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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6. 09:26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39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마종기 시집

2006, 문학과지성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3412

 

811.6

마75우

 

문학과지성 시인선 32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2006 우수문학도서

 

지난 4월 중순,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한 통계 논문을 발췌하여 게재했다. 그 결론은 두 개의 항목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5백 권 이상의 장서를 가지고 있는 집의 자녀들은 10여 권의 책밖에 없는 집의 자녀들보다 지능 지수가 더 높고 사회생활의 적응도 빨라서 자라면 더 좋은 직장을 가진다. 둘째, 책도 책 나름이다. 세익스피어나 기타 고전을 가지고 있는 집이 특히 자녀의 성공률이 높다. 시집이 5백 권의 장서 중에서 주종을 이루고 있으면 그 자녀의 성공률은 교양서적을 가지지 못한 집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못하다. 그런 집의 자녀는 방랑자나 몽상가가 되기 쉽고 현실 적응력과 경쟁력이 떨어져 사회생활에 부적합하게 되기 쉽다. 이 기사의 제목은 '시를 읽지 마라'였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실용주의만 맹종하는 미국에서 왜 이런 공연한 수고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몇 마디의 변명을 나름대로 붙여보고 싶었다.

그렇다. 내 시를 읽어준 친구들아, 나는 아직도 작고 아름다운 것에 애태우고 좋은 시에 온 마음을 주는 자를 으뜸가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 함부로 총 쏴 사람을 죽이는 자,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꽃과 나비에 대한 시를 읽고 눈물 흘리겠는가, 노을이 아름다워 목적지 없는 여행에 나서겠는가.

시인이 모든 사람의 위에 선다는 말이 아니다. 시가 위에 선다는 말도 아니다. 나는 단지 자주 시를 읽어 넋 놓고 꿈꾸는 자가 되어 자연과 인연을 노래하며 즐기는 고결한 영혼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태껏 성심을 다해 시를 써왔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적 성공과 능률만 계산하는 인간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겨우 한 번 사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꿈꾸는 자만이 자아(自我)를 온전히 갖는다. 자신을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시를 읽는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인 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도미,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했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조용한 개선』(1960),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1991), 『이슬의 눈』(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등의 시집과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을 발표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에는 시인의 고독한 영혼이 호명하는 하나의 커다란 세상이 있다. 그 세상은 현재의 세계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는데, 과거에서 미래로 서로 꼬리를 무는 시간과 현세의 사물들과 현재에는 없는 사라진 것들의 낌새와 흔적까지 다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세상은 시인이 호명하는 순간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시인의 시를 통해 그 세상과 시인의 고독한 목소리를 만난다. 오, 외로움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는 그리움을 통해 그리움을 깨우는 목소리여!

 

시인의 말

 

지난번 시집 발간 이후, 만 4년간 쓰고 발표한 시들을 여기에 묶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시집을 만든 것은 내게 처음이지만, 아마도 의사 생활에서 은퇴한 후 내 게으름을 은폐하고 싶었던 무의식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모아놓은 시들을 다시 읽어보니 비틀거리고 억지스러운 시가 많은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 든다. 그러나 아쉬운 것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이런 것이 내게 오히려 자극이 되어 하찮은 것도 다시 유심히 볼 수 있는 나머지 날들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006년 늦여름

마종기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기적 / 가을, 아득한 / 파도의 말 1 / 파도의 말 2 / 이름 부르기 / 땀에게 / 잡담 길들이기 7 / 잡담 길들이기 8 / 진도에서 / 검은 점의 장례 / 꿈꾸는 당신 / 풍경화 / 알래스카 시편 1 / 알래스카 시편 2 / 알래스카 시편 3 / 알래스카 시편 4 / 알래스카 시편 5 / 밤비

 

제2부

골다공증 / 도마뱀 / 별, 이별 / 귀향 / 화장실의 피카소 / 시쓰기 / 상처 4 / 상처 5 / 손녀를 안고 / 아침 바다 / 압구정동 / 시선 / 캄보디아 저녁 1 / 캄보디아 저녁 2 / 화가 파울 클레의 마지막 몇 해 / 이장(移葬) / 가을, 상림(上林)에서 / 산수유 / 몬태나 평원

 

제3부

시인의 물 / 다도해를 보며 / 네팔에서 온 편지 / 상처 6 / 배우 / 벌써 10년이나 / 악어 / 희망적으로 / 바오밥의 추억 / 재의 수요일 / 물빛 7 / 베트남의 소는 다리가 길다 / 새에 대한 명상 / 남해에서 / 포르투갈 일기 1 / 포르투갈 일기 2 / 화가 모딜리아니의 유혹

 

해설 | 너무 먼 이쪽 · 권혁웅

 

파도의 말 2

 

답답해 바다에 나왔다.

서글픔으로 감싸인 연약한 해안을

파도가 대신해 몸 풀어준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다.

해방된 빈 배도 떠나고

시들어가는 바다의 파도만 남았다.

해안을 조심해 걸으며

작은 파도를 하나씩 줍는다.

한기와 체념으로 말라버린

바다의 말을 줍는다.

 

내 파도여.

말하는 바다의 잎이여.

이렇게 쉽게 사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파도의 여러 음성은 내내

이승의 아쉬움을 말하고 있지만

저녁은 우리 사이를 막고 덮어서

내게 오던 파도가

돌아서기 시작한다.

 

파도의 말 1

 

뻘밭 넓은 서해안에서도

남해안에서도, 또 동해안에서도

파도들은 너나없이 모국어만 하데.

 

처음 만난 파도는 두 손 내밀면서

반갑다, 반갑다며 몰려오더니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잘 가라, 잘 가라 중얼거리며

나를 자꾸 멀리 밀어버리데.

 

모두 함께 모였던 한낮의 춤은

언제 어느 세월로 돌아갔을까.

기진한 몸 일으켜 찾아온 바다의 경계

어두운 밤 파도만 의심하듯이

여기 있다고 저기 있다고

박자도 안 맞추고 나를 놀리데.

 

서해안에서도, 남해안에서도

또 목소리 큰 동해안에서도

젊었던 내가 흘려보낸 바람들

아직 바다에 떠서 몸 뒤척이고

 

그 시절의 부드러운 젖가슴 닫은 채

떨리는 무늬 고운 한숨만으로

한 줄씩 긴 수평선 되어

말없이 나를 꾸짖데.

 

귀향

 

1

돌아왔구나, 하고 친구가 말했다.

오레도록 나가서 떠돌며 살더니

이 일 저 일 털어내고 맨손으로

돌아왔구나, 하고 나를 잡아준다.

그런데 나는 정말 돌아온 것일까.

나 살던 동네도 모습 찾기 힘들고

알던 사람들 목소리 들리지 않는다.

 

2

그날은 저녁부터 밤새 비가 내렸다.

소름 끼치게 혼자 있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체질인 것을 알았다.

어떻게 남보다 많이 젖지도 않고

속내의 나를 모두 보일 수 있으랴.

그날은 떠난 날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숨쉬는

신선하고 정결한 단어를 찾으려고

방향도 정하지 못한 채 낚싯줄을 던졌다.

 

3

알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너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며칠 왠지 밤잠을 설쳤을 뿐이다.

얼굴과 머리는 늙어 낙엽으로 날리지만

한 평 침대에 누운 저 꽃 잠 깨끼 전에

재갈 물린 세월아, 모두 잘 가거라, 잘 가거라.

 

알래스카 시편 3

 

페어뱅크스를 떠나 북극 쪽 포트유콘에 왔다.

낮은 집 사이의 밤이 갑작스레 눈 멀고

지상의 표정은 어둡고 울적했다.

언뜻 나무 휘파람 같은 잡음이 들렸던가

그 소리 뒤로 펼쳐오는 휘황한 광채!

 

   그 물체 속에는 흰색의 연기, 빨간, 아니 주홍색 귀신들, 노랗고 파란 구름줄이 섞이고 회오리처럼 움직이며 하늘이 넓게 밝아왔다. 오로라, 극광 --- 지상에 살아 있는 짐승과 나무와 사람들의 빛이 몸을 빠져나와 하늘로 밀려가고, 숨어 있던 죽은 이들까지 하늘을 열고 나온다. 함께 어울리는 춤으로 현세를 떠나는 몸, 억눌렸던 인연이 해방되는 광대한 무늬의 빛.

 

문득 기억난다. 엘 그레코의 성화에서

베드로 성인이나 버나디노 성인의 배경으로

그런 하늘들이 휘말려오르고 있었던 것,

보이고 들리는 것만 믿고 있던 이름 앞에

황당한 눈물의 광채로 나를 들어올려준다.

그러나 내가 다시 세상에 돌아오는 시간은

왜 이렇게 애타게 조용할 때일까.

왜 이렇게 높고 추운 곳만일까.

 

밤비

 

참 멀리도 나는 왔구나,

산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고

강물도 흙이 되어 흐르지 않는다.

구름은 사방에 풀어지고

가까운 저녁도 말라 어두워졌다.

 

그대가 어디서고 걷고 있으리라는 희망만

내 김은 눈에 아득히 남을 뿐

폐허의 노래만 서성거리는 이 도시.

 

이제 나는 안다.

삶의 사이사이에 오래된 다리들

위태롭게 여린 목숨조차 편안해 보이고

그대 누운 모습의 온기만 내 안에 살아 있다.

 

하늘은 올라가기만 해서 멀어지고

여백도 지워진 이 땅 위의 밤에

차고 외로운 잠꼬대인가

창밖에서 떠는 작은 새소리, 빗소리.

 

캄보디아 저녁 1

 

천 년을 산 나비 한 마리가

내 손에 지친 몸을 앉힌다.

천 년 전 앙코르와트에서

내 손이 바로 꽃이었다는 것을

나비는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그해에 내가 말없이 그대를 떠났듯

내 몸 안에 사는 방랑자 하나

손 놓고 깊은 노을 속으로 다시 떠난다.

뜨겁고 무성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뒤뜰로만 돌아다니는 노란 나비.

 

흙으로 삭아가는 저 큰 돌까지

늙어 그늘진 내 과거였다니!

이제 무엇을 또 어쩌자고

노을은 날개를 접으면서

자꾸 내 잠을 깨우고 있는가.

 

꿈꾸는 당신

 

내가 채워주지 못한 것을

당신은 어디서 구해 빈 터를 채우는가.

내가 덮어주지 못한 곳을

당신은 어떻게 탄탄히 메워

떨리는 오한을 이겨내는가.

 

헤매며 한정없이 찾고 있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곳에 있기에

당신은 돌아눕고 돌아눕고 하는가.

어느 날쯤 불안한 당신 속에 들어가

늪 깊이 숨은 것을 찾아주고 싶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여,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면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새벽 침상,

아무리 인연의 끈이 질기다 해도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것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골다공증

 

1

당신의 골수를 열 달이나 받아먹고

어머니, 내가 생겨났습니다.

동생들도 당신 뼈에 구멍만 뚫어

해 지난 갈대같이 속 빈 육신,

골다공증으로 늙으신 어머니.

당신 뼈가 얼마나 가벼워졌으면

바람까지 들락거리는 큰길 사이로

먼 데 어디 날아가실 준비까지 하시는지.

 

2

   나는 덱사 스캔과 간단한 숫자 계산으로 수많은 골다공증을 진단해주고 돈을 벌었다. 당신의 뼈에는 5천 개의 구멍, 당신의 살에는 8천 개의 구멍, 당신은 구멍 난 풍선이나 타이어처럼 매일 몸이 줄어들고 목숨의 생기도 빠져나간다. 정신이 누추해져서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뼈들은 답답해서 자기 가슴에 구멍을 뚫고, 신산한 세상살이의 대못과 시달림, 아파서 못을 뺀 자리에 남아도는 피투성이 구멍들.

 

3

아무도 관심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제 나도 모든 것을 덮을 때가 되었다.

돌아보면 구멍 많은 당신도 가엾고

바닥 터진 내 지난날도 가엾다.

숨지 마라, 죄지은 지상의 모든 구멍들

암, 다시 보면 세상에 가엾지 않은 게 없지.

 

벌거벗은 뼈들이 추위를 더 느끼는가.

의과대학 해부학 시간 사람의 뼈들

동맥도 정맥도 더 이상 도착하지 않고

내 마른 손바닥만 핏빛으로 적시던

미세해진 그대 몸의 온기 속에서

빈 뼈가 서로 만나 볼 지피던 날들.

 

뼈가 운다. 운율 맑은 피리 되어

비 내리는 어두움에 외톨이로 운다.

얇고 가늘어진 뼈 대책 없이 부러지고

안타까웠던 집착도 형벌만으로 기억될 뿐,

더 기다릴 명분도 신음 소리 하나로 떠나고

뼈를 태워 재가 되어 내가 떠난다.

 

땀에게

 

네가 떠나고 난 후에야

내게도 땀이 있었다는 것

어렴풋한 오한으로 기억한다.

추운 겨울도 아니었을 텐데

외투 입고 목도리 두른 너른 수면에

소금기는 모두 어디로 사라지고

누구의 땀에서도 짠맛이 나지 않았다.

 

땀이 지구를 더 어지럽게 했다.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항구의 언덕

병약한 바늘에 찔린 피부.

그 수많은 구멍을 통해 땀이 솟았다.

생수에 젖은 소금이 솟았다.

갈증의 몸에서 눈물이 솟았다.

내가 다시 솟았다.

 

너를 만난 피부에서만 땀이 났다.

감추어놓은 절망이 터져나온 연옥,

소금의 단호한 결정체가 물이 되었다.

돌 속에 흐르는 땀까지 뽑아

돌 속에 살아 있는 고백까지 뽑아

떠나는 너에게 묘비명으로 보낸다.

 

이름 부르기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

시치미 떼고 옆 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로 바람도 만들었다.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새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 되어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

 

방 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 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 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다도해를 보며

 

남도의 한려수도나 해남 땅 끝에 사는

또 남해의 보리암 밑 바다에 있는

작고 많은 섬들이 대낮에도 부끄러워

넓은 구름 안개에 아랫몸 감추고

나무 고깔의 머리만 조금 내밀고 잇다.

 

이게 대체 몇 개나 되는 섬이나 물으면

나요, 나요 하는 메아리 숫자만큼 많겠지만

낮은 소리로 네가 이쁘구나, 하면

흩어져 잇던 섬들 어느새 다 알아듣고

안개 사이를 헤엄쳐 손잡기 시작하네.

 

아껴주고 보듬어주면 금세 어깨 기대는 섬,

더는 쓸쓸해하지 않는 섬이 손잡고 웃는다.

누가 깨우기 전까지는 모두들 조용하고 깊었다.

오늘에야 서로 껴안고 춤추며 만든

온 바다 속을 채우는 해초와 물고기들.

 

처음에는 너도 나도 섬이었구나.

우리가 만나 서로 허물을 안아주면서

말의 물길을 통해 경계가 무너지는 섬.

모든 완성은 눈과 눈을 합친다.

모든 완성은 멀고 막막한 하나다.

 

도마뱀

 

   내가 사는 외국의 동네에는 도마뱀이 많이 산다. 10센티 정도의 길이가 동작 재빠르고 눈치도 빠르다. 가끔은 죽은 듯 오래 움직이지 않는 재주도 있다. 영리한 이 도마뱀을 잡으면 잡힌 부분을 스스로 쉽게 끊어버리고 도망간다. 짧게 꼬리를 잡으면 그 꼬리를 버리고, 길게 잡아도 몸의 반쯤만 한 꼬리까지 포기하고 도망쳐버린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꼬리 잘린 도마뱀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도마뱀은 숨어서만 사는 것일까. 아니면 요술같이 새 꼬리가 금세 자라나는 것일까.

 

   내가 도마뱀의 끊어진 꼬리를 두 개나 가지게 된 날밤. 나는 내 머리가 없는 것을 알았다. 처음 가졌던, 내 아버지가 주신 머리가 없는 것을 알았다.고국의 친구가 그랬을까, 하느님같이 큰 손이 그랬을까. 머리를 잘 세워 생각을 옳게 고쳐주려고 내 머리를 잡앗던 것인가. 나는 귀찮은 참견이 싫어 내 머리를 끊어주고 도망치고 말았던가. 머리 없는 몸뚱이와 사지만으로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숨어 사는 도마뱀. 가끔은 내 머리가 그리워진다. 잘려나간 내 머리는 지금쯤,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악어

 

   또 먹기만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아픈 것에도 다 의미가 있다지만 해질녘이면 삭정이 가슴이 조인다. 풍경들이 점점 멀어지고 무엇이 살아 있다는 신호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다. 꿈의 제일 밑층에 살던 냉혈 동물이 불면증으로 신음한다. 머리에 두 개의 충혈된 눈을 달고 악어 한 마리 집 앞의 호수에서 떠오른다. 악어 우는 소리를 밤마다 들으며 선잠에서 깨어나 불치(不治)의 냄새로 아침까지 헤엄쳐 간다.

 

   악어는 모두 혼자 산다. 짝짓기의 며칠과 새끼 키우는 철을 지나면 모두 혼자서 자고 먹는다. 날카로운 3천 개의 이빨이 악어의 일생 중에 부러졌다가 다시 생긴다. 따뜻한 기온에서 부화된 알은 모두 수컷이 되고 차가운 물에서는 암컷만 나온다. 물에서는 귀와 코와 기도를 닫고 눈꺼풀 하나도 닫는다. 악어는 파충류, 그렇게 왔다 갔다 물에서도 땅에서도 산다. 고국과 외국에서 오락가락 살고 있는 나도 눈 감고 사는 파충류, 또는 양서류인가.

 

   20년 전쯤 내 친구는 악어를 조심하라며 복개된 청계천 밑에는 악어들이 새끼 치며 산다는 소문까지 알려주었다. 그 악어들 다 자라서 한강으로 내려가 살고 있는지. 황해나 태평양 바다에서는 오래 살 수 없을테니 지금은 누구 가슴에 숨어 살고 있을까. 얼마 전 환하게 복원된 청계천에는 맑은 물에 물고기들 뛰며 놀던데. 기념식 날 청계천에서 만난 그이들이 설마하니 악어의 환생은 아니겠지.

 

   악어 고기를 잘게 저미고 튀겨서 술안주 삼아 자주 먹어대는 이 마을로 이사를 온 뒤에야, 사람이 악어를 조심하기보다 악어가 영악한 사람을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찟긴 타이어 같은 갑옷을 입고 배부르면 한 달씩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명상과 수면으로 시간을 헤매는 악어. 악어는 더 이상 보호 동물이 아니지만 지난 태풍에 너무 많이 죽어 고기 값과 가죽 값이 급등했다던데, 악어는 왜 아직도 말없이 뻘밭을 기며 외국에서 혼자 사는가.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저예요, 저, 저.

   글쎄, 누구실까.

   목소리는 귀에 익은데---

   몸속 깊이 감추어둔

   내 부끄러움이 목을 조인다.

   저예요, 진 땅에서 우는 아들,

   버려진 회색 배경이 시들고

   해 지면 온 동네가 입 다물어요.

   저예요, 저, 악어요.

   아, 이제 알겠네. 이제---

   민감한 풀숲이 어깨 움츠리고

   이슬 한 방울 물풀 잎 끝에 핀다.

 

   내 나이에 걸맞은 삶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점잖게 흙바닥까지 몸을 낮추고 끝날을 준비하는 것인지, 어디서든 죽기로 부지런히 뛰는 것인지. 해가 지면서 그림자들이 점점 커지고 분명해졌다. 낮에는 몰랐던 나무와 집과 권태가 검은 색으로 나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무서움인가. 작은 호수 주위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난초과의 연한 보랏빛 꽃들을 흔들어본다. 진한 향기에 흰 물새 한 마리가 옆에 서서 웃는다.

 

   원시의 동물을 모두 화석으로 만들고 공룡의 씨를 말린 긴 천재지변에도, 용케 살아남은 큰 동물이 악어뿐이라는 것을 혹 아시는지. 물 밑의 그 땅 밑에서 두 눈 감고 귀까지 감고 살아남은 악어 몇 마리. 심장 하나로 하늘과 땅이 전하는 말만 믿고 따른 무리. 흰 낮달을 올려다보며 살아낸 60 몇 년의 악어의 유랑, 찢어져 피 흘리는 악어의 손과 발. 참다가 넘쳐 흘러나와 약이 된다는 한밤의 악어의 눈물, 그 두 뺨 뜨거운 후회 밤마다 내 호수를 채운다.

 

새에 대한 명상

 

새끼를 떠나보낸 뒤에는

언제 어디로 떠나간 것까지 잊고

집 없는 노후의 새가 되어

비도 맞고 눈도 오래 맞으리.

 

큰 나무 높은 손 위에서

자유의 가벼운 풍경으로 서서

나도, 아무도 기다리지 않기.

위장된 적막도 환각도 잊고

남아 있던 주변도 털어버려서

인연의 실은 몸에 남기지 않기.

 

백발 성성한 새여,

구름 속으로 날아 들어가

오늘은 새 생을 맞는다 했는가.

죽고 남은 몸 구름 속에 뿌려놓고

환하게 퍼지는 연민이 되겠다 했는가.

 

새가 떠나버린 빈 터가

내가 살기에는 너무 넓다.

그 빈 터가 한겨울이 되어도

어이할거나, 얼지를 않는다.

어이할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풍경화

 

성북동의 가을, 간송미술관에 찾아가

조선 중기의 잔잔한 그림들에 머리 숙이며

해진 종이 냄새 속에서 눈 맞는  새도 보고

잡은 학을 놓아주는 여유로운 시대도 만난다.

이 진한 향기의 꽃은 어디에 피어 있기에

어지러웠던 내 평생이 기다림에 지쳐

이름 모를 나무 되어 옷을 벗는가.

유혹이여, 대낮에 눈 뜨는 어린 하늘이여.

 

상처 4

 

소나무 숲길을 지나다

솔잎내 유독 강한 나무를 찾으니

둥치에 깊은 상처를 가진 나무였네.

속내를 내보이는 소나무에서만

싱싱한 육신의 진정을 볼 수 있었네.

 

부서진 곳 가려주고 덮어주는 체액으로

뼈를 붙이고 살을 이어 치유하는지

지난날 피맺힌 사연의 나무들만

이름과 신분을 하나 감추지 않네.

나무가 나무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나도 상처를 받기 전까지는

그림자에 몸 가리고 태연한 척 살았었네.

소나무가 그 냄새만으로 우리에게 오듯

나도 낯선 피를 흘리고 나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네.

우리들의 두려움이 숲으로 돌아가네.

 

바오밥의 추억

 

   왜 그렇게도 매일 외울 것이 많았던지

   밤샘의 현기증에 시달리던 나이.

   큰 바오밥 나무를 세 개나 그려

   소혹성 몇 번인가를 가득 채워버린

   그 그림 무서워하며 헐벗은 날을 살았지.

 

   그 후에 가시에도 많이 찔리고

   허방에도 많이 빠지고

   녹슨 못을 잘못 밟아 피 흘리면서

   창피한 듯 눈치껏 피해만 다녔지.

   나는 그렇게 살아앴어. 너는?

 

   하느님이 제일 처음 심었다는 나무.

   뿌리가 하늘을 향해 물구나무선 채로

   늙은 의사가 되어서야 지쳐서 만난

   아프리카 초원의 크고 못난 다리.

   안을 수도 없어 어루만지기만 했는데

   밀가루 같은 추억이 주위에 흩어졌어.

 

   밥이 되는 열매와 야채가 되는 잎.

   나이테도 아예 없애고 둥치만 커지는

   주위로는 대여섯 개 문이 닫혀 있는데

   안내원은 더위에 덮인 목소리를 뽑으며

   이것이 아프리카의 수장(樹葬)이라고 했디.

 

   큰 바오밥을 만나니 무섭기보다는 목이 메인다. 둥치를 뚫고 나무에 구멍을 만들어 시체를 그 속에 밀어 넣고 판막이로 입구를 못질해 막으면, 열대의 초원에 우뚝 선 바오밥은 시체를 잠재워준다. 껴안고 녹여서 몇 해 안에 제 몸으로 받아들여준다. 못질한 막이도 어느새 구별되지 않는다. 천 년 이상 이렇게 사람을 안아주었으니 얼마나 많은 시체가 한 나무에서 살다가 나무가 되었을까.

 

   나무가 되어버린 인간들은

   남은 살과 피로 열매를 만들며

   추억을 수액에 섞어 마신다.

   인간이 나무 속에 들어가는 동네.

   잡초까지 이상하게 물구나무선다.

   둥치의 긴 척추가 우리들의 날같이

   귀환의 낮과 밤을 비추어준다.

   축복처럼 아프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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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