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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4 오렌지 햇빛

 

서인숙 시집

2001, 문학아카데미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1710

 

811.6

서6819오

 

문학아카데미 시선 148

Literature Academy Poem Book Series(1989)

 

회감의 서정과

불멸에의 동경

 

서인숙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을 보니 제1부에서 신라 토기나 토우, 조선백자, 백제 와당, 청동거울 등 박물관을 순례하며 얻은 소재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러한 유물들을 통해서 잃어버린 역사와 자아를 탐색하며 '나'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층위들에 대해 사유하고 있다. 박물관이란 고요한 적막 속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시의 화자는 오염되고 훼손된 현재의 시간을 넘어 선 잃어버린 기억들을 떠올린다. 우리의 육신이 갇혀 있는 유한한 시간을 넘어선 '마음이 살고 있는 나의 집'으로 나아가서 찬란하게 빛나던 순수한 시간을 모색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간들을 동경한다. 마음의 이상향인 '보이지 않는 별'을 찾기 위해 오늘도 그는 고통스런 생의 중심에서 '바르르 손을 내밀며'(「수련」) 간절하게 사무치는 그리움의 시를 쓴다. …중략…시를 쓰는 일이란 결국 고독과 적막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 곱게 길러내 하늘에 바치는' 행위이며 '별처럼 반짝이는 연분홍의 수련' 몇 송이 피워내는 일인 동시에, '빛나는 시간들'을 저 먼 곳에서 끌어와 가슴에 묻는 행위, 또는 '보이지 않는 별'을 부르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 소나무는 사철 푸르러 우리의 눈과 정신을 시원하게 해 줄 것이며, 돌 연못에 솟아오른 수련 몇 송이는 지친 우리의 삶을 위무해 줄 것이다.

- 고명수(시인, 동원대 교수)

 

시인 서인숙

1965년 『현대문학』에 수필 「바다의 언어」로 등단.(평론가 조연현 추천)

1979년 『현대문학』 시 「맷돌」을 발표하면서 詩作 활동.(평론가 조연현 추천)

詩集 『살아서 살며』 『먼 훗날에도 백자는 그리움이 남긴 자리』 『세월도 인생도 그리 하거늘

隨筆集 『타오르는 촛불』 『최후의 지도』 『태고의 공간』 『영원한 불꽃』 『마지막 빛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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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문화상(예술분과) 본상 수상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무봉문학상 수상

마산시 문화상 수상

 

국제펜클럽 한국위원(현)

한국시인협회 회원(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현)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여류수필가협회 회장

마산 문인협회 회장

 

여인은 수틀 속 하얀 천에

수를 놓고 있네

불빛 없어도

마음 빛으로

밤새 꽃발을 일구네

함바꽃, 도라지꽃, 접시꽃

꽃씨 터뜨리며

온 마을 불태우네

- 서인숙 「등잔」전문

 

■ 독자를 위하여

 

행복하다.

이 외마디 소리를 하늘과 땅을

향해 외치네.

돌아보면 詩를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름다움이 있었고, 괴로움과 어둠이

있었고, 알 수 없는 처절한 고독의

광장이었다.

목숨의 환희였다.

삶의 충만이었다.

열정을 품어 내는 흙이었다.

이렇게, 소리내어 다스리며

또 다시 이 길을 가야 하는

내가 여기 있다.

세상을 보며

나를 보면서.

 

바다에서

서인숙

 

서인숙 시집

 

Ⅰ. 조선 사발

조선 사발-환생 / 조선 사발-무상 / 말의 도요지에서 / 등잔 / 신라 토기 / 민화 / 토우 / 백제 땅 / 보자기 / 빛살무늬 / 백자의 넋 / 청동거울 1 / 청동거울 2 / 석등 / 박물관 산책 / 함지박 / 달항아리 / 시원의 꿈 / 떡살 / 백제 와당 / 나이테의 부름 / 천전리에서 / 물로 말하는 / 고대 답사 / 토기 1 / 토기 2 / 화로 / 만세 소리 / 순간의 영원

 

Ⅱ. 동백숲

바다 / 노을 / 오렌지 햇빛 / 햇빛값 / 눈꽃 / 벽화 / 목숨 / 침묵 / 뷔페의 죽음 / 수련 / 샐비어 / 가을 햇살 / 섬 / 말 / 지구의 밖 / 잎맥 / 돌 / 꽃이 핀다 / 씨앗 / 동백숲 / 비

 

Ⅲ. 말의 꽃

말의 꽃 / 계단 / 유년의 봄 / 고인돌 / 샛강 / 가을강 / 만남 / 부석사 / 간이역 / 혼불 / 물음의 화살 / 집 / 퓨전 시대 / 적막의 자유 / 풍란 / 비가 / 시련의 늪 / 믿음

 

Ⅳ. 시인의 에스프리

고명수 해설 / 회감의 서정과 불멸에의 동경

 

수련

 

드디어 피었구나

돌연못에 솟아오른 수련 몇 송이

별처럼 반짝이는 연분홍

빛나는 시간들을 저 먼 곳에서 끌어와

놓칠 세라 가슴에 묻었다

 

이제 꽃은 시들었는가

퇴색한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잎새들

바람이 아무렇게나 건드리고 간다

 

그림자 같은 검은 잎사귀 하나

바르르 손을 내밀며

보이지 않는 별을 부르고 있다

 

고대 답사

 

드러나는 인골人骨마다

격렬한 전쟁이 휘몰고 간 상흔,

선사시대가 열려 있다

 

죽은 자는 한을 말한다,

고백한다

 

붉은 흙과 흙의 끝없는 사막,

태양은

불은 토하고

역사의 내부를 향해

비밀을 해치고 찾아 내는 아득한 뿌리의 길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아직 갈 길이 아닌데,

두려움의 감동은

샤보텐꽃으로 피어 과거와 현재

미래마저 물들이고 있다

 

순간의 영원

- 스메타나 교향곡 나의 조국

 

울림이여! 더욱 울려라 하늘 땅을 향해

울림이여! 쏟아져라

쏟아지다 토기에 닿으면

신라는 빗살로 솟아올라

천 사백 년을 연다

저 토기를 뚫어라

내 가슴을 뚫고 지나는 신라의

바람처럼

울림과 빗살의 화음

고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신세계

전쟁이 싸움으로 가지 않고

스스로를 겨냥하는 도전

온통 울림이다

바다, 산, 사람 모두

하나 되어라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의 순간

나는 그 세상에 살고 있나니,

 

박물관 산책

 

죽음으로 살아 남은 사연들이 남긴 흔적

역사의 표정들이 넘치고 있다

 

개미만한 발자욱은

생애를 다해

마음 열어 귀 기울여 유물의 터널을 뚫는다

 

마음의 강 그 깊이에

울음같은 슬픔은

느닷없이 스며오는 외로움

그 허무함 때문일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혼백만 떠도는어둠에서

어딘가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깊은 적막,

 

조선 사발

- 무상

 

비로소

텅텅 빈 오백 년 세월을 보았다

하얗게 하얗게 소리치는

허허한 자유를 보았다

 

저 창 너머

언제나 그리워하던 붉은 노을

여기 가득 고여 있음을,

 

저 창 너머

언제나 그리워하던 붉은 노을

여기 사라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모습도 소리도 없는

나를 보았다

 

조선 사발

- 환생

 

푸르게 물든 그늘에 누워

풋잠 들었을 때

오백 년 세월은 나를 휘감는다

내 짧은 목숨마저 분분이 날아 떨어지면

내 아픔은 목단꽃으로 피어난다

조선 여인의 넋으로 깨어난다

피빛의 선명한 꽃무늬들이

진흙 속에 새겨지면

또 한 세상 살아나는,

살아나는 소리

그 어느 모퉁이

내 사랑 펴놓고

너를 닮은 내가 되고 싶다.

녹음이 짙어지면

그 깊은 곳에서

그대를 만나듯.

 

청동거울 1

 

푸른 빛을 풀어 수천년을 보인다

 

때로는 과거로 앉아

수많은 얼굴을 스친 산사山寺 같은 모습

 

나도 어언 너를 닮아 푸른 날개 펄럭이며

수천년을 산 듯 거울 속에 앉아 있다

 

죄를 씻고 또 씻어낸 신의 말씀

 

구름을 부르고 꽃을 피우며 설레임을 안고

네가 살아왔던 곳을 찾아 헤맸다.

 

내 삶 어느 곳에

스승같은 길잡이

고대를 배우게 한다

 

신라 토기

 

목숨 깊이 새긴

사라져도 사라질 수 없는 부활의 꿈

 

신라의 역사 앞에서

토기의 세월로

마음 열어 한 생애

 

숲 속의 고목 되어

잎새 거느리는

뿌리 깊이

어디론가 흘러가누나

 

멀리 강물소리에 추억 넘쳐

아픈 상처 꽃잎처럼 떨면

단풍진 낙엽 하나 겨울로 가는

 

한 줌

선조의 넋에서 무한을 펼쳐본다.

 

백자白瓷의 넋

 

하얀 색, 하늘에서 흘러온 빛인가

빛과 빛이 마주쳐 하나의 원을 이룰 때

 

시작과 끝, 끝없는 무한의 색으로

태양과 맞서보는 조선의 오백년

우리들 가슴에 묻고 있는 백자여!

너를 닮고 싶구나

 

때로는 초라한 누더기를 음악으로 씻으며

삶을 닦을 때

홀연히 돌아보는 나의 모습

너를 닮고 싶구나

네 빛이 품어내는 무수한 세월의 흔적 속

내가 잃은 시간을 찾아

 

오늘도

너를 따라 나선다.

 

샐비어

 

붉은 강

 

죄 없이

어찌,

이 한 생을 살리

 

에덴의 원죄가

뿌리를 내리고

군락을 이뤄

도도히 흘러가고 있는

저 원색의 뜨거운 욕망들

 

오렌지 햇빛

- 해연에게

 

오렌지나무가 다가와

그리움의 열매를 보여 준다

 

노랑 열매 주렁주렁 청바지에 매단,

아버지의 정원을 잊지 못해 심어나가는

너의 정원,

그 옛날 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처럼

내 마음에 가득 찬다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태평양 파도의 숨결을 마시며

한국과 미국을 한 줄로 긋는다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핏줄의 인연

훌훌이 떠난 정들이

더욱 아프게 가슴을 훑어내는

이 봄,

 

오렌지나무의 햇빛으로 달래본다.

 

목숨

- 델리만曲

 

햇살에 젖은 음향

그 깊고 우람한 터널을 헤치면

낙엽 되어 바람에 날고 잇는

아픔을 본다

 

살아온 세월과 만난다

지워도 지워도 한사코 매달려 있는

꿈을 본다

 

스스로 자맥질하던 붉은 심장이

죄 아닌 죄의 사슬을 감고

속죄하는 목숨

 

한 소절 음률로 피어날까.

 

씨앗

 

지난 봄

하늘을 불러와 하늘빛으로

바다를 불러와 바다빛으로

씨앗을 뿌려 놓았다

 

작은 몸뚱이 속에

꿈 하나

깊은 상념 하나

사랑 하나

그리움 하나

추억으로 가득차,

 

이 작은 테라스에

꽃으로, 잎으로 피어나

제 속의 모든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적막의 자유

- 바하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음률이 끝난 적막은

새로운 영혼을 탄생하여 무한으로 흐르게 한다.

끝없는 시작, 시작없는 끝없음이

저 지평선을 돌아돌아 오면

 

사람은

그리움으로 꽃을 피우고

꽃은 씨앗을 낳아 영원을 약속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일을 가슴에 묻으면

 

아무래도 좋은

자유가 된다.

 

한 소절 음향으로 울린다.

 

꽃이 핀다

 

네 피기까지

모든 것은 그리움이었다.

너를 가꾸었던 나의 눈빛이

너로 하여

나를 알게 하는

네 모습아

더욱 아름다운 빛으로

나를 설레게 했던,

꽃이 핀다

 

꽃이 핀다

그러나 다시 만날 약속은 하지 말자

 

그리움은 남겨두자

 

보자기

 

동화같은 소박한 수를 놓아

나를 싸고

너를 싸서

어딘가 날고 싶다

 

소중한 나의 것, 네 것, 우리 것

모두모두 싸서

전쟁이 없는 어느 땅에서

하느님을 믿으며 살고 싶다

 

목숨하나를 싸고 싶다

죽음을 걸 사내를 싸서

선사시대로 돌아가 원시인처럼

살고 싶다

 

임진왜란 때 도공을 빼앗기지 않으려

조선 여인들은 우리 땅 만큼

보자기를 만들었다.

 

천전리에서

 

천전리 각석이 있는 골짝에 갔다.

 

공룡의 발자국을 딛고 서서

거대한 바위벽에 새겨진

원시의

말을 보았다.

나무, 고기, 우렁무늬, 물결무늬

어느새 노래로 불렀다.

 

해가 지는 능선마다 놀 피고

산새들

돌아와 나무에 앉았다.

 

어디선가

우람한 바람소리

아득한 소리 소리

선사시대는 내 안에 맑고 순수한

지구 하나를 만들었다.

 

 

억만년의 빙하시대를 지나온

강변의 돌

비바람이 새긴 표정들

벌레로, 꽃으로, 나무로

세상이 잃어버린 꿈을 그리고 있느니

 

옛날이여

그 넋의 소리를 다시 들려다오

보탬도 잃음도 없는 영점의 벌판에서

원점을 찾고 있는

세기말의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꿈들을 다시 돌려다오

 

말의 도요지에서

 

빚어도 빚어지지 않는

흙의 흔들림

알아도 알 수 없는

보고도 볼 수 없는

우람한 침묵

펑펑 뚫린 구멍

도공은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은

가마에다 불을 지핀다

활활 붉게 타는 아궁이에서

비로소

싸늘한 언어들이 쏟아진다.

 

혼불

 

내 이름 하나 똑바로 적지 못한다

책더미 속에서 일자 무식꾼이다

 

꿈 하나 이루기 위해

언제나 그

언저리에 서성이며 꽃송이를 피운다

 

혼을 태우고 삶을 태우는

자유였다

 

그 혼불은

컴퓨터 앞에서도

끄덕않는

존재 그것이다.

 

 

아득한 꿈처럼

마음 속에 숨겨둔 집,

섬은

고독과 적막

그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 곱게 길러낸

하늘에 바친다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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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43 한국의 화폐

 

글, 사진 / 장상진

1999,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1

 

082

빛12ㄷ  209

 

빛깔있는 책들 209

 

장상진-------------------------------------------------------------------------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화폐 금융)를 취득한 뒤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화폐 금융)을 이수하고 전주대학교에서 재정학을 강의하였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편찬(화폐 금융분야)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교육부 산하기관의 교육행정사무관으로 재직하였고, 1991년부터 1995년까지 경제기획원 예산실에서 내무부, 통상산업부 등의 예산 편성 업무를 담당하였다.

1996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과 독점국에서 각종 불공정거래행위 감시와 독과점시장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잇으며 현재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 재직중이다.

 

|차례|

 

머리말

우리나라 화폐의 발달과 유통

북한의 화폐

외국 화폐의 유통

유사 화폐의 발달과 유통

조폐 기관

화폐에 관한 생각의 흐름

참고 문헌

현재(1999년) 사용하는 신권 3종.

 

돈에 관련된 속담

 

이들 속담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류하여 살펴볼 수 있겠지만 대개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돈을 제대로 벌고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주인 입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김매는 주인이 놉 아흔아홉 몫을 한다", "병신 주인이 일꾼 열 몫을 한다", "망하는 집 머슴은 배부르고 부자가 되는 집 머슴은 배곯는다", "날일에는 장승이고 도급에는 귀신이다" 등이 있는데 곧 일당을 주는 날일(날삯을 받고 하는 일)로 맡기면 장승처럼 서 있고 빈둥빈둥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면서 마지못해 일하지만 여기까지 하면 얼마 준다는 도급으로 맡기면 성의껏 빨리 끝낸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우러나와서 주인 의식을 갖고 정성껏 일하다 보면 돈이 모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설명한 내용이다.

둘째,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면서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돈은 많아도 걱정이요 적어도 걱정이다", "돈이면 산 호랑이 눈썹도 뽑아 온다", "돈 나는 모퉁이 죽는 모퉁이"(힘들이지 않고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하면 자칫 목숨까지 잃을 우려가 있으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돈을 버는 것이 부자가 되는 왕도라는 것을 시사함), "돈 있는 사람이 돈 걱정 더 한다",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하고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춘다", "돈 한 푼 손에 쥐면 손에서 땀이 난다", "돈만 잇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다", "돈 없으면 적막 강산이요, 돈 있으면 금수강산이라" 등이 그러한 내용으로 돈의 위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돈을 함부로 할 때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셋째, 돈은 알뜰하게 모으고 쓸 때는 아껴서 써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나무를 아껴 때면 산신령이 복을 준다", "바닷물도 쓰면 줄어든다", "조밥도 많이 먹으면 배부르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 "없을 때 참아야 하고 있을 때는 아껴야 한다", "입하고 주머니는 동여매야 한다", "입과 곳간은 닫아 두어야 한다", "싸라기 한 말에 7푼 5리라도 5리 없어 못 먹는다". "한 푼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한 푼때문에 운다", "가마 안 천 냥이 가마 밖 만 냥보다 낫다", "내 돈 서푼이 남의 돈 400냥보다 낫다", "못 쓰면 끈 달아 쓰라",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일찍일찍 일어나면 부자된다", "초생달은 부지런한 며느리만 본다" 등이다.

이들 속담은 적은 돈부터 모아야 부자가 되는 것이고 이렇게 모아야 없을 때 당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구두쇠가 되라는 것은 아니고 쓸 때는 때를 놓치지 말고 써야 한다는 속담도 많다. 예를 들면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는다", "새 잡아 잔치할 것을 소 잡아 잔치한다", "좁쌀만큼 아끼다가 담장돌만큼 손해본다", "돈 지고 저승 가는 사람 없다"(돈은 죽은 뒤에는 못 쓰는 것이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구두쇠 노릇만 하지 말고 쓸 데는 쓰라는 뜻),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등이다.

넷째,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어렵고 소중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오는 복은 기어오고 나가는 복은 날아간다", "재물은 모으기보다 지키기가 어렵다", "도깨비가 가져다 준 돈은 땅을 사라", "돈 번 자랑말고 쓴 자랑하랬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쉽게 벌면 쉽게 나간다", "부자 3대 안 간다", "돈 많으면 자식 망친다", "이세상에서 적선하면 저세상 가서 복 받는다", "돈을 가두어 두면 썩어 귀신이 되어 주인을 해코지한다", "돈 모아 줄 생각말고 자식 글 가르쳐 주랬다", "자식에게 금 상자 물려주는 것이 책 한 권 물려주는 것만 못하다", "자식에게 천금을 주는 것이 한 가지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만 못하다" 등이다.

다섯째, 돈보다 소중한 것이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이 지개(志槪)이다"(돈으로 모든 물건을 살 수 있으나 사람의 의지와 기개는 살 수 없다는 뜻), "사람이 돈을 이겨야지 돈이 사람을 이겨서는 안 된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검게도 만든다", "돈이 있는 집은 입만 보아도 알고, 덕이 있는 사람은 겉만 보아도 안다"(돈이 있는 사람은 그가 살고 있는 집만 보아도 알 수 있고 덕이 있는 사람은 그의 외모와 언행만 보아도 알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돈보다는 덕이 중요함을 시사함) 등이다.

여섯째, 금전 거래는 신중하고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속담이다. "돈 빌려 주고 친구 잃는다", "돈은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 "빚 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마라", "빌려 간 사람은 잊어버려도 빌려 준 사람은 안 잊는다", "오뉴월 품앗이도 먼저 갚으랬다", "삼 년 벼르던 전답도 다시 돌아보고 산다", "아랫목에서 받은 돈도 윗목에서 세야 한다""금은 달아서 받고 돈은 세어서 받는다" 등이다.

조선시대의 상평통보.

무문전(無文錢)  고려 초기에 주조된 무문철전으로 두드려 만들었기 때문에 만들기가 쉬웠다. 유통 수단보다는 부장용(副葬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소은병  은병의 불법 주조로 인한 가치 하락 때문에 제조된 것으로, 실질 가치는 구은병보다 약 50퍼센트 높게 평가되었다. 실물은 전하지 않는다.

대전통편  조선시대의 법전으로 '호조'편에 저화의 가치를 서술한 부분이 있다.

당백전  격심한 재정란을 해결하고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1866년 호조에서 주조된 '대(大) 자' 당백전이다.

대동3전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최초의 서양식 주화로 뒷면의 작은 원 안에 호조에서 제조되었음을 알리는 '호(戶)' 자가 있다. 1882년에 주조되었다.

최초로 발행된 신식 화폐  1888년 '개국 497년'의 연호로 10문(위), 5문 적동화(가운데) 및 1환 은화(아래)를 발행하였다.

5냥 은화  은본위 제도로 전환하고자 「신식 화폐 조례」를 제정하여 1892년에 본위 화폐인 5냥 은화를 주조하였다. 이것은 해관세 수납이나 외국과의 교역에 주로 쓰였다.

보조 화폐  2전 5푼(위), 5푼(두번째), 1푼(세번째, 네번째) 동화는 표준 화폐인 1냥 은화의 보조 화폐로서 주조, 유통되었다.

1냥 은화  1892년에 국내 유통을 목적으로 주조되었고 본위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

권틀  50냥을 주조할 수 있는 호조태환권을 찍어 낼 수 있는 틀이다.

10전 은화

5전 백동화

1전 청동화

반전 청동화

20환 금화

10환 금화

5환 금화

반환 은화

20전 은화

다이이치은행 주조 화폐  1905년(광무 9) 1월 「화폐 조례」를 공포, 최초로 근대 화폐 제도로서의 금본위제가 실시되었다. 발권은행은 일본의 다이이치은행으로 모두 9종이 주조되었다. 10전의 은화, 5전의 백동화, 1전과 반전의 청동화, 20환 · 10 · 5환의 금화, 반환 · 20전의 은화가 있다. 위의 화폐는 1905년에서 1908년 사이에 주조된 것이다.

한국은행권 3종  1910년 12월에 1원권을 필두로 5원권, 10원권이 발행되었으나 다이이치은행권의 양식과 큰 차이는 없었다.

을 10원권.

병 10원권.

정 10원권.

을 100원권.

병 100원권.

미 군정기의 은행권  1945년 9월에 을 100원권(네번째)을 시작으로 을 10원권(첫번째), 병 100원권(다섯번째)이 나왔고 이듬해에는 병 10원권(두번째), 정 10원권(세번째)이 발행되었다.

신 10원권과 5원권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9월에는 급격한 통화 팽창에 따라 조선은행 중심권의 종류가 고액권으로 이행되었다.

신 소액 은행권  1949년 11월에 50전, 10전, 5전권 등의 소액권을 발행하며 화폐 제도의 정비를 꾀하다가 1950년 '한국은행'이 발족되었다.

한국은행권  정부는 적성 통화의 유통을 막아 적군의 경제 교란 행위를 봉쇄하기 위해 '제1차 통화조치'를 취하였다. 위는 500원권과 1,000원권이다.

신 한국은행권  한국조폐공사는 1951년 10월 신 100원권과 신 1,000원권을 인쇄함으로써 조폐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미 연방 인쇄국 제조은행권  전란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고 통화 안정을 위해 '제2차 통화조치' 때 미국에서 제조하여 반입된 은행권이다.

1환권과 5환권  1953년 2월 '원'에서 '환'으로 개칭한 다음 10환, 100환, 1,000환권을 발행하였다. 이때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형광 물질을 넣어 자외선을 비추면 색이 바뀌도록 특수 제조되었다.

1962년의 고액권  구 환화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화폐 단위를 '원'으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3차 통화조직'가 있었다.

1962년의 소액권  '제3차 통화조치'의 결과로 발행된 소액권에는 1원권, 5원권, 10원권 3종이 있다.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주화  1966년에는 구 환화에 대체할 목적으로 원화 표시 주화가 순수한 국내 기술에 의해 주조되었다.

최초의 은화 삽입 은행권  5,000원권에는 율곡 이이, 1만원권에는 세종대왕을 은화로 삽입하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금속선을 삽입하였으며 자외선 감지 요소를 인쇄하였다.

표준 영정  고액권 용지의 국산화와 표준 영정 채택을 위해 신 5,000원권과 신 1만원권을 발행하였다. 은행권의 지질도 1979년부터는 내구성과 인쇄 적성이 개선된 면섬유를 사용한 새로운 용지로 대체하였다.

한국은행 최초의 주화  1959년 10월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국에서 제조한 100환 니켈화, 50환 백동화, 10환 청동화이다. 이승만 대통령 초상과 거북선, 무궁화 등을 도안하였다.

한국은행 최초의 국내 제조 주화  1966년 8월, 환에서 원으로 단위가 바뀌었으며 순수한 국내 기술에 의해 동과 아연으로 1원화와 5원화, 10원화가 주조, 발행되었다.

제42회 세계 사격 선수권 대회 기념 주화  1978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대회의 기념 주화로 5,000원화 10만 개, 500원화 99만 7,000개를 발행하였다.

광복 30주년 기념 주화  1975년 8월 15일, 국내 기술로는 처음으로 발행한 기념 주화이다. 100원 백동화 500만 개를 한국조폐공사에서 직접 제작하였고 2,000개는 프루프화로 제조되었다.

제1차 화폐 개혁의 15전권.

제1차 화폐 개혁의 20전권.

제1차 화폐 개혁의 50전권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토대를 구축하고 남한으로부터의 화폐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화폐 개혁을 실시하였다.

보조 주화 3종  1959년 보조 화폐와 같이 발행하였던 1전, 5전, 10전의 보조 주화이다.

제2차 화폐 개혁의 10원권  인플레이션과 새 경제 체제에 따른 투자 재원의 확보를 위해 제2차 화폐 개혁에서 6종의 은행권과 3종의 주화를 발행하였다.

제2차 화폐 개혁의 50원권.

제2처 화폐 개혁의 100원권.

제3차 화폐 개혁의 50원권  1979년 4월에 있었던 제3차 화폐 개혁에서는 종전의 조선 중앙은행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으로 이름이 바뀌고 은행권 5종과 주화 50전짜리를 새로이 발행하였으며 구 은행권의 유통을 금하였다.

제3차 화폐 개혁의 100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1원권  제4차 화폐 개혁으로 5종의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1979년 발행하였던 동일 액면의 구 은행권의 유통은 금지하고 신 은행권과는 1 대 1로 교환하였다. 그러나 종전의 일반 주화는 그대로 유통시켰다.

제4차 화폐 개혁의 5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10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50원권.

제4차 화폐 개혁의 100원권.

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1979년에 발행된 특수 화폐의 일종이다. 위는 내국인용이고 아래는 외국인용이다.

비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1979년에 발행된 특수 화폐의 일종이다. 위는 내국인용이고 아래는 외국인용이다.

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1988년에 무역은행에서 발행한 특수 화폐의 일종으로 적색이며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별 없이 쓰인다.

비사회주의국가와 바꾼돈표  녹색으로 앞면에는 외화와 바꾼돈표라는 문구와 북한을 상징하는 문양이 들어가고 앞뒷면에 동일하게 숫자가 들어간다.

1원 은화  개항이후 개항장에는 일본 상인이 건너와 일본의 본위 화폐인 1원 은화를 대량 유통시켰다.

마제은  1894년 전후에 우리나라에 유입되어 대규모 상거래에서 주요 사용하던 말굽 모양의 은괴이다. 그러나 유통액도 그리 많지 않았고 부의 저장 수단으로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기 어음  금전출납부 형식으로 특이하게 어음을 책에 붙여 놓아 당시의 어음 상황을 알 수 있다.

어음  금액을 적어 반으로 나눠 채무자와 채권자가 한 편씩 나눠 갖는다. 차용 증서 대신 작성, 교부하며 지급일이 되면 맞추어 보고 현금을 지급한다.

인천전환국  1892년 당시의 모습이다. 인천전환국을 신설한 이유는 일본의 영향이 강한 곳에 전환국을 설치하여 우리의 화폐권을 보다 용이하게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주머니형 열쇠패  별전의 일종으로 길이는 9센티미터이고 총길이는 49센티미터이다. 조선 말기인 고종시대에 만들어진 열쇠패는 당시 상류사회에서 신부의 귀중한 혼수품이 되었으며 가보처럼 소중히 여겨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별전  높이 18센티미터, 너비 15센티미터의 별전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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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 과학으로 여는 세계 불가사의 2

 

이종호 지음

2006, 문화유람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1303

 

001.44

이75세 2

 

신과 미지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인간들의 이야기

 

이종호

과학자이자 고대 문명 탐사가.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탐사하며 연구를 시작해 기초 없이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 등으로 20여 개 국가에서 특허권을 얻는 등 지금도 문명과 과학 · 역사를 넘나들며 많은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프랑스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 취득

·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 제출상 수상

· 해외유치 과학자로 귀국

· 한국과학기술연구소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활동

· 과학기술처장관상 · 태양에너지학회상 ·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저서>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현대과학으로 다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박택규 공저)

『피라미드 과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물리, 화학, 생리 의학)』 등 다수

 

contents

 

머리말

 

1부 전설을 만든 사람들

1장 | 모세 기적의 무대를 찾아서

2장 | 시바의 여왕은 누구인가

3장 | 알렉산드로스대왕과 석굴암

4장 | 역사를 휩쓸고 사라진 인물, 아틸라

5장 | 마르코 폴로의 너무나 길고 멀었던 여행

 

2부 인간수수께끼

6장 | 아서왕과 몽타쥬

7장 | 잔 다르크를 둘러싼 소문들

8장 | 드라큘라는 족보가 있다

9장 | 노스트라다무스가 보낸 암호

 

3부 극한에 선 인간들

10장 | 검투사의 영광과 비애

11장 | 사라진 로마군단

12장 | 정조대와 남자들의 착각

13장 | 인간의 상상력과 잔인함이 빚은 마녀사냥

14장 | 기요틴, 인간에 대한 마지막 자비

15장 | 도곤족의 시리우스 미스터리

 

미주

참고문헌

광주리를 타고 나일강을 떠내려가던 어린 모세는 우연히 이집트 왕녀(파라오의 누이)에게 발견되어 이집트의 왕족이 된다.

메렌프타 왕의 석비로 역사 기록에 충실했던 고대 이집트의 유물 중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모세의 탈출과 같은 대사건에 대한 이집트측의 기록이 없다는 점을 들어 모세의 이야기는 창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위는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 아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최초로 통일 왕국을 세운 사르곤 왕.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어머이 실비아가 군신(軍神) 마르스에게 겁탈을 당해 낳은 쌍둥이 자식들로 광주리에 넣어진 채 티베르 강에 버려졌다. 이들은 우연히 광주리를 발견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 훗날 로마를 건국한다. 사르곤 왕의 신화와도 공통된 부분이 많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려보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나이반도 남쪽에 있는 시내산.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여호와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을 받는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으로 가던 중 다시 이 산에 올라 여호와로부터 '십계(十戒)'를 받는다.

로마에 있는 모세상.

서아시아 시리아 사막 가운데에 있는 유적지 팔미라. 구약성서에는 '타테몰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시바의 여왕이 이 지역의 여왕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솔로몬을 만나는 시바 여왕.

아라비아반도에서 예멘의 수도 동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1,200미터 고원에 있는 도시인 마리브의 유적지. 고대 시바 왕국의 수도였다는 주장이 있다.

언약의 궤(법궤). 하나님과 인간의 약속인 10가지 계명이 새겨진 석판이 안에 있다.

에티오피아 악숨에 있는 시바의 목욕탕.

이집트 제18왕조 제5대의 여왕, 하트셉수트.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장제전은 파라오의 장례와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 파라오의 영혼이 쉬는 공간이다.

젊은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대왕(Alexandros the Great, 기원전 356~323).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그는 이집트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가 왕으로 재직한 기간(재위 기원전 336~323)은 길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 아폴론신전의 무녀들로부터 '천하무적'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집트의 아몬 신전에서는 '신의 아들'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인 디오게네스와 만나고 있다. 디오게네스가 햇빛을 쬐고 있을 때 알렉산드로스가 찾아와 소원을 물었을 때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나 말라고 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는 "내가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호메로스의 시를 애독하여 원정(遠征) 때도 그 책을 지니고 다녔으며, 학자를 대동하여 각지를 탐험하고 측량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면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무덤을 찾은 알렉산드로스.

긴 창으로 무장한 알렉산드로스 군대의 보병으로 영화 <알렉산더>의 한 장면이다. 기병들이 귀족으로 이루어졌던 것과 달리 보병은 주로 농민들로 구성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와 페르시아군의 이수스전투를 그린 모자이크화로 폼페이에서 발견되었다.

건축가 데이노크라테스가 중건했다고 하는 에페수스(에게해 연안의 터키 지역에 있다)의 아르테미스신전. 아르테미스신전은 파르테논신전의 4배쯤 되는 규모로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신전 중 가장 규모가 컸으며 대리석으로 지은 최초의 신전이기도 하다. 이 신전은 고대의 문명세계에서 성소로 숭배되었는데 알렉산드로스는 이곳을 방문한 뒤 "나는 막강한 도시 바빌론에서 마차들이 달리던 성벽도 보았고, 제우스신상과 공중정원, 피라미드, 마우솔로스 왕의 무덤도 보았다. 그러나 내가 아르테미스신전을 보았을 때는 해가 구름 속으로 막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내게 말했다. '올림피아를 제외하고 이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르테미스신전은 필론이 말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시작된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는 "아름다운, 참으로 아름다운", "영원히 기억될 만한", "너무나 장엄한", "참으로 찬란한" 등과 같은 고대 시인들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지마다 그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들을 세우며 세계 국가를 꿈꾸었는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는 불행히도 당시의 영화를 돌아볼 수 있는 유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사진은 알렉산드리아가 건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축조된 지하묘지.

대 페르시아제국을 격파한 알렉산드로스가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며 고대 오리엔트의 전설적인 도시 바빌론입성하고 있다.

정복자이자 탐험가로 끝없이 전장을 누볐던 알렉산드로스의 삶을 보여주는 부조.

인도 중부 보팔 근처에 있는 산치대탑으로 인도의 불교 발전사를 집약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인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불교 조각 예술의 극치를 보여 준다. 지금의 모습은 아소카 왕(재위 기원전 286~232)이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 기념하기 위해 지은 일종의 무덤탑 위에 외부를 더 확장한 것으로 1818년 한 영국인에 의해 발견된 뒤 1912년에서 1919년 사이에 복원되었다. 산치대탑에는 부처와 아소카 대왕의 삶이 조각되어 있다.

부처 조각상으로 마투라 영향을 받았다.

고행을 하는 부처상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간다라 미술의 대표작이다.

19세기에 시돈(지금의 레바논 근처)에서 왕실묘지가 발굴되었는데 그중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석관으로 믿어지는 것이 발견되었다.

헝가리에 있는 아틸라 동상. 유럽에서는 공포와 악을 상징하는 존재였지만 헝가리에서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헝가리 역사의 출발점에 그가 있기 때문이다.

훈족이 연회를 즐기는 광경.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효과적인 무기에 전투술이 뛰어난 훈족의 공격은 파괴와 승리 그 자체였다.

황제 발렌티니아누스3세의 어머니로 훈족의 대왕 아틸라와 협력하고 다투며 서로마제국의 최후를 장식했던 여걸인 플라키디아의 마우솔레움(무덤 건축물) 천장 장식.

유럽 역사에 '신의 징벌'로 불릴 만큼 공포의 대명사로 통했던 아틸라(Attila)는 뿔이 달린 악마로 묘사되기도 했다.

물의 도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훈족의 공격이 있자 해안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이 "나도 여기에 왔다"라는 뜻으로 한 "베니에티암"이 지금의 도시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교황 레오1세와 아틸라가 만나는 장면으로 라파엘로의 그림이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꼽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1200년경에 쓰여진 게르만 문학의 고전, <니벨룽겐의 노래>를 토대로 바그너는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를 썼다. 이 오페라에 감동한 바비에르의 왕 루이2세가 직접 설계해 성이 건설되었는데 안쪽의 벽면은 <니벨룽겐의 노래>와 관련된 벽화들이 장식하고 있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훈족이 독일 지역을 휩쓸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웅 서사시이다. 훈족은 독일 중부 라인 지방에 게르만족 일파가 세운 부르군트 왕국을 437년에 멸망시킨 적이 있는데 이후 453년, 훈족의 왕 아틸라는 갑자기 잠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게르만족 출신의 왕비 옆에서 급사한다. 게르만인들에게는 이 사건이 왕비가 복수극을 펼친 것으로 전승되었고, <니벨룽겐의 노래>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훈족이 쓰던 동복(청동솥).

전설이 된 아틸라의 최후.

영화 <아틸라>.

한때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무역을 독점하며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해상 도시국가를 이루었던 베네치아의 상징인 성 마르코 대성당과 광장. 역사적으로 유명한 상인들 중에는 베네치아 출신이 많다. 광장을 중심으로 긴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데 여기에는 오래 전부터 '플로리안' 같은 유명한 카페들이 있어 저명한 문인들이나 사상가들이 흔적을 남겼다. 나폴레옹은 이 광장을 "유럽의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 출신의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클라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eos, 85?~165?)(위)와 그의 세계지도(아래). 그가 남긴 천문학 지식은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만 해도 최고 수준이었다. 유럽에서는 15세기가 되어서야 그의 천문 지식을 이해하는 학자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바탕에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같은 학자가 탄생했다.

카라코룸(Karakorum). 1235년에 몽골 원조의 제2대 황제 오고타이가 몽골 고원의 중심에 세운 몽골제국의 수도로 유라시아 각지에서 많은 사절과 전도사와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쿠빌라이가 수도를 중국의 베이징(北京)으로 옮길 때까지 약 20년 동안 번성했다.

동로마(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쳐 있는 도시로 중근동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마르코 폴로의 아버지와 숙부는 한때 이곳에서 상인으로 활약했다.

몽골제국의 5대 황제(칸)이자 중국 원나라의 시조인 쿠빌라이칸(1216~1294). 일찍이 몽골의 중국 방면 대총독에 임명되었던 그는 형 몽케칸이 사망하자 치열한 내부 다툼을 거쳐 수도를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으로 하는 원나라를 세웠다. 그는 멀리 티베트는 물론 베트남까지 공략했으며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대부분을 장악했다. 세조(世祖)로 불리기도 한다.

아버지, 숙부와 함께 동방으로 멀고 먼 여행을 떠나는 마르코 폴로. 그러나 그는 25년이 지난 뒤에야 베네치아로 돌아온다.

고비 사막. 마르코 폴로는 톈산 남로를 거쳐 고비 사막을 지나 중국에 도착했다.

중국 간쑤성 서쪽에 있는 돈황(敦煌, 둔황이라고도 함) 석굴. 수많은 동굴에 갖가지 벽화와 조각이 넘치는 불교의 세계적인 유산이다. 돈황 석굴이 근처에 있는 돈황은 오아시스 도시이자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동서가 교역을 하고 문화를 교류하는 거점이었다.

위먼관 망루. 돈황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며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로 중국의 서역 진출의 관문이었다.

베이징 교외에 있는 루거우차오(노구교)는 마르코 폴로가 서양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소개하며 유명해져 '마르코 폴로 다리'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다리는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시발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그해 7월 7일 다리 근처에서 야간 전투훈련을 실시하던 일본군이 총소리를 듣고 즉시 점호를 해보니 병사 한 명이 없어져서 중국군과의 전투에 돌입하는 사건(노구교 사건, 7 · 7 사변이라 부르기도 한다)이 일어난 것이다. 나중에 그 병사는 용변을 보러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글래스턴베리 토어(토어는 켈트어로 언덕의 뜻). 아서왕이 떠났다고 하는 아발론이라고 하는 신비한 땅의 위치를 두고 학자들의 주장이 갈리는데 그중에서 글래스턴베리 토어 지역이 가장 유력하다. 언덕 정상에는 의문의 탑이 하나 있는 등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곳이다.

영국 윈체스터 성에 있는 아서왕의 원탁.

잃어버린 성배를 찾아서 떠나는 모험은 수많은 중세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소재였다.

글래스턴베리에 있는 챌리스 우물로 요셉이 성재를 숨긴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프랑스 랭스에 있는 랭스 대성당. 프랑크의 메로빙거 왕조를 세운 클로비스1세 이후로 프랑스의 왕들은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랭스 대성당에서 열린 샤를7세의 대관식과 잔다르크.

샤를7세.

프랑스 루앙에 있는 잔다르크 탑. 잔다르크가 영국군에게 사로잡힌 뒤 종교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갇혀 있던 곳이다.

파리에 있는 잔 다르크(1412~1431)의 동상. 잔 다르크는 사후 가톨릭의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1897년에 발표한 드라큘라 소설로 유명해진 영국의 작가, 스토커(B. Stoker, 1847~1912).

1931년에 개봉된 영화에서의 드라큘라.

드라큘라 영화에 등장하는 희생자들은 흔히 미모의 여인들이다.

드라큘라 전설의 배경이 되었던 브란 성. 드라큘라 성으로 더 유명한 이곳은 루마니아 남부의 아르제슈주(州) 쿠르테아 데 아르제슈시(市)에 있다.

블라드 드라큘라.

블라드 드라큘라가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말뚝을 박아 죽이는 것이었다.

모하메드2세. 블라드 드라큘라의 상대는 불행히도 비잔틴(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오스만제국의 정복자, 모하메드2세였다. 모하메드2세의 줄기찬 유럽 공략 앞에서 드라큘라는 파란 많은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

엘리자베스 바토리(Elizabeth Bathory, 1560~1614). 아름다움을 뽐내며 수많은 정부를 거느리고 살았던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외모에 집착하는 만큼 세월이 주는 주름살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포의 축제를 열며 성을 피로 물들이는 것이었다.

흡혈박쥐의 이미지는 흡혈귀(吸血鬼)를 연상시킨다. 실제 흡혈귀를 뜻하는 '뱀파이어(Vampire)'에는 흡혈박쥐의 뜻도 있다.

동방정교는 '그리스정교'라고도 한다. 로마 교회는 전체 교회를 로마 · 콘스탄티노플 · 알렉산드리아 · 안티오키아 · 예루살렘의 5대 교구로 나누어 관할했다. 그러나 7세기부터 이슬람 사라센제국이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교구를 제외한 지역을 점령했고, 이후 두 교구가 동서(東西) 양쪽에서 세력을 확보해 간다. 이 과정에서 동방의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황제를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하는 반면 서방의 로마 교회는 황제권과 독립된 입장을 견지하는 등 견해 차이가 커졌다. 결정적으로 11세기에 로마 교황 레오9세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정면충돌하면서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로마 교회와 갈라져 동방정교(그리스정교)로 독립하였다. 사진은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중심이었던 성 소피아 대성당.

르네상스 시대에 프랑스에서 태어난 천재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1503~1566).

몽펠리에 의과대학(위)과 1543년의 인체 해부 강의 모습(아래).

'검은 죽음(The Black Death)'이라고 부르던 페스트가 중세 유럽을 휩쓸던 모습.

1591년에 로마에 세워진 교황 식스투스5세(재위 1585~1590)의 대리석 조각상. 그에 의해 로마의 모습이 바뀌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산 피에트로 광장에 있는 높이 40미터의 거대한 오벨리스크이다. 이집트의 태양 신앙의 상징물인 이 오벨리스크는 로마의 황제가 기원전 10년 이집트 정복 기념으로 가져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 세웠던 것으로 식스투스5세가 지금의 위치에 옮기면서 우상물 꼭대기에 십자가를 안치하고 기념 미사를 거행하였다.

1555년에 출간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

1666년 런던에서 일어난 대화재를 기념하는 탑(위)과 탑 아랫부분의 부조(아래). 9월 2일 일요일 아침에 빵집 푸딩 레인에서 시작한 불은 5일 동안 계속되며 런던의 주택 80퍼센트를 태워버렸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스무스 역의 러셀 크로우가 콜로세움에서 싸우는 장면.

로마의 콜로세움 옆에 서 있었다는 네로의 거대한 동상(콜로소). 아래 그림은 콜로세움을 복원한 모습으로 경기장 위는 흰 천을 덮을 수 있었다.

콜로세움의 격투장 지하는 수많은 방과 복도로 되어 있다.

검투사들의 격투 장면을 그린 기원후 3세기경의 모자이크화.

클레오파트라의 미라.

로마로 이어지는 아피아 가도. 고대 로마 최초의 포장도로였다고 한다. 로마제국은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유럽 각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잘 닦아 놓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로마군의 캠프가 설치되었던 터를 공중에서 본 모습. 로마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곳곳에 요새와 캠프를 설치했다.

로마군의 유명한 전술인 거북이대형을 재현한 모습. 원통형의 방패인 스쿠툼으로 외부를 완전히 가리고 창인 피룸과 글라디우스라는 칼만 바깥으로 내놓으면 대형 하나는 움직이는 요새가 된다.

중국 역사에 손꼽히는 미녀로 흉노와 한나라의 화친을 위해 희생양이 되었던 왕소군(王昭君). 중국 한나라 원제(재위 기원전 49~33) 때의 인물로 그녀가 후궁으로 있을 때 궁중화가인 모연수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그녀의 일그러진 초상화가 왕에게 보내졌다. 원제의 눈에 들지 못한 왕소군은 한나라와 흉노의 화친을 위해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와 정략 결혼을 올릴 여인으로 뽑혔다. 왕소군이 떠날 즈음 그녀를 보게 된 원제는 절세의 미모와 단아한 분위기에 반했으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원제는 크게 노하여 궁중화가인 모연수를 참형에 처했다고 한다. 그 뒤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중국 문학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사진은 한나라 때 북방의 기마민족에 대항하기 위해 쌓았던 만리장성.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만리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때 건설된 것이다.

고대 로마군의 복장을 한 채 그들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중국 간쑤성의 리첸 마을 사람들.

정조대.

교황 식스투스4세(1414~1484). 그는 성직자들에게 축첩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펼쳤다,

파리 클루니 박물관에 있는 정조대.

독일 로텐베르그 중세 범죄박물관에 있는 정조대.

마녀에 대한 이미지를 그린 그림으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페스트의 창궐과 대기근, 오스만제국의 침략, 백년전쟁, 종교의 타락과 분열은 한편 새로운 희생양을 필요로 했고 그것은 '마녀'로 나타났다.

막상 마녀를 색출한다고 하더라도 마녀임을 증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은 마녀로 지목된 자를 고문해서 고백을 받거나 주위의 증언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한번 마녀로 지목되면 더 이상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마녀사냥꾼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온갖 무자비한 도구들을 동원해 상상할 수 없는 갖가지 고문들을 용의자에게 가했다.

마녀사냥꾼을 그린 그림으로 마녀사냥꾼으로 유명했던 매튜 홉킨스(위의 인물)도 등장하고 있다.

마녀재판.

인노캔티우스3세(1161~1216). 그가 교황으로 있던 시기(재위 1198~1216)는 교황권(敎皇權)의 절정기였다.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오토4세를 굴복시키는가 하면 영국의 존 왕을 파문해 그를 굴복시켰다. 제4회 십자군(1202~1204)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것도 그의 재임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톨릭에 맞서 종교개혁을 부르짖었던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도 마녀사냥에서만큼은 같은 목소리를 냈다.

마녀사상의 지침서가 되었던 <마녀들의 쇠망치> 표지. 이 책의 출간 시점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견된 이후라는 것은 비극이었다. 당시 이 책은 유럽을 휩쓰는 베스트셀러가 되며 마녀사냥을 이끄는 지침서가 되었다.

마녀를 화형으로만 처벌한 것은 아니다. 마녀 고문에도 그 방법이 다양했던 것처럼 마녀를 처형할 때도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었다.

1년에 한 번씩 열린다고 하는 마녀의 연회(Sabbath)로 1626년에 그린 것이다.

참형(목을 자르는 형벌)을 기다리는 젊은 여성.

카란 모스크(이슬람 사원)의 정문 앞에 있는 높이 47미터의 카란 미나레트. 우즈베키스탄의 고도(古都) 부하라에 있다. 이 탑은 12세기 무렵, 이슬람 신도들에게 기도 시간을 알려줄 용도로 건설되었지만 19세기 중반까지 죄인을 떨어뜨려 죽이는 공개처형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부하라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동방원정군은 물론 칭기즈칸도 입상했던 도시로 실크로드의 중요 경유지였다. 이슬람문명의 절정기에는 부하라에만 300개의 이슬람 사원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카란 모스크는 약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사원이다.

기요틴.

역사적 사건의 발단이 된 마리 앙투네아트의 목걸이.

기요틴 앞에서 처형을 기다리는 루이16세(위)와 마리 앙투아네트(아래).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의 최고 사형집행관으로 1778년에서 1793년 퇴임할 때까지 2,900명 이상의 사형을 집행한 상송의 편지에 따르면 루이16세는 종교적 수련으로 단련된 인물이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단두대 앞에서 루이16세는 윗옷을 함부로 벗는 것은 예의범절에 벗어난다며 코트 벗기를 거부했다. 사형집행관이 절차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하자 그는 스스로 코트를 벗었다. 수갑도 차기를 거부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상송은 편지에 "파리, 1793년 2월 20일. 프랑스 공화국 원년"이라고 적은 뒤 "시민들이여, 이것이 위대한 날의 진실이다. 여기에 확신을 가져도 좋다"라고 적었다.

프랑스가 베트남에 기증한 기요틴.

밤하늘에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와 주위의 별들. 시리우스는 한국과 중국에서 천랑성(天狼星)이라고도 부른다. 태양과 같은 거리에 있다면 태양보다 약 25배 밝다고 한다.

인간의 육안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천문학 지식을 갖춘 도곤족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스의 천문학 서적.

갈릴레오가 천문 관측에 썼던 망원경.

도곤족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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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41 한국의 약수

 

글 / 민병준●사진 / 남승찬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0

 

082

빛12ㄷ  208

 

빛깔있는 책들 208

 

민병준-------------------------------------------------------------------------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사람과 山」 편집부에 근무하였다. 1996년 한국잡지탄생 100주년 기념 제30회 한국잡지언론상 기자부문을 수상했으며, 동아일보에 '민병준의 등산 안내'를  연재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파키스탄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125미터)을 등반했다.

현재는 여러 잡지사와 사보 등에 나라의 산천과 문화유적 관련 기획 등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남승찬-------------------------------------------------------------------------

일본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현재 국내 다큐멘터리 전문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차례|

 

한국인과 물

약수로 불리는 광천수

한국의 약수

약수의 보존과 미래

약수터 지도 모음

참고 문헌

울릉도 봉래폭포  저동천(苧洞川)의 수원지인 주삿골에 잇다. 성인봉의 원시림을 뚫고 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정도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에서 무한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달기약수 영천제  약수에는 물의 생명력에 '약'이라는 말을 붙여 의술적인 치유력을 빌었고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에 제사지낸다.

불바라기약수 구멍  약수에는 각종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그 성분에 따라 약수의 독특한 맛과 색이 결정된다. 위의 불바라기약수는 칠 성분이 강하여 주변의 돌이 붉게 변하였다.

명암약수터 산신각  약수의 영험을 높이기 위해 산신령 신앙과 결부시켜 약수를 미화하고 과장하려는 경향을 알 수 있다.

오색약수  알칼리성으로 위장병. 신경 쇠약, 피부병, 신경통 등에 좋은 오색약수에는 구멍이 모두 세 개인데 물가 너른 암반에 있는 약수를 가장 많이 찾는다.

오색약수 구멍  특유의 향과 톡 쏘는 맛은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약수의 여러 가지 성분 가운데서도 철분 때문에 주위의 색이 붉다.

필례약수 구멍  약수가 나오는 구멍이 두 개인데 그 사이를 보기 흉한 시멘트로 가로막아 놓았다.

방동약수  300년 묵은 엄나무 아래 암석 속에서 약수가 솟아오른다.

약수 구멍  계단을 내려가야 물이 흘러나오는 구멍이 있는데 이 약수는 탄산, 철, 불소, 망간 등이 주성분이다.

개인약수 구멍  약한 철분내와 입안을 감도는 단맛으로 몇 모금 들이켜도 역겨운 맛이 없다.

개인약수터 주변  수객들이 무병장수를 기원한 돌담들이 많이 산재해 있고 실제로 효험을 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삼봉약수  약수 구멍을 보호하는 양수각이 서 있고, 약수가 나오는 구멍이 세 개인데 그 맛이 모두 다르다.

방아다리약수  탄산과 철분이 주성분으로 위장병, 신경통,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며, 예전에는 물이 독해 잘 먹지 못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많이 약해졌다.

신약수  '가리골약수'라고도 하는데 발견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여 신약수라 부른다. 오대산국립공원 안에 있고 방아다리약수와 거리가 가까워 물맛과 효능이 비슷하다.

신약수 구멍  망간과 불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고 특히 안질에 효과가 있다.

상원사  월정사의 말사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범종 등 국보급 보물과 많은 전설의 꽃을 피워낸 오대산 신앙의 중심지이다.

불바라기약수터의 왼쪽 폭포

불바라기약수터  왼쪽 폭포의 벼랑에서 약수가 흘러나오는데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

약수 구멍  철분으로 인해 주변의 돌이 붉게 물들어 있다.

선림원지  1986년에야 발견된 곳으로 부도, 석등, 삼층석탑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범종, 귀부, 이수 등이 모두 귀한 유물이다.

갈천약수  갈천의 네 가지 보물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치는 갈천약수는 용출량이 풍부하다.

갈천약수 구멍  쇳물맛이 강한 갈천약수는 특히 톡 쏘는 맛이 강하다.

화암약수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의 하나로 꼽히는 정선아리랑에도 화암약수의 물맛을 노래할 정도로 정선 사람들이 사랑하는 물이다.

쌍약수  화암약수 건너편에는 쌍약수가 잇다. 이 약수는 최근 발견된 것으로 화암약수보다 물맛이 떨어져 ㅅ람들이 덜 찾는다.

몰운대  화암 8경의 하나로 기기묘묘하고 수려한 경관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화암 동굴  가리왕산에 숨어 있는 비경인 화암 8경의 하나로 종유굴이다.

아우라지 나루터  구절리 쪽의 송천과 임계 쪽의 골지천이 합류하여 '아우러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나루터에 서 있는 처녀 동상은 슬픈 사연을 안고 있는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추곡약수  물 맑은 소양호와 문바위봉을 거느린 사명산의 풍광과 약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추곡약수는 수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추곡약수 상탕의 약수 구멍  광물질의 함량이 풍부하여 맛이 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오전약수 구멍  오전약수는 사이다맛을 느끼게 하는 탄산 성분이 많아 혀끝을 톡 쏘는 청량감이 일품이다.

오전약수터 바위  약수 바로 위에는 오전약수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라는 의미로 주세붕이 적은 휘호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제18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이다.

소수서원  1532년 주세붕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달기약수 상탕  빛과 냄새가 없고 빈혈, 위장병, 관절염, 신경질환, 심장병, 부인병 같은 데 좋다 하여 붐빈다.

달기약수 하탕 구멍  상탕과 하탕 사이 750미터쯤의 거리엔 스무 개쯤의 약수 구멍이 즐비하게 서 있다.

주왕굴 입구  작은 폭포 오른쪽에 있는 철제 사다리를 건너면 주왕굴로 들어갈 수 있다.

대전사  조선 중기에 화재로 전소된 뒤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대전사는 뒤쪽의 기암 괴석과 함께 주왕산의 얼굴이다.

보경사  신라 진평왕 때 지명 법사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거울을 간직한 곳이란 뜻에서 '보경사'라 하였다.

장기곶 등대와 등대 박물관

도동약수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에 있으며 옛날 왜군과 싸우던 장군이 입었던 갑옷을 근처에 묻어 삭아서 흘러내리는 물이 도동약수라는 전설이 있다.

죽도  울릉도 동쪽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울릉도의 부속도로 화산 활동으로 이루어진 암도(안巖島)이다.

초정약수비  약수터 초입에는 '세계 3대 광천수'로 인정받은 초정약수를 기념하는 비가 서 있다.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약수가 되었다.

초정약수 원탕  기업에서 원탕을 관리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곳에서 직접 물을 마실 수는 없지만 부근의 여러 식당에서 물을 끌어올려 일반인에게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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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 이불 속의 쥐

 

박남희 시집

2006, 문학과경계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9923

 

811.6

박1923이

 

경계시선 40

 

한국문학예술위원회 선정 2006 우수문학도서

 

아침에 일어나보면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여기저기 쥐오줌이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고 있는데 무언가 이불 위로 툭, 떨어지더니

내 발 밑으로 기어들고 잇었다 그것을 발로 가만히 만져보니 시가 뭉클했다

박남희

경기 고양에서 태어났으며, 숭실대 국문과, 고려대 대학원을 나왔고,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가 있으며,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다. 현재 계간 『창작 21』 『생각과 느낌』 편집위원으로 있으며, 숭실대와 일산문학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mail : nhpk528@hanmail.net

homepage : http://www.poemis.com

 

그의 시는 인간도 시간도 사랑도 상처도 구멍 속의 한 마리 벌레로 幻하게 하는 환유구조 속에 있다. 그가 본 구멍 속의 생들은 가령 지하동굴 속을 굉음을 지르며 달려드는 짐승 같은 전철을 타고 애벌레가 된 인간들이 '냉이 꽃을 지나 의정부를 지나 청량리를 지나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 군침만 돌게 하는 도넛을 지나 시퍼런 한강을 지나 시퍼런 한강을 지나 직선이었던 마음이 어느새 곡선으로 휘어져 다시 원능역으로 닿는 끝없는 순환고리 속에 있다. 입구가 출구인, 어디로도 탈출구가 없는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중독되어 있다. '나무가 흙에게 중독되어 있는 동안, 참새가 구름까지 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앉는 동안, 지구는 참새와 나무와 흙을 떼메고 자신이 중독된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는 이상한 중독의 세상! 거기서는 누구나 누군가 삼킨 먹거리들처럼 한데 엉겨서 싸우다가 끝내 하나로 섞이고야 마는 생이 되고 말지만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모든 것의 근원인 입이니까!

이경림(시인)

 

시인의 말

 

천장 반자 위로

쥐가 뛰어다니던 시절

나는 잠을 자다가 문득

발 끝에 이상한 감촉을 느꼈다

소란스럽던 천장에서

내 은유의 이불 속으로 스며든 쥐가

뭉클하게 만져졌다

 

시가 뭉클했다!!

 

2005년 늦가을

박남희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이불二不 / 병풍에 들다 / 블랙홀 / 문장이 나를 부를 때 / 허공에 돌 던지기 / 멍요일 / 못을 박으며 / 골목길 / 나는 가끔 주머니를 어머니로 읽는다 / 구겨진 시 / 개기일식 / 중독 / 나무의 우물 / 이카루스식 사랑법

 

제2부

이동 중 - 자야에게 / 천균天均 저울 / 꽃산, 가네 / 이상한 싸움 / 밥물천사 / 로또 계시록 / 봄, 55일 면허정지 / 달력 산부인과 / 불은 갑匣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 시뮬라크르 서울 / 사랑 / 쟁반들 / 일곱 번째 하늘 - 니체를 위하여

 

제3부

착시 / 어린 곡선 / 시란 무엇인가 / 새에게 / 추석 / 노을에 기대다 / 맑은 날, 병실에서 / 칠판을 지우며 / 지퍼 / 태초에 신은 오독誤讀을 창조했다 / 고양이는 독서 중 / 우물 / 주석에 들다 / 밥

 

제4부

버릇 / 너무 늦게 오는 저녁 - 장주의 꿈 / 하늘 오뚝이 - B 시인에게 / 사이 / 이브의 거울 / 구름 비빔밥 / 중앙선 위의 고양이 / 꽃에 관한 명상 / 주름의 강 / 동굴 속의 벽화 / 이상한 벌레 / 마리아와 게 / 사과는 썩을 때 아름답다 / 혓바닥들

 

해설 | 사변적 언술의 시적 가능성 - 엄경희

 

노을에 기대다

 

산으로 기러기 떼가 빨려 들어간다

산이 아프다

산은 천천히 노을에 기댄다

 

기러기 떼가 산에서 나와

노을 속으로 들어간다

노을이 아프다

 

산은 노을에 기댈수록

자꾸 빠져든다

노을은 점점 붉어진다

 

노을이 아름다운 건 그 안에

기러기 떼가 있기 때문이다

 

꽃에 관한 명상

 

1. 밤

매일매일 누가 그리워서 저렇듯

밤은 찾아오는가

 

밤은 그렇게 어김없이 와서

거리마다 집집마다의 가슴에

작은 등불을 걸어놓는가

 

어둠의 상처로 환한 내 몸 근처에 머물던

하늘과 지상의 등불들이 하나 둘씩 잦아들면

 

밤은 또 어디로 가서

글썽이는 어둠을 이야기하는가

 

2. 논두렁

누가 풀어놓은 울음일까

저 밤 개구리들

 

때로는

울음도 뭉치면 노래가 된다.

 

3. 風光

바람은 이따금 한데서 불어오고

빛은 괜스레 눈이 부시다

눈물이 난다

 

생각해보면

산이 강을 품고 잇었던 것이 아니라

강이 산을 떠난 것이 아니라

 

만났다 헤어지고 나면

또 하나의 산과 강,

눈물이 나다

 

4. 달

                강

            옆의 산,

        옆의 들, 옆의

    마을, 옆의 길, 옆의

구름, 옆의 바람, 옆의 어둠을,

 

거느리고

거느리고

거느리다가

 

모두 다 버린 빈 몸으로

달이 떠오른다

 

못을 박으며

 

   어쩌면 성수대교와 세계무역센터는 스스로 무너지고 싶어서 무너졌는 지도 모른다 무너지고 싶어도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무너지는 것도 행복이다

 

   그런데 무너지는 모든 것들은 구멍을 통해서 무너진다 구멍 속으로 드나드는 바람과 흐느낌과 역사와 온갖 소문들까지 무너짐에 봉사한다 언젠가 한번은 무너져 본 것이라야 구멍의 공포와 허전함과 무너짐의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은 무너지는 것의 역사다 그렇게도 강성했던 바빌론과 로마의 벽에 나 있던 무수한 화살 구멍들, 그렇게 바빌론과 로마는 무너졌다 그 역사는 지금도 구멍을 통해 이야기되고 세상의 무수한 구멍 속으로 퍼져나간다 역사의 총탄은 케네디를 관통하고, 클린턴도 구멍 근처에서 무너졌다

 

   하지만 구멍은 스스로의 몸을 구멍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사랑이라고, 역사라고, 때로는 천재지변이라고 명명한다 구멍의 이름은 수시로 바뀐다

 

   나는 벽에 못을 박으며 붓 끝에서 확장되는 구멍을, 구멍의 역사를 생각한다 아니 사랑을, 절망을, 위선을, 아니 아니, 망치가 내려칠 때 내 손가락을, 그 아픔을……

 

지퍼

 

   지퍼는 잠그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문도 모르고 무언가 꼭꼭 걸어 잠그고 있다가 이따금 세상 밖의 풍경이 궁금해지면 그것들을 세상 밖으로 풀어놓기 위해 서 있다

 

   오늘도 밤새 해를 잠그고 있던 지퍼가 열리고 세상에 온통 어둠을 풀어놓았던 지퍼가 닫혔다 그 지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열리고 닫히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지퍼의 비밀을 모른다 나는 내가 열기 쉬운 내 방의 지퍼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내 양복 안주머니에 알 수 없는 수리의 지퍼가 채워진 휴대폰을 넣고 나는 세상의 무수한 지퍼를 향하여 걷는다

 

   오늘도 내가 열고 들어갈 지퍼 속에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바지의 지퍼를 내린다 신속히 내 지퍼 밖으로 빠져나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저것들은 또 어느 지퍼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잘까? 나는 아직도 내가 무수히 열어보았던 지퍼들의 주소를 모른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의 지퍼를 열고, 내가 며칠 동안 열어보았던 주소들을 확인한다 아아, 열리기를 기다리던 저 무수한 유곽들,

 

   어찌 보면 컴퓨터의 전생은 창녀였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벌레

 

   나는 세상 속으로 고개를 내미는 무수한 벌레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들은 권태라는 구멍 속에서 서식하다가 어둠이라는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구멍은 그들의 집이고 껍질이다 구멍 속의 것들은 수시로 승천을 꿈꾼다 나는 사과 구멍 속에서 살던 벌레 한 마리가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걸어가다가 일순, 거미 속으로 길을 내어 걸어가는 이상한 승천을 보았다 하늘은 도처에 널려 있었으므로 승천의 방법은 다양했다 어느 날 나는 자동차 유리창에 붙어 승천을 꿈꾸는 예쁜 벌레들을 본 일이 있다 제가 붙어 있는 것도 언젠가 구멍 속을 통과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벌레인 줄도 모르고,

 

   그 때 나는 주소를 알 수 없는 터널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달려가는 벌레의 속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너무 빠른 벌레는 왜 달려가다가 모두 찌그러지고, 제 몸을 토해놓은 터널, 혹은 세상의 구멍들에게 제 속도의 근원을 캐묻지도 못하고 으깨지는 방법부터 터득해 재빠르게 승천하려는지, 나는 하릴없이 느리게 하늘을 기어가는 게으른 벌레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일이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느릿느릿 기어가 세상의 끝에 환한 부끄러움을 토해놓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벌레, 지상의 수많은 벌레들을 내려다보며 먼 길 가다가 기왕에 꿈틀, 스스로 벌레가 되어버린, 때로는 너무나 뜨겁고 눈부신, 화끈한 성격의 이상한 벌레, 그 정체를 알기 위해 바라보면 내 망막 속에 염소 같은 똥을 누어 잘 지워지지 않는 어둠 몇 개를 남겨놓고, 세상의 구멍 속을 빠져나온 것들이 결국 왜 똥이 되는지, 어둠이 되는지 말하지 않고 그냥 보여주는,

   이상한 벌레를 나는 알고 있다

 

버릇

 

개구리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오줌을 싸는 버릇이 있다

그것은 원래 개구리가 동화 속의 로케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구리는 끝끝내 제 몸을 우주 속으로 쏘아 올리지 못하고

철퍼덕, 논 속으로 다시 처박히는 버릇이 있다

물이 개구리를 좋아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물도 버릇을 가지고 있다

물은 시간으로 향하는 버릇이 있다

태초에게는 처음과 끝이 만나는 비밀스런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물은 제 몸을 쉼 없이 아래로 흘려보내면서도

끝없이 제 기억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돌연 아찔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던

폭포의 한때를 기억해내는 버릇이 있다

 

처음으로 제 몸을 산산이 부수고

제 몸의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물방울들을

무수히 방출하던 그 아득한

무지개의 때를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하여 물은 꿈의 저쪽에서 들려오던

에누마 엘리쉬*의 목소리를 따라가

티아마트*의 두 눈 사이에서 흘러내리던

눈물을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물의 본능은 뛰어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누마 엘리쉬(Enuma Ellish)는 고대 바빌론의 창조 서사시로 '태초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신화에 따르면 대모신인 '티아마트(Tiamat)'는 자신의 아들인 '마르둑(Marduk)'에 의해 피살되고 그녀의 몸은 나누어져서 두 눈은 해와 달로, 피는 하수와 바다가 되는 등 천지창조의 재료가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밥을 먹을 때 밥은 식사가 되지만

밥이 나를 먹을 때 밥은 거대한 우주가 된다

 

내가 먹는 모든 것은 밥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밥은 아니다

그것은 나를 먹은 커다란 우주의 밥이다

나는 밥이라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밥이 되어 살고 있다

나는 밥을 먹고 거대한 우주의 밥이 된다

 

밥은 먹을 때는 잠시 포만감을 느끼지만

금방 다시 배가 고파진다

포만감은 밥의 기표가 아니다

포만감과 배고픔은 관념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배고픔에 속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먹히는 걸 좋아한다

밥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도 구름도 모두

나의 밥이지만

나 역시 그들의 밥이다

 

밥은 일방적으로 먹히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배고프므로 밥을 먹을 뿐

태양이 내 입속으로 들어가

항문으로 나오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내 속에서 밤과 낮이 교차할 때

배가 고픈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나는 단지 밥이므로,

 

주석에 들다

 

어제 벽제 화장터에서

亡者를 따라다니는 상주와 하객들이

저승으로 떠난 한 생의 주석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이가 드는 일이

주석을 더 많이 거느리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삼 일 전에 돌아가신 외삼촌에게도

몇 줄의 주석이 붙고 팔십 평생의 생애가

둥근 봉분 모양의 주석에 들었다

나는 길게 늘어선 주석 끝에서

미처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울음과

흐릿한 눈물 몇 방물 떨구고 산을 내려왔다

 

망자는 죽어서도 주석을 거느린다

하지만 자연은

능소화가 나팔꽃의 주석인지

억새가 갈대의 주석인지

스스로 주석을 달고 해석해 주지 않는다

 

산이 새를 주석으로 거느리듯이

새가 산을 주석으로 거느리듯이

자연은 본문과 주석을 구별하지 않는다

망자는 자연이 되어서야 스스로도 주석이 된다

외삼촌도 어제 비로소 재가 되어

우주라는 거대한 텍스트의 주석에 들었다

 

태초에 신은 오독誤讀을 창조했다

 

   그래서 인간은 태초부터 세상을 제각각 다르게 읽는다 세상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몸조차 오독한다 오독은 인간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그리하여 어둠은 어둠끼리 물방물은 물방울끼리 책을 읽듯 서로의 몸을 섞어 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질서와 경계를 허물고 그들만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했다 그들에게는 오독이야말로 빛나는 창조성이다 그들의 문법은 세상에서 새롭게 빛났으며 모든 피조물들이 오독을 통해 새롭게 신이 되었다

 

   비가 온다 태초에도 그렇게 비는 내렸으리라 그 때도 개굴개굴 개구리는 또 논배미에서 그렇게 울었으리라 그러나 이 땅의 창세기는 갔다 그리고 창세기는 또 이렇게 왔다 물질이 물질을 만들고 그 물질이 또 다른 물질을 만드는 끝없는 자기증식의 법칙이야말로 창조의 제일원리이다 오독을 통한 자기증식, 오독을 통해서 논바닥의 벼는 자라고 세상은 시끄럽고 그래서 살 만하고 행복하고, 행복이 불행이고 불행이 행복일 수 있는 오독의 법칙 아래서

 

   우리 모두는 오독의 주인이다 이 땅의 모든 길들은 누군가 읽고 간 문장이다 그래서 날이 밝으면 새로운 길이 뚫리고 그 길로 갖가지 옷을 걸쳐 입은 단어들이 오독의 표지판 쪽으로 달려간다 지금 빗방울 후둑이며 나를 읽고 세상을 읽고 있는 저것들, 나는 그들에게 내 몸을 맡긴다 이 땅의 새로운 창세기를 맡긴다 태초는 오늘 또 그렇게 시작했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39 탄트라 秘典

 

오쇼 강의 | 이연화 옮김

2013, 태일출판사

 

대야도서관

SB092484

 

155.9

라77탄 1 c. 2

 

마음을 변형시키고 초월시키는 112가지 수행법

 

The Book of Secrets

 

OSHO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질문들에 부딪친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해답을 찾으려 한다.

목마른 영혼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왜 태어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없이

무지와 무관심, 무감각에 빠져버린

메마른 의식과 안일한 삶의 태도에서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여기 최고의 인생 기서가 있다.

그리고 그 기서를 명쾌하게 현대어로 강의하는

인생의 명인 오쇼가 있다.

마음을 변형시키고 초월시키는

112가지 수행법을

제시해놓은 『탄트라 秘典』은

인생의 가장 궁극적인 질문들을 푸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오쇼의 가르침은 어떠한 틀로도 규정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강의는 삶의 의미를 묻는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시급한 정치 · 사회적인 문제에 모든 주제를 망라한다. 런던의 선데이 타임스(SUNDAY TIMES)는 20세기를 빛낸 천 명의 위인들 중 한 사람으로 오쇼를 선정했으며, 미국의 작가 탐 로빈스(TOM ROBBINS)는 오쇼를 '예수 이후로 가장 위험한 인물'로 평하기도 했다. 인도의 선데이 미드데이(SUNDAY MID-DAY)는 인도의 운명을 바꾼 열 명의 인물을 선정했는데, 그 중에는 간디, 네루, 붓다 등의 인물과 더불어 오쇼가 포함되어 있었다. 오쇼는 자신의 일에 대해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도록 기반을 닦는 것이라고 했으며, 점점 가속화되는 현대인들의 생활환경에 맞는 명상법을 도입하여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데 혁명적인 공헌을 하였다.

 

5천 년 전 시바는 그의 연인 데비에게

112절로 이루어진 탄트라 방편들을 전수했다.

그것의 이름은

'비그야나 바이라바 탄트라(VIGYANA BHARAVA TANTRA)'다.

여기서 비그야나는 '의식'을 말하고

바이라바는 '초월'을 의미하며 탄트라는 '방편'을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의식 초월 방편'이 된다.

그대는 인생의 최고 기서인 '비그야나 바이라바 탄트라'에 대한

삶의 명인 오쇼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인생의 단수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범부에서 성인으로 입성할 것이다.

 

나를 바꾸는 6가지

용기 : 즐겨라! 위험하게 사는 즐거움

창조 : 찾아라! 내 안의 또 다른 나

직관 : 느껴라! 논리를 넘어선 깨달음

각성 : 깨어라! 잠들어 있는 마음의 벽

성숙 : 누려라!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

친밀 : 버려라! 타인과 친해지는 두려움

 

옮긴이 이연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 명상서적 전문 번역가로

『물도 없고 달도 없다』, 『머리 속의 바람』, 『구루의 땅』, 『달마』 등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마음을 변형시키고 초월시키는

모든 길들이 여기에 다 있다.

- 오쇼 -

 

차례

 

1. 탄트라의 세계

2. 호흡(呼吸), 우주에 이르는 다리

3. 다섯 개의 신비

4. 그대의 마음을 쉬게 하는 방편들

5.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Ⅰ

6.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Ⅱ

7.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Ⅲ

8.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Ⅳ

9. 정지(靜止) 명상법

10. 지성파와 감성파를 위한 각각의 방편

 

탄트라의 세계

탄트라는 지적인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산체험이다.

그대가 수용적으로 되고, 준비되고

느낄 만큼 예민해지지 않는 한

그것은 그대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호흡(呼吸), 우주에 이르는 다리

진리는 언제나 여기에 있다.

진리는 미래에 성취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그대가 바로 진리이다.

 

빛의 샘(光源), 그 황홀한 일별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사이에서 찾을 수 있도다.

숨이 들어오고, 들어온 숨이 나가려고 하기 직전,

바로 거기에 지복(至福)이 깃들여 있도다.

 

숨은 들이쉴 때 아래(下丹田)에서 위(百會)로 반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그리고 내쉴 때 다시 위에서 아래로 반원을 그린다.

이 두 개의 회전점을 통해서 불생불멸의 그 자리를 깨달을 지어다.

 

들이쉬고 내쉬는 그 찰나의 사이에 호흡은 에너지가 없으면서 또한

에너지로 가득 찬 그대의 중심에 닿는도다.

 

숨을 완전히 내쉰 뒤 호흡이 멎었을 때,

또는 숨을 완전히 들이쉰 뒤 호흡이 멎었을 때,

호흡의 이 우주적인 멈춤 속에서 에고는 사라진다.

 

다섯 개의 신비

도약하라! 비상하라!

그대 자신을 변형시켜라

그대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초월시켜라.

 

미간(眉間)에 집중하고 마음을 사념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에 머물게 하라.

정수리까지 호흡의 정수(精髓 : prana)로 가득 차게 하라.

그리고 정수리에서 빛이 쏟아지듯

호흡의 정수가 쏟아지고 있음을 느껴라.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도 들숨과 날숨 사이에 항상 유념하라.

이 수련을 계속하면 머지않아 그대는 다시 태어나리라.

 

만져지지 않는 호흡의 정수는 미간에 있다가

그대가 잠드는 순간 가슴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꿈의 세계를 넘고 죽음의 세계까지 넘어간다.

 

지극한 경배와 헌신으로 호흡의 두 교차점에 집중하라.

그리고 '아는 자'를 알아라.

 

죽은 듯이 누워 있으라.

화가 날 때 그 분노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

속눈썹 하나 움직이지 말고 응시하라.

빨고 싶으면 빨아라.

그러나 '빠는 자'로 남지 말고 '빠는 그 자체'가 되라.

 

그대의 마음을 쉬게 하는 방편들

이 방편들은 그대로 하여금 중심을 찾고

거기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사랑의 달콤한 애무를 받을 때 사랑 자체가 되면

어여쁜 공주는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간다.

 

개미가 기어가는 것을 느낄 때 감각의 문을 닫아라.

그때 그것이 일어나리라.

 

침대에 눕든지 자리에 앉든지 그대 자신을

무중력 상태에 있게 하라. 그때 마음을 넘어선다.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이 방편들은 단전에 뿌리를 박기 위한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과학적인 접근 방식이 있다.

이 방편들을 통해서 그대는 단전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다.

 

무한한 허공 속에서 오색찬란한 공작의 꼬리 깃털이 그대의

오감(五感)이 되었다고 상상하라. 이제 그 아름다운 색채가 그대의

내면으로 들어오게 하라. 그리고 한 점을 정하여 거기에서 만나게 하고

그 점을 집중하라. 그 점이 허공 속에 있든지 벽 위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다. 그 점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하라. 그때 또 다른

것을 향해 그대의 바람이 실재가 되어 나타나리라.

 

그대의 신경 전체에 온 주의를 집중시켜라. 연꽃 뿌리 속에 들어 있는

실처럼 섬세한 신경이 척추 속에 있다. 그대의 의식이 척추의 중심에

머무를 때 변형이 일어난다.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무심한 마음으로 중도에 머물러라.

언제까지나.

 

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구멍을 손으로 막아라. 그러면 두 눈 사이의

공간에 모든 것이 담겨지리라.

 

16

축복받은 자여, 모든 감각이 가슴속으로 녹아들 때 연꽃의 중심에

이르게 되리라.

 

17

무심한 마음으로 중도에 머물러라. 언제까지나.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그대의 전 관심을 방편에다 쏟아라.

결과는 잊어버려라.

결과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이 방해가 된다.

 

18

어떤 대상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라.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지 말라. 여기

그 대상의 중심 속에 축복이 있다.

 

19

손이나 발로 지탱하지 않고 엉덩이로만 앉아 있어 보라. 갑자기 그대는

중심에 이르게 될 것이다.

 

20

흔들리는 수레 속에서 율동적으로 흔들어라. 수레가 멈추어도 그대는

자신을 보이지 않는 진동 속에 계속 머물게 하라.

 

21

감로수로 가득 찬 그대 육체의 한 부분을 침으로 천천히 찔러 보라.

그리고 찌르는 행위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 갑자기 그대는 내면의

순수를 얻게 될 것이다.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금세기 가장 위대한 탄트라 행자인

게오르그 구제프는

인간의 유일한 죄는 동일시(同一視)이다

라고 말했다.

여기의 방편은 이 동일시에 대한 것이다.

 

22

과거의 일을 회상하라. 그때 그 상황과 그대의 모습에 집중하고 현재의

모습은 잊어버리면 거기에 초월이 일어나리라.

 

23

그대 앞에 한 물건이 있다. 그것의 충만한 실재를 느껴라.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다. 오직 그것만이 실재한다고 느껴라. 그리고 나서 그

두 가지 느낌, 부재감과 실재감 둘 다 떠나라. 그리고 실현시켜라.

 

24

어떤 사람을 반대하거나 찬성하고 싶은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기분을

그에게 투사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중심에 머물게 하라.

 

정지(靜止) 명상법

 

"스톱!" 그 상태에서는 숨조차 쉬지 마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느낄 것이다.

동시에 그대는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25

그대가 어떤 행위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바로 그 순간 정지하라!

 

26

어떤 욕망이 다가올 때, 그 욕망을 주시하라.

그리고 갑자기 그 흐름을 멈추어라.

 

27

지쳐 나자빠질 때까지 한없이 걸어라.

그러면 결국 쓰러질 것이다.

그 순간 그대는 전체가 되리라.

 

지성파와 감성파를 위한 각각의 방편

그대는 마음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마라.

그때 그대는 건강하고 전체적인

존재의 관점을 갖게 된다.

 

28

힘과 지식이 점점 그대에게서 빠져 나간다고 상상하라. 완전히 빠져

나가는 순간 거기에 초월이 일어난다.

 

29

헌신은 자유를 준다!

 

오쇼에 대하여

오쇼의 가르침은 어떠한 틀로도 규정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강의는 삶의 의미를 묻는 개인적인 문제에서부터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시급한 정치 · 사회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한다. 오쇼의 책은 그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청중들에게 들려준 즉흥적인 강의들을 오디오와 비디오로 기록하여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강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그 말은 지금 이 시대의 당신들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 세대를 위한 말이기도 하다.

 

런던의 선데이 타임스(Sunday Times)는 20세기를 빛낸 천 명의 위인들 중 한 사람으로 오쇼를 선정했으며, 미국의 작가 탐 로빈스(Tom Robbins)는 오쇼를 '예수 이후로 가장 위험한 인물'로 평하기도 했다. 인도의 선데이 미드데이(Sunday Mid-Day)는 인도의 운명을 바꾼 열 명의 인물을 선정했는데, 그 중에는 간디, 네루, 붓다 등의 인물과 더불어 오쇼가 포함되어 있었다.

 

오쇼는 자신의 일에 대해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도록 기반을 닦는 것이라고 했으며, 이 새로운 인간을 '조르바 붓다(Zorba the Buddha)'로 부르곤 했다. 조르바 붓다란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소설 속 주인공인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세속의 즐거움을 누리는 동시에, 붓다와 같은 내면의 평화를 겸비한 존재를 일컫는다. 오쇼의 가르침에 일관되게 흐르는 정신은, 과거로부터 계승되어온 시대를 초월한 지혜와 오늘날의 과학문명이 지닌 궁극적인 가능성을 한데 아울러 통합하는 것이다.

또한 오쇼는 점점 가속화되는 현대인들의 생활환경에 맞는 명상법을 도입하여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데 혁명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의 독창적인 '역동 명상법'들은 심신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줌으로써 일상생활 속에서 더 수월하게 평화와 고요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38 마야 - 잃어버린 도시들

 

클로드 보데 / 시드네이 피카소 지음, 김미선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7199

 

082

시156ㅅ  6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06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을 헤매던 한 탐험가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서는 순간 웅대한

피라미드가 그의 시선에 포착되었다.

수수께끼 같은 이 문명은 신의 작품인가, 인간의 작품인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예술가, 사진작가, 고고학자 들은

조각그림을 한데 모아 맞추어 보기 시작했고,

막연한 낭만적 추측 대신 과학적 연구가 자리 잡았다.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정교하고도

웅장한 도시의 건축 비법과 마야 문명의

진실에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잃어버린 도시,

살아 있는 자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도시,

오랜 세월 이름조차 사라졌던 도시.

찬란한 황금기가 지나고 9세기에 접어들면서 마야는

기근과 전쟁, 인구 감소현상을 겪었다. 그리고

마야인은 도시를 버렸다. 밀림이 도시를 뒤덮기

시작했다. 나무뿌리는 돌기둥을 친친 감아 무너뜨렸고,

나뭇가지는 신전 벽을 부수고 지붕을 뚫었다.

거의 800년이 흘러 밀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여행자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잔뜩 뒤엉킨

수풀을 비집고 쏘아보는 석상의 눈빛과 마주쳤다.

그것은 꿈이었다. 누가 이토록 정교한

기념물을 세웠단 말인가?

 

군주와 총독은 탐험대를 파견했다. 그리고 화가와 시인,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이 그뒤를 따랐다. 19세기의 모험가들은

미지의 문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알프레드 퍼시벌 모슬레이는 팔렌케, 코판,

치첸 이트사, 키리과를 여행했다. 그는 밀림을

밀어 버리고 사진을 찍고 평면도를 작성했다. 주석이 달려

있는 모슬레이의 평면도는 놀라운 정확성을

지니고 있다. "치첸 이트사의 수녀의 집은 멋진 숙소를

주었다. 우리는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키리과에서 우리는 2월 초에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건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도르레와 임시로 설치해 놓은 기중기를 이용해 돌기둥을 바로 세울 수 있었고, 거기에 새겨 있던 상형문자의 탁본을 뜰 수 있었다."(코판)

 

"2층, 3층, 그리고 맨 위층의 사방벽에는 각각 거대한 창과 문이 나 있다. 창과 문에는 원래 나무로 된 성인방이 걸쳐져 있었다."(팔렌케)

 

"팔렌케 유적에 도착했을 때, 동쪽 뜰과 서쪽 뜰이 주변의 건물에서 무너져 내린 돌덩어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팔렌케의 이 건물은 궁전 동쪽 지역의 북쪽 중간 지점에 있다. 중앙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평행한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팔렌케 태양신전의 소벽(小壁) 장식은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뱀의 몸통과 머리의 일부분은 식별할 수 있었다."

 

"막대한 양의 돌덩어리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치첸 이트차에서 카스티요의 정확한 크기를 측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고된 작업과 말썽을 일으키는 일꾼들, 끊임없이 괴롭혀대는 열병……. 그렇지만 치첸 이트차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면 언제나 즐거워진다."

 

|차례|

 

제1장 정복자와 선교사

제2장 예술가와 모험가

제3장 학자의 시대

제4장 탐험을 떠난 사진작가

제5장 돌에 새긴 상징

제6장 관념에서 현실로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클로드 보데 Claude Baudez

클로드 보데는 탁월한 고고학자이자 프랑스 국립중앙 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코스타리카와 온두라스에 남아 있는 폐허를 연구해 왔다. 1971년 이래 마야 문명 탐구에 전념하기 시작한 그는 멕시코 토니나의 발굴작업과 온두라스 코판에 대한 탐사와 복원작업을 이끌었다.

 

시드네이 피카소 Sydney Picasso

시드네이 피카소는 라고아 산타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를 수행한 공식 사진 작가이다. 그는 현재 국립중앙 과학연구소에서 남아메리카의 바위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옮긴이 : 김미선

1964년 출생. 한국 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를 졸업한 후 불문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연인> <검은 탱고> <살갗 위의 소금> 등이 있다.

18세기 말에 그려진 이 그림은 정복자의 시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스페인인이 화폭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디오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배경으로 밀려나 있다. 중앙에 있는 인물은 후안 데 그리할바로 거만하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타바스코족 추장을 축성하고 있다. 맨발과 짧은 치마, 깃털장식을 한 '선량한 야만인'의 전형적인 모습인 이 인디오는 벌벌 떨면서 복종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

 

제1장

정복자와 선교사

 

1502년, 마야력으로 4아하우와 카툰의 두번째 해였다. 커다란 나무를 파서 만든 카누에 25명의 인디오가 타고 있었다. 그들은 과나하섬으로 가는 길이었다. 온두라스만에서 그 특이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히스파니올라의 콰칸드간 족장에게 선물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아메리카》 제4권의 판화. 테오도르 드브리. 1594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신세계를 찾아 헤매는 데 전생애를 바쳤다. 그는 중국과 일본에 발을 딛겠다는 꿈을 꾸었다.

신세계 탐험대에서 앞선 여러 약탈자들과 사뭇 다르게 에르난 코르테스는 자신이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막강한 권한과 위대한 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계략, 또한 훌륭한 외교관으로서의 판단력과 수완을 겸비하고 있었다.

 

제2장

예술가와 모험가

 

1746년, 안토니오 데 솔리스 신부는 형제들과 그들의 아내, 그리고 여러 명의 조카를 이끌고 팔렌케의 산토도밍고에 발을 디뎠다. 농사지을 땅을 찾아 숲 속을 헤매던 그들 일행은 노래 전에 버려졌음직한 석조 건축물과 마주쳤다. 놀랍게도 그들은 가장 환상적인 마야의 유적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이 되었다.

유카탄에는 강이 없기 때문에 석회질층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천연 샘 세노트(마야어로 조노트)에서 식수를 얻었다. 샘은 일반적으로 땅속 깊이 있었다. 예를 들어 볼론첸에서 인디오는 물을 길러 내려가기 위해서 거대한 사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제3장

학자의 시대

 

마야 문명의 진정한 발견자로 생각되는 존 스테판스는 1805년 뉴잉글랜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앙아메리카 유적의 최초 발견자는 아니었지만, 글을 통해 대중에게 이 문명을 널리 소개한 공로는 그에게 돌아갔다. 스테판스의 등장과 더불어 마야 문명에 대한 낭만적 접근방식은 종말을 고했다.

욱스말에는 총독 궁전이라는 건물이 있다. 그 기능에 충분히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궁전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잇다. 중심부의 정면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는데 그중 세 개가 중요한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앙에 있는 문 위에는 성좌 위에 앉아 있는 왕자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양 옆의 작은 회랑들이 아치형 통로를 중심으로 분리되어 있다. 캐서우드의 판화에서 보듯 이 통로들은 나중에 폐쇄되었다.

카스티요

10세기 말 치첸 이트차는 거대도시로 성장했고 많은 이방인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이방인들 중 일부는 '깃털 달린 뱀'의 전설을 가진 케찰코아틀에 의해 이끌어지는 중앙멕시코의 톨테크족이었다. 이들은 경쟁세력에 의해 툴라(멕시코시티 북쪽에 위치한 톨테크족의 수도)에서 쫓겨났다. '카스티요'(성이라는 뜻,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그 시대의 건축양식이 '깃털 달린 뱀'의 테마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중심부의 정면뿐 아니라 피라미드의 각 면에는 머리가 경사면 아래로 향한 뱀 모양의 조각이 있다. 캐서우드의 그림에 이러한 뱀의 머리 중 하나를 볼 수 있다. 사원의 주요 입구는 세 개로 되어 있는데, 각 입구는 뱀 모양을 한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잇다. 뱀의 입 부분은 땅을 향해 있고 몸통은 기둥을 이루고 있으며 꼬리 부분이 상인방을 받치고 있다.

라브나의 아치형 문

유카탄의 푸크 지역에 있는 마야의 유적에서는 가운데 안뜰을 중심으로 네 개의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이 복합 건축물을 '사변형(quadrangle)'이라 부른다. 라브나에서는 인접해 있는 두 개의 사변형 건물이 대단히 큰 아치형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방문객들은 종종 이것을 개선문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통로의 각 면에는 방이 하나씩 있으며, 이 방문의 위쪽으로 오두막 모양의 벽감에 회반죽 조각상을 놓기도 했다. 오두막은 지금도 유카탄 지역의 원주민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초가지붕을 한 집들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모양이다. 이런 것들은 옥스말의 여승원 남쪽에 있는 건물에서도 볼 수 있는데, 스페인인이 '여승원'이라고 부른 이유는 수녀원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카탄의 툴룸

스테판스와 캐서우드가 툴룸에 있는 프레스코 신전을 측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복되기 바로 전에 건설된 카리브해 연안의 이 작은 도시는 방어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대부분의 가옥은 주요 도로의 양옆에 있었으며,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다. 툴룸의 두 사원에는 검은색 바탕에 청록색으로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림들의 주제는 대개가 신화에서 특히 비의 신인 자크와 이스첼 여신을 그리고 있는데, 이 여신은 스페인인이 밀려올 무렵에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었다. 원주민들은 툴룸 북동쪽으로 50km에 있는 코주멜섬의 성전으로 순례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사말의 이트참나

이사말에 있는 건축불 중 하나에는 높이가 2m 넘는 회반죽 마스크가 잘 보존된 상태로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장식기법은 마야 건축에서 널리 사용되었지만, 공기에 노출된 상태에서 원형을 유지한 몇 안 되는 예들 중의 하나여서 스테판스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장면에 생동감을 주고 이상한 마스크가 새겨진 거대한 벽에 극적인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캐서우드는 어둠 속으로 도망가는 표범을 쫓고 있는 인디오와 사냥꾼을 그려 넣었다. 한편 디에고 데 란다가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원과 성당을 건립한 곳도 바로 고대 마야 도시의 파괴된 피라미드 지역 중의 하나인 이곳 이사말이었다.

환히 빛나는 제단 뒤로 신비스러운 비석 하나가 어렴풋이 보인다(위). 아무리 형태를 충실히 재현했다 하더라도 캐서우드는 때때로 코판의 돌무더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표현하기 위해 극적인 빛의 효과에 의존했다. 아래의 조각은 비석의 뒷면에 있는 비문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린 것이다.

이 곳 사바크체처럼 마야의 모든 마을에서 우물은 여자들의 사교공간 역할을 했다. 여자들은 물을 긷고, 모을 씻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식을 나누기 위해서 우물로 모이곤 했다. 캐서우드는 《성서》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분위기로 우물가를 묘사하고 있다.

 

"이 부락은 우물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우물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문명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최고급 호텔에서 느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쾌적해 보인다. 우리는 가시에 할퀴고 진드기에 물려 욱신욱신거렸으나 그럴수록 더욱 시원한 물에 목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말도 우물에서 아주 시원하게 목을 축였다. 여기서는 브러시나 빗이 없기 때문에 말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목욕을 시켜야 했다. 이 우물은 지금 이용하는 주민들이 만든 것이지만 예전에는 여기서 약 9km나 떨어진 타비까지 물을 길러 다녔다고 한다."

스테판스

《유카탄 여행기》

 

제4장

탐험을 떠난 사진가

 

1839년 8월, 은판 사진술의 출현으로 지식인 세계는 희망에 부풀었다. 사진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사진기를 동반한 탐험가 세대가 출현했으며 그들은 '객관적인' 진실을 찾아 나섰다.

 

제5장

돌에 새긴 상징

 

스테판스를 사로잡았던 다음과 같은 감동은 팔렌케 비문 신전에서 온통 상형문자로 덮인 석판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비록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 그림들을 보면서 느낀 감동을 굳이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뱀을 표현한 다양한 그림문자

 

제6장

관념에서 현실로

 

1944년 사진작가 질르 힐리는 라칸하강 서쪽의 치아파스 밀림지대를 향해 출발했다. 유나이티드 프루트사의 간부가 이 깊은 계곡에 모여 사는 마야의 라칸돈족 사진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들은 고대의 전통을 거의 손상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그곳까지 찾아 들어간 탐험가는 거의 없었다.

1948년 재건한 테헤다 제2실의 북쪽 벽에서 볼 수 있는 그림. 왕과 신하가 죄수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벌거벗기고 손톱이 뽑힌 죄수들이 먼저 제물로 바쳐진다.

계단의 아래 부분에서는 전사들이 감시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위 부분에는 화려하게 치징한 귀족들이 왕을 중심으로 주위에 서 있다. 위 부분에 있는 띠 모양의 조각은 하늘을 나타낸 것으로 몇몇 별자리들의 기호이다.

석관의 뚜껑에 새겨진 죽은 왕의 모습. 이것은 대지의 신의 입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장면이다. 대지의 신의 입은 턱뼈로 만들어진 네모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왕의 몸 가운데에서 커다란 천국의 새에 덮여 있는 세상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왕은 죽음의 순간에 두 신의 속성을 갖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매년 부활을 상징하는 옥수수신이다.

상형문자 '치통'. 이것은 머리 주위를 싸맨 띠 때문에 그렇게 불렸고, 왕의 즉위를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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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37 과학으로 여는 세계 불가사의 1

 

이종호 지음

2006, 문화유람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1666

 

001.44

이75세 1 c. 2

 

신과 미지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인간들의 이야기

 

이종호

과학자이자 고대 문명 탐사가.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탐사하며 연구를 시작해 기초 없이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 등으로 20여 개 국가에서 특허권을 얻는 등 지금도 문명과 과학 · 역사를 넘나들며 많은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프랑스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 취득

·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 제출상 수상

· 해외유치 과학자로 귀국

· 한국과학기술연구소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활동

· 과학기술처장관상 · 태양에너지학회상 ·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저서>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현대과학으로 다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박택규 공저)

『피라미드 과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물리, 화학, 생리 의학)』 등 다수

 

contents

 

머리말

 

1부 전설의 시작

1장 | 왕들의 계곡에 내린 파라오의 저주

2장 | 계속되는 피라미드의 미스터리

3장 | 스핑크스는 초고대문명의 흔적인가

4장 |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를 향해

 

2부 신화의 무대

5장 | 플라톤과 아틀란티스

6장 | 남극지도의 전혀 다른 진실

7장 | 소돔과 고모라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8장 | 한니발과 카르타고의 비밀의식

9장 | 바이킹, 미지의 땅을 향한 공포의 열정

 

3부 잃어버린 지혜를 찾아서

10장 | 크로마뇽인들과 동굴벽화

11장 | 스톤헨지를 세운 사람들

12장 | 나스카 문양, 땅에 새긴 하늘의 암호인가

13장 | 이스터 섬에서 일어난 일

14장 | 연금술, 욕망과 지적 열망 사이에서

 

미주

참고문헌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왕들의 계곡. 사진은 그 중에서 투탕카멘 무덤 입구의 모습이다. 왕들의 계곡에는 이집트 제18왕조부터 제20왕조까지 파라오 60여 명의 무덤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대부분의 무덤들이 도굴되었는데 투탕카멘 무덤은 무덤을 축조할 당시의 모습과 유물을 간직한 채 발굴되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최근에도 이곳에서는 미라가 발견되었고, 새로운 파라오의 무덤을 찾기 위한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왕들의 계곡에서 발견된 람세스2세의 미라.(위)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로 추정되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미라는 이미 오래전에 도굴되었고, 19세기 후반에 다시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영생을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제조하며 약품을 쓰는 기술, 해부학, 의학, 등을 발전시켰다. 미라를 만들 때는 썩기 쉬운 내장을 시신에서 꺼내 카노픽(아래)이라는 항아리에 나누어 보관했다. 카노픽은 4개의 항아리가 한 세트였는데 항아리 뚜껑에는 사람, 원숭이, 자칼, 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었다.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 항아리에는 간을, 원숭이가 조각된 항아리에는 폐를, 자칼 항아리에는 위를, 매 항아리에는 창자를 담았다.

역사적인 투탕카멘 무덤 발굴의 두 주인공인 카터와 카르나본 경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투탕카멘 무덤에서 카터와 카르나본 경이 금이 도금된 문을 열고 궤를 살피고 있다. 이 안에서 석관, 미라형 관, 황금 마스크를 쓴 왕의 미라가 발견됐다. 이들이 발굴한 투탕카멘 무덤은 금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발굴 사건으로 꼽힌다. 옛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고대 이집트 세계의 신비를 푸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투탕카멘의 관을 살피는 카터.

투탕카멘 황금관.

투탕카멘 왕의 미라를 조사하는 과학자들. 투탕카멘 무덤을 발굴한 사람들의 죽음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며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러한 의문의 죽음들이 일어난 것은 미라나 과일들에 기생했던 곰팡이들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때 제기되기도 하였다.

아마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투탕카멘 왕의 미라. 이집트인들은 장기를 따로 분리하고 나트론으로 시신을 채워 더 이상 썩지 않게 한 뒤 아마포로 감아 미라를 만들었다.

투탕카멘 미라를 CT(컴퓨터단층촬영기)로 촬영하고 있다.

투탕카멘 미라의 머리 부분을 X선으로 촬영한 모습. 사진에서 X로 표시된 흰 부분은 미라를 제작할 때 주입한 수지이다. A 흔적 때문에 외부의 타격에 의해 투탕카멘이 살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투탕카멘의 얼굴을 복원한 그림. 3,3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소년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모습을 미라 CT(컴퓨터단층촬영기) 촬영 등의 자료를 통해 재현했다. 이 작업은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와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가 주관했다.

발굴 당시 투탕카멘 무덤의 내부 모습으로 아누비스 조각상이 보인다(위). 아래 사진은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들. 이집트인에게 이누비스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고 오시리스의 법정으로 인도해,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삶을 판정하는 존재였다. 죽음의 의식과 사후 세계를 주관했기 때문에 미라를 만드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흔히 자칼의 얼굴을 한 이누비스신이 등장한다.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 때 다른 장기는 분리해 카노픽 항아리에 나눠 보관하면서 심장 만큼은 분리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집트 카이로 남서쪽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로 지상 최대의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특히 기원전 26세기 경에 쿠푸 왕이 쌓은 피라미드는 가장 그 규모가 크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필론이 이야기했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피라미드는 웅장한 규모뿐만 아니라 정교한 건축술 등으로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고대 역사에 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대피라미드의 쿠푸 왕 현실로 들어가는 대회랑의 모습. 아래 사진은 비밀의 문. 대피라미드의 쿠푸 왕 현실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청난 보물을 간직한 쿠푸 왕의 현실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1985년에는 프랑스의 건축가인 도르미옹과 골뎅이 대피라미드의 구조상 알려지지 않은 다른 찾기 위한 탐사를 펼쳤는데 아래 사진은 독일 탐사팀이 로봇을 이용해 찍은 사진으로 비밀의 방 입구라고 주장되는 곳이다.

이집트 기자에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와 함께 이집트의 고대 문화유산을 대표한다. 스핑크스를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학설이 분분하나 피라미드를 보호할 목적에 세워졌다는 의견이 많다. 스핑크스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조각상이다.

케프렌 조각상(위)과 스핑크스 정면 모습(아래). 케프렌 조각상은 이집트 유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이다. 케프렌은 스핑크스를 세운 파라오로 알려졌는데 스핑크스의 얼굴이 케프렌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주장 때문에 조각상과 스핑크스의 얼굴을 비교하는 연구가 있기도 하였다.

스핑크스 앞발 바로 앞에 있는 스핑크스 신전. 기자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주변에는 거대한 신전이자 건설 노동자들의 숙소가 있었다.

건조한 지대에 비교적 큰 전쟁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집트의 문화유산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인간들에 의한 자연 파괴 때문에 유산 보존이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나일강에 아스완 댐이 건설되면 수몰 위기에 처하자 그 위치를 높은 곳으로 옮겨 다시 세우게 된 아부심벨 신전.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6~1541).

사생아(私生兒)로 태어나 글도 배우지 못했던 피사로는 용병(傭兵)생활을 마친 뒤 신대륙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발보이가 죽은 뒤 후계자가 되어 파나마를 건설하고 콜롬비아를 탐험했던 피사로는 잉카제국의 정보를 입수한 뒤에 일시 귀국했다. 그리고 에스파냐 왕실의 원조를 받는 등 준비를 갖춘 뒤 1531년 기마병을 포함해 부하 180명을 거느리고 중남미로 돌아왔다. 다음해 잉카의 내란을 탐지한 그는 잉카의 황제 아타왈파(Atahualpa, 재위 1525~1533)와의 회견 자리에서 황제를 납치했다. 아타왈파가 황금을 대가로 풀어달라고 제의하며 엄청난 황금을 제공받았으나 반란이 두려웠던 피사로는 1533년 아타왈파를 우상숭배와 근친혼, 그리고 일부다처제의 죄를 물어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했다.

아타왈파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잉카의 신앙에 따르면 화형은 영혼 소멸을 뜻하기에 화형을 면하고자 기독교로 개종하고 교수형을 당했다. 총이나 말(horse)을 몰랐고, 그들이 숭배하는 신이 흰색이었던 강력한 제국, 잉카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군대에 의해 멸망하고 만 것이다. 피사로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점령하고 잉카제국을 에스파냐 왕에게 바쳤다. 1535년부터 새 수도 라마의 건설을 시작했다. 문맹이면서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피사로였지만 그 역시 동료와의 싸움에서 비참한 최후를 당했다.

페루의 쿠스코(Cuzco)와 쿠스코 주변에 남아 있는 잉카제국의 흔적. 인구가 29만을 조금 넘는 이 도시는 페루 리마의 동남쪽 580킬로미터, 해발고도 3,400미터로 인데스산맥에 위치하며 기후가 쾌적하다. 13세기 초에 건설되어 16세기 중반까지 중앙 안데스 일대를 지배한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피사로와 에스파냐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번영의 절정기를 맞이했던 당시의 쿠스코는 반듯한 시가지, 아름다운 건물, 거대한 신전 등으로 정복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도시는 정복된 후 파괴되어 에스파냐풍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으나 주변 곳곳에는 아직도 잉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잉카제국이 번창하던 시절 쿠스코에 있던 태양의 신전. 광장을 중심으로 태양, 무지개, 달, 별, 천둥과 번개, 희생의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방들은 아름답고 단단한 돌벽으로 되어 있었는데 움푹 들어간 자리엔 금이나 은 장식물이 있었다고 한다. 신전은 벽에서 나오는 황금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는 한 에스파냐 정복자의 글이 전하기도 한다.

잉카가 멸망한 이후 에스파냐인들은 신전을 파괴하고초석만 남긴 채 그 위에 에스파냐풍의 교회를 세웠다. 지금도 전하는 잉카 때의 초석은 큰 지진을 견디며 지금도 남아 잉카 건축술의 정교함과 견고함을 증명해주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 해발 2,280미터 정상에 자리잡은 마추픽추는 그야말로 '공중도시'이다. 잉카의 마지막 황제 망코가 에스파냐인들에게서 도망쳐 빌카밤바라는 잉카 최후의 수도를 세우고 엄청난 보물을 숨겼다는 전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도시를 찾았는데 마추픽추를 그 전설의 빌카밤바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의 정치가였던 이그나티스 도넬리(1831~1901). 세계 각국의 유적이나 신화, 문화 등을 통해 아틀란티스가 실재했음을 주장하는 그의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중해 크레타 섬에 있는 크노소스 궁전으로 고대의 왕궁 중에서도 그 규모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해 1,000개를 훨씬 넘는 방들이 있는데,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이 미궁(迷宮) 깊숙이 살고 있는 괴수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왕녀 아리아드네와 함께 섬을 탈출했다는 신화의 무대이기도 하다.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 있는 벽화로 달려오는 황소를 넘는 경기를 묘사했다. 고대 크레타인들의 이러한 풍습은 플라톤이 말하는 아틀란티스의 이야기와 관련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크노소스궁의 내부를 복원한 그림.

미국 칸주립대학의 찰스 햅굿 교수는 중세에 제작된 지도를 연구하다. 이 지도가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정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도가 제작되던 때에는 탐사조차 되지 않았던 땅들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많은 중세 지도에 수 킬로미터 두께의 얼음에 파묻힌 남극 대륙이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에 큰 흥미를 느꼈다. 19세기 초반에 남극 대륙이 발견되고 20세기에 들어와 남극점이 정복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햅굿은 이들 지도들이 그 이전부터 전해오던 원본을 짜집기해서 제작된 것이 틀림없다고 보았다. 고대에 발전했던 과학기술이 이후 중세를 거치면서 잊혀졌다는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스만제국의 해군 제독을 지냈던 피리 레이스가 1513년에 제작한 지도는 놀라웠다. 수천 미터 만년설과 얼음 밑에 있는 남극 대륙의 산맥과 강 등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피리 레이스는 당시에 전해지던 지도를 베껴서 지도를 제작했다. 이에 햅굿은 오래전에 고도의 문명을 유지했던 사람들에 의해 지도가 처음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펼쳤다.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지도로 네모 선 안이 남극 대륙에 해당한다. 피리 레이스의 지도가 제작되고 18년이 지난 1531년에 제작된 오론테우스의 지도에는 남극이 더 정확하게 묘사되어 잇다. 20세기 중반에야 알려진 남극의 얼음 밑의 산맥과 섬이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극 대륙을 인공위성에서 본 모습. 과거의 정설은 지구의 공전궤도와 자전축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면서 남극 대륙에 빙하기가 도래했다는 것이지만 햅굿은 양 극점 위의 얼음이 임계질량에 도달하면 그 무게로 지구의 외피인 지각판(각 대륙이 지각판 위에 얹혀 있다)이 균형에 도달할 때까지 이동한다는 이론을 폈다.

키르허의 지도.

나르메르 왕의 승전을 기념하는 그림이 새겨진 판(기원전 3100년경 제작,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나르메르가 나일강 일대의 도시국가를 통합해 최초로 이집트 통일왕국을 세우면서 이집트 제1왕조가 시작된다. 이집트 문명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은 나르메르의 정복전쟁과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이집트 등에 영향을 준 남극 문명 유적의 건설 연대가 1만 2,000년 전이라고 한다면 이집트 문명이 시작된 기원전 3000년경까지의 시간이 공백으로 남는다.

롯의 두 딸과 아내가 소돔을 탈출하는 모습. 그러나 아내는 천사의 훈계를 어기고 뒤를 돌아다봄으로써 소금 기둥이 된다.

모헨조다로 유적.

1908년 여름의 초토화된 러시아 퉁구스카 삼림지대로 나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쓰러져 잇다. 퉁구스카에서 일어난 대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컸던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영국에서는 한밤중에도 신문의 작은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시베리아 대폭발'로 알려진 사건이다.

카르타고의 디도 여왕과 동거 생활을 하던 아이네이아스가 여왕에게 이별을 고하고 카르타고를 떠나는 장면. 이때 디도 여왕은 "카르타고와 아이네이아스의 도시는 영원히 원수가 되어 증오하리라, 전쟁하리라"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훗날 아이네이아스가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선조가 됨에 따라 카르타고와 로마는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관계가 되었다.

무역에 능했던 고대 페니키아인이 지금의 북아메리카 튀니지에 세운 도시국가인 카르타고.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다른 주요 도시들이 쇠퇴하는 동안 지중해 일대의 강자로 떠올랐고, 지중해를 사이에 둔 채 로마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제2차 포에니전쟁의 영웅, 한니발(Hannibal, 기원전 247~183)

제2차 포에니전쟁 때 한니발의 군대는 코끼리까지 동원한 채 바다와 강을 건너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까지 2,700여 킬로미터를 진군한다.

스키피오(Scipio, 기원전 236~184)와 로마군. 고대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스키피오는 '대(大)아프리카누스'로 불리기도 한다. 명문 스키피오 가문 출신으로 제2차 포에니전쟁에 참전해 에스파냐의 카르타고군을 격파하였고, 로마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204년에는 아프리카로 군대를 진격시켰다. 기원전 202년, 아프리카의 자마에서 한니발을 무찌르고 제2차 포에니전쟁을 종결시키며 '아프리카누스'란 칭호를 얻었다.

카르타고에 남아 있는 로마의 흔적. 포에니전쟁에서 패하며 카르타고는 철저히 파괴되고 로마의 문화가 유입된다.

카르타고인들이 숭배했던 하늘의 여신 타니트신전(神殿)의 유적.

신을 위해 희생된 자들의 비석. 가히 지옥의 신전(神殿)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만 명이 넘는 어린아이들의 목숨이 카르타고의 신을 위해 사라졌다.

바이킹이 쓰던 전함.

캐나다 뉴펀들랜드에 있는 바이킹 유적지. 역사학자들은 13~14세기에 발간된 플래티북(Flatey Book)의 기록을 토대로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믿었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1961년 헬게와 안네 잉스타드 부부는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북쪽에 있는 랑스오메도우에서 마침내 바이킹의 유적지를 찾는다.

1492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그의 일행.

실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진 알타미라 동굴벽화.

프랑스 도르도뉴의 몽티냐크 마을에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 1940년 마을의 소년들이 우연히 발견했는데 동굴에는 들소 · 야생마 · 사슴 · 염소 등의 그림이 많았고, 주술사 등도 그려져 있었다.

프랑스 남쪽 아르데슈 지방의 콤브다르크에서 발견된 쇼베 동굴과 쇼베 동굴벽화. 이 유적의 이름은 1994년 12월 처음 발견한 이 지방 고고학분과의 공무원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멸종한 유럽 들소 그림을 포함해 매머드, 동굴사자, 동굴곰 등 다른 선사시대 벽화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동물들의 그림도 있다. 프랑스의 벽화 전문가인 클로트는 그림들이 사냥을 위한 마법의 의미보다는 동물들의 영혼을 드러내기 위한 주술적인 의식(儀式)에 쓰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벽화전문가들은 이 동굴 유적이 라스코나 알타미라의 동굴벽화 이상으로 뛰어나다고 평했다.

라스코 동굴은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를 대표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보면 말 그림이 6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러나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의 뼈를 보면 순록이 90퍼센트에 이른다. 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과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들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 중 유일하게 사람 형상을 한 그림. 투창에 상처를 입고 내장이 나온 들소 앞에 새의 얼굴을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학자들 중에는 사냥 중 일어난 사고라고 하는가 하면 수렵의식의 황홀경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라스코 동굴벽화 중 많은 사람들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는 그림이다.

7만여 년 전에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추상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중석기 지층에서 발견된 이 추상화는 철광석의 일종인 '오커(적토)'의 두 표면을 평평하게 한 다음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균등한 간격으로 대각선 여러 개를 긋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대각선을 그어 마름모꼴과 삼각형을 표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추상화에는 하나의 체계가 있으며 지금 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당시 사람들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상징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대의 거석 기념물인 스톤헨지. 영국 월트셔주(州) 솔즈베리 평원에 있다. 1986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되었다.

중세인들은 거대한 돌들이 서 있는 스톤헨지를 보며 키가 5미터나 되는 거인의 묘라고 생각하거나 노아의 홍수 이전에 살고 있던 악마나 마법사의 소행이라고 보았다.

스톤헨지를 하늘에서 본 모습. 돌과 그 주변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스톤헨지의 돌 배치가 우연이 아니라 태양과 달 등의 천문 지식을 활용한 점이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를 둘러싸고 스톤헨지의 비밀을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스톤헨지 건설에 천문지식이 깊이 활용되었다면 이는 경제와 종교, 의술, 정치 등에 영향을 미쳤던 천문학자 즉 사제계급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영국의 거석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솔즈베리 대사원(위)과 실베리힐(아래).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의 수수께끼로, 논란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스톤헨지.

영국의 스톤헨지에서 30킬로미터쯤 북쪽에 있는 에이브베리에도 거석문화의 유적이 전한다.

프랑스 카르나크에 있는 거석문화의 유적으로 약 3킬로미터에 걸쳐 돌들이 놓여져 있다.

페루 리마 동남쪽 약 37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나스카평원으로 해발고도는 700미터쯤 된다. 근처에는 9세기경에 가장 번영했던 프레잉카의 유적이 있는 등 남아메리카 고고학 연구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본 거미 모양의 나스카 문양.

나스카평원에 그려진 벌새 문양.

하늘에서 본 우주인 모양의 나스카 문양.

나스카평원에서 가까운 페루 해안의 또 다른 지오글리프(geoglyph, 땅그림).

나스카인들에게 물을 공급하던 시설.

활주로 모습을 한 나스카 문양.

사람 얼굴을 한 거대한 조각상 모아이 이들은 주로 1200~15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아이는 씨족별로 세워지고 각각의 이름을 갖는데 가장 큰 것은 높이가 20여 미터에 이른다.

붉은색 모자를 쓴 모아이.

라노카오 분화구.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이스터 섬의 주민들은 모아이의 석재로 조각하기 쉬운 화산암을 이용하였다.

주로 해변을 끼고 서 있는 이스터 섬의 모아이들.

이스터 섬에 살던 주민들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적지.

이스터 섬의 신성한 공간인 아후, 길이가 50미터에 이르는 곳도 있다.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장소로 추정되며 석상과 그 주변은 성소(聖所)로 보호되었고, 사람들이 죽으면 뼈를 묻기도 했다.

조지프 라이트 어브 더비가 1770년에 그린 <연금술사>.

<미다스의 형벌>. 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큰 형벌을 받아야 했던 미다스 왕의 이야기는 인간의 금에대한 오랜 집착을 잘 말해준다.

투탕카멘 황금 마스크. 금은 그 특유의 성질로 인간들에게 오랫동안 귀중품이 되어 왔다.

이집트 덴데라의 하토르 연신을 모시는 신전에서 발견된 그림. 이집트인들이 커다란 전기 램프를 들고 있는데 전기 램프는 한편에서 제드라고 하는 기둥이 받치고 있고, 한쪽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연금술이 행해지던 방. 연금술사들은 한편에서 세상의 비밀을 풀고자 한 철학자들이자 낯선 세계를 노크하는 탐구자였다.

1862년 이집트의 테베에 있는 무덤에서 발견한 파피루스 에버스(Papyrus Ebers). 연금술에 관한 내용을 담은 가장 오래된 저술로 기원전 16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학자들은 연금술이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실제 이집트의 연금술 지식은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파피루스 에버스가 제작될 당시 이집트에서 연금술을 행하는 장면.

니콜라 플라멜과 그가 살던 파리의 집. 니콜라 플라멜은 연금술 역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인물이다. 아내와 함께 책장사와 대서업으로 큰돈을 벌어 빈민구호소를 운영하던 그는 천사의 예언대로 낯선 사람에게서 이상한 책을 받는다. 그 부부는 이후 이 책을 해독하는 데 21년을 보냈고 그 과정에서 연금술을 익힌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1382년 1월 17일 정오에 수은(Hg)을 은(Ag)으로 변화시켰고, 3개월 후인 4월 25일 오후 5시에는 수은(Hg)을 금(Au)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1407년에 지어진 그의 집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알려져 있다.

거짓말을 한 연금술사를 교수형에 처한다는 발표문(뮌헨박물관 소장).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212).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시라쿠사 출신. 지렛대의 원리에 능통했던 그는 시라쿠사 왕 히에론 앞에서 "긴 지렛대와 지렛목(支點)만 있으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이겠다"라고 장담했다. 하루는 왕이 자신의 금관에 은이 섞였다는 소문을 듣고 아르키메데스에게 이를 감정하라고 명했는데 그는 이 문제를 풀면서 중요한 원리를 발견한다.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카르타고와 로마의 제2차 포에니전쟁(기원전 218~201) 때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의 편을 들어 로마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게 되었다. 이때 아르키메데스는 70세를 넘긴 나이였지만 각종 투척기나 기중기 등 지렛대를 응용한 신형 무기를 고안해 로마의 대군을 크게 괴롭혔다. 몇 년 뒤 시라쿠사가 함락되었는데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기하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아르키메데스는 뜰의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며 기하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다가오는 사람의 그림자가 로마 병사 것인 줄도 모르고 도형이 망가진다고 물러나라고 외쳤다. 로마 병사 역시 그를 몰라보고 그의 목을 쳤다.

로버트 보일(1627~1691). 그는 모든 물질의 순수한 1차 구성 성분인 원소를 발견함으로써 오랜 연금술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연금술을 상징하는 그림. 연금술은 실패했으나 과학의 발전에 남긴 공은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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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36 통과 의례 음식

 

글 / 이춘자, 김귀영, 박혜원●사진 / 배병석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29

 

082

빛12ㄷ  207

 

빛깔있는 책들 207

 

이춘자-------------------------------------------------------------------------

수원여자전문대학 식품조리과 겸임 교수, 88올림픽 문화행사 "한국음식문화5천년전" 준비 위원

 

김귀영-------------------------------------------------------------------------

상주산업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박혜원--------------------------------------------------------------------------

신흥전문대학 호텔조리학과 교수

 

배병석-------------------------------------------------------------------------

88올림픽 문화행사 "한국음식문화5천년전"과 온양민속박물관 유물 촬영 및 도록 발간의 사진작업을 담당했다.

 

도움 주신 분-----------------------------------------------------------------

한명희  전 성균관 전례부장

이상희  전통 떡음식 전문가

정혜상  전통 떡음식 전문가

조경철  "한국음식문화5천년전" 음식부

안인숙  "한국음식문화5천년전" 음식부

이덕연  숙수

 

|차례|

 

통과 의례와 음식

출생 의례

백일

생일

책례

성년례

혼인례

수연례와 회혼례

상장례

제의례

맺음말

참고 문헌

백일상  아기가 태어나 백일째 되는 날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겼음을 축하하기 위해 차리는 상으로 흰밥, 미역국, 백설기, 수수팥경단을 올린다.

큰상을 받은 신랑 신부

회혼례도 부분  회혼수는 우리 선조들이 가장 누리고 싶었던 수로 특별히 더욱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었다.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33.5×45.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삼신상(출산 전)  산달이 되어 산기가 시작되면 산실의 웃목에 깨끗한 쌀과 장곽 그리고 정화수를 준비하여 삼신상을 차린다.

삼신상(출산 뒤)  해산을 하면 금줄을 치고 출산 전 삼신상에 올려졌던 쌀과 미역으로 밥을 짓고 소미역국을 끓여 정화수와 함께 차린다.

오색송편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다양한 색으로 송편을 빚는다. 송편은 두 가지로 빚는데 하나는 실속 있으라고 속이 꽉 차게 빚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 넓으라는 뜻에서 속이 비게 만든다.

남아 돌상  돌잡이는 돌상 앞에서 아기가 자유 의사에 따라 물건을 잡게 하고 그 잡은 물건에 따라 아기의 장래를 예측하는 행사이다. 남자에겐 활과 천자문을 놓는다.

여아 돌상  여자 아이는 바느질 솜씨와 손재주가 좋으라는 뜻으로 바느질자 · 가위 · 색실을 상에 놓는다. 한편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기가 쉽게 잡을 수 있는 곳에 연관된 물건을 놓기도 한다.

관례  옛날에는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될 때 일정한 의식을 거쳤는데 남자 아이는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관을 씌우는 관례를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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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4-035 쉬!

 

문인수 시집

2006, 문학동네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2127

 

811.6

문68쉬

 

홀로 가는 외뿔의 시심

 

문인수의 시에서는 홀로 가는 외뿔의 시심(詩心)이 가감 없이 읽혀진다.

사물 속으로 자신의 전부를 투사하는 이 실재(實在)는 거친 각질이 느껴지는 그대로

단숨에 시적 대상을 요약해 보인다. 미처 우리가 돌아보지 못한 곳을 바라보는

그의 깊고 그윽한 시선은 사물이면 사물, 사람이라면 사람, 어느 것에라도

진솔하게 가 닿는 마음의 파문이 되어 독자들의 가슴에도 사무치는데,

우리는 그런 친화를 감동이라는 말로 고쳐 불러도 좋으리라.

진정한 타자성이야말로 문인수 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잇다.

 

나는 어린 시절 동네의 풍물마당에서 만났던 한 북재비 사내의 채질을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의 신명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그어대는 일자일획(一字一劃)의 붓질이었다.

문인수의 시편 속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놀이에 파묻히는, 제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몰두와 통찰이 스며 있다. 그의 북질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이 되어

마침내 마음을 쓰다듬으니, 누더기를 깁느라 자신도 누더기가 되어본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너덜너덜함을 애써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변두리로만 한없이 흘러가던 길이

어느 순간에 들판으로 툭 틔워, 감추었던 내장을 모두 쏟아내는 그 후련함은

그가 사물이나 사람과 사귀는 데 진정을 다했음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구름 속에서도 내처 흘러온 조각달처럼 하염없는 세월의 심상을 간직하지만,

날카로운 날(刃)을 함께 품고 있어서 마침내 서늘한 부재(不在)까지 꽉 찬 여백으로

돌려놓는다. 젊지 않았던 나이에 노래를 익혀 어느새 득음(得音)의 경지를 열어젖힌

그의 내공은 그 동안의 각고가 간단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김영인(시인,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85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뿔』『홰치는 산』『동강의 높은 새』 등이 있다.

E-mail : insu3987@hanmail.net

 

自序

 

'재미'라는 말 안에 인생 전부,

전반을 우겨넣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해본다면

나는 아직 시 쓰려는 궁리,

쓰는 노력보다 더 그럴듯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이 한 욕심이 참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는 줄 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시를 쓴다.

가끔,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끝장낼 수 없는 시여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

 

차례

 

自序

 

1부

달북 / 쉬 / 덧니 - 이성선 시인을 추모함 / 벽의 풀 / 고인돌 / 고인돌공원 / 성밖숲 / 꽃 / 원서헌의 彫像 / 낮달이 중얼거렸다 / 樹葬 / 저 할머니의 슬하 / 새벽 / 뿔, 시퍼렇게 만져진다 / 우렁각시

 

2부

그림자 소리 / 바다책, 채석강 / 바다책, 다시 채석강 / 등대 / 등대도 팔 힘을 쓴다 / 소나기 / 청령포 / 항해 / 꽉 다문 입, 태풍이 오고 있다 / 꽉 다문 입, 휴가 / 2박 3일의 섬 / 모항 / 민박 / 바다 가는 길 / 땅끝 / 그리운 북극 / 나비

 

3부

그늘이 잇다 / 철자법 / 산길에서 늙다 / 정취암엔 지옥도가 있다 / 각축 / 고양이 / 집 근처 학교 운동장 / 오지 않는 절망 / 발톱 / 새해 / 밝은 날 명암이 뚜렷하다 / 저수지 / 황조가 / 밝은 구석 / 서쪽이 없다 / 집에 전화를 걸다 / 끝

 

4부

짜이 - 인도소풍 / 기차가 몰고 온 골목 - 인도소풍 / 빨래궁전 - 인도소풍 / 말라붙은 손 - 인도소풍 / 먹구름 본다 - 인도소풍 / 굴렁쇠 우물 - 인도소풍 / 싯타르를 켜는 노인 - 인도소풍 / 모닥불 - 인도소풍 / 모닥불 1 - 인도소풍 / 모닥불 2 - 인도소풍 / 기차를 누다 - 인도소풍 / 갠지스 강 - 인도소풍 / 새 - 인도소풍 / 불가촉천민 - 인도소풍

 

달북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달,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데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암흑의 밑이 투둑, 타개져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까지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대답이 두둥실 만월이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고인돌

 

   죽음은 참 엄청 무겁겠다.

   깜깜하겠다.

   초록 이쁜 담쟁이넝쿨이 이 미련한, 시꺼먼 바윗덩이를 사방 묶으며 타넘고 있는데, 배추흰나비 한마리가 그 한복판에 살짝 앉았다.

   날아오른다. 아,

   죽음의 뚜껑이 열렸다.

   너무 높이 들어올린 바람에

   풀들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나왔다.

   그 어떤 무게가, 암흑이 또 이 사태를 덮겠느냐, 질펀하게 펼쳐지는,

   대낮이 번쩍 눈에 부시다.

 

그림자 소리

 

지수제 난간에 어떤 남녀가 서 있다.

두 그림자 물에 길게 넌다. 막돌들 들여다보이는

얕은 시냇물, 빠짐없이 밟히는 것들의 물그늘 마르지 않고

관계란 참 마음 아픈 데가 옹기종기 너무 많은 것 같다.

또 불어 한통속으로 힘껏 짜내는,

빠져나가는 물소리 물소리 하염없다.

 

그늘이 있다

 

광명에도 초박의 암흑이 발려 있는 것 같다.

전깃불 환한 실내에서 다시

탁상용 전등을 켜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분명, 한 꺼풀 얇게 훔쳐 감추는 휘발성분 같은 것

책이나 손등, 백지 위에서 일어나는

광속의 투명한 박피현상을 볼 수 있다.

사랑한다, 는 말이 때로 한순간 살짝 벗겨내는

그대 이마 어디 미명 같은 그늘,

그런 아픔이 있다. 오래 함께한 행복이여.

 

짜이

- 인도 소풍

 

인도에서는 마시는 차를 '짜이'라 부른다.

무슨 가축의 젖을 원료로 쓴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달착지근하니 약간은 비린 맛을 풍긴다.

 

내가 아, 빤히 올려다보며 빨아먹은 어미는 도대체 몇왕생 몇몇이었을까

윤회를 믿는 신비한 나라,

인도 미인들의 검은 누은 깊고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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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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