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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 선암사


글 / 이계표, 천득염, 최인선●사진 / 이돈기, 최인선

2003,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3


082

빛12ㄷ  236


빛깔있는 책들 236


이계표(연혁)--------------------------------------------------------------------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전남대, 목포대학교 사학과 강사와 광주시사편찬상임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광주대, 여수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는 한편 문화재전문위원, 남도불교문화연구회장으로서 불교사 조사 ·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신라 하대의 가지산문」, 「신돈의 화엄신앙과 공민왕」, 「전남의 사찰 Ⅰ(연혁)」 등 여러 편이 있다.


천득염(건축)--------------------------------------------------------------------

전남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하버드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수학하였으며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건축사, 서양건축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백제계석탑의 조형특성과 변천에 관한 연구」를 비롯하여 불탑 관련 논문을 20여 편 발표하였다. 저서로는 『전남의 전통건축』, 『운주사』, 『전탑』, 『향토사의 길잡이』, 『한국의 명원, 소쇄원』 등 다수가 있다.


최인선(유물)--------------------------------------------------------------------

전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겸 박물관 조사부장으로 있으며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 도선의 부도전지와 석관」, 「순천 금둔사지 석불비상에 대한 고찰」, 「강진 옥련사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복장」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가지산 보림사』, 『한국철불연구』, 『광양옥룡사지 Ⅰ』, 『호남의 불교문화와 불교 유적』 등 다수가 있다.


이돈기(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라남도 순천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궁』, 『탈』, 『전남 동부지역 유적과 유물』 등 전통 문화에 관련된 사진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차례|


천년 고찰 선암사

선암사의 역사와 승려

가람 배치와 건축

선암사의 유물

선암사 가는 길

참고 문헌


조계산 선암사 전경



선암사 장승  입구의 부도밭을 지나면 길가에 장승 한 쌍이 서 있는데 모두 남자이다. 밤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몸통에는 '방생정계(放生淨界)'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세 가닥 수염을 늘어뜨리고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왠지 친근한 느낌을 준다.

대각암 대선루  정유재란 때 전라도의 사찰은 왜군의 침략으로 거의 불에 타거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선암사 역시 초도화되어 대부분 흔적조차 없게 되었다. 이 건물은 순조 19년(1819)에 중수한 것이다.

선암사 차밭  장경각 뒤로 난 좁은 문을 지나 경내를 벗어나면 차밭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만든 차는 맛과 향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호암 약휴 영정  선암사의 제5차 중창주로 정유재란 이후 모두 불타버린 선암사를 복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선암사 소장. 사진 : 성보문화재연구원.

「선암사중창건도」  선암사의 각종 건물은 물론 다소 떨어진 암자까지 그려져 있는 귀한 자료로, 선암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특히 도면 위에 기문이 있어 가람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승선교  다리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속계에서 선계로 오르는 정취를 자아낼 만큼 주변의 경치나 분위기가 극적이고 아름답다. 반원형의 아치지만 물에 비친 반원과 이어져 가득한 원을 이룬다. 요석(중심돌, 아래) 아래는 조그마한 석재를 빼내어 신기한 모습을 이루는데 마치 용의 모습 같다.

강선루  사찰의 출입용 문루 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중층 누각이다. 사찰의 실질적인 경역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일주문  사찰의 권위를 표현하고 금표나 경계의 기능을 갖는다. 일주문 양쪽으로 담장이 연결되었고 돌계단으로 층계가 연결되어 있다.

만세루  강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건물이다.

대웅전  사찰의 주불전으로,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된 뒤 현종 원년에 경잠, 경준, 문정 세 대사가 주축이 되어 현재의 대웅전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모습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 양식의 팔작집으로 장엄하고 화려하다.

불조전  사찰의 개창자나 중창자, 중수자 및 역대 주지들이 모셔지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팔작기와집으로 주심포 형식에 익공 형식이 가미된 조선 후기 건물이다.

원통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아담한 건물로 정면에 각각 두 개의 기둥과 활주를 내어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T자형 평면을 이룬다. 내부에는 '대복전'이라는 순조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장경각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주심포와 익공 형식을 혼합한 모습으로 조선 후기 목조 건축에서 흔히 나타난다.

삼성각  대웅전 북서쪽에 있는 조그맣게 간결한 건물이다. 여느 사찰의 삼성각과 마찬가지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응진당  선암사의 경역 내에서는 가장 뒤쪽에 있는 조그마한 승원이며 이 영역의 주불전이다. 중심축 좌측에는 달마전이, 우측에는 진영당이 배치되어 있다.

진영당  선암사 큰스님들의 진영을 모셔 놓은 곳으로 조촐하고 조그마한 건물이다.

무우전  선암사에서는 제일 외진 곳에 위치하여 선방으로는 적격이다. 사찰의 요사체라기 보다는 양반집을 연상케 하는 건물이다.

대변소  '뒤ㅅ간'이라는 현판이 붙은 T자형 건물이다. 바닥의 짜임이 우수하고 남 · 여 칸을 구분하거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2열로 배치한 고려가 흥미롭다.

각황전 철조 여래좌상  각황전에 봉안되어 있는 주존불이다. 정유재란 때 크게 손상을 입어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으며 현재는 개금한 상태이다.

마애여래입상  높이가 5미터에 이르며 상호가 다소 이국적이다. 드러난 가슴 부위에는 卍자가 선명하고 크게 새겨져 있다.

천불전 금동 관음보살좌상  원대 라마교 불상 계열에 속한 이국풍의 보살상이다. 머리에 쓴 보관은 삼면관의 형태이며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처음 출토되었을 때는 검게 그을려 있었는데 지금은 개금하여 아주 화사해 보인다.

대웅전 목조 여래좌상  규모가 큰 목불로 위엄이 있어 보이나 조각 기법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조성 양식과 대웅전 건물의 중창 사실 등을 종합해 볼 때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응향각 목조 비로자나불좌상  높이가 5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소형 목조불로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인다.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오른손 전체를 감싸는 특이한 수인 형식을 보인다.

팔상전 목조 아미타여래상  높이 82센티미터에 비슷한 형식을 보이는 2구의 불상은 17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불조전 목조 53불상과 과거7불상  60불이 모두 거의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호를 약간 숙이고 눈은 수평이며 입은 작다.

동3층석탑  서쪽의 3층석탑과 함께 보물 제395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 개의 석탑은 외관상으로는 크기와 양식이 서로 비슷하여 동시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씩 다른 양식을 보인다.

동3층석탑 발견 금동사리탑  8각을 기본으로 한 원당형 탑이다. 중앙에 원추형의 기둥이 있는데 윗면을 반구형으로 파서 사리를 봉안하게 하였다. 그 기둥을 수정체 8각 뚜껑으로 덮고 다시 금동의 전각형 뚜껑을 덮게 되어 있다.

북부도  8각원당형으로 신라 석조 부도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선암사의 3부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작이다. 보물 제1184호.

동부도  선암사 부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석조물로서 기단부와 탑신부에 비해 옥개석이 과장되게 큰 것이 특징이다. 보물 제1185호.

대각암부도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 중대석이 균형을 잃고 있으나 옥개석의 장중함이나 하대석의 정교한 구름문은 통일신라시대의 기법을 보여 준다. 보물 제1117호.

선암사 입구 탑비전  현재 11기의 부도와 8기의 비가 있다. 이들 부도 형식은 대부분 오륜형이며, 계음당부도와 침굉당부도가 석종형을 하고 있고, 화산대사부도(아래) 만이 특수형으로 4사자부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부도전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 삼인당에 이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곳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약 100미터 정도를 올라가면오른쪽 산기슭에 서부도전이 위치한다. 여기에는 석종형과 오륜형의 조선시대 부도 12기가 봉안되어 있다.

선암사중수비와 사적비  2기 모두 귀부 위에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올려 놓은 통식의 귀부비이다.

괴불  가로 682센티미터, 세로 1,215센티미터의 거대한 석가모니 불화이다. 장중하면서도 간결하여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 준다.

대각국사 영정  선암사에는 여러 조사들의 영정이 소장되어 있는데, 대부분 기록이 없어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없다. 대각국사 영정은 가로 103센티미터, 세로 127센티미터로 오른쪽을 향한 측면상이다. 보물 제1044호. 사진 : 유남해.

'순치 14년' 명 범종  현재 대각암에 있으나 원래는 보성 대원사 부도암에 있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높이는 83.6센티미터이며 주조의 조각미가 뛰어나 조선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은입사 향로  전형적인 고려 향완 형식으로 은입사 기법을 이용하여 문양을 넣었다. 동제로 깊은 완형 위에 넓게 수평으로 퍼지는 전이 달린 노신과 밑이 나팔 모양으로 퍼지는 높은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높이 29.5센티미터.

'숭정 6년' 명 향로  노신과 받침이 분리되는 결구식으로, 나팔형으로 퍼지는 받침 하단 윗면에 가는 침을 사용해서 명문을 점선으로 새겼다. 전체 높이 32센티미터.

금란가사  대각국사 의천의 가사로 고려 선종 4년에 왕이 하사한 것으로 전한다. 긴 사각형이며 비단 바탕에 금실로 글자와 무늬를 전면에 가득 짜 넣었다.

용문탁의  금란가사와 함께 의천의 유품으로 전한다. 법상의 덮개, 곧 탁상보로 짐작되는 데 문양과 글씨를 금사로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길이 216.5센티미터, 너비 118센티미터.

삼인당  신라 경문왕 2년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한다. 타원형이며 연못 안에 긴 계란형 섬이 있다. 1996년 순천전통문화보존회(회장 박관수)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

달마전 석조  사각형의 석조 1기와 원형의 석조 3기가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 잇대어 있다. 서로의 높낮이와 크기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30 만인보  - 70년대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2

 

811.6

고67만  14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이우재 / 유영모 / 강희남 / 황한식 / 천영초 / 이호웅 / 민종덕 / 한  신 / 최권행 / 어느 고등학생 / 박희범 / 백작부인 이옥경 / 백영서 / 성남옥 / 안성열 / 박한상 / 김진홍 / 서임수 / 이위종 / 서경원 / 신인령 / 이양구 / 김영준 / 김  형 / 군부대신 이근택 / 정진동과 더불어 / 양  홍 / 권근술 / 손창섭 / 대전역 보선원 임씨 / 창신동 노파 / 고흥의 한 영감 / 오대영 / 권오헌 / 박영록 / 이이화 / 조승혁 / 박광서 / 은명기 / 김덕생 / 최정순 / 이을호 / 박지동 / 금호동 김씨 / 이경배 / 예  종 / 이종욱 / 음력 정월 명동성당 앞길 / 욕쟁이 아저씨 / 조정하 / 원  택 / 성  철 / 김사형 / 성  종 / 이직형 / 박종만 / 최민석 / 임중빈 / 문병란 / 지철로왕 / 한창기 / 이상신 / 조세희 / 이낙호라는 사람 / 스승들 / 삼  대 / 윤필용 / 윤구병 / 박완서 / 월산 선사 / 한경남 / 최장학 / 박재봉 / 김중배 / 어린이의 날 / 성한표 / 강문규 / 김지길 / 양관수 / 신라말 경명왕 / 제  칼 / 김도연 / 심재택 심재원 형제 / 정신 이상의 아내 / 권영빈 / 홍지영 / 정창렬 / 두 청소부 / 최  동 / 오직 '물러가라 !' / 신석초 / 송언형 / 김동우 / 이태복 / 함윤식 / 1971년 4월 19일 / 해남 일지암터 / 차옥숭 / 이근후 / 서중석 / 해부루 / 아브라함 집안 / 김상철 / 민주회복국민회의 / 조선 중종의 눈 / 김규동 / 김도현 / 이중한 / 최병서 김선주 / 조춘구 / 유인택 / 신직수 / 함병춘 / 이범석 / 안양노 / 박범진 / 박종태 / 김종규 / 안병직 / 김민기 / 양희은 / 재수생 / 단계벼루 / 김영환 / 박인배 / 양호민 / 윤걸이

 

조세희

 

우툴두툴한 마른 유자껍질 얼굴의 젊은 작가

갈색의 작가

막 건져올린

남대천 귀향의 연어이기도 한 작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것이 70년대 현실과 상징 사이

끈질긴 문학의 암초일 줄이야

 

그렇다 모두 다 난장이었다

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누구인가

 

조세희는 그것을 쓰고 시대의 잠수부가 되어

늘 물위에 떠오르지 않은 채

물속의 중세 근세를 헤험치다 솟아올라

물위의 오늘을 보았다

 

그는 끝내 글을 버리고 사진을 찍고 찍었다

 

박완서

 

개성 가는 길

개성 못 미쳐

개풍 있다

서울역에서 거기까지만 가도

경의선 살아나겠다

 

박완서

딸 여섯

아들 하나 출무성히 길러

시집 보낸 딸도 있는데

 

그 오랜 주부노릇 끝에 소설을 시작했다

 

저 50년대

전쟁과 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그 폐허의 순정이던

화가 박수근을 기억했다가 소설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가장 부지런한 소설가였다

때로는 인간에 대해서

무자비하리만큼 후벼내어

 

마치 고깔쓴 이승의 승무인 양 날렵하고

입안에 장수(長壽) 이빨이 다른 사람보다 많다

그 눈은 순하건만

세상을 볼 때는 칼날이기도 한가

 

그가 본 세상의 한 귀퉁이 피가 난다

 

이범석

 

놀랍다 그에게는 문학이 가능했다

어린 시절 경성고보 다니다가

그 길로 뛰쳐나가

대륙의 혁명가가 되었다

말 달리던 시절

그는 말 탄 전사가 되었다

그의 문학적 기질

그의 무용담(武勇談)의 주역이 되게 했다

 

청산리전투의 일선 지휘관

 

소만 국경

중국 오지

그리고 해방 후 돌아와

초대 국무총리였다

 

국가지상

민족지상

 

그러나 그의 민족청년단 계보는 무너졌다

어느 만큼 그의 우등불에는 허구가 깃들였고

어느만큼 그의 무골에는 낭만이 서려 있다

 

오로지 말 한필과

지난날의 벌판을 기억햇다

그러다가

말 남겨두고

그가 떠났다

철기 이범석

그의 이름 뒤에는 반드시 장군이었다


김민기


그 시절 비 오는 날

맨발로

도시의 거리를 헤매기도 하였지


어두운 시대

그가 지은 노래들은

국가(國歌)였지

독재의 나날

대학생에게도

제적생에게도


정작 그는 미행당하며

어디 가서 농사도 지었지


그러나 그의 노래는 한 시대의 광장과 골목에서 마음껏 퍼져나갔지


양희은


60년대 청년문화 그리고 통기타

서강대 사학과 여학생인데

이미 한 가족을 꾸려가는 가장이었다

양희은


그의 당당한 목소리에 와서

몇십년의 청승인 이난영 황금실 이미자가 아니었다

김추자가 나왔다


그런 노래 저쪽에서

70년대 「아침이슬」이 새로 들려왔다

응혈의 음색

투원반의 음향

슬픔도 슬픔이 아닌 의지


겨울공화국 나뭇가지들에 바람이 걸려 울었다


양희은과

양희은의 비겁할 줄 모르는 통기타


치사할 줄 모르는 노래

이 셋이 시대의 자유를 꿈꾸었다 모두와 함께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9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김대식 지음

2014, 문학동네



대야도서관

SB101443


511.1813

김23ㄴ


카 이 스 트   김 대 식   교 수 의   말 랑 말 랑   뇌 과 학


사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뇌가 쓴 소설'이다?

책을 보듯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복잡한 세상,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속……

뇌과학으로 보면 모든 것이 명쾌해진다!


조선일보 인기과학칼럼

<김대식 교수의 브레인 스토리>


당신 뇌는 당신과 생각이 좀 다르다!

당신도 모르게…… 당신의 뇌가 벌이는 일들은?


4000원짜리 커피가 2000원짜리 커피보다 맛있는 이유?

우리는 선택하지 않는다. 뇌가 한 선택을 '정당화'할 뿐이다!


어제 먹은 점심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린 시절 부른 만화 주제가는 또렷이 기억난다고?

뇌는 정보를 '제목' 위주로 '압축'해서 기억한다!

대부분의 기억은 '뇌가 쓴 소설'에 불과하다!


왜 '우리'는 '그들'을 싫어하는가?

'우리=유전적 동지' '타인=유전적 경쟁자'!

뇌는 기본적으로 '편가르기'를 좋아한다!


지은이 김대식

KAIST 전기및전자과 교수. 독일 막스-플랑크뇌과학연구소 Max-Planck Institut fur Himforschung에서 뇌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MIT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이후 일본 이화학연구소 RIKEN 연구원으로 재직 했으며,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조교수, 보스턴 대학교 부교수로 근무했다. 주로 뇌과학과 뇌공학, 사회 뇌과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조선일보에 뇌과학 칼럼 <김대식 교수의 브레인 스토리>,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중이다.


차례


프롤로그

지금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Part 01


Brain Story 01

사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뇌가 쓴 소설'이다


Brain Story 02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절대로 …


Brain Story 03

팔은 안으로 굽고, 생각도 안으로 굽는다?


Brain Story 04

우리는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을 '정당화'할 뿐이다


Brain Story 05

내 머릿속엔 '수많은 나'가 살고 있다


Part 02


Brain Story 06

책을 보듯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Brain Story 07

우리는 왜 꿈을 꾸는 걸까


Brain Story 08

나 자신을 복제할 수 있을까


Brain Story 09

뇌도 얼마든지 '젊게' 만들 수 있다


Brain Story 10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Part 03


Brain Story 11

나는 과연 누구인가


Brain Story 12

만약 눈이 하나였다면?


Brain Story 13

외모에 관한 몇 가지 진실


Brain Story 14

머리가 나쁘면 정말 몸이 고생할까


Brain Story 15

언어가 지구 지배를 위한 도구라고?


Part 04


Brain Story 16

왜 '우리'는 '그들'을 싫어하는가


Brain Story 17

무엇이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가


Brain Story 18

우리는 좀 우울해질 필요가 있다?


Brain Story 19

집착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Brain Story 20

우리는 왜 갈수록 잔인해지는가


Part 05


Brain Story 21

생각의 길이 많을수록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Brain Story 22

뇌과학으로 협상의 달인이 되는 법


Brain Story 23

아프니까 사람이다? 만약 아픔이 없다면……


Brain Story 24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치들


Brain Story 25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이 온다면……


에필로그

뇌가 아는 것을 본 것이 세상이다




프롤로그


지금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며, 내 운명의 주인이다."

- 윌리엄 헨리 William Henry, 영국의 화학자


"헨리, 정말 당신이 영혼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흠, 글쎄……"

- 헨리의 뇌

자신의 머리를 관통한 쇠파이프를 든 피니스 게이지

뇌 영상 기술을 통해 쇠파이프가 게이지의 전두엽을 관통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뇌 속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P a r t  0 1



Brain Story 01


사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뇌가 쓴 소설'이다



"기억력이란 마치 돌과 같아서

산의 작용으로 시간이 지나고 거리가 멀어지면

점점 부식한다."

우로 베티 Ugo Betti, 이탈리아의 극작가

50여 년간 매일매일 자신을 잃어버렸던 헨리 몰레이슨


머지않아 원하는 기억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행복한 기억을 돈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Brain Story 02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절대로




양쪽 하얀 동그라미의 크기는 똑같지만, 더 작은 동그라미에 둘러싸인 왼쪽 동그라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Brain Story 03


팔은 안으로 굽고, 생각도 안으로 굽는다?



인간은 어두운 곳에선 이기적으로, 밝은 곳에선 이타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갓 태어난 오리의 결정적 시기 동안 어미 역할을 해 평생 새끼 오리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한 콘라트 로렌츠 교수(우)



Brain Story 04


우리는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을 '정당화'할 뿐이다.


 





Brain Story 05


내 머릿속엔 '수많은 나'가 살고 있다




P a r t   0 2



Brain Story 06


책을 보듯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기계인간 로보캅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로마시대 공중화장실. 칸막이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은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Brain Story 07


우리는 왜 꿈을 꾸는 걸까



"우리는 꿈의 재료이며 우리의 짧은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셰익스피어

꿈은 REM 수면상태에 있는 동안에 꾼다. 우리는 잠잘 때마다 여러 번 REM 수면을 경험한다.

프랜시스 크릭은 꿈은 뇌의 쓰레기통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Brain Story 08


나 자신을 복제할 수 있을까





Brain Story 09


뇌도 얼마든지 '젊게' 만들 수 있다




비디오게임으로 다시 뇌를 젊게 할 수 있을까

삼매에 빠진 석가모니, 석굴암

명상하는 뇌는 시공간에서 자유로워진다


Brain Story 10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인간은 어떻게 이 다양한 모습을 '개'라는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할까

뇌와 컴퓨터는 질적으로 다른 논리 기반으로 정보를 처리한다고 주장한 존 폰 노이만

미국 국가안보국 인터넷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 로고

 

P a r t   0 3

 


Brain Story 11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뇌는 끊임없이 정체성을 질문한다

뇌는 출생 전에 이미 많은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Brain Story 12


만약 눈이 하나였다면?


폴리페모스의 눈이 두 개였다면, 오디세우스가 탈출할 수 있었을까?

뇌과학자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기보다 공학적 실패작에 가깝다


Brain Story 13


외모에 관한 몇 가지 진실


(위) 오스트리아 해부학자 갈이 제시한 부위별 특징을 보여주는 두개골 모델. (아래) 프란츠 갈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을 맡은 영화 <클레오파트라>(1963)

 

육체와 정신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까

 


Brain Story 15


 

언어가 지구 지배를 위한 도구라고?


 

페이스북에 '좋아요' 버튼은 신세대 이 잡기 놀이인지도 모른다

 

 P a r t   0 4

 


Brain Story 16


왜 '우리'는 '그들'을 싫어하는가


 

 왜 인간은 항상

 '우리'와 '그늘'을 나누려고 할까?

 

 '그들'은

 왜 늘 '우리'의 적이 될 수밖에 없을까?

 

인간의 뇌가 같은 편으로 인식할 수 있는 다른 인간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

앨런 튜링이 판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에니그마'

인간의 뇌는 마치 양파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새로운 뇌 구조가 예전 구조를 덮어씌우면서 진화한 것이다.

 


Brain Story 17


무엇이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가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된 '전쟁 두루마리'

대부분 시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 영장류에게 빛은 '안전'이고 어둠은 '위험'이다

'벽'은 인류에게 항상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피하고 싶은 외부의 무언가를 외면하거나 더이상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벽을 쌓는다. 하지만 아무리 거대하고 단단한 벽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그 벽을 넘는다



Brain Story 18


우리는 좀 우울해질 필요가 있다?





Brain Story 19


집착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Brain Story 20


우리는 왜 갈수록 잔인해지는가


'화성 운하'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천문학자 로웰

남편을 죽이고 권력을 쟁탈한 조에 포르피로게니타


P a r t   0 5



Brain Story 21


생각의 길이 많을수록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Brain Story 22


뇌과학으로 협상의 달인이 되는 법


 

"최고의 협상은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방이 말하거나 행하게 하는 것이다."

- 다니엘 발레 Daniel Vare, 이탈리아의 협상 전문가

 

위급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면

상대방의 목적을 이해하는 게 핵심이다.

 


Brain Story 23


아프니까 사람이다? 만약 아픔이 없다면……


 

 


Brain Story 24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가치들


 

 

유대인을 증오했던 유대인, 오토 바이닝거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보존개념' 실험

 


Brain Story 25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이 온다면……


 

 

DARPA 로봇 경진대회에 참여한 '아틀라스' 로봇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러디즘'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기계를 파괴하기까지 했다.

 


에필로그


뇌가 아는 것을 본 것이 세상이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8 혼자 가는 미술관


박현정 미술 산문집

2014, 한권의 책



대야도서관

SB101485


609

박94ㅎ


기억이 머무는 열두 개의 집


비로소 혼자가 되는 시간 그리고 그림


"미술관에 혼자 간 적이 있습니까?"


학생이나 시민들에게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제나 '교양주의'의 벽을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추어야 할 '교양'의 하나로서 미술과 마주하려고 한다. "이 그림은 무슨 파에 속해요?"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나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인 가요?" "가격은 얼마나 됩니까?" 이러한 질문은 모두 미술과 대화할 때 생기는 방해물이다. 미술을 본다는 행위는 말하자면 맨몸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떤 그림 앞에 서서 지인에게 "이 그림, 좋은데…"라고 말했을 때 "이런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어?"라고 질문을 받으면 당혹스러움을 넘어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 자신의 고유한 감각이 부정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따분하다고 느껴지는 그림 앞에서 친구가 한참을 떠나지 못하면 빨리 다른 그림을 보러 가고 싶어 애가 타기도 한다.

그래서 미술관은 혼자 가는 편이 좋다. 조용히 작품과 대면하고, 마음을 울리는 그림이 있다면 반나절 넘게 그 앞에서 머물러도 좋으며, 지루한 그림은 10초 정도만 바라보고 떠나도 상관없다. 요컨대 자유로워지면 되는 것이다. 자유롭게 미술과 마주할 때,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작품을 만든 작가는 물론, 그 작품과 관련된 외국인이건, 과거의 사람이건, 인사 한번 나눈 적 없는 사람과도 마주할 수 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마음속에서 대화가 시작되고, 그로써 자신을 재발견하게 된다. 이런 만남이야말로 작품을 마주할 때의 커다란 기쁨이자 경이로움이다. 화가와 시대배경에 대한 조사는 진짜 흥미가 일어난 후에 시작해도 좋다.

이 책은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한 여성이 혼자서 미술과 나누는 대화의 기록이자 그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ㅘ며, 그녀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풍경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미술이란 갖추어야 할 교양이라기보다 이렇듯 자연스레 마주하며 이야기하고 싶은 대상이다.

- 서경식 도쿄경제대학 교수


박현정

서울에서 태어났다. 삼십 년 가까이 삼선교에서 살다가 2003년부터 일본 지바 현에 거주했으며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도쿄미술관 기행서 『아트, 도쿄』(공저)를 냈고 번역한 책으로는 『앙리 드 툴루즈 로드레크』, 『처음 읽는 서양미술사』 등이 있다.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과정을 거쳐 도쿄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차례


01 천경자 | 아무도 탐내지 않을 고독한 사막의 여왕 되기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02 배영환 |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

⊙ 삼성미술관 플라토

03 오얏꽃 문양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번지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04 닭모양 토기 | 이 세상 어디에도 사랑은 없고

⊙ 호림아트센터


05 서용선 | 1456년 그해 초여름, 사육신

⊙ 학고재

06 윤석남 | 모성의 진화

⊙ 아르코 미술관

07 정재호 | 시간이 사는 집

⊙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

08 십장생도 | 아희야 무릉이 어디오

⊙ 국립고궁박물관


09 프란시스 베이컨 | 그녀들의 방, 리스 뮤스 7번지

⊙ 삼성미술관 리움

10 빌 비올라 | 시간 속에 머무르기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1 야나기 미와 | 대학 동의 B양에게

⊙ 서울대학교미술관

12 강덕경 |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겪은 일을 다 알았으면 좋겠어

⊙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01 천경자

Chun, Kyung-ja

생태 1951


아무도 탐내지 않을

고독한 사막의 여왕 되기


그녀는 고독하거나 절망스러울 때면 늘 뱀을 그리고 싶어했다.


"나는 홀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걷잡을 수 없는 고독이 거울을 치면서 나를 울게 했다."

- 천경자

⊙ 천경자 「누가 울어 2」

1989, color on paper, 79×99cm

⊙ 천경자 「생태」

1951, color on paper, 51.5×87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그렇다. 사막의 여왕이 되자. 오직 모래와 태양과 바람, 그리고 죽음의 세계뿐인 곳에서, 아무도 탐내지 않을 고독한 사막의 여왕이 되자."

- 천경자

⊙ 「화가의 방」

'천경자의 혼' 전시실 내부


02 배영환

Bae, Young-whan

황금의 링-아름다운 지옥 2012


황금의 링

- 아름다운 지옥


그때 우린 분명 함께 링에 올랐다.


"유행가만큼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도 없다."

- 배영환

◎ 배영환 「황금의 링 - 아름다운 지옥 Golden Ring - A Beautiful Hell」

2012, gold paint on wood and steel, 350×350×150cm

◎ 배영환 「젊은미소 Young Smile」

1997, print on paper, 22×29cm

 

03 오얏꽃 문양

李花文樣

19세기말 무렵

 

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번지

 

일단 제가 관심을 기울이자 오얏꽃은 서울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고종 즉위 40년 청경기념비(서울 종로구 세종로 142-3번지)

◎ 덕수궁 석조전

◎ 덕수궁 중화전 마당의 품계석

◎ 덕수궁 정관헌

 

04 닭모양 토기

鷄形土器

원삼국 3세기

 

이 세상 어디에도

사랑은 없고

 

기억에서 건져 올린 것은 귀여운 병아리의 눈이 아니라

이제 막 닭이 된 병아리의 길고 뾰족한 눈이었다.

◎ 호림아트센터

◎ 호림아트센터

◎ 「닭모양 토기」

원삼국 3세기, 높이 42.6cm

호림박물관 소장

 

사랑은 떠나갔네

이 세상 어디에도 사랑은 없고

다만 내 맘 속에

 

생각이 꼬리를 무네

앙금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탑처럼 솟아올라

 

쿠쿠루쿠쿠 팔로마 아야야야야 비둘기

쿠쿠루쿠쿠 팔로마 잿빛 구름 속 사라져

 

미움의 술이 흐르고

슬픔이 흥건할 때

오래된 기억의

가시넝쿨이

치렁치렁 날 감싸

어때요, 내 목에 걸린

피 흐른 심장을 쪼아 먹네

- 3호선버터플라이, 쿠쿠루쿠쿠 비둘기

 

05 서용선

Suh Yong-sun

심문, 노량진, 매월당 1987-1990

 

1456년 그해 초여름,

사육신

 

26년 전 그림 속에서 사육신과 만난 순간이 있었다.

화면 속에 묶여 있는 당신은 박팽년인지도 모른다.

◎ 학고재 學古齋

◎ 서용선 「심문, 노량진, 매월당」

1987-1990, oil on canvas, 180×2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봄 골짝에 토한 피가 흘러 꽃 붉게 떨어지는구나.

하늘은 귀 먹어서 저 하소연 못 듣는데

어쩌다 서러운 이 몸 귀만 홀로 밝았는고.

- 단종

 

"우리가 역사와 신화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기는 데 비극이 있다.

망각은 인간에게 치유와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 서용선

◎ 서용선 「소음」

1991, acrylic on canvas, 181.5×226.5cm.

개인 소장

◎ 학고재

 

06 윤석남

Yun, Suk-nam

핑크룸 Ⅳ 1995

 

모성의 진화

 

계절이 바뀌어도 취업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왔다.

 

"나는 정말이지 어깨동무하는 것처럼 신체가 길게 늘어나서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 그러나 삶 속에선 같은 여성들끼리도 잘 닿아지지 않는다."

- 윤석남

◎ 윤석남 「핑크룸 Ⅳ」

1995, mixed media, installation view, variable size

Edition 4 piece_ Queensland Art Gallery, Brisbane, Australia / Taipei city Museum /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Ansan, Korea / artist's collection

◎ 윤석남 「손이 열이라도」

1985, acrylic on paper, 105×75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 윤석남 「허난설헌」

2005, mixed media, 115×170×10cm

작가 소장

 

"나는 제 자식만 아는 사람들이 싫다. 그건 모성이 아니라 이기심일 뿐이다. 자식을 사랑하다 보니 주변까지 아우르게 되는 것. 자기의 사랑을 사회로 확장하는 것. 가령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하는 것이 모성이다."

- 윤석남

◎ '윤석남 1,025 : 사람과 사람 없이 전'

◎ 윤석남 「어머니 Ⅱ - 딸과 아들」

1992, acrylic on wood, pastel, 170×180cm, variable size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07 정재호

Jung, Jae-ho

리버사이드 호텔 2005

 

시간이 사는 집

 

'도시의 흉물'로 불리며,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건물들이 여기서는 주인공이다.

◎ 서울시립 남서울 생활미술관

◎ 정재호 「리버사이드 호텔」

2005, mixed media on paper, 182×227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여기는 시간이 머무는 집인 것 같아.

도시에는 시간이 다 도망가버렸는데……"

 

◎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

 

08 십장생도 10폭 병뭉

十長生圖

19-20세기 초

 

아희야

무릉이 어디오

 

그때 화면 좌우를 메운, 주렁주렁 매달린 연분홍색 복숭아가 내 시선을 끌었다.

◎ 국립고궁박물관 國立古宮博物館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 십장생도 10폭 병풍

19-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병풍 전체 209.0×385.0cm, 화면 전체 152.5×376.6cm

창덕 6447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오, 나는 옌가 하노라

- 조식

 

09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방안에 있는 인물1962

 

그녀들의 방,

리스 뮤스 7번지

 

절벽에서 유일하게 꽃을 피운 나무는

마치 굵은 철창살을 가리기 위해 태어난 듯 한껏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 삼성미술관 리움

MUSEUM 1 - Rotunda 2_ⓟHanKoo Lee

 

"나는 진심으로 질서 있는 혼돈을 믿는다."

- 프란시스 베이컨

 

"나는 푸줏간에 갈 때마다 짐승 대신에

내가 거기에 걸려 있지 않음을 알고는 늘 놀라곤 하지요."

- 프란시스 베이컨

◎ 리스 뮤스 7번지(프란시스 베이컨의 작업실)

 

나는 언젠가 문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단 한 번 돌아가는 소리

각자 자기 감방에서 우리는 그 열쇠를 생각한다.

열쇠를 생각하며 각자 감옥을 확인한다.

- 엘리엇, 「황무지」

◎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방 안에 있는 인물 Figure in a Room」

1962, oil on canvas, 198.8×144.7cm

리움 소장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DACS 2014.

◎ 삼성미술관 리움

Museum 1 - exterior

 

10 빌 비올라

Bill Viola

트리스탄 프로젝트 2005

 

시간 속에 머무르기

 

자주는 아니지만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는 육체를 공격하기도 한다.

◎ BILL VIOLA Tristan's Ascension

(The Sound of a Mountain Under a Waterfall), 2005

Color High-Definition video projection ; four channels of sound with subwoofer (4.1)

Screen size : 580×326cm

Performer : John Hay

10 : 16 minutes

Photo : Kira Petov

◎ BILL VIOLA Fire Woman

2005

Color High -Definition video projection ; four channels of sound with subwoofer (4.1)

Screen size : 580×326cm ; room dimensions variable

Performer : Robin Bonaccorsi

11 : 12 minutes

Photo : Kira Petov

◎ 조나단 보로프스키 「노래하는 사람」

×160×10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1 야나기 미와

Yanagi Miwa

천국의 파라다이스 Ⅱ 1995

 

대학동의 B양에게

 

직장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달라진 음색으로 미. 술. 관.을 발음하던 그녀는

올봄에 열릴 전시가 특히 기대된다고 했다.

◎ 서울대학교 미술관

◎ 야나기 미와 「천국의 파라다이스 Ⅱ」

1995, type C-print, 200×100cm each (3pcs)

국립국제미술관 소장(오사카)

◎ 야나기 미와 「My Grandmothers/ MIWA」

2001, type C-print, 100×120cm

도쿄도사진미술관 소장

 

12 강덕경

Kang Deok-gyung

빼앗긴 순정, 1995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겪은 일을

다 알았으면 좋겠어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위안부였던 사실을 알린 김학순의 말.

◎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 강덕경 「빼앗긴 순정」

1995, acrylic on canvas, 130×87cm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소장

◎ 김순덕 「끌려감」

1995, acrylic on canvas, 114.5×154cm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소장

◎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입구계단

역사관 내부 위안소모형

◎ 윤석남 「빛의 아름다움, 생명의 존귀함」

1998, acrylic on wood, installation view, variable size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소장

◎ 고 강덕경 할머니 1주기 추모비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7 만인보  - 70년대 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1


811.6

고67 만 13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머리말

김상진 / 변선환 / 7세 제왕 / 진복기 / 황인성 / 공덕귀 / 정운갑 / 청담 스님 / 노무현 / 이총각 / 정일권 / 김정준 / 김옥길 / 김동길 / 경부고속도로 트럭 / 오재식 / 오두방정 / 강석주 / 박영복 / 김동완 / 신현봉 / 임병휴 형사 / 장윤환 / 김수온 / 이후락 / 임기윤 / 김  철 / 임수미 / 윤공희 / 조용술 / 서  승 / 서준식 / 서승의 누이 / 한상진 / 한경직 / 조영래 / 김재규 / 장님의 조상 / 김소영 / 이오덕 / 이우석 / 한태연 / 주명덕 / 승려 능운 / 운문사 사미니 혜관 / 저녁 무렵 / 김팔봉 / 도자와 / 김상근 / 심우성 / 이동원 / 혜  융 / 서인석 / 김용복 / 김종서 / 서울역 / 그 노처녀 / 청진동 니나노 / 박세경 / 조남기 / 손경산 / 호인수 / 유동우 / 김현옥 / 세 성받이 / 임정남 / 채희완 / 김택암 / 임진택 / 유근일 / 김낙중 / 윤정민 / 청량리 588 / 표문태 / 김벽창호 / 안남인 귀화 이씨 / 김제 망해사 / 서하에서 온 사람 / 김진우 / 만경강 / 첫사랑 / 석정남 / 청주 정진동 / 진주 오제봉 / 그 식모할멈 / 복부인 오여사 / 왕학수 / 청전 이상범 / 금영균 / 김경락 / 여익구 / 김학민 / 김인한 / 박동선 / 김병상 / 천승세 / 박암익 훈장 / 원병오의 휴전선 / 노영희 / 명노근 / 정홍진 / 윤형두 / 황주석 / 김진균 / 황인범 / 옥천역 청소부 / 어변갑 / 무릎 연적 / 예춘호 / 강창일 / 이길재 / 절도 9범 / 가짜소경 거지 / 방용석 / 김희택 / 이명준 / 고준환 / 원혜영 / 김희조 / 구  산 / 최기식 / 정광호 / 신중현 / 권대복 / 박선균 / 이안사 / 설대위 / 박순경 / 불효자는 웁니다


진복기


결국 박정희 그의 당선만을 위한

대통령선거로 너도 나도 뒤숭숭해지면

떴다 봐라

정의당 당수

코밑의 팔자수염

그 갈색 얼굴 가득한 실없는 웃음

진복기 후보가 나타난다

반드시


벌써 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

유신체제 이전의 직선제 시절


서울 무교동 허름한 노년 장년 단골의 다방이

그의 당사무실이었다

누구나 당비 얼마 내면

그리하여 입당원서에 지장이라도 찍으면

당장 담배연기 자욱한 거기

정의당 당원이 된다


어떤 위엄도

어떤 적의도 없는

이빨 누런 당수의 웃음이 고작이었다


낡은 기독교공화국을 꿈꾸는

저 미아리 넘어

삼양동 산동네 자택에서

무교동까지 오는 동안


대통령후보 기호 7번인지라

그가 버스 타면

그를 경호하는 사복경찰관

오라잇 !

차장 아가씨 걸쭉한 소리 따라

버스 타고 투덜대며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선거 기호 1번 박정희

기호 2번 윤보선

기호 1번 박정희

기호 2번 김대중


그렇게 죽느냐 사느냐의 혈전인데

그런 혈전 한구석에서

빙그레 웃음 스며나오는 후보가 있다


무교동 1가 거리 걸어가노라면

지나가던 고교생들

지나가던 여대생들

낄낄낄 웃어대니 복되어라

진복기


노무현


모든 것을 혼자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에 다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사법고시도 마친 뒤


그는 항상 수줍어하며 가난한 사람 편이었다

그는 항상 쓸쓸하고 어려운 사람 편이었다

슬픔 있는 곳

아픔 있는 곳에

그가 물속에 잠겨 있다가 솟아나왔다

푸우 물 뿜어대며


그러다가 끝내 유신체제에 맞서

부산항 일대

인권의 등대가 되어

그 등대에는

마치 그가 없는 듯이

무간수 등대가 되었다

힘찬 불빛으로


어디 그뿐이던가

사람들 삐까번쩍 광(光)내는데

그는 혼자 물러서서 그늘이 되었다

헛소리마저 판치는

텐트 밑에서

술기운 따위 없는 초승달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진실 때문에

정치를 할 수 없으리라

속으로

속으로 격렬한

진실 때문에


정일권


걸음걸이 늘 느릿하다 지구의 자전(自轉)을 터득했던가

흑백 TV화면에

오래 찍힌다

다른 지도자들은 종종걸음

TV화면에 짧게 찍힌다


함경도의 불우한 아이 하나

일본인 집에서

이 일 저 일 해주며 자라나서

만주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조선인

만주인

중국인

몽고인 등의 사관생도


거기서 박정희 이한림을 만났다


한국전쟁 전선에서

30대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이승만의 초애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

국회의장

당의장 따위 다 지내다가

대통령만 넘보지 않는

그 영리하기 짝이 없는 무능으로

만능을 누렸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일본어

해방 이후의 영어

처세와 여색의 만능까지……


김옥길


크낙한 독 가득히

크낙한 배짱 차 있다

여인의 수줍음 따위

타고나지 않았다


대문 활짝 열어놓은 집

오래오래 독신

아우와 함께

그런 독신생활의 독선 없이 통이 크다

품이 크다


냉면 한그릇으로 천하일을 말하다가

남북적십자회담 때 나가

그 초등학교 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감정 호소의 연설 이전부터


학문이기보다

교무와 교육 쪽이라

일찍이 김활란 박마리아

그 뒤의 그녀로 이어져

누룩 다 녹아든 술항아리인가

술 한모금 모르는 옹기독 술항아리인가


김동길


머리숱 빽빽하다

나무꾼 못 들어오게

하루 내내 감시한 산주인 덕에

빼곡한 뒷산 앞산 숲인인 양

숲속 푸나무인 양 빽빽하다


그런 머리숱 올백머리에

어쩌다가 뻐꾸기 소리 건너가듯

새치 하나둘 숨겨져 있다


눈썹 진하다 먹물 진하다

코 굵직하다

코 아래 구레나룻 진하다


그 코 아래

입다운 입

크게 찢어지며

틀니 없이

하 ! 웃는다

하 ! 웃고 나

바로 닫힌다


그 웃음에는 여운이 없다

하 ! 하고 끝나버린다

그런 다음 바로 다른 사람 보고

하 ! 웃는다

그런 다음 고개 돌려 다른 사람 보고

하 ! 웃는다


평안도 낭림산맥 기슭 맹산 산골에서 태어난 장주

나비 달린 장부

누님 옥길 아우 동길

누가 누구인지 몰라 서로 그림자인가


70년대 한동안 사람이 모여들었는데……


이후락


시대의 사람은

항상 앞시대에서 나온다

이름없던 사람

여기저기 풀밭에서

세잎짜리 토끼풀에 지나지 않아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이었던 사람

이후락


그가 박정희의 둘레에서 지략이 치솟았다

『삼국지』 조조였던가

유비였던가

그 둘이 하나로 복제되었던가


1961년 5월 17일 이후

국가 권력의 핵심에서 떠나지 않은

권력 혹은 권력의 울짱이 되었다

하루아침이었다


중앙정보부장 취임사

박정희교

교주 박정희대통령 각하를 믿는 박정희교의 수제자

중앙정보부장으로

판문점을 넘어가

북한 평양의 4일간

김일성의 아우 영주와

김일성을 만났다


그의 목숨 걸고 갔다

유서 놔두고

그러다가 두번째는

두 아들과 사위마저 데리고 갔다

김일성이 영웅이오 하고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렇게 해서 7 · 4남북공동성명이 나왓다

그것이 박정희 장기집권의 전략이 아니었다면

진짜배기

한반도 잔치이었을 것을

그러나 그 뒤

남쪽에서는 유신헌법이

북쪽에서는 어버이 신헌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포되었다


김재규


1979년 YH사건과

부산마산항쟁을 겪으면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그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차지철을 쏘았다

그리고 박정희를 쏘았다


그는 육군을 휘어잡지 못했다

육군교도소 특별감방 제7호실

그 창 없는 감방에서

여름날 새벽

육군교도소 소장이 주는 커피 한잔

그것으로 서대문에 가서

목매달렸다

염주 가까스로 쥔 채


걸걸한 목소리

얼얼한 얼굴

몸에는 의리 가득한데

몸속에는 참을 수 없는 배역의 폭발이 있었던가

종신 대통령 박정희의 고향이 그의 고향이었다

그의 고향 선산의 조상 무덤들 다 파헤쳐졌다

떠돌아라

떠돌아라 그대 영원한 중음신(中陰身)으로


김현옥


일제시대 소학교 소사

조회시간 종을 쳤다

수업시간 종을 쳤다

일본인 교장실 티끌 하나 없이 청소했다

그 시절은 청소가 아니라 소제였다


그런 사람이 자라나

육군장교였다가

부산 시장

서울 시장을 지냈다


도시는 선(線)이다

이런 어설픈 표어도 내걸었다

여의도를

도시로 만들었다

밤섬을 폭파한 뒤


장승 같은 키로 박정희의 개발에 신났다

그가 세운 서민아파트

와우산 와우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의 개발은 숨가빴다

내무부장관 시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모든 성찰의 시간 떠나간 곳에서


박동선


백인 미녀를 비서로 뒤따르게 하고

백인 상류사회 한 부분을

한 손아귀에 넣어

호화찬란한 야회복의 밤이 있었다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 클럽 1977년

항상 엷은 썬글라스의

단정한 동양인

말과 몸짓이 자르르 기름졌다


그의 손아귀에는 미국 상원의원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으로

태평양 건너

한국의 박정희에게

불가결한 인물이 되었다

미국에서 박동선은 박정희의 조카로 통했다


미국쌀 중개상으로

모든 양국관계의 중개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상하 양원 실력자만 포착했다

신문기자들을 잊어버린 채


그리하여 뉴욕타임즈는

그를 일러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규탄했다


한국의 국제적 인물 하나가 시끌벅적 가라앉았다


예춘호


두 눈이 콧날에 달려와

두 눈이 의가 좋다

그만그만

목쉰 소리에 쇳내음이 났다


메주 뜬 방바닥인가

한번 나오면

어디가 서론이고

어디가 결론인지 몰라

긴 담론


저 60년대 초

부산의 한 대학강사가

혜성으로 떠올라

공화당 사무총장이 되었다


인명록은

그 이전의 인명록을 무시한다

거기에 새로

그의 이름이 빛났다


그러다가 박정희 3선개헌 반대로 무소속이었다

유신 말기

그는 재야에 다가섰다가

점점 재야의 골짜기에 내려왔다

마음에 맞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며


강창일


제주도 돌하르방 슬하에서 자라났다

네모졌다

한라산 눈송이 여섯모졌다

그 아래

열네모진 젊은이


제주해협 설문대할망 두 다리 건너


서울에서 정치학 전공의 젊은이

오류를 사절하라

견고하라


강창일

그대 턱에 고향의 수평선이 탁 걸려라


민청학련 사건 이래

상아탑적이기보다

집정관적이다

감찰관적이다


양심과 모순의 정치적 관계를

감시하는 이지


좀처럼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턱에

그대의 오랜 양식을 걸어버려라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6 뉴턴 - 사과는 왜 땅으로 떨어지는가

 

장 파에르 모리 지음 / 김윤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32

 

082

시158ㅅ  27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7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의 벗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친한 나의 친구는 진리이다."

과학혁명에 불이 붙기 시작했던 17세기에

쟁쟁한 과학자들과 겨루어 현대 과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은 아이작 뉴턴, 사과 한 알로 만유인력을

설명한 그는, 빛의 본질을 분석해 내고 미적분학을

창시하여 당대의 천재들을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위성으로 만들었다.

 

"지혜를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감동할 줄 아는 존재라면

아무리 형편없는 망원경을 통해서라도 푸른

하늘에서 떨고 있는 은빛 초승달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보고 유쾌한 감흥이 일지 않거나,

지상의 일상생활로부터 벗어나 우주로 가는

첫번째 정류장을 향해 이동하는 기분을 느끼지

못할 수 있을까? 생각이 있는 존재라면 4개의

위성을 가진 빛나는 목성이나 신비한 띠로 둘러싸인

화려한 토성, 끝없는 밤하늘에 자줏빛과

사파이어빛을 뿜어내는 이중성(二重星)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아! 비천한 농부와 도시의 피곤한 노동자,

명성과 부가 절정에 이른 사람, 경박한 사교계

여성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만일 인간이라면,

하늘을 응시하며 얻는 내적인 기쁨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이들이 알 수 있다면,

프랑스 아니 전유럽은 총검 대신

망원경으로 뒤덮일 것이다.

이것은 우주적인 행복과 평화를

고취시킬 것이다."

 

카미유 플라마리옹, 1880년

프랑스 천문학자

 

차례

 

Newton et la mecanique celeste

 

제1장 아이작 뉴턴의 휴가

제2장 근대 천문학의 탄생

제3장 반사망원경에서 중력으로

제4장 마침내 만유인력!

제5장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다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장-파에르 모리 Jean-Pierre Maury

1937년에 태어난 장-피에르 모리는 파리 제7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를 지냈다. <갈릴레오> <별들의 사자> <지구는 어떻게 둥글게 되었는가> 등의 저서를 저술하였다.

 

옮긴이 : 김윤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5번 <고대 로마를 찾아서>와 <중세시대 영국과 프랑스의 도시> <프랑스 혁명의 창조> <계몽사상의 실천> <봉건제의 위기> 등의 논문을 번역하였다.

 

제1장

아이작 뉴턴의 휴가

 

1665년 여름, 끔찍한 전염병이 창궐하자 케임브리지 대학은 문을 닫고 학생들과 교수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들 중에는 막 학사학위를 받은 청년 아이작 뉴턴이 있었다. 그는 평화롭고 조용한 곳을 찾아 고향인 영국의 시골로 떠났고, 그곳에서 1년을 보냈다. 이 시기에 풍성한 발견들이 이루어졌고, 따라서 후세 역사가들은 이때를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뉴턴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오랜 휴가-의심할 여지 없이 과학사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은 시기-를 영국 중동부 링컨셔에 있는 집(위)에서 보냈다.

1665년에 발생한 대전염병은 런던에서만 7,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 당시 신문은 모든 탈출방업을 동원해 런던을 빠져 나가는 피난민과 장례행렬, 시체들로 가득찬 마차들을 보여 주고 있다.

케플러의 《세계의 조화》(1619), 그리고 무엇보다도 갈릴레이의 《두 개의 세계에 대한 대화》(1632)는 젊은 시절 뉴턴이 애독했던 저서이다. 기하학적이고 미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사색으로 가득 차 있는 케플러의 책에서, 뉴턴은 행성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발견했는데, 훗날 뉴턴은 이 법칙에 결정적 설명을 주게 된다. 갈릴레이를 교회재판대에 서게 만들었던 그의 저서는 근대 천문학의 선언문으로 인정받았다. 이제 사람들은 '천계의 완전성'이라는 신화를 벗어 던지게 되었으며, 천체는 더 이상 과학적 합리성보다 우위에 놓일 수 없었다.

태양의 백색광선이 여러 빛깔을 띤 광선의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뉴턴은 25세였다.

위의 장치는 뉴턴이 울스소프의 자기 방에서 실험한 장치보다 훨씬 정교하다. 덧문에 뚫은 구멍, 프리즘, 스펙트럼이 투사되는 벽, 이것이 뉴턴이 이용한 전부이다.

에덴 동산의 사과를 제외하고 뉴턴의 사과만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 사과는 없을 것이다. 어떤 화가는 사과가 뉴턴의 머리를 친 것으로 묘사했는데, 떨어진 사과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을 그린 화가도 있다(19세기 판화). 중요한 점은 사과를 관찰한 결과 사과와 달을 비교하게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위 18세기 판화는 두 가지 특징적인 사실을 보여 준다. 굉장히 많은 행성계와, 태양광선조차 뚫지 못하는 두꺼운 구름-우주의 어두움이 물질화된-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것을 부정하고 2,00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고대의 '자욱한 어두움'은 미술가들의 상상력 속에 살아 남아 있었다.

갈릴레이는 베니스의 시의원들에게 멀리 있는 선박과 건물을 살피는 데 망원경이 아주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얼마 후 갈릴레이의 새 발명품은 천체 관측에 이용되고 있었다.

티코 브라헤의 체계

르네상스인은 우주 중심에 자리 잡은 지구 둘레를 천구가 둘러싸고 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적인 완벽한 우주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구의 중심성과 부동성이라는 관념은 너무나도 뿌리깊어서 행성운동의 관측자료가 쌓여 갔어도 과학자들에게 선입관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6세기 네덜란드 천문학자인 티고 브라헤는, 행성들은 태양 둘레를 돌지만, 태양은 여전히 우주의 중심인 지구 둘레를 1년에 한 바퀴 돈다고 설명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발표되면서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다만 지구의 중심성과 부동성이 부인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구는 다른 행성과 마찬가지로 태양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관측기구들이 차츰 개선되자 사람들은 행성의 모양과 크기를 알고자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행성 간의 거리, 다시 말해 태양계의 크기를 측정해야 했다. 그리고 하나의 절대적 측정단위가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전에 태양과 지구, 태양과 화성 등의 상대적 거리를 결정해야 했다(1672).

1628년 데카르트가 네덜란드에 정착한 이래 교회는 더 이상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세계의 체계'를 발표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아래). 왜냐하면 1633년 종교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던 갈릴레이와 같은 고통을 받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천체들 사이의 공간이 보이지 않는 물질의 소용돌이로 가득 차 있다(위)고 주장했다.

 

제2장

근대 천문학의 탄생

 

"1667년 6월 21일 화요일 하지 아침, 오주, 프레니클, 피카르, 뷔오, 리셔는 어느 돌 위에 자오선을 표시하기 위하여 천문대로 갔다." 이렇게 해서 파리 천문대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 되어 그곳 천문대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둘레,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 빛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었다.

1667년, 유럽의 많은 과학자들은 파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파리 천문대가 건설되면서 파리는 가장 활발한 천문학 연구 중심지가 되었다.

파리 천문대 설립행사에서 장 밥티스트 콜베르가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들을 루이 14세에게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루이 14세는 1682년이 되어서야 이 천문대를 찾았던 것이다.)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와 파리 천문대는 루이 14세의 명령을 받은 콜베르의 주도 아래 설립되었다.

정확한 천문학적 측정을 가능하게 도와 준 발명품. 크리스티안 호이겐스의 진자시계.

호이겐스는 17세기를 주도한 물리학자였다. 일찍이 진자시계를 발명하고, 토성의 고리와 그 위성을 발견해 이름을 떨친 호이겐스는, 확률이론을 다룬 최초의 논문을 발표해 수학과 곡면역학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빛의 파동론의 기초를 세웠다.

루이 14세는 카시니의 렌즈를 장치하기 위하여 말리 타워를 파리 천문대 뜰로 옮기게 했다. 카시니는 망원경 튜브를 사용하는 대신 접안렌즈를 손에 들고 다니며 떨어져 있는 목표물을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다.

1885년경 두 날개와 둥근 지붕이 천문대에 첨가되었다. 하지만 본건물은 17세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카시니 가문은, 지안 도메니코(카시니 1세)가 콜베르의 초청으로 불로냐에서 건너온 해인 1669년부터 카시니 4세가 사임한 해인 1793년까지 파리 천문대를 이끌었다. 천문학적 연구에서 볼 때 후대 세 사람의 작업들은 카시니 1세의 업적에 비교될 수 없다. 그는 토성의 네 위성과 그 고리들의 분할을 발견했고, 리셔와 함께 태양까지의 거리를 측정했을 뿐만 아니라, 대형 달지도를 제작했고 금성의 공전주기를 계산하려고 했으며, 목성의 위성들에 대한 관찰기록을 끊임없이 수정했다.

카시니는 또한 파리 천문대의 건설과 장비설치를 감독했고, 천문대의 과학과 행정 감독관으로 재직했으며, 천문학자들을 훈련시켰다. 콜베르가 그를 몰로냐에서 파리로 초빙했음은 천문학사에서 참으로 운좋은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1572년, 스물여섯 살 난 티코 브라헤는 근대 최초로 신성(新星)을 발견하여 유명해졌다. 1577년에 덴마크 국왕은 그에게 이븐섬을 하사했고, 이곳에 그는 우라니보르그(천국의 성) 천문대를 세웠다. 왕이 죽고 나서 후계자들과 사이가 나빠진 티코 브라헤는 프라하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우라니보르그는 돌더미 속에 폐허로 전락해 버렸다.

고도육분의(첫번째), 반구경위의(두번째), 태양사분의(세번째), 사분경위의(네번째).

프라하에서 티코는 루돌프 2세의 왕실 수학자로 봉직했다. 1601년 티코가 죽자 그의 조수 요하네스 케플러가 티코의 자리를 계승했다. 티코의 천문학적 관측 성과에 존경을 감추지 않았던 케플러는, "티코는 매순간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말했다. 티코는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관측기구들에는 렌즈가 없었다. 따라서 정확한 관측을 수행하기 위해 그의 관측기구들은 매우 커야 했다. 이 거대한 기구들-반지름이 6m나 되는 것도 있다!-은 별들이 자오선을 지날 때 고도를 재기 위해 자오선의 수평면에 고정되어 설치되어 있었다. 망원경이 발명되자 사분의나 육분의 따위 더욱 작고 간편한 기구들로 같은 정도의 정밀한 관측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리셔는 2년 가까이 카옌에서 보냈다. 성능 좋은 장비와 유능한 조수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관심 있는 모든 분야의 중요한 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의 《천문학, 물리학 관측》의 속표지.

1644년 덴마크 아루스에서 태어난 올라우스 뢰머(가운데, 위는 그의 천문대)는 티코의 관측 노트들을 발간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 교수의 조수로서 일했다. 따라서 피카르가 폐헉가 된 우라니보르그로 탐사를 떠날 때에 뢰머가 그를 돕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피카르는 파리로 돌아갈 때 뢰머를 데려갔고, 이 두 사람은 이후 10년 동안 공동작업을 벌였고, 특히 많은 관측기구를 개량하는 데 힘을 더했다. 그후 뢰머는 덴마크로 되돌아와서 자오선 망원경(아래)을 포함하여 자신의 기구를 여러 개 완성시켰다.


제3장

반사망원경에서 중력으로


"아울러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 수학교수인 아이작 뉴턴씨가 새로운 망원경을 발명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처음 공개되고 시험해 보았을 때 그 망원경의 길이가 약 15cm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1672년 1월에 호이겐스는 런던 왕립협회의 책임자인 헨리 올든버그가 보낸 편지를 통해 뉴턴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뉴턴의 망원경.

최초의 과학잡지라 할 《철학회보》가 이 무렵 런던에서 발행되었고, 몇 달 뒤 《지식인의 잡지》가 파리에서 발간되었다.

1690년의 케임브리지 대학. 한데 모여 있는 수도원 건물들에는 풍족하지만 꾸밈이 없는 모습으로 줄지어 늘어선 기숙사들이 딸려 있었고, 모든 건물은 캠강 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을 이루고 있는 정원과 잔디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모습은 오늘날에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헤벨리우스의 거대한 굴절망원경(1670).

뉴턴 시대에는 그레고리안(위)이나 카세그레인(아래) 반사망원경은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았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 여기에 필요한 작은 곡면거울을 만들기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뉴턴의 동료들은 그의 관측기구가 소형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이는 단지 편리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작으면 작을수록 안정감이 더 생기는 것이다. 불안정한 장비는 영상이 만들어지는 데 치명적이었기 때문에 높은 배율보다도 높은 안정성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뉴턴이 고안한 작고 우아한 관측기구는 기부(基部)가 지탱해 주고 한 쌍의 금속 손잡이가 단단히 죄어 주고 있는 공을 이용하여 어떤 방향으로든 회전할 수 있었다.

뉴턴의 망원경은 관의 아래쪽 끝에 있는 나사를 회전시켜 초점을 맞추었다. 이 나사는 대물렌즈와 망원경의 뒷부분을 움직였다.

1667년과 1672년 사이에 뉴턴은 자신의 이론을 강화하기 위해 빛깔에 관한 실험에 더욱 열중했다. 어느 정도 회의적인 반응이 따랐지만, 분명히 결정적인 반대는 없었다.

곳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독일의 탁월한 수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철학자, 신학자, 역사가, 법률가였다. 그와 뉴턴은 각각 미분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라이프니츠의 방법이 채택되었다.

항해의 중심이 되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템스강 어귀를 내려다보고 있다. 기준 자오선이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고 있고, 그리니치 평균시간은 세계의 표준시간이다.

존 플램스티드는 찰스 2세에게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를 건립(1675)하도록 건의했으며 자신이 그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장비 설치와 지도 제작에 공헌이 컸지만, 그의 주된 업적은 3,000개에 이르는 별들의 목록을 작성한 것이다. 이러한 편찬작업은 근대 천문학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헬리가 공부했던 옥스퍼드 대학의 주위 환경은 언제나 목가적이다. 막달렌 칼리지의 탑도 여전히 나무 꼭대기 위로 솟아 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소들이 다소 멀리 떨어진 들판에 있다.

1664년 12월 24일 뉘른베르크 하늘 위를 번개처럼 지나간 혜성에서 받은 인상을 남긴 그림.

 

제4장

마침내 만유인력!

 

 

1684년 8월, 헬리는 뉴턴에게 자문을 구하러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향했다. 자신이 풀 수 없었고 왕립협회의 다른 회원들도 쩔쩔매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할 참이었다. 뉴턴은 자신이 이미 오래 전에 그 문제를 해결했노라고 말했다. 태양계의 모든 운동은 중력의 법칙이라는 단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제 핼리는 뉴턴이 이 사실을 공표하도록 설득해야 했다.

 

《프린키피아》를 발간하고 나서 한참 지난 뒤인 1726년의 뉴턴(위). 17세기에 있었던 한 실험(아래).

로마에서는 처녀자리에서 1680년 혜성이 출현하고 특이한 현상이 따랐다고 보고되었다. 그들은 닭들이 소리를 지르고 신비한 표시를 지닌 알을 낳은 것은 혜성의 특징이나 이동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알들을 낳은 날짜와 시간이 기록되었다. 이 판화가 명백히 보여 주듯이 혜성이 신비로운 힘을 간직하고 있다는 믿음은 1680년대에도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특히 12별자리에 표시된 혜성의 위치가 주목할 만한데, 당시에도 그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점성술의 초점이었다.

에드먼드 헬리는 《프린키피아》를 세상에 선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성취한 많은 일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는 남반구의 별들을 목록화했고, 혜성들을 연구했고, 헤라클레스 자리에 있는 둥근 성단을 발견했고, 1718년에는 별들의 정확한 운동을 밝혀 냈다.

새뮤얼 페피스는 1825년까지 해독되지 않은 비밀스런 속기법을 사용해서 1659년부터 1669년까지 일기를 썼다. 이는 영국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의 런던의 일상생활을 보여 주는 탁월한 연대기이다.

커피점은 17세기 런던에서 사교적이고 지적인 생활의 중심지였다.

 

제5장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다

 

모든 이론은 검증되어야 한다.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면, 아직 예측되지 않은 현상을 예견한 뒤 그것을 관찰하는 것은 또 다른 방법이다. 뉴턴은 지구의 양극이 평평하다는 것이 입증되리라고 주장했다. 1735년에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그의 예견을 검증해 보기로 결정했다.

중력이론으로 과학자들은 지구의 양극이 평평하고, 헬리 혜성이 다시 나타나며, 새로운 행성이 존재한다고 예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150년 안에 사실로 밝혀졌다!

1704년 당시 62세인 뉴턴은 자신의 두번째 주요 저작인 《광학》을 발간했다. 《광학》은 인상 깊은 온갖 실험을 모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이론과 그 이론이 적용된 발견들을 포함하고 잇다.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은 라틴어로 된 이 저서를 입수하자마자 이러한 실험들을 꾸준히 반복해 보았다.

자오선의 한 호의 길이를 재려고 떠난 페루 탐험대는 라플란드 탐험대보다 상당히 많은 장애물에 부딪혔기 때문에 2년 이상이나 작업이 지연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거두어 낸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으며 모페르튀의 팀이 이루어낸 것보다 더 훌륭했다고 인정받았다.

북극 탐험가인 피에르 루이 모로 드 모페르튀의 초상. 탐험에서 돌아오고 난 이후에 그린 것이다.

모페르튀와 부계르는 자기들의 성과를 《지구의 모습》에 1738년과 1739년에 각각 발표했다. 이 책들에는 통상적인 도표뿐만 아니라, 키토 근처와 라플란드의 토르네아강을 따라 행한 삼각측량을 설명하는 자세한 지도가 실려 있다.

《성서》에서는 '별'이 동방박사를 말구유로 인도했다. 혜성이었던가? 신성이었던가? 지오토가 그린 이 그림, <동방박사의 경배>에 보이는 '별'은 틀림없이 핼리 혜성이다. 이것은 1301년에 출현하여 사람들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에 나타난 1066년의 핼리 혜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 해는 정복자 윌리엄이 헤이스팅스에서 앵글로색슨족과 격돌한 해이다. 이것은 재앙의 징조였다-대체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하지만 그것은 어느쪽의 재앙인가?

"그래서 진실은 / 그녀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 아름다운 얼굴을 띠고 / 웅변도 복종시킨다." 이 4행시는 샤틀레 후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그녀는 뉴턴의 체계에 관한 대중적인 논문을 발간했다.

핼리 혜성이 다시 나타날 때마다 이 사건을 관측하고 묘사하는 방법들이 개선되었다. 1835년의 판화(위), 1910년의 사진(아래).

허셜 망원경(아래)으로 보면, 천왕성은 작고 희미한 반점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이저 2호가 가까이 접근해서 찍은 이 합성사진에서도 상세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천왕성의 대기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우 뚜렷하게 보이는 그 위성들은 그렇지 않다.

1835년에 알려진 태양계(핼리 혜성이 출현할 무렵). 천왕성은 보이지만 해왕성은 빠져 있다. 불규칙적인 천왕성의 운동은 더 멀리 있는 행성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위르뱅 르베리에는 20세에 천문학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나중에 천왕성의 운동을 연구했고 파리 천문대의 감독관이 되었다.

1986년에 나타난 핼리 혜성.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아이작 뉴턴의 무덤.

뉴턴 기념관을 위해 제작된 이 웅장한 설계도들은 18세기의 건축가인 피에르 쥘 델레핀(아래 사진의 위)과 에티엔 루이 불레(아래 사진의 아래)의 설계도이다. 하지만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다.

크룸스 언덕에서 바라본 왕립천문대(1680년경).

<최초의 금성 자오선 통과 관측>, 판화, 19세기.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5 빅데이터 세상


매일경제 기획팀 · 서울대 빅데이터 센터 지음

2014, 매일경제신문사



대야도서관

SB102206


331.5412

매68ㅂ


당신의 숨겨진 욕망까지 읽어드립니다


빅데이터, Big Data

당신의 마음을 읽다


최근 ICT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수많은 데이터들이 재조명되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수많은 데이터들이 '빅테이터' 기술을 만나 유의미한 것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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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비자들의 주요 소비품목을 날씨 정보와 함께 분석하니 비오는 날에는 피자빵이 많이 소비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쇼윈도의 마네킹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수집한 고객정보를 분석해 보니 손님이 많이 출입하는 시간대와 많은 손님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어느 곳인지 알게 되었다.

# 2 한 통신사는 전국 수만 대의 차량에 센서를 부착, 운행정보를 수집한다. 서비스 가입자들에게 실시간 교통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 길을 안내한다.

# 3 어떤 금융사는 SNS 이용자들의 게시글에 반복되는 어휘를 수집한다. 그리고 그 어휘가 자주 사용되는 사회적 배경을 분석한다. 그것이 주가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다. 사회심리가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바, 수익률 높은 투자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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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는 이미 실생활 가까운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의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아직 빅데이터가 널리 사용되기에는 제도적인 한계가 너무나도 많고, 일반인들 다수는 빅데이터의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에선 선진국의 활용사례를 발 빠르게 받아들여 현장에 도입하고 있으며, 학계 역시 빅데이터 학과를 개설,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세계적 수준인 우리나라의 ICT인프라를 빅데이터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도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빅데이터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스마트한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와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지은이

매일경제 기획팀 · 서울대 빅데이터 센터


매일경제는 '미래를 바꾸는 창'으로 불리는 빅데이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3년 6월부터 서울대 빅데이터센터와 공동으로 <디지털 금맥, 빅데이터> 연중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기업과 학계, 정부는 실시간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미래까지 예측하는 빅데이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기업을 중심으로 빅데이터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는 부족했고, 다양한 규제가 갈 길 바쁜 한국 빅데이터의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에 매일경제는 서울대 교수진 자문과 실제 현장을 심층 취재한 빅데이터 연중 기획으로 한국 빅데이터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2년여에 걸친 매일경제 연중 기획과 서울대 교수진 기고를 하나로 엮은 결과물입니다. 이 책이 한국 빅데이터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기를 바랍니다.


매일경제 기획팀

유진평 모바일부 부장, 최용성 모바일부 차장, 황지혜 모바일부 기자, 홍장원 모바일부 기자, 이동인 사회부 기자, 김대기 과학기술부 기자, 원요환 사회부 기자, 손유리 모바일부 기자


서울대 빅데이터 센터

고학수 교수(법학), 김선 교수(컴퓨터공학), 김수욱 교수(경영학), 박종헌 교수(산업공학), 서진욱 교수(컴퓨터공학), 이상구 교수(컴퓨터공학), 이재욱 교수(산업공학), 조상준 교수(산업공학)


contents ------------------------------------------------------


발간사

머리말 1

머리말 2


PART 01 빅데이터 시대                                        


chapter 1 실리콘밸리 빅데이터

              실리콘밸리에 부는 빅데이터 바람

              스타트업도 빅데이터가 대세

             · interview - 파드마스리 워리어 시스코 부회장

             구글과 페이스북의 데이터 파워전략

             · interview - 벤 곰스 부사장

             · interview - 댄 니어리 대표


chapter 2 빅데이터, 그것이 알고 싶다

              빅데이터가 뭐기에…

             · interview -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스포츠…

             범죄 수사에서도 새 물결

             · interview - 이상구 서울대 정보화본부장

             · interview - 사이번 토머스 IBM 부사장

             · 빅데이터가 만드는 세상 - 조성준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 운영 빅데이터에 기반한 실시간 기업의 완성 - 박종헌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PART 02 빅데이터 빅뱅                                                    


chapter 1 유통 빅뱅

              고객정보 수집하는 마네킹

              맑은 날 샌드위치, 비오면 피자빵

             · interview - 강용성 와이즈넛 대표

             · 고객을 불러들이는 분석경영 -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chapter 2 스포츠 빅뱅

              오클랜드 20연승 신기록의 비결

              삼성라이온즈 3년 연속 우승의 힘

             · interview - 장원철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


chapter 3 생명과학 빅뱅

              가족력 유전자 맞춤진료

              DNA로 몇 년 후 발병 알아애

              의료정보 활용, 프라이버시가 관건

             · interview -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

             · 생물정보학 기술을 이용한 유방암,

              가뭄 저항성 벼 연구 - 김선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chapter 4 ICT 빅뱅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빅데이터 활용

              한국 SI, 콜롬비아 빅데이터 문을 열다

              국내 업계 빅데이터 솔루션 시장공략

              · interview - 이영조 서울대 교수

              · interview - 함유근 건국재 교수


chapter 5 금융빅뱅

              금융업계 빅데이터 금맥 찾기

              항구도시 부산, 양식소비가 일식 3배 카드사는 알고 있다

              · 빅데이터와 금융 - 이재욱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외 1인


chapter 6 부동산 빅뱅

              부동산에 부는 빅데이터 바람

             · interview - 경정익 명지대 교수


chapter 7 재난대응 빅뱅

              세월호 비극은 열악한 한국 빅데이터 민낯

              '데이터 빈곤 악순환'에 빠진 한국 사회


PART 03 빅데이터 미래                                                    


chapter 1 빅브라더와 빅데이터

              디지털 감옥에 갇힐 수도

              · interview - 제프 모스 데프콘 설립자


chapter 2 빅데이터 걸림돌

              너무 까다로운 규제환경

             융합산업 가로막는 개인정보보호 체계

             · interview - 김형주 서울대 교수

             ·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피해와 빅데이터 활용 -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chapter 3 빅데이터 코리아를 위해

              정보 빅뱅시대 '빅데이터 문석가' 키워야

              국내 전문 분석인력 100명뿐

              · interview - 이준기 연세대 교수

              · 정보시각화 - 서진욱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 텍스트 데이터 처리, 인류의 지적 자산 다루기 - 이상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실리콘밸리 빅데이터 스타트업

 회사명

 사업[기술]

 위비데이터

 유통, 금융 앱 제작도구

 콘태전트

 데이터 분석, 판매

 스카이트리

 자동분석 소프트웨어

 웹액션

 실시간 데이터 서버

 데이터브릭스

 분석, 추출 기술

 클리어스토리 데이터

 데이터 분석

 알파인 데이터랩스

 데이터 시각화

 에이치스트리밍

 센서 데이터 분석

 데이터미어

 하둡 기반 앱

 

빅데이터 기술 적용 사례

 회사명

 사업[기술]

 스포츠

 선수부상예측, 상대팀 전술 파악

 금융

 주가지수 예측, 거시 변수 예측

 정치

 소셜데이터를 통한 맞춤형 캠페인

 의료

 인간 지놈 데이터로 희귀병 치료

 기상

 날씨 분석을 통한 선호 제품 예상

 의류

 유행 디자인 사전 파악해 시장 선도

 복지

 자살예보 시스템, 실버 계측 의료 개선

 공공

 부정부패, 세수 증감 데이터 분석

 

빅데이터의 응용

 분야

 데이터 종류

 분석프레임워크

 기술적 이슈

 1. 신규 서비스 개발

 뉴스 콘텐츠

 텍스트마이닝

[자연어처리]

 문서 간 거리 계산

 2. 인사

 인사 데이터

 예측 / 분류

 특징추출

 3. 영업

 구매 데이터

 추천

 user behavior

 4. 공정최적화

 공정, 검사 데이터

 예측

 데이터 imbalance

 5. 상품기획

 소셜미디어

 텍스트마이닝

 sentiment 분석

 6. 재난 조기 경보

 Io T 데이터

 최적 routing

 조기 경보

 7. 영업

 유통 데이터

 BI, 연관분석

 아이템 수준 결정

 8. 의료보건

 유전체 데이터

 연관분석

 유전체분석 대상 확대

 9. 선거

 유권자 데이터

 클러스터링

 데이터확보

 10. 소개팅

 회원 개인 데이터

 클러스터링

 변수 중요도

 11. 버스노선

 통화 데이터

 BI

 최적 라우팅

 

빅데이터 날개 단 의료 사례


▶ 지놈 지도 분석해 희귀병 원인 규명

▶ CT 융합기술로 3D 디지털 부검

▶ 유전자 분석해 당뇨, 심장병 예방

▶ 실시간 건강 파악, 맞춤형 의료 제공

▶ 가상 효과 분석으로 신약 개발


 

빅데이터 활성화 위한 법 · 제도적 해결점


● 진흥은 미래부-규제는 안행부 방통위 등으로 분리

● 개인정보에 대한 이중적 잣대 바궈야

● 개인정보 활용 부정적 인식 개선 필요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4 만인보

 

高銀

199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0

 

811.6

고67만  12

 

창비전작시---------------------------------------------------------------------

 

큰 명제에 대한 시대적 일탈이 여기저기서 눈여겨지는 때에 시와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있어야겠다. 그것은 근원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뜨겁게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접어두고 나서 나는 그 이념의 혐의와 상관없이 먼저 인간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이나 사회 · 역사 · 문명 전반에 대한 통합적 인식이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는 사실에 새삼 눈떠야 했다. 인간의 실존적 정화 내지 승화만이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고비들을 넘기는 일의 시작이라는 것도 거기에 포함된다.

세상에 어디 '시적 인간'의 가능성이 그 싹수마저 보이고 있느냐라고 고개를 젓지 말기 바란다. 바로 이런 판에서 시인보다 먼저 시적 인간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므로.

다만 그런 인간에게서 메시아적이기보다 연인적이기까지 한 친화를 경험하는 것이 창조의 축복과도 닿아 있을 터이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이병린 / 김영삼 / MOON / 다시 김승훈 / 정산(鼎山) 송규(宋奎) / 박태준 / 샛강 봉사 / 김홍일 / 박용길 / 이재선 / 이희호 / 김석중 / 박영숙 / 이종옥 / 이해동 / 문동환 / 서귀포 김태연 / 구시렁구시렁 / 이동인 / 장기려 / 박보희 / 문혜림 / 삼두매[三頭鷹] / 이재정 / 임형택 / 유홍준 / 김효순 / 김  영 / 도예종 / 김상현 / 담배 선 / 신과장 / 김종완 / 경순왕 / 이석표 / 김찬국 / 화가 박수근 / 허백련 / 탁희준 / 홍사중 / 리영희 / 문정현 / 문규현 / 한승헌 / 조화순 / 송기숙 / 김경징 / 서남동 / 신홍범 / 조준희 / 백기완 / 한완상 / 신구문화사 이종익 / 김병익 / 이우정 / 이광훈 / 김언호 / 변형윤 / 그 사람 / 박형규 / 지학순 / 이문구 / 수로(首露) 이전 / 소설가 이병주 / 이호철 / 임채정 / 염무웅 / 백낙청 / 최성묵 / 박봉우 / 옛 스님 / 배추 방동규 / 박태순 / 성유보 / 정동익 / 김병걸 / 김태진 / 이재오 / 이부영 / 김근태 / 이해찬 / 허  생 / 제정구 / 윤강옥 / 윤한봉 / 나상기 / 정상복 / 인명진 / 서경석 / 이근성 / YH 김경숙 / 박현채 / 송기원 / 송기원의 아버지 / 이시영 / 조태일 / 채현국 / 황석영 / 고대의 한 어린이 / 양성우 / 오원춘 / 임헌영 / 박용수 / 구중서 / 설  훈 / 박계동 / 조성우 / 서자의 나라 고조선 / 최  열 / 김승균 / 김정남 / 꼴레뜨 노정혜 / 오숙영 / 김광일 / 김한림 여사 / 최순영 / 박태연 / 화양동 / 맥주홀 월드컵 / 김우창 / 김제균

찾아보기

 

김영삼

 

이상한 순풍이었다

행운의 연속

그가 탄 배는 뱃머리가 늘 힘찼다

25세에 국회의원이니

민주당 구파는 벌써 그가 이끌어갔다

이상한 순풍이었다

 

몇번의 역려(逆旅)가 있었지만

그것은 다음날

더 좋은 순풍일 따름이었다

그의 뱃머리 수평선은 짙푸르게 힘찼다

 

70년대에 접어들어

김대중의 상대였다가 동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구파와 신파 사이의 연장이었다

 

이윽고 신민당 총재였다

약속장소에 항상 먼저 와 있었다

술 담배 끊고

새벽 달리기를 시작했다

항상 먼저 와

10분 전 혹은 5분 전 먼저 와 있었다

 

그에게는 이렇게 지키는 것이 있었다

그에게는 편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천부적인 전술이라면

그 수준은 누구의 수준인가를 알 수 없다

 

79년 여름 나는 그에게 달려갔다

그의 직관적인 결단으로

YH노동자들 신민당 강당 농성을 승낙해주었다

그것이 유신체제가 쓰러지는 바퀴소리일 줄이야

그 누구도 몰라야 했다

 

박태준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박정희의 비서실장이었다

군복 정장을 입으나

군복을 벗으나

왠지 일본 사무라이 같은 사람

이 사람이

한국 무쇠의 대장부였다

 

일본의 제철을 억척으로 배워다가

일본 제철을 능가한 대장부였다

 

포항 영일만 갈대와 세모래 갈매기 대신

시뻘건 쇳물이 흘러가며

식어가며

한 덩어리 무쇠가 되는 곳

 

세계 6대주가 그를 탐냈다

박태준 그로 하여금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지나

철기시대 지나

이제야말로

그의 무쇠와 더불어

한국이 중공업의 나라가 되었다

어느새

어느새

 

영일만 해 떠오르기 전

벌써 그는 용광로 불빛에 그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희호

 

김대중의 아내라면

처음부터 파란의 아내일 터

아내 노릇 의연하여

동서남북으로 다녀야 했다

 

지난날 빼어난 유학생이었다가

빼어난 Y여성운동가였다가

그런 것조차

지난날로 돌려버리고

 

마음은 탈 대로 타고

썩을 대로 썩어

어느새 충청도 농가 푸짐한 두엄인 양

이른봄 김이 피어올랐다

 

김대중의 아내라면

생애 절반은 어김없이 생과부 노릇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가느다란 몸이야

오늘도 내일도

진부하기까지 한 의지로 이끌어

벼랑진 볼 단정했다

그 아래 어깨 단정했다

 

김상현

 

산에 올라 허공을 만나라

배포가 크기보다

배포가 터져 허공이었다

내려오면

4통8달이라

그는 이미 여기저기 가 있다

 

전갈보다 더 미워하는 사람조차도

덥석 껴안아

끝내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

 

그러나 그는 죽어가는 사람과도 화해하고 타협한다

그 타협은 투쟁보다 찬란하다

 

본질적으로 여당 야당이 없는 사람

그러나 바람잔 적 없다

세찬 바람

듬뿍 받아

돛폭 팽팽한 사람

 

부모 잃은 소년시절부터

오직 정치의 꿈 부풀어

20대 국회의원 이래

바람잔 적 없다

바람잔 적 없다

이상한 일이다

감옥 5년이야

그렇다 쳐도

3공 5공의 17년 공백 지나도록

그는 내내 현역 정치가였다

 

결혼식 신부 반지도 금은방에서 빌려다가 끼워주고

첫날밤을 청진동 허술한 여관에서 보낸 이래

그는 내내 현역 정치가였다

저 밑바닥 진흙탕에서 솟아오른 한 마리 이무기 같은 늙은 용 같은

 

백기완

 

강한 것이

이렇게도 자아인 것을

 

50년대 폐허 명동의 쌍도끼 !

 

강한 것이

이렇게도 웅변인 것을

웅변이었다가

쓸데없이 눈물 한 방울인 것을

 

그의 손은 가방을 들어본 적 없다

보따리를 든 적 없다

오직 두 눈과 입 하나뿐

 

그것만이면 천군만마에 채찍이니

눈 감았다 뜨면

그도 없고 그의 전사들도 다 달려가

오로지 누런 먼지만 인다

 

자아 이외에

자아의 조국 이외에

자아의 조국에 있어야 할 무력 이외에

그에게는 장차 드높이 휘날리는 고독이 있어야 한다

 

한완상

 

괴로운 날에도

말이 화려했다 벗꽃처럼

그래서인가

괴로움도 한동안이어서

그의 노래 같은 눈은

돌아서며 아름답다 여름 자귀꽃처럼

 

그래서인가

그의 사회학은 전투가 아니라 연주였다

 

교회 주일예배

자랑스러이 찬양대 앞에서

찬송가 지휘하는

그의 눈은

돌아서며 아름답다

 

그의 진보는 보수에 기울어지고

그의 보수는 진보에 다가간다

이 돌이킬 수 없는 모순을 두고

그의 눈은

돌아서며 아름답다

 

임채정

 

입을 열면

막대기로 널짝 두들기는 것 같은

그 다급한 말소리

호남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나

호남 유학 기씨문중의 처녀 맞아

부부가 되어도

 

그는 누구의 아들이기보다

누구의 사위이기보다

이제 막 도착한 막차인 양

마음 술렁여

 

그 순정투성이의 아이디어 가운데는

한 줄기 그어지는 번개와 같은

무자비한 직선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뚝 잘라서

덜 다듬은 채 우뚝 서 있는 돌미륵인가

뒤통수에 휘파람소리 달려

돌미륵에게 무슨 정은 그다지도 도타운지


백낙청


나중에 사람들이 당파성을 내세울 때

그것을 다 새김질하여

네 개의 밥통으로 새김질하여

지공무사(至公無私)로 가라앉혀

수놓은 사람


이 사람 없었던들

60년대의 이른 자각인들 그렇다 치고

70년대 그 고행과 더불어

현실참여의 문학

우리 문학

어쩔 뻔했겠느냐


일찍부터 자기 자신에게 엄밀한 사람

남에게 한 가닥 감정 보이지 않아

지난날

아버지가 납치된 사실조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사람


그에게는 타고난 평상심이 있다

그에게는 기계가 잘 돌아가는 공공심이 있다


미국 동부 브라운대 졸업생 답사를 한 이애

하바드대 어디에서 머물 수도 있지만

그는 돌아와 한국 사람으로 살아왔다

꿈속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을

꿈 깨어 뉘우치며

그의 민족문학론은 단계마다 올라섰다


이 사람 있어

민족문학론 퍼졌고

이 사람 있어

민족문학 버팅겨

모진 세월 이겨내기까지


부탁 하나 있기로는

1년에 폭음 세 번은 있어야 함


이재오


입 안에 말이 가득했다

이빨 튼튼하다 쫘악 드러내어 하얗다

맷집 좋아

경찰 분실에 가서도

남산에 가서도

실컷 맞아 뻗었다


수술한 데 터져

재수술하고 일어섰다


사춘기 지난 이래

정치밖에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민주회복국민회의가 창립되면

민주회복청년회의를 만들어

정수일

최동전 들과 일어섰다

입 안에 말이 가득했다


그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교도관에게도 누구에게도

내가 국회에 나가는 날 있다고

희망이 신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그렇게 통속이었다

좋아


이부영


이목구비가 모여든 얼굴

외치면 천둥이지만

웃으면 강물 위의 손짓이었다

내로라 내로라 하고 나서지 않으나

어떤 사건 속에는

반드시 그가 들어 있다

과일 씨처럼


또 들어갔다

또 들어갔다

때로는 들어갈 일이 아닌데

다른 사람 대신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감옥 안에서도

그는 일을 만들어 밖으로 내보냈다

과일 씨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으면서


휴전선 이남

이만한 투사와 신사 있으니 복되도다


김근태


그는 70년대에는 물 위에 떠오르지 않았다

인천 어딘가

후덥지근한 이 공장 저 공장에 스며들어가

자격증 네 개 다섯 개 땄다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장 따위 던져도 좋았다

공장에서

떳떳한 호모 파베르였다


하얀 양초 같은 얼굴

하얀 염소 같은 얼굴

그러나 노란 눈동자 안에는

어떤 동요도 없이

몇십년을 한 뜻으로 가는 의지

슬쩍 내비쳤다가 숨어버린다


평생 노동자와 일치하리라고 결심한 이래

그는 70년대에는

몇몇 친구들밖에는 몰랐다

무서운 청년시절을 다 바쳐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 떨치는 것

나서는 것

그것이야 뒤로 뒤로 미루어도 좋아라


죽기 직전까지

그 자신의 고문을 의식 속에 기록한

결사적인 또 하나의 그 자신이야 뒤로 미루어도 좋아라


제정구


민청학련 사건 이래

그는 지식인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빈민 쪽으로 향했다

그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사는 동지를

아내로 맞아


70년대 재야에서는 얼굴이 없었다

달 진 어둠속

불 꺼진 빈민마을이

그의 주소였다


미덥기는 장모가 씩씩한 사위 바라보는 듯

결코 가볍지 않은 품위야

숨길수록

땅속에 파묻은 김칫독인 듯


모순 앞에 살아보아라

누구라도 이렇게

모순 앞에 살아보아라

어렵나니

오직 민중 가운데 있는 일 어렵나니


인명진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

그 시절

정권이 퍼뜨렸지

도산(都産)이 가면 도산(倒産) 한다고

그 영등포 도산에

메기 입 험한 소리

마구 튀어나오는 인명진(印名鎭) 있다

조지송은 조용한데

인명진은 문 탁 닫는다


세상에 할말이 많은

세칭 '공순이'들 모여들어

우우 모여들어

떠들어대면

이년들아 ! 하고

거침없이 꾸짖는다


하지만 그들과 인명진은 잘 붙은 아궁이 불로 하나여서

까르르

까르르

꽃밭이 된다

그 지하실 17평 시멘트 바닥 위에서


서경석


아내 신혜수는 남편이 목사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목사이기를 원했다

아직 그 자신도 목사 될 생각 전혀 없었다

다만 제독의 아들이었다

공과대학을 나와


민청학련 20년형 선고 받고

상고 포기하고 기결수 되어버렸다

그것이 시작이라면


79년 YH 사건에 뛰어들어

이윽고 유신정권 붕괴의 씨앗이 되었다


일 만들기로는 따를 자 드물어

그가 가는 곳마다

일이 있고

그 일이 반드시

더 큰 일로 나아간다


굵은 나무 베어낸 뒤

그 나무 벤 자리 찐득찐득한 나뭇진 같은

비극적인 집념 잇어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웃음에도

그 비극적인 집념 있어


김광일


1970년대 중반 이래

부산에 가면

거기 김광일 변호사 있다

노무현 변호사 있다


널찍널찍한 마당 같은 얼굴에

아구찜 같은 웃음

하지만 때로는 요령소리 내어

새벽잠 깨기도 한다


무릇 과격한 사람까지도

비겁한 사람까지도

받아들일 때는 영락없이 통 큰 무당인데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저 건너 영도가

다 그의 땅인가

그의 술자리 영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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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3 감각 · 착각 · 환각

 

최낙언 지음

2014, 예문당

 

 

대야도서관

SB101435

 

511.181

최192ㄱ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보고, 맛보고, 꿈꾸는가?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그리는 대로 본다

 

'미러뉴런'은 거울처럼 따라 하기 기능을 하는 세포로서 인간의 탁월한 흉내내기 능력과 공감하는 능력 등이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인지 설명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아무도 시각이나 후각 같은 감각을 어떻게 지각할 수 있게 된 것인지를 설명하는 데는 쓰지 않았다. 그런데 올리버 색스의 『환각』을 읽던 중 갑자기 시각이나 후각 등 감각을 지각하는 과정에서도 이 미러뉴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감각한 정보를 미러뉴런 시스템이 만든 뉴로그래픽과 비교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시스템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추론하고 보니 많은 것이 연결되어 설명이 가능해졌다. 감각, 착각, 환각, 지각이 모두 미러뉴런 매칭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설명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추론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같이 뇌에 관한 세부 자료는 많지만 뇌의 전체적인 작동방식을 설명하는 이론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추론이 아주 의미가 없을 것 같지는 않다.

누구나 먹어야 산다. 그리고 먹을 때 느끼는 맛의 즐거움은 평생 유지되는 쾌락이며, 그 쾌락 역시 뇌가 만든 것이다. 뇌를 아는 것이 맛을 아는 것이며 우리를 아는 것이고, 아는 만큼 자유로워지고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지은이 최낙언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다. 1988년 12월에 제과 회사의 연구소에 입사하여 기초 연구와 아이스크림 개발 업무를 맡았으며, 2000년부터 향료회사 연구소에서 소재 및 향료의 응용연구를 진행한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주)시아스에서 근무 중이다.

2009년, 첨가물과 가공식품에 대해 세간의 불량지식을 마치 사실인양 다룬 프로그램에 충격을 받아 제대로 된 답변을 찾아 정리하기 위해 홈페이지(www.seehint.com)를 만들고, 여러 자료를 스크랩하고 연결, 정리하여 그 결과물을 책으로 하나씩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주된 관심사는 식품보다는 지식의 연결과 시각화로 옮겨졌다. 식품을 공부하던 중 이미 밝혀진 자연과학의 지식만 제대로 연결하고 의미를 이해해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파편화된 자연과학 지식을 연결하고 구조화, 시각화하여 전체와 디테일을 동시에 수용하는 새로운 지식 수단을 개발 중이다.

저서로는 『불량지식이 내 몸을 망친다』,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FRAVOR, 맛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진짜 식품첨가물 이야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감칠맛과 MSG 이야기』가 있으며, 식품에 관한 이야기도 앞으로 몇 권의 책으로 마저 마무리할 예정이다.


CONTENTS


들어가는 글_ 맛은 뇌가 만든 환각이다


PART 01  후각은 모호하고, 시각은 기묘하다


우리는 어떻게 사과 향과 딸기 향을 구별할 수 있을까?

향의 기본적인 비밀은 풀렸다

아직 누구도 어떻게 사과 향과 딸기 향을 구별하는지 모른다

후각은 뇌의 0.1%에 불과하지만 시각은 25%나 된다


시각은 기묘하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꼬이고 비틀리고 겹치고 역상으로 전달된다

지능형 화이트 밸런스

초 고감도와 초 고계조

울트라 슈퍼 손떨림방지 장치

평면에서 입체가 보인다

눈은 100만 화소로 1억 화소의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가능하게 한다

고속으로 달리면 내가 앞으로 가지 않고 공간이 뒤로 밀린다

짐작하고 본다. 보고 싶은 것은 의미이지 정보가 아니다


시각은 30개 이상의 모듈로 나뉘어서 작동한다

모듈이 손상된 환자의 사례로 시각의 모듈성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실어증보다 이해하기 힘든 것이 실독증이다


감각 채움(Fill-in), 없으면 적당히 채워 넣는다

없으면 채워 넣어 맹점이 사라진다

사진으로 동영상을 본다

맛에서도 감각 채움이 큰 역할을 한다

왜 작은 양의 소스가 요리 전체의 맛을 좌우할까?

채워 넣기 기능은 사소한 착각이라기보다 본질에 가까운 현상이다


PART 02 꿈과 환각은 왜 있는 것일까?


인간은 밤마다 뜻 모를 꿈을 꾼다

꿈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꿈꾸는 기계를 만들려면 얼마 정도의 장비가 필요할까?

꿈을 위해 가장 에너지 소비적인 뇌가 사용된다


환각(환시), 어떤 사람은 대낮에도 눈뜨고 꿈을 꾼다

환각은 기이하고 다양하다

꿈과 환각의 차이 : 환각은 대낮보다 생생하다

환각은 지각과 그렇게 차이가 많지 않다

환각도 꿈처럼 내용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환각은 생각보다 대단히 다양한 경우에 발생하며 환후마저 있다


PART 03 미러뉴런, 거울처럼 따라하며 의미를 눈치 챈다


미러뉴런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흉내쟁이다. 그 비결은 미러뉴런이다

공감, 너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공감의 힘, 군중심리에서 감성마케팅과 참여형 프로그램

이미지트레이닝(심상훈련)이 효과를 가지는 원리

자폐는 미러뉴런(공감) 기능의 부족 때문이 아닐까?


미러뉴런 매칭 시스템

환각을 볼 때, 꿈을 볼 때도 눈동자가 움직인다

지각은 감각과 일치하는 환각이다

가상현실? 우리의 시각이 이미 Virtual 3D animation이다

효율적인 뉴로그래픽을 위해 단순화를 추구한다

패턴 찾기, 불변 표상 구현

인간은 패턴 머신이다

패턴의 결과로 불변 표상, 절대 표상을 만든다


미러뉴런 매칭과 미스매칭은 많은 것을 설명한다

역상처리, 화이트 밸런스, 손떨림방지, 감각 채움은 시각이 뉴로그래픽이라 가능한 것이다

예측의 불일치가 놀람이다

우리가 보는 것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잠을 잘 때 뇌는 완전히 쉴 수 있을까? 뇌가 쉴 수 없다면?

꿈이라는 현상의 특징

꿈의 의미보다는 수면의 의미를 묻는 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PART 04 미러뉴런 매칭 시스템의 핵심은 불일치의 억제이다


미러뉴런 시스템이 만든 착각과 불일치

가벼운 착시, 착각은 너무 쉽게 무시한다

가벼운 환각은 즐길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축복일 수도 있다

탈 억압이 천재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가 사라져야 디테일이 산다


불일치가 고통이 되거나 위험이 될 수 있다

불일치에 대한 뇌의 변명, 무시 또는 작화증

무시할 수 없는 불일치는 고통일 수 있다

공황 장애, 불일치에 대한 대뇌의 혐오감

너무나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환각은 상당히 위험하다

마약은 환각을 일으키는 물질이 아니라 억제를 푸는 물질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생존의 힘이고 축복인지도 모른다


억제가 쉽지 않다. 환각은 언제든지 일어난다

이상이 없어도 자극만 박탈하면 환각이 일어난다

환각통, 유령의 팔을 제거하다

뇌에는 가소성이 있다

신체적으로 힘들어도 환각은 일어난다

사실 전기 자극 한 방이면 된다


착각에 지나친 의미 부여는 넌센스이다

우리의 기억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억압된 기억을 찾아라?

예전에는 왜 그렇게 귀신이 많았을까?

임사체험? 결국 환각으로 끝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도 쉽게 일어난다


PART 05 환각 시스템을 알면 맛이 보이고 예술도 보인다


환각이 설명하는 후각의 메커니즘

맛은 향이 지배한다

향의 인식은 숨은 그림 찾기와도 비슷하다

환후, 그래서 냄새에도 환각이 있다

후각도 억압이 있다. 후각 순응은 적극적인 뇌의 활동이다


터무니없이 느린 뇌로 터무니없이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비결은?

단계를 줄이는 비결은? 보고 아는 것이 아니고, 알고 나서 본다

속도를 높이는 방법은? 계산 대신 기억(훈련)을 통해 예측한다

예측한다. 그렇기에 감각 채움은 너무나 일상적인 현상이다

모듈은 서브루틴, 과정은 비밀, 결과만 공개


뇌에 대해 관심을 가지자

뇌는 주로 되먹임 구조로 되어 있다

V1 영역은 신피질, 이미 시각의 연합 영역이기도 하다

환각 능력은 막강하고 가상과 현실은 별 차이 없다

가상이 현상보다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PART 06 환각의 즐거움


예술의 바탕이 되는 쾌감의 기본 패턴

뇌는 간편함을 추구하기에 그런 자극을 좋아한다

간편화 추구의 부차적인 효과


맛도 다른 예술처럼 환각의 기술이다

성분은 맛의 시작일 뿐이며, 실제 맛은 뇌가 창조한 환각인 셈이다


의지적 탈 억제의 즐거움! 몰입에서 법열까지

창의성이나 아이디어가 샘솟는 방법, 탈 억제

법열은 극한의 몰입으로 만들어진 놀라운 탈 억제 현상이다

법열의 깨달음이 특별한가? 아니면 몰입의 즐거움이 더 대단한가?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목표를 읽은 청춘, 방향을 잃은 학문


감사의 글_ 우연과 필연

참고문헌


"시각은 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두뇌에서 생긴다.

지구상의 어떤 다른 생명체도

인간이 사물을 보는 방식으로

보는 종은 없다."

-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라마찬드란

















맛의 감각 채움 현상


옛날에는 꿈이나 심리학을 말할 때

프로이트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이트를 거의 말하지 않는다.

뇌 과학자뿐 아니라 철학자도 이제는 프로이트를

거론하지 않는다. 꿈의 내용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꿈을 정신적 현상보다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 모듈로 시각에서 들어온

신호와 같은 영상을 만들어 비교하면서

의미를 파악하고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시각이며,

이 미러뉴런 시스템이 정착된 시각의 부산물이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많은 의문이 풀린다.

 

미러뉴런의 공감은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텔레파시에 가장 가까운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은 유인원한테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인간에게만 발전을 거듭하여 행동보다 마음을 읽는 경지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라마찬드 란

흉내 내기

<출처 : 「Evolution of Neonatal Imitation」, Gross L,

PLoS Biology Vol. 4/9/2006, e311 doi : 10.1371/journal.pbio.0040311>

 

자신의 의지로 뇌를 조절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기에 지금의

억제 모드가 생존에 적당하다.

억제를 풀면 환각이 마구 일어나므로

너무나 리스크가 크다.

불일치는 혼동과 고통을 가져오고,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환각은

실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뒤집어 보면 입체감이 뒤집혀 보인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얇은 막 하나다."

-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예술은 가상화의 세계, 환각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미술과 조각은 빛의 파장이 만든 환각이고,

음악은 소리의 파장이 만든 환각이다.

사실 음식의 맛마저 화학 분자가 만든 환각의 즐거움이다.

꼭 음식을 맛봐야 먹는 즐거움을 누리고

냄새를 맡아야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우리의 사고를 고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감각은 뇌가 만든 착각(환각)이다.

그 착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탁월함이다.

 

결정적인 순간은 탈 억제

즉, 여유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뇌는 기본 모드가 억압모드이다.

빈틈을 노려야지 심각한 상태에서는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암기된 지식이 있고 적절한 유머(여유)도

있어야 하는 셈이다.

 

"눈에 보이는 대상의 가치는 대상 자체보다는 보는 사람의 시선의 자질에 달려 있다."

- 알랭 드 보통

 

"물질은 중력장에 구속되어 있고, 동물은 감각에 인간은 의미장에 구속되어 있다."

- 박문호 박사

힉스 발견 모형도 ⓒ 1997 C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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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22 한국의 향교

 

글 / 김호일●사진 / 유남해

2010,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2

 

082

빛12ㄷ  235

 

빛깔있는 책들 235

 

김호일-------------------------------------------------------------------------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와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문교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교육연구관과 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수실장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 중앙대학교 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개항전후사』, 『한국근현대이행기 민족운동』, 『조선 후기 향약연구』(공저) 등의 저서와 「양성지의 관방론」, 「조선 후기 향안에 대한 일고찰「조선 후기 향교조사보고」 등의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유남해-------------------------------------------------------------------------

『진경산수화『한국전통회화』, 『조선시대고문서』, 『무등산』, 『전통 문양』, 『부석사』, 『운주사』 등 많은 사진집을 제작하였고 한국관광사진콘테스트에서 준우수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족문화편찬팀에 근무하면서 포토에세이 등을 통해 활약하고 있다.

 

|차례|

 

향교의 기원

건물의 구성과 배치 형식

직제와 운영

향교의 경제적 기반

향교의 기능

향교의 변화

소장 전적

향교의 역사적 의의

남한의 향교 일람표

북한의 향교 일람표

참고 문헌

 

향교와 서원의 비교

 

 설립 주체

 배향 인물

 설립 시기

 기능

 향교

 국가(관학)

 공자, 4성, 10철, 72현, 송조 6현,

우리나라 18현 등(일률적)

 고려

 교육 기관, 제향

 서원

 개인(사학)

 이황, 이이, 송시열 등

우리나라 명현(서원마다 다름)

 조선(16세기 이후)

 교육 기관, 제향

 

김산향교 전경

나주향교 대성전과 주줏돌  주춧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사찰들이 헐리면서 그 석재를 옮겨 사용한 흔적으로 여겨진다.

 

문선왕(文宣王) 공자(孔子, B.C.552~B.C.479년)

중국 춘추(春秋) 시대의 교육자이며 철학자, 정치사상가, 유교 창시자이다. 공부자(孔夫子)라고도 하며 본명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 노(魯) 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陬邑),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추현(鄒縣) 노원촌(魯原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숙량흘(叔梁紇)이며, 어머니는 안징재(顔徵在)로 니구산(尼丘山)에서 공자를 낳았기 때문에 이름을 구로, 자를 중니라 한 것이다. 그는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위리(委吏, 창고 관리)와 승전리(乘田吏) 등 말단 관리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4성

안자(顔子, B.C.514~B.C.483년)

중국 춘추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회(回)이며, 자는 자연(子淵)이다.

 

증자(曾子, B.C.505~B.C.436년 경)

중국 춘추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삼(參) 이며, 자는 자여(子輿)이다.

 

자사(子思, B.C.483~B.C.402년)

공자의 손자이며 공리(孔鯉)의 아들로 본명은 급(伋), 자는 자사이다. 어려서 증자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맹자(孟子, B.C.371~B.C.289년 경)

중국 전국(戰國)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가(軻), 자는 자여(子與) · 자거(子車 또는 子居)이다.

 

10철

민손(閔損)

자는 자건(子騫)이며,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15년 아래이다.

염경(冉耕)

자는 백우(伯牛)로 노나라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안민 다음으로 평가되며, 악질(惡疾)로 죽을 때 공자가 손을 잡고 병으로 죽음을 탄식하였다.

염옹(冉雍)

자는 중궁(仲弓)이며,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29년 아래이다.

재여(宰予)

자는 자아(子我)로 노나라 사람이다.

단목사(端木賜)

자는 자공이며, 위(衛)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31년 아래이다.

염구(冉求)

자는 자유(子有)이며,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29년 아래이다.

중유(仲由)

자는 자로(子路)이며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9년 아래이다.

언언(言偃)

자는 자유(子遊)이며, 오(吳)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5년 아래이다.

복상(卜商)

자는 자하(子夏)이며, 위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4년 아래이다.

전손사(顓孫師)

자는 자장(子張)이며, 진(陳)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8년 아래이다.

 

송조 6현

주돈이(周敦頤, 1017~1073년)

송나라 도주(道州) 사람으로 자는 무숙(茂叔)이었으나 왕의 이름과 같아 후에 돈이(敦頤)로 고쳤다. 호는 염계(濂溪)이며, 57세에 세상을 떠났다.

정호(程顥, 1032~1085년)

주돈이의 제자이며, 자는 백순(伯淳), 호는 명도(明道)로 송나라 하남(河南) 사람이다.

정이(程頤, 1033~1107년)

자는 정숙(正叔)이며 호는 이천(伊川)으로 정호의 동생이다.

소옹(邵雍, 1011~1077년)

자는 요부(堯夫)이며, 호는 강절(康節)로 하남 사람이다.

장재(張載, 1020~1077년)

자는 자후(子厚)이며, 호는 횡거(橫渠)로 대량(大梁) 사람이다.

주희(朱熹, 1130~1200년)

자는 원회(元晦)이며, 호는 회암(晦菴)으로 휘주(徽州) 사람이다.

주희 영정  주희는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등과 함께 송조 6현으로 일컬어지며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동국 18현

설총(薛聰, 655~?년)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의 대학자로 자는 총지(聰智)이며, 경주 태생이다.

최치원(崔致遠, 857~?년)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자는 고운(孤雲) · 해운(海雲)이며,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시조이다.

최치원 영정과 위패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시무책 10여 조를 올려 귀족의 부패와 지방 세력의 반란 등 사회 모순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읍 무성서원 소장.

안향(安珦, 1243~1306년)

고려의 명신(名臣)이자 학자로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초명(初名)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이다.

안향 영정  안향은 고려의 명신이자 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불린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년)

고려 말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영일(迎日)이며,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다.

김굉필(金宏弼, 1454~1504년)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서흥(瑞興)이며,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 · 한훤당(寒喧堂)이다.

정여창(鄭汝昌, 1450~1504년)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백욱(), 호는 일두(一蠹)이다.

조광조(趙光祖, 1482~1519년)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이다.

이언적(李彦迪, 1491~1553년)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 또는 자계옹(紫溪翁)이다.

이황(李滉, 1501~1570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본관은 진보(眞寶)이며, 자는 계호(季浩) ·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 퇴도(退陶) · 도수(陶叟) · 도옹(陶翁)이다.

김인후(金麟厚, 1510~1560년)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 또는 담재(湛齋)이다.

이이(李珥, 1536~1584년)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며 정치가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 석담(石潭) · 우재(愚齋) 등이다.

성혼(成渾, 1535~1598년)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호원(浩原), 호는 묵암(默庵) · 우계(牛溪)이다.

김장생(金長生, 1548~1631년)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조헌(趙憲, 1544~1592년)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 의병장으로 본관은 배천(白川)이다.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 도원(陶原) · 후율(後栗)이며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김집(金集, 1574~1656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년)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 우재(尤齋)이다.

송시열 영정  송시열은 문장과 서체에 뛰어났으며, 조광조, 이이, 김장생으로 이어진 기호학파의 학통을 충실히 계승 발전시켰다.

송준길(宋浚吉, 1606~1672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은진이며,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박세채(朴世采, 1631~1695년)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 · 남계(南溪)이다.


폐쇄형 대성전  폐쇄형 대성전은 전퇴가 없이 전면에 바로 벽과 출입문을 설치한다. 고부향교.

전퇴 개방형 동무  동 · 서무는 대부분 3칸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배향하는 신위의 수가 많은 대설위의 경우 9칸이나 10칸으로 지어진 경우도 있다. 양주향교.

나주향교 명륜당  명륜당은 스승과 학생이 모여서 교육을 하는 곳이며, 일반적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는 형태를 취한다. 나주향교의 명륜당은 성균관의 명륜당을 모방하여 지은 것이다.

김제향교 명륜당과 동 · 서재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를 말하며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장수향교 외삼문  향교를 출입하는 정문을 가리키며, 대개 2층의 누 또는 솟을삼문 형태로 되어 있다.

옥천향교 내삼문  배향 공간과 교육 공간 사이를 통하는 문으로 상대적으로 외삼문보다 작다.

단양향교 풍화루  외삼문은 향교에 따라 '풍속과 교화', '만물을 교화한다'는 뜻의 풍화루, 만화루 등의 이름을 가진다. 풍화루와 외삼문이 별도로 건립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풍화루에서 외삼문까지 진입하는 동안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경주향교 존경각  경판교는 자료를 보관하는 곳으로 존경각이라 부르기도 한다.

장수향교 홍살문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나무 문으로 신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나 왕릉 등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표시물이다.

남원향교 하마비  하마비는 궁궐, 종묘, 문묘, 성현의 탄생지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워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게 한 것이다.

전주향교 계성사  이 건물은 5성인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의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장수향교 정충복비  향교 안이나 정문 밖으로 세워진 비석들이 주로 고을을 잘 다스린 관리들을 추모하는 공적 기념비인 데 비해, 장수향교 정문 앞의 정충복비는 노비 정경손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고 있다.

전학후묘의 향교 배치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향교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배치된다. 전학후묘의 형태는 다시 명륜당과 동 · 서재가 놓이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강릉향교(위)는 전당후재 형태를, 기장향교(아래)는 전재후당 형태를 하고 있다.

좌묘우학의 향교 배치  정면에서 보았을 때 대성전이 왼쪽에, 명륜당이 오른쪽에 있는 형태이다. 영암향교.

좌학우묘의 향교 배치  정면에서 보았을 때 대성전이 오른쪽에, 명륜당이 왼쪽에 있는 형태이다. 돌산향교.

강화향교 중수비  향교에서는 돈을 내고 입학하는 원납교생을 모집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향교 건물을 개수하거나 중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함이었다.

고성향교  향교촌은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하였던 제역촌의 일종으로 교촌 이외에 마을을 설정하여 군역 · 환곡 · 민고 · 잡역 등의 부담에서 면제 혜택을 주는 대신 향교에 일정한 부담을 하였다.

금산향교 입구

대구향교 양사재  조선 후기의 향교는 교육 기관으로서 기능을 상실하여 대신 그 기능을 담당할 기구를 필요로 하였고, 학교 부흥에 관심이 많은 지방관의 지원을 받아 교육장을 마련한 것이 양사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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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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