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생선이 담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채소가 들어 있는 망태기를 옆구리에 낀 채

이야기하는 젊은 여성과 그여성을 마주보며 대화하는 나이 든 여인이 등장하고 있어.

젊은 여성이 생선과 채소를 사왔는지 팔러 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제목이 <저잣길>인 걸로 봐선 팔러 가는 확률이 높아 보이는구나.

 

<나물캐기> 윤두서, 18세기 초 추정, 개인 소장

 

조선 시대에 나물을 캔다는 것은 반찬을 만든다는 의미도 있지만, 집에 곡식이

바닥나서 굶주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해. 백성의 대부분은 농민이었지만

그들은 양반이나 큰 지주들의 땅을 빌려 경작했던 소작농이었거든.

 

<부엌의 모습> 빈센초 캄피, 1585년경,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소장

 

[백은영]기산07-밥

<밥상 준비> 김준근, 19세기 무렵,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사경(새벽 1시부터 3시 사이)에 일어나 머리 빗고,

오경(오전 3시부터 5시 사이)에 시어른께 문안드리네.

이담에 신랑하고 친정에 가면,

밥도 굶고 한낮까지 실컷 자리라.

- 이 옥(조선 후기)

 

<기적의 양념> 제안 조르주 비베르, 1890년경, 올브라이트 녹스 미술관 소장

 

르네상스 이전 중세 유럽에서 양념은 신분의 상징이었지.

동양이 원산지인 후추, 육두구, 생강, 샤프란, 계피, 백리향, 바닐라 등의 향신료는

매우 비싸고 귀했기 때문에 특권계층에서만 구할 수 있었거든.

 

<푸줏간> 안니발레 카라치, 1580년경, 크라이스트처치 미술관 소장

 

<푸줏간의 진열대> 피테르 아르트센, 1551년, 웁살라대학 미술관 소장

 

소시지는 다진 고기에 소금과 허브, 돼지기름을

첨가하고 동물의 찬자(주로 돼지 창자)에 싸서

하루 동안 쟁여두었다가 끓는 물에 삶아 먹는 음식이야.

우리나라의 순대는 돼지기름 대신 피를 넣는 게 다르지.

 

<캠벨수프> 앤디 워홀, 1962년,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그는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 혁명을 일으켰어.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통하지.

 

<무용총 접객도> 작자 미상, 5세기 경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3호분-부엌> 작자 미상, 357년 추정, 고분벽화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한국의 대표음식인 불고기, 너비아니, 김치, 된장 등이

바로 고구려 음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야.

 

<파에스툼 유적의 프레스코화> 작자 미상, 기원전 475년경, 이탈리아 파에스툼 박물관 소장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했던 아테네의 귀족들은 갈수록 특이한 음식을 찾았어.

과식으로 죽은 돼지를 진미로 간주했고 젖은 곡식을 먹여서 살찌운 거위고기 따위를 즐겼지.

 

<베리 공작의 화려한 기도서> 랭부르 형제, 1414년경, 샹티이 콩데 미술관 소장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서양 요리는 대부분이 코스 요리지.

하지만 수프에서 시작해 샐러드, 생선, 육류, 디저트, 과일과 치즈, 커피 등으로 이어지는

요즘의 코스 요리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단다.

 

<무도회의 만찬> 아돌프 폰 멘첼, 1878년, 베를린 내셔널 갤러리 소장

 

이 바이킹식 뷔페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8세기 프랑스 황실에서부터야.

연회를 자주 베풀었던 프랑스 궁정에서 뷔페식 상차림은 아주 적합했지.

 

<감자를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1885년, 반 고흐 미술관 소장

 

<콩 먹는 사람> 안니발레 카라치, 1580년경, 코로냐 갤러리아 소장

 

<첫 번째 추수감사절> 장 레온 제롬 페리스, 1912~1915년, 미국 의회 도서관 소장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함께 인디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시작되었어.

그 후 추수감사절 행사는 미국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단다.

<농가의 결혼식> 피테르 브뢰겔, 1568년,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뒤쪽으로 녹색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 여인이 바로 신부야.

마주잡은 손이 긴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지. 당시의 풍습에는 저녁까지

신랑이 신부 앞에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에 신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성 니콜라스 축제> 얀 스테인, 1660~1665년경, 암스테르담 라익스 미술관 소장

 

<신부연석> 김준근, 19세기 말경, 『기산풍속화첩』 수록, 개인 소장

 

큰상은 먹지 않는 게 관례였어. 그래서 큰상을 '눈요기상'이라고 했지.

눈요기로 보기만 하는 상이라는 뜻이야. 큰상은 물리고 나면 신부를 따라온 하인들이 먹었어.

큰상 외에도 '입매상'이라 하여 작은 상에 국수장국, 떡 등과 함께 술을 내어놓았지.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 신 사임당

 

<봉수당진찬도> 김득신 외, 19세기경,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한국요리는 조선 시대에 와서 가장 발전을 이루었는데

특히 궁중 음식은 한국요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어.

전국에서 올라오는 진귀한 재료와 고도의 조리기술을 가진

주방 상궁과 숙수들에 의해서 다양한 종류의 맛깔 나는 음식이 만들어졌지.

 

<조일통상장정기념 연회도> 안중식, 1883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재미있는 것은 서양식 상차림에 우리 전통의 음식이 보인다는 거야.

높다랗게 쌓아올린 고임음식은 우리나라의 잔치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지.

연회 역시 잔치라고 생각해 고임음식으로 격식을 차린 것이 재치 있지?

 

<돌잔치> 김홍도, 178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 만 1년이 되면 이를 기념하여 돌잔치를 치렀어.

요즘에야 태어나 맞는 첫 생일을 축하해주는 의미로 돌잔치를 치르지만, 옛날에는 좀 다른 이유로

잔치를 열었단다. 옛날에는 아기들이 질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태어나서 1년이 되는 시기가 아이의 생존에 아주 중요했어.

 

<빵과 과자가 있는 정물> 게오르크 플레겔, 1610년경, 프랑크푸르트 시립미술관 소장

 

아랍사람들은 설탕으로 만든 과자도 즐겨 먹었어.

오늘날의 캐러멀도 만들었는데, 캐러멀은 아랍어로 '달콤한 소금으로 만든 공'이라는 뜻의

'쿠라트 알 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

 

<씨름> 김홍도, 18세기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의 왕들도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 안에서 조청 두 숟가락을 먹고 난 뒤 일과를 시작했다고 해.

이는 엿의 당분으로 잠든 뇌를 활성화시키는 과학적인 방법이란다.

 

<엿 만들기> 김준근, 19세기 말경, 국립기메박물관 소장

 

우리 조상들은 엿을 단순히 '과자'로만 여기지 않았어.

엿이 몸에 활력을 주고 머리를 맑게 해준다고 믿었지.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 빈센초 캄피, 1580년경, 리옹 미술관 소장

 

치즈는 모두 알다시피 소, 염소, 물소, 양 등의 동물의 젖에 들어있는 단백질을 뽑아

응고, 발효시킨 식품이야. 치즈의 맛은 원료, 숙성 방법, 발효균의 종류 등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맛을 내지. 현재 약 1천여 종의 치즈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즐겨 먹는 치즈는 그중 20여 종에 불과해.

 

<청어와 맥주가 있는 정물> 피테르 클레즈, 1636년,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소장

 

맥주는 인류가 마신 가장 오래된 술이야.

인류가 정착해 농경생활을 하면서부터 맥주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탄생시킨 수메르 사람들이나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즐겨 마셨다는 것으로 봐선 문명의 탄생과 같다고 보여.

 

<커피를 즐기는 투르크 여인> 작자 미상, 연대 미상

 

서양 사람들은 자신들의 와인에 빗대 커피를 '이슬람의 와인'이라고 부른단다.

이처럼 커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이슬람의 음료였어.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이는 커피에 관한 터키의 유명한 속담이지.

 

고급스런 카페는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그녀에게 천금 같은 시간일 거야.

그녀가 마시는 커피에서 짙은 향이 날 것 같아.

 

<커피 한 잔> 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 1877년, 개인 소장

 

<초콜릿 소녀> 장 에티엔 리오타르, 1744~1745년, 드레스텐 미술관 소장

 

카카오에는 커피와 마찬가지로 정신을 맑게 해주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에 신성한 음료로 여겨졌지.

훗날 아스텍 문명 사람들도 카카오를 신의 열매라 부르며 귀중하게 여겼단다.

 

<초콜릿을 마시는 여인> 장 에티엔 리오타르, 1744년, 영국 국립미술관 소장

 

<우유를 따르는 여인> 요하네스 베르메르, 1658~1660년, 암스테르담 레익스 박물관 소장

 

인류는 오래 전부터 우유를 마셔왔어.

우유의 풍부한 영양소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주었고,

사람들도 그런 우유를 신의 축복이라고 여겼어.

 

그림 속에서 도포에 갓을 쓴 양반 여럿이 모여 소젖을 짜고 있어.

풍성한 도포자락이 젖을 짜기에 무척 불편해보이지?

이들은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어린 송아지를 한쪽에 떼어놓은 뒤

어미 소의 코뚜레를 움켜잡고 뒷다리까지 줄로 옭아매 꼼짝하지 못하도록 한 다음

그릇을 받쳐 들고 쪼그려 앉아 젖을 짜고 있어.

 

<채유> 조영석, 17세기경, 개인 소장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에두아르 마네, 1881~1882년, 코톨드 미술관 소장

 

인류의 역사에서 술집은 언제부터 있어왔을까?

아마도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닐까 싶어.

기원전 3900년 경 바빌로니아에 선술집이 존재했다는 증거도 있지.

 

<파리 레스토랑의 실내> 빈센트 반 고흐, 1887년,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특권 계층만 맛볼 수 있는 요리를 이제 누구나 돈만 내면 사먹을 수 있게 되었지.

이로써 레스토랑이라는 형태의 '음식점'이 생겨나게 된 거야.

 

<그레코 카페의 화가들> 루트비히 요한 파시니, 1852년, 함부르크 미술관 소장

 

그레코 카페는 1750년 무렵 문을 연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세 곳 가운데 하나야.

오늘날에는 유럽 카페 문화의 상징이 되어서 커피 애호가들은 성지 순례하듯 이곳을 찾는다고 해.

 

<휴일> 제임스 티소, 1876년경, 테이트 모던 갤러리 소장

 

당시 유럽에서는 커피, 초콜릿, 차 등이 전해지면서

티타임을 갖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어.

특히 여성들은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담소를 나누며 차를 즐겼지.

 

<새참> 조영석, 18세기 초경, 개인 소장

 

<들밥> 김홍도, 연도 미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주막> 김홍도, 18세기 말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주사거배> 신윤복, 18세기 말경, 간송미술관 소장

 

주막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진풍경이 종종 벌어졌어.

손님이 많이 붐빌 때는 마치 잔칫집처럼 흥청거리기도 했고,

서울에서 과거라도 있을라치면 지방에서 과거 보러 온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었어.

 

<강변회음> 김득신, 18세기경, 간송미술관 소장

 

어부들의 여유로운 식사 장면이 담긴 이 그림은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김득신의 <강변회음>이야.

강변회음은 '강가에 모여앉아 술을 마시다'는 뜻이지.

 

<야연> 성협, 조선 후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 양반들 사이에선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소고기를 구워먹는

이른바 '난로회'가 유행이었어. 음력 10월 초하룻날,

한양의 사대부들은 들판으로 나가 화로 안에 숯을 피워서 소고기를 구워먹었지.

 

술잔, 젓가락 늘어놓고 이웃 모두 모인 자리.

버섯이며 고기며 정말 맛이 있네 그려.

늙마에 이런 음식 좋아한들 어찌 식욕을 풀어보리.

고깃간 지나며 입맛 다시는 사람일랑 본받지 말아야지.

 

posted by 황영찬
2016. 10. 27. 12:48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0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

이여신 지음

2014, 예문당

 

대야도서관

SB093727

 

650.4

이64ㄱ

 

인물화 속 사람들에 얽힌 흥미진진한 역사적 이야기들

 

세계의 유명한 인물화와 함께 떠나는

나흘간의 역사 여행

 

자, 모두들 선생님의 수업에 온 걸 환영한다. 이번에 너희들과 함께할 수업의 제목은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이야.

"에이~ 선생님, 어떻게 사람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요?"

하하, 표현이 좀 이상했을 수는 있겠다. 사람이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아니고, 그림의 모델이 된 역사 속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자는 뜻이야.

잠깐 눈을 감고 각자 머릿속에 아무 그림이나 하나씩 떠올려 보렴. 어떤 그림이든 상관없어. 그냥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인상 깊게 봤던 그림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봐.

어때, 무슨 그림이 떠오르니?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이삭 줍는 사람들 같은 명화가 떠오를 수도 있고, 그냥 주변에서 흔히 봤던 그림이 떠오를 수도 있을 거야.

자, 그럼 이제 그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응시해보렴.

그들이 너희들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지 귀 기울여봐.

- 본문 중에서 -

 

지은이 이여신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졸업. 역사콘텐츠연구회 '어제그리고오늘'을 통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저서로 『미래를 열어주는 세계 역사박물관』, 『특목고 엄마들』, 『어린이를 위한 고대문명사』, 『위인들의 재능이야기』 시리즈, 『천하무적 속담왕』 등이 있고, EBS 초등영어교재 『요요플레이타임』, 『똑똑 영어놀이터』를 기획한 바 있다.

 

차례

 

수업을 들어가기에 앞서

 

1ST DAY 역사에 남은 왕과 왕비들

 

헨리 8세 여섯 명의 부인을 두었던 드라마틱한 왕

엘리자베스 1세 평생 처녀로 살다 간 철의 여왕

루이 14세 짐이 곧 국가다

마리 앙투아네트 사치의 대명사가 된 비운의 왕비

마리아 테레지아 뛰어난 정치력을 지닌 합스부르크 여제

나폴레옹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강희제 천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명군

서태후 황제 위에 군림한 여인

빅토리아 여왕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건설하다

철종 '강화도령'이라 불린 조선의 임금

 

2ND DAY 누구를 그린 것일까?

 

왕회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신들

대사들 젊은 대사와 주교가 만난 까닭

모나리자 그녀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

레카미에 부인 나폴레옹 시대 '사교계의 꽃'이라 불린 여인

미인도 조선 최고의 미인도

루돌프 2세 과일 얼굴의 예술가 황제

시녀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한복 입은 남자 이탈리아의 조선 상인

윤두서 강렬하고도 고독한 자화상

눈 없는 최북과 귀 없는 고흐 눈과 귀를 없애버린 천재 화가들

하연 부부와 조반 부부 부부를 나란히 그린 뜻

사대부 여인 정말로 조 대비의 초상화일까?

 

3RD DAY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구려 고분 벽화 놀이를 즐긴 고구려 사람들

단오풍정 단오를 즐기는 여인들

수계도권 선비들, 시와 풍류를 즐기다

김홍도의 풍속화 조선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다

셔틀콕을 가진 소녀 소녀와 배드민턴

도박사기꾼 누구를 속이려고 하는 걸까?

은행가와 그의 아내 오늘은 얼마를 벌었을까?

해부학 강의 어리석음의 치유

선상 파티의 점심 파리지앵의 한가로운 오후

 

4TH DAY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수스 전투 동방을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

최후의 만찬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

카노사의 굴욕 교황은 태양, 왕은 달

잔 다르크의 오를레앙 입성 프랑스를 구한 '오를레앙의 여자'

신대륙에 발을 디딘 사람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미국의 독립 선언 '그레이트 아메리카'의 역사가 시작되다

조선 통신사 행렬도 '한류'의 원조였던 조선 통신사

화성 행차도 정조가 화성으로 간 까닭은?

 

헨리 8세, 한스 홀바인

 

애인이나 후궁을 두는 왕은 많았지만 왕비를 여섯 번이나 바꾼 왕은 헨리 8세가 유일할 거야.

더구나 이혼이 허락되지 않았던 중세 가톨릭 시대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선 대단한 사건이었어.

 

자, 이제 그 유명한 여인인 '천 일의 앤', 앤 불린이 등장할 차례야.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그녀는 왕비로 즉위한 지 1000일 후에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천 일의 앤'이라고 불리고 있어. 앤 불린 역시 헨리 8세가 그토록 기다리던 왕자를 낳지 못했단다.

 

엘리자베스 1세

 

아버지의 카리스마와 어머니의 미모를 물려받은 엘리자베스 1세는 조그만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을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들어 놓았어.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버지 헨리 8세가 초석을 잘 다져놓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지?

현명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버지의 '업적'이 결코 헛되지 않게 만들었어.

그래서 지금까지도 영국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단다.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스 1세

 

중세 유럽에서는 하얀 얼굴이 미인의 첫째 조건이었어.

그것도 지나치게 하얀 피부 말이야.

 

루이 14세

 

그는 안에 담비 털을 덧대고 황금 백합 무니가 수놓아진 파란색 대관식 망토를 입고서 연단 위에 서 있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왕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대관식용 검,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 가발과 황금 목걸이, 황금 백합 무늬의 푸른색 방석 위에 놓여 있는 프랑스의 왕관 등이 그가 프랑스 왕임을 알려주고 있지.

 

루이 14세의 권위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베르사유 궁전이야.

베르사유 궁전은 당대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이었고, 명성에 걸맞게 지금까지도 화려함과 웅장함을 뽐내고 있지.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왕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15번째 딸로 태어났어.

그리고 열다섯 살에 프랑스 왕자 루이 16세와 결혼했지.

당시 유럽의 모든 왕실이 그러했듯이 정략결혼이었어.

 

마리 앙투아네트, 비제 르브룅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프랑스 왕실에서는 비제 르브룅에게

왕비를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리라고 명령했어.

오늘날처럼 미디어가 없을 때니 그림이 유일한 홍보수단이었기 때문이야.

일종의 '공익광고'였던 셈이지.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는 당대 유럽 최고의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어.

마리아는 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최고 명문인 합스부르크가의 공주였단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는 여인이었지.

 

나이 든 마리아 테레지아

 

프란츠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라고는 하나

진짜 상속녀는 그녀였던 만큼 실권은 그녀에게 있었어.

게다가 프란츠는 정치적으로 유능하지 못했어. 그녀는 그런 남편을 대신해

정치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사실상 여제나 다름없었단다.

 

나폴레옹, 자크 루이 다비드

 

사실 그는 프랑스의 외딴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시골뜨기'에 불과했어.

거기다 외모까지 아주 볼품이 없었단다. 키도 작고 왜소해서 어딜 가나 놀림감이 되었지.

그렇지만 그는 그런 놀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어.

자신은 조국 프랑스를 위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역시 크게 될 사람은 생각하는 크기도 다른가봐.

 

강희제

 

황금색은 세상에서 오로지 한 사람. 중국 황제에게만 쓸 수 있었어.

동아시아에서는 오직 중국에만 황제가 있었다는 건 알지? 중국 사람들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나라의 왕도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어.

거기다 동아시아 거의 모든 나라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지.

 

서태후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말재주까지 갖추고 있어서 함풍제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어렵지 않았어.

게다가 황제를 모시는 환관들의 지지까지 받고 있어서 더욱 황제와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고 해.

불행인지 다행인지 함풍제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어 6살 난 그녀의 아들 동치제가 황제가 되었지.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권력이 그녀 손아귀에 들어온 거야.

 

서태후가 부린 사치의 절정은 이화원이야. 지금은 중국의 유명한 관광명소가 된 이화원은 그녀의 별장이었단다. 서태후는 청일전쟁 당시 함대를 만들 돈을 빼돌려 이화원을 꾸몄어.

나라의 존망이 달린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 비용으로 처소를 꾸몄다니 상식 밖의 일이지.

이화원은 지금 봐도 그 화려함에 혀를 내두르게 돼.

특히 인공으로 만든 호수는 마치 바다와도 같이 넓단다.

 

빅토리아 여왕

 

19세기는 영국의 시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기를 맞이했단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여인이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야.

 

'위대한 영국'을 건설한 빅토리아 여왕은 이미 죽었지만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는 그녀의 이름이 남아있어.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 싱가포르,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많은 나라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장소들이 많아.

 

철종 어진

 

 

왼쪽의 그림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고 오른쪽 그림이 영조의 어진이야.

특히 영조의 어진은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어진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작품이지.

영조의 날카로운 눈매와 고집 세 보이는 표정 등이 당장이라도

그림에서 튀어나올 것 같이 사실적이지 않니?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많던 어진들은 하나둘씩 없어졌거든.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같은 큰 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 불타버렸고, 현재는 태조 이성계, 영조, 철종, 고종의 어진만 남아있단다.

 

왕회도

 

 

이 그림은 <당염립본왕회도>라는 직공도로 종이가 아닌 비단 위에 그려졌어.

중국에서는 조공하러 온 외국의 사신들을 이렇게 비단에 그려서 기록으로 남겼는데, 후세에 다시 그려진 것이란다.

 

대사들, 한스 홀바인

 

프랑스는 당시 영국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당트빌과 셀브를 영국에 보낸 거라고 기억하면 돼.

셀브는 1533년 5월 당트빌을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그때 홀바인에게 당트빌과 함께 그림을 의뢰했어.

그러니까 이 둘은 영국에서 할동한 프랑스 첩보원이었던 거지.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는 얼굴로 유명한데 그것은 그녀만의 개성이 아니야.

그 시기에는 넓은 이마를 가진 여인이 미인이었기 때문에 여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썹을 뽑았어.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이마가 넓어 보였을 테니까.

 

 

이 그림은 <모나리자> 못지않게 유명한 그림으로,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작품이야.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렸는데

네덜란드에서 절대로 해외 전시를 허락하지 않는 그림으로도 유명하지.

 

레카미에 부인, 자크 루이 다비드

 

그녀는 그림 속에서 우아한 흰 드레스를 입고 있지. 허리선이 가슴에 오는 드레스 말이야.

이 드레스는 '엠파이어 드레스'라고 불리는 당대 최고의 유행 패션이었어.

이 드레스가 얼마나 유행이었냐면 여인들이 한겨울에도 이 원피스 입기를 고집하다가 폐렴에 걸려 죽어나가기도 했다는구나.

이 드레스를 유행시킨 인물은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이란다.

 

 

그녀가 제라르에게 의뢰했다던 초상화도 지금까지 남아 있단다.

그 그림 속 레카미에 부인은 다비드의 그림에 비해 훨씬 관능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미인도, 신윤복

 

서양은 여인의 그림을 상당히 많이 그렸지만, 동양에서는 여인의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단다.

그래서 미인도는 고사하고 여인의 초상화조차 남아있는 게 거의 없지.

특히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조선 시대에는 여인의 모습을 담는 것 자체가 금기였어.

 

루돌프 2세, 아르침볼도

 

이 '괴짜 황제' 루돌프 2세는 예술을 사랑한 황제로 유명해. 장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그는 황제라는 권위에는 관심이 없었어.

오로지 학문과 예술에 몰두해서 물리, 화학, 천문학 같은 과학 연구에 열정을 쏟는 한편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지. 당대 뛰어난 그림들을 수집하면서 화가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었고 말이야.

 

 

어려서부터 스페인에서 전통적인 궁중 법도를 익혀서인지

루돌프는 평생 점잖고 예의 바르고 조용했어.

점잖은 것이 지나쳐서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집안에 혼자 있기를 좋아했지.

그리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천문학이나 연금술 등

초자연적이고도 비밀적인 학문에만 흥미를 가졌어.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이 그림을 딱 보면 처음에는 예쁘고 깜찍한 공주에게 시선이 가지만 보면 볼수록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단다. 공주를 보고 난 다음에는 공주를 시중들고 있는 시녀들이 눈에 들어오지? 특히 오른쪽에 있는 여자 난쟁이 시녀는 한번 보면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 깊어.

 

 

그녀 역시 루돌프 2세처럼 합스부르크 왕가의 핏줄이기 때문에 주걱턱을 피할 수 없었어.

저번 시간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저주'라 불리는 주걱턱 얘기를 잠깐 했지?

이 기형적인 모습의 주걱턱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무서운 유전병이란다.

 

'한복을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 루벤스(Peter Paul Rubens, 벨기에, 1577-1640)

 

그림이 공개되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

그림 속 주인공이 한복을 입고 있었거든. 그림을 한번 보렴.

조선의 화풍과는 달라서 느낌이 다르지만 확실히 한복을 입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겠지?

 

윤두서 자화상

 

그림을 보면 그의 뛰어난 솜씨를 알 수 있어. 정면을 응시하는 눈과 매서운 눈매,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특히 수염 터럭을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그렸지.

 

눈 없는 최북과 귀 없는 고흐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고흐는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어.

경매로 나온 그의 그림들은 가장 비싼 값에 팔리고 있는데, 580억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고 해.

 

하연 부부

 

하연은 바로 그 정몽주의 제자였어.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자 1396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지.

정몽주의 제자답게 항상 겸손하고 의연한 자세를 지녀 태종 이방원의 신임을 받았다고 해.

태종이 직접 그의 손을 잡고 치하할 정도였다니까 그의 학식이나 인품은 당대 최고였을 거야.

 

조반 부부

 

조반이라는 신하와 그의 부인으로, 앞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부부 초상화야.

조반도 하연과 마찬가지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때 사람이지.

 

사대부 여인의 초상화 - 조 대비?

 

조선 시대에는 여인의 초상화가 거의 그려지지 않았어. 사대부 집안 여인이나 여염집 아내, 그리고 기생까지 포함해 알려진 작품 수가 10점이 안 되지. 왕실 여인의 그림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조선 초기에는 왕비의 초상화가 그려진 사실이 있지만 후기로 갈수록 여인의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어.

 

장천 1호분 벽화

 

고구려 사람들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고 믿었어.

무덤 주인이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승에서 계속 살아남고 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무용총 무용도(위), 수산리고분 벽화(아래)

 

고구려 사람들은 가무와 놀이를 즐겼어.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풍악을 울리며 춤추고 노래했지. 그건 우리 민족의 특징이기도 하단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아.

 

단오풍정, 신윤복

 

수계도권, 유숙

 

왕희지는 중국 동진 시대의 서예가로 고금을 막론하고 첫째로 손꼽히는 서예가란다.

해서, 행서, 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함으로써 서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지.

어장, 김홍도

 

 

누가 이 대장간의 주인일까?

모루 위에 쇠를 놓은 남자가 바로 대장간의 주인인 대장장이란다.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다 나이도 가장 많이 들어

보이는 걸로 봐서 쉽게 알 수 있지. 그는 숙련된 포즈로 달궈진 쇠를 다루고 있어.

 

김홍도는 우리나라 최고의 풍속화가답게 당시 조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화폭에 담았단다. 조선 후기 우리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지.

 

 

먼저 아래 오른편에 웃통을 벗어 제치고 앉은 사람이 만지고 있느느것이 담뱃잎이야.

그렇게 담뱃잎을 가지런히 20장 정도 모아서 작두로 잎을 가늘게 써는 거지.

옛날에는 이렇게 자른 담뱃잎을 돌돌 말아 장죽에 넣어 피웠단다.

오늘날의 담배와는 많이 다르지.

 

힘겨루기를 하는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잡은 양손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구경꾼들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고유 겨루기인 씨름의 역동성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단다.

 

셔틀콕을 가진 소녀, 장바티스트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Simeon Chardin, 1699-1779)

 

배드민턴은 귀족들이 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엄격한 매너를 갖춰야 했어.

그래서 높은 컬러가 붙은 셔츠에 웃옷을 단정히 입고, 실크 해트(예장용 모자)를 쓴 복장으로 게임을 했단다.

도박사기꾼,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스페이드, 다이아, 하트, 클로버의 네 문양은 당시 유럽의 신분 계급을 상징하고 있어.

하트는 성직자의 성배, 스페이드는 군인의 검, 다이아몬드는 상인을 상징하는 화폐, 클로버는 농민을 상징하는 곤봉이지. 스페이드, 다이아, 하트, 클로버의 순서로 내려갈수록 힘이 약해진다고 해.

 

은행가와 그의 아내, 쿠엔틴 마시스(Quentin Massys)

 

아내의 행동도 아주 재미있어.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기도서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책보다는 돈을 세는 남편에게 집중하고 있어.

경건한 마음을 지녀야 하는 아내의 정신은 온통 돈에만 가 있는 거지.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렘브란트

 

기독교 중심 사회였던 중세 유럽에서는 사람의 목숨은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의술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지. 모든 걸 신에게 맡기면 되었으니까.

그나마 이슬람 문화권과 동양에서는 중세 유럽에 비하면 수준 높은 의학이 발달했어.

 

선상 파티의 점심, 르누아르

 

19세기 중반 파리에는 새로운 유행이 번지고 있었어.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 강을 찾아 뱃놀이를 즐기고 밤에는 물랭 루주에 모여 화려한 공연을 즐기는 것이었지. 파리 교외의 센 강 주변은 최고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는데 뱃놀이가 새로운 트랜드로 떠올랐다고 해.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 - 이수스 전투

 

로마의 도시 폼페이는 화산 폭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오랫동안 잊혀 있었어.

문헌을 통해 폼페이의 비극은 알려져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었지.

그러다가 18세기 중엽 스페인 국왕의 후원 아래 폼페이 유적이 대대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단다.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많은 화가들이 최후의 만찬을 그렸지만 다 빈치의 그림이 가장 유명한 것은 제자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야.

다 빈치는 이 그림에서 제자들의 반응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어.

마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때 그 장소에서 벌어진 일들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카노사의 굴욕

 

가톨릭교는 중세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정신세계까지도 지배하고 있었어.

오늘날처럼 하나의 신앙으로서 믿는 차원이 아니라 관습, 규범을 만들어냈고 성서의 말씀이 곧 법이나 다름없었지.

 

잔 다르크의 오를레앙 입성

 

잔 다르크는 백년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프랑스 동레미에서 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났어.

어렸을 때부터 신앙이 독실했던 잔 다르크는 16세 즈음 천사의 계시를 들었단다.

천사들은 그녀에게 샤를 왕세자를 도와 영국군과 그들을 돕는 부르고뉴를 몰아내고 프랑스를 구하라고 명령했다고 해.

 

신대륙에 발을 디딘 사람들

 

당시 유럽 사람들이 가장 멀다고 여긴 나라는 카다이(중국), 인도, 그리고 지팡구(일본)였어.

유럽 사람들에게 이곳은 비단과 향료, 황금과 보물이 넘쳐나는 꿈의 나라였지.

콜럼버스는 중국, 인도를 거쳐 일본까지 가서 황금을 얻고 싶어했단다.

거기에 또 하나, 부르는 게 값이었던 향신료레 대한 유혹도 컸어.

 

미국의 독립 선언, 존 트럼블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곳이 아메리카라는 걸 몰랐어.

이후 수많은 탐험가들이 그가 개척한 바닷길을 따라 항해에 나섰고, 남아메리카가 추가로 발견되면서 유럽 각국의 식민지화가 이루어졌단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싸웠지.

 

조선 통신사 행렬도

 

통신사들은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함께 데리고 갔어.

통역관과 군관은 물론이고 의원, 화가, 인쇄공, 악공도 데려갔단다.

그러니까 통신사는 단순한 외교사절이 아니고 문화 전파사였던 거야.

 

화성 행차도

 

조선 시대의 의궤 가운데서도 빼어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어.

장대한 행차와 회갑연 장면은 물론이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 행차에 동원된 사람이나 물건들, 궁중의 음식문화, 위풍당당한 군사들의 모습, 왕의 의장 행렬, 행사 기구 등 다양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야.

 

 

 

 

 

 

 

posted by 황영찬
2016. 10. 17. 13:10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19 이명옥과 정갑영의 명화 경제 토크

 

이명옥, 정갑영

2007, SIGONGART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14207

 

650.4

이34명

 

●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미술, 문화 속의 풍요를 추구하는 경제학

얼핏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둘은 한 뿌리에서 뻗어나간 다른 가지이다. 시대를 반영한 문화가 미술이고 그 시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 경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무심코 지나친 명화 속에 다양한 경제 현상이 생생히 녹아 있었고, 평범한 그림이 명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도 경제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으며, 시대를 풍자하는 화가의 예리한 붓끝에서도 경제의 발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 이 책을 읽다보면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과 물질적 여유를 통해 자유를 갈구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세기의 명화로 감상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명옥

'팔방미인'인 그녀를 보면 저절로 질투심과 부러움이 샘솟는다. 거침없는 필력, 놀라운 상상력, 예리한 직관력, 독특한 감성까지 한 몸에 갖추었으니 예술 분야의 베스트셀러 저자로서 타고난 셈이다. 그녀의 문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동서고금의 문학, 철학, 미학, 영화, 미술, 음악 이야기에 심취하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은 지식과 문화의 바다에서 끝없는 항해를 펼친다. 미술관장이기도 한 그녀의 눈빛에는 참신한 기획들과 기상천외한 발상들로 춤을 춘다. 그런 탓에 항간에 이슈가 되는 전시 기획은 대부분 그녀의 차지가 되곤 한다.

저서로는 『센세이션전』, 『팜므 파탈』(한국문학번역원 '2005년 한국의 책 96' 선정),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 『로망스』, 『21세기 남과 여, 꽃미남과 여전사』,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등이 있다. 현재 사비나미술관장,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를 겸하고 있다.

 

정갑영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석사,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자 원주 캠퍼스 부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내 최고 권위의 '매경 이코노미스트 상'(1993)을 수상했다. MBC '손에 잡히는 경제'와 KBS '경제 포커스', 조선일보 등 국내 주요 방송과 언론에 고정 패널로 출연했고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는 SBS 'TV칼럼'에 출연하고 있다. 저서 『열보다 더 큰 아홉』은 KBS 방송 'TV 책을 말하다'의 테마 도서로 선정, 일부 내용이 중학교 사회 교과서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카론의 동전 한 닢』(삼성경제연구소)은 '국내 CEO 100인이 가장 많이 읽은 책 10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 외에 『나무 뒤에 숨은 사람』, 『산업조직론』, 『미시경제학』(공저), 『민영화와 기업구조』(공저), 『한국의 산업조직』 등을 집필했다.

 

Contents

 

여는글

 

① 황금보다 값비싼 파란색

② 미술품 가격과 수요 탄력성

③ 패션 모자에 숨은 시장 원리

④ 교역의 시대를 증언한 초상화

⑤ 미술품 투자의 달인 '곰의 가죽'

⑥ 사유 재산에 대한 애측을 반영한 초상화

⑦ 부동산 투기 열풍이 투영된 풍경화

⑧ 열차 그림을 통해 빈부 격차를 고발한 도미에

⑨ 정략 결혼의 경제학

⑩ 허영과 사치를 부추긴 왕실 초상화

⑪ 튤립 정물화는 투기 파동의 산물

⑫ 거리 마케팅의 원조, 포스터

⑬ 미술 교역의 산물, 고흐의 초상화

⑭ 돈과 행복의 이중주

 

작품 목록

맺는 글

1395~1399 <영국 왕 리처드 2세를 위해 그린 2폭 패널화>

 

울트라마린 블루(ultramarine blue)

진한 보랏빛 청색의 광물성 안료.
천연의 '울트라마린'은 보석과 마찬가지로 귀한 광석이다. 이 색을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에서는 군청(群靑)이라 불렀다. 유채 물감의'울트라마린'은 인공 조명 밑에서는 쉽게 색상이 변해 보이는 연색성이 심한 특성이 있으므로 유화 작품을 전시할 때에 주의가 필요하다.

 

로렌초 디 크레디 | <수태고지>

애플사가 만든 다기능 휴대폰, 아이폰

다빈치의 초상

에두아르 마네 | <배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

 

고전학파[Classical school] : 고전학파는 애덤 스미스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자유방임주의 경제사상을 바탕으로 바탕으로 경제학 체계를 정립한 맬서스T. R. Malthus, 리카도D. Ricardo, 밀J. S. Mill 등의 경제학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이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주요 경제 개념들이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맬서스는 『인구론』, 리카도는 『지대론』, 밀은 『정치경제 원론』을 통해 가격, 생산, 노동, 임금, 이윤 등의 개념과 원리를 설명했다.

 

한계 효용[Marginal Utility]과 가치의 역설 : 한계 효용이란 상품을 한 단위로 더 소비함에 따라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을 의미한다. 물보다 다이아몬드가 훨씬 비싼 가격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이유는 다이아몬드의 한계 효용이 물보다 크기 때문이다. 한계 효용은 희소성과 소비자의 욕구에 따라 결정된다.

 

부가 가치[Value Added] : 상품의 가격에서 재료비, 포장비 등 제품에 직접 사용한 원재료와 중간재의 가격을 공제한 것이다. 예를 들어, 1,000원 어치 밀가루와 다른 원재료를 투입해 1,200원 가치의 빵을 만들었다면 부가 가치는 200원이 된다. 동일한 재료를 가지고 좋은 아이디어나 기술을 통해 값비싼 제품을 만들면 부가 가치가 더 높아진다. 기업들은 부가 가치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소비자가 선호하는 디자인 개발에 주력한다.

 

수요 공급의 법칙 : 수요의 법칙은 다른 조건이 동일한 상황에서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의 수요가 줄고, 반대로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반면, 생산자는 가격이 오르면 더 많이 공급하려 하고, 가격이 낮으면 공급을 줄이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을 공급의 법칙이라 한다.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동시에 작용해 균형 가격이 결정된다.

 

1950 마크 로스코 | <화이트 센터> Mark Rothko | ARS, New York-SACK, Seoul, 2007

김동유 | <마릴린 vs. 마오 주석>

 

전시 효과[Demonstration effect] : 소비 행태가 절대적인 소득보다 상대적인 소득 수준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현상이다. 듀젠베리J. S. Dusenberry는 '후진국이 선진국의 소비를 흉내내거나, 자신의 소득보다는 높은 사치스런 이웃의 소비 행태를 모방하는 현상'을 전시 효과라 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소비의 절대 수준보다는 타인과 비교한 상대적 소비 수준에 따라 소비자의 만족도가 결정된다.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남보다 상대적으로 작다면 만족하지 못하고, 비록 넉넉하게 소비하지 못해도 이웃과 비교해 많다고 생각되면 만족도가 올라가는 현상도 전시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부의 효과[Wealth effect] : 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소비 역시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인 부의 효과로는 부동산 가격이나 주식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을 들 수 잇다. 자산의 가격이 상승하면 가치가 상승한 자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대 소득이 많아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탄력성[Elasticity] : 특정 변수가 1퍼센트 변동할 때 다른 변수가 몇 퍼센트나 변화하는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예를 들어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가격이 1퍼센트 변화할 때 수요는 몇 퍼센트 변하는가를 나타낸 수치다. 생활필수품의 경우 가격이 변화해도 소비를 줄이기 힘들기 때문에 탄력성이 낮다. 반대로 사치재는 가격탄력성이 매우 높다.

수요의 가격탄력성 = 수요량의 변화율(%) / 가격의 변화율(%)

 

1882 에드가 드가 | <모자 상점에서>

드가의 자화상

카미유 피사로 | <퐁투아즈 시장>

 

전문화[Specialization]와 다각화[Diversification] : 기업이 특정한 소수 품목에만 집중해 생산 · 판매하는 전략을 전문화라 하고, 여러 품목에 분산 투자 · 생산하는 것을 다각화 전략이라 한다. 전문화는 소수 품목을 대량 생산함에 따라 평균 생산비의 감소와 같은 생산성 증대 효과를 가져온다. 다각화는 여러 품목의 분산을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응하여 수익의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몇 가지 메뉴의 패스트푸드로 성공한 맥도널드가 대표적인 전문화 기업이고, 수많은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GE가 다각화의 벤치마크가 되고 있다.

 

완전 경쟁 시장 : 시장에 참여하는 공급자와 수요자의 수가 많고, 거래 상품이 모두 동질적이며,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하거나 퇴출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한다. 이 시장에서는 소비자나 생산자가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완전 경쟁 시장으로 농산물 시장을 들 수 있다.

 

독점 시장 : 시장에서 공급자가 하나뿐인 경우를 말한다. 독점 시장에는 다른 상품으로 쉽게 대체할 만한 재화가 존재하지 않아 시장 가격을 공급자가 쉽게 조절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독점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후생이 경쟁 시장보다 작고, 사회 전체의 후생 역시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 생산 규모를 확대함에 따라 제품 단위당 평균 생산비가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규모의 경제가 나타나는 원인은 분업을 통한 효율성의 증대와 원료의 대량 구입에 따른 비용 절감 때문이다. 자동차를 100대 생산하는 경우와 1만 대 생산하는 경우의 한 단위당 평균 비용을 비교해보면 규모의 경제는 분명해진다.

 

1532 한스 홀바인 | <게오르크 기체의 초상>

국제 무역의 물꼬를 튼 신대륙의 발견

한스 홀바인 | <니콜라우스 크라처의 초상>

 

중상주의 : 15세기부터 18세기 후반에 걸쳐 상업을 중시하면서 외국과의 교역을 통한 국가의 부강을 주창한 경제 사상이다. 완제품의 수입을 금지 또는 제한하고 국내 상품의 수출을 장려하는 등 보호 무역 정책을 시행했다. 현대에도 보호 무역과 수출 장려를 추진하는 정책을 신중상주의라 부른다.

 

인플레이션Inflation :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통화량이 많아지면 수요가 늘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원재료의 가격이 상승하면 생산비가 올라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자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자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자산 보유자의 부가 상대적으로 증가해 분배가 왜곡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기회비용[Opportunity costs] : 어떤 대안을 선택할 때 그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비용을 말한다. 100만 원을 소비할 때의 기회 비용은 같은 금액을 쓰지 않고 얻을 수 있었던 수익에 해당된다. 경제적 선택에는 항상 포기해야 하는 비용이 잠재적으로 발생하므로 기회 비용을 줄이는 선택이 합리적이다. 수학 공부에 집중해 영어 성적이 낮아졌다면, 이 역시 수학 공부에 따른 기회 비용에 해당된다. 마찬가지로 대학 진학에 따른 기회 비용을 생각한다면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그 기간 동안 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소득의 총합이 될 것이다.

 

1905 파블로 피카소 | <곡예사 가족>

앙리 마티스 | <처마 밑 화실>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 경매에서 높은 가격으로 낙찰 받았지만, 실제로는 그 가치를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를 말한다. 경매 당시에는 승자로서 축복을 받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큰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같이 불린다.이것은 경매 과정에서 본질적인 가치보다도 높게 낙찰 받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예술품 구매에 있어서도 발생할 수 있다.

 

집중 투자와 분산 투자 : 시장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분산 투자를 하는 것이 위험 부담을 감소시키고 안정적인 수익도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특정 품목에 집중 투자를 하면 그 품목과 관련된 시장이 호황일 경우에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나, 시장 여건이 악화되면 기대 수익의 안정성이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분산 투자가 필요하다.

 

기대 수익 : 투자의 결과로 기대되는 평균적인 수익을 말하며, 수입 예상 금액과 가능성을 이용해서 구할 수 있다. 만약 100만 원을 투자해 200만 원을 얻을 확률이 50퍼센트이고, 1원도 벌지 못할 확률이 50퍼센트라면 기대 수익은 100만 원(200만 원×50%+0원×50%)이 된다. 위험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복권처럼 기대 수익이 낮은 경우에도 투자를 한다.

 

1748~1749 토머스 게인즈버러 | <앤드루 부부>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로버트 오웬

김윤보 | <소작료 납입>

 

공상적 사회주의 :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완전한 공동 소유와 공동 분배를 바탕으로 유토피아 같은 이상 사회를 주창한 사상을 말한다. 환상적인 미래를 제시했던 생시몽Saint-Simon, 푸리에Baron de Fourier, 오웬의 사상이 여기에 속한다. 19세기에 등장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의 사상은 공상적 사회주의와 구별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로 분류하기도 한다.

 

공유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 공용으로 사용하는 동네 목초지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이윤만 극대화하며 많은 소를 방목하면, 목초지는 황폐화되고 궁극적으로 아무도 가축을 키울 수 없어져 모두가 피해를 입는 사례에서 유래한 용어다. 공공의 소유로 운영되는 재화와 서비스가 낭비적으로 사용되어 효율적인 자원 배분에 기여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개인이 운용하는 낚시터는 잘 관리되지만, 공동 저수지는 누구나 남획하여 황폐화되기 쉬운 것도 이 사례에 해당된다. 또한 바다, 호수, 숲, 목초지 등의 공공 자원이 남용되고, 공원의 화장실이 불결하게 유지되는 것도 모두 공유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량과 저량 : 유량은 국민 소득과 같이 일정 기간에 걸쳐 계측하는 변수이고, 저량은 일정 시점에서 평가하는 변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1년 동안에 걸쳐 발생한 소득을 계측하는 국민 소득은 유량의 개념이고, 통화량과 외환 보유고, 부채와 같은 개념은 일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저량에 해당된다.

 

1876~1877 구스타브 카유보트 | <파리 거리, 어느 비 오는 날>

파리의 새로운 대로 건설을 반대한 빅토르 위고

경제학의 고전 『국부론』을 저술한 애덤 스미스

테네시 유역을 개발하는 대규모 공공 사업을 단행한 루스벨트

구스타브 카유보트 | <창가에 서 있는 젊은 남자>

 

세이의 법칙[Say's law] :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 J. B. Say의 이론이다. 공급이 증가하면 생산 요소의 소득도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은 수요도 증가하게 된다는 논리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면 통행량이 증가하는 현상 역시 세이의 법칙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급이 과잉 상태가 되면 세이의 법칙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가격 규제 : 유가가 치솟을 때 유통 물량을 제한한다면 가격은 더 뛰어오르게 된다. 시장에서 구입하지 못한 물량을 암시장 거래를 통해 구입하려 하기 때문에 가격이 더욱 폭등하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가 심해질 때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공급 물량을 제한하면 공급은 더욱 부족하고, 초과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가격은 더욱 치솟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시장 흐름을 거슬러서 정부 규제가 시행되면 원래 의도와는 다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총수요[Aggregate demand]와 총공급[Aggregate supply] : 총수요는 가계, 기업, 정부, 해외 부문 등 그 나라 국민 경제 전체에 걸쳐 최종 생산물에 대한 수요를 모두 합한 것이다. 따라서 총수요는 가계의 민간 소비, 기업의 투자, 정부 소비 지출, 순수출 수요의 합계다. 한편 총공급은 국내 경제에서 공급되는 모든 것과 수입을 더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총수요와 총공급이 일치되는 점에서 물가 수준과 국내총생산이 결정된다.

 

국민소득[National income] : GDP, GNP, GNI 등의 지표로 측정한다.

1) 국내총생산[GDP : Gross Dometic Products] : 일정 기간 동안 국내에서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시장 가격으로 모두 합한 것이다.

2) 국민총생산[GNP : Gross National Products] : 일정 기간 동안 자국의 국민이 생산한 완성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시장 가격으로 모두 합한 것이다.

3) 국민총소득[GNI : Gross National Income] : 일정 기간 동안 자국의 국민이 생산 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벌어들인 소득을 모두 합한 것이다.

 

1864 도미에 오노르 빅토렝 | <일등 열차>

도미에 오노르 빅토렌 | <삼등 열차>

김홍도 | <벼 타작>

 

자산 인플레이션 : 부동산과 금융 자산 등의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해당 자산을 보유한 경제 주체들의 부(wealth)는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커지게 된다. 따라서 자산 인플레이션은 빈부 격차를 유발시킨다. 또한 자산 인플레이션은 부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잇다.

 

지니계수[Gini's coefficient] : 직사각형을 그려 수평 축에는 인구 누적 분포 비율, 수직 축에는 소득 누적 분포 비율을 적는다. 이 직사각형에 인구 분포와 소득 분포에 해당되는 지점을 하나하나 찾아 표시한다. 만약 5퍼센트의 인구가 전체 소득의 5퍼센트, 15퍼센트의 인구가 15퍼센트의 소득을 차지하는 고른 분포를 보이게 된다면, 그 점들은 직사각형에서 대각선을 이룬다. 그러나 실제로는 저소득층인 하위 5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5퍼센트를 갖지 못하므로(예를 들면 0.5퍼센트), 대각선 아래에 점들이 위치한다. 실제 분포를 나타내는 이 점들을 연결한 선을 로렌츠 곡선(Lorenz Curve)이라 부르며 대각선과 로렌츠 곡선을 함께 생각하면 마치 초승달 형상이 된다. 분포가 왜곡될수록 로렌츠 곡선은 대각선 아래로 많이 내려오고 초승달의 곡면이 더 커지게 된다. 이때 대각선 위의 삼각형(분모)과 초승달(분자)의 비율이 지니계수가 된다. 완전한 균등 분포에서는 로렌츠 곡선과 대각선이 일치하므로 지니계수는 0이다.

 

생산 요소 : 생산을 위해 반드시 투입되는 핵심적인 자원으로 노동, 자본, 토지 등이 있다. 생산 요소에 대한 대가로서 노동에는 임금, 자본에는 이자, 토지에 대해서는 지대를 지불한다. 임금, 이자, 지대와 같은 생산 요소의 가격은 생산 요소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한계 생산성[Marginal productivity] : 생산 요소의 투입을 한 단위 늘림에 따라서 추가적으로 늘어나는 생산량을 나타낸다. 생산 요소의 종류에 따라 노동의 한계 생산성, 자본의 한계 생산성 등이 잇다. 예를 들어 근로자 한 사람을 추가적으로 투입해 자동차 생산량이 2대 늘어났다면 노동의 한계 생산성은 자동차 2대가 된다.

 

1743 윌리엄 호가스 | <정략 결혼>

윌리엄 호가스 | <결혼 직후>

자동차왕 포드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 : 독립적인 경제 주체 간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집을 매매할 때 발생하는 거래 비용에는 등록세, 취득세, 중개사 수수료 등이 있다. 계약 조건의 협상과 체결, 체결된 계약 내용의 이행 등에 소요되는 제반 비용도 거래 비용에 해당된다. 거래 비용을 줄이려면 계약을 명확히 해야 하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신호[Signal] : 경제 주체가 선택을 해야 할 때 그 대상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배우자를 고를 때, 기업에서 근로자를 고용할 때, 보험 회사에서 보험가입자를 선택해야 할 때 등 수없이 많은 선택에서 상대방은 정보가 풍부하지만 선택하는 당사자는 정보가 부족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나타난다. 이런 경우 상대방은 학력, 이력서, 건강진단서 등을 통해 자신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제시하게 되는데, 이러한 노력과 정보를 신호라 한다. 정보를 평가하려는 사람은 이러한 신호를 받아 선별(screening)하는 작업을 한다.

 

소비 성향 : 평균 소비 성향은 소득에 대한 소비 지출의 비율을 말하고, 한계 소비 성향은 소득 증가분에 대한 소비 증가분의 비율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월 200만 원 소득 중 120만 원을 지출했다면 평균 소비 성향은 0.6이 된다. 만약 급여가 30만 원 증가했는데 소비는 12만 원 증가했다면 한계 소비 성향은 0.4가 된다.

 

소비의 결정 이론 : 소득이 소비의 결정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절대 소득 가설, 영구 소득 가설, 평생 소득 가설 등 여러 이론으로 나뉜다. 케인스가 제시한 절대 소득 가설의 경우 사람들의 소비는 현재의 절대적 소득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한편 프리드만 M. Friedman의 영구 소득 가설에서는 가계의 소비 행태가 일시적인 소득보다는 장기적인 소득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평생 소득 가설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을 현재의 월급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평생 벌 수 있는 높은 소득 수준을 고려해 소비 지출을 한다는 이론이다.

 

1701 이야생트 리고 | <루이 14세의 초상>

베르사유 궁의 오렌지나무 숲. 장 밥티스트 마르탱Jean-Baptiste Martin 작품 추정

사치적인 소비를 '과시적 소비'로 설명한 베블렌

루이스 비제 르브랭 |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

당시 프랑스 농민들의 참혹한 실정을 풍자한 그림

 

과시적 소비[Conspicious consumption] : 베블렌은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두 가지 가격을 동시에 고려한다고 주장했다. 즉 실제 지불하는 시장 가격뿐 아니라 '남들이 얼마를 주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가격'까지 감안하는 것이다. 내가 산 물건에 대해 남들이 기대하는 가격을 과시 가격(conspicious price)이라 하는데, 이렇게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해 소비를 결정하는 것을 과시적 소비라고 한다.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돈을 자랑하기 위해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베블렌재[Vablen's goods] : 과시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나타나는 수요의 증대(+) 효과를 베블렌 효과라 하고, 가격 상승에 따른 수요 감소(-) 효과보다 베블렌 효과가 더 큰 재화를 베블렌 재화라 부른다. 베블렌 재화는 대부분 고급 사치품이다. 예를 들어 명품의 가격이 10퍼센트 상승했다고 가정하자. 일반적인 경우에는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수요가 감소한다. 그러나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사치재의 경우 오히려 수요가 증가한다. 사치품의 가격이 올라가면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사치재 : 소득의 증가율보다 소비가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고, 수요의 가격탄력성도 큰 재화를 말한다. 따라서 소득이 1퍼센트 증가하면, 소비는 1퍼센트 이상 늘어나서 수요의 소득탄력성이 크다. 고급 승용차, 골프용품, 귀금속 등이 사치재에 속한다. 사치재는 가격 변동에도 수요가 민감하게 반응하여 가격탄력성도 크다.

 

비례세[Proportional tax]와 누진세[Progressive tax] : 비례세는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동일한 비율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음료수, 담배 등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재화에는 모두 일정 비율의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 비례세는 공평성의 원칙을 존중하여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같은 양의 재화를 구입하면 똑같은 세금을 낸다. 반면, 소득 금액이 커질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을 누진세라 한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세율도 높아지는 소득세의 경우가 대표적인 누진세다. 누진세는 계층 간 불평등을 보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어 고소득자에게는 많은 세금을, 저소득자에게는 적은 세금을 부과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1620년경 다니엘 세게르스 | <튤립 꽃병>

 

 

토지 본위 제도를 십분 활용한 루이 15세

암브로시우스 보스하르트 | <꽃병>

 

거품[버블, Bubble] : 시장 가격이 본질적인 내재 가치보다 높게 평가된 경우 그 차이를 거품이라 한다. 내재 가치는 자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미래의 기대 수익을 현재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재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나, 다른 재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시장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 했을 경우 거품이 생성되었다고 본다. 거품은 대체로 투기 때문에 발생하며, 이때 가격은 일정 수준을 지나면 급락하여 본질적인 기본 가치에 수렴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거품 가격으로 재화를 구입한 많은 수요자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

 

금 본위 제도[Gold standard] : 화폐 단위의 가치와 금의 일정량의 가치가 같도록 유지시키는 제도다. 당연히 금 본위 제도에서는 일정량의 금과 지폐를 교환해주었다.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달러화의 경우 1971년 미국의 닉슨 Nixon 대통령이 금태환제를 정지시킨 이후 이 제도가 적용되지 않았다. 현재는 각국이 관리통화제를 채택하여 금태환과는 관계없이 금융 당국이 통화량을 조절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폰지 게임 Ponzi game : 1920년대 미국 플로리다에서 폰지라는 사업가가 세계 21개국에서 통용되는 구매 쿠폰 사업을벌인다며 투자자들로부터 1,000만 달러를 그러모았다. 높은 배당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모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사업도 하지 않았다. 처음 모은 투자액은 자신이 챙긴 후, 투자자들에게 받은 자금을 다음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갔지만, 결국 후속 투자자가 없어 1년 만에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폰지는 감옥에서 무일푼으로 죽었다. 이후 이자가 수익보다 큰 형태의 사업을 '폰지 게임'이라 부른다.

 

소득 탄력성[Income elasticity] : 소득이 변화할 때 수요량이 얼마나 민감하게 변동하는가를 나타내는 수치다. 즉 소득이 1퍼센트 변화할 때 수요량이 1퍼센트보다 더 많이 변동하면 탄력적이라 하고, 1퍼센트 이하로 변동하면 비탄력적이라 한다. 소득이 늘어날 때 수요량이 늘어나는 재화를 정상재라 하며, 오히려 수요량이 감소하는 재화를 열등재라 한다.

 

1891 툴루즈 로트레크 | <물랭 루즈의 라 귈르>

Cinematographe Lumiere

앙리 브리스포가 고안한 첫 번째 영화 포스터

시네마토그라피를 개발한 뤼미에르 형제

앤디 워홀 | <210개의 코크병>

앤디 워홀 | <브릴로, 델몬트, 하인즈 상자>

 

경험재와 탐색재 : 경험재는 사용해봐야만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재화로 음반, 영화, 음식, 게임, 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끝까지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품질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서비스 상품도 경험재에 해당된다. 반면, 탐색재는 소비자가 제품에 대한 정보만 가지고 사전적으로 재화의 성능을 평가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컴퓨터는 CPU와 메모리 크기만 알아도 대략 그 성능을 짐작할 수 있으니 탐색재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진입 장벽[Entry barrier] : 기업이 시장에 신규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 여러 요소들을 말한다. 자본이 많이 투입되거나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의 경우 신규 기업의 진입이 어려운데, 이런 진입의 조건을 진입 장벽이라고 한다. 진입 장벽은 공장 건설에 소요되는 자본, 필요한 기술, 인허가, 시장의 여건 등에 의해 결정된다.

 

편승 효과[Bandwagon effect] : 유행에 따라 타인의 소비 패턴을 흉내내며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 현상을 말한다. 특정 상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상으로,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라고도 한다. 곡예나 퍼레이드의 맨 앞에서 행렬을 선도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악대차 樂隊車의 효과에서 유래했다.

 

속물 효과[Snob effect] : 다수의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을 꺼리고, 명품과 같이 남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값비싼 상품을 선호하는 소비 행태로 속물근성에 비롯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용어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자신은 남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마치 백로 같다 하여 '백로 효과'라고도 한다.

 

정보재[Information goods] : 전자 시그널인 비트의 흐름으로 부호를 붙일 수 있는 디지털화가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고전부터 포르노, 실시간 주식 정보에서 역사적 문헌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정보재로 바뀌고 있다. 정보재는 일반재와 달리 생산비는 높은데 복제하기는 쉬운 특징이 있어 한계 비용이 매우 낮다.

 

1887 빈센트 반 고흐 | <탕기 영감>

빈센트 반 고흐 | <빗속의 다리>(1887)

 

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같이 하얀

플꽃들이 피어납니다.

 

김용택의 <세상의 길가>

 

국가 간 교역이 국가의 기원임을 주장한 플라톤

가쓰시카 호쿠사이 | <사원의 발코니에서>(후지산 36경 중)

클라우드 모네 |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카미유>

클라우드 모네 | <수련의 연못>(1899)

국제 행사였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의 합계가 영이 되는 게임을 말한다. 이 게임에서는 승자의 득점은 항상 패자의 실점에서 비롯되므로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1971년 서로 Thurow의 『제로섬 사회』가 발간되면서 유명해진 용어다.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 : 게임 참가자들이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게임을 말한다. 서로 다른 재화에 비교 우위를 가진 두 국가가 무역을 하면 서로 이득을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역시 포지티브섬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비교 우위[Comparative advantage]와 비교 열위 : 자동차를 생산할 때 한국은 노동력과 자본을 합해 총 100단위가 투입되는 반면 같은 규모의 직물을 생산하려면 150단위가 들어간다고 가정하자. 반대로 중국은 자동차와 직물을 생산하려면 각각 150단위와 100단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자. 만약 우리가 자동차와 직물 모두를 생산한다면 250단위의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자동차 두 단위를 생산해 하나는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직물과 교환한다면 어떻게 될까? 200단위만 투입하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된다. 50단위의 생산 요소를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한국은 자동차에 비교 우위가 있고 직물에는 비교 열위가 잇으므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직물은 생산하지 않는다. 결국 각자 값싸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생산해 서로 교환하면 모두 이익을 보는 것이다.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 : 현재의 아주 작은 기상 변화가 얼마 후 엄청난 태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가상학자의 이론에서 유래한 말이다. 북경에서 날아오르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에 공기가 살랑거리고, 그 파장이 한 달 후에는 뉴욕에 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데서 유래한 용어로 지구촌 구석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이 전 세계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1950년대 후반 박수근 | <빨래터>

장 프랑수아 밀레 | <만종>

키스 해링 | <무제>

 

빈곤의 악순환[Vicious circle of poverty] : 저소득은 저소비와 투자의 감소를 유발하여 이것이 다시 빈곤을 가져오는 순환 과정을 의미한다. 즉 빈곤은 저축을 불가능하게 하고, 이것은 다시 투자 부족을 발생시킨다. 투자가 부족하면 생산을 증대시키기 어렵고, 따라서 고용과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다. 저개발국의 경우 이 악순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선진국으로의 진입이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 : 최저 생활 수준만 벗어나면 개인의 행복이나 사회적 후생 증가에 경제 성장이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론이다. 이스털린의 연구 결과는 최근 자료에서도 뒷받침되고 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에서 행복은 절대 소득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상대 소득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기업 결합 : 2개 이상의 기업이 인수와 합병을 통해 결합하는 것으로서 수평 결합, 수작 결합, 복합결합 등이 있다. 수평 결합은 동일한 재화 혹은 동일 산업의 기업 간 결합을 말한다. 운송비를 줄이거나 원재료의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수직 결합은 생산 단계가 서로 다른 기업 간의 결합을 말한다. 원료를 공급하는 기업과 최종재를 생산하는 기업과의 결합이나 최종재 생산 기업과 판매 전담 기업과의 합병이 여기에 해당딘다.

 

 

 

 

 

posted by 황영찬
2016. 9. 30. 14:46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17 진언 · 다라니 수행입문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2008, 조계종출판사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925

 

224.81

불15ㅈ v.4

 

불교수행입문

 

다라니 염송을 통해 수행자는 부처님이나 대보살의 큰 영험과 가피를 입을 수 있다. 때문에 다라니는 불교의 수행을 향상시켜 세간적 삶을 지속시키고, 주변의 마장과 번뇌를 물리치는 공덕이 있다. 그러나 자성을 밝히고 성불에 이르는 불교의 근본목적을 망각한 채 다라니의 세간적 공덕만을 구한다면 다라니에 담긴 참뜻을 잃는 것이다. 따라서 다라니를 염송하면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보살이 문자다라니를 지니는 것은 문자의 상을하면서 삼매를 닦는 것이다. 일념으로 다라니에 집중하게 되면 모든 선법이 모이고 악법은 멀어지며, 스스로 크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것이 견고해지면 모든 복덕과 지혜를 모으게 되니 마음이 금강과 같이 견고해진다. 또한 아비지옥에 떨어지지도 않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거늘, 하물며 다른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용수 《대지도론大智度論

 

차    례

 

간행사

편찬사

 

제1장 진언 · 다라니란 무엇인가

    1. 진언 · 다라니의 성립과 정의

    2. 진언의 기원과 의미

    3. 다라니의 기원과 의미

    4. 진언 · 다라니와 주력

    5. 진언 · 다라니와 염불의 차이

 

제2장 경론에 나타난 진언 · 다라니

    1. 《반야경》에서의 반야바라밀다와 대명주

    2. 《유가사지론》에 나타난 다라니 분류

    3. 밀교 경전에서의 진언과 다라니

 

제3장 진언 · 다라니 수행의 실제

    1. 마음가짐과 기본자세

    2. 진언 · 다라니의 염송법

    3. 딴뜨라불교의 진언 수행

    4. 진언 · 다라니 수행과 마장

 

제4장 상용 진언 · 다라니와 수행 절차

    1. 천수다라니와 《천수경》

    2. 능엄주와 《수능엄경》

    3. 육자진언과 《육자대명왕경》

    4. 광명진언

    5. 법신진언

    6. 종자와 종자관

    7. 기타 진언

 

제5장 진언 · 다라니 수행의 공덕

    1. 진언 · 다라니의 수행공덕

    2. 다라니와 경전 봉독의 공덕

    3. 다라니 수행의 현세적 공덕

 

제6장 한국에서의 진언 수행의 역사

    1. 한국불교의 진언 수행

    2. 한국불교와 천수다라니

    3. 진언 수행에 대한 한국불교의 인식

    4. 근대 한국 고승들의 진언 수행

 

제7장 맺음말

 

부록

    1.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의미

    2. 아비라 기도

 

마음의 작용을 지속적으로 통일시켜 주는 것을 다라니라 하며, 자성청정의 법성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을 진언밀주라 한다. 중생의 무명번뇌를 제거하기 위해 무애의 변재로 중생을 제도하는 불사를 명明이라 한다.

- 《금강정경》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 揭諦 菩提 娑婆訶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스와하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세 가세, 피안으로 가세, 우리 함께 피안으로 온전히 가서, 깨달음을 얻으세.

 

무엇을 일컬어 보살의 주다라니라 하는가. 주다라니란 모든 보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삼매의 자재함을 얻게 하고, 능히 유정들의 재난과 환난을 물리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다라니의 신령스러운 구절에 자재토록 하여 그 가피를 얻게 하고, 여러 가지 재난과 환난을 물리치게 한다.

- 《유가사지론》

 

《대비심경大悲心經》에 설하기를 다라니는 선정장禪定藏이라 하였다. 백천삼매가 언제나 현전하기 때문에 만약 사람이 긴장하여 지송하게 되면 여러 가지 마장과 마주치거나 홀연히 두려워지며, 혹은 혀가 굳어 지송하기 어렵게 되거나, 혹은 신심이 불안하게 된다. 혹은 화가 많이 나거나, 잠이 많아지거나, 혹은 여러 가지 이상한 모습을 보기도 한다. 따라서 진언에 대해 의심이 생기고, 지송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진다.

- 《현밀원통성불심요집》

 

심행을 닦는 자는 간혹 꿈에서 선하거나 악한 경계를 보거나, 혹은 여러 가지 마장과 마주치게 된다. 혹은 거슬리거나, 좋은 경계가 나타나거나, 혹은 여러 가지 선악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또는 벌레가 몸 위를 기어다니거나, 신심이 불안하여 생각과 걱정이 많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을 관할 때 여러 가지 상相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때 본래 관하려는 목적과 상응치 않는 것들이 나타나면 모름지기 꿈과 같고 환幻과 같으며, 모두가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보는 것마다 모두 자신의 진심이 나타내는 경계로 생각해야 한다. 곧 《기신론》에 이르신 "오로지 유심唯心임을 생각하면 경계가 곧 소멸되어 결국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한 말을 새겨야 한다.

 

마의 경계가 앞에 나타날 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마음을 바르게 가지지 못하게 되므로 나쁜 소견에 떨어지게 된다. 곧 오음五陰에서 생기는 마魔이거나 하늘에서 오는 마[天魔]이거나 혹은 귀신이 붙거나 도깨비를 만날 때에 마음으로 분명하게 알아 차리지 못하면 도적을 아들인 줄 여기게 된다.

- 《능엄경》

 

마와 귀신들이 아무리 성을 내더라도 저들은 티끌 번뇌 속에 있는 것이요, 너는 묘각 가운데 있는 것이므로 바람으로 광명을 끄는 것과 같으며,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아서 너를 조금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Om amogha vairocana maha-mudra mani- padma jvala pravartaya hum

唵 阿謨伽 尾盧左曩 摩賀 母捺羅 摩尼 鉢納摩 入縛羅 鉢羅嚩多野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타야 훔

- 광명진언

 

Namah Samanta Buddhanam A Vi Ra Hum Kham Svaha

나무 사만다 붓다남 아 비 라 훔 캄 스바하

모든 부처님께 귀명歸命합니다. 아 비 라 훔 캄 성취케 하소서!

- 법신진언

 

 

 5대

5방 

5색 

5불 

5지 

 

 지地

 동東

 황黃

 아촉불

 대원경지

 

 수水

 서西

 백白

 아미타불

 묘관찰지

 

 화火

 남南

 적赤

 보생불

 평등성지

 

 풍風

 북北

 흑黑

 불공성취불

 성소작지

 

 공空

 중中

 청靑

 비로자나불

 법계체성지

 

심관心觀이라 하는 것은 마음을 경經에 매어두고 계속하여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말을 통해 뜻을 말하고 그런 연후에 요달了達, 곧 다라니를 얻게 되는 것이다.

- 《대지도론》

 

다라니란 마음을 통일하는 것이 그 근본 목적이다. 따라서 아자 등의 문자를 관경觀境의 대상으로 하여 마음을 통일할 때는 법다라니라 부르며, 문자가 표하려는 의미를 관경의 대상으로 하여 마음을 통일할 때는 의다라니라 하며, 지송하는 다라니 자체를 관경의 대상으로 하여 마음을 통일할 때는 주다라니라 하며, 진여법성의 의미를 관경의 대상으로 마음을 통일하고 법성에 합치하여 불지를 얻을 때는 인다라니라 부르는 것이다.

- 《유가약찬瑜伽略纂》

 

보살이 문자다라니를 지니는 것은 문자의 상을 관하면서 삼매를 닦기 위한 것이다. 일념으로 다라니에 집중하게 되면 모든 선법이 모이고 악법은 멀어지며, 스스로 크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것이 견고해지면 모든 복덕과 지혜를 모으게 되니 마음이 금강과 같이 견고해진다. 또한 아비지옥에 떨어지지도 않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대지도론》

 

오직 원하옵고 바라옵니다. 저의 스승인 관세음보살께서 아미타부처님을 근본 스승으로 생각하고, 세세생생 그분을 당신의 이마 위에 모심과 같이, 저 역시 스승님인 관음대성觀音大聖님을 이마 위에 모시고 당신의 서원인 십원十願, 육향六向, 천수천안千手千眼등의 대자대비의 행을 당신과 함께 실천 하겠습니다. (중략) 부디 이 공덕으로 일체중생이 대비주大悲呪를 외우고 보살이신 당신의 이름을 불러 다 함께 원통삼매圓通三昧의 바다에 들게 되기를 발원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의미

 

귀경문

○ 나모 라뜨나-뜨라야야

    Namo ratna-trayaya

    삼보三寶께 귀의歸依합니다

 

○ 나마 아리야발로끼떼스바라야 보디싸뜨바야 마하싸뜨바야 마하루니까야

    namah aryavalokitesvaraya bodhisattvaya mahasattvaya mahakarunikaya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聖觀自在보살마하살께 귀의합니다

 

○ 옴 싸르바-바예슈 뜨라나-까라야 따스마이 나마쓰

    Om sarva-bhayesu trana-karaya tasmai namas

    옴! 모든 두려움 가운데 피난처인 그에게 귀의합니다

 

○ 끄리뜨바 이맘 아리야발로끼떼스바라-스따밤 닐라깐타 나마

    krtva imam aryavalokitesvara-stavam Nilakanthanama

이것 즉, <청경靑頸>이라 이름하는 성관자재 찬가讚歌를 행합니다.

 

발원문

○ 흐라다얌 바르따이씨야마 싸르바르타-싸다남 슈밤아제얌 싸르바-부따남 바바-마르가-비슛다깜

    hrdayam vartayisyami sarvartha-sadhanam subhamajeyam sarva-bhutanam bhava-marga-visodhakam

    저는 마음을 닦겠습니다. 일체의 이익 성취와 복과 필승과 일체 중생의 청정한 삶의 길을…….

 

○ 따드야타

    tadyatha

    그처럼

 

○ 옴 알로께 알로까마띠 로까띠끄란떼 헤-헤 하레

    om aloke, alokamati lokatikrante ehy-ehi Hare

    아! 관觀하여 보는 자시여! 출세간出世間의 마음, 세속을 초월한 자시여! 오소서, 오소서 관자재시여!

 

○ 마하보디싸뜨바 쓰마라-쓰마라 흐리다얌

    mahabodhisattva smara-smara hrdayam

    (저의) 마음을 기억하소서 기억하소서, 대보살大菩薩이시여!

 

○ 꾸르-꾸르 까르마 사다야-사다야

    kuru-kuru karma sadhaya-sadhaya

    의식儀式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목표가 달성케 되기를…….

 

성관자재 찬가

○ 두루-두루 비자얀떼 마하비자얀떼

    dhuru-dhuru vijayante mahavijayante

    수호守護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대 승리자>시여!

 

○ 다라-다라 다라님 다레스바라

    dhara-dhara dharanimdharesvara

    지지支持하소서, 지지하소서, <능히 대지를 지지하는 신> 이시여!

 

○ 짤라-짤라 말라 비말라말라-무르떼

    cala-cala malla vimalamala-murtte

    (이리저리)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말라神>시여! 부정不淨을 여윈 청정한 <무르떼神>시여!

 

○ 헤-헤 로께스바라 라가-비샹 비나샤야 드웨샤-비샹 비나샤야 모하-자라-비샹 비나샤야

    ehy-ehi Lokesvara raga-visam vinasaya dvesa-visam vinasaya moha-jala-visam vinasaya

    오소서, 오소서, <세자재世自在>시여! 탐욕貪慾의 독을 파괴하시고, 진에瞋恚의 독을 파괴하시고, 치암癡暗:어리석음의 얽혀짐의 독을 파괴하소서!

 

○ 훌루훌루 말라 훌루 하레 빠드마나브하

    huluhulu malla hulu Hare Padmanabha

    기쁘도다! <말라神>시여! 기쁘도다! <관자재>시여, <파드마나바>시여!

 

○ 싸라싸라 씨리씨리 쓰루-쓰루 부디야-부디야 보다야-보다야

    sarasara sirisiri suru-suru buddhya-buddhya bodhaya-bodhaya

    이리저리 좌우로 움직이소서, 흐르소서! 비추어 식별識別함으로서 깨닫게(이룩하게)하소서!

 

○ 마이뜨리야 닐라깐타 까마쓰야 다르샤네다 쁘라흐라다야마나스바하

    maitriya Nilakantha kamasya darsanena prahladayamanah svaha

    정情이 깊은 <청경靑頸>이시여!  즐거움의 마음을 성찰함으로서, <쁘라흐라다神>께 영광이 있기를!

 

○ 씻다야 쓰바하 마하씻다야 쓰바하 씻다요게스바라야 스바하

    siddhaya svaha mahasiddhaya svaha siddhayogesvaraya svaha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대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성자, <요가의 주主>께 영광이 있기를!

 

○ 닐라깐타야 스바하

    Nilakanthaya svaha

    <청경靑頸>께 영광이 있기를!

 

○ 바라하무카-씽하무카야 스바하

    varahamukha-simhamukhaya svaha

    <멧돼지의 용모, 사자의 용모를 (갖춘) 자>께 영광이 있기를!

 

○ 빠드마-하쓰따야 스바하

    padma-hastaya svaha

    <연꽃을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 짜끄라윳따야 쓰바하

    cakrayudhaya svaha

    <챠크라를 손에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 샹카-샵다니-보다나야 스바하

    sankha-sabdani-bodhanaya svaha

    <소라고둥 소리를 듣는 자>께 영광이 있기를!

 

○ 마하-라꾸따-다라야 스바하

    mahalakutadharaya svaha

    <큰 방망이(를) 쥔 (자)>께 영광이 있기를!

 

○ 바마-쓰칸다-디샤-쓰티따 끄리슈나-지나야 스바하

    vama-skanda-desa-sthita krsna-jinaya svaha

    왼쪽 공격자 쪽에 있는 <흑색 성자>께 영광이 있기를!

 

○ 비야그라-짜르마-니바싸나야 스바하

    vyaghra-carma-nivasanaya svaha

    <호랑이 가죽(을) 착용(한 자)>께 영광이 있기를!

 

귀의문歸依文

○ 나모 라뜨나-뜨라야야 나마 아리야발로끼떼스바라야 스바하

    namo ratna-trayaya namah aryavalokitesvaraya svaha

    삼보三寶께 귀의歸依합니다. 크나큰 자비의 성관자재聖觀自在보살 마하살께 귀의합니다.

 

 

 

posted by 황영찬
2016. 9. 21. 12:27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16 ·  · 수 · 행 · 입 · 문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2008, 조계종출판사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926

 

224.81

불15ㅈ v. 3

 

불교수행입문

 

한국불교에서 행해지는 갖가지 의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염불이다. 일상적인 기도는 물론이요 크고 작은 불교의 례가 모두 염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염불은 사찰에서 일상적으로 행하는 의례이자 한국 불자들의 대표적인 신행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염불 수행에 대한 친절한 지침서가 마련되지 못했다. 《염불 수행 입문》은 염불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염불 수행이 가능하도록 올바른 지침을 제시한다.

 

차    례

 

간행사 - 교육원장

편찬사 - 불학연구소장

 

제1장 염불 수행이란 무엇인가

 

제2장 염불하는 법

    1. 염불 수행의 의식과 절차

        1) 염불 수행의 의식

        2) 염불 수행의 절차

    2. 염불 수행자의 마음가짐

    3. 염불 수행할 때의 주의사항

    4. 실천방법에 따른 염불

        1) 기일 염불

        2) 시간 염불

        3) 수량 염불

        4) 절하면서 하는 염불

        5) 일상 속에서의 염불

        6) 단계별로 수행하는 염불

 

제3장 경전상에 나타난 염불

    1. 초기불교의 염불 수행법

    2. 대승불교의 염불 수행법

 

제4장 염불의 분류

    1. 정토왕생 염불과 자성미타 염불

        1) 정토왕생 염불

        2) 자성미타 염불

    2. 부처님의 의미에 따른 염불

        1) 색신 염불

        2) 법신 염불

        3) 실상 염불

        4) 십호 염불

    3. 염불 대상에 의한 분류

        1) 석가모니불 염불

        2) 아미타불 염불

        3) 약사여래불 염불

        4) 관세음보살 염불

        5) 지장보살 염불

    4. 여러 가지 염불 수행문

        1) 4종 염불

        2) 5종 염불

        3) 10종 염불

 

제5장 염불의 공덕

    1. 선도 대사의 <염불집>에 나타난 염불 공덕

    2. 여러 경전에 나오는 염불의 이익

 

제6장 맺음말

 

부록

    · 정토예경

    · 서방원문

    · 정념게

    · 찬불게

    · 회향게

 

만약 내가 부처를 이룰 때에 시방十方의 중생들이 지극한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나의 국토에 왕생하고자 하여 나의 이름을 열 번을 부르고도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결단코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 《무량수경》 제18원

 

어떠한 중생이든 지극한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나의 이름을 열 번만 불러도 반드시 왕생토록 하고, 보리심을 내어 여러 가지 공덕을 닦고 지극한 마음으로 원을 세워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임종할 때에 내가 반드시 대중들과 함께 가서 영접하리라.

- 《무량수경》 제19원

 

아미타불 등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명호를 부르고 염하면 불퇴전不退轉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아미타불 등의 부처님을 공경하고 예배하며, 그 명호를 불러야 한다.

- 《십주비바사론》 제5권 <이행품>

 

스승과 스님, 부모, 선지식과 법계의 중생들이 세 가지 장애[탐 · 진 · 치]를 끊고 함께 아미타불의 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귀의하며 또한 참회합니다.

- 《찬아미타불게》

 

모든 수행자들은 먼저 불상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지은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지극하게 참괴慙愧한 마음을 내어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리면서 허물을 뉘우쳐야 한다.

- 《관무량수경소》

 

이제 도량 내의 범부와 성인에 대해 발로참회發露懺悔하면서 죄가 영원히 다 소멸하여 남음이 없기를 원해야 한다. 이렇게 참회하고 나서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에게 귀의하면서 예배해야 한다.

- 《법사찬》

 

서방정토에 가고자 하면 신심이 깊고 견고해야 하나니 정토의 항하사 부처님들은 정토를 바르게 믿은 분들이다.

- 《유마경》

 

이 사람이 임종하는 최후의 찰나에 온갖 근根이 모두 흩어져 망가지고, 모든 친족들이 떠나고, 모든 세력을 잃어버리고 코끼리 · 말 · 수레 · 보물들이 하나도 따라오지 못하나, 이 원력만은 떠나지 아니하여 어느 때나 항상 그 앞을 인도하여 한 찰나에 극락세계로 왕생하게 한다.

- 《화엄경》 <보현행원품>

 

나쁜 말과 꾸짖는 말,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업신 여기는 이런 짓을 행하면 거기에서 미움과 원한이 생긴다.

- 《법구경》 <언어품>

 

무릇 사람이 세상에 나면 그 입 안에 도끼가 있어 그것으로 제 몸을 베나니, 그것은 나쁜 말 때문이라네.

- 《법구비유경》

 

모름지기 지계를 청정히 하여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는 데 산란하지 않고 일심으로 백만 번에 이르면 임종 시에 정념正念이 현전하고 부처님의 영접을 받는다.

- 《정토론》

 

신라 문무왕 때에 광덕光德과 엄장嚴莊이라는 염불 수행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사이가 매우 좋아 먼저 극락세계에 가는 사람이 뒷사람에게 알려주기로 약속하고 열심히 염불하였다.

광덕은 경주 분황사 서쪽 마을에서 은거하면서 신을 삼는 일을 업으로 하고 아내를 두고 살았고, 엄장은 남악南岳에 있으면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하루는 석양볕이 산마루에 걸쳐 있을 때 광덕이 창 밖에서 "나는 벌써 극락에 갔으니 그대는 잘 지내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장이 이 소리를 듣고 광덕이 사는 곳에 가보니 광덕은 이미 죽은 뒤였다.

장례를 마친 후 엄장은 광덕의 아내를 보고 광덕이 죽었으니 나와 같이 살면 어떠냐고 물으니 광덕의 아내는 좋다고 하였다. 자기 집에서 광덕의 아내와 같이 살게 된 엄장은 어느 날 밤에 광덕의 아내와 정을 통하려고 하였다. 이때 광덕의 아내는 정색을 하고서 말했다.

"내가 광덕과 10여 년을 살았지만 한 번도 같이 자본 일이 없습니다. 남편은 오로지 낮에는 짚으로 신발을 삼으며, 아미타불을 외웠고, 밤이 되면 단정히 앉아 한결같이 염불 수행으로 날을 세웠습니다."

이 말에 엄장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염불 수행을 지극히 하여 정토왕생 할 수 있었다.

- 《삼국유사》 권5 <광덕엄장>조

 

산란한 마음으로 염불하는 것이나 적은 음성으로 찬탄하는 것이나, 손가락으로 성상聖像을 그리는 것이나 모래를 모아 탑을 쌓는 일 등 보잘것없는 이런 선행일지라도 점점 공덕을 쌓게 되면 모두 불도佛道를 이룬다.

- 《만선동귀집》 중권

 

이와 같이 바사닉 왕이 뒤에 이르러 몸을 가지런히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여 누각 위에 올라 부처님께서 계신 곳을 향하여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세 번 이렇게 말했다. "세존 · 여래 · 응공 · 등정각께 경례하고 귀의합니다. 세존 · 여래 · 응공 · 등정각께 경례하고 귀의합니다. 저에게 현세의 이익과 후세의 이익과 현세와 후세의 이익을 주셨습니다"라고 하니 현세 법의 이익과 후세의 이익을 주었다.

- 《잡아함경》 제42권 <제1150경>

 

모두 '나무불南無佛'이라고 부르세. 석가모니부처님은 가장 훌륭한 분으로서 능히 안온함을 베푸시고 모든 고뇌를 제거하신다네.

- 《증일아함경》

 

스스로 '나무불'이라고 부르면서 모두 나의 처소에 와 현재에 공양한다. 저 부처님의 과거는 선정이 평등하여 증감增減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불법 가운데서는 성중聖衆들이 받들어 섬긴다. 전심으로 삼보를 섬기면 반드시 무위처無爲處에 이른다.

- 《증일아함경》

 

여래의 형상을 친견하고 나서 스스로 '나무여래지진등정각'이란 명호를 불렀다. 이러한 인연으로 좋은 음성을 얻었다. …(중략)…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마칠 때에는 선처천상善處天上에 태어난다.

- 《증일아함경》 제24권 <선취품>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마땅히 한 법[一法]을 수행하고, 마땅히 한 법을 널리 펴라. 한 법을 수행하면 문득 명예가 있게 되고, 큰 과보를 이루며, 모든 선善이 널리 이르게 되고, 감로의 맛을 얻어 무위처無爲處에 이르며, 문득 신통을 이루어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하여 사문과沙門果를 얻어 열반에 이른다. 어떤 것을 한 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염불이니라."

- 《증일아함경》 제2권 <광연품>

 

마하남이여! 이곳에서 너는 여래를 억념憶念해야 한다. 이르기를, 이와 같이 저 세존은 응공應供 · 정등각正等覺 · 명행족明行足 · 선서善逝 · 세간해世間解 · 무상사無上士 ·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세존佛世尊 이시다.

마하남이여! 성인의 제자는 여래를 억념할 때 마음속으로 탐욕에 얽매이지 말라. 이때는 여래에 의해 마음이 바르게 되느니라. 마하남이여! 성인의 제자가 마음이 정직하면 의명義明을 얻고 법명法明을 얻으며, 마음에 이끌리는 곳에 즐거움이 넘치고, 즐거움이 넘치면서 기쁨이 생기며,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몸이 편안하고, 몸이 편안하면 낙樂을 받게 되며, 낙을 받으면 마음속에 정定을 얻는다.

마하남이여! 이 염불은 거닐 때도 닦아야 하고, 머무를 때도 닦아야 하며, 앉아 있을 때도 닦아야 하고, 누워 있을 때도 닦아야 한다. 사업을 할 때도 닦아야 하며, 자식들에 의해 산란한 집에 있을 때도 닦아야 한다."

- 《증일아함경》 제11권 <억념품>

 

만약 어떤 비구가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결가부좌하여 생각을 묶어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이 없이 오로지 부처님을 염하며 여래의 형상을 관觀하되 잠시도 여래의 형상이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해야 하고,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한 다음 여래의 공덕을 염하라.

- 《증일아함경》 제2권 <광연품>

 

만약 어떤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가 두려움이 있어 온몸에 털이 곤두서거든 이때 마땅히 나의 몸을 염하라[念我身]. 이 여래如來 · 지진至眞 · 등정각等正覺 · 명행성위明行成爲 · 선서善逝 · 세간해世間解 · 무상사無上士 · 도법어道法御 · 천인사天人師 · 불중우佛衆祐 등의 명호를 부르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신다. 설사 두려움이 있어 털이 곤두서더라도 곧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증일아함경》 제14권 <고당품>

 

사람들이 세간에 있으면서 악을 아주 많이 지었더라도 죽으려고 할 때에 염불을 하게 되면 죽은 후에 모두 천상에 태어난다.

- 《나선비구경》 하권

 

만약 목숨을 마친 뒤에도 나쁜 곳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끝끝내 나쁜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이미 오랫동안 염불念佛 · 염법念法 · 염승念僧을 닦고 익혔기[修習] 때문이니라.

- 《잡아함경》 제33권 <제930경>

 

사리불아, 그대 생각에 저 극락세계의 부처님을 어찌하여 아미타불이라고 부르는지 아느냐? 사리불아, 저 부처님의 광명은 한량이 없어 시방세계의 모든 나라를 두루 비추더라도 걸림이 없기 때문에 무량한 광명의 부처님[無量光佛], 곧 아미타불이라고 하고, 또한 그 부처님의 수명과 그 나라 사람들의 수명이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는 아승지겁이기 때문에 무량한 수명의 부처님[無量壽佛], 곧 아미타불이라 이름하느니라.

- 《아미타경》

 

석가모니 생애 말년의 일이다. 마가다국의 태자 아사세阿闍世는 석가모니의 사촌 형제 데바닷다의 꼬임에 넘어가 부친 빔비사라 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다. 뿐만 아니라 부왕을 옥에 가두고 굶겨 죽이기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음식물 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아사세의 모친이자 왕비인 위제희韋提希 부인은 몸을 깨끗이 씻고 나서 우유와 꿀로 반죽한 것을 몸에 바르고 보관寶冠에 포도주를 넣어 감옥으로 들어가 그 반죽을 벗겨 빔비사라 왕에게 먹여 주림을 면케 해주었다. 또 마하목건련 존자와 부루나 존자는 왕이 있는 곳에 매일 와서 여덟 가지 계를 주고 법을 설해주었다.

부왕이 죽기를 원하고 있던 아사세는 어머니와 목건련, 부루나 존자의 일을 듣고 화가 나서 모친을 죽이려 했다. 그때 월광月光과 기바耆婆라는 두 신하가 왕에게 "옛날부터 왕위를 쟁취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있었지만, 어머니를 죽인 사람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무도한 짓을 한다면 그것은 왕족을 더럽히는 것이고 극악무도한 무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국왕으로서 존경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간언했다. 그래서 아사세는 어떻게 할 수 없어 어머니 위제희 부인을 골방에 감금한 채 출입을 못하게 감시하였다. 부인은 분함가 억울함, 슬픔과 절망에 쌓여 몸부림쳐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골방에 갇힌 위제희 부인은 멀리 기사굴산을 향해 예배를 올리며 다음과 같이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지난날 항상 아난 존자를 보내시어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슬픔에 빠져 괴로워서 거룩하신 부처님마저 뵈올 수 없습니다. 원하옵건대, 목건련 존자와 아난 존자를 보내시어 제가 뵐 수 있도록 하여주시옵소서."

이렇게 기원하자 부처님께서는 목건련과 아난 존자를 거느리고 나타났는데, 그 주변에서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이 허공 중에서 하늘 꽃을 눈송이처럼 뿌려 부처님을 공양하고 있었다. 감격한 부인은 다음과 같이 눈물로 죄업을 참회하면서 가르침을 청한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무슨 숙생의 죄가 있어 이와 같은 나쁜 자식을 두게 되었나이까. …(중략)… 저는 이 천박하고 악독한 세상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청컨대 저에게 깨끗한 세계를 보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부인의 원에 따라 서방의 정토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위제희 부인은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려면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떤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지 설해줄 것을 부처님께 간절히 원하였다.

이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정토 장엄과 아미타부처님을 관하는 일상관日想觀, 수상관水想觀, 진신관眞身觀, 관음관觀音觀 등의 13가지 관법을 설해주셨다. 그리고 위제희 부인의 요청에 따라 미래세의 말법중생들이 칭명염불을 통하여 다음 생에 정토에 태어나게 되는 상배上輩, 중배中輩, 하배下輩의 3가지 왕생법을 일러주셨다. 이 3가지 중 맨 마지막 방법은 죄업이 많은 중생이라도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면 왕생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법시대에는 부처님 명호를 널리 유통하도록 부촉하였다.

- 《관무량수경》

 

만약 내가 부처를 이룰 때에 시방의 중생들이 지극한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나의 국토에 왕생하고자하여 나의 이름을 열 번을 부르고도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결단코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 《무량수경》 제18원

 

만약 중생이 지극히 염불하여 삼매를 얻으면 현생 혹은 내생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정토에 왕생한다.

- 《능엄경》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일행삼매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한가한 곳에 처해 모든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하나의 모양도 취하지 말고 마음을 한 부처님께 몰입하여 오로지 명호를 외우며, 부처님이 계신 곳을 따라 단정한 몸으로 바르게 향하여 능히 부처님을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이 생각하는 가운데 능히 과거와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한 부처님을 염하는 공덕이 무량하고 끝이 없기 때문이다.

- 《문수반야경》 하권

 

다겁으로 많은 죄를 범한 범부중생이라도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길이 칭명염불이다.

- 《관무량수경》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 등이 아미타불에 대한 말을 듣고 그 명호를 굳게 지니어[執持] 혹은 1일, 혹은 2일, 내지 7일 동안 산란하지 않고 일심으로 하면, 임종 시에 아미타불과 여러 성중들이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난다. 이 사람은 목숨이 마칠 때에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한다.

- 《아미타경》

 

한 번 하는 염불이 80억 겁 동안 생사를 헤매는 죄업을 소멸하느니라.

- 《관무량수경》

 

가부좌하여 일심으로 마음을 집중하여 서쪽 하늘에 해가 지는 모습을 관하라. 일체 잡념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오로지 서쪽 하늘의 태양에 두되, 그 태양이 서쪽 하늘 끝에 매달아 놓은 붉은 북과 같은 모습으로 보일 때까지 줄기차게 관하라. 그 다음 태양이 완전히 지게 되는 과정을 바라보라. 이제 태양이 완전히 지게 되면 이제 눈을 감고 감거나 뜨거나 상관없이 붉은 태양이 마음 속에 뚜렷이 걸려 있는 모습을 일념으로 관하라.

-  《관무량수경》

 

연화장 바다 건너

극락세계 들어가니

칠보 금 땅에 칠보그물 둘렀어라.

 

십육관경 하신 말씀 일몰관이 제일이라

서산에 지는 해를 눈 뜨거나 눈 감거나

눈앞에 걸어 두고 아미타불 대성호를

주야 없이 많이 외라.

 

극락세계 장엄 보소

황금이 땅이 되고 칠보 못 넓은 연못

들리는 소리마다 염불 설법뿐이로다.

- 나옹 혜근 스님이 관상염불에 대해서 노래한 시

 

유심불토唯心佛土는 마음을 깨달아야 비로소 날 수 있는 곳이다.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따로 있는 바가 없고 오직 자심自心에 의지한다. 이 마음을 알면 바야흐로 유심정토唯心淨土에 나지만, 경계에 집착하면 반연을 따라 경계 가운데에 떨어지게 된다.

- 《만선동귀집》

 

이 마음을 밝힌 이를 부처라 하고 이 마음을 설명한 것을 교敎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부처의 일대 장교도 모두 사람들의 성품을 밝혀내기 위한 방편일 따름이니, 방편은 많은 것 같으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즉 유심정토요, 자성미타다.

- 태고 보우 선사

 

마음이 청정한 것은 이 불토佛土가 청정한 것이요, 내 본성이 나타나는 것을 불신佛身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 해석이다. 또 아미타불이라는 깨끗하고 묘한 법신은 모든 중생의 마음에 두루 있는 까닭에, 이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셋은 차별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니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다.

- 《태고화상어록》 상권

 

선禪도 있고 정토淨土도 있는 경우는 선과 정토를 쌍수雙修하는 것이며, 이것은 뿔 달린 호랑이와 같아서 강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현세에는 사람들의 스승이 되고 내세에는 불조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이들은 불법을 깊이 통달하였기 때문에 인천人天의 스승이 될 수 있다.

- 《정토지귀집》 상권

 

적문迹門에서는 진실로 극락세계에 있는 아미타불이 48대원을 두니, 누구나 열 번만 염불하는 이는 그 원의 힘으로 연꽃 태 속에 왕생하여 바로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삼세의 모든 부처가 다 같이 말했고 시방세계의 보살들도 모두 그곳에 왕생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물며 고금에 극락세계에 왕생한 사람들의 행적이 분명하게 전해오고 있으니, 바라건대 공부하는 이들은 삼가 그릇 알지 말고 힘쓰고 힘쓸지어다.

- 《선가귀감》

 

또 마명 보살이나 용수 보살이 다 조사 스님이지만 분명히 말해서 왕생하는 길을 간절히 권했거늘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왕생의 길을 닦지 않을 것인가.

- 《선가귀감

 

염念이란 각 사람마다 일으키는 현재의 한 생각을 말하고, 불佛이란 사람마다 깨달은 참성품이다. 지금 한 생각으로 불성을 깨달아 간다면, 이는 곧 근기가 수승한 사람의 염불로서, 부처와 하나임을 확인하는 것이고, 본래부처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수행이다.

- 《대지도론》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할 때 이 마음이 바로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를 갖춘 원만 덕상德相이니라.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

- 《관무량수경》

 

아미타불의 이름을 마음속에 두어 언제나 잊지 않고, 생각 생각에 틈이 없도록 간절히 참구하고 간절히 참구하십시오. 그리하여 생각과 뜻이 다하거든 '염하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관찰하십시오. 이렇게 자세히 참구하고 또 참구하여, 이 마음이 홀연히 끊어지면, 자상미타가 앞에 우뚝 나타날 것이니 힘쓰고 힘쓰십시오.

- 《태고화상어록》

 

옷을 입고 밥을 먹거나, 말하고 서로 문답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나, 어디서나 항상 아미타불을 간절히 생각하시오. 끊이지 않고 생각하며 쉬지 않고 기억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경지에 이르면 나[나옹]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또 억울하게 육도에 헤매는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이오. 간절히 부탁하오. 게송을 들어 보시오.

아미타부처님 어느곳에 계신가!

[阿彌陀佛在何方]

간절히 마음에 새겨 잊지 말라.

[着得心頭切莫忘]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마음이 다한 곳에 이르면

[念到念窮無念處]

이 몸에 항상 자금색 광명이 빛나리라.

[六門常放紫金光]

- 《나옹화상어록》 <答妹氏書>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24시 행주좌와 가운데에서 혀를 움직이지 말고 또한 마음을 어둡게 하지 마십시오. 이때 '염불하는 이는 누구인가'를 때때로 점검하여 스스로 반조返照하여 보십시오. 이 몸은 헛도ㅚ고 임시로 빌린 것이라 오래지 않아 죽고 결국은 흩어집니다. 이때 '염불하는 자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이와 같이 공력을 사용하여 날이 가고 달이 깊어지면, 자연히 색신色身을 여의기 전에 서방에 이르러 아미타불을 친견할 것입니다.

- 《몽산화상법어록》

 

만약 상공께서 진실로 하시려면 다만 바로 본성이 아미타불인 줄을 염하여서 온 종일 모든 행위에서 아미타불의 명호를 내어 마음속과 눈앞에 두어서 '심心' '안眼' '불명호佛名號'가 한 덩어리가 되어 마음이 한결같이 이어지고 생각 생각이 어둡지 않고 밝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이 생각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은밀히 돌이켜보십시오. 이렇게 오래오래 계속하면 어느 사이에 마음의 생각이 끊어지고 아미타불의 참몸이 뚜렷이 앞에 나타나리다. 이때를 당하면 비로소 '옛 부터 움직이지 않는 것을 부처라 한다[舊來不動名爲佛]'라고 한 말씀을 믿게 될 것입니다.

- 《태고화상어록》 상권

 

보살은 이와 같이 32상 80종호로써 부처님의 몸을 염하고 나서 이제 마땅히 부처님의 모든 공덕의 법을 염해야 한다. 또 마땅히 40불공법不共法으로써 부처님을 염하라.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다만 육신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중략)…모든 부처님은 육신이 아니고 법신이기 때문이다.

- 《십주비바사론》 <사십불공법품> 제22

 

이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먼저 색신불을 염하고 이어서 법신불을 염한다. 왜냐하면 처음 발심한 보살은 마땅히 32상 80종호로써 부처님을 염하여 점점 깊이 들어가 중세력中勢力을 얻고 난 후 마땅히 법신염불을 하라. 그렇게 하면 마음이 점점 깊이 들어가 상세력上勢力을 얻게 된다. 그리고 난 후 마땅히 실상염불로써 탐하거나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 《십주비바사론》 <조염불삼매품助念佛三昧品> 제25

 

색신에 집착하지 않고 법신에도 집착하지 않아 능히 일체법을 알아서 영원히 고요함을 허공과 같이 해야 한다. 이 보살은 상세력上勢力을 얻어 색신불이나 법신불에도 탐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법空法을 믿고 바라기 때문에 모든 법이 허공과 같은 줄 알기 때문이다. 허공이라고 하는 것은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 《십주비바사론》

 

진불眞佛을 염한다고 하는 것은 색色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상相으로써 하는 것도 아니며, 생生으로써 하는 것도 아니며, 성性을써 하는 것도 아니다. …(중략)… 부처님의 모든 법을 사용하지 않고 여실히 염불하는 것이 무량하고 불가사의하다. 수행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며 아我와 아소我所가 없으며 …(중략)… 생기는 모습도 없다. 법성法性을 섭수하여 안색眼色이 허공의 도를 초월한 이와 같은 상相을 이름하여 진염불眞念佛이라 한다.

- 《십주비바사론》

 

저 모든 중생들이 허공 가운데서 나는 소리를 듣고 나서 합장하고 사바세계를 향하여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여러 가지 꽃과 향, 영락, 당번幢幡, 몸을 장엄하는 장신구, 보물을 가지고 모두 함께 멀리 사바세계에 뿌렸다. 뿌려진 모든 물건은 시방세계로부터 온 것으로 마치 구름이 모이듯 하였다.

- 《법화경》 <여래신력품>

 

조그마한 선근 복덕으로는 저 국토에 태어날 수가 없느니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명호를 지니어 혹은 하루, 혹은 이틀, 혹은 사흘, 혹은 나흘, 혹은 닷새, 혹은 엿새, 혹은 이레 동안 일심으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임종 시에 아미타불이 모든 성중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나시느니라.

- 《아미타경》

 

내가 내세에 위없는 보리를 완성하였을 때 만약 온갖 병과 괴로움으로 시달리고 그 몸이 열병과 학질과 벌레와 허깨비와 기시귀(起屍鬼 : 죽은 사람의 시신에 붙은 귀신)의 괴롭힘을 받고 해를 받는 중생이 있어 지극한 마음으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그 염불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 병과 괴로움이 다 없어지고 끝내는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게 하리라.

-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모든 고뇌를 받을 때에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을 듣고 다 해탈을 얻게 하느니라.

바다에서 흑풍黑風이 불어 배가 표류하여 멀리 나찰귀의 나라에 떨어지게 되었을지라도, 만일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이 모든 사람들이 다 나찰의 환난을 벗어나게 되리라. 이 인연으로써 이름을 관세음이라 하느니라.

- 《법화경》 <보문품>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이 보살의 명호를 듣고서 혹은 찬탄하고 혹은 우러러 예배하며, 혹은 명호를 부르고 혹은 공양을 올리고 혹은 그 형상을 그리고 조성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백 번을 거듭 삼십삼천에 태어날 것이며 길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 《지장보살본원경》

 

만약 미래세에 비천한 모든 사람들, 즉 노비와 자유롭지 못한 여러 사람들이 숙업을 깨달아 참회하려고 한다면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의 형상에 우러러 절하고, 또는 7일 동안 보살의 이름을 염하여 만 번을 채워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하면 그들은 지은 업보가 다한 다음, 천만 생 동안 항상 존귀하게 태어나 다시는 삼악도의 고통을 겪지 않으리라.

- 《지장보살본원경》

 

정토예경

 

향을 사르면서 합장하고 이르기를

 

향로에 향을 사르니

법계에 향기가 진동

부처님 회상에 퍼지어

가는 곳마다 상서구름

저의 뜻 간절하오니

부처님 강림하옵소서.

 

지심귀명례 시방법계 상주삼보

至心歸命禮 十方法界 常住三寶

 

무릎 꿇고 합장하여 이르기를

 

빛나신 얼굴 우뚝하시고

위엄과 신통 그지없으니

이처럼 밝고 빛나는 광명

뉘라서 감히 따르오리까.

햇빛과 달빛 여의주의 빛

맑은 진주 빛 눈부시지만

여기에 온통 가리워져서

검은 먹덩이 되고 맙니다.

여래의 얼굴 뛰어나시사

이 세상에는 짝할 이 없고

바르게 깨달은 이의 크신 소리

시방세계에 두루 들리네.

청정한 계율, 다문多聞과 정신

삼매의 큰 힘, 지혜의 밝음

거룩한 위덕 짝할 이 없어

수승한 거동 처음 뵈옵네.

여러 부처님의 많은 그 법을

자세히 보고 깊이 생각해

끝까지 알고 속까지 뚫어

바닥과 가에 두루 비쳤네.

캄캄한 무명, 탐욕과 분심

우리 부처님 다 끊으시니

사자와 같이 영특한 어른

거룩한 도덕 어떠하신가.

크신 도덕과 넓으신 공덕

밝은 지혜는 깊고 묘하여

끝없는 광명, 거룩한 상호

대천세계에 널리 떨치시네.

원컨대 나도 부처님 되어

거룩한 공덕 저 법왕처럼

끝없는 생사 모두 건지고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지니다.

보시를 닦아 뜻을 고루고

계행 지니어 분한 일 참아

멀고 아득한 길 가고 또 가고

이러한 삼매 지혜가 으뜸일세.

나도 맹세코 부처님 되어

이러한 원을 모두 행하고

두려움 많은 중생 위하여

의지할 자리 되어지고저.

저곳에 계신 여러 부처님

백인가, 천인가, 몇 억만인가

그 수효 이루 다 세일 수 없어

항하의 모래보다 많을지라도

저렇듯 많은 부처님들을

받들어 섬겨 공양하여도

보리의 도를 굳게 구하여

퇴전치 않은 것만 같지 못하리.

항하의 모래 수효와 같이

많고도 많은 부처님 세계

그보다 더 많아 셀 수가 없는

그처럼 많은 세계 국토를

부처님 광명 널리 비치어

모든 국토에 두루하거늘

이러한 정진과 또 신통을

무슨 지혜로 세어볼 것인가.

만약에 내가 부처님 되면

그 국토 장엄 으뜸가게 하리.

중생들은 모두 훌륭하게 되고

도량은 가장 뛰어나게 되리.

이 나라 땅은 그지없이 고요해

세상에 다시 짝이 없거늘

온갖 중생들 가엾이 여겨

내가 마땅히 제도하리라.

 

지심귀명례 본사 석가모니불

至心歸命禮 本師 釋迦牟尼佛

지심귀명례 동방 아촉불

至心歸命禮 東方 阿閦佛

지심귀명례 남방 보만불

至心歸命禮 南方 普滿佛

지심귀명례 서방 무량수불

至心歸命禮 西方 無量壽佛

지심귀명례 북방 난승불

至心歸命禮 北方 難勝佛

지심귀명례 동남방 치지불

至心歸命禮 東南方 治地佛

지심귀명례 서남방 나라연불

至心歸命禮 西南方 那羅延佛

지심귀명례 서북방 월광면불

至心歸命禮 西北方 月光面佛

지심귀명례 동북방 적제근불

至心歸命禮 東北方 寂諸根佛

지심귀명례 하방 실행불

至心歸命禮 下方 實行佛

지심귀명례 상방 무량승불

至心歸命禮 上方 無量勝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무량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無量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무변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無邊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무애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無礙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무대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無對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염왕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炎王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청정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淸淨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환희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歡喜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지혜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智慧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부단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不斷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난사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難思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무칭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無稱光佛

지심귀명례 서방극락세계 초일월광불

至心歸命禮 西方極樂世界 超日月光佛

지심귀명례 악취무명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惡趣無名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무타악도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無墮惡道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동진금색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同眞金色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형모무차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形貌無差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성취숙명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成就宿命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생획천안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生獲天眼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생획천이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生獲天耳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보인심행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普認心行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신족초월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神足超越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정무아상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淨無我相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결정정각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決定正覺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광명보조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光明普照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수량무궁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壽量無窮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성문무수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聲聞無數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중생장수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衆生長壽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개획선명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皆獲善名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제불칭찬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諸佛稱讚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십념왕생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十念往生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임종현전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臨終現前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회향개생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廻向皆生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구족묘상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具足妙相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함계보처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咸階補處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보공제불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普供諸佛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공구여의 사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供具如意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선인본지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善人本智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나라연력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那羅延力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장엄무량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莊嚴無量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시방세계에서 오는 중생들

마음 즐겁고 청정하여서

이 나라에 와서 나게 되면

즐겁고 또한 편안하리라.

원컨대 부처님 굽어 살피사

저의 이 뜻을 증명하소서.

저 국토에서 원력 세워

하려는 일들을 힘써 하리라.

시방세계에 계신 부처님들

밝으신 지혜 걸림이 없으시니

저의 마음과 저의 수행을

부처님들께서 살펴 주옵소서.

이 몸이 만일 어떻게 하다

고난의 경계에 들어간다 한들

제가 행하는 이 정신을

참지 못하고 후회하리까.

내가 세운 이 원은 세상에 없는 일

위없는 바른 길에 가고야 말리.

이 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언제라도 부처님 안 되렵니다.

 

한량없는 오랜 겁 지나가면서

내가 만일 큰 시주되지 못하여

가난뱅이 고생을 제도 못하면

언제라도 부처는 안 되렵니다.

내가 만일 이 다음 부처가 되어

그 이름 온 세계에 떨칠 때에

못 들은 한사람이 있다면은

언제라도 부처는 안 되럽니다.

욕심 없고 바른 마음 굳게 지니고

청정한 지혜로 도를 닦으며

위없는 어른 되는 길을 찾아서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 되리.

신통으로 밝고 큰 광명을 놓아

끝없는 여러 세계 두루 비추어

세 가지 어두운 때 녹여버리고

여러 가지 액난을 건져지이다.

그네들의 지혜 눈 열어 밝히고

앞 못 보는 장님들 눈을 띄우며

여러 가지 나쁜 길 막아 버리고

좋은 세상 가는 길 활짝 틔우리.

지혜와 자비 충만하게 닦아

거룩한 빛 온 세상에 널리 비치니

해와 달의 밝은 빛 무색해지고

하늘 나라 광명도 숨어 버리네.

중생들을 위하여 교법을 열고

공덕 보배 골고루 보시할 때에

언제나 맑은 대중 모인 곳에서

법문한 그 말씀 사자의 소리.

온 세계 부처님께 공양을 하여

여러 가지 공덕을 두루 갖추고

그 소원 그 지혜를 가득 이루어

삼계에 거룩한 부처님 되리.

걸림없는 부처님의 지혜와 같이

안 비치는 데 없이 사무치리니

바라건대 내 공덕, 복과 지혜가

가장 높은 부처님과 같아지이다.

만약 이내 소원 이루어지려면

삼천대천세계가 다 진동하고

허공 중에 가득한 천인들도

아름다운 꽃잎을 뿌려 주리라.


지심귀명례 보수실지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寶樹悉知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획승변재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獲勝辯才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대변무변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大辯無邊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국정보조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國淨普照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무량승향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無量勝香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몽광안락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蒙光安樂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성취총지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成就總持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영리여신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永離女身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문명지과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聞名至果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인천치경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人天致敬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묘복응념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妙服應念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수락무염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受樂無染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수현불찰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樹現佛刹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제근구족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諸根具足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현증등지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現證等持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문생호귀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聞生豪貴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구족덕본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具足德本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주정견불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住定見佛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수욕문법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隨欲聞法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불퇴보리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不退菩提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현획인지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現獲忍地 西方極樂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계수천인소공경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稽首天人所恭敬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재피미묘안락국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在彼微妙安樂國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무량불자중위요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無量佛子衆圍遶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금색신정여산와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金色身淨如山王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사마타행여상보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奢摩他行如象步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양목정약청연화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兩目淨若靑蓮華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면선원정여만월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面善圓淨如滿月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위광유여백천일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威光猶如百千日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성약천고구시라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聲若天鼓俱翅羅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종종묘상보장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種種妙相寶莊嚴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능복외도마교만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能伏外道魔憍慢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무비무구광청정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無比無垢廣淸淨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중덕교결여허공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衆德皎潔如虛空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소작리익득자재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所作利益得自在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무량제마상찬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無量諸魔常讚歎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금저보간지생화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金低寶澗池生華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선근소성묘대좌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善根所成妙臺座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어피좌상여산와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於彼座上如山王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위중설법무명자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爲衆說法無名字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피존불찰무악명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彼尊佛刹無惡名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역무녀인악도포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亦無女人惡道怖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중선무변여해수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衆善無邊如海水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성불이래역십겁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成佛已來歷十劫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수명방장무유량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壽命方將無有量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지혜광명불가량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智慧光明不加量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유량제상몽광효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有量諸相蒙光曉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해탈광율무한제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解脫廣輪無限齊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몽광촉자이유무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蒙光觸者離有無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광운무애여허공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光雲無慢如虛空 阿彌陀佛


동방에 널려 있는 여러 불국토

항하의 모래처럼 셀 수가 없네.

이렇듯 많은 국토 보살 대중이

무량수 부처님을 가서 뵈옵다.

남방 서방, 북방 네 간방과

상방 하방에도 다 그렇거든

이같이 많은 국토 보살 대중이

무량수 부처님을 가서 뵈옵다.

시방 세계 그와 같이 많은 보살들

아름다운 하늘 꽃과 향과 보석과

한량없는 하늘 옷을 가지고 와서

무량수 부처님께 공양하였네.

모두들 천상 음악 연주할 때에

밝고 곱고 화평한 노래를 불러

가장 높은 부처님 찬탄하면서

무량수 부처님께 공양하였네.

신통과 바른 지혜 끝까지 알아

저같이 깊은 법문 드나들면서

공덕이 창고에 가득 차지고

미묘한 밝은 지혜 짝할 이 없네.

지혜의 해 이 세상을 환히 비추어

생사의 구름이 활짝 걷히니

중생들 조심조심 세 번을 돌아

위없는 부처님께 예배하느니라.

청정하고 장엄한 저 국토 보니

생각도 말도 못할 기묘한 세계

보는 사람 위없는 보리심 내어

원컨대 우리 국토 그와 같아지라고.

그 때에 무량수 부처님께서

반가운 얼굴로 기뻐 웃으시니

입에서 눈부신 광명이 나와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시었네.

그 광명 되돌려 몸을 둘러싸

세 번 돌고 두상(頭上)으로 들어가 보니

온 세계 천상인간 많은 대중들

기꺼이 뛰고 놀며 즐거워하네.

그때에 관음보살 옷깃 여미고

머리를 숙이며 여쭙는 말씀

부처님 무슨 일로 웃으시온지

원컨대 그 까닭을 일러 주소서.

우레처럼 우렁찬 맑은 음성으로

여덟 가지 미묘한 소리를 내어

내 이제 보살들께 수기(授記) 주리니

이 말을 똑똑히 명심하여 들으라.

시방 세계에서 모인 저 보살들

저마다 지닌 소원 내가 아노니

청정한 좋은 국토 구해 가지고

반드시 수기 받아 성불하리라.

온갖 법 꿈과 같고 요술과 같고

메아리 같은 줄을 밝게 깨달아

여러 가지 큰 원을 이루게 되면

이러한 좋은 국토 얻게 되리라.

법이 번개나 그림자 같은 줄 알고

끝까지 보살도를 닦아 행하여

여러 가지 공덕을 모두 갖추면

반드시 수기 받아 성불하리라.

법의 성품은 모두 공(空)한 것이고

나조차 없는 줄을 깊이 깨달아

청정한 불국토를 힘써 구하면

반드시 이런 국토 얻게 되리라.


지심귀명례 일체유애몽광택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一切有礙蒙光澤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청정광명무유대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淸淨光明無有對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우사광자업계제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遇斯光者業繫除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불광조요최제일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佛光照耀最第一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삼도흑암몽광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三途黑闇蒙光啓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도광명랑색초절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道光明朗色超絶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일몽광조좌구제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一蒙光照罪垢除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자광하피시안락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慈光遐被施安樂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광소지처득법회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光所至處得法會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불광능파무명암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佛光能破無明闇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광명밀체시보조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光明一切時普照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기광제불막능측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其光除佛莫能測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시방제불탄왕생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十方諸佛歎往生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신광이상불가명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神光離相不可名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인광성불광혁연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因光成佛光赫然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광명조요과일월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光明照耀過日月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석가불탄상부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釋迦佛歎尙不盡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세계광요과일월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世界光耀妙殊絶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적열연안무사시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寂悅宴安無四時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무유산천능곡조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無有山川陵谷阻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도수고사백만리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道樹高四百萬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칠보수림주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七寶樹林周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풍취산화만불토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風吹散華滿佛土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중보연화영세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衆寶蓮華盈世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일일화백천억엽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一一華百千億葉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보위시방설묘법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普爲十方說妙法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팔공덕수만지중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八功德水滿池中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황금지자백은사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黃金池者白銀沙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육방여래증불허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六方如來證不虛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제불대비심무이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諸佛大悲心無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방편화문등무수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方便化門等無殊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사피장엄무승토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捨彼莊嚴無勝土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비심념념연삼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悲心念念緣三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법림즉시미타국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法林卽是彌陀國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소요쾌락불상침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逍遙快樂不相侵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여래교법원무이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如來敎法元無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원폐삼도절육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願閉三塗絶六道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개현무생정토문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開顯無生淨土門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서도미타안양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誓到彌陀安養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환래예국도인천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還來穢國度人天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여래별지서방국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如來別指西方國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종시초과십만억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從是超過十萬億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칠보장엄최위승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七寶莊嚴最爲勝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성중인천수명장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聖衆人天壽命長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불호미타상설법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佛號彌陀常說法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극락중생장자망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極樂衆生障自亡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주라보망백천중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珠羅寶網百千重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극락세계광청정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極樂世界廣淸淨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지상장엄난가량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地上莊嚴難可量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팔공향지유편만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八功香池流徧滿 阿彌陀佛

 


부처님 보살들께 하시는 말씀

극락세계 무량수불 가서 뵈오라.

법문 듣고 기꺼이 받아 행하면

청정한 저 국토를 빨리 얻으리.

청정한 그 나라에 가기만 하면

어느덧 신통 묘용(妙用) 두루 갖추고

무량수 부처님께 수기를 받아

위없는 바른 길을 이룰 것이다.

저 부처님 처음에 세우신 원력

그 이름 듣고서 가서 나려면

누구든지 그 나라에 왕생을 하여

물러나지 않는 데 앉게 되리라.

그러므로 보살들아, 지극한 원을 세워

내 국토도 그 세계와 같아지라고

나도 많은 중생 구제하겠노라고

그러면 그 이름이 시방에 떨치리라.

그 많은 부처님을 섬길 때에는

이 몸으로 여러 세계 두루 다니며

정성껏 기쁨으로 공양드리고

거듭 극락세계에 돌아가리라.

전생에 착한 공덕 못 쌓은 이는

이 경전의 말씀을 들을 길 없고

온갖 계행 청정하게 닦은 이라야

부처님 바른 법문 들을 수 있네.

일직이 부처님을 뵈온 사람은

의심을 않고 이런 일 믿으리니

겸손하고 조심스레 듣고 행하여

즐거이 뛰놀면서 기뻐하리라.

교만하고 게으름에 빠진 사람은

이 법문을 믿기가 매우 어렵지마는

전생에 부처님을 뵈온 사람은

이와 같은 가르침을 즐겨 들으리.

성문은 물론이고 보살이라도

부처님의 거룩한 마음 알 길 없나니

이 세상에 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이

어떻게 남에게 바른 길 가리키리.

여래님의 크신 지혜 바다는

깊고도 넓어 그 끝이 없어

성문이나 보살로는 헤아릴 길이 없고

부처님만이 그 덕을 알고 있네.

이 세상 사람으로 누구나 없이

원만하게 모두 다 도를 이루어

청정한 지혜로 공(空)임을 알고

억겁 동안에 부처님의 지혜 생각하고

있는 힘을 기울여 그것을 해설하고

목숨을 다하여도 알 수 없나니

부처님의 지혜는 한량이 없어

이와 같이 끝없이 청정하니라.

이 목숨 오래 살기 어렵거니와

부처님 만나 뵙긴 더욱 어렵고

믿음과 지혜 갖긴 더욱 더 어렵나니

좋은 법 들었을 때 힘써 닦아라.

법문 듣고 마땅히 잊지 말 것이

뵈옵고 공경하면 큰 기쁨 얻네.

그를 일러 우리들의 선지식이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발심하여라.

온 세계에 불길이 가득할지라도

뚫고 가서 그 법문을 들을 것이니

다음 세상 반드시 부처가 되어

생사에 허덕이는 중생들 구하리라.

 

지심귀명례 저포금사조이광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低布金沙照異光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사변계도비일색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四邊階道非一色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안상중루백만행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岸上重樓百萬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진주마노상영식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眞珠碼碯相映飾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사종연화개즉향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四種蓮華開卽香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천악음성상변만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天樂音聲常徧滿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황금위지간기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黃金爲地間奇珍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주야육시화자산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晝夜六時華自散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법음상설자연문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法音常說自然聞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피국중생갱무사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彼國衆生更無事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의극성화예시방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衣襋盛華詣十方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극락무위열반계 아미타불

至心歸命禮 極樂無爲涅槃界 阿彌陀佛

지심귀명례 진시방삼세일체제불

至心歸命禮 盡十方三世一切諸佛

지심귀명례 무량수경

至心歸命禮 無量壽經

지심귀명례 관무량수경

至心歸命禮 觀無量壽經

지심귀명례 아미타경

至心歸命禮 阿彌陀經

지심귀명례 진시방삼세일체존법

至心歸命禮 盡十方三世一切尊法

지심귀명례 관세음보살

至心歸命禮 觀世音菩薩

지심귀명례 대세지보살

至心歸命禮 大勢至菩薩

지심귀명례 약왕보살

至心歸命禮 藥王菩薩

지심귀명례 약상보살

至心歸命禮 藥上菩薩

지심귀명례 보현보살

至心歸命禮 普賢菩薩

지심귀명례 법자재보살

至心歸命禮 法自在菩薩

지심귀명례 사자후보살

至心歸命禮 獅子吼菩薩

지심귀명례 다라니보살

至心歸命禮 多羅尼菩薩

지심귀명례 허공장보살

至心歸命禮 虛空藏菩薩

지심귀명례 불장보살

至心歸命禮 佛藏菩薩

지심귀명례 보장보살

至心歸命禮 菩藏菩薩

지심귀명례 금장보살

至心歸命禮 金藏菩薩

지심귀명례 금강장보살

至心歸命禮 金剛藏菩薩

지심귀명례 산해혜보살

至心歸命禮 山海慧菩薩

지심귀명례 광명왕보살

至心歸命禮 光明王菩薩

지심귀명례 화엄왕보살

至心歸命禮 華嚴王菩薩

지심귀명례 중보왕보살

至心歸命禮 衆寶王菩薩

지심귀명례 월광왕보살

至心歸命禮 月光王菩薩

지심귀명례 일조왕보살

至心歸命禮 日照王菩薩

지심귀명례 삼매왕보살

至心歸命禮 三昧王菩薩

지심귀명례 정자재왕보살

至心歸命禮 定自在王菩薩

지심귀명례 대자재왕보살

至心歸命禮 大自在王菩薩

지심귀명례 백상왕보살

至心歸命禮 白象王菩薩

지심귀명례 대위덕보살

至心歸命禮 大威德菩薩

지심귀명례 무변신보살

至心歸命禮 無邊身菩薩

지심귀명례 문수보살

至心歸命禮 文殊菩薩

지심귀명례 미륵보살

至心歸命禮 彌勒菩薩

지심귀명례 용수보살

至心歸命禮 龍樹菩薩

지심귀명례 마명보살

至心歸命禮 馬鳴菩薩

지심귀명례 천친보살

至心歸命禮 天親菩薩

지심귀명례 진시방삼세일체보살

至心歸命禮 盡十方三世一切菩薩

지심귀명례 가섭존자

至心歸命禮 迦葉尊者

지심귀명례 아난다존자

至心歸命禮 阿難陀尊者

지심귀명례 사리불존자

至心歸命禮 舍利弗尊者

지심귀명례 목건련존자

至心歸命禮 目犍連尊者

지심귀명례 가전연존자

至心歸命禮 迦旃延尊者

지심귀명례 빈두로파라타존자

至心歸命禮 賓頭盧頗羅墮尊者

지심귀명례 진시방삼세일체현성승

至心歸命禮 盡十方三世一切賢聖僧


바라노니 서방 정토에 나되

상품 연꽃을 부모로 삼고

부처님 뵙고 무생법인 이루어

불퇴전 보살과 도반되어지이다.

 

서방원문西方願文

 

연지蓮池 대사

 

극락세계 계시사 중생을 이끌어주시는 아미타불께 귀의하옵고 그 세계에 가서 나기를 발원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 살펴주옵소서.

저희들이 네 가지 은혜 입은 이와 삼계 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위없는 도를 이루려는 정성으로 아미타불의 거룩하신 명호를 불러 극락세계에 왕생하나이다.

업장은 두터운데 복과 지혜 옅사와 때 묻은 마음 물들기 쉽고 깨끗한 공덕 이루기 어려워 이제 부처님 앞에 지극한 정성으로 예배하고 참회하나이다.

저희들이 아득한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한량없이 지은 죄와 무수히 맺은 원결 모두 다 풀어버리고, 이제 서원을 세워 나쁜 행 멀리하여 다시 짓지 아니하고, 보살행 항상 닦아 물러나지 아니하며, 정각을 이루어서 일체중생 제도하려 하옵나이다.

아미타부처님이시여, 대자대비하신 원력으로 저를 증명하시고 가엾이 여기사 가피를 내리소서. 삼매에서나 꿈 속에서나 거룩한 상호를 빕게 하시고, 아미타불의 장엄하신 국토에 다니면서 감로로 뿌려주시고 광명으로 비춰주시며 손으로 쓰다듬어주시고 가사로 덮어주심 입사와, 업장은 소멸되고 선근은 자라나며 번뇌는 없어지고 무명은 깨어져 원각의 묘한 마음 뚜렷하게 열리옵고 극락세계가 항상 앞에 나타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목숨 마칠 때에 갈 시간 미리 알아 여러 가지 병고 액란 이 몸에서 사라지고, 탐진치 온갖 번뇌 씻은 듯이 없어져 육근이 화락하고 한 생각 분명하여 이 몸을 버리옵기 정定에 들 듯하여지이다.

아미타불께서 관음, 세지 두 보살과 성중들을 데리시고 광명 놓아 맞으시며 손들어 이끄시와, 높고 넓은 누각과 아름다운 깃발과 맑은 향기 천상음악 거룩한 서방정토 눈앞에 나타나면, 보는 이와 듣는 이들 기쁘고 감격하여 위없는 보리심을 내게 하여지이다.

그때 이내 몸도 금강대에 올라앉아 부처님 뒤를 따라 극락정토 나아가서 칠보로 된 연못 속에 상품상생 하온 뒤에 불보살님 뵈옵거든, 미묘한 법문 듣고 무생법인 증득하여 부처님 섬기옵소 수기를 친히 받아 삼신三身 사지四智 오안五眼 육통六通 백천 다라니와 온갖 공덕을 원만하게 가추어지이다.

그런 다음 극락세계를 떠나지 아니하고 사바세계에 다시 돌아와 한량없는 분신分身으로 시방세계 다니면서 여러 가지 신통력과 가지가지 방편으로 무량중생 제도하여 삼독번뇌 여의옵고 청정한 본심으로 극락세계 함께 가서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들게 하여지이다.

세계가 끝이 없고 중생이 끝이 없고 번뇌업장 또한 끝이 없사오니 이내 서원도 끝이 없나이다.

저희들이 지금 예배하고 발원하여 닦아 지닌 공덕을 온갖 중생에게 두루 베풀어 네 가지 은혜 고루고루 갚사옵고 삼계 중생 모두 제도하여 다 같이 일체종지 이루어지게 하여지이다.

 

정념게正念偈

 

저희들 제자와 법계 중생들이 죄업이 지중하여 육도에 윤회하매 그 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나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제 선지식을 만나 아미타불의 명호와 공덕을 듣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왕생하기를 원하옵나니, 바라건대 자비를 드리우사 가엾이 여겨 거두어주옵소서.

어리석은 저는 부처님 몸의 상호와 광명을 알지 못하오니 원하옵건대 나투시어 저로 하여금 친견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관세음과 대세지, 여러 보살들을 뵙게 하시옵고, 서방정토의 청정한 장엄과 광명과 미묘한 형상들을 역력히 보게 하여주옵소서.

 

찬불게讚佛偈

 

아미타부처님의 몸은 황금빛

그 몸매와 그 광명 짝할 이 없어

미간 백호 도는 모양 다섯 수미산

맑은 눈 깨끗하기 네 바다 같네.

광명 속 화신불 한량없고

화신 보살 대중도 그지 없으사

사십팔 큰 원으로 중생 건지니

구품으로 모두 다 저 언덕 가네.

나무서방 극락세계 대자대비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형편에 따라 백 · 천 · 만 번)

나무관세음보살(세 번)

나무대세지보살(세 번)

나무청정대해중보살(세 번).

 

회향게廻向偈

 

이내 몸 임종 때에 장애가 없고

아미타불 왕림하여 나를 맞으며

관세음은 내 머리로 감로 뿌리고

대세지의 금련대에 발을 얹고서

한 찰나에 이 흐린 세상 떠나고

팔 한 번 펼 동안에 정토에 나서

연꽃이 피는 때에 부처님 뵙고

설법하는 음성을 듣자오리라.

법문 듣고 무생법인 증득한 뒤에

극락세계 안 떠나고 사바에 와서

방편을 잘 알아 중생 건지고

걸림 없는 지혜로 불사 지으리.

부처님 저의 마음 아시오리니

오는 세상 이 소숸 이루어지이다.

시방삼세일체불

제존보살마하살

마하반야바라밀.

 

 

 

posted by 황영찬
2016. 9. 20. 13:56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15   수 · 행 · 입 · 문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2008, 조계종출판사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927

 

224.81

불15ㅈ  v. 2

 

불교수행입문

 

절 수행은 몸을 통해 부질없는 집착들을 하나하나 비워가는 것이다

 

절 수행 후 삶이 바뀌었다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오랜 지병을 고쳤다는 분들이나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는 분들, 절을 하면서 가정이 화목해지고 사회생활이 즐거워졌다는 분들도 많다. 처음 절을 할 때는 너무 힘들지만 그 과정만 넘기면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절 수행이다.

-양현숙/가정주부

 

언제부터인가 나는 주위에서 아픈 도반을 보면 절 수행을 권한다. 내가 절로 인해 살아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심이 아닌 스스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또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다보면 애써 구하지 않아도 복은 오게 된다. 나 자신의 절박함으로 시작한 절과 기도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연스럽게 남을 위한 발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병규/중소기업 대표

 

새벽 4시, 오늘도 혼자 일어나 3000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행은 여건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절. 절망의 바닥에서 고통과 눈물과 참회를 거치며 나를 지탱하게 해준, 끝내는 나 자신을 확연히 바꾼 절, 이제는 온갖 유정 무정들의 성불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리라는 마음으로 절을 한다.

-대영암/초등학교 교사

 

불교 수행은 연기 · 무아를 깨달아 생로병사를 해탈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연기 · 무아로 가는 수행이라면 모두 불교 수행입니다. 그 중에서 절은 남을 공경하고 자기를 비우는 훌륭한 수행법입니다.

절 수행은 몸과 마음을 통해서 진짜 내가 없음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절 수행을 통해서 몸과 마음을 극복하고 하심하는 마음가짐으로 부지런히 수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아의 경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고 이에 따라 몸과 마음의 변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절은 약간의 공간과 시간만 주어지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절 수행은 육체적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동시에 찾아주어 운동이 부족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에게 적합한 수행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    례

 

수행법 입문서의 간행을 맞아 - 교육원장 청화

《절 수행 입문》을 펴내며 - 불학연구소장 현종

 

제1장 절 수행이란 무엇인가

    1. 절 수행의 의미

    2. 절 수행의 특징

    3. 절 수행의 역사와 현황

 

제2장 경전 속에 나타난 절 수행

    1. 절의 의미와 대상

    2. 절의 종류와 방법

    3. 절 수행의 공덕

 

제3장 절은 어떻게 해야 하나

    1. 절하는 마음가짐

    2. 절 수행의 절차

    3. 절하는 장소 및 준비사항

    4. 절하는 법

 

제4장 여러 가지 절 수행법

    1. 절하면서 참회하는 법

    2. 절하면서 화두 드는 법

    3. 절하면서 수를 헤아리는 법

    4. 절하면서 염불하는 법

    5. 절하면서 심신을 관하는 법

    6. 절하면서 사경하는 법

 

제5장 절 수행은 어떤 효과가 있나

    1. 열 가지 뛰어난 공덕

    2. 수행으로서의 효과

    3. 정신적 · 육체적 효과

 

부록

    절 수행 체험기

    예불대참회문

 

《묘종경妙宗經》을 강설하다가, "이 마음이 부처가 된다[是心作佛].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是心是佛]"라는 대목에 이르러서 마음에 크게 계합하였다. 이후로는 《묘종妙宗》을 설법하기 좋아하여 언변과 지혜가 막힘이 없었고, 여러 사람에게 권하여 참회를 닦기를 간절하고 지극하고 용맹스럽게 하여 매일 53 부처님에게 열 두 번씩 예경禮敬하고, 비록 모진 추위와 무더운 더위라도 한 번도 게을리 한 일이 없으니, 승려들이 서참회徐懺悔라 불렀다.

- 최자 찬, <만덕산백련사원묘국사비명> 《동문선》 제117권

 

지금 모든 부처님 · 보살 · 부모 · 아라한 · 벽지불께 예를 올립니다. 모두 최상이고 위 없고 밝음 중에서도 밝음이고 견줄 바 없고 또한 비할 데 없는 분께 예를 올려서…(후략)

- 《삼만다발타라보살경》 <원락품>

 

제가 이제 일체의 부처님의 한 길 여섯 자 몸 법신에게 예배하고 또 불탑에 예배합니다. 태어나신 곳과 득도하신 곳과 법륜을 펴신 곳과 열반하신 곳과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누우신 그 모든 곳에 다 예배합니다.

- 《문수사리문경》 상

 

부처님 법 중에 나이가 어린 비구는 나이 많고 오래 수행한 비구를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

- 《대반열반경》 제6권

 

시가라월이라는 한 장자가 여섯 방향에 예경禮敬하자 부처님께서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시가라월은 단지 아버님의 유훈일뿐 그 이유는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각 방향에 예경하는 의미를 설해주었다. 동방에 예경하는 것은 부모를 위한 절이며, 남방에 예경하는 것은 스승을 위한 절이며, 서방에 예경하는 것은 아내를 위한 절이며, 북방에 예경하는 것은 친척과 친구를 위한 절이며, 땅을 향해 절하는 것은 아랫사람을 위한 절이며, 하늘을 향해 절하는 것은 사문이나 수행자를 위한 절이라고 말씀하셨다.

- 《육방예경六方禮敬》

 

소승참小乘懺은 반드시 대비구大比丘를 부르고 대중스님들에 증명證明을 구하기 위해 오법五法을 갖추어야 하는데, 처음은 편단우견偏袒右肩, 둘은 우슬착지右膝着地, 셋은 합장合掌이고, 넷은 죄명罪名을 설하는 것이고, 다섯은 예족禮足이다. …(중략)… 대승 또한 작법作法이 있으니 …(중략)… 먼저 엄숙하게 도량을 깨끗이 하고, 향을 땅에 뿌리고, 실내에 둥근 단을 지어서 채색하고, 오색번을 걸고, 해안향海岸香을 태우고, 높은 자리를 펼치고 24존상尊像을 청하여…(후략)

- 《원각경약소초》 제12권

 

부처님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예경을 하지 않느니라. 대체로 입으로 '내가 이렇게 경례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다만 입으로 존경한다는 업을 짓는 것이요, 혹 때로 몸을 굽히면서 입으로 인사를 하더라도 이것이 비록 예경이라고는 하나 완전한 것은 못 된다. 우바리야! 나의 법에는 두 가지 경례가 있다. 하나는 오체를 땅에 붙이는 것이요, 둘째는 두 손으로 장딴지를 만지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나 모두 입으로는 '내가 이제 경례합니다'라고 하면 상대방은 '잘 있었느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아니면 모두 법을 어기는 죄가 되느니라."

-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제15권

 

사람의 몸 가운데 가장 것이 머리이니, 다섯 가지 감정이 매인 곳이며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발은 가장 천하니, 더러운 곳을 밟기 때문이며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것으로 가장 천한 것에 절을 한다. 또 상 · 중 · 하의 절이 있으니, 하의 절은 합장하는 것이요, 중의 절은 꿇어앉는 것이며, 상의 절은 머리를 숙여 발에 절하는 것이니 이것이 최상의 공양이다.

-  《대지도론》 제10권

 

예禮를 올리는 데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말로 하는 예요, 둘째는 무릎을 꿇고 머리는 땅에 대지 않는 예이며, 셋째는 머리를 땅에 대는 예이니 이것이 최상의 예배이다. 사람의 몸에는 머리가 맨 위가 되고 발이 맨 아래가 되니 머리로 발을 향해 예배하는 것은 극진히 공경한다는 표시이다.

- 《대지도론》 제100권

 

때가 되자 대중 가운데 있던 수보리 장자가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으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 《금강경》 선현기청분 제2

 

경의를 표하는 의식에는 그 법식에 아홉 가지(단계)가 있으니 첫째로는 소리를 내어 위문慰問하는 것이고, 둘째는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것이고, 셋째는 손을 들어서 높게 맞잡는 것이고, 넷째는 손바닥을 합하여 가지런하게 맞대는 것이다. 다섯째는 무릎을 꿇는 것이고, 여섯째는 길게 엎드리는 것이고, 일곱째는 손과 무릎을 땅에 대는 것이고, 여덟째는 오륜(두 무릎과 두 손과 이마)을 함께 구부리는 것이고, 아홉째가 오체투지 하는 것이다.

- 《대당서역기》 제2권

 

부처님은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화남和南은 입의 말이요, 몸을 굽히면 이것을 심정心淨이라 한다. 비구가 예배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偏袒右肩], 신을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상좌의 발에 대고 예배해야 한다.

- 《법원주림》 제20권

 

지금의 서역 스님들이 예배를 할 때 발을 벗고 무릎을 드러내어 먼저 바닥에 댄 뒤 팔꿈치로 바닥을 누르고 두 손바닥으로 허공을 향해 발을 받드는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  《법원주림》 제20권

 

오륜五輪이란 두 손과 두 무릎, 그리고 머리인데 경(《圓覺經》)에서는 땅에 붙일 때 하나하나에 발원하라고 하니, "나는 이제 부처님 전에 오륜으로 예를 올리니, 오도五道를 끊기 위해서요, 오개五蓋를 여의려는 것이며, 중생이 항상 오신통에 안주하고 오안五眼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원컨대 내가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일 때 모든 중생이 정각도正覺道를 얻고(오른쪽은 수순隨順한다는 의미이므로 정각을 이루고), 원컨대 내가 왼쪽 무릎(왼쪽은 위역違逆을 뜻하므로 사견邪見을 의미한다)을 땅에 붙일 때 모든 중생이 외도外道의 사견邪見을 일으키지 않게 하리라. 원컨대 내가 오른손을 땅에 붙일 때 세존께서 마치 금강좌에 앉으셔서 오른손으로 대지를 가리켜 진동하게 하고 상서로운 감응을 나타내고 대보리를 증득하시는 것처럼 하리라. 원컨대 내가 왼손을 땅에 붙일 때 모든 외도를 사섭법四攝法으로 섭취攝取하여 정도正道에 들게 하리라. 원컨대 내가 머리를 땅에 붙일 때 모든 중생이 교만을 여의고 마음이 모두 무견無見의 정상頂相을 성취하게 하리라."

- 《원각경약소초》 제11권

 

호궤와 장궤는 다 인도의 공경하는 의식이니 괴이할 것은 없다. 이것은 좌우의 무릎을 번갈아 꿇어앉는 것으로, 모두 계청啓請이나 참회하는 의식이다.

혹 두 무릎을 땅에 붙이고 몸을 똑바로 하여 합장해도 된다. 이것은 곧 상대를 우러러보며 찬탄하는 것이다.

- 《법원주림》 제20권

 

스승과 제자는 궤도를 달리하나 돌아가는 곳은 같고, 승속僧俗은 길은 다르나 그 취지는 하나다. 그러므로 형상을 가르치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떳떳한 법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다만 망령되이 아我와 대상[人]에 집착하여 교만의 물결에 떨어지고 업을 따라 떠돌고 있으면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중략)… 그러므로 큰 성인은 자비로 교화하여 유도하니 모든 수행 가운데 요체는 예배하고 참회하며 도를 닦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용수보살의 《십주론十住論》에 "보살에게는 낮과 밤에 각각 삼시三時가 있으니 이 육시六時에 시방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참회하고 권청하며 수희하고 회향하면 아유월지阿惟越地에 이른다"고 하였으니 이에 의해 수행하면 불퇴위不退位를 빨리 이룰 것이다.

- 《법원주림》 제20권

 

요즘 승속僧俗들이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는 것을 들어 보면 비록 몸으로는 따라 예배하나 마음은 바깥 경계를 쫓아 헤맨다. 중도中道에서 벗어나더라도 조금도 반성하고 뉘우침이 없다. …(중략)… 또 어떤 승속들은 예배할 때 큰소리를 주고받으며 급하게 예를 취하면서 몸은 절을 따라 하지 않고 마음은 공경스러움을 생각하지 않는다. 군인들이 점호를 받는 것과 같아서 단지 빈 이름만 기억할 뿐이다. 마치 방아가 오르내리는 것 같아 한갓 수고로움만 더할 뿐 아무런 이익이 없다. …(중략)… 믿음에 의해 잘 들어가 지혜를 낼 수 있는 것인데, 믿음이 이미 행해지지 않거늘 무엇에 의지해 들어갈 수 있는가.

- 《법원주림》 제20권

 

예불의 정신은 예禮를 행하는 참회자와 예禮를 받는 관세음보살의 체성體性이 다 본래 공적空寂하여 중생의 감感함과 성현의 응應함이 도道로써 교류하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경지이다. 나와 참회하는 이 도량은 마치 제석천궁에 걸쳐 있는 인드라망의 한 보주寶珠와 같아 관세음보살이 무수히 나투는 가운데 나의 몸도 또한 관세음보살 전에 나투어 얼굴을 바닥에 대고 받드는[頭面接足] 지극한 마음으로 예를 올리는[至心歸命禮] 것이다.

- 《관음참법주소》

 

내게 항상 다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의무적으로 절을 시킵니다.

"108배 절을 하라!"

참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런 생활을 하려면 날마다 108배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남을 위해 108배 기도하는 정성이 없으면 아무리 불공한다고 해도 매일 108배하는 사람과는 많이 다릅니다.

나도 새벽에 꼭 108배를 합니다.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시작할 때 조건이 나를 위해 절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하옴은 제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에 나길 구함 아니요, 모든 중생이 함께 같이 무상보리 얻어지이다."

이제 발심하여 108배를 하는데 스스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위해 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이 다 성불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중생들과 보리도에 회향합니다.

일체 중생을 위해, 남을 위해 참회하고 기도하면 기도한 공덕이 큽니다. 이것이 모두 일체 중생에게 가라 이것입니다.

그리고도 부족하여 "원합노니 수승하온 이 공덕으로 위 없는 진법계眞法界에 회향하오며" 예불참회한 이 공덕이 모두 남에게로 다 가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혹 남은 것이, 빠진 것이 있어서 나한테로 올까 봐 온갖 것이 무상진법계로, 온 법계로 돌아가고 나한테는 하나도 오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저 인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거쳐 신라 · 고려에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 《성철선사법어집》 '불공하는 법'

 

향로를 손에 들고 한마음 한뜻으로 저 서방을 향하여 오체투지의 예배를 하되, 분명한 목소리로 명호를 부른다. 일심정례 본사석가모니세존 일심정례 서방무량수세존 …(중략)… 일심정례 시방일체보살마하살 일심정례 사리불등성문연각현성승

- 《관음예문》

 

예불대참회문禮佛大懺悔文

 

1. 대자비로 중생들을 어여삐 보셔

    대희대사 베푸시어 제도하시고

    수승하온 지혜덕상 장엄하시니

    저희들이 정성 다해 예배합니다.(1배)

2. 금강상사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 불법승 삼보님께 귀의하옵니다.(1배)

4. 제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하옴은

    제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에 나며

    성문 연각 보살 지위 구함 아니요.

    오직오직 최상층을 의지하옵고

    아뇩다라 보리심을 냄이오이다.

    원합노니 시방세계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무상보리 얻어지이다.(1배)

5. 온 시방 허공세계 일체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 온 시방 허공세계 일체 법보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 온 시방 허공세계 일체 승보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 십호 구족하신 모든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 보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0. 보명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1. 보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2. 다마라발전단향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3. 전단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4. 마니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5. 환희장마니보적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6. 일체세간락견상 대정진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7. 마니당등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8. 혜거조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9. 해덕광명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0. 금강뢰강보산금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1. 대강정진용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2. 대비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3. 자력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4. 자장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5. 전단굴장엄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6. 현선수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7. 선의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8. 광장엄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9. 금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0. 보개조공자재력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1. 허공보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2. 유리장엄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3. 보현색신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4. 부동지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5. 항복중마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6. 재광명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7. 지혜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8. 미륵선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9. 선적월음묘존지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0. 세정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1. 용종상존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2. 일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3. 일월주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4. 혜당승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5. 사자후자재력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6. 묘음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7. 상광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8. 관세등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9. 혜위등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0. 법승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1. 수미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2. 수만나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3. 우담발라화수승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4. 대혜력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5. 아촉비환희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6. 무량음성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7. 재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8. 금해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9. 산해혜자재통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0. 대통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1. 일체법상만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2.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3. 금강불괴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4. 보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5. 용존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6. 정진군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7. 정진희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8. 보화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9. 보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0. 현무우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1. 보월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2. 무구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3. 이구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4. 용시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5. 청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6. 청정시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7. 사류나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8. 수천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9. 견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0. 전단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1. 무량국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2. 광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3. 무우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4. 나라연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5. 공덕화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6. 연화광유희신통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7. 재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8. 덕념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9. 선명칭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0. 홍염제당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1. 선유보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2. 투전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3. 선유보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4. 주잡장엄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5. 보화유보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6. 보련화선주사라수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7. 법계장신아미타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8. 모든 세계 이와 같은 제불세존은

     어느 때나 중생들과 함께하시니

     저희들을 이제 다시 살펴주소서.

     저희들의 지난날을 생각하오면

     이생으로 저생으로 그 먼생으로

     시작 없는 옛적부터 내려오면서

     가지가지 지은 죄가 한이 없으니

     제 스스로 혼자서 짓기도 하고

     다른 이를 시켜서 짓게도 하며

     남이 하는 나쁜 짓 좋아하였고

     탑 전이나 삼보도량 갖춘 물건도

     승물이나 사방승물 가림이 없이

     제 것인 양 함부로 갖기도 하고

     다른 이를 시켜서 훔치었으며

     상주물건 훔치기를 좋아하였고

     무간지옥 떨어질 오역중죄도

     제 스스로 혼자서 짓기도 하고

     다른 이를 시켜서 짓게도 하며

     남이 짓는 오역죄 좋아하였고

     삼악도에 떨어질 십악죄행도

     제 스스로 혼자서 짓기도 하고

     다른 이를 시켜서 짓기도 하며

     남이 짓는 십불선 좋아했으니

     이와 같은 모든 죄가 태산 같으되

     어떤 것은 지금에도 생각에 남고

     어떤 것은 아득하여 알 수 없으나

     알든 말든 지은 죄에 오는 과보는

     지옥 아귀 축생도나 다른 악취나

     변지하천 멸려차로 떨어지리니

     제가 이제 정성 다해 부처님 전에

     이와 같은 모든 죄장 참회합니다.(1배)

99. 이 자리를 함께하신 제불세존은

     저희들의 온갖 일을 다 아시오니

     대자비심 베푸시어 살펴주소서.

     제가 다시 제불전에 아뢰옵니다.

     저희들의 지나온 모든 생 중에

     보시공덕 지었거나 경계를 갖되

     축생에게 먹이 한 입 준 일로부터

     청정 범행 닦고 익힌 정행공덕과

     중생들을 성취시킨 선근공덕도

     무상보리 수행하온 수행공덕도

     위 없는 큰 지혜의 모든 공덕도

     일체를 함께 모아 요량하여서

     남김없이 보리도에 회향하옵되

     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께서

     지으신 바 온갖 공덕 회향하듯이

     저도 또한 그와 같이 회향합니다.

     제가 이제 모든 죄장 참회하옵고

     모든 복덕 남김없이 수희하오며

     부처님을 청하온 공덕으로써

     무상지혜 이뤄지길 원하옵니다.

     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들은

     시방세계 다함없는 중생들에게

     가없고 한량없는 공덕바다이시니

     제가 이제 목숨 바쳐 절하옵니다.(1배)

100. 가이없는 시방세계 그 가운데에

       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들께

       맑고 맑은 몸과 말과 마음을 기울여

       빠짐없이 두루두루 예경하옵되

       보현보살 행과 원의 위신력으로

       널리 일체 여래 전에 몸을 나투고

       한 몸 다시 찰진수효 몸을 나투어

       찰진수불 빠짐없이 예경합니다.(1배)

101. 일미진중 미진수효 부처님계셔

       곳곳마다 많은 보살 모이시었고

       무진법계 미진에도 또한 그같이

       부처님이 충만하심 깊이 믿으며

       몸몸마다 한량없는 음성으로써

       다함없는 묘한 말씀 모두 내어서

       오는 세상 일체겁이 다할 때까지

       부처님의 깊은 공덕 찬탄합니다.(1배)

102. 아름답기 으뜸 가는 여러 꽃타래

       좋은 풍류 좋은 향수 좋은 일산들

       이와 같은 가장 좋은 장엄구로써

       시방삼세 부처님께 공양하오며

       으뜸 가는 좋은 의복 좋은 향들과

       가루 향과 꽂는 향과 등과 촛불의

       낱낱것을 수미산의 높이로 모아

       일체 여래 빠짐없이 공양하오며

       넓고 크고 수승하온 이내 슬기로

       시방삼세 부처님을 깊이 믿삽고

       보현보살 행원력을 모두 기울여

       일체 제불 빠짐없이 공양합니다.(1배)

103. 지난 세상 제가 지은 모든 악업은

       무시이래 탐심 진심 어리석음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지었음이라.

       제가 이제 남김없이 참회합니다.(1배)

104. 시방세계 여러 종류 모든 중생과

       성문연각 유학무학 여러 이승과

       일체의 부처님과 모든 보살의

       지니옵신 온갖 공덕 기뻐합니다.(1배)

105. 시방세계 계시옵는 세간등불과

       가장 처음 보리도를 이루신 님께

       위 없는 묘한 법문 설하시기를

       제가 이제 지성 다해 권청합니다.(1배)

106. 부처님이 반열반에 들려 하시면

       찰진겁을 이 세상에 계시오면서

       일체 중생 이락하게 살펴주시길

       있는 정성 기울여서 권청합니다.(1배)

107. 부처님을 예찬하고 공양한 복덕

       오래 계셔 법문하심 청하온 공덕

       기뻐하고 참회하온 온갖 선근을

       중생들과 보리도에 회향합니다.(1배)

108. 원합노니 스승하온 이 공덕으로

       위 없는 진법계에 회향하오며

       이치에도 일에도 막힘이 없고

       불법이고 세간이고 걸림이 없는

       삼보님과 삼매인의 공덕바다를

       제가 이제 남김없이 회향하오니

       모든 중생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지은 업장들

       잘못 보고 트집잡고 비방도 하고

       아와 법을 집착하여 망견을 내던

       모든 업장 남김없이 소멸되어서

       생각 생각 큰 지혜가 법계에 퍼져

       모든 중생 빠짐없이 건져지이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 다하고

       중생업이 다하고 번뇌 다함은

       넓고 크고 가없어 한량없으니

       저희들의 회향도 이뤄지이다.(1배)

 

       나무 대행 보현보살(3번)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