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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5   수 · 행 · 입 · 문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2008, 조계종출판사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927

 

224.81

불15ㅈ  v. 2

 

불교수행입문

 

절 수행은 몸을 통해 부질없는 집착들을 하나하나 비워가는 것이다

 

절 수행 후 삶이 바뀌었다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오랜 지병을 고쳤다는 분들이나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는 분들, 절을 하면서 가정이 화목해지고 사회생활이 즐거워졌다는 분들도 많다. 처음 절을 할 때는 너무 힘들지만 그 과정만 넘기면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절 수행이다.

-양현숙/가정주부

 

언제부터인가 나는 주위에서 아픈 도반을 보면 절 수행을 권한다. 내가 절로 인해 살아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심이 아닌 스스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또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다보면 애써 구하지 않아도 복은 오게 된다. 나 자신의 절박함으로 시작한 절과 기도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 자연스럽게 남을 위한 발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병규/중소기업 대표

 

새벽 4시, 오늘도 혼자 일어나 3000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행은 여건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절. 절망의 바닥에서 고통과 눈물과 참회를 거치며 나를 지탱하게 해준, 끝내는 나 자신을 확연히 바꾼 절, 이제는 온갖 유정 무정들의 성불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리라는 마음으로 절을 한다.

-대영암/초등학교 교사

 

불교 수행은 연기 · 무아를 깨달아 생로병사를 해탈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연기 · 무아로 가는 수행이라면 모두 불교 수행입니다. 그 중에서 절은 남을 공경하고 자기를 비우는 훌륭한 수행법입니다.

절 수행은 몸과 마음을 통해서 진짜 내가 없음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절 수행을 통해서 몸과 마음을 극복하고 하심하는 마음가짐으로 부지런히 수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아의 경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고 이에 따라 몸과 마음의 변화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절은 약간의 공간과 시간만 주어지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절 수행은 육체적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동시에 찾아주어 운동이 부족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에게 적합한 수행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    례

 

수행법 입문서의 간행을 맞아 - 교육원장 청화

《절 수행 입문》을 펴내며 - 불학연구소장 현종

 

제1장 절 수행이란 무엇인가

    1. 절 수행의 의미

    2. 절 수행의 특징

    3. 절 수행의 역사와 현황

 

제2장 경전 속에 나타난 절 수행

    1. 절의 의미와 대상

    2. 절의 종류와 방법

    3. 절 수행의 공덕

 

제3장 절은 어떻게 해야 하나

    1. 절하는 마음가짐

    2. 절 수행의 절차

    3. 절하는 장소 및 준비사항

    4. 절하는 법

 

제4장 여러 가지 절 수행법

    1. 절하면서 참회하는 법

    2. 절하면서 화두 드는 법

    3. 절하면서 수를 헤아리는 법

    4. 절하면서 염불하는 법

    5. 절하면서 심신을 관하는 법

    6. 절하면서 사경하는 법

 

제5장 절 수행은 어떤 효과가 있나

    1. 열 가지 뛰어난 공덕

    2. 수행으로서의 효과

    3. 정신적 · 육체적 효과

 

부록

    절 수행 체험기

    예불대참회문

 

《묘종경妙宗經》을 강설하다가, "이 마음이 부처가 된다[是心作佛].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是心是佛]"라는 대목에 이르러서 마음에 크게 계합하였다. 이후로는 《묘종妙宗》을 설법하기 좋아하여 언변과 지혜가 막힘이 없었고, 여러 사람에게 권하여 참회를 닦기를 간절하고 지극하고 용맹스럽게 하여 매일 53 부처님에게 열 두 번씩 예경禮敬하고, 비록 모진 추위와 무더운 더위라도 한 번도 게을리 한 일이 없으니, 승려들이 서참회徐懺悔라 불렀다.

- 최자 찬, <만덕산백련사원묘국사비명> 《동문선》 제117권

 

지금 모든 부처님 · 보살 · 부모 · 아라한 · 벽지불께 예를 올립니다. 모두 최상이고 위 없고 밝음 중에서도 밝음이고 견줄 바 없고 또한 비할 데 없는 분께 예를 올려서…(후략)

- 《삼만다발타라보살경》 <원락품>

 

제가 이제 일체의 부처님의 한 길 여섯 자 몸 법신에게 예배하고 또 불탑에 예배합니다. 태어나신 곳과 득도하신 곳과 법륜을 펴신 곳과 열반하신 곳과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누우신 그 모든 곳에 다 예배합니다.

- 《문수사리문경》 상

 

부처님 법 중에 나이가 어린 비구는 나이 많고 오래 수행한 비구를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

- 《대반열반경》 제6권

 

시가라월이라는 한 장자가 여섯 방향에 예경禮敬하자 부처님께서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시가라월은 단지 아버님의 유훈일뿐 그 이유는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각 방향에 예경하는 의미를 설해주었다. 동방에 예경하는 것은 부모를 위한 절이며, 남방에 예경하는 것은 스승을 위한 절이며, 서방에 예경하는 것은 아내를 위한 절이며, 북방에 예경하는 것은 친척과 친구를 위한 절이며, 땅을 향해 절하는 것은 아랫사람을 위한 절이며, 하늘을 향해 절하는 것은 사문이나 수행자를 위한 절이라고 말씀하셨다.

- 《육방예경六方禮敬》

 

소승참小乘懺은 반드시 대비구大比丘를 부르고 대중스님들에 증명證明을 구하기 위해 오법五法을 갖추어야 하는데, 처음은 편단우견偏袒右肩, 둘은 우슬착지右膝着地, 셋은 합장合掌이고, 넷은 죄명罪名을 설하는 것이고, 다섯은 예족禮足이다. …(중략)… 대승 또한 작법作法이 있으니 …(중략)… 먼저 엄숙하게 도량을 깨끗이 하고, 향을 땅에 뿌리고, 실내에 둥근 단을 지어서 채색하고, 오색번을 걸고, 해안향海岸香을 태우고, 높은 자리를 펼치고 24존상尊像을 청하여…(후략)

- 《원각경약소초》 제12권

 

부처님께서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예경을 하지 않느니라. 대체로 입으로 '내가 이렇게 경례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다만 입으로 존경한다는 업을 짓는 것이요, 혹 때로 몸을 굽히면서 입으로 인사를 하더라도 이것이 비록 예경이라고는 하나 완전한 것은 못 된다. 우바리야! 나의 법에는 두 가지 경례가 있다. 하나는 오체를 땅에 붙이는 것이요, 둘째는 두 손으로 장딴지를 만지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나 모두 입으로는 '내가 이제 경례합니다'라고 하면 상대방은 '잘 있었느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아니면 모두 법을 어기는 죄가 되느니라."

-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제15권

 

사람의 몸 가운데 가장 것이 머리이니, 다섯 가지 감정이 매인 곳이며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발은 가장 천하니, 더러운 곳을 밟기 때문이며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것으로 가장 천한 것에 절을 한다. 또 상 · 중 · 하의 절이 있으니, 하의 절은 합장하는 것이요, 중의 절은 꿇어앉는 것이며, 상의 절은 머리를 숙여 발에 절하는 것이니 이것이 최상의 공양이다.

-  《대지도론》 제10권

 

예禮를 올리는 데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말로 하는 예요, 둘째는 무릎을 꿇고 머리는 땅에 대지 않는 예이며, 셋째는 머리를 땅에 대는 예이니 이것이 최상의 예배이다. 사람의 몸에는 머리가 맨 위가 되고 발이 맨 아래가 되니 머리로 발을 향해 예배하는 것은 극진히 공경한다는 표시이다.

- 《대지도론》 제100권

 

때가 되자 대중 가운데 있던 수보리 장자가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으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 《금강경》 선현기청분 제2

 

경의를 표하는 의식에는 그 법식에 아홉 가지(단계)가 있으니 첫째로는 소리를 내어 위문慰問하는 것이고, 둘째는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것이고, 셋째는 손을 들어서 높게 맞잡는 것이고, 넷째는 손바닥을 합하여 가지런하게 맞대는 것이다. 다섯째는 무릎을 꿇는 것이고, 여섯째는 길게 엎드리는 것이고, 일곱째는 손과 무릎을 땅에 대는 것이고, 여덟째는 오륜(두 무릎과 두 손과 이마)을 함께 구부리는 것이고, 아홉째가 오체투지 하는 것이다.

- 《대당서역기》 제2권

 

부처님은 우바리에게 말씀하셨다. "화남和南은 입의 말이요, 몸을 굽히면 이것을 심정心淨이라 한다. 비구가 예배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偏袒右肩], 신을 벗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상좌의 발에 대고 예배해야 한다.

- 《법원주림》 제20권

 

지금의 서역 스님들이 예배를 할 때 발을 벗고 무릎을 드러내어 먼저 바닥에 댄 뒤 팔꿈치로 바닥을 누르고 두 손바닥으로 허공을 향해 발을 받드는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  《법원주림》 제20권

 

오륜五輪이란 두 손과 두 무릎, 그리고 머리인데 경(《圓覺經》)에서는 땅에 붙일 때 하나하나에 발원하라고 하니, "나는 이제 부처님 전에 오륜으로 예를 올리니, 오도五道를 끊기 위해서요, 오개五蓋를 여의려는 것이며, 중생이 항상 오신통에 안주하고 오안五眼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원컨대 내가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일 때 모든 중생이 정각도正覺道를 얻고(오른쪽은 수순隨順한다는 의미이므로 정각을 이루고), 원컨대 내가 왼쪽 무릎(왼쪽은 위역違逆을 뜻하므로 사견邪見을 의미한다)을 땅에 붙일 때 모든 중생이 외도外道의 사견邪見을 일으키지 않게 하리라. 원컨대 내가 오른손을 땅에 붙일 때 세존께서 마치 금강좌에 앉으셔서 오른손으로 대지를 가리켜 진동하게 하고 상서로운 감응을 나타내고 대보리를 증득하시는 것처럼 하리라. 원컨대 내가 왼손을 땅에 붙일 때 모든 외도를 사섭법四攝法으로 섭취攝取하여 정도正道에 들게 하리라. 원컨대 내가 머리를 땅에 붙일 때 모든 중생이 교만을 여의고 마음이 모두 무견無見의 정상頂相을 성취하게 하리라."

- 《원각경약소초》 제11권

 

호궤와 장궤는 다 인도의 공경하는 의식이니 괴이할 것은 없다. 이것은 좌우의 무릎을 번갈아 꿇어앉는 것으로, 모두 계청啓請이나 참회하는 의식이다.

혹 두 무릎을 땅에 붙이고 몸을 똑바로 하여 합장해도 된다. 이것은 곧 상대를 우러러보며 찬탄하는 것이다.

- 《법원주림》 제20권

 

스승과 제자는 궤도를 달리하나 돌아가는 곳은 같고, 승속僧俗은 길은 다르나 그 취지는 하나다. 그러므로 형상을 가르치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떳떳한 법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다만 망령되이 아我와 대상[人]에 집착하여 교만의 물결에 떨어지고 업을 따라 떠돌고 있으면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중략)… 그러므로 큰 성인은 자비로 교화하여 유도하니 모든 수행 가운데 요체는 예배하고 참회하며 도를 닦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용수보살의 《십주론十住論》에 "보살에게는 낮과 밤에 각각 삼시三時가 있으니 이 육시六時에 시방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참회하고 권청하며 수희하고 회향하면 아유월지阿惟越地에 이른다"고 하였으니 이에 의해 수행하면 불퇴위不退位를 빨리 이룰 것이다.

- 《법원주림》 제20권

 

요즘 승속僧俗들이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는 것을 들어 보면 비록 몸으로는 따라 예배하나 마음은 바깥 경계를 쫓아 헤맨다. 중도中道에서 벗어나더라도 조금도 반성하고 뉘우침이 없다. …(중략)… 또 어떤 승속들은 예배할 때 큰소리를 주고받으며 급하게 예를 취하면서 몸은 절을 따라 하지 않고 마음은 공경스러움을 생각하지 않는다. 군인들이 점호를 받는 것과 같아서 단지 빈 이름만 기억할 뿐이다. 마치 방아가 오르내리는 것 같아 한갓 수고로움만 더할 뿐 아무런 이익이 없다. …(중략)… 믿음에 의해 잘 들어가 지혜를 낼 수 있는 것인데, 믿음이 이미 행해지지 않거늘 무엇에 의지해 들어갈 수 있는가.

- 《법원주림》 제20권

 

예불의 정신은 예禮를 행하는 참회자와 예禮를 받는 관세음보살의 체성體性이 다 본래 공적空寂하여 중생의 감感함과 성현의 응應함이 도道로써 교류하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경지이다. 나와 참회하는 이 도량은 마치 제석천궁에 걸쳐 있는 인드라망의 한 보주寶珠와 같아 관세음보살이 무수히 나투는 가운데 나의 몸도 또한 관세음보살 전에 나투어 얼굴을 바닥에 대고 받드는[頭面接足] 지극한 마음으로 예를 올리는[至心歸命禮] 것이다.

- 《관음참법주소》

 

내게 항상 다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의무적으로 절을 시킵니다.

"108배 절을 하라!"

참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그런 생활을 하려면 날마다 108배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남을 위해 108배 기도하는 정성이 없으면 아무리 불공한다고 해도 매일 108배하는 사람과는 많이 다릅니다.

나도 새벽에 꼭 108배를 합니다.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시작할 때 조건이 나를 위해 절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하옴은 제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에 나길 구함 아니요, 모든 중생이 함께 같이 무상보리 얻어지이다."

이제 발심하여 108배를 하는데 스스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위해 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이 다 성불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중생들과 보리도에 회향합니다.

일체 중생을 위해, 남을 위해 참회하고 기도하면 기도한 공덕이 큽니다. 이것이 모두 일체 중생에게 가라 이것입니다.

그리고도 부족하여 "원합노니 수승하온 이 공덕으로 위 없는 진법계眞法界에 회향하오며" 예불참회한 이 공덕이 모두 남에게로 다 가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혹 남은 것이, 빠진 것이 있어서 나한테로 올까 봐 온갖 것이 무상진법계로, 온 법계로 돌아가고 나한테는 하나도 오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저 인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거쳐 신라 · 고려에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 《성철선사법어집》 '불공하는 법'

 

향로를 손에 들고 한마음 한뜻으로 저 서방을 향하여 오체투지의 예배를 하되, 분명한 목소리로 명호를 부른다. 일심정례 본사석가모니세존 일심정례 서방무량수세존 …(중략)… 일심정례 시방일체보살마하살 일심정례 사리불등성문연각현성승

- 《관음예문》

 

예불대참회문禮佛大懺悔文

 

1. 대자비로 중생들을 어여삐 보셔

    대희대사 베푸시어 제도하시고

    수승하온 지혜덕상 장엄하시니

    저희들이 정성 다해 예배합니다.(1배)

2. 금강상사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 불법승 삼보님께 귀의하옵니다.(1배)

4. 제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하옴은

    제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에 나며

    성문 연각 보살 지위 구함 아니요.

    오직오직 최상층을 의지하옵고

    아뇩다라 보리심을 냄이오이다.

    원합노니 시방세계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무상보리 얻어지이다.(1배)

5. 온 시방 허공세계 일체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 온 시방 허공세계 일체 법보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 온 시방 허공세계 일체 승보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 십호 구족하신 모든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 보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0. 보명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1. 보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2. 다마라발전단향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3. 전단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4. 마니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5. 환희장마니보적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6. 일체세간락견상 대정진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7. 마니당등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8. 혜거조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19. 해덕광명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0. 금강뢰강보산금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1. 대강정진용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2. 대비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3. 자력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4. 자장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5. 전단굴장엄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6. 현선수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7. 선의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8. 광장엄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29. 금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0. 보개조공자재력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1. 허공보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2. 유리장엄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3. 보현색신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4. 부동지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5. 항복중마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6. 재광명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7. 지혜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8. 미륵선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39. 선적월음묘존지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0. 세정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1. 용종상존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2. 일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3. 일월주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4. 혜당승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5. 사자후자재력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6. 묘음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7. 상광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8. 관세등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49. 혜위등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0. 법승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1. 수미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2. 수만나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3. 우담발라화수승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4. 대혜력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5. 아촉비환희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6. 무량음성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7. 재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8. 금해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59. 산해혜자재통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0. 대통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1. 일체법상만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2.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3. 금강불괴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4. 보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5. 용존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6. 정진군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7. 정진희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8. 보화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69. 보월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0. 현무우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1. 보월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2. 무구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3. 이구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4. 용시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5. 청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6. 청정시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7. 사류나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8. 수천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79. 견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0. 전단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1. 무량국광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2. 광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3. 무우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4. 나라연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5. 공덕화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6. 연화광유희신통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7. 재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8. 덕념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89. 선명칭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0. 홍염제당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1. 선유보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2. 투전승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3. 선유보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4. 주잡장엄공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5. 보화유보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6. 보련화선주사라수왕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7. 법계장신아미타 부처님께 지심귀명 하옵니다.(1배)

98. 모든 세계 이와 같은 제불세존은

     어느 때나 중생들과 함께하시니

     저희들을 이제 다시 살펴주소서.

     저희들의 지난날을 생각하오면

     이생으로 저생으로 그 먼생으로

     시작 없는 옛적부터 내려오면서

     가지가지 지은 죄가 한이 없으니

     제 스스로 혼자서 짓기도 하고

     다른 이를 시켜서 짓게도 하며

     남이 하는 나쁜 짓 좋아하였고

     탑 전이나 삼보도량 갖춘 물건도

     승물이나 사방승물 가림이 없이

     제 것인 양 함부로 갖기도 하고

     다른 이를 시켜서 훔치었으며

     상주물건 훔치기를 좋아하였고

     무간지옥 떨어질 오역중죄도

     제 스스로 혼자서 짓기도 하고

     다른 이를 시켜서 짓게도 하며

     남이 짓는 오역죄 좋아하였고

     삼악도에 떨어질 십악죄행도

     제 스스로 혼자서 짓기도 하고

     다른 이를 시켜서 짓기도 하며

     남이 짓는 십불선 좋아했으니

     이와 같은 모든 죄가 태산 같으되

     어떤 것은 지금에도 생각에 남고

     어떤 것은 아득하여 알 수 없으나

     알든 말든 지은 죄에 오는 과보는

     지옥 아귀 축생도나 다른 악취나

     변지하천 멸려차로 떨어지리니

     제가 이제 정성 다해 부처님 전에

     이와 같은 모든 죄장 참회합니다.(1배)

99. 이 자리를 함께하신 제불세존은

     저희들의 온갖 일을 다 아시오니

     대자비심 베푸시어 살펴주소서.

     제가 다시 제불전에 아뢰옵니다.

     저희들의 지나온 모든 생 중에

     보시공덕 지었거나 경계를 갖되

     축생에게 먹이 한 입 준 일로부터

     청정 범행 닦고 익힌 정행공덕과

     중생들을 성취시킨 선근공덕도

     무상보리 수행하온 수행공덕도

     위 없는 큰 지혜의 모든 공덕도

     일체를 함께 모아 요량하여서

     남김없이 보리도에 회향하옵되

     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께서

     지으신 바 온갖 공덕 회향하듯이

     저도 또한 그와 같이 회향합니다.

     제가 이제 모든 죄장 참회하옵고

     모든 복덕 남김없이 수희하오며

     부처님을 청하온 공덕으로써

     무상지혜 이뤄지길 원하옵니다.

     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들은

     시방세계 다함없는 중생들에게

     가없고 한량없는 공덕바다이시니

     제가 이제 목숨 바쳐 절하옵니다.(1배)

100. 가이없는 시방세계 그 가운데에

       과거 미래 현재의 부처님들께

       맑고 맑은 몸과 말과 마음을 기울여

       빠짐없이 두루두루 예경하옵되

       보현보살 행과 원의 위신력으로

       널리 일체 여래 전에 몸을 나투고

       한 몸 다시 찰진수효 몸을 나투어

       찰진수불 빠짐없이 예경합니다.(1배)

101. 일미진중 미진수효 부처님계셔

       곳곳마다 많은 보살 모이시었고

       무진법계 미진에도 또한 그같이

       부처님이 충만하심 깊이 믿으며

       몸몸마다 한량없는 음성으로써

       다함없는 묘한 말씀 모두 내어서

       오는 세상 일체겁이 다할 때까지

       부처님의 깊은 공덕 찬탄합니다.(1배)

102. 아름답기 으뜸 가는 여러 꽃타래

       좋은 풍류 좋은 향수 좋은 일산들

       이와 같은 가장 좋은 장엄구로써

       시방삼세 부처님께 공양하오며

       으뜸 가는 좋은 의복 좋은 향들과

       가루 향과 꽂는 향과 등과 촛불의

       낱낱것을 수미산의 높이로 모아

       일체 여래 빠짐없이 공양하오며

       넓고 크고 수승하온 이내 슬기로

       시방삼세 부처님을 깊이 믿삽고

       보현보살 행원력을 모두 기울여

       일체 제불 빠짐없이 공양합니다.(1배)

103. 지난 세상 제가 지은 모든 악업은

       무시이래 탐심 진심 어리석음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지었음이라.

       제가 이제 남김없이 참회합니다.(1배)

104. 시방세계 여러 종류 모든 중생과

       성문연각 유학무학 여러 이승과

       일체의 부처님과 모든 보살의

       지니옵신 온갖 공덕 기뻐합니다.(1배)

105. 시방세계 계시옵는 세간등불과

       가장 처음 보리도를 이루신 님께

       위 없는 묘한 법문 설하시기를

       제가 이제 지성 다해 권청합니다.(1배)

106. 부처님이 반열반에 들려 하시면

       찰진겁을 이 세상에 계시오면서

       일체 중생 이락하게 살펴주시길

       있는 정성 기울여서 권청합니다.(1배)

107. 부처님을 예찬하고 공양한 복덕

       오래 계셔 법문하심 청하온 공덕

       기뻐하고 참회하온 온갖 선근을

       중생들과 보리도에 회향합니다.(1배)

108. 원합노니 스승하온 이 공덕으로

       위 없는 진법계에 회향하오며

       이치에도 일에도 막힘이 없고

       불법이고 세간이고 걸림이 없는

       삼보님과 삼매인의 공덕바다를

       제가 이제 남김없이 회향하오니

       모든 중생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지은 업장들

       잘못 보고 트집잡고 비방도 하고

       아와 법을 집착하여 망견을 내던

       모든 업장 남김없이 소멸되어서

       생각 생각 큰 지혜가 법계에 퍼져

       모든 중생 빠짐없이 건져지이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 다하고

       중생업이 다하고 번뇌 다함은

       넓고 크고 가없어 한량없으니

       저희들의 회향도 이뤄지이다.(1배)

 

       나무 대행 보현보살(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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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6-014 간 · 화 · 선 · 입 · 문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2008, 조계종출판사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1928

 

224.81

불15ㅈ v. 1

 

불교수행입문

 

대나무 그림자로 섬돌을 쓸지만 /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우물바닥까지 꿰뚫지만 / 물 속에는 아무 흔적도 없네.

 

간화선은 마음 바닥으로 곧바로 들어가 그 깨끗한 본바탕을 가리고 있는 모든 쓰레기를 치워내고 그 본바탕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나뭇가지 하나하나, 잎사귀 하나하나를 윤기 있게 하기보다는 뿌리와 줄기 그 자체의 생명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지가 무하게 뻗어나가고 잎사귀에서 푸른 생명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흘러 가는 물을 깨끗이 하면서 근원으로 거슬러가기보다는 물이 솟아나는 샘물 바로 그 자리로 들어가 샘물이 펑펑 솟아나게 하는 것이다. 곁가지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을 확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참선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즉 참선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를 찾는 것이다.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는 나, 발 이 삶의 현장에서 역력하게 살아 있는 나, 시시각각 변하는 내가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은 나, 깎아지를 듯한 백 척 장대 위에서 서슴없이 한 발 내딛는 나, 한없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날ㄹ 발 이 자리에서 찾는 것이 선이다. 그러나 찾는다고 표현하지만, 이미 내 속에 갖추어져 있는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다.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 역력하게 드러나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보고 행동하는 것이 선이다.

더 보태고 뺄 것도 없다. 본래 갖추어져 있는 모습이 온통 다 드러날 뿐이다.

 

차례

 

머리말

 

제1장 선이란 무엇인가

    1. 선의 본질과 그 효능

    2. 나는 누구인가

    3. 마음의 평화와 안정, 행복의 길

    4. 자신감과 당당한 삶

    5. 무한 경쟁에서 무한 향상의 길로

    6. 깨어 있는 삶

 

제2장 간화선이란 무엇인가

    1. 간화선의 의미와 특징

    2. 조사선이란 무엇인가

    3. 부처님 가르침과 간화선

    4. 우리들은 모두 본래 부처다

    5.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제3장 간화선 수행의 기본 조건

    1. 정견의 확립은 왜 중요한가

    2.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깨닫는 것인가

    3. 발심의 중요성

    4. 진리의 안내자, 선지식

 

제4장 생활 속의 화두 참구법

    1. 화두란 무엇인가

    2. 공안, 고칙, 그리고 중도

    3. 화두 참구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

    4. 초심자의 화두 참구법

    5. 생활 속의 화두

    6. 화두는 한결같이 들어야 한다

    7. 일상생활에서 경계 대처법

    8. 화두가 진전되는 단계

    9. 화두 받는 법

   10. 화두 들 때 주의해야 할 병통과 그 대처법

 

제5장 깨달음의 빛

    1. 깨달음의 세계

    2. 산은 산, 물은 물

    3. 선의 생명

    4. 깨달음과 행복

    5. 21세기와 선

 

부록-좌선하는 법

 

대나무 그림자로 섬돌을 쓸지만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우물바닥까지 꿰뚫지만

물 속에는 아무 흔적도 없네.

- 야보冶父 선사가 쓴 게송(송나라)

 

간화선을 수행하면 나타나는 효과

· 사태에 직면하여 당황하지 않는다.

· 불안, 공포를 제거한다.

· 자신감이 생긴다.

· 망상과 번뇌를 다스리며 현실에 깨어 있게 한다.

· 삶에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

· 내면이 진정 자유롭고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 마음이 여유롭고 자연스러워진다.

· 마음의 안정과 집중력을 기르게 해준다.

· 대립과 갈등을 해소한다.

· 좋고 싫은 경계에 휘둘리지 않는다.

· 항상 현재를 산다.

· 날마다 좋은 날이다.

· 신심의 조화를 통해 건강한 삶과 강한 정신력을 심어준다.

 

나는 바라는 게 없다

나는 두려운 게 없다

나는 자유인이다.

- 니코스 카잔스키(《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의 묘비명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자기를 바로 봅시다.

유형, 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 성철 스님

 

경전 밖에 전해지는 가르침

언어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곧바로 자기의 마음을 직관하여

자신의 성품을 보아 부처가 된다.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었고,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 서산 휴정西山休靜, 1520~1604 선사 《선가귀감禪家龜鑑》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이 선이고,

말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이 교다.

마음은 선법이고 말은 교법이다

- 《선가귀감禪家龜鑑》

 

세존께서 옛날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다. 이때 대중들이 모두 그 뜻을 몰라 묵묵부답이었는데, 오직 가섭 존자만이 미소를 지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진리에 관한 바른 안목[正法眼臟]과 열반으로 향하는 미묘한 마음[涅槃妙心], 형상을 벗어난 실상[實相無相]과 지극히 미묘한 진리의 문[微妙法門],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不立文字], 경전 이외에 따로 전하는 것[敎外別傳]이 있으니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라고 하셨다.

- 《무문관無門關》 제6칙 '세존염화世尊拈花'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일체 중생이 모두 여래와 같은 지혜와 덕상을 갖추었구만 분별망상으로 깨닫지 못하는구나!

- 《화엄경》

 

이 마음이 바로 본래 이루어져 있는 부처임을 깨달으면, 구경에는 자재하고 여실히 안락할 것이다. 온갖 묘한 작용 또한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니,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대혜 선사 《서장書狀》<답진사경答陳沙卿>

 

경전 밖에 따로 전해지는 갈침    敎外別傳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不立文字

발 마음을 가리켜                       直指人心

성품을 바로 보아 부처가 된다.    見性成佛

 

선지식이여! 내가 공空을 말하는 것을 듣고 공에 집착하지 마시오. 제일 중요한 것은 공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 혜능 선사 《육조단경六祖壇經》

 

그대가 어디에서나 치달려 구하는 마음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가 말하기를 '쯧쯧, 장부여! 머리를 가지고 머리를 찾는구나'하였다. 그대가 이 한마디 말에 스스로 돌이켜 자신을 비추어 다시는 다른 데서 찾지 말고 몸과 마음이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알아서 당장에 아무 일 없으면 바야흐로 법을 얻었다고 한다.

- 임제 의현 선사 《임제록臨濟錄》

 

비구들이여, 정견은 시작이다.

왜 정견이 시작인가?

잘못된 견해는 잘못된 견해라고 이해하고

바른 견해는 바른 견해라고 이해한다.

- 《잡아함경》

 

선지식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일체지一切智로 나아가게 하는 문이며, 수레이며, 배이며, 횃불이며, 길이며 다리다.

- 《화엄경》

 

선지식은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중병을 거뜬하게 고쳐내고 대공덕주여서 능히 마음먹은 대로 베풀 수가 있다. 스스로 이만하면 됐겠지 하고 선지식을 만나보지 않고 자기 견해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이보다 더한 병통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 박산 무이博山無異, 1574~1630 선사 《참선경어參禪警語》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헤매고 있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아무리 헐벗고 굶주린 상대라도 그것은 겉보기일뿐, 본 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는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 성철 스님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은 "무, 없다"라고 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하였는데 왜 조주 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 법 먹고 옷 입고 말하고 보고 듣는 이놈,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밝고 또렷또렷[昭昭靈靈]한 주인공 이놈이 무엇인고?

· 부모미생전 나의 본래 면목이 무엇인고?

· 이 몸뚱아리를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화두 참구 원칙과 요령

첫째, 알음알이로 들지 말라.

둘째, 간절하게 들어야 한다.

셋째, 끈질기게 규칙적으로 들어야 한다.

넷째, 화두를 머릿속에서 들지 마라.

다섯째, 망상과 싸우지 마라.

여섯째, 호흡을 이용하여 화두를 들어보라.

일곱째, 그래도 안 되면 발심을 키워라.

여덟째, 화두를 들 때 조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아야 한다.

아홉째, 화두가 안 들린다고 해서 송화두頌話頭나 염화두念話頭를 해서는 안 된다.

 

제일도 노력, 제이 제삼도 노력, 노력 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노력한 그만큼 성공하는 법이니, 노력하고 노력해야 한다.

- 성철 스님

 

평소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는 것은 시끄러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시끄러울 때 그 시끄러움에 휘둘린다면 평소에 조용한 데에서 공부를 안 한거나 마찬가지다.

- 대혜 선사

 

다만 망상으로 전도된 마음과 사량 분별하는 마음과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과 분별로 이해하려는 마음과 고요함을 기뻐하고 시끄러움을 꺼려하는 마음을 한꺼번에 눌러버려라. 그리고 이렇게 눌러버린 경계에서 주어진 화두를 살펴라.

- 대혜 선사 《서장》<부추밀에게 답하는 편지>

 

생사의 관문을 타파하지 못했다면 의정이 불현듯 일어나야 한다. 그것을 눈썹 위에 맺어 놓고 놓아버리려 해도 버릴 수가 없고 쫓으려 해도 쫓을 수 없게 해야 한다.

 

 

바로 길이 막힌 데 이르러 철벽에 부딪치면, 마주하는 생각과 허망한 생각이 아주 고요해질 것이다. 그 공부는 물을 뚫는 밝은 달빛과 같아서, 자나깨나 한결같은 경지에 점차 이르면 번뇌는 쉬고 빛은 나려 할 것이다.

거기서는 슬퍼하거나 기뻐하지도 말고, 또한 깨달았다는 마음도 내지 말아야 한다. 조ㅗ금이라도 깨달았다는 마음을 내면 공부한 힘을 잃는다. 그저 또록또록하게 화두를 들되, 그것의 형상이 어떠한가 되풀이해서 관찰하면 어느 새 불조의 관문을 넘어뜨리고 한바탕 웃게 될 것이다.

- 태고 선사 《태고록》상, <문선인에게 주는 글>

 

달그림자는 여럿이 있으나, 달은 하나뿐이다. 샘은 여럿 있으나 물은 하나뿐이다. 삼라만상은 다양하나 허공은 하나뿐이며, 도리를 말하는 것은 다양하나 막힘 없는 지혜는 하나뿐임과 같다.

- 마조 선사

 

마음이 곧 부처이다. 참으로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자기의 성품을 깨쳐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성품이 곧 부처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니,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다.

- 달마 선사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으며 자기의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일 불심이 없으면 어느 곳에서 참 부처를 구하리요.

- 육조 혜능 선사

 

이 세계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 마음의 성품은 있었고, 이 세계가 무너진 후에도 이 마음의 성품은 지속되는 것이다. 참딘 부처는 오직 자신 속에 앉아 있을 뿐이다. 다만 그대들은 본래부터 자신의 주인공일 따름이다. 그러니 어찌 그 주인공을 밖에서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 조주 선사

 

깨닫게 되면 가슴 속이 환히 밝은 것이 마치 백천 해와 달 같아서 시방세계를 한 생각에 밝게 요달하며 가는 털끝만큼의 다른 생각도 없다.

- 대혜 선사

 

진여법계는 나와 남이 없으니 그것을 알려고 하나 그것은 불이不二의 도리일 뿐이다. 불이는 모두 같아서 포용하지 않음이 없으니 시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 이 종지를 깨친다.

- 《신심명》

 

무릇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우선 대비심을 일으켜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정교하게 삼매를 닦아 맹세코 중생을 제도하려 할지언정 자기 한 몸만을 위해서 해탈을 구하지 말라.

- 《좌선의坐禪儀》

 

불성이 그대의 몸 안에 있는데도 그대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대가 하루 종일 배고픈 줄 알고 목마른 줄 알며 추운 줄 알고 더운 줄 알며 성내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는데, 결국 그것이 과연 무엇이던가. 또한 몸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의 사대가 인연하여 모인 것으로서 그 바탕이 완고하여 감정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 그것들이 보고 들으며 느끼고 알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필시 그대의 불성이 있기 때문이다.

- 보조 지눌 선사

 

만약 마음으로부터 진정으로 터득한다면 저잣거리의 잡담도 좋은 설법이 아니라 또한 새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도 깊은 실상을 설하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 《선가귀감》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是會大衆은 아는가?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

- 성철 스님

 

노승이 30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그 뒤 훌륭한 선사를 만나 선의 진리를 찾았을 때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지막 쉴 곳인 깨달음을 얻고 보니

'산은 진정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 청원 유신 선사

 

언어와 침묵, 움직임과 고요함, 모든 소리와 색깔이 모두 깨달음이거늘 어느 곳에서 부처를 찾겠는가?

머리 위에서 머리를 찾지 말며 부리 위에서 부리를 더하지 말라.

다만 차별적인 견해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산은 산, 물은 물, 승僧은 승, 속俗은 속일 뿐이다.

- 황벽 선사

 

만 가지를 가져도 (죽을 때는)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업만이 몸을 따르느니라. 삼 일 동안만 마음을 닦아도 천 년의 보배가 될 것이요, 백 년 동안 물질을 탐해도 하루아침에 티끌이 되느니라.

- 《자경문》

 

견성한 사람은 세워도 되고 세우지 않아도 되니, 가고 옴이 자유로워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다. 경우에 따라 작용을 하고 물음에 따라 답하며 널리 화신을 나타내지만 자성을 여의지 않으므로 곧 자재한 신통과 유희하는 삼매를 얻는다.

- 《육조단경》

 

살아가면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은 인간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적 · 외적인 생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 위에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가를…….

- 아인슈타인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나니, 부서진 수레는 가지 못하고 늙은 사람은 수행하지 못하거늘, 누워서 게으름만 내고 앉아서 어지러운 생각만 일으키는가. 몇 생이나 닦지 않았거늘 헛되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얼마나 허망한 몸으로 살았거늘 일생을 닦지 아니 하는가. 금생의 몸은 반드시 마침이 있음이라, 후생의 몸은 어떻게 하겠는가. 황급하지 아니하며 황급하지 아니한가.

- 원효 선사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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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6-013 재미있는 반야심경

 

대안스님 지음

2004, 혜성출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1900

 

223.53

대6219반

 

반야심경·심경이라고도 하는 반야심경은 당나라 현장이 번역했다. 관자재보살이 반야행을 통해 나타나는 법의 모습을 단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불교의 기초적인 법문인 오온·12처·18계가 모두 공하여, 12연기 또는 공하며, 4가지 진리 또한 공하다고 하여 모든 법의 공한 이치를 나타내었다.

 

대안

1985년 통도사에서 성파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통도사 서운암에서 쪽빛 염색과 도자기 작업을 시작해

2000년 동의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문학세계에 시가, 현대시조에 시조가 당선되어 문학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부산 금화사 주지며 선원에서 정진중이다.

주요 저서로 『알기 쉬운 불교강좌』, 『전통 복식에 나타난 청색에 관한 연구』, 『전통염색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차례

 

제1장 반야심경에 대하여

제1절 반야심경의 의의

제2절 반야심경의 성립과 구조

제3절 반야심경의 사상

제4절 반야부의 경전들

 

제2장 반야심경 해석과 강의

제1절 원문과 해석

제2절 반야심경 강의

_ 1. 제목

_ 2. 번역자

_ 3. 부처님을 찬탄하다

_ 4. 색은 곧 공이다

_ 5. 마음은 불생불멸이다

_ 6. 십이처, 십팔계가 본래 없다

_ 7. 십이인연이 본래 없다

_ 8. 사성제, 팔정도도 본래없다

_ 9. 보살들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셨다

_ 10. 꿈을 깨고 열반에 들자

_ 11.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해서 깨달았다

_ 12. 반야바라밀다는 최상의 주문이다

_ 13. 다함께 성불합시다

 

찾아보기

참고문헌

 

반야심경 자전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亦復如是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
 
 
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
 
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
 
 
波羅蜜多故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
 
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
 
 
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知
 
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
 
 
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3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해설>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큰 지혜로써 부처님 세계에 이르게 하는 핵심되는 진리의 말씀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님께서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오온이 모두 공한 것을 훤히 비추어 보시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으로부터 건너게 하시옵니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사리자야,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니,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
 
 
受想行識 亦復如是
 
수상행식도 이와 같느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사리자야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습은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이런 연고로 공 가운데에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안이비설신의도 없으며, 색성향미촉법도 없으며,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안계 내지 의식계도 없으며,
 
 
無無明 亦無無明盡
 
무명이 없고 또한 무명이 다람도 없으며,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내지 노사가 없고 또한 노사가 다함도 없으며,
 
 
無苦集滅道 無智無得
 
고집멸도가 없고 지혜라 할 것도 없고 또한 지혜 얻음도 없느니라.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얻은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들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罫碍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셨느니라 그런 연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無罫碍故 無有恐怖
 
걸림이 없는 연고로 두려움도 없느니라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전도몽상을 멀리 여의고 구경에는 열반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셨기 때문에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위없이 큰 깨달음을 이루셨느니라
 
 
故知 般若波羅蜜多
 
그러므로 알라. 반야바라밀다는
 
 
是大神呪 是大明呪
 
크게 신비한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위없는 주문이며 비교할 수 없는 등급의 주문이며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능히 일체 고통을 없애주시고 진실하여 헛됨이 없느니라.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해 가로대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
 
가자가자, 저 언덕에 가자, 저 언덕에 다함께 가자,
 
 
揭諦 菩提 娑婆訶
 
깨달음을 구경에는 원만히 성취하자
 
 
 
 
이야기 산책 ①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을 삼습니까?
 
 
조주스님께서 행각하실 때 대자환중(大慈寰中, 780~862) 스님에게 물었다.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體)을 삼습니까?"
 
대자스님이 말하였다.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을 삼습니까?"
 
스님께서는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나왔다. 다음날 스님께서 마당을 쓰는데 대자스님이 보고는 물었다.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을 삼습니까?"
 
스님께서 빗자루를 놓고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가버리자, 대자스님은 방장실로 돌아갔다.
 
                                              『조주록(趙州錄)
 
 
 
 
이야기 산책 ② 인도 23조 전등
 
 
가섭과 아난이 장경을 결집하여 세상에 유통시키고 열반에 드시자, 상나화수 등 스물 한 분의 성인이 서로 이어 불법을 널리 펴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하였다. 뭇 성인들의 사적은 글이 번거로우니 기록하지 않고 다만 그 이름과 법의 등불이 전한 햇수만 간략히 적어 보도록 한다.
첫째 가섭이 법의 등불 전하심은 45년이고, 둘째 아난이 법의 등불 전하심은 37년이며, 셋째 상나화수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62년이고, 넷째 우바국다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65년이며, 다섯째 제다가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49년이고, 여섯째 미차가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55년이고, 일곱째 불타난제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55년이고, 여덟째 불타밀다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48년이며, 아홉째 협존자는 법의 등불 전하기를 45년 하였는데, 『대비바사론』을 지어 삿된 견해를 꺾어 부수어 바른 종지를 붙들어 세우고 현풍(玄風)을 다시 떨쳤으며, 열번째 부나야사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60년이고, 열한번째 마명보살은 법의 등불 전하기를 56년 하였는데 『기신론』을 지어 바른 법을 다시 일으켰다. 열두번째 가비마라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58년이고, 열세번째 용수보살은 법의 등불 전하기를 57년 동안 하였다. 그는 처음엔 바라문이었다가 뒤에 불교를 믿었다. 코가 청정해짐을 얻어 큰 바다에 들어가 『화엄경』을 냄새로 맡아 가지고 나와 세상에 퍼뜨렸으며, 『대지도론』을 설하여 『반야경』을 풀이하였다.
열네번째 가나제바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51년이고, 열다섯번째 라후라다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48년이며, 열여섯번째 승가난제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39년이고, 열일곱번째 승가야사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61년이며, 열여덟번째 구마라타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34년이고, 열아홉번째 사야다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43년이고, 스물한번째 학륵나가 법의 등불 전하심은 44년이고, 스물세번째 사자(師子)존자가 법의 등불 전하기를 50년 동안 하였다.
 
                                              『석가여래행적송』
 
 
 
이야기 산책 ③ 무엇하시려고 기왓장을 갑니까?
 
어느날 남악선사(南嶽禪師)가 전법원(傳法院)에 갔다. 그곳에는 온종일 좌선하는 마조도일(馬祖道一)스님이 있었다. 남악스님은 마조스님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었다.
"뭣 땜에 참선하는가?"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남악스님은 그 말을 듣고 기왓장을 하나 주워와서 마조스님 옆에 가서 돌 위에 기왓장을 갈기 시작했다. 마조스님이 그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돌에 기왓장을 갈고 있는 남악스님에게 물었다.
"무엇하시려고 기왓장을 갑니까?"
"음, 거울 만들려고"
그 말에 마조스님은 웃었다.
"기왓장으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이때 남악스님의 눈이 번쩍했다.
"그래,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을 해서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마조스님은 한 방망이 맞고는 가슴이 덜컹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 수레와 같다.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엃은가, 수레를 때려야 옳은가"
이 말을 들은 마조스님은 아무말도 못하고 서있었는데 남악스님이 최후의 일침을 가했다.
"그대가 좌선을 하여 부처가 되고자 하니 내가 충고하건데, 선(禪)은 이 좌(坐, 앉아 있는 것)가 아니요, 부처는 이 말뚝처럼 그저 가만히 꽂혀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가지고 저것은 버리는 선택의 마음이 있다면 부처는 커녕 부처 그림자도 못 찾는다. 이 도리는 오직 스스로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물을 먹어 봐야 맛을 아는 것이니 말해 주긴 어렵도다"
이 말에 마조스님의 긴 여행은 끝났다.
 
                                              『마조록(馬祖錄)』
 
 
 
이야기 산책 ④ 여기까지 이렇게 왔습니다.
 
효봉선사가 젊었을적에 금강산의 석두스님을 찾아가 절을 하고 말했다.
"석두 큰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어디서 왔는가?"
"유점사에서 왔습니다"
"몇걸음에 왔는가?"
이에 효봉선사는 벌떡 일어나 큰방을 한바퀴 잽싸게 돌고는 말했다.
"이렇게 왔습니다"
 
                                                   『선의 세계
 
 
 
 
이야기 산책 ⑤ 불생불멸의 도리
 
조주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법이란 본래 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말을 꺼냈다하면 나는 것이요, 말을 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할 것도 없으니, 여러분은 무엇을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도리라고 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벌써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이 아닙니까?"
"이 놈이 그저 죽은 말만 알아듣는구나"
 
                                                     『조주록(趙州錄)
 
 
육근(육내처)               육경(육외처)
 
① 안처(眼處) ------------ ⑦ 색처(色處)
② 이처(耳處) ------------ ⑧ 성처(聲處)
③ 비처(鼻處) ------------ ⑨ 향처(香處)
④ 설처(舌處) ------------ ⑩ 미처(味處)
⑤ 신처(身處) ------------ ⑪ 촉처(觸處)
⑥ 의처(意處) ------------ ⑫ 법처(法處)
 
 
육근(육내처)    육경(육외처)       육식
 
① 안근(眼根) - ⑦ 색경(色境) = ⑬ 안식(眼識)
② 이근(耳根) - ⑧ 성경(聲境) = ⑭ 이식(耳識)
③ 비근(鼻根) - ⑨ 향경(香境) = ⑮ 비식(鼻識)
④ 설근(舌根) - ⑩ 미경(味境) = 16 설식(舌識)
⑤ 신근(身根) - ⑪ 촉경(觸境) = 17 신식(身識)
⑥ 의근(意根) - ⑫ 법경(法境) = 18 의식(意識)
 
 
이야기 산책 ⑥ 저에게는 눈 · 귀 · 코 · 혀 등이 있는데
 
동산스님의 휘(諱)는 양개(良价)이며, 회계(會稽) 유씨(兪氏) 자손이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따라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다가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는 대목에서 홀연히 얼굴을 만지며 스승에게 물었다.
"저에게는 눈 · 귀 · 코 · 혀 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반야심경』에선 없다고 하였습니까?"
그 스승은 깜짝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 라고 하더니 즉시 오설산(五洩山)으로 가서 영묵선사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가르쳐주었다.
 
『조동록(曹洞錄)』
 
 
이야기 산책 ⑦ 바보 지팡이
 
옛날 어떤 사람이 자식 하나를 두었는데 어떻게나 미련하던지 일을 시킬 수 없을 정도로 바보짓만 연속해 하였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오늘은 아침 먹고나서 장에 좀 갔다 와야겠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밥을 먹고나서 바로 없어졌다. 정오가 훨씬 넘어서 비실비실 걸어와서 아버지께 인사햇다.
"아버지 다녀왔습니다"
"어디를 다녀왔느냐?"
"장에를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 우두커니 섰다가 옆에 있던 지팡이를 집어주며,
"얘야, 이 세상에서 너보다 더 못난 사람을 만나거든 이것을 주어라"
바보는 매일 그것을 짊어지고 와서 자기 집에다가 세워 놓고 나무를 하러 다녔다. 하루는 나무를 해 가지고 오니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왜 우십니까?"
"아버지가 다 죽게 되었다"
아들이 숨을 헐떡거리는 아버지를 보고 물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이제 저 세상으로 가려고 그런다"
"저 세상이 어딘데요?"
"모르겠다 가보아야지"
"며칠이나 걸리며, 노자는 몇 푼이나 듭니까?"
"모르겠다"
"지금 가시면 언제쯤 돌아오십니까?"
"그것도 모르겠다"
아무리 물어도 모두 다 모르겠다고만 한다. 바보는 곧 방으로 가서 세워 놓았던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 말했다.
"아버지 이것 받으세요"
"뭐냐?"
"바보 지팡이요. 이 세상에서 아버지보다 더 바보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고는 지팡이를 아버지의 손아귀에 꼭 쥐어드렸다.
 
                                                             『비유경
 
 
이야기 산책 ⑧ 오동잎 떨어지니 온 천하가 가을이로세
 
동산(東山, 1890~1965) 선사는 충청북도 단양군 사람으로 속성은 하(河)씨이다. 29세때 범어사 용성(龍城)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1965년 4월 범어사에서 세수 76세, 법랍 53세로 입적하였다.
태국의 승려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동산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 제가 당신 나라에 갔을 때 멋진 선물과 후대를 해주셨소. 오늘은 제가 선물을 드리겠소"
그리고 동산 선사는 돌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자가 보입니까?"
"예"
"그럼 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립니까?"
태국에서 온 승려는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때 동산 선사가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선물할 것은 그것뿐입니다"
 
                                                 『선문선답(禪問禪答)』
 
 
 
이야기 산책 ⑨ 불씨를 구하는 여인
 
부처님께서 한 마을을 가고 있을 때 멀리 한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여인은 머리칼이 구겨지고, 눈에는 슬픔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여인은 부처님에게 다가와 품에 쓰러져 울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아들이 오늘 아침에 죽었습니다. 저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식입니다. 저는 이제 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어떻게 자식을 다시 살아오게 할 수는 없을까요?"
여인의 흐느낌이 부처님의 가슴을 흔들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지나간 숱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여인을 생각하며 이 여인의 마음속에 박혀 있는 아들을 생각햇다.
"그대 아들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사람이 죽은 일 없는 집을 찾아 그 집의 불씨를 구해오십시오"
여인은 희망을 안고 부처님을 떠나 불씨를 구하기 위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녔다.
"지금껏 한번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 어느 집입니까?"
그러나 찾아간 집마다 문들이 쓸쓸히 닫혔다. 여인은 네거리로 달려가서 지나는 사람마다 옷깃을 잡았다.
"당신 집에 사람이 죽지 않은 일 있습니까?
사람들은 여인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떠나갔다. 여인은 기진하여 부처님에게 와서 말을 했다.
"그런 집은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여인의 머리칼을 만져주면서 말하셨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인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어둠만이 그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석가여래행적송』
 
 
 
이야기 산책 ⑩ 불이야, 불이야
 
 
경허(鏡虛)스님의 긴 옷자락이 밤바람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갈지(之)자 걸음은 고요로 덮여 가는 마을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웬 녀석이 이 밤중에 소란을 피우는 거야"
마을의 젊은이들은 화가 나서 팔을 걷어붙이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스님이 술에 고래가 되어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경허스님은 우악스러운 젊은이들에게 붙들려 몰매를 맞고 골방 깊숙이 갇혀 버렸다. 경허스님을 가둔 젊은이들은 인간내부에 묻혀 있던 잔인성의 표출로 하여 뜨겁게 달아오르는 마음을 짓누르며 돌아갔다. 얼마후 경허스님을 덮고 잇던 취기는 말끔히 가셔 버리고 경허스님의 마음에는 초롱초롱한 반짝이뿐이었다. 그 반짝임이 어둠을 영롱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불이야, 불이야"
잠으로 깊어 가는 마을을 두드려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저마다 손에 갈쿠리 혹은 곡괭이를 들고 불이 난 곳을 향하여 달려갔다. 헐떡이며 달려온 그들의 앞에는 아까 술이 곤드레 만드레 되어 몰매를 맞던 경허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불이 난 거요?"
늙은이 하나가 성급하게 뛰어나왔다. 경허스님은 떡 벌어진 자기 가슴을 치며 껄껄 웃었다.
"요 속에서 불이 났소. 몹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소"
 
                                                     『경허짐(鏡虛集)』
 
 
 
이야기 산책 ⑪ 아프냐 안아프냐?
 
어느날 신회(神會)라는 한 동자(童子)가 혜능대사가 머물고 있는 옥천사(玉泉寺)에 찾아왔다. 혜능대사가 물었다.
"네가 먼 곳에서 고생하며 왔으니 근본은 가지고 왔느냐? 만약 근본이 있다면 곧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 것이다. 말해 봐라"
"머무름 없는 것으ㅡ로 근본을 삼으니 보는 것이 바로 주인입니다"
"이놈, 왜 이런 경솔한 말을 하는가?"
혜능대사가 눈을 부릅뜨고 주장자(拄杖子)로 세 번 때리며 말하니 신회가 되물었다.
"스님께서는 좌선하실 때 보는 것이 있습니까?"
"내가 너를 때렸으니 아프냐, 안 아프냐?"
"아프긷 하고 안 아프기도 합니다"
"낟 보기도 하고 안 보기도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기도 하고 안 보기도 하는 것입니까?"
"내가 보는 것은 내 마음의 허물이요, 보지 않는 것은 타인의 시비나 좋고 나쁜 것이다. 이 때문에 보기도 하고 안 보기도 하는 것이다. 너는 아프기도 하고 안 아프기도 하다고 했는데, 네가 아프지 않다면 목석이요, 아프다면 범부(凡夫)의 생각이니 화가 치밀 것이다. 너는 아직 마음을 보지 못하고도 그런 희롱을 하느냐"
 
                                             『돈황본단경(敦煌本壇經)』
 
 
이야기 산책 ⑫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도둑놈
 
김씨의 사랑채는 잔칫날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 같았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만공(滿空)스님은 김씨댁을 두드렸다. 이 집 주인은 평소 만공스님을 찾아와 법문을 듣던 일이 있는 불자였다.
"만공스님 오셨다!"
사랑채에서 우글거리던 선비들은 도인(道人)이 오셨다는 말에 바둑판과 골패짝을 집어던지고 너도 나도 만공스님을 한 가운데로 하고 빙 둘러앉았다.
사랑채는 잠시 긴장이 감돌았다. 만공스님을 둘러싼 유생(儒生)들의 눈은 저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득했다. 이윽고 만공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만공스님의 음성은 쩌렁쩌렁 대들보를 흔들며 그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이 세상에는 제일 큰 도둑놈이 있소. 어떤 자가 제일 큰 도둑놈이냐 하면, 담을 넘어서 남의 집 물건 훔쳐 가는 놈은 좀도둑에 불과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밤낮으로 골패나 치며 놀고 먹는 놈들이야 말로 제일 큰 도둑놈이오. 보시오. 농부들은 일년내내 전가족이 피땀을 흘려가며 농사를 지어도 이듬해 봄이 되면 양식이 없어 나무뿌리를 캐먹는데, 하물며 아무 것도 않고 게다가 놀고 먹는 이 양반부스러기야 말로 도둑 중에서도 제일 큰 도둑이오"
좌중은 물 끼얹은 것 같았다. 이 말에 누구 하나 감히 입 벌리는 자가 없었다.
 
                                                     『선의로 가는 길』
 
 
이야기 산책 ⑬ 오직 부처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홍인화상께서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제자는 영남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부처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하였다.
오조대사께서 혜능을 꾸짖으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영남사람이요 또한 오랑캐거니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혜능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오조스님은 함께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니,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것을 보시고 다시 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혜능을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시니, 그때 혜능은 한 행자가 이끄는 대로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돈황본단경(敦煌本壇經)』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6-012 롬멜 MYTHOS ROMMEL

 

마우리체 필립 레미 지음 | 박원영 옮김

2003, 생각의 나무

 

총통의 공격 명령을 어기고 수십만 부하의 목숨을 구한, '위대한 퇴각'을 감행한 총사령관 롬멜

그는 증오해야 마땅한 확실한 나치였나, 아니면 히틀러에 저항한 영웅이었나?

인간에 내재된 모순과 악, 그에 맞서 변화하는 내면을 보여주는 심리 드라마

 

마우리체 필립 레미Maurice Philip Remy


독일 뮌헨 출생. 가장 성공적인 유럽 다큐멘터리필름 제작자로 손꼽히는 그의 작품들은 그 강렬함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베른슈타인 침머Bernsteinzimmer에 관한 기록>, <망명보트 빌펠름 구스틀로프Wilhelm Gustloff>', <러시아 황녀 아나스타샤>, <바티칸 시리즈 - 교황의 권력> 등이 있으며, 1995년에서 1998년까지 작가 겸 감독으로 <히틀러 - 그 결과와 조력자들>이라는 시리즈물을 기획, 제작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최근 작품인 ‘홀로코스트’에 관한 6부작은 36개국에서 방영되었다. 독일 ARD 방송국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필름 <롬멜 신화>의 감독이었던 그는 이 책에서 충분한 자료조사와 분석을 통해 인간 롬멜에 대한 새로운 상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그는 육군원수인 롬멜이 단지 히틀러의 단호한 명령에 복종하는 삶을 택한 것이 아니라. 그 독재자에 대항해 저항세력에 가담하였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옮긴이 박원영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및 동대학원 독문학 석사를 졸업했으며 독일 예나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독문학을 수학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여러 권의 아동책을 포함해 『행복을 주는 지혜』, 『남녀관계에 유익한 108가지 이야기』, 『아름다운 이웃, 동식물의 신비』, 『나무의 힘』 등이 있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영예로운 일이 아닐 때, 그는 신임을 잃는 길을 택했다."

- 프리드리히 아돌프 폰 데어 마르비츠의 기념관에서

 

"권력은 파괴한다. 즉 모든 권력은 모두 파괴한다."

- 유교 명언

【"롬멜은 그저 우리들과 함께 하는 게 아니었다. 그 역시 국가사회주의자였던 것이다"

롬멜에 대한 히틀러의 한마디, 1941년, 베를린

 

차례

 

MYTHOS ROMMEL 롬멜

 

서문 다시 쓰는 롬멜 신화

1장 신화의 시작 - 전진 또 전진

2장 '사막의 여우', 롬멜 - 반전에 반전

3장 나치의 장군으로 - 총통과의 악수

4장 명령에 복종할 것인가 - 위대한 퇴각

5장 여우 사냥 - 현실주의자의 패배

6장 작전명 '알라리히' - 이탈리아에서의 막간극

7장 헛된 믿음 - 롬멜의 회의

8장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다 - 비밀작전의 시작

9장 히틀러를 포기할 수 없다 - 최후 통첩

10장 또 다른 진실 - 거짓 의식

후기 진정한 영웅 롬멜

 

원주

참고 자료

 

"롬멜은 우리가 증오해야 마땅한 나치였나, 아니면 히틀러에 저항한 영웅이었나?"하는 문제도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 둘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롬멜은 분명한 나치이자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도자적인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부대원들을 자신에게로 끌어 들이는 능력이 있는데, 이것은 이성적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한 힘입니다."

【청교도적인 집안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평범한 사관후보생 시절  형제 자매들과 함께, 1910

【도둑맞은 푸어 르 메리테 훈장을 되찾다 1917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 루시에 롬멜과 함께, 1916, 단치히

【결혼 12년 만에 얻은 아들】 아들 만프레트, 1931, 드레스덴

【충실한 아내, 좋은 아빠】 1932, 드레스덴

【고슬라를 방문해 군대를 사열하는 히틀러】 히틀러의 왼쪽에 있는 사람이 롬멜이다. 1934. 9. 30

 【전술교사가 되다】군사 학교의 사령관과 함께(오른쪽이 롬멜), 1938, 포츠담

【"롬멜은 절대 나치가 아니야"】 1938, 포츠담

【'총통'의 특별 열차를 타고】 1939. 9. 폴란드

【무한한 자긍심에 차서】 승리의 퍼레이드, 1940. 6. 20, 파리

 

히틀러는 이제 롬멜이라는 패를 들 수 있었다. 그는 울리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우리는 행복하다. 이제 우리의 롬멜 대장이…… 그의 용맹스런 이탈리아-독일 전차 부대와 기계화 사단을 이끌고 적군이 그를 무찔렀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재빨리 선회해서 적군을 다시 밀어냈다."

【선전을 위해 차량을 밀다】 1941, 연출사진

【명령을 어기고 단독으로 감행한 공격】 1941.4, 키레나이카

【격렬한 전투를 지켜보며】 1941. 4, 토브룩

【의기양양한 분위기 속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장교들과 함께(가운데 앉은 이가 롬멜), 1941. 11

【'희망의 빛' 롬멜과 히틀러】 1942. 3. 18

【사막의 롬멜】 1942. 6, 비르 하차임

【"그래도 전쟁은 계속된다"】 차에 서 있는 사람 중 왼쪽이 롬멜, 1942. 6. 21, 로브룩

【육군 원수로 영전될 무렵의 롬멜】 1942. 6. 22, 토브룩

 

"롬멜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확고한 세계관을 가진 그는 우리 국가사회주의자들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도 국가사회주의자이다. 그는 임기응변에 능한 군 지휘자이며 용감하고 매우 창의적인 인물이다. 그런 군인이 필요하다. 롬멜은 군 총사령관이 될 것이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1942.6. 마르사 마트루

【"나는 롬멜을 무찔렀다"】 몽고메리(중간)와 처칠(왼쪽), 사막에서, 1942. 8

【"확고한 세계관으로" 제국 의회에서 원수 계급장을 받는 롬멜, 1942. 10. 1. 베를린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경험 중에서 단 한 가지 실수를 고백하자면 그것은 바로 내가 '승리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24시간 동안 거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딸 게르트루트의 방문 1942. 10, 비너 노이슈타트

【"전쟁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 퇴각하면서, 1942. 11

【해결책은…… 후퇴뿐】 1942. 11. 리비아

 

"그는 독일 시민 전쟁의 승리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그는 히틀러에게서 등을 돌렸어요. 그리고는 이 가망 없는 전쟁을 하루 빨리 끝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안에서 자라나고 있었지요……"

 

【케셸링의 모략 케셸링(오른쪽)은 롬멜에게 솔직하지 않았다. 1942. 11

【마차 기병대의 늙은 말차럼……】 카셰리네 도로로 가는 길에서, 1942. 2.  튀니지

 

"원수님, 이제 어느 쪽을 끝내야 할지 생각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동쪽? 아니면 서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롬멜은 "글쎄, 동쪽은 절대 아니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때 롬멜이 독일의 이런 희망 없는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으로 연합국과의 단독 강화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암시되었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 히틀러의 사진사인 발터 프렌츠(Walter Frentz)가 찍은 초상, 1943

【히틀러가 정상이 아니야】 총통 지휘 본부에서, 1942. 여름

【그리스이 롬멜】 1943. 7. 25. 살로니키

【이탈리아에서의 막간극】 무솔리니와 함께, 1943. 10. 살로

 

그러나 그 당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도 롬멜을 더 괴롭혔던 것은 독일이 처한 상황이었다. 그는 현실ㅈ의자로서 다른 대부분의 독일 장교들보다도 먼저 곧 닥쳐올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다.

【"한 명의 사단장만도 못해"】 롬멜에 대한 룬트슈테트의 평가(왼쪽), 1944. 파리

【"모든 것을 집결시켜 전투에 투입하라"】 대서양 방벽에서, 1944. 1

【롬멜의 과도한 욕심】 1944. 4

【마지막 기대감】 콘크리트 장애물을 점검하는 롬멜, 1944. 3

【전쟁에 패하다】 최후의 승리를 의심하다

【헛된 믿음】 마이젤(Meisel) 장군과 함께, 1944. 4. 노르망디 해안

【매우 심각한 상황】 시찰 여행에서 랑, 루게, 슈파이델과 함께(왼쪽부터, 오른쪽 끝이 롬멜), 1944. 5

 

슈파이델은 나중에 "롬멜이 괴르델러의 생각에 반박하였고, 자신은 히틀러를 순교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그 계획, 즉 국가의 원수이자 국방군의 최고 사령관을 살해하는 일은 그 시점의 롬멜에게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바그너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이를 절대 누설하지 않았다. 비밀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국가의 기본 토대는 정의여야 한다"】 루시에와 함께, 1944. 2, 헤어링엔

【"나의 정치적 입장은 롬멜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한스 슈타이델과 함께, 1944. 5.

【연합군 상륙 전날의 휴가】 아내의 생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1944. 6. 5

 

"독일은 전쟁에 패했다. 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을 총통이 깨달아야 한다. ……이제 총통이 물러나야 할 시간이 왔다. 그는 무질서한 정치와 독단적인 군사 개입으로 독일 국민을 나락으로 빠지게 했다. 우리는 이제 평화 조약을 맺어야 한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목슴을 잃고 모든 것이 파괴되어 폐허로 변한다. 이것은 바로 범죄이다."

 

【"확실한 상황을 밝혀라"】 노르망디의 영국군, 1944. 6. 6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1944. 6. 7. 오마하 해변

【라 로셰-기용 성】 롬멜이 산책하던 성 뒷편 숲길

【전쟁을 끝마쳐야 해】 블루멘트리트, 슈파이델, 롬멜, 룬트슈테트(왼쪽에서 오른쪽으로), 1944. 6. 26, 라 로셰-기용

【영국군과 싸워 본 경험이 없는 장군】 한스 귄터 폰 클루게 원수

【"나는 롬멜에게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케사르 폰 호프아커

【"긴급 시에는 디트리히를 믿어도 되겠어"】 제프 디트리히(중간), 1944. 7. 17

【적 전투기의 공격을 받다】 저공 공격을 받은 롬멜의 군용차, 1944. 7. 17

 

확실히 롬멜의 "마음은 총통을 향해 있었다."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양심에 위반되는 히틀러의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힘가 용기를 모아 계속 그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더더욱 중요하며 그것이야말로 에르빈 롬멜의 또 다른 진실이다.

 

【왼쪽 눈꺼풀이 마비 된 채로……】 르 베시네 군 병원에 있을 당시의 롬멜, 1944. 7

【임종 후의 모습】 마지막까지 히틀러의 명을 따르다

【"그의 마음은 총통을 향해 있었다"】 추도사를 읽는 룬트슈테트, 1944. 10. 18. 울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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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6-011 한나 아렌트의 말 -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한나 아렌트 | 윤철희 옮김

2016, 마음산책

 

마침내 숨결을 허락한 긴장감 어린 텍스트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의 생생한 목소리

 

상당히 오랫동안 아렌트의 저술들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냈지만 그녀의 책은 항상 긴장감을 갖고 읽어야 하는 난해한 텍스트였다. 내로라하는 영어 실력자들도 종종 오역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길고 정교한 문장들은 그녀의 숨결을 느끼도록 결코 허락하진 않았다. 이렇게 묶여 출판되는 네 편의 인터뷰는 비록 글로 이루어진 것이긴 해도 마치 아렌트와 직접 대화를 나누듯 그녀의 사상 속에 담긴 숨결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무척 반갑다. 아렌트 생각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명하고 또 새로운 면을 드러내고 있어서, 아렌트를 보다 생생하게 그리고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해준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독일 태생의 유대계 미국 정치이론가. 1906년 독일 하노버(당시 독일제국 린덴)에서 태어났다. 철학이 단독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한다는 점 때문에 철학자로 불리길 거부하고 세계 안에서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인류를 주목해 정치이론가를 자처했다.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은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와 베를린에서 유대인보다는 독일인에 가까운 정서를 지니고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반유대주의를 접하고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자각했다. 청소년기 선생님에게 반항하여 퇴학을 당했지만 1924년 마르부르크대학에 들어가 철학과 신학, 그리스어를 공부했고, 이 시기 스승이던 마르틴 하이데거와 깊이 교류하다 얼마간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하이데거의 나치 동조 전력 때문에 훗날 고초를 겪기도 했다. 뒤에는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실존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를 사사했다.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만난 귄터 슈테른과 1929년 결혼해 베를린에서 신문기자로 일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 게슈타포에 체포돼 일주일간 감금당했고 유대인 박해 속에서 파리로 망명, 그곳에서 반나치 운동과 유대인 피난을 도왔다. 1937년에는 첫 남편과 이혼을 했으며 같은 해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1940년 독일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시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재혼했는데 그즈음 독일의 프랑스 점령과 비시정부의 유대인 탄압으로 위기가 고조되자 1941년 미국 뉴욕으로 다시 한 번 망명길에 올랐고, 이후 학계와 언론에 공헌하며 더는 적籍이 바뀌는 일 없이 미국 시민으로 살았다.
지은 책으로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 『과거와 미래 사이』(1961) 『혁명론』(1963)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1968) 『공화국의 위기』(1972) 등이 있다.
1975년 12월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마지막까지 해로했던 하인리히 블뤼허 곁에 묻혔다.

 

옮긴이 윤철희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영화 전문지에 기사 번역과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캐스린 비글로』 『스탠리 큐브릭』 『알코올의 역사』 『런던의 역사』 『위대한 영화1, 2』 『히치콕』 『지식인의 두 얼굴』 『제임스 딘』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저 에버트』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해제 | 아렌트 숨결이 깃든 대화록

 

무엇이 남아 있느냐고요? 언어가 남아 있어요

아이히만은 터무니없이 멍청했어요

정치와 혁명에 관한 사유 - 하나의 견해

마지막 인터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언제인지를 알고,

그걸 집어 들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미국에서, 1944

<추어 페르손>에 출연한 한나 아렌트의 모습(1964)

파리 망명 후 2년 뒤의 모습(1935)

미국에서, 1944

아이히만 재판 중 대중의 주목을 촉구하는 이스라엘 측 검사 기드온 하우스너(1961)

파리로 망명하던 해의 한나 아렌트, 1933

젊은 시절의 한나 아렌트, 연도 미상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린 예루살렘 법정의 모습(1961)

재판을 받는 아돌프 아이히만(196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처음 연재된 〈뉴요커〉 표지와 연재면(1963)

미국으로 망명하던 해의 한나 아렌트. 1941

베를린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이 독일의 긴급조치법 채택에 반대하던 모습(1968)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와 함께. 1961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면서 새로 설정된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선 오데르-나이세 라인. 동독과 달리 서독은 1970년까지 이 선을 인정하지 않아 소련 등 동구권과 마찰을 빚었다.

말년의 한나 아렌트. 1975

웨슬리언대학교 재직 시절. 1960년대 초

『전체주의의 기원』(195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한나 아렌트 사후 독일에서 발행된 우표(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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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

 

이중섭 지음 | 박재삼 옮김

2013, 다빈치

 

이중섭의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

일제 강점기 암흑 시대를 거쳐 전쟁으로 이어진 끊임없는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화가 이중섭.

그는 한 시대에 못 박힌 순교자였다.

그가 세상을 등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를 등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진정 세상을 떠나간 것이 아니라 오고 있는 것이다.

이 서간집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은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닌 정직한 화공 이중섭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편지들은 가장 어려웠던 시절, 이중섭이 아내 남덕과 교환한 삶의 편린들이다.

퍼즐처럼 두 사람의 진솔한 삶의 궤적을 맞추어보면 그 모습은 다름 아닌 그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임을 엿보게 될 것이다.

 

정직한 화공 이중섭李仲燮 1916-56

암흑의 시대에 불꽃처럼 치열한 삶을 살다간 화가 이중섭.

그는 한 아내의 남편이었으며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무엇보다도 정직한 화공이었다.

그에게도 모든 것이 어린잎의 새순처럼 뻗어나가던 순수의 시절이 있었다. 아름다운 그 시절, 그는 숙명처럼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폭풍우 같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그의 영혼은 소를 통해 민족적인 것에 바쳐졌다. 그는 이미 한국인의 정서 깊숙이 자리 잡아, 그를 일컬어 어떤 이는 민족 화가 또 어떤 이는 국민 화가라고도 하기도 한다.

소를 그린 화가로 알려진 그는 분노한 소를 통해 압박받는 우리 민족의 자화상을 그렸으며 그 모습은 또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기도 했다.

 

옮긴이 박재삼朴在森 1933-97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경남 삼천포에서 성장하였으며,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중퇴했다.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정적靜寂" 시조 "섭리攝理"가 추천되어 등단했고, 시집으로 『춘향이 마음』(1962), 『천년의 바람』(1975), 『허무에 갇혀』(1993) 등이 있다. 1997년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김소월로부터 발원돼 미당 서정주로 승계된 한국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이어나간 노래꾼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의 말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 이 시는 1951년 봄 피난지이던 제주도 서귀포 이중섭의 방에 붙어 있던 것을 조카 이영진 씨가 암송하여 전 한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강 1956년 종이에 연필과 유채 20.2×16.4cm

 

내가 만난 李仲燮

 

金春洙

 

光復洞에서 만난 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南浦洞 어느 찻집에서

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은종이 그림

 

李仲燮

 

金春洙

 

西歸浦의 남쪽,

바람은 가고 오지 않는다.

구름도 그렇다.

낮에 본

네 가지 빛깔을 다 죽이고

바다는 밤에 혼자서 운다.

게 한 마리 눈이 멀어

달은 늦게 늦게 뜬다.

아내는 毛髮을 바다에 담그고,

눈물은 아내의 가장 더운 곳을 적신다.

 

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차례:

 

1_ 나의 소중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닥

 

연인 - 사랑의 그림엽서들

 

2_ 나의 사랑하는 소중한 아고리

 

3_ 나의 영리하고 착한 아들 태현, 태성

 

이중섭의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

 

연보

서귀포의 환상 1951년 나무판에 유채 56×92cm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풍경 1951년 나무판에 유채 41×71cm

종이에 유채 28×40cm

물고기와 아이들 종이에 유채 22.5×17cm

가족과 어머니 1953-54년으로 추정 종이에 유채 26.5×36.5cm

사나이와 아이들 종이에 연필과 유채 39.5×48cm

닭과 가족 종이에 유채 36.5×26.5cm

도원 1954년 종이에 유채 65×76cm

가족과 비둘기 1956년 무렵 종이에 유채 29×40.3cm

춤추는 가족 종이에 유채 22.7×30.4cm

세 사람 종이에 연필 18.2×28cm

봄의 어린이 종이에 유채 32.6×49cm

호박 종이에 유채 40×26.5cm

호박꽃 종이에 유채 61×97cm

황소 1953년 무렵 종이에 유채 32.3×49.5cm

싸우는 소 종이에 유채 17×39cm

흰 소 종이에 유채 30.5×41.3cm

사계 종이에 연필과 유채 19.8×20.3cm

1954년 종이에 유채 18.4×32.5cm

사계 종이에 유채 26.5×36.5cm

달과 까마귀 1954년 종이에 유채 29.4×41.5cm

종이에 유채 27.5×41.5cm

부부 종이에 수채오ㅘ 크레파스 19.3×26.5cm

부인에게 보낸 편지 종이에 잉크와 색연필

투계 1954년 무렵으로 추정 종이에 유채 29×42cm

부부 1953년 무렵 종이에 유채 51.5×35.5cm

환희 1955년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29.5×41cm

흰 소 1954년 무렵 나무판에 유채 30×41.7cm

충렬사 풍경 1954년 종이에 유채 41×29cm

초가가 있는 풍경 종이에 유채 41.5×29.5cm

나무와 달과 하얀 새 1956년 종이에 크레파스와 유채 14.7×20.4cm

해변의 가족 종이에 유채 28.5×41.2cm

나무 위의 노란 새 1956년 종이에 유채와 크레파스 14.7×15.5cm

성당 부근 1955년 종이에 유채 34×46.5cm

판잣집 화실 종이에 수채와 잉크 26.8×20cm

물고기와 노는 두 어린이 종이에 유채 41.8×30.5cm

물고기, 게와 노는 네 어린이 1951년 무렵 종이에 유채 36×27cm

파란 게와 어린이 종이에 유채 30.2×23.6cm

길 떠나는 가족 1954년 종이에 유채 29.5×64.5cm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은종이에 유채 10×15cm

그리운 제주도 풍경 1954년 전후로 추정 종이에 잉크 35×24.5cm

구상네 가족 1955년 종이에 연필과 유채 32×49.5cm

동촌 유원지 종이에 유채 19.2×26.5cm

돌아오지 않는 강 1956년 종이에 연필과 유채 20.2×16.4cm

연인 1940-1943년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그려 보낸 사랑의 그림엽서들

반우반어 1940년 말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말과 소를 부리는 사람들 1941년 3월 30일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1941년 4월 2일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두 마리 사슴 1941년 4월 24일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두 마리 동물 1941년 5월 20일 종이에 과슈와 잉크 9×14cm

나뭇잎을 따려는 여자 1941년 5월 15일 종이에 수채와 잉크 9×14cm

나뭇잎을 따주는 남자 1941년 5월 16일 종이에 수채와 잉크 9×14cm

소와 여인 1941년 5월 29일자 소인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야수를 탄 여자 1941년 6월 2일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누워 있는 여자 1941년 6월 3일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바닷가 1941년 6월 12일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바닷가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말 탄 남자를 뿔로 쳐내는 소 1941년 6월 13일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날아오르는 여자 1941년 6월로 추정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토끼풀 1941년 6월 19일 종이에 수채와 잉크 9×14cm

토끼풀 1941년 6월로 추정 종이에 수채와 잉크 9×14cm

서커스 1941년 7월 4일 종이에 먹지로 베껴 그리고 수채 9×14cm

저울질하는 사람 1941년 7월 7일 종이에 수채와 잉크 9×14cm

물놀이하는 아이들 1941년 9월 9일 종이에 수채와 잉크 9×14cm

해를 불평하는 사람 1941년 9월 22일 종이에 크레용과 잉크 9×14cm

연꽃밭의 새와 소년 1941년 9월 28일 종이에 크레용과 잉크 9×14cm

바닷가에서 물새와 노는 소년들 1941년 10월 21일 종이에 잉크 9×14cm

새해 인사 1942년 1월로 추정 종이에 수채와 잉크 9×14cm

사람을 치는 소 1942년 8월 8일 종이에 잉크 9×14cm

사랑 1955년 은종이에 유채 15×10cm

1952년 무렵 추정 은종이에 유채 8.5×15cm

게와 물고기가 있는 가족 은종이에 유채 8.5×15cm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종이에 수채 23×20cm

다섯 어린이 종이에 수채 23.5×17.5cm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 종이에 잉크와 색연필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종이에 먹과 수채 53.5×26.5cm

해와 아이들 종이에 연필과 유채 32.5×49cm

두 어린이와 사슴 종이에 수채 17×24cm

해초와 아이들 종이에 수채 17×24cm

닭과 게 종이와 연필과 구아슈 29×41cm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1953년 종이에 연필과 유채 25×37cm

물고기와 게와 두 어린이 종이에 크레파스와 수채 19.3×26.4cm

길 떠나는 가족이 그려진 편지 1954년 종이에 연필과 유채 10.5×25.7cm

자화상 1955년 종이에 연필 48.5×31cm

두 어린이와 복숭아 종이에 유채 9.5×12cm

종로공립보통학교 졸업사진

1938년 무렵의 이중섭. 분카가쿠잉 재학 시절의 사진

아내 이남덕. 일본에서 보낸 사진

1941년 제5회 지유텐(자유미술가협회) 출품작

이남덕 여사와 두 아들

꽃 피는 산 1941년 9월 17일 종이에 크레용과 잉크 14×9cm

파도타기 1941년 9월 중순으로 추정 종이에 크레용과 잉크 14×9cm

두 사람 1943년 종이에 수채와 잉크 14×9cm

1955년의 이중섭과 전시회 카탈로그

신문 보는 사람들 은종이에 유채 9.8×15cm 뉴욕 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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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6-009 스페인 내전

 

앤터니 비버 | 김원중 옮김

2013, 교양인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스페인 내전에 관해 더 덧붙일 것이 없는 책" _존 키건

 

The Battle for Spain

The Spanish Civil War 1936-1939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피카소의 <게르니카>, 로버트 카파의 <어느 병사의 죽음> 등 수많은 걸작의 배경이 된 전쟁, 현대사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수행된 이념 전쟁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던 전쟁,

스페인 내전을 빼놓고 20세기를 말할 수는 없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첫 장면부터 비버는 1930년대의 정치 풍토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놀라운 통찰력의 소유자인 비버는 백색 테러와 적색 테러가 난무하고, 혁명과 정치적 갈등이 전쟁의 경로를 바꾸며, 강대국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던 바로 그 내전의 한복판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 책은 스페인 내전을 다루는 모든 책들 가운데 첫 번째 자리에 오를 운명을 타고났다. _Santos Julia, El Pais

강렬한 서사와 냉정한 서술이 한데 섞여 놀라운 힘을 뿜어낸다는 점에서 앤터니 비버의 걸작 《스페인 내전》과 겨룰 작품은 없다. _Boyd Tonkin, The Independent

거장의 눈으로 포착한 전장의 인간 드라마가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무섭도록 생생한 전쟁 연대기. _Max Hastings, The Sunday Times

지난 수십 년 동안 출간된 스페인 내전 관련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책. _Rafael Nunez Florecio, El Mundo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책. 세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과 객관성의 측면에서 스페인 내전에 관한 최고의 책이다. _Richard Overy, The Evening Standard

명쾌하고 전문적이며 객관적이다. _The Economist

분열 과정에 놓인 국가와 사회를 생생하게 해부한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은 바로 우리 시대를 위한 정치 팸플릿이다. 《Stalingrad》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과 같은 풍부한 세부 묘사와 강렬한 서사의 힘으로 가장 그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_Piers Brendon, The Guardian 

비버는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둘러싼 정치적 책략을 탁월하게 분석했다. _Andrew Roberts, The Sunday Telegraph

마음을 사로잡는 책. 놀랄 만큼 선명하고 훌륭한 서사로 스페인 내전이라는 미로를 안내한다. _Allan Massie, The Literary Review

반드시 읽어야 할 책. _Raymond Carr, The Spectator

앤터니 비버의 저작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책이다. _Barrie Clement, Tribune

 

앤터니 비버(Antony Beevor, 1946~)

영국의 전쟁사학자이자 역사 저술가. 윈체스터 대학과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 1967~1970년 영국 제11경기병대 장교로 복무했다. 1975년 첫 소설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4편의 소설과 8권의 역사서를 출간했다. 치밀하고 객관적인 학자적 시각과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의 힘을 두루 갖춘 그의 역사 저술은 발표하는 책마다 찬사를 받았다. 스페인 내전 연구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스페인 내전은 2005년 스페인에서 먼저 출간되어 12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으며, 같은 해 스페인 최고 권위의 ‘라 방과르디아 상(La Vanguardia Prize)’을 받았다. 스페인

 

 

20세기 정치 이념들의 폭발 현장 '스페인 내전'의 결정판 

 

 

차례 

          감사의 말 
          머리말
          스페인 내전의 정당과 정치 단체들


제1부 제2공화정의 탄생
 

  제1장 스페인의 국왕들

           "백성과 만나는 것이 왕의 소망입니다."

  제2장 국왕의 퇴진

           "국민의 마음에서 왕은 죽었다."

  제3장 제2공화정

           "스페인은 민주공화국이다."

  제4장 인민전선

           "스페인 안에 러시아를 세우자."

  제5장 치명적인 무능

           "이것이 공화국인가?"

 

제2부 두 스페인의 전쟁

  제6장 장군들의 반란

           "우리와 뜻이 다른 자는 모두 적이다."

  제7장 주도권 다툼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8장 적색 테러

            "지하 세계가 혁명을 먹칠하고 있다."

  제9장 백색 테러

            "우리가 로르카를 죽였다."

  제10장 국민 진영

             "지성에 죽음을! 죽음 만세!"

  제11장 공화 진영

             "이제 여러분이 카탈루냐의 주인입니다."

  제12장 국민군 대 의용군

             "알카사르 이상 무." "규율은 죄악이다."


제3부 내전의 국제화

  제13장 외교 전쟁

             "공화 정부를 돕지 마시오."

  제14장 국가 만들기

             "하나의 조국, 하나의 카우디요."

  제15장 소련의 지원

             "스페인을 돕자, 은밀하게."

  제16장 국제여단

             "나는 붉은군대 출신의 용감한 수병."

  제17장 마드리드 사수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제4부 대리인들의 세계 대전

  제18장 전쟁의 변모

             "단 1센티미터도 후퇴하지 말라."

  제19장 하라마 전투와 과달라하라 전투

             "파시즘과 무솔리니에게 치욕을!"

  제20장 바스크 전투

             "게르니카, 불타고 있음!"

  제21장 지식인들의 전쟁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제5부 내전 속 내전

  제22장 권력 다툼

             "공산주의자들에게 너무 많이 양보했다."

  제23장 전선의 분열

             "제5열의 정체가 드러났다. 트로츠키였다."

  제24장 브루네테 전투

             "이 버릇없는, 한심한 게릴라들."

  제25장 포위당한 공화국

             "구멍 뚫린 댐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

  제26장 아라곤 전투

             "스탈린주의 편집증이 다시 도졌다."

  제27장 공화주의 이상의 붕괴

             "우리의 지성을 모욕하지 말라."

 

제6부 파국으로 가는 길

  제28장 프랑코의 ‘승리의 칼’

             "프랑코의 칼이 스페인을 둘로 갈랐다."

  제29장 깨어진 평화 협상의 꿈

             "협상이라고?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제30장 스페인 만세!

             "위대한 지도자 돈 프란시스코 프랑코 바아몬데."

  제31장 에브로 강 전투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

  제32장 파시즘 진군과 유럽의 위기

             "국제여단 동지들이여! 여러분은 역사입니다."

  제33장 카탈루냐 함락

             "병든 바르셀로나는 정화되어야 한다."

  제34장 공화국의 붕괴

             "콘도르 군단의 임무가 끝났다."

 

제7부 끝나지 않은 전쟁

  제35장 옛 스페인의 귀환

             "나라를 구하려면 대수술이 필요합니다."

  제36장 망명자들

             "매일 100여 명이 죽어 나갔다."

  제37장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

             "제9중대라 불러주시오."

  제38장 무너진 대의명분

             "총알아, 증오 없이 죽여 다오."


          주석
          옮긴이의 말
          주요 인물
          스페인 연표
          찾아보기

 

국민 진영(nationalists)  공화 정부에 대항해 구데타를 일으킴으로써 내전의 계기를 제공한 우파 연합 세력을 가리킨다.

무어(Moor)인  아랍인, 스페인인, 베르베르인의 혼혈인 스페인계 이슬람교도. 무어인은 안달루시아 이슬람 문명을 창조했고, 그 후 11 ~ 17세기에 북아프리카에 피난민으로 정착했다.

재정복 운동  레콩키스타(Reconquista), 국토 회복 운동이라고도 한다. 718년부터 1492년까지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점령했던 이슬람교도들(무어인)로부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기독교 국가들이 벌인 일련의 전투.

이사벨 1세(Isabel Ⅰ, 1451 ~ 1504)  카스티야(1474 ~ 1504 재위)와 아라곤(1479 ~ 1504 재위)의 여왕. 1479년부터 남편인 페르난도 2세(1452 ~ 1516)와 함께 두 왕국을 공동으로 통치했다. 이들의 집권기에 스페인은 영구적인 통일을 이루었으며, 이사벨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스페인의 해외 식민 제국 시대가 열렸다.

알폰소 13세(왼쪽)와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 프리모 데 리베라는 1923년 9월 13일 프로눈시아미엔토를 단행하고 스스로 독재관의 지위에 올랐다. 알폰소 13세의 승인하에 권력을 장악한 그는 1930년 1월까지 정권을 유지했다.

1931년 4월 14일, 알폰소 13세가 왕위를 내놓고 스페인을 떠나자 거리로 몰려나와 환호하는 군중. 이날 스페인 제2공화국이 탄생했다.

1931년 7월 14일에 열린 제2공화국 헌법 제정을 위한 코르테스(의회) 개회식. 니세토 알칼라 사모라가 개회 연설을 하고 있다. 맨 앞줄이 의회 내 국무위원석인데, 오른쪽부터 알레한드로 레룩스, 페르난도 데 로스 리오스, 마누엘 아사냐, 산티아고 카세레스 키로가, 인달레시오 프리에토, 미겔 마우라, 마르셀리노 도밍고, 알바로 데 알보르노스,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가 앉아 있다.

1934년 10월, 아스투리아스 혁명이 실패하고 나서 치안대 대원들이 체포한 반란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혁명은 겨우 2주 남짓 지속되었지만 사상자가 1천 명가량에 이르렀고 엄청난 재산 피해가 났다.

1936년 선거 유세 기간 중에 우익 진영과 인민전선은 치열한 선전전을 펼쳤다. 자치우익연합(CEDA)의 대표 힐 로블레스는 "저에게 절대 다수 의석을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위대한 에스파냐를 드리겠습니다."라고 쓰인 초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호세 안토니오 데 리베라(앞줄 가운데)와 그의 팔랑헤 동료들. 급진 우익 정당인 '에스파냐 팔랑헤당'은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유사한 권위주의적 독재 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다. 팔랑헤는 1936년 내전이 일어났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호세 안토니오 자신은 내전 초기에 인민전선 정부에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우파 지도자였던 호세 칼보 소텔로의 장례식. 좌우 대결이 폭력으로 분출되는 국면에서 소텔로는 1936년 7월 13일 좌파 쪽 젊은 장교들에게 암살당했고, 국민 진영은 이 사건을 쿠데타의 구실로 삼았다.

1936년 10월 4일, "저들은 결코 여기를 통과하지 못하리라(No Pasaran)"라는 구호를 만들어낸 돌로레스 아바루리, 일명 '라 파시오나리아'가 연설을 하고 있다.

돌격대와 전국노동연합 소속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들이 탈취한 야포를 끌고 바르셀로나 거리를 달리는 장면이다.

마드리드에서 군사 쿠데타는 계획부터 엉망이었고, 그 결과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다. 소총과 대검으로 무장한(물론 핸드백도 챙겼다) 여전사가 무장한 한 무리를 이끌고 있다.

카사데캄포는 '파세오'(처형하기 좋은 인적이 드문 곳) 장소로 유명했다. 공화군 병사들이 자신들이 막 처형한 것으로 보이는 2명의 민간인 시신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장면은 공화 진영의 최악의 이미지였고, 외국인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

스페인 내전으로 희생된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는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이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국민 진영에 의해 처형당했다.

20세기 스페인 문학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겔 데 우나무노. 스페인 내전 당시 살라망카 대학에 재직 중이던 우나무노는 국민 진영 지지자였음에도 공개석상에서 팔랑헤당과 반란군을 비판했다. 결국 그는 이 일로 가택 연금을 당했고 그해 말 사망하였다.

마드리드에서 활동한 공화 진영 여성 의용군. 내전 당시 전선에 배치된 여성 의용군은 1천 명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방에서 많은 여성들이 총을 들었고, 특히 마드리드에는 여성만으로 구성된 부대가 도시 방어에 참여했다.

1936년 7월, 국민 진영의 중요한 전력이었던 아프리카 군대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보내준 수송기 덕분에 본토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은 모로코에서 안달루시아의 세비야로 공수 작전을 펼친 독일 융커52기와 모로코 레굴라르들의 모습.

1936년 9월 중순 아라곤 전선에서 아나키스트 대장 부에나벤투라 두루티는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사진 속에서 그가 CNT(전국노동연합)라고 씌어진 지프차 위에서 농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프랑스 인민전선 연합 내각의 레옹 블룸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와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모리스 토레즈(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스페인 공화 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블룸 총리는 스페인의 분쟁이 더 넓게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영국의 경고에 따라 불간섭 정책을 택했다. 스페인 공화 정부는 서구 민주 국가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독일 제3제국의 지도자 히틀러와 독일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 콘도르 군단을 비롯한 독일의 군수 지원은 국민 진영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괴링은 자기 부하들이 프랑코를 위해 싸우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공화 정부에 몰래 무기를 판매해 돈을 챙겼다.

'에스파냐'라는 비행단을 조직하여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군으로 참여한 작가 앙드레 말로. 그는 후에 스페인 내전을 다룬 《희방》을 발표하였다.

1936년 10월 부르고스에서 프랑코 장군(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총통 겸 국가 수반으로 임명된 직후에 찍은 기념 사진. 프랑코 오른쪽에 카바네야스 장군, 왼쪽에 살리케트 장군, 그리고 뒤에는 몰라 장군이 서 있다.

과다라마 산맥에 있는 공화군 군사 기지를 방문한 사회주의자 라르고 카바예로(가운데 중절 모자를 쓴 사람). '스페인의 레닌'이라 불렸던 급진적 사회주의자 라륵 카바예로는 1936년 9월 4일 히랄 총리가 퇴진한 뒤 새 정부의 총리가 되었다.

마드리드 외곽의 한 참호에서 <프라우다> 특파원인 미하일 콜초프(오른쪽)아 소련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로만 카르멘이 몸을 숨기고 있다. 이들이 보내온 스페인 내전 소식은 연일 모스크바의 극장과 신문을 장식했다. 소련은 스페인 공화 정부 지원을 소비에트 체제를 국내외에 선전하는 용도로 적극 활용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 진영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영국 작가 조지 오웰. 귀국 후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참혹하면서도 지리멸렬한 전장의 경험과 용감한 병사들의 이야기, 공화 진영을 자멸로 이끈 정치적 분열상 등을 적나라하게 그린 《카탈루냐 찬가》를 발표했다.

마드리드로 들어오는 국제여단 병사들. 내전 기간 동안 53개국에서 온 3만 5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국제여단 병사로 복무했다. 때로 짜릿한 스릴을 찾아서 또는 혁명적 낭만주의에 취해 자원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국제연단 병사 대부분은 이타적인 의도에서 파시즘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

엔리케 리스테르(가운데)와 혼성여단 병사들. 모스크바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공산주의자 리스테르는 공화군에서 중요한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위험한 상황에서는 진군하지 않으려 하거나 허영심에서 적의 수를 몇 배나 부풀리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날 당시 마드리드 대사관에서 영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참혹한 전쟁과 가르시아 로르카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는 공화 진영 편에 서서 반(反)파시즘 운동에 앞장섰다. 열정적인 민중 시인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레케테(카를로스파 의용군)들이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한 사제로부터 축성(祝聖)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가톨릭 왕정을 지지했던 레테케들은 "승리에 대한 믿음과 신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지닌, 그리고 한 손에는 수류탄을, 다른 한 손에는 묵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페인 내전이 낳은 걸작 중 하나인 피카소의 <게르니카>. 피카소는 게르니카가 독일군의 융단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그림을 그렸다.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봄에 열린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스페인 공화 정부의 전시관은 <게르니카>로 유명해졌고, 이는 공화 진영이 선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화가 호안 미로가 공화 진영을 돕기 위해 1937년에 그린 우표 <스페인을 도웁시다(Aidez l'Espagne)>를 차용해 만든 공화 진영의 선전 포스터. 가장 혁신적인 선전 방법이었던 포스터는 충성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촉구하는 것에서 스파이와 성병을 경고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널리 활용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낚을 때 공화 진영 아나키스트 의용군 부대에 들어갔다. 평화주의자였던 그녀는 총을 들 수 없어 부대 취사병이 되었다. 그러나 요리를 하다가 끓는 기름에 심한 화상을 입어 포르투갈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통합노동자당 지도자 안드레스 닌(안경 쓴 사람)이 동료들과 함께 바르셀로나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1937년 5월 카탈루냐에서는 내전 속 내전이 일어나는데, 헤네랄리타트와 카탈루냐 공산당이 한편이 되고, 전국노동연합-아나키스트연합과 통합노동자당이 다른 한편이 되어 좌파 내 권력 장악을 위한 시가전을 벌였다.

아나키스트 지도자 후안 가르시아 올리베르가 카탈루냐에서 발생한 '5월사건' 기간 동안 냉정을 회복할 것을 호소하는 방송 연설을 하고 있다. 5월 사건의 결과는 아나키스트와 통합노동자당의 패배와 공산당의 승리였다.

1937년 5월 6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들어온 돌격대가 바르셀로나 시가지를 행진하고 있다.

브루네테 전투에서 제5군단 공산당 소속 지휘관 후안 모데스토. 외인군단 하사관 출신이며, 30대의 젊은 군인이었던 모데스토의 이 사진은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군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 선전물로 많이 쓰였다.

1937년 라르고 카바예로의 뒤를 이어 새로 총리에 오른 후안 네그린(왼쪽)과 국방부 장관을 맡은 안달레시오 프리에토. 온건 사회주의자였던 네그린은 소련의 후원으로 총리직에 올라 공화군이 패전할 때까지 내전을 지휘하였다.

 

전쟁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공화군을 열렬히 지지했던 카파는 <어느 병사의 죽음>을 비롯해서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던 중 자신의 연인이자 사진작가였던 게르다 타로를 잃었다.

스페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기여한 한 가지는 '푸른사단(Blue Division)'이라는 이름의 지원군을 보내 독일을 도운 것이다. 이 푸른사단은 1941년 7월부터 1943년 11월까지 러시아에서 싸웠다. 사진은 독일로 떠나는 푸른사단 병사들을 환송하는 군중의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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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08 독소전쟁사 1941~1945

 

데이비드 M. 글랜츠 · 조너선 M. 하우스 지음 | 권도승 · 남창우 · 윤시원 옮김

2015, 열린책들

When Titans Clashed

How the Red Army Stopped Hitler

 

붉은 군대는 어떻게 히틀러를 막았는가

 

제2차 세계 대전과 그 전쟁의 영향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

『저널 오브 밀리터리 히스토

 

이 책을 통해 서방이 독자들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이 이룩한 군사적 업적에 대해 처음으로 완벽한 내용을 알게 될 것이다. 1941년 패배의 문턱에 있던 소련군이 어떻게 1945년에 승리를 쟁취하게 되었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다.

「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이 책은 제2차 대전에 관심을 둔 초심자들에게 그동안 <교과서>로 여겨져 왔던 존 에릭슨의 『스탈린그라드로 가는 길 The Road to Stalingrad』과 『베를린으로 가는 길 The Road to Berlin』과 같은 기념비적인 저서들이 누려 온 지위를 빼앗아 버릴지도 모른다.

『포린 어페어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군을 상대로 소련군이 거둔 승리는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면서 결정적인 사건으로, 이 책은 이것에 대한 가장 돋보이는 해석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전문가는 물론이고 전쟁사 마니아들과 일반 독자들까지도 이 책에 매혹될 것이다.

『히스토리 : 리뷰 오브 뉴 북스』

 

단순히 놓고 보아도, 이 책은 지금까지 1941~1945년의 독소 전쟁을 다룬 책들 가운데 최고이며, 전적으로 소련의 시각에서 서술된 치초의 역작이다.

『월드 워 Ⅱ』

 

데이비드 M. 글랜츠

David M. Glatz

데이비드 M. 글랜츠는 소련군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권위자이다. 버지니아 군사학교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미 육군 부설 외국군 연구소장직을 역임하고, 1993년 육군 대령으로 했다. 현재는 『동유럽 군사 연구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의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러시아 연방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다. 저서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소련군의 기만술Soviet Military Deception in the Second World War』(1989), 『돈 강에서 드네프르 강까지: 1942년 12월에서 1943년 8월까지 소련군의 공세From the Don to the Dnepr: Soviet Offensive Operations December 1942 to August 1943』(1991), 『소련 공수 부대의 역사A History of Soviet Airborne Forces』(1994), 『소련의 군사 전략The Military Strategy of the Soviet Union』(2001) 등이 있다.

 

조너선 M. 하우스

Jonathan M. House

조너선 M. 하우스 해밀턴 대학을 졸업한 뒤 미시간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고든 대학교의 역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 또한 미 육군 예비역 중령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지휘관 및 참모직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제병협동 전투의 발전: 20세기의 전술, 교리, 군사 조직에 대한 고찰Towards Combined Arms Warfare: A Survey of 20th Century Tactics, Doctrine and Organization』(1984), 『1870~1991의 군사 정보: 연구 방법론Military Intelligence, 1870~1991: A Research Guide』(1993) 등이 있다.

 

기존의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책들은 정치와 외교 등 일반 역사의 관점에서 쓴 것이 대부분인 반면, 이 책은 소련과 독일의 <전쟁> 자체에 초점을 두어 기술했다. 소련의 개방 정책 이후, 그동안 금서로 묶여 있거나 접근이 불가능했던 자료들이 서ㅓ방 세계에 소개되면서, 전쟁 당시 소련군의 전력, 전술, 교리, 사상자 수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풍부한 지도와 통계 자료들이 함께 제시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이 책은 소련군과 독일군의 전략 · 전술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한 편의 대서사시적인 전쟁 이야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 출간될 당시,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군사적 충돌의 하나였던 독소 전쟁에 대해 기본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학계는 물론이고 언론으로부터도 아낌 없는 극찬을 받았다.

 

옮긴이 권도승 1993년에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4년에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7년에는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2006년에는 명지대학교 북한학과에서 <남북 군사력과 전쟁 시뮬레이션 강의>를 하였다.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 정형외과 전문의/전임의를 지냈으며, 현재 <권도승 정형외과> 원장이다. 저서로는 『동물과의 대화』(2006)가 있다.

남창우 1988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에서 화학과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응용 물리학과에서 박사후 연구 과정을 거쳤다. 현재 한양대학교 물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윤시원 2005년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KBS와 SBS의 역사 다큐멘터리 제작팀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자료 검증 및 고증을 담당했으며, 『주간 화학저널』에서 취재 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현재 동 대학원 사학과에 재학하면서 한미 관계와 안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동부 전선에서의 인간적인 면을 찾아내고자 진심으로 노력했던,

퇴역 영국 육군 대령이자 유능한 역사가였으며,

나에게 있어 최고의 친구였던 폴 어데어 대령을 기리며.

 

차례

 

추천의 말
감사의 말
머리말

서론 1918~1941
         1 | 1918~1939년의 붉은 군대
         2 | 1939~1941년의 무장 대치
         3 | 1941년의 양군의 대치

독소 전쟁 제1기 1941. 6.~1942. 11.
        4 | 독일의 기습 공격
        5 | 소련의 대응
        6 | 모스크바를 향하여
        7 | 1942년 봄의 해빙기
        8 | 청색 작전: 스탈린그라드를 향한 독일군의 진군

독소 전쟁 제2기 1942. 11.~1943. 12. 
        9 | 천왕성 작전: 제6군의 파멸
      10 | 1943년 봄의 해빙기와 작전 중지
      11 | 쿠르스크에서 드네프르 강으로

독소 전쟁 제3기 1944. 1.~1945. 5.
      12 | 세 번째 겨울
      13 | 바그라티온 작전: 중부 집단군의 괴멸
      14 | 양익의 소탕
      15 | 1945년 겨울의 전투
      16 | 마지막 전투
      17 | 결론

통계 자료
문헌 자료
각주
해설
옮긴이와의 대담
찾아보기

 

대조국 전 Velikaya Otechestvennaya Voyna.

<조국 전쟁>은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격퇴한 뒤 러시아 측에서 이 전쟁에 붙인 명칭이다. <대조국 전쟁>이란 명칭은 1941년 6월 23일 프라브다의 사설에 처음 등장했고, 이후 소련 측에서는 독소 전쟁을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종심(縱深, Depth Glubina)

일반적으로 진지의 전방으로부터 후방에 이르는 범위, 거리를 일컫는 용어이다. 현재 한국군에서는 종심의 개념을 공간, 시간 및 자원상의 작전 범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소총병 사단 Strekobaya Dibiziya

러시아, 소련에서 보병 사단을 일컫는 용어이다.

내무 인민 위원회(NKVD) Narodnyi Komissariat Vnutrennikh Del.

혁명 직후 창설된 체카Cheka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비밀경찰인 체카는 1922년 국가 정치부Gosudarstvennoe politicheskoe upravlenie(GPU)로 개칭되었고, 다시 1923년 합동 국가 정치부Ob'ednennoe gosudarstvennoe politicheskoe upravlenie(OGPU)가 되었다. OGPU는 1934년 내무 인민 위원회로 개칭되면서 조직이 대규모로 확대되어 이때부터 국가 기간 시설에 대한 경비, 수용 관리, 국경 임무를 총괄하게 되었다.

해군 보병 여단Brigada Morskoy Pekhoty

해군 보병 여단은 해군 소속의 보병 부대로,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함대 소속의 수병들을 동원해 편성되었다. 서방 세계의 해병대에 해당한다. 한편, 육군 관할의 해군 보병 여단은 해군 소총병 여단Morskie Strelkovye Brigady이라고 한다.

공군 야전 사단Luftwaffe-Felddivision

1942년 육군이 병력 보충을 이해 공군 병력 차출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한 공군 사령관 괴링이 공군 병력으로 만든 보병 사단. 중장비가 부족하고 병력이 적어 큰 피해를 입었으며, 결국 1943녀ㅕㄴ 여름 육군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루먄체프Pyotr Rumyantsev(1725~1796)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 시절 활약한 러시아이 장군으로, 7년 전쟁에서 크게 할약했으며 1768년 벌어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1787년 전쟁에서는 러시아군 총사령관인 포촘킨과의 불화 때문에 사임해 더 이상 활약을 하지 못했다.

수보로프Alexandr Vasilyevich Suvorov(1729~1800)

18세기 후반 러시아군의 대원수로, 불패의 이력으로 유명하다. 러시아-스웨덴 전쟁(1741~1743), 7년 전쟁(1756~1763) 등에 참전했으며, 1768년에 벌어진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1799년 이탈리아에서 나폴레옹과 격돌할 당시 알프스 산맥을 넘는 전략적 후퇴를 단행해 명성을 떨쳤다. 1942년 7월, 수보로프의 이름을 딴 수보로프 훈장Orden Suvorova이 제정되었다.

바그라티온P. I. Bagration(1765~1812)

그루지야 왕가의 후손으로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그의 이름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도 등장한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 보로디노 전투에서 분전하다 중상을 입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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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07 조약, 테이블 위의 전쟁

 

이성주 지음

2016, 생각비행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2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WASHINGTON NAVAL TREATY

 

條約

전쟁 국가 일본이 누린 막간의 평화

 

"국제정치에서 의리는 망상이다"

서양을 흉내 내는 원숭이였던 일본은 어느 순간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이를 인지한 서구 열강들은 일본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워싱턴 회담에 침여한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4개국은 손잡고 일본을 압박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혈맹 운운하던 영국도 일본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냉정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인종주의적 편견이었을까? 물론 일본이 너무 '설친'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알아야 한다. 국제정치에서 '의리'는 망상이다.

워싱턴 회담은 한 국가의 이익은 국력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회담이었다. 아울러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운 세계 정치 체계가 완성된 회담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열강들이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구세계(대서양 저편의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국제정치의 무대가 신세계(태평양 양편의 미국과 일본)로 넘어왔으며, 열강들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이권에 관심이 있고,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회담이었다. - 본문 중에서

 

  이성주                                                                      

2006년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엽기 조선왕조실록》은 역사 대중서 읽기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 권위적인 역사 해석을 거부하는 저자는 거침없는 입담과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역사는 고루하지도, 현실과 괴리되어 있지도 않으며, 언제나 현실과 함께 있다"는 자신의 신조를 실천하면서 포스코의 '포레카 창의 놀이방',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재미와 유익, 영감을 주는 역사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자의 다른 작품으로는 《왕들의 부부싸움》《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실록》《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사 진풍경》《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 진풍경》《발칙한 조선인물실록》《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어메이징 조선 랭킹 실록》《글이 돈이 되는 기적》《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등이 잇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전시 기획자이며 독창적 극쓰기로 문화 전반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문화 콘텐츠 창작자로도 유명하다. 《딴지일보》에서 전문가적 지식으로 무장한 군사 분야 논객으로 활동 중이며, 다양한 매체와 강연을 통해 지적 쾌락을 만족시키는 역사 칼럼니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차례

 

머리말 - 또 다른 전쟁,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01 - 드레드노트의 탄생

          피셔 제독의 등장 | 탄생의 서막

02 - 제1차 세계 대전, 뒤바뀐 국제정치 주도권

          건함 경쟁 | 제1차 세계 대전과 일본

          서구의 몰락과 일본의 부상

03 - 일본의 데모크라시

          변화의 조짐 | 지멘스 사건

          짧았던 다이쇼 데모크라시

04 - 최악의 대통령, 최고의 조약을 성사시키다

          미국이 움직이다

          모든 걸 쥐어짜낸 일본, 더 쥐어짜낼 게 없던 영국

         순진한, 너무도 순진한 미국

05 - 각자의 계산

          하나의 목적 아래 뭉치다 | 영일 동맹의 위기

          일본이 제국주의로 갈 수 있었던 열쇠, 영일 동맹

06 - 각자의 계산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종막 | 일본 해군의 주장

          인류 최대 · 최고의 군축 조약 | 실수인가 고집인가

07 - 워싱턴 체제의 승자, 일본

          워싱턴 핸군 군축 조약의 정치적 의미

          군축과 세계정세의 변화

08 - 8년 만의 재회, 런던 군축 조약

          다시 등장한 대미 7할론 | 군사 혁명의 시작

09 - 일본은 어떻게 실패했나

10 - 일본은 어떻게 실패했나

          쓰시마 해전, 그 찬란했던 기억

          일본 스스로가 부정한 점감요격작전

11 - 만주국은 어떻게 탄생했나

          군이 움직이다 |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다

          마치며

 

외전 - 국제정치의 본질과 마지노선

         01 - 군사 역사상 가장 멍청한 짓

         02 - 제2차 세계 대전의 불씨

         03 - 독일에 대한 압박과 히틀러의 등장

         04 - 실패한 외교, 히틀러를 완성시키다

         05 - 국제정치의 본질

 

참고자료

 

드레드노트

존 피셔

빌헬름 2세

드레드노트 건조 이전 영국의 주력 전함 중 하나인 로열 소버린

M2(위)와 K-6(아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대공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죽이는 가브릴로 프린치프를 묘사한 그림

오스발트 슈펭글러

파리 강화 회의의 주요 사안은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소위 '빅 포The Big Four'에 의해 결정되었다. 왼쪽부터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오를란도,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 미국의 우드로 윌슨.

신해혁명 후 난징임시정부의 내각회의 모습. 가운데가 쑨원이다.

사이온지 긴모치

전함 공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일본 국민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솜 전투 포격전의 여파로 파괴된 마을

워런 하딩

워싱턴 조약에 찬성했던 당시 일본 총리 하라 다카시

워싱턴 해군 군축 회담

영일 동맹을 묘사한 삽화

칼 빈슨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으로 폐함된 사우스캐롤라이나

'빅 세븐'의 하나인 미국의 웨스트버지니아

전쟁 후 건져낸 무츠의 잔해

영일 동맹의 파기

와카쓰키 레이지로

일본 해군병학교

1920년대의 일본 거리

1931년 미국 뉴욕의 은행 앞에서 시위하는 군중

석탄 운반선인 주피터를 개조해서 만든 미 해군 최초의 항공모함 USS 랭글리

쇼와 유신 황도파

이누카이 쓰요시

영국의 조약형 순양함 린더급

류호

비운의 항공모함 쇼호(위)와 즈이호(아래)

좌초된 토모즈루

마츠급

마지노선의 벙커

제로센

공고급 순양전함

스에츠구 노부마사

레이테만 해전에서 가라앉고 있는 즈이카쿠. 마지막 군함기 하강식 이후 승무원들이 "반자이(만세)"를 외치고 있다.

나카무라 류조

전함 야마토

'만철 폭파 사건'으로 불리는 관동군의 조작 사건이 만주사변의 불씨가 됐다.

헨리 푸이. 마지막 황제인 푸이는 만주국 1대 황제가 되었다.

만주국 초대 내각

'5 · 15 사건'을 보도한 《아사히신문》

철로의 폭발 부위를 조사 중인 리튼 조사단

마쓰오카 요스케

마지노선

베르됭 전투

앙드레 마지노

마지노선의 내부

에리히 폰 만슈타인

프랑스의 항복 조인식

프랑스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였던 베르됭 전투

역시 프랑스에서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의 향방을 결정지은 마른 전투

솜 전투에서 첫선을 보인 영국의 Mk 1 전차. 영국은 대규모 모병 활동을 통해 프랑스군에 필적하는 군대를 갖기도 했다. 영국은 솜 전투에서 제1차 세계 대전 사상 최초로 전투를 주도했다.

베르사유 조약의 체결

베르사유 조약 체결 당시의 만평. 뒤돌아 우는 아이가 독일이다.

존 케인스

독일 수상과 러시아 대표단

로카르노 조약의 주역들. 왼쪽부터 독일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영국의 오스틴 체임벌린, 프랑스의 아리스티드 브리앙

아돌프 히틀러

수권법에 서명한 당시 정부 요인들. "Der Reichskanzler(수상) : Adolf Hitler"가 눈에 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된 단치히 회랑

1935년 9월 뉘른베르크 퍼레이드에서의 히틀러

스트레사 전선을 풍자한 삽화

스캐퍼 플로에서의 자침으로 독일 해군의 전력은 심각하게 떨어졌다.

독일을 둘러싼 나라들이 일종의 포위망을 만들었다.

라인란트에 입성하는 독일군

노란색이 라인란트로 벨기에와 닿아 있다.

진한 선이 마지노선의 핵심 방어망이다.

에방에마엘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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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06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과학 노트

 

A. 리히터 엮음 | 조한재 옮김

2002, 서해문집

한국과학문화재단 과학고전시리즈 6

 

L e o n a r d o   d a   V i n c i

 

자연 현상과 사람, 사물에 대한

다 빈치의 수많은 관찰 기록을 읽다 보면

그는 르네상스 시대가 선사한

최고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의 《과학 노트》에는

하나의 일관된 정신세계로부터 창출된

사물과 인간에 대한 뛰어난

통찰들로 가득하다.

천재적인 인물의 위대한 생각을

항상 가까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이며 최대의 행복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플로랑스 지방에서 소년기를 보냈던 레오나르도는 그 때 이미 그림이야말로 세상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수단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신념아래 열성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매달렸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모습은 안 보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정신세계에 매료되고 있었다. 예술가적 감각과 과학자의 지적 욕망을 조화시킨 가운데 사물들과 그 움직임을 분석했던 그는 자연 및 그것의 구조, 생명에 대한 연구ㅜ를 통해 그러한 조화를 실현시켰다. 그 결과 자연과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날로 깊어져 갔고, 그를 통해 습득한 자연의 법칙을 확인하기 위해 과학적 연구방법을 사용하였으며 그것을 그의 작품에 도입하였다.

따라서 그의 노트를 읽으면 탁월한 통찰력과 일관된 그의 사상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자리(Vasari)는 그가 쓴 《예술가의 자서전》 서두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때때로 하늘은 인간이 아닌 신을 우리에게 내려 보내는데, 그의 생각과 뛰어난 지식의 도움을 받아 우리 모두가 하늘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대한 생각을 항상 가까이 할 수 있음은 최고의 교육이며 최대의 행복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 <역자 서문> 중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다 빈치는 1458년 이탈리아 투스카니에서 한 공증인의 서자로 태어났다. 스무살 때 화가들의 사교클럽에 가입하기 위해 플로랑스로 옮겨베로치오에게 사사하였다. 1482년 밀라노로 옮겨 17년간 거주한다. 이 시기에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비롯한 다수의 위대한 작품을 남긴다. 1500년 다시 플로랑스로 돌아와 그곳에서 <모나리자(Mona Lisa)>를 완성하고, 1519년 프랑스에서 죽음을 맞는다.

위대한 화가이자 음악가, 재기발랄한 과학자였던 그는 모든 학문에 대단한 열정을 보였다.

그가 남긴 노트는, 표지가 꽃과 구름 · 새 · 태아 그리고 하늘을 나는 기계 · 축성술 · 수로 등에 대한 설계도면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 노트에는 그의 끝없는 호기심과 뛰어난 재능이 잘 나타나 있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은----------------------------------------------------------------

우리 나라 과학 기술 문화를 창달하는 공익재단으로서, 과학 기술 문화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증진시키고, 비효율 · 불합리한 사회 풍토를 개선하여 합리적 · 효율적인 사회로 전화시키며, 청소년들이 과학 기술에 대한 꿈과 포부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엮은이 리히터(IRMA A. Richter)

《미학입문》, 《거인》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시인 장 폴 리히터(Jean Paul Richter)의 딸로, 그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저작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문학작품》이라는 저작선집을 만들었다. 본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 노트》도 그녀의 책에서 뽑아 엮은 것이다.

 

옮긴이 조한재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역서로는 《첨단제품, 원리를 알면 생활이 즐겁다》 등이 있다.

 

차례

■ 역자 서문

■ 감사의 글

 

Ⅰ. 참과학

    1. 경험

    2. 이성과 자연의 법칙

    3. 수학적 표현

    4. 실험

    5. 참지식을 찾아서

 

Ⅱ. 우주

    1. 네 가지 요소

        1) 물

        2) 바다와 육지

            (가) 대홍수와 조개껍질

            (나) 강과 지층

            (다) 지중해

        3) 물과 공기

        4) 땅, 물, 공기 그리고 불

        5) 소우주와 대우주

        6) 원소 속의 영혼 : 그 한계

        7) 천구

    2. 자연의 네 가지 동력

        1) 중량

        2) 힘과 중량

        3) 운동

        4) 운동과 무게

        5) 운동과 힘

        6) 임페투스와 충격

    3. 역학 - 응용 역학에 관한 저서들에 대한 참조

        1) 마찰

        2) 무게 측량 기구

        3) 바퀴와 중량

        4) 나사

 

Ⅲ. 비행

    1. 바람과 물 속에서의 운동

    2. 새 날개의 구조

    3. 수영과 비행

    4. 비행기계

 

Ⅳ. 예술에서의 과학

    1. 미술학 과정

        1) 눈과 물체의 외관

            (가) 오감

            (나) 눈

            (다) 원근법

        2) 물체의 표면과 빛

            (가) 기하학적 기초

            (나) 명암과 색

        3) 물체의 생명과 구조

            (가) 비례

            (나) 인체의 해부학과 움직임

            (다) 생리학

            (라) 혀

            (마) 입술

            (바) 태아

            (사) 비교해부학

            (아) 직물

            (자) 식물

        4) 정신의 표현

        5) 구도

    2. 예술의 비교

        1) 회화, 음악 그리고 시

        2) 시간과 공간

        3) 소리와 공간

        4) 회화와 조각

    3. 건축 계획

    4. 화가의 생애

 

■ 이 책에 실린 참고문헌의 약어 설명

■ 주

■ 해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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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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