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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 두근두근 중구산책

 

 

 

중구 · 박성애 지음

2013, 알에이치코리아

 

대야도서관

SB089857

 

981.1602

중16ㄷ

 

중구에서 찾은 매력 만점 산책 코스 16

 

동네 한 바퀴 시리즈 5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중구!

구석구석을 걸으며 행복을 느끼는

중구 산책 코스 올가이드

 

때로는 천천히 도시를 거날어 보자 PART 01 - SLOW CITY

서울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PART 02 - CENTER OF SEOUL

오감만족! 특별한 산책을 시작하자 PART 03 - SHOPPING STREET

잊고 있던 추억을 찾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다 PART 04 - MEMORY BOX

 

서울의 중심에

우리가 몰랐던 많은 이야기가 있다.

새로 만들어질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천천히 걸으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리고,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테니 우리는

그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박성애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오다가 훌쩍 떠난 1년 간의 호주여행에서 ‘무조건 즐겁게 살자!’라는 큰 결심을 안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틈틈이 걷고, 먹고, 찍는다. 강인한 체력이 가장 큰 자랑이다. 덕분에 아무리 걸어도 쉽게 지지치 않아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즐기고 있다고 자부하는 일상 여행가.

 

목차

 

작가의 말
중구산책 활용하기


PART 01. SLOW CITY
때로는 천천히 도시를 거닐어 보자


정겹고 소담스러운 길 덕수궁
근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정동
자유를 향해 달리다 서울역 일대
빌딩 숲 산책 시청 일대
INTERVIEW 유림면 염숙환 사장님과 쫄깃한 인터뷰


PART 02. CENTER OF SEOUL
서울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서울의 배꼽을 찾아서 남산
산 아래 이야기 보따리 남산 아래
발걸음이 머무는 장충동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자 동국대학교
INTERVIEW 동국대학교 한승윤 학생과 톡톡 튀는 인터뷰


PART 03. SHOPPING STREET
오감만족! 특별한 산책을 시작하자


언제나 활기차고 반짝이는 명동
시장 1번지 남대문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동대문
무엇이든 찾아보세요 을지로
INTERVIEW 정혜옥, 복민규 관광안내 도우미와 친절한 인터뷰


PART 04. MEMORY BOX
잊고 있던 추억을 찾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다


추억 한 컷 충무로
물길 따라 찾는 마음의 휴식 청계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회현동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황학동 & 신당동
INTERVIEW 김보성 오!재미동 프로그래머와 매력적인 인터뷰

테마로 만나는 중구 산책길

 

정겹고 소담스러운 길

덕수궁

 

산책코스         덕수궁 - 약 600m. 15분 - 구세군중앙회관 - 약 600m. 15분 - 대한성공회서울대성

                       당

찾아가는 법     지하철 : 1호선 시청역 2번 출구

                        버스 : 101, 150, 402, 405, 501, 506, 1711번 탑승 후 서울신문사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성당이나 건물을 둘러볼 때는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 미국대사관저, 영국대사관 등은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사랑의 말을 타고 달릴 때에는

어떤 길도 멀지가 않다.

- 독일 속담

 

아련한 그 이름

덕수궁

 

Address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Tel 02-771-9955 Open 09:00~21:00(20:00 입장마감) Close 매주 월요일 Fee 1000원 Web www.deoksugung.go.kr

 

궁궐에서 즐기는 문화 산책 덕수궁 미술관

이별의 아이콘 덕수궁 돌담길

암호를 말하라! 왕궁수문장교대의식

 

빨간 자선냄비의 집

구세군중앙회관

 

Address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130 Tel 02-6364-4086 Open 11:00~16:00 Close 매주 토 · 일요일(미리 연락하면 관람 가능)

 

100년의 전통 서울덕수초등학교

대한민국 도로의 중심 도로원표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곳

대한성공회서울대성당

 

Address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Tel 02-730-6611 Open 월~토요일 11:00~16:00(대성당 투어) Web www.cathedral.or.kr

 

금융의 역사를 한눈에 한국금융사박물관

 

근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정동

 

산책코스         서울시립미술관 - 약 180m. 5분 - 정동제일교회 - 약 100m. 2분 - 중명전 - 약

                       350m, 8분 - (옛)러시아 공사관

찾아가는 법     지하철 : 1호선 시청역 2번 출구, 2호선 시청역 9, 12번 출구

                        버스 : 101, 171, 472, 600, 602, 603, 7019번 탑승 후 서소문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심슨기념관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도 있으니 정숙하도록 하자.

                        ● 역사적으로 뜻 깊은 곳이 많으니 미리 근대사 공부를 하고 가면 더욱 알찬 산책

                            이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이다.

- 바이런

 

문화충전

서울시립미술관

 

Address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61 Tel 02-2124-8800 Open 10:00~20:00 Close 매주 월요일  Web sema.seoul.go.kr

 

신교육에 눈을 뜨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조그만 그 교회당

정동제일교회

 

Address 서울시 중구 정동길 46 Tel 02-753-0001~3  Web chungdong.org

 

정동극장에서 열리는 한국 전통 뮤지컬 미소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

 

Address 서울시 중구 정동길 41-11 Tel 02-732-7524 Open 10:00~17:00 Close 매주 월요일, 설날 · 추석 당일 Fee 무료 Web www.deoksugung.go.kr

 

그윽한 커피 향 가득 전광수 coffee house

 

덩그러니

(옛) 러시아 공사관

 

Where 이화여고 맞은편 예원학교 담을 따라 올라간다.

 

다 같이 돌자 정동貞洞 한 바퀴! 다정한 도보답사

여성교육의 불씨를 피우다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자유를 향해 달리다

서울역 일대

 

산책코스         문화역 284 - 약 500m. 7분 - 서소문공원 - 약 150m. 2분 - 약현성당 - 약

                       400m, 5분 - 손기정체육공원

 

찾아가는 법     지하철 : 1 · 4호선, 공항철도 서울역 2번 출구

                        버스 : 103, 163, 702A, 702B, 505, 506, 603, 405, 202, 421, 500, 7011, 7017,

                                  7021, 7022, 7019, 8000번 탑승 후 서울역환승센터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문화역 284에서 열리는 기획 전시는 일정을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 언덕길이 있으니 편한 신발을 신도록 하자.

 

조국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 손기정

 

새로 태어난 서울역

 

문화역 284

 

 

Address 서울시 중구 통일로 1번지 Tel 02-3407-3500 Open 10:00~19:00(18:00 입장마감) Close 매주 월요일, 설날 · 추석 당일 Fee 무료 Web seoul284.org

 

기찻길 옆

 

서소문공원

 

내 발에 딱 구두거리

향긋한 꽃향기 가득 서소문 꽃 도매시장

 

 

언덕 위 예쁜 성당

약현성당

 

Address 서울시 중구 청파로 447-1 Tel 02-392-5018 Web www.yakhyeon.or.kr

 

천주교의 역사를 한눈에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

 

영웅을 만나다

 

손기정 체육공원

 

 

Address 서울시 중구 손기정로 101 Tel 02-364-1936 Open 10:00~18:00(17:00 입장마감) Close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 날) · 1월 1일 · 설날 · 추석  Fee 무료 Web www.sonkeechung.com

 

 빌딩 숲 산책

시청 일대

 

산책코스         시청 앞 서울광장 - 약 600m. 15분 - 을지로1, 2가 - 약 200m. 5분 - 을지한빛거리

찾아가는 법     지하철 : 1 · 2호선 시청역 5번 출구

                        버스 : 172, 472, 504번 탑승 후 을지로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101, 150, 402, 405, 501, 506번 탑승 후 서울신문사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서울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려면 회원 가입을 위한 신분증이 꼭 필요하다.

                        ● 도서관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 카우퍼

 

서울 시민의 놀이터

시청 앞 서울광장

 

황제의 이름으로 환구단(원구단)

 

빌딩 숲 사이사이

을지로1, 2가

 

최초의 은행 건물 광통관

 

빛의 거리

을지한빛거리

 

디지털 놀이터 한빛미디어갤러리

통일의 꿈 베를린광장

 

서울의 배꼽을 찾아서

남산

 

산책코스         남산공원 - 약 600m. 15분 - 안중근의사기념관 - 약 200m. 5분 - 서울성곽길 남산

                       코스 - 약 800m, 30분 - 남산 정상

 

찾아가는 법     지하철 : 4호선 회현역 4번 출구에서 골목으로 약 300m 이동, 언덕 끝에 남산공원

                        입구

                        버스 : 104, 105, 263, 421, 503, 505, 507, 604, 7011, 7013번 탑승 후 남대문시

                        장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남산 초입에는 그늘이 없으니 여름이라면 모자를 준비는 것이 좋다.

                        ● 물은 미리 챙겨 가는 것이 좋다.

                        ● 구두는 금물! 낮고 편한 신발을 신도록 하자.

 

그대는 말이 없네

흘러가듯 시간은 여기에

일 년을 함께 하고

555일째 되던 날

다시 찾아온 여기 이 남산은

우리 둘만의 향기로

오롯이 가득찼네

- 더필름 남산 세레나데 中

 

산의 문턱

남산공원

 

남산 정상까지 3분! 남산케이블카

 

애국심이 불끈

안중근의사기념관

 

Address 서울시 중구 소월로 91 Tel 02-3789-1026 Open 하절기 10:00~18:00(17:00 입장마감), 동절기 10:00~17:00(16:00 입장마감) Close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날 · 추석  Fee 무료 Web www.ahnjunggeun.or.kr

 

지구촌 문화가 한자리에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

 

땀이 송골송골

서울성곽길 남산 코스

 

서울이 한눈에 잠두봉 아일랜드

 

서울의 배꼽

남산 정상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봉수대 봉화의식 & 전통문화 공연

 

산 아래 이야기 보따리

남산 아래

 

 

산책코스         남산골한옥마을 - 약 300m. 5분 -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 - 약 900m. 15분 - 서울에

                        니메이션센터

찾아가는 법     지하철 : 3 · 4호선 충무로역 3, 4번 출구 사이 골목 끝에 남산골한옥마을 정문이 있

                        다.

                        버스 : 104, 105, 263, 421, 507, 604, 7011번 탑승 후 퇴계로3가 한옥마을한국의집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남산골한옥마을은 주말에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니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 산책코스에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으니 산책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것

                            이 좋다.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는 것!

그것은 게으름도 아니고 죄도 아니다.

그것은 풍요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 토마스 제퍼슨

 

산의 문턱

남산골한옥마을

 

Address 서울시 중구 퇴계로34길 28 Tel 02-2266-6923 Open 하절기 09:00~21:00, 동절기 09:00~20:00 Close 매주 화요일 Fee 무료 Web http://hanokmaeul.seoul.go.kr

 

덩기덕 쿵덕 남산국악당

 

1000년의 서울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

 

여유 그 자체 퇴계로26가길

 

추억이 방울방울

서울애니메이션센터

 

Address 서울시 중구 소파로 126 Tel 02-3455-8341 02-3455-8330(도서정보실) 02-3455-8335(영상정보실) Open 09:00~18:00(도서관 17:45) Close 매주 월요일 · 법정공휴일 Fee 무료 Web www.ani.seoul.kr

 

한 땀 한 땀 정성 가득 초전섬유 · 퀼트박물관

 

발걸음이 머무는

장충동

 

산책코스         서울성곽길 남산코스(1코스) - 약 1.5km. 40분 - 국립극장 - 약 600m. 10분 - 장충

                       단공원

찾아가는 법     지하철 : 3 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200m 직진 후 오른쪽 언덕 위에서 성곽

                        길 계단이 시작된다.

                        버스 : 144, 301, 407, 7212번 탑승 후 장충체육관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장충동 서울성곽길은 서울신라호텔, 서울클럽, 민주평통부지를 지나는 길이므로

                            조용히 이용해야 한다.

                        ● 성곽길 중간에 샛길들이 있으니 짧은 산책을 원한다면 샛길을 이용하자.

 

나는 매우 일찍 인생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나는 인생이 나를 위해 특별한 것을 해줄 거라고는 결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희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일은 내가 찾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낫다.

- 오드리 햅번

 

과거와 현재 사이

서울성곽길 남산코스(1코스)

 

걸으며 공부하기 성곽길 걷기 및 생태탐방 프로그램

 

남산을 배경으로 예술의 향기가

국립극장

 

Address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59 Tel 02-2280-4114 Web www.ntok.go.kr

 

공연 자료의 모든 것 공연예술박물관

발걸음이 자꾸 멈추는 장충단길

 

머물고 싶은

장충단공원

 

차 한잔의 여유 다담에뜰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자

동국대학교

 

 산책코스        동국대학교 박물관 - 약 150m. 5분 - 정각원 - 약 100m. 3분 - 팔정도

찾아가는 법     지하철 : 3 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간다.

                        버스 : 144, 301, 407, 420, 7212번 탑승 후 장충동 동국대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건물을 오를 때는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정숙!

                        ● 학교 내부에 남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으니 산책길에 참고하자.

 

모든 이들이

낮잠을 자는 것은

가을 달 때문

- 마쓰모토 데이토구(하이쿠 시인)

 

불교 유물이 한자리에

동국대학교 박물관

 

Where 혜화문에서 첫 번째 건물 Tel 02-2260-3721 Open 10:00~16:00 Close 매주 토요일  일요일 · 법정공휴일 Fee 무료

 

예술무대 이해랑예술극장

 

경희궁 숭정전

정각원

 

남산 아래 하늘마루

 

여덟 가지 진리

팔정도

 

언제나 활기차고 반짝이는

명동

 

산책코스        명동 거리 - 약 600m. 10분 - 명동성당 - 약 500m. 7분 - 롯데백화점

찾아가는 법     지하철 : 4 호선 명동역 6, 7번 출구

                        버스 : 104, 105, 263, 421, 507, 604, 7011번 탑승 후 명동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명동 거리는 큰길 외에 작은 골목에도 상점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으니 구석구

                        석 둘러보자.

                        ● 대부분의 상점들이 밤 10시를 전후로 문을 닫으니 쇼핑에 참고하자.

                        ● 롯데백화점에 먼저 가길 원한다면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7번 출구를 이용

                         하는 것이 좋다.

 

명동거리 수많은 연인들 누굴 약 올리나

갑자기 추억들이 춤을 추네

보고 싶다 예쁜 그대 돌아오라 나의 궁전으로

바람 불면 어디론가 떠나가는 나의 조각배야

갑자기 추억들이 춤을 추네

- 크라잉넛 명동콜링 中

 

브랜드 집합소

명동 거리

 

외국인 친구와 함께라면 서울글로벌문화관광센터

어깨가 들썩들썩 난타전용관

 

뾰죽집

명동성당

 

Address 서울시 중구 명동길 74 Where 명동예술극장 사거리에서 약 200m Tel 02-774-1784 Web www.mdsd.or.kr

 

옛 명성 그대로 명동예술극장

 

아트 쇼핑

롯데백화점

 

화폐의 모든 것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시장 1번지

남대문

 

 산책코스        남대문시장 - 약 300m. 5분 - 숭례문 - 약 500m. 7분 - 신세계백화점

찾아가는 법     지하철 : 4 호선 회현역 5번 출구

                        버스 : 104, 105, 503, 505, 507, 604, 7011, 7013번 탑승 후 남대문시장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남대문시장은 골목과 상가마다 많은 점포(약 1만 개)가 있으니 원하는 물건을 사

                        기 위해서는 관광안내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 남대문시장의 상가들은 대부분 오후 5시를 전후로 문을 닫으니 쇼핑에 참고하

                        자.

                        ● 신세계백화점에 먼저 들를 계획이라면 지하철 4호선 회현역 7번 출구를 이용하

                         는 것이 좋다.

 

과거를 잊어버리는 자는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게 된다.

- 조지 산타야나

 

골라골라

남대문시장

 

한민족의 자존심

숭례문(남대문)

 

최고의 시설

신세계백화점

 

작은 네모 속 큰 세상 우표박물관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동대문

 

산책코스        평화시장 - 약 700m. 15분 - 동대문 패션타운 - 약 300m. 5분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찾아가는 법     지하철 : 1 호선 종로5가역 6번 출구, 1 · 4호선 동대문역 8번 출구, 2 · 4 · 5호선 동

                        대문역사문화공원역 12번 출구

                        버스 : 163번 탑승 후 청계6가 평화시장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쪽에 있는 쇼핑몰들은 대부분 도매시장으로 소매 거래는 불

                        가능한 곳도 있다.

 

거릴 가득 메운 사람의 물결은

잠든 이 거리를 깨어나게 하고

오늘 같은 밤이면 낯선 사람마저

친구가 돼줄 것만 같아

- 소울라이츠 도시의 밤 中

 

패션 쇼핑몰의 원조

평화시장

 

종이향 가득 청계천 헌책방 거리

 

유행의 중심

동대문 패션타운

 

동대문 속 세계여행 중앙아시아촌

 

옛것을 회상하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작은 문 광희문

 

무엇이든 찾아보세요

을지로

 

산책코스        을지로3, 4가 - 약 800m. 20분 - 방산시장 - 약 300m. 5분 - 중부시장

찾아가는 법     지하철 : 2 · 3 호선 을지로3가역 5, 6번 출구

                        버스 : 100, 105, 152, 202, 261, 500번 탑승 후 을지로3가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을지로3, 4가는 골목마다 다양한 상점들이 잇으니 직선으로 걷는 것보다 골목 사

                        이사이를 오가며 걷는 것이 더 재미있다.

                        ● 방산시장과 중부시장을 먼저 갈 계획이라면 지하철 2, 5호선 을지로4가역에서

                        내리는 것이 좋다.

 

행복을 즐겨야 할 시간은 지금이다.

행복을 즐겨야 할 장소는 여기다.

- 로버트 인젠솔

 

만물상

을지로3, 4가

 

또 하나의 을지로 을지로지하상가

 

포장천국

방산시장

 

장군 신앙을 엿보다 성제묘

 

짭조름한

중부시장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죽 한 그릇

 

추억 한 컷

충무로

 

산책코스        오!재미동(충무로역) - 약 70m. 2분 - 인현시장 - 인쇄거리

찾아가는 법     지하철 : 3 · 4호선 충무로역 8번 출구 KB국민은행 옆 골목으로 약 70m 직진하면 인

                       현시장 입구가 나온다.

                        버스 : 104, 105, 263, 421, 507, 6047011번 탑승 후 대한극장 앞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오!재미동은 충무로 역사 내에 있다.

                        ● 인쇄거리는 충무로 전체에 걸쳐 잇어 거리로 표시하지 않았다.

                        ● 종이를 나르는 오토바이들이 많이 다니니 보행에 주의하자.

 

기록은 기억을 남긴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

 

독립영화의 천국

오!재미동

 

Address 서울시 중구 퇴계로 지하 119 Where 충무로 역사 내 Tel 02-777-0421 Open 11:00~20:00 Close 매주 일요일 · 법정공휴일  Fee 아카이브, 갤러리, 상영관은 무료, 그 외의 시설들은 소정의 대여료 지급 Web www.ohzemidong.co.kr

 

멍멍멍 애완견 거리 & 부릉부릉 오토바이 거리

 

가느다란 골목 시장

인현시장

 

장군의 고향 이순신 생가 터

 

종이 냄새 가득

인쇄거리

 

물길 따라 찾는 마음의 휴식

청계천

 

산책코스        청계광장/청계천 - 약 4km. 2시간 - 황학교

찾아가는 법     지하철 : 5 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버스 : 101, 150, 405, 420, 501, 506, 1711, 7016번 탑승 후 서울신문사 정류장에서

                        하차 163번은 청계천변을 따라 운행

Memo             ● 비가 오면 출입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갑자기 많은 비가 오면 다리 밑 수문이

                        열릴 수 있으니 다리 밑으로 피하지 말고 하천 밖으로 빨리 나와야 한다.

                        ● 청계광장에서 중구에 속해 있는 황학교까지만 거리를 표시했다.

                        ● 청계천은 길이가 긴 만큼 원하는 구간을 미리 정해 놓고 산책을 즐기길 권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추억을

저에게도 나누어주세요.

- 영화 '러브레터' 中

 

여유가 흐르는

청계천

 

빛의 이야기 디지털 캔버스

빛의 정원 디지털 가든

시민과 함께 하는 수상 패션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회현동

 

산책코스        회현동 골목 - 약 600m. 10분 - 회현제2시민아파트 - 약 600m. 10분 - 우리은행 은

                      행사박물관/회현지하쇼핑센터

찾아가는 법     지하철 : 4 호선 회현역 1번 출구

                        버스 : 104, 105, 503, 505, 507, 604, 7011, 7013번 탑승 후 남대문시장 정류장에서

                        하차 또는 143, 401, 406번 탑승 후 남산3호터널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회현동은 언덕길이 대부분이니 편한 신발을 신도록 하자.

                        ● 회현동은 골목길이 많다. 골목을 두루두루 둘러보며 올라가길 권한다(산책코스

                        의 거리는 편의상 최단 거리를 표시함).

                        ●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과 회현지하쇼핑센터는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풍족한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감사할 줄 모르게 한다.

부족한 것은 나쁜 현상이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만든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꼬불꼬불 언덕길 위

회현동 골목

 

은행의 역사를 한눈에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Address 서울시 중구 소공로 51 Where 우리은행 본점 지하 1층 Tel 02-2002-5090 Open 10:00~18:00(17:30 입장마감) Close 매주 일요일 · 법정공휴일  Fee 무료 Web www.woorimuseum.com

 

500살 회현동 은행나무

 

아날로그의 매력에 빠지다

회현지하쇼핑센터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황학동 & 신당동

 

산책코스        황학동 만물시장 - 약 150m. 3분 - 서울중앙시장/주방가구 거리

찾아가는 법     지하철 : 2 · 6 호선 신당역 11번 출구 약 150m 직진해 성동공업고등학교 골목으로

                       들어가면 만물시장 입구이다.

                        버스 : 147, 202, 263, 421, 2012, 2013, 2014, 2015, 6211번 탑승 후 신당역 중앙시

                        장 앞 정류장에서 하차

Memo             ● 황학동 만물시장과 서울중앙시장은 서로 맞물려 있다. 특히 주방가구 업체는 황

                        학동 전반에 걸쳐 고루 분포되어 있다.

                        ● 서울중앙시장에 먼저 가길 원한다면 지하철 2호선 신당역 2번 출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여기 다 모였네!

황학동 만물시장

 

공연을 즐기자 충무아트홀

 

신나는 시장 구경

서울중앙시장

 

멋진 작가들이 모여 있는 곳 신당창작아케이드

대통령이 살던 집 박정희 가옥

 

 

 

 

 

 

 

posted by 황영찬

2018-012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시집

199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3902

 

811.6

최64ㅅ

 

창비시선 121

 

나는 『창작과비평』에서 이 시인을 "교과서가 없는 시대에 고투하는 젊은 영혼의 편력을 도시적 감수성으로 정직하게 노래하고 있는 신인"이라고 소개했었다. 그녀의 첫시집을 교정지 상태에서 읽어나가면서 나는, 당분간은 그 무엇이라고도 이름붙일 수 없는 '한 시인'이 태어났음을 실감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독자들에게 쉽게 투과되는 시인에게서 새로운 시대의 예감은 감지되지 않는 법이어늘, 바라건대 그 불투과성(不透過性) 이 우리 시의 내일을 여는 "첫번째 사과의 서러운 이빨자욱으로" 전환되는 기적을 목격할 수 있게 되기를!

- 문학평론가 최원식

 

최영미의 시는 얼핏 보기에 도발적이다. 사람을 저으기 당황스럽게 하면서, 그러나 그의 시를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이 유혹의 빛은 삶을 지탱시켜주는 중요한 어떤 것, 이념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것이 사라져버린 자리를 비춰주고는 문득 암전(暗電) 되고 만다. 나이 서른살에 "잔치는 끝났다"고 말하는 이 시집은 이념의 대홍수 이후 그것의 범람에 가담했던 세대의 기록으로 기억되겠지만, 시가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상처가 더 이상 명예가 아닌 때에 삶에의 자존심마저 훑어가버리고 없는,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 그 황폐한 곳에 스스로 거주하고자 하는 시인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자가 이 시대에 또 있다니(!) 반갑다.

- 시인 황지우

 

최영미는 여성시의 다양성이라는 공간 확장에 개성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개성적이라는 것은 최영미가 청춘과 운동, 사랑과 혁명 같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자신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질퍽하게 하나로 동화시켜가는 궤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궤적에는 불가피하게 싸움들이 끼여든다. 그 싸움의 대상들은 부조리한 사회일 수도 있고, 그 부조리한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것이든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 전반일 수도 있다. 그의 시들은 어쩌면 어떤 싸움의 기록이다. 그는 그 싸움의 상처들로 만들어진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다("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그래도 그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누더기 옷을 통해, 그 투명한 알몸, 혹은 알몸의 투명성의 아름다움이 내비치기 때문이다. 싸움으로 질척거릴수록 더욱 투명해지는 아름다움이.

- 시인 최승자

 

崔泳美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수료

1992년 계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차례

 

제1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선운사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살아남은 자의 배고픔

혼자라는 건

속초에서

가을에는

그에게

마지막 섹스의 추억

먼저, 그것이

위험한 여름

어떤 족보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어떤 사기


제2부 나의 대학


과일가게에서

목  욕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어떤 게릴라

우리 집

사는 이유

슬픈 까페의 노래

돌려다오

대청소

다시 찾은 봄

북한산에 첫눈 오던 날

폭풍주의보

인생

나의 대학


제3부 지하철에서


지하철에서 1

지하철에서 2

지하철에서 3

지하철에서 4

지하철에서 5

지하철에서 6

마포 뒷골목에서

새들은 아직도……

짝사랑

Personal Computer

茶와 同情

24시간 편의점

관록 있는 구두의 밤 산책

라디오 뉴스


제4부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생각이 미쳐 시가 되고……

꿈속의 꿈

영수증

사랑의 힘

어쩌자고

또다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자본론

한 남자를 잊는다는 건

歸去來辭(1992)

내 속의 가을

담배에 대하여

어떤 輪廻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발문 - 김용택

후기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 ! 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에게

 

내가 연애시를 써도 모를거야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한 놈인지 두 놈인지

오늘의 그대가 내일의 당신보다 가까울지

비평가도 모를거야

그리고 아마 너도 모를거야

내가 너만 좋아했는 줄 아니?

사랑은 고유명사가 아니니까

때때로 보통으로 바람피는 줄 알겠지만

그래도 모를거야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는 건 습관도

뭣도 아니라는 걸

속아도 크게 속아야 얻는 게 있지

내가 계속 너만을 목매고 있다고 생각하렴

사진처럼 안전하게 붙어 있다고 믿으렴

어디 기분만 좋겠니?

힘도 날거야

다른 여자 열 명은 더 속일 힘이 솟을거야

하늘이라도 넘어갈거야

그런데 그런데 연애시는 못 쓸걸

제 발로 걸어나오지 않으면 두드려패는 법은 모를걸

아프더라도 스스로 사기칠 힘은 없을걸, 없을걸

 

마지막 섹스의 추억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목욕

 

한때 너를 위해

또 너를 위해

너희들을 위해

씻고 닦고 문지르던 몸

이제 거울처럼 단단하게 늙어가는구나

투명하게 두꺼워져

세탁하지 않아도 제 힘으로 빛나는 추억에 밀려

떨어져 앉은 쭈그렁 가슴아 ---

살 떨리게 화장하던 열망은 어디 가고

까칠한 껍질만 벗겨지는구나

헤프게 기억을 빗질하는 저녁

삶아먹어도 좋을 질긴 시간이여

 

슬픈 까페의 노래

 

언젠가 한번 와본 듯하다

언젠가 한번 마신 듯하다

이 까페 이 자리 이 불빛 아래

가만있자 저 눈눗음치는 마담

살짝 보조개도 낯익구나

 

어느 놈하고였더라

시대를 핑계로 어둠을 구실로

객쩍은 욕망에 꽃을 달아줬던 건

아프지 않고도 아픈 척

가렵지 않고도 가려운 척

밤 새워 날 세워 핥고 할퀴던

아직 피가 뜨겁던 때인가

 

있는 과거 없는 과거 들쑤시어

있는 놈 없는 년 모다 모아

도마 위에 씹고 또 씹었었지

호호탕탕 훌훌쩝쩝

마시고 두드리고 불러제꼈지

그러다 한두 번 눈빛이 엉켰겠지

어쩌면……

부끄럽다 두렵다 이 까페 이 자리는

내 姦飮의 목격자

 

나의 대학

 

이제 어쩌면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 떠난 뒤에 더 무성해진 초원에 대해

아니면, 끝난 줄 모르는 계단에 대해

우리 시야를 간단히 유린하던 새떼들에 대해

 

청유형 어미로 끝나는 동사들, 머뭇거리며 섞이던 목소리에 대해

여름이 끝날 때마다 짦아지는 머리칼, 예정된 사라짐에 대해

혼자만이 아는 배신, 한밤중 스탠드 주위에 엉기던 피낸새에 대해

 

그대, 내가 사랑했을지도 모를 이름이여

 

나란히 접은 책상다리들에 대해

벽 없이 기대앉은 등, 세상을 혼자 떠받친 듯 무거운  어깨 위에 내리던 어둠에 대해

가능한 모든 대립항들, 시력을 해치던 최초의 이편과 저편에 대해

 

그대, 내가 배반했을지도 모를 이름이여

 

첫번째 긴 고백에 대해

너무 쉽게 무거웠다 가벼워지던 저마다 키워온 비밀에 대해

눈 오는 날 뜨거운 커피에 적신 크래커처럼 쉽게 부서지던 사랑에 대해

 

암것도 할 수 없었던 어느날 오후에 대해

아, 그러나, 끝끝내, 누구의 무엇도 아니었던 스무 살에 대해

 

그대, 내가 잊었을지도 모를 이름이여

 

그렁그렁, 십년 만에 울리던 전화벨에 대해

그 아침, 새싹들의 눈부신 초연함에 대해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요

행여 내 노래에 맞춰 춤을 춰줄, 아직 한 사람쯤 있는지요

 

지하철에서 1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새들은 아직도……

 

아스팔트 사이 사이

겨울나무 헐벗은 가지 위에

휘영청 쏟아질 듯 집을 짓는구나

 

된바람 매연도 아랑곳 않고

포크레인 드르륵 놀이터 왕왕시끌도

끄떡없을 너희만의 왕국을 가꾸는구나

부우연 서울 하늘 무색타

까맣게 집을 박는구나

 

봄이면 알 낳고 새끼 치려고

북한산 죽은 가지 베물고

햇새벽 어둠 굼뜨다 훠이훠이

부지런히 푸들거리는구나

 

무어 더 볼 게 있다고

무어 더 바랄 게 있다고

 

사람 사는 이 세상 떠나지 않고

아직도

정말 아직도 집을 짓는구나

 

게으른 이불 속 코나 후빌 때

소련 붕괴 뉴스에 아침식탁 웅성거릴 때

소리없이 소문없이

집 하나 짓고 있었구나

 

자꾸만 커지는구나

갈수록 둥그래지는구나

 

봄바람 싸한 냄새만 맡아도

우르르 알을 까겠지

 

모스크바에서도 소리없이

둥그렇게 새가 집을 지을까?

 

내 가슴에 부끄러움 박으며

새들은 오늘도 집을 짓는구나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

 

커피도 홍차도 아니야

재미없는 소설책을 밤늦도록 붙잡고 있는 건

비 그친 뒤에도 우산을 접지 못하는 건

짐을 쌌다 풀었다 옷만 갈아입는 건

어제의 시를 고쳐쓰게 하는 건

커피도 홍차도 아니야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어

돌아누워도 엎드려도

머리를 헝클어도 묶어보아도

 

새침 떨어볼까요 청승 부려볼까요

처맨 손 어디 둘 곳 몰라

찻잔을 쥘까요 무릎 위에 단정히 놓을까요

은근히 내리깔까요 슬쩍 훔쳐볼까요

들쑥날쑥 끓는 속 어디 맬 곳 몰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속 뒤져보면

 

그래도 어딘가 남아 있을, 잡초 우거진

내 마음의 비무장지대에 그대, 들어오겠나요

어느날 문득 소나기 밑을 젖어보겠나요

 

잘 달인 추억 한술

취해서 꾸벅이는 밤

너에게로, 너의 정지된 어깨 너머로

잠수해 들어가고픈

 

비라도 내렸으면

 

 

posted by 황영찬
2018. 2. 23. 13:18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10 도착하지 않은 삶

 

 

 

최영미 시집

2009, 문학동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4426

 

811.6

최64ㄷ

 

    먼길 떠나는 나그네가

살아서 떠들

           지상의 모든 길이

        영원히 푸른 하늘과 닿게 하소서

 

강철처럼 단련된 시들에서 사랑과 정치에 대한 정열적인 탐색, 놀랍게도 신선한 무모함이 페이지마다 터져나온다. _체이스 트위첼(시인 · 평론가)

 

최영미의 시는 관습과 예의를 따지는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위험스런 모험을 느끼게 한다. 그녀의 스타일은 바로 그녀의 독립성이다. 그녀의 시는 삶으로 쓴 시들이다. _제임스 킴브렐(시인)

 

성감각을 노래한 여성 시인은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남성사회의 알력 아래서 여성의 삶을 깊이 생각해온 사상의 언어가 그녀에게는 있다. 시에 의해서 잉태된 언어를 이만큼 신중하게, 고독하게 기르고 있는 시인이 가장 이웃한 나라에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_사사키 미키로(시인), 아사히신문

 

최영미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산문집 『시대의 우울』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미술에세이 『화가의 우연한 시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번역서 『화가의 잔인한 손』 『그리스 신화』가 있다.
2002년 미국에서 출간된 3인 시집 『Three Poets of Modern Korea』는 2004년 미국번역문학협회상의 최종후보로 지명되었으며, 2005년 일본에서 발간된 시선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일본 문단과 독자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2006년 『돼지들에게』로 이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버클리 대의 초청으로 2009년 4월 시낭송 프로그램 ‘lunch poem'에 참가할 예정이다.

 

차례

 

제1부

일요일 오전 11시
종이 울리고
어느새
중년의 기쁨
다시는
아파트를 꿈꾸며
내 집
2007년의 사포
10월의 교정
11월의 낙엽
내일을 위한 기도



제2부

나무가 깡통에게 - 난지도를 지나며
Love of My Life?
글로벌 뉴스
세계는 지금
나무는 울지 않는다
손의 여행
활주로
얼음처럼 낯선
4월은 잔인한 달
사계절의 꿈
여기에서 저기로
한가한 오후
광장을 지나며
2008년 6월, 서울
지상 최대의 쇼-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일상의 법칙들



제3부

온종일 집에서
허기와 객기
가장 쉬운 길
동시를 읽고
동시를 읽은 다음날
타인의 시
한여름, 부엌에서
지루하지 않은 풍경
행복
아이에게
똑똑한 아이
극장
자연의 합창
하늘의 소리
?
청개구리의 후회
그 여자
보낸 편지함
청동정원



제4부

아름다움이 너희를 자유롭게
교토의 바위정원
나의 여행
4월의 알리칸테
파리의 지붕 밑
발굴 현장
철길, 핏줄
사교적인 저녁식사
나쁜 평판
서투른 배우
어떤 동문회
1977년 12월 7일
나는 시를 쓴다


해설 | 사가와 아키 글로벌 시대의 세련된 지성
시인의 말

 

글로벌 뉴스

 

유프라테스 강과 홍해가 마르고 닳도록

죽음의 행진이 멈추지 않는다

강한 자는 강자의 방식으로

약한 자는 약자의 방법으로

신의 이름으로 사형을 집행한다

 

예수와 마호메트가 태어나 묻힌 곳에서

예언자들이 평화를 설교했던 성지에서

왜 매일 총질이 끊이지 않는가

 

예언자들이 틀렸거나, 당신들이 틀린 거야

 

밥을 먹다 한 사람이 공중으로 날아간다

섬광과 굉음은 있지만, 살인자의 얼굴은 없어

우리는 안심하고 텔레비전을 켜고

첨단기술로 생중계되는 비극은 구경거리가 된다

 

발레리나의 날씬한 허벅지에서 피 묻은 바지로

화면이 바뀌는 데 일 초도 걸리지 않아

아파할 시간도 없이,

말쑥한 정장 차림의 신사숙녀가

녹음테이프에 담긴 시신들을 쏟아내며

종달새처럼 재잘된다

요단 강 동쪽과 서쪽의 반응을

높낮이가 없는 건조한 음성으로

총알처럼 빠르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것도 미친 것 아닌가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고

배아를 복제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인류의 자기 파괴를 막지 못하나

 

립글로스가 매끄러운 입술에서 언제까지

자살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들어야 하나

비징한 고전음악에 깔린 어머니의 눈물을

사막에 몰아치는 복수의 회오리를……

 

종이 울리고

 

잠에서 깨어난 엘리베이터가

검정 구두들을 실어나른다.

금요일의 죄를 일요일에 속죄하려는,

피곤한 발들이

거대한 유리문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시멘트 벽에 강림(降臨)한 거룩한 얼굴은

낡기도 전에 새로 칠해지고,

늙은 백인이 부러뜨린 십자가를

높이 세우는 까만 눈동자

할머니를 따라 주기도문을 외는 장밋빛 입술도

언젠가는 문밖으로 뛰쳐나가겠지

 

길 건너, 빌딩의 장막에 가려진 호숫가에는

신을 믿지 않는 부자들이

새벽부터 골프채를 휘두르고,

시끄러운 아침의 나라에 싫증난 사람들은

어디로든 떠나려 짐을 싸는데,

 

밤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내 방을 떠나지 않는다.

미친 대한민국은 정치가들에게 맡기고

나를 천국으로 데려다줄 그,

잡지의 얼굴처럼 쉽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림을 내 것으로 붙들지 못해 탄식하면서

 

내일을 위한 기도

 

잘 가라 2007년, 어리석은 날들이여

봄부터 겨울까지 내가 도모했던 일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아가, 나무, 푸른 산이 보이면

초라한 한 해를 돌아보는 저녁이 춥지 않아

텔레비전에서 약속들이 쏟아질 때

나는 책장의 먼지를 털었다.

 

서해 바다를 덮은 검은 기름띠도

우리의 푸른 들판을 가리지는 못해

우리가 자신을 버리지 않는다면

누구도 우리를 버리지 못하며,

머리 위에서 해가 빛나는 동안, 희망은 죽지 않는다.

내일의 집을 지으며, 그대는 살아갈 힘을 얻으리니

 

이 냉혹한 별의 어느 서러운 구석에도

따사로운 정오의 햇볕을 허락하시는

당신을 믿지 않았던 저를 용서하시고,

 

사랑의 힘으로, 절망의 힘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소서.

시든 이파리에 생살이 돋고

제가 강인 줄도 잊어버린 흙바닥에 강물이 흐르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창가에 우정이 꽃피게

 

먼길 떠나는 나그네가

살아서 떠돌

지상의 모든 길이

영원히 푸른 하늘과 닿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라면

가난한 잠을 깨우는

새벽 종소리가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2008년 6월, 서울

 

광장엔 옛날 사진들이, 피 묻은 신문들이 붙어 있고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도

어쩜! 이십 년 전과 똑같지만,

큰길에서 느긋하게 나눠주는 선언문은

그때보다 두껍고 인쇄 상태도 좋다.

21세기의 IT강국에서 인쇄된

빨간 느낌표는 세련되었고

서 있는 얼굴들은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80년대처럼

분노로 일그러지지 않았다.

종이컵 안에서 안전하게 타는 촛불처럼 온화한 눈빛.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는,

외치다가 내가 죽을 구호를 모르는 건강한 입술.

어깨에 부딪치는 익명의 팔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내 옆의 젊은이에게 촛불을 건네주고 지하로 들어갔다.

 

유모차 부대를 호위하는 청년들이 어찌나 멋있던지!

한국 남자들의 품종이 눈부시게 개량됐어.

역사는 이렇게 진보하는 거야.

친구와 수다를 즐기며 이탈리아 식당에서

칼을 들고 연어의 생살을 갈랐다.

입 안에 죄의식이 거품을 품지 않고

 

광장을 지나며

 

1981년 5월에 나는 순결한 하얀 운동화였다

독재자가 차려준 축제를 거부하려 학교를 뛰쳐나와

남학생과 어깨 걸고 행진하던 그날 이후, 나는 변했다

얼마나 많은 날들이 강물을 적시었나

정처없는 밤의 다리를 건너

쓸쓸한 도시의 창문들을 지나, 나는 늙었다

 

내 앞의길들을 토막내며 나는 걷는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의 내가

도서관에, 광장에, 카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는,

그녀는 오지 않는다

1985년에도 1995년에도 그리고 2008년에도

 

내가 달라질 다른 곳을 헤매지만

아침에 깨어나면 제자리.

과거에 갇힌 시멘트 벽이 아니라

앞이 보이지 않는 정글에 던져졌다면,

삶은 더 단순했으리

 

서투르게, 능숙하게 벗겨진

신발들을 나는 절반도 기억하지 못한다

 

지상 최대의 쇼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그토록 어두웠던 나라이기에

우주가 놀라게 불꽃을 터뜨리며

천문학적인 돈을 불살라야 했나.

 

지상 최대의 쇼를 냉면에 말아먹는다.

편안히 집에서 실크로드를 순례하는 밤.

 

천년제국의 후예들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린

시체들이 일어나 북을 두드린다.

땅을 흔들고 하늘을 찢으며

스모그를 걷어버린 오천 년의 북소리.

 

한 몸처럼 움직이는 팔과 다리들.

진시황릉에 묻힌 병사들처럼

바둑판 위의 돌처럼, 전체의 일부로만 존재하는 육체들.

그 옛날 황제를 치장했던 궁녀들처럼

오로지 하룻밤을 위해 온통 칠하고 붙이고

춤추는 만리장성의 인형들.

 

두루마리 위에 펼쳐진

찬란한 역사의 모서리는 날카로웠고

금박을 입힌 위에 금을 덧칠한 듯 번들거리는

빛의 바다, 인간의 바다, 중화인민공화국.

 

얼마나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으면,

열강에 짓밟힌 백견의 치욕을

기나긴 장정의 굶주림을 보상받으려

오늘밤 미친 듯 쏟아내는가, 불쌍한 아시아여.

동경과 서울이 간 길을 베이징, 너도 피하지 못하는구나.

서양의 근대문물이 얼마나 신기했으면,

봉건제에서 포스트모던으로 건너뛰어

2008년의 첨단기술로 버무린 무협지를 과시하는가.

백년의 어둠을 깨고

허공을 불지르며 질주하는 열차에

나는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다.

 

교토의 바위정원

 

여기 들어오는 자는 신발을 벗어라

 

오래된 나무마루에 떨어지는 햇빛.

나무도 물도 없는 이상한 정원.

바깥은 꽃나무가 우거진 봄날인데

바위와 흙벽을 바라보며

 

벽을 넘지 않는 초월에 심취했던

사무라이들, 寺院의 탐미주의자.

 

바라볼 뿐 소유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무거워도

내려놓을 땅이 없었으니

남북이 십 미터인 직사각의 안뜰에서

 

위는 열리고 아래는 닫힌

유토피아, 혹은 감옥에서

아침마다 빗자루로 욕망을 쓸며

 

천하를 흑과 백으로만 재현한

그들이 떠난 뒤에도 검은 바위와 하얀 자갈은 남아

참선을 계속한다 흐트러지지 않는 곡선으로

 

16세기 일본의 상상력 속으로 들어가

열린 감옥이 내 방보다 편해서, 다리를 꼬았다 풀며

거기에 오기까지 내가 저지른 우여곡절을 지웠다.

지워지지 않는 총천연색을 정오의 광선에 태우며

단순한 흑백으로 돌아가고파.

 

발굴 현장

 

삼국시대, 백제라던가 통일신라였던가

노동에 지친 어느 장인의 실수로

기왓장에 찍힌 손자국.

두툼한 살결이 선명해

살아 숨쉬던 숨결이 느껴져, 선뜻 만지지 못했다

 

천년을 건너뛰어 내 앞에 서 있는

이름 없는 회색의 파편이

박물관에 보존된 보물보다 신비로워

금관을 장식하는 비취보다 또렷하게

내게 말을 건다

 

누구였을까?

얼마나 많은 기와를 구웠을까

富와 권력에 봉사하며

올려다보던 古都의 가을하늘.

그가 탐했지만 갖지 못했던 여자들.

그의 손끝에 닿았을 입술이며 가슴들이 환생해.

 

웃고 떠들며 情을 나누다

수천의 기와를 이고 운이 다하여, 허리가 꺾였을

목숨을 생각하며

 

오백 년이 지나 발굴된 文字의

지문(指紋)을 찍는다 피와 땀이 배인

진화(進化)의 흔적을.

 

어떤 동문회

 

젊은 그녀는 화창한 봄날 강물에 몸을 던졌고

 

누구는 유서를 남기고 4층에서 떨어졌고

 

누구는 암수술을 받은 뒤 계단에서 쓰러졌고

 

누구는 암수술을 받고 회복중이고

 

누구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을 모르고

 

누구는 뒤늦게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일하고

 

누구는 사주팔자를 연구하는 도사가 되었고

 

그리고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화산이 타고 남은

재에 묻힌, 그녀는 날마다 자살을 꿈꾼다

 

그녀들과 학교를 다닌 나는

앞장서지는 않았지만 뒤에서 팔장끼지도 않은 나는

종이에 기억을 오려붙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 그들과 나의 길이 갈렸는지, 이해하려고

 

중년의 기쁨

 

화장실을 나오며 나는 웃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다시 시작됐어!

 

젊어서는 쳐다보기도 역겨웠던

선홍빛 냄새가 향기로워,

가까이 코를 갖다댄다

 

그렇게 학대했는데도

내 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Love of My Life ?

 

너무 맑아

낚시꾼도 포기하고 돌아서

아무도 놀지 않는 연못.

깊은 물을 두려워 않던……

 

그는

나의 열린 문으로 들어온

날쌘 물고기.

 

노를 젓지 않아도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는 기술을 알던

능숙한 바람개비.

 

어느 겨울 아침, 황금비늘을 자랑하며

그는 떠났다.

 

그가 휘젓고 다닌 구석구석이

흉터와 무늬가 되어,

 

그가 일으킨 물결 밑에

꼼짝 않고 얼어붙어

비가 와도 나는 흐르지 못한다.

 

11월의 낙엽

 

가을비에 젖은 아스팔트.

돌아보면,

떨어질 잎이 하나 남아 있었나.

 

천둥에 떨고 번개에 갈라진 잎사귀.

심심한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이 되어주고

종이보다 가벼운 몸으로

더러운 뒷골목을 지키던 너.

 

허술한 나뭇가지에 목숨을 부지하고

식물의 운명에 순종했던,

상처투성이의 몸에 햇살이 닿으면

촘촘한 세월의 무늬가 드러나지만,

 

이대로 세차게 흔들리다

누군가의 가슴바닥에

훅, 떨어졌으면……

 

첫눈이 내려 무거운 눈을 매달고

허공에서 부서지기 전에,

순한 흙에 덮여 잠들었으면……

 

낙엽의 비문(碑文)을 읽을

그대는 지금 어디 있는가.

 

나는 시를 쓴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혀를 깨무는 아픔 없이

무서운 폭풍을 잠재우려

 

봄꽃의 향기를 가을에 음미하려

잿더미에서 불씨를 찾으려

 

저녁놀을 너와 함께 마시기 위해

싱싱한 고기의 피로 더럽혀진 입술을 닦기 위해

 

젊은날의 지저분한 낙서들을 치우고

깨끗해질 책상서랍을 위해

 

안전하게 미치기 위해

내 말을 듣지 않는 컴퓨터에 복수하기 위해

 

치명적인 시간들을 괄호 안에 숨기는 재미에

부끄러룸을 감추려, 詩를 저지른다

 

청동정원

 

청도으로 빚은 나무가 못에 걸려 있네.

휘어진 가지에 사이좋게 마주 앉은

작은 새 한 쌍, 위에 매달린 종을

건드리면 청아한 울림이 떨어지지

 

그 밑에 누워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먼지가 이끼처럼 내려앉은 계절을 보내고

푸르던 잎이 퇴락한 왕조의 구릿빛으로 변하는데

나 말고는 지나간 사람이 없네

 

배반의 노래가 거실에 쌓이던

어느 날 나는 알았네

울리지 않는 종을……

수상한 그림자만 얼씬거리는

녹슨 청동정원에서

새와 단둘이 오래 살았네

 

문이 만 번쯤 열리고 닫히고

연애시를 백 편쯤 만드는 동안

누군가 천천히 지나가며

방울을 쓰다듬는 사람이 없어,

 

천둥처럼 울리기를 기다리며

단단히 문을 걸어잠그고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누워 있네 차가운 바닥에

두 마리 새들이 하나로 겹쳐져,

새도 나무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posted by 황영찬
2018. 2. 12. 15:29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09 홍순민의 한양읽기 궁궐 <상>

 

 

홍순민

2017, 눌와

 

대야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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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국가의 중심,

임금이 사는 곳

 

궁궐은 왕조국가 조선의 정점이자 핵심이었다

 

궁궐은 '임금이 사는 곳'이다. 임금은 왕조국가의 주권자이자 통치자이다. 그런 임금이 '산다'는 것은 일상생활을 넘어, 국정을 운영하고 통치행위를 하는 공적인 활동을 가리킨다. 임금은 궁궐을 벗어나는 일이 드물었다. 임금의 활동은 대부분 궁궐에서 이루어졌다. 궁궐은 임금의 존엄을 과시하고 정치적, 행정적 명령을 내는 곳이었다. 궁궐은 왕조국가의 중심이요, 최고의 관청이었다.

 

홍순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조선 후기 정치사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조선 후기 국가경영의 실상을 밝혀보려 공부하고 있다. 정치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공간에서 살던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꼴, 곧 문화로 탐구의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도성과 궁궐에 대한 책을 쓴 데 이어 종묘, 그리고 조선시대 서울을 쓸 궁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홍순민의 한양읽기: 도성》, 《한양도성, 서울 육백년을 담다》, 《조선시대사 1》(공저), 《서울 풍광》, 《우리 궁궐 이야기》등이 있다. 현재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에서 문화자원을 가르치고 있다.

 

차례

 

머리말

 

 

 

제1장

우리 땅 우리 서울


1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 삼천리

   산분수합, 산자분수령
   반도 삼천리의 배꼽, 서울


2 왕도 서울

   서울을 왕도로 만든 세 가지
   왕도의 예복, 도성
   서울 바닥
   묘사궁궐


제2장

임금이 사는 곳, 궁궐


1 궁궐이란 무엇인가

   궁궐, 그 낱말의 뜻
   궁궐은 아닌, '궁'들


2 궁궐의 짜임새

   오문삼조?
   궁궐의 여섯 공간


3 건물 읽기

   전통건축의 구조
   건물의 신분


제3장

궁궐의 역사


1 첫 번째 양궐체제

   궁궐 이해의 열쇠, 양궐체제
   영원한 법궁, 경복궁
   창덕궁과 창경궁의 탄생
   임진왜란, 궁궐을 삼키다
   정릉동행궁


2 두 번째 양궐체제

   광해군의 무리수
   동궐과 서궐
   궁궐 임어, 왕권의 발현


3 세 번째 양궐체제

   법궁 경복궁 중건
   고종의 이어, 이어, 이어


4 경운궁 단궐체제

   경운궁 시대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궁궐의 끝, 국망


부록

궁궐을 보는 눈

궁궐의 주제, 궁중문화
사람들의 삶의 꼴, 문화
공간, 시간, 인간 속으로
문화유산 만나기
전통문화의 기본 관념


참고 문헌 / 주석
도판 출처 / 고서화, 고지도

 

《여지도》 중 <조선일본유구국도>의 한반도 부분 |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거기서 갈라져나온 한북정맥의 끝에 매달린 붉고 탐스런 열매 서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기전도>, 《동국여도》| 서울은 바로 북쪽의 북한산성, 서북쪽 개성의 대흥산성, 서쪽 강화의 읍성 및 돈대와 문수산성, 남쪽 광주의 남한산성, 더 멀리 수원의 화성을 거느리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한성전도>, 《고지도첩 | 도성은 내사산 등성이를 따라 한 바퀴 돈다. 내사산 바깥으로는 산줄기들이 겹겹이 감싸준다. 도성 안에서 모여든 물은 동으로 나가 중량천으로 합류하고, 중량천은 남으로 흘러 한강으로 합치고, 한강은 서쪽으로 가면서 성저십리 전체를 안아준다. (영남대학교박물관 소장)

서울의 내사산 | 북한산의 가장 남쪽 봉우리 보현봉에서 산줄기가 내려가면서 형제봉, 구준봉을 거쳐 백악으로 솟았다. 백악에서 동남쪽으로 흐른 줄기가 나지막하게 타락산을 이루었다. 백악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진 산줄기는 인왕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목멱산으로 마무리되었다.

《숙빈최씨소령원도》 중 <묘소도형여산론>의 산도(山圖) 부분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무덤인 소령원(昭寧園)의 산도다. 산줄기는 가운데 무덤을 겹겹이 감싸고, 그 갈피갈피에서 물줄기가 모여들어 서북쪽으로 흘러 나간다. 이른바 명당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손들이 잘 되었나?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도성도>, 《조선강역총도》 | 도성의 문루가 숭례문과 흥인문, 돈의문, 광화문에만 있는 것으로 보아 도성 정비가 끝나기 전인 18세기 초의 것으로 보인다. 경희궁은 경덕궁으로 쓰여 있으며, 숮정문은 터만 있고, 광희문은 수구문으로, 남소문은 광희문으로 표기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도성 | 백악곡성에서 서편으로 도성이 구불구불 백악 정상을 휘감아 돈다. 저 멀리 인왕산 암봉을 돌아 목멱 정상을 넘고 넘어 사진에 보이지 않더라도 타락산을 더듬어 훑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인왕산 밑자락의 도성 옛 모습 | 도성 아래 순라길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몇몇은 성 밑 마을에서 이제 막 올라오고 있다. 저 뒤편으로 인왕산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도성의 서쪽 소의문과 돈의문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퍼시벌 로웰 사진, 1884년)

혜화문 옛 모습 | 도성의 동북쪽 문인 혜화문. 속칭 동소문이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네 정문(正門)의 하나가 되었다. 좌우에 성벽을 거느리고 고갯마루에 올라앉은 모습이 장하다. 강원도 함경도 방면에서 몇 날 며칠을 걸려 한양에 온 시골 사람들, 저 성문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조선고적도보》)

불타기 전 숭례문 | 화재 바로 전날인 2008년 2월 9일에 찍은 숭례문 모습. 저때까지 유지되어오던 옛 모습이 하룻밤 새에 잿더미가 되었다. 보존은 어려운데 파손은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속에 들이닥친다.

창의문 | 도성문들 가운데 유일하게 제자리,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창의문.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12월 2일 보물 제1881호로 지정되었다.

운종가 옛 모습 | 오늘날의 종로2가 YMCA 자리에 있었던 한성전기회사 옥상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광경. 널찍한 운종가 한가운데로 전차 선로가 가고 있다. 사진 왼편의 다른 건물들보다 조금 큰 건물이 보신각이다. 피마골 안에도 사람들이 다니고 있다. (《버튼 홈즈의 여행 강의》)

<수선총도>의 운종가 부분 | 운종가 가운데서도 중심부인 종루 근처와 그 아래 남대문로에는 주요 생필품을 파는 시전 점포들이 모여 잇었다. 사진의 아래에 가로로 그어진 선이 운종가이다. 그 주변에 시전의 이름들이 기재되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1903년 서울 | 사진 왼쪽에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굽은 선이 도성이다. 도성 밖으로도 시가가 이어져 있다. 중단에 숭례문이 우뚝하고, 그 안에 선혜청이 넓게 자리 잡았다. 도성 안이 도성 밖보다 지형이 높고, 도성 안에는 크고 중요한 건물들이 많은 데 비해서 도성 밖은 상대적으로 작은 집들로 채워져 있다. (일본 학습원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소장)

마포 옛 모습(위) | 한강변에 큰 마을이 형성되어 초가집과 함께 기와집들도 빽빽하게 들어찼다. 강안에 닿아 있는 배들의 돛대도 촘촘하게 줄을 지었다. 선착장으로 오가는 사람들, 골목골목에서 무언가 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숭례문 바깥 옛 모습(아래) | 소로 밭을 가는 뒤로 초가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저 멀리 도성이 높다랗게 좌우로 지나가는데 숭례문이 우뚝 솟아 있다. 장한 모습이다. 사진의 왼쪽 아래로 만초천이 흘러간다. (《꼬레아 에 꼬레아니》)

남대문로 옛 모습 | 숭례문 문루 2층쯤에서 성 안을 바라보았다. 남대문로가 오른쪽으로 굽어 이어진다. 길 가장자리에 길게 이어지는 초가집은 도로를 침범하여 지은 가가(假家)다. 아직 종현성당이나 상동교회는 들어서지 않은 것으로 보아 1898년 이전 사진이다. (《토미 톰킨스와 더불어 한국에서》)

1915년 이전 보신각 | 단층으로 된 종각 건물에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보신각 편액이 걸려 있다. 위치는 운종가와 남대문로가 만나는 삼거리 동남쪽 모퉁이이고, 정북을 바라보고 있다. 1915년에 옮기기 전임을 알 수 있다.

1915년에 옮긴 이후의 보신각 | 북에서 남으로 바라본 남대문로의 동쪽가에는 서양식 2층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의 왼편에 보신각이 서북쪽을 바라보면서 앉아 있다. 한복 입은 사람들 사이에 간간이 일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섞여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 종루 주춧돌 | 원래 자리에서 발굴되어 서울역사박물관 앞마당으로 옮겨져 전시되어 있는 종루 주춧돌. 주춧돌 전부가 아니지만 이렇게 남아 있는 주춧돌만 보아도 종루가 얼마나 장대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현재 보신각 | 위치는 뒤로 물러났고, 좌향은 엉뚱하게 서북쪽을 바라보며, 철근콘크리트 2층 건물이다. 세부 모양과 장식도 근거를 찾기 어렵다. 게다가 달려 있는 종도 제 것이 아니다. 보신각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한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기념비전(위) | '대한제국대황제보령망육순어극사십년칭경기념비'를 품고 있는 기념비전. 자리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주위 건물이 사라지고, 높은 빌딩이 들어서고, 도로도 몇 차례 넓어지는 등 주변 환경이 변함에 따라 매우 옹색한 처지가 되었다.

기념비전 옛 모습(아래) |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던 기념비전. 하지만 이것도 원래 모습은 아니다. 원래는 기로소 행각 안에 있었다. (《꼬레아 에 꼬레아니》)

현재 광화문앞길 | 도로 안에 광장이 갇혀 있는 형국이다. 세종대왕 동상을 넘어 광화문으로 가까이 가기 전에는 광화문과 그 뒤 풍경을 보기 어렵다. 가까이 간들 곧바로 걸어가서 광화문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광화문앞길 옛 모습 | 길 동편과 서편에는 국가의 중추 관서들의 행각과 정문이 담처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정면에 광화문이 남면하며 주인으로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더 멀리는 백악 산줄기가 감싸주는데, 북한산 보현봉이 슬쩍 넘겨다보고 있다.

광화문앞길에 모인 사람들 | 사진 맨 왼쪽에 광화문의 반이 보이고, 그 앞으로 관아들의 행각과 문이 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광화문앞길을 흰 옷에 흰 갓 또는 삿갓 아니면 희고 검은 장옷을 입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전신주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1899년 이전이다. 그렇다면 1897년 명성왕후의 빈소를 경복궁에서 경운궁으로 옮긴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장이 된 경복궁 | 공진회장 광고탑에서 동남쪽을 찍었다. 중앙 약간 왼쪽에 근정문이 있다. 그 오른편에 크게 'ㅁ'자로 보이는 가건물이 공진회 제1호관이다. 오른쪽에 오벨리스크를 얹고 있는 것은 철도국 특설관이다. 그 오른편에 광화문이 있고, 광화문 앞으로 광화문통으로 이름이 바뀐 광화문앞길이 나 있다. (《조선물산공진회보고서》)

종묘 들어가는 길 | 운종가에서 북으로 방향을 틀면 운종가의 북쪽에서 운종가를 따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제생동천을 건너게 된다. 그곳에는 당연히 돌다리가 걸쳐 있었다. 임금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 탈것에서 내려야 했다.

<도성도>(부분)에 나타난 종묘, 사직과 궁궐 | 종묘가 서울의 중앙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경복궁을 기준으로 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단을 지었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종묘 자리부터 정하였고 그다음에 경복궁 자리를 잡았다고 《태조실록》은 말한다. 중국의 종묘와 조선의 종묘는 성격과 위상이 상당히 다르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창덕궁 | 돈화문의 남서쪽에 있는 빌딩에 올라가 동북쪽으로 바라본 창덕궁 전경. 응봉에서 길게 흘러내리는 산자락의 서쪽 기슭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창경궁 |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서남쪽으로 바라본 창경궁 전경. 응봉에서 흘러내리는 산자락의 동쪽 기슭에 동향으로 자리 잡았다. 창경궁 너머로 서울 도심이 빌딩 숲을 이루었다.

경희궁 | 멀리 떨어진 빌딩에서 서북쪽으로 바라본 경희궁의 외전 영역. 새로 지은 건물들이지만 숲과 어울려 궁궐 분위기를 제법 낸다.

경운궁 |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정북 방향으로 바라본 경운궁 전경. 야경인 덕분에 경운궁의 부자연스럽고 초라한 부분들이 가려져서 그런대로 궁궐다운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중국 베이징 자금성의 북문 | "고궁박물원"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자금성은 그 많은 왕조가 생겼다가 없어진 중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궁궐이다. 물론 현재 살아 있는 궁궐은 아니다. 고궁으로서, 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창덕궁 인정전 일대 | 창덕궁 서쪽 건물 높은 곳에서 본 전경이다. 오래된 건물도 있고, 새로 지은 건물도 있지만 어쨌거나 모두 죽은 건물들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요, 본연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영조 어진> | 우리는 조선의 임금을 아주 먼 옛날 사람으로 생각한다. 반면에 조선의 임금을 우리의 임금으로 여기는 생각도 저변에 깔려 있다. 서로 어긋나는 이러한 생각을 정리하여 옛 사람들에 대하여 객관적이면서 정확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경복궁 동십자각 옛 모습 | 높은 대 위에 잘 생긴 누가 있고, 그 안에 작은 방이 있다. 성상소다. 동십자각 바로 옆으로 삼청동천이 흘러내려 개천으로 들어간다. 그 삼청동천에 난간도 없는 돌다리가 걸려 있다.

<보인소의궤> 중 조선국왕지인 | 조선 임금의 존재와 권력을 알리는 대표적인 인장, 대보다. 전서체 한자와 청나라 글자로 새겼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함흥본궁 | 이성계가 임금이 되고 나서 함흥이 있는 자신의 잠저에 지은 건물이다. 이성계가 죽은 뒤에는 왕실의 사당으로 쓰였다. 늙고 굽은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른편에는 노둣돌이 보인다. 이 노둣돌을 밟고 내리는 이는 누구일까? (《조선고적도보》)

건구고궁 현판 | 주역 건괘(乾卦)는 여섯 효(爻) 모두 양효(陽爻, -)로 되어 있다. 구(九)는 양효를 가리킨다. 그 가운데 첫째, 곧 맨 아래 양효인 초구(初九)는 잠룡을 가리킨다. 아직 용이 되기 전 물에 잠겨 있는 상태다. 이러한 뜻을 담아 영조는 자신의 잠저였던 창의궁 정당에 이 "건구고궁"이라는 현판을 써서 걸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운현궁 노락당 |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고 있던 때는 그 위세에 걸맞은 규모를 갖추었지만, 이후 영역도 축소되고 건물들도 바뀐 것이 많다. 그 후손들이 지키지 못하고 지금은 서울특별시 소유로 관리되고 있다.

<인평대군방전도> | 타락산 기슭에 있던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집(위)을 그린 그림이다. 인평대군의 형으로서 나중에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의 집(아래)을 함께 포함하였다. 봉림대군의 집에는 조양루(朝陽樓), 인평대군방에는 석양루(夕陽樓)가 있어 서로 마주보며 형제 우애를 다졌다 한다. 정조 대에 집을 고쳐 짓고, 1792년(정조 16) 이 도면을 그렸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육상묘와 연호궁 편액 | 뒤편의 육상묘는 육상궁으로 승격되기 전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 이름이다. 연호궁은 숙빈 최씨의 며느리이자 영조의 후궁인 정빈 이씨의 사당 이름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신주가 한 건물에 동거하고 있는 셈이다.

<화성행행도병> 중 서장대야조도 | 1795년(정조 19)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에 갔다 오는 장면을 그린 여덟 폭 병풍 중 서장대에서의 야간 군사 훈련 장면이다. 가운데 화성행궁이 보이는데, 행궁으로서는 규모가 크고 짜임새가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화성행궁 | 2003년에 복원을 마친 화성행궁을 팔달산 쪽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이 행궁은 정확한 위치에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는가? 그래서 과연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남한산성행궁 | 인조가 유사시를 대비해서 지은 시설인데, 실제로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활용하였다. 사라졌던 것을 복원하긴 하였으나 의문이 남는다.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랜 시간의 층위가 쌓여 있는데…. 그것을 살리는 방법은 정녕 없었을까? 아쉽고 안타깝다.

<오문삼조>, 《삼재도회》 | 고문(皐門)에서 노문(路門)까지 다섯 문이 구역을 나누고 있다. 외조, 치조, 연조는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다. 두 번째 고문(庫門) 안에 가석(嘉石) 등이 있고, 그 좌우에 종묘와 사직이 표기되어 있다. 종묘와 사직의 위치와 위상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선 전기 경복궁의 구조를 추정해 그린 지도인 <경복궁도>(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 궁궐의 여섯 공간을 각각 다른 색으로 표시하였다.

경복궁 외전 구역 | 광화문 안에 홍례문, 홍례문 안에 영제교, 영제교 건너 근정문, 근정문 안에 근정전, 광화문 밖에서 근정전에 이르기까지 문을 셋, 다리를 하나, 총 네 개의 경계를 지나야 한다. 어느 문이 고문(皐門)이고 또 고문(庫門)이며, 치문이며 응문인가? 어느 공간이 외조이고 치조인지 연결시키기가 어렵다.

근정전 | 근정문 안이자 근정전 앞에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넓은 마당이 열린다. 이를 조정이라고 한다. 저 조정에 가득 차게 들어선 많은 관원들, 곧 만조백관을 그려본다.

창덕궁 인정전 | 정면 5간 측면 4간에 중층 지붕의 다포식 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좌우 대칭을 하고 있어 매우 엄격한 느낌을 준다.

<정아조회지도> | 정아란 궁궐을 가리킬 수도 있고 여기서처럼 조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조정에서 조회할 때 각 참여자들이 자리 잡을 위치를 밝힌 도면이다. 조회에 참여하는 인원수가 대단히 많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경복궁 강녕전 내부 | 강녕전은 경복궁의 내전이다. 그에 걸맞게 그 내부도 널찍하다. 가운데 대청마루의 양쪽으로 온돌방이 있고, 마루와 대청마루 사이는 들어 올릴 수 있는 분합문으로 나뉘어 있다.

<무신진찬도병> 중 통명전진찬도 | 통명전은 창경궁 중궁전의 정전이다. 외부의 남성들은 원칙적으로 들어올 수 없다. 통명전에서의 진찬은 그러므로 여성들의 진찬, 내진찬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복궁 사정전 일원 | 사정전은 경복궁의 편전이다. 편전은 임금과 관원들이 만나서 국정을 논의하는 회의공간이다. 가운데 편전의 정전인 사정전은 하나의 마룻방으로 되어 있는 데 비해 그 동편에 만춘전, 서편에 천추전은 가운데 마루를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갖추고 있다.

<호조>, 《숙천제아도》 | 19세기의 문관인 한필교가 자신이 근무하였던 관서들을 그림으로 그려 모은 화첩인 《숙천제아도》 가운데 호조의 그림이다. 호조는 광화문앞길에 있었다. (하버드대학교 엔칭도서관 소장)

경복궁 함화당 | 경복궁의 중궁전인 교태전의 북쪽, 생활기거공간으로 분류할 수 있는 영역에 있다. 동쪽으로는 집경당이 연결되어 있으며, 주변의 행각은 일제강점기 때 사라졌다가 근년에 복원되었다.

창덕궁 소요정 | 동궐의 후원 옥류천 영역의 한가운데에 있는 정자다. 소요정의 이름 중 '소요'는 《장자》에 나오는 표현으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후원은 이렇게 자연에 안기고자 하는 공간이었다.

경복궁 강녕전 월대 | 건물에 월대가 있다는 것은 그 건물이 그럴 만한 격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였다. 경복궁에서 임금이 머무는 대전 강녕전 역시 그러하였다.

창경궁 경춘전 | "경춘전은 정면 (     )간, 측면 (     )간 해서 전체 (     )간 건물입니다" 건물을 보면 먼저 바닥의 규모부터 보는 것이 좋습니다. (    ) 속에 알맞은 숫자를 써 넣으세요.

종묘 정전의 기둥들 | 종묘 정전은 벽과 문을 맨 바깥 기둥에 내지 않고 한 간 뒤로 물러서 냈다. 그 결과 전면 한 간은 회랑이 되었고, 맨 바깥 기둥은 노출되었다. 배흘림기둥이 길게 늘어서서 빚어낸 모습이 매우 깊고 긴 울림을 준다. 그런데 가까이 보이는 왼편 기둥은 원이 아니라 네모다. 정전의 기둥이 아니라 익랑 기둥이기에 격을 낮추었나 보다.

지붕의 다양한 형태들

전당합각재헌루정 | 건물 이름의 끝 글자들을 보면 건물의 격과 모양, 기능까지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편액 자체도 대체로 크고 화려한 데서 작고 간결한 데로 바뀌어간다. 건물 이름을 들으면 어렴풋이나마 건물이 보인다. 위로부터 근정전, 양화당, 곤녕합, 경훈각, 낙선재, 영춘헌, 주합루, 함인정.

창경궁 명정전 | 외전의 정전으로서는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으나 광해군 대에 다시 지은 이래 큰 화재를 입지 않아 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외부 내부 여러 곳에 변형된 부분이 다수 잇음에도 국보로 지정된 근거다.

창경궁 양화당 | 창경궁 중궁전의 정전인 통명전 동편에 있다. 정면 6간 측면 4간 단층 이익공 팔작지붕이다. 건물 크기에 비해 높이가 다소 낮아 보이기는 하지만 당당한 기품을 갖고 있다.

창덕궁 낙선재 | 헌종 대에 후궁으로 맞이한 경빈 김씨의 거처로 지은 건물이다. 그 뒤로도 주로 후궁과 같은 왕실 여성들이 쓰던 건물이다. 높지 않은 기단에 계단이 셋 놓여 있다. 그 앞에는 노둣돌도 있다. 왼편에 앞으로 누마루가 돌출되어 전체적으로 'ㄱ'자 모양을 하고 있다.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않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부분이 많다.

창덕궁 태극정 | 동궐 후원 가운데 가장 북쪽에 흐르는 옥류천변에 있는 다섯 정자들 가운데 가장 상류에 있는 정자다. 장대석으로 네모반듯하게 쌓은 기단 위에 네 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둘렀다. 지붕은 사모지붕인데 모임 부분에 절병통을 얹었다. 아주 엄격한 분위기를 풍긴다.

<무신진찬도병> 중 인정전진하도 | 1848년(헌종 14) 3월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육순(六旬)과 왕대비 신정왕후의 망오(望五), 곧 41세가 됨을 기념하는 진찬 행사를 열었다. 이를 그린 병풍 가운데 헌종이 인정전에서 신하들에게 진하를 받는 부분이다. 구름에 잠긴 소나무가 뒤에서 받쳐주고 잇어 이곳이 인정전임을 알려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왕조 '법궁-이궁 양궐체제'의 변천

만월대 | 고려의 수도 개성에는 궁궐이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고 대표적인 궁궐이 만월대에 있었다. 뒤편의 임신한 여인이 누워 있는 형상의 산이 바로 송악산이다.

<조선태조어진> |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의 어진은 조선 말기의 모사본이다. 얼마나 태조 이성계의 본성과 인상을 드러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그림이 주는 인상은 후덕한 군주보다는 단단한 무장의 그것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전주 경기전 소장)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 | 북한산에거 서쪽으로 뻗어나간 등성이 가운데 비봉 꼭대기에 있었다. 추사 김정희가 이것이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혔다. 당연히 "무학오심도차(無學誤尋到此)"라고 여섯 자가 새겨져 잇지는 않다. 지금 비석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경조오부>, 《동여도》 | 경조란 서울이란 뜻이다. 행정적 공식 도시 이름은 한성부. 한성부의 행정 구역은 다섯 부로 구성되었다. 5부는 처음에는 도성 안만을 포함하였지만, 점차 도성 밖에도 사람들이 많이 살게되면서 부 아래의 행정 구역인 방(坊)이 설치되었다. 행정 구역을 넘어 넓은 범위의 서울은 이 지도에 포함된 지역, 곧 북으로 북한산 기슭, 남서로 한강을 경계로 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경복궁 근정전 | 사방을 행각으로 둘러싼 안 넓은 마당을 박석으로 덮었다. 2층 기단에 돌난간을 두르고 정면 5간 측면 5간에 겹지붕을 한 건물이 위엄 있게 자리 잡았다. 임금이 정사를 돌보는 곳이 아니라, 신하들이 임금에게 충성의 의식을 치르는 공간이다.

<경복궁전도> | 임진왜란 이전의 경복궁의 모습을 당대에 그린 것은 전해지지 않는다.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기억에 의존해 그린 개념도들이다. 그 가운데 이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은 마치 산도처럼 주위 산줄기의 흐름을 공들여 그렸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도성 말바위에서 바라본 경복궁 전경 | 교태전으로부터 강녕전, 사정전, 근정전, 광화문이 일직선으로 축을 맞추고 있다. 광화문 앞으로는 광화문앞길이 열린다.

창덕궁 금천교 | 손에 피를 많이 묻힌 임금 태종 대에 건설된 다리이다. 하지만 저기 조각되어 있는 석수들의 표정은 살벌함과는 거리가 멀다. 부드럽고 재미있어 친근감을 준다.

변박, <부산진순절도> | 부산진을 공격하는 왜군이 타고 온 배가 바다를 덮었다. 이미 상륙하여 성 밑에까지 다가와 아우성치는 왜군이 새까맣다. 성 위에서 이를 바라보며 싸우는 조선 사람들의 수효는 많지 않다. 목숨을 바쳐 싸우다 간 이들의 심정…. 그것을 잊지 말라고 이 그림은 말한다. (육군박물관 소장)

정선, <경복궁도> | 무너지다 만 궁성 안에 경회루 돌기둥과 근정전 기단의 흔적만 있는데, 빈터를 지키는 군사들의 건물이 덩그렇다. 뒤편은 빽빽한 숲을 이루었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영묘조구궐진작도> | 1767년(영조 43) 12월 16일 영조는 태종이 태조에게 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술 잔을 올렸던 옛일을 본받아서 경복궁 근정전 터에서 관원들로부터 술 잔을 받는 의식인 진작례를 베풀었다. 2층 월대와 중앙의 계간, 모서리의 동물상 등이 근정전 터임을 알려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선조실록》(왼쪽)과 《선조수정실록》(오른쪽) | 실록은 오랜 기간 여러 사람이 사초를 작성하고, 임금 사후에 사초와 함께 여러 자료들을 편집하여 작성하였다. 그런만큼 엄정하였다. 하지만 기록자와 편집자의 주관을 모두 배제할 수는 없었다. 권력을 잡은 집단이 급격하게 바뀌면 실록을 없애지는 못하고 수정본을 작성하였다. 그 수정한 실록이라고 해서 객관적이고 엄정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의 입장과 관점을 강하게 반영하였다.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일본 규슈 구마모토성 |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뒤인 1601년부터 7년간 쌓은 성이다. 규모가 크고, 자연 지형을 이용한 축성 기술이 잘 살아 있다. 가토가 임진왜란에서 얻은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고 한다.

월산대군 사당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다. 사당 남쪽 큰길 건너에는 월산대군의 묘가 있다. 임금의 형. 어찌 보면 동생 성종보다 더 임금이 될 자격을 갖추었으나 임금이 되지 못한 사람.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떠돌며 전해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경운궁 즉조당 | 인조반정 후 인조가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던 서궁, 곧 경운궁에 와서 즉위하였다는 건물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함인지 조선 후기 내내 보존되었다. 1904년 화재에 불타서 바로 다시 지었다.

광해군묘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에 있다. 쫓겨난 임금은 임금이 아니다. 종묘에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그 무덤도 능이나 원이 아닌 묘이고, 외지고 좌향도 좋지 않는 곳에 그 규모나 치장도 웬만한 양반만도 못한 묘로 남았다.

<원종어진> | 인조의 생부 정원군의 초상화이다. 백택 흉배를 한 것으로 보아 임금이 아닌 종친 신분을 표현하였다. 추존되어 '원종어진'이란 이름으로 불리긴 하나, 임금이 아닌 임금의, 어진이라고 불리나 어진이 아닌 초상화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남한산성 우익문 | 남한산성의 서문으로, 서울과 가장 가까운 거리로 통하는 문이다. 위의를 차리기에는 바깥 지형의 경사가 너무 급하다. 긴급하게 드나드는 문,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 문을 나서서 삼전도로 갔다.

<동궐도> | 동궐, 곧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그 후원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린 기록화. 새가 내려다보는 관점의 부감법을 써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건물들을 사선으로 배치하였다. 동궐을 이해하는 데 더 없이 도움을 주는 자료이나, 또 한편으론 그림은 그림일 뿐, 사진이나 실측 도면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한양도>, 《천하도》 | 위백규(魏伯珪)가 1770년에 그린 지도를 1822년에 그의 후손인 위영복(魏榮馥)이 목판으로 제작, 간행하였다. 당시 도성 내부에 묘사가 매우 소박하고 부정확한데, 유독 경희궁이 강조되어 잇는 것이 눈에 띈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경희궁 | 네모반듯한 회랑 안에 숭정전이 자리 잡고 잇고, 그 뒤로 자정전, 그 서편에 태녕전이 잇다. 바로 뒤편에서 인왕산이 이 모두를 받쳐주고 있다.

<연잉군초상> | 후일 영조가 된 연잉군이 사모를 쓰고, 백택 흉배를 단 녹색의 단령을 입고 있어 종친 신분을 드러내고 있다. 갸름한 얼굴에 째진 눈꼬리가 <영조어진>의 인상과 통한다. 그의 왕세제 책봉과 대리청정 문제는 신임옥사의 원인이 되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사도세자의 영지(令旨) | 1761년(영조 37) 4월 3일 사도세자가 평양에 갔을 때 내린 명령서. 평양부에 사는 통덕랑 서필영이라는 사람의 자손에게 부과하는 잡역을 면제해주라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사도세자가 수결(手決)을 하였다. 이듬해 임오화변으로 사도세자는 죽음을 맞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경희궁 금천교 | 적지만 옛 부재가 남아 있어 이를 근거로 옛 모양을 추정하여 다시 지었다. 정문 흥화문 자리는 구세군회관이 차지하였고, 외전 내전으로 들어가는 길은 서울역사박물관이 가로막았다. 지금은 물길도, 궁궐도 사라졌지만, 본래는 이 다리를 건너면 궁궐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무진진찬도병> | 1868년(고종 5) 익종비 신정왕후의 회갑을 기념하는 진찬 장면을 8폭 병풍으로 꾸몄다. 경복궁을 중건하고 열린 첫 큰 행사였다. 오른쪽부터 1폭과 2폭은 근정전진하도, 3폭과 4폭은 강녕전진찬도, 5폭에서 7폭은 강녕전익일회작연도이고, 8폭은 좌목이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소장)

경희궁 후원에서 바라본 경복궁 전경 | 저 멀리 겹지붕이 불쑥 솟은 근정전, 그 뒤에 사정전, 그보다 조금 가까이에 경회루가 보인다. 1876년의 화재로 내전이 불탄 후 복구하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반면 가까이 경희궁에는 별다른 건물은 보이지 않고 나무만 무성하다. 궁성도 무너진 부분이 군데군데 눈에 뜨인다. 사진 상태가 좋진 않지만 19세기 말 경복궁과 경희궁의 상황을 동시에 보여준다.

당백전 | 엽전 100개의 명목가치를 갖는 돈이다. 앞면에는 상평통보, 뒷면에는 호대당백이라고 새겨져 잇다. 실질가치가 명목가치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 돈은 경제 질서, 나아가서는 사회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흥선대원군초상> | 흥선대원군 자신이 제발을 직접 써 넣었다. "내가 61주갑 되던 해의 초상이다." 경진년, 그러니까 1880년(고종 17) 여름에 그렸다. 이미 실권을 잃은 후의 일이다. 검은 건을 쓰고 푸른 포를 입었는데 인상이 강하다. 흥선대원군은 끝내 권력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못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창덕궁 농수정의 고종 | 미국인 퍼시벌 로웰은 1883년 조선의 미국 수호통상사절단을 안내한 인연으로 1883년 12월부터 3개월간 조선을 방문하였다. 그때 고종의 사진을 찍었다. 고종이 1876년의 화재로 창덕궁에 이어해 있을 때의 일이다. (퍼시벌 로웰 사진, 1884년)

러시아공사관에서 고종과 순종이 머물렀던 방 | 서양식 침대와 실내 장식이 화려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임금이 외국 공관에서 1년이나 머물렀다는 사실은 그 공간이 아무리 화려하다 한들 씁쓸한 뒷맛을 지우기 어렵다. (《이왕궁비사》)

옛 러시아공사관 탑 |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본채는 다 없어지고 동북 모서리에 있던 탑 부분만 무슨 지표인양 남아 있다.

경복궁 곤녕합 | 곤녕합 일대는 건청궁 안 왕비의 거처이다. 그중에서도 사진에 찍힌 누 부분의 이름이 옥호루인데, 이곳이 바로 1895년 을미사변의 현장이다. 뒤의 서양식 건물은 외국인들의 숙소로 쓰였던 관문각이다.

미국공사관 옛 모습 | 1905년 9월 방한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와 총영사 고든 패덕 등 미국인들. 그리고 대한제국 군인 몇이 미국공사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미국공사관 건물은 한옥 골격을 유지하면서 전면에 현관을 추가 설치하였다.

원구단 | 대한제국에서 외국 귀빈을 머물게 하기 위해 지은 대관정에서 본 모습이다. 왼편에 있는 건물이 원구단 정문, 중앙부에 보이는 3층 지붕 건물이 황궁우, 중단 오른편에 흰 기단에 흰 지붕이 보이는 부분이 원구단이다. (《버튼 홈즈의 여행 강의》)

경운궁 함녕전 | 고종의 거처였을 뿐만 아니라, 1904년 화재를 입어 다시 짓기는 하였으나, 처음부터 오늘까지 경운궁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경운궁의 중심 건물이다.

1902년 경운궁 전경 | 모습을 갖춰가는 경운궁 서측 부분 전경. 아직 궁성은 완성되지 않았고, 내부 건물들도 온전히 다 갖추어지지 않았으나 2층 건물 중화전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1904년 경운궁 화재 | 1904년 4월 14일 화재로 불타버린 경운궁 중심 구역.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다. 보는 우리 가슴도 타들어간다.

1904년 일본군의 전첩축하회 | 러일전쟁의 첫 전투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창덕궁 후원에서 축하회를 열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기단과 아래층 규장각은 물론 2층 주합루까지 일본인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대안문 편액 | 대안문 편액. 주변의 테두리가 떨어져 나가고 퇴색되었지만 단정한 글쎄에는 기품이 배어 있다. 글씨 부분에 검은색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현재의 중화전 | 기단에 견주어도 건물의 높이가 낮다. 1904년 화재 뒤 다시 지으면서 겹지붕을 홑지붕으로 만든 결과다.

을사늑약 기념사진 | 조약을 체결한 것을 기념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하여 일제의 고위 관원들이 대관정에서 기념사진을 박았다. 그러나 비준 절차를 마치지 않았으므로 조약은 법적으로 체결되지 않았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장 |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렸으나, 만국이란 말에는 세계 모든 나라가 아니라 힘 있는 나라들만 포함되었다. 고종이 파견한 특사들은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다.

헤이그 특사 위임장(영인본) | 고종이 특사들에게 준 위임장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위임된 권한은 발휘되지 못하고 말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창덕궁 인정전 | 인정문에 외벽이 생기고 거기 판문이 아닌 작은 문이 달렸다. 회랑에도 문이 생겼다. 회랑이 아닌 접견실 등 건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정전 용마루 전면에 다섯, 인정문 용마루 전면에 셋, 오얏꽃 문양이 박혔다. (《순종황제 서북순행 사진첩》)

인정전 앞의 순종 |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월 27일부터 2월 3일까지 순종에게 현재 서울역인 당시의 남대문역을 출발하여 평양, 신의주 등 서북 지역을 순행하게 하였다. 순종이 돌아온 뒤 인정전 앞에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순종의 왼쪽에 이토 히로부미가 있다. (《순종황제 서북순행 사진첩》)

창덕궁 인정전 내부 | 인정전 용상의 단이 없어지고 맨 마룻바닥에 서양식 의자가 놓여 있다. 임금의 자리가 아니라 파티의 주인이 되는 총독이나 정무총감의 자리다. 그 뒤에는 일본식 가리개 위에 공작인지 뭔지 모를 일본풍의 새 그림이 걸렸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닫집이 도리어 어색하다. (《인정전 사진첩》)

순종 경술국치 위임장 | 1910년 8월 29일 순종이 병합조약을 체결하러 가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에게 준 위임장. '척(坧)'이라는 순종의 본명을 쓴 수결(手決)이 못났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데라우치 마사타케 | 뜻밖에 합병 문제를 용이하게 해결하고 그는 이렇게 썼다. "가가(呵呵)." 사진에서도 속으로는 가가대소(呵呵大笑)하고 있을 것이다.

통감 관저 | 대한제국을 일본이 집어삼키는 형식상의 절차인 조약안에 도장을 누른 장소인 통감 관저. 목멱산 북쪽 기슭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흔적만이 남아 있다. (《순종황제 서북순행 사진첩》)

창덕궁 대조전 흥복헌 | 1910년 8월 22일 이완용이 순종으로부터 전권위임장을 받은 곳. 그날 경술국치의 출발점이다. 다만 1917년 창덕궁 화재 때 불타 새로 지었기 때문에 그때의 그 건물은 아니다.

하도(위)와 이를 아라비아 숫자로 다시 정리한 도표(아래)

낙서(위)와 이를 아라비아 숫자로 다시 정리한 도표(아래)

복희팔괘차서

복희팔괘방위(위)와 문왕팔괘방위(아래)

오행사상의 오행과 상생상극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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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8. 2. 12. 13:08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08 툭, 건드려주었다

 

 

 

이상인 시집

2016, 천년의 시작

 

대야도서관

SB110703

 

811.7

시72ㅊ  203

 

시작시인선 0203

 

지그시 거침없음, 이게 이상인 시의 묘한 매력이다. 각별하거나 사람을 놀리게 할 만큼 이마에 탁 부딪히는 선뜻함은 아닐지라도 넉넉하게 잡아끄는 힘을 지니고 있는 시들이다. "세월을 견디며 삭아가는" 이야기들은 은근한 듯하면서 더러는 "폐허처럼 깊은" 추억의 각인이 되기도 한다. "내면에 파동치는" 울림이 깨끗하고 말간 섬진강 은어처럼 튀어 오를 때 맛보게 되는 시인의 언어가 실은 담백하다. 이 시집에서 "밥물처럼 자갈자갈 끓어넘치는" 사랑스러운 참새 소리를 발견함이라거나 낚싯대로 "힘차게 파닥이며 따라 올라오는 냇물"을 낚아채는 뚝심의 시법이 미더운 한편으로 시인에게 "밑받침으로 얹어주"는 작은 생명들의 깨우침이 노을빛으로 어지간히 아름답다.

- 강인한(시인)

 

질주하는 승용차며 트럭들의 굉음으로 전쟁터 같은 고속도로지만 바로 옆의 야산 하나만 훌쩍 넘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울울한 숲과 숲의 고요가 있는데 이상인이 그렇다. 그 숲의 끝자락에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저수지가 하나 있고 저수지엔 커다란 달이 가득 차 있는데 이상인의 시가 그렇다. 그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적절한 절제의 기예로 균형 잡힌 시를 건져 올리는 시인이 이상인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늘 달빛이 묻어 있고 바닥에는 익숙한 일상의 고요가 있다. 어두운 밤이지만 어둡지 않고 환한 대낮이지만 눈부시지 않다.

- 박두규(시인)

 

이상인

 

전남 담양 출생.

1992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 『UFO 소나무』『연둣빛 치어들』『해변주점』이 잇음.

 

시인의 말

 

아무 생각 없이 꽃이 핀다.

이내 꽃이 진다.

 

생의 행간에서

보너스처럼 새가 울어준다.

 

이런저런 날은

마음대로 구부러진 문장 길

시 한 편으로

마냥 서성거리다가

시외버스처럼 점점 멀어져가고 싶다.

 

2016년 봄 풍진이와 발미에서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소 울음소리
현미밥을 지으며
문장리
이륜耳輪
선암매
순천역이 가슴속에서 떠나갔다
둥근 하늘
쥐눈이콩
툭, 건드려주었다
물방울
반짝이는 어둠
뻐꾸기 둥지
황태찜
민들레 우주선
풍진이의 봄날
경經, 중얼거리다


제2부
애기사과
하늘로 밀려가는 파도들
풍진이의 겨울
여명
오리들의 묵념
폐자전거
세 명의 내가 쓴 시
휘리릭 휘리릭
매미
어머니의 눈
난꽃
빨간 신호등 건너기

번데기
황금 붕어
붉은 주머니


제3부
목이전木耳傳
시래기
소쩍새 울음
한 무리의 은어
수숫대
천둥
보리밭
12월
이상인 씨의 농사法
마루
낚시하는 잠자리
빨래방을 나오며
겹겹의 배춧잎
들깻잎
제비꽃 무덤
애장 터에서


제4부
섬진강 노을
식구
콩꽃
고구마
태풍
백설白雪
백일홍
황사
대추나무
꽃무릇 사랑
망가진 소리판 한 장
벚꽃
수평선
대나무처럼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월산 이현도 씨네 매화나무


해설
염창권 겹으로 짠 우주그물에서 날아온 나비

 

둥근 하늘

 

나비 한 마리가 무밭을 뒤집다.

손바닥 푸른 손금 안에, 생각을 낳는지

소리도 없이 몇 초씩 머물러서

내 등허리 간지럽다.

 

문득 어깨를 들썩여보니

노란 알에서 깨어난 추억들이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얼마를 아슬아슬 디디며 견디어야

둥근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나

 

나부끼는 생, 몇 장 독파하고 나니

펼치는 힘찬 나비의 날갯짓

허공에 물결무늬 투명하게 새겨진다.

 

콩꽃

 

광주 망월 무덤가에

혼자 피어 있는 노란 콩꽃을

두 손 모아 감싸고 오다가

옛 전남도청 앞에서 살며시 펼치자

 

노오란 나비 한 마리

멈칫하더니

팔랑팔랑 아픈 기억을 폈다, 접었다

훨훨 날아간다.

 

어둡고 찬 세월 속에 오래 갇혀 있던

그 맑디맑은 이름 하나

이제 막 푸른 하늘 속으로

손뼉 치듯 날아갔다.

 

백설白雪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일까

흰나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메마른 마음을 깊이깊이 뒤덮는다.

 

이런 날은

뼈마디 부서지도록 열심히 살아온 시간을

한 장 한 장 되넘겨가며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어진다.

 

아직 그려지지 않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여백을

아득한 그리움으로 스케치하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나는 따뜻한 사랑으로 그대를 건너왔다.

여기서 만난

흔적 없이 저편으로 건너간 모든 인연이

 

은은하게 빛나는 추억 위로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흰나비 떼처럼

온 세상을 가득 메웠다.

 

여명

 

저물녘 대숲에 슬그머니 숨어드는

비둘기 한 마리

대나무가 푸른 깃을 펼쳐 안아 들인다.

 

그때부터였다.

파도처럼 물결치는 대숲을 따라

비둘기는 흔들리고 흔들리며 잠을 청한다.

허리 휘는 대나무들과 하나가 되어

꿈속에서도 흔들린다.

함께 흔들리지 않으면

푸드덕 땅에 떨어지거나

여지없이 달려드는 날카로운 발톱

 

쏴쏴 밤새 가슴 쓸어대는 소리

긴 장대 하나에 의지한 어두운 밤은

눈썹 반짝이는 별들을 유난히 끄먹거리게 하듯

날마다 세상은,

흔들흔들 삶을 이리저리 마구 흔들어대는데

 

터벅터벅 걸어서 불쑥 당도한 새벽에

동네 개들이 깜짝 놀라

컹컹 어둠을 하얗게 짖을 때까지

자꾸 휘어지는 댓가지 하나 꼭 붙들고 흔들리고

흔들리다.

마침내 숨 트는 갓밝이 속으로

 

툭, 건드려주었다

 

벼랑 돌 하나를 굴려주었다.

일억 이천만 년 동안 나를 기다려

비탈길 하나를 굴러 내린다.

 

한 번의 구름을 위해

수만 번의 심호흡과 몸을 둥글게 말아가며

자세를 가다듬었을 것이다.

 

그 오랜 침묵의 무게를 벗고

파닥 날개를 펴는 새처럼

땅을 박차고 힘껏 뛰어 내려갔을 것이다.

 

단 한 번의 밀어줌으로

간단없이 급한 비탈의 경계를 넘어

다음 생에 당도한 바위 조각,

거기서 또다시

누군가 툭, 건드려주는 일이 또 생길 듯이

깊은 꿈을 꾸듯 기다려야 한다.

 

애기 사과

 

   밑줄 그으며 몇 번씩 침 묻혀 넘겨본 생을 뒤적여보면 한 길 건너 모퉁이에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내가 서성거리고 있었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대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다 자라지 못한 생각들을 이듬해 봄 탐스러운 꽃으로 만들어 매달아보곤 하였네.

 

   하르르 그 꽃잎들 지고, 그대도 없이 주렁주렁 품에 안아 키운 다 자란 작은 애인들이 너도나도 얼굴을 붉히는 동안 벌써 시린 발목을 동여매고 가는 야금야금 벌레 먹은 백년 세월의 그림자.

 

   자꾸만 어른이 되지 못한 푸른 비애와 당신을 만나지 못한 노란 그리움들이 군데군데 차돌 박힌 땅바닥을 치며 뚝뚝 떨어져 나뒹굴고

 

   그렇게 흔들리는 세연世緣의 가지를 붙잡고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쭈글쭈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죽어라 손을 놓지 못하던 하, 수상한 세월이 있었네.

 

난꽃

 

어디선가 줄지어 힘차게 날아온

다섯 마리 기러기 가족,

제일 뒤쳐져 따라온 막내가 좀 비실거린다.

 

비실거려 내가 가끔 물 뿌려주고

맑게 닦아놓은 하늘길을 일렬로 통과 중이다.

 

반갑게 손 흔들며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주어 참 고맙다는 말 건네려는데

기럭기럭,

소리 없는 그 향기 허공에 그득하다.

 

선암매

 

비사표 당성냥 한 줌씩 들고 위태로이 서서

화악, 불 싸질러버릴 태세다

 

난 그 성냥개비 하나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오래 만지작거린다

 

일어나지 않은,

말없이

말할 줄 아는 충동마저 깡그리 태워버릴

얼음덩이 같은 화염을 생각하며

 

민들레 우주선

 

항암에 좋다는 흰민들레

우물가에서 깨끗이 씻어 마루에

가지런히 뉘어놓았다.

잎과 뿌리가 시들시들해질수록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꼭 다물었던 꽃망울을 터뜨리며

다급하게 둥근 우주 하나씩

세상에 피워놓는다.

 

사지가 깡마르고 심하게 뒤틀리는

생의 마지막 찰나까지

온힘을 다해 토해놓은

아름다운 우주선들

한순간 바람에 힘껏 솟구쳐

민들레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는

새로운 세계로 환하게 날아간다.

 

붉은 주머니

 

꺾어온 감 한 가지 벽에 걸렸다.

빵빵하게 속살 차오른 가슴들

떫은 젊음을 뽐내며

세상 이곳저곳을 손전등처럼 환히 비추더니

농익어 군침 돌게 했다.

 

이제 그 퉁퉁 불어터질 것 같던 것들이

잔주름이 잡히고 자신도 버겁다는 듯이

아래로 고갤 수그렸다.

선홍색으로 물들었던 볼에도

어느덧 내려앉은 검은 반점들

몸이 졸아들어 삶도 가벼워졌다.

 

먹지도 못하니 버리기로 하고

먼지 앉은 그것들을 만지작거리는데

작고 딱딱한 게 부딪히는 느낌

둥근 자궁 속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깨어나는 소리

 

늙어서도 몇 개의 씨를 소중하게 품고

끈질기게 버티어낸

붉은 주머니

 

식구

 

동박새가 매화 가지 사이에서 날아오더니

쮸 쮸, 찌이, 찌이, 쮸 쮸

빠른 장단으로 옹알이하며

스스럼없이 동백나무 품으로 파고든다.

기다렸다는 듯이

푸른 옷섶을 여미며 받아 안는다.

눈썹 닮은 또 한 놈이

쮸 쮸, 찌이, 찌이 부리나케 날아와

함께 꿀을 빤다.

어리광부리듯이 이 꼭지 저 꼭지

돌아가며 꿀을 먹고는

만개한 벚꽃 속으로 장난처럼 사라진다.

그 뒷모습을 쫓는 동백나무의 무수한 눈동자가

스물네 시간,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다.

 

순천역이 가슴속에서 떠나갔다

 

순천만 비상하는 흑두루미를 배경으로

흐릿하게 찍힌 사진 속에서

불현듯 되살아 나온다.

역전 콩나물국밥 집 해월식당에 남은

이빨 자국 하나 꽉 문 깍두기

 

그저 이렇게 저렇게 왔다가 가면서

폐허처럼 깊은 그리움을 남긴다.

무수한 발자국 위에 또 하나

지워지지 않는 인연의 흔적을 찍듯이

 

마음만큼 뜨겁던 세월의 뚝배기도

어느덧 바람처럼 뚝딱 비워지고

더러 보내고 남는다는 것이

몸 깊숙이 박힌 이빨 자국 하나 품고

오래 견디는 일이거니

 

무리 지어 날아와 혼자이듯 앉았다가

대오를 이루어 날아가는 철새처럼

우리는 늘

깊은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며

서둘러 떠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장리

 

사람들은 짧은 문장 안에서 산다.

 

잠시도 문장을 벗어나 본 적 없는 명사들이

서툴게 쓴 문장 길을 어슬렁거리고

문장의 크기만큼 열리는 오일장에는

싸고 풋풋한 언어들이 넉넉하게 팔린다.

몇 대째 한 문장에서 함께 사는 이들

고치고 고쳐도 허술한 생을 베개 삼아

저녁이면 30촉짜리

밝은 주제 하나 켜놓고 잠든다.

 

개구리 떼도 긴 문장 속에서 운다.

 

어쩌다 문장을 펄쩍 뛰쳐나간 놈들은

소문처럼 아침 안개로 떠돈다.

별들마저 새까만 밤하늘의 첫 페이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전설을 수놓는

이 문장 안에서, 문장 사람들은

서로 뜻이 잘 통하는 한 구절 문장일 뿐.

부대끼며 힘들게 살다 보면

눈인사만 나누어도 금방 친숙해지듯이

짧고 간결한 내용의 문장들이

다시 태어나고 새롭게 고쳐 쓰이다가

결국은 삶의 비틀린 얼룩 자국처럼

세월의 비누로 깨끗이 지워져가는 것이다.

 

짧고 긴 문장 안에 사는 것들이 많다.

 

경經, 중얼거리다

 

시시로 변해가는 저문 풍경을

귀에 담아두려고

뜰에 흔들의자를 내놓고 있는데

나무들이 꽃들이 나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대추나무 사이로 내려앉는 새도

저희끼리 무어라 속삭이며 중얼거린다.

강조할 점이 있다는 듯이

내 이마에 한참을 머물다 방점을 찍는

흰나비 한 마리

일어났다 흩어지는 구름이나 무심히 바라보다가

대숲을 뒤적이는 바람 소리

조금 엿듣고 있을 뿐인데

도대체 무슨 내용이 쓰여 있기에

나를 읽고 또 읽으려 애쓰는 것인지.

 

만 권의 책을 공부해도 몸에 넣지 못하고

천 번의 이별과 사랑을 기약해도

그 뜻을 듣지 못하는 내 귀 근처를

볼멘소리로 다가온 모기 한 마리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물방울

 

목욕탕 한쪽에 누워 있는데

누군가 내 이마를 툭 친다.

내가 누울 때부터 점점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

아마도 내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또 생겨난 물방울 하나가

이번엔 내 오른쪽 귀를 때리고 잘게 부서진다.

저 헛생각처럼 자꾸 생겨나고 있는

크고 작은 물방물들은 나를 바닥으로 여기겠지만

나는 천장이 바닥으로 보인다.

내가 물방울들 사이로 떨어질 것 같아

잠시 몸을 움츠리는 찰나에도

이 세상 여기저기에서는

물방울들이 끊임없이 태어나서 자라고

잠시 매달려 살다가

순식간에 떨어져 흔적도 없이 부서져갈 것이다.

 

내 살아온 만큼의 무게로 떨어져

가닿아야 할 지 천장 너머 무궁한 바닥,

아득하게 깊다.

 

 

 

posted by 황영찬

2018-007 톈산 산맥 아래에서

 

 

 

최석

2016, 천년의 시작

 

대야도서관

SB110702

 

811.7

시72ㅊ 198

 

시작시인선 0198

 

한때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 속하였던 러시아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는 스탈린에 의해 1937년 10월부터 1938년 4월 사이에 연해주 일대에서 강제 이주당한 20여만 명의 고려인(까레이스끼)과 그 후예들의 발자취가 짙게 배인 광활한 땅으로 이른바 CIS(독립 국가 연합) 지역이다. 이들 나라에는 고려인 후예들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날아 들어간 '한인韓人'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영주권을 취득하거나 장기간의 체류를 하면서 한인 동포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제2의 도시 알마티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 최석 시인의 새 시집 『톈산 산맥 아래에서』는 디아스포라(추방된 자들)의 후예인 고려인과 1990년대 후반 국교 수립 이후 새로운 형태의 노마드(유목민)로 들어간 한인들의 애환과 삶의 치열함 혹은 '척박한 광야에서의 삶'을 담아낸 중앙아시아 코리안 문학의 탄력과 에너지로 작동하여 울림이 크다. 「부룬다이 가는 길」「부음」「그라프가 늙는다」 등의 시편은 우리 시대 노마드 문학Normad Literature의 드넓고 독창적인 지평선을 보여준다.

- 김준태(시인 · 조선대 교수)

 

최석

논산 출생으로 1987년 무크지 『현실시각』과 1989년 계간 『현대시세계』를 통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7년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살고 있다. 2,000년대 초 정상진, 양원식, 이정희 등의 고려인 문인들과 한국에서 이주한 작가들을 모아 중앙아시아문인협회를 결성하였고 2006년 고려인문예지 『고려문화』를 창간하여 편집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해외 문인들에게 주는 이병주국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집으로는 『작업일지』(청하, 1989년)가 있다.

 

시인의 말

 

톈산의 발치에 앉아

고추 잎을 딴다

아무것도 맺지 못한 흰 꽃들

여린 간니들이 갈볕 아래 환하다

오랜 밤을 견딘 기억들이 펼쳐놓으니

허술하기만 하다

조바심을 내던 빈 자루에

칠성무당벌레 한 마리 기어오른다

존재한다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광야가 비어가니

곧 겨울이 올 것이다

 

2015년 가을 알마티

최  석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서시
부룬다이 가는 길
개양귀비꽃의 소묘
천 년의 풍경
봉분의 역사
더께에 대하여
귀뚜라미 보일러
그리운 최영 장군
산해진미론
알마굴에 대한 비망록
그라프가 늙는다
매명의 시
털 이야기
부음
저 푸른 초원 위에
차를 마시며
김 가이의 봄
해방 60주년의 점심 식사
고려인을 위하여
마경준 동무를 곡함
하여가
홍범도를 그리며
한 여인의 짧은 기록
모정의 세월
뚜르겐스키 적포도주
개떡
아버지
고슴도치의 시
꽃이 피다
이사 가던 날
여름날
자작나무의 시

제2부
실크로드는 없다
맛있는 피클
예르쟌
낙하의 비밀
톈산에서 만나는 동해 바다
새참
독서
톈산 산맥
떠도는 냄새
희망에 대하여
고수를 찾아서
또 고수를 찾아서
냄비에 대한 편견
폼생폼사
밭고랑 한 줄을 일궜을 뿐인데……
첫 눈

비극적 상상력
KBS World
소원의 나무
또 다른 외전
기억의 고집
위그르의 수박가게
배설론
호두나무 연대기
영웅시대
소나무
선악과에 대하여
배달되는 봄
우화의 세계
하렘을 찾아서
사막의 꿈

해설
홍용희 톈산에서의 실존을 위하여

 

톈산 산맥

 

산맥이 튀어 오른다

하늘을 탐하는

이교의 창검처럼 불안하다

차안에서 피안까지

가야 할 길은 먼데

산맥은 자꾸만 경계를 만든다

원래 저 산은

흉노와 짱깨들이 만든 소도가 아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는

파미르의 속살이 아니다

지구라트를 세우던 습성과

말을 버리고 주먹을 사용하던 관성 때문에

생겨난 저주이다

그런 추가 조항 때문에

간혹 산이 운다

 

서시

 

톈산은 늘 거기 있었지만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일 년 내내 한텡그리 봉은 흰 눈을 건처럼

두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사는 것이 뭔지

고개를 숙인 채 인상만 찡그린다

검색어만으로 접선이 완료되는 인터넷의 대낮에

두고 온 한국의 친인척과 연고가

끊어지고 있는 사이

끊고 있는 사이

딸과 아들은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국적 없는 세계화의 꿈나무로 자라고

노린내 나는 양고기를 주식처럼 좋아한다

불확실한 미래

아이들에겐 조국이 없다

국적조차 모호하다

비닐봉지에 담긴 김치 한 보시기에

쉬어 꼬부라진 향수병이나 도지는

알마티의 저녁

석양은 지평선 끝에 닿지도 않고

장엄하게 벌개지는데

눈만 들면 보이는 톈산의 뭇 봉들이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

 

더께에 대하여

 

알마티 가가리나 115번지

여기가 우리 집

아들 현상이가 착상이 되었을 때 이사와

이제 일곱 살이 되었으니 우리는

이곳에서 8년째 살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에게는 고향과 진배없지만

나는 언제나 낯설다

오래 살아도 삶에 더께가 끼지 않는다

인간들이 낯설고 땅이 낯설다

냄새가 낯설고 맛이 낯설다

체위가 낯설고 오르가슴이 낯설다

낯설음은 불안함이고

낯설음은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다

끝내 아내가 낯설고

내가 낯설다

낯설음에 대한 익숙함

그것은 삶의 더께가 아니고 관성일 뿐이다

물이 끓고 있다

주전자 속에서 달아나려 하는

수많은 세월의 미립자들, 하모니카

소리를 내며 몰려나오는 수증기처럼

간혹 깨끗이 증발해버렸으면 싶다

허옇게 둘러붙은 석회 앙금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데

그것이 내 삶의 더께일까?

 

여름날

 

노을진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배가 고프다

논에 피사리 간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태 돌아오지 않고

시렁에 놓인 보리밥 소쿠리는 비어 있다

텃밭에 늙은 가지를 따

먹다 집어던지고

아릿한 입맛만 다신다

잠자리를 쫓는 것도

흙장난도 시들해지는 저물녘

뒷집에선 저녁연기 잦아들고

나직한 토장국 냄새

담을 넘어오는데

싸하니 횟배가 아프다

어머니는 언제나 돌아올까?

자꾸만 까치발로 내다보는 들길

저녁해는 먹다 버린

가지 꽁다리만큼도 안 남았다

땅거미에 젖어드는 빈집

기다림에 지쳐 설핏 잠이 든다

어머니 밥 짓는 소리

초저녁 별이 뜨고 있다

 

개떡

 

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것도 쌓인 눈을 비껴가며 돋아나는 초봄이

좋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좌

문득 개떡이 먹고 싶다

거무튀튀하고 못생긴 쑥개떡

어머니의 뭉그러진 지문이 남아 있는 쑥개떡

무슨 새참한 맛이 있겠냐마는 지금

먹고 싶은 것은 어릴 적의 그리움 아니냐

다북쑥 소담한 논두렁을 타고

뭉기적뭉기적 넘어오던 봄바람

까르르르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대던 예닐곱 살

마른버짐 번성한 까까머리 동무들 아니냐

논산시 채운면 새터마을

나싱개 자운영 벌금자리

무성하던 어린 날 들녘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향을 잊어버린 두 아이들에게

내 어린 날의 봄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싶다

"옛날에 저 둠벙 속에는 이무기가 한 마리 살았었는데……"

새로운 봄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아마도 내가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고려인을 위하여

 

중앙아시아에서는 스스로 고려인이라 부른다

그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없어져버렸다

원동遠東에서 기차에 실려

화물칸에 실려

뾰족한 송곳처럼 서서

분노를 세우고

공포를 세우고

도착지도 모른 채 뿌려진 곳

중앙아시아 눈이 부신 햇살 아래 펼쳐진

소금꽃 핀 광야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곳

아직도 그들이 산다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고 살던 그들이

이제는 번듯한 집에서 산다

땅굴 속에서도 죽지 않은 사람들은

장군도 되고 영웅도 되고

가수도 되고 첩이 되기도 했다

그때 핏덩이였던 사람들조차

이제 다 죽었다

원동을 그리며 죽었다

그들의 자식 자식의 자식들이 살아간다

동해물과 백두산을 모르고도 살아간다

그들의 조국은 카자흐스탄이고 우즈베키스탄이다

어쩌면 원동일지도 모른다

원동에 가면 조선이 보이고 한국이 보인다

제발 신파조로 그들을 대하지 마라

고려인은 눈물을 싫어한다

 

새참

 

"어이 오게나"

허리 굽은 강태수가

찬물에 밥을 말아 먹고 있다

 

몽롱한 나르꼬지 몇 포기

돌각밭에 기대어 흔들거린다

모다 힘이 든 게지

 

눈물 콧물 닦고

일찍 뜬 쪽달만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마경준 동무를 곡함

 

고려인 인명 자료를 뒤적이다 만난 사람

강제 이주의 열차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36일을 달려와

흰 눈밭에 빨간 피를 한 움큼 뱉어낸 사람

추웠다던 그 겨울

잘 먹어야 낫는 구멍 난 폐 덩어리를 품으며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 그러하거늘

크즐오르다 부르노예 정거장 부근에서

불행히 세상을 떠난 사람

질긴 한 목숨이었거늘

인명록에 기록할 만한 사유가 없어

잊혀져야 하는

1938년 6월 10일 레닌기치의 역사歷史

빠알간 개양귀비꽃 벌판에서

돌림병처럼 꽃대를 올리는

마경준

동무

 

김 가이의 봄

 

우슈토베의 농법은 진보하지 않는다

한때는 레닌의 이름을 붙였던 꼴호즈 언저리에

김해나 경주쯤이 본관이었을 김 가이가

씨를 덮는다 고집도 없이

밋밋한 사람처럼

땅을 헤집고 씨앗을 덮는다

동쪽의 끝에서 기차를 타고 왔을 흑역사를

덮고 또 덮어서 싹을 틔운다

갈무리된 순한 눈빛은 씨감자마냔 둥그랗다

남도 어디선가 마났을 법한 동무

김 가이의 덩이줄기가 궁금했지만

캐낼 것이 없는 마른 기침뿐

그는 우스토벤스키

진보하지 않는 저 땅으로 들어갈 것이다

쏟아져 있는 씨감자들이

촉수를 틔우고 있는

김 가이의

텃밭

 

해방 60주년의 점심 식사

 

흘레브

고려인들은 떡이라고 부르는 빵

옛날 봉놋방에 굴러다니던

목침 같다 해방 직후

소련군이 그랬다는 것처럼 사실

그것을 베고 잠을 자본 적도 있었다

깨어나서 뜯어먹어 본 적도 있었다

오늘 점심으로

고려인 통역 아줌마와 함께

흘레브를 먹는다

한민족의 근현대사를 먹는다

그녀는 떡을 먹는 것이고

나는 빵을 먹는다

그녀는 고기에 곁들여 먹고

나는 김치를 얹어서 먹고

그녀는 일용할 양식을 먹고

나는 대용식을 먹는다

바라보며 멋쩍게 웃는다

같은 피를 가졌어도

서로 신토불이다

 

톈산에서 만나는 동해 바다

 

요거는 동태국

요거는 네덜란드에서 온 수꿈부리야

배소배소의 땅에서는 나름 귀한 것들

먹어봐요

안 먹으면 죽어요

눈이 십 리는 들어간 내게

쥐어주는 숟가락

간간한 갯내가 슬그머니

빈속에 들어앉는다 혹여

캡슐 하나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다면

우리들의 저녁은

얼마나 서러운 바리때였을까

관음보살의 아우라로 빛나는

그대 뒤로

등 푸른 바다가 걸려 있고

짤랑짤랑 반짝이는

저 금초롱

물고기들

 

하여가

 

카자흐 사람들은 우리 보고

마늘 냄새가 난다 하고

우리는 도리어 노린내가 난다 하고

양파 냄새가 난다 하고

식재료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무뎌지는 법

이젠 양고기도 제법 먹는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별게 아니다

벌써 카자흐인과 한국인의 교배종이

땅 위에 등장한 지 오래

애비의 성을 따르든

에미의 성을 따르든

결국 카자흐인이 된다

된장국을 끓인다

알마티의 애호박과 타쉬겐트에서 실어온 감자

남해 바다 멸치에 고려인 된장을 넣어 끓인

애매모호한 국물 끓일수록

진해지는 한민족의 눈물처럼

몸속 깊숙이 된장의 냄새가 든다

 

차를 마시며

 

톈산의 눈 속 낡은 집이

차를 마신다 보성에서 채집한

곡우의 봄소식은 아직 쌀쌀하고 춥다

창밖에는 카자흐의 초원에서

몰려오는 눈발이 조용히 나리고

나리다가 지겨우면

창문에 이마를 대고 들여다본다

 

차를 마시며

간혹 순천만을 적시고

지리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찬바람 소리와

불순한 운주사

천불천탑의 꿈을 덮던

속 너른 눈발이 보일 듯도 하지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은 쌓인다

슬픔이 쌓이고

얼굴이 쌓인다

 

보성차가 끓는다

구증구포의 숨결이 부대끼며 끓는다

톈산 북로의 말 울음소리와

결기 푸른 대숲의 바람 소리를

교접하려는 단꿈이

혼자서

끓는다

 

고슴도치의 시

 

  현상이는 내가 늦게 얻은 자식 만으로 일곱 살이다 말도 징그럽게도 안 들을 나이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크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놈도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로봇 마니아다 로봇들을 가지고 진종일을 논다 한국 로봇을 가지고 러시아 말로 논다 혼자서 묻고 혼자서 대답하고 레이저 포를 쏘고 적의 부메랑에 맞아 쓰러진다 신기하여라 별난 효과음을 다 낸다 가끔은 저놈이 한국인인지 러시아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간다 부끄럽지만 나도 이제 고슴도치 조건 없이 예쁘다 바라느니

  틀을 만들지 말 것

 

꽃이 피다

 

아버지가 녹슨 라이터를 닦고 있다

몰골이 많이 상한 라이터

Zippo도 아니고

Zippon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논에서 김을 매다가 잃어버린 라이터

나락을 베다가 찾아낸 라이터

한때 반짝이던 광택의 시간도 지워지고

녹물이 번성한 Zippon의 깊은 수심

불이 붙지 않는 아버지를 아버지가 닦고 있다

 

어느

봄날

일리 강을 따라가는 묵은 길가에서 만나다

붉은 꽃 푸른 꽃

노랗고도 하얀 꽃

Zippon 꽃들

지천이다

 

맛있는 피클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다

물컹한 피클을 먹다 생각을 하다

투명하게 빛났을 스무 살

치렁한 갈색 머리

깊고도 푸른 눈빛을 빛내며

또박또박 깜사몰스카야거리를 활보했을

러시아의 여인

꼬뮤니스트 갈리나 니꼴라이나

뚱뚱해진 정년을 넘긴 후에야

우리 세탁소의 바지 프레스를 눌렀던 여인

무릎의 지친 흔적을 곱게 펴던

갈리나 니꼴라이나

내 딸애의 입속에 피클을 넣어주던

오 갈리나 니꼴라이나

그녀가 빚은 상큼한 향기

아삭한 피클을 먹을 수 없음에

다시 먹을 수 없음에

눈시울이 시큰하다

 

부룬다이 가는 길

 

알마티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다

기차를 타고 며칠을 달려도 지평선이 보인다

누군들 주눅이 들지 않겠는가

쥐코밥상만 한 한국의 땅덩이에 한숨이 나고

아등바등거리는 오늘의 삶에 눈물이 난다

죽어서도 묻힐 땅조차 없는 우리들

이승에 움집 하나도 내 것이 아닌 바에

죽어 한 줌 재로 날린들 무에 대수겠는가

친했던 고려인의 하관을 마치고 온 후로

부룬다이 모래 한 점 섞이지 않은

대지의 속살을 만지고 난 후로

문득 이곳에 뼈를 묻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업보이거늘

살고 죽는 일이 어디 내 소관일까 마는

 

그라프가 늙는다

 

그라프

몸도 크지만 대가리가 기형적으로 큰 개

처음 저놈을 만났을 때 눈빛이 형형했었다

그때가 벌써 다섯 살

털은 반지르르하고 골격은 단단하게 바라졌었다

뼈다귀를 삶아주면 밤새

우둑우둑 씹어 삼키는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깊은 잠에 들었다

저놈은 우리 집의 수난사를 잘 알고 있다

첫 번째 강도가 들던 날

나를 먼저 물어뜯었고

두 번째 강도가 들던 날은 달아났다

달아났다 아침에 들어왔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개답지 못한 개

그래도 저놈을 버리지 못했다

첫정이었다

우리의 식구였다 간혹

줄을 끊고 담을 넘어

발정이 난 암캐를 찾아갔고

다음 날이면 상처를 입고 들어와 며칠을 앓았다

그렇게 십수 년을 혼자서 살고 있다

개에게도 슬픔이 있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그라프

비 오는 날은 눈에 광기가 돋고

폐부에서 끌어올리는 소리로

밤새워 운다 깊은 상처가 있었으리라

노쇠한 구도자처럼 구부러진 그라프

그라프가 늙는다

내가 늙는다

 

부음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텃밭에 나간다

하는 일이라는 게

단순히 잡초를 뽑는다든지

고추 대에 북을 돋우는 것이 고작이지만

땡볕이라도 그 일이 즐겁다

식구들마저 촌놈의 근성으로 치부하는 눈치지만

옛말 그른 것이 어디 있는가

땅이 아니 흙은 거짓말을 않는다

뿌린 대로 나온다

정성대로 큰다

거기서 배우는 때늦은 사랑법

새로운 씨앗이라면 뭐든 뿌려보고 싶다

새로운 기쁨이 싹을 틔울 것 같다 오늘

그대의 소식을 듣는다

땅에 묻는다

꽃으로 피지 못한

그대는 어떤 꽃이었을까?

 

 

 

posted by 황영찬
2018. 1. 31. 12:04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06 제주마실

 

 

 

김주미 지음

2017, 시공사

 

대야도서관

SB120275

 

981.19902

김76ㅈ

 

제주에서 낭만을 즐길 시간

 

Slow Travel

 

이른 아침 마을 길목에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

지붕 너머로 풍겨오는 따뜻한 밥 냄새,

건넛집 피아노 학원의 서투른 소나타 연주 소리,

강아지와 산책하기 좋은 아담한 해변,

이름 모를 풀과 나무로 우거진 언덕…

 

치열하게 돌아보는 여행자들은 알 수 없는

작은 마을의 포근한 풍경과 청명한 여유를 담았습니다.

 

글, 사진 · 김주미

평범한 직장인이자 여행가. 때로는 토박이의 마음으로, 때로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국내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다. 멀리 떠날 수 없는 날에는 가까운 곳으로 숲크닉을 즐기러 간다. 블로그 '달달한 시에스타'를 통해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저서로는 <전주 여행 레시피>, <군산 여행 레시피>, <순천 여행 레시피>, <목포 여행 레시피>가 있다.

 

Contents

 

프롤로그

 

1

로맨틱한 분홍빛 수평선
함덕리HAM DEOK RI

함덕리 밖으로 한 걸음!


2

해 질 녘부터 동틀 때까지 즐기는 자유
평대리PYEONG DAE RI


3

가장 강렬한 빛을 품은 마을
종달리JONG DAL RI

종달리 밖으로 한 걸음!


4

보랏빛 히아신스를 닮은 마을
세화리와 하도리SE HWA RI & HA DO RI


세화리와 하도리 밖으로 한 걸음!


5

동백과 감귤 사이, 빨강과 노랑 사이, 겨울과 봄 사이
위미리WI MI RI

위미리 밖으로 한 걸음!


6

봄바람에 몸도 마음도 녹는
고산리와 모슬포GO SAN RI & MO SEUL PO

고산리와 모슬포 밖으로 한 걸음!


7

별처럼 빛나는 마을
애월읍AE WOL EUP

애월읍 밖으로 한 걸음!


제주 대중교통 이용법

 

 

모닥식탁

제주시 조천읍 함덕16길 14-1 064-784-1050

소소한 풍경

제주시 조천읍 신흥로 2 064-784-3707

당군

제주시 조천읍 함덕로26 010-4215-9600

카페 델문도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519-10 064-702-0007

함덕's 487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487 064-782-0487

만춘서점

제주시 조천읍 함덕로9 064-784-6137

느리게 가게

제주시 조천읍 함덕8길 2 070-7607-5872

청춘로그 게스트하우스

제주시 조천읍 함덕8길 5 010-8674-9272

벵디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1108 070-8899-7827

평대스낵

제주시 구좌읍 대수길7

카페 마니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112

아일랜드 조르바

제주시 구좌읍 대수길9 010-4787-2901

아서의 집

제주시 구좌읍 대수길11 064-782-2119

순희밥상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38 064-783-3257

종달리엔 심야식장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34 070-8849-1833

카페 동네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23 070-8900-6621

바다는 안 보여요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31-1 064-782-4518

소심한 책방

제주시 구좌읍 종달동길 29-6 070-8147-0848

오브젝트 늘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5길 32

동촌하우스

제주시 구좌읍 종달논길 61-4

별방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3354

벨롱장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500-63

일미도

제주시 구좌읍 면수길 52-1 064-784-1788

재연식당

제주시 구좌읍 세화1길 20-30 064-783-5481

카페 공작소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446 070-4548-0752

토끼썸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860 010-2012-5331

여름문구사

제주시 구좌읍 구좌로 77 010-2600-9447

그리고 세화

제주시 구좌읍 구좌로 149-9 010-3997-5172

사지말 전문 갤러리 마음빛그리미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해안도로 106 064-764-3127

시즌박스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154 070-7745-3577

한라앤탐밥상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중앙로300번길 8 064-764-6560

와랑와랑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중앙로300번길 28 070-4656-1761

서연의 집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해안로 86 064-764-7894

키아스마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255 070-4222-0102

라바북스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87 1층 010-4416-0444

위미캔들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41

고마담 게스트하우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중앙로300번길 24 010-8859-0559

아찌국밥

제주시 한경면 고산로34 064-772-3525

카페 머물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로40 010-3370-8121

다금바리스타

제주시 한경면 노을해안로 1166 010-4768-1999

가파도 용궁정식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로67번길 7 064-794-7089

제주감귤호떡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이삼로67 010-2438-2002

홍성방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항구로76 064-794-9555

앙카페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항구로75-1

활엽수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대서로20번길 44 010-9074-9589

방주교회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762번길 113 064-794-0611

카페 올리브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762번길 119 064-792-1988

애월초등학교 더럭 분교

제주시 애월읍 하가로195 064-799-0515

신의 한 모

제주시 애월읍 하귀14길 11-1 064-712-9642

카페 태희

제주시 애월읍 곽지3길 27 064-799-5533

살롱 드 라방

제주시 애월읍 하가로146-9 070-7797-3708

하와유제주

제주시 애월읍 하귀로 85 064-712-4686

 

제주시 애월읍 중용길 52-1 010-3725-4692

쌀다방

제주시 관덕로4길 7 010-8442-9160

제주김만복

제주시 북성로65 064-759-8582

 

 

 

posted by 황영찬
2018. 1. 19. 13:47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04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

 

 

 

김덕진 지음

2014, 푸른역사

 

우리가 몰랐던 17세기의 또 다른 역사

 

대기근은 한 번 발생했다 하면 수년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며 조선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 했다.

경제적 고충이나 사회적 불안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긴장이나 외교적 갈등을 격화시킬 정도로

고강도였으며 조선왕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과인도 기근 땐 적극적으로 복지에 힘썼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면, 세상사 이치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 때가 적지 않다. 기후사氣候史 연구가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기상 이변과 경제 상황, 당시 조정의 대응과 사회 안전망까지 날카롭게 주제를 파고든 저자의 시도가 돋보인다.

- 《조선일보》

 

17세기 '기후재앙' 조선 정치판 뒤흔들다

예송논쟁으로 대표되던 암흑의 17세기는 실은 '변화와 역동의 시기'였다. 다음 세기 '영 · 정조 르네상스'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7세기 대기근으로 빚어진 모순을 수습하면서 사회안전망이 새로이 갖춰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17세기의 생활상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사료를 곁들여 차분하게 써내려간 문체가 연방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 《경향신문》

 

17세기 '소빙기'… 조선 100만 명 굶어 죽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외계의 출격'이 백성의 삶을 뿌리 채 흔들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그간 학계에서 17세기는 '소외된 시대'였다. 임진왜란 · 병자호란을 거친 뒤 18세기 영 · 정조 시대를 맞이하는 과도기 정도로 자리매김됐다. 저자가 재발견한 17세기는 소빙하기의 정점에 이른 '혹한의 겨울'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18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연 변화의 싹이 움텄다는 것이다.

- 《중앙일보》

 

조선 최악의 위기 입체적 조명

조선 역사에서 18세기 르네상스 시기는 과도할 정도로 조명받았지만 17세기와 19세기는 공백 상태였다. 저자는 새로운 '화법'으로 17세기의 공백을 확실하게 메워주는 성과물을 내놓은 셈이다. '소빙기'라는 세계사적 현상으로 조선을 부각한 것이나, 정치사의 한계를 뛰어넘어 17세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는 것도 대단한 미덕이다.

-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주간 동아》

 

지은이 김덕진

전남대 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 ·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광주교육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조선 후기 경제사 연구에 매진해 왔다. 《조선 후기 지방재정과 잡역세》(1999), 《조선 후기 경제사 연구》(2002), 《연표로 보는 한국 역사》(2002), 《세상을 바꾼 기후》(2013),《서울 재정사》(2007, 공저),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2007, 공저) 등을 저술했다. 그 밖에도 호남 지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 《변혁기의 인물과 역사》(1996, 공저), 《남도문화》(1998, 공저), 《광주 · 전남의 역사》(2001, 공저), 《개화기 지방 사람들》(2006, 공저), 《소쇄원 사람들》(2007) 등을 저술했다. 수년 전부터는 기후의 역사를 탐구 중이다. 기후 변화가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미진척의 영역인 셈인데, 이 책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차례

 

● 머리말

● 프롤로그 17세기의 재발견

 

01 17세기 소빙기, 타당한가

17세기는 위기였는가
조선은 어떠했는가


02 대기근, 이전에는 없었는가

대기근, 조선을 뒤흔들다
조선, 대기근을 극복하다



03 현종 즉위와 어수선한 정국

세자 관례와 남인의 부상
김징 탄핵과 서인의 수세
궁지에 몰린 임금

 



04 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대륙의 변란 소문
일본의 왜관 이전 요구

 



05 하늘과 땅의 불길한 징조들

유성, 하늘을 가리다
지진, 전국을 강타하다



06 유례없는 자연재해

싹도 못 나게 하는 봄가물
연일 올리는 기우제
걷잡을 수 없는 여름 물난리
제주도를 강타한 초대형 태풍
닥치는 대로 갉아 먹는 병충



07 창궐하는 전염병과 가축병

활인서에 수용하라
병을 피해 떠나는 사람들
여제를 올려라
소를 죽이는 우역
도살 금지령



08 사상 최악의 '경신대기근'

뛰는 곡물가
기승을 부리는 사재기
초근목피와 인육을 먹다
길거리를 메운 기아자



09 2년간 1백만의 죽음들

수없이 늘어나는 병사자
시신이 가득한 금수강산
시신은 도성 밖으로



10 동요하는 민심

떠돌며 도둑질하는 사람들
고조되는 변란의 조짐
흉흉한 도성 민심



11 진휼을 서둘러라

끊임없이 방출되는 비축곡
발 디딜 틈 없는 진휼소
국물도 없어
진휼소를 닫지 마시오



12 쏟아지는 민생 정책

군포를 면제하라
토지세를 감면하라
부채를 탕감하라



13 바닥난 국고를 채워라

군사비의 감축
왕실비의 삭감
신분과 관직의 매매
청나라 쌀 수입론



14 꺼지지 않은 잔불

다시 꿈틀대는 정쟁
제2차 예송과 현종 사망



● 에필로그 대기근과 함께 한 17세기사

● 주석

● 참고문헌

● 찾아보기

 

 

 

 

 

 

 

런던의 얼어붙은 템스강. 당시 템스 강의 결빙은 1683년 12월에 시작해서 그림이 그려진 1684년 2월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17세기 소빙기, 타당한가 01

 

가뭄과 홍수를 유발하는 일기불순이 장기간 반복하는 현상, 지구의 평균 기온이 1~2도 내려가고 서늘한 여름과 한랭한 겨울이 잦아 이상 저온이 장기간 지속하는 현상이 지적된다. 이 가운데 소빙기 기후의 전형적인 특징은 이상 저온이다.

 

소빙기는 16~17세기 또는 17~18세기에 지구의 기온이 내려가 추운 날씨가 많고 이에 따라 빙하의 면적, 두께가 넓고 두꺼웠다는 사실을 부각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다. 빙기氷期가 아니라 소빙기라고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만 년 전에 시작해 10만 년 전에 끝났다는 빙하기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용어는 학명學名이 아니라 한 신문기자가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편의성 때문인지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다(이태진, <소빙기 천변재이와 조선왕조실록>, 《역사학보》 149, 1996, p. 203)

 

대기근, 이전에는 없었는가 02

 

조선시대에 기근은 마치 연례행사처럼 겨우 숨을 돌릴 만하면 어김없이 찾아왔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기근이 전국을 휩쓸고 갔다. 기근의 위력은 개인과 가정, 지역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했다.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없는 해가 없으니, 진휼하는 정사가 흉년에 대비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고 비의 혜택이 때를 잃었으나, 1백 리 안에 비 오고 볕나는 곳이 다르고, 1현縣 안에 마르고 습한 곳이 같지 않아서, 비록 가뭄 든 해를 만나더라도 반드시 익은 곡식이 있습니다(1415년 7월 6일, 이조 판서 박은)

 

역대 기근 현황을 수록한 《증보문헌비고》의 <상위고>. 기근의 발생 시기와 지역 그리고 요인과 규모가 잘 정리되어 있다.

 

현종 즉위와 어수선한 정국 03

 

현종대는 대기근이 연구되어야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현종 재위 기간 내내 대기근이 들어 국내 정치와 대외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제왕가의 예법이 사서인과는 다르나, 성인의 혈기는 보통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왕세자가 타고난 자질이 숙성하고 드높이나 나이로 말하면 겨우 10세인데, 어찌 아내를 둘 나이라고 하셨습니까? 신들도 대례大禮의 차례와 절목을 알고 잇으므로 왕세자의 화려한 합방合房의 기일이 올해가 아니라는 것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호名號가 일단 정해져 절차를 진행한다면 2, 3년을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1670년 2월 14일, 부제학 이민적).

 

백호 윤휴(1617~1680). 허적과 함께 대표적인 남인 학자. 효종 7년(1656)에 종부시 주부를 거쳐 지평 · 예빈시정에 임명되었으나 1차 예송으로 사퇴하고 학문에 몰두했다.

우암 송시열(1607~1689). 우암은 서인과 노론의 영수로 당시 정국과 사상계를 이끌었다.

《숙종 가례도감의궤》 중 <숙종 · 인현왕후 가례반차도>의 일부. 반차도란 일반적으로 관에서 행사를 치를 때 참석자들의 위계에 따라 정해진 자리를 표시한 그림을 이른다. 이 가례 반차도는 1681년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와의 가례 행사 기록인 《숙종 가례도감의궤》에 포함된 것이다.

18세기 집 짓는 풍경(<태평성시도>의 일부, 작자 미상, 18세기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목재를 다듬고 벽을 바르고 지붕에 기와를 올리는 등 조선의 집 짓는 여러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요동치는 동아시아 정세 04

 

평온할 것 같던 중국 정세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외교 사신이 이 소식을 전하자 조선은 그 향방에 이목을 집중했다.

 

차왜差倭가 돌아가지 않았는데 또 나온다는 보고가 있으니, 그 사이의 정상이 참으로 매우 괴이합니다. 어찌 그 협박으로 인하여 허락할 수 없는 청을 허락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의 왕래가 잇따라서 제공할 것이 다하였으니, 이것이 근심스럽습니다. 더구나 인심이 어수선하여 심지어는 임진년에 이미 경험한 변과 같다고 증거대고 있으며, 또 서울에서 유자가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고 잇습니다(1671년 10월 5일, 좌의정 정치화).

 

18세기 청나라 칙사 아극돈이 그린 <봉사도>의 부분. 칙사 영접. 임금(영조)이 모화관에서 청나라의 칙사를 영접하는 그림.(첫번째) 칙서 받기. 예를 갖춰 칙서를 받는 모습으로, 배경은 창덕궁 인정전이다.(두번째) 칙사 대접. 임금이 칙사를 대접하는 모습.(세번째)

조선통신사

동래 두모포 왜관. 일본인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사방에 담장이 둘러져 있고, 그 안에 일본인 거주 마을과 정박용 선창이 조성되어 있다.

동래 초량 왜관. 가운데 산 오른쪽은 동관이고 왼쪽은 서관이다. 동관은 왜관에 상주하는 일본인 거주공간이고, 서관은 일본에서 온 외교관 숙소다.

 

하늘과 땅의 불길한 징조들 05

 

혜성 출현은 괴변怪變이었다. 현종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고 신하의 조언을 구하는 교서를 내렸다. 그러면서 평소 근무하던 궁궐을 피하고, 더욱 조심스러운 자세로 허물을 반성해 조금이나마 하늘에 답하려고 노력했다.

 

근년에 혜성의 변이 있었을 때 다들 병화가 있을까 근심하였는데, 그때 천문을 잘 아는 자가 '아무 해에 반드시 기근과 역병이 있어서 주검이 쌓이는 참혹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과연 들어맞았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러 존망이 이미 판명되었으니, 전하께서 두렵게 여겨 덕을 닦고 허물을 살펴 분발하여 일으키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천심天心을 돌려서 대명大命을 잇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1671년 5월 9일, 판중추부사 정치화).

 

전라병사 유병익의 지시로 관청 뜰의 풀을 뽑고 있는 하멜 일행. 그림은 《하멜 표류기》 스티히터 판본에 있는 목판화 중 하나다.

조선시대 관상감의 측후관이 혜성과 객성의 변화를 관측해 기록한 《성변등록》의 일부(연세대 도서관 소장).

첫번째는 현종 5년 음력 11월 7일자. 두번째는 영조 35년 음력 12월자. 사자자리에 나타난 객성 기록.

장경각 동남쪽 마당에 있는 관천대 모습. 천문기구를 올려놓고 천체를 관측하던 곳이다.

 

유례없는 자연재해 06

 

참혹한 가뭄이 지금 20여 일에 이르러 앞날이 가망 없을 것 같아 답답할 따름입니다. 40년 동안 살면서 금년 같은 가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실로 국운이 걸려 있어 걱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 내가 즉위한 이래로 천재가 달마다 생기고 가뭄과 수혜가 서로 잇달아 없는 해가 없어 밤낮으로 걱정하며 편안할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가뭄이 더욱 참혹하여 봄부터 여름까지 들판이 모두 타버려서 밀과 보리를 수확할 수 없게 되었고 파종도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가엾은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아,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들에게 내린단 말인가.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고 가만히 생각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겠으니, 넓은 대궐이 무엇이 편안하겠으며 먹는 것이 무엇이 맛있겠는가(1670년 5월 2일, 현종).

 

약천 남구만(1629~1711). 현종 9년(1668)에 안변부사 · 전라도 관찰사가 되고, 1671년 함경도 관찰사가 되어 유학을 진흥시키고 변방수비를 다졌다.

제주도 조천관.

창궐하는 전염병과 가축병 07

 

전염병은 정확한 이름도 없이 염병染病, 여역, 역병疫病 등으로 불렸다. 원인도 모른 채 느닷없이 찾아온 전염병에게 사람들은 순식간에 온 마을을 빼앗겼다.

 

흉년의 여역癘疫은 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 모든 마을에 전염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어 불처럼 더욱 치열해지고 있으므로 편히 쉬게 될 날이 언제 있을지 막막합니다. 죽을 장만하는 것을 감독하는 자 중에 전염되어 앓는 자를 이루 다 셀 수 없고, 각 고을의 수령과 관속으로서 전염되어 앓는 자도 많습니다. 혹 관아 사람 전부가 전염되어 앓으면 그 관아 노비에게 관속의 입을 대행시키기도 합니다. 병을 앓는 백성을 위해 장막을 따로 설치하여 전염될 걱정을 방지하고 있습니다마는, 대엿새분의 마른 식량을 나누어주면 한꺼번에 죄다 먹고는 지팡이를 짚고 무릎으로 기어 들어와 입을 벌리고 먹여주기를 바라는데, 쫓아도 안되고 타일러도 안됩니다. 비참한 꼴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습니다(1671년 3월 23일, 전라 감사 오시수).

 

 의원의 진료를 묘사한 불암사 <감로탱>(1890). 피골이 상접한 사람이 두 의원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여단. 여단은 악귀를 쫓는 여제를 올리는 곳으로 관아의 북쪽에 있다.

처용의 춤(《정리의궤첩》 중 14면, 김홍도, 개인 소장). 처용무는 역신을 쫓는 상징이 되어 신라 때부터 조선 말까지 그 전통이 지속되었다.

남원부지도. 남원성을 중심으로 중앙에 관아, 북쪽에 향교와 여단, 서쪽에 사직단과 성황단이 있다.

밭을 가는 소를 묘사한 풍속화(<쌍겨리>의 일부,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역으로 소가 죽어 나가자, 농가에서 사람이 소 대신 밭을 가는 데 아홉 명의 힘으로 겨우 소 한 마리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사상 최악의 '경신대기근' 08

 

1670~1671년 대기근을 '경신대기근'이라고 한다. '경신대기근'은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대기근으로 최대 규모의 식량 고갈 상태를 가져왔다.

 

연산連山에 사는 사비私婢 순례順禮가 깊은 골짜기 속에서 살면서 그의 다섯 살 된 딸과 세 살 된 아들을 죽여서 먹었는데, 같은 마을 사람이 전하는 말을 듣고 가서 사실 여부를 물었더니 '아들과 딸이 병 때문에 죽었는데 큰 병을 앓고 굶주리던 중에 과연 삶아 먹었으나 죽여서 먹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합니다. 이른바 순례는 보기에 흉칙하고 참혹하여 얼굴이나 살갗, 머리털이 조금도 사람 모양이 없고 마치 미친 귀신같은 꼴이었다니 반드시 실성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성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실로 예전에 없던 일이고 범한 것이 매우 흉악하므로 잠시 엄히 가두어놓았습니다. 해당 부서를 시켜 처리하게 하소서(1671년 3월 21일, 충청 감사 이홍연).

 

소금 굽기(《천공개물》 중에서). 솥에 바닷물을 넣고 불을 피워 소금을 굽는다. 소금은 기근을 구제하는 데 식량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2년간 1백만의 죽음들 09

 

기근으로 오랫동안 먹지 못해 오염된 물로 배를 채우고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아 병균에 저항할 힘조차 없는 떠돌이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

 

서울 내외에 굶어 죽은 시체가 도로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혹은 부모 처자가 서로 베고 깔고 함께 죽은 경우도 있고, 혹은 어미는 이미 죽고 아이가 그 곁에서 엎드려 그 젖을 만지며 빨다가 곧이어 따라 죽기도 합니다. 울고불고 신음하는 소리에 지나가는 자도 흐느낍니다. 더욱이 전염병은 날로 치솟아 열풍이 불꽃을 일으키는 듯한 기세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드문데, 걸렸다 하면 곧 성 밖에서 죽습니다. 사방이 염병이라 온통 움막을 지너 끝없이 펼쳐지니, 참혹한 광경과 놀라운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울 밖에서 죽어가는 참상은 이미 전쟁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보리와 밀을 이미 그르쳤고 수수와 좁쌀도 다시 벌레가 먹었으니,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은 생기가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1671년 6월 4일, 대사헌 장선징).

 

전염병으로 죽은 엄마 곁에서 울부짖는 아이(조선총독부, 《대정 9년 호열자병 방역지》). 역병이 들면 많은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다.

 

동요하는 민심 10

 

먹을 것이 부족한 흉년에 산 사람이라도 살려면 입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전부터 사람들은 기근이 들면 입을 줄이기 위해 자녀를 팔거나 죽이고 거리에 버리곤 했다.

 

경술년과 신해년 두 해의 기근은 옛날을 통틀어 보아도 없었던 것인데다 신해년부터 올봄까지 전염병이 크게 번져, 외방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서로 떼를 지어 도적질을 함으로써 명화적이 인명을 살상하는 변고가 도처에서 발생하였다. 민간에 저축된 건 벌써 바닥이 나서 그들이 훔쳐가는 것이랬자 고작 됫박쌀에 불과하였는데, 길에서 장사치나 여행자를 만나면 뒤질세라 서로 달려들어 약탈을 하였다. 호남과 영남의 중간 지역이 특히 도적떼의 소굴로 변했고, 충청도 청주 등 고을에서는 보름 사이에 인명을 살상한 곳이 많을 때는 열네 군데나 되었다고 한다(1672년 3월 29일, 실록).

 

용주사 <감로탱>에 그려진 고아들(1790)

포도청 우포청사(서울시유형문화재 제37호, 서울 성북구 돈암동). 죄인의 심문이나 포도, 순라 등의 일을 맡았던 포도청엔 기근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더욱 붐볐다.

 

진휼을 서둘러라 11

 

진휼청은 기근 시 비축곡을 풀어 곡물을 대여하거나 판매할 뿐만 아니라 양곡과 죽을 제공했다. 따라서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는 방도는 진휼 정책의 관제탑이라 할 진휼청을 조기에 정상 가동하는 데서 시작된다.

 

엎드려 생각건대, 국가가 불행하여 액운이 든 시절을 만나 수재와 한재가 재앙이 되고 해마다 흉년이 져서 굶주려 사망하는 참상이 지난해에 이르러 극도에 달했습니다. 거기다 여역이 크게 돌아 쪽박을 들고 구걸하며 죽소粥所에 의지하여 얻어먹던 저 무리들은 진휼을 그친 후에 남김없이 죽었습니다. 기근 · 여역으로 죽은 토착 농민까지 온 나라를 합하여 계산하면 그 수가 거의 백만에 이르고, 심지어 한마음이 모두 죽은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비록 임진 · 계사년 전란의 참혹함이라도 거의 이보다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1672년 12월 5일, 헌납 윤경교).

 

김만기. 김장생의 후손으로 그의 딸이 숙종의 비가 되었다.

<경기도 감영>(작자 미상, 호암미술관 소장). 돈의문 밖에 위치한 경기 감영을 그린 관아도로, 17세기 기근 당시 각 지역의 감영에는 비축곡이 풍부할 것이라는 추측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기도 했다.

<신풍루 사미도>(《원행을묘정리의궤》, 서울대 규장각 소장). 1795년 정조 화성행차 당시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내려주는 사미의식을 묘사한 그림이다. 진휼 때 굶주린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보령 오천성에 남아 있는 진휼청 현판. 기근 시 기아자에게 양곡을 나눠 주거나 죽을 쒀주는 곳이다.

 

쏟아지는 민생 정책 12

 

기근으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이들을 살리는 길은 시급히 식량을 제공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세금을 경감해 그들이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부담을 줄여주어야 한다.

 

부세를 줄이고 기근을 구제하는 정치는 더욱 우선적으로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대신과 회계를 맡은 신하에게 오로지 책임을 맡겨, 각종 세금 및 경상 비용의 액수에 대해서 면제하거나 줄일 만한 것을 헤아려 계산하게 하고 또 각 도와 각 아문의 저축에 대해서 옮겨서 사용하거나 백성들에게 나누어줄 만한 것을 요량하게 하여, 전체의 계산을 맞추어두었다가 군읍에서 점검하여 아뢰기를 기다려 그 분수分數에 따라 들어다 쓰게 한다면, 일이 미리 확립되어서 백성들이 실제적인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1670년 7월 24일, 부제학 김만기).

 

서포 김만중(1637~1692). 문신이자, 소설가다.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의 동생이기도 하다.

경신기근에 목화와 삼 농사 역시 흉작이었다. 목화와 삼 농사가 흉작이면 농가의 면포와 마포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은 목화솜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짜는 여섯 가지 장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여인 방적하고>(김중근, 《기산풍속도첩》에서)이다.

 

바닥난 국고를 채워라 13

 

기근이 깊어 갈수록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한숨은 커져만 갔다. 정부 관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근이 참혹한데 불행히 나라의 저축이 바닥나서 진구할 길이 없다고 걱정만 늘어놨다.

 

아, 이해의 처참한 기근을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홍수, 가뭄, 바람, 서리의 재변이 팔도가 똑같아서 곡식이 여물지 않아 굶주려 죽은 사람이 길에 널렸다. 목숨을 잃는 재앙이 전쟁보다 심하여, 백만 목숨이 거의 모두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으니 실로 수백 년 아래에 없던 재난이었다. 대개 쌓아서 저축하는 것이 천하의 대명이거늘 국가가 평소에 비축한 것이 없이 갑자기 홍수와 가뭄을 만나 이 백성들이 굶어 죽는데도 구제하지 못하였으니, 아, 비통한 일이다(1670년 10월 15일, 현종).

 

상평통보. 조선 후기 법정 화폐로 대기근 시 재원조달 목적으로 주조되기 시작했다.

잠곡 김육(1580~1658). 17세기 후반 개혁 정치가로 대동법을 실시, 수차 사용, 화폐의 통용, 역법의 개선 등 구체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아래 그림은 그가 사용을 건의한 수차를 그린 풍속화의 일부다.

공명첩. 국가가 재원조달을 위해 판매한 직첩으로 받는 사람의 이름이 비어 있다고 하여 공명첩이라고 한다.

 

꺼지지 않은 잔불 14

 

1671년 겨울철 잦은 천변재이로 고통받던 백성들은 조선을 온통 괴담으로 물들였다. 괴담의 생성과 전파에는 배후 세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고 자연 발생적인 것 같다.

 

신이 엎드려 생각건대, 지난해에 추수가 없었고 올 여름에 보리가 없었으니 실로 국가가 기울어져 엎어질 운명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 겨울 우레가 일어나니 이어지는 해가 걱정입니다. 전하께서 이전의 옛일을 죽 살펴 보시건대 오늘날과 같으면서 나라가 멸망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까(1671년 11월 30일, 우의정 송시열).

 

<온양별궁 전도>(서울대 규장각 소장). 조선시대 왕들이 질병 치료차 자주 행차했던 온양별궁의 모습.

조선 제18대 임금 현종의 수결.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 있는 숭릉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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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12. 12:08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03 韓國의 古建築

 

양윤식, 이성구, 이은희

2002, 국립문화재연구소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2512

 

610.911

양6619한

 

韓國建築史硏究資料 第24號

 

[目次]

 

1. 연혁(沿革)

 

2. 입지(立地) 및 배치(配置)

 

3. 건축양식(建築樣式)

    1) 극락전(極樂殿)

    2) 삼성각(三聖閣)

    3) 산령각(山靈閣)

    4) 향각(香閣)

    5) 정문(正門)

    6) 요사채(동측당)

    7) 기타 석조물(其他 石造物)

 

4. 실측자료 해설(實測資料 解說)

    1) 형면(平面)

    2) 기단(基壇)과 초석(礎石)

    3) 기둥(柱)

    4) 창방(昌枋) 및 평방(平枋)

    5) 공포(栱包)

    6) 가구(架構)

    7) 처마

    8) 지붕

    9) 수장(修粧)

  10) 불단(佛壇) 및 닫집

  11) 현판(縣板) 및 주련(柱聯)

  12) 단청(丹靑)

 

사진(寫眞)

 

도면(圖面)

 

부록(附錄)

    1. 소장유물 해설(所藏遺物 解說)

    2. 관련기록(關聯記錄)

 

ABSTRACT

 

 

풍암대사 부도

명문와(강희(康熙) 29년(1690) 경오년)

삼성각 전면 중수비

산령각

향각 및 동측당 영역

대동여지도 대적사 부근(李祐炯, 『大東輿地圖』, 匡祐堂, 1990)

청도군 지도(서울大學校 奎章閣, 『朝鮮後期地方地圖』 慶尙道편 (上), 1999, 48)

韓國學文獻硏究所編, 韓國地理誌叢書 『邑誌 - 慶尙道①』, 亞細亞文化社, 1982, 564쪽

대적사 부근 지형도

대적사 사역 전경

극락전 앞마당

극락전 뒷마당

극락전 전경

전면 기단 및 계단

전면 기단 및 계단

여천 흥국사 대웅전 전면 계단

정혜사 대웅전 전면 계단

미황사 대웅전 초석

대적사 극락전 기단

범어사 대웅전 기단

대적사 극락전 용두

여천 흥국사 대웅전 용두

외부 전면 공포

내부 전면 공포

외부 후면 공포

내부 후면 공포

신륵사 극락보전 전면 공포

금산사 대장전 전면 공포

 

 

봉정사 화엄강당 측벽가구

용문사 대장전 측벽가구

내부 상부 가구 전경

내부 천장 구성

숭림사 보광전(평고대 상부 갈모산방)

삼성각 내부 전경

삼성각 전경(2001년 개축 후 모습)

삼성각 전경(2001년 개축 이전 모습)

삼성각 공포

삼성각 상부가구

산령각 내부 전경

산령각 전경

향각 전면 전경

향각 측면 및 후면 전경

향각 측벽가구

향각 전면 처마부

정문 및 입구 계단

정문 전경

정문 상부가구

동측당 전경

부도

중수비

내부 전경

전면 기단(좌측면)

전면 기단(우측면)

전면 기단 및 계단 전경

 

계단 우측 소맷돌

전면 우측 귀초석

전면 어칸 우측 평주초석

우측면 분심주초석

후면 좌측 귀초석

후면 어칸 좌측 평주초석

후면 우측 귀초석

용두(전면 어칸 좌측)

용두(전면 어칸 우측)

창방 및 평방 뺄목 상세

전면 평주 상부 결구 상세

상부 뺄목 상부 나비장 이음

단평방

외부 전면 공포

외부 후면 공포

내부 전면 공포

내부 후면 공포

전면 공포(양옆갈사갈소로)

후면 공포(외옆갈사갈소로)

전면 주상포 살미 상세

전면 주간포 살미 상세

전면 공포 외부(우측 귀공포)

후면 공포 외부(좌측 귀공포)

측벽 상부가구

내부 상부가구

종보 상세(측벽)

대들보 및 종보 상세(내부)

중대공

도리 뺄목

공포 뺄목

전면 처마부

후면 처마부

평고대 상부 갈모산방

평고대(후면)

용마루

내림마루

명문와

우측면 벽체 구성

후면 벽체 구성

전면 어칸 창호 상세(삼베목)

궁판

전면 창호

어칸 천장구성

협칸 천장구성

어칸 층급천장

협칸 층급천장

주불단

부불단(좌측)

불상대좌 및 좌대(석가모니불)

불상대좌 및 좌대(협시불)

닫집 전경

닫집 결구 상세

대량 머리초

대량 계풍 별화

닫집 내부 반자 용문양

어칸 후면 하단천장 반자

 

 

대적사 전경(2002년 촬영)

대적사 사역 전경

극락전 영역

전면 및 우측면 전경

후면 및 좌측면 전경

전면 전경

후면 전경

우측면 전경

전면 벽체 구성

후면 벽체 구성

우측면 벽체 구성

전면 귀공포

전면 귀공포

전면 주상포

전면 주간포

전면 주간포

후면 귀공포

후면 귀공포

후면 귀공포

후면 주상포

후면 주간포

전면 기단 전경

전면 기단 상세(계단 좌측)

전면 기단 상세(계단 우측)

계단 좌측 소맷돌

계단 우측 소맷돌

계단 상세

귀초석(전면 우측)

전면 평주 초석

전면 기둥

우측면 분심주

후면 귀기둥

후면 평주

전면 창호 구성

전면 처마부

후면 처마부

현판

창방 및 평방 뺄목

전면 기둥 상부 용두

용마루 기와

박공 게눈각

내림마루

극락전 내부 전경

측벽 가구 전경

내부 상부가구 전경

내부 전면 주상포

내부 전면 어칸 주간포

내부 전면 귀공포

내부 전면 협칸 주간포

내부 전면 협칸 주간포

내부 후면 귀공포

내부 후면 협칸 주간포

내부 후면 협칸 주간포

층급 천장 구성

어칸 층단벽체 및 하단천장

협칸 층단벽체 및 하단천장

어칸 상단천장 반자 및 용두 상세

어칸 하단천장 후면 반자 상세

중대공

종보

내부 상부 가구 전경

닫집 전경

닫집 결구 상세

측면 분심주 결구 상세

측벽 상부 가구

영산회상도(1989년 촬영)

아미타후불화(2002년 촬영)

지장보살도(『韓國의 佛畵』 21 桐華寺 本末寺篇(上), 176쪽 수록사진)

칠성불화

내목상벽 및 포벽화

측벽 비천상

석조 삼존불상

문수보살상

석가모니불상

보현보살상

 

 

posted by 황영찬

2018-002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이원근 지음

2017, 달

 

대야도서관

sb121336

 

981.102

이66ㅈ

 

우리가 가고 싶었던

우리나라 오지 마을

 

벨라루나 한뼘여행 시리즈 001

 

때로는 오붓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당신이 가보지 않았던 오지 마을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볼 수 있는 곳,

조금 더 힘을 내야 만날 수 있는 곳을 소개합니다.

 

구석구석 숨어 있는 곳으로 구불구불 걸어들어가야 하지만

그곳에선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피는 물려받는 것이다. 제 피의 온도는 스스로 높일 수 없는 것이다. 평생을 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 업의 전생에 뜨거운 피가 먼저 돌아야 하는 것이다. 그의 들끓는 피도 물려받은 것이다. 반세기 가까이 방방곡곡을 떠돈 아비의 바람 같은 삶을 그는 대물림한 것이다. 그 온도를 주체하지 못해 스무 살 청춘은 바람 앞에 섰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바람 안에 산다. 하여 그의 여행담은 가벼울 수 없다. 그에게 여행은 전생의 업이어서이다.

지난 십여 년, 그와 더불어 참 많이도 싸돌아다녔다. 무턱대고, 정처 없이, 그리고 아무데나 헤집고 다녀서 우리의 여행은 거칠었고, 하여 행복했다.먼길 돌아와 이제야 무용담 한 자락 내려놓는 네가 대견하다. 너와 한없이 싸돌아다녀서 좋았다. 내 여행의, 이제는 내 인생의 한자리를 차지한 인연아.

_손민호 (중앙일보 여행레저 기자)

 

이원근

1976년생. 여행사를 운영하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물세 살 때부터 20년째 한량처럼 차를 몰고 전국을 다닌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 좋은 곳이 꽤 많다며, 내가 가본 곳을 골골샅샅 한군데도 빠짐없이 자랑하고 싶다.

 

차례

 

여행을 시작하면서

 

강원도

01 양치재와 귤암리
02 비수구미마을
03 덕풍마을
04 안반덕마을과 피덕령
05 덕산기마을
06 한치마을
07 귀네미마을
08 제장마을과 연포마을
09 살둔마을
10 구룡령
11 고라데이마을
12 무건리
13 부곡
14 설피마을과 강선골마을
15 늡다리마을
16 모운동 벽화마을
17 대간령 마장터
18 조경동마을
19 연가리마을
20 새비령
21 안창죽마을
22 월정리
23 양구
24 구와우마을
25 횡계
26 무릉계곡
27 만항마을
28 칠랑이골
29 원대리

경상도

30 청량산과 봉성
31 대현마을
32 승부마을
33 대성골
34 대티골마을
35 여차마을
36 내원동과 월외마을
37 상림
38 예천 용궁
39 울릉도 나리분지

전라도

40 내장산 반월마을
41 흥부마을
42 계화도
43 조계산 굴목재
44 월등마을
45 도리포마을
46 산수유마을과 현천마을
47 영광 구수재

충청도

48 태안해변
49 독곶마을

경기도

50 풍도
51 국화도


소개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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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