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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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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창경궁 전경| 서울대병원 암센터 옥상에 행복정원이 생겨 더없이 훌륭한 창경궁 조망을 제공한다. 정문인 홍화문, 정전인 명정전, 그리고 그 너머 내전 건물의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명전정|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은 임란 후 광해군 8년(1616)에 지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5대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홍화문|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은 보물 제384호로 '조화를 넓힌다'는 뜻이다. 경복궁의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과 마찬가지로 '화(化)'자에 운을 맞춘 이름이다.

|영조의 초상| 영조는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 홍화문 앞에 관리와 백성들을 불러놓고 두 차례 여론을 청취했다고 한다. 홍화문은 그런 역할을 하기도 했던 공간이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조의 「홍화문 사미도」| 정조 역시 홍화문 앞에서 빈민들에게 쌀을 나눠주었다. 이 행사 장면은 『원행을묘정리의궤』에 「홍화문 사미도(賜米圖)」라는 그림으로 남아 있다.

|옥천교| 홍화문을 들어서면 금천을 가로지르는 옥천교를 만나게 되는데, 이는 성종 때 창건된 모습 그대로다. 다리 아래를 보면 2개의 홍예(무지개)가 떠받치고 있다.

|명정전 권역|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근정전, 인정전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건물이 외따로 잇지 않고 왕이 일상 업무를 보던 문정전과 강연이 열리던 숭문당에 처마를 맞대고 바짝 붙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숭문당| 숭문당은 임금의 서재이자 신하들과 경연을 열던 곳이다. 누각형 건물로 앞쪽 툇마루로 출입했으며 영조 친필의 현판이 달려 있다.

|문정전| 문정전은 편전으로 지어졌지만 임금이 창경궁에 잠시 들렀을 때만 사용했으며, 국상을 당했을 때 혼전(魂殿)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사도세자 간찰| 사도세자가 섭정할 당시 김가신(金嘉愼)에게 사양하지 말고 관직에 나와 국사를 함께 돌보자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사도세자와 관련된 유물은 드물어서 매우 귀한 간찰이다.(48.2×29.1센티미터, 경남박물관 소장)

|'효손' 도장을 담은 궤| 영조가 정조에게 내린 '효손' 도장은 주칠 상자에 보관되어 있는데, 겉면에 '어필은인(御筆銀印)'이라고 쓴 동판이 붙어 있다.

|'효손' 도장| '효손 팔십삼서'라고 새겨진 이 거북 모양의 은 도장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기록을 지워달라고 요청한 정조의 효심에 감복해 영조가 내린 것이다.

|「유세손서」가 보관되었던 어제유서 통| '효손' 도장과 함께 영조가 '세손에게 이르는 글'이라는 뜻의 「유세손서(諭世孫書)」도 전하는데, 영조의 이 유서는 겉에 '어제유서(御製諭書)'라는 동판이 붙어 있는 긴 나무통 안에 들어 있다. 정조가 재위 25년 동안 이 통을 계속 지니고 다닌 탓에 통에 달린 질빵이 다 닳았다.

|빈양문| 명정전 뒤쪽에 딸려 있는 복도각을 따라가다보면 함인정으로 통하는 빈양문을 만난다. 궁궐 건축에서 회랑은 참으로 멋지고 그윽한 공간이다.

|함인정| 오늘날의 함인정은 앉아서 느긋이 쉬어가기 제격이다. 사방이 훤히 뚫려 창경궁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다.

|함인정 천장 아래 새겨진 오언절구 현판| 함인정 천장 아래에는 사방으로 「사시(四時)」라는 유명한 오언절구가 현판에 새겨져 있다.

|환경전| '기쁘고 경사스럽다'라는 뜻을 가진 환경전은 임금의 침전으로 왕과 왕세자를 위한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환경전 현판| 순조의 글씨로 글씨가 반듯하고 임금다운 권위도 엿보인다.

|경춘전| 경춘전은 왕비와 왕대비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경춘전과 화경전 두 건물이 기역 자로 배치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회랑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지금처럼 휑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경춘전 현판| 환경전 현판과 함께 순조의 글씨로, 아주 아름다운 액틀에 들어 있어 그 옛날을 증언한다.

|경춘전 화계| 어느 궁궐을 가나 뒤편 언덕에 꾸민 화계는 우리나라 조원의 특징과 멋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계를 꾸미지 않았으면 이 공간이 어떻게 되었을까.

|통명전| 통명전은 창경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앉아 잇으며 창경궁 답사의 하이라이트이다. 내전의 법전답게 높직한 기단 위에 올라앉아 있고 정면에는 넓은 월대가 설치되어 있다.

|집복헌과 영춘헌| 후궁들의 처소였던 집복헌과 영춘헌은 어깨를 맞대고 있다. 겉보기에도 소박한 인상을 준다.

|영춘헌과 집복헌의 안쪽 정원| 작은 미음 자 정원을 중심으로 집복헌과 영춘헌 두 건물이 둘려 있어 궁궐이 아니라 여염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춘헌 현판| 예서풍으로 또박또박 쓴 것이 아주 조신하고 느낌이 있어 누가 썼을까 궁금했다. 낙관을 확인해보니 헌종의 도장이었다.

|「동궐도」 창경궁 부분| 「동궐도」를 보면 자경전은 정면 9칸, 측면 3칸의 대단히 큰 전각으로 가운데 3칸이 대청마루로 넓게 열려 있다.

|풍기대| 보물 제846호 풍기대는 풍향을 측정하는 깃발을 꽂는 받침대로 1732년(영조 8년)에 세워진 것이다.

|앙부일구| 풍기대 옆에는 세종 때 만든 해시계인 앙부일구(보물 제845호)의 복제품이 있다. 앙부일구는 우리 과학사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관천대| 보물 제851호 관천대는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로, 창경궁 관천대는 숙종 14년(1688)에 만들어진 화강석 축조물이다.

|성종대왕 태실| 자경전 터에서 춘당지로 가다보면 성종 태실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왕자와 공주의 태는 백자항아리에 담아 태지석과 함께 명당에 묻고 불가의 승탑 모양으로 장식했다.

|창경궁 백송| 창경궁 관람로엔 '궁궐의 우리 나무'가 즐비하다. 그 숲길을 걷는 것이 다른 궁궐에서는 가질 수 없는 창경궁의 큰 매력이다.

|춘당지에서 노니는 원앙| 춘당지는 일제가 창경원을 조성하며 만든 일본식 연못이다. 원앙은 본래 철새인데 춘당지가 복원되면서 텃새로 바뀌어 수십 쌍이 사철 연못에서 노닌다. 여지없는 한 폭의 채색화조화이다.

|춘당지 석탑| 춘당지를 끼고 연못을 돌자면 갑자기 이국적이고 낯선 8각 7층 석탑이 나온다. 창경궁 내에 이왕가박물관을 만들 때 골동상이 만주에서 가지고 온 것을 매입하여 옥외전시물로 세워놓은 것으로, 1470년에 세워진 명나라 탑이다.

|관덕정| 전국 활터에 있는 정자의 이름은 모두 '관덕정'인데, 창경궁 관덕정은 일반 개방되어 있지만 안내 코스에는 들어 있지 않아서 대개는 그냥 지나친다.

|식물원| 일제에 의해 동식물원으로 개조된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꿨으나, 해방 후 동물원은 과천으로 이전되고, 식물원 자리만 남아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posted by 황영찬
2017. 12. 26. 12:37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50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유홍준 지음

2017, 창비

 

대야도서관

SB126065

 

981.1

유95ㄴ  9  c.2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답사기', 드디어 서울을 이야기하다!

 

'답사기'가 돌고 돌아 마침내 서울로 들어왔다. 척째 권 '남도답사 일번지'가 세상에 나온 지 25년 만이다. '답사기' 새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오랜 독자들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정년(停年)이라는 것을 잊고 답사기에서 손을 놓지 못하여 마침내 한양 입성까지 하게 되었다.

실제로 '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항시 옛 친구 같은 독자들과 함께 가고 있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내가 삶의 충고로 받아들이는 격언의 하나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인의 진득한 마음자세이다. 어쩌면 그렇게 독자들과 함께 가고자 했기 때문에 '답사기'가 장수하면서 이렇게 멀리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그렇게 갈 것이다.

- 「책머리에」에서

 

 

 

유홍준 兪弘濬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와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했으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석좌교수로 있으며, 가재울미술사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 1~10, 일본편 1~4), 평론집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미술사 저술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1·2) 『완당평전』(1~3) 『국보순례』 『명작순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3) 『석농화원』(공역) 『안목』 등이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저작상(1998),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차례

 

책을 펴내며

제1부 종묘

종묘

종묘 예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 건축가 승효상의 고백 / 프랭크 게리 / 종묘와 사직 / 영녕전 / 공신당과 칠사당

종묘 제례

「보태평」과 「정대업」은 영원하리라
『국조오례의』 / 「보태평」과 「정대업」 / 세종대왕의 절대음감 / 종묘제례 / 이건용의 「전폐희문」 / 향대청과 재궁 / 전사청 / 정전, 영녕전, 악공청 / 신도


제2부 창덕궁

돈화문에서 인정전까지

인간적 체취가 살아 있는 궁궐
궁궐의 도시, 서울 / 5대 궁궐 / 경복궁과 창덕궁 / 「동궐도」 / 돈화문 / 내병조와 ‘찬수개화’ / 금천교 / 인정전 / ‘검이불루 화이불치’

선정전과 희정당

조선 건축의 모든 것이 창덕궁에 있다
창덕궁의 구조 / 내전의 파사드 / 빈청과 어차고 / 선정전 / 유교 이데올로기와 경연 / 희정당 / 선기옥형과 하월지 / 창덕궁 대화재와 복구 / 내전 벽화 프로젝트

대조전과 성정각

조선의 왕과 왕자들은 이렇게 살았다
대조전 / 경훈각 뒷간 / 대조전 화계 / 중희당 / 성정각 / 희우루 / 관물헌 / 승화루 서목

낙선재

문예군주 헌종과 이왕가의 여인들
헌종 / 낙선재 / 『보소당 인존』과 낙선재 현판 / 허련과 헌종의 만남 / 낙선재 뒤란 / 이왕가 여인들 / 이구와 줄리아


제3부 창덕궁 후원

부용정

자연을 경영하는 우리나라 정원의 백미
자연과 정원 / 창덕궁 호랑이 / 부용지 진입로 / 사정기비각 / 영화당 / 부용정 / 다산 정약용

규장각 주합루

임금과 신하가 하나가 되던 궁궐의 후원
어수문 / 취병 울타리 / 정조와 규장각 / 서호수와 『규장총목』 / 차비대령화원 / 단원 김홍도 / 희우정, 천석정, 서향각 / 표암 강세황

애련정과 연경당

풍광의 즐거움만이라면 나는 이를 취하지 않겠노라
불로문 / 숙종의 애련정 기문 / 의두합 기오헌 / 효명세자의 「의두합 상량문」 / 어수당 / 연경당 / 「춘앵전」

존덕정과 옥류천

만천명월(萬川明月) 주인옹은 말한다
후원 정자의 모습과 특징 / 관람지 / 관람정 / 존덕정 / 만천명월주인옹 / 옥류천 유상곡수 / 조선의 마지막 재궁 / 수령 700년 향나무


제4부 창경궁

외조와 치조

영조대왕의 꿈과 한이 서린 궁궐
창경궁 조망 / 명정전 / 창경궁의 역사 / 홍화문과 영조의 균역법 / 옥천교와 주자소 / 문정전과 숭문당 / 사도세자와 정조

내전

전각에 서려 있는 그 많은 궁중비사
함인정 / 환경전 / 소현세자 / 경춘전과 정조·순조의 기문 / 통명전 / 인현왕후와 장희빈 / 양화당과 내명부의 여인들 / 영춘헌과 집복헌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춘당지 연못에는 원앙이 날아든다
자경전 / 혜경궁과 『한중록』 / 풍기대 / 앙부일구 / 성종 태실 / 명나라 석탑과 식물원 / 춘당대 관덕정

 

|종묘 정전| 종묘는 조선 역대 제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이다. 궁궐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종묘는 죽음의 공간이자 영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선왕조의 신전이다.

|정전 앞에 선 프랭크 게리| 파격적인 건축으로 이름 높은 프랭크 게리는 단순하면서 장엄한 종묘 정전 앞에서 조용히 이 건축의 미학을 음미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정전의 풍경| 종묘를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면 서울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자리앉음새가 확연히 드러난다. 과연 신전이 들어설 만한 곳이라는 감탄이 나온다.

|영녕전| 더 이상 종묘에서 모실 수 없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태종은 영녕전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영원히 후손들과 함께할 수 있게 했다.

|증축을 거듭한 영녕전| 왕조가 이어지면서 신주를 모실 분이 늘어나 정전과 영녕전을 계속 증축할 수밖에 없었다. 헌종 2년에 마지막으로 영녕전을 증축하여 현재의 규모인 16칸을 갖추었다.

|정전의 열주| 19분의 왕(왕비까지 49위)을 모신 각 산실 앞에는 열주들이 늘어서 있어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종묘 정전 신위 봉안도|

|종묘 영녕전 신위 봉안도|

|공신당| 공신당에는 각 임금마다 적게는 2명, 많게는 7명의 근신이 배향되어 모두 83명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종묘의 공신당에 배향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명예이고 가문의 영광이지만 그 인물 선정을 둘러싼 이론이 많다.

|공신당 내부| 공신당 내부에는 각 임금마다 배향 대신의 신위가 여러 칸으로 나뉘어 모셔져 있어 자못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칠사당 내부| 칠사당의 내부에는 붉은색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데 창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으로 인해 더욱 신령스런 분위기가 있다.

|종묘 건축의 미학| 100미터가 넘는 맞배지붕이 19개의 둥근 기둥에 의지하여 대지에 낮게 내려앉아 불가사의할 정도로 침묵이 감도는 공간을 보여준다는 점에 정전 건축미의 핵심이 있다.

|종묘의 낮은 담장| 아주 낮게 둘러져 있는 담장은 조용히 정전을 기록하게 만들고 있다. 정전에서 내다보면 담의 지붕이 거의 발아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종묘의 가을| 종묘의 단풍은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있어, 늦가을 끝자락에 가면 인생의 황혼 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종묘의 겨울| 눈이 내려 정전의 지붕이 하얗게 덮일 때 종묘는 거대한 수묵 진경산수화 같은 명장면을 연출한다.

|『국조오례의』| 예를 제정하고 악을 짓는 '예악의 제도화'는 유교국가 정치의 핵심이었고, 조선은 예악의 정립을 위해 『국조오례의』를 편찬했다.

|편경| 계몽군주이자 자신이 절대음감을 지녔던 세종은 박연에게 제례악으로 쓸 순 국산 편경을 제작하도록 명했다.

|종묘제례 장면| 오늘날의 종묘제례는 간소화되어 행사 당일 아침 경복궁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어가와 제관의 행렬을 시작으로 오전에는 영녕전에서 제향하고 오후에는 정전에서 제향을 치른다.

|신실 내부| 종묘제례 당일 새벽에는 정전과 영녕전 각 실의 문을 열고 신을 맞이한다.

|신실 앞에 차려진 제상| 제상은 19개 신실 중 태조 · 태종 · 세종 3위만 진설하고 나머지 16위는 술만 올린다.

|종묘제례악 연주| 종묘제례악에서 악사는 두 팀으로 나누어 배치했고, 악기는 박 · 편종 · 편경 · 피리 · 장구 · 대금 · 해금 · 북 · 아쟁 · 태평소 · 축 · 어 등 15가지로 편성했다.

|팔일무 장면| 제례악에 맞추어 추는 춤은 정연하게 열을 지어 춘다고 해서 '일무'라고 한다. 가로세로 8명씩이면 64명이 추는 팔일무다.

|제례 진행 과정들| 1. 입실을 기다리는 제관 2. 신위 앞에 진설된 제상 3. 신위마다 잔을 올리는 장면 4. 잔에 술을 담는 과정 5. 축문을 받들어 모시는 장면 6. 제례가 끝난 뒤 축문을 태우는 장면

|종묘제례를 바라보는 관람객들| 1970년대에만 해도 종묘제례 참관인은 월대 위로 올라가 악사와 팔일무 자리만 비워두고 제례 과정을 구경했다.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도 힘들었다.

|궤(簋)| 메조와 차조를 담는 제기

|보(簠)| 쌀을 담는 제기

|형(鉶)| 간을 한 국을 담는 제기

|등(登)| 간을 하지 않은 국을 담는 제기

|작(爵)| 술잔

|종묘의 건물과 연못| 위로부터 재궁, 향대청, 중연지, 망묘루

|악공청| 악사와 일무원의 공간인 악공청을 보면 종묘제례에서 음악과 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실감한다.

|한양의 5대 궁궐| 서울에 5개의 궁궐이 생기게 된 내력에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빛과 그림자가 서려 있다.

|창덕궁 전경| 서울은 '궁궐의 도시'라고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조선 궁궐의 멋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창덕궁이다.

|「동궐도」|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1830년 무렵에 그린 「동궐도(東闕圖)」(국보 제249호)를 보면 말로만 들어온 구중궁궐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원래 16권의 화첩으로 만들어진 「동궐도」는 현재 그중 2부가 남아 고려대는 화첩 그대로, 동아대는 16폭 병풍으로 꾸며진 것을 소장하고 있다.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이다. 돈화문 앞 월대는 제법 크고, 옆면이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둘려 있어 번듯하다.

|창덕궁 궐내각사| 창덕궁 안은 정원 같은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전각들이 궁궐임을 확실히 느끼게 한다.

|내병조 건물| 궁궐 안에 근무하던 병조 관리의 출장소 같은 곳이다. 궁궐 안에 있는 병조라고 해서 내병조라 부른다.

|금천교| 창덕궁 금천을 가로지른 금천교는 한양 건설을 도맡았던 전설적인 토목 · 건설 기술자 박자청이 설계 · 시공한 명작이다.

|금천교 돌짐승 조각들| 금천교 양쪽 기둥엔 네 마리의 동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어떤 동물도 마주치기만 하면 도망치고 만다는 전설 속 백수의 왕인 산예(철번째, 두번째)다. 금천교를 받치고 있는 쌍무지개 아치를 보면 북쪽엔 돌거북(세번째)이, 남쪽엔 홍예 사이의 부재에는 귀면(네번째)이 조각되어 있다.

|금천교와 진선문| 삐뚜름히 놓인 금천교가 궁궐의 정연함을 흩트려놓았다. 금천교를 복원하면서 진선문과 일지선을 이루게 하지 않고 금천 호안석축과 직각이 되게 했기 때문에 나온 실수였다.

|진선문 안쪽| 진선문에서 숙장문을 바라보면 왼쪽엔 인정문과 인정전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긴 회랑이 펼쳐진다. 이 회랑 자리에는 본래 오늘날로 치면 경호실인 호위청과 총무과인 상서원이 있었다.

|창덕궁의 하이라이트 인정전|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면 인정전은 회랑으로 둘려 있어 품위와 권위가 살아나고 있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정전| 정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으로, 품위 있고 듬직하고 잘생겼다. 낮은 듯 높게 쌓은 석축 위에 올라앉아 있어 대지에 내려앉은 안정감이 있다.

|인정전 내부의 용상| 일제강점기 근대식 알현소로 개조되었던 인정전은 현재 복원되어 용상의 단을 높여 세웠으나, 마룻바닥은 그대로 두어 상처의 흔적을 남겼다.

|인정전 천장| 천장엔 왕의 공간임을 상징하는 봉항 한 쌍이 조각되어 있다. 그 조각 솜씨가 대단히 뛰어나고 채색이 매우 아름답다.

|창덕궁 궁궐 건축의 미학| 후원의 아름다움에 가려 종종 그 건축적 가치가 지워지곤 하는 창덕궁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미학을 구현해놓은 대표적인 궁궐이다.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新作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 김부식, 『삼국사기』「백제본기」 온조왕 15년(기원전 4)조에서 백제의 궁궐 건축에 대해

 

|'검이불루 화이불치'| 한 미장원이 내건 입간판에 '검이불루 화이불치, 최고의 미용실'이라고 쓰여 있다.

|창덕궁 전경| 창덕궁 건축의 조선적 특징과 세련미는 3조의 배치에서 두드러진다. 창덕궁의 3조는 산자락을 따라가며 어깨를 맞대듯 나란히 배치되었다. 그로 인해 창덕궁은 편안한 한국식 공간으로 인간적 체취를 풍긴다.

|경복궁 전경| 경복궁은 외조, 치조, 연조의 3조가 남북 일직선상에 있다. 그래서 경복궁에는 『주례』에 충실한 의례적인 긴장감이 있다.

|상서원과 호위청| 호위청은 임금을 뒤따르며 호위하는 경호실이고, 상서원은 옥새, 외교문서, 과거 합격자 사령장 등을 관리하는 곳이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총무과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부서였다.

|선정전 앞 빈터| 숙장문을 들어서면 넓은 빈터 너머 늠름하게 잘생긴 건물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어깨를 맞대고 길게 펼쳐져 있다. 가까운 맨 왼쪽 건물은 임금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며 나랏일을 보던 치조의 선정전이다.

|순종과 황후의 어차| 순종황제가 탔던 어차는 1903년에 미국의 제너럴모터스사가 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이고 황후가 탄 어차는 1909년 영국 다임러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오늘날 세계적으로 드문 앤티크 자동차가 되었다.

|선정전| 인조반정으로 인한 창덕궁 대화재로 소실된 선정전을 복원하면서 인왕산에 있던 인경궁 건물을 옮겨와 창덕궁 전각 중 유일한 청기와 집으로 남았다.

|선정전 내부| 보물 제814호인 선정전은 치조의 핵심 건물로 오늘날로 치면 국무회의나 비서관 회의 등이 열렸던 곳이다. 조선의 임금들은 여기에서 매일같이 대신들과 정치에 관해 논의했다.

|선정전 현판| 베풀 선(宣) 자, 정사 정(政) 자를 쓴 선정전이라는 이름에는 임금이 정치를 베푼다는 뜻이 담겨 있는데, 옛날엔 이를 청정(聽政)이라고도 했다.

|희정당 정면| 희정당은 앞쪽에 새로 신관까지 지어 창덕궁 어느 건물보다도 화려하다. 순종황제 때는 자동차가 신관 문앞까지 들어오도록 신관 정면에 캐노피 건물을 세웠다.

|희정당| 희정당은 본래 임금의 서재이기 때문에 규모가 크지 않았으나 순조가 희정당을 편전으로 삼으면서 창덕궁의 핵심 건물로 부상해 규모가 커졌고, 순종황제 때는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로 쓰이면서 더욱 위상이 높아졌다.

|희정당 전각| 보물 제815호인 희정당 건물은 정면 11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기단부를 장대석 5단으로 거의 담장 높이까지 높직이 올려쌓아 자못 장중하다.

|『매일신보』에 실린 창덕궁 화재 소식| 1917년 11월 10일에 일어난 화재로 대조전, 희정당, 경훈각 등 침전의 주요 건물이 전소되었다. 당시 많은 신문들이 호외를 발행하고 연일 대서특필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희정당 내부| 전소된 내전 건물을 복원하면서 전각 내부를 우리나라 화가들이 그린 벽화로 장식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국미술사에서 전례 없는 장대한 미술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희정당 벽화| 「총석정절경도」(김규진, 비단에 채색, 1920)

|희정당 벽화| 「금강산만물초승경도」(김규진, 비단에 채색, 1920)

|대조전 전체 모습| 궁궐 한가운데 있는 지밀한 곳이기 때문에 겹겹이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에는 별도의 대문까지 있다.

|대조전| 대조전 건물은 정면 9칸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앞에는 넓고 높직한 월대가 있어 장중함을 더한다.

|대조전 내부| 대조전의 실내 장식은 1920년 복원 때 근대식으로 바뀌었다. 창호지 대신 유리창과 무쇠로 만든 고전적인 전등이 달렸고, 기둥과 창방에는 예쁜 봉황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대조전 벽화| 「백학도」(김은호, 비단에 채색, 1920)

|경훈각 회랑 바깥 풍경| 대조전 뒤쪽의 큰 건물인 경훈각은 임금과 왕실 가족들의 휴식 공간이다. 희정당, 대조전, 경훈각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훈각 실내| 현재의 경훈각은 정면 9칸, 측면 4칸 건물로, 가운데에 3칸의 대청을 두고 동서벽 상인방에는 벽화를 걸었으며 좌우로 2칸씩 온돌을 들였다.

|매우틀| 경훈각 서북쪽으로 돌아나가는 모서리 섬돌 바로 위에 작은 나무문이 하나 나 있다. 경훈각 뒷간으로, 안에는 용변이 담긴 그릇을 끌어내는 바퀴 달린 편자가 있다. 사진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동식 변기 매우틀이다.

|경훈각 벽화| 위는 노수현이 그린 「조일선관도」(비단에 채색, 1920)이고, 아래는 이상범이 그린 「삼선관파도」(비단에 채색, 1920)이다.

|대조전 화계| 경훈각을 돌아나오면 산자락 따라 길게 뻗은 화계를 만난다. 아름다운 꽃계단이다. 장대석을 4단으로 쌓아올린 화계 위로 붉은 벽돌과 검은 기와가 어우러진 꽃담장이 높직이 올라앉아 있다.

|성정각| 왕세자의 독서와 서연이 이루어진 건물로, 동궁의 정전인 중희당은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내면서 헐리고 맨 서쪽에 있는 성정각만 남았다.

|희우루 현판| 성정각 동쪽 머리에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는 뜻을 담은 희우루(喜雨樓) 현판이 걸려 있다. 정조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누각 중건 공사를 개시한 날과 완성한 날, 반가운 비가 내려 누각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내력이 있다.

|관물헌과 '집희' 현판| 관물헌은 세자가 공부하며 생각에 잠기는 공간이었다고 하는데, 서까래 아래에 '집희(緝熙)'라는 작은 현판이 붙어 있다. 고종이 쓴 글씨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매화| 성정각 담장 밖 후원 가는 길가의 홍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오랜 노매이다.

|승화루| 동궁의 동쪽 끝에 해당하는 서화 수장고로, 규장각의 주합루에 비견하여 소주합루라고도 불렸다. 안타깝게도 이 승화루의 서화들은 모두 망실되었다.

|낙선재 권역| 헌종은 문인 학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그들의 삶을 동경하여 1847년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문인들의 사랑채를 본뜬 낙선재를 지었다.

|「헌종 가례진하도 병풍」| 헌종은 17세 때인 1843년에 왕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남양 홍씨 홍재룡의 딸을 계비로 맞아들였다. 이를 기념하여 기록화로 그린 의궤도가 「헌종 가례진하도 병풍」(동아대박물관 소장)이다.

|낙선재 화계| 화계는 5단으로 아주 가파르게 짜였고, 아래쪽에는 괴석과 돌수조가 진열되어 있다. 대조전 화계가 장대하다면 여기서는 아기자기한 멋을 느낄 수 있다.

|낙선재| 낙선재는 문기(文氣) 있는 선비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할 만한 사랑스런 집이다. 앞마당이 널찍하고, 장대석을 5단으로 쌓은 석축 위에 건물이 높이 올라앉아 잇어 번듯한 인상을 준다.

|낙선재 빙벽 문양| 낙선재 누마루 아래로는 아궁이가 보이지 않게 가벽을 치고 이를 빙렬무늬로 장식했는데, 화재 예방의 의미를 담은 일종의 추상 벽화다.

|낙선재의 창살들| 낙선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창살이다. 수직 · 수평선만 사용하는 창살이지만 격자 · 만자 · 마름모꼴 능화 · 사방연속 무늬 등을 두루 사용하여 모두 다르게 디자인했다.

|'보소당' 현판| 낙선재 동쪽에는 '보소당(寶蘇堂)'이라는 아주 예쁜 현판이 있다. 원래 옹방강의 당호였지만 헌종이 이를 이어받았다. 전형적인 추사체의 멋이 잇으며 헌종의 글씨로 추정한다.

|낙선재 현판| 청나라 금석학자이자 추사의 친구인 섭지선이 쓴 현판이다. 당시 청나라의 신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던 징표이기도 하다.

|유재 현판| 추사가 제자 남병길에게 준 당호다. 이 현판은 예서로 쓴 '유재' 두 글자도 멋있었지만 행서로 쓴 풀이 글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

盡之巧以還造化 / 盡之祿以還朝廷 / 盡之財以還百姓 / 盡之福以還子孫

 

|석복헌 화계에서 낙선재 뒤뜰까지| 왕비가 기거한 석복헌과 대왕대비가 기거하던 수강재 뒤뜰은 아름다운 화계로 연결되어 있다. 앞쪽은 세 채가 담으로 막혀 있으나 뒤란은 하나로 트여 있다.

|금사연지(위)와 소영주(아래)| 화계 앞 돌수조에는 고운 전서체로 '금사연지(琴史硯池)'라 새겨져 있는데, '거문고를 연주하고 역사책을 읽는 벼루 같은 연못'이라는 뜻이다. 괴석을 올려놓은 육각형 석함에는 반듯한 해서체로 '소영주(小瀛洲)'라 새겨져 있는데, 작은 영주산이라는 뜻이다.

|상량정| 낙선재 위로 올라가면 형태도 단청도 화려한 '평원루(平遠樓)'라는 정자가 나온다. 이 정자에는 최고로 시원하다는 뜻의 '상량정(上凉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상량정 전경| 평원루와 승화루 사이에는 벽돌 기와담 가운데에 만월문(滿月門)이라는 동그란 중국식 문이 나 있다. 그래서 창덕궁 안에서 가장 이국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방자 여사(위)와 영친왕(아래)| 영친왕 이은은 일본 왕족의 딸 이방자 여사와 정략결혼을 했다. 영친왕은 1970년 향년 74세로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방자 여사는 1989년 역시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났다.

|소학교 시절의 덕혜옹주|

|이구와 줄리아|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낳은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줄리아와 결혼했으나 자손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종용당해 헤어져야 하는 운명을 겪었다.

|이구의 영결식| 마지막 황세손 이구의 장례식은 2005년 7월 24일 낙선재에서 9일장으로 화려하고 엄숙하게 치러졌다. 이때 줄리아는 장례 행렬을 조용히 지켜보았다고 한다.

|「동궐도」 중희당 부분|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원래 동궁의 정전인 중희당이 있었다. 「동궐도」에는 중희당 전각들이 아주 상세히 나와 있는데 참으로 멋진 공간이었다는 인상을 준다.

|창덕궁 후원 입구| 창덕국이 아름다운 궁궐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후원 덕분이다. 1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의 골짜기를 정원으로 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을 경영했다.

|창덕궁 후원 돌담길| 후원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다. 양옆으로 기와지붕의 사괴석 담장이 길게 펼쳐져 궁중의 내전임을 알려주고 담장 너머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길 위로 나무 터널을 이룬다.

|부용정 전경| 부용지와 그 너머의 장중한 규장각 2층 건물, 석축 위에 편안히 올라앉은 영화당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 섬에는 잘생긴 소나무가 주인인 양 넓게 자리잡고 있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영화당, 부용정, 규장각, 사정기비각 4채의 건물이 제각기 이 정원에서 자기 몫을 하면서 의젓이 자리하고 있다.

|사정기비각| 멀리 산자락에 바짝 붙어 있는 보호각 안에는 숙종이 쓴 사정기비(四井記碑)를 보호하는 비각이 있다.

|사정기비| 숙종이 세운 이 비석에는 세조가 4개의 우물을 찾아낸 것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동궐도」 영화당과 춘당지 부분| 「동궐도」를 보면 지금은 없지만 영화당 양옆으로 긴 담장이 둘려 있어 영화당 안쪽의 부용지와 바깥쪽 춘당대로 열린 공간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영화당| 석축 위에 높직이 올라앉은 영화당의 정면은 춘당대로 열려 있다. 뒷면에서는 부용지와 부용정, 규장각, 비각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지에 오면 누구나 이 영화당 툇마루에 앉아 부용지를 한껏 감상하고 가게 된다.

|영화당 현판| 영조의 영화당 현판 글씨는 획이 아름답고 글자의 구성이 반듯하면서도 멋스러워 명작이라 할 만하다.

 

빙그레 난간에 기대어 작은 연못 굽어보며                     㗛倚畫欄臨小塘

조용한 정원에 일 없으니 맑은 빛 구경한다                    閑庭無事玩澄光

한 쌍의 오리는 섬뜰 위에서 뒤뚱거리고                        玉砌緩行雙彩鴨

고기 새끼가 뽐내며 우쭐거리는 것이 희망에 차 있구나   漁兒自得意洋洋

 

|부용정| 다채로운 구조의 부용정은 한옥으로 지을 수 있는 화려함의 최대치가 구사된 정자다. 평면은 열 십(十)자 형을 기본으로 하면서 4면 모두 팔작지붕으로 날개를 펴고 있다.

|「동궐도」 부용지와 부용정 부분| 「동궐도」에서는 채색이 아름다운 비단 돛배 두 척이 부용지에 떠 있다. 정조는 부용정에서 신하들과 뱃놀이와 낚시를 즐겼고 달밤엔 불을 밝히고 시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곤 했다.

|가을날의 부용정과 부용지|

|부용지 건너에서 올려다본 규장각 주합루|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부용지 북쪽 산자락에 역대 왕들의 어진과 글씨, 보책, 인장 등을 보관할 규장각 주합루를 짓게 했다.

|부용지 물고기 조각| 부용지 동남쪽 모서리 맨 위 장대석에 새겨놓은 물고기 한 마리에는 국왕과 신하의 원만한 어울림의 뜻이 담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수문| 부용지 연못가에서 규장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어수문이라는 대문이 절집의 일주문처럼 서 있다.

|주합루 현판(위)과 규장각 현판(아래)|

|규장각의 주련들| 아래 2개는 정조가 내린 주련으로 '손님이 온 것을 보아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라''전임자가 아니면 들어오지 마라'라는 뜻을 새겼다.

|정조의 「국화도」(오른쪽)와 「파초도」(왼쪽)| 보기 드문 계몽군주였던 정조는 다양한 미술문화 진흥책을 지시했고, 그 자신도 글과 그림에 뛰어난 솜씨를 지녔다.(동국대박물관 소장)

|정조의 '정민시를 위한 송별시'| 정조는 신하들에게 편지도 자주 하였고, 송별시도 많이 썼다. 그렇게 신하와 가깝기를 원했는데 글씨도 윤기 있으면서 힘이 있다. 특히 정조는 아름다운 색지에 글씨를 써서 그 권위가 더욱 살아난다.

|개유와 현판| 규장각 부설 장서각에는 조선 책은 서고(西庫)에, 중국 책은 열고관(閱古觀)에 보관했는데 중국 책이 늘어나면서 새로 서고를 증축해 '개유와'라 이름 붙였다. 개유와란 '모든 게 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김홍도의 「규장각도」| 부용지의 원 주인장 같은 규장각 주합루는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늠름하게 잘생겼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립하자마자 갓 서른을 넘긴 단원 김홍도에게 「규장각도」를 그리게 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천석정| 기역 자로 된 누마루 집으로, 희우정과 마찬가지로 임금의 휴식처지만 소박한 건물이다. 그 이름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있으며 지금은 '제월광풍루(霽月光風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서향각| 규장각 서편에 동향한 정면 8칸, 측면 3칸 팔작지붕 큰 건물로, 규장각의 부속 건물이다. 규장각에 봉안된 어진, 임금의 글과 글씨 등을 보관하고, 이따금 서적을 널어 말리던 곳이다. '책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이다.

|'어친잠실' 현판| 서향각에는 '어친잠실(御親蠶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왕족이 친히 누에를 치는 방'이라는 뜻이다. 서향각에는 '친잠권민(親蠶勸民, 친히 누에를 쳐 백성에게 권한다)'이라는 현판도 있다.

|강세황 자화상| 정조 5년, 뒤늦게 출사한 69세의 표암 강세황은 정조의 부름을 받고 창덕궁 규장각 옆에 있는 희우정으로 들어갔다가 뜻밖의 후원 유람을 하게 된다. 이날 쓴 글이 「호가유금원기」다.

|희우정| 규장각 뒤편에 있는 희우정은 숙종 때 초가를 기와로 바꾼 정자로 아주 아담한데 정조는 표암 강세황에게 희우정에 와서 글씨를 쓰게 했고 직접 옥류천을 구경시켜주었다.

|불로문| 불로문은 넓적한 화강석 통판을 과감하게 다귿 자로 오려 세운 문이다. 모서리를 가볍게 궁글린 것 외에는 손길이 더 가지 않았다. 돌문 머리에 새겨넣은 '불로문(不老門)' 세 글자는 참으로 아름다운 전서체다.

|애련정| 불로문으로 들어가면 석축으로 반듯하게 두른 네모난 애련지가 나오고 건너편에는 사방 한 칸에 사모지붕을 한 애련정이 있다. 숙종 18년 연못 가운데에 섬을 두고 세운 정자였으나 후대 어느 때인가 연못가로 옮겨졌다.

|석축에 새겨진 '태액'| 애련지 석축 한쪽엔 '태액(太液)'이라고, 전서체로 새겨놓은 글이 있다. '큰 물'이라는 뜻으로 이곳이 전에는 '태액지'라고 불리던 곳임을 알려 준다.

|의두합 기오헌| 기오헌은 의두합 누마루의 별칭이다. 그래서 『궁궐지』를 비롯한 문헌에 이 집은 의두합이라고 지칭될 뿐 기오헌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효명세자의 시호인 '문조'가 새겨진 어보| 고종은 효명세자의 공덕을 기려 문조(文祖)라는 시호를 내렸고, 어보를 제작해 '문조금보(文祖金寶)'라 새겼다.

|「무신친정계첩」에 나온 어수당| 「무신친정계첩(戊申親政契帖)」은 영조 4년(1728) 이조와 병조의 책임자들이 어수당에 모여 인사평가를 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순조 29년(1829)을 끝으로 사료에서 사라진 이곳은 창덕궁 복원공사를 한다면 가장 시급히 세워야 할 건물이다.

|연경당 장락문과 행랑채 전경| 연경당 대문인 장락문은 높직한 솟을대문으로 양옆에 바깥 행랑채(외행각)가 길게 뻗어 있다. 본채로 들어가기 위한 전실인 셈이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호흡 고르게 하는 이 공간이 주는 권위는 아주 크다.

|농수정| 사방 한 칸에 사모지붕을 한 농수정이 숨은 듯이 자리잡고 있다. 작은 마당이 있고 주변으로는 연잎 장식의 돌난간을 돌렸다. 정자의 자리앉음새와 구조 모두에 깊은 건축적 사고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궐도」 연경당 부분| 연경당이 건축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구조가 긴밀하면서도 분리되어 있고, 건물들이 모두 단정하면서도 품위 있다는 점이다.

|「기축 진찬의궤」| 대리청정 기간의 효명세자는 기축년(1829)에 부왕 순조의 등극 30년과 탄신 40년을 기념하는 '기축 진찬의' 연회를 열었고 이를 의궤도로 기록했다.

|「기축 진찬의궤」 연경당 부분| 「기축 진찬의궤」에 따르면 효명세자 시절 연경당은 지금과 달리 디귿 자 모양의 큰 집이었고, 그 마당은 연회를 위한 야외 공연장으로 제격이었다.

|관람정| '연못에서 뱃놀이하며 구경하는 정자'라는 이름의 뜻이 형식을 지배해 건물 자체가 부채꼴 모양에 대단히 공예적이고 장식적이다.

|관람정 현판| 파초 잎에 글씨를 써놓은 듯한 이 현판은 관람정의 장식미를 한껏 높인다.

|존덕정| 인조 때 세워진 이래로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등 많은 임금이 이 아름답고 당당하고 기품 있는 정자에 와서 시와 문장을 남겼다.

|존덕정 내부에 새겨진 「만천명월주인옹 자서」| 정조가 지은 「만천명월주인옹 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장문의 글이 존덕정에 잔글씨로 새겨져 있어 이 정자의 주인공이 되었다. '만천명월주인옹'이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정조대왕 「송별시축」| 정조가 1799년 임지로 떠나는 철옹부사에게 써준 송별시다. 정조의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필치가 잘 살아 있는 명품이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폄우사| 낮은 기단 위에 세운 홑처마 맞배지붕의 아담한 집이다. '폄우(砭愚)'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친다'는 뜻이니 여기서 쉬면서도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뜻을 담아 붙인 이름인 듯하다.

|취규정| 인조 18년(1640)에 세운 정자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데, 창호와 벽체 없이 사면을 모두 개방해 시원스럽다. 느긋이 쉬기보다는 잠시 걸터앉기 좋은 분위기다.

|취한정| 그 규모나 모습이 취규정과 닮았는데, 홑처마 팔작지붕이고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현저하게 넓으며 사면이 벽체나 창호 없이 트인 점 등이 흡사하다.

|옥류천|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로 골이 깊고 물이 많아 마침내 천(川)이라는 이름까지 갖게 되었다.

|옥류천과 유상곡수| 달리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조원(造園)의 명작이다. 흐르는 물줄기를 원형으로 한 바퀴 돌려 홈을 파서 술잔을 띄우면 돌아가게 했다. 유상곡수 뒤쪽으로는 '소요암'이라는 이름의 듬직한 바위가 있다.

|소요정| 옥류천의 대장격인 소요정에는 성종과 선조의 어필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 것으로 보아 소요정은 임란 전부터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옥류천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옥류천의 정자들| 농산정, 태극정, 청의정, 능허정(위로부터)

|청의정의 천장 무늬| '청의(淸漪)'는 '맑은 잔물결'이란 뜻이다. 정자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서까래들이 정연히 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디테일이 정교하여 더욱 매력적이다.

|신선원전 내부| 신선원전은 일반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 관리 보호구역에 있는데, 선왕과 선후의 화상을 모시는 선원전 지역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천연기념물 제194호 향나무| 1404년 태종이 창덕궁 창건을 시작할 때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동쪽 가지가 꼬불꼬불 기형으로 자라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posted by 황영찬
2017. 12. 21. 12:24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9 바보시인

 

 

 

이승규 첫 시집

2016, 좋은땅

 

대야도서관

SB120553

 

811.7

0157ㅂ

 

증오는 사람을 악하게 하고

사랑은 증오를 약하게 한다.

 

세상을 바꾸는 바보시인

이승규의 통찰력

 

중요한 건 어떤 삶을 사느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떤 삶이 주어져도

 

그안에서 주어진 어떤 삶보다

더 큰 어떠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느냐이다.

 

무엇을 이루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한 사람에게라도

어떠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 본문 <의미> 중에서

 

 

바보시인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쓰지 않았다면

누군가 시키는 글을 써야 하니까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당신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바보시인

이승규

 

나는

바보다.

그리고 시인이다.

고로 바보시인이다.

장가도 가기 전에

첫 시집을 냈다.

 

kyucrates21@naver.com

www.facebook.com/kyucrates21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상대의 영혼을 통째로 뒤흔들어야 한다.

 

 

이 시를 읽는 그대여

오늘 하루는 그 어떤 날보다

특별한 날이 될 거예요!

 

제가 당신을

응원할 거거든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나의 시 나의 이야기

 

현실과 이상의 모순 속에서도

꿈을 고집했던 선택들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평범하지 않은 도전들

 

길을 잃어 좌절하고

수 없이 무너졌던 순간들

 

그 안에서 깨달은 삶의 소중한 가치들

 

보편적이지만 진부하지 않은

소중한 나의 기록들

 

이 밖에도 모든 순간에서 얻은

영감들을 고이 담아

 

가장 특별한 당신에게 드립니다.

 

 

차례

 

 

1. 진부하게 봤지만 참 시인선한 것들

한 번의 용기
국밥
그 언덕
그녀
그렇게 살기로


끝까지
산다는 것
누군가
단풍
메어있지 마라
미룸
바라본다

부모와 아이
나의 소신
아이에게
어차피 순간
역발상
역할
의미
익숙함

젓가락
차이
학사모

새해 인사
할머니
시외버스
7가지 본질적인 질문
열차
정성이란 손님
벚꽃
당신이 밉다
사랑은 도자기
초승달
거리

2. 꿈을 이루는 비밀

외모
철교
시의 목적
사람
개나리
네모난 세상
동해
불가능
손길
오글거리다
스승과 배움
열두 시간
살아있는 삶
술에게
절벽에 핀 꽃
증오와 사랑


꿈이 필 때

멍청함
마음, 그 참을 수 있는 가벼움
미생
선과 악
아버지
아토피
연결

아름다움
웃음
착각
창의력
창밖의 소리
가까운 사람
간격
남자와 여자
모두의 법
끔찍함
기억과 추억 사이
소수와 다수

손톱
완전함에 관하여
입다
자아

정의
대화

고정관념
나이
이유 없는 시
거짓말

한강 같은 여자
아름다운 사랑
뒤바뀐 전제
삶의 신조
꿈을 이루는 비밀
사물의 이야기
경쟁률

3. 진다는 것에 관하여

늙는다는 것
권위
노력의 방향성
호의와 권리

주제

마음을 따르기 좋은 때
진다는 것에 관하여
시인
정의와 벌
사랑은 사계절처럼
외로움

나는
관상
빈 강의실
욕심

겨울이 봄에게 고함
봉은사

발걸음
세상
어불성설
어른과 성인
역행
열쇠
영화
오해에서 이해로

이기심
인생

전제
영원함
버릇


4. 바보시인

고통의 처방전
확률

태도
특이성

진짜 행복

거리의 도인
Wi-Fi
인정
신념
보이지 않는 것
표현
가치를 이어가다
아름다움
의심

내가 바라는 세상
시간
성공

일에 대한 성찰
완벽함
외로움
절망 속에 피는 꿈
창조
진지함
칭찬
구석진 자리
무엇
인간과 신

작은 소망
마음의 꽃
세 가지 관점

뒤바뀜
놓친 것들

 

 

한 번의 용기

 

당신은 수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선물한

의사 슈바이처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선물한

수녀 마더 테레사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에게 꿈을 선물한

이태석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단 한 번의 용기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백 명의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그 백 명의 사람은 후에

의사가 되고 수녀가 되고 신부가 됩니다.

생명의 선순환을 이어가는 약속

백 명의 영웅을 살리는

진짜 명의는 바로 당신입니다.

 

 

국밥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친구와 먹었던 국밥 집을 찾아갔다.

국밥 집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친구가 하나 둘 떠나간

그 자리에

나 홀로 남아 국밥을 먹었다.

 

국밥이 참 맛있었다.

아니 사실은

추억이 참 맛있었다.

그래 추억!

 

추억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 언덕

 

모두가 언덕을 오르기도 전에

그 언덕은 멀고 높아서

걸어 오르기엔 너무

지치고 힘들 것이라 얘기했다.

 

그 언덕에 오르기 위해선

버스를 이용해야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얘기했다.

 

그 언덕을 오르기 위해선

택시를 이용해야

편하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얘기했다.

 

모두가 머리로 가능성을 판단할 때

난 내 마음을 믿고

두 발로 걸어 오르기로 했고

그 언덕에서 내려올 때

나의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삶은 허무함이다.

삶은 외로움이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꽃피우려 한다.

 

허무함 속에 순간이 피고

외로움 속에 사람이 피고

고통 속에 사랑이 피기 때문이다.

 

 

끝까지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내게 고통을 준 존재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내가 고통을 준 존재들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이 세상에 죽음을 뛰어넘는 가치가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

 

내가 인간적 관념에 얽매여

고통의 늪에서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심장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머리 아닌 마음으로

들어보기로 했고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메어있지 마라

 

메어있지 마라

당신 안의 작은 세계에 매어있을 때

고통 역시 당신 곁에 머물러 있다.

 

메어있지 마라

당신이 쫓는 작은 가치에 메어있을 때

고통 역시 당신 곁에 머물러 있다.

 

메어있지 마라

모든 것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계절처럼 순환하며

우주처럼 광활하고 생명처럼 신비롭다.

 

메어있지 마라

당신의 작은 마음보다

더 큰 마음을 만날 때

 

당신의 생각보다

 

더 큰 가치가 세상에 잇음을 만날 때

 

당신은 깨어나고 머지않아

 

바람이 되고 자연이 되며

우주가 되고 생명이 된다.

 

그러니까 메어있지 마라

당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증거이다.

 

 

미룸

 

우리는 미뤄야 한다.

삶에는 미뤄야 할 것이 참 많다.

미움, 걱정, 두려움, 후회, 화

모두 미루자 다음으로 미루자

 

그리고 가져와야 한다.

 

사랑, 긍정, 즐거움, 감사, 이해

우리는 미루지 않아야 한다.

삶에는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 참 많다.

 

 

바라본다

 

고집이 아집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소신이 독선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지식이 가식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위안이 위선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꿈에 대한 진심이 현실에 변심하지 않기를

 

나 역시 그렇게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부모와 아이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직장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부모

 

자신 안의

작은 세계에 갇혀 힘들어 하는 아이

 

자신보다

큰 세계와 부딪혀 힘들어 하는 부모

 

삶에 무게에 짓눌리는 아이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부모

 

이들이 단 하루만

서로 바뀌어 생활을 한다면

 

서로를 더 멀리 할까?

서로를 더 가까이 할까?

 

이들이 단 한 번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서로를 더 미워하게 될까?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게 될까?

 

 

나의 소신

 

생명을 위해 글을 쓰고

사랑을 위해 시를 쓴다.

 

아이에게

 

삶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줄 알 때

너는 비로소 어른이 된단다.

 

불공평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과정에서 너 자신을 잃지 않을 때

 

너는 비로소

한 명의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란다.

 

 

역할

 

벚꽃은 도시에 피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산에는 진달래 피어 자연을 이롭게 하고

 

나는 당신 마음에 피어

 

지지 않는 사랑이고 싶네.

 

 

익숙함

 

어릴 땐 새로움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커 보니 익숙함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더 큰 사랑이었네

 

 

새해 인사

 

아침에 온 문자 한 통

 

"새해에는 원하는 일 모두 이루길 바랄게"

 

사실 나의 바람은

당신의 마음 그거 하나였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당신의 마음 하나를 얻는 것이

 

"원하는 모든 일을 이루는 것과

같은 것이었구나"

 

 

시외버스

 

명절에 고향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조급한 마음이야 다 같으리 만

 

시외버스는 먼 길을 돌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간다.

그리운 마음이야 다 같으리 만

 

만 리도 더 되는 길에

 

넉넉한 마음 하나를 품고 간다

 

 

벚꽃

 

한 번씩 당신의 마음에 피는

벚꽃이 되고 싶다.

 

당신의 마음이 마른 땅처럼

허전하고 외로울 때

 

한 번씩 당신의 마음에 피는

벚꽃이 되고 싶다.

 

벚꽃이 되어서라도

잠시나마 당신의 마음에

기쁨으로 머물고 싶었노라고

 

한 번쯤은 벚꽃처럼

그렇게 용기 내어

말없이 말해보고 싶다.

 

 

당신이 밉다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당신이 밉다.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당신이 너무 밉다.

 

나를 떠나서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버린

당신이 너무나 밉다.

 

사실은

 

당신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

내가 미운 것이고

 

당신에게 먼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내가 미운 것이고

 

당신을 붙잡고 좋아한다고 말 한 마디 못한

나 자신이 너무도 미운 것이다.

 

 

사랑은 도자기

 

사랑은 함께 만드는 도자기다.

한쪽에서만 급하게 생각하면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함께 만드는 도자기다.

상대를 천천히 알아가며 이해할 때

비로소 모양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랑은 함께 만드는 도자기다.

 

둘이 함께하는 시간만큼 굳어지고

둘이 함께하는 마음만큼 단단해지니까

 

둘이 함께하는 시간만큼 굳어지고

둘이 함께하는 마음만큼 단단해지니까

 

 

거리

 

내가 널 보고 네가 날 볼 때

네가 날 보고 내가 널 볼 때

 

네가 앞서 걷던 거리를 나도 뒤따라 걸었을 것이고

내가 앞서 걷던 거리를 너도 뒤따라 걸었을 것이다.

 

내가 널 보고 네가 날 보지 못할 때

네가 날 보고 내가 널 보지 못할 때

 

너에게 의미 없던 거리가 나에게 큰 의미가 되었고

나에게 의미 없던 거리가 너에게 큰 의미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해도

다시는 우리가 같은 공간에 걷는 일이 없다고 해도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같은 마음

 

그 마음만은 그 자리에 변치 않아주오

 

 

시의 목적

 

무릇 시란

삶의 본질을

탁 건드린 후에

인간의 영혼을

툭 쳐야 한다.

 

 

네모난 세상

 

세상 사람들은 네모난 것을 통해 세상을 본다.

대부분의 체계가 네모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텔레비젼, 책, 휴대폰

그 안에는 삶의 희로애락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제는 그 세상마저도

자기 흥미에 맞추어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이제 우리가 그토록 꿈꿔왔던

유토피아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네모난 세상에도 빈틈이 있다.

바로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동그란 자기 마음 안에

삶의 모든 정답이 있는데 말이다.

 

 

살아있는 삶

 

이미 패배가 정해진 것이라 할지라도

깨지고 부서지게 될 운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살아있는 삶이라면

 

가까운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견뎌야 할지라도

때때로 선택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고독과 고통에 절망할지라도

그것이 살아있는 삶이라면

 

모두를 위한 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또한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살아있는 삶이라면

 

단 한 번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그러한 삶을

아니 살아가고 싶다. 그러한 삶을

그것이 살아있는 삶이라면

 

걸어보고 싶다. 내 전부를

걸어가고 싶다. 내 인생을

 

그것이 진정 살아있는 삶이라면

 

살아보고 싶다. 내 전부를

살아가고 싶다. 내 인생을

 

 

연결

 

세상 모든 것은 의미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의 몸이 하나 하나 연결되어 있듯이

모든 언어가 하나 하나 연결되어 있고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 하나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창조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단 하나의 것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창조의 시작은 일단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와 의미를

마음과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창조의 끝은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의미 하나로

연결해내는 것이다.

 

 

입다

 

집을 나서기 전

가장 비싼 옷을 꺼내 입는다.

 

집을 나선 후

더 좋은 학교를 골라 입는다.

 

사회에 나선 후

드디어 가장 좋다는 직장을 입었다.

 

시간이 지난 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학교도 졸업했다.

 

남들 보기엔 번듯했던 직장도

결국 퇴직했다.

 

집에 돌아온 후

 

지금은 남루해진

가장 좋다는 옷을 벗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에

과연 나다운 나가 얼마나 있었는가?

 

 

 

꿈은 직업이 아니라

본질 그 자체여야 한다.

 

 

삶의 신조

 

성실과 인내는 내 동반자고

열정과 실력이 내 인맥이다.

 

 

 

책 한 권을 목적으로 알고

마음으로 품는 사람이

 

책 백 권을 수단으로 여겨

이용하려는 사람보다

 

훌륭하다.

 

 

나는

 

나는 어린 시절 집에 도둑이 들어

집안의 물건을 도둑맞아 봤기에

 

어떤 일을 하든지 대가 없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절대 타인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지독한

괴롭힘을 당해 봤기에

 

나보다 여린 친구들을

절대 괴롭히지 않는다.

 

나는 가장 힘든 일을 경험하며

가장 적은 돈을 받아 봤기에

 

많은 돈을 얻어도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 절대 낭비하지 않는다.

 

나는 믿었던 사람들에게

너무도 많은 배신을 당해 봤기에

 

정말 중요한 순간에 믿어야 하는 건

나 자신임을 알고 있다.

 

나는 삶에서 바라왔던 일들이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나의 의지대로 노력할 수 있는 삶

그 자체에 항상 감사할 줄 안다.

 

나는 곁에 아무도 없는 고독의 괴로움이

얼마나 큰 것임일 잘 일기에

 

결국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임을 안다.

 

나는 탐욕을 쫓는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는지 보았기 때문에

 

항상 탐욕을 경계하고

진정한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모든 것은 순간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없음을 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없음을 알기에

 

모든 순간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영원히 살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살고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한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안으로 굽어야 하겠는가?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첫 번째 의미는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이다.

 

이는 보이는 것의

외면적인 미를 뜻한다.

 

그러나 내면의 미를 발견하는 과정은

언제나 나와 당신의 만남에서

꽃을 피우기 마련이다.

 

그대 한 사람이

나에게는 바다보다 깊은 마음이며

하늘만큼 넓은 이해이자

별 같은 아름다움

태양 같은 생명력이다.

 

또한 당신은

우주처럼 표현할 길이 없는

신비로우며 끝이 없는 광활한 사랑이다.

 

시를 적어 내려간 뒤

다시 아름다움이 가진

사전적 의미를 찾았다.

 

아름다움이 가진

두 번째 진정한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내가 바라는 세상

 

나의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절대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성별로 사람을 차별하지 아니하며

외모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한다.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할 줄 알고

 

내가 남보다 더 가진 것에

부끄러워 할 줄 안다.

 

항상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내면의 거울을 가질 줄 알고

모르는 것에 겸손해하며

 

내가 깨닫는 것에 감사한다.

 

삶의 의미는

돈이 아닌 꿈에 있으며

 

모든 불가능은

가능성을 담보로 둔다는 것을 안다.

 

또한 꿈은 서로 이해하고

도울 때 비로소 꿈으로 끝나지 않고

실현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을 너의 세상으로

곧 너의 세상을 우리 모두의 세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내 삶의 신조이자 신념이다.

 

 

외로움

 

봄이 와서 그런 건가?

오랜 기간 혼자여서 그런 건가?

아니면 삶이 힘들어서 그런 건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니

 

아! 내가 사람이라 그런 거구나!

 

 

구석진 자리

 

사람들이 구석진 자리를

선호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 한 구석진 자리엔

누구에게도 침해 받고 싶지 않는

 

'나'라는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7. 12. 11. 12:15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8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 -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

 

 

 

박세길

2016, 돌베개

 

대야도서관

SB126000

 

911.07

박54ㄷ  1

 

남북의 민중을 민족사의 주체로 놓고 서술한

 

한국현대사 길라집이

 

 

이제 우리 민족은 지나온 과거를 잊고 싶은 비극이 아닌 영광의 장정으로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노예근성을 떨쳐버리고 민족적 자존심을 당당하게 회복해야 합니다. 또한 한때의 좌절을 더 큰 분노로 되씹음으로써 역사를 밀고 나가는 힘찬 동력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민족은 본래 둘일 수 없습니다. 민족분열의 아픔을 강렬한 애국심으로 승화시켜 조국통일의 대업을 기필코 달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은 몇몇 개인의 노력에만 국한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족 전체의 깨달음과 자존심 회복의 과정입니다. 또한 현대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우리 민족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일부입니다.

「책을 쓰고 나서」 중에서

 

지은이

박세길

 

1962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후 줄곧 재야에 머물렀으며 1990년대 전반기까지는 노동자와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현대사 교양활동에 매진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시리즈는 그 과정에서 나온 저작으로 현대사를 진보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정리한 1990년대 대학생 필독서로 꼽혔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진보적 사회단체와 연구단체의 정책기획가이자 이론연구자로 활동했다. 2000년대 중반 무렵 한국 사회의 변화를 진보세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의 가치와 비전, 전략 모두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단체 상근직을 모두 사퇴하고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사회의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는 데 쏟아왔다. 앞으로 남은 시간 또한 새로운 시대의 좌표를 모색하는 연구와 교육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 『자본주의, 그 이후』,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 『미래를 여는 한국인史』(1~2), 『세계를 바꾸는 역사』, 『우리 농업, 희망의 대안』,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젊은 국가』 등이 있다.

 

차  례

 

왜 한국현대사를 다시 쓰는가

제1부 해방과 분단      제1장 해방의 길목에서

                                              1. 일제 침략전쟁 시기의 민족의 수난
                                              2. 조선 민족은 결코 죽지 않았다
                                              3. 민중이 주인 되는 시대
                                              4. 먹구름을 몰고 온 미군

                             제2장 좌절과 분노

                                              1. 모스크바 삼상 결정, 그 진실과 허위
                                              2. 참담한 남한의 실정
                                              3. 10월 인민항쟁
                                              4.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제3장 배신과 음모

                                              1. 위반된 약속
                                              2. 임시정부 수립 촉진 인민대회
                                              3. 미국, 유엔이라는 간판을 내세우다
                                              4. 2 · 7 구국투쟁

                             제4장 하나의 나라와 두 개의 정부

                                              1. 남북연석회의
                                              2. 망국적 단독선거의 강행
                                              3. 이승만 정권의 정체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제5장 되살아나는 전쟁음모

                                              1. 끓어오르는 한라산
                                              2. 4 · 3제주항쟁의 불길

                                              3. 여순 봉기의 돌풍
                                              4. 전진하는 유격투쟁

 

 

제2부 한국전쟁          제1장 군사통치의 개막

                                               1. 역사를 미리 쓰는 미국
                                               2. 심상치 않은 일본의 상황
                                               3. 고조되는 긴장
                                               4. 불붙는 38선

                             제2장 전쟁의 발발과 미국의 개입

                                               1. 전면적 충돌로의 비화
                                               2. 미국의 개입
                                               3. 북한군과 남한 민중
                                               4. 남한에서의 사회개혁

                             제3장 격돌하는 두 세계

                                               1. 드러나는 미국의 야심
                                               2. 북한, 장기 항전 태세로 들어가다
                                               3. 누가 중국군을 끌어들였는가
                                               4. 인민전쟁의 마술
                                               5. 북한군과 중국군의 총반격
                                               6. 인해전술의 비밀

                             제4장 심판대에 오른 양심

                                               1. 다시 38선으로
                                               2. 융단폭격과 세균전
                                               3. 남한에서의 유격전과 피의 살육
                                               4. 교차되는 전쟁과 평화

                             제5장 전쟁 중의 남과 북

                                               1. 사람 죽여 배 채우는 자들
                                               2. 깡패 정권
                                               3. 북한의 후방정책

                             제6장 전투 없는 전쟁

                                               1. 좌절된 야망
                                               2. 강화되는 냉전체제
                                               3. 미군의 계속적 주둔
                                               4. 실패로 끝난 제네바 정치협상회의
                                               5. 뿌리내리는 반공 이데올로기


책을 쓰고 나서

참고문헌

 

 

 

 

 

posted by 황영찬
2017. 12. 4. 16:30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7 시가 있는 간이역

 

 

 

최  학 지음

2012, 서정시학

 

대야도서관

SB079844

 

811.7

최92ㄱ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 하나도 우주에서는

지극히 작은 역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선로에 놓인 돌맹이 한 개 같은 지상의 역에서

사람은 떠나고 남는다. 아득한 만남과 아득한 이별이 그렇게

우주의 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은 떠나옴과 떠나감의 지정학적 좌표다. 가고 옴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떠남의 동질성은 불변이다. 떠남은 공간의 이동, 관계의 유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상대가 변하는 것 또한 떠남의 양태가 된다. 이런 떠남의 형식 가운데 시간만큼 야멸스러운 것은 없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이윽고 모든 것을 무화시킨다.

 

근근이 우리의 기억이 흘러 간 것 변해 버린 것을 환원 혹은 복원시켜보려고 시간의 통로 속에서 안간 힘을 쓰지만 부질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역이 이런 안쓰러운 회억과 그 부질없음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대체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회상과 과거 반추의 상관성으로 볼라치면 대도시의 역이건 산골 간이역이건 별반 차이가 없다. 전통적 농경사회의 몰락과 근대 산업사회 성립의 접합점에 철도가 있음은 누구나 아는 바다. 새로운 문명은 기존의 문명을 재빠르게 지우며 스스로 몸집을 불려가지만 그 또한 다가오는 새 문명의 먹잇감이 되게 마련이다.

- 본문 중에서

 

최  학

 

경북 경산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문단 등단

1979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 당선

현재 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저서로는 「잠시 머무는 땅」「그물의 눈」「식구들의 세월」「손님」 등의 창작집과 「겨울 소나기」「안개울음」「서북풍」「미륵을 기다리며」「화담명월」 등의 장편소설이 있음. 그밖에 「배갈을 알아야 중국이 보인다」「니하오 난징」 등의 중국 관련 저서가 있음

jegang@yahoo.co.kr

 

|차례|

 

중앙선 간현역  간현역에서_ 김용진

경춘선 강촌역  눈 내리는 강촌역_ 김종익

경춘선 경강역  경강역에서_ 이기인

경부선 고모역  고모역_ 구상

태백선 고한역  검은 민들레_ 정호승

충북선 공전역  천둥산 박달재_ 오탁번

전라선 관촌역  간이역_ 송종찬

장항선 광천역  기차표를 끊으며_ 이정록

중앙선 구둔역  구둔역_ 설태수

전라선 구례구역  구례구역의 사랑노래_ 고재종

정선선 구절리역  구절리 바람소리_ 이향지

영동선 나한정역  스위치백_ 복효근

경춘선 남춘천역  남춘천역_ 전동균

경전선 남평역  사평역에서_ 곽재구

영동선 녹동역  녹동역_ 곽대근

중앙선 단양역  단양역 앞에서_ 백우선

경부선 대전역  대전역에서_ 양애경

장항선 대천역  장항선 열차를 타고_ 정완희

영동선 도경역  도경역_ 박선옥

장항선 도고역  도고 도고역_ 류외향

영동선 동점역  귀가_ 허만하

경춘선 마석역  파초우(芭焦雨)_ 조지훈

경부선 매포역  매포역_ 이은봉

경전선 명봉역  명봉역_ 박라연

중앙선 모량역  모량역_ 도광의

동해남부선 모화역  모화역에서_ 구광렬

호남선 몽탄역  몽탄역_ 박라연

경부선 물금역  물금역_ 박해수

경부선 밀양역  새벽 밀양역_ 전성호

호남선 백양사역  백양사역_ 이진명

경부선 병점역  병점(餠店)_ 최정례

부산지하철 하단역  하단역 지나며_ 강경주

경부선 부산역  2월에 쓴 시_ 홍수희

장항선 삽교역(수덕사역)  수덕사역_ 정호승

서울역  서울역_ 유안진

중앙선 석불역  석불역(石佛驛)_ 나희덕

경전선 석정리역  다시 석정역_ 김정호

수도권 전철 성북역  다시 성북역_ 강윤후

진해선 성주사역  성주사 간이역_ 정영자

수도권 전철 송내역  송내역에 내리면_ 김승동

중앙선 송포역  송포역에서_ 김찬일

경의선 수색역  수색역(水色驛)_ 이수익

경부선 수원역  수원역_ 박덕규

영동선 승부역  그 소리들_ 나희덕

경춘선 김유정역  나의 고향_ 김유정

전라선 신풍역  신풍역_ 도광의

정선선 아우라지역  아우라지 간이역_ 최동호

안산선 대야미역  대야미역_ 홍신선

전라선 압록역  압록역이라고 있다_ 김종제

영동선 양원역  양원역에 가면_ 강봉환

전라선 여수역  여수역_ 정호승

경부선 연화역  연화역을 지나며_ 이성렬

전라선 오수역  오수역에서_ 안도현

경부선 왜관역  비 내리는 왜관역에서_ 김찬일

경부선 원동역  원동역_ 강영환

동해남부선 월내역  월내(月內), 바다가 보이는 간이역_ 손태수

경의선 월롱역  월롱_ 김성대

경원선 월정리역  월정리역_ 정일남

경부선 유천역  유천역_ 이우걸

호남선 익산역  솜리정거장_ 심호택

서울교외선 일영역  일영역의 어둠_ 함동선

태백선 자미원역  자미원역_ 조정

영동선 정동진역  겨울 정동진에 가면_ 최동호

호남선 정주역  정주역_ 이장욱

경부선 조치원역  조치원_ 기형도

수도권 전철 주안역  주안역을 지나며_ 원동은

태백선 증산역  증산역에서_ 박영희

경원선 철원역  철원역에서_ 정호승

경부선 청도역  청도를 지나며_ 정희성

태백선 추전역  추전역_ 고은

영동선 통리역  통리역_ 황주경

경부선 평택역  평택역에서_ 조석구

동해남부선 포항역  포항 역전을 지나며_ 정건우

경전선 한림정역  한림정 역에서 잠이 들다_ 강현덕

호남선 함열역  함열을 지나며_ 김완하

경부선 황간역  _ 한성기

 

 

간현역에서

 

김용진

 

언젠가는 다시 찾으리라던

간현역

황혼 길에 찾아오니

 

무심한 세월 그 자리

구석구석엔

사람 냄새 풍기는데

 

강줄기 끼고 돌아가는

중앙선 열차는

숨 가쁘게 허덕이고

 

오가는 사람들

깊은 사연 품에 끼고

말없이 오르내리네

 

유유히 흐르는 섬강 중기

천년 두고 흘렀어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세월 낚는 태공들

숨죽이고 앉았는데

백로 한 쌍 날아간다.

 

 

 

고모역

 

구  상

 

고모역을 지나칠 양이면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대문 밖에 나오셔서 기다리신다.

이제는 아내보다도 별로 안 늙으신

그제 그 모습으로

38선 넘던 그 날 바래주시듯

행길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천방지축 하루 해를 보내고

책가방엔 빈 도시락을 쩔렁대며

통학차로 돌아오던 어릴 때처럼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만큼이나

머리가 희어진 나를

역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이북 고향에 홀로 남으신 채

그 생사조차 모르는 어머니가

예까지 오셔서 기다리신다.

 

 

 

구둔역

 

설태수

 

간이역 모퉁이의 녹슨 철로

기차가 다니는 철길처럼

속살까지 부비며

달밤에도 빛나고 싶건만

그렇게 소멸되고 싶건만

버려진 철로는 바람과 비와 눈을

적막을 견딜 수 없어

소리 없이 제 몸 찔러가며

검붉게 사위어가고 있다

취한 듯 스러지고 있다

 

 

 

스위치백

 

복효근

 

기차가 앞만 보며 돌진한다고 말하지 말라 태백산을 넘어가는 기차를 타보았는가 동해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전라선 야간열차를 탔다가 기차가 영동선 흥전역에 들어서 갑자기 뒤쪽을 향해 거꾸로 되달릴 때 황당한 가슴을 어찌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한없이 물러섰던 기차가 다시 앞으로 치달아 영동선 흥전역과 나한정역 사이 태백 준령을 그렇게 지그재그로 넘는 걸 알고 다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기차가 태백산을 넘는 방법, 스위치백이라고 하던가. 후진의 힘이 기차를 태백 너머로 밀어 올린다. 이제 어느 날 갑자기 나의 길이 나를 뒤로 끌고 갈 때 죽을 것처럼은 놀라지 않기로 한다. 기차를 타고 태백을 넘어보면 안다 깜깜한 가슴 깊이 처박힌 태양이 후진의 힘으로 산 너머 동해 저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어둠 속에 깨어 퍼덕이는 정동진의 바닷새들도 스위치백으로 날아오른다.

 

 

 

도경역

 

박선옥

 

누구나 마음의 역 하나 지니고 사는가

키를 낮추며 들어간 세상의 막장에서

봉합된 시간을 뜯어보기에는

기억의 삽 끝이 너무 무디어 있다

 

한 번도 내게서 떠난 적이 없는 나

다시 돌아 갈 곳도 없는 삶의 간이역에서

추억을 유품처럼 챙기다가 털고 일어설 때

저마다 역 하나 지니고 사는 이유를

내 허물어져가는 얼굴에서 묻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의 간이역 하나 지니고 살아가는가

 

 

 

동점역

 

허만하

 

투명한 유리창이 거울이 되는 지점이 잇었다. 천천히 휘어지며 멀어져 가던 석포역 뒷모습과 도경을 지나서야 외로운 외등같이 모습을 드러내던 강원도 들머리 동점역 사이의 한 지점. 철거덕거리는 철교 건너는 소리가 조바심처럼 가슴에 울리던 산협의 짧은 구간. 이마를 차창에 기댄 채 한 사나이가 자기 얼굴 위에 겹치는 아내와 어린 두 딸의 기다림을 그림처런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지점. 윤곽을 잃어버린 먹빛 산덩이 헤치며 무수한 오렌지 빛 창이 아름다운 피리소리처럼 지나던 그 지점.

 

 

 

명봉역

 

박라연

 

역사의 느티나무도 조금,

6 · 25와 여순사건과 애주 사이에서 놓친

역 근처의 양조장도 조금,

안사 올 역장도

아버지를 기억할 역원도 없는데

호주머니 속 깊숙이 차표 감추시고

나가시려다 실랑이 벌이시던

시공(時空)도 조금,

 

산나물 장수 방물장수들의 노동을

통째로 사주시던

자네 밥 아직 안 먹었지? 내밀던

아버지 밥도 조금,

내 몫까지 함부로 인심을 써?

복(福) 한번 고파봐라, 신이 몸소

아버지 밥 다 가져가버린 것 같다는

 

어머니 세계관도 조금,

위치며 자태가

어진 아내 미안한 남편이어서

아버지 산소도 조금,

명봉역이다

 

명봉역을 MBC 베스트 극장에서

만난 날

화면 속의 느티나무더러

아버지! 불러본다

 

 

 

모량역

 

도광의

 

산수유꽃 개나리 하도 피어

역사(驛舍) 지붕도 노란꽃이 핀다

열차가 모량역을 지날 때

작은 못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까치가 앉았다 날아가는 순간

나뭇가지 가늘게 떨리다가

찰방대는 못물에 잠긴다

산수유꽃 개나리 하도 피어

마을 지붕들도 노란꽃이 핀다

열차가 모량역을 지나면서

까치짐이 못물에 잠기면

박목월 선생을 생각하는

내 마음도 꽃이 피어 물에 잠긴다

 

 

모화역에서

 

구광렬

 

기다림이 있다는 건

사랑이 있다는 것

사랑 없인 하루도 힘든데,

오늘 철길따라 걷는다

 

떠난 기차는 정시에 돌아오지 않는가

그냥 스치어도 좋다

나, 사랑할 때 슬픔은 기억하나

외로움은 낯선데

오늘

모든 것 그리웁구나

 

내릴 사람 없고

반길 사람 없어도

기차를 보련다

너무나 그리워

기차라도 만나련다

 

 

 

몽탄역

 

박라연

 

밤 기차를 타본 사람은 안다

 

마음속엔 몇 개의 몽탄(夢灘)역이 있다는 것

역사 너머 저마다 연못 있다는 것

꿈으로나 만나보는

꿈이어서 다행인 풍경 있다는 것

옛날 그림자들 걸어 나와

구불구불한 생(生)의 왼편과 오른편에

달불을 켠다는 것

연꽃 눈 뜨는 순간의 떨림 수정으로

구른다는 것

앞마당에 목백일홍은 심지 마라

붉은 울음 빼내어 너, 주면 어쩔래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붓과는 눈 마주치지 마라

네, 속내 빼내어 화선지에 넣으면 어쩔래

어머니의 노래 끝날 무렵

만삭의 근심들 몸 푸는가

온몸에 반딧불 켜고 있는 저 허공

몽탄역!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달불의 연기처럼 스며드는

지는 해도 문득 외박하고 싶어지는

첫사랑, 몽탄행(行) 열차에게

길은

꿈길뿐이라는 것

 

 

 

석불역(石佛驛)

 

나희덕

 

석불이라고는 잇을 것 같지 않은

작은 동네에 집이 세 채

 

그가 돌로부터 왔음을

불타는 돌이었음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모습으로

 

눈 녹는 역사 마당에

쓰러질 듯 서로를 고이고 잇는

연탄재들

 

기차가 석불역을 떠나려는 순간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소신공양을 끝내고 막 돋아나는 그 살빛!

 

 

 

송포역에서

 

김찬일

 

아직 열차 오지 않는다

어디쯤 오다가 바람에 져버린 꽃잎 싣고 있는지

빨간 잠자리 앉아 조는 여문 수수나무 몸짓에 눈 주고 있는지

이미 달려 온 길 되돌아 갈 수 없는 열차는 슬픈 가을처럼 달려 올 텐데

대합실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가야할 길 흔들리는 코스모스 위로 나는

잠자리 따라 먼눈으로 그려 보는데 열차 오지 않는다

오지 않아도 그만일 완행열차는

송포역에서 흘러나오는 연착의 방송으로

안도하는 사람들의 기억 위로 달려오고 있다

이제는 가을빛 담은 보퉁이 머리에 이고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사람들

열차는 시간을 떨어뜨리며

어디가 종점인지도 모를

기억의 언덕 넘어

가을 속 달려오는

송포역에서

 

 

 

그 소리들

 

나희덕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발밑의 흙들이 자글거리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소리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그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신풍역

 

도광의

 

익산과 목포를 오가던

통일호 열차

덕양역, 여천역, 미평역을 지나

하루 두 번 기차가 지나가면

바람도 아물아물 숨을 쉰다

19시 45분 막차가 출발하면

오고 가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기차만 바다 곁에 머물다 떠나간다

 

 

 

압록역이라고 있

 

김종제

 

당신은 열차를 타고

저 윗동네 북녘의 어디 아닌

남도 땅을 휘돌아가다가

섬진강을 지켜보는

압록역에 닿을 수 있다

하루에 일곱 번 밖에 서지 않고

다섯 명도 채 타지 않는다는

빈손 같은 간이역이다

압록역에는 폐교처럼

사라져 가는 것만 있다

산안개처럼 떠나가는 것만 있다

여기가 나무 집결지였다

지게에 실려 온 놈에다

우마차에 끌려온 놈에다

뱃장 좋게 차 타고 온 놈까지

죄다 압록역에 모여 놓다가

서울로 올려보냈다

나무 대신 연탄을 땐다고

여기 모래가 최고 중의 최고라고

또 몽땅 서울로 실려 갔다

나를 먹여 살린 압록역이다

강도 흐르고 역도 흐르고

내가 또 압록역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베어지고 파냈던 상처도

압록의 강물로 흘러가고 있다

 

 

 

양원역에 가면

 

강봉환

 

눈과 귀와 가슴으로만 가야 하는 역이 있다 하늘 아래 땅이 있고

그리고 거기 역처럼 보이는

어쩌면 걸어서 가는 게 훪씬 나은 역이 있다

물어물어 찾아 와도 다시 갈 길이 먼 역이 있다

물 맑은 계곡에 손 한번 담그고 한참을 산야에 묻혀

그렇게 강줄기 따라 가야만 하는 역이 있다

좁은 길 따라 어르신에게 양보하며 물어 찾다보면

다리를 지나고 폐교분교를 지나 마치 성냥갑처럼

거기엔 간찬을 보고서야 겨우겨우 여기가 양원역임을…

번듯한 플랫폼 간판마저도 없는 간이역엔

주민들의 애환만이 서려있는 하늘아래 역이었다

철길 따라 걸어서 가는 게 왠지 편안한 양원역,

이 마을사람들이 지어 붙인 양원역이라는 간판부터

그렇게 보통사람들만의 역이 거기에 우뚝 서 있다

 

 

 

오수역에서

 

안도현

 

너의 아픔 곁에서

너의 아픔 속속들이 적시지 못할바에는

나, 서둘러 떠날란다

 

오수 발 서울행 새벽 기차 기적소리

 

 

 

월내(月內), 바다가 보이는 간이역

 

손택수

 

달 속에서 파도가 일렁인다

동해남부선이 가끔씩 철로보다 더 가늘고 긴

여운을 남기며 지나가는 간이역

지상에서 발톱을 다친 물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역사 가까운

초등학교 쪽에선 풍금소리가 새어나오고

풍금소리에 맞춰 개망초, 달개비, 참나리

고만고만한 꽃들이 하교길에

한눈을 팔며 놀고 있는 것도 보인다

돌담 위에는 푸른 고양이,

고양이 수염처럼 빳빳한 햇살이 설핏해졌다

선로보수 작업 중 잠시 머무는 동안

잠시 머물며 줄담배를 피우는 동안

달이 끄는 힘에 따라 내려선 눈

길은 플랫폼 벤치에 골똘히 앉아 있고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저 마을 어딘가에 생두부 한 모에

잔소주를 파는 민짜집이 있을 것이다

낮게 수그린 처마와 이마를 맞대고

틈틈이 손을 꺼내어 더운 음식을 주고받는

창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은 모두 저 바다 때문이다

고압선이 지직지직 달 속으로 들어간다

청어떼가 몰려온 바다, 어부의 집에서 나온

길 하나가 낚시줄처럼 팽팽하게 바다를 당긴다

바다가 먼저 신호처럼 집어등을 밝히면

집들도 따라 연연히 불을 켜고

둥근 불빛들이 내밀하게 속삭이며

살을 섞는 월내, 밤이면 배를 띄우리라

누군가 수심 위에 수심을 드리우며

지쳐나는 뭇새들이라도 쉬어가라

쉬어가라 수평선 위에 흐르는 불빛 하나를

내다 걸리라 한 번 빠져들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바다,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기차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스치고 지나갈 뿐인

어디에도 머물 수 없는 자도

때로는 달의 인력을 이기지 못하고

저렇게 푸른 바다를 막막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에 속절없이

귀를 맡겨야 한다는 것을

달 속에서 풍금소리가 잦아든다

물새들이 느려터진 기차를 따라오다

멀어져 간다, 달빛 두 줄기만 남았다

 

 

 

자미원역

 

조  정

 

태백선 철도는 티베트선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기차가 서지 않는 플랫폼이 오백 년 된 양은냄비처럼

빛나는 소맷부리를 햇빛에 고스란히 내놓은 길목이 잇습니다

 

좁고 긴 의자는 드문드문 어깨가 벗겨져

빗소리에 쉬 젖거나

몸 무거운 새를 붙들고 안 놓아 주기도 합니다

심심한 철로를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어서 놓친 버스가

가을 쪽으로 흘러가는 뒷모습을 따라

터널터널 터널 몇 개 여닫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이 길을 밟고 가면

비폭력 무저항으로 하늘을 사열 중인 포탈라 궁이 보입니다

 

고랭지 배추밭 비탈에는 울음 울 자리가 많습니다

증산역에서 하차하여 자미원역으로 돌아가

버스를 놓쳐야 합니다

사람이 내놓은 길에게 정 대신 눈물을 쏟아주고

마른 울음을 소리칠 자리만 많습니다

 

 

 

추전역

 

고  은

 

영동선 허위허위

해발 8백 55미터의 작은 역

너 누이야

석탄가루 날려

너하고 멜로드라마로 울며불며 헤어질 수도 없다

보아라 태백산 첩천한데

무엇하려고 십자가는 여기까지 와 솟아 있느냐

따라 모든 거룩한 말이여 너는 거짓말보다 못하다




통리역


황주경


눈 내리는 날

그대,

통리역에 내리면

미궁 같은 하얀 통속에 빠지리라

기차에서

지금 막 내린 사람이나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 모두

대합실을 마주보고 선 두 개의 문을 열어야

겨울을 밀봉한 통속 세상으로 들어 갈 수 있다

그곳에는 기차가 끌고 온 방황의 그림자가

배낭을 둘러멘 채 통속 세상을

낯설게 두리번거리고 있을 것이며

눈발을 몰고 다니는 하얀 바람은

시린 하모니카를 불며 통속으로 미끄러질 것이다

정신없이 빠져들며 두리번거리다

손이라도 잡아 주는 사람 하나 있다면

이미 당신은 돌아 나올 길을 잊었다는 얘기

만약 당신이 눈 내리는 날

통리역에 내리게 된다면

입구를 밀봉한 코르크 마개를 뗄 때부터

꼭 돌아올 길을 표시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잊었던 아리아드네의 눈물을 더듬어

역사를 찾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한림정역


강현덕


낙동강 물안개에

질식이라도 했는지

한낮의 미루나무

눈도 뜨지 못한다

기차는 오지를 않고

철컥철컥 오지를 않고


긴 의자에 삐죽 나온

못 같은 나를 돌아보다

안개 속에 감추어 둔

나의 아침을 생각하다

한림정 작은 역사에 기대

널 꿈꾸려 잠들다



 

 

 

 

 

posted by 황영찬
2017. 12. 4. 12:33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6-1 고사성어 문화답사기 2 섬서 · 산서 편

 

한성 사마천 사당의 편액들

사필소세, 한태사 사마사, 고산앙지, 하산지양(위로부터)

 

측백나무 세 그루가 있는 사마천 무덤

 

結草報恩

은혜가 사무쳐 죽어서도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

結 : 맺을          결

草 : 풀             초

報 : 갚을          보

恩 : 은혜          은

 

증후을 편종

호북성 수주사에서 출토된 증후을의 부장품이다. 한 개의 박종鎛鐘. 45개의 용종甬鐘과 19개의 뉴종紐鐘으로 구성되었으며 곡척형으로 종을 걸 수 있는 걸대가 3층으로 되어 있다. 모든 종에는 각각 음의 명칭이 표시되어 있는데 두 개의 음까지 낼 수 있는 것도 있으며 12개의 반음을 모두 낼 수 있다.

 

증후을 편종 아래의 동인銅人 받침대

인물이 사실적이고 눈매가 또렷하며 자태가 위엄있다. 그리스나 로마 청동기의 해부학적인 면은 찾아 볼 수 없지만 개성표현에 치중하고 있다. 후세 진용秦俑의 선구를 이루었다.

 

명13릉 - 세계문화유산

 

명 인종의 헌릉입구

 

교가대원

 

북송 · 진사시녀상晉祠侍女像

이 상은 진사晉祠 성모전聖母殿 안에 있는 시녀상이다. 어린 소녀 하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고, 한 소녀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곁눈질하고 있다. 생동적인 형상은 고대 장인들의 현실 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숙련되고 정밀한 조소기술을 보여준다.

 

汗牛充棟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집에 쌓으면 대들보까지 닿게 된다는 뜻으로 책이 많은 것을 비유한 말.

汗 : 땀                한

牛 : 소                우

充 : 가득할          충

棟 : 마룻대          동

 

보구사

 

서상기에서 앵앵과 장생

 

관작루

 

등관작루

- 왕지환

 

하얀 해는 빛나며 서산에 기울고,

황하의 물결이 바다로 흘러드네.

아득한 먼 곳을 바라보려면,

한 층 더 높이 올라가야 하리.

 

백일의산진(白日依山盡)

황하입해류(黃河入海流)

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

경상일층루(更上一層樓)

 

起死回生

죽은 사람이 일어나 다시 살아남.

起 : 일어날      기

死 : 죽을         사

回 : 돌아올      회

生 : 살            생

 

편작이 의술을 행하는 석상. '편작행의'라고 쓰여 있다.

 

서안의 편작기념관과 그 앞의 동상

 

편작사당(산서 영제시)

 

董狐直筆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을 말함.

董 : 동독할      동

狐 : 여우          호

直 : 곧을          직

筆 : 붓             필

 

후마 동씨묘 안에 있는 연극무대

 

연극무대 위의 배우들

 

華而不實

꽃은 화려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

華 : 빛날          화

而 : 말이을       이

不 : 아닐          부

實 : 열매          실

 

공상희고거

 

공상희 저택의 패문

 

태곡병

 

單刀赴會

칼 한 자루를 들고 모임에 나간다는 뜻으로, 여기서 모임이란 매우 위험한 자리를 가리킨다.

單 : 홑              단

刀 : 칼              도

赴 : 다다를        부

會 : 모일           회

 

단도회에 나가고 있는 관우의 모습

 

해주묘에 안치된 관우상 왼쪽이 주창이고 오른쪽은 관평이다.

 

해주 관제묘 전경

 

해주 관제묘

 

관림(하남성 낙양)

손권이 조조에게 보낸 관우의 머리를 묻은 곳이다.

 

관릉(호북성 당양)

동한 건안 24년(219)에 건립되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관우는 오나라 군대와의 교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오왕 손권은 관우의 머리는 낙양의 조조에게 보내고, 머리없는 시신은 제후의 예를 갖추어 당양에 묻어 주었다.

 

관제묘 입구의 유리 영벽

 

관제묘 단문

왼쪽에 '대의참천', 오른쪽에 '정충관일'이라는 편액이 있다.

 

치문

 

오문

 

어서루의 편액

절륜일군 : 언여사의 글씨

 

신용

건륭황제의 친필이라고 한다.

 

종루

 

관우가 춘추를 읽고 있는 모습. 얼굴은 역시 붉은 대춧빛이다.

 

결의원

 

 

 

 

 

 

posted by 황영찬
2017. 11. 27. 13:37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6 고사성어 문화답사기 2 섬서 · 산서 편

 

 

강영매 지음

2013, 범우

 

대야도서관

SB126032

 

912

강64ㄱ   2

 

고사성어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하여 온 역사적 원류가 있는 어휘로서 옛사람들의 지혜의 결정체이며 언어 속의 찬란한 보석과도 같다. 중국에서 수천, 수백 년 전에 탄생된 고사성어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에서까지 아직도 그뜻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언어의 영원성과 생명력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고사성어는 곧 언어 속의 활화석과 같아, 우리가 중국 문화를 연구할 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해 주는 문화 콘텐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강영매 姜姈妹

 

충남 예산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중문과 졸업.

국립대만사범대학교 중문학 석사.

대만문화대학교 일문학 석사.

연세대학교 중문학 박사.

현재는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겸임교수다.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을 역임하였다. 동아시아의 인문학과 문화에 연구를 집중시키고 있으며, 특히 한 · 중 · 일의 연극에 관심이 많다. 오랜 유학 생활과 수십 군데에 이르는 중국 박물관 견학 및 유적지 답사가 본서의 집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논문으로는 <탕현조 모란정 연구>, <이노우에 야스시의 중국 역사소설 연구>, <모란정 시공간 구조 분석>, <모란정과 파우스트의 합창의 의미>, <춘향전과 모란정의 천자문 수용 양상>, <모란정 언어 기교의 해학성>, <모란정에 나타난 화신의 의미와 상징성 고찰>, <한중 공연문화 교류 현황> 등 다수가 있다.

저 · 역서로는 『강영매의 한자여행』, 『한자특강』, 『동양 고전극의 재발견』, 『춘향 예술의 양식적 분화와 세계성』(공저), 『중국통사』(전 4권), 『중국역사박물관』(전 10권), 『중국의 성문화』, 『굴원』, 『채문희』, 『백록원』(전 5권), 『선월』, 『중국인의 꾀주머니』(공역) 등 다수가 있다.

 

차  례

 

책머리에

고사성어 - 문화 콘텐츠의 보고


섬서성과 관련된 고사성어

섬서성 - 13개의 왕조가 있었던 곳

 

글자 한 자에 천금을 주겠누라                      일자천금

책은 불태우고 학자들은 파묻고                    분서갱유

말과 사슴도 구별 못하는 바보                      지록위마

웃음 한번과 바꾼 나라의 운명                      일소실천하

밀까? 아니면 두드릴까?                               퇴고

경위가 분명하나니                                      경위분명

물고기도 기러기도 부끄러워요                     침어낙안

달도 부끄럽고 꽃도 수줍어요                       폐월수화

나라가 기울어질 정도의 미인                       경국지색

완전무결한 둥근 옥                                     완벽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죄를 청한 염파           부형청죄

중국 역사 속의 명마를 생각하며                   새옹지마

명장 마원 이야기(1)                                    노익장

명장 마원 이야기(2)                                    대기만성

한유가 아들에게 준 시                                 등화가친

입에는 꿀, 뱃속에는 검                                구밀복검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징표                           파경중원

엎어진 물을 어찌 다시 담으랴?                     복수난수

아홉 마리 소의 터럭 하나                             구우일모

황하에서 날아오르는 용을 그리며                 등용문

풀을 묶어 은혜를 갚으니                              결초보은


산서성과 관련된 고사성어

산서성 -8대 문화 상품이 있는 곳

 

장서의 기쁨                                                 한우충동

죽은 사람도 살리는 의술                               기사회생

목숨으로 지킨 역사 기록                               동호직필

빛좋은 개살구                                              화이부실

해주의 관제묘를 찾아서                                단도부회

 

연안 혁명관과 모택동 동상

 

빵빵면

 

무슨 글자지?

한자 중 필획이 가장 많으며 어느 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은 글자다. 중국표준음의 독음도 없으며 빵biang 이라는 발음은 관중방언이라고 한다. 복잡한 글자 속에 '실 사糸'와 '길 장長'이 두개씩이나 들어있으니 국수가 길다는 의미는 분명한 셈이다.

 

반쪽지붕

 

一字千金

글자 하나의 값이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글씨나 문장이 아주 훌륭함을 이르는 말

一 : 한            일

字 : 글자         자

千 : 일천         천

金 : 쇠            금

 

《여씨춘추》

《여씨춘추》는 12기記 · 8람覽 · 6론論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전체 26권, 160편에 20여만자로 구성되었다. 도가사상을 중심으로 각 학설을 융합하고자 하였다. 천지, 만물, 고금에 관한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으며 내용은 몹시 번잡하다.

 

함양박물관 정문

섬서성 함양시에 있다. 본래 명대 1371년에 건립된 공자 사당을 수리하여 세워졌다. 1962년에 개관하였다. 박물관에는 진대, 한대, 당대시기의 문물 약 1만 2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한대의 채회병마용

1965년 8월 함양의 한 고조 유방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된 3천여 채회병마용이 발굴 때의 모습으로 함양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焚書坑儒

서적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땅에 묻는다는 뜻으로 사상통제를 비유하는 말.

焚 : 태울        분

書 : 글           서

坑 : 구덩이     갱

儒 : 선비        유

 

진시황

 

병마용

 

활쏘기 자세의 무사용

 

그대여 진시황을 너무 욕하지 마소,

분서갱유에 대해서는 더 의논해야만 할 것이오.

진시황은 죽었지만 진나라는 여전히 존재하오.

공자는 명성만 높지 실은 쭉정이에 불과하다오.

역대로 진나라 법을 실행하였으니

'열가지 비판[十批]'이 좋은 문장은 아니오.

당나라의 유종원이 쓴 <봉건론>을 잘 읽어보면

자후(子厚 : 유종원의 字)를 따르고 문왕을 반대하지 않을 수 없소.

- <칠율 · 봉건론을 읽고 곽말약에게 보내는 시>, 모택동(1973)

 

주원장

 

주원장을 희화한 모습

미국 학자 Patricia Buckley Ebrey의 《케임브리지 삽화 중국사》에는 주원장이 곰보얼굴에 주걱턱으로 못생긴 얼굴인데 이는 일부러 사람들이 그를 못생기게 그린 것으로 실은 주원장도 다른 황제들처럼 잘생겼다고 한다.

 

옹정제

 

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농락하고 권세를 함부로 부리는 것을 비유한 말.

指 : 가리킬     지

鹿 : 사슴        록

爲 : 할           위

馬 : 말           마

 

부소 묘

유림楡林의 수덕현浽德縣에 있다. 그러나 역사서에는 부소묘가 어디에 있다는 기록은 없다. 부소와 몽염이 유림에서 주둔한 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진이세 황제릉

 

一笑失天下

웃음 한번으로 천하를 잃다

一 : 한           일

笑 : 웃을        소

失 : 잃을        실

天 : 하늘        천

下 : 아래        하

 

여산의 봉화대

 

여산이라고 쓴 패방

 

포사의 조각상

 

조조의 곤설袞雪

건안 11년(207) 어느날, 조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한중시에 있는 석문잔도石門棧道의 포곡褒谷에 이르렀다. 맑은 포수褒水가 계곡으로 흐르며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면서 잔물결을 흩뿌리는 것이 마치 눈보라를 날리는 것 같았다. 조조는 이 대자연의 경치에 도취되어 <곤설袞雪>이라는 두 글자를 썼다. 글이 완성되자 모두 글씨를 칭찬하면서도 '곤袞'자에 삼수변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묻지 않았다. 한 젊은이가 "승상대인, 승상의 글씨가 참으로 좋습니다. 그런데 '곤'자에 세 점이 빠져 있습니다"고 하였다. 조조는 이를 듣고 껄껄 웃은 후에 굽이치며 흐르고 있는 포수褒水를 가리키며, "곤袞의 바로 옆에 물이 있는데 어찌 물이 빠졌다고 할 수 있는고?"라고 대답하였다. 본래 곤설滾雪이라고 써야 할 것을 조조는 일부러 삼 수[氵]를 빼고 곤袞으로 썼던 것이다. 1969년 석문에서 저수지를 수리할 때 이 글씨가 발견되었다. 실제 각석 유물은 한중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는 일

推 : 밀          퇴

      옮길       추

敲 : 두드릴    고

 

나귀 위에서 시를 생각하는 가도

 

한가롭게 지내니 함께 하는 이웃도 적어

풀 덮인 오솔길은 황폐한 정원으로 통하네.

새들은 연못가 나무 위에서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다리를 건너오니 들판의 색도 구별되고

흐르는 구름 그림자에 돌이 움직이는 듯 하네.

잠시 떠났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니

함께 은거하겠노라는 약속 어기지 않았네.

 

閑居少隣竝(한거소린병),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過橋分野色(과교분야색),

移石動雲根(이석동운근).

暫去還來此(잠거환래차),

幽期不負言(유기불부언).

- 《제이응유거題李凝幽居》

 

          가도

 

가공사

북경 방산구방산구 석루진석루진에 당나라의 가도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에 중건된 가공사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다 하네.

그래도 이 산중에 계실 텐데

구름이 깊어 어디 계신지를  모르겠구나.

松下問童子 (송하문동자),

言師採藥去 (언사채약거).

只在此山中 (지재차산중),

雲深不知處 (운심부지처).

-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장안성루

 

涇渭分明

사물의 우열이나 시비가 일목요연하거나 경계가 분명한 것

涇 : 통할        경

渭 : 강이름     위

分 : 나눌        분

明 : 밝을        명

 

경위분명

탁하고 맑은 두줄기 물이 나란히 흐르고 있다.

 

경위가 분명한 강물

 

沈魚落雁

물고기는 연못 속에 잠기고 기러기는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의 고운 얼굴을 최대한으로 형용하는 말.

沈 : 잠길          침

魚 : 물고기       어

落 : 떨어질       락

雁 : 기러기       안

 

완사대교 아래의 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서시 조형물

 

서시의 고향

절강 항주시 임포진에 있다.

 

청총-왕소군묘

왕소군의 무덤은 내몽골 후허호트 남쪽 대흑하 강변에 있다. 이 일대의 지역은 평평한데 왕소군의 무덤은 짙은 흑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청총靑塚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역대로 시인묵객들이 이 무덤에 와서 술 한잔을 올리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두보도 이곳을 지나면서 "홀로 청총에 머무니 황혼이 지는구나[獨留靑塚向黃昏]"라고 읊었다.

 

 

소군묘

내몽골 정부가 1964년에 공원으로 지정했다.

 

 

 

 

자개를 상감한 비파

 

왕소군 조각상

이 조각상은 후허호트 시의 왕소군 기념관 앞에 있다.

 

閉月羞花

달도 눈을 감을 정도이고 꽃도 부끄러워할 정도의 미인임을 형용

閉 : 닫을         폐

月 : 달            월

羞 : 부끄러울   수

花 : 꽃            화

 

초선관

 

화청지에 있는 양귀비 조각상

 

궁성 안팎에서 전란의 연기와 먼지 일자,

천승만기의 황제일행 서남쪽으로 피난을 가네.

황제의 수레는 흔들흔들 가다가 멈추니,

서쪽으로 도성을 나선 지 백여 리라네.

군대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할거나,

억지로 끌려 나간 미인 마외 언덕에서 죽네.

꽃비녀 땅에 떨어져도 줍는 이 없고,

어지러이 흩어진 비취 금작 머리장식들이여.

군왕은 얼굴을 가릴 뿐 구할 수 없으니,

돌아서 바라보며 피눈물을 쏟네.

 

九重城闕煙塵生(구중성궐연진생)

千乘萬騎西南行(천승만기서남행)

西出都門百餘里(서출도문백여리)

翠華搖搖行復止(취화요요행복지)

六軍不發無奈何(육군부발무나하)

宛轉蛾眉馬前死(완전아미마전사)

花鈿委地無人收(화전위지무인수)

翠翹金雀玉搔頭(취교금작옥소두)

君王掩面救不得(군왕엄면구부득)

回看血淚相和流(회간혈루상화류)

- <장한가>, 백거이

 

양귀비 조각상

섬서성 흥평시興平市 마외파 양귀비 묘역 안에 있다.

 

양귀비 무덤

 

양귀비 사당 정문

'당 양씨귀비지묘'라고 쓰인 편액 옆에 중화민국 25년에 세워졌다고 쓰여있다. (흥평시 마외파 소재)

 

여지(리츠)

 

傾國之色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을 형용하는 말.

傾 : 기울어질       경

國 : 나라              국

之 : 갈                 지

色 : 빛                 색

 

한 무제 초상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황제 한 무제 유철

 

무릉武陵

한 무제 유철의 무덤

 

곽거병 묘 안내문

곽거병은 위황후의 생질이다.

곽거병 묘역 안의 담장문

 

북방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으니,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있네.

한 번 돌아 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 보면 나라가 기우네.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우는 것을 어찌 모르랴마는,

아름다운 여인은 다시 얻기 어렵다네.

 

北方有佳人(북방유가인)

遺世而獨立(유세이독립)

一顧傾人城(일고경인성)

再顧傾人國(재고경인국)

寧不知傾城與傾國(영부지경성여경국)

佳人難再得(가인난재득)

 

完壁

완전무결한 것을 비유하는 말

完 : 완전할         완

壁 : 둥근 옥        벽

 

짐승 얼굴 문양의 옥종玉琮

높이 5.4cm, 직경 6.6cm다. 옥종은 신석기시대 후기에 출현했으며, 양저 문화 · 용산 문화에서 모두 옥종이 출토되었다. 주례에서는 옥종의 외벽이 네모지고 안벽이 둥근 모양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둥근 것과 네모난 것이 천지를 관통한다는 의미로 고대 사회의 일종의 법기法器가 되었다. 고급 귀족의 수장품인 패옥은 신분이 영원히 변치 않음을 희망하는 것이고, 수장품인 옥종은 그와 천지가 서로 왕래하는 능력을 나타내준다.

 

負荊請罪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때려 달라고 죄를 청한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해줄 것을 자청한다는 말.

負 : 질                   부

荊 : 가시나무         형

請 : 청할                청

罪 : 허물                죄

 

부형청죄를 묘사한 그림.

 

塞翁之馬

인생에 있어서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뜻

塞 : 변방            새

翁 : 늙은이         옹

之 : 갈                지

      여기서는 '~의' 뜻임

馬 : 말                마

 

화상석에 표현된 서왕모

서왕모는 신화 속의 여신이다. 곤륜산의 여신으로 천도복숭아를 먹어 불로장생하였다고 한다.

위 화상석의 윗부분 그림은 서왕모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용과 호랑이 위에 단정히 앉아 있다. 머리에는 양측으로 삐쳐나온 옥승玉勝을 쓰고 있다. 서왕모 오른쪽에는 음식을 물고 있는 삼족오가 있는 데 늘 서왕모를 위해 음식을 구해온다. 왼쪽에는 구미호가 있는데 이는 상서로움의 상징이다. 서왕모 양측에 사람이 한 명씩 있는데 아마도 시종들인 듯 하다. 아래 오른쪽에는 신수神獸가 거문고를 뜯는 모습이고, 왼쪽에는 신수가 생笙을 불고 있다. 정 중앙에서 신선 하나가 춤을 추고 있는데 그 아래에도 구미호가 땅에 엎드려 있다.

 

당 · 소릉육준

 

금 · 조림趙霖의 <육준도권六駿圖卷>(여섯 마리의 준마 그림)

 

마신묘 안에 모셔진 마왕

이 신은 눈이 3개에 팔이 4개로 말을 타고 앉아 있다.

 

老益壯

늙었지만 의욕이나 기력은 점점 좋아지는 비유

老 : 늙을          노

益 : 더할          익

壯 : 씩씩할       장

 

광무제 유수

유수는 한 고조 유방의 9대손이다. 유수는 동한 왕조의 개국 황제로 서기 25~57년까지 재위했다. 광무제 통치 시기를 역사에서는 '중흥'이라 칭한다. 묘호는 세조며 시호는 광무제다.

 

大器晩成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로,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大 : 큰               대

器 : 그릇            기

晩 : 늦을            만

成 : 이룰            성

 

燈火可親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말로, 학문을 탐구하기에 좋다는 뜻

燈 : 등잔            등

火 : 불               화

可 : 가할            가

親 : 친할            친

 

한유의 글씨 <연비어약鳶飛魚躍>

'연비어약'은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온갖 동물이 생을 즐긴다는 뜻이다.

 

때는 가을이 되어 장마도 마침내 개이고,

서늘한 바람은 마을에 가득하네.

이제 등불도 조금은 가까이 할 수 있으니,

책을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時秋積雨霽(시추적우제)

新凉入郊墟(신량입교허)

燈火稍可親(등화초가친)

簡編可卷舒(간편가권서)

-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 한유  중에서

 

하얼빈 공항

 

 

장신궁등

 

주작등

 

와양등

 

 

소모양의 등

 

口蜜腹劍

입에는 꿀이 있고 뱃속에는 칼이 있다는 뜻으로 말로는 친한 듯하나 속으로는 해칠 생각이 잇음을 이르는 말.

口 : 입         구

蜜 : 꿀         밀

腹 : 배         복

劍 : 칼         검

 

당 현종

 

화산(華山)

중국 오악五岳중 서악에 해당된다. 화산의 봉우리가 마치 꽃과 같다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華는 花와 통한다. 산세가 몹시 험해 '기험천하제일崎險天下第一'이라고 불린다.

 

화산 하기정

이 정자는 화산의 봉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정자 내에는 바둑판이 있어 바둑 두는 정자라는 뜻으로 '하기정下棋亭'이라 부른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송 태조 조광윤은 이곳에서 화산을 내걸고 도사 진단陳과 내기 바둑을 두었는데 결국 진단에게 졌다고 한다.

 

破鏡重圓

깨진 거울이 다시 둥글게 된다는 뜻으로, 이별한 부부가 다시 만나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破 : 깨뜨릴      파

鏡 : 거울        경

重 : 거듭할      중

圓 : 둥글        원

 

거울과 사람이 함께 갔는데,

거울만 돌아오고 사람은 돌아오지 않네.

다시 만날 수 없는 항아님의 그림자,

헛되이 밝은 달빛만 머무네.

 

경여인구거(鏡與人俱去)

경귀인불귀(鏡歸人不歸)

무부항아영(無復嫦娥影)

공류명월휘(空留明月輝)

- 서덕언

 

당나라 동경

갈색 칠에 나전을 상감하였는데 그 모양은 구름위에 서려있는 비룡이다.

 

한대의 동경

꼭지의 구멍은 하나다.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

 

覆水難收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로, 한 번 저지른 일은 어찌할 수 없거나 다시 중지할 수 없다는 뜻.

覆 : 엎어질        복

水 : 물               수

難 : 어려울         난

收 : 거둘            수

 

서안 화청지

 

보계시의 조어대 강태공 조각상

 

복수난수

말에 탄 주매신이 전처에게 쏟아버린 물을 다시 담아보라고 하는 내용의 그림

 

九牛一毛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일을 비유한 말

九 : 아홉          구

牛 : 소              우

一 : 한              일

毛 : 털              모

 

사마천 사당 옆의 걷고 싶은 길

 

 

호구폭포

 

登龍門

용문에 오른다는 뜻으로, 입신출세의 관문을 일컫는 말.

登 : 오를       등

龍 : 용           용

門 : 문           문

 

 

 

 

 

 

 

 

 

posted by 황영찬
2017. 11. 10. 14:41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5 고사성어 문화답사기 1  하남 · 산동 편

 

 

강영매 지음

2013, 범우

 

대야도서관

SB126031

 

912

강64ㄱ 1

 

★ 2010년 국립중앙도서관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80선" 추천도서

★ 2009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 2009년 교보문고 추천도서 및 상반기 베스트셀러(인문분야)

 

고사성어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하여 온 역사적 원류가 있는 어휘로서 옛사람들의 지혜의 결정체이며 언어 속의 찬란한 보석과도 같다. 중국에서 수천, 수백 년 전에 탄생된 고사성어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에서까지 아직도 그뜻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언어의 영원성과 생명력에 새삼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고사성어는 곧 언어 속의 활화석과 같아, 우리가 중국 문화를 연구할 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해 주는 문화 콘텐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강영매 姜姈妹

 

충남 예산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중문과 졸업.

국립대만사범대학교 중문학 석사.

대만문화대학교 일문학 석사.

연세대학교 중문학 박사.

현재는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겸임교수다.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을 역임하였다. 동아시아의 인문학과 문화에 연구를 집중시키고 있으며, 특히 한 · 중 · 일의 연극에 관심이 많다. 오랜 유학 생활과 수십 군데에 이르는 중국 박물관 견학 및 유적지 답사가 본서의 집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논문으로는 <탕현조 모란정 연구>, <이노우에 야스시의 중국 역사소설 연구>, <모란정 시공간 구조 분석>, <모란정과 파우스트의 합창의 의미>, <춘향전과 모란정의 천자문 수용 양상>, <모란정 언어 기교의 해학성>, <모란정에 나타난 화신의 의미와 상징성 고찰>, <한중 공연문화 교류 현황> 등 다수가 있다.

저 · 역서로는 『강영매의 한자여행』, 『한자특강』, 『동양 고전극의 재발견』, 『춘향 예술의 양식적 분화와 세계성』(공저), 『중국통사』(전 4권), 『중국역사박물관』(전 10권), 『중국의 성문화』, 『굴원』, 『채문희』, 『백록원』(전 5권), 『선월』, 『중국인의 꾀주머니』(공역) 등 다수가 있다.

 

차례

 

책머리에

고사성어―문화 콘텐츠의 보고

 

하남성에서 발생한 고사성어

하남성―코끼리가 살았던 곳

 

    은허에서 듣는 망국의 노래                          맥수지가
    은나라의 잔혹한 형벌                                 포락지형
    이 멋진 청동잔에 안 마시고 어쩌랴?            주지육림
    굶어 죽은 충절지사 백이와 숙제                  채미지가
    산을 옮긴 할아버지                                    우공이산
    낙양에 온 못생긴 촌뜨기의 베스트셀러         낙양지가
    낙양―석양이 아름다운 도시
    이 시대에 만나고 싶은 사람                         목인석심
    삼문협에서 사라진 괵나라를 애도하며          순망치한
    함곡관의 닭 울음소리                                  계명구도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     계구우후
    악비는 중국의 민족 영웅인가?                     진충보국
    포청천의 얼굴은 왜 검을까?                        철면무사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지?                             기우

산동성에서 발생했거나 그곳과 관련된 고사성어

산동성―성인의 고향

 

    성인의 고향 곡부와 공자 이야기                   위편삼절
    맹자의 고향을 서성이며                               발묘조장
    멀고도 먼 조식의 무덤 가는 길                      재고팔두
    키 작은 안자와 그의 마부                             득의양양
    맛있는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느니     귤화위지
    맹상군 이야기(1)                                         포의지교
    맹상군 이야기(2)                                         교토삼굴
    중국의 역대 미남자들을 그리며                     문전성시

 

그 밖의 더욱 재미있는 고사성어들

   

    아, 사랑하는 우희여!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사면초가
    중국의 미남 혜강                                         군계일학
    이 목숨 대신 명검을 만들 수 있다면               간장막야
    중국의 역대 동성연애                                   여도지죄
    용 문화의 최고봉                                          화룡점정
    사합원에서 느끼는 우물 안 개구리                 정저지와
    부러운 우정                                                 백아절현

 

麥秀之歌

보리 이삭이 무성함을 노래한다는 뜻으로 고국의 멸망함을 한탄함.

麥 : 보리    맥

秀 : 빼어날 수

之 : 갈        지

歌 : 노래     가

 

보리는 점점 자라 이삭이 패고

곡식들은 기름기가 흐르네.

저 포악한 주왕紂王은

나와 화목하지 못하였다네.

- 《사기 · 송미자세가》에서

 

 

은허박물원 정문

갑골문 발견지

은대 수렵 갑골문

하남성 안양에서 출토된 제사와 수렵에 관한 내용이 담긴 붉은 칠 우골각사로, 은왕 무정 시기에 소견갑골에 기록된 각사다. 골편이 거대하고 완전하며 앞과 뒤 양면에 도합 160여 글자를 새겨 넣었다. "구름이 동쪽에서 오고, 무지개는 북쪽에 있다"는 기록 외에도 은왕이 조직했던 대규모 수렵 활동을 기록하고 있어 은대 사회생활에 관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부호묘 안의 모습

은허박물원 안의 부호 조각상

 

흘러가는 강물은 쉼 없이 흐르건만

그래도 본래의 그 물은 아니어라.

웅덩이에 떠도는 물거품은

부서졌다가 다시 맺어지며

오래도록 머무는 법이 없어라.

이 세상에 사는 사람과 처소도

또한 이와 같을진저.

 

行(ゆ)く川の流れは絶えずして

しかももと(本)の水にあらず.

淀(よど)みに浮ぶうたかた(泡沫)は

かつ消えかつ結びて

久しく止(とゞ)まる事なし.

世の中にある人と住家(すみか)と

また斯かくの如し

- 가모노 조메이의 <방장기方丈記> 첫머리 중에서

 

炮烙之刑

불에 달군 쇠로 단근질하는 형벌로 은(상)나라 주왕紂王 때의 잔인한 사형 방법을 이르는 말.

炮 : 통째로 구을   포

烙 : 지질              락

之 : 갈                 지

      여기서는 '~의'의 뜻임

刑 : 형벌              형

 

▲ 은허박물원의 유리 무덤

▼ 은허박물원의 유리 무덤 속의 인골

비간의 사당

하남성 위휘성衛輝城 북쪽 7.5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비간은 상대 말의 대신으로 주왕의 숙부였는데 강력하게 주왕을 간하다가 주왕에게 심장을 해부당하고 죽었다.

주 문왕이 《주역》을 엮었다는 연역방

중국 최초의 국가 감옥 중 하나. 주 문왕이 이곳에 7년간 감금되어 있을 때 《주역》을 엮었다고 한다. 하남성 탕음 유리성에 있다.

목야전투(상상도)

운뢰문월雲雷紋鉞

상대 후기 병기로 전체 높이는 36.8cm다. 직내直內식으로, 날이 위치한 원援 부분은 사각형이며, 활 모양의 넓은 날이 있는데 양쪽 모서리가 밖으로 퍼져 있다. 손잡이 쪽인 난闌 부분에는 대칭을 이루는 장방형 구멍이 두 개 뚫려 있다. 원 부분의 가장자리에는 운뢰 문양이 두 쌍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이빨 모양의 구멍이 투각되어 있다.

 

酒池肉林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호화롭고 사치스런 주연酒宴을 비유하는 말.

酒 : 술     주

池 : 못     지

肉 : 고기  육

林 : 수풀  림

 

상아에 기를 조각하고 금도금을 한 잔

하남성 안양 은허의 부호묘에서 출토되었다. 전체적으로 아주 세밀하게 도철문을 조각했으며 터키석을 상감했다. 고대 상아 조각의 걸작품이다.

사준豕尊

상준象尊

호남성 예릉에서 출토되었다. 코끼리의 코는 위를 향해 뻗어 있으며, 용 같기도 하고 낙타 같기도 한 형상이다. 굵고 튼튼한 다리와 몸체의 바퀴 무늬는 신비스러움과 힘의 상징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에 남방에서는 이미 야생 코끼리를 부렸다는 기록이 있다.

 

采薇之歌

고사리 캐는 노래라는 뜻으로 절의지사節義之士의 노래를 이르는 말.

采 : 캘          채

薇 : 고사리    미

之 : 갈, ~의   지

歌 : 노래        가

 

송대 이당李唐의 <채미도>

이 그림은 이당이 만년에 그린 불후의 인물화다.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어먹다가 굶어 죽은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두 사람이 앉아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형형한 눈빛과 주위의 소나무가 이들의 강직한 성격을 나타내준다.

 

고비

채미의 미는 고사리인가 고비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채미를 '고사리를 캔다'는 뜻으로 써 왔다. 필자도 본문에서 옛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그대로 고사리로 썼다. 그러나 《시경식물도감》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쓰는 미薇는 고비로 쓰는 것이 맞다. 또한 옥편에도 고비로 나온다. 중국에서 말하는 미는 현재는 들완두라고 하는데 식용을 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고사리는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고사리는 궐蕨로 쓴다.

 

백이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고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 <성주풀이>

 

의자왕과 부여웅의 묘

 

채미정

 

愚公移山

쉬지 않고 꾸준히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한 말.

愚 : 어리석을   우

公 : 공             공

移 : 옮길          이

山 : 산             산

 

마을의 요동들

이런 요동은 주로 가축을 기르거나 곡식을 저장하는 데 쓰인다.

황토고원의 다양한 형태의 요동

 

洛陽紙價

책이 호평을 받아 잘 팔리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洛 : 물 이름   락

陽 : 볕          양

紙 : 종이       지

價 : 값          가

 

초가집 바라보면 그녀가 생각나고

방에 들어서면 그녀와 함께한 날들이 떠오르네.

휘장과 병풍엔 비슷한 모습조차 없으나

그녀가 남긴 글 속엔 그녀의 자취 남아 있어라.

흐르는 향내 아직 마르지 않았고

벽에 걸린 글씨 보면 벽에 기대서 있는 듯

- <도망시悼亡詩>

 

낙양 모란

 

봉선사 노사나불

용문 최대의 불상으로 총 높이는 17.14m. 얼굴 모습이 풍만하고 윤기가 흐르며 엄숙하고 전아하다. 무측천을 모델로 하였다는 설이 있다.

백거이묘

 

중국 제일 고찰 백마사

 

木人石心

나무나 돌처럼 마음이 굳다는 뜻으로 의지가 강하여 세속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木 : 나무      목

人 : 사람      인

石 : 돌         석

心 : 마음      심

 

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뜻.

脣 : 입술      순

亡 : 잃을      망

齒 : 이         치

寒 : 찰         한

 

괵국박물관

 

괵국박물관 벽면 부조

 

발굴된 괵공가의 묘

괵국박물관 소장품

 당 · 장훤長萱 · <괵국부인 유춘도游春圖>

 

鷄鳴狗盜

고상한 학문은 없고 천박한 꾀를 써서 남을 속이는 사람을 이르는 말.

鷄 : 닭         계

鳴 : 울         명

狗 : 개         구

盜 : 훔칠      도

 

함곡관

함곡관 성루

함곡관에 있는 노자 조각상

<노자수경도老子授經圖>

춘추시대의 인물인 노자는 후대 도교 신도들에 의해 신격화되어 교주로 받들어졌으며, 중국의 다원신多元神 계통 안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그림은 노자가 소나무 아래에 있는 평상에서 경經을 강의하는 모습이다. 신선의 풍채와 도사의 풍격을 지닌 노자의 모습에서 '천존天尊'의 기품이 드러난다.

 

鷄口牛後

큰 조직의 말석을 차지하기보다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는 편이 낫다는 뜻.

鷄 : 닭      계

口 : 입      구

牛 : 소      우

後 : 뒤      후

 

곽말약이 쓴 황제릉

신정에 있는 헌원 황제상

신정시에 있는 염황이제상

정주시 황하풍경 지역에 있는 염황이제상

 

盡忠報國

충성을 다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

盡 : 다할    진

忠 : 충성    충

報 : 갚을    보

國 : 나라    국

 

항주 악비 사당 벽에 쓰여있는 진충보국

악비 · 악운 부자의 묘(항주 악비사당에 있다)

악비의 어머니가 악비 등에 '진충보국'이라고 새기는 모습

악비 좌상

좌상 위의 글은 '환아하산'

악비 사당(하남성 주선진)

영원히 무릎 꿇고 있는 진회와 간신들

요우타오油條

중국인들이 아침으로 두유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본래 유작회油炸檜에서 유래하였다. 유작은 '기름에 튀긴다'는 뜻이고, 회檜는 진회를 말한다.

 

鐵面無私

사사로운 정에 구애되지 않고 공정하다는 뜻.

鐵 : 쇠             철

面 : 낯             면

無 : 없을          무

私 : 사사로울   사

 

1056년에 신임 지부인 포증이 개봉부에 부임하였다. 개봉부는 하남성 개봉에 있다.

포공사包公祠

포공은 청빈하고 공정한 관리로 세상에서는 그를 '포청천包靑天'이라고 불렀다.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각지에서는 포공 사당을 건립하였다. 그림은 절강성 소흥에 있는 포공사다.

 

<찰미안>의 한 장면을 묘사한 청대 그림. 뒤에 마한, 포청천, 왕조가 있고, 왼쪽에 진향련과 두 아들이 있다.

<찰미안>의 한 장면

진향련

세 개의 작두

개작두 : 일반 백성을 처단하는 작두. 범작두 : 관리를 처단하는 작두. 용작두 : 왕실 친척을 처단하는 작두.

의식 장면

개봉부 앞에서는 관광객을 위하여 포청천이 재판을 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경극 속의 포공 형상

경극의 각종 얼굴 분장

 

杞憂

쓸데없는 걱정, 안 해도 되는 근심을 이르는 말.

杞 : 기나라 이름    기

憂 : 근심               우

 

이윤

 

韋編三絶

독서에 힘씀을 이르는 말.

韋 : 가죽       위

編 : 엮을       편

三 : 석          삼

絶 : 끊을       절

 

죽간

죽간이 모여 책冊이 되었다.

 

공자의 모습

공자는 앞짱구에 뻐드렁니였다고 한다.

 

은작산 죽간박물관

대량 발굴된 서한시대의 죽간이 전시되어 있다.

 

공묘

 

공묘 대성전

 

공림 표지

 

공림의 대문

 

자공이 시묘를 한 곳

 

拔苗助長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

拔 : 뺄             발

苗 : 싹             묘

助 : 도울          조

長 : 긴             장

 

맹묘 · 맹부 표지

1988년에 국가중점문물로 선정되었다는 표지.

 

아성 패방

마을 입구에 아성이라고 크게 쓰인 패방이 세워져 있다.

 

이문二門의 문관신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이문이 있다. 문 양쪽에 문관의 문신이 붙어 있다.

 

'오경박사', '세습 한림원', '아성부'라고 쓰인 팻말이 공무를 보는 청사 안에 있다.

"정숙! 물렀거라!"라는 뜻의 '숙정', '회피'라고 쓰인 팻말이 청사 안에 있다.

 

才高八斗

재주의 뛰어남이 여덟 말이라는 말로 문인의 재주가 뛰어나다는 뜻.

才 : 재주        재

高 : 높을        고

八 : 여덟        팔

斗 : 말           두

 

조조, 조비, 조식의 조각상

 

煮豆持作羹, 漉菽以為汁(자두지작갱, 록숙이위즙)

萁在釜下然, 豆在釜中泣(기재부하연,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본자동근생, 상전하태급)

 

콩을 삶아 국을 끓이려고

된장을 걸러 국물을 만들었네.

콩대가 솥 밑에서 타니

콩이 솥 안에서 우네.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는데

어찌 이다지 급히 삶아 대는가?

- 조식, <칠보시七步詩>

 

<낙신부도권>

 

<낙신부도권> 일부

 

得意揚揚

뜻한 바를 이루어 우쭐거리며 뽐낸다는 뜻.

得 : 얻을      득

意 : 뜻         의

揚 : 오름      양

揚 : 오름      양

 

치박시에 있는 고차박물관 내의 모습

 

어수용

 

橘化爲枳

남방의 귤나무가 회수 이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 고사.

橘 : 귤             귤

化 : 화할          화

爲 : 될             위

枳 : 탱자          지

 

임치는 제나라의 수도였다.

 

布衣之交

구차하고 보잘것없는 선비였을 때의 사귐, 또는 그렇게 사귄 벗을 이르는 말.

布 : 베         포

衣 : 옷         의

之 : 갈         지

交 : 사귈      교

 

제국역사박물관

 

맹상군 능원

맹상군의 묘

 

맹상군 아버지 전영의 묘

 

狡兎三窟

꾀 많은 토끼가 굴을 세 개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교묘한 지혜로 위기를 피하거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

狡 : 교활할        교

兎 : 토끼           토

三 : 석              삼

窟 : 구멍           굴

 

설국 고성

 

서비홍의 <전횡오백사>

 

서비홍 기념관

서비홍(1895~1953)은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은 유명 화가. 중국 현대미술의 기초를 다졌다. 특히 말 그림이 유명하다.

 

서비홍 탄생 90주년 기념우표

 

門前成市

문 앞에 마치 시장이 선 것 같다는 뜻으로 세력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이 매우 많음을 나타내는 말.

門 : 문           문

前 : 앞           전

成 : 이룰        성

市 : 저자        시

 

난릉왕 가면극

 

난릉왕 조각상

 

중국 최고의 경극 배우 매란방

 

청말 민국초의 4대 미남

왕정위, 주은래, 매란방, 장학량.

 

四面楚歌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

四 : 넉          사

面 : 낯          면

楚 : 초나라    초

歌 : 노래       가

 

경극 <패왕별희>의 한 장면

 

경극 <패왕별희> 속의 우희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지만

時不利兮騶不逝(시불이혜추불서)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누나

騶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리

虞兮憂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희여 우희여 어찌할거나

 

경극에 사용되는 각종 얼굴 문양

 

群鷄一鶴

닭의 무리 속에 끼어 있는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을 이르는 말.

群 : 무리       군

鷄 : 닭           계

一 : 한           일

鶴 : 학           학

 

죽림칠현

 

干將莫耶

중국 춘추시대 간장이 만든 두 자루의 명검.

干 : 방패       간

將 : 장수       장

莫 : 없을       막

耶 : 어조사    야

 

오왕 부차의 창

 

상앙의 극

극은 갈고리 모양의 무기로 창과 흡사한 형태다. 날이 위치한 부분인 원援은 길고 위쪽으로 약간 구부러졌으며 위아래에 날이 있고 가운데 부분이 불룩하게 솟아 있다. 이 극에는 '주 현왕 13년 대량조 상앙이 제조한 극(十三年大良造鞅之造戟)'이란 명문 10자가 새겨져 있다.

 

동검銅劍

 

중국의 10대 명검

 

제1검 헌원하우검軒轅夏禹劍

제2검 담로湛盧

제3검 적소赤霄

제4검 태아泰阿

제5검 칠성용연七星龍渊

제6, 제7검 간장막야干將莫邪

제8검 어장魚腸

제9검 순균純鈞

제10검 승영承影

 

월왕 구천의 검

월나라 왕 구천은 춘추시대의 마지막 패자로 초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초 혜왕惠王의 어머니가 바로 구천의 딸이었기 때문에 구천의 검이 초나라로 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초나라가 위왕威王, 회왕懷王 시기에 월나라를 멸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 검을 전리품으로 함께 매장했을지도 모른다.

 

餘桃之罪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라는 말로 총애를 받던 일이 나중에는 죄의 근원이 된다는 뜻.

餘 : 남을          여

桃 : 복숭아       도

之 : 갈, ~의      지

罪 : 허물          죄

 

애제가 사랑한 동현의 그림이 그려진 꽃병

 

한 애제의 남총 동현

 

畵龍點睛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으로 가장 요긴한 부분을 마치어 일을 끝냄을 이르는 말.

畵 : 그림           화

龍 : 용              용

點 : 점찍을        점

睛 : 눈동자        정

 

용 모양 옥패

 

흥산문화 · 벽옥룡

 

용봉 문양 옥패

 

井底之蛙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넓지 못한 것을 비유.

井 : 우물        정

底 : 낮을        저

之 : 갈, ~의    지

蛙 : 개구리     와

 

산서성의 사합원

영화 <홍등>의 배경이 된 곳.

 

伯牙絶絃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말.

伯 : 맏            백

牙 : 어금니      아

絶 : 끊을         절

絃 : 악기줄      현

 

고금대

고금대古琴台는 또 백아대라고도 한다. 호북성의 무한시 한양현 귀산龜山에 있다.

 

고금대 안에 있는 백아가 거문고를 타는 조각품

(금금을 거문고라고 번역은 하였지만 금과 거문고가 반드시 같은 악기는 아니다)

 

 

 

 

 

 

 

posted by 황영찬
2017. 10. 7. 13:11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4 할망 하르방이 들려주는 제주음식이야기

 

 

 

허남춘 · 허영선 · 강수경

2015, 이야기섬

 

대야도서관

SB117957

 

381.75

제76ㅈ

 

제주대학교 박물관 문화총서 ● 2

 

베지근한 구슬로 풀어내는

제주전통음식 20

 

2015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역문화콘텐츠 선정작

 


자연이 살아 있는 제주 밥상


 

사람살리는 음식천지 제주의

할망 하르방이 들려주는

건강하고 질박한 음식 이야기!

 

"전복도 암놈, 수놈이 있어. 남자들은 암놈을 먹고, 여자들은 수놈을 먹어. 수놈이 딱딱하긴 해도 죽 만들 때는 수놈이 좋아. 바닥이 검은 것은 수놈, 노란 것은 암놈이야. 그런데 노란 것 중에서도 특별히 노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진짜 약 전복이야. 그리고 그것은 가파도에서 많이 나. 여기도 성산과 우도 사이에서 많이 났었는데 이제는 없어."

 

콩국은 저으면 절대 안 되고, 콩죽은 잘 저어야 해. 옛날엔 콩국 끓이면서 배추놨는데, 지금은 뱇ㅂ터 먼저 놓고 끓어가면 챗하고 간장을 놓지. 그러니까 절대 넘겨선 먹어볼 거 없어. 곁에 지켜서야 해. 콩국은 무큰(푹) 익어야 맛있다고 하주. 옛날엔 멸치다시를 안 했어. 옛날엔 멸치다시가 어디 있어?"

 

"한 부락에 도감이라는 사람이 있어. 도감은 막 옛날, 아무나 막 두텁게 툭툭 썰어도 안 되고 몽탕몽탕 썰어도 안 딕 얄풋하게 낭썹(나뭇잎) 모양으로 잘 써는 사람이 있어. 좀 와서 해달라고 하면, 그때는 돈으로 주는 거면 돈 봐서 갈 수도 있지만 돈도 안 받았어. 하루 종일 가서 앉아서 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 그러니까 서로 인정간에 해주는 거야."

 

메밀 / 콩 / 조 / 보리 / 돼지 / 말 / 닭 / 미역 / 톳 / 몸(모자반)

전복 / 성게 / 보말 / 문어 / 게 / 자리 / 멜(멸치) / 고사리 / 노루 / 꿩

 

저자---

 

허남춘

●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제주대학교 박물관장

● 저서 : 『제주의 음식문화』(공저), 『제주도 본풀이와 주변 신화』 이 다수

 

허영선

● 시인, 제주대학교 강사

● 저서 : 『제주 4 · 3을 묻는 너에게』, 『탐라에 매혹된 세계인의 제주 오디세이』 외 다수

 

강수

● 제주대학교 대학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수료

● 논저 : 「제주지역 돼지고기 음식문화의 전통과 변화」, 『서순실 심방 본풀이』(공편) 이 다수

 

할망 하르방의 음식 이야기에서

미래를 찾다!

 

2만 불 소득이 넘자 TV에는 온통 음식 프로그램 일색이다.

현대인은 먹는 것으로 문명의 허기를 달래고 있다.

이 부풀려진 욕망은 지구를 모두 뜯어 먹고 사막화시킨다.

종말이 눈앞에 있는데 그칠 줄 모른다.

이제 소박하게 먹고 굶는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 지구를 파탄에서 구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의 행복한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

여기 할망하르방 밥상 이야기에는 소박한 식단이 있다.

장수의 섬 제주, 거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먹는 문화가 있다.

우리가 가야 할 미래가 거기 있다.

 

제주대학교 박물관

역사에는 생활의 역사와 생존의 역사가 있다. 생활이 역사에는 유희와 화려한 기교가 동반된다. 생존의 역사에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땀과 눈물이 밴 건강한 삶이 담긴다.

제주대학교 박물관은 주로 생존의 역사를 담아내고 잇다. 그래서 화사한 도자기는 없지만 투박한 질그릇은 넘쳐난다. 미래는 과거에 있다.

제주대학교 박물관은 숱한 고난을 이겨온 할망 하르방의 역사를 전시하면서 강인한 투지로 미래를 개척하길 기대하고 있다.

 

차례-----------------------------------------------------

 

프롤로그

1부

화산섬 뜬땅,

농사와 음식 이야기



1장 -- 씨멩텡이 한번 보카마씀!

1절 | 여신이 가져다준 효자 곡물, 메밀
2절 | 일상의 보양식, 콩
3절 | 술과 떡과 엿의 전생, 조
4절 | 바람이 빚어낸 양식, 보리

2장 -- 농사는 인력만으로 안 되어마씀!

5절 | 신화의 조연이자 잔치의 주역, 돼지
6절 | 제주 목축의 상징, 말 그리고 테우리
7절 | 제주의 유월 스무 날엔 닭

2부

지픈 바당 야픈 바당,

바다 농사와 음식 이야기


1장 -- 바당풀도 케멍 살앗수다!

8절 | 달빛 아래 추억, 미역
9절 | 바다밭의 선물, 톳
10절 | 돼지고기와의 환상적인 조화, 몸

2장 -- 헛물에도 들엇수다!

11절 | 해녀의 기쁨, 전복
12절 | 향긋하고 쌉싸름한 별미, 성게

3장 -- 바릇잡이도 허엿수다!

13절 | 아기자기한 작은 고둥, 보말
14절 | 놀잇감에서 보양식으로, 게와 문어

4장 -- 궤기도 잡앗수다!

15절 | 작아도 돔, 자리
16절 | 원담 속의 은빛 풍경, 멜
17절 | 한 점 먹고 또 먹고, 제주 갈치
18절 | 생선 중의 생선, 옥돔



3부

백록이 놀던 한라산,

하늘이 내린 음식 이야기



1장 -- 한라산엔 고사리 천지우다!

19절 | 제사의 시작, 고사리


2장 -- 진진헌 겨울, 재미삼아 사냥헷수다!

20절 | 겨울 한라산의 선물, 노루와 꿩



에필로그

 

 

하늘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 데 의지하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느니라.

- 해월거사

 

 

콩죽을 끓이며

허영선

 

동지즈음 찬바람 휭휭 몰아칠 때는 떠오른다

만월같은 눈동자 꽃누님 휘휘 젓던 콘죽 파도

차가운 생 하나가 바다로 간 이른 저녁

함께 쪼그려 앉은

누님의 보라낭불 죽솥단지는 고요로 시작하였다

강약 조절 보리낭불 한눈 팔새 없었다

서서히 달아오른 콩죽은 부글락부글락 끓기 시작하였다

 

절대 일어서지마라

일어서면 맞는다

콩가루에 흐린 조는 푸닥푸닥

화르륵 넘치면 아무 것도 없지

여린 손이 죽의 포물선을 살살 휘저어 가자

파짝 튀던 파도는 차츰 가라앉았다

누님은 근질근질하는 내 엉덩이를 눌렀지만

저 고소한 것이 무슨 파도같은 비수를 품고 있을라고

일어서는 순간 콩죽은

온 몸에 폭죽처럼 날아들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생에도 조심히 건너야 할 고랑이 있다는 걸

누구나 한바탕 몸부림치는 순간이 있다는 걸

누님은 뭉근 불의 강약을 조절하였다

그렇게 고요히 달래다보면

어느새 그 파도 콩죽의 뜨거움은 진정 되어서

몽실몽실 구름처럼 피어올라서

한 겨울 내 배설엔 기름이 도랑도랑

차가운 생을 데워주었다

 

| 메밀 |

 

제주의 어머니들은 그들의 기억을 더듬어 딸에게

그리고 며느리에게 메밀 음식을 먹이려 한다.

모든 게 달라진 지금도 산모와 아이를 위한 어머니들의 마음이

거기에 고이 담겨 풍속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메밀 농사 지면 동네 마당에서 도리깨질 잘하는 몇 사람이 서로 수눌면서 두드리고 털어냈어. 그거 두드릴 때 아주 재미있어. 모멀(메밀)을 비어놨다가 그것이 바싹 마르면 그냥 드르(들, 野)에서 멍석 깔고 마당 한편이 너다섯 사람 정도 잡아서 도리깨로 두드리는데 막 재미있어.

사공이라고 해서 소미가 있는데 사공은 아주 빠른 사람, 잘하는 사람이야. 이 도리깨를 들른 사이에 확하게 나무를 걸러내고 메밀을 그쪽으로 갖다놓고 하는 사람이 사공이었어. 마당질하는 걸 재미있게, 소리치며 그렇게 했지."

- 김례

 

"모멀은 붓기를 빼어. 애기 난 때에 우리 큰아들 3월에 낳는데 그때는 우리 친척들이 모멀쌀을 가져와. 약 해오는 대신에. 그래서 서 말 먹었어. 서 말.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그 가루 카먹을(타서 먹을) 시간 되면 일어나. 그걸 먹으면 그렇게 모유가 많이 나와. 우리 아이들이 이만씩 신체가 다 건강해."

- 김례

 

"덕천, 송당리, 거기는 토지가 넓고, 김녕이 토지가 없는 곳이야. 화산지대라서 굴만 많고 비가 오면 다 씻겨 내려가버려. 전부가 다 암석 천지야. 저 새별오름 우리가 거기 들불축제 가봤어. 그 지대 가보면 참 부러워. 거긴 돌 하나 없는 전부 흙인데 여긴 전부 돌밭이야. 다 물로 빠져 버려.

(메밀은) 거기서(송당에서) 팔러 내려와. 거기서는 조, 보리 농사가 잘 안 되니까 그것을 가져와서 바꿔 먹지. 물물교환."

 

"여름에 가물 때는 중산간 부락이 풍년이 들고, 또 장마가 계속될 때는 중산간 부락이 아무것도 먹을 게 없어. 그래서 굶주리니까 해변에 와서 쌀 바꿔가죠. 장리 먹는다고 해. 그걸 먹어서 보답할 때는 메밀쌀 져와서 보답해."

- 안이길

 

"빙떡은 느넨 묵도 안쒀보니까 모르지. 풀풀하게 물에 타서 기름 조금, 소금 조금 놓고 판에 싹 널르게 해서 너무 크게도 말고 너무 작게도 말고 무수 삶아놨다가 그거 거려놓고 뱅뱅 말아."

 

"파 놓고 기름 놓으면 더 고소하고, 그렇게 해서 양 끝을 딱 눌러. 그러면 따뜻할 때는 그렇게 맛 좋아. 빙빙 마니까 빙떡이었주."

 

"빙빙 말아서 어디 대소사집에도 제물해서 가져가고 집에 제사할 때도 해 먹었어. 그러니까 메밀 갖고도 여러 가지 해."

- 허을봉

 

"솥뚜껑에다가…… 돼지 기름 칠하고, 더 맛있죠. 구수하고."

- 안이길

 

"(빙떡을 만들 때) 그때는 팥도 삶아서 넣고, 무도 넣었어. 팥은 삶아서 살짝 빻고 체로 쳐서 그 가루를 넣었지. 그것을 먹을 때는 끄댕이를 꺾어서 먹어야지, 안 그러면 팥을 다 흘리게 돼. 지질 때는 후라이팬이 없으니까 약간 베짝한(표면이 비교적 평평한 모양) 솥뚜껑으로 했어. 예전에는 시발세라는 것이 있어. 세 발이 이렇게 돋은 것에 대썹(댓-잎, 竹葉)이나 참나무가지를 했다가 그걸로 불을 때면서 빙을 지졌어. 또 빙은 돗지름으로 해야 해.

(빙떡을 부조로 가져갈 때) 예전에는 상이 나면 3년을 하니까 소상이나 대상 때 빙을 지져서 동이에 조근조근 놔서 가져가났어. 우리는 그런 부조를 안 했는데 우리 어머니네는 빙떡으로 부조를 했어."

- 송옥수

 

"나도 (시집)와서 옛날엔 빙(떡) 지져서 제물 했어. 그러니까 시아주버님 돌아가신 때 제물 고량(고령, 대오리나 차풀의 줄기로 엮어서 채롱보다 통이 아주 얕고 작게 만든 그릇)으로 세 개 해서 갔어."

- 김술득

 

"모멀을 맷돌에서 갈면 처음엔 쌀에서 가루가 나오는데, 그것보고 느쟁이라고 해. 그것에 감저(甘藷, 고구마) 해다가 삶아서 그 느쟁이 놓고 범벅한 것도 맛좋아났어. 그 고운 가루는 뺏다가 빙떡도 지지고, 묵도 만들고 했지."

- 김례

 

| 메밀 음식의 천국, 제주 |

 

사람들이 만드는 풍경 중 제일 화려한 게 잔치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가 가깝고, 없이 살던 시절에 또 그만큼 먹을거리가

넘쳐 나던 장소도 없을 터다. 그런 제사, 명절이나 혼 · 상례와 같이 집안과 동네에

큰일을 치를 때 하던 대표적인 메밀 음식으로 빙떡이 있다.

 

"메밀밥은 메밀 섞어서 헙디다. 모멀(메밀)을 좁쌀 놓듯이 잡곡에 놔. 옛날은 보리쌀 많이 먹었지. 모멀쌀은 작박(솥의 물을 퍼내는 바가지)으로 떠다가 씻지도 안 해. 위에 싹 뿌려. 뚜껑 덮어서 밥 보골보골 해갈 때, 보리쌀 거의 다 익어갈 때, 그 모멀쌀을 그때 위에 놓는 거라. 뜸 들여서 먹으면 잘도 맛있어. 모멀쌀을 주걱으로 삭삭삭 섞어서 거리면 그게 민질민질(매끈매끈)했지.

보기엔 코실코실한데 입에 놓으면 멘질멘질해.나 어릴 때 먹어났어. 우리 외할머니 집에 가면 항아리도 나 이 몸뚱아리 몇 개 들어갈 만큼 있어. 항아리 속에 젓갈이나 뭐나 많이 담았거든. 쌀 거리는 항아리에 사다리 타서 들어가. 항아리가 어마어마하게 커. 우리 어머니도 그 속에 몇 번 들어갔지. 할머니가 '너 거기 들어가서 긁어내라' 하면 들어갔어. 마지막 긁어낼 땐 사람이 들어가야 헤."

- 김자량

 

"또 영장(영장, 장사장사)나면 옛날에는 나무로 해서 국수 빼는 걸 만들어났어. 그것보고 면 뺀다고 해. 모멀가루 해서 반죽하고 그 나무 기계에 해. 거기서 메밀 빼는 기계 틀 만들고, 반죽해서 거기 담아놓고 꽉 누르면 면이 쫙 빠져. 그러면 그거 삶아서 큰일 때에 그것도 주면 잘했다고 했지. 양념이라고 한 건 별거 없어. 간장 놓고 깻가루나 조금 놓으면 그게 그자 국수 다시고 그렇게 해서 먹었지."

- 김례

 

"모멀 요리는 모멀국수, 모멀 돌레떡도 이만큼, 떠오르는 달만큼 만들어. 어디 장사나 나면 '피력'이라고 해서 돌레떡 두 개 딱 붙여서 줬어. 수산에서 시아버지가 돌아가니까 친정에서 다 모멀을 부주로 해 왔어. 모멀쌀 스무 말. 그 모멀쌀을 갈아서 돌레떡을 만들었거든. 산에 가져가니까 제주시 친족들이 다 왔어. 다른 건 말고 그 달떡 하나만 더 주라고. 스무 말 떡을 만들어서 하루에 다 소비시켰어. 장밭에 가서."

 

"만두도 물만디라고, 얇게 반죽해서 밀어놓고 사발로 본을 떠내서 무수채를 넣거나 팥고물을 넣고 요렇게 덮으면 반달이 되어. 바우만 조금씩 쪽쪽쪽 접어가면 반달되어. 반달 떠오를 때처럼. 그거 먹이는 사람도 있고, 돌레떡 해서 먹이는 사람도 있어. 그땐 설기떡이라고 해서 시루떡해서 먹이는 사람도 있고. 지금도 수산 그 풍습을 친정에 가보면 지금도 해."

 

"또 떡을 만드는데 새미떡처럼, 메밀쌀 해서 밀어서 콩을 넣는데 콩을 삶아서 통째로 넣어서 콕콕 좁아서 무적떡이라고 해서 영장난 데 부조로 했어."

- 송옥수

 

| 제주의 삶, 메밀 |

 

제주의 전통 음식에 대한 어르신들의

기억에서 메밀 음식은 빠질 수 없을 듯하다.

 

"모멀묵도 수산은 가루 갈아서 가루묵을 만들었어. 나비적도 있고 그걸 숯불에 쇠를 놓고 적꼬쟁이를 걸쳐서 간장에 참기름 놓고 꿩 날개로 하면 솔 닮아. 그것을 묵에 발라, 바르면서 구우면 고소하니 그렇게 맛이 좋아. 지금도 그렇게 구워."

 

"모멀쌀로 죽을 많이 했어. 그땐 배가 아프면, 요즘 같으면 식탈이라고 할 수 있지. 모멀쌀에 파 있지. 쪽파 썰어 놔서 죽을 쒀서 그거 한 그릇을 먹으면 그것이 다 좋아. 감기에도 좋고. 감기가 걸려도 그런 걸로만 약 대용하지. 어디 가서 약 사올 데가 없어."

- 오옥주

 

"메밀 조배기는 메밀가루 많이 들어. 아기 낳은 어멍이나 해서 먹지. 막 생각해서 특별한 날이나 먹지, 함부로 먹지 못해. 무나 미역을 놔서 먹기도 했어.

보리쌀이나 밀가루를 할 때는 세게 반죽을 해서 뜯어 넣지만 메밀조배기는 물을 따뜻하게 해서 가루를 타서 흘탁하게(묽게) 저어서 숟가락으로 떠 넣어야지, 세게 반죽하면 세어서 먹지 못해."

 

"큰일집이 고사리국 끓일 때는 메밀가루 약간 타서 썼어."

 

"메밀 잘 갈았었지. 그런데 삼양은 잘 안 갈고 목장(회천) 쪽에는 잘 갈았어. 갈음팍 같은 곳에 농사가 잘 되는 곳은 말고, 난지경에 조금 궂인 데는 메밀을 갈아. 늦어서 갈아도 메밀은 되어. 조 갈다가 벗어분 디도 메밀은 갈 수 있어. 애기도 낳을 때 안 낳ㄱ 늦어서 낳으면 '메밀 농사로 늦어서 낳았다'고 말했어. 메밀은 뜬땅(차지거나 끈끈한 기가 조금도 없는 부슬부슬한 흙이 깔려 있는 땅)에도 잘 되어."

- 송옥수

 

| 깔깔한 콩잎쌈의 기억 |

 

콩은 처음 자랄 때부터 제주 사람들의 먹거리로 함께한다.

여름에 콩잎은 배고픈 이들을 잠시 달래주는 음식이자

그 야들하고 깔깔한 느낌은 식욕과 지친 삶의 의욕까지 되살려주었다고 한다.

 

"우리 앞밭에 콩을 갈아. 콩을 갈면 요만한 바구니에 야! 도시꼬야 도시꼬야, 나 딸아 가서 콩잎 따서 오라 해. 콩잎 못 따게 했어. 그러니까 난 콩잎 속에 들어가면 안 보여. 콩잎 나무가 이만하면 난 키 작아서 오물락하게 들어가버리면 잘 몰랐어. 자꾸 콩잎만 따러 가니까 어린 때 친구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서 '콩잎 잘 먹는 도리모 도시꼬야' 하면서 나를 약 올려.

그렇게 하면 할망들은 '아고, 나 딸아, 도시꼬야, 콩잎 따와서 맛 좋아, 맛 좋아' 하면 또 콩잎 따러 가고 했어. 그땐 콩잎에 집에서 담은 된장 찍어 먹으면 왜 그렇게 맛 좋은지. 아무 양념도 안 해도. 고추 하나 놓고 할망들 콩잎 하나 먹고, 할망들 먹는 거 왜 그렇게 맛 좋은지."

- 김이자

 

"여름 되면 콩잎 너무 어린 것은 따오지 말라고 했어. 그땐 채소가 없을 때거든. 콩을 먹으면 섬유질이 보충될 거 아니. 보리밥이 되어가면 콩잎 위에 놓아서 톡톡 콩잎을 무지러서 놓아. 그러면 국도 해 먹고, 검질(김0 메러 가면 아버지가 국 없인 못 먹는다고 하면서 된장 풀어놓고 거기에 콩잎을 손으로 톡톡 무지러 놓아. 그러면 그걸 국으로 해서 먹거든. 반찬이 얼마나 없어야 그걸 국으로 해서 먹었겠어. 밭에 가면 생 콩잎으로 국 해서 먹었어."

- 현용준

 

"콩은 꺾는다고 해. 콩은 벤다고 안 하지. 콩은 꺾는다고 하고 팥은 둥그린다고 해. 녹두도 팥도 뿌리 쪽은 끊으면서 둥그리거든, 두드릴 때는 한 덩어리째 놔서 도리깨로 두드려. 팥은 가는 대로, 우리 동네 팥은 둥그릴만큼 길게 벋어.

그런데 웃뜨르에는 가서 보면 팥이 꼬질꼬질하게 났어. 그걸 뿌리 채 뽑아서 새를 베서 깔고 이삭 쪽이 가운데로 가게 해서 양쪽으로 묶으거든. 그렇게 해서 싣고 와. 토질이라고 한 게 상당히 중요해.

그러니까 중산간 마을에 사람 살아난 다는 곡식이 될 수 있는 토질이고, 웃뜨르 안덕면 광평 그쪽에 가면 농사가 안 돼. 농사가 안 되니까 해변 사람들 소 봐줘 가지고 보리쌀 두 말인가 세 말인가 받아서 그걸로 해서 살았어."

- 현용준

 

"맨 처음 우영팟(텃밭)에 가서 배추를 해와서 손으로 끊으면서 바작바작 괴는 부분에 놓거든. 우린 남죽이라고 해. 남군 쪽에는 배수기이라고 하고, 죽 쑬 때 남죽으로 저어. 죽은 넘어버리면 먹어볼 거 없다고 해. 조금씩 끓어 넘치는 쪽으로만 손으로 놓으면서 해."

 

"콩국 끓일 때는 저어도 안 되고, 덮어도 안 돼. 끌허가면 간장 조금씩 놔. 소금도 놔도 되고, 아니 소금 놓으면 맛이 없어. 간장은 막 끓여서 넘치려고 할 때 조금씩 조금씩 놓아가는 거여. 국자로 조금씩 놓으면 가라앉주게. 채소부터 놔도 되고, 끓으는 걸 잘 보면서 하면 돼.

콩국은 저으면 절대 안 되고, 콩죽은 잘 저어야 해. 옛날엔 콩국 끓이면서 배추놨는데, 지금은 배추부터 먼저 놓고 끓여가면 채소하고 간장을 놓지. 그러니까 절대 넘겨선 먹어볼 거 없어. 곁에 지켜서야 해. 콩국은 무큰(푹) 익어야 맛있다고 하주. 옛날엔 멸치다시를 안 했어. 옛날에 멸치다시가 어디 있어?"

 

"콩국 끓일 때는 이것이 넘어나는 데만 배추 톡톡톡톡 넣으면 부글락 넘쳐. 그러면 쑥 가라앉곡 가라앉곡 하주만. 그런데 이 콩죽은 튄다 말이어. 파삭파삭 뛰거든. 그러니까 누님하고 콩죽할 때, 같이 불 땐 때가 있거든. 누님이 일어서지 말라, 일어서지 말라. 일어서면 튄다고. 얼굴이랑 여기저기 막 맞아."

- 현용준

 

| 콩국과 콩죽 |

 

콩국 끓일 때는 이것이 넘어나는 데만 배추 톡톡톡톡 넣으면 부글락 넘쳐.

그러면 쑥 가라앉곡 가라앉곡 하주만. 그런데 이 콩죽은 튄다 말이어.

파삭파삭 뛰거든. 그러니까 누님이 일어서지 말라,

일어서지 말라. 일어서면 튄다고. 얼굴이랑 여기저기 막 맞아

 

"겨울에 콩죽을 먹는 게 단백질 흡수로는 최고거든. 우리 동네 그 어른이 내가 어릴 때 들어본 바로는 콩국 뜨뜻하게 해서 한두 달 겨울에 먹어가면 배설에 기름이 도랑도랑 도랑도랑 한다고 해."

- 현용준

 

"달래나 냉이는 콩죽에 놓으면 맛 좋아. 쑥하고 달래하고 같이 논 것도 맛이 좋아. 요새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달래가 많이 나오는데 그건 맛이 없어. 야산에서 캐어온 거, 그런 거 놔야 고소해. 이 집에 들어오면 저기서부터 먹고 싶어 했어. 콩죽할 땐 그걸 놓는게 최고. 너무 쇠면 쑥도 맛없어. 연한 거 그 정도로 놓아야 맛이 있어."

- 김자량

 

"콩국은 끓일 때 처음 배추 놔서 막 끓여난 다음에 그 우이로 콩가루를 물에 탔다가 한번 놔서 젓고 한번 넣고 또 넣고 해야 토락토락해서 맛 좋아. 불 베롱하게 해야 돼. 뚜껑도 좀 열어야 하고. 콩국 끓이는 게 힘들어라.

콩죽 쑬 때는 놈삐(무) 썰어 놓고, 어떤 데는 배추 썰어 놓고 해도 맛 좋아. 그때야 드릇 마농(꿩마농) 캐어다가 놔서 먹었어. 이제야 드릇 나물 캐다가 삶아서 된장에 찍어 먹지. 이젠 그것들 안 먹지. 옛날엔 왜 그렇게 멍텅허게 살아신고이."

- 김이자

 

"아무 때나 못 먹었어. 명절 때 되면 콩을 물에 담갔다가 가레에서 갈아서 두부햇어. 몇몇 동네 사람들이 콩을 조금씩 갖고 와서 한 집에서 모여 큰 솥에서 끓이면 이제 두부 짜듯이 베보자기로 잘 짜서 물 잘 개어놓고 가렛착(맷돌짝)에 올려놔두면 물이 착 빠져."

- 양오순

 

"옛날엔 우리 할머니네는 두부도, 콩 물에 담갔다가 갈아서 집에서 했어. 정가래에 갈아서 잔치가 되나 제사가 되나, 옛말에 '큰메누리허민 에고 두붓물에 손 덴 메느리라'는 말이 있어. 그 며느리 들어올 때 두부를 만들다가 시어머니가 그 물에 손을 데었거든. 그래서 그런 말이 있어. 그렇게 하면서 마른두부 했지."

- 오옥주

 

| 두부 그리고 된장 |

 

마른두부는 보통 두부보다 수분이 적어 단단하며 고소하다.

제주에서는 된장을 빼고는 음식 이야기를 아예 할 수가 없다.

 

마른두부(둠비)

 

마른두부는 '둠비'라 부르는데, 지금도 제주의 상갓집이나 잔칫집에 가면 으레 나오는 생두부 절편이다.

 

식재료

콩 6kg, 바닷물 16L, 물 40L

 

조리방법

1. 콩에 물을 부어 충분히 불린다(겨울에는 15시간 이상, 여름에는 8시간 정도)

2. 불린 콩에 2~3배의 물을 나누어 넣으면서 맷돌이나 분쇄기에 곱게 갈아둔다.

3. 삼베주머니에 2를 넣고 끓는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즙을 짜낸다.

4. 3의 즙을 솥에 붓고 계속 나무주걱으로 저어주면서 끓인다.

5. 끓어 넘치기 전에 바닷물을 넣어 엉킨 것이 풀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잘 젓는다. 이것이 순두부다.

6. 맑은 물이 떠오르고 두부가 엉키면 다른 큰 그릇에 면포를 깔고 두부 엉킨 것을 쏟아 넣은 뒤 꼭 짜서 무거운 것으로 눌러 잘 굳히고 적당한 크기로 썬다.

 

 

| 고소리술 |

 

고소리술이란 명칭은 증류기인

고소리(또는 소줏고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소리술은 고소리에서 땀처럼 내린다 하여 '한주(汗酒)'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친정 아버님이 조가 노릿노릿 익어가면 먹는다고 해. 오메기하고 누룩해서 술을 담그는 거라. 술 담그면 술이 처음엔 시큼하질 않고 보글보글 괴어야 맛이 나. 오래되면 청주이고 해서 그걸 제사상에도 올렸어. 밑에는 탁배기, 위에 건 청주지.

우리 할아버님 제사 때 고모님들이 제사 보러 올 때면 제물이라고 해서 차롱 요만이 헌 것에 제주를 두 병을 가져오는데 제주로 하나, 아버님 몫 하나 해서 먹었어."

- 김례

 

"술은 흐린조해서 쌀 물에 담갔다가 방애에 갈아서 그걸로 오메기 만들주. 솥에 놔서 댓잎 해다 놓고 댓잎 안 놓으면 눌러붙어서 안 돼. 그거 한 줌해서 묶고 솥 바닥에 탁 잎을 풀어놔. 삶아서 익었는지 설었는지 해서 위에 붙으면 안 익은 거고, 위에 붙지 않으면 익은 거야. 그게 다 삶아지면 국물하고 오메기하고 큰 도구리(넓고 낮은 원형의 나무 그릇)에 퍼놓지. 완전히 식지 않고 손을 넣으면 맨도롱할 정도로. 그러면 보리누룩 빻아서 섞어놨다가 이젠 청주라고 노랑한 지름이 둔닥하게 위로 떠. 뜨면 그걸 전부 따라 먹어. 밑에 탁배기는 다 짜서 먹다가 국물 찌꺼기는 다시 해놔. 누룩해서 또 해놨다가 그걸 고소리에 앉혀서 닦으지. 처음은 쭈루루루루루 하게 나오다가 막 끝날 때 되면 뚝뚝뚝하게 흘러. 그러면 술 싱겁다고 하면서 끝내지."

- 한신화

 

"좁쌀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그것에 물을 놔서 떡으로 만드는데 가운데 구멍이 있게 만들어. 그리고물에 넣어서 삶은 후에 식으면 누룩에 같이 버무려. 보리쌀 거피어서(정미소가 있기 전에 재래식으로 껍질을 벗기던 과정을 말함) 차롱에 담아서 뜨뜻한 곳에 놔두면 그것이 터. 그것을 부셔서 오메기쌀에 같이 치대겨서 항아리에 담아둬. 거기에 달걀을 까 넣을 때도 있고, 청도 넣고…… 요즘처럼 보약이 없을 때니까 보약이 되라고 그런 것들을 넣는 것이라. 바당에 나갈 때 그거 한 사발 먹고 가면 춥지도 않고 몸이 후끈후끈 허여."

- 이복련

 

"주로 술 없을 땐 감주를 잘 먹었지. 좁쌀로 밥해서 식히고 골하고 섞어서 물에 담가두면 보글보글 괴면 삶아. 삶아서 찌꺼기를 막 짜두고 물만 해서 달이면 거품 일면서 감주가 되지. 졸여지면 감주가 돼. 제삿날 저녁이나 명절 아침에 감주 해서 올렸어."

- 양오순

 

| 술 |

 

다만 술을 빚는 과정이 단순하지도 않고, 잡곡도 귀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살림이 넉넉해야 술도 빚으면서 별미로 맛볼 수 있었다.

 

옛날 사또가 한 마을을 지나다가 친구 집에 들렀다. 그 부인은 점심상에 차릴 쌀이 없어 걱정이었다. 여자의 몸으로 이웃집에 가서 쌀을 빌려올 수도 없으니 참으로 딱한 처지였다. 마침 음력 4월이 되기 전이라 석보리를 급히 만들기에도 이른 때였다. 보리가 알을 맺으려고 겨우 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이놈을 베어야겠다'고 마음먹고 한 묶음의 보리를 베어내 절구통에 넣어 가시랭이가 달린 채 찧었다. 찧어놓은 것을 깨끗한 보자기에 싸서 물을 짜내자 파란 기운이 감돌았다. 솥뚜껑에 기름을 두르고 볶아 남편 친구인 사또에게 대접했다. 사또는 맛있게 먹고 나서 이런 음식은 난생처음 먹어봤다고 기뻐하며 돌아갔다.

- 고광민,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

 

"보린 석 달 열흘 해도 잘 안 되어. 여긴 뜬땅 박허여. 우리 집은 궂은 밭만 잇어. 보리, 조, 산듸(밭벼) 해서 1년을 사는데, 양식이 넉넉하지 않았어. 옛날에는 찬이라는 건 없어. 보리는 옛날에 '말가레'라고 해서 말로 메서 하는데, 우리 집은 말로도 안 해서 식구들이 모다 들어서 했어. 난 일고여덟 살 되니까 애기 보면서 그렇게 햇어."

- 김례

 

"제일 바쁠 때가 보리하고 삼거릴 때주. 장마 오지, 보리도 비어야지. 삼도 해야지. 온 식구가 놀 새가 없어. 또 우리 친정에는 9남매인데 나 밑으로 동생 세 명은 우리 아버님이 학굘 안 보냈어. 한문 서당이라고 해서 몇 군데 잇었는데 한문 글방이 글이지 그 꼬부랑글도 글이냐고 우리 오라버니들은 한문 글만 배웠어.

여름 나야 보리쌀은 하니까, 가을에 걸로 봄까진 먹어야지. 이제 가을 걸로 보리 날 때까지가 제일 어려운 시기지. 쌀은 다 먹어가지, 새 건 채 안 나지 하면 이제 닭 굶는 삼사월이라고 닭이 굶는다고 했어. 칠팔월도 닭 굶는 칠팔월이라고 했지. 보리도 채 안 나고 가을도 안 되었으니까 닭 굶는 칠팔월, 칠월 팔월이 먹을 게 없어.

여름은 나면 보리밥, 가을부터는 조밥. 좁쌀에, 산듸하고 모멀쌀도 좀 섞으면 그건 정말 맛 좋아. 흐린좁쌀에. 우리 집은 열여섯 식구가 한 솥에 밥해 먹으면서 살았어. 옛날에는 왜솥이라고 까만솥이 있는데, 요즘 쌀을 큰 되로 두 되 놓으면 한 솥 되어. 솥으로 보리밥 하나 하고, 촐구덕이라고 한 거 있어. 거기에 콩잎 한 구덕 뜯어다 놔. 또 요만한 사기 독사발이라고 한 거 있어. 그것에 된장 한 사발 양념은 뭐 마늘이나 좀 뜯어 놓고 깨나 뿌리면 그게 양념한 거지. 콩잎 한 번 먹고 그 밥 한 솥한 거 먹으려고 하면 하루 세 솥 해야 먹었어. 열여섯 식구니까."

- 김례

 

"된장에 그냥 나물도 없어서 된장에 보리밥만 해서 먹었어. 일제시댄 일본놈들 공출하라고 해서 우리가 먹을 수가 잇었나. 어느 만이 바치라고 그거 못 바치면 가라 오라 했지. 부인회장 하면서 스물세넷에 아이고 집집마다 가서 바치라고 하면 내놓았어. 어느 만큼 기준이 없어. 내노라고 하면 내놓지. 놋사발, 놋양푼이 같은 거. 면사무소에서 그냥 법에서 이장 집더레 통화하면 이장한테 오면 이장은 부인회장한테 얼마만큼 받아오라고 했지.

시국이 그러니까 뭐라고 해. 시국이 그러니까 하라고 하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작게 받으면 또 받아 오라고 하고, 나중엔 해방되어서 또 4 · 3사건 터지고 우린 막 고생으로 먹는 거고 입는 거고 힘들었지."

- 이인춘

 

"옛날 우리 어릴 때 강정 살 때는 이제도 입매가 짧지만 우리 어머니가 통보리쌀 부글부글 삶아서 곤쌀 조금 놓고 항상 밥을 먹었어. 어머니도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다 먹엿어. 동녕바치도 우리 집에 와서 먹었어.

협재에 시집 가서 보니까 좁쌀하고 보리쌀 조금 놔서 고구마 섞어서 먹고 있더라고. 밥 적게 하면 솔잎 모아서 한림까지 가서 팔았어. 그땐 보리쌀을 작은 되로 사고 좁쌀 두 되 사고, 조금씩 사 와서 그걸로 밥해 먹었어.

얼마나 박하게 살았는지. 강정에서는 대부분 보리쌀 조금 놓고 감저(고구마) 막 많이 놔서 먹었어. 보리쌀 조금 삶아서 고구마 한 솥 썰어 놓고 좁쌀 놓고 밥하면 맛 좋았어."

- 김이자

 

"호박잎 날 때면 호박잎 국을 끓이는데 보리밥 먹다 남은 것을 이용했어. 호박잎이 꺼끌꺼끌하니까 풀풀한 가루를 넣어야 하는데 밀가루가 그때는 귀해서 대신 호박잎국 끓일 때 보리밥을 같이 넣어서 끓였어. 그러면 보리밥이 퍼지면서 국물이 걸쭉해지고 호박잎의 꺼끌거림이 덜 느껴져. 간장은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으로 간을 했어.

그리고 보리쌀을 갈아서 먹었던 기억이 잇어. 통보리로 밥을 한 것은 그 이후에 해서 먹었지. 어릴 적 동네 할머니 집에 가면, 옛날에는 보리 깎으는 게 없으니까 보리 지는 게 있었어. 물에 조금 담갔다가 말방아에서 돌리면 껍질이 물러져서 떨어져나가고 보리쌀이 되는데 이것이 깨끗하게 잘 다듬어지지 않았어. 그래서 거치니까 다시 맷돌에 갈았지. 간 것을 대거름체에 치면 가루는 아래로 떨어지고 좀 굵은 것들은 위에 남았어. 그렇게 해서 떨어진 아래 것은 좀쌀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은 호박잎국에 넣으면 밀가루 기능을 해. 그리고 그 좀쌀로 죽도 끓여 먹었어."

- 김구자

 

| 보리 농사 |

 

"제일 바쁠 때가 보리하고 삼거릴 때주. 장마 오지,

보리도 비어야지, 삼도 해야지. 온 식구가 놀 새가 없어."

 

"보리 기계에 가서 볶아서 갈아 와서 개역 해서도 먹었지. 솥뚜껑에 볶아서 가레에 갈아서 무슨 설탕이 있었나, 아무것도 안 놓고 굵은 소금 조금 나. 가루를 체에 치면서 먹었지. 보리개역은 제일 좀진 합체로 쳐야 대."

 

"비만 오면 우리 시어머님은 보리 볶아서 보리개역 햇어. 밭에서만 사니까. 솥뚜껑에는 지지미(전) 지지고, 나무로 떼어서 무쇠솥에. 그냥 솥 속에다 볶아도 와다닥 와다닥 막 튀어. 볶아서 내버리면 이렇게 쥐어서 먹기도 하고 했지."

 

"(여름에는) 보리 볶아다가 갈아서 보리개역 해 먹었어. 또 쉰다리도 했주. 식은 밥 많아서 쉬어가면 아이고 이거 어떻게 하지 하면서 쉰다리 했어. 누룩하고 물 놔서 아침에 놔둬서 저녁 되면 부글부글해. 저녁 땐 단 것 조금 놔서 한 그릇씩 주면 다들 시원하닥 한 사발씩 먹었어. 집마다 누룩 만들어서 놔뒀다가 먹었지. 없으면 옆집에 갓 빌려다가도 해 먹고 그랬어."

 

"여름철에는 보리개역이나 쉰다리가 있어. 우리 어릴 때, 클 때는 일제 강점기니까 사카린이 있어서 조금만 넣어도 굉장히 달았거든. 설탕은 없었고. 사카린은 조금만 놓아도 맛있어. 그렇게 맛있었어. 밥해서 놔두면 조금만 놓아도 맛있어. 보리마당질할 때는 간식으로 쉰다리를 한 사발씩 드리거든. 그거 마시면 배불다고 해."

- 현용준

 

"쉰다리 만드는 법은 누룩 만드는 법부터 알아야 돼. 나쁜 보리도 갈아서 틔워. 헌 구덕에나 놓아서 보리짚이나 풀들 사이사이에 놓으면서 잘 틔우면 한 달 이상 틔워야지. 막 마르면 그거 빻아서 체로 쳐. 밥 쉬면 물 따뜻하게 해서 쉰밥에 놓고 누룩 놓고 해서 저어둬야 쉰다리가 맛이 좋아. 또신물(따뜻한 물)에 쉰밥."

- 위경생

 

| 칼 받는 3월 호미 받는 4월 |

 

춘궁기를 넘기려 3월에는 칼 받아들고 들나물을 캐어 먹고

4월에는 호미를 받아들고 설익은 보리를 베어다 먹고 살아야 했다는 말이다.

 

"도감은 막 옛날, 아무나 막 두텁게 툭툭 썰어도 안 되고 몽탕몽탕 썰어도 안 되고 얄픗하게 낭썹(나뭇잎) 모양으로 잘 써는 사람이 있어. 한 부락에 도감이라는 사람이 있어. 좀 와서 해달라고 하면, 그때는 돈으로 주는 거면 돈 봐서 갈 수도 있지만 돈도 안 받았어. 하루 종일 가서 앉아서 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 그러니까 서로 인정간에 해주는 거야. 아이고 도감이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 고기 한 반 얻어 먹으려면 도감 무서워서 말 못하고 했어. 돼지고기 한 점이 얼마나 값 비쌌어. 이제는 비계 같은 거 다 던져버리고 해도 그때는 비계로 해도 그 돼지고기 석 점……."

-오옥주

 

"돗통에 체 주고 궂은 물 주면서 기르면 얼마나 크겠어. 요새 같으면 한 15관, 20관짜리 만들기 어려워. 없는 사람은 기르지도 못해. 그러면 못 사는 집에 가서 돗통에 보면 아이고 돼지 안 기르면 똥 싸놓은 게 미삭미삭. 아이고 돼지나 하나 사줬으면 기를 걸. 이 집에 사람은 여러이고, 돼지 하나 살 가망이 없어서…… 돼지 안 길러서 아이고 저 돗통이 미삭미삭. 돼지 기르는 집은 판찍(씻은 듯이 아무것도 없는 모양)하지."

- 한신화

 

"돗거름이 큰 거름이지. 여긴 초언(촌)이니까 소 먹여난 촐(꼴)도 있고, 이 곡 짚, 조 갈았던 짚, 그런 것도 놓고, 안 놓으면 더러워. 그러면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거름을 내야 되거든. 그거 젤 최고, 요새 같으면 요소라 요소. 또 이 소거름은 염화가리고, 돗거름은 요소 역할해. 보리 갈 때."

- 양창세

 

 

 

| 제주의 똥돼지 |

 

"돼지는 잔칫집에서 돼지 좀 넉넉히 잠은 건 잘 사는 집이고,

그냥 가 늠에 맞게 사는 사람은 작은 거 한 10관짜리 해서 잔치를 했어."

 

"웃침돗, 미리 사다가 있는 사람은 옛날은 바깥에 돗통시가 있었거든. 만일 내년 잔치라 하면 올핸 또 잔치 전, 또 내년 소상이다 하면 요만한 돼지 새끼들, 옛날은 새끼들 많이 내왔거든. 걸 사다가 1년 동안 길러. 그걸 웃침돗이라고 해. 이거 성심으로 결혼식 때 쓸 거다. 부모 때 쓸 거다 해서 웃침돗 말이야. 잘 먹이고 해서 그거 잡아서 해. 많이 커. 이렇게 한 사람은 상당히 이 부락에서도 높게 알아줬어. 그 아무집 며느리는 웃침돗 길러서 부모 공양하고 아들 잔치하려고 한다고 했어. 그래서 잘 먹이고, 그러면 그거 잡아서 기름이 잇으면 잘 길렀다고, 잘 길러서 기름이 많이 있다고 했어. 기름 없으면 웃침돗 기른다는 말뿐이구나 했어. 지금은 기름이 많으면 나쁘다고 하지만 옛날은 아니야."

- 한필생

 

"돼지는 잔칫집에서 돼지 좀 넉넉히 잡은 건 잘 사는 집이고, 그냥 가 늠에 맞게 사는 사람은 작은 거 한 10관짜리 해서 잔치를 했어.(부잣집은 두 개도 잡았고) 가난한 집은 작은 거 하나 잡아도 잔치를 했지. 영장나도 그냥 했어."

- 정신숙

 

"큰일 때 돼지 잡으면 돼지 삶아난 국물을 집 주면에 나눠줬어. 끓여 먹을 만큼 놔두고, 오지 못한 노인네가 있어. 그러면 국 끓여서 먹으라고 나눠주는 거야. 친척이 바가스에 물박(물바가지) 놓고 들고 다니면서 이 집에 가서 조금 나눠주고 또 다른 집에 가서 나눠줬어. 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집 주면에 쪼로록하게 그 국을 나눠줬어. 그 집 며느리 와서 먹고 갈 때 가져가라고 하면 가져가고 했지."

- 이정자

 

"잔치할 때 돗 삶아난 데, 몸썰어 놓고 패마농 같은 것도 썰어 놓고 해서 몸국 만들면 잔치에 온 사람들이 먹었지."

- 강계화

 

"난 육계장을 잘해져. 제주도식 육개장이야. 가운데 뼈다귀하고 뼈를 많이 해다가 그걸 푹 고으려면 오래 걸려. 맛도 좋아. 그거를 식히면 기름이 위에 떠. 그걸 깨끗이 걷어두고 다시 두 번째 푹하게 고아. 그렇게 해서 참기름 많이 들어가야 좋아. 간은 소금이나 조선간장 넣어."

- 김화삼

 

| 제주돼지 |

 

돼지고기 한 점을 먹기 어려웠던 시절부터

돼지고기가 흔해진 지금까지

제주도 의례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그저 돼지고기엔 한 건 제사 때에만 쓰지. 뭐 먹을 수가 있나. 아버지네 적갈 할 때면 옆에 앉았다가 끄트머리 떨어지는 거 먹으려고 하면 손 탁 때리고 했어. 그런 시절이 있었지. 적갈할 때 고기가 길어서 끄트머리 썰면 그건 갱 끓인다고 하고. 그러니까 못 먹게 햇어. (제사가) 끝나야 먹었지."

- 강이순

 

"(명절 때도)실컷은 무슨, 약간씩,. 그렇게 해서 제사 명절할 때는 적을 하거든. 적을 하는데 이 사람(아내)이 와서 바꿔놨어. 적은 여자가 하나? 남자가 하나? 남자가 하지. 남자가 돔베[도마] 놓고 화로도 놔서 적을 해서 꿰는데, 적 길이가 요만이(손가락 한마디만큼) 해. 돼지고기가 남아도 그렇게 했어. 이 사람이 가서 적을 보고 아, 그거 이젠 자기가 맡아서 하겠다고 해서 하니까 이만큼 길이(손가락 길이 보여주며)로 했거든. 한입에 먹지도 못할 길이야. 이젠 적갈을 여자한테 맡겨버려.

반을 태우는데(나누는데) 반에 떡 놓고 작게 썬 적이 있거든. 그러면 자기 반에는 적 들었다 안 들었다 해. 아고 고기가 뭐라고 꼭 찾아서 먹거든."

"속담에도 '친아방 낭 깨는 딘 가지 말곡 다슴아방 적 꿰는 딘 가라.' 했어. 친아버지가 나무 깨는 데는 가면 나무가 탁 도끼로 찍어 맞을 우려가 있는데, 의붓아버지 적하는 데는 가면 적 하다가 못 쓰게 된 거 받아 먹을 수 있다는 거야."

- 현용준

 

| 나눔의 문화 |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평등하게 하나씩 준다.

다만, 집안의 가장 어르신에게는 특별히 생선이나

고기적을 추가로 놓아서 대우한다.

 

쉐(牛)도 전머리를 먹고 돗(豚)도 전머리를 먹나.

하니, 만민백성이 말씀하뒈

가난한 백성이 어찌 쉐를 잡아서 위할 수가 있겄습네까? 가가호호(家家戶戶)의 돗을 잡아 위로(慰勞)하겠습네다.

그리하라.

-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 제주 말과 말고기 |

 

말은 나라의 재산이자

이동의 수단이며, 농사의 버팀목이었다.

 

"옛날엔 고기도 없었어. 그때는 우럭, 우럭 했지. 제사 때나 밭 볼릴 때 먹었어. 밭 볼리는 날엔 그것이 우선이라. 밥은 산디쌀이나 나룩쌀 하나씩 섞고 팥 조금씩 보리밥에 섞어서 먹을 때야. 말테우리가 이렇게 하면 나쁘게 생각하지만 대접을 받았어. 대접받으니까 우럭도 별도로 갖다놓고 밭 가는 사람 별도로 밥을 해다가 놓는 거라.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말을 몰아서 가면 나는 아들로서 그것을 꼬챙이에 꿰어서 집에 가져오면 집에서도 맛잇게 먹어. 소금해서 말렸다가 잡풀 태우는 불에 잘 구워진 것도 있고, 안 탄 것도 잇고 해. 재가 여기저기 막 붙은 거라도 우선 말테우리한테 바쳤어."

- 고태오

 

| 테우리 |

 

자기 밭이 없는 테우리들은 남의 밭을 빌려 바령을 치기도 한다.

남의 밭을 빌려 한 해 동안 바령을 치면

3년 동안 경작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도 한다.

 

"말추렴 해서 말고기도 먹어. 말고기는 소고기 닮지 안 해서 다른 고기보다는 고소하고 날로 먹어도 돼. 말고기는 기름이 없어. 내장은 쇠 창자보다는 말 창자가 아주 좋아. 말 창자 봐가지고 말 도둑질 한다고 햇어."

- 강계화

 

"비양도 등대 위에도 하루에 몇 번씩 올라가서 쇠똥을 줍곤 했어. 비양도 꼭대기 위에 가면 움푹한 데가 있는데 거기 가서 쇠똥을 주워다가 골채하고 섞어서 떡처럼 해서 말려. 한 사나흘 말리면 그것으로 굴목(아궁이)을 땔 수 있어.

새벽에 첫 닭이 울 때는 도채비(도깨비) 난다고 해. 시계가 없으니까 그것으로 시간을 가늠하는데 "이거 첫 닭 울었으니까, 세 번째 닭 울면 가라" 하고 말하면 (세번째 닭이 울고 난) 새벽에 가서 쇠똥을 주웠어. 그 꼭대기 위에 움막(구룽진)한 곳은 막 깊고 가파라서 올라오기가 힘들어. 그래도 나는 매달리면서 잘 갔지."

- 이복련

 

"집집마다 닭을 다 길렀어. 알에서 깬 병아리는 길러서 잡아먹고 계란도 낳으면 후라이 해먹고 말도 못하게 복이 되었어. 막 영양가 된 거지. 벌레도 주워먹고 풀도 주워먹고, 보리도 주워먹고, 닭이 자진해서 다 먹은 거니까 얼마나 영양가가 높아. 지금 토종닭이라고 해도 옛날 그런 건 없어. 아무리 좋은 닭이라고 해도 없어.

그땐 닭하고 지네가 최고의 약재가 되었지. 지네가 땅에 많이 있었어. 그러니까 지네 잡아먹고 벌레 같은 거, 요만이 한 것도 닭이 다 주워 먹으니까 닭이 그렇게 눈이 밝아. 좁쌀도 조그만한 거 땅에 떨어져 잇으면 주워 먹어. 여름 나서 그 닭을 잡아먹으면 보양이 됐지.

닭 간은 눈 나쁜 사람, 눈물 질질질 나는 사람 먹으면 치료가 잘 됐어. 그런데 요즘은 시대에 따라서 날 거를 좀 뭐하기 때문에 그런 거지. 옛날엔 눈이 침침하면 닭 간, 소 간, 돼지 간 그런 것들은 눈이 밝아진다고 해서 먹었어."

- 오옥주

 

| 자연에서 기른 닭 |

 

사료가 아닌 자연의 흐름과 자연의 먹거리로 기른 닭이

그 어떤 닭보다 보양에 적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력으로 유월 스무날, 유월 스무날 닭 잡아가지고 보약으로 먹는 데, 그건 어떻게 해서 유월 스무날이냐면 일월에 난 병아리가 유월 스무날 되면 딱 먹을 만큼 커. 닭이 너무 늙어도 약이 안 되어. 그러니까 유월 스무날 되면 이삼월에 깐 병아리들이 딱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커. 또 농사가 딱 끝난 때가 유월 스무날이라. 사람들이 막 버치지. 여름 농사, 콩, 조, 팥 같은 농사, 고구마 같은 거, 그때 딱 끝나. 갈고, 심고, 가을 들어야 거둬들이지만 여름 농사는 전부 그때 해. 망종 되면 선 보리가 없다고 해. 농사가 완전히 다 익어버려. 보리 베고 그 시기쯤 농사가 다 끝나면 유월 스무날이 되어. 음력으로."

- 강상우

 

"닭엿은 (좁쌀밥에) 골(엿기름)에 섞어서 놨다가 보글보글 괴면 이제 솥에 놔서 끓여. 닭 잡아서 골 섞은 물에 삶다가 건지는데, 오래하면 너무 꽈당해. (닭은) 건져두고 그냥 엿만 조리다가 깨도 볶아서 놓고, 좁쌀도 조금 놓고, 참기름도 조금 놓고 다 되어갈 때 닭고기도 찢어서 놓아. 그래야 연해서 좋지. 닭이 꽈당지지 않아서 먹기 좋아. 집마다 다 만들어서 먹었지. 닭밖에 없어서 닭엿 했어.

우리 어머니가 몸이 약하니까 닭을 잡아주는데 우리 동네 구릉, 먹는 물 고이는 곳. 거기가 찰흙이라. 그 물 위로 씻으면서 그 물에 닭을 삶아. 삶을 때는 사금파리 놓고 앵두나무 가지 조금 놔. 사금파리, 글쎄 그걸 놓으면 회충 안 생긴다고 해. 어른은 옻나무를 놨어. 거 칠 오르면 피부가 완전히 부글거리거든게."

- 홍순

 

"기르던 닭해서 힘나는 거라고 만들어 먹었어. 좁쌀로 밥해서 골 같이 섞어서 항아리에 조금만 담아두면 보글보글 괴어. 그걸 찌꺼지 짜두고 닭에 같이 놔서 막 달이면 물이 졸아들고 엿이 됐어. 돼지고기 엿도 했었어. 돼지머리해서 달이고 좁쌀해서 감주 해놓고 골 섞어서 했지. 닭 엿하듯이 해."

- 양오순

 

| 보양식 닭 |

 

사실 제주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는 별다른 조리법과 특별한 양념이 없다.

게다가 식재료 또한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자란 식량 자원들을

그대로 이용했다. 그러니 옛 어르신들이 먹었던 소박한 음식은

그 자체로 건강식이요, 기력을 보충하는 약이 된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몸이 약하다고 우리 할머니가 '닭제골'을 해줬어. 아무도 안 해서 먹었던 모양이라. 내 책을 보고 육지서도 닭제골, 닭제골 하더라고. 우리 할머니는 이 닭제골을 뽑아서 나를 먹이면 한 삼일은 내 속이 느글거려서 아무것도 못 먹어. 왜 그러냐면 닭 속의 걸 다 꺼내고 거기다 마늘 놓고, 참기름 놓고 해서 솥 속에 빈 뚝배기를 놔. 이게 솥이면 물 놓고, 뚝배기 놔서 적고지 이렇게 걸치는 거라. 그 닭을 여기 놓는 거라.

뚜껑을 덮어. 그렇게 하면 증기로 닭의 성분이 물이 되어서 여기 떨어져. 그러면 이 물을 먹는 거라. 닭고기는 바삭바삭해서 맛이 없어. 그걸 먹으면, 참기름하고 마늘 떨어진 거 먹으니까 며칠을 김치만 먹어도 속이 뒤집어져. 몸이 약하다고 그걸 먹였어. 꼭 자라 삶은 물 같이 뽀얀 물이야. 닉닉하고, 사람들은 닭제골을 모르더라고."

- 김지순

 

비양도 미역에 대한 기억

 

허영선

 

펑펑 눈 내리는 밤

파도처럼 누룩괴어 끓어 넘치는 밤

밤과 밤 사이 바람 부는 밤

벽 틈 사이 어둠 스며드는 물의 기슭에

나는 몰래몰래 달의 눈을 빌려

바다를 들여다보았다

 

달밤에 훤히 제 몸 드러낸 누런 미역,

달의 얼굴처럼 다가오던 그것들

비릿한 달은 너를 비추고

나는 달의 눈썹에 기댔다

희미하나 그것들은 비양도 밤바다를 향해

몸을 풀고 있었다

층층 멀어지는 난청의 바다로 귀를 곧추세운 채

 

나는 물개처럼 그것들과 협상을 하고

바다의 집에 마음을 주고 말앗다

아침엣 것 햇살에 널어 말리고

저녁엣 것 달빛에 널어 말려

 

달의 눈 아래서 만삭 물질

물 이랑 골골 캐고 캐다가

올라와 아이하나 낳고

사르르사르르 눈물 쓸리는 소리

그 소리 들었다

깊은 난청의 바다에서 살찐 너는 기어이

그물 주머니 하나 가득

새벽으로 피어올랐다

 

| 미역국은 먹었느냐? 메밀미역국 |

 

미역은 한국인의 대표적인,

아니 유일무이한 해산 음식이라 불릴 만하다.

 

1629년 이건의 《제주풍토기》에 남녀가 같이 미역을 채취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형상의 《남환박물》에서 '연해 근처 돌 위에 담쟁이처럼 붙어 자라는데, 제일 지천하다'고 했다. 197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역은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큰 수입원이었다. 그야말로 환금작물이었다. 때문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채취를 금했다가 동시에 채취하는 관행이 전승되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이른바 '줄미역'이라는 양식 미역이 흔해지면서 제주도 미역은 사양하였다.

- 고광민, 《제주도 생산기술과 민속》

 

"한 열네 살, 열다섯 살쯤. 그때 시작해서 육지 물질 나가고 했지만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 (비양도는) 옛날에는 미역이 좋았어. 물때에 맞춰 새벽에 가서 해 오는데 어떤 날은 저녁에도 나가서 미역을 해 오니까 하루에 두 번 바다에 나갈 때도 있었지. 그렇게 해 오면 밤에 미역을 널어 말려, 달밤에.

포구 앞 자갈밭에 보리짚을 깔아서 거기에 미역을 널어놓는 거야. 그 자리에 참석을 못한 사람은 저쪽 경찰서 앞쪽 잔디밭에 널어야 하는데 그것도 빨리 가야 해. 사람들끼리 자리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하지. 빠른 사람은 미역을 여기저기 뿌려서 넓게 차지하고 느린 사람은 자리를 별로 차지하지 못 해."

- 이복선

 

"물질하면 잠을 잘 수가 없어. 식구 많은 사람은 그것을 가족들이 널어주고, 아닌 사람은 그것을 다 자기가 해야 해. 미역을 캐 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널어 말리는 일이 또 힘든 일이야. 이슬에 널면 누렇게 되니까 물기가 빠지면 거둬들어야 하고 이것을 손질해야 하니까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

 

"굳이 밤에 하는 이유는, 낮에는 시간이 없으니까 밤에 하는 거지. 달빛이 있으면 훤해서 잘 보이니까 달밤에 하는 거야. 식구 있는 사람들은 미역을 해 오기만 하면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널어주고 거둬들이고 하면서 손질을 해줘.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다 혼자서 해야 하니까. 밤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아침에 해 온 미역은 낮에 널어 말리고, 저녁에 해 온 미역은 밤에 널어 말리지. 너무 오래 그냥 놔두면 미역이 뻣뻣해지니까 적당히 마르면 거둬들여야 해. 특히 낮에는 햇빛에 너무 오래 두면 안 돼. 널어서 2~3시간이 지나면 들여와서 보리짚 붙은 거 떼어내고 손질해서 열 개씩 묶어서 보관해. 미역귀가 있는 채로 묶어야 보기도 좋아. 미역귀는 몸말린 거로 불 피워서 거기에 구워 먹으면 맛있어."

- 이복선

 

 

|달빛의 미역 말리기 |

 

"굳이 밤에 하는 이유는, 낮에는 시간이 없으니까 밤에 하는 거지.

달빛이 있으면 훤해서 잘 보이니까 달밤에 하는 거야.

식구 있는 사람들은 미역을 해 오기만 하면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널어주고 거둬들이고 하면서 손질을 해줘."

 

"대체로 그렇게 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 그날 자기가 작업한 양에 따라서 자리를 차지하지. 욕심이 센 사람은 넓게 차지해서 계속 사용하려고 해. 돌멩이를 놓아서 구역을 구분하면서 자기 자리를 표시하지. 그러다가 싸움이 날 때도 있지. 특히 미역을 말릴 자리가 없는 사람은 화가 나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해."

 

"얕은 곳에 것보다 깊은 곳에 미역이 맛있어. 물이 센 곳이 싱싱하고 맛있어. 한림 바다에 '도구리'라는 밭섶이 그런 곳이야. 지금은 등대가 있는데 그 곳이 동그란 모양이어서 '도구리'라고 했어. 미역을 하려면 이렇게 물이 센 곳에 가야 하니까 오래 할 수가 없어. 물때에 맞춰서 가서 두 시간쯤 작업을 해. 잘하는 사람은 망사리(바구니)로 하나 넘치게 하면, 나와서 펴두고 다시 들어가서 하지만, 잘 못하는 사람은 한망사리 쯤 해."

 

"(한 망사리는) 300개쯤? 작게 하는 사람은 100개쯤 하고 50개 정도 하는 사람도 있어. 그러니까 많이 한 사람은 미역 말리는 자리를 넓게 차지하려고 애쓰지."

 

"(좋은 미역은) 파랗지. 말라도 파랗게 돼. 얕은 곳에 것은 노랗고, 톳도 마찬가지야."

- 이복선

 

| 바다밭과 톳 |

 

요즘은 바다 생태 환경이 바뀌면서 자연 해산물이 많이 감소했다.

따라서 소라와 같이 일부 해산물들은 씨를 뿌려 채취하므로

관리는 더욱 철저할 수밖에 없다.

 

"미역도 해 먹고, 톨도 해서 먹었어. 친구들하고 가서 캐다가 데쳐서 된장에 찍어 먹었지. 톨은 캐다가 푹 데쳐서 된장에 찍어 먹었어. 톨은 푹 삶지 않으면 안 돼."

 

"톳은 빨아서 물에 담갔다가 다시 헹궈야 해. 짠물이 우러날 정도 두세 시간 담가놔야지. 톳은 공동으로 관리를 하다가 해경(解警)하면 채취를 해. 그런데 빠른 사람들은 밤에 차지해서 채취해버리면 다른 일을 하다가 간 사람은 참여를 못 할 때도 있지. 그러다가 싸움이 나기도 했어. 이젠 공동으로 관리하고 채취하면 팔아서 그 이익금을 나눠. 그러니까 예전처럼 서로 바다밭을 차지하려고 안 하지."

 

"톳은 맨손이나 호미로 베어냈어. 어촌계 조합원이 아니고서는 채취권이 없지. '톳조문'이라고 해서 우뭇가사리 조문과 마찬가지로 어촌계 조합원들은 적당한 날 조합원이 같이 톳을 해. 주로 해녀들은 톳을 캐고 남자들은 톳을 나르는 일을 해. 공동 작업은 거의 일주일동안 하지. 공동으로 채취한 톳은 그 이익금도 참여한 사람이 똑같이 나눠."

- 이복선

 

| 가장 쉽게 얻은 음식, 톳 |

 

"톨 비어다가 톨 냉국 해서 먹었지. 막 흉년에는 톳 놔서 밥도 해 먹었어.

그냥 장 찍어서도 먹어."

 

"밥은 톳밥, 솥에서 보리쌀하고 좁쌀, 흉년 때는 밀주시 톳밥. 왜 톳밥을 하느냐 하면 땅알로 솟아나는 뭇[물릇]이 있어. 잎은 마늘잎 같은 거. 그거 파다가 톳에 밥을 섞어서 삶으면 톳밥도 그렇게 맛있었어. 아무것도 없으니까. 좁쌀에 보리쌀에 거의 먹었지.

- 고순여

 

"톨 비어다가 톨 냉국 해서 먹었지. 막 흉년에는 톳 놔서 밥도 해 먹었어. 그냥 장 찍어서도 먹어. 그때는 농사짓는 걸로는 굶주리진 않을 텐데, 공출이라고 해서 전부 다 할당해. 부락에서, 누구 집은 밭이 몇 평이니까 얼마, 몇 섬, 딱딱 할당제로 하니까 그걸 하다보면 양식이 모자라."

 

"톨 해다가 무쳐서 밥 한 숟가락이면 톨은 두 숟가락 세 숟가락 먹는 거지. 식욕이 당기니까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영양가는 있든 없든. 해변가에 가면 너패, 파래 여러 가지 다 해다가 먹었지. 밥에 버무려서 먹어."

- 안이길

 

"그때 보리밥, 조팝. 그때까지도 쌀밥 안 먹었어. 톨에 좁쌀도 놔서 하고 톨만 놔서 밥도 해 먹고, 흉년에는 톨밥들 먹었을 거라. 톨해다가 삶아서 물에 담갔다가 썰어서 먹기도 하고 안 썰어서 그냥 먹기도 했지. 쌀이 없으니까 공출해버리면 먹을 것도 없어. 자기네 먹을 것도 놔두지만 넉넉한 사람은 먹고, 못 사는 집은 못 먹기도 하지. 우린 그것도 먹어가니까 별미로 생각해서 톨밥, 몸팝 먹었어. 몸팝은 먹었지만 톨밥은 못 먹겠더라고."

 

"톨밥? 톨만 먼저 삶아서 밥할 땐 좁쌀에 톨 거려놓으면 밥이 됐지. 익어갈 때 버무리면서 톨조밥 해서 먹었어. 우리 아이들은 다 그 밥 먹어서 컸어. 톨은 이만큼씩 크고 먹을 건 없으니까 그거 찢어서 밥 했어. 밭에 가면 뭇[물릇]이라고 한 거 있어. 그거 뿌리 캐어다가 또 바다에는 패라고 한 게 있어. 이런 것들도 섞어서 먹었어."

- 김계석

 

"몸국도 변비에 좋아. 제주도 몸국이야 알아주지. 돼지고기 삶았던 물에 몸 넣어서 몸국 만들면 그건 제주도 전통적인 거지. 몸 건데기를 많이 먹으면 변비 안 걸려. 이거 먹는 식품이 다 약이라. 생각해보면 다 좋아."

- 김자량

 

"잔치할 때 돼지 잡으면 몸 썰어 놓고 패마농 같은 것도 썰어 놓고 해서 온 사람들이 먹었어. 여름나면 톳해서 톳장국 먹고, 미역이고 뭐고 돈 줘서 먹는 거니까 쉽게 먹을 수가 없었지. 바다에 가서 몸 주워다가 먹었어."

- 강계화

 

제주도에서 봄에 물질하여 호미로 몸을 베어내는 방식으로 채취한다. 미역 · 몸 · 감태 등 바다 속의 해조류들을 베어 거두는 도구를 '정게호미(종게호미, 종게호멩이이, 물호미)'라 한다. 뭍에서 여러 가지 풀을 베는 도구인 호미와 같은 기능을 하는 도구다. 제주도 말로는 낫을 호미라 하는데, 뭍의 호미와 바다풀을 베는 정게호미는 비슷하다.

- 고광민, 《제주도 생산기술과 민속》

 

"거름을 어디서 사고 그런 게 없어서 몰[몸]이란 걸 채취하는 기간이 있어. 그게 뭐냐면 '고재기'라. 고재기라고 하는 몸은 위에까지 촤악 자라는 몸이 아니고 어느 정도 밑에 자란 다음에 옆으로 팍 퍼지는 그런 종류의 몸이 있었거든. 고재기 몸 조물 때가 주로 가을, 늦은 가을 농사짓고 나서 겨울 오기 전에 그걸 하면 몰로서 제일 거름으로 쓰는 데 상품이야. 그 다음에 '갑실몸'이란 건 땅밑에서부터 물위에까지 좍 자라. 삭 자라면 그게 뭐 어마어마한데. 그거는 해녀가 들어가서 자르는 게 아니고, 몸 비는 호미라고 해서 낫처럼 아주 길게도 만들고 아주 크게, 반경도 아주 크게 만들어서 떼배 위에서 훑으는 거지. 또 바람에 의해서 그게 파도가 세니까, 뽑아져서 가로 올라오면 그걸 해다가 말려서 거름으로 쓰고, 썩혀서도 거름으로 썼어.

그 다음에 거름으로 쓰는 게 제일 많은 게 '노랑몸'인데, 노랑몸은 거름으로 치면 제일 품질이 안 좋아. 그거는 일부러 채취를 하면서 거름으로 안 썼어. 하도 양이 많으니까. 태풍이 온다거나 뭐 하면은 들이갖다 말리고.

고재기는 해녀가 가서 잠수질하면서 비고, 우리도 들어가서 해녀하는 것처럼 좀 채취를 해봤으니까. 개인적으로."

- 김용중

 

| 몸국 |

 

이 베지근한 맛의 몸국은 잔치를 함께 즐기는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는 공유의 음식이다.

그만큼 제주 사람들의 기억에 특별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 전복 |

 

간편하고 투박한 조리법에는 한시도 쉬지 못하고

밭과 바다밭으로 내달려 식량을 장만해야 했던 제주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다.

그중 예나 지금이나 귀하고 대접받으며,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까지 사랑받는 해산물이 바로 전복이다.

 

"예전에는 바다 밑 15미터쯤 들어가다보면 바위 밑에 전복이 많이 잇어서 땄어. 전복이 보이면 소라나 다른 것들을 채취했다가도 다 내버리고 전복을 따지. 감태를 걷고 그걸 채취해 오는데, 숨이 짧은 사람은 감태 속에 있는 소라만 잡고 올라오고, 숨이 긴 사람은 그 주위를 한바퀴 뱅그르르 돌다보면 바위 밑에 딱 붙어 있는 전복을 발견할 수 있어. 그러면 잔뜩 잡았던 소라는 그냥 내버리고 빗창을 꺼내 들고 그 전복을 바위에서 떼어내고 올라와.

올라오고 나면 힘이 탁 풀리고 숨이 막 가빠서 테왁을 의지하고 그 위에 엎어져서 '호이호이' 숨을 몰아쉬지. 그때는 그렇게 채취해서 하루에 2~3킬로그램 정도 잡을 수 잇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잡을 수가 없어."

- 강인자

 

| 바다의 보물, 전복 |

 

과거에는 자연산 전복이 성인 손바닥만 하고 꽤 듬직한 무게였기 때문에

전복을 발견한 날은 운수 좋은 날이다.

 

"(전복을 발견하면) 물속이니까 기뻐서 소리도 못 치고, 숨이 긴 사람은 발견 즉시 전복을 따지만, 숨이 짧은 사람은 일단 올라가야 해. 그리고 기분이 좋아서 물위에서 '전복 잇다'고 막 외치지.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그걸 발견하고 따 가버리기도 했어. 그러면 서로 '내 전복이다. 아니다.' 하면서 다투기도 하지. 그래도 그때는 전복이 흔할 때니까, 그것을 그냥 주는 사람도 있었어. 그런데 만약 그 빛창(전복 따는 도구)으로 처음 전복을 딴 거라면 주지 않아. 다시 그 빗창으로 두 번째 전복을 따야만 주지. 장사에서 마수 같은 거지."

- 강인자

 

"생복 나는 데나 고동(고둥) 보는 데나 다 같은데 고동 보는 사람은 고동만 보고, 생복 재수 좋게 보는 사름은 생복만 봐. 생복은 아무 눈에나 보이지 안 해. 상군처럼 잘하는 사람이라야. 재수 좋은 사람이주."

 

"5년 전쯤 일출봉 뒤에서 소라를 잡다가 밭고랑 같은 곳에서 전복을 발견해서 따왔는데 무게가 무려 800그램이었어."

 

"전복 해다가 생채 많이 먹어. 어린 애기들 잇으면 죽도 쑤어서 먹고 제일 힘이 많이 난다고 햇어. 비싼 거라도 애기들 한두 개는 다 가져가."

 

"전복 보는 게 어렵지. 깊이 들어가지 안 해도 이렇게 돌 잇으면 돌에도 붙어 있고, 아래도 붙어 있어. 가울에도 붙고, 밋밋한 돌ㅔ도 붙어. 가울이라고 하는 건 생복 붙음직한 고랑이야. 밭 갈면 골이 나는데 그렇게 높은데 밑바닥이 아니고, 발견하면 뜯어."

 

"그거 보면 기분이 좋지. 다른 거 못해도 전복 따서 나오면 재수가 좋은 거라. 어려워도 그걸 잘 따 왔어. 아주 가까이서. 너무 얕게 하면 껍데기가 부서져. 건들지 않으면 오므라들지 안 해. 건들면 오므라들어버려. 건들지 안 한 때 이렇게 봐서 빗창으로 꾹 찔러서 딱 떼면 얼른 떼어져. 그렇지 않으면 살에 찔러버리면 생복도 죽어버리고 값도 내려가지. 젤 좋은 건 큰 거지. 숫전복하고 암전복하고, 암전복은 무룩무룩 크고 숫전복은 좀 얇아, 알아주는 건 숫전복이고 숫전복은 살이 많기도 많아. 암전복은 크긴 해도 여물이 얇고, 맛은 똑 같아. 그래도 숫전복이 더 쳐주지.

생복도 많이 했었어. 그러면 고동 한 망사리 한 것보다는 생복 8~9개 한 개 돈을 더 많이 받지. 아무래도 고동 한 망사리보다는 전복 5~6개 한 게 나아."

 

"스물서너 살, 다섯 살 됐을 거라. 대마도 가던 해에 들어가면 생복만 있어. 두 개 세 개 따서 나오다 보면 망사리 위에 엎어졌어. '야, 여기 오라 생복 여기 막 눌었져.'

좀녀들이 물 아래 들어가서 보면 없어. 나 생각엔 난 봐지는데 난 두 개 세 개 따서 나와. 그 사람들은 못 보는 거라. 아고 가 보라. '성님 엇수다(없다) 엇수다.' 난 들어가면 자꾸 잇다고 하고 또 어떤 때는 헛숨해서 나오지. 이무것도 없어서 나오기도 하고, 그땐 고동은 반 구덕이고 생복은 막 많았어. 그러니까 그거 머정으로 한 거라."

- 김계석

 

"소금으로 입을 헹군 후 전복을 씹어서 부드럽게 한 후 숟가락으로 떠먹였어. 요즘 의사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지만, 생것으로 먹이려면 그렇게 해야 했어. 아이가 조금 크면 전복을 세 등분 정도로 썰어서 손에 쥐어주면 그걸 빨아 먹기도 하지. 그러면 감기도 안 걸리고 건강해. 또 자연 전복은 주변이 딱딱하니까 동그랗게 가운데만 잘라내, 그것을 밥할 때 잠깐 얹어서 쪘다가 잘라서 실에 목걸이처럼 꾸ㅐ어서 빨아 먹게 했어."

- 강인자

 

"게웃(전복 내장)이 중요해.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버려버리기도 하는데 그것이 많이 들어가야 맛있어. 쌀을 물에 담가두고, 전복은 씻어서 칼로 잘 썰어. 배장은 손으로 잘 주물러서 터트린 후에 솥에 기름을 두르고 쌀하고 같이 볶아야 돼. 바닥에 눌러 붙을 정도로 오랫동안 잘 볶은 후에 물을 놓고 끓이다가 한소끔 끓으면 불을 줄이고 쌀이 푹 퍼지게 해야지. 거의 다 될 쯤 전복의 하얀 몸통을 썰어서 넣어. 그 위에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넣으면 고소하게 맛있어."

 

"생으로 썰어 먹어야 맛있지만, 일본 사람들은 버터에 살짝 익혀서 먹는 것도 좋아해. 간혹 늙은 전복은 고아서 먹기도 해. 찹쌀하고 인삼을 넣어서 푹 끓이면 약이 되지."

 

"(요즘 같은 겨울에는) 24시간 정도 괜찮아. 차반에 놓고 수건을 덮어서 냉장실 안에 넣으면 안 죽고, 여름에는 짠물 적신 수건을 덮어서 서늘하게 해야 해."

 

"전복은 산란기 때가 전복 내장이 기름지니까 맛잇어. 이 시기 전족은 500그램짜리 하나면 전복죽 열다섯 그릇 정도 만들 수 있을 만큼 전복 내장이 부풀어 올라 맛있어. 그 시기가 10월부터 12월 말까지 3개월이야."

 

"전복도 암놈, 수놈이 잇어. 남자들은 암놈을 먹고, 여자들은 수놈을 먹어. 수놈이 딱딱하긴 해도 죽 만들 때는 수놈이 좋아. 바닥이 검은 것은 수놈, 노란 것은 암놈이야. 그런데 노란 것 중에서도 특별히 노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진짜 약 전복이야. 그리고 그것은 가파도에서 많이 나. 여기도 성산과 우도 사이에서 많이 났었는데 이제는 없어."

- 강인자

 

| 맛있는 전복 |

 

할망 하르방은 계절에 따라 전복 보관하는 방법을 달리했고,

또 시기에 따라 전복이 가장 맛있을 때를 알고 있었다.

 

| 성게국 |

 

제주 사람들은 성게를 국으로 끓여 먹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판로가 없었기 때문에 성게를 대량으로 잡지 않았다.

잡은 그 자리에서 까서 알맹이만 먹던 음식이 바로 성게였다.

 

"옛날에는 성게로 국을 끓여 먹지 않았어. 성게를 잡아 오기는 해도 국 끓여 먹는 것을 몰랐는지 성게국을 해 먹지 않았어. 생으로 미역에 싸서 그냥 먹었지 뭘 만들어서 먹을 줄은 몰랐어. 성게국, 성게비빔밥 이런 것은 요 중간에야 나온 것이지 옛날에는 그렇게 해서 먹지 않았어. 오분자기도 죽이나 끓여 먹었지 찌개를 한다든가 그런 건 없었어."

- 김구자

 

"난 여기서 나고 자랐어. 어릴 적에 아버지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4남매를 키우려니까 힘들어서 학교도 못 하고 우리 형제가 같이 물질하면서 동생들 공부시키고 했어. 열여덟 살쯤부터 물질을 시작해서 지금까지야. 요즘은 가끔씩 소라 채취할 때만 해. 최근에는 소라할 때 외에는 벌이가 되지 않아. 요즘 같은 밀감 철에는 해녀들이 귤 따러 가. 하루 일당에 점심주니까 그것이 더 수지맞아. 잘하는 해녀들 열 명쯤만 바다에 가지. 예전에는 성게, 오분작은 잘 잡지도 않았어. 이제는 이것도 귀해. 여기 성산은 배 타고 나가면 소라를 두 시간만에 100킬로그램 정도도 잡았어."

- 강인자

 

"응, 옛날에는 고등어, 코생이, 성게 닮은 것은 먹을 것으로도 알지 않았는데 요즘엔 그런 것도 시세가 막 좋아!"

 

"옛날에 성게국이 있었어? 파래국은 있어? 성게를 돌 트멍에서 잡으면 칼로 썰어서 생으로 먹지. 그것을 국을 끓여 먹거나 하지는 안 했어. 그때는 성게를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객가에 가서 잡으면 썰어서 훓어 먹는 거라."

- 송옥수

 

"성게죽 맛잇지. 쌀에 성게 놔서 참기름을 볶다가 물을 넣어서 죽을 쒀."

- 오춘련

 

| 성게와 솜 |

 

"솜은 잡아다가 도고리(함지박)에서 닥닥 빻아서

앙금을 두 번 정도 걸러낸 다음 초벌물, 두벌물 넣고 끓이면

둠비(두부)모냥 드박드박해, 그렇게 해서 먹었어."

 

"솜 해다가 마께(나무로 만든 방망이)로 빻아서 국물이 나오면 파래해서 국 끓였어. 솜국이 그렇게 맛 좋아."

- 고순여

 

"솜 잡아다가 도고리(함지박)에서 닥닥 빻아서 앙금을 두 번 정도 걸러낸 다음 초벌물, 두벌물 넣고 끓이면 둠비(두부)모냥 드박드박해. 그렇게 해서 먹었어."

- 홍순

 

"우린 노상 먹는 건 바다 것으로만 먹었주. 이젠 보말도 잡으러 가지 못 하게 한다고 해. 보말도 잡아다가 삶아서 까서 간장 놓고 볶아서 먹어. 그냥 까서 깻가루 놓고 담가 놓고서도 먹고."

- 홍순

 

| 수두리 보말 |

 

보말이 가장 맛있을 때는 봄이나 장마철이다.

겨울에는 제맛이 나지 않는단다.

봄 바다에 나가 보말을 깡통한가득 잡아다가

그자리에서 삶아 먹으면 하루가 즐거웠다고 한다.

 

"국도 끓여 먹고, 보말죽도 쑤면 맛 좋아."

- 강계화

 

"죽 쑬 때 속에 붉은 딱지 벗겨두고 보말 내어. 그 시절에 흐린 좁쌀이라고 한 게 많아. 시루에 좁쌀 가루 빚어다가 보맑ㄱ 끓일 땐 보말 놔서(찐좁쌀을) 문덕문덕 문질러서 국에 놓고 저어서 배추나 미역이나 놓고 먹으면 맛 좋아. 보말국은 미역새 졸딱졸딱한 거 잇어. 그거 해서 놓으면 맛 좋아."

- 강계화

 

| 보말잡이는 아이들의 놀잇거리 |

 

당시에만 해도 흔하게 보말을 볼 수 잇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염되거나 환경이 변한 탓인지 보말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 팟깅이, 듬북깅이, 지름깅이 |

 

게가 가장 맛있는 시기는 겨울을 제외한 계절이나,

특히 보리를 베어 들일 즈음인 망종 전후다. 이때 잡은 게가 가장 맛있다.

 게들이 알을 품고 잇어 가장 살이 쪄 잇는 동안이기 때문이다.

 

"놈 싼 훼에 깅이 잡나.(남이 켠 횃불에 게 잡는다.)"

- 김녕 노형 조수 인성, 《제주어사전》

 

"우리 열세네 살 때 탑동 아래가면 돌킹이(돌게) 나올 때, 참깅이(참게) 나올 때 돌만 들러내면 발발 거려. 그러면 동그랗게 사방으로 에워싸서 잡아놓고 안에 돌은 밖으로 던지면 깅이가 거기 모이게 돼. 깅이를 바깥으로 못 나오게 갇히는 거라.

그러면 한 주먹씩 잡아놓지. 그냥 하나하나 잡으려고 하면 어떤 놈은 잡아지고 어떤 놈은 도망가버려. 아이고 차롱에 놓으면 올라와서 착착 두드리고 해. 이젠 바가스라도 있지.

몪아서도 먹고, 죽도 쒀 먹어. 그거 잡을 땐 코토데기(남방울타리 고동) 보말이라고 하는 게 많이 있어. 그거 같이 잡아 오면 삶아 먹었어. 깅이가 적게 나오면 그거 해서 먹엇지."

 

"콩 볶아서 깅이에도 놔서 먹어. 그게 큰 반찬이었어."

 

"우리 부모님네는 밭일만 하니까 바다의 것은 많이 해오지 못했어."

- 위경생

 

"뭉게죽 하려면 가끔 바다에 잡으러 갔어. 그땐 탑동 안 메운 때야. 우리 열세네 살 때 가면 아주 물이 쌀 때는 멍게, 구젱기(소라) 같은 거 돌은 들러내지 못하고 떼어다가 먹었지. 탑동 아래 물이 바짝 싸면 구젱기도 있으면 떼고, 멍게도 골갱이(호미)로 파서 먹고, 뭉게는 상퉁이(상투) 확 잡아야 해. 그렇게 해서 잡아다가 삶아서 먹었어. 죽은 그냥 돔박돔박 썰어서 쌀 놓고 끓여. 부드러워지라고. 그땐 무슨 돌들이 있었어. 그냥 막 두드려. 볶아서도 먹고 죽도 해서 먹었지."

- 위경생

 

| 문어 요리 |

 

"난 맛만 보고 안 먹으니까 지금도 먹었으면 해.

난 맛있는 거 있으면 남편만 먹였어. 고기국 끓여도

난 미역만 건져서 먹어도 왜 고기가 없는지 말 안 했어."

 

"물꾸럭죽은 환자들이 먹으면 좋아. 물꾸럭죽을 하려면 막 빻아서 해. 나는 물꾸럭먹을 버리지 않고 같이 난도질 해. 생채로 하면 막 튀어. 팔팔 끓는 물에 데쳐서 냉장고에 놔두면 좀 굳어. 그러면 물꾸럭을 난도질해. 먹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같이 난도질 해서 죽을 쑤니까 아주 맛잇어. 그건 내가 개발했어. 옛날엔 먹을 던져버렸지. 먹은 영양분도 잇고 몸에도 좋아."

 

"우리 하르방(남편)이 설사를 계속하니까 문어 사다가 데쳤어.이젠 그 먹통을 딱 잘랐어. 그냥 놔뒀다가 먹만 꺼내려고 하면 헤싸질(헤벌어질) 거니까 머리통, 먹통을 톡하게 잘라서 냉동실에 우선 담았어. 아래 발은 난도질하고 냉동에 20분 동안 잇으니까 굳었어. 그걸 꺼내서 막 잘게 썰어서 난도질했어. 너무 맛있는 것 있지. 전복죽 저리가라. 쌀은 같이 불려서 놨다가 건져서 쌀이 마를 정도 되면, 먹하고 쌀하고 참기름하고 같이 놔서 막 볶아. 어느 정도 골고루 참기름 들어가면서 꺼멍해져. 물을 적당히 넣은 거라. 새카맣게 돼도 그렇게 맛있어. 먹이 그렇게 좋은 거라. 코피 잘 나는 사람, 하르방 그거 먹어서 일어나니까 설사 며칠 해서 아이고 이 어른 병원에 입원해야 할 건가 했어. 그런데 일어낫어. 약도 되고 맛도 좋아. 이제도록 그런 죽을 먹어본 적이 없어.

내가 머릴 쓴거라. 옛날엔 문어죽 할 땐 먹을 버렸어. 문어죽을 잘못 쑤면 비린내가 나잖아. 내가 하니까 비린내가 없었어. 참기름에 볶다가 단지 소금만. 죽에는 미원이나 맛소금 같은 거 놓으면 안 돼. 완전히 문어죽이 진짜 보약이야, 보양식. 내가 문어죽이 좋다고 해도 잘 못해. 우리집이 난도질허는 도마가 새카맣게 됐어.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질 안 해. 그러니까 문어죽이 최고로 맛있어. 먹이 비린낼 없애는 모양이라. 식어도 비린내 안 나. 먹죽이 그렇게 맛 좋아. 문어먹죽."

 

"우린 먹을 구워서 먹었어. 불 때는 데 놓으면 노리롱[노르스름] 하면서 구워졌어."

- 김장옥

 

"뭉게 잡으면 상통이 뒤집어서 먹부터 잘랑 던져버렸어."

 

"난 맛만 보고 안 먹으니까 지금도 먹었으면 해. 난 맛있는 거 잇으면 남편만 먹였어. 고기국 끓여도 난 미역만 건져서 먹어도 왜 고기가 없냐는 말 안 했어."

- 강석량

 

"우리 어릴 때는 깅이를 도고리(함지박)에 빻아서 죽을 쑤어 먹었어. 그리고 깅이범벅이라는 것이 있어. 물 넣고 깅이를 바글바글 끓여서 간장으로 간을 하고 거기에 가루를 놓고 저으면 깅이들이 서로 엉켜 붙어. 그걸 깅이범벅이라고 해.

- 김구자

 

"이젠 그냥 놔서 벌겋게 해서 먹지만 그땐 뭉게를 해다가 뜨거운 불치(불티)에 놔두면 하얗게 벗겨져. 그러면 하얗게 벗겨서 쌀 놔서 죽 쑤어 먹었지. 썰어서 삶아도 좋고 그냥 삶아도 좋고 죽 쑤어서 참기름 놓으면 맛 좋지.

 

"얕은 데 있어. 구젱기(소라) 하러 갔다가 가에 잇으면 잡아다 먹어. 그냥 벌겋게 앉은 것도 있고 돌틈 사이에 불빛이 베롱한(불빛이 반짝이는 모양) 거 있으면 물 위에도 나와. 탕건 하다가 횃불이라고 불 켜서 왕대나무 같은 거에 그신새(지붕을 덮었던 묵은 띠) 같은 거 묶어서 그걸로 횃불 켜서 보말 잡아서 먹엇어. 짚 일어난 새(띠) 잇으면 그거 빌어다가 놔뒀다가, 묶어서 길게 해서 불 붙여서 쓰고 했어. 불 꺼져버리면 막 기어서 오지. 막 돌바랑을 기어서 와. 대막대기에 솜이나 헝겊 꽉꽉 담아서 석유 비우고 또 홰 켜서 가고 했지."

 

이중섭

 

"옛날엔 깨 끝나면 깨짚해서 잉걸이 질듯 말듯해. 깨짚하면 잉걸이 있는 듯 마는 듯하지. 거기에 가을 자리 소금 팍팍 해서 놓으면 구워졌는지 말았는지 그거 내어보면 불치(불티) 가득해도 그거 털어서 맛있게 먹었지. 또 콩짚도 하면 그것에도 넣어서 구워 먹어. 그냥 볶아 먹기도 하고, 자리젓은 젓으로 먹어. 제라하게 나무로 불 때어난 적쇠에 놓아서 불에 구우면 맛이 좋아.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서귀포 사람이 태흥리 학교 가서 남의 집에 살았어. 우잣디(울안에) 가는데 나물을 뜯어서 갈중이에(감물 들인 옷) 닦아. 박박 문질러서 국에 놓아서 끓이고 불 지피다가 불에 자리를 푹푹 던져 넣으니까 익었는지 말았는지 검질(김0로 박박 닦아서 먹어도 맛만 좋더라고 하더라고. 그 집에 가서 우리 살았는데 옛날에는 그렇게 하면서도 먹어서 살았어."

- 김례

 

| 자리젓과 자리구이 |

 

자리젓은 오랫동안 보관해 먹는 음식으로 유용했고,

자리구이는 불을 지피다가 남은 불재에 던져넣어서 익은 듯 안 익은 듯

불티가 붙은 상태로 먹었다. 제주 할망 하르방은 지금껏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

 

"자리젓은 바작바작 허주게. 소금 놓아서 소금은 너무 짜게 놔도 안 되고 싱거워도 안 되고 간 맞게 하면 자리젓이 제일 맛 좋아. 싱싱해서 이제 썩지 안 했으면 마께로 독독해서 배설 다 빼내고 이제 소금 놓고 잘 무쳐서 담아두면, 간을 딱 맞추어서 맛있지. 자리젓이 클클하고 맛 좋아."

- 김계석

 

"자리젓은 자리 작은 거 간 맞게 하면 맛 좋아. 자리 한 말이면 소금 한 되 못 되게 넣어. 유월 자리가 맛 좋아. 너무 굵은 거 말고 중간 정도쯤 한 거. 잘 버무려서 꾹꾹 눌러서 놔두면 돼. 자리젓이 큰 반찬이지.

- 김술득

 

"(비양도에서는) 멜젓, 자리젓이지. 자리젓은 두 말씩 했었지. 자리는 사서 했어. 금능지역 배들이 팔러 왔어. 가끔은 물질 갔다 오다가 자리배가 보이면 그 배에 대서 직접 사오기도 해. 자리는 구워서도 먹고 볶아서도 먹어. (자리젓은) 집집마다 다 자기대로 담그지. 자리 한 말이면 소금 한 되 넣는 게 적당해."

 

"항아리에 소금 간을 맞춰서 하면 자리젓이 되어. 별다른 방법이 없어. 옛날에는 산남지방의 사람들이 여기에 자리 사러 오고 했어. 자리철 되면 자리사러 왔다가 없어서 못 사고, 미리 부탁해두고 해야 자리를 샀었는데 이제는 자리 사러 오는 사람이 없어. 요즘에는 팔리지 않으니까 있어도 잡지 않아. 요즘에는 조금씩만 거려."

- 김구자

 

"손맛으로 가서 단내 나게 먹는 사람은 그렇게 담그는데 나는 그런 거 좋아하지 않으니까 좀 벌겋게 익어서 쿠싱한(구수한) 것을 좋아하지."

- 이복선

 

| 제주와 자리 |

 

자리젓은 제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먹었다.

해안과 중산간 마을을 구분하지 않고

대부분 1년 동안 먹을 음식으로 자리젓을 담갔다.

중산간 사람들도 자리를 사기 위해서 먼 걸음을 마다치 않는다.

 

"아이고 국 하면 막 맛 좋아. 자리국물 놔서 국 끓이면 밥 두어 사발 먹었어."

- 한신화

 

"(자리조림은) 사람마다 다른데 약간 소금했다가 물을 근근히 넣어서 조리면 되지. 당시 할머니들은 간장도 안 쓰고 풋고추나 위에 좀 썰어 넣었어. 그러면 노랗게 조려져. 생으로 하는 사람은 조선간장 조금 넣고 물 넣고 해서 오랫동안 조려. 오랫동안 조리니까 저장력이 강한 것 같아."

 

"전복껍데기에 구멍을 막아서 거기에 자리젓을 넣고 무를 썰어 놔서 바글바글 끓여 먹으면 배지근하니 맛이 좋아. 밥 했던 불티를 긁어서 거기 놔두면 바글바글하니 괴어."

- 오춘련

 

"자리젓을 잉걸숯, 정동화로 부엌에 가져가서 엄청 큰 전복 껍데기에서 자글자글하게 끓이면서 무 넣고 붉은 고추 파란 고추 넣고 야채 넣어서 하면 맛있어."

- 김복희

 

| 함덕 썩은 멜 장시 |

 

어촌에서 남아도는 멜을 처분하기 위해 중산간으로 팔러 다니다보면

신선도가 빠르게 저하되는 멜의 특성상

물이 흐르고 부패해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여름되면 멜조림 해 먹어. 멜을 배를 갈라서 말려. 손으로 하면 갈라져. 차롱에서 말리면 고들고들하지. 그거 고추장에 엿기름에 간장에 버무려서 참기름 놓고 해봐. 진짜 맛 좋아. 호상하러 우리집이 닷새를 다녔는데 내가 멜 조림을 해드렸어. 그것이 그렇게 맛 좋았다고 해.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같이 개발하고 해야 음식이 늘어."

- 강석량

 

"막 몰려들어서 느가 사켜, 나가 사켜 잠방잠방 옷 적시면서 들어가. 서로 사겠다고 다투니까 차례로 차례로 사. 멜 배가 그렇게 많지는 안 했지. 여러 개 안 되니까 그렇게 했어. 그때도 우린 분수 몰라서 파는 것만 사다가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확하게 주워다가 먹고 그렇게 했어. 멜 팔다가 아래로 흘려버린 거 족바지로 거려다가 먹는 사람도 있었어."

- 고춘자

 

"여긴 원담 지음직한 곳이 없어. (원담은)지형이 돌이 많고, 잔돌이 많으면 그 돌 올려놔서 밭담 쌓듯 쌓는 거지. 물 들어서 고기 들어오면 그안에 물이 깊은 줄 알아서 놀다가 물 싸버리면 나가지 못하지. 그것이 원담이야."

- 송창수

 

| 멜국과 멜튀김 |

 

"우리 식구들만 해. 많이 하면 나눠서 먹어.

같이하자고 하면 같이해서 나눠 먹어. 멜이 아직도 많아."

 

"그릇 닮은 거 구덕 말고, 구덕은 물 흘러. 양철바가스 같은 거. 물 안 나오는 거에 지어서 걸어가. 오래 걸리지. 선흘까지 두 참이니까 몇 미터 될 건지 모르겠어. 함덕서 조천 두 곱만치. 멜 사러 오는 건 여자도 하고 남자도 해. 고무바가스는 안 나고 구덕이나 하려고 하면 가죽이나 대어야 돼. 옆으로 흐르는 거."

 

"선흘서는 멸치를 못 만들지. 젓하는 거밖에 못하는데, 싱싱할 때 하려면 함덕 사람들밖에 못 해. 함덕에서 멜장수가 팔러도 많이 가. 족바지 물흘러도 바깥으로 안 흐르게 가죽으로 대어서 지어. 그런데 이 멜로 잘 안되니까 그만두었는데 한 몇 년 사다가 이루꾸(いりこ)해서 많이 먹었어."

- 고춘자

 

"멜젓은 망데기에 하나 담으면 웬만한 집은 1년 먹다 남아. 멜이 다 소모될 때도 있지만 멜이 많이 들면 처리하기가 곤란해서 그냥 모래사장에 널어놓고 말리면 거름으로 쓰지. 산촌이나 뭐 특별 농사 짓는 사람들이 사가기도 해. 거름용으로. 워낙 저가니까 말이 사간다는 표현이지, 그냥 주기도 해. 그땐 조리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지금처럼 잘 말려서 뭐 이렇게 저장하는 방법도 몰랐어. 여하튼 생으로 처리를 해야 하니까. 지금은 뭐 아무리 잡아봐야 처리를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그땐 좀 많이 나면 그렇게 처리를 못할 정도로 했어."

- 김용중

 

"이렇게 보면 멜이 막 솟과. 물속에 보글보글. 횃불 들어서 가면 막 쫓아오거든. 그러면 그물 들러서 양쪽에 있으면 횃불 든 사람이 싸악 들어올리면 이 그물쪽으로 하면 한 번에 세 구덕까지 들어와. 그거 내가 만들었어. 목매기라고 해. 작은 그물이라는 뜻이라고 하던데 확실한 뜻은 모르겟어.

두 사람은 대 달리고 한 명은 홰 들르고. 또 한 사람은 구덕 들르고 네 사람이면 돼. 난 우리 식구들만 큰 튜브 있잖아. 튜브 가져가서 거기에 구덕 놓고 해. 그렇지 않으면 포대에 담아서 거기서 거렸지. 스물한 살 지금까지 그렇게 했다고 봐야지. 이젠 안 해. 나 하던 그물 주니까 지금 우리 아들이 하긴 하는데, 재작년인가 많이 거려서 나한테 줘서 먹었어."

- 전연옥

 

"이루꾸 만들려고 하면 물 두 말쯤 상상상상 끓여서, 족바지 있는 사람은 족바지로 하고, 족바지 없는 사람은 납작한 나이롱 차롱 닮은 거 팔아. 조그마한 차롱으로 흔들면서 해. 소금 놓고 물 빠지면 멍석에 널어났어. 잔 멜. 굴ㄷ은 멜은 멸치국수 해 먹는 다시다로 써. 멍석에 말리는 것은 그날그날 다 말라. 볶아서도 먹고 국도 끓여서 먹고. 큰 멜도 배는 안 갈라서 그냥 이루꾸 해. 우리 이루꾸 할 때는 막 굵은 거는 안 나왔어."

- 고춘자

 

"(전연옥)우리 그물은 크니까 한번에 잘 다섯 콘테나씩 들어. 우리 식구들만 해. 많이 하면 나눠서 먹어. 같이하자고 하면 같이해서 나눠 먹어. 멜이 아직도 많아. 근데 여긴 옛날부터 모래판이니까 멜이 가을 들면 많이 들어와. 자갈 있는 데도 있는데, 한전 있는 데는 옛날에 많이 들었어. 거기 내가 소 할 적에 목초 비러 다니는데, 운 좋을 때 가서 보면 멜이 이만씩 쌓여 있어. 썰물일 때. 우리는 장난 삼아 운동 삼아 하는거니까 멜을 많이 잡으면 리어카에 실어서 팔러도 가고 또 아는 사람한테도 줬어.  멜 팔러는 여자들이 가.

그렇지 않으면 퇴비했어. 옛날은 팔지 못하면 밭에 조 갈려고 하는 조밭에 막 날채 뿌려버렸어. (전연옥)날차 주는 사람 있고, 썩형 주는 사람 있고."

 

"우리 같은 경우는 비료 뿌리듯 그냥 막 뿌려버렸어. 조 갈기 전에. 한 4월. 이젠 농사 안 지으니까 다 잊어버렸어."

- 송창수

 

"솥에 삶아가지고 그걸 말려. 이루꾸라고 해서 멸치 팔지. 삶으면 떠, 소금 놔서 막 바글바글 괴면 탁 들이치면 떠."

 

"(전연옥)물에 소금 놓고 해서 팔팔 끓여서 팍 놓으면 멜이 떠. 그때 싹 건져서 하는 거지. 완전 삶아내는 거야. 물에 싹 내려가면 떠. 고기가 뜰 때 건져내야 돼. 멍석 해서 말려. 이루꾸는 상인들 막 사러 와. 그거하는 줄 알면 집까지 막 와. 팔라고 하면 글쎄 뭐 좋으나마나 팔라고 해. 그 사람들은 영업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개날에 한번 동날에 한번 하는 사람이니까. 푼돈이주게."

- 송창수

 

| 갈칫국과 갈치잡이 |

 

"갈치는 조려서 먹고 끓여서도 먹어. 갈친 몸뚱이하고

대가린 소금젓 했다가 팔월달 촐(띠)밭에 고사릿불에 구워서

점심 먹을 때 먹으면 최고급으로 쳤지."

 

"갈치는 조려서 먹고 끓여서도 먹어. 갈친 몸뚱이하고 대가린 소금젓 했다가 팔월달 촐(띠)밭에 고사릿불에 구워서 점심 먹을 때 먹으면 최고급으로 쳤지. 전에는 그렇게 해도 이젠 그렇게 안 해. 옛날엔 먹을 거 없으니까 촐밭에 가면 고사리불 와랑와랑한 데에 푹 들이쳐서 구우면 불티는 대작대작 붙어도 꺼내서 먹었어. 털어도 맛 좋아. 짭조름하게 해서 먹어도. 이젠 대가리 먹지도 안 해. 다 던져버리지. 옛날같이 갈치 대가릴 먹고 잇으면 눈이 밝지. 아무것도 생선 대가리, 생선 눈 먹으면 눈 밝다고 해. 간 먹으면 간 좋다고 하고.

- 강계화

 

"반찬은 어머니가 갈치를 사와. 갈치 낚으면 꿰어서 팔러 와. 팔면 그걸 우리 어머니가 사서 이만큼 소금 했다가 처음 물은 걸러내고 다시 소금해서 팍 묻어버려. 그렇게 해서 먹을 때마다 하나씩 씻어서 밥솥에 쩌서도 먹었어. 아무것도 안 놔서 요만한 양재기 있잖아. 어머니하고 나만 먹을 거니까. 갈치 놔서 고춧가루 고추 조금 썰어 놓고 마늘도 조금 놔서 밥솥 안에 놔서 쪄 먹어. 땔감으로 때서 잉걸불에 구워도 먹지.

우리 어머닌 나무 때어나면 그 불 그져가서 그 잉걸에 고기 구워 먹었어. 잉걸에.

난 우럭같은 거 배 갈라서 소금 했다가 짭짤하게 말려서 잉걸에 구워 먹으면 그것이 맛좋아."

- 김이자

 

"옛날에는 갈치도 흔해서 잘 먹었는데 불 피우던 잉걸에 갈치를 구워 먹으면 맛잇어. 갈치는 한림 쪽 바다보다는 서쪽 바다로 나가서 한치잡을 때 같이 잡아와. 그리고 관탈섬에 가서 살면서 갈치잡이를 하기도 했어."

 

| 갈치 어장 |

 

어느 정도 위치까지 나가면 배 밑으로

갈치 떼가 보이는데 이를 살피며 자리를 잡는 조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작업을 한다.

 

"난 갈치조림도 고추장 안 놓고 간장, 소주 놓아. 난 간장 놀 때 소주 놓고 식초 조금 놓고 설탕도 기본 좀 놓고 마늘은 많이 넣어야 돼. 뭣이든지 마늘은 많이 넣어. 청량고추 얼큰하게 조금 놓고, 고춧가루 양념해서 넣지 말고 파 놔서 얼마 있다가 고춧가루 놔. 고추장에 간장 놓고 하면 풀풀해서 국물 맛이 없어. 항상 감자 놓고 무 놓고 해서 바글바글하면 그 위에 갈치 놔서 바글바글하면 그 위에 파 놔서 얼마 있으면 고춧가루 살짝 놓으면 차박차박하고 국물도 풀풀 안 하고 맛있어. 어떤 집에는 가서 보면 닉닉하더라고. 미원 놓는 것은 기본만. 어떤 집에 가서 보면 미원 너무 많이 노니까 닉닉해."

- 김이자

 

<갈치 낚그는 소리>

 

무러가라    무러가라    강갈치야    무러가라

어족님네    들어오라    이네놈의    낚시에는

 맛있는        닉껍이여    멩지갈치    비단갈치

   바다멀리    물러가곡    사모배기    열두점짜리

버덩갈치    큰놈이랑    내낚시에    물어도라

   한술에는    두머리씩    두술에는    서너머리씩

무러간다    무러간다    숙숙숙숙    무러간다

올라온다    올라온다    두머리씩    올라온다

 이네놈의    머정인가    우리배의    영급인가

 하루밤에    두세짐만    낙그게       하여줍서

- 윤경로, 《향토강정(개정증보판)》

 

"옛날 잔치 때 교자상을 보니 좋은 옥돔을 해서 간장에 고추장을 되직하게 해서 통째로 튀겨서 내놓는 거라. 난 아고 저 좋은 재료를 가지고 왜 쇠똥 싼 것 식으로 그렇게 할까 했었어.

우리 친구 딸 약혼식에 가서 내가 옥돔을 꿰고 양념 만들어서 약간씩 지단 놓고 해서 먹기 좋게 싹 만들어 내놓으니까 사돈집에서 어떤 사람이 누가 머리를 써서 이렇게 만들었냐고. 어디 가든 교자상에 옥돔을 통째로 내놓으니까 먹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젓가락으로 먹게 만들었다고. 10만원을 탁 내놓더라고. 이제는 식당으로 가서 하지만, 옛날엔 저런 좋은 음식 가지고 미안스럽게 먹지 않게 만드느는가 했어. 통째로 크게 내놓는 음식을 어떻게 먹어. 젓가락만 가면 먹을 수 잇게 해야지."

- 김자량

 

"건옥돔죽은 그냥 옥돔 씻어서 냄비에 통째로 넣고 끓여서 익히면 육수도 맛좋게 잘 나와. 살도 또렷또렷해지면 살하고 뼈도 따로 추려. 쌀을 참기름에 넣어서 볶다가 쌀이 퍼지면 옥돔 삶아진 거 놔서 끓이면 비린내도 안 나고 죽 중에 제일 맛있어. 요샌 옥돔 회도 해 먹고. 구이, 조림, 강회로 무쳐서 먹어도 되고, 옛날엔 강회로 먹진 안 했어."

 

"마른 옥돔은 국. 그건 생옥돔으로는 미역이나 이런 거 놔서 국 끓이지만, 건옥돔국은 미역하고 무. 겨울에. 막 바다가 세어버리면 생선이 안 날 때 있잖아. 제사 때에도 그러면 반드시 무하고 미역하고 같이 놔서 끓이면 아주 맛있거든. 소금도 덜 들어가고 비린내도 안 나고, 옛날엔 쌀뜨물해서 했어. 옛날엔 옥돔을 말려놓으면 기름이 펴. 그런 걸로 국 끓이면 노란 게 떠. 그건 성하지 않은 거야.

옥돔은 잘 말려서 보관된 거, 요새는 냉동실에 보관되니까 안 그러지. 이제는 맹물로 해도 그런 현상은 안 일어나. 산패된 생선을 가져와서 요리하면 물에 넣으면 노랗게 뜨거든. 그러면 그 노란 거 걷어서 먹고, 그때는 미역하고 무 넣으면 맛 좋다고 막 먹었어. 요새는 옥돔국도 그냥 밋밋하게 끓이면 아이들은 잘 안 먹어. 나이 든 사람들은 맛있다고 먹고. 고춧가루나 고추장 들어야 먹고. 제주도 음식은 본래 고춧가루가 없어. 그러다보니 조금 넣는 척하고 안 놔서 먹고 이랬어. 요새는 그런 국 끓여도 고춧가루 넣고 먹을 사람 먹으라고 하지.

제주도 음식은 담백하고 만드는 것도 단순하고 그러다보니 음식이 주식부터가 보리 먹고 조 먹고 하다보니까 거칠어. 거친 음식을 씹다보니 체내에 들어가서 좋은 작용도 하고 제주도 음식은 ㅈ자연 음식이다 얘기할 수가 있어."

- 김지순

 

| 담백한  옥돔요리 |

 

어르신들은 마른 옥돔으로 가능한한 양념을 하지 않고 만드는 것을

제대로 된 옥돔요리라 말한다. 과거에는 제주 음식에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등 과한 양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담백한 요리였다는 것이다.

 

양하꽃

- 춘자에게

 

허영선

 

보거라 춘자야

단언컨대 이 에미

밥상 위에 그 향 한번 올린 적 없었다

쫑긋쫑긋 노란 애기똥풀 눈뜨는 사월

덤벙진 우영팟 연초록 차마 눈 못 뜨는구나

 

울지마라

마을은 혼수상태 그 순간

파릇파릇 양하의 집에 숨은 그 순간

그것이 네 여린 가슴 한번만 덮어주었더라면

조랑조랑 작은 두 개의 구덩이에

오늘같은 붉은 꽃 피우지 않았으리

양하꽃대 한사코 올라오는 우영팟

네 겁 질린 눈

에미 치마말기에 사근대던 숨소리

 

얼마나 조심했는지 몰라

어디 새 하나 기척 하나 없었지

바스락 댓잎소리 스치던 푸르딩딩 올레에

양하밭 폭폭폭 후비던 그날 이후

다신 밭을 옮길 수 없었다 춘자야

일곱 매듭 아직도 도리도리

돌리지 못한 에린 것아

에미 홀로 양하밭 틈새에서

한 톨 콩처럼 튕겨 나와

웅얼거리는 동박새 눈알같은 네 눈망울 찾앗다

봄눈의 양하 너른 이파리 속에서

네 한 다발 머리카락 찾앗다 그날 이후

서녁으론 다시 가지 않았다

- 중략

 

"3월 보름에서 4월 보름 사이에는 부녀자와 아이들은 간단한 그릇(차롱 등)을 들고 고사리를 꺾으러 들로 나간다. 이때 꺾어온 고사리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건져낸 후 그늘에서 말린다. 그러면 색깔이 까맣게 되며 실제 크기의 1/2 정도로 줄어드는데 이것을 보관해두었다가 제사 때 제물로 올린다. 제일이 되면 고사리를 물에 담가 불린다. 바싹 말려 두었던 고사리는 물을 먹으면 부드럽게 된다.

묘 위에 자란 고사리는 되도록이면 먹지 않으며, 제사에는 쓰지 않는다. 고사리를 빼지 않는 이유는 고사리가 돋아날 때 꺾고 또 꺾어도 아홉 차례나 재생한다고 해서 그처럼 자손이 번성되기를 바라는 뜻에서라고 한다."

-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도의 식생활》

 

 

 

제주도 육개장은 육지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색도 다르고 만드는 법도 다르다.

아직도 제주 음식점에는 전통 육개장을 만들어 파는 곳이 적지 않다.

그만큼 제주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고사리는 곶에서 날것으로 받았어. 삶지 않은 거. 그러면 거기서 꺾어서 팔고 쌀을 사서 애기 죽 해주고, 밥 해줬어.

고사린 볶았다가 죽도 쑤어 먹었어. 쌀을 놓고 쑤다가 고사리 쏨쏨 썰어서 놔. 국은 육개장이라고 맛 좋아. 그저 고사리해서 문질러놓고 가루 타서 놓으면 육개장 맛이야. 소고기나 돼지고기 놔야 육개장이지.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볶아 놓고, 전 지질 때에도 하나씩 놔.

글쎄 이건 말도 소도 안 먹어. 이상한 물건이아. 그런데 꼭 고사리나 한 가지 먹을 철 돌아와. 말 소 안 먹어. 전부 골라내. 그런데도 귀신을 대우하니 이상해.

- 한신화

 

"고사리 난도질 해서 그걸로 전 부치는 사람도 있어. 모슬포 사람은 그 고사리로 전을 잘 부치더라고. 전 부치는 걸 좋아했어. 다 지역마다 특수한 게 있어. 난 육개장이 가끔 좋아 뵈여."

- 김자량

 

"삶은 고사리를 절구에서 살짝 두들겨주면 줄기가 찢어지면서 부드러워진다. 다시 국물에 넣고 푹 끓이면, 고사리 전분이 나와서 국물이 걸쭉해지는데 여기에 메밀가루를 풀어 넣어서 더 걸쭉해지게 한다. 국간장으로 간을 한다. 봄철에 햇고사리로 끓이면 더욱 맛이 있고, 늦봄에 움터오는 양애순을 잘게 썰어 넣거나, 꿩마농(달래)을 썰어 넣으면 향기가 더욱 좋다.

-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도의 식생활》

 

"난 육개장을 잘해져. 제주도식 육개장이야. 가운데 (돼지) 뼈다귀해서 등뼈를 많이 넣고 달이다가 잘 씻어서 그걸 푹 고아. 오래 걸려. 맛도 좋아.

그거를 식히면 기름이 위에 떠. 그걸 깨끗이 걷어두고 다시 두 번째 고아. 푹하게 고아. 참기름 많이 들어가야 좋아. 그렇게 해서 이 고사리를 깨끗이 씻어서 압력솥에서 삶으면 잘 돼. 그걸 잘게 썰어서 얇게 그냥 갖은 양념 해. 양파를 갈아서 넣고 대파도 넣고 잔파도 넣고 파종류를 다 넣고, 마늘도 빚어 넣어. 간은 소금이나 조선간장 넣어.

옛날엔 기름 없는 고기로 했지. 큰일 땐 돼지고기 삶아낸 국물로 하고, 기름은 깨끗하게 걷어내야 해. 육개장 해서 노인당에도 가져가면 좋아해."

- 김화삼

 

| 고사리 |

 

최근 제주도 고사리가 맛있다는 유명세를 타면서

매해 5월 고사리 축제가 열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사리를 꺾으러 일부러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고사리 관광'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열세네 살 때에. 꿩마농 캐러 구덕 옆에 끼고 우리가 어린 때에도 그렇게 다 했어. 보진 못하면서 큰 마농 해 가면 그 꿩마농 내 꺼. 내 꺼니까 캐지말라고. 그렇게 하면 '아이고 꿩마농 신화 거라네. 어느 때 봤는지.' 그렇게 하면서 캤어. 그러면 한 구덕 캐지. 그거 해서 물에 가서 '묵은 복덕 벗으라, 새 복덕 입져주마. 묵은 복덕 벅으라. 새 복덕 입져주마.' 그거 잡아서 이렇게 해가면 궂인 건 빠져. 집이 와서 또 다듬아."

- 한신화

 

"꿩마농은 캐어다가 김치처럼 무쳐도 먹고, 달래는 국 끓여 먹고 데쳐 먹었지."

- 양오순

 

"꿩마농 소금물에 삼삼하게 절여서 오래오래 며칠이고 내버려. 그러다가 먹으면 맛 좋아. 소금 간 맞게 해서 돌 짝 지둘러. 향기가 그대로 있어. 그것만 건져 먹어봐. 음식은 정성껏 먹어야 해. 정성껏 만들고."

- 김화삼

 

| 사만이 |

 

모든 굿에서 액막이를 할 때 불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멩감본풀이를 보면 당시 노루와 꿩을 사냥하던 모습과 그 뭎속을 알 수 있다.

 

옛날 주년국 땅에 소사만이가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날 부인은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에게 주며 장에 가 팔아 아이들 먹을 쌀이나 사오라고 하였다.

사만이는 장에 가 머리를 팔아 석 냥을 받고 쌀을 사러 다니다가 조총을 하나 샀다. 이것으로 사냥을 하면 쌀도 나오고 돈도 나온다는 장사꾼의 말에 솔깃해서 사 온 것이다.

어느 날 사만이는 들판을 헤매다가 백년 해골을 발견하고, 이것이 자기 집안 조상이 아닌가 하여 집으로 모셔다가 위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사냥이 잘 되어 사만이는 금방 부자가 되었다.

사만이가 서른 세 살이 되던 해, 어느 밤 꿈에 백년 해골이 백발 노장으로 나타나서 액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저승 삼차사가 내려왔지만 사만이가 차려준 굿 정성까지 받고 나니 사만이를 잡아갈 수가 없었다.

삼차사는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가 '사만이 정명 삼십(三十)'이라 쓰여 있는 저승 문서의 열 십(十)자에 한 획을 비껴 그어 일 천(千)자를 만들어놓았다. 이리하여 사만이는 3천 년을 잘 살았다 한다.

 

"그자 눈 오라가면 옛날은 그 사농한다고 노리(노루) 잡아먹으려고. 곶에 가서 막아서 노리 넘어감직한데 코를 놓거든. 그렇게 해서 노리도 잡아 먹어. 코는 그때 당신 칡. 그 이상해. 칡이 이만큼 두껍거든. 그런데 그거에 들어가는데. 다른 것에 뭐 쇠줄같은 거는 가늘어서 놓은 줄 모르거든. 근데 쇠는 냄새가 나는지 안 들어. 해봤는데 쇠줄로는 안 들어. 칡이 제일 잘 들고 그후에는 신사라(신서란).

잡으면 반찬 해먹주. 옛날 노리 잡는 식은 혼자만 잡아먹다가는 뭐 소나 말이나 잡아 먹엇다고 해서 막 수군수군하거든. 그러니까 하나 잡으면 그 동네 다 갈라 먹어야 돼.

- 송두옥

 

"대개 '꿩사농'과 '노루사농'을 하고, 아이들은 오리나 참새 등을 덫(태기)을 놓아 잡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눈우읫사농'(적설기 사냥)이라고 하여, 동네에서 '사농패'를 모아 꿩과 노루 사냥을 했다.

주로 다랑쉬오름 근처, 돋오름이나 한 머을곶 등지가 좋은 사냥터였는데 사냥감도 풍부한 편이었다.

인원은 딱히 몇 명이라고 정해진 바가 없이 "오라, 사농가게" 하고 누군가 눈 온 날 아침 골목을 돌며 소리치면, 바지에 대님을 치고 '윤노리 막댕이' 하나씩 둘러메고 나왔는데, 개가 있는 집에서는 개를 데리고 나왔다.

사냥은 전적으로 남자의 모임이다. 사람이 모이면 그 자리에서 패장을 정하여 그날 할 사냥 전반의 지휘권을 맡긴다.

각자 역할이 분담되면 맡은 직책, 그러니까 망보는 이는 높은 동산을 찾아 오르고, '훈누는' 몰이꾼은 꿩이나 노루가 숨었음직한 덤불이던지 머들을 들쑤셔 짐승을 '훈누고' 잡은 짐승은 운반꾼이 져 나르게 된다.

그날 사냥에서 노획한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분배 양식에 의해서 나누게 되는데, 이를 분육, 혹은 분짓이라고 한다. 분육의 원칙은 나이든 어른에게 살코기를, 나이가 어린 순으로 차츰 살과 뼈의 비율이 뼈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 《평대리지》, 1990

 

"동네 사람들이 들에 사농가자 하면 짝 가는 거라. 개만 데려서 나가. 저기 서고 여기 서서 군인들 포위하듯이 다 남자들이 딱 서. 개는 가운데 한 몇 마리를 놔. 꿩은 풀밭에 앉아 잇으면 개가 흔들면서 그걸 물어오는 거라. '야, 느 앞이 보라. 느 앞이 보라. 저쪽으로 달아난다.' 그러니까 '느 앞이 보라. 느 앞이 보라' 했거든. 그런데 '느 아비 보라. 느 아비 보라'로 들리는 거라.

사람이 저만이 포위 선 사람한테 '느 앞이 간다' 하는 소리로 개가 꿩을 물어서 그쪽으로 가. 풀이 이렇게 많으니까 말 안 해주면 모르거든. 그러니까 '느 앞이 보라, 느 앞이 보라' 하는 거라. 그러면 나중에 들은 사람들은 '느 아비 보라'로 들은 거라.

그거 가져다가 생으로 해서 제사가 디면 숯불을 살려서 기름장 발라서 구워놓으면 맛이 있어. 또 제사가 멀리 있으면 그놈을 말려서 놔두었다가 쓰기도 해. 그날 제사 때 쓸 수도 있지. 제사 며칠 앞이 있다 하면 그놈을 잘 말려서 고지에 꿰어서 저건 제사에 쓸 거라고 하는 거지. 제삿날에 조금 찢어서 그것을 떡반을 하는 거라.그거 주워먹는다고 악, 맛ㄷ 좋아. 너무 좋아.

글더니 어느 날 시대가 바뀌어지니까 꿩고기 먹으면, 산신령 같은 거니까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될 수 있ㅇ면 먹지 않으려고 하는 거라. 또 국가에서도 꿩을 함부로 잡지 못하게 했어.

나 열 살 때 보고 들은 거라. 여자가 그런 데 가지도 안 하지만, 우리 하르바님네가 했던 오육십년 될 때 그거지. 이제는 시대가 당최 하지도 않지. 여럿이 가서 나눠 가져서 그날에 와서 잡아와서 소비시켜버리는 사람도 있고, 제사에 쓰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제사에 쓰지도 안 해."

- 오옥주

 

| 꿩 |

 

노린 내려갈 땐 하르바님 하르바님 하당 올라갈 땐

내 아들놈 내 아들놈 한다.

 

"이승만 시절에 먹어볼 거 없으면 4 · 3사건 난 후에 노루나 하러 가자 했어. 먹어볼 건 없으니까 이놈의 노리나 잡아다가 먹주 해서 코 오육백장 해서 산에 가. 올가미 해서 놔두면 잡아다가 먹어났어. 먹을 거 없으니까 산에 가서 나무 하고 숯 캐고 겨울내내 토굴 파서 그 굴속에서 나무해서 숯 묻어다가 제주시에 가서 팔아서 쌀 받아다가 먹었어."

 

"노루는 그대로 불고기도 해서 먹고 꿰어서도 먹고 삶아서도 먹어. 벗들하고 여러이 장난으로 갔주. 잘하면 하나 잡았어. 그러다가 산 노루도 앞에서 잡아지니까 한참 지어서도 오고, 잡아서 갈라서도 먹고. 이승만 시절이주."

- 강계화

 

"꿩엿은 몸이 막 허약할 때, 옛날은 폐 나쁜 사람 많았지. 폐 나쁜 사람은 바짝 마르지. 온몸이 기력이 없으면 꿩엿을 해서 그걸 먹여야 좋다고 해서 먹였어. 닭엿도 하고, 돼지고기도 엿 하고, 호박엿, 감자엿, 엿 안 하는 것이 없어. 촌에서는 우린 항시 할머니네가 엿을 해주면 떡을 먹을 때도 엿을 찍어 먹고, 설탕이 없을 때니까. 집에서도 얼마든지 엿을 할 수 있어. 보리 갈아서 보리로 엿기름 기르지. 엿기름 길러놨다가 엿기름에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몸에 좋다하는 것은 했어."

- 오옥주

 

일제강점기에 제주도를 현지조사한 이즈미 세이치의 기록에도 가죽옷이 등장합니다.

 

"제주도 풍속의 하나로 누구나 빠뜨리지 않고 거론하는 가죽옷은 개, 너구리, 노루 가죽으로 만든다. 그 당시(1900년 경)도 섬 전체에서 널리 볼 수 잇었던 수렵은 대부분은 겨울 농한기를 이용한 사냥으로, 고기를 얻기보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한 가죽을 얻을 목적으로 행해졌다."

 

제주에는 노루가 많습니다. 천적이 없는 조건에서 노루가 좋아하는 한라개승마, 제주황기, 사철나무, 송악, 마삭줄, 동백나무가 지천이라 노루에게는 천국입니다. 사냥풍습이 사라진 조건에서도 사냥 흔적은 생활 곳곳에 남았습니다.

- 제주대박물관, 《제주의 땅》

 

 

 

 

 

posted by 황영찬
2017. 9. 27. 13:12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3  이 개만도 못한 버러지들아

 

 

 

정약용 지음 | 노만수 엮어옮

2013, 앨피

 

진로도서관

SJ001413

 

151.58099

정63ㅇ

 

다산 정약용 , 조선을 고발하다

 

"몽둥이로 때리고 욕설로 꾸짖는 것보다 아프고 쓰라리다.

말하는 자가 무슨 죄이랴? 듣는 자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가환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한 다산진면목 茶山眞面目

 

다산에 대한 수식어는 매우梅雨의 빗방울 수만큼이나 많다. 실학자, 서정시인, 경세가, 의약학자, 언어학자, 행정가, 논변가, 과학자, 지리학자……. 이처럼 다방면에서 뛰어난 활약상을 남긴 다산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렌즈가 바로 '참여파 작가' 다산이다.

높은 벼슬아치 신분에서 죄인으로 추락한 18년간의 유배 기간 동안, 다산은 수많은 시와 소설, 논설, 편지, 실학서를 써서 조선의 사회적 · 정치적 · 제도적 문제들을 고발하고 풍자하고 비판하며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찾으려고 애썼다. 다산의 문학관은 다음의 한 마디로 요약된다.

"문학을 숭상하는 일은 백성을 아끼는 마음과 같아야 한다."

이 책에는 사회 현실을 냉정하게 꿰뚫어 보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강자에겐 거침없고 약자에겐 한없이 다정한 진짜 '실천적 지식인' 정약용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다산의 글에는 조선 후기 봉건적 병폐로 피폐해진 백성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지배층 양반 관료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이 담겨 있다.

 

엮어옮긴이 노만수

성균관대 정치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기자 재직 하다, 일본에서 수학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과학기술대학과 북경대학교에서 수학햇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으며,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학 시절 연작시 <중세의 가을>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옮긴 책으로 《쟁경爭經》《불혹의 문장들》《논어와 주판》《사마천 사기史記》《정조正祖의 사기영선史記英選》《헤이안(平安) 일본》《언지록言志錄》, 소설 《섬》 등이 있다.

 

가로로 보면 산마루, 옆에서 보면 산봉우리                       橫看成嶺側成峰

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저마다 다르네         遠近高低各不同

여산의 참모습 알 수 없는 까닭은,                                    不識廬山眞面目

오로지 몸이 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네                               只緣身在此山中

- 소동파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200년 전 그대는 / 한 왕조의 치욕으로 태어나 / 조선의 자랑으로 살아 있습니다. / 가슴속 핏속에 살아 흘리고 있습니다. / 귀양살이 18년 혹한속에서도 그대는 / 만 권의 책 담으로 쌓아 놓고 고금동서를 두루두루 살피셨습니다. / 그 위에 다시 압권壓卷을 올려 / 한 시대의 거봉으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 나라 걱정 백성 사랑 꿈엔들 / 한시라도 잊으신 적 잇었으리오마는 / 때로는 탁한 세상 하 답답하여 / 탐진강 강물에 붓대를 히저었습니다. / 애절양哀絶陽이여 애절양이여, / 그러나 어떤가요 긓 200년 지금은 / 여전히 농민은 토지로 밭을 삼아 땀 쏟아 일구고 / 여전히 벼슬아치는 백성을 밭을 삼아 등짝을 벗겨먹고 있으니…… / 아, 다산이여 다산이여 / 그대 어둔 밤 조국의 별로 빛나지 않는다면 / 내 심사 이 밤에 얼마나 황량하리요 / 어느 세월 밝은 세상 있어 그대 전론을 펵 / 주린 백성 토지 위에 살찌게 하리요.                                                      - 김남주 <전론田論을 읽으며>

 

본성과 도道의 본체를 참으로 잘 알아서 줄기와 가지를 조리 있게 분석하고 다스린 것은 《맹자孟子》이다.

- 다산 <오학론五學論>

 

차  례

 

머리말 "나는 조선의 리얼리스트다"

 

1 가난한 선비가 자랑인가

   무릇 '사실'에 주목하라

   책 만 권 읽었다고 어찌 배부르랴

 

   선비도 먹고 사는 수단을 경영하라

 

2 나라의 안위는 경제에 달렸거늘

   자지 잘라 슬프구나

   저 종놈을 내쫓아라

   홀아비 과부가 도리어 부럽구나

   <전론田論> : 다 같이 잘사는 길

   파리야, 배 터지게 먹어 보아라

   당나라 징세법처럼 현물 세금만 늘어나네

   동백기름은 어디에 쓰려고

 

3 저잣 거리에서 건져 올린 지혜

   주머니 속에 갇힌 듯 궁벽하구나

   주자가 그러한 적이 있는가?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

   네 이 개만도 못한 버러지들아!

   얼마나 열렬하고 어진 아낙네인가

   주막집 할머니가 일깨운 지혜

   박겨포 앞에서 활이나 익히라고 꾸짖는대서야

   노예가 된 마음이 아니로세

 

4 세상이 이다지도 공평하지 못한가

   자식 팔려 가고 송아지마저 끌고 가네

   너는 꼭 살아 돌아가 원수를 갚으라

   아무개는 내 손에 죽지 않았소

   과거가 조선을 망친다

   귀족 자제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뱀 대가리를 쳐서 죽여라

   횃대에 걸린 치마도 없다

   조정은 백성의 심장이요

   "아빠는 집을 나가고, 엄마는…"

   큰 도적을 잡아야 백성이 산다

   아전 술 한 잔에 환자還子가 석 섬

   한 자리를 오래 꿰차고 있지 못하도록 하라

   욕심쟁이 신선도 있는가?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용을 잡아?

 

5 산하는 옹색한데 당파 싸움 드세네

   서로 싸운 지 200년, 조선 당쟁사

   당쟁 그치고 화합하세

   큰 고래 죽이려 온갖 꾀를 짜낸다네

   전라도에 대한 물음에 답하다

   신분과 지역 차별을 없애십시오!

   살쾡이 대신 사냥개를 부르리

   서시는 눈살을 찌푸려도 예쁘지만

   중국 간다고 건들거리지 말라

 

6 모두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다

   예법에 매여 병자를 모른 체한다면

   세상을 깨우치고 건강을 지키려는 조그만 뜻

   "드디어 천연두 약이 완성되었네"

   임금을 살리려 달려갔지만

   지체 높은 자보다 가난한 자 먼저

 

7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말라

   바른말 하는 자는 천금을 주고도 못 얻는다

   술자리에서 벼슬아치를 감별하는 법

   "정약용의 판단이 옳다"

   프로파일러 사또 정약용

 

8 오로지 너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

   내 딸 '호뚱이'를 가슴에 묻고

   나는 죽는 것이 나은데도…

   부디 어머니 곁을 떠나지 마라

   오로지 정情대로 할 뿐

   형제이자 지기였던 둘째 형님!

   그와 같은 세상에 같은 형제가 되어

 

9 돈을 간직하는 최고의 방법은 나눔이다

   남을 먼저 도운 적이 있느냐

   생계가 먼저고 공부는 그 다음이다

   논밭을 물려주는 일이 믿을 만한가?

   베풀되 거져 주지 말라

 

10 시대를 아파하고 격분하라 _ 다산의 시론과 문장론

   시를 쓰려면 먼저 뜻을 세우라

   미묘하고 완곡하게 드러내라

   문장의 길은 곧 사람의 길

   고전을 닦으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부록> 다산약전茶山略傳 : 조선의 실천적 지성인이자 통합학문 백세사百世師

 

변상벽卞尙壁이 변고양이로 불리는 까닭은    卞以卞貓稱

고양이 잘 그려 사방에 이름났기 때문이네     畫貓名四達

이제 또다시 병아리 거느린 닭 그리어            今復繪鷄雛

마리마다 솜털이 살아 있는 듯하네                 箇箇毫毛活

어미닭 까닭 없이 성내니                               母鷄無故怒

낯빛 붉으락푸르락 사납고 매섭다네               顏色猛峭嶻

(중략)

형형색색 세밀하여 진짜 닭이랑 거의 같고       形形細逼眞

출렁이는 기운 또한 막을 수 없네                    滔滔氣莫遏

듣자하니 그림 갓 새로 그렸을 때                    傳聞新繪時

수탉이 잘못 보고 야단법석 떨었다네               雄鷄誤喧聒

또한 변고양이가 그린 오원도는                       亦其烏圓圖

뭇 쥐들을 을러 겁먹게 하였다네                      可以群鼠愒

뛰어난 예술이 더 나아가 여기에 이르니            絶藝乃至斯

쓰다듬고 어루만져도 흥미가 줄어들지 않네       摩挲意未割

엉성한 솜씨 지닌 화가는 산수화 그린다며          麤師畫山水

어지러이 붓 놀려 손시늉만 활개친다네               狼藉手勢闊

- <변상벽의 '모계령자도'에 부치다(題卞尙壁母계領子圖)>. 1827년경

 

궂은 장맛비 열흘 만에 오솔길 끊기고                                          苦雨一旬徑路滅

성안 후미진 골목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졌네                                城中僻巷煙火絶

내가 성균관에서 글 읽다가 집으로 돌아와                                     我從太學歸視家

문안으로 들어서니 시끌시끌한 소리 왁자지껄하네                         入門譁然有饒舌

듣자하니 항아리 텅 비어 끼니거리 떨어진 지 며칠째이고                聞說罌空已數日

호박 팔아 허기진 배에 먹을거리 마실거리 채웠다 하네                   南瓜鬻取充哺歠

어린 호박 다 땄으니 마땅히 어찌할꼬?                                           早瓜摘盡當奈何

늦게 핀 호박꽃 아직 채 떨어지지 않아 열매 맺지 않았네                  晚花未落子未結

이웃집 남새밭 항아리마냥 큰 호박 보고                                         鄰圃瓜肥大如瓨

어린 계집종이 좀도둑처럼 살그머니 훔쳐 왔다네                            小婢潛窺行鼠竊

돌아와 여주인에게 온몸 온 마음 바치려다 되레 야단만 맞고            歸來效忠反逢怒

누가 네게 훔치라고 가르쳤냐며 회초리 꾸중 호되다네                     孰敎汝竊箠罵切

어허, 죄 없는 아이 당분간 꾸짖지 마오!                                          嗚呼無罪且莫嗔

내가 이 호박 먹을테니 더 이상 잔소릴랑 하지 마소!                         我喫此瓜休再說

내가 남새밭 주인장에게 떳떳하게 알리고 비는 게 낫지!                    爲我磊落告圃翁

오릉중자 작은 청렴 나에겐 하찮다오.                                              於陵小廉吾不屑

때 만나면 원대한 포부 새 날개처럼 날아오를 터……                         會有會風吹羽翮

그렇지 않으면 금광이라도 파 목구멍 포도청 지켜야지                      不然去鑿生金穴

책 만 권 읽었다고 아내 어찌 배부르랴                                             破書萬卷妻何飽

밭 두 뙈기만 있어도 계집종 참말로 깨끗할걸!                                  有田二頃婢乃潔

- <남과탄南瓜歎>, 1784

 

갈밭마을 젊은 아낙네 기나긴 울음소리                                             蘆田少婦哭聲長

고을 관아문 향해 울다 푸른 하늘 보고 부르짖네                                哭向縣門號穹蒼

수자리 살러 간 지아비 아직 못 돌아온 일은 있어도                            夫征不復尙可有

옛날부터 사내가 자지를 잘랐다는 말 들어 보질 못했네                      自古未聞男絶陽

시아버지 상복 이미 입었고                                                              舅喪已縞兒未澡

갓난애는 배냇물도 안 말랐거늘                                                       

시아버지 지아비 갓난애 이름이 죄다 군보에 올랐네                           三代名簽在軍保             

야박스런 말에 달려가 하소연해도 문지기가                                       薄言往愬虎守閽

호랑이처럼 가로막고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 끌고 가네                                             里正咆哮牛去早

지아비 칼을 갈아 방에 드니 삿자리에 붉은 피 가득하고                       磨刀入房血滿席

아이 낳아 어처구니없는 재앙 만났으니 스스로를 원망하네                   自恨生兒遭窘厄

누에 치는 잠실에서 함부로 자지 잘린 사마천에게                                蠶室淫刑豈有辜

어찌 죄가 있었으랴

내시로 출세하고자 거세한 민閩 땅 자식들도                                       閩囝去勢良亦慽

참으로 서럽다네

자식 낳고 사는 거야 하늘이 내린 순리이고                                         生生之理天所予

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 되는 법이라네                                    乾道成男坤道女

불깐 말 불깐 돼지조차도 슬프다 말하거늘                                          騸馬豶豕猶云悲

하물며 입에 풀칠하기 바쁜 무지렁이들이야                                        況乃生民思繼序

대를 잇는 은혜를 입은들 무엇하리오

부자들은 한 해 내내 가야금 풍악이나 즐기면서                                   豪家終世奏管弦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지 않네                                                      粒米寸帛無所損

우리 모두 한결같이 어린 백성이거늘                                                   均吾赤子何厚薄

어찌 이리 불공평한가?

쓸쓸한 나그네 방에서 <시구> 편을 되풀이로 외우네                             客窓重誦鳲鳩篇

- <애절양哀絶陽>, 1803

 

■ 한국 다도의 중흥조로 꼽히는 초의 선사가 그린 <다산초당도茶山草堂圖>(1812). 초의는 다산이 아끼는 제자였다.

 

옛날에 성현들이 어진 정치 베풀 때는                                           聖賢施仁政

늘 홀아비와 과부 먼저 불쌍히 여겨 돌보라 말했다지만                   常言鰥寡悲

이젠 홀아비와 과부가 참말로 부럽기만 하누나                               鰥寡眞足羨

굶어도 자기 한 몸만 굶으면 그만 아닌가!                                       飢亦是己飢

(중략)

엄숙하고 점잖은 조정의 어진 벼슬아치들이여!                                肅肅廊廟賢

나라의 안위는 경제에 달렸거늘                                                      經濟仗安危

도탄에 빠진 백성 목숨                                                                   生靈在塗炭

나리들 아니면 그 누가 구제하랴?                                                    拯拔非公誰

(중략)

간사한 소인배는 거짓말 서슴지 않고                                                奸民好詐言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 선비들,                                                          迂儒多憂時

시절이 수상타 근심하는 말이라곤

오곡이 풍성하여 흙인 양 지천인데도                                                 五穀且如土

 

농사에 게으르니 스스로 무진장 굶주리는 게 마땅하다 하네!                惰農自乏貲

- <기민시飢民詩>, 1795

 

탐관오리 단속한다는 소리도 거짓말일 뿐                                            檢發徒虛語

마침내 멀리 떠나는 유랑민 신세라네                                                   流亡遂遠蹤

한나라 조정 때 같은 진휼은 없고                                                         漢廷無賑貸

당나라 징세법처럼 현물 세금만 늘어나네                                             唐稅疊調庸

탈세자 잡느라 이웃 마을까지 떠들썩하고                                              逮捕騷鄰里

먼 친척에게까지 밀린 세금 빚을 물리네                                                 徵逋及遠宗

감사의 영令 깃발 펄럭여 촌사람들 화들짝 놀라게 하니                           令旗驚獵獵

둥둥 농사 굿하는 북소리마저 멎었다네                                                  賽鼓閴鼕鼕

제멋대로 까부는 비장의 횡포 아니고                                                      裨將非專輒

제 몸을 살찌우는 감사의 책임이라네                                                      監司乃自封

- <맹화와 요신, 곧 오국진 · 권기 두 벗이 공주 창곡의 부패한 행정으로 인해

백성들이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실태를 극구 말하기에

그 말을 내용으로 장편 삼십 운을 짓다[孟華堯臣, 卽吳權二友,

盛言公州倉穀爲弊政, 民不聊生, 試述其言, 爲長篇三十韻]>, 1795

 

 1

새로 짠 무명베 눈결같이 고와 애지중지하였건만                              棉布新治雪樣鮮

이방에게 바칠 돈이라고 졸개 놈이 빼앗아 가네                                 黃頭來博吏房錢

누전漏田 세금까지 별똥별 불꽃처럼 다그쳐                                       漏田督稅如星火

삼월하고 중순이면 조세 실을 배를 띄운다네                                       三月中旬道發船

 

2

완도 황옻칠 유리처럼 맑고 깨끗하여                                                  莞洲黃㯃瀅琉璃

온 천하에 이 나무 진기하다 소문났네                                                 天下皆聞此樹奇

지난해 임금님께서 옻칠 공납 면제했더니                                            聖旨前年蠲貢額

봄바람에 베어 낸 그루터기에 가지 또 났다네                                       春風髠枿又生枝

 

3

전복이야, 옛날부터 차츰차츰 조정에서도 즐겼지만                                自古漸臺嗜鰒魚

동백기름이 창자 씻어 낸단 말 헛말이 아니로세                                      山茶濯䐈語非虛

고을 안 구실아치 들창문 방에는                                                            城中小吏房櫳內

규장각 학사들이 억수로 보낸 서찰이 두루 꽂혀 있네                               徧揷奎瀛學士書

- <탐진촌요15수耽津村謠十五首> 중에서, 1802

 

스무 살 무렵 임금님 계시는 서울에서 노닐 때                                               弱歲游王京

벗 사귀는 수준이 비루하지 않았네                                                                結交不自卑

속물기 벗은 운치만 있으면                                                                           但有拔俗韻

이걸로 속마음까지 넉넉히 통하였네                                                               斯足通心期

힘을 합하여 공자 학풍의 도로 돌아가                                                             戮力返洙泗

세상 주름잡는 학문 따윌랑은 다시 묻질 않았네                                               不復問時宜

예의는 비록 잠시나마 새로웠으나                                                                   禮義雖暫新

허물과 후회 또한 이로부터 생겨났다네                                                            尤悔亦由玆

지닌 뜻 굳세고 참되지 않다면                                                                         秉志不堅確

이 길 어찌 순탄만 하랴?                                                                                 此路寧坦夷

늘 두렵구나, 가는 도중 뜻이 변해                                                                    常恐中途改

언제까지나 뭇사람 비웃음거리나 되지 않을지                                                  永爲衆所嗤

 

아, 우리나라 사람들이여!                                                                                嗟哉我邦人

주머니 속에 갇힌 듯 궁벽하구나                                                                      辟如處囊中

세 방향 둥근 바다로 에워싸였고                                                                      三方繞圓海

북방은 높고 큰 산이 주름져 있네                                                                      北方縐高崧

온몸 늘 구불구불 움츠려 펴지 못하니                                                                四體常拳曲

뜻과 기상인들 어찌 가득 채울 수 있으랴?                                                          氣志何由充

성현은 만 리 밖에 있거늘                                                                                  聖賢在萬里

누가 이 몽매함을 깨우쳐 줄 수 있으려나?                                                           誰能豁此蒙

고개 들어 온 누리 쳐다보아도                                                                            擧頭望人間

어스레한 눈동자 흐리멍덩한 정신만 뚜렷이 보이네                                              見鮮情曈曨

남의 것 사모하고 따라하느라 촐랑촐랑하다                                                         汲汲爲慕傚

훌륭한 기술을 미처 배울 겨를이 없네                                                                  未暇揀精工

뭇 바보들이 한 머저리를 치켜세우고                                                                   衆愚捧一癡

입 딱 벌리고 다 함께 무작정 받들자 하네                                                                 唅令共崇

단군 임금 세상보다 못한 게 아닌가?                                                                     未若檀君世

절박한 옛 풍속을 지녔던 그 시절보다!                                                                   質朴有古風

- <술지述志>, 1782

 

노나라 할아버지 공자가 이 도道를 가르치면서도                                                   魯叟講斯道

그 절반이 임금의 정치 문제였다네                                                                        王政居其半

송나라 늙은이 주희가 여러 차례 올린 상소문도                                                      晦翁屢抗章

온통 조정의 방침을 논술하였다네                                                                          所論皆廟算

지금 선비들은 공리공담만 좋아하지                                                                       今儒喜談理

나라 정책과는 얼음과 숯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네                                                     政術若氷炭

깊이 숨어 감히 밖에 못 나서거니                                                                            深居不敢出

한 번 나올 참이면 남의 노리갯감 꼴이라네                                                              一出爲人玩

마침내 거짓되고 경박한 벼슬아치들로 하여금                                                          遂令浮薄人

나랏일 깔보고 거칠게 다루게 하네                                                                           淩厲任公幹

- <고시27수古詩二十七首> 중 24번째 수, 1801

 

(전략)

떠날 때 갖옷 거지에게 벗어 주고                                                                        去時綿裘施行丐

바꿔 입은 망가진 옷 남루하여 성한 곳 하나 없네                                            換着敗衣襤褸無完縫

(중략)

노래 끝나면 화선지 찾아 붓에 먹물 담뿍 묻혀                                                歌竟索紙蘸筆爲墨畫

묵화 치는데

가파른 봉우리 성난 바위 콸콸 솟는 샘물                                                 畫出峭峰怒石急泉與古松

늙은 소나무 그리네

번개 소리 우레 소리 벼락 소리 어둡고 음산한 풍경이며                                        震霆霹靂黑陰慘

얼음 눈 상고대 성엣장과 달 밝고 산기운 자욱한                                                   氷雪淞凘皎巃嵸

우뚝한 산이라네

더러는 늙은 등나무 괴상한 덩굴                                                                   或畫壽藤怪蔓相紏綰

서로 얽힌 모양 그리고

더러는 재빠른 송골매와 사나운 보라매                                                          或畫快鶻俊鷹相撞摐

싸우는 광경 그리고

더러는 하늘 날며 구름 쫓아 노니는 신선도 그리는데                                      或畫游仙躡空放雲氣

꽃무더기 수풀처럼 무성한 수염 눈썹 머리카락이                                                  須眉葩髿森欲衝

용솟음치고

더러는 오뚝이 앉아 가려운 등 긁는 궁색한 스님의                                         或畫窮僧兀坐搔背癢

상어 뺨 원숭이 어깨 비뚤어진 입                                                            鯊腮玃肩喎脣盍睫酸態濃

속눈썹이 눈을 덮은 초라한 몰골도 그리고

더러는 용 귀신 불 뿜으며 뱀과 싸우는                                                           或畫龍鬼噴火鬪蛇怪

괴이한 풍경 그리다가

요사한 두꺼비가 달을 파먹어                                                                        或畫妖蟇蝕月侵兔舂

토끼 방아 못 찧는 광경도 그리네

팔이 잘린대도 부녀자는 그리려 하지 않고                                                            斷捥不肯畫婦女

모란꽃 작약꽃 붉은 연꽃도 그리지 않네                                                         與畫牧丹勺藥紅芙蓉

또 그림 팔아 술빚 기꺼이 갚지마는                                                                      亦肯賣畫當酒債

하루치만 벌어 그날에 맞게 써 버리네                                                                  一日但酬一日傭

늘 성과 이름 관아에 알려질까 두려워                                                                  常恐姓名到官府

고하고 싶은 자 있으면                                                                           有欲告者怒氣勃勃如劍鋒

노기가 칼날처럼 시퍼렇다네

- <천용님을 위한 노래天慵子歌>

 

계루고鷄婁鼓(작은북) 소리 맞춰 풍악이 울리니

둘러싼 자리가 가을 물처럼 고요하네

진주성 여인 꽃 같은 얼굴에

무사 옷으로 단장하니 영락없는 대장부로세

(중략)

쨍그렁 칼 던지고 사뿐히 돌아서니

호리호리한 허리는 처음 모습 그대로네

서라벌 여악女樂은 우리나라 으뜸으로

황창무黃昌舞 옛 곡조 지금까지 전해 오네

백 사람이 칼춤 배워 겨우 하나 이룩할 뿐

살찐 몸매 처진 볼 둔한 자는 못 춘다네

너 지금 꽃다운 나이 기예가 절묘하니

옛날 이른바 낭자 협객 논개를 이제야 보는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 너로 인해 애태웠나

이미 미친바람 장막 안에 몰아치네

- <무검편증미인舞劍篇贈美人>, 1780

 

(전략)

벌레들도 스스로를 힘껏 지키려                                                                        昆蟲盡自衛

발톱 어금니 발굽 뿔 독 두루두루이거늘                                                            爪牙蹄角毒

태평한 때랍시고 병사 다루는 일 내팽개쳤다가                                                   時平不講兵

외적 쳐들어오면 옴짝달싹 못하고 무너지고 마네                                                寇來任隳觸

진짜 장군은 송골매와 같아서                                                                            名將如蒼鷹

용맹하고 날쌔게 멀리 날며 눈동자도 촛불처럼 빛난다네                                      驍邁眸如燭

편안해서 뚱뚱한 사내가 갑작스레 전쟁터에 나가면                                             胖夫輒登壇

지장智將이 복장福將만 못하다고 뇌까리네                                                         云智不如福

요즈음 홍이紅夷(서양인)들 박격포란 걸 들으니                                                   近聞紅夷礮

새로이 만들어 더더욱 무섬 탄다네                                                                      創制更殘酷

앉아서 옛날 옛적 풍속이나 지키면서                                                                   坐守太古風

활 화살 따위나 익히라고 꾸짖는대서야……                                                          弓箭有課督

- <고시27수古詩二十七首> 중 27번째 수

 

새로 거른 막걸리 젖처럼 뽀얗고                                                                      新篘濁酒如湩白

큰 사발 보리밥 높이가 한 척이로세                                                                  大碗麥飯高一尺

밥 먹자 도리깨 들고 타작마당 둘러서니                                                            飯罷取耞登場立

두 어깨 검게 그을린 살 붉은 햇빛에 번들거리네                                                雙肩漆澤翻日赤

응헤야, 소리 내며 나란히 발 들어 두들겨 패니                                                  呼邪作聲擧趾齊

잠깐 사이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 널리네                                                      須臾麥穗都狼藉

서로 주고받는 노동요 곡조 갈수록 높아지고                                                     雜歌互答聲轉高

오로지 처마까지 흩날리는 보릿대 가루만 보이네                                               但見屋角紛飛麥

그 낯빛 살펴보니 즐겁고도 즐거워라                                                                觀其氣色樂莫樂

몸뚱어리 노예가 된 마음이 전혀 아니로세                                                         了不以心爲形役

낙원과 낙교는 멀리 있지 않거늘                                                                       樂園樂郊不遠有

무엇이 안타까워 속세간 나그네로 헤매리오!                                                      何苦去作風塵客

- <보리타작打麥行>, 1801

 

1

임금님이 논밭 가지고 있는 것은                                                                   後王有土田

가령 부잣집 영감 같네                                                                                 譬如富家翁

영감님 논밭 백 이랑이고                                                                              翁有田百頃

아들 열 제각기 따로 분가해 산다면                                                               十男各異宮

마땅히 한 집에 열 이랑씩 주어                                                                      應須家十頃

굶주리거나 배부른 형편을 같게 해야 한다네                                                   飢飽使之同

약삭빠른 아들 팔구십 이랑을 삼켜 버리면                                                       黠男呑八九

못난 자식 곳간 늘 비기 마련이네                                                                    痴男庫常空

약삭빠른 아들 고운 비단옷 입을 때                                                                 黠男粲錦服

못난 자식 절름절름 병나서 고생이라네                                                            癡男苦尫癃

영감님 눈으로 만일 그 꼴 좀 볼 성치면                                                            翁眼苟一盻

불쌍히 여기어 슬퍼하고 그 마음 쓰려야 하거늘                                                惻怛酸其衷

내버려만 둔 채, 몸소 다스리지 않으니                                                             任之不整理

못난 자식들만 서쪽 동쪽 이리저리 떠돈다네                                                    宛轉流西東

뼈와 살을 똑같이 받았건만                                                                             骨肉均所受

자혜로움이 어찌 이다지도 불골평하단 말인가                                                  慈惠何不公

큰 줄기 이미 무너져 쓸모없기에                                                                      大綱旣隳圮

온갖 일이 꽉 막혀 통하지 않는 거라네                                                              萬事窒不通

한밤중 책상을 치고 일어나                                                                              中夜拍案起

활꼴처럼 굽은 높은 하늘 우러르며 한숨짓네                                                      歎息瞻高穹

 

2

셀 수 없이 많은 검은 맨머리들이란                                                                   芸芸首黔者

모두 똑같이 우리나라 백성이라네                                                                     均爲邦之民

만일 마땅히 세금 거둘 셈이면                                                                           苟宜有徵斂

부자들에게 거두어야 옳구나                                                                             哿矣是富人

함부로 벗기고 베어 내는 정치를                                                                        胡爲剝割政

왜 품 팔아 빌어먹고 사는 무리에게만 치우쳐 하는가?                                         偏於傭丏倫

군보는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軍保是何名

극도로 모진 횡포를 부린단 말인가                                                                    作法殊不仁

한 해 내내 힘들여 일해도                                                                                  終年力作苦

이미 제 몸 하나 가릴 옷 없고                                                                             曾莫庇其身

뱃속에서 갓 태어난 젖내 나는 어린 목숨도                                                         黃口出胚胎

죽어 백골이 되고 흙먼지가 된 목숨도                                                                 白骨成灰塵

여전히 몸에 요역이 따라다니니                                                                          猶然身有徭

곳곳마다 가을 하늘 우러러 울부짖고                                                                   處處號秋旻

원통하고 혹독해 자지까지 잘라 버릴 지경이니                                                     冤酷至絶陽

이 얼마나 비참학 슬프고 쓰라린 일인가!                                                              此事良悲辛

호포도 오랫동안 의논한 끝에                                                                              户布久有議

자못 고르게 하자는 뜻을 세웠거늘                                                                       立意差停勻

옛날에 평양 감영에서                                                                                          往歲平壤司

겨우 몇 십 일 동안만 시험하다 그만두었네                                                            薄試纔數旬

만인이 산에 올라 통곡하노니                                                                               萬人登山哭

어찌 임금이 조칙을 펼칠 수 있으랴                                                                      何得布絲綸

먼 곳 바로잡으려면 반드시 가까이서부터 바로잡고                                               格遠必自邇

낯선 사람 다스리려면 반드시 친한 사람부터 다스려야지                                        制疏必自親

어찌하여 고삐와 굴레를 가지고서                                                                        如何羈馽具

야생마부터 먼저 길들이려 하는가?                                                                      先就野馬馴

끓는 물을 퍼내어 다시 붓고 끓는 것을 막는 꼴이라니                                            探湯乃由沸

꾀를 어찌 펼 수 있으랴?                                                                                      計謀那得伸

서도西道 백성들 오랜 세얼 버림받고 억눌리어                                                      西民久掩抑

열 대 동안 벼슬아치 되는 길 막혀 버렸네                                                              十世閡簪紳

겉으로냐 비록 공손한 체할망정                                                                            外貌雖愿恭

뱃속 늘 수레바퀴마냥 꼬여 있다네                                                                        腹中常輪囷

칠치漆齒(왜적)들 옛날에 나라 삼켰을 때                                                               漆齒昔食國

의병들 곳곳에서 일어나 말달리며 싸웠지만                                                           義兵起踆踆

서도 백성들 홀로 팔짱 끼고 수수방관한 것은                                                         西民獨袖手

참으로 까닭이 있음을 돌이켜 헤아려야만 하네                                                       得反諒有因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拊念腸內沸

술이나 진탕 마시고 참마음이나 되찾으려네                                                           痛飮求反眞

 

3

농사 짓는 자는 반드시 곡식 비축하여                                                                    耕者必蓄食

세 해 농사지으면 한 해 치를 쌓아 두고                                                                  三年蓄一年

구 년이면 삼 년 치를 모아 두어                                                                             九年蓄三年

흉년 들면 곡식 나누어 주며 하늘을 돕는다네                                                          檢發以相天

한번 사창이 문란해지자                                                                                        社倉一濫觴

만 목숨이 잇달아 넘어져 슬피 우는구나                                                                  萬命哀顚連

빌려주고 빌리는 건 모름지기 양쪽 다 원해야 하거늘                                                債貸須兩願

고집스럽게 이를 강요하면 불편할 뿐이네                                                                强之斯不便

온 나라 온 사람이 절레절레 도리머리 치고                                                              率土皆掉頭

단 한 사람도 군침 흘리는 자 없다네                                                                        一夫無流涎

봄철에 벌레 먹은 곡식 한 말 받고                                                                            春蠱受一斗

가을에 방아 찧고 난 쌀 두 말을 다 바쳐야 하네                                                         秋糳二斗全

하물며 좀먹은 쌀값을 돈으로 내라 하니                                                                   況以錢代蠱

어찌 방아 찧어 좋은 쌀 팔아 돈을 안 바치겠는가!                                                     豈非賣糳錢

남는 이문은 간사하고 음흉한 벼슬아치만 살찌우고                                                   贏餘肥奸猾

벼슬자리 하나에 밭이 천 이랑 생기거늘                                                                   一宦千頃田

쓰라린 고초만 아랫자리 민초들에게 돌아가니                                                           楚毒歸圭蓽

긁어 가고 벗겨 가고 걸핏하면 매타작이라네                                                              割剝紛箠鞭

부엌칼 가마솥 이미 깡그리 가져가고                                                                         銼鍋旣盡出

자식 팔려 가고 송아지마저 끌고 가네                                                                        孥粥犢亦牽

군량미 쌓아 놓는단 군소리나 하지 말라                                                                     休言備軍儲

이 말이 헛되이 둘러대어 꾸민 거짓말이로다!                                                             此語徒諞諓

섣달그뭄 가까우면 곳간 닫아걸고                                                                             封庫逼歲除

새봄도 오기 전에 곳간이 바닥나니                                                                            傾囷在春前

곡식 쌓아 둔 기간은 겨우 두어 달뿐이고                                                                   庤稸僅數月

한 해 내내 곳집은 텅텅 비어 있는 꼴이지                                                                  通歲常枵然

군사 일으키는 일은 본래 때가 없거늘                                                                        軍興本無時

하필 한때만 우연찮게 탈 없으랴?                                                                              何必巧無愆

군량을 농가에 대준다는 말도 말라                                                                            休言給農饟

자애 베푸는 척도 지나치게 부지런해 고통이네                                                           慈念太勤宣

아들딸 이미 제각기 살림났으면                                                                                 兒女旣析產

부모도 자식들 뜻대로 맡겨 두거늘                                                                            父母許自專

헤프거나 아끼거나 자기들 맘에 맡겨 둬야지                                                              靡嗇各任性

멀건 죽 쑤어라 된 죽 쑤어라, 무얼 하러 참견하랴?                                                     何得察粥饘

무릇 자식 부부끼리 의논해서 하는 대로 내버려 둬야지                                               願從夫婦議

지나친 부모 사랑 바라지도 않는다네                                                                         不願父母憐

상평은 본래 좋은 법이었건만                                                                                    常平法本美

아무런 까닭 없이 버림 받았네                                                                                   無故遭棄捐

어쩔 도리가 없구나! 또 술이나 실컷 마시자꾸나!                                                        已矣且飮酒

백 단지 술이 샘물같아 취하지도 않는구나!                                                                 百壺將如泉

 

4

해마다 창경궁 춘당대에서 과거 보는데                                                                      春塘歲試士

수많은 선비들이 한 자리에서 겨루니                                                                         萬人爭一場

눈 밝은 이루가 백 명 있다 한들                                                                                 縱有百離婁

낱낱이 감시할 순 없는 노릇이지                                                                                鑑視諒未詳

붉은색으로 제멋대로 채점해 버리니                                                                           任施紅勒帛

과거자의 당락은 시험관 손에 달렸다네                                                                       取準朱衣郞

별똥별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奔彴落九天

눈 달린 자 모조리 우러르기 마련이네                                                                         萬目同瞻昂

과거제도는 법 무너뜨리고 요행심만 길러                                                                   敗法啓倖心

온 세상 사람들 모두 미치광이 같네                                                                            擧世皆若狂

지금까지 먹물들 따져 말하길                                                                                    於今識者論

옛날 변계량이 허물을 거슬러 올라가 탓하네                                                              追咎卞季良

시의 격조가 본래 낮고 더러워                                                                                   詩格本卑陋

끼친 해독이 크고 넓어 까마득하다네                                                                         流害浩茫洋

마을마다 앉아 있는 선생님들이                                                                                 村村坐夫子

한나라 당나라 옛글은 가르치지 않고                                                                         敎授非漢唐

어디서 온 백련구百聯句 인지                                                                                    何來百聯句

읊고 외우는 소리 온 방 안 가득하다네                                                                       吟誦方滿堂

항우와 유방 이야기만                                                                                              項羽與沛公

지루하고 소리 없이 쓰고 또 쓰네                                                                              支離連篇章

과시체에 능한 강백은 입부리만 놀리고                                                                     姜柏放豪嘴

노긍(조선 후기 시인)처럼 창자에서 기묘한 말만 쏟아내네                                          盧兢抽巧脹

한평생 공부하여 성인처럼 되고 싶었으나                                                                  終身學如聖

죽도록 소동파와 황정견(송대의 시인)은 엿보지 않았네                                              逝不窺蘇黃

시골에서는 비록 내로라하였지만                                                                              縱爲閭里雄

대관절 세상사 돌아가는 모양새를 몰랐네                                                                  又昧時世粧

대를 이어 이름을 날리지도 못했거늘                                                                         世世不成名

도리어 농사일 누에 치는 일로 돌아가질 않네                                                              猶未歸農桑

과거에 뽑히는 건 또 논할 게 없고                                                                              選擧且未論

문장이래야 더더욱 보잘것없고 거칠 뿐이네                                                                文字尙天荒

어찌하면 대나무 만 그루 가져다가                                                                             那將萬箇竹

천 길만큼 긴 빗자루를 묶어                                                                                       束箒千丈長

쭉정이 먼저 따위 싹싹 다 쓸어서                                                                               盡掃秕穅塵

송두리째 바람에 날려 버릴까                                                                                     臨風一飛颺

 

5

높고 큰 산이 아름다운 꽃 모아 피우면서                                                                   山嶽鍾英華

본래 꽃의 씨족 가리지 않았네                                                                                  本不揀氏族

반드시 한 가닥 좋은 기운이                                                                                      未必一道氣

늘 최씨네, 노씨네 뱃속에만 있으란 법 없네                                                               常抵崔盧腹

보배로운 솥 솥발이 뒤집혀야 좋고                                                                            寶鼎貴顚趾

향기로운 난초 깊은 골짝에서 자라네                                                                         芳蘭生幽谷

위공(송나라 명신 한기)은 천첩의 아들로 일어났고                                                     魏公起叱嗟

희문(송나라 명신 범중엄)도 의붓아비 밑에서 자랐네                                                  希文河葛育

중심(명나라 대학자 구준)은 변방의 경해 출신이지만                                                  仲深出瓊海

재능과 꾀가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났네                                                                      才猷拔流俗

우리나라는 어찌하여 어질고 유능한 자 벼슬길 좁아                                                    如何賢路隘

뭇사람들 쭈뼛쭈뼛 움츠려 드나?                                                                               萬夫受局促

오로지 제일골만 가려 뽑아 벼슬에 앉히고                                                                  唯收第一骨

나머지 골품은 노예나 종과 같네                                                                                餘骨同隷僕

함경도 평안도 사람들 늘 눈썹 찡그리고                                                                     西北常摧眉

서얼들은 죄다 통곡만 하네                                                                                        庶孼多痛哭

위세 당당한 수십 가문이                                                                                           落落數十家

대대로 나라의 녹봉 삼켜 왔네                                                                                    世世吞國祿

그 가운데서도 붕당이 우리나라를 나누고                                                                   就中析邦朋

서로 죽이며 엎치락뒤치락 뒤집으니                                                                           殺伐互翻覆

약한 당파의 살을 강한 당파가 뜯어먹고                                                                      弱肉強之食

대여섯 세도가만 남아 거드름 피우네                                                                          豪門餘五六

이들만이 재상이 되고                                                                                               以玆爲卿相

이들만이 판서와 감사가 되고                                                                                    以玆爲岳牧

이들만이 승정원의 벼슬아치를 맡고                                                                          以玆司喉舌

이들만이 감찰 벼슬아치에 기대고                                                                             以玆寄耳目

이들만이 숱한 벼슬자리를 오로지 해먹고                                                                  以玆爲庶官

이들만이 많은 옥사를 살피네                                                                                   以玆監庶獄

 

먼 시골 백성 아들 하나 낳아                                                                                   遐氓產一兒

빼어난 기품이 난새와 학 같으니                                                                              俊邁停鸞鵠

그 아이 여덟아홉 살 되도록 자라서                                                                          兒生八九歲

뜻과 기상이 가을철 대나무 같았네                                                                          氣志如秋竹

아비 앞에 윗몸 꼿꼿이 세우고 무릎 꿇고 여쭈었네                                                    長跪問家翁

"제가 이제 사서오경을 다 읽어                                                                                兒今九經讀

천 명 중에서 으뜸인 경술을 지녔사오니                                                                   經術冠千人

혹여 홍문관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倘入弘文錄

아비가 대답하네, "너는 천한 족속이라                                                                      翁云汝族卑

임금님을 곁에서 보좌하는 벼슬을 할 자격이 없다!"                                                    不令資啓沃

"제가 지금 큰 활을 당길 만하고                                                                                兒今挽五石

무예가 극곡(춘추시대 진晉나라 장수)과 같으니                                                         習戎如郤縠

어떻게든 오영의 장수나 되어                                                                                    庶爲五營帥

말 앞에 대장기를 세워 보렵니다!"                                                                             馬前樹旗纛

아비가 대답하네, "너는 낮은 족속이라                                                                       翁云汝族卑

장군의 수레도 탈 수 없다!"                                                                                       不許乘笠轂

"제가 이제 벼슬아치 일을 배워                                                                                  兒今學吏事

위로는 한나라의 뛰어난 수령 공수와 황패를 이어받을 만하니                                     上可龔黃續

모름지기 고을 벼슬아치 인끈이나 차고                                                                     應須佩郡符

평생 동안 고량진미 물리도록 즐기렵니다."                                                               終身厭粱肉

아비가 대답하네, "너는 하찮은 족속이라                                                                  翁云汝族卑

순리도 혹리도 너랑은 상관이 없다!"                                                                        不管循與酷

자식 놈 그제야 발끈 화내며                                                                                    兒乃勃發怒

책을 던지고 활과 활집이랑은 부숴 버리고                                                                投書毀弓韣

저포놀이 골패놀이                                                                                                 摴蒲與江牌

마작놀이 공차기놀이로                                                                                           馬弔將蹴毱

허랑방탕해 아무런 재목도 되지 못한 채                                                                    荒嬉不成材

늙고 어그러져 시골구석에 파묻혀 버리네                                                                 老悖沈鄕曲

 

재산 많고 권세 있는 집안이 아들 하나 낳아                                                              豪門產一兒

흉포하고 거만하기가 천리마나 녹이綠駬 같으니                                                       桀驁如驥騄

그 아이 여덟아홉 살 되어                                                                                        兒生八九歲

곱고 예쁘장한 옷 입고 웃으면                                                                                 粲粲被姣服

손님이 말하네, "너는 걱정하지 마라                                                                         客云汝勿憂

너희 집은 하늘이 복 내린 집이라서                                                                          汝家天所福

너의 벼슬도 하늘이 정해 놓아                                                                                  汝爵天所定

청관, 요직 맘대로 된단다                                                                                         淸要唯所欲

헛되이 땀 흘릴 필요 없고                                                                                         不須枉勞苦

문장 닦기를 과거 시험 공부마냔 죽어라 할 것 없고                                                     績文如課督

때 되면 저절로 좋은 벼슬 오리니                                                                               時來自好官

편지나 쓸 줄 알면 그걸로 족하다!"                                                                             札翰斯爲足

그 자식 놈, 그래서 깡충 뛰며 좋아하고                                                                       兒乃躍然喜

책 상자는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는구나                                                                       不復窺書簏

마작이며 골패라든지                                                                                                馬弔將江牌

장기, 바둑, 저포놀이에 빠져                                                                                      象棋與雙陸

게으르게 만날 노닐기만 하며 재목 되지도 못했건만                                                    荒嬉不成材

높은 벼슬자리 차례차례 밟아 오르네                                                                          節次躋金玉

일찍이 먹줄 한번 제대로 그어 보지 못했거늘                                                              繩墨未曾施

어찌 큰 집 지을 재목 따로 되겠는가?                                                                         寧爲大厦木

두 아이 모두 자포자기하고 마니                                                                                兩兒俱自暴

세상천지에 어질고 품성 고운 재목 없다네                                                                  擧世無賢淑

곰곰 생각하노니 애간장 타 들어가                                                                             深念焦肺肝

또 술잔 들어 술이나 마신다네                                                                                    且飮杯中醁

- <여름날 술을 마시다夏日對酒>

 

과거 시험 수나라 양제 때 시작되어                                                                詞科自隋煬

그 독이 한강과 대동강에도 흘러 왔네                                                             流毒至洌浿

찬연하도다! <생원론>이여                                                                             粲粲生員論

장단 맞추어 쾌재를 부를 만하구나                                                                  擊節成一快

구름과 노을처럼 뛰어난 재주를 가진 자라도                                                    才俊如霞雲

줄곧 과거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다 실패했네                                                     盡向此中敗

양반귀족 늙어 흰머리 나도록                                                                           龍鍾到白紛

화려하게 꾸미는 글 버릇 여전히 부지런하다네                                                  雕繪猶未懈

- <고시27수古詩二十七首> 중 25번째 수

 

승냥이야, 이리야!                                                豺兮狼兮

우리 송아지 이미 채갔으니                                   旣取我犢

우리 염소는 물지 말라                                          毋噬我羊

장롱엔 이윽고 저고리마저 없고                             笥旣無襦

횃대엔 이미 걸린 치마도 없다                                椸旣無裳

장독 항아리에 남은 소금도 없고                             甕無餘醢

뒤주 쌀독엔 남은 식량도 없다                                 瓶無餘糧

가마솥 이미 빼앗아 가고                                        錡釜旣奪

숟가락 젓가락마저 깡그리 털어 갔구나                   匕筯旣攘

도적도 외적도 아니면서                                         匪盜匪寇

왜 그리 못된 짓만 하느냐?                                     何爲不臧

사람 죽인 자는 벌써 자결하였거늘                          殺人者死

또 누굴 죽일 참이냐?                                             又誰戕兮

이리야 승냥이야                                                    狼兮豺兮

우리 삽살개 이미 채 갔으니                                    旣取我尨

우리 닭일랑 잡아가지 말라                                     毋縛我雞

자식까지 이미 팔았다만                                         子旣粥矣

내 처야 누가 사 가랴                                              誰買吾妻

너는 내 살가죽 벗기고                                            爾剝我膚

내 뼈까지 쳐부수었다                                             而槌我骸

우리 논밭을 보라                                                    視我田疇

또한 얼마나 큰 슬픔이냐                                          亦孔之哀

가라지도 나지 않는데                                              稂莠不生

쑥인들 명아주인들 자라겠느냐?                               其有蒿萊

사람 죽인 자는 벌써 자결하였거늘                            殺人者死

또 누구에게 화 입히려고 하느냐!                              又誰災兮

승냥이야! 호랑이야!                                                 豺兮虎兮

말한들 무슨 소용이랴?                                             不可以語

날짐승아! 길짐승아!                                                 禽兮獸兮

꾸짖은들 무엇 하랴?                                                不可以詬

또한 사또 어버이 있다지만                                        亦有父母

믿은들 무엇 하랴?                                                    不可以恃

하소연하였지만 싸늘한 말만 되돌아오고                    薄言往愬

귀 막고 들은 체도 않더라!                                         褎如充耳

우리 논밭을 보라                                                      視我田疇

또한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끔찍하냐                           亦孔之慘

이리저리 떠도네! 요리조리 구르네!                             流兮轉兮

구덩이에 처박히며                                                     塡于坑坎

사또 아비여! 사또 아비여!                                           父兮母兮

고량진미 모조리 즐기고                                              粱肉是啖

사랑방에 둔 기생                                                        房有妓女

연꽃 봉오리 같은 얼굴이네                                           顏如菡萏

- <시랑豺狼>, 1810

 

아이 둘이서 나란히 걸어 다니네                                             有兒雙行

한 애는 총각머리 한 애는 댕기머리                                         一角一羈

총각머리 아이 이제 갓 말 배우고                                             角者學語

댕기머리 아이 머리카락 길게 땋아 늘어뜨렸네                          羈者髫垂

엄마 잃고 울면서                                                                    失母而號

저 갈림길에 놓여 있네                                                             于彼叉岐

붙들고 까닭 물었더니                                                              執而問故

목메어 울며 말 더듬네                                                             嗚咽言遲

 

"아빠는 벌써 집을 나갔어요                                                     曰父旣流

엄마는 짝 잃고 떠도는 새 되었고요                                          母如羈雌

쌀독 이미 바닥나서                                                                 瓶之旣罄

사흘이나 밥 짓지 못했어요                                                      三日不炊

엄마랑 나랑 울고 울어                                                             母與我泣

눈물이 뺨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어요                                         涕泗交頤

어린 남동생 젖 달라고 울어도                                                   兒啼索乳

젖도 말라붙었지요                                                                   乳則枯萎

우리 엄마 내 손 잡고                                                                母携我手

젖먹이 이 애와 함께                                                                 及此乳兒

저기 저 산골마을에 가서                                                           適彼山村

동냥해서 우릴 먹였어요                                                            丐而飼之

물가 시장 데려가서는                                                               携至水市

엿도 사서 먹여 주었어요                                                           啖我以飴

이 길가 너머로 데려와서는                                                        携至道越

어미 사슴 새끼 품듯 꺄안고 재웠어요                                         抱兒如麛

어린 동생은 벌써 포근히 잠이 들고                                             兒旣睡熟

나도 죽은 듯 잠들었다가                                                            我亦如尸

이미 잠깨어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旣覺而視

엄마가 이곳에 보이지 않아요"                                                     母不在斯

 

말하면서 울다가                                                                        且言且哭

눈물 콧물 주르륵주르륵 흘리네                                                   涕泗漣洏

해가 지고 날이 깜깜해지면                                                          日暮天黑

뭇 새들도 떼 지어 날아 둥지에 깃드는데                                       栖鳥群蜚

외로이 떠도는 두 아이                                                                 二兒伶俜

넘성거릴 집 문도 없네                                                                 無門可闚

불쌍하도다! 이 낮은 백성들이                                                      哀此下民

그 천륜마저 잃었으니                                                                  喪其天彝

부부 사이 사랑도 못하고                                                              伉儷不愛

자애로운 어미도 제 새끼 사랑 않고                                               慈母不慈

옛날 내가 암행어사 나갔던                                                           昔我持斧

그해가 갑인년(174)이었는데                                                         歲在甲寅

임금께서는 고아들 돌보아서                                                          王眷遺孤

신음하거나 앓게 하지 말라 분부하셨도다!                                       毋俾殿屎

무릇 감사와 사또들은                                                                    凡在司牧

감히 그 분부 어기지 말라!                                                              毋敢有違

- <유아有兒>, 1810

 

용산구실아치

 

구실아치들 용산 마을 들이닥쳐                                                    吏打龍山村

소 뒤져 벼슬아치에게 넘겨주네                                                     搜牛付官人

소 몰고 멀리멀리 사라지는 꼴을                                                    驅牛遠遠去

집집마다 문에 기대 멀뚱멀뚱 보고만 있네                                      家家倚門看

사또님 노여움만 막으면 그만이지                                                  勉塞官長怒

뉘라서 약한 백성 속병 알아주리?                                                   誰知細民苦

한여름 유월에 쌀 찾아 바치라 하니                                                六月索稻米

모진 고통 수자리 살기보다 심하다네                                              毒痛甚征戌

세금 내리라는 임금님 좋은 말씀 끝내 오지 않고                              德音竟不至

숱한 목숨 서로 베고 죽을 판이네                                                    萬命相枕死

오로지 구차한 삶만 서글플 뿐                                                         窮生盡可哀

차라리 죽는 자가 더 낫구나!                                                           死者寧可矣

아낙네는 과부되어 지아비 없고                                                       婦寡無良人

할아버지는 아들 손자도 없다네                                                       翁老無兒孫

눈물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우는 소를 보노라니                                  泫然望牛泣

내 눈물도 줄줄 떨어져 베치마를 적시네                                            淚落沾衣裙

촌마을 모양새 참으로 황폐하고 메말랐거늘                                       村色劇疲衰

구실아치 놈 버텨 앉아 왜 돌아가지도 않는가                                     吏坐胡不歸

쌀독 바닥난 지 이미 오래거니                                                          甁甖久已罄

무슨 수로 저녁밥 지을 건가?                                                            何能有夕炊

구실아치 놈 죽치고 앉아 산목숨 끊게 하니                                         坐令生理絶

온 이웃 모두 함께 목메어 운다네                                                       四隣同鳴咽

소 잡아 포 떠서 세도가에 바치면                                                       脯牛歸朱門

못된 꾀부리는 구실아치 출세 이로써 판가름 난다네                            才諝以甄別

 

파지구실아치

 

구실아치 놈들 파지 마을 들이닥쳐                                                      吏打波池坊

떠들썩하게 호령하는 꼴이 군대 점호 같구나                                         喧呼如點兵

염병에 귀신 되거나 굶어서 죽고                                                          疫鬼雜餓莩

마을 농막에 농사짓는 장정이라고는 없다오                                          村墅無農丁

애꿎은 고아와 과부만 다그쳐 묶고서는                                                催聲縛孤寡

채찍질로 앞길을 더 보채는 꼴이                                                          鞭背使前行

개나 닭을 쫓듯 몰아대고 꾸짖어                                                          驅叱如犭鷄

뻗은 행렬이 고을 성 가까이까지 미어터지네                                         弥亘薄縣城

그중 가난한 선비 한 사람                                                                    中有一貧士

야위어 홀쭉한 몸뚱이 홀로 가장 외롭구나                                            瘠弱最伶俜

하늘 불러 죄 없음을 하소연하는                                                          號天訴無辜

구슬픈 목소리도 끊이질 않네                                                               哀怨有餘聲

감히 가슴뼈에 맺힌 속말도 못하고                                                       未敢敍吏臆

오로지 눈물만 줄기차게 흘리네                                                            但見涕縱橫

구실아치 놈 멍청하다고 화를 내며                                                        吏怒謂其頑

욕하고 매질하며 본보기로 뭇사람들 겁박하네                                        僇辱출衆情

높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다니                                                             倒悬高树枝

상투가 나무뿌리까지 닿았네                                                                 髮与树根平

 

"추생鯫生(변변찮은 소인)이 콧대만 높아 무서운 줄도 모르고                   鯫生暋不畏

감히 네놈이 감영을 거역하다니                                                             敢尔逆上營

글줄 읽었으면 의리를 알 터인데                                                             读书会知义

나라 세금은 서울에다 바치는 것 아닌가!                                                 王稅輸王京

네놈에게 유월까지 말미 줬으면                                                              饶尔到季夏

너를 생각해 준 은혜가 가볍지 않거늘……                                               念尔恩非轻

포구에서 위풍당당한 세곡선 기다리건만                                                 峨舸滯浦口

네놈 눈에는 왜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尔眼胡不明

 

뽐 나는 위세 언제 다시 부릴 겐가?                                                         立威更何時

공형公兄(구실아치)으로 위세 부릴 때가 좋은 게지!                                  指挥有公兄

 

해남 구실아치

 

나그네가 해남에서 와                                                                             客从海南來

두려운 길 피해 오는 참이라면서                                                              为言避畏途

주저앉으니 헐떡이는 숨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고                                       坐久喘未定

겁에 질려 여전히 벌벌 떠네                                                                     怖怯犹有餘

만일 승냥이나 이리 만난 게 아니라면                                                       若非値豺狼

오랑캐라도 만난 게 틀림없으리!                                                               定是遭羌胡

 

"세금 달달 볶는 구실아치가 마을에 나타나                                                催租吏出村

동남쪽 모퉁이에서 매 마구 때린다오                                                         亂打東南隅

신관 사또 명령은 더욱 엄하여                                                                   新官令益严

기한을 넘길 수가 없다오                                                                           程限不得踰

만 섬 싣는 주교사의 큰 배가                                                                      橋司万斛船

정월에 벌써 서울을 떠났건만                                                                     正月离王都

배가 늦추어지면 반드시 모가지가 날아가는 건                                             滯船必黜官

예전부터 있어 왔던 가르침이라오                                                                鑑戒在前车

아이고 아이고 온갖 집 통곡소리 시끄럽지만                                                 嗷嗷百家哭

노 젖는 주교사 뱃사공들 즐겁기만 하다오                                                     可以媚櫂夫

나는 시방 사나운 호랑이 피해 왔으매                                                            吾今避勐虎

누가 다시 죽어 가는 나를 구해줄까나?"                                                          谁復恤枯魚

 

두 눈에 방울 눈물 뚝뚝 떨어지더만                                                                 泫然双泪垂

땅이라도 꺼질듯 한바탕 울음소리 길게 퍼지네                                                 条然一嘯舒

 

제가끔 당파 갈라 쉴 새 없이 아옹다옹 싸우는 꼴                                       蠻觸紛紛各一偏

귀양살이 나그네 되어 깊이 생각하니 눈물 줄줄 흐르네                              客窓深念淚汪然

산하는 옹색하게 삼천리가 고작이거늘                                                      山河擁寒三千里

비바람 섞어 치듯 서로 싸운 지 이백 년이네                                               風雨交爭二百年

수많은 영웅호걸 길을 잃어 슬퍼했고                                                         無限英雄悲失路

논밭 두고 다투는 형제 어느 때나 부끄러워할까                                           幾時兄弟耻爭田

만일 끝없이 솟아나는 은하수로 씻어 낼 수 있다면                                       若將萬斛銀潢洗

맑은 날 상서로운 햇살이 온누리 비추련만                                                   瑞日舒光照八埏

- <견흥遣興>, 1801

 

당파 재앙 오래도록 그치지 않으니                                                           黨禍久未已

이야말로 참으로 통곡할 일이로다                                                            此事堪痛哭

듣지 못했네, 낙당 촉당 후예들이                                                              未聞洛蜀裔

끝내 지씨 보씨로 나뉘어 피붙이싸움 벌였다는 말을                                   遂別智輔族

우리나라 당쟁 기질 양심마저 내버리고                                                     爭氣翳天良

가는 밧줄이나 겨자씨만 한 잘못에도 마구 죽이네                                      纖芥恣殺戮

어린 양들은 소리 지르지 못하고 죽으나                                                    羔羊死不號

승냥이와 범은 오히려 눈알을 부라리네                                                      豺虎尙怒目

높은 자는 기회 잡고자 이를 갈고                                                               尊者運機牙

낮은 자는 숫돌에 칼날과 화살촉 날카로이 가네                                           卑者礪鋒鏃

누가 능히 큰 잔치 열어                                                                              誰能辦大宴

휘장 둘러친 눈부신 집에                                                                            帟幕張華屋

일천 동이 술 빚어 놓고                                                                               千甕釀爲酒

만 마리 소 잡아 저민 고기 차려 놓고                                                            萬牛臠爲肉

옛날에 물든 버릇 고치기로 함께 다짐하며                                                    同盟革舊染

화평한 복을 구할까나!                                                                                以徼和平福

- <고시27수古詩二十七首> 중 네 번째 수

 

범고래海狼란 놈 이리 몸통에 수달의 가죽                                               海狼狼身而獺皮

가는 곳마다 열 놈 백 놈 떼 지어 다니면서                                                行處十百群相隨

바닷물 속에서 사냥질할 때 나는 듯이 빨라                                               水中打圍捷如飛

느닷없이 덮쳐 오면 물고기들도 모른다네                                                 欻忽揜襲魚不知

 

큰 고래長鯨란 놈 한입에 물고기 천 섬 삼키니                                           長鯨一吸魚千石

큰 고래 한번 지나가면 묽기 흔적도 없고                                                   長黥一過魚無跡

물고기 차지 못한 범고래는 큰 고래 원망하여                                             狼不逢魚恨長鯨

큰 고래 죽이려고 온갖 꾀를 짜낸다네                                                        擬殺長鯨發謀策

 

한 떼는 고래 머리 들이받고                                                                            一羣衝鯨首

한 떼는 고래 뒤 에워싸고                                                                               一群繞鯨後

한 떼는 고래 왼쪽에서 틈을 노리고                                                                 一群伺鯨左

한 떼는 고래 오른쪽을 침범하고                                                                      一群犯鯨右

한 떼는 물에 잠겨 고래 배때기 올려치고                                                    一群沈水仰鯨腹

한 떼는 튀어 올라 고래 등에 올라타서                                                        一群騰躍令鯨負

 

아래위 사방에서 함께 호령하며                                                                 上下四方齊發號

살갗 할퀴고 속살 깨무는 게 어찌나 잔인하고 포악한지                                 抓膚齧肌何殘暴

고래가 우레같이 울부짖으며 입으로 물을 뿜어                                             鯨吼如雷口噴水

바다 물결 들끓고 갠 하늘에 무지개 일어나네                                               海波鼎沸晴虹起

 

무지개 점점 사라지고 파도 차츰 잔잔하니                                                    虹光漸微波漸平

아아, 애닯도다! 고래 이미 죽고 말았구나                                                     嗚呼哀哉鯨已死

혼자서는 뭇 힘을 당해낼 겨를이 없어                                                          獨夫不遑敵衆力

작은 교활함이 도리어 거대한 사특함을 해치웠네                                          小黠乃能殲巨慝

 

너희 놈들 혈전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느냐?                                              汝輩血戰胡至此

원래는 기껏해야 먹이다툼인 것을,                                                               本意不過爭飮食

호호탕탕 가도 가도 끝없는 드넓은 바다에서                                                 瀛海漭洋浩無岸

너희 놈들 지느러미 흔들고 꼬리 치면서                                           汝輩何不揚鬐掉尾相休息

어찌 함께 편히 살지 못하느냐?

- <행랑행海狼行>, 1801

 

남산골 할아범 살쾡이놈 길렀더니                                                                    南山村翁養狸奴

해묵고 꾀 늘어 요망한 늙은 여우 따라하네                                                       歲久夭凶學老狐

초가집에 아껴 둔 고기 밤마다 훔쳐 먹고                                           夜夜草堂盜宿肉

항아리 단지 뒤집고 잇달아 술잔과 술병마저 깨뜨리네                          翻瓨覆瓿連觴壺

어두움 틈타 우쭐대며 못된 짓 함빡 하고                                           乘時陰黑逞狡獪

문 밀고 큰소리치면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네                                      推戶大喝形影无

홀연 등불 밝혀 살피면 추악한 행적 널려 있고                                    呼燈照見穢迹徧

침 흘린 이빨 자국 고기 찌꺼기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네                        汁滓狼藉齒入肤

잠 설친 할아범 근력 딸려                                                              老夫失睡筋力短

온갖 궁리 다 해도 긴 한숨만 휘영청 늘어지네                                     百慮皎皎徒長吁

이 살쾡이놈 저지른 큰 죄 생각하면                                                  今次狸奴罪惡極

당장 칼을 뽑아 천벌을 주고 싶네                                                     直欲奋劍行天誅

하늘이 네놈 낼 제 본디 어디에 쓸 참이던가?                                      皇天生汝本何用

쥐 잡아 백성 앓음 덜라고 네놈에게 명했거늘,                                     令汝捕鼠除民痛

들쥐는 밭둑에 쥐구멍 파서 벼이삭 물어다 쌓아 두고                             田鼠穴田蓋穉穧

집쥐는 온갖 것 훔쳐 가지 않은 게 없고                                              家鼠百物靡不偸

백성은 쥐 등쌀에 나날이 핼쑥해지고                                                 民被鼠割日憔悴

살이 타고 피가 말라 피골마저 말라 가네                                            膏焦血涸皮骨枯

(중략)

네놈 이제까지 쥐 한 마리 잡지 않고                                                 汝今一鼠不曾捕

돌아보니 한갖 네놈 스스로 도둑질 범했구나                                       顾乃自犯为穿窬

쥐란 본디 좀도둑이라 그 피해가 적지마는                                          鼠本小盗其害小

네놈은 지금 힘도 세고 기세도 높고                                             汝今力雄势高心计粗

속셈마저 더럽구나

쥐가 못하는 짓도 오로지 네놈 뜻대로 하니                                         鼠所不能汝唯意

처마에 기어올라 지붕 벗기고                                                          攀檐撤盖颓墍涂

맥질한 진흙마저 무너뜨리는구나

지금부터는 쥐떼들이 꺼릴 것도 없으니                                              自今群鼠无忌惮

쥐구멍 밖으로 들락날락 껄껄대며 그 수염을 흔드는구나                        出穴大笑掀其须

그 훔친 장물 모아다가 네놈에게 뇌물 바치고                                      聚其盗物重賂汝

천연덕스럽게 네놈과 한통속으로 돌아다니는구나                                泰然与汝行相俱

늘 알랑대며 떡고물 탐나는 쥐새끼가                                                好事往往亦貌汝

네놈을 사자로 여기고

뭇 쥐들 고관대작의 마부마냥 네놈을 떠받드는구나                              群鼠擁護如騶徒

관아에 모여 나팔 불고 북치고                                                        吹螺擊鼓爲法部

대장기 높이 들고 앞장서 가는구나                                                  樹纛立旗爲先驅

네놈 큰 가마 타고 몸을 굽혔다 폈다 으스대니                                    汝乘大轎色夭矯

쥐떼들 기꺼이 앞다투어 달리며                                                      但喜群鼠爭奔趨

거리낌 없이 좋아라 하는구나

나는 이제 몸소 붉은 활에 큰 화살 메워 네놈 쏘고                          我今彤弓大箭手射汝

만일 쥐가 제멋대로 설치면 차라리 사냥개를 부르리라                          若鼠橫行寧嗾盧

- <이노행狸奴行>, 1810

 

처음 읽다 남은 책을 끝내려던 차였건만                                                           始爲殘書至

안타깝게도 갑작스레 병이 몸을 휘감았네                                                         翻嗟一病纏

노란 낙엽 진 대문을 닫고서                                                                             閉門黃葉裏

푸른 소나무 앞에서 약을 달이에                                                                       煮藥碧松前

어지러운 머리카락 손질 남의 손 빌려 하고                                                        髮亂從人理

쓴 시를 입으로만 전할 뿐이네                                                                          詩成只口傳

일어나 서쪽으로 가는 길 보니                                                                          起看西去路

눈바람이 차디찬 하늘 가득 휘몰아치네                                                              風雪滿寒天

- <시골집에서 병석에 누워(田廬臥病)>

 

옴 근질근질 늙도록 낫지 않아                                                           癬疥淫淫抵老頹

몸뚱이를 찻잎처럼 찌고 쬐고 다해 보았네                                          身如茶荈備蒸焙

싱거운 물 데워 소금 넣어 씻어 내고                                                   溫湯淡鹵從淋洗

썩은 풀 묵은 뿌리 뜸도 자못 떴네                                                      腐草陳根莫炙煨

벌집을 촘촘히 걸러 그 즙을 짜내고                                                    密濾蜂房須取汁

뱀 허물 재가 될까 두려워 살짝만 볶았네                                             輕熬蛇殼恐成灰

단사 넣어 이미 만든 약 동병상련이라                                                  丹砂已熟憐同病

자산 형님의 심부름꾼 오기만을 기다리네                                             留待玆山使者來

- <유합쇄병을 부쳐 온 운에 화답하다[和奇餾合刷甁韻]>

 

조선시로 통하다

늙은이 한 가지 통쾌한 일은                                                              老人一快事

붓 가는 대로 마음껏 쓰는 거라네                                                       縱筆寫狂詞

골치 아픈 운자에 얽매이지 않고                                                        競病不必拘

고치고 다듬느라 미적거리지 않네                                       推敲不必遲

흥이 나면 곧장 뜻을 싣고                                                  興到卽運意

뜻이 되면 곧장 써내려 가네                                               意到卽寫之

나는 조선 사람이라                                                          我是朝鮮人

즐거이 조선시를 쓰네                                                       甘作朝鮮詩

그대들은 마땅히 그대들의 법을 따르면 디지                           卿當用卿法

시작법에 어긋난다고 미주알고주알 따지는 자 누구신가?           迂哉議者誰

(중략)

어찌 슬프고 울적한 말을 꾸며 내어                                      焉能飾悽黯

고통스레 애간장을 부러 태우는가?                                       辛苦斷腸爲

배와 귤 저마다 독특한 맛 지니고 있거늘                                梨橘各殊味

오로지 입맛 따라 즐기고 좋아하면 그만 아닌가!                       嗜好唯其宜

- <노인네의 한 가지 통쾌한 일[老人一快事]>에서, 1832

 

배움이 넓고 깊은 성호 선생님 博學星湖老

나는 백세사로 따르려네 吾從百世師

등림에 열매 많이 열리고 鄧林繁結子

큰키나무에 뻗은 가지 울창하네 喬木鬱生枝

- <박학博學>, 1794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