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421,159total
  • 162today
  • 165yesterday

2015-088 빛 속으로

 

사진/천종욱 · 글/하태무

2001, 우리글

 

대야도서관

SB104178

 

668.4

천75ㅂ

 

● 언제나 시작 - 사진과 시, 에세이로 쓴 두번째 이야기

 

그들은 삶이나 사랑의 보람을

소유, 즉 물질적 순탄이나 행운에다 찾지 않고,

존재, 즉 삶이나 사랑 자체가 지니는

신비하고 무한한 생명의

개성, 지식, 재능, 흥미, 기쁨이나 슬픔까지를

서로 주고 나눔으로써

삶의 보람을 지닌다는 그 사실이

모든 이에게 큰 빛이 되리라고 나는 믿는 바이다.

구상 (시인. 예술원 회원)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고차원의 하모니의 산물이다.

……

어울림이 자연스럽게 잘된 것일수록

높은 품격의 예술이라고 하겠다.

이 두 분이 이룩한 가정은 그대로 예술작품이다.

류달영 (성천아카데미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천종욱

사진가, 서예가.

부산교육대학 졸업 후,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한문 연구과정, 성천아카데미,

성균관 한림원에서 동양 고전을 연구했고,

W. W. M. E.에서 아내 하태무와 봉사하고 있으며,

'사진예술', '우리 얼 밝히는 사람들', '동방연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태무

시인, 수필가.

진주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한국사상사 전공,

석사학위 논문 '매월당의 성리학'으로 대학총장상,

1993년 '문예한국'지에서 신인상, 동화 '집배원과

호랑나비'로 체신부 장관상을 받았으며,

작품집으로 '언제나 시작'이 있습니다.

 

천동혁

미국 조지아주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컴퓨터 아트를 전공했으며,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소 : 인천시 서구 마전동 영남 탑스빌 A. 117-102

전화 : 032-277-2007

E-mail : cheonhabubu@hananet.net

 

차례

 

추천의 글 … 구상

축하의 글 … 류달영

빛을 따라서 … 천종욱

'언제나 시작' 두번째 이야기를 펴내며 … 하태무

부모님, 고맙습니다 … 천동혁

 

 

풀숲의 교향악

새 생명

꽃밭

청매화

푸르른 속삭임

연꽃 동동, 연잎 동동

선운사 상사초

숲에 담긴 이야기

산사의 가을

계산무진谿山無盡

 

2부 맑고 따뜻한 세상

연전마을 전설

타버린 미련

빛의 미학

맑고 따뜻한 세상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감잎의 노래

산 넘고 물 건너

아름다움에 관하여

 

3부 흙집을 꿈꾸다가

물안개가 있는 풍경

삶의 신비

상선약수上善若水

거울같은 호수

안식처

침묵의 메시지

흙집을 꿈꾸다가

문턱에서

물지게

 

4부 시간의 흔적

시간의 흔적

작은 풀잎

화쟁和諍의 의미

부석사 안양루

고풍古風

남한산성 나리꽃

목어

연자방아

좁은 문

그리운 옛 풍경 하나

 

푸르른 속삭임

 

이름 모를 풀들의 세상이

열리고 있습니다

몰래 숨어 피던

산딸기 몇 송이도

빠알갛게 얼굴을 내밀며

 

이 푸른 세상에서는

가만히 눈을 감고

가슴부터 크게 열어야 합니다

따뜻한 속삭임이

우리네 세상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고 따뜻한 세상

 

그저 얻은 선물입니다

숲과 들녘의

이 청정한 바다

 

까치 후두둑

머물다 간 자리

 

잔가지 흔들림마저

절대 고요 속에

이내 숨을 죽이고

 

하늘 마저

낮게 머리 숙여

온 천지가

바다로 열리는

 

산골마을에서는

사람도 작은

풀 한 포기입니다

 

흙집을 꿈꾸다가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마지막날 편히

누울 곳 또한 어디입니까

 

시골집 흙벽에

고단한 몸을 기댑니다

 

햇살 한 올과 싸아한 바람 한 가닥이

벽속에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시간의 흔적

 

-첫날 밤, 신랑은 문고리에 옷이 걸린 걸 모르고 정숙하지 못한 신부가 신랑을 먼저 잡아끄는 줄 알았습니다. 비밀스런 신방에서 신부는 억울하게 소박을 맞았습니다. 부정한 신부! 문고리가 죄인인줄 모른 신랑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돌아왔습니다. 억울한 죄인이 된 착한 신부는 첫날밤 모습으로 앉아 죽었습니다. 신랑이 오자마자 그 숨결소리에 재가 되어 무너졌습니다.-

 

문고리가 죄였습니다

 

너덜거리는 창호지 문풍지에

바람이 되어버린

시간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자르르 손때 묻은 문고리에

또 한 켜 나이테가

깊이 패입니다

 

비껴 가버린 세월이

이제사 덜미잡혀

고스란히 그 속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내가 읽은 책들 > 2015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91 강은교의 시에 전화하기  (0) 2015.10.23
2015-089 열하일기 3  (0) 2015.10.06
2015-088 빛 속으로  (0) 2015.10.03
2015-087 몰입이 시작이다  (0) 2015.10.02
2015-086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0) 2015.09.18
2015-085 Andy Warhol 앤디워홀  (0) 2015.09.17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87 몰입이 시작이다

 

스티븐 스나이더, 티나 라무쎈 지음 / 정준영 옮김

2015, 불광출판사

 

 

대야도서관

SB104119

 

224.3

스192ㅁ

 

파욱 스님에게 배우는 선정(禪定) 수행

 

어떤 수행이든

몰입이

기본이다

 

미얀마 최고의 수행자 파욱 스님에게 배우는

미국인 엘리트 제자들의 생생한 선정(禪定) 체험기

 

2,00여 년 동안, 불교 수행의 지도자들은 선정이라 불리는

몰입집중의 귀중한 명상적 실천을 공들여서 보존해왔다.

선정 수행은 마음을 투명하게 정화시키는 자기 강화 훈련이다.

마음의 불순물을 제거해 몰입의 근육이 만들어지면

번뇌를 처리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괴로움 없이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아주 친절하고 상세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 지은이

 

스티븐 스나이더(Stephen Snyder)

아시아를 여행한 후 19살이 되던 1976년부터 불교수행을 시작했다. 미국 남성 가운데 파욱 사야도로부터 지도권한을 부여받은 첫 번째 사람으로, 여러 차례의 집중수행과정을 완전하게 이수한 후 매일 명상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전문코치로서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티나 라무쎈(Tina Rasmussen)

13살이 되던 1976년부터 명상을 시작했다. 파욱 사야도로부터 수계를 받았으며, 지도권한을 부여받은 첫 번째 서양 여성이다. 현재 조직 개발 컨설턴트로 25년 이상의 경력을 쌓고 있으며, 박사학위를 받고 다양한 경영서적도 출판하고 있다.

*저자들의 웹사이트(www.JhanasAdvice.com)를 방문하면 더 많은 정보와 추천자료들이 있다.

 

◎ 옮긴이

 

정준영

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아대학교에서 초기불교와 위빠사나 수행을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전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명상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얀마의 마하시, 순룬, 쉐우민 명상센터, 스리랑카의 칸두보다, 니싸라나와나야, 나우야나, 그리고 태국과 캐나다 등에서 수행했다. 저서 및 역서로는 『위빠사나』, 『다른 사람 다른 명상』, 『어려울 때 힘이 되는 8가지 명상』, 『깨달음, 궁극인가 과정인가』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의미와 쓰임에 대한 일고찰」, 「상수멸정의 성취에 관한 일고찰」, 「명상의 부작용과 불교적 해결방안에 대한 연구」등이 있다.

 

목차

 

                                                                    ◎ 파욱 사야도의 서문

                                                                    ◎ 머리말

                                                                    ◎ 감사의 말

                                                                    ◎ 추천의 글

 

1 선정의 역사

2 사마타 수행 : 마음의 청정

3 기초적인 이해

4 첫 번째 좌선에서 첫 번째 선정에 이르는 바른 정진

5 첫 번째로부터 네 번째 색계선정 그리고 연관된 수행들

6 다섯 번째부터 여덟 번째 무색계 선정 그리고 연관된 수행들

7 범주와 보호 명상

8 네 가지 요소 명상

9 우리의 역할 모델인 붓다

 

                                                                        ◎ 에필로그

                                                                        ◎ 옮긴이 후기

 

그때 존귀한 분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에게 이르니, 모든 형성된 것들은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마음에 새겨야 할 일을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그런 다음 존귀하신 분은 첫 번째 선정에 들었다.

 

해탈을 위한 세 가지 단계

1 윤리적 행위 혹은 도덕성(sila)

2 집중 혹은 고요함(samatha)

3 내적통찰(vipassana)

 

(집중수행과정의 사용을 위한) 여덟 가지 계[八戒]

1 나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2 나는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3 나는 모든 성적 행위를 하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4 나는 바르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5 나는 중독성 약물이나 술을 마시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6 나는 금지된 시간에 음식을 먹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즉, 정오 12시 이후)

7 나는 춤과 노래, 음악 듣기, 공연 보러 가기, 꽃 장식, 향수 사용 그리고 화장품으로 몸을 치장하는 것 등을 하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8 나는 높거나 화려한 의자 혹은 침대에 눕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현대불자들의 사용을 위한) 다섯 가지 계[五戒]

1 나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2 나는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3 나는 성적 행위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4 나는 바르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5 나는 정신을 흐리게 하는 중독성 약물이나 부주의하게 만드는 술을 마시지 않는 계를 지키겠습니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1 삶에 괴로움과 불만족이 있다는 사실

2 괴로움의 원인

3 괴로움의 소멸

4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여덟 겹의 길[八正道]

1 바른 견해

2 바른 의도

3 바른 언어

4 바른 행위

5 바른 생활

6 바른 정진

7 바른 마음챙김

8 바른 집중

 

아나빠나사띠 명상에 대한 설명

수행자는 숲 속으로 들어가거나 나무 아래 또는 빈 공간에 다리를 포개고 앉는다. 몸을 바로 세우고 명상의 대상에 마음챙김(mindfulness)을 확립한다. 한 번의 들숨에 온전히 마음을 모으고, 다시 한 번의 날숨에 온전히 마음을 모은다.

1 길게 숨을 들이 쉬면서,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또는 길게 숨을 내쉬면서, '나는 길게 숨을 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2 짧게 숨을 들이 쉬면서,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짧게 숨을 내쉬면서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라고 분명히 안다.

3 '호흡의 전체를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하면서 수행한다. 그리고 '내쉬는 호흡의 전체를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라고 하면서 수행한다.

4 호흡의 전체를 고요하게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라고 하면서 수행한다. 그리고 '호흡의 전체를 고요하게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라고 하면서 수행한다.

 

수행의 장애

1 감각적 욕망

2 성냄과 혐오

3 게으름과 혼침

4 들뜸과 후회

5 의심

 

선정의 요소

1 일으킨 주의(vitakka)

2 머무는 주의(vicara)

3 기쁨(piti)

4 행복(sukha)

5 한 정점(ekaggata)

 

각 선정의 요소는 다음과 같이 장애의 특성을 무력화시킨다

1 일으킨 주의(vitakka)는 감각적 욕망을 잠재운다.

2 머무는 주의(vicara)는 성냄과 혐오를 가라앉힌다.

3 기쁨(piti)은 게으름과 혼침을 억제한다.

4 행복(sukha)은 들뜸과 회한을 제거한다.

5 한 정점(ekaggata)은 의심을 극복한다.

 

수행자들은 사마타 수행에서 세 가지 유형의 집중을 만난다

1 찰나집중

2 근접집중

3 몰입집중

 

나는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인 번뇌를 볼 수 있었다. 마침내 내 자신의 망상과 굴복을 통해서 보게 된 것이다. 뜨거운 숯을 보았고 진정으로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까달았다. 시간이 지난 후 내 손을 펴 그것들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나 자신과 함께 명상과 생활 모두에 있어서 진리에 가깝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무엇이 다가오든지 그것과 함께 더 잘 해낼 수 있다.

 

집중수행을 하는 데 있어 좋지 않은 동기들

1 성과 추구

2 기쁨에 탐닉

3 신비한 정신적 능력의 계발

4 사마타를 마지막 수행으로 생각하기

 

첫 번째 좌선에서 첫 번째 선정에 이르는 여덟 가지 경계

1 처음 좌선하다.

2 니밋따(nimitta)가 시작되다.

3 니밋따가 강화되다.

4 니밋따가 안정되다.

5 니밋따가 견고하고 활력 있게 되다.

6 니밋따가 입출식 지점과 동화되는 쪽으로 움직이다.

7 니밋따와 입출식 지점이 합쳐져서 '입출식 니밋따'가 되다.

8 입출식 니밋따는 의식을 첫 번째 선정으로 이끈다.

 

네 가지 색계선정 그리고 연관된 선정의 요소들

1 첫 번째 선정 : 기울인 주의, 머무는 주의, 기쁨, 행복, 한 정점

2 두 번째 선정 : 기쁨, 행복, 한 정점

3 세 번째 선정 : 행복, 한 정점

4 네 번째 선정 : 한 정점, 평정

 

다섯 가지 선정의 숙련

1 선정의 요소들로 주의를 돌리다(주의를 일깨우거나 향하게 하다).

2 언제든지 원할 때 선정에 들어가다.

3 정해진 시간 동안 선정에 머물기를 결의하고 시간적 결의를 지키다.

4 원하는 시간에 선정에서 나오다.

5 선정의 요소들을 반조하다.

 

색계선정과 함께하는 수행법들

1 32가지 몸의 부분에 대한 명상

2 해골 명상

3 흰색 까시나(kasina)

4 닐라(갈색 · 검은색 · 푸른색) 까시나

5 노란색 까시나

6 빨간색 까시나

7 땅 까시나

8 물 까시나

9 불 까시나

10 바람 까시나

11 빛 까시나

12 공간 까시나處定

 

네 가지 무색계선정

1 무한한 공간의 영역(다섯 번째 선정, 空無邊處定)

2 무한한 의식의 영역(여섯 번째 선정, 識無邊處定)

3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일곱 번째 선정, 無所有處定)

4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영역(여덟 번째 선정, 非想非非想處定)

 

네 가지 범주[四梵住, 四無量心, Bramaviharas]

1 자애[慈, Metta]

2 연민[悲, Karuna]

3 기뻐함[喜, Mudita]

4 평정[捨, Upekkha]

 

네 가지 보호 명상

1 자애(사랑)

2 붓다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3 부정(不淨) 명상

4 죽음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회상)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86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곽재구 시집

1999, 열림원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0186

 

811.6

곽73ㄲ

 

섬진강과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보성강에게

75년 이후 그곳 모래 위에 발자욱을 남긴 모든 추억들에게

 

차례

 

1

산수유꽃 필 무렵

두 사람

밤 편지

큰눈 내리는 날

돌점 치는 여자

얼음주사위

따뜻한 편지

눈오는 밤에 춘향전을 읽다

얼음 풀린 봄 강물

칠석날

묵언 1

묵언 2

사월의 노래

배꽃

자장가

 

2. 연화리 시편

나무

누란

나뭇잎 배

계단

사마르칸트

하늘의 춤

산수유나무 아래서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기다림

고등어장수

수제비죽

분수

雪蓮

그리운 폭우

꽃을 드리는 이유

타클라마칸 사막

무지개를 위하여

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

쟈스민차

노란 꽃

하늘의 나무

촛불

소나기

가을의 시

백합

소년

타지크스탄

연꽃잎 우산

설해목

쓸쓸한 날의 춤

 

3

수선화 핀 언덕

겨울 시집

첫눈 오는 날

마음

가거도 편지

연기암에 올라

도문장터

선유도

낮달

용흥리 석불

0.75평

봉정리에서

모래톱이야기

바람소리

花心里에서

 

□ 시인의 말 / 강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날들

 

산수유꽃 필 무렵

- 산동에서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깊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 리.

 

 

모든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녔는지

난 알고 있다네

그 머리칼에 한 번 영혼을 스친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되는지도.

 

눈오는 밤에 춘향전을 읽다

 

눈오는 밤에

完版本 춘향전을 읽는다

찹쌀떡 사시오

찹쌀떡 사시오

거칠게 새겨진 목판활자

사이로 스며든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풀피리소리만 같다

날이 새면 경칩

옥문에서 풀려난 춘향이 앞장세우고

조선팔도 금수강산 유람 나서리.

 

칠석날

 

우리 할머니

채송화 꽃밭에서

손금 다 닳아진 손으로

꽃씨 받으시다가

 

이승길 구경 나온

낮달 동무 삼아

하늘길 갔다

 

반닫이 속

쪽물 고운 모시적삼도

할머니 따라

하늘길 갔다.

 

묵언 1

- 소금밭에서

 

한 고독이

한 고독을 눌러 죽이고

새로운 고독이 태어납니다

그러한 때

나는 패배자가 된

고독의 옆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승리자가 된 고독의

빛나는 웃음도 볼 수 없습니다

 

한 고독이

한 고독을 눌러 죽이고

서러운 고독이 태어납니다

그 빛나는 탄생의 신비 앞에서

한 햇빛이

다른 햇빛을 돌로 쳐 죽이는

끔찍한 모습을 만나기도 합니다.

 

나무

- 연화리 시편 1

 

숲속에는

내가 잘 아는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나무들 만나러

날마다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제일 키 큰 나무와

제일 키 작은 나무에게

나는 차례로 인사를 합니다

먼 훗날 당신도

이 숲길로 오겠지요

내가 동무 삼은 나무들을 보며

그때 당신은 말할 겁니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言語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누란

- 연화리 시편 3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난 곳은

사막 한가운데였습니다

돈황 버스 정류장 대합실에서

뜨거운 쟈스민차 한 잔에 마른 빵을 찍어 먹었습니다

바로 그때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지요

 

네가 찾는 것은 이 세상에 단 한 군데밖에 없지

 

사랑하는 이여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이 얼마나 설레였는지

당신은 모릅니다

삶과 죽음이 영원히 교차되지 않는 땅

영혼과 육체의 핍박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는 곳

사랑하는 이여 오늘도 나는

樓蘭으로 가는 모래밭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나뭇잎 배

- 연화리 시편 4

 

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매일 나뭇잎 배

하나씩을 띄웠습니다

 

나뭇잎 배에

나는 내 이름이나

영혼의 흔적 같은 것을

새기지 않습니다

 

어쩌다

당신이 내 배를 발견하곤

말하겠지요

난 너를 알아

네가 만든 이 작은 배도.

 

하늘의 춤

- 연화리 시편 7

 

당신으로부터

초록빛 만년필과

초록 빛깔의 잉크 한 병

선물 받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樹液이 적신

들판 저 멀리

눈부신 초록빛의 시 한 편

쓰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원고지를 남길 적마다

내게 하늘의 손을 주겠지요

그 손을 잡고 싶어요

당신이 내게 보낸 깃털 같은 그리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아늑하고 크낙한 하늘의 춤을 추고 싶어요.

 

산수유나무 아래서

- 연화리 시편 8

 

꽃뱀 한 마리가

우리들의 시간을 몰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바람이 보라색과 흰색의 도라지 꽃망울을 차례로 흔드는 동안

꼭 그만큼의 설레임으로 당신의 머리칼에 입맞춤했습니다

그 순간, 내 가슴 안에 얼마나 넓은 평원이 펼쳐지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는지……

사랑하는 이여, 나 가만히 노 저어

그대에게 가는 시간의 강물 위에 내 마음 띄웁니다

바로 곁에 앉아 있지만

너무나 멀어서 먹먹한 그리움 같은

언제나 함께 있지만 언제나 함께 없는

사랑하는 이여,

꽃뱀 한 마리 우리들의 시간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져 돌아오지 않습니다.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 연화리 시편 9

 

그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기다림

- 연화리 시편 10

 

이른 새벽

강으로 나가는 내 발걸음에는

아직도 달콤한 잠의 향기가 묻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 중

눈빛 초롱하고 허리통 굵은 몇 올을 끌어다

눈에 생채기가 날 만큼 부벼댑니다

지난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낡은 나룻배는 강둑에 매인 채 출렁이고

작은 물새 두 마리가 해 뜨는 쪽을 향하여

힘차게 날아갑니다

사랑하는 이여

설령 당신이 이 나루터를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내 기다림은 끝나지 않습니다

설레이는 물살처럼 내 마음

설레이고 또 설레입니다.

 

고등어장수

- 연화리 시편 11

 

어느 날

강변 내 오두막집 앞에

한 고등어장수가 닿았습니다

먼 바다에서 온 그의 고등어들은

소금에 잘 절어 파랗게 빛났습니다

고등어 값은 너무 비쌌답니다

난 이렇게 말했지요

왜 고등어 값이 쌌다가 비쌌다가 그러지요?

먼 바다에서 온 고등어장수가

내게 말했답니다

당신 제일 가까운 곳의 사람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면서

먼 바다 고등어의 값을 어떻게 셈하겠소?

 

수제비죽

- 연화리 시편 12

 

어제 저녁엔 수제비죽을 쑤었습니다

내 작은 오막살이 가득 멸치국 내음 가득 찼습니다

이 맛있는 내음 함께 맡아줄 이 없어 조금 서운했습니다

그때 한 나그네가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마중을 나간 내게 나그네가 말했답니다

"이 집에서 나는 향기는 처음 맡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상석에 앉히고 한 대접 수제비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말했지요

"神이시여, 이 모든 향기가 그대의 은총입니다"

그가 나에게 물었답니다

"그대는 어떻게 나의 이름을 부르는 이

이 지상엔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神이시여, 내 그리운 그 사람 외에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 이름입니다."

 

雪蓮

- 연화리 시편 15

 

히말라야 산맥에 오르면

눈 속에 피는 연꽃이 있습니다

나 그대 위하여

그 연꽃이 되겠습니다.

 

그리운 폭우

- 연화리 시편 16

 

어젠 참 많은 비가 왔습니다

강물이 불어 강폭이 두 배도 더 넓어졌답니다

내 낡은 나룻배는 금세라도 줄이 끊길 듯 흔들렸지요

그런데도 난 나룻배에 올라탔답니다

내 낡은 나룻배는 흙탕물 속으로 달렸습니다

아, 참 한 가지 빠트린 게 있습니다

내 나룻배의 뱃머리는 지금 온통 칡꽃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폭우 속에서 나는 종일 꽃장식을 했답니다

날이 새면 내 낡은 나룻배는 어딘가에 닿아 있겠지요

당신을 향한 내 그리움의 지름길은 얼마나 멀고 또 험한 지……

사랑하는 이여,

어느 河上엔가 칡꽃으로 뒤덮인 한 나룻배가 얹혀 있거든

한 그리움의 폭우가 이 지상 어딘가에 있었노라

가만히 눈감아줘요.

 

꽃을 드리는 이유

- 연화리 시편 17

 

끝없이

정말 끝없이

여기가 천국의 끝이기나

한 것처럼

오만해질 것

 

그리하여

어느 날

눈 화안하게 트여 오는

순정한 지평 하나를 볼 것.

 

타클라마칸 사막

- 연화리 시편 18

 

버스를 타고 끝없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달리다 보면

차창 밖 어디에고 신기루 피어납니다 오아시스 마을

지나온 지 불과 이십 리 지도에는 앞으로 하룻길 더

달려야 새 오아시스 마을에 이른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평선 어디에건 오아시스 마을 자리하지

않은 곳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 향한 내 마음이

신기루와 다를 바 전혀 없습니다 저 광활한 사막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 그 어디에도 그대 향한 내

그리움 스며들지 않은 곳 없습니다.

 

무지개를 위하여

- 연화리 시편 19

 

영혼은 어디에 있어요?

영혼의 강은 찾을 수 있어요?

영혼도 숨을 쉬나요?

영혼의 날개를 본 적 있어요?

그걸 좀 보여주세요

 

당신의 가슴에서

내 가슴에 이르는 저 기나긴

다리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색색의 꿈으로 빚어놓은

저 섬세한 바람의 술렁거림은 무엇인지요?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한 번도 꿈꾼 적 없으면서

그냥 그렇게 가슴에 와 부서지는

저 그리운 빛들의 축제는 또

무어라고 부르지요?

 

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

- 연화리 시편 20

 

빛살 터지는

강변을 거슬러 오르며

나는 내 언어의

금속세공업자가 됩니다

 

밟히는

모래 한 알 한 알마다

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이라

새겨 넣을 겁니다

떨어지는 빛살 한 올 한 올마다

꼭 그렇게 새겨 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하늘의 찬란한 기술을

다 익혔을 때

당신이 벗은 발로 내게 찾아오던

그날의 긴 설레임과 환희를

금빛의 강물 위에 새길 것입니다.

 

쟈스민차

- 연화리 시편 21

 

내가 처음 쟈스민차를 마신 곳은

돈황의 사막이었습니다

나는 돈황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쟈스민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당신을 깊게 사랑한 것은 아니었던지요

돈황

그 이름 속에 쟈스민 향기와 같은

당신의 향기가 스며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정말 알 수 없었답니다.

 

노란 꽃

- 연화리 시편 22

 

그 꽃의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높은 산으로 가는 길목에 앉아

호박죽 하나로 그리운 허기를 지우고 있을 때

우리 눈앞에 그 노란 꽃들 나타났습니다

산뻐꾸기가 울고 어디선가

하얀 나비떼들이 찾아왔습니다

너무나 깊게

당신의 무릎 위에

내 영혼을 눕히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일고

노란 꽃들이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하얀 나비떼들이 팔랑팔랑

바람 속을 날았습니다

내 가슴속에

함께 춤추고 싶은 꽃의 이름이 있습니다

눈부시게 노오란 그 꽃의 이름은 당신에게조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나무

- 연화리 시편 23

 

긴 여행 끝에

우리는 한 포구에 닿았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것이 다 떨어진

우리들의 낡은 배는

포구의 잔 불빛에도 자꾸만 흔들렸습니다

마을의 불빛과 고깃배들의 불빛이

싸리꽃처럼 곱고 아름다웠으므로

우리는 배고픔도 잊고

그 꽃송이들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한 차례 흔들면 우수수 쏟아질 듯

하늘의 나무에 무수한 별들이 매달렸습니다

인간의 한 사랑이

8만 4천 년을 적신다는

그 땅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얼마나 더 깊은 사랑을 만나야

그리운 그 바닷가에 닿을 수 있나요?

 

촛불

- 연화리 시편 24

 

사랑하는 이여

 

그대 산 너머 떠날 때

내게 촛불 하나 주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밝히라는 따뜻한 言語인가요

사랑하는 이여 오늘밤

은하수 너머 당신이 사는 먼 마을까지

촛불 하나 들고 끝없는 하늘길 오르내리는

사내 하나 있습니다.

 

소나기

- 연화리 시편 25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격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가을의 시

- 연화리 시편 26

 

오후 내내

나룻배를 타고

강기슭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당신이 너무 좋아하는 칡꽃 송이들이

푸른 강기슭을 따라 한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젖은 꿈처럼 수면 위에 잠기고

수면 위에 내려온 칡꽃들이

水深 한가운데서

부끄러운 옷을 벗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어가고

지천으로 흩날리는 꽃향기 속에서

내 작은 나룻배는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백합

- 연화리 시편 27

 

당신이 고통으로 흔들리는 그 순간마다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당신이 주체할 수 없는 정신의 방황으로

아름다운 긴 머리칼마저 흐트러뜨릴 때

내 마음의 뜨거운 골짜기에서

진실로 순결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어느 날

당신은 나를 떠나겠지요

내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찬란한 바다

모든 파도가 슬픔으로 술렁이는

그날도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소년

- 연화리 시편 28

 

소라껍질을 귀에 대면

큰 도시의 시장이나 지하철 안에서도

바다 소리가 들려

어느 날 당신이 내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 바다 소리 들으러

소라고둥 하나 들고

마음의 먼 도시로 떠나가는

소년 하나 있습니다.

 

타지크스탄

- 연화리 시편 29

 

낡은 라다 승용차를 타고

나는 눈 덮인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밤은 먼 도시의 불빛들을

페르가나산 보석으로 치장하여 줍니다

지금부터 2,600년 전 한 인도 사내는

6년 동안 이 지상의 불빛들을

雪山 위에서 헤아렸습니다

그대여

내가 그대를 위하여

오르는 산의 높이는 불과 5,400미터입니다

그런데도 오르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오르다가, 산 아래 불빛들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만 그 중의 하나를 붙잡고

잠이 들고 싶기도 하답니다.

 

- 복종, 연화리 시편 30

 

밥을 먹다가

바로 앞 당신 생각으로

밥알 몇 개를 흘렸답니다

왜 흘려요?

당신이 내게 물었지요

난 속으로 가만히 대답했답니다

당신이 주워 먹으라 하신다면 얼른

주워 먹으려구요.

 

연꽃잎 우산

- 연화리 시편 31

 

강물이 고요한 목소리로 흐릅니다

바람이 산비탈을 따라 느릿느릿 내려오는 모습도 보입니다

뱃사공은 어느 산자락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날개가 하얀 큰 새가 모래사장을 따라 내려가고 있습니다

작은 빗방울들이 강물 위에 꽃맨드라미를 지피고 갑니다

이러한 날 당신은 중앙아시아의

어느 도시를 연둣빛 우산과 함께 걷고 있겠지요

즐거워하며 팔짱을 끼고 인도의 어느 꽃가게 앞이나

이집트의 古樂器店 앞도 기웃거리겠지요

난 당신의 그런 모습도 보기 좋답니다

언젠가 당신이 내게 찾아오는 날

난 당신에게 연꽃잎으로 만든 우산 하나 펼쳐 드릴 겁니다

그때 당신이 내게 어떤 표정을 지을 건지

가만히 생각해보는 산자락에 비는 그대로 내립니다

 

수선화 핀 언덕

 

내 나이

스물한 살이었을 때

 

강가의

나무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새

 

수선화 핀

언덕을 넘어가자고

 

수선화 핀

언덕을 차마 넘어가자고.

 

선유도

 

섬과

섬 사이

새가 날아갔다

보라색의 햇살로 묶은

편지 한 통을 물고

 

섬이 섬에게

편지를 썼나 보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85 Andy Warhol 앤디워홀

 

지은이 | 이자벨 쿨, 옮긴이 | 정연진

2008, 예경

 

 

시흥시대야도서관

SB0401661

 

650.8

아887ㅇ  7

 

ART SPECIAL 7

 

Andy Warhol |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의 표면을 관찰하면 된다.

그 표면 밑으로 숨겨진 건 아무것도 없다."

-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은 살아 있는 동안에 '살아 있는' 신화였고, 세상을 떠난 지금 역시 '살아 있는 신화'이다. 워홀에 의해 수프 캔, 세탁 세제 박스 같은 일상용품은 처음으로 예술의 주제가 되었으며, '공장(팩토리)'이라고 불리는 그의 작업실은 뉴욕 보헤미안의 집결지가 되었다. 이 책은 워홀이 활동한 1960년대 자본주의의 수도 뉴욕으로부터 팩토리와 그의 사랑을 비롯한 삶과 예술, 오늘날 앤디 워홀의 위상 등을 한꺼번에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지은이 | 이자벨 쿨 Isabel Kuhl은 미술사가이며 편집자이자 작가로 활동 중이다.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다.

 

옮긴이 | 정연진은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 예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국제회의통역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대학원에서 통번역학 박사과정 재학 중에 있고, 동대학원 및 서강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앤디 워홀 | Andy Warhol(1928-87)

 

가난한 이민가정에서 태어난 앤디 워홀은 카네기 공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단돈 200달러를 들고 뉴욕으로 향한다. 뉴욕에서 워홀은 잡지나 신문 삽화, 광고 그림을 그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흔히 먹던 캠벨 수프, 코카콜라병을 작품소재로 삼아 뉴욕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킨다. 이후 공장에서 찍어내듯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미술품을 대량생산해내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인 팩토리에서 조각품, 실크스크린뿐만 아니라 실험영화까지 제작했다. 그는 영화에 그치지 않고 유명인과의 인터뷰를 실은 잡지를 창간하고, TV 쇼를 진행하고, 광고에 출연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워홀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비판이 커질수록 더욱 높은 유명세를 탔다.

 

1928-44

 

세계사

 

>> 1929년 토마스 만, 《부덴부르크 일가》로 노벨문학상 수상. 10월 24일, 뉴욕 증시 급락으로 '검은 금요일' 이후로 세계경제에 위기가 도래.

>> 1933년 아돌프 히틀러, 독일 제 3제국 총리로 취임.

>>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

>>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 1941년 콘라드 추제가 최초의 컴퓨터 발명.

 

앤디 워홀의 예술세계

 

>> 1928년 8월 6일 피츠버그에서 워홀 출생함. 당시 이름은 '앤드류 워홀라'

>> 1934-36년까지 초등학교, 그 후에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함.

>> 1942년 아버지 온드레이 워홀라 사망.

 

1945-49

 

>> 19455년 제2차 세계대전 종결.

>> 1946년 첫 UN 총회가 열림.

>> 1947년 인도 독립.

>> 1949년 나토 설립. 마오쩌둥,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선포. 윌렘 드쿠닝, 잭슨 폴락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뉴욕에서 예술가 동맹인 '성마른자들(The Irascibles)' 결성.

 

>> 1945년 피츠버그 카네기 공대에서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학업을 시작함.

>> 1949년 졸업과 동시에 뉴욕으로 이사 · 광고 디자이너로 취업함.

 

1950-55

 

>> 1953년엘비스 프레슬리의 첫 앨범 발매.

>> 1954년 제1차 베트남 전 종결. 미국 상원의원 매카시의 시대가 막을 내림.

>> 1955년 독일 카셀에서 제1회 도쿠멘타 전시회 열림. 제임스 딘이 차 사고로 사망. 바르샤바 조약 체결.

 

>> 1950년 어머니 줄리아, 뉴욕 워홀의 집으로 이사 옴.

>> 1952년 뉴욕 휴고 화랑에서 드로잉 작품으로 첫 개인전이 열림.

>> 1954년 '미국 그래픽 아트 협회'가 수여하는 상업디자인 분야 최우수상 수상.

>> 1955년 처음으로 조수를 기용함.

 

1956-62

 

>> 1957년 영화배우 험프리 보거트 사망. 구소련,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지구궤도에 쏘아 올림.

>> 1958년, 미국 첫 인공위성 발사.

>> 1959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 장악함.

>> 1952년 배우 마릴린 먼로 사망.

 

>> 1956년 '아트 디렉터스 클럽 어워드'에서 '디스팅티브 메리트' 메달 수상.

>> 1957년 앤디 워홀 엔터프라이즈 사(社) 설립.

>> 1960년 만화를 모티브로 한 첫 작품을 선보임.

>> 1962년 할리우드 스타와 캠벨 수프 깡통 모티브의 실크스크린 작품을 선보임.

 

1963-64

 

>> 1963년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됨.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 상영.

>> 1964년 초반 베트남 전 발발. 제3회 카셀 도쿠멘타 열림. 장폴 사르트르가 노벨문학상 거부함.

 

>> 1963년 작업실을 '팩토리'로 명명함. 첫 영화 <슬리프>를 제작함.

>> 1964년 파리 일리아나 소나벤드 화랑에서 유럽 첫 전시회 열림.

 

1965-68

 

>> 1965년, 말콤 X 피살됨. 밥 딜런, 노래 <라이크 어 롤링 스톤> 발표.

>> 1966년 중국 문화혁명이 일어남.

>> 1967년 체 게바라의 사형이 집행됨. <섬머 오브 러브> 행사로 히피문화가 절정에 다다름. 뮤지컬 <헤어> 초연됨. 르네 마그리트 사망.

>> 1968년 마틴 루터 킹이 암살됨. 파리에서는 대학생들이 소르본 대학을 점거하고, 무력진압이 벌어짐.

 

 

 

>> 1966년 해프닝 예술인 <익스플로딩 플레스틱 인에비터블>을 연출함.

>> 1967년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커버를 디자인함.

>> 1968년 제2 팩토리로 이사. 7월 3일 여성권리주의자 발레리 솔라나스의 총격에 의해 중상을 입음.

 

1969-72

 

>>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

>> 1970년 점보제트 여객기 첫 출항.

>> 1971년 이집트에서 아스완 댐 준공. 가수 루이 암스트롱 사망. 빌리 브란트, 노벨평화상 수상.

>> 1972년 로마 클럽에서 《성장의 한계》 보고서 발표.

 

 

>> 1969년 《인터뷰》지 창간.

>> 1971년 뉴욕의 라마마 실험극장과 런던의 라운드하우스 극장에서 <포크>를 상연. 워홀의 슈퍼스타 중 한 명인 에디 세즈웍 사망.

>> 1972년 피츠버그에서 어머니 줄리아 사망.

 

1973-75

 

>> 1973년 베트남전 휴전. 1차 오일파동이 일어남. 파블로 피카소 사망.

>> 1974년 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파문으로 하야함. 요셉 보이스가 뉴욕에서 <나는 미국을 좋아하며, 미국은 나를 좋아한다>라는 제목 하에 행위예술을 펼침.

>> 1975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社) 설립.

 

 

>> 1974년 제3 팩토리로 이사함.

>> 1975년 저서 《앤디 워홀의 철학》 출간으로 큰 성공을 거둠.

 

1976-80

 

>>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 사를 공동설립함. 화가 만 레이 사망.

>> 1977년 한스마틴 슐라이어 독일경영자연맹 회장이 테러단체 '적군파(RAF)'에 의해 납치되어 살해됨. '독일의 가을'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독일 테러리즘이 최고조에 달함.

>> 1978년 첫 시험관아기 탄생. 요한 바오로 2세 즉위.

 

 

>> 1978년 <산화> 연작을 선보임.

>> 1980년 《파피즘》 출간, 요셉 보이스의 초상화를 작업함.

 

1981-85

 

>>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이 제40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 IBM 사가 첫 개인컴퓨터(PC)를 시장에 선보임.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스펜서의 결혼식이 열림.

>>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에 포크랜드 전쟁 발발. 배우 로미 슈나이더 사망.

>>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됨.

 

>> 1981년 제4 팩토리로 이사함.

>> 1982년 뉴욕 지역방송사에서 <앤디 워홀 TV>가 방영됨.

>> 1984년 장 미셸 바스키아, 프란체스코 클레멘테와 공동작업을 시작함.

 

1986-87

 

>>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참사가 일어남. 요셉 보이스 사망.

>> 1987년 마티아스 루스트가 세스나기(機)로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착륙함.

 

>> 1986년 MTV에서 <앤디 워홀의 15분>이 방영됨.

>> 1987년 2월 22일 수술 합병증으로 워홀 사망함.

 

차례

 

그때 그 시절

모든 길은 빅애플로……

 

최고가 되기까지

높이, 더 높이

 

예술

일상을 그리는 화가

 

파티도 좋지만 일 먼저

 

사랑

슈퍼스타의 조용한 사랑

 

지금도 우리 곁에

뒤늦은 명성

 

그때 그 시절

 

"뉴욕은 어떤 도시와도 다르다.

뉴욕은 추하고, 지저분하다.

탁한 공기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뉴욕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다른 어떤 도시도 뉴욕만큼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을……."

헨리 제임스

 

거대한 사과!

 

빅애플은 20세기가 흐르는 동안 국제적인 예술, 미디어, 금융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잠들지 않는 도시'인 뉴욕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었다. 앤디 워홀도 그 수혜자 중 한 사람이었다.

클래스 올덴버그는 생활소품들을 커다랗게 확대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미술품에 현실성을 부여하려면 그것을 현실 세계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야 한다."

- 로버트 라우센버그

 

"예술은 박물관에 쳐박혀 있는 것 그 이상의 것을 행해야 한다."

- 클래스 올덴버그

워싱턴 스퀘어 광장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비트족 시인 앨런 긴즈버그, 그레고리 코르소, 언론인 바니 로셋, 1957년.

맨해튼에 있는 낡은 모자공장을 개조해 만든 앤디 워홀의 첫 '팩토리'.

안무가 머스 커닝엄이 공연한 발레극 <레인 포레스트>, 1968년.

팝 예술가인 톰 웨슬만은 일상생활의 소품을 나체 여성과 함께 구성했다.

액션 페인팅 | 잭슨 폴록은 자신만의 예술세계와 더불어 새로운 회화기법도 함께 발견했다. '드리핑' 기법이 그것으로, 거대한 캔버스에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뿌려대는 방식이다. 캔버스가 큰 경우에는 캔버스를 눕혀 놓고 그 위를 돌아다니며 작업했다고 하니, '액션 페인팅'이라는 며ㅛㅇ칭이 어색하지 않다.

표현주의 | 잭슨 폴록이 사망한 뒤 웰렘 드 쿠닝이 추상표현주의 예술의 선두주자로 나선다. 드 쿠닝이 살던 곳의 지명을 딴 1957년 작품 <팰리세이드>는 제목만 보고는 감상자가 모티브의 지형을 가늠하기 어렵다. 푸른색으로 가득 찬 캔버스를 휘저은 넓은 붓터치가 인상적이다.

발견자 | 앤디 워홀의 초상화에 나타난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스트인 그는 1960년대 뉴욕을 휘저었던 최고의 예술 기획자였다. 재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 팝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기획하고, 이들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준 인물이다.

젊은 야성 | 앤디 워홀과 키스 해링을 알기 전, 장 미셸 바스키아는 맨해튼의 벽이란 벽은 모두 그래피티 낙서로 채우고 다녔다. 그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최고의 예술가로 급부상한다. 바스키아는 27세로 요절했지만 100점이 넘는 유화 및 오브제 그리고 2천 점이 넘는 습작을 남겼다.

 

최고가 되기까지

 

"물론 앤디 워홀이 재능이

없다은 아니오.

…… 다만 천재적인

자기홍보 능력외에

그가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모르겠단 말이오."

트루먼 카포티

 

"사업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이는 워홀이 뉴욕 광고계에 몸담았던 초기에 터득한 신조이다. 예술계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워홀에 대한 관심은 불꽃처럼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1980년 독일 뮌헨에서 함께한 앤디 워홀과 요셉 보이스.

 

극장에 이름을 걸다

 

1968년 여름, 앤디 워홀은 여성운동가 발레리 솔라나스의 총격으로 큰 부상을 입는다. 그가 입원한 병원에 문안편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에서 예전에 워홀의 영화를 상영했던 그리니치 빌리지 개릭 극장에서 보내온 편지는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워홀을 기리는 뜻에서 1968년 7월 15일, 극장 이름을 '더 앤디 워홀 개릭 극장'으로 개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앤디 워홀에 대한 심리분석이라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네. 그를 너무 사랑하니까."

- 요셉 보이스

워홀의 끊임없는 노력과 야망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워홀은 생전에 여러 유명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명예를 누렸을 뿐 아니라 국제전시회를 통해 엄청난 부도 거머쥐었다.

1949년, 사회 초년생인 워홀이 맡은 일은 여성지 《글래머》에 실린 '뉴욕 직장에서 성공하기'라는 기사에 삽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

- 앤디 워홀

1961년, 워홀은 자신의 작품을 쇼윈도 장식에 활용한다.

1964년 레오 커스텔리 화랑에 전시되었던 <브릴로 박스>.

1964년 동료 화가들과 함께한 워홀. 왼쪽부터 톰 웨슬만, 로이 리히텐슈타인, 제임스 로젠퀴스트, 앤디 워홀, 클래스 올덴버그.

위조지폐 혹은 예술지폐 | "난 돈이 벽에 걸려 있는 게 좋다. 어차피 20만 달러를 주고 그림을 살 거라면, 그냥 돈을 벽에 거는 게 더 낫다." 워홀은 자신의 저서 《앤디 워홀의 철학》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가 그린 위조지폐들은 진짜 지폐의 가치를 훌쩍 넘어서버렸다.

돈의 예술 | <달러 사인>은 평단과 관람객 모두에게 외면당했다. 갤러리스트 레오 카스텔리가 1982년에 기획한 대규모 전시회는 실패로 끝나버린다.

화제 바꾸기 | 작품 <꽃>은 워홀이 <전기의자>의 예처럼 죽음과 연관지어 기획한 시리즈 이후에 탄생한 작품이다. 워홀이 이처럼 친근한 모티브를 선택하게된 데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현대미술 담당인 헨리 겔트잘러의 역할이 컸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 워홀의 <꽃> 시리즈는 1964년 카스텔리 화랑 전시회에서 전 작품 매진이라는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꽃> 시리즈는 워홀이 처음으로 자연에서 모티브를 구한 작품으로, 위에서 내려다본 꽃밭을 사진에 담아 작업에 활용했다.

친구, 그리고 적 | 워홀은 독일 출신 예술가인 요셉 보이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친구만 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사진작가인 프레데릭 에버슈타트는 1960년대 워홀에 대해 "은색 가발을 뒤집어 쓴 역겨운 말라깽이"라는 서슴지 않았다.

동료 예술가 | 워홀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유명인사라면 누구든 초상화의 모티브로 삼았는데, 동료 예술가였던 요셉 보이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워홀은 초상화 모델의 사진을 찍을 때, 그림같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얼굴을 하얗게 화장시키곤 했다고 한다.

 

예술

 

"착한 워홀은 워홀이 아니지.

사람이 이보다 짖궂을 수 있을까?

워홀은 예술사학자들에게

아주 골칫거리다.

워홀이 일부러 예술사를 무시하는지

아니면 아무 생각

없는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그가 폭발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거다."

로버트 라우센버그

 

달러 지폐, 자동차 사고,

연쇄살인범, 수프 깡통……

 

워홀의 작품에 등장한 모티브들을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그가 찾는 대상은 일상적이고, 진부한 것들이었다. 미술계가 이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아직은 추상표현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팝 예술가인 재스퍼 존스 또한 제품 포장 디자인에 매혹을 느꼈다. 다만 그가 고른 소재는 수프가 아닌 맥주 깡통이었을 뿐.

 

 

"팝아트란 사물을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

- 앤디 워홀

 

 

 

워홀은 20년간 캠벨 수프가 자신의 점심 메뉴에서 빠진 적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가까운 대상이었으니 작품의 모티브로 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980년대에는 거꾸로 캠벨 회사에서 워홀에게 광고 포스터 제작을 의뢰했다.

 

"말이 없는 작품일수록 완벽한 작품이기 마련이다."

- 앤디 워홀

아크릴과 파스텔로 캔버스에 그린 <슈퍼맨>. 1960년 작품.

깡통의 활약은 계속된다. 캠벨 수프 깡통은 워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모티브가 된다.

1966년, 워홀은 카스텔리의 화랑에서 벽지와 방석 디자인을 선보인다.

슈퍼스타 제인 홀저와 함께 한 앤디 워홀. 1966년.

번진 선 | 워홀의 드로잉 기법은 '블로티드 라인' 즉 '선 번짐'이라고 불린다. 번진 점이 이어져 선 모양이 되는데, 잉크로 그림을 그린 후 종이를 덮어 찍어내면, 거울 반대방향으로 드문드문 끊어진 선이 생겨난다. 이러한 인쇄기법은 워홀의 오프셋 인쇄 작품들을 한층 다양하게 해주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신발 | 워홀은 구두라면 가리지 않고 그렸다. 1956년 작품인 금장식 구두 그림은 조금 특별하다. 제목이 가수이자 배우인 <주디 갈런드>였기 때문이다. 워홀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꼬불꼬불한 글씨는 워홀의 어머니인 줄리아의 필적이다.

스텝을 따라서 | 워홀은 스텝 순서를 그림으로 옮기면서 깨끗한 흑백으로 처리했다. 이 1962년 작품은 2분의 2박자 또는 4분의 4박자의 경쾌한 리듬에 맞추어 추는 폭스트롯 스텝을 보여준다. 이 연작의 다른 그림을 감상하면 또 다른 춤들을 배울 수 있다.

30명의 모나리자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르네상스 시대의 미녀 모나리자에 워홀은 홀딱 반했다. 워홀은 결국 이 신비한 미소를 복제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림의 제목은 <서른 개가 한 개보다 낫다>이다.

실험정신 | 워홀의 영화 <이트>에서 주인공 로버트 인디애나가 버섯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다. 조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45분. 뻔한 장면이 계속되는 것을 감안하면 꽤 긴 작품이다. 1960년대 워홀 영화의 키워드는 '디테일'이었다.

인내심 | 1964년 영화 <앰파이어>에서 워홀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다. 이 영화를 감상하려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주변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7시간 동안 한 각도만을 응시해야 한다.

산화작용 | 이 작품의 기법에 대한 점잖은 표현은 '금속성 킬러에 혼합재료' 정도가 되겠다. 워홀의 팩토리에선 금속 함유 물감을 칠하고 오줌으로 산화처리한 이 기법을 '오줌 페인팅"이라고 불렀다.

미스터리 | <그림자> 시리즈는 크기가 매우 큰 추상화이다. 이 비밀스러운 작품을 보면 도무지 이전 작품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워홀은 이 그림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이건 살 수 있는 그림이 아니오"라고.

그림자 극장 | 팩토리에 들어찬 물건들이 만들어내는 이런저런 모양의 그림자는 워홀의 그림자 시리즈 제작에 많은 영감을 주었으리라,  <산화>와 마찬가지로 워홀은 이 작품에서도 구매자들에게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앤디는 다른 인간들과는

완전히 달라요. 냐고요?

세계 최초로 제작된 플라스틱

인간이니까요."

울트라 바이올렛(본명 이자벨 뒤프렌)

 

"수줍고, 말이 없고

때론 배타적인 사람."

 

워홀 작품의 모델이 되었던 지인들의 평가다. 수많은 사진 속의 웃는 모습이 많지 않다. 워홀은 하루의 대부분을 창작에 매달렸고 시간이 생기면 파티 장소를 돌아다니는 데 썼다. 어김없이 카메라, 녹음기 그리고 그를 따르는 '슈퍼스타'들을 대동하고 말이다.

스튜디오 54에서 파티를 즐기는 앤디 워홀과 모델 제리 홀.

 

"내가 결혼한 건 1964년. 내 생애 첫 녹음기를 손에 넣었을 때다. 그 녹음기가 내 아내가 되었지. 내가 보통 '우리'라는 인칭을 쓰면, 그건 '나와 내 녹음기'를 지칭한 거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여기에선 어딘가 항상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지하실 아니면 지붕 위에서, 지하철 아니면 버스에서, 배 위에서 아니면 자유의 여신상에서."

- 앤디 워홀

워홀라 형제들. 왼쪽으로부터 폴, 앤드류, 존. 1942년 피츠버그 추정.

어머니 줄리아, 형 존과 함께한 앤디 워홀. 1931년 추정.

말끔하게 양복을 입은 앤디 워홀. 17세 추정.

인테리어 디자이너 수지 프랭크퍼트와 공동으로 펴낸 코믹 요리책 《와일드 라즈베리》 중 가장 많이 추천받은 래시피.

거울 속의 나 | 앤디 워홀은 앤드류 워홀라로 불리던 고등학생 시절에 이미 자화상 그리기를 좋아했다. 실크스크린 기법을 알게 된 1942년까지는 연필을 주로 사용했다.

클로즈업 | "앤디 워홀은 예술가와 사회 사이, 그리고 문명, 예술, 소비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소외감을 지워버리고 싶어했다. 그는 갈등 없는, 그리고 의미 없이도 아름다운,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예술적 삶을 꿈꾸어왔다. 그는 쓸데없는 공산주의 따위가 아니라 이러한 삶이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고, 또 '행복한 소비기계'로 만든다고 했다." 1982년, 에두아르 보캉의 말.

캔버스에 만화 | 앤디 워홀은 어린 시절 만화를 무척 좋아했는데, 커서도 그 취향이 크게 바뀌지 않았던 모양이다. 워홀은 1961년, 시금치를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 '뽀빠이'를 캔버스로 불러냈다.

컬트 캐릭터 | 만화 캐릭터가 무조건 어린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재치 있는 소녀 낸시의 일상과 모험을 그린 만화 <낸시>는 각종 신문에 연재되었고, 20세기에 가장 오래 연재된 만화 중 하나다.

색채의 향연 | 워홀은 1974년에 그린 영국 화가 데이비스 호크니 초상화에서 배경을 푸른 물빛으로 가득 채웠는데, 그냥 사용한 것은 아닌 듯하다.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들을 그린 유화로 유명해진 화가이기 때문이다.

동질감 | 1961년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카스텔리 화랑에서 선보인 거대한 만화 컷들은 워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1976년, 워홀은 존경하는 리히텐슈타인의 모습을 초상화에 담는다.

영화산업의 여신 | 노란 배경에 보라색, 검은 배경에 연두색……, 워홀이 만들어낸 수십 개의 틀 속에서 마릴린 먼로가 미소 짓고 있다. 워홀은 영화 <나이애가라>(1953)에 나온 먼로의 모습을 작품 소재로 택했다.

여신의 신화 | 먼로가 196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했을 때의 나이는 36세였다. 먼로의 죽음에 관한 억측이 쏟아져나오면서 그녀는 점차 신화로 자리매김해갔다. 끊임없이 먼로에 대해 '찍어내고' 싶어하는 마음은 언론이나 워홀이나 매한가지였다.

1975년에 출간된 《앤디 워홀의 철학》 표지.

워홀 사망 후 출판된 《앤디 워홀의 일기》.

1968년 6월 4일자 《뉴욕 포스트》지에 앤디 워홀과 저격범인 발레리 솔라니스(오른쪽)의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뉴욕에서 워홀과 촬영작업 중인 프레드 휴즈, 테일러 미드, 패트릭 틸든클로즈, 1967년 12월.

조 달레산드로가 출연한 1968년 워홀 영화 <플레시>의 포스터.

워홀이 발간한 잡지 《인터뷰》의 창간호 표지. 1969년.

1987년 2월 23일 《데일리 뉴스》에 실린 워홀의 사망 소식.

황제 | 워홀의 스타 시리즈에 '로큰롤의 황제'가 빠질 리가 없다. 워홀은 가수로, 또 배우로 성공을 거듭하는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열광했다. 1963년 작품 <더블 엘비스>에서 워홀은 은빛 배경에 자동차 도장용 래커 한 통을 모두 사용했다.

재키 | 1963년 11월 케네디 암살 당시 재클린 케네디는 옆에서 남편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수 주가 흐른 뒤에도 미디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언론매체에 실린 재키의 다양한 모습은 워홀에게 영감을 주었다. <열여섯 명의 재키>에서 워홀은 패션 아이콘 재키와 미망인 재키의 모습을 상반되게 보여준다.

초고속 작품 | 팩토리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에는 '초고속'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듯하다. 당시에 제작된 연작 중 하나도 이러한 특성에 걸맞게 교통사고를 모티브로 했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아직 도발적인 예술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재난 | 워홀은 비극적 문구의 헤드라인이 지니는 흡인력에 대해 일찌감치 간파하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다. 전기의자, 연쇄살인범, 해골, 재난사고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위의 작품은 <열 번의 초록빛 재난>.

진부함의 아름다움 |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 워홀은 이러한 신조를 내걸고 진부한 대상까지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독일의 저명 출판업자인 지크프리트 운젤트가 앤디 워홀에 대해 평가한 1991년의 편지 내용이다. 달걀 그림이 더욱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형태의 최소화 | 때론 흑백으로, 때론 요란한 색깔로 캔버스를 가득 메운 달걀 그림은 간략한 모티브와는 달리 규모가 어머어마하다. 캔버스 길이가 자그마치 180cm, 작품 수는 230점이나 되었다. 1982년 워홀이 부활절 기념으로 제작한 이 연작에서 추상화풍이 살짝 엿보인다.

워홀의 안목 | 워홀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워홀이 이 작품을 어떤 시선으로 봤는지가 중요하다. 1987년 워홀 사망 후 그의 <최후의 만찬> 연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경매에서 17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빈정거림의 진실 | 화가 자니스 쿠넬리스는 1985년 요셉 보이스와 나눈 대화에서 워홀의 무지함에 대해 성토한다. "5년 전, 앤디 워홀이라는 작자가 이탈리아에 왔어요. 사람들이 이 멍청이를 우리 테이블에 앉혔죠. 테이블에는 모라비아를 비롯한 여러 명의 작가가 있었는데, 이탈리아 예술가 중 아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워홀이 글쎄 '이탈리아에 관해선 스파게티밖에 아는 게 없다'고 하지 않겠어요." "빈정거린 것이었겠지." "빈정거린 게 아니었어요! 워홀은 앉아서 줄곧 모욕적인 말만 늘어놓았다구요. 그는 재능도 없고, 예술가는 더더욱 아니에요!"

 

사랑

 

 

"세상본인

직접 참여해야 되는

두 가지가 있다.

섹스와 파티."

 

앤디 워홀

 

변화의 물결 속에서

 

미국 산업화시대의 수시민적 삶에서 시작하여 폭풍우 같던 1968년 히피시대를 거쳐 1980년대 피트니스 열풍과 첫 에이즈 공포를 겪기까지 워홀이 살아온 시대는 빠른 변화를 겪었고, 워홀은 그 물결을 따라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코르키(랄프 T. 워드)와 앤디 워홀이 1953년 함께 펴낸 시집 《사랑은 핑크 케이크 같은 것》의 표지.

 

"가십과 스타들을 그토록 좋아하는 앤디가 자신의 개인사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내보이기 싫어했다는 건 매우 모순된 일이다."

- 헨리 겔트잘러

워홀은 그림, 영화, 사진을 통해 보여주었던 자유분방함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애정사에 관해서는 매우 폐쇄적인 태도를 보였다.

워홀이 1955년에 《내 정원의 바닥에서의 책 표지에 그린 연인의 형상.

 

"앤디 워홀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내 그림, 내 영화, 내 모습에서 보이는 표면을 관찰하면 된다. 그 표면이 바로 나다. 그 밑으로 숨겨진 건 아무것도 없다."

- 앤디 워홀

워홀은 오랜 세월 어머니와 한집에서 살았다. 1974년 작 <줄리아 워홀라>.

앤디 워홀과 그림자. 1981년에 그려진 자화상 연작 중 하나이다.

골드북 | 《골드북》에서 보이는 인체 드로잉 및 초상화에서도 워홀은 특유의 부드럽고 드문드문 이어지는 곡선을 사용했다. 사진을 근거로 드로잉을 그렸는데, 후기 초상화에는 상상력이 많이 추가되었다. 18점의 그림이 담긴 《골드북》은 하드커버로 100권이 제작되었다.

초기 작품 | 1957년 출판된 《골드북》의 드로잉은 워홀이 서른 살 때 선보인 작품이다. 당시 워홀은 상업디자이너로 성공을 거둔 지 십 년이 흘렀지만 그의 금빛 드로잉들이 순수미술로 인정받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Do It Yourself!" | "직접 꾸며보세요!" 워홀이 작품에 곁들인 친절한 설명이다. <두 잇 유어셀프> 연작에서 워홀은 일부만 색칠하고, 나머지 작업은 구매자들의 몫으로 남겨놓는다. 이러한 '색칠공부'식 콘셉트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색칠공부 | 워홀의 <두 잇 유너셀프> 연작에서는 숫자 칸이 모두 비거나, 모두 채워지는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거대한 캔버스에 펼쳐진 바닷가 풍경 속에 색을 지시하는 번호들이 흩어져 있다.

권태 | 워홀은 1976년 동료인 글렌 오브라이언이 "요즘은 왜 자주 그림을 그리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디어가 떨어졌어.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도 않고, 난 오래 전부터 그리기를 포기하려고 했어. 매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건 정말 지루한 일이야……."

토르소 | <토르소> 연작은 워홀이 회화를 포기하고 영화제작에 전념하겠노라고 선언한 후에 탄생했다. 팩토리에 넘쳐나는 모티브들이 그를 새로운 영감으로 이끌었나 보다.

카무플라주 | 워홀은 카무플라주 무늬에 애착심을 보이면서, 자화상에까지 이 무늬를 사용했다. 위의 작품은 세로 3m, 가로 10m가 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1986년에 제작된 <카무플라주> 연작은 여러 가지 색으로 제작되었다.

칭찬 혹은 견제 | 워홀은 자신의 추상작품 개인전의 개막식에 온 관람객에게 다른 예술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제 전시회 길 건너에 더 뛰어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면 그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로르샤흐 검사법 | 환자가 잉크얼룩을 보고 연상되는 것을 근거로 심리분석을 하는 검사법이다. 이것을 고안한 스위스 심리학자 헤르만 로르샤흐는 화가가 꿈이었지만 의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미궁 속의 내면 | 워홀이 1984년에 완성한 <로르샤흐> 연작은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작품으로, 400×280cm의 어마어마한 크기다. 워홀이 이 그림을 연상시키려 했던 내면의 비밀은 무엇일까?

 

지금도 우리 곁에

 

앤디 워홀과 장 미셸 바스키아.

"워홀의 예술세계에서

보이는 반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예술에는

어떠한 반복없다는 것이다"

 

존 케이지, 워홀에 대해 말하며

 

끝없는 유산

 

워홀이 남긴 자료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규모가 완전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워홀은 작품 수량뿐 아니라, 수집품도 엄청난 양을 자랑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싶다면, 워홀의 고향 피츠버그행 비행기를 타라.

 

"앤디 워홀은 당대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거울이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예술가였다."

- 칼 앙드레

이제 워홀의 명성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시대가 왔다. 2004년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에서 '앤디 워홀의 후기 작품'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대규모 전시회에는 7만 5천 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찾아와 워홀의 예술인생 후반에 만들어진 비디오, 영화, 유화 들을 감상했다. 위는 마오쩌둥의 초상화.

1982년, 갤러리스트 레오 카스텔리는 워홀의 <달러 사인>을 자신의 화랑에 전시하기로 마음 먹는다.

 

"나는 죽으면 어떤 잔재도 남기고 싶지 않고, 스스로도 어떤 잔재가 되고 싶지 않다. …… 나라는 기계가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 앤디 워홀

뉴욕 소더비 사에서 제작한 앤디 워홀 경매 카탈로그. 방대한 수집품 때문에 6권이나 되었다.

소더비 사 직원들이 워홀의 소장품을 분류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사진은 워홀의 부엌.

팀워크 | 바스키아가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가로 꼽히면서 그의 작품들이 경매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그래피티, 만화, 아프리카 가면, 토템상, 동물, 문자 등……. 모티브의 다양함에 있어서도 워홀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두 화가가 공동작업한 작품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토끼 | 마이클 잭슨과 애완원숭이 버블스의 모습을 도자기로 굽고, 금속 재질로 싸구려 슈퍼마켓 토끼 풍선을 흉내 낸 제프 쿤스의 작품들은 항상 논란을 몰고다녔다. 쿤스 역시 워홀과 마찬가지로 소비문화와 대중문화 속에서 작품 모티브를 찾았다.

도자기 마을 | 워홀은 1980년 독일 방문 중에 유명 도자기회사인 로젠탈 사를 방문햇다. 워홀은 공장 방문을 기념하여 사장인 필립 로젠탈의 초상화를 그려준다. 이런 인연으로 로젠탈 사는 워홀 시리즈 제품을 기획, 판매하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캠벨 수프 깡통 모양의 머그잔이다.

바스키아 | 워홀은 영화 속에서도 살아 있었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은 1996년 그래피티 예술가인 장 미셸 바스키아를 기리는 영화를 제작한다. 바스키아에 제프리 라이트, 워홀 역은 데이비드 보위가 맡았다. 그리고 개리 올드먼, 데니스 호퍼 같은 스타들이 대거 조연으로 출연했다.

영화 주인공 | <오스틴 파워-제로>(1997)는 스윙 문화가 극에 달한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영화. 1960년대라면 워홀이 빠질 수 없다. 마크 브링글슨이 은빛 가발을 쓰고 분한 워홀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 파티장에서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앤디 워홀의 친구들

 

앤디 워홀은 생전에 어딜 가나 혼자 다니는 법이 없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워홀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던 이들 그룹은 낮에는 그의 조수, 모델, 배우이었고, 밤에는 그의 파티 친구들이었다. 팩토리를 드나드는 이들은 누구나 이 그룹에 속하길 열망했으며, 그만큼 그의 측근 자리를 꿰차기 위한 경쟁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워홀은 지인들에 대한 호감을 순식간에 비호감으로 바꾸어버리기로 유명했다. 이들 중 몇몇은 워홀과의 관계를 발판 삼아 경력을 쌓는 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은 팩토리 시절의 영광을 뛰어넘는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버린다.

 

네이션 글럭

1955년부터 워홀의 조수로 일했다. 그의 인맥관리 능력과 창의력은 50년대 워홀이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베이비 제인 홀저

본명은 제인 홀저. 뉴욕 상류사회를 주름잡던 여성으로, 《뉴욕 매거진》이 선정한 '1964년을 빛낸 여성'에 뽑힌 바 있다. 워홀의 첫 영화인 <키스>(1963) 출연으로 워홀의 슈퍼스타 계보의 초시가 되었다.

 

프레데릭 휴즈

텍사스 휴스턴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휴즈는 1964년에 워홀을 알게 되었다. 휴즈는 미국 최대 규모의 미술품 소장으로 유명한 메닐가(家) 사람을 자신의 후견인으로 두었기 때문에, 워홀을 위해 자신의 인맥을 적극 활용한다. 휴즈는 후에 앤디 워홀 엔터프라이즈 사(社)의 자회사인 앤디 워홀 영화사의 회장직을 맡는 동시에 워홀의 유산관리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제드 존슨

제드 존슨은 1968년 팩토리 직원으로 고용된 이래로 80년대까지 애인으로서 워홀의 옆자리를 지켰다. 존슨은 워홀의 마지막 영화인 <앤디 워홀의 배드>(1976)에서 연출을 담당하기도 했다. 워홀 사망 후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다.

 

제라드 말랑가

말랑가는 1963년 20세에 워홀의 조수로 기용된 이후로 그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동료이다. 말랑가는 워홀의 영화에 몇 번 출연했고, 《인터뷰》지 창간 당시 공동출판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폴 모리세이

본래 직업은 사회복지사였다가 1965년에 워홀의 팩토리 팀에 합류햇다. 그는 주로 워홀의 영화제작에 참여했는데, 워홀의 말기 영화에서는 연출을 맡기도 했다.

 

빌리 네임

본명은 빌리 리니치. 전에는 미용사이자 조명기사로 일하다가, 1960년 워홀과 알게 되고 나서 첫 팩토리의 공식 사진기사로 탈바꿈했다. 그는 1970년 어느 날 갑자기 "난 간다. 내 걱정은 마."라는 짧은 메모를 남긴 채 작업 도중에 잠적해버린다.

 

온딘

본명은 빌리 올리비오. 마약에 찌든 이성복장착용자로, 1963년부터 팩토리를 드나들었다. 워홀의 영화 <첼시 걸스>에서는 '그리니치빌리지의 교황' 역을 맡았다.

 

브리짓 포크

본명은 브리짓 벌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반항심과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워홀의 영화에도 다수 출연했던 포크는 1963년 처음 워홀을 알게 된 후로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그의 최측근 자리를 지켰다.

 

에디 세즈윅

본명은 에디스 민턴 세즈윅. 워홀과는 1965년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고, 워홀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익스플로딩 플래스틱 인에비터블>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도 출연했다. 세즈윅은 1960년대 뉴욕의 패션 아이콘이었다. 세즈윅 사망 1년 후인 1971년에는 그녀를 기리는 전기영화 <차오, 맨해튼>이 나오기도 했다.

 

비바!

본명은 재닛 수잔 메리 호프먼. 1960년대 워홀의 슈퍼스타가 되면서 '비바'라는 예명을 얻었다. 비바는 <첼시 걸스>, <론섬 카우보이>, <블루 무비> 등의 워홀 영화에 출연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 - 083 나무는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가인혜 시집

2002, 미네르바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9903

 

811.6

가6819나

 

가인혜의 시는 청초하다. 아니 나이브하다. 행간 마다 자간 마다 오래 생각을 묵히고, 가라앉히며, 숙성과 발효를 기다려온 흔적이 뚜럿하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는 날은 알 수 없는 생기를 맛본다. 슬픔과 절망의 뒤안에서 새벽꽃 한 송이 만나는 기분이다. 마치 낮은 음성으로 자장가처럼 울리는 간절한 기도처럼.

이경교 시인

 

가인혜 시인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여, 94년 월간순수문학(수필부분) 3월호에 "돌아온 자리"로 신인문학상에 당선, 98년 국제펜클럽 펜과 문학(시부분) 겨울호에 "나는 따뜻한 씨앗을 묻는다"로 제1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심장동인 활동을 하면서 동인집 "떠나도 떠나지 않은 것처럼(제1집)"과 "엉겅퀴꽃 붉은 마음(제2집)", "나무들은 뿌리로 사랑을 한다(제3집)" 등을 세상에 상재하였으며, 현재 은혜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차례|

 

1부 숲에는 사랑이 있네

    곁, 그 따뜻한 자리

    숲에는 사랑이 있네

    창으로 들어오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플러그가 빠지지 않는다

    파란 줄무늬 셔츠

    장미와 아스피린

    이별

    세상은 정원이다

    저 먼 밤바다

    산새

    바다가 끓고 있었다

    허공

    戀歌, 김장김치

    깊은 바다

    새벽길

 

2부 그늘 속의 방

    그늘 속의 방

    이슬의 말

    나는 따뜻한 씨앗을 묻는다

    폭우 속에서

    알

    바람은 상두가를 부르며

    돌 속의 길

    하늘로 올라 간 바다

    얼레를 푼다

    진달래 필 무렵

    나무들은 뿌리로 사랑을 한다

    불 속을 지나며

    나를 위한 이유

    움직이는 것은 모두 그늘을 만들고 싶어한다

 

3부 나무는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결혼식

가로등

강물

그가 온다

화분

바다에 서 있는 것은

나무 한 그루가 숲이 되었다

바다로 간 꽃게

송화가루

첫 단추

나무는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하늘이 전부 유리창 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무 그림자

봄은 이제 외롭지 않네

나의 그림자는 길다

물소리가 들린다

숲으로 난 길

나는 바다에 내리는 첫 눈이어라

 

4부 떠나도 떠나지 않은 것처럼

알집

파문

삼월의 과수원에 눈이 내린다

저녁 해

영원 속의 하루

폭우 속에서

빗방울

흙장난

무너져 내리는 것들

밤바다

참꽃

떠나도 떠나지 않은 것처럼

안에서 우는 소리는 깊다

 

요리를 잘 하는 시인

 

숲에는 사랑이 있네

 

구름이 되어 나무가 되어

해 저물도록 듣는 얘기소리

미움 어느 곳에도 없고

사랑은 추억으로 가볍네

한 곳에 오래 앉아 주저앉은 바위

물 마시러 나온 청설모의 외진 눈길에도

나는 바위였네

날아다니는 소리들

새는 보이지 않아도 가까이 있네

새가 인도해 준 길 따라

나무와 나무가 기대여 새들의 다리를 놓아주고

계곡은 물을 흘려보내 짐승을 먹이는 모습들

저마다 서로를 내어주며

나뭇잎 태어나는 목숨 한 가운데

나비도 땅에 내려와 기도하듯 날개를 접는

숲에는 사랑이 있네

 

그늘 속의 방

 

그늘 속에는 방이 있다

들어가 앉고 싶은 아늑함 속에

지친 얼굴을 내려놓으며

기대인 담 하나가

온 세상을 가리워 주는 풀밭에서

나는 아름다운 긴장을 한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공간 속에 그늘을 만들며

신발 속의 나를 풀어놓는다

나의 힘줄은 너를 보며 힘차게 팽창하는데

들어 온 적도 나간 적도 없이

탁 트인 공간이 자유로와

하늘도 맑은 숨쉬는 길 위의 방

문도 달지 않고 지붕도 얹지 않은 채

촛불을 켜 놓은 방처럼 환한 어둠을 끌어안고

나는 아무것도 후회할 것 없는 맨살로

계관화처럼 붉어진 담장 밑의 너를 안는다

 

나무는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하늘을 꽈리 불던 그 목소리

무거운 추를 단 구리종의 진폭처럼 어둡다

 

새로 태어나기 위하여 죽는 나뭇잎처럼

썩기를 기다리는 아픔 바윗돌로 눌러놓고

가릴 것 없는 나뭇가지

하늘은 노을을 불러 금물을 입힌다

 

어둠이 먼저 찾아든 산 속

먹을 것 없어 빈 손 든 가지들 위에

새떼들 날아와 껍질을 마구 쪼아도

맘 좋게 살점을 열어줄 뿐

나무는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시작이 언제나 힘겹고 쓸쓸했던 것처럼

나무도 아름다운 계절의 연습을 한다

 

떠나도 떠나지 않은 것처럼

 

잘 익은 포도주 한 병을 당신께 내어 드리고

떠나지 않은 것처럼 떠나도 좋겠습니다

햇살이 꼭꼭 다져놓은 흙 속에 씨앗을 묻고

이슬도 묻지 않은 처녀의 몸 속에

굵은 포도알이 되었습니다

가을이 따가지 못하도록 밤마다 서리로 덮고

땅 속 깊은 물로 껍질을 기워

터질 듯 실핏줄 속에 붉은 태양을 숨겼습니다

꽉 찬 포도알 속

내 영혼의 즙을 짜서

잘 익은 포도주 한 병을 당신께 내어 드리고 가는 길

포도원을 떠난 검보랏빛 노을로

떠나도 떠나지 않은 것처럼

하늘 한 자락을 끌어 와 당신께 물든

마지막 인사여도 좋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82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한국전쟁과 민간인 집단 학살 편

 

서중석 답하다 김덕련 묻고 정리하다

2015, 오월의 봄

 

대야도서관

SB0486693

 

911.07

서766ㅅ  2

 

"전쟁이 터지자, 대통령은 국민을 버리고 도망갔다!"

이승만 대통령, 전선에선 피 흘리는데 영구 집권 꾀해

태워 죽이고, 굶겨 죽이고 … 학살로 세운 극우 반공 체제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역사 왜곡 바로잡기!

우리에게는 '역사의 죄인'이 있다. 우선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거기 포함된다. 이들은 이승만을 살리고 나아가 그를 '건국의 아버지' '국부'로 만들어놓을 수만 있으면 '역사의 죄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나아가 이승만이 국부가 되면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기득권을 계속 움켜쥘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

우리에게는 '역사의 힘'이 있다. 항일 독립 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줄기차게 계속된 것도, 우리 제헌 헌법에 자유 · 평등의 독립 운동 정신이 담겨 있는 것도 역사의 힘이다. 우리 국민이 친일파, 분단, 독재를 있어선 안 되는 잘못된 것으로 보는 것도 역사의 힘이다. 막강한 힘의 지원을 받은 역사 교과서가 참패한 것도 그렇다.

- '책머리에' 중에서

 

서중석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으며,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상임 공동대표, 제주 4 · 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 1 · 2》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남북협상 : 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 《조봉암과 1950년대》(상 · 하) 《비극의 현대 지도자》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 《이승만과 제1공화국》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6월항쟁》 등이 있다.


김덕련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를 거쳐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신문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역사 관련 책 작업을 함께해왔다. 《세계를 바꾸는 파업》, 《근현대사 신문》(2권),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5권)를 함께 쓰고 만들었다

 

|차례|

 

책머리에

연표

 

                                           한국전쟁                                        

 

첫 번째 마당                          한국전쟁,

                                             어디부터 잘못 꿰어졌나

 

두 번째 마당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대통령

                                             "잘한 게 없다"

 

세 번째 마당                         원자탄을 사용하겠다고?

                                            요동치는 전선, 평화는 멀고도 멀었다

 

네 번째 마당                         "북한, 전면전은 못할 것…

                                             한국전쟁 공포 때문"

 

다섯 번째 마당                     전쟁을 거치며

                                           한국 사회는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민간인 집단 학살                                   

 

첫 번째 마당                       "수십만 죽이고 30년 넘게 침묵…

                                          참 무서운 한국"

 

두 번째 마당                       쏘아 죽이고, 태워 죽이고,

                                          굶겨 죽이고…

 

세 번째 마당                       고마운 미국?

                                          "한국인들 죽이거나 학살 방조"

 

네 번째 마당                       추종자 아니면 모두 적

                                          무서운 '빨갱이 만들기'

 

다섯 번째 마당                   국민 목 친 학살자들이

                                          오히려 출세하는 세상

 

여섯 번째 마당                  민간인 학살 위에 세워진

                                         공포의 극우 반공 체제

 

일곱 번째 마당                 박정희 쿠데타 세력은 왜

                                        합동 묘지를 파헤쳐야 했나

 

나가는 말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 한국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세계 전쟁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예컨대 한국에 전투 지원을 한 나라만 16개국(미국, 영국, 터키, 캐나다, 호주,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남아공, 콜롬비아, 그리스, 태국, 에티오피아, 필리핀, 벨기에, 룩셈부르크)에 이르렀다.

한국 현대사 연구의 개척자 브루스 커밍스가 펴낸 한국전쟁 관련 서적들. 커밍스는 1950년 6월 25일 이전 38선 부근에서 내전 상태라고 할 만한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 있었고 한국전쟁은 그것이 확대된 것으로 보았다.

1949년 3월 김일성, 박헌영, 홍명희 등 북한 대표단이 스탈린을 만나기 위해 크렘린궁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때 김일성은 무력에 의한 조선 통일에 관해 소련 지도부의 의견을 물었다.

1948년 북한을 떠나기 전에 평양 시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행진하고 있는 소련군의 모습. 소련군은 그해 12월에 북한에서 철수했다. 이로 인해 더 이상 남한에 머물기가 어렵게 된 미군이 약 500명의 군사 고문단만 남기고 1949년 6월에 철수했다.

1949년 박헌영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김일성. 왼쪽 두 번째에 앉아 있는 이가 소련 대사 테렌티 쉬티코프.

1949년 10월 1일 천안문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있는 마오쩌둥.

1950년 6월 26일에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회의 모습.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행위를 침략으로 규정하고 38선 이북으로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소련은 불참했다.

1949년 12월 스탈린의 70세 생일 축하연. 마오쩌둥의 모습도 보인다. 스탈린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만한 규모로 관여할지를 주목하면서 한반도를 시험장으로 생각했다.

1951년 대구 순시를 위해 공항에 나온 이승만 대통령 내외. 이승만 정권이나 미국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초기에 전쟁이 중부 전선에 머물 수도 있었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전쟁 초기 북한군의 행진 모습. 북한의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아서 초기에 이기지 못하면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돼 있었다.

국군이 행군하고 있는 모습. 전쟁 직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곧 쳐들어올 거란 얘기까지 했으면서도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

1951년 6월 이승만 대통령(오른쪽)이 신성모 신임 주일 대표(공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국방부 장관 시절 신성모는 전쟁이 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수 있다고 말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경향신문, 동아일보 1950년 6월 27일 자 신문. "찬(燦)! 아군 용전(勇戰)에 괴뢰군 전선서 패주 중"(위), "국군 정예 북상 총반격전 전개"(아래)란 제목이 크게 적혀 있다. 나중에 크게 논란이 일게 되는 "해주시를 완전 점령"(아래 오른쪽) "일부는 해주시에 돌입"(위 오른쪽)이란 제목도 눈에 띈다. 국방부 발표문을 토대로 보도한 이 기사들은 사실상 거짓이었다. 이 내용을 보고 피란을 가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새벽 이미 국민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고 없었다.

서울에 입성한 인민군의 모습.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보다 먼저 서울을 떠났다. 자신은 도망을 가면서도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 안심하고 있으라는 거짓말 방송을 몇 차례나 내보냈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 직후, 미군과 한국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주민이 인민군 부역자를 폭행하고 있다. 피란을 가지 못한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부역자가 되기도 했다.

경남 거제도에서 피란지를 살피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중에 국민을 돌보지 않은 무책임한 정치인이었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개회된 국회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 사회를 보는 이는 신익희 2대 국회의장. 이승만 정권은 땃벌떼, 백골단, 민중자결단 등을 동원해 국회를 협박하고 공갈을 일삼았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52년 6월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지방의회 의원들이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의원들은 1952년 대한민국 최초로 실시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로 대부분 자유당 쪽 사람들이었다. 이승만 정부 편에 서서 국회를 압박한ㄴ 역할을 했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50년 9월 인천에서 한 여자 어린이가 울고 있다. 한국전쟁은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을까. 한국전쟁은 시작부터 국제전이 되었고, 애꿎은 사람들만 큰 피해를 봤다.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은 끊임없이 폭격을 퍼부었다. 그래서 북한의 군대는 주로 밤에 이동했다. 사진은 미국 공군의 폭격을 받고 있는 원산 지역의 모습.

1950년 9월 미군이 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했다. 북한은 이 작전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비할 군대가 별로 없었다.

1950년 10월 27일 국군의 평양 입성을 축하하는 퍼레이드가 서울에서 열렸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50년 9월 인천 상륙 작전 당시의 맥아더. 맥아더는 전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전면전을 벌이고 소련을 상대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흥남에서 배를 타고 피란길에 오른 사람들. 1950년 12월의 모습.

1951년 1월 8일 강릉 부근에서 피란을 떠나는 사람들.

한국전쟁에 참전해 포로로 잡힌 중국군의 모습.

미군에게 생포된 중국군의 모습.

1951년 4월 부산에 있던 전쟁 포로들.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휴전 회담이 시작되었지만, 정전협정을 맺기까지는 무려 2년 넘게 걸렸다.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전쟁 포로 문제였다.

위쪽부터 미국의 마크 클라크, 북한의 김일성, 중국의 팽덕회가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1953년 7월 27일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과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이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모든 관계자의 서명이 완료된 정전협정문. 이로써 3년 만에 포화는 멎었다.

1950년 11월 서울의 모습. 폐허 더미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찾고 있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한반도 전체는 이미 큰 피해를 본 상태였다. 한국의 전 역사를 돌아봐도 한국전쟁만큼 대규모의 학살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1 삐라 1040 소련과 중공을 위해서 죽음을 택할 필요가 있는가?

2 삐라 1242 지주와 그 하인과 소

3 삐라 1276

중공군은 좋은 무기는 자기네가 차지하고 못쓸 무기는 북한군에게 넘겨주고 있다.

왜? 북한이 약해져야 집어먹기 쉬우니까…… 북한 주민들이여! 이젠 여러분이 왜 중공군이 북한군에게 쏘지 못할 무기만 넘겨주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중공군은 여러분의 적이다!

4 삐라 1282 북한 인민은 이렇게 뜯기만 한다!

1956년 이승만 대통령의 3선 출마를 촉구하는 우익 단체의 시위 행렬. 부정부패하고 친일파도 많았던 이승만 정부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나쁜 정부로 보이는 면이 분명히 있었지만, 전쟁 후 이승만 정부는 굉장히 힘이 셌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56년 서울 세종로. 제3대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전쟁을 거치면서 극우 반공 체제가 한국 사회에서 위세를 떨치게 되었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51년 1월 북한 지역을 폭격하고 있는 미국 공군. 북한은 미군의 폭격으로 철저하게 파기되었다.

1955년 1월 고아원의 아이들이 고무신을 받아들고 즐거워하고 있다. 1950년대엔 고아원이 많았다. 이산가족이 많이 수용됐고, 북한에서 내려온 어린애들이 수용된 경우도 많았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영화 <자유부인> 포스터와 스틸컷.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1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영화를 봤다. 감독 한형모, 주연 박암, 김정림, 1956년 개봉.

박인수 사건을 보도한 당시 신문 기사. 1심 판결에서 판사는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54년 북진 통일 궐기대회에서 한 학생이 지붕 위에 올라가 '북진 통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 학생은 교복, 교모에 혁대를 차고 목청껏 부르짖고 다른 학생은 호루라기를 불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1950년대 극우 반공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50년 38선의 모습.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을 극도로 단순화된 사회로 만들었다. 남북 모두 군인이 지배하는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남한의 경우, 30년간 군대의 획일화된 사고와 문화가 사회를 지배했다. 그런 단순화가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를 괴롭히고 있다.

1950년 7월 대전형무소 재소자가 학살되는 장면. 이때 무려 1,800여 명의 정치범 및 보도연맹 관련 민간인이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되었다.

1951년 4월 대구 인근에서 군인이 정치범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학살 당시 어린이도, 여자도, 노인도 많이 죽었는데 그때 죽이면서 '빨갱이 새끼는 죽여도 좋다. 빨갱이 여편네는 죽여도 좋다. 빨갱이 애비는 죽여도 좋다', 이런 식의 주장을 폈다.

1950년 4월 서울 부근에서 처형장으로 끌려나온 좌익들. 미국 측은 이들이 공산주의자이며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처형에는 6명의 미국 군무관 및 장교가 참관했다. 처형을 준비하고, 사격을 가한 뒤, 시체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1950년 9월 서울을 수복한 후 한 미군이 미국영사관에 성조기를 내걸고 있다. 서울 수복을 전후해 우익 청년 단체들이 각지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미군도 학살에 가담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노근리 학살이다.

여순 사건 당시 반군 협력자 색출을 위해 진압군이 주민들을 학교에 집결시키고 있는 모습.

국민보도연맹증. 국민보도연맹은 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1949년에 결성되었다.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고, 주로 사상적 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순 사건 당시 진압군이 반란군과 협력자를 색출해 연행하고 있다. 학살에 관련된 군 지휘관들은 과거에 일본군에 있었던 경우가 많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한 것이 학살을 키운 셈이다.

노근리 사건이 벌어졌던 다리 밑 사진. 19660년 자료다. 미군 제25사단장 윌리엄 킨 소장은 명령서를 통해 '전투 지역에서 움직이는 모든 민간인은 적으로 간주하라'고 지시했다.

1948년 5월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 수뇌부. 제주 4 · 3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하더라도 작전권이 미군한테 있었다. 미군은 직접 민간인 학살에 가담하기도 했고, 한국군의 학살을 방조하기도 했다.

미군이 찍은 1950년 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 사건 당시 사진. 여러 자료를 볼 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주한 미군이 져야 할 책임이 크다.

재판을 받고 있는 조봉암(앞줄 왼쪽). 이승만 대통령은 정적에게 대단히 가혹했다. 그의 정적이었던 조봉암은 간첩 협의로 처형됐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 포스터. 이 선거는 부정과 폭력으로 얼룩졌다.

1950년 10월 24일 국제연합의 날(유엔데이) 기념 행사장에 나란히 자리한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이시영 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 중에 결정한 비상 조치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중형에 처해졌다.

1951년 2월 11일 방위사관학교 졸업식 모습. 방위사관학교는 국민방위군을 이끄는 장교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1950년 7월 대전형무소 정치범들을 처형하기 위해서 트럭에서 끌어내리고 있다. 인민군이 쳐들어오자 서울을 버리고 떠난 이승만 대통령은 7월 1일까지 대전에 머무르고 있었다.

군경에 의해 학살된 대전형무소 재소자들. '총살 명령은 의심할 바 없이 최고위층에서 내렸다'고 돼 있는 걸로 봐서 이 학살은 정부 고위층에서 내린 것으로 보인다.

1956년 8월 지방 자치 선거에서 군인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이 선거에서도 엄청난 부정이 일어났다. 일부 지방에서는 다수의 민주당원들이 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56년 5월 정부통령 선거 당시 자유당 대통령 후보 이승만과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선거 홍보물이 내걸려 있다. 이 선거가 끝난 후 이승만은 친일파, 학살을 자행한 인사 등을 요직에 등용한다.

4 · 3사건 당시 중산간 지대로 피신한 제주 사람들. 당시 2만 5,000명에서 3만 명이 희생된 걸로 추정된다. 제주도 전 주민의 10퍼센트다.

1954년 4월 중앙청(현 경복궁) 광장에서 열린 북진 통일 궐기대회에 참가한 청년이 태극기에 혈서를 쓰고 있다. 민간인 대량 학살을 일으킨 극우 반공 독재 세력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반공주의가 내면화돼서 공포에 질식된 사회를 만들었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80년 5월 21일 12시경 공수부대와 시민이 전남도청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한 시간 후 집단 발포가 이뤄졌다. 한국전쟁 전후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 조사와 책임 추궁이 철저히 이뤄졌다면, 광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전남대 5 · 18연구소

1961년 5월 22일 대한상이용사회가 5 · 16 지지 차량 행진을 하고 있다. 5 · 16쿠데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다시 한 번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1952년 전쟁 중 부산에 세워진 대한민국 정부 청사 건물. 한국전쟁 이후 다른 지역에 비해 경상도에서 진보적인 흐름이 더 선명하게 나타났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80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해방과 분단, 친일파 편

 

서중석 답하다 김덕련 묻고 정리하다

2015, 오월의 봄

 

 

대야도서관

SB0486692

 

911.07

서76ㅅ  1

 

꿈같이 찾아온 해방, 그리고 뒤이은 분단

한반도는 왜 분단으로 치달았나?

친일파, 분단 세력은 어떻게 기득권을 잡았는가?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역사 왜곡 바로잡기!

 

우리에게는 '역사의 죄인'이 있다. 우선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거기 포함된다. 이들은 이승만을 살리고 나아가 그를 '건국의 아버지' '국부'로 만들어놓을 수만 있으면 '역사의 죄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나아가 이승만이 국부가 되면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기득권을 계속 움켜쥘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

우리에게는 '역사의 힘'이 있다. 항일 독립 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줄기차게 계속된 것도, 우리 제헌 헌법에 자유 · 평등의 독립 운동 정신이 담겨 있는 것도 역사의 힘이다. 우리 국민이 친일파, 분단, 독재를 있어선 안 되는 잘못된 것으로 보는 것도 역사의 힘이다. 막강한 힘의 지원을 받은 역사 교과서가 참패한 것도 그렇다.

- '책머리에' 중에서

 

서중석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으며,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상임 공동대표, 제주 4 · 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 1 · 2》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남북협상 : 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 《조봉암과 1950년대》(상 · 하) 《비극의 현대 지도자》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 《이승만과 제1공화국》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6월항쟁》 등이 있다.


김덕련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를 거쳐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신문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역사 관련 책 작업을 함께해왔다. 《세계를 바꾸는 파업》, 《근현대사 신문》(2권),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5권)를 함께 쓰고 만들었다

 

차례

 

책머리에
연표

 

                                                     해방과 분단                                            

 

첫 번째 마당                 어느 날 갑자기 온 해방?

                                   우리는 해방을 주체적으로 맞았다

 

두 번째 마당                 자유는 미국이 준 선물?

                                   그들은 점령군이었다

 

세 번째 마당                 한국 '최고의 혁명가' 여운형이 친일파?

                                   "극우, 참 비열하다"

 

네 번째 마당                조선일보도 공감한 민족적 과제

                                  토지 개혁과 친일파 처단

 

다섯 번째 마당            역사를 바꾼 신탁 통치 논쟁

                                 좌우익은 왜 그토록 싸웠는가

 

여섯 번째 마당           좌익은 신탁 통치를 찬성했다?

                                김일성 '엉터리 신년사'의 비밀

 

일곱 번째 마당          12번 테러와 암살도

                               '정의로운 바보'를 꺾지 못했다

 

여덟 번째 마당          남북 협상,

                               분단을 막기 위한 최후의 노력

 

아홉 번째 마당          한반도의 분단,

                               미국의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

 

 번째 마당             북한의 통일 논리,

                               왜 전면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나

 

열한 번째 마당          제주 사람들이 폭도?

                               "극우의 터무니없는 얘기"

 

열두 번째 마당          1948년 유엔 결의를 멋대로 해석한

                               극우 반공 정권의 괴뢰 만들기

 

열세 번째 마당          두 번 쫓겨난 대통령 띄워

                                '건국의 아버지'로 모시자고?

 

열네 번째 마당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심었다?

                               거듭된 부정 선거 안 보이나

 

열다섯 번째 마당      농지 개혁은 이승만 덕분?

                               "결코 아니다"

 

열여섯 번째 마당      제헌 헌법의 탄생

                               평등주의의 열망을 담다

 

                                                       친  일  파                                           

 

첫 번째 마당           이승만의 6월 공세

                             역사를 과거로 퇴행시키다

 

두 번째 마당          박정희의 친일 행적은

                            어떻게 비밀이 됐나

 

세 번째 마당          친일파 세상,

                            어떻게 이런 나라가 있을 수 있나

 

네 번째 마당          "박정희 한 사람 덕에 경제 발전?

                            저열하다"

 

다섯 번째 마당      뉴라이트, 극우 반공 세력이

                           이승만, 박정희를 찬양하는 까닭

 

나가는 말

                       

 

건국준비위원회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여운형.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국준비위원회는 해방된 바로 그날부터 새로운 사회를 맞이하고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한 활동에 구체적으로 착수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이시영, 그 옆으로 김구, 김규식, 조소앙이 나란히 서 있다. 해방이 되고 한참 뒤에야 임시정부 요인들은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 까닭은 연합국이 귀국을 막았기 때문이다.

서울 경운동 삼광한의원에서 열린 조선건국동맹 모임. 왼쪽 네 번째가 여운형이다. 건국동맹은 전국에 지부를 조직하고, 해외에 있던 독립 운동 세력과도 연계해 다가올 해방을 준비했다.

한국인들은 정말 꿈같이 해방을 맞았다. 해방의 기쁨으로 환호하는 시민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경성콤그룹을 이끌던 박헌영. 경성콤그룹은 공산주의자 조직으로는 일제 말기에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지하투쟁을 한 조직이다.

1945년 9월 9일 미군이 도열한 가운데 조선총독부 건물 앞 국기 계양대에서 일장기가 내려오고 있다(왼쪽). 이어서 성조기가 게양되고 있다.

한반도에 입성한 미군의 모습. 미군은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해 9월 9일 서울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의 정치적 지유에 부분적으로 제한을 가하기 시작했고, 친일 경찰을 끌어들여 다시 일하게 하기도 했다.

1945년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의 모습.

여운형(위)과 안재홍. 여운형과 안재홍은 당시 국내에 있던 주요 인사 중 마지막까지 일제에 굴복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8월 16일 휘문고보 교정에서 환영을 받는 여운형. 여운형이 1945년 8월 15일 엔도정무총감을 만났을 때 첫 번째 요구 사항이 정치범 등을 즉각 석방하라는 것이었다.

1945년 12월 6일 임시정부 환영 시가 행진. 임시정부 1진은 1945년 11월, 2진은 1945년 12월에 한국에 들어왔다.

이승만은 1945년 10월에 한국에 들어왔다. 중앙청에서 열린 귀국 환영 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존 하지 사령관이다.

1945년 12월 말 우익의 반탁 집회. 친일파가 반탁 투쟁에 적극 가세해 매국노, 민족 반역자에서 갑자기 애국자로 둔갑했다.

1946년 1월 좌익의 모스크바3상회의 절대 지지 집회. 좌익은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지지한 것이지, 신탁 통치 하나를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임시정부 수립이었다.

동아일보 12월 27일 자 왜곡 보도 기사. 이날 동아일보는 1면 톱기사로 "소련은 신탁 통치 주장. ……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는 제목 아래 '소련은 남북 양 지역을 일괄한 일국 신탁 통치를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미국과 소련이 개최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 사진은 여운형이 미국 측 대표(위쪽), 소련 측 대표(아래쪽)와 함께 있는 모습이다.

1945년 '붉은 군대 환영 평양시민대회'에 참석한 김일성. 김일성은 1946년 1월 2일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발표한다.

미소공위를 지지하는 좌익들.

좌우 합작 시사만평. 극좌 세력과 극우 세력이 합작을 방해하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그림에서 악수하고 있는 인물은 여운형(왼쪽)과 김규식.

1947년 8월 3일 거행된 여운형 장례식 장면. 여운형은 12번 테러를 당하다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총격으로 암살되었다.

우익 3영수로 불리던 김규식, 이승만, 김구(왼쪽부터). 그중에서 김규식은 좌우 합작, 남북 협상만이 민족의 살길이라고 주장하며 의미 있는 활동을 펼쳤다.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북한 대표단. 오른쪽부터 김일성, 박헌영, 김원봉, 김달현, 허헌, 김두봉.

38선에 서 있는 김구. 김구는 '분단이 된다는 건 우리 몸을 두 동강 내는 것과 똑같다'고 이야기했다.

5 · 10선거 당시 모습. 선거 결과 소장파 전성시대가 출현해 1949년 6월 국회 프락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진보적이고 민족적이던 소장파가 국회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38선은 미국이 1945년 8월 11일 '38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 양군이 점령하는 방식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안하면서 생겨났다. 결국 38선은 남북한을 가르는 분단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1945년 포츠담 회담에 참여한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 수상,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왼쪽부터). 이 회담에서 트루먼과 스탈린은 한국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실상 한국 문제는 포츠담 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이승만의 정읍 발언을 보도한 신문 기사. 분단 정부 수립을 이야기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승만의 정읍 발언(1946년 6월 3일)이 꼽힌다. 통일 정부 수립이 여의치 않으니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같은 것을 수립하자는 주장이었다.

1947년 5월 제2차 미소공위 당시 사진. 오른쪽부터 여운형, 김규식, 이묘목(영어 통역관), 말리크, 테렌티 스티코프(소련 측 대표), 허헌.

1948년 2월에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김일성 초상화 옆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이 눈에 띤다.

김구 장례식. 그때 김구를 추도하는 인파는 미국 대사관 자료에 의하면 50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 인파는 우리 역사상 전무前無하고 상당히 오랫동안 후무後無한 인파였다.

1946년 10월 2일 항쟁이 일어난 대구의 모습. 10월항쟁은 자연 발생적이었으며 전국에 걸쳐 일어났다.

1948년 5월 처형을 기다리는 제주 주민들. 4 · 3사건은 제주도민 10명 중 1명꼴로 학살된 비극으로, 우리 역사 전체를 통틀어 한 지역에서 학살된 인원으로는 가장 많을 것이다.

제주 4 · 3사건 당시 무자비한 횡포를 부려 제주도민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 서북청년회.

1948년 12월 유엔 총회에 파견된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 앞줄 왼쪽부터 조병옥, 장면, 장기영. 유엔은 대한민국을 5 · 10선거가 치러진 지역에 관할권을 갖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

1954년 북진 통일 궐기대회. 북진 통일은 이승만 정권과 반공 체제를 강화하는 데 마법과 같은 효력을 지녔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21년 상해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 이승만은 임시정부 대통령 시절 상해에는 거의 머물지 않고 미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할 뿐이라는 비판을 참 많이 받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때의 모습.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 장면.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 선거였던 1952년 8월 5일 정부통령 선거에 사람들이 모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선거에서 다수의 국민이 잘 알지도 못했던 함태영이라는 노인이 부통령에 당선된다. 사진출처 : e영상역사관

왼쪽부터 이승만, 김구, 존 하지. 김구가 이승만과 상당히 오랫동안 협력한 까닭은 반탁 우익을 대단결시키기 위해서였다.

1952년 국회 부의장 시절의 조봉암(맨 오른쪽)의 모습. 나머지 두 사람은 윤치영과 신익희(가운데). 조봉암은 농지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전국을 돌면서 농민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1950년 3월에 개정되어 공포된 농지개혁법.

북한의 토지 개혁 홍보 포스터. 토지 개혁은 북한의 지주들을 대거 월남하게 만들었다. 무상 몰수였을 뿐만 아니라 거주지를 바꾸게 했기 때문이다.

1951년 부산의 초등학교 학생들. 해방 후 한국 사회가 평준화되면서 교육열도 강해졌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들의 모습(1919년 10월 11일). 앞줄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 헌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라고 공포했다.

1952년 8월 5일 정부통령 선거. 지지자들이 후보자의 대형 초상화를 들고 거리 유세를 벌이고 있다. 이때부터 부정 선거가 고약한 형태로 나타났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46년 제1차 미소공위에 참여한 안재홍, 스티코프, 김구, 이승만(오른쪽부터). 안재홍은 제1차 미소공위가 휴회한 이후 좌우 합작 운동에 참여하면서 친일파 처단을 주장했다.

존 하지와 장택상. 장택상은 미군정의 수도경찰청 청장에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친일 경찰들이 채용되었다.

1949년 반민특위 재판 광경.

반민특위로 호송되는 친일파들.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김연수 경성방직 사장, 그 뒤는 3 · 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최린.

박정희가 만주국 군관학교 생도로 받아달라며 혈서를 썼다는 '혈서 군관 지원'이란 제목의 만주신문(1939년 3월 31일 자) 박정희 관련 기사.

이광수는 1940년 매일신보에 실린 '창씨와 나'라는 글에서 창씨개명을 옹호했다. 이 글에서 이광수는 조선 민족의 장래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했다고 강변했다. ⓒ민족문제연구소

10월항쟁 당시 경찰에 체포된 시민. 10월항쟁이 일어난 가장 큰 계기는 친일 경찰의 악질 행위였다.

연설 중인 김원봉의 모습. 김구와 더불어 항일 독립 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김원봉은 왜 북한으로 갔을까. 1947년 초 친일 경찰의 대명사 격인 노덕술한테 고문당한 게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1954년 함태영 부통령이 제3대 민의원 총선거에서 투표하고 있다. 이 선거는 대표적인 경찰 선거, 곤봉 선거로 꼽힌다. 그만큼 친일 경찰의 곤봉이 선거를 좌지우지했다. "겨레의 행복 한 표에 달렸다"는 표어가 인상적이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제철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친일파, 극우 반공 세력은 경제를 박정희 한 사람이 다 발전시킨 것처럼 주장한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1961년 박정희는 군사 정권을 승인받기 위해 미국으로 가 존 F. 케네디를 만났다. 사진 출처 : e영상역사관

2 · 26쿠데타에 실패한 군인들이 자대로 복귀하고 있다. 박정희는 일본의 2 · 26쿠데타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79 상자들

 

이경림 시집

2005, 랜덤하우스중앙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7107

 

문예중앙시선 3

 

우리 시대의 불행을 이경림보다 더 지독한 말로 얽어 묶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자'는 이경림이 새로 발명한 불행의 인식론이다. 여기서 '불행의'란 '불행에 대해서'라는 뜻이기도 하고 '인시하려고 애쓰지만 가망 없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상자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죽은 몸을 담고 함께 썩어갈 관에 그치지 않는다. 사방이 문이어서 도리어 사방이 벽인 이 저주받은 운명의 음모에 그치지 않는다. 모진 기억들을 담고 괴다 흐르다 화농하는 시간의 물컹하거나 단단한 덩어리에 그치지 않는다. 희망 없이 강제된 노역으로 천천히 닮아지면서 굳어지는, 또는 담은 것이 너무 많아서 결국 아무 것도 끄집어낼 수 없게 되어버린 이 육체의 가죽부대에 그치지 않는다.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것들보다 먼저 달려와 눈앞을 가로막는 회한이나 절망감이라고 말해도 여전히 허룩하다. 그것들이 무엇이건 모두 상자의 형식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할 것도 없다. 오래되고 오래되어서, 끝내도 끝나지 않아서, 오히려 진부한 낯빛으로만 남은 그 불행들을 어느 구석에라도 쌓아두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먼저 알아서 상자가 되어야 한다. 아래에 눌린 것이 위의 것들을 견뎌내고, 가끔 어깨를 으쓱 올려 빛이 조금, 바람이 조금, 이경림의 말 같은 지독하고도 속도 빠른 말이 조금, 지나갈 틈을 만들기 위해서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을 골라서.                                       - 황현산(문학평론가)

 

이경림

1947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1989년 『문학과 비평』 봄호에 「굴욕의 땅에서」 외 9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토씨찾기』『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가 있고 엽편소설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시평집 『울어라 내 안의 높고 낮은 파이프』 등을 펴냈다.

 

시인의 말

 

이렇게 흐물흐물한

쾨쾨한

진물 질질 흐르는

다 떨어진 상자들 뒤집어쓰고

이 캄캄한 상자 속을

언제까지 헤매야 합니까

아버지!

 

2005년 여름

이경림

 

|차례|

 

● 제1부

 

작가

아파트 뒤쪽 후미진 바위에

덤프트럭은 어디로 질주하는가

이 상자

저기, 저녁이

시금치 사러 갔다가

나, ……

고구마, 고구마들

물가에서

여우

나는 걸어간다

아침

동백 울타리

식탁 위에는 먹다 만 사과 한 개가 있다

저 쭈글쭈글한 주전자

어처구니 상자들

칠성당들

그러니까 나는

 

● 제2부

 

정육점

적멸

구덩이

이놈으 상자야 말 좀 해봐라

또……

오렌지 한 쪽

분홍빛

가방장사를 때려치운 시인

밑도…… 끝도…… 없다……

상자와 상자 사이

합장(合葬)

걸친, 엄마

나야……

청바지를 입은 소년이

다큐멘터리 개미들의 세계를 보다가 문득

머리카락 이야기

그래, 종로쯤에서

바람이 하도 모질게 부니

그곳에는

허공이 실성실성해서

 

● 제3부

 

폭우

시선

옷걸이

대칭

벌목하러 떠난 아버지를 찾아

꿈에

부엌

까마귀들

근(根)

구덩이

사실적인, 사실, 적인

나는 오늘 종일 잤다

외등

모텔 파라다이스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고양이! 고양이!

환(幻) 1

악몽 공장

석탄박물관

심심하고 심심한, 이,

한담(寒談)

아홉 개의 상자가 있는 에필로그

 

|작품 해설| 이경호(문학평론가)

'닫혀 있는 상자'의 내밀함

 

작가

- 상자들

 

아버지는 늘 책상머리에 앉아 원고를 쓰고 있었다 백열등 불빛 아래 원고지 빈 칸이 끝이 없었다 그는 일생 거기에다 자신을 쓰고 지웠다 그는 자신을 팔아 자식들의 신발을 사고 쌀을 샀다 그의 손으로 팔아치운 자신들이 얼마인지 자신도 몰랐다 이따금 그는 꿈에 자신들의 동창회에 다녀왔노라고 불길한 꿈이라고 이마를 찌푸렸다

어느 날 나는 팔려간 수천 명의 아버지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빈 원고지 칸에다 진짜 아버지를 써넣는 것을 보았다 그때 아버지의 등에는 희고 투명한 날개가 돋아 있었다

 

아파트 뒤쪽 후미진 바위에

- 상자들

 

들고양이처럼 누워서야 보였다

 

하늘은 얼마나 깊은 못인가

다만, 스러지기 위해 구름은 어떻게 소용돌이치는가

등짝만한 바위를 에워싸고 얼마나 많은 잡풀들이 살고 있는가

누군가 먹다 버린 과자 봉지에 코 박고 생쥐 같은 시간은 어디로 가는가

바람은 왜 자꾸 낮은 데로 몰아치는가

 

이렇게 천천히

빙글

돌며

우리는 어디로 흐르는가,

 

아파트 뒤쪽 후미진 바위 같은 것

얼마나 서늘한가

 

나, ……

- 상자들

 

나는 그때 가 전신주 밑에서 조개를 까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백발이 성성한 의 주름투성이 얼굴은 진흙빛이었다 몇백 년 그 일만 했는지 그 민첩한 손놀림이라니…… 나는 에게 이천 원을 주고 조개 한 움큼을 샀다 진흙빛 주름투성이 의 손이 덥석 나의 손에서 이천 원을 나꿔챘다 많이 파세요 나는 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아아 나는 그 전신주 아래서 몇 년이나 조개를 까 팔았을까?

 

나는 그때 역전에서 에게 소매치기 당했다 나의 뒤를 따라오던 는 나의 핸드백을 슬쩍 열고 지갑을 꺼냈다 나의 옆구리에 의 손이 닿았을 때 나는 모골이 송연했다 왜 남의 가방을 여는 거야 나가 소리치자 는 씩 웃으며 내 거니까 했다 나의 가방은 이미 의 손에 찢어져 속이 다 보였다 도둑이야 나가 소리쳤다 당황한 는 나의 얼굴을 면도날로 찍 긋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때 나의 서슬이 얼마나 청청했는지 누구도 를 잡을 염도 내지 못하였다 피투성이가 된 나는 찢어진 가방을 들고 가 줄행랑친 길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나는 흔적도 없었다 나

 

는 그때 무엇엔가 쫓기는 가 헐떡거리며 골목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누런 갈기를 휘날리며 희번덕거리던 는 어리둥절한 나를 스치고 쏜살같이 내달았다 나의 몸은 허공에서 나는 듯했다 가 스쳐가는 아주 잠깐 동안의 길 수많은 문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여기저기 겁에 질린 가 컹컹 짖어댔다 노오란 달이 어떤 파문 속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아침

- 상자들

 

책상을 꼭 책상이라고

이불을 꼭 이불이라고

밥을 꼭 밥이라고

남편을 꼭 남편이라고

………………불러야 하는

슬픈 아침!

 

식구라고 불러야 하는 것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끓는 찌개 속으로 연신 숟가락을 들이밀며

어떤 죄 없는 몸의 가운데 토막을 떼어 먹는다

멸치라고 불러야 하는 것들이 새우처럼 오그리고

올려다보는 앞에서

 

어떤 물컹한 뭉치들이

저녁 소 같은 것들이

 

식탁 위에는 먹다 만 사과 한 개가 있다

- 상자들

 

식탁 위에는 이빨 자국이 갈색으로 변한 먹다 만 사과 하나가 있다

사과의 살 속을 파고들었던 그 이빨은 어디 갔을까?

 

'모임이 있어 늦을 거야'

 

흰 메모지를 방석처럼 깔고 앉은 사과

(시계가 아홉시를 친다)

갈색 이빨 자국에 아홉시가 거무스름 들러붙는다

이빨은 지금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노래방이라도 갔는지 모른다

 

나는 갈색 이빨 자국이 난 식당을 보글보글 끓인다

갈색 이빨 자국이 난 노래방을 무치고

갈색 이빨 자국이 난 커피숍을 볶아놓고

저녁을 먹는다

 

갈색 이빨 자국이 난 사과가 물끄러미 나를 본다

나도 그를 본다

사과 속에 노래방이 보이고 커피숍이 보인다

한 무리의 이빨들이 사과를 먹는 것이 보인다

사과를 마시고 사과를 부르며 마침내 사과가 되는 것이 보인다

사과 속은 지금 사과를 먹은 사과들의 노래로 가득하다


저 쭈글쭈글한 주전자

- 상자들


언제부턴가 그는 뒷베란다 세탁기 그늘에 죽은 듯 있네

쭈글쭈글한 몸통을 잔뜩 기울이고 뚜껑이 열린 채

속에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그는 언제 주전자였나 싶으잖네


한때 나는 그를 보면 때없이 물이 먹고 싶었네

옆구리에 날아갈 듯 붙은 손잡이를 잡고 통통한 엉덩이를 슬쩍 기울이면

오므린 듯 벌어진 그의 입에서

오래 참은 노래처럼 물이 아니 그의 속이 쏟아졌었네


다시 보니 골뚜껑이 열린 줄도 모르고 아득히 주저앉은

그것의 속이 생각보다 아늑하네

그 안에 아무도 모르게 그가 키운 것들,

개미, 그리마, 이름 모를 털벌레…… 저런!

느닷없이 들여다보는 눈을 피해 줄행랑 중인 바퀴벌레 몇 마리!


둥근 벽 위 거무스름한 얼룩에 털투성이 발을 붙이고

떨어졌다간 오르고 떨어졌다간 다시 오르네


저 아애, 바닥에는 습기로 뭉쳐진 먼지들의 산이 있고

마른 웅덩이 같은 것도 있네

그곳에 언제 무슨 폭발 있었는지 작은 분화구 같은 것도 보이네

벌레들, 그 위를 혼곤히 오르내리며 한나절이 다 가네


이녘에선 여전히 천둥 치듯 세탁기가 돌고

소용돌이 속 한 바다가 거칠게 철썩거리네


그러니까 나는

- 상자들


그러니까 나는 그 상자들의 도시에서 한 상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다시 쬐끄만 상자들을 낳았던 거죠


날새면 눈도 코도 귀도 없는 괴상자들이 막무가네 배달되어 왔죠

깨알만한 것들이, 집채만한 것들이

물렁물렁한 것들이, 딱딱한 것들이

필시 수세기를 달려왔을 그것들이

엄마 엄마 부르며 벌컥벌컥

문을 열어젖혔죠


그때 나는 매일 부엌에서 그것들의 먹이를 만드느라 바빴죠

그것들이 자라 낙타가 되고 치타가 되고 악어가 되고 물뱀이 되어

꼭 저 같은 것들을 뒤집어쓰고 어디론가 떠날 때까지

이런 봄날 하릴없이

잿빛 허공에 귀를 대고 있으니

목울대를 늘이고 귀신 소리로 우는 그것들의 울음이 들려요

그러면 문득

앞뜰을 뽀얗게 뒤집어쓰고 때 이른 목련이 솟구쳐 오르죠

글쎄 저 앙바틈한 나무 한 그루가 함뿍

희디흰 이파리 나풀거리는 여린 상자들을 매달고 달그락거리잖아요

낙타…… 치타…… 악어…… 물뱀……들이 가지마다 글쎄!


정육점

- 상자들


         보라!


저 핏빛 쇼케이스 속에

칸나처럼 피오오른 누군가의

찢어진

팔, 다리, 엉덩이, 가슴


적멸

- 상자들


헌 비닐하우스 속에서 살던 집에서 불났다

없는 지붕이,

훤히 보이던 하늘이, 순식간에


활활활활활활활활활활활활


타버린 뒤

소방관들이 만천하에 드러난 숯검댕이들을

집어올린다


숯검댕이 엄마, 숯검댕이 아빠,

영문 모르고 숯검댕이 된

아가……


둘!


밑도…… 끝도…… 없다……

- 상자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투명한 저 칠판에 누가


         새가 날아간다


라고 쓰고 있다


        날개를 갸우뚱거리며 해를 똥처럼 달고 간다


라고 쓰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물렁하고 뿌연 저 칠판에 누가


       나-무-가-어-두-워-진-다-


라고 쓰고 있다


       나무속에누군가푸우-먹물을 불어넣는다

       나무가 검정비닐봉지처럼 부풀어 오른다


라고 쓰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물컹하고 희뿌옇고 어슴푸레한 저

칠판에 누군가


아이를업은여자가지나간다  검정가방을든남자가지나간다

      전봇대와쓰레기통사이로개한마리지나간다

           골목은끝이 없고  저끝에서  누군가울고  있다


라고 쓰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물컹하고 희뿌옇고 어슴푸레하고

……한 저 칠판에 누군가 종일 썼다 지운다 뼈가 다 비치는 투명한 어떤 손이

종일 저 크고 물컹하고 희뿌옇고 어슴푸레한 저 칠판에……


합장(合葬)

- 상자들


나는 산소를 손질하고

동생은 낫으로 무덤 쪽으로 자꾸 그늘을 드리우는

가지들을 잘라낸다 잔가지들이 잘린 자리마다

가지 모양의 하늘이 들어앉는다

잠자리 한 쌍이 벗어놓은 옷 위에서 짝짓기하고 있다

미동도 않는다


그래,

딱 한 번 저런 사랑 본 적 있다


일곱 식구가 누운 단칸(單間)의 밤이었다.

선잠 속,

돌아눕다 문득 본 그것!


검은 바위 같았다 아니

어떤 밤의 도도록한 봉분 같았다

숨소리 하나 없었다


돌 속 같은

…………

…………만

있었다.


이윽고

깊은 물소리 같은

숨죽인 흐느낌 같은……

………


'탁'

성냥 긋는 소리……

그쪽의…… 찰나가…… 불현, 환하다

말고…… 다시……

칠흑!


진자줏빛 담뱃불이 별처럼 멀었다


나야……

- 상자들


살아 계실 때 엄마는 이따금 전화하셔서는

  -나야……

하시곤 한참 뜸 들이다가 이쪽에서 별말이 없으면

  -바쁘……구나……밥……먹……었……니?

물으셨다 띄엄띄엄,

낮게,

무슨 큰 실례라도 한 사람처럼 ……

  -무슨 일예요?

(왜 나는 그때 그렇게 퉁명스러웠을까?)

  -아냐……, 그냥, ……

싱겁게,

그저 밥 얘기만 얼버무리다가 끊은 그

전화…… 오늘,

내가 한다 태평양 건너 딸에게


  -나야, …… 밥…… 먹었니…… 밥 잘 챙겨……

밥, …… 밥, …… 밥, ……

하다가 그만 목이 매어

가만히 있는데 딸애는

  -어! 어! 어!

  -엄마, 나 지금 바빠, 나중에……

일방적으로 전화…… 끊긴다.

전화선같이 가느다란 무엇이

태평양의 이쪽 저쪽을 붙잡고 위태롭게 흔들리다

툭, 끊어진다


나, 문득 '밥'의 ㅂ 속에 오도마니 갇혀

창밖을 본다

비행기 한 대 꽁무니에 희고 가느다란 끈을 달고

허공의 시퍼런 중심을 건너고 있다

나무들은…… 쥐 죽은 듯!

있다


나, 문득 저 나무에게 전화하고 싶다

저 이파리 뒤의 어둠에게

그 뒤의 뒤의 뒤의……

꼭 나뭇잎만한 터널 속 어딘가로 문득 사라진 식구(食口)에게


  -나야아…… 엄마…… 나야아,

  아버지이, …… 나야아…… 나아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나 지금

저 돌맹이 같은 것들에 대고!


다큐멘터리 개미들의 세계를 보다가 문득

- 상자들


개미굴 속으로 들어간다

  →

       허리

       가 잘

          록한                                없다              입구가

       개미                      한점                             출구인

 들이                                   바람

            구멍                        있다

            마다                                  뻗어

        빽빽                                        사방

  하다                                    사지

살같이            가는         길들이




                          개미새끼만한나무들은미동도없이서있다문득

       그림자하나없는길이미친듯떨린다

                                    저    문

                              밖에

                                무슨

                             일이

                        있나

                           ?????????????????????????



                                       곡괭이를들고일터

              맞대고 싸우는 놈                         가는 놈

                      더듬이를                                  집

                                     가는 놈                      지키

                                비틀                                 는

출구가                          지고                               놈

         입구인                          등에                요리

                그길                            것을        하는

           위                               먹을             놈

     더듬이를                           간다               애  보는

  한껏 세운                        오고                    놈 칼 가는

        개미들 정신없이                              놈               

                                                       장작

                                                          패는

                                                   놈 낚시

다있도놈은죽듯는자서에섶길금따이놈는하


그래, 종로쯤에서

- 상자들


우리, 한번 만나자

몸도 마음도 없이

파고다공원 벤치에 앉아 시시덕거리는

늙은 바람처럼

매연으로 찌든 홍매화처럼


그래, 거기, 한 늙도 젊도 않은 아낙이

낮도깨비같이 화장을 하고

장고를 치고 있으리라

한 늙은이는 공중변소 뒤에서 울고,

세월에 표정을 다 내어준 인생들이

데스마스크처럼 앉아 있으리라


그것들 위로

사월! 사월! 사월!

아우성치며 벚꽃잎 회오리치리라

그래, 회오리치는 것들의 그 아득함으로


고단(孤單)을 쓰개치마처럼 뒤집어쓰고 헤매던 날들의 그 막막함으로

우리 청진동쯤에서 한번 만나자

네거리에 갇혀 한 백 년 입 다문 인경처럼

어느 해장국집 푹 삶긴 시래기처럼……

……그렇게

…………물끄러미……우리………


바람이 하도 모질게 부니

- 상자들


집이 운다


집이 우는 것은 지붕이 우는 것 지붕 위의

기왓장이 우는 것 지붕 밑의

서까래가 우는 것 그 밑에

사방 벽이 우는 것 벽 속의

철근이 우는 것 철근을 에워싸고 있는

모래가 우는 것 모래 속에 잠든

수만 리 바다가 우는 것


집이 우는 것은 기둥이 우는 것 기둥이 된

적송(赤松)이 우는 것 몇 겁(劫)의 허공을 걸어와 소나무가 된

늙은 햇살이 우는 것


집이 우는 것은 바닥이 우는 것 그 아래

구들장이 우는 것 그 아래,

주춧돌이 우는 것 그것들이 네 발로 잡고

발이 부르트도록 굴리는

지구가 우는 것!


이 칠흑 속, 지구가 운다.

어느 막막한 날 새벽,

불 꺼진 방에 우두커니 앉아

속울음 들키던 아버지처럼!


그곳에는

- 상자들


어머니, 그곳에는 아직도 노오란 속이 다 보이는 길쭉길쭉한 상자들만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습니다 풀 한 포기 없었습니다 저마다 속에 캄캄한

층계를 감춘 그것들이 납작 눌린 돌맹이 같은 수많은 방들을 가진 그것들이

남몰래 치르르르 물소리를 흘리며 정수리에서 맴도는 해를 제 몸의 사방

벼랑으로 밀어내리며 떨어져 내린 해의 부스러기에 덴 발을 묻고 있었습니다


하여, 더욱 깊고 어두워진 길들을 대낮에도 불을 켜고 달렸습니다 밤마다 나는

빠알간 경고등을 켠 실핏줄 같은 길들이 그것들을 친친 감고 캄캄한 하늘을 날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그곳의 밤은 제 빛에 그림자마저 빼앗긴 그것들이 스스로 어둠이 되어

우두망찰 서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디선가 자꾸 아이가 울었습니다


허공이 실성실성해서

- 상자들


물끄러미 유리창으로 들여다보고 있어

쥐 죽은 듯 조용한 방

늙은 탁자와 늙은 티브이와 늙은 소파가 쭈그리고 앉아 있어


…………탁

누군가 소리치며 복도를 지나가


  세 살배기 막내동생의 임종이 있어

  아이의 검다 못해 푸르른 눈동자 속에 아주 잠깐

  들어앉은 쬐끄만 세상이 보여


멀쩡하던 하늘에서 주먹만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해

순식간에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흙탕물이 넘칠 듯 쏟아져 내려

누군가의 생이 곤두박질치나봐


…………탁

누군가 아래층에서 소리치며 지나가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날

  차비가 없어 장례에도 못 내려간 엄마가 넋 나간 듯 앉아

  있었어

  창백한 손으로 삯뜨개를 하고 있던 엄마

  백 년 전의 이야기야


나는 그때 허공이었어 허공에 둥둥 떠다니던

고봉밥이었어 원재네 국수집 구수한 멸치 국물이었어

동구 밖 팽나무에 걸려 있던 썩은 그네를 타고

한도 끝도 없이 날아올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달빛이었어


세…………탁

누군가 끝없이 계단을 내려가


늙은 탁자와 늙은 티브이와 늙은……

쥐 죽은 듯 쭈그리고

있어 (있어!)


부엌

- 상자들


  그때 그녀는 거기 머무르는 허공들처럼 아주 조용한 환자였다 매일 반복되는 한가지 일만 빼고는

  일은 대개 새벽녘에 터졌다 내가 잠든 틈을 타 그녀는 조용히 공격해왔다

  그녀는 소리 없이 산소 호스를 뽑고 침대를 내려가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문 쪽으로 갔다 인기척에 놀란 내가 억지로 그녀를 데려와 다시 침대에 뉘며물었다

  - 엄마 어디 가시는 거예요?

  - 어딜 가긴, 부엌에 가지, 빨리 밥을 지어야지

  - 아이구 엄마두 여긴 병원이에요 부엌은 없어요

  - 무슨 소리냐 부엌이 없다니 그럼 넌 뭘로 도시락을 싸가고 너희 아버진 어떻게 아침을 드시니?

  - 엄만 지금 아파요. 이제 밥 따윈 안 해도 된다구요!

  - 큰일날 소리! 아버지 깨시기 전에 서둘러야지

  - 엄마! 여긴 병원이라구요 부엌은 없어요!

  - 얘야, 세상에! 부엌이 없는 곳이 어디 있니? 어디나 부엌은 있지 저기 보렴 부엌으로 나가는 문이 비스듬히 열렸잖니?

  - 저긴 부엌이 아니에요 복도예요

  - 그래? 언제 부엌이 복도가 되었단 말이냐? 밥하던 여자들은 다 어딜 가구?

  - 밖으로 나갔어뇨 엄마. 밥 ㄸ윈 이제 아무도 안 해요 보세요. 저기 줄줄이 걸어나가는 여자들을요

  - 깔깔깔 (그는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얘야, 정말 어리석구나 저 복도를 지나 저 회색 문을 열고 나가면 더 큰 부엌이! 정말 큰 부엌이 있단다 저기 봐라 엄청나게 큰 밥솥을 걸고 여자들이 밥하는 것이 보이잖니? 된장 끓이는 냄새가 천지에 가득하구나

  - 엄마 제발 정신 차리세요. 여긴 병원이란 말예요

  - 계집애가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 게 아니란다 아버지 화나시겠다 어여 밥하러 가자 아이구 얘야, 숨이 이렇게 차서 어떻게 밥을 하니? (모기만한 소리로) 누가 부엌으로 가는 길에 저렇게 긴 복도를 만들었을까? 세상에! 별일도 다 있지 무슨 여자들이 저렇게 오래 걸어 부엌으로 갈까?

 

  엄마는 입술이 점점 파래지더니 까무러쳐서 오래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기어이 그 긴 복도를 걸어 나가 엄청나게 큰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엄마의 청국장 냄새가 중환자실에 가득했다

 

까마귀들

- 상자들

 

나는 까마득 높은 곳으로부터 까마귀 한 마리가 떨어져 내리는 꿈을 꿨어요

다시 잠이 들었고 두 마리 까마귀가 떨어져 내리는 꿈을 꿨어요 다시

잠이 들었고 세 마리 까마귀가 떨어져 내리는 꿈을 꿨어요

네 마리, 다섯 마리, 여섯 마리…… 길이 온통 까마귀로 가득할 때까지 나는

다시 잠이 들고 꿈을 꿨어요 죽은 까마귀들 위로 차들이 흘러가고

땀에 절은 사람들이 지나갔어요 그 자리, 희거나 불그죽죽한 목련들이

순식간에 피고 졌어요 그때 나는 그 까마귀들이 그대로 목련으로 피었다가

졌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누군가 봄이 다 갔다고 수군거렸어요

 

근(根)

- 상자들

 

그는 이미 온몸의 근육과 세포를 다 동원해서 숨쉬고 있었다

상기된 두 볼과 충혈된 눈으로 가까스로 그는 말했다

 

- 오줌이 마렵구나

- 소변기를 대드릴게요 아버지

- 나는 누가 보면 소변을 못 보는데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그의 근에다 소변기를 대니 피고름 같은 것이 간신히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때 그 근의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 끝에서 떨어져 내린 피고름이 수세기를 흘러온 냇물이라는 걸 알았다

어릴 적, 나는 트레머리를 하고 피부가 유난히 흰 젊은 엄마가

그 물에 쌀을 씻어 안치고 상추를 씻어 정갈하게 밥상을 차리는 걸 보았다

그때 나는 그 냇물이 밤새 아이 웃음소리를 내며 깔깔깔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구덩이

(그들은 이혼을 이야기한다)

- 상자들

 

(캘리포니아 작은 도시의 한 식당에서 그녀는 말했다)

사는 게 얼마나 지긋지긋한 건지 이제 알 것………………

남자는 다 그렇단다 철딱서니라곤 없는 동물………………

난 이제 정말 지쳤………………………………………………

그래도 살다 보면 혹시…………………………………………

내게 다시 그런 말………………………………………………

아이는 어떻………………………………………………………

 

한 스패니시 여인은 지치고 찌든 얼굴로 혼자 밥을 먹고

서너 살 먹은 서양 계집아이는 지나치게 화려한 캔디를 빨고

아이스크림을 든 산만한 엉덩이가 지나간다

 

털투성이 자본들이 사방에서 어슬렁거린다

 

나도 한땐 그런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왜 하지 못했…………………………………………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거짓말! 난 그게 얼마나 위선인지 알……………………!!!

 

바야흐로 그녀는 눈물로 식탁 위에 물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는 식도가 터져나가는 통증에 시달리며 중얼거린다

 

얘야 캘리포니아에는 왜 비가 내리지 않니 저녁 바람은 왜 이리 차니

왜 젖은, 젖은 빨래가 순식간에 과자처럼 바스락거리니

스컹크는 왜 밤마다………………………………………

그 런 데…… 얘야 …… 도대체…… 왜……매일……새파란 하늘에

독수리 같은 까마귀가………………

 

사실적인, 사실, 적인

- 상자들

 

이제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 밖으로 사라졌다

본시, 세상은 아버지와 아버지,

또 아버지와 아버지들 사이에

사실적으로, 사실, 적으로 있었다

사실적인 아버지는 뜨거웠으나 사실, 적인 아버지는 얼음 같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들 사이에서 사실적으로 아니,

사실, 적으로 갈팡질팡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었다

아버지는 아버지 이후로 스며든 것일까

아버지 이전으로 돌아간 것일까?

생각해보니 사실적도, 사실, 적도 아니었던 아버지!

 

아버지가 지고 나니 세상이 사실적으로 캄캄하다

나는 밤마다 사실적인 아버지를 헤맨다

누르면 쑥쑥 둘어가는 묵 같은 아버지, 검은 안개 같은 아버지,

아아 사실적이 아닌, 사실, 적도 아닌 아버지는

왜 이리 슬픈가?

나는 눈물을 흘리며 사실적인 아닌 아버지 품에

사실, 적이 아닌 딸이 되어 안긴다

 

나는 오늘 종일 잤다

- 상자들

 

나는 오늘 종일 잤다

 

  허공이 조금조금 갈라지고

  갈라진 틈새로 면돗날 같은 햇빛이 내리긋고

 

나는 잤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우박이 퍼붓고

  세월에 부관참시(剖棺斬屍)된 집들의 지붕이 비스듬이 흘러내리고

 

나는

 

  지붕 아래 한 방의 노오란 구들장 속으로 수세기 내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막무가내 내리덮이는 눈꺼풀 사이에서

  한 짐승과 사랑하고 결혼하고 반인반수(半人半獸)를 낳고,

  낳으면서 다만, 눈 뜨기 위하여

 

잤다

 

  벽지 위에는 주근깨투성이 산나리꽃이 킬킬킬 피어 오르고

  깨진 유리창으로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날아들고

  청정 위에는 무언가 끊임없이 뚜벅,

  뚜벅 걸어가고 그 사이에서 나는

 

잤다

 

  졸린 생을 어쩌지 못해 잤다

  들숨 날숨이 뒤엉켜 캄캄해질 때까지 잤다

  멀건 대낮이 멀건 밤이 되고 멀건 밤이 멀건 아침이

  될 때까지 잤다

  팔 다리 엉덩이 배꼽이 몽땅 캄캄해질 때까지 잤다

  팔 다리 엉덩이 배꼽이 몽땅 환해질 때까지 잤다

  아아, 이 짧은 잠 속의

  기이인……………………………하루

 

모델 파라다이스

- 상자들

 

한 오십쯤 된 여자와 남자가 간다

 

수제(手製) 태양들이 줄지어 번쩍이는 밤,

사이사이, 창궐하는 어둠에 푹푹 빠지며,

 

자세히 보니 한 오백 살 된 계집아이와 사내아이가

묵은 느티나무 밑둥 같은 허리를 돌려 감고 간다

얼굴에 제 살아온 날의 지도를 펼쳐들고

무슨 음모처럼

컴컴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는 당뇨(糖尿)의 늙은 사자와,

수 세기 전 누군가 채워준 녹슨 족쇄를 절그렁거리는

저 다섯 살 철부지 노파!

엽기적으로 푸르스름한 시대의 인광(燐光)이 잡아 끄는

모텔 파라다이스로

키득키득

울며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신생아실에서)

- 상자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얼마나 험한 길을 얼마나 오래 걸어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피투성이 주름투성이의 몸으로 조막만한 인류가

지금 막 도착해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울음을 그친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형광등 불빛을 보다가

창 쪽을 보다가

희고 높다란 벽을 보다가

흰 옷에 흰 투구를 쓴 직립의 괴짐승들을 보고는 그만

무슨 입맛 돋우는 먹을거리라고 생각했는지

라일락빛 입술을 씰룩거리며 이리저리

혀를 내두르다가

문득

 

단풍잎 같은 손을 들어

가만가만

가까운 허공을

긁어보는 것이었는데

 

환(幻) 1

- 상자들

 

성묘하러 갔다 보았죠

당신 무덤 앞 상석 위에서 당신이

손바닥만한 사마귀 한 마리로 환(幻)

하시어

갓 태어난 연둣빛 아기 메뚜기 한 마리 잡숫고 계시는 거

 

미칠 듯 고요하던 그 식사!

 

발 아래론 시뻘건 개비름의 날짜들이 기어가구요

아카시아 개여뀌 엉겅퀴 호라지좆

온갖 못난 것들이 뒤엉킨 굴헝이 있었구요

더 멀리는

모르는 척 산 모퉁이를 돌아가는

능청맞은 낙동강이 있었구요

 

악몽 공장

- 상자들

 

그 공장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멀리서 보면 그곳은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나는 하마터면 아,

하는 탄성을 입 밖으로 내보낼 뻔 하였다

 

누군가 말했다

그 속에 죽어도 꺼지지 않는 용광로가 있고 그 끝에서

펄펄 끓는 쇳물이 쏟아져 나와 불의 길을 만들고 있다고

사방에서 물고 물리는 기름투성이 기계들이 쩔꺽거리며

거대한 피댓줄을 돌리고 있다고

그 끝에 기막히게 정교한 세공품들이 쏟아진다고

주전자 모양으로, 커피잔 모양으로

쟁반 모양으로, 숟가락 모양으로

아집(我執) 모양으로, 고통(苦痛) 모양으로,

굴욕(屈辱) 모양으로

긍휼(矜恤) 모양으로

 

석탄박물관

- 상자들

 

박물관이 된 막장을 보았어

입구에 들어서면 은은하게 음악이 깔리고

- 어서 오십시오 **광업소 석탄박물관입니다

안내 방송이 들리고

잘 진열된 석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얼마나 죽은 듯,

얼마나 오래,

얼마나 납작하게 엎드려야

소나무 전나무 고사리 속새 도라지 더덕 만삼 좀딱취 같은 것들이

돌이 되는지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능구렁이 삼엽충 지네 전갈 같은 날짜들이

캄캄하게 석탄이 되는지

달걀만한 홀로그램으로 뜬 광부가 말하고 있었어

창백한 손가락을 들어 막장 쪽을 가리키며

 

저기! 사십오 도 각도로 곡괭이를 든 채 밀랍 인형이 되어버린

칠성이 아버지를 보라고

 

저기! 탄가루가 범벅인 도시락을 반쯤 남긴 채 홀로그램이 된

경식이 아버지도 있다고,

 

여기저기, 몰래 진폐(塵肺)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홀로그램이 되어가는 자들의 독거 막장이 보였어

 

곡괭이 같은 슬픔을 들쳐멘 쬐끄만 해의 광부들이

허공탄차에 실려 막장으로 쏟아지고 있었어

 

심심하고 심심한, 이,

- 상자들

 

가을날, 방바닥을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이,

가을날, 등때기와 배때기가 붙은, 이,

가을날,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이,

가을날, 속 있는 것들을 다 속으로 들어가버린, 이,

가을날, 천장에서 쥐새끼 한 마리 찍찍거리지 않는, 이,

가을날

 

  위층에서 유령들이 수군거린다 징징 짠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흐윽흐윽 흐흐흐

  흐느낌만 흐드러지는 이!

가을날,

  벽속으로 누군가 몰래 물을 들이붓는다

  물이 철근 기둥을 타고 하염없이 내려간다

  벽지에 스민다 집이 퉁퉁 불어터진다 흐물흐물 풀린다

 

더엉 더엉 더엉

처연하게

벽시계가 운다 치르르르르르

냉장고가 울고 텔레비전이 운다

가스레인지가, 신발장이, 탁자가, 의자가, 운다

(귀뚜라미는 울지 않는다)

 

심심하고 심심한,

이!……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78 Auguste Rodin 오귀스트 로댕

 

지은이 | 라르스 뢰퍼 , 옮긴이 | 정연진

2008, 예경

 

 

시흥시대야도서관

SB040163

 

650.8

아887ㅇ  6

 

ART SPECIAL 6

 

Auguste Rodin | 오귀스트 로댕

 

"사람들은 내 조각 <걸어가는 사람>에 머리가 없다고 비판하지.

그런데, 도대체 걷는 데 왜 머리가 필요한 거요?"

- 오귀스트 로댕

 

당대의 평론가들은 로댕의 작품을 보고 '괴물'이라고

비난하며 그를 외톨이로 몰았다. 하지만 로댕은 이러한 비평

따위는 아랑곳없이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했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로댕이 활동하던 19세기 말 매혹

적인 파리로부터 카미유 클로델과의 사랑을 비롯한 그의

굴곡 많은 삶, 그의 예술 세계, 영화 <카미유 클로델> 및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로댕에 대한 흔적 등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1840~1917)

근대 조각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14살에 국립공예실기학교에 입학하면서 조각의 길에 들어선다. 1864년 살롱에 처음으로 <코가 깨진 사나이>를 출품했으나, 너무나 생생한 사실적인 묘사에 심사위원들이 거부감을 느껴 낙선되고 말았다. 이후 유럽 각지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훗날 자신의 예술세계 기반을 다져갔다. 1878년 파리에 돌아온 로댕은 살롱에 <청동시대>를 출품하는데, 작품의 뛰어난 사실성으로 인해 살아 있는 모델에서 직접 석고형을 뜬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로댕은 <입맞춤>, <지옥의 문>,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발자크 상> 등 무수한 걸작들을 만들었다. 사실적 기법 아래서 인간의 희노애락과 치솟아 오르는 생명의 약동과 영혼까지 묘사한 로댕의 작품들은 근대 조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1840-53

세계사

>> 1840년 영국에서 역사상 첫 우표인 '페니 블랙' 발행.

>> 1841년 홍콩, 영국령으로 귀속.

>> 1845년 아일랜드 대기근 발생.

>> 1850년 오노레 드 발자크 사망.

>> 1851년 런던에서 첫 만국박람회 개최,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출간.

 

로댕의 예술세계

>>1840년 11월 12일 프랑수아 오귀스트 로댕, 파리에서 출생.

>> 1848년부터는 기독교리형제학교, 1851년부터는 숙부가 운영하는 보배기숙학교에 다님.

1854-661

 

>> 1856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위 사진) 출생.

>> 1857년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출판, 저자와 출판자 모두 "미풍 양속을 해친 행위"로 인해 벌금형이 내려짐.

>>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됨.

 

>> 1854년 "프티트 에콜"에 입학.

>> 1858년 보자르 미술학교의 입학시험에 세 번 연속으로 낙방, 장식업자와 부조제작자의 조수로 일함.

 

1862-64

>> 1862년 10권으로 된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 출간.

>> 구스타프 클림트(위 사진) 출생.

>> 1863년 런던에서 역사상 첫 지하철 개통, 프랑스에서는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가 논란을 일으킴.

 

>> 1862년 누나 마리아 사망. 로댕, 성령회 수도원에 들어감.

>> 1863년 에마르 신부의 흉상 제작. 수도원 생활 청산.

>> 1864년부터 알베르-에르네스트 카리에-벨뢰즈에게 고용되어 일함. 같은 해에 로즈 뵈레와 만남.

 

1865-71

>>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로 사망.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뮌헨에서 초연.

>> 1867년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출간. 샤를 보들레르 사망.

>>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참사.

 

>> 1866년 아들 오귀스트 외젠 뵈레 출생.

>>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발발. 국립방위군에 자원.

>> 1871년 국립방위군에서 나쁜 시력으로 제대. 카리에-벨레즈(위 사진)를 따라 벨기에로 이주. 어머니 사망.

 

1872-76

>> 187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개관.

>> 1873년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에서 '프리아모스의 보물' 발견.

>> 1875년 작가 토마스만 출생.

>>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 발명(위 사진).

 

>> 1874년 브뤼셀에서 다수 건축 프로젝트에 참가.

>> 1875년과 1876년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 미켈란젤로의 예술 연구.

 

1877-80

>> 1879년 토마스 에디슨이 백열전등 발명.

>> 1880년 콘라드 두덴이 라이프치히에서 《독일어 정서법 사전》 출간. 화가인 프란츠 마르크와 에른스트 키르히너 출생.

 

>> 1877년 '주조 스캔들'로 구설수에 오름. <청동시대>가 모델을 그대로 본 떠 만든 작품이라 비판 받음.

>> 1880년 명예 회복과 동시에 <지옥의 문> 의뢰 받음.

 

1881-86

>> 1881년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 예방백신 개발.

>> 1883년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추간. 리하르트 바그너와 카를 마르크스 사망.

 

>> 1883년 카미유 클로델(위)과 만남. 아버지 사망.

>> 1884년 <칼레의 시민> 제작 의뢰 받음.

 

1887-92

 

>> 1888년 빈센트 반 고흐가 귀에 의문의 부상을 입음.

>> 1889년 파리에 물랭루즈 개장. 아돌프 히틀러 출생.

>> 1890년 화가 에곤 실레 출생. 빈센트 반 고흐 사망.

>> 1891년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건설 시작.

 

>> 1887년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받음.

>> 1888년 보들레르의 《악의 꽃》 삽화 그림.

>> 1889년 빅토르 위고 기념비 제작 의뢰 받음.

>> 1891년 오노레 드 발자크 기념비 제작 의뢰 받음.

>> 1892년 레종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받음.

 

1893-98

 

 

>> 1893년 카를 마이(위)의 인디안 '위니투' 이야기 마지막 권 출간.

>> 1894년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 마지막 황제로 재위. 파리 상젤리제에서 첫 자동차 전시회 개최.

>>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에서 첫 영화 상영.

>> 1896년 앙트완 앙리 베크렐이 방사능 발견.

 

>> 1895년 <칼레의 시민> 공개식.

>> 1897년 뫼동의 브리앙 저택에 정착함.

>> 1898년 카미유 클로델과 영원히 결별.

 

1899-1910

 

>> 189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출간. 에리히 캐스트너 출생.

>> 1906년 4월 18일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및 화재로 도시 황폐화(위).

>>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러일전쟁 종식 중재로 노벨평화상 수상.

 

>>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로댕을 위한 단독 전시관 마련.

>> 1902년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과 만남. 후에 로댕에게 고용될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만남.

>> 1904년 슈와쥘 공작 부인과 만남.

 

1911-17

>> 1911년 노르웨이인 로알 아문센(위)이 영국인 로버트 스코트를 간발의 차로 앞지르고 먼저 남극점에 도달. 스코트는 귀향길에 사망.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 191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 발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출간.

 

>> 1913년 카미유 클로델, 정신병원에 수감됨.

>> 1916년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함.

>> 1917년 1월 29일 반려자 로즈 뵈레와 결혼. 2월 14일 로즈 뵈레 사망. 11월 17일 오귀스트 로댕 사망.

 

지은이 | 라르스 뢰퍼Lars Roper은 현재 베를린에 살고 있으며, 자유 기고작가, 여행기록 작가 및 전시회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잇다.

 

옮긴이 | 정연진은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 예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국제회의통역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대학원에서 통번역학 박사과정 중에 있고, 동대학원 및 서강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차례

 

그때 그 시절

급변하는 사회

 

최고가 되기까지

예술가의 피

 

예술

조각 속에 깃든 우주

 

일용직 노동자가 꾼 천재의 꿈

 

사랑

헌신이냐 열정이냐

 

지금도 우리 곁에

세계 시민 곁의 로댕

 

그때 그 시절

 

 

"파리여,

소년을 유혹하는,

남자가슴을 뛰게 하는,

그리고 늙은이에게 위안을 주는 도시여!"

 

하인리히 하이네

 

 

"파리에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소."

작곡가 프레데릭 쇼팽이 1831년에 남긴 말은 당시 파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기선 당신이 재미있어하든, 지루해하든, 웃든, 울든, 마음대로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소. 이 도시에 있는 수천 명이 또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오. 다만, 방식만 조금씩 다를 뿐이지."

사진작가 샤를 마르빌은 주로 19세기 파리의 거리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은 오 마리 가(街).

 

마음껏 즐기자

파리 시민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었다. 전쟁과 혁명으로 세월을 보냈던 파리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즐기고, 즐기고, 또 즐기는 것뿐이었다.

로댕은 신사복을 차려입고 파리의 거리를 누비며 구경거리를 찾아다니길 좋아했다. 로댕이 활동 초기에 전시회를 기획하는 데에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재정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동시대 미술가의 작품 수집을 즐겼던 카유보트 역시 화가였는데, 약 500점의 작품을 남겼다. 위 작품은 카유보트의 1877년 작(作)인 <파리의 거리>이다.

 

"파리라는 도시가 좋은 점이 뭔지 아나? 누가 여기서 어떻게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는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이지."

-오노레 드 발자크

샤를 보들레르(1821-67)의 상징주의적 작품들은 로댕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향하는 전환기에는 뢴트겐선 촬영 기술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 기술이 발명되어 화제가 되었다. 사진은 1896년 전신 촬영 사진으로, 아홉 개의 부분 사진을 모아 붙인 것이다.

자연 속에서 | 클로드 모네나 오귀스트 르누아르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화실에서 벗어나 야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연의 풍경과 색채를 순간의 모습 그대로 화폭에 담으려 했다. 이는 화실에서라면 불가능했을 작업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 작품들은 풍경화가 주류를 이룬다. 그 대표작 중 하나인 르누아르의 <작은 배>.

상징주의자 | 스위스 출신 화가인 아르놀트 뵈클린은 회화를 통해 문학 작품이 주류를 이루던 상징주의에 합류했다. 상징주의는 상징을 통해 현실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 사조이다. 뵈클린은 당대의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동화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고대 신화의 모티브를 담아내는 작업을 즐겼다. 그의 작품 <가을의 사색>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명상에 잠기게 한다. 

 

최고가 되기까지

 

"명성을 얻기 부터

로댕외로운 사람이었다.

찾아온 명성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건 괴물이야!"

 

아카데미 미술을 추종한 비평가들이 로댕의 작품을 평한 말이다. 로댕이 좌절할 때마다 다시 일어나 두 배로 노력한 것은 예술을 향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906년 해고되기까지 6개월간 로댕을 보좌한다.

 

작은 왕궁

로댕이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그를 흠모한 모델, 일꾼, 제자, 조수, 비서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작은 왕궁을 형성하였다. 로댕의 일거수일투족에 경외심을 표하던 이들은 로댕이 더욱 까다롭고 독선적으로 변해가는 데 일조하였다.

 

"우리가 삶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일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잇기 때문이다."

- 오귀스트 로댕

<세례 요한>은 로댕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다.

희망 | 로댕의 초기 작품인 <코가 부러진 사나이>는 '비비'라는 이름의 가난한 이웃 사내를 모델로 삼았는데, 예술가들로부터 "고대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다"며 호평을 받았다. 로댕은 살롱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출품했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살롱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외면해버린다.

공모전 | 1877년 말, 로댕은 드디어 자신만의 작품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이때부터 로댕은 가능한 한 모든 공모전에 도전장을 던지기 시작한다. 작품 <무기를 들어라>는 파리 '데팡스'전 출품을 위해 1879년에 제작되었지만, 1922년 승전 기념비로 베르됭 시에 설치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로댕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작품을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

로댕이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알마 광장에 세운 '로댕관'

뫼동에 있는 '빌라 드 브리앙'

로댕의 저택 '오텔 비롱'의 사무실에 앉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 릴케는 로댕의 괴팍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를 천재로 받들었다.

| 로댕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손을 비롯한 다양한 인체 부위 조각품 수백 개가 바닥과 선반을 가득 메우고 있다. 로댕은 이 부분 조각품들을 작품을 위한 자투리가 아닌 완전한 예술품으로 다루고 애정을 쏟았다. 오늘날 세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 <대성당>에서 로댕은 두 개의 손을 조합하여 대성당의 건축양식을 형상화하였다.

참수 | 자신의 조각품에 대해 불완전하다는 비평이 쏟아지자, 로댕은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다시는 완전한 작품을 만들지 않으리라! 난 고대의 전통을 따르겠어!"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긴 첫 작품이 바로 이 <걷고 있는 남자>라고 한다. 로댕에 관한 회고록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세례 요한>의 주조에서 목만 떼어낸 것이라 하고, 다른 기록에서는 이 작품이 <세례 요한>을 위한 습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용수 | 조각가에게 있어서 무용수의 몸짓은 영감의 원천이자 도전의 대상이기도 하다. 로댕이 이러한 도전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폴란드 출신의 러시아 발레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바슬라브 니진스키를 표현한 조각품은 위대한 조각가와 위대한 무용가의 재능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삼매경 | <명상> 혹은 <내면의 소리>로 불리는 이 조각품은 원래 <지옥의 문>을 구성하며 제작되었다. 무언가에 깊이 심취한 듯한 이 귀부인의 모습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 삽화에도 등장한다. 로댕은 후에 빅토르 위고 기념비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이 조각품의 양팔과 무릎을 잘라냈고, 그 모습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열쇠가 되는 인물 |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잇다. 원래 로댕의 계획은 단테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지옥의 문>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게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조각품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사색하는 인간 혹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고뇌하는 창조자의 모습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모욕 | 문호 발자크의 기념비 제작을 의뢰한 문인협회는 빠르게 완성하길 바라며 로댕을 더욱 독촉했다. 그러나 로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발자크> 상을 개인적으로 자신의 미학에 획을 긋는 작품으로 완성시키고자 했다. 이윽고 1898년 로댕의 완성품을 전달받은 문인협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대문호 발자크를 "괴물로 만들었다"며 로댕을 비난했다.

 

예술

 

"예술이란 인내 정성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노동 없이는 불가능한 것."

 

오귀스트 로댕

 

평범하라고? 그럴 수는 없어!

 

로댕이 명성을 얻을 때까지 수십 년이 걸렸지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평범함이다. 로댕의 눈에 평범한 자는 "예술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자연을 흉내 내기만 한다. 자연을 관찰만 할 뿐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사물을 보는 법을 안다. 그리고 그의 눈과 마음이 함께 자연의 품 안에 깊이 안긴다."

 

"예술적 영감? 우습군! 그건 이성도, 의미도 없는 낡아빠진 낭만적 정서에 불과하네. 스무 살 청년이 벼락을 맞고는 갑자기 대리석을 깎아내서 후에 걸작이 될 작품을 위한 습작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영감이라네. 상상력의 광란 상태이지! …… 그러나 이렇게 광기에 불타 만들어진 작품들은 아낌없이 부수어버려야 한다네."

- 오귀스트 로댕

로댕의 작품 중 늙은 여인을 모티브 삼은 작품은 <한때는 아름다웠던 투구 제작자의 아내>뿐이다.

<청동시대>의 모델이었던 오귀스트 네이. 로댕은 이 사진으로 자신의 작품이 저질스러운 복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려 했다.

 

"사실 작업에 필요한 건 기술적 능력과 지식뿐이지만,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건 그게 아니야. 사람들은 현실적인 것보다는 특이한 것, 초인적인 것을 믿고 싶어 한다네. 물론, 예술적 영감에 비하면 기술과 지식, 시간, 고찰 같은 요소는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겠지. 그렇지만 이 요소들이야말로 예술을 만들어내는 기본 틀이라네."

- 오귀스트 로댕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건 로댕뿐만이 아니었다. (아래 : 로댕의 드로잉 <악마를 보고 놀라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예를 들어 외젠 들라크루아는 1822년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통해 신곡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로댕은 출판업자 폴 갈리마르의 의뢰로 1887년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초판의 삽화 작업을 맡는다.

로댕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면밀히 탐구하였고, 때로는 이를 위해 이탈리아에 가기도 했다. 위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승리>.

<발자크> 상을 완성하기 위해 로댕은 수많은 습작을 만들어냈는데, 그중에는 걸어가는 나체의 모습도 있었다.

로댕의 우주 |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의 문학에 묘사된 지옥의 문 위에 씌어진 문구이다. 희망을 버린 건 로댕의 추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옥의 문>이 로댕 생전에 완성되기는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로댕은 35년의 세월을 <지옥의 문>에 쏟아 넣었다. 결국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끝맺었지만, 어떤 작품보다도 로댕의 우주를 잘 나타내고 있다.

지옥편 | <떨어지는 사람>은 그나마 힘으로 <지옥의 문> 틀에 매달려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도 머지않아 저 아래 있는 저주받은 자들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단테 알리게리가 《신곡》에서 묘사했듯이 말이다. 로댕의 작품 세계를 깊이 느끼고 싶다면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읽어보아야 한다.

이중성 | <입맞춤>에서 두 연인은 애정 깊은 입맞춤을 나누는 듯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보면, 두 연인들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간절한 당부 | 오르페우스는 뛰어난 음악 솜씨 덕택에 지하 세계로 간 연인 에우리디케를 다시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둘이 함께 이승으로 돌아가던 중, 에우리디케의 발걸음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오르페우스는 걱정이 된 나머지 페르세포네의 당부를 잊고 그만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에우리디케는 죽음의 세계로 돌아가버린다.

새로운 시각 | 조각이라면 받침대가 있던 것이 당연시되던 당시에, 바닥에 조각을 놓는 것은 매우 특이한 방식이었다. 1885년 작품인 <순교자> 또한 그러한 양식을 띠고 있어서, 위에서 작품을 내려다보도록 하고 있다. 오늘날 이 작품은 결국 대부분의 박물관에서 받침대 위에 놓여 전시된다.

| 낭만파 문호 노발리스가 말했던 "사랑, 우주의 숨결"은 로댕의 1884년 작품 <영원한 봄>에 정확히 들어맞는 표현이다. 사랑에 빠져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젊은 연인의 모습은 얼어붙은 세상이 깨어나고 만물이 태동하는 계절인 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로댕은 1883년 동료 조각가인 쥘 달루의 흉상을 제작한다. 그러나 달루에게 <빅토르 위고>의 수주를 빼앗긴 후, 둘의 관계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에 둘러싸여 서 있는 로댕. 1902년 촬영.

로댕이 그린 에로틱한 드로잉에서 모델들은 자유분방한 포즈를 취한다. <달, 프시케>

민주주의 예술 | 칼레 시의 고위관리들은 여럿을 위한 기념비보다는 단 한 명의 영웅을 내세우고 싶어 했다. 반면, 로댕은 군상을 통해 공동의 시민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다. 로댕이 생각하기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요청에 응하여 칼레 시를 구하려 햇던 여섯 명의 자원자 모두가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아이 | 대리석에서 뻗어 나온 <신의 손>은 혼돈 속에서 솟아올라 나와 이 세상을 향한다. 그리고 점토로 첫 인류를 빚어낸다. 로댕이 이 작품을 만든 과정도 이와 비슷했다. 로댕은 손 조각품 중 큰 작품을 골라서, 그 위에 적당한 크기의 누드 조각품을 담았다. 작업실 안에서 우주를 창조하듯 말이다.

천연 대리석 | 손은 로댕의 예술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로댕은 <대성당>이나 <신의 손>처럼 <악마의 손>에서도 두 개의 기존 작품을 하나로 조립했다. 그러나 로댕이 너무 앞서 간다고 비판받은 것은 대상을 조합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친 천연 대리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욕정 | 귀부인에서 신분 낮은 모델에 이르기까지 로댕은 여인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넘치는 욕정의 소유자였다. 여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위해 드로잉과 조각품들의 모델을 서주었고, 그의 애인이 되어주기도 했다.

느낌 | 1893년 작품 <트리톤과 네레이드>를 통해 로댕은 부분 조각품에 대한 철학을 완성하는 단계에 이른다. 남녀가 서로 뒤엉켜 한 점토에서 나와 형태를 이루는 모습 속에 로댕의 언어가 깃들어 있다.

위대한 자연 | <설교자 솔로몬> 혹은 <전도서>는 구약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로댕은 이 여인의 관능적인 포즈를 보고 전도서의 구절이 생각났을 것이다.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로댕은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책보다도 아름다운 게 자연이라오. 다만, 어떻게 읽어야 가장 아름다운지 알고 읽어야 하지."

 

 

"살아 있는 모든 생물

공기를 들이마시고, 영혼을 뱉어낸다.

나는 그러한 과정

묘사하고 싶은 것이다."

 

오귀스트 로댕

 

어느 문맹자의 위대한 발견

 

오귀스트 로댕이 그림만큼 좋아한 건 없었다. 부모와 교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댕은 거의 문맹 수준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로댕이 고집세다는 것이었는데, 그는 부모를 조른 끝에 무료 미술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다. 이곳, '프티 에콜'에서도 여전히 외톨이였던 로댕은 교정을 돌아다니다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로댕은 미켈란젤로(위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모세>)에 대해 탐구한다. "나는 밤새도록 스케치를 했다. 미켈란젤로를 흉내 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미켈란젤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생각을 그려낸 것이었다."

 

'부르주아 전담 예술가'

수년간 일용직으로 근근히 생활했던 로댕에게 드디어 행운이 찾아왔다. 조각가이자 상인인 알베르-에르네스트 카리에-벨뢰즈가 젊은 로댕의 재능을 간파하고, 그에게 고난이도의 장식 조각품 제작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카리에-벨뢰즈는 아무리 중요한 일을 맡겨도 서명은 반드시 본인의 이름으로 하였다.

C. H. 오브리가 1862년에 촬영한 젊은 로댕의 모습에서 일생을 예술에 바치려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이러한 의지가 없었다면, 향후 그가 수십 년간 겪게 될 무명 시절과 혹독한 비평을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생물이 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나가려는 이유는 뭘까? 이토록 고통스러운데도 삶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지금도, 앞으로도 나를 괴롭히는 질문일 것이다."

 

- 오귀스트 로댕

로댕이 1860년에 그린 로렌 지방 출신의 어머니, 마리 셰페르.

피에르-쥘리앵 에마르 신부의 흉상을 만들고 있는 젊은날의 로댕, 1863년 사진.

굳게 닫힌 마음 | <웅크린 여인>은 원래 <지옥의 문> 가장자리 기둥에 삽입될 모티브로 제작되었으며, 청동조로 제작된 개별 작품으로 친다면 로댕의 작품 중에서도 매우 대담한 편이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듯한 여인의 자세가 주는 의미는 오늘날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최초의 여인 | <이브>는 자신이 벌거벗은 것과 죄를 범한 것을 알아차리고, 부끄러운 몸짓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피한다. 로댕은 이브를 유혹의 주체가 아닌, 인류 최초의 어머니로 묘사하려 했다. 로댕은 <이브>를 <지옥의 문> 오른편에 설치했다. <아담>은 건너편에 위치한다.

아름다운 실루엣 | <나는 아름답다>는 원래 <지옥의 문>에 설치되었던 두 점의 개별적인 작품인 <떨어지는 남자>와 <웅크린 여인>을 다시 조합한 것으로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선보인다. 이 작품의 두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고 매우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어우러져 있어, 두 오브제 간의 관계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영원한 터널" | 이 작품에서 <신의 전령 이리스>는 허벅지를 벌려, 화가 쿠르베가 말하는 '세상의 근원'을 드러내 보인다. 로댕은 반면 은밀한 부위를 가리켜 "영원한 터널" 혹은 "판 신의 재래"라고 부르곤 했다. 자신의 삶에서도 여인이라면 모두 사랑했던 로댕이기에, 그가 예술 세계에서도 여인의 모두를 표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낭만의 극치 : 로댕은 내연의 처인 로즈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흉상 <미뇽>을 제작한다.

로댕의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는 카미유 클로델(왼쪽)과 제시 립스콤. 1888년 사진.

로댕의 우주 : 1904-05년 사이에 촬영된 뫼동의 작업실.

저택 '오텔 비롱'의 오귀스트 로댕. 1915년 사진.

임종한 오귀스트 로댕.

죽음의 나락으로 |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추락'은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였고, 로댕도 이 이야기에 심취했다. 이카로스는 나무에 밀랍으로 깃털을 붙여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올라간다. 그러나 너무 자만한 나머지 태양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밀랍이 녹아내리는 바람에 추락해서 죽는다.

우화 속 주인공 | 로댕의 부분 조각품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감상자에게 질문을 던지길 좋아했는데, 이는 고대 우화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황소의 머리와 신앙의 다리를 가진 미노타우로스가 저항하는 님프를 무릎에 앉히려는 광경은 고대 우화와도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다. 이 대리석 작품은 <목신과 님프> 혹은 <주피터 타우로스>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추락한 천사 | <천사의 추락>은 샤를 보들레르의 문학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이처럼 두 여인의 인체가 어우러진 모습을 담은 작품은 <지옥의 문>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추락한 카리아티드>와 <아델레의 토르소>이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 예술가인 피그말리온은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온통 조각으로만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자신이 빚어낸 상아 여인상이 완성되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를 알게 된 비너스는 여인상을 '갈라테아'라는 살아 있는 여인으로 둔갑시켜준다.

에로스와 프시케 | 로댕은 1905년에 <에로스와 프시케>를 만들면서 플레이우스가 2세기에 쓴 소설 《황금 당나귀》의 내용을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오늘날은 이 조각품의 제목이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도 없지 않다. 에로스의 상징인 날개나 활 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

 

"여인이란 성스러운 존재이다."

 

오귀스트 로댕

 

기사도와 외설

 

로댕에게 있어 여인과 예술은 가장 위대한 두 가지 요소였다. 로댕은 여인들을 찬양하고 신성화했으며, 여인들을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했다. 반면 자신의 외설적인 드로잉을 통해서는 모델의 은밀한 부위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요란하게 치장하기 좋아했던 슈와젤 공작부인은 한때 로댕의 애인이었다.

 

"나는 자연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자연과 동화되려는 것이다. 나는 자연이 나를 이끌고 가도록 맡긴다. 나는 인간 이외에는 대상으로 삼고 싶은 것이 없다. 인체가 만들어내는 형상은 나에게 다가와 나를 압도해 버린다. 나는 나체를 보면 끝없는 찬미와 깊은 경외심을 느낀다."

- 오귀스트 로댕

 

 

젊은 카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은 서로 싸우고, 배우고, 사랑하고, 경멸하고는, 또다시 사랑에 빠졌다. 로댕은 회상하길, 자신은 카미유에게 금을 찾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며, 그녀에게 "찾은 금은 그냥 가져도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스승이자 애인 : 카미유 클로델이 만든 오귀스트 로댕의 흉상. 1888년.

 

"로댕은 여인들의 얼굴을 아름다운 인체에 속한 일부분으로 보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여인들의 눈과 입은 단순히 얼굴에만 속한 모티브가 아니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즈 뵈레는 로댕의 에로틱한 행각들을 묵묵히 견뎌낸다.

사랑의 굴레 | <영원한 우상>의 두 연인들 둘레에는 보이지 않는 굴레가 씌워져 있는 듯하다. 남성은 사랑하는 여성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에 입맞춤하려 하고 잇다. 여인은 몸을 뒤로 젖혀 뿌리치고 싶지만, 어쩌지 못하는 자세이다. 두 연인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떨어지지 못하는 괴로움 사이에서 불안한 공존을 유지하고 있다.

절망 | "잡으려 애쓸수록 더욱 잘 빠져나가기 마련"이라는 속담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두 남녀가 서로 등을 마주한 <달아나는 여인>은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파울로가 아무리 잡으려 애써도 품 안에서 빠져나가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을 묘사했다.

거친 표면 |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이 중 초기 작품인 <사색>에서 로댕은 카미유의 표정을 감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에 반해, 카미유의 몸은 머리를 받치고 있는 무거운 대리석 덩어리일 뿐이다. 몸뚱이를 대신한 대리석의 거친 표면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로댕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시인의 찬미 | 시인 릴케는 젊은 시절에 <다나이드>를 보며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쏟아져 내리는 머리카락…… 대리석을 따라 천천히, 길게 이어지는 등의 곡선, 흐느끼는 듯 돌 속에 파묻어버린 얼굴, 그리고 작은 소리로 생명을 꿈꾸는 꽃송이 같은 손……."

뫼동에서 로즈 뵈레와 함께 한 오귀스트 로댕. 1913년 가을.

과거의 그늘 속에 갇힌 카미유 클로델. 1929년 사진.

슈와젤 공작부인과의 내연 관계는 모든 이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사랑은 리듬을 타고 |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인 <왈츠>는 포옹하듯 왈츠의 리듬에 맡긴 연인들을 그려낸다. 이 작품은 클로델이 로댕과 가장 친밀했던 1895년에 제작되었는데, 유켄트슈틸 양식을 따르면서도 남녀 모두 강인한 인체로 표현되어 전반적으로 역동성이 느껴진다.

영감의 보물창고 | 로댕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기원후 1년경에 씌어진 이 시집은 당시 시대 상황을 로마와 그리스 신화에 빗대어 묘사했다. 특히 오비디우스는 인간 혹은 신이 동물이나 식물로 변형하는 신화 모티브에 심취했다.

아상블라주 | <이별>은 로댕이 즐겨 쓰던 조합 방식인 '아상블라주'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다. 머리는 카미유 클로델의 얼굴을, 손은 <칼레의 시민>의 습작 조각을 사용한 듯하다. <이별>은 클로델이 작업실을 떠나던 시점인 1892년에 완성되었다.

남겨진 자 | <성숙>에서 젊은 여인인 클로델은 로댕과 결별한 후의 마음을 그려내 듯, 늙은 여인에게 이끌려가는 늙은 남성을 향해 애원하듯 팔을 뻗고 있다. 로댕은 클로델을 사랑했지만, 일생 동안 자신의 곁을 지킨 로즈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곁에

 

"나는 어제내일

잇는 다리이다."

 

브뤼노 뉘탱이 연출한 영화 <카미유 클로델>에서 오귀스트 로댕 역을 맡아 열연한 제라르 드파르디외.

 

시민 곁으로

 

<칼레의 시민>을 감상하고 싶은가? 그렇다고 반드시 칼레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코펜하겐에 가도 같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도쿄가 더 가까운가? 아니면 워싱턴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은 더 이상 칼레에만 있지 않다. 원본을 토대로 12점이 주조되어 전 세계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사람>의 주조 역시 현재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브리앙 저택 : 로댕의 "열정의 삶 속 한순간"(릴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로댕의 능력은 대리석을 통해 고통과 육욕을 표현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 그는이루지 못한 욕망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보여주었고, 죽음의 허무한 나락으로 추락하는 인간을 보여주었다."

 

- 옥타브 미르보, 오귀스트 로댕에 관하여

쥘 E. 마스트바움의 로댕 소장품은 오늘날 필라델피아 로댕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거장의 유산 | 파리 로댕 미술관은 로댕이 죽기 전까지 수년간 기거했던 오텔 비롱에 위치하며, 로댕의 작품뿐 아니라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밖에도 빈센트 반 고흐, 오귀스트 르누아리, 외젠 카리에르 등의 유화를 비롯한 로댕의 소장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76 규원사화 揆園史話

 

북애 지음, 高東永 譯註

1993, 한뿌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872

 

911.021

북63규

 

한민족의 역사

 

揆園史話

● 우리 나라 선비들이 남한산성의 부끄러움 때문에 밤낮 이를 갈면서, 임진왜란 때에 신통치 못한 도움을준 명나라에게 보답하고자 하니 한심하다.

고려이후 수백년동안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사신을 보내면서도 이를 조금도 한스럽게 여기지않다가 졸지에 만주를 원수로 여기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 본문에서 -

 

● 우리의 근거를 말살하려던 기도는 오랜세월동안 계속되었다. 그런 속에서 나라가 이어 올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제 조상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겨레의 뿌리를 확인하려는 기운이 세차게 일고 있다.

이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이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목메어 탄식하며 이 책을 쓴 북애 노인의 높은 뜻을 기리며 지금 어디엔가에 깊숙히 감춰져 있을 옛 기록들을 찾아내어 잘못 인식된 우리의 국사가 하루속히 바로 잡혀지기를 바란다.

- 옮긴이의 말에서 -

 

목숨을 걸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다.

 

규원사화는 300여년 동안

금서로 묶여 있던 사서이다.

166755년에 저술된 이 책은

말살하려던 우리의 상고사를 40여권의

사서를 참고하여 바로잡은 책이다.

모화사상이 극에 달했던 때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이 책은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며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명확히 밝혀 놓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차례

 

저자의 말

책을 옮기면서

 

조판기(肇判記)

태시기(太始記)

단군기(檀君記)

만   설(漫   說)

 

● 단군조선 역대임금

 

1세단군    왕   검(王   儉)    전2333(무진)즉위    93재위

2세단군    부   루(夫   婁)       2240(신축)           34

3세단군    가   륵(嘉   勒)       2206(을해)           51

4세단군    오   사(烏   斯)       2155(병인)           49

5세단군    구   을(丘   乙)       2106(을묘)           35

6세단군    달   문(達   門)       2071(경인)           32

7세단군    한   율(翰   栗)       2039(임술)           25

8세단군    우서한(于西翰)      2014(정해)            57

9세단군    아   술(阿   述)      1957(갑신)            28

10세단군  노   을(魯   乙)      1929(임자)            23

11세단군  도   해(道   奚)      1906(을해)            36

12세단군  아   한(阿   漢)      1870(신해)            27

13세단군  흘   달(屹   達)      1843(무인)            43

14세단군  고   불(古   弗)      1800(신유)            29

15세단군  벌   음(伐   音)      1771(경인)            32

16세단군  위   나(尉   那)      1738(계해)            18

17세단군  여   을(余   乙)      1720(신사)            63

18세단군  동   엄(冬   奄)      1657(갑신)            20

19세단군  구모소(緱牟蘇)     1637(갑신)            25

20세단군  고   홀(固   忽)      1612(기사)           11

21세단군  소   태(蘇   台)      1601(경진)           33

22세단군  색불루(索弗婁)     1568(계축)            17

23세단군  아   물(阿   勿)      1551(경오)            19

24세단군  연   나(延   那)      1532(기축)            13

25세단군  솔   나(率   那)      1519(임인)            16

26세단군  추   로(鄒   魯)      1503(무오)             9

27세단군  두   밀(豆   密)      1494(정묘)            45

28세단군  해   모(奚   牟)      1449(임자)            22

29세단군  마   휴(摩   休)      1427(갑술)             9

30세단군  나   휴(奈   休)      1418(계미)            53

31세단군  등   올(登   屼)      1365(병자)             6

 

32세단군  추   밀(鄒   密)      1359(임오)             8

 

33세단군  감   물(甘   勿)      1351(경인)             9

 

34세단군  오루문(奧婁門)      1342(기해)            20

35세단군  사   벌(沙   伐)       1322(기미)            11

 

36세단군  매   륵(買   勒)       1311(경오)            18

37세단군  마   물(麻   勿)       1293(무자)             8

 

38세단군  다   물(多   勿)       1285(병신)            19

39세단군  두   홀(豆   忽)       1266(을문)            28

40세단군  달   음(達   音)       1238(계미)            14

41세단군  음   차(音   次)       1224(정유)            19

 

42세단군  을우지(乙于支)       1205(병진)            9

 

43세단군  물   리(勿   理)        1196(을축)           15

 

44세단군  구   홀(丘   忽)        1181(경진)            7

 

45세단군  여   루(余   婁)        1174(정해)            5

 

46세단군  보   을(普   乙)        1169(임진)           11

 

47세단군  고열가(古列加)        1158(계묘)           30

 

                                             1128(계유)           1205년간

 

● 천부경(天符經)

 

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

一始無始一三極無盡本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일적십거무궤화삼
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

천이삼지이삼인이삼대삼합육생칠팔구운삼사성환오칠
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合六生七八九三四成環五七

일묘연만왕만래용변불동본
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
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

일종무종일
一終無終一

 

● 삼일신고(三一神誥)

 

하늘(天)

 

천제께서 이르시기를

너희 무리들아, 푸르고 푸른 것이 하늘이 아니며

까마득한 것도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상과 바탕이 없고 시작과 끝이 없으며

상하와 사방이 없고 겉도 속도 다 비었으며

없는 곳이 없고 싸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主若曰咨爾衆蒼蒼非天玄玄非天

주약왈자이중창창비천현현비천

天無形質無端倪無上下四方

천무형질무단예무상하사방

虛虛空空無不在無不容

허허공공무부재무불용

 

하느님(神)

 

하느님은 그 위에 더 없는 으뜸자리에 계시어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만드시고

수 없는 누리를 주관하시느니라.

또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짐이 없으며

밝고도 신령하시어 감히 이름지어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음성과 기운으로 원하여 빌어도 친히 보이지 않으시나니

본성에서 그 씨를 구해보라

너희 머리 속에 늘 내려와 계시느니라.

 

在無上一位有大德大慧大力生天主無數世界

신재무상일위유대덕대혜대력생천주무수세계

造兟兟物纖塵無漏昭昭靈靈不敢名量

조신신물섬진무루소소영영불감명양

聲氣願禱絶親見自性求子降在爾腦

성기원도절친현자성구자항재이뇌

 

하늘나라(天宮)

 

하늘은 하느님의 나라니라.

거기에 하늘 궁궐이 있어 온갖 선으로 계단을 삼고

온갖 덕으로 문을 삼으니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니라.

모든 신령과 모든 밝은이들이 모시고 있어

크게 상서로우며 지극히 광명한 곳이니라.

오직 진리를 통달하고 공을 다 이룬 자라야

그 앞에 나아가 길이 쾌락을 얻으리라.

 

神國有天宮階萬善門萬德一神攸居

신국유천궁계만선문만덕일신유거

群靈諸哲護侍大吉祥大光明處

군령제철호시대길상대광명처

惟性通功完者永得快樂

유성통공완자영득쾌락

 

누리(世界)

 

너희는 총총히 널려 있는 저 별들을 보아라.

그 수가 끝이 없으며 크고 · 작고 · 밝고 · 어둡고 ·

괴롭고 · 즐거운 것이 같지 않느니라.

하느님이 여러 누리를 만드시고

태양계를 맡은 사자에게 7백 세계를 거느리게 하시니

너희 지구가 스스로 큰 것 같지만 한 알의 세계이니라.

속에 있는 불이 진동하여 터져 바다로 변하고

옮겨져 육지가 되면서 모든 형상을 이루게 되었느니라.

하느님께서 기운을 뿜어 밑을 싸주시고

햇빛과 열을 쪼이시니

걷고 · 날고 · 탈바꿈하고 · 헤엄치고 · 심는 동식물들이

번식하게 되었느니라.

爾觀森列星辰數無盡大小明暗苦樂不同

이관삼열성신수무진대소명암고락부동

一神世界勅日世界使者

일신조군세계칙일세계사자

轄七百世界爾地自大一丸世界

할칠백세계이지자대일환세계

中火震盪海幻陸遷乃成見象

중화진탕 해환육천 내성현상

呵氣包低煦日色熱行저化遊栽物繁殖

가기포저후일색열행저화유재물번식

 

참된길(眞理)

 

사람과 사물이 함께 하늘에서 삼진(三眞)을 받았으니

곧 성(性)과 명(命)과 정(精)이니라.

사람은 이것을 온전히 받으나 사물은 치우치게 받느니라.

진성(眞性)은 선하고 악한 것이 없어 상철(上哲)이 통하고

진명(眞命)은 맑고 흐린 것이 없어 중철(中哲)이 알고,

진정(眞精)은 후하고 박한 것이 없어

하철(下哲)이 간직할 수 있으니,

참으로 돌이키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느니라.

무리들은 아득한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세가지 망령됨(三妄)이 뿌리내리나니

곧 마음(心) · 기(氣) · 몸(身)이니라.

마음(心)은 성(性)에 의하여 선과 악이 있는 것이나

선하면 복이 되고 악하면 화가 되느니라.

기(氣)는 명(命)에 의하여 맑고 흐림이 있는 것이니

맑으면 오래 살고 흐리면 일찍 죽느니라.

몸(身)은 정(精)에 의하여 후하고 박한 것이 있는 것이니,

후하면 귀하고 박하면 천하느니라.

참됨과 망령됨이 서로 맞서 세갈래 길을 만드나니

곧 느낌(感)과 숨쉼(息)과 닿음(觸)이니라.

이것이 열여덟 경지를 이루나니라.

느낌(感)에는

기쁨 · 두려움 · 슬픔 · 노여움 · 탐냄 · 싫어함이 있고

숨쉼(息)에는

향내나고 · 구리고 · 차고 · 덥고 · 건조하고 · 습함이 있고

닿음(觸)에는

소리 · 색깔 · 냄새 · 맛 · 음란 · 맞닿음이 있느니라.

무리들은 선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과 후하고 박함이

서로 섞여 여러 경지의 길을 따라 마음대로 달리다가

나고 · 자라고 · 늙고 · 병들어 죽는 괴로움에 이르게 되느니라.

철인(哲人)은 느낌을 그치고(止感) 숨을 고르게 쉬며(調息)

닿음을 금하여(禁觸) 한 뜻으로 행하므로

망령된 것을 돌이켜 참에 이르러 신기(神機)를 발하게 되나니

진리를 통달하고 공적을 다 이루는 것이 이것이니라.

 

人物 同受三眞曰性命精全之偏之

인물동수삼진왈성명정전지편지

眞性無善惡上哲

진성무선악상철통

眞命無淸濁中哲

진명무청탁중철

眞精無厚薄下哲

진정무후박하철

返眞一神

반진일신

惟衆迷地三妄着根心氣身

유중미지삼망착근심기신

依性有善惡善福惡禍

의성유선악선복악화

依命有淸濁淸壽濁

의명유청탁청수탁요

依精有厚薄厚貴薄賤

의정유후박후귀박천

眞妄對作三途感息觸轉成十八境

진망대작삼도감식촉전성십팔경

喜懼哀怒貪厭芬란寒熱震濕觸聲色臭味淫抵

희구애노탐염분란한열진습성색추미음저

善惡淸濁厚薄相雜從境途任走生長肖病歿

선악청탁후박상잡종경도임주생장소병몰

止感 調息禁觸一意化行

지감조식금촉일의화행

返妄卽眞發大神機性通功完是

반망즉진 발대신기성통공완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PREV 1 2 3 4 5 6 7 8 9 ... 167    NEX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