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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4-1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 강의 논어 1

 

盡善

051강 진선진미

 

공자께서 소악(韶樂)을 평하여 "극진히 아름답고 또 극진히 좋다." 하셨고, 무악(武樂)을 평하여 "극진히 아름답지만 극진히 좋지는 못하다." 하셨다.

「팔일」 제25장 자위소(子謂韶)

 

子謂韶하사되 盡美矣 又盡善也 하시고

謂武하사대 盡美矣 未盡善也 하시다.

 

052강 윗사람의 도리

 

남의 위에 있으며 관대하지 않고, 예식을 거행하며 공경하지 않으며, 상례에 임해 슬퍼하지 않는다면 무어 볼 만한 것이 있겠는가?

「팔일」 제26장 거상불관(居上不寬)

 

居上不寬하며 為禮不敬하며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리오.

 

053강 인에 거처한다

 

인(仁)에 처하는 것이 훌륭하니, 이럴까 저럴까 고르면서 인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이인(里仁)」 제1장 이인위미(里仁爲美)

 

里仁이 為美니 擇不處仁이면 焉得知리오.

 

054강 인을 편안히 여긴다는 것

 

어질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곤궁함에 처할 수 없으며 장구히 즐거움에 처할 수 없으니, 어진 사람이어야 인을 편안히 여기며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인을 이롭게 여긴다.

「이인」 제2장 인자안인(仁者安仁)

 

不仁者 不可以久處約이며

不可以長處樂이니

仁者 安仁하고 知者 이니라.

 

055강 남을 제대로 미워하라

 

오직 어진 사람이어야 남을 제대로 좋아하고 남을 제대로 미워할 수 있다.

「이인」 제3장 유인자능호인(惟仁者能好人)

 

唯仁者라야 能好人하며 能惡人이니라.

 

056강 인에 뜻을 둔다

 

진실로 인에 뜻을 두면 악함이 없다.

「이인」 제4장 구지어인의(苟志於仁矣)

 

苟志於仁矣 無惡也니라.

 

057강 인에서 떠나지 말라

 

부(富)와 귀(貴)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으면 처하지 않으며, 빈(貧)과 천(賤)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상적인 이유로 얻지 않았다 하더라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군자가 인(仁)에서 떠난다면 어찌 군자로서의 이름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인」 제5장 부여귀(富與貴) 1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어든 不處也하며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라도 不去也니라.

君子 去仁이면 惡乎成名이리오.

 

058강 인을 어기지 말라

 

군자는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인을 떠나는 일이 없다. 경황이 없을 때에도 반드시 여기에 입각하고 위급한 때에도 반드시 여기에 입각해서 행동한다.

「이인」 제5장 부여귀 2

 

君子無終食之間 違仁이니

造次 必於是하며 顛沛 於是니라.

 

059강 허물을 보면 안다

 

사람의 과실은 각기 그 부류에 따르니, 그 사람의 과실을 보면 어진지 어질지 않은지 알 수 있다.

「이인」 제7장 인지과야각어기당(人之過也各於其黨)

 

人之過也 各於其黨이니

觀過 斯知仁矣니라.

 

060강 도를 듣는다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이인」 제8장 조문도(朝聞道)

 

朝聞道 夕死라도 可矣니라.

 

061강 먹고 입는 일에 괘념치 말라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더불아 도를 의논할 수 없다.

「이인」 제9장 치악의악식(恥惡衣惡食)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

未足議也니라.

 

062강 의를 따른다

 

군자는 천하의 일에서 오로지 주장하는 것도 없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으니, 의를 따를 뿐이다.

「이인」 제10장 무적무막(無適無莫)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하여 義之於比니라.

 

063강 덕을 생각한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처한 곳의 편안함을 생각하며, 군자는 형법을 생각하고 소인은 은혜를 생각한다.

「이인」 제11장 군자회덕(君子懷德)

 

君子 懷德하고 小人 懷土하며

君子 懷刑하고 小人 懷惠니라.

 

064강 이익만 좇지 말라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

「이인」 제12장 방어리이행(放於利而行)

 

放於利而行이면 多怨이니라.

 

065강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라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지위에 설 자격을 걱정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고자 해야 한다.

「이인」 제14장 불환무위(不患無位)

 

不患無位 患所以立하며

不患莫己知 求為可知也니라.

 

066강 진정한 배려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서일 따름이다."

「이인」 제15장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

 

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니라.

 

067강 군자인가 소인인가

 

군자는 도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이인」 제16장 군자유어의(君子唯於義)

 

君子 喻於義하고 小人 喻於利니라.

 

068강 어진 이를 본받아

 

어진 이의 행실을 보면 그와 같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의 행실을 보면 안으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이인」 제17장 견현사제언(見賢思齊焉)

 

見賢思齊焉하며 見不賢而內自省也니라.

 

069강 완곡히 간하라

 

부모를 섬길 때는 완곡하게 간하며, 내 뜻을 따라 주지 않을지라도 다시 공경하고 어기지 말고,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마라.

「이인」 제18장 사부모기간(事父母幾諫)

 

事父母하되 幾諫이니 見志不從하고

又敬不違하며 勞而不怨이니라.

 

070강 부모 곁을 떠날 때는

 

부모가 생존해 계시거든 멀리 가지 말며, 갈 때에는 반드시 일정한 방향이 있어야 한다.

「이인」 제19장 유필유방(遊必有方)

 

父母在어시든 不遠游하며 游必有方이니라.

 

071강 부모님 연세를 아는가

 

부모의 연세는 알지 않으면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뻐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워해야 한다.

「이인」 제21장 부모지년불가부지야(父母之年不可不知也)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니라.

 

072강 말을 쉽게 내지 마라

 

옛날에 함부로 말을 내지 않은 것은 실행이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이인」 제22장 치궁지불체야(恥躬之不逮也)

 

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니라.

 

073강 스스로를 단속한다

 

약(約)함으로써 잘못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인」 제23장 이약실지(以約失之)

 

以約失之者 鮮矣니라.

 

074강 행동을 민첩히 하라

 

군자는 말을 신중하게 하고 행동에 민첩하고자 한다.

「이인」 제24장 군자욕눌어언(君子欲訥於言)

 

君子 欲訥於言 而敏於行이니라.

 

075강 덕인은 외롭지 않다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

「이인」 제25장 덕불고(德不孤)

 

德不孤 必有鄰이니라.

 

076강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 나는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하거늘, 나를 따를 사람은 아마도 유(由)일 것이다.

「공야장(公冶長)」 제6장 도불행승부(道不行乘桴)

 

道不行이라 乘桴하여 浮于海하리

從我者由與인저.

 

077강 게을리 말라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으니, 재여에게 무엇을 책망하랴!

「공야장」 제9장 재여주침(宰予晝寢)

 

朽木 不可雕也 糞土之 不可朽也

於予與 何誅리오.

 

078강 상대방의 처지에서

 

자공이 "저는 남이 저에게 억지로 가하는 것을 바라지 않듯 저 또한 남에게 가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자, 공자께서는 "사야, 네가 미치는 바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공야장」 제11장  아불욕인지가저아야(我不欲人之加諸我也)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하노이다.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니라.

 

079강 네 가지 도리

 

공자께서 자신을 평하여, 그에게는 네 가지 군자의 도가 있으니 몸가짐이 공손한 점, 윗사람을 위해 경건하게 일하는 점, 백성을 은혜롭게 기르는 점, 백성을 의롭게 부리는 점이 그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공야장」 제15장 자위자산(子謂子産)

 

子謂子產하사되 有君子之道四焉이니

其行己也恭하며 其事上也敬하며

其養民也惠하며 其使民也義니라.

 

080강 주저하지 말라

 

계문자가 세 번이나 생각한 뒤에 실행하자 공자께서 그 일을 들으시고 두 번 생각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공야장」 제19장 재사가의(再斯可矣)

 

季文子 三思而後하더니

子聞之하시고 曰, 再斯可矣니라.

 

081강 어리석음의 지혜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롭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으니, 지혜로움은 미칠 수 있으나 어리석음은 미칠 수 없도다.

「공야장」 제20장 영무자방유도즉지(寗武子邦有道則知)

 

甯武子 邦有道則知하고 邦無道則愚하니

其知 可及也어니와 其愚 不可及也라.

 

082강 뜻이 큰 사람과 함께

 

공자께서 진(陳)나라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 돌아가야겠다. 돌아가야겠다. 우리 무리의 소자들이 뜻은 크나 일에는 소략하므로, 찬란하게 문장을 이루었으되 그것을 마름질할 줄 모르는구나."

「공야장」 제21장 자재진(子在陳)

 

在陳하사 曰, 歸與인저 歸與인저,

吾黨之小子 狂簡하여 斐然成章이오

不知所以裁之다.

 

083강 고쳤으면 됐다

 

백이와 숙제는 사람들이 전에 저지른 악행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원망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공야장」 제22장 백이숙제불념구악(伯夷叔齊不念舊惡)

 

伯夷叔齊 不念舊惡이라 怨是用希니라.

 

084강 정직이란 무엇인가

 

누가 미생고를 정직하다고 하겠는가? 그는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려 달라고 하자 그것을 이웃에서 빌려다 주었다.

「공야장」 제23장 숙위미생고직(孰謂微生高直)

 

孰謂微生高直,

乞醃焉이어늘 乞諸其鄰而與之온여.

 

085강 부끄러워하는 마음

 

말을 듣기 좋게 하고 얼굴빛을 잘 꾸미며 지나치게 공손하게 구는 것을 옛날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는데, 나 또한 이것을 부끄러워하노라. 원망을 감추고 사람과 사귀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는데, 나 또한 이것을 부끄러워하노라.

「공야장」 제24장 교언영색주공(巧言令色足恭)

 

巧言令色足恭 左丘明 恥之러니

丘亦恥之하노라. 匿怨而友其人

左丘明 恥之러니亦恥之노라.

 

086강 노인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노인을 편안하게 해 주고 붕우를 믿어 주며 젊은이를 감싸 주겠다.

「공야장」 제25장 합언각지(盍言各志)

 

老者 安之하며 朋友 信之하며

少者 懷之니라.

 

087강 자신을 꾸짖으라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아직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안으로 자책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공야장」 제26장 내자송(內自訟)

 

已矣乎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케라.

 

088강 배움을 좋아한다

 

열 집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만큼 충후하고 신실한 자가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

「공야장」 제27장 십실지읍(十室之邑)

 

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이어니와如丘之好學也니라.

 

089강 아끼는 이의 죽음

 

안회는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았고 잘못을 두 번 거듭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옹야(雍也)」 제2장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貳過)

 

有顏回者 好學하여 不遷怒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라.

 

090강 곤궁한 이를 돕는다

 

공서적이 제나라로 갈 때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고 갔다고 한다. 내가 듣기에, 군자는 곤궁한 사람은 도와주되 여유 있는 사람에게 보태 주지는 않는 법이다.

「옹야」 제3장 군자주급(君子周急)

 

赤之適齊也 乘肥馬하고輕裘하니

聞之也호니 君子 周急이오 不繼富호라.

 

 

091강 출신보다 능력

 

얼룩소의 송아지가 털이 붉고 뿔이 곧으면, 제사에 쓰지 않으려 해도 산천이 내버려 두겠는가?

「옹야」 제4장 성차각(騂且角)

 

犁牛之子 騂且角이면

雖欲勿이나 山川 其舍諸.

 

092강 안빈낙도

 

한 대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추한 거리에서 살면 남들은 그 근심을 참지 못하거늘 안회는 자기의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회여!

「옹야」 제9장 불개기락(不改其樂)

 

一簞食 一瓢飲으로陋巷

人不堪其憂어늘 回也 不改其樂하니

賢哉 回也.

 

093 금을 긋지 말라

 

힘이 부족한 사람은 길을 가다가 쓰러지나니, 지금 너는 금을 긋고 있다.

「옹야」 제10장 금여획(今女畫)

 

力不足者 中道而廢하나니 今女이로다.

 

094강 진정한 학자

 

공자께서 자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다운 학자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옹야」 제11장 여위군자유(女爲君子儒)

 

子謂子夏曰, 女為君子儒

無為小人儒하라.

 

095강 자만하지 말라

 

맹지반은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패주하면서 후미에 처져 있다가 도성 문을 들어올 적에 말을 채찍질하며 "내가 감히 뒤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이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옹야」 제13장 맹지반불벌(孟之反不伐)

 

孟之反 不伐이로다.

奔而殿하야 將入門할새其馬하며

曰, 非敢後也 馬不進也라 하니라.

 

096강 바탕과 문체

 

바탕이 문채보다 두드러지면 촌스럽고 문채가 바탕보다 두드러지면 매끈하기만 하니, 바탕과 문채가 어우러져 빛을 내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옹야」 제16장 문질빈빈(文質彬彬)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 然後 君子니라.

 

097강 삶의 본질

 

사람의 삶은 정직함을 본질로 하니, 정직함 없이 사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한 것일 뿐이다.

「옹야」 제17장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

 

人之生也直하니 罔之生也 幸而免이니라.

 

098강 즐기는 것이 최고지만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옹야」 제18장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니라.

 

099강 솔선하라

 

번지가 지(知)에 대해 여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지라 말할 수 있다." 다시 인(仁)에 대해 여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진 사람은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니, 이렇게 한다면 인이라 말할 수 있다."

「옹야」 제20장 번지문지(樊遲問知)

 

樊遲 問知한대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 可謂知矣니라.

問仁한대 曰, 仁者 先難而後獲이면

可謂仁矣니라.

 

100강 요산요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즐기고 어진 사람은 산을 즐긴다.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

「옹야」 제21장 요산요수(樂山樂水)

 

知者 樂水하고 仁者 樂山이니

知者하고하며

知者하고 仁者하니라.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64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 강의 논어 1

 

심경호

2013, 민음사

 

 

대야도서관

SB093230

 

148.3

심14ㄴ  1

 

옛글을 읽으며 새로이 태어난다

 

찬란히 빛나는 2500년 동양의 지혜

매일 한 강의씩 펼쳐 보고 새겨 읽는 『논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나를 세운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는 2500여 년에 걸쳐 읽히고 있는 동양 고전의 정수이다. 한문 고전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로 정평이 난 심경호 교수가 『논어』 읽기에 첫발을 내딛는 초행자를 위해 곧은길을 안내한다. 매 구절, 전아하고 뜻깊은 해설과 함께 오늘날 우리가 성찰해 볼 만한 논점이 제시된다.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현실 구원의 의지를 굳게 지켰던 공자, 그의 사람됨과 사상을 충실히 담은 『논어』 강의 첫째 권에서는 옛 글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 가는 기쁨을 음미해 본다.

심경호 沈慶昊

1955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일본 교토(京都)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중국문학)을 수료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8년 국문학연구회 논문상, 2002년 성산학술상, 2006년 일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 靜) 선생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 2010년 우호인문학 학술상, 2011년 연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선정 제1회 인문사회과학분야 우수학자로 뽑히기도 했다.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공저), 『조선 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국문학 연구와 문헌학』, 『다산과 춘천』, 『한문 산문 미학』, 『한국 한시의 이해』, 『한시의 세계』, 『한시의 서정과 시인의 마음』, 『김시습 평전』,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한시 기행』, 『산문 기행: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내면 기행: 선인들 묘지명을 스스로 쓰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선인들의 자서전』,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 문학』, 『국왕의 선물』, 『참요』, 『한국 한문 기초학사』(전 3권) 등이 있고 역서로 『주역 철학사』, 『불교와 유교』, 『일본 한문학사』(공역), 『금오신화』, 『한자학』, 『역주 원중랑집』(공역), 『한자 백 가지 이야기』,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일본서기의 비밀』, 『문자강화 1』, 『증보역주 지천선생집』(공역), 『서포만필』, 『삼봉집』 등이 있으며 『자기 책 몰래 고치는 사람』, 『책, 그 무시무시한 주술』, 『오늘의 고전』 등의 수필집을 썼다.

 

차례

 

동양 고전 강의를 시작하며

일러두기

 

학이(學而)

001강  배움이란 무엇인가  학이시습(學而時習) 1

002강  벗과 함께하는 즐거움  학이시습 2

003강  근본에 힘써야  효제위인본(孝弟爲仁本)

004강  위선을 경계한다  교언영색(巧言令色)

005강  매일 반성하다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006강  나라 다스리는 길  도천승지국(道千乘之國)

007강  실천을 앞세워야  행유여력즉이학문(行有餘力則以學文)

008강  배움의 진정한 뜻  현현역색(賢賢易色)

009강  중후해야 학문도 견고하다  군자부중즉불위(君子不重則不威) 1

010강  허물을 고치라  군자부중즉불위 2

011강  추모의 마음을 다하여  신종추원(愼終追遠)

012강  정치 참여의 자세  부자온량공검(夫子溫良恭儉)

013강  사람을 보면 안다  부재관기지(父在觀其志)

014강  조화가 귀하다  예지용화위귀(禮之用和爲貴)

015강  사귐의 태도  신근어의(信近於義)

016강  민첩히 행하라  식무구포(食無求飽)

017강  빈부를 초월하여  빈이무첨(貧而無諂) 1

018강  갈고 닦으라  빈이무첨 2

019강  남을 제대로 알라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위정(爲政)

020강  덕으로 하는 정치  위정이덕(爲政以德)

021강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야  사무사(思無邪)

022강  왕도 정치  도지이덕(道之以德)

023강  덕을 완성하는 길  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

024강  효란 무엇인가  맹무백문효(孟武伯問孝)

025강  공경해야 참된 효  자유문효(子游問孝)

026강  말없이 밝히는 도  오여회언종일(吾與回言終日)

027강  사람 알아보는 법  시기소이(視其所以)

028강  온고지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029강  군자의 도량  군자불기(君子不器)

030강  먼저 실천한다  자공문군자(子貢問君子)

031강  두루 사랑한다  군자주이불비(君子周而不比)

032강  배움과 생각함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033강  앎이란 무엇인가  회여지지호(誨女知之乎)

034강  난문은 제쳐 둔다  다문궐의(多聞闕疑)

035강  사람 쓰는 법  거직조제왕(擧直錯諸枉)

036강  지도자는 장중해야  임지이장즉경(臨之以莊則敬)

037강  효가 정치의 근본  서운효호(書云孝乎)

038강  의로운 일에 용감하라  비귀이제지(非鬼而祭之)

 

팔일(八佾)

039강  명분을 바로잡는 일  팔일무어정(八佾舞於庭)

040강  예악보다 마음  인이불인(人而不仁)

041강  예의 근본  예여기사야영검(禮與其奢也寧儉)

042강  군자의 경쟁  군자무소쟁(君子無所爭)

043강  바탕이 중요하다  회사후소(繪事後素)

044강  제사의 태도  제여재(祭如在)

045강  명분의 중요성  여기미어오(與其媚於奧)

046강  차이를 인정해야  사불주피(射不主皮)

047강  군주와 신하  군사신이례(君使臣以禮)

048강  감정을 조절해야  관저낙이불음(關雎樂而不淫)

049강  기왕지사는 기왕지사  성사불설(成事不說)

050강  목탁 같은 존재  천장이부자위목탁(天將以夫子爲木鐸)

051강  진선진미  자위소(子謂韶)

052강  윗사람의 도리  거상불관(居上不寬)

 

이인(里仁)

053강  인에 거처한다  이인위미(里仁爲美)

054강  인을 편안히 여긴다는 것  인자안인(仁者安仁)

055강  남을 제대로 미워하라  유인자능호인(惟仁者能好人)

056강  인에 뜻을 둔다  구지어인의(苟志於仁矣)

057강  인에서 떠나지 말라  부여귀(富與貴) 1

058강  인을 어기지 말라  부여귀 2

059강  허물을 보면 안다  인지과야각어기당(人之過也各於其黨)

060강  도를 듣는다면  조문도(朝聞道)

061강  먹고 입는 일에 괘념치 말라  치악의악식(恥惡衣惡食)

062강  의를 따른다  무적무막(無適無莫)

063강  덕을 생각한다  군자회덕(君子懷德)

064강  이익만 좇지 말라  방어리이행(放於利而行)

065강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라  불환무위(不患無位)

066강  진정한 배려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

067강  군자인가 소인인가  군자유어의(君子唯於義)

068강  어진 이를 본받아  견현사제언(見賢思齊焉)

069강  완곡히 간하라  사부모기간(事父母幾諫)

070강  부모 곁을 떠날 때는  유필유방(遊必有方)

071강  부모님 연세를 아는가  부모지년불가부지야(父母之年不可不知也)

072강  말을 쉽게 내지 마라  치궁지불체야(恥躬之不逮也)

073강  스스로를 단속한다  이약실지(以約失之)

074강  행동을 민첩히 하라  군자욕눌어언(君子欲訥於言)

075강  덕인은 외롭지 않다  덕불고(德不孤)

 

공야장(公冶長)

076강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도불행승부(道不行乘桴)

077강  게을리 말라  재여주침(宰予晝寢)

078강  상대방의 처지에서  아불욕인지가저아야(我不欲人之加諸我也)

079강 네 가지 도리  자위자산(子謂子産)

080강  주저하지 말라  재사가의(再斯可矣)

081강  어리석음의 지혜  영무자방유도즉지(寗武子邦有道則知)

082강  뜻이 큰 사람과 함께  자재진(子在陳)

083강  고쳤으면 됐다  백이숙제불념구악(伯夷叔齊不念舊惡)

084강  정직이란 무엇인가  숙위미생고직(孰謂微生高直)

085강  부끄러워하는 마음  교언영색주공(巧言令色足恭)

086강  노인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합언각지(盍言各志)

087강  자신을 꾸짖으라  내자송(內自訟)

088강  배움을 좋아한다  십실지읍(十室之邑)

 

옹야(雍也)

089강  아끼는 이의 죽음  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貳過)

090강  곤궁한 이를 돕는다  군자주급(君子周急)

091강  출신보다 능력  성차각(騂且角)

092강  안빈낙도  불개기락(不改其樂)

093강  금을 긋지 말라  금여획(今女畫)

094강  진정한 학자  여위군자유(女爲君子儒)

095강  자만하지 말라  맹지반불벌(孟之反不伐)

096강  바탕과 문채  문질빈빈(文質彬彬)

097강  삶의 본질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

098강  즐기는 것이 최고지만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099강  솔선하라  번지문지(樊遲問知)

100강  요산요수  요산요수(樂山樂水)

101강  이름과 실상의 부합  고불고(觚不觚)

102강  예로 요약한다  박문약례(博文約禮)

103강  중용의 덕  민선구의(民鮮久矣)

104강  베푸는 것이 먼저  박시제중(博施濟衆)

 

술이(述而)

105강  옛 도를 전술할 따름  술이부작(述而不作)

106강  참된 교육자  묵이지지(黙而識之)

107강  선비의 행동 방식  지어도(志於道)

108강  가르침을 청하는 예  자행속수이상(自行束脩以上)

109강  교육의 방법  불분불비(不憤不悱)

110강  남을 생각하는 마음  자식어유상자지측(子食於有喪者之側)

111강  때에 맞는 처신  용행사장(用行舍藏)

112강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종오소호(從吾所好)

113강  가치의 추구  구인이득인(求仁而得仁)

114강  곡굉지락  반소사음수(飯疏食飮水)

115강  당장의 근심을 잊다  발분망식(發憤忘食)

116강  배움의 자세  호고민이구지(好古敏以求之)

117강  인간답게 사는 길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118강  길에서 찾는 스승  삼인행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

119강  생명에 대한 애정  자조이불강(子釣而不綱)

120강  지식을 얻는 방법  다문다견(多聞多見)

121강  인은 가까이 있다  아욕인(我欲仁)

122강  경계를 허물다  자여인가(子與人歌)

123강  하늘의 뜻  구지도구의(丘之禱久矣)

124강  군자의 마음  군자탄탕탕(君子坦蕩蕩)

 

태백(泰伯)

125강  예가 없다면  공이무례즉로(恭而無禮則勞)

126강  몸을 소중히 하라  계족계수(啓足啓手)

127강  바른 말을 남기다  동용모(動容貌) 1

128강  자기완성의 세 방법  동용모 2

129강  지식인의 책임  사불가이불홍의(士不可以不弘毅)

130강  배움의 순서  흥어시(興於詩)

131강  대중의 속성  민가사유지(民可使由之)

132강  극단을 경계한다  호용질빈(好勇疾貧)

133강  중도를 행하는 법  독신호학(篤信好學)

134강  자기 일에 전념하라  부재기위(不在其位)

135강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듯이  학여불급(學如不及)

136강  인재 얻기의 어려움  순유신오인(舜有臣五人)

 

『논어』를 읽는 분들에게

 

참고 문헌

 

2권에 수록된 편명

자한(子罕) · 향당(鄕黨) · 선진(先進) · 안연(顔淵) · 자로(子路) · 헌문(憲問)

 

3권에 수록된 편명

위령공(衛靈公) · 계씨(季氏) · 양화(陽貨) · 미자(微子) · 자장(子張) · 요왈(堯曰)

 

001강 배움이란 무엇인가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면 기쁘지 아니한가!

「학이(學而)」 제1장 학이시습(學而時習) 1

 

學而時習之 不亦說.

 

002강 벗과 함께하는 즐거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학이」 제1장 학이시습 2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

 

003강 근본에 힘써야

 

유자가 말했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확립되면 인의 도가 발생한다. 효와 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 하겠다."

「학이」 제2장 효제위인본(孝弟爲仁本)

 

有子曰. 君子는 務本이니 本位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인저.

 

004강 위선을 경계한다

 

말 잘하고 얼굴빛 꾸미는 자 가운데 어진 사람이 드물다.

「학이」 제3장 교언영색(巧言令色)

 

巧言令色 鮮矣仁이니라

 

005 매일 반성하다

 

증자가 말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의 몸을 살핀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불충하지 않았나, 벗과 더불어 사귀면서 불성실하지 않았나, 전수받은 것을 못 익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학이」 제4장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曾子曰, 吾日三省吾身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006강 나라 다스리는 길

 

천승의 나라를 다스리려면 일을 삼가고 미덥게 하며, 재물 쓰기를 절도 있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부리기를 때에 맞춰 해야 한다.

「학이」 제5장 도천승지국(道千乘之國)

 

道千乘之國 敬事而信하며

節用而愛人하며 使民以時니라.

 

007강 실천을 앞세워야

 

제자들은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신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 해야 하니, 이것이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

「학이」 제6장 행유여력즉이학문(行有餘力則以學文)

 

弟子入則孝하고 出則弟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하되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則以學文이니라.

 

008강 배움의 진정한 뜻

 

자하가 말했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을 바꿔서 하며, 부모를 섬기되 그 힘을 다할 줄 알며, 군주를 섬기되 그 몸을 바칠 줄 알여, 붕우와 더불어 사귀되 말할 때 성실하게 하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가 배웠다고 하겠다."

「학이」 제7장 현현역색(賢賢易色)

 

子夏曰. 賢賢 易色하며

事父母 能竭其力하며

事君 能致其身하며

與朋友交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라도 吾必謂之學矣리라.

 

009강 중후해야 학문도 견고하다

 

군자는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학문도 견고하지 못하다.

「학이」 제8장 군자부중즉불위(君子不重則不威) 1

 

君子 不重則不威 學則不固니라.

 

010강 허물을 고치라

 

충신(忠信)을 주로 하고, 자기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말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학이」 제8장 군자부중즉불위 2

 

主忠信하며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니라.

 

011강 추모의 마음을 다하여

 

증자가 말했다. "어버이 상을 당했을 때 신중하게 치르고 돌아가신 먼 조상님을 정성껏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한결 돈후해질 것이다."

「학이」 제9장 신종추원(愼終追遠)

 

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 歸厚矣리라.

 

012강 정치 참여의 자세

 

자공이 말했다. "부자께서는 온후하고 어질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겸양하므로 이것을 얻으시는 것이니, 부자께서 벼슬을 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이 벼슬을 구하는 것과 다르다."

「학이」 제10장 부자온량공검(夫子溫良恭儉)

 

子貢曰. 夫子 溫良恭儉讓以得之시니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인저.

 

013강 사람을 보면 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그 뜻을 살피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 행동을 살피되, 삼 년 동안 부모의 도를 고치지 않아야 효라 이를 수 있다.

「학이」 제11장 부재관기지(父在觀其志)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이나

三年 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014강 조화가 귀하다

 

유자가 말했다. "예의 쓰임에서는 조화를 귀하게 여기니,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 작은 일과 큰 일에서 모두 이것을 따랐다. 일이 제대로 행해지지 못할 수도 있으니, 화합할 줄 알고 화합을 위주로 하되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역시 행해질 수 없다."

「학이」 제12장 예지용화위귀(禮之用和爲貴)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하니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니라.

有所不行하니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니라.

 

015강 사귐의 태도

 

유자가 말했다. "약속이 의리에 가까우면 그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으며,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주인을 정할 때 친할 만한 사람을 제대로 친하면 그 사람을 끝까지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학이」 제13장 신근어의(信近於義)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이면 亦可宗也니라.

 

016강 민첩히 행하라

 

군자가 먹을 적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거처할 적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을 민첩히 하고 말을 삼가며, 도 있는 이에게 찾아가 질정한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학이」 제14장 식무구포(食無求飽)

 

君子 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이오 就有道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니라.

 

017강 빈부를 초월하여

 

자공이 "가난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라고 여쭈자, 공자께서는 "좋기는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즐기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씀하셨다.

「학이」 제15장 빈이무첨(貧而無諂) 1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하되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018강 갈고 닦으라

 

자공이 "시에 '골각은 용도에 맞게 자른 뒤 정밀하게 갈고 옥석은 용도에 맞게 쫀 뒤 정밀하게 간다.'라고 한 것은 아마도 이것을 이른 것이군요."라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와는 이제 시를 함께 말할 수 있겠다. 지나간 것을 말해 주니 아직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아는구나!"

「학이」 제15장 빈이무첨 2

 

子貢曰, 詩云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 하니 其斯之謂與인저.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019강 남을 제대로 알라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학이」 제16장 불환인지불기지(不患人之不己知)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니라.

 

020강 덕으로 하는 정치

 

정치를 덕으로 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 뭇별들이 그쪽으로 향하는 것과 같다.

「위정(爲政)」 제1장 위정이덕(爲政以德)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이어든

而衆星共之니라.

 

021강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야

 

시 삼백 편의 뜻을 한마디로 총괄할 수 있으니,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라는 말이다.

「위정」 제2장 사무사(思無邪)

 

詩三百 一言以蔽之하니 曰, 思無邪니라.

 

022강 왕도 정치

 

백성을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가지런하게 하면 백성은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또한 바르게 된다.

「위정」 제3장 도지이덕(道之以德)

 

道之以德하고 齊之以禮 有恥且格이니라.

 

023강 덕을 완성하는 길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했으며, 마흔 살에 사리를 의혹하지 않게 되었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위정」 제4장 오십유오이지우학(吾十有五而志于學)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三十而立하고

四十而不惑하고 五十而知天命하고

六十而耳順하고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니라.

 

024강 효란 무엇인가

 

맹무백이 효에 대해서 여쭈자 공자께서는 "부모는 그저 병들까 걱정할 따름이네."라고 말씀하셨다.

「위정」 제6장 맹무백문효(孟武伯問孝)

 

孟武伯 問孝한대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시니라.

 

025강 공경해야 참된 효

 

자유가 효에 대해 여쭈자, 공자께서는 "지금의 효라는 것은 봉양을 잘함을 두고 말한다. 하지만 견마에게도 모두 길러 줌이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부모 봉양이 견마 기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위정」 제7장 자유문효(子游問孝)

 

子游問孝한대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026강 말없이 밝히는 도

 

내가 회(回)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하는 동안 그는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인 듯했으나, 물러간 뒤에 그 생활을 살펴보니 충분히 내 가르침을 발명했으니, 회는 어리석지 않구나!

「위정」 제9장 오여회언종일(吾與回言終日)

 

吾與回 言終日 不違如愚러니

退而省其私한대 亦足以發하나니

回也不愚로다.

 

027강 사람 알아보는 법

 

그 하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살피며 그 편안히 여김을 살펴본다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위정」 제10장 시기소이(視其所以)

 

視其所以하며 觀其所由하며 察其所安이면

人焉廋哉리오 人焉廋哉리오.

 

028강 온고지신

 

옛것을 탐구하면서 새것을 알아 나가면 스승이 될 수 있다.

「위정」 제11장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不器

029강 군자의 도량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위정」 제12장 군자불기(君子不器)

 

君子 不器니라.

 

030강 먼저 실천한다

 

자공이 군자에 대해 여쭈자, 공자께서는 "말할 것을 먼저 실행하고 나서 말이 행동을 따르게 하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위정」 제13장 자공문군자(子貢問君子)

 

子貢 問君子한대

子曰, 先行其言이오 而後從之니라.

 

031강 두루 사랑한다

 

군자는 두루 사랑하되 편당하지 않으나, 소인은 편당하되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위정」 제14장 군자주이불비(君子周而不比)

 

君子 周而不比하고

小人 比而不周니라.

 

032강 배움과 생각함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위정」 제15장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

 

033강 앎이란 무엇인가

 

유(由)야! 너에게 앎에 대해 가르쳐 주겠노라.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

「위정」 제17장 회여지지호(誨女知之乎)

 

誨女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니라.

 

034강 난문은 제쳐 둔다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을 제쳐 놓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제쳐 놓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니, 말에 허물이 적고 행실에 후회할 일이 적으면 녹봉이 그 가운데 있다.

「위정」 제18장 다문궐의(多聞闕疑)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면 則寡悔

言寡尤하며 行寡悔 祿在其中矣니라.

 

035 사람쓰는 법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굽은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들이 복종하며, 굽은 사람을 들어 쓰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위정」 제19장 거직조제왕(擧直錯諸枉)

 

擧直錯諸枉하면 則民服하고

擧枉錯諸直하면 則民不服이니이다.

 

036강 지도자는 장중해야

 

백성을 대하길 장엄한 태도로 하면 백성이 공경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백성을 사랑하면 백성이 충성하며, 잘하는 자를 들어 쓰고 못하는 자를 가르치면 권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정」 제20장 임지이장즉경(臨之以莊則敬)

 

臨之以莊則敬하고 孝慈則忠하고

擧善而敎不能則勸이니라.

 

037강 효가 정치의 근본

 

『서경』에서 효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가!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하여 정치에 베푼다."라고 했으니, 이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어찌 지위에 있어야만 정치를 하는 것이겠는가?

「위정」 제21장 서운효호(書云孝乎)

 

書云 孝乎인저 惟孝하며 友于兄弟하여

施於有政이라 하니 是亦爲政이니

奚其爲爲政이리오.

 

038강 의로운 일에 용감하라

 

제사 지내야 할 귀신이 아닌데 제사 지냄은 아첨하는 것이요, 의로운 일을 보고도 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위정」 제24장 비귀이제지(非鬼而祭之)

 

非其鬼而祭之 諂也

見義不爲 無勇也니라.

 

039강 명분을 바로잡는 일

 

공자께서 계씨를 논평하여 말씀하셨다. "천자의 팔일무를 뜰에서 추게 하다니, 이 일을 감히 한다면 무엇을 감히 하지 못하겠는가?"

「팔일(八佾)」 제1장 팔일무어정(八佾舞於庭)

 

孔子하사대 八佾 舞於庭하니

是可忍也인댄 孰不可忍也이리오.

 

040강 예악보다 마음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면 예(禮)를 어떻게 하며,

사람으로서 어질지 못하면 악(樂)을 어떻게 하겠는가?

「팔일」 제3장 인이불인(人而不仁)

 

人而不仁이면 如禮에 何

人而不仁이면 如樂에 何.

 

041강 예의 근본

 

예는 외관상 성대하게 거행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는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이 낫다.

「팔일」 제4장 예여기사야영검(禮與其奢也寧儉)

 

禮與其奢也 寧儉이오

喪與其易也 寧戚이니라.

 

042강 군자의 경쟁

 

군자는 경쟁하는 일이 없으나 만일 한다면 활쏘기에서는 경쟁할 것이다. 상대방에게 읍례하고 사양하며 당에 올라갔다가 활을 쏜 뒤 내려와 술을 마시니, 이러한 경쟁이 군자다운 경쟁이다.

「팔일」 제7장 군자무소쟁(君子無所爭)

 

君子無所爭이나 必也射乎인저,

揖讓而升하여 下而飲하나니 其爭也君子니라.

 

043강 바탕이 중요하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 마련하는 일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팔일」 제8장 회사후소(繪事後素)

 

繪事後素니라.

 

044강 제사의 태도

 

조상신을 제사 지낼 적에는 선조가 계신 듯이 하셨고, 신을 제사 지낼 적에는 신이 계신 듯이 하셨다.

「팔일」 제12장 제여재(祭如在)

 

祭如在하시며 祭神如神在러시다.

 

045강 명분의 중요성

 

집 안 서남쪽 구석의 신에게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부뚜막신에게 아첨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팔일」 제13장 여기미어오(與其媚於奧)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하니

잇고.

 

046강 차이를 인정해야

 

활쏘기에서 과녁 뚫는 것을 위주로 하지 않음은 힘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의 활 쏘는 도는 이러했다.

「팔일」 제16장 사불주피(射不主皮)

 

射不主皮 為力不同科

古之道也니라.

 

君臣

047강 군주와 신하

 

군주는 신하를 부리기를 예로써 하고, 신하는 군주를 섬기기를 충으로써 해야 합니다.

「팔일」 제19장 군사신이례(君使臣以禮)

 

君使臣以禮하며 臣事君以忠이니이다.

 

048강 감정을 조절해야

 

시 삼백의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화평한 기운을 해치지 않는다.

「팔일」 제20장 관저낙이불음(關雎樂而不淫)

 

關睢 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니라.

 

049강 기왕지사는 기왕지사

 

벌써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고, 다 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은 탓하지 않는다.

「팔일」 제21장 성사불설(成事不說)

 

成事 不說하며 遂事 不諫하며

既往이라 不咎로다.

 

木鐸

050강 목탁 같은 존재

 

의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 선생님께서 벼슬 잃으신 것을 걱정하는가. 천하에 도가 없은 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님을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

「팔일」 제24장 천장이부자위목탁(天將以夫子爲木鐸)

 

出曰, 二三子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

為木鐸이시리라.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63 김치

 

글 / 이춘자, 김귀영, 박혜원●사진 / 배병석

1999,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7

 

082

빛12ㄷ  215

 

빛깔있는 책들 215

 

이춘자-----------------------------------------------------------------

수원여자대학 식품조리과 겸임 교수. 88올림픽 문화행사 "한국음식문화5천년전" 준비위원

 

김귀영----------------------------------------------------------------

상주산업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박혜원---------------------------------------------------------------

신흥대학 호텔조리과 교수

 

배병석-------------------------------------------------------------------------

88올림픽 문화행사 "한국음식문화5천년전"과 온양민속박물관 유물 촬영 및 도록 발간의 사진작업을 담당하였다.

 

그릇 협찬 - 우성보 도요(일월요), 행천자기

자료 협찬 - 중앙 종묘 홍보실

 

|차례|

 

한국인과 김치

김치의 어원과 역사

김치가 만들어낸 문화

특이성 김치와 향토 김치

김치의 특성

김치 담그기

김치를 이용한 음식

맺음말

찾아보기

참고 문헌

 

무우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 앞내에 정히 씻어 함담(鹹淡)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박이 무우 알암밤도 얼잔케 간수하소.

- 「농가월령가」 시월의 노래

물 긷는 아낙  평안도 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용두레 우물에서 물을 긷는 고구려의 여인을 표현하였는데 우물 주변에 여러 개의 큰 독이 보인다. 황해도 안악 3호분.

속리산 법주사의 돌항아리  사찰에서 대형 토기를 묻어 두고 겨우살이에 대비한 김장독과 같은 용도로 사용하였다. 법주사 경내에 있는 큰 돌항아리에서 김장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겠다.

석류김치  마치 석류가 익어 벌어진 듯한 모양으로 무에 바둑판처럼 칼집을 넣어 절인 다음 소를 채워 만든 국물이 넉넉한 김치이다.

사찰 열무김치(위)와 배추김치(아래)  사찰 김치는 종류가 다양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김치를 담글 때에도 오신채에 해당하는 자극적인 채소와 양념, 젓갈도 사용하지 않는다.

유기에 담긴 제사 김치  제사 김치는 익히지 않은 날것으로 배추김치를 썰 때에는 어른의 진짓상처럼 통배추를 썰어 중간 부분을 세워 제기에 올린다.

너와집  태백산을 중심으로 영서와 영동으로 나누어지는 강원도는 음식이 소박하고 먹음직스러우며 육류보다 조개류, 멸치 등으로 맛을 낸다. 강원도 삼척 신리.

대구아가미깍두기  강원도는 다른 지방과 달리 오징어, 명태 등의 해산물이 김치 재료로 많이 이용된다. 특히 곡물과 채소와 함께 버무려 삭힌 식혜가 유명하다. 창란젓깍두기, 오징어무말랭이김치 등도 있다.

콩잎김치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매운 편인데 음식에 별로 모양을 내지 않는 소박함이 특징이다. 수확기의 누런 콩잎을 따서 김치를 담갔다가 다음해까지 밑반찬으로 이용한다.

백김치  겨울이 긴 고장이라서 김치가 더디 익기 때문에 싱겁고 맵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김치에 양념과 부재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 국물 맛이 담백하다.

동치미  무를 넉넉히 넣고 배와 삭힌 고추, 청각 등을 넣어 익혀서 만들어 국물이 시원하기 때문에 김장할 때 빠뜨리지 않고 담근다.

가자미식해  함경도에는 특산물인 생선을 이용한 김치가 많으며 채소와 곡물밥, 생선을 넣어 함께 발효시킨 가자미식해가 유명하다.

해물김치  제주도 음식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음식을 많이 차리지 않는다. 해산물을 원료로 한 전복김치, 해물김치, 동지김치, 나박김치 등이 있다.

수삼나박지  수삼 잔뿌리를 갈아 맛을 낸 국물에 수삼, 배, 무를 넣어 하루 정도 지난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낸다. 약리 효과도 있는 개성 지방의 향토 김치이다.

수라상에 놓인 김치  음식이면서 예술의 경지까지 도달한 김치는 우리의 훌륭한 문화 유산이다. 소박한 서민의 밥상에서 임금님의 수라상에까지 빠지지 않았던 김치는 이제 세계인의 음식이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62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장순금 시집

2013, 문학아카데미

 

 

대야도서관

SB080205

 

811.6

장56ㄱ

 

문학아카데미 시선 247

Literature Academy Poem Book Series(1989)

 

사랑과 화해의 아름다운 시세계

무구 무욕의 시편

 

이 시집의 울타리 안은 대체로 그윽하고 평화롭다. 저 제천 배론성지의 소나무 그늘ㅇ이나 보령 갈매못 성당 앞 석양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집주인 장순금의 성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무구(無垢)와 무욕(無慾)의 시편들이다. 겸허히 자신의 육신을 들여다보고, 묵연히 천지간을 관조하는 시인 앞에 삼라만상이 무등(無等)의 진경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덕에 우리는 '어머니의 틀니'에서 '은하계로 흘러들어간 가지런한 별들'을 본다. '알몸들이 에덴동산처럼 자유롭'고 '산과 바다가 수평'이 되는 순간과 새삼스럽게 조우하며 모든 생명의 외경을 경험하게 된다. 뿐인가, '흑염소가, 은하수를 건너가는' 풍경을 목도하고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 거꾸로 쳐들고는 나를 탈탈털'어대는 놀라운 순간과도 만난다. 희망한다면 하늘 가까운 시인의 골방에서 고해의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귀가 밝은 사람이라면 '눈물 속에서' 천상의 '악기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 윤제림(시인, 서울예대 교수)

 

장순금 시인의 작품을 읽다보면 거침없는 상상력과 생동감 넘치는 언어에 푹 빠져든다. 세상의 뒷길에서 잊혀지고 버려진 것들과 한가족이 되는 사랑과 화해의 아름다운 시세계도 일품이지만 언어의 내밀한 자력과 상상력의 외연을 최대한 증폭시켜 삶의 상처와 결핍을 위무하고 치유하는 친화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상선약수인양 바닥으로 낮게 흐르는 물의 힘.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대로 스며들어 한몸이 되는 통달무애의 시편들을 읽으며, 시인과 함께 머잖아 유마의 불이선을 즐길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 박제천(시인, 문학아카데미 대표)

시인 장순금

 

부산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시집 : 『걸어서 가는 나라』 『비누의 슬픔』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낯선 길을 보다』 『햇빛 비타민』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6권 상재

수상 : 동국문학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현재 : 한국가톨릭문인회 사무국장. 『시와 소금』 편집위원, 한국시협, 펜, 목월포럼 회원

 

jang24k@hanmail.net

 

Poet Chang, Soon-Keum

 

Twelve Animals

 

Twelve animals roam about within me.

The pasture's gentle sheep whirl down the hills

and race as wild horses,

On some days like cats with drooping heads and

closed eyes.

 

Twelve devils dwell within me.

Don't trust the words that change from moment to moment,

mumbling, "Let love come, let eternity prevail."

Devils I cannot exorcise for myself

swarm in and outside myself like ghosts.

 

Different bodies from diverse universes

have come and now hide among my ribs.

Gleaming in my eyes,

they want to become bigger than me,

deeper than me, -- all within me.

 

Finally, I come out of my body locking it up.

Red bodies, blue bodies and black bodies

mix and struggle one with another.

In the end they become friends and play together.

Like this I fold my arms, and peer into my inside.

 

trans. Ko, Chang Soo

 

12축생

 

내 속에 열두 마리 짐승이 돌아다닌다

초원의 순한 양이

야산을 휘몰아쳐 야생마로 달리다

어느 날은 고개 파묻고 눈 감은 고양이처럼,

 

내 속에 도깨비 열두 마리 산다

방망이 뚝딱, 사랑 나오라 영원하라, 조석으로 바뀌는 소리

믿지 마라,

나도 내쫓지 못한 나 모르는 도깨비

유령처럼 내 안팎을 드나든다

 

각기 다른 몸들이 다른 우주에서 와

늑골에 숨었다 눈 속에 어른거리며

내 속에서

나보다 커지고 나보다 깊어지고 싶어 해,

 

급기야 나는 몸에 자물통을 채우고 나와 버렸다

빨간 몸 파란 몸 검정 몸들이 섞여 서로 티걱거리다

종내에는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팔짱을 끼고 오래 내 속을 바라보는 중이다

 

赤ぃ部屋

 

誰しも体の中に赤い部屋の一間ずつは保っている

左心房右心房その後ろ, 最も深く剃刀の刃で隱しておいた部屋

夢が赤く, 赤くて死ぬはずがない

熱望に爛れて哀しい斑点のように刻まれた部屋

花蘂にまで赤い絵の具を注いだ血のような部屋

空嘔で息咳きながら抱き込んでいた部屋

熱い血を激しく下しながらも私の部屋だと言い張った

花びら, その血の香り

 

氷を抱えゐ零下10度の体感にてさえ

明かりが消え去ゐことのない部屋

 

その赤い部屋を支えた不屈の芯の気が

地獄の火脚を通り過ぎて

明かりが消えた私を蘇らせた

 

詩  張舜琴

日訳  高貞愛

 

붉은 방

 

누구나 몸속에 붉은 방 하나씩은 갖고 있다

좌심방 우심방 그 뒤, 가장 깊이 면도날로 숨겨놓은 방

꿈이 붉어, 붉어서 죽지 않는

열망으로 짓물러 서러운 반점처럼 찍힌 방

꽃술까지 붉은 물감 쏟은 피 같은 방

헛구역질 헉헉대면서도 끌어안고 있던 방

뜨건 하혈 무섭게 쏟아내도 내 방이라 우기던

꽃잎, 그 피의 향기

 

얼음 껴안은 영하 10도의 체감으로도

불 꺼지지 않는 방

 

그 붉은 방을 지탱한 독한 심지의 기운이

 

지옥 불길 속을 지나

불 꺼진 나를 살렸다

 

詩人의 말

시간이란 말이 절실했다.

야생으로 시간이 떠돌던 때에도

詩神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사이

싱싱하게 자란 조그만 잎맥 하나가

골방 창문으로 하늘과 내통하며

시간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2012년 가을

장 순 금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흑염소, 은하수 건너가는

프린트하다 / 제왕 / 평화고물상 / 바닥론 / 그 남자의 연애법 / 흑염소, 은하수 건너가는 / 웨딩마치 / 12축생 / 수정로타리 / 뻥 할아버지 / 아날로그, 당신 / 살풀이 / 오래된 사진 / 무릉노인정 / 영락공원

 

제2부 붉은 방

입춘부 / 새집 태몽 / 에덴목욕탕 / 붉은 방 / 꽃팬티 한 생 / 내 탯줄 인제 끊겼다 / 속죄 의식 / 수면 내시경 / 종합비타민 / 지옥과 악수하다 / 첫 술 / 틀니 / 껍데기 / 위독 / 눈물밥 / 배꼽 매듭

 

제3부 나무 코끼리

벚나무 나이테 / 도장 / 바톤 터치 / 봉오리 터지기 직전, / 태풍 / 흑백풍경 / 해독불명 / 흉터 / 나무 코끼리 / 낯선 손등 / 비밀번호 / 이명 / 숟가락 / 들판, 그루터기 / 사과 / 십장생

 

제4부 사람의 아들

아름다운 청빈 / 허물 / 가락지 /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 환골탈태 / 맨밥 / 계단이 출렁거렸다 / 직거래 / 그의 혀는 늘 햇빛의 문자를 꿈꾼다 / 희망 감옥 / 내가 일용할 양식 / 사람의 아들 21 / 사람의 아들 22 / 사람의 아들 23 / 사람의 아들 24

 

 

프린트하다

 

목욕탕에서

허리에 나비 문신한 여자를 보았다

살이 잉크를 빨아먹고 나비가 되었다

나비 앉은 자리에서 허리로 날개가 돋았다

집으로 돌아와

프린트기 전원을 켜고 시 한 편을 클릭했다

백지가 온몸으로 잉크를 빨아들여

한 획씩 문신을 박아 나왔다

시 한 편이 백지의 살을 뚫고

내 이름에 문신을 새겨 나왔다

시를 제 살 속에 박고 사는 시인은

나비다

허리 동그랗게 고요를 가두었다 창공을 오르는

나비 발개다

목욕탕에서, 살에

프린트한 시 한 편이 지나갔다

 

껍데기

 

알몸 둘이

축 처진 거죽 몇 겹 안고

목욕탕 문을 밀고 들어왔다

 

더듬더듬 앉아

마른 명태 같은 팔로 허우적, 허공 웅덩이에서 물을 퍼낸다

수분이 다 빠진 굽은 고목 둘이

서로 형님 동생 그러며 근근이 등 밀어 준다

손닿지 않는 것이 어디 등뿐이랴,

 

허연 실타래 같은 굽이친 머리에

흰 거품 뭉게뭉게 피워 올려 구름 동산 만들려나,

팔 다리 얼룩덜룩 저승꽃

하얗게 거품꽃 부풀려 빈 몸에 입혀본다

 

거품 같은 한 시절,

물 몇 바가지 퍼부어주니 순식간에 하수구로 흘렀다

 

나도 그 하수구에

누더기 껍데기 하나, 내던지고 왔다

 

평화고물상

 

아파트 뒷길에 고물상이 생겼다

잊혀지고 버려진 것들이 하나씩 서로 곁을 내주더니

뒷길도 한통속이 되었다

처음에는 모두 순한 새 것으로, 처음에는 선물로 세상에 왔는데

바람에 넘어지고 구름에 밀리고 허공에 밟히고 시간에 잊혀져

날선 자존감도 빛나는 기억도,

마침내는 그늘 한 뼘마저 세상의 뒷길에 내놓았다

그냥 한가족이 되어서

금간 것들끼리 서로 문지르며 평화 한 줌을 나누어 갖는다

밤이면 평화고물상 앞으로 한 수레씩 배달되는 별빛 달빛

 

입춘부

 

여덟 살에 수술 받고 학교를 쉴 때

햇살이 길게 누운 마루 끝에 앉아

공중에 떠도는 먼지를, 그 안에 반짝이는 빛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고 쓴 한약을 마셨다

 

대문 밖 아이들이 가방 메고 가는 꽃길,

약냄새를 밥내처럼 맡으며

아이들의 봄을 숨어서 보다

울다

거품이 빠져나간 내 봄을 메고

아홉 살 지나 첫, 학교 가는 길에

 

나는 얼음 같은 햇살에 데었다

 

발바닥이 얼얼하도록 온몸의 살이 땡기도록

내 살갈피를 책갈피처럼 열어젖히는

그 어린 날, 얼음처럼 차갑고 뜨거운 햇살이

 

흐물흐물 몸뚱이 버리고 싶은 오늘

정신날 시퍼렇게 일으키는 복부 오른쪽

통증이

그 햇살을 메고

다시 나를 찾아왔다

 

제왕

 

경부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 입구

좁은 병목에 한데 몰려

위태롭게 엉키며 다칠세라 기어가는 자동차들

 

그 사이,

길을 가로질러

골판지 넘치게 싣고 나타난 리어카,

홀로 당당히 유유자적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길을 가르고

양 옆으로 만조백관 거느리고

등극하듯

낡은 밀짚모자 왕관이 빛난다

 

모두들 일시에 숨 멈추듯 제자리서

경례하듯

거리의 제왕을 올려다본다

 

뻥 할아버지

 

금요일마다 오는 동네 뻥튀기 할아버지

반평생을 뻥치다, 헛살았다고

느즈막에 진짜 뻥튀기며 산다는 뻥 할아버지

 

귀 막고 살아보니 하늘이 잘 보이더라고

질곡의 모서리를 돌아온

회오리바람 같은,

30촉짜리 전구 같은 할아버지

 

낟알 귀한 줄 아는,

불화로 속에서 그 삶이 삭히고 발효되어

연기 속에서 부화하듯

낟알 튀는 순간

팝콘 같은 나비들이 빙 둘러서서 탄성을 질렀다

불빛 속에서 꽃들이 활짝 익었다

 

뻥이, 세상 읽는 경전이 되었다

 

흑염소, 은하수 건너가는

 

흑염소즙을 주문하려고 건강원 문을 밀고 들어섰다

여기저기 흑염소 사진, 너머 뭉게구름 흘러가고

치켜뜬 눈, 빳빳이 쳐든 뿔,

흑염소는 지금 하늘을 바삐바삐 걷는 중이다

 

발바닥 물들인 초원의 풀빛들

해와 달로 여물게 뿔을 다지던 기억들

다 풀어놓고

먼저 간 친구들 찾아가는 중이다

 

몸이야 어차피 보시했으니,

이왕이면 햇살과 바람 구름과 함께 흐물흐물하도록 고아

아침마다 푸른 들판 한 잔씩 진하게 마시라고,

 

울컥 치빋고 싶은 날은

즙 속의 치켜든 뿔 불러내 들이받으라고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반가운 얼굴 만나러 가는 중이다

뿔로 노 저으며 은하수 건너가는 중이다

 

그렇게 나도

흑염소 한 점 가물가물…

그 뒷모습 찾아가는 낮달의 반짝임을 보는 중이다

 

나무 코끼리

 

내 방에 사는 아기코끼리들을 아시는지요

열대나무들이 제 어미랍니다

 

햇빛이 몸을 만들어 주었고

비와 바람이 속을 채워 주었지요

 

어미가 그리울 때면

열대림의 섭씨 40도의 기억을 긴 코에 말아 넣고

한 발, 또 한 발 올렸다 놓으며

코끼리 춤을 춘답니다

 

장대비 쏟아지는 날은

아기 코끼리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

어미 냄새나는 그 숲의 빗줄기가

방 안으로 쏟아집니다

 

제 어미, 열대나무로 서로 부비며

짙푸른 잎사귀 방 안에 펼쳐

바람 한 점 없는 열대야의 내 여름도 불러들여

한바탕 코끼리 춤을 춘답니다

 

사람의 아들 · 21

 

예루살렘에는 예수가 없었다

이천 년 동안 닳고 닳아 겨자씨만 해졌다가

내가 예루살렘에 간 날 없어졌다

예수가 밟았다는 전설 같은 돌계단 사이

긴 옷자락 부여안은 흙먼지 켜켜이 쌓여

내 발목을 붙들었다

달빛 아래,

시신 염한 차가운 돌 위에

꿈결같이 젖은 바람과 함께 내가 누웠다

나르드 향료 한 방울이

시공을 진동하며 내 위에 떨어졌다

천리향이

예루살렘이 건네 준 사랑 한 장 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예수가 먼저 와

묵은 먼지를 몰래 털어내고 있었다

방안 가득 출렁이는

갈릴레아 호수가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나를 지켜보았다

 

사람의 아들 · 22

 

날마다 내 속에서 유다가 태어났다

하루는 입 속에서 하루는 늑골 밑에서 걸어 나와

태연히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입술이 닭벼슬처럼 빨간 유다는

이스라엘의 꼬꼬성당 담벼락에서도

세 번의 검은 눈물로 태어나

스스로 붉은 혀를 지옥도에 그려 넣었다

 

유다는

은화 서른 냥에

귀도 눈도 팔고 혀도 팔고

하늘도 팔았다

하늘의 심장도 팔았다

 

입술이 닭벼슬처럼 발갛게 번져 가는 동안

지옥도의 붉은 혀가 걸어나와

천둥 번개의 눈치를 보며 돌아다녔다

 

어디선가 많이 본 그림이었다

 

그분의 유다였던 나를 보았다

 

사람의 아들 · 23

 

예수가 서울에 왔다

그가 살던 이스라엘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맨몸에 십자가 하나 달랑 메고

불빛 속 하늘로 삐져나온

서울의 옥탑방으로 이사를 왔다

밤에는 십자 별천지

지상이 아름답고 눈이 부셔

예수는 선글라스를 꼈다

 

낮에도 야광처럼 번쩍이는

사랑 메시지는 지하철 안에서 길거리에서

서울로 덮고도 남아

옥탑방 꼭대기까지 밀려와 문을 두드렸다

사랑 팝니다

무료로 팝니다 무료로 사세요

 

예수는 뾰족한 종탑에서 종탑으로

이천년을 끌려다니며 종소리로 울다가

서울로 와서도 계속 소리 높여 기도해야 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사람의 아들 · 24

-고 이태석 신부

 

아프리카 수단에 예수가 다녀갔다

하늘도 흙도 얼굴도 까만 땅에 와서

우유빛 눈물을 꺼내놓고 갔다

한센 환자도 아이도 노인도 군인도

예수가 놓고 간 눈물을 먹으며

 

눈 속에 음각된 눈물을 오래 생각했다

눈물 속에서 악기 소리가 나고

터진 발톱이 보이고

꿈같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던

아이들은

성당보다 먼저 지은 학교로 모여

빈 집 같은 책을 폈다

 

하얀 치아, 하얀 손바닥으로 서로 맞잡고

예수가 잠시 살다간 땅에서 하늘 보는 법을 배웠다

밀알이 방울방울 떨어져 온 나라에 양식이 퍼졌다

눈물을 놓고 간

아프리카로

예수의 친구들이 부지런히 오고 있는 중이다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혼자 겨우 들어가는 혼자만 아는 골방, 때론 쉬어가고 울다 가고 얼굴 묻은 방, 내가 조그만 알처럼 둥글게 되는 좁은 방에 들어서면 산도 구름도 낮아지고 달빛도 내려와 두 손을 모은다

 

골방에선 일생을 걷던 내 발이 보이고 감춰둔 발톱도 보인다 더 크게 더 자세히, 갈라지고 튼 뒤꿈치로 걸어온 길, 길의 튼 살이 보인다

 

무념무상의 얼굴로 골방이 나를 본다 나도 깃털처럼 앉아 골방의 복부를 연다 골방은 침묵하는 수다쟁이, 내가 하지 않은 말까지 다 말해 버린다 나는 몸을 숨긴다

 

골방 속에서도 또 몸을 숨기는 나의 골방

 

몸에 꼭 맞는 골방에 꿇어앉으면 꿇어앉은 당신이 보인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61 제주도 음식

 

글 / 김지순●사진 / 안승일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6

 

082

빛12ㄷ  214

 

빛깔있는 책들 214

 

김지순-------------------------------------------------------------------------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제주전문대학 가정과 전임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제주도 지부장, 김지순요리학원 원장, 제주전문대학 관광호텔조리과 전임교수로 있다.

 

안승일-------------------------------------------------------------------------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 사진학과를 중퇴하였다. 1969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산악사진전'을 가졌고, 1995년 일본의 이와하시와 함께 '백두산 2인전'을 열었다. 1977년부터 '그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산악사진가회 회원으로 있으며 사진집으로는 「산」(1982) 「삼각산」(1990) 「한라산」(1993) 「백두산」(1996) 「굴피집」(1997)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제주도의 자연 지리적 환경

알뜰하고 소박한 식생활

제주도의 고유 음식

절기 음식과 의례 음식

맺음말

부록 - 부엌 세간

삼성혈  제주 개국 신화의 발상지로 고, 양, 부씨의 시조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솟아났다는 구멍이다.

천지연 폭포  폭포의 규모나 경관이 뛰어나 관광객들의 발길을 묶어둔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폭포 주위에는 상록수와 난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오름  제주도에서는 화산의 중턱이나 기슭에 새로 분화하여 생긴 기생화산을 오름이라고 부른다.

성산일출봉  제주도의 동쪽 끝머리에 위치한 기생화산으로 영주십경 중 제1경인 성산일출로 유명하다.

한라산  한라산은 제주도의 중앙에 솟아 있는 화산으로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제주 전역을 지배하는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의지처 역할을 한다.

메밀밭  하얀 꽃이 충성한 제주도의 메밀밭은 관광객들에게 서정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제주 사람에게는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해녀  밭일에 물질에 집안일까지, 제주 여인들은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힘겨운 생활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왔다.

빗물받이  먹을 물이 귀하였던 제주도에서는 한 바가지의 물이라도 헛되게 쓰지 않았다. 먹을 물은 길어 왔지만 그 외의 생활용수는 빗물을 받아 사용하였다.

허벅을 지고 물을 길어 오는 아낙  제주도에서는 물을 긷기 위해 몇 킬로미터씩 걷는 것이 보통이다. 허벅을 진 제주 여인의 모습은 제주를 대표하는 풍경 중의 하나이다.

낭푼밥상  다른 지방과 달리 제주에서는 밥을 가족 수대로 따로 뜨지 않고 낭푼이라 부르는 놋그릇 하나에 담아 밥상 가운데 두고 가족들이 같이 먹었다.

톳 채취  밥이나 국, 반찬에 두루 넣어 먹을 수 있는 톳은 제주도의 중요한 저장 식품 가운데 하나이다.

동지짐치  겨울이 지난 후 김치가 시어져 맛이 없어질 때쯤이면 싱싱한 동지나물이 나와 산뜻한 봄을 느끼게 한다.

호박잎국  다른 야채에 비해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된다.

자리물회

자리돔을 제주에서는 ‘자리’라고 부른다. 제주 가까운 바다에서만 잡히는 생선 가운데 하나로 5월과 8월 사이에 많이 잡힌다. 특히 알을 배고 있는 시기인 음력 5월에서 6월 사이가 가장 맛있다.

자리는 강회, 물회, 구이, 조림, 젓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지만, 시원하면서도 진한 국물맛이 일품인 자리물회가 별미로 꼽힌다.



-. 자리물회 만들기

재료/ 자리, 오이, 파, 깻잎, 미나리, 부추, 풋고추, 재피잎, 마늘, 토장, 초고추장이나 고춧가루, 깨소금, 식초, 후추, 참기름, 설탕

만드는 방법/

1. 자리 손질하기 : 비늘을 긁어내고 양쪽 지느러미를 잘라버린다. 머리는 눈 있는 쪽으로 내장 있는 데까지 비스듬히 자른다. 꼬리는 자르지 않는다. 이렇게 손질하면 못 먹는 내장이 제거된다. 손질한 자리를 살짝 씻어 머리쪽은 곱게 다진다. 몸쪽은 등쪽으로 어슷썰기를 하면 가슴의 작은 뼈가 잘게 잘라진다.
2. 썰어놓은 자리에 식초를 약간 뿌려둔다.
3. 오이는 채 썰고 다른 야채들은 잘게 썬다.
4. 양념에는 꼭 토장을 써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재피잎은 향도 좋고 비린내도 가시게 하는 야채다.
5. 자리에 모든 야채와 양념을 넣고 무친 후 물을 붓는다.

우럭콩조림  콩에 밴 우럭의 맛이 구수한 우럭콩조림은 영양가가 매우 높은 음식이다.

구살젓 영양이 풍부한 구살젓은 밥에 비벼 먹기에 좋다.

구쟁기구이  소라를 그대로 불에서 구우면 되므로 특별한 손질이나 양념이 필요 없다. 먹을 때는 쓴 부분을 빼고 먹는다.

전복죽  전복은 오래 전부터 뛰어난 맛과 영양을 널리 인정받은 귀한 음식 재료이다. 전복죽은 임산부나 어린아이, 노인, 환자의 영양식으로 인기가 높다.

 

보리쉰다리

보리쉰다리는 제주 사람들이 식생활에서 보여 준 알뜰한 지혜의 산물이다. 여름에 보리밥을 먹다가 그대로 두면 쉬기 쉬운데 제주 사람들은 이것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다른 음식으로 만드는 생활의 지혜를 보여 주고 있다.

재료  보리밥, 누룩.

만드는 법  하루나 이틀쯤 지난 보리밥이 부패하기 시작하면 밥에 손가락을 넣어서 쑥 들어갈 정도가 되었는지 살펴본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가 되면 보리밥에 물과 잘게 부순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다. 여름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 겨울에는 5, 6일 정도 발효시킨다. 밥이 발효되어 뭉글뭉글하게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것을 체로 걸러서 끓여 마신다.

설탕을 첨가하기도 하는데 설탕의 양에 따라 신맛이 조절된다. 기호에 따라 끓이지 않고 먹기도 하는데 끓일 때보다 새콤한 맛이 더 강하다. 이 고장 사람들이 여름에 마실 수 있었던 유일한 음료이며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즐겨 마셨다.

갈치호박국  가을갈치에 가을호박으로 끓인 갈치호박국은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아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음식이다.

고구마차조밥  곡식이 귀한 제주도에서는 고구마 등으로 밥의 양을 불러 허기를 채웠다.

꿩토렴  꿩의 가슴살로 만든 꿩토렴은 먹는 방법이 샤브샤브와 비슷하다.

오메기술

제주고유의 술은 제조방법에 따라 ‘닦은 것’과 ‘생으로 한 것’ 두 가지가 있다.

닦은 술은 누룩으로 빚어 익혔다가 고소리에 내린 증류주인 ‘소주’가 있고, 생으로 한 것에는 감주, 청주, 탁주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주와 탁주를 많이 먹었다.
‘골감주’라고도 부르는 감주는 가장 귀하게 여기는 술이었다. ‘골’은 단맛을 내는 엿기름을 일컫는 것이다. 감주는 제사나 명절 때 제주로 올렸다.

청주는 좁쌀가루로 빚은 오메기술에서 떠낸 술이다.
노릇노릇한 기름이 위에 도는 청주는 귀하게 여겨 잔치, 제사, 굿 등에 쓰이고 ‘탁배기’라 부르는 탁주는 농주로 이용했다. 순 곡주여서 영양이 풍부하고 특별한 안주 없이도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차조로 빚는 오메기술은 쌀로 빚은 술과는 달리 좁쌀의 독특한 양기와 새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허기나 갈증을 없앨 뿐만 아니라, 피로회복에도 좋다. 오메기술은 1983년 국세청에서 제주도지방민속주로 지정했다.

-. 오메기술 만들기

오메기술은 10월에서 1월 사이에 만드는데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다.

재료/ 차조가루와 누룩을 3대 1의 비율로 준비한다.

만드는 방법

1. 차조가루를 반죽해 둥글게 빚어서 가운데 구멍을 내고 끓는 물에 넣어 삶는다. 이때 솥 밑에 떡이 눌어붙지 않게 잘 저어준다.
2. 떡이 익으면 물 위로 떠오르는데, 차례로 건져서 뜨거울 때 떡 삶은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잘 푼다.
3. 누룩을 잘게 부수어 넣는다. 좁쌀의 양이 3이면 누룩의 양은 1이 되도록 한다.
4. 된죽보다 조금 묽게 잘 섞여진 반죽을 술독에 넣고 뚜껑을 덮는다.
5. 온도의 변화가 적도록 옷이나 이불로 싸서 한 달쯤 발효시키는데, 잘 발효되도록 하루에 몇 차례씩 저어준다.
6. 어느 정도 발효돼 술이 괴기 시작하면 덧술을 한다. 발효되는 과정에서 위의 것을 청주라 하고 밑에 있는 것을 탁배기라고 한다. 한두 달 뒤에 먹기 시작한다.

몸국(모자반국)

제주에서는 모자반을 ‘ㅁ·ㅁ’ 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큰일이라고 해서 혼례식이나 장례식, 소기, 대기 등에 돼지를 잡는다. 큰 가마솥에서 돼지와 순대를 삶고 나면 국물은 진한 육수가 된다. 이 육수를 가지고 국을 끓인다. 모자반은 지방을 흡수하고 비계의 역한 냄새를 없애주므로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
혼례식의 잔치 전날인 가문잔치에도 국은 꼭 먹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영양이 풍부한 몸국은 마을사람들의 구수한 인정을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국 만들기
재료/ 돼지고기 삶은 국물, 모자반, 김치, 미역귀(돼지 내장인 장간막), 소금, 후추, 메밀가루나 보릿가루 또는 밀가루

만드는 방법

1. 모자반은 말린 것을 빨아 사용하는데, 제철일 때는 데쳐서 사용하기도 한다. 햇몸으로 끓인 국은 ‘몸국’ 이라 해서 별다른 맛으로 친다.
2. 돼지를 삶고 난 육수에 모자반을 넣고 김치도 있으면 약간 넣고 돼지내장인 미역귀를 썰어 넣어 끓인다.
3. 메밀가루를 푼다.

느르미전  제사상에 올리는 전으로 실파와 고사리가 주재료이다.

빙떡  메밀의 담백한 맛과 속재료로 사용한 무채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빙떡을 지질 때 감귤이 옆에 있거나 보관중인 메밀가루 옆에 감귤을 놓아 두면 빙떡이 잘 지져지지 않는다고 한다.

곰박

양념단지(네성제단지)

구덕에 담긴 허벅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60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안숙경 시집

2007, 천우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03281

 

811.6

안56보

 

첫 월경이 터진 날부터 보름달을 그려 놓고, 그 안에 맨드라미를 심었다.

꽃이 필 때마다 헛꿈인 줄 모르고 꿈만 키웠다.

가슴은 보름달만큼 커지고, 눈은 작아지고, 귀는 멀어지고, 손발은 떨어져 나간다.

입만 살아서 골목을 죽이고, 길을 만들고 싶은 맨드라미는 울다 웃다 족보에 갇힌 술꾼이 되었다.

아버지 닮은 발가락은 떠도는 별이 되었다. 치매에 걸린 유년의 목걸이만 가슴을 치고 있다.

 

안숙경 詩人

 

부산 출생

쥬리아 소네트 공모전 동상(1993)

『문예한국』 「화장을 지우고」로 등단(1993)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시상문인 회원

시인의 세상 초대작가

공저시집 『사랑의 노래 소네트』

             『빈 가지에 이는 바람소리』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2동 184-107

         청림파크빌라 나동 301호

이메일 : sundance425@hanmail.net

 

차례

 

■ 시인의 말

 

1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나 / 숫자판에 없는 번호표 / 밤…춤 / 빵 /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 젖몸살을 앓는 여자 / 모자 속에 갇힌 여자 / 저 별이 위독하다 / 내 사랑 황소자리는 잠들고 / 아스피린 두 알 / 이 가을엔 삼나무 숲에 숨고 싶다 / 돼지꿈을 꾸고 싶은 날 / 아니면 말지 / 바람이 바람나면

 

2 골목 안의 죽음은 신문에 샬리지 않는다

어딘가에 /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 뒤꿈치가 권태로운 오후 다섯 시 / ?실화입니다 / 그래도 날개가 있는데 / 첼로 / 모기 / 바퀴벌레 / 늦가을 저녁 / 가을 남자 / 길에게 묻다 / 인사동 만다라 / 시(詩)방 / 골목 안의 죽음은 신문에 실리지 않는다 / 박쥐 / 당분간은

 

3 사주 도둑은 없다

사주 도둑은 없다 / 추락한 손금 / 전화가 묻는다 / 사철나무의 노래 / 연(緣) / 업(業) / 맛있는 죽음 / 맨발로 아침을 부른다 / 마침표 화가와 쉼표 여자 / 기억에도 없는 날들로 / 얼지 마 / 비상구가 없다 / 한번 흔들어봐 / 이사 가고 싶다 / 이 시대의 귀신

 

4 서울 집시, 2006

11월의 꿈은 바람도 피해 간다 / 봄비를 밟으면서 / 삼팔따라지 / 야단법석 · 1 / 야단법석 · 2 / 야단법석 · 3 / 야단법석 · 4 / 야단법석 · 5 / 정동진 / 방패연 / 아쟁 산조 / 신들린 뒤꿈치 / 너름새에 흥을 박고 / 노을로 태어난 춤꾼 / 서울 집시, 2006

 

5 위장은 춥다

오월의 숲 / 위장은 춥다 / 가을은 / 통조림 음악 / 황지우 조각전(展)에 부치다 / 달팽이 / 밥그릇 / 귤은 이 맛이 아니야 / 그는 · 1 / 그는 · 2 / 그는 · 3 / 이웃 / 지하철 2호선을 타본 적이 있나요 / 유리창에 핀 백합 / 어금니가 흔들린다 / 푸닥거리 / 화장을 지우고 / 병실에서 / 수제비에 관한 기억 / 거울 / 한 방울 안약 / 사철나무의 노래 · 3 / 밤의 기별 / 죽었니, 살았니 / 출입 금지 / 홀로 춤을

 

…춤

 

벗었지 모두 벗어 버렸지 가슴 한쪽에서 보라색 무덤이

커지고 있는 걸 느꼈지

 

꿈에 시달리는 기타 울음을 달래려고, 발이 예쁜 그 여자는

맨발로 춤을 추지

 

열매에 빛을 저장한다는 일월 달밤에, 인디언 소녀처럼

긴 머리 팔랑거리며 춤을 추지

 

생명을 수혈받은 팔과 다리는, 별꽃이 만발한 별밭으로

날아다니며 춤을 추지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첫 월경이 터진 날부터 보름달을 그려 놓고, 그 안에 맨드라미를 심었다. 꽃이 필 때마다 헛꿈인 줄 모르고 꿈만 키웠다. 가슴은 보름달만큼 켜지고, 눈은 작아지고, 귀는 멀어지고, 손발은 떨어져 나갔다. 입만 살아서 골목을 죽이고, 길을 만들고 싶은 맨드라미는 울다 웃다 족보에 갇힌 술꾼이 되었다. 아버지 닮은 발가락은 떠도는 별이 되었다. 치매에 걸린 유년의 목거리만 가슴을 치고 있다.

(아아 가슴만 살아서 움직이네)

 

내 사랑 황소자리는 잠들고

 

노인네 씻기고

젊은 애 깨우고

주변의 초상화를 닦고, 쓸고

하루는 멀고, 내일은 지루하고

카페인에 담금질하면서

삶의 풍경에 주리를 뜰면

혼자만의 놀이에 하품이 비명이 된다

 

비틀어 잠가도 새어 나오는 수돗물처럼

흐르는 꿈에서 썩은 사과 냄새가 난다

 

토하는 일상의 권태로움

리듬을 타고 책 보따리 품었다 쌓았다

먼지로 가슴을 적시면

폐병 말기 환자처럼 기침이 나를 깨운다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내 안에서 펄떡이는 것들을

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내는 일

그것이 오후 4시에 해야 하는 일

제 몸 끓여가며 불과 싸우는 건

체념이 아니고

길들여가고 있는 한낮의 햇살 같은 것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희망 같은 것

 

끓고 있는 냄새가 방 안 가득 채운 동안

젓가락이 필요 없는 국물은

또 다른 이름으로 7시를 만난다

 

땅거미가 찾아온 창문 너머

잠깐 눈 맞춤 했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첼로

 

젖은 살결처럼 흐르는 아다지오

잿빛 그리움 타고 스며든다

자색 등꽃 터널을 빠져나온 나비 한 마리

구름에 떠밀리어

이슬로 바람 카고 흐른다

음(音)의 무게로 끊어진 혼자만의 날갯짓

금 간 손바닥으로 시린 가슴 쓰다듬으며

짙은 비음으로 깨우는

오늘의 장애, 내일의 장애

 

시(詩) 방

 

늘 깨어 있어 밤이 없는 방

책벌레가 춤을 추면 연필이 추임새를 넣고, 종이가 소리를 한다

진통은 신이 난 듯 산달을 채근한다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그 방은, 자음과 모음이 꽃으로 피는가 하면

곧 시들기도 한다

 

전화가 묻는다

 

집으로 전화를 한다

울리던 신호음 끝나고

- 지금은 외출 중이니 말씀을 남겨 주십시오 -

또 다른 목소리는 남겨지지 않았다

외로움이 똬리를 틀고 있는 전화기

피아노곡 유령이 살고 있는 방

목소리의 유령이 녹음되고 있다

만질 수 없는 음(音)이 손가락으로 들어와

카타쥘리처럼 굳은 몸을 두드린다

불행에 맞추어 방을 슬프게 하는 조명들

울음에 맞추어 방을 눈물 젖게 하는 소리들

지나가는 여인 2가 욱음을 던져준다

 

평생은 얼마 만큼인가

전화가 묻는다

 

이사 가고 싶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신음 때문에, 방바닥은 갈라지고, 시(詩)는 버려지고, 머리카락은 까치집을 짓다 허연 가루를 밤새도록 깔아 놓는다. 긁어 부스럼 만든 손가락은 연필을 부러뜨리고, 절망은 벽을 타고 창문을 넘다가 피 흘리며 짜증과 욕설로 원고지를 찢는다.

 

   왼손은 왼발을 찍고, 오른손은 오른발을 찍는 나를 처형시키는 다락방에는 음악만 살아서, 트럼펫이 또 한번 죽여준다. 항아리 속에 갇힌 빗물처럼 부패한 감성.

 

   예매가 필요한 시어(詩語). 줄서기를 포기한 절름발이 시간 탓이야, 언젠가는, 언젠가는 되풀이하며, 게으른 미래를 점(占)치는 불길한 다락방.

 

야단법석 · 4

- 그냥 시인의 장례식

 

이 세상아 나는 빈손으로 간다 공수래 공수거

오복은 물복이다 술 석 잔은 살아도 석 잔, 죽어도 석 잔

간다 간다 한날한시를 모르는 세상아 춤을 추어라

산 사람 마음 풀고, 죽은 사람 마음 풀어

도깨비타령 진양조로 칠흑 같은 세상 가르네

한바탕 놀음으로 춤을 추어라

이 세상아 고부라지게도 질긴 세상아

 

꽃상여를 타고 떠나는 길손아

첫 잔은 사랑을 기억하는 맛이오

둘째 잔은 시(詩)의 행(行)을 가르는 맛이오

셋째 잔은 묶이고, 벗기고 푸는 맛이오

가오, 가오, 그냥 가오

폭죽을 터뜨리는 오월의 장미에 누워서

 

너름새에 흥을 박고

 

- 으이, 얼시구 -

 

고수의 추임새에

자귀나무에 앉아 있던 나비

노랑머리 풀어헤치고 요사를 떤다

쟁쟁 울리는 바람결

계면조로 풀리더니

두레박에 숨어 있던 어제의 내가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춤을 춘다

신명을 연필도 장단을 맞추고

소리꾼 북채 휘두르니

흥에 젖고 땀에 젖은 오늘의 詩가

나비 되어 날아다닌다

 

오월의 숲

 

나무는 서로 말한다

천년을 돌아 그 자리에서 약속도 없이

비 내리는 오월에 웃음으로 만나고 있다

선명한 사랑으로 젖은 잎사귀는 숲이 되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만나는 크고 작은 나무 사이로

구름이 떠돌아다닌다

고요와 함께 내리는 비에 젖은 해맑은 그리움은

부풀어 오월의 마지막을 아쉬워한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생긴 삶의 산등성이를

걸어서 퉁퉁 부어오른 발등

나무에 기대어 젖은 잎으로 얼굴을 숨긴다

나무는 말한다

누구나 등에 지니고 다니는 인연으로

사람은 점점 작아진다고

몸 안으로 밖으로 굴러다니던 바퀴는

삶의 은유로 길을 트는 나무 사이로 굴러간다

완전한 자유로 숲은 하늘을 덮는다

 

화장을 지우고

 

누군가에 의해 다리는 잘리고

그 눈길은 심장을 가르고

입술을 트게 만들었다

 

떠도는 숨결은

숨겨진 또 하나의

껍질을 벗긴다

 

화장을 지운 얼굴은

속까지 드러내며

세수를 한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가지런한 눈썹은

눈 뜨기를 거부하며

손바닥에 눈물을 심는다

 

골목 안의 죽음은

신문에 실리지 않는다

 

새벽 5時인지, 오후 5時인지 판토마임을 하는 세상

손짓, 발짓은 허무의 개그였다

허연 거품으로 몸치장을 하고

어둠의 박자를 긁어내듯 블루스로 움직인다

 

뼈까지 뒤틀리는 하루하루가

장애로 365日을 모두 삼켰다

 

네가 인제는 지겨워

치매 중인 세상 혼자만의 연기는 서툴다

만들어진 비극에는 재수 없는 이유만 등장했다

아니면 말지

 

못숨 걸고 덤빈다는 건 거짓말이다

울지 마 눈물은 마음을 마르게 하지

심장 뛰는 대로 살게 내버려둘걸 그랬나

즉석 사진기에 버려진 사람들의 증명사진에

내 얼굴이 찢어져 있다

 

모든문예지의등용문은전쟁중이다창칼에목이잘려도골목안의죽음은신문에실리지않는다

 

사주 도둑은 없다

 

   맥반석에서 구워지는 한치처럼, 가을 햇살이 가슴 속에서 구워지고 있는 종로에서, 늘 소풍 가는 여자가, 보따리를 풀고, 피리를 불며 춤을 추고 있다. 볼장 다 본 사람들만 모여 박수를 치고 있다. 며칠째 세수도 안 한 그들은 마음 안에 숨겨 논 것을 토하며, 생명이 된 눈물의 춤을 추고 있다. 이불로 포갰던 신문들이 찢어지며, 바람개비로 돌고 있다. 가난은 게으른 자의 책임이라고, 기사를 썼던 기자의 얼굴이 찢어져 종로 거리를 돌고 있다.

 

   가장 많은 이웃을 가진 시청 지하도의 식구들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어젯밤 자고 간 여자를 보내려고 박수를 치고 있다. 그 소리에 나무젓가락들이 쏟아지며, 다른 세상의 다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전생에 안개를 사랑했다가, 안개를 임신해, 다시 거리의 안개로 태어난 그들은 집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구워진 햇살로 다리를 감싸고 있는 그들은.

 

서울 집시, 2006

 

효자동 단발머리로 6년, 긴 머리로 4년을 걸어 다니면서도

4 · 19도 모르고, 5 · 16도 모른다

하이네 베끼고, 슈베르트 귀에 걸고, 니이체 가슴에 품고

세상은 몰라요 다

 

산(山)이 한 번 넘자 북한산이 보였고

산(山)이 또 한 번 넘자 이순신 장군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날마다 경례를 하면서 광화문을 떠돌았다

꿈과 이상이 소박맞고, 사람들에게 뺨 맞고, 화가 찬 마음 풀려고

화간을 쓰고, 화풀이 굿을 벌리고 싶어, 경복궁 은행나무를 안고 다녔다

 

빌딩숲에 갇혀 숨이 막혀도

실존의 단비 자판기 커피 맛과, 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오후 햇살의 게으름을 만나는 여유로 살고 있다

 

삶의 숨결 하나가 트였다

청계천에 한을 품었던 아들아 풀어라

둥글둥글 어울려 서로 도와 축축하게 살자

박수를 쳐라, 웃다 보면 즐겁고, 울다 보면 슬프다

사람들아, 서울아

신분을 죽여라 감탄사를 아끼지 마라

세상이 춤을 추고 있지 않니

긴 치맛자락에 붙어 다닌 독한 스트레스가

춤을 추고 있지 않니

 

위장은 춥다

 

밥알이 위벽을 부순다

구역질을 비린내가, 쉰내까지 게워내며

망가진 위장을 안고 병원 침대에 눕는다

빨간 꽃이 만발한 위장

신물로 채운 하루하루가

화살표 없는 위장은 하수구가 되었다

밥맛없는 삶은 밥만이 좋은 무기

예민한 위장을 무시한 죄

 

약 봉투를 들고 5층 계단을 내려올 때까지

귀찮게 따라다니는 구역질

삶을 기만한 죄

 

거리는 좋은 시절 만난 듯 가지마다 새순이 돋았다

봄의 설법으로 시방세계가 춤추는 바람으로 가볍다

그 바람결에 보이는 삶은 한 움큼의 절망이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59 공룡 -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장 기 마샤르 지음, 양승영 옮김

1995, 시공사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009

 

차례

 

제1장 놀라운 다양성

제2장 공룡의 정체를 찾아서

제3장 공룡은 어떤 동물인가

제4장 과학자의 도전

제5장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의 공룡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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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기 마샤르 Jean-Guy Michard

장 기 마샤르는 저명한 공룡 전문 고생물학자이다. 그는 1985년 소명재단(Foundation of the Vocation)으로부터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를 탐험했다. 과학부 책임자로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국내 탐사에도 여러 번 참가했다. 그는 현재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 연구소에서 육식공룡의 진화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가장 작은 체구의 콤프소그나투스(Compsognathus)가 그의 중심 연구 대상이다. 그는 공룡에 호기심이 많은 어린 학생들을 위해 강연도 열심히 하고 있다.

 

옮긴이 : 양승영

1938년 경기도 양평 출생. 서울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규슈(九州)대학에서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부터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구 과학> <지구 환경 과학>, 번역서로는 <고생물학 원리> <지사학> <야외 지질학> 등이 있으며, 고등학교 <지구 과학> 교과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공룡은 진화에 실패한 거구의 파충류에

불과한 것일까? 지구를 통치하던 그들은 도대체

왜 사라진 것일까? 화산 폭발의 대재앙이나

소행성과의 충돌, 혹은 갑작스런

지각 변동으로 종말을 맞이했던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공룡의 흔적이 최초로 발견됐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구 역사와 생물의 변천사라는 비밀을 품은 채

공룡의 정체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을지도 모른다.

2억 2,000만 년 전에

출현한 공룡은 신비에 싸인 채 일시에 소멸되기까지

1억 5,000만 년 이상 모든 대륙에 군림했다.

이 먼 과거의 비밀을 줄기찬 노력은

생명의 새로운 면모를 낱낱이 보여 준다.

지층에 아로새겨져 있는 화석의 발굴을 통해 복원된

다양한 공룡, 다시 말해 '공포의 도마뱀'에 대한

20세기 첨단기술의 도전은 자못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린이들의 상상력 속에서 다정한 친구로

살아 있는 공룡은 고생물학자들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그 실체가 보다 명료해졌다.

공룡에 대한 자료들을 토대로 복원된 박물관의

공룡은 현실감 있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공룡의 화석이

거듭 발견되고 이에 대한 탐구가 지속되어 공룡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태가 서서히 제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때마다 또 다른 의문이 새롭게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룡을

탐구하기 위해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인류에게 크나큰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제1장

놀라운 다양성

 

공룡은 옛 자연과학 교과서에서처럼 '실패된 진화'를 대표한다기보다는 생물의 역사에서 경이로운 진화를 보여 준다. 잠정적으로 약 30여 개 과(科)로 분류되는 공룡의 화석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거의 모든 대륙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미 지구에서 사라져 버린 파충류에 대해 연구해야 할 부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잇으며, 상당히 많은 잘못된 생각은 이제부터 고쳐져야 한다.

화석으로 공룡을 복원하려면 공룡에 대한 풍부한 해부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스테노니코사우루스공룡형인(恐龍形人) 같은 과감한 상상의 산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콤프소그나투스의 표본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1861년 독일 켈하임 부근에 있는 석판석회암 채석장에서이다. 이 화석의 보존상태가 양호한 이유는 지층의 퇴적물 입자가 매우 고운 것과 관련이 있다.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는 1866년에, 그림 왼쪽의 작은 육식공룡을 라엘랍스(Laelaps)라고 명명했으나, 1877년 미국의 오스닐 찰스 마시는 드립토사우루스(Dryptosaurus)라고 개칭했다. 왜냐하면 라엘랍스라는 용어는 이미 곤충의 학명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작은 육식공룡 한 마리가 거대한 체구의 아파토사우루스(Apatosaurus, Brontosaurus의 정확한 학명)를 공격하여 해칠 수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소형 육식공룡이 무리 지어 혼자 있는 대형 육식공룡을 공격했다는 것이 더욱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해부학자들은 프테로사우루스(Pterosaurus)의 화석을 새나 다른 파충류와 곧 구별할 수 있었다.

찰스 나이트의 그림에는 소철류가 많이 있는 주라기 후기의 풍경 속에 세 종류의 대표적 동물이 공생하고 있다. 공룡으로서는 작은 몸집의 수각류(육식공룡)인 콤프소그나투스, 새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아르케옵테릭스(Archaeopteryx, 시조새) 그리고 날아다니는 파충류로서 람포린쿠스(Rhaphorhynchus)가 보인다.

마크 할렛은 오스트레일리아 백악기 전기의 대표적 공룡을 한데 그려 놓았다. 전면의 작은 풀구로테리움(Fulgurotherium)과 오른쪽에 있는 두 마리의 무타부라사우루스(Mutaburasaurus)가 두 발로 걷는 초식공룡을 대표하고 있다. 그뒤에 민미(Minmi)라는 이름의 세 마리의 온순한 흉갑공룡이 후면의 대형 용각류와 함께 네 발로 걷는 초식공룡을 대표하고 있다. 날카로운 발톱과 뾰족한 이빨을 지닌 육식공룡 라파토르(Rapator)가 먹이를 빼앗으려는 파충류를 쫓고 있고, 그 옆에는 날렵한 몸매의 코엘루로사우루스류(전면 왼쪽) 카쿠루(Kakuru)가 서 있다.

중생대 바다파충류는 흔히 공룡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고생물학자들은 무척 특이한 해부학적 차이로 일찍부터 이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이크티오사우루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의 싸움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삽화가들이 자주 애용하던 그림의 소재였다. 이들에게는 볏이나 갈라진 혀, 혹은 작은 공 모양의 눈 등과 같이 다소 상상적인 특징이 추가되어 선사시대의 괴물들에게 잘 어울리는 사납고 잔인한 인상을 준다.

옛날부터 살고 있는 투아타라는 오늘날 사라져 가는 동물로서 그 조상은 공룡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뉴질랜드 쿠크해협의 작은 섬에 사는 살아 있는 유물과 같은 이 동물은 굴 속에 들어가 작은 무척추동물을 먹고 산다.

공룡형인의 파충류 같은 눈동자에서 발산되는 기이한 시선은 진화의 우연성에 대한 우리들의 소박한 질문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듯하다. 전적으로 상상력의 산물인 이 공룡인간은 외견상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과학적 사고와 극단적 상상력을 결합시켜 만든 결과이다.

 

제2장

공룡의 정체를 찾아서

 

인간은 항상 이상한 형태의 돌에 대하여 흥미를 느껴 왔다. 옛 그리스 학자 테오프라스투스도 조개껍질 화석에 관심을 보여 "대지는 뼈를 만들어 내고 …… 뼈로 된 돌이 있는데,"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상한 돌이 생물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기존 질서 때문에 거부되었다. 오랫동안 화석은 자연 속에서 일어난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되었으며 공룡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구아노돈 같은 공룡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암석 속에 기록된 정보를 잘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거대한 파충류의 뼈를 찾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은 공룡이 어떤 동물이었는가를 밝혀 내려는 고생물학자의 노력의 일부일 뿐이다.

어느 문명에서나 용, 괴물, 전설적 괴수 그리고 여러 신화적 동물들이 등장하여 상상력을 자극한다. 불을 토하고 발톱과 날개 그리고 뿔이 달린 유럽의 대형 용들은 17세기 이후 과학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현실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1636년 안토니오 템페스타가 그린 동물처럼, 탐험가의 설명에 따라 덜 끔찍하고 훨씬 그럴듯한 가상의 동물로 대치되었다. 진짜 생명을 지닌 용, 다시 말해 공룡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어떤 신화나 전설도 공룡이 지닌 다양성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었다.

로버트 플럿의 저서가 출판된 시기에는 공룡에 대한 인식이 보잘것없었다. 그때까지 화석화된 대형 뼈들은 거인의 뼈로 여겨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자세히 묘사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렇게 생긴 메갈로사우루스의 이빨과 턱뼈의 움직임은 칼과 톱이 동시에 작용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이와 동시에 칼날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창의 끝처럼 이빨의 끄트머리는 먹이를 잘라 낸다. 이빨이 뒤쪽으로 굽어진 모양은 화살촉을 잡아 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 잡힌 먹이가 어떤 식으로든지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인간이 여러 가지 기구를 응용했던 것을 연상하게 된다."

피기에가

《대홍수 이전의 세계》에서 인용한 버클랜드의 글

초기에 그린 이구아노돈과 메갈로사우루스의 그림은 오늘날의 그림과 매우 다르다. 당시에는 뼈의 해부학적 구조가 아직 완벽하게 알려지지 않아 현생 파충류를 본떴기 때문이다. 이구아노돈은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큰 이구아나로 추정되었고, 메갈로사우루스는 대형 아프리카도마뱀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가디언 맨틀이 그린 이구아노돈(아래). 19세기 중반 대중에게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공룡이나 다른 선사시대의 동물을 실물크기로 복원하여 보여 주는 것 이상의 구경거리는 없었다. 리처드 오언은 조각가이자 화가인 워터하우스 호킨스에게 자기의 생각을 설명했다. 호킨스의 화실에는 대량의 벽돌, 시멘트, 목재 그리고 다양한 철재들이 여러 해에 걸쳐 오언의 지휘하에 쌓여 있었다. 1853년 12월 31일. 오언은 모형의 완성을 축하하기 위해 거행된 매우 독창적인 개막식에 20명의 인사를 초청했다. 초청객은 이구아노돈의 뱃속에 설치된 탁자 주위에서 향연을 베풀었다. 이 복원품은 1851년에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박람회 회장인 수정궁에 빅토리아 여왕의 명령으로 전시되었다가, 박람회가 끝난 후 교외의 시든햄 공원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복원품은 후에 여러 면에서 부정확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공룡을 최초로 널리 일반에게 열린 공로는 인정된다. 그것은 현재에도 시든햄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해부학자이면서 천재적인 고생물학자인 리처드 오언은 단순히 공룡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여기 보이는 뉴질랜드 새처럼 척추동물 화석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백악기 후기를 묘사한 이 그림은 즈드네크 뷔리앙의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장면의 시대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데, 세 종류의 공룡, 즉 왼쪽의 트라코돈(아나토사우루스, Anatosaurus), 가운데에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 그리고 오른쪽의 스트루티오미무스(Struthiomimus)는 7,000만 년 전 같은 시기에 잠깐 존재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등장은 다른 공룡에게 심각한 공포를 주었다. 어떤 것들은 늪 지대로 피신했고(예를 들어 트라코돈), 깃털 빠진 타조 비슷한 스트루티오미무스는 공포에 사로잡혀 위험 지역을 피해 도망갔다. 이 공포의 육식동물에 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선사시대 동물》, 오귀스타와 뷔리앙 공저). 그러나 오늘날 많은 전문가들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생활양식에 대한 해석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는데, 이 공룡은 짐승을 잡아먹기보다는 썩은 고기를 먹었으리라는 것이다.

마시는 1831년 뉴욕주의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삼촌인 조지 피버디의 엄청난 재산 덕으로 예일대학에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었다. 삽과 소총을 들고 마시는 화석탐사를 위해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소총은 인디언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호기심 많은 다른 경쟁자를 쫓아 버리기 위해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1840년 필라델피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코프는 지능이 뛰어났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18세에 최초의 학술논문을 발표한 후 죽기 전까지 1,40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전재산은 공룡 화석을 발굴하는 데 몽땅 사용되었다. 아래의 그림은 그의 작품이다.

바넘 브라운은 뗏목을 이용하여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강 유역을 매우 효과적으로 답사할 수 있었다. 1913년에는 스턴버그와 그의 아들들도 같은 지역을 답사했으나 브라운은 이들을 견제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는 두 팀이 조사해도 될 만큼 풍부한 화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백 개나 되는 수각류, 각룡류, 그리고 하드로사우루스의 두개골과 다른 여러 골격을 발굴했다.

저명한 고생물학자 오스본과 브라운이 1897년 와이오밍주에서 디플로도쿠스(Diplodocus)의 골격을 발견해 낸 뒤 즐거워하고 있다.

이구아노돈 두 마리가 정신없이 도망가고 있다. 벨기에 베르니사르에서 발견된 대량의 이구아노돈 골격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이구아노돈의 무리가 약탈자를 피해 한꺼번에 골짜기로 몰려들었다고 해석했으나, 오늘날에는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뼈들이 쌓인 것이라고 해석되고 잇다.

지상에서 실시하는 발굴작업도 매우 힘든데, 탄광 밑바닥에서 10여 톤의 공룡 뼈를 캐내는 작업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이 뼈들을 올바르게 재조립하려면, 이들을 현장에서 옮기기 전에 뼈의 배열상태를 정확하게 측량하고 그려 두어야 한다. 1882년 라발레트가 그린 이 그림은 산지에서 발견된 상태 그대로의 이구아노돈을 보여 준다. 이 화가의 작품은 매우 훌륭하여 드 포나 돌로의 업적과 함께 베르니사르의 이구아노돈을 유명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베르니사르의 공룡을 복원하고 재조립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황철석병(黃鐵石病)에 걸린 골격을 치유해야 했으므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황철석병은 골격에 포함된 유화철이 물리 · 화학적으로 변화되어 생기는 것으로 이 병에 걸린 골격은 공기 중에서 서서히 분해되어 가루로 변하고 만다. 베르니사르 골격 화석에는 유화철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조치로 병의 진행을 방지할 수 있었다. 베르니사르 표본은 오늘날 벨기에 왕립 자연과학연구소 내에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거대한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다. 처음 베르니사르 표본을 조립할 때에는 브뤼셀의 로얄 광장 근처 성 조르주 예배당이 작업장으로 이용되었다. 베르나사르에서 발견된 한 무리의 공룡을 통해 루이 돌로는 이구아노돈 골격의 구조와 생태를 밝힐 수 있었다. 그가 발표한 수많은 학술논문은 현재도 연구자의 참고도서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제3장

공룡은 어떤 동물인가

 

자연과학의 연구대상이 모두 그러하듯 공룡도 분류되어야 한다. 더욱 정확하게 말한다면 인간은 생물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그리고 어느 생물과 다른 생물의 진화 정도를 이해하기 위해 분류를 한다. 공룡을 분류계통수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공룡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드로미케이오미무스(Dromiceiomimus)는 오르니토미무스(Ornithomimus) 과라는 매우 기이한 수각아목에 속한다. 타조 모양의 이 공룡은 완전한 빈치류(貧齒類)의 특징을 갖고 있어 이들의 식생활은 하나의 신비로 남아 있다. 이들은 백악기 후기에 살았는데, 그들의 뼈는 앨버타에서 발견되었다.

용반류의 골반(왼쪽)과 조반류의 골반(오른쪽).

"헤르만 폰 마이어는 현생 파충류와 달리 크고 두터운 발을 가졌다는 의미로 파키포드(Pachypods, 후각류)라고 했다. 리처드 오언은 어마어마한 체구 때문에 이들을 공룡류라고 했다. 헉슬리는 이들이 새와 비슷하다고 하여 오르니토셀리다에(Ornitoscelidae)라는 이름으로 기록했다 (고드리, 1890)." 오늘날 전문가들은 공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용반류, 조반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용반류는 수각류와 용각류로 분류된다. 수각류는 2족보행의 육식공룡으로 체구와 크기가 다양하다. 용각류는 일반적으로 4족보행하는 대형 초식공룡으로 전용각류를 포함한다. 조반류는 조각류, 케라톱스(각룡)류, 스테고사우루스(검룡)류, 안킬로사우루스(곡룡)류로 분류된다.

오우라노사우루스(Ouranosaurus)의 골격. 이 표본은 파리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 교수인 필리프 타케가 1966년 니제르의 테네레 사막에서 발견한 것이다. 몸길이 7m인 이 이구아노돈 과의 공룡은 현재 알려진 조반류 가운데 유일하게 등에 '돛'을 지니고 있다.

디플로도쿠스의 골격(복제 모형)이다. 이 대형 초식공룡 디플로도쿠스의 골격은 미국의 대부호 앤드류 카네기가 프랑스에 기증한 것이며,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 고생물 진열실에 전시되어 있다. 1908년 6월 15일에 행한 제막식에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 아르망 팔리에르도 참석했다. 이 사진은 제막식 며칠 전에 촬영한 것으로 앞줄에는 세 사람의 과학자들이 보인다. 왼쪽부터 카네기 박물관의 코그셜, 윌리엄 홀랜드,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 고생물학 교수 마르슬랭 불이다. 공룡의 골격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이 마지막 단계에는 각각의 뼈조각을 해석하는 오랜 작업이 따라야 한다. 충실을 기하기 위해 모든 조각을 그림과 사진으로 남겨 둔다.

내용물이 그대로 보존된 콤프소그나투스의 위 화석. 공룡의 식생활을 아는 데 가장 좋은 것은 위의 내용물이다. 1971년 프랑스 남동부의 석판석회암에서 발견된 이 화석은 두번째로 발견된 콤프소그나투스인데, 먼저 발견된 바이에른 표본과 같이 위의 내용물이 보존되어 있다. 학자들은 처음에는 이 화석된 위의 내용물을 공룡의 태아라고 해석했으나, 지금은 오늘날의 도마뱀 비슷한 파충류일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엘리노어 키시의 눈부신 그림은 최근 10년 간 공룡에 대한 관심을 회복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키시는 공룡을 화폭에 담는 작업에서 예전의 작가들과 달리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재능에 최신 과학자료를 첨가했다. 오랫동안 키시와 공동작업을 한 데일 러셀 박사는 다음과 같은 감동 어린 말을 했다. "예술가들이 고생물학자의 눈을 가지고 그린 그림은 비전문가가 공룡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창이다. 옆그림에서는 오리주둥이 공룡 사우롤로푸스(Saurolophus)가 위험을 무릅쓰고 플레시오사우루스가 헤엄치고 있는 호수로 뛰어들고 있다(위). 벼슬 달린 하드로사우루스류에 속하는 히파크로사우루스(Hypacrosaurus)가 우거진 수풀 속에서 먹이를 주워 먹고 있다.(가운데) 앞다리의 크기가 티라노사우루스와 가까운 종류임을 말해 주는 다스플레토사우루스(Daspletosaurus)가 인도악어 모습의 훼두류 캄프소사우루스(Champsosaurus)를 공격하려 하고 있다.(아래)

힙셀로사우루스의 알(위) 뱀의 알(아래) 공룡의 알이건, 뱀의 알이건 간에 파충류의 알은 생물의 진화에서 비약적인 기술혁신을 증거한다. 양서류는 수중에 알을 낳는다. 그러나 파충류는 알 속에 물(양수)을 갖고 있으며, 통기성의 껍질로 보호되어 있어 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알껍질은 단순하게 사용하고 버리는 용기가 아니라 칼슘이 용해되어 태아에 필요한 미네랄을 공급하는 영양공급원이다. 칼슘 성분이 빠져 나간 알껍질은 약해지는 데, 이로써 부화가 가능케 된다.

뷔리앙의 그림. 브라키오사우루스의 크기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그림이다. 이 공룡이 머리를 위로 들면 4층 건물의 높이에 달한다. 몸의 구조에서 보면 이 공룡이 브론토사우루스(Brontosaurus)나 디플로도쿠스보다 훨씬 깊은 물 속에서 생활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물 속에서 생활한 거대한 공룡이라는 이미지는 현재 부정되고 있다. 흉곽이나 폐가 수압에 오래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스테고사우루스의 꼬리에 달린 긴 창 모양의 가시(아래). 안킬로사우루스의 꼬리에 달린 곤봉(위). 이들 공룡의 꼬리는 중세의 기사가 사용한 무기 정도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 무서운 방어장치는 무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를 움직이는 강력한 꼬리근육이 가장 강한 무기이다.

트리케라톱스. 케라톱스류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목깃이 짧아 목의 근육까지만 덮여 있는 것으로 대표적으로 트라케라톱스를 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목깃이 길어 등의 중간까지 덮는다. 케라톱스 류에는 모두 뿔이 달려 있으나 크기는 종류에 따라 다르다.

공룡끼리 다투다 만든 화석. 1971년 세계 최초로 싸우다가 죽은 공룡이 화석으로 발견되었다. 프로토케라톱스(왼쪽)와 벨로키랍토르(오른쪽)가 서로 얽혀 있는 이 화석을 연구하여 벨로키랍토르와 같은 드로마에오사우루스과 공룡이 어떻게 먹이를 잡아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앞발로 상대의 머리를 단단하게 움켜잡고, 두번째 발가락에 달린 커다란 발톱으로 희생물의 배를 찢었다.

 

제4장

과학자의 도전

 

공룡에 대하여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그때까지 알고 있던 많은 지식이 다시 고려되어야 한다. 세계의 어느 곳에선가 끊임없이 공룡이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완벽한 골격을 차지하기란 힘든 일이다. 전체 골격의 일부분이나 뼈조각 몇 개를 얻는 것이 고작이다. 그 순간부터 사체의 복원을 위한 기묘한 탐색이 시작된다.

디플로도쿠스의 그림.

메갈로사우루스는 2족보행의 육식공룡으로, 흔히 카르노사우루스류(육식룡)라고도 한다. 몸길이는 종에 따라 5~9m까지 다양하다. 메갈로사우루스 속에는 놀라울 정도로 잡다한 종이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 몇몇 학자들이 이를 재조정하고 잇으나, 발굴된 골격이 대부분 불완전하여 분류작업이 매우 어렵다. 메갈로사우루스라는 속명을 주라기 후기의 공룡에 한정해서 사용해야 된다는 의견이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이 제안은 공룡의 속명이나 종명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자는 학문적인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매우 불완전한 뼈의 경우에는 현재 지식으로는 속명을 결정할 수 없다. 물론 종명을 결정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더 이상 분류를 모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속보다 상위개념인 과를 결정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오류를 줄이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연구자가 많다.

에다포사우루스는 펠리코사우루스 류(돛을 달고 있는 도마뱀)에 속하며, 디메트로돈과 함께 원시 포유류형 파충류(공룡 이전에 번영을 누린 포유류의 먼 조상)로 유명하다. 둘 다 등에 돛을 달고 있는데, 해부학적 특징과 식성으로 구별된다. 에다포사우루스는 초식성이나 디메트로돈은 사나운 육식성이었다.

스테고사우루스.

마멘치사우루스. 마크 할렛이 그린 <도강(渡江)>. 디플로도쿠스 류에 속하는 마멘치사우루스는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발견되어 1957년 3개월 이상 걸려 발굴되었다. 골격은 완전하게 복원되어 현재 베이징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긴 목은 디플로도쿠스 류의 특징이며, 그중에서도 마멘치사우루스는 특히 목이 길다.

마멘치사우루스는 코끝에서 회초리 같은 꼬리 끝까지 전체 길이가 22m이다. 목은 19개의 상당히 긴 경추로 이루어졌고, 목 길이만 10m가 된다. 이렇게 긴 목을 움직이려면 목 부위의 근육이 매우 강력해야 한다. 이 그림은 로스앤젤레스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 명의 크룸호른 연주가>. 하인리히 알데그레베의 판화, 1511년. 그라피셰 잠룽 알베르티나, 빈

아르케옵테릭스(시조새). 독일의 졸른호펜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이히슈테트 근처에서 1877년에 발견되었다. 이 훌륭한 표본은 독일인 실업가 베르너 지멘스가 2만 마르크에 매입했으며, 그후에는 베를린의 훔볼트박물관에 소장되었다. 현재로는 가장 오래된 새로 알려져 있는 이 동물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1860년에 하나의 깃털에서 비롯되었다. 그후 1년이 지나 아르케옵테릭스의 골격이 처음 발견되었는데, 이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매입했다. 그후 다섯 개의 표본이 추가로 발견되었으며, 그중 최근의 것은 1987년 말에 발견된 것이다. 이들 표본은 콤프소그나투스의 바이에른 표본과 마찬가지로 1억 4,000만 년전 주라기 후기의 지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조새와 콤프소그나투스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아이히슈테트 박물관에 있는 아르케옵테릭스는 1950년에 발견되었는데, 콤프소그나투스의 새끼로 생각할 정도였으며 시조새의 골격이라고 정식으로 확인된 것은 1973년의 일이다.

 

제5장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의 공룡

 

공룡은 왜 사라졌는가? 신비스러운 소멸은 이들이 적응에 실패했다는 소박한 견해에 근거를 준다. 그러나 공룡이 언제나 안정된 생활환경 속에서만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도 주위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기본 식량인 식물계가 변하고 대륙이 이동하던 시대에 1억 5,000만 년 간이나 존재했다는 것은 대단한 적응력을 증명한다.

플라벨라리아(Flabellaria) 화석(아래). 엑상프로방스 산 제3기 양치류 화석이다. 이처럼 충분히 감정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된 식물화석은 여러 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위의 그림은 에드몬토사우루스(Edmontosaurus)이다.

봄박스 세폴티플로룸(Bombax sepultiflorum)의 꽃. 화석화된 식물 중에는 보존상태가 매우 좋아 속이나 종까지도 정확하게 감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것도 그러한 예로서 꽃의 수술이 화석이 되어 있다. 이는 약 3,700만 년에서 2,400만 년전(신생대 점신세)에 살던 속씨식물로서 엑상프로방스에서 발견되었다. 백악기에 속씨식물이 출현하여 급속하게 발전한 것은 초식공룡의 먹이습성에 커다란 혼란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폭우를 피해 무성한 숲으로 몸을 숨긴 파키케팔로사우루스가 독자를 응시하고 있다. 엘리노어 키시의 이 작품을 두고서 《구약성서》<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대홍수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 말에는 이러한 견해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이 사실이나, 이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신비적이다.

오늘날 홍수 때문에 공룡이 멸종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백악기 말기의 집단소멸 현상은 큰 규모의 해퇴(해수면의 저하나 지반의 융기 등으로 육지의 면적이 증대되는 현상)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공룡의 소멸에 관해서는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가설이 많이 제시되고 있다.

마크 할렛의 그림 <새로운 날이 시작되다>. 소형 포유류가 트리케라톱스의 두개골을 자기 집처럼 차지하고 있다. 포유류의 천하가 도래했음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포유류는 공룡의 잔해를 밟고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중생대의 대형 파충류가 쇠퇴하여 멸종된 것이 포유류가 발달한 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론도 있으나, 포유류는 공룡이 멸종되어 생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포유류는 제3기 초두에 공룡의 멸종으로 비어 있는 생태적 공간을 대신 점령한 것이다.

<카스모사우루스(Chasmosaurus)>.

<유독성 온천의 분출>. 장 랑가드의 《천지창조의 생물들》에서 발췌한 색판화, 1883년. 파리 국립 도서관

티라노사우루스의 골격. 미국 자연사 박물관, 뉴욕

카미유 플랑마리옹의 《인간 창조 이전의 세계》의 겉표지. 1886년. 파리

영화 포스터.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에서 따 온 어빈 알렌의 <사라진 세계>.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58 풍경 사진 입문

 

글, 사진 / 홍순태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5

 

082

빛 12 ㄷ  213

 

홍순태-------------------------------------------------------------------------

1934년 서울 태생으로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국전 초대 작가이며, 덕성여대, 성신여대, 홍익대 강사, '사진예술'지 편집주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공식 기록사진가, Expo 70 한국관 사진담당을 지냇다. 1976년부터 지금까지 개인전과 그룹전을 20여 회 가졌으며, 현재 신구전문대학 사진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아메리카』『풍경사진』『현대사진의 조류』『현대 일본사진가』『사진예술론』『티벳트』『사진 입문』 등이 있다.

 

|차례|

풍경 사진의 개념

풍경 사진의 역사

카메라와 렌즈

노출

촬영 도구

구성과 촬영

인물과 계절

풍경 사진 촬영의 실제

범선  합성 사진, 구스타프 르 그레, 1856년.

정원 풍경  세계 최초의 사진, 니세포르 니엡스, 1826년.

뚝섬  노젓는 뱃사공은 정적인 풍경에 활력을 준다. 50mm, 1/125초, F11, 1975년.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57-1 리씽킹 서울

 

동대문시장 상권 분포 현황

 

"뉴욕 패션 지구의 역사는 미국 패션의 역사임과 동시에, 도시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노동자와 이민자가 도시에서 그들의 장소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였던 역사다."

- 뉴욕 패션센터 BID 소개 책자 중에서

 

"만약 패션 디자인 회사를 창업했는데 충분한 자본이 없다면, 당신이 디자인한 옷을(큰돈을 들여서) 중국에서 만들고 다시 미국으로 들여올 순 없지요."

- 예오리 텡, 패션 디자이너

 

"제가 패션사업을 시작했을 때, 상당한 시간을 디자인 스튜디오와 봉제공장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지요. 디자인한 옷들이 좋은 품질을 보증하면서 제 기획 의도대로 만들어졌는지를 체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앤드류 로젠, 패션업체 Theory CEO

 

"당신이 의류사업을 시작한다면 의류봉제업체(및 종사자)를 파트너로 인식하고 적절한 대우를 해야 합니다."

- 셀리 스테피, 패션 디자이너

 

"의류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예전부터 알던 재봉사들이 저를 다른 의류 제조업 종사자들에게 소개시켜줬어요. 사업이 커지면서 더 이상 제 아파트에서 작업을 할 수 없었고, 가먼트 디스트릭트로 옮기기로 결정했죠. 의류사업을 번창시키려면 사업에 필요한 인프라 스트럭처가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 안나 수이, 패션 디자이너

 

"동대문은 '원조 SPA 혹은 한국형 SPA로 불려왔으며 인근에 자체공장을 보유하거나 집적화된 생산업체에게 생산기능을 아웃소싱하여 하루에도 400여 종의 신제품과 고품질의 패스트패션 상품이 완성되는 경쟁력을 지녀왔다. 다양한 제품 구색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유통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브랜드의 화려하고 접근성 좋은 점포, 감도 높은 트렌디 디자인의 상품을 제공하는 SPA의 도입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독자 디자인이 아닌 가격 경쟁에 몰두하여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원단을 들여오는 등 소비자에게 '싸구려'이미지로 인식되어 외면받고 있다."

 

"패션산업이 디자인, 소재(원단), 제조의 세 축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이루어지는 산업이고, 3대 축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전 패션산업에 치명적인 위해 요소가 발생한다. 우리는 3대 축의 하나인 봉제산업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관심하다."

- 동대문클러스터연구소 소장 신용남

 

"창신동의 봉제 노동자들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니다.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라도 보장받지만, 이들은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만이다. 노동자 자신이 일감을 따다 집에서 일하거나, 공장에 나간다해도 당일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 '객공' 방식이다. 피고용인과 처지가 별로 다르지 않은 영세 사업주는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고, 보너스나 휴가, 수당 개념도 없고, 보험과 연금 혜택도 일절 없다."

- 오수연, 《웹진 인권》 창신동 관련 기사 중에서

창신동 꼭대기 근방의 호프집마저도 봉제공장으로 바뀐 모습

 

"경기가 나쁘니 일감을 크게 줄어든 데다 싼 수입 제품과 해외 SPA 브랜드가 쏟아져 들어와 힘든 점이 많다."

 

"지금 봉제노동자들이 대부분 40~50대인데, 젊은 사람들이 충원되지 않아 10년 후쯤 되면 일할 사람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가 3년 숙련돼서 일을 시킬 만하면 고용허가 연장이 힘들어 낭패를 본다. 결국 불법체류자를 쓰다가 단속에 걸려 몇백만 원 벌금을 무는 경우도 있다."

 

"옛날 시설 그대로의 좁고 번잡한 근무환경이다 보니 다들 3D 업종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불만이다."

 

"원청을 줄 때 납품을 밤 12시~1시까지 맞춰달라고 하니, 봉제공장도 그때까지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봉제 노동자들은 쉬고 싶어도 주말이 없는 시스템이다."

 

"옷 하나 만들면 퀵이 15번 온다. 부자재 등 봉제 제조에 딸린 산업들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봉제 제조업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 현장의 고충, 2012년 11월 12일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 관계자들과 심상정 의원 간담회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되어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210만 명에서 280만 명으로 늘어나고, 향후 30년간 53조 7천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44만 6천 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날 것이다."

- 2010년 9월, 서울시 디자인서울 총괄본부, 세계 디자인의 메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운영계획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조감도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 최성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카펜터센터(왼쪽)와 왼발 끝이 반짝반짝 빛나는 존 하버드 동상(오른쪽)

한옥 처마를 형상화시켰다고 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지붕

동대문운동장 부지에서 발굴된 역사 유적들 ⓒ 연합뉴스

장소성과 봉제 노동자의 노력을 한눈에 드러내는 뉴욕 패션 지구의 랜드마크

(왼쪽) 2006년 공원화 계획안은 하도감과 염초청이 성곽 내부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른쪽) 현재 개발 모습(2013년 5월 3일 구글 어스 자료). 하도감, 염초청은 성곽 밖으로 이전되었다.

풀과 나무와 돌로 꾸며진 정원 모양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일본 교토의 료안지 정원 ⓒ 손용훈

"서울시는 현대식 봉제건물을 세워서 봉제공장들을 입주시킨다는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영세한 가내수공업 봉제공장들이 새 건물로 들어가기에는 (예상) 임대료가 너무 비쌌습니다. 따라서 계획안대로 개발이 발생했다면, 창신동 봉제공장은 다 쫓겨났을 겁니다."

- 창신동 봉제공장주 ○○○ 씨 인터뷰, 2013년 4월 15일

창신 숭의 뉴타운 조감도에서 조그맣게 보이는 봉제공장건물

각종 드라마의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낙산공원

창신동 남쪽 부근의 한옥 밀집지역

낙산공원과 이어지는 창신동의 서울 성곽길

폐허가 된 이화동의 오래된 건물

이화동 벽화골목의 새롭게 단장한 건물

젊은 예술가와 사회적 기업이 창신동을 변화시키고 있다.

창신동 골목길의 오토바이들

창신동 골목길의 아이들

 

"창신동에는 지금도 제대로 된 놀이터와 넓은 공원이 없어요. 그나마 골목길이 오밀조밀하게 엮여 있는 재미있는 곳이어서, 제가 어렸을 때에는 창신동 전체 동네를 대상으로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었죠. 예능프로그램인 <런닝맨>을 제가 어렸을 때 창신동에서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 창신동 지역 주민 인터뷰, 2013년 6월 10일

중국의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상하이 푸동 지역 전경

 

"20세기 초반 상하이는 이미 글로벌 도시였습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가 개봉되는 당일, 지구 반대편 상하이에서도 같은 영화가 함께 개봉될 정도였으니까요."

- 상하이 도시계획국 왕린 박사 인터뷰, 2011년 12월 16일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한 상하이의 예원상장

러시아 구성주의 양식의 과거 아시아 최대 도살장 건물인 라오창팡

쑤저우 예술단지 내부 모습

영등포공원에 남아 있는 맥주공장을 상징하는 담금솥 조형물

신톈디의 스쿠먼 양식의 건물

상하이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한 신톈디의 스타벅스

1930년대 당시 라오창팡의 모습(왼쪽)과 고급 소비 공간으로 탈바꿈한 라오창팡(오른쪽)

독특한 구성주의 건축 구조를 보여주는 라오창팡

철거되기 전의 팬스테이션(미국 국회의사당 자료)

현재 팬스테이션 자리에 들어선 건물

현재 서울시청사 전경

기괴한 모습의 측면 전경

지워지기 전의 이화동 날개 벽화 ⓒ 김주희(왼쪽), 지워진 벽화 자리 ⓒ 김주희(오른쪽)

 

"겉모습이 아름답기만 할 뿐, 사업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미래의 커뮤니티 형성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 리처드 파이져 하버드대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57 리씽킹 서울

 

김경민 박재민 지음

2013, 서해문집

 

 

대야도서관

SB093383

 

539.7091 16

김14ㄹ

 

Rethinking Seoul

 

도시,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오래된 가능성의 공간을 탐색하다

 

작은 개발, 착한 개발, 공정한 개발은 가능하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익선동 한옥집단지구

 

한강의 기적을 탄생시킨 근대 역사자원

가리봉동 쪽방촌

 

근대적 생산양식이 남아 있는 동대문패션타운 옆

창신동 봉제공장

 

대규모 철거 후 재개발의 시대는 저물었다!

전작 《도시개발, 길을 잃다를 통해

용산국제업무지구 실패를 예측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김경민의지역 커뮤니티 보존과 활성화의 균형전략

 

지 | 은 | 이

 

김경민

하버드대학교에서 도시계획/부동산 분야로 박사학위 취득 후 2009년부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1년 《도시계발, 길을 잃다》라는 책을 통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주 연구 분야는 오피스와 쇼핑몰 등 상업용 부동산시장 분석과 어반 컴퓨팅(Urban Computing)이나, 현재 사회적 기업과 공유가치 활성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회사가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인들과 어반 하이브리드(Urban Hybrid)라는 소셜벤처를 설립했고,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창신동에 애착을 갖게 되어 지역 기반 커뮤니티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재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장소기억으로 해석한 근대 산업경관>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지역주민의 집단 기억을 바탕으로 주민 관점의 경관 해석을 시도하였다. 근대 도시경관, 특히 산업유산의 개념과 역사적 가치, 시각화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후 2002~2005년 영등포 쪽방촌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역민과의 공생과 기억의 보전, 문화예술 공간 활용 등을 고민하고 있다.

 

Contents

 

프롤로그

서울의 잊힌 가능성의 장소들

 

제1장

서론 - 왜 디벨로퍼인가?

 

제2장

종로 익선동 한옥집단지구

 

제3장

구로공단 가리봉동 쪽방촌

 

제4장

동대문 창신동 봉제공장

 

제5장

보론 - 신텐디에서 티엔즈팡까지

 

에필로그

개발과 보존의 균형 그리고 전략

 

감사의 글

참고문헌

프루이트 아이고는 커다란 찬사를 받으며 탄생했다(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자료)

 

우리는 우리 도시의 중심부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새롭게 건설해야 합니다. 각종 병리현상들을 동반한 슬럼지역은 우리 모두의 잘못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슬럼지역 같은)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 조세프 다스트 세인트루이스 시장(민주당), 1951년

프루이트 아이고의 폭파 장면(U.S. Dep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자료)

르코르뷔지에는 파리 중심지역을 고층 건물들로 가득 채울 계획을 구상하였다.

익선동 166번지 바로 앞 종로3가역 주변

지도로 본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위치

커뮤니티가 살아 숨 쉬는 익선동 풍경

 

"근래의 경향은 일반이 개량식을 요구하는 모양입니다마는, 개량이라면 별 것이 아니라, 종래 협착하던 정원을 좀 더 넓게 하여 양기가 바로 투입하고, 공기가 잘 유통하여, 한열건습의 관계 등을 잘 조절함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관도 미술적인 동시에 사용상으로도 견확하고, 활동에 편리하며, 건축비, 유지비와 생활비 등의 절약에 유의함이 본사의 사명인가 합니다. 재래식의 행랑방, 장독대, 창고의 위치 등을 특별히 개량하여 왔고, 또 한편으로 중류 이하의 주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년부, 월부의 판매제도까지 강구하여 주택난에 대해서는 다소의 공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세권

 

이 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주택난에 대해 우리 회사는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주택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주거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당시 서민들은 초가집에서 거주했을 뿐이다.) 서민들도 업그레이드된 주거환경인 새로운 스타일의 개량된 한옥에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퓨전 한옥에는 상류층 한옥이 갖고 잇는 특징의 하나인 정원, 물론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규모의 정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민 주택은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100% 전통적인 양식의 고전 주택이기보다는 개량형 주택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 주택을 분양하지만, 입주 시점에 주택대금을 모두 받지 않고, 다양한 금융기법을 이용하여 연 또는 월 단위로 분양금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그(정세권)의 소유인 가회동 가옥을 전세로 빌어서 3, 4개월 살았지만, 그가 어떠한 인물인 줄을 잘 몰랐다. 다만 가끔 그가 토목 두루마기를 입고 의복도 모두 조선산으로 지어 입고 다니는 것과 머리를 바짝 깎고, 좀 검고 뚱뚱한 영남 사투리를 쓰고 말이 적은 사람인 것만 보았었다. (중략) 조선물산장려를 몸소 실행할 뿐더러 장산사라는 조선물산을 판매하는 상점을 탑골공원 뒤에 두고 조선산 의복과 양복을 장려하고 《실생활(實生活)》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조선물산장려를 선전하는 인물인 줄을 알았다. (중략) 조선식 가옥의 개량을 위하야 항상 연구하여 이익보다는 이 점에 더 힘을 쓰는 희한한 사람인 줄도 알았다. (중략) 기타 설계 변소, 마루, 토역재료(土役材料) 등 내가 안 것만 하여도 정씨의 개량한 점이 실로 적지 아니하다. 미닫이 밑에 굳은 목재를 붙이는 것도 아마 씨(氏)의 창의(創意)라고 믿는다. (중략) 나는 더욱 정씨의 인격을 존경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중략) 한 사람의 인격의 힘이 이처럼 영향이 큰가를 느꼈다. 이것도 내 집 성조에서 얻은 큰 소득 중에 하나다."

- 이광수

1946년 조선어학회 동지회 사진. 앞줄 왼쪽 2번째가 정세권이다.

새로운 피맛길 풍경

 

"한국이 (생각하는)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최상의 방법은 피맛골과 같은 역사적인 랜드마크를 파괴하고 서구에서도 볼 수 있는 똑같은 모양의 영혼 없는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을 세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적 랜드마크를 부수고 현대적 고층건물을 세우는 것이) 외국 관광객들을 떼를 지어 불러들이는 확실한 방법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 스콧 버거슨

익선동 피맛길

 

"최근 수년 사이에 국악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대략 이틀에 한 팀 정도 와요. 보통 오후 5시 넘어서 오시는데, 어떤 분들은 공연 마치고 한복을 입고 상모를 쓴 채 이곳에 오세요. TV에 나오는 유명한 분들도 오십니다."

- 익선동 피맛골 ○○식당 주인 인터뷰, 2013년 4월 23일

연한 선은 과거 피맛길이 존재했던 곳이고 짙은 선이 익선동 166번지의 피맛길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골목길

익선동을 중심으로 본 주변 지역

종묘 옆으로 이어진 순라길

정비된 순라길에서는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예전에 순라길 주변에는 한옥들이 엄청 많았어요. 그리고 순라길은 지금과 달리 좁디좁은 골목이었죠. 아이들은 밤에는 무서워서 못 갔어요.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고."

- 과거 순라길 인근 한옥 거주자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철거 중인 오진암 ⓒ 연합뉴스

오진암의 지붕기와가 뜯긴 모습 ⓒ 연합뉴스

익선동 한옥지구에서 바라본 비즈니스호텔

 

"지역주민 입장에서 오진암 내부를 가볼 일은 없었죠. 기생관광하던 곳을 서민들이 어떻게 가보겠어요? 하지만 제가 사는 집에서 오진암을 내려다보면 오진암에 있었던 매화나무들이 정말 멋있었어요. 그리고 오진암 담벼락의 매화가 너무도 탐스럽게 열렸고 향도 좋았어요. 오진암 지붕 기와가 하나하나 뜯겨나갈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 익선동 주민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오진암 자리에 들어선 짙은 회색의 비즈니스호텔

 

"저 호텔 벽돌이 진짜 비싼 거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도대체 주변하고 어울리지 않아요. 주민들은 벽돌 색깔에 불만이 많아요."

- 익선동 소재 ○○카페 사장 인터뷰, 2013년 4월 20일

기존의 커뮤니티에 다양한 문화예술 기능이 융합된 티엔즈팡

지역 커뮤니티의 삶이 잘 보존된 티엔즈팡

 

"서울시가 지난 1985년부터 2년여에 걸쳐 마련한 도시설계안 …… 장기적으로 낙원상가아파트를 철거하고 낙원상가와 파고다공원 사이의 환경불량지구를 재개발사업지구로 추가 지정하는 한편, 낙원상가 서쪽의 재개발구역은 주차 및 상업복합용도건물로 사업계획을 변경……"

- 1987년 《매일경제》 기사

아름다운 부조물이 새겨진 낙원상가, 낙원빌딩 ⓒ 서자민

당시 서울시가 제시한 청사진

 

"그때 서울시에서 이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근대적인 건축물인 낙원상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고, 그래서 이 청사진 보고 상가 주민들이 대부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입장을 바꿨지. 그러고 나서 잘되는가 싶었는데, 서울시가 토지를 기부 체납하라고 하는 거야. 시장 사람들이 토지 기부 체납은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지. 우리나라 사람한테 토지는 의미가 다르잖아? 그래서 그때 서울시가 양보해서 토지의 기부 체납은 하지 않고, 대신 1층 도로는 서울시가 무상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조정한 거야."

- 낙원상가 주식회사 대표이사 ○○○ 인터뷰, 2013년 4월 23일

낙원상가 지하 재래시장 풍경

 

"최근에는 중국, 일본 관광객들이 단체로 낙원상가 지하 재래시장에 자주 와요. 사실 우리가게에서는 우리 농산물과 외국 것 모두를 취급합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고 외국손님들도 오면 우리 콩과 고추 등을 사갑니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적인 것을 맛보고 싶겠죠."

- 낙원상가 재래시장 상인 인터뷰, 2013년 4월 30일

 

"또 하나의 문화가 사라진다. 50년대 중반부터 종로2, 3가에 하나둘 생겨난 악기점들이 거대한 상가를 이루어 우리 음악문화의 막강함을 세계에 과시했는데, (낙원상가가) 사라진다니 안타깝다."

- 가수 신중현 인터뷰

 

"교동초등학교 주변 지역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는 낙원아파트와 운현아파트에요. 특히 낙원아파트는 방음도 잘 되고, 층간소음도 별로 없고, 잘 지어진 아파트에요."

- 낙원상가 재래시장 상인 인터뷰

북쪽에서 바라본 15층 낙원상가와 24층 프레이져 스위츠 호텔

낙원빌딩 5층에서 북쪽을 바라본 풍경(왼쪽)과 매우 넓은 5층 발코니(오른쪽)

왼쪽의 큰 건물이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왼쪽), 특이하게도 호텔 꼭대기층에 수영장이 있다.(오른쪽)

 

"지금이야 북촌이 세련되어 보이지, 2000년대 초 이전(북촌이 정비되기 전)에는 북촌 한옥이나 여기 익선동이나 한옥 보존 상태에 별 차이가 없었어요. 오히려 지하철 접근성이 좋다고 익선동 한옥이 더 비쌌습니다."

- 익선동 소재 ○○부동산 대표 인터뷰, 2012년 11월 12일

2000년 당시 북촌의 모습(서울시 홈페이지 자료)

익선동 인근의 한복집과 전통 공방, 국악인 사무실

익선동 소재 전통찻집 뜰안의 내부 모습

 

"어느 날 일본인 기자가 와서 한참 앉아 있다가 갔어요. 그리고 얼마 후, 일본 영화관계자가 찾아와서 영화 촬영장소로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한 달에 걸쳐서 영화를 찍었고, 이후부터 영화 때문에 일본인 여성들이 자주 찾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골이 되어 찾아오고 있고, 지금은 중국인 관광객들도 오고 잇어요."

- 익선동 소재 전통찻집 '뜰안' 대표 인터뷰, 2012년 10월 20일

부결된 2010년 10월 익선동 도시환경정비계획 조감도(서울특별시 종로구 의회 제203회 제2차 본회의 <익선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지정 안에 관한 의견 청취 심사 보고서> 자료)

 

"저는 익선동내 비교적 큰 한옥에 오래 살았습니다. 부모님 세대부터 결혼해서 중학생 자식을 둔 현재까지 살고 있으니까요. 재개발이 될 거라는 소문이 있었던 십수 년 전에는 저도 사실 재개발에 찬성했어요. 그리고 재개발이 곧 된다고 하기에 집수리도 제대로 안 했죠. 지붕 고치는 데 천만 원이 들어가는데, 재개발이 곧 된다면 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그게 벌써 20년이 됩니다. 서울시가 재개발한다고 지역 묶어놓은 뒤에 지역이 완전히 쇠퇴했어요. 20년 전에는 익선동 한옥의 상태가 북촌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농담으로 북촌 한옥은 할머니 떡볶이 살 돈 아끼면 살 수 있다고 할 정도였어요."

- 익선동 주민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재개발로 한 20년이 흐르면서 뉴타운 개발의 잘못된 점도 뉴스로 알게 되고, 재개발 찬성이었다가 중립이나 반대로 돌아선 분들도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제가 원하는 것은 한옥을 보존할 수 있는 충분한 지원이 존재하고, 미래의 익선동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면 한옥에서 살고 싶어요. 한옥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보여요."

- 익선동 주민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보스턴 자유의 길

미국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보스턴의 옛 주의사당(왼쪽)과 보스턴 자유의 길을 나타내는 길 위의 표식(오른쪽)

미래에 원형을 다시 복원한다는 가정 아래 3 ·1 독립의 길의 주요 동선

첨단 오피스 건물과 쇼핑몰이 들어선 구로공단의 현재

2013년 현재 구로구 아파트단지 현황(왼쪽)과 1970년대 공장 위치(오른쪽)

신도림과 목동의 아파트 가격 변화(부동산114 REPS 자료)

구로공단의 고용자와 업체 수 변화

2000~07년에 구로단지로 이주해온 벤처 인증업체의 이동경로(<구로공단 부활의 의미>, 《CEO Information》 제608호)

서울 시내 디자이너는 공간적으로 강남과 장안동, 구로지역에 몰려 있다.(왼쪽) 서울 시내 패션 생산인력(미싱사)은 동대문 주변, 장안동, 구로지역에 몰려 있다.(오른쪽)

옛 구로공단 지역에 남아 있는 1970년대 건축물

아울렛이 있는 가산동 거리 사이의 낡은 건물

가산동 까르뜨니트 물류센터

뒤스부르크노드 파크 거리(왼쪽)와 뒤스부르크노드 파크 전경(오른쪽)

졸퍼라인 탄광 지역 전경(왼쪽)과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남겨둔 졸퍼라인의 공장(오른쪽)

삼우창고 전경(위)과 2011년 12월 삼우창고 철거 당시 모습(아래)

삼우창고 부지의 위치(왼쪽)와 삼우창고 부지에 들어설 건물 조감도(해안건축 홈페이지 자료)

2013년 초 대림창고에서 열렸던 BMW의 신차발표회 모습(BMW KOREA 자료)

오피스 건물로 둘러싸인 공원 전경(왼쪽)과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도서관(오른쪽)

간단한 미팅과 모임을 위한 공간(위)과 공원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아래)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 내부(왼쪽)와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 전경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다."

- 카페 사장 인터뷰

창고를 재활용해 만든 카페

카페 내부 풍경

과거 공장이었던 곳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Forever21

뉴욕 미트패킹 지구 전경 ⓒ 박호근

과거 기라델리 초콜릿 공장의 원형을 보존한 채, 내부에 레스토랑과 가게를 입점시킨 샌프란시스코의 기라델리 스퀘어

 

"저는 다운타운 (쇼핑시설) 개발에 한 푼도 투자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운타운은 너무나) 후져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황폐화된) 다운타운에 왜 오겠습니까? 사람들은 무질서한 지역, 그리고 위험한 지역에 가기 싫어합니다."

- 1970년대 당시 가장 성공적인 쇼핑몰 디벨로퍼였던 에드워드 드발토로 인터뷰, <Downtown, Inc>에서 재인용

문래동 창작예술촌 풍경

조선영단주택 위치

2012년 발표된 구로구 문래동 정비구역(안)

쪽방의 내부 구조

벌집의 1층과 2층 구조

벌집의 지하. 통로를 사이에 두고 '외딴 방'이 10여 채 있다.

쪽방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부엌(왼쪽)과 건물 밖에 있는 공용 화장실(오른쪽)

벌집과 비슷한 형태의 19세기 맨체스터 주택 단면

가리봉동 소재 벌집의 1층 단면 구조

영국의회에 제출된 1842년 광산 및 제조업조사위원회 공식보고서의 삽화. 여자아이가 광산에서 석탄통을 끌고 있다.

 

"서울 구로공단 주변에는 '닭장'이라는 이름의 공원들 월세 자취방이 있다. 아마도 그들 스스로가 지어낸 자학적인 이름일 성싶다. 한두 평짜리 비좁은 방을 대개 6~8명이 공동으로 세를 얻은 다음 서로 번갈아가며 숙소로 이용한다고 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하는 수출공단의 공장들은 흔히 3교대 근무로 공원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가령 1조와 3조가 각각 4명씩 조를 짜면 근무조가 아닌 4명이 그들이 말하는 닭장에서 잠을 잘 수 있다.

이들은 닭장에서의 잠을 또 '칼잠'이라는 색다른 말로 부른다. 방이 너무 좁아 두 사람씩 머리의 방향을 반대로 한 채 다리를 서로 포개고 누워야 한대서 생긴 이름인 모양이다."

- <직업병에 우는 근로자들>, 1984년 2월 6일, 《동아일보》

 

"나는 그 뒤 89년 2월 가리봉동에 이른바 '닭장집'이라는 월셋방을 마련해 '지옥' 같던 기숙사에서 해방됐다. 나는 '14호'라는 호칭으로 통했다. 내 방은 가로 180cm 세로 200cm인데, 책상과 비키니 옷장을 들여놓으니 세로가 140cm로 줄어 대각선으로 누워 자야 했다……. 아침에는 한 칸밖에 없는 화장실 앞에 남녀 구분도 없이 길게 줄을 선다. 대문을 들어서면 '현금과 귀중품은 집에 두지 마시오'라는 글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 <르포 호화빌라촌 원인 규명 미흡, 닭장 전전하는 노동자 삶 서글퍼>, 1991년 7월 20일, 《한겨레》

 

"형과 함께 벌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이군은 '세든 지 2개월이 넘었지만 옆방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며 '처음 상경했을 때 가끔 만나던 고향친구들도 이제는 거의 만나지 못하고 있으며 고작 직장동료 3~4명과 어울리고 있다'고 말했다. …… 이군은 야근을 마치고 오전에 집에 돌아와 연탄불이 꺼진 것을 발견한 경우가 많으나 이웃 방에서 탄불을 얻으려 해도 모두 문이 굳게 잠겨 있어 …… 이웃 없는 이웃을 이루며 살고 있다. 집주인은 보증금 낼 때 한 번 보고 본 적이 없어 탄불을 빌러 갈 생각조차 않는다며 이때는 도대체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고 때로는 두렵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이군은 말했다. ……

지난 76년 여관을 팔아 가리봉동의 방 30개짜리 벌집을 구입,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는 '세든 사람의 얼굴조차 모른다'며 '매달 각 호실 별로 방세와 전기료 수도료만 받고 있을 뿐 다른 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각 방마다 연탄불을 봐주는 등 세든 공원들에게 신경을 썼으나 금방 떠나 버리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는 일일이 세든 사람을 알고 지내는 것이 오히려 귀찮을 때가 많아 요즈음은 말도 않고 지낸다는 것……."

- <공단 주변 단칸방 벌집>, 1987년 1월 8일, 《동아일보》

 

가리봉동 시장 내 조선족 가게

가리봉동을 철거하고 아파트 복합단지로 건설하려는 카이브시티 조감도 (2011년 구로구 구정화보집 자료)

오피스 건물의 주차벽으로 격리된 쪽방촌(왼쪽)과 오피스 건물 주변의 쪽방 건물(오른쪽)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 사무실 외부와 내부 모습

공유공간을 활용한 쉐어하우스 전략을 기초로 한 요코하마 호스텔

장소성 기억 : 불과 15년 안팎의 역사를 지닌 성수동 수제화 공장지대에 위치한 옥상의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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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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