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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9 일본화 감상법

 

글, 사진 / 이성미

2004,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08

 

082

빛12ㄷ  231

 

빛깔있는 책들  231

 

이성미-------------------------------------------------------------------------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동양미술사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수와 박물관장을 지냈으며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원 · 명의 회화』, 『장서각소장 가례도감의궤』(공저), 『조선시대 어진관계도감 의례연구』(공저)가 있고 번역서로 『일본회화사』가 있으며 이 밖에 국문 및 영문 논문이 다수 있다.

 

|차례|

 

머리말

일본 회화의 큰 흐름

가장 일본적인 회화란

일본 회화의 발달

    초기 불교 회화와 외래 양식

    일본적 특징이 강한 불화

    신도 신앙과 그림

    두루마리 형식 그림의 발달

    수묵화의 발

    모모야마시대와 에도시대의 새로운 건축 양식과 장병화

    에도시대 회화의 여러 경향

    일본의 남화

맺음말

참고 문헌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카시와기' 장  12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높이 21.9센티미터, 토쿠가와 레이메이칸(德川黎明館) 소장

「겐지모노기타리」 에마키, '야도리기' 장  12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높이 21.9센티미터, 토쿠가와 레이메이칸 소장.

뵤오도오인 효오오도  쿄오토오 부근 우지 소재

「명황행촉도(明皇幸蜀圖)」  작자 미상, 족자 비단에 설채(設彩), 55.9×81센티미터, 대북고궁박물원 소장

「홍백매도(紅白梅圖)」  오가타 코오린, 금지에 채색, 각 병풍 155.6×172.7센티미터, 세계구세교(世界救世敎), 시즈오카현(靜岡縣) 아타미미술관(熟海美術館) 소장

「추동산수도(秋冬山水圖)」 '동경산수도'  셋슈우 토오요오, 15세기 후반, 족자 종이에 수묵, 46.3×29.3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송림도」  하세가와 토오하쿠(長谷川等伯), 종이에 수묵, 전체 155.9×346.7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천수국만다라수장(天壽國曼茶羅繡帳)  아스카시대, 나라 추우구우지 소장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  7세기 중엽, 64.8×35.6센티미터, 호오류우지 소장, 타마무시즈시 수미좌(須彌座) 그림

「아미타여래 삼존도」 '관음보살' 부분  7세기 말~8세기 초, 313×267센티미터, 호오류우지 금당 제6호벽

「비천」  7세기 말, 전체 벽 75.6×139.1센티미터, 나라 호오류우지 금당 천장 밑

안악2호분 「비천」  고구려, 황해도 안악군 소재

「여인군상」  7세기 말~8세기 초, 높이 약 40센티미터, 나라 근처 아스카무라 소재 타카마츠즈카 서벽

쌍영총 벽화  고구려, 6세기, 평남 용강군 소재

「키치죠오텐」  비단에 설채, 53.5×32센티미터, 나라 야쿠시지 소장

「잠화사녀도」  주방, 8세기 중엽, 두루마리 비단에 채색, 요녕성박물관 소장

「수하미인도」  나라시대, 종이에 먹과 채색, 각 폭 136×56센티미터, 나라 토오다이지 쇼오소오인 소장

「수하미인도」  9세기 중엽, 돈황 제17굴 북벽

「마포보살상」  8세기 중엽, 삼베에 백묘, 138.1×133센티미터, 나라 토오다이지 쇼오소오인 소장

「아미타 내영도」  12세기 초, 비단에 채색, 중앙 폭 210.3×210.3센티미터, 코오야산 소재

「석가열반도」  1086년, 족자 비단에 설채, 267.3×271.1센티미터, 코오야산 콩고오부지 소장

「소조 나한상」  나라시대, 호오류우지 오중탑

「다이이토쿠 묘오오」  11세기, 비단에 채색, 194×118.1센티미터, 보스턴미술관 소장

「보현보살도」  헤이안 후기 12세기 전반, 족자 비단에 실채, 159.5×74.5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헤이케노쿄」  1160년, 두루마리 종이에 채색, 25.8×28.8센티미터, 히로시마 이츠쿠시마신사 소장

「선면법화경책자」  12세기 후반, 각 세로 25.5×위 41.2×아래 19.4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카마쿠라 대불」  13세기, 11.5미터, 카나가와(神奈川) 코오토쿠인(高德院) 소재

 고승 초오겐 쇼오닌 초상  13세기 전반, 목조, 높이 82.2센티미터, 나라 토오다이지 소장

「카스가 만다라」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나치노타키」  카마쿠라시대, 족자 비단에 설채, 159.5×58센티미터, 토오쿄오 네즈(根津)미술관 소장

「화인과경」  8세기, 종이에 채색, 높이 26.2센티미터, 쿄오토오 조오본렌다이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글씨 부분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 '미노리' 장  12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높이 21.9센티미터, 토오쿄오 고토미술관 소장

「시기산엔기」 '날으는 쌀창고'  12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높이 31.4센티미터, 나라 초오고오손시지 소장

「케에곤엔기」 부분  전(傳) 에니치보 죠오닌, 카마쿠라시대 13세기,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담채, 31.5×1,220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케에곤엔기」 부분  전 에니치보 죠오닌, 카마쿠라시대 13세기, 두루마리 종이에 수묵담채, 31.5×1,556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키타노텐진엔기」 '황궁에 떨어진 벼락' 부분  종이에 채색, 높이 52.1센티미터, 쿄오토오 키타노텐만구(北野天滿官) 소장

「헤이지모노가타리」 에마키, '산죠오전의 화재'  13세기 말, 종이에 채색, 높이 41.3센티미터, 보스턴미술관 소장

「쵸오쥬우기가」 제1권 부분 '토끼와 개구리의 씨름'  12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높이 31.8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쵸오쥬우기가」 '개구리 불상'  12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높이 31.8센티미터, 쿄오토오 코오잔지 소장

「지고쿠 조오시」 '거대한 수탉'  12세기 말, 종이에 채색, 높이 26.4센티미터, 나라국립박물관 소장

「효오넨즈」  죠오세츠, 1415년,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111.5×75.8센티미터, 쿄오토오 타이조오인(退藏院) 소장

「죽재독서도」  전(傳) 슈우분, 15세기 중엽,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고산승경」  텐유우 쇼오케이, 15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담채, 124.1×34.3센티미터, 쿄오토오국립박물관 소장

「발묵산수」  셋슈우 토오요오, 1495년, 종이에 수묵, 149.2×32.7센티미터, 토오쿄오 국립박물관 소장

「아마노 하시타테」  셋슈우 토오요오, 1502년~6년, 종이에 수묵담채, 90×168.6센티미터, 쿄오토오국립박물관 소장

카츠라 릿큐우 정원의 '아마노 하시타테'  1647년 완성, 쿄오토오 소재

「관폭도」 부분  게이아미, 무로마치시대 1480년,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106×30.3센티미터, 토오쿄오 네즈미술관 소장

「산수도」  카노오 모토노부, 종이에 수묵담채, 177.8×118.1센티미터, 쿄오토오 묘신지 레이운인 소장. 미닫이문 그림

히메지성  모모야마시대, 효오고오(兵庫) 소재

「산수화조도」  카노오 에이토쿠, 쿄오토오 다이토쿠지 쥬우고오인 소장

「히노키 병풍」  카노오 에이토쿠, 모모야마시대, 종이에 금지 설채, 8첩 1척 병풍, 169.5×460.5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소나무와 가을풀」  하세가와 토오하쿠와 그의 제자들, 1592년, 금지에 채색, 약 200×600센티미터, 원래는 쇼오운지 미닫이문, 현재 쿄오토오 치사쿠인 소장

「단풍나무」 부분  하세가와 토오하쿠와 그의 제자들, 1592년, 금지에 채색, 약 200×600센티미터, 원래는 쇼오운지 미닫이문, 현재 쿄오토오 치사쿠인 소장

「모란도」  카이호오 유우쇼오, 1595~1600년, 금지에 채색, 177.8×361.3센티미터, 쿄오토오 묘신지 소장

「차쟁도」  카노오 산라쿠,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세키야' 장  타와라야 소오타츠, 금지에 채색, 151.8×354.3센티미터, 토오쿄오 세이가도(靜嘉堂) 소장

「마츠시마 병풍」  타와라야 소오타츠, 금지에 채색, 166.1×367.7센티미터, 워싱턴 프리어갤러리 소장

「연자화도 병풍」  오가타 코오린, 토오쿄오 네즈미술관 소장

「요시와라의 정경」  히시카와 모로노부, 에도시대, 종이에 스미즈리(墨摺), 29.1×42.3센티미터, 토오쿄오 국립박물관 소장

「낙중낙외도」  카노오 에이토쿠, 오오야마시대 1547년, 금지에 채색, 6폭 병풍, 160.5×323.5센티미터

「벚꽃놀이 병풍」  카노오 나가노부, 종이에 채색, 149.2×355.6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새를 든 여인과 소녀」  토리이 키요마스,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신요시와라좌」  후루야마 모로마사,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떠돌이 악사들」  이시카와 토요노부, 토오쿄오 히라키콜렉션 소장

「오오카와바타 석량도(大川端夕凉圖)」, '하마쵸오에서 더위를 식히는 여인들'  토리이 키요나가, 1781~9년, 38.1×25.4센티미터, 릭카미술관 소장

「부인상학십체」 '들뜬 모습'  키타가와 우타마로,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세가와 키쿠노죠오」  토오슈우사이 샤라쿠, 1794년,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붉은 후지산」 카츠시카 호쿠사이, 1825년경, 니시키에, 27.3×34.6센티미터, 세계구세교, 시즈오카현 아타미미술관 소장

「사루바시」  안도오 히로시게, 니시키에,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신요시와라의 밤 벚꽃」  이노우에 야스지, 1881년,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설송도」  마루야마 오오쿄, 1765년, 비단에 수묵담채, 123.2×71.8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수탉과 선인장」  이토오 쟈쿠츄우, 금지에 채색, 각 미닫이문 176.5×91.4센티미터, 오오사카 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미닫이문 그림의 부분

「타카미 센세기상」  와타나베 카잔, 에도시대, 족자 비단에 먹과 채색, 116×58센티미터, 토오쿄오국립박물관 소장

「십편첩」 '조편'  이케노 타이가, 1771년, 종이에 수묵담채, 17.7×17.7센티미터, 카와바타 야스나리 기념회(川端康成記念會) 소장

「십편첩」 '관원편'  이케노 타이가, 1771년, 종이에 수묵담채, 17.7×17.7센티미터, 카와바타 야스나리 기념회 소장

「십의첩」, '의풍'  요사 부손, 1771년, 종이에 수묵담채, 17.7×17.7센티미터, 카와바타 야스나리 기념회 소장

「소상승개도」 부분  이케노 타이가, 에도 시대, 종이에 수묵담채, 6첩 1척 병풍, 84.6×300센티미터, 개인 소장

「황산효운」  히가시야마 카이이, 1980년, 종이에 수묵담채, 각 180×376.5센티미터(왼쪽 2칸), 각 191.5×377.5센티미터(오른쪽 2칸), 토오쇼오다이지 소장. 미닫이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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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8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0

 

811.6

고67만 2

 

창비전작시---------------------------------------------------------------------

 

"우선 내 어린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고 한 작자의 말대로, 이번 세 권은 주로 어릴 때 알던 고향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들을 제대로 논하려면 마땅히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당장의 뿌듯한 감회는, 어떠한 가난이나 고난 속에서도 끊길 줄 모르고  이어져온 이땅 위 삶의 기쁨과 보람이다. 또한 이 기쁨과 보람을 담은 시인의 말, 겨레의 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며, 작자 자신도 이야기한 바 그 말 앞에서 삼가는 마음이다.

『만인보』의 서사적 풍요는 차라리 소설문학의 성취를 떠올린다. 그리고 고은 자신의 『전원시편』에 비해서도 "첫가을에 백리가 트인다"는 그의 시구대로 무언가 툭 트였다. 더러 장황하던 대목이 크게 가셨고 농사꾼의 일하는 기쁨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어떤 착심 같은 것도 자취를 감추었다.

- 백낙청(발문 중에서)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죽은 개 / 조무래기들 / 대보름 뒤 / 안 부 / 아기바위 개바위 / 깽매기 소리 / 걸인독립단 / 백제 성왕 / 이야기 할아범 / 병옥이 / 병술이 동생 / 가사메댁 / 꼬부랑 종증조할머니 / 기생독립단 / 미제 진필수 / 옥 배 / 김인규 / 이 황 / 봉 태 / 수동이 어머니 / 을지문덕 / 이빨 빠진 노장군 / 달 밤 / 시인 정지상 / 김부식 / 미제 대장장이 / 똥가래 밭가래 / 재숙이 /원당리 홍성구 / 우 물 / 문개평 / 여자 이홍광 / 조필우 부자 / 재술이네 헛청 / 만순이 / 편 지 / 황진이 / 동수네 5형제 / 반남 박씨네 무덤 / 미제 두 복동이 / 서문 밖 한약방 / 김창숙 / 쌍동이 어머니 / 옥정골 고중돈 / 아우 충조 / 함박눈 / 용술이 삼촌 /김일태란 놈 / 나 철 / 중복날 / 지 붕 / 개사리 개장수 / 문수원 / 기마상 / 벌 초 / 지렁이 /오촌 종식이 / 육손이 / 양증조할아버지 / 은적사 어린 중 / 피서방 내외 / 당고모 / 화엄 의상 / 어린 은태 / 홍어 한 마리 / 화양동 서원 / 종조부 / 황소바람 / 단지결사대 / 함덕리 백씨 / 화양댁 / 연장 무덤 / 황 희 / 권학자님 / 판섭이 오촌 / 어떤 어머니 / 검둥이 / 진안이 / 장덕곤이 / 상구두쇠 / 관여산 복술이 / 재문이 아저씨 / 솔잎 향내 / 다릿집 / 선제리 멋장이 / 영감마누라 / 죽은 나무 / 김백선 / 새터 한서울댁 / 돼지 오줌깨 / 병만이 할아버지 / 고구려 보덕 / 김 구 / 신촌 조남현 / 개똥이 할아버지 / 좋은 날 / 앵두꽃 / 밀양 백중놀이 / 고행덕이네 집 / 그 네 / 죽었다 깨어난 사람

 

백제 성왕

 

무령왕의 아들로 즉위하자마자

북녘 패수의 고구려 치고 신라와 교빙하였다

즉위 15년 웅진을 버리고

백마강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겨

국호도 남부여로 고쳤다

큰 땅 부여의 기상이었다

비로소 중앙 22부 지방 5부 5방의 틀이 잡혔다

그러나 그의 만년

오랜 나제동맹 깨어지고

속임수 많은 신라 치려고

왕자 여창을 데리고 나가 싸웠으나

신라 신주군주에게 크게 패하여

관산성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그 성왕의 시체

신라 군대가 끌고 가서

서라벌 중앙정청 문 밖에 묻으니

신라 벼슬아치들 출근 퇴근 때마다

성왕 시체를 밟아댄 것이다

이 짐승만도 못한 죄악이여 죄악이여

이런 죄로

어찌 아미타세계 서방정토 찾는단 말인가

사천왕 도리 도솔천 찾는단 말인가

아 고대사의 야만이여

 

이    황

 

조선 양반의 자랑이거니와

해동 주자이거니와

이는 조선 만백성의 허깨비였느니라

 

퇴계 성리학은 뭔가

오 성학도

해와 달 누렇게 도는데

백성은 도탄에 푹 빠졌는데

사단이발칠정기발설이 뭔가

배고파

애기 먹은 에미나이

종년이야

서방이 담 안에 열 담 밖에 열

이런 양반의 지랄에

여봐라

여봐라

도산 열두 굽이 막막하구나

 

을지문덕

 

고구려 하호 출신이라 상놈이라

왕족 건무의 모욕도 받았으나

 

장수 을지문덕이 돌아올 때는

평양성 백성이 우르르 나와 맞아들였다

시아버지처럼

서방님처럼

시아재비처럼

단내 나며 맞아들였다

그의 뒤 따라 돌아오는 장한 군사 맞아들였다

을지문덕! 이 이름 부르면

녹은 개울물이 잘 흐르고 하는 일도 잘 되었다

복사꽃 피었다

수나라 수군 삼십만 백만 없애고

겨우 2천 7백 명 남겨 쫓아보낸 장수인지라

백성과 하나 된 장수인지라

금으로 옷을 덮고

귀인이 엎드려야

그 등 밟고 말 타는 개소문 아닌지라

백성들 숨어버리는 개소문 아닌지라

고구려 동맹 잔치 참된 장수인지라

싸우는 자와

뒤에 있는 자 하나일 때

그 싸움 이기고 오는 장수인지라

 

김부식

 

송나라 동파거사는

고려 사절 따위 내쫓아버렸다

고렷놈들 이 천한 오랑캐들! 하고

 

그런 동파거사 흠모하여

제 이름을 동파 소식의 식자 따서

부식이라 고치고

그걸로 성이 안 차

제 아우의 이름도 소식의 아우 소철의 철자 따서

부철이라 고쳐주고

만약 동파거사께오서

손위 형들이 있었다면

부필 부일마저 그 이름자로 고쳐야 했것다

시와 학문에 뒤진 것으로

정지상 윤언이 죽여버리더니

묘청 역적이라 들씌우더니

어찌 이뿐이겠는가

늙어 써 올린 삼국사기 가로되

거기에는

고구려 승전고도 울리지 않고

발해도 없고

오로지 신라가 제일 먼저 세워진 듯이

세발 네발 가로되

 

황진이

 

송도 달밤

갈보 하나이 이 나라 사랑을 도맡아버렸구나

한심한 사내들아 계집아

이불 차고 나오너라 너훌너훌 춤추어라

 

김창숙

 

싸가지 없는 이승만 꼬라지

진작부터 알았다

상해 임정 때도

이승만 노는 것 미워했다 싸웠다

이 싸움 내내 시들지 않아서

1950년대 성균관 관장 자리도 쫓겨나게 되었다 

긴 세월

16년 감옥살이

고문으로 다리병신 되어

제 걸음 걷지 못하는 세월

 

조선 유교

이만한 사람 있기 위하여

5백 년 수작 헛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사나이 눈물이 있고

사나이 노기 있고

사나이 쓰라린 기상 잇다

 

저기 저 사이비 군사들

맹세코 이 땅에서 쓸어버리리

길에서 죽기로니 무슨 한이리

 

나   철

 

조선말기에 태어난 사람 역마살 한 짐 지고 나왔다

나철 선생이 누구인고

을사조약 체결되자

그 조약 주도했던 매국노 암살에 나선 사람

벼슬이고 뭐고 버리고

테러리스트로 나선 사람

그 뒤로 섬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왜국 조야에 담판하러

현해탄 돛배 타고 건너갔다 돌아와

그로부터 백두산 백봉도사 만나

이 땅 역대의 그늘 속으로 이어진 단군 종교로

대종교 새로 연 사람

그 사람이 나철이라

조선땅 곳곳이요 방방곡곡이요

만주벌판 드넓은 산과 들이요

백두산을 한복판으로

화룡현 청파호 물가에

대종교 총본사 두어

단군 고토 9만리 신국이라

동서남북 4도교구 두어

대종교도 30만으로 불어났다

조선동포 8할이었다

게다가 김동삼 김규식 이시영 김좌진

이동휘 신채호 조소앙을 망라하고

이상설 이동녕 신규식 서일 강석화로

교구를 맡게 하여

대종교 사람으로 조직을 삼고

대종교 돈으로 총포 사들여서

청산리 큰 싸움 앞서 크고 작은 싸움으로

대종교가 이렇게 떨치는데

왜적이 그저 두고 볼 일인가

대종교 해체를 명령하자

1916년 국내로 돌아와

구월산 삼성사에서

추석날 북으로 백두산에 절하고

남으로 고향 벌교 선영에 절하고

폐기법으로 숨 끊어 자결하였다

사 없이

공으로 살고 공으로 죽은 사람

조선땅 좁아라 하고

고조선 드넓은 땅 달린 사람

그가 죽자

대종교 비밀교단

발해 상경 동경성에 총본사 두고

제자 김헌 윤세복 서일이 이끌어가다가

그들 역시

독립군 거덜나면서 바닥났다

간도 의병과 독립군 시대 지나서

그 뒤로 유격전 시대 들어서자

나철의 고토노선 고조선노선이

새 노선으로 돌아섰다

이 싸움의 전환에 나철 선생이 달려온 것이다

대종교 나철 !

그냥 나철 !

첫째 그는 도덕 자체였다 꿈 자체였다

 

화엄 의상

 

서라벌 귀족의 자식으로

스무 살에 중이 되어

서른 살에 원효를 형으로 섬긴다

원효는 바다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효하고 의상이

당나라 들어가기를 작정하는데

고구려땅 육로를 잡아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신라 간첩 혐의로 잡혔다가

신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백제땅 당진 나루 뱃길을 잡아 나섰다

나루에 이르러

원효는 아무래도 당나라까지 갈 까닭이 없었던지

깜깜절벽 밤중에

해골바가지 물 마시고

다음날 아침

이 세상 마음이 짓는다 깨치고 돌아가고

의상 혼자 바다 건넜다

의상은 바다를 좋아했다

그가 뒤에 돌아와 동해 낙산사에 산 것도 그 때문이다

의상은 중국 등주땅 처녀 선묘와 눈이 맞았다

그 중국 처녀가

의상의 옷 지어주고 쓸 물건도 대주었다

종남산 지상사 화엄대가 지엄의 제자 되어

지엄과 도선의 인가 받고

현수법장과 함께 큰제자가 되었다

의상의 화엄가는 신묘하구나

한번 읊으면

마음 가득 우주가 찬다 법이 찬다고 자자했다

그러나 이 당나라 화엄학이 귀족의 것인지라

만백성에게는 도대체 허깨비이다

당나라가 백제 고구려를 멸한 뒤

신라까지 멸하려 할 때

그때 화엄 의상  황급히 돌아왔다

애인 선묘도 두고 돌아왔다

돌아와서

신라 귀족사회에 몸을 두지 않고

혼자 동해의 고독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동해 이후 그의 화엄학 펴기 위하여

우선 소백산 밑 영주땅에 절을 지으려는데

그때 바다 건너 임 찾아온 선묘가

돌을 날라다 주어

뜬 돌의 가람 세웠다

하필 일본 고산사 그림에

화엄조사 그림이 전해오는데

화엄 의상과 아름다운 선묘의 사랑 전해오는데

아 2백 10자의 해인삼매 법성계 한번 읽어보건대

신묘하구나 신묘하구나

평생 한 벌 옷 한 개의 병

한 벌 밥그릇밖에 가진 것 없이

문무왕이 주는 논밭도 노비도 다 돌려보내고

오로지 불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고

사람의 귀천이 본디 맞지 않은데

어찌 나에게 종이 있을까보나 재물을 독차지할까보냐

무엇에 쓰리 무엇에 쓰리

중이야 법계 우주를 집으로 하고

밥그릇 한 벌 차려 농사지어 살아감이여

쇠로 성을 쌓더라도 재앙이 그치지 않음이여

추운 늦가을밤 달빛의 차가움이여

그 차가움에 화엄 의상의 흔들릴 줄 모르는 눈빛 있음이여

 

황   희

 

영의정 황희는

노비 새끼들이 수염을 잡아다리고

옷자락 잡아다리고

등때기도 볼따귀도 치기도 해도

그냥 아프다 아프다 할 따름이었다

술상 차려 가면

지지리 못생긴 여종마저

버르장머리 없이

술상 차려 탕 내려놓으면

그나마 안주 뿌시러기 그 새끼들이 먹어치운다

한평생을 관운이 들어 재상노릇만 한 사람

한평생을 가랑이 찢어지게 가난노릇만 한 사람

그러나 그는 노비 풀고

평민 풀어

한줌도 안 되는 양반노릇 그만두고

새 세상 하나 열 줄 몰랐다

다만 잉어 한 마리 흐를 데 없는 물 속에서

홀로 인자하였구나

홀로 한빈하였구나

애석하구나 궁 딱 ! 딱 !

 

김백선

 

을미 참변에 이 땅의 노여움 치솟아

위정척사 패거리

양반 패거리 들고일어서는데

천하 상놈 여기저기 들고일어서는데

두메산골 지평땅에서

의병 5백을 거느리고

제천땅 유인석 휘하에 들어간 사람

그 사람 용맹 떨치니

선봉장이 되었구나

상놈 김백선이

빛나는 선봉장이 되었구나

충주싸움 가흥싸움 가는 데마다

왜병을 무찌르니

그 기상 왜병은 물론 관군도 물러섰구나

그러다가 제천 독송정 본진에 달려가

머뭇거리는 의병장 유인석에게

왜 한양 진격을 감행하지 않느냐고

꾸짖으며

칼 빼들었다가

감히 양반에게

상전에게 거역하였다 하여

의병 군율 총살형으로 총맞아 죽었다

1895년

이때부터 양반 의병과

백성 의병이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백성의 반봉건과

양반의 위정척사가 맞서기 시작하였다

 

실로 역사의 벼랑인지고

앗흐 ! 찬바람 치솟아오르는 천 길 벼랑인지고

 

고구려 보덕

 

고구려 용강고을에 태어나

성으로 가는 길

그 길 꺾고

대보산 깎아지른 벼랑 아래

벼랑의 중이 되어

젊은 보덕화상

고구려 불법 널리널리 펴는데

그놈의 보장왕 도교에 파묻혀

불법 보기를 연생이 보듯 내치기 시작하였다

에라 뜨리라

고구려 보덕 백제땅으로 내려와

백제 완산주 고대산 허리에 절 짓고

불법을 널리 펴니

그 소문에

원효가 되기 전의 서당도 어린 의상도 찾아왔다

삼국의 밝은 젊은이 모여들어

고대산 보덕굴 불때지 않은 방도 추운 적 없었다

사람만이 아니라

삼국의 까마귀들도 모여들어

고대산 일대의 겨울은 까마귀로 가득찼다

보덕화상 그 까마귀 불러

삼계에 두루 걸리는 바 없음이여

너 까마귀로다

 

김   구

 

백범 김구 !

이 사람 있어

이 땅이 사람 태어나는 곳이구나

남에도

북에도

우선 이 사람 있어

이 땅이 사람 죽는 곳이구나

8 · 15 이후 돌아와 70 평생 그 걸음으로

윤봉길 댁 찾아가서

윤봉길 아내한테

넓죽 큰절 드리는 사람

오늘 따라 그리운 곳이구나

이 땅이 그리운 사람 있는 곳이구나

험한 오늘과 내일에도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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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7 HOW TO READ 데리다 Jacques Derrida

 

페넬로페 도이처 지음 | 변성찬 옮김

2007,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819

 

082

하66ㅇ  9

 

2004년 프랑스 대통령실은,

'우리시대 지성계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일흔네 살의 철학자

데리다의 죽음을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데리다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프랑스 철학자로 받아들여진다.

교육, 성(gender), 법, 문학, 수학, 정치학, 심리학 등 많은 연구 분과와 영역에

영향을 미친 데리다는 찬양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낯설게 만들기를 좋아한 데리다의 저작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현대의 모든 학문을 넘나든

해체주의자, 데리다

해체는 종종 분해 또는 원상 복구로 여겨지곤 한다. 해체는 우리에게 친숙한 텍스트와 주장들이 포함하고 있는 숨겨진, 그리고 예기치 못한 유보들과 내적 저항의 지점들, 그리고 담론들과 선택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데리다는 이러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우리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자원들로 여기고 있는 친숙한 것들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화시켰다. 해체는 때때로 부정적인 또는 심지어 허무주의적인 운동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데리다는 해체가 긍정적이며, 변형의 잠재력을 갖춘 독해 방식임을 강조했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페넬로페 도이처 Penelope Deutscher

노스웨스턴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20세기 프랑스 철학과 성 철학(philosophy of gender)에 대한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성 산출하기 : 여성주의》《해체와 철학의 역사》《불가능한 차이의 정치학 : 루스 이리가리의 후기 연구》 등이 있다.

 

변성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씨네 21> 평론상 당선 후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영화 관련 강좌 및 세미나를 운영하는 한편, 철학과 영화 그리고 자연과학(생물학)에 대해 공부 중이다. 저서로 《우리 시대의 美를 논한다》(공저)가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현대의 모든 학문을 넘나든 해체주의자

 

1. 해체주의적 독해

    : 《산종》

2. 해체는 개입이다

    : 《타자의 단일언어》

3. 차연, 동일성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지연

    :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4. 둘 다임과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5. 문화, 성, 그리고 정치

    : 《다른 진로》

6. 의사소통의 오해 법칙

    : 《유한회사》

7. 순수한 애도와 환대는 없다

   : '환대와 정의와 책임성'

8. 순 수한 선물과 용서도 없다

    : 《주어진 시간》

9. 정의와 법의 결정 불가능성

    : 《법의 힘》

10. 진보는 무한하다

    : 《테러의 시간에서의 철학》

 

■ 데리다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참고 문헌

■ 역자 후기 : '데리다'로 이끄는 세심하고 균형있는 안내서

 

1

해체주의적 독해

: 《산종

 

해체적 시각으로 글에 대한 이러한 양가적인 평가절하를 독해하게 되면, 우리는 《파이드로스》가 글로 인해 분명한 위험에 빠지게 된 어떤 이상을 환기시키고 있음을 보게 된다(대리 임신이 '자연적인' 모성을 명백히 위협하고, 약물이 '자연적인' 신체를 명백히 위협하는 것처럼). 우리는 말이 자식을 보증해준 적이 있는지, 또는 분명히 말의 증언적 가치가 글에 의해 위협받은 적이 있는지, 그리고 말에 덧씌워진 그 신비한 분위기와 말이 제공하는 그 명백한 약속을 제거할 수 있는지를 질문해야만 한다.

 

2

해체는 개입이다

: 《타자의 단일언어

 

데리다가 해체는 개입이라고 주장할 때, 자신의 정치적 활동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안장성, 모순,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불안정한 힘들에 대한 면밀한 주의를 통해서, 다르게 읽으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데리다는 우리에게 가령, 타고난 권위와 소유권과 특권에 대한 어떤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다르게 읽을 수 있을지를 질문한다.

그는 우리에게, 그것이 정치, 역사, 철학, 현대 문화 그 어느 것에 관한 것이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관념들과 주장들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보다 비판적으로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

 

3

차연, 동일성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지연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차연'은, 그가 '간격두기'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리고 어떠한 기호도 자기 폐쇄적인 동일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그런 미분화를 가리키는 데리다의 신조어다. 차연은 누구나 특정한 용어에 귀속시키고 싶어 할 수도 있는 동일성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지연이다. 개를 위한 완전히 고정된 의미는 결코 분명하게 도래하지 않는다. 의미는 끊임없이 '달라지고', 의미의 그 어떤 기원적인 현존도 끊임없이 '지연된다'.

 

4

둘 다임과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 '대리 보충'이라는 용어는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루소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것과 같이, '결정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데리다에 의해 발견 또는 발명된 결정 불가능성은, 이항 대립의 양극들 그 어디에도 용이하게 들어맞지 않는 하나의 항이다. 마치 차연이 '현존'도 '부재'도 아닌 것처럼, '동일성'도 '차이'도 아닌 것처럼, 대리 보충이 충만도 결핍도 아닌 것처럼.


5

문화, 성, 그리고 정치

《다른 진로》


데리다는 상황 속에서의 차이에 민감한 철학자이지만, 사회적 행동주의(여성주의, 인종, 민족, 문화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위 정체성의 정치에 대해 주의하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2장에서 그가 오로지 낮았던 것을 높이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전복의 전략들에 대해 그가 표명하고 있는 유보를 본 적이 있다. 그의 목표는 정체성이라는 이상들을 고정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데리다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 적이 있다.

"나는 여성운동을 포함하여 모든 곳에서 발전하고 있는, 소수자들의 나르시시즘을 향하는 경향이 있는 이러한 운동에 저항한다."


6

의사소통의 오해 법칙

《유한회사》


그는 하나의 대안으로 "'오해(mis)'의 법칙"을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어떤 성공적인 의사소통도 언제나 다른 실패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아무리 남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의사] 교환은 우리 사이의 잘못된 의사소통의 가능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새로운 토론의 윤리학이 열리게 된다. 우리는 강한 확신 또는 낙관의 순간에조차, '오해'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의사소통의] 목적은 오류를 근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타협하는 것이 될 것이다.


7

순수한 애도와

환대는 없다

: '환대와 정의와 책임성'


나라의 국경이나 가정의 영역이 손님들이나 이민자들에게 개방될 때, 조건적인 환대는 우리를 불가능성과의 관계 속에 자리잡게 한다. 우리는 보다 큰 관대함을 저버린 것이고, 그 불가능한 더 커다란 관대함은 조건적 환대라는 우리의 행위 속에 깃들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의도들을 갖고도 내가 불가피하게 타자의 차이에 개방적이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실패할 때, 그 불가능성은 나의 시도 속에서 거주하는 것이고, 나를 해당 타자와의 다른 종류의 관계 속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불가능성이 어떠한 '일'도 수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중재하고, 내 정체성의 복합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8

순수한 선물과

용서도 없다

《주어진 시간》


우리는 우리를 중재하거나 [미]분화시키고 있는 불가능성이라는 형식 속에서 타자와 함께 살고 있다.

이것이 자기만족(다시 말해서, 자신이 [누군가를] 환대한 적이 있고, 선물을 준 적이 있으며, 만족스러울 정도로 용서한 적이 있다고 하는 자기만족적인 개인적 또는 정치적 확신)을 촉진시킬 수 있다.

그런 만족은 불가피한 실패다.


9

정의와 법의

결정 불가능성

:  《법의 힘》


법적 판단은 소위 '결정 불가능성이라는 시련'을 겪어야만 한다.

그것은 법을 보존해야 하지만(우리는 법을 무시하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 판결이 노예처럼 선례나 법 문서들을 따르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법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존경심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10

진보는 무한하다

《테러의 시간에서의 철학》


데리다는 완전성의 본질이 끊임없이 교정되어야만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완전성은 언제나 '무한한 진행'의 상태 속에 있다. 진보는 결코 멈추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데리다가 변형이자 타자성이지만 어떤 이상, 즉 고정되고 규정적이고 기원적이거나 정점에 달한 순간은 아니라고 묘사한 그런 영역 속에 놓이게 된다.

우리는 진보를 상징하는 완전성을 계속해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 속에 들어서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보는 무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생애


1930년 7월 15일 알제리 엘비아르에서 출생.

1942년 독일 점령기 알제리에서 광폭하게 시행된 프랑스의 반셈족주의와 페탕 정책(벤 아크눈Ben 

            Aknoun에서 유대인 학생 7퍼센트로 제한)으로 벤 아크눈 중등학교에서 쫓겨남.

1942~1943년 유대인 학생들과 선생들만을 따로 수용하는 에밀 모파스(Emile-Maupas) 중등학교

           에 등록.

1948년 고티에(Gauthier)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학 자격시험 통과, 알제리에서 준비반 수업을 마치

           고 철학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옮김.

1952~1953년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에서 공부.

1957년 신경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말썽 많았던 학창 시절을 보낸 후(1942~1942년의 결석, 

          1947년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 낙제, 1949년과 1951년의 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 낙제, 1955

          년 교수 자격시험 낙제), 교수 자격시험 통과.

1957년 하버드 대학교 청강생으로 미국 거주. 정신분석가 오쿠튀리에(Marguerite Aucouturier)와 

           결혼.

1957~1959년 알제리 전쟁 중, 알제리에서 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는 방식으로 군복무.

1962년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 Origin of Geometry》 불어 번역본 출간. 100쪽에 이르는 역자 서

           문으로 장 카바예스 상 현대 인식론 부문 수상.

1963년 아들 피에르(Pierre Derrida) 출생.

1964년 고등사범학교 철학사 강사로 취임. 이후 1984년까지 이 직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많은 대학교(존 홉킨스 대학교, 예일 대학교, 어빈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코넬 대학교,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방문 교수로 경력 쌓음.

1967년 아들 장(Jean Derrida) 출생. 세 개의 주요 저서, 《목소리와 현상 Speech and 

       Phenomena》《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Of Grammatology》《글쓰기와 차이 Writing and 

       Difference》 출간.

1970년 아버지(Aime Derrida) 사망(알제리 독립 후 데리다 가족은 니스로 이주).

1972년 두 번째 세 개의 주요 저서 《입장들 Positions》《산종 Dissemination》《철학의 가장자

           리 Margins of Philosophy》 출간.

1980년 파리 제1대학(소르본)에서, 출판된 저작들 중에서 선별한 글들을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국

          가 박사 These d'Etat》변호. 프랑스에서 그의 저작에 대한 회의(Les fins de l'homme)가 조

          직됨. 《우편엽서 The Postcard》 출간.

1981년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학자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프라하 방문 중, 마약 소지 및 밀수 

          혐의로 오인 받아 구류, 미테랑 대통령의 노력으로 석방.

1982년 프랑스의 연구 및 기술 장관이 데리다에게 비전통적인 학문 기관인 국제 철학 대학

          (College intermationale de philosophie) 설립 제안. 이 대학은 프랑스의 학문 제도의 제약

         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학자들이 교류하고, 모두가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지만 학위는 수여되

         지 않는 철학 및 학제 간(interdisciplinary) 세미나를 위한 기관임.

1983년 파리에서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의 새로운 직위에 선출.

1984년 아가친스키(Sylviane Agacinski)와의 사이에서 아들 다니엘(Daniel Derrida) 출생.

1985년 건축 이론 분야에서 해체와 관련 있는 건축가 추미(Bernard Tschumi) 및 아이젠만(Peter 

          Eisenman)과 파리의 대규모 공원(Parc de la Villette) 디자인을 위해 공동 작업. 다른 분과

         를 넘어선 공동 작업들은 1982년 영화 <유령의 춤 Ghost Dance>, 1987년 비디오 <유희들 

         Plays>을 볼 것.

1987년 《회화에서의 진실 The Truth in Painting》 출간. 고도로 병합된(mediatized) 논쟁들 벌어

         짐. 그 논쟁 과정에서, 1940~1942년 사이 드망(Paul de Man)에 의해 벨기에의 한 신문에 발

        표된 글들과 파리아스(Victor Farias)의 《하이데거와 나치즘 Heidegger and Nazism》의 출

        판 때문에, 해체는 (가장 무례한 방식으로)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와 연루됨,

1991년 어머니(Georgette Derrida) 사망.

1992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명예 교수직 수여에 대한 논쟁이 벌어짐. 대학의 일부 구성원들(그리고 

          국제 철학자들 중 일부 집단)이 항의, 데리다가 투표에서 336대 204로 이김.

1994년 《우정의 철학 Politics of Friendship》 출간.

1999년 파티(Safaa Fathy)의 <데리다의 다른 곳 Derrida's Elsewhere> 상영.

2001년 프랑크푸르트 시의 아도르노 상 수상.

2002년 딕(Kirby Dick)과 코프만(Amy Ziering Kofman)의 영화 <데리다> 상영.

2004년 《불량배들 Rogues》 출간.

2004년 10월 8일 그의 나이 74세, 췌장암으로 사망.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6  만인보

 

高銀

200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89

 

811.6

고67만  1

 

창비전작시---------------------------------------------------------------------

 

"우선 내 어린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고 한 작자의 말대로, 이번 세 권은 주로 어릴 때 알던 고향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들을 제대로 논하려면 마땅히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당장의 뿌듯한 감회는, 어떠한 가난이나 고난 속에서도 끊길 줄 모르고  이어져온 이땅 위 삶의 기쁨과 보람이다. 또한 이 기쁨과 보람을 담은 시인의 말, 겨레의 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며, 작자 자신도 이야기한 바 그 말 앞에서 삼가는 마음이다.

『만인보』의 서사적 풍요는 차라리 소설문학의 성취를 떠올린다. 그리고 고은 자신의 『전원시편』에 비해서도 "첫가을에 백리가 트인다"는 그의 시구대로 무언가 툭 트였다. 더러 장황하던 대목이 크게 가셨고 농사꾼의 일하는 기쁨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어떤 착심 같은 것도 자취를 감추었다.

- 백낙청(발문 중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 례


작자의 말

서시 / 할아버지 / 머슴 대길이 / 애꾸 양반 / 내시 처선 / 동고티 무덤 / 삼만이 할머니 / 대바구니 장수 / 나그네 / 신라 사복 / 당숙모 바그메댁 / 사행이 아저씨 / 어머니 / 또섭섭이 / 고모부 / 장복이 / 곽낙원 / 대기 왕고모 / 삼거리 주막 / 아버지 / 정태란 놈 / 혈의 루 / 귀섬 여편네 / 관묵이 아저씨 / 고모 / 땅꾼 도선이 / 떠나간 작은어머니 / 진달래 / 고주몽 / 싸움꾼 기백이 / 외할머니 / 엿장수 / 큰집 고모 / 이동휘의 꾀 / 난산마을 아저씨 / 옥정골 철곤이 / 죽은 소금례 / 대보름날 / 아리랑 영감 / 당숙모 / 외삼촌 / 코피 / 의병 정용기 / 기생들 / 강도들 / 작은고모 / 사정리 할아버지 / 수레기댁 / 용녀 / 보리밭 문둥이 / 백제 혜현 / 수양 영감 / 일만이 아버지 / 사정리 할머니 / 김성숙 / 딸 / 개사리댁 / 초례청 / 절름발이 떠돌이 / 기창이 고모 / 할머니의 울음소리 / 재학이 아저씨 손가락 / 필례 / 지관 오창봉 / 학배 / 정안수 / 맹식이 삼촌 / 쌍놈 기철이 / 효조지 영감 / 고대 혜공 / 방앗간집 며느리들 / 복만이 아저씨 / 두 가마니 반 / 큰외숙모 / 딸그마니네 / 태욱이 아저씨 / 정여립 / 봉태 누나 / 도요하라 / 개똥벌레 / 감꽃 / 영규스님 / 금자 / 지랄병 / 애꾸 아주머니 / 진평구 이야기 / 홍식이 작은아버지 / 새벽닭 / 기호 / 임제 / 염훈장 / 호열자 / 소도둑 / 장타령 / 백두개 도깨비 / 선제리 아낙네들 / 한식날 밤 / 을밀대 / 연 / 개살구꽃 / 외톨박이 권오종

서시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할아버지

 

아무리 인사불성으로 취해서도

입 안의 혓바닥하고

베둥거리 등때기에 꽂은 곰방대는

용케 떨어뜨리지 않는 사람

어쩌다가 막걸리 한 말이면 큰 권세이므로

논두렁에 뻗어 곯아떨어지거든

아들 셋이 쪼르르 효자로 달려가

영차 영차 떠메어 와야 하는 사람

집에 와 또 마셔야지 삭은 울바자 쓰러뜨리며

동네방네 대고 헛군데 대고

엊그제 벼락 떨어진 건넛마을

시뻘건 황토밭에 대고

이년아 이년아 이년아 외치다 잠드는 사람

그러나 술 깨이면 숫제 맹물하고 형제 아닌 적 없이

처마 끝 썩은 낙수물 떨어지는데

오래 야단받이로 팔짱끼고 서 있는 사람 고한길

 

그러다가도 크게 깨달았는지

악아 일본은 우리나라가 아니란다

옛날 충무공이 일본놈들 혼내줬단다 기 죽지 말어라

 

집안 식구 서너 끼니 어질어질 굶주리면

부엌짝 군뷸 때어 굴뚝에 연기 낸다

남이 보기에 죽사발이라도 끓여먹는구나 속여야 하므로

맹물 끓이자면 솔가지 때니 연기 한번 죽어라고 자욱하다

 

삼 년 원수도 술 주면 좋고 그런 술로 하늘과 논 삼아

8월 땡볕에 기운찬 들 바라본다

거기에는 남의 논으로 가득하다 작년 도깨비불도 떠오른다

 

이 세상 와서 생긴 이름 있으나마나

죽어서도 이름 석 자 새길 돌 하나 없이

오로지 제사 때 지방에는 학생부군이면 된다

실컷 배웠으므로

실컷 배웠으므로

 

어머니

 

하루내내 뼈도 없고 뉘도 없는 만경강 갯벌에 가서

그 아득한 따라지 갯벌 나문재 찾아 발목 빠지다가 오니

북두칠성 푹 가라앉은 신새벽이구나 단내 나는구나

곤한 몸 누일 데 없이 보리쌀 아시 방아 찧어야지

도굿대 솟아 캄캄한 허공 치고 내려 찧어 땅 뚫는구나

비오는 땀방울 보리쌀에 뚝뚝 떨어져 간 맞추니

에라 만수 그 밥맛에 어린것 쑥 자라나겠구나

여기말고 어디메 복받치는 목숨 따로 부지하겠는가

아 땅의 한 아낙의 목숨이 어찌 만 목숨 살리지 않겠는가

충청도 장항에서 흐린 물 느린 물 건너

삐그덕 가마 타고 시집 온 이래 그 고생길 이래

된장 간장 한 단지 갖추지 못한 시집살이에 몸 담아

첫 아들 낳은 뒤 이틀 만에 그놈의 보리방아 찧어

두벌 김매는 논에 광주리 밥 해서 이고 나가니

산후 피 펑펑 쏟아 말 못할 속곳 다섯 벌 빨아야 했다

그러나 바지랑대 걸음걸이 한번 씨원씨원해서

보라 동부새바람 따위 일으켜 벌써 저만큼 가고 있구나

갖가지 일에 노래 하나 부르지 못하고 보리고개 봄 다 가고

여름 밭 그대로 두면 범의 새끼 열 마리 기르는 폭 아닌가

우거진 풀 가운데서 가난 가운데서 그놈의 일 가운데서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어찌 나의 어머니인가

 

고모부

 

고모부 강일순은 하필 강증산하고 한 이름이라

괜히 그놈의 무극대도 믿어

이따금 눈 감고 빈 입으로 중얼댔지요

그러다가 정작 병들어 누우니

이 노릇도 작파해버리고

서래 선창 갈대밭 사이 나가는 배 뱃노래 듣다가

어린아이 다 되어 눈물바람 적시더니

부엌데기 고모 불러서

이 사람아

나 죽으면 심심할 테니

이것이나 배워보소

피우던 담배 여차여차 건네니

고모는 억지로 담배 빨고 기침했지요

그 뒤 고모부 세상 떠난 뒤

홀어미 된 늙은 고모 담배 연기 길게 길게 내뿜었지요

그게 어디 담배 연기뿐이리요 죽은 영감 담배 연기 아니리요

 

아버지

 

강 건너 내포 일대

대천장 예산장 서산장

아무리 고달픈 길 걸어도

아버지는 사뭇 꿈꾸는 사람이었읍니다

비 오면 두 손으로 비 받으며

아이고 아이고 반가와하는 사람이었읍니다

 

고모

 

서래 나루 시집간 고모

예복이 고모

그 웃음

찬 콩나물국 같은 웃음

예복이 고모

실컷 울고 나 추운 고모

 

외할머니

 

소 눈

멀뚱멀뚱한 눈

외할머니 눈

 

나에게 가장 거룩한 사람은 외할머니외다

 

햇풀 뜯다가 말고

서 있는 소

 

아 그 사람은 끝끝내 나의 외할머니가 아니외다

이 세상 평화외다

 

죽어서 무덤도 없는

 

 

당숙모

 

큰집 아주머니는

내 육촌누이 덕순이 하나 낳고는

덕순이 영 터를 안 팔아

큰당숙한테 자식 못 낳는다 구박깨나 받더니

기어이 일 났구나

바로 문 하나 달린 윗방으로 밀려나고

아랫방 아랫목에다 시앗 보아야 했다

밤마다 아랫방에서

새로 온 각시하고 영감하고

미주알고주알 알랑방구 뀌는 것 다 들어야 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아들은커녕 딸내미 하나 못 두고

그만 그 각시 떠나버리더니

큰당숙도 세상 떠나고

딸 하나 있는 것 덕순이도 시집가고

혼자된 큰집 아주머니

대밭에 눈더미 툭툭 떨어지는 소리 나도 그만

개 매달아 불태워 잡을 때

그 개 울부짓는 소리도 그만

담 끼고 가노라면

담 넘어 본 일 없는 난장이 키에다가

밭에 있으면

밭두렁하고 딱 맞는 큰집 아주머니

10년이나 안 먹고 둔 곶감 같은 큰집 아주머니

 

외삼촌

 

외삼촌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갔다

어이할 수 없어라

나의 절반은 이미 외삼촌이었다

가다가

내 발이 바큇살에 걸려서 다쳤다

신풍리 주재소 앞에서 옥도정기 얻어 발랐다

외삼촌은 달리며 말했다

머슴애가 멀리 갈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상해에 갔다가

북경에 갔다가

만주 지지하루로 갈 것이다

그 다음은

남으로 남으로 바다 건너

야자수 우거진 자바에 갈 것이다

이런 답답한 데서

어떻게 한평생 산단 말이냐

갈 것이다

갈 것이다

나중에는 너도 데려다 함께 살 것이다

외삼촌은 자전거를 더 빨리 내몰았다

나는 쌩쌩 바람에 막혀 숨이 막혔다

나의 절반은 외삼촌이었다

스치는 십리길 전봇대여 산의 무덤들이여

그 뒤 세세년년 북국 5천 킬로 무소식의 외삼촌이여

 

작은고모

 

큰고모 등짝에서

나문재 뜯으러 간 어머니 기다리는 등짝에서

배고파 울다가 말다가 하는 등짝에서

나는 별을 처음 보았다

별이 아니라 밥이었다

별 따먹으면 배부르겠다고

별 따줘 별 따줘 새로 울었다

작은고모 야문이는

나 한번 업지도 못하고

뽕나무 선 오디 찾아다녔다

그러더니 이질에 걸리자마자 세상 떠났다

할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렸다

네년이 야문이를 안 먹여 죽었다고

약 한 첩 못 써 죽었다고 때렸다

어머니는 키로 막다가 실컷 맞고 굴뚝에 가 울었다

 

 

산토끼몰이 잘하던 남수영감 죽은 이튿날

시집간 딸 옥순이가

마을 밖 오릿길에 접어들면서

머리 풀고 세상 떠나가게 곡성 내니

눈물이 앞을 가려

앞 못 볼 지경으로 곡성을 내니

마을에 들어서자

이 집 저 집 아낙네들 다 나와

 

쯔쯔쯔 혀 차다가

그네들까지 함께 곡성을 내어주니

온 마을에 슬픔 한번 커다랗구나

이만하면 죽은 영감 두 다리도 다시 한번 쭉 뻗겠구나

그렇지

슬픔이라도 풍년 들어야지

 

큰외숙모

 

어쩌자고 외할아버지께서는

큰아들 상룡이는 날 보듯 해서

집 내어 보낸 뒤로

그 집 가려고 두루마기 떨쳐입은 적 없다

군산 명산동 벼랑 말랭이 다락집에는

밤새도록 콜록댄 큰외삼촌 상룡이 누렇게 썩어가고

눈썹 검고 눈동자 검은 큰외숙모가

생것 광주리장수로

이 집 저 집 박대 팔아 죽이라도 대는데

아들 하나 있는 것

명산동 벼랑에서 삘기 뽑다 헛디디어

스무 길 밑으로 떨어져 피죽사발 되어버렸다

뒤이어 큰외삼촌도 죽어버렸다

식은 방바닥 치며

울음 막혀 울지도 못하는 큰외숙모 혼자 남아

생것 광주리 두어 번 이고 다녀보다가

그도 또한 양잿물 먹고 죽어버렸다

스무 길 벼랑 찬바람에 산 사람들이야 고뿔 들어

입마개하고 종종걸음으로 지나간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5 갑사와 동학사

 

글 / 박남수, 심대섭, 최응천●사진 / 박보하

1999, 대원사

 

 

시흥시립도서관

SA002639

 

082

빛12ㄷ  230

 

빛깔있는 책들 230

 

연혁 - 박남수------------------------------------------------------------------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동국대 · 경기대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로 있다. 저서로는 『일본6국사 한국관계기사』(공역)가 있고, 연구논문으로 「신라 화백회의의 기능과 성격」, 「신라 상대 수공업과 장인」, 「신라 승관제에 관한 재검토」 등 10여 편이 있다.

 

건축 - 심대섭------------------------------------------------------------------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고건축설계사무소와 시공회사를 거쳐 현재 대원고건축연구소 대표로 있으며 연세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한식목조건축의 공포에 대한 논문과 경기도 지정문화재 등의 실측조사 및 중수공사보고서를 다수 집필하였다.

 

유물 - 최응천------------------------------------------------------------------

동국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전남대, 건국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강사를 역임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과 조계종 성보문화재 전문위원을 겸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불교미술대전』(공저)과 『박물관 밖의 문화유산 산책』이 있으며 「고려시대청동금고의 연구」, 「조선시대 운판에 대한 고찰」, 「일본에 있는 한국 범종」 및 「한국 범종의 특성과 변천」 등 논문이 다수 있다.

 

사진 - 박보하------------------------------------------------------------------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네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3년 월간 『사진예술』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사진가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에는 『Korean Culture』로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사진예술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사진들을 주로 촬영하고 있다.

 

|차례|

 

1 갑사

 

갑사의 연혁

갑사의 건축

갑사의 유물

갑사 대웅전 전경

천진보탑  보탑은 거북 형상을 이룬 자연석으로 머리 부분은 수정봉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에 얽힌 전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초기 불교가 전통적인 자연물 숭배사상과 관련이 잇음을 준다.

대적전 요사  갑사의 대적전 건물 앞쪽과 좌우에는 통일신라기로 여겨지는 건물의 초석이 널려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 어느 때인가 현재의 대적전 자리 주변에 당우가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계룡산과 갑사  갑사는 나말려초에 화엄사찰로서 명성을 떨쳤는데 이는 일찍부터 우리나라에서 계룡산이 중요하게 여겨졌던 사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표충원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휴정과 유정, 영규의 뜻을 기려 표충원에 그들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표충원 내부  갑사의 거듭된 중창에는 무염, 도선, 해명 등 여러 고승들이 관련되어 있다.

갑사 입구

갑사 대웅전  작은 석재로 낮은 하부 기단을 만든 다음 뒤로 약간 물려 상부 기단을 구성하였다. 상부 기단은 장대석들 사이사이에 작은 자연석들을 끼워 넣어 대웅전의 위엄을 한층 드높이고 있다.

대웅전 내부  1고주5량가를 기본으로 하여 출목도리를 보강한 형태이다. 내부에 세워진 고주는 구조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후불벽과 불단을 설치하고 불상을 안치하여 불전을 위엄있게 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다.

강당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칸에는 가운데에 고주가 1개씩 세워져 있어 2칸으로 되어 있다. 측면에는 공포가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풍판이 없어 가구의 구성 모습을 확연히 파악할 수 있다.

강당의 공포  살미의 쇠서는 초제공과 이제공은 앙서로 되어 있고 삼제공은 연꽃을 조각하여 최상단의 쇠서가 수서 형태로 되어 있는 통상적인 형태와는 다르다.

삼성각  대웅전 남쪽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져 있다.

삼성각 내부  배면 벽에 붙여 불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불단에는 중앙에 칠성탱화, 좌우로 산신탱화와 독성탱화를 봉안해 놓았다.

대적전  현재의 갑사 경내에서 계곡 건너편 금당터로 추정되는 곳에 요사체 1동과 일곽을 이루면서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봉안해 놓아 건물 명칭과는 맞지 않는다.

팔상전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을 서향하여 세웠다.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정면 3칸에는 삼분합띠살문을 칸마다 설치하였다. 내부에는 석가모니 불상만이 봉안되었고 북쪽 벽에 쌍림열반상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표충원  영각에는 서산 · 사명 · 영규대사 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이들이 임진왜란 당시 국란 극복에 미친 영향을 기리는 뜻에서 표충원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대웅전 불상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여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의 삼존을 봉안하고 있으며 이 삼불을 중심으로 대세지보살과 문수 · 관음 ·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대웅전 석가모니불  대웅전의 삼존불은 수인을 제외하고 거의 동일한 모습이며 모두 소조로 만들어져 있다.

대적전 석가모니불 좌상  팔각 목조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짧은 목과 좁은 어깨, 신체에 비해 비대해진 얼굴 등 조선 후기 조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대적전 문수 · 보현보살상  거의 동일한 형태의 좌상으로 손에는 연꽃을 잡고 있다. 높은 형태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양 어깨에는 통견의 천의 위에 보발이 길게 흘러내렸다.

석조 보살입상  유일한 삼국시대의 작품이다. 화강석재로 만들어졌으며 목 이하가 절단된 것을 붙여 놓았는데 머리 뒤에 표현된 보주형 두광은 얼굴과 한 돌로 조각된 것이다.

석조 약사불입상  둥그스름한 얼굴의 이마 중앙에는 깊게 파인 백호가 표현되었고 반쯤 뜬 눈과 작게 오므린 입술엔 미소가 느껴지지만 코 부분은 일부 마멸되어 있다.

삼신불 괘불탱  삼신불의 표현과 더불어 육방불보살 11구와 십대제자, 사천왕, 사금강 등 모두 36위의 존상이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밝고 화려한 채색에 섬세한 필법을 갖추었다.

대웅전 영산회상도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화면 중앙에는 키형의 거신광 안으로 두광과 신광을 지닌 석가모니불이 화려한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대웅전 삼장보살도  평행으로 배열된 구도에 많은 권속들이 빽빽하게 둘러싼 전형적인 군도 형식으로 오른쪽에는 이중의 원형 두광과 신광을 두른 지장보살이 앉아 있다.

대적전 석가삼존불화 중앙 탱화  삼세불이 그려진 중앙 탱화는 위아래 2단으로 구분하여 윗단에는 삼세불을 비롯하여 십대제자, 천녀, 동자, 판관을 배치하고 아랫단에는 삼세불의 협시와 여러 보살들을 배치한 평행 배열 구도이다.

대적전 석가삼존불화의 사천왕상  위의 위로부터 보탑을 든 다문천왕과 용과 여의주를 잡은 광목천왕을, 그리고 아래에는 비파를 든 지국천왕과 보검을 잡은 증장천왕을 위아래로 2구씩을 배치하여 앞 시기의 불화들과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팔상전 팔상도  팔상도는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입멸에 이르기까지 일생의 중요 장면을 8폭으로 나누어 그린 것이다. 색체와 필선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팔상도의 기본 형식을 충실히 따른 20세기 초기의 좋은 자료이다.

갑사 금고가  용가 형식을 취한 국내 유일의 작품이다.

만력명 범종  종신의 외형은 위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점차 넓게 퍼진 원추형을 이루었다. 정상부에는 하나의 몸체로 이어진 두 마리의 쌍룡으로 구성된 용뉴가 배치되었는데, 갈기와 비늘까지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다.

범종 세부  이중의 테두리로 둘러진 원형의 당좌는 내구에 작은 자방으로 구성된 연판을 배치한 뒤 그 바깥을 파도무늬와 같은 엽문으로 장식하였다. 그리고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몸을 옆으로 돌린 채 소발을 한 승려형의 입상이 1구씩 모두 네 곳에 부조되었다.

건륭 39년명 요사 동종  불룩하게 솟아오른 천판 위로 하나의 몸체로 이어진 쌍룡의 용뉴를 갖추고 있다. 연곽 사이마다 부조된 보살입상은 원형 두광을 지녔으며 유려하게 흘러내린 천의가 돋보인다.

선조 2년간 월인석보 판목  총 24권 가운데 권 21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래 57매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46매만이 전한다. 보물 제582호.

계룡갑사 현액  강당에 걸려 있는 현액으로, 단아하면서도 웅건한 맛을 준다.

중사자암터 3층석탑  대웅전의 북쪽 응향각 옆에 세워져 있는데, 기단은 일부가 결실되어 하층만 남아 있고 위에는 탑신과 옥개를 하나의 돌로 결구한 3층의 탑신부로 구성되어 있다.

공우탑  대웅전에서 대적전으로 가는 길 계곡 옆에 위치하고 있다. 방형의 기단과 탑신, 옥계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석탑의 형식을 갖춘 이형의 부도이다.

철당간과 석조 지주  여러 마디로 된 지름 50센티미터의 철통을 두 개의 석조 지주 사이에 세운 것으로 다섯 번째 마디 부분을 3줄의 철심으로 묶어 지주에 고정시켰다.

사적비  자연의 암반 위에 정방형의 비좌를 마련하고 그 앞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비신의 4면에는 갑사의 창건과 연혁 등에 관한 내력을 기록하였다.

대적전 앞 팔각 부도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고려시대 부도로 지대석과 탑신, 옥개 등이 팔각을 이룬 팔각원당형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팔각 부도 세부  몇 개의 돌로 구성된 팔각의 높은 지대석 위에 올려진 3층의 기단부 가운데 하대는 아래로부터 크기를 줄여가며 연잎, 사자와 동자상, 구름무늬를 입체적인 부조로 조각하여 매우 화려하게 꾸몄다.

갑사 부도군  입구에서 본전 쪽으로 500미터 거리에 있는 부도골이라는 계곡에는 16기의 부도가 세워져 잇다. 이들 부도는 조선 후기 승탑 형태인 석종형 부도 양식을 따르고 있다.

 

2 동학사

 

동학사의 연혁

동학사의 건축

동학사의 유물

 

 

숙모전의 단종 위패  동학사는 고려 역대 왕과 조선 단종 및 심온, 사육신 등 역대 충혼들을 제향하는 곳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 왔다.

동학사 전경

동학사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배면 벽쪽에 붙여 불단을 설치하고,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모셔 삼세불을 봉안하였으며 후불탱을 목각으로 제작하였다.

삼성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이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들이고 불단을  설치한 뒤 칠설, 산신, 독성을 봉안하였다.

숙모전  단종을 비롯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참형을 당한 충신 200여 위의 혼백을 위로하기 위한 제단이 잇던 곳으로 초혼각이 세워져 있었다. 현재의 숙모전은 고종 때(광무 8년)에 재건된 것으로 예전의 초혼각을 고쳐 숙모전이라 사액하였다.

대웅전 삼존불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의 삼세불을 봉안하고 있다. 19세기 불상에 새로운 근대 조각 양식이 가미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대웅전 약사탱화  결가부좌하고 양손에 약호를 든 약사불상을 중앙에 크게 배치하였다. 본존 주위에는 육보살과 십대제자가 배치되었는데, 그 전체가 하나의 둥근 테두리 속에 수용되었다.

대웅전 앞 3층석탑  현재의 탑은 계룡산 전각골의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 전한다. 탑신에 보이는 문의 장식이나 4단의 옥개석 층급받침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동화사 부도군  대웅전 서쪽 뒤편에 있는 6기의 부도로 모두 조선시대 후기 작품이다. 이 가운데 세 번째 작품(아래)은 동학사 부도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추면서도 세부 조각이 뛰어난 수작이다.

남매탑  백제국이 멸망한 뒤 어느 남매가 와서 수도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2기의 석탑은 각각 5층과 7층으로 쌍탑의 배치를 보이지만 양식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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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4 아마존 - 상처받은 여전사의 땅

 

알랭 게르브랑 지음, 이무열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27

 

082

시156ㅅ  22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2

 

발 디딜 틈이 없는 빽빽한 숲,

바다만큼이나 깊고 넓은 어마어마한 강,

악몽 속에서나 나타날 법한 징그럽고 괴상한 동물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태초의 땅 아마존을 얘기할 때면

사람들은 그곳을 녹색의 지옥처럼 공포스러워했다.

그러나 이제 여전사 아마조네스들의 후손들과,

아마존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식한 나라들은

개발과 환경 보존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으며

새로운 아마존을 창조하고 있다.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해군 군의관 쥘 크레보는

아마존강과 오리노코강 유역으로 탐사를 떠났다.

그의 모험담은 석판화로 기록되어

프랑스의 <세계 여행>지에 1880~1881년 동안

소개되었다. 크레보는 1882년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마존 행을 시도하다가

토바족 인디오에게 살해당했다.

 

"여행을 서두르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나는 지금 신의 은총으로 여기에 와 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서 주의 깊게 자연을 조사해야 한다.

다시는 이 물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벤치에 앉아 있다.

내 앞에는 배의 나침반이 있고 무릎에는 노트가 있다.

나는 우리가 나아가는 길을 기록하는 중이다."

본능은 어서 빨리 급류를 타고 떠나라고 하는데,

이성이 나를 제지한다. 탐험가가 미지의 땅을 급히 지나가는 것은

적에게 등을 돌리고 달아나는 것과 같다."

 

"처녀림 -- 기아나에서는 '거대한 숲'이라고

부른다 --의 표정이 차갑고 무시무시하다.

30~40m는 됨직한 열주(列柱)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그 속에서 비할 데 없이

화려한 것을 가진 새들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우아나카가 옆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는 가늘고 긴 막대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막대 끝에는

밧줄로 만든 올가미가 매여 있었다.

그는 동물의 목에 올가미를 척 걸고는

홱 잡아당겼다."

 

"움직이는 숲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법한 인디오 한 무리가

태평스레 우리 옆을 계속

따라왔다."

 

L'Amazone, un geant blesse

 

차례

 

제1장 천지에 널린 계피

제2장 살아 있는 전설

제3장 이성의 시대가 열대우림 속을 파고들다

제4장 거대한 고무산업

제5장 인디오와 열대우림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알랭 게르브랑 Alain Gheerbrant

1920년 파리 태생인 알랭 게르브랑은 시인이자 영화제작자이고 탐험가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그는 한때 아방가르드 출판인으로 일하다가 보고타로 떠나 거기서 오리노코-아마존 탐사대를 조직하여 1948년부터 1950년까지 아마존 탐사에 나섰다. 그는 시에라파리마 산맥을 넘어 야누마미족(당시에는 과하리보족으로 알려짐)과 최초로 평화적인 만남을 가졌다. 그후 세계를 두루 여행하며 연구와 집필을 거듭하여 이를 토대로 수많은 책과 영화를 만들었다.

 

옮긴이 : 이무열

1958년 전북 익산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북스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번역 및 저술에 종사하고 있다. 저서로는 <러시아사 100장면>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정보 고속도로 길라잡이> <1980년대 러시아>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언어> 외 다수가 있다.

 

제1장

천지에 널린 계피

 

"인디오들은 왜 이런 식으로 방어를 할까? 그것은 그들이 아마존의 신민(臣民)이라는 것말고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우리가 왔다는 게 알려지자 인디오들은 그들에게 가서 도움을 구했고, 곧 열 명 남짓한 아마존이 왔다. 아마존들은 여자 대장으로 인디오 남자들 앞에 서서 정말 용감하게 싸웠다. 인디오들은 감히 등을 돌릴 생각을 못 했는데, 그런 경우에는 아마존들이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쳐죽였다."

가스파르 데 카르바할

"정복자들은 눈을 크게 뜬 채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섬망 상태 속에서 살았다."

장 데스콜라

잉카 제국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

키토 고원 지대 한쪽에는 안데스 산맥의 화산 봉우리 중 53개가 우뚝 솟아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산기슭이 낮은 경사를 이루며 아마존 지역으로 뻗어 내려간다.

페루는 20년도 채 못 돼서 온 유럽을 휩쓸고 그 지정학적 균형까지도 깨뜨려 버린 황금강의 발원지였다. 강의 시원은 안데스 산맥이었는데, 잉카 신전에서 약탈한 보석과 신성한 그릇과 조각품들이 스페인인이 만든 용광로 속에서 주괴로 변했다. 야마들을 징발해 보물로 탈바꿈한 상품들을 해안으로 실어 나르면, 거기서 황금막대들을 캘리언선에 실었다.

안데스 산맥을 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인의 말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 인디오들도 특수 훈련을 받은 개한테는 완전히 혼비백산했다. 피사로는 탐험에 사나운 인디오 공격용 개 2,000마리를 대동했다.

배를 만드는 스페인인.

오레야나가 돌아온 지 45년 뒤인 1587년, 지도 제작자 호안 마르티네스는 라플라티강 근처에다 파타고니아를 그려 넣고, 기아나 고지가 안데스 산맥에 이어진 것처럼 그렸으며, 오리노코강과 아마존강을 하나의 거대한 히드라처럼 만들어 바다로 빠져 출구가 적어도 둘인 것처럼 묘사했다. 오리노코강 하류가 분명한 위쪽 가지는 오레야나강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마라뇬강에서 뻗어나온 아래쪽 가지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두 강 사이에 아마존의 땅이 거대한 섬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가스파르 데 카르바할은 여자 전사들이 분명히 북쪽에서 공격해 왔다고 기술했다. 이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잉카 제국 시인의 지혜가 떠오른다. 시인은 제국의 주변 숲을 휘감으며 미끄러져 내리는 이 물길을 아마루-마유, 즉 '거대한 뱀-인간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들이 바삐 활을 다루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벌거벗은 몸에 팔장식도 두르지 않은 모습으로 어찌나 빨리 화살을 뽑아 쏘아대는지, 솜씨가 영국인 명궁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의 야만인들은 활을 쥔 손으로 화살통을 잡은 채, 시위를 여섯 번 당겼다 놓았다 싶은 동안에 12개의 화살을 날려보냈다."

장 드 래리


"황금 투구를 쓰고 번쩍이는 무기를 찬 전사들을 바라보는 데서 얻은 어떤 만족감도 그 야만인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에 비길 수는 없었다.

가스파르 데 카르바할


1602년 동판화에 묘사된 브라질 해안.

카를로스 5세는 브라질이 발견된 바로 그해에 태어났으나, 선제인 페르디난드나 이사벨 여왕만큼 아메리카 인디오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 신세계로부터 금이 대거 유입되는 데에 맞추어 자신의 새로운 본토 전략을 시행하는 데만도 너무 바빴던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인디오의 노예화를 금지하고 그 신분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신법의 반포(1548년)는 그의 통치와 신세계의 역사에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명령이 법적 구속력을 얻기까지는 몇 세기가 걸렸다.

곤살로 피사로의 처형을 그린 이 동판화는 운명의 장난에 대한 부정적인 교훈을 담고 있겠지만, 작가의 무대 연출 기교는 연극보다도 뛰어나다.


제2장

살아 있는 전설


나뭇잎이 나비로 변하고 열대 덩굴이 뱀으로 변하며 뱀이 덩굴로 변하는 등, 동물과 식물과 광물, 공기와 물, 빛과 그림자의 구별이 모호한 데서 야릇한 즐거움을 맛보는 세계에서, 어디서 현실이 떠나고 어디서 상상이 시작되는가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16세기와 17세기에 아마존 일대를 덮고 있는 우림은 숨을 죽인 채 환상을 추구하는 인간들이 빚어 내는 모험 가득한 대서사시를 지켜보았다.

엘도라도는 마누아에 사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그 규모가 전설의 도시에 어울렸다. 월터 롤리 경에 따르면, 후안 마르티네스는 하루 종일 걷고도 더 걸어서야 황궁에 도착했다고 한다.

아무도 본 적이 없다 보니 점점 신비에 싸여, 파리마호수(그림은 1630년에 네덜란드인이 그린 지도)는 지도제작자들이 저지른 속임수 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사실로 믿어졌다. 지도에서 호수가 사라지기까지는 2세기가 걸렸다.

런던탑에서 13년 동안 고생을 한 뒤에, 월터 롤리는 가장 커다란 모험을 찾아서 신비의 땅, 엘도라도로 2차 항해를 떠낫다. 그는 후에 영국으로 돌아와 단두대에 세워졌다.

16세기의 판화에서처럼 환영하는 인디오들을 만나고 혼 후, 롤리는 런던탑에서 자신의 기념비적인(그러나 불행하게도 끝맺지 못한) 《세계사》를 쓰기 시작했다.

에와이파노마족(아세팔리, 즉 '머리없는 인간'으로도 불렸다)은 지금의 북베네수엘라에 사는 카리브 부족의 하나인 에콰나족이었는지도 모른다.

16세기에 아마조니아의 '야만인'들을 찾아 나선 광신적인 선교사들은 인디오들이 대거 내륙으로 도피해 들어간 데에 큰 책임이 있다. 자신들의 관습과 믿음을 악마 숭배라 하여 추방시키려는 조직적인 공격에 맞서 자신들을 힘으로 지키기 위해서, 인디오들은 마지못해 적합한 시기를 택하여 지나치게 열심인 침입자들을 참살했다. 선교사들은 반대로 이것을 순교자의 왕관을 쓸 기회로 받아들이고 더 한층 고무되어 오히려 노력을 배가했다(그림은 1611년의 스페인인 선교사 페레르). 어처구니없는 이 싸움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가 모든 사람의 서로 다른 권리를 인정하고 나서부터였다.

아르마딜로에 관한 월터 롤리 경의 기록이다. "스페인인이 아르마디야라고 부르는 짐승은 레노세로 비슷하게 생긴 작은 접시 위에 줄무늬를 넣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꽁무니에 거대한 사냥용 나팔만큼이나 큰 하얀 뿔이 자라나 있다. 그 뿔은 휘감는 데 쓰였는데, 외과의사인 모나르두스는 그 뿔에서 나온 가루가 귀에 조금만 묻어도 귀머거리가 된다고 쓰고 있다."

결국에는 도시의 건설자로 변신하지 않은 정복자가 어디 있던가? 스페인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피사로는 잉카제국을 장악하자마자 곧 그 성형 수술을 꾀하기 시작했다. 아타왈파는 1533년에 죽었고, 그와 더불어 그의 왕조는 사라졌다. 1534년, 피사로의 부관인 세바스티안 데 베날카사르는 수도를 파괴하고 스페인식 격자 모양의 거리를 가진 새로운 키토를 설계했다. 예수회 교단의 건축가가 해발 2,000m에다 세운, 마치 산꼭대기에 박힌 보석과도 같은 이 귀중한 유적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고전풍의 괴기스런 이 그림은 신세계 탐험가의 스케치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긴다. 장 드 래리의 브라질 항해(1555~1558년)기록 속에 들어 있는 이 삽화는 이름난 식인종 투피남바의 생활을 묘사한 장면이다.


"커다랗게 외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마치 개나 늑대의 울부짖음처럼 들리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그가 죽었어요!' 몇몇이 구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그는 매우 용감해서 우리들에게 많은 포로들을 먹을 수 있게 해주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응답한다. '그는 정말 훌륭한 사냥꾼이고 뛰어난 낚시꾼이었는데!' 다시 한 명이 외친다. '오, 우리의 원수를 갚아 주던 사람이여, 우리의 용감한 포르투갈인 살육자여!'"

장 드 래리

우아하기 그지없는 고전풍의 이 그림은 '고상한 야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본 장 자크 루소와 동시대인이 그렸다. 인디오들을 미화시켜 그린 것으로 이보다 더한 것은 찾아볼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역설적이게도, 신대륙에 관한 객관적인 기록이 부쩍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여전히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1616년 1월 20일의 벨렘 요새 축성은 포르투갈의 아마조니아 병합의 신호탄이었다. 다른 유럽인들이 철수하고 테이셰이라 선장이 키토 왕복 여행을 완수한 후, 포르투갈인들은 다음 단계의 침투에 착수하여 바라(현재의 마나우스) 요새를 쌓았다(1669년).

 

제3장

이성의 시대가 열대우림 속을 파고들다

 

"어떤 장벽이라도 넘겠다는 열정으로 그들은 안데스를 넘고, 컴컴한 신비의 강을 기어내려가고, 짐수레를 끌고서 사막을 가로지르고, 반딧불 반짝이는 뱀처럼 얽힌 정글을 헤치며 나아갔다 ……. 그들이 그런 식으로 조사하고 정리하고 문자화한 결과, 아메리카는 300년 동안 무성하던 환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빅토르 볼프강 폰 하겐

《남아메리카가 그들을 불렀다》

쿠라레 독액에 관한 샤를 마리 드 라콩다민의 기록. "자기네들의 복수심이나 질투심, 증오감을 만족시키는, 그렇게도 확실하고 효과 빠른 도구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이 원숭이나 새들에 한해서만 치명적인 수단으로 쓰인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자신의 새로운 신도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종종 증오의 대상이 되는 선교사가 ……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나 불신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결단을 자아낸다."

 

1745년의 판화에 나타난 아마존강의 협곡.

"오늘 아침 몇 시간 동안 훔볼트와 함께 있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를 안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느낀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다재다능한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그 어떤 주제가 화제에 오르더라도 그는 지극히 편안한 자세로 자신의 지식 창고에서 숱한 보물을 꺼내 우리 위에 쏟아붓는다. 그는 엄청난 물줄기를 쏟아 내는 분수와도 같다. 우리는 마를 줄 모르는 값진 물줄기를 받아 담을 그릇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안데스 산맥을 넘는 훔볼트. 19세기의 동판화.

19세기 중엽 영국에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새로운 종류의 과학연구자들이 등장했다. 바로 이권에 좌우되지 않는 과학자들이다. 자연과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여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헨리 월터 베이츠와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를 생각해 보라. 그들이 처음 만나 서로가 모험의 꿈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하나는 측량기사의 조수였고 하나는 속옷가게의 점원이었다. 대영박물관은 그들에게 곤충과 식물 표본의 채집을 의뢰했다. '팔 수 있는 상태로' 가져온 종 하나마다 3펜스를 준다는 조건이었다. 1848년, 그들은 열정 외에는 이렇다 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벨렘에 상륙했다.

동물지리학회의 아버지.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네그루강에서 4년을 보냈다. 진화론의 선구자였던 그는 다윈에게 자연선택에 관한 자신의 논문을 보냈고, 그 논문은 동시에 런던 린네 협회에 보고, 낭독되었다. 그 유명한 《종의 기원》의 첫번째 초안이었다.

아마조니아의 물에서 가장 장관인 두 괴물 중 하나인 악어를 잡는 헨리 월터 베이츠. 검은 카이만악어는 몸길이가 5~6m에 이른다. 카리브 해안에 사는 그 사촌, 크로코딜루스 인테르메디우스는 8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아나콘다 중에는 몸길이 약 12m, 몸무게 150kg 이상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리오브랑코 인디오

쿠니부시 인디오

마유루나시 인디오

마쿠시 인디오

철학여행

1783년에서 1792년 사이에 일군의 포르투갈인 탐험자-학자들은 아마조니아 인디오들과 동물상을 그린 당세기의 가장 귀중한 그림첩을 만들어서 명성을 얻었다. 알렉산드레 로드리게스 페레이라는 코임브라대학의 '자연철학' 박사였고, 그의 여행 동반자 주아킴 주세코디나와 주세 주아킴 프레이레는 리스본 왕립 자연사 수집소 소속의 화가였다. 그들은 9년동안 네그루강, 브랑코강, 마데이라강, 과포레강, 마모레강을 따라 4만km(지구의 둘레에 해당하는 거리이다)를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가는 곳마다 놀라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인디오를 처음 본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사진처럼 정확하게 인디오에 관한 기록을 처음으로 남겼다. 그러한 발견 가운데에는 화살이나 창을 쏘는 데 쓴 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활보다도 앞서는 인류의 가장 오랜 무기 가운데 하나였다.

 

제4장

거대한 고무산업

 

"'에베'라고 불리는 나무는 에스메랄다스 지방에서 자란다. 단 한 번만 쭉 그어도 나무는 우유 같은 환액을 분비하는데, 공기와 접촉하면서 이 액은 차츰 굳어지고 색깔이 짙어진다. …… 마야족은 거기서 얻는 수지를 '카우추'라고 부르는데, '눈물을 흘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샤를 마리 드 라콩다민

아마조니아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야생 고무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19세기에 오마과 인디오는 포르투갈인들에게 고무 시린지의 사용법을 시험해 보였다.

 

악순환

우기가 닥쳐 고무액 채취를 할 수 없게 되면 세링게이루는 자신의 수확물을 강 위에 띄우고아비아도르(중개인)가 기다리고 있는 마나우스로 내려간다(위). 펠레를 쪼개어 등급을 매기고(가운데) 무게를 단 후에(아래) 중개인은 자신의 고객과 새로운 계약에 서명한다. 물론 거래 실적표에서 그의 수입을 산출해 낸 뒤의 일이다. 아비아도르의 창고에는 통조림, 음료, 옷가지, 그리고 불쌍한 채취꾼들이 우기의 괴로운 몇 달 동안을 보내는 데 있으면 좋겠다 싶은 갖가지 물건들이 그득하다. 그러니 세링게이루가 올 때마다 늘상 아비아도르에게 더 많은 빚을 지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해를 거듭하면서 채취꾼은 '자유'를 꿈꾸지만, 결과는 그와 무자비한 주인 사이에 채무 관계의 사슬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뿐이다.


제5장

인디오와 열대우림


"내 뒤를 이을 국왕, 내 딸인 공주, 내 아들인 왕자가 하는 모든 일, 하도록 허락되는 모든 일이 섬이나 육지, 어느 곳에 사는 인디오들, 그 생명과 재산 어느 것에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공평하고 친절한 대접을 받는 것을 그들이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라노라."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마지막 유언




걷는 법 배우기

보토쿠도족 인디오들은 인종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레가 자신이 머물던 땅의 주인인 아셰족에게 숲으로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했을 때 배운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아셰족들은 멈칫했다. "그들의 가장 큰 염려는 나 때문에 일행의 속도가 늦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내가 동행하는 데 동의했고, 나는 곧 그들의 염려가 근거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 때문에 '길을 우회하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은 날랜 동작으로 걸었고, 나는 자꾸만 뒤로 처졌다.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나무덩굴이 비록 꼼짝 못하게는 아닐지라도 계속해서 길을 막았고, 때로는 덩굴이 갑자기 나를 휘감아 나무줄기에 내동댕이치곤 했다. 옷이 가시에 걸리면 가시를 떼어 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나는 뒤로 처지는 데 그치지 않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아셰족은 말이 없고 날렵하고 능숙했다. 오래지 않아 나를 뒤처지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옷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뭇가지와 덤불은 벌거벗은 인디오의 피부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그들처럼 하기로 작정하고 옷을 벗어 던졌다."

세균전

아마존강의 양대 지류인 주루아강과 푸루스강은 페루, 볼리비아와 경계를 이루는 브라질의 아크레주를 관통하여 흐른다. 두 강은 전장에 걸쳐 항행이 가능했기 때문에 강의 원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의 역사가 19세기 초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이 지역에 살았던 인디오들은 탐험가들을 평화로이 맞았다. 그런데 고무 붐이 일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이 지역에 야생 고무나무가 풍부하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인디오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수아레스가 자신의 제국 건설에 착수했다. 인디오들을 되도록 신속하게 없애 버리기 위해 세랑게이루(투기꾼)들은 18세기에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북아메리카 인디오들에게 시도하여 성공한 방법을 원용했다. 심지어는 병균에 감염된 옷을 건네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오늘날 이 사람들은 실제로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전세계의 다른 사람들처럼 인디오들(위는 카마칸족 인디오)도 춤을 언어와 축제, 둘 다로 생각했다. 신성과 세속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없는 시대로의 일종의 회귀인 셈이다. 언어보다도 오래된(새들의 짝짓기 군무를 보라) 춤은 언어를 초월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광란하며, 시간을 뛰어넘는 몰입으로 이중성 - 육체와 영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을 쓸어 없애고 존재를 다시 하나로 묶어 내면서, 춤은 생명 본능을 표현한다. 흔히 축제로, 이따금씩은 내키는 대로, 셀 수 없이 벌어지는 인디오들의 춤판은 출생, 사춘기, 죽음, 전쟁, 결혼, 집짓기, 새로운 땅의 개척 등등, 기념할 만한 일에서부터 일상적인 일까지, 인생 행로의 마디마디에 구두점을 찍는다.

인디오 공동체가 바깥 세계에 포위되어 공동체의 존속 자체를 위협받게 되었을 때, 샤먼의 지속적인 존재는 집단의 결집력과 나아가 존재 자체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증이었다 - 인종학자와 선교사들이 모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이다. 예언자와 사제와 치료자가 하나로 뭉쳐진 샤먼은 부족원 개개인의 건강을 지키고 부족의 안녕과 행복에 관계된 모든 일에 자문을 한다.


"주민들의 발가벗은 몸은 풀로 이어짠 푹신한 바람벽과 야자나무의 술로 보호받는 것 같았다. 원주민들이 오두막에서 미끄러져 나올 때면, 마치 거대한 타조 깃으로 만든 덮개를 벗어 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몸과 보드라운 상자에 담긴 장신구들은 정교한 본을 따르고 있었고, 몸의 화장과 칠이 화려하다 보니 오히려 살색이 돋보였으며, 몸의 요란한 칠은 또한 깃털과 꽃 사이에서 밝고 오묘한 섬광을 발하는 야생동물의 이빨 등, 그보다 더 휘황찬란한 장식물들이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배경 효과를 노린 것 같기도 했다. 그 광경은 마치 문명 전체가 삶의 형태와 내용과 색깔에 대한 단 하나의 뜨거운 애정에 전폭적인 협력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18세기 포르투갈인의 그림에 묘사된 쿠루추족 인디오의 공동의 집.

브라질과 콜롬비아, 페루의 교차로에 사는 제법 큰 규모의 인디오 부족인 술리몽스 강변의 투쿠나족(위)은 지난 2세기 동안, 용케도 자기네 사회문화적 통합력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웃 백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그러나 국제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그들마저도 브라질 쪽에서의 잔인한 습격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브라질령 아마존 지역의 인디오들이 사는 다양한 형식의 움막들.

 

"오셀롯 귀신아, 나한테로 내려오너라! 헤쿠라여, 당신은 나를 돕지 않았나이다. 나는 며칠 밤을 지새며 복수할 방법을 궁리했노라. 나는 수리 귀신과 딜 귀신을 보았노라. 달 귀신이 인간의 육체를 탐하여 움막 속에 들어왔다가 수이리나의 화살에 맞았구나. 그 상처와 흘린 피에서 살을 뜯어먹는 무수한 귀신들이 태어났도다. 달 귀신아, 수리 귀신아, 너희들은 식인종이다. 수리야, 네 머리는 피로 물들었고, 네 콧구멍에는 벌레들이 들끓는도다. 하늘에 잠자리들이 모여드는구나. 오마웨가 화살로 땅을 뚫었구나. 구멍 속에서 솟아나온 물줄기가 하늘에 닿아 하늘 뚜껑을 이루었도다. 그 위에서 잠자리들이 번식하는구나. 그 위에 목마른 자들이 산다! 그들을 나한테 내려오게 하라! 오마웨가 나의 혀에 불을 붙였도다! 그들로 하여금 내 혀를 적셔 새롭게 만들게 하라! 악마에게 우리 아이들을 잡아가도록 명령한 자들은 내 복수를 받으리라. 그들이 어디 있다하더라도."

한 아이의 죽음에 부친 야누마미족 샤먼의 주문

자크 리조 기록

만일 브라질인 투기꾼들이 우연히 시에라파리마 산맥의 아마존 쪽 사면에서 다량의 금과 다이아몬드 퇴적물을 발견하지만 않았더라면, 야누마미족은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에서 살아갔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유명한 모험가이자 런던탑에 갇힌 죄수였던 월터 롤리 경이 400년 전에 찾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엘도라도가 다시 태어났다. 1987년에 시작된 이 골드 러시는 4만 명의 사람들 - 그리고 그 문화와 질병 -을 야누마미 땅으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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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3 우리 옛 질그릇

 

글, 사진 / 윤용이

1999, 대원사


 

시흥시립도서관

SA002624

 

082

빛12ㄷ  229

 

빛깔있는 책들 229

 

윤용이-------------------------------------------------------------------------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사 및 학예관을 거쳐 문화재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 원광대학교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도자사연구』『아름다운 우리 도자기』『한국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공저) 『우리 옛 도자기』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선사시대 질그릇

   신석기시대 질그릇

   청동기시대 질그릇

   초기철기시대 질그릇

역사시대 질그릇

   원삼국시대 질그릇

   삼국시대 질그릇

   통일신라시대 질그릇

   고려시대 질그릇

   조선시대 질그릇

맺음말

참고 문헌

우리나라 질그릇 역사 연표

덧무늬 질그릇발  양양 오산리 출토, 높이 16.5센티미터, 입지름 23.6센티미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손톱무늬 질그릇발  양양 오산리 출토, 높이 27.7센티미터, 입지름 37.5센티미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주구달린 덧무늬 질그릇발  부산 소선동 패총 출토, 높이 12센티미터,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덧무늬 질그릇발  김해 수가리패총 출토, 높이 20.6센티미터,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

빗살무늬 질그릇발  서울 암사동 출토, 높이 40.5센티미터, 경희대학교박물관 소장.

빗살무늬 질그릇발  서울 암사동 출토, 중 · 소 · 대, 높이(대) 47.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빗살무늬 질그릇의 분포도

북방식 고인돌  강화도 부근리 소재

청동기 유물  화순 대곡리 출토, 지름(큰 거울) 18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민무늬 질그릇발  광주 미사리 출토, 높이 44.6센티미터, 경희대학교박물관 소장.

민무늬 질그릇발  서울 가락동 주거지 출토, 높이 35센티미터,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각종 철기  초기철기시대, 위원 용연동 출토, 길이(창) 32.6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흑도 장경호  대전 괴정동 출토, 높이 22.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점토대 질그릇발  대전 괴정동 출토, 높이(왼쪽) 1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점토대 질그릇발  출토지 미상, 높이(왼쪽) 15.1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손잡이달린 흑도 장경호  원삼국시대, 경주 조양동 출토, 높이 32.6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돌무지무덤  고구려시대, 중국 퉁구 장군총 전경.

손잡이달린 질그릇호  고구려 6~7세기, 대동 송신리 출토, 높이 17.1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질그릇 단지  고구려 6~7세기, 높이 35.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몽촌토성 전경  서울 방이동(현 올림픽공원), 전체 길이 2,285미터.

삼족도기 백제 5세기, 서울 몽촌토성 출토, 입지름 24.9센티미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원통형 질그릇  백제 5세기, 서울 몽촌토성 출토, 높이 54센티미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백제 기와 가마터 전경  백제 6~7세기, 부여 정암리 소재.

백제 도용  백제 6~7세기, 부여 정림사터 출토,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도제 불상대좌  청양 본의리 가마터 출토, 높이 100센티미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가야 금관  가야 5~6세기, 전 고령 출토, 높이 11.5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기마인물형 질그릇  가야 5세기, 전 김해 출토, 높이 23.2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집 모양 질그릇  가야 5~6세기, 높이 35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오리형 질그릇  가야 5~6세기, 전 경상남도 출토, 높이 15.7센티미터(왼쪽), 16.5센티미터(오른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령 지산동고분 발굴 모습

금제 태환식 귀고리  경주 보문동 부부총 출토, 신라 5~6세기, 길이 8.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남자인물상 도우  신라 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질그릇 장경호  신라 5세기, 경주 황남동고분출토, 높이 34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배 모양 질그릇  신라 5~6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높이(왼쪽) 12.6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마인물형 질그릇  신라 5~6세기, 경주 금령총 출토, 높이 23.5센티미터(주인), 21.2센티미터(시종),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석굴암과 본본불상  통일신라 8세기, 경주 토함산.

얼굴 모양 수막새  통일신라 7세기, 경주 사정동 영묘사터 출토, 높이 14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여인상 도용(세부)  통일신라 7세기, 경주 황성동고분 출토, 높이 16.5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문관상 도용  통일신라 8세기, 경주 용강동고분 출토, 높이 17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녹유 도기 인화문합  통일신라 8세기, 경주시 출토, 총높이 16.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주 안압지 전경

질그릇 묵화문합  통일신라시대, 경주 안압지 출토, 입지름 11.3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각종 질그릇  고려시대, 연세대학교박물관 소장.

장독대(버선본 붙인 독)

소래기  높이 31.5센티미터

전라도 지방의 독  높이 100센티미터

경기도 지방의 독  높이 97센티미터

경기도 지방의 독  높이 94센티미터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2 뭐냐

 

고은 선禪시집

2013, 문학동네

 

대야도서관

SB079219

 

811.6

고67ㅁ

 

너 뭐냐 뭐냐 뭐냐 뭐냐 뭐냐……

이 작은 시편들,

사물들 위로 내리꽂히는 번개들의 찰나를 품는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우뚝 멈춰섰다. 사고를 정지시키는 공안(公案)과도 같은 정신의 폭죽들! 나는 이 시들을 설명할 수 없으며 다만 그 함의를 절반쯤만 이해하고 이 시들이 드러내는 작은 알곡에 매혹될 뿐이다. 깨뜨리기에는 단단한 견과, 하지만 많은 시들이 견과이면서도 동시에 비어 있는 듯하다. _알렌 긴즈버그

 

고은은 노선사들이나 젊은 시인들보다 한 수 위이다. _게리 스나이더

 

무례하고 동정적이며 종종 유머가 넘치는 이 작은 시편들은 이해의 광대한 들판 쪽으로 문을 열어놓고 있다. 고은의 시들은 만물의 민주주의 가운데서 살며 바로 이 순간, 빛나며 도약하는 본질을 똑바로 그리고 커다란 기쁨을 가지고 바라본다. _제인 허시필드

 

선시들은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말로 하며 본질로 직격하는데, 직격하며 대상을 깬다. 삼라망상에 들이대는 "너는 뭐냐"라는 물음이 그것을 깨는 망치다. 선시들은 대상들을 여지없이 께트린다. 그 파쇄를 본질로 향유하는 것, 이게 바로 고은 선시의 본래면목이다. _장석주, '해설' 중에서

 

고은

1958년 처녀시 「폐결핵」 발표 이래 시 · 소설 · 평론 · 에세이 등 1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중 시집은 서사시 『백두산』 7권, 전작시 『만인보』 30권을 비롯해 모두 70권이며, 『고은 시전집』『고은 전집』을 출간했다. 세계 25개 국어로 시와 소설이 번역 출판되었고, 이 가운데 『만인보』는 스웨덴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선정되어 중고교 외국문학 교재로 채택되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예총 초대회장 등을 지내고, 미국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 초빙교수, 버클리대 동양학부 초빙교수(시론 강의), 서울대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단국대 석좌교수, 유네스코 세계 시 아카데미 명예위원회 위원, 한겨레사전 남북한 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며 국내외 시단에서 창작활동중이다. 국내외 문학상과 훈장을 다수 수상했다.

 

차례

 

서문

이실직고 / 일기 / 얼씨구 / 달밤 / 화두 두 개 / 임종 / 선방 / 권고 / 메아리 / 올빼미 / 작별 / 아기 / 산을 내려오며 / 쇠고기 / 부시먼 / 이름 세 개 / 감회 / 거량(擧揚) / 난주경허(蘭州鏡虛) / 낮 / 웃음 / 저 건너 / 옷 / 주정뱅이 / 법화경 / 좌선(坐禪) / 골목 / 벽암록 / 낮달 / 무지개 / 남과 북 / 선방(禪房) / 허튼소리 / 친구 / 삼거리 주막 / 대웅전 / 늦여름 / 소나기 / 하루살이 / 허깨비 / 백팔염주 / 이삭줍기 / 달 / 문둥이 / 청개구리 / 한마디 / 품 안 / 고려 보조 / 뻐꾸기 / 미소 / 수평선 / 사자 / 산은 산 / 산꼭대기 / 먼 불빛 / 물결 / 까치 새끼 / 길을 물어 / 한 평 반 감방 / 길 / 파경조 / 빨래 / 팔공산 / 바람 / 쇠고기 등심 / 낮 / 종로 / 괜히 / 어느 날 / 옛 부처 / 밭두렁 돌덩이 / 제주 새밭 / 달 / 오대산-五臺拍手峨媚笑 / 봄꿈 / 청개구리 / 폭우 / 졸장부 / 잔물결 / 바람 / 출가 / 한산 습득이 / 어떤 거사(居士) / 내가 좋아하는 말 / 마정리 아낙네 / 새로운 길 / 모기 / 집 / 말 한마디 / 여름 / 별똥 / 가을밤 / 오늘 / 푸른 하늘 / 어린아이 / 친구 / 문 닫으며 / 마가목차 한 잔 / 고향 / 왜 죽여 / 소경 아나욜타 / 운봉 임종게 / 전등록 / 달밤 / 그믐밤 / 아궁이 / 낮잠 / 용맹정진(勇猛精進) / 지렁이 / 파리 한 마리 / 편지 / 야보 / 멧돼지 / 한밤중 / 북극성 / 팔만대장경 / 돼지 / 싱거운 놈 / 낮잠 뒤 / 아난 / 경책 / 대좌 / 지나가며 / 귀 / 이슬 / 밤 / 그리움 / 웃음 / 세 식구 / 상류(Upper Stream) / 열 / 태평로 / 몇천 년 / 파주 낙조 / 안개 / 달밤 1 / 그리움이거든 / 1992년 4월 15일 / 1992년 4월 16일 / 1992년 4월 17일 / 1992년 4월 18일 / 저녁 / 보리밭 / 자정 / 봄바람 / 먼 데 / 파도 / 임 / 섬 / 돌맹이 / 아침이슬 / 냇가 / 기흥 지나면서 / 죽음 / 보이저 2호 / 이름 없는 노래 1 / 이름 없는 노래 2 / 이름 없는 노래 3 / 어느 날 / 화엄 / 기념 / 상원사 / 미풍 / 대화 / 향기 / 호수 / 달밤 / 태풍 / 감사 / 이웃 / 그리움 / 모국어 / 술 / 마을 하나 / 서운산 / 낭떠러지 / 몸의 노래 / 친구 / 예로부터 / 직립

해설 | 고은 선시에 관하여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

 

지렁이

 

지렁이 기어간다 기어가다가 쉰다

이 하늘의 벗이여

 

팔만대장경

 

횡설수설로 길 막혀

돌아서니

거기

뱀 한 마리

 

뱀이 뱀의 길 잘도 안다

 

어린아이

 

나는 불 법 승 3보에 귀의하지 않노라

길 가다가

어린아이 하나 만나

그 천진난만에 빠져버려

촛불 따위 향 따위 군더더기

아이고 놓쳤다 잠자리!

 

푸른 하늘

 

이 사람아 실컷 울어아

 

그믐밤

 

달 뜨지 않아도

7백 리 밖

그대와 나 사이

밤새도록 휘영청

내일 죽을 개 죽을 줄 모른다

힘차게 짖는다

 

메아리

 

저문 산더러

너는 뭐냐

 

너 뭐냐 뭐냐 뭐냐 뭐냐 뭐냐……

 

골목

 

막다른 골목 돌아선다

좋아라

여기저기

환한 불꽃

 

정릉 어느 골목

 

냇가

 

가을 저녁

추운 물 바쁘게시리 흘러간다

그 물소리 유난 떨어

저만큼까지 이 아리며 들리는지

저문 들마저 귀 가다듬는다

 

세 식구

 

천둥번개 치는데

깜깜한데

어린놈 있다

에미 애비 있다

시퍼런 번개불빛에 드러난 이 실재!

그렇다 삶이 아닌 이 부재!

 

지나가며

 

절하고 싶다 저녁연기 자욱한 먼 마을

 

빨래

 

빨래 펄럭이누나 보살이 보살인 줄 모르며

 

일기

 

편할수록

불편하다

더 불편하다

 

왜 올가을이 내년 가을인가

 

 

달 보면 된다고?

달 가리키던 손가락 잊어버리라고?

이런 벽창호!

 

달과 손가락 다 잊든지 말든지

 

대웅전

 

크게 그르쳤다

 

차라리

일주문에서 돌아갈 일

 

 

마른 똥덩어리

파리도 날아오지 않는다

 

여기 극락세계? 아냐

 

 

비 온 뒤 물 불었다

제비 열두어서너대여섯 마리 높디높다

 

어느 날

 

앞산에 번개

뒷산 우레

이 가운데

돌멩이 벙어리

 

모기

 

모기한테 물렸다

고맙구나

내가 살아 있구나

긁적긁적

 

뻐꾸기

 

이른 아침 뻐꾸기 세 마리 나란히 앉아

이 세상 좋을시고

저 세상 좋을 시고 말없다

어제 울던 뻐꾹뻐꾹 다 잊어버리고

오늘 울 뻐꾹뻐꾹 아직 일러라

이때가 제일 좋은 때!

 

거량(擧揚)

 

이리 오너라

 

발이 없다

 

개 한 마리 보내니

네 발을 물을 것이다

 

새 같은 놈!

 

내일 오너라

 

내일? 내일이 뭐냐?

 

개 같은 놈!

 

선방(禪房)

 

네가 1겁은 고사하고

10겁을 앉아보아라

정법(正法)이 나타나지 않으리라

 

그냥 번뇌 망상하고 놀다 일어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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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1 HOW TO READ 라캉 Jacques Lacan


슬라보예 지젝 지음 | 박정수 옮김

2007,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818


082

하66ㅇ v. 8

 

라캉의 관점에서, 신경증, 정신병, 도착증 같은 병리적 형식들은

근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철학적 태도들을 지니고 있다.

만약 내가 신경증을 앓고 있다면, 이 '질병'은 현상에 대한 내 모든 관계를

물들이고, 내 인격의 전체 구조를 결정한다.

라캉이 다른 정신분석학과를 비판하는 초점은 그들의

임상적 편향에 맞춰 있다. 라캉에게 정신분석 치료의 목적은

환자의 복리나 성공적인 사회생활 내지 개인적인 자기성취가 아니라,

환자로 하여금 욕망의 기본 좌표와 곤경을 대면하도록 하는 것이다.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탐욕스러운 독자이자 해석자, 라캉

 

라캉에게 정신분석학은 근본적으로 심리적 장애를 다루는 이론이나 기법이 아니라, 개인들을 인간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영역과 대면시키는 이론이자 실천이었다. 저자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은 읽는 좋은 방법은 그의 독법을 실천하여 라캉으로 다른 텍스트를 읽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지젝은 라캉으로부터 CIA 일화,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에일리언> <카사블랑카>,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보보크>, 테러리스트 부예리의 편지 등 다른 분야의 텍스트로 이행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지젝은 이 책에서 특유의 논리로 라캉의 '어려운' 개념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 혹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현재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 연구원, 슬로베니아의 주간지 <믈라디나>의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삐딱하게 보기 : 대중 문화를 통한 라캉의 이해》《부정태와 함께 체재하기 : 칸트, 헤겔,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 등이 있다.

 

박정수

서강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현대 소설과 환상》이 있고, 옮긴 책으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민족주의와 섹슈얼리티》(공저)가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우리 뇌를 씻어내자

 

1. 알맹이가 없는 텅 빈 제스처

    : 라캉, CIA 음모와 대결하다

2. 진짜와 가짜

    : 라캉, 마니차를 돌리다

3. 환상의 주문에서 깨어나기

    : <아이즈 와이드 셧>과 함께 라캉을

4. 실재의 수수께끼

    : <에일리언> 관객으로서의 라캉

5. 초자아적 명령 "즐겨라!"

    : <카사블랑카> 관객으로서의 라캉

6. 신은 죽었다. 하지만 신은 그걸 모른다

    : 라캉, <보보크>와 놀다

7. 진실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

    : 라캉, 테러리스트의 편지를 읽다

 

■ 주

■ 라캉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역자 후기 : 이데올로기의 전쟁터에서 정신분석학은 어느 편인가?

 

1

알맹이가 없는

텅 빈 제스처

: 라캉, CIA 음모와 대결하다

 

"왠 호들갑인가? 우리는 단지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항상 해왔던 일을 공개적으로 승인하자는 것뿐이다.

그들에 비하면 오히려 우리는 훨씬 덜 위선적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미국 고위 관료들이 의도한 게 단지 그것이라면 왜 그걸 말하는 거지?

왜 그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은밀하게 그 짓을 하지 않는 거지?"

제기되어야 할 물음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 진술을 하게 만든 진술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진짜와 가짜

: 라캉, 마니차를 돌리다

 

티베트의 마니차는 기도문이 쓰인 종이를 원통 속에 넣고는 기계적으로 돌리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바퀴가 대신 기도를 해준다.

비록 내가 음탕한 성적 환상에 빠져 있을지라도,

나는 스탈린주의자들의 말처럼 "객관적으로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3

환상의 주문에서 깨어나기

: <아이즈 와이드 셧>과 함께 라캉을

 

니콜 키드먼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범람하는 환상들을 틀어막기 위해,

또다시 환상들이 우리를 압도하기 전에 빨리 섹스를 하자.

꿈속에서 대면한 실재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현실로 깨어난다는 라캉의 생각은

성행위에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 적용된다.

섹스를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섹스에 관한 꿈을 꾸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덮칠지도 모를 꿈의 과잉성을 억누르기 위해, 그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이다.

 

4

실재의 수수께끼

: <에일리언> 관객으로서의 라캉

 

영화광이라면 이 모든 것을 언젠가 한번 본 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라캉의 묘사는 단지 공포 영화의 끔찍한 창조물을 상기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라캉의 묘사는 10여 년 후에 나온 영화,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의 장면들을

조목조목 기술하는 것처럼 읽힌다. 이 영화의 기괴한 외계 생명체는 라캉의 라멜라와 닮았는데,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라캉이 이 영화를 본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5

초자아적 명령

"즐겨라!"

: <카사블랑카> 관객으로서의 라캉

 

자아 이상(여기서는 공중의 상징적 법, 공적 발화 속에서 우리가 따르고 있다고 가정되는 규칙의 집합)의

차원에서는 문제 될 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텍스트는 깨끗하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차원에서 텍스트는 관객에게 "즐겨라!"라는 초자아적 명령을 퍼붓는다.

즉 우리의 더러운 상상의 길을 터준다.

 

6

신은 죽었다. 하지만

신은 그걸 모른다

: 라캉, <보보크>와 놀다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린 장면이 신 없는 세계의 장면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하는 시체들은 (생물학적으로) 죽고 난 이후 그들의 삶을 경험하는데,

그 자체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신은 여기 있다.

죽고 난 이후에도 우리를 살아 있게 함으로써 그것이 그들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이유다.

 

7

진실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

: 라캉, 테러리스트의 편지를 읽다

 

테러리스트 부예리가 단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죽음을 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착증자는 "만약 당신이 진실하다면 당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로부터

"만약 죽음을 원한다면 당신은 진실되다"로 이행한다.

이 단락은 타인의 소망을 대신 떠맡는 놀라운 수사로 끝난다.

"나는 당신을 대신해서 이 소망을 소망할 것이오."

 

라캉의 생애

 

1901년 4월 13일 라캉(Jacques-Marie-Emile Lacan)은 파리의 엄격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

            다. 예수회 학교 콜레주 스타니슬라스(College Stanislas)에서 교육받았고 바칼로레아를

            치른 후 처음에는 의학, 나중에는 정신의학을 공부했다.

1927년 생트 안느(Sainte-Anne) 병원에서 근무, 임상 훈련을 시작했다. 1년 후 클레랑보

             (Clerambault)가 연 특별 진료 서비스(Special Infirmary Service)에서 근무했다.

1932년 <인성과의 관계에서 본 편집증적 정신병 De la psychose paranoiaque dans ses

             rapports avec la personalite>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33년 그 이론적 풍부함으로, 특히 에메(Aimee) 사례에 대한 분석으로 초자연주의자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1933년과 1939년 사이에 고등 연구원에서 열린 코제브(Alexandre Kojeve)의

             '헤겔 독해를 위한 입문' 강연을 들었다.

1934년 카롤린, 티보, 시빌르를 낳게 될 블롱댕(Marie-Louise Blondin)과 결혼했다. 뢰벤슈타인

             (Rudolph Loewenstein)과의 분석 작업 동안 파리정신분석협회(S. P. P.)의 멤버가 되었

             다.

1940년 파리의 군 병원 발 드 그라스(Val-de-Grace)에서 근무. 독일 점령기 동안 어떤 공식 활동

             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1946년 S. P. P.가 활동을 재개하고 라캉은 나흐트(Nacht), 라가슈(Lagache)와 함께 훈련 분석과

             지도 감독의 책임을 맡았으며 중요한 이론적, 제도적 역할을 맡았다.

1951년 S. P. P.가 라캉의 '짧은 시간 면담'이 표준적인 분석 시간에 위배된다며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1953년 1월에 라캉은 S. P. P. 대표로 선출되었다. 6개월 후 S. P. P. 대표직을 사임하고 라가슈,

             돌토(F. Dolto), 부토니에(J. Favez-Boutonier)와 함께 프랑스정신분석협회(S. F. P.)에 가

             입했다. 라캉은 국제정신분석협회(I. P. A.)로부터 프랑스의 공식 기관인 S. P. P.를 사임하

             고 다른 단체에 가입한 것은 위법이라는 통지를 받는다. 바꾸어 말하면 라캉이 더 이상 I.

             P. A.의 회원이 아니라는 뜻이다. 로마에서 <말과 언어의 장과 기능 Fonction et champ

             de la parole et du langage>을 발표했다. 7월 17일 주디스(Judith)를 낳게 될 마클레스

             (Sylvia Makls)와 결혼했다. 그해 가을 라캉은 생트 안느 병원에서 세미나를 하기 시작했

              다.

1954년 처음 열 번의 세미나는 정신분석 기법과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 그리고 정신분석의 윤리

             에 대한 생각을 다듬었다. 이 시기 라캉은 자신의 세미나, 회의, 구두 강연에 기반을 두고

             1966년 《에크리》에 실린 중요 텍스트들을 집필했다.

1956년 저명한 지식인들이 세미나에 참여했다(첫 번째 세미나 동안 프로이트의 '부정

             Denegation'에 관한 논문을 장 이폴리트가 분석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플라톤에 대해 코

            이레(Alexandre Koyre)가 강연을 했고, 레비스트로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그리올(Marcel Griaule), 민족학자 방브니스트(Emile Benveniste) 등이 라캉의 강

            의에 참석했다.

1962년 S. F. P. 회원들이 I. P. A.의 승인을 원했다. I. P. A.는 라캉의 이름이 훈련 교사 목록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허락했다.

1963년 I. P. A.가 정해놓은 최종 기한(8월 31일) 2주 전 S. F. P.의 훈련 교사 위원회는 1962년의

            용감한 입장을 포기하고, 금지령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취했다. 라캉은 더 이상 훈련 교사의

            일원이 아니게 되었다. I. P. A.로부터 제명된 것이다.

1964년 공식적으로 프랑스 정신분석 학교를 창립하기 전까지 클라브뢸(Jean Clavreul)을 비롯한

            라캉 추종자들이 정신분석에 대한 스터디 그룹을 조작했다. 프랑스 정신분석 학교는 곧바로

            라캉이 세운 파리 프로이트 학교(E. F. P.)로 재편되었다. 레비스트로스와 알튀세의 지지 속

            에서 그는 고등연구원(Ecole Pratique des Hautes Etudes) 강사로 임명되었다.

1965년 1월 라캉은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에서 '무의식의 내 가지 기본 개념

            들'에 대한 새로운 세미나를 시작한다. 이 세미나의 청중은 분석가들뿐 아니라 고등사범학

            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젊은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밀레(Jacques-Alain

             Miller)가 있었다.

1966년 《에크리》(Paris, Seuil, 1966) 출간. 이 책은 지식인 계층을 넘어 폭넓은 학생 대중의 관

            심을 끌었다.

1967년 라캉은 E. F. P.의 정초 행위(Acte de Fondation)를 제시했다. 이것의 새로움은 통과

            (passe) 절차에 있다. '통과'는 두 명의 안내자(passeur) 앞에서 하는 테스트로 구성되는

            데, 자신의 피분석자로서의 경험과 특히 피분석자의 위치에서 분석가의 위치로 이행하는 중

            요한 순간을 설명하는 것이 주된 과제다. 안내인들은 통과자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이번에는

            교장, 라캉 그리고 몇몇 지도교사로 구성된 승인 위원회 앞에서 그들이 들은 내용을 증명한

            다. 이 승인 위원회의 기능은 학교의 분석가를 선발하는 것뿐 아니라 선발 절차 이후 '학설

            의 작업'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1969년 통과에 관한 문제가 E. F. P.의 운명을 위협하게 되었다. 라캉의 분석가 훈련 방법과 승인

            과정에 반대하면서 E. F. P.에서 사임한 사람들 주위에 '제4의 그룹'이 형성된 것이다. 라캉

            은 1968년 5월로 이어지는 대학의 붕괴 속에 놓여 있었다. "만약 정신분석이 지식으로 개진

            되고 그 자체로 가르쳐질 수 없다면 그것은 대학에서 아무런 위상도 갖지 않습니다. 대학은

            오직 지식의 문제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고등사범학교의 교장 플라셀리에르(Flaceliere)

            는 학기가 시작될 무렵 라캉에게 고등사범학교는 더 이상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핑계를 찾은 것이다. 게다가 《분석 노트 Cahiers pour l'Analyse》 역시 출판을 멈춰야 했

           다. 하지만 뱅센(Vincennes) 대학(파리 8대학)은 달라 보였다. 푸코는 라캉에게 뱅센 대학

           에 정신분석학과를 만들고 지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라캉은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감사의 표

           시로 팡테옹(Pantheon)의 법률 학교로 세미나 장소를 옮겼다.

1974년 뱅센 대학의 정신분석학과가 '프로이트파의 장(Le Champ freudien)'이라고 이름을 바꿨

           다. 라캉이 학과장으로, 밀레가 학장으로 취임했다.

1980년 1월 9일 라캉은 E. F. P.의 폐교를 선언하면서 그와 함께 작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를 글로 진술하라고 요청했다. 일주일 만에 1000통의 편지가 그에게 배달됐다. 2월 21

           일 라캉은 '프로이트적 대의(La Cause freudienne)'를 창설했다. 이 학교는 나중에 '프로이

           트 대의 학교(L'ecole de la Cause freudienne)'로 이름을 바꿨다.

1981년 9월 9일 파리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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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110 사탄과 약혼한 마녀

 

장-미셸 살망 지음, 은위영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26

 

082

시158ㅅ  21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1

 

Les sorcieres, fiancees de Satan

 

15세기 말부터 서구에는 마녀 사냥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닥쳤다. 행실이 나쁘다거나

무언가 의심쩍은 구석이 있는 사람은, 특히나

여자일 경우 어김없이 화형장의

불길 속으로 던져졌다. 이처럼 유럽을

광기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마녀 사냥의 배후에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갈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인쇄술의 발달도 여기에 한몫을 했다.

악마론의 연구서들이 전 유럽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던 것이다.

 

"태생을 보면,

마녀에게는 배우자도 가족도 없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운석(隕石)같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괴물. 누가 감히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

마녀는 어디 있는가. 접근이 불가능한 지 어느 곳,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얽히고 설킨 광야의 한끝이 아닐까.

혹은 한밤중 선사의 어느 고인돌 아래쯤,

그녀가 거기 있다 한들, 그녀는 여전히 혼자,

그러니 두렵지 않을 자가 누가 있나.

사나운 불길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다고는 하지만

누가 이를 믿으랴. 그녀는 그저 한 여인일 뿐인데,

거칠고 무서운 삶이라 한들 그녀가 여자임을

잊게 할까, 여인의 본성을…….

 

모든 것은 사탄에서 비롯하나니, 살아 숨쉬며

저주하는 마녀들이란 사탄의 보금자리.

사람들은 마녀가 두렵다 말들 하지만, 마녀가 없다면,

그들은 권태로움에 죽을 것임을 고백해야 하리."

 

쥘 미셀레(Jules Michelet), <La Sorciere>

 


|차례|

 

제1장 마녀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제2장 마녀사냥

제3장 무자비한 사법장치

제4장 마법인가, 마술인가?

제5장 마법의 몰락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장 - 미셸 살망 Jean-Michel Sallmann

1950년 1월에 태어난 장-미셸 살망은 파리 제10대학에서 근대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근대 이탈리아의 종교 · 문화사를 연구하고 있다. 이단 재판을 통해 16세기의 주술을 연구하며, <보물 탐색자와 운명의 장난꾼 : 16세기 나폴리의 초자연 현상에 대한 연구>(1988)를 출간한 바 있으며, 현재는 카톨릭교회 개혁기에 있어서 나폴리 왕국에 나타난 성인(聖人)과 성녀(聖女)에 관한 저서를 준비하고 잇다.

 

옮긴이 : 은위영

1964년 전주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제10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번역서로는 <지식과 권력> 등이 있다.

 

제1장

마녀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마법은 암흑의 시대에만 존재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마법은 세계와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표상하는 인식양식이다. 마녀들의 집회, 마법의 의식, 이단재판 그리고 화형은 시작과 끝을 가진 하나의 역사이며 아직도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화가이며 조각가인 한스 발퉁 그린은 중세 말엽, 최초로 마녀사냥에 참여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악마에 대한 신화가 남부 독일에서도 비롯되었음을 보여 준다.

종교재판의 희생자들은 산베니토(sanbenito, 지옥의 옷)를 걸치고 화형대에 올랐으며 사람들은 처형 직전 산베니토를 벗겨 냈다. 또한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그 죄과를 미치게 한다는 의미에서 교회 입구에 그들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입었던 속옷을 내걸었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자행된 스페인 종교재판은 그 잔인함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렇지만 이 탄압의 주요한 희생자들은 개종한 유대인과 무어인 그리고 이교도 들이었다.

베로나 공회(公會)의 발표에 따르면, 보두교는 1184년 이래 프랑스, 이탈리아, 현재의 스위스 영내,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계속해서 전파되었다고 한다. 보두교인은 1555년부터 보두아 지역 골짜기에 교회를 세웠으며 예배를 통해 개혁사상의 부흥을 꾀했다.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 있었던 여러 차례의 탄압으로 푸예, 칼라브르, 피에몽 등지에서 많은 보두교인이 처형당했다.

《구약성서》의 초기 판본에는 '야훼가 천지만물의 창조주의자 선과 악의 주관자'라고 이른다. 그러던 중 사탄 -- 히브리어로는 적(敵)을 의미한다 --의 형상이 신의 형상에서 분리되어 원죄의 근원으로 그려진 것은 B.C. 6세기부터이다.

"14세기 후반의 불행 -- 기근, 페스트, 백년전쟁 거듭되는 내란과 반란, 교회의 대분열(교황의 아비뇽 유폐에 따라 1378년에서 1417년까지 지속된 카톨릭 교회의 분열을 말한다 : 역주), 오스만투르크의 군사적 위협 --에 처한 중세인은 무한한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불행의 원인을 인간성의 과도한 발현과 교회의 타락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뒤범벅된 것처럼 보였으며 결말은 최후의 심판일 것이 분명했다."

J. 들뤼모

《원죄와 공포》

부르고뉴, 프랑슈콩테, 플랑드르, 아르투아의 군주 필리프 르 봉.

중세 말, 기독교는 신과 악마라는 모순된 관념 속에 부유(浮游)하면서 이원론적 특성을 드러냈다. 실제로 악마가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마법사는 주문을 외워 바람을 일으키고 우박을 내리게 하고 미래를 예언하며, 어떤 사람으로부터 과실과 젖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보다 놀라운 일도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전한다. 그러므로 남자든 여자든 죄인으로 판명될 경우에는 지체 없이 계율 속에 묶어 넣어야 하며, 군주는 반드시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

《게르만 고적사》

제사에서 어린아이를 희생양으로 삼는 전형적인 제의적(祭儀的) 살인행위는 로마 군대가 기독교인과 충돌할 때 이미 저질러졌다. 기독교인은 곧 이어 유대인으로 대치되엇으며 나중에는 이교도와 마법사가 그 표적이 되었다. 13세기부터 프랑스 국왕은 여러 가지 조직적인 수법을 동원해 영토 내에 거주하는 유대인 추방을 번번히 자행했다. 이것은 종교적 열정에 따른 행위이기도 했지만, 그 배경에는 재정상의 필요성이 깔려 있었다.

근대에 주술이란 농촌사회의 특이한 현상이며 농민세계의 취약성을 표현해 준 것이었다. 흉작, 자연재해, 전염병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재물은 바로 마녀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 가운데 플랑드르 지방의 농촌에 닥친 변화와, 농촌경제에서 목축이 갖는 중요성을 브뢰겔만큼 잘 보여 주는 화가는 없다.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플랑드르에서도 가축은 마법의 주요한 표적이 되곤 했다.

"악마의 환상과 헛것에 홀려 늘 사탄을 찾아다니는 악녀들이 확신에 차서 숨김없이 고백한다. 한밤중에 말을 타듯 동물들을 타고 이교도의 여신 다이에나, 그리고 숱하게 많은 다른 여자들과 함께 한밤의 죽음 같은 정적을 뚫고 수많은 제국들을 가로질러 간다고, 다이애나가 그들의 주인이기라도 하듯이 그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그녀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특별한 날 밤에 모인다고 한다."

《카농 에피스코피》

마법의 집회를 그린 상상화들은 마녀들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가를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중세에는 이처럼 마법사들이 반종교(反宗敎), 곧 악마의 대리자이며 광신자로 비쳤다. 악마가 변신하는 형태 또한 다양하여 그리핀(Griffin, 독수리의 머리, 날개, 발톱에 사자의 몸을 지닌 괴수 : 역주), 인간의 머리를 가진 용, 염소, 두꺼비 또는 온갖 추악한 괴물로 표현되고 있다. 악마의 목적은 오직 카톨릭의 열성적인 신자들을 배교(背敎)토록 하는 데 있었으므로, 이 집회의 의식이 커톨릭 의식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새로운 신자들은 악마에게서 다시 세례를 받았으며, 악마와 사랑을 나누어 태어난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의식을 지낸 다음 식탁에 올렸다.


제2장

마녀사냥


15세기 말부터 서구는 마녀사냥의 물결에 휩싸여 1580년에서 1670년 사이에 그 절정에 다다른다. 이 물결은 때로 극한을 달려 사회적 재앙을 부르게 된다.

"그리고 바라건대 마법사들의 원수는 바로 나임을 알라. 그들의 증오가 극에 달하면 달할수록 그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 또한 증오가 커져 그들을 하나도 남겨 놓지 않을 것이다."

앙리 보귀에

《마법사를 저주함에 부쳐》

아바돈, 아스타로트, 마몬은 사탄의 무리를 형성하는 수많은 일당들 가운데 하나이다. 마술사들은 미래를 예측할 때 그들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마법 탄압에 개입한 세력은 카톨릭 교회만이 아니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영국의 성공회도 마녀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앵글로 색슨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악마에 대한 신화를 갖고 있지 않았다. 마녀들은 화형이 아니라 교수형에 처해졌을 뿐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시민법을 위반했을 뿐 종교적 죄악을 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1529년 앙제에서 태어나 1596년에 사망한 장 보댕은 툴루즈에서 12년 동안 로마법을 강의했으며 그 자신 마법사로 의심받기도 했다.

바오로 3세의 재위기간(1534~1549)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1542년에 창설된 종교재판 성소(聖所)와 1545년에 소집된 트리엔트 공의회가 그것이다.

사법관들이 쓴 마녀사냥에 관한 논설들은 16세기 말, 사법관들이 악마신화에 대한 믿음에 집착했음을 드러낸다.

마법의 집회가 없이는 악마의 마법도 없다. 심문을 시작한 판사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관심은 마법사나 마녀에게서 마법의 집회에 참석했다는 자백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자백은 곧 사형선고로 이어졌으며, 자백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집회준비

 

한스 발퉁의 판화(1514년)들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무엇보다도 오디새와 박쥐의 피, 종(鍾) 부스러기와 검정가루가 들어가는 고약 또는 마법의 기름을 보자, 마녀들 가운데 하나는 마편초 불 위에 얹은 작은 솥에 약물을 끓이고 있고 다른 마녀들은 마법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쇠스랑이나 양을 타고 구름 속으로 사라질 채비를 하고 있다. 준비가 다 된 기름을 쇠스랑에 바르며 무시무시한 봉헌 주문을 외운다. 한 마녀는 해골로 채워진 쟁반을 하늘로 들어올리고 있고 다른 마녀는 흡사 곡식이나 방울이라도 된다는 듯이 태아의 작은 두개골로 폭주로 만들어 늘어뜨리고 있다. 이어서 그들은 마법의 집회에 참석해 마법사들과 함께 짝을 짓는데, 보귀에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서 제일 사악한 결합이다. "아들이 어머니를 가리지 않고, 오빠가 여동생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가 딸을 가리지 않는 ……. 그들이 거기에서 어떤 음란한 짓을 저지르는가 하는 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고적한 여기 한밤중을 떠도는 은밀한 공포가 내 오감을 사로잡네. 기기묘묘한  천 가지 형상을 나는 보네. 또는 본다고 믿네. 어둠 속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 기대어, 저기 마법의 집회가 열리네."

무명씨가 남긴 17세기 글

저주의 죄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희생양이 되었던 여자들은 마을공동체에서 아주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약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인네가 종종 있었다. 긴장이 고조되고 마법에 대한 풍문이 떠돌기 시작할 때, 여인들이 지닌 특별한 능력을 두려워했던 대중들은 제일 먼저 그들을 의심했다.

마법의 집회에 참석한 세속의 두 여인(귀부인과 그 하녀)이 나타나는 이미지는 흔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갖는 특정한 의미는 둘째치고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악마숭배 의식은 더욱 자세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두 가지 가정을 설정했다. 첫번째 가정에 따르면, 그림의 악마숭배에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두 얼굴을 가진 신. 특히 로마 신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神性으로 추앙되어 그와 어원을 공유하고 있는 주피터보다도 더 귀한 경배대상이 되기도 했다 : 역자)에 대한 로마적 의식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드 랑크르는 이러한 가정과 무관하게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 "자네트가 이야기하길…… 그(악마)는 야누스의 그림에서 본 것처럼 겉얼굴과 속얼굴 두 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두번째 가정에 따르면, 이는 일반 평민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역전시킨 축제의 한 종류라는 것이다. 이 경우 위와 아래의 의미가 바뀌어 위(지배자)에 있는 것이 아래(피지배자)로 환치되고 또한 아래에 있는 것이 위로 환치되어 묘사된다.

16세기의 유럽에서는 출판물의 제작과 유통은 행정관청과 교회의 철저한 통제 아래 있었다. 1559년 바오로 4세는 최초의 금서목록을 배포했다. 후임자들 또한 선임자의 정책을 이어받아 금서의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했다. 1571년, 파이 5세는 금서를 선정하고 관리할 목적으로 아예 추기경 특별 성성(聖省)을 제도화했다. 금서는 특히 이단서적들을 뜻했다. 마법이나 마술에 관련된 내용은 어차피 인쇄물의 형태로 세상에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탄압조치와 관계가 없었다.


제3장

무자비한 사법장치


16세기, 마법은 이단과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불경죄로 여겼으므로 세속법정은 기꺼이 종교재판을 수행했다. 그 같은 선택이 의미하는 바를 추론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시골의 한 농부가 올가미에 걸려들었을 때, 몸을 다치지 않고 올가미에서 빠져 나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마법사냥은 잔인한 이미지와 극적인 측면을 넘어서서 형사재판의 합목적성까지 의심하게 만들었으며, 중세 말에서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는 동안 소송절차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영향은 프랑스 대혁명 전야에 이르도록 계속되었다.

마녀의 부름에 화답하여 나타난 악마의 형상.

마법은 당시까지 유럽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에 대하여 그들이 투사한 온갖 유형의 환상을 배출하는 통로였다. 16세기의 독자들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나 장 드 망드빌의 《여행》을 읽으며 아직 공상에 잠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수평선이 확장되면서 유럽인의 이국취미는 그 내용을 달리하게 되었다. 마법은 객관적인 지식이 오랫동안 억압했던 이러한 환상의 한 부분을 내재화시킨 것이다.

신명심판 또는 '신의 심판'은 그 기원이 게르만의 침입과 유럽의 기독교화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엄연한 사법현실이다. 그것은 무고한 사람이 신에게 버림받을 리 없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마녀들을 물에 던져 시험하는 선악(善惡)판별법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서구 역사에 음울한 기억을 남겼던 종교재판은 사실 대규모 마녀사냥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종교재판의 경험이 없는 영국에서 더욱 혹독한 탄압이 이루어졌다.

종교재판 기구

기원을 따져 볼 때 종교재판은 중의적(重義的)인 성격을 갖는다. 의식(意識)을 심판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인데, 이는 로마 법령에 기초를 두면서 또한 동시에 스페인 법령체계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그 관할권의 상층부에는 최고평의회가 자리잡고 있다. 의장에 해당하는 최고재판관과 평의원들은 세속의 군주가 임명했으며, 약 15개의 지방재판소를 통해 그 권능을 행사했다. 각 재판소는 반(反)기독교적 범죄를 단죄하는 데 신학적 논거를 제공할 것을 임무로 하는 여러 판사들과 소추를 담당하는 검사들로 구성되었다. 그 밖에도 종교재판소는 여러 '우인(友人)'의 협력을 받곤 했는데, 이들은 종교재판소에서 무보수로 일하는 일종의 경찰관 구실을 했으며, 지역 유지들은 우인이 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신앙의 이름으로

종교재판은 중세 말엽부터 점차 형사심판 체계로 변해 갔다. 콜베르의 형사대심령(刑事大審令)은 이러한 변화를 프랑스 법령체계 내에 정식으로 수용하는 계ㅏㄴ에서 기가 되었다(1670년). 이 절차는 피고소인에게 가히 '악마적인' 것이어서 그는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세상과 격리되어 고문과 싸우면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했다. 다만 마법의 혐의에 연루되어 있는 한, 구체적인 물적 증거를 확보할 것을 의무화한 콜베르의 법령은 사실상 증거 수집이 무척 힘든 이 부분의 재판에서 미미하나마 하나의 발전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판사와 검사의 역할이 거의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것과 재판이 비밀리에 진행되며 변호사가 없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고문이 자행되는 것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재판절차가 프랑스에서 공식적으로 폐기된 것은 1780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런데 당시는 이미 유럽 전역에서 고문이 자취를 감추고 있을 때였다.

"사람을 죽이는 대가로 악마는 마법사들에게 어떤 보상을 하는가……?" 자백에 따르자면 …… "그가 세상의 모든 재물을 약속했나니."

1679년 5월 29일에 부비니에서 화형당한 고귀용의 재판기록

개종하지 않는 이교도를 기다리고 있는 형벌은 태형과 징역, 팔다리를 꺾어서 바퀴에 매달아 죽이는 차형(車刑), 그리고 화형 따위였다. 마녀들의 경우에는 이런 방법말고도 훨씬 간단한 대안이 있었다. 그들이 고문을 이기고 마법의 집회에 참여했음을 부인하는 데 성공했다 할지라도 모든 의심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향에서 추방당하거나 마을공동체에서 퇴거당했으며, 이것은 마녀라는 손가락질이 따라다니는 한 또 다른 형태의 사형이었던 것이다.

"(마녀들은) 저주의 불길 위에 솥을 얹어, 사람의 몸이나 동물에서 채집한 여러 성분과 독초들을 끓인다."

툴루즈 종교재판소에서 심판받았던 안 마리의 증언

마법의 주술을 걸기 위해서는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의 이빨을 사용하는 것이 즉효라는, 세간의 믿음을 풍자한 고야의 그림.

1560년에서 1670년 사이에 남서부 독일은 가혹한 마녀사냥의 한 시기를 보냈는데, 이때 최소한 3,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비젠타이크 마을에서는 1562년 한 해 동안에 63명의 여자가 마녀로 몰려 화형대 위에 올랐으며, 오베르마르히탈에서는 1586년과 1588년 사이의 3년 동안, 43명의 여자와 11명의 남자가, 곧 전체 인구의 약 7%가 마법과 관련되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1560년에서 1670년 사이에 남서부 독일은 가혹한 마녀사냥의 한 시기를 보냈는데, 이때 최소한 3,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비젠타이크 마을에서는 1562년 한 해 동안에 63명의 여자가 마녀로 몰려 화형대 위에 올랐으며, 오베르마르히탈에서는 1586년과 1588년 사이의 3년 동안, 43명의 여자와 11명의 남자가, 곧 전체 인구의 약 7%가 마법과 관련되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제4장

마법인가, 마술인가?

 

북유럽, 특히 종교개혁으로 신교를 수용한 국가에 인접해 있는 카톨릭교 신봉 지역에서는 불에 의지하여 마귀를 쫓는 의식이 성행했다. 악마적 마법론은 이단론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반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와 같이 프로테스탄트 운동에 비교적 적게 노출되었던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서는 '운명의 장난꾼들', 다시 말해 마법사나 마술사가 악마와 계약을 맺은 자들로 의심받지 않았다.

제의적(祭儀的) 마술은 마법과 별도로 발달되었다. 16세기에 절덩에 달한 마술은 오직 비기(秘記)의 전수자들만이 알고 있는 방법을 이용해 신의 비밀을 캐려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그노시스(gnosis, 신학에서 말하는 영적, 신비적 인식 : 역주)였다.

연금술은 2세기와 3세기에, 헬레니즘 풍의 신비주의 인식론이 유행하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아랍 세계가 서구에 연금술을 전해 준 때는 12세기이다. 연금술사들은 만병통치약이며 금속을 금으로 변하게 하는 화금석(火金石)을 발견하기 위해 애썼다.

1583년, 전유럽에는 화금석의 비밀을 알아냈다는 소문이 퍼져 큰 소란이 일어났다. 3년이 지난 1586년에는 급기야 교황 시스티나 5세가 모든 형태의 예언을 금하는 특별 칙서,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내리기까지 했다.

냄새와 맛이 고약했던 만드라고라(mandragora, 위)는 마취기능과 하제기능을 함께 각춘 약용식물이었으며, 사람들은 사형대 밑에서 자라는 만드라고라가 신비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마녀들의 상징이었던 뱀, 바실리스크. 그리스-로마 전설에 나오는 괴물로 사람들은 그것이 쳐다보기만 해도 당장에 죽는다고 믿었다.

몽환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몽유병자의 눈-쿠르베가 그린 이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이-은 투시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졌으며 낭만주의자들이 특히 환영하는 소재였다.

집시 여인들은 이미 16세기부터 마술의 세계를 넘나드는 무시무시한 점쟁이들로 여겨졌다. 위 그림은 집시 여인들이 자기들의 경험담을 늘어놓고 있는 장면으로 카라바조가 이를 유행시킨 이래 바로크 미술에서 흔히 다루는 주제가 되었다.

중세 말에 성행했던 강신술은 죽은 자들의 혼령을 불러내거나 매장된 시체를 찾아내 신묘한 처치를 하는 무술(巫術)이었다.


제5장

마법의 몰락


마녀사냥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종교재판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결론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마법에 대한 새로운 견해들이 성직자들 사이에서, 특히 의사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법의 문제를 통해 제기되는 것은 결국 기독교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문제이다.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이란 원죄로 각인되어 있는 존재이다. 여성은 악마의 심부름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육체 자체가 두려움을 자아낸다. 여성의 생리에 대한 몰이해가 인간의 모든 상상력을 극단으로 질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보슈와 브뢰겔이 그린 악마들은 축제와 카니발에 나타나는 귀신들이나 다른 특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데 비해, 리하카르트가 그린 악마들은 '현실주의적'이다. 격렬한 율동과 대비되는 썩어 들어가는 살은 그야말로 경이적이다.

장 비에는 16세기의 선구자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고립되어 있었다. 의사들이 마법에 관하여 의학적 견해를 용기 있게 개진하기까지는 1세기를 더 기다려야 한다.

17세기는 카톨릭 교회의 개혁기였다. 수도원의 급격한 증가와 엄격한 계율의 적용은 많은 갈등을 유발했다.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진 신앙지도 사제들과 가족들의 간섭으로 여자들만 있는 수녀원에는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마귀들린 사건들이 되풀이되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17세기에는 새로운 지적 움직임이 일어난 때이다. 이른바 계몽주의 시대인 것이다. 1653년에 사망한 가브리엘 노데는 마지랭과 크리스틴 드 쉬에드의 사서였다. 그는 마자랭을 도와 당대에 수많은 도서와 수고(手稿)들을 수집했다. 그는 마자랭의 보호와 면책특권을 누림으로써 자유주의 운동의 표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도 프롱드의 난으로 말미암아 무로 돌아가고 말았다. 훗날 마자랭이 자신의 도서관을 재건할 수 있게 도와 준 이는 권좌에 복귀한 콜베르였다.

수녀원들은 교구청의 엄한 감독하에 운영되었다. 그들은 폐쇄생활의 규율이 훼손되거나 특정한 신비주의에 오염되는 것을 경계했으며 악마의 표정이 나타나는 일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상부에 자주 보고되었던 신비적 견신(見神)도 17세기 수도생활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었다. 이는 많은 경우 종교생활의 자율성을 요구하는 한 방편으로 수녀들 사이에서 자리잡았다.

17세기의 마법논쟁은 절대왕권의 강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리슬리외 추기경은 절대왕정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였다.

"프란체스코회 락탕스 신부의 말에 따르자면 …… 그랑디에는 화형대의 형틀에 묶인 채로 자신을 불태울 나무들에 마법을 걸었는데 이는 악마가 불길을 억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구마서(驅魔書) 위에 떨어졌을 호두알만큼 큰 흑점을 보고 이내 단념했던 게 아닌가 추정된다."

앙주의 공증인의 증언

한 증언은 잔 데장주 수녀를 '유혹의 가시덩굴에 얽히고 찢긴, 그러나 가장 혹독한 폭풍에도 맞서 싸운 한 떨기 아름다운 흰 백합'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마귀쫓기 시험은 그녀의 성녀로서의 평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1663년에서 1683년까지 루이 14세의 재상을 지냈던 장 밥티스트 콜베르는 형사법규를 개정하지 않았다. 그의 주도로 1667년과 1670년에 공포된 두 법령은 개혁에 앞서 기존의 형사법규를 정리하고 확정하는 것이었다.

 

한 신념의 종언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귀신들린 자도, 마술사도, 점성술사도, 정령도 존재하지 않는다. 100년 전에는 무엇을 근거로 하여 이 모든 신비들이 가능했을까. 귀족들은 모두 성채에 갇혀 지냈고 겨울밤은 길었다. 이 귀중한 놀잇감이 없었더라면 모두 권태로 죽었으리라. 모든 성에는 뤼지낭성에 사는 멜뤼진(Melusine, 토요일이면 다리가 뱀으로 변하는 요정) 요정처럼 때가 되면 돌아오는 요정들이 살았거늘 …… 마을마다 마법사나 마녀가 살았고 군주들은 자기들을 위한 점성술사를 거느렸다. 여인들이 제각기 자기들의 경험담을 털어놓을 때, 귀신들린 자들은 들판을 질주했다. 악마가 넘보았던 것은 바로 이들, 혹은 이들이 넘보았던 것은 바로 악마였다."

볼테르《철학사전》

《이광치미 씨('이광치미' 씨는 '미치광이' 씨의 글자 수수께끼이다. 'Oufle'은 'le fou'의 역순)》는 마술서들에 대한 풍자이다. 이 책은 평생 마술과 마법에 관한 책만 읽고 현실을 허구로 사는 한 가난뱅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몽테스팡 후작 부인은 1667년에서 1677년까지 태양왕 루이 14세의 정부였다. 콜베르의 보고서가 그녀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있지만 1676년에 처형된 브랭빌리에 후작 부인 사건과 20여 명을 처형함으로써 마무리된 '독살사건(1677~1681)' 때문에 후작 부인은 큰 곤욕을 치렀다.

"새로운 정신은 완전한 승리자였기에 그동안의 모든 싸움을 잊게 하다가 겨우 오늘날에야 그 승리들을 기억하게 해준다. 첫 시작의 고통과 비천하고 조아하며, 야만적이면서 잔인하게도 희극적인 그 시작의 형태들을 상기시키는 것도 쓸모없지만은 않았다. 박해 속에서 여인들이, 불운한 마녀들이 대중들에게 풀어 놓은 그 새로운 정신이란! …… 그녀들은 죽었고, 죽어야 했다. 어떻게? 무엇보다도 자기들이 발전시킨 과학의 진보로 인하여, 의학으로 인하여, 자연주의자들에 의하여, 바로 자기들이 힘써 지키려 한 이 모든 것들로 인하여, 마녀들은 언제나 죽었다. 그러나 요정은 죽지 않는다. 마녀들은 죽지 않는 요정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남자들의 일을 기꺼이 떠맡았던 지난 세기의 여인들은 그 대신 자신들의 고유한 역할을 잃어버렸다. 치료와 간병, 병을 낫게 하는 요정의 역할을 …… 반(反)자연은 빛을 잃었으니 반자연이 기울어 세계에 여명이 깃들일 그날은 멀지 않았다."

쥘 미슐레

《마녀》

마녀의 체포 장면에는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세속재판관들과 마을주민인 고소인들, 그리고 등장하지 않는 때도 있지만 마녀로 지목된 희생자. 그림은 17세기에 영국에서 제작된 삽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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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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