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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4 간송미술 36 회화


글 ● 백인산

2014, 컬처그라퍼



대야도서관

SB102157


653.11

백68ㄱ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세상 밖으로 나온 간송미술관

백인산이 읽어 주는 우리 옛 그림 베스트 36


간송미술관의 주옥같은 옛 그림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24년 동안 우리 미술 연구에 매진해 온 간송미술관 백인산 연구실장은, 독자들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36폭의 옛 그림을 정성껏 골라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그림들에 얽힌 이야기와 깊이 있는 해설이 돋보이는 이 책은, 옛 그림을 제대로 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최고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그림들은 우리 문화와 역사의 우수성과 독창성, 나아가서는 보편성까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백인산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간송미술관에서 우리 미술과 문화에 대한 안목을 길러 왔고,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우리 문화와 미술에 대한 강연과 글쓰기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현재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으로 있으면서 서울여대, 동국대, 이화여대 등에서 한국과 동양의 미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선의 묵죽』,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 『추사와 그의 시대』(공저), 『진경문화』(공저)가 있고,  「탄은 이정」, 「조선 중기 수묵문인화 연구」, 「조선 왕조 도석화」, 「삼청첩의 역사성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편집자와의 대담

     간송미술의 가치와 의미를 밝히다


01 신사임당 | 포도

    우리가 아는 사임당의 이름에 가장 가까운 그림


02 이정 | 고죽

    시련을 의지로 극복하고 탄생시킨 일세의 보물


03 이정 | 풍죽

    세찬 바람에도굴하지 않는 선비의 절개


04 이정 | 문월도

    은은한 달밤을 더욱 밝히는 맑은 정신


05 이징 | 고사한거, 강산청원

    왕실과 사대부가 사랑한 궁중회화의 품격


06 조속 | 고매서작

    세속의 명리를 버린 자유인의 자화상


07 김명국 | 수로예구

    최소한의 획으로 끌어낸 마음속 선심


08 이명옥 | 어초문답

    세상 이치를 논하는 현자들의 꾸밈없는 대화


09 윤두서 | 심산지록

    현세구복적 상징 속에 숨겨진 애달픈 현실 인식


10 정선 | 청풍계

    진경문화를 주도한 선비들의 자취가 스민 맑은 계곡


11 정선 | 목멱조돈

    시와 그림으로 화답한 평생지기의 우정


12 정선 | 단발령망금강

    30년간 그리고 또 그린 금강산의 아름다움


13 정선 | 풍악내산총람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겸재 진경산수의 본질


14 정선 | 서과투서

    노대가의 눈에 비친 따스한 일상


15 변상벽 | 자웅장추

    동물 그림에서 이루어 낸 또 하나의 전경


16 유덕장 | 설죽

    천재의 그늘에서 마침내 벗어난 노력가의 성취


17 조영석 | 현이도

    조선 후기 풍속화의 본격적인 시작


18 심사정 | 와룡암소집도

    세상이 버린 불우한 화가의 화흥


19 심사정 | 삼일포

    관념산수에 진경화풍을 더하다, 조선남종화의 탄생


20 심사정 | 촉잔도권

    화가의 인생을 닮은 험하고 아름다운 길


21 이광사, 이영익 | 잉어

    입신양명으로 시작하여 효성으로 마무리된 그림


22 윤용 | 협롱채춘

    고된 인생 속에 문득 스쳐 오는 봄바람


23 강세황 | 죽석

    담백한 문인의 심의를 담은 묵죽화의 새로운 경지


24 강세황 | 향원익

    멀어도 좋지만 가까이 봐도 맑은 연꽃 향기


25 김후신 | 대쾌도

    풍속화의 본질을 꿰뚫은 즐거운 그림


26 김홍도 | 마상청앵

    '단원다움'의 진면목


27 김홍도 | 황묘농접

    교감의 순간을 포착하는 섬세하고 따스한 필치


28 김홍도 | 염불서승

    삶과 예술, 예술과 종교의 혼연일체


29 김득신 | 야묘도추

    나른한 일상의 정적을 깨뜨리는 한바탕 소동


30 신윤복 | 미인도

    화가의 가슴속 가득한 봄기운을 풀어내다


31 신윤복 | 이부탐춘

    혜원이기에 가능했던 파격


32 김정희 | 고사소요

    단순함과 평범함 속에 감춰 둔 비범함


33 김정희 | 적설만산

    추사의 글씨를 닮은 강인한 묵란


34 조희룡 | 매화서옥

    매화 사랑으로 표현한 격정적이고 자유로운 정신


35 장승업 | 삼인문년

    천재가 살던 시대를 아쉬워하다


36 민영익 | 석죽

    조선 최후의 문인화가가 남긴 비바람 속 대나무


"이 책에 실린 36편의 그림은

조선시대의 문화와 예술,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그림들입니다."


01 신사임당

포도


申師任堂, 1504-1551

葡萄

비단에 수묵

31.5×21.7cm

간송미술관


자당께서는 묵적墨迹이 남다르셨다. 7세 때부터 안견이 그린 것을 모방하여 드디어 산수도를 그리셨는데 지극히 신묘했다. 또 포도를 그리셨다. 모두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것들로, 그리신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널리 전해진다.

- 율곡이 사임당의 행장(行狀, 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에서 쓴 글


이 그림은 돌아간 증찬성 이 공李公, 이원수의 부인 신 씨가 그렸다. 사람의 손으로 그렸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자연스러워 사람의 힘으로는 범할 수 없는 것이다. 오행의 정수를 얻고 원기의 융화를 모아 이로써 참다운 조화를 이루셨다. 마땅히 그가 율곡 선생을 낳으실 만하다.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사임당의 초충도를 보고 쓴 글

신사임당, <훤원석죽>

(萱苑石竹 : 원추리꽃과 패랭이꽃)

종이에 채색

41.0×25.7cm

간송미술관


꽃밭에 원추리꽃, 패랭이꽃, 개미취꽃이 어울려 피었다. 꽃향기를 좇아 흰 나비 두 마리가 하늘하늘 날아들고, 땅에는 도마뱀이 몸을 틀어 먹잇감을 찾고 있다. 안정된 구도와 섬세하고 온화한 표현, 소박하지만 정갈한 채색에서 규방의 미감이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이와 유사한 초충도 다수가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 내려온다.


임자 윤달 15일에 월성 김광국이 손을 씻고 삼가 배관한다.

壬子潤月之望, 月城金光國盥手敬觀.


우계와 율곡이 함께 유림을 머뭇거리게 했었는데,

청송의 글씨와 신 부인의 그림도 모두 세상에 이름을 날린 빼어난

재주였으니 이 또한 한 가지 기이한 일이다.

牛栗竝跱儒林, 而聽松書, 申夫人畵, 又皆名世絶藝, 亦一奇也.

- 영조시대 문인 동계東溪 조구명趙龜命, 1693-1737이 쓴 제사


줄기가 수척한 것은 청렴함이요, 마디가 굳센 것은 강직함이요, 가지가 약한 것은 겸손함이요, 잎이 많아 그늘을 이루는 것은 어진 것이요, 덩굴이 벋더라도 의지하지 않는 것은 화목함이요, 열매가 과실로 적당하여 술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재주요, 맛이 달고 평담하며 독이 없고, 약재에 들어가 힘을 얻게 하는 것은 쓰임새요, 때에 따라 굽히고 펴는 것은 도이다. 그 덕이 이처럼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마땅히 국화, 난 매화, 대나무와 더불어 선두를 다툴 만하다.

- 명나라 명필가, 화가 악정岳正, 1418-1472


02 이정

고죽


李霆, 1554-1626

枯竹 : 마른 대나무

검은 비단에 금니

25.5×39.3cm

간송미술관


전란 겪고 삼 년 만에 이렇게 모이니,

그래도 화첩 한 권 증표로 남겨 두셨구려.

부러질 뻔한 그대의 팔뚝 조물주가 보호해 준 덕에,

남은 생애 나의 눈동자도 흐리지 않게 되었소.

- 간이簡易 최립崔岦, 1539-1612


이 첩 하나가 잿더미 속에 떨어져 장갑粧甲에 불길이 미치고, 안쪽 면까지 번져 석봉의 서첩을 반쯤 태우고 돌아 나가더니, 석양의 대나무에 이르러 저절로 불이 꺼져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이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늘이 단련시키고, 귀신이 보호하는 선물이라 훼손되지 않은 것이니, 아! 경탄할 만한 일이로다.

- 해숭위海崇尉 윤신지尹新之, 1582-1657

앙상하고 가는 가지 위에 짧은 댓잎이 성글게 매달려 있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무성한 잎을 떨궈 낸 마른 대나무이다. 하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지와 굳센 댓잎에는 부드러운 듯 강인한 대나무의 특성과 상징성이 잘 드러나 있다.


만력갑오이월십이일탄은사우공산만사음촌우

萬曆甲午二月十二日灘隱寫于公山萬舍陰村寓


03 이정

풍죽


李霆, 1554-1626

風竹 : 바람에 맞선 대나무

비단에 수묵

127.5×71.5cm

간송미술관

짙은 먹으로 댓잎을 반복하여 겹쳐 놓았지만 미묘한 농담과 필력의 변화로 전혀 답답하거나 탁하지 않다. 오히려 굳세고 상쾌하며 거센 바람에 댓잎이 부딪하며 내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댓잎 한 획 한 획에서 올곧고 당당한 조선 선비의 정신과 숨결이 느껴진다.


04 이정

문월도


李霆, 1554-1626

問月圖 : 달에게 붇다

종이에 담채

24.0×16.0cm

간송미술관


탄은의 매화와 대나무, 난 그림은 곳곳에 있으나 산수와 인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제 그가 그린 망월도를 얻었는데, 주로 대를 치는 필법으로 간략하게 묘사해 지극히 거칠고 성긴 운치가 있다. 예전에 예찬은 대나무 그림에 스스로 글을 지어 말하기를, '내 가슴속 일기를 그렸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탄은의 뜻 또한 이와 비슷한가.

灘隱梅竹難蕙在在有之, 至於山水人物, 余未賞見之, 今得其所作望月圖, 盖以寫竹之筆法, 草草爲之, 極有疎散之韻, 昔荊蠻民自題其竹曰, 聊以 寫吾胸中之逸, 灘隱之意, 其亦類是耶.

- 金光國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 고사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번져 온다. 세상 밖의 이치를 깨달은 희열일 것이다. 험난한 시대를 헤쳐 가며 묵죽으로 일세를 올렸던 탄은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가득했나 보다.


탄은의 묵죽도를 몹시 좋아하여 기회 있는 대로 보러 다니기도 하고 또 많은 묵죽도를 수집했는데, 탄은의 좋은 작품을 대할 때마다 "이분이 대를 이다지도 잘 그렸으니 산수화나 인물화 같은 그림도 잘 그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탄은의 산수화나 인물화는 보았다는 이야기조차 들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6, 7년 전 우연히 어느 골동상에서 진귀한 화첩 한 권을 입수했는데 그 속에서 탄은의 인물도 한 폭을 발견했으니 그때에 기쁘던 생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 간송 전형필, 『고고미술』(1961년) 「탄은필灘隱筆 문월도問月圖」


05 이징

고사한거

강산청원

(쌍폭)


李澄, 1581-?

高士閑居 : 고사의 한가로운 삶

江山淸遠 : 강과 산이 맑고 멀다

검은 비단에 금니

각 117.5×57.0cm

간송미술관

산석과 나무, 나귀와 인물을 묘사한 필치의 정교함이 경탄스럽다. 먹과 달리 운용의 제약이 큰 금물을 이렇듯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화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징을 '나라의 손'이라 부른 까닭을 알 만하다.


06 조속

고매서작


趙涑, 1595-1668

古梅瑞鵲 : 늙은 매화에 앉은 까치

종이에 수묵

100.0×55.5cm

간송미술관


만약 공중에 뜬 솔개나 매처럼 하늘에 있어 본다면 다 알 수 있겠지만, 짚신 신고 지팡이 짚고 찾아 나서 그 봉우리와 골짜기를 돌아본 후 반드시 앉은 곳에 따라 화폭을 달리해야 본 바를 그려 낼 수 있을 터인데, 장차 이 그림을 어디에 쓰겠는가.


몇 번의 붓질로 까치의 자태와 의취를 정확하게 옮겨냈다. 야무지게 다문 입과 똘망한 눈동자에서 당당함과 고고함이 느껴진다. 군자로 불리는 매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명리를 초탈하여 지유인으로 살았던 조속의 삶과 정신을 보는 듯하다.


"창강은 공훈을 사양하고 절조로 일관하여,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심복하고 흠모했다. 지금 그 먹의 오묘함을 보니, 맑은 기운이 그 사람을 닮아 감탄스럽다."

- 조선 후기 문인, 이봉환李鳳煥, 1710-1770


07 김명국

수로예구


金明國, 1600-?

壽老曳龜 : 수노인이 거북이를 끌다

종이에 담채

173.0×94.0cm

간송미술관

처진 눈매와 주먹코가 맘씨 넉넉한 촌가의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초인적인 권위와 신성을 강조하여 괴기스럽게 과장 표현한 중국의 수노인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쩌면 김명국의 생김새와 성정이 이처럼 소탈하고 푸근했을지도 모르겠다.

시원스럽게 휘갈겨 쓴 '연담'이란 호 아래 거북이 한 마리를 그려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한층 강조했다. 두어 개의 점과 몇 가닥의 선뿐이지만 거북이의 형상은 충분히 드러났다. 감필법의 달인이었던 김명국이 아니라면 흉내 내기 어려운 필치와 감각이다.


08 이명욱

어초문답


李明郁, 1640-1713 이전

漁樵問答 : 어부와 나무꾼이 묻고 답하다

종이에 담채

173.0×94.0cm

간송미술관


어부가 나무꾼에게 말하기를 너는 천지만물을 보는 도를 아느냐?

나무꾼이 아직 모른다고 하고 그 방도를 듣기를 원하였다.

어부가 말하기를 무릇 세상의 물상을 보는 것은……

간결한 필치의 의복 묘사와 달리 초상화 기법으로 정교하게 그려 낸 얼굴 표현이 특이하다. 속진을 멀리하고 어부와 나무꾼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자들의 삶과 성정을 옷과 얼굴의 대비를 통해 암시적으로 표출했다.


이명욱이 그림 그리는 재주가 정묘했으니 맹영광 뒤에 제일가는 사람이다. 근세에 이징이 비록 명화가로 칭해지지만 신묘하지는 못했다. 수년 전에 '이명욱'세 자와 '속허주필의續虛舟筆意' 다섯 자를 가지고 두 개의 인장을 새겨서 특별히 이명욱에게 하사하여 모사한 그림 밑에 찍게 하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이명욱 같은 신묘한 솜씨로 이징과 견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것 같아 '속악치필의續樂癡筆意' 다섯 자로 고쳐서 새로 주려 했으나 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가 죽은 지 벌써 오래되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 숙종


09 윤두서

심산지록


尹斗緖, 1668-1715

深山芝鹿 : 깊은 산속 영지와 사슴

종이에 수묵

127.0×90.5cm

간송미술관


풀은 길고 영지는 빼어나니, 깊은 산은 색다른 봄일세.

중원은 비바람 치는 밤이니, 이곳에 몸을 숨기기 좋으리. 효언

草長靈芝秀, 深山別有春, 中原風雨夜, 此地好藏身. 孝彦


감히 진나라 궁전에 들어가,

헛되이 이세二世로 망하게 했네.

오록충종五鹿充宗도 오히려 뿔이 꺾였으니,

말을 베는 명검이 상방尙方에 있었네.

학포가 추가해서 쓰다.

敢入秦宮裏, 空令二世亡,

充宗猶折角, 斬馬在尙方, 學圃追題.

자신의 심경을 한 마리 사슴에 빗대어 표현한 사의적인 그림이지만, 뿔에 난 돌기와 터럭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그려 낸 사슴의 양태는 매우 형사적이다. 사의성과 사생성이 공존했던 공제의 회화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10 정선

청풍계


鄭敾, 1676-1759

淸風溪 : 인왕산 동쪽 기슭 청운동 골짜기

비단에 담채

133.0×58.8cm

간송미술관


청풍계는 인왕산 기슭에 있는데, 그 골 안이 깊고 그윽하며 경관이 아늑하고 아름다워서 놀며 즐길 만하다. 집 안에 태고정과 늠연당이 있어 선원의 초상화를 모셨다. 후손들이 근처에 살고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창의동 김 씨라 한다. 시냇물 위 바위에 '대명일월大明日月 백세청풍百世淸風' 여덟 자가 새겨져 있다.

-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에 실린 청풍계에 관한 글

정선, <청풍계>

종이에 담채

33.7×29.5cm

간송미술관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 장동의 여덟 승경을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에 들어 있는 작품. 비교적 작은 화면이라 청풍계 내의 건물들을 한편으로 몰고 주변 봉우리들로 에워싸 청풍계의 전모를 드러냈다. 세로 축으로 긴 화면을 가진 본문의 <청풍계>와는 또 다른 시각법을 적용한 화면 구성이다. 겸재는 이처럼 다양한 형식으로 청풍계를 여러 차례 그렸다. 겸재가 얼마나 자주 이곳을 드나들었으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만하다.

복건을 쓴 선비가 나귀에서 내려 청풍계 경내로 들어서고 있다. 겸재 자신이거나 타계한 스승 삼연의 생전 모습을 그린 듯하다. 작은 부분임에도 실감나게 표현되어 겸재가 산수 못지않게 인물에도 능숙했음을 알 수 있다.


11 정선

목멱조돈


鄭敾, 1676-1759

木覓朝暾 : 목멱산에서 아침 해가 돋아 오르다

비단에 채색

23.0×29.2cm (그림 크기)

간송미술관

정선, <시화환상간>

(詩畵換相看 :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다)

비단에 담채

29.5×26.4cm

간송미술관

 

겸재와 사천이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 보자'는 약속을 하는 장면이다. 정면으로 얼굴을 보이고 앉은 노인이 사천이고 그와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이 겸재인 듯하다. 맨상투 차림의 모습에서 격의없이 우정을 나누던 두 사람의 소탈하고 편안한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자네와 나를 합쳐 놔야 왕망천이 될 터인데

그림 날고 시 떨어져 양쪽 모두 허둥댄다.

돌아가는 나귀 벌써 멀어졌지만 아직까지 보이니

강서에 지는 노을만 원망스레 바라본다.

-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

 

겸재 정선과 더불어 시가 가면 그림 온다는 기약이 있어,

약속대로 가고 오기를 시작하였다.

내 시와 자네 그림 서로 바꿔 봄에,

그 사이의 경중을 어찌 값으로 따지겠나.

시는 간장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는 것,

누가 쉽고 또 누가 어려운지 모르겠구나.

-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르리라.

-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일출의 햇살이 붉게 물든 강 위로 어부들이 고깃배를 몰고 나온다.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로 가린다.' 사천이 보낸 시구를 겸재는 이렇게 그림으로 바꾸어 놓았다.

 

12 정선

단발령망금강

 

鄭敾, 1676-1759

斷髮嶺望金剛 :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다

비단에 담채

32.2×24.4cm

간송미술관

단발령 고갯마루에서 일군의 선비들이 금강산을 바라보고 있다. 인물들의 윤곽만 간략히 그렸지만 그것만으로도 금강산의 절경에 감탄하는 모습이 절로 연상된다. 저들 중에는 삼연, 겸재, 사천이 모두 있을 것이다.

 

13 정선

풍악내산총람

 

鄭敾, 1676-1759

風岳內山總覽 : 풍악내산을 총괄해 살펴보다

비단에 채색

100.8×73.8cm

간송미술관

무성한 솔숲을 경계로 삼엄한 암봉과 부드러운 흙산이 대비를 이룬 가운데 금강산 곳곳에 자리한 명승과 암자들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겸재는 이렇듯 절묘한 화면 구성을 통해 금강산의 기세를 담았고, 정교한 세부 묘사를 통해 금강산의 속살까지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다섯 번 봉래산을 밟고 나니 다리가 피곤하여

쇠약한 몸은 금강산의 신령과 이별하려 하네.

화가의 삼매에 신령이 녹아들어 있으니

무명 버선 푸른 신 다시 신어 무엇 하겠나.

- 삼연 김창흡

 

14 정선

서과투서

 

鄭敾, 1676-1759

西瓜偸鼠 : 수박 훔치는 쥐

비단에 채색

30.5×20.8cm

간송미술관

잘 익은 수박 살을 훔쳐 먹고 있는 쥐와 밖에서 망을 봐주는 쥐들의 묘사가 정확하고 세밀하다. 자세와 눈동자를 통해 두 마리 도둑 쥐의 속내까지 읽어 낼 수 있을 정도이다. 기세 넘치는 겸재의 산수화와는 전혀 다른 우아하고 여성적인 조형미를 보여 준다.

 

15 변상벽

자웅장추

 

卞相壁, 1730- ?

雌雄將雛 : 암수탉이 병아리를 거느리다

 

머리에 벼슬을 이고 있는 것은 문文이고, 발에 발톱이 달린 것은 무武를 가짐이며, 적이 앞에 있으면 감히 싸우는 것이 용勇이며, 먹을 것을 얻으면 서로 알려 주는 것은 인仁이며,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는 것은 신信입니다. 닭은 이처럼 이 다섯 가지 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춘추시대의 전요田饒라는 사람이 노나라 애공에게 충언을 하며 닭의 덕성에 대해 한 말

종이에 채색

30.0×46.0cm

간송미술관

 

변상벽이 변고양이로 불리는 것은 고양이를 잘 그린다고 사방에 이름이 나서이다. 이젠 또 닭과 병아리를 그려 내니, 마리 마리가 털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중략)

형형색색 세밀하여 실물과 똑같고, 도도한 기상 또한 막을 수 없다. 듣자하니 이 그림을 막 그렸을 때, 수탉이 잘못 알고 울어 댔다 한다. 그가 고양이를 그렸을 때도 쥐들이 겁을 먹었으리라. 기예의 지극함이 여기까지 이르니, 만지고 또 만져도 싫지가 않다. 되지 못한 화가들은 산수화를 그린다며 이리저리 휘두르니 거칠기만 할 뿐이다.

- 다산 정약용

작은 꿀벌 한 마리지만 병아리들을 먹일 요량에 어미 닭의 눈에는 흐뭇함과 자애로움이 넘친다. 일곱 마리의 노랑 병아리와 시골 아낙처럼 후덕한 암탉이 어우러진 장면이 정겹고 천연스럽다.

 

푸른 수탉과 누런 암탉이 일고여덟 마리 병아리를 거느렸다.

정교한 솜씨 신묘하니 옛사람도 미치지 못할 바이다.

靑雄黃雌, 將七八雛, 精工神妙, 古人所不及.

- 표암 강세황

 

흰털 검은 뼈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 기질은 비록 다르다 하나 5덕德이 남아 있다. 의가醫家에서 방법을 듣고 신묘한 약을 다려야겠는데, 아마 인삼과 백출과 함께해야 빼어난 공훈을 세우겠지.

白毛鳥骨탁獨超群, 氣質雖殊五德存. 聞道醫家修妙藥, 擬同蔘朮策奇勳.

- 후배 화가 마군후馬君厚, 1750경-?

큰 벼슬에 긴 꼬리를 가진 조선의 토종 수탉이다. 햇빛에 반사되어 검푸르게 보이는 두 가닥 꼬리 깃과 꽃송이를 닮은 붉은 벼슬이 탐스럽다. 목털을 부풀리고 날개 깃까지 벌려 허세를 부리니 제법 위풍당당해 보인다.

 

16 유덕장

설죽

 

柳德章, 1675-1759

雪竹 : 눈 맞은 대나무

종이에 채색

139.7×92.0cm

간송미술관

세 줄기 왕대가 바위틈을 뚫고 나와 하늘로 솟구쳐 있다. 잔가지와 잎이 거의 없는 늙고 큰 대나무가 상단이 모두 부러져 있으니 비장하리만큼 완고하게 느껴진다. 탄은 이정이 즐겨 그렸던 소재와 형식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너무 경직된 필치 때문인지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추사 김정희는 수운의 묵죽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탄은에게는 한 수 양보해야 된다고 했던 모양이다.

초록빛 댓잎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이 탐스럽다. 부드럽고 윤택한 필치는 자연스럽고 푸근한 느낌을 연출한다. 불굴의 기상이나 절조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담담한 운치와 아취 또한 문인들의 이상이 아니던가.

 

대나무는 설죽을 그리기가 어려운데, 색을 칠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는 대개 한번 색을 입히고 나면 천연의 자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직 그 초록 분가루를 칠했을 뿐인데, 신령하고 시원함이 날아 넘친다.

-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수운의 착색 설죽 병풍에 제하다題岫雲着色雪竹障」

 

계유년 여름에 수운 여든 늙은이가 그리다

歲癸酉夏, 峀雲八耋翁作.

 

17 조영석

현이도

 

趙榮祏, 1686-1761

賢已圖 : 장기 놀이

비단에 채색

31.5×43.3cm

간송미술관

장기판에 모여 있는 인물들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간략한 소묘풍의 필치이지만 어색함이 없다.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을 통해 장기판의 행세는 물론, 구경꾼들의 성격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성중 김광수가 유령의 팔준 □ □ □ □ 2축을 가지고 나에게 현이도를 구하므로 황정경黃庭經을 거위와 바꾼 고사로서 드디어 즐겁게 그린다.

成仲以兪㱓八駿   □ □ □ □  二軸, 求余賢已圖, 用黃庭換鵝故事,  遂樂而作  □.

- 관아재 조영석


18 심사정

와룡암소집도


沈師正, 1707-1769

臥龍庵小集圖 : 와룡암에서의 조촐한 모임


그림을 천성으로 타고난 당대의 철장哲匠으로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관아재 조영석, 겸재 정선과 더불어 그 명성이 같았는데, 혹자는 초충과 먹으로 용을 그리는 솜씨는 아무도 견줄 수 없다고 한다. 조영석, 정선 두 사람이 다 늙어서 세상을 떠났으니 지금의 대가를 논하자면 이 한 사람뿐이다.

-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가 1764년영조 40년에 현재玄齋 심사정의 집을 방문하고 쓴 글

종이에 담채

28.7×42.0cm

간송미술관


갑자년1744 여름 내가 와룡암에 있는 상고자김광수를 방문하여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며 서화를 논하는데 조금 있다가 하늘이 검은 돌처럼 새까매지더니 소나기가 퍼부었다. 그때 현재가 문 밖에서 비틀거리며 들어오는데, 옷이 흠뻑 젖어서 서로 쳐다보고 깜짝 놀라 말을 못했다. 잠깐 사이에 비가 그치자 정원 가득한 경치와 색채가 마치 미가米家 미불의 집안의 수묵도와 같았다. 현재가 무릎을 안고 뚫어지게 바라보다 갑자기 기이한 소리로 외치더니 급히 종이를 찾아 심주의 화의를 빌어 <와룡암소집도>를 휘둘러 그려 냈다. 필법이 윤택하고 흥건하여 나와 상고자가 서로 보고 감탄했다. 이에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하여 아주 기쁘게 놀다가 파했다. 내가 이 그림을 가지고 돌아와 늘상 사랑하고 아꼈다.

- 김광국

편복 차림에 공수한 채 시동을 거느라고 앉은 사람이 와룡암의 주인인 김광수이고, 갓 쓰고 도포를 입은 외출복 차림의 뒷모습이 와룡암을 방문한 심사정과 김광국일 것이다. 아마도 후원 뒷문을 등지고 앉은 인물이 심사정이 아닌가 싶다.


비 온 뒤 와룡암에 있으면서 흥에 겨워 석전을 방작하다.

雨後, 在臥龍庵, 乘興, 仿石田


19 심사정

삼일포


沈師正, 1707-1769

三日浦

종이에 담채

27.0×30.5cm

간송미술관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수를 널리 구경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다만 금강산과 대흥산성을 구경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또 "왜 그처럼 넓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가까이에 있는 북한산도 미처 유람하지 못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체로 기이한 데 빠져 떠난 후에 돌아올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 이덕무가 1764년 가을에 심사정의 집을 방문한 뒤 쓴 글

삼일호의 명물인 사선정으로 건너가기 위해 두 명의 선비가 호숫가 둔덕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다. 선비 일행을 이곳까지 데려왔을 구종과 나귀는 제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 사공은 상앗대를 밀어 가며 조각배를 몰고 온다.


20 심사정

촉잔도권


沈師政707-1769

蜀棧圖卷 : 촉으로 가는 험한 길

종이에 담채

58.0×818.0cm

간송미술관


21 이광사 · 이영익

잉어


李匡師, 1705-1777

李令翊, 1738-1780

鯉魚

종이에 담채

120.5×57.5cm

간송미술관


원교 선생이 잉어 그림을 그렸는데, 머리와 눈만 그리고 마치지 못했다.

20년 후에 아들 영익이 동천 종형의 별장에서 이어 그렸으니 그때가 계사년 9월이다.

員嶠先生作鯉魚圖, 寫頭眼而未竟.

後二十年, 子令翊, 續成於洞泉從兄莊中, 時癸巳九月也.

마름과 부평초 사이를 노니는 세 마리의 작은 물고기가 담박하고 기품 있게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잉어와 함께 어린 물고기를 그리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젊은 시절 고생을 이겨 내고 입신양명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세 마리를 그린 것은 이광사의 세 자녀를 의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22 윤용

협롱채춘


尹愹, 1708-1740

挾籠採春 : 나물 바구니를 끼고 봄을 캐다

종이에 담채

27.6×21.2cm

간송미술관

한 여인이 긴 호미를 들고 옆구리에 망태기를 끼고 뒤돌아 서 있다. 도회지의 맵시 있는 연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세련미는 없지만 꾸밈없는 소탈함이 정겹고 아련하다. 인물을 묘사한 필치 또한 이 여인처럼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건실함이 진솔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비 젖은 싹 바람 맞은 잎 초록이 무성한데, 고운 손 검푸른 머리 한궁漢宮에서 나온다. 눈앞 가득 만물이 모두 이럴진대, 차마 그림 속에서 칠하고 바른 것으로만 보겠는가.

雨苗風葉綠董董, 纖手靑絲出漢宮, 滿眼蒼生總如此, 忍看塗抹畵圖中.

-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747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의 「향수鄕愁」


23 강세황

죽석


姜世晃, 1713-1791

竹石 : 바위틈에 솟아난 대나무


"글은 한퇴지, 글씨는 왕희지, 그림은 고개지,

사람됨은 두목지, 광지는 이를 겸했다.

文之退之 筆之羲之 畵之愷之 人之牧之 光之兼之"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열 개의 지之자 평十之評'이라고 한다.

- 청나라의 명사가 표암豹菴 강세황의 자字가 광지光之인 것에 착안하여 중국 역대 시문서화의 대가들에 빗대어 쓴 글

종이에 수묵

30.0×44.6cm

간송미술관

강세황 <묵란>

종이에 수묵

29.8×21.0cm

간송미술관


한 포기의 난을 소박하게 베풀어 놓았는데 표암 특유의 단아하고 정중한 필치와 통활한 공간감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화보풍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유연하고 단정한 필치로 쳐나간 난엽과 난화는 탈속무구한 아취와 여유가 흘러넘친다. "우리나라에 본시 난이라는 것이 없어, 묵란에 대해서는 이름 있는 사람이 없다"며, 자신의 묵란에 대해서 은근한 자신감을 피력했던 표암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수작이다.


내가 묵죽을 그리는 것은 얼추 알고 있으나 산수에 대해서는 본디 능하지 못하다. 창해옹이 내가 그린 대나무를 두렵게 여겨 산수만 그리게 하니, 이는 수염으로 내시를 질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의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림 한 권을 그려서 보내 본다. 훗날 보는 자들은 구하는 사람이 산수를 잘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킨 잘못은 모를 터이니, 좋아할 수 없구나.

- 후배인 창해滄海 정란鄭瀾, 1725-1791의 요청에 응해 그림을 그려 주고 난 후 소감을 적은 글

"근세에 강표암은 대를 그리면서 한두 가지만 그리고 '분分'자나 '개个'자형 잎 서너 개만 해놓고 그만둔다. 이는 죽화竹畵일 뿐, 어찌 화죽畵竹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

- 다산 정약용

 

"사람들은 세밀하고 무성한 대나무를 그리기를 바라지만, 게으르고 나약하며 눈도 어둡다. 두어 가지 대를 그리다 그마저 다 못하고, 목판에 새겨 여러 사람의 번거로운 부탁에 응한다."

- 표암 강세황

 

24 강세황

향원익청

 

姜世晃, 1713-1791

香遠益淸 :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

 

산수화의 명가는 간혹 일컬을 만한 사람이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을 그리는 것'에 이르러서는 고요하여 들리는 바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대체로 화원체畵院體에서 나와 공교롭게 세세하며, 수묵으로 들어가서는 필히 내달리듯 성급하다. 4백 년 동안 오직 상서尙書 강표암 만이 또렷이 드러난다.

- 자하 신위

 

 

종이에 채색

115.5×52.5cm

간송미술관

물과 땅에 있는 풀과 나무의 꽃에는 사랑할 만한 것이 대단히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오직 국화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또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대단히 사랑한다.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은 비록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잔잔한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 속은 비어 통하고 겉은 강직하며, 넝쿨도 없고 가지도 없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높이 우뚝 솟아 깨끗하게 서 있으니, 멀리서 바라볼 수 있지만 함부로 가지고 놀아서는 안된다. 나는 말한다. 국화는 꽃 가운데 은일자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자며, 연은 꽃 중의 군자이다. 아! 국화 사랑은 도연명 이후로 들은 적이 드물고, 연 사랑은 나와 같은 이가 몇이나 될까. 모란 사랑이 많은 것이 당연하리라.

- 주돈이

진초록 큰 연잎 위로 하얀 연꽃이 피어 색조의 대비를 이룬다. 꽃잎 끝에만 붉은빛이 살짝 감도는 일점홍 연꽃은 연지곤지를 찍은 여인처럼 사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전해 준다. 연밭의 터줏대감인 청개구리가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염계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연꽃은 멀리서 볼 수 있지만, 함부로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림의 연꽃 또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

濂溪先生謂, 蓮可遠觀, 不宜褻玩, 余則曰, 畵蓮亦宜遠觀焉, 豹菴

농도와 색조의 미묘한 변화를 주며 묘사한 연잎에서는 서양화풍의 영향이 감지된다. 여기에 숨기듯 그려 놓은 여치 한 마리는 크기는 앙증맞지만 그림의 운치를 돋우는 데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25 김후신

대쾌도

 

金厚臣, 1735-?

大快圖 : 매우 즐거운 그림

종이에 담채

33.7×28.2cm

간송미술관

수염도 나지 않은 젊은 양반이 술이 억병으로 취해 세상을 다 가진 듯 의기양양 희희낙락하고 있다. 다른 술동무들이 취객을 밀고 잡아당기며 어르고 달래지만 쉽게 따라 줄 성 싶지가 않다. 곤혹스럽고 남감한 상황이지만 그림을 보는 우리는 그저 웃음만 나온다.

 

26 김홍도

마상청앵

 

金弘道, 1745-1806

馬上聽鶯 :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

 

인생에서 날마다 접하는 백천 가지 일과 같은 세속의 모습을 옮겨 그리기를 잘했으니 저 길거리며 나루터, 가게, 시장, 과거장, 놀이마당을 한번 그려 내면 사람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기이하다고 소리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김사능金士能의 속화俗畵'가 바로 이것이다. 진실로 신령스런 마음과 지혜로운 머리로 홀로 천고의 묘한 이치를 깨닫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 표암 강세황이 제자인 단원檀園 김홍도의 그림을 두고 한 말

 

종이에 담채

117.2×52.0cm

간송미술관

김홍도, <호귀응렵>

(豪貴鷹獵 : 호탕한 귀인의 매사냥)

종이에 담채

28.0×34.2cm

간송미술관

 

어느 겨울 고을의 원님쯤으로 보이는 중년의 귀인이 휘하를 대동하고 매사냥을 즐기는 장면이다. 말 뒤로는 집사가 따르고, 그 뒤에 늙은 주모와 동자가 술상과 안주를 지고 따른다. 사냥매는 물론 짐을 지는 짐꾼과 사냥개까지 동원된 자뭇 성대한 행차이다. 매사냥의 풍부한 이야기들과 정취를 날렵하고 정확한 필치로 잡아냈다. 원숙한 기량이 한껏 발휘된 전형적인 단원 풍속화이다.

 

고운 여인 꽃 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

시인의 술동이 앞에 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

금빛 베틀 북이 어지러이 버드나무 물가를 오가더니,

안개와 비를 엮어 봄강을 짜내누나.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梭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 이인문

나귀를 타고 가던 선비가 고개를 돌려 버드나무 위에 앉아 있는 꾀꼬리를 올려본다. 말을 모는 총각도 주인의 시선을 따라 같은 곳을 바라보고, 문득 멈춰 선 나귀는 귀를 종긋 세우고 숨을 고르고 있다. 매료된 듯, 아쉬운 듯, 혹은 아련한 듯한 선비의 표정이 복잡미묘하다.

 

27 김홍도

황묘농접

 

金弘道, 1745-1806

黃猫弄蝶 :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

종이에 채색

30.1×46.1cm

간송미술관

변상벽, <국정추묘>

(菊庭秋猫 :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

종이에 채색

29.5×22.5cm

간송미술관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잔뜩 경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먹잇감을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염과 터럭을 수천 번의 붓질로 묘사하고, 눈동자의 미묘한 색조와 귓속 실핏줄, 심지어 가슴 부분의 촘촘하고 부드러운 털과 등 주변의 성글고 오롯한 털의 질감까지 정확하게 잡아냈다. 변상벽이 왜 '변고양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걸작이다.

 

벼슬은 현감이고 단원이라 자호自號, 스스로 호를 지어 부름하며,

다른 한 가지 호는 취화사醉畵士, 그림에 취한 선비이다.

官縣監, 自號檀園, 一號醉畵士.

 

"일흔 살 여든 살이 되도록 젊음을 변치 말고 장수하시고,

모든 일이 뜻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28 김홍도

염불서승

 

金弘道, 1745-1806

念佛西昇 : 염불하며 서방정토로 올라가다

모시에 담채

20.8×28.7cm

간송미술관

김홍도, <노승염불>

(老僧念佛 : 노승이 염불하다)

종이에 담채

57.7×19.7cm

간송미술관

 

노승이 서쪽을 향해 합장한 채 염불을 하고 뒤에는 동자승이 육환장을 대신 들고 시립해 있다. "입으로 항하(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외우고 또 그 모래알만큼 외운다(口誦恒河沙 復沙)"라고 쓴 제사에서 염불 공덕으로 극락왕생하려는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제사의 앞에는 '필유이심(必有以心)' 즉 '반드시 마음으로 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글귀를 새긴 도장이 찍혀 있다. 단원 최만년기의 작품으로 죽음을 앞둔 노대가의 간절하고 신실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정갈하게 깎은 머리, 살짝 솟은 귀, 야윈 목에서 오랜 세월 구도의 길을 걸으며 정진한 노스님의 성품과 공력이 절로 느껴진다. 보름달처럼 피어난 스님의 두광에서는 남빛의 상서로운 기운이 번져 나와 하늘빛을 신비롭게 물들이고 있다.

 

29 김득신

야묘도추

 

金得臣, 1754-1822

野猫盜雛 : 들고양이 병아리를 훔치다

종이에 담채

22.4×27.0cm

간송미술관

 

긍재가 그린 풍속도는 세상에 많지 않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모두 단원의 풍속도를 첫 손가락에 꼽지만 복헌 선생의 연원에서 같이 나왔으니, 마땅히 함께 귀중한 것일 뿐이다. 위창 노부가 쓴다.

-  위창 오세창 《긍재풍속도첩兢齋風俗圖帖》

병아리를 입에 문 채 나 잡아 보란 듯이 뒤돌아보는 여유까지 부리는 고양이는 얄밉기 이를 데 없고, 어떻게든 제 새끼를 지키려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달려드는 어미 닭은 절박하기 짝이 없다.

마당으로 몸을 날려 도둑고양이를 후려치려는 주인장과 이런 남편이 혹여 다칠까 염려하는 아내의 자세와 표정이 매우 실감난다. 순간적인 장면을 스냅 사진 찍듯이 포착하여, 동영상의 정지 화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30 신윤복

미인도

 

申潤福, 1758경-1813이후

美人圖

비단에 채색

114.0×45.5cm

간송미술관

갸름한 얼굴에 반듯한 이마, 얄따란 눈썹과 갸름한 눈, 오똑한 코와 도톰한 입술, 흠잡을 데 없는 조선의 미인이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 위에 얹은 트레머리가 탐스러움을 더해 주고, 목 뒤로 하늘거리는 몇 가닥 머리칼은 더없이 고혹적이다. 무심한 듯 몽환적인 표정이지만 맑고 그윽한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하다.

 

풀어헤친 화가의 가슴속에 봄기운 가득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 낸다.

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31 신윤복

이부탐춘

 

申潤福, 1758경-1813 이후

嫠婦耽春 : 과부가 봄빛을 즐기다

종이에 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소복을 입은 과부의 품새와 야릇한 미소에는 농익은 춘심이 흥건하다. 옆에 앉은 과년한 처녀는 짐짓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과부의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이 그녀의 속내를 알려 주고 있다.

신윤복, <월하정인>

(月下情人 : 달빛 아래 정든 사람)

종이에 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눈썹달이 은은하게 비추는 밤, 어느 집 담장 아래에서 남녀가 밀애를 나누고 있다. 초롱을 든 사내는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고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여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있다. 욕망과 교태가 농밀한 남녀의 연정을 담아낸 그림이지만, 혜원 특유의 섬세한 필선과 세련된 색채가 적절히 균형을 잡으며 애틋하고 은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2 김정희

고사소요

 

金正喜, 1786-1856

高士逍遙 : 뜻 높은 선비가 거닐다

종이에 수묵

24.9×29.7cm

간송미술관

 

"그림의 길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네. 자네는 그림에 있어 이미 격조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자네가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이 공재 윤두서의 화첩이네. 우리나라에서 옛 그림을 배우려면 과연 공재로부터 시작하겎지. 그러나 신운의 경지는 부족하지.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은 모두 명성이 대단하지만, 그들의 두루마기와 화첩에 전하는 것은 한갓 안목만 어지럽게 할 뿐이니 절대 들춰 보지 말게. 자네는 화가의 삼매경에서 있어, 천 리 길에 겨우 세 걸음을 걸었을 뿐이네."

- 추사가 아끼던 그림 제자였던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2에게 한 말

김정희, 예서대련

<대팽고회>(大烹高會)

종이에 묵서

각 129.5×31.9cm

간송미술관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일생을 고고하게 살았던 추사가 죽음을 앞두고 깨달은 진리와 회한을 토로한 글귀이다.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글씨가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고 졸박하기만 하다.

 

좋은 반찬은 두부 · 오이 · 생강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 손자,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 된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큼 큰 황금인黃金印을 차고, 음식이 사방 한 길이나 차려지고 시첩侍妾이 수백 명 있다 하더라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추사

 

33 김정희

적설만산

 

金正喜, 1786-1856

積雪滿山 : 쌓인 눈이 산을 덮다

종이에 수묵

22.9×27.0cm

간송미술관

 

난을 치는 것이 가장 어려우니, 산수 · 매죽 · 화훼 · 금어는 옛날부터 잘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홀로 난 치는 데 있어서는 특별히 들리는 소리가 없다.

 

난을 치는 법은 예서隸書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향과 서권기가 있은 연후에야 얻을 수 있다. 또 난을 치는 법은 화법을 가장 꺼리니 만약 한 붓질이라도 화법이 있다면, 그리지 않는 것이 좋다.

- 1848년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아들 김상우金商佑에게 보낸 글

 

예서를 쓰는 법은 반드시 모지고 굳세며 예스럽고 졸박한 것으로 으뜸을 삼아야 하는 것이나 그 졸박한 것은 또한 쉽게 얻을 수 없다. 예서는 대체로 번지르르한 모습이나 시정市井의 기풍을 걸러내야 한다. 또한 예서 쓰는 법은 가슴속에 맑고 드높으며 고아한 뜻이 있지 않다면 손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김정희, <국향군자>

(國香君子)

종이에 수묵

22.9×27.0cm

간송미술관

 

난 한 포기가 화면 한가운데 놓여 있다.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온 두 줄기 잎이 대각으로 교차하며 좌우로 벋어 나가 시원스럽게 화면을 가른다. 화면 오른편 지면을 따라 "이것이 국향이고 군자이다(此國香也, 君子也)"라고 간단명료하게 써놓았다. 대담하고 파격적인 화면구성과 화면을 완전히 장악하는 필선의 힘도 놀랍다. 추사가 아니라면 발상하기조차 힘든 묵란화이다.

 

쌓인 눈 산을 덮고, 강 얼음 난간을 이루나,

손가락 끝에 봄바람이니, 이에서 하늘 뜻 알다.

거사가 제題하다.

積雪滿山, 江水闌干, 指下春風, 乃見天心, 居士題.

 

34 조희룡

매화서옥

 

趙熙龍, 1789-1866

梅花書屋 : 매화가 피어난 서옥

종이에 담채

106.0×45.4cm

간송미술관

 

조희룡 같은 무리들이 나에게 난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 그리는 법칙 한 길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가슴속에 문자의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 추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

매화 숲 외딴 서옥에서 선비가 책상과 마주 앉아 있다. 책상 위에는 책이 가득 쌓여 있지만 선비는 오로지 화병에 꽂혀 있는 한 가지 매화만을 바라본다. 선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매화 사랑이 유난했던 우봉 자신이다.

 

좀벌레 둥지 속에서 묵은 종이 한 장을 얻으니, 곧 20년 전에 그린 매화서옥도이다. 장난으로 그린 그림이나 자못 기이한 기상이 있었는데 연기에 그을려 거의 백 년 지난 물건과 같다. 그림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사람임에랴! 펼쳐 보고 나니 절로 3생을 신선으로 태어난 느낌이다.

蠹窠中得一故紙, 乃卄載前所作, 梅花書屋圖也.

盖遊戱之筆, 而頗有奇氣, 爲烟煤所昏, 殆若百年物.

畵猶如此, 況人乎, 披拂之餘, 不覺三生石上之感, 丹老

 

35 장승업

삼인문년

 

張承業, 1843-1897

三人問年 : 세 사람이 나이를 묻다

비단에 채색

152.0×69.0cm

간송미술관

 

세노인이 만나 서로 나이를 물었다. 먼저 한 노인이 말했다. '내 나이는 얼마나 먹었는지 알지도 못한다. 단지 내가 어렸을 적에 천지를 만든 반고盤古씨와 친하게 지냈던 생각이 날 뿐이다.' 또 한 노인이 말했다. '바다가 변하여 뽕밭이 될 때마다桑田碧海 내가 숫자를 세려 나뭇가지 하나씩을 놓았는데 지금 내가 놓은 나뭇가지가 벌써 열 칸 집을 가득 채웠다.' 다른 한 노인이 말했다. '내가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아래에 버렸는데 지금 그 씨가 쌓여 곤륜산과 높이가 같아졌다. 내 나이로 본다면 두 사람이란 것은 하루살이나 아침에 니왔다가 저녁에 죽는 버섯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송나라 문인 소식이 지은 『동파지림東坡志林』 속 「삼로문년三老問秊」

손짓과 동작에서 어떤 노인이 무슨 자랑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바위에 기댄 동방삭은 선도를 훔쳐 낼 계략을 짜고 있다. 유려한 선묘와 정교한 색채의 조화가 딱히 흠잡을 데 없을 만큼 뛰어나다. 얼굴이 거뭇한 것은 흰빛을 내는 안료인 연백이 산화하여 변색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오원 선생이 중년에 그린 것이다. 인물과 나무 바위의 필법과 채색은 신운이 생동한다고 할 만하다. 평생 그린 인물이 적지 않지만 이 폭과 같은 것은 많지 않으니 참으로 보배라 할 수 있겠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이 그림에 글을 쓰다가 술잔을 기울이며 호기롭게 휘두르시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此乃張吾園先生, 中年所作也, 人物樹石之用筆賦采, 可謂神韻生動,

其生平所畵人物, 亦不尠, 如此幅者不多得, 眞可寶也, 先生歸道山,

已十八年矣. 今題此畵, 想見引杯揮豪之風采云.

 

36 민영익

석죽

 

閔泳翊, 1860-1914

石竹 : 바위틈에 솟은 대나무

종이에 수묵

135.0×57.0cm

간송미술관

 

대나무의 정신을 능숙하게 그려 내니, 비바람 소리 들물가에 많기도 하다. 필치가 때에 따라 미친 듯 움직여 막힘이 없어야 군자가 지닌 성정의 참됨을 펼쳐 낼 수 있으리라. 을사년 춘분에 포화가 짓다.

是能寫出竹精神, 風雨聲多野水濱. 筆致動時狂不礙, 可長君子性情眞. 乙巳春分節, 蒲華題.

민영익, <묵란>

종이에 수묵

124.2×61.3cm

간송미술관

 

칼칼한 농묵의 붓질로 힘이나 속도의 변화를 두지않고 쳐낸 잎들은 마치 철로 만든 회초리처럼 굳건하다. 뿌리를 모두 드러내고 흙도 그리지 않은 것은 여백의 미를 살리고자 함이 아니라, 뿌리내릴 땅이 없는 망국대부의 비통함을 담아낸 것이다. '민원정이 천심죽재에서 그리다(閔園丁, 寫於千尋竹齋)'라는 관서로 보아 상하이 망명시절에 쳐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밑으로 '송석원을 쓸고 닦는 남자'라는 의미의 '송석원쇄소남정(松石園洒掃男丁)'이라 새겨진 인장을 찍었는데, 송석원은 인왕산 아래 있던 집안의 별장이니 인장에서도 망명객의 애환이 절절이 묻어난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33 붓다 - 꺼지지 않는 등불

 

장 부아슬리에 지음, 이종인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33

 

082

시158ㅅ  28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8

 

기원전 6세기, 북인도의 왕자 싯다르타

가우타마는 가족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우주 만물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품고 그 답을 찾아 고행에 나섰다.

훗날 싯다르타는 붓다로 알려지며 전세계에 퍼진

불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실고 고통스러운 구도의 여정

끝에 붓다가 얻은 진리와 지혜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그분이 오셨다.

온 세상을 비추는 분, 세상을 보호해 주시는 분,

눈먼 세상에 부패의 고통을 꿰뚫는 안목을

주시는 분. 당신은 선한 싸움의 승자가 되셨고

선업으로 당신의 소원을 성취하였다.

정법(淨法)으로 완성을 이루셨으니

당신은 중생의 갈애를 해갈시켜 주시리라.

수렁을 건너셨어도 단 한 점의 죄도

없으시니 가우타마는 이제 굳건한 대지 위에 섰다.

그분은 급류에 휩싸인 중생들을 제도하시리라.

대덕(大德)이여, 당신은 거룩하시니

온 세상에 당할 자 없으며,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이 세상의 법에 물들지 아니하도다.

몽매에 빠진 이 세상을 깨울 수 있는 분,

지혜의 등불을 가지신 분, 그분은 당신뿐이로다.

오랫동안 고뇌를 겪고, 부패의 고통 속에서

괴로움을 받는 세상에 그분이 오셨다.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해 주시는 치유의 왕으로서."

<랄리타비스타라>, 23장

 

차례

 

La sagesse du Bouddha

 

제1장 붓다 시대의 인도

제2장 보살

제3장 깨달음과 첫번째 설법

제4장 가르침과 유행(遊行)

제5장 반열반(般涅槃)

제6장 가르침의 전파

기록과 증언

용어풀이

연보

참고문헌

그림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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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부아슬리에 Jean Boisselier

문학 박사이자 인도학 박사인 장 부아슬리에는 프랑스 동양학 학교위원, 프놈펜 박물관 큐레이터, 앙코르 유물보존위원회의 과학탐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파리 동남아시아 예술, 고고학, 불교학의 권위자이며,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고고학적 탐사를 벌이고 그 분야에 관한 200여 편의 논문과 11권의 저서를 낸 바 있다.

 

옮긴이 : 이종인

1954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브리태니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번 <문자의 역사> 23번 <셰익스피어>와 <절망이 아닌 선택> <증발> <때로는 낯선 타인처럼> 등이 있다.

 

제1장

붓다 시대의 인도

 

붓다와 불교가 처음 등장한 B.C. 6세기는 아시아 전역, 즉 그리스 동쪽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정신적 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인도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그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 그곳에서는 예수가 지상에 오기 이미 2,000년 전부터 우주관, 자기인식, 존재의 운명 등에 대한 사유가 집단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있었고, 이러한 사유는 그 어떤 것보다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히말라야에 위치한 신화적인 아나바타프타 호수는 사자, 황소, 말, 코끼리 등이 살고 있는 지역에 물을 대는 4대 강의 수원이라고 한다. 이 호수는 세계가 파괴되었다가 거듭날 때, 맨 마지막에 사라졌다가 맨 처음에 다시 나타난다. 17세기 그림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강은 겐지스이다.

인도사의 최고대기(最古代期)인 B.C. 3000년경에 번성한 인더스 문화권은 현재의 파키스탄, 남부 아프카니스탄, 인도 3주인 펀자브, 라자스탄, 구자라트를 포함한다.이 시대는 보통 인더스 전단계(B.C. 4000~2300), 인더스 단계(B.C. 2300~1750), 인더스 후단계(B.C. 1750~1000)의 3단계로 나눠진다. 이 문화권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 자연적인 원인 때문인지 아니면 서족에서 동점(東漸)해 온 아리아족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메소포타미아 문화권과 공통점이 많은 인더스 문화권은 도시적, 방어적, 상업적(항구와 선착장) 체계 및 도로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위는 인더스 문화권의 중요한 정착촌인 모헨조다로를 재구성한 것이다. 신비한 기명(記銘)과 장식이 새겨진 인장들(가운데, 아래)에서도 종교생활의 단서를 찾아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10세기 전반의 크메르 신전에서 브라흐마(사암 조각)는 베다에 기술되어 있는 창조신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브라흐마-시바-비슈누를 삼위일체로 보는 신관(神觀)에서는 중앙을 차지한 최고의 신 시바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비슈누가 나왔다고 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아나바타프타 호수는 신비한 다섯 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호수의 한가운데가 열락(悅樂)의 땅인 간다마다나인데 이곳에는 온갖 경이로운 존재들이 산다. 이곳에는 열반을 얻은 벽지불(辟支佛, 깨달음을 얻었지만 남을 위해 설법하지는 않는 붓다)이 기거한다. 궁극적인 열반에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나타나야만 도달할 수 있다. 벽지불들은 달의 변화에 따라 치러지는 정화(淨化)의식을 올리기 위해 독특한 향을 내뿜는 나무 밑의 특정한 장소에 모여 있다. 그 옆에 있는 건물은 불교경전에 언급된 '그들을 기다리는 좌석'을 상징한다. 이 낙원에서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여기에 사는 존재들은 다른 존재에게 우호적인 감정만을 갖고 있다. 말과 코끼리들이 각각 색깔이 다른 것은 그들의 각기 다른 성질을 나타낸다.

원래 시바신의 시종이었던 마하칼라는 10세기 탄트라 불교에서는 수호신이 되고 8법왕의 하나가 된다. 이 그림은 18세기 티베트 그림에 끔찍스런 모습으로 나타난 마하칼라이다.

 

제2장

보살

 

역사상 실존했던 붓다의 생애는 전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생애 속에는 이적과 사실, 성과 속, 천상과 지상의 세계가 혼재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까지 붓다는 한 사람의 보살('깨달음을 얻게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6세기경 인도 아잔타 석굴의 벽화. 붓다가 아니라 대승불교의 중요한 존재 보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주인공이 어느 보살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구세주다운 장엄함과 인자함이 잘 드러나 있다.

부왕이 마련해 준 정원으로 가기 위해 동서남북 문을 나서면서 보살은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어두운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자타카》의 내용을 담은 B.C. 2세기경에 제작된 조각에는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위 부조는 원숭이에게 끌려가는 코끼리를 조각했다.

소승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미래불인 마이트레야는 현재 도솔천에서 신으로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대승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두 명의 보살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제작되었다. 위는 8~9세기에 캄보디아에서 제작된 청동조각상이고 아래는 11~12세기 중국 남부 타리 왕국에서 제작된 것이다.

《자타카》의 내용을 담은 예술품들은 기원후의 일상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 그림은 한 왕자의 이야기를 길게 다룬 <마하자나카 자타카>를 그린 것인데, 5~7세기의 아름다운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다.

천에 그린 이 19세기 타이 그림은 베산타라 자타카의 내용을 담고 있다. 브라만들이 베산타라의 말 네 마리를 가져가 버리자 신들이 사슴으로 변하여 마차를 끌고 있다.

시련의 끝. 아버지인 시비왕은 베산타라 왕자의 아이들을 방탕한 주자카에게서 되사들였다. 베산타라 왕자 부부는 유형을 마치고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도성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사랑하는 자식들과 재회한다. 붓다의 생애에서 주요 사건이 벌어질 때는 땅이 흔들리고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이 그림을 그린 무명의 화가는 베산타라 가족의 기쁨을 나타내기 위해 타이 전통무용에서 손동작을 빌려 왔다.

이 부조에서 보살은 속세로 내려오기 전 도솔천에서 신들에게 법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나온다. 조각의 전반적인 구도가 완벽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엄숙하다. 9세기 센트럴 자바 지역에서 융성한 불교예술의 높은 경지를 알게 해준다.

 

"보살은 도솔천을 떠날 차비를 갖추었다. 그가 그곳을 떠나오자 그의 몸에서 엄청난 광휘가 솟구쳐 나왔다. 그 빛으로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는 환하게 빛나게 되었다. 그 빛은 신광(神光)보다 더 환하고, 더 풍성하고, 더 멀리 퍼졌다. 일찍이 그런 빛은 이 세계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랄리타비스트라》 5장

 

마야데비 왕비의 꿈은 바르후트 유적(B.C. 2세기에 세워진 거대한 불탑 유적지)에서 나온 원형 부조에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커다란 코끼리는 붓다의 화신이 아니라 마야데비의 꿈속에 나온 코끼리를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붓다는 갠지스강의 중부 유역, 그러니까 우타르 프라데시의 중부 지역에서 활동했다. 붓다의 탄신지 카필라바스투는 네팔 남부에 있다.

'인간이 손을 대기도 전에' 신들이 먼저 껴안은 보살은 땅 위에 똑바로 서면서 자신이 마지막 삶을 보내기 위해 태어났음을 알았다. 그리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차례차례 일곱 걸음을 내딛었다.

티베트 그림이 늘 그렇듯이 대단히 장식적인 구성을 가진 이 그림은 붓다의 탄생 설화를 종합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에 묘사된 여러 세부사항은 《랄리타비스타라》에서 빌려 온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에는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데비 왕비가 '번개를 닮은 오른팔을 뻗쳐' 그녀를 반기는 듯한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는다. 왼쪽에는 땅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커다란 연꽃 위에 보살이 서 있다. 그의 위에는 나가 왕인 난다와 우파난다가 하늘 속에서 상체만 드러낸 채 보살을 씻기기 위해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 두 줄기를 쏟아 붓고 있다. 그 위의 공중에는 진귀한 일산이 등장한다. 그리고 연꽃 위에 선 보살은 우주의 시방(十方)을 사자(獅子)와 같은 얼굴로 쳐다본다. 그의 얼굴에는 삼십이상이 나타나 있다. 이어 그는 동서남북 상하로 방향을 잡으면서 각각 일곱 걸음을 간다. 그가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연꽃이 땅에서 솟아오른다. 어머니의 태내에 신들이 마련해 둔 보전(寶殿)-붓다가 열 달 동안 어머니와 접촉하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곳-은 탄신 후 대범천왕이 범천으로 가져가서 성물로 소중하게 보관한다. 보살의 유난히 긴 팔은 삼십이상의 하나이다.

"보살이 거처하게 될 첫번째 정원에는 온갖 좋은 위안물이 다 갖춰져 있었다. 소라고둥, 큰북, 중간북, 작은북, 비파 등이 저마다 아름다운 가락을 내뿜어 그가 깨어 있는 동안 형형색색의 소리를 빚으며 교향악을 들려주고, 나긋나긋하고 부드럽고 상냥하며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들이 시종 매혹적인 노래를 들려주나니……."

《랄리타비스타라》 1장 

 

제3장

깨달음과 첫번째 설법

 

마지막 장애를 모두 극복한 보살은 마침내 오랜 탐구를 완성했다. 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소유하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보살은 자기가 발견한 법을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보살이 마라를 항복시킨 사실 - 또는 욕망에 사로잡힌 중생들 위에 군림하는 모든 사악한 힘을 복속시킨 사실 - 은 비유의 방법으로만 묘사할 수 있었다. 신자들에게 마라의 위협을 좀더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불교 경전 역시 이런 비유의 수법을 썼다. 이 그림이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마라의 위협을 잘 드러내기 위해 가장 무섭고 악마적인 존재를 묘사하고 있다. 또 불교가 전파된 모든 지역에서는 악마를 나타내는 용어가 통일되어 있었다. 이 그림은 마라의 공격을 묘사한 중국의 비단 채색화이다.

스리랑카 폴론나루와에 있는 12세기의 석상은 선정에 들어간 붓다를 묘사하고 있다. 붓다의 생애 중 어떤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법륜은 아소카왕 이래 불법과 포교의 대표적 상징이었으나, 5~6세기에 들어오면 인도에서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드바라바티 고대 왕국(오늘날 타이의 중부와 서부)에서는 7~9세기에 걸쳐 법륜이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어떤 때는 굉장히 커다란 법륜이 제작되었는데(지름이 1.83m가 넘는 것도 있다), 주로 기둥 위에 올려 놓거나 최초의 설법을 상징하는 네 마리 사슴으로 장식했다. 8세기에 제작된 위에 보이는 법륜이나 기둥에는 가끔 불법(佛法)을 새겨 넣기도 했다.

 

제4장

가르침과 유행(遊行)

 

자신이 발견한 법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결심한 붓다는 그 가르침을 힘닿는 데까지 펼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설법을 듣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고통받는 것을 몹시 안쓰럽게 여겼다. 그래서 불교의 근본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로 결심한다.

목동과 암소. 중앙아시아 키질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로 불법은 포교대상에 제한이 없고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것임을 상징하고 있다.

승단에 들어가면 비구는 우선 여러 가지 계율을 지키도록 교육을 받는데, 이는 가르침을 쉽게 깨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제 자신이 그 가르침을 널리 전파해야 한다. 광배(光背)에 둘러싸여 연꽃 위에 앉은 붓다가 가르침을 베푸는 장면을 표현한 이 벽화는 중앙아시아 쿰투라에서 발견된 7세기 작품이다.

인도 북중부 지역 산치에 세워진 B.C. 1세기 탑에서 발견된 위 부조는 붓다의 존재를 보리수 밑의 보좌, 불족석, 법륜 등의 상징물로 설명한다. 이 상징물들은 부조 속에 그려 놓은 사건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위는 붓다가 카필라바스투로 귀향했을 때 석가족이 보는 데서 천도(天道)를 걸어간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아래는 범람하는 네란자라강을 묘사하고 있는데, 홍수의 피해자인 카샤파 형제(배를 탄 사람들)가 버린 희생제에 쓰이는 도구들이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다.

전지전능한 붓다가 될 사람이 잠든 아내와 갓난 아들을 내버려두고 도성을 떠났다. 가우타마의 아내는 남편이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자식을 아버지에게 소개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없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아들을 붓다에게 보이며 '유산'을 나눠 달라고, 왕위계승권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그림은 이 사건을 그린 5세기 그림이다. 그러나 불법의 발견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미련이 없던 붓다는 가르침 이외에 유산으로 남겨 줄 것이 없었다. 아들 라훌라는 아버지 붓다의 권유로 붓다를 따라 반얀숲으로 가서 붓다의 두 수제자에게서 구족계를 받아 최초의 사미가 되었다.

B.C. 2세기에 바르후트에 있는 돌기둥에 조각된 원형부조이다.

슈라바스티에서 프라세나지트왕이 입회한 가운데 열린 토론회는 불교의 괄목할만한 교세 확장에 놀란 경쟁교단의 지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토론회에서 승리자가 된 교단은 어떤 상황에서도 교세가 확장되게 마련이었다. 평상시에는 신통력 사용에 신중을 기했던 붓다도 이번만큼은 신통력을 보여 주어야 대중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먼저 '쌍둥이 기적(발에서 물을 뿜고 어깨에서 불을 뿜는 것)'을 보였고(위 부조) 뒤이어 '망고나무의 기적'을 보였다. 붓다는 망고 나무의 이파리에 자신의 균형잡힌 네 가지 모습-서 있고, 걷고, 앉아 있고, 누워 있는-이 드러나게 했다. 1734년에 제작된 아래 타이 그림은 네 가지 모습 중 세 가지만 재현하고 있다.

바르후트에서 나온 B.C. 2세기의 부조는 제석천의 신들 앞에 심어 놓은 마법의 나무 아래 앉아서 불법을 설파하는 붓다를 묘사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하늘에서 내려오심'은 인기 있는 일화였다. 불교예술가들은 붓다의 평온함과 신들의 커다란 기쁨을 즐겨 묘사했다.

불교의 지옥은 기독교의 연옥과 비슷하다. 지옥에 들어간 중생은 계율을 위반한 죄에 대하여 가혹한 징벌을 받고 다시 태어나게 된다. 방콕에서 나온, 지옥을 묘사한 이 그림은 도덕심을 고취시켜 준다.

 

제5장

반열반(般涅槃)

 

붓다는 마침내 자신이 마지막 삶의 마지막 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안 붓다는 더욱 설법에 전념했고 여러 단체, 특히 곧 지도자를 잃게 될 승단의 앞날에 대해 많이 조언했다. "나는 이미 인생의 여로를 지나 나이 80이 되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바르후트 유적에서 나온 B.C. 2세기의 부조는 붓다를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코살라국의 프라세나지트왕을 그렸다. 다졌던 왕은 붓다에게 많은 보시를 했고 국정을 포함하여 많은 사항에 대해서 붓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마가다왕과 쿠시나가라 일대의 여섯 부족 왕들은 말라족에게 붓다의 유골을 공평하게 나누어 갖자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붓다의 장례식을 자기네 땅에서 거행하고 또 주관한 말라족은 유골을 모두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다른 부족들의 공손한 요구가 무력시위를 앞세운 위협으로 바뀌었다. 산치 스투파에서 나온 부조는 미연에 그친 유골전쟁을 그리고 있다.

 

제6장

가르침의 전파

 

"오, 비구들이여! 이제 중생들을 위해 길을 나서라.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고 자비심을 베풀어라. 불법을 설하라. 불법의 진수를 전하라. 수행이 얼마나 사람을 청정하게 하는지 보여 주어라."

《디뱌바다나》

(기원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게송으로,

제목은 '신통한 공적'이라는 뜻임)

 

브라만 계급으로 태어난 수제자 마하카샤파는 근엄하고 철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런 자질 때문에 그는 1차 결집을 주재할 수 있었다.

전륜성왕-바퀴를 굴리는 사람-은 삼십이상을 갖고 있다.

성물보관함이라든가 스투파 같은 불교기념물은 불교에서 처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들 기념물의 기원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에 세워진 고분건축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원후가 되면서 이들 구조물의 모습은 원추형으로 진화하여 스투파의 특징을 갖추었다. 아누라다푸라의 루반벨리세야 다가바(아래)는 19세기에 원래 모습대로 복구된 스리랑카 스투파인데 아주 초기의 모습을 재창조해냈다고 평가되고 있다. 카투만두의 보드나트에 있는 스투파(위)는 붓다들의 특징이라고 여겨지는 눈썹 사이의 털과 두 눈을 그려 넣어 아름답게 장식했다. 스투파의 양식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카슈미르 북동부에 있는 라다크 스투파는 티베트 형식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타이 수코타이의 와트 마하타트에 있는 14세기 스투파는 원시적인 형태의 스투파를 약간 길게 늘여놓은 꼴이다(가운데).

산치 대탑은 B.C. 2세기 또는 1세기경에 아소카왕이 세운 스투파의 유적 위에다 덧세운 것이다. 돌로 된 난간과 네 개의 기념비적인 기둥은 B.C. 1세기에 만든 것이다. 경건한 신자의 시주로 제작한 조각들은 목공, 금속공, 석공 등이 모두 동원되어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연속되는 한 편의 이야기를 묘사한 이 조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고대 학파(바르후트)가 즐겨 다룬 자타카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붓다의 생애와 불교의 역사에서 빌려 온 장면들이 더 선호되고 있다. 서쪽 기둥에는 바퀴가 그려져 있어서 최초의 설법을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세 개의 스투파는 유골의 분배를 그리고 있으며, 가장 아래의 수평 부분에는 마라를 굴복시킨 일, 보리수 아래에서의 성도, 유골전쟁, 쿠시나가라 포위 등이 새겨져 있다.

첫번째 설법이 이루어진 곳을 기념하기 위해 아소카는 사르나트에 15.2m 높이의 돌기둥을 세웠다. 아래 부분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고 위 부분은 사르나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불교사원 와트 프라 시산페트는 15-16세기에 당시 타이의 수도인 아유타야의 왕궁 근처에 세워졌다. 1767년 미얀마가 타이를 침략하면서 파괴된 이 사원은 그뒤 복원되지 않았다.

최초의 설법을 하고 있는 붓다.

관대한 원숭이의 이야기를 그려 넣은 2세기 부조.

중국 순례승 현장을 그린 7세기 초상화.

요하게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32 만인보 - 70년대 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3

 

811.6

고67만  15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한  현 / 김진현 / 강신석 / 젊은 그들 / 청주 한잔 / 정수일 / 이신범 / 백기범 / 문호근 / 이우회 / 가짜 김종필 / 오노다 / 입  심 / 춘  향 / 한명숙 / 호지명 / 홍길동 / 김윤식 / 박종규 / 박기출 / 어머니 ! / 김진수 / 어떤 조약돌 / 허  균 / 김성곤 / 차범석 / 민영규 / 민두기 / 동일방직 노동자 김옥순 / 귀  신 / 금강산 20년 / 이세중 / 대전 이일수 / 김경남 / 탈 / 여섯 대 과부들 / 백기완 마누라 / 반전태일 / 김태길 / 함석헌옹 부인 / 윤순녀 / 청맹과니 / 잡초 양승환 / 겨울 피란 / 이대용 / 장님 가수 이용복 / 임춘앵 / 지  선 / 다 내쳐버리고 / 김준보 / 전형필 / 채명신 / 모안영 / 한세옥 / 최형섭 / 눈 열 개 / 오창영 / 꼭  지 / 정인승 / 세 까마귀 / 이명박 / 이종찬 / 김사달 / 김효임 김효주 자매 / 쌍둥이 교도관 / 춘성 선사 / 그 할머니의 노망 / 게으름뱅이 / 청계천의 밤 / 지팡이 / 고광순 / 소  식 / 무덤도둑 유씨 형제 / 박영석 / 어떤 춘향가 / 임춘자 / 임종률 / 끄나풀 / 마루야마 천황 / 석  녀 / 늙은 농부 / 권정생 / 열두살짜리 점쟁이 / 월명과 더불어 / 성칠이 병국이 / 유성온천 옥화정 / 어떤 귀향 / 이학수 / 운허 스님 / 70년대 젊은이의 밤 유재현 / 백제 무왕 / 대기 주례 / 어린 함석헌의 스승 / 조학래 / 유종호 / 개집안 / 도동의 밤 / 신림동 산동네 이발사 / 김윤식 / 최인훈 / 이장규 / 정점이 할머니 / 임경명 / 섬진강 처녀 / 두 소리꾼 / 윤수경 / 이혜경 / 오  글 / 여  운 / 알몸 농성 / 탁명환 / 노여사 / 이승만 혹은 리승만 / 장봉화 / 초정약수 가족회 / 늙은 위안부 / 배꽃큰계집배움터 / 보리밭 / 에스컬레이터 / 어떤 아이 / 까  치 / '새얼' 모임 / 김진규 소장 / 강연균 / 거지 없는 날 / 허만 칸 / 김봉우

찾아보기

 

가짜 김종필

 

1961년 북한의 남로당 잔존인물 황태성이

임진강 건너

남한에 왔다 쉿

 

그는 경북 선산

김종필의 장모를 통해서

중앙정보부 김종필을 만나자 했다

김종필은 직접 만나기보다

그를 닮은

치안국 정보과 경감 박문병을 보냈다

서울 반도호텔 735호실

30대 미남이었던 김종필

그러나 그 무렵

아직 텔레비전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신문이나 잡지 동판사진이

흐릿하였으므로

 

가짜 김종필이 만나든지

아니

진짜 김종필이 만나든지

끝내 황태성은 박정희 김성곤과의 옛 동지임에도

교수형으로

그 시체 내려졌다

 

김성곤

 

눈 서글서글

코 아래 수염 서글서글

마음속 횅뎅그렁하다

아이들이 돈 10원 달라 하면 듬뿍 2백원 준다

해방 직후

대구의 어느해 10월

박상희 황태성과 함께

그 가을의 항쟁을 주도한 재정부장이었다

 

그 뒤 사변 지나

두 마리 용으로 이름 지어

쌍용시멘트

쌍용증권

그리고 동양통신

 

그 두꺼운 손바닥

그 깊숙한 주머니 항상 두둑했다

 

궂은 날 질퍽질퍽한 인심

70년대 초

정계에 발 들여놓아

여당 공화당을 손아귀에 쥐었는데

 

항명파동으로

그 수염 몽땅 뽑혔다 온몸 짓이겨졌다

남산 지하실에서

'이 새끼 이 빨갱이새끼 제 버릇 못 버리고!'

그곳에서 나와

정치도

사업도

그리고 삶도 허허벌판

떠도는 구름이 차라리 옳았다

그렇게 구름이 되어 불현듯 떠나갔다

 

차범석

 

옛날 이야기일까봐

접싯불

참기름불 맑은 불빛 밑

아리따운 아가씨

정성껏 수놓은 수(繡) 같은 사람

그 수틀 위

작약꽃이거나

한쌍 두루미 가운데

암두루미 같은 사람

 

그가 한국 현대연극의 무대 위에서나 뒤에서나

언제나 팔짱 끼고

꼼짝 않고 서 있는 사람

부지런하기는

묵은 빚 일부 받아낸 듯한 이른 아침 잰거름의 사람

 

어디 한 극단 '산울림'만인가

여기도

저기도

그가 가면 알뜰살뜰한 연극 3막 5장이

막 올려

관객들은 그 집안 식구였다

 

말 한마디도 바지 아래

곱게 맨 옥색 대님같이 얌전하기만 하다

 

목포 유달산 제1봉 바위 비탈 아래

나이 먹어도 그대로인

이렇듯 곱단이 꽃의 남정네 태어날 줄이야

차범석 그 사람

 

전형필

 

증조부는 종로 운종가 일대

배오개 일대

상권을 손아귀에 넣어

10만석 거부

 

일제시대 아버지 전영기는 중추원 의관

그런 거부와

그런 유산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 뒤

 

온갖 영달의 기회 가만히 놔두고

은근히

오세창과 교유하는 동안

일제가 가져가는 문화재들을 사들였다

고려청자 운학문 상감청자

그 향기로운 모습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석조 미륵보살 입상

아니

단원 혜원

아니 추사

그런 서화골동과 석물들이 모여

겨레의 문화를 너와 나 함께 지키다가 세상 떠나니

 

채명신

 

구 사이공 호치민시 도심에는

옛날 왕실 공주의 저택이었던 양관이 있다

그곳이 주월한국군사령부

첫 사령관 채명신은

그곳에만 있지 않았다

그 뒤의 이세호는 배가 나왔으나

그는 배가 나오지 않았다

눈썹이 처마처럼 튀어나와

건계의 햇빛이나 우계의 비를 막았다

 

월남전쟁은 무엇인가

월남전쟁으로 이룬 경기는 무엇인가

어쩔 수 없이

한국의 70년대의 자화상이었다

모독을 몰라야 하는

 

오창영

 

창경궁 동물원 이래

몇십년 동안

동물원의 새 한마리 남아 있지 않을 때

그 전쟁 이후

한푼

두푼 모급해서

 

호랑이와도 친구였고

돌고래와도

원숭이와도 친구였다

 

과묵하구나

다른 길 모르는 표정

머리숱 숯빛으로 짙구나

 

시시껄렁한 사람보다

짐승과 더 많이 산 사람

 

사람은 동물원 따위를 만들었다

그러기 전에 사람은

사람의 감옥을 만들었다

 

이명박

 

23세 이사

35세 사장

46세 회장

 

70년대 개발연대기에는

한 샐러리맨이 이렇게 솟아올랐다

 

그 이름 이명박은

언제나 정주영의 이름 옆에 있었다

 

부디 그의 신화가 더 이어질수록

개발이 악이 아니라 선이기를

개발이 정치가 아니기를

 

어디서 잠깐 스칠 때

그 작은 눈

그 볼품없는 얼굴만이 보인다

정작 그 지략과 추진력의 힘은 몸안에 있다

 

이종찬

 

일제 36년 끝장났을 때

중국 오지 중경에서

멀리 동으로 동으로

상해까지 오는 데도 아득하였다

 

상해에서는

바다 건너에 조국이 있다

 

작은할아버지 이시영옹 옆에

어린아이 종찬이 서서

사진 찍었다

 

그 어린이는 돌아와 가난했다

경기중학 다닌 뒤

그래서 사관학교로 갔다

흡사 서간도 신흥군관학교인 듯이

 

그 젊은이가 정보장교가 되어

여당에 몸담기까지

그 뒤

야당에 몸담기까지

그 정치 1번지 종로 일대의 한 시절

 

정치가 가야금 산조라면 얼마나 좋으리

달 밝은 밤

가야금 산조 마친 뒤의

그 고요라면 얼마나 좋으리

 

이승만 혹은 리승만

 

차라리 국부(國父)라는 것 없는 것도 심심치 않음이로다

리승만 혹은 승만 리

그의 구어체와 문어체의 무차별

지난날 상해 임시정부나

하와이 독립운동에서의

주머닛돈과 쌈짓돈의 무차별

오직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면 살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죽을 것이로다

 

그의 뜻대로

현대 한국정치는

그의 실패에 의해서 실패가 모방되고 있다

 

그의 생애는 갈등과 불화 그의 씰룩씰룩 안면 경련

그리고 전쟁이었다

그 전쟁 지나서 그는

지난날의 하와이로 떠났다

 

미국제 관에 누워 안면 경련 멈춘 평화로 굳어버린 채

고국에 돌아왔다

동아시아 군웅들이여

모름지기 그를 본받아 성취하고 실패하라

내일은 내일에 맡겨라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31 선암사


글 / 이계표, 천득염, 최인선●사진 / 이돈기, 최인선

2003,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3


082

빛12ㄷ  236


빛깔있는 책들 236


이계표(연혁)--------------------------------------------------------------------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전남대, 목포대학교 사학과 강사와 광주시사편찬상임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광주대, 여수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는 한편 문화재전문위원, 남도불교문화연구회장으로서 불교사 조사 ·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신라 하대의 가지산문」, 「신돈의 화엄신앙과 공민왕」, 「전남의 사찰 Ⅰ(연혁)」 등 여러 편이 있다.


천득염(건축)--------------------------------------------------------------------

전남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하버드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수학하였으며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건축사, 서양건축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백제계석탑의 조형특성과 변천에 관한 연구」를 비롯하여 불탑 관련 논문을 20여 편 발표하였다. 저서로는 『전남의 전통건축』, 『운주사』, 『전탑』, 『향토사의 길잡이』, 『한국의 명원, 소쇄원』 등 다수가 있다.


최인선(유물)--------------------------------------------------------------------

전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겸 박물관 조사부장으로 있으며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 도선의 부도전지와 석관」, 「순천 금둔사지 석불비상에 대한 고찰」, 「강진 옥련사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복장」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가지산 보림사』, 『한국철불연구』, 『광양옥룡사지 Ⅰ』, 『호남의 불교문화와 불교 유적』 등 다수가 있다.


이돈기(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라남도 순천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궁』, 『탈』, 『전남 동부지역 유적과 유물』 등 전통 문화에 관련된 사진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차례|


천년 고찰 선암사

선암사의 역사와 승려

가람 배치와 건축

선암사의 유물

선암사 가는 길

참고 문헌


조계산 선암사 전경



선암사 장승  입구의 부도밭을 지나면 길가에 장승 한 쌍이 서 있는데 모두 남자이다. 밤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몸통에는 '방생정계(放生淨界)'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세 가닥 수염을 늘어뜨리고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왠지 친근한 느낌을 준다.

대각암 대선루  정유재란 때 전라도의 사찰은 왜군의 침략으로 거의 불에 타거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선암사 역시 초도화되어 대부분 흔적조차 없게 되었다. 이 건물은 순조 19년(1819)에 중수한 것이다.

선암사 차밭  장경각 뒤로 난 좁은 문을 지나 경내를 벗어나면 차밭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만든 차는 맛과 향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호암 약휴 영정  선암사의 제5차 중창주로 정유재란 이후 모두 불타버린 선암사를 복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선암사 소장. 사진 : 성보문화재연구원.

「선암사중창건도」  선암사의 각종 건물은 물론 다소 떨어진 암자까지 그려져 있는 귀한 자료로, 선암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특히 도면 위에 기문이 있어 가람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승선교  다리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속계에서 선계로 오르는 정취를 자아낼 만큼 주변의 경치나 분위기가 극적이고 아름답다. 반원형의 아치지만 물에 비친 반원과 이어져 가득한 원을 이룬다. 요석(중심돌, 아래) 아래는 조그마한 석재를 빼내어 신기한 모습을 이루는데 마치 용의 모습 같다.

강선루  사찰의 출입용 문루 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중층 누각이다. 사찰의 실질적인 경역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일주문  사찰의 권위를 표현하고 금표나 경계의 기능을 갖는다. 일주문 양쪽으로 담장이 연결되었고 돌계단으로 층계가 연결되어 있다.

만세루  강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건물이다.

대웅전  사찰의 주불전으로,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된 뒤 현종 원년에 경잠, 경준, 문정 세 대사가 주축이 되어 현재의 대웅전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모습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 양식의 팔작집으로 장엄하고 화려하다.

불조전  사찰의 개창자나 중창자, 중수자 및 역대 주지들이 모셔지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팔작기와집으로 주심포 형식에 익공 형식이 가미된 조선 후기 건물이다.

원통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아담한 건물로 정면에 각각 두 개의 기둥과 활주를 내어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T자형 평면을 이룬다. 내부에는 '대복전'이라는 순조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장경각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주심포와 익공 형식을 혼합한 모습으로 조선 후기 목조 건축에서 흔히 나타난다.

삼성각  대웅전 북서쪽에 있는 조그맣게 간결한 건물이다. 여느 사찰의 삼성각과 마찬가지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응진당  선암사의 경역 내에서는 가장 뒤쪽에 있는 조그마한 승원이며 이 영역의 주불전이다. 중심축 좌측에는 달마전이, 우측에는 진영당이 배치되어 있다.

진영당  선암사 큰스님들의 진영을 모셔 놓은 곳으로 조촐하고 조그마한 건물이다.

무우전  선암사에서는 제일 외진 곳에 위치하여 선방으로는 적격이다. 사찰의 요사체라기 보다는 양반집을 연상케 하는 건물이다.

대변소  '뒤ㅅ간'이라는 현판이 붙은 T자형 건물이다. 바닥의 짜임이 우수하고 남 · 여 칸을 구분하거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2열로 배치한 고려가 흥미롭다.

각황전 철조 여래좌상  각황전에 봉안되어 있는 주존불이다. 정유재란 때 크게 손상을 입어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으며 현재는 개금한 상태이다.

마애여래입상  높이가 5미터에 이르며 상호가 다소 이국적이다. 드러난 가슴 부위에는 卍자가 선명하고 크게 새겨져 있다.

천불전 금동 관음보살좌상  원대 라마교 불상 계열에 속한 이국풍의 보살상이다. 머리에 쓴 보관은 삼면관의 형태이며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처음 출토되었을 때는 검게 그을려 있었는데 지금은 개금하여 아주 화사해 보인다.

대웅전 목조 여래좌상  규모가 큰 목불로 위엄이 있어 보이나 조각 기법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조성 양식과 대웅전 건물의 중창 사실 등을 종합해 볼 때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응향각 목조 비로자나불좌상  높이가 5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소형 목조불로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인다.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오른손 전체를 감싸는 특이한 수인 형식을 보인다.

팔상전 목조 아미타여래상  높이 82센티미터에 비슷한 형식을 보이는 2구의 불상은 17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불조전 목조 53불상과 과거7불상  60불이 모두 거의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호를 약간 숙이고 눈은 수평이며 입은 작다.

동3층석탑  서쪽의 3층석탑과 함께 보물 제395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 개의 석탑은 외관상으로는 크기와 양식이 서로 비슷하여 동시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씩 다른 양식을 보인다.

동3층석탑 발견 금동사리탑  8각을 기본으로 한 원당형 탑이다. 중앙에 원추형의 기둥이 있는데 윗면을 반구형으로 파서 사리를 봉안하게 하였다. 그 기둥을 수정체 8각 뚜껑으로 덮고 다시 금동의 전각형 뚜껑을 덮게 되어 있다.

북부도  8각원당형으로 신라 석조 부도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선암사의 3부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작이다. 보물 제1184호.

동부도  선암사 부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석조물로서 기단부와 탑신부에 비해 옥개석이 과장되게 큰 것이 특징이다. 보물 제1185호.

대각암부도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 중대석이 균형을 잃고 있으나 옥개석의 장중함이나 하대석의 정교한 구름문은 통일신라시대의 기법을 보여 준다. 보물 제1117호.

선암사 입구 탑비전  현재 11기의 부도와 8기의 비가 있다. 이들 부도 형식은 대부분 오륜형이며, 계음당부도와 침굉당부도가 석종형을 하고 있고, 화산대사부도(아래) 만이 특수형으로 4사자부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부도전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 삼인당에 이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곳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약 100미터 정도를 올라가면오른쪽 산기슭에 서부도전이 위치한다. 여기에는 석종형과 오륜형의 조선시대 부도 12기가 봉안되어 있다.

선암사중수비와 사적비  2기 모두 귀부 위에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올려 놓은 통식의 귀부비이다.

괴불  가로 682센티미터, 세로 1,215센티미터의 거대한 석가모니 불화이다. 장중하면서도 간결하여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 준다.

대각국사 영정  선암사에는 여러 조사들의 영정이 소장되어 있는데, 대부분 기록이 없어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없다. 대각국사 영정은 가로 103센티미터, 세로 127센티미터로 오른쪽을 향한 측면상이다. 보물 제1044호. 사진 : 유남해.

'순치 14년' 명 범종  현재 대각암에 있으나 원래는 보성 대원사 부도암에 있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높이는 83.6센티미터이며 주조의 조각미가 뛰어나 조선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은입사 향로  전형적인 고려 향완 형식으로 은입사 기법을 이용하여 문양을 넣었다. 동제로 깊은 완형 위에 넓게 수평으로 퍼지는 전이 달린 노신과 밑이 나팔 모양으로 퍼지는 높은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높이 29.5센티미터.

'숭정 6년' 명 향로  노신과 받침이 분리되는 결구식으로, 나팔형으로 퍼지는 받침 하단 윗면에 가는 침을 사용해서 명문을 점선으로 새겼다. 전체 높이 32센티미터.

금란가사  대각국사 의천의 가사로 고려 선종 4년에 왕이 하사한 것으로 전한다. 긴 사각형이며 비단 바탕에 금실로 글자와 무늬를 전면에 가득 짜 넣었다.

용문탁의  금란가사와 함께 의천의 유품으로 전한다. 법상의 덮개, 곧 탁상보로 짐작되는 데 문양과 글씨를 금사로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길이 216.5센티미터, 너비 118센티미터.

삼인당  신라 경문왕 2년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한다. 타원형이며 연못 안에 긴 계란형 섬이 있다. 1996년 순천전통문화보존회(회장 박관수)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

달마전 석조  사각형의 석조 1기와 원형의 석조 3기가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 잇대어 있다. 서로의 높낮이와 크기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30 만인보  - 70년대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2

 

811.6

고67만  14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이우재 / 유영모 / 강희남 / 황한식 / 천영초 / 이호웅 / 민종덕 / 한  신 / 최권행 / 어느 고등학생 / 박희범 / 백작부인 이옥경 / 백영서 / 성남옥 / 안성열 / 박한상 / 김진홍 / 서임수 / 이위종 / 서경원 / 신인령 / 이양구 / 김영준 / 김  형 / 군부대신 이근택 / 정진동과 더불어 / 양  홍 / 권근술 / 손창섭 / 대전역 보선원 임씨 / 창신동 노파 / 고흥의 한 영감 / 오대영 / 권오헌 / 박영록 / 이이화 / 조승혁 / 박광서 / 은명기 / 김덕생 / 최정순 / 이을호 / 박지동 / 금호동 김씨 / 이경배 / 예  종 / 이종욱 / 음력 정월 명동성당 앞길 / 욕쟁이 아저씨 / 조정하 / 원  택 / 성  철 / 김사형 / 성  종 / 이직형 / 박종만 / 최민석 / 임중빈 / 문병란 / 지철로왕 / 한창기 / 이상신 / 조세희 / 이낙호라는 사람 / 스승들 / 삼  대 / 윤필용 / 윤구병 / 박완서 / 월산 선사 / 한경남 / 최장학 / 박재봉 / 김중배 / 어린이의 날 / 성한표 / 강문규 / 김지길 / 양관수 / 신라말 경명왕 / 제  칼 / 김도연 / 심재택 심재원 형제 / 정신 이상의 아내 / 권영빈 / 홍지영 / 정창렬 / 두 청소부 / 최  동 / 오직 '물러가라 !' / 신석초 / 송언형 / 김동우 / 이태복 / 함윤식 / 1971년 4월 19일 / 해남 일지암터 / 차옥숭 / 이근후 / 서중석 / 해부루 / 아브라함 집안 / 김상철 / 민주회복국민회의 / 조선 중종의 눈 / 김규동 / 김도현 / 이중한 / 최병서 김선주 / 조춘구 / 유인택 / 신직수 / 함병춘 / 이범석 / 안양노 / 박범진 / 박종태 / 김종규 / 안병직 / 김민기 / 양희은 / 재수생 / 단계벼루 / 김영환 / 박인배 / 양호민 / 윤걸이

 

조세희

 

우툴두툴한 마른 유자껍질 얼굴의 젊은 작가

갈색의 작가

막 건져올린

남대천 귀향의 연어이기도 한 작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것이 70년대 현실과 상징 사이

끈질긴 문학의 암초일 줄이야

 

그렇다 모두 다 난장이었다

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누구인가

 

조세희는 그것을 쓰고 시대의 잠수부가 되어

늘 물위에 떠오르지 않은 채

물속의 중세 근세를 헤험치다 솟아올라

물위의 오늘을 보았다

 

그는 끝내 글을 버리고 사진을 찍고 찍었다

 

박완서

 

개성 가는 길

개성 못 미쳐

개풍 있다

서울역에서 거기까지만 가도

경의선 살아나겠다

 

박완서

딸 여섯

아들 하나 출무성히 길러

시집 보낸 딸도 있는데

 

그 오랜 주부노릇 끝에 소설을 시작했다

 

저 50년대

전쟁과 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그 폐허의 순정이던

화가 박수근을 기억했다가 소설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가장 부지런한 소설가였다

때로는 인간에 대해서

무자비하리만큼 후벼내어

 

마치 고깔쓴 이승의 승무인 양 날렵하고

입안에 장수(長壽) 이빨이 다른 사람보다 많다

그 눈은 순하건만

세상을 볼 때는 칼날이기도 한가

 

그가 본 세상의 한 귀퉁이 피가 난다

 

이범석

 

놀랍다 그에게는 문학이 가능했다

어린 시절 경성고보 다니다가

그 길로 뛰쳐나가

대륙의 혁명가가 되었다

말 달리던 시절

그는 말 탄 전사가 되었다

그의 문학적 기질

그의 무용담(武勇談)의 주역이 되게 했다

 

청산리전투의 일선 지휘관

 

소만 국경

중국 오지

그리고 해방 후 돌아와

초대 국무총리였다

 

국가지상

민족지상

 

그러나 그의 민족청년단 계보는 무너졌다

어느 만큼 그의 우등불에는 허구가 깃들였고

어느만큼 그의 무골에는 낭만이 서려 있다

 

오로지 말 한필과

지난날의 벌판을 기억햇다

그러다가

말 남겨두고

그가 떠났다

철기 이범석

그의 이름 뒤에는 반드시 장군이었다


김민기


그 시절 비 오는 날

맨발로

도시의 거리를 헤매기도 하였지


어두운 시대

그가 지은 노래들은

국가(國歌)였지

독재의 나날

대학생에게도

제적생에게도


정작 그는 미행당하며

어디 가서 농사도 지었지


그러나 그의 노래는 한 시대의 광장과 골목에서 마음껏 퍼져나갔지


양희은


60년대 청년문화 그리고 통기타

서강대 사학과 여학생인데

이미 한 가족을 꾸려가는 가장이었다

양희은


그의 당당한 목소리에 와서

몇십년의 청승인 이난영 황금실 이미자가 아니었다

김추자가 나왔다


그런 노래 저쪽에서

70년대 「아침이슬」이 새로 들려왔다

응혈의 음색

투원반의 음향

슬픔도 슬픔이 아닌 의지


겨울공화국 나뭇가지들에 바람이 걸려 울었다


양희은과

양희은의 비겁할 줄 모르는 통기타


치사할 줄 모르는 노래

이 셋이 시대의 자유를 꿈꾸었다 모두와 함께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9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김대식 지음

2014, 문학동네



대야도서관

SB101443


511.1813

김23ㄴ


카 이 스 트   김 대 식   교 수 의   말 랑 말 랑   뇌 과 학


사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뇌가 쓴 소설'이다?

책을 보듯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복잡한 세상,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속……

뇌과학으로 보면 모든 것이 명쾌해진다!


조선일보 인기과학칼럼

<김대식 교수의 브레인 스토리>


당신 뇌는 당신과 생각이 좀 다르다!

당신도 모르게…… 당신의 뇌가 벌이는 일들은?


4000원짜리 커피가 2000원짜리 커피보다 맛있는 이유?

우리는 선택하지 않는다. 뇌가 한 선택을 '정당화'할 뿐이다!


어제 먹은 점심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린 시절 부른 만화 주제가는 또렷이 기억난다고?

뇌는 정보를 '제목' 위주로 '압축'해서 기억한다!

대부분의 기억은 '뇌가 쓴 소설'에 불과하다!


왜 '우리'는 '그들'을 싫어하는가?

'우리=유전적 동지' '타인=유전적 경쟁자'!

뇌는 기본적으로 '편가르기'를 좋아한다!


지은이 김대식

KAIST 전기및전자과 교수. 독일 막스-플랑크뇌과학연구소 Max-Planck Institut fur Himforschung에서 뇌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MIT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이후 일본 이화학연구소 RIKEN 연구원으로 재직 했으며,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조교수, 보스턴 대학교 부교수로 근무했다. 주로 뇌과학과 뇌공학, 사회 뇌과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조선일보에 뇌과학 칼럼 <김대식 교수의 브레인 스토리>,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중이다.


차례


프롤로그

지금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Part 01


Brain Story 01

사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뇌가 쓴 소설'이다


Brain Story 02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절대로 …


Brain Story 03

팔은 안으로 굽고, 생각도 안으로 굽는다?


Brain Story 04

우리는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을 '정당화'할 뿐이다


Brain Story 05

내 머릿속엔 '수많은 나'가 살고 있다


Part 02


Brain Story 06

책을 보듯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Brain Story 07

우리는 왜 꿈을 꾸는 걸까


Brain Story 08

나 자신을 복제할 수 있을까


Brain Story 09

뇌도 얼마든지 '젊게' 만들 수 있다


Brain Story 10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Part 03


Brain Story 11

나는 과연 누구인가


Brain Story 12

만약 눈이 하나였다면?


Brain Story 13

외모에 관한 몇 가지 진실


Brain Story 14

머리가 나쁘면 정말 몸이 고생할까


Brain Story 15

언어가 지구 지배를 위한 도구라고?


Part 04


Brain Story 16

왜 '우리'는 '그들'을 싫어하는가


Brain Story 17

무엇이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가


Brain Story 18

우리는 좀 우울해질 필요가 있다?


Brain Story 19

집착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Brain Story 20

우리는 왜 갈수록 잔인해지는가


Part 05


Brain Story 21

생각의 길이 많을수록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Brain Story 22

뇌과학으로 협상의 달인이 되는 법


Brain Story 23

아프니까 사람이다? 만약 아픔이 없다면……


Brain Story 24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치들


Brain Story 25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이 온다면……


에필로그

뇌가 아는 것을 본 것이 세상이다




프롤로그


지금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며, 내 운명의 주인이다."

- 윌리엄 헨리 William Henry, 영국의 화학자


"헨리, 정말 당신이 영혼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흠, 글쎄……"

- 헨리의 뇌

자신의 머리를 관통한 쇠파이프를 든 피니스 게이지

뇌 영상 기술을 통해 쇠파이프가 게이지의 전두엽을 관통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뇌 속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P a r t  0 1



Brain Story 01


사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뇌가 쓴 소설'이다



"기억력이란 마치 돌과 같아서

산의 작용으로 시간이 지나고 거리가 멀어지면

점점 부식한다."

우로 베티 Ugo Betti, 이탈리아의 극작가

50여 년간 매일매일 자신을 잃어버렸던 헨리 몰레이슨


머지않아 원하는 기억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행복한 기억을 돈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Brain Story 02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절대로




양쪽 하얀 동그라미의 크기는 똑같지만, 더 작은 동그라미에 둘러싸인 왼쪽 동그라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Brain Story 03


팔은 안으로 굽고, 생각도 안으로 굽는다?



인간은 어두운 곳에선 이기적으로, 밝은 곳에선 이타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갓 태어난 오리의 결정적 시기 동안 어미 역할을 해 평생 새끼 오리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한 콘라트 로렌츠 교수(우)



Brain Story 04


우리는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을 '정당화'할 뿐이다.


 





Brain Story 05


내 머릿속엔 '수많은 나'가 살고 있다




P a r t   0 2



Brain Story 06


책을 보듯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기계인간 로보캅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로마시대 공중화장실. 칸막이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은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Brain Story 07


우리는 왜 꿈을 꾸는 걸까



"우리는 꿈의 재료이며 우리의 짧은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셰익스피어

꿈은 REM 수면상태에 있는 동안에 꾼다. 우리는 잠잘 때마다 여러 번 REM 수면을 경험한다.

프랜시스 크릭은 꿈은 뇌의 쓰레기통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Brain Story 08


나 자신을 복제할 수 있을까





Brain Story 09


뇌도 얼마든지 '젊게' 만들 수 있다




비디오게임으로 다시 뇌를 젊게 할 수 있을까

삼매에 빠진 석가모니, 석굴암

명상하는 뇌는 시공간에서 자유로워진다


Brain Story 10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인간은 어떻게 이 다양한 모습을 '개'라는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할까

뇌와 컴퓨터는 질적으로 다른 논리 기반으로 정보를 처리한다고 주장한 존 폰 노이만

미국 국가안보국 인터넷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 로고

 

P a r t   0 3

 


Brain Story 11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뇌는 끊임없이 정체성을 질문한다

뇌는 출생 전에 이미 많은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Brain Story 12


만약 눈이 하나였다면?


폴리페모스의 눈이 두 개였다면, 오디세우스가 탈출할 수 있었을까?

뇌과학자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기보다 공학적 실패작에 가깝다


Brain Story 13


외모에 관한 몇 가지 진실


(위) 오스트리아 해부학자 갈이 제시한 부위별 특징을 보여주는 두개골 모델. (아래) 프란츠 갈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을 맡은 영화 <클레오파트라>(1963)

 

육체와 정신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까

 


Brain Story 15


 

언어가 지구 지배를 위한 도구라고?


 

페이스북에 '좋아요' 버튼은 신세대 이 잡기 놀이인지도 모른다

 

 P a r t   0 4

 


Brain Story 16


왜 '우리'는 '그들'을 싫어하는가


 

 왜 인간은 항상

 '우리'와 '그늘'을 나누려고 할까?

 

 '그들'은

 왜 늘 '우리'의 적이 될 수밖에 없을까?

 

인간의 뇌가 같은 편으로 인식할 수 있는 다른 인간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

앨런 튜링이 판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에니그마'

인간의 뇌는 마치 양파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새로운 뇌 구조가 예전 구조를 덮어씌우면서 진화한 것이다.

 


Brain Story 17


무엇이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가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된 '전쟁 두루마리'

대부분 시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 영장류에게 빛은 '안전'이고 어둠은 '위험'이다

'벽'은 인류에게 항상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피하고 싶은 외부의 무언가를 외면하거나 더이상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벽을 쌓는다. 하지만 아무리 거대하고 단단한 벽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그 벽을 넘는다



Brain Story 18


우리는 좀 우울해질 필요가 있다?





Brain Story 19


집착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Brain Story 20


우리는 왜 갈수록 잔인해지는가


'화성 운하'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천문학자 로웰

남편을 죽이고 권력을 쟁탈한 조에 포르피로게니타


P a r t   0 5



Brain Story 21


생각의 길이 많을수록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Brain Story 22


뇌과학으로 협상의 달인이 되는 법


 

"최고의 협상은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방이 말하거나 행하게 하는 것이다."

- 다니엘 발레 Daniel Vare, 이탈리아의 협상 전문가

 

위급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면

상대방의 목적을 이해하는 게 핵심이다.

 


Brain Story 23


아프니까 사람이다? 만약 아픔이 없다면……


 

 


Brain Story 24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치들


 

 

유대인을 증오했던 유대인, 오토 바이닝거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보존개념' 실험

 


Brain Story 25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이 온다면……


 

 

DARPA 로봇 경진대회에 참여한 '아틀라스' 로봇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러디즘'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기계를 파괴하기까지 했다.

 


에필로그


뇌가 아는 것을 본 것이 세상이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8 혼자 가는 미술관


박현정 미술 산문집

2014, 한권의 책



대야도서관

SB101485


609

박94ㅎ


기억이 머무는 열두 개의 집


비로소 혼자가 되는 시간 그리고 그림


"미술관에 혼자 간 적이 있습니까?"


학생이나 시민들에게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제나 '교양주의'의 벽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추어야 할 '교양'의 하나로서 미술과 마주하려고 한다. "이 그림은 무슨 파에 속해요?"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나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인 가요?" "가격은 얼마나 됩니까?" 이러한 질문은 모두 미술과 대화할 때 생기는 방해물이다. 미술을 본다는 행위는 말하자면 맨몸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떤 그림 앞에 서서 지인에게 "이 그림, 좋은데…"라고 말했을 때 "이런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어?"라고 질문을 받으면 당혹스러움을 넘어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 자신의 고유한 감각이 부정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따분하다고 느껴지는 그림 앞에서 친구가 한참을 떠나지 못하면 빨리 다른 그림을 보러 가고 싶어 애가 타기도 한다.

그래서 미술관은 혼자 가는 편이 좋다. 조용히 작품과 대면하고, 마음을 울리는 그림이 있다면 반나절 넘게 그 앞에서 머물러도 좋으며, 지루한 그림은 10초 정도만 바라보고 떠나도 상관없다. 요컨대 자유로워지면 되는 것이다. 자유롭게 미술과 마주할 때,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작품을 만든 작가는 물론, 그 작품과 관련된 외국인이건, 과거의 사람이건, 인사 한번 나눈 적 없는 사람과도 마주할 수 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마음속에서 대화가 시작되고, 그로써 자신을 재발견하게 된다. 이런 만남이야말로 작품을 마주할 때의 커다란 기쁨이자 경이로움이다. 화가와 시대배경에 대한 조사는 진짜 흥미가 일어난 후에 시작해도 좋다.

이 책은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한 여성이 혼자서 미술과 나누는 대화의 기록이자 그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ㅘ며, 그녀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풍경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미술이란 갖추어야 할 교양이라기보다 이렇듯 자연스레 마주하며 이야기하고 싶은 대상이다.

-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


박현정

서울에서 태어났다. 삼십 년 가까이 삼선교에서 살다가 2003년부터 일본 지바 현에 거주했으며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도쿄미술관 기행서 『아트, 도쿄』(공저)를 냈고 번역한 책으로는 『앙리 드 툴루즈 로드레크』, 『처음 읽는 서양미술사』 등이 있다.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과정을 거쳐 도쿄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차례


01 천경자 | 아무도 탐내지 않을 고독한 사막의 여왕 되기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02 배영환 |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

⊙ 삼성미술관 플라토

03 오얏꽃 문양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번지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04 닭모양 토기 | 이 세상 어디에도 사랑은 없고

⊙ 호림아트센터


05 서용선 | 1456년 그해 초여름, 사육신

⊙ 학고재

06 윤석남 | 모성의 진화

⊙ 아르코 미술관

07 정재호 | 시간이 사는 집

⊙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

08 십장생도 | 아희야 무릉이 어디오

⊙ 국립고궁박물관


09 프란시스 베이컨 | 그녀들의 방, 리스 뮤스 7번지

⊙ 삼성미술관 리움

10 빌 비올라 | 시간 속에 머무르기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1 야나기 미와 | 대학 동의 B양에게

⊙ 서울대학교미술관

12 강덕경 |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겪은 일을 다 알았으면 좋겠어

⊙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01 천경자

Chun, Kyung-ja

생태 1951


아무도 탐내지 않을

고독한 사막의 여왕 되기


그녀는 고독하거나 절망스러울 때면 늘 뱀을 그리고 싶어했다.


"나는 홀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걷잡을 수 없는 고독이 거울을 치면서 나를 울게 했다."

- 천경자

⊙ 천경자 「누가 울어 2」

1989, color on paper, 79×99cm

⊙ 천경자 「생태」

1951, color on paper, 51.5×87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그렇다. 사막의 여왕이 되자. 오직 모래와 태양과 바람, 그리고 죽음의 세계뿐인 곳에서, 아무도 탐내지 않을 고독한 사막의 여왕이 되자."

- 천경자

⊙ 「화가의 방」

'천경자의 혼' 전시실 내부


02 배영환

Bae, Young-whan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 2012


황금의 링

- 아름다운 지옥


그때 우린 분명 함께 링에 올랐다.


"유행가만큼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도 없다."

- 배영환

◎ 배영환 「황금의 링 - 아름다운 지옥 Golden Ring - A Beautiful Hell」

2012, gold paint on wood and steel, 350×350×150cm

◎ 배영환 「젊은미소 Young Smile」

1997, print on paper, 22×29cm

 

03 오얏꽃 문양

李花文樣

19세기말 무렵

 

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번지

 

일단 제가 관심을 기울이자 오얏꽃은 서울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고종 즉위 40년 청경기념비(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번지)

◎ 덕수궁 석조전

◎ 덕수궁 중화전 마당의 품계석

◎ 덕수궁 정관헌

 

04 닭모양 토기

鷄形土器

원삼국 3세기

 

이 세상 어디에도

사랑은 없고

 

기억에서 건져 올린 것은 귀여운 병아리의 눈이 아니라

이제 막 닭이 된 병아리의 길고 뾰족한 눈이었다.

◎ 호림아트센터

◎ 호림아트센터

◎ 「닭모양 토기」

원삼국 3세기, 높이 42.6cm

호림박물관 소장

 

사랑은 떠나갔네

이 세상 어디에도 사랑은 없고

다만 내 맘 속에

 

생각이 꼬리를 무네

앙금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탑처럼 솟아올라

 

쿠쿠루쿠쿠 팔로마 아야야야야 비둘기

쿠쿠루쿠쿠 팔로마 잿빛 구름 속 사라져

 

미움의 술이 흐르고

슬픔이 흥건할 때

오래된 기억의

가시넝쿨이

치렁치렁 날 감싸

어때요, 내 목에 걸린

피 흐른 심장을 쪼아 먹네

- 3호선버터플라이, 쿠쿠루쿠쿠 비둘기

 

05 서용선

Suh Yong-sun

심문, 노량진, 매월당 1987-1990

 

1456년 그해 초여름,

사육신

 

26년 전 그림 속에서 사육신과 만난 순간이 있었다.

화면 속에 묶여 있는 당신은 박팽년인지도 모른다.

◎ 학고재 學古齋

◎ 서용선 「심문, 노량진, 매월당」

1987-1990, oil on canvas, 180×2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봄 골짝에 토한 피가 흘러 꽃 붉게 떨어지는구나.

하늘은 귀 먹어서 저 하소연 못 듣는데

어쩌다 서러운 이 몸 귀만 홀로 밝았는고.

- 단종

 

"우리가 역사와 신화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데 비극이 있다.

망각은 인간에게 치유와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 서용선

◎ 서용선 「소음」

1991, acrylic on canvas, 181.5×226.5cm.

개인 소장

◎ 학고재

 

06 윤석남

Yun, Suk-nam

핑크룸 Ⅳ 1995

 

모성의 진화

 

계절이 바뀌어도 취업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왔다.

 

"나는 정말이지 어깨동무하는 것처럼 신체가 길게 늘어나서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 그러나 삶 속에선 같은 여성들끼리도 잘 닿아지지 않는다."

- 윤석남

◎ 윤석남 「핑크룸 Ⅳ」

1995, mixed media, installation view, variable size

Edition 4 piece_ Queensland Art Gallery, Brisbane, Australia / Taipei city Museum /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Ansan, Korea / artist's collection

◎ 윤석남 「손이 열이라도」

1985, acrylic on paper, 105×75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 윤석남 「허난설헌」

2005, mixed media, 115×170×10cm

작가 소장

 

"나는 제 자식만 아는 사람들이 싫다. 그건 모성이 아니라 이기심일 뿐이다. 자식을 사랑하다 보니 주변까지 아우르게 되는 것. 자기의 사랑을 사회로 확장하는 것. 가령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하는 것이 모성이다."

- 윤석남

◎ '윤석남 1,025 : 사람과 사람 없이 전'

◎ 윤석남 「어머니 Ⅱ - 딸과 아들」

1992, acrylic on wood, pastel, 170×180cm, variable size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07 정재호

Jung, Jae-ho

리버사이드 호텔 2005

 

시간이 사는 집

 

'도시의 흉물'로 불리며,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건물들이 여기서는 주인공이다.

◎ 서울시립 남서울 생활미술관

◎ 정재호 「리버사이드 호텔」

2005, mixed media on paper, 182×227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여기는 시간이 머무는 집인 것 같아.

도시에는 시간이 다 도망가버렸는데……"

 

◎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

 

08 십장생도 10폭 병뭉

十長生圖

19-20세기 초

 

아희야

무릉이 어디오

 

그때 화면 좌우를 메운, 주렁주렁 매달린 연분홍색 복숭아가 내 시선을 끌었다.

◎ 국립고궁박물관 國立古宮博物館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 십장생도 10폭 병풍

19-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병풍 전체 209.0×385.0cm, 화면 전체 152.5×376.6cm

창덕 6447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 조식

 

09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방안에 있는 인물1962

 

그녀들의 방,

리스 뮤스 7번지

 

절벽에서 유일하게 꽃을 피운 나무는

마치 굵은 철창살을 가리기 위해 태어난 듯 한껏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 삼성미술관 리움

MUSEUM 1 - Rotunda 2_ⓟHanKoo Lee

 

"나는 진심으로 질서 있는 혼돈을 믿는다."

- 프란시스 베이컨

 

"나는 푸줏간에 갈 때마다 짐승 대신에

내가 거기에 걸려 있지 않음을 알고는 늘 놀라곤 하지요."

- 프란시스 베이컨

◎ 리스 뮤스 7번지(프란시스 베이컨의 작업실)

 

나는 언젠가 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단 한 번 돌아가는 소리

각자 자기 감방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생각한다.

열쇠를 생각하며 각자 감옥을 확인한다.

- 엘리엇, 「황무지」

◎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방 안에 있는 인물 Figure in a Room」

1962, oil on canvas, 198.8×144.7cm

리움 소장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DACS 2014.

◎ 삼성미술관 리움

Museum 1 - exterior

 

10 빌 비올라

Bill Viola

트리스탄 프로젝트 2005

 

시간 속에 머무르기

 

자주는 아니지만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는 육체를 공격하기도 한다.

◎ BILL VIOLA Tristan's Ascension

(The Sound of a Mountain Under a Waterfall), 2005

Color High-Definition video projection ; four channels of sound with subwoofer (4.1)

Screen size : 580×326cm

Performer : John Hay

10 : 16 minutes

Photo : Kira Petov

◎ BILL VIOLA Fire Woman

2005

Color High -Definition video projection ; four channels of sound with subwoofer (4.1)

Screen size : 580×326cm ; room dimensions variable

Performer : Robin Bonaccorsi

11 : 12 minutes

Photo : Kira Petov

◎ 조나단 보로프스키 「노래하는 사람」

×160×10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1 야나기 미와

Yanagi Miwa

천국의 파라다이스 Ⅱ 1995

 

대학동의 B양에게

 

직장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달라진 음색으로 미. 술. 관.을 발음하던 그녀는

올봄에 열릴 전시가 특히 기대된다고 했다.

◎ 서울대학교 미술관

◎ 야나기 미와 「천국의 파라다이스 Ⅱ」

1995, type C-print, 200×100cm each (3pcs)

국립국제미술관 소장(오사카)

◎ 야나기 미와 「My Grandmothers/ MIWA」

2001, type C-print, 100×120cm

도쿄도사진미술관 소장

 

12 강덕경

Kang Deok-gyung

빼앗긴 순정, 1995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겪은 일을

다 알았으면 좋겠어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위안부였던 사실을 알린 김학순의 말.

◎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 강덕경 「빼앗긴 순정」

1995, acrylic on canvas, 130×87cm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소장

◎ 김순덕 「끌려감」

1995, acrylic on canvas, 114.5×154cm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소장

◎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입구계단

역사관 내부 위안소모형

◎ 윤석남 「빛의 아름다움, 생명의 존귀함」

1998, acrylic on wood, installation view, variable size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소장

◎ 고 강덕경 할머니 1주기 추모비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7 만인보  - 70년대 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1


811.6

고67 만 13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머리말

김상진 / 변선환 / 7세 제왕 / 진복기 / 황인성 / 공덕귀 / 정운갑 / 청담 스님 / 노무현 / 이총각 / 정일권 / 김정준 / 김옥길 / 김동길 / 경부고속도로 트럭 / 오재식 / 오두방정 / 강석주 / 박영복 / 김동완 / 신현봉 / 임병휴 형사 / 장윤환 / 김수온 / 이후락 / 임기윤 / 김  철 / 임수미 / 윤공희 / 조용술 / 서  승 / 서준식 / 서승의 누이 / 한상진 / 한경직 / 조영래 / 김재규 / 장님의 조상 / 김소영 / 이오덕 / 이우석 / 한태연 / 주명덕 / 승려 능운 / 운문사 사미니 혜관 / 저녁 무렵 / 김팔봉 / 도자와 / 김상근 / 심우성 / 이동원 / 혜  융 / 서인석 / 김용복 / 김종서 / 서울역 / 그 노처녀 / 청진동 니나노 / 박세경 / 조남기 / 손경산 / 호인수 / 유동우 / 김현옥 / 세 성받이 / 임정남 / 채희완 / 김택암 / 임진택 / 유근일 / 김낙중 / 윤정민 / 청량리 588 / 표문태 / 김벽창호 / 안남인 귀화 이씨 / 김제 망해사 / 서하에서 온 사람 / 김진우 / 만경강 / 첫사랑 / 석정남 / 청주 정진동 / 진주 오제봉 / 그 식모할멈 / 복부인 오여사 / 왕학수 / 청전 이상범 / 금영균 / 김경락 / 여익구 / 김학민 / 김인한 / 박동선 / 김병상 / 천승세 / 박암익 훈장 / 원병오의 휴전선 / 노영희 / 명노근 / 정홍진 / 윤형두 / 황주석 / 김진균 / 황인범 / 옥천역 청소부 / 어변갑 / 무릎 연적 / 예춘호 / 강창일 / 이길재 / 절도 9범 / 가짜소경 거지 / 방용석 / 김희택 / 이명준 / 고준환 / 원혜영 / 김희조 / 구  산 / 최기식 / 정광호 / 신중현 / 권대복 / 박선균 / 이안사 / 설대위 / 박순경 / 불효자는 웁니다


진복기


결국 박정희 그의 당선만을 위한

대통령선거로 너도 나도 뒤숭숭해지면

떴다 봐라

정의당 당수

코밑의 팔자수염

그 갈색 얼굴 가득한 실없는 웃음

진복기 후보가 나타난다

반드시


벌써 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

유신체제 이전의 직선제 시절


서울 무교동 허름한 노년 장년 단골의 다방이

그의 당사무실이었다

누구나 당비 얼마 내면

그리하여 입당원서에 지장이라도 찍으면

당장 담배연기 자욱한 거기

정의당 당원이 된다


어떤 위엄도

어떤 적의도 없는

이빨 누런 당수의 웃음이 고작이었다


낡은 기독교공화국을 꿈꾸는

저 미아리 넘어

삼양동 산동네 자택에서

무교동까지 오는 동안


대통령후보 기호 7번인지라

그가 버스 타면

그를 경호하는 사복경찰관

오라잇 !

차장 아가씨 걸쭉한 소리 따라

버스 타고 투덜대며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선거 기호 1번 박정희

기호 2번 윤보선

기호 1번 박정희

기호 2번 김대중


그렇게 죽느냐 사느냐의 혈전인데

그런 혈전 한구석에서

빙그레 웃음 스며나오는 후보가 있다


무교동 1가 거리 걸어가노라면

지나가던 고교생들

지나가던 여대생들

낄낄낄 웃어대니 복되어라

진복기


노무현


모든 것을 혼자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에 다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사법고시도 마친 뒤


그는 항상 수줍어하며 가난한 사람 편이었다

그는 항상 쓸쓸하고 어려운 사람 편이었다

슬픔 있는 곳

아픔 있는 곳에

그가 물속에 잠겨 있다가 솟아나왔다

푸우 물 뿜어대며


그러다가 끝내 유신체제에 맞서

부산항 일대

인권의 등대가 되어

그 등대에는

마치 그가 없는 듯이

무간수 등대가 되었다

힘찬 불빛으로


어디 그뿐이던가

사람들 삐까번쩍 광(光)내는데

그는 혼자 물러서서 그늘이 되었다

헛소리마저 판치는

텐트 밑에서

술기운 따위 없는 초승달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진실 때문에

정치를 할 수 없으리라

속으로

속으로 격렬한

진실 때문에


정일권


걸음걸이 늘 느릿하다 지구의 자전(自轉)을 터득했던가

흑백 TV화면에

오래 찍힌다

다른 지도자들은 종종걸음

TV화면에 짧게 찍힌다


함경도의 불우한 아이 하나

일본인 집에서

이 일 저 일 해주며 자라나서

만주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조선인

만주인

중국인

몽고인 등의 사관생도


거기서 박정희 이한림을 만났다


한국전쟁 전선에서

30대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이승만의 초애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

국회의장

당의장 따위 다 지내다가

대통령만 넘보지 않는

그 영리하기 짝이 없는 무능으로

만능을 누렸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일본어

해방 이후의 영어

처세와 여색의 만능까지……


김옥길


크낙한 독 가득히

크낙한 배짱 차 있다

여인의 수줍음 따위

타고나지 않았다


대문 활짝 열어놓은 집

오래오래 독신

아우와 함께

그런 독신생활의 독선 없이 통이 크다

품이 크다


냉면 한그릇으로 천하일을 말하다가

남북적십자회담 때 나가

그 초등학교 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감정 호소의 연설 이전부터


학문이기보다

교무와 교육 쪽이라

일찍이 김활란 박마리아

그 뒤의 그녀로 이어져

누룩 다 녹아든 술항아리인가

술 한모금 모르는 옹기독 술항아리인가


김동길


머리숱 빽빽하다

나무꾼 못 들어오게

하루 내내 감시한 산주인 덕에

빼곡한 뒷산 앞산 숲인인 양

숲속 푸나무인 양 빽빽하다


그런 머리숱 올백머리에

어쩌다가 뻐꾸기 소리 건너가듯

새치 하나둘 숨겨져 있다


눈썹 진하다 먹물 진하다

코 굵직하다

코 아래 구레나룻 진하다


그 코 아래

입다운 입

크게 찢어지며

틀니 없이

하 ! 웃는다

하 ! 웃고 나

바로 닫힌다


그 웃음에는 여운이 없다

하 ! 하고 끝나버린다

그런 다음 바로 다른 사람 보고

하 ! 웃는다

그런 다음 고개 돌려 다른 사람 보고

하 ! 웃는다


평안도 낭림산맥 기슭 맹산 산골에서 태어난 장주

나비 달린 장부

누님 옥길 아우 동길

누가 누구인지 몰라 서로 그림자인가


70년대 한동안 사람이 모여들었는데……


이후락


시대의 사람은

항상 앞시대에서 나온다

이름없던 사람

여기저기 풀밭에서

세잎짜리 토끼풀에 지나지 않아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이었던 사람

이후락


그가 박정희의 둘레에서 지략이 치솟았다

『삼국지』 조조였던가

유비였던가

그 둘이 하나로 복제되었던가


1961년 5월 17일 이후

국가 권력의 핵심에서 떠나지 않은

권력 혹은 권력의 울짱이 되었다

하루아침이었다


중앙정보부장 취임사

박정희교

교주 박정희대통령 각하를 믿는 박정희교의 수제자

중앙정보부장으로

판문점을 넘어가

북한 평양의 4일간

김일성의 아우 영주와

김일성을 만났다


그의 목숨 걸고 갔다

유서 놔두고

그러다가 두번째는

두 아들과 사위마저 데리고 갔다

김일성이 영웅이오 하고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렇게 해서 7 · 4남북공동성명이 나왓다

그것이 박정희 장기집권의 전략이 아니었다면

진짜배기

한반도 잔치이었을 것을

그러나 그 뒤

남쪽에서는 유신헌법이

북쪽에서는 어버이 신헌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포되었다


김재규


1979년 YH사건과

부산마산항쟁을 겪으면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그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차지철을 쏘았다

그리고 박정희를 쏘았다


그는 육군을 휘어잡지 못했다

육군교도소 특별감방 제7호실

그 창 없는 감방에서

여름날 새벽

육군교도소 소장이 주는 커피 한잔

그것으로 서대문에 가서

목매달렸다

염주 가까스로 쥔 채


걸걸한 목소리

얼얼한 얼굴

몸에는 의리 가득한데

몸속에는 참을 수 없는 배역의 폭발이 있었던가

종신 대통령 박정희의 고향이 그의 고향이었다

그의 고향 선산의 조상 무덤들 다 파헤쳐졌다

떠돌아라

떠돌아라 그대 영원한 중음신(中陰身)으로


김현옥


일제시대 소학교 소사

조회시간 종을 쳤다

수업시간 종을 쳤다

일본인 교장실 티끌 하나 없이 청소했다

그 시절은 청소가 아니라 소제였다


그런 사람이 자라나

육군장교였다가

부산 시장

서울 시장을 지냈다


도시는 선(線)이다

이런 어설픈 표어도 내걸었다

여의도를

도시로 만들었다

밤섬을 폭파한 뒤


장승 같은 키로 박정희의 개발에 신났다

그가 세운 서민아파트

와우산 와우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의 개발은 숨가빴다

내무부장관 시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모든 성찰의 시간 떠나간 곳에서


박동선


백인 미녀를 비서로 뒤따르게 하고

백인 상류사회 한 부분을

한 손아귀에 넣어

호화찬란한 야회복의 밤이 있었다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 클럽 1977년

항상 엷은 썬글라스의

단정한 동양인

말과 몸짓이 자르르 기름졌다


그의 손아귀에는 미국 상원의원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으로

태평양 건너

한국의 박정희에게

불가결한 인물이 되었다

미국에서 박동선은 박정희의 조카로 통했다


미국쌀 중개상으로

모든 양국관계의 중개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상하 양원 실력자만 포착했다

신문기자들을 잊어버린 채


그리하여 뉴욕타임즈는

그를 일러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규탄했다


한국의 국제적 인물 하나가 시끌벅적 가라앉았다


예춘호


두 눈이 콧날에 달려와

두 눈이 의가 좋다

그만그만

목쉰 소리에 쇳내음이 났다


메주 뜬 방바닥인가

한번 나오면

어디가 서론이고

어디가 결론인지 몰라

긴 담론


저 60년대 초

부산의 한 대학강사가

혜성으로 떠올라

공화당 사무총장이 되었다


인명록은

그 이전의 인명록을 무시한다

거기에 새로

그의 이름이 빛났다


그러다가 박정희 3선개헌 반대로 무소속이었다

유신 말기

그는 재야에 다가섰다가

점점 재야의 골짜기에 내려왔다

마음에 맞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며


강창일


제주도 돌하르방 슬하에서 자라났다

네모졌다

한라산 눈송이 여섯모졌다

그 아래

열네모진 젊은이


제주해협 설문대할망 두 다리 건너


서울에서 정치학 전공의 젊은이

오류를 사절하라

견고하라


강창일

그대 턱에 고향의 수평선이 탁 걸려라


민청학련 사건 이래

상아탑적이기보다

집정관적이다

감찰관적이다


양심과 모순의 정치적 관계를

감시하는 이지


좀처럼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턱에

그대의 오랜 양식을 걸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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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6 뉴턴 - 사과는 왜 땅으로 떨어지는가

 

장 파에르 모리 지음 / 김윤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32

 

082

시158ㅅ  27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7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의 벗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친한 나의 친구는 진리이다."

과학혁명에 불이 붙기 시작했던 17세기에

쟁쟁한 과학자들과 겨루어 현대 과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은 아이작 뉴턴, 사과 한 알로 만유인력을

설명한 그는, 빛의 본질을 분석해 내고 미적분학을

창시하여 당대의 천재들을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위성으로 만들었다.

 

"지혜를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감동할 줄 아는 존재라면

아무리 형편없는 망원경을 통해서라도 푸른

하늘에서 떨고 있는 은빛 초승달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보고 유쾌한 감흥이 일지 않거나,

지상의 일상생활로부터 벗어나 우주로 가는

첫번째 정류장을 향해 이동하는 기분을 느끼지

못할 수 있을까? 생각이 있는 존재라면 4개의

위성을 가진 빛나는 목성이나 신비한 띠로 둘러싸인

화려한 토성, 끝없는 밤하늘에 자줏빛과

사파이어빛을 뿜어내는 이중성(二重星)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아! 비천한 농부와 도시의 피곤한 노동자,

명성과 부가 절정에 이른 사람, 경박한 사교계

여성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만일 인간이라면,

하늘을 응시하며 얻는 내적인 기쁨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이들이 알 수 있다면,

프랑스 아니 전유럽은 총검 대신

망원경으로 뒤덮일 것이다.

이것은 우주적인 행복과 평화를

고취시킬 것이다."

 

카미유 플라마리옹, 1880년

프랑스 천문학자

 

차례

 

Newton et la mecanique celeste

 

제1장 아이작 뉴턴의 휴가

제2장 근대 천문학의 탄생

제3장 반사망원경에서 중력으로

제4장 마침내 만유인력!

제5장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다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장-파에르 모리 Jean-Pierre Maury

1937년에 태어난 장-피에르 모리는 파리 제7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를 지냈다. <갈릴레오> <별들의 사자> <지구는 어떻게 둥글게 되었는가> 등의 저서를 저술하였다.

 

옮긴이 : 김윤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5번 <고대 로마를 찾아서>와 <중세시대 영국과 프랑스의 도시> <프랑스 혁명의 창조> <계몽사상의 실천> <봉건제의 위기> 등의 논문을 번역하였다.

 

제1장

아이작 뉴턴의 휴가

 

1665년 여름, 끔찍한 전염병이 창궐하자 케임브리지 대학은 문을 닫고 학생들과 교수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들 중에는 막 학사학위를 받은 청년 아이작 뉴턴이 있었다. 그는 평화롭고 조용한 곳을 찾아 고향인 영국의 시골로 떠났고, 그곳에서 1년을 보냈다. 이 시기에 풍성한 발견들이 이루어졌고, 따라서 후세 역사가들은 이때를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뉴턴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오랜 휴가-의심할 여지 없이 과학사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은 시기-를 영국 중동부 링컨셔에 있는 집(위)에서 보냈다.

1665년에 발생한 대전염병은 런던에서만 7,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 당시 신문은 모든 탈출방업을 동원해 런던을 빠져 나가는 피난민과 장례행렬, 시체들로 가득찬 마차들을 보여 주고 있다.

케플러의 《세계의 조화》(1619), 그리고 무엇보다도 갈릴레이의 《두 개의 세계에 대한 대화》(1632)는 젊은 시절 뉴턴이 애독했던 저서이다. 기하학적이고 미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사색으로 가득 차 있는 케플러의 책에서, 뉴턴은 행성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발견했는데, 훗날 뉴턴은 이 법칙에 결정적 설명을 주게 된다. 갈릴레이를 교회재판대에 서게 만들었던 그의 저서는 근대 천문학의 선언문으로 인정받았다. 이제 사람들은 '천계의 완전성'이라는 신화를 벗어 던지게 되었으며, 천체는 더 이상 과학적 합리성보다 우위에 놓일 수 없었다.

태양의 백색광선이 여러 빛깔을 띤 광선의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뉴턴은 25세였다.

위의 장치는 뉴턴이 울스소프의 자기 방에서 실험한 장치보다 훨씬 정교하다. 덧문에 뚫은 구멍, 프리즘, 스펙트럼이 투사되는 벽, 이것이 뉴턴이 이용한 전부이다.

에덴 동산의 사과를 제외하고 뉴턴의 사과만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사과는 없을 것이다. 어떤 화가는 사과가 뉴턴의 머리를 친 것으로 묘사했는데, 떨어진 사과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을 그린 화가도 있다(19세기 판화). 중요한 점은 사과를 관찰한 결과 사과와 달을 비교하게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위 18세기 판화는 두 가지 특징적인 사실을 보여 준다. 굉장히 많은 행성계와, 태양광선조차 뚫지 못하는 두꺼운 구름-우주의 어두움이 물질화된-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것을 부정하고 2,00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고대의 '자욱한 어두움'은 미술가들의 상상력 속에 살아 남아 있었다.

갈릴레이는 베니스의 시의원들에게 멀리 있는 선박과 건물을 살피는 데 망원경이 아주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얼마 후 갈릴레이의 새 발명품은 천체 관측에 이용되고 있었다.

티코 브라헤의 체계

르네상스인은 우주 중심에 자리 잡은 지구 둘레를 천구가 둘러싸고 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적인 완벽한 우주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구의 중심성과 부동성이라는 관념은 너무나도 뿌리깊어서 행성운동의 관측자료가 쌓여 갔어도 과학자들에게 선입관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6세기 네덜란드 천문학자인 티고 브라헤는, 행성들은 태양 둘레를 돌지만, 태양은 여전히 우주의 중심인 지구 둘레를 1년에 한 바퀴 돈다고 설명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발표되면서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다만 지구의 중심성과 부동성이 부인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구는 다른 행성과 마찬가지로 태양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관측기구들이 차츰 개선되자 사람들은 행성의 모양과 크기를 알고자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행성 간의 거리, 다시 말해 태양계의 크기를 측정해야 했다. 그리고 하나의 절대적 측정단위가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전에 태양과 지구, 태양과 화성 등의 상대적 거리를 결정해야 했다(1672).

1628년 데카르트가 네덜란드에 정착한 이래 교회는 더 이상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세계의 체계'를 발표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아래). 왜냐하면 1633년 종교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갈릴레이와 같은 고통을 받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천체들 사이의 공간이 보이지 않는 물질의 소용돌이로 가득 차 있다(위)고 주장했다.

 

제2장

근대 천문학의 탄생

 

"1667년 6월 21일 화요일 하지 아침, 오주, 프레니클, 피카르, 뷔오, 리셔는 어느 돌 위에 자오선을 표시하기 위하여 천문대로 갔다." 이렇게 해서 파리 천문대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 되어 그곳 천문대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둘레,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 빛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1667년, 유럽의 많은 과학자들은 파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파리 천문대가 건설되면서 파리는 가장 활발한 천문학 연구 중심지가 되었다.

파리 천문대 설립행사에서 장 밥티스트 콜베르가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들을 루이 14세에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루이 14세는 1682년이 되어서야 이 천문대를 찾았던 것이다.)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와 파리 천문대는 루이 14세의 명령을 받은 콜베르의 주도 아래 설립되었다.

정확한 천문학적 측정을 가능하게 도와 준 발명품. 크리스티안 호이겐스의 진자시계.

호이겐스는 17세기를 주도한 물리학자였다. 일찍이 진자시계를 발명하고, 토성의 고리와 그 위성을 발견해 이름을 떨친 호이겐스는, 확률이론을 다룬 최초의 논문을 발표해 수학과 곡면역학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빛의 파동론의 기초를 세웠다.

루이 14세는 카시니의 렌즈를 장치하기 위하여 말리 타워를 파리 천문대 뜰로 옮기게 했다. 카시니는 망원경 튜브를 사용하는 대신 접안렌즈를 손에 들고 다니며 떨어져 있는 목표물을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다.

1885년경 두 날개와 둥근 지붕이 천문대에 첨가되었다. 하지만 본건물은 17세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카시니 가문은, 지안 도메니코(카시니 1세)가 콜베르의 초청으로 불로냐에서 건너온 해인 1669년부터 카시니 4세가 사임한 해인 1793년까지 파리 천문대를 이끌었다. 천문학적 연구에서 볼 때 후대 세 사람의 작업들은 카시니 1세의 업적에 비교될 수 없다. 그는 토성의 네 위성과 그 고리들의 분할을 발견했고, 리셔와 함께 태양까지의 거리를 측정했을 뿐만 아니라, 대형 달지도를 제작했고 금성의 공전주기를 계산하려고 했으며, 목성의 위성들에 대한 관찰기록을 끊임없이 수정했다.

카시니는 또한 파리 천문대의 건설과 장비설치를 감독했고, 천문대의 과학과 행정 감독관으로 재직했으며, 천문학자들을 훈련시켰다. 콜베르가 그를 몰로냐에서 파리로 초빙했음은 천문학사에서 참으로 운좋은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1572년, 스물여섯 살 난 티코 브라헤는 근대 최초로 신성(新星)을 발견하여 유명해졌다. 1577년에 덴마크 국왕은 그에게 이븐섬을 하사했고, 이곳에 그는 우라니보르그(천국의 성) 천문대를 세웠다. 왕이 죽고 나서 후계자들과 사이가 나빠진 티코 브라헤는 프라하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우라니보르그는 돌더미 속에 폐허로 전락해 버렸다.

고도육분의(첫번째), 반구경위의(두번째), 태양사분의(세번째), 사분경위의(네번째).

프라하에서 티코는 루돌프 2세의 왕실 수학자로 봉직했다. 1601년 티코가 죽자 그의 조수 요하네스 케플러가 티코의 자리를 계승했다. 티코의 천문학적 관측 성과에 존경을 감추지 않았던 케플러는, "티코는 매순간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말했다. 티코는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관측기구들에는 렌즈가 없었다. 따라서 정확한 관측을 수행하기 위해 그의 관측기구들은 매우 커야 했다. 이 거대한 기구들-반지름이 6m나 되는 것도 있다!-은 별들이 자오선을 지날 때 고도를 재기 위해 자오선의 수평면에 고정되어 설치되어 있었다. 망원경이 발명되자 사분의나 육분의 따위 더욱 작고 간편한 기구들로 같은 정도의 정밀한 관측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리셔는 2년 가까이 카옌에서 보냈다. 성능 좋은 장비와 유능한 조수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관심 있는 모든 분야의 중요한 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의 《천문학, 물리학 관측》의 속표지.

1644년 덴마크 아루스에서 태어난 올라우스 뢰머(가운데, 위는 그의 천문대)는 티코의 관측 노트들을 발간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교수의 조수로서 일했다. 따라서 피카르가 폐헉가 된 우라니보르그로 탐사를 떠날 때에 뢰머가 그를 돕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피카르는 파리로 돌아갈 때 뢰머를 데려갔고, 이 두 사람은 이후 10년 동안 공동작업을 벌였고, 특히 많은 관측기구를 개량하는 데 힘을 더했다. 그후 뢰머는 덴마크로 되돌아와서 자오선 망원경(아래)을 포함하여 자신의 기구를 여러 개 완성시켰다.


제3장

반사망원경에서 중력으로


"아울러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 수학교수인 아이작 뉴턴씨가 새로운 망원경을 발명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처음 공개되고 시험해 보았을 때 그 망원경의 길이가 약 15cm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1672년 1월에 호이겐스는 런던 왕립협회의 책임자인 헨리 올든버그가 보낸 편지를 통해 뉴턴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뉴턴의 망원경.

최초의 과학잡지라 할 《철학회보》가 이 무렵 런던에서 발행되었고, 몇 달 뒤 《지식인의 잡지》가 파리에서 발간되었다.

1690년의 케임브리지 대학. 한데 모여 있는 수도원 건물들에는 풍족하지만 꾸밈이 없는 모습으로 줄지어 늘어선 기숙사들이 딸려 있었고, 모든 건물은 캠강 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을 이루고 있는 정원과 잔디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모습은 오늘날에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헤벨리우스의 거대한 굴절망원경(1670).

뉴턴 시대에는 그레고리안(위)이나 카세그레인(아래) 반사망원경은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았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 여기에 필요한 작은 곡면거울을 만들기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뉴턴의 동료들은 그의 관측기구가 소형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는 단지 편리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작으면 작을수록 안정감이 더 생기는 것이다. 불안정한 장비는 영상이 만들어지는 데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높은 배율보다도 높은 안정성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뉴턴이 고안한 작고 우아한 관측기구는 기부(基部)가 지탱해 주고 한 쌍의 금속 손잡이가 단단히 죄어 주고 있는 공을 이용하여 어떤 방향으로든 회전할 수 있었다.

뉴턴의 망원경은 관의 아래쪽 끝에 있는 나사를 회전시켜 초점을 맞추었다. 이 나사는 대물렌즈와 망원경의 뒷부분을 움직였다.

1667년과 1672년 사이에 뉴턴은 자신의 이론을 강화하기 위해 빛깔에 관한 실험에 더욱 열중했다. 어느 정도 회의적인 반응이 따랐지만, 분명히 결정적인 반대는 없었다.

곳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독일의 탁월한 수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철학자, 신학자, 역사가, 법률가였다. 그와 뉴턴은 각각 미분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라이프니츠의 방법이 채택되었다.

항해의 중심이 되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템스강 어귀를 내려다보고 있다. 기준 자오선이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고 있고, 그리니치 평균시간은 세계의 표준시간이다.

존 플램스티드는 찰스 2세에게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를 건립(1675)하도록 건의했으며 자신이 그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장비 설치와 지도 제작에 공헌이 컸지만, 그의 주된 업적은 3,000개에 이르는 별들의 목록을 작성한 것이다. 이러한 편찬작업은 근대 천문학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헬리가 공부했던 옥스퍼드 대학의 주위 환경은 언제나 목가적이다. 막달렌 칼리지의 탑도 여전히 나무 꼭대기 위로 솟아 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소들이 다소 멀리 떨어진 들판에 있다.

1664년 12월 24일 뉘른베르크 하늘 위를 번개처럼 지나간 혜성에서 받은 인상을 남긴 그림.

 

제4장

마침내 만유인력!

 

 

1684년 8월, 헬리는 뉴턴에게 자문을 구하러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향했다. 자신이 풀 수 없었고 왕립협회의 다른 회원들도 쩔쩔매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할 참이었다. 뉴턴은 자신이 이미 오래 전에 그 문제를 해결했노라고 말했다. 태양계의 모든 운동은 중력의 법칙이라는 단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제 핼리는 뉴턴이 이 사실을 공표하도록 설득해야 했다.

 

《프린키피아》를 발간하고 나서 한참 지난 뒤인 1726년의 뉴턴(위). 17세기에 있었던 한 실험(아래).

로마에서는 처녀자리에서 1680년 혜성이 출현하고 특이한 현상이 따랐다고 보고되었다. 그들은 닭들이 소리를 지르고 신비한 표시를 지닌 알을 낳은 것은 혜성의 특징이나 이동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알들을 낳은 날짜와 시간이 기록되었다. 이 판화가 명백히 보여 주듯이 혜성이 신비로운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믿음은 1680년대에도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특히 12별자리에 표시된 혜성의 위치가 주목할 만한데, 당시에도 그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점성술의 초점이었다.

에드먼드 헬리는 《프린키피아》를 세상에 선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성취한 많은 일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는 남반구의 별들을 목록화했고, 혜성들을 연구했고, 헤라클레스 자리에 있는 둥근 성단을 발견했고, 1718년에는 별들의 정확한 운동을 밝혀 냈다.

새뮤얼 페피스는 1825년까지 해독되지 않은 비밀스런 속기법을 사용해서 1659년부터 1669년까지 일기를 썼다. 이는 영국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의 런던의 일상생활을 보여 주는 탁월한 연대기이다.

커피점은 17세기 런던에서 사교적이고 지적인 생활의 중심지였다.

 

제5장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다

 

모든 이론은 검증되어야 한다.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면, 아직 예측되지 않은 현상을 예견한 뒤 그것을 관찰하는 것은 또 다른 방법이다. 뉴턴은 지구의 양극이 평평하다는 것이 입증되리라고 주장했다. 1735년에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그의 예견을 검증해 보기로 결정했다.

중력이론으로 과학자들은 지구의 양극이 평평하고, 헬리 혜성이 다시 나타나며, 새로운 행성이 존재한다고 예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150년 안에 사실로 밝혀졌다!

1704년 당시 62세인 뉴턴은 자신의 두번째 주요 저작인 《광학》을 발간했다. 《광학》은 인상 깊은 온갖 실험을 모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론과 그 이론이 적용된 발견들을 포함하고 잇다.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은 라틴어로 된 이 저서를 입수하자마자 이러한 실험들을 꾸준히 반복해 보았다.

자오선의 한 호의 길이를 재려고 떠난 페루 탐험대는 라플란드 탐험대보다 상당히 많은 장애물에 부딪혔기 때문에 2년 이상이나 작업이 지연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거두어 낸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으며 모페르튀의 팀이 이루어낸 것보다 더 훌륭했다고 인정받았다.

북극 탐험가인 피에르 루이 모로 드 모페르튀의 초상. 탐험에서 돌아오고 난 이후에 그린 것이다.

모페르튀와 부계르는 자기들의 성과를 《지구의 모습》에 1738년과 1739년에 각각 발표했다. 이 책들에는 통상적인 도표뿐만 아니라, 키토 근처와 라플란드의 토르네아강을 따라 행한 삼각측량을 설명하는 자세한 지도가 실려 있다.

《성서》에서는 '별'이 동방박사를 말구유로 인도했다. 혜성이었던가? 신성이었던가? 지오토가 그린 이 그림, <동방박사의 경배>에 보이는 '별'은 틀림없이 핼리 혜성이다. 이것은 1301년에 출현하여 사람들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에 나타난 1066년의 핼리 혜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 해는 정복자 윌리엄이 헤이스팅스에서 앵글로색슨족과 격돌한 해이다. 이것은 재앙의 징조였다-대체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하지만 그것은 어느쪽의 재앙인가?

"그래서 진실은 / 그녀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 아름다운 얼굴을 띠고 / 웅변도 복종시킨다." 이 4행시는 샤틀레 후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그녀는 뉴턴의 체계에 관한 대중적인 논문을 발간했다.

핼리 혜성이 다시 나타날 때마다 이 사건을 관측하고 묘사하는 방법들이 개선되었다. 1835년의 판화(위), 1910년의 사진(아래).

허셜 망원경(아래)으로 보면, 천왕성은 작고 희미한 반점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이저 2호가 가까이 접근해서 찍은 이 합성사진에서도 상세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천왕성의 대기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우 뚜렷하게 보이는 그 위성들은 그렇지 않다.

1835년에 알려진 태양계(핼리 혜성이 출현할 무렵). 천왕성은 보이지만 해왕성은 빠져 있다. 불규칙적인 천왕성의 운동은 더 멀리 있는 행성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위르뱅 르베리에는 20세에 천문학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나중에 천왕성의 운동을 연구했고 파리 천문대의 감독관이 되었다.

1986년에 나타난 핼리 혜성.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아이작 뉴턴의 무덤.

뉴턴 기념관을 위해 제작된 이 웅장한 설계도들은 18세기의 건축가인 피에르 쥘 델레핀(아래 사진의 위)과 에티엔 루이 불레(아래 사진의 아래)의 설계도이다. 하지만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다.

크룸스 언덕에서 바라본 왕립천문대(1680년경).

<최초의 금성 자오선 통과 관측>, 판화,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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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5 빅데이터 세상


매일경제 기획팀 · 서울대 빅데이터 센터 지음

2014, 매일경제신문사



대야도서관

SB102206


331.5412

매68ㅂ


당신의 숨겨진 욕망까지 읽어드립니다


빅데이터, Big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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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업계에선 선진국의 활용사례를 발 빠르게 받아들여 현장에 도입하고 있으며, 학계 역시 빅데이터 학과를 개설,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세계적 수준인 우리나라의 ICT인프라를 빅데이터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도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빅데이터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스마트한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와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지은이

매일경제 기획팀 · 서울대 빅데이터 센터


매일경제는 '미래를 바꾸는 창'으로 불리는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3년 6월부터 서울대 빅데이터센터와 공동으로 <디지털 금맥, 빅데이터> 연중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기업과 학계, 정부는 실시간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미래까지 예측하는 빅데이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기업을 중심으로 빅데이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는 부족했고, 다양한 규제가 갈 길 바쁜 한국 빅데이터의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에 매일경제는 서울대 교수진 자문과 실제 현장을 심층 취재한 빅데이터 연중 기획으로 한국 빅데이터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2년여에 걸친 매일경제 연중 기획과 서울대 교수진 기고를 하나로 엮은 결과물입니다. 이 책이 한국 빅데이터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기를 바랍니다.


매일경제 기획팀

유진평 모바일부 부장, 최용성 모바일부 차장, 황지혜 모바일부 기자, 홍장원 모바일부 기자, 이동인 사회부 기자, 김대기 과학기술부 기자, 원요환 사회부 기자, 손유리 모바일부 기자


서울대 빅데이터 센터

고학수 교수(법학), 김선 교수(컴퓨터공학), 김수욱 교수(경영학), 박종헌 교수(산업공학), 서진욱 교수(컴퓨터공학), 이상구 교수(컴퓨터공학), 이재욱 교수(산업공학), 조상준 교수(산업공학)


contents ------------------------------------------------------


발간사

머리말 1

머리말 2


PART 01 빅데이터 시대                                        


chapter 1 실리콘밸리 빅데이터

              실리콘밸리에 부는 빅데이터 바람

              스타트업도 빅데이터가 대세

             · interview - 파드마스리 워리어 시스코 부회장

             구글과 페이스북의 데이터 파워전략

             · interview - 벤 곰스 부사장

             · interview - 댄 니어리 대표


chapter 2 빅데이터, 그것이 알고 싶다

              빅데이터가 뭐기에…

             · interview -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스포츠…

             범죄 수사에서도 새 물결

             · interview - 이상구 서울대 정보화본부장

             · interview - 사이번 토머스 IBM 부사장

             · 빅데이터가 만드는 세상 -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 운영 빅데이터에 기반한 실시간 기업의 완성 - 박종헌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PART 02 빅데이터 빅뱅                                                    


chapter 1 유통 빅뱅

              고객정보 수집하는 마네킹

              맑은 날 샌드위치, 비오면 피자빵

             · interview - 강용성 와이즈넛 대표

             · 고객을 불러들이는 분석경영 -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chapter 2 스포츠 빅뱅

              오클랜드 20연승 신기록의 비결

              삼성라이온즈 3년 연속 우승의 힘

             · interview - 장원철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


chapter 3 생명과학 빅뱅

              가족력 유전자 맞춤진료

              DNA로 몇 년 후 발병 알아애

              의료정보 활용, 프라이버시가 관건

             · interview -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

             · 생물정보학 기술을 이용한 유방암,

              가뭄 저항성 벼 연구 - 김선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chapter 4 ICT 빅뱅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빅데이터 활용

              한국 SI, 콜롬비아 빅데이터 문을 열다

              국내 업계 빅데이터 솔루션 시장공략

              · interview - 이영조 서울대 교수

              · interview - 함유근 건국재 교수


chapter 5 금융빅뱅

              금융업계 빅데이터 금맥 찾기

              항구도시 부산, 양식소비가 일식 3배 카드사는 알고 있다

              · 빅데이터와 금융 - 이재욱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외 1인


chapter 6 부동산 빅뱅

              부동산에 부는 빅데이터 바람

             · interview - 경정익 명지대 교수


chapter 7 재난대응 빅뱅

              세월호 비극은 열악한 한국 빅데이터 민낯

              '데이터 빈곤 악순환'에 빠진 한국 사회


PART 03 빅데이터 미래                                                    


chapter 1 빅브라더와 빅데이터

              디지털 감옥에 갇힐 수도

              · interview - 제프 모스 데프콘 설립자


chapter 2 빅데이터 걸림돌

              너무 까다로운 규제환경

             융합산업 가로막는 개인정보보호 체계

             · interview - 김형주 서울대 교수

             ·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피해와 빅데이터 활용 -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chapter 3 빅데이터 코리아를 위해

              정보 빅뱅시대 '빅데이터 문석가' 키워야

              국내 전문 분석인력 100명뿐

              · interview - 이준기 연세대 교수

              · 정보시각화 - 서진욱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 텍스트 데이터 처리, 인류의 지적 자산 다루기 - 이상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실리콘밸리 빅데이터 스타트업

 회사명

 사업[기술]

 위비데이터

 유통, 금융 앱 제작도구

 콘태전트

 데이터 분석, 판매

 스카이트리

 자동분석 소프트웨어

 웹액션

 실시간 데이터 서버

 데이터브릭스

 분석, 추출 기술

 클리어스토리 데이터

 데이터 분석

 알파인 데이터랩스

 데이터 시각화

 에이치스트리밍

 센서 데이터 분석

 데이터미어

 하둡 기반 앱

 

빅데이터 기술 적용 사례

 회사명

 사업[기술]

 스포츠

 선수부상예측, 상대팀 전술 파악

 금융

 주가지수 예측, 거시 변수 예측

 정치

 소셜데이터를 통한 맞춤형 캠페인

 의료

 인간 지놈 데이터로 희귀병 치료

 기상

 날씨 분석을 통한 선호 제품 예상

 의류

 유행 디자인 사전 파악해 시장 선도

 복지

 자살예보 시스템, 실버 계측 의료 개선

 공공

 부정부패, 세수 증감 데이터 분석

 

빅데이터의 응용

 분야

 데이터 종류

 분석프레임워크

 기술적 이슈

 1. 신규 서비스 개발

 뉴스 콘텐츠

 텍스트마이닝

[자연어처리]

 문서 간 거리 계산

 2. 인사

 인사 데이터

 예측 / 분류

 특징추출

 3. 영업

 구매 데이터

 추천

 user behavior

 4. 공정최적화

 공정, 검사 데이터

 예측

 데이터 imbalance

 5. 상품기획

 소셜미디어

 텍스트마이닝

 sentiment 분석

 6. 재난 조기 경보

 Io T 데이터

 최적 routing

 조기 경보

 7. 영업

 유통 데이터

 BI, 연관분석

 아이템 수준 결정

 8. 의료보건

 유전체 데이터

 연관분석

 유전체분석 대상 확대

 9. 선거

 유권자 데이터

 클러스터링

 데이터확보

 10. 소개팅

 회원 개인 데이터

 클러스터링

 변수 중요도

 11. 버스노선

 통화 데이터

 BI

 최적 라우팅

 

빅데이터 날개 단 의료 사례


▶ 지놈 지도 분석해 희귀병 원인 규명

▶ CT 융합기술로 3D 디지털 부검

▶ 유전자 분석해 당뇨, 심장병 예방

▶ 실시간 건강 파악, 맞춤형 의료 제공

▶ 가상 효과 분석으로 신약 개발


 

빅데이터 활성화 위한 법 · 제도적 해결점


● 진흥은 미래부-규제는 안행부 방통위 등으로 분리

● 개인정보에 대한 이중적 잣대 바궈야

● 개인정보 활용 부정적 인식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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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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