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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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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7 아라의 당구홀릭 1

 

아라 & 폴 지음 / 김정규(전 국가대표 감독) 감수

2013, 글로벌콘텐츠

 

시흥시능곡도서관

SF073433

 

691.6

아292ㅇ  1

 

치고 또 쳐도 늘지 않는 당구!

무엇이 문제일까? 정말 내 팔 삐꾸 인거야??

머리 아픈 당구 이제부터 쉽고 재미있게

만화를 보면서 익혀보세요!!

 

지은이

아라 ARA (강하나)

당구를 좋아하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조금은 삐딱한 여자다. 그림쟁이의 저질 체력을 극복하기 위해 당구를 취미로 선택했다. 현재 개인 블로그에 <아라의 당구홀릭> 연재중이다. 『아라의 당구홀릭』에서 스토리 구성 작업과 그림을 맡았다.

 

폴 PAUL (강성남)

1994년 '주간만화'에 「별의 바다로」라는 SF 단편을 게재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에세이 툰 <쪼그만 얘기>를 발표하였으며, 이 작품으로 문화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출간한 책으로는 『쪼그만 얘기』, 『러브포엠』, 『마지막 잎새』 등이 있다.

그 밖에 다양한 책들에 삽화작업을 진행중이다.

『아라의 당구홀릭』에서 당구에 관한 이론부분과 컬러를 맡았다.

 

감수

김정규 당구스쿨 원장, 前 국가대표

똘이장군이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다. 86년도부터 선수로 활동하면서 94년 SBS 최강전 우승을 비롯해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따는 등 국내 대회 최다 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EBS 직업의 세계에서 3쿠션 당구계의 1인자로 소개된 바 있다. 2009년 당구 국가대표 코치를 맡아 유명 선수들을 이끌었고, 대한당구연맹 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김정규 당구스쿨을 운영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세계일보, 스포츠월드, 월간당구 등에 칼럼을 쓰는 등 후진 양성과 올바른 당구문화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차례

 

프롤로그

재미있는 공놀이

당구의 기본자세

스트로크와 샷!!

당구의 숨겨진 비밀

올바른 연습 방법

두께와 질량

수학적 분리각의 정체!!

가까운 거리에서 45° 분리각 만들기

샷의 특성

밀어치기 샷과 큐볼의 운동량

따라가다

어떤 형태로 움직일까?

 

당구 게임의 종류

 

당구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포켓볼(pocket billard)

테이블 가장자리에 마련된 6개의 포켓에 볼을 집어넣는 방식이다. 아메리칸 빌리아드란 명칭으로도 불리며 미국에서는 풀(pool)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게임은 8볼게임과 9볼게임 등이 있다.

최근 포켓10볼 경기가 신설되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캐럼(carom)

포켓이 없는 사각 테이블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기를 말한다.

몇 개의 공을 테이블 위에 놓고 수구로 적구를 맞히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게임은 4구와 3구 등이 있다.

 

스누커(snooker)

22개의 볼을 사용하며 테이블의 모양과 경기방식은 포켓볼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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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7-016 미래의 전쟁 -과학이 바꾸는 전쟁의 풍경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엮음 / 이동훈 옮김

2017, 한림출판사

 

대야도서관

SB112898

 

404

사68ㅁ

 

SCIENTIFIC AMERICAN

 

The Changing Face of War

 

한림SA 09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세계 최고의 대중과학잡지다. 과학을 좋아하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연구자들도 즐교 보고 통찰을 얻는다. 여기에 소개된 칼럼을 주제별로 한데 모아서 출간하는 '한림 SA 시리즈'는 연구자와 대중 모두에게 훌륭한 지식창고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이 시리즈의 미덕은 현대 과학의 어려운 내용을 비껴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대 과학의 복잡한 내용을 생략하거나 비유로만 설명하지 않고, 진지하게 핵심적 내용에 정공법으로 접근한다.

이명현(천문학자, 과학 저술가)

 

커피 한잔 마시며 기분 내키는 대로 뒤적거리다가 재밌어 보이는 칼럼이 잇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부담 없이 읽으ㅡㄹ 수 있는 그런 잡지, 바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다. (…) 한번도 접해본 적 없는 무지한 분야라도 비전공자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되어 있고, 칼럼 두어 편만 찾아보면 그 분야의 과거와 현재 연구에 대해 빠르고도 정확하게 알게 해준다.

김범준(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세상물정의 물리학》 저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눈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과학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었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입은 과학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랬기에 그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엄선된 가장 핵심이 되는 칼럼들이 스무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를 추천하게 되었다.

이은희(과학 커뮤니케이터, '하라하라 사이언스 시리즈' 저자)

지은이

대니얼 듀폰트 Daniel G. Dupont, 인사이드디펜스닷컴 기자
데이비드 니콜 David M. Nicol, 일리노이주립대학 교수
데이비드 비엘로 David Biello,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자
래리 그리너마이어 Larry Greenemeier,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자
레이먼드 질린스카스 Raymond A. Zilinskas, MIIS 교수
로코 카사그랜드 Rocco Casagrande, 전 UN 생물학무기 감시관
마이클 레비 Michael Levi, 브루킹스연구소 · 외교협회(CFR) 연구원
마이클 올스웨드 Michael Allswede, 응급의학 전문의
마크 앨퍼트 Mark Alpert,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자
매튜 맥킨지 Matthew G. McKinzie, NRDC 연구원
스티븐 애슐리 Steven Ashley, 과학 전문 기자
싱어 P.W. Singer,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알렉산더 글레이저 Alexander Glaser, 프린스턴대학 교수
존 빌라세뇰 John Villasenor, UCLA 교수
찰스 초이 Charles Q. Choi, 과학 전문 기자
켄 콜먼 Ken Coleman, 스탠퍼드 의과대학 연구원
테레사 히친스 Theresa Hitchens, CISSM 선임연구원
토머스 코크런 Thomas B. Cochran, NRDC 연구원
프랭크 본 히펠 Frank N. von Hippel, 프린스턴대학 교수
프레드 구테를 Fred Guterl,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자

 

CONTENTS

 

들어가며

1 하늘의 사신, 무인기                                                                                                               
1-1 무인기 전쟁
1-2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
1-3 사생활에 대한 위협

2 전장에서                                                                                                                               
2-1 터미네이터를 금지하라
2-2 기계들의 전쟁
2-3 군용 로봇은 IED 제거의 최선책인가?
2-4 새로운 전사의 상징, 외골격
2-5 첨단 방탄 소재
2-6 전쟁의 안개

3 사이버 전쟁                                                                                                                           
3-1 디지털 위협
3-2 전력망을 해킹하라

4 지옥의 역병, 생물학병기                                                                                                        
4-1 시한폭탄
4-2 가짜 보톡스, 진짜 위협

5 화학병기                                                                                                                               
5-1 보이지 않는 적을 보라
5-2 사린의 살인 원리

6 핵병기                                                                                                                                  
6-1 핵 벙커버스터 폭탄
6-2 새 핵탄두는 필요한가?
6-3 궤도상의 핵폭발

7 스타워즈 : 궤도로부터의 공격                                                                                                 
7-1 우주 전쟁
7-2 광선병기의 실현

8 테러리즘                                                                                                                              
8-1 핵 테러리즘을 막아라
8-2 핵병기 밀수를 탐지하라
8-3 다음 공격을 예측하라
8-4 대테러 기술들

 

출처

저자 소개

 

 

원격 조종 항공기Remote Piloted Vehicle,

비행체의 비행 방향, 고도, 경로 등을 조종하기 위한 인원이 탑승하지 않고 전자적 또는 기계적 수단에 의해서 사전 선정된 경로와 고도를 비행하거나, 지상 요원에 의해서 비행이 통제되는 항공기.

 

무인항공기, Unmaned Aerial Vehicle

조종사를 탑승하지 않고 지정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작한 비행체로서 독립된 체계 또는 우주/지상체계들과 연동시켜 운용한다. 활용분야에 따라 다양한 장비(광학, 적외선, 레이더 센서 등)를 탑재하여 감시, 정찰, 정밀공격무기의 유도, 통신/정보중계, EA/EP, Decoy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폭약을 장전시켜 정밀무기 자체로도 개발되어 실용화되고 있어 향후 미래의 주요 군사력 수단으로 주목을 받고 있음.

 

IED공포의 그림자Improvised Explosive Device

2005년 바그다드 인근 저항 세력 근거지에서 노획한 IED. 간단하지만 무서운 무기다.

20세기 후반 이후 전선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많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그 동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후방도 비정규전의 무대로 바뀌어 위험 지대가 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레지스탕스, 파르티잔 같은 사례도 있었지만 소규모의 특공 작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소화기나 휴대하기 간편한 지원화기 등이 작전에 주로 사용되었다.

덕분에 어느덧 내전과 테러가 일상화 되다시피 한 중동이나 아프리카 일대에서는 쉽게 구하고 사용하기도 편리한 AK-47과 RPG-7이 시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물론 이 정도도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비정규전에서 충분히 강력할 만큼 효과적인 무기지만, 이에 대응하여 점령지를 안정화시키는 전술도 더불어 발달하였다. 그러자 마치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처럼 공격용 무기는 더욱 다양하고 강력하게 변모하였다.

IED 공격을 받은 스트라이커 장갑차. 비록 충격으로 뒤집혔지만 심한 손상을 받지 않았다.

그 중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는 혼란하게 바뀐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무기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급조폭발물’이라 하는 IED는 사용하는 집단이나 개인이 직접 제작한 폭탄이나 폭발물, 혹은 기존 폭탄을 개조한 형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단지 이름만 놓고 본다면 질이 떨어지고 성능도 미흡한 일종의 사제폭발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에서의 위력은 정반대다.

재료를 조합하여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기존 폭탄에 기폭장치를 추가하여 원격으로 폭파시킬 수 있도록 제작한다. 주요 이동로에 매설하였다가 기회를 포착하여 폭발물을 터뜨려 공격하는 방식으로, 타격 효과가 큰 기갑차량 등이 주요 목표다. 지뢰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한번 매설된 지뢰는 피아 혹은 전투원이나 민간인을 구분하지 못하고 작동하는데 반해서 IED는 목표를 골라 공격한다.

결코 어설프지 않은 무기

급조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장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나 폭탄을 이용하여 제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대량으로 제작되는 제식 폭탄처럼 마구 사용하기 어렵기에 이처럼 목표를 특정하여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IED는 종류도 많고 성능도 제각각 이어서 단순하게 정의를 내리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화염병도 일종의 IED로 볼 수 있지만, 만일 비공식 무장 단체나 개인이 직접 제작한 핵폭탄이 있다면 이 또한 IED에 포함할 수 있다.

사실 사적으로 폭탄을 제작하거나 개량할 수 있는 조직이나 개인이라면 이미 엄청난 무력을 행사하고 있는 해당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다. 때문에 단지 부족해 보이는 명칭과 달리 테러 조직이 사용하는 IED는 자신이 원하는 대상을 기다렸다가 공격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할뿐더러 그 파괴력 또한 대단하다. 특히 고성능의 기존 폭탄을 사용할 수 있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위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매설된 IED가 원격 기폭 장치에 의해 폭발하는 순간의 모습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규군의 제식 폭탄과 달리 IED는 은밀히 기습적으로 사용하는 무기라는 암묵적인 개념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정규전 보다는 비정규전, 혹은 테러로 비난 받는 공격 행위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전시 상황에서 도덕적인 기준을 따지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기습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서 IED는 상당히 불쾌하고 기분이 나쁜 무기일 수밖에 없다.

ISIS처럼 정규군 못지않은 거대 조직도 등장하였지만, 대개 은밀히 활동하는 무장 세력은 전면에 나서서 정규군과 직접 교전을 벌이지는 않는다. 때문에 적은 비용이나 인원으로 상대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동시에 선전 효과가 큰 공격 수단을 택하려 하는데 IED는 이런 목적에 상당히 부합된다. 특히 IED는 공격으로 인한 직접적인 물리적 피해 외에도 관련 이해 당사자에게도 공포를 유발시키는데 효과적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 중인 미 해병대 폭발물 처리반에 의해 IED가 폭파 제거되는 장면

원래부터 존재하던 무기

최고의 전투력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미군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을 쉽게 점령하였지만, 막상 치안 확보에 쩔쩔맨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저항 세력이 테러 도구로 애용하는 IED때문이었다. 직접 피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를 탐색하고 방어하는데 들어가는 간접 피해는 물론, 동료들이 바로 옆에서 갑자기 폭사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군인들의 심리적 고통도 상당히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IED가 21세기 들어 갑자기 생겨난 무기는 아니다. 어떤 무기까지를 IED로 보느냐 하는 문제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여지가 많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IED로 취급될 수 있는 무기는 제1차 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참호전으로 대변되는 것처럼 일단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돌격 후 백병전이 일상화되다 보니 방어용 급조물로 IED가 매설되어 사용되었다.

제2차 대전 당시 영국 특수부대가 지향성 지뢰를 이용하여 차량 폭파 훈련을 하는 장면. 이 또한 IED를 이용한 공격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제2차 대전, 한국전쟁, 북아일랜드 분쟁, 베트남전쟁에도 쓰였지만 IED가 공포의 대상으로 본격 부각된 것은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이후라 할 수 있다. 우선 전쟁이 군사적 점령으로 모든 것이 완료되던 예전과 달리 이후 점령지 안정화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되고 더불어 그 와중에 벌어지는 모든 내용이 시시각각 전 세계로 보도되면서 상대적으로 선전 효과가 큰 IED가 대중에게 익숙해 진 것이다.

효과가 커서 저항 세력의 IED에 대한 의존도는 커져갔고 그 만큼 위력도 강해졌다. 더불어 이런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노력도 함께 발전하였다. 예들 들어 미군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점령지역에서 처음에 정찰용으로 애용한 험비(HMMWV) 같은 경장갑 차량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자 2007년부터 MRAP(Mine Resistant Ambush Protected)라 불리는 IED대비용 특수차량까지 도입하였을 정도다.

IED 대비 실험 중인 MRAP. 하지만 모든 IED로부터 완벽히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여 더욱 무서운 것

IED는 주로 매설되어 있다가 방어력이 취약한 차량 밑을 공격한다. MRAP은 차량 하부를 V자 형태로 가공하여 폭발력을 분산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공격을 회피하고 있다. 이처럼 방어력이 증대되자 공격 조직은 단순 폭발을 이용한 공격 수단 외에 장갑을 완전히 관통시켜 파괴하는 EFP(Explosively Formed Penetrator), 즉 ‘장갑 관통 폭발형 관통자’라고 불리는 공격 수단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IDE 매설 혹은 은닉 의심 지점을 탐지하는 장비. 하지만 여러 기계적 대응 수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가장 원시적인 수색 방법이 효과적이다.

전통적으로 중장갑을 관통하기 위해서는 성형작약탄(HEAT)이 사용되는데, 이를 이용한 형태의 IED가 바로 EFP다. 성형작약 앞에 구리 등으로 만들어진 라이너(Liner)를 덧대어, 기폭 시 라이너가 고속으로 원뿔 형으로 변형 사출되면서 표적을 관통하게 된다. 가내수공업 형태로도 제작이 가능할 만큼 구조가 단순하고 제작도 쉽지만 그 능력은 중장갑도 뚫을 정도로 강력하다.

이처럼 진화하는 IED를 막기 위해 전파 교란 기술을 이용하여 원격 조종 기폭장치를 무력화시키는 방법 등이 등장하였으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구심이 많다. 결국 가장 좋은 대처법은 어쩌면 가장 원시적이라 할 수도 있는 방법, 즉 매설된 폭탄을 먼저 찾아내어 제거하거나 의심지역을 우회하여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위험이 수반되는데, 이것은 IED를 즐겨 사용하는 이들이 원하는 또 하나의 효과이기도 하다.

IED가 전쟁의 승패를 바꿀 수는 없지만 전쟁 이후의 상황에 커다란 작용을 하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첨단 무기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작금의 시대에 어쩌면 가장 오래된 방식이자 가장 재래식 방법이기도 한 IED가 최신식 군대에 가장 무서운 공포의 그림자가 된 것은 한마디로 역설적이다. 그만큼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하려는 인간의 의지는 무섭다.

2006년 이라크 와지리야에서 있었던 IED의 공격으로 파괴된 차량과 건물

 

 

퍼그워시 운동

1957년 캐나다의 퍼그워시에서 시작된 반전 반핵 운동.

 

R.U.R.

R.U.R.은 1920년에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SF 희곡이다. R.U.R.은 Rossumovi Univerzální Roboti (Rossum’s Universal Robots)의 약자이다. 그러나, 체코어 원본에 부제를 영문인 Rossum’s Universal Robots로 달아두었다. 1921년 1월 25일에 초연되었고, 영어와 SF세계에 robot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등장시켰다.

출판된 뒤에는 매우 빠르게 유명해져서 1923년에는 30개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다.

 

우르드어

파키스탄과 인도의 공용어 가운데 하나.

 

포트베닝

보병 및 기갑 병과가 합동으로 훈련을 받는 기동 센터가 있는 곳.

 

로터rotor

1) 헬리콥터 회전익부분의 총칭. 양력이나 추력을 발생시키는 로우터가 부착된 허브를 포함하여 수평면에 장착된 길고 좁은 에어포일이나 날개로 구성된 모두개. 수직면, 수평면내에서 회전하는 주로부터 부수되는 유사장치
2) 가스터빈 엔진의 압축기와 터빈 부분에서 회전하는 디스크 부분.
3) 직류발전기의 회전부품.

모터 등의 회전부분으로 회전자라고도 한다.

 

웰컴 트러스트 생어 연구소

웰컴 트러스트 생어 연구소(Wellcome Trust Sanger Institute, 옛 이름은 생어 센터(The Sanger Centre))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체 서열 생산, 분석, 생정보학연구, 데이터베이스구축을 하는 종합 생명과학센터이다. 1992년, 2개의 노벨상을 받은 영국 케임브리지 MRC 센터프레더릭 생어의 이름을 따서 생어 센터로 세워졌다. 자본은 영국 정부와 세계에서 가장 큰 기부단체인 웰컴 트러스트에서 제공했다. 2007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앞선 유전체학 연구센터이기도 하다. 생어센터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위치하고 있고, 일종의 출연연구소이다. 케임브리지의 시내에서 10분정도 떨어진 위치(힝스턴)이 있다.

 

E폭탄

전자폭탄(E폭탄, electronic bomb)의 공식 명칭은 "고전력 극초단파 빔(HPMs, High Powered Microwave beams)"이다.

전자폭탄은 20억W(와트)의 전력을 분출, 반경 330m이내에 있는 모든 컴퓨터, 통신장비 등 모든 전자기기를 파괴하는 것으로 전자기파 펄스(EMP·Electromagnetic Pulse)를 이용해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상대방의 전자장비를 무력화하는 신종 무기이다.

전자기파 펄스는 번개 또는 높은 에너지 현상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한 에너지를 절연 처리가 되지 않은 전도체로 공급해 전자 장치를 파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폭탄은 전자기파 펄스 방출장치로 이뤄진 것으로 크루즈미사일에 탑재돼 사용할 수 있다.

전자폭탄이 도시에서 폭발하면 텔레비전, 형광등, 자동차, 컴퓨터, 휴대전화 등 반도체로 작동하는 전자기기는 모두 망가진다. 이 무기에서 나오는 강력한 전자기파 펄스가 안테나와 전력선을 타고 이동해 민간, 군사용 가리지 않고 수백m 내의 전자장치를 모두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기파 펄스의 효과는 미국이 1958년 태평양 상공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 우연히 확인됐다. 당시 하와이의 가로등이 갑자기 소등된 사고가 발생했고 호주에서도 무선항해에 지장을 받았는데 그 원인이 핵폭발 중 방사된 강력한 전자기파 펄스에 따른 것임이 밝혀졌던 것이다.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1960년대 이후 미국·소련이 구사했던 전략으로,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MAD로 약칭하기도 하고, 상호확증파괴전략·상호필멸전략이라고도 한다. 미소 억제전략의 중추개념으로서, 1950년대 말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처음으로 채택되었다. 미국이 봉쇄전략과 대량보복전략에 이어 채택한 전략 개념으로, 상대방이 공격을 해 오면 공격 미사일 등이 도달하기 전 또는 도달 후 생존해 있는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방도 절멸시키는 전략을 말한다.

이 전략 개념은 선제공격으로 완전한 승리를 하기보다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행하는 전략, 즉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행하는 억제전략이다. 따라서 무기는 사용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생산하는 억제 무기로서, 상대국의 국민과 사회 그 자체를 볼모로 삼는 도시대응 무기 전략이다. 이 때문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지도자라면 상호 절멸을 의미하는 공격을 감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도자가 공격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컴퓨터의 실수, 테러집단에 의한 입수, 과대망상증에 걸린 종사자 등에 의한 전쟁 유발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로 인해 소련흐루쇼프미국의 상호확증파괴전략에 대해 기습공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제예방전략으로 대응하였고, 미국은 다시 이 전략의 취약점을 보완해 전면 전쟁을 하지 않으면서도 전쟁목적을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유연반응전략으로 대응하였다. 이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이 다시 유연목표전략(flexible targeting strategy)으로 바꾸자, 소련도 1970년대 말부터 상호확증파괴전략을 인정하고, 1979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데 합의하였다.

이후 1991년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상호확증파괴는 냉전시대의 억제전략으로서 미소간 전쟁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2000년 11월 부시(George Walker Bush)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미국은 2001년 태세 검토 보고서(NPR:Nuclear Posture Review)를 발간해 기존의 억제 전략인 상호확증파괴를 버리고 보다 적극적인 무기 사용 의지를 천명하는 등 일방적 확증파괴라는 새로운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밴앨런대Van Allen belt

지구자기축에 고리 모양으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방사능대를 가리키며, 이것을 처음 발견한 미국의 물리학자 J. A. 밴앨런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밴앨런복사대의 내층은 지상에서의 높이가 지구 반지름의 약 1/2이고 대부분 고에너지의 양성자로 되어 있으며, 속도가 빠른 전자도 포함되어 있다. 외층은 지상에서의 높이가 지구 반지름의 약 2.5배로서 내층과 마찬가지로 빠른 전자와 양성자층으로 되어 있다. 이들 이온화된 입자의 하나하나는 지구자기의 자력선에 따라 나사선을 그리면서 지구자기 적도면에서 한쪽 극으로 향하며, 어떤 점(반사점)에 도달하면 반전하여 다른 극의 반사점으로 향하면서 수 초 정도의 주기로 격렬한 왕복 운동을 한다.

밴앨런대

 

 

저지구궤도

보통 지상 144~900킬로미터의 원(圓)궤도.

 

故用兵之法 高陵勿向 背邱勿逆

(고로 군대를 운용하는 법은, 고지의 구릉에 있는 적을 향하여 공격하지 않으며, 언덕을 등진 군대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 《손자병법》(중국의 전략가 손자가 BC 500년경에 쓴 병법서)

 

솔리드스테이트 벌크 레이저solid-state bulk laser

벌크 결정(bulk crystal)을 이득매질(gain medium, 빛을 증폭시켜 레이저로 만드는 물질)로 사용하는 고체 레이저(solid-state laser).

 

맨하튼 계획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후원한 계획으로 1942년 전쟁성에 의해 수립되었으며, 독일이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는 과정이라 주장한 아인슈타인 등의 수십 명의 "망명 과학자들"로부터의 반복된 경고에 대응하여 이루어졌다. 1945년 7월 뉴멕시코의 알라모고도에서 첫 핵무기의 실험이 있었으며, 한 달 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사용되었다. L.그로브즈 준장에 의해 추진된 맨해튼 계획은 막대한 규모로 2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소요되고 150,000명 이상이 고용되었다. 과학 연구는 주로 시카고 대학과 뉴멕시코의 로스알라모스에서 수행되었으며 원자폭탄 생산을 위한 거대한 시설이 테네시의 오크 리지와 워싱턴의 핸포드에 세워진 바 있다.

 

탄광의 카나리아

예전 광부들이 탄광에 들어갈 때 유독가스에 예민한 카나리아를 데리고 간 데서 유래한 말로, '위험의 전조'를 나타낸다.

 

미세 캔틸레버

유연하게 휘어지는 성질을 가진, 분자 분석을 위한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탐침. 주로 실리콘, 실리콘 산화물 및 질화물로 제작된다.

 

옮긴이_이동훈

중앙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항공> 기자, (주)이포넷 한글화 사원을 지냈다. 현재 군사, 역사, 과학 관련 번역가 및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7년부터 월간 <파퓰러사이언스> 한국어판을 번역해오고 있으며, 그 외의 옮긴 책으로 《브라보 투 제로》, 《슈코르체니》, 《배틀필드 더 러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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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7-015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 히사이시 조가 말하는 창조성의 비밀

 

 

히사이시 조 지음 | 이선희 옮김

2016, 샘터

 

대야도서관

SB112140

 

674.804

히52ㄴ

 

아우름 11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

'Aurum'은 라틴어로 '빛나는 새벽'이란 뜻입니다.

우리의 감성과 지성에 빛나는 새벽을 여는 책을 만들어 갑니다.

세대를 아우르는 지혜, 앞 세대가 다음 세대를 껴안는 사랑을 담습니다.

 

히사이시 조 久石讓

1950년생. 일본국립음악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후, 1982년 첫 번째 앨범 <INFORMATION>을 발표했다. 1984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음악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음악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이웃집 토토로>(1988), <마녀 배달부 키키>(1989), <붉은 돼지>(1992) 등의 음악을 담당했으며, <모노노케 히메>(1997)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영화음악상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벼랑 위의 포뇨>(2008) 등의 작품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동반관계를 이어가며 세계적 영화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일본의 작가주의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와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2), <소나티네>(1993), <키즈 리턴>(1996), <하나-비>(1997), <기쿠지로의 여름>(1999) 등의 작품을 함께 작업했다. 영화 외에도 수많은 드라마, CF, 다큐멘터리에서 음악을 작곡하고 프로듀싱했으며, 2001년에는 <쿼텟>이란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하기도 했다.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는 히사이시 조가 처음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밝힌 책으로, 음악가로서의 열정뿐 아니라 창조성의 비밀, 확고한 인생철학까지 그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옮긴이 이선희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교육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부산대학교 외국어학당 한국어 강사를 거쳐 삼성물산, 숭실대학교 등에서 일본어를 강의했다. 현재 KBS 아카데미 일본어 영상번역과정 강사이며, 방송 및 출판번역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비밀》, 《방황하는 칼날》, 《검은 집》, 《천국까지 100마일》 등이 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추억의 마니>, <하나와 앨리스 : 살인 사건> 등의 애니메이션을 우리말로 옮겼다.

 

나는 작곡가이다.

작곡가의 기본 명제는 '좋은 곡을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작곡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계속 곡을 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 히사이시 조

 

|차례|

 

여는 글 음악은 곧 나 자신이다

 

1장. 감성과 마주하라

예술가와 비즈니스맨의 차이
일류의 조건
감독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작곡하지는 않는다
감성이란 무엇일까?
아이디어는 무의식 속에 번뜩인다
그 자리의 분위기를 잡아라



2장. 직감력을 연마하라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라
느끼는 힘을 연마하라
컵을 보고 꽃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직감은 행운을 끌어당긴다
수준은 낮은 쪽으로 향한다
실패의 원인은 내부에 있다

3장. 영상과 음악의 공존

침묵을 두려워하지 말라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음악
매번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진검승부한다
세계관은 최초의 5분 안에 결정된다
음악가로서의 가능성을 넓히는 영화음악
프로의 일원이라는 자부심
작품의 인격
음악가의 시점으로 만든 <쿼텟>


4장. 음악, 그 신비함에 대하여

음악은 기억의 스위치이다
새로운 도전-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너는 세계 제일이다
최고의 청중은 나 자신이다



5장. 창조성의 본질

전통악기는 뜨거운 감자
후세에 전통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일의 의미는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
감수성 그리고 강인한 힘



6장. 시대의 바람을 읽는다

아시아에서 불어오는 바람
혼돈 속에 있는 아시아 파워
온리 원의 함정
나는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싶다

 

composer,

1. 다양한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 때로는 고전 음악, 민요, 대중음악 따위를 새로운 기법으로 편곡하기도 한다.
2. 영화, 또는 영상에 필요한 멜로디, 리듬, 화성에 맞추어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
3. 애니메이션에 들어가는 음악을 스크립트스토리보드분위기에 맞추어 주제 음악, 배경 음악 등을 작곡하는 전문 음악가.

 

mix down, ミックスダウン, mixed foursome

녹음된 여러 트랙오디오 신호를 작업 목적에 따라 믹싱으로 단일 트랙의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것.
음량, 음원의 위치 등 균형을 맞추고, 음색의 변화나 특수한 음향적인 효과를 더해 2개의 채널(channel) 또는 상황에 맞는 채널 수에 맞추어 손질하는 작업.

 

존 케이지John Cage, John Milton Cage Jr. 작곡가

191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출생하였다. 포모나대학교를 졸업하고 H.카우엘, A.쇤베르크에게 작곡을 배웠다. 1936∼1938년 시애틀의 코니시스쿨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타악기만으로 앙상블을 조직하고 1951년경부터는 독자적인 음악사상에 입각하여 문제작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또 1952년 독일의 도나웨신겐에서 개최된 현대음악제에서는 《4분 33초》라는 작품을 발표, 음악에 우연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유럽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우연성이나 불확실성은 작곡기법의 하나로서 널리 채용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Imaginary Landscape No.4》(1951)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서트》(1954∼1958) 《Variations I》(1958) 등이 있으며, 또 도안악보()의 창안 등 독창성 넘치는 활동도 하였다.

 

빈코 글로보카르Vinko Globokar

안데르니 출생. 모국의 뤼브리야나음악원과 파리음악원에서 트롬본을 배우고, R.레이보비츠와 L.베리오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그 뒤 케른음악원에서 트롬본을 가르치고(1968), 프리 뮤직을 위한 단체 ‘뉴포닉 아트’를 결성하였다(1972). 현재는 파리의 음악연구기관인 ‘이르캄’의 연구원이다. 트롬본 연주자로서는 순환호흡에 의한 무한주법()을 위시한 많은 새로운 주법을 개발하였고, 작곡가로서는 5개의 트롬본을 위한 《디스쿨 II》(1967~1968), 앙상블을 위한 《라보라토리움》(1973) 등의 작품이 있다.

 

우연성의 음악chance operation, indeterminacy

작곡이나 연주에 우연성()을 채용한 음악을 가리킨다. <챈스 오퍼레이션>, <불확정성의 음악>, <알레아토리크> 등의 용어도 사용된다. 작곡이나 연주에 일종의 우연성을 이용하는 것은, 즉흥연주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서를 불문하고 예로부터 존재했다. 바로크 시대의 통주저음이나 고전파 시대의 카덴짜도 그 한 예이다. 그러나 <우연성의 음악>은 20세기 후반의 우연성을 한층 적극적으로 취급한 음악을 뜻한다. 1951년 존 케이지는 중국의 역법()을 이용해서 피아노곡 ≪변화의 음악 music of changes≫을 작곡한 이후, 작곡과 연주 쌍방의 차원에서 불확정한 요소를 지닌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이러한 케이지의 발상에는, 불교의 선() 사상이나 에릭 사티의 음악 또는 다다이즘의 예술 운동이 있었다. 케이지의 <우연성의 음악>은 M. 펠트만, C. 볼프, E. 브라운 등 미국의 새세대 작곡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케이지의 음악과 그 사상은 1954년 10월에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소개되어, P. 불레즈, K. 시톡하우젠 등에 충격을 주었다.

불레즈는 1957년에 <알레아>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고, 케이지의 사상을 <동양주의>라고 비판하여, 부분적으로 우연성을 이용하는 <관리된 우연성>을 주장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이 우연성의 사상은, 기보법의 개량(도형악보)나 연주 행위 회복의 원동력이 되어, V. 글로보카르의 <집단 즉흥연주>나 시톡하우젠의 <직관()음악> 등 서양의 음악사상 자체의 반성을 재흥시키고 있다.

 

미니멀리즘minimalism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 예술 분야에서 출현하여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어에서 '최소한도의, 최소의, 극미의'라는 뜻의 '미니멀(minimal)'과 '주의'라는 뜻의 '이즘(ism)'을 결합한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은 기본적으로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회화와 조각 등 시각 예술 분야에서는 대상의 본질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경향으로 나타났으며, 그 결과 최소한의 색상을 사용해 기하학적인 뼈대만을 표현하는 단순한 형태의 미술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미술이론가이기도 한 도널드 주드(Donald Judd)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음악에서의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 인기를 끌었던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단조롭고 반복적인 합주곡처럼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박자에 반복과 조화를 강조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도 소재와 구조를 단순화하면서도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타났으며,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리차드 풀러(Richard Buckminster Fuller)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니멀리즘은 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장식적인 디자인을 가능한 제거한 심플한 디자인이나 직선적인 실루엣의 선정적인 옷, 또는 최소한의 옷으로 훌륭한 옷차림을 연출하는 방법 등이 모두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미니멀리즘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유만을 주장하는 금욕주의 철학, 복잡한 의식을 없애고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종교적인 흐름 등 많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니멀뮤직minimal music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작곡가 S.라일히, T.라이리 등이 처음 시도한 연주방법으로, 대개 합주연주되지만 신시사이저(전자음합성장치)의 기억회로()를 이용하여 한 사람이 연주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연주방법은, 극히 짧은 선율의 한 패턴을 몇 번이고 반복 연주하면서 점차 원래의 선율을 조금 변형시킨 패턴으로 이행()시켜 나가는데, 이렇게 연주가 중첩되면 선율과 선율 사이에 갖가지 엇갈림이 생겨 마치 청각적()인 모아레(moiré:얼룩)와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종래의 극적() 음악과는 판이한, 감각적인 부유상태()를 느끼게 하는 음악으로, 이 기법은 다양한 변화를 가져와 현재는 현대음악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또한 이 기법은 클래식음악뿐만 아니라 포퓰러음악, 특히 록음악에도 이용되고 있다.

 

fluegelhorn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

페테르부르크 출생. 어려서부터 페테르부르크음악원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배우고, 11세 때 글랴세르의 음악학교에 들어가 정규의 작곡공부를 시작하였다. 러시아혁명 후인 1919년에는 페트로그라드음악원에 입학, L.니콜라이에프에게 피아노를, M.시타인베르크와 A.K.글라주노프에게 작곡을 배우고 1925년에 졸업하였다. 졸업작품인 《제1교향곡》은 소련뿐 아니라 세계 악단에 그의 이름을 떨치게 하였다.

당시 페테르부르크에는 유럽의 새로운 경향의 음악, 즉 I.F.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 A.베르크의 표현주의 작품들이 한창 연주되었으므로, 그도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의 작품에 《제2교향곡》(1927) 《제3교향곡》(1929), 그리고 《피아노·트럼펫과 오케스트라의 협주곡》1933) 《피아노전주곡집》, N.V.고골에 의한 오페라 《코》(1930), 발레 《황금시대》(1930) 등이 있다.

한편 이 무렵부터 예술에서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가 34년에 발표한 《므첸스크의 맥베스부인》이 공산당의 예술운동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창작에 대한 이러한 간섭은 당연히 문제가 되었으나, 그는 이 비판을 견디어 내고 작풍을 전환하여 1937년의 《제5교향곡》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40년 《피아노5중주곡》으로 제1회 스탈린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방공감시원으로 종군하였고, 1942년 《제7교향곡》으로 다시 스탈린상을 받았다. 그러나 대전 후인 1945년에 발표한 《제9교향곡》은 그 경묘한 내용과 신고전적 작풍 때문에 “타락한 유럽 부르주아지의 형식주의에의 추종”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즉 ‘지다노프 비판’이다. 그러나 49년의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와 51년의 합창모음곡 《10의 시()》로 인기를 회복하고 또다시 스탈린상을 받았다.

1937∼1941년에는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1943∼1948년에는 모스크바음악원의 작곡교수를 지냈다. 작품에 15곡의 교향곡 외에 현악4중주곡을 비롯, 기악곡·오페라·오라토리오·발레음악·영화음악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카를 오르프Carl Orff

뮌헨 출생. 1914년 뮌헨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각지에서 지휘활동을 하다가 1921년 H.카민스키에게 사사, 그 영향으로 르네상스바로크음악에 흥미를 가졌다. 1924년부터는 킨터와 함께 음악과 체육을 결합시키는 데 힘썼으며, 또 E.J.달크로즈의 교육노선에 따라 1935년까지 음악교육부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음악교육용의 독특한 작품 《슐베르크 Schulwerk》를 출판하고 1937년에는 대표작의 하나인 《카르미나부라나 Carmina Burana》를 작곡하여 독자적 작풍을 확립하였다. 1943년 《카툴리 카르미나》를 발표하고 이후 《안티고네》 《아프로디테의 승리》 등 그리스 비극을 제재로 한 많은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풍은 리듬을 중시하여 타악기를 많이 이용하고, 거기에다 단순 명쾌한 유니즌(unison)과 5회 반복의 선율을 사용하여 힘차고도 원시적인 효과를 냈다. 1950∼1960년에는 뮌헨대학교에 있었다.

 

버르토크Béla Bartók

1881년 3월 25일 헝가리의 나지센트미클로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업학교 교장이었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5세 무렵부터 어머니의 지도로 피아노를 배웠는데, 일찍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7세 때 자작의 소곡 「다뉴브」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의 일부를 공개 연주하여 그 음악적 재능을 알렸다. 1907년, 부다페스트의 국립 헝가리 음악원 피아노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1912년에 사직하고 작곡에만 전념했다. 1940년 미국에 가서 아내와 함께 피아노 연탄 연주회를 개최했고, 같은 해 11월 25일 컬럼비아 대학은 버르토크에게 명예 음악박사의 칭호를 주었다.

그 후 병에 걸렸으나, 와병 중에도 작곡을 계속하여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죽음 며칠 전에 완성했는데, 1945년 9월 25일 뉴욕에서 타계했다. 버르토크은 헝가리 · 루마니아 ·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민요를 1만 종이나 수집하여, 그 중에 1,000곡 정도를 발표하였다. 그의 민요 연구는, 순수한 민요적 가락으로 작곡하는 하나의 태도를 만든 데에 의미가 있다. 버르토크은 ‘현대의 베토벤’으로도 비유되고, 버르토크 협회도 창립되었으며, 그 연구와 유업()이 널리 소개되고 있다.

 

serendipity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의 발견(을 하는 능력), 의도하지 않은 발견, 운 좋게 발견한 것"을 뜻한다. 형용사형은serendipitous이며, '뜻밖에 행운을 발견 하는 사람'은 serendipper라고 한다.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Horace Walpole, 1717~1797)이 1754년에 쓴 「The Three Princes of Serendip」이라는 우화()에 근거하여 만든 말이다. Serendip이라는 섬 왕국의 세 왕자가 섬을 떠나 세상을 겪으면서 뜻밖의 발견을 했다는데 착안한 것이다. Serendip은 스리랑카(Sri Lanka)의 옛 이름이다.1)

원래는 14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아미르 호스로 델라비(Amir Khusrow Dellavi)의 민담집 『8개의 천국』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야기는 좀 황당하다. 예컨대, 어느 날 낙타를 잃어버린 한 아프리카인을 만나자 세 소년은 낙타를 보지도 않았지만 자세히 설명한다. 그 낙타는 애꾸고 이빨이 하나 빠졌고 다리를 저는데, 한쪽에는 기름, 한쪽에는 꿀을 싣고 있으며, 임신한 여인이 곁에 따라간다는 것이다. 낙타 주인은 이들이 낙타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국왕에게 고발했지만, 얼마 후 낙타를 도로 찾아 이들은 감옥에서 풀려나온다. 왕이 어떻게 보지도 않은 낙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느냐고 물었는데, 그들의 답은 이렇다.

"길가의 왼쪽 풀만 뜯어먹었으니 낙타의 오른쪽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뜯어먹은 풀이 일부 떨어져나온 것으로 보아 이가 빠졌다. 한쪽 발자국이 다른 쪽 발자국보다 약하니 다리를 절고 있다. 길 한쪽에는 개미들이 모여들고 다른 쪽에는 벌이 부지런히 오가니 이는 기름과 꿀을 조금씩 흘렸기 때문이다. 그 옆에 난 샌들 자국으로 보아 여자가 낙타를 몰고 가고 있다. 게다가 축축한 흔적이 있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사내의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데다가 땅에 손을 짚고 일어난 표시도 있으니 그 여자는 분명 임신부다."2)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 1910~2003)은 엘리너 바버(Elinor Barber)와 같이 쓴 『세린디피티의 여행과 모험(The Travels and Adventures of Serendipity)』(2003)에서 세린디피티를 과학적 방법론의 하나로 발전시켰다.3) 역사가 돈 리트너(Don Rittner)는 "역사는 타이밍과 인맥 환경과 세린디피티가 어우러져 만들어진다(History is an intricate web of timing, people, circumstances, and serendipity)"고 했는데, 특히 과학 분야에선 이런 사례가 많다. 예컨대, 오르가논(Organon) 사는 건초열(hay fever)성 알러지를 위한 항히스타민제를 개발하다가 실패했지만 실험에 참가했던 직원과 피실험자가 유례없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톨본(Tolvon)이라는 항우울제를 개발하게 된다. 또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은 1928년 페니실린 곰팡이를 발견했으나 그 효능은 10년이 지나서 옥스퍼드 대학의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 1898~1968)라는 병리학자가 우연히 알아냈으며, 애초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된 비아그라(Viagra)도 실험 참가자들이 남은 약을 반납하지 않아 알아보니 발기부전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4)

세렌디피티는 최근에는 IT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 되었다. 일본 저널리스트 모리 겐(, 1968~)은 인터넷은 스위치를 켜면 자동적으로 정보가 나오는 TV와 달리,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정보가 제공되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발견이나 새로운 만남, 즉 세렌디피티의 상실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예측된 범위의 것만 추천되고 자신의 사고조차 의도적으로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을 단순히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5)

그러나 구글의 '순간 검색(Instant Search)'은 세렌디피티를 제공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 조용호는 이렇게 말한다. "순간 검색은 구글 검색 창에 검색 단어를 입력하면 글자가 입력되는 족족 검색 결과가 화면에 뿌려지는 방식이다. 단어를 다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누른 후에야 결과를 볼 수 있던 사용자들에게는 새로운 서비스인 것이다. 구글은 사용자 편의성 제고 및 단어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검색 결과를 통해 세렌디피티, 즉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을 서비스로 제공한 것이다. 물론 구글의 의도가 사용자 가치를 올리는 데만 국한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6)

세계 최대의 온라인 스토어인 아마존(Amazon.com)의 창업자 제프 베저스(Jeff Bezos, 1964~)는 재미 삼아 차고에서 중고책 몇 권을 판 경험이 자신의 세렌디피티였다고 했고,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1984~)도 자신의 성공을 세렌디피티로 설명했다. 하긴 구멍가게를 하듯 4명의 대학생이 시작한 일이 딱 8년 만에 1,000억 달러 가치, 연 매출 40억 달러의 괴물로 성장했으니,7)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랴. 저커버그는 이 기적과 같은 일에 대해 『타임』(2010년 12월 27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행하는 세렌디피티라는 개념을 갖고 있어요. 뜻밖의 행운인 거죠. 가령 레스토랑에 가서 한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우연히 마주치는 것과 같은 거죠. 굉장한 경험이죠. 그 상황이 그렇게 마법처럼 보이는 이유는 대체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는 사실 그런 상황들이 실제로는 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우리가 그 중의 99퍼센트를 놓치고 있는 거겠죠."

저커버그와 인터뷰를 한 레브 그로스먼(Lev Grossman)은 이런 해설을 덧붙였다. "페이스북이 원하는 건 외롭고 비사교적인 세계를 무작위적 확률로 친근한 세계로, 뜻밖의 발견이 있는 세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이 이루는 네트워크 속에서 일하며 살게 될 것이고, 결코 다시는 혼자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터넷, 그리고 전 세계는 하나의 가족처럼, 하나의 대학 기숙사처럼, 혹은 직장 동료들이 최고의 친구들이기도 한 하나의 사무실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8)

온갖 유형의 세렌디피티 가운데 가장 가슴 떨리는 건 역시 사랑의 세렌디피티일 게다. 피터 첼솜(Peter Chelsom) 감독의 〈세렌디피티〉(2001)가 바로 그런 살 떨리는 감격을 그린 영화다. 첼솜은 그간 늘 적자만 보는 영화를 만들다가 이 영화를 통해 최초의 대박을 터뜨렸으니, 그에겐 다른 이유로 살 떨리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뉴욕의 크리스마스이브, 모두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을 사느라 바쁜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조나단(존 큐잭 분)과 사라(케이트 베킨세일 분)는 각자 자신의 애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가 마지막 남은 장갑을 동시에 잡으면서 첫 만남을 갖게 되지만, 평소 운명적인 사랑을 원했던 사 라는 다음 만남을 거절하면서 운명에 미래를 맡기자고 제안한다.9)

〈Serendipity〉

Serendipity

결국 두 사람은 7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걸 아름답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둘 다 서로의 약혼자와 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일련의 세렌디피티에 의해 다시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파혼당할 두 남녀를 희생으로 하는 사랑 노름을 세렌디피티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각주

  1. John Bemelmans Marciano, 『Toponymity: An Atlas of Words』(New York: Bloomsbury, 2010), pp.109~111; Martin H. Manser, 『Get to the Roots: A Dictionary of Word & Phrase Origins』(New York: Avon Books, 1990), p.205.
  2. 주경철,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70] 세렌디피티」, 『조선일보』, 2012년 7월 5일.
  3. Serendipity, Wikipedia.
  4. 임귀열, 「임귀열 영어」, 『한국일보』, 2013년 5월 29일.
  5. 모리 켄, 하연수 옮김, 『구글 · 아마존화하는 사회』(경영정신, 2006/2008), 219쪽.
  6. 조용호, 『플랫폼전쟁』(21세기북스, 2011), 241쪽.
  7. Mathew Ingram, 「Why It's Not Easy Being Mark Zuckerberg」, 『The Washington Post』, July 27, 2012.
  8. 마샤 아미든 루스타드(Marcia Amidon Lusted), 조순익 옮김, 『마크 주커버그: 20대 페이스북 CEO, 8억 제국의 대통령』(해피스토리, 2011/2012), 107쪽.
  9. Serendipity(film), Wikipedia.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řák

네라호제베스 태생인 보히미아(체코)의 작곡가. 여인숙과 정육점을 경영하는 가난한 가정의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6세 때 프라하의 오르간 학교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벌기 위해 마을의 악대나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19세 때에 오르간 학교를 졸업하고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출발하여, 이윽고 선배인 스메타나에게 발견되어 그가 지휘하는 체코 국민 가극장 관현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있으면서, 10년 동안 작곡 공부를 계속했다. 32세 때에는 프라하의 훌륭한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면서 생활의 안정을 얻어, 많은 학생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작풍은 처음에 독일 음악의 영향하에 있었으며, 특히 바그너의 감화는 강했다. 또 그를 인정하여 세상에 소개한 것은 브람스였다. 그러나 이윽고 보히미아의 민족적 색채가 강한 경향으로 전향하여, 가극에서는 왕성하게 국민적 제재를 사용했다.

초기의 작품으로는 《스타바트 마테르》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 곡을 지휘하기 위해서 1884년에 영국으로 초대되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뒤도 여러 차례 영국으로 건너갔다. 1891년에 프라하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으나, 그 이듬해 초빙되어 뉴욕의 국민 음악원의 원장으로 3년간 재직했다. 이 사이에 작곡한 교향곡 《신세계에서》는 그의 최대 걸작이 되었다. 이 곡은 흑인의 민족 음악과 보히미아의 향토 음악을 결합시킨 명곡으로, 이 밖에도 흑인의 민요의 특색을 살린 현악 4 중주곡 (작품 96)과 5 중주곡(작품 97)도 작곡했다. 귀국 후 1901년부터는 프라하 음악원의 원장으로 취임했으며, 문하생으로는 수크와 노바크가 나왔다. 그는 스메타나의 유산을 이어받고, 이 나라의 국민 음악을 세계적으로 육성시켰는데, 독일 음악, 특히 브람스의 영향을 받아 대규모적인 순음악을 많이 작곡하여 보히미아 국민주의 최대의 작곡가가 되었다.

[주요 작품] 9곡의 가극, 9곡의 교향곡 중 제 9 번 《신세계에서》(1893), 5곡의 교향시, 서곡, 3개의 슬라브 랩소디, 슬라브 춤곡집,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 협주곡(1865), 피아노 3중주곡 《둠키》(1891), 현악 4 중주곡 《아메리카》(1893), 피아노5중주곡, 외에 많은 실내악곡, 피아노곡, 《스타바트 마테르》(1877), 합창곡, 가극 등 다수.

 

쿨라우Daniel Frederik Rudolph Kuhlau

하노바 근교 유르첸 출생. 독일계 사람으로 함부르크에서 화성학을 배우고 1810년 코펜하겐으로 건너가 1813년 궁정작곡가()의 칭호를 받았다. 작품으로는 오페라, 플루트5중주곡, 피아노4중주곡, 피아노콘체르토, 바이올린소나타, 피아노소나타 및 소나티나 등이 있으며, 특히 피아노소나티나는 피아노 초급학습자의 학습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올 러쉬all rush, オールラッシ

1. 촬영한 러쉬(rush film, 촬영한 네거 원판들에서 복사 인화된 포지 필름)를 스토리보드에 따라 연결한 것. 러쉬 프린트의 편집이 완성되면 네거 원판을 러쉬 필름의 순서대로 접합해서 네거 필름의 편집을 완성한다.
2. 편집 작업을 끝내고 완전하게 이은 러쉬 필름.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소리 작업을 한다. 최종 리테이크도 이것을 보고 진행한다.

 

트랙 다운track down

멀티트랙의 녹음 테이프에 수록된 신호를 재생하면서 밸런스를 좋게 믹싱하여 2트랙의 마스터 테이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펙트 처리도 이 때 하며 트랙 다운에 따라 음악의 인상이 크게 변한다. TD, 믹스 다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트랙 다운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미국 뉴욕주()에서 재즈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나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작곡을 배우고 줄리아드학교에서 작곡과 피아노, 지휘법을 배웠다. 졸업 후 작은 클럽에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일하다가 텔레비전 및 영화의 음악을 편곡하면서 1960년대 초부터 영화음악에 입문했다.

1971년 노먼 주이슨(Norman Jewison) 감독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으로 아카데미 편곡상을 받은 이래 로널드 님(Ronald Neame) 감독의 《포세이돈 어드벤처 The Poseidon Adventure》(1972), 《타워링 The Towering Inferno》(1974),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감독의 《스타워즈 Star Wars》(1977),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조스 Jaws》(1975)《이티 E.T. The Extra-Terrestrial》(1982)《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1993) 등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 영화음악상 후보작만도 32편에 이르며 그래미상도 17회나 수상했다.

1980년대부터 미국 영화음악을 실제적으로 이끌고 있으며, 대규모 오케스트라에 의한 웅장한 사운드를 사용한 뛰어난 구성력으로, 오랫동안 수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하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항상 새로운 분위기의 음악을 창조해왔으며, 특히 《인디애나 존스 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Doom》(1984)와 《스타워즈》(1977) 시리즈에서는 팝과 클래식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고, 《쉰들러 리스트》《아미스타드》 등에서는 잔잔하면도 안정된 음악을 들려주었다.

《현악기를 위한 에세이》(1966) 《바이올린협주곡》(1976) 《첼로협주곡》(1994) 등의 콘서트용 작품도 작곡했으며, 로스앤젤레스올림픽(1984)의 팡파르와 애틀랜타올림픽(1996)의 공식 주제음악도 작곡했으며, 지휘자로서의 자질도 뛰어나 기량을 인정받았다. 1980년부터 1993년까지 보스턴팝스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지내면서 많은 음반을 발표했다.

 

한스 짐머Hans Zimmer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영화음악가로 유명한 한스 짐머는 신디사이저 연주자였던 경력을 바탕으로 화려한 전자음과 긴박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드류 베리모어(Drew Barrymore)와 아담 샌들러(Adam Sandler)가 주연한 영화 「웨딩 싱어 The Wedding Singer」 (1998)에서 들을 수 있던 버글스(Buggles)의 유명한 히트곡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바로 한스 짐머가 프로듀스한 작품이라면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인맨 Rain Man」(1988) 이후 승승장구하던 그는 계속해서 소방관들의 애환을 그린 「분노의 역류 Backdraft」(1991), 숀 코너리(Sean Connery)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더 록 The Rock」, 검투사의 화려한 일대기를 그린 「글래디에이터 Gladiator」(2000) 및 스펙타클한 볼거리로 치장된 블록버스터 「진주만 Pearl Harbot」(2001) 등을 통해 선 굵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렇다고 그의 작곡 스타일이 액션영화에만 편중된 것도 아니다.

잭 니콜슨(Jack Nicholson)의 연기가 인상적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1997), 모건 프리먼 (Morgan Freeman)이 자가용기사로 분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Driving Miss Daisy」(1989) 등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에서도 그의 역량은 십분 발휘되었다.

샘플링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한스 짐머는 제작자의 의도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음악적 주관만을 내세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만큼 가장 프로의식이 투철하다고 할까? 그는 다작을 뽐내면서도 어느 한 작품 그만의 스타일을 잃어버린 것이 없는 부지런한 장인이다.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파리 근교의 생 제르망 레이(St Germain Laye)에서 8월 22일 태어났다. 딜리어스(Frederick Delius, 1862~1934)와 문호 메테를링크(Maeterlinck)도 이 해에 출생하였으며, 파리에서는 인상주의 운동이 시작되려 하던 시기였다. 양친은 도기상()을 경영했고 클로드는 맏아들로 남녀 4명의 동생이 있었다.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자주 직업을 바꾸고 이사를 다녔다. 두 누이 동생은 칸(Canne)의 백모 집에 맡겨 두었는데, 어린 클로드는 이 백모를 찾아가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었으며, 피아노의 기초도 여기서 배우기 시작했다.

우연히 시인 베를렌(Verlaine)의 의모()가 되는 모테(Mauté) 부인에게 음악의 재능을 인정받은 것이 그가 음악가가 되는 계기였다. 아마추어이면서도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모테는 무상으로 레슨을 맡았으며, 1872년(10세)에는 파리 음악원에 입학이 허가되는데 이윽고 클로드의 관심은 피아노에서 작곡으로 옮겨 갔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3월 31일 오스트리아의 동쪽 로라우(Rohrau)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작가 보마르셰(Beaumarchais, 1732~1799)와 같은 해의 태생으로, 이 무렵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는 절대주의를 확립했다.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는 마차 수리공이며, 요제프는 누나 한 사람을 포함한 12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6세 때 음악의 재능을 인정받고 수양아저씨 프랑크(프랑스)의 집에 맡겨져 교육을 받게 된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rich Smetana

보헤미아의 리토미실 출생. 아버지는 맥주 양조업자로 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이 프라하에 나가 프록시에게 피아노와 음악이론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뛰어나 한때는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을 꿈꾸었으나, 1848년 오스트리아 2월혁명의 여파로 프라하에도 6월에 혁명운동이 일어나 이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놓인 체코슬로바키아민족으로서의 의식에 눈떠, 민족운동에서의 작곡가의 역할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혁명 실패 후의 가혹한 억압시대에는 스웨덴으로 건너가(1856) 5년간 에보리에 체재, 지휘자 ·작곡가 ·피아니스트로서의 발자취를 남겼다. 1860년대 오스트리아 정부의 탄압이 느슨해지자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운동이 되살아났고, 그도 귀국하여 이 민족운동의 선두에 서서 지휘자 ·작곡가 ·평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862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민극장의 전신인 가극장()이 프라하에 건립되자 이 극장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 《팔려간 신부 Prodaná nevěsta(The Bartered Bride)》를 상연, 큰 성공을 거두고, 그해 가을에는 이 가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어 여러 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874년 50세의 한창 나이에 숙환인 환청()이 악화되어 10월에는 귀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모든 공적 활동을 중지하고 프라하 교외에 은퇴하였다. 그는 오페라에 민족적 제재를 많이 쓰고 음악에는 폴카 ·프리안트 등 민족무용의 리듬을 많이 도입하였으나, 국민오페라에서는 민요를 도입하지 않고, 정신면에서 체코적인 요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전념하였다. 또 교향시에는 리스트 등 신독일파의 수법을 도입하여 민족적인 음악을 창조하는 데 성공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국민의용군행진곡》 《자유의 노래》 등이 있고, 오페라에는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가의 사람들》(1866) 《달리보르 Dalibor》(1868) 《리부셰 Libuše》(1872) 《두 명의 홀아비》(1874) 등이 있다. 만년의 작품으로는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Mávlast》(1874∼1879), 현악 4중주곡 《나의 생애로부터 Z mého života》(1879) 등이 있다. 

 

알렉산드르 보로딘Aleksandr Porfir'evich Borodin

페테르부르크 출생. 러시아의 귀족 게데아노프공작의 사생아로 태어나 농노() 보로딘의 호적에 얹혔다. 그 때문에 충분한 교육을 받고도 사회활동을 규제당하였으며, 그와 같은 사회적 불공정이 그의 민주사상의 원천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악재()를 보였고, 화학에도 열중하여 1850년 페테르부르크의과대학에 들어갔으며, 58년에는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유학하였다. 1862년 귀국 후는 모교의 조교수가 되고, 여기서 화학자 지닌의 제자가 되어 유기화학연구를 계속하였다.

작곡가로서는 신러시아악파(), 즉 5인조에 속한다. 연구생활의 틈을 이용한 작곡활동이었으나 러시아의 유수한 실내악 작곡가로, 또 러시아 국민음악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졌으며, 첼로의 명수이기도 했다. 작품은 동방적()인 색채가 농후하며 대표작에 교향곡 2번(1876), 현악4중주곡(1881), 오페라 《이고리공》(미완성) 등이 있다.

 

상아해안Ivory Coast,

15세기 후반 유럽 열강이 상아와 노예를 얻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상아 거래의 중심지가 되었던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코트디부아르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코트디부아르 또는 코트디부아르해안이라고도 한다. 최대 너비가 64km를 넘지 않으며 굴곡이 완만한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연평균기온 24~28℃, 연강수량 2,000~3,000mm로 덥고 습하다. 해안의 동쪽 부분은 평평하고 모래가 많으며 서쪽은 바위로 된 작은 벼랑들이 있다.

모래톱이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모래톱 뒤에는 깊은 석호가 있다. 1903년에 건설되기 시작한 철도는 이웃 나라인 부르키나파소까지 연결되었고 1950~1954년에는 아비장 항구가 건설되었다. 사산드라강, 반다마강, 코모에강, 카발라강이 흘러들고 해안을 따라 코트디부아르의 수도인 아비장을 비롯해 상페드로, 사산드라, 그랑바상 등의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딕시랜드 스타일Dixieland style

미국 남부 여러 주(딕시랜드)의 재즈 뮤지션 복장에서 영감을 얻은 스타일. 헐렁하게 폭이 넓은 라펠테일러드 재킷바지, 캉캉모에 나비넥타이, 드레스 셔츠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딕시랜드 스타일

딕시랜드 스타일출처: 패션전문자료사전

 

캠피온Jane Campion

연극연출가 아버지와 연극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연극을 보고 자랐다. 1975년 빅토리아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공부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조상의 뿌리인 유럽으로 떠나 영국 런던에서 미술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경제적 곤란으로 1년 만에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와 시드니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며 루이스 브뉴엘의 영화에 심취하였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졸업한 뒤 1982년 영화와 TV학교에 들어가 1학년 때 찍은 《껍질》이 칸영화제 단편영화부문 그랑프리를 받으며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1989년 3년 동안 준비한 첫 장편영화 《스위티》를 발표하였다. 정상적인 소녀였던 스위티가 주변환경에 의해 기묘하게 변해가는 절망스러운 모습을 통해 부조리한 가족 관계를 그린 영화이다. 비평가들의 요란한 환영을 받으며 칸영화제에 출품되었지만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990년 뉴질랜드 소설가 자넷 프레임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 두 번째 장편영화 《내 책상 위의 천사》가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비롯하여 7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3년 뒤 세 번째 장편영화 《피아노》(1993)를 완성하였는데, 벙어리 미혼모 아다와 남편, 정부와의 삼각 관계를 단순한 구조 속에 복잡한 의미로 그려나갔다. 그 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아카데미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으며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다. 19세기 미국의 한 여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유럽을 여행하며 겪는 어둡고 은밀한 내면을 그린《여인의 초상》은 1996년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발표한 영화들은 겉으로는 불완전한 여자 주인공들로 하여금 도덕과 권위, 사회적 관습과 성적 억압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도록 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감독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물음이기도 하며 그 물음은 오스트레일리아 영화와 여성 감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될 수 있게 한 힘이었다.

 

fairlight

 

 

 

MIDI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신시사이저, 리듬 머신, 시퀀서, 컴퓨터 등의 연주 정보를 상호 전달하기 위해 정해진 데이터 전송 규격. MIDI 규격에서는 표준적인 송수신 인터페이스 회로와 데이터 포맷을 정의하고 있고 MIDI 규격에 대응한 기기에는 트랜스미터와 리시버 중에서 한 가지 또는 둘 다 있다. 접속에는 5핀인 DIN 커넥터를 사용하고 MIDI 규격의 기기는 보통 MIDI 인·아웃·스루의 세 가지 단자를 갖추고 있다. 또한 MIDI 케이블의 길이는 트러블 방지를 위해 15m 이내가 바람직하다.

MIDI 정보는 8비트로 구성된 여러 바이트의 메시지로, 각 메시지는 그 종류를 나타내는 스테이터스 바이트와 데이터 바이트로 이루어진다. 메시지는 크게 채널 메시지와 시스템 메시지로 나뉘며, 채널 메시지는 보이스 메시지와 모드 메시지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이에 비해 시스템 메시지는 MIDI 시스템 전체에 공통적으로 이용되는 것이어서 MIDI 채널 지정은 하지 않는다. 시스템 메시지는 시스템 익스크루시브, 시스템 커먼, 시스템 리얼타임으로 나눈다. 다음이 이들에 대한 설명이다.

① 보이스 메시지 : 일반 연주 정보는 모두 보이스 메시지로 정의할 수 있다. 건반을 누르거나 떼는 데 상당하는 노트 온·오프, 여러 가지 이펙트(모듈레이션 호일 또는 페달 등)를 전송하는 컨트롤 체인지, 음색을 절환()하는 프로그램 체인지, 신시사이저에 빼놓을 수 없는 베드 정보를 보내는 피치 호일 체인지, 그리고 애프터 터치가 보이스 메시지에 포함된다. 또한 애프터 터치에는 각 건반마다 정보를 출력하는 폴리포닉 키 프레셔와 전체에 걸리는 채널 프레셔가 있다.

② 모드 메시지 : MIDI에는 네 개의 모드가 있고 이 모드는 폴리·모노 모드, 옴니 온·오프가 조합되어 결정된다. 또한 MIDI에는 16개의 채널이 있어 옴니 온일 때 접속하는 기기의 MIDI 채널이 일치하지 않으면 데이터는 전송되지 않는다. 옴니 모드란 이 MID 채널을 인식 여부의 구별로 옴니 온일 때는 채널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네 개의 모드 중에서 일반적인 것이 모드3이며, 특수한 것은 모드4이다. 이 모드4에서는 한 대의 폴리포닉 신시사이저가 모노포닉 신시사이저 한 대분의 기능을 하며,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채널 메시지를 수신한다.

③ 시스템 익스클루시브 메시지 : ID 코드를 등록한 메이커 전용 메시지로, 스테이터스 ‘F0’와 EOX(엔드 오브 익스클루시브)의 사이에 임의의 양의 데이터를 끼워서 전송할 수 있다. 음색 파라미터 또는 시퀀스 데이터 등 메이커 독자 정보는 모두 이 시스템 익스클루시브 메시지로 보내진다. 다만 ID의 '7E’에는 논리얼타임, ‘7F’에는 리얼타임의 유니버설 익스클루시브가 할당되어 있고, 샘플 덤프 스탠더드 또는 MIDI 타임 코드 등이 정의되어 있다.

④ 시스템 커먼 메시지, 시스템 리얼타임 메시지 : 리듬 머신 또는 시퀀서의 제어는 시스템 커먼 메시지와 시스템 리얼타임 메시지를 통해 실행된다. 일반적으로는 송 실렉트로 연주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송 포지션 포인터로 시작하고 싶은 노래의 마디를 지정한다(1비트=6MIDI 클록). 그리고 ‘FA’로 시작, ‘FC’로 중지, 'FB’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FB’는 MIDI 클록이라고도 하며, 타이밍 관리에 사용한다(♩=24).

시스템 리얼타임 메시지는 항상 다른 메시지에 우선하여 수신·처리되며 다른 메시지 사이에 인터럽트할 수도 있다. 그 밖에 메시지로는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의 오실레이터를 자동적으로 재튜닝하는 튠 리퀘스트, 케이블 단선을 통한 트러블을 방지하는 액티브 센싱, 초기 상태로 돌아가는 시스템 리셋, SMPTE와 마찬가지로 시·분·초·프레임으로 어드레스 관리를 하는 쿼터 프레임 메시지 ‘F1’이 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페테르부르크 출생. 양친의 권유에 따라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면서 N.A.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작곡 개인지도를 받았다. 1908년 관현악곡 《불꽃 Feu d’artifice》으로 러시아발레단의 댜길레프에게 인정을 받고, 그의 의뢰로 발레곡 《불새 L’oiseau de feu》(1910)·《페트루슈카 Petrushka》(1911)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둠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그 후 제3작인 《봄의 제전 Le Sacre du printemps》(1913)은 파리악단에서 찬반 양론의 소동을 일으켰으나, 그는 이 곡으로 당시의 전위파 기수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 곡은 혁신적인 리듬과 관현악법에 의한 원시주의적인 색채감, 그리고 파괴력을 지닌 곡으로 앞의 2곡과 함께 이 시기의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혁명으로 조국을 떠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신고전주의 작풍으로 전환하였으며, 발레곡 《풀치넬라 Pulcinella》(1919)·《병사 이야기 Histoire du soldat》(1916)·《결혼 Les noces》(1912∼1923) 등의 작품에 그의 새로운 작풍이 나타나 있다. 고전파와 바로크스타일의 정신을 부흥시키려고 한 음악풍조는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유럽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는 이 시기의 풍조에 선도적 역할을 했으며, 오페라 오라토리아인 《오이디푸스왕 Oedipus Rex》(1927)과 《시편교향곡 Symphony of Psalms》(1930) 등을 통해 이 작풍의 완성을 보았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5년 미국으로 망명, 귀화하였다. 그는 한때 침체기를 거쳐 《3악장의 교향곡 Symphony in 3 Movements》(1945)과 《미사 Mass》(1948) 등으로 재기, 다시 제2의 전기()를 맞이하였다. 이는 이미 쇤베르크일파가 취해 온 음렬작법()으로부터 12음작법()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었으며, 《칸타타 Cantata》(1952)에서 시작하여 《아곤 Agon》(1957)과 《트레니 Threni》(1958) 등의 시도로 차차 엄격한 12음작법을 구사하였다.

그 이후로는 종교음악에 관심을 두어 《설교, 설화 및 기도 a Sermon, a Narrative and a Prayer》(1961),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 Abraham and Isaac》(1963), 합창곡 《케네디의 추억을 위하여 Á la mémoire de Kennedy》(1965) 등의 작품을 남겼다. 저서로는《내 생애의 연대기 Chronicle of My Life》(1935)와 그가 하버드대학에서 강연한 것을 정리한 《음악의 시학 Poetics of Music》 등이 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보히미아 칼리슈트 태생인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지휘자. 유태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어 음악 교육을 받고, 소년시대에는 피아니스트로 눈부신 재능을 발휘했다. 1875년 15세 때 빈 음악원에 입학하여 엡슈타인에게 피아노, 훅스에게 화성학, 크렌에게 작곡을 사사했다. 1878년에 졸업하기까지 빈 대학에서 역사, 철학, 음악사의 강의도 들었다. 이 무렵부터 바그너와 브루크너의 영향을 받았다. 1880년에 할레 가극장의 여름 지휘자가 되고, 최초의 원숙한 작품 《탄식의 노래》를 완성했다. 이듬해 라이바하 시립 가극장 지휘자, 이어 오르뮈쯔 가극장 지휘자, 카셀 시립 가극장 지휘자(1885년까지)가 되었다.

이미 말러는 지휘자로서의 역량이 널리 인정되어, 1885~6년은 프라하에서 활약하고, 1886~8년에는 라이프찌히에서 정지휘자 니키시의 밑에서 일했다. 1888년에는 부다페스트 왕립 가극장 정지휘자, 1891년에 함부르크 시립 가극장 정지휘자, 1897년에 빈 궁정 가극장 지휘자, 1898년에 빈 필하모니의 지휘자로 활약하면서 브루크너 등의 신작을 공연했다. 1908년 이후부터는 미국에 건너가, 겨울은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이나 뉴욕 필하모니를 지휘하고 여름에는 유럽으로 돌아갔다. 작곡가로서의 그의 활약이 시작된 것은 1894년으로, 이 해에는 제1교향곡의 개정판이 바이마르에서 초연되었다. 그 후에 《천명의 교향곡》 제8번을 완성했고, 1910년에 심장병의 발작을 일으켜 유럽으로 돌아가, 한없이 사랑하는 빈에서 영면하고 싶다는 희망으로 빈에 안주했다.

말러는 방대한 악기 편성과 거대한 구상을 가진 9곡의 교향곡을 완성하여, 후기 낭만파의 웅대 화려한 양식 속에 독일의 전통을 꽃피게 했는데, 가곡 분야에도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등 여러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작품이 교향곡과 가곡에 한정되고, 더구나 이 이질적인 분야가 훌륭히 융합된 예는 음악사상 드문 일이다.

[주요 작품] 10곡의 교향곡(제 10번은 미완성) 중에서 제8번 《천명의 교향곡》(1907), 《대지의 노래》(1908), 가곡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1883),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1888),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1902) 등.

 

게네랄프로베generalprobe

관혁악이나 관현악을 가진 합창과 같은 대규모 작품의 총연습, 오페라의 무대 연습을 말한다. 유럽에서는 대개 일반에게 공개된다.

 

케나Quena

케나는 남아메리카 대륙 서부의 안데스 지역에서 연주되는 세로형 목관악기다. 고대 문명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민속 악기지만, 오늘날에는 대중음악 장르와도 결합되어 연주되고 있다. 한국의 단소와 그 외형과 음색이 비슷하다.

 

 

가믈란Gamelan

1. 인도네시아의 민속 음악. 앙상블의 중심이 되는 것은 사롱, 군델, 쿤푸르, 쿠논, 스렌템, 보난 등과 같은 선율 타악기이다. 여기에 공, 쿤단 등과 같은 타악기와 레바브, 체렌픈, 시텔과 같은 현악기 및 남녀 코러스 등이 더해진다.

2.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합주 악기. 자바섬(자바 양식 및 순다 양식)과 발리섬(발리 양식)에서 사용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서양의 관현악이나 동아시아의 아악에 필적하는 대규모의 형태로서, 선율타악기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오케스트라로 간주할 수가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악기를 역할과 기능에 따라 몇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전체의 앙상블을 꾀한다. 특징 있는 오케스트레이션을 토대로 하는 점에서는 공통이다. 자바에 있어서 악기를 그룹으로 나누는 대표적 양식은

① 주요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군,

② 선율 장식을 위한 악기군,

③ 주기적인 박절법()의 박수를 합리적으로 명시하거나(콜로토미), 리듬, 템포를 받쳐 주는 악기군이라는 정도이다.

주선율을 연주하는 악기는, 데뭉, 사론, 페킨, 술렌템 등의 금속편을 엮은 것을 해머로 치는 것이다. 장식음형을 위한 것으로는 군데르(마찬가지로 금속편을 엮은 것), 보낭(냄비 모양의 금속 기구를 거꾸로 엮은 것), 감방(목금)이 사용된다. 리듬악기로는 쿤단(양면 큰북), 공, 쿤프르(동라- 종류), 카논, 쿠투크(남비 모양의 큰 것)가 활약한다. 그 밖에 르바브(라바브), 술링(세로피리), 카차피, 인성(솔로, 코러스) 등을 추가해서 대편성이 된다. 순음악으로도 연주되지만, 주로 무용 · 연극의 반주로서 중요시되고 있다.

가믈란

가믈란출처: 파퓰러음악용어사전 & 클래식음악용어사전

 

케착 댄스kecak dance

발리 무용에서 케착(Kecak) 댄스처럼 낙원의 섬 발리의 정서가 넘치는 매력적인 춤은 없을 것이다. 신에게 제물을 바친 후 시작되는 케착 댄스는 멍키 댄스라고도 부른다. 상반신을 벗은 원숭이 군단의 역할을 하는 100여 명의 남자들이 등잔불 주위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개구리 울음소리를 흉내 내서 ‘케착 케착’이라고 합창하면서 춤추는 모습은 소름끼칠 만큼 박력이 있다. 케착은 가믈란 반주를 수반하지 않는 유일한 전통무용으로 돌발적인 리듬, 이상한 노래의 멜로디, 신들린 듯한 춤사위, 원숭이 군단의 군무, 아름다운 소녀의 춤에 의한 라마야나 이야기가 한 시간 정도 상연되어 이국 정서를 충분히 만끽하게 한다.

발리 섬을 대표하는 케착 댄스의 성립은 의외로 새롭고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적인 배경은 다른 발리 예능과 같이 1930년대의 관광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31년, 독일의 빅터 폰 푸렛센 감독의 영화 〈악마의 섬〉은 발리의 이국적인 풍습과 예능을 소개하여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영화는 당시 우붓에 살고 있었던 같은 독일인 스피스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제작된 것으로 그 가운데 새롭게 고안한 케착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발리 섬에서 예부터 전해지는 악마를 쫓는 의식 ‘상향’에서 최면 상태를 촉진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차(남성 합창)’를 개편하여 그 안에서 라마야나 이야기를 아름다운 소녀들이 춤추는 스타일로 창작하였다. 케착은 이른바 영화라고 하는 미디어를 위해서 새롭게 창작된 무용이다. 그 후 영화 〈악마의 섬〉을 본 유럽인 관광객이 발리에 와서 케착 관람을 청하게 되면서 이 새로운 스타일의 댄스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발리 각지에 급격히 퍼져 갔다.

케착 댄스

케착 댄스

케착은 원래 상향이라고 하는 최면 상태의 의례 때 하던 남성 합창을 원형으로 한다. 최면 상태에서의 의례인 상향은 발리 섬에서 샤먼으로서 역할을 하는 인물 혹은 그들에 의한 춤을 가리키고, 그들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서 비로소 춤출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악령에 의해 초래되는 전염병이나 재해를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공동체가 악마나 악령에 의해 야기된 위험에 처해졌을 때 신들과 인간 사이의 보호 관계를 확립하는 수단으로서 주술로 더럽혀진 공동체의 부정을 없애고 선과 악의 조화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케착의 근원이 된 상향의 명칭이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힌두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있었던 일종의 악령을 쫓는 의례(최면 상태의 무용)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푸라 달엄에서 보름날 밤에 행해지는 상향 드다리는 최면 상태에서 행하는 무용의 대표격이다. 드다리는 선녀, 천사라고 하는 의미로 도취를 유혹하는 노래와 향의 연기, 사제의 최면에 조종되어 소녀는 조용히 빙의 상태에 빠져 간다. 그리고 소녀는 최면 상태에 들어가면 신들린 채로 춤을 춘다. 이것이 상향 드다리인데 영화 〈악마의 섬〉에서는 이 의례용 춤이 클라이맥스가 되고 있다.

라마야나 이야기와 결부된 케착 댄스

라마야나 이야기와 결부된 케착 댄스

이러한 케착 형식은 1933년에 우붓 보나(Bona) 마을과 부두루(Budur) 마을의 혼성 무용단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리고 1935년에 보나 마을 사람들이 보다 발전한 형태로 상연한 것이 케착의 원형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1937년에는 〈라마야나 이야기〉와 결부된다.

라마야나 이야기는 기원전 2세기에 쓰인 인도의 서사시로, 아요디야(Ayodya) 왕국의 왕자 라마(Lama)를 주인공으로 해서 그 스토리는 중부 자바의 프람바난 사원 시바 탑의 벽면에 조각되어 동남아시아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라마야나 이야기〉는 발리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어 이야기의 개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도 갠지스 강 중류의 코사라(Kosara) 왕국에 다사라타(Dasarata) 왕과 세 명의 왕비 사이에 네 명의 왕자가 탄생했다. 첫째 왕비에게서 태어난 왕자 라마는 원래 비쉬누신의 화신으로 마왕 라비나(Rabina)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라마는 위두라(Widura) 국왕의 딸 시타(Shita)와 결혼한다.

라마는 왕국의 왕위 계승자였지만 둘째 왕비의 책략으로 이복동생인 바라타가 왕위 계승자가 돼서 왕국으로부터 추방된다. 라마 왕자는 아내 시타와 남동생 락사마나와 함께 왕궁을 떠나 아라스 칸다카(Alas Kandaka) 숲에 들어간다.

마왕 라비나의 여동생 슐파나카(Surpanaka)는 숲에 놀러와 라마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 거절되자 라마의 아내 시타를 죽이려 하다가 오히려 락사마나(Laksmana)에 의해 코와 귀가 잘린다. 마왕 라비나는 그 보복으로 시타를 납치하여 랑카(langka) 왕궁에 유폐한다. 시타를 구원하러 가던 도중 라마와 락사마나는 원숭이 왕 스구리와(Sugriwa), 그 신하 아노만(Anoman)을 만난다. 라마는 원숭이 군단을 인솔해서 라비나가 사는 랑카(Langka)로 향한다.

랑카에서의 싸움은 계속되고 속을 태우던 라비나는 6개월에 한 번밖에 잠에서 깨지 않는 남동생 쿰바카르나(Kumbakarna)를 깨운다. 쿰바카르나는 잠에서 깬 날만은 불사신이다. 그러나 잠이 채 깨지 않은 채 눈을 떴기 때문에 쿰바카르나는 전사하고 만다. 결국 싸움은 라마와 라비나의 일대일 승부가 되어 격전 끝에 라마가 승리한다.

라마는 왕국에 되돌아와 왕위에 오르지만 시타의 정절을 의심하는 소문이 돌아 부득이 시타를 추방한다. 시타는 숲에서 쌍둥이 왕자를 낳는다. 성장한 쌍둥이를 본 라마는 자신의 아이인 것을 직관하고 시타의 정절을 신과 상의한다. 시타는 신으로부터 결백을 인정받고 라마와 시타는 재회하여 천상의 비쉬누신으로 돌아간다.

 

로케이션 헌팅Location Hunting

촬영 장소를 찾는 것을 말한다. 흔히 장소 헌팅이라고 한다. 대본에 따라 로케이션 목적에 합당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스태프나 출연자의 이동을 생각해서 될 수 있는 한 가까운 거리이면서 변화 있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하게 된다. 드라마나 예능 일부에서는 이를 전문으로 하는 헌팅 감독을 쓴다. 헌팅에도 전문성을 요하는 이유는 같은 장소라도 카메라 촬영 각도에 따라서 다른 그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현명한 로케이션 헌팅은 제작비와 제작시간을 현저히 줄여 준다.

 

워터프런트Waterfront

워터프런트란 명확히 정의되어지는 용어는 아니지만 우리말로 수변공간으로 표현할 수가 있고, 더 나아가 수변공간을 가지는 육지부의 개발된 공간을 나타낸다. 일본건축학회에서는 ‘해안선에 접한 육역주변 및 그것에 특히 근접한 수역을 병행한 공간’이라고 하고 있다.

워터프론트

워터프런트는 내륙지역과 차별적인 공간적, 환경적 매력을 지니고 있는데 워터프런트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변공간은 주변의 자연과 접하기 쉬운 공간으로서 시민에게 안정 및 재충전의 공간을 제공한다.
둘째, 역사적으로 수변공간을 중심으로 많은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고, 이러한 수변공간은 도시의 역사·문화의 중심지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셋째, 획일적인 도시환경의 내륙공간과 차별적으로 한쪽이 수변과 접하여 개방적 시야와 양호한 조망을 제공한다.

세계적으로 수변공간의 개발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항만기능의 쇠퇴에 따라, 새로운 기능 창출을 위한 항만지역 재개발에서 비롯되었다. 과거 우리나라의 수변공간의 개발은 항만개발을 통한 물류처리 능력의 증대, 매립을 통한 국토 확장 등 1차적인 물질적 가치증진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수변공간이 가지는 장점을 활용한 개발이 요구됨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워터프런트가 가지는 수변공간으로서의 특성을 살려 항만·운송·수산 등의 전통적인 기능과 레저·문화·상업 등의 친수기능을 복합화하여 다양한 용도로 개발하고 있다.

1960년대 전후로 과거 항만시설과 임해형() 산업지역이었던 수변공간은 첨단정보단지, 도시레저공간, 주거지와 상업업무지 등 새로운 도시공간으로 재개발되었다. 조그만 항구였던 샌프란시스코의 피어(pier)가 쇼핑센터로 바뀌어 관광명소가 되었고, 어촌이었던 런던의 도크랜드(Dockland)가 새로운 업무지역으로, 그리고 창고지역이었던 도쿄의 워터프런트가 미래의 정보단지로 탈바꿈되었다.

최근 우리나라도 워터프런트를 특색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마곡지역에 대해 친수기능을 살린 미래형 워터프런트로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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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7-014 아라의 당구홀릭 4 - 뒤돌리기 완전공략기!!

 

 

아라 & 폴 지음

2016, 글로벌콘텐츠

 

대야도서관

SB112234

 

691.6

아292ㅇ 4

 

몇 해 전에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참이라고 받아들였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거짓이고,

이 거짓들을 토대로 쌓아올린 구조 자체가 무척 의심스럽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학문에서 안정적이며 영속적인 것을 하나라도 얻기 위해서는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기초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데카르트

 

지은이

 

아라 ARA(강하나)

당구를 좋아하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조금은 삐딱한 여자다.

그림쟁이의 저질 체력을 극복하기 위해 당구를 취미로 선택했다.

현재 개인 블로그에 <아라의 당구홀릭>을 연재 중이다.

『아라의 당구홀릭』에서 스토리 구성 작업과 그림을 맡았다.

 

폴 PAUL (강성남)

1994년 《주간만화》에 「별의 바다로」라는 SF 단편을 게재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에세이 툰 〈쪼그만 얘기〉를 발표하였으며, 이 작품으로 문화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출간한 책으로는 『쪼그만 얘기』, 『러브포엠』, 『마지막 잎새』 등이 있다. 그 밖에 다양한 책들에 삽화작업을 진행 중이다.

『아라의 당구홀릭』에서 당구에 관한 이론부분과 컬러를 맡았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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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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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 샷(Spin Shot)


뒤돌리기와 두께 겨냥방법


시스템(System)

 

세이프티(safety) : 공격이 실패했을 때 상대방에게 쉬운 공배치가 가지 않도록 안전하게 플레이하는 방법, 일반적으로 이를 디펜스라고 하는데 이는 국내에서만 사용되는 용어이며, 정식 명칭은 세이프티(safet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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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7-013 조선의 선비들, 인문학을 말하다

 

 

 

김봉규 글 · 사진 | 홍종남 기획

2013, 행복한미래

 

대야도서관

SB089977

 

911.05

김45ㅈ

 

한국 역사 인물을 통해 본 인문학 공부법

 

한국사를 바꾼 인물 No. 07

 

불천위 인물 51人 조

 

김봉· 사진

 

김봉규 님은 1959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삼성생명, 한국조폐공사 등을 거쳐 1990년 영남일보에 입사했습니다. 영남일보에 입사한 후 24년 동안 언론인의 길을 걷고 있으며, 영남일보에서는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등 편집국 기자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어 문화부장과 체육부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인문학에 관심이 많으며, 한국의 '혼'과 한국의 '문화'에 대한 글을 주로 써 왔습니다. 『조선의 선비들, 인문학을 말하다』는 한국사의 인물을 통한 인문학 공부법을 제시한 책입니다.

그동안 집필한 저서에는 『불맥佛脈, 한국의 선사들』, 『마음이 한가해지는 미술산책』, 『길따라 숲찾아』,『머리카락 짚신』, 『한국의 혼, 누정』등이 있습니다.

 

홍종남 기획

 

【한국사를 바꾼 인물】 시리즈는 한국의 역사 인물을 재조명하는 책입니다. 한국의 역사 인물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이순신 파워인맥』,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 『이순신 백의종군』, 『이순신의조일전쟁』, 『조선의 프로젝트 매니저 이순신을 만나다』 등의 책을 기획하였습니다. 앞으로 【한국사를 바꾼 인물】 시리즈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 도서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선비士 ;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문학人文學 ;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

(출처 : 『두산백과』)

 

불천위不遷位란?

 

국가와 유림이 영원히 기릴 만하다고 인정한 훌륭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보통 제사를 지낼 때 4대까지 모시는데, 4대 봉사奉祀가 끝난 뒤에도 없애지 않고 계속 제사를 지내며 기리는 신위神位의 주인공을 뜻한다.

 

차례

 

│프롤로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불천위'

 

1부. 학문學은 왜 하는가?

 
01. 조선 시대 사대부 지식인의 주류 사상을 만들다  |김종직|
02.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며 《소학》의 가르침을 강조한 선비  |김굉필|
03. 벼슬과 출세보다 선비의 복된 삶을 실천하다  |이현보|
04. 벼슬하는 아들이 보낸 감 한 접 돌려보낸, 청렴한 삶  |이   황|
05. 정파에 휘둘리지 않은 재상, 임금도 그에게 의지했다  |노수신|
06. 정치와 학문을 접목시킨 조선 후기 대표적 학자 관료  |이원조|
07. 인재를 알아보는 특출한 혜안, 이순신을 지켜내다  |류성룡|
08. 벼슬보다 학문, 퇴계 학맥 이은 영남 유림의 거목  |류치명|
09. 평생 후학 양성하며 성리학을 꽃피운 '작은 퇴계'  |이상정|
10.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양대 석학의 가르침을 받아 학자의 길을 가다  |오   운|
스페셜 페이지  불천위란?



2부. 정의義를 위해서는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정신

 
11. 선비의 '절의'가 무엇인지 제시하다  |권   벌|
12. 뛰어난 학문과 인품, 청나라 대신도 탄복하다  |이원정|
13.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대궐 안 호랑이' |김성일|
14.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삶, 선비의 사표가 되다  |김일손|
15. 천하의 임금에게도 정론을 이야기한 '신하의 정석' |정경세|
16.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의 삶을 살다  |조덕린|
17. 이순신의 인품과 능력을 알아본 선비, 그의 목숨을 구하다  |정   탁|
18. 죽음과 바꾼 불사이군의 절개, '신하의 길'을 보여 주다  |하위지|
19. 죽음을 무릅쓴 선비의 도,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다  |이   해|
20. 탁월한 언변과 문장력, 대명 외교의 달인되다  |황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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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백성民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21. 녹봉까지 털어 가난한 백성을 구휼한 공직자의 자세  |김양진|
22. 권세가를 찾아가지 않고, 사사롭게 공무를 처리하지 않은 관리의 길  |류중영|
23. 조선 시대판 행동하는 지식인, 실사구시의 전형을 보여 주다  |최흥원|
24. 청렴과 결백의 삶, '선비의 정석' 보여 주다  |김계행|
25. 조선의 청백리, 21세기의 복지를 제시하다  |조   정|
26. "공무를 수행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신보다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다  |배삼익|
27. 백성의 삶을 알고 선비의 도리를 지킨 지식인의 전형을 보이다  |김응조|
28. 암행어사 이몽룡의 실제 인물, 애민의 삶을 살다  |성이성|
29. 360년간 후세의 물 걱정을 덜게 한 정책을 실천하다  |신지제|
30. 문무를 겸비한 선량한 관리로 역사에 기록되다  |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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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나라國와 가족을 먼저 생각하다

31. 일흔 살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조선 무신의 정석  |최진립|
32. 문무를 겸비한 선비, 반란 평정으로 공신에 오르다  |손   소|
33. 부친과 함께 의병 활동에 참가한 선비, 효孝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다  |남경훈|
34. 부하를 혈육처럼 사랑한 무장, 선정의 모범을 보여 주다  |박의장|
35. 효제충신의 삶, 지식인의 실천 덕목을 제시하다  |송희규|
36. 문무를 함께 갖춘 충신, 격문과 대화로 적을 물리치다  |장말손|
37. 깨끗한 벼슬 생활로 조선 시대 청백리의 교과서  |곽안방|
38. 책과 함께 한 선비, 임진왜란 일어나자 의병 일으켜  |정세아|
39. 인사권자도 어찌할 수 없었던 인재 등용의 원칙을 보여 주다  |이동표|
40. 각별한 충효의 실천, 당대 '선비의 귀감'이 되다  |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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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무엇을 하든 마음心 공부가 중요하다


41.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한 '벼슬하지 않은 선비'  |권   구|
42.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저술  |권문해|
43. '조선 시대의 갈릴레이', 천문학을 꽃피우다  |김   담|
44. 38년 서울 벼슬 생활 동안 셋방을 전전한 청빈의 삶  |박승임|
45. 조선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다  |최항경|
46. 학문 불모지 관서 지방에 학문을 일으켜 후진을 양성한 '초야의 현인'  |조호익|
47. 군자의 학문 외길 걸은 '선비의 정석'  |장흥효|
48. 자녀 교육을 위해 벼슬길을 접은 선비, 죽어서 판서가 되다  |김   진|
49. 의義가 아니면 벼슬도 초개처럼 버린다  |김   령|
50. 큰 뜻을 펼치려 한 그 선비, 은거한 까닭은  |이시명|
51. 조선 성리학의 선구자, 독자적인 조선의 학문을 정립하다  |이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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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다시 주목해야 할 불천위종가 문화

 

|1부|

학문學은

하는가?

 

01 조선 시대 사대부 지식인의

   주류 사상을 만들다

 

김 종 직

 

조선시대 사대부 지식인의 주류 사상을 만들다 : 김종직(점필재종택)

 

'아내가 금산에서 돌아오다[室人自金山還]'

- 김종직(1475년 1월)

 

그대는 완산의 새[각주:1]1가 되어서 [君爲完山鳥]
자식 잃은 슬픔이 아직 안 그쳤는데 [哭子猶未休]
나는 동문오[각주:2]2를 배워서 [我學東門氏]
지난해의 근심을 조금 잊었다네 [稍忘前歲憂]
밤이 깊도록 촛불 밝히고 얘기한 것이 [夜闌秉燭語]
절반은 먹고 사는 걱정이었거늘 [半是營生謨]
인간사 장차 어떠할까 [人事且如何]
백년이 참으로 길기만 하구나 [百世眞悠悠]

 

각주 1 완산조完山鳥 : 새끼를 잃고 슬피 우는 어미 새 이야기로 공자가어에 나온다

각주 2 동문오東門吳 : 춘추 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자식이 죽었는 데도 슬퍼하지 않았던 인물

 

점필재가 사용하던 옥벼루 '필옹옥우畢翁玉友'. 성종의 하사품이라고 한다.

점필재종택(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전경. 사당은 오른쪽 건물로 대부분의 종택처럼 종택 본채 오른쪽 뒤에 자리 잡고 있다. 사당에는 중앙에 불천위 신주가, 좌우에는 종손 4대조 신주가 봉안돼 있다.

점필재 흉상(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점필재가 태어나고 별세한 곳인 추원재追遠齎 앞 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이 뒷산에 점필재 묘소가 있다.

 

02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며

《소학》의 가르침을 강조한 선비

 

김 굉 필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며 《소학》의 가르침을 강조한 선비 : 김굉필(도동서원 전경)

 

움직이거나 머물고 있을 때 항상 평상심을 갖도록 하라 [動靜有常], 항상 마음을 바로 해서 착한 본성을 따르라 [正心率性], 갓을 바로 쓰고 꿇어앉아라 [正冠危坐], 신선이 되고자 하는 도교와 부처가 되려는 불교를 깊이 배척하라 [深斥仙佛], 옛 버릇을 철저히 없애라 [痛絶舊習], 욕심을 막고 분함을 참아라 [窒欲懲忿], 하늘의 뜻을 알고 어짐에 힘쓰도록 하라 [知命敦仁], 가난에 만족하며 분수를 지켜라 [安貧守分], 사치를 버리고 검소함을 따르라 [去奢從儉], 날마다 새로워지는 공부를 하라 [日新工夫],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도록 하라 [讀書窮理], 말을 함부로 하지마라 [不妄語],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두 갈래로 하지 마라 [主一不二], 잘 생각하고 게으르지 말고 항상 부지런하라 [克念克勤], 말을 아끼고 말의 의미를 깊이 새기도록 하라 [知言], 일의 기미를 알도록 하라 [知幾], 마지막을 시작할 때처럼 조심하라 [愼終如始],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성실함이 있으라 [持敬存誠]

- 한빙계(寒氷戒) : 가난하고 얼음처럼 찬 이성으로 지켜야 할 계율

 

김굉필의 불천위 신주를 모시고 있는 한훤당종택의 사당(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지리). 다른 대부분의 종택 사당과는 달리 단청이 칠해져 있다.

한훤당종택(대구시 현풍면 지리). 6 · 25 전쟁 때 사당을 제외한 다른 건물은 대부분 불타버려 새로 지었다.

사당 안에 있는 신주를 넣어 두는 감실. 나라에서 만들어 내려준 감실은 2005년경 도난을 당하고, 지금의 것은 그 모양을 본떠 새로 만든 것이다.

 

03 벼슬과 출세보다 선비의 복된

삶을 실천하다

 

이 현 보

 

벼슬과 출세보다 선비의 복된 삶을 실천하다 : 이현보(농암종택 긍구당)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현보는 일찍이 늙은 어버이를 위해 외직을 요청해 여덟 고을을 다스렸는데 모든 곳에서 명성과 치적이 있었다. (중종실록)

 

경상도관찰사 김당이 아뢰기를 "…(중략)… 신이 이 고을(성주)을 살피러 가니, 고을 사람들이 길을 막고 이현보를 유임시켜주도록 지성스럽게 청했습니다." (중종실록)

 

충주목사에 임명됐다. …(중략)… 번거롭고 가혹한 세금을 개선했다. 잘 다스려 백성들이 기뻐했고, 이곳(충주)을 떠나던 날, 쫓아와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길을 메웠다. (퇴계의 <농암 행장>)

 

이현보는 영달을 좋아하지 않고, 자주 부모를 위해 외직을 구했다. 드디어 부모가 별세하자 직위가 2품이고 건강도 좋았지만, 조정을 떠나기를 여러 차례 간청해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식자들은 그에게 만족을 아는 지족지지知足之志의 식견이 있다고 했다. (중종실록)

 

아아! 선생의 선생다운 바는 학문과 현달이 아니고, 벼슬과 나이가 많다는 것도 아니다. 오직 정계를 자진해서 은퇴한 것이라 하겠다. 대개 유사 이래 벼슬한 사람이 용퇴한 경우로는 한나라 소광疏廣 · 소수疏受와 당나라 양거원楊巨源 외에는 다시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이 수천 년을 내려왔는데, 유독 농암 선생께서 쇠퇴한 풍속 가운데서 분연히 일어나 소광 · 소수 · 양거원의 자취를 이어 용퇴한 것이다. 회재 · 충재께서 전송 대열에 서고, 모재 · 퇴계께서 시를 지어 작별했으니, 소광 · 소수가 떠날 때의 100량 수레가 줄을 이은 영광에 비유하겠는가.

은퇴의 기쁨을 도연명의 '귀거래'ㅇ[ 비유하고, 그의 '귀거래사'를 본떠 지음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말뿐이오 간 사람 없어

전원이 황폐하니 아니 가고 어쩔 꼬

초당에 청풍명월이 나며 들며 기다리나니

- '효빈가', 이현보가 은퇴의 기쁨을 도연명의 '귀거래'ㅇ[ 비유하고, 그의 '귀거래사'를 본떠 지음

 

경상도관찰사 시절(1537년)의 농암 초상화. 보물 제872호. 대구 동화사 화승畵僧 옥준이 그린 것으로 전한다.

이현보가 46세 때인 1512년 고향집 옆 농암 바위 위에 지어 어버이를 즐겁게 해드린 정자 애일당愛日堂. 애일당의 '애일'은 '부모가 살아계신 나날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의미다.

이현보의 효행과 경로 정신을 기려 선조 임금이 이현보의 아들(매암 이숙량)에게 내린 휘호인 '적선積善'.

 

04 벼슬하는 아들이 보낸 감 한 접

   돌려보낸, 청렴한 삶

 

이 황

 

벼슬하는 아들이 보낸 감 한 접 돌려보낸, 청렴한 삶 : 이황(퇴계 묘소)

 

선생의 학문은 명백하고 쉽다. 선생의 도는 광명정대하다. 선생의 덕은 온화한 바람이요, 경사스러울 때 이는 서운瑞雲이다. 선생의 글은 의복이며 음식이다. 선생의 마음과 도량은 가을 하늘 밝은 달이며, 탁 틔어 보이는 얼음 유리 항아리다. 선생의 기상은 순결해 아름답게 갈고 닦은 금과 옥이다. 산악처럼 무겁고 소와 샘처럼 깊고 고요하다. 바라보면 안다. 선생이 성덕군자가 되었음을…….

 

경의 나이 비록 일흔이나 다른 사람과 같지 않기 때문에 허락하지 아니하노라. 그 관직을 교체하지 않는 것은 경의 어진 덕을 생각해 우선 갈망하는 것을 들어준 것이지 사면하고 물러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정으로 돌아오는 날을 내가 날마다 바라니, 역마를 타고 올라와서 나의 바람에 부응하기 바란다.

- 선조 유지(1570년)

 

네가 어버이를 봉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여러 가지 물건을 보내왔구나. 그러나 이러한 물건들은 한 고을을 다스리는 네가 사적으로 어버이에게 보내서는 안되는 매우 부적절한 것들이다. 나는 처음부터 너의 고을에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네가 이처럼 물건을 보내오면 내 마음이 어떠하겠느냐. …(중략)… 나의 뜻을 자세히 살펴주기 바란다.

- 벼슬하는 아들이 집으로 물건을 보내오자 이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략)… 벼슬을 하고 있으면 많이 접근해 오므로 다른 때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평범한 재주의 네가 쇠잔한 고을을 맡아 공사의 일을 양쪽 다 능히 해낼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깊이 근심하는 일이다. 그런데 관물官物을 인정 쓰는 데 다 써버린다는 것은 국가에 죄를 짓는 일이다. 봉화에서 보낸 물건은 누가 갖다준 것이더냐? 이번에 보낸 감 한 접은 되돌려보내니 관에서 쓸 곳에 충당해라.

- 1570년 아들이 봉화에서 감 한 접을 보내오자 퇴계는 편지와 함께 감을 돌려보냈다.

 

모든 일에 삼가고 조심해라.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일은 저지르지 마라. 관리의 마음은 지극히 맑아야 하고,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라.

- 이 황

 

부부는 남녀가 처음 만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 또 한편 가장 바르게 해야 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처지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발단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은 모두 예와 존경함을 잊어버리고 서로 버릇없이 친하여, 마침내 모욕하고 거만하며 인격을 멸시해버린다. 이러한 일은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지 않은 때문이다.

- 손자가 장가를 갔을 때 보낸 편지

 

퇴계의 묘소 앞에 있는 비석. 퇴계의 유언대로 앞면에는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 : 늘그막에 도산으로 물러나 은거한 진성이공의 묘)라고 새겨져 있다.

 

퇴계가 남긴 유훈

 

첫째, 나라에서 베풀어 주는 장례는 사양하라.

둘째, 기름과 꿀로 만드는 과자를 쓰지 마라.

셋째, 비석을 세우지 마라.

넷째, 비문을 기고봉(기대승)한테 쓰게 하지 마라.

다섯째, 모든 예법은 현재에 마땅하게 하면서 옛날에서 멀게 하지 마라.

 

퇴계 불천위 신주가 들어 있는 감실의 모습.

 

05 정파에 휘둘리지 않은 재상,

임금도 그에게 의지했다

 

노 수 신

 

정파에 휘둘리지 않은 재상, 임금도 그에게 의지했다 : 노수신(봉산서원)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지키는 데는 태산 같은 공적이 있고, 임금을 섬기는 데는 숨김 없이 극진하였으며, 백성을 위해서는 올바른 제도를 실시했다. 효심은 지극했으며 학문이 깊고 문장은 뛰어났다.

- 1694년, 숙종이 소재穌齎 노수신(1515~1590년)에게 시호 '문간文簡'을 내리면서 보낸 사제문賜祭文에 담긴 내용

 

누가 기생을 보내 날 부르는가

나는 이런 것 즐기러 여기 온 게 아닌데

조각배 저어 돌아가야 할 시간 늦었구나

아름다운 산수가 세상 밖 그림이네

- 친구들과 함께 동호東湖로 나가 산보하던 중 호당학사湖堂學士가 기녀를 보내 노수신을 불렀을 때 거절으 뜻을 담은 시

 

그대가 이 붓을 주었으니

그대로 인해 내 글이 능해지리라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훗날 청운의 꿈을 펼치리

- 6세 때(1520년) 어떤 이가 붓을 선물로 주자 지었다는 시

 

내가 이 섬에 들어온 후부터                                …(중략)…

이 글을 몇 번이나 썼던가                                   작은 전복 열 개나 익었고

한 번 쓰면 백혼이 끊어지니                                큰 숭어 세 마리는 포 떠 두었지

혼이 있은들 얼마나 남았으랴                              제주 감귤도 열여섯 개

지금 이미 15년이나 되는데                                 김이며 아홉 단 나물들

…(중략)…                                                         어찌 하루아침에 갑자기 구했을까

오늘 새벽 인편을 만나                                        여러 날에 걸쳐 서서히 모아두었네

모아두었던 것 모두 꺼냈네

- 노수신이 진도 유배시절, 어버이에게 음식물을 챙겨 보낸 후 지은 시

 

 

 

 

 

노수신이 세운 그의 조부 노후盧珝와 부친 노홍盧鴻의 신도비神道碑. 비문 글씨는 상주시 화북면 소곡리에 있었으나 1992년에 옮겨 지금은 소재종택(상주시 화서면 사산리) 뒤에 있다.

소재종택 사당인 도정사道正祠.

 

06 정치와 학문을 접목시킨 조선 후기

   대표적 학자 관료

 

이 원 조

 

정치와 학문을 접목시킨 조선 후기 대표적 학자 관료 : 이뤈조(만산일폭루)

 

기호학자는 주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일삼아 오류가 없을 수 없고, 영남학자는 오로지 답습하는데 치중하기에 전혀 참신함이 없다. 답습하기만 하여 실제로 깨닫는 바가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류가 있더라도 스스로 터득해 깨달음이 있는 것이 좋다. 언뜻 보면 길을 따라가며 한결같이 정자·주자의 전통을 따르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허한 말일 따름이니, 남에게 베풀어도 증세에 따라 처방하는 이익이 없고 스스로 간직해도 심신으로 체험하는 효과가 없다.

- 이원조

 

학문의 길은 선과 악을 분별하여 착실하게 선을 실천하는 것일 뿐이다. 선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더 큰 지혜가 없고, 선을 지켜 나가는 것보다 더 큰 어짊이 없으며, 선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없다.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선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 이원조

 

응와종택 사랑채인 사미당. 이 사미당 마루에 불천위 제사상이 차려진다.

 

오늘날 나라 일을 맡은 자들은 오직 눈앞의 일만 처리하며 구차하게 세월 보내기를 계책으로 삼고 있다. 사사로움을 좇아 일을 처리하면서 '부득이하다不得已'라고 하고, 고치기 어려운 폐단이 잇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無奈何'하니, '부득이' '무내하' 이 여섯 자야말로 나라를 망치는 말이다. 요즘 같이 기강이 해이해진 시기에 정령을 시행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바가 없지 않지만, 위에 있는 자들이 만약 과감한 뜻으로 쇄신해 백관들을 독려한다면 천하에 어찌 끝내 고치지 못할 폐단이 있을 것이며, 어찌 참으로 부득이한 일이 있겠는가. 예를 들어 과거장에서 불법이 자행되는 폐단이 '부득이', '무내하'가 특히 심한 경우이지만, 이를 막으라는 어명이 내려질 때는 분명 실효가 있어 급제자 명단이 발표되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두 공정하다고 생각하니, 이로 미루어보면 폐단을 고치고 바꾸기가 어렵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까닭은 매번 규범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견고하지 못하고 법의 시행이 엄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한 것은 오로지 수령의 탐학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탐학이 수령의 죄만은 아니다. 재상이 사치하는 까닭에 수령에게 뇌물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고, 수령은 재상의 요구 때문에 백성을 찾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일 년에 한 번 하던 문안 인사가 계절마다 하는 문안으로 바뀌고, 계절 문안은 매월 문안으로 바뀌었다. 옛날에는 음식이나 의복으로 하던 문안이 지금은 순전히 돈으로 변해 약값이라는 명목을 삼는데, 많으면 1천 냥이요 적어도 1백 냥을 내려가지 않는다. …(중략)… 뇌물을 받는 재상부터 먼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사치한 세태를 혁파해 질박하고 검소한 풍속으로 되돌리는 발본색원의 방법이 될 것이다.

- 이원조

 

사료명을 짓고 난 이듬해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읽었다. 깊고도 그윽한 맛이 있었다. …(중략)… 평생 동안 이 경지를 추구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병이 심해져 전념해 읽을 수 없게 되자 손가는 대로 《당송팔가문》을 한 권 잡고 한가하게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송구스런 마음으로 놀라울 따름이었는데, 읽어 내려가는 도중에 달콤히 취했다가 끝내는 황황히 추구하여 얻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전에 무슨 책을 읽었는지조차 잊어버렸으니, 어물전에 오래 있다가 비린내를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중략)… 오호라 반성하리로다.

- 이원조

 

응와 불천위 제사는 신주와 함께 응와 이원조의 초상을 모셔놓고 지낸다.

 

07 인재를 알아보는 특출한 혜안,

이순신을 지켜내다

 

류 성 룡

 

인재를 알아보는 특출한 혜안, 이순신을 지켜내다 : 류성룡(충효당)

 

조선 전역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며, 군량 운반에 지친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힘이 있는 자들은 모두 도적이 되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여 살아남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이는 지경에 이르러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의 뼈가 잡초처럼 흩어져 있었다.

- 《징비록》

 

나도 명나라 군사들과 함께 들어갔는데, 성 안의 백성들은 백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살아있는 사람조차 모두 굶주리고 병들어 있어 얼굴빛이 귀신 같았다. 날씨마저 더워서 성 안이 죽은 사람과 말이 썩는 냄새로 가득했는데, 코를 막지 않고는 한 걸음도 떼기가 힘들었다. 건물은 관청과 개인 집을 막론하고 모두 없어져버렸고, 왜적들이 거처하던 숭례문에서 남산 밑에 이르는 지역만 조금 남아 있었다. 종묘와 대궐, 종루 등 대로 서쪽에 자리 잡은 모든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재로 변해 잇었다. 나는 먼저 종묘를 찾아 엎드려 통곡했다.

- 《징비록》

 

100년에 걸친 태평성대로 인해 우리 백성들은 전쟁을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왜적의 침입을 맞게 되자 우왕좌왕하다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 《징비록》

 

당시 적은 파죽지세로 몰아닥쳐 불과 10일만에 서울까지 들이닥쳤으니,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손을 써볼 겨를이 없었으며, 용감한 장수라도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민심 또한 흩어져 수습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방법이 서울을 함락시키는 데 뛰어난 계략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적은 항상 이긴다고만 생각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갈래로 흩어져 마음대로 날뛰었다. 그러나 군사는 나누면 약해지기 마련이다. 천 리에 걸쳐 전선을 형성하고 시간이 지나니, 아무리 강한 화살이라 해도 멀리 가다 보면 헝겊 한 장 뚫지 못하는 이치와 같았던 것이다. …(중략)… 왜적의 계략이 잘못된 것은 우리에게는 천우신조였다.

- 《징비록》

 

나의 한 평생에 세 가지의 회한이 있으니, 군주와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 그 첫째 한이요, 관작과 위계가 너무나 지나쳤는데도 일찍이 물러나지 못한 것이 그 둘째의 한이요, 도道를 배울 뜻을 가졌음에도 이를 성취하지 못한 것이 셋째 한이다.

- '세 가지 회한三恨'

 

서애 류성룡의 위패가 모셔진 병산서원(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입교당에서 바라본 만대루와 병산 풍경.

서애 불천위 제사상에 오르는 중개떡. 밀가루와 술, 꿀 등으로 만들며, 류성룡이 생시에 좋아했던 음식이다.

제수가 진설된 서애 불천위 제사상.

 

08 벼슬보다 학문, 퇴계 학맥 이은

   영남 유림의 거목

 

류 치 명

 

 

벼슬보다 학문, 퇴계 학맥 이은 영남 유림의 거목 : 류치명(만우정)

 

초산서 회가回駕하실 때 진지 지을 쌀이 없어서 아랫마을 망지네 댁에 가서 쌀을 꾸어 밥을 지었나니라. 부인께서는 평생에 모시치마를 입어보지 못하였다가 선생이 초선부사를 가시게 되자 말씀하시기를 사랑에서 지금 만금태수를 가시니 모시치마를 얻어 입어보겠다 하셨으나 불행히 돌아가시니 관 안에서 모시치마를 썼나니라.

- 《가세영언 家世零言》

 

정재 불천위 신주 감실과 신주(정재와 두 부인 신주). 신주 덮개 색깔은 원칙이 있으나 종가별로 그 색깔이 다양하다.

정재종택(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전경. 불천위 제사를 지내던 곳이나 지금은 종손이 사는 안동시내 아파트에서 지낸다.

정재종택 사당. 불천위 신주(맨 서쪽)와 4대조 신주가 모셔져  있다.

 

09 평생 후학 양성하며 성리학을 꽃피운

   '작은 퇴계'

 

이 상 정

 

평생 후학 양성하며 성리학을 꽃피운 '작은 퇴계' : 이상정(고산서원)

이상정 신주를 봉안하고 있는 대산종택 사당. 종손 4대조 신주가 함께 봉안돼 있다.

이상정의 대표적 저술 중 하나인 《이기휘편理氣彙編》과 이상정의 글씨인 '만수재晩修齎' 현판.

 

10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양대 석학의

가르침을 받아 학자의 길을 가다

 

오 운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양대 석학의 가르침을 받아 학자의 길을 가다 : 오운(죽유신주 감실)

 

죽유는 평생 아래의 아전들과 귀를 대고 말한 적이 없다. 이 점이 다른 사람들이 미치기 어려운 점이다. 또한 자기를 굽혀서 귀한 사람을 받들지 않았다. 아첨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더럽히지도 않았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 오운을 가까이서 보아왔던 선비의 평

 

임금이 오운에게 하사한 《대학》. 가려진 부분에 오운 이름이 쓰여 있다.

죽유종택에 전해 내려온 돌화로. 오운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대홍수 후 이건한 현재의 죽유종택(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오른쪽 건물은 사당이고, 왼쪽 건물은 사랑채다. 이건 전의 죽유종택(쌍림면 매촌리)은 죽유 오운 아들이 처음 건립했다.

불천위 문화의 근간인 불천위 제사는 종가의 사당에 봉안된 불천위 신주를 제청으로 모셔오는 축주(出主) 의식으로 시작된다. 사진은 서애동택인 충효당(안동 하회마을)의 불천위 제사 때 신주를 모셔오는 모습(2010년 6월).

 

 

|2부|

정의義를 위해서는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정신

 

 

11 선비의 '절의'가 무엇인지

   제시하다

 

권 벌

 

 

선비의 '절의'가 무엇인지 제시하다 : 권벌(청암정)

 

요순은 천하를 만백성의 소유로 보고 자기 자신을 그것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임금이 그 자리를 천하의 공기公器로 여긴다면 그의 용심은 넓게 두루 미쳐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힐 수 있지만, 만약 천하를 자기의 소유물로 여긴다면 사사로운 일만을 생각하고 또 욕심이 일어나게 되어 자신을 위하고 욕심을 채우는 일만 하게 됩니다. …(중략)… 말세의 임금들은 그가 있는 지위를 자신의 사물로 여긴 나머지 조금만 급박한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없앴는데, 이는 모두 그 사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권벌, 1518년(중종 13년) 6월

 

당시 사람들은 그들의 억울함을 알면서도 감히 구제하지 못했는데, 권벌만은 이에 맞서 그들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음이 명백하다는 것을 힘껏 논계하였다. 충성스러운 걱정이 말에 나타나고 의기가 얼굴색에 드러나 비록 간신들이 죽 늘어서서 으르렁거리며 눈을 흘기는데도 전혀 되돌아보지 않고 늠름한 기상이 추상같았으니, 절의를 굳게 지키는 대장부라 일컬을 만했다.

- 사신史臣의 논평

 

정순붕鄭順朋의 소疎가 이미 올라갔으니 류관 등이 뼈도 못추리게 되어 구제할 수 없는 형세였는데 …(중략)… 권벌은 그들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니 대개 머리를 베고 가슴에 구멍을 낸다 해도 말을 바꾸지 않을 실로 무쇠 같은 사람眞鐵漢이었다.

- 사신의 논평

 

평소 글 읽기를 좋아해 비록 관청에 숙직하는 자리에서도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성현의 언행이 절실하고 요긴한 대목을 만나면 반드시 아들과 조카를 불러 펴 보이며 반복해 가르쳤다. 늘 말하기를 '학문은 반드시 자기를 위한 것이요, 과거시험은 지엽적인 일일 뿐'이라고 했다. 말년에는 더욱 《근사록》을 좋아해 소매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중종이 재상 등을 불러 후원에서 꽃을 구경하고 각기 즐기면서 취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공이 부축받고 나간 후 궁중의 어떤 이가 작은 《근사록》을 주웠는데, 누구의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권벌이 떨어뜨린 것이다'하시고는 명하여 이를 돌려보냈다.

- 이황, 권벌 행장行狀에서

 

 

권벌이 도포 소매에 넣어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근사록》. 보물로 지정돼 있다.

충재종택 사당 전경. 다른 종가와 달리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제청을 사당 옆에 별도로 건립해 사용하고 있다. 오른쪽이 제청이 있는 갱장각이다.

충재 불천위 제사 때 사용하는 동곳떡을 쌓고 있는 모습(충재종가 제공).

 

12 뛰어난 학문과 인품,

   청나라 대신도 탄복하다

 

이 원 정

 

 

뛰어난 학문과 인품, 청나라 대신도 탄복하다 : 이원정(동산재)

 

봄은 오고 또 오고 풀은 푸르고 또 푸르네

나도 이 봄 오고 이 풀 푸른 것처럼

어느 날 고향에 돌아가 노모를 볼 수 있으리요

- 《사친곡思親曲》

 

 

이원종의 유품 중 갓 끈을 꿰는 관자貫子와 갓 장신구인 옥로.

귀암종택 사당 내 귀암 이원정 부부 신주와 감실. 부부의 신주가 별도의 함에 봉안돼 있다.

최근 중건한 귀암종택 사당과 사당 내부 모습.

 

13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대궐 안 호랑이'

 

김 성 일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대월 안 호랑이' : 김성일(학봉종택)

 

류성룡과 조목, 김성일은 이황의 문하에서 배웠다. 김성일은 마음가짐이 굳세고 꿋꿋하며 학문이 독실했다. 모습은 고상하고 위엄이 있으며, 행동거지는 가지런했다. 바른 말이 조정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그 충성과 절개가 빼어나게 남달라서 다른 사람들이 감히 다른 의견을 내지 못했다.

- 학봉鶴峯 김성일(1538~1593년)을 평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요사이 추위에 모두들 어찌 계신지 가장 염려하네. 나는 산음고을에 와서 몸은 무사히 있으나 봄이 오면 도적이 대항할 것이니 어찌할 줄 모르겠네. 또 직산 있던 옷은 다 왔으니 추워하고 있는가 염려 마오. 장모 뫼시고 설 잘 쇠시오. 자식들에게 편지 쓰지 못하였네. 감사라 하여도 음식을 가까스로 먹고 다니니 아무 것도 보내지 못하오. 살아서 서로 다시 보면 그 때나 나을까 모르지만, 가필 못하네. 그리워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 섣달 스무나흗날.

- 안동의 부인에게 한글로 보낸 편지

 

 

- 학봉이 사용하던 안경과 안경집.

학봉이 자신의 부인에게 보낸 한글 편지.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백운정에서 바라본 반변천 풍경. 백운정은 김성일의 형인 귀봉 김수일이 지었으며, 김성일이 형제들과 학문을 닦던 정자다.

학봉종택(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안채 대청에 차려진 학봉 불천위 제사상. 제청에 내걸린 대형 탁본('中流砥柱', '百世淸風') 족자가 인상적이다.

 

14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삶,

   선비의 사표가 되다

 

김 일 손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삶, 선비의 사표가 되다 : 김일손(자계서원)

 

옛말에 '40세는 되어야 벼슬살이에 힘쓸 수 있다'고 했는데 …(중략)… 지금 신은 나이 30 미만이온데 화려한 요직인 한원翰苑(예문관), 옥서玉署(홍문관), 사관과 이조전랑 등을 거치면서 승진해왔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청선淸選'이라고 합니다. 신이 무슨 재능이 있어 이 분에 넘치는 직책들을 감당하겠습니까. …(중략)… 속히 신의 직임을 교체해 물러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10년의 여가를 주시어 독서함으로써 수도하고 학업의 발전을 얻은 다음에 종사하게 하여 주소서.

- 1492년 이조좌랑의 부름을 받고 올린 상소

 

김일손은 문장과 학문이 모두 뛰어나며 재능과 기량을 겸비했고…(중략)… 또한 지략이 넓고 깊어 가히 낭묘廊廟(의정부)의 직책을 맡길 만하다. 나는 그의 언론을 듣고자 누차 백부栢府(사헌부)의 요직을 맡긴 바 있고…(중략)… 비록 다른 관직에 제수하더라도 반드시 경사經史(홍문관과 춘추관)의 직임을 겸하도록 했는데 장차 보상지관輔相之官(수상)으로 크게 쓰고자 함이다. 그런데 다만 그의 나이가 젊어 그의 뜻은 크고 성품은 너무 준엄하며, 기상은 너무 날카롭고 언론은 심하게 곧으며 행적은 너무 고상하니 마땅히 그의 노성老成을 기다려 쓸 수밖에 없구나.

- 성종이 탁영에 대해, 경연에서 참찬관參贊官 조위曺偉에게 한 말

 

 

김일손이 애용하던 거문고 '탁영금'(보물 제957호).

김일손 시호(文愍) 교지(1835년). 보기 드물게 금박을 섞어 만든 붉은 장지를 사용했다.

성종이 김일손에게 하사한 벼루 '매화연'

 

15 천하의 임금에게도 정론을 이야기한

'신하의 정석'

 

정 경 세

 

 

천하의 임금에게도 정론을 이야기한 '신하의 정석' : 정경세(계정)

 

전하께서 덕을 닦고 뜻을 세움에 있어서 능히 게을리함이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당파를 짓는 습속이 그대로 남아있어 서로 협력하는 공효는 드러나지 않았으며, 무비武備를 강화하는 계책이 정해지지 않아서 적들을 토벌할 기약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어진 이를 구하고 계책을 정하는 일에 능히 해이해지지 않았음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삼가 바라건대, 굳은 신념으로 변하지 말고 힘써 덕을 지켜 일신의 사욕으로 공도公道를 해치지 말고, 안일로 태홀怠忽을 싹틔우지 말고, 목전의 성과를 생각하며 서둘지 말고 끊임없이 뜻을 견지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자연히 날로 성상의 덕이 새로워지고 정치의 교화가 높아질 것입니다. 혹시라도 구습을 그대로 따르면서 방심해 지나치거나 점차 안일을 탐해 세월을 허송하는 버릇이 생긴다면, 뜻은 날로 나태해지고 기운이 날로 위축되어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는데 만사는 아득하여 일찍이 품었던 뜻을 하나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된다면 다만 신들만이 전하를 위해 애석해 할 뿐만 아니라, 천년 뒤에도 반드시 전하를 위해 길게 탄식을 토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 1623년(인조 1년) 인조가 반정으로 친정하게 되고, 정경세가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된 후에 올린 차자 내용 중 일부

 

백성을 도탄에서 구해내는 일은 힘을 관대하게 쓰고 후생에 노력함으로써 이뤄져야 하고, 그 두 가지의 근본은 절검節儉에 있습니다. 듣건대 근년에 국가의 세입이 세출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니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관혼상제는 날로 허례허식에 빠지고, 시정 상인들의 돈을 빌려 다음 해의 세입으로 끌어들여 쓰면서도 오히려 절검할 줄 모르는데, 어찌 군주로서 마치 추운 날씨에 구걸하는 어린아이가 살아갈 방책을 궁리하는 식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단 말입니까.

- 만언소萬言疏

 

 

우복종택 사당(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이 사당은 종택 울타리 안에 있고, 역시 불천위인 우복 정경세의 6대손 입재 정종로 신주는 종택 울타리 밖의 별도 사당에 모시고 있다.

우복종택 사당에 걸린, 우복 정경세를 위한 사제문 현판. 정조가 내린 사제문이다.

 

16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의 삶을 살다

 

조 덕 린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는 선비의 삶을 살다 : 조덕린(옥천종택 전경)

 

우리나라는 땅이 좁은데 그 속에서 또 당론이 갈라져 화합하지 못하고 공평하지도 못한 상황이며, 그것이 이미 고질이 되었습니다. 근자에는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넷으로 되어 한 쪽만 뽑아 쓰고 셋을 버리며, 발령을 내기도 전에 미리 당색黨色을 먼저 정하게 되니, 어찌 어진 이를 얻을 수 있으며 정치가 바르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 십조목의 상소문十條疏

 

우리나라는 중국 · 일본과 국교를 맺어 해마다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고, 근래에는 흉년이 거듭되어 조세수입이 감소해 국고는 거의 고갈상태이고, 군수 비축도 바닥이 났으나 낭비되는 비용이 바닷물처럼 과다해 돈 쓰기를 분토糞土처럼 하면서도 책임있는 관리는 그 자리를 물러나지도 않습니다. 이래서야 천승天乘의 나라라도 어찌 가난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 조덕린이 올린 십조소 중 일부

 

그때를 당하여 조정은 뒤숭숭하고 어지러워 당론만 제멋대로 주장하니 나라를 걱정하고 근심함을  참으면서 보고 넘길 수가 없어서, 간장의 피를 토해 티끌만큼이라도 효과가 있기를 도모하고자 했다.

- 십조소에 대해 번암樊巖 채제공(1720~1799년)의 평

 

이로부터 영남의 사기가 더 한층 돋구어졌으니[從此矯南增士氣]

세상에는 바야흐로 글 읽는 인물 있음을 알았도다[世間方有讀書人]

하지만 그대는 험한 귀양길을 예사로이 잘도 가시니[猶然視若康莊去]

평생에 쌓은 수양의 힘을 알겠노라[定力平生見左符]

- 이만유李萬維

 

 

조덕린이 이인좌의 난(1728년) 평정에 참여하고 고향에 돌아온 후에 세워 제자를 가르치던 창주정사滄洲精舍. 영양 청기에 있었으나 현재는 옥천종택 옆에 있다. 창주는 조덕린의 호다.

 

인생이 만났다가 헤어질 때가 있는 것이니 어찌 한탄하리오마는 몸에 악명을 입었으니 세상에 욕이 되었다. 비록 내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너희가 더욱 힘써 수양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조덕린이 집에 있는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옥천종택 사당(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이 사당에는 옥천 조덕린 불천위 부부 신주만 봉안돼 있다.

 

 

17 이순신의 인품과 능력을 알아본 선비,

   그의 목숨을 구하다

 

정 탁

 

 

이순신의 인뭎과 능력을 알아본 선비, 그의 목숨을 구하다 : 정탁(읍호정)

 

 

벼슬 자리 두루 두루 거쳤으나

여러 사람의 바람에 다 부합되었네

재상의 자리에 오르고

정권 핵심부서에 발탁되었지만

치우침도 기울어짐도 없어서

공정한 도리와 균형을 유지했고

과격하지도 부화뇌동하지도 않아서

훌륭한 명성 오래도록 누리었네

많은 관료들이 모범으로 삼았고

과인의 덕을 의지하여 이루었으니

물을 건널 때의 배와 같았고

가물 때 소낙비와 같았네

예전에 있었다고 들었던 것

오늘날 그것을 보았네

- 약포가 별세하자 선조 임금이 칙사 예조좌랑 조정을 보내 제사 지낸 글賜祭文의 일부

 

인재란 것은 나라의 보배로운 그릇이라 비록 통역관이나 회계 맡은 사람도 진실로 재주와 기술이 있기만 하면 모두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마땅하거늘, 하물며 장수의 자질을 가진 자로서 적을 막아내는데 가장 관계 깊은 이에 대해서 오직 법률만 가지고 논하고 조금도 용서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순신은 참으로 장수의 자질을 가졌고, 또한 해전과 육전에 재주를 겸비해 못하는 일이 없는 바, 이런 인물은 쉽게 얻지 못할 뿐더러 변방 백성들이 의지하고 적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죄명이 엄중하여 조금도 용서할 도리가 없다며 공로와 허물을 비교해보지도 않고, 또 공로를 더 세울만한 능력이 있고 없음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리고 그간 사정을 찬찬히 살펴봄도 없이 끝내 큰 벌을 내리는 데까지 이르게 하면, 앞으로는 다른 모든 공로 있는 자들도 스스로 더 나아가지 않을 것이며, 능력 있는 자들도 또한 스스로 더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일개 순신의 죽음은 아깝지 않으나 국가에 관계됨이 가볍지 않으니 어찌 우려되는 중대 사안이 아니겠습니까. …(중략)… 비옵건대 은혜로운 하명으로 문초를 특감해 주어 그로 하여금 공로를 세워 스스로 보람 있게 하시면 성상의 은혜를 천지부모와 같이 받들어 목숨을 걸고 은혜를 갚으려는 뜻이 반드시 누구 못지 않을 것입니다.

- 신구차伸救箚

 

평생의 독서는 늘 시국의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한 일이었는데[讀書常擬濟時艱]

분주한 벼슬살이로 얼마나 오랜 세월 보냈던가[奔走紅塵幾暑寒]

왜구의 난리 칠년 동안 한 가지 계책도 내지 못하고[寇亂七年無一策]

도리어 백발이 되어서야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것이 부끄럽도다[還白髮始歸山]

- '우회寓懷'

 

경연 중에 우연히 듣고 영정을 모셔와 보니 그 모습이 거룩하고 의연하구나. 선조조의 유명한 재상이 별세한 지 100년이 지난 후에 화상으로나마 다시 왕궁에 들어왔으니 특별히 그 명을 써 넣어 영남 사람의 귀감이 되게 하노라.

- 영조는 1756년 경연 도중에 정탁의 덕행이 훌륭함을 듣고 정탁 5대손 정옥에게 초상화를 모셔 오게 한 후 화상찬을 지어 정옥에게 화상축 머리에 쓰게 했다. 

 

 

정탁이 사용하던 벼루.

약포 정탁을 기리는 도정서원道正書院(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전경. 1640년 약포 사당이 세워졌고, 1697년 도정서원으로 승격했다. 약포의 셋째 아들 청풍자淸風子 정윤목도 함께 배향하고 있다.

정탁의 초상화(보물 제487호). 1604년 어명에 의해 화사畵師가 그렸다.

 

18 죽음과 바꾼 불사이군의 절개

'신하의 길'을 보여 주다

 

하 위 지

 

 

죽음과 바꾼 불사이군의 절개, '신하의 길'을 보여 주다 : 하위지(창렬서원) 

 

 

남아의 득실 예나 지금이나 같고[男兒得失古猶今]

머리 위에는 분명히 해가 비치고 있네[頭上分明白日臨]

도롱이를 빌려주는 것은 뜻이 있으니[持贈蓑衣應有意]

오호五湖의 부슬비 속에서 다시 만나리[五湖煙雨好相尋]

- 박팽년이 도롱이를 빌려달라고 한 데 대해 화답하는 시答朴彭年借蓑衣

 

 

예조에서 작성한 하위지 불천위 문서(1804년 5월)

 

 

 

19 죽음을 무릅쓴 선비의 도,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다

 

 

이 해

 

 

죽음을 무릅쓴 선비의 도,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다 : 이해(온계종택)

 

 

공은 덕성이 너그럽고 도량이 넓었다. …(중략)… 남과 더불어 말을 할 때는 온화하고 정성스러워 사납거나 거만한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조정에서 옳고是 그름非, 나아감進과 물러남退 등을 논의할 때는 남달리 두드러지고 꼿꼿한 면이 있었다. 일찍이 화복禍福과 이해利害를 비교해서 남보다 앞서 나가거나 뒤로 물러나 숨는 일이 없었다. 군자들은 이러한 점 때문에 그를 흠모하고 사랑했으나, 소인들은 이러한 점 때문에 그를 원수처럼 미워했다.

- 영남 유생 300여 명이 온계溫溪 이해(1496~1550년)에게 시호諡號를 내려 줄 것을 나라에 청했고, 그에 따라 시장諡狀이 작성됐다. 시장에 담겨 있는 내용 중 일부

 

 

이해 부인 신주의 안쪽. 보기 드물게 부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해와 동생 이황이 태어난 노송정종택 태실(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온계 이해의 신도비. 온계종택 부근에 있다.

 

20 탁월한 언변과 문장력,

   대명 외교의 달인되다

 

황 여 일

 

 

탁월한 언변과 문장력, 대명 외교의 달인되다 : 황여일(해월종택 전경)

 

 

어젯밤 은하수 신선 쪽배에 내려와 [銀河昨夜下靈槎]

취한 객 진주(삼척)로 드니 흥이 점점 더하는구나 [醉入眞珠興漸多]

홀로 죽서루에 오르니 아무도 없는데 [獨上竹樓人不見]

옥피리 부니 그 소리 물결 위로 퍼지노라 [還吹玉篴向凌波]

- 14세 때 처음 간성杆城 향시에 응시해 진사 1등을 차지하고 돌아오는 길에 삼척 죽서루竹西樓에서 지은 시

 

만리 푸른 바다 백구의 몸으로 우연히 인간의 추잡한 세계에 들어가네

[滄波萬里白鷗身 偶落人間滿目塵] …(후략)…

- 1585년 30세 별시에서 을과 1등으로 합격하고,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에 발탁되어 출사하면서 집안의 아우들에게 지어준 시

 

동해에 노련자 있어 그 사람 또한 바른 말을 하였네. 많은 사람이 진을 높이는데 너 홀로 주나라 섬겼네. 변설로 삼군을 물리치니 무기 아닌 석 자 혀였지. 나의 일편심도 천추에 그대와 같다네 [東海有魯連 其人亦抗節 擧世欲宗秦 爾獨戴周日 談笑却三軍 其機在寸舌 我有一片心 千秋與君說]

- 1589년 11월 일본 사신 현소玄蘇가 와서 통신사를 보낼 것을 청하니, 조정 대신들이 대부분 허락하자는 쪽으로 기울었으나 황여일은 홀로 불가함을 역설하며 "통신사를 두어도 전쟁은 나고, 두지 않아도 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통하지 않고 난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라고 했다. 김성일이 이 소문을 듣고 지은 시

 

만고의 비장한 뜻으로, 새 한 마리 창공을 지나네. 찬 연기 동작銅雀대를 가리고, 장화章華(초나라 궁전 이름)는 가을풀에 묻혀 있네. 요순보다 앞선다고 경탄하고, 탕무湯武와 같다고 야단들이네. 상강湘江에 둥근 달 밝은데, 눈물로 죽지가竹枝歌 듣고 있네.

- 임제가 지은 책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을 보고 지은 시

 

도성을 나오니 학을 탄 것처럼 가볍고 [出郭身如駕鶴]

동문 밖 십리는 그림 속에 흘러가네 [東臺十里畵中行]

새로 보는 금수강산 화려하기만 하고 [新開錦繡山容淡]

넓게 펼쳐진 물은 유리처럼 맑구나 [厚展琉璃水面淸]

한 발만 나와도 그 아름다움 알겠는데 [一步卽知丘壑美]

2년 동안 왜 그렇게 얽매였는지 [兩年胡被簿書縈]

송어국 국화술에 노어회 생각하니 [松羹菊露鱸魚膾]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네 [怱憶吾鄕興益生]

- 1612년 창원부사에 제수되고, 이듬해 봄에는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아와서 지은 시

 

 

 

 

해월종택(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내 해월헌海月軒. 해월이 33세 때(1588년) 처음 지어 공부하고 수양하던 건물로, 63세 때 벼슬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만귀헌晩歸軒'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월종택 사당(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불천위인 황여일 부부 신주와 해월 종손 4대조 신주가 봉안돼 있다.

해월 불천위 신주를 봉안하고 있는 감실. 다른 종가의 감실과는 형태가 많이 다른 점이 눈길을 끈다.

 

 

불천위 제례 문화의 중심 공간은 불천위 위패를 모시는 종택의 사당이다. 사진은 회재종택 무첨당의 사당(경주 양동마을).

불천위 제사는 불천위 신주를 사당에서 제청으로 모셔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진은 학봉 불천위제사 때 불천위 신주를 모셔오기 위해 안동 학봉종택의 사당으로 향하는 제관들(2010년 6월).

종택 사당이나 별묘에 불천위 신주를 모신다. 사진은 학봉 김성일 부부 불천위 신주.

 

|3부|

백성民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21 녹봉까지 털어 가난한 백성을 구휼한

   공직자의 자세

 

김 양 진

 

 

녹봉까지 털어 가난한 백성을 구휼한 공직자의 자세 : 김양진(허백당 종택)

김양진 부부 신주. 신주에 종손 이름을 쓰지 않은 점이 다른 종가의 불천위 신주와의 차이점이다.

허백당 불천위 신주가 단독으로 봉안돼 있는 대지大枝 별묘別廟(예천군 호명면 직산리).

허백당 불천위 사당인 대지별묘 내부 모습.

 

 

22 권세가를 찾아가지 않고, 사사롭게

   공무를 처리하지 않은 관리의 길

 

류 중 영

 

 

권세가를 찾아가지 않고, 사사롭게 공무를 처리하지 않은 관리의 길 : 류중영(입암고택)

 

 

나가고 들어감에 일정함이 없으니

간혹 밝았다가 어두워지기도 하네

나쁜 것은 숨김으로 몰래 점점 더 자라나고

착한 것은 사물을 접하며 도리어 감소되네

…(중략)

뜻은 항상 겉과 속이 일치되도록 하고

생각간사함을 경계해 잡됨이 없게 하고

감정은 방자함이 없이 경을 지키라

한낮에는 여러 사람의 눈을 경계하며

어둠 속에서는 자신을 돌이켜 보라

- '자기 양심을 속이지 말라[毋自欺賦]' 중 일부

 

 

류중영의 아들인 겸암 류운룡이 스스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겸암정사. 하회마을 건너편 강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입암고택 사당 건물은 두 채이다. 한 곳에는 입암 불천위 및 4대조 신주가, 다른 한 곳에는 겸암 불천위 신주가 봉안돼 있다.

 

 

23 조선 시대판 행동하는 지식인,

   실사구시의 전형을 보여주다

 

최 흥 원

 

 

조선 시대판 행동하는 지식인, 실사구시의 전형을 보여 주다 : 최흥원(백불고택)

백불암이 자신의 방 벽에 걸어두고 보면서 마음 수행의 도구로 삼았던 '경敬'자 패牌.

최흥원이 영조의 명으로 류형원의 《반계수록》을 교정한 보본당. 백불암종택(대구시 동구 둔산동) 경내에 있는 이 건물은 최흥원의 5대조 대암 최동집의 불천위 제사를 모시기 위해 1753년 건립했다. 대암 별묘別廟는 이 건물 뒤에 있다.

백불암 최흥원의 신주가 봉안돼 있는 백불암종택 사당 전경. 1711년에 창건된 이 사당에는 백불암 신주와 4대조 신주가 함께 모셔져 있다.

 

 

24 청렴과 결백의 삶,

   '선비의 정석'을 보여 주다

 

김 계 행

 

 

청렴과 결백의 삶, '선비의 정석' 보여 주다 : 김계행(만휴정)

 

 

우리 집에는 보물이 없네 [吾家無寶物]

보물이 있다면 오직 청백뿐이네 [寶物惟淸白]

- 김계행 자신의 호이자 당호堂號인 '보백당寶白堂'의 의미를 해설한 시

 

나는 오랫동안 임금을 지척에서 모셨다. 그러나 조금도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다. 살았을 때 조금도 보탬이 되지 못했으니, 장례 역시 간략하게 치르는 것이 좋겠다. 또한 절대 비석을 세워 내 생애를 미화하는 비문을 남기지 마라. 이는 거짓된 명성을 얻는 것이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 자신의 삶을 평가하면서 남긴 유언

 

 

1706년 지역 유림이 김계행을 기려 건립한 묵계서원. 종택 부근에 있다.

김계행 사후 약 400년이 지난 1909년 왕이 내린 불천위 칙명 교지.

 

 

25 조선의 청백리,

21세기의 복지를 제시하다

 

조 정

 

 

조선의 청백리, 21세기의 복지를 제시하다 : 조정(양진당)

 

 

공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욕심, 옳고 그름의 사이에 털끝만큼이라도 틈이 있으면 일도양단一刀兩斷한다. 그렇기에 그 출처와 거취가 의에 비추어 늘 너그럽고 여유가 있었다.

- 평원(平原) 이광정이 쓴 검간黔澗 조정(1555~1636년)의 행장 중 그를 평한 부분

 

 

검간종택인 양진당(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전경.

검간 조정이 만년에 독서를 하며 주변을 소요하던 옥류정玉流亭(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앞에 내가 흐르고 고목이 우거져 주변 풍광이 수려하다. 근처 암벽에 '검간선생 장구지소[黔澗先生 杖屨之所]'라는 음각 글씨가 새겨져 있다.

 

 

26 "공무를 수행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신보다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다

 

배 삼 익

 

 

 

"공무를 수행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신보다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다 : 배삼익(임연재종택 사당)

 

 

내 나이 열여섯 살 때 한성漢城 감시監試를 보았는데, 그해 가을에 임연재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두각을 나타내 동료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는 고금의 일을 논하는데 막힘이 없고, 나는 그의 처소로 가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시험을 치던 전날 밤 나는 그의 처소에 가서 잠을 잤다. …(중략)… 닭이 홰를 치자 그가 박차듯이 나를 일으켜 나란히 말을 타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뜰 가운데 큰 회나무 아래서 나무를 우러러보니 불빛 속에 겹겹의 녹색 나뭇잎이 아름답게 빛났다. 시제詩題가 나오자 그는 그다지 생각하지도 않고 날이 저물기 전에 두 편 모두를 완성하고도 왕성하게 힘이 남아 있었다. 나는 시는 완성했으나 쓰지는 못하고 있는데 그가 대신 썼다. 채점을 하자 나는 다행히 합격했지만, 그는 뜻을 펴지 못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감에 내가 다시 술을 지니고 가서 전송하면서 요행과 불행이라는 말로 작별했다.

- 서애 류성룡(1542~1607년)이 지은 <배삼익 신도비명>

 

 

임연재 배삼익의 친필. 함께 공부한 설원당雪月堂 김부륜(1531~98년)을 전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7 백성의 삶을 알고 선비의 도리를 지킨

지식인의 전형을 보이다

 

김 응 조

 

 

학문을 일삼았으나 천기天機를 알지 못하고, 관직에 있었으나 시정時政에 통달하지 못했다. 선비는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의 근본을 견고하게 하는 것을 사모하고, 해바라기가 햇빛 쪽으로 기우는 것은 사물의 본성이다. 인간의 삶은 남가일몽에서 깨어남과 같고, 만 가지 계책은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아라. 저 학가산鶴駕山과 사천沙川을 바라보니 물은 맑고 산은 푸르러, 천년만년 혼백을 비추리라.

- <자명自銘>에서

 

 

학사 김응조의 유려한 초서 작품 '남애정사잡영南厓精舍雜詠'. 학사가 1634년 영주 갈산 남쪽에 남애정사를 짓고, 주변 8곳의 풍광을 읊은 내용이다. 그중 1수는 없어지고 나머지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돼 있다.

 

 

28 암행어사 이몽룡의 실제 인물,

애민의 삶을 살다

 

성 이 성

 

 

암행어사 이몽룡의 실제 인물, 애민의 삶을 살다 : 성이성(계서종택)

 

 

11월8일=아침에 외정원外政院에 나아가 패牌를 받았다. 봉서封書를 받아 나와 남관왕묘南關王廟(중국의 관우를 모시기 위해 한양 남대문 밖에 세운 사당)에서 개봉해 보니 나는 호남으로, 이해창은 영남으로 암행하게 돼 있었다. 오시午時에 한강을 건너 신원新院에서 말을 먹이고, 밤 2경에 용인 땅에 도착했다.

11월10일=말을 바꾸어 타고 마두馬頭, 대마부大馬夫, 복마부卜馬夫, 중마부中馬夫를 거느리고 천안 아래 5리쯤 되는 주막에서 아침을 먹었다. …(중략)… 이날은 100리를 왔다.

11월13일=집집마다 양반이라 하여 집안에 행인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아주 작은 집에 들어가니 11세 정도 되는 작은 아이가…(후략)…

11월14일=고창의 윗마을 이득립의 집에서 묵었다. 고창의 여러 가지 일을 자세히 물어보았다. …(중략)… 감사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감사의 치적을 부정적으로 말함이 역력했다. …(중략)… 백성을 침탈하는 일은 별로 없으나 취하지 않은 날이 없으며 취했을 때는 정사를 살피지 않는다. 행동거지의 허물은 불문가지不問可知라.

12월1일=광한루에 도착하니 노기老妓 여진女眞과 노리老吏 강경남이 와서 절했다. 날이 저물어 모두 물리치고 소동小童 · 서리書吏와 누각 난간에 나가 앉으니, 흰 눈빛이 들에 가득차고 대숲이 모두 흰색이었다. 소년시절 일을 생각하며 밤 깊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 《호남암행록湖南暗行錄》 중 일부

 

오늘의 일은 마땅히 조용히 강구하여 지극히 바른 곳으로 돌아가기를 구하기에 힘쓴 뒤에야 존친尊親의 도道와 종묘의 예禮를 온전히 할 텐데, 전하께서는 한갓 지정至情에 가리어 도리를 살피지 못하고 매양 엄중한 분부로 꺾어 말씀하시기를 ‘세력에 아부한다’, ‘노리는 것이 있다’, ‘사욕을 이루려 한다’라고 하십니다. …(중략)… 이미 그 지위에 두고 일을 맡겼으면서 하루아침에 뜻에 거슬린다고 하여 뜻밖의 말씀으로 억지로 그 죄를 정해 입을 열지 못하게 하니, 이것이 과연 성주聖主로서의 말씀일 수가 있으며, 예로서 신하를 부리는 도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이번에 종묘에 드는 일이 전하의 뜻이므로 저들(영합하는 신하들)도 또한 행할 만하다고 말하지만, 만일 전하께서 행할 수 없다고 여기신다면 저들은 또 불가하다고 할 것입니다. …(중략)… 직언하는 선비가 물러나자 뜻이나 맞추며 아첨하는 사람이 나오고 충간忠諫의 길이 막혀서 영합하는 풍조가 만연하면, 전하의 욕망은 이룰 수 있겠지만 나라 일은 끝내 어떻게 되겠습니까.

- 1634년 사간원정언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선조 다섯째 아들0을 왕(원종)으로 추존하여 종묘에 들이려 할 때, 조정에서는 찬반이 엇갈려 논란이 있다가 결국 원종으로 추숭追崇되었다. 당시 간관이 된 성이성은 이에 강경한 논조의 상소를 함

 

도덕 높은 우리 님은 성품도 굳세고 밝았다 [斯文我侯 天性剛明]

뜻은 청렴에 있으니 씀씀이도 검약하였네 [志存淸儉 自奉簡約]

정사는 공평하고 송사는 이치에 맞으니 온 고을 어려운 사람 모두 살렸고 [政平訟理 闔境蘇殘]

형벌은 줄고 세금은 가벼우니 관리와 백성 모두가 편안했네 [省刑薄斂 吏民俱安]

한 해의 다스림에도 이 세상 다하도록 잊을 수 없도다 [居官一載 沒世不忘]

- 강계에 세워진 계서 <청백인정비淸白仁政碑>에 새겨진 글

 

맑고 희도다 백옥의 깨끗함이여 [淸耶白耶 白玉之白]

사랑하고 어루만지니 백성의 어버이로다 [慈之撫之 民之父母]

한 고을 묵은 일 하루아침에 새롭게 했도다 [一朝維新 百里太古]

새 해를 다스렸으나 영원토록 사모하네 [三載居官 萬世永慕]

- 담양의 <청백인정비>

 

 

계서종택 사랑채에 딸린 간이 소변소. 노인들의 편리를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

계서종택 사당 내부. 성이성 부부 신주를 비롯해 종손 4대조까지의 신주가 벽감 형태의 감실에 모셔져 있다.

 

독 안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金樽美酒千人血]

소반 위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 [玉槃佳肴萬姓膏]

…(후략)…

- 호남 암행어사로 활동할 때 호남 열두 읍 수령들이 베푼 잔치 자리에서 성이성이 지은 한시

 

29 360년간 후세의 물 걱정을 덜게 한

정책을 실천하다

 

신 지 제

 

 

360년간 후세의 물 걱정을 덜게 한 정책을 실천하다 : 신지제(금산서원)

 

 

선조宣祖께서 말씀하셨다. "아! 슬프도다. 내가 덕이 없고 어두워서 스스로 피하지 못하고 큰 난리를 당하게 되어 오직 너희들 문무제신文武諸臣이 서로 도와 나라를 구했으니 수고로움이 있었던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답하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갚음이 있음을 사사로운 정에 끌려서 하는 것이 아니요, 참으로 공적인 의리에 말미암은 것이다. …(중략)… 조정의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논공행상을 할 때 어찌하여 그대가 빠졌는지, 만일 지난번 조정으로부터 상소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옛날 진晋의 개자추介子推와 같이 면산綿山에 숨어 찾아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마땅히 위로하고 어루만지는 정성을 두텁게 하여 그 노고에 보답하는 온정을 베풀고 공훈을 호성공신 3등으로 기록하고, 특히 화상을 그려 후세에 전하도록 하며, 부조묘의 사당을 특별히 세우는 특전을 내리고, 또한 벼슬을 한 계급 더해 아들이 없을 때는 생질과 사위에게 계급을 더하여 적장손嫡長孫이 대대로 이어받아 그 녹을 잃지 않고 영구히 미치도록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시중드는 사람 4명과 노비 7명과 말구종 2명, 밭 60결, 은자 5량, 옷감 1단, 내구마 1필을 하사하니 마땅히 수령할지어다.

- <선조대왕교서>

 

 

오봉종택 사당(의성군 봉양면 귀미리). 6 · 25 전쟁 때 이 사당 마당에 큰 독을 묻고 종택 유물을 보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30 문무를 겸비한 선량한 관리로

   역사에 기록되다

 

이 정

 

 

문무를 겸비한 선량한 관리로 역사에 기록되다 : 이정(경류정 전경)

이정이 1435년경 평안도 영변에서 가져와 주촌종택 마당에 심은 뚝향나무(천연기념물 제314호).

 

 

우리 종가 경류정 옆에 노송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가지와 줄기가 뱀처럼 꿈틀꿈틀하고 서리서리 넓적하게 얽혀서 임금이 타는 수레의 덮개처럼 되었는데, 그 높이는 두어길이 될까 말까 하나 실로 신기한 소나무다. …(중략)… 공은 젊어서 큰 뜻이 있었으나 음사벼슬로 맴돌아 그 뜻을 펴지 못했다. 그러나 3대가 내려가 대현大賢(퇴계 이황)이 나서 우리 동방에 영원한 행운을 가져왔으니, 공은 우리 이 씨의 근본이시다. …(중략)… 원래 솔이란 추운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지조인데, 때는 바야흐로 추운 철인지라 군君과 나는 아무리 곤궁할지라도 의리를 잃지 말고 만년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더욱 힘써 선조의 지조를 더럽히지 않는다면 이 소나무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서로가 힘써야 할 것이다.

- 이정의 후손인 이만인李晩寅은 '나무 심은 지 400년 후 정해년丁亥年 12월'에 '경류정 노송기慶流亭 老松記'를 남겼는데 그 일부

 

적선으로 복과 경사가 불어나고 [積善由來福慶滋]

몇 대 전한 인후함이 온 집안에 넘쳐나네 [幾傳仁厚衍宗支]

군에게 권하노니 거듭 문호를 힘써 지켜 [勸君更勉持門戶]

화수회가 위씨 집처럼 해마다 이어지도록 하오 [花樹韋家歲歲追]

산 아래 높은 정자엔 형세가 아득한데 [山下高亭勢入冥]

온 집안사람 함께 기쁨 나누는구나 [合宗筵席盡歡情]

더욱 어여쁜 명월 가을밤 [更憐明月中秋夜]

텅 빈 난간 연못이 참으로 맑구나 [虛檻方池分外淸]

맛난 술 높은 정자에 달빛이 깃드니 [美酒高亭月正臨]

한 말 술에 백편 시를 읊을 뿐이오 [何須一斗百篇吟]

작은 연못에 비춘 달은 차가운 거울 같으니 [小塘灑落如寒鏡]

진실로 은자임을 깨달아 마음이 편하도다 [眞覺幽人善喩心]

- 가정 병진嘉靖 丙辰(1556년) 중추中秋 전 대사성前 大司成 황滉 삼가 지음奉稿

 

 

주촌종택 사랑채인 '고송류수각古松流水閣'

 

 

 

안채 대청과 마당을 가득 메운 제관들이 제사를 지내고 잇다(서애종가).

제사가 끝난 후 안채 마당에서도 제관들이 음복을 하고 잇다(학봉종가).

서애종가 불천위 제사에서 사용할 도적을 쌓고 있는 모습.

 

 

|4부|

나라國와 가족을

먼저

생각하다

 

 

31 일흔 살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조선 무신의 정석

 

최 진 립

 

 

일흔 살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조선 무신의 정석 : 최진립(잠와종택)

최진립이 배향된 용산서원(경주 내남). 용산서원 현판은 당대의 명필이자 서예 이론가인 옥동 이서의 글씨다. 서원 내 최진립 위패를 모신 사당 이름인 '숭렬사우승崇烈祀宇'는 나라에서 내렸다.

잠와종택 사당 안의 잠와 신주 감실.

 

 

32 문무를 겸비한 선비,

   반란 평정으로 공신에 오르다

 

손 소

 

 

문무를 겸비한 선비, 반란 평정으로 공신에 오르다 : 손소(서백당)

 

 

금오산 푸릇푸릇 태허太虛에 솟았도다. 옛사람 그 누구가 여기에 살았던고. 나 일찍 일선군에 유적 찾아 이 산비탈에 쉬었도다. 깊은 골짝 맑은 샘물…(전략)… 옛날 길공吉公(야은 길재)은 현사賢士로서 고려 쇠운 당했건만 충군애국 일편단심 다른 뜻 전혀 없다. 아홉 번 죽더라도 굳센 절개 변할 소냐. 아태조我太祖 용흥(龍興(왕위에 오름)하니 홀연히 산에 숨어, 혁명은 운수지만 나의 뜻을 고칠 소냐. 덕이 있어 왕이련만 두 임금은 못 섬긴다.

…(중략)… 우리 임금 여러 번 불렀으나 굳은 절개 그 조정에 불참이라. 마침내 이 산에 늙음이여, 본 뜻은 요동 없다. 충성은 백일白日을 관통하고 풍성風聲은 만세에 뻗으리라. …(중략)… 나 여기 기구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슬퍼하고, 드높은 봉우리에 반환盤桓(머뭇거리며 서성임)한다. 단지 보이는 것은 잔나비 우는 깊은 골짜기요, 학이 우는 높은 산마루로다. 날은 장차 저무는데 시야는 도리어 밝아진 듯, 사고무인四顧無人 적적한데 벌목 소리만 정정하다.

- <금오산부>

 

…(전략)… 너의 공로를 생각하면 감히 포장褒奬할 것을 잊겠는가. 그러므로 너를 적개 2등공신에 책봉하여 각閣을 세워 초상을 그리고 비를 세워 공을 기록, 그 부모와 처자에까지 벼슬을 주되 두 계급씩 올리고, 자식이 없는 자는 그 생질이나 사위에게 한계급씩 올려주고, 적장자는 대대로 세습하여 그 녹을 빠짐없이 주고, 그 자손들은 정안政案에 기록하기를 2등 적개 공신 손소의 후손이라 하고, 비록 죄를 범해도 용서하며 그 효과는 영세보존된다. 그리고 사환 8명, 노비 10명, 구사丘史(공신에게 주는 지방 관노) 5명, 밭 100결, 은 20량, 옷 1습, 말 한 필을 하사하니…(후략)…

 

 

성주 고을 백성들이 진정서를 올렸다. 목사 손소의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는 근고近古에 없는 바라, 지난 경인년에는 백성을 자식같이 사랑해 온 지역이 굶주림을 면하고 백성들은 부모같이 사랑하더니, 금년에 또 흉년이 되자 마음을 다해 구휼함으로써 백성들이 잘 살았다. 이제 만기가 되어 떠나야 하지만 잉임仍任(임기가 다 된 벼슬아치를 그대로 머물게 함)하도록 계를 올리니 상감께서 허락했다.

- 정원일기政院日記

 

 

손소의 초상화. 1476년(성종 7년) 나라에서 만들어 손소에게 하사한 초상화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손소에게 성종이 하사한 옥연적. 함께 하사한 산호영 · 상아도와 더불어 '송침 3보'라 불린다.

서백당 사당의 불천위 신주 감실. 소박한 형태의 감실 문 중앙에 세로 버팀목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33 부친과 함께 의병 활동에 참가한 선비,

    효孝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다

 

남 경 훈

 

 

부친과 함께 의병 활동에 참가한 선비, 효孝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다 : 남경훈(난고종택)

 

 

난고종택(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의 사당 전경. 이곳 사당은 불천위신주(맨 서쪽에 봉안) 및 4대조 신주를 모신 불천위사당과 체천위 신주를 모신 사당인 체천위별묘遞遷位別廟가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른쪽 건물이 별묘다.

 

남경훈이 남긴 가르침으로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가훈

▲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자식된 도리를 다하라.

▲ 자손들은 선조에게 보답하고 종통을 중히 여겨라.

▲ 일상생활에서도 근본을 두텁게 하며 직분을 다하는 것을 급선무로 하라.

▲ 행실을 조심하고 사람을 편하게 대하며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마라.

▲ 용모를 바르게 하고 절도를 지키도록 조심하라.

▲ 평소 근검하고 가례는 간소하게 하라.

▲ 공을 앞세우지 말며 칭찬을 부끄럽게 생각하라.

 

 

난고종택 사당의 3개 문 중 좌측 문 위에 '난고선생불천위지묘' 현판을 걸어 두고 있다.

난고종택 사당 내 불천위 신주 감실과 주독 모습. 신주 감실이 벽체로 돼 있고, 감실 문의 형태도 어느 종가 사당과 다른 모습이다.

 

 

34 부하를 혈육처럼 사랑한 무장,

   선정의 모범을 보여 주다

 

박 의 장

 

 

부하를 혈육처럼 사랑한 무장, 선정의 모범을 보여 주다 : 박의장(무의공종택)

 

슬프다. 너희들 사졸들아! 몸은 죽었으나 영혼만은 있을지라. 너희들은 영특하니 영혼도 밝으리라. 나의 말을 들어보라. 나의 말은 슬프구나. 군사를 훈련한 지 이제까지 7년이라. 내가 너희 장수되어 굳은 언약 서로 맺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고, 나의 옷을 네가 입고 너의 밥을 내가 먹고, 한 집에서 잠을 자고 활을 쏘며, 술도 나누었네. 부윤은 누구이며, 백성은 누구였더냐. 먹은 마음 같으니 혈육과 다를소냐.

- <제전망장사문祭戰亡將士文>

 

전란 중이라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상주 노릇도 못했으니, 신하된 직분으로는 당연한 일이나 자식된 도리로서는 죽는 날까지 한스러움이 끝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 곁을 멀리 떠나지 않고 끝까지 봉양하려 했습니다. 성은이 지중해 다시 경상도 병마절도사의 임명을 받아 모자간의 안부라도 서로 듣게 되어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먼 서방의 공홍도수군절도사의 직을 받게 되어 팔십 노모는 밤낮 울어서 병이 날 지경이고, 모자가 천리 밖에 서로 떨어져 만나볼 수도 없으니 마음이 산란하여 사무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모자가 죽기 전에 만나게 해주시면 살아서는 충성을 다하고 죽어서는 결초보은하겠나이다.

- 모친을 모시기 위해 공홍도수군절도사公洪道水軍節度使의 체임을 요청하는 상소문을 요약한 내용

 

 

무의공종택(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의 사당 전경.

무의공이 사용하던 복숭아 모양의 음료수 잔인 도형배(무의공종가 제공).

박의장 내외분 불천위 제사 때 사용하던 제게인 적기炙器와 향로(무의공종가 제공).

 

 

35 효제충신의 삶,

지식인의 실천 덕목을 제시 하다

 

송 희 규

 

 

효제충신의 삶, 지식인의 실천 덕목을 제시하다 : 송희규(백세각)

 

 

훌륭한 송공宋公

타고난 성품이 강열剛烈하여

정색正色하고 조정에 서니

아무도 그 뜻을 꺾지 못했도다

좌우에서 두드리고 흔들수록

절의와 지조는 더욱 굳었도다

비록 사람과는 어긋났어도

하늘에는 한 점 부끄러움 없었도다

- 갈암葛巖 이현일(1627~1704년)이 야계倻溪 송희규(1494~1558년)의 묘비명墓碑銘을 지으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인품을 표현한 시의 일부

 

몸가짐은 다만 효도하고 공경함이며 [持身祇是孝而悌]

뜻을 세움은 마땅히 신의와 충성이다 [立志要當信與忠]

만약 사람마다 이 도리를 안다면 [若使人人知此道]

어찌 망국하고 패가할 일 있으랴 [則何亡國敗家有]

- 송희규가 7세 때 지은 시 <독소학讀小學>

 

중학中學에서 회의를 하던 날 공(야계)은 스스로 그 사태를 짐작하고 동료에게 말하기를 '대신에게 죄가 있으면 드러내 죽일 일이지, 태평성대에 밀지를 내리는 것이 어찌 밝은 세상의 일인가' 했다. 대사헌 민제인이 밀지를 극렬히 추진하려고 하자 공은 '윤원형이 임금의 외숙으로서 임금을 옳은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도리어 비밀히 국모에게 의뢰해 사람들을 해치려 하니 이것이 될 말인가. 오늘 반드시 먼저 이 사람을 제거해야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것이다' 하고 김저, 박광우 등과 더불어 팔을 걷어 부치고 큰 소리를 지르는데 의기가 늠름하여 건드릴 수가 없었다.

- 《연려실기술》

 

사람의 욕심이 들어올 틈이 없으니

천리天理는 오직 밝고 빛나네

학문은 세상에 영합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덕업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닦였네

움직이면 천하에 도가 되고

말을 하면 천하에 법이 되네

우주의 동량을 부지扶持하면서

생민生民의 주석柱石되어 안정하게 하네

이것이 이른바 세상에 이름난 참 선비眞儒이니

성인의 덕으로 정중正中한 자이다

- <진유부眞儒賦>의 일부

 

 

야계 송희규가 1552년에 처음 건립해 만년을 보낸 백세각(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이 야계종택 안채 다락방은 파리장서 사건을 모의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백세각 건물 좌측에 있는 야계 불천위 사당. 야계 내외 신주와 종손 4대조 신주가 봉안돼 있다. 사당 단청 그림 중에 사군자가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야계 신도비神道碑(죽은 이의 삶을 기록하여 기리는 비석으로 무덤 앞이나 길목에 세움). 고산리 마을 뒤쪽에 있으며, 비문은 갈암葛巖 이현일이 지었다.

 

 

36 문무를 함께 갖춘 충신,

   격문과 대화로 적을 물리치다

 

장 말 손

 

 

문무를 함께 갖춘 충신, 격문과 대화로 적을 물리치다 : 장말손(송설헌 사당)

 

 

'타고난 성품은 순수하고 성실하며 [性質純穀]

학식은 통달하였네 [學識疏通]

충성스럽고 의로운 도리는 [忠義之道]

실로 마음 깊이 새겨 잊지 않는 바였네 [實所佩服]

- 송설헌이 별세한 후 성종이 내린 사제문賜祭文

 

황금 갑옷 담비 갖옷 입은 나그네의 정이 [金甲貂 遊子情]

쓸쓸히 낙엽 떨어지는 변방성에 울리네 [蕭蕭落木響邊城]

시서를 벗삼아 온 글 잘하는 장군이니 [詩書從事詩書將]

요망한 기운을 변방에서 싹 쓸어버릴 것을 기쁘게 보리라 [喜見妖氣塞外淸]

- 김종직

 

 

듣거니 그대 담소로 적을 물리쳐 [聞君談笑能却賊]

자잘한 무리 얼씬도 못했다지 [魚樵不敢近城池]

…(후략)…

- 허백당虛白堂 홍귀달

 

 

 

송설헌 불천위 제사가 봉행되는 연복군종택(영주시 장수면 화기리). 종택 사랑채인 화계정사花溪精舍(왼쪽)에서 제사가 진행된다.

사당의 신주 감실 등을 깨끗이 청소하는 데 사용했던 도구.

변방의 적들을 소탕한 장말손에게 세조가 하사한 패도(보물 제881호).

 

 

 

 

37 깨끗한 벼슬 생활로 조선 시대

청백리의 교과서

 

곽 안 방

 

 

 

깨끗한 벼슬 생활로 조선 시대 청백리의 교과서 : 곽안방(포산고가 사당)

 

 

 

곽안방은 마음 쓰는 것과 행신하는 것이 뛰어났고, 한가지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교유하는 벗이 그 당시의 명류들이어서 어진 사대부가 그 문에 많이 모여들었다. 벼슬을 하며 청백하기가 빙옥氷玉 같이 깨끗하여 벼슬을 그만 두고 필마행장匹馬行裝으로 돌아올 때는 나는 듯이 가벼웠다.

- 《여지승람輿地勝覽》의 <명환록名宦錄>에 기록된 내용

 

 

 

청백리 곽안방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양서원尼陽書院(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대리). 1707년 사당인 청백사淸白祠가 건립된 후 서원으로 발전했고, 대원군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1945년 이후에 복원되었다.

곽안방종택苞山古家의 불천위 제청으로 사용되던 추보당追報堂 건물.

현풍 솔례마을에 있는 현풍 곽 씨의 십이정려각十二旌閭閣. 1598년(선조 31년)부터 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솔례마을의 현풍 곽 씨 가문에 포상된 12정려를 한곳에 모은 각閣이다.

 

 

38 책과 함께 한 선비,

   임진왜란 일어나자 의병 일으켜

 

정 세 아

 

 

책과 함께 한 선비, 임진왜란 일어나자 의병 일으켜 : 정세아(강호정)

 

 

조수鳥獸와 산림山林은 공公이 멀리 숨었다 하고

병마兵馬와 병기兵器는 공이 잘 싸웠다 말하네

자벌레처럼 굽히기도 하고 매와 같이 날기도 하였으니 시대가 그러했다

공이 무엇을 구했겠는가 그 의義를 행하였다

구름처럼 산 위에서 나와 삼논三農을 윤택하게 하고

폈다가 거두어서 태공太空으로 돌아갔도다

- 영의정 조현명이 지은 호수湖叟 정세아(1535∼1612년) 신도비神道碑(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에 나오는 글귀

 

다만 시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문詩文은 체백體魄에 대신할 수 있으니 시로써 무덤을 하는 것이 또한 예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는 반드시 뼈로 장사 지낸 것을 옳다 하고 시로 장사 지내는 것은 부당하다 생각하나 쓸쓸한 황혼에 장사 지내는 것이 많겠지만 이는 마침내 썩어 없어지는데 돌아갈 뿐이고 그 사람의 시는 오래되어도 썩어지지 않을 것이니 이 무덤이 얼마나 위대하겠는가.

- <시총비명詩塚碑銘>에 있는 글의 일부

 

장년의 뜻 적장의 머리 벨 것을 기약했건만

쇠잔해진 이 몸 귀밑 털이 셀 줄이야

…(중략)…

노쇠하고 병드니 어찌 출세 길 달릴 것인가

한가로이 물러나서 청류를 구경함이 내 분수에 맞다

백구도 강호수를 싫어하지 않고 찾아주니

이제부터 청안으로 죽을 때까지 쉬리라

- 시 '자호정사에 올라[登紫湖精舍]'의 일부

 

 

정세아의 묘가 있는 하천묘역(10만 여 평 :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기룡산 자락). 호수 가문의 문중묘역으로, 480여 년 전 정세아 조부의 묘가 들어선 이후 총 80여기가 모여 있으며, 200여 년 전에 현재의 묘역이 형성됐다.

호수종택 사당(영천시 대전동).

호수종택 사당 내 불천위 신주 감실. 2005년경에 도둑을 맞아 새로 복원한 감실이다.

 

 

39 인사권자도 어찌할 수 없었던

   인재 등용의 원칙을 보여 주다

 

이 동 표

 

 

 

인사권자도 어찌할 수 없었던 인재 등용의 원칙을 보여 주다 : 이동표(난은 묘소)

 

 

도화유수의 신비경이 속세에도 있고 [桃花流水在人間]

태백산의 수많은 봉우리 속 세월이 한가롭네 [太白千峰日月閒]

선비의 살림 옹졸하다 말 말아라 [莫道書生生計拙]

그래도 요즘 와서 청산을 사게 되었으니 [向來猶得買靑山]

- 귀향 후 춘양의 산수를 좋아해 그곳에 머물며 지은 시

 

 

 

이동표가 숙부로부터 선물받아 매우 아끼면서 사용했던 대형 벼루(무게 20kg, 가로 48cm, 세로 31.5cm).

 

 

40 각별한 충효의 실천,

당대 '선비의 귀감'이 되다

 

변 중 일

 

 

 

각별한 충효의 실천, 당대 '선비의 귀감'이 되다 : 변중일(간재정)

 

 

옛 사람 사모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慕古是何人]

오직 내 참성품 지키기 바랄 뿐 [庶幾守我眞]

세상 밖의 일 말하지 않고 [莫論世外事]

달갑게 농사꾼이 되었네 [甘作畎中身]

어버이 돌아가실 때 효도하기 어려웠고 [親歿難爲孝]

재주 없어 끝내 뜻 펼치지 못했으니 [才疏竟不伸]

세상을 경륜해 보려던 건 그 옛날의 뜻일 뿐이고 [經營伊昔志]

청춘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네 [無復更靑春]

- 간재簡齋 변중일(1575~1660년)이 만년에 지은 시 <술지述志>

 

…(전략)… 작은 서재를 지어 이름을 '간재'라고 써붙였다. 일찍이 듣기를 '군자의 도는 중中에 적응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君子之道 適於中而不倚於偏]'라고 했다. …(중략)… 나는 감히 덕을 이루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덕을 숭상할 뜻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내가 간자를 취한 이유가 어찌 중을 버리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취하는 것이겠는가. 나는 재주가 모자라고 뜻도 게을러 큰 일을 경영해 백성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고, 왜적이 침입해 나라가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몸을 바쳐 수치와 분통을 씻지도 못했으니 내가 장차 세상에 무슨 뜻이 있겠는가.

그래서 자취를 거두어 몸을 숨기고 그 뜻을 담아 이 서재의 이름을 지었다. 기와가 아닌 초가로 한 것은 거처함의 간이고, 담장을 흙으로 바르고 붉은 칠을 하지 않은 것은 꾸밈의 간이다. …(중략)… 말이 많고 교묘한 것이 간단하고 서툰 것만 못한 것이니, 간이란 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원래 도를 해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간으로써 내 삶을 즐기련다. 그러나 내가 또 어찌 지나치게 간하는 사람이겠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에 적응하기를 기할 뿐이다.

- 《간재기簡齋記》 내용 중 일부

 

 

 

간재 불천위 신주를 모시는 사당.

간재종택(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옆에 있는 정충효각旌忠孝閣. 1686년 간재의 충효를 기려 나라에서 건립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모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변중일의 효심에 감동해 왜군이 증표로 주고 간 칼.

 

 

1779년(정조 3년) 10월15일에 조례祧禮(신주를 땅에 묻는 의식) 일자를 잡아 원근의 사림에 통고하니 모인 사람이 280여 명이었다. 오후에 대청 앞에 회의자리를 여니 공의公議가 일어나 '간재공의 탁월한 충효행은 이미 조정에서도 은전의 포상이 있었는데 사림에서 존모하는 정성이 어찌 없겠는가. 오늘의 자리는 조매제사埋祭祀로 거행할 것이 아니라 불천위로 모시는 제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버렸다. 이에 종손과 지손들이 그 자리에 찾아가서 '사림의 논의가 이같이 정중하니 실로 후손된 사람으로서는 감축하는 바이나 뜻이 뜻대로 될 수 없는 지극히 어려운 처지가 있습니다'라고 했으나, 참석한 사람들이 자손의 겸양을 들어주지 않고 공의로 이미 결정한 대로 마무리짓고 모인 사람 중 김응탁金應鐸을 선정, 본손本孫을 대신해 고유문을 짓게 했다.

- 간재가 불천위에 오른 내력

…(전략)… 세상을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에서 특별히 정전旌典을 내려 엄연한 유각이 저기 휘황輝煌하게 서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조례의 날이 다가오니 뜻 있는 선비들이 모두 모여 옛 현인을 앙모함이 더욱 새로워, 이에 불천위의 예로 모실 것을 결정하니 자손들은 송구하고 두려워하면서 삼가 맑은 술과 여러가지 안주로 제주를 바쳐 올립니다.

- 김성탁이 본손을 대신해 지은 가묘부조고유문家廟不告由文 중 후반부 내용

 

 

청신재 박의장 시호 교지(1784년 · 시호 '武毅')와 농암 이현보의 시호 교지(1557년 · 시호 '孝節'). 당사자의 벼슬과 시호, 시호의 의미 등이 적혀 잇으나 시대가 달라서인지 교지의 규격이나 내용 구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시호는 시장諡狀 작성으로 시작돼 관련 관청의 협의와 심사를 거쳐 왕이 확정하며, 시호가 확정되면 교지로 작성돼 해당 인물의 자손 집에 전달된다. 그리고 해당 가문에서는 시호를 맞는 연시延諡 행사가 치러진다. 사진은 귀암 이원정의 <시호망가諡號望記>(시호 예비명칭 3개를 정해 왕에게 올린 문서로, 국왕이 '文翼'을 지명했음이 표시돼 있음).

 

 

|5부|

무엇을 하든

마음心 공부가

중요하다

 

 

41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한

   '벼슬 하지 않은 선비'

 

권 구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한 '벼슬하지 않은 선비' : 권구(병곡종택 가묘)

 

 

비 그친 뒤 지팡이 짚고 마루 아래로 내려가

국화를 줄지어 심네

나뭇잎 지고 서리 내릴 때를 기다리면

황화가 토해내는 향기 서원에 가득하리

- 병곡屛谷 권구(1672~1749년)의 작품 <서원 뜰에 국화를 심다種菊院庭>

 

홀로 앉음이 꼭 나쁘지 않고 도리어 유익하다

속객이 문에 이르지 않아 일실이 늘 한적하고

연기는 나서 산촌을 날며 햇빛은 빈 창을 밝히네

책을 펴고 책상 앞에 정좌해 잠자코 깊은 뜻을 찾으니

흡사 옛 성현이 좌우에 나열한 듯하네

때로 문을 열고 바라보니 산천은 어지럽게 눈에 차고

반가워하며 맵씨 내는 모습들 내 쓸쓸하고 적막함을 위로하듯 하니

깊이 생각하여 뜻을 자득하고 흥구興句 자주 얻어 수심愁心을 잊네

심기는 자연히 고요하고 세상 근심 모두 사라진다

- <'홀로 앉아서獨坐>

 

내가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너의 아버지는 음식물의 감고甘苦와 의복의 편부便不 여부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평소 음식을 먹는데도 정수定數가 있어서 비록 악초라도 덜함이 없고 좋은 반찬을 만나도 더함이 없었으며, 입을 옷도 새 것 · 기운 것을 가리지 않았으며 다만 제삿날에는 웃옷을 빨라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 권구의 부인이 아들에게 한 말

 

가난에는 삼락이 있으니, 입은 거친 밥과 소채蔬菜를 익혔으니 음식이 만족하기 쉬워 고량膏粱원치 않으며, 몸은 베옷을 익혔으니 의복이 편하기 쉬워 비단을 원치 않으며, 거처는 비좁은 곳을 익혔으니 쉽게 편하므로 화옥華屋을 원치 않는다.

- 병곡의 글 '가난의 三樂'

 

 

 

병곡종택 사당 내 불천위 신주 감실.

병곡종택(안동시 풍천면 가곡1리)의 당호로도 사용되던 '시습재時習齎' 현판이 걸려 있는 종택 사랑채. 이 건물 동쪽에 불천위 사당이 있다.

권구의 학덕을 기려 1768년에 지역민들이 지은 서당인 노동서사魯東書社(안동시 풍천면 가곡1리). 일제 강점기에는 권구의 후손인 권오설이 원흥학슬강습소를 열어 민족교육운동을 한 곳이기도 하다.

 

 

42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저술

 

권 문 해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저술 : 권문해(초간정)

 

 

선생께서 겨우 약관에 그 몸가짐이 어른과 같아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만일 올바르지 못한 것을 보면 같이 어울리지 않으셨다. 그런 까닭에 다른 사람들이 어려워했다

- 권문해의 연보年譜에 나오는 기록

 

 

초간종택 사당 전경. 종택 사랑채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늙으신 어머님께 맛난 음식으로 봉양하고 잠자리를 돌보아 드리는 범절 등은 모두 내가 살아 있을 때와 같이 해서, 행여 아버님으로 하여금 저승에서 슬퍼하게 하지 마라.

- 본인이 병이 깊어 회복할 기미가 없자 연로한 모친을 염려하며 남긴 유언

 

나무와 돌은 풍우에도 오래 남고 가죽나무, 상수리나무는 예전처럼 아직 살아 저토록 무성한데 그대는 홀로 어느 곳으로 간단 말인가. 서러운 상복을 입고 그대 지키고 서 있으니 둘레가 이다지도 적막하여 마음 둘 곳이 없소. 얻지 못한 아들이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날 가면서 성장하여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보아 그대 앞에 향화 끊이지 않을 것을……. 오호 슬프다. 저 용문산을 바라보니 아버님의 산소가 거기인데 그 곁에 터를 잡아 그대를 장사지내려 하는 골짜기는 으슥하고 소나무는 청청히 우거져 바람소리 맑으리라. 그대는 본시 꽃과 새를 좋아했으니, 적막산중 무인고처에 홀로 된 진달래가 벗되어 드릴게요. 이제 그대가 저승에서 추울까봐 어머니가 손수 수의를 지으셨으니, 이 옷에는 피눈물이 젖어있어 천추만세를 입어도 해지지 아니 하리다. 오오! 서럽고 슬프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우주에 밤과 낮이 있음과 같고, 사물의 비롯함과 마침이 있음과 다를 바가 없는데, 이제 그대는 상여에 실려 그림자도 없는 저승으로 떠나니 나는 남아 어찌 살리오. 상여소리 한 가락에 구곡간장 미어져서 길이 슬퍼할 말마저 잊었다오.

- 자기 부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리자 상을 치르면서 초간이 지은, 부인을 위한 제문

 

 

 

초간종택 백승각에 보관돼 있는 《대동운부군옥》 목판본.

초간종택(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유물각인 백승각百承閣 안 철제 금고에 보관돼 있는 초간 불천위신주 감실. 보물급인 이 감실은 도난 방지를 위해 제사 때만 잠시 꺼내 사용하고, 평소에는 금고 속에 보관하고 있다.

 

 

43 '조선 시대의 갈릴레이'

   천문학을 꽃피우다

 

김 담

 

 

 

'조선 시대의 갈릴레이', 천문학을 꽃피우다 : 김담(무송헌 사당)

 

 

신은 시골의 천한 선비로서 …(중략)임금님의 은혜를 입고 관직이 4품에 이르렀습니다. 헤아려 보건대 지금의 신하들 중에 비록 귀척貴戚이나 훈구勳舊의 후예라도 신과 같이 성은을 온전히 입은 자는 없을 것입니다. 마땅히 몸이 상하고 머리가 부서질지라도 만분의 일이라도 성은을 갚아야 할 터인데, 어찌 감히 정을 숨기고 말을 꾸며 성총聖聰을 어지럽게 하겠습니까. …(중략)신이 생시에 어버이를 봉양하지 못하고, 병중에 의약도 지어 드리지 못했으며, 돌아가신 후 장례 치를 때도 당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생각하건대 마땅히 묘소 곁에 엎드려 3년상을 마치고자함은 전일의 잘못을 보상하고자 함이 아니고 금일에 힘쓸 바 오직 이것뿐이라고 여겨집니다. …(중략)역법을 헤아리는 일은 박수미와 김석제가 참으로 저보다 우월합니다. …(중략)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 1449년(세종 31년) 정월 부친상을 당해 시묘侍墓살이를 하던 중, 그 해 5월에 왕이 출사出仕하라는 특명과 함께 쌀 10석, 옷, 신발, 버선 등을 하사하며, 대궐에서 김담을 만나본 후 역법曆法을 맡아보도록 명했다. 이에 김담은 같은 달 23일에 상소를 올려 사직할 것을 청했다.

 

신의 가정이 액운을 만나 신의 백부가 지난해 9월에 돌아가시고 11월에 신의 누이도 죽고, 올해 정월에는 신의 어미가 병환이 위독해 미처 쾌차하기도 전에 신의 아비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신의 여식이 조부모 슬하에 크다가 2월에 이르러 또 죽었습니다. …(중략)… 향리로 돌아가 상제喪制를 마치고 노모를 봉양하도록 윤허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 날 올린 상소

 

 

 

영주 무섬마을에 있는 무송헌종택. 현 종손(김광호)의 족친(일본 거주 실업가)이 구입해 두었던 한옥을 종택으로 쓰라고 종손에게 희사한 건물이다. 대구에 살던 종손이 2007년부터 들어와 살고 있다.

 

 

파란 숲 사이로 백옥같이 맑은 물 흐르는데 [碧玉叢間白玉流]

꽃빛은 물 위에 길게 비치어 떠 있네 [花光長帶水光浮]

맑고 그윽한 자연은 인간의 세계가 아니니 [淸冥風露非人間]

뼛속 시원하고 정신 향기로운 꿈 속에서 노닐었네 [骨冷魂香夢裏遊]

조각 도원을 한 폭에 그려놓으니 [一片桃源一幅圖]

산중의 선경이 비단 위에 사뿐히 실렸네 [山中綃上較錙銖]

무릉에서 길 잃은 자에게 묻노니 [試問武陵迷路者]

눈 앞에 보았던 게 꿈만 같지 않았던가 [眼中還似夢中無]

- <몽유도원도>에 남긴 시의 일부

 

 

 

김담이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남긴 찬시讚詩.

김담이 제작한 천문도. 영주 소수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44 38년 서울 벼슬 생활 동안

셋방을 전전한 청빈의 삶

 

박 승 임

 

 

 

38년 서울 벼슬 생활 동안 셋방을 전전한 청빈의 삶 : 박승임(소고 사당)

 

 

천지가 어두워지더니 시월인데 서리 내리고

찬바람은 비 머금고 높은 고갯길에 불어오네

낙엽은 방자하게 뒹굴기를 반복하며

바람소리는 섬돌을 치고 깎는 듯

궁한 선비 가난하여 단벌 옷뿐이라

한 해가 저물어 가니 심정은 더욱 어려운 지경일세

반 칸 방에 불 못 때니 얼음장 같고

깨진 잔에 거미줄 친 것 민망스레 보노라

어리석은 아내 나의 생계 소홀함 꾸짖고

헛되이 밝은 창 향해 좀 먹은 책 펼치노라

아녀자들이 어떻게 궁달의 이치를 알까

만사가 하늘에 달렸으니 한 번 빙그레 웃노라

봄은 응당 심한 추위 뒤에 오나니

잠깐 동안 눈을 감고 인내하는 것 뿐이네

-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소고嘯皐 박승임(1517∼86년)의 시 <시월에 오는 비[十月雨]>

 

신이 실성하여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무고하게 대신의 행위를 감히 공격하겠습니까. 전하께서 만약 평상심을 갖고 굽어살피신다면 신 등이 부득이 항론抗論을 편다는 사실을 반드시 훤하게 아시게 될 것입니다. 만약 언관言官이 전하의 위엄에 겁을 먹고 당장 항론을 중단한다면 신 등에게 일신상의 이익은 되겠지만, 사직을 위해서는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근래에 전하의 노여움이 바야흐로 높아서 대신이 배척되고 경연에서 간쟁을 맡은 신하가 잇따라 바깥으로 내쫓겼고, 오늘에 와서는 승정원이 일시에 혁퇴革退되었습니다. 이러한 실정을 목도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저의 몸에 이로운 줄 결코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감히 다시 말씀드리는 것은 전하께서 신에게 위임하신 뜻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국사의 위험을 거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신의 견마지성犬馬之誠을 살피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사심이 있다고 의심하시니, 신이 어찌 감히 벼슬을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빨리 신의 직을 파하소서.

- 소고가 임금께 올린 항소抗疎 중 일부

 

 

 

소고 사당 내부 모습. 소고 불천위 제사는 다른 종가와 달리 사당에서 지낸다. 그래서 신주 감실 앞에 제수 진설을 위한 큰 제사상이 마련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고의 대표적 저서인 《강목심법》과 《성리유선》

 

 

45 조선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다

 

최 항 경

 

 

 

조선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다 : 최항경(재실 추원재)

 

 

선생은 날마다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 의관衣冠을 갖추고 가묘家廟에 배알한 후, 단정히 앉아서 책상을 대하고 두 아들과 더불어 종일토록 강론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비록 집안사람들이라도 그 게으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선생은 예禮를 좋아하여 이르기를 '예란 것은 잠시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되는 것이고 경敬은 학문을 하는 시종始終이다. 예가 아니면 경을 지닐 수 없고 경이 아니면 예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 죽헌竹軒 최항경(1560~1638년)에 대해 제자인 고산孤山 김응려가 평한 글

 

아름답고 성한 창밖의 밭둔덕 대나무는 [猗猗窓畔竹]

한겨울 추위에도 푸른 빛 변함 없네 [歲寒不改色]

나는 위무공을 사모하노니 [我思衛武公]

구십에 억시抑詩를 지어 자신을 경계했네 [九十詩猶抑]

- 최항경이 스스로 '죽헌竹軒'이라는 호를 지은 뒤 같은 제목으로 읊은 시

 

선생은 언제나 의관을 바르게 하고 꿇어앉아 있으며, 게으르거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면 주위의 제자들이나 가족에게 물러가게 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문 밖에 이르면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들어가는데 선생은 이미 관대를 갖추었더라. 내가 좇아 배운 지가 30여년인데 관대를 하지 않을 때를 보지 못했다. 한강 선생이 보낸 편지가 도착하면 반드시 일어나서 받아 공경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읽기를 마친 뒤에는 반드시 다시 일어났다가 앉으셨다.

- 밤낮으로 죽헌을 곁에서 지켜본 제자의 기록

 

 

 

죽헌 최항경과 그의 두 아들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인 효덕사. 오암서원(성주군 수륜면 남은리) 내에 있다.

 

 

가을 깊어 서리 낀 볼에 책과 칼도 슬퍼하는데

나쁜 기운의 오랑캐 날뜀에 분개하노라

내가 만약 나이 젊은 장년이었다면

군진에 따라가서 작전을 지휘하리

- <통분시痛憤詩>

 

 

 

미수 허목의 글씨 '오암鰲巖'이 새겨진 바위. 오암서원 앞 냇가에 있다.

죽헌종택 사당에 봉안된 죽헌 불천위 신주 감실 모습.

 

 

46 학문 불모지 관서 지방에 학문을 일으켜

   후진을 양성한 '초야의 현인'

 

조 호 익

 

 

 

학문 불모지 관서 지방에 학문을 일으켜 후진을 양성한 '초야의 현인' : 조호익(망화정)

 

 

지산 조공曺公과 같은 분은 바로 초야의 현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 홍문관 대제학 김병학이 지산芝山 조호익(1545~1609년)에 대해 시호를 내려줄 것을 청하는 글로 지은 <시장諡狀>에서 지산을 묘사한 글귀

 

주자가 죽은 후 문인들이 각기 자신이 들은 바를 갖고 사방에 전수하였는데, 본래의 요지를 잃어버리고 이단으로 빠지게 되어 도道 정맥이 중국에서는 단절되고 말았다. 퇴계 선생께서는 외국 땅에서 수백 년 후에 태어나 이단에 유혹되지 않고 주자의 적전을 이었는 바, 우리 동방에서만 비견될 인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비슷한 사람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실로 주자가 돌아가신 후에는 오직 퇴계 선생 한 분 뿐이다.

- 이황이 별세한 해에 <퇴계선생행록>이라는 글의 일부

 

군자는 도를 지키는 게 중한 것이고 [君子所重者在道]

오랑캐 땅에서도 행할 수 있다 했네 [謂可行於蠻貊]

환난에 처해서는 환난대로 행하니  [素患難行患難]

위로는 원망 않고 아래로는 허물 않네 [上不怨兮下不尤]

천명에 따라 맘 편하게 지낼 것이니 [隨所命而安之兮]

그 이외에 또 무엇을 구하리오 [夫何外此而焉求]

- 강동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서정부西征賦'

 

위태롭던 종사가 막 안정이 되자 [宗社危初定]

수치 씻은 강산은 빛이 새롭네 [江山洗欲新]

갑자기 무너진 집 한 칸 얻으매 [居然得破屋]

이내 몸 살았는 줄 다시 알겠네 [方覺有玆身]

- '난리가 끝난 후 비로소 도촌에 살다[亂後始寓陶村]'

 

뒤늦게 꽃 심는다고 모두 웃지만 [裁花人笑晩]

육십 된 몸 먼 훗날은 기약 못해도 [六十遠期難]

내 나이 칠십 되고 나면 [得到稀年後]

열 번은 꽃이 핀 걸 보고말고 [猶將十度看]

- '꽃을 심다裁花'

 

 

 

지산 조호익이 말년에 거처로 마련해 정착했던 지산고택(영천시 대창면 신광리). 지금은 종손이 거주하지 않고 있고, 불천위 제사도 이곳에서 지내지 못하고 있다.

도잠서원 부근에 있는 조호익 신도비神道碑. 1642년에 세웠고, 동계 정온이 비명碑銘을 지었다.

조호익을 기리고 있는 도잠서원(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1613년 '지봉서원芝峯書院'이라 했다가 1678년 '도잠서원道岑院'이라는 편액이 내렸다.

 

 

47 군자의 학문 외길 걸은

   '선비의 정석'

 

장 흥 효

 

 

 

군자의 학문 외길 걸은 '선비의 정석' : 장흥효(광풍정 제월대)

 

 

나는 일찍이 정자程子의 뜻을 취하여 '경'자로 나의 당堂 이름을 짓고, 이것을 호로 삼았습니다. 또 주자周子의 뜻을 취해 나의 정자 이름 짓기를 '광풍정'이라 하고, 나의 대 이름을 '제월대'라 했습니다. 내 스스로 그 실상에 맞다는 것은 아니지만 고인들이 말한 것을 표적標的으로 삼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자 할 뿐입니다. 무릇 경이 아니면 마음을 주재할 수 없고 광풍제월이 아니면 도의 체體와 용用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광풍·제월은 중국 송나라 황정견黃庭堅이 대표적 성리학자 주자의 인품을 형용하여 '가슴 속의 맑고 깨끗함이 광풍제월光風霽月(화창한 날씨의 바람과 비 갠 뒤의 달)과 같다'라고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장흥효는 글을 가르친 후 여가를 틈타 집 근처의제월대에 올라 선비들과 함께 노닐면서 예를 학습하기도 하고, 시를 읊기도 하면서 가슴이 상쾌해지도록 한가로이 마음 가는 대로 유유히 지냈다. 50여년 동안 이렇게 지내면서 안동부安東府 안으로 발길을 들인 적이 없었으므로, 이웃마을 사람들조차 그의 얼굴을 본 이가 드물었다.

자기의 것은 많기를 바라고, 남의 것은 적기를 바라는 것은 '나'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없어진다면 누구는 많기를 바라며 또한 누구는 적기를 바랄 것인가. 자신이 이기기를 바라고, 남이 지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없다면 누구는 이기기를 바라고, 누구는 지기를 바랄 것이 있겠는가. 내가 남이고 남이 나인데 뽐낼 것이 무엇이며, 내가 하늘이고 하늘이 또한 나이니 무엇을 탓할 것이 있겠는가.

- '경당敬堂' 기문記文을 친구에게 부탁하는 글에서, 자신의 호이면서 당호인 '경당'과 정자인 광풍정光風亭 및 제월대霽月臺 이름을 지은 이유에 대해

 

경오년(1630년)을 보내고 신미년(1631년)을 맞았으니, 악惡은 경오년과 함께 떠나보내고 선善은 신미년과 함께 맞이하련다. 저 그윽한 산골짜기로부터 벗어나 이곳 춘대春臺에 오르니 요사한 안개는 걷히고 순풍이 감도는구나. 분함은 누르기를 산을 꺾듯이 하고, 욕심은 막기를 골짜기를 메우듯이 하면, 분함과 욕심이 사라지게 됨을 구름이 걷히는 가운데 해를 보듯 할 것이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바르지 못한 것들이 드러나지 못하게 되니 천하가 모두 나의 문에 들 것이다. 이전 날에 기욕己欲(사욕)을 극복하지 못해 인욕人欲에 빠져들었더라도 이제부터 기욕을 극복한다면 천리天理가 회복될 것이다.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소인이 되고 군자가 될 수 있으니, 군자 되려면 반드시 기욕을 극복해야 한다.

금수가 되느냐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도 아주 미미한 것에서 비롯되니, 금수되기를 면하려 한다면 어찌 조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 새들도 머무를 곳을 아는데, 사람이 되어서 머물 곳을 몰라서야 될 것인가. 도는 큰 길과 같아서 눈으로 볼 수도 있고 발로 걸을 수도 있다. 만리萬理(모든 이치)를 보는 것도 한 번 보는 것에서 비롯되고, 천리千里를 가는 것도 한 번 걷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 장흥효가 신미년 새해를 맞아 작성한 글

 

경으로 마음 안을 곧게 하여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공부를 그치지 않으며

의로써 마음 바깥을 방정히 하여

그 혼자 있을 때를 더욱 조심하노라

올해 첫 달 첫날에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 살펴보니 부끄러운 일이 많구나

옛날의 잘못된 일들을 모두 씻어내고

여러 어진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기약하노라

- 경당이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설날 지은 시歲時自警

 

 

 

경당종택(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사랑채.

자신이 장만한 불천위 제사 제수祭需와 함께 한 경당 11대 종손 장성진 씨.

장흥효 불천위 신주(오른쪽)가 모셔져 있는 사당 내부. 신주함을 덮개로 덮어 두는 점이 독특하다.

 

 

 

48 자녀 교육을 위해 벼슬길을 접은 선비,

죽어서 판서가 되다

 

김 진

 

 

 

자녀 교육을 위해 벼슬길을 접은 선비, 죽어서 판서가 되다 : 김진(청계종택)

 

 

너희들이 먼 길을 왔다 갔는데 아무 탈 없이 있느냐. 나는 별 일 없으니 걱정 말아라. 너희들은 시월 전에 평해의 절로 들어가 겨울 석달 동안에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오너라. 너의 형은 게으름을 스스로 채찍질할 뜻이 없으니, 내 머리가 다 희게 되었다. 너희들 또한 편지를 보내어, 내가 너의 형에게 마음 쓰는 뜻을 알도록 하여라.

- 청계靑溪 김진(1500~80년)이 아들 수일 · 명일 · 성일 · 복일에게 보낸 편지 내용

 

큰 형(김극일)이 과거에 급제한 뒤 바로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슬하에 아이들이 여덟인데 대부분 나이가 어리거나 강보에 싸인 아이였다. 부군께서 어루만져 기르심에 있어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밤에는 좌우로 안아 주시는데 아이들의 어머니 젖 달라는 소리가 매우 애처로워 부군께서 몸소 젖을 먹이시니, 비록 단 젖은 나오지 않았으나 젖을 빨면서 울음을 그치곤 했다. 부군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면 주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아들 김성일이 지은 김진 행장行狀

 

여러 아이들이 비록 어린 나이에 어머님을 잃었지만, 이 덕분에 물과 불의 위험이나 춥고 배고픔을 면할 수 있어 무사히 오늘에 이르렀으니, 하늘 같이 높은 덕이 낳아주신 데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다. 자애로운 기르심이 지극하고 가르침이 또한 엄격하시니, 비록 어린아이라도 항상 학당學堂에서 학업을 닦도록 하셨고, 마을 거리에서 무덤 만드는 흉내나 장사치의 놀이는 못하게 하셨다.

- 김성일

 

 

 

청계종택(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김진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나 지금 건물은 아들 김성일이 당시 중국 북경 상류층 주택 설계도를 가져와 지은 것이다.

청계와 그의 다섯 아들의 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빈서원泗濱書院(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1710년에 임하면 사의리에 처음 건립됐고, 임하댐 건설로 1987년 임하면 임하리로 옮겼다가, 다시 현재 위치로 이전 · 복운해 2011년에 준공식을 가졌다.

1572년에 제작된 청계 김진 영정(보물 제1221호 · 가로 109 × 세로 142cm). 모시 바탕에 먹과 채색을 사용했다.

 

 

49 의義가 아니면 벼슬도

   초개처럼 버린다

 

김 령

 

 

 

의義가 아니면 벼슬도 초개처럼 버린다 : 김령(계암정)

김령의 부친인 설월당雪月堂 김부륜(1531~98년)이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설월당'(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김령이 공부했을 이 정자는 원래 낙동강에 인접한 오천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4년 현재 위치로 이건했다.

계암 김령의 조부인 탁청정 김유金綏가 지은 종택에 부속된 정자로 건립된 탁청정(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1541년에 건립되었는데, 영남 지방의 개인 정자로서는 그 구도가 가장 웅장하고 우아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세모에 눈 · 서리 잦더니

산천은 쌀쌀한 그 모습 감추었도다

시간은 절로 머물지 않으니

하늘 뜻 누가 능히 알겠는가

어지러이 나도는 무리는 많으나

움직이고 멈춤에는 다 때가 있다네

고요히 세상 이치를 보니

어찌 반드시 깊이 슬퍼하리오

한 밤에 거문고 타니

믿을 바 종자기鐘子期 뿐이로다

- 죽음을 3개월여 앞둔 1640년 세모에 읊은 시

 

 

 

김령이 별세할 때까지 약 40년간 쓴 일기 《계암일록》.

 

 

 

50 큰 뜻을 펼치려 한 그 선비,

은거한 까닭은

 

이 시 명

 

 

 

큰 뜻을 펼치려 한 그 선비, 은거한 까닭은 : 이시명(석천서당)

 

 

고요함을 사랑하여 홀로 산에 살고

번거로움이 싫어 손님도 끊었네

살림살이를 못하니 집이 절로 한가롭고

가르침만 있으니 아이들 때로 글을 읽는구나

- 석계의 <산에 살며山居>

 

넓고 넓은 천지는 그 큼이 끝이 없고

곧고 밝은 해와 달은 옛 그대로인데

누가 오랑캐 먼지를 보내 이 더러움 일으켜

남성일계★로 조선을 그르쳤는가

- '유감有感

★ 남성일계南城一計 : 병자호란으로 인한 남한산성 항복 굴욕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말하길 '세상에 쓰이었다면 마땅히 크게 일을 했을 것'이라 했건만, 어찌 생각했으랴! 시운이 어긋나 때를 못 만나게 될 줄을……. 포부를 펴지 못하고 물러나 가정에서 학문을 강講하며, 역사와 경서를 연구한 바가 더욱 넓고 넓었도다. 한가롭고 가난한 삶이었으나 오직 의를 따랐으며, 뜰에 가득한 난옥蘭玉(재주가 뛰어난 석계의 자제)들 그 재능 이어받았네. 서로 논변을 하는 즐거움 속에 고사리를 캐며 수산首山(영양 수비산)에 살았으니 세상사람들 그 누가 알았겠는가.

- 이시명이 세상을 뜬 후 유림의 선비들이 지은 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