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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8. 14:42 내가 읽은 책들/2019년도

2019-005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양정무 지음

2017, 사회평론

 

대야도서관

SB114046

 

650.4

양74ㅁ   1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미술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몰라서 난처했던 당신을 위한

미술 이야기

 

유명하다는 전시회에 가봤지만 다리만 아팠던 당신,

박물관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들어도 머리가 하얘지는 당신,

맘먹고 미술책을 펼쳐도 열 페이지를 넘기기 힘든 당신,

안내서의 해설이나 인터넷 자료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당신,

미술이나 여행, 역사 이야기만 나오면 온화한 표정으로 과묵해지는 당신,

그래서 제대로 배우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당신을 위한 책!

 

'인문학의 꽃' 미술의 세계에 들어선 당신에게

 

미술은 원초적이고 친숙합니다.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고, 지식이 없어도 미술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미술은 우리에게 본능처럼 존재합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사는 그 자체가 인류의 역사라고 할 만큼 길고도 복잡한 길을 걸어왔기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단순해 보이는 미술에도 역사의 무게가 담겨 있고, 새롭다는 미술에도 역사적 맥락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미술을 본다는 것은 그것을 낳은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말이며, 그 시대의 영광뿐 아니라 고민과 도전까지도 목격한다는 뜻입니다.

선진국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세계와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이해의 깊이와 폭을 보여주며, 인류의 업적에 대한 존중까지도 담아냅니다.

하루 살기에도 바쁜 것이 우리네 삶이지만 미술 속에 담긴 인류의 지혜를 끄집어 낼 수 있다면 내일의 삶은 다소나마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미술에 담긴 원초적 힘을 살려내는 것, 미술에서 감동뿐 아니라 교훈을 읽어내고 세계를 보는 우리의 눈높이를 높이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소명입니다.

- 양정무 교수, 미술 이야기를 시작하며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발견한 백과사전의 삽화에 마음을 빼앗긴 후 미술을 운명이라 믿게 됐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이자 한국예술연구소 소장이다. 19대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존스홉킨스 대학교와 메릴랜드 미술대학에서 방문교수로 미술사를 연구하는 등 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양 미술의 발전을 상업주의와 연결시킨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학시절 도서관보다 박물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탔다.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지금도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 인기 강사다.

‘인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사를 우리 사회에 알리는 데 관심이 많다. 국립중앙박물관 강의를 비롯해 다양한 대중강연과 학술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네이버, 매경이코노미 등 여러 매체에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상인과 미술』, 『그림값의 비밀』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신미술사학』, 『조토에서 세잔까지-서양회화사』, 『그리스 미술』이 있다.

 

차례

 

  미술 이야기를 시작하며

 

I 원시미술 - 미술을 아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01 섹시한 돌멩이의 시대

02 그들은 동굴에서 무엇을 했을까

03 동굴벽화에 숨겨진 미스터리 코드

04 인류가 4만 년 동안 그려온 이야기

05 우리 가까이의 원시미술

 

II 이집트 미술 - 그들은 영생을 꿈꿨다

01 3000년 동안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린 나라

02 변하지 않는 완벽한 세계를 그리다

03 피라미드가 들려주는 불멸의 꿈

04 네바문에서 투탕카멘까지, 고대 문명의 르네상스

05 너무나 화려했던 황혼의 빛

06 미술의 영원한 주제, 삶과 죽음

 

III 메소포타미아 미술 - 삶은 처절한 투쟁이다

01 수로가 열어준 문명의 강

02 신전을 짓고 제물을 빚어 번영을 기원하다

03 광야에서 도시혁명이 시작되다

04 권력의 목소리, 권력의 얼굴

05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결정판

 

작품 목록

사진 제공

더 익어보기

 

프랑스 내륙의 천연 돌다리 퐁다르크는 여름이면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름난 휴양지다.

그러나 아직 빙하기가 끝나지 않았을 3만 년 전으로 돌아가면,

우리 조상은 이곳에서 추위와 짐승들에 맞서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이다. 인류는 그 모든 위협을 극복하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깊은 동굴 속에 그 비결이 숨어 있다.

- 퐁다르크, 프랑스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

- 오스카 와일드

 

빗살무늬토기, 서울 암사동 집터에서 출토, 신석기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빗살무늬토기 제작 과정

 

주먹도끼,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출토, 구석기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연천에서 발굴된 이 주먹도끼로 인도 동쪽에는 주먹도끼를 만들 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학설이 뒤집어졌다.

 

돌도끼 제작 과정

존 프레레, 「서퍽 지역 혹슨에서 발견된 부싯돌 무기에 대한 기술」, 1800년 1797년 골동품 수집가 존 프레레는 약 40만 년 전에 만들어진 주먹도끼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렸지만 그 발견은 19세기 중엽에야 인정받았다.

 

광고는 20세기의 동굴벽화다.

- 마셜 맥루한

 

라스코 동굴이 있는 몽티냑 몽티냑은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에서 약 180킬로미터 들어간 내륙에 위치한다.

라스코 동굴 입구 단면도

황소의 방, 프랑스 라스코 동굴, 1만7000년 전 라스코 동굴의 입구에 들어서면 황소의 방이라 불리는 넓은 홀을 만날 수 있다. 대상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그림 솜씨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라게 된다.

황소의 방 파노라마, 라스코 동굴, 1만 7000년 전

입으로 안료를 뿌리는 기법으로 채색된 말

찰스 나이트, 퐁데고메에서 그림을 그리는 크로마뇽인 예술가들, 1920년, 미국자연사박물관 구석기인이 상체를 벗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동굴벽화가 그려지던 당시는 빙하기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온몸을 다 가린 옷차림이었을 확률이 높다.

라스코 동굴에서 출토된 기름 램프, 1만7000년 전 우묵한 곳에 기름을 담고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엑시알 갤러리의 입구, 라스코 동굴, 1만7000년 전 황소의 방을 나와 곧바로 직진하면 엑시알 갤러리의 입구가 나온다. 다양한 동물의 묘사가 벽면의 자연적인 생김새와 어울려 역동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아일랜드 엘크, 라스코 동굴의 엑시알 갤러리, 1만7000년 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동굴벽화의 중요한 감상 지점 중 하나다.

앱스에서 샤프트로 내려가는 사다리, 라스코 동굴, 1만7000년 전 둥근 천장 아래로 샤프트로 내려가는 가파른 철제 사다리가 설치돼 있다.

내장이 튀어나온 들소와 다친 남자, 라스코 동굴의 샤프트, 1만7000년 전 황소와 사람이 만들어내는 서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라스코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네이브, 라스코 동굴, 1만7000년 전 복도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검은 암소, 오른쪽에는 물을 건너는 사슴 떼가 묘사돼 있다. 원래는 복도 바닥이 더 높았지만 사람이 다니기 편하도록 땅을 평평하게 골랐던 듯하다.

사슴 떼, 라스코 동굴의 네이브, 1만7000년 전 바위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물을 건너는 사슴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검은 암소, 라스코 동굴의 네이브, 1만7000년 전 검은 암소는 흔히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한다.

두 마리의 유럽 들소, 라스코 동굴의 네이브, 1만7000년 전 유럽 들소 두 마리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듯하다. 두 들소의 뒷다리가 겹쳐져 있어 공간감과 깊이감을 준다.

라스코 동굴 Ⅱ를 보수하는 화가들 1983년 개장한 라스코 동굴 Ⅱ도 만들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났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보수가 필요하다.

베제레 계곡의 절벽 원시시대 베제레 지역은 풍요로운 곳이었기에 다양한 동물들의 교차점으로 기능했다.

베제레 계곡의 절벽을 활용해 지은 집 베제레 계곡의 절벽 아래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레제지 마을의 크로마뇽 호텔 실제로 호텔 뒤에는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일종인 크로마뇽인의 유적이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던 원인猿人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제일 처음으로 발굴된 화석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복원도

네안데르탈인을 복원한 밀랍 인형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 경로 오랜 세월 아프리카 대륙에 머물던 호모 사피엔스는 10만 년 전에서 4만 년 전 사이, 네안데르탈인이 먼저 정착해 있던 유럽 대륙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네안데르탈인 석상 레제지국립선사박물관 앞에는 과거 자신이 누비고 다녔던 베제레 계곡을 응시하는 듯한 네안데르탈인이 육중하게 서 있다.

파블로 피카소, 황소(state I)(왼쪽)와 황소, 1만4000년 전,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일부(오른쪽) 왼쪽의 작품은 '황소'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피카소는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를 보고 영감을 얻어 이 그림을 그렸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들소들, 알타미라 동굴, 1만4000년 전 구석기 화가는 알타미라 동굴 천장의 들어가고 나온 표면을 이용해 다양한 자세의 황소를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점박이 말과 손자국, 프랑스 페슈 메를 동굴, 2만2000년 전 점박이 말 두 마리가 각자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당시 이 지역에 점박이 말이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퐁다르크 천연 돌다리 퐁다르크가 있는 프랑스 중남부 지역에는 우리나라 중부 지역처럼 석회암 침식으로 만들어진 깊고 아름다운 동굴이 많다.

매머드 형상의 손바닥 자국, 프랑스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쇼베 동굴 입구에는 자신을 증명하듯 손바닥 자국이 집요하게 찍혀 있다. 이 손바닥 자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동굴곰,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다소 귀여운(?) 모습으로 표현됐지만, 실제 동면하고 있던 동굴곰은 머물 동굴을 찾아다니던 인간에게 큰 위험 요소였을 것이다.

동굴곰의 머리뼈가 놓인 제단,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발견 당시 삼각형의 돌 위에 마치 제단에 올린 것처럼 동굴곰의 머리뼈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세 마리의 사자,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연속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사자 머리 세 개를 겹쳐 그려놓아 운동감이 느껴진다.

마지막 방,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종유석에 그려진 반인반수 쇼베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서는 두 반인반수가 겹쳐 그려진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최고의 예술은 언제나 가장 종교적이고

최고의 예술가는 언제나 독실한 신자다.

- 에이브러햄 링컨

 

사냥 당한 소, 프랑스 니오 동굴, 1만1000년 전 창 또는 화살에 찔린 동물이 묘사돼 있다.

기우제를 묘사한 산족 벽화 산족은 소를 잡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기우제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 소는 진짜 소가 아니라 '비의 신'을 상징한다.

내장이 튀어나온 들소와 다친 남자, 라스코 동굴의 샤프트, 1만7000년 전

안드레아 만테냐, 세바스티아노 성인, 1480년, 루브르박물관 중세에서 화살은 종종 질병을 상징하는 은유로 사용됐다. 특히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이 은유는 세바스티아노 성인을 통해 크게 유행했다.

앙리 브레이, 주술사, 1920년경 프랑스 세 형제 동굴에 그려진 동굴벽화를 재현한 그림으로, 사슴과 인간이 결합되어 주술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족 주술사와 춤을 추는 사람들 중앙의 동물처럼 기어 다니는 주술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니콜라스 빗선, 시베리아의 샤먼, 1692년 인류학자가 최초로 기록한 시베리아 지역 주술사의 모습이다. 머리에 사슴뿔을 달고 몸에 짐승 가죽을 둘렀다.

사자 인간, 4만 년 전, 독일울름박물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발렌도르프의 비너스, 2만8000년 전, 빈자연사박물관 이 조그만 조각상은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미술품 중 하나로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발렌도르프의 비너스

흙으로 빚은 여인상, 5000년 전, 국립중앙박물관

홀레펠스의 비너스, 3만5000년 전, 블라우보이렌선사박물관

차탈회위크 유적지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는 33만 평 규모의 신석기시대 유적지로,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차탈회위크 복원도 차탈회위크 유적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한 모습이다. 언덕을 따라 집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계단식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이 없으며, 출입은 옥상으로 했다.

두 개의 사자 장식을 한 의자에 앉은 어머니 신, 8000년 전,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 차탈회위크에서 발견된 육중한 몸의 여신상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만든 구석기시대의 신앙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복원한 차탈회위크의 예배소 벽에 걸린 황소 모형을 통해 구석기시대부터 존재했던 황소 숭배 신앙이 이 시대까지 지속됐음을 알 수 있다.

황소 벽화, 차탈회위크 유적지에서 출토, 8000년 전 거대한 황소를 사냥하는 그림으로 추정된다.

위 황소 벽화의 복원도

 

예술은 인간의 본성이요,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

- 필립 베일리

 

나미비아 칼라하리 사막 부근에 살고 있는 산족 우리에게는 부시맨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산족은 아직도 남아프리카 곳곳에 1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호주 카카두국립공원의 노우랜지 록 노우랜지 록은 아주 오래전부터 호주 원주민들에게 신성한 장소로 인식돼 온 공간으로,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인상적이다.

엑스레이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 카카두국립공원, 노우랜지 록 이 그림에는 대상의 내부를 그대로 그린 것 같은 엑스레이 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호주 원주민의 창세 신화, 카카두국립공원, 노우랜지 록

미미 신, 카카두국립공원, 우비르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진 미미는 생긴 것처럼 매우 변덕스러운 신으로 전해진다.

호주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울룰루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인 울룰루에 가면 시간과 날씨의 년화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지는 웅장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소용돌이 모양의 추상 벽화, 울룰루-카타추타국립공원 원주민만이 알고 있는 추상적인 기호가 가득하다. 울룰루에 가면 현지 원주민이 직접 벽화를 소개해주는 관광 코스가 마련돼 있다.

손과 사냥도구가 그려진 벽화, 카나본국립공원 손자국과 함께 그려진 부메랑, 그물 등의 사냥도구가 그림을 그린 부족 공동체의 정체성이라고 보기도 한다.

잭슨 폴록, 넘버 1, 1948년, 뉴욕현대미술관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잭슨 폴록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그림 오른쪽 위에 잭슨 폴록의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왈란 마리까, 하늘에서 본 시드니, 1963년, 호주국립박물관 호주 원주민 화가 마왈란 마리까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시드니를 호주 원주민만의 표현 방식으로 소화해냈다.

오귀스트 앵그르, 물에서 태어난 비너스, 1848년, 프랑스콩데미술관 18세기 서구 화단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스린 그림만을 아름답다고 인정했다.

제퍼슨 데이비드 칼판트, 줄리앙 아카데미의 부그로 아틀리에, 1891년, 드영미술관 19세기에 확립된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은 아직도 우리나라 미술 교육에 짙게 남아 있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91년, 오르세미술관 타히티로 떠나기 전의 자신을 그린 작품이다. 고갱의 뒤편 왼쪽에는 1889년 완성한 '황색 그리스도', 오른쪽에는 1889년 완성한 '그로테스크한 얼굴 형태의 항아리'가 그려져 있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8년, 보스턴미술관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 섬에서 그린 그림 중 하나다. 개인적인 일로 괴로워하며 완성해낸 그림으로, 제목에서 느껴지듯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가로 크기가 무려 3미터70센티미터가 넘는 대작이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뉴욕현대미술관 종래의 모든 조형 규칙을 파괴한 피카소의 파격적인 이 그림은 당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른쪽 두 여인의 얼굴은 입체파 탄생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림의 모델은 바르셀로나의 아비뇽 거리에서 몸을 팔던 여성이라고 전해진다.

에른스트 키르히너,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 1909년, 테이트모던미술관 모든 걸 벗어던지고 느긋하게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른하게 느껴진다.

아프리카 가면(왼쪽)과 '아비뇽의 처녀들' 부분(오른쪽)

 

동굴벽화를 그리든 인터넷을 이용하든

인간은 언제나 비유와 우화를 통해

역사와 진실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우리는 뿌리까지 이야기꾼입니다.

- 비번 키드론

 

울산 태화강 상류 울산 지역의 공업화로 심각하게 오염됐던 태화강은 최근 각계의 노력으로 옛날의 맑은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어 가볼 만하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정한 이미지 단단한 바위에 뾰족한 도구로 300개가량의 형상을 새겨 놓았다.

장생포고래박물관

빗살무늬토기,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는 곡식을 저장할 목적만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무늬가 과하게 들어가 있다.

마왈란 마리까, 하늘에서 본 시드니, 1963년

 

 

잔잔하게 흐르는 나일 강은

여유롭게 뱃놀이를 즐기며 이집트의 풍광을

만끽하기 좋은 관광지다. 하지만 5000년 전 이집트인은

매년 반복되는 나일 강의 범람처럼 인간의 삶도

생과 사를 오가며 영원하리라 믿었다.

범람이 잦아들면 비옥해지는 토지처럼

사후의 삶도 풍요로우리라 생각했다.

- 나일 강 유역, 이집트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저세상에 가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할 거라고 믿었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아냈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는가?'

-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카터 챔버스의 대사

 

기자의 대 피라미드, 기원전 2530~2460년경, 기자 낙타 행렬과의 비교를 통해 피라미드의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나일 강 유역에 새겨진 나일로미터 이집트인들은 나일로미터로 나일 강의 범람 수위를 쟀다.

센네젬의 무덤 벽화(부분), 기원전 1300년~1200년경, 테베 남자는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여자는 그 뒤를 따르며 씨를 뿌리고 있다. 소와 나무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네페르마트와 왕비 이텟의 무덤 벽화(부분), 기원전 2600년경, 이집트박물관 인물의 이목구비 등 구체적인 형태는 훼손되었지만 새를 잡고 밭을 가는 행위는 잘 드러나 있다.

아스완 하이 댐 반복되는 나일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건설한 세계 최대 규모의 댐이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세운 신전, 100년경, 아길키아 섬 규모는 작지만 이집트 고유의 파피루스 모양으로 장식한 기둥이 눈에 띈다.

칼립샤 신전 부조, 기원전 20년, 아스완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 파라오처럼 표현되어 있다. 로마가 이집트 문화를 존중했음을 알 수 있다.

 

유행은 한때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 이브 생 로랑

 

아부심벨 신전, 기원전 1250년경, 아스완 바위산을 깎아 만든 신전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관람객은 람세스 2세의 거상 사이에 난 문을 통해 신전에 입장한다.

구슬과 신성문자로 장식한 고대 이집트 목걸이, 제작연도 미상, 베를린박물관 각종 상징물 모양의 작은 장식이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화려한 색채가 시선을 끈다.

투탕카멘 펜던트,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 박물관 각종 상징물이 완벽한 수준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아메넴헷 왕과 헤맷 왕비의 무덤 벽화, 기원전 1800년경, 리슈트 정면성의 원리에 따라 그려진 왕과 왕비, 각종 물건들이 보인다. 채색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박물관 이집트박물관에 간다면 꼭 보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몸체부분이 세 단으로 나뉘어 있고 단마다 그림이 새겨져 있다.

아멘호텝 3세의 신하 라모세의 가족 무덤에 새겨진 부조, 기원전 1355년경, 테베 짙은 눈화장이 두드러진다. 얼굴은 측면, 눈은 정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뒷면, 부분) 각각 크기가 다른 세 명의 인물과 커다랗게 그려진 매가 화면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네바문 무덤 벽화의 악사와 무희, 기원전 1400년경, 영국박물관 자유롭고 유연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무희와 정면을 바라보며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의 모습에서 정면성의 원리는 높은 신분의 인물에게만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메넴헷 왕과 헤맷 왕비의 무덤 벽화(부분, 왼쪽)와 네바문 무덤 벽화의 악사와 무희(부분, 오른쪽) 신분이 높은 사람을 그릴 때는 정면성의 원리에 충실히 따랐지만 신분이 낮은 사람은 정면성의 원리에 따르지 않았다.

나르메르 왕의 비서실장(뒷면, 부분) 한 손에 나르메르 왕의 슬리퍼를 든 '비서 실장'이 작게 그려져 있다.

거대한 매가 당당한 모습으로 파피루스 위에 서 있다. 상 이집트(매)가 하 이집트(파피루스)를 정복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집트 항공기의 날개에 그려진 호루스 호루스는 지금도 이집트의 상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깃발을 든 병사들 뒤로 거대하게 조각된 나르메르 왕이 걷고 있다. 오른쪽에는 목이 잘린 적군의 시체가 즐비하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앞면, 부분) 거대한 황소가 성벽을 파괴하고 있다. 황소의 발 아래에는 쓰러진 적군이 짓밟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뒷면, 부분) 섬세한 황소 머리 문양이 장식된 나르메르 왕의 의복에 실제 황소 꼬리가 매달려 있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앞면, 부분) 팔레트의 맨 윗부분의 황소 두 마리 사이에 물고기처럼 생긴 신성문자가 보인다. 신성문자는 나르메르 왕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헤시라의 초상, 기원전 2610년경, 이집트박물관 커다란 나무 패널에 새겨진 조각으로, 이집트의 서기이자 의사였던 헤시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파쉐리 미라, 기원전 664~332년경, 루브르박물관 얼굴과 온몸은 붕대로 감았으며 교차하여 모은 팔 위로는 호루스 모양의 장식을 덮었다.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미라를 둘러싼 관람객 이집트인의 내세관에 따르면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와 미라를 구경하는 관람객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도 없다.

라호테프와 그의 부인 네페르트, 기원전 2570년경, 이집트박물관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는 인체 조각상이다.

라호테프와 그의 부인 네페르트(부분) 두 조각 다 눈을 그려 넣는 대신 유리알을 사용했다. 그 덕분에 조각이 사람 같은 눈빛을 지니게 되었다.

서기 좌상, 기원전 2450년경, 루브르박물관 책상다리를 하고 글을 쓰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눈에 유리알이 박혀 있어서 형형한 눈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인 세넵과 그의 가족, 기원전 2200년경, 이집트박물관 위쪽에는 부부가, 아래쪽에는 두 아이가 조각되어 있다.

러노페르의 조각,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박물관 입상이며 뒤쪽의 기둥과 조각이 발을 딛고 있는 받침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

 

모두가 시간을 두려워하지만

피라미드만이 세월을 비웃는다.

- 아라비아 속담

 

세프세스카프 마스타바, 기원전 2500년경, 사카라 주로 귀족의 무덤으로 만들어진 마스타바는 고대 이집트의 초기 무덤 양식이다.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 기원전 2660년경, 사카라 마스타바보다 훨씬 커진 규모가 눈에 띈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훗날 대 피라미드로 발전한다.

기자 대 피라미드, 기원전 2530~2460년경, 기자 세 개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모여 있다. 우리는 보통 '피라미드'라고 하면 이 모습을 떠올린다. 단 한 사람을 위한 무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규모다.

조세르 왕의 좌상, 기원전 2610년경, 이집트박물관 위엄을 갖춘 다소 경직된 자세로 제작되었다. 원래 유리나 수정으로 눈을 만들어 넣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소실되었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 기원전 2530~2460년경, 기자 각각 쿠푸(왼쪽으로부터 첫번째), 카프레(두번째), 멘카우레 왕(세번째)의 무덤이며 가장 큰 것이 쿠푸 피라미드, 윗부분에 마감재가 남은 것이 카프레 피라미드다.

쿠푸 피라미드의 내부 구조

진시황릉 근처 병마용갱에서 발견된 진흙 병사들, 기원전 246~208년, 중국 산시성 이곳에는 6000개 이상의 병사 모형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이 병사들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표면

멘카우레 왕과 하토르 여신, 노메의 의인화 형상, 기원전 2460년, 이집트박물관 왕과 여신들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카프레 왕의 조각상(부분),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박물관 왕의 어깨 뒤로는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가 있다. 이 호루스는 왕을 수호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실질적으로 조각상의 목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조세르 왕의 좌상(부분) 카프레 조각상과 비교하면 거친 마감과 다소 부자연스러운 신체 표현이 엿보인다.

대 피라미드 앞에 위치한 스핑크스, 기원전 2650년경, 기자 얼굴 부분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 규모와 생김새에서 당당한 위용이 느껴진다. 마치 파라오의 무덤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스핑크스와 꿈의 석비, 기원전 2650년경, 기자 앞쪽에 자리한 석비는 투트모세 4세가 세운 기념비다. 여기에는 1000년 동안 모래언덕 아래 묻혀 있던 스핑크스를 발굴한 사연이 적혀 있다.

카프레 왕의 계곡신전 기둥, 기원전 2500년경, 기자 돌을 깎아 만든 기둥과 벽면이 정확한 직각을 이루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기술력을 알 수 있다.

태양의 배, 기원전 2650년경, 기자 카프레 신전에서 발굴했으며 모든 부속이 조각난 채로 발견되었다. 길이가 약 4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배다.

고대 이집트 신성문자 각종 새, 사람, 눈 등 여러 모양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문자다. 이 문자는 19세기에 들어서야 해독되었다.

낙소스의 스핑크스, 기원전 570년경, 델포이고고학박물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문명을 폄훼하려는 의도로 몇몇 이집트 신의 이름을 부정적으로 지었다.

 

부귀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권세는 하룻밤의 꿈이다.

- W. 쿠퍼

 

신왕국 왕들의 무덤이 있는 왕들의 계곡, 기원전 1519~1000년경, 룩소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 계곡 같지만 곳곳에 파라오들이 묻혀 있다.

네바문 무덤벽화, 늪지의 새 사냥, 기원전 1350년경, 영국박물관 선명한 색채와 세밀하게 표현된 동물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네바문 무덤벽화, 연못이 있는 정원, 기원전 1350년경, 영국박물관 연못을 둘러싼 나무들과 연못 안 다양한 물고기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무 열매도 다채롭게 채색되어 있다.

연못이 있는 정원(부분) 왼쪽, 오른쪽의 새와 물고기가 각각 왼쪽, 오른쪽을 향해 있다. 또 새는 한쌍, 물고기는 한 마리씩 그려져 있다. 약간의 예외도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사자의 서(부분), 기원전 1275년경, 영국박물관 망자의 영혼이 신들의 안내를 받으며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그림 속에서 차분함과 엄숙함이 느껴진다.

사자의 서(부분) 망자를 안내하는 호루스와 심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는 저승의 왕 오시리스의 모습이 보인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조각, 기원전 1480년경, 데이르 알 바하리 조각상의 얼굴이나 외형에 여성 파라오의 정체성이 반영되었으며 파라오의 상징물을 양손에 들고 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기원전 1460년경, 데이르 알 바하리 자연 암반을 깎아 만든 엄청난 규모의 사원이다. 3층으로 되어 있는 이 사원은 균형잡힌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품고 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입구, 기원전 1460년경 자신의 사후를 위해 거대한 사원을 지을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하트셉수트 여왕이 웅장하고 위엄 있는 파라오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아멘호텝 4세 조각,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박물관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왕이었던 아멘호텝 4세의 조각상이다. 그의 개혁 정책으로 미술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아멘호텝 4세 조각,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박물관 이 조각상에서 아멘호텝 4세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전무후무한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네페르티티로 추정되는 조각상, 기원전 1350년경, 루브르박물관 아멘호텝 4세의 치세 기간 미술에 나타난 변화를 잘 보요주는 조각상으로, 신체표면과 옷주름이 인상적이다.

아크나톤 가족의 모습을 담은 부조, 기원전 1350년경, 베를린이집트박물관 아멘호텝 4세와 그의 부인 네페르티티 왕비, 딸들이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태양의 신 아톤의 손길이 아멘호텝 4세 가족을 축복하듯이 보듬어준다.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 기원전 1340년경, 베를린이집트박물관 깔끔한 형태와 엄숙한 표정에서 왕비의 위엄이 느껴진다. 목의 길이는 비현실적으로 길지만 머리에 쓴 관과 어우러져 균형을 이룬다.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정면), 기원전 1340년경, 베를린이집트박물관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기원전 1330년경, 이집트박물관 투탕카멘 미라의 얼굴을 덮고 있던 이 화려한 황금마스크에는 무려 11킬로그램의 금이 사용되었으며 각종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되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궤짝, 기원전 1330년, 이집트박물관 이 궤짝에는 전차를 타고 전장을 누비는 용맹한 투탕카멘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적군들은 모두 쓰러지거나 도망치고 있다.

투탕카멘의 황금 의자, 기원전 1335년경, 이집트박물관 황금으로 만들어진 투탕카멘의 의자는 기본적인 구조와 장식 측면에서 모두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의자 다리의 형태, 뒷면과 옆면의 장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의자의 뒷부분과 양옆에는 고개를 들고 있는 코브라의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이 코브라는 파라오를 보호하는 상징물이다.

의자 등받이에는 태양신 아톤에게서 나오는 빛이 투탕카멘과 그의 부인을 감싸고 있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역사에서는 가장 불운했던 왕이지만 후대인에게는 화려한 미술 작품의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

-세네카

 

람세스 2세의 미라, 이집트박물관 80년의 재위동안 신왕국의 번영을 이끌었던 람세스 2세의 생전의 권위와 미라의 모습이 극적 대비를 이룬다.

람세스 2세의 조각상, 기원전 1200년경, 룩소르 신전 람세스 2세의 조각상은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만들어져 잇다. 이 조각 역시 람세스 2세의 청년 시절 모습을 담았다.

상공에서 본 카르나크 대신전, 룩소르 카르나크 대신전은 밀라노 성당처럼 거대한 성당이 7개 정도 들어가는 규모다.

스핑크스의 길, 카르나크 대신전 아문 신전 내부의 길 양쪽에 열 지어 있는 스핑크스를 닮은 조각상 때문에 '스핑크스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사실 이 조각상은 스핑크스가 아닌 아문신의 상징이다.

카르나크 대신전 중 아문 신전의 내부, 기원전 1500~1100년경, 룩소르 거대한 규모의 카르나크 대신전은 신왕국의 번영과 파라오의 막대한 권력을 나타내는 증거다. 신전 곳곳에는 파라오와 신들의 조각이 서 있다.

카르나크 대신전의 열주전 6층 건물 높이의 기둥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카르나크 신전 내부에는 형태가 온전하게 보존된 창문이 남아 있다. 고대 이집트인의 뛰어난 석재 가공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templo de debo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데보드 신전, 기원전 200년경, 마드리드 1968년 이집트 정부는 수몰 위기에 처한 아부심벨을 이전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스페인 정부에 이 신전을 선물했다. 현재 스페인마드리드에 있다.

룩소르 신전 앞의 오벨리스크, 기원전 1300년경, 룩소르 태양신을 상징하는 이 오벨리스크는 30~40미터에 이르는 돌덩이를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

로마 성 베드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기원전 2494~2345년경, 로마 기원후 40년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약탈해왔다. 유럽의 도시 곳곳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트가 있다.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카르나크 대신전의 열주전

아부심벨, 기원전 1250년, 아스완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자신과 아애 네페르티리를 위해 지은 것으로, 한때 수몰될 위기에 처했지만 안전한 위치로 옮겨졌다.

아부심벨 대신전 입구의 람세스 2세 거상, 기원전 1250년

아부심벨 소신전, 기원전 1250년경 자연 암반을 깎아 만든 이 신전은 람세스 2세의 부인인 네페르티리를 모시고 있다.

어둠에 싸인 저승의 신 프타 아부심벨 내부에는 일 년에 두 번 햇빛이 들어오는데, 그깨 저승의 신 프타에게는 빛이 비치지 않는다. 철저한 계산에 따른 설계 덕분이다.

이 모형을 통해 지금은 수몰된 원래 아부심벨 신전의 위치와 이전 후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아부심벨 신전을 통째로 이전하는 것은 엄청난 대공사였다. 크레인을 동원하여 거대한 신상을 재조립하고 있다.

로제타스톤, 기원전 196년경, 영국박물관 나일 강 하류 로제타에서 발견된 이 비석은 이집트 신성문자 해독의 열쇠가 되었다.

남아 있는 파편을 통해 재구성한 로제타스톤의 전체 모습

샹폴리옹이 해석한 이집트 상형문자표 왼쪽이 그리스 알파벳이고 오른쪽이 이집트 상형문자다.

샹폴리옹이 읽어낸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

 

죽음을 무시하지 말고 인정하라.

죽음 역시 자연의 섭리 중 하나이므로.

- 베르톨트 브레히트

 

장군총, 413~490년경, 중국 집안현 장군총은 폭 33미터, 높이 13미터로 이집트의 일반적인 피라미드와 비슷한 크기다.

석촌동 고분군, 2세기 후반, 서울 석촌동 서울 석촌동에 위치한 백제 고분군 덕분에 가까운 곳에서도 우리 조상들이 만든 피라미드를 만날 수 있다.

경주 대릉원 전경, 4~6세기, 경주 멀리 작은 언덕처럼 솟아 있는 것이 모두 무덤이다. 12만 평의 대지에 23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카노푸스 단지, 기원전 1200년경, 베를린이집트박물관 카노푸스 단지 안에는 창자, 폐, 간 등 장기가 보관되어 있다. 뚜껑 모양은 각 장기의 수호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키키 스미스, 무제, 1986년, 휘트니미술관 12개의 유리병에 침, 눈물, 오줌 등 인간의 체액을 담아 보여준다.

키키 스미스, 누트, 1993년 몸통이 사라지고 팔다리만 남은 누트 여신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신화가 사라져 버린 현대사회의 단면을 상징한다.

하늘의 여신 누트, 기원전 1250년경, 영국박물관 고대 이집트인은 하늘의 여신 누트가 몸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정복수, 사람2, 2009년 인간의 신체를 내장 기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하나의 기계로 표현했다.

 

중동의 지배자였던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는

만국의 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그러나 2500년 전 저 문을 거쳐 도시에 들어서면

누구나 거대한 왕궁과 곳곳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 앞에서

완전히 압도되었을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도시를 세우고 문명을 일궈온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미술을 자신을 지키는 방패이자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 페르세폴리스의 만국의 문, 이란

 

경작지가 생기는 곳에 다른 기술과 예술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농부야말로 바로 인간 문명의 선구자이다.

- 대니엘 웹스터

 

문명을 잉태한 두 강 사이의 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 해당된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은 비옥한 토질 덕분에 인류 역사상 농업이 제일 먼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강 하류 지역의 생활상 오늘날 두 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은 갈대를 이용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바빌로니아 수로 지도 점토판, 기원전 1680년경, 노르웨이, 개인소장 이 점토판에는 구석구석 물이 흘러들도록 만들어진 체계적이고 조밀한 수로 시스템이 새겨져 있다.

 

예술은 사람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수단 중 하나다.

- 레프 톨스토이

 

현재의 우루크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흙무더기처럼 보이는 폐허만 남아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도시였을 것이다.

백색신전과 지구라트, 기원전 3000년경, 이라크 현재 우루크에 남아 있는 백색신전은 훼손되어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

백색신전과 지구라트 상상도 원래는 이렇게 높은 기단 위에 신전이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에서 발견된 도기, 기원전 5000~4000년경, 루브르박물관 곡식 저장용 그릇으로 추정되는 이 도기는 농업 활동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텔 알 우바이드에서 발견된 도기, 기원전 4500~4000년경, 보스턴미술관 수사에서 발견된 도기와는 달리 추상적인 형태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와르카 병, 기원전 3200~3000년경, 이라크국립박물관 이라크의 국보급 화병으로, 메소포타미아 초기 미술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국립박물관이 대대적 약탈을 당했을 때도 도둑맞았던 와르카 병은 몇 달 만에 훼손된 채 다시 돌아왔다.

여성의 두상(아난나 추정), 기원전 3200~3000년경, 이라크국립박물관 이 마스크는 아난나 여신 또는 여사제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

눈의 우상, 기원전 3300~3000년경, 영국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이렇게 눈이 강조된 작은 조각상이 다수 발견되었다.

텔 아스마르 조각상군, 기원전 2900~2350년경,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눈을 크게 뜬 채로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과 신전에서 발견됐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 조각상들은 신에게 기도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누구나 역사를 만들 수 있지만

위대한 자만이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

- 오스카 와일드

 

우르 복원도 우르는 두꺼운 성벽과 해자를 각춘 도시였으며 바다에 접해 있었다.

우르 지구라트(신바빌로니아 시기 복원), 기원전 600년경, 이라크

우르 왕조 무덤 발굴 장면 이 무덤이 발굴 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푸아비 왕비 장신구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온전한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지만 다양한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장신구였음을 알 수 있다.

푸아비 왕비 장신구(복원),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화려한 금과 라피스 라줄리 장식이 우르 문명의 도시적 성격을 보여준다.

푸아비 왕비 원통 인장,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라피스 라줄리를 사용해 호화롭게 장식된 인장에는 악기 연주자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황소 머리 장식의 악기,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푸아비 왕비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로 산산조각 난 것을 복원했다.

황소 머리 장식의 악기(부분) 전체 4단으로 나뉘어 있고 각 칸에 동물, 사람, 반인반수의 모습이 자개로 장식돼 있다.

양과 황금가지,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좌우대칭의 나무 위에 양이 발을 걸치고 올라가 있는 장식품이다. 황금으로 만든 나뭇가지와 선명하게 채색된 양이 인상적이다.

우르의 군기,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최초 발굴자인 레오나르도 울리가 군기라는 이름을 붙여 계속 그렇게 부를 뿐 실제로는 깃발이 아니라 어떤 장식품의 부속물이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우르의 군기 평화 면 삼단으로 나뉜 화면에 연회 장면이 자개장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1단 : 왕과 귀족들 2단 : 가축을 이끄는 사람들 3단 : 곡식을 나르는 사람들

우르의 군기 전쟁 면 그림 풍은 만화와도 비슷하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무척 잔혹하다.

1단 : 권력자 앞에 선 포로 2단 : 우르 군대와 포로 행렬 3단 : 전차와 포로의 시신

아카드 통치자의 두상(사르곤 추정), 기원전 2250~2200년경, 이라크국립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권력자를 표현하는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나람신 전승비, 기원전 2230년경, 루브르박물관 적들을 밟고 서있는 위풍당당한 나람신 왕의 모습과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적군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구데아 입상, 기원전 2090년경, 루브르박물관 우르 제3왕조 시기의 조그만 도시국가 라가시의 왕 구데아는 자신의 모습을 새긴 조각상을 여러 개 남겼다.

구데아 좌상, 기원전 2120년경, 루브르박물관 이 조각상은 머리 부분이 소실되었지만 몸에 새겨진 글자를 통해 구데아 왕의 조각상임을 알 수 있다. 무릎에는 신전의 설계도면이 새겨져 있다.

함무라비 법비, 기원전 1750년경, 루브르박물관 아랫부분에는 법 조항이, 윗부분에는 함무라비 왕과 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높이 2.25m)

함무라비 법비(부분)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 조지 오웰

 

현재의 하투샤 히타이트 제국은 한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호령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수도 하투샤를 제외하고는 번영을 증명해 줄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투샤 복원도 하투샤는 두 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상 도시와 하 도시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자의 문, 기원전 1300년경 하투샤의 성문들 가운데 하나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용맹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사자 조각상이 문에 새겨져 있다.

사자의 문 디지털 복원도

카데시 전투, 기원전 1250년경, 이집트, 아부심벨 신전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 신전 내부에 있는 부조로 이집트 군대가 히타이트 군대를 무찌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카데시 전투 도해

히타이트 - 이집트 평화비문, 기원전 1258년, 이스탄불고고학박물관 이 비문은 세계 최초의 강대국 간 평화조약이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 입상, 기원전 850년경, 영국박물관

님루드 왕궁 상상도, 1853년 님루드를 발굴한 고고학자 오스틴 레이어드의 책에 실린 그림으로 님루드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도시로 묘사되어 있다.

라마수, 기원전 883~859년경, 영국박물관 무게 10톤 이상의 거대한 돌을 통째로 깎아 만든 수호 신상으로, 성문이나 왕궁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유물의 도난을 막기 위해 미군 탱크가 국립이라크박물관 앞을 지키고 있다.

라마수, 기원전 883~859년경,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라마수는 사람의 머리, 사자 또는 황소의 몸통, 날개를 가진 상상의 동물로 용맹함의 상징이었다.

님루드 궁전 왕좌의 방 상상도, 1854년 왕궁 내부의 왕의 접견실은 화려하게 채색된 부조로 장식되어 있었다.

영국박물관 아시리아 전시실 영국박물관 아시리아 전시실에는 아시리아 왕궁 유적에서 뜯어온 대규모 부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명의 나무, 기원전 865~860년경, 영국박물관 이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에서 발견된 이 부조는 원래는 왕좌 뒤에 새겨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슈르나시르팔 왕의 사자 사냥, 기원전 865~860년경, 영국박물관 전차에 오른 채로 사자를 사냥하는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모습이 묘사된 이 조각은 님루드의 궁전에서 발견되었다.

적에게 화살을 쏘는 아시리아 궁수들, 기원전 883~859년경, 영국박물관 이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에서 발견된 이 부조에는 강물로 뛰어든 적들을 향해 활을 쏘고 있는 아시리아 군대의 용맹한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라기스 전투, 기원전 700~692년경, 영국박물관 유대의 중요 도시였던 라기스를 아시리아 군대가 공격한 사건을 표현한 부조 작품으로 총길이 12미터에 이른다.

라기스 전투(부분1) 유대 군사들이 성탑에서 화살을 쏘며 저항하고 아시리아 군사들은 사다리를 놓고 성채를 오르고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라기스 전투(부분2) 산 채로 포로의 살가죽을 벗기는 모습을 표현한 부조.

라기스 전투(부분3) 손이 묶인 채 끌려가는 유대 포로들의 모습과 적군의 머리를 들고 행진하는 아시리아 군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라기스 전투(부분4)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아시리아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생명을 구걸하는 장면이다.

루브르박물관 아시리아 전시실 루브르의 아시리아 전시실에는 사르곤 2세의 코르사바드 왕궁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길가메시 조각상, 기원전 722~705년경, 루브르박물관 이 조각상의 모델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길가메시로 추정된다. 푸아비 왕비 무덤에서 발견된 악기(아래)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길가메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목재 운반, 기원전 700년경, 루브르박물관 왕궁을 짓기 위해 멀리 떨어진 레바논에서 목재를 운반해오는 과정을 부조로 새겼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사자 사냥, 기원전 645년경, 영국박물관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 왕이 맨손으로 사자를 제압하고 있는 장면을 새긴 부조이다.

죽어가는 암사자, 기원전 645년경, 영국박물관 화살을 맞아 다리가 마비되어가고 있는 암사자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사자, 기원전 645년경, 영국박물관 일부러 거칠게 표현한 배경은 화살을 맞고 몸부림치는 사자의 역동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프레드 파라드, 아슈르바니팔 청동 조각, 1988년, 샌프란시스코 한 손으로는 사자를 제압하고, 다른 손에는 점토판을 들고 있는 모습의 이 조각상은 정복군주이자 문화 군주였던 아슈르바니팔 왕의 복합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홍수 신화 점토판, 기원전 600년경, 영국박물관 아슈르바니팔왕의 점토판 도서관에서 발견된 이 점토판에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일부인 홍수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1827년, 루브르박물관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소재는 19세기 유럽 예술가들의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평화는 예술의 보모이다.

- 세익스피어

 

이슈타르 문(복원), 기원전 575년, 베를린페르가몬박물관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의 이름을 붙인 이 문은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였다.(폭 30m, 높이 14m)

이슈타르 문 조각을 발굴한 독일인들은 조각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맞춰서, 문의 형태를 복원했다.

이슈타르 문에 새겨진 색색의 동물 부조는 정복 지역의 대표적 동물을 새긴 것이다.

바빌론 복원도 바빌론은 벽돌로 지은 거대한 성채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앙에는 지구라트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슈타르 문 복원도 이 문을 지나는 각지로부터 온 사신 또는 포로들은 거대한 바빌로니아 제국의 위엄에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바벨탑 복원도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바벨탑의 높이는 90미터에 달했다고 한다.

바벨탑 석비, 기원전 604~562년경, 노르웨이, 개인소장 '지구라트 카딩기라키(탑 바벨)'라는 쐐기문자 단면도와 구조도가 새겨진 이 석비는 바벨탑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 중 하나이다.

키루스 원통, 기원전 539년경, 영국박물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신바빌로니아 정복 후 만든 것으로 피정복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파라바하르 문양, 기원전 486~465년경 페르세폴리스의 벽면에 새겨진 파라바하르 문양은, 페르시아 문명의 상징물이자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이기도 하다.

샤를 시피에, 페르세폴리스 상상도, 1892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시피에가 남긴 페르세폴리스의 상상도로,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도시 페르세폴리스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어 지금은 기둥과 터만 남아 있다.

페르세폴리스 평면도

페르세폴리스 입구 페르세폴리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111개씩 2단으로 이루어진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만국의 문, 기원전 486~465년경, 이란 파르스 주 페르세폴리스의 왕궁 입구에는 역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라마수 조각이 세워져 있다.

대접견실(아파다나), 기원전 486~465년경, 이란 파르스 주 흔적만으로도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이곳은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 피지배민들을 접견하던 곳이었다.

대접견실 기단 부조 대접견실의 기단에는 각지의 사신들이 새겨져 있다. 위로부터 순서대로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리디아인의 모습을 새긴 부조이다.

대접견실 계단 부조 대접견실로 향하는 계단 옆 벽에는 페르시아 근위병들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100개의 기둥이 있는 궁전, 기원전 486~465년경, 이란 파르스 주 100개의 기둥이 있던 이 거대한 건축물은 페르시아 제국의 회의실로 쓰이는 공간이었다.

다리우스 왕 궁전 기단 부조, 기원전 486~465년경, 이란 파르스 주 궁전의 기단 부분에도 앞선 왕국이 세운 왕궁들과 마찬가지로 부조가 새겨져 있다.

다리우스 왕 궁전 기단 부조 부분(위)과 아슈르바니팔 왕의 사자 사냥(아래) 다리우스 왕의 궁전 기단에 새겨진 사자 조각은 아시리아의 사자 조각에 비해 정형화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만국의 문의 기둥머리

그리스 에렉테이온 신전 기둥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 기둥

페르세폴리스 기둥 구조

수사의 다리우스 왕궁 기둥머리, 기원전 510년경, 루브르박물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이것은 기둥 전체가 아닌 머리 부분이다.

수사의 다리우스 왕궁 벽돌 장식, 기원전 510년경, 루브르박물관 푸른색으로 채색된 바탕에 페르시아 군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알렉산더 대왕 금화, 기원전 336~323년경,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의 금화를 모두 녹여 자신의 얼굴을 새긴 금화를 만들었다.

페르시아 금화, 기원전 400년경, 애슈몰린박물관 페르시아 제국 초기 아케메네스 왕조 시기에 제작된 금화로, 순금을 재료로 왕의 이미지를 새겨 제작했다.

베히스톤 산 실크로드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한 베히스톤 산은 평지에 우뚝 솟아올라 있어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베히스툰 비문, 기원전 486년, 이란 지상 100미터 높이의 암벽에 가로 25미터 높이 15미터 규모의 거대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9. 1. 10. 16:35 내가 읽은 책들/2019년도

2019-004 타박타박 서울유람

 

 

· 사진 김혜영

2017, 시공사

 

대야도서관

SB114695

 

981.1602

김94ㅅ

 

· 사진 김혜영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총무이사. 걷기 여행을 즐기는 여행 작가다.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평범한 풍경도 색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각종 기업체 사외보와 신문, 웹진, 잡지 등에 여행 기사를 기고하고 방송 매체를 통해서도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소소한 여행 에피소드는 네이버 블로그 '토토로의 여행공작소'에 기록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저서로는 <주말여행 버킷리스트 99> <5천만이 검색한 대한민국 제철여행지>와 <경북 걷기 좋은 길>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외 2권의 공저가 있다.

 

차례

 

프롤로그

 

첫 번째 유람 _ #종로구

나만 알고 싶은 뒷골목의 숨은 보석
신문로 경희궁 둘레길

서울 토박이도 모르는
행촌동 서울성곽 동네길

철거된 아파트 밑에서 발견한 옛 명승지
서촌 예술가의 길

조선 시대 선비의 별장 터를 찾아가는
부암동 백사실ㆍ석파정 계곡길

문학과 자연에 취하는
청운동 인왕산 자락길

고운 이름 불러주고픈
삼청동 별별 카페 골목길

창덕궁 담장길에 머문 예술의 향기
원서동 공방길

북촌과 서촌이 식상해졌다면 주목할 만한 곳
익선동 타임머신길

‘그땐 그랬지’ 고개 끄덕이며 걷는
동숭동 대학로 역사길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면 휘황찬란한 별천지
이화동 마을 박물관길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숭인동 만물시장길

명불허전, 전통의 향취가 살아 있는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900여 채의 한옥과 빌딩 숲의 조화
북촌 한옥마을길

 

두 번째 유람 _ #중구 #용산구 #강남구

을지로 골목에선 누구나 시간 여행자
을지 유람길

남산에 오르면 모두가 미니어처 세상
예장동 남산공원길

서울 변두리부터 최고 번화가까지 완전 정복
중림동 약현성당 순례길

‘역사길’이라 쓰고 ‘낭만길’이라 부르는
정동 근대건축물 답사길

한낮 공원에서 즐기는 피크닉
동부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정원길

때때로 카페놀이, 가끔은 문화생활
이태원동 경리단길

이색 박물관과 도서관이 궁금해
신사동 도산공원길

조선의 왕과 왕실에 얽힌 역사 이야기
삼성동 선정릉 솔숲길

 

세 번째 유람 _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

인스타그램에서 뜨는 핫 플레이스
망원동 시장 골목길

문화를 만들어가는 카페 집합소
상수동 카페 골목길

홍대 뒷골목에서 보물찾기
서교동 홍대 땡땡거리

기찻길 옆 한옥 카페
염리동 경의선 숲길

먹고 걷고 사랑하라
연남동 빈티지 골목길

서울에서 가장 멋진
안산 메타세쿼이아 숲길

연인들의 식도락 데이트 코스
연희동 연희맛길

미래의 계획도시를 걷고 싶다면
상암동 DMC 문화 거리

은빛 억새와 함께 한밤의 축제를
상암동 하늘공원 억새밭길

 

네 번째 유람 _ #성북구 #노원구 #성동구 #송파구

소박한 듯 세련된, 고고한 듯 소탈한
성북동 역사 인물 탐방길

옛 간이역이 데려다준 추억의 길
공릉동 폐경춘선 철길

개나리와 꽃사슴이 반기는
응봉동 개나리동산길

수제화 골목과 빈티지 카페의 앙상블
성수동 구두 장인의 거리

낭만을 안다면 연인과 함께 걸어요
광장동 아차산 생태공원길

골목길인가 만화방인가
성내동 강풀만화거리

봄날의 화려한 꽃놀이
방이동 몽촌토성 벚꽃길

 

다섯 번째 유람 _ #서초구 #관악구 #영등포구 #구로구 #양천구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며 걷고 싶은
반포동 허밍웨이길

언덕 위에서 즐기는 달콤한 휴식
반포동 서리풀공원 숲길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상도동 서달산 잣나무 숲길

유모차도 갈 수 있는 숲속 데크길
관악산 무장애 숲길

철공소마저 작품이 되는 창작인들의 아지트
문래동 샤링골목길

신생 수목원과 오래된 철길의 환상적 만남
항동 수목원 옆 철길

서울에 하나뿐인 향교 마을
가양동 양천향교 답사길

 

찾아보기

 

나만 알고 싶은 뒷골목의 숨은 보석

신문로 경희궁 둘레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번 출구 → 도보 14분(857m) → 경희궁 → 도보 3분(219m) → 서울역사박물관 → 도보 5분(320m) → 멘쯔 → 도보 1분(82m) → 커피스트 → 도보 1분(35m) → 성곡미술관 → 도보 11분(692m) → 세종예술시장 소소 → 도보 2분(150m) → 세종이야기 → 도보 6분(395m)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도보 5분(281m) → 경복궁

 

서울 토박이도 모르는

행촌동 서울성곽 동네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 도보 6분(360m) → 돈의문 터 → 도보 2분(147m) → 경교장 → 도보 8분(520m) → 기상청 서울관측소 → 도보 8분(483m) → 월암근린공원 → 도보 3분(170m) → 홍난파 가옥 → 도보 3분(191m) → 권율 장군이 심은 은행나무 → 도보 1분(78m) → 딜쿠샤 → 도보 5분(303m) → 까사펠리체 → 도보 15분(990m)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철거된 아파트 밑에서 발견한 옛 명승지

서촌 예술가의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 도보 6분(381m) → 대림미술관 → 도보 2분(156m) → 백송 터 → 도보 7분(428m) → 통인시장 → 도보 1분(30m) → 효자베이커리 → 도보 1분(50m) → 옥인길 → 도보 2분(150m) → 옥인피자 → 도보 2분(105m) →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 도보 7분(470m) → 수성동계곡 → 도보 12분(770m) → 대오서점 → 도보 4분(230m) → 청전 이상범 가옥 → 도보 5분(330m) → 이상의 집

 

조선 시대 선비의 별장 터를 찾아가는

부암동 백사실ㆍ석파정 계곡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 1711번 버스로 10분(6개 정류장) + 도보 1분(84m) → 세검정 → 도보 2분(139m) → 송스키친 → 도보 10분(686m) → 백사실계곡 → 도보 21분(1.4km) → 부암동 골목 → 도보 8분(520m) → 서울미술관 → 도보 1분(80m) → 석파정 → 도보 3분(217m) → 소마 → 도보 4분(250m) → 무계원

 

문학과 자연에 취하는

청운동 인왕산 자락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 7022 · 7212 · 1020번 버스로 15분(5개 정류장) → 윤동주문학관 → 도보 5분(350m) → 청운문학도서관 → 도보 3분(190m) → 인왕산 자락길 → 도보 50분(2km) → 사직공원 → 도보 4분(250m) → 사직동그가게 → 도보 4분(240m) → 홍건익 가옥 → 도보 2분(130m) →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 도보 1분(100m) → 라면점빵

 

고운 이름 불러주고픈

삼청동 별별 카페 골목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 도보 3분(190m) → 감고당길 → 도보 6분(430m) → 화개길 → 도보 4분(253m) → 삼청동 카페 거리 → 도보 11분(732m) → 눈나무집 → 도보 4분(243m) → 삼청공원 → 도보 8분(540m) → 복정길 → 도보 4분(292m) → 차 마시는 뜰 → 도보 5분(326m) → 정독도서관 & 서울교육박물관 → 도보 4분(279m) → 별궁길

 

창덕궁 담장길에 머문 예술의 향기

원서동 공방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 도보 7분(479m) → 창덕궁 → 도보 5분(366m) → 버거뱅 → 도보 2분(122m) → 싸롱 마고 → 도보 1분(63m) → 원서동 공방길 → 도보 8분(544m) → 원서동 빨래터 → 도보 1분(86m) → 고희동 가옥 → 도보 3분(200m) → 책방무사 → 도보 2분(100m) → 중앙도서관 → 도보 1분(50m) → 계동길 → 도보 7분(454m) → 북촌문화센터

 

북촌과 서촌이 식상해졌다면 주목할 만한 곳

익선동 타임머신길

 

지하철 1 · 3 · 5호선 종로3가역 4번 출구 → 도보 2분(120m) → 열두달 → 도보 1분(50m) → 익선동 골목길 → 도보 1분(70m) → 빈티지보니 & 수집 → 도보 1분(30m) → 식물 → 도보 8분(530m) → 운현궁 → 도보 9분(603m) → 서순라길 → 도보 12분(785m) → 종묘

 

‘그땐 그랬지’ 고개 끄덕이며 걷는

동숭동 대학로 역사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 도보 1분(81m) → 마로니에공원 → 도보 9분(540m)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 사적지 → 도보 7분(430m) → 창경궁 → 도보 14분(928m) → 성균관대학교 명륜당 은행나무 → 도보 10분(670m) → 정돈 → 도보 1분(81m) → 학림다방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면 휘황찬란한 별천지

이화동 마을 박물관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 도보 8분(520m) → 쇳대박물관 → 도보 7분(494m) → 이화동 벽화마을 → 도보 이동 → 이화동 박물관 골목 → 도보 이동 → 개뿔 → 도보 1분(50m) → 낙산성곽길 → 도보 12분(817m) → 창신동매운족발 → 도보 17분(973m) →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 도보 8분(493m) → DDP 서울밤도깨비야시장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숭인동 만물시장길

 

지하철 1 · 6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 → 도보 4분(264m) → 낙산냉면 → 도보 5분(365m) → 동묘 구제시장 → 도보 1분(69m) → 동묘 → 도보 12분(716m) → 황학동 주방 거리 → 도보 3분(152m) → 황학동 벼룩시장 → 도보 1분(70m) → 신당창작아케이드

 

명불허전, 전통의 향취가 살아 있는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 도보 5분(310m) → 조계사 → 도보 3분(186m) → 체신기념관 → 도보 5분(278m) → 꽃, 밥에 피다 → 도보 1분(70m) →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 도보 2분(120m) → 쌈지길 → 도보 5분(320m) → 아름다운차박물관 → 도보 7분(466m) → 탑골공원 원각사지십층석탑

 

900여 채의 한옥과 빌딩 숲의 조화

북촌 한옥마을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 도보 6분(424m) → 대장장이화덕피자 → 도보 2분(150m) → 가회동 공방 골목 → 도보 2분(130m) → 북촌로11길 → 도보 6분(386m) → 북촌전망대 → 도보 10분(666m) → 백인제가옥

 

을지로 골목에선 누구나 시간 여행자

을지 유람길

 

지하철 2 · 3호선 을지로3가역 2번 출구 → 도보 1분(33m) → 오구반점 → 도보 2분(110m) → 커피한약방 → 도보 2분(126m) → 타일 · 도기 골목 → 도보 3분(209m) → 노가리 골목 → 도보 3분(140m) → 노포 골목 → 도보 5분(289m) → 세운대림상가 조명 거리 → 도보 2분(115m) → 기계 · 공구 골목 & 피에타 거리 → 도보 6분(358m) → 방산시장 & 광장시장

 

남산에 오르면 모두가 미니어처 세상

예장동 남산공원길

 

지하철 3 · 4호선 충무로역 4번 출구 → 도보 5분(314m) → 남산골한옥마을 → 도보 12분(760m) → 남산공원 산책로(북측 순환로 입구) → 도보 13분(840m) → 와룡묘 → 도보 3분(230m) → 못멱산방 → 도보 16분(1.1km) → 남산봉수대 → 도보 3분(180m) → N서울타워 → 도보 50분(3.2km) → 장충단공원 → 도보 6분(400m) → 태극당

 

서울 변두리부터 최고 번화가까지 완전 정복

중림동 약현성당 순례길

 

지하철 1 · 4호선 서울역 1번 출구 → 도보 2분(100m) → 문화역서울284 → 도보 1분(50m) → 공예누리 → 도보 10분(610m) → 닭한마리칼국수 원조집 → 도보 4분(236m) → 중림동 약현성당 → 도보 3분(285m) → 염천교 수제화 거리 → 도보 2분(127m) → 칠패시장 터 → 도보 10분(584m) → 남대문시장 → 도보 7분(465m)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 도보 8분(545m) → 재미로 → 도보 12분(815m) → 명동대성당

 

‘역사길’이라 쓰고 ‘낭만길’이라 부르는

정동 근대건축물 답사길

 

지하철 1 · 2호선 시청역 2번 출구 → 도보 1분(50m) → 덕수궁 → 도보 5분(300m) → 정동전망대 → 도보 4분(260m) → 정동길 → 도보 4분(230m) → 서울시립미술관 → 도보 2분(140m) →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 도보 3분(200m) → 정동제일교회 → 도보 1분(85m) → 남도식당 → 도보 1분(90m) → 덕수궁 중명전 → 도보 5분(300m) → 이화학당 심슨기념관 → 도보 4분(265m) → 구 러시아 공사관 탑 → 도보 12분(759m) → 성공회서울성당 → 도보 8분(520m) → 카페 이마 → 도보 8분(513m) → 구 서울청사

 

한낮 공원에서 즐기는 피크닉

동부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정원길

 

지하철 4호선 이촌역 1번 출구 → 도보 2분(120m) → 교토마블 → 도보 8분(507m) → 국립중앙박물관 → 도보 4분(294m) →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 → 도보 4분(350m) → 국립한글박물관 → 도보 6분(389m) → 용산가족공원 → 도보 16분(1km) → 아지겐(본점)

 

때때로 카페놀이, 가끔은 문화생활

이태원동 경리단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 → 도보 10분(647m) → 바다식당 → 도보 3분(232m) → 삼성미술관 리움 → 도보 14분(900m) → 남산공원 → 도보 10분(633m) → 경리단길

 

이색 박물관과 도서관이 궁금해

신사동 도산공원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3번 출구 → 도보 9분(631m) → 스페이스씨 → 도보 7분(471m) → 강서면옥→ 도보 1분(80m) → 퀸마마마켓 → 도보 4분(276m) → 도산공원 → 도보 1분(10m) → 리버사이드길 → 도보 3분(192m) → 호림아트센터 → 도보 7분(472m) →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조선의 왕과 왕실에 얽힌 역사 이야기

삼성동 선정릉 솔숲길

 

지하철 2호선 분당선 선릉역 8번 출구 → 도보 2분(136m) → 최인아책방 → 도보 7분(480m) → 정릉~정현왕후릉~성종릉~선정릉 출입구~선정릉 외곽 담장길 → 도보 20분(1.36km) ※꽤 먼 거리이므로 선릉역으로 돌아와 지하철 탑승 후 9호선 봉은사역에서 하차, 1번 출구로 나오면 봉은사로 가기 편하다. → 봉은사 → 도보 11분(705m) → 페이보리스 원

 

인스타그램에서 뜨는 핫 플레이스

망원동 시장 골목길

 

지하철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 → 도보 5분(349m) → 망원시장 → 도보 3분(219m) → 어쩌다가게 → 도보 1분(20m) → 구내식당 → 도보 7분(483m) → 소쿠리 → 도보 2분(105m) → 수바코 → 도보 3분(226m) → 딥 블루 레이크 → 도보 3분(216m) → 사프란블루 → 도보 2분(126m) → 만일

 

문화를 만들어가는 카페 집합소

상수동 카페 골목길

 

지하철 6호선 상수역 4번 출구 → 도보 4분(262m) → 만뽀 → 도보 이동 → 상수동 카페 거리 → 도보 3분(230m) → 주택가 카페 골목 → 도보 3분(172m) → 앤트러사이트 → 도보 8분(565m) →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 도보 5분(358m) → 절두산 순교성지 → 도보 19분(1.24km) → 선유도공원

 

대 뒷골목에서 보물찾기

서교동 홍대 땡땡거리

 

지하철 2호선 · 경의중앙선 · 공항철도 홍대입구역 6번 출구 → 바로 → 경의선 책거리 → 도보 6분(348m) → 땡땡거리마켓 → 바로 → 철길왕갈비살 → 도보 10분(636m) → 도토리숲 → 도보 4분(235m) → 홍대프리마켓 → 도보 7분(436m) → 땡스북스 → 도보 2분(150m) → KT&G 상상마당 → 도보 5분(270m) → aA 디자인 뮤지엄 → 도보 4분(287m) → 퍼블리크 → 도보 1분(100m) → 홀라인 → 도보 1분(50m) → 로렌스길

 

기찻길 옆 한옥 카페

염리동 경의선 숲길

 

지하철 5 · 6호선 · 경의중앙선 · 공항철도 공덕역 1번 출구 → 도보 4분(223m) → 공덕역 경의선 숲길 → 도보 5분(333m) →달팽이가 그린 집→ 도보 1분(45m) → 커피 향 깊은 그 한옥 → 도보 12분(800m) → 빅 베어 브레드 → 도보 9분(551m) → 서강대역 경의선 숲길 → 도보 9분(567m) → 홍대입구역 경의선 숲길 → 도보 1분(75m) → 김진환제과점

 

먹고 걷고 사랑하라

연남동 빈티지 골목길

 

지하철 경의중앙선 가좌역 1번 출구 → 도보 8분(519m) → 가좌역 경의선 숲길 → 도보 4분(282m) → 사는게꽃같네 아트플라츠→ 도보 7분(475m) → 동진시장 → 도보 1분(10m) → 연남동 골목 → 도보 1분(10m) → 베무쵸칸티나 → 도보 1분(40m) → 헬로인디북스 → 도보 5분(353m) → 낙랑따라

 

서울에서 가장 멋진

안산 메타세쿼이아 숲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 → 서대문 03번 마을버스로 20분(9개 정류장)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 도보 6분(383m) → 안산 메타세쿼이아 숲길→ 도보 40분(2.5km) → 봉원사 → 도보 10분(655m) → 연세대학교 → 도보 9분(596m) → 제중원 & 수경원 → 도보 17분(1.15km) → 미분당

 

연인들의 식도락 데이트 코스

연희동 연희맛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 → 서대문04번 마을버스로 10분(5개 정류장) + 도보 1분(63m) → 독일빵집 → 도보 1분(60m) → 메뉴팩트커피→ 도보 3분(170m) → 시오 → 도보 2분(136m) → 연희김밥(본점) → 도보 2분(150m) → 메리앤올리버 → 도보 4분(266m) → 알로하연희동 ×코끼리플레이트 → 도보 6분(393m) → 연희문학창작촌 → 도보 5분(327m) → 작은 나폴리 → 도보 2분(89m) → 피터팬제과 → 도보 3분(173m) → 연희동칼국수 → 도보 2분(100m) → 크림필즈 → 도보 3분(140m) → 미란

 

미래의 계획도시를 걷고 싶다면

상암동 DMC 문화 거리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9번 출구 → 도보 7분(458m) → 김영섭초밥 → 도보 4분(294m) → 물빛문화공원→ 도보 5분(311m) → DMC홍보관 → 도보 6분(427m) → 디지털파빌리온 → 도보 2분(158m) → 한국영상자료원 → 도보 2분(136m) → 상암동 MBC 신사옥 → 도보 1분(56m) → 로네펠트→ 도보 11분(710m) → 구룡근린공원 → 7737 · 7013A, B번 버스로 7분(1개 정류장) + 도보 4분(258m) → 북바이북

 

은빛 억새와 함께 한밤의 축제를

상암동 하늘공원 억새밭길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 → 도보 12분(792m) → 평화의 공원 → 도보 15분(1km) →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길→ 도보 10분(646m) → 하늘공원 → 도보 10분(678m) → 마포농수산물시장

 

소박한 듯 세련된, 고고한 듯 소탈한

성북동 역사 인물 탐방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 도보 8분(510m) → 무명식당 → 도보 5분(317m) → 최순우옛집→ 도보 10분(605m) → 누부티스 → 도보 6분(372m) → 길상사 → 도보 1분(56m) → 효재 → 도보 14분(955m) → 심우장 → 도보 2분(130m) → 북정마을 → 도보 8분(522m) → 수연산방

 

옛 간이역이 데려다준 추억의 길

공릉동 폐경춘선 철길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4번 출구 → 도보 3분(223m) → 시간을 거니는 철길 숲길 → 도보 11분(747m) → 구 화랑대역→ 도보 1분(70m) → 목예원 → 도보 5분(364m) → 육군사관학교 → 도보 4분(239m) → 소라분식 → 도보 10분(600m) → 태릉 & 강릉 숲길 → 도보 30분(숲길 1.8km) → 강릉

 

개나리와 꽃사슴이 반기는

응봉동 개나리동산길

 

지하철 경의중앙선 응봉역 1번 출구 → 도보 12분(788m) → 응봉산 개나리동산 → 도보 26분(1.7km) → 용비교→ 도보 9분(567m) → 서울숲공원 → 도보 1분(21m) → 언더스탠드 에비뉴 → 도보 7분(495m) → 소녀방앗간 → 도보 2분(112m) → 푸르너스가든

 

수제화 골목과 빈티지 카페의 앙상블

성수동 구두 장인의 거리

 

지하철 2호선 성수역 → 역내 도보 이동 → 슈스팟 성수 → 도보 1분(70m) → 프롬 SS → 도보 4분(238m) → 성수동 수제화 거리 → 도보 5분(336m) → 구두테마공원 → 도보 6분(384m) → 주택가 벽화골목 → 도보 3분(183m) → 소문난 성수감자탕 → 도보 5분(320m) → 성수동 카페 거리

 

낭만을 안다면 연인과 함께 걸어요

광장동 아차산 생태공원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1번 출구 → 도보 4분(255m) → 서울어린이대공원 → 도보 6분(411m) → 신토불이 떡볶이→ 도보 19분(1.26km) → 아차산생태공원 → 도보 18분(1.17km) → 비스타워커힐서울 산책로 → 도보 16분(1km) → 광나루순대 → 도보 13분(840m) → 광진교8번가 → 도보 5분(347m) → 광나루한강공원

 

골목길인가 만화방인가

성내동 강풀만화거리

 

지하철 5호선 강동역 4번 출구 → 도보 1분(10m) → 강풀만화거리 → 도보 6분(395m) → 성내전통시장→ 도보 7분(453m) → 성내동 주꾸미 골목 → 도보 1분(76m) → 독도 주꾸미

 

봄날의 화려한 꽃놀이

방이동 몽촌토성 벚꽃길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 1번 출구 → 도보 5분(308m) → 성내천 벚꽃길 → 도보 18분(1.2km) → 몽촌토성길 → 도보 18분(1.2km) → 한성백제박물관 → 도보 1분(30m) → 더한스아리아 → 도보 5분(360m) → 소마미술관 → 도보 1분(30m) → 잇 → 도보 25분(1.8km) → 석촌호수 벚꽃길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며 걷고 싶은

반포동 허밍웨이길

 

지하철 3 · 7 · 9호선 고속터미널역 8번 출구 → 도보 2분(100m) → 센트럴시티 파미에스테이션 → 도보 이동 → 스튜디오 300 → 도보 5분(358m) → 지하철 3 · 7 · 9호선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 → 도보 1분(20m) → 허밍웨이길 → 도보 35분(2.4km) → 지하철 4 · 9호선 동작역 1번 출구 → 도보 18분(1.2km) → 서래섬 → 도보 11분(688m) → 세빛섬 → 도보 5분(240m) →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

 

언덕 위에서 즐기는 달콤한 휴식

반포동 서리풀공원 숲길

 

지하철 3 · 7 · 9호선 고속터미널역 3번 출구 앞 센트럴육교 → 도보 6분(417m) → 서리풀공원 숲길 → 도보 14분(900m) → 누에다리 → 도보 1분(80m) → 몽마르뜨공원 → 도보 8분(504m) → 서래마을 → 도보 7분(461m) → 37.5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상도동 서달산 잣나무 숲길

 

지하철 7호선 상도역 5번 출구 → 도보 6분(382m) → 가야 → 도보 5분(250m) → 서달산 잣나무 숲 → 도보 20분(1km) → 달마사 거북바위 → 도보 5분(200m) → 동작대 → 도보 7분(400m) → 국립서울현충원 상도동 쪽 출입구 → 도보 15분(1km) →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 도보 11분(759m) → 노을카페

 

유모차도 갈 수 있는 숲속 데크길

관악산 무장애 숲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3번 출구 → 6614번 버스로 14분(6개 정류장) + 도보 1분(20m) → 관악산 시도서관 → 도보 17분(1.6km) → 숲속 작은 도서관 → 도보 20분(1.1km) → 관악산 무장애 숲길 → 도보 3분(180m) → 열녀암 → 도보 30분(1.3km) + 6514번 버스로 15분(7개 정류장) + 도보 3분(22m) → 백순대볶음

 

철공소마저 작품이 되는 창작인들의 아지트

문래동 샤링골목길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 → 도보 4분(215m) → 문래창작촌 → 도보 1분(60m) → 쉼표말랑 → 도보 2분(150m) → 치포리 → 도보 3분(173m) → 빛타래 → 도보 16분(1km) → 타임스퀘어

 

신생 수목원과 오래된 철길의 환상적 만남

항동 수목원 옆 철길

 

지하철 7호선 천왕역 2번 출구 → 도보 1분(25m) → 연희김밥(천왕점) → 도보 8분(475m) → 항동철길 → 도보 15분(1km) → 푸른수목원 → 도보 7분(440m) → 옐로우트리카페

 

서울에 하나뿐인 향교 마을

가양동 양천향교 답사길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2번 출구 → 도보 6분(371m) → 옛날국수가게 → 도보 1분(79m) → 양천향교 → 도보 6분(388m) → 겸재정선미술관 → 도보 1분(34m) → 궁산근린공원 둘레길 → 도보 6분(361m) → 소악루 → 도보 10분(600m) → 공암나루근린공원 → 도보 15분(980m) → 그라나다카페 → 도보 1분(60m) → 허가바위(공암바위) → 도보 2분(68m) → 허준박물관 → 도보 1분(34m) → 광주바위 & 구암공원 → 도보 12분(773m) → 이가 바지락칼국수

 

 



 

 

 

 

posted by 황영찬

2019-003 뿌기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③ 고려

 

 

 

이병희 지음

2015, 가람기획

 

군자도서관

SE070153

 

911

뿌298ㄱ2   3

 

쟁점과 사료로 풀어쓴 새로운 한국사

 

풍부한 사료와 충실한 해설로 다시읽는 한국사

왕건의 건국에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까지, 화려한 고려 왕조 속으로!

 

사람이 제 구실을 하며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를 하나만 지적해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來歷을 거짓이나 꾸밈없이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부모와 형제, 스승과 친구를 알지 못하고 자기가 누군지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면 설령 그 삶이 유복하더라도 그것을 그의 정당한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을 잘 기억하는 것은 곧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리고 그 기억은 거짓 없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어야만 한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해도 진짜라고 믿었던 집안의 족보가 조작되었다면 자기의 뿌리를 의심하고 방황하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을 우리는 ‘역사歷史’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역사를 자신의 존망을 걸고 똑바로 알아야만 한다. 역사란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자기 역사를 모르고서는 사람이 제 구실을 할 수가 없고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서는 남의 삶을 사는 것이 되기에, 정신을 차리고 온갖 힘을 다하여 이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우리가 한국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올바로 살아가려면 우리 역사 곧 국사를 바르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국사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개정 신판 간행사」에서

 

지은이

이병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사 학위 논문은 「고려 후기 사원 경제의 연구」(1992)이며, 대표 논저로 「고려 시대 전남 지방의 향 · 부곡」(1998), 「고려 후기 농지 개간과 신생촌」(2003), 「고려 시기 사원의 술 생산과 소비」(2013) 외에 다수가 있으며, 저서로는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3』(2002), 『고려 후기 사원 경제 연구』(2008), 『고려 시기 사원 경제 연구』(2009) 등이 있다.

 

차례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개정 신판 간행사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초판 간행사

「고려편」 개정 신판 머리말

초판 머리말

 

Ⅰ. 정치 영역

        1. 호족의 지원을 받아 통일하다 · 고려와 호족 종합

        2. 중앙 관제를 확립하다 · 3성과 도병마사

        3. 지방 행정 제도를 정비하다 · 5도 양계와 주현 · 속현

        4. 지방 세력을 견제하다 · 사심관과 기인

        5. 군사 제도의 형성과 변천 · 경군과 주현군

        6. 벼슬길에 오르는 두 가지 방법 · 과거제와 음서

        7. 지배층의 갈등, 고려를 흔들다 ·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8. 무신들이 난을 일으키다 · 무신란

        9. 무인, 국정을 운영하다 · 무인 집권과 정방

        10. 원이 내정에 간섭하다 · 원의 간섭과 부원 세력

        11.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 반원 정책과 전민변정

        12. 고려, 역사 속으로 저물다 · 위화도 회군과 고려의 종언

 

Ⅱ. 경제 영역

        1. 지배층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다 · 전시과

        2. 농업은 경제의 중심 · 토지 소유와 농업 생산

        3. 물화의 교역이 활기를 띠다 · 국내의 상업 활동

        4. 철전, 동전, 그리고 은병 · 화폐의 주조와 사용

        5. 각종 물품을 생산하다 · 수공업

        6. 땅에서 세금을 거두다 · 결부제와 전조

        7. 현물과 노동력을 걷다 · 공부와 요역

        8. 농장, 사전에서 발달하다 · 농장의 발달

        9. 사원도 경제 활동의 주체 · 사원 경제

 

Ⅲ. 사회 영역

        1. 고려 특유의 행정 구역 · 향 · 부곡 · 소

        2. 향리, 향촌 사회를 이끌어가다 · 향리와 향촌 사회

        3. 관료 조직의 하층 구성원 · 남반과 서리

        4. 기술관도 양반으로 승진하다 · 의관, 역관, 일관 및 기타 기술관

        5. 가장 낮은 사회 계층 · 노비와 양수척

        6. 재혼은 자유, 재산 분배는 평등 · 가족 제도

        7. 절, 수행과 교화의 공간 · 사원과 촌락

        8. 농민과 노비, 들고 일어나다 · 농민 · 노비의 난

        9. 고려 왕조 400년 도읍지 · 개경

        10. 대몽 항전기 39년 도읍지 · 강도

        11. 개경에 버금가는 제2의 도시 · 서경의 위상

        12. 바다 실크로드의 종착지 · 해양 도시 벽란도

 

Ⅳ. 사상 문화 영역

        1. 유교를 다스림의 원리로 삼다 · 시무 28조와 유교 정치 이념

        2. 고려의 공교육과 사교육 · 국자감과 12공도

        3. 고려를 밝힌 부처의 불빛 · 팔관회와 연등회

        4. 불교 사상의 통합을 꿈꾸다 · 천태종과 수선사

        5. 고려 이전의 역사를 정리하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6. 위대한 유산 · 금속활자와 청자

        7. 다양한 사상이 유행하다 · 도교와 풍수지리설

        8.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자 · 팔만대장경

        9. 새로운 유학을 받아들이다 · 성리학의 수용

        10. 불교를 배척하다 · 배불론

        11. 소리 없는 혁명 · 목면과 화약

 

Ⅴ. 대외 관계 영역

        1. 거란을 세 번 물리치다 · 강동6주와 귀주대첩

        2. 동북 땅을 둘러싼 긴장과 갈등 · 여진 정벌과 동북9성

        3. 세계 속의 ‘코리아’ · 국제 교역의 발달

        4. 거대한 적, 몽골과 싸우다 · 대몽 항쟁과 삼별초

        5. 원나라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다 · 동녕부와 쌍성총관부

        6. 남쪽의 침략, 북쪽의 침입 · 왜구와 홍건적

        7. 국내적으로 황제국을 표방하다 · 외왕내제 의식

 

부록

        왕 계보도

        연표

        찾아보기

        각 장별 아이콘 설명

 

완사천. 전라남도 나주시 송월동에 있는 샘이며, 전남기념물 제93호다. 왕건이 궁예의 장군으로서 후백제 견훤과 나주에서 싸울 때 목이 타서 샘(완사천)가에서 빨래하던 처녀에게 물을 청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떠 버들잎을 띄워서 공손히 바쳤다. 왕건은 이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곧 장화왕후 오씨였다. 장화왕후에게서 태어난 아들 무武가 제2대 왕 혜종이 되었다.

태조 왕건(877~943)의 초상화. 왕건은 후삼국 분열 시기에 호족의 지원을 끌어들이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귀부를 받으며, 후백제의 신검군을 황산에서 격파함으로써 936년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개경에 남아 있는 회경전 터. 회경전은 조선 시대의 경복궁에 해당하는 정전正殿이었으며, 인종 이후에 선경전으로 고쳐 불렀다.

고려의 5도 양계. 고려는 전국을 5도와 양계로 나누었다. 5도는 양광도 · 서해도 · 교주도 · 전라도 · 경상도였으며 안찰사를 파견하였고, 양계는 북계와 동계로 병마사를 파견하였다. 삼경은 초기에는 수도인 개경과 서경(평양), 동경(경주)이었으나 문종대에 남경(서울)이 설치되면서 경주의 중요성이 하락하였다. 12목은 성종 때에 지방관이 파견된 대표적인 고을이었다.

삼태사묘 바깥 전경. 삼태사묘는 고려 개국공신인 김선평金宣平 · 권행權幸 · 장길張吉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중종 35년(1540) 안동부사 김광철이 현 위치에 묘를 건립하였으며, 경상도 관찰사 권철이 제전祭田을 설치하고 노복을 주었다. 또한 명종 11년(1556) 안동부사로 부임한 권소는 제전과 곡물을 더해주고 권씨 성을 가진 수석 호장戶長에게 맡겨 이식을 취하여 매년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철제 금은입사 사인참사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검이다. 마魔를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주술형 검인 참사검斬邪劍 중 하나로, 십이간지 중 호랑이를 상징하는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제작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서곡리에 있는 벽화에 그려진 그림으로, 관료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은 음곽선으로 윤곽을 먼저 잡은 다음, 그 위에 묵선墨線으로 그렸다. 얼굴의 세부와 손에 쥔 홀笏, 소매의 주름 등은 묵선으로 그렸고, 얼굴의 코 · 입술 · 관모 등은 묵선으로 그린 다음 붉은 채색을 하였다. 벽화가 그려진 무덤은 공민왕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무덤의 주인은 고려 후기의 문신인 권준으로 확인되었다.

고려 현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야射를 지낸 인주이씨의 시조 이허겸李許謙의 묘 앞에 세운 재실(원인재). 이허겸은 이자연의 조부이고 이자겸의 고조부이다.

주로 손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수련하는 전통 무예의 하나인 수박희를 하는 모습. 고구려 시대 고분 벽화에 수박희를 행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에 이미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매우 중요한 무예로 여겨져 무인들은 이를 익혀야 했다.

격구. 무신들이 무예를 익히는 방법으로 하던 놀이다. 타구打毬 또는 포구抛毬라고도 한다. 오늘날의 골프 또는 하키와 같이 막대기로 공을 치는 경기다. 격구擊毬에는 말을 타고 하는 기마 격구와 궁중이나 넓은 마당에서 하는 보행 격구가 있다. 무신이 한 기마 격구는 구장에서 말을 타고 막대기로 공을 쳐서 구문 밖으로 내보내는 놀이다.

『동국이상국집』. 이규보의 시문집이며 53권 13책이다. 아들 함涵이 고종 28년(1241)에 전집全集 41권을, 이듬해에 후집後集 12권을 편집하여 간행하였으며, 고종 38년에 고종의 명령으로 손자 익배益培가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에서 증보판을 간행했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번 간행된 듯하다.

종묘에 있었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정.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조선 건국을 정당화시킬 목적으로 고려 공민왕 내외의 영정을 그려 조선의 종묘에 봉안하였다.

공민왕릉. 개성직할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으며, 일명 현릉이라고도 한다. 왕비 노국대장공주의 무덤인 정릉正陵과 나란히 있는 쌍무덤으로, 서쪽의 것이 현릉이다. 봉분은 지름이 13미터, 높이 6.5미터이며, 둘레돌은 화강석을 사용하였고 면석面石에는 12지신상이 돋을새김되었다. 석호石虎, 석양石羊, 장명등長明燈, 문인석과 무인석이 서 있다. 공민왕릉의 능제는 고려 말기의 능 형식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조선 시대로 이어졌다.

삼척에 있는 공양왕릉. 공양왕(재위 1389~1392)은 신종의 7대손이며 정원부원군 왕균의 아들이다. 고려 마지막 왕으로 이성계 세력에 의해 폐위된 뒤 원주에 추방되어 공양군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 삼척에서 살해되었다.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도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고양시에 있는 것을 공식 안정되고 있다.

어제비장전변상. 『어제비장전』 제6권(1977년 무렵에 발견)에 삽입된 위의 판화는 초조대장경에서 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5점의 변상도 가운데 위의 그림은 제3도로서 전 · 중 · 원경으로 전체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산수 속에 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한 일종의 산수 인물화다. 산과 구름, 내川와 나무의 배치가 매우 자연스러워 판화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으며, 인물의 형태나 몸짓도 상당히 세련된 격조 높은 그림이다.

「미륵하생경변상도」 하단에 그려진 농민의 모습. 불화는 불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이지만, 때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전하기도 한다. 이 불화에는 농민들이 곡식을 베고 옮기는 것이 그려져 잇어 당시 농민의 생활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 사용했던 철제 농기구로 위의 사진은 낫이다. 낫은 곡물을 수확할 때 사용하는 농기구다.

행상의 모습. 행상에는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물품을 파는 상인도 있고, 소규모로 가까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호매呼賣 행위를 하는 상인도 잇다. 고려 시대에도 이런 행상이 잇어 백성 사이를 오가며 필요한 물품을 공급했을 것이다.

고려 시대의 화폐. 성종 때 칠전을 주조해 사용하도록 했으나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숙종 때 해동통보 · 해동중보 · 삼한통보 등 많은 동전을 주조하여 사용토록 하였다. 은병은 가치가 커서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없었으며, 주로 지배층이 고액 거래에서 사용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고려 시대에 유통된 동전이다.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 고려 시대 대표적인 정병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높이가 37.5센티미터로 국보 제92호다. 수양버들이 늘어져 잇으며 오리를 비롯한 물새들이 헤엄치거나 날아오르는 풍경이 그려져 잇다. 상감청자와 나전칠기 등 상감 기법이 발달하던 11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퍙안북도 동창군 학성리에서 출토된 11세기 초의 고려 시대 화살촉.

염제신 초상. 전남 나주시 삼영동 충경서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1097호다. 비단에 채색하였고 작자는 미상이나 공민왕이 그렸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전체적으로 필치가 섬세하고 작품의 품격이 뛰어나 고려 시대 초상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그림의 주인공인 염제신은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등 고려의 다섯 왕을 섬긴 권세가다.

통도사국장생석표. 선종 2년(1085) 호부의 승인을 받아 세웠으며,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166센티미터이다. 보물 74호이다. 고려 시대 사원에는 종종 국가의 승인을 받아 세운 장생표가 있는데, 사원의 권역을 표시하였다. 장생표가 세워진 영역 내의 민과 토지에 대해서 사원은 배타적 · 독점적 지배를 할 수 있었다. 통도사에는 여러 개의 장생표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2기만이 남아 있다.

사천매향비.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 있는 고려 말기의 매향비로 1977년에 발견되었으며, 보물 제614호다. 우왕 13년(1387)에 매향한 곳에 세운 비석으로 4,100인이 결계結契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과 미륵보살의 하생下生을 염원하는 총 204자의 축원문이 큰 바위 밑면(길이 1.6미터, 너비 1.2미터)에 새겨져 있다.

정도사 5층석탑 조성 형지기形止記. 1905년 폐사지의 5층석탑을 해체하여 서울 경복궁으로 옮길 때 탑 속의 유합鍮合 안에서 종이에 묵서墨書한 형태로 발견된 문서다. 이 형지기는 54행 2,000여 자에 이르는데, 현종 10년(1019)에서 현종 22년에 이르기까지 경산부京山府의 임내였던 약목군(오늘날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의 향리와 백성들이 자기 지역 내의 정두사에 5층석탑을 건립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개성 첨성대. 고려 시대에는 천문 관측을 위한 기관으로 서운관이 있었으며 천문 관측도 활발했다. 『고려사』「천문지」에는 일식과 혜성의 출현이나 주요 행성들의 여러 가지 이상 현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 기술관이 있던 일관日官은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세밀히 관측했으며 역서曆書를 편찬했다. 사진은 고려의 옛 궁성터인 만월대 서문 밖에 있는 고려 시대 천문 관측 건축물로, 첨성대엿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정至正 14년(1354) 노비 문서. 고려 공민왕 때의 노비 문서로 「소지所志」4장 「입안立案」 2장 모두 6장으로 되어 있으며 보물 제483호다. 공민왕 때 직장동정直長同正으로 있던 윤광전尹光琠이 소윤少尹의 관직을 가진 자신의 적장자嫡長子 단학丹鶴에게 노비를 상속해주는 증서다.

고려 말 호적. 사진은 1391~1392년 무렵에 작성된 화령부和寧府 호적의 일부로 추정되는 문서다. 닥나무 종이에 쓰여 있으며 원본은 세로 56센티미터, 가로 50센티미터 내외인데, 모두 8폭을 이어 전체 386센티미터이다. 첫째 폭은 사심 이성계가 소유하고 있는 노비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으며, 둘째 폭은 호구 성적을 위한 세부 규정, 셋째 폭에서 여덟째 폭은 실제 시행된 호적의 내용을 담고 있다.

거창 둔마리 고분 벽화의 주악천녀상. 적외선 사진을 통해 남쪽에 3명, 북쪽에 2명 등 주악무도천녀奏樂舞蹈天女들이 그려져 있음이 밝혀졌다. 사진 위쪽의 천녀는 빗어 올려 얹은 머리에 둥근 관을 썼고 얼굴은 타원형이며 입에는 피리를 물고 왼쪽 손은 위로 올려 과일 같은 것이 담긴 접시를 들고 있다. 사진 아래의 또 다른 천녀도 마찬가지로 머리에 보관을 썼으며 입에는 피리를 물고 있다. 천녀들의 상의는 어깨에 스카프 같은 것을 걸쳐서 앞으로 늘어뜨려 불교 계통의 옷이라는 느낌을 준다. 고려 시기 여인상을 엿볼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에 있는 건물이며, 국보 제49호로 단층 맞배지붕 주심포柱心包 집이다. 외관은 각 부재部材가 크고 굵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으며 측면이 특히 아름답다. 건물의 건립 연대(1308)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다른 건물의 건립 연대를 추정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불로, 보물 제218호다. 높이 18.12미터나 되는 커다란 불상이며 관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얼굴은 이마가 좁고 턱이 넓으며 옆으로 길게 째진 눈, 넓은 코, 한 일一 자로 꼭 다문 큰 입이 토속적인 느낌을 준다. 목은 굵고 삼도三道가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내려와 매달린 느낌이다. 이 불상은 광종 19년(968)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건물로 곡보 제18호다.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주심포계 건물이다. 이 불전佛殿은 1916년의 해체, 수리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 중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구조 수법이나 세부 양식이 묵서명 연대의 건물로는 볼 수 없고, 적어도 13세기 초까지 올려볼 수 있다.

운문사 전경. 경북 청도군 운문면 호거산에 있는 사원으로 진흥왕 21년(560)에 창건된 것을 608년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신라 말기에는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중건하였다. 숙종 10년(1105) 원응국사圓應國師가 중창하였다. 무인 집권 시 민란이 일어났을 때 이곳이 근거지가 되었다.

고려 궁궐 모형도. 축대를 쌓고 그 위 경사면에 건물들을 계단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여러 건물들이 하나의 건축군으로 묶이고 건물의 지붕이 층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월대의 중심 축대 위에는 회경전 · 장화전 · 원덕전과 그 밖의 건물들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고려궁지에 위치한 유수부 이방청.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로 수도를 옮기고 고종 21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 건물이 있던 곳. 정궁 이외에도 많은 궁궐이 있었다. 조선 인조 9년에 이곳에 행궁을 지었으며,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다시 강화 유수부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 남아 있다.

대화궁 토성터. 묘청이 서경 천도를 요청하자 인종 6년(1128) 8월에 왕은 서경으로 가서 임원역지에 궁궐을 신축할 명당을 잡게 하고, 11월 공사에 착수하였다. 인종 7년 2월 공사가 끝나자 이를 대화궁이라 하였으며, 인종 9년에는 임원궁성을 쌓고 팔성당八聖堂을 건조하였다. 토성은 대화궁을 둘러싼 성이다.

배 모양이 새겨진 동경. 개성시 용산동에서 나왔으며 지름이 17.2센티미터다. 거울의 뒷면 한가운데에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돛단배를 대범한 솜씨로 돋을새김을 했는데 이것은 고려 사람들의 활발한 해상 활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최승로(崔承老, 927~989)는 경주 출신의 유학자다. 그가 성종에게 올린 시무 28조는 대부분 채택되어 고려의 정치 제도와 사회 운영의 기본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현전하는 내용은 28조 가운데 22조다.

국자감은 성종 때에 창건하였으며 충렬왕 때 성균관으로 고쳤다. 공민왕 16년(1367) 규모를 확대하여 당대의 유학자 이색과 정몽주를 교관으로 삼아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김육이 중건했다.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의 공양자상으로 일본 대덕사에 소장되어 있다. 불화에 보이는 여인은 치마 위에 저고리를 착용하고 있으며, 치마에는 꽃무늬로 추정되는 문양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또 뒷머리를 크게 올려 붉은 끈을 매고 있다.

고려 시대 연등회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고려 시대 불화 「관경변상도」

영통사대각국사비. 개성직할시 용흥동 영통사 터에 있다. 몸체는 높이 3.06미터, 너비 1.61미터, 두께 24센티미터며, 전체 높이는 4.32미터다. 귀부龜趺 · 비신 · 옥개석玉蓋石으로 구성되어 잇으며, 귀부는 화강석, 옥개석과 몸체는 대리석이다. 비의 글은 당대의 학자이며 명문장가인 김부식이 지었고, 글씨는 오언후가 고려 전기에 유행한 구양순체 해서로 써서 새겼다. 비문에는 어려서 불가에 들어가 송나라에서 천태종과 화엄종을 배우고 돌아와 천태종을 개창하기까지 대각국사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인종 3년(1125)에 세웠다.

보조국사 지눌 영정. 보조국사는 송광사의 제1세 사주社主로서 이 진영은 다른 작품에 비해 독특한 점이 잇다. 주장자를 짚었고 의자도 다른 것에 비하여 웅대하며 장식적인 미가 돋보인다. 또한 옆면에 조각된 화초도는 매우 사실적이다. 안면의 묘사도 대단히 개성이 강하게 표현되어 고승다운 풍모가 잘 나타나 잇다.

『삼국사기』는 명종 4년(1174) 사신을 통해 송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초판을 간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13세기 후반에 성암본誠庵本이 만들어졌는데, 현재는 일부만 일본 궁내청에 소장되어 있다. 다음으로 조선 태조 3년(1394)에 3차 간행, 조선 중종 7년(1512)에 4차 간행이 있었다.

『삼국유사』는 5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현재까지 고려 시대의 각본刻本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조선 중종 7년(1512) 경주부사 이계복李繼福에 의하여 중간重刊된 정덕본正德本이 최고본最古本이며, 그 이전에 판각된 듯한 영본零本이 전한다.

『직지심체요절』. 정식 서명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우왕 3년(1377) 7월 청주목의 교외에 있던 흥덕사에서 금속활자인 주자로 찍어낸 것이 전한다. 상하 2권 중 지금까지 전하는 것은 하권 1책(첫 장은 결락)뿐이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높이 42.1센티미터, 입지름 6.2센티미터, 밑지름 17센티미터 크기로 간송미술관 소장이며 국보 제68호다. 구연부의 아랫부분에는 꽃무늬를 둘렀고, 굽 위로는 연꽃 무늬를 둘렀다. 몸통 전체에는 구름과 학을 새겨 넣었다. 세련미의 극피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갑사도선국사비.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로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 경내에 있다.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를 모두 갖춘 전형적인 석비로, 전남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선국사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활동한 승려로, 그의 풍수지리 사상은 고려 · 조선 시대를 통하여 큰 영향을 끼쳤다.

선암사도선국사진영. 도선은 신라 하대에 성행했던 선종 계통의 승려인데 고려 시대 이후에는 선승보다도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더욱 유명해졌다. 진영은 선암사와 도갑사에 전해오고 있다. 선암사에 있는 진영은 1805년에 화사畵師 도일道日에 의해 조성되었다. 오른손은 자연목의 주장자를 곧게 세워 잡고 왼손은 설법 자세를 취하고 잇으며, 그림 왼쪽에는 높은 탁자 위에 함이 놓여 있다.

해인사 대장경. 부처의 힘으로 몽골 군대를 물리치기 위하여 강화에 대장도감 본사를 두고 진주 등지에 분사分司를 설치, 고종 23년(1236)에 시작하여 고종 38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16년 만에 완성하였다. 이 대장경은 1,500여 종, 6,800여 권으로 경판 수는 81,000여 매에 이른다. 처음 강화도 선원사에 소장되었다가 조선 태조 7년(1398) 서울의 지천사를 거쳐 현재의 해인사로 이관되었다. 국보 제32호이며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안향 초상화. 안향의 영정은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보 제111호다. 비단에 채색하였으며, 충숙왕 5년(1318)에 제작되었다. 충숙왕이 안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궁중에서 일하던 원나라 화가에게 그리게 한 것으로 반신상半身像이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왼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으며, 붉은 선으로 얼굴의 윤곽을 나타내었다. 시선의 방향과 어깨선에서 강직함을 엿볼 수 있다.

이제현 초상. 화폭 상단에 적힌 제문題文에 따르면 충숙왕 6년(1319) 이제현 나이 33세 때 충선왕을 시종하여 중국을 유람한 일이 있었는데, 충선왕은 진감여陳鑑如라는 원나라 화가를 시켜 이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또한 당대의 석학인 탕병용湯炳龍이 찬贊을 지었다. 심의深衣를 입고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인물을 중심으로 위쪽에는 제문과 찬문을 여유있게 배치했다.

이색 영정. 이색(李穡, 1328~1396)은 본관이 한산韓山이고 호가 목은牧隱이며, 시호가 문정文靖이다. 이제현의 문하생이며,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공민왕 16년(1367) 대사성이 되자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많은 제자를 길러내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실권을 잡은 이성계를 반대해 유배 당하기도 했다.

『삼봉집』.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 성리학자인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의 시문집이다. 14권 7책이며 권근이 서문을 썼다. 『삼봉집』 권9에는 『불씨잡변』이 실려 있는데, 불씨윤회설, 인과설, 심성변心性辨, 불씨의 자비, 지옥설, 화복설, 걸식 등에 대해 비판했다. 불법이 중국에 들어온 후 불佛을 섬기다가 화를 입은 실례를 들었으며, 끝으로 불교는 이단이므로 배척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배불排佛의 정당성을 역설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문익점의 목화 시배지. 고려 말 문익점이 목화 재배를 시작한 곳으로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있으며, 사적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공민왕 12년(1363)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가져온 목화씨를 장인인 정천익에게 부탁하여 이곳에서 재배하도록 했다. 처음 재배한 이곳은 배양培養마을로 불린다.

강감찬이 태어난 낙성대.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강감찬의 출생지로 서울유형문화재 제4호다.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날 장군이 태어났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1974년 6월 10일 완공한 사당 안국사安國祠 안에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있다.

윤관(?~1111) 영정. 1910년 무렵 후손들에 의하여 제작되었으며, 198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예종 때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여진과의 싸움에서 많은 공을 세운 명신이며 명장이다.

스페인의 안토니오 에레라가 제작한 서인도제국 지도가 들어 있는 책의 초판본 표지(1601). 에레라는 지도 동쪽에 한국과 일본을 그려넣었으며, 한국을 섬으로 표현하고 'Cory'라는 명칭을 붙였다.

제주도 항파두리성.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고성리에 있다. 해발 190~215미터 지점에 있는 항파두리 토성은 삼별초가 원종 12년(1271) 9월에 제주도로 들어와 군사력을 재정비하는 시기에 축성한 것이다. 본래 토성으로 총길이 6킬로미터에 이르는 외성을 쌓고, 안쪽에 다시 석성으로 800미터의 내성을 쌓은 이중 성곽이었으며, 각종 방어 시설뿐 아니라 궁궐과 관아까지 갖춘 요새였다.

 왕건 청동상. 왕건릉(현릉) 확대 공사 과정에서 1993년에 출토되었다. 높이는 발바닥에서 내관 뒷면 정중앙 상단까지 135.8센티미터다.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은 황제가 쓰는 통천관通天冠이다. 고려 광종 때 조성되어 개경의 봉은사에 모셔져 있다가 조선 세종 때 왕건릉 옆에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posted by 황영찬

2019-001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서윤후 시집

2016, 민음사

 

대야도서관

SB110691

 

811.7

민67ㅁ  221

 

민음의 시 221

 

이제 겨우 그는 첫 번째 미로를 통과한 셈이다.

어려운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헤매고 다니는 내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나는 그가 좋고, 그의 시가 참 좋다. 적어도 그는 세계를

깔보거나 비웃지 않으며, 자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의 시가

자아내는 내밀하고 친숙한 분위기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떠올리게 한다.

- 작품 해설에서 | 장이지(시인)

 

서윤후

 

199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09년 《현대시》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어겼다

 

2016년 2월

서윤후

 

차례

 

1부

 

가정

희디흰

퀘백

나의 연못

희미해진 심장으로

곰팡이 첫사랑

거장

예컨대, 우리 사랑

취미기술

상속

코발트블루

계피의 질문

사탕과 해변의 맛

파리소년원

포기

오픈 북

종이의 생활

 

2부

 

에너지

다정한 공포

메종 드 앙팡

레오파드 소년들

소년성(小年性)

무명 시절

설탕의 신비

눈치의 공감각

말라리아

시리얼 키드

욕조 속의 아이들

구체적 소년

발육의 깊이

덴마크 다이어트

노력하는 소년

탈무드 버리기

사우르스

해변으로 독립하다

방물관(房物館)

요트의 기분

투명한 산책

 

3부

 

스무 살

하나 이상의 모뎀과 둘 이하의 잉꼬

어제오늘 유망주

외상(外傷)

스웨터 입기

독거 청년

감염된 나라에서

아프레게르 푸줏간

화염

무사히

편애

90년대의 수지

유니크

1995

1997

1999

커뮤니티

퀴즈

 

작품해설│장이지

달콤한 상처

 

90년대의 수지

 

   사람들이 황금을 내놓던 날 고장 난 저울도 무게를 감추고 허리띠를 내놓았다 그런 어른들의 날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들처럼, 학급에 한두 명은 있을 법한 수지라는 이름의 아이를 알게 될 확률처럼, 물질도 절망도 수지도 유행하던 나날

 

   불소 용액 받아 가던 수지, 창가에 걸터앉아 칠판지우개를 털어 내던 수지, 미처 알지 못해 이름만 알던 수지도 그땐 모두 똑같은 획순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설를 부를 때 어색해하던 표정이 이상하게 닮았던 날들

 

   우리는 IMF라는 말을 배웠다 열대야를 펼쳐 이름을 팔던 벼룩시장, 소년일보에 게재된 이름 모를 아이의 논설문, 내가 알던 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자꾸 발생했다 급식소엔 강냉이죽 끓이는 냄새가 났었고

 

   언제부터 기억을 절약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훌쩍 커 버렸을 수지에 대해 생각하면, 이름은 자라고 얼굴은 자라지 않은 사진만 수지라고 부를 수 있을 때, 저울은 가벼워졌고 사람들의 장롱은 배가 나오고 있었다

 

   이젠 아끼지 말아야지, 수지는 옆에 없고 수지맞을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때의 수지가 몰래 적어 냈던 장래 희망, 이루어진 것이 있다면 중고가 된 이름을 떠올리는 것 나눠 쓸 수 있는 이름 때문에, 그 날들을 헐값으로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유니크

 

숨바꼭질 하는 기분 같았어요

들켜서도 안 되고 영영 잊혀서는 더더욱 곤란한

 

나만 좋아하는 것 같았던 싱어송라이터 오빠, 어느 날 친구가 오빠의 노래를 흥얼거려

새 것이 헌 것이 되는 기분 때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진짜 영역 표시를 해요

나만 모르게 하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냄새라도 남기게 되는 날엔 감각이 폐업하는 날

코에 온종일 몰두하는 피노키오 이야기처럼

거짓말로 뚜렷해지려고

 

나 여기에 숨어 있어 숨기고 싶지만 조금은 알려 주고 싶은 이상한 기분

빨간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 누가 불이 났다고 소리를 친다면

되도록 쉽게 되도록 안타깝게

난 꺼질 수 없어요

 

 

 

 

커뮤니티

 

   공동체라는 낱말에서 빠져나옵시다. 그렇다면 공동체라는 글씨는 희미해질 것입니다. 모든 이름을 불러줄 수 없습니다. 헷갈린 이름 위에 반창고를 붙여 줍니다. 다정한 건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 친밀해졌다면 개인 체조를 해 봅니다. 가만히 누워 있거나 부리나케 뛰어다니거나 팔을 접어 베개로 삼는 모양으로부터. 공동체는 만화경 속을 들여다보듯 어지럽습니다. 하나가 되는 일이 가장 많이 갖는 일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가까워지지만 같아질 수 없는 부등호를 만듭시다. 숫자는 이름보다 편리합니다. 숫자로 된 편지를 씁니다. 공통된 취향을 고백합니다. 그림자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콜라주로 만든 몽타주가 생깁니다. 데칼코마니는 사라진 미술 기법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에서 빠져나옵시다. 사이사이에 거리를 조성합시다. 무단횡단을 해봅시다. 사이렌이 울릴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이 마침내 사라집니다. 세계는 무너집니다. 블록들을 다시 하나씩 쌓아 봅니다. 선별된 입구들이 마침내 하나의 복도로 통합니다. 인사를 합시다. 처음 본 사람처럼, 공동체는 끝났습니다. 하나들의 집합이 됩시다.

 

1999

 

   머릿수가 이름이었던 무리들이었다 잘못 띄어쓰기한 글자들처럼 행렬했다 윗도리와 아랫도리처럼 어울렸다 세상 모든 구멍의 주소를 공유했다 더러운 빨래들에게서 가까워지는 냄새가 났다 미생물이 가장 좋아하는 온도에서 섞였다 조금 우쭐대는 법을 배웠다 우린 이것을 용기라고 불렀다 시계탑 앞에서 시간을 보지 않았다 비둘기 앞에서 우표를 떠올리지 않았다 맞댄 어깨가 기울어질수록 표본실의 비커에 물이 넘쳐흘렀다 증발하고 있었다 어두워진 이름들이 번져 갔다 운동장의 정글짐을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무리들이 동시에 다 같이 ㅇ르자 흔들리기 시작한 건 수ㅜㅁ기고 싶은 덧니처럼 몽정처럼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은 간지러운 통증 얼룩으로 남은 용기

 

어제오늘 유망주

 

   최대한 늦게 출발하도록 달리고 있는 너를 보고 있어 아직은 결승점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도 너란다 시선과 희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호루라기 부는 건

 

   절망을 투시할 줄 아는 사람

   그러나 기적 앞에선 캄캄한 사람

 

   쥐구멍 찾아 직접 드나드는 너의 아침과 저녁은 같은 궤도에 진입했구나

 

   다녀오겠습니다 (                      ) 다녀왔습니다

   건조한 실내악

 

   집에 처음 보는 정물화가 걸려 있어 못 박힌 벽이 아까워서 주워 왔단다 사과와 포도 사이 벌레도 죽어버릴 것 같은 명암에 가려진, 달리기가 느린 너

 

   가방 속엔 꺼낼 어둠의 다발이 많아 이름 앞에 놓인 모든 형용사들이 징그러운 책을 펼치면 기울어지는 흰 종이 검은 글자 사이의 멀미, 빗나간 밑줄들

 

   어디에 멈춰서 운동화 끈을 묶을 것인가

   돌파구는 무엇인가

   애쓰는 발꿈치로 밀고 나가는 트랙에서

 

   너는 꼭지를 잃은 사과

   너의 목덜미를 누군가 아직 베어 물지 않았다면

   그것은 분명 맛있을 것

 

가정

 

눈곱 낀

일요일의 사람들

 

누군가 선물로 해 준 작명

얼어붙은 이름을 자꾸 불러 주자

녹기 시작한 피

 

동생이 형처럼 엄마가 언니처럼

누나가 아이처럼 아빠가 유령처럼

 

커튼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동안의

혼숙

 

희디흰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어떤 얼룩을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하게

 

   애어른 같은 아이를 키우는 집은 행복할 것 같다고 옆집 사람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공사장에 다녀온 사람은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에도 검은 발바닥은 검은 발바닥이었다 더려워도 더럽다고 할 수 없었다

 

   팔레트의 굳은 물감

   두 번째 신는 흰 양말

 

   마른 빨래를 개키던 어머니를 돕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조용히 책도 읽었다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는 깨끗한 손이 있었다

 

   타일이 풍기는 표백제 냄새

   깨끗하다고 믿는 중독

 

   그의 발바닥을 그렸다 검은 생각들이었기 때문에 깊은 밤 속에 파묻혀 아버지가 화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우는 일만 하던 어머니의 표백된 얼굴이

 

   자꾸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나는 병에 걸렸다

   흰 색을 잃어 가는 여전히 흰 옷 같은 나의 세포

 

   나에게 묻는 것들이 무엇인지

   보호하는 이 깨끗한 색으로부터

   나는 가장 위험했다

 

상속

 

아버지는 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옛날 사람의 말로, 아직 쓸 만한 것에 대해 후한 마음의 두께라는 것은

주어다 몰래 꽂은 위인전집이나 백과사전의 두터움

 

숙제로 키우는 양파와 고구마가 잘 자라지 않을 땐

창틀을 보았다 온갖 죽은 벌레를 볼 수 있는 학습이 있었다

 

책은 내가 읽고 아버지는 책을 꽂는다 어느 날은 분리수거장을 서성이다 빈손으로 돌아온다

 

줍고 버리고 줍고 버리는

 

버릴수록 나는 읽을 게 많아졌다 고구마에 작은 싹을 보았다 그만큼 바라보았는데

겨우 이만큼 자랐네 한숨 쉬는 창가

입김 사이로 다 읽은 책들이 다시 버려진다

 

계피의 질문

 

   아버지가 되는 꿈을 꿨다. 아들은 계피나무 우거진 언덕에서 사탕에 베인 혀로 휘파람을 불었다 박하향이 흐르는 곳으로 담을 넘다가

 

   깨진 무릎에서 나던 피는 언제부터 흐르던 생일일까 계피 사탕을 문 나의 어머니가 아들을 불렀다 내 이름에선 왜 계피 냄새가 나지 않을까

 

   아들은 자라는 동안 뼈에 그늘이 드는 병에 걸렸다 햇빛에서 작아지는 아들을 업고 계피 나무 숲으로 갔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런 산책을 하다가

 

   아들은 넘어져 주머니 속 박하사탕이 깨졌다며 울었다 맛있을 것 같아서 오랫동안 남겨 둔 사탕을 그만 까마득하게 잊어버려 울었던 사람이 있었지, 그게 누군데요?

 

   꿈에서 작별인사 할 때, 아들은 나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심부름 할 것이 있단다, 아들이 싫어하는 계피 사탕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서

 

   꿈인 줄 알았는데 정말 꿈이라서 안도하면 나는 도둑으로 몰리게 될까 언젠가 아버지 외투에서 계피 냄새가 났었는데, 좋지도 싫지도 않은 등에 처음으로 업히던 날에

 

퀘백

 

   아브라함 평원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탈 수 없는 꽃마차가 붉은 벽돌 길을 횡단한다 이민자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고 나와 동생, 차례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귀한 검은 눈알을 꺼내 두었다

 

   감자를 깎으며 내리는 눈을 보았다 감자밭이 뒤덮여 버렸네, 동생이 말했다 빨간 십자가만 유일하게 뒤덮이지 않는 색깔이었는데 색맹이 있어 나와 동생은 서로의 양말을 섞어 신고선 시린 발들을 식탁 밑으로 숨겼다

 

   학교에서 눈보라를 뚫고 돌아온 동생이 그림을 보여 줬다 단 한 자루만 짧아져 가는 크레파스를 만지며 우리에겐 왜 두 개의 눈이 있을까? 동생이 그랬다 껍질들을 길게 깍아 쥐구멍 앞에 놓아 주었다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면 커튼을 뒤집어쓰고 성호를 그었다 너는 나를 믿지? 동생은 대답했다 오빠도 색깔을 모르잖아 불 꺼진 벽난로 앞에서 그날 밤 한 개의 그림자를 나눠 덮고 잠에 들었다

 

   나와 동생은 무슨 색의 털실로 엉켜 있었는지, 다 하얗다고 믿는 동생은 일 년 내내 폭설이었다 다 검다고 믿는 나는 동생을 업고 긴 터널을 건넜다 우리는 단지 조금 다른 높낮이의 울음소리를 냈다 구별되는 슬픔이 있었다

 

다정한 공포

 

공포 영화를 되감기 하면서

귀신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장면을 본다

 

나란히 이불을 덮으면 다시 시작하는 영화

다가올수록 섬뜩해지는 건

여전하기 때문이다 너의 옆에 잇어 준다

 

손에 땀이 나면 어떡하지, 스스로 끈 형광등 불빛을 초조하게

걸린 외투를 의심하며 성장하는 동공

 

망설이다가 줄거리를 헤매게 될 때

제자리에 있는 것들이 무서워지는 건

여전하기 때문이다 너의 옆에 있어 준다

 

어둠을 필요로 할 때 본 영화를 다시 볼 때

덜 무섭게 예고된 장면을 먼저 말해 주는 착하지만 착하지 않은 옆자리

 

눈 가린 두 손 뒤로 의심의 속눈썹 자라고

끝난 뒤 시시하다고 생각하면 사라지는

너의 옆에 있어 준다

비디오는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데

 

서늘한 여름은 자꾸 빨라진다

정지 버튼을 누를 때

빨간 빛이 손가락을 뚫고 터진다

 

메종 드 앙팡

 

괘종시계가 무서워 돌아가려다

꽃 없는 화분을 자주 깨뜨렸다

넘어지면서 집의 구조를 무릎으로 익혔지만

아이들은 말을 배우지 못했다

 

아무런 소리 없이 잠긴 방에서

딸꾹질 소리가 멈추지 않고

요절을 꿈꾸듯 사물들이 위태롭게 장식되어 있었다

 

수도꼭지를 젖 대신 물고 잠이 든 아이들의 천식

물 찬 기침을 하던 그날엔

장작에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벽난로의 어두운 입 속으로 흘러드는

웃풍을 맞으며 입김을 배웠다

그래도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있어

자꾸 죽는 것에 실패하는 아이들

 

모든 형광등과 식물들이 죽었다

아이들 소음에 가끔 깨어나는 부모가 있어

데려가 달라고 떼쓰면

멍 자국 같은 그림자 하나 문 앞으로 온다

 

아이들을 거둬 줄 보모가 왔는데

문을 열어 줄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기침하는 날이 자꾸 많아져야 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인기척밖에 없었다

집엔 부스러기들만 자꾸 생겨나고 있다

 

말라리아

 

나 죽어도 돼?

   죽음을 허락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 여름이 찾아왔다 님프의 동굴을 헤매다가

   더위를 맞이하는 일은 곧 천천히 죽어가는 것

   홍조도 가시지 않은 아이들은

   고삐를 물고 여기저기 머리를 들이밀며, 우스운 병도 쉽게 잊기로 한다

   저물녘에 꾼 꿈들은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가끔 물방개 튀어 오르는 소리에 놀라겠지만

   버려진 신발을 찾아 헤맨다

   가랑비를 기다리며 목구멍을 벌리고 있는 목숨을 생각한다 혀를 보여 준다는 것은 비밀이 늙어 가는 일

   아이들은 손잡고 숲을 거닐며 감염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서로를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피가 섞였어

 손만 잡고 놀았는데 돌림병이 나돌았지 곪아서 옮아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축제가 끝나고 예보를 전한다

   곧 비가 올 건가 봐, 우중충해졌어

   네 얼굴이

 

아프레게르 푸줏간

 

   고기 반찬을 보면

   심장 밖을 뛰쳐나간 사람들이 생각나

 

   버려진 아이들아, 꿈으로 팽창한 실핏줄을 터뜨리며 울어라, 말했지만

   거긴 붉은 고기가 맛있어 보이는 푸줏간이었구나

 

   그만 이곳에서 떠나가거라, 들렸지만

   노인들은 갈 곳이 없었다 아직 주인의 이름을 이마에 새기지 않은 아이들이

   저렇게 늙기 싫어 저렇게 늙기 싫어

   희한한 귀신 놀이를 하고 있다

 

   폐허에 붉은 벽돌을 다시 쌓아 올릴 사람, 늙은 노인들을 모시고 다른 나라로 갈 사람, 폐허가 될 때까지 다시 싸올 사람, 잠만 자고 꿈을 축낼 사람

   불발된 총알처럼 한 시간 뒤엔 문밖을 나선다, 돌아오는 일이 제 심장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처럼 여겨지면

 

   망설임 속에 피어나는 핏덩이들

   말랑말랑한 고기

   숨 쉬는 육식

   먹고 싶은 것을 예쁘다고 말해 주는 거울 앞에서

 

   거대한 것이 무섭다는 것보단 맛있을까 봐

   그래서 입맛을 다시게 될까 봐

   함부로 꼬리를 자르고

   아이들의 숨통부터 알아볼까 봐

 

   과거를 조감하는 푸줏간 근방의 칼질이

   칼질 없이 피를 가졌다는 심장이 태어나고

   고기반찬을 먹었다 죄책감 없이

 

무사히

 

   청동으로 만든 종이 울린다 끝나는지 시작하는지 알 수 없는 일정한 간격, 소리가 들리는데 움직이는 사람 없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태어난 적 없는 것처럼 투명하게 사라지라고 해서

 

   별일들이 잦아드는 언덕엔 피고름 맺힌 리본이 흔들렸다 무서워서 못 본 걸로 하니, 금세 잊혔다 네 번의 종이 다시 울리면, 네 시에 하기 좋은 일들을 했다 거리의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에 이른 시간이란 없었다

 

   우산을 챙긴 날의 맑음은 수고스럽다 아침밥을 걸렀지만 점심밥 먹을 시간이 왔다 신발 끈 풀리고도 조금 더 걸었다 허리 숙이는 일이 거추장스러웠다 다시 비가 와 우산을 펼쳤는데 펴지질 않앗다 빗속을 뚫고 종이 울렸다

 

   보건소의 기침들과 성당의 풍금 소리, 파이프의 납땜 소리 모두가 종소리보다 작았지만 오래 났다 출발한 적 없는 아이들이 도착을 위해 서둘 때도, 종소리는 났다 시계보다 조금 일찍 시간을 맞췄다 어차피 그렇게 될 테니까

 

   모를수록 살 만해졌다 밑줄 없는 세상에 잘 미끄러졌다 누가 버리고 간 세계인가 누가 주인인 척하는가 보살핌은 그렇게 만지기만 해도 아픈 폭력이 되었다 종은 규칙적으로 소리를 냈다 오늘 내리는 산성비

 

   흘러내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살며시 살아 냈다

 

나의 연못

 

   1.

   우리는 아직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은 동생

 

   2.

   고요한 교실

   투명한 햇빛에 흩날리는 먼지 바라보다

   철제 필통을 떨어트렸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귀가 빨개졌다

 

   간밤에 깎은 연필들이 부러졌다

   아무것도 적을 수 없는 흰 종이 앞

   화분에서 길 잃은 꽃말처럼

   나는 나의 이름을 외웠다

 

   3.

   내가 자주 가는 연못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물방개 튀어 오르고 발을 담가도 혼나지 않을 깊이, 연못을 잊은 사람들은 오랜 잠수 시합을 하고 있거나 저수지에 갔을까 바다가 되기엔 담가야 할 발목들이 부족한 이곳은

 

   내가 자주 오던 연못이었다

 

   4.

   눈에 흰 천을 두르고 숨바꼭질 했다

   아이들이 박수 치며 여기야, 아니 저쪽이야

   귓속말로 내게 바람처럼 불어왔다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술래가 바뀔 차례인데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다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을 뿐

 

   5.

   손을 갖다 대면 온도계는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직 나에게 남은 에너지

 

   집에 가는 길엔 모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았다 빨개진 귀는 누가 물들이는 걸까 두 뺨 붉게 달아오르는 나란한 거리에서 발생된 체온

 

   6.

   나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처럼

   책상 밑에 숨는, 아직은 작고 연약해서

   이불이 너무 커 밤새 이불 밖을 나오지 못했다

   창문 밖에 나를 데리러 올 사람이 있어

   연못처럼 조용한 성격에

   내일의 연필을 깎아줄 수 있는 솜씨를 지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손뼉 치고

   여기야, 바로 여기에 있어

   숨은 적 없이 숨어 있게 된 방 안

   죽은 손목시계는 멋으로 차고

   고장 난 태엽을 돌리며 나는 오랫동안

   나를 맴돌았다

 

   7.

   초인종 누르지 않고도 찾아드는 은인들에게

 

   연못이 바다보다 더 어려운 둘레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굳어 갈 때

 

   풀이 죽은 동생이

   죽은 따옴표로 흰 접시를 채웠다

 

   밥을 먹을수록 말수가 사라지는 동생

   이 병신아

   소리 없이 우는 건 누가 알려줬냐고

 

   멱살을 흔들던 그림자가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입지도 벗지도 않은 채 낱낱이

 

   나의 연못에 온 첫 손님이었다.

 

방물관(房物館)

 

   방 안의 모든 압정들이 쏟아진 날, 소년은 움직일 수 없었다 오래전 잠근 문은 전망이 어렵고, 떨어진 세계지도 뒤 편은 아무것도 없이 눈부셨다

 

   모든 사물이 긴장했다 자꾸 커지는 발을 숨길 수 없었던 소년, 다치지 않으려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더니 어루만져 준 적 없는 등이 불편해졌고

 

   믿을 것이 바닥 밖에 없었던 생일날, 누군가 방문을 열어 줄 것 같다는 예감을 통째로 박제시킨 바깥의 중력들을 관측했다

 

   압정을 밟아 피가 흐르는 최초의 박물관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소년을 구경하던 모서리가 침묵을 긋고 그 틈으로 쏟아지는 미세한 고요함이 숨죽이고 서 있다

 

외상(外傷)

 

   보리차 끓이는 동안엔 할 일이 많아진다. 일단 엄마부터 찾고, 집에 누워 있는 사람이 없으면 서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빈집에 주전자만 끓고 있다. 갈증이 난다. 냉장고엔 물이 없고 모락모락 혼자서 나는 김,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을 땐 손잡이가 잡고 싶어진다. 조금씩 열려 있는 문들 마저 닫고 주전자 뚜껑만 반쯤 열어 놓는다. 넘쳐흐르지 않게 파수꾼처럼 지켜본다. 식탁에 앉아 숙제한다. 대합실 안 사람이 된다. 우는 소리 들리면 불을 끄고 밸브를 잠그면 된다. 다시 식어 갈 때까지 잊고 있으면 된다. 보고 싶어서 갈증이 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물소리를 듣는다. 물의 인기척을 들으며 조금씩 자란다. 주인 없는 보리밭의 저녁이 오면 주전자를 창문 곁에 내놓고, 안개를 거둔다. 수증기가 지나자마자 나는 고소한 냄새, 주전자에 가라앉은 검은 보리알들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한 모금씩 말라 간다. 아직 숙제가 남아 있고 단내와 탄내가 동시에 난다.

 

거장

 

   우리는 만난 적도 없는데 헤어지기 바쁩니다 이름 불러준 적 있는데도 생각나는 게 향기뿐인 사람처럼 선생님, 십 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에게. 이름보다 먼저 도착한 엽서를 샀습니다. 벌거벗은 소년이 피리를 부는 삽화가 그려진……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교차로엔 움직이지 않는 차들이 너무 많습니다.

 

죄송하지만 십 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의 뼈를 붙잡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기분은요 탁자에 걸터앉아 모질게 의자를 바라보았어요 선생님이 편안하신 곳에서 봬요

 

   같은 커피를 마시고 다른 카페인으로 뒤척이는 카페에 들어가 계신다면……

   창가에서 선생님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전쟁을 상상했어요 죽는 것이 사는 방법이라는 말 창문 하나에 역설적인 온도에는 누가 관여하나요? 어디에도 없는 실내는 오로지 사람일까요?

 

   질문이 너무 많아 죄송합니다

   선생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들어서…… 면목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겐 머플러를 선물하고 싶어요 목젖을 녹일 수 있을 만큼 따뜻한…… 그러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거죠 체온은 상납하기 쉬운 마음이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선생님은 아시죠?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잖아요 모르는 걸 모를 뿐이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거의 도착했습니다. 방금 첫눈을 맞았어요

   꽃다발을 사려고 했는데 마카롱을 삽니다

 

선생님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뵙자고 했습니다 감당이 안 되는 난파선에서 물 대신 불을 생각하던 날엔, 가여운 밤을 출렁이며 보냈어요

   이제 저 멀리 선생님이 보여요. 아주 흐릿하게

   첫눈을 맞고 있는 선생님이 그곳에 서 계셔서

 

   다행히도…… 라고 운을 띄우는 말들로 포장한 불행을 지피며 벽난로에 겨울을 욱여넣고, 십 분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꽁꽁 언 마카롱을 녹이기 위해 얼마나 달콤한 말들을 해야 할지

 

   아직도 연인들이 발생하는 골목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며

   사랑하는 사람을 바깥이라 생각하는 고백이

   리본을 달 만한 일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시나요?

 

   귀찮은 제 질문들이 행여나 선생님의 안경을 뿌옇게 김 서리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급해지는 건 시계가 아니라 시계를 찬 사람들임을

 

   선생님, 꽁꽁 언 마카롱을 녹일 만한

   그런 따옴표를 줍고 싶습니다만

   홀로 집에 가는 그 길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설령 비가 오는 날이더라도

   끝끝내 모르는 척 해 주십시오 일기예보가 틀려도

   살아 낼 수 있는 십 분이 제게도 생긴다면

   부디 목례하며 지나칠 수 있는 밤의 세계에서

   안녕히, 또 안녕히

 

편애

 

   선생은 나를 좋아했다 주머니엔 아직 많은 질문과 숫기와 어리광이 잔돈처럼 짤랑거렸지만 그는 나를 아꼈다

 

   다시 찾아간 선생의 집에서 하루는 간병하는 사람처럼 그의 곁을 지켰다 너무 늙은 당신이 나를 헷갈려하고 있었다

 

   창밖엔 목마 탄 아이들이 거인처럼 보이는 숲이 있었다 울창한 흰머리가 겨울을 알아차리는 동안 담요 밖을 나서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선생은 내 이름을 자주 불러 줬다 나의 이름은 당신의 희망적인 낱말 카드였을까 커튼을 치고 싶은 날씨였을까

 

   검버섯들이 말줄임표가 되어 있는 당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만 자라나고 싶어서

 

   문밖을 나설 때 선생은 어서 오너라 인사했고 그에게 쓴 쪽지를 부인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 준 만큼 걸어야 했던 산책이었다."

 

   유리로 된 숲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거인보다 땅을 기는 거인이 더 무서워 보였다 목마에서 내려온 내 얼굴아 얼음장에 비친 내 얼굴아

 

   투명하니

   뾰족하니

 

예컨대, 우리 사랑

 

   옛날 사람들이 들려주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 버려지고도 다시 주워 깁는 그런 이야기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귀신이 되어 소문이 되어 떠돌던 예컨대

 

   종이로 접을 수 없는 생물과 잡아 본 적 없는 손이 모두 따뜻할 때, 없었던 표정을 짓게 되고 우리 사이에 아름다운 낱말을 발명하면서 즐겨 하던 옛날 사람들의 놀이와 같은 것

 

   기억을 잃었던 사람이 있었지, 그것조차 기억 못하는 사람, 파도에 발을 씻고서 다시 백사장을 밟는 사람, 옛날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주 촌스러운 이름을 빌려주었다

 

   끝말잇기가 끝나지 않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불러도 부를 수 없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옛날 사람에겐, 편지를 부치지 못했다 크고 넉넉한 봉투가 없어서

 

   온실 속엔 향기가 없는 꽃이 피었다 아무도 꽃을 꺾지 않는 정원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괜찮았다 바라봐 줄 사람만 있다면 살아야하는 것이 씨앗인 오늘

 

   손목시계에 밥을 주고, 열대어를 가만히 바라보던 사람 나눴던 대화를 종종 잊으면서도 곧잘 들어 주던 사람 옛날 사람들이 들려주길 우리는 사랑에 어설펐던 귀신이라고

 

소년성(小年性)

 

가는 팔목은 흰 이마와 잘 맞아 떨어졌다. 엎드려 있는 나를 울고 있다고 여기던 사람들. 사실 몸을 숙이는 건 쉬운 일이었다. 평면을 벗어나는 몸의 마지막 표정. 그래프는 날뛰고, 달력은 단호하며 날씨는 마음과 나란해지기 쉬운 기울기였다. 가내수공업이 끝날 줄 모르던 밤, 졸면서 만든 규격이 나를 엉성하게 만들었다. 근사한 걸작이 곧 태어날 거라고 장담하면서, 나는 맨 처음으로 수치심을 길렀다. 잠든 나를 깨워 계집애 같은 사내아이를 어쩐지 실수라고 여기면 나는 나의 목격자가 되었다. 증언이 필요한 꿈결과 이름에 써 버린 행운과 주입된 슬픔으로 살아갈 온 마음은 시험판이었다. 치명적인 오류지만 결코 멈춰 버리진 않는 그 방 안에 나는 설계된 적 없는 자세로 처음 나를 감지한다. 엎드려 있으나 잠이 비껴가고 슬픔으로 젖지 않는 주소로 나는 배달되었다. 나는 멸종 위기가 아니다.

 

구체적 소년

 

   청중들은 기다린다. 소년이 모자 속에서 무엇을 꺼낼 것인지에 대해 어깨 너머의 앵무새는 알고 있다 새로움을 위해 거짓말을 펼쳐야 했던 소년을, 앵무새가 소년의 거짓말을 똑같이 따라할 때 비로소 거짓말은 근사한 마술이 된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박수를 친다 암표를 팔지 않는 공연에서, 소년이 낡은 구두를 벗고, 벗겨진 지팡이를 내려놓는다 예전 사람들에게서 빌려온 것들을 놓자 이젠 사라질 수 있겠다고

 

   소년은 거짓말을 발명한다 미래의 누군가가 거짓말을 연기하게 될 것, 가장 긴 박수 소리에 외롭지 않을 모험을 건 소년은 일부러 연필을 부러뜨렸다 비둘기 꺼내는 장면 다음, 토끼를 꺼내는 장면 다음에도 흰 색이 필요했기 때문에

 

   찾아 준 청중들에게 바치는 소년의 말과 행동들, 가여운 앵무새는 날개를 잊었고 새로운 거짓말을 배우기엔 이제 늙어 버렸다 조명은 아직 소년 발끝에 걸려 있는데, 어둠 속에서도 청중의 눈동자는 빛났는데, 얼어붙은 손이 꺼낸 것은 파란 장미

 

   자꾸 새로워지길 원하는 매표소, 거짓말은 노인들에게 암표가 되어 팔려 나갔고, 앵무새 없인 할 수 없는 마술에 이미 거리를 떠도는 소년들은 모자에 동전을 구걸했다 세계의 모든 고요는 이미 매진이다 소년에겐 더 이상 할 수 있는 침묵이 없다

 

무명 시절

 

예고되지 않은 비가 내리면 이름 없는 날이 깊어진다

 

우산이 펴지질 않았다 낙담하면 생기는 그늘 속에 사라진 비운의 소년들이 개구리처럼 우는 곳으로

서로의 명찰을 잊기로 하자

 

농담보다 편한 별명까지 강수량은 차올랐다 소년들의 발 냄새가 났다 울 수 있는 거리에서

이름도 모르게 활자들이 무럭무럭 수배된

담벼락의 몽타주에 자기소개가 번져 가자 침을 뱉었다

 

찾고 싶은 찾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우리는 공짜로 얻은 이 골목길을 누비는 거라고

골목에 그어 놓은 그들에 있어도

비 맞는 자세로 젖은 이름을 말린다

 

고장 난 우산이 멀쩡하게 펴지면 불러 보지 못한 이름들이 쏟아진다

색색의 개구리가 튀어 오른다

 

레오파드 소년들

 

식물도감은 우리를 호명하지 않았다

풀밭 위에서 햇빛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날 때

우리는 그 이유를 헤아리지 않았다

 

이곳의 질서는 흙 밑에서 발굴되곤 했다

일광욕을 할 때면 비릿한 햇빛은 우리를 간지럽혔다

발자국보다 잎맥이 더 푸르기를 바라는 햇빛은

우리의 송곳니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입을 다물고 숨기는 동안

입 속 단내의 팔 할은 우리를 키우면서

젖보다 달콤하고 거름보다 맛있는 양식을 주었고

꼬리를 뿌리로 착각하지 않아야 하는 진화를 주었다

 

발톱은 우리가 가진 가장 건강한 유물이라는 것을

간지러운 자리마다 생긴 무늬를 긁으며 자라나자

풀밭 위의 수컷과 암술들은 꽃가루보다

더 어지러운 소문을 흩날렸다

이제는 햇빛보다 밤이 더 즐거워, 속눈썹으로

풀밭의 밤을 들어 올리면, 스스로 야행성이 된다

꽃의 포효에 밤이 숨죽이고 우리들을 훔치려고 하면

그날엔 몸살을 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향기 나는 털갈이를 위해 서로의 등을 부비며 뛰논다

발바닥에 잔뿌리가 한 뼘 더 자라나 있다

헷갈리는 우리들의 탄생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있는 저 도감도 뱉어 낼 책갈피가 없다

 

곰팡이 첫사랑

 

   생물시간이 끝나면 다시 다정해지는 버릇 끝나는 종이 울리면 시작되는 실험 다정하게 너를 안아줄수록 자꾸 커지는 상상력

 

   아플수록 가까워졌고 잊을수록 뚜렷해졌다 무수히 많은 변인과 경우의 수를 두고 떠올리는 늙은 미래의 모습 노년의 너라면 할머니

 

   비가 오는 날의 하교 너에게 우산 주고 온 날이면,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잃어버린 것들에게도 다시 생기는 이름. 작명하기 좋은 습도

 

   따뜻할수록 징그러워졌다 번식하고 싶은 마음, 몰래 한 자위는 도둑질 같아서 너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옆집 할머니

 

   알코올램프의 심지처럼 꿈틀꿈틀, 생물 시간이 되면 궁금한 게 많아져 잡은 손의 눅눅함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피부가 맞닿는 느낌은 감염의 증상

 

   창백한 얼굴에 핀 검버섯을 보았다 노년의 너를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교복에 보라색 물이 들어가는 병, 수군대며 아이들이 너와 나를 관찰하고 있다

 

사탕과 해변의 맛

 

 

해변에 버려진 것 중엔 내가 가장 쓸모 있었다

버려진 사람들이 잃은 것을 대신해 다시

버려진 사람을 줍는 세계에서

우리의 수도는 어느 쪽이었을까

한 뼘의 파라솔이 그늘을 짓고 우리는

통째로 두고 간 유실물로 남겨져

하나의 관광지를 이룬다

 

*

파도의 디저트가 되네 하나밖에 모르는 맛으로 사탕처럼 둥글게 앉아 녹아가는 연인들

철썩이는 파도가 핥아 가네

발가락부터 녹으며 조금씩 둘레를 잃어 가는 사랑이여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던 연인들이 전투적으로 질투하고 비로소 세계는 달콤해지고 온화해지네

 

*

해변이라는 말을 좋아해

물에 젖는 건 싫어하지만 햇볕이 남아 있는 단어들은 아껴 먹으려고 남겨둔 사탕 같은 것

 

*

내가 먹어본 사탕 중엔 네가 제일 별로였어

 

너처럼이라는 직유가 가진

설탕과 소금 사이의 결정체

 

*

네 말에 끈적끈적해진 나는

입안의 상처들을 혀로 만지작거리며 피가 달다고 생각했다 달콤함을 모르고 조금씩 사라져간다

 

*

바다가 범람하는 세계에서

너는 고작

오리발이었어

 

*

옷소매의 끝엔 해변이 있어

서툰 세수와 훔친 눈물로 적셔놓은

사탕이 녹을 때까지만 출렁이는 해변에서 나는

말라가지 않는 헤엄을 배워

 

안간힘을 다해서

 

설탕의 신비

 

   너는 마치 설탕 속에 빠진 개미

 

   사탕수수밭에 도착한 포로들이 무당벌레를 손톱으로 터뜨리며

   명령을 기다리는 중

 

   잠을 졸여 내일의 수확량을 채우자

   돌아갈 수 있다는 졸렬한 희망을 내뱉자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은 달콤해 제자리를 떠나야만 했던 맛을 벌써 잊은 거야? 대답을 기다리는 혀만 텁텁해지고

   설탕은 먹기 좋게 네모가 될 수 있다는데

 

   각설탕은 기계의 것

   각설탕은 기계의 몫

 

   입 안 가득 설탕을 물고 바다를 건너던 도망자에게 내린 벌은 설탕 속에 빠뜨리는 것

   벗어나도 설탕 녹아도 설탕 털어내도 설탕

   끈적거리는 심장을 핥아야만 나아갈 수 있는 개미떼 행렬에 합류하면

 

   다시 일손은 넘쳐나고 포로들은 줄을 서서 익어가기를

 

   땀 흘리는 노동 앞에서

   포로들의 목덜미엔 처음 맛보는 짠맛의 설탕 열리고

   소금을 몰래 긁어모으는 당직자들

 

   이제 포로들은 소금을 채취하기 위해

   깊어지는 인중을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시리얼 키드

 

   풀장엔 밀크. 멀건 수면 속에서 발장구친다. 유통기한에 부치는 자유형은 빠르게. 가볍게 스푼을 들지만 바삭바삭하게. 우리는 비주류와 견과류 사이에서 태어난 잡곡. 혼혈이 되고 나니 모두들 맛있다고 풀장에 밀크를 넣어 준다. 단지, 우리는 맛있으면 된다. 우유와 가장 잘 어울리면 되는 우리의 장래는 칼슘이 보장되어 튼튼하다. 호랑이도 우리 편이다. 예의를 지킬수록 영양소는 흩어지는 법. 무서울 것이 없는 우리를 주식으로. 식탁 위에서 미끄러질 일만 남았다. 풀장의 밀크. 가파른 물살은 희고 부드럽게, 우리는 점점 더 고소하게. 숟가락을 넘나들며 수중발레, 풀장은 우리 것. 시나몬 파우더도 초코를 입은 땅콩도 허우적거리기 바쁜 밀크. 밀크는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시리얼이 되지 못해 안달난 가공식품들. 어설프게 밀크 속으로 빠져 봤자 건더기일 뿐. 밀크만 충당하는 스펀지 같은 너희들과 달라. 수줍게 떠오르자 풀장은 비좁고, 우리는 서서히 녹는다. 우리는 우유라는 말을 모른다.

 

종이와 생활

 

   나는 내 종이를 다해 편지를 씁니다

 

   종이는 얇고 투명하게 우리 사이를 넘기다 베인 상처로 조금씩 행간을 만듭니다 그 정도의 눈금이 좋아서 나는 온힘을 다해 나의 종이를 낭비합니다

 

   또각또각 연필이 똑바로 걸어가는 일이 측은합니다 들려주지 못한 이것은 종이로 접은 사람이 내게 읽어 준

   왼손으로 편지를 씁니다

 

취미기술

 

네가 좋아하면 그걸로 됐어

이미 죽은 것이니까

 

토끼의 심장을 손에 쥐고선 자두처럼 한입 베어 무는 싱거움

모르는 낱말 없는 사전을 들고

다 아는 듯 말하지도 못하는 자랑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타날 때까지

열렬하게 실패하는 꿈을 꾸고 싶어

 

목줄이 힘줄로 팽팽해지는 착각

연습은 이것으로 끝내 볼게

캐치볼을 끝낸 아이들이 잃어버린 공이 되어

바람을 조금씩 빼앗기기 전에

 

고백은 자꾸 쉬워지고

살면서 기억하게 된 거절들이 매표소에서 편도 기차표를 발권해

어디론가 떠나가게 되면서 돌아오는

내가 싫어 부메랑을 던지면

 

밀렵을 두려워하는

사냥꾼의 눈동자를 볼 수 있어

 

그 속에 이름 없는 꽃밭을 일구고

씨앗이 저지른 향기들을 무심코 사랑하게 되자

사서함 속에 넘쳐 나는 빈 엽서들

누가 몰래 쓰고 간 내 이름은

사랑 받으면서 이미 죽어 버린 것

 

알비노를 앓는 토끼 두 눈에 그제야 맛잇어 보이는 심장

먹음직스럽게 숨을 쉴 때마다

예뻐지고 위험해지는 나는 너의 악취미

 

덴마크 다이어트

 

   우리는 다 잘한다 피를 거꾸로 속이며 노력한다 할 건 다하는 질량들, 보존되어 가는 교과서 속 알고리즘 반대로 해야 멋있는 줄 아는 껍데기들, 벗으면 날 줄 알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빼야 한다 나머지가 생기지 않도록

 

   권리는 없었다 뾰족해지면 어른들은 우리를 꼭지점이라 부를 것, 기억될 방점이 생길 거야 몸속의 뼈들이 장작으로 나타날 때까지 땔감으로 쓰기엔 너무 젖어 있는 둘레, 서로를 껴안아 주지 못했다

 

   모서리가 생겼다 우리를 꼭짓점이라 불러 주는 사람들, 오늘은 생일이다 우리 이름을 부피가 아닌 피부로, 아니면 그냥 피로 불러 주길, 가파른 곳으로 갈수록 설 자리 없는 청정 지역이 보인다

 

   어제의 식단이 내일이 되는 것은 유감이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울었다 도형이 되는 일, 야윈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 주었다 근거 없는 상처들이 생겨났다





 

 


 

 

posted by 황영찬
2018. 12. 12. 17:04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8 세상의 모든 최대화

 

 

 

황유원 시집

2016, 민음사

 

대야도서관

SB110685

 

811.7

민67ㅁ  219

 

민음의 시 219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읽으면 이토록 풍부한 이미지들이 시 한 편 한 편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끓어오를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놀라게 된다. 그다음엔 다양한 지점들을 연결하는 시적 화자의 보폭과 리듬, 라임 등등과 함께 여행을 끝낸 후의 저녁의 흐린 빛, 고즈넉함까지 선물받게 된다.

- 김혜순(시인)

 

황유원의 작품들은 얼음의 밑바닥을 흘러가는 무결처럼 적막하고 견고한 시 세계를 전편에 걸쳐 유지하고 있다. 사념적인 요소 역시 날것으로 엉뚱하게 등장하여 시 세계를 망쳐 놓지 않고 낱말 하나하나의 내부로 스며든다.

- 서동욱(시인, 문학평론가)

 

그에게는 죽는 시늉하거나 아픈척 하며 군중을 모으는 기존의 작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활달했다. 모든 랭보들의 특징은 징징대지 않는 것, 부채 의식 없이, 급가속으로 상상의 세계를 야금하는 대장간은 우리 시에서 차려져 본 적이 별로 없다.

- 작품해설에서 | 성기완(시인,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

 

황유원

1982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로

제3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차례

 

1부

 

루마니아 풍습

북유럽 환상곡

풍차의 육체미

바람 부는 날

새처럼 우는 성(聖) 프란체스코를 위한 demo tape

새들의 선회 연구 -한 장의 사진

간단한 몇 가지 동작들

쌓아 올려 본 여름

비 맞는 운동장

총칭하는 종소리

바라나시 4부작

 

2부

 

레코드 속 밀림

구경거리

지네의 밤 -Massive Attack

개미지옥(前) -백주(白晝)의 악마

개미지옥(後)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전변(轉變)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몬순 블루스

변신 자라

공룡 인형

크레파스로 그린 세계 열기구 축제

잘린 목들의 합창

돌고래시 -자크 메욜에게

 

3부

 

초겨울에 대한 반가사유

세상의 모든 최대화

인벤션

매달린 것들은 다

극치의 수피즘

논스톱 투 브라질

halo

항구의 겨울

밤의 황량한 목록들

양 모양의 수면 양말

끝없는 밤

바톤 터치

天天來

해성장

시베리아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사운드트랙

 

4부

 

전국에 비

오디토리엄

레코드의 회전 -Billie Holiday

1시 11시

사랑하는 천사들

많은 물소리

한려수도

첩첩산중

모두가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있었다

가을 축제

인식의 힘 -Notes on Blindness

일체감

 

작품 해설 │ 성기완

조선어 연금술사 통관보고서

 

새들의 선회 연구

- 한 장의 사진

 

일단 사진으로 찍으면 정지.

한곳으로 집중되는 힘들과 지금 막

펼쳐지려 하는 힘들이 만들어 내는

그대들의 온갖 선(線)들도

그대로 정지.

 

그러나 찍기 전까지는 선회,

찍고 난 후에도 선회,

둥글고 둥글게 사과를 깎는 것처럼

공중의 껍질을 밀어내듯 부드러운 과도(果刀)의 동작으로 선회

새들이 선회한 자리에선 사과 향기가 나고

 

더 큰 원을 그려 봐야 원은 끊어지지 않아

다만 바닥에 떨어지는 사과 껍질처럼 착지할 뿐

천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꼭 천 년 후에도 그럴 것처럼

깎아 놓은 사과의 속살 같은 하늘 남겨 두고서

그대로 착지.

 

그리고 그 자리에 다름 아닌

네가 있을 것.

내가 지른 사과를 부리로 쪼아 먹으며

부드러운 턱 운동과 함께

그 자리에서 가장 둥글게 울고 있는

네가 있을 것.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과가 산산조각 날 때

퍼지는 향기에는 상처 하나 없음을 수상히 여기다

그냥 거기 드러누워 언덕이 되어 버리는

언덕이 되어 그 향기 들이마시는

너는 잇을 것.

 

흔적도 남지 않는 삶이 아니라

다 살아 낸 삶이 남아 있는 흔적과

이제 다 끝났다는 착각의 평화가 동시에 미끄러지는

넉넉하고 공평한 언덕,

평일이 모두 종말한 후

혼자 남겨진 주말의 완벽한 휴식 같고

졸음이 꼳아지는 베개 위로 흘러내리는

내용 없는 오후 같은 너의 언덕

 

거기 항상 내가 있을 것.

어떤 새가 또 태어나는 동안

어떤 새는 새로 태어나기도 한다고 말해 주는 내가

너처럼 나도 그렇게 항상

네 옆에 있을 것.

비 그치고 나뭇가지에 줄줄이 매달린 물방울 열매들

그걸 따 먹는 새들의 목구멍이 순간 얼마나 맑고 시원해지는지!

옆에서 함께 숨죽이고 지켜보는 심정이 되어

찰칵, 그대로 정지했다가

 

함께, 다시 날아오를 것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돌아 버린 것들 틈바구니에 있느나 돌아 버린 건지 아니면 나도 원래 그들 중 하나여서 내가 너희들을 더욱 돌아 버리게 한 것들 중 하나였는지 한참을 헷갈리느라 정말이지 아주 돌아 버릴 지경인데……

 

   하루는 몸속에 팽이 하나 돌려 놓고

 

   그 팽이가 쓰러질 때까지 생각해 본다

 

   자꾸만꿈만꾸자는 그 말,

   그 속으로 들어가면

   끝없는 나선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 주문처럼

 

   몸속에 팽이를 돌려 놓고

   서서히 거기

   빠져들어 본다

   내 몸 안으로 나를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게 해 본다

 

   인체의 신비를 모두 파헤치고 난 후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극도로 나른해질 때까지

 

   모든 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됐을 땐

   팽이는 이미 멈춰 있을 것이고

 

   쓰러지고 나서도 생각해 본다

   절벽 끝으로 몰린 머리가 새하얘질 때까지

 

   팽이는 힘이 다하고 나면 제풀에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슬퍼하고 자시고 ㅘㄹ 것도

   그럴

   겨를도 없이

 

   그러나 저 보름달!

   보름달이 뜨면

   슬퍼하는 이 여럿

   기뻐하는 이도 여럿

 

   강강수월래를 추며 다 같이 돌아 버리는 밤이 여럿

 

   달팽이 안에서 달팽이 밖으로

   달이 팽이처럼 돌아간다

   제자리에서 최고 속도로

   최면을 걸어

   나는 달팽이라고

   라르고(Largo), 라아르고오오오오

 

   달팽이 속의 달이 뜨고

   그 둥그런 탄창 같은 달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달팽이 속의 팽이처럼 돌아가기 시, 작, 하, 고,

 

   그럼 나는 그걸 한 번 힘껏! 후려쳐 보는 것이다

   더욱 빨라지는 강강수월래

   달팽이 안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껍질을 박살 내고

 

   달팽이의 술주정!

   빈 술병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

   번개 문양으로 박살 난 술병 위를 지그재그로 기어 다니는,

   집에서 쫓겨나 급한 김에 자기 집만을 들쳐 메고 나온

   늙고! 무능한! 달팽이!

 

   잊을 만하면 언제나

   잊지 못할 일이 날 들이받고

   밤새 나는 아주 멀리 가서

   아침이면 아주 먼 거리가 되어 있곤 했다

 

   그 위로 왕소금 같은 비가 내리고

 

   지치면 오늘도 그냥 그 자리에서 곯아떨어지는 이가 여럿

 

세상의 모든 최대화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

 

   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

   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

 

   기차가 아무리 짓밟고 가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잘리지 않는 건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어서

 

   손가락을 잃은 기타리스트는 알지 흉측한 음악을 만들 바에야 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는 걸

   발가락이 없는 애벌레는 알지 발가락이 없으면 기어서라도, 가고 싶은 곳엔 가고 봐야 한다는 걸

 

   말하자면 비시각적 음표들의 시각적 극대화

 

   그러나 약은 치료하기도 하는 것,

 

   병명보다 더 많은 치료제를 잔뜩 싣고 가던 기차가 마침내 말기에 다다라 포기하고 탈선할 때

   눈 내린 들판에 처박힌 기차에서 동그란 알약들이 쏟아져나올 때의 기분이란

 

   그 기분 누가 알겠냐마는 환자들만은 알지,

   환자들은 꿈속에서 거기까지 걸어가 그 약을 모두 주워 먹은 다음날 아침 병실에서 깨어나 기차의 차가운 몸을 이해하지 넘어진 채 몸을 뒤로 돌리던 기차를 이해하며 몸을 정확히 당신들 반대편으로 돌리지

 

   현실도피는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오늘밤 그들의 기도가 기차처럼 길어져 결국 지구를 몇 바퀴씩이나 돈 기도들의 속도가 기차를 조금씩 허공에 뜨게 해 마침내 이륙한 기차를 바라보며 철로가 난생처음으로 편안해질 수 있다는 희망,

   을 품자마자 기차는 곤두박질치고

   지진처럼 지축이 흔들려 복부를 강타당한 남자처럼 철로가 신물을 토할 때 신물 위로 기타가 쏟아지는 기분

 

   그 기분은 누가 알까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꿈에서 엎질러진 아이나 알까

 

   아무리 길게 써도 저 레일에는 모자랄 것이므로 여기서 그만둬도 상관은 없겠지만

 

   고요한 밤, 캐롤을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버린 아주아주 거룩한 밤, 깨진 전구를 뛰어넘어 크리스마스의 본질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산타를 엉망진창으로 때려눕히고

 

   지구가 한 바퀴 돌기 전까지 기타를 모두 수리해야 하는 수리공의 마음은 망가진 리프(riff)들을 밤새 고치고 있는 기타리스트밖에 모르지

 

   너에겐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 버릴 만한 그 무엇이 있나?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리는 리듬이라도 있니?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 버리는 리듬을 타고 비옥한 꿈속을 달리다 넘어지는 곳이 늘 절벽 앞이어서 느껴보는

   아찔함, 그 뒤에 웅크리고 앉아 그 리듬을 정면으로

   견뎌본 적 있니!

 

   구겨진 리듬을 잘 펼치면 과연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을지, 무엇까지 덮어볼 수 있을지를 가늠하며 최대한 붉은 와인을 박스째 주문해

 

   뱃속에 와인을 만 박스나 싣고 가는 기차가 오늘밤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유를 누가 이해하겠냐마는

   사랑을 한 박스나 마시고도 제대로 서 있는* 조니 미첼은 이해하지, 어쩌면 술집을 이름표처럼 달고 다니다 이름을 아무 데서나 콸콸 쏟아 버리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이해하지

 

   잠시 동안의 짧고 굵은 경악과 모든 최대화에 따르는 극심한 부작용, 그때마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경적을 울리며 긴 열차 한 대 빨려들어오는 느낌, 결국 일망타진 당하고 마는 느낌을

 

   너무 긴 문장에겐 이제 그만, 쉼표를

 

———

 

* Joni Mitchell, 「A Case of You」중에서.

** Amy Winehouse.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야외에서 한 접시의 물회를

   바람 속에 흔들리는 모든 것들의 친화력과 공평함

   그러나 고층 빌딩의 견고함

   원피스의 펄럭임은 야외에 달린 커튼

   걸어다니는 커튼, 긴 머리의 자유로움과

   저 여잔 머릴 가르길 참 잘했다는 생각

   바람 부는 날 멀리서 바라보면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는 빌딩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플라스틱 테이블에 올려진 물회에 뜨거운 밥 한 그릇을

   소주 한 병을 시키고 잔 세 개를 부딪칠 때 불어오는 바람

   바다보다 더 바다 같은

   바람보다 더 바람 같은 바람의 통로 안에 담겨 한 접시의 물회를

   이제 더 큰 바람이 불어오겠지

   암 그렇고말고

   바람 속에 흔들리던 것들 죄다 이륙하고 테이블이 뒤집히고 원피스가 팬티 위로 올라가고 술병이 차례로 추락할 거야 만물지중(萬物之衆)이 낙하하고 비행하는 난장판이 펼쳐질 거야 그 전에 딱,

   한 접시의 물회를

   바람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마지막 잔을 비우고 그 속에 한 잔의 바람과 평화를

   이 세상 모든 바람이 지금 여기로 불고 있다는 착각

   지금 이 바람은 우릴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는 확신

   이 모든 접시들과 수저들이 처음 보는 우릴 기억하고 있다는 믿음

   이 모든 게 바람이 하는 젓가락질이라는 망상

   그 와중에도 이 골목은 계속 길어져서 아무리 긴 바람도 결국 빠져나가지 못할 거란, 그러나 바람에는 길이가 없을 거란

   헛된, 몽상

   그러나 얼음이 다 녹기 전에 한치 학꽁치 미주구리 문어 대가리

   바람 속으로 날아드는 새들이 생선을 다 채가기 전에 쌈장을 찍고 마늘을 올려서

   김에도 싸서 너의 입에 한 번,

   나의 입에 한 번

   바람 속에 흔들리는 모든 것들의 친화력과 공평함

   오늘 왜 난 자꾸 눈물이 날까

   이봐 그러고 있지 말고 저길 좀 봐

   어느새 일렬로 늘어선 소주병들이 진한 방풍림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이봐 앞에 앉아서 자꾸 핸드폰이나 쳐다볼 바엔 차라리 지나가는 여자 다리를 쳐다보지 그래

   난장판이 되기 직전 빈 접시의 바람을 집어먹는 나무젓가락의 튼튼함

   우리가 이제부터 불어올 모든 바람을 이 한 잔의 공간 속에 모두 쑤셔 담을 순 없겠지만

   마침표같이 눌러놨던 동멩이들 죄다 굴려 버리는 바람

   그러나 어딘가에선 반드시 멈출 돌멩이들을 바라보며

   바람 부는 날 바람 속에 흔들리는 모든 것들의 취기에 시원한 사이다 한 잔씩을 따라 주며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빈 잔은 이제 그냥 빈 잔으로 남겨 두고

 

 

간단한 몇 가지 동작들

 

   우리 함께 땀 흘릴 때 땀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오래된 기도 냄새가 있어

   일인용 침대처럼 홀로 삐걱이던 밤, 젖은 수건처럼 비틀어 짰을 기도의 오래된 물

 

   냄새의 모든 단추를 풀고 들어가면 나오는 깊은 산정호수가 있어

   타오르며 한사코 공중에 매달리는 물안개와 그 속으로 안기는 새들의 자욱한 날갯소리

 

   그리고

 

   커튼이 없다면 지금 이 방으로 부는 바람은 아무

   쓸모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커튼이 흔들리고 있어

 

   그럴 때 사방에선

 

   서서히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지친 손가락들 잘려 나가는 대신 풀들이 땅 가까이로 좀 더

   몸을 눕히고 구원처럼 나는 너에게로 조금

   가까워지고 시간은 밤, 계절은 여름으로

   가까스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동안

   다시 그때 그 주발의 오후로

 

*

 

   그날의 커튼은 기억하지 바람이 어떤 순서로

   어떤 강도로 허공을 쓰다듬었는지

   그날의 바람은 기억하지 하늘에 내고선

   공중에 적은 다음 바람에 날려 버리지

 

   시원한 열차에 올라 창밖 풍경을 다 갖고 싶어라고 말해 버리자, 리듬에 맞춰

   시원찮은 문장들 따윈 바람에 날려 보내며

 

   그동안, 새들이 낳고 먹이고 길러 낸 둥근 평화

   우리가 컵에 담으면 컵이 되고 바다에 담으면 바다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물처럼 될 순 없겠지만 그동안 새들의 선회를 낳은 둥근 평화

   우리가 사물 소리를 잘 내는 흑인처럼

   지나가다 내 보는 헬리콥터 소리만으로 갑자기 모두

   얼굴 가리고 고개 숙이게 만들 순 없겠지만

   둥근 호수의 면상에 이는 무수한 파문, 떨어지면서 으악이 되는 모든 음악의 속 시원함

 

   그동안에도 새들의 알은 단단해지고 그 안의 출렁이는 평화,

   네 안으로 이주하는 내 입속 새 떼들의 젖은 날개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들의 표면장력이 튼튼해지고

   네가 회전할 때, 네 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들이 그리는 포물선의 아름다움

 

   그때 그 시간이 그리는 완벽한 걸음걸이와 그 안의 둥근, 평화

 

   우리가 동화 속 연인들처럼 동이 특 때까지 놓지 않고 켜 놓은 환한 양손이

   우리보다 먼저 졸다

   살짝, 가볍게 벌어지고

 

   이윽고 완전한 한 마리의 새로 펼쳐진 그것은

   불 꺼진 손안에 그대로 안긴 채

   다시 우리의 잠 속으로 날아들게 되는 거겠지

 

*

 

   숨 한 번 크게

 

   들이쉬자 하나의 둥글고 고요한 호수로 펼쳐졌다

   뒤늦게 그

 

   위로 지나가는 한 척의 쾌속정이 일으키는 수만의 물결들의 단추를 수면의 사방 끝까지 다

 

   잠가 주고 나면

 

   어느새 여기도 빈방이 되어 버린다 다른 모든 방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방은 볼 것도 없어' 당신은 그렇게 말했지만

 

   반쯤 열린 문틈으로 훔쳐본 커튼

   바람이 없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 백색의 커튼은

 

   침묵 속에 목매단 채

 

   내리쬐는 햇살 속에

 

   환히

 

   타오르고 있었다

 

개미지옥(後)

-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이것은 싸구려 여인숙에서 꾸는 꿈

   찬비에 젖은 하루, 딱딱해진 발바닥이

   <♨욕실 완비>된 꿈자리에서 풀어지는 이야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 마리 벌레의 예기치 못한 외박

   속에서 식지 못하고 부글, 부글거리는……

 

   마침내 뜨거운 욕탕으로 기어들어 간 개미 소년은

   몸에서 벗겨져 영혼처럼 물속에 풀리는 지렁이 살냄새도 망각한 채

   다시 한 번 그 생각에 골몰했다

 

   (집을 버리고 길을 떠도는 까닭은

   여인숙에서 꾸는 꿈이

   개미집에서 꾸는 꿈과

   다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비바람 속에서

   휘적휘적 걸어갈 만큼 시야 넓은 곤충은 없었으므로……)

 

   개도 아니면서 속으로 개소리를 지껄이다가

   다시 한 번 무지막지한 질투에 사로잡혀

   질투, 투쟁, 쟁취……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한마디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지렁이 비린내로 진동하던 욕탕은 어느덧

   어제 죽여 버린 암개미 냄새로 들끓고 있었고

 

   암개미가 떠나간 방에 남아

   나는 홀로 방 청소를 했었지

   계집의 유령 같은 바람이

   시종일관 밖에서 창문을 두들겨 대던 밤

   계집의 흔적이 남은 방에 홀로 갇혀

   벌이라도 받는 학생처럼

   깨끗해진 방 가운데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죽어 가는 암개미의 시체를, 시취를,

   아니 차라리 암개미의 더러운 말들을 치워 버리기 위해

   멍든 암개미를 업고 공동묘지로 잠입했던 지난밤

   죽인다,

 

   진짜 죽여 주신다

 

   ……내가 인생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죽여 주신다, 정말 나의 인생은!

 

   죽인다는 말은 내가 끝장난다는 말

   너한테 이길 수는 도저히 없다는 말

   그러나 지는 게 영광이라는 말

   그리하여 너는 이제 끝장낸다는 말

   그냥 지금 죽어 버려도 여한이 없다는 말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는 말

   다른 삶은 무가치하게 만들어 주시는 말

 

   욕탕 속의 개미 소년은 자신이 만든 말놀이에 도취돼

   수학 시간에 배운 몽상을 노래했다

 

   결국 도형들의 세상

   원이라면 참 좋겠지만

   너무 많은 삼각형

   사각형은 차라리 두 마리

   그리고 버려진 다른 두 마리를 남겨 두지만

   너무 많은 두 마리

   너무 많은 혼자

 

   그러나 어젯밤에 하지 못한 수학 숙제가 생각나자

   곧장 회초리를 맞는 기분이 되었고

   창밖에는 여왕 폐하가 불호령을 내리시는지

 

   벼락은 우선 찢고 본다

   찢기는 것이 하늘이든

   너희들의 가죽이든

   번개가 함께하는 것은 그 때문

   벼락을 잘 보라고

   벼락에 찢겨진 것들을

   너희들은 똑똑히 쳐다보라고!

 

   개미 소년은 금세 두려워져

   박살 난 유리창 같은 표정으로

   악마에 사로잡힌 목구멍으로 외쳤다!

 

   악마! 마귀! 귀신!

 

   ……

 

   바닥에 떨어진 단어들은 더듬이가 잘린 개미 떼처럼

   맴을 돌다가 소용돌이 같은 몽상으로 변해 갔고

 

   그러자 자연스레 어제저녁의 설교가 떠올랐다

   개미들 모두 모여 똥구멍에 새카맣게 힘을 주고

   언덕에서 들었던 설교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회색 풍선의 무리 아래로

         깊어 가는 저녁 하늘, 화살표로 그어지는

         철새들의 이동 경로

         똑바른 화살표는 평화와 안정감을 주지만

         이탈하는 한 마리 새는 묘한 쾌감을 줍니다

 

   그러나 여왕 폐하께서 곧 이어서 말씀하시길,

 

   ---저 또라이 새!

 

   그러자 어디선가 갑자기,

 

   ---어딜 가나 또라이 같은 놈들 하나씩 있어

        숨통이 트이는 법이지요 (웅성웅성)

 

   이것은 어제 여왕 폐하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은

   이웃집 개미 친구의 어록에서 발췌한 문장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개미새끼!

 

   ---개미귀신은 또라이 개미들을 잔뜩 잡아먹어서

        언젠가 명주잠자리가 되어 하늘을 날겠지요

 

   이것은 악마에게 사로잡혀 길 잃고 방황하는

   처량한 개미 소년의 어록에서 발췌한 문장……

 

   방황에 지친 개미 소년은 이윽고 따뜻하고 축축한 잠에 빠져들었다

 

   …… 그때 나는 그녀를 업고 데이트 중이었지

   사랑스러운 그녀는 속옷 가게 앞에 나를 멈춰 세우더니

   저 팬티 예쁘지 않아? 우리 다시 사랑할지도 모르는데

   그때를 위해 한번 입어 봐도 될까? 씨불였어

   우린 아직 데이트 중이었는데, 속옷 가게 앞에서

   그녀는 마치 우리가 헤어진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꿈속에서도 너의 더듬이 길이를 외울 수 있을 정돈데……

   자꾸 날씨가 추워진다며 그녀는 나를 꼬옥 안았다 등 뒤에서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세게, 그럴수록 세계는 더욱 차가워졌지만

   나는 그녀를 꼬옥 붙들고 침착히 주위를 살핀 후

   어두운 숲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결국

   그토록 뜨거웠던 욕탕도 식고 말고

   불타오르던 사랑은 불태우는 사랑이 되고 말고

   그 온갖 잿빛들 위로

   생전 처음 추락해 보는

   저 하늘 위

   한 마리

   새

 

   피가 빠져나가는 육신처럼

   당신의 음모를 엿들었을 때처럼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을 때

   지금껏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던 창밖

   푸른날개긴밤나비의 펼쳐진 양 날개 같던 새벽이 희미하게 접혀 오는 대지 위로

   자욱이……

   안개가 일고 있었다

   얼마나 더 많이, 오래 밟혀야 하는지

   그 광활했던 세상이 별안간 얼마나, 협소해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해 주며

 

   이제 불과 백 미터 앞으로 다가온 병정개미 군단이 일으키는 자욱한 군홧발 소리가

   개미굴 같은 귓속 무참히 짓밟으며

   성큼,

   성큼

 

   쳐들어오고 있었다

 

*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레코드 속 밀림

 

 

1

 

예술은 두 종류,

차가워지거나 뜨거워지거나

 

목이 쉬면 빛이 바래는 가사가 있고

휘발된 노래 밑바닥에 반정부군처럼 살아남아

지구 반대편 지원군을 불러모으는 가사가 있지

그러거나 말거나 변함없는 사실은

 

마음을 다하면

판은 돌아가는 거

 

2

 

봄밤, 짐승들이 합창하는

레코드 속 밀림의 고요

식지 않은 피를 싣고서 최대한 무리하지 않게

어슬렁거리는 무리들

 

이것이 바로 열대우림에서 맞는 봄밤

따뜻한 비를 맞는 호랑이들의 피부에 핀 착한 꽃들이 질 때

그들을 달래며 저어보는 부드러운 밀림서(書)

 

호랑이는 두 종류,

찢어지거나 불타오르거나

 

밤의 정적 속에 점화되는 눈알들의 냉정함

밤의 고요 속에 이글대는 살가죽의 뜨거움

 

그걸 헷갈리면 당신은 끝장

 

마음이 다하면, 결국

판은 그만 돌아가는 거

 

3

 

울울창창 밀림이 깊어만 가는 밤이고

그래 봤자 무료한 반복재생

겨우 ㅁ과 ㄹ의 자리바꿈에 불과하겠지만

 

마음이 다한 자린 이미 겨울이어서

두꺼운 침묵 한 장 껴입고 사냥을 나설 때

얼굴엔 짜작, 단번에 금이 가는 거

 

잊고 지냈던 화려함들은 어느새 훌륭한 장작이 되어 있었네

그 위에서 불타는 마음

 

4

 

호랑이 요리는 두 종류,

꽁꽁 언 눈알의 단단한 차가움과

가죽의 뜨거운 화염

 

차가운 눈빛 삼킬 땐

밀림에 찬비 내려

 

이글거리던 내장이 식고

칼로 썬 화염 씹어 먹을 땐

뜨거운 아궁이 속에서 들끓는 비명

누구라도 뻘뻘 땀을 흘리지

젖는 건 마찬가지

 

있을 수 없지 밀림의 암전(暗轉)이란

호랑이의 얌전은 가당치 않아

 

그러므로 우리란,

산산조각 난 레코드판에서

죽지도 못하고 기어이 기어 나오고 있는 것

 

마음이 있는 한.

 

개미지옥(前)

- 백주(白晝)의 악마*

 

잠시 그 생각에 골몰해 있던 개미 소년은

어느새 대열에서 멀어져

혼자 남은 자신을 발견했다

 

당황해서, 불개미도 아닌데

두 더듬이로부터 통통한 배에 이르기까지

온몸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열심히 고기를 굽는 불판처럼 정상을 독차지한 태양은

오로지 자신만의 사업에 골몰하고 있었는데

 

어제 여왕 폐하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은

이웃집 개미 친구를 떠올린 개미 소년은

더욱 벌겋게 달아오른 몸으로

한동안을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개미는 고기도 아닌데

뜨거워진 태양에 어쩔 줄을 몰랐고

검은색 거대한 갑충들이 코 고는 소리가

기다란 풀을 간질이는 몽상적 오후 한 시였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개미 소년이 떠올린 짓이라곤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일,

그렇다고 개미는 식물성도 아닌데

마치 새파란 풀잎처럼 떨리는 음성으로

 

오, 하늘의 흰 구름 떼는 달달한 빵 조각!

제가 한입 뜯어먹어도 폐가 되진 않을는지?

 

오, 하늘의 흰 구름 떼는 방금 잡은 신선한 양고기!

제가 한입 뜯어먹어도 놀라시진 않을는지?

 

그러나 노래는 영 신통치 않았고

오로지 배가 고프다는 사실만을 떠올려 줄 뿐이어서

개미 소년은 힘을 아끼기 위해 다시금 멈춰 섰다

노래 부른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꾸짖으시던 어른 개미들을 떠올리며

어른들 말씀이 다 틀린 건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먹을 걸 찾아 주위를 둘러보던 중

저 멀리,

송장벌레 사내들이 지렁이 아가씨를 습격하고 잇는 광경이 포착됐다

 

지렁이 아가씨는 수치심에 몸을 배배 꼬고 있었지만

지렁이 아가씨의 꼬리에 얻어맞은 송장벌레 한 마리의 허벅지가

퍼렇게 멍이 드는 꼬락서니를 지켜보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영 틀린 건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다가가 말을 건넸다

 

--- 송장벌레 선생님들, 안녕하신지

       바쁘신 와중에 죄송한 부탁이지만

       감히 제가 이 파티에 동참해도 될는지 여쭙고자

       이렇게 용기 내어 말을 걸어 봅니다

 

--- 우훼훼, 개미 선생도 원 별말씀을 다!

       즐거움은 나눌수록 배가 되는 법

       불개미들의 어록에 이런 속담은 없나 보죠?

 

늘 모든 걸 혼자서 독차지하던 개미 소년은

심한 부끄러움에 대충 말을 얼버무렸고

선생이란 말에 다시 한 번 얼굴 붉히며

감사를 표하고 파티에 참석했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지렁이 비린내 진동하는 몸 이끌고

개미 소년은 다시 길을 떠났네

구름 떼는 그새 나쁜 일이 있었는지

영 어두운 표정으로 변해 있었고

개미 소년은 잘 알지도 못하는 길을

별 수 없이 열심히 걸었네

 

(둘이 같이 고기를 굽다가

하나가 돌연 채식주의자로 변해 버렸을 때

남은 하나는 좋아라 고기나 씹었어야 했을까

아니면 불판을 엎어 버렸어야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잡초처럼 조금씩

악(惡)이 싹텄고

 

악의로 가득 찬 개미 소년은 뜨거웠던 자신의 붉은색 이마가

서서히 식어 가고 잇음을 느꼈다

 

하늘에서 회충같이 얇고 긴

 

비가 내리고 잇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지네의 밤

- Massive Attack

 

   누구도 지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아주 멍청한 밤일세

 

   허물을 벗을 때마다 아주 길어지는 지네들이 기어 다니는

   아주 검고, 붉은!

   빛나는 키틴질의 밤이란 말일세

 

   어디선가 자네 마누라가 허물을 벗고 잇을 아주 은밀한 밤이라고 말하면 자네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지네의 밤,

   온 마디가 하나의 악절인

   여러 편의 악장이 이어진 교향곡이 방구석을 기어 다니는 아주 웅장한 밤이란 생각이 들지, 않느냔 말일세

 

   그 많은 다리가 고작 한 마리의 것이라니

   그 많은 다리가 한꺼번에 움직일 때마다 와르르 연주되는 음악은 썩, 훌륭하지 않은가! 이 말일세

 

   상상할 수나 있겠나?

   수백만 년 전, 우리가 고작 네발로 기어 다녔을 뿐이던 시절

   그때 어디 감히 음악 같은 게 있었겠나

 

   자네가 침대 위로 무지막지하게 내팽개쳐지기 시작할 때

   누군가는 이미 먹히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먹고 있다는 걸

   이제 자네도 알 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이 말일세

 

   누군가는 은밀히 어둠 속에서 하이힐을 벗고 잇고

   누군가는 더욱 은밀히 구석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다는 걸

   지네나 자네나 둘 다 모른 척, 잠들어 봤자

   우리는 다리가 아주 많이 달린 징그럽고 아름다운 꿈에 실린 채 또 온갖 곳들로 데려가지고 있겠지

   거기 털은 또 얼마나 많이 나 있겠나?

 

   몇 시산을 걸어 올라간 끝에 도달한 아주 높은 언덕, 위에서 수백 미터나 되는 열차,

   소화불량이던 역의 플랫폼과 대합실 전부를 집어삼키고 가는 열차가 겨우 한 마리 다족류로 보인 적이 있다네

   데칸고원에서 였지

   그러나 한 마리 지네가 낳는 새끼의 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말일세

   거기 다리는 또 몇 개나 달려 있겠나?

 

   지네의 밤,

   생각만으로 혼미해지는

   믿을 수 없이 빛나는 횡설수설의 밤일세

 

   나는 인류의 미래보단 지네에게 할당된 다리 수를 믿겠네

   지네가 계속 태어나 열차보다 오래 살아남을 거란 쪽에 내 두 다리를 걸겠네

   갓 태어난 지네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보게, 지네가 기어 다닐 땐 문틈으로 바람 부는 소리가 난다네

   문도 안 열어 놨는데 문은 이미, 벌써, 언제나 열려 있었고

   지네가 늘어날수록 바람은 더 크고 아름다워져 문을 미친 듯이 열어제끼고 박살 날 만큼 세게! 닫아 버리겠지

   세상 모든 지네들의 다리를 헤아리다 바람 속에서 잠들어 버리고만 싶은 밤일세

 

   갑자기 모든 게 너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네

   자네는 이걸 고작 유사 생물학적 키네틱아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나?

   쉽고 간단할 것, 그네라도 타는 것처럼

   그러니 자네도 한번 지네를 타고 인간이 한 번도 기어들어 가 보지 못한 곡선 속으로 기어들어 가 지네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빛나 보는 게 어떻겠나

 

   지네는 술에 떡이 돼 바닥을 기어 다니는 여대생으로 둔갑할 수도 있고

   술이 깨고 나면 기립할 수도 있을 것이네 물론 지금의 자네나 나 같은 모습으로도

   그러곤 사랑하는 이들을 힘껏 껴안아 줄 테지

   사랑하면 두 팔로만 안아도 좋은데

   몇십 개의 팔에 안기는 기분은 또 어떻겠나!

 

   테이블 위에는 자신을 통째로 토하며 죽어 가는 지네가 담긴 하나의 술병이 놓여 있고

 

   쓰러진 솔병에서 흘러나온 술은 테이블 위로 활짝 펼쳐지다 모서리에 이르러 줄줄 혹은 뚝뚝 떨어지는 거겠지

   또다른 지평으로, 부드러운 평면으로! 오늘 밤, 네가 갖고 놀던 장난감이 너를 갖고 놀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될 때까지

   나는 모든 다리들이 연결된 모든 몸뚱아리들을 밤새 지맘대로 끌고 다니는 것을 허용하노라

 

   지네의 밤,

   빛나는 키틴질의 밤이고

   최상급의 모든 나머지를 무력화시켜 버리는 밤

 

   저기 길고 놀라운 웃음소리가 꺄르르르르 기어가고만 있네

 

   지네 한 마리가 한 번에 들 수 있는 악기 수는 또 얼마나 많겠나?

   지네 한 마리가 한 번에 들 수 있는 모든 기타와 보컬들과 드럼들과 베이스들이 내장한 온 마디가 저려오는 경련과 발작 들이 구불구불 기어 다니는 바닥은 분명,

   간지러울 거야 그럴 땐 바닥에 드러누워 하하하히히히히 드르륵드르르륵! 하루 종일 열렸다 닫혔다도 해 보고 웃음으로 제 얼굴 뒤흔들다 얼굴이 와장창! 무너져 내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쁜 거? 나쁜 건 없지

   그런 건 이미 무수한 다리들을 빌려 이 땅에서 서서히 증발하고 있을 거야

 

   털이 너무 많이 난 횡설수설,

   광란의 로큰롤일세

 

변신 자라

 

꿈에 변신하는 자라를 보았다

육안으로 볼 때마다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근처 사물들 중 하나로 변해

나는 그것이 자라인지 뻔한 사물들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인해

그것이 본래 자라이며

어려서부터 완벽하게 익힌 엄폐술을 통해

끝없이 사물로 변해 가는 중이며

어딘가로 끝없이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변신한다는 건

본모습을 가린다는 것

가장 흔한 무언가로

이를테면 대웅전 앞의 석등이나

연못에 가라앉는 대야로 변해

잠시 세상 속에 섞여 들어

세상에 둘도 없는 네 모습을 가린다는 거

불과하다

그것은 그것에 불과하다

사회적 통념의 확대재생산

기껏해야 자기 위안으로서의 이론적 지식들

그것은 한갓 벽에 불과하다

변신 자라가 얼마나 충실히 주변의 사물로 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하등 차이가 없는 것

자라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

넘어서지 못한 채

벽 앞에 선 채

사물처럼 굳어 가고 있다는 거

그런다고 감추고 싶은 과거가 숨겨질 줄 아는가

모든 착각이 일시적이길 바라며

영원한 이합집산에 그치고 마는가

내가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 자라는 계속 사물로 남을 것이다

그 상태를 죽을 때까지 유지할 것이다

내가 여지껏 배운 지식이란 무엇이었나

물속에서 나오려던 자라는 순간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느끼고는

낡은 질그릇 비슷한 무언가로 변해 다시 물속에 가라앉았고

내가 그걸 꺼내려고 손으로 집자

몇 조각 진흙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나무 사발로 변했더라면 괜찮았을 것을

 

공룡 인형*

 

마당은 공룡 인형들로 무너질 듯하다

한때 지구의 주인이었던 것들이

이제 작은 고무 인형이 된 채 마당을 걸어다니다 이렇게 문득

정지해 있는 것이다

누가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더 이상 잡아먹지도

으르렁거리지도 못하고

마당에 늘어져 잇는 공룡들

가끔 누가 와서 가지고 논다

그들에게 목소리와 동작을 부여하는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과 음성

공룡의 상상력에 대해서라면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작고 말랑말랑한 고무 인형이 되어

아이의 몸 빌어 움직이게 될 날이 올 줄은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까

마당에 저녁이 오고

지겨워진 아이가 공룡들 내팽개친 채 자릴 떠나면

그들은 쓰러진 채 고요하고

다시 일어설 줄을 모른다

같은 어둠이지만

한때는 이불처럼 덮고 자던 어둠이

이제는 모든 움직임을 잃은 인형들을 덮어 주기 위해 천천히

마당 위로 깔릴 때

아이는 조금 늙어 있고

바람 한 번 불자

중생대부터 있어 온 은행나무 잎 마당에 떨어진다

은행나무는 자신이 은행나무 인형이 되는 꼴을 보게 될 날은

아마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하고

마당은 이 온갖 것들로 인해 잠시

폐허가 되어 본다

누가 와 재생 버튼이라도 누르고 간 듯

폐허가 되어 흘러갔고

오래전이라고도

오랜 후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 Inspired by 『Sentimental Journey / Spring Journey』, 아라키 노부요시.

 

크레파스로 그린 세계 열기구 축제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예술은 늘 크레파스의 몫이었지

진한 크레파스 냄새 교실 구석구석 배어서

머리는 곧잘 어질어질해졌어

어질어질해져서 환상은 시작됐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별은 늘 크레파스의 몫이었지

허나 노란색 크레파스의 몸 열심히 도화지에 문질러 봐도 낮에는 소용없었어

검은 물감 쏟아져 세상이 온통 어둑어둑해질 때

그제야 찬란한 무독성 빛은 시작됐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낮은 너무 경박스러웠고

밤이 새도록 세상은 철썩 철썩

파도 소린지 채찍 소린지 모를 기묘한 리듬을

얇은 문틈으로 흘려보냈어

 

곧잘 반으로 뚝,

부러지곤 하던 크레파스

반으로 부러진 크레파스의 옷은 금세 누더기가 되고 말았지만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아무도 크레파스를 욕하진 않았지

크레파스 향에 중독된 마음

저녁을 온통 물들이던 크레파스의 부드러운 각질

그림 좀 못 그렸다고 아무나 픽, 죽어 버리진 않았지

 

우리가 크레파스만큼 진했고

크레파스만큼 작았을 때

희멀건 수채 물감과는 감히 섞이지도 않았고

부러진 크레파스들 틈에서 잠들면

세상은 본드 같은 거 없이도

알록달록 잘만 부풀어 올랐지

28색이 다 뭐야, 16색이면 족한걸

더러운 건 필요도 없었고

더러워질 필요도 없었지

 

크레파스 온통 손에 묻히고

씻지 않아도 더럽지 않았던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열기구 같은 건 그림책에서밖에 못 봤지만

매일 16종의 열기구에 매달린 영혼들은

밤낮으로 두둥실 그림 속 그림 밖 온갖 나라들로 사라져갔네

 

이제 아이는 아닌 아이가

창문을 열어 이리저리 낡은 하늘 뒤적거려 보지만

동료들과 피운 담배 연기가 이 도시의 하늘 꽉 채운, 너무

두꺼운 경치만이 펼쳐질 뿐이어서

마치 처음 만들어진 엔진과 프로펠러

같은 심정이 된 아이는 마침내 떨리는 두 손 앞으로 내밀어

타자를 치기 시작하네

오로지 열기구에 대해서

 

새하얀 하늘 위에 그어지고

어두운 팔목 위에 그어지던 거대한 열기구 같은 문장들이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열기구가 세운 찬란한 비행기록들과

런던 파리 리에주 부쿠레슈티

크레파스처럼 아주 기이 --- 러진 열기구에 폭격당한 도시들의 이름을 지나

폭탄 가득 실은 거대한 구름 떼 구경하러 집 밖으로 뛰쳐나와 머리 위로 검고 육중한 그림자

드리우는 와중에도 하늘에서 시선 떼지 못한 채

점, 저엄, 부풀어 오르는 탄성을 내뿜다 사라져 버린 시민들의 인화성 몽상에 이르자

 

바람을 먹은 문장들은 압정이라도 밟은 양 비틀,

 

거렸고 비틀, 비틀

 

거려서 타르르르르! 다시 환상은 시작됐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예술은 늘 크레파스의 몫이었지

그건 문방구에서 훔칠 수도 있고

짝지한테 "야 그것 좀 줘 봐"

하고 잠깐 빌릴 수도 있어서

빌딩 숲 사이로 아무도 몰래 한 무리의

열기구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쯤

내겐 여전히 일도 아니지

 

* "아이가 아이였을 때(Als das Kind Kind war)",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오프닝에서 나오는 페터 한트케의 시의 반복구.

 

총칭하는 종소리

 

빗속에 울리는 종소리

그것을 우중(雨中) 행군이라 총칭한다

모든 것을 총칭하느라 아주 멀리까지 퍼진 종소리가

좍좍 비를 맞으며

불완전 군장으로

판초도 없이 푹

숙이고 간다

속옷까지 젖어 버린 종소리

이 지경까지 헐벗은 행군

종소리는 좌우로 밀착하고 종소리는 불현듯

천둥을 함축한다

구름을 소화한다 번개를 배출한다

전투기를 잡아먹고 초음속 비행하는 소리를 흉내 내는 구름들

과거시와 현대시와 미래시를 압축하고 속으로 깜빡깜빡 비상등을 켜 보며

격추당하는 소리를 흉내 내는 삐뚤빼뚤 사선들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종 속에는 기합이 모여들지요

총동원할 것

물집을 식량을 다양한 군사 지식을

뭉쳐서 장음(長音)이 되는 온갖 단음(短音)들을

이를테면 바다가 넓은 줄 알아 무한정 마셔대는 고래들*처럼

불가능을 진동시키며 오로지 웅웅거림으로써만 기능할 것

집중된 독재자의 연설

뻗어 나간다

마이크 없이

온몸을 마이크로 쓸 줄 알아서

퍼붓는 빗속에 플러그를 꼽아 버리며

종은 종 안의 인간을 여기 다 풀어놓기로 한다

종소리는

죽지 않는다 낙오하지 않는다 오직 적멸에 들뿐

푹 젖은 상하의 탈의하지 않는다

그 앞에 고개 숙이고 땅바닥에 최대한 가까워져

절하는 세상 모든 빗소리들

그 대량의 고개 숙임들 위로 종은 또 한 번 와락 종 속의 내부를

쏟아내고야 만다

귓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 장착되고

만장일치로 폭발을 시도하기로

이제 제발 작작 좀 해라

세상의 장단에 좀 놀아나면 어때

해가 좀 뜬다

계급도 군번도 없다

빗소리 잦아 들어

이때를 경배하라

마른 종의 침묵이 귓속 심해로 가라앉는 소리

속에서 쫙

벌어진 채 다시는 붙지 않는

다리처럼 턱관절처럼

연한 식물의 줄기들 같은 흔들림 속에서

쥐 죽은 듯 취침할 것

좌로 취침하든

우로 취침하든

아무려면 어때

그것을 궁극의 잠꼬대라 총칭한다

이것이 내 몸에서 난 소리라는 사실에 뒤늦게 놀라 뒤틀리며

그 놀람이 내려친 맑음 속에서

골 때리도록

골 때리도록

이토록 청정한 무량광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너라는 운해에 스며들고 있었다

운해의 성분들을 뒤엎고 갈아치우며

도처에서 세워지고 무너져 내리는 음향의 적멸보궁이 되어

와라

와서 나의 극광이 되어라

허공 속으로 쫙

찢어지는 번개처럼

한달음에 달려가 두 눈 꽉 감고

최선의 소리로

최전선의 소리로

확! 거기 뛰어들어라 울려 퍼져라

두 발 쭉 뻗어 버려라

가서 너의 극락이 되겠다

 

* "鯨知海大無糧飮", 出處未詳.

 

비 맞는 운동장

 

비 맞는 운동장을 본 적이 있는가

단 한 방울의 비도 피할 수 없이

그 넓은 운동장에서 빗줄기 하나 피할 데 없이

누구도 달리지 않아 혼자 비 맞는 운동장

어쩌면 운동장은 자발적으로 비 맞고 있다

아주 비에 환장을 한 것처럼

혼자서만 비를 다 맞으려는 저 사지(四肢)의 펼쳐짐

머리끝까지 난 화를 식히기 위해서라면

운동장 전체에 내리는 비로도 부족하다는 듯이

벌서는 사람이 되어 비를 맞고

벤치에 앉은 사람이 되어 비를 맞고

아예 하늘 보고 드러누운 사람이 되어 비를 맞다가

바닥을 향해 엎드려뻗쳐 한 사람이 되어 비를 맞아 버린다

혼자 비 맞고 있는 운동장, 누가 그쪽으로

우산을 든 채 걸어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검은 우산을 들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무슨 작은

구멍 같아 보이는 사람이 벌써 몇 바퀴째

혼자서 운동장을 돌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도 비 맞으며 뛰놀진 않는 운동장

웅덩이 위로 빗방울만 뛰노는 운동장에서

어쩌면 운동장 구석구석에 우산을 씌워 주기 위해

어쩌면 그건 그냥 운동장의 가슴에 난 구멍이

빗물에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는 건지도 몰랐지만

공중을 달려온 비들이

골인 지점을 통과한 주자들처럼 모두

함께 운동장 위로 엎질러지는 동안

고여서 잠시, 한 뭉테기로 휴식하는 동안

우산은 분명

운동하고 있었다

혼자서 공 차고 노는 사람이

혼자서 차고

혼자서 받으러 가듯

비바람에 고개 숙이며 간신히 거꾸로

뒤집어지지 않는 운동이었다

상하 전후 좌우로 쏟아지는 여름의 십자포화(十字砲火)를 견디며

마치 자기가 배수구라도 되겠다는 양

그 구멍 속으로 이 시의 제목까지 다 빨려 들어가 버려

종이 위엔 작은 구멍 하나만이 남아 있을 때까지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자신을 소멸시키겠다는 듯이

가까스로 만들어 낸 비좁은 내부 속으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소릴

집중시키고 있었다

 

쌓아 올려 본 여름

 

여름이다

혼자 점심을 사 먹고 운동장 계단에 앉아 있는 여름

괜히 끊었던 담배 한 갑을 사서 정말 딱

한 대만 피우고 계단 위에 누워 보는 여름이다

개미들이 무언갈 미친 듯이 찾아 헤매는 여름

동네 아저씨 하나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오갈 데 없이 앉아 보는 여름이고

땃 한 대 피운 담배곽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통째로 줘버리는 여름

그 누군가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알 속의 여름이다

개미들아 내게 올라타서 놀다 가라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천천히 기는 매미들아

내 옆에 와서 생을 마쳐라

고장난 티비나 세탁기 컴퓨터 삽니다

그래도 괜찮다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나는 콘크리트 위에서 죽은 매미의 몸을 흙 위로 옮겨 주는 여름이고

공 차는 소리와 구름이 흘러가는 색깔이 구분되지 않는 여름

누워 있는 나를 슬쩍 구름 위로 옮겨 주는

힘이 남아돌고 시간이 남아도는 여름이다

아까 그 아저씨가 애들이 하는 축구를

승부차기까지 다 보고 있는 여름이고

그물은 골의 힘만큼만 출렁이다가

곧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여름

여름은 이윽고 자리를 비우고 잠시 화장실에 갈 것이다

수돗물 틀어 놓고 그 소리 듣고 있자면

잠시 폭포 앞에 서 보는 기분

여름이다

땀과 물이 뒤섞여

배수구로 집중되고 있는 여름

잠깐 누워 있던 여름이 깜박 조느라

구름 떼로부터 도처에 자유낙하 중인 여름

오면 오고

가면 가는 여름이다

짧은 치마를 입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여자보다는

그여자의 다리와 볼록한 궁둥이를 멍하니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고 마는 노인의 표정에 더 반응해 보는 여름

너는 자꾸 치마를 끌어내리고

나는 여름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본다

여름이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또다시 여름

내년 여름은 아직 안 왔지만

내년에도 여름은 오는 거겠지

어떤 확신에 가까운 여름

여름에게도 얼굴이라는 것이 있다면 참

볼만할 거야

운동장처럼

하얗게 웃고 있을지도

모든 것을 증발시키며

정신이 증발했을 때

홀로 버려질 몸뚱이처럼

드러누워 있는 운동장 위에 홀로

드러누운 여름

나는 여름의 타오름 속에 슬쩍 몸을 끼얹고

잠시 같이 타올라 보는

여름

여름이다

여름이고

여름이고

여름이고

여름

나는 돌을 쌓듯이 거기 여름을 쌓아 놓고

발로 한번 차 본다

 

바라나시 4부작

 

연날리기

 

갠지스 강변에 가면 늘 연 날리는 아이들이 있지

하늘 끝까지 풀어 올린 연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생각할 때

마음 다 놓아 버리고선 어두워진 강변 신나게 내달리지

 

그러던 어느 날 보이지 않던 연들 강풍에 흔들리고

팽팽하던 실들 낚싯줄처럼 요동치기 시작하면

잊고 있던 실에 마음 베이는 아이 하나둘쯤, 있었는지도 몰라

 

하늘이 없었다면 떨어질 것도, 다시 띄울 것도 없었겠지만

어차피 우린 모두 하늘에 담겨 헤엄치는 아이들

한때 하늘을 점령할 듯 연 날리던 아이들

 

그동안 너무 많은 연을 띄웠으므로

팽팽히 당겨진 수만 개 연줄들로 뒤엉킨 마음은

아직도 줄 놓는 법 알지 못하지

 

누가 뭐래도 하늘엔 줄이 없어

줄 달린 연들이 어쩔래야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어차피 우린 모두 하늘에 빠져 익사하는 아이들

 

POSTCARD

 

   안녕, 늘 오랜만인 당신. 내가 흰 소들에 대해 말해 준 적 있었던가. 골목에서 사람들의 이야기 빼곡히 담긴 신문지나 아직 밥 냄새 채 가시지 않은 종이 접시 다윌 꼭꼭 씹어 먹는 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누군가에게 엽서 한 장 쓰고 싶어지는 저녁이야

 

   오전에는 파리 떼처럼 잉잉대며 하늘 유영하고 있는 수백 마리 연의 무리 올려다보다 그만 그동안 우리 함께 하늘로 띄웠던 몇 개의 연들을 떠올려 버렸어. 이젠 연줄 모두 끊어 버린 하늘인 척해 버려도 괜찮은 걸까, 하고 생각했을 때 방금 화장터에 도착한 20인분의 목재가 구석에서 풍기던 유난히도 쓸쓸하고 축추한 냄새

 

   오늘도 일곱 시면 텅 빈 배를 붙잡고 태양은 죽어 가지만 어쩌겠어. 이미 열기는 식었고 네가 내 메일 읽느라 밥을 태울 일도 이제는 없을 텐데. 그러나 창을 열면 어느새 새로운 계절이 도착해 있을 저녁은 과연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라고 쓰고 저녁 하늘에 붙어 보려 애쓰는 우표들을 한없이 바라보는 날들이 있어. 지금 네가 읽는 하늘은 어떤 표정의 구름들 배달하고 있을까, 당신의 하늘 아래 서서 몰래 올려다보고 싶어지는 자녁에

 

다시, 연날리기

 

온종일을 날고 달리고 뒤엉키고 부서지느라

결국 만신창이가 되고 만 연은

초져녁 조용한 강물에 수장시켜 주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골목에 남은 빛 쪼아 먹던 새들은

검붉게 번진 하늘 너머로 떼 지어 흡수되는 중이었고

골목 여기저기 버려진 혹성처럼 처박혀 있는 노인들

적막한 그들의 얼굴은 이미

바람 모두 쫓아낸 하늘의 심심함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문 앞에 이르러 열쇠를 찾고 있을 때

언제부터였을까,

모르는 새 나의 발목에 감겨 여기까지 풀려 온

연줄을 보았다

(그때 몇 겹의 비린 바람

도처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이 밤, 외로운 누군가 나를 날리며 놀고 있는 것일까

 

당신의 발목에도 어쩌면 연줄이 감겨 있는지요

우주의 가장 어두운 아래층에서, 생의 마지막일 무엇처럼

그렇게 나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 당신

혹은 내 간절히 붙들고 싶던 당신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 속에서 우린

사이좋게 둘이서, 고요한 하늘에 나란히 손잡고 빠져

보기 좋게 익사하고 있었습니다

 

아르띠 뿌자*

 

떠나 버렸다고

버려 버렸다고 믿은 것들 전부

다시 다 되돌아왔다

내가 달려 나가 줍지 않아도 남이 주워다

대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날 있었다

그놈에게 한바탕 욕지거릴 하더라도

돌아온 것, 다시 내쫓을 순 없었고

 

가트**에서 푼돈 주고 사 강물에 띄워 보낸 디야***

떠나보낸 줄 알고 뒤돌아보면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사라진 게 아니라 디야 파는 아이가

떠내려갈까, 금세 다시 떠올려 좌판에 되돌려 놓은 것

누가 거기다 대고 꽃 모두 시들 때까지 온갖

 

추잡한 욕 퍼붓는 것 보았지만

어떤 침몰한 기억도 깊은 강바닥 물고기들이 알아보곤

그 앞에서 잠시 놀다가는 법

 

피어난 죄로 무참히 꺾여서

헐값에 팔리고

다시 실에 묶여 떠내려가지도 못하는 빛,

 

그 빛을 사고 또 샀다

모든 여정(旅程) 탕진하고

마침내 두 주머니 텅 빈

부랑자가 되어 있었을 때까지

 

……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물에 푹 젖은 연처럼 무거워진 몸으로

누가 울고 있었다

 

한 번 뒤돌아볼 때마다 깊어지는 수위를 느끼며

 

그럼 이제 안녕,

이라는 말에 스미는 뒤늦은 추위를 느끼며

 

이미 멀리

 

떠내려가 있었다

 

* 불로써 신께 경배드리고 은총을 받는 제식.

** 강으로 이어진 계단.

*** 작은 양초와 꽃을 담은 나뭇잎 보트.

 

풍차의 육체미

 

그냥 풍차가 됐으면

바람 불면 돌아가다

바람 자면 멈추는

돈키호테도

로시난테도 아닌

그냥 븅 븅

힘차게 제자리를 지키고픈

달려가서 안기고픈 남자의 규모로

븅 븅

잘리지도 않아서 영원히 자를 수 있는 공중을 썰며

븅 븅

호프나 한잔하고 부리는 호기로

정오 조금 지난 시간에 벌써 뒤풀이를 계획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일단 목부터 축이고 볼 때

그 목구멍들을 통해 넘어가는 힘으로

븅 븅

네가 런던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버스에서 보고 반한 육체미

븅 븅

내가 암스테르담에서 보고 매달려 돌아가고 싶던 힘찬 팔

난 지금 혼자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을 비운 후 장충단공원에 앉아

문자나 주고받으며 당신들의 잡담을 엿듣고 있을 뿐인데

여긴 풍차가 하나도 없는데

난 갑자기 풍차가 되고 싶고

븅 븅

뭐라도 잡고 돌리고 싶고

뭐라도 븅 븅 돌아갔음 좋겠는데

여름바람에 감사하며

담배 피는 영감탱이들을 피해 부채 부치고 있는 할머니의

고약한 표정도 예쁘게 봐줄 수 있는

풍차가 됐으면

븅 븅

꽃받 오가는 꿀벌들의 날개 소리를

딱 100배만 확대한 음량으로

븅 븅

위풍당당

힘차게

난 버스도 안 타고 있는데

갑자기 내려서 좀 걷고 싶은 기분이고

식당에서 보던 야구경기를

여기저기 계단에 앉아 손에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이 이어서

봐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고

계속되는 경기

븅 븅 븅

계속되는 안타

붕 부웅 붕

계속되는 향기

부웅      부우웅   브응

소리를 녹음해줄 순 있지만

모양을 녹화해줄 순 있지만

지금 이 향기를 첨부해줄 순 없네

내가 풍차가 아니라서

힘찬 팔이 아니라서

마음에 드는 사실 몇 가지

부우웅븅 븅  븅

풍차는 없어도

딱 몇 초만

풍차가 됐으면

 

halo*

 

그것은 하나의 침몰이다

 

아침에 날기 시작해 저녁 무렵 진화한 새들이 하나둘

떨어질 때 일어나는 세계의 변형이자

밤부터 얼기 시작해 새벽 무렵 정점을 찍은 투명함이 긴장을

 

놓아 버리자마자 엎질러지는

 

물바다, 거대한 선박이 항해할 때 동반되는

소리의 커다란 모호함이다

 

덜 녹은 얼음들이 뜬 채로 밤 지새우는 동안 녹이 슨

면도날, 거울의 절벽에 매달린 채 점점 둥글어져 가는

핏방울, 그저 그런 선상(船上) 파티에 참가할 때

배에서 내리면 발 디딜 곳 하나 없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 한복판이 대서양처럼

새하얘짐이다

 

어쩌면, 하나의 탄생이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웅장하고 불안한 선박의 노골적인 엔진 소리 같은

 

그것은 고문에 가까운 하나의 이미지, 제 발로 살아 움직이는 고래들처럼

물속에 물을 토하며 거대해진다

포악하게, 악착같이, 굴착기처럼 파고드는

물속에서만 본색을 드러내는 웅장한 소리

혹은 백상아리의 피부를 쓰다듬는 물결들의 환희이거나

이빨에 물어 뜯겨 너덜거리는 살들의 춤

얼음을 깨며 쇄빙선은 싱싱해지고

 

눈 속에 구명보트 같은 눈빛 숨기고 얼어 가는

생선들은 선박의 마음을 이해하느라 더욱 단단해져 간다

그것은 하나의 무너짐,

깨진 얼음들이 살 위로 쏟아져 흰 빛 아래 방치됨이고

 

밤은 물컵처럼 시원해진다

희미하게 전진하며 나의 흰 배가 너의 흰 배 위에 가닿듯

그것은 밤새 퇴고하는 손이 그리는 궤적의 탁월함

 

닻을 내리고 쉴 것이다

 

* Alva Noto + Ryuichi Sakamoto의 곡.

 

일체감

 

가벼운 새는

풀숲에

풀잎 엮어 집을 짓고

무거운 새는

나무 위에

나뭇가지 엮어 집을 짓는다

그것은 섭리

집은 자기

집주인을 닮았다

그러므로

자기 집이 없는 사람

이를테면

자이나(Jaina) 수행자들은

누운 곳이 곧 자기 집이므로

이 세상이 다 그와 닮고

노숙자들이 한참을 배회하다

잠드는

지하철역과 골목은

점점 노숙자들을 닮아 간다

집을 버린 사람과

집에서 버려진 사람은

아무래도 서로 다른 걸 닮아 가는데

오늘은 텅빈 뱁새 집 하날

조심스레 따다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건 버린 집이 아니라

다 써서 버려진 집

잠시

맑고 포근한 시절의 너를 떠올렸다

물결은 오늘 모든 바다에서

잔잔하게 일겠고

이윽고 식탁에서

없는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투명하게

무음으로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세상은 거의 사라졌다

 

인식의 힘

- Notes on Blindness*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내리는

빗소릴 듣고 있었고

내리는 비가 때리는

물질들이 내는 소릴 듣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둔탁한 소릴 내다

창을 열면 크고 선명해지는

빗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빗소리는 무엇 하나 소외시키지 않았으므로

비로소 간극 없이 이어진 세계 속에서

내리는 비가 때리는 온갖 물질들이 내는 소릴 듣고 있었다

내리는 비가 때리는 물질들을 하나씩 분간해 낼 때마다

세계는 확장되고 있었고

세계는 재구성되고 있었고

때로 한밤중에

가는 물줄기 어딘가 부딪치고 있을 때

밤비 오시나

엄마 또 자다 깨 오줌 누시나

분간해 낼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침대에 누워서도 듣고

창문을 열어 두고도 듣고 있었다

문득 뒤돌아보면

고요한 실내

잠시 비 그치면 다시

고요한 세계

그러나 다시 빗소리 들려오기 시작하면

때로 나는 그게 다시 멀리서 비 내리기 시작한 건지

아니면 벌거벗은 네가 욕조에 들어가 샤워를 하기

시작한 건지 분간해 낼 수 없고

그럴 때마다 세계는 뒤섞이고 있었고

세계는 재구성되고 있었다

이어지는 빗소리 속에서

볼 수 있었으면 없었을 세계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없었을 세계

비가 내리지 않을 땐 정말로 없는 세계 속에서

모든 물질들이 내리는 빗속에서 어깨동무하는 광경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게 돼 버렸을 때까지

비는 내리고 있었고

뭐가 뭔지 아는 것 따윈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돼 버렸을 때까지

비는 내리고 있었고

비는 때리고 있었고

나는 그 모든 물질들의 한가운데 있었다

나는 여전히 창가에 머물고 있었고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신학자 존 헐(John Hull)이 실명 이후 3년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일기를 그대로 사용하여 제작된 단편 다큐멘터리.

 

초겨울에 대한 반가사유

 

내가 여기서 가만히 팔을 괴고 앉아 있는데 저기 식탁 위

에 놓인 물병이 흔들,

리고 있다면 저 흔들림은 나만의 흔들림

 

에서

이 세상의 흔들림

 

까지.

 

찬 마룻바닥 위

벽에 걸린 가을 풀 거꾸로 말라가는 시간 속에서

반가사유상의 왼발바닥이 새하얘진다

 

창밖에는 길어 온 물항아리 하나 하늘에 떠 있다

흔들흔들

출렁이다가

 

엎질러지는 날개들

박살나는 물항아리의

예리하고

빛나는 펼쳐짐으로

 

넓어지는 접촉면

발에서, 무릎으로

골반으로 가슴으로

번져오는 추위 속에

마침내 시려오는 머리.

 

반가사유가 뭐 별건가

시원한 바람 한 줌, 십 분여의 뻥 뚫린 환기보다 못한 것

 

엔터키 때리듯 벌떡!

일어나 창 쪽으로 달려가려다 말고

한 칸,

또 한 칸 스페이스바 누르듯

저린 발 뗀다

 

금동여래입상이 뭐 별건가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하늘색이 된 하늘

창을 열고 그 앞에 선 자라면 누구라도 잠시, 확장될 것

 

얼굴은 활주로 같은 것

그 위를 무허가로 비행하는 표정들

자주 착륙하는 낯익은 표정들과

한번 이륙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표정들 속에서

금동여래입상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반가사유상의 사유가 새하얘지고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금동여래입상의 차이는 오로지 넘버뿐

 

스페이스 바는 누르고

엔터키는 때린다

거꾸로 할 수 있다면

날 놀래킬 것

 

그럴 때마다 촛불들이 쓰러지는 저녁 바다

불바다가 되는 수평선 수직선

경계선 따위

그 온갖 선(線)들

 

저 불이 밤바람에 옮겨붙으면, 저 불이 더 불어나면

안 된다

안 되지만

 

뭐 안 될 것도 없다

그럴 때마다 브레이크 브레이크, 멀리 해안도로에서 타이어 타는 냄새

물이 불어나듯

넘치는 불의 계절

물불 같은 거, 가리질 말 것

 

손가락도 없는 눈으로

잡을 수도 없는 구름이나 오래 매만져보는 이 늦가을, 마지막 날 아침

스페이스바 길게 누르고 있는 동안만큼

반가사유상의 사유가

엎질러지고 있는 저 하늘

 

여래입상 따위

엔터,

엔터,

거기 털썩

주저앉혀버려

 

북유럽 환상곡

 

누가 또 시벨리우스*를 풀어 놓았나 등 푸른 생선같이 차가운 하늘

 

떨리는 손 숨기기 위해

손의 멱살을 쥐어 본 적 있습니까

손톱자국 네 개 희미하게 남아

손에게 미안해지는 저녁

 

북극해는 오늘 아침 심한 배신을 당해

노을 닿는 곳마다 맑은 핏물은 우러나오고

 

잠이 오지 않을 땐 베개 속에 낮에 주워 모은 철새의 깃털을 넣어 줘 보지만

그것은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만

 

감기약 캡슐처럼 감정은 여러 종류

채 다 번역하지 못한 낮은 잘 씻긴 유리 재떨이에 기대어 주는 요즘

감기 기운 너머로 담뱃갑 속 빼곡한 천사들처럼

새들의 흰 날개는 펄럭이고

 

주르륵 늘어진 실밥을 당기면

툭,

하고 단추가 떨어지듯

또 해는 지고

 

꿈이 너무 찰 땐 베개 속에 작년 봄에 주워 모은 목련을 넣어 줘 보지만

그것은 어디론가 안전하게 추락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래도 잠이 오지 않을 때 베개를 뜯어 보면 속에는 죽은 새들의 물컹한 내장

(그건 그저 고깃덩어리고)

꿈이 너무 안락할 때 베개를 뜯어 보면 속에는 꽃잎 속에 들어갔다 갇혀 버린 벌레들의 세계

(흔해 빠졌어, 너 같은 거)

 

누가 또 시벨리우스를 다 잡아들였나 더 이상 싱싱하지 않은 하늘

 

투명한 기침 소리를 믿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라고 누가 말할 땐 굳이 콜록거리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다짐하는 것도

희미해진 시벨리우스 냄새 속에서 밤새 바느질을 해 보는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되는 요즘

 

진한 피 맛을 볼 때까지 하늘을 사랑하는

 

* Jean Sibelius

 

 

 

 

posted by 황영찬
2018. 11. 28. 11:47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7 별처럼 꽃처럼

 

 

 

나태주 꽃시집

2017, 푸른길

 

대야도서관

SB114165

 

811.7

나883ㅂ

 

진정 꽃은 나에게도 사심 없이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고 거기에서는 자연스럽게 많은 양의 시가 태어났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보냐! 그만큼 나는 철없는 인간이었다.

이러한 고마움과 철없음이 또다시 한 권의 시집으로 남게 되었다. 꽃같이 예쁘게, 오래 세상에 남아 숨 쉬기를 축원하는 마음 크다.

_ '책머리에' 중에서

 

나태주

 

시인.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여 1960년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공주사범학교에 입학하며 운명적으로 시를 만났다. 집안 내력에 문사적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사모하는 여학생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시를 만난 것이다. 그 시절 신석정과 김영랑, 김소월의 시를 읽고 청록파 3인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시인들의 시를 만나 많은 도움을 얻었으며, 『한국 전후 문제 시집』은 좋은 교과서가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군에 입대하여 주월 비둘기부대 병사로 근무했다. 제대 후 교사로 복직하면서 다시 한 여성을 만나 호되게 실연의 고배를 마시고 비틀거리다가 그 비애감을 시로 표현한 「대숲 아래서」란 작품으로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는데, 심사위원은 소년 시절 좋아했던 박목월, 박남수 두 분이었다.

그 후 오늘까지 여러 권의 시집(37권)과 산문집(13권), 두 권의 동화집, 네 권의 시화집, 여러 권의 시선집을 내고 2006년도에는 시 전집을 냈다. 2014년 가을에는 그의 시 「풀꽃」을 기념하여 공주에 공주풀꽃문학관이 개관되고 풀꽃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차례

 

책머리에


1부_ 참 좋아

별처럼 꽃처럼 / 우체통 곁에 / 프리지어 / 눈, 매화 / 찔레꽃 / 산수유 / 노루발풀꽃 / 매화꽃 아래 / 꽃·10 / 달리아 / 오늘의 꽃 / 국화 / 동백·2 / 등꽃·2 / 백매 / 앵초꽃 / 야생화 / 제비꽃 옆 / 꽃나무 아래 / 벚꽃 이별 / 비파나무 / 겨울 장미 / 목백합나무 / 봉숭아 옆에 / 채송화에게 / 물망초 / 오동꽃 5월 / 용담꽃 / 꽃신 / 솔체꽃 / 술패랭이 / 칸나 / 아내의 꽃 / 싸리꽃 / 팬지·3 / 매화 아래 / 마른 꽃 / 모란꽃 / 족두리꽃 / 모란꽃 지네 / 다시 제비꽃 / 꽃잎·3 / 꽃·9 / 수수꽃다리 / 영산홍 / 동백꽃·2 / 팬지·2 / 난 / 연·2 / 풀꽃·3 / 제비꽃 사랑 / 꽃·8 / 붉은 꽃 한 송이 / 연·1 / 개양귀비 / 꽃그늘 / 제비꽃·5 / 목련꽃 낙화 / 쑥부쟁이·2 / 섬수국 / 옥잠화 / 그래서 꽃이다 / 물봉선 / 봉숭아·2 / 매화꽃 달밤 / 개화 / 꽃잎·2 / 수선화·3 / 수선화·2 / 구절초·2 / 꽃·7 / 꽃·6 / 팬지·1 / 꽃·5


2부_ 꽃 피워봐

강아지풀에게 인사 / 풀꽃과 놀다 / 풀꽃·2 / 동백·1 / 오랑캐꽃 / 민들레꽃 / 서양 붓꽃 / 꽃 피는 전화 / 혜화동 네거리 / 연꽃 / 연꽃 그림 / 동백꽃·1 / 투화投花 / 카네이션 / 카네이션을 어머니께 / 꽃이 되어 새가 되어 / 무궁화 꽃이 피었군요 / 꼬리풀들에게 / 꽃·4 / 동백정 동백꽃 / 배꽃 지다 / 배꽃 달밤 / 낙화 앞에 / 줄장미꽃·3 / 은방울꽃 / 산수유꽃만 그런 게 아니다 / 노랑 / 산딸나무 / 꽃향유 / 봄맞이꽃 / 꽃을 꺾지 못하다 / 구절초·1 / 제비꽃·4 / 산수유꽃 진 자리 / 능소화·2 / 영춘화 / 백목련·2 / 수국·2 / 벚꽃 아래 / 풀꽃·1 / 붉은 꽃 / 둥굴레꽃 / 꽃잎·1 / 그 마을에 가서 / 산촌엽서 / 꽃 피우는 나무 / 백목련·1 / 애기똥풀·2 / 목백합나무 그늘 아래 서서 / 애기똥풀·1 / 봉숭아·1 / 분꽃·3 / 산란초 / 풀꽃 그림 / 민들레 / 붓꽃·2 / 쑥부쟁이·1 / 나팔꽃·3 / 꽃·3 / 개망초 / 놀러 오는 백두산 / 씀바귀꽃 / 나팔꽃·2 / 풍란 / 늦여름의 땅거미 / 메밀꽃이 폈드라 / 분꽃·2 / 산벚꽃나무 / 나팔꽃·1 / 백일홍 / 단풍 / 강아지풀을 배경으로 / 난초 / 저녁 일경一景


3부_ 기죽지 말고 살아봐

순정 / 야생화 들판 / 백두산의 꽃 / 누이야 누이야 / 꽃·2 / 줄장미꽃·2 / 줄장미꽃·1 / 메꽃·2 / 구절초를 찾아서 / 다시 혼자서 / 여뀌풀꽃은 꽃이 아니다 / 데이지꽃 / 하나님, 여기 꽃이 있어요 / 플라워 바스켓 / 나는 파리에 가서도 향수를 사지 않았다 / 기쁨 / 쪽도리꽃 / 난쟁이나팔꽃을 보며 / 꽃·1 / 석류꽃·2 / 얼라리 꼴라리 / 협죽도 / 풀꽃 엄마 / 꽃들에게 미안하다 / 실루엣 / 두벌꽃 / 제비꽃·3 / 자운영꽃 / 붓꽃·1 / 꽃 한 송이 / 분꽃·1 / 제비꽃·2 / 달맞이꽃 / 7월 / 드라이플라워 / 팬지꽃 / 등꽃·1 / 똥풀꽃 / 일년초 / 크로바꽃 / 막동리를 향하여·19 / 설란 / 앉은뱅이꽃 / 겨울 난초 / 꽃집에서 / 난초를 가까이하며 / 능소화·1 / 들길 / 변방·52 / 양달개비 / 패랭이꽃빛 / 변방·3 / 화엄사의 파초 / 산란초 / 수선화·1 / 동국冬菊 / 아카시아꽃 / 맥문동을 캐면서 / 메꽃·1 / 자목련꽃 꽃그늘 / 철쭉꽃 / 산철쭉을 캐려고 / 석류꽃·1 / 자목련꽃 필 무렵 / 봄날에 / 갈꽃 핀 등성이마다 / 처세 / 칡꽃 / 꽃밭 / 제비꽃·1 / 수국·1 / 들꽃 / 들국화·3 / 들국화·2 / 들국화·1 / 감꽃

 

별처럼 꽃처럼

- 혜리에게

 

불타는 대지 위에

홀로 피어 있는 꽃처럼

 

어둔 밤하늘 한복판에

혼자 눈떠 반짝이는 별처럼

 

짧은 인생길 짧지 않게

지루한 세상 지루하지 않게

 

살다 가리니 오로지

아름다이 숨 쉬다 가리니

 

어디만큼 너는 나의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는 것이냐

 

어디만큼 너는 나의 꽃이 되어

숨어 웃고 있는 것이냐.

 

프리지어

- 서울 보광동 송플라워 주인

 

당신 올해도 죽지 않고

살아오셨네요

그것도 샛노랑 옷

새로 차려입고

사뿐사뿐 나비도 나오기 전

나비걸음으로 오셨네요

 

당신 올해도

살아오신 기념으로

꽃을 드려요

그것도 샛노랑 꽃을 드려요

꽃은 프리지어

새 마음 새 세상

새 사랑을 담아 드려요

 

부탁의 말씀은 오직 하나

올해도 당신 부디

행복하시기 바래요.

 

· 10

 

예쁘다고 말해도

말이 없고

예쁘지 않다고 말해도

말이 없다

 

언제 왔느냐 물어도

대답이 없고

언제 갈 거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다만 좋다고 말하면

조그맣게 웃고

사랑한다 말하면

미소 지을 뿐이다.

 

오늘의 꽃

- 임현진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

 

백매

- 김애란 피디

 

매화는 매환데 백매화

아직도 추운 계절에 저 혼자

새하얀 블라우스 차림

 

매운 향기 머금고 그래도

차마 울지는 못한다.

 

야생화

- 백승숙 여사

 

마주 앉아만 있어도

열리는 풍경

 

생각만 해도 마음속에

흐르는 강물

 

두 사람 사이

두 사람 사이에

 

눈 감고 아무 말이 없어도

오가는 이야기

 

바라보기만 해도 글썽

눈물 고이던 날이 있었다.

 

모란꽃

- 이금희 아나운서

 

날마다 아침마다 아침마당

눈부신 모란꽃 이금희

이금희 아나운서

이슬 속에 피어 더욱 눈부셔라

보아도 또 보고 싶어라.

 

· 9

 

  웃어도 웃고 울어도 웃고 입을 다물어도 웃고 입을 벌려도 웃고 앉아서도 웃고 서서도 웃고 누워서도 웃기만 하는 너! 숨이 넘어가면서도 웃을 너! 아주 많은 너! 결국은 나!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꽃 · 8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꽃 · 7

 

다시 한 번만 사랑하고

다시 한 번만 죄를 짓고

다시 한 번만 용서를 받자

 

그래서 봄이다.

 

꽃 · 6

 

누군가 이 시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살맛이 날 것이다

 

어딘가 이 시간 당신을 위해

기조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살맛이 날 것이다

 

더구나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드디어 당신은 꽃이 될 것이다

 

팡! 터져버리는 그 무엇

알 수 없는 은은한 향기, 그것은

쉬운 일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꽃 · 5

 

아무렇게나 저절로

피는 꽃은 없다

 

누군가의 억울함과 슬픔과

기도가 쌓여 피는 꽃

 

그렇다면 산도 바다도

강물도

 

하늘과 땅의 억울함과 쓸픔과

기도로 피어나는 꽃일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군요

- 이제인 시인에게

 

무궁화 꽃이 피었군요

장미꽃이 핀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방 안에 갇혀 있던 다섯 달 사이

 

처음 멀리 계단을 올라

뚝방이 있는 곳까지 가 보았더니

무궁화 꽃 위로 잠자리들도 날고 있더라구요

 

달맞이꽃은 이미 피었다 지고 있고요

습기 머급은 바람 풀꽃 내음 머금은 바람

후끈 코끝에 스며들어요

개망초 꽃들도 새하얗게 피어 있구요

 

다들 반가워요

잘들 있어줘서 고마워요.

 

· 4

 

가깝지 않지요

아주 멀리 그대 살고 있기에

오늘도 나 이렇게 싱싱한 풀입니다

 

숨소리 들리지 않지요

아스라이 그대 숨소리 향기롭기에

오늘도 나 이렇게 한 송이 꽃입니다

 

풀 가운데서도

세상에서는 없는 풀이요

꽃 가운데서도

누에 보이지 않는 꽃입니다.

 

꽃 · 3

 

꽃을 보라!

 

눈여겨 꽃을

노려보고 있노라면

푸들푸들 살아나기 시작하는

선, 선, 꽃잎의 선

 

꽃 속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꼬불꼬불 고갯길이

아득한 가늘은 들판길이

숨었다

 

꽃 속에 보리밥도 없어

끼니를 거르고 돌아앉아

한숨 쉬던 젊으신 어머니

둥그스름한 어깨

어린 누이들의 야윈 볼따구가

숨었고

 

꽃 속에 갓난애기

포대기에 싸안아 업고

지아비 마중 나선

해 저물녘의 한 지어미가

살고 있다

 

꽃 속에 충동적으로

부풀어 오른 옷 벗은 여인네

푸진 엉뎅이 빠알간

입술이 벙싯거리기도

하느니

 

아으, 이

짜릿한 거!

 

꽃 · 2

 

꽃은 식물의 성기

꽃들이 그들의 성기를 만개시켜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다

어머어머, 꽃 좀 보아요

너무나 예쁘잖요

그러게 말이야

수군거리며 사람들이

흠흠, 꽃을 향하여 코를

대보기도 하고 입술을

들이밀기도 한다

어머어머, 이 사람들 좀 보아

어디다 코를 대고 입술을

디밀고 이러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여기저기 꽃들이

투덜거리는 소리.

 

꽃 · 1

 

꽃들은 땅의 젖꼭지

봄이 와서 통통 부어오른

땅의 젖꼭지

다가가 가만히

빨아먹고 싶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외워 보고 싶다.

 

수국 · 1

- 누이 연주에게

 

허투루 슬퍼 말아야지.

허투루 마음을 주지 말아야지.

 

마음 깊이 하고픈 말일수록

더욱 말하기를 삼갈 일이요,

 

수다스런 바람의 희롱 앞에서도

행여 웃음일랑 팔지 말아야 했다.

 

차라리 독한 향기는

치마 끝에 차는 것!

 

 

 

 

 

posted by 황영찬
2018. 11. 20. 15:10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6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

 

 

 

나태주 신작 시집

2018, 밥북

 

대야도서관

SB127726

 

811.7

sk883ㄱ

 

 

나태주

 

·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이 됨.

·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 이후, 『틀렸다』 까지 38권 출간.

· 산문집 『풀꽃과 놀다』, 『꿈꾸는 시인』, 『죽기 전에 시 한 편 쓰고 싶다』, 『혼자서도 꽃인 너에게』 등 여러 권 출간.

· 동화집 『외톨이』 출간.

· 시화집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너도 그렇다』, 『선물』 등 출간.

· 시선집 『멀리서 빈다』, 『풀꽃』, 『지금도 네가 보고 싶다』, 『별처럼 꽃처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등 여러 권 출간.

· 받은 상으로 흙의 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 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고운문화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난고문학상 등.

· 1964년부터 2007년까지 43년간 초등교단에 재직, 정년퇴임.

·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공주문화원장 8년 역임.

·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 주거 시인.

 

다행스런 일

 

내 시는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

지향 없는 하소연이며 고백.

늘상 외롭고 애달프다.

 

나의 시는 바람이 써주는 시.

꽃이 대신 써주고 새들이 대신 써주는 시.

그래서 다시금 외롭고 애달프지만은 아니하다.

 

2018년 신춘

나태주

 

차례

 

다행스런 일

 

1부

 

네가 있어 / 떠나는 너 / 꽃구경 / 철부지 마음 / 노래로 / 해거름 녘 / 너를 두고 / 호수·1 / 늦여름 / 아리잠직 / 느낌으로 / 목소리 듣고 싶은 날 / 개울 길을 따라 / 변명·1 / 변명·2 / 이른 아침 / 새 / 네 앞에서 / 두 개의 지구 / 꽃필 날 / 말랑말랑 / 금세 / 호수·2 / 손인사 / 재회·1 / 재회·2 / 가을날 맑아 / 계단 / 입술 / 포옹·2 / 봄비 / 만나지 못하고 / 맨발 / 고칠 수 없는 병 / 사랑은 이제 / 선물 아침

 

2부

 

좋은 때 / 행운 / 작은 마음 / 흔들리며 어깨동무 / 은행나무 아래 / 장갑 한 짝 / 이별 이후 / 종이컵 / 희망 / 풀베기 / 담장을 따라 / 봄은 아프다 / 부모 노릇 / 축복 / 고향 / 차 / 좋은 세상 / 어머니 앞에 / 쌍가락지 / 송년 모임 -‘예술의 기쁨’에서 / 감동-낙타시편·1 / 잔인무도-낙타시편·2 /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 오르막길 / 한 사람 / 봄, 그리고 / 어리버리 / 생일날 / 팔불출 / 잘못 든 길 / 대화 / 벼랑 / 울컥 / 아침의 생각

 

3부

 

동백 / 양란 / 별꽃 / 인디안 앵초 / 오월 카톡 / 두둥실 / 가지 않는 봄 / 연정 / 초여름 / 여행에의 소망 / 포옹·1 / 그 날 / 시 / 질문 / 그리움 / 주기도문 / 새벽 / 그분 / 그 골목길 / 한 말씀 / 여행지의 꿈 / 아버지의 집으로 / 악수 / 간단한 일 / 귀국 / 여행길 / 시작법 / 조금씩 오는 생각 / 영월행·1 / 영월행·2

 

4부

 

급한 말 / 러시아에서 / 이제는 / 유산 / 걱정인형·1 / 걱정인형·2 / 버림받음으로 / 바람 부는 날 / 모른다 하랴 / 부서진 돌 / 잠시 쓴다-혜리에게 / 김남조 선생 / 봄날의 끝자락 / 봄 꿈 -취환 회장 / 다시 만남 / 봄처럼-오지현 시낭송가 / 삐비-김주영 작가의 자수 / 초롱꽃 -소화 데레사 수녀 / 통화 -반경환 평론가 / 버들잎 하나-임현진 / 벌개미취-김지헌 시인 / 진보랏빛-김금용 시인 / 폭포 앞에서 / 몽실이 -강나영 피아니스트 / 코맹맹이 소리-김인순 교사 / 리슬한복 / 겨울 모시옷-오현 스님 / 좋으신 인연-다시 오현 스님 / 인생을 묻는 젊은 벗에게 / 며늘아기에게 / 오직 감탄사 하나로-공주 땅에서의 백범 선생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고

개울물이 소리를 내고 있었고

꽃이 피어 있었고

꽃이 고개를 흔들고 있었고

 

저게 누굴까?

몸을 돌렸을 때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선 얼굴

 

네가 너무 예뻤던 것이다

그만 눈이 부셨던 것이다

 

그 길에서 그날 너는

그냥 그대로 개울물이었고

꽃이었고 또 개울물과

꽃을 흔드는 바람결이었다.

 

- 개울 길을 따라

 

네가 있어

 

바람 부는 이 세상

네가 있어 나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된다

 

서로 찡그리며 사는 이 세상

네가 있어 나는 돌아앉아

혼자서도 웃음 짓는 사람이 된다

 

고맙다

기쁘다

힘든 날에도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 비록 헤어져

오래 멀리 살지라도

너도 그러기를 바란다.

 

아리잠직

 

못생긴 것이

못생긴 것이

이쁘지도 않은 것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마음속 깊숙이 들어와

제가 아주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한다.

 

네 앞에서

 

너는 내 앞에 있을 때가

제일로 예쁘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너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

 

내 앞에서는 별이 되고

꽃이 되고 새가 되기도 하는 너

 

나도 네 앞에서는

길고 긴 강물이 되기도 한다.

 

만나지 못하고

 

가까이 왔다가

그냥 간다

 

돌아서

길을 돌아서라도

보고 싶었는데

 

못 보고 가니

많이 섭섭

 

그래도 다음

만날 약속 있으니

그나마 다행.

 

종이컵

 

너무 쉽게 버려 미안하구나.

 

축복

 

잠자는 아기

일하는 아빠

기도하는 엄마.

 

벼랑

 

사람들은 죽으려고

뛰어내리지만

 

꽃들은 살려고

뛰어내린다.

 

아침의 생각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일까?

 

사랑은

두 사람이 한 곳을 보는 것일까?

 

사랑은 끝내

두 사람이 가까이 마주 서 있는 것일까?

 

이 아침 다시 한번

해 보는 생각이다.

 

동백

 

봄이 오기도 전에

꽃이 피었다

너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

눈 속에서도 붉은 심장을

내다 걸었다.

 

초여름

 

너도 좋으냐

살아있는 목숨이

 

그래 나도 좋다

살아있는 목숨이.

 

 

쓰레기는 쓰레긴데

사람들 마음에 오래 머물다

버려지는 쓰레기가 될 것인가

이내 버려지는 쓰레기가 될 것인가

 

날마다 그것이 난제였다.

 

새벽

 

새벽 시간 잠 깨어

귀가 가렵다

 

하나님이 천사들이랑

또 내 얘기

하시나 보다.

 

잠시 쓴다

-혜리에게

 

너 지금 어디 있느냐?

어디서 나를 보고 있느냐?

 

오늘도 구름 높고 하늘 높고

바람은 푸르다

 

바람 속에 너의 숨결이 숨었고

구름 위에 너의 웃음이 들었다

 

너 부디 오래 거기 있어 다오

지구 한 모퉁이에서 잠시 쓴다.

 

봄처럼

-오지현 시낭송가

 

기다리지 않았음에도

찾아와 가슴에 안기는

부드러운 바람

 

어찌 기다림이

없었겠느냐?

 

다만 멀리서

스스로 돌아옴만이

눈물겹고 고마울 따름.

 

삐비

-김주영 작가의 자수

 

어머니 어머니

세하얀 등성이에 혼자 서서

오래도록 그렇게 보고 계셨군요

 

나는 아직도 어린 아이

아장 아장걸음으로

당신 앞으로 가요.

 

초롱꽃

-소화 데레사 수녀

 

동화 속 여자아이

책 밖으로 잠시 외출 나왔나 보다

 

손에는 초롱꽃 모양

물동이 하나 들고

 

동화 속 샘물의 물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했을까

 

책 밖의 샘물을 길어

동화 속으로 가져가려고 그랬을까

 

맑은 이마 맑은 눈

나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posted by 황영찬
2018. 11. 16. 14:30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5 천부경 81자 바라밀

 

 

 

박용숙 지음

2018, 소동

 

대야도서관

SB 128830

 

259.3

박65ㅊ

 

천부경에 숨겨진 천문학의 비밀

 

천부경 해설의 새로운 이정표

《천부경》은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의 경전이다. 서구문명은 오랜 동안 지구 둘레로 태양이 돈다고 주장하는 천동설을 지지했다. 또 지구라는 땅덩어리가 맷돌처럼 바다 위에 떠있다고 했다. 이것이 허구라는 사실이 폭로된 지 600년이 넘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문명을 반성하지 않는다. 서구는 한쪽을 이성적인 문명으로 여기고 다른 쪽을 비이성적인 미개 문명으로 치부해 왔다.

 

신이 작성한 최초의 문서, 《천부경

'불경'은 그 문자를 풀이한 설법이다

이 책은 《천부경》의 "삼사성환오칠일묘연의 도"가 지구의 자전 공전을 뜻하고, 전체 9 × 9 = 81자가 고대 천문학자들이 사용하는 비밀 문자임을 밝힌다. 이 비밀의 문자를 풀면 요지부동의 《천부경》 81자가 불교의 《반야경》과 만난다.

 

· 《천부경》의 숫자는 천문학의 상징들이다

· 천지인이 지동설의 열쇠다

· 금성, 해, 쪽달이 만나면 생명의 탄생이 시작된다

· 이승은 지구이고 저승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이다

· 동양 고전과 불교에서의 무無는 마고다

· 석가는 새벽별을 보고 지동설의 깨달음을 얻었다

· 사르트르와 니체 또한 새벽별의 의미를 알았다

· 불경은 천부경을 풀이한 설법이다

· 노자 《도덕경》의 주제도 지구 자전 공전이다

· 도道란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다

 

저자 박용숙朴容淑 은 1935년 함남 함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국문학과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U.C. 버클리 아시아센터 연구교수를 거쳐 동덕여자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를 지냈다.
인문학자로서 인류의 시원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고, 철학, 고전, 미술, 역사, 문학 등 분야를 망라한 독서로 동양과 서양 문명, 샤머니즘과 근대문명(기독교, 불교, 유교 등)을 통섭하는 데 천착해왔다.

이는 지속적인 책 집필로 이어져, 《한국 고대 미술사론》(1979), 《한국의 시원사상》(1985), 《전통미술의 재발견》(1988), 《황금가지의 나라》(1993), 《지중해 문명과 단군조선》(1996), 《한국 미술사 이야기》(1999), 《한국 현대미술사 이야기》(2003) 등 전통문화와 미술비평에 관한 많은 저서가 있다. 일본의 제일서방第一書房에서《샤머니즘으로 본 한국고대미술문화 사론シヤ?マニズムよりみた朝鮮古代文化論》(1985)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 책《천부경 81자 바라밀》은 우리 전통 사상의 핵심을 이룬 《천부경》이 지구 자전 공전의 천문학 이치를 담고 있는, 고대 천문학자의 비밀문서라는 데서 출발한다. 기독교와 불교 문명이 시작되기 전의 상고사를 다룬《샤먼제국》, 인류의 사상과 역사를 일구었던 최초 문명에 관한 도상학적 고찰인《샤먼문명》 등의 전작에 이은 샤먼 시리즈 완결판이자, 출발이 되는 책이다.

 

        목차

 

저자의 글

여는 글

 

제1장 | 제석님과 지동설

    어루하! 제석님

    하늘의 길목과 이정표

    금성, 해, 쪽달이 만나면 좀생이혼이 내린다

    만명굿, 지상에서는 금성을 칭송한다

    좀생이혼을 부르는 굿판의 진동

    이승과 저승, 부정풀이굿

    자전하며 공전하는 사물놀이

    《천부경》 81자는 지동설

 

제2장 | 새벽별 마고 이야기

    《천부경》의 첫 걸음, 괴물 ‘마고’

    금성이 창조주다

    석가는 새벽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마고 이야기

    메두사의 빛은 해탈의 텍스트

    우주의 진동음은 원시음악이다

    인人은 빛과 그림자의 중계자

    ‘천지인’은 지동설의 열쇠다

    무無는 《천부경》의 문고리

    카오스와 무無

    동양 고전과 불교에서의 무無는 마고다

 

제3장 | 마고의 손

    손은 우주의 이치를 셈한다

    수는 천문학의 기호

    《천부경》으로 들어가는 수 1, 2, 3

    4는 사계절이다

    5는 이승과 저승의 플랫폼

    6은 혼불이다

    7은 하늘의 중심이자 모태

    8은 지구 자전 공전의 궤도다

    9는 지구의 공전궤도

    십十은 공空이다

    민속, 놀이, 우주춤

 

제4장 | 마고의 정원

    마고 거울과 천문 관측

    《천부경》 81자는 지구 자전 공전의 경문이다

    지구의 타원궤도

    자전은 24시간, 공전은 24절기

    지구 궤도에 이변이 생겨도 지구는 돈다

    2·3二三은 지구 자전 궤도의 메타포이다

    우주운행의 신성비례

    노자 《도덕경》의 주제도 지구 자전 공전이다

    원효와 바라춤

 

제5장 | 마고의 돌

    돔과 해탈

    일승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돔의 천창과 앙명인중천지일

 

제6장 | 오! 마고의 빛과 열반

    빛과 그림자가 하나가 되다

    천창으로 좀생이혼이 내린다

    《천부경》과 석굴암

    동굴 속의 빛

    불교와 게마트리아

    상법시대와 정법

 

제7장 | 《천부경》 81자 풀이

    도道란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다

    윤회와 세속

    《인부경》

 

나가는 글

참고문헌

 

제석굿  날개를 의미하는 장삼에 꼬깔을 쓴 제석이 천문도(달력)의 상징인 부채를 쥐고 춤을 추고 있다. <무당성주기도도>의 부분, 서울대학교박물관.

만명굿  만명卍明은 점을 치는 새벽별 여신이다. 왼손에 달력(24절기)을 쥐고 오른손에는 좀생이혼을 부르는 방울을 흔들고 있다. <무당성주기도도>의 부분, 서울대학교박물관.

쌍영총 전실(스케치)  천정을 목재로 井자 모양을 엇갈리게 쌓앗다. 돌이나 옹기로 만든 완벽한 돔을 모방한 것이다. 공간의 내부는 빛이 차단된 흑천으로, 길게 생긴 아치형이다. 양쪽 벽면에는 벽화가 있고 두 개의 돌기둥을 거대한 뱀이 휘감고 올라간다. 고구려, 5세기. 그림 출처 : 《한국미술전집 : 벽화》, 동화출판공사.

부정풀이굿  굿을 시작하기전에 굿판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여섯명의 쟁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무당성주기도도>의 부분, 서울대학교박물관.

바빌로니아 천문도  수메르인들이 그린 태양계 모습. 아카드왕의 인장에 새겨진 천문도로, 이 시대에 태양 중심의 지동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 출처 : 제카리아 시친,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왕자 이야기에 등장하는 스핑크스  날렵한 사자 몸매에, 어깨에 날개를 단 여자의 얼굴이다. 오이디푸스 왕자에게 수수께끼 문답을 내고 잇다. 기원전 5세기, 파리 루브르박물관

우리나라 <천상열차분야지도>  유럽 천문학자들도 풀지 못하는 이상한 천문도로 알려져 있다. 중심에 모두 세 개의 원이 있는데 큰 것 두 개는 겹쳐 있고 작은 원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원의 이름은 '자미원'이며 속에 북극의 별들이 배치되어 있다.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그림 출처 : 양홍진, 《디지털 천상분야열차지도》

이집트의 스핑크스  사자 몸에 날개를 달고 얼굴은 사람이다. 피라미드는 춘분날 해가 뜨는 방향에 앉아 있다. 두 손에 단지를 들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오로라, 새벽의 여신>  귀도 레니 작. 새벽의 여신 오로라가 마차를 타고 달리고 있다. 새벽별을 만나려는 태양 아폴론은 아름다운 처녀들에 둘러싸여 잇고 새벽별 오로라는 이미 하늘에 떠 있다. 횃불을 든 아이는 새벽별과 태양과 달을 맞이하기 위해 탬버린을 두드린다. 흑백의 두 말은 빛과 그림자가 나란히 있는 것을 암시한다.

거인족 타이폰typhon을 죽이려는 제우스  거인족은 날개를 달고 있다. 하체는 두 마리의 뱀이 결가부좌한 것처럼 꼬인 모습이다. 지구 자전 공전의 도를 의미한다. 이들은 천문학자이자 점성술사들이다. 기원전 6세기.

금동 천문도  중심부의 북극(천개)을 가리키는 둥근 원이 자미원이다. 그 속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여러 항성들이 그려져 있다. 북극성, 작은곰자리, 큰곰자리, 오리온자리, 시리우스, 알파성, 수소자리, 묘성 등이 원 안에 들어 있거나 아니면 어정쩡하게 한 다리를 걸쳐놓고 있다. 조선시대, 양산 통도사박물관.

하무라비의 손  구데아 신상의 합장에는 지구 자전 공전의 도가 숨어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고려시대의 청동거울  고려시대, 지름 24cm, 국립중앙박물관.

무구 가위  신라의 왕들이 각종 의식을 행하던 안압지 바닥에서 발굴되었다. 그곳에서 굿판이 열렸음을 말해 준다.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한 가위 손잡이의 모양새에 주목해 보자. 일반적으로 아가리는 구슬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 아가리에 보배 구슬을 물고 있었을 것이다. 가위는 지구를 상징하는 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경주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국립경주박물관.

<천상열차분야지도>  천문도의 중심에 자미원(북극)이 있고 그 둘레로 두 개의 원이 겹쳐 있다. 두 개의 원 중에서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원은 북극인 작은 원을 정중앙에 두고 있지만 위쪽으로 더 올라 간 원은 북극의 자미원을 아래쪽으로 밀어내고 있다.

첨성대  첨성대 축조에 들어간 돌은 365개. 네모의 꼭지는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각각 지구 공전 길이와 사계절을 상징한다. 추분날 정오에 꼭대기의 화혈로 해가 수직으로 내려와 안을 환하게 밝힌다. 통일신라.

미트라의 개벽도  미트라교도(무두루천사)가 가부좌를 하는 동굴(벽사)에서 새벽별을 보고 일승의 깨달음을 얻은 후 자아의 상징인 알을 깨고 암흑의 방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이다. 양쪽으로 벌린 두 손에는 거대한 뱀의 머리와 꼬리 양쪽이 동시에 잡혀 있다. 지구 자전 공전의 도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방상씨 가면  흑천의 문을 박차고 나온 해탈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 네 개의 눈은 사계절을 의미한다. 사계절을 깨닫는 것이 곧 해탈이다. 주요 민속자료 제16호,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뿔배  소뿔이 모티프가 된 잔이다. 뿔 끝쪽에 소머리가 있지만 두 개의 뿔은 아주 작다. 기다란 뿔 하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토기가 청동기와 함께 옛 무덤에서 발굴되는 이유를 현대 고고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성서》의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는 비유가 실은 지구의 자전축 X十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야 지역 출토, 동아대학교박물관.

<십우도>  목자가 한 마리의 야생 소를 순치시키는 이야기다. 모두 여덟 장면에 소가 등장하며 검게 그려진 소가 점차 흰 소가 된다. 빛과 그림자가 변화하는 상황을 관측한다는  의미로, 여기서 소가 엎어놓은 돌바가지 톨로스이고 소머리의 보이지 않는 중뿔이 새벽별이다. 새벽별이 나타나는 춘분 때 목자는 해와 북두칠성이 나란히 있는 하늘을 보며 해탈자가 된다.

금관과 수소뿔 금관장식  5세기경. 경주 출토. 위는 서봉총금관(국립경주박물관), 아래는 고령금관 장신구(삼성미술관 리움).

석굴암 주존불  석굴암은 엎어놓은 돌사발이다. 천창의 빛이 가부좌한 불상의 이마에 박힌 보석을 때리면 찬란한 광채가 흑천을 밝은 빛으로 채우고 법의 꽃이 핀다. 항마촉지인과 함께 지구 자전 공전의 깨달음을 나타낸다. 통일신라.

무용총 주실 천장 벽화  돔 양식의 구조물로 천정에 황도십이궁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 부도이다.

고행주의 석가  석가가 파라문에 입문하여 혹독한 고행을 하던 시절의 모습. 가부좌로 두 손을 모았지만, 잡은 건지 놓으려는 건지 모호한 상태다. 봄 여름과 가을 겨울의 두 회전이 미묘하게 꼬리를 물며 돌아가는 지구 자전 공전의 원리를 보여준다. 2~3세기, 인도 라호르박물관.

코만 있는 서있는 비너스  팔을 오므려서 사각형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얼굴을 원형, 하체의 성기 부분을 삼각으로 읽으면 ○□△(원방각)의 이미지다.

의상법사가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두 마리의 용이 서로 꼬리를 물고 비틀며 돌아간다.

지구 위에 올라선 미트라 영웅  '말을 타다'는 일차적인 메타포다. 미트라는 사계절을 의미하는 네 개의 날개를 달았고 거대한 뱀이 몸을 휘감고 있다. 얼굴은 메두사의 가면이다. 메두사를 우리는 도깨비라고 한다. 도상에서 미트라가 두 개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두 개의 열쇠는 춘분점에서 지구가 몸통을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반대로 추분점에는 왼쪽으로 기울인다는 뜻이다. 몸을 휘감은 뱀은 지구로부터 회오리모양으로 치솟아 미트라의 몸을 휘감고 올라가 어깨와 뒷머리를 돌아 그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이는 지구와 메두사(금성)가 만난다는 삼사성환의 비유다. 이 도상은 16세기에 로마의 미트라 신전에서 발굴한 벽화의 모사품이다. 출처 : David Ulansay, 《The Origines of Mithraic Mysteries》 

 

 

posted by 황영찬
2018. 11. 5. 12:22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4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2

 

 

 

이종호 글 · 사진

2015, 북카라반

 

대야도서관

SB108573

 

911

이75ㅎ  2

 

불국사와 석굴암부터 백제역사유적지구까지

 

UNESCO World Heritage of KOREA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종묘, 남한산성, 백제역사유적지구,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 화성, 강화 · 고창 · 화순 고인돌 유적, 조선 왕릉,

불국사와 석굴암, 경주역사유적지구,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한국의 건축물을 대변하는 궁궐은 많지만, 창덕궁이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에 지명되었을 정도로 남다른 특이성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단일 목조 건물로 가장 규모가 큰 종묘와 남한산성도 한국의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이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백제역사유적지구와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 화성도 세계문화유산에 속한다. 한국은 '고인돌의 나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고인돌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데, 특히 강화도와 전남 화순, 전북 고창 지역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조선시대의 왕릉은 거의 전부 한양을 중심으로 100리 안에 잇다. 경주 지역은 1995년 한국의 간판스타라 볼 수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최초로 지정되었고,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경주시 전부를 포괄해 지정되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인 한라산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 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전2권), 『과학문화유산답사기』(전3권), 『미스터리와 진실』(전3권), 『황금보검의 비밀』, 『과학 삼국유사』, 『과학 삼국사기』, 『고대 신전 오디세이』,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파라오의 저주』, 『천재를 이긴 천재들』(전2권), 『세계 불가사의 여행』,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노벨상이 만든 세상』,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한국의 유산 21가지』 등 100여 권을 집필했다.

 

차례

 

머리말

 

제8장 강화·고창·화순 고인돌 유적

고인돌의 나라

고인돌은 거석문화의 발자취

한국 고인돌의 차별성

강화 고인돌 유적

고창 고인돌 유적

화순 고인돌 유적

 

제9장 조선 왕릉

동구릉
건원릉 | 현릉 | 목릉 | 숭릉 | 원릉 | 휘릉 | 혜릉 | 경릉 | 수릉

홍유릉
홍릉 | 유릉
사릉
광릉
서오릉
명릉 | 경릉 | 창릉 | 익릉 | 홍릉
서삼릉
예릉 | 희릉 | 효릉
파주 삼릉
공릉 | 순릉 | 영릉
온릉
파주 장릉
김포 장릉
태강릉
태릉 | 강릉
의릉
헌인릉
헌릉 | 인릉
선정릉
선릉 | 정릉
정릉
영녕릉
영릉 | 영릉
장릉
융건릉
융릉 | 건릉

제10장 불국사와 석굴암
불국사
절대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
불국사의 구성
석가정토
청운교와 백운교 | 자하문과 회랑 | 대웅전과 무설전 | 다보탑 | 석가탑
아미타정토
칠보교와 연화교 | 극락전 | 비로전
연화장 세계
석굴암
석굴암의 건축 구조
팔부신중 | 금강역사 | 사천왕 | 항마촉지인 본존불 | 십일면관음보살입상 | 대범천과 제석천 |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 십대제자상 | 감실의 조각상
종합건축물 석굴암

제11장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지구
신라 무덤의 고구려 유물 매장
왕의 숫자보다 많은 금관
발굴의 한 획을 그은 천마총
남산지구
신라의 사찰, 남산
남산 돌아보기
제1구역 : 서남산 (1) | 제1구역 : 서남산 (2) | 문화재 보고, 삼릉골 | 제2구역 : 남남산 | 제3구역 : 동남산 (1) | 제3구역 : 동남산 (2)
명활산성지구
황룡사지구
모전석탑 분황사
월성지구
계림
경주 월성

제12장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한라산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거문오름
용암동굴
만장굴 | 김녕굴 | 벵뒤굴 | 용천동굴 | 당처물동굴

 

■ 북방식은 비교적 넓고 편평한 땅 위에 세워 네모난 상자 모양의 방을 만든 다음 바닥에 시체를 안치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덮은 것이다. 중국 랴오닝성 가이핑의 스펑산 고인돌.

■ 강화도 하점면 부근리의 강화지석묘는 북방식 고인돌의 상징적인 유적이다. 남한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 강화도 고려산 북쪽으로 삼거리 고인돌군(위), 서남쪽 하단에는 오상리 고인돌군이 있다. 오상리 지역에는 고인돌 12기가 모여 있다.

■ 고창 고인돌의 특징은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혼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상석곽식이 45기나 있다. 고창 고산리 고인돌.

■ 운곡리 24호 고인돌은 길이 6미터, 너비 4.5미터, 높이 3.5미터로 추정 무게 297톤인 국내 최대의 고인돌이다.

■ 감태바위 고인돌군과 감태바위 채석장은 화순 고인돌군 중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고인돌 군락지다.

■ 핑매바위 고인돌은 고인돌 자체는 7기에 불과해 가장 적지만, 춘F7호로 명명된 핑매바위 고인돌과 춘F5호, 도로 아래쪽의 춘F6호가 있다.

■ 화순 고인돌의 가장 큰 특징은 뚜껑돌이 100~200톤을 상회하는 대형 고인돌 수십 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건원릉은 고려 왕릉 가운데 가장 잘 정비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헌정릉 제도를 기본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조선 왕릉의 교과서다.

■ 현릉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이다. 문종은 세자로 있었던 기간이 30년인 반면 재위 기간은 2년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 목릉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능으로 건원릉 동쪽 언덕에 있다.

■ 숭릉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동구릉 9개 중 입구에서 볼 때 가장 좌측에 있다.

■ 원릉은 재위 기간이 가장 긴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이다. 쌍릉으로 조성되었으며 병풍석을 만들지 않고 난간석을 이어 붙였다.

■ 휘릉은 인조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병풍석이 없고 십이지신상을 새겨 방위를 표시한 12칸의 난간석을 둘렀고 봉분 뒤로 3면의 곡장이 있다.

■ 혜릉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으로 동구릉 내 유택 중 유일한 원 형식이다.

■ 경릉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를 모신 동구릉 중 9번째 능이다. 왼쪽이 헌종의 능이고 중앙이 효현왕후의 능, 오른쪽이 효정왕후의 능이다.

■ 수릉은 추존 익종과 신정왕후 조씨의 능이다. 합장릉이지만 단릉처럼 봉분과 혼유석을 하나만 두었다.(출처_문화재청3)

 

 

 

■ 훙릉은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능이다. 홍릉이 남다른 것은 명 태조의 효릉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다.

■ 유릉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능이다. 조선 왕릉 중 유일한 동봉삼실의 합장릉이다.

■ 사릉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사릉 정자각은 배위청이 짧아서 전체 건물의 모습이 정사각형이라는 느낌을 준다.

■ 광릉은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이다. 풍수가들은 광릉을 2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이라고 한다.

■ 명릉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은 동원 쌍분으로 조영하고, 인원왕후의 능은 오른편 언덕에 단릉(아래)으로 모셨다.

■ 경릉은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덕종의 능(위)은 대군 묘로 조성되어 매우 간소한 반면 소혜왕후의 능은 왕릉 형식을 갖추고 있다.

■ 창릉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예종은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재위 기간은 14개월에 불과했다.

■ 익릉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데, 서오릉에 있는 능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 홍릉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으로 조선 왕릉 42기 중 유일하게 왕의 유택이 지금까지 비어 있다.

■ 예릉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능이다. 조선 왕조의 상설 제도를 따른 마지막 능이다.

■ 희릉은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중종은 '왕비가 무던하고 지조가 높고, 태사의 덕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며 끔찍이 대했다.

■ 효릉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 능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인종을 기려 능호도 효릉으로 정해졌다.

■ 공릉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규모가 크고 병풍석이 없는 원 형식이다.

■ 순릉은 성종 비 공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넷째 딸로 순릉과 마주 보고 있는 공릉의 장순왕후와 자매지간이다.

■ 명릉은 영조 맏아들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능이다. 영릉이 간소한 것은 세자와 세자빈의 예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 온릉은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인 단경왕후 신씨의 능이다. 단경왕후는 '죄인의 딸'로 낙인 찍혀 왕비 책봉 7일 만에 폐출되었다.

■ 파주 장릉은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능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능원 양식으로 평가받는다.

■ 김포 장릉은 인조의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를 모신 능이다. 병풍석과 나간석을 두르지 않은 쌍릉 형식이다.

■ 태릉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다. 왕비의 봉분 1기만 있는 단릉이다.

■ 강릉은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마련한 쌍봉릉이며, 두 능 모두 병풍석을 둘렀다.

■ 의릉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다. 의릉은 쌍릉이지만 왕릉과 왕비릉이 각각 단릉의 상설을 모두 갖추었다.

■ 헌릉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으로 같은 언덕에 무덤을 달리해 안장한 쌍릉으로 왼쪽이 태종, 오른쪽이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다.

■ 인릉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합장릉으로 봉분이 하나이며 봉분 앞의 석상도 하나만 설치했다.

■ 선릉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으로 하나 이상의 능이 같은 능호를 사용하지만, 각각 다른 언덕에 조성된 동원이강릉이다.

■ 정릉은 중종의 능으로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 윤씨가 있는 서삼릉의 희릉과 동원이강을 이루고 있다.

■ 정릉은 태조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었지만, 태종이 즉위하면서부터 정릉의 위상은 확바뀌어 푸대접을 받는다.

■ 영릉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현재의 영릉은 풍수지리상 최고의 길지라고 알려졌다.

■ 영릉은 효종과 인선왕후 정씨의 능오, 좌우로 이웃한 다른 쌍릉과는 달리 앞뒤로 나란히 있는 동원상하 형식이다.

■ 장릉은 단종의 능으로 다른 왕의 능이 한양 내에 있는 반면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군에 있다.

■ 융릉은 장헌세자 장조와 현경의왕후의 합장릉으로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다.

■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합장릉으로 재실 위 높은 언덕에 모셔져 있다.

■ 불국사는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한다"는 토함산 서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불국사 입구.

■ 불국사의 건물은 장대하고 독특한 석조 구조 위의 목조건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 청운교와 백운교는 석가모니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자하문에 연결되어 있다.

■ 자하문은 붉은 안개가 서린 문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몸에서 나온다는 자금색 광채를 말한다. 또한 자하문 좌우의 회랑 구조는 궁중의 것과 유사하다.

■ 대웅전은 아미타정토의 극락전보다 한 층 높은 위치에 있다. 창건 당시에는 석가여래와 미륵보살, 갈라보살의 삼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 다보탑은 온 우주의 근본 형상처럼 네모나고 둥글고 뾰족한 원형과 방형과 삼각형이다.

■ 석가탑은 '무영탑'이라고도 불리는데, 현진건의 소설로도 유명한 아사녀와 아사달의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는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 극락전은 아미타불이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곳이다.

■ 비로전의 주인은 비로자나불인데, 비로자나불은 "빛을 발하여 어둠을 쫓는다"는 뜻이다. 불단에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 석굴암은 화강암을 다듬어 석굴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인공 석굴로 자연석을 뚫고 굴을 만든 고대 인도나 중국의 석굴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토함산 석굴암 입구.

■ 석굴암은 윤회의 12단계인 12지연기를 나타내는 법당으로 꾸며져 있다. 그러므로 석굴 법당은 불교미술의 정수인 불상들의 총집합체다.

■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의 네 지역을 관장한다는 천왕이다. 동방 지국천과 북방 다문천.

■ 석굴암의 본존불은 조각상 가운데 가장 중심적 존재로 중앙의 본존불은 높이 3.4미터에 이르는, 대좌까지 합치면 5미터나 되는 큰 불상이다.

■ 십일면관음보살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11개의 얼굴 모습을 갖추고 있는 관세음보살이다.

■ 삼층석탑은 높이 303미터인 팔각원당형 기단 위에 방형의 3층 탑신이 놓여 있는 특이한 형태다.

■ 대릉원지구에는 신라 미추왕릉, 경주황남리고분군, 경주노동리고분군, 경주노서리고분군, 동부사적지대, 경주 오릉, 재매정 등이 있다. 미추왕릉(위)과 경주 오릉(아래).

■ 봉황대는 신라 고분 중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데, 고분 위에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무덤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 호우총은 광개토대왕 때 고구려에서 만든 명문이 있는 호우가 발견되어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 신라의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된 금관은 모두 6점이다. 이 중에서 교동 금관을 제외한 황남대총 북분 · 금관총 · 서봉총 · 금령총 · 천마총 금관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것이다. 위로부터 황남대총 금관, 금관총 금관, 서봉총 금관, 금령총 금관, 천마총 금관.

■ 천마도의 용도는 '말다래'다. 말다래는 말안장에서 늘어뜨려 진흙이 사람에게 튀는 것을 막는 장식이다.

■ 신라 최초의 사찰로 알려진 흥륜사는 1910년경에 우연히 금당터가 보이는 토단과 신라 최대의 석조 · 석불 등이 발견되어 흥륜사터로 추정하고 있다.

■ 월정교는 통일신라 최고 전성기의 화려한 궁성 교량으로 신라 왕경 서쪽 지역의 주된 교통로로 사용되었다.

■ 나정은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에는 그를 기리는 유허비를 비롯해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공터다. 나정과 남간사지 당간지주(아래).

■ 포석정은 물이 포어 모양을 따라 만든 수구로 흐르면 물 위에 띄운 솔잔으로 술을 마시며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서 즐기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아득한 구름 위 하늘나라 부처님 세계에 우뚝 솟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고 해발 약 400미터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면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높이가 404.5미터에 이른다.

■ 자연 암반에 6미터 높이에 새겨진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 있다.

■ 열암곡 석불좌상(위)은 발견 당시 불상의 머리만 없었는데, 2005년에 발견했다. 침식곡 석불좌상은 머리와 광배는 사라졌지만 삼단대좌를 갖추는 등 나머지 부분들은 대체로 남아 있다.

■ 천룡사 삼층석탑은 원래 무너져 있었는데 1989년부터 석탑 자리를 비롯해 주변을 발굴 조사하면서 복원한 것이다.

■ 서출지는 이름 그대로 글이 나온 연못이다. 그리 큰 연못은 아니지만 연꽃과 수백 년 된 배롱나무들이 제철에 절경을 이룬다.

■ 미륵곡석불좌상(위)은 ,경주 남산에 있는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고, 보리사마애석불은 얼굴은 두툼하고 세밀하게 조각해 자비 넘치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 명활산성은 다듬지 않은 돌을 시용한 신라 초기의 산성으로 남쪽의 환등산을 둘러싸고 테뫼식 토성을 먼저 쌓았다가 나중에 북쪽에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 석성을 쌓았다.

■ 황룡사터는 진흥왕 14년에 사찰을 지으려고 한 장소가 아니라 궁궐을 지으려고 했던 곳이다. 황룡사터와 목탑 심초석(아래).

■ 분황사는 '향기로운 왕'이란 뜻으로 선덕여왕 대인 634년에 세워졌다. 분황사탑은 전탑 양식을 채택했으나 재료는 벽돌이 아니고 석재다.

■ 내물왕릉은 신라 17대 내물왕의 무덤으로 높이 5.3미터, 지름 22미터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며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석을 돌렸다.

■ 현재 남아 있는 월성 유적으로는 조선시대 때 축조된 석빙고뿐이다. 월성은 위에서 바라본 모습이 반달 모양 같다고 해서 '반월성'이라고도 부른다.

■ 한라산은 해발 1,950미터의 산으로 약 180만 년 전에 시작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 한라산 정상에는 옛날 신선들이 백록을 타고 물놀이를 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 화구호가 있으며 백록담으로 불린다.

■ 성산일출봉 분화구의 최고 정상은 182미터이며 분화구 내의 최저고도는 98미터다. 한때는 분화구 안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는데 현재는 온통 억새밭이다.

■ 성산일출봉 분화구 안에는 풀밭이 펼쳐져 커다란 원형 경기장을 연상케 한다. 이 풀밭은 예부터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와 띠 등의 식물군락을 이루고 있다.

■ 제주 사람들은 오름 주변에 마을을 세웠고, 오름에 기대어 밭을 일궈 곡식을 키우고 목축을 해서 생활했다. 또한 신앙의 텃자리로 신성시하는 한편, 죽어서는 오름에 뼈를 묻었다.

■ 만장굴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이다. 동굴의 지질은 알칼리 감람석 현무암으로 약 30만 년 전부터 동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돌거북(아래).

■ 벵뒤굴의 '벵뒤'는 순수 제주어로 중산간 지역의 널따란 벌판, 평평한 대지를 뜻한다. 광대한 용암대지가 형성된 곳을 일컫는다. 벵뒤굴의 용암 기둥.

■ 용천동굴은 전형적인 용암동굴로 동굴 내에는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산호, 동굴진주 등 석회동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성장하고 있다.

■ 당처물동굴의 천장에 빽빽하게 군집을 이루면서 생성되어 있는 종유석은 그 형태가 다양하면서 기형적인 형태가 많이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8. 10. 16. 14:47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3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  강 시집

2016,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전철 4호선,
선바위역과 남태령역 사이에
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구간이 있다.
숫자를 세어 시간을 재보았다.
십이 초나 십삼 초.
그사이 객실 천장의 조명은 꺼지고
낮은 조도의 등들이 드문드문
비상전력으로 밝혀진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
나는 고개를 든다.
맞은편에 웅크려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파리해 보인다.
기대지 말라는 표지가 붙은 문에 기대선 청년은 위태로워 보인다.
어둡다.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맹렬하던 전철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가속도만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
확연히 느려졌다고 느낀 순간,
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맹렬하게 덜컹거린다. 갑자기 누구도
파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나는 건너온 것일까?

 

시인 한  은 1970년에 태어나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이 실리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과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을 출간했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그는 침묵과 암흑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렸던 최초의 언어에 가닿고자 한다. 뜨겁고도 차가운 한강의 첫 시집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언어-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고통의 시금석인 셈이다.

 

시인의 말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불꽃 속에

둥근 적막이 있었다.

 

2013년 11월

한  강

 

차례

 

시인의 말

 

1부 새벽에 들은 노래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새벽에 들은 노래

심장이라는 사물

마크 로스코와 나

마크 로스코와 나 2

휠체어 댄스

새벽에 들은 노래 2

새벽에 들은 노래 3

저녁의 대화

서커스의 여자

파란 돌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2부 해부극장

조용한 날들

어두워지기 전에

해부극장

해부극장 2

피 흐르는 눈

피 흐르는 눈 2

피 흐르는 눈 3

피 흐르는 눈 4

저녁의 소묘

조용한 날들 2

저녁의 소묘 2

저녁의 소묘 3

 

3부 저녁 잎사귀

여름날은 간다

저녁 잎사귀

효에게. 2002. 겨울

괜찮아

자화상. 2000. 겨울

회복기의 노래

그때

다시, 회복기의 노래. 2008

심장이라는 사물 2

저녁의 소묘 4

몇 개의 이야기 6

몇 개의 이야기 12

날개

 

4부 거울 저편의 거울

거울 저편의 겨울

거울 저편의 겨울 2

거울 저편의 겨울 3

거울 저편의 겨울 4

거울 저편의 겨울 5

거울 저편의 겨울 6

거울 저편의 겨울 7

거울 저편의 겨울 8

거울 저편의 겨울 9

거울 저편의 겨울 10

거울 저편의 겨울 11

거울 저편의 겨울 12

 

5부 캄캄한 불빛의 집

캄캄한 불빛의 집

첫새벽

회상

무제

어느 날, 나의 살은

오이도

서시

유월

서울의 겨울 12

저녁의 소묘 5

 

해설 |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 조연정

 

피 흐르는 눈 3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초여름 천변

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앗던 순간에 대해서

 

(정말) 허락된다면 묻고 싶어

 

그렇게 부서지고도

나는 살아 있고

 

살갗이 부드럽고

이가 희고

아직 머리털이 검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

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

어떻게 피가 아니라 물이었는지

 

부서진 입술

 

어둠 속의 혀

 

(아직) 캄캄하게 부푼 허파로

 

더 묻고 싶어

 

허락된다면,

(정말)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니,

 

회복기의 노래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회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천지에도

남은 것들은 많았다 그해 늦봄

널브러진 지친 시간들을 밟아 으깨며

어김없이 창은 밝아왔고

흉몽은 습관처럼 생시를 드나들었다

이를 악물어도 등이 시려워

외마디소리처럼 담 결려올 때

분말 같은 햇살 앞에 그저

눈 감으면 끝인 것을

텃새들은 겨울부터 아니 그전 겨울부터 아니아니 그 전 겨울부터

목 아프게 지저귀고 있었다

때론 비가 오고 때론 개었다 세 끼 식사는 한결같았다 아아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린 동생의 브라운관은 언제나처럼 총탄과 수류탄으로

울부짖고 있었고 그 틈에 우뚝

살아남은 영웅들의 미소가 의연했다

그 해 늦봄 나무들마다 날리는 것은 꽃가루가 아니었다

부서져 꽂히는 희망의 파편들

오그린 발바닥이 이따금 베어 피 흘러도

봉쇄된 거리 벗겨진 신 한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천지에서 떠밀려온 원치 않은 꿈들이 멍든 등을 질벅거렸고

그 하늘

그 나무

그 햇살들 사이

내 안에 말라붙은 강 바닥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모든 것이 남은 천지에

남은 것은 없었던 그해 늦봄

 

그때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저녁의 소묘 4

 

잊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건

부스러질 것들

 

부스러질 혀와 입술,

따뜻한 두 주먹

 

부스러질 맑은 두 눈으로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

 

                                    무엇인가

                                   반짝인다

 

반짝일 때까지

 

파란 돌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을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러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캄캄한 불빛의 집

 

그날 우이동에는

진눈깨비가 내렸고

영혼의 동지(同志)인 나의 육체는

눈물 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다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꽃처럼 불 밝힌 이층집들,

그 아래서 나는 고통을 배웠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기쁨의 나라로

어리석게 손 내밀었다

 

가거라

 

무엇을 꿈꾸느냐 계속 걸어가거라

가등에 맺히는 기억을 향해 나는 걸어갔다

걸어가서 올려다보면 가등갓 안쪽은

캄캄한 집이었다 캄캄한

불빛의 집

 

하늘은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에서

텃새들은

제 몸무게를 떨치며 날아올랐다

저렇게 날기 위해 나는 몇번을 죽어야 할까

누구도 손잡아줄 수는 없었다

 

무슨 꿈이 곱더냐

무슨 기억이

그리 찬란하더냐

 

어머니 손끝 같은 진눈깨비여

내 헝클어진 눈썹을 갈퀴질하며

언 뺨 후려치며 그 자리

도로 어루만지며

 

어서 가거라

 

저녁의 소묘

 

어떤 저녁은 피투성이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가끔은 우리 눈이 흑백 렌즈였으면

 

흑과 백

그 사이 수없는 음영을 따라

 

어둠이 주섬주섬 얇은 남루들을 껴입고

 

외등을 피해 걸어오는 사람의

평화도,

오랜 지옥도

비슷하게 희끗한 표정으로 일히도록

 

외등은 희고

 

외등 갓의 바깥은 침묵하며 잿빛이도록

 

그의 눈을 적신 것은

조용히, 검게 흘러내리도록

 

새벽의 들은 노래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봄은 봄

 

숨은 숨

 

넋은 넋

 

나는 입술을 다문다

 

어디까지 번져가는 거야?

 

어디까지 스며드는 거야?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

 

다시는

 

이제 다시는

 

해부극장*

 

한 해골이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걸.)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 17세기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안드레아 베살리우스의 책. 수년간의 급진적 해부 연구 끝에 인간의 뼈와 장기, 근육 등 정교한 세부를 목판에 새겨 제작했다. 독특한 구도의 해골 그림들이 실려 있다.

 

해부극장 2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견딜 수 없다, 내가

 

안녕,

이라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말하고

정말이에요,

라고 대답할 때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닿았다 떨어질 때

 

*

 

그러니까 내 말은,

 

안녕.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

 

나에게

심장이 있다.

통증을 모르는

차가운 머리카락과 손톱들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 라고

견디며 말한다

일 초마다 오므렸다 활짝 펼쳐지는 것,

일 초마다 한 주먹씩 더운 피를 뿜어내는 것이 있다

 

*

 

수년 전 접질렸던 발목에

새로 염증이 생겨

걸음마다 조용히 불탈 때가 잇다

 

그보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다친 무릎이

마룻장처럼 삐걱일 때가 있다

 

그보다 더 오래전 으스러졌던 손목이

손가락 관절들이

다정하게

고통에 찬 말을 걸어온다

 

*

 

그러나 늦은 봄 어느 오후

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

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살갗이 없으니

물론 여위었고

역삼각형의 골반 안쪽은 텅 비어 있다

엉치뼈 위의 디스크 하나가

초승달처럼 곱게, 조금 닳아 있다

 

썩지 않을,

영원히 멈춰 있는

섬세한 잔뼈들

 

뻥 뚫린 비강과 동공이

곰곰이 내 얼굴을 마주 본다

혀도 입술도 없이

어떤 붉은 것, 더운 것도 없이

 

*

 

몸속에 맑게 고였던 것들이

뙤약볕에 마르는 날이 간다

끈적끈적한 것

비통한 것까지

함께 바싹 말라 가벼워지는 날

 

겨우 따뜻한 내 육체를

메스로 가른다 해도

꿈틀거리는 무엇도 들여다볼 수 없을

 

다만 해가 있는 쪽을 향해 눈을 잠그고

주황색 허공에

생명, 생명이라고 써야 하는 날

 

혀가 없는 말이어서

지워지지도 않을 그 말을

 

거울 저편의 겨울

 

1

 

불꽃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파르스름한

심장

모양의 눈

 

가장 뜨겁고 밝은 건

그걸 둘러싼

주황색 속불꽃

 

가장 흔들리는 건

다시 그걸 둘러싼

반투명한 겉불꽃

 

내일 아침은 내가

가장 먼 도시로 가는 아침

오늘 아침은

불꽃의 파르스름한 눈이

내 눈 저편을 들여다본다

 

2

 

  지금 나의 도시는 봄의 아침인데요 지구의 핵을 통과하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꿰뚫으면 그 도시가 나오는데요 그곳의 시차는꼭 열두 시간 뒤, 계절은 꼭 반년 뒤 그러니까 그 도시는 지금 가을의 저녁 누군가가 가만히 뒤따라오듯 그 도시가 나의 도시를 뒤따라오는데요 밤을 건너려고 겨울을 건너려고 가만히 기다리는데요 누군가가 가만히 앞질러 가듯 나의 도시가 그 도시를 앞질러 가는 동안

 

3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어

 

추운 곳

 

몹시 추운 곳

 

너무 추워

사물들은 떨지 못해

(얼어 있던) 네 얼굴은

부서지지도 못해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아

너도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

 

추운 곳

오래 추운 곳

 

너무 추워

눈동자들은 흔들리지 못해

눈꺼풀들은

(함께) 감기는 법을 모르고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거울 속에서

네 눈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너는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

 

4

 

만 하루 동안 비행할 거라고 했다

 

스물네 시간을 꼭꼭 접어서 입속에 털어넣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 도시의 숙소에 짐을 풀면

오래 세수를 해야지

 

이 도시의 고통이 가만히 앞질러 가면

나는 가만히 뒤처져 가고

 

네가 잠시 안 들여다보는

거울의 찬 뒷면에 등을 기대고

아무렇게나 흥얼거려야지

 

스물네 시간을 꼭꼭 접어서

따가운 혀로 밀어 뱉어낸 네가

돌아가 나를 들여다볼 때까지

 

5

 

  내 눈은 두 개의 몽당양초 뚜욱뚝 촛농을 흘리며 심지를 태우는데요 그게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은데요 파르스름한 불꽃심이 흔들리는 건 혼들이 오는 거라는데요 혼들이 내 눈에 앉아 흔들리는데요 흥얼거리는데요 멀리 너울거리는 겉불꽃은 더 멀어지려고 너울거리는데요 내일 당신은 가장 먼 도시로 가는데요 내가 여기서 타오르는데요 당신은 이제 허공의 무덤속에 손을 넣고 기다리는데요 기억이 뱀처럼 당신의 손가락을 무는데요 당신은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은데요 꼼짝하지 않는 당신의 얼굴은 불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데요,

 

거울 저편의 겨울 7

- 오후의 미소

 

거울 뒤편의

백화점 푸드코트

 

초로의 지친 여자가

선명한 파랑색 블라우스를 입고

두 병째 맥주를 마시고 있다

 

스티로폼 접시에

감자튀김이 쌓여 있다

 

일회용 소스 봉지는 뜯겨 있다

 

너덜너덜 뜯긴 경계에

달고 끈끈한 소스가 묻어 있다

 

텅 빈 눈 한 쌍이 나를 응시한다

 

너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라는 암호가

끌어올린 입꼬리에 새겨진다

 

수십 개의 더러운 테이블들이

수십 명의 지친 쇼핑객들이

수백 조각의 뜨거운 감자튀김들이

 

나를 공격할 생각은 마

 

너덜너덜 뜯긴

식욕을 기다리며,

 

거울 저편의 겨울 8

 

흰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눈먼 남자 둘이서

앞뒤로 나란히

구두와 지팡이의 리듬을 맞춰 걷고 있었다

 

앞의 남자가

더듬더듬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뒤의 남자는 앞의 남자의 등을

보호하듯 팔로 감싸며 따라 들어갔다

 

미소 띤 얼굴로

유리문을 닫았다

 

거울 저편의 겨울 4

- 개기일식

 

생각하고 싶었다

(아직 피투성이로)

 

태양보다 400배 작은 달이

태양보다 400배 지구에 가깝기 때문에

달의 원이

태양의 원과 정확하게 겹쳐지는 기적에 대하여

 

검은 코트 소매에 떨어진 눈송이의 정육각형,

1초

또는 더 짧게

그 결정의 형상을 지켜보는 시간에 대하여

 

나의 도시가

거울 저편의 도시에 겹쳐지는 시간

타오르는

붉은 테두리만 남기는 시간

 

거울 저편의 도시가

잠시 나의 도시를 관통하는

(뜨거운) 그림자

 

마주 보는 두 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서로를 가리는 순간

완전하게 응시를 지우는 순간

 

얼음의 고요한 모서리

 

(아직 피투성이로)

짧게 응시하는 겨울

의 겉불꽃

 

거울 저편의 겨울 9

- 탱고 극장의 플라멩코

 

정면을 보며 발을 구를 것

 

발목이 흔들리거나, 부러지거나

리듬이 흩어지거나, 부스러지거나

 

얼굴은 정면을 향할 것

두 눈은 이글거릴 것

 

마주 볼 수 없는 걸 똑바로 쏘아볼 것

그러니까 태양 또는 죽음,

공포 또는 슬픔

 

그것들을 이길 수만 있다면

심장에 바람을 넣고

미끄러질 것, 비스듬히

 

(흐느끼는 빵처럼

악기들이 부풀고)

그것들을 이길 수만 있다면

당신을 가질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중력을 타고 비스듬히,

더 팽팽한 사선으로 미끄러질 것

 

피 흐르는 눈

 

나는 피 흐르는 눈을 가졌어.

 

그밖에 뭘 가져보았는지는

이제 잊었어.

 

달콤한 것은 없어.

씁쓸한 것도 없어.

부드러운 것,

맥박 치는 것,

가만히 심장을 문지르는 것

 

무심코 잊었어, 어쩌다

더 갈 길이 없어.

 

모든 것이 붉게 보이진 않아, 다만

모든 잠잠한 것을 믿지 않아, 신음은

생략하기로 해

난막(卵膜)처럼 얇은 눈꺼풀로

눈을 덮고 쉴 때

 

그때 내 뺨을 사랑하지 않아.

입술을, 얼룩진 인중을 사랑하지 않아.

 

나는 피 흐르는 눈을 가졌어.

 

마크 로스코와 나 2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

 

스며오는 것

번져오는 것

만져지는 물결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의 피

 

어둠과 빛

사이

 

어떤 소리도

광선도 닿지 않는

심해의 밤

천년 전에 폭발한

성운 곁의

오랜 저녁

 

스며오르는 것

번져오르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방금

벼락 치는 구름을

통과한 새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마크 로스코와 나

- 2월의 죽음

 

미리 밝혀둘 것도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 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 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신기한 일이 아니라

쓸쓸한 일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

 

반 녹아 더 차가운 흙 속

그의 손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심장이라는 사물

 

지워진 단어를 들여다본다

 

희미하게 남은 선의 일부

또는 ㄴ이 구부러진 데

지워지기 전에 이미

비어 있던 사이들

 

그런 곳에 나는 들어가고 싶어진다

어깨를 안으로 말고

허리를 접고

무릎을 구부리고 힘껏 발목을 오므려서

 

희미해지려는 마음은

그러나 무엇도 희미하게 만들지 않고

 

덜 지워진 칼은

길게 내 입술을 가르고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질치는 나의 혀는

 

저녁의 소묘 5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

투명한 칼집들을 그었다

 

(살아 있으므로)

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저녁 잎사귀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온 것은 아침이었다

 

한 백년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내 몸이

커다란 항아리같이 깊어졌는데

 

혀와 입술을 기억해내고

나는 후회했다

 

알 것 같다

 

일어서면 다시 백년쯤

별 속을 걸어야 한다

거기 저녁 잎사귀

 

다른 빛으로 몸 뒤집는다 캄캄히

잠긴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