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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1. 14:29 인문학/인문강단 樂

[이기동 교수의 즐거운 논어 읽기 - 마음의 구조와 정치의 본질]

 

 

 

 

▲성균관대학교 이기동 교수

 

■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
많은 정치가들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그 때마다 공자는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상통한 대답을 내놓았다. 政者 正也(顔淵篇)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爲政篇) 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는데 모든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로 덕(德)을 언급한다. 정치와 덕은 어떤 관계이며, 덕에 의한 정치란 무엇인가?


■ 나를 아는 것은 하늘뿐이다
덕이란 곧은 마음이다. 곧게 내려온 마음은 우리 안으로 스며들면서 의식과 섞여 비뚤어진 마음이 되기도 한다. 의식은 생각하고 구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곧은 마음을 착각으로 비뚤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다시 곧은 마음을 찾는 사람이 덕이 있는 사람이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덕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다.

 

子曰 莫我知也夫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憲問篇)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고
학문으로써 본래의 ‘나’를 찾으니, 나를 아는 것은 하늘뿐이다.”

■ 君君臣臣父父子子
때로는 힘으로 정치하는 경우도 있고, 술수를 가지고 정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논어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이 자식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가는 부모가 가정을 돌봐 평화롭게 하는 것과 같이 정치를 해야 한다. 본래의 마음, 곧은 마음을 되찾는 이가 하는 정치. 그것이 바로 덕을 가지고 하는 정치이다.

 

[KBS]

 

 

 

posted by 황영찬
2013. 11. 6. 12:30 인문학/인문강단 樂

[이기동 교수의 즐거운 논어 읽기]

 

 

KBS 1TV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본격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 <인문강단 樂(락)>!
혼란의 시대, 빛나는 지성들이 이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과 해답을 제시한다. 첫 번째 연사로 성균관대학교 이기동 교수가 출연한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사서삼경을 완역한 이기동 교수는 오랜 유학 공부를 바탕으로 [즐거운 논어 읽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한다. 이기동 교수가 설파하는 논어를 읽는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유학대학장 이기동 교수

 

왜 논어인가
사계절의 순환처럼 역사에도 흐름이 있다. 역사의 흐름은 음양의 법칙처럼 몸과 마음이 순환되어 왔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한 공자의 말씀이 논어에 담겨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논어를 통해 세상의 흐름이 어떠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집 속에 사람이 있듯이, 몸속에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지금 몸만 챙기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몸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집 속에 사람이 있듯이, 몸속에는 마음이 있다. 인간의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인간의 몸을 하고 있어도 인간이 아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본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도, 서로 몸이 다르다 하여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배우고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는 왜 배움이 기쁘다고 했을까.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를 되돌아보자. 우리는 왜 공부를 할까. 어렸을 때부터 해온 공부가 진정으로 기쁘다고 느끼고 있는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배움의 기쁨이 논어에 담겨져 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
배우고 익혀 알게 되니 기쁘고 그 앎을 친구들이 함께 하고자 하니 마음이 풍요로워지며
혹 그 앎을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도 남을 원망하지 않으니 이를 군자라 한다.

 

▶방송일시 : 2013년 10월 24일 목요일 밤 12시 30분
▶프로듀서 : 나원식PD

 

[KBS]

 

 

 

 

posted by 황영찬
2013. 11. 6. 12:04 인문학/인문강단 樂

[이기동 교수의 즐거운 논어 읽기 - 자녀 교육의 여섯 가지 원칙]

 

 

이 시대 빛나는 지성들이 전하는 본격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 <인문강단 樂(락)>!
첫 번째 연사 성균관대학교 이기동 교수의 [즐거운 논어 읽기] 두 번째 강의 주제는 <자녀 교육의 여섯 가지 원칙>. 훌륭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훌륭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논어에 담긴 공자의 교육이야기는 무엇일까?

弟子 어린이는 入則孝 들어오면 효도해야 하고 出則弟 밖에 나가면 공경해야 한다
謹而信 집중력과 믿음이 있어야하고 汎愛衆 모두를 사랑해야 하며
親仁 착한 사람과 친구해야 한다 行有餘力 이렇게 행동하고 남은 힘이 있다면
則以學文 글을 배우게 한다 (學而篇)

 

 

세상에 마음대로 안 되는 것 한 가지 자녀교육이더라
논어에서 공자가 가장 중요시한 교육은 효孝이다. 효도란 무엇일까. 낳아준 은혜에 감사해하며 부모에게 봉사하는 것만이 효도일까? 효도는 나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무엇보다 값진 것임을 깨닫고 그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효도하게 하기 위해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진정한 효자는 부모의 본심을 따른다
부모에게도 본심과 욕심이 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성적에 지나친 관심을 쏟는다. 공부 잘 하고 영어 잘 하는 아이만 큰 사람이 될 것처럼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信, 사람을 두루두루 사랑愛하고 착한 사람과 친구親仁하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의 본심에 따라 진정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이기동 교수

 

行有餘力 則以學文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부모가 훌륭하지 않으면, 아이도 훌륭해질 수 없다. 부모는 아이와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무조건 야단치기 보단 끌어안고 울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자.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전부가 아니다. 내 아이가 인생의 진리를 알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부모가 해야 할 노력이 논어에 담겨져 있다.

▶방송일시 : 2013년 10월 31일 목요일 밤 12시 30분
▶프로듀서 : 나원식PD


[KBS]

 

 

 

 

 

 

 

 

 

posted by 황영찬

[1.5kg 고깃덩어리의 선언 … 애쓰고, 노력하고, 그게 바로 행복]

 

뇌과학의 메시지-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어떤 이미지를 원하나?”라는 물음에 뇌 영상을 만지던 김대식 교수는 “미친 과학자”라고 답했다. 그만큼 그는 인간의 바닥을 보고 싶어 하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문제는 뇌다. 현대 뇌과학에 따르면 슬픔도, 행복도 뇌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자아, 혹은 세계라고 믿는 것은 모두 뇌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일 수 있다. 사람의 기억조차 조작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단순히 SF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이렇듯 행복에 대한 탐구는 결국 뇌의 실체를 찾는 작업과 다름 아니다. 요즘 서점가에 뇌과학 책이 줄을 잇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런데 뇌과학은 인문학일까, 아니면 자연과학일까. 이른바 융합의 시대, 둘의 구분은 무의미할 터다.

 뇌과학자인 김대식(46·카이스트 전자공학과)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문학에 행복의 길을 묻는 기획이다. 뇌과학자로서 당신은 여기에 답할 수 있나?” 그는 “뇌과학은 자연과학인데…”라며 잠시 망설였다. 곧장 질문을 던졌다. “뇌과학에선 ‘상처’를 어떻게 보나?” 김 교수는 “뇌과학자는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일종의 전기적 신호로 본다. 다시 말해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뜻밖이었다. 그건 “세계가 정말 존재하는가” “자아가 있는가, 없는가”라는 철학의 궁극적 물음과 통하는 답이었다. 요즘 뇌과학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물며 ‘첨단을 달리는 인문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슴을 겨누었던 인문학이 가슴 대신 뇌를 문제 삼는 뇌과학 앞에서 ‘헤쳐 모여’를 하고 있다. 14일 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젊고, 열정이 넘쳤다.

 -뇌과학이란 창문을 통해서 ‘상처와 치유, 행복’을 알아보려 한다. 먼저 뇌과학이 뭔가.

 “철학적 질문을 실험을 통해 짚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김 교수는 12세 때 독일로 갔다. 다름슈타트 공과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다. 처음에 그의 관심은 인공지능이었다. 학부생 때 몇 달씩 밤을 새며 ‘탁구 치는 로봇’을 만든 적이 있다. “공을 딱 쳤는데 30초가 지나자 로봇이 헛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고민했다. 어린 아이도 하는 걸 기계는 왜 못할까. 거꾸로 기계에게 너무 쉬운 ‘2870억×3876’같은 걸 인간은 왜 못할까. 인공지능보다 자연지능을 먼저 알아야겠다 싶었다.” 결국 그는 뇌과학으로 전공을 돌렸다.

 -뇌 안에는 무엇이 있나.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수술실에 들어가 뇌를 직접 봤다. 그때 가장 신기했던 게 뭔지 아나. 신기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신기한 게 없다. 무슨 뜻인가.

 “뇌는 그냥 머리 안에 들어있는 1.5㎏짜리 고깃덩어리였다. 눈으로 보면 진짜 그런 덩어리다. 생각과 감정, 지각이 그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우리의 가설이다. 그런데 뇌를 아무리 잘라보고, 해부해 봐도 없었다. 영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자아도 없었다. 그냥 세포들이었다. 뇌가 심장에 있는 세포와 다른 점은 각각의 신경세포들이 수천 개, 수만 개의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그 신경세포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소통을 하고 있다.”

 -뇌는 어떻게 세상을 알아채나.

 “우리가 꽃밭을 보고 있다. 그럼 빛이 망막으로 들어온다. 빛은 전기적 신호로 바뀐다. 그리고 뇌에 전달된다. 뇌는 형체를 알아본다. 그럼 마지막에 ‘빨간 장미’라는 것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지금도 빨간 장미가 나타나는 그 마지막 부분은 설명이 안 된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 뇌가 작동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거다. 나는 뇌가 지능과 정신, 감정을 만든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뇌에서 감정을 만든다고 했다. 그럼 뇌과학은 ‘상처’를 뭐라고 보나.

 “나는 뇌가 자신의 주된 기능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상처’가 생긴다고 본다.”

 김 교수는 뇌과학을 고고학에 빗댔다. 2000년 된 도시를 들여다보면 길이 누더기처럼 엉망이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서 새로운 길이 생길 때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거다. 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교뇌·중뇌·대뇌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차례대로 생겨났다고 했다.

 “인간의 뇌는 예전의 생명체들이 가졌던 뇌 구조를 대부분 가지고 있다. 가장 먼저 생겨난 게 현재 생존을 위한 뇌(교뇌)다. 눈 앞에 맛있는 게 있으면 그냥 먹는 거다. 그 다음에 생겨난 게 과거 위주의 뇌(중뇌)다. 여기에는 예전의 경험과 경험마다 매겨둔 가치가 입력된다. 그래서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를 구별한다. 가장 뒤늦게 생겨난 게 대뇌피질이란 미래예측의 뇌(대뇌)다. 이게 용량도 가장 크고, 중요도도 가장 높다. 그래서 인간은 현재의 상태,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는 대뇌피질의 미래 예측이란 주 기능이 외부의 데이터와 어긋나면 상처가 생긴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나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누가 와서 ‘너 바보야’라고 하면 상처를 받는다. ‘나는 똑똑하다’는 예측과 ‘너 바보야’라는 외부의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상처를 받는다.”

 - 그럼 이 상처를 어떻게 풀 수 있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내가 똑똑하지 않구나’하고 내가 만든 모델을 바꾸는 거다. 그럼 외부의 데이터와 일치하게 된다. 또 하나는 ‘저 사람 말이 틀렸다. 나는 똑똑하다’라며 바깥에서 들어온 데이터를 무시하는 거다.”

 -모델과 데이터, 결국 둘 중 하나를 바꾸는 건가.

 “맞다. 재미있는 건 과학에선 대부분 나의 모델을 바꾸라고 말한다. 그런데 뇌는 거꾸로 한다. 외부의 데이터를 무시하는 경향이 오히려 강하다. 왜 그럴까. 나의 모델은 수십 년에 걸쳐서 차곡차곡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 그게 바로 ‘에고(ego)’인가.

 “그렇다. 어렸을 때 우리는 데이터를 따라서 모델을 계속 바꾼다. 그걸 통해 성장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나의 모델은 안 바꾸고 외부의 데이터를 바꾸려 한다. 그게 완고해지는 거다.”

 -어떤 게 효과적인가. 모델을 바꾸는 건가, 데이터를 바꾸는 건가.

 “처음에는 나의 모델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존재성이 생긴다. 불일치 하는 데이터가 한두 번 들어와도 무시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데이터가 계속해서 들어온다고 하자. 그럼 얘기가 달라진다. 적당한 순간부터 모델을 바꾸어야 한다. 이걸 잘하지 못하면 상처를 자주 받거나, 상처를 오래 받는 사람이 된다.”

 - 그럼 나의 미래예측과 외부 데이터가 일치할 때 우리는 행복해지나.

 “상처가 치유될 때 예측과 데이터는 일치한다. 그런데 우리가 ‘행복’이라고 말할 때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만족감이다. 배 부르고, 편하게 쉴 수 있고, 내가 예측한 것과 세상의 메시지가 일치해서 돌아가는 거다. 그때는 아픔도 없고 만족스럽다. 그런데 그건 만족이지, 행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럼 행복이란 어떤 건가.

 “지금 나의 상황이 만족스럽다고 하자. 그럼에도 일치하던 세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불일치하게 만드는 거다. 이때는 외부에 의한 수동적 불일치가 아니다. 나의 주도에 의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불일치다. 그걸 통해 새로운 레벨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다시 일치를 향해 가는 거다.”

 김 교수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이들은 영국에서 먹고 살만한 인생들이었다. 굳이 오르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불일치를 만든 것이다.

 “저 산에 도전하고 싶다. 그래서 도전하고, 정상에 오르고, 만족을 느끼는 거다. 그 다음엔 또 다른 불일치를 찾아 간다.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과 나의 불일치를 만들어내고, 그걸 극복하는 절차와 과정이 행복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주도’ ‘내가 원하는 방향’ ‘스스로 만든 불일치’가 중요하다. 창의적인 행복은 변화를 동반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대식 교수=1967년생. 12세 때 부모를 따라 독일로 갔다. 독일 다름슈타트 공과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다. 막스플랑크 뇌연구소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MIT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았다. 현재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교수로 있다. 주로 뇌과학과 뇌공학, 사회 뇌과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김대식 교수의 추천서

“뇌과학자로서 당신이 서있는 마지막 낭떠러지는 어디냐”고 물었다. 김대식 교수는 “뇌과학이 마지막에 풀어야 할 것은 결국 철학적 문제다. 뇌라는 물질이 어떻게 정신이란 비물질을 만들어낼까. 그게 정말 있는 건가, 아니면 없는 건가. 정신이란 게 없다면 단순히 우리의 착각인가. 이런 물음들”이라고 답했다.



 그는 “읽으면 재미있고, 우울해지거나 행복해지는 스토리들”이라며 뜻밖에도 과학서가 아닌 소설책 세 권을 추천했다. 소설만큼 세상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계속되는 이야기(세스 노테봄 지음, 김용주 옮김, 이레)=여행작가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세스 노테봄의 대표 소설. 철학 선생님이 어린 학생을 사랑했다. 너무 어리고 아름답기에 ‘영원함’이라는 단어를 감히 쓸 정도였다. 학생은 교통사고로 무의미하게 죽는다. 먼 훗날 자신이 죽는 날, 선생은 학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픽션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단어들의 모든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무한개의 책들을 보관한 도서관이 있다면. 그 어딘가에 존재에 대한 모든 비밀을 푸는 정답이 적혀있지 않을까. 보르헤스의 『픽션들』중 ‘바벨의 도서관’ 이야기다. 작가는 존재의 원리와 그 비밀을 묻는다.

만약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영어 제목 If on a Winter’s Night a Traveler, 이탈로 칼비노 지음)=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한번 상상해보자. 오랜만에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책 내용이 중간에 갑자기 끊긴다면.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주인공은 책 원본을 찾아 전세상을 떠다닌다. 인생은 결국 무엇일까. 이탈리아 대표작가 칼비노는 인생을 끝나지 않는 스토리로 바라본다.

 

[중앙일보] 2013년 8월 20일(화)

 

posted by 황영찬

[공자·노자의 자기혁신]

 

설탕 같은 위로 넘치는 시대 … 우리 모두 당뇨병 걸릴 지경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난 한형조 교수. 그는 “흔히 유학을 옛날 이야기로만 치부하지만 유학은 우리의 현실 문제에 대해 매우 친절하고 사무치게 일러준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한형조(54·한국학중앙연구원 고전한학·철학) 교수를 만났다. 전통찻집에서 마주 앉은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시선은 깊었다. 그와 인터뷰하는 내내 학자의 언변보다 수도자의 침묵과 문답을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동양학과 고전은 경전이었고, 일상은 이를 체득해가는 도장이었다. 한 교수는 동양학의 언어로 상처를 정의하고, 치유를 매만지고, 행복의 실타래를 풀었다.

 -지난 2~3년 위로와 힐링이 쏟아졌다. 유학에도 그런 코드가 있나.

 “유학에는 위로가 없다. 유학은 신랄하다. 유학은 성찰의 학문이지, 위로의 학문이 아니다. 그래서 상처에 대한 접근도 다르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결국 고통이 생기고, 우리는 비명을 지른다. 동양철학에선 ‘상처’를 무엇이라 표현하나.

 “완고함이다. ”

 -완고함이라. 무슨 뜻인가.

 “내가 갖고 있는 고집과 편견을 말한다. 그게 완고함이다. 이런 고집과 편견의 토대가 사(私)적 자아다.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사태를 자기를 축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오래된 습성을 말한다. 이게 굳어진 것, 그게 완고함이다.”

 뜻밖이었다. 우리는 흔히 상처는 외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한 교수는 외부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아니라 내 안의 완고함을 지적했다.

 왜 그럴까. 그는 “사람들은 주위로부터 당한 것을 상처로 여긴다. 그런데 유학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속성이 상처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본다. 강한 자기 중심이 더 강한 상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우리 사회를 당뇨병 환자에 비유했다. “요즘 위로가 너무 넘친다. 설탕을 너무 투여해서 당뇨에 걸릴 지경이다. 유학은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는 것을 일시적 효과라고 본다.”

 - 너무 혹독하지 않은가.

 “유학에선 위로를 ‘진통제’ 혹은 ‘따뜻한 속임수’로 봤다. 일시적 효과에 그치는 마사지라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풀렸던 어깨는 다시 뭉치게 마련이다. 그렇게 마음도 다시 뭉치는 거다.”

 - 그렇게 뭉친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나.

 “유학은 내가 받은 상처, 타인에게서 받은 부당한 대우를 자연과 운명의 거대한 손 안에서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본다. 그걸 어쨌든 수용할 수밖에 없고, 또 수용해야 한다고 봤다. 천리(天理)라고 할 때 ‘리(理)’자 속에는 수많은 역사와 사회 운명이 포함돼 있는 거다. 누구나 그걸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다. 그럼 무엇이 관건인가. 이걸 어떻게 타개하느냐. 그게 관건이다.”

 -어떤 식으로 타개하나.

 “문제의 중심에 자기가 있다는 거다. 그게 중요하다. 환경은 어떤 일을 구성하는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거다. 나머지 3분의 2는 내게 달렸다고 본다. 잘나가다가도 유배를 가는 선비의 경우는 역사 속에서 다반사였다. 이때 유배를 가는 상황은 3분의 1, 나의 대응은 3분의 2에 해당한다. 여기서 필요한 게 자기혁신이다. 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그걸 통해 나의 맷집을 키우는 거다. 힐링도 마찬가지다. ‘그 자식 참 나쁜 놈이지?’ 하는 맞장구는 위로는 주지만 맷집을 키우진 못한다. 그래서 유학은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

 이말 끝에 한 교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니체는 ‘(상처가)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너를 키울 것이다’고 했다. 상처를 대하는 유학의 눈도 그렇다.”

 이건 부모들의 자식 교육법에도 고스란히 통하는 팁이었다. 요즘 부모들 열에 여덟, 아홉이 자식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전전긍긍한다. 한 교수는 “그게 아니다”고 했다. “부모가 아이를 더 크게 성장시키려면 모든 걸 갖추어주는 배려는 독이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결핍을 허용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걸어갈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인류사의 모든 문명은 결핍에서 성장하고 풍요에서 쇠퇴해갔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상처에 대한 치유는 어디서 시작되나

 “눈앞에 펼쳐진 사태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차갑게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질 못한다. 사태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고, 나의 관심과 편견 때문에 아주 좁은 길로 자신을 투영해서 본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상처가 여기서 출발한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치유가 시작된다.”

 -왜 그런가.

 “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자도 똑같이 말했다.”

 -장자는 뭐라고 했나.

 “우물 안에서 개구리가 잘 놀고 있었다. 어느 날 자라가 왔다. 개구리는 ‘여기가 얼마나 해피한 인생인지 모를 거다. 안으로 들어와 보라’고 했다. 자라가 들어가려다 다리가 걸려서 못 들어갔다. 대신 자라는 바다 이야기를 들려줬다. ‘바다는 하도 넓어서 수평선 끝이 안 잡힌다. 우(禹)임금 때는 10년 동안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그 물이 늘어나지 않았고, 탕(湯)임금 때는 8년 동안 일곱 번이나 가물었지만 그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 안에 엄청난 생명이 살고 있다.’ 그러자 개구리 왈. ‘뻥 치고 있네.’ 우물 안 개구리, 다시 말해 자기중심성. 그게 모든 병의 근원이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깰 것인가다.”

 

왼쪽부터 공자, 노자, 장자.

-동양철학에서 그걸 깨는 비법은 뭔가.

 “노자와 장자는 ‘자망(自忘)’이라고 했다. ‘너 자신을 잊으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잊을지 구체적 훈련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훈련법이 가장 풍부한 건 불교다. 대신 출가자를 위한 전업 훈련법이 많았다. 반면 유학은 일상 속의 훈련법을 제시했다. 노장과 불교, 그리고 유학의 기본 구도가 똑같다는 게 신기하다.”

 - 그게 어떤 구도인가.

 “너의 상처는 너의 좁은 자아로 인해 생긴 거다. 좁은 자아를 깨라. 사회적 악이라는 것도 너의 작품이다. 너 같은 자아가 충돌해 생긴 거지, 다른 사람이 준 것이 아니다. 네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그래야 네 상처도 치유되고,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도 치유될 수 있다. 너는 피해자만이 아니고 가해자이기도 하다. 동양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선비들은 어땠나 .

 “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문안하고, 독서와 명상을 했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일과표를 만들어 내가 천리(天理)와 함께 있으려 노력했다. 그게 자아를 깨는 것이었다.”

 - 그 중 핵심이 뭔가.

 “독서와 명상이다. 그걸 통해 궁리(窮理·이치를 곰곰이 따져보며 연구함)를 했다. 맹자는 말했다. ‘개나 닭이 집을 나가면 온 동네 사람을 풀어서 찾는데, 마음은 잃어버려도 찾을 생각을 않는다.’ 가령 손가락 중 무명지가 굽어졌다고 하자. 사람들은 용한 의사를 찾아 미국이라도 달려가고, 집을 팔아서라도 손가락을 고친다. 그런데 마음은 굽어져도 고칠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고전을 보고, 경전을 보며 궁리를 하는 거다. 굽어진 마음을 펴기 위해서 말이다.”

 - 그렇게 궁리를 하다 보면.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분야에 필요한 지식을 바닥까지 파보는 사람이 없더라. 그게 충격적이다.’ 잡스는 궁리를 했다. 궁리를 하면 바닥까지 가게 된다. 그래야 사태를 제대로 알 수 있고, 진정한 혁신도 나오는 거다.”

 -상처와 치유, 다음은 행복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뭔가.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주자학자의 눈으로 요즘 한국인을 보면 ‘노(怒·분노)’와 ‘애(哀·슬픔)’가 주축이다. ‘희(喜·기쁨)’는 없다. 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평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코드는 ‘노’와 ‘애’에서 ‘희’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우리 삶에 ‘희’가 자리 잡을 때 ‘노’와 ‘애’는 별로 문제가 안 된다.”

 - 그런 행복을 어떻게 일굴 수 있나.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고 했다. 아무리 소유 양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고, 50대 사춘기가 오고,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존재 양식을 감지하게 된다.”

 한 교수는 “존재 양식은 충만감”이라고 요약했다. 이게 없으면 행복에 구멍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막연히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면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존재 양식이 마련되지 않으면 불안과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물질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훌쩍 넘어서 유희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이게 나의 행복과 직결된다. 결국 인문학과 치유, 행복이 같은 코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형조 교수=경북 영덕 출생. 경남고와 서울대 철학과 졸업.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있다. 동양철학과 고전에 능통하다. 옛 고전을 우리 시대의 언어로 불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 『왜 동양철학인가』 『왜 조선유학인가』 『조선유학의 거장들』 『붓다의 치명적 농담』 등.

 

한형조 교수의 추천서

유학은 일상의 철학이다. 한형조 교수가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추천한 책들이 그렇다. 그는 “고민 고민하다가 딱 세 권을 골랐다. 그런데 정작 유학서가 없다”며 껄껄 웃던 그는 “그래도 이 책들에는 유학의 엑기스가 녹아 있다 ”고 했다. 다음은 각 책에 대한 한 교수의 추천 사유.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현종 옮김, 물병자리)=정현종 시인이 서문에다 ‘혼자 구원받기 미안해서 번역한다’고 쓴 책이다. 불교의 팔만대장경 핵심을 잡아서 현대적 언어의 대화체로 풀었다. 아주 얇은 책이다.

마음의 철학(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강분석 옮김, 사람과책)=제목은 다르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유교에 수많은 경전이 있지만 로마의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이 그 핵심 코드를 담고 있다. 번역이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대승기신론 소·별기(은정희 지음, 일지사)=방대한 불교의 간략한 설계도다. 나는 이걸 ‘구원의 설계도’라고 부른다. 어렵다면 영역본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본 스즈키 선사의 영역본 『The Awakening of Faith: The Classic Exposition of Mahayana Buddhism』이 쉽고 명쾌하다.

[중앙일보] 2013년 8월 13일(화)

 

 

posted by 황영찬

네덜란드의 트리즈

 

물리적 모순에 빠진 문제, 해답은 주변 자원에 있다

 

네덜란드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로는 영국과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네덜란드는 1300년대에 이르러 공업ㆍ무역ㆍ상업이 발달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특히 플랑드르 지역은 부와 지식을 함께 갖춘 시민계급이 급성장하면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발전한 곳으로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당시 네덜란드는 프랑스에 속해 있어 프랑스 왕에게 엄청난 세금을 내야 했다. 네덜란드는 프랑스 왕에게 반기를 들고 자유국가를 이루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교황과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왕을 배반하면 200만프랑을 배상할 것을 교황과 약속한 문서가 화근이었다.

네덜란드, 특히 플랑드르 지역 상공인들은 문제를 어떻게 분석하고 해결책을 도출해야 할까? 트리즈 이론을 적용해보자.

트리즈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문제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하여 문제와 그 문제의 원인을 구분할 것을 추천한다.

트리즈에서 문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물리적 모순(딜레마 문제)으로 정의된다. 플랑드르 지역 상공인이 직면한 문제는 프랑스 왕을 배반해야 하지만 프랑스 왕을 배반하지 말아야 하는 물리적 모순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물리적 모순의 원인을 유추해보자. 프랑스 왕을 배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금을 덜 내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프랑스 왕을 배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황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즉 자유를 얻으려고 하면 교황과 한 약속을 어겨야 하고 교황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하면 자유를 얻지 못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이 충돌하는 것을 기술적 모순(상충 문제)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두 번째 단계로 트리즈는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할까? 하나는 프랑스 왕을 배반하면서 교황과 한 약속을 어기지 않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왕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자유를 얻는 방법이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선택한 해결책의 방향에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플랑드르 지역 상공인은 프랑스 왕을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해결책으로 선택하고, 이를 위해 사용 가능한 자원을 탐색해 활용한다.

플랑드르는 영토 문제로 프랑스와 해묵은 앙숙관계인 영국을 자원으로 활용한다. 당시 프랑스 땅에 상당한 영토를 가지고 있던 영국을 꼬드겨서 프랑스와 전쟁을 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프랑스가 불리해지면 플랑드르 지역에 대해 자유를 얻으려는 생각이었다.

플랑드르 상인들은 양털을 팔러 온 영국 수출업자들을 통해 영국 국기에 영국 상징인 사자문양과 프랑스 상징인 백합문양을 함께 그려 넣게 했다. 이미 프랑스 땅에 상당한 영토를 가지고 있던 영국으로서는 프랑스 일부 지역도 영국 영토이므로 영국 국기에 프랑스를 상징하는 백합문양을 포함시키는 게 이치에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기 제작은 영국과 앙숙관계인 프랑스를 심각하게 자극한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백년 전쟁을 치르게 된다. 백년 전쟁에서 초반에는 영국이 대승을 거두어 파리까지 진격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플랑드르 상공인들은 원하는 독립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1500년대에 이르러 플랑드르 상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새로운 전략적 노력을 하게 된다. 1500년대에 이르러 프랑스 왕에게 네덜란드 지배권을 넘겨받은 에스파니아 왕을 배반하면서도 교황과 한 약속을 지키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이러한 전략을 선택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트리즈의 세 번째 단계인 주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플랑드르 상인들은 1527년 마틴 루터가 불을 붙인 종교 개혁을 적극 활용했다.

네덜란드는 종교개혁에서 가장 큰 주동 세력이 되면서, 교황과 관계를 단절하고 마틴 루터와 장 칼뱅의 신교를 선택했다. 결국 에스파이나 왕을 배반하고 독립을 주장하면서 교황과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300~1500년대 당시 최대 역사적 사건이던 백년전쟁과 종교전쟁을 트리즈 시각으로 플랑드르 상공인의 전략적 선택과 연결해 이해하려는 시도도 가치가 있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김효준 트리즈(Triz:창의적 문제해결)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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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