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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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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9 상자들

 

이경림 시집

2005, 랜덤하우스중앙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7107

 

문예중앙시선 3

 

우리 시대의 불행을 이경림보다 더 지독한 말로 얽어 묶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자'는 이경림이 새로 발명한 불행의 인식론이다. 여기서 '불행의'란 '불행에 대해서'라는 뜻이기도 하고 '인시하려고 애쓰지만 가망 없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상자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죽은 몸을 담고 함께 썩어갈 관에 그치지 않는다. 사방이 문이어서 도리어 사방이 벽인 이 저주받은 운명의 음모에 그치지 않는다. 모진 기억들을 담고 괴다 흐르다 화농하는 시간의 물컹하거나 단단한 덩어리에 그치지 않는다. 희망 없이 강제된 노역으로 천천히 닮아지면서 굳어지는, 또는 담은 것이 너무 많아서 결국 아무 것도 끄집어낼 수 없게 되어버린 이 육체의 가죽부대에 그치지 않는다.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것들보다 먼저 달려와 눈앞을 가로막는 회한이나 절망감이라고 말해도 여전히 허룩하다. 그것들이 무엇이건 모두 상자의 형식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할 것도 없다. 오래되고 오래되어서, 끝내도 끝나지 않아서, 오히려 진부한 낯빛으로만 남은 그 불행들을 어느 구석에라도 쌓아두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먼저 알아서 상자가 되어야 한다. 아래에 눌린 것이 위의 것들을 견뎌내고, 가끔 어깨를 으쓱 올려 빛이 조금, 바람이 조금, 이경림의 말 같은 지독하고도 속도 빠른 말이 조금, 지나갈 틈을 만들기 위해서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을 골라서.                                       - 황현산(문학평론가)

 

이경림

1947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1989년 『문학과 비평』 봄호에 「굴욕의 땅에서」 외 9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토씨찾기』『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가 있고 엽편소설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시평집 『울어라 내 안의 높고 낮은 파이프』 등을 펴냈다.

 

시인의 말

 

이렇게 흐물흐물한

쾨쾨한

진물 질질 흐르는

다 떨어진 상자들 뒤집어쓰고

이 캄캄한 상자 속을

언제까지 헤매야 합니까

아버지!

 

2005년 여름

이경림

 

|차례|

 

● 제1부

 

작가

아파트 뒤쪽 후미진 바위에

덤프트럭은 어디로 질주하는가

이 상자

저기, 저녁이

시금치 사러 갔다가

나, ……

고구마, 고구마들

물가에서

여우

나는 걸어간다

아침

동백 울타리

식탁 위에는 먹다 만 사과 한 개가 있다

저 쭈글쭈글한 주전자

어처구니 상자들

칠성당들

그러니까 나는

 

● 제2부

 

정육점

적멸

구덩이

이놈으 상자야 말 좀 해봐라

또……

오렌지 한 쪽

분홍빛

가방장사를 때려치운 시인

밑도…… 끝도…… 없다……

상자와 상자 사이

합장(合葬)

걸친, 엄마

나야……

청바지를 입은 소년이

다큐멘터리 개미들의 세계를 보다가 문득

머리카락 이야기

그래, 종로쯤에서

바람이 하도 모질게 부니

그곳에는

허공이 실성실성해서

 

● 제3부

 

폭우

시선

옷걸이

대칭

벌목하러 떠난 아버지를 찾아

꿈에

부엌

까마귀들

근(根)

구덩이

사실적인, 사실, 적인

나는 오늘 종일 잤다

외등

모텔 파라다이스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고양이! 고양이!

환(幻) 1

악몽 공장

석탄박물관

심심하고 심심한, 이,

한담(寒談)

아홉 개의 상자가 있는 에필로그

 

|작품 해설| 이경호(문학평론가)

'닫혀 있는 상자'의 내밀함

 

작가

- 상자들

 

아버지는 늘 책상머리에 앉아 원고를 쓰고 있었다 백열등 불빛 아래 원고지 빈 칸이 끝이 없었다 그는 일생 거기에다 자신을 쓰고 지웠다 그는 자신을 팔아 자식들의 신발을 사고 쌀을 샀다 그의 손으로 팔아치운 자신들이 얼마인지 자신도 몰랐다 이따금 그는 꿈에 자신들의 동창회에 다녀왔노라고 불길한 꿈이라고 이마를 찌푸렸다

어느 날 나는 팔려간 수천 명의 아버지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빈 원고지 칸에다 진짜 아버지를 써넣는 것을 보았다 그때 아버지의 등에는 희고 투명한 날개가 돋아 있었다

 

아파트 뒤쪽 후미진 바위에

- 상자들

 

들고양이처럼 누워서야 보였다

 

하늘은 얼마나 깊은 못인가

다만, 스러지기 위해 구름은 어떻게 소용돌이치는가

등짝만한 바위를 에워싸고 얼마나 많은 잡풀들이 살고 있는가

누군가 먹다 버린 과자 봉지에 코 박고 생쥐 같은 시간은 어디로 가는가

바람은 왜 자꾸 낮은 데로 몰아치는가

 

이렇게 천천히

빙글

돌며

우리는 어디로 흐르는가,

 

아파트 뒤쪽 후미진 바위 같은 것

얼마나 서늘한가

 

나, ……

- 상자들

 

나는 그때 가 전신주 밑에서 조개를 까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백발이 성성한 의 주름투성이 얼굴은 진흙빛이었다 몇백 년 그 일만 했는지 그 민첩한 손놀림이라니…… 나는 에게 이천 원을 주고 조개 한 움큼을 샀다 진흙빛 주름투성이 의 손이 덥석 나의 손에서 이천 원을 나꿔챘다 많이 파세요 나는 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아아 나는 그 전신주 아래서 몇 년이나 조개를 까 팔았을까?

 

나는 그때 역전에서 에게 소매치기 당했다 나의 뒤를 따라오던 는 나의 핸드백을 슬쩍 열고 지갑을 꺼냈다 나의 옆구리에 의 손이 닿았을 때 나는 모골이 송연했다 왜 남의 가방을 여는 거야 나가 소리치자 는 씩 웃으며 내 거니까 했다 나의 가방은 이미 의 손에 찢어져 속이 다 보였다 도둑이야 나가 소리쳤다 당황한 는 나의 얼굴을 면도날로 찍 긋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때 나의 서슬이 얼마나 청청했는지 누구도 를 잡을 염도 내지 못하였다 피투성이가 된 나는 찢어진 가방을 들고 가 줄행랑친 길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나는 흔적도 없었다 나

 

는 그때 무엇엔가 쫓기는 가 헐떡거리며 골목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누런 갈기를 휘날리며 희번덕거리던 는 어리둥절한 나를 스치고 쏜살같이 내달았다 나의 몸은 허공에서 나는 듯했다 가 스쳐가는 아주 잠깐 동안의 길 수많은 문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여기저기 겁에 질린 가 컹컹 짖어댔다 노오란 달이 어떤 파문 속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아침

- 상자들

 

책상을 꼭 책상이라고

이불을 꼭 이불이라고

밥을 꼭 밥이라고

남편을 꼭 남편이라고

………………불러야 하는

슬픈 아침!

 

식구라고 불러야 하는 것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끓는 찌개 속으로 연신 숟가락을 들이밀며

어떤 죄 없는 몸의 가운데 토막을 떼어 먹는다

멸치라고 불러야 하는 것들이 새우처럼 오그리고

올려다보는 앞에서

 

어떤 물컹한 뭉치들이

저녁 소 같은 것들이

 

식탁 위에는 먹다 만 사과 한 개가 있다

- 상자들

 

식탁 위에는 이빨 자국이 갈색으로 변한 먹다 만 사과 하나가 있다

사과의 살 속을 파고들었던 그 이빨은 어디 갔을까?

 

'모임이 있어 늦을 거야'

 

흰 메모지를 방석처럼 깔고 앉은 사과

(시계가 아홉시를 친다)

갈색 이빨 자국에 아홉시가 거무스름 들러붙는다

이빨은 지금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노래방이라도 갔는지 모른다

 

나는 갈색 이빨 자국이 난 식당을 보글보글 끓인다

갈색 이빨 자국이 난 노래방을 무치고

갈색 이빨 자국이 난 커피숍을 볶아놓고

저녁을 먹는다

 

갈색 이빨 자국이 난 사과가 물끄러미 나를 본다

나도 그를 본다

사과 속에 노래방이 보이고 커피숍이 보인다

한 무리의 이빨들이 사과를 먹는 것이 보인다

사과를 마시고 사과를 부르며 마침내 사과가 되는 것이 보인다

사과 속은 지금 사과를 먹은 사과들의 노래로 가득하다


저 쭈글쭈글한 주전자

- 상자들


언제부턴가 그는 뒷베란다 세탁기 그늘에 죽은 듯 있네

쭈글쭈글한 몸통을 잔뜩 기울이고 뚜껑이 열린 채

속에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그는 언제 주전자였나 싶으잖네


한때 나는 그를 보면 때없이 물이 먹고 싶었네

옆구리에 날아갈 듯 붙은 손잡이를 잡고 통통한 엉덩이를 슬쩍 기울이면

오므린 듯 벌어진 그의 입에서

오래 참은 노래처럼 물이 아니 그의 속이 쏟아졌었네


다시 보니 골뚜껑이 열린 줄도 모르고 아득히 주저앉은

그것의 속이 생각보다 아늑하네

그 안에 아무도 모르게 그가 키운 것들,

개미, 그리마, 이름 모를 털벌레…… 저런!

느닷없이 들여다보는 눈을 피해 줄행랑 중인 바퀴벌레 몇 마리!


둥근 벽 위 거무스름한 얼룩에 털투성이 발을 붙이고

떨어졌다간 오르고 떨어졌다간 다시 오르네


저 아애, 바닥에는 습기로 뭉쳐진 먼지들의 산이 있고

마른 웅덩이 같은 것도 있네

그곳에 언제 무슨 폭발 있었는지 작은 분화구 같은 것도 보이네

벌레들, 그 위를 혼곤히 오르내리며 한나절이 다 가네


이녘에선 여전히 천둥 치듯 세탁기가 돌고

소용돌이 속 한 바다가 거칠게 철썩거리네


그러니까 나는

- 상자들


그러니까 나는 그 상자들의 도시에서 한 상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다시 쬐끄만 상자들을 낳았던 거죠


날새면 눈도 코도 귀도 없는 괴상자들이 막무가네 배달되어 왔죠

깨알만한 것들이, 집채만한 것들이

물렁물렁한 것들이, 딱딱한 것들이

필시 수세기를 달려왔을 그것들이

엄마 엄마 부르며 벌컥벌컥

문을 열어젖혔죠


그때 나는 매일 부엌에서 그것들의 먹이를 만드느라 바빴죠

그것들이 자라 낙타가 되고 치타가 되고 악어가 되고 물뱀이 되어

꼭 저 같은 것들을 뒤집어쓰고 어디론가 떠날 때까지

이런 봄날 하릴없이

잿빛 허공에 귀를 대고 있으니

목울대를 늘이고 귀신 소리로 우는 그것들의 울음이 들려요

그러면 문득

앞뜰을 뽀얗게 뒤집어쓰고 때 이른 목련이 솟구쳐 오르죠

글쎄 저 앙바틈한 나무 한 그루가 함뿍

희디흰 이파리 나풀거리는 여린 상자들을 매달고 달그락거리잖아요

낙타…… 치타…… 악어…… 물뱀……들이 가지마다 글쎄!


정육점

- 상자들


         보라!


저 핏빛 쇼케이스 속에

칸나처럼 피오오른 누군가의

찢어진

팔, 다리, 엉덩이, 가슴


적멸

- 상자들


헌 비닐하우스 속에서 살던 집에서 불났다

없는 지붕이,

훤히 보이던 하늘이, 순식간에


활활활활활활활활활활활활


타버린 뒤

소방관들이 만천하에 드러난 숯검댕이들을

집어올린다


숯검댕이 엄마, 숯검댕이 아빠,

영문 모르고 숯검댕이 된

아가……


둘!


밑도…… 끝도…… 없다……

- 상자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투명한 저 칠판에 누가


         새가 날아간다


라고 쓰고 있다


        날개를 갸우뚱거리며 해를 똥처럼 달고 간다


라고 쓰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물렁하고 뿌연 저 칠판에 누가


       나-무-가-어-두-워-진-다-


라고 쓰고 있다


       나무속에누군가푸우-먹물을 불어넣는다

       나무가 검정비닐봉지처럼 부풀어 오른다


라고 쓰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물컹하고 희뿌옇고 어슴푸레한 저

칠판에 누군가


아이를업은여자가지나간다  검정가방을든남자가지나간다

      전봇대와쓰레기통사이로개한마리지나간다

           골목은끝이 없고  저끝에서  누군가울고  있다


라고 쓰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물컹하고 희뿌옇고 어슴푸레하고

……한 저 칠판에 누군가 종일 썼다 지운다 뼈가 다 비치는 투명한 어떤 손이

종일 저 크고 물컹하고 희뿌옇고 어슴푸레한 저 칠판에……


합장(合葬)

- 상자들


나는 산소를 손질하고

동생은 낫으로 무덤 쪽으로 자꾸 그늘을 드리우는

가지들을 잘라낸다 잔가지들이 잘린 자리마다

가지 모양의 하늘이 들어앉는다

잠자리 한 쌍이 벗어놓은 옷 위에서 짝짓기하고 있다

미동도 않는다


그래,

딱 한 번 저런 사랑 본 적 있다


일곱 식구가 누운 단칸(單間)의 밤이었다.

선잠 속,

돌아눕다 문득 본 그것!


검은 바위 같았다 아니

어떤 밤의 도도록한 봉분 같았다

숨소리 하나 없었다


돌 속 같은

…………

…………만

있었다.


이윽고

깊은 물소리 같은

숨죽인 흐느낌 같은……

………


'탁'

성냥 긋는 소리……

그쪽의…… 찰나가…… 불현, 환하다

말고…… 다시……

칠흑!


진자줏빛 담뱃불이 별처럼 멀었다


나야……

- 상자들


살아 계실 때 엄마는 이따금 전화하셔서는

  -나야……

하시곤 한참 뜸 들이다가 이쪽에서 별말이 없으면

  -바쁘……구나……밥……먹……었……니?

물으셨다 띄엄띄엄,

낮게,

무슨 큰 실례라도 한 사람처럼 ……

  -무슨 일예요?

(왜 나는 그때 그렇게 퉁명스러웠을까?)

  -아냐……, 그냥, ……

싱겁게,

그저 밥 얘기만 얼버무리다가 끊은 그

전화…… 오늘,

내가 한다 태평양 건너 딸에게


  -나야, …… 밥…… 먹었니…… 밥 잘 챙겨……

밥, …… 밥, …… 밥, ……

하다가 그만 목이 매어

가만히 있는데 딸애는

  -어! 어! 어!

  -엄마, 나 지금 바빠, 나중에……

일방적으로 전화…… 끊긴다.

전화선같이 가느다란 무엇이

태평양의 이쪽 저쪽을 붙잡고 위태롭게 흔들리다

툭, 끊어진다


나, 문득 '밥'의 ㅂ 속에 오도마니 갇혀

창밖을 본다

비행기 한 대 꽁무니에 희고 가느다란 끈을 달고

허공의 시퍼런 중심을 건너고 있다

나무들은…… 쥐 죽은 듯!

있다


나, 문득 저 나무에게 전화하고 싶다

저 이파리 뒤의 어둠에게

그 뒤의 뒤의 뒤의……

꼭 나뭇잎만한 터널 속 어딘가로 문득 사라진 식구(食口)에게


  -나야아…… 엄마…… 나야아,

  아버지이, …… 나야아…… 나아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나 지금

저 돌맹이 같은 것들에 대고!


다큐멘터리 개미들의 세계를 보다가 문득

- 상자들


개미굴 속으로 들어간다

  →

       허리

       가 잘

          록한                                없다              입구가

       개미                      한점                             출구인

 들이                                   바람

            구멍                        있다

            마다                                  뻗어

        빽빽                                        사방

  하다                                    사지

살같이            가는         길들이




                          개미새끼만한나무들은미동도없이서있다문득

       그림자하나없는길이미친듯떨린다

                                    저    문

                              밖에

                                무슨

                             일이

                        있나

                           ?????????????????????????



                                       곡괭이를들고일터

              맞대고 싸우는 놈                         가는 놈

                      더듬이를                                  집

                                     가는 놈                      지키

                                비틀                                 는

출구가                          지고                               놈

         입구인                          등에                요리

                그길                            것을        하는

           위                               먹을             놈

     더듬이를                           간다               애  보는

  한껏 세운                        오고                    놈 칼 가는

        개미들 정신없이                              놈               

                                                       장작

                                                          패는

                                                   놈 낚시

다있도놈은죽듯는자서에섶길금따이놈는하


그래, 종로쯤에서

- 상자들


우리, 한번 만나자

몸도 마음도 없이

파고다공원 벤치에 앉아 시시덕거리는

늙은 바람처럼

매연으로 찌든 홍매화처럼


그래, 거기, 한 늙도 젊도 않은 아낙이

낮도깨비같이 화장을 하고

장고를 치고 있으리라

한 늙은이는 공중변소 뒤에서 울고,

세월에 표정을 다 내어준 인생들이

데스마스크처럼 앉아 있으리라


그것들 위로

사월! 사월! 사월!

아우성치며 벚꽃잎 회오리치리라

그래, 회오리치는 것들의 그 아득함으로


고단(孤單)을 쓰개치마처럼 뒤집어쓰고 헤매던 날들의 그 막막함으로

우리 청진동쯤에서 한번 만나자

네거리에 갇혀 한 백 년 입 다문 인경처럼

어느 해장국집 푹 삶긴 시래기처럼……

……그렇게

…………물끄러미……우리………


바람이 하도 모질게 부니

- 상자들


집이 운다


집이 우는 것은 지붕이 우는 것 지붕 위의

기왓장이 우는 것 지붕 밑의

서까래가 우는 것 그 밑에

사방 벽이 우는 것 벽 속의

철근이 우는 것 철근을 에워싸고 있는

모래가 우는 것 모래 속에 잠든

수만 리 바다가 우는 것


집이 우는 것은 기둥이 우는 것 기둥이 된

적송(赤松)이 우는 것 몇 겁(劫)의 허공을 걸어와 소나무가 된

늙은 햇살이 우는 것


집이 우는 것은 바닥이 우는 것 그 아래

구들장이 우는 것 그 아래,

주춧돌이 우는 것 그것들이 네 발로 잡고

발이 부르트도록 굴리는

지구가 우는 것!


이 칠흑 속, 지구가 운다.

어느 막막한 날 새벽,

불 꺼진 방에 우두커니 앉아

속울음 들키던 아버지처럼!


그곳에는

- 상자들


어머니, 그곳에는 아직도 노오란 속이 다 보이는 길쭉길쭉한 상자들만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습니다 풀 한 포기 없었습니다 저마다 속에 캄캄한

층계를 감춘 그것들이 납작 눌린 돌맹이 같은 수많은 방들을 가진 그것들이

남몰래 치르르르 물소리를 흘리며 정수리에서 맴도는 해를 제 몸의 사방

벼랑으로 밀어내리며 떨어져 내린 해의 부스러기에 덴 발을 묻고 있었습니다


하여, 더욱 깊고 어두워진 길들을 대낮에도 불을 켜고 달렸습니다 밤마다 나는

빠알간 경고등을 켠 실핏줄 같은 길들이 그것들을 친친 감고 캄캄한 하늘을 날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그곳의 밤은 제 빛에 그림자마저 빼앗긴 그것들이 스스로 어둠이 되어

우두망찰 서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디선가 자꾸 아이가 울었습니다


허공이 실성실성해서

- 상자들


물끄러미 유리창으로 들여다보고 있어

쥐 죽은 듯 조용한 방

늙은 탁자와 늙은 티브이와 늙은 소파가 쭈그리고 앉아 있어


…………탁

누군가 소리치며 복도를 지나가


  세 살배기 막내동생의 임종이 있어

  아이의 검다 못해 푸르른 눈동자 속에 아주 잠깐

  들어앉은 쬐끄만 세상이 보여


멀쩡하던 하늘에서 주먹만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해

순식간에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흙탕물이 넘칠 듯 쏟아져 내려

누군가의 생이 곤두박질치나봐


…………탁

누군가 아래층에서 소리치며 지나가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날

  차비가 없어 장례에도 못 내려간 엄마가 넋 나간 듯 앉아

  있었어

  창백한 손으로 삯뜨개를 하고 있던 엄마

  백 년 전의 이야기야


나는 그때 허공이었어 허공에 둥둥 떠다니던

고봉밥이었어 원재네 국수집 구수한 멸치 국물이었어

동구 밖 팽나무에 걸려 있던 썩은 그네를 타고

한도 끝도 없이 날아올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달빛이었어


세…………탁

누군가 끝없이 계단을 내려가


늙은 탁자와 늙은 티브이와 늙은……

쥐 죽은 듯 쭈그리고

있어 (있어!)


부엌

- 상자들


  그때 그녀는 거기 머무르는 허공들처럼 아주 조용한 환자였다 매일 반복되는 한가지 일만 빼고는

  일은 대개 새벽녘에 터졌다 내가 잠든 틈을 타 그녀는 조용히 공격해왔다

  그녀는 소리 없이 산소 호스를 뽑고 침대를 내려가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문 쪽으로 갔다 인기척에 놀란 내가 억지로 그녀를 데려와 다시 침대에 뉘며물었다

  - 엄마 어디 가시는 거예요?

  - 어딜 가긴, 부엌에 가지, 빨리 밥을 지어야지

  - 아이구 엄마두 여긴 병원이에요 부엌은 없어요

  - 무슨 소리냐 부엌이 없다니 그럼 넌 뭘로 도시락을 싸가고 너희 아버진 어떻게 아침을 드시니?

  - 엄만 지금 아파요. 이제 밥 따윈 안 해도 된다구요!

  - 큰일날 소리! 아버지 깨시기 전에 서둘러야지

  - 엄마! 여긴 병원이라구요 부엌은 없어요!

  - 얘야, 세상에! 부엌이 없는 곳이 어디 있니? 어디나 부엌은 있지 저기 보렴 부엌으로 나가는 문이 비스듬히 열렸잖니?

  - 저긴 부엌이 아니에요 복도예요

  - 그래? 언제 부엌이 복도가 되었단 말이냐? 밥하던 여자들은 다 어딜 가구?

  - 밖으로 나갔어뇨 엄마. 밥 ㄸ윈 이제 아무도 안 해요 보세요. 저기 줄줄이 걸어나가는 여자들을요

  - 깔깔깔 (그는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얘야, 정말 어리석구나 저 복도를 지나 저 회색 문을 열고 나가면 더 큰 부엌이! 정말 큰 부엌이 있단다 저기 봐라 엄청나게 큰 밥솥을 걸고 여자들이 밥하는 것이 보이잖니? 된장 끓이는 냄새가 천지에 가득하구나

  - 엄마 제발 정신 차리세요. 여긴 병원이란 말예요

  - 계집애가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 게 아니란다 아버지 화나시겠다 어여 밥하러 가자 아이구 얘야, 숨이 이렇게 차서 어떻게 밥을 하니? (모기만한 소리로) 누가 부엌으로 가는 길에 저렇게 긴 복도를 만들었을까? 세상에! 별일도 다 있지 무슨 여자들이 저렇게 오래 걸어 부엌으로 갈까?

 

  엄마는 입술이 점점 파래지더니 까무러쳐서 오래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기어이 그 긴 복도를 걸어 나가 엄청나게 큰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엄마의 청국장 냄새가 중환자실에 가득했다

 

까마귀들

- 상자들

 

나는 까마득 높은 곳으로부터 까마귀 한 마리가 떨어져 내리는 꿈을 꿨어요

다시 잠이 들었고 두 마리 까마귀가 떨어져 내리는 꿈을 꿨어요 다시

잠이 들었고 세 마리 까마귀가 떨어져 내리는 꿈을 꿨어요

네 마리, 다섯 마리, 여섯 마리…… 길이 온통 까마귀로 가득할 때까지 나는

다시 잠이 들고 꿈을 꿨어요 죽은 까마귀들 위로 차들이 흘러가고

땀에 절은 사람들이 지나갔어요 그 자리, 희거나 불그죽죽한 목련들이

순식간에 피고 졌어요 그때 나는 그 까마귀들이 그대로 목련으로 피었다가

졌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누군가 봄이 다 갔다고 수군거렸어요

 

근(根)

- 상자들

 

그는 이미 온몸의 근육과 세포를 다 동원해서 숨쉬고 있었다

상기된 두 볼과 충혈된 눈으로 가까스로 그는 말했다

 

- 오줌이 마렵구나

- 소변기를 대드릴게요 아버지

- 나는 누가 보면 소변을 못 보는데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그의 근에다 소변기를 대니 피고름 같은 것이 간신히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때 그 근의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 끝에서 떨어져 내린 피고름이 수세기를 흘러온 냇물이라는 걸 알았다

어릴 적, 나는 트레머리를 하고 피부가 유난히 흰 젊은 엄마가

그 물에 쌀을 씻어 안치고 상추를 씻어 정갈하게 밥상을 차리는 걸 보았다

그때 나는 그 냇물이 밤새 아이 웃음소리를 내며 깔깔깔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구덩이

(그들은 이혼을 이야기한다)

- 상자들

 

(캘리포니아 작은 도시의 한 식당에서 그녀는 말했다)

사는 게 얼마나 지긋지긋한 건지 이제 알 것………………

남자는 다 그렇단다 철딱서니라곤 없는 동물………………

난 이제 정말 지쳤………………………………………………

그래도 살다 보면 혹시…………………………………………

내게 다시 그런 말………………………………………………

아이는 어떻………………………………………………………

 

한 스패니시 여인은 지치고 찌든 얼굴로 혼자 밥을 먹고

서너 살 먹은 서양 계집아이는 지나치게 화려한 캔디를 빨고

아이스크림을 든 산만한 엉덩이가 지나간다

 

털투성이 자본들이 사방에서 어슬렁거린다

 

나도 한땐 그런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왜 하지 못했…………………………………………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거짓말! 난 그게 얼마나 위선인지 알……………………!!!

 

바야흐로 그녀는 눈물로 식탁 위에 물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는 식도가 터져나가는 통증에 시달리며 중얼거린다

 

얘야 캘리포니아에는 왜 비가 내리지 않니 저녁 바람은 왜 이리 차니

왜 젖은, 젖은 빨래가 순식간에 과자처럼 바스락거리니

스컹크는 왜 밤마다………………………………………

그 런 데…… 얘야 …… 도대체…… 왜……매일……새파란 하늘에

독수리 같은 까마귀가………………

 

사실적인, 사실, 적인

- 상자들

 

이제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 밖으로 사라졌다

본시, 세상은 아버지와 아버지,

또 아버지와 아버지들 사이에

사실적으로, 사실, 적으로 있었다

사실적인 아버지는 뜨거웠으나 사실, 적인 아버지는 얼음 같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들 사이에서 사실적으로 아니,

사실, 적으로 갈팡질팡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었다

아버지는 아버지 이후로 스며든 것일까

아버지 이전으로 돌아간 것일까?

생각해보니 사실적도, 사실, 적도 아니었던 아버지!

 

아버지가 지고 나니 세상이 사실적으로 캄캄하다

나는 밤마다 사실적인 아버지를 헤맨다

누르면 쑥쑥 둘어가는 묵 같은 아버지, 검은 안개 같은 아버지,

아아 사실적이 아닌, 사실, 적도 아닌 아버지는

왜 이리 슬픈가?

나는 눈물을 흘리며 사실적인 아닌 아버지 품에

사실, 적이 아닌 딸이 되어 안긴다

 

나는 오늘 종일 잤다

- 상자들

 

나는 오늘 종일 잤다

 

  허공이 조금조금 갈라지고

  갈라진 틈새로 면돗날 같은 햇빛이 내리긋고

 

나는 잤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우박이 퍼붓고

  세월에 부관참시(剖棺斬屍)된 집들의 지붕이 비스듬이 흘러내리고

 

나는

 

  지붕 아래 한 방의 노오란 구들장 속으로 수세기 내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막무가내 내리덮이는 눈꺼풀 사이에서

  한 짐승과 사랑하고 결혼하고 반인반수(半人半獸)를 낳고,

  낳으면서 다만, 눈 뜨기 위하여

 

잤다

 

  벽지 위에는 주근깨투성이 산나리꽃이 킬킬킬 피어 오르고

  깨진 유리창으로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날아들고

  청정 위에는 무언가 끊임없이 뚜벅,

  뚜벅 걸어가고 그 사이에서 나는

 

잤다

 

  졸린 생을 어쩌지 못해 잤다

  들숨 날숨이 뒤엉켜 캄캄해질 때까지 잤다

  멀건 대낮이 멀건 밤이 되고 멀건 밤이 멀건 아침이

  될 때까지 잤다

  팔 다리 엉덩이 배꼽이 몽땅 캄캄해질 때까지 잤다

  팔 다리 엉덩이 배꼽이 몽땅 환해질 때까지 잤다

  아아, 이 짧은 잠 속의

  기이인……………………………하루

 

모델 파라다이스

- 상자들

 

한 오십쯤 된 여자와 남자가 간다

 

수제(手製) 태양들이 줄지어 번쩍이는 밤,

사이사이, 창궐하는 어둠에 푹푹 빠지며,

 

자세히 보니 한 오백 살 된 계집아이와 사내아이가

묵은 느티나무 밑둥 같은 허리를 돌려 감고 간다

얼굴에 제 살아온 날의 지도를 펼쳐들고

무슨 음모처럼

컴컴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는 당뇨(糖尿)의 늙은 사자와,

수 세기 전 누군가 채워준 녹슨 족쇄를 절그렁거리는

저 다섯 살 철부지 노파!

엽기적으로 푸르스름한 시대의 인광(燐光)이 잡아 끄는

모텔 파라다이스로

키득키득

울며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신생아실에서)

- 상자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얼마나 험한 길을 얼마나 오래 걸어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피투성이 주름투성이의 몸으로 조막만한 인류가

지금 막 도착해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울음을 그친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형광등 불빛을 보다가

창 쪽을 보다가

희고 높다란 벽을 보다가

흰 옷에 흰 투구를 쓴 직립의 괴짐승들을 보고는 그만

무슨 입맛 돋우는 먹을거리라고 생각했는지

라일락빛 입술을 씰룩거리며 이리저리

혀를 내두르다가

문득

 

단풍잎 같은 손을 들어

가만가만

가까운 허공을

긁어보는 것이었는데

 

환(幻) 1

- 상자들

 

성묘하러 갔다 보았죠

당신 무덤 앞 상석 위에서 당신이

손바닥만한 사마귀 한 마리로 환(幻)

하시어

갓 태어난 연둣빛 아기 메뚜기 한 마리 잡숫고 계시는 거

 

미칠 듯 고요하던 그 식사!

 

발 아래론 시뻘건 개비름의 날짜들이 기어가구요

아카시아 개여뀌 엉겅퀴 호라지좆

온갖 못난 것들이 뒤엉킨 굴헝이 있었구요

더 멀리는

모르는 척 산 모퉁이를 돌아가는

능청맞은 낙동강이 있었구요

 

악몽 공장

- 상자들

 

그 공장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멀리서 보면 그곳은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나는 하마터면 아,

하는 탄성을 입 밖으로 내보낼 뻔 하였다

 

누군가 말했다

그 속에 죽어도 꺼지지 않는 용광로가 있고 그 끝에서

펄펄 끓는 쇳물이 쏟아져 나와 불의 길을 만들고 있다고

사방에서 물고 물리는 기름투성이 기계들이 쩔꺽거리며

거대한 피댓줄을 돌리고 있다고

그 끝에 기막히게 정교한 세공품들이 쏟아진다고

주전자 모양으로, 커피잔 모양으로

쟁반 모양으로, 숟가락 모양으로

아집(我執) 모양으로, 고통(苦痛) 모양으로,

굴욕(屈辱) 모양으로

긍휼(矜恤) 모양으로

 

석탄박물관

- 상자들

 

박물관이 된 막장을 보았어

입구에 들어서면 은은하게 음악이 깔리고

- 어서 오십시오 **광업소 석탄박물관입니다

안내 방송이 들리고

잘 진열된 석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얼마나 죽은 듯,

얼마나 오래,

얼마나 납작하게 엎드려야

소나무 전나무 고사리 속새 도라지 더덕 만삼 좀딱취 같은 것들이

돌이 되는지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능구렁이 삼엽충 지네 전갈 같은 날짜들이

캄캄하게 석탄이 되는지

달걀만한 홀로그램으로 뜬 광부가 말하고 있었어

창백한 손가락을 들어 막장 쪽을 가리키며

 

저기! 사십오 도 각도로 곡괭이를 든 채 밀랍 인형이 되어버린

칠성이 아버지를 보라고

 

저기! 탄가루가 범벅인 도시락을 반쯤 남긴 채 홀로그램이 된

경식이 아버지도 있다고,

 

여기저기, 몰래 진폐(塵肺)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홀로그램이 되어가는 자들의 독거 막장이 보였어

 

곡괭이 같은 슬픔을 들쳐멘 쬐끄만 해의 광부들이

허공탄차에 실려 막장으로 쏟아지고 있었어

 

심심하고 심심한, 이,

- 상자들

 

가을날, 방바닥을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이,

가을날, 등때기와 배때기가 붙은, 이,

가을날,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이,

가을날, 속 있는 것들을 다 속으로 들어가버린, 이,

가을날, 천장에서 쥐새끼 한 마리 찍찍거리지 않는, 이,

가을날

 

  위층에서 유령들이 수군거린다 징징 짠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흐윽흐윽 흐흐흐

  흐느낌만 흐드러지는 이!

가을날,

  벽속으로 누군가 몰래 물을 들이붓는다

  물이 철근 기둥을 타고 하염없이 내려간다

  벽지에 스민다 집이 퉁퉁 불어터진다 흐물흐물 풀린다

 

더엉 더엉 더엉

처연하게

벽시계가 운다 치르르르르르

냉장고가 울고 텔레비전이 운다

가스레인지가, 신발장이, 탁자가, 의자가, 운다

(귀뚜라미는 울지 않는다)

 

심심하고 심심한,

이!……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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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78 Auguste Rodin 오귀스트 로댕

 

지은이 | 라르스 뢰퍼 , 옮긴이 | 정연진

2008, 예경

 

 

시흥시대야도서관

SB040163

 

650.8

아887ㅇ  6

 

ART SPECIAL 6

 

Auguste Rodin | 오귀스트 로댕

 

"사람들은 내 조각 <걸어가는 사람>에 머리가 없다고 비판하지.

그런데, 도대체 걷는 데 왜 머리가 필요한 거요?"

- 오귀스트 로댕

 

당대의 평론가들은 로댕의 작품을 보고 '괴물'이라고

비난하며 그를 외톨이로 몰았다. 하지만 로댕은 이러한 비평

따위는 아랑곳없이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했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은 로댕이 활동하던 19세기 말 매혹

적인 파리로부터 카미유 클로델과의 사랑을 비롯한 그의

굴곡 많은 삶, 그의 예술 세계, 영화 <카미유 클로델> 및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로댕에 대한 흔적 등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1840~1917)

근대 조각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14살에 국립공예실기학교에 입학하면서 조각의 길에 들어선다. 1864년 살롱에 처음으로 <코가 깨진 사나이>를 출품했으나, 너무나 생생한 사실적인 묘사에 심사위원들이 거부감을 느껴 낙선되고 말았다. 이후 유럽 각지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훗날 자신의 예술세계 기반을 다져갔다. 1878년 파리에 돌아온 로댕은 살롱에 <청동시대>를 출품하는데, 작품의 뛰어난 사실성으로 인해 살아 있는 모델에서 직접 석고형을 뜬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로댕은 <입맞춤>, <지옥의 문>,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발자크 상> 등 무수한 걸작들을 만들었다. 사실적 기법 아래서 인간의 희노애락과 치솟아 오르는 생명의 약동과 영혼까지 묘사한 로댕의 작품들은 근대 조각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1840-53

세계사

>> 1840년 영국에서 역사상 첫 우표인 '페니 블랙' 발행.

>> 1841년 홍콩, 영국령으로 귀속.

>> 1845년 아일랜드 대기근 발생.

>> 1850년 오노레 드 발자크 사망.

>> 1851년 런던에서 첫 만국박람회 개최,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출간.

 

로댕의 예술세계

>>1840년 11월 12일 프랑수아 오귀스트 로댕, 파리에서 출생.

>> 1848년부터는 기독교리형제학교, 1851년부터는 숙부가 운영하는 보배기숙학교에 다님.

1854-661

 

>> 1856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위 사진) 출생.

>> 1857년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출판, 저자와 출판자 모두 "미풍 양속을 해친 행위"로 인해 벌금형이 내려짐.

>>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됨.

 

>> 1854년 "프티트 에콜"에 입학.

>> 1858년 보자르 미술학교의 입학시험에 세 번 연속으로 낙방, 장식업자와 부조제작자의 조수로 일함.

 

1862-64

>> 1862년 10권으로 된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 출간.

>> 구스타프 클림트(위 사진) 출생.

>> 1863년 런던에서 역사상 첫 지하철 개통, 프랑스에서는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가 논란을 일으킴.

 

>> 1862년 누나 마리아 사망. 로댕, 성령회 수도원에 들어감.

>> 1863년 에마르 신부의 흉상 제작. 수도원 생활 청산.

>> 1864년부터 알베르-에르네스트 카리에-벨뢰즈에게 고용되어 일함. 같은 해에 로즈 뵈레와 만남.

 

1865-71

>>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로 사망.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뮌헨에서 초연.

>> 1867년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출간. 샤를 보들레르 사망.

>>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참사.

 

>> 1866년 아들 오귀스트 외젠 뵈레 출생.

>>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발발. 국립방위군에 자원.

>> 1871년 국립방위군에서 나쁜 시력으로 제대. 카리에-벨레즈(위 사진)를 따라 벨기에로 이주. 어머니 사망.

 

1872-76

>> 187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개관.

>> 1873년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에서 '프리아모스의 보물' 발견.

>> 1875년 작가 토마스만 출생.

>>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 발명(위 사진).

 

>> 1874년 브뤼셀에서 다수 건축 프로젝트에 참가.

>> 1875년과 1876년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 미켈란젤로의 예술 연구.

 

1877-80

>> 1879년 토마스 에디슨이 백열전등 발명.

>> 1880년 콘라드 두덴이 라이프치히에서 《독일어 정서법 사전》 출간. 화가인 프란츠 마르크와 에른스트 키르히너 출생.

 

>> 1877년 '주조 스캔들'로 구설수에 오름. <청동시대>가 모델을 그대로 본 떠 만든 작품이라 비판 받음.

>> 1880년 명예 회복과 동시에 <지옥의 문> 의뢰 받음.

 

1881-86

>> 1881년 루이 파스퇴르가 광견병 예방백신 개발.

>> 1883년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추간. 리하르트 바그너와 카를 마르크스 사망.

 

>> 1883년 카미유 클로델(위)과 만남. 아버지 사망.

>> 1884년 <칼레의 시민> 제작 의뢰 받음.

 

1887-92

 

>> 1888년 빈센트 반 고흐가 귀에 의문의 부상을 입음.

>> 1889년 파리에 물랭루즈 개장. 아돌프 히틀러 출생.

>> 1890년 화가 에곤 실레 출생. 빈센트 반 고흐 사망.

>> 1891년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건설 시작.

 

>> 1887년 레종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받음.

>> 1888년 보들레르의 《악의 꽃》 삽화 그림.

>> 1889년 빅토르 위고 기념비 제작 의뢰 받음.

>> 1891년 오노레 드 발자크 기념비 제작 의뢰 받음.

>> 1892년 레종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받음.

 

1893-98

 

 

>> 1893년 카를 마이(위)의 인디안 '위니투' 이야기 마지막 권 출간.

>> 1894년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 마지막 황제로 재위. 파리 상젤리제에서 첫 자동차 전시회 개최.

>>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에서 첫 영화 상영.

>> 1896년 앙트완 앙리 베크렐이 방사능 발견.

 

>> 1895년 <칼레의 시민> 공개식.

>> 1897년 뫼동의 브리앙 저택에 정착함.

>> 1898년 카미유 클로델과 영원히 결별.

 

1899-1910

 

>> 189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출간. 에리히 캐스트너 출생.

>> 1906년 4월 18일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및 화재로 도시 황폐화(위).

>>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러일전쟁 종식 중재로 노벨평화상 수상.

 

>>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로댕을 위한 단독 전시관 마련.

>> 1902년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과 만남. 후에 로댕에게 고용될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만남.

>> 1904년 슈와쥘 공작 부인과 만남.

 

1911-17

>> 1911년 노르웨이인 로알 아문센(위)이 영국인 로버트 스코트를 간발의 차로 앞지르고 먼저 남극점에 도달. 스코트는 귀향길에 사망.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 191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 발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출간.

 

>> 1913년 카미유 클로델, 정신병원에 수감됨.

>> 1916년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함.

>> 1917년 1월 29일 반려자 로즈 뵈레와 결혼. 2월 14일 로즈 뵈레 사망. 11월 17일 오귀스트 로댕 사망.

 

지은이 | 라르스 뢰퍼Lars Roper은 현재 베를린에 살고 있으며, 자유 기고작가, 여행기록 작가 및 전시회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잇다.

 

옮긴이 | 정연진은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슈투트가르트 예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국제회의통역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대학원에서 통번역학 박사과정 중에 있고, 동대학원 및 서강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차례

 

그때 그 시절

급변하는 사회

 

최고가 되기까지

예술가의 피

 

예술

조각 속에 깃든 우주

 

일용직 노동자가 꾼 천재의 꿈

 

사랑

헌신이냐 열정이냐

 

지금도 우리 곁에

세계 시민 곁의 로댕

 

그때 그 시절

 

 

"파리여,

소년을 유혹하는,

남자가슴을 뛰게 하는,

그리고 늙은이에게 위안을 주는 도시여!"

 

하인리히 하이네

 

 

"파리에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소."

작곡가 프레데릭 쇼팽이 1831년에 남긴 말은 당시 파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기선 당신이 재미있어하든, 지루해하든, 웃든, 울든, 마음대로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소. 이 도시에 있는 수천 명이 또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오. 다만, 방식만 조금씩 다를 뿐이지."

사진작가 샤를 마르빌은 주로 19세기 파리의 거리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은 오 마리 가(街).

 

마음껏 즐기자

파리 시민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었다. 전쟁과 혁명으로 세월을 보냈던 파리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즐기고, 즐기고, 또 즐기는 것뿐이었다.

로댕은 신사복을 차려입고 파리의 거리를 누비며 구경거리를 찾아다니길 좋아했다. 로댕이 활동 초기에 전시회를 기획하는 데에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재정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동시대 미술가의 작품 수집을 즐겼던 카유보트 역시 화가였는데, 약 500점의 작품을 남겼다. 위 작품은 카유보트의 1877년 작(作)인 <파리의 거리>이다.

 

"파리라는 도시가 좋은 점이 뭔지 아나? 누가 여기서 어떻게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는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이지."

-오노레 드 발자크

샤를 보들레르(1821-67)의 상징주의적 작품들은 로댕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향하는 전환기에는 뢴트겐선 촬영 기술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 기술이 발명되어 화제가 되었다. 사진은 1896년 전신 촬영 사진으로, 아홉 개의 부분 사진을 모아 붙인 것이다.

자연 속에서 | 클로드 모네나 오귀스트 르누아르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화실에서 벗어나 야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연의 풍경과 색채를 순간의 모습 그대로 화폭에 담으려 했다. 이는 화실에서라면 불가능했을 작업이었다. 그래서 인상주의 작품들은 풍경화가 주류를 이룬다. 그 대표작 중 하나인 르누아르의 <작은 배>.

상징주의자 | 스위스 출신 화가인 아르놀트 뵈클린은 회화를 통해 문학 작품이 주류를 이루던 상징주의에 합류했다. 상징주의는 상징을 통해 현실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 사조이다. 뵈클린은 당대의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동화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고대 신화의 모티브를 담아내는 작업을 즐겼다. 그의 작품 <가을의 사색>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명상에 잠기게 한다. 

 

최고가 되기까지

 

"명성을 얻기 부터

로댕외로운 사람이었다.

찾아온 명성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건 괴물이야!"

 

아카데미 미술을 추종한 비평가들이 로댕의 작품을 평한 말이다. 로댕이 좌절할 때마다 다시 일어나 두 배로 노력한 것은 예술을 향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906년 해고되기까지 6개월간 로댕을 보좌한다.

 

작은 왕궁

로댕이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그를 흠모한 모델, 일꾼, 제자, 조수, 비서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작은 왕궁을 형성하였다. 로댕의 일거수일투족에 경외심을 표하던 이들은 로댕이 더욱 까다롭고 독선적으로 변해가는 데 일조하였다.

 

"우리가 삶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일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잇기 때문이다."

- 오귀스트 로댕

<세례 요한>은 로댕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다.

희망 | 로댕의 초기 작품인 <코가 부러진 사나이>는 '비비'라는 이름의 가난한 이웃 사내를 모델로 삼았는데, 예술가들로부터 "고대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다"며 호평을 받았다. 로댕은 살롱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출품했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살롱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외면해버린다.

공모전 | 1877년 말, 로댕은 드디어 자신만의 작품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이때부터 로댕은 가능한 한 모든 공모전에 도전장을 던지기 시작한다. 작품 <무기를 들어라>는 파리 '데팡스'전 출품을 위해 1879년에 제작되었지만, 1922년 승전 기념비로 베르됭 시에 설치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로댕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작품을 소개할 기회를 얻었다.

로댕이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알마 광장에 세운 '로댕관'

뫼동에 있는 '빌라 드 브리앙'

로댕의 저택 '오텔 비롱'의 사무실에 앉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인 릴케는 로댕의 괴팍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를 천재로 받들었다.

| 로댕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손을 비롯한 다양한 인체 부위 조각품 수백 개가 바닥과 선반을 가득 메우고 있다. 로댕은 이 부분 조각품들을 작품을 위한 자투리가 아닌 완전한 예술품으로 다루고 애정을 쏟았다. 오늘날 세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 <대성당>에서 로댕은 두 개의 손을 조합하여 대성당의 건축양식을 형상화하였다.

참수 | 자신의 조각품에 대해 불완전하다는 비평이 쏟아지자, 로댕은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다시는 완전한 작품을 만들지 않으리라! 난 고대의 전통을 따르겠어!"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긴 첫 작품이 바로 이 <걷고 있는 남자>라고 한다. 로댕에 관한 회고록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세례 요한>의 주조에서 목만 떼어낸 것이라 하고, 다른 기록에서는 이 작품이 <세례 요한>을 위한 습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용수 | 조각가에게 있어서 무용수의 몸짓은 영감의 원천이자 도전의 대상이기도 하다. 로댕이 이러한 도전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폴란드 출신의 러시아 발레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바슬라브 니진스키를 표현한 조각품은 위대한 조각가와 위대한 무용가의 재능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삼매경 | <명상> 혹은 <내면의 소리>로 불리는 이 조각품은 원래 <지옥의 문>을 구성하며 제작되었다. 무언가에 깊이 심취한 듯한 이 귀부인의 모습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 삽화에도 등장한다. 로댕은 후에 빅토르 위고 기념비에 접목하는 과정에서 이 조각품의 양팔과 무릎을 잘라냈고, 그 모습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열쇠가 되는 인물 |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잇다. 원래 로댕의 계획은 단테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지옥의 문>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게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조각품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사색하는 인간 혹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고뇌하는 창조자의 모습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모욕 | 문호 발자크의 기념비 제작을 의뢰한 문인협회는 빠르게 완성하길 바라며 로댕을 더욱 독촉했다. 그러나 로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발자크> 상을 개인적으로 자신의 미학에 획을 긋는 작품으로 완성시키고자 했다. 이윽고 1898년 로댕의 완성품을 전달받은 문인협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대문호 발자크를 "괴물로 만들었다"며 로댕을 비난했다.

 

예술

 

"예술이란 인내 정성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노동 없이는 불가능한 것."

 

오귀스트 로댕

 

평범하라고? 그럴 수는 없어!

 

로댕이 명성을 얻을 때까지 수십 년이 걸렸지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평범함이다. 로댕의 눈에 평범한 자는 "예술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자연을 흉내 내기만 한다. 자연을 관찰만 할 뿐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사물을 보는 법을 안다. 그리고 그의 눈과 마음이 함께 자연의 품 안에 깊이 안긴다."

 

"예술적 영감? 우습군! 그건 이성도, 의미도 없는 낡아빠진 낭만적 정서에 불과하네. 스무 살 청년이 벼락을 맞고는 갑자기 대리석을 깎아내서 후에 걸작이 될 작품을 위한 습작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영감이라네. 상상력의 광란 상태이지! …… 그러나 이렇게 광기에 불타 만들어진 작품들은 아낌없이 부수어버려야 한다네."

- 오귀스트 로댕

로댕의 작품 중 늙은 여인을 모티브 삼은 작품은 <한때는 아름다웠던 투구 제작자의 아내>뿐이다.

<청동시대>의 모델이었던 오귀스트 네이. 로댕은 이 사진으로 자신의 작품이 저질스러운 복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려 했다.

 

"사실 작업에 필요한 건 기술적 능력과 지식뿐이지만,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건 그게 아니야. 사람들은 현실적인 것보다는 특이한 것, 초인적인 것을 믿고 싶어 한다네. 물론, 예술적 영감에 비하면 기술과 지식, 시간, 고찰 같은 요소는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겠지. 그렇지만 이 요소들이야말로 예술을 만들어내는 기본 틀이라네."

- 오귀스트 로댕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건 로댕뿐만이 아니었다. (아래 : 로댕의 드로잉 <악마를 보고 놀라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예를 들어 외젠 들라크루아는 1822년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통해 신곡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로댕은 출판업자 폴 갈리마르의 의뢰로 1887년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초판의 삽화 작업을 맡는다.

로댕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면밀히 탐구하였고, 때로는 이를 위해 이탈리아에 가기도 했다. 위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승리>.

<발자크> 상을 완성하기 위해 로댕은 수많은 습작을 만들어냈는데, 그중에는 걸어가는 나체의 모습도 있었다.

로댕의 우주 |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온갖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의 문학에 묘사된 지옥의 문 위에 씌어진 문구이다. 희망을 버린 건 로댕의 추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옥의 문>이 로댕 생전에 완성되기는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로댕은 35년의 세월을 <지옥의 문>에 쏟아 넣었다. 결국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끝맺었지만, 어떤 작품보다도 로댕의 우주를 잘 나타내고 있다.

지옥편 | <떨어지는 사람>은 그나마 힘으로 <지옥의 문> 틀에 매달려 버티고 있다. 그러나 그도 머지않아 저 아래 있는 저주받은 자들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단테 알리게리가 《신곡》에서 묘사했듯이 말이다. 로댕의 작품 세계를 깊이 느끼고 싶다면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읽어보아야 한다.

이중성 | <입맞춤>에서 두 연인은 애정 깊은 입맞춤을 나누는 듯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보면, 두 연인들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간절한 당부 | 오르페우스는 뛰어난 음악 솜씨 덕택에 지하 세계로 간 연인 에우리디케를 다시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둘이 함께 이승으로 돌아가던 중, 에우리디케의 발걸음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오르페우스는 걱정이 된 나머지 페르세포네의 당부를 잊고 그만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에우리디케는 죽음의 세계로 돌아가버린다.

새로운 시각 | 조각이라면 받침대가 있던 것이 당연시되던 당시에, 바닥에 조각을 놓는 것은 매우 특이한 방식이었다. 1885년 작품인 <순교자> 또한 그러한 양식을 띠고 있어서, 위에서 작품을 내려다보도록 하고 있다. 오늘날 이 작품은 결국 대부분의 박물관에서 받침대 위에 놓여 전시된다.

| 낭만파 문호 노발리스가 말했던 "사랑, 우주의 숨결"은 로댕의 1884년 작품 <영원한 봄>에 정확히 들어맞는 표현이다. 사랑에 빠져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젊은 연인의 모습은 얼어붙은 세상이 깨어나고 만물이 태동하는 계절인 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로댕은 1883년 동료 조각가인 쥘 달루의 흉상을 제작한다. 그러나 달루에게 <빅토르 위고>의 수주를 빼앗긴 후, 둘의 관계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에 둘러싸여 서 있는 로댕. 1902년 촬영.

로댕이 그린 에로틱한 드로잉에서 모델들은 자유분방한 포즈를 취한다. <달, 프시케>

민주주의 예술 | 칼레 시의 고위관리들은 여럿을 위한 기념비보다는 단 한 명의 영웅을 내세우고 싶어 했다. 반면, 로댕은 군상을 통해 공동의 시민의식을 표현하고자 했다. 로댕이 생각하기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요청에 응하여 칼레 시를 구하려 햇던 여섯 명의 자원자 모두가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아이 | 대리석에서 뻗어 나온 <신의 손>은 혼돈 속에서 솟아올라 나와 이 세상을 향한다. 그리고 점토로 첫 인류를 빚어낸다. 로댕이 이 작품을 만든 과정도 이와 비슷했다. 로댕은 손 조각품 중 큰 작품을 골라서, 그 위에 적당한 크기의 누드 조각품을 담았다. 작업실 안에서 우주를 창조하듯 말이다.

천연 대리석 | 손은 로댕의 예술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로댕은 <대성당>이나 <신의 손>처럼 <악마의 손>에서도 두 개의 기존 작품을 하나로 조립했다. 그러나 로댕이 너무 앞서 간다고 비판받은 것은 대상을 조합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친 천연 대리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욕정 | 귀부인에서 신분 낮은 모델에 이르기까지 로댕은 여인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넘치는 욕정의 소유자였다. 여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위해 드로잉과 조각품들의 모델을 서주었고, 그의 애인이 되어주기도 했다.

느낌 | 1893년 작품 <트리톤과 네레이드>를 통해 로댕은 부분 조각품에 대한 철학을 완성하는 단계에 이른다. 남녀가 서로 뒤엉켜 한 점토에서 나와 형태를 이루는 모습 속에 로댕의 언어가 깃들어 있다.

위대한 자연 | <설교자 솔로몬> 혹은 <전도서>는 구약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로댕은 이 여인의 관능적인 포즈를 보고 전도서의 구절이 생각났을 것이다.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로댕은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책보다도 아름다운 게 자연이라오. 다만, 어떻게 읽어야 가장 아름다운지 알고 읽어야 하지."

 

 

"살아 있는 모든 생물

공기를 들이마시고, 영혼을 뱉어낸다.

나는 그러한 과정

묘사하고 싶은 것이다."

 

오귀스트 로댕

 

어느 문맹자의 위대한 발견

 

오귀스트 로댕이 그림만큼 좋아한 건 없었다. 부모와 교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댕은 거의 문맹 수준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로댕이 고집세다는 것이었는데, 그는 부모를 조른 끝에 무료 미술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다. 이곳, '프티 에콜'에서도 여전히 외톨이였던 로댕은 교정을 돌아다니다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로댕은 미켈란젤로(위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모세>)에 대해 탐구한다. "나는 밤새도록 스케치를 했다. 미켈란젤로를 흉내 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미켈란젤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생각을 그려낸 것이었다."

 

'부르주아 전담 예술가'

수년간 일용직으로 근근히 생활했던 로댕에게 드디어 행운이 찾아왔다. 조각가이자 상인인 알베르-에르네스트 카리에-벨뢰즈가 젊은 로댕의 재능을 간파하고, 그에게 고난이도의 장식 조각품 제작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카리에-벨뢰즈는 아무리 중요한 일을 맡겨도 서명은 반드시 본인의 이름으로 하였다.

C. H. 오브리가 1862년에 촬영한 젊은 로댕의 모습에서 일생을 예술에 바치려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이러한 의지가 없었다면, 향후 그가 수십 년간 겪게 될 무명 시절과 혹독한 비평을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생물이 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나가려는 이유는 뭘까? 이토록 고통스러운데도 삶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지금도, 앞으로도 나를 괴롭히는 질문일 것이다."

 

- 오귀스트 로댕

로댕이 1860년에 그린 로렌 지방 출신의 어머니, 마리 셰페르.

피에르-쥘리앵 에마르 신부의 흉상을 만들고 있는 젊은날의 로댕, 1863년 사진.

굳게 닫힌 마음 | <웅크린 여인>은 원래 <지옥의 문> 가장자리 기둥에 삽입될 모티브로 제작되었으며, 청동조로 제작된 개별 작품으로 친다면 로댕의 작품 중에서도 매우 대담한 편이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듯한 여인의 자세가 주는 의미는 오늘날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최초의 여인 | <이브>는 자신이 벌거벗은 것과 죄를 범한 것을 알아차리고, 부끄러운 몸짓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피한다. 로댕은 이브를 유혹의 주체가 아닌, 인류 최초의 어머니로 묘사하려 했다. 로댕은 <이브>를 <지옥의 문> 오른편에 설치했다. <아담>은 건너편에 위치한다.

아름다운 실루엣 | <나는 아름답다>는 원래 <지옥의 문>에 설치되었던 두 점의 개별적인 작품인 <떨어지는 남자>와 <웅크린 여인>을 다시 조합한 것으로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선보인다. 이 작품의 두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고 매우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어우러져 있어, 두 오브제 간의 관계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영원한 터널" | 이 작품에서 <신의 전령 이리스>는 허벅지를 벌려, 화가 쿠르베가 말하는 '세상의 근원'을 드러내 보인다. 로댕은 반면 은밀한 부위를 가리켜 "영원한 터널" 혹은 "판 신의 재래"라고 부르곤 했다. 자신의 삶에서도 여인이라면 모두 사랑했던 로댕이기에, 그가 예술 세계에서도 여인의 모두를 표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낭만의 극치 : 로댕은 내연의 처인 로즈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흉상 <미뇽>을 제작한다.

로댕의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는 카미유 클로델(왼쪽)과 제시 립스콤. 1888년 사진.

로댕의 우주 : 1904-05년 사이에 촬영된 뫼동의 작업실.

저택 '오텔 비롱'의 오귀스트 로댕. 1915년 사진.

임종한 오귀스트 로댕.

죽음의 나락으로 |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나오는 '이카로스의 추락'은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였고, 로댕도 이 이야기에 심취했다. 이카로스는 나무에 밀랍으로 깃털을 붙여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올라간다. 그러나 너무 자만한 나머지 태양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밀랍이 녹아내리는 바람에 추락해서 죽는다.

우화 속 주인공 | 로댕의 부분 조각품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감상자에게 질문을 던지길 좋아했는데, 이는 고대 우화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황소의 머리와 신앙의 다리를 가진 미노타우로스가 저항하는 님프를 무릎에 앉히려는 광경은 고대 우화와도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다. 이 대리석 작품은 <목신과 님프> 혹은 <주피터 타우로스>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추락한 천사 | <천사의 추락>은 샤를 보들레르의 문학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이처럼 두 여인의 인체가 어우러진 모습을 담은 작품은 <지옥의 문>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추락한 카리아티드>와 <아델레의 토르소>이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 예술가인 피그말리온은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온통 조각으로만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자신이 빚어낸 상아 여인상이 완성되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를 알게 된 비너스는 여인상을 '갈라테아'라는 살아 있는 여인으로 둔갑시켜준다.

에로스와 프시케 | 로댕은 1905년에 <에로스와 프시케>를 만들면서 플레이우스가 2세기에 쓴 소설 《황금 당나귀》의 내용을 근거로 삼았다고 한다. 오늘날은 이 조각품의 제목이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도 없지 않다. 에로스의 상징인 날개나 활 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

 

"여인이란 성스러운 존재이다."

 

오귀스트 로댕

 

기사도와 외설

 

로댕에게 있어 여인과 예술은 가장 위대한 두 가지 요소였다. 로댕은 여인들을 찬양하고 신성화했으며, 여인들을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했다. 반면 자신의 외설적인 드로잉을 통해서는 모델의 은밀한 부위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요란하게 치장하기 좋아했던 슈와젤 공작부인은 한때 로댕의 애인이었다.

 

"나는 자연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자연과 동화되려는 것이다. 나는 자연이 나를 이끌고 가도록 맡긴다. 나는 인간 이외에는 대상으로 삼고 싶은 것이 없다. 인체가 만들어내는 형상은 나에게 다가와 나를 압도해 버린다. 나는 나체를 보면 끝없는 찬미와 깊은 경외심을 느낀다."

- 오귀스트 로댕

 

 

젊은 카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은 서로 싸우고, 배우고, 사랑하고, 경멸하고는, 또다시 사랑에 빠졌다. 로댕은 회상하길, 자신은 카미유에게 금을 찾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며, 그녀에게 "찾은 금은 그냥 가져도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스승이자 애인 : 카미유 클로델이 만든 오귀스트 로댕의 흉상. 1888년.

 

"로댕은 여인들의 얼굴을 아름다운 인체에 속한 일부분으로 보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여인들의 눈과 입은 단순히 얼굴에만 속한 모티브가 아니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즈 뵈레는 로댕의 에로틱한 행각들을 묵묵히 견뎌낸다.

사랑의 굴레 | <영원한 우상>의 두 연인들 둘레에는 보이지 않는 굴레가 씌워져 있는 듯하다. 남성은 사랑하는 여성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에 입맞춤하려 하고 잇다. 여인은 몸을 뒤로 젖혀 뿌리치고 싶지만, 어쩌지 못하는 자세이다. 두 연인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떨어지지 못하는 괴로움 사이에서 불안한 공존을 유지하고 있다.

절망 | "잡으려 애쓸수록 더욱 잘 빠져나가기 마련"이라는 속담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두 남녀가 서로 등을 마주한 <달아나는 여인>은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파울로가 아무리 잡으려 애써도 품 안에서 빠져나가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을 묘사했다.

거친 표면 |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이 중 초기 작품인 <사색>에서 로댕은 카미유의 표정을 감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에 반해, 카미유의 몸은 머리를 받치고 있는 무거운 대리석 덩어리일 뿐이다. 몸뚱이를 대신한 대리석의 거친 표면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로댕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시인의 찬미 | 시인 릴케는 젊은 시절에 <다나이드>를 보며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쏟아져 내리는 머리카락…… 대리석을 따라 천천히, 길게 이어지는 등의 곡선, 흐느끼는 듯 돌 속에 파묻어버린 얼굴, 그리고 작은 소리로 생명을 꿈꾸는 꽃송이 같은 손……."

뫼동에서 로즈 뵈레와 함께 한 오귀스트 로댕. 1913년 가을.

과거의 그늘 속에 갇힌 카미유 클로델. 1929년 사진.

슈와젤 공작부인과의 내연 관계는 모든 이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사랑은 리듬을 타고 |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인 <왈츠>는 포옹하듯 왈츠의 리듬에 맡긴 연인들을 그려낸다. 이 작품은 클로델이 로댕과 가장 친밀했던 1895년에 제작되었는데, 유켄트슈틸 양식을 따르면서도 남녀 모두 강인한 인체로 표현되어 전반적으로 역동성이 느껴진다.

영감의 보물창고 | 로댕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기원후 1년경에 씌어진 이 시집은 당시 시대 상황을 로마와 그리스 신화에 빗대어 묘사했다. 특히 오비디우스는 인간 혹은 신이 동물이나 식물로 변형하는 신화 모티브에 심취했다.

아상블라주 | <이별>은 로댕이 즐겨 쓰던 조합 방식인 '아상블라주'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다. 머리는 카미유 클로델의 얼굴을, 손은 <칼레의 시민>의 습작 조각을 사용한 듯하다. <이별>은 클로델이 작업실을 떠나던 시점인 1892년에 완성되었다.

남겨진 자 | <성숙>에서 젊은 여인인 클로델은 로댕과 결별한 후의 마음을 그려내 듯, 늙은 여인에게 이끌려가는 늙은 남성을 향해 애원하듯 팔을 뻗고 있다. 로댕은 클로델을 사랑했지만, 일생 동안 자신의 곁을 지킨 로즈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 곁에

 

"나는 어제내일

잇는 다리이다."

 

브뤼노 뉘탱이 연출한 영화 <카미유 클로델>에서 오귀스트 로댕 역을 맡아 열연한 제라르 드파르디외.

 

시민 곁으로

 

<칼레의 시민>을 감상하고 싶은가? 그렇다고 반드시 칼레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코펜하겐에 가도 같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도쿄가 더 가까운가? 아니면 워싱턴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은 더 이상 칼레에만 있지 않다. 원본을 토대로 12점이 주조되어 전 세계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사람>의 주조 역시 현재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브리앙 저택 : 로댕의 "열정의 삶 속 한순간"(릴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로댕의 능력은 대리석을 통해 고통과 육욕을 표현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 그는이루지 못한 욕망 때문에 흐르는 눈물을 보여주었고, 죽음의 허무한 나락으로 추락하는 인간을 보여주었다."

 

- 옥타브 미르보, 오귀스트 로댕에 관하여

쥘 E. 마스트바움의 로댕 소장품은 오늘날 필라델피아 로댕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거장의 유산 | 파리 로댕 미술관은 로댕이 죽기 전까지 수년간 기거했던 오텔 비롱에 위치하며, 로댕의 작품뿐 아니라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밖에도 빈센트 반 고흐, 오귀스트 르누아리, 외젠 카리에르 등의 유화를 비롯한 로댕의 소장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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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76 규원사화 揆園史話

 

북애 지음, 高東永 譯註

1993, 한뿌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872

 

911.021

북63규

 

한민족의 역사

 

揆園史話

● 우리 나라 선비들이 남한산성의 부끄러움 때문에 밤낮 이를 갈면서, 임진왜란 때에 신통치 못한 도움을준 명나라에게 보답하고자 하니 한심하다.

고려이후 수백년동안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사신을 보내면서도 이를 조금도 한스럽게 여기지않다가 졸지에 만주를 원수로 여기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 본문에서 -

 

● 우리의 근거를 말살하려던 기도는 오랜세월동안 계속되었다. 그런 속에서 나라가 이어 올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제 조상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겨레의 뿌리를 확인하려는 기운이 세차게 일고 있다.

이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이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목메어 탄식하며 이 책을 쓴 북애 노인의 높은 뜻을 기리며 지금 어디엔가에 깊숙히 감춰져 있을 옛 기록들을 찾아내어 잘못 인식된 우리의 국사가 하루속히 바로 잡혀지기를 바란다.

- 옮긴이의 말에서 -

 

목숨을 걸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다.

 

규원사화는 300여년 동안

금서로 묶여 있던 사서이다.

166755년에 저술된 이 책은

말살하려던 우리의 상고사를 40여권의

사서를 참고하여 바로잡은 책이다.

모화사상이 극에 달했던 때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이 책은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며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명확히 밝혀 놓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차례

 

저자의 말

책을 옮기면서

 

조판기(肇判記)

태시기(太始記)

단군기(檀君記)

만   설(漫   說)

 

● 단군조선 역대임금

 

1세단군    왕   검(王   儉)    전2333(무진)즉위    93재위

2세단군    부   루(夫   婁)       2240(신축)           34

3세단군    가   륵(嘉   勒)       2206(을해)           51

4세단군    오   사(烏   斯)       2155(병인)           49

5세단군    구   을(丘   乙)       2106(을묘)           35

6세단군    달   문(達   門)       2071(경인)           32

7세단군    한   율(翰   栗)       2039(임술)           25

8세단군    우서한(于西翰)      2014(정해)            57

9세단군    아   술(阿   述)      1957(갑신)            28

10세단군  노   을(魯   乙)      1929(임자)            23

11세단군  도   해(道   奚)      1906(을해)            36

12세단군  아   한(阿   漢)      1870(신해)            27

13세단군  흘   달(屹   達)      1843(무인)            43

14세단군  고   불(古   弗)      1800(신유)            29

15세단군  벌   음(伐   音)      1771(경인)            32

16세단군  위   나(尉   那)      1738(계해)            18

17세단군  여   을(余   乙)      1720(신사)            63

18세단군  동   엄(冬   奄)      1657(갑신)            20

19세단군  구모소(緱牟蘇)     1637(갑신)            25

20세단군  고   홀(固   忽)      1612(기사)           11

21세단군  소   태(蘇   台)      1601(경진)           33

22세단군  색불루(索弗婁)     1568(계축)            17

23세단군  아   물(阿   勿)      1551(경오)            19

24세단군  연   나(延   那)      1532(기축)            13

25세단군  솔   나(率   那)      1519(임인)            16

26세단군  추   로(鄒   魯)      1503(무오)             9

27세단군  두   밀(豆   密)      1494(정묘)            45

28세단군  해   모(奚   牟)      1449(임자)            22

29세단군  마   휴(摩   休)      1427(갑술)             9

30세단군  나   휴(奈   休)      1418(계미)            53

31세단군  등   올(登   屼)      1365(병자)             6

 

32세단군  추   밀(鄒   密)      1359(임오)             8

 

33세단군  감   물(甘   勿)      1351(경인)             9

 

34세단군  오루문(奧婁門)      1342(기해)            20

35세단군  사   벌(沙   伐)       1322(기미)            11

 

36세단군  매   륵(買   勒)       1311(경오)            18

37세단군  마   물(麻   勿)       1293(무자)             8

 

38세단군  다   물(多   勿)       1285(병신)            19

39세단군  두   홀(豆   忽)       1266(을문)            28

40세단군  달   음(達   音)       1238(계미)            14

41세단군  음   차(音   次)       1224(정유)            19

 

42세단군  을우지(乙于支)       1205(병진)            9

 

43세단군  물   리(勿   理)        1196(을축)           15

 

44세단군  구   홀(丘   忽)        1181(경진)            7

 

45세단군  여   루(余   婁)        1174(정해)            5

 

46세단군  보   을(普   乙)        1169(임진)           11

 

47세단군  고열가(古列加)        1158(계묘)           30

 

                                             1128(계유)           1205년간

 

● 천부경(天符經)

 

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

一始無始一三極無盡本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일적십거무궤화삼
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

천이삼지이삼인이삼대삼합육생칠팔구운삼사성환오칠
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合六生七八九三四成環五七

일묘연만왕만래용변불동본
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
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

일종무종일
一終無終一

 

● 삼일신고(三一神誥)

 

하늘(天)

 

천제께서 이르시기를

너희 무리들아, 푸르고 푸른 것이 하늘이 아니며

까마득한 것도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상과 바탕이 없고 시작과 끝이 없으며

상하와 사방이 없고 겉도 속도 다 비었으며

없는 곳이 없고 싸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主若曰咨爾衆蒼蒼非天玄玄非天

주약왈자이중창창비천현현비천

天無形質無端倪無上下四方

천무형질무단예무상하사방

虛虛空空無不在無不容

허허공공무부재무불용

 

하느님(神)

 

하느님은 그 위에 더 없는 으뜸자리에 계시어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만드시고

수 없는 누리를 주관하시느니라.

또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짐이 없으며

밝고도 신령하시어 감히 이름지어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음성과 기운으로 원하여 빌어도 친히 보이지 않으시나니

본성에서 그 씨를 구해보라

너희 머리 속에 늘 내려와 계시느니라.

 

在無上一位有大德大慧大力生天主無數世界

신재무상일위유대덕대혜대력생천주무수세계

造兟兟物纖塵無漏昭昭靈靈不敢名量

조신신물섬진무루소소영영불감명양

聲氣願禱絶親見自性求子降在爾腦

성기원도절친현자성구자항재이뇌

 

하늘나라(天宮)

 

하늘은 하느님의 나라니라.

거기에 하늘 궁궐이 있어 온갖 선으로 계단을 삼고

온갖 덕으로 문을 삼으니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니라.

모든 신령과 모든 밝은이들이 모시고 있어

크게 상서로우며 지극히 광명한 곳이니라.

오직 진리를 통달하고 공을 다 이룬 자라야

그 앞에 나아가 길이 쾌락을 얻으리라.

 

神國有天宮階萬善門萬德一神攸居

신국유천궁계만선문만덕일신유거

群靈諸哲護侍大吉祥大光明處

군령제철호시대길상대광명처

惟性通功完者永得快樂

유성통공완자영득쾌락

 

누리(世界)

 

너희는 총총히 널려 있는 저 별들을 보아라.

그 수가 끝이 없으며 크고 · 작고 · 밝고 · 어둡고 ·

괴롭고 · 즐거운 것이 같지 않느니라.

하느님이 여러 누리를 만드시고

태양계를 맡은 사자에게 7백 세계를 거느리게 하시니

너희 지구가 스스로 큰 것 같지만 한 알의 세계이니라.

속에 있는 불이 진동하여 터져 바다로 변하고

옮겨져 육지가 되면서 모든 형상을 이루게 되었느니라.

하느님께서 기운을 뿜어 밑을 싸주시고

햇빛과 열을 쪼이시니

걷고 · 날고 · 탈바꿈하고 · 헤엄치고 · 심는 동식물들이

번식하게 되었느니라.

爾觀森列星辰數無盡大小明暗苦樂不同

이관삼열성신수무진대소명암고락부동

一神世界勅日世界使者

일신조군세계칙일세계사자

轄七百世界爾地自大一丸世界

할칠백세계이지자대일환세계

中火震盪海幻陸遷乃成見象

중화진탕 해환육천 내성현상

呵氣包低煦日色熱行저化遊栽物繁殖

가기포저후일색열행저화유재물번식

 

참된길(眞理)

 

사람과 사물이 함께 하늘에서 삼진(三眞)을 받았으니

곧 성(性)과 명(命)과 정(精)이니라.

사람은 이것을 온전히 받으나 사물은 치우치게 받느니라.

진성(眞性)은 선하고 악한 것이 없어 상철(上哲)이 통하고

진명(眞命)은 맑고 흐린 것이 없어 중철(中哲)이 알고,

진정(眞精)은 후하고 박한 것이 없어

하철(下哲)이 간직할 수 있으니,

참으로 돌이키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느니라.

무리들은 아득한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세가지 망령됨(三妄)이 뿌리내리나니

곧 마음(心) · 기(氣) · 몸(身)이니라.

마음(心)은 성(性)에 의하여 선과 악이 있는 것이나

선하면 복이 되고 악하면 화가 되느니라.

기(氣)는 명(命)에 의하여 맑고 흐림이 있는 것이니

맑으면 오래 살고 흐리면 일찍 죽느니라.

몸(身)은 정(精)에 의하여 후하고 박한 것이 있는 것이니,

후하면 귀하고 박하면 천하느니라.

참됨과 망령됨이 서로 맞서 세갈래 길을 만드나니

곧 느낌(感)과 숨쉼(息)과 닿음(觸)이니라.

이것이 열여덟 경지를 이루나니라.

느낌(感)에는

기쁨 · 두려움 · 슬픔 · 노여움 · 탐냄 · 싫어함이 있고

숨쉼(息)에는

향내나고 · 구리고 · 차고 · 덥고 · 건조하고 · 습함이 있고

닿음(觸)에는

소리 · 색깔 · 냄새 · 맛 · 음란 · 맞닿음이 있느니라.

무리들은 선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과 후하고 박함이

서로 섞여 여러 경지의 길을 따라 마음대로 달리다가

나고 · 자라고 · 늙고 · 병들어 죽는 괴로움에 이르게 되느니라.

철인(哲人)은 느낌을 그치고(止感) 숨을 고르게 쉬며(調息)

닿음을 금하여(禁觸) 한 뜻으로 행하므로

망령된 것을 돌이켜 참에 이르러 신기(神機)를 발하게 되나니

진리를 통달하고 공적을 다 이루는 것이 이것이니라.

 

人物 同受三眞曰性命精全之偏之

인물동수삼진왈성명정전지편지

眞性無善惡上哲

진성무선악상철통

眞命無淸濁中哲

진명무청탁중철

眞精無厚薄下哲

진정무후박하철

返眞一神

반진일신

惟衆迷地三妄着根心氣身

유중미지삼망착근심기신

依性有善惡善福惡禍

의성유선악선복악화

依命有淸濁淸壽濁

의명유청탁청수탁요

依精有厚薄厚貴薄賤

의정유후박후귀박천

眞妄對作三途感息觸轉成十八境

진망대작삼도감식촉전성십팔경

喜懼哀怒貪厭芬란寒熱震濕觸聲色臭味淫抵

희구애노탐염분란한열진습성색추미음저

善惡淸濁厚薄相雜從境途任走生長肖病歿

선악청탁후박상잡종경도임주생장소병몰

止感 調息禁觸一意化行

지감조식금촉일의화행

返妄卽眞發大神機性通功完是

반망즉진 발대신기성통공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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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74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최하림 시집

2005, 랜덤하우스중앙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7113

 

문예중앙시선 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5  우수문학도서

 

최하림 시인은 우리에게 메시지가 없는,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다.

시 속 풍경 한가운데 분명 주인공 자신이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풍경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그 풍경의 한 부분이 되어 계속해서 자신을 지워내고 있다.

우리 땅 여러 곳에 도사리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산하를

따스하게 불러모으기도 하고,

그 자연과 섞여 사는 올망졸망한 마을들의 이름까지

하나씩 독특한 색깔로 칠해주니

나 같은 떠돌이에게는 새삼 가슴 아련한 향수까지 느끼게 한다.

'지난 겨울의 기억'부터 시작하여

'빈 들'과 '잠든 새'와 '침묵의 겨울 풍경'으로 끝나는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온몸을 덮쳐오는 스산한 추위에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고,

때로 어깨를 웅크리며 두 손을 비벼대야만 했다.

홀로 떠난 우리 모두의 친구,

그 겨울 나그네의 내면을 마음으로 아끼면서,

한 줄 한 줄 극진한 정성으로 노래하고 이야기해주는

시인의 다정하고 오롯한 마음 안으로 문득 걸어들어가고 싶다.

- 마종기(시인)

 

최하림

1939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시단에 등장한 후 『우리들을 위하여』『작은 마을에서』『겨울 깊은 물소리』『속이 보이는 심연으로』『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풍경 뒤의 풍경』 등의 시집과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미술에세이 『한국인의 멋』, 김수영 평전 『자유인의 초상』 등을 썼다.

시인의 말

 

북한강 가로 이사온 뒤에 쓴 시들을 묶는다.

많은 시들이 아직도 금강 상류에서 머물던 시기의 감회와,

감회 어린 이름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때의 '거느리고'는 '잊지 못하고'가 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늘 적응 속도가 느리다.

'가을이다' 말하고 나면 가을은 어느새 가버리고 없다.

 

2005년 봄

최하림

 

|차례|

 

● 제1부

지난 겨울 기억

서상(書床)

바람이 센 듯해서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지리산 넘어 수십만 되새들이

마음의 그림자

우리가 멀리 떠나거나 잠이 든 새에

공중을 빙빙 돌며

징검다리

메밀밭에서는

공중으로 너풀너풀 날아간다

저녁 종소리 울린다

십일월이 지나는 산굽이에서

내린천을 지나

할머니들이 도란도란

 

● 제2부

나는 산 밑을 돌아간다

눈발이 날리다 말고

시월은

나는 금강천을 건너

오래된 우물

메아리

구석방

빗속으로

가을 광활

잠시, 생각의 순간에

두 여자가

별것도 없다고 투덜거리던 달도

K와 함께

그해 겨울에는

어디선지 한 소리가

해남 가는 길

 

● 제3부

기억할 만한 어느 저녁

봄날이 온다

가라앉은 밤

할머니들이 겨울배추를 다듬는다

북한강

오래오래 누워

나는, 지금

겨울 도장리

결빙(結氷)의 문장을 읽는다

시베리아 판화(版畵) 1

시베리아 판화(版畵) 2

시베리아 판화(版畵) 3

침묵 속으로

 

● 제4부

외몽고

한줄기 회오리 같은

구부러진 해안선으로

바다와 산을 넘어

저녁배에 오르다

겨울 단양행

밤의 다리

힘든 여름

소록도

촛불을 들고

시베리아 판화(版畵) 4

시베리아 판화(版畵) 5

눈과 강아지

바람과 웃음

언뜻언뜻 눈 내리고

 

|작품 해설| 김문주 / 풍경의 자연주의

 

서상(書床)

 

   시인 김혜겸이 서상(書床)을 하나 선물로 가지고 왔다 헐어낸 고가에서 나온 구멍 숭숭 뚫린 널빤지를 정성스레 다듬고 네 귀에 나무못을 박고 가운데 서랍을 단 것이었다. 도예가 이동욱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마루의 서쪽 벽면이 어울릴 것 같아 그 아래 두고 모시천을 깔고 작은 사발을 가만히 올려놓았다 흰 그늘 같은 것이 흐르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어디로 갔는지 사발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검붉은 기가 도는 갈색 꽃병을 올려놓았다 그것 역시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시집을 한 권 올려놓았다 시집도 행방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서상(書床)은 저 홀로 제시간에 흘러가는 어둠을 보고 싶은 듯했다 그리고 여러 날들이 지나갔다 우수도 지나가고 청명도 지나갔다 한식이 내일모레라는 날 나는 시를 쓰려고 이층 서재에서 파지를 수십 장 버리다가 작파하고 한밤에 층계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다 나는 마루로 내려갔다 놀랍게도 마루에는 물과 같은 시간이 넘실거리면서 가고 있었다 서상(書床)은 시간 위에 둥둥 떠가고 있었다

 

공중을 빙빙 돌며

 

공중을 빙빙돌며

새 한 마리 머뭇거리다가

버드나무 가지에 내려앉은다

순간 이파리들이 동요하고

미닫이문이 열렸다가 닫히면서

햇살이 물밀듯 들어온다

미닫이를 통해 보면

햇살을 받아들이는 건 새도

버드나무도 들녘도 아니고 그 아래

일파만파로 파동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가을 강과 가을의 기억들, 수초들

눈여겨보면 어린 날의 물거미들도

파동을 타고 어디로인지 이동해간다

모든 것들이 간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금 강을 본다

여전히 물거미들은 이동하고

구름이 모여드는지 산기슭에서는

나무들이 흔들리고 새는

버드나무 위에 있다 가을에는

물물이 빛나지 않는 것이

없다

 

결빙(結氷)의 문장을 읽는다

 

   결빙(結氷)의 문장을 읽는다 어느 시인이 북극에서 포획해 가지고 왔다는 극도로 단단하고 투명하기도 한, 이물질과도 같은, 나는 결빙(結氷)을 이해하려고 머리를 싸매고 읽는다 읽을수록 문장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고 바람도 없고 거리와 골목은 비좁고 마침내 폐쇄된다 나는 남은 문장을 버리고 집을 나선다 이상한 해방감이 감돌면서 나는 찬 기운이 도는 길을 지난다

 

메아리

 

   오래된 우물에 갔었지요 갈대숲에 가려 수시간을 헤맨 끝에 간신히 바위 아래 숨은 우물을 발견했습니다 마을 장로들의 말씀으로는 성호 이익(星湖李瀷) 선생께서 파셨다고도 하고 성호 문하에서 파셨다고도 하고 그보다 오래 전 사람들이 파셨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마는 좌우지간 예사 우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벌컥벌컥 물을 마신 다음 우리가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고 가만히 물어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근사한 이유라도…… 이유라도……

하고 메아리가 일었습니다 그와 함께 수면이 산산조각 깨어지고 얼굴이 달아났습니다 나는 놀래어 일어났지만 수면은 계속 파장을 일으키며 공중으로 퍼져가고 있었습니다

*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은 채 외롭게 스스로의 생을 마감한 여림의 유작시 한 구절. 나는 그를 가르친 적이 있다.

 

바람이 센 듯해서

 

바람이 조금 센 듯해서 커튼을 치려고

유리창 앞으로 가자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희끄무레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디서 본 듯

했습니다 그래 말했지요

나는 아침마다 설거지하고

아내를 하나로마트에 데려다 주고

중미산을 넘어 설악동을 달린다고

요즘에는 거의 매일 설거지하고

마트에 가고 설악동으로 달리는데

공기가 심하게 부풀면서 굵은 비가

쏟아지는 날은 조심조심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길가에 세운다고 삶이

위태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무들이 흔들리고 흙탕물이 쏟아지고

차를 세우려면 왠지 슬퍼진다고

시 또한 슬퍼진다고

 

내린천을 지나

 

내린천을 지나 인제로

미시령으로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깊은 잠에 떨어졌네

꿈도 꾸지 않았네

한줄기 별똥별도

흐르지 않았네

캄캄한 잠 속을 헤매고 헤맨 뒤

또르르또르르 물소리 같은 소리가

계속 귓바퀴를 울려 나는 일어났네

물소리 같은 소리가

집을 울리고

나무도 새도

울렸네

가을은

각각의

집으로 돌아가

울고 있었네

지붕 위로 떼 지어 어스름이 달렸네

검은 바위들이 어둠에 잠겼네

아무것도 나는 알 수 없었네

경(經) 한 장 읽을 수 없었네

 

구석방

 

   산 아래 이층 목조 건물은 긴 의자와 십여 개 유리창이 일제히 남으로 열려 있어 아침이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밤에는 별들이 내려왔다 개들이 컹컹컹컹 짖어댔다 나는 고해성사실과도 같은 이층 구석방으로 들어가 옷자락을 여미고 숨었다 구석방은 어두웠다 건축가 김수 선생님은 그날 지은 죄를 고하고 사함을 받으라고 구석방을 마련한 모양이지만 나는 고해할 줄 몰랐다 고해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죄의 대야에 두 발을 담그고 이따금씩 잠을 잤다 잠이 들면 새들이 소리없이 언덕을 넘어가고 언덕 아래로는 밤열차가 덜커덩 덜커덩 쇠바퀴를 굴리며 지나갔다 간간이 기적을 울리며 가기도 했다 나는 자다 말고 벌떡벌떡 일어나 층계를 타고 내려갔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우유를 꺼내 마셨다 토마토도 몇 개 베어먹었다 밤은 아직도 멀었는지 창밖으로는 새까맣게 어둠이 흘러갔고 나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의자는 딱딱했다 의자가 밤 속으로 흘러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의자는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지리산 넘어 수십만 돼새들이

 

   지리산 넘어 수십만 되새들이 까맣게 포물선을 그리며 돌고 돌다가 대숲으로 들어간다 순간 대숯은 일망무제와 같이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일어서고 소리지른다

   아아 숲 속에는

   숲의 집 속에는

   피 흘리던 날들이 있다

   유리를 뚫고 천길 벼랑을

   뛰어내린 뼈아픈 날들이 있다

   이한열과 박종철이 있다 김상진이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다

   짐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이 있다 돌아보고

   돌아보라 대숲에는 아직도 십일월의 햇빛이 사금파리처럼 부서지면서 반짝이고 아침에는 무서리 내리고 지평선이 더욱 멀고 수십만 되새들이 지리산을 넘고 또 넘어간다 십일월에는 모든 것들이 물에도 젖지 않고 흘러내려간다 

 

가라앉은 밤

 

날이 저물오가면서

세상이 줄줄이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물거미와 장구벌레 같은 것들도 파장을 그으며

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므로

한없이 고통스럽고 두려운 우리는

그것이 한 개의 돌이거나 지평선에 드러누운

나무들이라 할지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밤낮으로 지나는 골목에서도 우리는

문득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촛불을 들고

 

   사층 붉은 벽돌집에 미군들이 살았다 원래 천주교 사제관이었던 건물은 언제나 붉은 햇빛이 가득했고 미군들은 지프차를 타고 들락날락했다 아이들은 기브 미 쪼코렛 기브 미 쪼코렛 소리질렀다 때때로 미군들은 유리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초콜릿을 종이처럼 뿌렸다 아이들은 벌떼처럼 몰려갔다 날마다 거의 유사한 풍경이 반복되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 사층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물 젖은 블론드 머리의 여군이 한 웅큼 초콜릿을 던졌다 또 아이들은 벌떼처럼 몰려갔다 아무도 여군이 벌거벗고 목욕을 하고 있었는지 변을 보고 있었는지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미군들은 떠나고 아이들도 소도시를 떠나갔다 소도시는 잡초가 무성해지고 꽃들이 피어 열매를 맺었다 빨간 열매를 먹으며 어느 날 미군 전차가 두 여중생을 깔아뭉개 죽인 사건이 돌연히 일어났다 시민들은 너도나도 촛불을 켜들고 광화문으로 시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나도 촛불을 들고 시청 앞으로 갔다 시민들은 양키 고 홈! 양키 고 홈! 외쳤다 나도 양키 고 홈! 외쳤다 그러자 기억에서 사라졌던 블론드 머리가 물에 젖은 채 미로의 비너스처럼 심연에서 솟아올랐다 나는 계속 양키 고 홈을 외치면서 블론드 머리에 끌려가고 있었다

 

십일월이 지나는 산굽이에서

 

십일월이 지나는 겨울의 굽이에서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으며 가지를 늘어뜨리고 골짜기는 입을 다문다

 

토사층 아래로 흘러가는 물도 소리가 없다 강 건너

 

편으로 한 사내가 제 일정을 살피며 가듯이 겨울은

 

둥지를 지나 징검다리를 서둘러 건너간다 시간들이

 

건너간다 시간들은 다리에 걸려 더러는 시체처럼

 

쌓이고 더러는 썩고 문드러져 떠내려간다 아들아

 

너는 저 시간들을 돌아보지 말아라 시간들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다 시간들은 거기 그렇게 돌과 같이

 

나둥그러져 있을 뿐…… 시간의 배후에서는 밤이 일어나고

 

미로 같은 안개가 강을 덮는다 우리는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아직도 골짜기에서는 나무들이 기다리고 새들이 기다리고

 

바람이 숨을 죽인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멀리 떠나거나 잠이 든 새에

 

우리가 멀리 떠나거나 잠이 든 새에

안개는 물 위로 떠올라 강을

덮고 마을을 덮는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벌판 쪽으로 창이

하나 둘 열리고

나라들이 들어서고

저녁열차가 덜커덩덜커덩 언덕 아래로

쇠바퀴를 굴리며 지나간다 다시

안 보이는 벌판 쪽으로

창이 열리고

나라들이 들어서고

십일월과 십이월이 황사와도 같이

시계를 가리며 간다 모든 시간의

그림자들이 줄지어 간다 지상엔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했다는

허섭스레기 같은 소문들이 가득해지고

시청 앞 광장에는 오늘 밤도 촛불시위가

계속된다 붉은 띠를 두른 전사들이

무어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외친다

우리가 멀리 떠나거나 잠이 든 새에……

안개가 물 위로 떠올라 강을 덮고

마을을 덮는 새에……

 

힘든 여름

 

   땅은 달아오르고 시간은 더디 가고 새들은 징벌처럼 서 있다 참나무와 도토리나무도 서 있다 새들은 이 가지와 저 가지 새로 빠져나가는 여름을 보며 울고 있지만 그들이 왜 우는지 아무도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참나무와 도토리나무도 보려 하지 않는다 산 아래 마을에서는 라디오가 사정없이 볼륨을 높여 이 강산 낙화유수를 부르고 아이들이 달려가고 해는 구부러져 간다 나는 변두리애서 변두리로 이동한다 나는 수릉리에서 문호리로 간다 수입리에서 노문리로 간다 오늘도 나는 이동을 반복하면서 여름을 견딘다 나무와 새들도 각각의 방식으로 여름을 견디며 보낸다

 

소록도 7

 

   크고 작은 보퉁이를 이고 철선(鐵船)을 내린 아낙들이 울퉁불퉁한 길을 돌아가노라면 오래된 교회가 나오고 길게 휘어진 해안길이 시작된다 아낙들은 종종걸음으로 간다 때마침 계절풍이 불어와 청솔가지들은 흔들리고 바다가 차오르고 새들이 후드득후드득 날아간다 벽안의 천사들이 병원 문을 닫고 들어간다 계절풍은 그 뒤로도 세차게 계속 불어와 소나무는 소나무들끼리 판잣집은 판잣집끼리 문둥이는 문둥이들끼리 서로 부여안고 밤을 보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소록도는 비극적인 징조를 점점 선명하게 보이면서 벼랑으로 굴러떨어진다 검은 바다가 소록도를 집어삼킨다

 

빗속으로

 

   연일 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냉장고는 텅텅 비고 쌀독도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서 차를 몰고 중미산을 넘어갔다 양평장으로 갔다 우리는 서둘러 여주쌀과 가지 시금치 배추 고추 간고등어 들을 사가지고 오던 길로 다시 달렸다 중미산을 넘고 정배리 계곡으로 들어서자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고 기슭을 타고 내려온 빗물이 아스팔트 위로 철철철 흘러넘쳤다 빗물을 타고 작고 푸른 산개구리들이 수백 마리 길 가득 뛰어올랐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계속 빗물과 산개구리들은 소리지르며 뛰어오르고 어둠이 빠르게 지나갔다 시간은 여섯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헤드라이트를 켰다 빗물과 산개구리들이 라이트 속으로 풀쩍풀쩍 뛰어올랐다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천천히 바퀴가 구르고 빗물과 산개구리들이 뛰어오르고 차는 속도를 내어 달렸다 빗물과 산개구리들은 차보다 빠르게, 차 앞에서, 뒤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이었다


외몽고


   외몽고 지도를 들여다보면 영하의 바람과 붉은 언덕과 유목민의 말떼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달려온다


   폭설과 한파가 몰아온다 저녁이 되어 지구의 표면은 흰 물결이 굽이치면서 흘러가다가 울란바토르에 이르러 눈부신 몸을 드러낸다 지구는 실오라기 하나 없는 몸으로 선을 긋는다


   (선에 의해 그려진 네 울타리는 얼마나 높고 순수한가)


   나는 울타리 가에 초소를 세우고 외몽고를 지킨다 나는 순수주의와 역사주의 사이에서 부딪치고 부서진다 나는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외몽고는 유적지처럼 달리는 속성도 잊어버린 채 솟아올랐다가 어느 날 자취도 없이 사구로 사라진다 천년…… 또 천년…… 언덕과 초원은 수평선이 되어 펼쳐지고 말들이 앞발을 세우고 달려간다 불과 같은 소리들이 일어선다 해조음이 바다 끝에서 일어난다


   나는 시간이 부서지고 부서지던 날의 굉음을 들으며 사구를 넘어가는 해를 오늘도 하염없이 본다.


할머니들이 도란도란


   공기가 조금씩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역광을 받은 나무 이파리들이 검붉게 빛나고 할머니들의 머리도 빛난다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맨드라미들이 울타리 너머로 고개를 내민다 할머니들은 마당 깊은 집으로 간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간다 할머니들의 이야기 소리가 밤내 도란도란 울린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불이 환하게 창을 밝히고 밤벌레들이 날아들고 어디서 고라니들이 내려오는지 가랑잎 서걱거리는 소리 들린다


겨울 단양행


산 아래로 구름이 내려오면서

바람이 일고 소백산은 갈수록

깊어간다 영동을 떠난 지 벌써

다섯 시간째 차는 헉헉거리며

죽령고개를 넘어 터널을 빠져나간다

시간들이 파랗게 얼어 유리창에

달라붙는다 연화봉 아래

희방정사에서는 저녁 예불을 올리는지

범종 소리 떼엥떼엥 울고

고라니들이 소나무 숲 새로

걸음을 죽인다 나는 해남길에서

저러한 고라니들을 본 적이 있다

고라니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

고라니들이 두렵다

어스름이 내리는 골짜기로

차는 숨가쁘게 내려간다

언뜻언뜻 표지판이 보인다

'단양 20킬로미터'

20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시야에 들어오다가 사라진다

나는 달린다 범종 소리 다시

사방을 울리고 소리들이 풍경을

거두어 가지고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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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73 Artist's House 예술가의 집


지은이 | 멜라니 클리어, 옮긴이 | 김지선

2007, 예경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19936


650.8

아887ㅇ 5


● ART SPECIAL 5 


Artist's House | 예술가의 집


"우리 집의 저녁 조명은 너무나 멋져서, 난 대ㅈ낮의 햇빛보다 이게 더 좋습니다. ……꼭 한번 와서 직접 봐야 해요. 빛이 모든 대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습, 깊고 검은 그늘이 그림들을 에워싸는 그 모습을……" - 파블로 피카소


"나는 공간을 소유한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빈 공간." - 앤디 워홀


피카소는 칸의 저택 '라 칼리포르니'의 계단에 나와 앉아 따뜻한 밤 공기를 만끽하며 와인잔을 기울였다. 클로드 모네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 들어가 정원을 천국처럼 가꾸며 대(大)화가로 발돋움했다. 프리다 칼로가 태어나고 자라고 죽음을 맞이한 '카사 아슬'을 살펴보지 않고는 그녀의 그림을 말할 수 없다. 이 책은 예술가들이 살았고, 작품활동을 했으며, 때로는 예술작품으로 지었던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집들로 우리를 부르는 아름다운 초대장이다.


한번쯤 위대한 예술의 무대 뒤편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던가?

피카소가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모네의 정원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마티스는 어떤 곳에서 그림을

그렸는지…… 직접 구경해보고 싶지 않던가?

이 책은 유명 예술가들의 사적인 공간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며, 그들의 삶과 작업을

현장 속에서 되새겨보는 특별한

기회를 마련해준다.

뉘른베르크의 뒤러하우스에서부터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수라장 아틀리에

까지, 천국 같은 모네의 정원에서부터

호일로 도배한 앤디 워홀의 팩토리까지,

또 가우디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예술 건축

으로까지…… 이 책은 때로는 아늑하고 매력적인

집으로, 때로는 당혹스럽고 괴상망측한 작업실로

독자를 이끌며, 이제까지의 미술책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과 방식으로 거장들에게

성큼 다가서게 해준다.


프랜시스 베이컨

"나는 여기 이 카오스 속에서 마음이 편하다. 왜냐하면 카오스가 내 속에서 그림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버드맨

"이 집은 나 자신의 거울이다."


'청기사'

"얼마간 고전하던 끝에 나는 엄청난 도약을 이루어냈다. 자연의 모사에서…… 추상으로의, 즉 정수를 표현하는 일로의 도약."_가브리엘레 뮌터


블룸즈버리

"덩컨과 나는……수채물감으로 프라 안젤리코의 소형 복제화를……내 침실 벽면에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안토니 가우디

"모든 것의 근원은 바로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 속에 있다 …… 내 아틀리에 앞에 있는 이 나무…… 그것이 바로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니!"


프랭크 오 게리

"……온 세상을 대칭축 위에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같은 얼굴, 탁자, 의자, 찻잔 하나라도 매일 새롭게 발견할 수 잇다.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더 진정한 모습으로."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

"입주자마다 창 밖으로 몸을 내밀 권리, 외벽 바깥쪽 손이 닿는 데까지 일체를 자신의 취향대로 꾸밀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멀리 길거리에서도 저곳에 한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도록."


프리다 칼로

"멕시코는 언제나처럼 특유의 혼잡함으로, 정신머리가 하나도 없는데, 시골 지방의 아득한 아름다움……그것만은 여전하다."


칼 라르손

"나의 그림은 나의 집과 같다.……요란한 것 하나 없고, 고품격의 취향도 아니다. 하지만 선량하고 건실한 작업."


지은이 멜라니 클리어Malanie Klier는 미술사가이며 현재 뮌헨에서 작가이자 기자로 활동중이다.


옮긴이 | 김지선은 서울대학교 독어교육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내가 읽은 책과 그림>, <햄스터야, 사랑해>,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베르트람 아저씨는 어디에?>, <도둑맞은 아이디어> 등이 있다.


차례


과거에는

다시 현재로


화가의 집

칼 라르손-문을 활짝 열고 화가의 집으로!

모네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계단 위 '청기사파'의 집으로

프리다 칼로-독자적 세계를 키워낸 요람

영상으로 담은 집 : 피카소의 빌라 '라 칼리포르니'

'버드맨'의 부화장


아틀리에

오귀스트 르누아르-올리브 농원 속의 집

앙리 마티스-니스의 지붕 위

알베르토 자코메티-황량한 산골동네와 파리의 판잣집

호안 미로-지중해 섬의 별장 아틀리에

앤디 워홀-모자공장 건물에서 나온 팝 아트

프랜시스 베이컨-화실에서 벌어진 감식작업


예술로서의 집

'자연건축' : 안토니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자연건축' :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토목공학적 실험' : 플래티런 빌딩

'토목공학적 실험'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예술을 위한 집' :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


용어 해설


과거에는



"우리가 아름다운 것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알브레히트 뒤러,

뉘른베르크의 멋진 저택 소유자


'예술가의 집'이란……


……상당히 복합적이고 열린 개념이다. 수 세기에 걸쳐 어떤 건축양식상의 특정한 규정을 따른 것도 아니다. 엉성하게 대충 지은 임시거처도 있고, 시골의 개인별장도 있으며, 위풍당당한 초호화 건축물인 경우도 있다. 또한 이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예술가의 개인주택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예술적인 건축물, 미술관 건물, 아틀리에, 창작가들의 기관인 예술원 등의 다양한 의미들을 그야말로 '한 지붕 아래' 담고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 <신(神)>, 1824/27, 에칭 부조, 채색, 23.4×16.8cm, 맨체스터, 맨체스터 대학교, 휘트워스 미술관.

피에졸레에 있는 아르놀트 뵈클린의 빌라(위)와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아래).


다시 현재로


고대의 예술가는 분명 공인된 사회적 지위를 누린 개인이었다. 존경받는 창작인의 위신은 중세 들어 크게 위축되어 일개 장인으로 전락한다.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야 주관을 가진 전문가라는 예술가상을 되찾게 된다.

베네치아의 리오델라 센사에 있는 작은 성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화가 틴토레토가 거둔 대성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만토바에 있는 안드레아 만테나의 저택에 붙은 명칭은 '카사 디 노빌리' 즉 '귀족의 집'이다.


"사람은 자신의 거처와 상당히 관계가 깊어서, 집을 잘 관찰하면 거기 사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아레초에 있는 유명한 예술사가 조르조 바사리의 저택 내부는 인문주의적 장식의 모범을 보여준다. 사진은 <미덕의 승리 홀>의 천장화.

대규모 공방을 운영했던 페터 파울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의 대저택에 고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뮌헨 렌바흐의 빌라 내부 모습. 아틀리에 입구 전실.

프란츠레겐텐슈트라세에 있는 뮌헨의 황제화가 프란츠 폰 슈투크의 빌라 외관. 당시의 수정판 사진.

무한한 창조정신 | 벽난로의 장식그림은 덩컨 그랜트가 직접 그린 것. 작업실로 썼던 이 방에 그는 주요 영국문학작품, 도자기, 회화들을 들여놓았는데, 회화는 주로 블룸즈버리 그룹의 것들이다. 1916년 바네사 벨이 로저 프라이에게 쓴 편지의 한 대목은 이렇다. "덩컨과 나는 …… 수채물감으로 프라 안젤리코의 소형 복제화를 열 배로 확대하여 내 침실 벽에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 가망 없는 모험이지요."


화가의 집


"나의 그림은 나의 집과 같다.

고급 가구는 고사하고, 번듯한 옷장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나의 집.

그처럼 나의 그림은 너무나 수수하되

조화롭고 편안하다. 요란한 것 하나 없고,

고품격의 취향도 아니다.

하지만 선량하고 건실한 작업."


칼 라르손


아이들 방에서 다락방까지


여기서는 우리 함께 집 구경을 해보자. 문을 열어 집안을 들여다보고, 뒤란의 '헛간'도 보지. '아이들 방'에도 가보자. 프랑스에서는 기분 좋게 '부엌'이나 '정원'을 거닐어보고, 만찬도 즐겨보자. '식탁 코너'에 앉아 쉬다가, 알프스 고지대의 언덕길을 오르는 건 어떤가. 꽁꽁 얼게 추운 날, '응접실'에 모여앉아 수다를 떨고, 아늑한 스웨덴풍 '침실'에서 편히 쉬어볼까? 아니면 '다락방'에서 비둘기들과 친구하는 착한 꿈을 꾸는 건……


칼 라르손 - 문을 활짝

열고 화가의 집으로!


소박한 침실의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마루바닥 위에 옷을 홀딱 벗은 채 웃고 서 있는 어린아이. 햇살 환한 '아늑한 방' 안에서 몸을 쭉 뻗고 드러누워 느긋하게 낮잠을 자는 개……어느 누구보다도 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는 화가의 입. 바로 스웨덴의 유명한 화가이자 판화가며 일러스트레이터인 칼 올로프 라르손의 집이다.

'릴라 휘트내스'의 베란다와 현관, 서쪽 면 일부(위). 물레방아 탁자에 둘러앉은 라르손 가족, 1906~07년(아래).

스웨덴의 겨울풍경. 1901년부터 라르손 일가가 살았던 순트보른의 '릴라 휘트내스'. 빨간 목조주택 앞에서 브리타가 썰매를 지치는 모습.


"칼 라르손 부부의 집에 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 순트보른 집 현관 위에 쓰인 문구

남향의 거실에서 화분에 물을 주는 딸. 칼 라르손은 이 응접실을 '게으름의 사원'이라고 불렀다.

빨간색으로 칠한 가구들로 꾸민 식당(아래). 위는 라르손의 작품 <아빠와 엄마와 아기>. 1910. 태피스트리 작품 <4원소>와 잘 어우러지게 식당 의자에 맞춰 제작한 카린의 <해바라기 쿠션>.

침실 | 칼 라르손의 침실 중앙에 놓인 캐노피 침대의 수놓인 휘장은 카린의 작품. 흰색 인테리어의 침실 윗벽을 빨간색으로 칠한 책선반이(뒷면은 파란색 벽지를 발랐다) 마치 프리스 띠 장식처럼 둘려 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모퉁이에서 옷매무새를 살피고 있는 화가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칼은 이 단순 소박한 공간에 애착이 강했고, 이곳에서 "천국의 침대에 누운 왕이라도 된 듯 행복하고 깊은 잠"에 들었다.

<목수와 도장공, 나의 친구들> | 라르손 부부의 주문대로 거실을 꾸미고 있는 목수 한스 아른봄과 페인트공 칼 오스카 페르손. 거울을 통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라르손의 모습이 비친다. 기능공들의 초상화 연작은 스웨덴의 전통적인 직업들을 재조명하고자 한 라르손의 각별한 노력으로 이해된다.

'릴라 휘트내스'에 대한 칼 라르손의 말 | "조촐하게 꾸민 우리집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 선보입니다. …… 뽐내려는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내기까지 나름대로 품이 많이 들었던 만큼, 자기 집을 아늑하게 꾸미고 싶어하는 많은 분들께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입니다."

<게 잡기> | 스웨덴에서 게 시즌의 시작은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행사에 든다. 각자 즐겁게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수채화 작품이다. 라르손 일가는 지금도 매년 8월이면 게 요리를 먹기 위해 '릴라 휘트내스'에 모두 모인다. 이제 일가는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이 대지와 가옥은 1940년에 발족한 가족협회에서 계속 관리하고 있다. "……우리집에 자식들이 대를 물려가며 오래오래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던 칼 라르손의 바람대로.


모네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클로드 모네, 그의 그림, 프랑스의 시골마을 지베르니에 있는 그의 집, 그리고 그 집에 딸린 온갖 꽃이 만발한 넓은 꽃밭과 연못정원 - 모두 서로 너무나 긴밀히 묶여 있어서 어느 것 하나 따로 떼어놓을 수가 없다. 이 인상주의 화가는 자신의 파라다이스에서 43년을 살고, 사랑하고, 작업했다. 눈부신 자연과 회화가 하나로 녹아든다.

위의 그림은 1899년 작 <일본식 다리>, 아래는 1921년 6월에 찍은 사진. 정치인 조르주 클레망소와 그의 딸 릴리와 함께 있는 모네.

지베르니 주변의 인상 : "모네가 사랑했던 이곳.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 잔잔히 흘러가는 엡트 강, 은빛으로 반짝이는 포플러 나무들……그리고 저 멀리까지 보이는 양귀비꽃 만발한 드넓은 밀밭." - 하이데 미켈스


"지베르니에 와서 클로드 모네를 직접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그를 이해할 수 있고, 그의 성격, 그의 생활방식, 그의 깊은 내면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다."

- 귀스타브 제프로이

지베르니의 집과 정원 조감도.

지베르니의 집은 오늘날 복원되어 많은 방문객들이 찾고 있다.

클로드 모네가 그린 <화가의 정원에 난 길>(1901~02).

'파란색 응접실' | (위) 가족들이 모여 취미생활을 하는 장소였다. 모네는 플로베르를 즐겨 읽었다. 함께 카드놀이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수를 놓기도 하였다. 방대한 양에 달하는 모네의 장서(특히 식물학 도서들)도 이곳에 두었다. (아래) 알리스 모네의 침실 벽에는 남편이 수집한 일본 판화들이 걸려 있다.

모네의 아틀리에 | '살롱 아틀리에'(위)는 작업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족실이자 그림을 살펴보고, 작품들을 마지막으로 수정하고 전시하는 용도로 쓰였다. 모네가 현대적 건축물인 '수련 아틀리에'(아래)를 지은 것은 <대작>을 시작한 연후였다. 거대한 크기의 그림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아틀리에 중앙에 소파 두 개를 맞대놓았다.


계단 위 '청기사파'의 집으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바이에른 알프스 고지대의 경사진 대지에는 가브리엘레 뮌터와 바실리 칸딘스키가 함께 살았던 시골집이 복원되어 있다. 무르나우 교외의 이곳에서는 시장 광장의 성이 내려다보이고, 병풍처럼 둘린 주변 산들의 전망이 탁월하다. '뮌터 하우스'는 한 바퀴 둘러볼 만하다. 한 계단 한 계단씩, 길은 아방가르드로 이어진다.

뮌터가 1931년에 그림에 담아둔 이 집은 뮌터의 사망 이후 35년간 다른 사람들이 살았다. 1998/99년에 착수한 복원작업을 통해 1909-14년 무렵의 '러시아 사람의 집'으로 되돌려놓았다. 칸딘스키와 뮌터가 함께 들어와 살기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칸딘스키가 떠날 때까지의 시절이다.

가브리엘레 뮌터의 <이젤 앞의 자화상>, 1909년.


"사랑스러운 엘라 (……) 우리 악동화가에게 다정한 인사와 한없는 경의의 키스를, 당신의 사람."

- 바실리 칸딘스키가 가브리엘레 뮌터에게

칸딘스키는 거실의 식탁 코너에 자신의 유리그림들을 걸어두었다. '손 대면 끝' - 이것이 제작의 원칙이다. 추후의 수정이 전혀 불가능한 유리그림의 제작 방식을 일컫는다.

가브리엘레 뮌터, <식탁에 앉아 있는 칸딘스키와 에르마 보시>, 1912년.

1934년에 가브리엘레 뮌터가 그린 자화상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다른 데로 유도한다. 칸딘스키가 없는 외로운 나날들에의 회상, <새들의 아침 식사>.

<즉흥 - 골짜기> | 1914년 7월 3일 가르미시 근처 횔렌탈 골짜기로 갔던 소풍에서 영감을 받아 칸딘스키가 그린 그림이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칸딘스키의 이 과정은 뮌터 하우스와 그 주변을 배경으로 하여 진행된다.

 

프리다 칼로 -

독자적 세계를 키워낸 요람

 

프리다 칼로가 뜨겁게 사랑했던 '카사 아술'은 그녀가 사망한 지 단 4년 만에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그 4년간은 외부인이 거주한 적이 없다. 이는 엄청난 장점이었다.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손보고 고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프리다 칼로를 이토록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 집은 그녀 스스로 창조해낸 우주의 중심이요 심장이다.

 

 

프리다 칼로가 사랑했던 유년의 집 '카사 아술'. 외벽이 코발트블루로 칠해진 이 집은 멕시코시티 교외였는데, 현재는 시에 편입되었다.

프리다가 이혼하고 혼자 살던 시기에 그린 자화상이다. 목을 칭칭 감아 죈 가시관에 죽은 벌새가 매달려 있다. 이 작은 새는 행복한 사랑의 부적이자 멋진 환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프리다는 미술의 역사상 자기 감정의 생물학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가슴과 심장을 찢은 유일한 예술가이다. (……) 탁월한 화가이자 멕시코 예술의 부활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

- 디에고 리베라

| "나는 인생에서 두 번의 대형 사고를 당했다. 하나는 전차 사고였고, 또 하나는 디에고였다."

아래 | 한 쌍의 연인 : "코끼리와 비둘기"(프리다의 어머니는 몸집 좋은 디에고 리베라와 가냘픈 프리다 칼로를 이렇게 불렀다), 40년대 중반 프리다의 침실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프리다의 병상이자 작업대였던 캐노피 침대가 공중에 둥실 떠 있는 모습이 상징적이다. 엄청난 폭발성과 동시에 또한 화려하게 꽃피는 내면을 지닌 채 옴짝달싹 못하는 해골(닫집 위에 얹어놓은 전통 폭죽)처럼 그녀는 자신이 무덤 속 같은 침상에 포박된 존재라고 느꼈던 것일까?

이젤 앞의 프리다. 벽에 걸린 <두 프리다>(1939)는 자신 안의 인디오적인 면과 스페인적인 면을 표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자아와 제2의 에고가 하나의 혈관으로 결합되어 있다. 책장에는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인물 조상(彫像)들이 있다.

프리다 칼로가 사망 직전에 그린 수박정물화 <viva la vida(인생만세)>에는 의미심장한 제명(題名)이 새겨져 있다.

프리다의 아버지, 사진사 길레르모 칼로가 1933년에 찍은 카사 아술의 안마당 모습.

카사 아술 | 이 파란 집에 살았던 두 사람의 이름은 벽에 새겨진 채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 있다. 부엌 벽면에 '프리다'와 '디에고'라는 이름이 모자이크로 박혀 있다.(위) 디에고의 침실. 모자들과 신발 한 켤레, 외투와 지팡이 등이 마치 지금도 여전히 사람이 드나드는 느낌을 준다. 침대 머리맡에 걸린 프리다의 사진이 시선을 끈다.(아래)

자화상 | 테와나의 여성 전통복장 차림의 프리다. 마치 원주민처럼 머리에 쓰개치마를 덮어썼다. 프리다가 외국에 체류할 때면 그녀의 독특한 전통 스타일의 의상(풍성한 검은 머리칼에 화려하게 감아올린 머리띠장식과 함께)은 관심과 감탄을 모았다.

 

영상으로 담은 집 : 피카소의

빌라 '라 칼리포르니'

 

파블로 피카소와 거장 사진작가요 그림에세이스트이자 종군 보도기자인 데이비드 더글러스 덩컨의 우정은 확실히 너무나도 특별했다. 17년이 넘도록 오랜 세월 유지된 깊고 막역한 두 사람의 관계는 1956년 첫 만남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피카소를 만나겠다고 미국에서 칸까지 날아온 손님을 욕조에 들어앉아 맞았다니!

 

"50년대 피카소의 세계에서 구심점이 되었던 '라 칼리포르니'에서는 하루하루가 달랐다. 때로는 그림들이 아틀리에를 가득 채우는가 하면, 어떤 때는 도자기 천지였다. 여기서 저기로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였다."

- 데이비드 더글러스 덩컨

윤곽선을 따라 오려낸 피리부는 목양신상을 잡고 있는 피카소. 그는 흥이 나면 이 신화 속 음악가처럼 온 방을 돌아다니며 춤을 춘다.

작품 활동이 왕성했던 칸 시절에 그린 드라이포인트 동판화 <타우로마키아>. 투우를 좋아한 피카소는 발로리스에서 투우장을 즐겨 찾았다.

애견 카불과 함께 있는 피카소와 자클린. 1962년, 무쟁.

<아틀리에의 자클린> | 피카소보다 50살 가까이 연하인 자클린 로크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동반자였다. 피카소는 그녀의 초상화를 여러점 그렸다. 이 그림은 그의 아틀리에임을 보여주는 사모바르 주전자, 탁자, 그리고 창 밖의 전망 등을 앙비앙스로 하여 작품으로 남긴 자클린의 프로필 초상.

브론즈로 길들인 염소 | 피카소는 자연스러움을 사랑했고 스스로 그렇게 살았다. <라 칼리포르니> 빌라 정원을 마음껏 누비고 다닌 염소 카브라를 모델로 해서 제작한 브론즈 조상. 옥외계단 앞에 세워두었다.

전망 | '라 칼리포르니'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아틀리에에서 칸 해변이 보인다. 피카소의 비둘기들이 사는 곳이다. 북쪽 지방(보브나르그성)으로 이사하느라 이 빌라를 떠나기 직전, 열린 아틀리에 문으로 한 떼의 비둘기들이 날아들었다. 마치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나누겠다는 듯이……

 

'버드맨'의 부화장

 

옛날 옛적에……오버바이에른 알프스 높은 산에 1930년대에 지은 농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다재다능한 남자가 '버드맨'이 되어 아시아를 날아다니다가, 바트퇼츠 근처 황량한 '두메산골'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는 그곳을 운명의 장소로 삼아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것은 온통 새들로 뒤덮인 예술의 세계였습니다!

바트 퇼 츠 근방에 별난 "새집"이 있다. 그 집의 주인은 가끔 솜털 보송한 새로 변신하기도 하고, 새집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기도 하며, 스스로를 "버드맨"이라고 칭한다.

 

이 집은 나 자신의 거울이다. 땅에 단단히 뿌리내린 채, 새들을 통해 하늘과 연결된다."

- 버드맨

새의 집 | 현관. 나무판자들을 덧대 새들의 둥지를 꾸며놓은 모습이 일부 보인다. 뒤쪽에 보이는 트롤리에는 또 하나의 '버드맨 프로젝트'가 진행중. 바로 새 박물관이다.

 

아틀리에

 

"천재지변이라도 나면 모를까, 난 단 하루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작은 지형도―예술가의

 

영역

 

스튜디오들을 어떤 유형 내지 장소로 규정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세계 곳곳의 아틀리에들을 간단히 둘러볼까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 시대의 다수 대중은 창작의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예술은 요즘 개개인의 집 또는 임대한 공간 속으로 몸을 감춘다. 이러한 아틀리에들을 은밀히 출입하는 이들은 주로 화랑 주인들, 화상들, 언론 등이다. '아틀리에 데이'나 되어야 다수 대중들이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다.

카탈루냐의 화가 호안 미로가 작업하는 모습.

보르프스베데 예술가촌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여류화가인 파울라 모더존-베커가 1902년경에 그린 <집, 자작나무, 그리고 달>.

중궁인 화가 용보 자오는 자택 정원에 따로 개인 아틀리에가 있지만, 처음부터 이곳 예술인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만 작품을 할 수 있었어요. 이제 저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막 활동을 개시하는 젊은 무명 화가들에게는 이와 같은 장소가 필요합니다. 이곳은 저의 성지입니다. 여기서 딱 만 년만 살고 싶어요."

 

예술이 태어나는 곳

 

아틀리에의 형태에는 아무 제한이 없다. 판자집(자코메티)에서 문 닫은 모자공장(워홀)까지, 올리브 농원의 유리구조물(르누아르)에서 집 안에 꾸며놓은 동화 같은 동방세계(마티스)까지 가지각색이다. 한 칸짜리 카오스 스튜디오(베이컨)에서 마음껏 늘어놓을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라는 꿈의 실현(미로)까지 - 이 모두가 가능하다. 함께 들어가 보자.……

마카르트의 초호화판 아틀리에는 단순한 작업공간에서 '예술의 전당'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당시 빈 부르주아 가정과 살롱 문화에서 교양인의 메카가 되었다. 작업실이자 파티장(전설의 가장무도회들!)이었던 이 아틀리에는 현재 관광명소로서, 4시에서 5시까지 관광객에게 개방된다.

 

올리브 농원 속의 집

오귀스트 르누아르 |

 

"올리브 나무는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이놈이 나를 얼마나 곤욕스럽게 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이건 회색만 빼고 온갖 색채가 다 들어 있는 나무입니다. 이제 그 나뭇잎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진땀이 날 지경이랍니다. 한 줄기 바람에 나의 나무는 색조가 바뀌지요. 색은 잎사귀가 아니라 그 사이 공간에 들어 있습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레 콜레트'를 프랑스식 정원조성방식과는 반대로, 자연 상태 그대로 두었다. 일꾼들이 길가의 잡초를 제거하려 해도 만류할 정도였다.

1913년에 찍은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사진.

이젤 앞에 몸을 굽힌 78세의 르누아르를 알베르 앙드레가 화폭에 담았다. 마비된 손가락들 사이에 붓을 끼워 고정시켰다. "천재지변이라도 나면 모를까, 난 단 하루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 오귀스트 르누아르

목가 | <목욕하는 여인들> 혹은 <님프들>은 위대한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마지막 그림이다. 여인의 누드를 자연의 풍경 속에 담은 이 그림은 그의 예술의 변주이자 결산이요 이별가라 하겠다. 모델들은 천을 걸친 채 정원에 있고, 화가는 정원화실 안에서 작업했다. 유리창을 통해 그는 자신의 모티브를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니스의 지붕 위

앙리 마티스 |

 

"……니스의 은빛 광선, 그 강렬함과 선명함은 미술가의 감각에 안성맞춤이고 불가결한 요소 같습니다. 특히나 아름다운 1월이면 더욱 그렇지요."

이 초기작은 화실 창문에서 내려다 본 코발트 빛 바다와 번화하고 아름다운 거리 '영국인의 산책로'의 전망을 그린 것이다.

앙리 마티스는 니스 구시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이 건물 꼭대기 층을 '독차지'했다. 5층에는 넓은 'ㄱ'자 발코니가 있고 꽃시장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유동의 경계 | 1929년 그린 <니스의 아틀리에에서>. 마티스의 그림은 '유동적'이다. 내부와 외부 세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파스텔 색조의, 빛으로 충만한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바다의 물빛은 책상 상판의 밝은 옥색으로 실내에 유입되고, 밝은 노란색 커튼은 실내에 떠 있는 태양이며, 종려나무의 진초록은 벽에 그려진 타일 무늬로 재현된다.

비전 | "나는 균형, 정화, 휴식의 예술을 꿈꾼다. 사람을 불안하거나 짜증나게 만들기보다 사업가건 문인이건 아무튼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예술, 마치 육체의 긴장을 풀어주는 편안한 안락의자처럼 머리를 쉬게 해주는 그런 예술을 꿈꾼다." - 앙리 마티스

이완 | 다양한 소재의 천들로 아름답게 장식된 화실에서 모델 앙리에트 다리카레르를 스케치하는 마티스.(아래) 이러한 습작들에서 <목련이 있는 오달리스크> 같은 작품들이 나온다. "이런 애틋하고 나른한 분위기, 사람과 사물의 경계가 가물가물해지는 몽롱한 햇살 아래서 숯불처럼 은근히 타오르는 엄청난 긴장, 이는 순전히 회화적인 것으로, 구성요소들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 앙리 마티스

니스의 오후 | 1922년 작 <니스의 실내, 시에스타>에서는 코트다쥐르 해안의 지글거리는 한낮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창문은 열려 있고, 차양은 내려진 채, 세상이 고요하게 정지한 듯하다. 모델은 조는 듯 나른하게 안락의자에 누워 있다. 이 시절의 마티스의 그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커다란 창문으로, 그가 그린 아틀리에나 실내 풍경 대부분에 창문이 보인다. 그에게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창문의 벽이 두 개의 상이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황량한 산골동네와 파리의 판잣집

알베르토 자코메티 |

 

"같은 얼굴, 탁자, 의자, 찻잔 하나라도 매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더 진정한 모습으로."

양친이 사시는 고향 스탐파의 마을 길에 서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아래는 파리의 아틀리에 앞. 안쪽으로 주거공간이 딸려 있는 판잣집이다.

자코메티가 남동생 디에고의 고양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브론즈 조상. 아침마다 "침대를 찾아오는" 고양이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스파르타 풍의 작업장 |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작업중인 자코메티.(위) 작업장은 그가 끊임없이 반죽하고, 이기고, 누르고, 빚으며, 형태를 만드는 실존주의적 예술, 독특한 '현상학적' 조소작품들로 가득하다. 미완성 작품들은 굳지 않도록 젖은 천으로 덮어두었다.(아래)

아틀리에 입구 |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는 1층이다. 침대 위에 신문지, 방 한가운데에는 실물 크기 이상의 커다란 석고조상이 있는 단출한 공간. 계단을 올라가면 다른 예술가들의 작업장들이 나온다. 알베르토의 남동생 디에고의 작업실도 이 다세대 건물 내에 있었다.

 

지중해 섬의 별장 아틀리에

호안 미로 |

 

"……변화무쌍한 마요르카의 이런 하늘을 바라보는 게 나는 정말 좋았다. 그리고 밤이면 별똥별들이 수놓는 하늘과 반딧불들의 반짝임에 넋을 잃고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바다, 밤이나 낮이나 한결같이 푸르디푸른……"

<청색 3부작>은 미로가 새 아틀리에에 들어와서 완성한 첫 3부작이자, 예술사의 중대한 이정표이다. 미로 스스로 이 작품을 일컬어, "이 그림들은 내가 이제껏 만들고자 시도했던 모든 것들의 완결이다."라고 평했다.

추상의 표현력 | 마요르카 집의 벽 앞에 앉아 자신의 구상을 검토하는 미로. 더러 그림의 '내구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작품을 야외에 내놓기도 했다. 그는 만년의 작품에서 기호적 세계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였다. "내가 추구하는 바는, 강도의 최대치와 낭비의 최소치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 그림들에서 공백이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

 

모자공장 건물에서 나온 팝 아트

앤디 워홀 |

 

"나는 공간을 소유한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빈 공간. 내가 예술가로서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나는 텅 빈 공간들을 진정으로 믿는다."

'실버 팩토리' 시절에 나온 워홀의 <자화상>(1967)은 미국 팝 아트의 화신이었던 그의 자의식을 드러내 보여준다.

1965년, '실버 팩토리'는 뉴욕 히피들의 집합 명소였다. 알루미늄 호일로 씌운 작업장에서의 파티 모습.

예술작품 생산 | 1964/65년, 앤디 워홀과 제라드 멀란가가 캠벨 스프 캔 그림을 위해 실크스크린 날염 작업을 하는 모습. 워홀은 초기에는 멀란가 같은 조수들의 도움을 받다가, 수요가 점점 놀자 팩토리를 찾는 친구와 손님들까지 동원한다. 이후에 그는 일련의 작품 생산을 아예 상업 인쇄소에 맡겼는데, 이로 인해 날카로운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워홀 '오리지널' 작품의 '가치'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아틀리에의 워홀 | 시리즈로 생산된 자신의 팝 아트 예술, 그리고 이 장소의 본래 용도를 고려하여 워홀은 자신의 주거공간을 '팩토리'라고 명명하였다. 그는 그 뒤로 총 세 곳에 작업장을 갖게 되는데, 갈수록 점점 그 규모가 커졌다. 1967년 유니온 스퀘어 웨스트 33번지에 마련한 두 번째 작업장은 파티장보다는 사무실에 가까웠다. 그리고 1974년 8월에 이사한 브로드웨이 860번지의 세 번째 '팩토리'는 정식 사무실과 회의실, 그리고 멋진 식당 공간 등을 갖추었다.

 

화실에서 떨어진 감식작업

프랜시스 베이컨 |

 

"나는 여기 이 카오스 속에서 마음이 편하다. 왜냐하면 카오스가 내 속에서 그림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집과 아틀리에가 있던 곳. 런던, 사우스 켄싱턴, 리스 뮤즈 7번가.

"나는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산다"고 프랜시스 베이컨은 주장했다. 그의 스파르타적인 주거공간을 두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을 듯.

색상표가 되어버린 아틀리에. 베이컨은 색을 섞을 때 팔레트 대신 주변의 평면들(문짝, 벽면 등)을 이용했다. 그는 아틀리에 벽면들을 가리켜, 자신의 '유일한 추상적 작업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70년에 그린 이 자화상은 베이컨의 작업방식을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흑백 사진술에서 진일보한 신체 탐구다.

구제불능의 카오스 | "아틀리에란 현자의 돌을 찾는 연금술사의 작업장이 아니다. ― 그런 것은 우리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 그보다는 오히려 화학자의 실험실에 가깝다." 2001년 5월부터 프랜시스 베이컨의 런던 스튜디오는 더블린 시립미술관 휴 레인 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영감의 원천이자 피난처 | 베이컨의 아틀리에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우주로서, 몇몇 친한 친구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그의 작업의 흔적들은 어느 것 하나 치워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겹겹이 쌓여갔다. 어느 대담에서 그는, 질서를 창출하는 것은 그림들이 해야 할 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예술로서의 집

 

"모든 것의 근원은 바로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 속에 있다.

…… 내 아틀리에 앞에 있는 이 나무……

그것이 바로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니!"

안토니 가우디

 

규범의 저편

 

예술가의 집이라는 말에는 '예술로서의 집'이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는 건축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 그러면서 거듭 묻게 되는 것은, 의뢰인의 의견과 요구가 예술가의 이념과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있다면 과연 얼마만큼 가능할까 하는 문제이다. 자연건축, 토목공학적 실험, 혹은 미술관 건물 ―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서구의 문화는 늘 각종 질서만을 생각한다. ……대칭, 고전적인 비례규범, 중앙구도 등, 하지만 온 세상을 대칭축 위에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 프랭크 오 게리

 

 

"건축은 응결된 음악이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 용의 비늘 같은 지붕에는 작은 탑들이 있고, 성가족의 머리글자가 금장으러 새겨져 있다. 위의 사진은 동화처럼 신비롭게 번쩍거리는 파사드 장식.

환상의 동물 | <카사 바트요>는 코끼리 다리 모양의 육중한 자연석 받침대와 바다뱀처럼 꿈틀거리는 파사드 표면이 대조를 이룬다. 태고의 용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세라믹 지붕도 햇빛을 받아 찬란한 광채를 발한다. 건물 뒷면은 분홍과 주홍빛의 작은 세라믹 파편들이 반짝거린다. 원통형 탑도 이웃한 건물들과 높이를 적당히 맞추었다.

유기적 건축 | "우리 현대 주택의 외벽들은 바로 우리 감옥의 담벼락이다. 획일적이고, 삭막하며 …… 따분하리만큼 공허하기 때문이다. 공동주택 건물에서 각 주거 단위마다 외벽을 독자적으로 개성있게 또한 유기적으로 꾸미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외부에서 보더라도 공동주택 가운데 각 거주자의 집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잇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파사드에 관한 훈데르트바서의 원칙이다.

뾰족한 삼각형 모양이 다리미 형태를 닮아서 '플래티런 빌딩'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기능적 |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슬로건은 당시의 맨해튼 최고층인 <플래티런 빌딩>을 통해 당당하게 실현되었다. 그것은 매우 제한된 대지를 최적으로 살린 효율적인 설계였다. 그러나 대니얼 허드슨 번햄이 신고전주의 양식의 파사드를 택한 점을 두고 '시카고파'의 현대성을 놓쳤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잇었다.

화제를 불러일으킨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 <낙수장>의 내부 모습.

천재적 업적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건축은 '응결된 음악'이다. 미국의 유력 건축가인 그는 이러한 이념을 실행에 옮긴다. 나무가 무성한 산비탈에 작은 개천이 통과하는 부지의 입지 조건은 그에게 천계와 같았다. 그리고 건축을 의뢰한 집주인이 (특히 비용과 관련하여!)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건축학도나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순례지가 된 이 <낙수장>은 현재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건축 자재 : 콘크리트, 잡석, 유리.

옴베르토 보초니의 미래파 예술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영감을 주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예술을 위한 집 | 불시착한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외관의 거대한 미술관 건물은 내부 역시 시각적 역동성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제멋대로인 듯이 보이는 형태의 결합이 늘 새롭고 색다른 공간조각 작품으로서 작용한다.

 

프란츠 폰 렌바흐

>> "나의 빌라를 뮌헨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겠다."

 

앙리 마티스

>> "니스의 은빛 광선, 그 강렬함과 선명함은 미술가의 김각에 선명함은 미술가의 감각에 안성맞춤이요 불가결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아름다운 1월이면 더욱 그렇지요."

 

호안 미로

>> "변화무쌍한 마요르카의 이런 하늘을 바라보는 게 나는 정말 좋있다."

 

클로드 모네

>> "내일부터 며칠 안에 맘에 드는 적당한 장소와 집을 찾아내야지, 그러기 전에는 발 뻗고 잠을 잘 수가 없게 생겼습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

 

>> "분위기가 담기지 않은 그림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만 해도 카뉴는 여유롭고 멋진 농촌마을이었다. 언덕마다 올리브와 오렌지 농원이 끝도 없이 이어졌었다." - 장 르누아르

 

페터 파울 루벤스

>> "건물은 그저 독채 하나이되, 중앙에 파티홀이 있고, 거기서 여러 칸의 이어지는 방들로 연결되는 개인주택 정도면 …… 궁전이라고 하겠다."

 

파블로 피카소

>> "우리집의 저녁 조명은 너무나 멋져서, 난 대낮의 햇빛보다 이게 더 좋습니다.……꼭 한번 와서 직접 봐야 해요. 빛이 모든 대립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습, 깊고 검은 그늘이 그림들을 에워싸는 그 모습을……"

 

자코포 틴토레토

>> "아름다운 색들은 리알토의 상점들에서 살 수 있지만, 훌륭한 그림은 꾸준한 연구와 불면의 밤들을 통과한 예술적 재능이라는 보석상자 - 오로지 거기에서만 얻을 수 잇다."

 

앤디 워홀

>> "나는 공간을 소유한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빈공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건축은 응결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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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72 열하일기 1

 

박지원 지음 | 김형조 옮김

2014, 돌베개

 

대야도서관

SB102080

 

816.5

박78ㅇ  1 c. 2

 

새 번역 완역 결정판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칠정七情 중에서 오로지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 만하며,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울음이 날 만하고, 사랑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며, 미움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 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네, 통곡 소리는 천지간에 우레와 같아 지극한 감정에서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온 소리는 사리에 절실할 것이니 웃음소리와 뭐가 다르겠는가?

 

생김새가 사뭇 다르고 옷차림이 다른  사방의 외국인들, 칼과 불을 입으로 삼키는 요술쟁이들, 라마불교와 그 승려 반선班禪, 난장이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비록 괴상망측하게 생긴 사람들이지만, 『장자』에서 말하는 도깨비나 물귀신과 같은 그런 부류는 아니다. 『열하일기』 안에는 진기한 새나 짐승, 아름답고 특이한 나무에 대해서도 그 생긴 모습과 특징을 완벽하게 묘사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등 길이가 천 리가 되는 새, 8천 년 묵은 신령한 참죽나무 등과 같은 장자』의 황당한 과장이나 거짓말을 어찌 이야기했으랴!

이제야 알겠다! 장자가 지은 외전外傳에는 실제도 있고 거짓도 있지만, 연암씨가 지은 외전에는 실제만 있고 거짓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언을 겸하면서도 끝내 이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귀결시킨 방법은 서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

 

중국의 노래나 가요에 관한 것, 풍습에 관한 기록도 사실은 나라의 치란에 관련된 것들이고, 성곽과 궁실에 대한 묘사라든지, 농사짓고 목축하며 도자기 굽고 쇠를 다루는 것들에 대한 내용은, 그 일체가 기구를 과학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여 민생을 두텁게 하자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의 길이 되는 내용으로서, 모두 『열하일기』 안에 들어 있다. 그리하여 『열하일기』라는 책은 글을 써서 교훈을 남기려는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

- 유득공의 '머리말' 중에서

 

지은이 박지원朴趾源(1737~1805)

조선 후기의 저명한 문학가이고 실학파 학자로,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명문 양반가 출신으로 약관의 나이에 문명을 떨침으로서 장래 나라의 문운文運을 잡을 인물로 촉망을 받았다. 그러나 타락한 정치 현실과 속물적 사회 풍기를 혐오하여 과거 시험을 통한 출세를 진작 포기하고, 창조적 글쓰기와 학문에 몰두하였다. 재야의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당파와 신분을 초월하여 인간관계를 형성하였으며, 특히 선비 곧 지식인의 자세와 역할에 대해 일생 동안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였다. 그의 산문은 중세적 사유의식을 떨쳐버리는 참신한 작품이 대부분으로, 그를 민족문학사의 최고의 경지에 끌어올렸다. 특히 44세에(1780년) 중국을 여행하고 지은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 큰 영향력을 끼쳤을 뿐 아니라, 민족과 세계의 고전에 값하는 기념비적 저술이 되었다. 50세에 음직으로 벼슬에 나아가 이후 안의현감,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을 역임하며, 주체적 벼슬아치 혹은 부모 같은 목민관으로서의 훌륭한 치적을 남겼다. 문집 『연암집』을 남겼는바, 주옥과 같은 시와 산문, 『열하일기』, 『과농소초』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옮긴이 김혈조金血祚

1954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하였다. 성균관대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한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이래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며 공부하고 있다. 한국한문학의 산문 문학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으며, 특히 연암 박지원의 산문 문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였다. 연암의 산문 작품을 연구한 『박지원의 산문문학』이라는 저서와, 산문을 가려 뽑아 번역한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역서가 있다. 연암체의 성립과 정조의 문체반정이라는 논문 이외에 연암의 문학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역자 서문 왜 다시 『열하일기』인가?

일러두기

 

머리말 「열하일기서」熱河日記序

 

압록강을 건너며 도강록渡江錄

머리말 「도강록서」 ⊙ 6월 24일 신미일 ⊙ 6월 25일 임신일 ⊙ 6월 26일 계유일 ⊙ 6월 27일 갑술일 ⊙ 6월 28일 을해일 ⊙ 6월 29일 병자일 ⊙ 7월 1일 정축일 ⊙ 7월 2일 무인일 ⊙ 7월 초3일 기묘일 ⊙ 7월 초4일 경진일 ⊙ 7월 초5일 신사일 ⊙ 7월 초6일 임오일 ⊙ 7월 초7일 계미일 ⊙ 7월 초8일 갑신일 ⊙ 7월 초9일 을유일 ⊙ 옛 요동 이야기 「구요동기」⊙ 요동 백탑에 대한 기록 「요동백탑기」 ⊙ 관운장 사당 구경 「관제묘기」 ⊙ 광우사 구경 「광우사기」

 

심양의 이모저모 성경잡지盛京雜識

7월 초10일 병술일 ⊙ 7월 11일 정해일 ⊙ 예속재에서 나눈 이야기 「속재필담」 ⊙ 가상루에서 주고받은 이야기 「상루필담」 ⊙ 7월 12일 무자일 ⊙ 골동품 목록 「고동록」 ⊙ 7월 13일 기축일 ⊙ 7월 14일 경인일 ⊙ 심양의 사찰 「성경가람기」 ⊙ 산과 강에 대해 요약함 「산천기략」

 

말을 타고 가듯 빠르게 쓴 수필 일신수필馹迅隨筆

머리말 「일신수필서」 ⊙ 7월 15일 신묘일 ⊙ 북진묘 관람기 「북진묘기」 ⊙ 수레 제도 ⊙ 연희 무대 ⊙ 시장 점포 ⊙ 객점 ⊙ 다리 ⊙ 7월 16일 임진일 ⊙ 7월 17일 계사일 ⊙ 7월 18일 갑오일 ⊙ 7월 19일 을미일 ⊙ 7월 20일 병신일 ⊙ 7월 21일 정유일 ⊙ 7월 22일 무술일 ⊙ 7월 23일 기해일 ⊙ 강녀묘 관람기 「강녀묘기」 ⊙ 장대 관람기 「장대기」 ⊙ 산해관 관람기 「산해관기」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 관내정사關內程史

7월 24일 경자일 ⊙ 7월 25일 신축일 ⊙ 조선 그림의 목록 「열상화보」 ⊙ 7월 26일 임인일 ⊙ 백이 · 숙제 사당 관람기 「이제묘기」 ⊙ 난하에 배를 띄우고 「난하범주기」 ⊙ 사호석 이야기 「사호석기」 ⊙ 7월 27일 계묘일 ⊙ 7월 28일 갑진일 ⊙ 범의 호통 「호질」 ⊙ 7월 29일 을사일 ⊙ 7월 30일 병오일 ⊙ 8월 초1일 정미일 ⊙ 8월 초2일 무신일 ⊙ 8월 초3일 기유일 ⊙ 8월 초4일 경술일 ⊙ 동악묘 관람기 「동악묘기」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머리말 「막북행정록서」 ⊙ 8월 초5일 신해일 ⊙ 8월 초6일 임자일 ⊙ 8월 초7일 계축일 ⊙ 8월 초8일 갑인일 ⊙ 8월 초9일 을묘일

 

찾아보기

Illustration Credits

 

『열하일기』

◎ --- 도강록

도강록은 1780년 6월 24일(음력)부터 7월 9일까지의 일기이다. 연암이 사신 일행을 따라 중국에 들어가 겪은 첫 번째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의주를 출발하여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의 요양까지 이르는 도중에서 일어난 일과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중심으로 일기체로 서술하였다.

도강록이란 말은 압록강을 건너며 기록한 글이라는 의미이긴 하지만, 그 말 자체에 이미 강을 건너서 남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길에서 마주치는 이역의 풍경과 중국의 앞선 문화 문물 등을 범상히 넘기지 않고 붓끝으로 담아냈다. 중국의 선진 문화를 예리하게 관찰 분석 비판한 대목에서 붓끝은 자못 진지하게 돌아가다가도, 연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견문과 체험의 대목에서는 붓끝이 경쾌하게 돌아간다. 옛날 분들이 이 도강록의 문체를 두고 이른바 소설식의 패사체稗史體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도道가 강물과 언덕 중간에 있다고 설파한 대목, 조선의 강토에 대한 관심과 그 논변, 넓디넓은 요동 벌판을 마주하며 한 바탕 통곡하기 좋겠다는 이른바 호곡장好哭場 대목 등은 깊이 음미할 부분이다.

철릭  조선 시대 무관 복장의 하나로, 당상관의 철릭은 남색이고 당하관은 분홍색이다.

  현악기로 가야금과 비슷하게 생겼고, 줄이 13개이다. 연주할 때는 왼손으로 현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판을 잡아서 현을 퉁긴다.

역주易州에 있는 형가의 기념탑과 비석

구련성의 옛 터  현재 성은 없고, 그곳에 옛 성터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만 있다.

봉황산 산성의 표석

변문진 표석

봉황성의 옛 거리

벽돌 가마  『천공개물』 초간본 삽도.

부필의 글씨

관제묘

가의

요동 벌판

누르하치

청나라 군사 조직 팔기병의 군복

『전운시』

원숭환의 석상

화표주

동의 백탑

근년에 새로 복원한 광우사 패루와 광우사  패루 뒤에 있는 것이 광우사인데, 그 규모가 대단히 크다.

 

◎ --- 성경잡지

성경盛京은 심양瀋陽의 옛 이름이다. '심양의 이모저모'라고 번역한 성경잡지는 7월 10일에서 7월 14일까지의 여행 기록과 심양에서 체류하며 겪은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도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모두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어서 점입가경의 느낌을 가지게 한다.

심양에 도착한 연암은 바로 이튿날부터 한밤중에 숙소를 빠져나와 중국의 젊은이들과 밤을 새워가며 필담 토론을 벌인다. 예속재와 가상루에서 그곳의 주인들과 갖가지 화제를 끄집어내어 문답하고 토론을 하는데, 이역의 풍물과 인사들에 대해서 연암이 얼마나 많은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읽을 수 있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연암을 자신의 상점에 초빙하여 밤을 새워가며 필담하는 장면에서 연암의 박식한 학문과 예술 취향 그리고 소탈한 면모가 여실하게 드러난다.

또한 중국인들에게 연암이 자기의 필력을 뽐내려고 점방의 간판 글씨를 써 주는 대목인 '기상새설'欺霜賽雪은 마치 소설에 복선을 깔아놓은 듯 흥미를 주며, 중국의 초상 제도를 관찰하려고 상가에 들어갔다가 얼떨결에 문상까지 하고 나오는 대목은 연암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폭소를 유발하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백탑  심양시의 동릉구東陵區 20km 밖 백탑보에 있다.

향장  심양성 안의 향장으로, 일종의 가리개 구실을 하여 앞뒤를 차단한다.

숭정전

숭정전의 편액

정대광명 편액

봉황루

잔도

양자강과 백제성  양자강 가운데 섬같이 보이는 곳에 백제성이 있다.

천산의 입구

연암이 그린 <국죽도>菊竹圖

 

 

낙타  청나라 화암嵒, <천산적설도>天山積雪圖

청동으로 만든 골동품. 고(觚)(위), 이(彛)(가운데), 준(尊)(아래)

채경의 글씨

가산  괴석을 쌓아서 인조의 산을 만들어 연못 주변을 장식했다.

동기창의 필적

「경직도」

연암이 쓴 편액 글씨 저실기측咀實其測

각 민족의 문자  오른쪽에서부터 만주(滿), 서번(藏), 중국(漢), 위구르(維), 몽고(蒙)의 글자이다.

청 태조 누르하치의 무덤인 복릉(위)과 청 태종의 무덤인 소릉(아래).

 

◎ --- 일신수필

일신수필은 7월 15일 신광녕에서 출발하여 7월 23일 산해관에 이르기까지 연도에서 본 이국의 풍물과 체험을 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일신수필이란 말은 빠르게 달리는 역말 위에서 구경을 하고 지나가듯 보고 느낀 것을 생각나는대로 썼다는 뜻이다.

서문과 수레 제도를 논한 별도의 글에서 참다운 학문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선비에게 참다운 학문을 추구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7월 15일의 일기에는 저 유명한 '중국의 장관론'을 도도하게 펼쳤다. 연암은 중국의 장관이 깨진 기와 조각과 냄새나는 똥거름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조선의 지배 이념을 주도하며 민족의 생활 경제를 낙후하게 만들고 있는 고루한 선비들에 대한 통렬한 반어적 비판이다.

수레 제도와 시장 및 다리 등에 대한 소상한 기술은 바로 북학北學의 구체적 내용의 하나이며, 아울러 중국 역사의 현장, 특히 명 · 청 교체기에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 현장과 장수들에 대한 회고와 서술은 연암의 역사의식의 일단이다.

태산의 정상

노구교

변발을 한 공친왕恭親王(1871년경)

이성량 패루

광녕성의 쌍탑

북진묘

북진묘 앞의 돌사자

북진묘 마당의 비석들

사천 지방 검각의 관문

관운장의 소상

계문연수비  계문의 연수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으로, 북경 해정구海淀區에 있다.

금주 고탑

청 태종 홍타이지

이자성의 동상

영원성 누각

원숭환

김홍도, <총석정>(《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

태호석

맹강의 소상

진의정

망해정  정자의 편액에는 징해루澄海樓라고 적혀 있다.

천하제일관이라는 현판이 걸린 산해관 제3문

명나라 소현蘇顯이 썼다는 천하제일관 현판

산해관 노룡두  만리장성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

 

◎ --- 관내정사

관내란 산해관 안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본편은 산해관에서 북경에 이르기까지 견문을 기록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도에서 마주치고 경험한 내용은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로운데, 특히 본편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사상사적 주제와 관련된 일련의 글들이다. 고사리 사건과 「호질」이 그것이다.

백이 · 숙제 사당을 지나며 음식으로 제공된 고사리와 그로 인해 벌어진 사단은 왜곡된 춘추대의를 비판한 글이다. 백이 · 숙제 및 고사리로 표상되는 춘추대의는 기실 명나라와 청나라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사상적 문제이다. 명나라를 높이고 오랑캐 청나라를 물리치자는 북벌론은 춘추대의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 고사리 파동은 바로 북벌론의 허구성을 통렬히 지적한 것이다.

「호질」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려진 작품인데. 보다 근본적 시각에서 작품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인간 중심의 문맹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그중의 하나이다.

과친왕 윤례

서위

창려현 갈석산

한유 소상

영평부의 고성

이광

변발

독락사(위)와 독락사 대불(아래)

관음지각  왼편 아래 태백太白이란 글자가 보인다.

동악묘

근대 초기의 조양문

서안에 복원한 아방궁

자금성 전경

정양문(왼쪽)과 적루敵樓

동악묘 패루

동악묘 별음

동악묘 비석


◎ --- 막북행정록

막북이란 사막 북쪽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대체로 만리장성 북쪽 변방을 의미하는 말로 쓴다. 막북행정록은 북경에서 열하까지 가는 동안의 체험, 특히 고생하면서 가는 길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압록강을 건너 40여 일 만에 도착한 북경이었으나, 황제는 북경에 있지 않고 열하에 있었다. 황제는 만수절 행사 전에 조선 사신을 열하에 도착하게 하라고 지시하였는바, 조선 사행으로서는 처음으로 열하를 가게 된 것이다. 일정이 촉박한 관계로 사행단은 그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밤낮을 달려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갖가지 체험과 고생을 했다. 그 눈물 나는 고생과 그런 총중에도 장성을 빠져나가는 당시의 감회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북경에 체류하는 사람과 열하로 가는 사람의 이별 장면을 보고서 쓴 '이별론'은 탁월한 서정 산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큰 괴로움이 무엇일까? 이 문제를 도도하게 풀어낸 글이 바로 '이별론'이다.

<새연사사도>塞宴四事圖  만 · 몽이 연맹을 맺은 뒤 몽고는 청 왕조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매년 가을 사냥이 끝난 뒤 청 황제는 몽고인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면서 씨름 · 연주 · 말 길들이기 · 경마 등과 같은 활동을 벌였다.

피서산장 정문(위)과 열하 비석(아래)

첨운패루

지안문

고루(앞 건물)와 종루

자금성의 담벽

소현세자릉(소경원昭慶圓)  경기도 고양시 소재

밀운현 무령산霧靈山

불수감

고북구 관문  1910년대의 모습

쌍탑산

경추산  우측 하단의 사람을 통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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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 고조선 사라진 역사


저자 · 성삼제

2005, 동아일보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8180


911.021

성523고


우리 역사 연구에서 가장 시급한 분야가 고조선이다. 일본의 보수 우익을 대변하는 학자들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미화하고 이웃나라를 경시하는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고대사 왜곡에 있으며, 그 뿌리에 고조선 역사의 왜곡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배운 역사를 의심하라


'명도전은 고대 먼나라의 화폐다.'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명도전 출토 지역이 옛 고조선의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중국 역사학자는 무슨 근거로 명도전이 고조선의 화폐라고 주장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고조선 역사 논쟁은 추리소설처럼 흥미롭다.


성삼제

대구 농민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셰필드 대학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학교운영위원회에 관한 연구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서울시교육청, 서울대학교,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근무하며, 2001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실무반장을 담당했다. 현재 교육인적자원부 지방교육재정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본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비망록을 열며


"고조선 논쟁은 '다빈치 코드'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쟁점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역동적이어서 마치 생명체가 자라듯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고조선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것이 고조선 논쟁을 책으로 펴내는 이유다. 내 딸과 그 또래 청소년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나처럼 학창시절 일그러진 고조선 역사를 배운 어른들도 함께 봤으면 한다."


c o n t e n t s


서문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비망록을 열며


1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

        단군기원의 의미

       수동태로 쓰인 우리 역사

       선생님도 믿지 않는 건국 기록

       <세종실록지리지>와 고조선

       기원전 7세기 문헌에 나오는 고조선

       단군은 가공의 인물인가


2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언제부터인가

       청동기 역사가 이상하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

      '이 씨 조선'도 고치지 않는 일본

      기원전 400년에서 기원전 4000년까지

      자고 나면 학설이 달라지는 게 고고학

      청동기 문명과 국가 건설

      청동기는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전파되었나

      청동기의 나라 고조선


3고인돌에 새겨진 역사

      고조선, 청동기, 고인돌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

      영국의 스톤헨지와 한국의 고인돌

      고인돌의 건축 연대가 열쇠다

      고인돌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됐다

      한류보다 파급효과가 큰 고인돌 연구


4단군릉과 단군 뼈의 진실

      단군과 아브라함

     북한의 단군릉 발굴

     발굴은 인정하나 단군릉은 인정 못해

    50여 회측정, 동일한 결과

    유물 절대연대 측정의 한계

    조작된 결과인가, 잘못된 실험인가

    단군릉 논쟁은 빙산의 일각


5고조선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나

    한사군 논쟁의 의미

    패수는 대동강인가

    《사기》에 기록된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사기》에 나타난 진실

    평양은 어디에 있었을까

    평양성이 왕험성이 아닌 4가지 이유

    한사군은 설치된 적이 없다

    국사 교과서와 한사군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역사

 

6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가 아닌 이유

    고조선과 연나라는 전쟁 중이었다

    진시황의 도량형 개혁과 반량전

    명도전 출토 분포를 보면 고조선이 보인다

    명도전 유적과 패수의 위치

    명도전 연구가 필요하다

 

7일본은 《삼국유사》를 변조했나

    《삼국유사》 중종 임신본

    조선사편수회에서 울분을 터뜨린 최남선

    고조선 이전에 환국이 있었다

    재야 학자들이 하는 소리

    원본에 덧칠된 글자

    1904년 도쿄제국대 발행 《삼국유사》

    누가, 왜 고쳤을까

    변조되지 않은 《삼국유사》를 찾아서

    國인가 因인가, 이체자 논쟁

    환국은 환인의 오류가 아니다

    환국 · 환인 논쟁 왜 중요한가

    환국은 나라인가, 신인가

    일본의 역사 왜곡은 현재진행형

    국보급 고문서 변조는 국제적인 범죄행위

 

8위서 논쟁 속에 묻혀버린 고조선

    위서란 무엇인가

    영광스런 고대사를 위해 만든 책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기서와 비기들

    《규원사화》의 오류

    '문화'는 20세기 초 일본에서 수입된 말인가

    위서 논쟁 이전에 전문 감정이 필요하다

 

9《환단고기》에 기록된 천문 현상

    《환단고기》가 주목받는 이유

    붉은 악마와 치우천왕

    대종교 계통의 책이라 믿을 수 없다

    연개소문 아들 남생의 기록에 담긴 비밀

    발해 정혜 공주의 묘지와 《환단고기》

    천문학으로 《환단고기》의 비밀 푼다

    재야 사서의 비판적 연구가 필요하다

 

10고조선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고조선 역사, 불가피한 논쟁

    일제강점기 역사 말살과 왜곡의 상처

    역사 논쟁은 훌륭한 논술 교재

    단군조선은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

 

    도표 · 고조선에 대한 견해 차이

 

단군 신화는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고 난 이후 만들어진 건국 신화가 구전되다가 고려 시대에 정리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단군이나 고조선의 건국이 임의로 창작되었다거나, 몽고 침입 시에 민족의사를 강화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청동기시대가 중요한 이유는 고조선의 건국을 실재 역사로 보느냐 마느냐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한국의 청동기시대의 상한 연대를 근거로 고조선의 건국을 실재 역사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숭실대학 소장 여러꼭지잔줄무늬거울.

직경이 21센티미터 안에 0.3밀리미터 간격으로 1만 3000여개의 가는 선을 넣은 정교한 청동거울이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고인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다면, 청동기 문명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고인돌이나 청동기 문명이 고조선 지역에서 시작하여 유럽으로 전파되었음이 입증되면 이는 세계 고고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단군릉에서 발굴된 인골의 연대가 기원전 3000년으로 나온 것에 대해 학자들은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두 기관에 연대 분석을 의뢰했더니 같은 연대치가 나와서 그대로 발표했다고 북한 측은 설명했다.

1993년 북한이 발굴한 단군의 유골.

 

《사기》에 나오는 왕험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평양 지역이라는 주장과, 오늘날 만리장성에서 가까운 난하 또는 요하 부근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논쟁이 중요한 것은 왕험성이 어디냐에 따라 고조선 역사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고조선 영토에서 연나라 화폐 외에도 다른 종류의 고조선 화폐가 발굴되었다면 양국의 활발한 상거래를 통해 화폐가 오갔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고조선 영토에서 연나라 화폐인 명도전이 엄청나게 발굴되고 있는 데 반해 정작 고조선 화폐는 지금까지 단 한 개도 발굴되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단군고기》는 광범한 고기록을 지극히 간략하게 요약하여 놓은 것이므로 그 편언척자片言隻字에도 중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 그러므로 가령 한 자의 잘못이 잇다 할지라도 그것이 전문全文의 해석상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크다. 《삼국유사》의 《단군고기》 중에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고 되어 있던 것을 석유환인昔有桓因이라고 고친 천인淺人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망필妄筆을 인용한 것이 바로 그 하나다."(최남선)

1921년 교토 대학에서 발행한 《삼국유사》 영인본.

○안의 글자는 국国 자에 덧칠해서 인因 자로 만든 흔적이 보인다

1932년 고전간행회가 발행한 《삼국유사》 영인본.

○안의 글자는 도저히 인因 자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덧칠한 상태가 조악하다.

 

《규원사화》 위서 논쟁은 성경의 위서 논쟁과 기본 구조가 비슷하다. 위서인 성경을 위경僞經이라고 하는데 위경들은 당대에 썼으면서도 마치 오래 전에 기록된 것인 양 꾸며대기도 하고, 자신들이 속한 신앙집단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과거에 없던 일을 실제로 일어났던 것처럼 쓰기도 했다. 그래서 위경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 문서와 필체 감정기술이 동원됐다.

 

《환단고기》 진위 논쟁은 더욱 장려되어야 한다. 《환단고기》의 사료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쪽이든, 《환단고기》가 우리나라 상고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주장하는 쪽이든, 서로 귀를 열고 상대의 주장을 비판하고, 새로운 검증 기준을 찾아내는 비판적 《환단고기》 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환단고기》의 오성취루 현상을 재현한 그림. (박창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주제마다 치열하게 부딪치는 논쟁을 접하면서 역사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에 되살아나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논쟁 하나하나를 대할 때마다 마치 추리소설을 일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정반대의 주장들을 접하면 어느 쪽의 논리가 선명하고 어느 쪽의 논리가 부족한지 알 수 있다. 고조선 역사 논쟁 자체가 훌륭한 논술 교과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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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70 저녁의 연인들


황학주 시집

2007, 랜덤하우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0031


811.6

황92저


문예중앙시선 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2007 우수문학도서


황학주의 시가 변했다. 이제, 어디서도 언어를 비틀고 왜곡하고 차단하는 불화의 테크닉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상처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상처가 완전히 가실 수 있겠는가!) 어두운 숲이나 깊은 구멍 문고리 어머니 같은 은유적 언어들이 이를 감싸고 가린다. 그래서 그의 언어들은 읽는 이의 가슴으로 흘러들어와 기억의 풍경들을 밝혀주고 땡그렁땡그렁 울린다. 우리는 풍경에서 왔으며, 지금도 풍경 속에 있으며, 앞으로도 풍경 속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슬픈 그 풍경이 우리 마음을 울리고 우리 이마를 세차게 때린다.

- 최하림(시인)


황학주 시인을 뵙지 못한 것이 10여 년은 되었는가. 가을날 그의 새 시집 원고 『저녁의 연인들』이 도착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마음은 붉어진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 시집에서도 황 시인은 무척 말을 아낀다. 그리하여 한 줄 한 줄 숨을 죽이며 천천히 읽어나가야 한다. 읽다가 책장을 가끔은 접고 숨을 한번 내쉬어야 한다. ……내가 국경을 넘어 떠돌아다닐 동안 황 시인 역시 국경을 넘어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그 밑은 그리고 고즈넉하고 검고 따뜻하다. 서울 방학동 시절의 다정하나 스스로를 몰락 지경으로 이끌 것 같은 시정이 긴 세월 동안 따뜻하게 뭉쳐 있다가 너무 세게 펴 보이면 들킬세라 조용하게 숨죽여 있다. 서늘한 서정이라는 비수가 세계의 빛과 어둠을 향하여 은은한 빛을 보내고 있다. 『저녁의 연인들』이 당신에게 수줍은 말을 계속 걸어온다면 당신도 어쩌면 국경을 넘은 자인지도 모르겠다. 지정학적의 국격이 아니라 마음의 어느 국경. 그 안에서 견디는 자. 그 견딤의 순간들. 당신,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그리하여 이 시집의 동반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 허수경(시인)


황학주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87년 시집 『사람』으로 등단한 이래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함』『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루시』 등의 시집을 펴냈다.


시인의 말


수줍은 중년이다.

고개를 숙여야 하는 낮은 집을 출입하고 있다.

이런 마음의 집에 '저녁' 외에 달리 무슨 이름을 달겠는가.

짝, 도 좋다.


2006년 가을

황학주


|차례|


● 제1부


화대

마음

쇠귀나물

오이밭에서

사과나무밭 밑동들

세일즈맨, 백 칸 건물 속으로

겨울 양수리

젓가락, 내 마음은

얼레지

탑이 있는 풍경

막 어두워지는 숲길


● 제2부


버스

북 치는 인형

그해 여름

흰 염소

꽃 없이

뉘엿뉘엿 눈발 속으로 가는 일

거기는

두 번째 가는 정선

어느 날

장독대

익어가는 달-백중 무렵

극장


● 제3부


저녁의 연인들

베네치아의 연인

열대야

덜 닦인 방

은디라이

옛 부두

비어(飛魚)

푸른 사과 속 같은


● 제4부


저수지

소렌토에 멈춘 저녁

종점을 기다린다

K의 이사

동강 한때

가슴검은도요

예전에, 방직공 목련

삭정이

내가 했던 일


● 제5부


그 집 뒤꼍

퇴근 열차

간병

두 남자

용산역

지루한 오후

노인

조선대 뒷산을 넘어 할머니에게 어머니 심부름을 다녔다

굽은 소나무 그림자


|작품 해설| 송승환(시인 · 문학평론가)

정지된 세계의 비유와 성찰


저녁의 연인들


침대처럼 사실은 마음이란 너무 작아서

뒤척이기만 하지 여태도 제 마음 한번 멀리 벗어나지 못했으니

나만이 당신에게 다녀오곤 하던 밤이 가장 컸습니다

이제 찾아오는 모든 저녁의 애인들이

인적 드문 길을 한동안 잡아들 수 있도록

당신이 나를 수습할 수 있도록

올리브나무 세 그루만 마당에 심었으면


진흙탕을 걷어내고

진흙탕의 뒤를 따라오는 웅덩이를 걷어낼 때까지

사랑은 발을 벗어 단풍물 들이며 걷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어디 사는지 나를 찾지도 않았을

매 순간 당신이 있었던 옹이 박인 허리 근처가 아득합니다

내가 가고,

나는 없지만 당신이 나와 다른 이유로 울더라도


나를 배경으로 저물다 보면

역 광장 국수 만 불빛에 서서 먹은 추운 세월들이

쏘옥 빠진 올리브나무로

쓸어둔 마당가에 꽂혀 있기도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올리브나무로 내 생에 들러주었으니

이제 운동도 시작하고 오래 살기만 하면.


북 치는 인형


누가 내 이야기를 한다 며칠째 학교 뒷문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발 없는 아이가

나귀에 매달려

하굣길

10리를 간다


퇴짜 맞은 것은 만삭인 낮달도 마찬가지

아무도 낳을 생각이 없다


등교할 힘도 없는

놀미낭가이네 흙집 지붕 위

딸려 올라가는 소시지나무 열매가 때로 달려 잇다

불도 못 때주고 먹이지도 못하는

불모의 자지들


새 발자국 몇 개 빗방울 무늬로 찍힌 운동장

누가 내 이야기를 한다


며칠째 학교 뒷문으로

텅 빈

기차가 지나가면

낙엽들이 개처럼 쫓아나간다


서랍을 열면

가슴에 달빛처럼 접힌

나보다 더 아픈 사람

꿍짝꿍짝 발을 맞춘다


푸른 사과 속 같은


사탕수수밭 뒤쪽에

일렬횡대로 앉아

아침이면 사내들과도 함께 일을 보는


사과 베어 먹으며 돌아앉은 여자

엉덩이 한쪽에 푸른 멍이 들어 있다


얘들아, 버펄로 수레 조심하렴


늘어난 데 없이 번지는

한 채의 꽃구덩이가 일렁이며

등굣길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푸른 사과 속 같은

여자의 그림자

사과씨 묻혀 있는 멍을 닦는다


버스


갑자기 버스가 나타났다

비 내릴 때 나의 마음을 태울 차가 저렇게 분명하게 오는 일이 거북하지 않나 일단 그렇지 않나

해 진 뒤에 마음은 배롱나무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버스가 오면 나는 손을 들지도 않고 돌아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보다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불빛을 켠 밝은 내부, 담쏙 받아 든 자두 광주리 같은 저녁을 태우고 버스가 온다

버스가 오나 보러 나와 한번쯤은 세상이 우리에게 시간을 맞춰줄 수도 있지 싶다

당신을 먼저 집으로 보내는 것인데

2, 3일 후 4, 5일 후 무려하게 따라갈 수도 있지 싶다

우레 치는 길은 옷고름을 풀어가

버스가 오는 걸 미끄러지듯 받아 안는다

언젠가는 다가올 슬픔 중 가장 귀한

버스가 온다면 사랑하다고 꼬집는 묵언도 쓸데없을 것이다

그런 시간이면 가까스로 불이 붙는 라이터가 입술 주위를 밝힐 것이다

지금은 손을 들지 않고 버스를 보낼 수도 있는

누가봐도 생에게 또박또박 대꾸를 할 수 있는 시간 언저리


곧 버스가 끊기는 밤이 된다

슬프면 안 된다

그 뒤에는 자연사박물관이 있다


그해 여름


멀리 간 날이었다

무서우리만치 많은 나무들이 몰려왔다

다함이 있어야 혼이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박물관 앞에서 여자를 처음 보고서

눈을 감았다 뜰 때 아주 먼 시간이 어둔 화덕에 피어 있었다

찌그려 신은 한 켤레 시간을 세족시키며

여강(驪江) 가 꽃 피듯 일없이 여자가 앉았다

무슨 물고기를 먹은 그 오후와 저녁 사이

그 식당은 지금 없어졌다 침이 마르듯이


낌새가 없는 일이었지만 식당 뒤

공사장 붉은 흙더미와 고랑 흑백 어딘가에

수줍은 중년이 어떻게 손을 들고 있었나

오색을 다 내줘버린 자작나무

몸 떨군 가장자리로 가만가만 가져가는

저녁처럼 여자 혼자 살고 있는 곳

이승에서 하루쯤이면 갈 수 있는 곳

요행이 떠나면 잊을 수 있을 듯도 해

그 한나절은 기념이 되었다


알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피는 일엔 다함이 있어야 한다는 걸

여자가 눈짓해준 그해 여름


사과나무밭 밑동들


부석사 까치가 쪼고 있는 늙은 사과나무 밑동들


시간이 꼭꼭 씹어 쌓아둔 시커먼 밑동과 엉덩이를 맞대고

나는 눌러앉아 있었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닌 연애가 여물었다 떨어지고

점점 말수가 줄다 경청하는 귀만 커다랗게 남겨진 노인일까

베이고 없는 사과나무들

질질거리며 소변 보는 마지막 모습만 얼어 있었다

저녁은 그사이

망한 부석 아랫도리와 바닥 모를 말을 나누며

얼룩얼룩했다


저런, 자필 사인한 이별 같은 노을에

젖어 벌어지는 사과나무 한 그루

털썩 주저앉아

몇 해 전 내 몸에 들어오지 않았나 묻고 있었다


종점을 기다린다


종점을 기다린다 흰 우산살을 펴며


비가 쉬지 않고 새드는 가게 처마 밑

물받이가 비벼서 내려 보내는 빗방울

뭐라고 하나

빗소리

불 꺼진 창만 골라

사납게 뛰어들 때


허리띠를 풀면 내려가는 바지처럼

눈이 풀어지면 스르르 종점에 닿으련만 버스가 오지 않는다

정류장에서 매일 저녁 출생 지점으로 돌아가는

일용의 여행자, 상속받은 귀가를 기다린다

봄비에 젖어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러 오라는 듯

눈이 흐린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거리는 파인 도마처럼 펼쳐져 있고

탈을 든 영혼처럼 손목을 놀리는 비

포플러나무가 팔을 붙인 채 염주비를 돌린다

빗소리를 감았다 풀었다 하는 배뇨를 참고 있는 사람의 골목이 먹갈치처럼 흘러가며


종점을 기다린다

낙수 고랑을 타고 그 한 집

불 꺼진 방으로 가는

 

극장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제 것을 주물럭거리며 아프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으로는 미완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군가 젖을 살짝 들어올리면 동그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멀그스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만 일어나라고 등 떠밀지 않아도

환하게 불 들어오며 종영될 인간 극장

 

익어가는 달

- 백중 무렵

 

혈흔을 감싸안고

이사 가는

밤마다 다리가 아픈

영생

 

예전에, 방직공 목련

 

날마다 달이 도장을 찍으러 오는

누이의 세숫대야 속에

목련이 졌다

 

그날 목련꽃이 쏟아진 마당에 사람들이 하루 종일 오가고

나는 운동화 끈을 푼 뒤란에서

한 10년 한자리서 눈 맞은 사람 하나 손잡아 끌었습니다

앞바다에 굴러 떨어뜨린 배추며 돼지 똥값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때 잡고 다니던 손처럼 고물고물 해안선을 건네준 후

아버지를 모아 난바다에 내다 버린 나는 자주 도시락이 없었고

나라도 집을 나가야 할 것 같은 점 많은 식구들이 있었다고

그렇게 쉽게 어른이 되었다고 해야 되었습니다

홑거적 속에서 날갯짓을 하며

너무 늦어 돌아가면 빚이 될 것 같은

목련,

씨줄과 날줄 끌어 녹슨 세숫대야를 방직하며

울컥 쏟아졌습니다

 

두 남자

 

정신이 돌아오는 길목은 언제나 치욕이다

간병인 아줌마에게 엉덩이를 보이는 게

허, 화가 나는 아버지

 

허 참,

파르스름한 엉덩판에서 똥을 긁어내는 동안

 

쓰레받기 하나 비석처럼 들고 서 있는 내 그림자

이 진땀과 냄새 우려내는 데를 생각하고 잇다

 

자신의 것만은 아닌 똥물 진물 골목 위를 걷는

팔순, 침대 이쪽으로 기우뚱하는 순간에

저쪽을 흐지부지 잊어버린다

 

단 한 번도 동이 나지 않은 똥 웅덩이

한옆에서

슬쩍슬쩍 똥빨래를 만작대는 달빛에 나도 스며서,

 

쇠귀나물

 

유리병이 버려진 논물 위로

소의 귀 모양을 한 풀잎들이 나와

아, 아, 아, 입을 갖다 대며 쭈그리고 앉아 놀던 학교 길

손을 묻어 물을 만지면 꼼지락거리는 소녀가 느껴졌다

막 뜯은 편지 봉투처럼 가난한 마음을 들고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 배배 꼬인 연애를 하러 가던

누나는 중학교밖에 못 마치고

쇠귀나물 뽑힌 논에서 모를 심었다

 

쇠대나물 쇠태나물 쇠택나물 수사 곡사 급사 택사 물택사

버려지면 이름도 아무렇게나 불린다

물집 잡힌 하얀 꽃잎 우리 누나

중퇴한 교실 창 안에 대고 친구들에게 뭐라고 했나

쇠귀에 뭐라고 했나

소리치고 밀쳐도 남자는 꿈쩍을 않고

세상에 골똘해야 하는 일을 쇠귀에 속삭이는 일로 알았던

 

유리병 안에 들어간 나비가 팔랑거린다

쇠귀나물 잎 떨어진 자리가 구드러지고 있다

 

오이밭에서

 

오이 살색을 살피며 생각한다 싱싱하고 오톨도톨하던

몸의 나이에 신세 안 지고 올 수는 없었구나

자기 가시로 박음질된 오이의 몸에

넓삐죽한 칼을 대며, 자신을 깎아보지도 못한

물렁한 포대자루 못생긴 그림자 둑길 하나 두고 앉아 있다

 

살짝 잠이 모자란 오이가 잎 속에 있다

임신한 차림으로 길게 넘어진 오이 옆에

부은 목젖처럼 잎 하나가 돋는다

새끼들이 모두 나와 있는 오이밭

덩굴손으로 붙들고 있는 젖은 어머니들

 

가시 분화구 밑 싱싱한 지층을 섬벅 베어 문다

읽고 싶은 백 권의 기갈을 잃어버렸다 오이밭에서

물맛 좋은 가슴 한 짝 덜렁, 그랬다

물벼락 같은 오이 냄새 아래

땅벌레가 취해서 옴직옴직 돌아가는 참이다

 

막 어두워지는 숲길

 

숲길이 막 어두워져 더 걸어 들어갈까 말까 하는 갈피에서

무슨 빛인가 발그레하게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숲이 항아리를 씻어두었는지

무슨 빛인가,

 

여름날 길을 달리한 모든 가지들 위에

밥 묵은 손바닥처럼 얹히는 것이었습니다

노란 양푼을 업은 금달맞이꽃이 눈에 띄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은 언젠가 두 사람이 걸어

이끼 앉은 돌 틈에서 목탑(木塔)을 들어내던 곳

찬 이슬을 지닐 때까지 구부러들어야 했던

어둠의 설움의 친정이었을,

 

숲에선 하루해를 핥아준 냄새가 나고

지하 대수층에 다니러 가는 해가 밤나무 밑으로 접어들면

마른 새가 엎드려 있어도 좋을

눈동자 같은 둥지가 밝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굽은 소나무 그림자

 

등 뒤에서 나의 가장 먼 곳의 문고리를 잡는 것이었다

등 뒤에는 오래 오래된 마룻장이 있었다

극락전까지 걸어가는 시월이면

등 뒤로 찔러오는 것처럼 깊어

슬픔과 함께 피어오르는 망향은 확인해줄 수도 없다

 

연못 수면에 살짝 쓰러진 꽃을

받쳐 들고

오래 걸어서 갈고리가 되도록 구부러진 가지로

극락전까지

핏줄을 대가는

그림자

 

은디라이

 

  국경을 건너는 소들도 우기(雨期)는 추워 자꾸 옆구리가 부딪친다. 넘어지지 읺으려고 벽에 가 먼저 부딪치던 시간들이 인간에게도 있었다. 옥수수밭이 피어나 달리는 목동 뒤로 돌아온다. 참 오래전 아버지 어릴 적부터 맨발로 다니며 넘어져본 일 없는 은디라이. 집 나간 황소 틀어쥐고 오던 날 쓰러진 옥수수꽃 위에 맨발 탈탈 털던 어린 은디라이. 내가 준 신발은 조금 작고 스웨터는 기장이 길다. 송아지는 친구라서 한 방에 재우고 염소는 아버지 꼭 닮은 의심이 들어 울타리 안에 밀어 넣던 은디라이. 내가 준 신발을 신고 멀리도 걸어 오늘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 만나지 못한 은디라이마저 잃어버린 나.

 

탑이 있는 풍경

 

눈 내리는 날 기우뚱 탑이 발목께를 보고 있다 어딘가에 구멍이 있다

 

한번씩 낫을 휘둘러 허공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춤추게 하는

바람, 날아 내리는 눈들이 구멍을 통해 쌓일 때

 

빈 마당은 점점 구멍이 배불러와 어디론가 빠지고 있겠구나

 

탑은 자기가 큰 구멍에 빠진 것을 모르거나 모른 척한다

 

두 번째 가는 정선

 

처음 가던 정선 고랑 파듯 고불탕고불탕 내려가던

 

마음으로는 벌써 다녀온 귤암리 가수리 많지

아무리 못 만들어도 저렇게 못생긴 소나무 하나는

 

물 내려가는 산자락에 낳을 수 있겠다 싶은

 

할머니 마음에 따라붙는 동강할미꽃

가는 팔목이 어여 어여 목줄을 당긴다

 

여기 어디쯤 5백 평은 너무 큰 땅

그 땅 쓸만한 시간이 있어서 어디엔가 당신이 살고 있을까

 

지겟다리를 받친 고목의 허리가 떠오르고

해는 빈 도시락 가방을 들고 기울었다

 

허벅지 홀쭉해진 시골 저녁에만 떠오르는 길을

어디선가 갈 수는 있겠지

 

땅에 관해서는 물이 알아봐줄 일이다.

 

베네치아의 연인

 

사랑이 풀꽃 반지를 만드는 때가 오면

가로등 지지지 제 몸 지지는 소리를 내고,

사랑이 배를 놓아 첫날밤 같은 한순간을 미끄러지면

부끄러움은 돛처럼 쫑긋한 귀가 서 있었다

 

불쑥 엉뚱한 섬이 나오는 골목을 지나

곤돌라는 낡은 기둥 같은 시간에 옆구리를 거꾸로 댔다

언제든 석양에서 되돌아 나갈 수 있다는 듯

그러니 우리는 함께 있지 못한 아침까지 인정할 것 같다

우리는 저렇듯 우박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고랑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니 말이 많지도 않을 것 같다

 

쇄골 위에서 정전이 되자 사랑은 잠이 들고

긴 머리가 허리까지, 가물가물 물속으로 흘러갔다

사실은 가운을 여민 바다는 제 몸을 씻지도 못했다

오해를 피해 잊혀져가는 과거처럼 비치는

장신구는 본능의 하부에 풀어놓앗다 허벅지 안쪽 같은

둥글고 민감한 안 보이는 그곳

 

베네치아 빈 길에 잠자리에 든 이승들이

유실된 연인이 되어 물에 뜨고

물에 닿아 아픈 부위로 된 궁륭을 안았다

태양은 살 있는 모든 부위에서 번개처럼 빠져나가리라

사나흘쯤 밤낮이 심장 놓인 그대로 가고 잇었다

 

소렌토에 멈춘 저녁

 

올리브나무 박은 하늘이 풍덩 기울며

바다 공터를 여는

이 모퉁이

 

사랑은 온다 대리석 기둥 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해는 보랏빛 포도식초를 찍으며 구관과 신관 사이에

한옆으로 비껴 앉아 있다

 

사랑은

큰 포대자루 같은 절벽 위에서

바다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이다

 

유람선이 동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섬은 바다에 잘 들어맞는다

그 뒤에까지 돌아가 보지 않아도

사랑은 과거에도 앞으로 좀 쏠려 있었다

 

열대야

 

불을 끈 늦은 밤, 2층 방문을 앞뒤로 다 열었다

너무 커서 짤 수 없는 빨랫감을 들고 아버지를 부르는 듯

아래층 노모의 목소리 마른 물받이통 타고 들리고

 

건넛방 창문마저 밀치는 순간

옆집 2층 열린 창 속으로 벗은 할머님의 전신

굽은 등에 비스듬히 수건을 두르고 있다가

황급히 냉장고 문을 닫으며 몸을 숨긴다

냉장고 불빛에 잠깐 어른한 노년의 알몸

후끈한 잠실에 비스듬히 앉은 고치 같았다

할머님 곁엔 재작년 돌아가신 그 댁 할아버님이

주전부리 오디 같은

너무 여물어 쇤 뽕잎 같은 걸로라도 누웠을 것 같고

 

아래층 아버지가 흠흠 일없이 마당을 거니신다

밖엔 바람이 좀 있다 하면서 2층의 기척을 살피는 중이셨다면

그 언젠가 언질을 주던 능소화 그림자와 함께였을 것이다

망측하게, 위층 애들이 있는데

아버지를 핀잔하는 어머니 한밤중 쌀 씻는 소리

 

오 뜨거운 것의 아름다움은 땅 저 아래쪽으로부터 오래전 내게 왔을 것

깊어지는 밤 달빛을 제 몸에 버무려서

옆집 담 위로 능소화가 쭉 올라와 들여다본다

 

덜 닦인 방

 

늘 덜 닦인 방에서

덜 갚은 빚처럼

몸서리치며 나누던 몸

 

한 국자쯤 고이고

다시 한 스푼쯤 차오르는

볕 한 줌을 시간 안에 나누느라고

 

우리여,

 

저수지

 

하얀 맨발의 연꽃잎 내려앉듯 해가 다 내려가고

흙에 접을 붙인 듯 불빛이 점점점 떠오른다

연인들이 몸의 구석구석에 노후로 깃들듯이

 

우리가 떠난 후에도

다는 안 가지고 싶어, 라고

연인들은 창문 한쪽에 써서 보여주고 있을까

문득 눈앞에나 서 있을 것 같은 펀펀한 엉덩이가

이 마음속에 언제 와 있었는지 놀라면서

수고로운 저녁을 느릿느릿 안아 들고 있을까

다 준다는 게 다 받고 싶다는 비명이었다는 것

 

그대 둥글게 앉아 있는 어둠 속으로 늦은 밥을 물리고 또 물렸다

그대 안쪽에서 가만히 받아주었다

옷가슴만한 봄이 숨죽이며 깜짝깜짝 놀라던

누가 보아도 그곳엔 저수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젖가락, 내 마음은

 

내 마음은 오래도록 바짝 마른 것에 가 있었다

 

고아원이 밤의 굴뚝을 울려대는

새 울음소리 뒤로 옮겨가고 없는 밤에

나는 시름해진 꿈들을

곧잘 눈에 잘 띄는 선반에올려놓곤 하던

젓가락처럼 몸이 긴 원장을 생각한다

 

이런 날 내 마음은

물배급차를 끌고 다닌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입에 물려 있던 물을 간신히 다른 입에 밀어 넣던 아이의

희미한 이름도 간직하고 있다

별이 두 개나 세 개씩 하룻밤에 떨어지면

흙칠을 한 호수 옆에 묻어야 했던 그 길을

 

가지고 있다 내 마음은

물이 없어 문을 닫은 고아원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면

기력을 다한 살핏한 눈빛을 내 귀에 대고

고맙다고 하던 아이는

쪼개기 전의 나무젓가락처럼 두 다리가 바닥에 붙어 있었다

 

지평선에 해 빠질 동안

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가만히 달아나게 해주고 싶었다

마른 발등이 병실을 옮기는 긴 허방 붉디붉어도

우리는 무비*나 에이즈, 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옮겨 심은 나무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어느 귀신이 그걸로 새 젓가락을 만들고 있으리라

 

* 동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에이즈를 부르는 말. '도둑'이라는 뜻을 가진 스와힐리어.

 

뉘엿뉘엿눈발 속으로 가는 일

 

여러 날 오체투지해가다

때 없이 잠에 빠뜨리는

서거나 쓰러지는 몸

 

당나귀 등에

눈밭 여기저기서 주운 나무토막 쇠똥이 모이는

자루가 삐뚜루 걸쳐 잇다

오늘 밤 달빛이 되는 영혼이 우둘투둘 들어 있는 것 같다

 

가죽 치마 깔고 쓰러지면

어디서는 눈보라가 어디서는 모래바람이

우는 마음을 알아듣는 것 같다

귀 뒤에선

나무 하나가 빗자루를 들고 휘어지고 있을 텐데

앞서 있던 전봇대들이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판자 조각을 댄 가죽 장갑 땅에 내리치면

낑낑대며 생의 한 귀퉁이 잡아 굴리느라

무릎뼈처럼 구부러지던 계절이 생각난다

내 안의 붉은 머리채에 낚여

꽈당 엎어지는

참, 사랑을 쉬는 일도 중요한 일이네

 

배꼽 속에 성산이 꼬르륵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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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드무 황영찬

2015-069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2008, 알마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0320

 

911.6

권18ㅅ

 

서울은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실을 만나게 되는 요술경 같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촌스러운 건물이었지만, 서울시의회 청사에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지나치던 보신각과 청계천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진실이 숨어 있었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수도답게 서울의 변화 속도는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의 기적을 대변했던 청계고가도, 2열종대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삼일아파트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우리가 밥벌이의 고단함에 치여 허우적대는 사이 축적된 삶의 편린들은 소리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여기 그런 게 있었어요?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르거나 숨겨져 있는

또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의미 · 장소 · 문화 · 일상을 재발견하다.

 

일상의 재발견  일상의 공간이기에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공간이 겪어낸 역사적 사건을 떠올린다.

 ● 이순신이 세종로를 접수한 까닭은 무엇일까? ● 해방과 함께 태어나 전쟁과 함께 자란 용산동 해방촌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함께 평화시장을 가다 ● 남산에 오르면 친일미술가의 손으로 빚은 독립운동가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문화의 재발견  우리 주변의 장소와 건물이 가진 문화를 탐색한다.

단성사에 가면 100년 한국 영화의 역사를 볼 수 있다 ● 조만간 기억 속으로 사라질 세운상가는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빌딩이었다 ● 무참히 헐려버린 우이동 육당 최남선 고택을 찾아가다 ● 서울 최초의 커피숍 손탁호텔이 있던 자리를 찾아 정동을 걷다...


의미의 재발견  잘 알려진 곳이지만 이면에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재조명한다.

● 해방 이후 서대문 형무소의 역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 '사대의 상징'을 헐고 '일제로의 종속'을 기념해 독립문을 세우다 ● '친일파 항일' '남과 북'이 불편한 동거 중인 국립현충원은 너무 시끄럽다 ● '기록'이 아닌 '기억'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 충무로 2가 100번지 한미호텔은 어디에?...


장소의 재발견  지나간 이야기를 숨긴 채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장소를 찾아가 그때를 생각한다.

● 모든 집은 와우식으로! 날림공사의 원조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다 ● 유스호스텔로 변해 버린 옛 안기부 건물에서 하룻밤 묵어볼까? ● 남산 중턱에 있던 조선신궁은 서울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 리라초등학교 뒤에 가면 '군인의 신' 노기를 기리던 신사가 있다...


지은이 권기봉은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자란 산골소년,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에 입학하면서 올라온 서울은 '원더랜드' 그 자체였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공간이 궁금해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 사람이 보이고 역사가 읽히고 그 배경이 되는 건물과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재발견한 메트로폴리스 서울에 대한 글쓰기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워낙 호기심이 많고, 여행 다니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그는 대학 시절부터 학보사 기자,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거쳐, 2005년 말에는 SBS 기자까지 되어버렸다. 적성과 딱 맞아떨어지는 기자 일을 하면서, '2002년 올해의 시민기자상' '2006년 SBS 특종상' 등을 타며 "오늘의 사건사고"를 취재 중이다. 사회부 기자로 살다 보니 그 좋아하는 여행도 쉽지 않다. 그래도 1년에 두세 번은 나름대로 긴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으로 다음 여행지를 구상하는 재미에 하루 피로를 잊는다. 서른 즈음에 와 있는 그는 요즘 제주도나 오키나와 같은 변방의 역사, 스포츠와 민족주의의 상관관계 등에 관심이 많다. 지금 이 순간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살자는 삶의 자세로 오늘도 호기심 천국, 세상 속을 분주하게 걷고 있다.


차례


산책을 시작하며


1부 일상의 재발견


이순신 장군이 세종로를 접수한 까닭

세종로 '이순신 동상'을 찾아


청계고가는 갔어도 화두는 여전하다

지금은 사라진 '청계고가'를 걸으며


어머니가 가발공장에 취직하던 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평화시장'을 찾아


해방과 함께 태어나 전쟁과 함께 자라다

용산동 2가 '해방촌'을 찾아


'친일미술가'의 손으로 '독립운동가'의 동상을 빚다

남산공원 '김구와 안중근 동상'을 찾아


해방 60년 만에 닻 올리는 친일 역사 청산

'반민특위'가 있던 국민은행 명동지점을 찾아


침략과 수탈에서 평화 교류의 철도로

'서울역'을 찾아


2부 문화의 재발견


100년 한국 영화와 함께한 산증인

종로 3가 '단성사'를 찾아


실패한 조국 근대화의 상징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세운상가' 유람기


지금 이 순간에도 무참히 헐리고 있다

우이동 '육당 최남선 고택'을 찾아


외세를 이용해 외세를 막으려 하다

정동 '손탁호텔'터를 찾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장경근을 떠올리다

정동 '옛 대법원'을 찾아


'만들어진 전통' 제야의 종

종로 '보신각'을 찾아


3부 의미의 재발견


나머지 절반의 역사를 생각한다

현저동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사대의 상징'을 헐고 들어선 '일제로의 종속'

현저동 941번지 '독립문'을 찾아


'망자'가 아닌 '산자'를 위한 공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철저히 유린된 제국의 상징

소공동 '환구단'을 찾아


김구만 남고 임시정부는 잊혀지다

평동 '경교장'을 찾아


'기록'이 아닌 '기억'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

충무로 2가 100번지 '한미호텔'을 찾아


4부 장소의 재발견


모든 집은 와우식으로!

날림공사의 원조 '와우아파트'를 찾아


과거 청산 없는 화해란 있을 수 없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과 함께 남산 '옛 안기부'를 찾아


진정한 민족대표는 누구인가?

인사동 '태화관'터를 찾아


'해방'은 됐을지언정 '독립'은 하지 못하다

남산공원 '조선신궁'터를 찾아


남산에 신사 유구가 있다!

리라초등학교 뒤 '노기신사'터를 찾아


이토 히로부미 죽어서도 조선을 파괴하다

장충동 '박문사'터를 찾아


초라한 서울시의회 청사가 가벼이 보이지 않는 이유

태평로 1가 '부민관'과 해방 후 '국회'가 있던 곳을 찾아


산책을 마치며

참고 문헌

사진 출처

과거권력과 현재권력 등 한국 사회의 '파워'가 교차하는 세종로, 그 한복판에 이순신 동상이 우뚝 서 있다.

1956년 8월 10일 옛 남산식물원 터에 '현직' 대통령인 이승만의 대형 동상이 들어섰다. 당시 언론들은 이 동상이 아시아에서 가장 큰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1964년 5월 16일 세종로에서 '애국선열' 37인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박정희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한 애국선열 동상 건립사업은 그 자체로 부실 덩어리였다.

세종로에 한복판에 자리한 이순신 장군상. 박정희 대통령이 비명횡사하지 않았다면 새 모습의 동상으로 교체되었을 것이다.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 앞에 서 있는 '일본 육군의 아버지'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

일제강점기 때 위생의 목적과 전쟁 물자 수송을 위해 시작된 복개사업은 40년 후인 1977년까지 계속됐다. 복개 중(위)과 복개 후(아래)의 모습.

1970년대 청계고가와 삼일빌딩은 정부의 해외홍보물에 수시로 등장하는 자랑거리였다. 삼일빌딩은 63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군사작전하듯 마구 덮어버린 청계천이 거침없이 다시 열렸다. 과연 청계천은 '복원'된 것일까?

'수많은 전태일들'이 일했던 작업장이 대부분 창신동 쪽으로 옮겨가, 지금의 평화시장은 그저 의류 도매시장일 뿐이다.

평화시장이 아닌 '착취시장'에 갓 취직했을 때 전태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각혈하며 쓰러져가는 시다들이었다. 시다, 미싱보조사와 함께 찍은 위의 사진에서는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한미사 동료와 찍은 아래 사진에서는 맨 오른쪽이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노동착취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2005년 평화시장 앞 버들다리 위에 전태일 흉상이 세워졌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전태일 정신이 구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03년 말까지만 해도 전태일이 분신한 자리에는 그의 죽음을 기리는 동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공사 와중에 뜯겨 나가고 말았다.

남산과 용산 미군기지 사이에 자리한 해방촌은 해방과 함께 태어나 전쟁과 함께 자랐다.

국회의사당 중앙현관에 서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대리석상. 둘 다 일제와 독재정권에 부역한 김경승의 작품이다. 땅달막한 몸집 등 모양새가 유려하지 않다.

남산공원에 있는 도마 안중근상(위), 백범 김구상(가운데), 김유신상(아래)도 모두 김경승의 작품이다. 김경승은 '친일'에서 '친독재'로 변신하여 명성을 이어갔다.

박정희 대통령이 세운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는 "민족정기의 전당"이라고 쓴 박 대통령의 글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정통성이 빈약한 독재정권은 '항일'마저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반민특위 본부가 있던 명동 국민은행 건물이다. 지금은 새 건물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1949년 9월 5일 중앙청에서 열린 반민특위 조사부 책임자회의 기념사진으로, 원 안의 인물은 반민특위 중앙사무국 총무과장이었던 이원용 조사관이다.

이승만 대통령 등 집권세력이 조직적으로 방해하거나 반민특위 인사들에 대한 집단 암살이 시도되는 등 반민특위 활동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사진은 반민특위 전남조사부가 설치한 투서함의 모습이다.

1951년 7월 이승만 대통령이 해방 후 육군 참모총장과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장 등을 지낸 정일권 중장에게 훈장을 주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등 독재정권은 친일부역자들을 중용함으로써 정권의 기반을 다졌다.

반민특위가 있던 국민은행 명동지점 한쪽 구석에 (정부나 서울시가 아니라) 민족문제연구소가 세운 반민특위 표지석 한기가 서 있다. 글씨는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썼다.

경성역 2층에 있던 '그릴'은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절반을 쏟아 부어 만든 경성역(현 서울역). 설계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설계한 독일인 게오르그 데 라란데와 츠가모토 야스시 도쿄 제국대 교수가 맡았다.

해군대장 출신으로 제3, 5대 조선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

강우규는 1919년 9월 2일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머커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 1년 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서울역 한쪽 구석에 강우규의 거사를 기록한 표지석 한 기가 쓸쓸하게 서 있다.

2007년 5월 17일 남쪽 열차(위)와 북쪽 열차(아래)가 강원도 제진역에서 만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끊긴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됨으로써 남북 철도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새 KTX 서울역과 옛 서울역.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 상영을 알리는 작은 간판이 흥미로워 보이는 1955년의 단성사로, 건물은 1934년 5차 완공 당시 그대로다. <피아골>은 빨치산 남자대원들이 한 여대원을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을 그린 반공 영화였으나, 빨치산을 낭만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의 <플레이밍 스타Flaming Star>와 말론 브란도 주연의 <애꾸눈 잭. 간판 등이 내걸린 1962년 4월 30일의 단성사.

<월하의 맹서>에 출연한 '최초의 본격적인 여배우' 이월화.

1926년 <아리랑>에 출연한 나운규와 신일선.

단성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 개봉관의 지위를 누렸다. 사진은 <장군의 아들3>과 <서편제> 개봉 당시 단성사 앞에 영화를 보고자 몰린 관객.

2005년 2월, 10개 상영관을 갖춘 복합상영관으로 거듭난 단성사.

일제가 미군의 공습에 대비한 방공용 공터는 한국전쟁 후 빈민들 차지가 됐다. 사진은 종묘 맞은편 공터를 메운 판잣집으로, 이것을 없애고 지은 것이 '한국판 라데팡스' 세운상가다.

세운상가는 보행자전용로와 인공정원 등을 갖춘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빌딩으로 기획됐다. 사진은 세운상가 아파트 조감도.

1967년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으로 지은 세운상가는 완공 후 10여 년 만에 슬럼화됐다.

박정희 정권에 있어 세운상가는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1967년 11월 17일 세운상가 아파트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2003년 1월 19일 찾아간 우이동 최남선 고택은 지붕에 물이 새고 기둥에는 곰팡이가 스는 등 철저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고택은 답사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헐려버렸다.

철거 직전 집 주변에는 일본 황실 사진첩(위)이나 최남선이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 흥미로운 지료들이 나뒹굴고 있었다(아래).

한 청년이 최남선에게 편지로 "선생님의 거룩하신 애족, 애국 정신으로 지도해달라"며 부탁하고 있다. 역사는 그렇게 윤색되어 있었다.

손탁은 4개 국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배포가 커 주한 외국인들의 대모 역할을 했다. 조선왕실은 일본을 견제하고자 그런 그녀를 필요로 했다. 사진은 손탁과 그녀를 방문한 외국인들의 모습.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손탁호텔로, 박공(지붕 아래 삼각형 부분)에 '손타그 호텔'이라고 일본어로 씌어 있다.

덕수궁 중명전 마당에서 환담하는 더럼 스티븐스와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 모두 한국인에게 처단당했다.

손탁호텔이 있던 자리에는 이화여고가 들어섰다. 손탁호텔은 사라졌지만 정동에서는 여전히 열강의 각축이 느껴진다.

1954년 5월 15일 미국 '군인의 날' 기념식을 마친 미군이 세종로에서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기념행사를 세종로에서 할 정도로 우리에게 미국의 존재는 막강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1978년까지 사법부 수장은 모두 친일부역자들 차지였다. 사진은 법원 인사를 둘러싼 이승만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옷을 벗은 뒤 이 대통령을 찾은 김병로 대법원장.

'제야의 종' 행사를 기획한 경성방송국은 정동 덕수초등학교 터에 있었다. 사진은 1927년 2월 16일 첫 방송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기념비다.

보신각은 원래 지금의 자리가 아니라 종로 탑골공원 옆에 있었다.

2층으로 중건된 현재의 보신각. 지금 걸려 있는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썼다.

2008년 1월 1일 '제야의 종' 타종식이 열린 서울 보신각. 그 기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올해도 어김없이 1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몰렸다.

서대문 형무소의 붉은 담과 감시탑 일부는 지금도 남아 있다.

서대문 형무소 옥사 내부.

사형장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위)과 사형집행 후 시신을 외부로 내보내는 통로(아래).

해방 후 미군정청과 독재정권도 정적이나 진보인사들을 탄압하는 데 서대문 형무소를 활용했다. 사진은 1959년 7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당한 진보당 조봉암 당수(국회부의장, 초대 농림부장관)가 사형판결을 받는 모습으로 조봉암은 '북진통일'을 주창한 이승만에 반해 '평화통일'을 추구했다.

항일의 공간으로만 추억되는 서대문 형무소가 온전한 모습을 찾을 날은 언제일까.

1910년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립문과 영은문 주초. 독립문은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세운 것이었으나 그것은 또 다른 종속을 의미했다.

독립문의 남과 북 편액은 각각 한글과 한자로 씌어 있는데, 모두 이완용이 썼다.

1979년 8월 15일, 독립문은 고가도로 건설을 위해 '獨立門址'라고 쓴 동판을 남겨둔 채 북서쪽으로 70미터 밀려났다.

독립문 옆에서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서 있는 필립 제이슨 동상. 그가 만든 《독립신문》은 개화사상을 고취하기는 했으나, 한게도 분명했다.

'또 다른 종속'에 불과한 것이 '독립'이라는 상징으로 조작되어 있는 현장.

충성분수대와 그 뒤에 있는 겨레의 마당 너머로 현충문과 현충탑이 보인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충성'과 '민족' 과잉의 현장이다.

1963년 4월 29일 여고생들을 도열시킨 가운데 아산 현충사를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 이른바 '구국의 현장' 성역화 작업은 '군인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 주효한 수단이었다.

1962년 5월 5일 투병 중인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을 방문한 '일본 관동군 출신' 대통령.

장군들의 묘(위)는 촘촘하기만 한 사병 묘(아래)에 비해 각각 8배나 넓다. 게다가 묘비도 훨씬 크고 봉분까지 갖추고 있다.

본질적으로 국립현충원도 야스쿠니신사처럼 '망자'가 아닌 '산자'를 위한 공간이다.

네모난 담장 안에 원형 제단이 3단으로 쌓여 있고, 그 한가운데 원추형 지붕의 건물이 보이는 창건 당시의 원구단. 사진 왼쪽으로 지금도 남아 있는 황궁우와 삼문이 보인다.

일제는 환구단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철도호텔과 반도호텔 등을 지었다. 사진은 지난 1958년 8월 31일 화재가 난 조선호텔(옛 조선철도호텔).

고층빌딩에 둘러싸여 미처 외딴섬 같은 황궁우.

위로부터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조선저축은행(SC제일은행)조선은행(한국은행), 미츠코시백화점(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백화점은 2007년 외장재를 교체해, 초기의 건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1940년까지만 해도 환구단 대부분의 영역은 파괴됐어도 황궁우 삼문 앞에는 그나마 '공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위). 그러나 지금은 호텔을 너무 바짝 들여 짓는 바람에 문의 기능을 잃어버렸다(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