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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1. 10:27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5 쉬!

 

문인수 시집

2006, 문학동네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2127

 

811.6

문68쉬

 

홀로 가는 외뿔의 시심

 

문인수의 시에서는 홀로 가는 외뿔의 시심(詩心)이 가감 없이 읽혀진다.

사물 속으로 자신의 전부를 투사하는 이 실재(實在)는 거친 각질이 느껴지는 그대로

단숨에 시적 대상을 요약해 보인다. 미처 우리가 돌아보지 못한 곳을 바라보는

그의 깊고 그윽한 시선은 사물이면 사물, 사람이라면 사람, 어느 것에라도

진솔하게 가 닿는 마음의 파문이 되어 독자들의 가슴에도 사무치는데,

우리는 그런 친화를 감동이라는 말로 고쳐 불러도 좋으리라.

진정한 타자성이야말로 문인수 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잇다.

 

나는 어린 시절 동네의 풍물마당에서 만났던 한 북재비 사내의 채질을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의 신명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그어대는 일자일획(一字一劃)의 붓질이었다.

문인수의 시편 속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놀이에 파묻히는, 제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몰두와 통찰이 스며 있다. 그의 북질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이 되어

마침내 마음을 쓰다듬으니, 누더기를 깁느라 자신도 누더기가 되어본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너덜너덜함을 애써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 변두리로만 한없이 흘러가던 길이

어느 순간에 들판으로 툭 틔워, 감추었던 내장을 모두 쏟아내는 그 후련함은

그가 사물이나 사람과 사귀는 데 진정을 다했음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구름 속에서도 내처 흘러온 조각달처럼 하염없는 세월의 심상을 간직하지만,

날카로운 날(刃)을 함께 품고 있어서 마침내 서늘한 부재(不在)까지 꽉 찬 여백으로

돌려놓는다. 젊지 않았던 나이에 노래를 익혀 어느새 득음(得音)의 경지를 열어젖힌

그의 내공은 그 동안의 각고가 간단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김영인(시인,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85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1996년 제14회 대구문학상, 2000년 제11회 김달진문학상,

2003년 제3회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뿔』『홰치는 산』『동강의 높은 새』 등이 있다.

E-mail : insu3987@hanmail.net

 

自序

 

'재미'라는 말 안에 인생 전부,

전반을 우겨넣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해본다면

나는 아직 시 쓰려는 궁리,

쓰는 노력보다 더 그럴듯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이 한 욕심이 참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는 줄 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시를 쓴다.

가끔,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끝장낼 수 없는 시여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

 

차례

 

自序

 

1부

달북 / 쉬 / 덧니 - 이성선 시인을 추모함 / 벽의 풀 / 고인돌 / 고인돌공원 / 성밖숲 / 꽃 / 원서헌의 彫像 / 낮달이 중얼거렸다 / 樹葬 / 저 할머니의 슬하 / 새벽 / 뿔, 시퍼렇게 만져진다 / 우렁각시

 

2부

그림자 소리 / 바다책, 채석강 / 바다책, 다시 채석강 / 등대 / 등대도 팔 힘을 쓴다 / 소나기 / 청령포 / 항해 / 꽉 다문 입, 태풍이 오고 있다 / 꽉 다문 입, 휴가 / 2박 3일의 섬 / 모항 / 민박 / 바다 가는 길 / 땅끝 / 그리운 북극 / 나비

 

3부

그늘이 잇다 / 철자법 / 산길에서 늙다 / 정취암엔 지옥도가 있다 / 각축 / 고양이 / 집 근처 학교 운동장 / 오지 않는 절망 / 발톱 / 새해 / 밝은 날 명암이 뚜렷하다 / 저수지 / 황조가 / 밝은 구석 / 서쪽이 없다 / 집에 전화를 걸다 / 끝

 

4부

짜이 - 인도소풍 / 기차가 몰고 온 골목 - 인도소풍 / 빨래궁전 - 인도소풍 / 말라붙은 손 - 인도소풍 / 먹구름 본다 - 인도소풍 / 굴렁쇠 우물 - 인도소풍 / 싯타르를 켜는 노인 - 인도소풍 / 모닥불 - 인도소풍 / 모닥불 1 - 인도소풍 / 모닥불 2 - 인도소풍 / 기차를 누다 - 인도소풍 / 갠지스 강 - 인도소풍 / 새 - 인도소풍 / 불가촉천민 - 인도소풍

 

달북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달,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데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암흑의 밑이 투둑, 타개져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까지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대답이 두둥실 만월이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고인돌

 

   죽음은 참 엄청 무겁겠다.

   깜깜하겠다.

   초록 이쁜 담쟁이넝쿨이 이 미련한, 시꺼먼 바윗덩이를 사방 묶으며 타넘고 있는데, 배추흰나비 한마리가 그 한복판에 살짝 앉았다.

   날아오른다. 아,

   죽음의 뚜껑이 열렸다.

   너무 높이 들어올린 바람에

   풀들이 한꺼번에 다 쏟아져나왔다.

   그 어떤 무게가, 암흑이 또 이 사태를 덮겠느냐, 질펀하게 펼쳐지는,

   대낮이 번쩍 눈에 부시다.

 

그림자 소리

 

지수제 난간에 어떤 남녀가 서 있다.

두 그림자 물에 길게 넌다. 막돌들 들여다보이는

얕은 시냇물, 빠짐없이 밟히는 것들의 물그늘 마르지 않고

관계란 참 마음 아픈 데가 옹기종기 너무 많은 것 같다.

또 불어 한통속으로 힘껏 짜내는,

빠져나가는 물소리 물소리 하염없다.

 

그늘이 있다

 

광명에도 초박의 암흑이 발려 있는 것 같다.

전깃불 환한 실내에서 다시

탁상용 전등을 켜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분명, 한 꺼풀 얇게 훔쳐 감추는 휘발성분 같은 것

책이나 손등, 백지 위에서 일어나는

광속의 투명한 박피현상을 볼 수 있다.

사랑한다, 는 말이 때로 한순간 살짝 벗겨내는

그대 이마 어디 미명 같은 그늘,

그런 아픔이 있다. 오래 함께한 행복이여.

 

짜이

- 인도 소풍

 

인도에서는 마시는 차를 '짜이'라 부른다.

무슨 가축의 젖을 원료로 쓴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달착지근하니 약간은 비린 맛을 풍긴다.

 

내가 아, 빤히 올려다보며 빨아먹은 어미는 도대체 몇왕생 몇몇이었을까

윤회를 믿는 신비한 나라,

인도 미인들의 검은 누은 깊고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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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