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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4 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2014, 북폴리오

 

 

대야도서관

SB101475

 

654.23

나872ㅁ

 

"성서는 기묘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거침없고 지루할 틈 없는 나카노 교코식 명화 읽기

 

권위와 편견을 버려라, 그리고 즐겨라!

도발적인 호기심과 흥미로운 해석으로 가득 찬 성서 이야기

 

서양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미술 감상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나카노 교코 교수의 매혹적인 명화 해설서 <명화의 거짓말> 그 두 번째 이야기. 서양 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영원한 베스트셀러. 그리스신화에 이어 이번에는 성서를 다룬다. 천지 창조,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담은 구약에서부터 수태고지와 세례자 요한,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최후의 만찬 등을 다룬 신약 이야기를 주제로 한 명화를 훑으며 성서의 주요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와 <E. T.>의 상관관계, 성모 마리아의 수태고지에 대한 다빈치의 숨은 견해,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보내는 장면에 자신과 후원자들을 타임슬립 시킨 보티첼리,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모아졌던 욕망의 시선을 통해 읽는 서머싯 몸의 소설 <비> 등, 풍성한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 혹은 종교화를 통해 성서와 역사와 화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이교도가 보는 성서에는 '괴상한' 부분이 잔뜩 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은 기묘한 이야기를 과연 화가는 이런 식으로 궁리해서 표현했던 것이구나, 하는 걸 알아차리면 갑자기 그 그림은 매력이 더 커질 것입니다._<저자 후기> 중

 

나카노 교코 中野京子

와세다 대학에서 독일 문학과 서양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 - 바로크 시대의 곤충화가 메리안의 일생(사이언스 북스)』『무서운 그림 1 · 2 · 3(세미콜론)』『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이봄)』『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이봄)』『명화의 거짓말 - 그리스신화 편(북폴리오)』 등을 썼다. 서양 역사와 영화, 미술, 오페라, 뮤지컬 등 문화 전반을 종횡무진하는 독특한 시각의 미술 읽기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명화의 거짓말' 시리즈는 서양 문화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고전이자 숱한 명화의 주제가 되어온 '그리스신화'에 이어 이번에는 '성서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는 물론, 영화, 광고, 뮤지컬 등 광범위한 문화적 지식을 곁들인 도발적인 질문과 해석을 통해 명화에 씌워진 엄숙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겨내고 독자들의 자유롭고 풍부한 감상을 유도한다.

 

나카노 교코 블로그 http://blog.goo.ne.jp/hanatumi2006

 

옮긴이 이연식

미술사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과정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일본의 우기요에浮世繪와 양풍화洋風畵에 대한 논문을 썼다. 학부에서는 그림을 그렸고, 현재 미술책 저술과 번역을 병행하며 미술사를 다각도에서 조명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 글쓰기를 주제로 강의도 하고 있다.

『미술영화 거들떠 보고서』『위작과 도난의 미술사』『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눈속임 그림』『아트 파탈』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무서운 그림』(1권, 3권), 『맛있는 그림』 등이 있다.

 

진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거짓 역시 그렇다.

- 랄프 왈도 에머슨

 

|목차|

 

성서에 나오는 이들

 

구약성서

코는 그만, 손가락으로 |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지혜와 맞바꾼 영생 | 크라나흐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 마사초 <낙원에서의 추방>

인류 최초의 살인자 | 블레이크 <아벨의 시신을 발견한 아담과 이브> / 코르몽 <카인>

하늘까지 닿아라 | 브뤼헐 <바벨탑>

수수께끼를 내는 하느님 | 렘브란트 <이사악의 희생> / 카라바조 <이사악의 희생>

야곱보다는 시원시원한 에사오 | 빌만 <야곱이 꿈꾼 풍경> / 들라크루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사랑이었을까? 루벤스 <삼손과 들릴라>

목을 든 미녀 |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딧> / 젠틸레스키 <유딧과 하녀>

인더벌 :: 큰 죄는 일곱 개뿐? | 보스 <일곱 가지 대좌와 네 가지 종말>

 

신약성서

축복받았다고는 하지만 |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고지> / 로세티 <주님의 여종을 보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브뤼헐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유명인과의 기념 촬영 | 알트도르퍼 <동방박사의 경배> /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세례와 잘린 목 |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세례> / 클림트 <유딧 Ⅱ <살로메>

제자들 |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마리아 막달레나 | 티치아노 <성모 마리아 막달레나> / 크리벨리 <마리아 막달레나>

최후의 만찬 |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배신자의 입맞춤 | 조토 <예수를 배신함>

예수는 보았다 |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 티소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본 모습>

요한의 묵시록 | 뒤러 <묵시록의 네 기사들>

위대한 아들, 위대한 어머니 | 티치아노 <성모 승천>

심판의 날이 온다면 |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저자 후기

역자 후기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각, 회화, 건축에서 수많은 걸작을 남긴 르네상스의 거인이다. 생전에 이미 '신과 같은 미켈란젤로'라고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스스로의 재능에 회의를 품고 줄곧 고뇌했다. 60대 무렵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불쌍한 사내다. 그렇게 뛰어난 구석은 거의 없다. 젊었을 적부터 성냥이라도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진심으로 한탄하고 있다.

덧붙여 아래 사진 속 바티칸 근위병의 기발한 패션 역시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설이 있다. 정말 대단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담의 창조』

1512년, 프레스코화, 280×570cm, 시스티나 예배당 소장(바티칸 시국)


- 12년에 걸친 복원 작업으로 화면의 밝은 색채가 되살아났다.

- 손가락과 손가락이 막 닿으려는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순간, 뒷날 여러 이미지에 인용되었다.

- 하느님은 흰 수염과 흰 머리의 위엄 있는 노인으로 그려졌다.

- 여기 여자가 이브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 하느님을 떠받치는 것처럼 보이는 날개 없는 천사.

- 고대 그리스 조각 같은 나체 표현

시스티나 예배당(바티칸 시국(市國))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1472~1553년)는 작센 공의 궁정화가로서 혜택받은 인생을 보냈다. 특유의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된 여성 누드의 차가운 관능미는 알프스 이북에서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루벤스가 그린 풍만한 여체와 마찬가지로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루카스 크라나흐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1530년, 유화, 81×114cm,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오스트리아)


- 하늘에 둥실 떠 있는 하느님의 얼굴.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해도 결국 들키고 만다.

- 하느님의 명령으로 아담과 이브를 추방하는 이는 케루빔(지품천사智品天使)이다.

- 낙원은 우거진 수풀 속에서 동물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

- 나긋나긋한 몸을 배배 꼰 창백하고 여윈 여체는 크라나흐 그림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북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 화면 위쪽의 사과나무에 휘감긴 것은 상반신만 여자의 모습인 뱀이다. 당시에는 뱀을 종종 이런 모습으로 그렸다.


마사초(Masaccio, 1401~1428년)는 아깝게도 페스트로 요절했지만 르네상스 양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마사초 『낙원에서의 추방』

1425~27년경. 프레스코화, 208×88cm,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브란카치 예배당 소장(이탈리아).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년)는 시류를 전혀 따르지 않는 화풍을 구사했기 때문에 생전에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으나 20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환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시(특히 시집 『무구의 노래Songs of Innocence)』로도 이름이 높다.

윌리엄 블레이크 『아벨의 시신을 발견한 아담과 이브』

1826년경, 템페라, 33×43cm, 테이트 갤러리 소장(영국)


- 카인의 이마에 '낙인'이 찍힌 순간. 미켈란젤로를 숭배했던 블레이크는 그를 따라 울퉁불퉁한 근육을 세심하게 묘사했다.

- 불온한 검은 구름, 쫓기는 듯한 어둑한 태양……, 광기가 감도는 괴이한 표현은 200년 전의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다.

-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젖힌 아담, 몸을 굽히고 슬퍼하는 이브, 길게 누운 아벨의 시체.

- 시체를 묻기 위해 삽으로 깨끗하게 파놓은 장방형 구덩이.


◐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 1845~1924년)은 프랑스 아카데미의 중견 화가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밑에서 반 고흐, 로트레크, 베르나르, 그리고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1867~1943년)가 공부했다고 한다. <카인>을 발표한 것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발견된 다음 해인 1880년이다. 고고학의 대유행에 편승해 이 그림도 호평을 받았다.

페르낭 코르몽 『카인』

1880년, 유화, 380×700cm, 오르세 미술관 소장(프랑스).


◐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1525년경~1569년)은 출생 연도도 출생지도 불명으로, 수수께끼가 많다. 1551년에 오늘날 벨기에 안트베르펜 화가조합에 등록했던 것이 알려졌다. 그 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귀국한 1555년부터 죽기 전까지가 천재성을 훌륭하게 꽃피워낸, 짧지만 풍요로운 기간이었다.

타로카드 '탑'

피터르 브뤼헐 『바벨탑』

1563년, 유화, 114×155cm,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오스트리아).


- 위층은 이미 생활공간이 되었다. 빨래가 널려 있고 나귀가 짐을 나르고 있다.

- 탑 여기저기서 붕괴가 시작되고 있다.

- 왕이 시찰하러 왔다. 지상의 신인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는 석공들.

- 인간의 욕망을 흡입하여 불길한 생물로 변해버린 탑. 구름을 뚫고 올라가고 있다.

- 브뤼헐의 시대에 사용되었던 갖가지 건축기계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 당시 번창했던 안트베르펜의 항만 풍경


◐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 1606~1669년)는 플랑드르의 루벤스와 나란히 17세기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화가, '빛과 그림자의 마술사', '영혼의 화가'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 『이사악의 희생』

1635년, 유화, 193×132cm,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러시아).


- 천사의 부드러운 손이 아브라함의 울툭불툭한 손을 붙잡는다.

- 아브라함의 손에서 떨어지는 칼, 날이 잘 선 것처럼 빛난다.

- 아브라함의 커다란 손이 아들의 얼굴을 뒤덮는 모습이 잔혹하고 폭력적으로 보인다.

- 희생양으로 죽을 운명을 받아들이고 저항도 하지 않는 이사악.

- 이사악은 자신이 지고 온 장작 위에 뒤로 묶인 채 눕혀졌다. 목을 단숨에 베이고 불에 태워질 판이다.


◐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Caravaggio, 1571~1610년)는 극적인 명암 표현으로 후세의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탈리아 화가. 강렬한 빛과 짙은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종교화에도 끌어들임으로써 동시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성격도 과격해서 싸움을 하다가 사람을 찔러 죽이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죽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이사악의 희생』

1603년경, 유화, 104×135cm, 우피치 미술관 소장(이탈리아).


◐ 미하엘 루카스 레오폴트 빌만(Michael Lucas Leopold Willman, 1630~1706년)은 지금은 거의 잊힌 독일인 화가.

미하엘 루카스 레오폴트 빌만 『야곱이 꿈꾼 풍경』

1691년, 유화, 87×105cm, 베를린 미술관 소장(독일).


◐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년)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 여러 걸작으로 알려진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생부는 당시의 유명한 정치가 탈레랑으로 알려졌다.

외젠 들라크루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57년, 프레스코화, 751×485cm, 생 쉴피스 교회 소장(프랑스).


- 울창하게 우거진 숲의 묘사, 주의 깊게 배치한 나무들.

- 뒷날 고갱도 같은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들라크루아의 이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 안쪽에 그려진 사람들도 야곱의 일행이다. 야곱이 부자였음을 알 수 있다.

- 야곱의 종자와 노예들이 가축을 끌고 재물을 싣고 서둘러 간다.

- 천사가 오른팔로 야곱의 허벅지를 꽉 쥐고 있다. 뒤엉킨 양쪽은 호각지세로, 마치 춤을 추는 한순간을 정지시킨 것 같다. 샐리 포터 감독의 영화 <탱고 레슨>에서 댄서 두 사람이 이런 포즈를 취했다.


◐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년)가 이 그림을 완성한 것은 겨우 32세 때다. 의상의 질감과 어두운 그늘을 묘사하는 훌륭한 솜씨, 색채와 빛의 풍요로움, 인물 묘사의 적확함, 드라마틱한 순간을 잡아내는 솜씨는 천재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삼손과 들릴라』

1609~10년, 유화, 185×20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영국).


- 들릴라의 복잡하고 모호한 표정이 보는 이의 상상을 한껏 자극한다.

- 삼손이 지닌 괴력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잘라내는 사내.

- 벽감에는 비너스와 그녀의 아들인 큐피드의 상이 놓여 있다.

- 삼손이 무력해지면 방으로 밀고 들어오기 위해 병사들이 문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다.

- 사랑하는 여인을 믿고 아이처럼 잠든 삼손. 들릴라의 손은 삼손의 등을 사랑스럽게 쓰다듬는다.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Cristofano Allori, 1577~1621년)는 피렌체의 화가다. 거의 이 작품만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긴 셈이다.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딧』

1613년, 유화, 139×116cm, 피티 궁 소장(이탈리아).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년경)는 여자임에도 이탈리라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왕후 귀족으로부터 많은 주문을 받았다. 그 뒤 그녀는 오래도록 잊혔다. 후세 미술사가들이 여자는 수준 높은 역사화를 그릴 수 없다는 편견에 사로 잡혀서 그녀의 작품 대부분을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그림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에 비로소 그녀의 재능이 알려졌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딧과 하녀』

1614~20년, 유화, 114×94cm, 피티 궁 소장(이탈리아).


- 바구니 안에 홀로페르네스의 창백한 얼굴이 보인다. 천에 묻은 피가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 하녀라기보다 동지 관계로 보인다.

- 무슨 소리라도 났는지 돌아보는 두 사람. 유딧은 "침착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녀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는다. 긴박한 순간을 포착했다.

- 어둠 속에 떠오른 유딧의 새하얀 가슴께는 에로틱하지만 삼백안의 옆얼굴은 늠름하다.

- 그림에 등장하는 검의 의미는 '정의'. 그녀의 살인은 정당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녀는 검을 마치 쓰바키 산주로(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쓰바키 산주로>의 주인공)처럼 느긋하게 어깨에 걸쳤다.


◐ 히로니뮈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년경~1516년)는 생년도 불명이고 삶도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살아 있을 때부터 작품은 인기를 누렸고 장례식 때는 지역의 명사로 대우받았다고 한다. 그가 죽은 다음 해 루터가 교회 문에 면죄부에 대한 질문장을 붙여 드디어 종교개혁의 막이 올랐다.

히로니뮈스 보스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

1475~80년경, 유화, 120×150cm, 프라도 미술관 소장(스페인).


- 아래 그림부터 시계 방향으로 '분노', '질투', '탐욕', '폭식', '나태', '색욕', '교만'.

- 애초에는 둥근 테이블에 그려져 있었는데, 뒤에 지금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 노란 홍채 한가운데 동공이 있고, 거기서 예수가 오른쪽 옆구리의 성흔을 내보이고 있다. 아래에는 "마음이여, 마음이여, 하느님이 보고 계신다"라고 쓰여 있다.

- 네 귀퉁이의 그림은 보스가 그린 것이 아니라 뒷날 다른 사람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년)는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꼽힌다. <모나리자>가 너무도 유명해서 초상화를 여럿 그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작품 대부분이 종교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고지』

1472년경, 유화, 98×217cm, 우피치 미술관 소장(이탈리아).

 

- 낮은 돌담은 주변을 모두 막고 있지 않고, 길이 구불구불 밖에서 안으로 이어진다.

- 레오나르도 특유의 웅대한 원경

- 처녀성의 상징인 흰 백합을 들고 무릎을 꿇은 채 마리아를 축복하는 대천사 가브리엘.

- 흰 백합에 암술과 수술이 분명하게 나뉘어 그려져 있다. 레오나르도가 처녀 수태에 회의적이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되는 부분.

- 마리아의 차림은 이처럼 붉은 옷에 푸른 망토가 릴반적이다. 붉은 옷은 희생의 피를, 푸른 망토는 하늘의 진실을 나타낸다고 해석된다.


◐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년)는 당시 화단이 라파엘로를 최고의 모범으로 삼았던 것에 반발하여 라파엘로 이전의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재평가해야 한다며 '라파엘 전파'를 결성했다. 이후 그는 점차 신비주의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주님의 여종을 보라』

1849~50년경, 유화, 72×42cm, 테이트 갤러리 소장(영국).

 

◐ 피터르 브뤼얼은 스스로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비밀로 가득한 화가였다. 농민의 생활 풍속을 많이 그렸지만 자신은 농민이 아니었다.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했고 합스부르크가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브뤼헐은 농촌에 대해 흥미로워하며 어리석고 무지한 농민을 지적으로 관찰했을 뿐, 합스부르크가를 비판했던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미술사가도 있다. 그려진 것 이상을 추측하는 것은 미술사로서의 해석이 아니라 사회학적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리도 상상력이 빈곤할까. 카를 5세와 펠리페 2세의 치세 동안 플랑드르에서 종교상의 이유로 살해된 사람의 수가 10만이라고도 하고 15만이라고도 한다. 동포가 개미처럼 짓밟히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그림만 팔리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브뤼헐의 그림이 이렇게나 수수께끼 같을 이유가 있을까? 애초에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압제자를 비판하는 그림을 그렸다가는 무사할 수가 없었다. 확증이 없는 암시와 은유를 교묘하게 작품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구소련 체제의 동구권에서 SF소설이 흥했던 것처럼.

 

 

피터르 브뤼헐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1566년, 유화, 116×165cm,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벨기에).

 

 

- 여관 벽에는 합스부르크가의 '머리 둘 달린 독수리 문장'이 달려 있다.

- 등록하러 모인 사람들.

- 돼지 방광을 자신의 몸만큼이나 크게 부풀리는 아이.

- 겨울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돼지를 죽이는 부모. 아버지가 목을 따고 어머니가 피를 프라이팬에 받고 있다. 피로 소시지를 만들 것이다.

- 톱을 어깨에 진 요셉과 나귀에 탄 성모 마리아가 마을을 지난다. 그녀는 앞으로 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게 되는데 누구 한 사람, 세계가 뒤바뀔 전조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 허물어지는 고성(古城)과 그 앞쪽에 지어지는 새로운 집(화면 위쪽) 종교화에서 '구약'과 '신약'을 나타낸다.

 

◐ 알부레히트 알트도르퍼(Albrecht Altdorfer, 1480년경~1538년)는 16세기 독일의 화가다. 순수한 풍경화의 전통이 없었던 서양 회화에서 풍경을 주로 그린  선구자로 여겨진다.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동방박사의 경배』

1530~35년, 유화, 109×77cm, 슈테델 미술관 소장(독일).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년)의 최고 걸작 <비너스의 탄생>과 <봄>도 메디치 가문과의 관계 속에서 나왔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1475년경, 템페라, 111×134cm, 우피치 미술관 소장(이탈리아).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리킨다.

- 예수의 발에 손을 내밀고 있는 이는 메디치가를 발흥시킨 코시모, 이 그림이 그려질 무렵에는 이미 죽었지만 동방박사 역으로 등장했다.

- 폐가의 무너진 천장에서 성스러운 빛이 내려와 아기 예수를 축복했다.

- 예수와 마리아의 배후에 늙고 무시당하는 존재로서 성 요셉이 서 있다.

- 무리 지은 사람들 속에서 이 그림을 화가에게 주문한 사람이 이쪽을 보며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리킨다.

- 메디치가의 비호를 받았던 화가 보티첼리가 관람객을 바라본다. 군상회화에 화가가 자화상을 넣는 것이 관례였다.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20년경~1492년)는 회화에 기하학의 필요성을 주장한 최초의 화가로 알려졌다. 만년에는 『투시화법에 대하여』 같은 책도 썼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세례』

1448~50년경, 템페라, 167×116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영국).

 

- 일순 흰 구름인가 착각하게 하는 성령의 흰 비둘기.

- 조개껍데기로 예수의 머리에 물을 끼얹는다.

- 돌멩이투성이인 팔레스티나가 아니라 화가 자신의 고향 토스카나를 배경에 그렸다.

- 세례 요한은 무슨 옷을 입었는지가 『신약성서』에서 유일하게 언급된 인물이다. 낙타털 가죽과 가죽 끈이 그것이다.

- 다음에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이 서둘러 옷을 벗고 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뒤에 잇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년)는 걸출한 개성으로 세기말 미술의 인기 화가가 되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작품은 합스부르크가 말기의 빈이라는 도시에 딱 맞았다.

구스타프 클림트 『유딧 Ⅱ(살로메)』

1909년, 유화, 178×46cm, 베네치아 근대미술관 소장(이탈리아).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1600년, 유화, 322×340cm,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소장(이탈리아).

 

- 천상의 빛을 받아 창틀이 또렷한 십자가 모양을 나타낸다.

- 수염 기른 남자는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 걸까, 자신일까, 아니면 고개를 숙인 청년일까? 예전에는 수염 기른 남자를 마태오로 추정했다.

- 한눈팔지 않고 돈을 세는 청년. 예수의 손가락은 그를 가리키고 있는 걸까? 즉 이 청년이 마테오인 걸까?

- 화려하게 차려입은 청년들은 예수가 살던 시대가 아니라 카라바조가 살던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패션을 따르고 있다.

- 예수의 손이 만든 이 모양이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 나오는 하느님의 손이다.

- 등을 이쪽으로 향한 사도 베드로.

 

◐ 베첼리오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7년경~1576년)는 장대한 화풍과 화려한 색채로 온 유럽의 궁정에서 환영을 받았던, 베네치아파 최대의 천재 화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뒷날 옷을 입은 비전도 두 점 나왔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성녀 마리아 맏달레나』

1533년경, 유화, 84×69cm, 피터 궁 소장(이탈리아).

 

- 마리아 막달레나의 어트리뷰트인 향유 항아리가 왼쪽 아래에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 수없이 그려진 마리아 막달레나 그림 중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하늘을 우러러보는 이 아름다운 그림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옷을 입은 모습을 비롯해 여러 버전이 제작되었다.

- 예수가 승천한 뒤 마리아 막달레나는 동굴에서 기도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 그림도 그런 모습을 그린 것이다.

- 손과 손가락의 묘사는 무척이나 어렵다. 화가에 따라서는 손을 그리는 경우와 그리지 않는 경우에 따라 초상화의 가격에 차이를 두기도 했다. 천재 티치아노의 필치가 완벽하다.

- 빛나는 머리카락으로 알몸을 가린다(가리는 듯 가리지 않는 듯).

 

◐ 카를로 크리벨리(Carlo Crivelli, 1435년경~1494년경)는 보티첼리와 동시대의 화가다. 예리한 선묘와 과도한 장식성이 특징이다.

카를로 크리벨리 『마리아 막달레나』

1477년경, 템페라, 152×49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네덜란드).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빈치 마을의 레오나르도'라는 의미다. 오래도록 미술서에는 '다빈치'라고 표기되었지만 이는 그저 '빈치 마을'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레오나르도'라고 쓰는 책도 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1495~97년경, 유화 · 템페라, 460×880cm,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소장(이탈리아).

 

- 복음 기자 요한.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여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예로부터 요한은 중성적인 청년으로 묘사되어왔다.

- 후광은 그리지 않았지만 창의 위쪽 벽틀이 반원 모양으로 예수의 신성을 나타낸다. 아랫부분에는 예전에 이웃한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설치되었다. 예수의 다리 부분이 그려져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 주의 깊은 세정 작업으로 식탁의 음식이 쾌 잘 보이게 되었다.

- 오른손에 단검을 든 베드로. 만찬 뒤에 겟세마니 동산에서 적의 귀를 자른 에피소드에 근거한 표현이다.

- 은화 주머니를 쥐고 있는 모습으로, 배신자 유다임을 알 수 있다.

 

◐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년경~1337년)는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다. 그때까지 평면적이고 형식적이었던 종교화에 인간적인 감정을 풍요롭게 불어넣었다. 같은 시대의 시인 단테도 그를 당대 최고의 화가라고 칭송했다.

조토 디 본도네 『예수를 배신함』

1304~06년, 프레스코화, 150×140cm, 스크로베니 예배당 소장(이탈리아).

 

- 베드로가 예수의 뒤로 다가가는 적의 귀를 자르는 장면. 귀가 팔랑 떨어지고 있지만 본인은 아직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 황색은 긍정과 부정 양쪽의 상징이다. 전자는 아폴론으로 대표되는 빛나는 태양의 색, 후자는 '배신자의 색', 유다에게 걸맞는 색이다.

- 횃불이 밤하늘을 비추는 가운데 수많은 곤봉과 창이 뒤엉킨 모습이 긴박감을 자아낸다.

- 예수를 잡으러 온 신전 측의 행사들과 종자들.

- 조토는 인간의 내면을 표정으로 그리려고 했다. 고귀한 예수와 야비한 유다의 대비.

 

◐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년)는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황혼을 유례가 드문 필치로 후세에 남겼다. 걸작 <라스 메니나스>는 프라도 미술관의 그야말로 성유물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1631~32년경, 유화, 248×169cm, 프라도 미술관 소장(스페인).

 

◐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년)는 인상주의 시대의 풍속화가였는데, 50세 무렵 성당에서 예수의 환영을 본 뒤로 종교화를 여럿 그렸다.

제임스 티소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본 모습』

1886~94년, 과슈, 26×23cm, 브루클린 미술관 소장(미국).

 

- 붉은 망토를 걸치고 투구를 쓴 로마 병사.

-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책형도에 묘사되는 복음 기자 요한.

- 십자가에 매달린 이는 마리아 막달레나일 것이다. 그녀의 가슴께에 그려진 못 박혀 피투성이인 예수의 양발과 발받침.

- 가운데에서 살짝 왼쪽에 보이는 검은 굴은 골고다 언덕에 있던 매장소. 동굴을 그대로 이용했다.

- 저마다 나름의 생각을 갖고 모여든 구경꾼들이 멀리서 둘러싸고 있다.

- 화려하게 차려입은 예루살렘의 사제장들. '구세주라면 먼저 자신을 구해보라'며 조소했다는데, 이 그림에서는 그저 조용히 올려다보고 있다.

- 화면 중앙에는 성모마리아와 두 여자 신도가 있다(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 집행인이 준비한 마비약이나 진통제가 들어 있는 항아리.

 

◐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년)는 이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 독일뿐 아니라 온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보다 한 해 앞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완성되었지만 목판화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해서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쪽이 훨씬 널리 알려졌다. 화면 가운데 아랫부분에 뒤러의 사인이 들어 있다(대문 모양에 D가 들어가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 『묵시록의 네 기사들』

1498년경, 목판화, 39×28cm, 개인 소장.

 

 

- 선악을 재는 저울.

- 흰 말을 타고 활을 든 '정복자' 혹은 '역병'(오른편 끄트머리), 붉은 말을 타고 검을 든 '전쟁' 혹은 '기근'(중앙0, 검은 말을 타고 저울을 든 '기근' 혹은 '전쟁'(왼편).

- 창백한 푸른 말을 타고 쇠스랑을 든 '죽음'. '죽음'을 따라오는 '저승'이 사교를 집어삼킨다.

- 사람들은 그저 죽임을 당할 뿐.

 

◐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진정한 천재의 표본으로 젊었을 때부터 이미 완벽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이 그림을 완성한 것도 겨우 서른 살 무렵이었다. 베네치아의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수도원의 제단용으로 주문된 이 그림은 젊은 티치아노의 명성을 공고히 하고, 그 천재적인 재능을 온 유럽에 떨치게 해준 기념비적인 대작이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성모 승천』

1516~18년, 유화, 690×360cm,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수도원 소장(이탈리아).

 

- 비상하는 하느님을 이런 각도에서 그리면 위엄이 약간 떨어진다.

- 푸른 망토를 펄럭이며 기쁨에 겨워 양팔을 벌리고 하느님이 거하신 곳으로 올라가는 성모마리아.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 귀여운 아기 천사들이 나르는 구름은 그림 위쪽의 반원에 보태어 원형을 만들고, 그 중심에 마리아의 얼굴이 들어오도록 구성되었다.

- 하늘로 끌어올려지는 성모를 보며 기뻐하는 신도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동시대 사람에게 '신 같은 사람'으로 불린다. 그런 그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었다. 젊은 시절 친구와 다투다 코를 맞아 찌부러진 뒤로, 외모에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르네상스라는 시대 자체가 천재에게도 외관의 아름다움을 요구했고, 3대 거장 중 다른 두 사람, 라파엘로는 천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잘생긴 여성 킬러, 레오나르도도 외모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나는 왜'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 그림 속 가죽에 그려진, 짐짓 뒤틀린 자화상은 자학의 결과라고 한다(정말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최후의 심판』

1536~41년, 프레스코화, 1440~1330cm, 시스티나 예배당 소장(바티칸 시국).

 

- 예수를 둘러싼 사도, 성인, 예언자, 대사교들.

- 화면 맨 위쪽에 엄숙하게 정좌했던 여태까지의 도상과는 달리 이 그림 속의 예수는 근육이 우람한 신체를 드라마틱하게 움직이고 있다. 곁에 있는 성모의 자태도 의미심장하다.

- 열두 사도 중에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순교한 성 바르톨로메오. 손에든 가죽에 보이는 비참한 얼굴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 날개 없는 천사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죄인들을 무자비하게 주먹으로 때리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천사들이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을 분다.

- 지옥의 판관 미노스는 몸에 뱀을 감고 있다. 미노스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에 적대적이었던 비아조의 얼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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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13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6


811.6

고67만  8


창비전작시


나는 고은의 『만인보』를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종교적 연민을 배운다. 나는 사람의 삶의 형태에 따라서 어느 쪽인가 하면 사람과 미움의 마음이 분명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찌들어진 운명의 땅에 태어나 온갖 삶의 형태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사라져간 인간들에 대해서 사랑이나 미움보다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다만 『만인보』를 읽음으로 말미암아서 나 자신이 인간과 삶에 대해서 더욱 경건해지는 것만으로도 『만인보』와 그 작가 고은에 대해서 감사한다.

- 한양대 교수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이영희

 

일찍이 발자끄는 빠리의 호적부와 경쟁하겠다고 호언히였다. 뛰어난 소설가라면 모름지기 이만해야 한다. 그런데 한 시인이 있어 우리 민족의 호적부와 겨루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고난으로 축복받은 이땅에서 살아갔던 평균적 인물들의 눈부신 삶과 탁월한 역사적 개인들의 평균적 삶의 자태를 교직한 『만인보』에서 시인은 문득 일천 강물 위에 은빛 도장을 찍는 달빛이 되어 독자들을 저 망망한 민중사의 바다로 인도한다. 소도둑과 혁명가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을 백과사전적 전개 속에서 추구하는 『만인보』는 진실로 민족서사시적 위엄을 스스로 갖추고 있다.

- 문학평론가 최원식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머리노래 금강 / 이름 몇 백 / 외할머니 오랜 동무 / 탁  류 / 장항 부두 1 / 순동이 / 장항 기생 / 굴뚝님 / 대천역 / 장항 부두 2 / 대천 이문구 / 나물장수 성산댁 / 봉림이 / 읍장 신중헌 / 짝 / 옛 외가 / 순남이 / 지서방 / 이관구 / 우영감 / 유재필 / 재필이 아버지 / 재필이 어머니 / 대천장 할망구 / 비인만 어부 / 구멍가게 나길섭 / 유영모 / 대천 노창길이 / 화양 정순이 / 행  인 / 솔리 추씨 / 송내 처녀 / 어린 거지 / 삼  절 / 은옥이 / 김돈중 / 제련소 소장 / 대천장 소장 / 대천장 임씨 / 인  월 / 대천 박형사 마누라 / 고봉산이 / 고서방 / 마서 나상하 / 화냥년 옥분이 / 나영순 / 복산이 아범 / 길  례 / 고  종 / 윤서방 / 삼남매 / 청라 도령 우활식 / 석봉이 / 복남이 누나 / 고광순 / 고광훈 / 본마누라 / 김수관씨 / 팔룡이 / 팔룡이 마누라 / 그  손 / 전상국 / 철  새 / 승철이 할머니 / 임  화 / 대복이 아버지 / 봉  자 / 두  로 / 다홍치마 / 뒷산 도사 / 서장옥 / 대천 호박 / 이한종 어르신 / 사모님 / 아기씨 / 머슴 석주 / 송광사 사미 / 귀먹짜가리 / 김학기 / 복산이 에미 / 상거지 노인 / 정순이 / 청라 배창덕 / 창덕이 마누라 / 채완묵이 / 대천장 여장군 / 여서방 / 창조 할아버지의 기절 / 창조 누나 / 박성춘 / 윤덕산 / 덕산이 마누라 / 그 움집 / 우군칙의 머리 / 대복이 아버지 / 대복이 어머니 / 부월이 / 앵  무 / 산업과장 / 보령군수 / 심봉사 / 심  청 / 부  채 / 최건달 전처 / 최건달 / 창호 큰어머니 / 귀동이 아버지 / 성삼문 / 창덕이 아들 형제 / 정  자 / 파리 부자 / 똥통쟁이 / 김암덕 / 신석공이 / 신석공이 마누라 / 신석공이 딸 / 신석공이 어머니 / 김주사 / 이먹고노장 / 대천동국민학교 돈선생 / 비인 염생원 / 삼거리 주모 / 상사병 / 화양 우희만 부부 / 원남이 아비 / 세 젊은이 / 권  율 / 만호 마누라 / 얌전이 / 장항 고진모 / 이발사 주백이 아비 / 주백이


순동이


흐린 물 금강 하류

장항제련소 굴뚝

그 굴뚝의 기나긴 연기 바다로 이어진다

누가 말했던가

조선에서 제일 적막한 장항읍 거리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번 걸어가면 끝나는 거리

그 거리 어중간 국밥집 남창옥

술손님 밥손님 기다려보아야

하루 서너 패로

더 올 사람 없는 남창옥

한밤중 남포불 심지 줄여

불빛은 남겨두어야지

그 집 중노미 하루 하품 열 번

나이 서른이 넘어도

부여 고란사 중인가 땡초인가

계집을 흙 보듯 하고

그저 시키는 일

술청 닦고 쓸고 물 길어다 부을 따름


이 사람이 장항 토박이

이순동이

한산 이씨 순동이

옛날 옛적 고려 이색 이어서

정승 이산해 후손인데

이제 상밥집 중노니 신세라

제 고조할애비가 남인이면 어떻고

제 증조할애비가 농풀월이면 어떻단 말인가


남창옥 주인 마누라

불여우 마누라

이 닦을 때 소금 많이 쓰지 말라 하자

아예 순동이

모래 파다가

모래로 이 닦고 르르르르 헹구어내는데


그런 남창옥 잘되는 일 별로 없다

키우던 개도 슬슬 나가버린다


봉림이


그렇게 달밤에 박꽃 같더니

열다섯 살에

그 봉림이 단발머리

고무줄 줄넘기 멈출 줄 모르는

열다섯 살에


차령산맥이 강원도 오대산에서 비롯하여

원주 치악산으로 올라섰다가

그것이 경기 충청 서운산 흑성산 지나

차령 넘으면

청양 두메 이루다가

이윽고 보령 서천 들판을 건너뛰어

장항제련소 우뚝 솟아

그만 바다로 빠져버린다

그러나 거기서 끝장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솟아나

고군산 선유도 장자도 되어

거기에 동백꽃도 피는데


장항 선창가 봉림이 시집갈 때

시집가기 전날 밤

싱숭생숭

제련소 굴뚝에 대고

장항 선창가 고물상 딸 봉림이

얌전한 봉림이

제 아버지 친구가

서천군 문산면 봉림산 이름 따서

이름 지은 봉림이

다른 것은 그만두고

부디 부디 여드름만 없애주시오 하고 빌며

아버지 술 끊게 해주시오 하고 빌며

어둔 밤 눈물 흘리며 빌고 빌었다

그 여드름쟁이 봉림이


강바람인지 바닷바람인지 비단 같은 밤


순남이


금강 개펄 개흙 범벅으로

변변치도 않은 바지락 캐는 순남이

아버지가 글 배우면

화냥년 된다고

학교 보내지 않아

바지락 캐는 순남이

제 또래 아이들

책보 메고

딸깍딸깍 필통소리 내며

학교 파하고 오는 것 보아도

부러운 생각 눈꼽만치도 없이

개펄 비탈에 맨발 푹 빠지며

바지락 따개비

졸따개비 캐는 순남이


소원 하나

고군산 선유도

그 섬에 가보는 것

석양머리 불타는 바다 바라보며

어느새 저 혼자 캄캄한 처녀가 되어버린 순남이


은옥이


언제나 빨간 두 볼의 은옥이

1 · 4후퇴 때

경기도 연천에서 피난길 나섰는 데

의정부 지나

그만 부모가 폭격으로 죽어버리고

어린 은옥이 하나 살아나

제 이름 송은옥이만은 용케 붙들고

한강 건너

수원이라

천안이라

홍성 예산이라

이렇게 바닷가 대천까지 흘러오며

어느덧 시악시 꼴 박혔다

그 모진 고생으로

어설픈 초다짐밖에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어느덧 무거운 시악시 꼴 박혔다

대천 복숭아 과수원 조만석이네 양녀로 들어가

키는 작으나

그 몸집 오동통하고 상냥하고

과수원의 고된 일

남정네 두 품이나 해내고


수문리 동네사람들

아이고 은옥이 좀 보아 은옥이 좀 보아

하고 이르던 시악시인데

그러나 이 고장이

충청도 잔반 땅이라

아무 막대기 하나 선 데 없이

그저 떠돌이로 온 은옥인지라

누구도 선뜻 데려가지 않았다

그런 신세라 워낙 은옥이도

늘 어린 시절 고향 그리워하며

시집을 가도

고향 총각한데 가겠다고 입버릇이었는데

어디 경기도 연천 포천이복사꽃 피던 춘색이던가

아직도 폿소리 포연 자욱한 싸움판이 아니던가


그래도 말이 씨 되어

그런 세월 지나서

휴전이라고

총소리 뚝 그쳤을 때

이때다 하고

은옥이 머릿수건 벗고

고향 달려가

실컷 울고불고

양친부모 허묘라도 써두고 나니

마침 총각 있어

만나자마자 성례 치르고

싸움 끝난 폐허에서

가시버시 되니

그렇게 시작하여

떡두꺼비 아들 낳아

그 아들 업고

친정 오듯

대천 수문리 과수원집에 와서

며칠 머물며

어린것한테

과수원 찬바람 마구 쏘이고 돌아갔다

 

대천 이씨네 사랑방 머슴들 입초시에는

으례 은옥이 방덩이가 올랐는데

누가 보기나 했나

그 박속 같은 방덩이

그 살살살 눈 녹는 방덩이

사철 안식교 구제품이나 걸치고

손등 터 구리셀린 바르지 않는 날 없으나

그 손등 손가락 가지런히 예쁘디예쁜 손가락

그 은옥이 방덩이는 고사하고

그 손가락도 이제 없다

 

자 포 떨어졌거든

졸장기라도 두어보아

어서

 

석봉이

 

전실 자식 남매 석봉이 석근이 앞세우고

석봉이 에미 재취로 들어와서

또 아들 낳으니

그게 원수지 어디 형제이겠는가

의붓아비야

남의 자식 꼴 못 보고

에미는 에미대로

전실 자식도 자식이요

새 자식도 자식인지라

 

그저 불 때면

매운 내에 눈물바람으로 날 저무는구나

 

이런 집구석에서 견디다가

석봉이는

제 누이 석근이 데리고

그놈의 집구석 뛰쳐나갔다

 

한사코 남의 집 중 노릇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 좋더니

끝내 남의 호주머니에 잘도 드나들었다

 

석근아

이 오라비가

너 굶겨 죽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훔쳐온 돈 쏟아놓으면

단발머리 석근이가

그 돈 얌전히 팽기며 훌쩍거린다

 

오빠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여 !

 

이 계집애가 짜기는 왜 짜

 

팔룡이

 

무창포에서

헌 유자망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대천으로 온 팔룡이

여기 와서

무슨 대수가 있나

막벌이는 거지 사촌이기 십상이지

 

한 마리 용도 거추장스러운데

여덟 마리 용으로 이름 지어놓았으니

아이고

그놈의 용트림에 얽히고 설켜

길이 트인 적 없는

팔룡이

 

어느덧 세상을 제대로 보기 싫어하여

아이들도 질색이고

아이들 노래도 질색이고

이른봄 개나리 피어도

그 개나리 꽃가지 낫으로 쳐내버리고

 

어찌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세상과는 도무지 맞지 않은 사람

최팔룡이

남의 품 팔러 가서도

반품에 그냥 돌아와버리는 사람

딱도 한 사람 최팔룡이

 

정순이

 

관촌 이씨네 높다란 토방머리

오뚝 서서

비 온 끝

분주한 낙숫물 떨어지는 것

언제까지나 바라보는

열다섯 살 정순이

눈 흰창 어찌나 그리 깨끗한지

그 정순이 눈 한번 더 보고지고

열흘은 기쁘리라

 

어서 바람 불어라

내가 연 날려

그 정순이

하늘 드높이 떠오른 연 바라보도록

언제까지나 바라보도록

열흘 아니라 달포는 기쁘리라 아흐 정순이

 

부월이

 

대복이 누나 부월이

아무것 없어도

꼭 하나 손바닥 반절짜리 거울

낡아서

좀 벗겨진 거울

 

그 거울 하나하고 있으면

한나절 온데 간데 없지

시집가면

살림 한번 매섭게 해낼 부월이

 

어쩌다가 백분 사서 바르는데

그 곱돌덩어리

그 부스러기 빻아 바르는데

그것 혀끝에 닿으면

쉬어터진 개살구맛 그대로라

거울 속 얼굴 찡그렸다가 이내 편다

 

거울 보다가

아무도 없는데

제풀에 흠칫 놀라

거울 두고 일어나

재빨리 부엌으로 간다

솥에 물부터 붓고

아궁이에

축축한 것 넣고

어렵사리 불 피운다

건넛마을 감나무에서

감 툭 떨어진다

대복이네 집에야

무슨 감나무 있겠는가

 

부월이 숨겨둔 거울

캄캄한 거울

 

얌전이

 

그 외보조개 웃어 써먹어보지 않고

조만호 딸 얌전이

아니 조만호 딸이 아니라

조만호 마누라 딸 얌전이

머리 곱게 곱게 딴 가시내야

팔월 한가위

널 한번 드높이 뛰어오르지 않고

널뛰며 깔깔대는

동네 시악시들

그 말만한 시악시들 웃음소리 들으며

명절 다음날

어머니 앞에서

어머니 실 감는데

실타래 두 손에 걸어 풀어주누나

밥도 하루 두 끼면 되고

무엇 하나 군입 다시지 않고

우물에 가도

동네 아낙네 뜸할 때

얼른 가 물 길어 온다

그 넓고 밋밋한 이마에 땀방울 돋아

마늘밭

묵은 소매 거름도 혼자 준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딸에 성이 안 차

아 배추밭 벌레 안 잡고 무엇 하였어

허나 어찌 한 몸에 두 가지 일이겠는가

그 말 들으며

기명 치고 나서

그때에야 남새밭으로 나가는 얌전이

누구 하나 쳐다본 일 없으매

정작 동네 어른도

다른 동네 사람이나 다름없이 낯설어라

까치 까마귀도 낯설어라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도 낯설어라

치마 곱다랗게 기워 입은

열여덟 살 얌전이

속으로만 잉잉거리는 얌전이

 

주백이

 

이발장이 아들 주백이

어릴 때부터 없는 일 잘도 만들어내더니

국민학교 졸업하고

홍성으로 갔는데

거기서 천안으로 갔는데

천안에서 더 나아가

서울 갔는데

3년 뒤 서울 여자 하나 차고 왔다

불과 열여섯살에

벌써 계집이 생겨 차고 왔다

그런데 동네 아낙네 눈 무섭다

암만해도

여염 년이 아니라

놀던 계집이었다

하룻밤 자고 나더니

촌집 답답해하며

부채 부치는 꼴이

석박지에 얌전히 밥 먹을 년 아니었다

 

키 껑충한 주백이 아비

그것도 며느리라고

이발해서 번 돈으로

닭 사다가 닭 고아 먹이고는 했다

 

어느 날 주백이 나가고 없는 날

주백이 어미

빨래하러 나가고 없는 날

아버님

나 그 사람보다

아버님이 좋아요

아버님이 좋아요

하며

마루끝에 둔 삐뚝구두 뒤축으로

마룻바닥 콩콩 찍어대었다

치마 걷힌 다리살 살짝 드러나서

 

주백이 아비 울타리 보니 울타리가 마구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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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12 고대 로마를 찾아서


클로드 모아티 지음, 김윤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30


082

시156ㅅ  25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25


로마, 이름만 들어도 그 찬란함과 영광이 눈앞에

그려지는 제국, 콜로세움, 판테온, 트라야누스 기념주는

20세기란 장구한 세월을 견디고 굳건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의 탄성을 자아낸 것은

바로 로마의 조각상들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육체와 함께

그 순간의 섬세한 감정까지 붙잡아 놓은 듯한 예술의

극치였다. 로마의 문화와 예술은 미를 동경하는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이다.


첫째 선이 있다.

기념주, 궁륭천장, 개선문에 보이는

순수하고 힘있는 선은 수학적 엄밀성을 수반한다.

둘째 색이 있다. 분홍색, 황토색, 담황색

건물 외관과 붉은 색, 녹색, 푸른색, 실내벽화,

그리고 대리석 조각상이 있다. 신, 영웅,

역사적 인물, 전능한 황제, 선, 색, 대리석 ---

이것은 로마라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몸을 지닌 세 가지 양태이다.

곡선과 직선에 의한 고대 로마의 부활은 엄청난

규모의 고고학적, 건축학적 계획사업이었다.

이 사업에서는 때때로 정확성보다는 미를 추구하는

것이 더 매력적인 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A la recherche de la Rome antique


차례


제1장 로마, 영원의 도시

제2장 인문주의자의 시대

제3장 개인적 소장품에서 예술사로

제4장 나폴레옹 지배하의 로마

제5장 이성의 시대

제6장 하나의 신화에서 다른 것으로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클로드 모아티 Claude Moatti

클로드 모아티 박사는 B. C. 2세기에서 A. D. 1세기에 해당하는 로마 공화정 말기와 로마 제정 초기에 일어났던 정치사상과 문화적 위기를 연구하고 있다. 고대 로마 발굴사와 로마 고고학의 '창안'에 관한 연구를 새롭게 한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연구 가운데 최초의 발견물들을 제시하고 있다.


옮긴이 : 김윤

1963년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중세시대 영국과 프랑스의 도시> <프랑스 혁명의 창조> <계몽사상의 실천> <봉건제의 위기> 등의 논문을 다수 번역하였다.

 

제1장

로마, 영원의 도시

 

수세기에 걸쳐 여러 번 파괴되고 파묻히면서도, 로마는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영원의 도시 -- 위대한 지적, 정치적, 예술적 수도 -- 는 비록 전설의 베일이 그 폐허를 덮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다.

14세기 작가인 파치오 데글리 우베르티의 《디타몬도》는 가상 여행을 기록한 것이다. 파치오와 안내인인 고대 지리학자 솔리누스는 강둑에서 울고 있는 늙은 여자를 만난다. 그녀는 의인화된 로마이다. 그녀는 시인에게 자신의 역사와 지난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12세기에 황제와 교황간의 투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실베스테르 교황에게 제국을 바쳤다는 전통적 믿음 -- 이것은 교황에게 정치적 힘을 부여하는 기반이 된다 -- 이 되살아났다. 12세기에 성 실베스테르 예배당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은 이 사건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에서 콘스탄티누스는 교황에게 왕관을 바치고 있다.

17세기에 동판 인쇄된 막시무스 원형극장(위), B. C. 1세기 말에 세워진 매장 기념물 메타 레미(가운데). 16세기에 동판 인쇄된 트라야누스 기념주의 횡단면(아래).

판테온의 돔에서 하늘을 향해 열린, 지름 9m의 구멍(위). 17세기의 그림에 나타난 판테온 정면도(아래).

마에르텐 반 헴스케르크의 그림들은 카를 5세가 로마를 약탈하고 난 이후인 1532년과 1536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이 예술가는 점점 정확하고 사실적인 관찰자가 되었다. 그는 기념물들의 옛 모습을 추측하지도 않았고 개작하여 날조하지도 않았다. 16세기에 콜로세움은 실제로 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순례자들에게 로마는 세계의 중심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아인지델른 여행안내서》에 나오는 아래의 지도는 도시를 완벽한 원으로 그리고 있으며, 가장 정평 있는 코스들을 보여 주고 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왼쪽 위에 있는 바티칸에서부터 강을 건너 아래족의 라테란까지 가는 코스였다.

니콜라 푸생이 그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조각상.

 

"교황의 궁전과 라테란 궁전 앞에 청동 조각상이 있다. 이 거대한 말에 탄 사람은 몇몇 사람들은 테오도리크라고 생각했지만 로마인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라고 믿었다. 하지만 로마 쿠리아의 추기경들과 성직자들은 그를 마르쿠스나 퀸튜스 퀴리누스로 생각했다. 말 탄 사람은 꼿꼿하게 앉아 오른손으로 백성들을 인도하고 왼손으로는 고삐를 쥐고 있다."

그레고리우스 학장

중세의 어떤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의 거대한 두상이 태양신을 나타낸다고 믿었다.

14세기 이탈리아 시인인 페트라르카(위,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그림)는 후세에 고전문학을 부활시킨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처음에 콜라 디 리엔초(아래)는 고대의 정치형태들을 부활시키려는 열망을 구현했다. 후에 그는 독재자로 변했고 민중봉기가 일어나 죽음을 당했다. 그는 3일 동안 거리를 끌려다녔다. 그러다가 두들겨 맞고, 돌팔매질당하고, 사지를 절단당한 다음에 화형당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게 제국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1세기의 청동판은 1346년 콜라 디 리엔초가 라테란의 바실리카 계단에서 발견한 것이다.

 

제2장

인문주의자의 시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하고 있을 때 예술가, 학자, 군주, 모험가, 교황은 과거 영광의 잔해를 찾아 열심히 로마땅을 찾아 다녔다. 로마는 약탈당하고 있었다. 명문, 지도, 도면들 속에서 생명력을 되찾은 로마는 실질적으로 다시 건설되었다 -- 모두 동시에.

 

독일 고고학자인 요한 요하임 빙켈만에 따르면 라오콘 군상(이것이 발견된 황금궁전 안)은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가장 큰 고통 속에서 태어나는 예술적 경이이다."

로마에 대한 세밀축소 지도는 림부르 형제들의 <베리 공의 가장 풍요로운 시절>에서 나온 것이다(15세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상 위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의 손과 머리는 라테란이 교황들의 정의와 정치적 권력의 장소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이 청동 복제품들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으로 옮겨졌는데, 이것들은 지금도 남아 있다. 네 개의 세밀화들은 15세기의 무티네시스 사본에서 나온 것이다.

몬테 테스타치오는 도자기 파편들로 이루어진 언덕으로 고대에 상업지역이었음을 보여 준다.

로마의 상징들은 가상의 기념물들과 고대 유물들 사이에 놓여 있다. 두 개의 건물 -- 정확하게는 성 베드로 성당과 성 안젤로성(城) -- 앞에 있는 공을 받쳐 든 오벨리스크(위)와 도시 성문, 다리, 성 안젤로성(아래).

원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능묘였던 성 안젤로성은 거대한 아우렐리우스 성벽으로 흡수되었던 3세기에 요새로 바귀었다. 이에 대한 수비는 16세기까지 계속해서 강화되었다. 1527년에 로마가 약탈당하고 있을 때 교황 클레멘스 7세는 바티칸과 연결되어 있는 요새화된 회랑을 통해 이곳으로 피신했다.

이탈리아 인문주의자인 율리우스 폼포니우스 라에투스(위)의 적수인 교황 바오로 2세(아래).

때때로 고대 문헌 원본들과 명문들은 서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528년에 발견된 청동판은 갈리아인을 대표해서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원로원에서 연설한 것을 재현한 것이다. 1세기 후에 타키투스는 그의 《연보》에서 이 연설에 대해 언급했다.

1506년 라오콘 군상(아래)의 발견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고대 예술의 걸작이라고 간주한 이것을 열심히 모사했다. 16세기 중반의 그림(위)은 페데리코 추카리가 그린 것이다. 최근에 로마 남쪽 스페르론가 발굴은 라오콘 군상이 본래 로마 조각상이 아니라 청동으로 된 헬레니즘 작품의 대리석 모사품임을 암시하고 있다.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레오 10세.

아폴로 벨베데레. B. C. 4세기 그리스 조각상의 로마 복제품.

로마는 16세기 중반에 자그마치 90개나 되는 사설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었다. 울리세 알드로반디의 《로마시의 고대 유물들》(1576) 같은 당시의 도서목록들을 보면, 고대 예술을 수집하고 궁전을 박물관으로 전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던가를 이해할 수 있다. 마에르텐 반 헴스케르크가 그린 궁전 안뜰에서 우리는 고대 조각상들을 강조하기 위해 근대 건축술을 활용하려 한 시도를 엿볼 수 있다.

하드리아누스 별장 수채화.

하드리아누스 별장에서 비둘기 모자이크 같은 동물 모자이크가 많이 발견되었다.

16세기 중반에 로마 지도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여기에서 복제된 피로 리고리오의 고고학 지도(1551)는 요새화된 로마 서쪽의 산등성이인 야니쿨룸에서 바라본 도시에 대한 일종의 항공관측 형태를 띠고 있다. 지도에서 팔라티누스 언덕, 포룸, 카피톨리누스 언덕, 고대 기념물의 잔해와 같은 중요한 장소들을 찾을 수 있다.

조르조 바사리가 프레스코 화법으로 그린 성 베드로 바실리카 건물.

16세기 로마 지도자들은 유적 보호와 근대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교황 식스투스 5세(재위 1585~1590)는 자신의 공식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와 함께 고대 유적들을 희생시켜서 전망을 넓게 트는 건설 계획을 세웠다.

《바티칸의 오벨리스크 운반에 관하여》 권두화에 있는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

1536년경 성 베드로 바실리카를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1590년 5월에 완공되었다. 점차 근대 로마가 건설되고 있는 중이었다.

네로의 원형극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를 내리는 데 100명의 일꾼들이 6일 동안 일했고, 발판을 만들고 동물을 이용해서 이것을 옮기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이 사건을 묘사한 위 그림은 당시에 그린 것이다.

결국 1586년 9월 10일에 오벨리스크는 숨을 죽이고 있는 군중들 앞에서 성 베드로 성당 광장에 세워졌다. 수많은 받침돌이 높이 25m가 넘는 모놀리스(monolith, 돌 하나로 만든 기둥)를 떠받쳤고, 네 마리의 청동사자가 주위를 둘러쌌다.

 

"나는 내 머스켓총으로 좀더 빽빽하고, 두텁게 얼겨붙어 있는 접전지역을 조준했다. 그리고 다른 군인들을 지휘하고 있는 오른쪽 가운데에 있는 군인을 겨냥햇다. 재빨리 알렉산드로와 체키노 쪽을 돌아보면서 상대편에서 발사하는 총탄의 섬광을 피할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 준 다음 발사명령을 내렸다. 우리가 각각 두 발씩 쏘고 난 뒤 조심스럽게 벽을 살펴보니 적들은 혼비백산한 것 같았다. 우리가 쏜 총에 부르봉 공작이 죽은 것이다."

벤베누토 첼리니

헴스케르크가 묘사한, 참패의 와중에서 죽음을 맞은 부르봉 공작 카를.

로마 약탈에 대해 알려진 당대의 진술은 없다. 그 당시 전투를 묘사한 이 그림은 나중에 그린 것이다.

안토니오 보시오 《지하 로마》

 

제3장

개인적 소장품에서 예술사로

 

18세기에 로마와 유적들은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하나의 유행, 예술가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 영원히 기억에 남는 성지순례의 목적지로 자리잡았다. 고대 유물에 대한 광적인 열기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부유한 수집가들은 박물관을 건립하기 시작했고, 독일 고고학자 요한 요아힘 빙켈만은 예술사의 기초를 마련했다.

로마 조각상들의 잔존물은 18세기 화가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였다. 미카엘 스웨르츠의 <작업실>.

복제가인 바르톨로메오 카바체피(위)는 본래의 양식, 시대, 재료 등을 고려하는 새로운 복제방법을 완성하여 그것들의 기원을 복원하였다. 요한 조파니가 그린 <자신의 갤러리에 있는 찰스 타운리>(아래), 자크 사블레가 그린 <고대 유물 애호가 방문>(가운데).

작가들이 고대 문헌을 모았듯이 예술가들도 고대 조각품과 회화들을 수집했다. 16세기의 예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는 한 조각가의 집을 보고 "그 모두는 경이로운 것들로 꽉 차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고대와 근대의 물건들은 대리석, 청동상, 회화를 망라한 것이다. 고대 예술은 모델분만 아니라 위선을 내세우는 데도 한몫 했다. 이런 경향은 17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교황과 군주들은 가장 뛰어난 소장품을 얻기 위해 경쟁했다. <코르넬리스 반 데어 게스트의 작업실>은 빌렘 반 하에흐트가 그린 것이다.

오늘날 보르게제 별장 부지는 로마에서 가장 큰 공원이고, 카시노는 가장 훌륭한 박물관 중 하나이다.

스키피오의 무덤.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의 《로마의 고대 유물》에 나오는 판화. 1756.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성 세바스티아누스 성문 밖 아피아 가도에 있는, 해방된 사람들의 납골당은 수천 개의 유골단지 벽감이 들어 있는 세 개의 인접한 큰 방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건축물이었다. 피라네시의 판화는 이 무덤을 발견했던 사람이 느꼈던 엄숙함을 전해 주고 있다. 19세기에, 특히 이 지역에서 다른 납골당들(유골단지를 위한 벽감이 있는 지하실)이 아피아 가도를 따라 발견되었다.

하드리아누스 능묘의 주변을 재현한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의 조감도.

피라네시 시대 당시에 캄포 바치노로 알려진 포룸은 파묻혀 있던 고대 유물의 파편이 발견되는 지역이었다.

시간이 파괴한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무너졌고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식스투스 5세는 이곳을 양모공장으로 바꾸려 했었고, 다른 사람들은 예배장소로 사용하려 했다. (심지어 이곳에서 강신술(降神術) 모임을 열기도 했다.) 그러다가 1730년에 지진으로 결정적인 손상을 입었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나무로 만든 담장을 기둥 사이에 채워 넣게 했는데, 카날레토가 그린 그림에 이것이 보인다. 꼭대기에 보이는 식물들은 실제 존재했던 것이다.

신전이 교회로

테베레 강가에 위치했던 이 두 개의 공화정 시대 신전들은 교회로 바뀌었기 때문에 보존될 수 있었다. 운명신의 신전은 산타마리아 에지치아카로 불렀다. 둥근 헤라클래스 신전은 성 스테파노가 되었고, 이후 1560년에 산타 마리아 델 솔레가 되었다. 이어지는 세기 동안 두 신전은 근대 건축물들 속으로 흡수되었다.

고대 유물의 파편들

<고대 로마의 화랑>은 로마의 프랑스 대사관저 장식가인 조반니 판니니가 그린 것이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당시 가장 위대한 주제인 관점의 대중성, 장식, 고대 유물 수집, 유희감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왼쪽에서 <파르네세 헤라클레스>와 <죽어 가는 갈리아인>, 오른쪽의 <스피나리오>(발에서 가시를 빼고 있는 소년)와 <라오콘 군상> 같은 조각들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기념물들 중에는 왼쪽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베스파시아누스 신전의 세 기둥과 위쪽에 판테온, 오른쪽에 콜로세움이 있다.

요한 요하임 빙켈만에게 순백색의 조각상들은 그리스 예술의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1717년에 구두공의 아들로 태어난 빙켈만(위)은 신학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연구를 추구했다. 신화와 고대 예술에 대한 정열은 그를 로마로 이끌었다. 그는 헤르쿨라네움, 폼페이, 그리고 파에스툼의 발굴지를 방문했고, 자신을 사서로 고용했던 알바니 추기경의 친구가 되었다. 그는 1768년에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암살되었다.

 

제4장

나폴레옹 지배하의 로마

 

"교황은 로마에 파견될 사절단이 선정한 100점의 회화, 흉상, 항아리, 조각상들을 프랑스 공화국에 인도해야 한다. 이중에는 사절단이 선발한 500개의 필사본들뿐만 아니라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있는 유니우스 부루투스의 청동 흉상과 마르쿠스 부루투스의 대리석 흉상 두 점이 포함될 것이다."

볼로냐 협약 제8항

나폴레옹 정부는 많은 대리석 파편과 경화를 획득할 수 있는 발굴작업을 지휘했을 뿐만 아니라 -- 허버트 로버트가 그린 그림에 나타나 있다 -- 콜로세움을 청소하고 복원하는 데도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였다.

고고학자인 엔니오 퀴리노 비스콘티 자작.

고고학자 콰트르메르 드 퀸시.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교황 피우스 7세의 초상화.

피에르 앙투안 다뤼 백작은 나폴레옹의 로마 대리인이었다.

티투스 목욕탕은 1506년 라오콘 군상이 발견되었던 트라야누스 목욕탕에 덮여 있었다. 새로운 보물을 찾아서 더 많은 발굴작업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트라야누스 목욕탕의 기저부를 발견했다.

트라야누스 포룸 발굴과 다른 프로젝트들을 도와 주었던 건축가 주세페 발라디에르.

젊은 프랑스 건축가 J. F. 메나제는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발굴을 주도했다. 그는 기둥들의 기저부와 건물 위까지 뻗은 계단들을 찾아냈고, 신전이 이상적으로 복원된 상태를 그려 냈다.

 

제5장

이성의 시대

 

19세기에는 포룸, 아피아 가도, 카타콤 같은 중요한 학술적 발굴들이 이루어졌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 이래 때때로 무질서하고 성급한 방식으로 축적되었던 자료들 - 원본, 명문, 유물 - 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제1대문의 아우구스투스>에서 황제는 고요한 위엄을 발산하고 있다. 그의 가슴판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고, 꼭대기에는 하늘을 나타내는 턱수염 난 노인이 있다. 왼쪽에 날개 달린 새벽과 일출의 영혼이 뒤따르는 태양 전차가 있다. 아래 부분은 지구, 아폴로, 아르테미스이다.

프레스코화에 나오는, 담장이 처지고 나무와 새들이 가득 찬 리비아 저택의 정원은 로마 회화에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매력과 신비스런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아피아 가도에 있는 이 무덤은 가장 자주 그림에 등장한다. 이것은 오랫동안 황소머리로 불렀다. 매장기념물들에 대한 전통적인 장식인 프리즈(frieze, 엔타블라처 중 아키트레이브와 코니스 사이에 있는 소벽의 띠 모양 장식) 장식이 황소머리이기 때문이다.

교황 피우스 9세가 '교황들의 지하예배당'을 방문하고 있다.

 

제6장

하나의 신화에서 다른 것으로

 

20세기에 고고학은 현대로 접어들었고 그 방법론을 찾아냈다. 고립된 발굴과 공화정시대와 제정시대로 제한되었던 발견의 세기가 끝난 이후, 초기 로마--왕정 로마--가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고, 차츰 그 기원의 신비가 벅겨지기 시작했다.

건축가로 훈련받은 보니는 특히 지질학과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그보다 이전 시기의 지지학 저자이자 고고학자들은 야외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문헌들에 의거하여 발굴작업을 했다. 보니는 직접 삽과 곡괭이를 들고 실질적인 고고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동료들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고고학이 유적지의 역사를 기원에서부터 재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목표는 오직 층위학(체계적으로 서로 다른 층들을 발굴하는 것)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은 보니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얻어 내지 못했다. 층위학적 방법은 1960년대가 되어서야 체계적으로 유적지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콜로세움의 재구성.

고대 로마의 모형.

수채화법으로 재현된 로마 포룸.

 

재발견된 위대함

1937년 9월 23일에 '로마의 화신 아우구스투스 전시회'가 민족도로에 있는 전람회장에서 열렸는데, 특히 사진전시와 원형경기장, 다리, 목욕탕의 축소모델들이 눈길을 끌었다. 도시의 설계도는 란치아니의 '도시모형'을 근거로 제작된 것이었다. 전시된 자료들은 1942년 이디오피아 정복과 정권탄생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로마 국제박람회에서도 다시 사용되었다. 로마 남쪽의 모든 지구들을 이 전시를 위해 비웠으나, 제2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의 패배로 작업이 중단되어 1950년대가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로마 문명 박물관은 1937년 전시회 때 사용되었던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오스티아 극장은 1930년대에 복원되었다. 귀빈석과 반원형의 무대 뒤로 이전에 아치형의 기둥이 늘어선 현관이 있던 곳에, 이 세 개의 가면장식을 포함하여 대리석으로 된 건축 조각품들이 설치되었다.

로마의 문장(紋章)은 마르스신의 신성한 동물 암늑대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늑대는 로마의 건설자이자 마르스의 아들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순결한 처녀(영원한 순결을 맹세하고 여신의 제단에서 성화를 지키는 여섯 명의 처녀 중 하나) 레아 실비아를 구했다.

 

B. C. 5세기에 유래한 청동상 암늑대에는 원래 쌍둥이가 없었다. 쌍둥이들은 15세기에 조각가가 집어 넣은 것이다. 원래의 장소는 알려져 잇지 않지만, 단테는 이 조각품을 라테란 궁전에서 보았다. 이것은 1471년에 카피톨리누스로 옮겨졌다.

포기우스로도 알려진, 역사가인 잔 프란체스코 포조 브라촐리니.

셉티조니움은 3세기 초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건설하였다. 16세기에 교황 식스투스 5세가 완전히 해제할 때까지 이 건물은 대부분 온전하게 서 있었다.

피라네시의 카에칠리아 메텔라 능묘 도판.

"콜로세움이 건재하는 한 로마는 건재하리라. 콜로세움이 무너질 때 로마도 무너지리라. 그리고 로마가 무너질 때는--전세계도." 바이런의 <차일드 해럴드(바이런의 장편 서사시)>(1818)에서.

피라네시의 《로마 유적》 제2권에 실린 권두화는 그의 매장건축물, 특히 아피아 가도의 무덤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음을 보여 준다. 여기 있는 것은 상상을 통해 재구성한 것이다.

판테온은 119년과 128년 사이에 건립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로마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 기념물이다.

미셸 드 몽테뉴.

스탈 부인.

복원된 고대 유물이 19세기 로마 관광객을 환영하고 있다.

벤베누토 첼리니.

샤를 드 브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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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11 HOW TO READ르트르 Jean-Paul Sartre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지음 · 변광배 옮김

2008,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8074

 

082

하66ㅇ 13

 

전세계 지성인들이 뜨겁게 열광했던 인물.

그는 살아서는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열정이었고

사후에는 지식인들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남았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유의미한 것은 그의 명성 때문이 아니다.

지식과 철학이 학문의 틀을 넘어

인간의 절대적 자유, 현실에 대한 책임과 결합할 것을

끝까지 추구한 끈질김에 있다.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지식인의 대표적인 초상, 사르트르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지성인 사르트르, 그러나 그가 이룩한 엄청난 성과는 하나의 단순한 이미지로 귀착되는 경향이 있다. 카페에 앉아 어려운 철학서를 집필하는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 책은 소설 《구토》, 희곡 《닫힌 방》, 정치 평론 《공산주의자들과 평화》를 비롯하여 주요 철학서 《존재와 무》 《변증법적 이성 비판》 등을 직접 읽음으로써, 개인적인 명성에 가려진 사르트르 사유의 핵심을 드러낸다. 또한 실존철학의 틀에 갇혀 있던 그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특히 철학자 사르트르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어떻게 학문 영역의 경계를 넘어 현실적 문제에 참여했는지를 살핀다. 새로운 형태의 실천,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의 참여가 요구되는 이때에 '지식인' 사르트르를 읽는 이유 자체가 재탄생한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Robert Bernasconi

미국 멤피스 대학교 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문제적 하이데거 Heidegger in Question : The Art of Existing》 《하이데거의 존재의 역사와 언어의 변형 The Question of Language in Heidegger's History of Being》 등이 있다. 이밖에 데리다, 레비나스에 대한 연구서와 인종 문제를 다룬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변광배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대우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같은 대학에서 강의 중이다. 프랑스 몽펠리에3대학에서 <사르트르의 소설과 극작품에 나타난 폭력>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프랑스 인문학 연구 모임 '시지프'를 이끌고 있다. 저서로 《존재와 무 :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제2의 성 : 여성학 백과사전》 《사르트르 참여문학론》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레비나스 평전》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외 다수가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철학과 대중 사이의 관계 잇기

 

1 나 역시 잉여존재다

: 《구토》

2 외부에, 세계 속에, 타인들 틈에

: <지향성>

3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

: 《닫힌 방》

4 그는 카페의 종업원을 연기한다

: 《존재와 무》

5 전쟁에서 무고한 희생자는 없다

: 자유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

6 나는 타인들의 자유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7 진정한 유대인은 자신을 유대인으로 만든다

: 《유대인 문제에 관한 성찰》

8 가장 혜택을 못 받는 자들의 시선

: 《공산주의자들과 평화》

9 봉쇄된 미래

: <방법의 문제>

10 인간은 폭력적이다

: 《변증법적 이성 비판》

 

■ 주

■ 사르트르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역자 후기 : 사르트르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

 

1

나 역시 잉여존재다

: 《구토》

 

부조리가 자신의 존재와 이 존재를 드러내는 구토를 이해하는 공통 열쇠라는 생각을 도입하면서,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로캉탱은 구토 체험에 대해 더 큰 확고함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그가 자신의 존재에 이르는 것은 사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구토를 통해서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구토를 통해 그는 실제로 존재의 부조리를 발견한다.

 

2

외부에, 세계 속에,

타인들 틈에

: <지향성>

 

사르트르는 실재론과 관념론의 논쟁에 대해, 특히 인간을 세계와 거리를 두는 생각에 이미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인간이 사물과 맺는 구체적 관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이 작업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은 인간이 세계 속의 사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으로 철학 연구를 변환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후설이 주장한 지향성 개념에서 그가 느낀 매력은 바로 이 개념을 통해 그 관계를 모두 기술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3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

: 《닫힌 방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르생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몇몇 비평가들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대사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주장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런 경향은  《존재와 무》에서 제시된 인간관계에 대한 설명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어떤 쌍이든 각자는 주체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를 객체화하여 격하시키려고 경쟁한다고 말한다.

 

4

그는 카페의 종업원을

연기한다

: 《존재와 무

 

음료수를 나에게 가져다준 사람은 종업원으로 위장한 자가 아니다.

종업원이 되는 역할을 연기하는 종업원은 즐기기 위해 종업원을 흉내 내는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나에게 음료를 가져다준 종업원은 실제 종업원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종업원은 결코 한 명의 종업원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사르트르는 이것을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그 의미는 이렇다.

즉 내가 아무리 나의 손님들에게 한 명의 종업원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는 내 자신에게 있어서는 종업원이 아니라는 의미다.

왜냐하면 단지 내일이라도 당장 이 직업을 그만둘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일을 하는 것은 오직 나의 다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5

전쟁에서

무고한 희생자는 없다

: 자유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

 

프랑스가 해방된 1944년 이듬해에 그는 BBC 라디오에서 이렇게 선언한 바 있다.

"독일군이 점령했던 때보다 우리가 더 자유로웠을 때는 없었다."

그의 존재론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이 선언보다 더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다.

우리는 항상 완전히 자유다. 물론 정치적으로 보면 자유에는 정도가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자유롭게 말을 한다거나 혹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과 같은 개인의 권리를 통해 이 자유의 정도를 측정하는 대신에 사르트르는 어느 정도까지 자유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6

나는 타인들의 자유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사르트르의 신념에 따르면, 우리가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자기기만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이 경우 자유의 본성에 관련해 우리 자신이 우리를 속이는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억압이란 근본적인 실수 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르트르의 철학은 억압 계급의 이데올로기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으로 나타남과 동시에 피억압 계급과는 아주 잘 들어맞는 것으로 나타난다.

 

7

진정한 유대인은 자신을

유대인으로 만든다

: 《유대인 문제에 관한 성찰》

 

그의 유대인 연구는 본격적인 학술 연구도 아니며 실제로 그는 유대인의 역사를 거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이 혼자서는 반유대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확신, 사람이 반유대주의자를 범속한 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여긴다는 견해는 뛰어난 면이 없지 않다.

후일 그는 이런 생각을 식민주의의 인종차별적 토대를 분석하면서 더 발전시킨다.

사르트르는 반유대주의의 기원이 외적 요인에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8

가장 혜택을

못 받은 자들의 시선

: 《공산주의자들과 평화

 

사르트르는 점차 한 사회 구성원들 중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들, 즉 유린된 자들을 위한 참여의 기저를 향해 다가갔다.

그가 노동자들과의 연대성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에 사용했던 방법은 당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에 대한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자신만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의 비판적 목소리는 여전히 가장 혜택을 못 받는 자들의 편을 들고 있다.

너무 지쳐서 자신들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자들, 따라서 당을 필요로 하는 자들로 말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당에 대한 환멸에 이어 이 대중들에게 좀 더 나은 역할을 부여한다.

 

9

봉쇄된 미래

: <방법의 문제>

 

<방법의 문제>에서 그는 사회를 그것의 구성 요소인 계급들의 미래를 막거나 열어놓는 방식이라는 면에서 관찰하려 한다.

그가 여기에서 내세운 목표가 마르크스주의를 소생시키는 데 실존주의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오히려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오랫동안 하나의 구체적 철학이 되고자 했던 실존주의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0

인간은 폭력적이다

: 《변증법적 이성 비판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 사르트르는 단지 자유주의의 원자적 개인주의에 대해 도전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프랑스대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 체제의 폭력성을 설명할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이 저작이 출간되었을 때 파농과 같은 제3세계 운동가들은 즉시 이 책의 중요성을 알아차렸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저작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기준에 적합한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저작은 그 자체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은 철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주 독창적인 시도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르트르의 생애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나다.

190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다.

1917년 어머니가 재혼해서 새 가정을 꾸려 라로셀로 이사 가다. 이곳에서 불행한 시기를 보내면

             서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열정을 일시적으로 상실하다.

1920년 파리로 되돌아온 이후 책을 쓰는 열정이 다시 살아나다. 부모는 1921년까지 라로셀에서 거

             주.

1924년 전통의 명문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였지만, 4년의 재학 기간 동안 강의에 거의 참석하

            지 않다. 그 대신 아롱, 캉길렘(George Canguilhem), 이폴리트(Jean Hyppolite), 메를로

            퐁티,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니장(Paul Nizan) 등과 함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1927년 니장과 함께 야스퍼스(Karl Jaspers)의 《일반정신병리학 Allgemeine

             Psychopathologie》을 번역하다.

1928년 교수자격시험, 필기시험에서 낙방하다. 니장이 공산당에 입당하다.

1929년 7월 보부아르를 만나다. 교수자격시험을 같이 준비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다. 이 시험에

             서 사르트르는 수석을, 보부아르는 차석을 차지하다. 11월부터 생시르 육군사관학교에서

             18개월 동안 군 복무를 하다.

1931년 르아브르 소재 고등학교에 철학 교수로 발령을 받다. 보부아르와 결혼을 고려했으나 곧 포

             기하다. 그들에게는 결혼이, 자유를 제한하는 부르주아의 제도로 보임.

1933년 9월 베를린 소재 프랑스연구소에서 철학을 연구하다. 파시스트의 등장에 혐오감을 느끼긴

             했으나, 독일 체류로 인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님.

1936년 프랑스로 귀국해 다시 르아브르 소재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상상 력에 대한 초기

             연구인 《상상력 L' Imagination》을 출간하다. 하지만 보다 독창적인 부분은 4년 후에

            《상상계》라는 제목으로 출간.

1937년 파리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근하다. 1년 전에 파리로 전근한 보부아르와 더 자주 만나게 되

            다. 단편 《벽》을 발표하다.

1938년 첫 장편소설인 《구토》를 발표하다.

1939년 《감동론 소묘 Esquisse d'une theorie des emotions》를 출간하다. 단편집 《벽》이 대

            중들과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다. 9월에 전쟁에 동원되다. 군 복무 중에 했던 독서와 사색에

            대한 진지하고도 흥미로운 기록인 《기이한 전쟁 수첩》이 후일 유고집으로 출간됨.

1940년 35세가 되던 날 전쟁포로가 되다. 포로수용소에서 하이데거의 저작을 읽고, 종교적 성격을

            띤 한 편의 희곡을 쓰고, 동료 포로들과의 동지애를 경험하다. 이 경험이 후일 타인과의 관

            계를 설명하는 철학적 관점에 반영됨.

1941년 오른쪽 눈이 사시라는 신체적 특징을 이용해 석방되다. 군 복무에 적당하지 않다는 판결을

            받다. 파리로 귀환 즉시 철학 교수로 복직함과 동시에 '사회주의와 자유'라는 비밀 저항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했는데, 주로 정보를 모으고 전하는 일을 수행했음. 이 단계에서 사르

            트르가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을 했는가는 그 뒤로도 두고두고 문제가 됨.

1943년 희곡 《파리떼 Les Mouches》와 철학 저작 《존재와 무》를 출간하다.

1944년 7월에 《닫힌 방》을 처음으로 공연하다. 교육계를 완전히 떠나, 그 이후로 다시는 가르치

             는 일에 종사하지 않음.

1945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보도하기 위한 프랑스 특파원으

            로 미국을 방문해 이해의 첫 며칠을 보냄. 그가 쓴 비판적 기사는 종종 논쟁을 촉발시킴. 10

            월에 파리에서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 앞에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강연을

            하다. 대하소설 《자유의 길 Les Chemins de la liberte》 첫 두 권을 발표하다. 이 소설은

            1949년에 세 번째 권이 발표되나, 미완성으로 남게 됨.

1946년 다시 미국에서 몇 달을 보내다. 그 기간 동안 덜로리스라는 여자와 알게 되다. 보부아르는

            특히 덜로리스를 두려워했다고 함. 《유대인 문제에 관한 성찰》을 출간하다.

1947년 후일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여 출간될 글들을 《현대》지에 따로따

            로 싣다.

1948년 상고르(Leopold Senghor)의 흑인 시선집의 서문인 《검은 오르페우스》를 쓰다. 교황청

            은 사르트르의 전체 저작을 금서 목록으로 지정했으며, 그 결과 가톨릭 신도들이 그의 저작

            을 읽는 것이 금지됨.

1952년 《성자 주네, 배우와 순교자 Saint Genet, comedien et martyr》를 출간하다. 이 저작은 일

           찍부터 플로베르를 대상으로 연구해보고자 했던 실존적 정신분석의 과정을 주네(Jean

           Genet)에게 적용한 연구의 결과임. 그 뒤 플로베르에 대한 연구는 사르트르의 평생의 연구

           주제로 남게 됨.

1954년 한 달 동안 소련을 방문하다. 방문 후에 가진 기자회견은 소련 체계에 대해 아무런 비판 내

           용을 담고 있지 않음. 2개월 동안 중공을 방문 후 다시 소련을 방문하다.

1956년 《현대》지에 <식민지주의는 하나의 체계다 Le colonialisme est un systeme>를 발표하다.

           10월 소련의 헝가리 침공 이후 소련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프랑스 공산당도 공격, 하지만 알

           제리전쟁을 일으킨 프랑스에 대한 공동보조로 인해 프랑스 공산당과는 관계를 유지함.

1957년 폴란드 잡지에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발표하다.

1960년 《변증법적 이성 비판》을 출간하다.

1961년 알제리 해방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사르트르의 아파트에 폭탄이 투척됨. 그 다음 해에 다시

            한 번 폭탄이 투척되었으나, 사르트르는 다른 곳으로 이미 이사를 한 참이었음. 파농의 《대

            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서문에서 혁명적 폭력을 강력하게 옹호하다.

1963년 어린 시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전적 소설 《말 Les Mots》을 발표하다. 이 작품에서 자

            신이 어떻게 글쓰기를 통해 삶을 영위해나가고자 하는 환상에 사로잡혔는가를 설명.

1964년 10월 지금까지 상 받기를 거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해 노벨 문학상 후보자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스웨덴 한림원에 보냄. 하지만 이 상을 수상하게

            됨.

1965년 미국의 코넬 대학교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바꾸다. 북베트남에 폭격을 계속 가하는 한 미국

            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선언.

1966년 베트남에서 저지른 미국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열린 러셀(Bertrand Russell) 초청 국제

            재판정에 참가하다. 런던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어 그다음 해에 미국이 테

            러 성격의 폭격을 가했다는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함. 이 재판은 스톡홀름에서도 열렸지

            만 후일 영국과 프랑스는 재판의 개정을 불허함.

1968년 파리에서 발생한 5월혁명에서 학생들을 지지하다. 이해에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소련의

            침공을 비난했을 뿐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파리떼》와 《더러운 손 Les Mains

            sales》의 공연에도 참석함. 이 두 작품은 그곳에서 저항군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으로 여

            겨짐.

1970년 마오이스트 성향의 신문 《인민의 대의》가 출간되다. 이 신문이 압수된 후 편집자 자격으

            로 출두 명령을 받음. 경찰에 체포되기 위해 길거리에서 이 신문을 판매함. 그러자 드골

            (Charles Andre Joseph Marie de Gaulle) 장군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김. "볼테르

            는 체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후 공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다른 급진적 성향의 신문들의

            편집에 관여하게 되다.

1971년 20여 년을 할애한 플로베르에 대한 실존적 연구서인 《집안의 천치》의 첫 두권을 출간함.

            1972년에 세 번째 권을 출간했으나, 네 번째 권(《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에 관련

            된)을 포기함.

1973년 유권자들이 고립된 개인들로 환원되고 마는 선거제도에 반대하는 <선거, 바보들을 위한 덫

            Elections, piege a cons>을 발표하다. 새로운 일간지 《리베라시옹 Liberation》지의 창

           간을 지원하고, 주필을 맡다.

1974년 각성제 남용과 다년간의 과로로 건강을 해쳐 좌파 성향 신문의 편집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

            만 여러 정치 토론에 참석함.

1980년 레비(Benny Levy)와의 대담집 《이제는 희망을 L'Espoir maintenant》을 출간하다. 이 대

            담집으로 인해 많은 논쟁이 촉발됨. 왜냐하면 몇몇 연구가들에 의하면, 젊은 레비가 사르트

            르에게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끔 강요했다는 것. 같은 해 4월 15일에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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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10 만인보

 

高銀

200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5

 

811.6

고67만 7

 

나는 고은의 『만인보』를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종교적 연민을 배운다. 나는 사람의 삶의 형태에 따라서 어느 쪽인가 하면 사람과 미움의 마음이 분명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찌들어진 운명의 땅에 태어나 온갖 삶의 형태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사라져간 인간들에 대해서 사랑이나 미움보다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다만 『만인보』를 읽음으로 말미암아서 나 자신이 인간과 삶에 대해서 더욱 경건해지는 것만으로도 『만인보』와 그 작가 고은에 대해서 감사한다.

- 한양대 교수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이영희

 

일찍이 발자끄는 빠리의 호적부와 경쟁하겠다고 호언히였다. 뛰어난 소설가라면 모름지기 이만해야 한다. 그런데 한 시인이 있어 우리 민족의 호적부와 겨루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고난으로 축복받은 이땅에서 살아갔던 평균적 인물들의 눈부신 삶과 탁월한 역사적 개인들의 평균적 삶의 자태를 교직한 『만인보』에서 시인은 문득 일천 강물 위에 은빛 도장을 찍는 달빛이 되어 독자들을 저 망망한 민중사의 바다로 인도한다. 소도둑과 혁명가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을 백과사전적 전개 속에서 추구하는 『만인보』는 진실로 민족서사시적 위엄을 스스로 갖추고 있다.

- 문학평론가 최원식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작자의 말

얼레지꽃 / 낮거리 / 조수길 / 화양댁 / 되  놈 / 단  군 / 두칠수 / 새 마누라 / 김은석 / 입분이 / 붕어집 양반 / 문봉안 영감 아들 / 널순이 / 상두소리패 / 순임이 이모 / 김진구 선생 / 교장 권오창 / 강중도 / 강중도 마누라 / 김덕령 / 조봉암 / 5대 독자 / 김옥균 / 이기섭 / 정자 누나 / 윤생원 / 청개구리 / 길모 누나 / 피  말 / 남궁 억 / 새터 고만종이 / 덕배 아재 / 길선생 / 황  소 / 남순이 / 가시내 / 고근상 / 홍복근 원장 / 째보선창 갑술이 / 신라 헌강왕 / 방  화 / 묵은장 상거지 / 군산 제일 부자 / 우정숙 / 나무꾼 시인 정봉 / 함신호 / 서재열 / 군산 건달 / 임두빈이 마누라 / 양  길 / 굴둑 동티 / 임두빈이 어머니 / 이제과점 / 윤명자 / 팔척 남매 / 한하운 ! / 김진숙 / 라쿤파르시타 / 이  훤 / 돛대봉 / 전대석 / 난순이 / 나운리 싸낙매기 / 계  모 / 조부희 / 썩을 년 임피댁 / 머슴 남수 / 혹부리 / 문남철 / 권평건 / 이달호 / 동국사 금하 스님 / 금하 스님 마누라 / 쩔뚝발이 영자 / 이용구 / 김갑영 / 목련 송기원 / 김순근 / 미스 박 / 김익순 / 김삿갓 / 이만복 / 도리도리 할아버지 / 꾕매기꾼 / 정윤봉 / 이덕 선생 / 윤여순 / 당북리 / 그 무덤 / 도둑 2대 / 오금덕이 내외 / 한서울댁 시어머니 / 박일룡 / 차칠선 / 백남운 / 고병조 / 사찰계장 이호을 / 조부희 오라버니 / 강일순 / 어부 고씨 / 이수복이 / 고씨 마누라 / 기영감 / 최  씨 / 어부 두남필이 / 전주사 / 게  막 / 오  씨 / 성덕대왕 신종 / 임 / 강철종 / 나병재 / 최영식 / 노비 욱면이 / 째보선창 주모 / 개 물린 도길이 / 응봉 스님 / 형사 이진표 / 김창환 / 돌 돌려 맹세하나니 / 김재희 / 김진강 / 화가 홍건직 / 문영감 / 최혁인 / 김상호 / 김교선 / 째보선창 천씨 / 설중매 / 이병훈 / 육손이 / 코찡찡이 애숙이 / 김  헌 / 김남현 스님

 

새 마누라

 

나운리 장영감

군산 장안관 기생 옥매 모셔다가

인력거로 모셔다가

안방 늙은 마누라

윗방으로 쫓고

함께 늙어가는 자식 사형제

다 제금나

혹은 정미소 하고

혹은 떡방앗간 하고

혹은 석유회사 차리고

혹은 금융조합 다니는데

그 자식들 불러다가

 

여기 너희들 새어머니다 인사 차려라 하니

마흔살짜리 큰아들부터

꼼짝달싹 못하고

그 비린내나는 기생년한테

새어머님 절 받으시지요

하고 절하니

이어서 절하니

어이

어이

어이

어이

하고

얼쑤 새어머니 제법 태깔닌다

 

나운리 장영감 새 마누라 얻은 지 2년 만에

논 2천 평짜리

스무 마지기짜리

또 3천 5백 평짜리

밭 천 평짜리

새마누라 앞으로 등기내 조고

금가락지 옥가락지

금반지

금팔찌

금비녀 은비녀

금덩어리까지 해다 바치고

 

그 색정이 무엇이관대

아냐

그 재물이 또한 무엇이관대

딱 3년 재미 보며

베개 베는 맛 새삼스럽다가 세상 떠났다

 

그 새어머니 눈썹 초생달로 그리고 나가버린 뒤

안방으로 돌아온 본마누라

아무도 없는데

마당 가운데 장닭 씨암탉 있는 데 대고

 

아이고 뒈져 싼 영감

아이고 내 영감 죽인 년

벼락 맞아 죽을 년

 

그러나 옥매 다시 장안관 가서 기생질하는데

이번에는 장영감 큰아들

장길순이가

새어머니 새어머니 하고 사로잡힌다

옥매 넉넉히

요사이 집안 다 무고하시고

어쩌고 하며

장길순이 어깨 주물러준다

 

강중도 마누라

 

서방 강중도가

워낙 손끝 하나 끄떡치 않는 놈팡이인지라

마당의 개오동나무 잎사귀도 끄떡치 않는지라

가을이라고 다 가면

아예 지붕 이을 때

아낙이

지붕 올라가 지붕 이고

아기 업고

빈 논에 나가 이삭 줍고

이듬해 봄 논에 나가 물꼬 보고

동네방네 내외 없이 나다니는데

그래도 서방은 제 서방인가

어쩌다가 서방 홍보는 소리 들으면

사람 인자 한 자가

어디 한 울님인가요

이 세상 흠없는 남정네 있거든 대보아요

정 화가 날 때면

이런 소리도 걷어버리고

뭣이 어쩌고 어쩌

네 서방 겨드랑이나 사타구니나 간지럼 태우거라

이 할일 없는 쏘가리 같은 년아

 

정자 누나

 

조금 눈동자가 코 쪽으로 모여

누구를 쳐다보는지 모르지만

늘 볼우물이 넘쳐

웃음 떠나지 않는 김정자

그렇다 이 세상에 나오기를 웃으려고 나왔다

아랫도리 몽당치마 훌렁 뒤집힐 때

무릎 위 커다란 흉터 징그럽지만

앞산 보고 웃고

뒷동산 보고 웃는다

그런 정자 살결 하나 분결이어서

하늘의 흰구름하고 수양어머니 수양딸이었다

하기야 어머니 진작 잃었으니

나이 어려서부터

밥하고 빨래하고 잔심부름하고

그러는 동안 흰구름 많이 바라보았다

딸기 덤불에 가서 딸기 따주고

솔밭에 가서

생솔방울 따주고

버섯도

먹는 버섯

못 먹는 버섯 가르쳐주었다

못 먹는 버섯은 으레 울긋불긋하단다 하고

 

솔바람소리 그 속에서

다섯 살 위인 정자더러

나는 입 속으로만 혼자 불렀다

정자 누나 !

 

길모 누나

 

어디로 시집이라고 갔다 하면

보퉁이 하나 들고 돌아오기만 하는가

세번째 시집살이

두 달 만에 돌아왔다

길모 누나

주근깨 골고루 뿌려진 길모 누나

길모 아버지가

이년 어디 가서

물에 빠져 뒈지지 않고

뭣하러 왔어

하고 장대 걷어 치려 하자

길모 어머니가 막아 대신 맞아야 했다

 

그런 매타작 치르고 나서야

그냥저냥 살아가는데

일손 귀한 터라

아예 친정살이로 밭일 논일

산에 올라 푸나무 하는 일

무슨 일인들 마다하랴

그저 친정 식구하고 함께 사는 것 하나로

그놈의 시집살이 원수 다 갚는데

 

이렇게 일 잘하는 길모 누나한테

눈독 들인

옥청골 고명곤이 영감

후살이로 데려가려고 수작 넣었으나

그 중신에미

코만 다치고 갔다

 

친정어머니하고 중신에미하고

쏙닥이는 것 엿듣고 나와

 

엄니 나 죽는 꼴 보려고 그려 ?

옥정골 양반

어서 넘어가시오

찬물 한 바가지 먹고 속 차리라고 가서 전하시오

내가 또 시집가면

개딸이여 돼지딸이여

우리 아버지 딸 아니여

 

눈물 그렁

슬픔과 노여움 하나 되어

그런 길모 누나 주근깨란 주근깨 다 살아나

얼굴 가득히 진하고 연하고……

 

임두빈이 마누라

 

서방 나가면

바로 욕질이라

뒈질 인간

탁 꺼꾸러져 뒈질 인간

상추에 모래쌈 싸먹고 뒈질 인간

 

어찌 서방 욕으로 직성이 풀리리요

어린것 하나 있는 것 마구 쥐어박으며

어서 너도 뒈져라

네 아비 빼다박은

네놈도 칵 뒈져버려라

 

그러는 임두빈이 마누라

어느덧 서방 닮아가는지

이웃집 아낙 머리끄덩이 잡기 일쑤이고

광주리장수 막아서서

마수걸이 떨이로 놓고 가라고

으름장 놓기 일쑤이고

 

이렇게 막 사는 사람 가운데는

으레 코찡찡이 애꾸 아니면 반벙어리

그렇지 임두빈이네 옆 옆집 반벙어리 아낙 나와

광주리장수 편들어 따져도

그 따지는 소리가 반벙어리 소리라

이 세상의 어느 나비인들 하늘하늘 알아들으리요

 

금하 스님 마누라

 

그 주근깨 많은 얼굴에

무슨 놈의 분 단장은 그리 하는지

지아비는

추운 법당에 서서 목탁 치는데

지어미는

다사로운 방 가운데 한가로이 경대 차리고

그 얼굴에 볼 두드린 다음 연지곤지 물들인다

 

어이할 수 없이 조금 고와라

 

고씨 마누라

 

어디 그물 한 벌 사들여

새로운 바다 나가겠는가

헌 그물 깁고 기워

누더기 그물일지나

바닷가 백사장에 얌전히 널었다가

잊어버리고

밀물에 떠내려간 뒤

영감 고봉관이한테

머리끄덩이 잡혀 질질 끌려갔다

 

아이고 이년아 어서 죽어라

죽을 데는

이 바다 사방에 있다

풍덩 빠져죽어라

 

그러나 새 그물 사서 배 떠날 때

고봉관이 중얼거리기를

잘된 일이여

그렇게나 되어야

새 그물 한번 펼치지 그려 그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09 동강

 

글, 사진 / 진용선

2003,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0

 

082

빛 12 ㄷ  233

 

빛깔있는 책들 233

 

전용선-------------------------------------------------------------------------

1963년 정선 신동읍 출신으로 인하대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정선아리랑연구소와 정선아리랑학교를 세워 아리랑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있으며,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선아리랑 찾아가세』, 『한민족의 아리랑』 등 5권의 아리랑 관련 저서와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 아리랑을 채록해 『해외동포 아리랑』 CD를 내기도 했다.

 

|차례|

 

동강은 흐르는데

동강의 역사

동강의 이름

동강의 지질과 지형

동강 유역의 마을

동강 12경

동강의 생태

동강과 정선 뗏목

동강의 산들

동강 찾아가는 길

참고문헌

온달산성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확보하기 위해 충북 단양군 영춘에 온달산성을 쌓았다.

뗏목  동강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철도가 개설될 때까지 운목 수단으로 뗏목을 이용하였다.

「대동여지도」  정선에서 영월로 흐르는 동강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촌강, 금장강 등의 이름이 눈에 띈다.

섶다리  동강 유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다리로 겨울을 나기 위해 수동과 번들마을 사람들이 수백 년째 섶다리를 놓고 있다.

소골마을  석회암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칠족령 아래의 강변 마을로 십승지지의 한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연포 섶다리  바새마을과 연포마을을 잇는 섶다리.

어라연  동강의 비경으로 널리 알려진 영월읍 거운리의 어라연. '고기 반 물 반'으로 알려진 곳이다.

섭새나루  만지와 어라연으로 가는 사람들이 건너던 나루터다.

하방소  고성리산성에서 내려다본 하방소이다. 강물이 애돌아 흐르는 절벽과 덕천리 제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정  절벽 아래로 흐르는 동강 물길과 어우러진 금강정은 동강 유역에 하나뿐인 조선시대 정자다.

낙화암  단종을 모시던 시녀와 시종이 단종의 승하 소식에 몸을 던진 곳이다.

월기 경춘순절비  낙화암에 몸을 던진 기생 경춘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2백여 년 전에 세워진 순절비이다.

붉은 뼝대  용이 하늘로 올라가서 용발자국이 나 있다는 가수리 수미마을의 붉은 뼝대이다.

상선암  영월 거운리의 정씨가 황쏘가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어라연의 상선암.


동강 12경


제1경 가수리 느티나무와 마을 풍경

가수리  가수분교 정문 옆에 선 느티나무는 가수리의 평화로움을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제2경 운치리 수동 섶다리


제3경 나리소와 바리소

나리소  이무기가 살면서 물 속을 오간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제4경 백운산과 칠족령

칠족령  백운산 자락이 물굽이에 의해 수직으로 깎여 형성된 칠족령은 덕천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제5경 고성리산성과 주변의 전경


제6경 바새마을과 앞 뼝창

앞뼝창  바새마을을 둘러싼 기암절벽은 옛날 절벽 위를 지나다가 은가락지를 잃어버린 마고할멈이 반지를 찾기 위해 긁어 놓아 지금처럼 되었다고 한다.


제7경 연포마을과 황토담배 건조장

황토담배 건조장  잎담배를 건조하기 위해 진흙으로 지었던 건조장은 동강의 풍취와 조화를 이루는 건물이다.


제8경 백룡동굴

종유석과 석순  백룡동굴 내부에 발달한 종유석과 석순은 다른 동굴보다 아름답고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제9경 황새여울의 바위들


제10경 두꺼비바위에 어우러진 뼝대

두꺼비바위  먼 산을 향해 뛸 듯 웅크린 집채만한 두꺼비바위.


제11경 어라연

어라연  강 한가운데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집채만한 바위가 물 위로 솟아 있다.


제12경 된꼬끼리와 만지의 전산옥

 

 

동강할미꽃  동강의 바위 틈새에 붙어 자라는 미나리아제비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일반 할미꽃과는 달리 머리를 든 채 꽃을 피우고 크기도 작다.


떼꾼들이 부른 소리


오호차

이 낭구 보게 몸부림을 한다네

오오차

한 번만 더하이면 될 듯하네

오오차

이 낭기 지남석이 쩡얼어 붙었다네

오오차

어데가 절련지 절린데 마꿈

오오차아

무지 공산에 잘자란 낭기

오오차

이렇게 가도 한양을 간다네

오오차

둥글바위  물굽이를 막아선 바위로 자연암이라고 한다.


래프팅  된꼬까리에서 여울의 거센 물살을 타고 내려오는 레프팅은 동강의 대표적인 레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나리소의 정적  가파른 절벽 아래로 고요히 흐르는 나리소로 나리소의 정적은 오래전 이무기 전설을 낳기도 했다.

수리봉  귤암리에서 가장 눈에 띄게 솟아 있는 수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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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08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주기중 지음

2014, 소울메이트

 

대야도서관

SB101486

 

662

주18ㅇ

 

사진가 주시중이 들려주는 좋은 사진 찍는 법

 

사진,

이보다 더

황홀할 수

없다

 

"카메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촬영자의 몫이다." 

 

평생을 카메라와 여행중인 포토저널리스트의 애정고백

 

사진은 이미지로 이야기하기 이전에 엄정한 기술이다. 기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사진에 깊이를 줄 수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이다. 주제마다 적절히 수록된 비교 사진을 보면서 눈을 훈련시킨다. 사진학 강의와 비교를 해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구본창 _ 사진작가,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

 

사진기자로 30년을 일한 저자의 연륜이 갈피마다 물씬하다. 실용적이면서 시각적인 책 만듦새는 포토저널리즘의 현장성을 반영한다. 사진 테크닉을 얻고자 하는 독자, 사진 찍기의 즐거움에 빠지고자 하는 아마추어, 모두에게 강력 추천한다!

윤광줌 _ 사진작가, 칼럼니스트

 

바라보기와 마음담기, 그리고 빛! 이 책은 평생을 카메라와 여행중이라는 포토저널리스트의 애정고백이다. 사진에 매혹된 이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기술'이 개성 넘친다. 자신만의 사진을 만들고 싶은 이들이라면 일독하시라.

진동선 _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장

 

사진 속에서 놀이하는 눈과 사진 밖에서 일하는 손을 가진 두 개의 마음을 더불어 읽는다. 자연과 사회와 자아, 어쩌면 어울릴 수 없고 도저히 아우를 수 없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려는 된통 고집스런 이가 바로 주기중이다. 영원히 자연인의 마음으로 찰나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노릇이 문명의 이기인 카메라의 셔터로 언제나 완성되겠는가, 아, 하지만 그 긴 여정의 순간순간들이 마침내 그만의 느낌과 깨달음을 얻었다. 생에 대한, 삶에 대한, 그리고 현실과 현상을 주시하는 당신들의 눈에 대한 또 다른 빛의 이야기가 이 책에 온전히 담겨 있다.

최준 _ 시인

 

주기중

중앙일보 사진부장 · 영상에디터 · 뉴스방송팀장 · 멀티미디어팀장을 지냈다. 현재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포토디렉터다.

패턴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자연의 선과 색을 단순화해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풍경사진을 즐긴다. 현대사회에서 사진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세상을 밝게 만드는 가장 훌륭한 매체라고 믿고 잇다. 또한 사진은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누구나 기본적인 훈련을 받으면 좋은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코노미스트>에 '주기중의 사진노트'를 연재했다. 페이스북에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하는 사진그룹을 이끌며 전시회를 열고, 포토아카데미를 기획하며 사진의 대중화에 힘쓰고 잇다.

 

|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프랑스의 사진가) ·

 

차례

 

지은이의 말 사진, 이보다 더 황홀할 수 없다

 

PART 1

바라보기

 

이름 붙이기

사람의 눈, 카메라의 눈

사진적인 눈, 포토아이

네팔판 마을버스

사냥과 사진

두루미와 고라니

독보다 커야 독 안을 본다

패턴인식과 연상작용

바람의 패턴

이미지의 문법

 

PART 2

마음담기

 

느리게 걷기

뭉크의 절규를 보다

사진과 시의 레토릭

완장찬 박달대게

소금꽃

순천만 단상

사진과 오디션

사진과 회화

색감정에 대해

공감각의 사진

 

PART 3

 

빛의 예술, 사진

빛의 방향과 사진효과

강남스타일

빛에도 품격이 있다

사진은 빛으로 화장을 한다

빛에도 색이 있다

노을에 물든 갯벌

실루엣사진의 미학

허상과 실상

반영, 레토릭을 담는 그릇

 

PART 4

꾸미기

 

작품감상의 게임

과장법과 대조법의 사진

반복법과 패턴사진

갈매기 솟대

구도와 길잡이선

프레임 안의 프레임

뺄셈의 사진

점묘화와 사진

그 순간이 그 순간이 아니야

형상과 배경

 

PART 5

카메라 다루기

 

사진의 기본

렌즈와 원근감

노출과 셔터타임

가장 좋은 카메라

 

추천의 글 사진 만발 시대의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저자와의 인터뷰

 

/

뭔가를 찍기 위해 길을 나서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평소 무심하게 지나치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사진에서 '본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입니다. 영감이 '번쩍'하고 떠오른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

 

PART 1

바라보기

 

바라보기 01

 

이름 붙이기

 

사람들은 사진을 종종 그림과 비유합니다. 잘 찍은 풍경사진을 보면 흔히 "그림 같다"는 말을 하죠. 이 말에는 자연 상태의 피사체를 마치 그림같이 아름다운 색감과 구도로 표현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현실과 똑같아야 하는 사진이 그림처럼 인위적으로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진과 그림은 사각형의 틀에서 이뤄지는 시각예술이라는 점에서 볼 때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 사진은 문학, 특히 시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굿모닝>

 

바라보기 02

사람의 눈, 카메라의 눈

 

사진을 찍을 때 초보자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어떻게 하면 실제와 똑같이 찍을까?' 하며 애쓴다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찍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눈과 카메라 렌즈는 기능이 비슷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렌즈와 눈의 기능이 같다 하더라도 사진이 현실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은 기계적인 복제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전라남도 구례군의 산수유마을

무안 갯벌

 

바라보기 03

사진적인 눈, 포토아이

 

훌륭한 사진가는 눈이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그 눈을 이른바 '포토아이'라고 합니다. 포토아이는 말 그대로 '사진적인 눈'을 뜻합니다. 포토아이는 시각을 바탕으로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을 봅니다. 선택적으로, 집중적으로, 깊이 있게 대상을 관찰하며 오감을 동원해서 봅니다. 그뿐만 아니라 미적 감수성으로 현실을 가공하고 그 안에 자신만의 감정을 투영합니다.

서설瑞雪이 내린, 강원도 양양군 오색리의 주전골 계곡 풍경

바라보기 04

네팔판 마을버스

 

여행을 가면 사진가는 늘 사주경계를 해야 합니다. 카메라의 스위치를 켜놓고,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놓친 물고기가 커 보이고, 좋은 장면은 항상 빨리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네팔판 마을버스

 

바라보기 05

사냥과 사진

 

동물 다큐멘터리는 꾸준히 인기를 끕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본능적으로 생존법을 터득하고 살아가는 동물의 모습이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특히 맹수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모습을 곧잘 지켜봅니다. 포식자의 먹이사냥 과정은 사진을 찍는 과정과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바라보기 06

두루미와 고라니

 

겨울 한탄강변 풍경입니다. 한 무리의 재두루미가 먹이를 먹고 있습니다. 강 건너에서 고라리 두 마리가 먹이 냄새를 맡았습니다. 녀석들이 꽁꽁 언 강을 건너 달려옵니다. 야생 재두루미와 고라니가 조우합니다.

두루미와 고라니

 

바라보기 07

독보다 커야 독 안을 본다

 

"독보다 커야 독 안을 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사물의 형태나 위치가 쉽게 파악된다는 뜻입니다.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휴대용 사다리를 들고 다니는 이유도 현장을 더 잘 보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시청 광장 스케이트장

해운대 해수욕장 - 이동진

하늘에서 본 백담사의 모습

 

바라보기 08

패턴인식과 연상작용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이 2009 서울 빛 축제가 열릴 때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원래 1993년 대전엑스포 때 재생조형관에 전시하던 작품입니다. 고물 TV, 폐기된 자동차, 버려진 피아노를 이용해 거북선 모양으로 만든 대작입니다.

인천 영종도 상공에서 바라본 해안선의 모습

 

 

 

 

 

 

 

 

 

 

 

 

 

 

 

 

 

 

 

 

세운전자상가에 있는 한 전자제품 수리점의 모습

 

바라보기 09

바람의 패턴

 

자연은 경이롭습니다. 모래가 바다를 기억하는 걸까요. 거센 바람이 모래를 날리며 파도를 일으킵니다. 모래는 잔물결을 일으키며 해안으로 밀려듭니다. 바람은 모래언덕에 아름다운 조각을 새겼습니다. 모래언덕은 바람의 놀이터이자 아틀리에입니다. 모래의 물결과 파도이며 바람의 패턴이기도 합니다.

충청남도 태안군 신두리에 있는 해안사구의 모습

 

바라보기 10

이미지의 문법

 

시각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물론이고 문학·미술·음악·사진 등의 예술작품은 시각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는 그 대상에서 반사된 빛이 망막에 맺히게 됩니다.

얼어붙은 한탄강 계곡의 모습

한탄강의 재두루미

겨울 민통선 바로 앞 한탄강변

순천만 흑두루미

이른 아침 순천만 흑두루미

 

/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셔터를 누르기 전, 그 순간의 느낌을 형용가 한 단어로 나타내보세요. 사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나만의 느낌을 담는 작업입니다.

/

 

PART 2

마음담기

 

마음담기 01

느리게 걷기

 

사진을 잘 찍으려면 생활 습관부터 바꿔야 합니다. 사진은 느리게 걷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낫고, 자전거보다 걷는 것이 좋습니다. 느리게 걷다 멈추어 살피고, 또 걷다가 멈추어 살피고, 주위와 소통하며 교감하는 '선의 여행'을 해야 합니다. 지름길보다는 멀리 돌아가는 길이 좋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풀이 무성한 길'이 낫습니다.

봄비에 떨어진 벚꽃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낸 칠엽수의 그림자

선운사의 풍경

 

마음담기 02

뭉크의 절규를 보다

 

아픔은 때로는 이렇게 흔적으로 남습니다. 삶이란 상처의 힘으로 견디는 것은 아닐까요.

나무판자에 박힌 못에서 흘러나온 녹물과 검은 곰팡이가 만든 형상(히로쓰 가옥)

 

마음담기 03

사진과 시의 레토릭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다."
-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아르망 트루소

사진은 대상을 보고 느끼는 연상작용을 통해 의미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연상이란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푸른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자유의 이미지를 떠 올리고, 장미를 보며 유혹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연상입니다. 이때 두 관념 사이에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는 희박하지만 감성적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존재합니다. '자유' 나 '유혹'은 원관념 '새'와 '장미'가 불러낸 마음의 상, 즉 '심상' 입니다. 사진은 이 연상작용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함으로써 이야기를 담고, 메시지를 전하며, 감상자가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듭니다.

<경주의 봄>

<송광사의 새벽>

걸어오는 재두루미 무리

 

마음담기 04

완장찬 박달대게

 

제철 만난 대게가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뿜어냅니다. 게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심해의 어둠까지 가져온 걸까요. 박달대게가 사는 어두운 심해와는 달리 입이 토해내는공기방울은 투명하기만 합니다.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항 어시장에 나온 황금빛 박달대게

 

마음담기 05

소금꽃

 

사진은 대상의 크기를 사실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접사렌즈를 이용해 작은 것을 확대하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소금꽃은 언뜻 보면 물위에 둥둥 떠다니는 지저분한 부유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확대하면 보석같이 아름다운 소금 결정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각의 반전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소금꽃 - 오상민

 

마음담기 06

순천만 단상


 

프로라면 독창성으로 소재의 빈곤을 극복해야 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사람들의 눈에 익은 풍경사진의 허를 찔러야 합니다. 날씨의 좋고 나쁨으로 '운칠기삼'에 승부를 걸어서도 안 됩니다. 풍경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메시지를 담는 블루오션을 개척해야 합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순천만의 풍광

짙은 코발트빛 하늘에 아름다운 초승달

 

마음담기 07

사진과 오디션

 

사진은 한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소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카메라의 가격도 비싼 데다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큰 맘 먹고 카메라를 장만해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장롱 카메라'로 전락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습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디지털카메라의 가구당 보급률이 80%에 이릅니다. 또 3천만 대를 넘어선 스마트폰까지 합치면 '1인 1 카메라'를 넘어 '1인 2카메라' 시대가 됐습니다.

울산 진하 해수욕장

강양항 일출

신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고기잡이에 나선 배

 

마음담기 08

사진과 회화

 

시각예술의 핵심은 '형태와 색'입니다. 이 두 요소를 구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이른바 인상파니 입체파니 야수파니 하는 말은 바로 형태와 색을 다루는 화가들의 붓질에 따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를 사조라고 합니다.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는 데는 많은 변수가 작용합니다. 철학이라든가 개인의 세계관·가치관 등 시대정신이 반영됩니다. 과학과 물질 문명의 발전도 사조의 등장에 영향을 미칩니다.

노란색을 빨간색으로 바꾼 해바라기

 

마음담기 09

색감정에 대해

 

사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꼽는다면 '형태와 색, 그리고 빛'을 들 수 있습니다. 빛은 색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진은 빛에 특별한 무게를 둡니다. 형태가 이성적인 개념이라면, 색은 감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형태는 보편적이고 설명적이며 논리적입니다. 이에 반해 색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정서적이고 심리적이며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아버지와의 불화, 사랑의 실패, 고갱과의 깨진 우정, 동생에게 의지해야만 살 수 있었던 재정적 궁핍 등으로 인해 그는 늘 역경에 부딪혔고 그때마다 죽음을 생각했지만, 동시에 살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삶의 이유를 그림을 그리는 데서 찾겠다는 희망을 갖고, 그는 삶과 죽음 간의 기로에서 늘 줄다리기하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시각과 이미지』(김세리 지음)」

그늘진 담벼락의 거미 한 마리

곽상운 <나무>

 

마음담기 10

공감각의 사진

 

예술에서 감각은 한때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것으로 여겨져 저급한 영역으로 치부됐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문학과 미술, 음악 등 예술 전반에서 감각은 창의적이고 핵심적인 표현형식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현대의 예술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며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참새> - 변선구

<Improvisation> - 황소연

 

/

사진에서 빛은 영혼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물이 보이는 것과 그 표면에 떨어진 빛을 보는 것은 다른 개념입니다. 빛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냥 바라보기만 하세요.

/

 

PART 3

 

01

빛의 예술, 사진

 

‘사진은 빛을 보는 것이 반’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시작하면서 늘 ‘빛’이라는 말을 화두처럼 지니고 다녔습니다. 빛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은 뜻밖에도 빛 한 점 없는 암실에서 찾아왔습니다.

부산 문현동 돌산마을 풍경

전라북도 임실군 국사봉에서 바라본 새벽풍결

 

02

빛의 방향과 사진효과

 

사진 찍는 것을 '빛 사냥'이라고도 합니다. 빛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사냥'이라는 용어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피사체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_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필립 퍼키스 지음)

어두운 밤 북한강 물안개

역사광을 이용해 촬영한 유채꽃

 

03

강남스타일

 

해가 질 무렵, 남한산성에 바라본 강남의 모습.

 

04

빛에도 품격이 있다

 

흔히들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빛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진에서 베어나오는 맛과 멋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05

사진은 빛으로 화장을 한다


반면에 사진은 빛으로 화장을 합니다. 사진은 2차원, 즉 평면입니다. 그래서 빛과 그늘을 이용해 입체감을 조절합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빛을 봅니다.

한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어부.

 

06

빛에도 색이 있다

 

어둑해질 무렵, 여전히 볕이 드는 방 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편안한 의자를 놓고 앉는다.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그저 빛을 지켜본다.

_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필립 퍼키스 지음)

 

하늘과 땅의 색이 뒤바뀌고, 낮과 밤이 교차하는 황홀한 순간.

 

07

노을에 물든 갯벌

 

 08

실루엣사진의 미학

 

실루엣은 사진용어이기도 합니다. 역광사진으로 피사체의 윤곽이 검게 나타나는 것을 실루엣이라고 말합니다.

실루엣 초상화는 '질루이 크레티앙Gilles Louis Chretien'에 의해 자동전사식 초상화 기법으로 발전했습니다.

인천의 선재도 해변, 할아버지와 손자.

 

09

허상과 실상

 

윤한수 성산대교 교각에 비친 가을밤을 즐기는 시민들의 그림자.

10

반영, 레토릭을 담는 그릇

 

반영은 사진에서도 아주 중요한 소재입니다. 실상과 허상의 적절한 면 분할을 통해 화면을 아름답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빛의 난반사로 일그러진 허상으로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겨울나무>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합니다. 피사체를 보고 느낀 감정을 어떻게 '그림'으로 만들어낸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는 감각의 영역입니다. 미적 감각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

 

PART 4

꾸미기


꾸미기 01

작품감상의 게임


사진가는 감상자와 게임을 즐기려 합니다. 작품 앞에 선 감상자는 긴장합니다. 한 발짝 떨어져 전체를 보고, 바싹 다가가 부분 부분을 살피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느낌이 오면 가설을 세우고 퍼즐조각을 맞추어나갑니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가동시키며 사진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패턴을 찾습니다. 구성요소들간의 인과관계를 따집니다. 마침내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강한 희열을 느낍니다. 카타르시스의 순갑입니다.


꾸미기 02

과장법과 배조법의 사진


현실의 한 부분을,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 속의 한 단면을 포착하는 사진은 그 속성상 '강조법'의 수사를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갑니다. 사진에서 강조법은 구도나 프레이밍으로 나타나 사진에 담는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부각하거나, 극적인 화면구성을 위해 리듬감을 줍니다.


꾸미기 03

반복법과 패턴사진


패턴사진은 시각의 동선을 고려해 치밀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단순히 배열만 하면 정적인 사진이 되기 쉽습니다. 선의 흐름을 수평으로 할 것인지 수직이나 사선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사진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사물들 사이에 움직임이 있는 요소가 가미되면, 사진에 생동감이 생겨납니다. 시각적인 포인트를 줄 뿐만 아니라 규칙성이 더 도드라지게 부각됩니다.

인천 선재도의 바닷가 풍경.


꾸미기 04

갈매기 솟대


꾸미기 05

구도와 길잡이선


사진의 구도는 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사각의 틀'을 이리저리 옮기며 구도를 잡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피사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미적인 균형감과 일치하는 순간이 옵니다. 이때 가장 좋은 구도가 나옵니다.

문경새재의 풍경.


꾸미기 06

프레임 안의 프레임

 

두물머리 풍경.


 

꾸미기 07

뺄셈의 사진


"사진은 덧셈으로 시작해서 뺄셈으로 끝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덧셈'이란 사진을 찍을 때 가급적 많은 요소를 넣는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뺄셈'은 화면을 단순화해 추상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덧셈이 피사체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라면, 뺄셈은 상징과 표현의 개념입니다.


꾸미기 08

점묘화와 사진


점묘화는 점을 찍어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점묘주의pointillisme' 화가들은 선과 면 대신 수많은 점을 찍어 색과 형태를 표현했습니다. 점으로 이루어졌지만 떨어져서 보면 자연스럽게 섞인 색처럼 보입니다. 일종의 착시현상으로 모자이크와 비슷합니다.

김현동 <강형구의 응시>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으로 점묘화 분위기를 낸 것.


꾸미기 09

그 순간이 그 순간이 아니야


사진은 순간포착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순간'은 2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물리적인 시간의 순간입니다. 기계적으로 카메라의 셔터막이 열렸다 닫히는 시간인 수십, 수백, 수천분의 1초를 말합니다. 짧은 시간에 세상의 단면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직관의 순간입니다. 이 '순간'이라는 말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1952년에 출간한 사진집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시 별을 보자>

김아타 'On Air project' <한 시간의 섹스, 한 장의 사진>.


꾸미기 10

형상과 배경


게슈탈트이론에서 말하는 형상과 배경의 법칙에서는 사람의 시각은 대상을 선택적 ·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선택한 요소에 우선 순위를 두고 전체를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선택한 요소는 형상으로 보고, 그 외의 요소는 배경으로 배경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형상과 배경의 법칙에 따르면, 사람은 무언가를 볼 때 그 대상을 형상과 배경으로 분리해서 봅니다.


/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와 친해져야 합니다. 처음부터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원리를 이해하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똑딱이도 좋고, DSLR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손에 카메라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


PART 5

카메라 다루기


카메라 다루기 01

사진의 기본


디지털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진에서 손떨림과 수평 맞추기, 셔터 타이밍은 결국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카메라다루기 02

렌즈와 원근감


카메라 렌즈는 눈의 원리를 모방한 기계장치입니다. 카메라 렌즈는 초점거리에 따라 표준렌즈 · 망원렌즈 · 광각렌즈로 분류합니다. 초점거리는 렌즈 표면에서부터 상이 맺히는 이미지 센서(필름)까지의 거리를 말합니다.

두루미 어미와 새끼가 하늘을 날고 있는 장면.

우리나라 '3대 오지' 중의 하나로 알려진 강원도 삼척시 중봉리에서 한 촌로가 눈보라를 헤치고 길을 갑니다.


카메라 다루기 03

노출과 셔터타임

벚꽃이 계곡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장면.


카메라 다루기 04

가장 좋은 카메라


사진은 두 번의 시각화 과정을 거칩니다. 첫 번째는 사람의 눈이고, 두 번째는 카메라 렌즈입니다.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면 '사각형의 눈'을 뜨고 다닙니다. 그러다 사진을 찍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인체의 모든 감각세포에 비상이 걸립니다. 아주 빠른 순간에 기계적인 계산을 하고 미학적인 감각을 작동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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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07 렘브란트 - 빛과 혼의 화가

 

파스칼 보나푸 지음, 김택 옮김

1997,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29

 

082

시158ㅅ  24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4

 

 

화려한 붓놀림, 풍부한 색채,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빛과 어두움, 렘브란트 그림의

마력은 명성을 누리던 젊은 시절보다

고독과 파산의 연속이었던 말년에 더욱 빛났다.

강렬한 힘과 내면을 꿰뚫는 통찰력, 종교적

권능을 감지하게 하는 탁월한 빛의 처리 기법은

미술사의 영원한 신비로 남아 있다.

 

깃발이 펄럭인다.

북이 울린다, 아니 울리려 하고 있다.

대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누가 쏘았을까?

저기 난쟁이 지신(地神)같이 생긴 기묘한 사내가

쏘았을까? 그는 정말 야릇한 옷을 입고 있다.

나뭇잎으로 덮여 있는 그의 투구는 어던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여인은 누구일까?

허리에 흰 새를 매달고 있는 그녀, 안에서 초롱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그녀는 누구일까?

여인은 무대 위로 나서고 있다. 우리를 향한

그녀의 얼굴에 씌인 기묘한 표정은 우리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듯하다. 왜 이 두 인물은 행렬의 진행

방향과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향하는 것일까?

그들이 행진을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는

그러한 자세를 통해 군중들을 둘로 분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들은

뒤쪽의 남자가 비스듬하게 들고 있는 긴 창의 방향에 따라

나아가고 있다. 균열은 구도의 오른쪽 구석에 두 개의 삼각형을

창출하고 있다. 그리고 좀더 가까이에서 보면 전체 구도가 네 개의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본적인 분할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그밖의 모든 방향이 지시되고 있다.

폴 클로델

 

차례

 

제1장 도제기(徒弟期)와 야망

제2장 영광과 비탄

제3장 고독과 파멸

제4장 은둔과 죽음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파스칼 보나푸 Pascal Bonafoux

1949년에 태어난 파스칼 보나푸는 작가이자 미술사학자이다. 1980년부터 2년간 메디치 별장에 기거하면서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연구를 하였는데, 그가 택한 '서양화에서의 자화상'이란 주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사를 섭렵할 수 있게 해주는 대단히 매혹적인 주제였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번 <반 고흐>를 쓰기도 했으며, <화가의 자화상> <렘브란트 자화상> <인상주의 화가들, 초상화와 그 뒷이야기들>이란 미술 전문서 외에도 <중상>이란 소설도 발표하였다.

 

옮긴이 : 김택

1968년 서울 출생. 성균관 대학교 독어독문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불어와 영어에도 능한 그는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반 고흐> <모네> 등의 번역서가 있다.

<풍차방앗간>(위)은 오랜 동안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지만 오늘날에는 그 진품성을 둘러싼 논쟁이 분분하다. 그러나 1630년에 아버지를 모델로 제작한 아래 에칭화는 그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제1장

도제기(徒弟期)와 야망

 

1606년 7월 15일. 네덜란드의 레이덴에서 하르멘 헤리트스존 반 레인과 코르넬리아 빌렘스도히테르 반 소이트브루크의 아들 렘브란트 반 레인이 태어났다. 이 사실은 1641년에 간행된, 레이덴의 풍물을 소개하는 한 책자에 요하네스 오를러스가 기록한 것으로 렘브란트의 출생을 말해 주는 유일한 기록이다. 렘브란트의 명성과 영광에 이르는 삶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요소가 불확실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레이덴 시절, 렘브란트는 존경하는 어머니를 모델로 자주 그림을 그렸다. 1631년에 그려진 이 에칭화는 근엄한 어머니의 우수에 젖은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9세기에 건설된 레이덴은 전통적으로 루그두눔 바타보룸으로 불렀다. 이 평면도는 스페인의 포위공격이 막바지에 이른 1574년의 레이덴 모습이다.

성 엘리자베스 패널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15세기 후반의 화가가 제작한 유화 <도르트레히트가 배경에 보이는 성 엘리자베스 날의 홍수>는 무너진 제방을 묘사하고 있다. 오른쪽 위 터진 제방을 통해 물이 꼳아져 들어오고, 남자들이 홍수를 피하기 위해 가족과 가재도구, 식량 등을 보트에 싣고 있다.

주연합의 그림 수집가들은 일상생활을 묘사한 그림에 흥미를 가졌다. 헨드릭 아베르캄프가 그린 <얼음 위의 오락>(위) 얀 스텐이 그린 <식사>(가운데), 렘브란트의 에칭화 <스케이트 타는 사람>(아래)은 모두 일상생활에서 그림의 소재를 취했다.

1616년, 아드리안 피테르츠 반 데 베네는 1609년에 체결된 12년간의 휴전을 그림으로 상징했다. 그림 가운데 앞쪽으로 나와 있는 부부는 마침내 자유를 얻은 주연합을 상징한다. 그러나 불화와 질투가 나무 뒤에 숨어 있다.

17세기의 판화에서 볼 수 있듯, 장식적인 박공 지붕과 많은 창으로 멋을 낸 동인도 회사 건물의 화려한 정면은, 해외무역을 통해 새롭게 부상한 주연합의 막강한 지위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북부 네덜란드의 선원들은 1595~1600년에 여러 차례 원거리 항해에 나서 인도 해안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창고를 세웠다. 향료무역이 짭짤한 수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많은 석박들이 시장과 거래처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출항을 서둘렀다. 1602년, 여러 회사들이 연합해 막강한 힘을 가진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동인도 회사의 네덜란드 함대>라는 제목을 단 이 작품은 그들의 업적을 기념하려는 동인도회사의 의뢰를 받아 루돌프 바크로이센이 제작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선박 대부분은 다층갑판과 이중 선수루(船首樓)를 자랑하는 세대박이 범선이며, 무게가 600톤에서 1,000톤에 이르렀다.(당시 운행되던 선박은, 상선이건 해적선이건, 일반적으로이 정도 규모였다.)

네덜란드 화가 프란스 할스는 열정보다는 엄격함을 미덕으로 삼는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 초상화는 그가 하를렘의 판사였던 파울루스 반 베레스타인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1575년 설립되어 전유럽에 명성을 떨친 레이덴 대학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이다. 야곱 반 스바넨뷔르흐가 제작한 판화(위)를 보면 도서관은 학습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도서관에는 가장 초기에 인쇄된 과학과 철학 관련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 반 스바넨뷔르흐는 레이덴 대학의 해부학 강의실도 판화에 담았다.(아래) 이미 1600년대 초기에 많은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명 교수들이 해부학 강의를 했다.

<발람과 당나귀>(위). 1626년. 렘브란트가 이 작품을 그렸을 때 그는 약관 20세였다. 그는 그림에 'RL'이라고 서명했는데, L은 그가 태어난 고향인 레이덴을 의미했다.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피테르 라스트만의 작업실에서 스승의 <천사와 예언자 발람>(아래)을 보았을 것이고, 그림의 주제를 스승의 작품에서 빌려 왔음이 틀림없다. 렘브란트는 당나귀를 타고 있는 예언자의 모습은 라스트만의 그것과 비슷하게 처리했지만 천사의 경우는 주름진 옷의 곡선을 강조하여 라스트만의 정적인 표현과 달리 동적인 느낌을 부여했다. 이로써 렘브란트가 원화를 자유롭게 다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매장>은 피테르 라스트만이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에 그린 것으로 빛을 다루는 면에서 카라바조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빛과 그림자를 통해 양감을 나타내는 명암법)가 사용되고 있지만, 구도에서나 극적 효과를 창출하는 데에서 렘브란트의 그림과 비교할 수 없다.

얀 리벤스와 렘브란트는 공동작업실에서 같이 일했다. 렘브란트는 'RL'로 서명했고, 리벤스는 1635년경 제작한 그의 <자화상>(위)에 'IL'로 서명했다. 약자 L은 리벤스의 이름이거나 태어난 고향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바다, 하늘, 폭풍우, 구름, 안개는 네덜란드인의 삶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아래 그림은 살로몬 반 로이스달의 <나룻배>이다.

피테르 얀츠 산헤담의 <하를렘의 성 바보 성당>은 프레스코화나 유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성당의 간소한 내부를 보여 준다.

<돌팔매질당하는 성 스테반>에서 렘브란트는 전유럽에 확산되고 있던 회화의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다. 당시 회화는 역사 기술을 의미했다. 렘브란트는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에 둘러싸였어도 평화로운 표정을 지은 성자의 얼굴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흰 수염을 기른 노인>(위, 1626)의 주인공은 렘브란트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노인은 <성전에서 상인을 쫓아내는 그리스도>(아래)의 몇몇 등장인물과 닮았다.

1626년에 렘브란트가 나무에 그린 이 그림에는 <티투스의 관용> <만리우스 토르퀴아투스의 아들의 비난> <브루투스의 판결>, <페틸리우스 케레알리스 앞에 반역자들을 잡아오다> 등 여러 제목이 붙어 있다. 이미 스무 살 때부터 그의 역사화 제작에서의 탁월성과 창조력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홀(笏)에 가려진 사람은 렘브란트 자신이다.

1626년에 제작된 <염소를 훔쳤다고 토비트에게 질책당하는 안나>의 제재는 《성서》(<토비트서> 2:11-14)에서 얻은 것이다. 뜨거운 참새 똥에 맞아 눈이 먼 토비트는 아내가 데려온 동물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토비트는 아내를 불러 물었다. "그 녀석을 어디에서 가져왔소? 설마 훔쳐 온거 아니오! 어서 주인에게 돌려주구려. 훔친 가축을 먹을 권리는 없소." 아내가 말했다. "그게 아니랍니다. 급료에 덧붙여 받은 선물이에요." 그러나 토비토는 아내를 믿지 않았고 계속 염소를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일렀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베푼 은혜와 선행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을 위해 한 일을 알고 당신 편이 되어 줄 거예요." 토비트는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슬픔의 기도를 올렸다.

<큰 모자를 쓰고 지팡이에 기대어 있는 거지>(위, 1629)는 렘브란트가 여러 해 동안 레이덴의 거지들을 모델로 해 제작한 드로잉과 에칭화 중 하나이다. 그의 에칭 바늘은 찢어진 옷과 주름진 얼굴을 표현할 때 영감을 얻은 듯하다. 어머니의 얼굴을 표현한 에칭화(아래)는 1628년 작품이다.

<작업실의 화가>(1628경). 이젤 위에 기댄 채 빛을 가득 받고 있는 화판을 응시하는 화가는 렘브란트 자신이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완성된 그림일까, 거친 스케치일까? 그는 작업복 대신 고객이라도 맞이할 듯 성장하고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 같은 다른 화가들의 판화작품은 렘브란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지팡이에 기대어 있는 손이 불편한 거지>(위)에서 프랑스의 판화가이자 에칭화가인 자크 칼로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잇다. 아래는 칼로의 <목발 짚은 거지>이다.

콘스탄테인 호이겐스는 1626년경 얀 리벤스에게 초상화를 주문했다. 그는 최초로 렘브란트 비평을 썼으며, 특히 빛과 그림자의 사용을 자세히 다루었다.

호이겐스는 1629년에 제작된 렘브란트의 <은화 30전을 돌려주는 유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레이덴을 떠난 해인 1631년, 렘브란트는 <예언자 안나>를 그렸다. 안나는 부모를 따라 성전에 온 어린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아보았다. 이 그림의 모델을 선 렘브란트의 어머니는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았을까?

<노파> 또는 <렘브란트의 어머니>는 헤리트 다우의 작품이다. 다우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스승의 그림을 모사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스승이나 동료의 그림을 베끼는 일이 흔했다. 모사는 '날조'가 아니라 학습하고 조언을 주는 한 방법이었다.

 

제2장

영광과 비탄

 

"유럽에서 보기 드문, 인도산(産) 희귀품으로 가득한 배들이 이곳에 도착하오. 이것을 보는 것이 과수원에서 자라는 과일을 보는 것만큼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소? 화려한 삶과 진귀한 물건을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소?"

 

르네 데카르트

얀 반 데르 헤이덴이 그린 <암스테르담의 헤렌흐라흐트>(위)에서 부유층의 저택을 볼 수 있다. 렘브란트의 에칭화 <암스테르담의 전경>(아래)에는 항구, 배, 풍차, 시계탑, 창고 등 도시의 다양한 모습이 펼쳐져 있다.

르네 데카르트의 초상화는 프란스 할스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다. 그림은 위대한 철학자와 재기 넘치는 초상화가의 조우를 들려준다.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는 1608년에 착공하여 1611년에 완공되었다. 거래는 건물 내부가 아니라 안뜰에서 이루어졌는데, 비가 오면 사람들은 회랑 안으로 몰려들었다.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의 안뜰>은 네덜란드의 화가 에마뉘엘 데 비테가 제작한 1653년의 것으로, 당시 막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 온 비데는 건축화에 전념하고 있었다.

"어둠에서 내려오는 나선형 계단과 힐끗 보이는 황량한 복도는, 감상자로 하여금 빛나는 물질을 분비하는 이상한 조가비의 내부를 엿보고 있는 기분을 갖게 한다. 모호하며 설명하기 힘든 방법으로 정신을 비유하고 있는 이러한 구성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사유, 심오한 사유, 그리고 인식이 풍부한 존재로부터 형성된 사유를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폴 발레리

《네덜란드를 다녀와서》 중 <데카르트와 렘브란트> (1926)

해부학 강의를 화폭에 담은 전통은 이보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바스티안 에그베르츠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담고 잇는 토마스 데 카이세르의 그림(위)이나 피테르 미켈츠 반 미레벨트가 그린 반 데르메르 박사의 해부학 강의(아래)가 대표적인 예이다.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에서 튈프 교수 곁에 모여 있는 명사들은 의사가 아니다. 중앙의 인물이 들고 있는 명단에서 정부관리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을 불후의 명작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화가 자신, 렘브란트이다.

해부학 강의실 건물 정면에는 튤립이 조각되어 있는데 튤립은 튈프 교수를 의미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수의 이름은 네덜란드어로 튤립을 의미하며 네덜란드의 국화(國花)가 튤립인 것이다. 1622년 행정관에 임명되고 후에 두 번이나 시장에 당선된 튈프는 암스테르담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이었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위해 플랑드르의 유명한 해부학자이자 티치아노의 친구인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판화 <인간의 육체를 그리는 것에 대하여>(1543)를 연구했을 것이다.

렘브란트가 약혼을 기념해 그린 사스키아의 첫 초상화(위)에는 순종적이고 체념한 듯한 인상이 깃들여 있다. <깃털장식 달린 모자를 쓰고 미소 짓는 사스키아>(아래)를 위해 모델을 선 사스키아가 그것이 모델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알았을까?

<십자가를 세우다>(위)에서는 대각선의 빛이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세우는 병사들 위로 쏟아지고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다>(아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은 1634년 주연합의 총독인 프레데릭 헨리의 주문에 따라 제작한 다섯 점 중 하나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된 주제는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단색으로 처리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매장>(1639경)을 렘브란트가 총독을 위해 제작한 그림 다섯 점 중 하나의 습작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 다섯 작품의 캔버스 양쪽 위가 둥글다는 사실을 참조할 때 이런 주장도 설득력을 지닌다.

렘브란트는 총독의 그림 주문을 연결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눈이 머는 삼손>을 콘스탄테인 호이겐스에게 주었다. 폭력적인 장면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구성의 대담성에서 볼 때 이탈리아 회화 전통과 유사한 면이 있다.

<팬케이크를 굽는 여인>(위)이나 제자인 페르디난트 볼이 그린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아래) 등 렘브란트는 그의 작업실에서 모든 종류의 주제를 소화해 냈다.

사랑하는 모델 사스키아

렘브란트가 그린 이 그림(위)은 <마우솔루스의 유골을 받는 아르테미시아> 혹은 <독배를 받는 소포니시바>로 알려져 있다. 제목이야 어쨌든 그림은 부부간의 정절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많은 그림에서 렘브란트의 환상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사스키아가 역시 모델이 되고 있다.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아래, 1636)에도 사스키아가 등장한다.

여신과 여인

렘브란트는 사스키아를 있는 그대로 초상화에 담지 않았다. 사스키아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플로라로 변신한 사스키아>(위)에서 사스키아는 이탈리아 농촌지방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아마 누군가에게 로마의 창녀들이 플로라의 가호를 기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작품을 그린 듯한데, 사실 그림에 흐르는 관능의 의미는 그림 자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렘브란트는 사스키아가 쓴 화관에 튤립 한 송이를 끼워 넣음으로써 로마의 여신에 네덜란드적 요소를 부여하고 있다. <사스키아 반 월렌보르흐의 초상>(아래)에서 렘브란트는 그녀를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녀의 모자는 렘브란트가 프랑스의 패션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해 준다. 두 작품은 모두 1634년에 제작되었다.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1636)은 그가 아내의 지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헐뜯는 사람들에게 띄우는 답변이다. 렘브란트가 그들에게 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세입 징수 장관 얀 오이텐보하르트> 혹은 <금을 계량하는 사람>. 1639년.

렘브란트가 분할 상환을 조건으로 구입한 신트 안토니스브레스트라트 집.

1639년, 렘브란트는 라파엘로의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초상화>(위, 1516)를 모사했다(아래).

이 드로잉 밑에는 '작업복을 입은 렘브란트'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도살된 소>(1640)에는 3차원적인 조형감이 놀라울 정도로 잘 표현되었으나, 몇몇 전문가들은 그 진품성을 의심하고 있다.

메노파의 전도사이자 부유한 상인, 코르넬리스 클라츠 안슬로는 렘브란트가 제작한 초상화 세 점의 주인공이다. 드로잉(위), 유화(가운데), 에칭화(아래).

렘브란트는 종종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러운 준비작업을 해 나갔다. 예를 들어 1640년에 그가 드로잉한 안슬로의 초상화가 그러하다. 1641년,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얼굴 부분이 좀더 정확하게 묘사된 에칭화로 다시 제작했다. 시인인 요스 반 덴 본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렘브란트가 실제로 그리려 했던 것은 코르넬리스의 목소리이다. 그의 외관은 그를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보여지지 않는 부분은 소리로 알 수 있다. 안슬로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렘브란트가 시도한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펼쳐진 책을 가리키는 손(아래)에서 안슬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은가? 같은 해(1641)에 렘브란트는 안슬로의 초상화를 하나 더 제작했다(가운데). 여기서 안슬로의 손은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여인을 향하고 있다.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를 산 거장들은 부드럽고 빛으로 충만한 풍경을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전개시키기 위한 배경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풍경은 이러한 무대장치와 전혀 달랐다. 그는 있는 사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신화'를 그렸다. 렘브란트가 일상의 삶에서 조심스럽게 취한 요소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돌다리가 있는 풍경>(1637)의 왼쪽에는 선술집이 있고, 오른쪽에는 교회의 첨탑이 보이는데, 이는 17세기 네덜란드인의 삶을 구성하고 있던 두 개의 극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모델을 드로잉하는 화가>(1639)는 미술도구, 장식품으로 가득 찬 작업실을 보여 주고 있다.

니콜라스 브로이닝흐의 얼굴을 비추며 소매와 손을 가로지르고 있는 빛은 키아로스쿠로 기법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 초상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강렬함이며 이 강렬함의 신비는 빛을 빈틈없이 통제하는 렘브란트의 능력에 숨어 있다.

둔부에 손을 올려 놓고 있는 이 인물은 프란스 바닝 코크이다. 결혼 덕분에 부자가 된 그는 재산 이외에도 '퓌르메를란트의 영주'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후에 그는 제임스 2세에게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를 그린 이 초상화는 바르톨로뫼스가 그린 <암스테르담의 고귀한 사수(射手) 길드의 이사>이다. 렘브란트의 <야경>보다 10년 후에 제작된 이 그림은 코크가 원하던 것을 정확히 그려 내고 있다.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코크를 둘러싸고 미술품이 널려 있다.

렘브란트는 유화와 드로잉, 에칭화를 통해 여러 가지 옷을 걸친 사스키아의 웃는 모습, 순종적인 모습, 인내하는 모습, 기뻐하는 모습 등을 재현한다. 1641년 에칭화로 제작한 <크고 흰 머리쓰개를 한 병든 사스키아>(위)에서 사스키아는 뺨이 푹 꺼진 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기진맥진해 있다. 1639년에 스케치로 그려 둔 <병상에 누운 사스키아>(아래, 오른쪽)를 기초로 에칭화 <사자(死者)를 보고 놀라는 청년>과 <처녀의 죽음>을 제작한 것은 렘브란트에게 어떤 예감이 들었기 때문일까?

1715년,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부대>는 후에 왕궁이 되는 니베스타드호이스 2층에 전시되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두 문 사이의 벽에 맞추기 위해, 사람들은 위 25cm, 아래 15cm, 왼쪽 30cm, 오른쪽 10cm 정도를 잘라 냈다.

먼지와 세월의 때는 그림의 색조를 떨어뜨렸고, 그래서 코크 대장의 부대를 그린 이 그림은 <야경>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제3장

고독과 파멸

 

"비평가들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이 그림은 다른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살아 남을 것이다. 이 그림은 구상이 예술적이고 인물의 다양한 배치가 무척 독창적이며, 무엇보다 강렬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것과 비교할 때 다른 그림들은 놀이카드처럼 보이고 만다."

렘브란트의 제자 사뮈엘 반 호그스트라텐

 

《<야경>으로 알려진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부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야경>(위, 세부)의 칼날 뒤쪽에서 밖을 응시하는 눈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렘브란트의 눈이다. 사뮈엘 반 호그스트라텐이 제작한 <슬리퍼>(아래)의 색조는 이 그림과 전혀 다르다.

에칭화 <세 그루의 나무>(1643)는 폭풍이 지나가는 여름 하늘을 묘사하고 있다. 놀랄 정도로 정확히 표현된 빛과 그림자의 대립은 고요함과 동시에 역동적인 힘을 전해 준다.

티투스의 유모 게르테 디르크스. 1642년경 제작된 렘브란트의 드로잉.

이 에칭화는 <프랑스식 침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렘브란트가 아니다. 이 제목은 그림의 주제를 제대로 담고 있지 않다.

<버드나무 밑의 성 제롬>은 《성서》를 해석한 그림일까? 은둔자의 생활을 담은 이 에칭화는 1648년에 제작되었다.

기독교적 신앙을 주제로 다룬 두 그림은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연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엠마오의 그리스도>(위)에서는 석조 벽감이 그리스도의 배경에 놓여 있다. 반면 <커튼 옆에 있는 성가족>(아래)의 열려진 장막은 무대장치처럼 장면을 틀 안에 밀어 넣고 있다.

초상화의 인물은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로 추정된다. 티투스가 태어난 것이 1641년임을 감안할 때 이 그림은 1650년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부 네덜란드의 농부 의상을 입고 있는 이 여성(드로잉, 1642경)은 티투스의 유모이자 렘브란트의 정부인 게르테 디르크스로 보인다. 그녀는 한마디로 골칫덩어리였고 이런 이유에선지 그녀를 모델로 그린 작품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우아한 여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잔잔한 빛은 여인의 얼굴과 진주, 그리고 가슴만을 비친다. 여인의 눈은 렘브란트와의 친밀성을 말해 준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헨드리케 스토펠스로 알려져 왔다. 그녀는 사스키아의 지위와 역할을 인수받은 듯 사스키아 같이 렘브란트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1650년 렘브란트는 에칭화를 통해 풍경을 표현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그렇게 볼 때 <조가비>는 예외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해외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부를 상징하는 듯하며, 조가비의 완벽한 나선형 구조와 표면의 부드러운 형태에 렘브란트가 매료되었으리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책상에 앉아 있는 얀 식스>(위, 드로잉, 1655). 얀 식스는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1652년에 사업을 그만두었다. 그는 <식스의 다리>(아래, 에칭화, 1645)에도 등장한다.

크기(38.5×45cm)로 보나 빛과 그림자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보나 <세 개의 십자가>는 렘브란트가 제작한 가장 중요한 에칭화의 하나이다.

합법적인 부인이 되지 못한 헨드리케의 이름은 렘브란트의 그림에 한번도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창 밖을 내다보는 여인> 외에도 많은 그림에 등장한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말탄 폴란드인>을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믿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진품성을 의심하는 전문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렘브란트의 작품목록에서 제외된 다른 작품으로는 <황금 투구를 쓴 남자>가 있다.

<밧세바>(1654). 다윗의 잔인함에 고통받던 여인 밧세바와 교회로부터 시달림을 받던 헨드리케는 강요된 체념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강가에서 목욕하는 여인>(1655).

<창가에 선 헨드리케(?)>(1656~1657).

책상 너머로 필통을 달랑거리는 티투스는 이번에는 무얼 스케치할까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하다. 렘브란트의 재산목록에는 '티투스 반 레인이 사생(寫生)한 세 마리 강아지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렘브란트는 만테냐가 1506년에 제작한 <죽은 그리스도>(위)의 판화를 소장하고 있었다. 이 그림은 <요하네스 다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아래)의 모델이 되었다.

1723년에 발생한 화재로 <요하네스 다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의 3/4이 소실되었다. 다이만 박사는 손만 보이고 박사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던 여덟 명의 관람자 중에서는 왼손으로 시체의 두개골을 들고 있는 조수만 불에 타지 않았다. 1632년의 첫번째 해부학 강의 장면보다 더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하려 했던 렘브란트는 절개된 복부를 묘사해 넣었다.

 

제4장

은둔과 죽음

 

이제 자신의 소유가 아닌 신트 안토니스데이크의 빈 집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의 작품인 시인 예레미아스 데카르트의 초상화를 찬양하는 H. F. 바테르로스의 시를 읽었다. 그는 파산과 악평, 소외를 근심했을까? 그는 파산했고 따돌림받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넓은 갈색 깃이 달린 두툼한 외투를 입고,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 위에 하얀 모자를 쓴 렘브란트의 <자화상>(위, 세부)은 1663년경에 그려졌다. 배경으로 보이는 원은 시간을 상징한다. 아들의 초상화 <독서하는 티튜스>(아래)는 이보다 몇 년 전에 제작되었다.

위에서부터 <귀기울이려는 듯 앞으로 몸을 숙인 자화상>(1628), <주먹코를 한 자화상>(1628), <모피 모자와 밝은 옷을 입은 자화상>(1630), <화난 모습의 자화상>(1630), <소리를 지르듯 입을 벌린 자화상>(1630), <부드러운 모자를 쓴 자화상>(1634).

렘브란트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가장 다루기 쉬운 모델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렘브란트는 수많은 자화상을 얼굴 표현이나 다양한 예술적 기법을 연구하려는 시도만은 아니었다. 그의 자화상은 불안, 항변, 절규, 그리고 변화하는 삶의 태도와 감정의 기록이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100여 점이 될 것으로 추산하나, 그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힘들다. 제자들의 모사품, 렘브란트 자신의 개작, 최근에 제작된 위조품, 또한 그 자신이 그린 또다른 판본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자화상 목록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1658년의 이 자화상은 고독 속에서도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친 렘브란트를 보여 준다. 이마에는 주름살이 패어 있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서려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의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경제적으로는 파산상태였지만, 자신의 힘은 파괴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당한 렘브란트

각각 1629년(위)과 1634년(아래)에 제작된 자화상에서 렘브란트는 똑같은 갑옷을 입고 있다. 철제 목가리개는 렘브란트가 조국에 자유를 찾아 준 주연합의 시민군과 자신을 동일시했음을 일러준다. 군대경험은 없었지만 그는 고객들과 공유했을 애국심을 형상화하곤 했다.

대가

1640년의 <자화상>은, 금, 모피, 벨벳, 자수로 장식된 넓은 모자 - 그가 즐겨 쓰던 모자이다 - 를 쓴 렘브란트가 좁다란 난간에 팔을 기대고 선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의 자세는 라파엘로의 초상화에 묘사된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모습과 같다. 렘브란트는 경매장에서 그 그림을 모사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 그림을 사들인 사람은 화상인 알폰소 로페즈였다. 풍부한 베네치아 색채는 로페즈가 소장한 또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해준다. 그것은 푸른 소매 옷을 입고 있는 남자를 묘사한 것으로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초상화>라 불리는 티치아노의 그림이다. 결국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서 그린 이 자화상에 이탈리아 화가들의 '독창성'을 빌려와 융화시켰던 셈이다. 이탈리아 유학이 필요불가결한 것은 아니었다.

최후의 몇 년

1660년대에 제작된 세 점의 자화상에서는 화려한 장식이나 가식을 찾아볼 수 없다. 머리에는 흰눈이 내려앉았고 살이 오른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났으며, 권태와 회한으로 가득한 눈길은 무감각해 보인다. 렘브란트는 흰 모자에 금색선을 첨가해 배경, 머리카락, 얼굴과 조화를 이루게 했는데, 이로써 화가는 자신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하다.

렘브란트가 1647년에 에칭화로 묘사한 얀 식스(위)는 파산 직전의 렘브란트를 구제해 주곤 했다. 렘브란트의 세계적인 명화들은 카이제르스크론 여관(아래)에서 팔렸다.

<수도사 차림의 티투스>(1660). 이 초상화의 모델은 아들 티투스이다. 렘브란트는 거친 수도복에 드리워진 갈색 그림자를 하나하나 묘사하는 기쁨으로 티투스를 그렸을까? 아니면 관객의 눈길을 티투스의 창백한 얼굴로 이끌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일까? 혹은 티투스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1891년 스톡홀름 미술관에서 다른 제목이 붙은 채 재발견된 <율리우스 키빌리스의 음모>(위, 가운데는 세부)는 원화의 1/4만 남아 있었다. 화재 때문일까, 아니면 그림의 힘과 사실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잘라 낸 것일까? 원화의 구성은 아래에 있는 습작으로 확인할 수 있다.

렘브란트는 참을성 없는 수집가 하르멘 베케르를 달래기 위해 위풍당당하고 위엄 있는 <주노>의 초상화를 그렸다. 얼굴, 목걸이, 오른손에서 여신의 권능을 느끼게 만드는 이 초상화는 세부가 무시되어 있으며, 왼손과 왼팔은 가까스로 스케치만 끝난 상태이다.

램브란트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직물 제조업자 길드 이사들의 초상화>는 렘브란트의 마지막 집단초상화로 암스테르담 직물 제조업자들의 주문에 따라 제작되었다. 가운데는 렘브란트의 제자인 페르디난트 볼이 그린 <포도주 상인 길드의 초상화>이고 아래는 <직물 제조업자 길드 이사들의 초상화>를 위한 습작 드로잉이다.

렘브란트는 철학자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시칠리아 거부이자 미술품 수집가의 주문을 받고, 1653년에 <호머의 흉상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아리스토텔레스>를 제작했다. 렘브란트는 시인이자 철학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자 친구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전사(戰士)의 미덕을 부여했다. 알렉산더 메달을 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장님 시인인 호머의 흉상에 손을 올려 놓고 있다. 메달에 각인된 알렉산더의 흉상과 렘브란트가 1663년 제작한 <알렉산더 대왕>(아래)은 무장을 하고 투구를 쓴 팔라스 아테나의 이미지를 빌려 형상화했다.

스트라스부르의 부유한 상인이던 프레데릭 리헬은 1660년 암스테르담으로 입성하는 열 살 난 윌리엄 3세를 호위하던 108명의 기마 친위대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실물 크기의 초상화 <말 위에 올라탄 프레데릭 리헬>을 통해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것은 왕을 호위하던 영광의 순간이었다. 기마초상화는 네덜란드 회화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말 위에 올라탄 폴란드인>이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면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유알한 기마초상화가 될 것이다. (1655년에 렘브란트가 제작한 <말 위에 올라탄 해골>에서는 말과 사람 모두가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다.) 렘브란트가 기마초상화를 그렸다는 것은 티치아노의 <샤를 5세>나 로마의 조각상에 자기 작품을 견주어 보려는 의도였다. 성직자처럼 뻣뻣한 말은 기수의 중요성을 한층 부각시켜 준다. 배경으로 왕궁의 마차와 더불어 어렴풋이 어린 왕자의 옆모습이 보인다.

라파엘로의 <자화상>은 피렌체 체류의 흔적과 함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짐작하게 해준다. 1682년 10월 28일. 이 작품은 메디치가의 레오폴도 추기경의 소장품이 되었다. 레오폴도는 화가들의 자화상으로 컬렉션을 만들고자 했다.

1713년 팔츠의 선제후 요한 빌헬름 폰 데어 팔츠는 메디치가의 코시모 3세에게 루벤스의 <자화상>을 선물했다. 토스카나의 대공작들은 19세기 말 이탈리아가 통일될 때까지 미술품을 수집했다.

벨라스케스의 <자화상>은 코시모 다 카스틸리오네가 토스카나 대공작을 위해 스페인에서 구입했다. 필리페 4세의 긍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허리춤에 왕궁 의전관실 열쇠가 보인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메디치가의 코시모 3세가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듯하다. 오늘날 이 그림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유태인 신부>(1665)의 등장인물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이 여인은 누구일까? 하지만 렘브란트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의 대상이 자아내는 느낌이었다. 풍요로운 색채 속에서 즐거움과 정다움이 솟아 나오고 있다.

렘브란트는 나이프를 이용해 남자의 소맷자락에 금을 입혔고, 그 도드라짐이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물감을 긁거나 문지른 부분은 질감을 높여 주어, 단지 눈으로 보고 싶을 뿐만 아니라 만지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폐허>(두번째, 1650), <가족의 초상화>(첫번째)는 렘브란트가 죽은 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렘브란트의 가족들이 묻혀 있는 베스테르케르크의 드로잉이고, 네번째는 <자화상>(1665)이다.

<석고상을 그리는 미술 전공 학생들>. 에칭화, 1641경, 국립도서관, 파리.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1633년. 렘브란트의 유일한 바다 풍경화이다.

<그리스도의 매장>, 에칭화, 1654년.

<유대인 신부>(세부), 1668년경.

<플로라로 변신한 사스키아>, 1635년.

<기도하는 다윗>, 에칭화, 1652년.

이 신비하고 작은 여자의 허릮에는 다양한 궁술(弓術)의 상징이 있다.

1650년 코크 대장의 앨범에 소장된 <야경>의 수채화 모사화는 원작이 잘려지기 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목사 얀 코르넬리츠 사일비우스의 사후 초상화>, 1646년.

<서재의 파우스트>, 에칭화, 1652년.

<눈먼 토비트>(세부), 에칭화, 1651년.

<왕좌에 오른 티무르 황제>, 드로잉, 1635년경, 인도의 세밀화를 모사했다.

<둑에 앉은 거지>(세부), 에칭화, 1630년, 자화상이다.

<아담과 이브>(세부화), 1638년.

렘브란트의 제자인 아브라함 퓌르네리우스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그림네세 슬로이스 다리의 모습>.

<아브라함의 번제(燔祭, 구약시대에 유태인이 짐승을 통째로 구워 신에게 바치던 제사 : 역주)>, 1636년.

<자화상>, 1627~1628년경.

<극락조>.

 

 

어느 초상화가 모방작일까? 렘브란트 조사계획 위원회는 위의 두 초상화의 진품성을 의심했다.

<호머의 흉상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아리스토텔레스>, 1653년.

<자화상>, 16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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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06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4

 

811.6

고67만  6

 

창비전작시---------------------------------------------------------------------

 

나는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씨름꾼이나 엿장수, 매맞는 아이, 엿보는 소악패, 늙은 부부, 장에 가는 농민, 음흉한 양반 등등 거기 살아 있는 백성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승의 엄숙함을 느낀다. 이런 점은 중동이나 인도의 벽화 또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느끼며, 특히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뚜렷한 의도를 지니고 당대의 잡다한 민중을 모든 가치와 관념과 인식의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눈치를 채게 된다. 『만인보』는 마치 들꽃이나 잡초처럼 강산에 번성하고 스러져간 당대인의 모습을 시인 자신의 체험적 스냅사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 시'이다. 작은 수백 수천의 조약돌을 모아 바다를 형성화해내듯이 그의 이러한 작업은 서사시가 흔히 놓치게 되는 서정성과 개개인의 자상한 인생 체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오히려 시인 고은의 전생애와 동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대하 서사시의 성과를 얻게 하고 있다.

- 소설가 황석영

 

신명의 언어로 충만한 시인 고은, 그의 신명의 언어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하나 하나와 살아서 만날 때 낳아지는 것이 『만인보』 연작이다. 그 만남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 지혜로 시인은 "사람의 추악까지 포함하는 승엄성"을 포착해내고 민중적 생명력의 온전한 모습을 길어내어 생동하는 한국어의 급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싣고 있다. 『만인보』의 만남이 거듭할수록 시인의 신명은 더욱더 살아 뜀뛸 것이다. 그가 시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한.

- 문학평론가 성민엽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성계육 / 관여산 조봉래 / 혹부리 / 입분이 / 천서방 / 임방울 / 두희종 영감 / 효부 / 쌍가매 / 박춘보 / 형제 머슴 / 춘  자 / 신  자 / 이삼만 / 양녕대군 / 진달룡이 / 달봉이 / 진달룡이 어머니 / 송만복이 / 기호 할머니 / 김규식 / 당북리 혹부리 / 왕눈이 가시내 / 육복술씨 / 나운리 방앗간집 마누라 / 광개토대왕 / 월명동 미인 / 기선이 / 재근이 / 오줌싸개 / 외사촌 용섭이 / 점  례 / 이종사촌 한선우 / 새말 조인구 아버지 / 이광수 / 개사리 문점술이 / 새말 조길연이 딸 / 김재선 영감 / 새터 울음보 / 용둔리 찐득이 / 독점 오복녀 / 삼형제고개 / 설소년 / 따따부따 / 백제 유민 부례 / 수복이 / 원당리 노망 / 독점고개 강도 / 눈에 홀린 총각 / 미제 황소아들 / 김종술이 / 재봉이네 장닭 / 도  선 / 수  염 / 호락질 / 미제 창순이 / 완  도 / 이차돈 / 형사 조태룡 / 홍종우 / 지곡리 서당 전총각 / 명산동 잡화상 며느리 / 신흥동 껄렁패 / 강집사 / 윤봉재 / 길남이 / 김시습 / 권오술이 여편네 / 선제리 도둑 / 관전이 외할아버지 / 귀녀 아버지 / 어린 완규 / 새터 상술이 어머니 / 미제 술집 심부름꾼 / 옥정골 고남곤이 / 하이하이 아낙네 / 황희 / 갈뫼 애무덤 / 아래뜸 우식이 / 시청 산업계장 김주갑 / 지서장 김충호 / 미제 공순이 / 창순이 아버지 / 산삼 재상 / 큰작은어머니 / 작은작은어머니 / 소래자 / 중식이 아버지 / 양반 나그네 / 정  철 / 김세규 서모 / 칙간 귀신 / 양귀비꽃 / 참판 똥 / 고려의 끝 / 원당 김상래 / 미제 김상래 / 가사메 전한배 / 전익배 / 어느 어머니 / 전상모 / 지곡리 강칠봉 / 전대복이 / 우하룡 / 말  례 / 가네무라 가네마쓰 / 문행렬이 아저씨 / 김도술 / 김덕구 마누라

찾아보기

 

관여산 조봉래

 

늘 우는 소리

웃방 흙바닥 나락 여덟 가마나 쟁여두고

아이고 뭘 먹고 살 것인가 하고

우는 소리

누가 인기척 내며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이고 목구멍에 거미줄 칠 날이

내일 모레여 하고

누가 양식 꾸러 온 것도 아닌데

지레짐작으로

두 끼 굶었다고

물만 먹고 앉았다고

남우세 모르고

우는 소리

임오년 계미년 모진 시절이건만

관여산 위아래 마을 어느 집도

그런 봉래네 집으로

양식 꾸러 가지 않았다

양식은커녕 삽 한 자루 빌러 가지 않았다

온 동네 짬짜미로

조봉래 따로 돌려놓아 버리고

어디 보자

봉래 너 아쉬운 때 있으리라

부엌 아궁이 재 가득해도

당그래 하나 못 빌고 올 날 있으리라

 

당북리 혹부리

 

당북리 혹부리 권오식이

만만치 않은 입심이라

 

왼쪽 볼에 척하니 하나 매달린 혹이라

동네 어른이 심심하던지 한마디

자네는 소 뒷다리 밑에 달린 것을

얻어다 달고 다니나 하자

영감님은 남의 부랄 떼어다

차고 다니십니까

그것도 하나 아니라 두 개씩이나

괜히 한마디 했다가 본전치기 못하고 말았다

 

말대꾸에 보리카락 들어가는 권오식이

그러나 저 혼자야 한없이 싱거운지라

한번 지게 받쳐놓고

지겟짐 그늘에 들어가 쉬기 시작하노라면

햇빛에 그늘 옮겨가는 대로

옮겨 앉아

일어설 줄 모르는 권오식이

 

눈앞에 두벌김 맨 검푸른 모 자라

왜가리 따위 앉을 데 두지 않는데

벌써 이른벼 나락 모가지 여무는데

찰벼 사납게 패는데

 

나운리 방앗간집 마누라

 

미룡리 신풍리 사이

나운리 방앗간집

방앗간은 헌 집 사서 자꾸 달아내고 올리고 하여

이층인지 삼층인지 모르고

두 채인지

몇 채인지 모르게 늘어나기만 한다

 

그 방앗간집 주인 영감은

방앗값 떼어내는 데 귀신이라

한 말 떼면

그게 한 말 가웃이다

그렇게 부자 되니 무엇하나

밤이나 낮이나

방앗간 먼지 속에서

누구 하나 못미더워라

눈에 불 켜 달고

여기저기 두리번댄다

 

손수 아시 찐 쌀 살펴보고

발동기 용수철 기름칠하고

언제 안채 들여다볼 겨를 있는가

 

겨우 늦은 점심에

소금김치 한 가닥 얹어

쌀 보리 섞은 밥 뚝딱 먹고 나면

담배 한 대 물고 나와버린다

 

그런지라

안채 마누라는

노상 얼굴 단장이나 하고

머리 가리마 짜르르 미끄러진다

뒤에서 보면

이게 어느 집 기생인가

 

어여쁜 낭자 지어

분냄새에 대낮에 모기 운다

바깥 방앗간 영감과 15년 차이라

저 혼자 나선 길에

군산 희소관 가서

일본 활동사진 보고 오는 길

 

그래도 미안스러운지

영감 주려고 궐련 두 갑 사온다

영감은 그냥 봉지담배 뜯어

종이에 말아 피우는데

 

월명동 미인

 

군산 월명산 밑 월명동은

언제나 인기척 귀한데

집집마다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하기야 3 · 1절날 깃발도 적적한데

그런 주택가 가로수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데

어쩌다가 미면 소달구지가

멋모르고 그 거리 들이닥쳐

쇠똥 질턱질턱 싸놓으며 지나간 뒤

그 쇠똥 꼬들꼬들해질 무렵

저녁 나절이라

그 누가 보아야지

그 누가 보아야지

월명동 미인 가네무라 히사꼬

양산 받고 바람 쐬러 나온다

소문으로는 몹쓸 병 걸려

죽는 날짜 받아놓았다 하나

세월이 갈수록

그 아름다움 무르녹아

그 히사꼬 한번 보면

그날 하루 내내

다른 것 보아서는 안된다 눈 버린다

그 깎아 박은 듯한 콧마루

그 코 아래

검은 점은 일부러 찍은 점이라거니

태어날 때

삼시랑 할머니가

보름달에 푸접하라고 찍어준 점이라거니

그 히사꼬 지나가는 거리

이제까지 그렇게도 적적하다가

이 집 창 드르륵 열리고

저 집 창 열리고 열려

월명동 미인 구경하는 늙은이 있고

일찍 돌아온 사내 있고

덩달아 휘익 휘파람 부는 아이도 있고

제 동네 미인한테 눈팔고 있다

한 눈이 아니라

두 눈 다 쏘옥 팔아버리고 있다

벌써 시청 쪽으로 가고 없다

월명동 미인

못이 되었으면

그 미인 치마라도 걸어두는

못이 되었으면

 

새말 조인구 아버지

 

봄볕에 나와

해바라기하다 그대로 앉아 죽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다 저녁때 아들이 가 흔들어 깨웠으나

이미 굳을 대로 굳었다

굳은 뼈 우드득우드득 분질러 눕혀놓고

아이고오 아이고오

곡성 냈다

늙은 아버지 세상 떠나도

슬픔 하나 없는 아들 조인구

 

하기야 사람 때리고 패는 데만 이골이 났지

어찌 슬픔 알겠느뇨

어찌 생사의 뜻 알겠느뇨

억지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개사리 문점술이

 

문점술이

웃통 벗으면

그런 장사 없는데

괴적삼 입으면

언제나 꾀죄죄한 꼬라지라

다른 동네사람 멋모르고

멱살 잡고 떵떵거리다가

순하디순한 점술이 한번 화나면

그냥 상대방 번쩍 들어 개골창에 내던져버린다

 

체 언 빨래만도 못한 것이

나대기는

말복 풍뎅이 불에 대들 듯하고 있네

한마디 투덜

 

밥 세 사발 먹고도 서운한지

숭늉 두어 사발 먹는 점술이

일 나와

그렇게 먹어야

배 주릴 때 견디는 점술이

 

동네 조무래기들이

업어 달라고 졸라대면

셋이고 넷이고 한꺼번에 겹겹으로 업고

큰길까지 나가주는 점술이

 

순하디순하여

동네 아낙네도 내외하지 않고

하소 하소 하고

어이없는 반말 쌍말에도

꼬박 예 예 예에 하는 점술이

상고머리 희끗희끗

보리 베고 난 빈 밭에서

석양머리 붉은구름 한동안 보고

히죽 웃는 점술이

 

새말 조길연이 딸

 

허퉁하고 폭폭한들

어디에 대고 그 속 풀 곳 없다

새말 조길연이 딸 아리따운 처녀 양순이

왜 그런지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하고

여기서

저기서

고약한 헛소문만 떠도는데

아무개하고 붙었다더라

아무개하고 헛간 검불 속에서 붙었다더라

군산 묵은장 장돌림녀석하고 눈맞아

당장 여관 가서 치마 말기 풀지도 않고

그냥 나딩굴었다더라

이런 몹쓸 소리에

시집 길 꽉 막혀

어디서 멋 모르고 선보러 왔다가도

더는 발길 끊어지고 만다

 

그러나 정작 당자인 양순이는

늘 애벌레같이 굼실거리는

그 잘 생긴 입술에

흰 이빨 살짝 내보이며 웃을 뿐

세 또래 처녀가 귀뜀해 주어도

어디 남의 말 석 달 가랴

 

눈 지그시 감고 입술 지그시 깨물고만 있을 뿐

그년의 속 한번

천길도 깊어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동네 웃말 전두수 아들한테

느지막이 시집갔다

시집가던 머리로

아이 들어 배가 불렀다

동네 흙빛 한번 새삼 붉었다

 

새터 울음보

 

아빠 한섭이는

좀도둑질하다가 잡혀

형무소 가고

엄마는 집 나가 소식 모르고

할머니 손에 닿아 자라는 아이

새터 울음보

 

울다

울다

울다 지치면

잠자고

잠깨면

목 쉬어 울어대는데

 

어린아이가 목 쉬다니

천벌이야 !

 

그 시절

그 마을 모두가 천벌 맞은 것이야 !

 

용둔리 찐득이

 

박석태

이 찐득이

죽은 지 3년 된다

찐득이 제사날

동네 우물마다

오늘이 찐득이 제사날이여

찐득이 제사날이여

 

오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꾸역꾸역 판에 끼여들어

두부 다 먹고

김치 다 먹고

술도 다 먹고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 다 듣고

 

밀어내어도

밀려났다가 다시 오고

또 밀어내어도

또 밀려났다가 다시 오고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잔치에

찐득찐득 늘어붙어

실속 차릴 것 다 차리는 찐득이

 

그러다가 젊은이한테 맞아

코피 주르륵 흘려도

쑥잎으로 콧구멍 막고

다시 들어서서

잔칫상 한 자리 차지하고

굴비 찐 것 건드리고

부꾸미 한장 걷어 먹고

쇠고기산적 먹고

끄르륵 트림한다

 

그렇게도 홀대받아도

그렇게도 괄시받아도

그런 것 막무가내로

제 실속 차리는 찐득이

 

누군가가 그 성질 간파하여

못 받을 빚 받아오라 해서

빚진 집에 가서

아무리 몰아내고

도망치고

몽둥이로 쳐 몰아내어도

기어이 들어가

아랫목 차지하고

사흘 누워 있다가

밥도 안 먹고 누워 있다가

기어이 돈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 찐득이 박석태 죽어

제사날이었다

오마나

찐득이 귀신 우물 속에 있는가

두레박이 안 올라오네

 

원당리 노망

 

원당리 홍달표 할아버지 노망 들어

아직 깜깜한 꼭두새벽인데

아 큼큼

하고 일어나

이 방 저 방 문 열어젖히며

잠긴 문 문고리 흔들어대며

아아니 아직도 일어날 생각 없느냐

방고래 오래 지면

그 죄가 살인죄 다음이여

아아니

이러고서

어찌 삼시 세때

아가리에 밥 넣고 살겠느냐

이렇게 시작해서

한동안도 입 가만두지 않고

그 말라깽이 어디에

그렇게 잔 사설 가득 들어 있는지

 

하기야 노망들기 전에도

저 혼자도 늘 입 놀리기를 쉬지 않더니

밥 먹을 때나 좀 뜸한데

아니나다를까

어찌 내가 밥 먹는데도

말을 시킨단 말이냐

밥에 돌 섞어주고

반찬에 머리카락 넣어주는 년이

어디 내 며느리냐

나 죽이려고 양잿물 안 넣은 것만도 다행이다

아아니 이런 년하고 사는 놈이

어디 내 자식이냐

 

그것으로 모자라 청승으로 나아가는데

아이고 죽은 마누라가 알면

제사날

제사밥 얻어먹으러 와서

눈물바람으로 돌아가겠구나

우리 영감 불쌍하다고

 

고깃국 나오면

아들 국건더기까지

떠다 먹는 달표 할아버지

어찌 한마디 없을소냐

제 서방한테 주는 고기는 먹기 좋구나

못된 년 같으니라고

 

나 오늘 죽을 테니

너희들 일 나가지 말고 집에 있거라

이 연놈들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그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곡리 서당 전총각

 

옥구들판에는 고씨 두씨 문씨 전씨라

지곡리에도 전씨 몇 가호 있다

지곡리에도 전씨 몇 가호 있다

지곡리 서당 이른 아침

학동들 서당에 올 무렵

먼저 와서

덩다랗게 팔짱 끼고 서 있는데

길게 딴머리하고 서 있는데

그게 누구냐 하면

지곡리 전씨네 아들

이 딱한 총각하고서는

서당 학동들 오는 길 막고

 

너 가지고 온 깜밥 내놔

너 가지고 온 먹 내놔

너 가지고 온 제기 내놔

 

글읽기는 동몽선습 첫줄부터 졸기 시작하는데

 

전총각 어머니 태몽에

거머리 꿈꾸고

전총각 뱄다는데

 

그렇게 다닌 서당이라

다른 아이들

어린아이들

사서삼경 다 떼었는데

전총각은

겨우 소학에서 졸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갈 것이야

아이들 등쳐먹고

공갈하는 재조는 익혔으매

 

명산동 잡화상 며느리

 

군산 새장터 가는 길

벼랑길 지나

언제나 정갈한 곽씨네 잡화가게 있다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게

갖가지 물건이 잘도 차려져 있다

하얀 머리 상고 친 할아버지가

연한 옥색 조끼 입고

날 듯이 나와

물건 다독거리며 내주고

값을 받아도

정중하게 받는다

나이 어리면

잘 가거라

나이 어중뜨면

잘 가시게

인사성 하도 좋아

아나 하루살이야

절 받고 싶거든

문안인사 받고 싶거든

곽씨네 점방 가거라 할 정도인데

어쩌다 그 곽씨

볼 일 있거나

누워야 할 병 들거나 하면

그 시아버지 대신

며느리가 나온다

아서라 동백꽃 같은 그 며느리

검은 머리에 붉은 댕기 섞은 낭자머리

남치마에 흰저고리

자주고름아

어느새 봄이 와

저쪽에서 풋풋이 봄바람 온다

남편은 서울 유학 가서

방학까지는 독수공방

방 그슬린다고

참기름불만 조금 켰다가 꺼버리는 독수공방

깊은 밤

그 방의

그 며느리의 꿈속에 들어가고 싶은

몹쓸 소원이여

 

신흥동 껄렁패

 

군산에는 흥남동 개복동 신흥동

오룡동 명산동에

그 언덕바지 따라

일본사람들한테 밀려난 가난뱅이들이

올라가 이룬 산동네

식민지 달동네

초가집 빼곡이 덮인 언덕동네 있다

 

1920년 이래

조가비 겹겹으로 엎어둔 듯한

그 초가집 골목길 올라가면

몇 걸음에 숨이 차다

 

신흥동 오르막길 잘도 올라가는

아무일이 어머니

쩔뚝발이건만

아들 무일이 하나는

키다리로 길러낸 홀어미

 

그 홀어미 자식 무일이

아비 없는 놈이라

일찌감치 껄렁패 되어

옆구리 칼로 그어 흉터 만들고

새 옷도 생기면 찢어 꿰매어 입고

남의 옷도 새로 입고 나오면

임마 이리 와

너 나를 본떠라

하고 그 옷 쫘악 그어준다

 

그 무일이가 중학교 들어와

제일 뒷자리에 앉아

방인근 소설 「마도의 향불」 읽고

공부만 하는 놈 눈에 거슬리면

그 학생 도시락에

뱀 잡아 토막내어

밥에 박아두었다가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 열다가

기절초풍하게 만든다

껄껄껄 웃는다

 

훈육선생이

너는 아비 없는 놈이라는 소리

듣기 좋으냐 하면

아비 없는 놈이

아비 있는 놈 되면

그럼 우리 어머니가 똥갈보란 말이요

우리 아버지 말고

딴 놈 붙어먹었단 말이요

하고 대드는 무일이

 

아무래도 무서운 곳 없다

경찰서 앞 지나갈 때도

다른 사람들 괜히 무서운데

무일이

이무일이

아비 없는 무일이는 당당하다

 

그러나 시험 때

시험 답안지 보여주면

그 학생한테는

그 무서운 낯짝에서

칼자국 난 낯짝에서

모처럼 달맞이꽃 웃음이 나온다

무일이 얼굴에도 웃음이 나온다

어려서 싸우다 빠진 이빨 해넣어

그 금니빨 빛나는 웃음 나온다

 

누가 군시렁거렸다

쳇 늑대도 웃을 때 있다

늑대인 줄 알았더니 여우밖에 안되는구나

 

그 무일이

인공 때 한탕 하고 나서

수복되고 붙잡혀

아침이슬이었다

 

늘 눈자위 붉은 기운찬 무일이

 

선제리 도둑

 

도둑질 떠나는 날

할아버지 무덤에 간다

할아버지 다녀오겠읍니다

할아버지 손자 잘 보살펴주십시오

 

그래서인가

도둑질 열 번 넘었는데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 다니는 아이놈이

학교에서 도둑질하다가 들켜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들켜

할 수 없이 퇴학맞았다

 

아버지도 스무 번 못 채우고 쇠고랑 찼다

 

도둑 마누라

도둑 어미

형무소 가서 울고 오랴

자식 손모가지

빨랫방망이로 찧어

손가락 병신 만들으랴

 

새터 상술이 어머니

 

상술이 어머니

입 삐죽이 기울어져

남의 이야기 아니면

그 입에서 나오는 것 없다

이 사람 만나

저 사람 이야기

저 사람 만나

이 사람 이야기

이렇게 남의 이야기로만 사는데

무슨 기생 풍류 잡힌다고

낭자 앙똥히 쪽지어

거기 귓발 파내는 귀지개 꽂고

성냥개비도 하나 꽂고

이 사람 이야기

저 사람 이야기

부엌 아궁이 재 퍼내다가

딴 생각에 빠져

재 둘러쓰고 넘어졌다는 이야기까지

생선에 환장하여

생선 가시까지 삼키다가

생밥 몇 숟갈 떠먹고

그 가시 가까스로 넘겼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그런데 그렇게도

남의 이야기 할 수 없는 밤중에는

잠자는 밤중에는

우줌을 푸짐하게 싸므로

큰 요강 두 개나 들여다놓아야 한다

함께 늙어가는 며느리

저녁마다 요강 두 개 들여다놓으며

아이고 우리집 거름 하나 걱정 없다

 

상술이 아버지는 두어 번 싸는데

상술이 어머니는

요강깨나 커야 한다

그래서렷다

상술이네 집 마늘밭

마늘 한번 잘된다

다른 집 것 반뼘인데

그 집 것은 뼘반이나 크다

 

옥정골 고남곤이

 

언제 자고

언제 오줌 싸는지

그저 일에 늘어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옥정골 고남곤이 아저씨

이마에 흉터 하나 번득이며

밭일 끝나면

밭두렁 풀 깎는 일

밭두렁 물러서자마자

산으로 가

푸장나무 대번에 한 짐 해 내려온다

얼굴에 땀 먹어

햇빛에 번득이며

 

그러나 종일 입 하나는

밥 먹는 것 말고는

열어본 일 없다

쉬어터졌나

바람 불어도

어 그놈의 바람 시원하다

한마디 없다

도대체 평생 말 몇마디 하고 죽을 것인가

이사람아 쓰다 달다 해보아

남의 밥 그냥 먹기만 하지 말고

해도

 

그 고남곤이 아저씨

입으로 말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눈으로도

속으로도 말없다

 

하기야 말이란 한번 하기 시작하면

그 말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이 마을 저 마을 무덤들이 다 그런 무덤 아닌가

 

아래뜸 우식이

 

어릴 때 만주로 떠난 아버지 얼굴 모르고

열두살에 어머니마저 세상 작파했으니

그 어린 우식이사 나서서

집안 꾸려가야 했다

아래로 동생 우종이 있고

우만이 있는데

밥 해서

어린 삼형제 밥 먹는다

동네 아낙네들

처음에야 반찬도 나누어 주고

어쩌고 하지만

그게 어디 긴 세월 정성이겠는가

 

추운 날 문구멍 뻥뻥 뚫린 문으로

바람 들어오는 아침

그 추위에 지지 않고 일어나

마당 눈 쓸고

얼음 깬 항아리물 퍼

세수하고

세수한 얼굴에서 김 나고

우종아 일어나

우만아 일어나

그 소리

지나가는 사람이 듣고 빈 소리

아 그놈들 삼형제 잘도 살아가누나

 

한식날 어머니 무덤에 가서

우식이 서럽게 울고

우종이 멀뚱거리며 서 있고

우만이도 마른 풀 뜯으며 앉아 있고

엄마 엄마

실컷 불러보지 못하고 자라나서

먼 데 바라보고

 

이렇게 우식이 실컷 울고 내려오면

새로 힘 난다

아무리 이 세상 벅차도

뚫어

굴 만들 수 있는 힘 난다

우종아

저기까지 누가 먼저 가나 내기하자

요이 똥 !

 

요이 똥은 일본말인가

 

원당 김상래

 

미제 김상래하고

성도 이름도 똑같은

원당리 김상래

 

그러나 원당 김상래는 딴판이라

불알 두쪽 달랑거릴 뿐

가랑이로 찬바람 빠져나갈 뿐

 

어쩌다가 미제 신작로 네거리에서

미제 김상래 만나면

엄지손가락 끝으로

왼 콧구멍 눌러

오른 콧구멍에서 콧물 쏘아낸다

흥 !

 

소달구지 끌다가

소 잃고

달구지 팔고

그냥 깝깝하면 미제 네거리 나오는데

 

그 겉인사성 좋은 미제 김상래도

원당리 김상래한테는

지레 굳어져

말 한마디 헛쓰지 않는다

무엇하러 나왔어 ?

한마디가 인사

 

그러나 벌써 저만치 가버린 원당 김상래

그 뒷모습 당당하다

가진 것 없으나

기 죽어보지 않고

이 세상 괜스러이 자랑스럽다

때는 이른봄 뚝새풀 푸릇푸릇

미제 김상래는 논이 세 개나 있어

벌써부터 농사 걱정

못자리할 걱정

큰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자식 걱정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술 한잔 못 사먹는 쫌뺑이다

 

가사메 전한배

 

만경강 하구 짠바람 갯바람

가사메까지 와

더는 오지 않는다

그 가사메 뒷산

꼭 늙은 누에 한 마리로 누워 있는데

거기 해송 솔바람소리에 가면

잠꾸러기 전한배 꼭 늘어지게 자고 있다

 

말 하나는 늘 다정다감하여

자네 참 오래간만이네그려

자네 춘부장님께서 기간 기체 안녕하신가

어쩌고 양반 행세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자네 신수 훤해지셨네 그려

 

그러나 아무데서나 낮잠 자면

낮모기 뜯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가 네다리 들어가도 모른다

그 코고는 소리 있어

비로소 천하태평 거기 잇다

 

한잠 실컷 자고 나

멍청하게 만경강 앞 염전을 바라다보며

아이고 어디 갈 데도 없구나

하고 다시 누워버린다

 

집에야 멍석에 넌 보리 새가 다 먹어도

서생원이 새끼 데리고 와 먹어도

 

지곡리 강칠봉

 

이것 봐라

이것이 미물하고 한 동아리인 주제

이것이

어렵쇼 천하를 논하는구나

 

지곡리 뒷산 소나무 그늘 낮에도 침침한데

거기 나뭇지게 뉘어놓고

가로되

앞으로 백년 지나면

뽕나무밭이 바다 될 것이여

 

부자 가난해지고

저기 저 가난뱅이 박명순이네 집에

고래등 기와집 설 것이여

 

입담은 척척 늘어붙는데

배운 것이 없어 그게 원수로다

그럴 바에야

김제 금산사 밑으로 가서

고수부 제자한테

그 무엇 좀

그 무슨 후천개벽 좀 배우고 오면 될 텐데

 

나무하느라 갈 수 있는가

나무도

산 주인 눈 피하여

도둑나무하느라

어디 갈 수 있는가

 

눈 하나 형형하니

나무하다가

갑자기 낫으로 땅 찍고

내가 이놈의 나무나 하고

풀이나 깎고

밤에 빈대나 실컷 물리고

 

과연 천하는 논할 만한데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05 HOW TO READ 키르케고르 Soren Kierkegaard

 

존 D. 카푸토 지음 · 임규정 옮김

2008,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8075

 

082

히66ㅇ  12

 

짧은 생애를 격렬하게 살다 간 키르케고르.

그는 실존 철학의 무서운 탄생을 알리는 철학자였으며,

심오하지만 까다로운 종교 사상가이자

동시에 시인, 반어가 그리고 유머가였다.

그의 영향을 받은 현대 사상들은 너무나 다양해서

공통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그리고 여전히 키르케고르는 우리를 끊임없이 매혹하고 있다.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철학사에서 무한히 매력적인 주제,

키르케고르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 내가 기꺼이 그것을 위해 살고 또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이념을 찾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을 탄생시킨 쇠렌 키르케고르. 그의 사상은 철학, 신학, 정신분석 그리고 대중문화 평론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확장되면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키르케고르 자신의 의도는 자주 왜곡되어왔고, 우리는 그의 영향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스트모던 시대 탁월한 연구자인 카푸토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키르케고르 철학의 지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키르케고르와 헤겔과의 관계, 그의 사유가 어떻게 하이데거, 사르트르, 데리다 등으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키르케고르의 삶과 사상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보기 드문 한 권의 해설서. 현대의 예언자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저 자그마한 덴마크인을 생생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존 D. 카푸토 John D. Caputo

포스트모던 사상과 현대 종교에 대한 탁월한 연구자,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교수이며, 하이데거, 데리다, 아퀴나스 및 윤리학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저서로 《종교에 대하여 On Religion》《신의 약점 : 사상 신학 The Weakness of God : A Theology of the Event》을 비롯해, 바티모(Gianni Vattimo)와 공동으로 저술한 《신의 사후 After the Death of God》 등이 있다.

 

임규정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고려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세인트올라프 대학교 키르케고르라이브러리 객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헤겔에서 리오타르까지》(공저) 《공간물질, 시간 정신 그리고 생명 진화》(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불안의 개념》《죽음에 이르는 병》《유혹자의 일기》《키르케고르, 코펜하겐의 고독한 영혼》《키르케고르》《카사노바의 귀향》 등이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눈부신 유산 그러나 복잡한 독해

 

1 나에게 진리인 진리

: 《기록과 일지》

2 심미주의

: 《이것이냐 저것이냐》

3 윤리적 실존

: 자유, 결단, 선택

4 신앙의 기사

: 《공포와 전율》

5 진리는 주체성이다

: 《후서》

6 익명성

: 인격을 갖지 않은 자

7 현대

: 《두 시대》

8 사랑

: 《사랑의 역사》

9 자기

: 《죽음에 이르는 병》

10 염세

: 슬픔과 혐오에 대한 찬양

 

■ 주

■ 키르케고르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역자 후기 : 저 무서운 자그마한 덴마크인

 

1

나에게 진리인 진리

: 《기록과 일지

 

'나에게 진리인 진리'는 독단이나 변덕,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아무것이나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의 결단을 뜻하며, 여기에서 '나에게'는

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의미한다.

'나에게 진리인'의 반대는 생명 없는 진리,

순전히 입에 빌린 말로서, 공허한 말들로 삶의 요구를 회피하는 것이다.

 

2

심미주의

: 《이것이냐 저것이냐

 

심미가의 경우, 모든 악의 뿌리는 권태이지 재물에 대한 욕망이나 게으름이 아니며,

이것들은 우리가 권태에 빠지지 않는 한 오히려 성스러운 것일 수 있다.

심미가는 마치 따분한 강의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뭐든지 '재미있는' 혹은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

심미가가 고안해내는 전략들은 경작의 유비, 즉 작물의 윤작에 기초해 있다.

 

3

윤리적 실존

: 자유, 결단, 선택

 

《이것이냐 저것이냐》 제2권에서, 이행은 실존의

심미적 양상에서 윤리적 양상으로 이루어진다.

심미가는 순간 안에서 또 순간을 위해서, 덧없는, 우연한 쾌락을 위해서 산다.

따라서 심미적 삶에서 반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리학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견해에서는 모든 것은 반복의 가능성에 의해 결정된다.

윤리학에서 우리는 언제나 처음에 서 있고 또 미래는 앞에 있으며,

매일매일은 다시 "나는 한다"라고 말하는 새로운 요구를 제시한다.

여기에 키르케고르 철학에서의 '실존적 자기'가 도입된다.

 

4

신앙의 기사

: 《공포와 전율

 

저 유명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결박 이야기를 더듬는 《공포와 전율》

이 저작은 실존의 최고 단계인 제3단계 즉 '종교적' 단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키르케고르에게 이 이야기의 교훈은 윤리적 규범은 예외를 허용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하느님, 즉 도덕법칙을 만드신 분이 만일 그렇게 선택하기만 한다면

그 어떤 규범이라도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심히 위험한 입장이며,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5

진리는 주체성이다

: 《후서

 

어째서 하느님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더 간단하고 덜 역설적인 방법을 찾지 않을까?

그것은 정확히 사변 철학자들을 쫓아버리기 위해서, 그리스도교를 또 다른 이론으로

바꿔버릴 자들을 좌절시키고 또 빗나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교는 실천해야 할 그 무엇이지 철학적 난제가 아니다.

그것이 나타나는 것은 누군가가 신조의 명제를 긍정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행할 때이다.

 

6

익명성

: 인격을 갖지 않은 자

 

어떤 면에서 그의 익명성은 발생하지 않았을 논쟁을 유발함으로써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더 많은 주의를 집중시킨 별로 좋지 않은 전략이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현실성', 자신의 '사적인 특이성'을 독자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

모든 '포착하기 어려운 변증법적'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책을 읽는 대중의 호기심 많은 일부 무리'는

그것을 다시 끌어들이려고 끈덕지게 시도하였다.

더욱이 그의 저작 모두는 심각할 정도로 자전적이어서

그 결과 그 자신의 인격이 우리가 밝히는 첫 자리이기를 간청할 정도이다.

 

7

현대

: 《두 시대

 

키르케고르, 니체 그리고 하이데거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심지어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사상가로서, 우리에게 민주주의 제도에 의해

제기되는 하강 부분과 위험을 경고하였다.

이 사상가들은 플라톤처럼,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다 잊고

정부를 교육받은 소수에게 맡겨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키르케고르는 《신약성서》의 인류 평등주의적

요지를 통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단독의 개인' 혹은 '실존하는 가난한 영혼'에 대한

그의 관심의 진짜 함의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8

사랑

: 《사랑의 역사》

 

키르케고르는 기본적으로 '차별적 사랑'과 '명령받은 사랑'을 구분한다.

전자는 우리가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관능적 사랑과 우정을 포함한다.

키르케고르에게 차별적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사랑의 형태이다.

왜냐하면 나의 배우자나 자녀나 친구를 사랑함으로써

나는 훨씬 광범위한 나 자신의 범위, 나의 또 다른 확장된 자기와의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명령받은 사랑은 인류 평등주의적이고 또 비-차별적이며,

'이웃'을 향해 있다. 이웃은 절대적으로 이방인과 심지어 적까지 포함한다.

 

9

자기

: 《죽음에 이르는 병

 

이 저작은 '자기'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변증법적이고' 또 실존적인 개념에 대한

그의 가장 정교한 형식화를 담고 있다.

이 저작은 영혼의 건강과 그 건강을 위협하는 그에 대응하는 '질병'에 대한

은유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거니와, 그 질병은 절망이라고 불린다.

바로 그 '질병', 키르케고르가 여기에서 "절망"으로 부르는 것은,

심리학적 우울증이 아니라 정신의 균형 내지 내면의 역학의 심각한 붕괴를 의미한다.

절망은 자신으로부터의 어떤 이탈이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10

염세

: 슬픔과 혐오에 대한 찬양

 

그의 마지막 저작들을 읽는 사람들은 키르케고르가 자신이 경고한 바 있는 절망,

즉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 아닌 유한하고 시간적인 것에 대한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일지 기록은 '염세'를 찬미하고 또 영원한 행복에 대한 전망이

세속적인 즐거움을 없앤다고 주장하는 수난의 복음을 찬양한다.

키르케고르는 세상이 싫어지는 것이 '영원에 합당할 정도로 성숙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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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생애

 

1813년 5월 5일 쇠렌 키르케고르(Soren Aabye Kierkegaard) 태어나다.

1830년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다.

1834년 4월 15일 일지를 쓰기 시작하다.

1835년 길렐라이에로 여름휴가를 떠나다.

1837년 5월 레기네 올센을 만나다.

1838년 8월 9일 아버지 미카엘 키르케고르 사망하다.

1840년 7월 종합 시험에 통과하다.

            9월 8일 레기네 올센에게 구애하다.

            11월 17일 신학교에 등록하다.

1841년 7월 16일 학위논문, <아이러니의 개념>을 변론하다.

            8월 11일 레기네와 파혼하다.

            10월 25일 베를린에 가서 셸링의 강의를 듣다.

1842년 3월 6일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다.

1843년 《이것이냐 저것이냐》《공포와 전율》《반복》 출간.

1844년 《철학적 조각들》《불안의 개념》 출간.

1845년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 Stages on Life's Way》

1846년 1~2월 《코르사르》지의 공격을 받다.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두 시대》 출간.

1847년 《다양한 정신에서의 교화를 위한 강화집 Upbuilding Discourses in Various Spirits》

            《사랑의 역사》 출간.

             11월 3일 레기네 올센이 직업 외교관인 슐레겔(Frederik Schlegel)과 결혼하다.

1848년 《그리스도교적 강화집 Christian Discourses》《위기 그리고 한 연극배우의 삶에서의

             어떤 위기 The Crisis and A Crisis in the Life of an Actress》《저술가로서의 나의 삶의

             관점 The point of View of My Life as an Author》 저술(1859년 유고로 출판됨).

1849년 《들의 백합 공중의 새 The Lily of the Field and the Bird of the Air》《죽음에 이르는

             병》 저술.

1850년 《그리스도교의 훈련 Practice in Christianity》 저술.

1851년 《자기 시험을 위하여 For Self-Examination》 저술.

1851~1852년 《스스로 판단하라 Judge for Yourselves》 저술(1876년에 유고로 출판됨).

1852~1854년 공식적 침묵의 시기로 아무것도 발표되지 않음.

1854년 1월 30일 뮌스테르 주교 세상을 떠나다.

             1월 15일 마르텐센이 뮌스테르 후계자로 지명되다.

             12월 18일 대중 일간지 《조국 Faedrelandet》에 마르텐센에 대한 비판의 글을 싣다.

1855년 덴마크 성직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여, 5월까지 계속하다.

             5월~9월 팸플릿 《순간 Moment》에 공격의 글을 계속 싣다.

             9월 25일 《순간》 마지막 호 발간. 일지 끝나다.

             10월 2일 프레데릭 병원에 입원하다.

             11월 11일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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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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