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72,452total
  • 27today
  • 199yesterday

2015-056 萬人譜 21

 

高銀

2006,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9

 

811.6

고667만 21

 

창비전작시

 

스웨덴 Svenska Dagbladet가 뽑은 '2005 올해의 책'

 

옛일은 참혹했던 일까지도 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번 고은 선생의 『만인보』에 그려진 4 · 19도 그러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것은 지금의 눈에 비치는 당시의 일들이 어떤 순진성 또는 순수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신문팔이 소년의 용기가 계엄군을 돌아서게 하는 이야기는 그러한 순진성 또는 순수성을 드러내준다. 이것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 시인의 시심이 그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만인보』는 민족 또는 민중의 서사시이다. 서사시에는 영웅이 있게 마련이고, 이 시의 영웅은 민중이지만, 모든 것이 민중이데올로기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만인보』는 정치와 관련 없는 민중의 삶, 더 나아가 혁명의 적에게도 열려 있다. 여기에 실린 「어느 임종」은 죽음에 임하여, 독수리에게 자신의 주검을 내맡기며, 내생을 사절하는, 도인의 초탈을 읊고 있다. 『만인보』의 시심은 정치를 넘어, 이러한 초연함과 일치하고, 다시 한 없는 자비심과 일치한다. ● 김우창 문학평론가, 고려대 명예교수

 

『만인보』는 이번 세기 세계문학에서 가장 탁월한 기획 가운데 하나다. 그 시들은 더할나위 없이 감칠맛 나고, 사람들 삶의 세목으로 충만하다. ● 로버트 하스(Robert Hass)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서평

 

그는 무엇보다 시적 영감을 얻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적, 정신사적 영향력을 지닌 백과사전이다. 통찰력과 풍자와 온정을 갖고 이 차가운 불빛 속에서 인간적 자연의 하약함과 유혹을 드러내 보여준다. ● 얀 칼손(Jan Karlsson) Kristianstadsbladet 서평

 

윤회하는 세속의 그의 인물들은 무아의 경지에서 가장 강하다. 시들 속의 이야기는 마술퍼럼 마을과 밭과 개들, 그리고 새들과 인간들과 시간의 흐름을 내포한다. ● 스웨덴 국영라디오 'P1' 서평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4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 등을 출간했고, 전세계 10여개 언어로 50여권의 시집 · 시선집이 간행되어 큰 반향을 얻고 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로 세계시단이 주목하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방의 태양을 쏘라

조명암(趙鳴岩)

 

동방이 얼어붙었다

태양의 붉은 피가 얼어붙었다

 

젊은이여 이 고장 백성의 아들이여

손에 든 화살을 힘주어 쏘아보아라

태양의 가슴의 붉은 피를 쏘아 흘려라

백성이 광명에 굶주리고

강산의 줄기줄기 숨죽여 누웠으니

 

허물어진 옛터

님의 꽃잎 하나 둘

……

 

화살을 쏘라

동방의 태양을 뽑아내라

피 끓는 심장에 불을 붙여

님은 봉화 재 우에 높이 들고 서서

산과 들 곳곳에 이날의 레포를 아뢰어라

 

차례

 

시인의 말

 

어떤 임종 / 지족 / 춤 몇대 / 사색풍경(四色風景) / 어머니의 정수리 / 장충동 판잣집 대장 / 할머니의 젖 / 김주열 / 유대평 씨 / 고교생들 / 신나명 / 김정렬 / 김효덕의 아버지 / 김위술 / 고(故) 김상웅의 넋두리 / 구두닦이 / 사라호 해골 / 그 형제 / 꿈 / 이대우 / 용실이가 죽어서 왔어 / 의규군의 아버지 / 백암의 꿈 /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 / 손진흥 / 신호덕이 / 여순경 김숙자의 웅변 / 유정천리 / 이장 고재순 / 마산공고 2학년 이종모 / 그의 일생 / 노원자 / 옥봉이 / 임옥남 / 박정덕이 마누라 / 그들 9형제 / 닭 두 마리의 마당 / 청주여고 2학년 신순옥 / 대전고 / 유해성 / 김효성 / 춘천고교 설정일 / 교장 김석원 / 이 충혜왕 / 동래고 유수남 / 이의남 / 박우영 / 절도 8범 / 정추봉 / 거지 / 이상은 / 이영민 / 이정길 / 채섭 채철 형제 / 평생 침대 / 생선가게 오영감 / 최기태 / 발산리 새댁 / 김선인 / 허정 / 이문길 / 어느 어머니 / 진영숙 / 진영숙의 아버지 진명옥 / 이상은 / 강명희 / 임화수 / 임화수들 / 김순자 / 이옥비 / 4월 266일 / 김경진 / 김재우 / 야산 이달 / 박우택 / 박수만 / 국민대 김수현의 결혼 / 앉은뱅이 종석이 / 박종구 / 윤석길 / 태관동 / 씻김굿 가족 / 백원배 / 장충식 / 김치호 / 정대근 / 김효덕의 어머니 / 김영호 / 오성원 / 그 어머니 주경옥 여사 / 두 혼백 / 아버지의 염불 / 어머니 이계단 / 아우 이중하 / 4월계 / 김분임 / 김정돈 옹 / 김광렬 / 어머니 이춘란 / 옛 꽃다발 / 신형사 / 이종양 / 전성천 / 화물차 감옥 / 그녀의 밤 / 김두철 / 가루 / 김기선 / 김유만 / 이강욱 / 이강석 / 그 할아범 / 프란체스카 도너 / 박마리아 / 승마 출근 / 어떤 낚시질 / 한상철 / 윤광현 / 김준호 / 이성남 / 안국동 덕성여중 3학년짜리 / 김창호의 관 / 박점도 / 이채섭 / 심정구의 어머니 / 명남이 / 어떤 쌀도둑 / 남기춘 고모의 넋 / 김왈녕 / 심은준 / 박철수 / 김창필 / 최현철

 

어떤 임종

 

바람이 온다 나는 간다

 

몽골독수리 둘이

나를 본다

 

이내 내려앉으리라

 

내생 필요없다

 

사색풍경(四色風景)

 

차츰 근세 조선정치는 제 본색에 접어들어

동인

서인이라

그 지긋지긋한 임진 정유 전란중에도

동인

서인이라

 

그러다가 동인이 갈라져

남인

북인이라

 

서인이 갈라져

노론이라

소론이라

 

심지어 옷맵시도 갈라져

노론의 저고리 옷섶은

둥글둥글 접혔고

소론의 저고리는

모가 났더니라

어디 바깥뿐인가

 

노론의 집안 아녀자 치마는

굵은 주름

소론의 치마는

여러 주름이더니라

 

아니 노론 풍류는

천하절경을 바라볼 때도

으음

소론 풍류는

허허

 

이것이 근대 독립운동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썩은 동앗줄로 이어지는

기나긴 당질(党疾) 아니던가

 

오늘밤 나 또한 나의 노론이고 나의 소론 아닌가

 

유대평 씨

 

밥 한 숟갈에 쌀알 3백개

밥 열 숟갈에 쌀알 3천개라

 

한끼 스무 숟갈이면

밥알 천개라

 

그러니 하루 세 끼면 밥알 1만 8천개 아닌가

 

내 입이 너무 크다

내 밥통이 너무 크다

 

긴 장마철

문 처닫고 70일 금식으로 숨진 도사 유대평 씨

 

비 그쳤다

 

구두닦이

 

열다섯살에 세상에 나갔다

아니

처음부터 그에게는

세상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홀어머니 어디로 시집갔다

삼촌집에 있다가 나왔다

차라리 세상의 찬 바람이 좋았다

빈 몸 하나

 

처음 1년은

구두닦이 아저씨 밑에서

단골손님 구두를 벗겨왔다

그 다음

구두닦이 견습

 

구두닦이 4년째

이제 시장 입구 곰살궂게 자리잡았다

 

190년 3월 15일 시위대열에 끼여들었다

함께 달려가다

가슴팍이 뜨끔 그리고 쓰러졌다 숨졌다

 

신마산 구두닦이 23명이 돈을 내어

죽은 동료를 장사지냈다

 

오성원 여기 잠들다

 

백암의 꿈

 

상하이 임정 대통령

백암 박은식 각하께서는

어느날 밤

빗소리 들으시다 잠든 밤

금나라 태조를 꿈속에서 뵙고

큰절을 올리셨다우

 

이런 순 오랑캐 짓거리라니

 

그러나 금나라는 여진

여진은 발해

발해족은 마한족 이주자

 

엄연함이여

 

두루 드넓은 만주 연해주 일대가

서로 어우러진

내 더운 핏줄 갈래갈래들이라우

 

꿈 깨어나서

큰절 올려도 무방하다우

오직 그것뿐 오직 영세일계(永世一系)의 왕검 자손 어디 계시나

 

신호덕이

 

이른 봄 배고픈데 똥거름 냄새 푸짐하구나

보리밭머리

뚝새 냉이 벌금자리 캐는 호덕이

 

하늘 속 종달새가 도리어 귀기울여 내려다보는지 몰라

호덕이 저 혼자 노래하고

노래 듣누나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

 

유정천리

 

1960년 2월 15일

야당 대통령후보가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죽었다

야당 후보의 죽음 두번째였다

 

대폿집이 만원이었다

고교생의 빵집도 만원이었다

 

대구 경북사대부고 2학년 학생

오석수

이영길

유효길

 

그 세 녀석이 유행가 「유정천리(有情千里)」 곡에

조사(弔辭)를 지어 붙여

개사곡을 불렀다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뒤를 따라

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박사도 떠나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당선길은 몇 구비냐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온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

춘삼월 15일 조기선거 웬말이냐

천리만리 타국땅 박사 죽음 웬말이냐

설움 어린 신문 들고 백성들이 울고 있다

 

교내에 퍼져갔다

시내에 퍼져갔다

전국으로 퍼져갔다

 

세 녀석 무기정학

내무부장관 최인규

책상바닥 내려치며 가로되

천인공노할 놈들 왜 그놈들 정학처분으로 끝내는가 당장 퇴학시켜라

 

그의 일생

 

나의 아버지가 빨갱이였다 합니다

나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나의 삼촌이 빨갱이였다 합니다

나는 아닙니다

나의 매형이 빨갱이였다 합니다

나는 아닙니다

나는 아닙니다

 

세월이 가혹했습니다 까마귀떼가 활발했습니다

 

나는 억지춘향 빨갱이가 되었습니다 맞아죽었습니다

 

망우리 공동묘지 동쪽 비탈 덤불

그가 고요히 묻혀 있다

 

영영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 없다

 

이 충혜왕

 

허허 이 왕 좀 보소

고려 제28대 충혜왕

 

정작 왕권은

원나라 천자께서 가져갔으니

황음(荒淫) 삼매에 드셨던가

 

왕에게는

거기에 안성맞춤인

어의(御醫) 유광렬이 대령하였것다

 

마마께서

동녀(童女) 100명에게 은총을 베푸시오면

마마께서 100년을 계시옵니다

 

이 말 뒤

여진 산삼

향산 녹용

사산(四山) 흰 뱀을 강정보약을 대령하였것다

 

마마께서 밤마다 전국 동녀 100명을 불러들여

성은망극의 은총을 베푸셨것다

 

그 100명 뒤 코피 두 사발 쏟으셨것다

허허 아예 서기를 작파하시고

앉기를 작파하시고

누워버리셨것다

 

며칠 누워 계시다가 그만 승하하셨것다

 

왕이라 함이

나라는 지키는 것

나라를 키우는 것

나라 안의 굶주림을 줄이는 것

나라 안팎의 문물을 떨치는 것

이런 왕업 저쪽에서

나라의 청색 짓밟고 쭉 뻗어버리는 것인고

 

평생 침대

 

이유순

 

4월혁명 한 가녘에 나섰던 처녀 예쁘고 곧은 처녀

 

서울 을지로2가에서

경찰 곤봉 맞고

경찰 총탄 맞았다

그녀의 허리

그녀의 좌측 좌골이 거덜났다

 

일어날 수 없다

일어설 수 없다

누워서

밥 먹고

누워서 오줌 눈다 똥 싼다

 

그 침묵의 얼굴이

이따금 웃음을 보였다

 

평생 누워 있다

나무들은 평생 서 있고

나는 평생 누워 있다고

찾아온 친구에게

그녀가 말한 적이 있다

그뒤로

그런 말도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수천개의 하루가 오고 또 왔다

혁명도 곧 거덜나 검은 안경 육군소장 쿠데타의 시대가 왔다

누워서

바람에 휘날린 적 없는 머리칼 오똑한 코 말없는 입술 감은 눈 빈 이마

빈 가슴

고요하고 고요하다

 

임화수들

 

4월 18일 저녁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까지 나아갔다 자랑스럽다

고대생들이

대학으로 돌아가는 길 자랑스럽다

다음날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혁명의 전야를 장식했다

 

돌아가는 길

동대문 부근

종로5가

천일백화점 앞

 

쇠갈고리

곡괭이

쇠사슬 들을 휘둘렀다

때려눕혔다

자랑스럽던 고대생들 하나둘 널브러졌다

피가 튀었다

임화수는 임화수들

그 깡패들의 학살이 시작됐다

 

이 학살에 격분

다음날

모든 대학생과

고교생

중학생 들이 뛰쳐나왔다

이승만은 경무대를 떠나야 했다 혁명이 왔다

 

4월 18일의 학살로 4월 19일의 환희가 왔다

 

야산 이달

 

『주역』 통달

야산 이달 선생

괘 뽑아

대구 미두장에서

소 한 마릿값 10원일 때

허어 3천만원을 대번에 벌었다

1924년 봄

 

다음날

열두살 장남 건화가

용돈 좀 달라 했다

 

따귀를 쳤다

 

이놈아

이 돈이 내 돈인 줄 아느냐

이 돈은 조선 백성의 돈이다

 

차남도

삼남도 어림없었다

 

그 거액을 만주로 보냈다

자금책 임주동

연락책 이상춘 들이

잘도 전달

 

임주동은 대종교 나철의 의발(衣鉢)을 받은 사람이었다

 

1929년애도 이달 선생

만주로 독립운동자금 보냈다

광산 개발

광산 15개 지구

그리고 철원에 70가구 공동촌을 만들었다

 

『주역 철리에도 으뜸

명리에도 으뜸

그러나 어느 곳에도 그의 정처 없다

늘 바람 속이었다

늘 구름 속이었다

 

조선의 밤하늘 총총한 별빛 속이었다

1889년 태어나

198년 죽었다


그녀의 밤


남편은 혁명진압의 경찰기동대장

벌써 엿새째 집에 오지 않았다

장바구니 들고

동대문 신설동 카바레에 갔다


실내

어둠이 좋았다

어둠 속에서 블루스가 좋았다


제비사내 따라나섰다

바깥세상

어둠이 좋았다 사내 뒤가 좋았다


동일여관 구석방

한 여자의 육체가 살아난다

죽어도 좋다고

넋 놓으며

1960년 4월 어느 봄밤

한 여자가 뜨겁게 살아난다


한 여자의 음란한 혁명이었다


그 할아범


이승만의 독재가

혁명에 졌다

그의 쓰디쓴 입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85세였다


그 이승만과 동갑인 할아범


전남 장흥군

남녘 유채꽃 눈부신 득량만 개펄마을

옛날 농민혁명군 남은 병력

마지막

마지막 진지였던 울지리


그곳에서

굶주린 농민혁명군에게

밥을 해준 어머니의

살아남은 막내아들

관군에게

부모와 형들 다 도륙당하고

어찌어찌

살아남은 막내아들 오달복


그 할아범이 동갑내기 대통령의 신세를 한탄했다

곰방대 꺼진 담뱃불 다시 붙여 빨았다

가슴속 울적


허어

하야가 아니라 주어야 허는디

팍 죽어번져야 진짜배기 하야가 되는디

나도 그만 살고

어서 죽어버려야 쓰겄는디

끝을 왜 이리 질질 끌어


박마리아


부족을 못 견딘 여인

민족을 못 견딘 여인

이승만의 마누라 프란체스카가 그녀에게 너무 가까이 있었다


아 모든 근원은 무능하구나


승마 출근


1949년 대한민국 정부 기틀이 제법 잡혀갔다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그대로 대한민국 중앙청

농림부는 서울역 부근

내무부는 명동 입구

체신부는 정동 입구

차도 제자리 포도 제자리

각각 기틀이 잡혀갔다


국무총리는 중앙청


전국 공무원 집무시간 금주령을 내렸다

그럭저럭

정부 기틀이 잡혀갔다

베니어판 책상도 의자도 새로 맞췄다

국장 과장 명패도 맞춰다놓았다

공무원증도 발부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총독부 때 쓰던 것을

그대로 썼다


전국 공무원 집무시간 금주령을 내렸다

그러나 오정남도 오정군 오정면사무소 호적계

만년 서기 한판남은

호적등본 한자 한자 써서 발부해주고 한잔

호적초본 한자 한자 써서 발부해주고 한잔

낮 2시면

벌써 막걸리 곤드레로

천하태평 코를 골았다


그러나 중앙청은 쉬쉬쉬 금주령이 두려웠다


아침 8시 국무총리 이범석은

그가 만주벌판 독립군 그대로

자동차를 타지 않고

군마를 타고

독립군 영의정이라고

허리 꼿꼿 뽐내며 출근했다

그의 비서관 이개동도

어디서 구한

노새 한 마리 타고 충직하게 뒤따랐다

그런데 그 이개동이

남로당 지하당 첩자일 줄이야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55 수덕사

 

글 / 고영섭, 윤희상, 유마리●사진 / 박보하

2000, 대원사

 

 

시흥시립도서관

SA0026643

 

082

빛12ㄷ  240

 

빛깔있는 책들  240

 

고영섭(연혁)-------------------------------------------------------------------

시인, 경북 상주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 ·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불교학 전공). 현재 한국불학연구소 연구실장으로 동국대 · 한림대 · 강원대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석굴암 관세음을 기리는 노래』, 『원효, 한국 사상의 새벽』, 『몸이라는 화두』, 『새천년에 부르는 석굴암 관세음』 등이 있다.

 

윤희상(건축)-------------------------------------------------------------------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 ·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한국건축사 전공).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하였고, 목원대 · 남서울대 · 경원대 · 홍익대에서 한국건축사를 강의하였다. 현재 신흥대학 건축설계학과 조교수이며 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학술위원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9세기 목조 건축의 기법 연구」, 「한국 중세 목조 건축기법에 관한 연구」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한국 미술 문화의 이해』(공저)가 있다.

 

유마래(유물)-------------------------------------------------------------------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과 파리 4(소르본느)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동양미술사 전공, 문학박사). 파리 기메국립동양박물관에 파견되어 근무하였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학예연구관으로 재직중이다. 동국대 · 한성대 · 한남대 · 덕성여대 강사를 지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일본에 있는 한국 불화 조사-쿄토 · 나라 지방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서울 · 경기 지역 괘불 탱화의 고찰」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조선조의 탱화』, 『조선조 아미타불화의 연구』, 『고려시대 오백나한도의 연구』 등 다수가 있다.

 

박보하(사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네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3년 월간 『사진예술』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사진가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에는 『Korean Culture』로 한국일보 출판문화상 사진예술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국의 전통 문화를 주제로 한 사진들을 주로 촬영하고 있으며, 사진집으로 『산사의 미를 찾아서』가 있다.

 

|차례|

 

선의 으뜸 사찰, 수덕사

연혁

건축

유물

수덕사 가는 길

참고 문헌

 

선(禪)이란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들어 자기의 본래 모습을 찾는 방법이다. 조용히 앉아 좋고 나쁨을 생각하지 않고, 옳고 그름에 관계하지 않고, 있고 없음에 간섭하지 않아서 마음을 안락 자재한 경계에 거닐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건강한 이치를 사유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흩어지거나 어지럽게 하지 않는 것이 곧 선이다.

선은 붓다의 마음이요, 교는 붓다의 말씀이다. 붓다의 마음인 선은

 

자신의 마음을 가리켜 直指人心

자신의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며 見性成佛

문자를 세우지 않고 不立文字

문자 밖의 소식을 따로 전하는 敎外別傳

 

것을 지침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자기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 임을 일깨우는 수행법이다.

덕숭산 전경  명산과 고찰이 조화를 이루고 구릉과 들판이 어우러진 덕산. 그래서 사람들은 예부터 이곳을 호서의 소금강이라 일컬어 왔다.

서산 마애불  이 시대 불상들에는 온화한 미소와 넉넉한 기품이 담겨 있는데 수덕사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음바위와 관세음보살상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기원하는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허선사 영정  한국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로 선의 혁명가이자 대승의 실천자였다. 사진 : 유남해.

무이당 편액  경허선사의 친필로 '오직 하나뿐인 깨달음을 향해 매진하는 수행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만공선사의 시가 새겨진 거문고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이강 공이 만공선사에게 선사한 것이다.

일주문 편액  동방제일선원 수덕사의 격을 나타내고 있다. 글씨는 소전 손재영이 썼다.

일주문  이와 같은 관문들은 주불전에 이르는 길에서 인간의 모든 번뇌와 욕심, 그리고 악한 생각들을 정화시키는 상징이 된다.

사천왕상  수미산 중턱에 머물며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대천왕상이다.

황하정루  경내에서 행하는 제반 의식의 집전 장소로, 지하에는 박물관인 근역성보관이 있고 1층은 박물관 사무실로, 2층은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지옥 중생의 천도와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범종각  범종을 보관한 곳으로 1973년에 건축되었다.

법고각  사물 가운데 목어 · 운판 · 법고가 봉안되어 있다.

청련당과 백련당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보면 청련당(위)은 좌청룡에, 백련당(아래)은 우백호에 해당한다.

수덕사 대웅전  고려 후기 사찰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약 200여 년을 단위로 보수가 이루어졌다.

대웅전 평면도.

대웅전 초석(위)과 기단석(아래)  초석은 대부분 자연석 주초를 사용하였으나 대웅전 정면 열의 초석들은 주좌를 돋음하여 사용하였고, 기단석은 장대석을 곱게 다듬어 깐 다듬돌 바른층쌓기를 하였다.

대웅전 기둥과 창호  전통 목조 건축의 대표적 의장 기법인 배흘림 · 귀솟음 · 안쏠림 기법이 기둥에 사용되었으며, 창틀은 전체로 연귀맞춤하여 한 틀로 짜 맞추는 고식 구성을 보인다.

대웅전 측면 가구 및 공포  공포는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적절하게 전달해 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며, 역학적 원리에 의해 중점되는 부재들의 의장적 효과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부분이다.

대웅전 처마  처마는 벽체나 창호가 빗물이나 직사광선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것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대웅전 종단면도.

대웅전 측면  기하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은 한국 전통 목조 건축의 가구미를 가장 잘 나타낸다.


고려시대 건축의 구조 형식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대웅전 내부  실내에는 반자를 꾸미지 않고 서까래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을 꾸며 개방감을 돋우고 있다.

봉정사 극락전 종단면도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연대가 가장 앞선 이 건물은 통일신라시대 건축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종단면도  봉정사 극락전과 수덕사 대웅전의 과도기적 특징을 잘 간직하면서 건물의 외관적 아름다움에 충실한 고려시대 대표적 건축물이다.

수덕사 대웅전  통일신라와 조선시대의 건축 형식의 맥을 이어 주며 고려시대의 건축을 정립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능인선원 편액

정혜사 관음전

정혜사 남매탑

정혜사 산신각

소림초당  1920년대 만공선사가 지은 암자로 볏집 이엉을 얹은 굽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진여문  만공선사의 조실체였던 금선대 입구 암자로 통하는 문이다.

전월사 편액  만공선사가 말년을 보낸 전월사는 '허공의 둥근 달을 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월사 내 만공선사 좌선대

견성암 전경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방으로 1965년 벽초스님이 인도식 2층 석조 건물로 이전 · 건립하였다.

견성암 편액  만공선사 친필.

환희대 내 원통보전  환희대의 주법당으로 개화기 여류시인이었던 하엽스님의 열반처이다.

환희대 내 극락암  현재 비구니들이 기거하며 수도정진하고 있다.

석조관음보살입상

수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1673년(현종 14) 작. 세로 10.59미터, 가로 7.27미터, 삼베 바탕에 채색, 보물 제1263호.

대웅전 삼세불과 후불탱화 1908년 금호당, 약효, 목우 등의 금어 비구가 그렸다.

주악비천도(벽화 모사도)  장구를 치거나 피리를 불며 날고 있는 모습으로 우아하며 경쾌하여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근역성보관(수덕사박물관) 내부

대웅전 본존불  대웅전 중앙벽 앞에 봉안되어 있으며 1938년 만공선사가 남원 귀정사에서 옮겨 왔다고 전한다.

석조관음보살입상  1924년 만공선사가 발원하여 조성하였다. 높이 8미터.

수덕사 범종  높이 2.7미터, 둘레 4.5미터의 청동제 대종으로 전통 범종 주조 기법을 따라 조성하였다.

법고  축생들을 고통에서 벗어나 기쁨을 느끼게 하며 수행정진을 독려하는 법구이다.

사물 가운데 목어(위)와 운판(아래)

3층석탑  고려시대 석탑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하였다. 높이 4미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7층석탑  충청남도 지정문화재자료 181호로, 1930년 만공선사가 건립하였다.

만공탑  1947년 만공선사의 제자인 박중은선사에 의해 만들어진 현대식 부도이다. 상부의 둥근 돌은 만공선사의 사리를, 세 개의 팔각기둥은 불교의 삼보를, 팔각기단은 팔정도를 나타낸다.

흥주사 아미타후불탱화  18661년 작, 근역성보관 소장.

근역성보관 소장 불상  수덕사의 말사인 일락사 철불좌상(위)과 영탑사 금동비로자나삼존불상(아래)

문수사 금동아미타불 복장 유물 일괄  지금까지 조사된 복장 가운데 이른 시기에 속하는 귀한 일괄품으로, 발원문(가운데), 청색화문포(아래), 단수포의, 단온진언, 연화판다라니부적, 목합, 불경 등을 포함하고 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54 萬人譜 20 사람과 사람들

 

高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8

 

811.6

고67만  20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후백제 을구 / 임화 / K-8 미 공군기지 밖 / 미제 진달호 영감 / 안동환 / 광주 부자 현준호 / 탱자 / 나그네 / 현재 / 김상돈 / 장인 강문석 / 일곱살 남옥이 / 노천명 / 남한산 / 부산 갑부 몇사람 / 배성섭 상사 / 김낙중 / 해후 / 토월회 / 연숙자 / 강노식 대원 / 송길자 / 지덕 / 남두만 / 황성 옛터 / 현인 / 이난영 / 시골다방 미스 김 / 시베리아 언년이 / 만경강 / 남인수 / 김정구 / 의병 제대 허인호 / 초롱꽃 / 아버지와 딸 / 진주풍경 / 북간도 한곳 / 월천꾼 / 횡계 아이들 / 안설녀 / 원치수 / 별주부전 / 평양사람 이종기 / 성진이 / 9월의 섬 / 염동진 / 블루스 / 할렐루야 / 법랑 선사 / 적상산 관음암 / 유점순 / 밤 서울역 / 그 아이 / 지하련 / 박백 중위 / 남대문 도깨비시장 고사리 / 장작장수 / 옹점 / 그 노래들 / 의사 윤성주 / 세번째 출옥 / 도라무깡 술집 / 태껸 이보성 / 노천 사진사 / 삼강 주막 / 정운삼 / 대구 르네상스 / 이중섭 / 빈집 / 비담 / 박용구 / 요지경 / 그림 속의 아이들 / 구상 / 탄피종 / 따불 명순이 / 두 사람 / 진태 할아버지 / 명동 나정구 / 그 주검 / 이학구 / 홍사준 / 국민학교 운동장 / 두 젊은이 / 강물 / 좀도둑 유강철이 / 손두섭 영감 / 한강 빙판 강태공 / 박헌영 / 울릉도 벼랑 밑 / 하느님 / 지창수 / 방호산 / 왕십리 할멈 / 기억들 / 귀향죄인 / 뻥튀 할아버지 / 권진규 / 연인 / 한산선사 / 5학년 구만서 군 / 이쾌대 / 실존주의자 정찬형 / 이정이 가족 / 김달봉 / 공창렬 / 방순경 아내 / 윤영준 / 전봉건 / 최승희 / 변상희 옹 / 임창호 씨 제삿날 / 한라산 / 박두진 / 엄비 / 엄항섭의 눈물 / 누가 씨부렁댄다 / 변수자 / 김중업 / 홍문봉의 집 / 계일지와 오병탁 / 9연대장 김익렬 / 유해진 지사 / 이재명의 무덤 / 이해명 부인 / 휴전 직후 / 사의 찬미 / 억척 설옥순 / 헛소리 세상에서 / 이청일 / 늙은 기생 / 어머니의 날 / 좌달육 / 강경 갈숲 / 밀양 이른봄 / 김악 / DDT / 이재긍 중좌 / 감봉룡 대장 / 행주산성 / 금은 / 김명국 / 명동 / 실성한 사람

 

해설 만인의 얼굴, 그 민족사적 벽화/김병익

 

황성 옛터

 

1932년 서울 단성사 무대에 이애리수가 섰다

처연한

투명한

가을 처녀의 목소리

「황성 옛터」가 퍼졌다

 

눈물 가슴에 차고

등뒤에서 비가 퍼부었다

 

한 노래를 세번 불러야 했다

청중은 울고불고

울부짖었다

 

고향 개성

망한 고려 만월대를 노래한 것

 

일본인 코가 마사오의

「술은 눈물이냐 한숨이냐」가

이 노래의 표절이라는 소문이 났다

 

「황성 옛터」를 학생에게 가르친

대구의 한 교사는 파면당했다

 

작곡자 전수린과 코가는

서울 소공동에서 어린 시절 소꿉동무였다

 

늘 이애리수의 뒤 형사가 따라다녔다

늘 전수린의 집 형사가 찾아왔다

노래 하나에도 자유는 불가능했다

 

현인

 

동경 우에노 음악학교 성악도

징용 피해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에서

천진에서

바다 건너

고국을 그리워했다

 

샹송과 깐쪼네를 불렀다

 

위엄 있다

매혹 있다

 

해방 뒤 멋쟁이로 돌아왔다

「신라의 달밤」을 불렀다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불렀다

건달같이 「베사메무초」를 불렀다

 

전쟁이 일어났다

군가 1번

「전우야 잘 가거라」를 불렀다

피난가요 1번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렀다

 

휴전 뒤

자작 작사 작곡 「서울야곡」을 불렀다

자작 작곡 「추억의 꽃다발」을 불렀다

 

음절 파괴 대담했다

육중하고

기름진

바이브레이션

3음절이 7음절이 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휘감았다

'고요한'은

'고호호요호하한'이 되었다 건달 황홀!

 

이난영

 

긴 목 가는 허리

 

남편 김해송이 북에 납치되었다

납치된 자의 가족조차

반공세상에 어긋났다

남편이 경영하던

KPK쇼단도 해체당했다

 

어린 다섯 남매의 엄마 이난영

 

딸들

숙자 애자 그리고 조카 민자로

'김시스터즈'를 만들어

미8군 무대 환호성을 차지했다

'김보이즈' 영조 상호 태성으로

미8군 무대 박수갈채를 받았다

 

시스터즈

보이즈 미국으로 갔다

 

엄마 이난영 가지 않았다

「목포의 눈물」은 겨레붙이 모두의 노래였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임진왜란은 아직도 한으로 애끓이며 살아 있었다

 

남인수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을 부르며 자라났습니다

「울며 헤진 부산항」을 부르며 자라났습니다

'이 강산 낙화유수……'를 부르고

「서귀포 칠십리」를 부르며 자라났습니다

해방 뒤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람도 하나'를 불렀습니다

아 「가거라 삼팔선」을 부르며 분단을 알았습니다

 

임시수도 부산을 떠나며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부르며

휴전 뒤의 삶을 살았습니다

 

리라꽃도 피었습니다

쌍고동도 울었습니다

이 산유화도 피고 졌습니다

 

남인수

식민지 말기 일제 찬양의 노래도 불렀습니다

 

기생들 몰려들었습니다

폐결핵을 앓았습니다

본명 최문수

강씨 문중에 입적 강문수가 되었습니다

18세 이후

그는 반도의 목소리였습니다

해맑은 색깔

넓은 음역

그리고 간드러진 굽이굽이

그의 나비넥타이는 퍼덕여 곧장 나비로 날아올랐습니다

 

김정구

 

신문도 팔았다

달걀장수였다

달걀꾸러미 한 줄 떨어뜨려

길바닥 깨어진 달걀 보고 울기도 했다

 

원산 덕원목장

양치기 노릇도 했다

 

책방 점원으로 책을 꽂고 책을 팔았다

활동사진 음악사로

바이올린도 제법 연주했다

 

그런 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불렀다

세상이 그의 노래 따라불렀다

 

김정구의 무대

갈 수 없는 두만강

잊지 못할 두만강

그의 노래에서 언제까지나 흐르고 흘러갔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53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제레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2011, PHONO

 

 

시흥시군자도서관

SE039004

 

670.99

시897ㅊ

 

Tchaikovsky His Life and Music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표토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차이콥스키는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자곡가 중 한 명이다.

한 인간이자 음악가로서는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논쟁의 여지가 사라지지 않을 운명을 짊어진 듯하다.

그에 대해 주색이나 탐하는 감상주의나 '러시아의 정신나간 천재'라는

고정관념부터 떠올리는 편견이 만연해 있다. 실제의 그는 확고한 클래식 음악 전통에 맞는

훈련을 받았고 그 기법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변덕이나 극도로 예민한 성정은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는 극과 극을 오가는 삶을 살았고 수난이라는 수난은 거의 다 겼었다.

이 점은 그가 쓴 음악에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의 음악은

작곡가 본인과 동시대의 주변사람들의 말 만큼이나 몰입하게 되는

이 인물의 초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는 작곡가가 살던 문화적 ·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를 만나본다.

인류애, 분별력, 위트로 차고 넘치는 한 인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멀티미디어 전기에는 다음의 내용이 포함됩니다.

1. 차이콥스키의 작품 세계를 직접 개괄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CD 두 장.

2. 닉소스 웹사이트의 '차이콥스키의 생애와 음악' 콘텐츠 자유이용권

(CD에 담지 못한 많은 음악과 보너스 자료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제레미 시프먼 Jeremy Siepmann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작가, 음악가, 교사, 방송인이며, <피아노> 잡지의 편집자이다. 수많은 잡지(<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 <뮤지컬 타임스Musical Times>, <그라모폰Gramophone>, <BBC 뮤직 매거진BBC Music Magazine> 등)와 참고 도서(『그로브 음악과 음악가 사전 신판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에 논문과 평론과 인터뷰 기사를 썼으며, 그 중 일부는 단행본으로 재출간되었다. 널리 호평을 받는 쇼팽 전기, 피아노의 역사와 연혁에 관한 단행본 두 권, 브람스와 모차르트, 베토벤의 전기가 있다.

www.jeremysiepmann.com

 

김형수 Kim Hyong Soo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 삼십대에 들어서서야 작곡가와 작품의 가치를 밝히고 널리 알리는 일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대표적인 작곡가에 대한 평전과 연구서를 두루 번역하여 음악 서가를 넓히는 것이 1차 목표이고 궁극적으로는 공부를 거쳐 직접 책을 쓰는 것이 꿈이다.

 

CD1

1. 젬피라의 노래 2:17
Zemfira's Song
류바 카자놉스카야, 소프라노; 류바 오르페노바, 피아노
Ljuba Kazarnovskaya, soprano; Ljuba Orfenova, piano

2. 폭풍 Op.76 (마무리) 7:01
The Storm Op.76 (Conclusion)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토니 비트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ntoni Wit

3. 피아노 로만스 바단조 Op.5 6:12
Romance in F minor for piano, Op.5
옥사나 야블론스카야, 피아노
Oxana Yablonskaya, piano

4.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20:26
Romeo and Juliet (fantasy overture)
우크라이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테오도르 쿠카르
National Symphony Orchestra of Ukraine; Theodore Kuchar

5. 곧 잊어버리고 3:12
To Forget so Soon
류바 카자놉스카야, 소프라노; 류바 오르페노바, 피아노
Ljuba Kazarnovskaya, soprano; Ljuba Orfenova, piano

6. 현악사중주 1번 라장조 Op. 11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6:36 (W)
String Quartet No. 1 in D major, Op. 11 Movement 2: Andante cantabile
뉴 하이든 쿼텟, 부다페스트
New Haydn Quartet, Budapest

7. 교향곡 2번 다단조 Op. 17 '소러시아' 피날레: 모데라토 아사이-알레그로 비보 10:32 (W)
Symphony No. 2 in C minor, Op. 17 'Little Russian' Finale: Moderato assai-Allegro vivo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아드리안 리퍼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drian Leaper

8. 눈 아가씨, Op. 12 15번: 브루실라의 노래 1:32 (W)
The Snow Maiden Op.12 No. 15: Brusila's Song
엘레나 오콜리시예바, 메조 소프라노; 아카디 므셴킨, 테너; 모스크바 카펠라;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고르 골롭신
Elena Okolysheva, mezzo soprano; Arkady Mshenkin, tenor; Moscow Capella; Moscow Symphony Orchestra; Igor Golovchin

9. 피아노협주곡 1번 내림나 단조, Op. 23 피날레: 알레그로 콘 푸오코 7:10 (W)
Piano Concerto No. 1 in B flat minor, Op. 23 Finale: Allegro con fuoco
베른트 글렘저, 피아노;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토니 비트
Bernd Glemser, piano;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ntoni Wit

10. 교향곡 4번 바단조, Op. 36 (W)
3악장: 스케르초(피치카토 오스티나토): 알레그로-메노 모소-템포 I 5:55
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Movement 3: Scherzo (Pizzicato ostinato): Allegro-Meno mosso-Tempo I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아드리안 리퍼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drian Leaper

11.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33 (마무리) 2:11 (W)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for cello and orchestra, Op.33 (Conclusion)
마리아 클리겔, 첼로; 아일랜드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게르하르트 마르크손
Maria Kliegel, cello; National Symphony Orchestra of Ireland; Gerhard Markson

12. 예브게니 오네긴, Op. 24 2막 2장: 렌스키의 아리아 ‘어디로, 아 그대는 어디로 갔는가?’ 6:17
Eugene Onegin, Op.24 Act II, Scene 2: Lensky's aria 'Where o where have you gone?'
블라디미르 그리시코, 테너; 우크라이나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블라디미르 시렌코
Vladimir Grishko, tenor; Ukraine State Radio Symphony Orchestra; Vladimir Sirenko
TT 79:29

CD2

1.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Op. 35 피날레: 알레그로 비바치시모 10:46 (W)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Finale: Allegro Vivacissimo
일리야 칼러, 바이올린; 러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드미트리 야블론스키
Ilya Kaler, violin; Russian Philharmonic Orchestra; Dmitry Yablonsky

2. 성 요한 크리소스톰의 전례가, Op. 41 11번: 에피클레시스 2:58 (W)
Liturgy of St John Chrysostom, Op. 41 No. 11: Epiclesis
빅토르 오프디, 테너; 파블로 메줄린, 베이스; 키예프 체임버 합창단; 미콜라 호브디치
Viktor Ovdiy, tenor; Pavlo Mezhulin, bass; Kiev Chamber Choir; Mykola Hobdych

3. 이탈리아 카프리치오 Op. 45 (마무리) 4:06
Capriccio italien, Op. 45 (Conclusion)
우크라이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테오도르 쿠카르
National Symphony Orchestra of Ukraine; Theodore Kuchar

4. 1812년 (축전 서곡), Op. 49 (마무리) 6:34
1812 (festival overture), Op. 49 (Conclusion)
우크라이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테오도르 쿠카르
National Symphony Orchestra of Ukraine; Theodore Kuchar

5. 현을 위한 세레나데 다 장조, Op. 48 2악장: 발스 3:57 (W)
Serenade in C major for strings, Op. 48 Movement 2: Valse
빈 체임버 오케스트라; 필립 앙트르몽
Vienna Chamber Orchestra; Philippe Entremont

6. 피아노 삼중주 라단조, Op. 50 2악장: 테마 콘 바리아치오니(발췌) 6:54 (W)
Piano Trio in A minor, Op. 50 Movement 2: Tema con variazioni (Excerpts)
보프카 아쉬케나지, 피아노; 리처드 스탬퍼, 바이올린; 크리스틴 잭슨, 첼로
Vovka Ashkenazy, piano; Richard Stamper, violin; Christine Jackson, cello

7. 만프레드, Op. 58 2악장: 비바체 콘 스피리토 9:44 (W)
Manfred, Op. 58 Movement 2: Vivace con spirito
슬로바키아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온드레이 레너드
Slovak Radio Symphony Orchestra; Onderj Lenard

8. 교향곡 5번 마단조, Op. 64 13:40 (W)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콘 알쿠나 리센차
Symphony No. 5 in E minor, Op. 64
Movement 2: Andante cantabile, con alcuna licenza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토니 비트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ntoni Wit

9. 잠자는 숲속의 미녀, Op. 66 1막 제7번: 발스 4:45 (W)
The Sleeping Beauty, Op. 66 Act I, no. 7: Valse
슬로바키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치셰); 앤드류 모그렐리아
Slovak State Philharmonic Orchestra (Ko?ice); Andrew Mogrelia

10. 스페이드의 여왕, Op. 68 1막 3장: 헤르만의 아리아 ‘천상의 피조물이여, 저를 용서하소서’ 2:48
The Queen of Spades, Op. 68
Act I, Scene 3: Hermann's aria 'forgive me, heavenly creature'
블라디미르 그리시코, 테너; 우크라이나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블라디미르 시렌코
Vladimir Grishko, tenor; Ukraine State Radio Symphony Orchestra; Vladimir Sirenko

11. 호두까기 인형, Op. 71 2막 제14번 변주2번: ‘자두인형의 춤’ 2:16 (W)
The Nutcracker, Op. 71 Act II, No. 14, Variation 2: 'The Dance of the Sugar-Plum Fairy'
슬로바키아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온드레이 레너드
Slovak Radio Symphony Orchestra; Onderj Lenard

12. 교향곡 6번 나 단조, Op. 74 '비창‘ 피날레: 아다지오 라멘토소-안단테 10:51 (W)
Symphony No. 6 in B minor, Op. 74 'Pathetique'
Finale: Adagio lamentoso-Andante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토니 비트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ntoni Wit
TT 79:25
부록에 상세한 곡 해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W표시가 있는 작품은 웹사이트에서 전체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Contents

차례

 

서문

 

제1장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18401864

간주곡1 피아노 음악

 

제2장 다가오는 그의 시대 18655-1876

간주곡2 차이콥스키와 극음악

 

제3장 명성과 위기 1876-1877

간주곡3 관현악

 

제4장 성, 고통, 승화, 상실 1878-1884

간주곡4 실내악

 

제5장 새집에서 찾은 안정과 행복 1885-1888

간주곡5 가곡

 

제6장 국내와 해외에서 귀빈으로 살다 1888-1891

간주곡6 차이콥스키와 러시아적인 것

 

제7장 질병, 죽음, 신화 1891-1893

에필로그_ 차이콥스키와 후세

 

부록

19세기의 배경

러시아의 문화적 배경

책에 나오는 인물들

용어집

CD 수록곡 해설

연표

역자 후기

참고문헌

 

www.naxos.com/naxosbooks/tchaikovskylifeandmusic

웹사이트의 차이콥스키 전영공간 주소입니다.

처음 방문 시 로그인 창 아래의 here를 클릭해 메일을 등록하시면

로그인 후 아래의 내용을 자유로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등록 창에서 ISBN_ 97818437921195, 암호_ Nutcracker)

 

CD에 수록된 전곡

차이콥스키와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악

동시대의 문화예술, 정치 관련 사건과 나란히 보는 차이콥스키의 생애 연표

 

Chapter 1

Childhood, Boyhood, Youth 1840-1864

제1장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1840-1864

 

_

Interlude 1

Tchaikovsky at the Piano

간주곡 1

피아노 음악

 

그는 엄청나게 예민한 아이였다. 아주 사소한 일로도 당황하거나 기분이 상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도 그 아이에게는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체벌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차이콥스키의 아버지. 일랴 페트로비치 차이콥스키

차이콥스키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안드레예브나 차이콥스카야(결혼전 성은 아시에르)

보트킨스크 생가. 차이콥스키는 여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859년 당시 차이콥스키의 모습. 이해에 그는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법무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차이콥스키의 모습. 1863년

클린 시에 있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방. 그는 1885년부터 계속 이곳에서 여름을 보냈다.


Chapter 2

Coming of Age 1865-1876

제2장

다가오는 그의 시대 1865-1876


_

Interlude 2

Tchaikovsky in the Theatre

간주곡 2

차이콥스키와 극음악


그의 인기는 매일, 아니 매 시간 높아졌다. 그의 모임에 끼어든 이들은 모두 단번에 그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데지레 아르토 Desiree Artott. 벨기에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가수로 차이콥스키는 그녀와 급히 약혼했다.

밀리 알렉세예비치 빌라키레프 Mily Alexeyevich Balakirev('강력한 소수'의 실질적인 지도자). 강력한 그의 설득 덕분에 차이콥스키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관현악 작품을 자신이 쓴 최초의 걸작으로 남기게 된다.

한스 폰 뵐로 Hans von Bülow. 그는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초연을 맡았다.


Chapter 3

Celebrity and Crisis 1876-1877

제3장

명성과 위기 1876-1877


_

Interlude 3

Tchaikovsky and the Ochestra

간주곡 3

관현악


"숙취가 심한 채로 일어나 내 앞에 있는 아내를 보면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야. 그리고 절망에 빠져 들지."

나데즈다 폰 메크. 그녀는 다년간 차이콥스키를 물심 양면으로 지원해주었다.

차이콥스키가 아내 안토니나와 함께 있는 사진. 1877년.

아돌프 브로츠키. 그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했다.


Chapter 4

Sex, Suffering, Sublimation and Loss 1878-1884

제4장

성, 고통, 승화, 상실 1878-1884


-

Interlude 4

The Chamber Music

간주곡 4

실내악


<예브게니 오네긴>은 결코 타인을 위해 구상한 오페라가 아니다. 적어도 타인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이 오페라는 자기 자신을 위해 써야만 했던 작품이며 그도 작고 도중 이 곡이 설사 주요 레퍼토리에 못 들어간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단언했었다.

차이콥스키의 모습. 1879년


Chapter 5

House, Home and Happiness 1885-1888

제5장

새집에서 찾은 안정과 행복 1885-1888


_

Interlude 5

Tchaikovsky in Song

간주곡 5

가곡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창문을 열고 그 앞에 오랫동안 앉아서 놀랍도록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봄날 밤이 내는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는 거야."

프롤로프스케예 자택의 정원에서 쉬고 있는 차이콥스키.


Chapter 6

The New Statesman : At Home and Abroad 1888-1891

제6장

국내와 해외에서 귀빈으로 살다 1888-1891


_

Interlude 6

Tchaikovsky and Russianness

간주곡 6

차이콥스키와 러시아적인 것


"방문객들이 나를 포위했다. 기자들, 작곡가들, 오페라 대본 작가들, 무엇보다도 미국 전역에서 친필 서명을 해달라며 보낸 편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차이콥스키 형제들. 1890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아나톨리, 니콜라이, 이폴리트, 표트르, 모데스트

차이콥스키와 함께 있는 니콜라이 피그너와 메데아 피그너. 피그너 부부는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헤르만과 리자 역으로 분했다. 1890년.


Chapter 7

Morbidity, Mortality and Myth 1891-1893


_

제7장

질병, 죽음, 신화 1891-1893


그의 삶은 끝났다. 하지만 그 음악의 생명력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차이콥스키와 조카 블라디미르 레보비치 '밥' 다비도프. 1892년.

케임브리지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차이콥스키. 1893년.

임종을 맞은 차이콥스키. 1893년.

루빈슈타인 형제들. 니콜라이(왼쪽), 안톤(오른쪽).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52 로댕 - 신의 손을 지닌 인간


엘렌 피네 지음 / 이희재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36


082

시156ㅅ  31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31


현대의 미켈란젤로, 조각의 거장이란

화려한 말이 뒤따랐던 천재 조각가 로댕.

그가차가운 조각들 속에 인간의 고뇌와 열정, 애증을

그대로 담을 수 있었던 것은, 로댕 자신이 너무도

열정적이고 감성적이었기 때문이다. 제자 카미유 클로델과의

복잡하고도 열렬한 연애조차 뛰어난 천재성의

상징으로 용납될 만큼 극도의 추앙을 받았던 로댕은,

20세기 현대 조각의 창조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별의 순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이 남자들이

어떻게 여행을 시작했는가를 생생히 표현했으며,

각자의 가슴이 삶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기억을 짊어진 채 이제 유서 깊은

도시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버릴 각오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여섯 사내는 비슷한 두 형제를

제외하고는 생김새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스스로 그러한 결정을

내렸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고 있었다. 그것은 생에 매달리려 하는

육신의 고통을 이겨내고 영혼의 길을

따르는 삶이었다……."

"그는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세월의 무게게 지친 듯

무거운 걸음을 옮겨 놓는

노인을 만들어 냈다. ……

그는 열쇠를 든 사내를

깎아 냈다. 사내 안에는

아직 살아야 할 숱한 세월이

남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이 마지막

순간으로 응축되어 있었다.

…… 그는 정신을 집중하려는

듯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독을 맛보려는 듯이, 숙인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쥔 남자를 창조해

냈다. 그는 두 형제를 다듬어 냈다.

한 사람은 뒤를 돌아보고, 또 한

사람은 굳은 결심을 한 듯 아니면 다

체념하고 사형집행인에게 이미

목숨을 내놓은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막 생명이

빠져 나가는'

남자(귀스타브

주프루아)의 수수께끼

같은 몸짓을 만들어 냈다.

발걸음을 뗀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돌린다.

도시가

아니라.

눈물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동료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마지막으로

돌아보기

위해서……."


"이 손짓은 모든 불확실성, 아직

도래하지 않은 행복, 이제부터

헛되이 기다려야 할 슬픔, 어디에

살고 있을지 모르나 그가 언젠가

만나야 할 사람들, 미래와

그 이후의 모든 가능성. 늘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종착점에서

고요히

찾아오리라 믿었던

죽음 이후의 모든

가능성을 놓아 버리고

있다."


차례


제1장 타고난 예술가

제2장 배고픈 시절

제3장 걸작, 또 걸작

제4장 새로운 인간

제5장 명성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로댕 Rodin, les mains du genie


엘렌 피네 Helene Pinet

1976년부터 로댕 박물관 사진부 큐레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한 엘렌 피네는, <로댕의 사진들>을 비롯해 <로댕> <조각가> <그 시대의 사진들>과 같은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옮긴이 : 이희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였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6번 <마티스>와 30번 <고갱>이 있으며, 그의 <말하기의 다른 방법>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꿈과 상상의 여행> <추적> 등이 있다.


제1장

타고난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위대한 인물이지만 우리는 그들과 능히 겨룰 수 있다.' 너는 이렇게 말했지. 우리가 환상으로 충만한 별세계에 살고 있던 그 무렵에 말이야. 그때 우리는 구름 사이로 빠끔 공간이 열리면서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지던 햇무리를 볼 수 있었어. 너는 그때 잠시 숨을 멈추고는, 저 암흑을 꿰뚫고 스무 살 청년 앞에 어떤 운명이 가로놓여 있는지 알아내고 말겠다고 말했지."

조각가 레옹 푸르케

젊은 로댕(1862경, 아래), 위는 프랑수아 비아르가 그린 <4시의 살롱>.

에콜 데 보자르는 새로운 조류에 적대적이었다. 그곳에 입학하려면 여러 단계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일단 입학을 한 뒤에도 학생들은 학기마다 재입학을 허락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으며, 시험결과에 따라 자리를 배정받았다. 6개월마다 치르는 시험에 무난히 합격한 학생들도 시험성적에 따라 데생 시간에 앉는 자리가 달라졌다.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은 한 학기 내내 모델의 등만 보고 데생을 해야 했고, 시험에서 메달을 딴 사람만이 영구 지정석에 앉을 수 있었다. 위는 앙리 제르베가 그린 <그림 심사위원들>이다.

이 자화상은 로댕이 가게 창문을 깨뜨리면서 넘어진 1859년 이전에 그려졌음에 틀림없다. 이 사고로 남은 커다란 흉터를 로댕은 수염을 길러 감추었다, 로댕의 전기작가인 쥐디트 클라델은 이렇게 쓰고 있다. "수줍어하는 젊은이의 이목구비에서 무의식적인 자기확신이 얼마나 강하게 풍겨 나오고 있는가! 수염을 기르지 않은 어린아이에 가까운 얼굴, 곧은 콧날, 가슴속에 묻어 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결심을 드러내는 듯 반듯하게 다문 입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물선을 그리며 한곳으로 모인 그의 눈썹은 결코 느슨해지지 않을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을 보여 주고 있다.

위와 비슷한 확고함은 로댕이 1959년에 제작한 아버지의 흉상에도 나타난다. 흉상에는 로마의 원로원 의원을 연상시키는 범접키 어려운 위엄이 서려 있다.

로댕과 마리아(이 사진은 1859년경에 촬여한 것이다)는 무척 사이가 좋앗다. 그녀는 로댕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누구보다 로댕의 예술가적 자질을 확신했기 때문에 부모님 앞에서는 동생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엇다. 신앙심이 깊었던 누이는 자식으로서의 책무와 종교적 자세에 대해서도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성령회를 창시한 에마르 신부는 신출내기 수사가 수도원 뜨락의 광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로댕 앞에서 모델로 섰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에마르 신부도 흉상에 표현된 자신의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이마 위로 말려 올라간 머리 터럭이 꼭 악마의 뿔 같다고 불평했다. 로댕이 흉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제2장

배고픈 시절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서는 이 일 저 일 가릴 형편이 못 되었다. 나는 청동을 마무리했고 대리석과 돌을 다듬었으며 은(銀)세공장에서 장신구와 보석을 깎았다. 역작을 만드는 데 쏟아 부었어야 할 노력을 그렇게 엉뚱한 곳에다 분산시켜 허비한 시간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생활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오귀스트 로댕

 

 

1864년의 로댕.

 

알베르 에르네 카리에 벨뢰즈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거인족의 항아리>는 사실 로댕의 작품이다.

"나의 모델은 도시 여자의 우아함은 갖고 있지 않았지만 농부의 딸다운 활기 넘치는 육체와 단단한 살집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활발하고 솔직하며 강인한, 왠지 남성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여체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왕 말이 난 김에 한마디만 더 보태자면, 그녀는 언제라도 나에게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평생 그렇게 살았다." 로댕은 평생의 반려이며 모델인 로즈 뵈레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녀는 <꽃모자를 쓴 젊은 여인>(위)과 <미뇽>(아래)의 주인공으로 오인받아 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살롱전에서 처음으로 참가하면서 로댕은 카탈로그에 자신을 '바리예와 카리에 벨뢰즈의 제자'로 소개했다. 카리에 벨뢰즈는 싸구려 골동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로 무시당했지만 실은 재능 있는 도안가이며 조형가였다. 그는 대형 조각물의 값싼 아연 소형 복제품부터 정교한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기술혁신을 감행했다.

때때로 로댕은 한 장의 종이 위에 고대 조각을 본딴 데생, 중세 미술이나 미켈란젤로를 모사한 습작을 뒤죽박죽으로 그려 넣었다. 그의 작품에 깃들인 창조력의 열쇠를 여기서 일부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지들의 관계가 항상 뚜렷한 것은 아니다.

<청동의 시대>를 위해 포즈를 잡은 오귀스트 네트(위). 문제의 석고상(가운데). 훗날 프랑스 정부가 구입한 청동상(아래).

 

"(코가 주저앉은 남자.가 얼굴에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면, <청동의 시대>는 로댕이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육체를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세례 요한>(위)과 <걸어가는 남자>(가운데와 아래).

 

"어느 닐 아침 누군가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 모델이 되겠다고 아브루치에서 나를 찾아온 농보였다. …… 나는 그이를 보는 순간 확고한 믿음을 가졌던 예언가 세례 요한을 떠오렸다. 사내는 옷을 벗은 다음 회전대 위에 올라섰다. 지금까지 한 번도 포즈를 잡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두 발로 굳게 버티면서 머리를 들고 상체를 곧게 폈다. 컴퍼스처럼 벌어진 두 다리가 몸무게를 똑같이 받쳐 주고 있었다. 그 솔직담백한 자세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바로 걷는 사람의 모습이로군!' 나는 그이를 당장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오귀스트 로댕


제3장

걸작, 또 걸작


"한순간 관능에 따르는 고통을 보여 주는가 싶으면, 다음 순간 그는 관능을 찬양한다. 그는 삶의 고통, 죽음의 공포, 지옥 그 자체의 공포를 표현할 줄 알았다. <칼레의 시민>에서 그는 역사를 대변했고, <빅토르 위고>에서는 자연성의 요란한 분출을 표현했으며, <발자크>에서는 인간의 다면성을 보여 주었다."

미술평론가 옥타브 미르보

뫼동에 있는 로댕의 작업실. 릴케는 이렇게 썼다. "수천 개의 작품 사이를 거닐다 보면…… 창조주의 두 손에로 이끌리게 된다."

<지옥문>을 위한 최초의 구성. 문이 여덟 개의 패널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피렌체의 교회에서 본 로렌초 기베르티의 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로댕은 건축적 구성논리보다는 형태적 연결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지옥문>을 위한 습작(점토 습작).

<지옥문>을 위한 데생.


"밀착된 부분이 늘어날수록 두 몸뚱이는 유기적으로 가까운 화합물처럼 불 같은 충동으로 서로에게 파고들었다. 그들이 엮어 낸 새로운 결합은 아주 긴밀하게 녹아들면서 하나의 유기적 전체를 이루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릐 얼굴은 평범했다. 두툼한 코, 혈색이 안 좋은 눈꺼풀 밑으로 반짝거리는 눈동자, 길게 늘어뜨린 누런 구레나룻, 짧게 깎아서 뒤로 빗어 넘긴 머리카락, 둥그스름한 머리, 그 머리는 그가 전잖으면서도 만만치 않은 고집의 소유자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내가 상상하는 예수의 사도들에 딱 부합되는 인물이었다."

쥘과 에드몽 드 공쿠르 《일기》. 1878년 4월

<지옥문>의 석고상.


지옥문

"그는 자기 손보다 클까 말까 한 수백 점의 인물상에 인생의 모든 정념, 온갖 쾌락의 절정, 갖가지 악의 무거운 짐을 담아 냈다. 그는 온몸을 비벼대며 동물처럼 바짝 달라붙어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의 몸을 깨물면서 한 마리의 짐승처럼 뒤엉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육체들을 창조했다. 그 육체들은 얼굴처럼 귀를 기울이고, 무언가를 집어 던지려는 팔처럼, 육체의 사슬처럼, 화환과 덩굴손처럼 뻗어 나가고 있다. 고통의 뿌리로부터 악의 즙이 솟아오르는 인간들의 군상이 거기 있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옥문>의 왼쪽 상인방.

<세 망령>.

<추락하는 사람>.

<돌아온 탕아>.

<사랑의 도피>.

생각하는 사람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그는 행위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유하고 있다. 그의 온몸이 머리가 되었고 그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뇌가 되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브>(첫번째)의 모델이던 이탈리아 여인이 임신중이어서 로댕은 작품을 끝없이 수정해야 했다. 자식들을 집어삼키는 <우골리노>(두번째). <아담>(세번째)과 <이브>의 거대한 형상은 <지옥문>을 장식했다. <한때는 투구 제작자의 아리따운 아내였던 여인>(네번째).

1887년의 로댕.

 

"뛰어난 흉상은 모델의 도덕적, 육체적 현실을 드러내고 내밀한 생각을 표현하며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장점과 약점을 파고든다. 모든 가면이 벗겨진다. …… 예술가는 순전히 감수성에만 의존해 계몽가, 예언가가 된다."

오귀스트 로댕

빅토르 위고의 동상(위)과 에칭(아래)이다.

 

"모델 앞에서 나는 마치 초상화를 그릴 때와 같이, 진실을 그대로 옮기고자 하는 욕망에 휩싸여 작업한다. 나는 자연을 수정하지 않으며 나 자신을 모델 안에 집어 넣는다. 모델이 나를 이끈다. 나는 오직 모델을 통해서만 작업할 수 있다. 인간의 형상은 나를 강화시키고 나에게 자양분을 준다."

오귀스트 로댕

5년간 카미유 클로델과 한 작업실에서 일하면서 로댕은 갖가지 문제에 조언을 주었으며 그녀를 모델로 쓰기도 했다.

<칼레의 시민>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손이 붙어 있는 카미유의 석고 흉상(위). <사색>(아래)에 대해 릴케는 "돌의 무거운 잠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는 삶을 바라보는 초월적인 시선"이라 평했다.

욕망과 순결이 함께하는 포옹

"남자는 고개를 숙였고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입은 두 존재의 내밀한 합일을 봉인하는 입맞춤 속에서 만난다. 입술과 입술의 만남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이 입맞춤은, 비범한 예술의 마법을 통해, 그 사색적인 표현에서뿐 아니라 목덜미에서 발바닥까지 두 사람의 온몸을 똑같이 관통하는 전율 속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모든 뼈와 근육과 신경과 살이 구부러지고 펼쳐지고 부풀어오르면서 숭고하게 다가오는, 남자의 등을 이루는 모든 섬유질 속에서, 연인의 다리를 부비기 위해 움직이려는 듯 서서히 뒤틀리는 남자의 다리 속에서, 열정과 교태에 휩쓸려 자신의 존재 전부를 들어올리고 있는 바닥에 닿을락말락 한 여자의 발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귀스타브 주프루아

카미유의 재능을 파악한 로댕은 이렇게 단언했다. "나는 그녀에게 황금밭을 알려 주었지만 그녀가 발견한 황금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다." <오로라>(위)는 카미유를 모델로 해 만들어졌다. 작업중인 카미유(아래).

"여자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잇다. 너그러움, 자부심, 참을성을 담은 표정으로 여자는 남자를 내려다본다. 남자는 꽃밭에 파묻힌 듯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그 역시 무릎을 꿇고 있지만 여자보다 훨씬 더 밑으로 돌을 파고들엇다. 그의 손은 쓸모 없는 공허한 물건처럼 뒤로 뻗어 있다. …… 이 작품 안에는 어딘지 연옥의 분위기가 살아 있다. 천국은 가깝지만 아직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옥 또한 가까워 아직은 완전히 잊혀지지 않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영원한 우상>에 대해

옷을 입지 않은 상태의 '장 데르'.

14세기의 기록은 이렇게 전한다. 1347년 칼레시를 포위한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는, 칼레시의 중요 인사 여섯 명이 모자와 신발을 신지 않고 목에 밧줄을 두른 채 칼레시와 성곽의 열쇠를 들고 시를 떠난다는 조건으로 시민들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로댕이 제시한 최초의 소형 모형은 군상으로 제작되었다.

칼레의 시민

'피에르 당드리외'의 누드 점토모형을 다듬고 있는 로댕(위). 옷을 입힌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의 점토 모형(아래). 로댕은 자주 편지를 띄워 칼레시장에게 작업의 진척사항을 알렸다. "누드상, 다시말해서 의상 아래 부분은 모두 끝냈습니다. 비록 옷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란 걸 아마 나중에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제4장

새로운 인간


"만일 진실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면 후세인들은 나의 <발자크>를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영원한 것이므로, 나는 나의 작품이 받아들여지리라 장담할 수 있다. 사람들이 비웃는 이 작품, 마음먹은 대로 부수기가 여의치 않으니까 기를 쓰고 조롱하는 이 작품은, 나의 필생의 역작이며 미학적 동력이다. 이것을 창조한 날부터 나는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오귀스트 로댕

살롱전에서 거부당한 발자크 상이 뫼동의 정원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발자크의 두 모습.

1914년 2월의 로댕.


"여러 해 동안 로댕은 이 인물에게 온통 빠져들었다. 그는 발자크의 고향을 방문해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투렌의 풍광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그는 발자크의 편지를 읽었으며 발자크의 초상화를 연구했다. 그리고 발자크의 작품을 꾸준히 여러 번 반복해 읽어 나갔다. ……발자크의 정신에서 자극을 얻은 로댕은 차츰 작가의 외관을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형태에서 형태가 나오듯이 로댕의 구상은 서서히 무르익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발자크를 보았다. 그는 힘차게 앞으로 내딛는 당당한 체구의 소유자로서 육중한 몸집이 늘어진 외투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굵은 목덜미까지 내려왔으며 풍성한 머리털 속에서 자신의 창조적 열정으로 끓어오르는 얼굴. 자신의 구상에 매혹된 얼굴이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얼굴은 근본적인 힘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생산적인 힘으로 넘쳐흐르는 발자크, 시대를 창조하고 숱한 운명을 쏟아 낸 사람의 얼굴이었다. …… 그것은 강한 집중력과 비장감이 엄습한 순간에 로댕이 본 발자크의 모습이었다. 로댕은 그 모습을 충실하게 살려 나갔다. 로댕의 구상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발자크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자세로 서 있게 될 것이다. 두 발은 약간 벌린채 팔짱을 끼고 있다. 그는 허리띠가 달려 있지 않은, 바닥까지 내려오는 긴 가운을 입게 될 것이다."

발자크를 옹호하는 진영에는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위), 화가 클로드 모네 같은 쟁쟁한 작가와 예술가가 많이 가담하고 있었다. 모네는 로댕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실컷들 떠들라고 하십시오. 당신은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았으니까요." 논쟁은 예술의 영역을 넘어섰고 일반 대중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1898년 살롱전에 출품된 <발자크>(아래)는 비대한 괴물, 형체 없는 뚱뚱보, 거대한 태아(胎兒)라는 혹평을 받았다.

 

카미유 클로델(위)과 결별한 다음 로댕은 1896년부터 로즈 뵈레(가운데)와 뫼동의 빌라데브릴랑(아래)에서 살았다. 그는 철거되던 이시성(城)에서 구한 건물 정면을 이 집에 덧붙였고, 1900년 회고전을 가진 후에는 알마 전시관에 있던 별채를 옮겨 놓았다. 

언제나 남편을 '로댕 선생님'이라고 칭했던 로즈 뵈레는 로댕이 퍼부어대는 온갖 모욕과 바람기를 견뎌 냈다. 그러나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을 다른 여인과 공유하기를 거부했고 그에게 의존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 일어서고자 했으며 자신의 예술적 성공은 어느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재능 덕분이라고 굳게 믿었다. 로댕은 카미유가 1888년경에 만든 자신의 흉상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아주 높은 받침대 위에서 뫼동의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칼레의 시민>. 로댕은 이렇게 높은 받침대를 원했다.

뮤즈와 함께 있는 작가의 모습을 그린 <빅토르 위고>의 완성품은 1897년 살롱전에 전시되었다. 1906년, 로댕은 <비극의 뮤즈>와 <사색>을 여기서 분리해 두 형상을 별개 작품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제5장

명성

 

"나의 '조각'을 보여 주고 내가 이해하는 조각의 내용을 드러냄으로써 나는 예술에 무언가를 기여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고 로댕은 말했다. <발자크>로 물의를 빚고 카미유 클로델과 갈라선 뒤 로댕의 관심사는 달라졌다. 그는 마침내 경제적 안정을 이루었으며 그의 작품세계도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로댕은 남은 힘을 자신의 모든 조각과 소장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세우는데 쏟아 부었다.

몇 안 되는 컬러 사진(위, 1907). <대성당>(아래).

 

"명성이 찾아들기 전 로댕은 외로웠다. 그리고 그가 일구어 낸 명성은 그를 전보다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명성이란, 새로운 이름의 주변부에 응축된 오해의 총화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댕은 캄보디아의 전통무용(네번째는 마르세유에서 열린 식민지 박람회에 참석한 캄보디아 왕을 수행한 한 무희를 스케치하는 로댕)과 러시아 발레단의 율동미(첫번째와 두번째는 니진스키의 두 모습으로, 온몸이 잠재된 에너지를 분출해 내려는 듯 용수철마냥 표현되어 있다)에 빠져들었다. 미국의 미술수집가 케이트 심슨(세번째)과 그에게 강한 인상을 준 일본 여배우 하나코(다섯번째)의 흉상(여섯번째)도 만들었다.

로댕과 <신의 손>.

"누드는 진정한 나의 종교이다"

1900년경부터 로댕은 여성의 누드 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 남아 있는 이 도발적인 그림들-에로틱한 누드와 레스비언 커플을 포함해-은 모두 1,500점이 넘는다. 상징주의 시인이며 비평가인 아서 사이먼스는 이렇게 썼다. " 이 놀라운 누드화에서 우리는 드가를 능가하는 단순성으로 묘사되고 있는 여성을 발견한다. 동물로서의 여성, 어떤 면에서는 백치로서의 여성이다. 일본인이라도 이처럼 빛나는 휘갈김을 통해 그림을 단순화시키지 못했다. …… 이것들은 조각가의 데생, 조각가의 노트이며, 따라서 조각가의 눈에 비친 형태를 화가보다 더욱 간명하고 더욱 담백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것들은 화가의 데생과 다른 언어로 발언하며, 그 과정에서 선에서 빛을 포착하는 지점들, 윤곽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곡선을 찾아 나간다. 화가의 데생을 볼 때 우리는 색을 본다. 그러나 조각가의 압축된 이 노트에서 우리는 마치 대리석을 손끝에 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 눈이 본 것을 나의 손은 어느 만큼 느끼는가?"

"작업에 임할 때 나는 사람의 육체에 관한 완벽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육체의 구석구석에 관한 깊은 '느낌'을 갖고 잇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나요? 말하자면 나는 인간의 육체가 그리는 선을 육화시켜야 하는 겁니다. 그 선들은 나의 본능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나 자신의 일부가 되어야 하지요. 나는 손끝에서 그것들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눈에서 나의 손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요. 보세요! 이 데생은 무엇입니까? 이 양감을 표현하면서 나는 모델로부터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어요. 왜냐고요? 어느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모델을 종이에 표현하는 기술문제가 모델에 대한 나의 감정, 눈으로 손으로 전달되는 느낌의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눈을 떨구는 순간 그 흐름은 멈추어 버립니다. 나의 데생이 나 자신을 검증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지요. …… 나의 목표는, 내 눈이 본 것을 나의 손은 어느만큼 느끼는가를 검증하는 데 있습니다."

오귀스트 로댕

앤서니 루도비치의 《오귀스트 로댕의 개인적 추억》(1926)에서

 

릴케는 비롱관에서 로댕에게 받은 책상을 고맙게 여겼다. 그것은 "나의 원고를 마을처럼 펼쳐 놓을 수 있는 드넓고 비옥한 벌판이 될 것이다."

로댕은 이집트 청동상, 작은 조각, 페르시아 소품, 그리스-로마의 흉상과 토르소를 수집했다. 이것들은 헛간, 뜰, 작업실, 식탁까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뫼동의 이시성(城) 앞에 있는 로댕의 무덤을 <생각하는 사람>이 굽어보고 있다. 로댕은 로즈 뵈레 옆에 묻혔다. 장례식에는 로댕의 친구들과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51 萬人譜 19 사람과 사람들


高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7



811.6

고67만  19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어느 부부 / 연안 차씨 / 유해진 경위 / 토지국민학교 마당 / 오라리 / 청계천 3가 / 권애라 / 남산 언저리 / 송호식 모자 / 사명 / 도깨비 길달 / 고무신 한짝 / 토말 쌍봉이 / 김성주 1 / 김성주 2 / 고려 팔관회 / 남강전투 / 김지웅 / 남은 동생 / 천동이 / 김진열 / 현종 이후 / 남일병 / 방공호 / 상복이 / 유철 / 주명철 대위 / 김개남 / 밤행군 / 오대산 / 이만종이 / 그 무명 철학자 / 양진봉 하사 / 유관순 / 정일권 / 강성병 / 최익한 / 공서방 / 생일 / 위장결혼식 / 전태욱 / 박관혁 / 아낙 / 유상국 / 이영근 / 가막골 / 육군대위 고명곤 / 버린 이름 / 김소운 / 기황후 / 어부 피용구의 저승 / 한 여학생의 생애 / 오늘의 밥상 / 제비꽃 / 부청하 / 모본왕 / 하종숙 / 박영덕 / 귀신 여인 / 임환섭 / 강경 / 한재덕 / 대야성 함락 / 영랑 용아 / 키무라 타께오 / 절 / 조옥자 / 김정길 / 배순호 경사 / 삼태기 스님 / 타찌하라 세이슈 / 이기붕 / 이영원 / 임지훈 / 김소희 / 그의 행적 / 김춘길 소위 / 연등회 / 박천노인 / 이희주 / 오장원 / 홍제동 화장장 / 첫눈 / 을동이 / 아기 / 이달수 / 앨리스 현 / 외아들 상권이 / 그 아기 / 백형복(白亨福) / 서상훈 씨 / 길선주 목사 / 김규동 / 임경술 / 어느 어머니 / 할망구집 / 완월동 / 대륙의 10일 / 이장돈 마누라 / 오충남 / 어느 제자 / '폐허' 동인 / 미친 사내 / 관악산 연주암 / 한탄강 / 그 중학생 / 꼬마 존 / 장덕운 / 팔당 노인 / 을지로 1가 / 그들 / 만명부인 / 편종수 / 추교명 / 통불 / 장현 / 박근상 / 만성이 / 모함 / 지처사 / 영덕포구 / 이삼봉이 마누라 / 어린 안인석 / 민상기 / 을불 / 9 · 28수복 직후의 어느 풍경 / 조명희 / 김인종 / 남포동 거지 / 옥선이 / 인애 / 춘삼월 / 서면 주막 / 을지로 1가 파출소 / 성균관 과거장 / 환생 / 최훈장 / 그 피리소리 / 유진태 / 정수환 / 향도계 지길중 / 허윤석 / 이계선 / 이형도 중령 / 광복이 / 쇼리 팍 / 탄생 / 한순례 여사 / 신상봉 / 해인사 인민위원 / 두 청년 / 이정송 / 채호석 / 이일웅 / 임후남 여사 / 장명구 / 술꾼 윤구연 장수


유관순


충청도 천안 목천 만화천 감돈다

열여섯살 소녀 유관순

매봉에 올라

그녀가 보낸 봉화에 호응

천안

안성

진천

청주

연기

목천 여섯 곳을

산봉우리마다 봉화가 오르는 감격에 벅찼다


그뒤 아우내장에 모여든 만세소리

일본 헌병의 발포

일본 경찰의 폭거로

조선의 남녀노소 쓰러졌다


유관순 체포되었다

총대 얻어맞아

어린 등뼈가 튀어나왔다

젖가슴 칼에 찔려

옆구리 등짝으로 관통 피고름이 나왔다

자궁도 파열


그런 몸으로 감방에서 만세를 불렀다

다음해 1920년 10월 12일 새벽

먼동 튼 철창 바라보며 눈감았다

일제는 유관순 일가의 호적을 아주 말소시켰다


정일권


어린 시절 창호지 찢어진 가난 잊어버려라

북관 돌무지 출생지 떠난 이래

행복밖에 모르는 평생

암흑의

식민지도 행복

해방도 행복

전쟁도 더더욱 행복

전선 시찰의 밤엔

후방에서 스리쿼터에 미녀가 실려왔다

전쟁 이후도 내내 행복


이런 사람도 한국사람이었다


기황후


한 처녀의 커다란 운명 있다 사막 꽃이 아니라 사막이었다


1333년 원나라 공녀(貢女)로 끌려갔다

울음의 길

한나라 도읍 연경 대궐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의 눈에 번쩍 들었다

울음 접고

궁녀의 길 익혀갔다

몽골어

몽골 풍습을 익혔다

고려 풍습을 애틋하게 익혔다

용꿈 뒤 별궁에서 순제의 눈에 들었다

운우지정이 깊었다

황후 타나시리가

온갖 학대를 다했다


황후 축출의 정변이 일어났다


기궁녀는

순제의 아들 아이시리다라를 낳았다

황후 책봉

그로부터 고려여인 기황후가

원나라 전권을 떡 주무르고 양념 주물렀다

속국 고려에서도

그녀의 친정에서 권력을 주물렀다


고려 금강산 장안사도

원나라 황실 원찰이 되어 범패소리 바라소리 쉬지 않았다

보덕암도

기황후의 원찰

묘향산 보현사도

원나라 태자의 원찰이 되었다


고려 충숙왕은 기황후의 하인이 되어

기황후의 서찰 분부를 엎드려 받드는 변방 제후였다


부청하


제주 북촌

사람들 3백20명이 잡혀왔다


할머니가 말했다

네 아버지도 죽었다

너마저 죽으면 대가 끊긴다

너는 이 할미 치마 속으로 들어오너라


싸이렌이 울렸다


일제히 총소리가 났다

모두 일어섰다가

풀썩

풀썩 쓰러졌다

비명도 몇개 없었다


부대장은

막 제주도에 상륙한 병사들마다

사람 죽인 경험이 없어서

사람 죽이는 경험을 위해서

3대대 전원에게

총살작전을 명령했다


죽은 할머니의 치마 속에서

손자 살아 있었다


부청하

혼자 웃자라며

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난바다 저쪽까지

마구 헤엄쳐갔다


중학교 중퇴하고 밀선을 탔다 이마 주름 여섯개였다


모본왕


고구려 5대 모본왕

무엇하러 이런 사람이 나오는가

무엇하러 이런 왕이 나오는가

모를 일


신하의 여인을 빼앗고

백성의 물건을 빼앗았다

남의 땅도 빼앗아

모본벌을 늘여놓았다


날마다 백성 괴롭혀야

사는 보람

밤마다 신하 괴롭혀야

왕의 보람

참다참다 늙은 신하가 울며 간하였다


폐하 부디 선정을 베푸소서


알았소 내가 깊이 생각하겠소


뜻밖에 이 대답을 들은 신하

죽음을 각오하고 간한 터라

기쁨 넘쳐 어전을 물러났다

왕이 활을 쏘아 돌아가는 신하의 등을 뚫었다


뒷날 신하 두로가

포학무도한 왕의 가슴에 탈을 박았다

다음날 아무도 시해라 하지 않았다

6대 왕좌는 모본왕의 아들이 아니라

다른 왕손을 추대했다 비로소 나라가 제자리에 섰다


이기붕


남을 모르는

이승만 집사로 시작해서

나를 모르는

이승만 집사로 끝난

어느 그림자


여기 끼니 거른 듯 슬픈 사진 한 장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50 말러, 그 삶과 음악

 

스티븐 존슨 지음, 임선근 옮김

2011, PHOTONET


 

시흥시대야도서관

SB046637

 

670.99

존57ㅁ

 

Mahler His Life and Music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6

 

Gustav

Mahler

1860 - 1911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 사전에 추상이나 현실도피는 아예 없었다.  

그는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하고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한 이상과 눈부시게 합치하는 삶을 살았다. 말러가 남긴 작품들은

폭넓은 정서와 뛰어난 창의성으로 작품 한편이 하나의 세계인 것처럼 느껴진다.

말러는 프리즘을 통과한 그의 경험 세계는 모두 독특한 음악으로 거듭났다.

 

이 책은 인간 말러와 작곡가 말러의 성장을 따라가며 그 경험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인간 말러의 기쁨과 슬픔, 나아가 오늘날 말러를 클래식 애호가의 가장 폭넓은 사랑과 경배를 받는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만든 예술적 동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멀티미디어 전기에는 다음의 내용이 포함됩니다.

1 말러의 작품 세계를 직접 개괄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CD 두 장

2 낙소스 웹사이트의 '말러의 생애와 음악' 콘텐츠 자유이용권

(CD에 담지 못한 많은 음악과 보너스 재료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존슨 Stephen Johnson

맨체스터 노던 스쿨 오브 뮤직Northern School of Music, Manchester.

리즈Leeds 대학교의 알렉산더 고어Alexander Goehr 교수 문하,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 뒤로 《인디펜던트 The Independent》와

《가디언 The Guardian》에 정기적으로 기고하였고

《스코츠맨 The Scotsman》의 수석 음악 비평가로 활동했다(1998-9).

BBC 방송국의 라디오 제3, 4 채널과 월드 서비스에 자주 출연해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브루크너 사후 100주년 기념

브루크너 특집 시리즈 14편이 있다.

《Bruckner Remembered》(파버Faber 출판사, 1998)의 저자,

《The Cambridge Companion to Conducing》(CPU 2004)의

기고가이고, BBC 라디오 제3채널의 '디스커버링 뮤직Discovering Music'

프로그램 고정 진행자이다. 2003년 아마존닷컴의 '올해의 고전음악 저술가

Amazon.com Classic Music Writer of the Year'로 뽑혔다.

 

임선근 Lim Sun Kun

<샘이깊은물> 기자를 거쳐 출판 기획과 편집 일을 해왔다.

현재 문화예술계간지 <코리아나> 기획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집에 있는 낡은 LP 음반 재킷 읽기가 취미이다.

낙소스 CD 초기의 충격(낮은 가격과 굉장한 내실)을 잊지 못하는

낙소스 레이블 애호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시리즈 제1권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을 번역했다.

 

Contents

차례

 

서문

 

제1장

삼중의 이방인

 

제2장

방랑자

 

제3장

부활

 

제4장

세계를 담은 교향곡

 

제5장

알마

 

제6장

행복한 가정과 '비극적' 교향곡

 

제7장

에로스 찬미

 

제8장

파국

 

제9장

그대를 위해 살고 그대를 위해 죽으리

 

부록

책에 나오는 인물들

용어집

CD 수록곡 해설

연표

역자후기

참고문헌

 

www.naxos.com/naxosbooks/mahlerlifeandmusic

웹사이트의 말러 전용공간 주소입니다.

처음 방문 시 로그인 창 아래의 here를 클릭해 메일을 등록하시면

로그인 후 아래의 내용을 자유로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등록 창에서 ISBN_ 1843791145, 암호_ Lieder)

CD에 수록된 전곡

말러와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악

동시대의 문화예술, 정치 관련 사건과 나란히 보는 말러의 생애 연표


CD 1 
1. 교향곡 제5번 3악장: 스케르초 _ 19:36 
Symphony No.5. Movement 3: Scherzo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ntoni Wit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토니 비트 

2.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제4곡: ‘내 사랑의 푸른 두 눈은’ _ 4:49 
Leider eines fahrenden Gesellen. No. 4: 'Die zwei blauen Augen' 
Hidenori Komatsu, baritone; Hanover Radio Philhamonic Orchestra; Cord Garben 
히데노리 고마츠, 바리톤; 하노버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르드 가르벤 

3. 교향곡 제1번 3악장: 끌지 않고 장엄하면서 차분하게 _ 9:59 
Symphony No.1. Movement 3: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Michael Halasz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카엘 하라즈 

4. 교향곡 제3번 4악장: 아주 느리고 신비스럽게. ‘오, 인간이여, 조심하라!’ _ 9:35 
Symphony No.3. Movement 4: Sehr langsam. Misterioso. 'O Mensch, gib Acht!' 

5. 교향곡 제3번 5악장: 활발한 속도와 대담한 표현으로 ‘세 천사가 노래 부르네’ _ 4:12 
Symphony No.3. Movement 5: Lustig im Tempo und keck im Ausdruck. ‘Es sungen drei Engel’ 
Ewa Podles, contralto; Cracow Boy's Choir; Cracow Philharmonic Chorus,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ntoni Wit 
에바 포들레스, 콘트랄토; 크라쿠프 소년 합창단; 크라쿠프 필하모닉 코러스;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토니 비트 

6. 교향곡 제7번 2악장: 밤의 음악 _ 16:56 
Symphony No.7. Movement 2: Nachtmusik I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Michael Halasz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카엘 하라즈 

7. 교향곡 제4번 4악장: ‘천국의 삶’ _ 9:34 
Symphony No.4. Movement 4: Sehr behaglich. 'Das himmlische Leben' 
Lynda Russell, soprano;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ntoni Wit 
린다 러셀, 소프라노;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토니 비트 

CD 2 
1. 뤼케르트 가곡 제3곡: '이 세상은 나를 잊었네' _ 7:00 
Ruckert Leider. No.3: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Hidenori Komatsu, baritone; Hanover Radio Philhamonic Orchestra; Cord Garben 
히데노리 고마츠, 바리톤; 하노버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르드 가르벤 

2.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 _ 12:03 
Symphony No.5. Movement 4: Adagietto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ntoni Wit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토니 비트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Kindertotenlieder 

3.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제4곡: '얼마나 자주 나는 아이들이 잠깐 산책 나갔다고 생각하는지' _ 2:52 
Kindertotenlieder. No.4: 'Oft denk' ich...' 

4.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제5곡: '이 같은 날씨에,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 _ 6:40 
Kindertotenlieder. No.5: 'In diesem Wetter' 
Hidenori Komatsu, baritone; Hanover Radio Philhamonic Orchestra; Cord Garben 
히데노리 고마츠, 바리톤; 하노버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르드 가르벤 

5. 교향곡 제6번 제2악장: 스케르초. 묵직하게 _ 12:52 
Symphony No.6. Movement 2: Scherzo. Wuchtig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Antoni Wit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토니 비트 

6. 대지의 노래 제2악장: '가을에 쓸쓸한 자' _ 8:56 
Das Lied von der Erde. Movement 2: 'Der Einsame im Herbst' 
Ruxandra Donose, mezzo-soprano; National Symphony Orchestra of Ireland; Michael Halasz 
룩산드라 도노세, 메조 소프라노; 아일랜드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미카엘 하라즈 

7. 교향곡 제10번 제1악장: 아다지오 _ 26:23 
Symphony No.10. Movement 1:Adagio 
Pol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Robert Olson 
폴란드 내셔널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버트 올슨

 

Chapter 1

Three Times Homeless

제1장

삼중의 이방인

 

"나는 삼중의 이방인이다.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이요,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며, 세계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다." 말러는 전 생애에 걸쳐서 진정한 정착 없이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구스타프의 아버지 베른하르트 말러.

말러와 여동생 유스티네. 1899년 빈.

1865년. 다섯 살 때의 구스타프 말러.

말러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글라우의 집.

1872년의 말러 모습. 사촌과 함께 찍었다.

 

Chapter 2

Wanderer

제2장

방랑자

 

슈베르트의 감동적이고 육감적인 우수의 비밀에 말러보다 더 가까이 접근한 사람은 없다는 로망 롤랑의 말을 가장 잘 확인시켜주는 것이 바로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이다.

1884년의 말러.


Chapter 3

Resurrection

제3장

부활


제2번 교향곡으로 말러는 작곡가로서 야망과 자신감을 한층 드높였다. 장대한 피날레는 합창과 오르간의 등장에다 네 대에서 여섯 대로 불어난 트럼펫, 여섯 대에서 열 대로 늘어난 호른에 힘입어, 충분히 방대했던 오케스트라 규모를 더욱더 확장시켰다. 실로 독일 교향곡 분야의 신기록이었다.


Chapter 4

Beyond All Bounds

제4장

세계를 담은 교향곡


말러는 이렇게 말했다.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한다. 모든 것을 포용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두루 끌어안는 이 포용성이 그의 교향곡 철학의 핵심이라면 제3번 교향곡은 그가 만든 최고로 '교향곡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슈타인바흐에 있는 말러의 작곡 오두막.


Chapter 5

Alma

제5장

알마


말러에게 결혼은 완전히 새로운 창작 시대를 열어주었다. 말러는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하고 한번 그러기로 마음먹으면 폭발적으로 사랑을 쏟아 붓는 유형의 남자였다. 개성과 경험을 원료로 삼는 예술가로서 그러한 성정이 그의 음악에 끼친 영향 또한 지대했다.

뵐러가 그린 지휘하는 말러의 캐리캐처.

알마 말러의 1910년 무렵 모습.

에밀 올릭Emil Orlik이 1902년에 그린 말러 초상 스케치.


Chapter 6

Heights and Depths

제6장

행복한 가정과 '비극적' 교향곡


말러는 니체가 '공포의 예술적 정복'이라고 일컬은 바를 강력하고 능란하게 표현하는 자신의 기량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다. 한마디로 제6번 교향곡은 말러의 오케스트라 장악력이 눈부시게 빛나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교향곡 제6번 자필 악보의 첫 장.


Chapter 7

A Hymn to Eros

제7장

에로스 찬미


플라토닉 러브, 예수, 그리고 괴테의구원하는 '영원한 여인'은 모두 같은 개념의 다른 표현이니 그것은 천지를 창조한 태초의 에로틱 러브이다. 제8번 교향곡은 그러므로 창조주로서의 사랑과 구원자로서의 사랑에 대한 찬가이자 그가 사랑하는 복잡한 알마에 대한 찬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빈 오페라 하우스의 발코니에 있는 말러. 1907.

1908년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자신의 제7번 교향곡을 리허설 중인 말러.

1910년 뮌헨의 말러 교향곡 제8번 초연 포스터.

말러와 알마. 로마, 1907.


Chapter 8

Catastrophe

제8장

파국


<대지의 노래>에서 말러의 탁월한 혁신성은 정점에 달한다.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목마르다'는 말러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에 직면함하여 드높이 고조된 정서는 예술가 말러를 창의의 새 경지로 몰고 갔다. 독창적인 음의 세계뿐 아니라 선명한 음악적 이미지를 듣는 이의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Chapter 9

'To Live for You, To Die for You'

제9장

그대를 위해 살고 그대를 위해 죽으리


알마는 말러의 구원자, 구세주이다. 제10번 교향곡에는 말러의 격한 감정 변화, 알나와의 관계에 대한 미칠 듯한 희망과 고통스러운 공포가 담겨 잇다. 1910년 여름에 그가 쏟아낸 시는 이 새 교향곡의 모토와도 같다. '내 열망의 전율을, 그대 품에 안길 때의 신성한 행복과 그 영원성을, 이 한 곡의 위대한 노래에 응축시킬 수 있기를'

뉴욕에서의 말러. 1910.

뵐러가 그린 지휘하는 말러 캐리캐처.

토블라흐의 말러 작곡 오두막.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49 청동기 문화

 

글, 사진 / 이건무

2006,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6

 

082

빛12ㄷ  239

 

빛깔있는 책들 239

 

이건무-------------------------------------------------------------------------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 국립광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으로 있다. 1994년에는 한국고고미술연구소에서 주관하는 동원학술논문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논문으로 「한국 청동 의기의 연구」, 「유문동과고」, 「한국식동검문화의 성격」, 「한국식동검의 조립식 구조에 대하여」, 「한국의 청동기 문화」, 「한국청동기 문화의 성립과 전개」 등 수십 편이 있다.


 

|차례|

 

머리말

청동기란 무엇인가

청동기시대의 생활상

청동기 문화의 역사와 특성

청동기 제작 기술

맺음말

부록 - 용어 설명

참고 문헌

요령식동검

승주 대곡리 마을 전남 승주군(지금의 순천시) 대곡리의 청동기시대 마을 전경이다. 강가의 평탄한 대지를 택해 여러 채의 움집을 지어 마을을 형성하였다. 현재는 주암댐 건설로 수몰된 상태이다.

울주 검단리 마을 경남 울주군 검단리 마을 유적은 해발 100미터 정도의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주위에는 도랑을 설치하였다. 사진 : 부산대학교박물관

부여 송국리 마을 유적의 울타리 울타리는 마을의 방어 시설로서 송국리 마을 유적의 외곽에서 발견되엇다. 기둥의 직경이 0.5미터나 되며 기둥 구멍 사이의 폭은 약 1.8미터이다.

울산 무거동 논 유적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으로, 여기서는 마을과 논이 함께 발견되었다. 사진에 나타난 논과 수로의 흔적을 통해 이 시기에 이미 논농사를 위한 조성 기술 · 관개기술이 상당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 경남대학교박물관, 밀양대학교박물관

어은1지구 유적의 밭 경남 진주 대평리에 위치한 어은1지구 유적이다. 강가의 모래사장에 만들어졌으며 전체 규모가 4,000여 평에 이른다. 이랑과 고랑이 뚜렷하며 주변에서는 마을 유적이 발견되었다. 작은 사진은 요즈음 텃밭 경남 진주 대평리 소재

농경문청동기(앞면) 대전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청동 의기이다. 앞면에는 남자 두 사람이 각각 따비와 괭이를 가지고 밭을 가는 장면과 여성이 그릇에 무엇인가를 담는 장면이 새겨져 있으며 , 뒷면에는 Y자로 갈라진 나뭇가지에 매와 같은 형상의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따비 밭을 가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로 근래에도 농촌에서 볼 수 있었다.

그물추(어망 복원) 청동기시대의 어로 행위를 증명할 만한 자료이다. 그물어구가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물에 매달려 있던 그물추는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물추는 흙을 구워 만든 것과 작은 돌의 양면을 쪼아내거나, 홈을 내어 만든 것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 경남 울주군 소재 반구대 암각화에는 배를 타고 바다에서 집단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장면과 고래 등에 작살이 꽂혀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견갑형동기 경주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청동 의기에는 표범 또는 사슴과 같은 짐승이 그려져 있는데, 특히 사슴 한 마리에는 화살이 꽂혀 있어 사냥 의식과 관련된 의기로 추정할 수 있다.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곱은옥(위)과 대롱옥(아래) 청동기시대의 곱은옥은 천하석으로 만들었으며, 대롱옥은 벽옥으로 만들었다. 곱은옥은 귀고리나 수식(펜던트)에, 대롱옥은 여러 개를 연결하여 목걸이로 사용하였다.

양전동 암각화 경상북도 고령군 양전동 유적의 암각화에는 기하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청동기인의 주술과 기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뼈피리 함북 웅기군 굴포리 유적 청동기시대층에서는 새의 다리뼈를 잘라서 만든 뼈피리가 출토되었다.

원개형동기 한국식동검문화의 성립기에 사용된 청동 의기 가운데 하나이다.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징과 같은 역할을 한 일종의 무구로 추정된다.

북방식 고인돌 북방식 고인돌은 주검을 안치하는 곳(주검칸)이 지상에 드러나 있다. 황해도 은율의 북방식 고인돌처럼 윗돌의 크기가 8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

화순 고인돌 채석장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큰 돌을 떼어낼 수 있는 채석장이 필요하다. 전남 화순 효산리에서도 채석장 유적이 발견되었다.

초포리 유적 전남 함평 초포리 유적은 나무널 주위에 돌을 채운 형식의 무덤이다. 이 유적에서는 한국식동검 · 청동거울 · 의기 등의 껴묻거리가 다량 출토되었다.

미송리형토기 무문토기 형식 중에서 평안도 지방과 요동 지역 일대에 주로 분포하는 토기로 짧게 밖으로 퍼진 목과 부른 배 그리고 띠고리 손잡이를 가진 작은 항아리 모양이다.

구멍무늬토기 우리나라 동북 지방(함경도)을 대표하는 무문토기로 깊은 바리 모양에 입부분 바로 아래쪽에 구멍무늬를 한 줄 돌린 것을 특징으로 한다.

팽이형토기 우리나라 서북 지역(평안남도 · 황해도)을 대표하는 무문토기로 독 모양과 항아리 모양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 입을 겹으로 감싸 넘기고 겹싼 부분에는 짧은 빗금무늬를 새겼으며 밑굽은 몸체에 비해 아주 작아 불안정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적색마연토기 토기를 만들어 굽기 전에 그릇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잘 문지른 뒤 구우면 붉은색으로 발색이 된 토기가 나오게 된다. 이러한 토기는 일상 생활 용기보다는 제사용 · 의례용 · 부장용 또는 특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송국리형토기 짧고 밖으로 약간 벌어진 구연(口緣)과 배부른 동체를 특징으로 하는 무문토기 형식의 하나로 충남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어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다.

점토대토기 청동기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무문토기 형식으로, 입을 둥글게 겹싸 넘긴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국식동검문화를 대표하며, 중국 요동성과 일본 큐슈 지방에서도 이러한 형식의 토기가 발견되고 있다.

목긴항아리(흑색토기장경호) 점토대토기와 함께 청동기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무문토기 형식이다. 소형의 목이 긴 항아리 형태로, 대부분이 검은색을 띠며 일부는 그릇 표면이 곱게 문질러져 있다.

각종 반달칼 반달칼은 반달 모양이 일반적이나 빗 · 배 · 장방형 · 삼각형 등 그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낫과 곰배괭이 돌로 만든 농경 도구로는 경작용의 곰배괭이와 수확용의 낫 그리고 반달칼 등이 있다.

곤봉두(별도끼) 곤봉두는 지휘자가 지니고 있던 일종의 위의구였을 가능성이 많은 도끼와 같은 무기이다. 둥근 형태의 날을 가진 달도끼와 날이 여러 개로 나뉜 별도끼가 있다.

썰개 석기를 만들기 위해 점판암과 같은 석재를 자르는 데 사용된 도구이다. 앞뒤로 직선 왕복 운동을 통해 석재를 자른다.

농경문청동기(뒷면) 대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농경문청동기의 뒷면에는 Y자 형태의 나뭇가지에 매와 같은 새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어 솟대와 같은 형상을 보여 준다.

솟대 오늘날의 솟대 모습. 높은 장대 위에 새 두 마리가 마주하고 있다. 전북 남원 호경리 마을

검파형(대쪽 모양)동기 검파형동기는 3점이 세트로 출토된다. 대전 괴정동 유적 출토

검파형동기 부분 충남 예산 동서리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검파형동기에는 손이(위), 아산 남성리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검파형동기에는 사슴이(아래) 그려져 있어 시베리아 샤머니즘과의 관련성을 말해 준다.

요령식동검 요령식동검은 칼몸과 칼자루 그리고 칼자루끝장식의 세 부분을 조립해서 사용하게 되어 잇다. 각종 요령식동검의 칼몸 형태는 기본적으로 비파형이지만 시대가 내려가면 점차 폭이 좁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요령식동검의 T자형 손잡이 요령식동검의 손잡이는 T자형이다. 손잡이의 표면에는 기하 문양이 새겨져 있다. 황해도 신천에서 출토된 것을 비롯하여 4점이 알려져 있다.

한국식동검 한국식동검은 요령식동검과 마찬가지로 칼몸과 칼자루 그리고 칼자루끝장식을 서로 결합하여 사용하게끔 되어 있지만, 칼몸이 직선화되고 결입부와 마디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식동검과 칼자루끝장식 요령식동검문화기의 마제석검과 한국식동검문화기 초기의 동검에는 철광석제나 토제 칼자루끝 장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칼자루끝장식이 부착된 동검

나팔형동기 나팔형동기는 충남 예산 동서리 돌널무덤 유적에서 출토된 것이 유일하다. 청동 의기로 여겨지는 것이나, 중국 요령 지역에서는 이러한 동기가 말머리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견갑형동기 경주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한다. 청동 의기 가운데 하나로 표면에 표범(또는 호랑이)과 사슴 등이 그려져 있다. 사슴 한 마리는 화살에 맞은 모습을 하고 있어 수렵과 관련된 제의에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원형유문동기 전북 익산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청동 의기의 하나이다. 바깥쪽은 방사상, 안쪽은 십자형으로 구성하여 태양을 상징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십자일광문의 모티프는 시베리아 지역에서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고운무늬거울 한국식동검문화 발전기에 제작된 고운무늬거울은 뒷면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이 아주 곱고 가늘다. 햇빛을 반사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라 대부분 뒷면의 무늬가 태양무늬이다.

방울류 세트 청동 의기 가운데 방울류는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특유의 것으로 간두령 · 쌍두령 · 조합식쌍두령 · 팔주령의 4종이 세트로 되어 있다.

거푸집 세부(도끼 상부) 투겁도끼는 도끼자루를 끼우기 위해 내부에 자루를 끼울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거푸집의 투겁 바로 위쪽에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속틀이 매달릴 수 있도록 조그만 홈이 파여 있다.

각종 거푸집 거푸집은 활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으며, 대부분 같은 모양이 새겨진 2매를 합쳐서 사용하게 된다. 전남 영암에서 일괄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거푸집에는 무기 · 공구 · 거울 · 낚싯바늘 등이 새겨져 있다.

 

 

거푸집 세부(도끼 상부) 투겁도끼는 도끼자루를 끼우기 위해 내부에 자루를 끼울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거푸집의 투겁 바로 위쪽에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속틀이 매달릴 수 있도록 조그만 홈이 파여 잇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48 Egon Schiele 에곤 실레


지은이 | 이자벨 쿨, 옮긴이 | 정연진

207, 예경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19934


650.8

아887ㅇ  2


●ART SPECIAL 2


"나는 모든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그려낼 뿐이다."

- 에곤 실레



독특한 색감과 터치, 에로틱하고 과감한 인체묘사로 세기말 오스트리아의 불안한 시대정신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에곤 실레!!! 이 책은 실레의 인생과 작품, 그 주변의 여인들의 이야기뿐만아니라,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넘게 지난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조명되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매혹적이지만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초상화와 자화상 외에도 진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풍경화까지 실레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귀한 사진 자료나 독특한 지면 구성 또한 읽는 이의 눈과 정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에곤 실레 Egon Schiele(1890-1918)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살았던 오스트리아의 화가. 독특한 색깔과 터치, 에로틱하고 과감한 인체묘사로 유명하다. 스물여덟의 나이로 삶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성에 대한 강박, 고독, 죽음 등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1890년 빈 근처 툴른에서 태어난 실레는 학창시절 아르 누보의 일환인 독일의 유겐트슈틸 운동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 무렵 빈 현대미술의 거장인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났으며, 그 결과 화려하고 장식적인 초상화를 그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색과 동떨어진 독특한 색감과 선명한 윤곽선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양식을 개발하게 된다. 그는 처음부터 인물 표현에 몰두했고, 성적인 주제를 노골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1909년 동료들과 '신예술 그룹'을 결성했으며, 1911년부터 유럽 곳곳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1918년 빈에서 열린 분리파 전시회 때에는 실레의 작품을 위한 특별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변천사

에곤 실레의 작품들을 한 눈에 펼쳐보면 그 예술적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초기의 사실주의에서 말기의 표현주의까지, 다채로운 유화에서 미니멀한 드로잉까지,

그리고 개성 강렬한 초상화에서 멜랑콜릭한 풍경화까지…….


초상화

1910

1912-1913

1913

1910

1918

>> "이 사람처럼 색을 만들어 내고, 색을 섞어 내고, 또 색을 아름다운 화음처럼 펼쳐내는 예를 나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네." - 하인리히 베네쉬, 에곤 실레에 대해.


풍경화

1907

1911

1912

1916

1917-18

>> "나는 들판을 지나 저 둥근 언덕을 넘어 쉬지 않고 달려가 흙에 입맞춤 하고 싶네……. 부드럽고 따듯한 들꽃 내음 가득 마시고 싶네……." - 에곤 실레, 자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소묘

1910

1914

1915

1917

1918

>> "실레의 작품에서 나체만을 보는 사람들은, 외설스런 나체 이외에 아무것도 보지 않는 사람들은 도저히 깨우칠 도리가 없다."-아르투어 뢰슬러, 실레의 친구이자 수집가


차례


그때 그 시절

빛과 그림자


최고가 되기까지

신新 예술가로 출발하다


예술

화가와 거울과 사다리


철도 역장의 아들에서 예술가로


사랑

사랑은 셋에서 하나를 버리는 것


지금도 우리 곁에

뒤늦은 명성


그때 그 시절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우리의 고향 빈

이 시대 예술의 원천이라네."

오토 바그너, 1903년


왈츠음악과 세계대전 사이에서

에곤 실레가 시골에서 보낸 시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빈은 그에게 고향 같은 곳이었다. 빈은 실레가 예술가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한 곳이기 때문이다. 군주제 수도의 상징이던 빈은 당시 현대적 대도시로 탈바꿈하던 시기였고, 수많은 예술가도 모더니즘의 바람에 합류하고 있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펜대를, 구스타프 말러는 지휘봉을, 구스타프 클림트는 붓을 잡고 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여인의 초상화는 에곤 실레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청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드레스를 입은 그림 속 여인은 클림트의 애인이자 절친한 친구인 에밀리에 플뢰게로, 클림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 분리파 미술관, 1897-1899년.


"오스트리아에선 누구나 자기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한다."

- 구스타프 말러


"전통은 불꽃을 계속 살리는 것이지, 잿더미를 숭상하는 것이 아니다."

- 구스타프 클림트

빈 시민들은 친근한 단골카페를 자주 찾아 신문을 읽거나, 빈 커피를 마시거나,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즐겼다. 미하엘러 광장에 위치한 그리엔슈타이들 카페는 빈 모더니즘의 집결지와 같은 곳이었다.

유겐트슈틸 예술가들이 정진하던 목표는 총체예술이었다. 총체예술 장르에 포스터가 빠질 리 없다. 위는 '빈 공방'을 홍보하는 포스터로, 마리아 리 카르츠 작품이다.

실레는 스스로를 '은으로 된 클림트'라고 칭하곤 했다. 그렇다면 이 1910년 사진의 주인공인 '오리지널' 클림트는 금인 셈일까?

외면 |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작 <베토벤 프리즈>는 예술 애호가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들의 눈에는 빈 분리파 미술관의 벽을 장식한 이 24미터 길이의 작품이 아름답지도 않을 뿐더러 경외심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1902년 클림트에 의해 탄생한 베토벤 기념전시회는 결국 엄청난 재정적 손해만 끼치고 막을 내렸다.

유토피아 | 클림트가 거장 베토벤을 기리며 제작한 이 벽화는 "예술과 사랑을 통한 인간의 구원"이라는 클림트 자신의 유토피아를 표현한 것이다. 작품 속 영웅은 온갖 위험과 폭력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여인의 포옹을 통해 구원받는다.


최고가 되기까지



"이 사람처럼, 색을 만들어 내고,

색을 섞어 내고, 또 색을

아름다운 화음처럼 펼쳐내는 예를

나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네."

하인리히 베네쉬


스타 예술가

자긍심 강한 성격의 에곤 실레는 이미 18세에 처음으로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는 경험을 쌓았다. 실레는 대중의 관심부족에 대해 불만을 가질 일이 없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까운 지인들의 평가가 후하지 못했더라도 그에게는 그를 꾸준하고 열렬히 지원하는 후원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레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실레의 벗이자 작품수집가였던 베네쉬는 이미 1917년에 실레가 그린 드로잉을 70점이나 소유하고 있었다.


"나는 동시에 모든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절대 모든 종류의 일을 동시에 하진 않는다."

- 에곤 실레, 1910년경

1914년에 찍은 이 사진처럼, 실레는 카메라 앞에서 즐겨 포즈를 취하곤 했다.

창설되자 마자 전시회를 가진 '노이쿤스트그루페(신예술 그룹)'의 포스터. 안톤 파이슈타우어의 디자인이다.


"우리는 인재들이 오스트리아를 떠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스트리아가 이룩했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기를 ……."

- 에곤 실레

예술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르투어 뢰슬러는 실레의 돈독한 동반자이자 열렬한 후원자였다.

아르투어 뢰슬러는 일찍이 실레의 재능을 발견하고 가까이 지냈다. 사진은 두 사람이 트라운 호숫가에서 여름날을 즐기는 모습이다.

부유한 주류공장장 아우구스트 레더러는 실레에게 아들 에리히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의뢰했다.

표현주의 표방을 위해 출간된 독일 간행지 《디 악치온》은 1916년에는 한 회분을 모두 실레의 시로 채워 발간한 바 있다.

실레가 그린 빈 분리파 제49회 전시회 포스터. 1918년 초에 생을 마감한 클림트를 위해 빈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실레는 사진 속 그림처럼 작품에서 헐벗은 나무와 같은 늦가을 분위기를 자주 연출했다.

아버지와 아들 | 실레가 만난 첫 수집가는 그의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하인리히 베네쉬와 오토 베네쉬 부자를 그린 초상화는 기하학적 모티브를 통해 표현되었으며, 실레의 그림들이 으레 그렇듯, 피부색도 자연 본래의 색과는 거리가 멀다.

스승에서 모델로 |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서 실레에게 회화를 가르쳤던 막스 카러를 그린 이 작품은 실레의 초기 표현주의 초상화 중 하나다. 실레는 스승을 전체 구도에서 오른쪽 구석으로 몰고 왼쪽을 비워 두었다.

친구이자 후원자 | 아르투어 뢰슬러 또한 당연히 실레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흙색이 지배적인 이 화풍 속 모델은 깊이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다. 가운데 위치한 큼직한 손이 시선을 끈다.

옷 바꿔 입기 | 이 그림 속에 보이는 모습은 평범한 디자인의 치마를 입은 에디트 실레이지만, 원래는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림의 구입자인 빈 벨베데레 박물관장은 국립박물관에 걸기엔 옷의 분위기가 너무 화려하다는 이유로, 치마를 다르게 덧그려 달라고 요청했다.

은밀한 밀착 | 실레는 초기 초상화에 자주 나타나곤 했던 초록빛 피부색을 <포옹>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 그림은 1918년 분리파 미술관의 대전시회에 선보였던 작품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에곤과 에디트가 아닐까?

어두운 비전 | 꽤 큰 규격의 유화인 <죽음과 소녀>도 1918년 분리파 미술관의 대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그림 속 붉은 머리 소녀의 모델은 실레의 애인인 발리 노이칠로 추정된다.


예술



"예술

현대적일 수 없다.

예술은 그 자체로

영원한 것이다."

에곤 실레


항상 새로운 물가를 찾아서

실레는 지칠 줄 모르는 예술가였다. 12년의 창작기간 동안 그는 드로잉, 수채화, 시각디자인을 포함한 도화지 작품 2000점, 유화 300점, 그리고 방대한 양의 시를 남겼다. 실레의 작품세계에서 이기적 도도함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실레의 관심은 온통 자기 예술과 이를 통해 대변되는 그 자신뿐이었다. 실레가 가장 즐겨 그렸던 모티브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실레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자화상을 100여 점이나 남겼다.

실레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정하리만치 예리했고, 모든 미술 형식을 벗어나는 행위였다.


실레의 풍경화들은 그 특유의 자극적인 나체화의 그늘에 가려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이 <나무 네 그루>라는 그림이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성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예술학교 학생증에 부착되었던 실레의 사진.


"어떤 이들은 잔인한 전쟁의 공포를 느끼고서야 예술이 단순히 사치생활의 일환 그 이상이라는 걸 깨닫는 모양이네."

- 1917년 3월 2일, 실레가 안톤 페슈카에게

빈 현대미술의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

빛나는 장식을 배경으로 잠든 다나에의 모습에서 클림트 풍의 양식이 물씬 느껴진다.

1909년 신예술그룹 회원의 초상을 그린 실레는 <화가 안톤 파이슈타우어의 초상>에서 클림트와는 달리 배경에 어떤 장식도 하지 않는다.

<은둔자들>을 연상케 하는 <후광이 있는 두 남성>은 빈 공방에서 작업한 엽서 디자인이었는데, 결국 대량 인쇄되지는 않았다.

반영 | 실레의 작업에는 거울이 자주 쓰였다. 1910년 연필로 그린 이 인체 드로잉에선 실레도 모델이 되었다.

주관적 시각 | 구두 끝까지 다 그리기엔 종이가 모자랐던 걸까? 실레는 대상에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까지만 그려 버리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과감히 생략해 버리거나, 부스러기만 남겼다.

스캔들 | 세기말 빈에서 동성애는 금기사항이었다. 하지만 실레에게 금기라는 단어는 통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레즈비언 커플>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실레가 수없이 다룬 동성애 주제의 작품들 중 하나일 뿐이다. 여기서도 실레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곳만 그리고 나머지 신체부분은 아예 암시조차 하지 않는다.

묘하게 오려낸 컷 | 종이 위에 보이는 것은 다리, 골반, 팔뿐. 위로 걷어 올린 웃옷의 녹색을 제외하고는 어떤 색도 사용하지 않았다. 구아슈로 강조한 선만이 몸의 선을 드러낼 뿐이다.

수집광 | 책 더미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후고 콜러 박사는 예술적 감각을 갖춘 사업가로, 엄청난 양의 서적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었고, 실레 또한 콜러 박사의 이런 이미지를 그림 속에 영원히 보존한다. 실레는 이 그림만큼 공간의 배경에 공을 들인 적이 일찍이 없었다. 실레가 요절하기 몇 달 전에 그린, 거의 마지막 작품이다.

공허한 눈빛 | 카를 자코브셰크는 실레가 예술학교에 나가던 시절 학급동료이자, 신예술그룹의 창립멤버였고, 피스코의 갤러리에서 열린 첫 전시회에도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자코브셰크는 불행히도 창작예술가로서는 운이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은 미술교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수척하게 마르고, 까칠한 수염에 구겨진 양복 안에는 셔츠도 입지 않은 초라한 모습의 친구, 실레가 그린 이 초상화에선 미화되지 않은 현실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삶과 죽음 | 시체처럼 창백한 엄마와 아기의 모습에서 실레를 사로잡았던 삶과 죽음의 세계가 엿보인다. 이 그림의 배경에는 실레가 직접 겪어야 했던 1차 세계대전도 잇지만, 그의 가족사도 있다. 실레는 어렸을 때 누나를, 그리고 청소년기에 아버지를 잃는다.

가족 | 실레는 1918년 전쟁 당시엔 이 유화에 <쭈그리고 앉은 두 사람>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그가 죽은 후에 제목이 <가족>으로 바뀌고 이 작품이 초상화라는 분석이 내려졌다. 실제로 그림 속 남성의 얼굴을 보면 실레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림 속의 여인은 아내 에디트가 아니고, 게다가 여인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아이는 뒤늦게 덧그려진 것이다. 이전에는 대신 꽃다발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변두리 | <변두리> 혹은 <주택가 Ⅲ> 속에는 점점이 작은 인물들이 배치되어 전체적 분위기를 밝게 유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알록달록한 집들은 왠지 스산해 보인다. 온통 까만 창문에다 불빛이 내비치는 집도 없다. 검게 채워진 배경은 다채로운 집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색의 유희 | <변두리의 집과 빨래>에서 관찰자는 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집들을 바라보고 잇다. 저택 2층의 벽면, 그리고 빨래들은 회색 빛 벽에 비해 강한 색채를 띤다.




"난 이 모든 걸 앞으로도 겪을 것이라는게

기쁘다오. 왜냐하면 이런 슬픈 경험이야말로

창조적 인간을 빚어내기 때문이지."

에곤 실레


짧고, 그리고 굵게

…에곤 실레는 그렇게 살다 갔다. 소도시 툴른의 따분함도 어린 실레의 그림욕구를 누르진 못했다. 실레는 오히려 오고 가는 열차든, 남부 오스트리아의 풍경이든,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면 모두 열정을 가지고 관찰했다. 성장한 실레는 결국 스스로의 거대한 잠재력에 이끌려 빈으로 향한다. 21세의 실레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정의를 내리듯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죽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다." 실레의 짧고 굵었던 인생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낸 문장이 있을까.

게르티는 오빠 실레의 그림뿐 아니라 빈 공방에서도 모델 역할을 했다.



붓과 팔레트를 손에 든 15세의 에곤 실레.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길이 아직은 수줍기 짝이 없다.


"나는 나를 사랑했다…….

나는 분노에 찬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에서 분노가 사라지도록 그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려 했고,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에겐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며 말해주려 했다.

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에곤 실레, <상상>에서

실레 가족은 아버지의 직업 상 툴른 역사에서 살았다.

실레의 부모인 마리 수쿱아돌프 실레가 약혼 당시 찍은 사진.

실레 가족은 1904년 빈 북쪽의 클로스터노이부르크로 거처를 옮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는 후에 실레의 작품에 여러 번 등장한다.

판토마임 공연 중인 실레의 친구 에르빈 도메니크 오젠과 무용수 모아.

두 화가들. 후에 매제가 된 신예술그룹 회원 안톤 페슈카와 크루마우에서 함께 한 에곤 실레.

신입생 | 에곤 실레가 빈 예술학교에 입학하기 몇 주 전 그린 자화상이다. 당시 실레는 16세였다. 실레는 이 작품에서 목탄뿐 아니라 바림 효과나 스프레이 기법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스프레이 효과는 당시 분리파 화가들도 즐겨 쓰는 기술이었다.

자기초상 | "난 내가 예술가로서 엄청난 성장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했고, 예술을 돈벌이에 이용하려 하는 자들에 맞서 끝없이 싸웠다." 하지만 현실은 1911년 9월에 실레가 쓴 내용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그 전 해에 그린 자화상 <갈색 모자를 쓴 자화상>에 비친 실레의 모습은 자신감보다는 마음고생으로 가득 차 보인다. 사회적 체면과 예술적 자유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그랬을까?

몰이해 | "나는 예술을 위해, 그리고 내 연인을 위해 참고 기다릴 수 있다!" 이는 실레가 구류되어 있던 1912년에 나온 작품 <미결수의 자화상> 한 구석에 쓰여 있던 문구이다. 이 자화상에서 실레는 우울함에 빠져 고통받는 영혼을 묘사했는데, 구류 사건 이후로 실레의 그림에는 희생양적인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실레는 자신을 사회적 몰이해의 희생양으로 보았다.

쪼그려 앉은 두 소녀 | 에곤 실레는 이 그림에서 수채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각 색의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했다. 실레의 그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전형적 공간배치로 원근법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혀 다른 인상의 두 소녀는 감상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듯 바라본다.

강조된 실루엣 | 실레가 검은 분필과 수채화물감을 이용해 그린 발가벗은 소년의 나체화. 몸의 윤곽을 따라 검은색으로 진하게 실루엣을 그렸고, 그 주변에 흰색을 덧칠해 둘러쌈으로써 소년이 더욱 앙상해 보이게 만들었다.

살얼음 위를 걷듯 | 실레는 이런 모티브들을 요청해 의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동성애를 자연에 반하는 행위로 간주하던 당시의 시각에 비추어 보면, 실레의 이러한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행동들은 다분히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

동반자의 모습 | 스스로를 '마임 폰 오젠'이라 칭하곤 하던 실레의 친구 에르빈 도메니크 오젠은 에곤 실레의 초상에 매우 자주 등장한다. 이 반라의 나체화가 그려진 시기는 무용수인 오젠이 크루마우에 머물고 있던 실레를 방문한 때이다. 초록빛 얼굴과 손을 한 채 종이의 반쪽에만 그려진 오젠의 형상은 종이의 경계선 밖으로 벗어나 있다.

사망 직전 누워있는 에곤 실레.

먼 곳을 응시하며 | "실레는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서도 특이한 사람이었다. …… 일상에서 겪는 일들은 그에게 있어 관심 밖이었다. 실레의 눈빛은 항상 잡다한 것들을 초월하여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인리히 베네쉬, 에곤 실레를 회상하며.

노출 | 머리카락은 쭈뼛 서 있고, 눈은 둥글게 치켜뜨고, 놀란 입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그림 속의 실레는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놀란 듯한 모습니다. 드러낸 배, 찡그린 얼굴이 검은 옷과 대조를 이룬다.

희생양 | 실레는 아르노트 갤러리와 전시회 포스터를 제작할 때 자신을 화살이 수없이 꽂힌 성 세바스티아노로 묘사했다. 재판 회부와 구류 경험이 남긴 흔적이다.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본 것은 실레뿐이 아니었다. 표현주의 화가이자 친구인 오스카 코코슈카도 자신을 그렇게 묘사한 적이 있었다.

종교 개종 | 두 여인이 무릎을 꿇고 앉은 맞은편에 수도승의 옷을 입은 사내는 실레 형상을 하고 잇다. 그림 속의 세 사람이 마치 캡슐 안에 갇힌 것 같다. 1912년에 있었던 구류사건 이후로 실레는 종종 자신을 수도승, 또는 성자로 표현하곤 했다.

피난처이자 영감의 원천 | 기록 자료에 <집들>의 모티브가 크루마우라고 명시되어 있진 않지만, 실레가 어머니 마리 수쿱의 고향을 즐겨 찾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그림의 모티브의 출처는 크루마우였을 가능성이 높다.

늦가을 | 퇴락, 질병, 죽음 등은 모두 표현주의 예술가들이 자주 다루던 주제였다. 바람 속에 홀로 쓸쓸히 서 있는 <울타리 뒤 나무 한 그루>에서 생명의 흔적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죽은 마을 | 1910년에서 1911년 사이 실레의 그림에서는 어두운 색채와 모티브가 부쩍 눈에 띈다. 실레는 자신을 우울함으로 몰고 간 빈을 떠나지만, 상태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그 즈음 실레의 모든 창조행위에서 죽음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어쩌면 실레가 느꼈던 것은 1910년 시 <소나무 숲>의 마지막 줄에 나타난 것처럼 "살아있는 듯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전쟁 회화 | 실레는 군복무기간 동안 많은 면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혜택은 재능을 인정받아 사무업무와 병행하여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15년에 그린 <모피 모자를 쓴 러시아 전쟁포로>는 이러한 배려의 산물이다.

가족 |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는 여인.의 모델은 에곤 실레의 처형인 아델레 하름스이다. 실레는 아델레를 모델로 세우길 좋아했는데, 아마도 그의 이러한 처신에 아내 에디트는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을 것이다.

풍성한 머리카락 | 엎드려 누워서 지루한 듯한 표정으로 팔을 괴고 감상자를 응시하는 여인의 사자갈기 같은 붉은 머리가 흐드러지게 흘러내린다. 다른 나체화와는 달리 이 그림에서 실레는 인체의 왜곡을 의도하지 않는다. 다만 배경은 여전히 생략된 채로 남아 있다.

 

사랑

 

 

"에로틱한 예술작품에도

성스러움은 깃들어 있다."

에곤 실레

 

'참새아가씨' 대 '참한 색시'

 

실레가 논란을 몰고 온 건 자유분방한 나체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진보적인 애정행각 역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했다. 실레는 그림의 모델과 매춘부가 동일시되던 20세기 전후 빈에서 모델 발리와 수년간에 걸친 동거생활을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해야 할 때가 오자, 그는 결국 평범한 여인을 선택해 버린다.

 발리 노이칠.

실레가 쓴 이 편지의 수신자는 에디트와 아델레 하름스 자매이다. 이때는 실레가 아직 둘 중에 마음을 정하지 않았던 상태이다.

 

"비극은 비극으로 받아들여야 비극이 되는 것이다. 실레는 어떤 것도 비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인리히 베네쉬

서로 꼭 껴안고 있는 에곤과 에디트 커플.

함께 산책하는 에곤 실레와 발리 노이칠.

 

"실레의 작품에서 나체만을 보는 사람들은, 외설스런 나체 이외에 아무것도 보지 않는 사람들은 도저히 깨우칠 도리가 없다."

-아르투어 뢰슬러, 1911년 에곤 실레에 대한 글에서

1918년 여름의 실레 부부.

실레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은 임종을 얼마 앞두고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의 드로잉이다.

조감도 | 실레는 풍경화를 그리든, 나체화를 그리든, 조감도적 시각으로 모티브를 보길 즐겼다. 1911년 작품 <술이 달린 담요 위의 두 소녀> 역시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기서 실레에게 원근감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갈색의 담요로 그저 평평하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나체 | 실레가 나체를 모티브로 삼기 시작한 것은 20세가 되던 해였다. 그 후 1910년은 특히 많이 제작된 해인데, 이 <녹색 천을 걸친 여성의 누드>도 그 해에 그려졌다. 여체의 선은 부드럽게 그려졌고, 피부색도 자연색에 가깝다. 모티브의 완만한 곡선을 통해 아직은 유켄트슈틸이 엿보이는 그림이다.

색체의 향연 | 이 작품에서 실레는 나체의 등에 분홍빛, 초록빛, 주황빛을, 그리고 머리카락에는 푸른 보랏빛을 썼고, 등을 비롯한 팔은 과장되게 늘어나 있다. 나체화에서 이보다 더 자연에 반하는 표현이 가능할까!

머리는 생략 | 실레가 1913년에 그린 여성 모티브는 상당수가 머리를 생략한 채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머리에 이어 발까지도 생략되었다. 빨간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공간의 반을 차지하고, 걷어 올린 드레스는 다소 파리한 빛의 빨간색을 띤다.

행복한 한때 | 1915년 실레가 그린 아내와 조카이다. 이 때는 실레가 가족을 중심으로 모티브를 많이 삼던 시기였다. 그래서 누이 게르티와 조카 안톤의 그림도 많다. 군복무 기간 내에 허용된 예술 활동이었으므로, 나체화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머니의 뿌리 | 비스듬히 보이는 르네상스풍의 두 집은 실레가 1917년에 그린 것으로, 오늘날 크루마우 라트론 거리에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실레가 수년에 걸쳐 풍경화의 모티브로 삼은 뵈멘의 소도시 크루마우는 어머니 마리의 공향이다.

꽃잎 | 데이지, 나팔꽃, 양귀비꽃이 지면 위를 떠다닌다. 연필을 이용한 부드러운 밑그림에 수채화물감으로 채웠다. 실레는 사망하기 3년전부터 전과는 달리 사물을 그릴 때 자연주의적 묘사를 적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원근법을 지킬 흥미는 여전히 없는 모양이다.

화면 가득한 초록빛 | "나는 모든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그려낼 뿐이다"라는 실레의 말은 마치 이 말기작품에 대한 설명처럼 들린다. 이 그림에선 실레가 전에 그려내곤 했던 쓸쓸한 가을빛 해바라기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지면은 대부분 해바라기의 잎의 풍성한 초록빛을 화면 가득히 쏟아놓는 데 할애된다.

국화 | 실레는 1910년 <국화>라는 제목의 유화 작업 밑그림을 위해 총 세 점의 국화 모티브 수채화를 그린다. 이 그림의 노란 국화꽃잎은 부드럽고 약하게 보이는 반면, 지면을 가득 채운 아래의 붉은 국화꽃잎들은 마치 그림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꽃의 밑그림 | 에곤 실레가 붓을 이용해 그린 이 국화 그림에서도 표현주의는 여실히 드러난다. 각 꽃잎들을 그린 붓질은 자연적 사실에 입각한 묘사가 아니라, 꽃의 혼을 표출해내려는 노력인 듯하다.

 

지금도 우리 곁에

 

 

 

"실레가 되고 싶다면

머릿속에 그의 그림들

떠올리는 것으로 족하다."

니콜라이 킨스키,

라울 루이즈의 영화 <클림트>에서 맡은 실레 역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애호가들이

… 실레의 매력을 새로이 발견하고 있다. 실레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예술은 현대적일 수 없다. 예술은 그 자체로 영원한 것이다." 물론 실레의 예술성이 인정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대신 오늘날 실레의 작품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한 가지 위로가 될 것이다. 실레에 대한 인지도는 1980년대 일어난 전시회 붐을 통해 급상승했고, 이후 경매에서는 기록적인 판매가가 매겨졌다.

 

레오폴트 박물관.

 

"에곤 실레는 나에게 있어 항상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의 극히 주관적 세계를 대변하는 그림들은 당시에도 혁명, 그 자체였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내게 매우 현대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특히 그가 창조해 내는 분위기를 사랑한다. 신비로운 동시에 왜곡된……. 이것은 관능을 향한 고결하고도 기이한 찬미이다!"

-이탈로 추켈리, 캘빈 클라인 수석 디자이너

에곤 실레의 생가는 오늘날 에곤 실레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실레는 그림을 그릴 줄은 알아도 팔 줄은 모르는 사람이오. 하지만 그가 다 자초한 일이요. 타인이 좋아하는 걸 그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그리는 데야 당연하지 않겠소?"

-아르투어 뢰슬러, 1913년.

최고가 | 에곤 실레의 <크루마우 전경(마을과 강)>은 2003년 최고가를 기록하며 팔렸다. 구입자는 런던에서 열린 경매에서 1916년 제작된 이 작품에 1800만 유로의 가치를 부여했다. 지금껏 팔린 실레 작품 중 가장 최고가이다.

할리우드 스타 | 칠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해 온 라울 루이즈 감독은 존 말코비치를 주연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일생을 스크린에 담았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에곤 실레 역은 사진의 니콜라이 킨스키가 맡았다. 킨스키에 따르면, "실레 그림 속의 선들은 불꽃처럼 내 잠재 의식에 파고든다"고 한다.

연재만화 | 작가 제이미 태너는 에곤 실레의 일생을 만화로 표현해냈다. 2002년 출간된 《영원한 아이(The Perpetual Child)》에 누드화 때문에 노일렝바흐 감옥에 갇힌 에피소드가 빠졌을 리가 없다.

색채의 마술 |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무늬로 유명한 패션메이커 미소니의 컬렉션은 실레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사진은 1970년대 컬렉션 중 하나이다.

영감 | 실레의 그림에서는 모델들이 입고 있는 옷들이 작품의 캐릭터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패션 디자이너들이 실레를 창조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l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47 萬人譜 18 사람과 사람들


高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6


811.6

고67만  18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이승만 / 이윤 상사 / 개성 노인 / 아기 채영진 / 김기희 / 옥례 남편 / 최규봉 / 이삼혁 / 유기연 / 강동정치학원 / 이태랑 중령 / 이원섭 대위 / 어느 장교 / 홍덕영 / 거문도 장도준 영감 / 용녀 / 신광수 / 어린놈 혼자 / 대문 / 육군 소위 / 미친 노인 / 연보수 노인 / 완주 봉동면 총소리 / 선우휘 / 전우익 / 사미승 동명 / 1950년대 한반도의 하늘 / 1953년 강릉 황소 / 김명국 / 동대문시장 김삼룡이 / 동대문시장 육도수 / 김종호 / 박기종 / 심분례 / 김달삼 / 김재복 / 세자 불공 / 어린 문석이 / 무남촌 제사 / 지나가는 여인 / 갈보 히라노 / 박영만 / 죽통미녀 / 심주식 / 석낙구 / 기만이 영감 / 중대장 오판남 소위 / 김필순 / 갈채다방 옆 뼉다구집 / 가두방송원 최독견 / 김현수 대령 / 금강 / 지귀 / 손달수 / 소녀 봉순이 / 역관 김을현 / 1952년의 풍경 / 고와마루 / 따발총알 / 명당 / 풍년초 / 참호 / 서울역전 / 1950년 10월 김성구 / 박충남 / 꿈 / 강신재 / 열한살 국민학생 / 이만석 / 이진상 / 민재우 / 김인태 목사 / 1950년 음력 4월 8일 밤 / 선우기성 / 이승희 / 이종형 / 귀머거리 할멈 / 얼음부자 노필순이 / 백만동이 / 어린 경태 / 수도약국 / 연탄재 / 임걸출 / 대장장이 조병하 / 상문이 / 이일선 스님 / 마지막 수업 / 아기 순열이 / 근초고왕 / 이접야 / 김종오 장군 / 박진경 중령 / 송호성 장군 부인 / 임행술 / 허인애 / 서울대 수학과 교수 최윤식 / 하조대 / 김매자 / 조소앙 / 수색 복자 / 노형중 할아버지 / 제주도 계용묵 / 기선이 어머니 / 이따 만나세 / 열두살 / 김춘식 중위 / 펀치볼 혈전 전야 / 척(尺) / 10월 22일 밤 / 안병범 대령 / 비원 윤황후 / 한 노인의 독백 / 카프카를 때려치운 한 청년의 일기장 / 이황 이완 형제 / 심득구 / 영섭이 엄마 / 이완 / 김삼봉 / 신노인 / 김정호 / 임종명 중사 / 균여 / 남신동이 마누라 / 의암호 중도 / 나의 가계 / 윤석이 아저씨 아주머니 / 권철 / 허난설헌의 참(讖) / 차복이 / 조향 / 오영수 / 실어(失語) / 통역 고예환 / 쥐 / 약혼녀 / 김동삼 / 주세죽 / 정인욱 / 바 나이아가라 / 인천 청년 / 혜화동 로터리 / 유언 / 왕십리 / 이도빈 / 김천다리 / 원천호수 / 지경 주막 / 명단이


이승만


나라의 불행을 잘 썼다

나라의 모순을 잘 쓰고 남겼다


이겼다


벗어나지 못한 봉건

망명지 하와이의 임종 침대

거기서 평생의 의식을 놓았다

남은 헛소리

어린 시절

고향 황해도 두메 사투리였다

날래 오라우 날래 오라우


두번째 양자가 서 있었다


이윤 상사


1950년 6월 28일 낮

중앙청과

서울 시청에 인공기가 올라갔다

잠시 비가 멈췄다


싱거운 전투가 있었다

국군 이용문 대령의 마지막 명령


각자 해산하라


그때 일등상사 이윤이 남았다

제 가슴을 권총으로 쐈다

쓰러지며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부모도 없다 아내도 묻어줄 전우도 하나 없었다


개성 노인


감자꽃이 피었다

어제까지

개성은 대한민국

오늘 아침까지도

개성은 대한민국


비 온 뒤

만월대 풀섶 나비떼 온데간데없다

1950년 6월 26일 낮

개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계철규 옹은 남아 있었다

큰아들 창희는

해주 외숙 만나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작은 아들 창섭은

막 대한민국 백선엽 사단 신병으로 후퇴했다


어쩔거나

달 뜨는 밤 자랑스럽던 7천평 삼포도 감자밭도 아무 소용 없다


거문도 장도준 영감


아홉살에

아버지 잃었다 아버지의 무덤 없다


아버지가 타던 배 탔다 엉엉 울었다


그 아홉살에 시작한 고기잡이

예순아홉살에도 놓지 않는다


이름 석자 쓸 줄 모르나

물 속 멸칫길 갈칫길

조깃길 홍엇길 훤하디훤하다

물 위 마파람 동부새

정월 하늬바람 훤하다

고래파도 충무공파도 큰애기파도 순실이파도 훤하다


한평생 강아지파도 훤하디훤하다


거문도에도 인민군 건너온다 한다

장영감이 그물 걷다가 중얼거린다

뭣하러 와 왔다가 바로 돌아갈 것을


사미승 등명


외금강 신계사

사미승 등명(燈明)


나뭇짐 벌떡 일어서면

저 비로봉 영랑봉 들도 눈을 껌벅여온다


어제의 고아

내일의 혁명가 홍범도의 한때 인연

신계사 앞

신계천 물소리 젖었다


저 청산리

저 시베리아

저 대륙 아득한 황무지 타슈켄트의 아비였다

그 아비의 전생이었다


1950년대 한반도의 하늘


석달 가뭄 하늘이 미웠던 적이 있습니다

석달 폭격 하늘이 없어졌습니다

석달 공포 하늘을 바라볼 겨를 없었습니다

석달 학살 하늘밖에 남은 것 없었습니다


하느님이란

하늘에 바치는 경칭일 뿐입니다


불발탄 캐내다

다리 하나 잃은

열네살 안병기 녀석한테는

저녁 낙조의 하늘이 살아서 돌아오는 아버지였습니다


어머니의 무덤도 모르는

열다섯살 필례에게는

별 몇개 나와 있는

구름 낀 하늘이 어머니의 무덤입니다


지나가는 여인


저게 누구?

저게 누구 마누라?

세모시적삼 속 살결

백옥

낭자머리 비녀

청옥


저게 누구?

헌병대장 사택으로 들어간다

허리 곧다


한달 전 빨갱이 마누라로 체포되었을 때

죽음 대신

대장의 세번째 네번째가 되었다


곧 양품점도 차린다 한다


기만이 영감


낮에는 뻐꾸기

밤에는 벌써 귀뚜라미


마누라가 영감의 입을 가져갔나

마누라 묻은 뒤로

기만이 영감

통 말문이 막혔다


소달구지에

물외 참외 개구리참외 잔뜩 싣고

시오리장에 다녀온다


밤중 빈 달구지

다 와서야


기만이 영감 입 열려

소도로 한 말 그것뿐

세상에는 말이 자꾸 늘어나는데

말싸움 늘어나는데

기만이 영감의 말은 마누라 무덤에 영영 묻혔나


김현수 대령


1950년 6월 28일 새벽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장 김현수 대령

전쟁 발발 4일째

이제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가 아니었다 다 도망쳤다

그는 혼자 남았다

명동 정훈국에서

정동방송국으로 갔다


인민군이 방송국을 접수한 뒤였다

정지! 수하?

그가 보도과장 김현수 대령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마자

따발총 몇발이 그의 몸을 뚫었다

쓰러진 채

권총을 뽑아들었다

세발 총탄은 허공을 뚫었다

단 한 사람 남아 있던 대한민국 장교 비겁하지 않았다

전남 보성 강골의 아버지 핏줄이었다

두달 뒤 아버지도 학살당했다


소녀 봉순이


휴전 반년이다

못 견디는 북소리 등등 들려온다

소녀 봉순이

빨래 걷어놓고 보따리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북소리 둥둥 들려온다

어디든지 갈 테야

어디든지 갈 테야


칫솔도 비누도 없이

모르는 길을 나섰다

이렇게 북소리의 다음이 시작된다


1952년의 풍경


오늘 최전방

철원이 없어지고

신철원이 생겨난다


중부전선

중공군 전사 70여명

인민군 전사 40여명

아군 전사 25명

미군 전사 3명

어제보다 전사자가 더 늘었다


오늘 후방의 8월

개의 하루가 지나간다

늘어지게 자고 나

앞다리를 뻗는다 썩는 냄새 부쩍 늘었다


후방이야말로 적이다


명당


서부전선 감악산 북쪽 기슭

포탄웅덩이

황토웅덩이

거기 민간인 시체 걸쳐 있다

명당이었다


어디서 태어난 누구인지

별이 빛나는 밤

연애는 해보았는지

감기는 몇번이나 앓았는지

결혼은 했는지


벌써 썩어 문드러진 부란(腐爛)의 사내 송장이었다

포탄웅덩이

천하제일 명당이었다 아서라 말어라


1950년 10월 김성구


오랜 정

오래 이어가는 정


천년 백성에게 남아 있는 그것


그것이 강도 같은 이데올로기로 다 없어져

우익 아버지

좌익 아저씨 다 죽고

나는 핏발 섰다

잿더미 위에서 내 이름은 김성구


달겨드는 짐승 같은 세월만이 나를 먹으리라


김인태 목사


1920년대 북만주 밀산

밀산 예배당

김인태 목사

머릿기름 발라

바람에도 머리 단정했다

심방길

중절모를 써 단정했다


그는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만나면

민족 찾지 말고

하느님 찾으라

오로지 하느님만 찾으라

천당 가야 한다


아편장수한테도

하느님을 찾으라

그래야 아편도 잘 팔린다


북로군정서 이강훈을 만난다

그가 김목사에게 먼저 말했다

제발 하느님 찾지 말고

민족을 찾으시라


상문이


태풍이 왔다

2년째 누워 있던 환자 상문이

벌떡 일어났다

벌떡 일어나 소리질렀다

태풍으로 문짝 떨어져나갔다

상문이 신났다


태풍이 갔다

상문이 다시 누워버렸다


아주 누워버렸다 흰 천이 덮였다


아기 순열이


문산 남쪽

두 시간의 중포탄 포격이 뚝 멈췄다

1950년 6월 26일

적막 속

숨은 사람들이 나왔다

조심스레 입이 열려 말이 나왔다

너 살아 있었구나

아저씨도 무사하셨군요

전선은

벌써 남쪽 행주산성으로 내려가 있다


초가삼간

문짝 떨어져나간 방

돌 지난 아기 순열이 혼자

두 대째

지나가는 탱크를 보고 있다


멈춘 울음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방구석 저울대를 꼭 쥐고 있었다

엄마는 어디 갔나


김매자


화북마을 숨은 샘물

밀물에 숨은 샘물

어김없이

썰물에 나타납니다

밀물 때

밀물에 덮여 잠들어 있다가

썰물 때 나타나

비바리 물허벅에 가득 채워줍니다


스무살 김매자

물허벅 지고 돌담길 돌아옵니다

이마에 젖은 머리카락

센바람에도 일어날 줄 모릅니다

입속에는 무슨 웃음이 담겨 있는지

좀 들썩일 듯합니다

한라산이 뚜렷한 목소리로 다가옵니다

밀물 수평선 넘어 해조음도

우르르 달려옵니다

매자 혼잣말

인석씨는 잘 있는지 ……


비원 윤황후


비원 낙선재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아내 황후 윤씨

늙었다

늙어 단아했다 낭자머리 비녀에 무딘 존엄이 서렸다


세 상궁

오라버니 윤홍섭 옹

그밖의 자질구레 왕실 일가붙이 함께였다


마안 왕조의 뜰 바깥세상 없이 고요했다

닫힌 방

염주 구을리다 말다

서방정토 향해서 꽃 지듯 숨쉬고 있었다


그저 지나갈 까닭이 없다 이런 곳에도 땀이 밴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황후 윤씨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완


어디에도 그 쨍한 눈초리 닿았다

잠 속에서

잠들지 않았다

자객

칼기운이 오싹 다가오면

영락없이

칼집에서 칼이 벌써 나와 있었다


바스락


한밤중 3경

가랑잎새 구르는 소리이면

영락없이

칼집에 칼이 들어가 있다

어디에 고요만한 각성이 있는가


아침 저녁

부하나 구종배에게 시키지 않고

몸소 쑨 여물을 말 앞에 밀어준다


내일은 강 건너 오랑캐를 치러 간다

별들이 도우리라



폭격 뒤

삐쩍 마른 쥐가 왔다

반가웠다


너도

나도 어마나 배고프냐


다리 없는 기철이가 목침을 던져

녀석을 잡아 구워먹었다

죽을 때 내지른

녀석의 비명을 구워먹었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김천다리


휴전 뒤

폭파된 다리 다시 걸렸다

새 다리는 웅크라(UNKRA) 지원 현수교

강 건너

친구 만나러

목발 짚고 건넜다


친구는 세상 떠나고 없다

그 마을 동구밖

박넝쿨 올린 주막 주모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움이 푹 꺼져버렸다


아직 풀섶에 불발탄이 잠자코 숨어 있다


원천호수


며칠째 도박 단속 풀리지 않았다

망국의 도박 발본색원한다는 것


두 꾼

여봉철

하진섭


원천호수 배 타고

호수 복판에 가 화톳장 폈다


먼 데서 바라보면 잉어잡이 틀림없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PREV 1 2 3 4 5 6 7 8 9 ... 165    NEX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