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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06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4

 

811.6

고67만  6

 

창비전작시---------------------------------------------------------------------

 

나는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씨름꾼이나 엿장수, 매맞는 아이, 엿보는 소악패, 늙은 부부, 장에 가는 농민, 음흉한 양반 등등 거기 살아 있는 백성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승의 엄숙함을 느낀다. 이런 점은 중동이나 인도의 벽화 또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느끼며, 특히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뚜렷한 의도를 지니고 당대의 잡다한 민중을 모든 가치와 관념과 인식의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눈치를 채게 된다. 『만인보』는 마치 들꽃이나 잡초처럼 강산에 번성하고 스러져간 당대인의 모습을 시인 자신의 체험적 스냅사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 시'이다. 작은 수백 수천의 조약돌을 모아 바다를 형성화해내듯이 그의 이러한 작업은 서사시가 흔히 놓치게 되는 서정성과 개개인의 자상한 인생 체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오히려 시인 고은의 전생애와 동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대하 서사시의 성과를 얻게 하고 있다.

- 소설가 황석영

 

신명의 언어로 충만한 시인 고은, 그의 신명의 언어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하나 하나와 살아서 만날 때 낳아지는 것이 『만인보』 연작이다. 그 만남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 지혜로 시인은 "사람의 추악까지 포함하는 승엄성"을 포착해내고 민중적 생명력의 온전한 모습을 길어내어 생동하는 한국어의 급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싣고 있다. 『만인보』의 만남이 거듭할수록 시인의 신명은 더욱더 살아 뜀뛸 것이다. 그가 시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한.

- 문학평론가 성민엽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성계육 / 관여산 조봉래 / 혹부리 / 입분이 / 천서방 / 임방울 / 두희종 영감 / 효부 / 쌍가매 / 박춘보 / 형제 머슴 / 춘  자 / 신  자 / 이삼만 / 양녕대군 / 진달룡이 / 달봉이 / 진달룡이 어머니 / 송만복이 / 기호 할머니 / 김규식 / 당북리 혹부리 / 왕눈이 가시내 / 육복술씨 / 나운리 방앗간집 마누라 / 광개토대왕 / 월명동 미인 / 기선이 / 재근이 / 오줌싸개 / 외사촌 용섭이 / 점  례 / 이종사촌 한선우 / 새말 조인구 아버지 / 이광수 / 개사리 문점술이 / 새말 조길연이 딸 / 김재선 영감 / 새터 울음보 / 용둔리 찐득이 / 독점 오복녀 / 삼형제고개 / 설소년 / 따따부따 / 백제 유민 부례 / 수복이 / 원당리 노망 / 독점고개 강도 / 눈에 홀린 총각 / 미제 황소아들 / 김종술이 / 재봉이네 장닭 / 도  선 / 수  염 / 호락질 / 미제 창순이 / 완  도 / 이차돈 / 형사 조태룡 / 홍종우 / 지곡리 서당 전총각 / 명산동 잡화상 며느리 / 신흥동 껄렁패 / 강집사 / 윤봉재 / 길남이 / 김시습 / 권오술이 여편네 / 선제리 도둑 / 관전이 외할아버지 / 귀녀 아버지 / 어린 완규 / 새터 상술이 어머니 / 미제 술집 심부름꾼 / 옥정골 고남곤이 / 하이하이 아낙네 / 황희 / 갈뫼 애무덤 / 아래뜸 우식이 / 시청 산업계장 김주갑 / 지서장 김충호 / 미제 공순이 / 창순이 아버지 / 산삼 재상 / 큰작은어머니 / 작은작은어머니 / 소래자 / 중식이 아버지 / 양반 나그네 / 정  철 / 김세규 서모 / 칙간 귀신 / 양귀비꽃 / 참판 똥 / 고려의 끝 / 원당 김상래 / 미제 김상래 / 가사메 전한배 / 전익배 / 어느 어머니 / 전상모 / 지곡리 강칠봉 / 전대복이 / 우하룡 / 말  례 / 가네무라 가네마쓰 / 문행렬이 아저씨 / 김도술 / 김덕구 마누라

찾아보기

 

관여산 조봉래

 

늘 우는 소리

웃방 흙바닥 나락 여덟 가마나 쟁여두고

아이고 뭘 먹고 살 것인가 하고

우는 소리

누가 인기척 내며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이고 목구멍에 거미줄 칠 날이

내일 모레여 하고

누가 양식 꾸러 온 것도 아닌데

지레짐작으로

두 끼 굶었다고

물만 먹고 앉았다고

남우세 모르고

우는 소리

임오년 계미년 모진 시절이건만

관여산 위아래 마을 어느 집도

그런 봉래네 집으로

양식 꾸러 가지 않았다

양식은커녕 삽 한 자루 빌러 가지 않았다

온 동네 짬짜미로

조봉래 따로 돌려놓아 버리고

어디 보자

봉래 너 아쉬운 때 있으리라

부엌 아궁이 재 가득해도

당그래 하나 못 빌고 올 날 있으리라

 

당북리 혹부리

 

당북리 혹부리 권오식이

만만치 않은 입심이라

 

왼쪽 볼에 척하니 하나 매달린 혹이라

동네 어른이 심심하던지 한마디

자네는 소 뒷다리 밑에 달린 것을

얻어다 달고 다니나 하자

영감님은 남의 부랄 떼어다

차고 다니십니까

그것도 하나 아니라 두 개씩이나

괜히 한마디 했다가 본전치기 못하고 말았다

 

말대꾸에 보리카락 들어가는 권오식이

그러나 저 혼자야 한없이 싱거운지라

한번 지게 받쳐놓고

지겟짐 그늘에 들어가 쉬기 시작하노라면

햇빛에 그늘 옮겨가는 대로

옮겨 앉아

일어설 줄 모르는 권오식이

 

눈앞에 두벌김 맨 검푸른 모 자라

왜가리 따위 앉을 데 두지 않는데

벌써 이른벼 나락 모가지 여무는데

찰벼 사납게 패는데

 

나운리 방앗간집 마누라

 

미룡리 신풍리 사이

나운리 방앗간집

방앗간은 헌 집 사서 자꾸 달아내고 올리고 하여

이층인지 삼층인지 모르고

두 채인지

몇 채인지 모르게 늘어나기만 한다

 

그 방앗간집 주인 영감은

방앗값 떼어내는 데 귀신이라

한 말 떼면

그게 한 말 가웃이다

그렇게 부자 되니 무엇하나

밤이나 낮이나

방앗간 먼지 속에서

누구 하나 못미더워라

눈에 불 켜 달고

여기저기 두리번댄다

 

손수 아시 찐 쌀 살펴보고

발동기 용수철 기름칠하고

언제 안채 들여다볼 겨를 있는가

 

겨우 늦은 점심에

소금김치 한 가닥 얹어

쌀 보리 섞은 밥 뚝딱 먹고 나면

담배 한 대 물고 나와버린다

 

그런지라

안채 마누라는

노상 얼굴 단장이나 하고

머리 가리마 짜르르 미끄러진다

뒤에서 보면

이게 어느 집 기생인가

 

어여쁜 낭자 지어

분냄새에 대낮에 모기 운다

바깥 방앗간 영감과 15년 차이라

저 혼자 나선 길에

군산 희소관 가서

일본 활동사진 보고 오는 길

 

그래도 미안스러운지

영감 주려고 궐련 두 갑 사온다

영감은 그냥 봉지담배 뜯어

종이에 말아 피우는데

 

월명동 미인

 

군산 월명산 밑 월명동은

언제나 인기척 귀한데

집집마다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하기야 3 · 1절날 깃발도 적적한데

그런 주택가 가로수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데

어쩌다가 미면 소달구지가

멋모르고 그 거리 들이닥쳐

쇠똥 질턱질턱 싸놓으며 지나간 뒤

그 쇠똥 꼬들꼬들해질 무렵

저녁 나절이라

그 누가 보아야지

그 누가 보아야지

월명동 미인 가네무라 히사꼬

양산 받고 바람 쐬러 나온다

소문으로는 몹쓸 병 걸려

죽는 날짜 받아놓았다 하나

세월이 갈수록

그 아름다움 무르녹아

그 히사꼬 한번 보면

그날 하루 내내

다른 것 보아서는 안된다 눈 버린다

그 깎아 박은 듯한 콧마루

그 코 아래

검은 점은 일부러 찍은 점이라거니

태어날 때

삼시랑 할머니가

보름달에 푸접하라고 찍어준 점이라거니

그 히사꼬 지나가는 거리

이제까지 그렇게도 적적하다가

이 집 창 드르륵 열리고

저 집 창 열리고 열려

월명동 미인 구경하는 늙은이 있고

일찍 돌아온 사내 있고

덩달아 휘익 휘파람 부는 아이도 있고

제 동네 미인한테 눈팔고 있다

한 눈이 아니라

두 눈 다 쏘옥 팔아버리고 있다

벌써 시청 쪽으로 가고 없다

월명동 미인

못이 되었으면

그 미인 치마라도 걸어두는

못이 되었으면

 

새말 조인구 아버지

 

봄볕에 나와

해바라기하다 그대로 앉아 죽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다 저녁때 아들이 가 흔들어 깨웠으나

이미 굳을 대로 굳었다

굳은 뼈 우드득우드득 분질러 눕혀놓고

아이고오 아이고오

곡성 냈다

늙은 아버지 세상 떠나도

슬픔 하나 없는 아들 조인구

 

하기야 사람 때리고 패는 데만 이골이 났지

어찌 슬픔 알겠느뇨

어찌 생사의 뜻 알겠느뇨

억지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개사리 문점술이

 

문점술이

웃통 벗으면

그런 장사 없는데

괴적삼 입으면

언제나 꾀죄죄한 꼬라지라

다른 동네사람 멋모르고

멱살 잡고 떵떵거리다가

순하디순한 점술이 한번 화나면

그냥 상대방 번쩍 들어 개골창에 내던져버린다

 

체 언 빨래만도 못한 것이

나대기는

말복 풍뎅이 불에 대들 듯하고 있네

한마디 투덜

 

밥 세 사발 먹고도 서운한지

숭늉 두어 사발 먹는 점술이

일 나와

그렇게 먹어야

배 주릴 때 견디는 점술이

 

동네 조무래기들이

업어 달라고 졸라대면

셋이고 넷이고 한꺼번에 겹겹으로 업고

큰길까지 나가주는 점술이

 

순하디순하여

동네 아낙네도 내외하지 않고

하소 하소 하고

어이없는 반말 쌍말에도

꼬박 예 예 예에 하는 점술이

상고머리 희끗희끗

보리 베고 난 빈 밭에서

석양머리 붉은구름 한동안 보고

히죽 웃는 점술이

 

새말 조길연이 딸

 

허퉁하고 폭폭한들

어디에 대고 그 속 풀 곳 없다

새말 조길연이 딸 아리따운 처녀 양순이

왜 그런지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하고

여기서

저기서

고약한 헛소문만 떠도는데

아무개하고 붙었다더라

아무개하고 헛간 검불 속에서 붙었다더라

군산 묵은장 장돌림녀석하고 눈맞아

당장 여관 가서 치마 말기 풀지도 않고

그냥 나딩굴었다더라

이런 몹쓸 소리에

시집 길 꽉 막혀

어디서 멋 모르고 선보러 왔다가도

더는 발길 끊어지고 만다

 

그러나 정작 당자인 양순이는

늘 애벌레같이 굼실거리는

그 잘 생긴 입술에

흰 이빨 살짝 내보이며 웃을 뿐

세 또래 처녀가 귀뜀해 주어도

어디 남의 말 석 달 가랴

 

눈 지그시 감고 입술 지그시 깨물고만 있을 뿐

그년의 속 한번

천길도 깊어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동네 웃말 전두수 아들한테

느지막이 시집갔다

시집가던 머리로

아이 들어 배가 불렀다

동네 흙빛 한번 새삼 붉었다

 

새터 울음보

 

아빠 한섭이는

좀도둑질하다가 잡혀

형무소 가고

엄마는 집 나가 소식 모르고

할머니 손에 닿아 자라는 아이

새터 울음보

 

울다

울다

울다 지치면

잠자고

잠깨면

목 쉬어 울어대는데

 

어린아이가 목 쉬다니

천벌이야 !

 

그 시절

그 마을 모두가 천벌 맞은 것이야 !

 

용둔리 찐득이

 

박석태

이 찐득이

죽은 지 3년 된다

찐득이 제사날

동네 우물마다

오늘이 찐득이 제사날이여

찐득이 제사날이여

 

오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꾸역꾸역 판에 끼여들어

두부 다 먹고

김치 다 먹고

술도 다 먹고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 다 듣고

 

밀어내어도

밀려났다가 다시 오고

또 밀어내어도

또 밀려났다가 다시 오고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잔치에

찐득찐득 늘어붙어

실속 차릴 것 다 차리는 찐득이

 

그러다가 젊은이한테 맞아

코피 주르륵 흘려도

쑥잎으로 콧구멍 막고

다시 들어서서

잔칫상 한 자리 차지하고

굴비 찐 것 건드리고

부꾸미 한장 걷어 먹고

쇠고기산적 먹고

끄르륵 트림한다

 

그렇게도 홀대받아도

그렇게도 괄시받아도

그런 것 막무가내로

제 실속 차리는 찐득이

 

누군가가 그 성질 간파하여

못 받을 빚 받아오라 해서

빚진 집에 가서

아무리 몰아내고

도망치고

몽둥이로 쳐 몰아내어도

기어이 들어가

아랫목 차지하고

사흘 누워 있다가

밥도 안 먹고 누워 있다가

기어이 돈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 찐득이 박석태 죽어

제사날이었다

오마나

찐득이 귀신 우물 속에 있는가

두레박이 안 올라오네

 

원당리 노망

 

원당리 홍달표 할아버지 노망 들어

아직 깜깜한 꼭두새벽인데

아 큼큼

하고 일어나

이 방 저 방 문 열어젖히며

잠긴 문 문고리 흔들어대며

아아니 아직도 일어날 생각 없느냐

방고래 오래 지면

그 죄가 살인죄 다음이여

아아니

이러고서

어찌 삼시 세때

아가리에 밥 넣고 살겠느냐

이렇게 시작해서

한동안도 입 가만두지 않고

그 말라깽이 어디에

그렇게 잔 사설 가득 들어 있는지

 

하기야 노망들기 전에도

저 혼자도 늘 입 놀리기를 쉬지 않더니

밥 먹을 때나 좀 뜸한데

아니나다를까

어찌 내가 밥 먹는데도

말을 시킨단 말이냐

밥에 돌 섞어주고

반찬에 머리카락 넣어주는 년이

어디 내 며느리냐

나 죽이려고 양잿물 안 넣은 것만도 다행이다

아아니 이런 년하고 사는 놈이

어디 내 자식이냐

 

그것으로 모자라 청승으로 나아가는데

아이고 죽은 마누라가 알면

제사날

제사밥 얻어먹으러 와서

눈물바람으로 돌아가겠구나

우리 영감 불쌍하다고

 

고깃국 나오면

아들 국건더기까지

떠다 먹는 달표 할아버지

어찌 한마디 없을소냐

제 서방한테 주는 고기는 먹기 좋구나

못된 년 같으니라고

 

나 오늘 죽을 테니

너희들 일 나가지 말고 집에 있거라

이 연놈들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그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곡리 서당 전총각

 

옥구들판에는 고씨 두씨 문씨 전씨라

지곡리에도 전씨 몇 가호 있다

지곡리에도 전씨 몇 가호 있다

지곡리 서당 이른 아침

학동들 서당에 올 무렵

먼저 와서

덩다랗게 팔짱 끼고 서 있는데

길게 딴머리하고 서 있는데

그게 누구냐 하면

지곡리 전씨네 아들

이 딱한 총각하고서는

서당 학동들 오는 길 막고

 

너 가지고 온 깜밥 내놔

너 가지고 온 먹 내놔

너 가지고 온 제기 내놔

 

글읽기는 동몽선습 첫줄부터 졸기 시작하는데

 

전총각 어머니 태몽에

거머리 꿈꾸고

전총각 뱄다는데

 

그렇게 다닌 서당이라

다른 아이들

어린아이들

사서삼경 다 떼었는데

전총각은

겨우 소학에서 졸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갈 것이야

아이들 등쳐먹고

공갈하는 재조는 익혔으매

 

명산동 잡화상 며느리

 

군산 새장터 가는 길

벼랑길 지나

언제나 정갈한 곽씨네 잡화가게 있다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게

갖가지 물건이 잘도 차려져 있다

하얀 머리 상고 친 할아버지가

연한 옥색 조끼 입고

날 듯이 나와

물건 다독거리며 내주고

값을 받아도

정중하게 받는다

나이 어리면

잘 가거라

나이 어중뜨면

잘 가시게

인사성 하도 좋아

아나 하루살이야

절 받고 싶거든

문안인사 받고 싶거든

곽씨네 점방 가거라 할 정도인데

어쩌다 그 곽씨

볼 일 있거나

누워야 할 병 들거나 하면

그 시아버지 대신

며느리가 나온다

아서라 동백꽃 같은 그 며느리

검은 머리에 붉은 댕기 섞은 낭자머리

남치마에 흰저고리

자주고름아

어느새 봄이 와

저쪽에서 풋풋이 봄바람 온다

남편은 서울 유학 가서

방학까지는 독수공방

방 그슬린다고

참기름불만 조금 켰다가 꺼버리는 독수공방

깊은 밤

그 방의

그 며느리의 꿈속에 들어가고 싶은

몹쓸 소원이여

 

신흥동 껄렁패

 

군산에는 흥남동 개복동 신흥동

오룡동 명산동에

그 언덕바지 따라

일본사람들한테 밀려난 가난뱅이들이

올라가 이룬 산동네

식민지 달동네

초가집 빼곡이 덮인 언덕동네 있다

 

1920년 이래

조가비 겹겹으로 엎어둔 듯한

그 초가집 골목길 올라가면

몇 걸음에 숨이 차다

 

신흥동 오르막길 잘도 올라가는

아무일이 어머니

쩔뚝발이건만

아들 무일이 하나는

키다리로 길러낸 홀어미

 

그 홀어미 자식 무일이

아비 없는 놈이라

일찌감치 껄렁패 되어

옆구리 칼로 그어 흉터 만들고

새 옷도 생기면 찢어 꿰매어 입고

남의 옷도 새로 입고 나오면

임마 이리 와

너 나를 본떠라

하고 그 옷 쫘악 그어준다

 

그 무일이가 중학교 들어와

제일 뒷자리에 앉아

방인근 소설 「마도의 향불」 읽고

공부만 하는 놈 눈에 거슬리면

그 학생 도시락에

뱀 잡아 토막내어

밥에 박아두었다가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 열다가

기절초풍하게 만든다

껄껄껄 웃는다

 

훈육선생이

너는 아비 없는 놈이라는 소리

듣기 좋으냐 하면

아비 없는 놈이

아비 있는 놈 되면

그럼 우리 어머니가 똥갈보란 말이요

우리 아버지 말고

딴 놈 붙어먹었단 말이요

하고 대드는 무일이

 

아무래도 무서운 곳 없다

경찰서 앞 지나갈 때도

다른 사람들 괜히 무서운데

무일이

이무일이

아비 없는 무일이는 당당하다

 

그러나 시험 때

시험 답안지 보여주면

그 학생한테는

그 무서운 낯짝에서

칼자국 난 낯짝에서

모처럼 달맞이꽃 웃음이 나온다

무일이 얼굴에도 웃음이 나온다

어려서 싸우다 빠진 이빨 해넣어

그 금니빨 빛나는 웃음 나온다

 

누가 군시렁거렸다

쳇 늑대도 웃을 때 있다

늑대인 줄 알았더니 여우밖에 안되는구나

 

그 무일이

인공 때 한탕 하고 나서

수복되고 붙잡혀

아침이슬이었다

 

늘 눈자위 붉은 기운찬 무일이

 

선제리 도둑

 

도둑질 떠나는 날

할아버지 무덤에 간다

할아버지 다녀오겠읍니다

할아버지 손자 잘 보살펴주십시오

 

그래서인가

도둑질 열 번 넘었는데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 다니는 아이놈이

학교에서 도둑질하다가 들켜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들켜

할 수 없이 퇴학맞았다

 

아버지도 스무 번 못 채우고 쇠고랑 찼다

 

도둑 마누라

도둑 어미

형무소 가서 울고 오랴

자식 손모가지

빨랫방망이로 찧어

손가락 병신 만들으랴

 

새터 상술이 어머니

 

상술이 어머니

입 삐죽이 기울어져

남의 이야기 아니면

그 입에서 나오는 것 없다

이 사람 만나

저 사람 이야기

저 사람 만나

이 사람 이야기

이렇게 남의 이야기로만 사는데

무슨 기생 풍류 잡힌다고

낭자 앙똥히 쪽지어

거기 귓발 파내는 귀지개 꽂고

성냥개비도 하나 꽂고

이 사람 이야기

저 사람 이야기

부엌 아궁이 재 퍼내다가

딴 생각에 빠져

재 둘러쓰고 넘어졌다는 이야기까지

생선에 환장하여

생선 가시까지 삼키다가

생밥 몇 숟갈 떠먹고

그 가시 가까스로 넘겼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그런데 그렇게도

남의 이야기 할 수 없는 밤중에는

잠자는 밤중에는

우줌을 푸짐하게 싸므로

큰 요강 두 개나 들여다놓아야 한다

함께 늙어가는 며느리

저녁마다 요강 두 개 들여다놓으며

아이고 우리집 거름 하나 걱정 없다

 

상술이 아버지는 두어 번 싸는데

상술이 어머니는

요강깨나 커야 한다

그래서렷다

상술이네 집 마늘밭

마늘 한번 잘된다

다른 집 것 반뼘인데

그 집 것은 뼘반이나 크다

 

옥정골 고남곤이

 

언제 자고

언제 오줌 싸는지

그저 일에 늘어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옥정골 고남곤이 아저씨

이마에 흉터 하나 번득이며

밭일 끝나면

밭두렁 풀 깎는 일

밭두렁 물러서자마자

산으로 가

푸장나무 대번에 한 짐 해 내려온다

얼굴에 땀 먹어

햇빛에 번득이며

 

그러나 종일 입 하나는

밥 먹는 것 말고는

열어본 일 없다

쉬어터졌나

바람 불어도

어 그놈의 바람 시원하다

한마디 없다

도대체 평생 말 몇마디 하고 죽을 것인가

이사람아 쓰다 달다 해보아

남의 밥 그냥 먹기만 하지 말고

해도

 

그 고남곤이 아저씨

입으로 말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눈으로도

속으로도 말없다

 

하기야 말이란 한번 하기 시작하면

그 말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이 마을 저 마을 무덤들이 다 그런 무덤 아닌가

 

아래뜸 우식이

 

어릴 때 만주로 떠난 아버지 얼굴 모르고

열두살에 어머니마저 세상 작파했으니

그 어린 우식이사 나서서

집안 꾸려가야 했다

아래로 동생 우종이 있고

우만이 있는데

밥 해서

어린 삼형제 밥 먹는다

동네 아낙네들

처음에야 반찬도 나누어 주고

어쩌고 하지만

그게 어디 긴 세월 정성이겠는가

 

추운 날 문구멍 뻥뻥 뚫린 문으로

바람 들어오는 아침

그 추위에 지지 않고 일어나

마당 눈 쓸고

얼음 깬 항아리물 퍼

세수하고

세수한 얼굴에서 김 나고

우종아 일어나

우만아 일어나

그 소리

지나가는 사람이 듣고 빈 소리

아 그놈들 삼형제 잘도 살아가누나

 

한식날 어머니 무덤에 가서

우식이 서럽게 울고

우종이 멀뚱거리며 서 있고

우만이도 마른 풀 뜯으며 앉아 있고

엄마 엄마

실컷 불러보지 못하고 자라나서

먼 데 바라보고

 

이렇게 우식이 실컷 울고 내려오면

새로 힘 난다

아무리 이 세상 벅차도

뚫어

굴 만들 수 있는 힘 난다

우종아

저기까지 누가 먼저 가나 내기하자

요이 똥 !

 

요이 똥은 일본말인가

 

원당 김상래

 

미제 김상래하고

성도 이름도 똑같은

원당리 김상래

 

그러나 원당 김상래는 딴판이라

불알 두쪽 달랑거릴 뿐

가랑이로 찬바람 빠져나갈 뿐

 

어쩌다가 미제 신작로 네거리에서

미제 김상래 만나면

엄지손가락 끝으로

왼 콧구멍 눌러

오른 콧구멍에서 콧물 쏘아낸다

흥 !

 

소달구지 끌다가

소 잃고

달구지 팔고

그냥 깝깝하면 미제 네거리 나오는데

 

그 겉인사성 좋은 미제 김상래도

원당리 김상래한테는

지레 굳어져

말 한마디 헛쓰지 않는다

무엇하러 나왔어 ?

한마디가 인사

 

그러나 벌써 저만치 가버린 원당 김상래

그 뒷모습 당당하다

가진 것 없으나

기 죽어보지 않고

이 세상 괜스러이 자랑스럽다

때는 이른봄 뚝새풀 푸릇푸릇

미제 김상래는 논이 세 개나 있어

벌써부터 농사 걱정

못자리할 걱정

큰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자식 걱정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술 한잔 못 사먹는 쫌뺑이다

 

가사메 전한배

 

만경강 하구 짠바람 갯바람

가사메까지 와

더는 오지 않는다

그 가사메 뒷산

꼭 늙은 누에 한 마리로 누워 있는데

거기 해송 솔바람소리에 가면

잠꾸러기 전한배 꼭 늘어지게 자고 있다

 

말 하나는 늘 다정다감하여

자네 참 오래간만이네그려

자네 춘부장님께서 기간 기체 안녕하신가

어쩌고 양반 행세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자네 신수 훤해지셨네 그려

 

그러나 아무데서나 낮잠 자면

낮모기 뜯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가 네다리 들어가도 모른다

그 코고는 소리 있어

비로소 천하태평 거기 잇다

 

한잠 실컷 자고 나

멍청하게 만경강 앞 염전을 바라다보며

아이고 어디 갈 데도 없구나

하고 다시 누워버린다

 

집에야 멍석에 넌 보리 새가 다 먹어도

서생원이 새끼 데리고 와 먹어도

 

지곡리 강칠봉

 

이것 봐라

이것이 미물하고 한 동아리인 주제

이것이

어렵쇼 천하를 논하는구나

 

지곡리 뒷산 소나무 그늘 낮에도 침침한데

거기 나뭇지게 뉘어놓고

가로되

앞으로 백년 지나면

뽕나무밭이 바다 될 것이여

 

부자 가난해지고

저기 저 가난뱅이 박명순이네 집에

고래등 기와집 설 것이여

 

입담은 척척 늘어붙는데

배운 것이 없어 그게 원수로다

그럴 바에야

김제 금산사 밑으로 가서

고수부 제자한테

그 무엇 좀

그 무슨 후천개벽 좀 배우고 오면 될 텐데

 

나무하느라 갈 수 있는가

나무도

산 주인 눈 피하여

도둑나무하느라

어디 갈 수 있는가

 

눈 하나 형형하니

나무하다가

갑자기 낫으로 땅 찍고

내가 이놈의 나무나 하고

풀이나 깎고

밤에 빈대나 실컷 물리고

 

과연 천하는 논할 만한데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05 HOW TO READ 키르케고르 Soren Kierkegaard

 

존 D. 카푸토 지음 · 임규정 옮김

2008,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8075

 

082

히66ㅇ  12

 

짧은 생애를 격렬하게 살다 간 키르케고르.

그는 실존 철학의 무서운 탄생을 알리는 철학자였으며,

심오하지만 까다로운 종교 사상가이자

동시에 시인, 반어가 그리고 유머가였다.

그의 영향을 받은 현대 사상들은 너무나 다양해서

공통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그리고 여전히 키르케고르는 우리를 끊임없이 매혹하고 있다.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철학사에서 무한히 매력적인 주제,

키르케고르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 내가 기꺼이 그것을 위해 살고 또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이념을 찾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을 탄생시킨 쇠렌 키르케고르. 그의 사상은 철학, 신학, 정신분석 그리고 대중문화 평론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확장되면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키르케고르 자신의 의도는 자주 왜곡되어왔고, 우리는 그의 영향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스트모던 시대 탁월한 연구자인 카푸토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키르케고르 철학의 지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키르케고르와 헤겔과의 관계, 그의 사유가 어떻게 하이데거, 사르트르, 데리다 등으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키르케고르의 삶과 사상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보기 드문 한 권의 해설서. 현대의 예언자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저 자그마한 덴마크인을 생생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존 D. 카푸토 John D. Caputo

포스트모던 사상과 현대 종교에 대한 탁월한 연구자,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교수이며, 하이데거, 데리다, 아퀴나스 및 윤리학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저서로 《종교에 대하여 On Religion》《신의 약점 : 사상 신학 The Weakness of God : A Theology of the Event》을 비롯해, 바티모(Gianni Vattimo)와 공동으로 저술한 《신의 사후 After the Death of God》 등이 있다.

 

임규정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고려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세인트올라프 대학교 키르케고르라이브러리 객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헤겔에서 리오타르까지》(공저) 《공간물질, 시간 정신 그리고 생명 진화》(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불안의 개념》《죽음에 이르는 병》《유혹자의 일기》《키르케고르, 코펜하겐의 고독한 영혼》《키르케고르》《카사노바의 귀향》 등이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눈부신 유산 그러나 복잡한 독해

 

1 나에게 진리인 진리

: 《기록과 일지》

2 심미주의

: 《이것이냐 저것이냐》

3 윤리적 실존

: 자유, 결단, 선택

4 신앙의 기사

: 《공포와 전율》

5 진리는 주체성이다

: 《후서》

6 익명성

: 인격을 갖지 않은 자

7 현대

: 《두 시대》

8 사랑

: 《사랑의 역사》

9 자기

: 《죽음에 이르는 병》

10 염세

: 슬픔과 혐오에 대한 찬양

 

■ 주

■ 키르케고르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역자 후기 : 저 무서운 자그마한 덴마크인

 

1

나에게 진리인 진리

: 《기록과 일지

 

'나에게 진리인 진리'는 독단이나 변덕,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아무것이나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의 결단을 뜻하며, 여기에서 '나에게'는

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의미한다.

'나에게 진리인'의 반대는 생명 없는 진리,

순전히 입에 빌린 말로서, 공허한 말들로 삶의 요구를 회피하는 것이다.

 

2

심미주의

: 《이것이냐 저것이냐

 

심미가의 경우, 모든 악의 뿌리는 권태이지 재물에 대한 욕망이나 게으름이 아니며,

이것들은 우리가 권태에 빠지지 않는 한 오히려 성스러운 것일 수 있다.

심미가는 마치 따분한 강의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뭐든지 '재미있는' 혹은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

심미가가 고안해내는 전략들은 경작의 유비, 즉 작물의 윤작에 기초해 있다.

 

3

윤리적 실존

: 자유, 결단, 선택

 

《이것이냐 저것이냐》 제2권에서, 이행은 실존의

심미적 양상에서 윤리적 양상으로 이루어진다.

심미가는 순간 안에서 또 순간을 위해서, 덧없는, 우연한 쾌락을 위해서 산다.

따라서 심미적 삶에서 반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리학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견해에서는 모든 것은 반복의 가능성에 의해 결정된다.

윤리학에서 우리는 언제나 처음에 서 있고 또 미래는 앞에 있으며,

매일매일은 다시 "나는 한다"라고 말하는 새로운 요구를 제시한다.

여기에 키르케고르 철학에서의 '실존적 자기'가 도입된다.

 

4

신앙의 기사

: 《공포와 전율

 

저 유명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결박 이야기를 더듬는 《공포와 전율》

이 저작은 실존의 최고 단계인 제3단계 즉 '종교적' 단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키르케고르에게 이 이야기의 교훈은 윤리적 규범은 예외를 허용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하느님, 즉 도덕법칙을 만드신 분이 만일 그렇게 선택하기만 한다면

그 어떤 규범이라도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심히 위험한 입장이며,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5

진리는 주체성이다

: 《후서

 

어째서 하느님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더 간단하고 덜 역설적인 방법을 찾지 않을까?

그것은 정확히 사변 철학자들을 쫓아버리기 위해서, 그리스도교를 또 다른 이론으로

바꿔버릴 자들을 좌절시키고 또 빗나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교는 실천해야 할 그 무엇이지 철학적 난제가 아니다.

그것이 나타나는 것은 누군가가 신조의 명제를 긍정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행할 때이다.

 

6

익명성

: 인격을 갖지 않은 자

 

어떤 면에서 그의 익명성은 발생하지 않았을 논쟁을 유발함으로써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더 많은 주의를 집중시킨 별로 좋지 않은 전략이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현실성', 자신의 '사적인 특이성'을 독자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

모든 '포착하기 어려운 변증법적'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책을 읽는 대중의 호기심 많은 일부 무리'는

그것을 다시 끌어들이려고 끈덕지게 시도하였다.

더욱이 그의 저작 모두는 심각할 정도로 자전적이어서

그 결과 그 자신의 인격이 우리가 밝히는 첫 자리이기를 간청할 정도이다.

 

7

현대

: 《두 시대

 

키르케고르, 니체 그리고 하이데거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심지어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사상가로서, 우리에게 민주주의 제도에 의해

제기되는 하강 부분과 위험을 경고하였다.

이 사상가들은 플라톤처럼,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다 잊고

정부를 교육받은 소수에게 맡겨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키르케고르는 《신약성서》의 인류 평등주의적

요지를 통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단독의 개인' 혹은 '실존하는 가난한 영혼'에 대한

그의 관심의 진짜 함의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8

사랑

: 《사랑의 역사》

 

키르케고르는 기본적으로 '차별적 사랑'과 '명령받은 사랑'을 구분한다.

전자는 우리가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관능적 사랑과 우정을 포함한다.

키르케고르에게 차별적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사랑의 형태이다.

왜냐하면 나의 배우자나 자녀나 친구를 사랑함으로써

나는 훨씬 광범위한 나 자신의 범위, 나의 또 다른 확장된 자기와의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명령받은 사랑은 인류 평등주의적이고 또 비-차별적이며,

'이웃'을 향해 있다. 이웃은 절대적으로 이방인과 심지어 적까지 포함한다.

 

9

자기

: 《죽음에 이르는 병

 

이 저작은 '자기'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변증법적이고' 또 실존적인 개념에 대한

그의 가장 정교한 형식화를 담고 있다.

이 저작은 영혼의 건강과 그 건강을 위협하는 그에 대응하는 '질병'에 대한

은유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거니와, 그 질병은 절망이라고 불린다.

바로 그 '질병', 키르케고르가 여기에서 "절망"으로 부르는 것은,

심리학적 우울증이 아니라 정신의 균형 내지 내면의 역학의 심각한 붕괴를 의미한다.

절망은 자신으로부터의 어떤 이탈이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10

염세

: 슬픔과 혐오에 대한 찬양

 

그의 마지막 저작들을 읽는 사람들은 키르케고르가 자신이 경고한 바 있는 절망,

즉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 아닌 유한하고 시간적인 것에 대한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일지 기록은 '염세'를 찬미하고 또 영원한 행복에 대한 전망이

세속적인 즐거움을 없앤다고 주장하는 수난의 복음을 찬양한다.

키르케고르는 세상이 싫어지는 것이 '영원에 합당할 정도로 성숙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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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의 생애

 

1813년 5월 5일 쇠렌 키르케고르(Soren Aabye Kierkegaard) 태어나다.

1830년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다.

1834년 4월 15일 일지를 쓰기 시작하다.

1835년 길렐라이에로 여름휴가를 떠나다.

1837년 5월 레기네 올센을 만나다.

1838년 8월 9일 아버지 미카엘 키르케고르 사망하다.

1840년 7월 종합 시험에 통과하다.

            9월 8일 레기네 올센에게 구애하다.

            11월 17일 신학교에 등록하다.

1841년 7월 16일 학위논문, <아이러니의 개념>을 변론하다.

            8월 11일 레기네와 파혼하다.

            10월 25일 베를린에 가서 셸링의 강의를 듣다.

1842년 3월 6일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다.

1843년 《이것이냐 저것이냐》《공포와 전율》《반복》 출간.

1844년 《철학적 조각들》《불안의 개념》 출간.

1845년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 Stages on Life's Way》

1846년 1~2월 《코르사르》지의 공격을 받다.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두 시대》 출간.

1847년 《다양한 정신에서의 교화를 위한 강화집 Upbuilding Discourses in Various Spirits》

            《사랑의 역사》 출간.

             11월 3일 레기네 올센이 직업 외교관인 슐레겔(Frederik Schlegel)과 결혼하다.

1848년 《그리스도교적 강화집 Christian Discourses》《위기 그리고 한 연극배우의 삶에서의

             어떤 위기 The Crisis and A Crisis in the Life of an Actress》《저술가로서의 나의 삶의

             관점 The point of View of My Life as an Author》 저술(1859년 유고로 출판됨).

1849년 《들의 백합 공중의 새 The Lily of the Field and the Bird of the Air》《죽음에 이르는

             병》 저술.

1850년 《그리스도교의 훈련 Practice in Christianity》 저술.

1851년 《자기 시험을 위하여 For Self-Examination》 저술.

1851~1852년 《스스로 판단하라 Judge for Yourselves》 저술(1876년에 유고로 출판됨).

1852~1854년 공식적 침묵의 시기로 아무것도 발표되지 않음.

1854년 1월 30일 뮌스테르 주교 세상을 떠나다.

             1월 15일 마르텐센이 뮌스테르 후계자로 지명되다.

             12월 18일 대중 일간지 《조국 Faedrelandet》에 마르텐센에 대한 비판의 글을 싣다.

1855년 덴마크 성직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여, 5월까지 계속하다.

             5월~9월 팸플릿 《순간 Moment》에 공격의 글을 계속 싣다.

             9월 25일 《순간》 마지막 호 발간. 일지 끝나다.

             10월 2일 프레데릭 병원에 입원하다.

             11월 11일 세상을 떠나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04 만인보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3

 

811.6

고67만  5

 

창비전작시

 

나는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씨름꾼이나 엿장수, 매맞는 아이, 엿보는 소악패, 늙은 부부, 장에 가는 농민, 음흉한 양반 등등 거기 살아 있는 백성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승의 엄숙함을 느낀다. 이런 점은 중동이나 인도의 벽화 또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느끼며, 특히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뚜렷한 의도를 지니고 당대의 잡다한 민중을 모든 가치와 관념과 인식의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눈치를 채게 된다. 『만인보』는 마치 들꽃이나 잡초처럼 강산에 번성하고 스러져간 당대인의 모습을 시인 자신의 체험적 스냅사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 시'이다. 작은 수백 수천의 조약돌을 모아 바다를 형성화해내듯이 그의 이러한 작업은 서사시가 흔히 놓치게 되는 서정성과 개개인의 자상한 인생 체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오히려 시인 고은의 전생애와 동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대하 서사시의 성과를 얻게 하고 있다.

- 소설가 황석영

 

신명의 언어로 충만한 시인 고은, 그의 신명의 언어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하나 하나와 살아서 만날 때 낳아지는 것이 『만인보』 연작이다. 그 만남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 지혜로 시인은 "사람의 추악까지 포함하는 승엄성"을 포착해내고 민중적 생명력의 온전한 모습을 길어내어 생동하는 한국어의 급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싣고 있다. 『만인보』의 만남이 거듭할수록 시인의 신명은 더욱더 살아 뜀뛸 것이다. 그가 시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한.

- 문학평론가 성민엽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소리 제사 / 구시렁제 / 용남이 / 백운산 고아 / 만물상회 주인 내외 / 반찬 한 가지 / 미륵이 / 홍래란 놈 / 재선이 어머니 / 이몽학 / 미제 분임이 / 목수 동렬이 / 쥐  불 / 이용악 / 안주귀신 / 점백이 누나 / 상술이 장모 / 상술이 막내 / 김춘추와 김유신 / 사기꾼 사상가 / 어린 기섭이 / 쇠딱지 / 어청도 돌 / 사낙배기 쌍동이 어머니 / 개차반 / 잿정지 노파 / 홍대용 / 진자 오빠 / 중뜸 재수네 아기 / 진동이 / 작은당고모 / 수만이 / 백두개 사부인 / 영  조 / 곰보댁 / 문치달이 / 미제 유끼꼬 / 오복상회 며느리 / 방죽가 개똥이 누나 / 종석이 / 김재덕 / 아래뜸 달순이네 저녁 / 권상로 / 수철이 고모 / 김명술이 형제 / 정자나무 / 김절구 / 대보름 / 따옥이 / 상래 아저씨 어머니 / 해망동 / 점백이 / 명산동 유곽시장 용철이 / 계  백 / 군산 요단강 / 미제 김동길 / 웃말 쌍동이 / 쌀봉이 / 당북리 왕고모 / 군산 희소관 / 관여산 앉은뱅이 / 옥정골 각띠영감 / 조병옥 / 눈물단지 / 마정봉 / 두 장님 / 원당리 성구 아저씨 / 개사리 문순길이 마누라 / 문순길이 장모 / 전우 / 선제리 한약방 의원영감 / 세규 동생 / 잿정지 이부자네 딸년 / 독점 순자 / 미제 곰배정 영감 / 미제 진달풍이 / 눈 내리는 날 / 처녀 장사 / 미제 김기만 / 함경도 사람 / 계집종 갑이 / 군산 히빠리마찌 / 백두개 유서방 / 화산리 / 중마름 오의방이 / 오막살이 / 심부름 / 군산 전도부인 / 오성산 냇물 / 황등 순자 / 황등 돌산영감 / 팽  총 / 가사메 사람 / 개사리 문판수 / 화순이 / 북창 정염 / 홍성복이 / 신만순 / 파도소리 / 진규 할아버지 / 큰바람의 노래 / 육촌 금동이 / 나포 고자 / 장군리댁 / 오남이 내외 / 최전무 / 임영자 / 김도섭 영감 / 싸  움

 

미제 분임이

 

이른아침 물지게 지고

땅 보고 가는 분임이

그 눈썹 긴 분임이

 

그 마음속 열 길이나 깊어

그 무엇을 이루는지 알 길 없는 분임이

검정 치맛자락 이슬에 젖어

그 아래 바쁜 발등 젖어

 

물지게 물 하나도 흘리지 않는 분임이

 

미제 유끼꼬

 

해방 뒤에도

국민학교 졸업하고도

옛날 부르던 유끼꼬라 부르는

미제 홍설자

아버지가 똥지게 지고 지나가다가

원당리 부자집 딸년하고 가는 유끼꼬 보고

너 왜 인제 오니

하니

예 학교에서 일 있어서요 하고 얼른 지나쳤다

원당리 동무가

저 사람 누구냐 하니

우리 동네 일꾼이라고 했다

 

그런 유끼꼬 커서 큰아기 되더니

어찌나 그리 잘도 삐치는지

너 밥 먹었느냐고 하면

그럼 밥 안 먹는 사람도 있을까 하고

볼우물 엥하고 파이며

고운 입술 삐죽거린다

 

너 이쁘구나 하면

피이 마음에도 없는 말

침도 안 바른 입으로 하고

고운 입술 삐죽거린다

 

늙은 아버지 담배 다 먹고 일어나며

동네 사람들한테

이왕이면 웃는 낯으로 말해라 하니

이제 나 아이 아니어요 내가 알아서 할 일이어요

어찌 이다지 맵고 차가울까

 

방도는 하나 있다

관우 장비 같은 사내한테 시집 보내어

초죽음 몇번이면

유끼꼬

새 인물 나지

허리에 아지랭이 감기고

치맛자락에 노을 일기 시작하지

 

그 고운 입술

그 눈썹

그 부푼 가슴 녹은 땅 뚫고

솟는 새 숨인가

아리아리한 가슴 약 든 가슴

똥지게질로 키운 큰아기 가슴

 

5월 단오날 그네 솟아 어지러워라

그 아래에서도 어지러워라

 

미제 김동길

 

동네 돈만 걷었다 하면

덜컥 삼키고

동네 돈만 오면

용케 알아

덜컥 삼키는 미제 김동길이

어찌나 얼굴 번들번들거리는지

늘 팔자 펴진 신수였다

세수할 때도

반 시간이나 걸릴 때도 있는 김동길이

닦는 데 다시 닦고 닦고

수건질도 여러 번이다

제 어머니 환갑에는

군산 기생 열 명이나 불러다가

걸판지게 잔치 벌였는데

제 아우가 돈 50전 꾸어달라고 하면

이놈아 돈이란 꾸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이다 어쩌구 돌려보낸다

과연 미제 놀부 김동길이

3년 전인가 횡령사취라 해서

군산경찰서 지하실에 쇠고랑 차고 들어갔다가

곧 풀려나

콧대 더 높아졌다

어디 가나

무엇 먹을 것 없나 냄새맡았다

동네에 무슨 일 생겨나면

아니나다를까

어디 있다가

용케 나타난다

요긴한 때는 꼭 나타난다

산에서 똥 싸면

왱 하고 날아오는 똥파리인지라

 

미제 곰배정 영감

 

성이 곰배정가라

곰배정 영감으로 통하는

미제 웃말 정동필이 영감

수염끝이 배꼽까지 닿을 영감

그 헌걸찬 허위대에

목소리는 새된 소리다

꼭 부랄 발린 사내 목소리

 

금방 무너질 듯한 사랑채지만

기와집이라

조심조심 쓰는 기와집이라

아직도 덕 있어 먹을 것 흔하다

부자가 망해도 3년 먹을 것 있다더니

아직도 먹고 마실 것 흔하다

 

술 한잔 입에 안 대고

담배연기 모르는 곰배정 영감인데

그러나 종중일에는 앞장 서고

종중 일가

먼 일가 두루 보살핀다

한 달에 한 번씩 국거리 한 치룽씩 돌리기도 한다

 

일가뿐 아니라

남남한테도 돼지고기 내장 사다가 돌리기도 한다

떡했다 하면

몇 말씩 해서 돌리기도 한다

옛날 덕행 본받는지

웃말 가난뱅이 굶는 날

밤중에 그  집 단지

보리쌀 채워놓고 오기도 한다

 

핫옷 한 벌 없는 집에는

헌 솜 갖다 놓는다

그 솜 틀어다가

옷에 넣든지 이불에 넣든지 하라고 갖다 놓는다

 

그러던 곰배정 영감

항상 불그데데한 영감

물 데워라 해서 목간하고

손톱 발톱 깨끗이 깎고 나서

다음날 새벽 그대로 세상 떠났다

 

곰배정 영감 마누라도 손이 커서

광목 40마씩 나누어 주어

동네 사람들 복 입게 하고

초상집 일 돕는 아낙들도

광목 2마씩 행주치마 해 입혔다

 

그 곰배정 영감 상여 한번 느려터져

미제 선제리 사이 5리를 하루 내내 걸렸다

유소보장 펄럭이며

언제나 그 자리 있는 듯했다

지나가던 사람도 멈추고 어쩌다 자전거도 멈췄다

선제어 너머

대기마을 수성산 기슭에

큼지막이 무덤 쓰고 난 뒤

비가 알맞게 왔다

촉촉이 오다가 그쳤다

 

그 영감 떠 난 뒤 10년 동안

농사꾼들 비 오는 날 놀 때는

제기랄것 곰배정 영감이나 살아 있으면

고깃근이나 실컷 얻어먹을 텐데

제기랄 그놈의 곰배집 영감이나 살아 있으면

이런 날 오리지떡이나 얻어먹을 텐데

 

미제 진달풍이

 

괴팍한 대가리에서

기계충 떠나지 않는 달풍이

학교 가서도

선생한테 미움만 받는 달풍이

아이들한테서도

찐 감자 얻어먹지 못하는 달풍이

선생한테 혼나고

변소에 가 엉덩이 까 내리고 앉아

똥도 안 싸면서

실컷 울고 나오는 달풍이

 

1년 뒤 한 학년 올라가자

기계충 없어졌다

방귀 뀌는 버릇도 없어졌다

누더기옷도

새옷으로 바뀌었다

 

광산 갔던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

 

미제 김기만

 

미제 부자 김재구 영감의 큰아들 기만이

제 앞으로 떼어준 논 2만 평 있고

밭 5천 평이나 있는데

그 논밭 날려버리고

다시 본가에 의지가지 살아간다

 

얌전하디얌전한 그의 어머니 아금발라

아들 기르는 데도

온갖 정성 다했건만

부자집 자식 사람 되기 어렵다

 

진작부터 양복 마춰 입고 나서서

군산 선술집 떠돌며

실컷 놀다가 온다

지친 몸으로 풀린 눈으로 온다

사흘 만에 엿새 만에

돈 떨어져 온다

 

그런 기만이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 있다

바로 재구 영감의 서자 기선이다

그는 작은댁 소생인데

동네 사람 칭송이 자자하다

 

아무리 노라리판에 미친 기만이건만

제 배다른 동생 기선이만 보면

술이 화닥닥 깨어버린다

고개 돌려 속으로만 퍼부어댄다

이 첩의 넌 자식놈아 네가 나 비웃고 있지

 

그러나 기선이 고요한 얼굴

바람 한 점 안 받는 물 같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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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03 HOW TO READ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마크 A. 래톨 지음 · 권순홍 옮김

2008,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8076


082

하66ㅇ  11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하이데거는 분명 지난 세기에 속해 있긴 하지만, 지금도 풀지 못한 엄청난 과제로 남아 있는 철학자다.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모호한 질문을 던지고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같은 더욱더 모호한 답변을 제시하는 하이데거의 철학은 '은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저자 마크 래톨의 서술을 따라가면, 인간 실존에 대한 무겁고 긴 하이데거의 전후기 사유를 명쾌하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나치즘과 관련된 하이데거의 오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하이데거의 견해에 준하여 새롭게 검토하고 있다. 그의 기념비적 저작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 인간 실존에 대한 하이데거의 혁명적인 분석을 살펴보는 여정. 이 책은 하이데거라는 쉽지 않은 세계를 탐색하려고 하는 용기 있는 독자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마크 A. 래톨 Mark A. Wrathall

미국 브리검영 대학교 철학과 조교수다. 하이데거에 대한 주요 연구자로, 《다시 검토해본 하이데거 Heidegger Reexamined》《하이데거 소화하기 Appropriating Heidegger》《하이데거, 처리 및 인지과학 Heidegger, Coping and Cognitive Science》《하이데거, 본래성 및 현대성 Heidegger, Authenticity and Modernity》《하이데거 입문 A Companion to Heidegger》등 수많은 저서를 편집했다.


권순홍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하이데거에 관한 연구로 석 ·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유식불교의 거울로 본 하이데거》《존재와 탈근거 : 하이데거의 빛의 형이상학》《하이데거와 근대성》(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사유란 무엇인가》《서양철학사》(공저)《헤게모니와 혁명 : 그람시의 정치이론과 문화이론》 등이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그 자체로 인간 실존의 핵심적인 문제였던 철학자


1 현존재와 세계-내-존재

: 실존에 대한 형식적인 개념

2 세계

: 세상은 물리적인 존재들의 총합일까

3 세계-내-존재의 구조

: 제1절 유정성과 기본

4 세계-내-존재의 구보

: 제2절 이해와 해석

5 일상성과 '세인'

: 나의 생활은 타인의 것이다

6 죽음과 본래성

: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특징

7 진리와 예술

: <예술 작품의 근원>

8 언어

: 《언어에 이르는 도상에서》

9 기술

: <기술에 관한 물음>

10 사물들과 함께 거주하는 우리 죽을 자들

: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 주

■ 하이데거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참고 문헌

■ 역자 후기 : 짧지만 명쾌한 하이데거 입문서


1

현존재와 세계-내-존재

: 실존에 대한 형식적인 개념


하이데거의 가장 혁신적이고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인간 실존이, 우리가 언제나 어떤 세계 안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철학의 맥락에서 볼 때, '마음'은 세계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데카르트에서 비롯한 전통에 의하면, 세계 전체가 거대한 환영일지라도 마음은 줄곧 자신의 생각을 생각할 수 잇고 자신의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하이데거는 세계 안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존재자만이 비로소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존재와 시간》의 상당 부분을 세계-내-존재와 관련되어 있는 사항들에 대한 상세한 현상학적인 기술에 할애한다.


2

세계

: 세상은 물리적인 존재들의 총합일까


우리가 물리적인 실재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을, 가령 우리의 활동을 체계화하고 우리 주변의 사물 및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를 조직화하는 특정한 방식과 같은 것을 나타내려고 '세계'라는 말을 쓸 때, 거기에는 자연과학이 밝힐 수 없는 합당한 의미가 있을 수는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된 세계는 순순히 물리과학의 방법론을 활용해서 연구될 수 있도록 거기에 자신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세계가 물리적인 존재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세계란 무엇인가? 세계는 우리가 만나는 사물들과 우리가 행하는 활동들을 어떻게 조성하는가? 그리고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인가?


3

세계-내-존재의 구조

: 제1절 유정성과 기분


기분은 그가 유정성이라고 명명한 우리의 일반적인 존재 구조를, 즉 우리가 세계에 임해서 어떤 기분에 젖어드는 방식을 나타내는 예증이다. 그러나 'state-of-mind(마음 상태)'라는 말은 유정성(Befindichkeit)이라는 하이데거의 용어를 옮긴 말치고는 아주 잘못된 역어인데, 그래서 여기서는 그 역어 대신에 더욱더 정확한 역어인 'disposedness(유정성 또는 기분에 젖은 채 있음)'라는 말을 쓰겠다.


4

세계-내-존재의 구조

: 제2절 이해와 해석


날이 갈수록 철학자들은 우리의 감각적인 입력이 어떻게 세계에 대한 이해로 처리되는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과학에게 양도하고 있다. 두뇌가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는지의 문제를 놓고 철학자들은 과학에 굴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해하는 것은 두뇌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능력 전체다. 게다가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두뇌의 상태가 아니라, 세계 내부적인 사물이다. 하이데거는 세계 내부적인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온갖 경험이 이해와 일종의 해석을 대동한다는 것을 시인한다. 그러나 이해와 해석은 두뇌의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이해와 해석은 세계 안에서 행동하는 방식들일 뿐이다.


5

일상성과 '세인'

: 나의 생활은 타인의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공적인 주변 세계에는 의복과 유행에 대한 관행들, 대화와 표현에 대한 관행들 등등이 자리하고 있다. 신문을 집어 들고 텔레비젼을 켜고 앞뜰에서 이웃과 농담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오늘 하루의 온갖 사건들을 생각하고 그 사건들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들에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하이데거는 그 결과를 "세인의 독재권"이라고 칭한다.


6

죽음과 본래성

: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특징

죽음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닥친 가능성이다. 사실 죽음은 그저 그렇고 그런 가능성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기능성이다". 이것은 죽음이야말로 우리를 우리답게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임을 뜻한다. 우리가 신들과 구별되는 것은 우리의 가사성(可死性)에서다. 우리가 동물을 비롯하여 여타의 생명들과 구별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자로 경험한다는 사실에서다.


7

진리와 예술

: <예술 작품의 근원>


예술이 진리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예술 작품이 어떤 대상을 사실주의적으로 똑같이 재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에게 예술의 '진리'는 재현의 정확성이나 정밀성에 달린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 사물들이 실로 무엇으로 존재하는지를 현시하는 데에 있다. 예술 작품에서 " 진리가 생기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여기에서 무엇인가가 정확하게 묘사되고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 전체가 비은폐성 안으로 옮겨와서 거기에서 보존된다는 것을 뜻한다."

 

8

언어

: 《언어에 이르는 도상에서

 

하이데거도 언어에 대한 성찰이 사유의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언어에 대한 탐구에서 그는 분석철학자들이 도출한 것과는 아주 다른 교훈을 도출했다. 분석철학자는 언어의 논리적인 구조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심적인 상태들과 태도들의 구조에 관해서 알고자 한다. 하이데거는 언어의 논리적인 구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갖가지 언어들이 갖가지 세계-내-존재의 방식들을 확립하는 데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9

기술

: <기술에 관한 물음>

 

하이데거가 볼 때, 기술은 약속을 제시하기보다는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기술에 관해서 거듭 강연을 했고, 자주 기술에 관련된 글을 출간했다. '기술적인 탈은폐의 방식'에 하이데거가 몰두한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단순한 현품으로 경험하게 되면 가치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그가 굳게 믿은 탓이었다. 사상가로서 그가 품은 사명은 이 시대의 위험을 깨닫도록 우리를 일깨우는 것이었으며, 기술 시대의 올가미를 피해 갈 수 있는 가능한 길들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10

사물들과 함께 거주하는

우리 죽을 자들

: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하이데거가 역설하듯이, 구원하고 영접하고 기다리고 인도하면서 사방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은, 그것이 "사물들 곁에서의 체류"가 되지 않고서는 견지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들이 우리의 일들과 의향들을 떠받치고 조건 짓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너무나 당연해서 우리는 자주 이 점을 간과하곤 한다. 예를 들어서 복사열 난방기, 전기 조명 시설, 스펙트럼을 이용해서 빛을 선택하는 창문 시설 등을 갖춘 초현대식 아파트에서 사는 것과 16세기에 지어진 농가에서 사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

하이데거의 생애

 

1889년 9월 26일 독일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남.

1903~1909년 1903년에 콘스탄츠(Konstanz)의 김나지움(Gymnasium)에 입학, 1906년 프라이부르크의 김나지움으로 전학.

1909년 오스트리아 펠트키르히(Feldkirch) 근방의 예수회 수련원에 지원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2주 만에 퇴소.

1909~191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처음에 신학, 수학을 공부하다가 나중에 철학을 공부.

1913년 <심리주의에서의 판단론 Die Lehre vom Urteil im Psychologismus, Einkritisch-positiver Beitrag zur Logik> 이라는 학위논문을 제출해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음.

1915년 <둔스 스코투스의 범주론과 의미론 Die Kategorien-und Bedeutungslehre des Duns Scotus>이라는 교수 자격 논문을 제출한 이후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사강사(Privatdozent)로 강의를 시작.

1915~1918년 군 복무.

1917년 엘프리데 페트리(Elfride Petri)와 결혼.

1919년 크렙스(Engelbert Krebs) 신부에게 '철학에 대한 내적인 소명' 때문에 '가톨릭의 교리 체계'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편지를 보냄.

1919~192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현상학(phenomenology)을 강의함. 후설(Edmund Husserl)의 조교로 일함.

1923년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교 철학과의 조교수로 부임.

1924년 아렌트와 연정을 나눔.

1927년 《존재와 시간》 출간

1928년 후설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부임.

1933년 국가사회주의당에 가입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총장에 임명됨.

1934년 총장직 사임.

1935~1936년 <예술 작품의 근원>에 관해서 프라이부르크, 취리히(Zurich), 프랑크푸르트(Frankfurt) 등지에서 강연.

1936~1940년 니체에 관해서 강의.

1944년 국민돌격대(Volkssturm)에 소집됨.

1945년 나치정화위원회(Denazification Committee)에서 심문을 받음.

1946~1949년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됨.

1949년 브레멘(Bremen)에서 <사물 Das Ding> <강립(强立)하기 Das Ge-Stell> <위험 Die Gefahr> <전향 Die Kehre> 등을 강연.

1951~1952년 복직이 허가되면서 대학 강단에서 다시 강의를 할 수 있게 됨.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사유란 무엇인가? Was heiBt Denken?>에 대해서 강의.

1951년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Bauen, Wohnen, Denken>에 관해서 강연.

1955년 뮌헨(Munchen)에서 <기술에 관한 물음 Die Frage nach der Technik>에 관해서 강연.

1959년 《언어에 이르는 도상에서》 출간.

1976년 5월 26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서거.

1976년 5월 28일 고향 메스키르히에 안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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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02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2

 

811.6

고67만  4

 

창작전작시-------------------------------------------------------------

 

나는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씨름꾼이나 엿장수, 매맞는 아이, 엿보는 소악패, 늙은 부부, 장에 가는 농민, 음흉한 양반 등등 거기 살아 있는 백성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승의 엄숙함을 느낀다. 이런 점은 중동이나 인도의 벽화 또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느끼며, 특히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뚜렷한 의도를 지니고 당대의 잡다한 민중을 모든 가치와 관념과 인식의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눈치를 채게 된다. 『만인보』는 마치 들꽃이나 잡초처럼 강산에 번성하고 스러져간 당대인의 모습을 시인 자신의 체험적 스냅사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 시'이다. 작은 수백 수천의 조약돌을 모아 바다를 형성화해내듯이 그의 이러한 작업은 서사시가 흔히 놓치게 되는 서정성과 개개인의 자상한 인생 체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오히려 시인 고은의 전생애와 동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대하 서사시의 성과를 얻게 하고 있다.

- 소설가 황석영

 

신명의 언어로 충만한 시인 고은, 그의 신명의 언어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하나 하나와 살아서 만날 때 낳아지는 것이 『만인보』 연작이다. 그 만남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 지혜로 시인은 "사람의 추악까지 포함하는 승엄성"을 포착해내고 민중적 생명력의 온전한 모습을 길어내어 생동하는 한국어의 급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싣고 있다. 『만인보』의 만남이 거듭할수록 시인의 신명은 더욱더 살아 뜀뛸 것이다. 그가 시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한.

- 문학평론가 성민엽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작자의 말

정약전 / 찬밥네 / 미제 조막손이 / 판도 마누라 / 정순이 에미 / 효자 태현이 / 낙곤이 / 재동이 아저씨 막내아들 / 원당리 삼덕이 할머니 / 수레기 신딸 / 일  연 / 가사메 염전 / 새터 째보 모녀 / 염전꾼 박재걸 / 송만옥 영감 / 박해동이 장모 / 박해동이 / 주걱네 아들 / 아래뜸 김상선 / 조정규 / 아들 생각 / 옥정골 용술이 / 염전 우식이 / 중뜸 쪼까니 / 외할머니 동무 / 퉁  소 / 조장로 마누라 / 재천이 아저씨네 김치 / 미제 진필식 영감 / 남원옥 숙수 / 이인로 / 개야도 심청이 / 거지 내외 / 잿정지 과수댁 / 매  자 / 네 할아버지 / 기창이 둘째고모 / 외할아버지 / 명주 두루마기 / 두번째 마누라 / 옥정골댁 / 수동이네 제비 / 줄포댁 / 관여산 묘지기 / 노인단 / 소경 분례 / 월명암 화상 / 김창규 / 며느리 노릇 / 김유태 / 양증조할아버지 / 신자 누나 / 병술이 아버지 / 홍  련 / 영래 마누라 / 독점 사돈 / 칠룡이 / 정두 어머니 / 우  렁 / 술꾼 도술이 / 탄금대 / 창수네 집 / 혹부리 황아장수 / 동고티 오막살이 / 쌍무지개 / 그려 그려 / 쇠정지 재순이 / 윤  태 / 백제 소녀 / 윤사월 / 칠봉이 / 갈치장수 아주머니 / 상렬이 각시 / 지곡리 어르신 / 남복이 큰아기 / 고사떡 / 서자 강변 7우 / 길남이 / 미제 선술집 / 관옥이 / 관옥이 아버지 / 현조 현각 / 용섭이 어머니 / 두 동네 아이들 / 이  모 / 임  호 / 옥순이 / 남생이 의붓아버지 / 상철이 / 희  자 / 당북리 사람 / 청해진 / 참만이 / 묵은 소나무 / 백정 김태식 / 근봉이네 빚장이 / 성모 염복 / 진  수 / 이모부 한용산 / 수건이 여편네 / 막금이 / 묵은장 생선집 / 개바위 할아버지 / 이선구 / 상놈 달봉이 / 간장 거지 / 집 짓는 날 / 평안도 나그네 / 채순이

 

정약전

 

험준한 때 이 땅의 강기슭에 태어나

형제가 혹은 장살당하고

혹은 유배당하였다

신유사옥으로

정약전 그도 아우 약용과 더불어 유배당하여

최원악지 흑산도로 귀양갔다

그는 흑산이라는 이름이 무서워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갈아

자산이라 하고 지냈다

그런 유배 16년 동안 파도에 에워싸여

날마다 미친 바다에는

배 한 척 뜨지 않는데

시를 쓰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노래하겠는가

그것도 헛것이매 그만두고

섬 안에 창대라는 그장이 하나 있어

그와 함께 지내며

흑산도 아니 자산도 바다 물고기에 정들었다

바다물새와 바다짐승 바다풀 바다벌레를 익혀나갔다

이로써 흑산어보 아니 자산어보가 이루어졌다

거기에 한마디 덧붙이기를

후세 사람이 이를 고치고 바로잡으면

이 책은 치병에도 이용에도 이치에도

물음에 답하는 태도 쓰이리라

또한 시인들도 이로써 이제까지 미치지 못한 바

그것을 노래할 수 있으리라

 

노랑가오리

모양은 청가오리와 비슷하나

등이 노랗고 간에 기름이 많다

멸치

 

'사기' 화식전에는 추천석이라 하고

'정의'에는 잡소어

'설문'에는 추백어

'운편'에는 소어라 하였다

지금의 멸치가 이것이다

이에 앞서

선물용으로는 천한 고기이다

 

바다벌레 바다좀

크기는 밥알만하고

새우처럼 곧장 뛰지만 수염은 없다

항상 물 밑바닥에 있다가

죽은 물고기를 보면

그 뱃속에 들어가 취식한다

 

이렇듯이 노랑가오리 배도 갈라보고

아쉬운 대로 고서도 뒤져 밝혀내고

바다 밑 물속까지 살펴보며

그 16년 동안 질도 귀양살이 가운데

눈감을 때가 와서

그저 눈 스르르 감으니

그의 죽음 슬퍼하는 자

오로지 파도소리

파도소리

파도소리

 

일  연

 

오랜 무신란 무도한 권세로 나라가 피폐하고

오랜 몽고 침노로 황폐하여

백성이 흘러다니고

무덤이 떠도는 세월이라

옛것 한 가지 남을 길 없는데

이때

여기저기 눈여겨보며

찾아다니며

옛 시절의 자취 모아

이윽고 아홉 권 유사를 지어냈으니

그대가 최씨 무신 권세 지나

원나라 복속 그 시절일망정

충렬왕의 부름받아 국사 된 것보다

얼마나 영화인가

국사임에도

국사 노릇으로 큰 도리 떨치기보다

늙은 어머니 봉양을 빌미로

개경 떠나 외시골로 숨어들어

늙은 어머니 시든 눈빛에 든 옛 시절도

옛 시절의 운행도 깨쳤으니

그 얼마나 영화인가

천년 뒤 그대가 모아 남긴 노래 태어나

 

간 봄 그리우매

모든 것 읊어 시름하여라

아름다우신 모습

주름 지니시려 하여라

눈 돌이킬 사이

만나고 지어라

님이시여 님 그리운 마음 가는 길

어느 다북쑥 마을에 잘 밤 있으오리

 

조정규

 

생육신 조려의 16대손 조정규와

그의 아내 박필양 사이

여섯 아들

용하

용은

용주

용한

용진

용원

 

이 아들 여섯형제 고스란히

한말 이후 왜의 침노에 맞서

혹은 태평양에서

혹은 중국땅에서

혹은 국내에서

나라 독립을 위해 활약하며

온갖 망명 투옥 투쟁을 되풀이하는데

이 여섯 아들에게 질세라

아버지 스스로도 우국지사라

 

이렇게 아들 여섯형제를 나라에 바친 아버지 있어

이 땅이 가망의 땅이거늘

그 아들 가운데

둘째아들이 곧 소앙 조용은이라

절대 평등의 삼균주의 부르짖은 조소앙이라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인류의

무지와 무력과 무산이 혁명된

화평하고 안전하고 자유스러운 삼균주의 사회를 실현하라

바로 그 조소앙이라

 

이인로

 

세상 볼장 다 보아버린 듯

영 어질어질할 때는

머리 깎고 중으로 숨었다가

다시 나오기도 하고

여러 해좌파 묵객과 사귀기도 하였으나

이인로

성깔 하나 급하여

환로에 나아갔다가 그만두어

어느 자리 궁둥이 풀 나본 적이 없구나

그러고 나서

선경에 들기 위하여

왠놈의 지리산 청학동을 헤매다 그만두기도 하여

느는 것이야 술이었구나

탄식이었구나

그러나 글과 글씨 수승하니 어쩌랴

정중부가 선비 다 죽이고 권세 잡고

정중부를 죽인 경대승이

권세 잡고

경대승 뒤 이의문이 잡고

몇 곱절 포악하다가

이의문을 죽인 최충헌 형제가

권세 잡아서 학정을 자행하다가

최충헌이 아우 충수를 죽이고

소위 최씨 세습 권세의 세상이 되어

학정이 쌓이고 쌓이는데

이런 때의 묵객

세상을 등지는 바 있을 법하여

술이나 먹고

잠이나 잘 법하여

분연히 궐기하여 세상에 나갈 뜻 죽일 법하여

 

에라 파한집 전편

마음에 드는 시만 논함이여

그 뒤로 파한집을 보완한다 하여

최자 보한집이 이어질 법하여

 

김창규

 

아래뜸 김동규는 자랑할 것 없으니

마마자국깨나 자랑하는 낯짝인데

영 남부끄러움 한 조각 그린 바 없는 낯짝인데

남의 물건 그냥 갖다가 쓰기가 일쑤인데

그 형에게 질세라

동생 창규는 한술 더 뜨는 인간인데

그 창규는

또 일본놈만 보면 사족 못 써

비 온 뒤 발 빠지는 진흙길에서도

넙죽 큰절을 해댄다

신풍리 방앗간 갔다 돌아오는 길

일본놈 자전거 타고 가는데

거기다 대고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 드렸다

그런데 그 큰절에 운 들어

그 창규는

대번에 군산부청 소사로 취직되어

부청 재무국 사무실 청소하고

출근부 챙기고

때로는 결재 맡으러

결재 서류 들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버지 제사날이나

욕장이 어머니 생일날

집에 오면

동네 어른들 보아도

턱만 보이며 거드름깨나 피워댄다

담배도

말아 피우는 담배 아니다

 

김유태

 

김병천 이사장 큰아들 유태 도련님

눈썹과 눈썹 사이 길목에

큰 점 하나 박혀

눈 꿈적거릴 때마다

그 점도 함께 끔적거린다

말소리는 쌀쌀맞은 편

우박 쏟아지는 날

아 거기 있지 말고 우리집으로 들어와

하고 말해도 말소리는 쌀쌀맞은 편

그러나 누구하고 손톱만큼 다툰 적 없다

공깃돌 열 벌이나 만들어

이놈으로 공기 놀고

저놈으로 공기 놀고 하다가

동생 봉태한테도 주고

동네 아이한테도 준다

눈자위 한번 허여번뜩한데

그 눈으로 쳐다보면

탱자나무 가시 사이 탱자 걸려 있다

그 겨울 지나

아무도 못 보는 매화꽃 있다

무엇이든지

맨 먼저 본다

남쪽 하늘에 새인지 점인지 하나

 

임  호

 

원당리 임호 양반

호걸 양반

과연 우행호시라

소 같은 위엄으로 느릿느릿 걸어가고

호랑이같이 눈빛 형형하여

그 양반 나서면

오리 십리가 빛나는데

게다가 한번 입 떼는 날이면

가는 테마다 청산이요

청산 따라 백운인데

경성 가서 전문학교 다니다가

원당리 돌아오면

그 사각모 쓰고 돌아오면

동네 어른들

원당리에서 인물 났다고 자랑인데

그 호걸 양반

전문학교 졸업 이후

경성에서 큰일 한다고 소문도 떠들썩했지만

그냥 내려와 구들 차지하고 뒹굴 뿐

밥만 축내는 식충일 뿐

8 · 15 이후에도

그 하고많은 군소 단체에도 나가지 않고

밥만 축내고

물만 축내는 수충일 뿐

노는 괴로움만 실컷 맛보다가

늙어가는 부모 앞에서

어느 날 먼저 세상 떠났다

그 호걸 양반이 남긴 책 스무 권

그 책들도 함께 묻었다

 

이선구

 

서수면 선구 아가씨

그 아가씨 걸어가면

온통 세상이 소리나는데

2월 추운 날도

그 황량한 밭두렁도 빛나는데

그만 일찌감치 사랑에 눈떠버려

바람둥이한테 첫사랑 바치고는

달밤에 몸도 바치고는

여자 중학교 4학년 퇴학해버리고

교복 세일러복 벗고

수수한 깨끼저고리에 몽당치마 입어도

어찌 그리 거룩하고 아리따운지 착한지 슬픈지

나이 18세에 마음 하나 늙어서

성난 오라버니가 강제로 보낸 시집 가서

한 달도 못 살고

청미래덩굴 깔린 친정 뒷산에 와

어릴 때 잘 놀러갔던 소나무

그 소나무에 목 매달고 늘어져버렸다

바람에 좀 흔들리며 매달렸다

 

어디에 한산이씨선구지묘 있겠느냐 그냥 흙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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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01 소쇄원

 

글 / 정재훈●사진 / 김대벽

2000, 대원사

 

 

시흥시립도서관

SA002604

 

082

빛12ㄷ  232

 

빛깔있는 책들 232

 

정재훈-------------------------------------------------------------------------

단국대학교 상과와 한양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문화재관리국장, 문화체육부 생활문화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문화재위원, 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장으로 있으며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전통원『한국의 옛조경』, 『보길도 부용동원림』 등이 있고 공저로 『동양조경사』, 『북한의 문화유산』이 있으며 논문으로 「창덕궁 후원에 대하여」, 「신라 궁원지인 안압지에 대하여」 등 다수가 있다.

 

김대벽-------------------------------------------------------------------------

함경북도 행영 출생으로 해라시아 문화연구소 연구원이며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한국 가면 및 가면극』, 『문화재대관(무형문화재편, 민속자료편)』 등 중요민속자료 다수를 전담 촬영하였다. 

 

|차례|

 

머리말

조성 시기 및 배경

원에 담긴 사상

입지

원의 구성

맺는말

소쇄원과 관련된 문헌 및 그림

참고 문헌

원의 입구

 

작은 집 영롱하게 지어져 있어

앉아보니 숨어살 마음이 생긴다.

연못의 물고기는 대나무 그늘에서 노닐고

오동(梧桐)나무 밑으로는 폭포가 쏟아지네.

사랑스런 돌길을 바삐 돌아 걸으며

가련한 매화 보고 나도 몰래 한숨 지어

숨어 사는 깊은 뜻을 알고 싶어서

날지 않는 새집을 들여다보네.

小閣玲瓏起 坐來生隱心

池魚依竹影 山瀑瀉梧陰

愛石頻回步 憐梅累送吟

欲知幽意熟 看取近床禽

 

비탈따라 길 하나가 트여 잇고

계간의 사립문은 두 짝으로 닫혀 있네.

돌은 늙었는데 이끼가 깔려 있고

대숲으로 둘러싸인 정자는 깊어 보여

신선한 바람은 정자에 가득하나

계간에 걸린 다리엔 사람은 드물구나.

나 홀로 적적하게 꽃을 보고 있노라니

한가로운 구름 아래 석양은 푸르러라.

森崖開一逕 臨澗閉雙扉

石老苔平鋪 亭深竹亂圍

風來高枕滿 人到小橋稀

寂寂看花處 閑雲下翠微

 

우연히 방호(선경)의 경계에 들어오니

무단히 속세의 마음이 씻겨진다.

시내는 두 섬돌을 감돌아 올리고

대나무는 한 담장에 그늘을 덮었다.

깨끗한 땅에다가 침도 하마 못 뱉겠고

마루는 유현하여 노래가 절로 난다.

먼지 낀 관을 털기도 전에

높은 나무에서 새가 조롱을 한다.

偶八方壺境 無端洗俗心

溪圍雙砌響 竹覆一墻陰

地淨寧容唾 軒幽可着吟

塵冠彈未了 高樹有嘲禽

 

세고(世故) 때문에 좋은 약속 어기어

새봄이 다 지나서 사립문을 두드렸네.

담소를 하면서 작은 회포 풀어보고

쌓이고 쌓인 수심 깨트려 본다.

속세를 멀리하고 티끌 없는 이곳에는

마음만 한가하고 할 일은 많지 않네.

시냇가에 홀로 나와 달 뜨기를 기다리니

구름 밖의 저문 종이 은은히 들려온다.

世故違芳約 經春始叩扉

笑談開寸抱 愁恨破重圍

境遠塵常絶 心閑事亦稀

臨溪仍待月 雲外暮鍾微

 

송순(宋純, 1493~1583년)의 『면앙집(俛仰集)』 1권에 수록된 「외제양언진 소쇄정 사수 가정 갑오(外弟梁彦鎭瀟灑亭四首嘉靖甲午」

소쇄원 초정  소쇄원을 대표하는 정자인 초정은 1536년 정철이 태어나던 해에 지어졌다가 1985년 위교, 외나무다리와 함께 복원되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이 정자를 세워

사람이 오고 가고 40년이 되었네.

시냇물은 서늘히 벽오동 아래로 흐르고

손님이 와서 취해도 깨지를 않네.

 

我生之歲立斯亭 아생지세립사정

人去人在四十齡 인거인재사십령

溪水泠泠碧梧下 계수령령벽오하

客來須醉不須醒 객래수취불수성

정철(鄭澈, 1536~1593년)의 시 瀟灑園題草亭 소쇄원제초정

 

「소쇄원도  1755년 목판으로 판각된 「소쇄원도」는 소쇄원의 「사십팔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소쇄원의 원형을 상고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소쇄원의 자연 경관  소쇄원은 현실에서 느낀 좌절감을 아름다운 자연에 의탁하여 시문을 짓고 대의를 지키며 절개를 지키고자 한 의도에서 조영된 것이다.

광풍각  성리학자 주돈이의 행동 양식을 따르고자 이름지어진 광풍각에는 조선의 선비 정신이 담겨 있다.

원 안의 낙락장송

「사십팔영」  제월당 마루 위에 있는 김인후의 「사십팔영」은 소쇄원이 수많은 선비의 교우처이자 시문의 산실이었음을 보여 준다.

식영정과 주변 건물들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에 팔각지붕을 한 간결한 정자 형태의 건물인 식영정은 노자암, 자미탄, 부용당 등과 어우러져 시정 어린 정취를 뽐내고 있다.

환벽당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팔작지붕을 한 기와집으로 양산보의 처남인 김윤제가 고향에 돌아와 세운 서재이다.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말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

 

노자암 바라보며 자미탄 곁에 두고

장송을 차일(遮日)삼아 석경에 앉았으니

인간 6월이 여기는 삼추(三秋)로다.

 

창계(蒼溪)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렀으니

천손운금(天孫雲錦)을 그 누가 베어내어

이은 듯 펼친 듯 야단스런 경치로다.

산중에 달력 없어 사시를 모르더니

눈앞의 풍경이 사철따라 전개되니

듣고 보는 일이 모두 다 선계(仙界)로다.

 

짝 맞은 늙은 솔은 조대에 세워 두고

그 아래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버려 두니

홍료화(紅蓼花) 백빈주(白蘋洲)를 어느 사이 지나관저

환벽당 용의 소(沼)가 배 앞에 닿았구나.

 

「성산별곡(星山別曲)」

소쇄원 입구의 연못  호안을 자연석으로 축조한 연못으로 예전에는 물고기와 순채를 길렀다고 한다.

 

줄기는 눈 속에서도 곧고 의연한데

구름 실은 높은 마디는 가늘고도 연해

속대 솟고 겉껍질 벗으니

새줄기는 푸른 띠 풀고 나온다.

雪幹摐摐直  雲梢嫋嫋輕

扶藜落晩籜  解帶繞新莖

 

「사십팔영」 중 제29영 '오솔길의 왕대숲(夾路脩篁)'

 

위교  위태로운 다리란 뜻으로, 소쇄원을 찾아오는 손님은 이 다리를 건넌 다음 개울가에 선 버드나무 밑에서 주인을 불렀을 것이다.

 

장한(張翰)이 강동으로 돌아간 뒤

이 풍류를 아는 이 그 누구인가.

농어회를 미처 마련 못했으니

오래오래 물에 뜬 순채만 보소.

張翰江東後  風流識者誰

不須和玉膾  要看長冰絲

 

「사십팔영」 중 제41영 '못에 흩어진 순채싹(散池蒪芽)'

 

큰 대숲을 뚫고 골짜기에 걸쳐 놓아

우뚝하기가 허공에 뜬 것 같다.

숲과 못은 워낙 아름답지만

다리가 놓이니 더욱 그윽하네.

架壑穿脩竹    臨危似欲浮

林塘元自勝    得此更淸幽

 

「사십팔영」 중 제9영 '대숲 사이에 위태로이 걸친 다리(透竹危橋)'

 

 

 

광풍각 옆 느티나무  개울가 버드나무 밑은 소쇄원 주인과 손님이 만나던 곳으로 손님이 작대기를 두두리면 주인에게까지 들리게 되어 있었다.

 

손님이 와서 대막대기를 두드리니

몇 번 소리에 놀라 낮잠을 깨어

의관을 갖추고 맞으러 가니

벌써 말을 매고 개울가에 서 있네.

有客來敲竹  數聲驚晝眠

扶冠謝不及  繫馬立汀邊

 

「사십팔영」 중 제39영 '버드나무 개울가에서 손님을 맞으니(柳汀迎客)'

 

소쇄원 입구의 긴 담과 오곡문  소쇄원 입구에서 높이 2미터, 길이 약 5미터의 긴 담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오곡문이라고 쓴 담을 만날 수 있다.

대봉대의 초정과 작은 연못  오곡문 담 안에 있는 방형의 작은 연못 옆 대봉대에는 초정이 건립되어 있다.

애양단과 동백나무  겨울에도 볕이 따뜻하게 드는 곳 애양단 담장 안에는 동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오곡류의 계류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홈대

 

소쇄원의 가운데 경치가

소쇄정에 통틀어 모였네.

쳐다보면 시원한 바람 나부끼고

귀기울이면 영롱한 물소리 들리네.

瀟灑園中景  渾成瀟灑亭

擡眸輪颯爽  側耳聽瓏玲

 

「사십팔영」 중 제1영 '자그마한 정자 난간에 기대어(小亭憑欄)'

 

바위 벼랑에 늙은 가지 드리웠고

이슬과 비를 맞아 언제나 맑고 시원해.

태평성대 누리며 오래 살아서

남녘 바람 지금까지 불어오누나.

巖崖承老幹  雨露長淸陰

舜日明千古  南風吹至今

 

「사십팔영」 중 제37영 '오동나무 대에 드리운 여름 그늘(桐臺夏陰)'

초정  소쇄원 계원의 중심에 있는 초정은 한 칸짜리로, 이 정자에 앉으면 소쇄원의 온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돌 위의 대나무 두어 그루는

상비(湘妃)의 눈물자국 아롱졌구려.

산새는 그 한을 알지 못하고

저물 무렵 스스로 돌아올 줄 안다.

石上數叢竹  湘妃餘淚斑

山禽不識恨  薄暮自知還

 

「사십팔영」 중 제32영 '해 저문 대밭에 날아든 새(叢筠暮鳥)'

 

한 이랑이 못 되는 방지(方池)

애오라지 맑은 물이 잔잔히 놀이 치네.

주인의 그림자를 물고기가 희롱하니

낚싯줄 드리울 맘이 없구나.

方塘未一畝  聊足貯淸漪

魚戱主人影  無心垂釣絲

 

「사십팔영」 중 제6영 '작은 못에 물고기 노닌다(小塘魚泳)'

 

샘물이 졸졸 흘러들어

높낮은 대숲 아래 못으로 흘러내려

떨어지는 물줄긴 물방아를 돌리는데

온갖 물고기가 흩어지며 노네.

委曲通泉脉  高低竹下池

飛流分水碓  鱗甲細參差

 

「사십팔영」 중 제7영 '나무홈대를 통하여 흐르는 물(刳木通流)'

 

온종일 졸졸 흐르는 물의 힘으로

방아는 저절로 공을 세우네.

경치는 천손(직녀)의 비단인 양 곱고

찧는 소리에 책장이 넘어가네.

永日潺湲力  舂來自見功

天孫機上錦  舒卷擣聲中

 

「사십팔영」 중 제8영 '구름 위로 절구질하는 물레방아(舂雲水碓)'

 

세상에 모든 꽃이

도무지 열흘 가는 향기가 없네.

어찌하여 시냇가의 저 백일홍은

백날이나 붉게 아름다운가.

世上閒花卉  都無十日香

何如臨澗樹  百夕對紅芳

 

「사십팔영」 중 제42영 '골짜기 시냇가에 핀 백일홍(櫬澗紫薇)'

 

깨끗이 심어져 범연치 않은 꽃

고운 자태는 멀리서 볼 만하네.

향기로운 바람이 골을 가로질러

방안에 스며드니 지란(芝蘭)보다 더 좋구나.

淨植非凡卉  閒姿可遠觀

香風橫度壑  入室勝芝蘭

 

「사십팔영」 중 제40영 '개울 건너 핀 연꽃(隔澗芙蕖)'

 

단 앞 개울은 아직 얼었으나

단 위의 눈은 모두 녹았네.

팔 베고 길게 누워 볕든 경치를 바라보니

한낮의 닭 울음은 다리까지 들리네.

壇前溪尙凍  壇上雪全消

枕臂迎陽景  鷄聲到午橋

 

「사십팔영」 중 제47영 '볕이 든 단의 겨울낮(陽壇冬午)'

 

티끌 많은 세상의 잡념을 버리려

자유로이 계단 위를 거닐었다네.

한가로운 마음을 시로 읊으니

읊으면서 속된 일을 잊게 되구나.

澹蕩出塵想    逍遙階上行

吟成閒箇意    吟了亦忘情

 

「사십팔영」 중 제23영 '긴 계단을 거니노라면(脩階散步)'

 

걸음마다 흘러가는 물결을 보며

거닐면서 시를 읊으니 생각이 더욱 그윽해.

물의 근원이 어디인지 아직 모르고

한갓 담장을 통해 흐르는 물만 바라본다.

步步看波去  行吟思轉幽

眞源人未沂  空見透墻流

 

「사십팔영」 중 제14영 '담장 밑을 통해 흐르는 물(垣竅透流)'

 

지척에서 졸졸 흐르는 물

분명 다섯 굽이로 흘러내리네.

그해 물가에서 말씀한 뜻을

오늘 은행나무 아래서 찾아보는구나.

咫尺潺湲池  分明五曲流

當年川上意  今日杏邊求

 

「사십팔영」 중 제15영 '은행나무 그늘 아래 굽어치는 물(杏陰曲流)'

거대한 암반  담장 밑을 통하여 흘러든 물은 경사가 급한 암반에서 세찬 폭포가 되어 떨어지기도 하고, 소 같은 웅덩이나 조담을 형성하는 등 변화무쌍한 풍경을 형성한다.

수구  장원봉 골짜기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은 오고문 옆 담 아래에 뚫려 있는 수구를 총해 소쇄원 내 계곡으로 흘러내린다.

수구문  장대석 같은 자연석으로 담 밑을 받치고 개울 중앙에 자연석을 위태롭게 포개 쌓아서 양쪽으로 도랑이 흐르게 하였다.

밖에서 본 수구  위태롭게 쌓은 자연석이 장대석을 받치고 있다.

 

계류는 바위를 씻어 흐르는데

한 바위가 온 골짜기를 덮고 있구나.

흰 것을 중간에 편 듯이

비스듬한 벼랑은 하늘이 깎은 바로다.

溪流漱石來  一石通全壑

匹練展中間  傾崖天所削

 

「사십팔영」 중 제3영 '가파른 바위에 흐르는 물(危巖展流)'

 

못 물은 깊고 맑아 바닥이 보이는데

멱감고 나도 여전히 푸르구나.

세상 사람들은 이 좋은 곳을 믿지 않지만

뜨거워진 바위에 오르니 발에 티끌 하나 없구나.

潭淸深見底  浴罷碧粼粼

不信人間世  炎程脚沒塵

 

「사십팔영」 중 제25영 '조담에서 멱감다(槽潭放浴)'

 

드문드문 푸른 잎 그늘 아래로

어젯밤 시냇가에 비가 내렸네.

성난 폭포수가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니

마치 흰 봉황이 춤추는 것 같구나.

扶踈綠葉陰  昨夜溪邊雨

亂瀑瀉枝間  還疑白鳳舞

 

「사십팔영」 중 제38영 '오동나무 그늘 아래로 쏟아지는 물살(梧陰瀉瀑)'

 

물이 도는 바윗가에 둘러앉으면

소반의 채소 안주라도 흡족하다.

소용돌이 물결에 절로 오가니

띄운 술잔 한가로이 주고받거나.

列坐石渦邊  盤蔬隨意足

洄波自去來  盞斝閒相屬

 

「사십팔영」 중 제21영 '스며 흐르는 물길따라 술잔을 돌리니(洑流傳盃)'

상암  폭포의 서쪽 평평한 암반 위에는 두 사람이 마주앉아 바둑을 두는 그림과 함게 상석이란 글씨가 쓰여 있다.

달을 쳐다보면 바위 광석  조담 서쪽의 평평한 바위에는 광석이라 쓰고 사람이 반듯이 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밝은 하늘 달 아래 이슬 받으며

너럭바위 돗자리 대신이로세.

긴 숲이 흩날리는 맑은 그림자

밤이 깊어도 잠을 이룰 수 없네.

露臥靑天月  端將石作筵

長林散淸影  深夜未能眠

 

 

「사십팔영」 중 제13영 '광석에 누워 달을 보니(廣石臥月)'

 

바위 기슭의 넓고 평평한 곳에

대숲이 그 절반을 차지했구나.

손님이 와서 바둑을 두는데

어지러운 우박이 허공에 흩어지네.

石岸稍寬平  竹林居一半

賓來一局碁  亂雹空中散

 

「사십팔영」 중 제22영 '평상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니(床巖對棋)'

 

거문고 타기가 쉽지 않으니

온 세상을 찾아도 종자기(鐘子期)가 없구나.

한 곡조가 물 속 깊이 메아리치니

마음과 귀가 서로 알더라.

瑤琴不易彈    擧世無鍾子

一曲響泓澄    相知心與耳

 

「사십팔영」 중 제20영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를 비껴 안고(玉湫橫琴)'

 

산을 만듦에 사람의 힘을 들이지 않고

만든 산을 가산이라 하더라.

형세를 따라 수림이 되고

의연한 산야인 것을.

爲山不費人  造物還爲假

隨勢起叢林  依然是山野

 

「사십팔영」 중 제16영 '가산의 풀과 나무(假山草樹)'

 

가을이 오니 바위 골짜기 서늘도 하고

단풍잎은 이른 서리에 놀랐구나.

고요하게 노을빛이 흔들리는 속에

춤추는 듯 그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秋來巖壑冷  楓葉早驚霜

寂歷搖霞彩  婆娑照鏡光

 

「사십팔영」 중 제44영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暎壑丹楓)'

 

전하여 듣자니 시냇가의 풀은

아홉 가지 향기를 머금었다고

여울물도 날마다 뿜어 올려져

한가로이 더위를 삭히어 주네.

聞說溪傍草  能含九節香

飛湍日噴薄  一色貫炎凉

 

「사십팔영」 중 제34영 '세찬 여울가에 핀 창포(激湍菖蒲)'

 

하늘은 신선의 계교와 부합하며

맑고 찬 한 줄기 산골 도랑

하류에선 서로 섞여 흐르네.

오리들이 한가로이 졸고 있구나.

天付幽人計  淸冷一澗泉

下流渾不管  分與鴨閒眠

 

「사십팔영」 중 제33영 '산골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壑底眠鴨)'

 

숲 끝의 매대는 그대로 넓은데

달이 떠오를 때엔 더욱 좋아라.

엷은 구름도 흩어지고

차가운 밤 얼음에 비치는 그 자태.

林斷臺仍豁  偏宜月上時

最憐雲散盡  寒夜映冰姿

 

「사십팔영」 중 제12영 '매대에 올라 달을 맞으니(梅臺邀月)'

 

매화의 빼어남을 곧바로 말하자면

돌에 내린 뿌리가 볼 만하구나.

맑고 잔잔한 물가에

성긴 그림자 황혼에 더 곱다.

直欲論奇絶  須看揷石根

兼將淸淺水  踈影入黃昏

 

「사십팔영」 중 제28영 '돌받침 위에 외롭게 핀 매화(石趺孤梅)'

화계  경사진 언덕에 자연석으로 쌓은 네 단의 축대 가운데 밑의 단은 원로이고 위의 두 단은 화계로 계류의 서쪽 산비탈 담 밑에 조성되어 있다.

 

북녘재(서울쪽)는 층층이 푸르고

동녘 울밑에 군데군데 누런 국화

벼랑가에 마구 심어 놓은 것들이

늦가을 서리 속에 어울리구나.

北嶺層層碧  東籬點點黃

緣崖雜亂植  歲晩倚風霜

 

「사십팔영」 중 제27영 '비탈길에 흩어진 솔과 국화(散崖松菊)'

 

몸소 느티나무 옆의 바위를 쓸고

아무도 없이 홀로 앉아서

졸다가 문뜩 놀라 일어나니

개미왕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自掃槐邊石  無人獨坐時

睡來驚起立  恐被蟻王知

 

「사십팔영」 중 제24영 '느티나무 옆의 바위에 기대어 졸다(倚睡槐石)'

소쇄원의 식생 현황도.

 

등뒤엔 겹겹의 청산이요,

머리를 돌리면 푸른 옥류(玉流)라.

긴긴 세월 편히 앉아 움직이지 않고

대(매대)와 각(광풍각)이 영주산보다 낫구나.

背負靑山重  頭回碧玉流

長年安不抃  臺閣勝瀛州

 

「사십팔영」 중 제4영 '산을 지고 앉은 자자바위(負山鼇巖)'

 

일찍이 여섯 잎 꽃이 피더니

향기가 가득하다 야단들이네.

붉은 열매 푸른 잎새 숨어 있더니

맑고 고와 눈서리가 사뿐 앉았네.

曾聞花六出  人道滿林香

絳實交靑葉  淸姸在雪霜

 

「사십팔영」 중 제46영 '흰 눈을 인 붉은 치자(帶雪紅梔)'

 

길은 하나련만 삼익우(三益友)가 잇달아

오르는 사이에 위태로움 느끼지 못하네.

워낙 세속의 인간은 근접을 못하는 곳

이끼 색은 밟혀도 또다시 푸르구나.

一逕連三益    攀閒不見危

塵蹤元自絶    苔色踐還滋

 

「사십팔영」 중 제5영 '돌길을 위태로이 오르니(石逕攀危)'

 

늙은 돌에 촉촉한 구름이 자욱하니

푸르디 푸른 이끼가 꽃인 양 하여라.

다른 언덕과 골짜기마다

번화함이 없이 그 뜻이 고절하다.

石老雲烟濕  蒼蒼蘚作花

一般丘壑性  絶意向繁華

 

「사십팔영」 중 제18영 '돌에 두루 덮인 푸른 이끼(遍石蒼蘚)'

광풍각  오곡류가 흐르는 계간의 하류에 위치한 광풍각은 정면과 측면이 세 칸, 팔작지붕으로 된 정자형 건물이다.

 

창이 밝으면 책을 읽으니

물 속 바위에 책이 어리 비치네.

한가함을 따라서 생각은 깊어지고

솔개와 물고기인 양 떠돈다.

窓明籤軸淨  水石映圖書

精思隨偃仰  竗契入鳶魚

 

「사십팔영」 중 제2영 '개울가에 누운 글방(枕溪文房)'

광풍각과 정원  광풍각은 소쇄원의 아름다운 경치가 정자 속으로 들어오게 만든 집이다.

 

봄이 복사꽃 밭에 찾아드니

붉은빛이 새벽 안개 속에 낮게 퍼진다.

바윗골 속에 취해 있으니

마치 무릉도원을 거니는 것 같구나.

春入桃花塢  繁紅曉霧低

依迷巖洞裡  如涉武陵溪

 

「사십팔영」 중 제36영 '복사밭에 봄이 찾아드니(桃塢春曉)'

광풍각 마루에서 바라본 원의 전경

광풍각 후원과 복숭아나무  고암정사와 부훤당이 있던 지역과는 낮은 담으로 분할되었으며(위), 담에는 작은 협문이 있고, 담장 안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다.(아래)

광풍각  소쇄원에서 가장 중요한 글방 건물인 광풍각은 터진 사방으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소쇄원의 아름다운 경치가 정자 속으로 들어오게 만든 집이다.

제월당  소쇄원 서쪽 가장 높은 단 위에 건립되어 있으며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에 팔작지붕으로 된 간결한 집이다.

제월당  좌측 한 칸 방의 문짝을 들어올리면 전면과 측면이 개방되면서 탁 트인 시원한 공간이 된다.

 

빗방울이 은화살같이 쏟아지니

너울거리며 푸른 비단 춤을 추네.

향수 어린 고향 소리엔 비할 수 없어

그냥 안타까워라, 고요한 마음만 깨다니.

錯落投銀箭  低昻舞翠綃

不比思鄕聽  還憐破寂寥

 

「사십팔영」 중 제43영 '빗방울이 두드리는 파초(滴雨芭蕉)'

 

저 아득한 곳으로 사라졌는데

다시 이 고요한 곳으로 불어오니

무정한 바람은 대나무와 더불어

밤낮 생황을 분다네.

已向空邊滅  還從靜處呼

無情風與竹  日夕奏笙篁

 

「사십팔영」 중 제10영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千竿風響)'

제월당 마루 위에 걸린 「사십팔영」

소쇄원의 담  자연석과 황토흙을 섞어 쌓은 운치 있는 토석담은 원내와 원외를 분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쇄원의 담은 서쪽 경사진 산록(산기슭)을 내려오면서 직각으로 수없이 꺾어지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데, 이 담은 소쇄원 입구에서 북북동쪽에 위치한 애양단까지 이른다.

오곡문에서 매대까지 이르는 담의 바깥쪽(위)과 안쪽(아래)

매대에서 제월당까지 이르는 담과 고사목  송시열이 쓴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글자가 붙은 서쪽 담 옆에는 고사목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어렴풋이 삼파(三巴, 중국 사천성(泗川省) 동부에 있는 세 고을 파군(巴郡), 파동(巴東), 파서(巴西)를 말한다. 이 세 고을이 서로 어울려 잘 살았다고 하는데 '오곡문'이란 잘 어우러져 있다는 말이다)의 글자를 시늉낸 듯

아마도 구곡(九曲, 주자의 무이구곡을 의미한다)의 여울에서 나누어온 듯

진원(眞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곧바로 행단으로 통해지리라.

宛學三巴字  應分九曲灘

眞源知有泝  直透杏邊壇

양산보의 4대손 양진태가 쓴 「오곡문」


긴 담이 백 자[百尺]나 가로 뻗었는데

일일이 신시(新詩)를 베껴  놨더니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네.

비바람의 장난일랑 일지 말아라.

長垣橫百尺  一一寫新詩

有似列屛障  勿爲風雨欺


「사십팔영」 중 제48영 '긴 담에 걸려 있는 노래(長垣題詠)'

소쇄원 종단면도

「소쇄원도」  입면도와 평면도가 혼합된 그림으로 사방으로 돌려보면 보는 방향에 따라 건너다 보이는 공간이 정면으로 나타나게 그려져 있다.

 

남녘의 더위가 괴로운데

오직 이곳만은 서늘한 가을이네.

바람이 흔드는 누대 곁의 대숲

연못물은 나뉘어 돌 위로 흐르네.

南州炎熱苦  獨此占凉秋

風動臺邊竹  池分石上流

 

「사십팔영」 중 제11영 '연못가에서 더위를 식히니(池臺納凉)'

 

높은 묏부리에서 굴러온 바위에

몇 자 안 되는 솔이 뿌리를 내리네.

송화(松花) 몸에 만발하며

기세는 하늘의 푸르름을 지녔고녀.

片石來崇岡  結根松數尺

萬年花滿身  勢縮參天碧

 

「사십팔영」 중 제17영 '하늘이 이룬 솔과 돌(松石天成)'

 

벼랑 끝에 빈 마음으로 오래 앉으니

말끔히 씻어 주는 계곡의 바람 불어

무릎 상할까 두렵지 않고

한갓 구경만 하는 늙은이로다.

懸崖虛坐久  淨掃有溪風

不怕穿當膝  偏宜觀物翁

 

「사십팔영」 중 제19영 '걸상바위에 고요히 앉아(榻巖靜坐)'

 

콸콸 물은 층계진 돌을 돌아 흐르는데

다릿가의 두 그루 솔이 섰구려.

남전[藍田, 중국 섬서성 서안시 동남방에 있는 고을 이름으로 당나라 문장가 한유(韓愈)가 「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丞聽壁記)」를 지은 것이 있는데 이를 인용하여 오히려 남전보다 여기가 더 유유자적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엔 오히려 일이 있어서

다툼이 이 조용한 곳에도 이르겠네.

㶁㶁循除水  橋邊樹二松

藍田猶有事  爭及此從容

 

「사십팔영」 중 제26영 '가로지른 다릿가의 두 소나무(斷橋雙松)'

 

서리맞은 뿌리가 속세를 싫어하나

자꾸만 돌 위로 드러나네.

몇 해나 길렀더냐 어린 자손처럼

곧은 속은 갈수록 굳어간다네.

霜根耻染塵  石上時時露

幾歲長兒孫  貞心老更苦

 

「사십팔영」 중 제30영 ''돌 틈에 서려 뻗은 대 뿌리(迸石竹根)'

 

벼랑가에 펄펄 나는 새들

때로는 물 속에 내려 놀고

마음대로 마시고 쪼으면서

잊다마다 백구(갈매기)에 값하는 것을.

翩翩崖際鳥  時下水中遊

飮啄隨心性  相忘抵白鷗

 

「사십팔영」 중 제31영 '벼랑에 깃들인 새(絶崖巢禽)'

 

정작 꽃 중의 꽃은

청화(淸和) 함이 사시에 갖추어 있는

띠집의 비스듬한 처마가 다시 좋아하고

매화와 대나무가 이 서로 아는 꽃.

定自花中聖  淸和備四時

茅塹斜更好  梅竹是相知

 

「사십팔영」 중 제35영 '처마에 비스듬히 핀 사계화(斜簷四季)'

 

어둑하여 산과 구름 알 수가 없네

창을 여니 동산에 눈이 가득하구나.

계단도 구별 없이 멀리까지 하야니

부귀가 여기까지 이르다마다.

不覺山雲暗  開窗雪滿園

階平鋪遠白  富貴到閒門

 

「사십팔영」 중 제45영 '넓은 뜰에 깔린 눈(平園鋪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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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22 셰익스피어 - 비극의 연금술사

 

프랑수아 라로크 지음 | 이종인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28

 

082

시156ㅅ  23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3

 

Shakespeare, Comme il vous plaira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은 여왕을

정점으로 하여 궁신, 군인, 탐험가, 시인, 학자들이

모두 제몫을 해준 한 판의 멋진 가장행렬이었다.

이 융성한 시대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한 극작가의 손끝에 의해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이 극작가는 런던으로 진출하여 당시 흥성하던

연극계에서 출세를 했고 영문학사상 불멸의

금자탑이 된 걸작들을 남겼다.

 

"대사는 나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해야 돼.

여느 배우들처럼 큰 소리로 그저 대사만

주워섬기는 거라면 거리의 방물장사를 불러다가

시키는 게 낫지. ……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은

연극의 본질을 벗어나는 일이니까.

연극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뭐라고 할까.

자연에다 거울을 비추는 거야.

선은 선, 악은 악, 있는 그대로를 비춰 내며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지."

 

차례

 

제1장 스트래트퍼드 어펀 에이븐

제2장 런던

제3장 연극의 세계

제4장 엘리자베스 1세, 신화와 과대선전

제5장 새로운 세계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프랑수아 라로크 Francois Laroque

현재 파리 소르본 대학 영문학 교수인 프랑수아 라로크는 셰익스피어가 전공이다. 그는 프랑스 몽펠리에에 위치한 폴 발레리 대학 부설 '엘리자베스 시대 연구소'의 정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풍습 및 민속에 대하여 여러 편의 무게 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의 축제의 세계 : 엘리자베스 시대의 계절적 오락행사와 연극무대>가 있고, <영문학선집>을 공동으로 편찬했다.

 

옮긴이 : 이종인

1954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브리태니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절망이 아닌 선택> <증발> <때로는 낯선 타인처럼> <문자의 역사> 등이 있다.

 

제1장

스트래트퍼드 어펀 에이븐

 

셰익스피어는 전세계적으로 천재라고 인정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어디서나 읽히고 공연된다. 그러나 장갑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남들보다 많은 교육을 받은 편이 아니엇다. 주변 세계에 강렬한 호기심을 갖고 있던 셰익스피어는 나중에 희곡을 쓸 때 어릴 적부터 기억하고 있던 장면을 많이 이용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는 시골의 풍습과 미신, 시장, 대중적 오락행사 등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은 왕과 귀족들의 이야기만큼 드라마의 소중한 재료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화가 데이비드 빙크분스가 그린 <마을 장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연극은 16세기의 대중오락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세례받은 사실을 기록한 날짜와 몇 마디의 말. 그가 실존인물이라는 기본적인 증거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극에서 학교선생을 웃기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휴 에번스라는 선생이 윌리엄 페이지라는 소년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다음 대화를 한번 보라.

"에번스 : 라틴어 라피스는 무슨 뜻이지, 윌리엄?

윌리엄 : 둘이라는 뜻입니다.

에번스 : 그럼 둘은 뭐지, 윌리엄?

윌리엄 : 자갈입니다.

에번스 : 아니, 라피스지. 그걸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란 말이야."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4막 1장)

엘리자베스 시대의 학교를 그린 이 그림에서, 선생은 지나치게 크게 그려져 있고, 반면 학생은 작게 스려져 있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이것은 당시의 선생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가를 반증한다.

 1607년에 발간된 라틴어 입문서 속표지에 나온 일곱 사람은 일곱 개 문과과목을 상징한다.


"갈라진 혓바닥에 점이 박인 배암들아, 가시 돋친 고슴도치, 도룡뇽이나 도마뱀도 물러가거라. 요정여왕 주무신자."

《한여름밤의 꿈》, 2막 2장


뱅코의 망령이 나타날까 두려워하는 맥베스는 그 망령에게 나올테면 나오라고 도전한다. 바로 그 대사에 당시의 그림에 나와 있는 뿔 달린 물소도 거명된다. "험악한 러시아 곰이건, 뿔 달린 물소건, 허케이니어의 호랑이건, 무엇이든지 나오너라."

(《맥베스》, 3막 5장)


셰익스피어의 극 중에는 180가지의 서로 다른 동물들 - 실존하는 혹은 상상 속의 - 이 3,000번 정도 언급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가 등장시킨 전설적인 동물들은 동물우화집이나 전설에서 직접 나온 것이다. 여기에 나온 동물들은 에드워드 톱셀의 논문 <뱀의 역사>(1608)와 <네발 달린 동물의 역사>(1607)에서 나온 것이다. 바다뱀(가운데)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항해자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존재였다. 히드라(아래)는 《코리올레이너스》에서 다양성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가이 마천트의 그림은 《목자의 달력과 퇴비》라는 책자에서 나왔는데, 행성이 인체 각 부위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있다. 해골의 다리 사이에 그려져 있는 바보는 15세기 도덕극을 지칭한다.

리치먼드 근처의 템스 강변에 모여 선 모리스 춤꾼들.

1591년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을 위해 수상 스포츠를 개최한 허트퍼트 백작을 방문했다. 백작은 엘리자베스 1세에 즐겨 비견되던 달의 여신 다이애나를 상징하는 초생달 모양으로 연못을 특별히 축조하여 거기서 수상 스포츠를 열었다. 그림은 여왕이 신하들에 둘러싸여 수상 스포츠를 구경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스트래트퍼드의 길드 제품 교회에 있는 최후의 심판 그림에는 악마가 타락한 자들을 지옥에 처넣는 장면이 등장한다. 종교개혁시대에는 이 그림이 독실한 신자에게는 오히려 해롭다고 판단해 하얗게 지웠다 한다.(이 수채화는 1807년 당시에 남아 있던 그림을 보고 다시 그린 것이다.)

겨울은 향연과 실내오락의 계절이었다. 이 17세기 수채화는 식사(위)와 카드놀이(가운데)를 보여 주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배우나 바보들이 귀족의 저택에서 즉흥공연을 해 보였다. 주로 간단한 즉흥극이나 아침연주 같은 것이었다. 가면을 쓴 배우(아래)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작 부분, 즉 로미오와 머쿠쇼,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변장을 하고 캐풀릿의 무도회에 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오늘 밤 우리 집에서는, 전부터 노상해오던 연회를 열기때문에 친한 손님을 많이 청해 놓았소. 집은 누추하지만, 어둔 밤을 빛내는, 기라성 같은 여인들을 많이 볼 거요. (로미오, 머쿠쇼, 벤볼리오와 또 다른 대여섯 명의 가면 무도자 등장.)"(《로미오와 줄리엣》, 1막 2~4장)

시가행렬

중세 런던 거리에서 즐겨 벌어진 화려한 민간행렬은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종교개혁 이전에 종교적 목적을 위해 자주 벌어진 '화려한 행렬'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시가행렬은 4월 23일 성 조지의 축일, 6월 24일 성 요한의 축일, 그리고 10월 29일 시장의 날 등에 실시되었다. 기괴한 모습을 한 행렬이 시가를 걸어 내려가면 단봉낙타, 일각수, 용 따위 전설적인 동물들이 수레를 끌고, 배우나 천사로 분장한 아이들은 수레 위에서 연극을 했다. 행렬을 이끌고 가는 인솔자는 전통적으로 야만인으로 분장하여 횃불이나 화인(火印)을 들고 있었다. 그것은 군중들 사이로 길을 내기 위한 소도구였다. 이런 시가행렬은 처음으로 조직한 것은 길드였는데, 그들은 이 기회를 통해 자신들의 부와 권세를 자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극작가가 이 행사를 주관했다. 1615년에 제작된 이 그림은 데니스 반 아스루트의 작품인데 이사벨라 여왕(1566~1633)의 브뤼셀 입성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이사벨라는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총독인 앨버트와 결혼했다.)

헨리 언턴 경의 화려한 기억

1596년에 무명씨가 그린 이 그림은 외교관이었던 헨리 언턴 경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그림은 언턴의 집에서 벌어진 가면극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 속에서 행렬은 나선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 그룹으로 나뉜 여자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그들은 손에 사냥꾼의 활과 꽃을 쥐고 있다. 가운데에는 서너 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있다. 그들 위에는 날개 달린 머큐리가 다이애나 옆에 서 있다. 여신은 달 모양의 머리 장식을 하고 손에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있다. 열 명의 큐피드 - 다섯 명은 까만데 이것은 낮과 밤의 풍유이다 - 는 횃불을 들고 신비한 빛을 던져 주고 있다. 나머지 그림들은 언턴의 출생과 활동, 장례식과 무덤을 그리고 있다.

16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요리스 후프나헬의 작품은 결혼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야 할 인생의 가장 중요한 행사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이 1639년 그림에서 보이는 요정은 퍽으로도 알려져 있는 로빈 굿펠로를 그리고 있다. 요정은 친구들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가운데 춤을 춘다. 그는 양성(兩性)의 모습과 악마적 성격을 가진 목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청교도들은 켈트의 전설에 나오는 이런 존재들을 악마의 화신이라고 보았다.

 

 

모리스 춤꾼을 그린 이 그림은 18세기에 출간된 셰익스피어 전집 속표지에 수록되었다.

 

유랑극단이 마련한 무대를 그린 그림. 몇몇 특권층 사람들만이 가까운 술집 창문에서 연극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것은 16세기에 피터 브뢰겔이 성 조지 축일의 축제를 그린 것이다. 조잡하게 가설된 무대는 셰익스피어의 어린 시절 스트래트퍼드에 설치된 무대와 유사하다.

 

토머스 키드의 희곡 《스페인의 비극》(그림은 그 표지이다)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늙은 히에로니모가 자신의 아들이 정원으로 나 있는 창문에 목을 매달고 죽은 것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철저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히에로니모는 범인을 죽이기 위해 연극 중에서 연극을 한다. 미친척하는 것이다. 이 연극은 인기를 끌었고 셰익스피어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와 《햄릿》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엘리자베스 풍의 보닛과 목도리를 한 여자를 그린 것인데 앤 해서웨이(셰익스피어의 아내)일 것으로 추측된다.

제2장
런던

1592년, 셰익스피어는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수도의 매력적인 모습에 사로잡혔다. 헨리 8세 치세기(1509~1547)에는 인구가 5만밖에 되지 않던 작은 도시 런던은 농촌 인구의 끊임없는 유입으로, 엘리자베스 1세 치세기(1558~1603)에 인구 20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인구가 넘쳐나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런던이었지만, 그곳에는 다양한 활동과 볼거리. 그리고 연극이 있었다.

일요일이면 대중은 성 바오로 대성당에 모여 설교를 들었다. 무명씨의 1616년 그림(아래)은 성당에 모인 대중을 묘사했다. 1572년에 나온 런던 시가도(위)를 확대한 이 지도는 주요 도로들이 가로지르는 건물 밀집 지대와 도시 외곽의 공한지와 정원을 보여 주고 있다.

템스강의 남쪽 둑은 1588년에는 대부분 공한지였다. 그 무렵 그려진 이 수채화는 뱅크사이드의 우범지대와 동물격투장을 보여 준다. 로즈 극장과 글로브 극장은 이 격투장 옆에 세워졌다. 북쪽 둑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벽으로 둘러싸인 런던탑, 런던 브리지, 성 바오로 대성당의 옆모습이 보인다. 서쪽으로 더 가면 귀족들의 저택이 나오고 이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등장한다. 맨 왼쪽에 첨탑이 보이는 곳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1620년에 제작된 플랑드르파의 그림. 그리니치에서 런던 쪽을 바라본 것이기 때문에 런던은 '개들의 섬' 너머로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런던시 성문을 나서면 바로 전원지대가 이어졌고 시내에도 곳곳에 공원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흑사병의 창궐을 막을 수는 없었다. 피를 빼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었고 로즈마리 꽃을 귀와 코에다 꽂았을 정도였다. 흑사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 집은 판자로 둘러막고 붉은 십자가 표시를 했다. 그리고 그 집의 다른 가족들 또한 감염되지 않아도 외부세계와 격리되어야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존 신부는 줄리엣이 죽은 척하는 사연을 알리는 편지를 로미오에게 전하려 하나 실패한다. 만추아의 검역관이 흑사병에 걸렸는지 의심했기 때문이다. "검역관이, 우리 두 사람이 그 전염병 환자 집에 같이 있었다고 의심을 해서, 문을 봉하고 우릴 밖에 내놓지 않아서, 그만 급한 만추어 행도 못하고 거기 머물렀어요." (5막 2장)

대역죄인들은 런던탑에 투옥되었다. 암울한 역사를 지닌 이 거대한 성채 그림은 웬세슬라우스 홀라의 17세기 작품이다. 《리처드 3세》에서 형인 에드워드 4세는 클라렌스 공작을 런던탑으로 보낸다. 여기서 에드워드 4세의 또 다른 동생인 글로스터 공작(후의 리처드 3세)은 사람을 시켜 클라렌스를 죽인다. 글로스터 공은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에드워드 4세의 아들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글로스터 공은 황태자에게 "왕이 되실 몸이니 2~3일 런던탑에 쉬셨다가 가시지요."라고 말하는데, 황태자는 "하필이면 런던탑, 거기는 싫소. 그 성은 줄이어스 시저가 지었다면서요?"라고 대꾸한다.(3막 1장). 르네상스 시대의 런던탑에는 왕실동물원이 있었다.

런던 브리지(이 그림은 1615년경 제작)는 한때 템스강을 건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며, 다리 양쪽에 주택과 가계가 죽 늘어서 있었다. 대역죄인의 머리를 잘라 꼬챙이에 꽂아서는 다리 입구 위에 걸어 놓곤 했는데, 이것은 왕권의 엄중함을 시민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그림은 1616년에 제작된 것이다. 1599년 스위스의 여행가 토머스 플라터는 친구들과 함께 런던 브리지로 강을 건넜고 이엉을 엮은 지붕이 있는 건물(글로브 극장)에서 《줄리어스 시저》를 보았다고 여행기에서 썼다.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신문이 없었다.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은 별로 돈을 벌지 못했다. 궁정에서 지원을 받는 것 이외에,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많은 관객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연극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객 동원에 성공한 작품 중의 하나로는 박식한 파우스투스 박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파우스투스 박사는 학문이 지겨워지고 우주의 신비를 알아내고 싶어서 세속적인 권력과 쾌락을 얻는 조건으로 악마에게 자기 영혼을 팔았다.

크리스토퍼 말로의 초상화(위)는 1585년에 제작되었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에 왔을 때 말로의 강력한 대사가 로즈 극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캔터베리 구두수선공의 아들인 말로는 조숙한 천재였는데 스물일곱 살 때 자신의 대표작을 썼다. 국왕이 그를 스파이로 이용했기 때문에 그의 피살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말로의 뒤를 잇는 극작가가 되었다. 《헨리 6세》 3부작은 셰익스피어가 말로의 웅변술에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아래는 셰익스피어의 찬도스 초상화이다.

레이플 홀린셰드의 《연대기》 초판(1577)에 들어 있는 그림에서처럼 죄수의 처형은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대 위에서 이루어졌다. 죄수는 죽기 전에 대중 앞에서 마지막 유언을 할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와 《리처드 3세》에서 이 유혈낭자한 장면을 등장시켰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대한 흥미는 《루크리스의 능욕》이라는 설화시(1594)의 어두운 주제에서 잘 드러난다.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1594)의 속표지.

이 그림(1595년)은 셰익스피어 생존 당시에 상연된 연극의 한 장면을 그린 그 시절의 그림 중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 중 약 40줄이 담겨 있는 페이지에 나온다. 중앙에 있는 여자는 고트족의 여왕인 타모라인데 타이터스에게 두 아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빌고 있다. 오른쪽에는 무어인 아론이 왼손에 칼을 들고 서 있다. 타이터스와 타모라가 입고 있는 옷은 고증이 제대로 안 된 것 같고 위병들의 복장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것이다.

사우샘턴 백작인 헨리 로트슬리(위)는 흑사병이 창궐해 연극 공연이 중단되었던 시기에 쓴 두 편의 장시를 헌정한 인물이다. 셰익스피어에게 하사된 문장에 관련된 글(아래). 1598년에 작성된 이 글의 뜻은 이렇다. "검은 바탕에 황금의 밭이 있고 멋진 창이 대각선을 그리며 위쪽으로 날아가 은을향한다. 그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편 매가 문장을 지그시 누르며 앉아 있다. 문장 속에 새겨질 글씨는 "Non sanz droict(자격 없이 얻어지지 않는다)."이다.

 

제3장

연극의 세계

 

젠틀맨, 극작가, 배우, 챔벌린 극단의 주주, 셰익스피어는 당시 연극계가 가지고 있던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작품은 다양한 무대, 다양한 등장인물, 각양각색의 관중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글로브 극장을 그린 이 수채화(위)는 1616년에 제작되었다. 극장 정면에는 '온 세상이 무대'라는 라틴어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1659~1665년에 제작된 톰 스켈톤의 초상화(아래)는 알록달록한 색깔이 특징인 바보의 복장을 보여 준다.

동시대의 그림을 보면 셰익스피어 시대의 런던 극장들에 대한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위 그림은 커튼 극장을 그린 것인데 극장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어 연극이 공연중임을 알 수 있다. 시가도는 당시의 여러 극장의 위치를 보여 준다.

조지 셰퍼드가 글로브 극장을 그린 수채화.

당시 인기 있던 오락 '황소 괴롭히기'를 그린 그림.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5막 7장)에서 터사이테스가 패리스와 메넬라우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외친다. "자, 황소! 자, 개! 패리스. 저런, 아, 두 마리 암탉에 맞서는 참새! 앗, 패리스가! 황소가 이길 것 같은데, 뿔을 조심해!"

곰 괴롭히기(아래)는 셰익스피어가 즐겨 쓰는 이미비 중의 하나이다. 이 놀이에서는 링 가운데 설치한 막대에 곰을 묶어 놓고 개에게 공갹하게 한다. 곰은 개를 여러 마리 죽이지만 결국은 개에게 씹혀 죽고 만다. 이 16세기 그림(위)은 곰 괴롭히기 스포츠가 벌어지던 두 운동장을 그리고 있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옥타비우스는 외친다. "우리는 막대에 묶여 있고 수많은 적들이 공격해 오고 있다."(4막 2장) 《맥베스》에서 맥베스가 맬컴의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같은 이미지가 사용된다. "그들은 나를 막대에 묶어 놓았다. 나는 달아날 수가 없고 곰처럼 끝까지 싸워야만 한다."(5막 7장)

스완 극장을 그린 이 그림은 네덜란드 사람 아렌드 반 부셸의 작품이다. 그의 친구인 요하네스 드 위트가 1596년에 스케치한 것을 보고 그린 것이라고 한다. 반 부셸은 이렇게 말했다. "런던의 극장 중에서 가장 크고 멋있는 것은 스완 극장인데 3,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글로브 극장은 훨씬 정교하게 지어진 로즈 극장(그림)보다 더 비좁았다. 이것은 《헨리 5세》의 프롤로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쟁쿠르의 하늘을 뒤흔든 투구의 용사들을 이 목조의 원형 속에 어떻게 몰아넣으리요?"

영국인 의사 로버트 플라드는 기이하고 상상력 넘치는 무대그림을 남겼다. 이 그림은 글로브 극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미지에는 기억을 돕는 무엇이 있다. 무대 쪽으로 열린 다섯 개의 문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의미(작품에 대한)를 나타내는 것 같다. 바닥에 그려진 다섯 개의 원형과 마름모꼴은 더욱 신비롭다.

 

"태어날 때 우리는 도착했음을 운다. 아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리어왕》, 4막 3장

1632년에 발간된 윌리엄 엘러베스터의 희곡 《록사나》의 표지에 그려진 무대.

 

"요컨대 동작을 대사에, 대사를 동작에 맞추라는 것인데, 다만 명심할 것은 자연의 절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거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은 연극의 본질을 벗어나는 일이니까. 연극의 목적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과거나 현재나 뭐라고 할까, 자연에다 거울을 비추는 거야."

《햄릿》, 3막 2장

이 그림은 프랜시스 커크맨이 인기 있는 연극의 희극적인 장면만을 모아 놓은 책인 《기지 모음집》(1673)의 속표지에 수록된 것이다.


《한여름밤의 꿈》에 나오는 희극적인 장면(1막 2장)에서, 아테네의 장인들은 '피라무스와 티스베'의 이야기를 궁중에서 공연하고 싶어 안달이지만 서로 여자 역은 안맡겠다고 주장한다.

"퀸스 : 플루트, 티스베 역을 자네가 맡지?"

플루트 : 티스베는 어떤 역이지? 유랑하는 기사인가?

퀸스 : 피라무스가 사랑한 여자라네.

플루트 : 아니, 여자 역이라고? 난 시키지말게. 난 수염이 나오려고 하니까 말이야."

존 스코토가 1588년경에 그림 그림. 여왕이 좋아했던 광대인 리처드 탈턴이 농부복장을 하고 피리와 드럼을 연주하고 있다.


광대 윌리엄 캠프는 런던에서 노리치까지 오는 동안 계속 춤추었다(위). 이 그림은 그의 책 《9일 동안의 경이》(1600년)에 나온다. 드루리 부인이 17세기 초에 그린 광대 그림(아래)은 풀무를 가지고 노는 전형적인 광대를 다룬다. 풀무는 라틴어로 follis라고 하는데 시사풍자극 'follies'라는 단어와도 시각적으로 어울린다.


인기 있는 우화(寓畵)

드루리 부인은 서퍽의 베리 세인트 에드먼즈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 호스테드에서 여러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들은 제프리 휘트니(1586)와 클로드 파라딘(1591)의 우화집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 우화는 모두 똑같은 패턴을 따르고 있다. 한 페이지에 그림이 하나 들어 있고 맨 위에는 라틴어 격언이 적혀 있으며, 가운데에는 도덕, 풍자, 수수께끼 등이 담긴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림 밑에는 간단한 논평이 적혀 있다. 드루리 부인의 그림에는 간단한 라틴어가 쓰여 있다. 위의 그림 속에 있는 잠자는 인물은 게으름을 나타내고 있다. 또 《한여름밤의 꿈》에서 당나귀로 바뀐 직조공 보텀을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아래의 그림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24의 중심 은유를 상기시킨다. "내 눈은 화가가 되어 그대의 미모를, 내 가슴의 화판에 옮겨 놓았네. 내 몸은 그 그림의 틀, 최상의 화가의 기술인 원근법을 썼노라."



광기 속의 지혜

휘트니의 우화 중에 <에티오피아인 씻기기>가 있다. 이 우화의 주제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자연이 내려준 피부색을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주제가 위의 드루리 부인의 우화가 드러내려는 것이다.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4막 2장)에서 사악한 무어인 아론은 자기의 피부색을 변호하고 나섰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가 고트족의 여왕인 타모라에게서 낳은 사생아의 피부색을 옹호한다. "석탄과 같은 검은빛이 다른 빛보다도 더 낫다. 검은빛은 다른 빛에 물들지 않는다. 백조의 검은 발은, 대양의 물을 다 퍼부어도 하얘지지 않는다. 비록 끊임없이 발을 씻는다고 해도 그렇다."

고래 때문에 뒤집어지려는 배 그림(가운데)에는 "약속이란 믿을 수 없다."라는 라틴어 격언이 쓰여 있는데 《템페스트》의 첫 머리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에서 안토니오와 밀라노의 궁중신하들은 놀랍게도 거친 파도가 왕의 위엄을 조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노인(아래) 옆에는 "내 지혜로 인하여 나는 어리석어졌노라."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노인은 불모의 황야에 서 있는 리어왕을 연상시킨다.

재능 있는 예술가 리처드 버비지의 자화상. 시어터 극장을 건립한 제임스 버비지의 아들인 그는 챔벌린 극단의 스타급 배우가 되었다. 리처드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을 도맡아서 공연했다. 존 매닝햄은 1602년에 이런 일화를 남겨 놓고 있다. 버비지가 《리처드 3세》를 공연하고 있을 때 연극을 관람한 한 귀부인이 버비지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이것을 엿들은 셰익스피어는 리처드보다 먼저 그 귀부인의 집에 갔다. 마침내 그 부인의 집에 나타난 버비지는 정복왕 윌리엄이 리처드 3세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말을 셰익스피어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동시대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고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육필 원고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프랜시스 미어스의 《팔라디스 타미아》에서 발췌한 문장.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이 읽혀지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상연되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소네트》(1609년 판의 속표지)는 별도의 문제였다. 소네트에 대해서 시인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어쩌면 내가 그대의 묘비를 쓰게끔 오래 살지도 모르고, 어쩌면 내가 흙 속에서 썩고 있을 때 그대 살아 있을 것이라. 어쨌든 그대의 기억은 죽음도 빼앗아 가지 못하리라. 내게 속하는 모든 것이 다 잊혀진다 해도, 그대의 이름은 이 시로 영생하리니, 나는 한번 죽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끝나지마는……. 그대는 언제나 살리라. 내 붓은 그런 힘이 있나니, 숨결이 약동하는 곳, 사람의 입 속에서."

(《소네트》, 81)

셰익스피어가 출판을 승인한 권위 있는 텍스트인 '굿 쿼르토' 중 한 권의 속표지.

수수께끼 인물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누구였을까? 많은 비평가들은, 1623년 퍼스트 폴리오 판에 수집된 뛰어난 작품들을 쓴 사람과 배우 셰익스피어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다. 어떻게 장갑제작자의 아들이 작품 속에 보이는 뛰어난 고전, 법률, 기술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궁정신하들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었을까? 철학자, 저자, 정치가인 프랜시스 베이컨과 더비 백작, 옥스퍼드 백작, 에섹스 백작 등이 실제의 셰익스피어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추측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추측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에 모아 놓은 초상화는 모두 셰익스피어를 그린 것이다. 첫번째 것이 '플라워' 초상화이고 두번째가 '엘리 팰리스' 초상화, 네번째는 워싱턴 D.C.의 폴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초상화이고, 세번째는 제라드 소스트가 그린 초상화이다.

서적 판매업은 런던의 성 바오로 대성당 주변 지역에서 번성했다. 셰익스피어는 이 지역에서 잠깐 살았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도 살앗다. 책의 초판은 보통 몇백부에 불과했고 《성서》나 종교서적 같은 경우에는 몇천 부까지 찍기도 했다. 서점을 그린 이 그림은 1689년 작품이다.

 

제4장

엘리자베스 1세, 신화와 과대선전

 

신민(臣民)이 자신을 처녀 여왕(Virgin Queen)으로 알아 주기를 바란 엘리자베스 1세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이미지를 이용했다. 여왕은 로마 시대의 달의 여신이며 순결한 사냥꾼인 다이애나에, 정의와 순결의 여신인 아스트라이아에 비유되는 것을 좋아했다. 당대의 모든 작가들이 그랬듯이 셰익스피어도 여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했다.

 1588년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의 명령을 받고 영국 침공을 감행한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대패하고 말았다. 이 역사적 사건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구교 세력을 무찔렀다는 상징으로 작용한다. 위의 그림은 개선군을 격려하기 위해 템스강 하구의 틸버리를 방문하는 여왕을 그리고 있다. 그림 배경에서 불타고 있는 것은 적함들이다. 전사 여왕의 이미지와 대조적으로 작은 초상화(아래)는 우아미를 간직하고 있다.

니콜라스 힐리어드가 제작한 보석의 앞면(위)에는 순결의 상징인 튜더가의 장미가, 뒷면(아래)에는 성스러운 대피소를 뜻하는 노아의 방주가 그려져 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퇴하고 난 뒤 반(反)구교 선전행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여왕은 이때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제로 칭송되었다. 무명씨가 그린 이 '아마다' 초상화(1588년경 제작)에서 여왕은 지구의에 오른손을 얹고 있다. 악마의 세력을 물리친 여왕은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여왕의 초상화

위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화는 치세시에 여왕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무척 화려한 여왕의 옷과 장식품들은 여왕의 미덕과 권세를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여왕이 손에 쥐고 있는 체와 깃털(첫번째, 두번째)과 옷에 장식된 하얀꽃(다섯번째)은 순결의 상징이다. 가슴에 놓인 손과 손에 쥔 무지개(세번째, 네번째)는 여왕의 광휘를 한층 더 빛내 주고 있다. 마커스 기어라어트 2세가 그린 초상화(다섯번째)는 여왕이 헨리 리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왕은 이 초상화에서 지구를 밟고 서 있고 여왕의 발은 리의 저택이 위치한 옥스퍼드셔를 가리키고 있다. 여왕은 치세 초기에 고대신화 속의 여러 인물들과 비견되었다. 무명씨가 그린 다섯번째 그림은 비할 데 없는 권세와 지혜와 아름다움을 지닌 세 여신 엘리자베스가 등장하자 주노, 아테나, 비너스가 무색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잔치와 무용을 좋아하는 활기찬 여왕이었다. 그래서 잔치와 무용은 궁중생활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다. 잔치 장면을 다룬 다룬 이 그림에서 여왕이 가보트(gavotte) 춤을 추고 있다. 《헨리 5세》(3막 5장)에서 영국군의 맹추격을 받아 퇴각하는 프랑스 병사들이 나누는 아니러니컬한 대사를 보면 이 춤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를 살필 수 있다.

"도핀 : 사실이오. 귀부인들이 우리를 비웃겠는걸…….

부르봉 : 우리에게 영국 무용학교에 가서 높이 뛰는 라볼타 춤이니. 속도가 빠른 코란토 춤을 가르치라고 할 겁니다. 우리는 발꿈치에 유일한 특기를 지닌 날쌘 도망꾼이라고 하면서."

갑옷을 입은 서섹스 백작의 초상화는 1593년에 제작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기거하던 궁전 중 이름이 높았던 서리의 논서치궁(요리스 후프나헬 그림)이다. 논서치궁은 1680년에 철거되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정원

엘리자베스 시대의 정원은 엄격한 원칙에 따라 조성되었다. 화단은 네모꼴 혹은 매듭꼴로 만들어졌다. 그 같은 장식적 효과는 17세기 초의 정원 디자인(아래)에 잘 드러나 있다.위의 정원도는 조스 드 몸퍼가 1633년에 그렸다. 화단의 꽃과 야채는 색깔, 꽃피는 시기, 열매 맺는 시기 등을 감안하여 선택되었다. 생울타리는 기하학적 문양이나 동물의 모습을 모형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귀족의 저택 정원에는 미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극 중에는 '닫힌 정원'의 이미지를 즐겨 쓰고 있는데, 특히 《리처드 2세》(3막 4장)에서는 이 정원이 난맥을 이룬 그의 왕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쓰였다. "이렇게 울타리에 둘러싸인 마당 안에서, 뭣 때문에 법이다 형식이다 균형이다 하고 까다로운 걸 지키고, 설계도처럼 우리들의 조건을 구태여 내보일 필요가 뭐 있습니까? 바다에 둘러싸인 정원인 이 나라 전체가, 잡초투성이이고, 제일 고운 꽃들은 숨이 막히고, 과일나무는 손질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고, 생나무 울타리는 다 못 쓰게 되고, 잘 꾸민 화단은 다 볼품도 없이 되고, 좋은 초목이 다 벌레투성이가 된 이때에,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로버트 플라드는 대우주(우주)와 소우주(인체)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심오한 논문을 썼다.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1막 3장)에 나오는 율리시스는 그런 우주관을 갖고 있다. "유성과 지구, 아니 천체 그 자체도, 계급, 선후관계, 위치, 방침, 방향, 사철, 형태, 직권, 습성을 질서 있게 준수하는 법입니다. 오, 모든 고상한 계획으로 이끄는 사다리와도 같은 이 질서가 흔들리면, 일은 글러 버립니다.

여왕의 상징적 영토를 그린 1588년의 그림.

아이작 올리버가 1590년 무렵에 그린 젊은 젠틀맨의 그림은 셰익스피어 극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의 지치고 우울한 모습을 잘 보여 준다. 특히, 《좋으실대로》(4막 1장)에서 제익스가 대표적이다. "내 우울증은 경쟁심에서 오는 학자의 우울증도 아니요. 음악가의 변덕스러운 우울증도 아니며, 벼슬아치의 거만한 우울증, 야심에서 오는 군인의 우울증, 법률가의 교활한 우울증, 아낙네의 까다로운 우울증, 또는 이것들을 다 합친 연인의 우울증도 아니거든, 그것은 여러 가지 물체에서 뽑아 낸 많은 성분이 합성된 특유한 거야. 나는 늘 여행에서 보고 들은 일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데, 그때마다 야릇하게 울적해진단 말이야."

셰익스피어 시대의 의술은 고문이나 별다를 바가 없었다. 배냇점은 악마의 소행이라고 인식되었고, 존 디 같은 학식 높은 점성술가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혼란스러워할 정도였다.

 

제5장

새로운 세계

 

엘리자베스 1세가 죽고 제임스 1세가 뒤를 이었다. 마키아벨리즘이 승리를 거두었고 반대의견은 설땅을 잃고 말았다. 이제 셰익스피어는 더 이상 낙관주의자일 수 없었다. 불안, 불확실성, 환멸이 연극계를 지배했다. 인생은 한낱 가면극에 지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1세의 죽음은 셰익스피어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여왕의 치세 말기에 이미 명성이 확립되어 있던 셰익스피어는 재코비언 시대에도 계속 극을 써 나갔다. 이 그림은 1623년에 발간된 퍼스트 폴리오의 속표지이다.

1567년부터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1세는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가 타의에 밀려 양위하자 1603년에 영국의 왕이 되었다. 이 초상화는 1610년에 존 드 크리츠 1세가 그렸다.

장엄한 행렬이 따르는 가운데 1603년 4월 28일에 여왕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위, 가운데) 군중이 말의 뒤를 좇았고 만장이 하늘 높이 날렸으며 미늘창은 땅을 향했다. 장례식 직후 흑사병이 또다시 런던 지역을 덮쳤다. 제임스 1세(아래)는 1604년이 되어서야 런던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헨리 6세》 제1부 서두에서 베드퍼드 공이 이렇게 외친다. "하늘에 검은 휘장을 쳐서 낮을 밤으로 하여 주시옵소서. 시국의 변을 알리는 혜성이여! 너의 수정 같은 머리털을 공중에 휘둘러 헨리왕의 죽음을 꾀하도록 한 반역의 나쁜 별들을 채찍질해 다오. 성덕이 지극하여 단명하신 헨리 5세 왕이여!" 그의 대사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에서 그대로 읊조린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제임스 1세 치세 초기에 쓴 극들은 회의, 환멸, 심지어 비관주의까지 드러내고 있다. '문제극' 중 하나인 《법에는 법으로》에는 부패한 빈 사회가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이사벨라의 냉정한 미덕은 안젤로의 위선적인 악덕만큼이나 혐오스럽다. 새로운 군주 제임스 1세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작은 비록 막후에서 전체적인 선(善)을 위해 노력하지만 베일에 가려 남아 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퇴락의 과정 속에서도 매혹과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런 느낌이 결국에는 승리하여 두 주인공을 파괴시킨다.

가이 포크스와 그 일당(1625년 그림)

벤 존슨은 자신의 첫 희곡을 셰익스피어 극단에게 주어 상연했는데 그의 명성은 제임스 1세 시대에 들어와 더욱 높아졌다. 왕은 벤 존슨에게 겨울동안 궁중을 즐겁게 하기 위한 가면극의 극본을 의뢰했다. 박식한 고전지식, 시인으로서의 명성, 그리고 경쟁의식이 없었던 셰익스피어와의 친교 등이 원인이 되어 벤 존슨은 저명인사가 되었다. 이 초상화는 에이브러햄 밴 블라이엔바치의 그림을 모방할 것이다.

후에 영국의 국왕 제임스 1세가 되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쓴 《악마학》 논문의 속표지.

벤 존슨은 소도구와 무대장치를 담당한 이니고 존스와 협력하여 약 30편의 가면극을 썼다. 이 화려한 극은 대부분 단발 공연으로 그쳤다. 이니고 존스가 그린 이 두 점의 수채화에서 보이는 화려한 의상은 귀족들, 왕 또는 왕비가 그 비용을 지원했다. 왕과 왕비는 연극에 직접 참가한 적도 있었다. 우아한 의상, 세련된 부대장치, 기발한 기계장치, 그리고 아라베스크(arabesque, 한쪽 발을 뒤로 곧게 뻗고, 한쪽 팔을 앞으로, 다른 팔은 뒤로 뻗치는 자세) 동작과 어우러지는 화려한 빛깔의 전개마저 곁들여져 벤 존슨은 그 가면극을 '궁중의 상형문자'라고 불렀다.

엘리자베스 시대는 위대한 여행가의 시대였다. 월터 롤리 경(위, 1585년경에 니콜라스 힐리어드가 그린 초상화)은 1595년에 버지니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기대하던 황금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미지의 식물이던 담배를 발견했다. 담배는 새로운 악이 되었고 청교도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1608년에는 존 스미스 선장이 체사피크만을 탐험했는데, 그는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를 데리고 귀국했다. 아래 그림은 버지니아를 그린 17세기 지도.

블랙프라이어즈 극장은 런던의 다른 건축물, 즉 미들 템플(위)과 차터하우스(아래)를 닮았다.

그가 속해 있던 극장이 불타 버릴 즈음 셰익스피어는 런던을 떠나 뉴 플레이스로 은퇴했다. 이곳은 그에게 많은 은전을 베풀었던 스트래트퍼드의 휴 클롭턴 경이 전에 살던 집이었다. 이 17세기 그림은 뉴 플레이스 저택이 박공이 다섯 개나 되는 거대한 3층 건물이었음을 증언해 준다.

극적인 장관

19세기 역사화의 전통을 충실하게 지켰던 화가 대니얼 매클리스는 햄릿이 네덜란드 궁정에서 '곤자고의 살해'를 실연하는 그 유명한 장면을 화폭에 옮겼다. 햄릿은 그 연극의 진행과정에서 아버지의 망령이 가르쳐 준 대로 왕을 죽인 범인이 숙부 클로디어스라는 사실이 폭로되기를 바란다. "죄지은 놈이 연극을 보다가, 하도 근사하게 꾸며졌기 때문에 그만 감동되어 제 죄상을 다 털어놓은 일이 있다지, 흔히 있는 이야기, 살인죄는 입이 없어도 스스로 실토하게 마련이거든, 신기한 노릇, 아까 그 배우들을 시켜, 숙부 앞에서 아버님 살해 장면을 연기하게 해야겠다. 그때 눈치를 살펴 급소를 찔러 보는 거야. 그래서 움찔이라도 한다면 더 이상 주저할 것 없지."(《햄릿》, 2막 2장)

셰익스피어는 워윅 변호사 프랜시스 콜린스가 작성한 석 장에 달하는 유언장에 모두 서명했다.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친필이다.

스트래트퍼드에 있는 셰익스피어 기념비.

 

"태양의 열도 겨울의 혹독한 추위도 겁낼 것 없네. 이 세상에서 그대의 시련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갔네.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먼지 쓸 듯 다 지나가는 길."

《심벨린》, 4막 2장

1623년에 출간된 《퍼스트 폴리오》의 페이지들.

셰익스피어 유언장의 맨 마지막 페이지. 맨 밑에 입회인들의 이름이 보인다. 유언장은 변호사가 작성했고, '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만이 그의 친필이다.

1988년 발굴 당시의 로즈 극장 기초 부분(사진 위쪽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콘크리트 슬래브와 기둥은 현대식 사무실 건물에 속하는 것이므로 무시할 것). 주요 흔적으로는 외벽, 복도의 내벽, 관객들이 서 있던 공간, 원래 무대 자리, 극장이 북쪽으로 확장되면서 무대가 늘어난 자리 등을 들 수 있다.

1609년 발간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집》에 부친 신비한 헌정문.

1594년에 발간된 《루크리스의 능욕》의 헌정사 페이지.

앤더슨이 분장한 맥베스.

《코델리아의 시체를 붙들고 통곡하는 리어왕》, 제임스 배리의 그림을 모사한 18세기 판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포샤의 정원. 윌리엄 호지스의 그림을 모사한 1795년 판화. 이 그림의 고전적인 구도는 니콜라 푸생에게 영감을 받은 것이다.

리처드 3세로 분한 데이비드 개릭. 윌리엄 호가스의 원작을 모사한 판화(1745년). 전투 전에 잠이 들었다가 악몽을 꾸고 깨어나는 리처드 3세를 보여 주고 있다.

낭만적 화풍으로 그린 햄릿과 그의 아버지의 망령. 헨리 푸셀리의 그림을 흉내내어 그린 18세기 후반의 그림.

조슈아 레이놀즈 경이 1773년경에 그린 리어왕.

오펠리아의 죽음을 사실적으로 그린 존 에버렛 밀레이스의 유명한 그림(1851~1852). 《햄릿》에서 여왕이 오펠리아의 죽음을 묘사한 말을 그림으로 재현한 것.

햄릿으로 분장한 존 필립 켐블(1783).

햄릿으로 분장한 존스턴 포브스 로버트슨.

햄릿으로 분장한 존 길거드(1934).

헨리 5세로 분장한 로렌스 올리비에(1944).

피터 그리너웨이가 연출한 《프로스페로의 책》(1991)에 출연한 존 길거드.

그대로 보존된 셰익스피어 생가. 1769년의 모습.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21 HOW TO READ 성경 Bible

 

리처드 할로웨이 지음 | 주원준 옮김

2007,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820

 

082

하66ㅇ v. 10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내부에 이미 강력한 힘이 깃든 거룩한 책, 성경

 

어떻게 읽으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해 잇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생애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에서는 시작, 약속, 연관, 유배, 고통, 구원자, 도전, 비유, 사도, 종말이라는 키워드로 성경 속에 담긴 무한하고 거부할 수 없는 진리를 탐구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제기된 문제들, 즉 사회적 평등, 국가적 평등, 양성 평등, 전쟁과 평화, 핵, 환경오염, 동성애, 낙태, 통일, 종교 간의 대화 같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사안들에 대해 과연 성경은 무어라 하는지, 또 독자들은 어떻게 알아듣고 있는지 살펴본다. 현대사회에 제기된 이와 같은 문제들이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성경에 관한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리처드 할로웨이 Richard Holloway

에든버러와 그레섬의 주교이자 신학부 교수이다. 영국 왕립 자연과학학회의 특별회원이며 스코틀랜드 예술평의회의 의장이기도 하다. 현재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하느님이 빠진 윤리》《회의와 사랑》《거리 두고 보기》 등이 있다.

 

주원준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구약성경을 전공했다.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의 언어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남성서연구소 연구원이며, 지은 책으로 《한국의 종교문화와 뉴에이지 운동》이, 옮긴 책으로 《고대 신화와 성서의 믿음-성서가 수용한 고대 근동 신화》《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등이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생애 꼭 한번 읽어야 할 책, 성경


1 시작, "너 어디 있느냐?"

    : <창세기>

2 약속,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탈출기>

3 연관, 종교와 사회적 윤리

    : <신명기>

4 유배, 오래된 갈등의 역사

    : <이사야서>

5 고통, 성경의 가장 어려운 주제

    : <욥기>

6 구원자, 메시아의 출현

    : 4대 복음서

7 도전, 산상설교

    : <마테오 복음서>

8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

    : <루카 복음서>

9 사도, 이방인들의 사도

    : <사도행전>

10 종말, 최후의 심판

    : <요한 묵시록>


■ 주

■ 연대표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역자 후기 : 인간의 삶 속에서 거듭나는 영원한 진리

 

1

시작,

"너 어디 있느냐?"

: <창세기>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알려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2

약속,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탈출기>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습니까?


3

연관,

종교와 사회적 윤리

: <신명기>


오늘날 우리는 종교와 사회적 윤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시대에는 매우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강자가 약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인간적 연대성의 윤리를 모든 권능의 원천이신 하느님과 연결시키는 것은, 윤리의 발달사에서 한 단계 굵은 선을 그으며 도약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4

유배,

오래된 갈등의 역사

: <이사야서>


이사야서는 과거를 예언자의 시각에서 성찰하며 남왕국의 위대한 이야기 세 토막을 전해준다.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한 유다에 경고하고, 예루살렘의 패망은 피할 길이 없으며 뒤따라 유배가 올 것이고, 그러나 그들이 유배지로 내쫓긴 곳에서 돌아와 나라를 다시 찾을 것이란 희망이다.

이사야서는 한 시대를 기술하는 단일한 책이 아니라, 적어도 두 권이나 세 권의 책이 합쳐진 것으로서 약 200년간의 역사를 다룬다.


5

고통,

성경의 가장 어려운 주제

: <욥기>


욥은 사람을 억누르는 권력을 지닌 공식적 사상에 맞선 역사의 숭고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그 공식적 사상엔 하느님에 대한 사상도 포함되었다.

욥기는 이런 저항의 전통을 낳아 히브리 지적 전통을 더 풍부하고 용기 있게 만들었다.

욥은 신앙인이 당하는 고통이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은 하느님께서 악인에게 내리시는 벌이라는, 질기게 남아 곤경에 빠진 사람의 발목을 잡는 이 이론을 효과적으로 파괴해버린다.


6

구원자,

메시아의 출현

: 4대 복음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7

도전,

산상설교

: <마태오 복음서>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8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

: <루카복음서>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타적 선을 실천한 훌륭한 모범이다.

곤란한 형편에 빠진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단체 가운데는 이 이름을 딴 것도 있다.

'인정 없는 위선자'는 사람들 생각에 종교의 특징이 되었고, 그런 위선자를 가리키며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버렸다"란 말을 쓰곤 한다.

아마 한 번쯤 이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하길 '이런 사람들은 말로는 이것이라 하지만 행동은 저것을 한다.'

곧 '그건 바로 위선이다'.


9

사도,

이방인들의 사도

: <사도행전>


우리가 그의 신학을 어떻게 이해하든, 이 나이 든 한 인간의 사상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숭고하고 감동적인 면이 있다.

절박한 마음으로 선교에 생애를 바치고, 초췌해진 뒤에도 죄수 신분으로 쇠사슬을 두르고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러 간 것이다.

그 나머지는 과장된 요소 없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다.


10

종말,

최후의 심판

: <요한묵시록>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20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1

 

811.6

고67만 3

 

창비전작시---------------------------------------------------------------------

 

"우선 내 어린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고 한 작자의 말대로, 이번 세 권은 주로 어릴 때 알던 고향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들을 제대로 논하려면 마땅히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당장의 뿌듯한 감회는, 어떠한 가난이나 고난 속에서도 끊길 줄 모르고  이어져온 이땅 위 삶의 기쁨과 보람이다. 또한 이 기쁨과 보람을 담은 시인의 말, 겨레의 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며, 작자 자신도 이야기한 바 그 말 앞에서 삼가는 마음이다.

『만인보』의 서사적 풍요는 차라리 소설문학의 성취를 떠올린다. 그리고 고은 자신의 『전원시편』에 비해서도 "첫가을에 백리가 트인다"는 그의 시구대로 무언가 툭 트였다. 더러 장황하던 대목이 크게 가셨고 농사꾼의 일하는 기쁨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어떤 착심 같은 것도 자취를 감추었다.

- 백낙청(발문 중에서)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서문 밖 / 추석날 / 웃말 사람 / 뒤엄 / 선묘 / 도식이 아저씨네 집 / 잿정지 호박밭 / 김병천 / 도깨비불 / 굼벵이 새끼 / 외할머니 단짝 / 상술이 아버지 / 한 고려 군수의 풍류 / 반나절고개 / 나운리 가게 / 천읍 / 장마 뒤 / 똘 / 변산 대도 / 면장 고수장 / 옥정골 미친년 / 김양규 / 옥남이 어머니 / 신라 대안 / 이년아 / 산북리 아이들 / 모 심을 때 / 막내딸 / 효조지 마누라 / 턱점백이 / 갈퀴손 / 김기태 / 말봉이 어머니 / 유대치 / 턱점백이 신랑 / 동네 도둑 / 천덕꾸러기 / 2학년 담임선생 / 기생 초월 / 문옥자 / 벽 / 상복이 마누라 / 수진이 아버지의 풍류 / 정거장 / 미제 방죽 / 묵은 장 / 관노 또쇠 / 사랑재 사람 / 굶는 집 / 옹달샘 / 고조할아버지 / 삼 년 가물 / 노랑머리 / 자장 / 진구 에미 / 윗뜸 우열네 집 / 상묵이네 밭 / 도식이 할머니의 잔소리 / 사행이 아저씨의 아버지 / 진표 / 널뛰기 / 소반장수 / 차천자 / 이모부 동생 / 원수 / 나까무라 요네 선생 / 백광운 / 서낭당 / 상필이 형제 / 미쓰이 백화점 / 기백이 마누라 / 왕산악 / 개마고원 사냥꾼 / 귀녀 / 두문동 / 아베 교장 / 물캐똥이 / 병만이 아버지 / 종달새 / 은석이 누이 / 늙은 혁명가 걸걸궁상 / 이종남 / 논두렁 / 영창대군 / 허수아비 / 눈먼 상식이 어머니 / 두렁쇠 / 귀신 / 궁녀 옥야 / 고모네 집 뱃노래 / 진골 노름꾼 / 논개 / 칠성암 주지 / 아이들 싸움 / 백결선생 / 개똥벌레 / 한냥고개 / 옥정골 오리나무 / 신촌 예배당 / 소금장수 김두원 / 태성옥

跋文 『만인보』를 읽으며

찾아보기

 

서문 밖

 

옥정골 재 넘으면

서너 가호 뜸마을 있지요

에미는 생것장수로

박대 도다리 따위 함지박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도는데

어린아이 호묵이란 놈

에미 대신

솔가루나무 한 구럭 다지고 다져 해오지요

신통하기도 하지요

신통방통하기도 하지요

제법 두메라

금낭화 족도리꽃 호젓이 피는데

어린 호묵이란 놈 콧구멍 할미 들락날락하는데

나무 한 구럭 지고 내려오는데

느닷없이 뛰어가는 놈

산토끼 한 마리에

그만 놀라 나무 구럭 기우뚱 넘어지고 말았지요

순한 것끼리도 심심풀이로다가

달아나고

넘어지고 하지요

 

잿정지 호박밭

 

처서 무렵

늦호박꽃 뒤덮인 밭

비탈 일구어

척박한 비탈에는

호박이 제격이지

호박꽃뿐 아니라

호박깨나 열려 있는데

미운 맏며느리 뒤통수로 열렸는데

그 가운데

애호박도 눈에 번쩍 하는데

애호박 따는 큰애기 덕순이 홑적삼에 땀 들어간다

여름 다 갔구나

그 큰 여름 다 갔구나

중매 들어올 때마다

어느 귀신이 어깃장 놓는지

혼사마다 틀어지고 마는 덕순이

암 올해 동지까지는

호박떡 호박죽 호박고지 먹고

내년 춘삼월에는 시집가야지

어릴 때 떼 잘 써서

떼장이였던 덕순이

이제 눈에 세상 들어가

오마나 소리도 없이

눈 속에서 아귀 트는 겨울풀 보아도

오마나 소리도 없이

입 무거운 덕순이 시집가야지

 

반나절 고개

 

나운리 미제 사이 독점고개

황톳길

눈 녹는 날

그 고개 넘으려면

발 푹 빠져 반나절 걸린다

그래서 반나절고개

비 온 뒤

그 고개 넘으려면

반나절도 더 걸린다

그래서 반나절고개

진흙이 사람 발 안 놓아준다

빠졌다가 자빠졌다가

천하에 둘 없는 양반 거들먹거리는 양반

나운리 김재홍 영감땡감아

독점고개 한번 넘어보아라

네가 양반인지

황토구더기 진흙인지

반나절고개 넘어서

자갈길 나서면

토탄 캐는 논 바라보며

자갈길 나서면

그때의 맛이라니

살맛이라니

걸음에 새 힘 나서 성큼성큼

발굽에 바람 나서

김재홍 영감땡감 손자 손녀야

너희들일랑 제발 우자부리지 말어라

이 세상은 함께 사는 세상일 터

제발 덕분 버티지 말어라

땅 밟는 주제에

땅에 묻힐 주제에

 

변산 대도

 

예로부터 부안 변산

백제 유민들

세상 등져 살던 곳이렷다

백사 청송길 올라가

내변산 외변산은

대대로 독립처사 산채 가는 길이렷다

거기에

사천왕상이라기도 하고

장각 비각이라기도 하는 큰 도적이 있었으니

성이 박씨라 박장각이렷다

어찌나 걸음 하나 날으는지 장각이요 비각이렷다

하루 5백리 달리고도

소매자락 바람소리 자면 섭섭하렷다

본디 남의 싸움 말리다가

사람 죽인 뒤

늙은 어머니 업고

변산 골짜기 숨어들어

화전 일궈

사냥질 해먹고 사는데

거기에 도적떼 나타난 이래

그 도적에 끼어들어

상수리나무 하나 뽑아올려

땅이 맷방석만치나 솟아오르며 뿌리째 뽑아올려

마침내 산채 두령이 되어

3백 도적 거느리고 나섰것다

소두령 거느리고

졸개 거느리고

산채 식구들 다 거느리고

말 타고 견마 잡혀

부담농 실은 구종별배 거느리고

위엄 떨치며

대낮에 부자집 들어가 다 털었것다

누가 보기에도

그 집에 세도대가 빈객이 왔지

어찌 도둑 일행이겠느냐

이런 행차로

산채에 물화가 풍족하니

못 먹어 도둑 된 식구들 목구멍 원 푸는데

그러다가 졸개들이

영장 토포사에 무더기로 잡혀버리니

그들을 풀 생각에

영장나으리하고 담판하여

도적질 그만두어버렸것다

변산 빈 산채

누가 또 들어가 대대로 도적질 이어가렷다

 

천축 성현이여

곡부 성현이여

이 세상에 도적 없는 때 언제더이까

 

정거장

 

군산역 첫차 타고

떠나는 삼촌

그 삼촌 손 들어 작별하던 곳

얼마나 멋지던지

잿정지 길상이

아버지하고 돌아오며

연신 산에 대고

손 흔들었다

매놓은 소 보고

손 흔들었다

정거장 한번 다녀오면

그것이 큰 자랑이라

한 달 두 달은

그 자랑으로 살 만했다 신났다

나는 길상이가 부러웠다

우리집은

백년 가야

누가 정거장 갈 일 없다

떠나는 사람 없다

그것도 가난이라

그러나 길상이 그애가

미친개 물려

미친개처럼 마구 짖어댔다

나는 길상이가 무서웠다

할미산에 올라가

기적소리

기차 연기 바라보다가

정거장 생각하다가

미친 길상이 생각나자

다 그만두고 내려와버렸다

집에 와

술 취한 할아버지 보고 마음 놓았다

 

미제 방죽

 

미제 방죽 연꽃 다 떠나가버리고

그냥 맨물만 남아 가득할 때

여름마다

비 온 뒤 피던 연꽃 못 보고

그냥 맨물 가득할 때

거기에 돌 하나 던져

툼벙 ! 물소리 난 뒤

미제 아이들

용둔리 아이들

뚝길에 모여

연꽃 와라 연꽃 와라 연꽃 와라

외쳐댔지만

1945년 이래

비 오는 날

연잎사귀로 우산 받던 연 오지 않았다

연이 오기는커녕

물 속에서 마른 연줄기들이 썩어버렸다

그리고 6 · 25가 왔다

사람들이 서로 죽였다

우익과 좌익이여

 

묵은 장

 

새 장터보다

묵은 장에 더 먹을 것 푸짐하다

그러나

빈털터리 아버지 따라간

상진이

그 많은 먹을 것 그냥 지나간다

침도 못 삼키고

눈만켜고

이 세상은 절대로

먹고 싶은 것 공짜로 먹을 수 없다

돈 없이 먹을 수 없다

어린 상진이

열두 살에

진리 깨쳤다

배고팠다

 

옹달샘

 

용둔마을 옹달샘 하나 없었다면

무얼로 마을 삼으랴

그 옹달샘 어두운 물에

함박눈 하염없이 내려

없어지는데

그 고요 고요 고요

하필 눈 맞고

물 길러 간 양술이네 쪼깐이

작은 물동이 내려놓고

물 긷는 쪽박 든 채

눈송이 죽는 것 보는

고요 고요 고요

 

서낭당

 

서낭당에 돌 던져

 

가는 길 무사하기를 빈다

아버지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네 살만 되면 돌 던진다

서낭당에 돌 던져

미운 사람 잘못되기를 빈다

손해보기를 빈다

그러나 미운 사람 죽기를 빌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농사꾼의 묵은 저주이며

아무리 모진 사람도

여기까지가 저주이다

그런데 일제 말

배 곯을 때

눈 뒤집힌 사람들

걸핏하면 돌 하나 던져

부자 아무개 자식 죽게 해달라고

부자 아무개 애비 고종명하지 말게 해달라고

빌어 마지않았다

서낭당 돌무더기 자꾸 쌓였다

그 비는 것

박대곤이 여편네가

부자집에 고자질해서

빈 사람 수동이 녀석

부자집 가네오까네 바깥마당에 불려가서

그 집 머슴에게

그 집 큰아들 가네오까 다로에게

몽둥이찜질 당하였다

그 뒤 수동이 녀석

한밤중 부자집 가네오까네 집에 돌 던졌다

서낭당에 던지는 대신

던지며 비는 대신

귀신 형용으로

부자집 안방 창호지 뚫었다

그러다가 주재소에 잡혀갔다

콩밥 먹었다

한 달 콩밥 먹고 돌아왔다

늘 울었다

개가 짖었다

 

미쓰이 백화점

 

군산 3층 미쓰이 백화점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무서웠다

처음 보는 찬란한 물건들이 무서웠다

일본사람 조선사람이 무서웠다

기어이

아버지와 나는

백화점 여자에게 쫓겨났다

이 백화점에는

당신들이 살 것이 없다고

묵은 장에 가라고

새 장터에 가라고

아버지는 쫓겨나와 웃었다

백화점 돌아다보고

야 오라고 해도 안 가겠다

나를 보고

저기 가 국밥 사 먹자

도회지는 무서웠다

2층 창으로 일본아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얼굴이 하얀 아이

좋은 옷 입은 아이

나는 그애가 무서웠다

뚜우 하고

항구의 기적소리가 났다 무서웠다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 건

우리 동네 풀이다 잔소나무다

우리 동네 짖을 줄 모르는 개들이다

 

두문동

 

송도 부조현 고개 너머

칙칙한 솔밭

개풍 광덕산 밑 두문동입니다

이른바 고려 유신 72현 두문동입니다

신씨 조씨 고씨 서씨 임씨 맹씨들의 두문동입니다

이성계 등극에 등돌려

제 자식 제 손자 대대에 이르기까지

농사 장사에

망한 족속의 삶을 걸었읍니다

여기서 개성상인도 나고

여기서 개성 인삼재배도 나왔읍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망한 나라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 망친 나라가

고려입니다

섣불리나마 칼 한 자루 들어보지 않고

어허 슬프고녀 슬프고녀 하고

사라진 왕조의 쑥밭 쪽에 대고

슬픈 노래 읊조리고만 있었읍니다

그들 72현은 그렇다 치고

그들의 자식 손자는 왜 두문동 처사로만 있게 하였읍니까

고려 유신 72현이 아니라 72인 어리석은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나 거기서 장사 기술 썸뻑 익히고

인삼 재배 솜씨 으뜸이 되었으매

결국은 어진 사람은 어진 사람이었읍니다

보시지요 어느 나라에도

그 나라 중견 관리의 충성은 이것입니다

이것밖에는 더도 덜도 아닙니다 72현입니다

 

논두렁

 

두벌 김매는 날

아버지 정두네 김매는 날

점심때 되면

어머니는 그 집 밥광주리 이고 가고

나도 따라가

우선 두 식구 점심은 잘 때운다

농사꾼 밥 인심 하나 있어

굶는 집이야 모르쇠하건만

이런 들밥 인심 좋아

고봉밥 쌀 섞은 밥 한 사발 베어먹으며

찐 갈치토막 떼어먹으며

돼지비계국 마시다가 입 떼며

배부르고 나서 헤픈 웃음

누가 싱건지 같은 소리만 해도

나오는 눗음

그러나

정두네 김매는 날

정두 할아버지

양산 받고 논두렁 나와

김매기 앞장선 풍장꾼 셋더러

풍장 그만 치게 하고

그 세 사람도 김매게 한다

푸짐하던 풍장소리 뚝 끊기자

잘 되던 일

흥겹던 일 맥 놓아버리는데

불볕은 더 내리꽂히는데

 

한냥고개

 

화성 십 리 밖에 지지대가 있것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 다녀가다가

돌아다보고

돌아다보고 하는 곳이어서

신하들이 일부러 어가 행렬을 늦췄것다

그런데 이 고개가

임금고개 지지대고개 되기 전에는

한냥고개 도적고개였것다

과객이 고개 넘을 때마다

어디서 말소리 들리는데

그 소리인즉

한 냥만 내고 가거라

그냥은 못 넘어간다

어떤 사람은 갖은 꾀 다 내어

그저 다섯번째 넘는 판인데

이 거사야

다섯 번이나 공짜배기로 넘어가느냐

한 냥만 내고 가거라

화성고을 백성들 일컫기를

한냥고개 도적은 도적이 아니라

미륵당 미륵불이라 하였것다

때는 중종 조광조파가 무너지고

남곤이 권세 잡았으니

호조 창고에 곡식이 없어도

남정승 창고에는 쌀이 썩어나는 판이렷다

6도 재물이 다 들어와 썩어나는 판이렷다

바로 이때

한냥고개 한냥도적 뜻한 바 있어

이 고개 작파해버리고

관악산 도적 백 명을 거느려

남정승 집 탈탈탈 털어버렸것다

두목 배서방이 바로 한냥고개 도둑이렷다

그 뒤로 도둑고개가

지지대 임금고개 되었것다

그 뒤로 임금고개가

아리 아리 아리랑고개 되어

뭇 백성 넘었것다

넘어 간도땅으로 숟가락몽댕이만 가지고 갔것다

 

신촌 예배당

 

신촌 앞산 예배당은

기역자로 되어

저쪽은 여자

이쪽은 남자

기역자 모서리에 목사님 섰다

목사님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면 저쪽에서는 우는 소리 나는데

이쪽은 싱겁다

목사님이 기도하면

저쪽에서는 아멘하는데

이쪽은 가만히 있다

그 뒤 목사님 떠나버리고

신촌 조달연씨가 장로로 예배 보았다

조는 사람이 많았다

일하는 사람들이라

앉아 있으면 잠이 왔다

장로 조달연씨가 목사보다 좋았다

꾸벅꾸벅 조는 사람 깨지 않게

설교도 기도도

큰 소리 내지 않고 마쳐주었다

꿩 대신 닭이 좋았다

다 해진 성경책이라

다른 사람의 것 빌려다 보는

조장로님이 좋았다

아이들도 좋아했으나

동네 개들도 좋아해 꼬리 내둘렀다

눈 펄펄 내리는 날

주일날

내앵 내앵 종소리 나면

동네 아이들하고 개하고 함께 뛰어갔다

앞산 예배당

떡 주는 예배당

기역자 예배당

조는 예배당

아이고 좋아 아이고 좋아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9 일본화 감상법

 

글, 사진 / 이성미

2004,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08

 

082

빛12ㄷ  231

 

빛깔있는 책들  231

 

이성미-------------------------------------------------------------------------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동양미술사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수와 박물관장을 지냈으며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원 · 명의 회화』, 『장서각소장 가례도감의궤』(공저), 『조선시대 어진관계도감 의례연구』(공저)가 있고 번역서로 『일본회화사』가 있으며 이 밖에 국문 및 영문 논문이 다수 있다.

 

|차례|

 

머리말

일본 회화의 큰 흐름

가장 일본적인 회화란

일본 회화의 발달

    초기 불교 회화와 외래 양식

    일본적 특징이 강한 불화

    신도 신앙과 그림

    두루마리 형식 그림의 발달

    수묵화의 발

    모모야마시대와 에도시대의 새로운 건축 양식과 장병화

    에도시대 회화의 여러 경향

    일본의 남화

맺음말

참고 문헌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카시와기' 장  12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높이 21.9센티미터, 토쿠가와 레이메이칸(德川黎明館) 소장

「겐지모노기타리」 에마키, '야도리기' 장  12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높이 21.9센티미터, 토쿠가와 레이메이칸 소장.

뵤오도오인 효오오도  쿄오토오 부근 우지 소재

「명황행촉도(明皇幸蜀圖)」  작자 미상, 족자 비단에 설채(設彩), 55.9×81센티미터, 대북고궁박물원 소장

「홍백매도(紅白梅圖)」  오가타 코오린, 금지에 채색, 각 병풍 155.6×172.7센티미터, 세계구세교(世界救世敎), 시즈오카현(靜岡縣) 아타미미술관(熟海美術館) 소장

「추동산수도(秋冬山水圖)」 '동경산수도'  셋슈우 토오요오, 15세기 후반, 족자 종이에 수묵, 46.3×29.3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송림도」  하세가와 토오하쿠(長谷川等伯), 종이에 수묵, 전체 155.9×346.7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茶羅繡帳)  아스카시대, 나라 추우구우지 소장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  7세기 중엽, 64.8×35.6센티미터, 호오류우지 소장, 타마무시즈시 수미좌(須彌座) 그림

「아미타여래 삼존도」 '관음보살' 부분  7세기 말~8세기 초, 313×267센티미터, 호오류우지 금당 제6호벽

「비천」  7세기 말, 전체 벽 75.6×139.1센티미터, 나라 호오류우지 금당 천장 밑

안악2호분 「비천」  고구려, 황해도 안악군 소재

「여인군상」  7세기 말~8세기 초, 높이 약 40센티미터, 나라 근처 아스카무라 소재 타카마츠즈카 서벽

쌍영총 벽화  고구려, 6세기, 평남 용강군 소재

「키치죠오텐」  비단에 설채, 53.5×32센티미터, 나라 야쿠시지 소장

「잠화사녀도」  주방, 8세기 중엽, 두루마리 비단에 채색, 요녕성박물관 소장

「수하미인도」  나라시대, 종이에 먹과 채색, 각 폭 136×56센티미터, 나라 토오다이지 쇼오소오인 소장

「수하미인도」  9세기 중엽, 돈황 제17굴 북벽

「마포보살상」  8세기 중엽, 삼베에 백묘, 138.1×133센티미터, 나라 토오다이지 쇼오소오인 소장

「아미타 내영도」  12세기 초, 비단에 채색, 중앙 폭 210.3×210.3센티미터, 코오야산 소재

「석가열반도」  1086년, 족자 비단에 설채, 267.3×271.1센티미터, 코오야산 콩고오부지 소장

「소조 나한상」  나라시대, 호오류우지 오중탑

「다이이토쿠 묘오오」  11세기, 비단에 채색, 194×118.1센티미터, 보스턴미술관 소장

「보현보살도」  헤이안 후기 12세기 전반, 족자 비단에 실채, 159.5×74.5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헤이케노쿄」  1160년, 두루마리 종이에 채색, 25.8×28.8센티미터, 히로시마 이츠쿠시마신사 소장

「선면법화경책자」  12세기 후반, 각 세로 25.5×위 41.2×아래 19.4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카마쿠라 대불」  13세기, 11.5미터, 카나가와(神奈川) 코오토쿠인(高德院) 소재

 고승 초오겐 쇼오닌 초상  13세기 전반, 목조, 높이 82.2센티미터, 나라 토오다이지 소장

「카스가 만다라」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나치노타키」  카마쿠라시대, 족자 비단에 설채, 159.5×58센티미터, 토오쿄오 네즈(根津)미술관 소장

「화인과경」  8세기, 종이에 채색, 높이 26.2센티미터, 쿄오토오 조오본렌다이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글씨 부분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미노리' 장  12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높이 21.9센티미터, 토오쿄오 고토미술관 소장

「시기산엔기」 '날으는 쌀창고'  12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높이 31.4센티미터, 나라 초오고오손시지 소장

「케에곤엔기」 부분  전(傳) 에니치보 죠오닌, 카마쿠라시대 13세기,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담채, 31.5×1,220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케에곤엔기」 부분  전 에니치보 죠오닌, 카마쿠라시대 13세기,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담채, 31.5×1,556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키타노텐진엔기」 '황궁에 떨어진 벼락' 부분  종이에 채색, 높이 52.1센티미터, 쿄오토오 키타노텐만구(北野天滿官) 소장

「헤이지모노가타리」 에마키, '산죠오전의 화재'  13세기 말, 종이에 채색, 높이 41.3센티미터, 보스턴미술관 소장

「쵸오쥬우기가」 제1권 부분 '토끼와 개구리의 씨름'  12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높이 31.8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쵸오쥬우기가」 '개구리 불상'  12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높이 31.8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지고쿠 조오시」 '거대한 수탉'  12세기 말, 종이에 채색, 높이 26.4센티미터, 나라국립박물관 소장

「효오넨즈」  죠오세츠, 1415년,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111.5×75.8센티미터, 쿄오토오 타이조오인(退藏院) 소장

「죽재독서도」  전(傳) 슈우분, 15세기 중엽,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고산승경」  텐유우 쇼오케이, 15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담채, 124.1×34.3센티미터, 쿄오토오국립박물관 소장

「발묵산수」  셋슈우 토오요오, 1495년, 종이에 수묵, 149.2×32.7센티미터, 토오쿄오 국립박물관 소장

「아마노 하시타테」  셋슈우 토오요오, 1502년~6년, 종이에 수묵담채, 90×168.6센티미터, 쿄오토오국립박물관 소장

카츠라 릿큐우 정원의 '아마노 하시타테'  1647년 완성, 쿄오토오 소재

「관폭도」 부분  게이아미, 무로마치시대 1480년,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106×30.3센티미터, 토오쿄오 네즈미술관 소장

「산수도」  카노오 모토노부, 종이에 수묵담채, 177.8×118.1센티미터, 쿄오토오 묘신지 레이운인 소장. 미닫이문 그림

히메지성  모모야마시대, 효오고오(兵庫) 소재

「산수화조도」  카노오 에이토쿠, 쿄오토오 다이토쿠지 쥬우고오인 소장

「히노키 병풍」  카노오 에이토쿠, 모모야마시대, 종이에 금지 설채, 8첩 1척 병풍, 169.5×460.5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소나무와 가을풀」  하세가와 토오하쿠와 그의 제자들, 1592년, 금지에 채색, 약 200×600센티미터, 원래는 쇼오운지 미닫이문, 현재 쿄오토오 치사쿠인 소장

「단풍나무」 부분  하세가와 토오하쿠와 그의 제자들, 1592년, 금지에 채색, 약 200×600센티미터, 원래는 쇼오운지 미닫이문, 현재 쿄오토오 치사쿠인 소장

「모란도」  카이호오 유우쇼오, 1595~1600년, 금지에 채색, 177.8×361.3센티미터, 쿄오토오 묘신지 소장

「차쟁도」  카노오 산라쿠,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세키야' 장  타와라야 소오타츠, 금지에 채색, 151.8×354.3센티미터, 토오쿄오 세이가도(靜嘉堂) 소장

「마츠시마 병풍」  타와라야 소오타츠, 금지에 채색, 166.1×367.7센티미터, 워싱턴 프리어갤러리 소장

「연자화도 병풍」  오가타 코오린, 토오쿄오 네즈미술관 소장

「요시와라의 정경」  히시카와 모로노부, 에도시대, 종이에 스미즈리(墨摺), 29.1×42.3센티미터, 토오쿄오 국립박물관 소장

「낙중낙외도」  카노오 에이토쿠, 오오야마시대 1547년, 금지에 채색, 6폭 병풍, 160.5×323.5센티미터

「벚꽃놀이 병풍」  카노오 나가노부, 종이에 채색, 149.2×355.6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새를 든 여인과 소녀」  토리이 키요마스,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신요시와라좌」  후루야마 모로마사,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떠돌이 악사들」  이시카와 토요노부, 토오쿄오 히라키콜렉션 소장

「오오카와바타 석량도(大川端夕凉圖)」, '하마쵸오에서 더위를 식히는 여인들'  토리이 키요나가, 1781~9년, 38.1×25.4센티미터, 릭카미술관 소장

「부인상학십체」 '들뜬 모습'  키타가와 우타마로,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세가와 키쿠노죠오」  토오슈우사이 샤라쿠, 1794년,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붉은 후지산」 카츠시카 호쿠사이, 1825년경, 니시키에, 27.3×34.6센티미터, 세계구세교, 시즈오카현 아타미미술관 소장

「사루바시」  안도오 히로시게, 니시키에,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신요시와라의 밤 벚꽃」  이노우에 야스지, 1881년,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설송도」  마루야마 오오쿄, 1765년, 비단에 수묵담채, 123.2×71.8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수탉과 선인장」  이토오 쟈쿠츄우, 금지에 채색, 각 미닫이문 176.5×91.4센티미터, 오오사카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미닫이문 그림의 부분

「타카미 센세기상」  와타나베 카잔, 에도시대, 족자 비단에 먹과 채색, 116×58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십편첩」 '조편'  이케노 타이가, 1771년, 종이에 수묵담채, 17.7×17.7센티미터, 카와바타 야스나리 기념회(川端康成記念會) 소장

「십편첩」 '관원편'  이케노 타이가, 1771년, 종이에 수묵담채, 17.7×17.7센티미터, 카와바타 야스나리 기념회 소장

「십의첩」, '의풍'  요사 부손, 1771년, 종이에 수묵담채, 17.7×17.7센티미터, 카와바타 야스나리 기념회 소장

「소상승개도」 부분  이케노 타이가, 에도 시대, 종이에 수묵담채, 6첩 1척 병풍, 84.6×300센티미터, 개인 소장

「황산효운」  히가시야마 카이이, 1980년, 종이에 수묵담채, 각 180×376.5센티미터(왼쪽 2칸), 각 191.5×377.5센티미터(오른쪽 2칸), 토오쇼오다이지 소장. 미닫이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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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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