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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2. 11:22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7 과학으로 여는 세계 불가사의 1

 

이종호 지음

2006, 문화유람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1666

 

001.44

이75세 1 c. 2

 

신과 미지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인간들의 이야기

 

이종호

과학자이자 고대 문명 탐사가.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탐사하며 연구를 시작해 기초 없이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 등으로 20여 개 국가에서 특허권을 얻는 등 지금도 문명과 과학 · 역사를 넘나들며 많은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프랑스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 취득

·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 제출상 수상

· 해외유치 과학자로 귀국

· 한국과학기술연구소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활동

· 과학기술처장관상 · 태양에너지학회상 ·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저서>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현대과학으로 다시 보는 한국의 유산 21가지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박택규 공저)

『피라미드 과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물리, 화학, 생리 의학)』 등 다수

 

contents

 

머리말

 

1부 전설의 시작

1장 | 왕들의 계곡에 내린 파라오의 저주

2장 | 계속되는 피라미드의 미스터리

3장 | 스핑크스는 초고대문명의 흔적인가

4장 |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를 향해

 

2부 신화의 무대

5장 | 플라톤과 아틀란티스

6장 | 남극지도의 전혀 다른 진실

7장 | 소돔과 고모라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8장 | 한니발과 카르타고의 비밀의식

9장 | 바이킹, 미지의 땅을 향한 공포의 열정

 

3부 잃어버린 지혜를 찾아서

10장 | 크로마뇽인들과 동굴벽화

11장 | 스톤헨지를 세운 사람들

12장 | 나스카 문양, 땅에 새긴 하늘의 암호인가

13장 | 이스터 섬에서 일어난 일

14장 | 연금술, 욕망과 지적 열망 사이에서

 

미주

참고문헌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왕들의 계곡. 사진은 그 중에서 투탕카멘 무덤 입구의 모습이다. 왕들의 계곡에는 이집트 제18왕조부터 제20왕조까지 파라오 60여 명의 무덤이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대부분의 무덤들이 도굴되었는데 투탕카멘 무덤은 무덤을 축조할 당시의 모습과 유물을 간직한 채 발굴되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최근에도 이곳에서는 미라가 발견되었고, 새로운 파라오의 무덤을 찾기 위한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왕들의 계곡에서 발견된 람세스2세의 미라.(위) 모세가 유대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로 추정되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미라는 이미 오래전에 도굴되었고, 19세기 후반에 다시 발견되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영생을 믿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제조하며 약품을 쓰는 기술, 해부학, 의학, 등을 발전시켰다. 미라를 만들 때는 썩기 쉬운 내장을 시신에서 꺼내 카노픽(아래)이라는 항아리에 나누어 보관했다. 카노픽은 4개의 항아리가 한 세트였는데 항아리 뚜껑에는 사람, 원숭이, 자칼, 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었다.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 항아리에는 간을, 원숭이가 조각된 항아리에는 폐를, 자칼 항아리에는 위를, 매 항아리에는 창자를 담았다.

역사적인 투탕카멘 무덤 발굴의 두 주인공인 카터와 카르나본 경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투탕카멘 무덤에서 카터와 카르나본 경이 금이 도금된 문을 열고 궤를 살피고 있다. 이 안에서 석관, 미라형 관, 황금 마스크를 쓴 왕의 미라가 발견됐다. 이들이 발굴한 투탕카멘 무덤은 금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발굴 사건으로 꼽힌다. 옛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고대 이집트 세계의 신비를 푸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투탕카멘의 관을 살피는 카터.

투탕카멘 황금관.

투탕카멘 왕의 미라를 조사하는 과학자들. 투탕카멘 무덤을 발굴한 사람들의 죽음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며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러한 의문의 죽음들이 일어난 것은 미라나 과일들에 기생했던 곰팡이들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때 제기되기도 하였다.

아마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투탕카멘 왕의 미라. 이집트인들은 장기를 따로 분리하고 나트론으로 시신을 채워 더 이상 썩지 않게 한 뒤 아마포로 감아 미라를 만들었다.

투탕카멘 미라를 CT(컴퓨터단층촬영기)로 촬영하고 있다.

투탕카멘 미라의 머리 부분을 X선으로 촬영한 모습. 사진에서 X로 표시된 흰 부분은 미라를 제작할 때 주입한 수지이다. A 흔적 때문에 외부의 타격에 의해 투탕카멘이 살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투탕카멘의 얼굴을 복원한 그림. 3,3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소년 파라오였던 투탕카멘의 모습을 미라 CT(컴퓨터단층촬영기) 촬영 등의 자료를 통해 재현했다. 이 작업은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와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가 주관했다.

발굴 당시 투탕카멘 무덤의 내부 모습으로 아누비스 조각상이 보인다(위). 아래 사진은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들. 이집트인에게 이누비스는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고 오시리스의 법정으로 인도해,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삶을 판정하는 존재였다. 죽음의 의식과 사후 세계를 주관했기 때문에 미라를 만드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흔히 자칼의 얼굴을 한 이누비스신이 등장한다.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 때 다른 장기는 분리해 카노픽 항아리에 나눠 보관하면서 심장 만큼은 분리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집트 카이로 남서쪽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로 지상 최대의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특히 기원전 26세기 경에 쿠푸 왕이 쌓은 피라미드는 가장 그 규모가 크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필론이 이야기했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피라미드는 웅장한 규모뿐만 아니라 정교한 건축술 등으로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고대 역사에 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대피라미드의 쿠푸 왕 현실로 들어가는 대회랑의 모습. 아래 사진은 비밀의 문. 대피라미드의 쿠푸 왕 현실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청난 보물을 간직한 쿠푸 왕의 현실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1985년에는 프랑스의 건축가인 도르미옹과 골뎅이 대피라미드의 구조상 알려지지 않은 다른 찾기 위한 탐사를 펼쳤는데 아래 사진은 독일 탐사팀이 로봇을 이용해 찍은 사진으로 비밀의 방 입구라고 주장되는 곳이다.

이집트 기자에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와 함께 이집트의 고대 문화유산을 대표한다. 스핑크스를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학설이 분분하나 피라미드를 보호할 목적에 세워졌다는 의견이 많다. 스핑크스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조각상이다.

케프렌 조각상(위)과 스핑크스 정면 모습(아래). 케프렌 조각상은 이집트 유물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이다. 케프렌은 스핑크스를 세운 파라오로 알려졌는데 스핑크스의 얼굴이 케프렌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주장 때문에 조각상과 스핑크스의 얼굴을 비교하는 연구가 있기도 하였다.

스핑크스 앞발 바로 앞에 있는 스핑크스 신전. 기자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주변에는 거대한 신전이자 건설 노동자들의 숙소가 있었다.

건조한 지대에 비교적 큰 전쟁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집트의 문화유산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인간들에 의한 자연 파괴 때문에 유산 보존이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나일강에 아스완 댐이 건설되면 수몰 위기에 처하자 그 위치를 높은 곳으로 옮겨 다시 세우게 된 아부심벨 신전.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6~1541).

사생아(私生兒)로 태어나 글도 배우지 못했던 피사로는 용병(傭兵)생활을 마친 뒤 신대륙으로 건너가 활동했다. 발보이가 죽은 뒤 후계자가 되어 파나마를 건설하고 콜롬비아를 탐험했던 피사로는 잉카제국의 정보를 입수한 뒤에 일시 귀국했다. 그리고 에스파냐 왕실의 원조를 받는 등 준비를 갖춘 뒤 1531년 기마병을 포함해 부하 180명을 거느리고 중남미로 돌아왔다. 다음해 잉카의 내란을 탐지한 그는 잉카의 황제 아타왈파(Atahualpa, 재위 1525~1533)와의 회견 자리에서 황제를 납치했다. 아타왈파가 황금을 대가로 풀어달라고 제의하며 엄청난 황금을 제공받았으나 반란이 두려웠던 피사로는 1533년 아타왈파를 우상숭배와 근친혼, 그리고 일부다처제의 죄를 물어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했다.

아타왈파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잉카의 신앙에 따르면 화형은 영혼 소멸을 뜻하기에 화형을 면하고자 기독교로 개종하고 교수형을 당했다. 총이나 말(horse)을 몰랐고, 그들이 숭배하는 신이 흰색이었던 강력한 제국, 잉카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군대에 의해 멸망하고 만 것이다. 피사로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점령하고 잉카제국을 에스파냐 왕에게 바쳤다. 1535년부터 새 수도 라마의 건설을 시작했다. 문맹이면서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피사로였지만 그 역시 동료와의 싸움에서 비참한 최후를 당했다.

페루의 쿠스코(Cuzco)와 쿠스코 주변에 남아 있는 잉카제국의 흔적. 인구가 29만을 조금 넘는 이 도시는 페루 리마의 동남쪽 580킬로미터, 해발고도 3,400미터로 인데스산맥에 위치하며 기후가 쾌적하다. 13세기 초에 건설되어 16세기 중반까지 중앙 안데스 일대를 지배한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피사로와 에스파냐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번영의 절정기를 맞이했던 당시의 쿠스코는 반듯한 시가지, 아름다운 건물, 거대한 신전 등으로 정복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도시는 정복된 후 파괴되어 에스파냐풍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으나 주변 곳곳에는 아직도 잉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잉카제국이 번창하던 시절 쿠스코에 있던 태양의 신전. 광장을 중심으로 태양, 무지개, 달, 별, 천둥과 번개, 희생의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방들은 아름답고 단단한 돌벽으로 되어 있었는데 움푹 들어간 자리엔 금이나 은 장식물이 있었다고 한다. 신전은 벽에서 나오는 황금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는 한 에스파냐 정복자의 글이 전하기도 한다.

잉카가 멸망한 이후 에스파냐인들은 신전을 파괴하고초석만 남긴 채 그 위에 에스파냐풍의 교회를 세웠다. 지금도 전하는 잉카 때의 초석은 큰 지진을 견디며 지금도 남아 잉카 건축술의 정교함과 견고함을 증명해주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 해발 2,280미터 정상에 자리잡은 마추픽추는 그야말로 '공중도시'이다. 잉카의 마지막 황제 망코가 에스파냐인들에게서 도망쳐 빌카밤바라는 잉카 최후의 수도를 세우고 엄청난 보물을 숨겼다는 전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도시를 찾았는데 마추픽추를 그 전설의 빌카밤바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의 정치가였던 이그나티스 도넬리(1831~1901). 세계 각국의 유적이나 신화, 문화 등을 통해 아틀란티스가 실재했음을 주장하는 그의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중해 크레타 섬에 있는 크노소스 궁전으로 고대의 왕궁 중에서도 그 규모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내부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해 1,000개를 훨씬 넘는 방들이 있는데,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이 미궁(迷宮) 깊숙이 살고 있는 괴수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왕녀 아리아드네와 함께 섬을 탈출했다는 신화의 무대이기도 하다.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 있는 벽화로 달려오는 황소를 넘는 경기를 묘사했다. 고대 크레타인들의 이러한 풍습은 플라톤이 말하는 아틀란티스의 이야기와 관련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크노소스궁의 내부를 복원한 그림.

미국 칸주립대학의 찰스 햅굿 교수는 중세에 제작된 지도를 연구하다. 이 지도가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정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도가 제작되던 때에는 탐사조차 되지 않았던 땅들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많은 중세 지도에 수 킬로미터 두께의 얼음에 파묻힌 남극 대륙이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에 큰 흥미를 느꼈다. 19세기 초반에 남극 대륙이 발견되고 20세기에 들어와 남극점이 정복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햅굿은 이들 지도들이 그 이전부터 전해오던 원본을 짜집기해서 제작된 것이 틀림없다고 보았다. 고대에 발전했던 과학기술이 이후 중세를 거치면서 잊혀졌다는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스만제국의 해군 제독을 지냈던 피리 레이스가 1513년에 제작한 지도는 놀라웠다. 수천 미터 만년설과 얼음 밑에 있는 남극 대륙의 산맥과 강 등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피리 레이스는 당시에 전해지던 지도를 베껴서 지도를 제작했다. 이에 햅굿은 오래전에 고도의 문명을 유지했던 사람들에 의해 지도가 처음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펼쳤다.

오론테우스 피나에우스의 지도로 네모 선 안이 남극 대륙에 해당한다. 피리 레이스의 지도가 제작되고 18년이 지난 1531년에 제작된 오론테우스의 지도에는 남극이 더 정확하게 묘사되어 잇다. 20세기 중반에야 알려진 남극의 얼음 밑의 산맥과 섬이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극 대륙을 인공위성에서 본 모습. 과거의 정설은 지구의 공전궤도와 자전축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면서 남극 대륙에 빙하기가 도래했다는 것이지만 햅굿은 양 극점 위의 얼음이 임계질량에 도달하면 그 무게로 지구의 외피인 지각판(각 대륙이 지각판 위에 얹혀 있다)이 균형에 도달할 때까지 이동한다는 이론을 폈다.

키르허의 지도.

나르메르 왕의 승전을 기념하는 그림이 새겨진 판(기원전 3100년경 제작,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나르메르가 나일강 일대의 도시국가를 통합해 최초로 이집트 통일왕국을 세우면서 이집트 제1왕조가 시작된다. 이집트 문명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은 나르메르의 정복전쟁과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이집트 등에 영향을 준 남극 문명 유적의 건설 연대가 1만 2,000년 전이라고 한다면 이집트 문명이 시작된 기원전 3000년경까지의 시간이 공백으로 남는다.

롯의 두 딸과 아내가 소돔을 탈출하는 모습. 그러나 아내는 천사의 훈계를 어기고 뒤를 돌아다봄으로써 소금 기둥이 된다.

모헨조다로 유적.

1908년 여름의 초토화된 러시아 퉁구스카 삼림지대로 나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쓰러져 잇다. 퉁구스카에서 일어난 대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컸던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영국에서는 한밤중에도 신문의 작은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시베리아 대폭발'로 알려진 사건이다.

카르타고의 디도 여왕과 동거 생활을 하던 아이네이아스가 여왕에게 이별을 고하고 카르타고를 떠나는 장면. 이때 디도 여왕은 "카르타고와 아이네이아스의 도시는 영원히 원수가 되어 증오하리라, 전쟁하리라"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훗날 아이네이아스가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선조가 됨에 따라 카르타고와 로마는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관계가 되었다.

무역에 능했던 고대 페니키아인이 지금의 북아메리카 튀니지에 세운 도시국가인 카르타고.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다른 주요 도시들이 쇠퇴하는 동안 지중해 일대의 강자로 떠올랐고, 지중해를 사이에 둔 채 로마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제2차 포에니전쟁의 영웅, 한니발(Hannibal, 기원전 247~183)

제2차 포에니전쟁 때 한니발의 군대는 코끼리까지 동원한 채 바다와 강을 건너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까지 2,700여 킬로미터를 진군한다.

스키피오(Scipio, 기원전 236~184)와 로마군. 고대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스키피오는 '대(大)아프리카누스'로 불리기도 한다. 명문 스키피오 가문 출신으로 제2차 포에니전쟁에 참전해 에스파냐의 카르타고군을 격파하였고, 로마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204년에는 아프리카로 군대를 진격시켰다. 기원전 202년, 아프리카의 자마에서 한니발을 무찌르고 제2차 포에니전쟁을 종결시키며 '아프리카누스'란 칭호를 얻었다.

카르타고에 남아 있는 로마의 흔적. 포에니전쟁에서 패하며 카르타고는 철저히 파괴되고 로마의 문화가 유입된다.

카르타고인들이 숭배했던 하늘의 여신 타니트신전(神殿)의 유적.

신을 위해 희생된 자들의 비석. 가히 지옥의 신전(神殿)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만 명이 넘는 어린아이들의 목숨이 카르타고의 신을 위해 사라졌다.

바이킹이 쓰던 전함.

캐나다 뉴펀들랜드에 있는 바이킹 유적지. 역사학자들은 13~14세기에 발간된 플래티북(Flatey Book)의 기록을 토대로 바이킹이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믿었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1961년 헬게와 안네 잉스타드 부부는 캐나다의 뉴펀들랜드 북쪽에 있는 랑스오메도우에서 마침내 바이킹의 유적지를 찾는다.

1492년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그의 일행.

실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 그 존재가 알려진 알타미라 동굴벽화.

프랑스 도르도뉴의 몽티냐크 마을에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 1940년 마을의 소년들이 우연히 발견했는데 동굴에는 들소 · 야생마 · 사슴 · 염소 등의 그림이 많았고, 주술사 등도 그려져 있었다.

프랑스 남쪽 아르데슈 지방의 콤브다르크에서 발견된 쇼베 동굴과 쇼베 동굴벽화. 이 유적의 이름은 1994년 12월 처음 발견한 이 지방 고고학분과의 공무원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멸종한 유럽 들소 그림을 포함해 매머드, 동굴사자, 동굴곰 등 다른 선사시대 벽화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동물들의 그림도 있다. 프랑스의 벽화 전문가인 클로트는 그림들이 사냥을 위한 마법의 의미보다는 동물들의 영혼을 드러내기 위한 주술적인 의식(儀式)에 쓰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벽화전문가들은 이 동굴 유적이 라스코나 알타미라의 동굴벽화 이상으로 뛰어나다고 평했다.

라스코 동굴은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를 대표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라스코 동굴벽화를 보면 말 그림이 6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러나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의 뼈를 보면 순록이 90퍼센트에 이른다. 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과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동물들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 중 유일하게 사람 형상을 한 그림. 투창에 상처를 입고 내장이 나온 들소 앞에 새의 얼굴을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학자들 중에는 사냥 중 일어난 사고라고 하는가 하면 수렵의식의 황홀경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라스코 동굴벽화 중 많은 사람들의 의문을 자아내고 있는 그림이다.

7만여 년 전에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추상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중석기 지층에서 발견된 이 추상화는 철광석의 일종인 '오커(적토)'의 두 표면을 평평하게 한 다음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해 균등한 간격으로 대각선 여러 개를 긋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대각선을 그어 마름모꼴과 삼각형을 표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추상화에는 하나의 체계가 있으며 지금 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당시 사람들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상징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대의 거석 기념물인 스톤헨지. 영국 월트셔주(州) 솔즈베리 평원에 있다. 1986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록되었다.

중세인들은 거대한 돌들이 서 있는 스톤헨지를 보며 키가 5미터나 되는 거인의 묘라고 생각하거나 노아의 홍수 이전에 살고 있던 악마나 마법사의 소행이라고 보았다.

스톤헨지를 하늘에서 본 모습. 돌과 그 주변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스톤헨지의 돌 배치가 우연이 아니라 태양과 달 등의 천문 지식을 활용한 점이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를 둘러싸고 스톤헨지의 비밀을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스톤헨지 건설에 천문지식이 깊이 활용되었다면 이는 경제와 종교, 의술, 정치 등에 영향을 미쳤던 천문학자 즉 사제계급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영국의 거석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솔즈베리 대사원(위)과 실베리힐(아래).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의 수수께끼로, 논란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스톤헨지.

영국의 스톤헨지에서 30킬로미터쯤 북쪽에 있는 에이브베리에도 거석문화의 유적이 전한다.

프랑스 카르나크에 있는 거석문화의 유적으로 약 3킬로미터에 걸쳐 돌들이 놓여져 있다.

페루 리마 동남쪽 약 37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나스카평원으로 해발고도는 700미터쯤 된다. 근처에는 9세기경에 가장 번영했던 프레잉카의 유적이 있는 등 남아메리카 고고학 연구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본 거미 모양의 나스카 문양.

나스카평원에 그려진 벌새 문양.

하늘에서 본 우주인 모양의 나스카 문양.

나스카평원에서 가까운 페루 해안의 또 다른 지오글리프(geoglyph, 땅그림).

나스카인들에게 물을 공급하던 시설.

활주로 모습을 한 나스카 문양.

사람 얼굴을 한 거대한 조각상 모아이 이들은 주로 1200~15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아이는 씨족별로 세워지고 각각의 이름을 갖는데 가장 큰 것은 높이가 20여 미터에 이른다.

붉은색 모자를 쓴 모아이.

라노카오 분화구.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이스터 섬의 주민들은 모아이의 석재로 조각하기 쉬운 화산암을 이용하였다.

주로 해변을 끼고 서 있는 이스터 섬의 모아이들.

이스터 섬에 살던 주민들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적지.

이스터 섬의 신성한 공간인 아후, 길이가 50미터에 이르는 곳도 있다.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장소로 추정되며 석상과 그 주변은 성소(聖所)로 보호되었고, 사람들이 죽으면 뼈를 묻기도 했다.

조지프 라이트 어브 더비가 1770년에 그린 <연금술사>.

<미다스의 형벌>. 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큰 형벌을 받아야 했던 미다스 왕의 이야기는 인간의 금에대한 오랜 집착을 잘 말해준다.

투탕카멘 황금 마스크. 금은 그 특유의 성질로 인간들에게 오랫동안 귀중품이 되어 왔다.

이집트 덴데라의 하토르 연신을 모시는 신전에서 발견된 그림. 이집트인들이 커다란 전기 램프를 들고 있는데 전기 램프는 한편에서 제드라고 하는 기둥이 받치고 있고, 한쪽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연금술이 행해지던 방. 연금술사들은 한편에서 세상의 비밀을 풀고자 한 철학자들이자 낯선 세계를 노크하는 탐구자였다.

1862년 이집트의 테베에 있는 무덤에서 발견한 파피루스 에버스(Papyrus Ebers). 연금술에 관한 내용을 담은 가장 오래된 저술로 기원전 16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학자들은 연금술이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실제 이집트의 연금술 지식은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파피루스 에버스가 제작될 당시 이집트에서 연금술을 행하는 장면.

니콜라 플라멜과 그가 살던 파리의 집. 니콜라 플라멜은 연금술 역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인물이다. 아내와 함께 책장사와 대서업으로 큰돈을 벌어 빈민구호소를 운영하던 그는 천사의 예언대로 낯선 사람에게서 이상한 책을 받는다. 그 부부는 이후 이 책을 해독하는 데 21년을 보냈고 그 과정에서 연금술을 익힌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1382년 1월 17일 정오에 수은(Hg)을 은(Ag)으로 변화시켰고, 3개월 후인 4월 25일 오후 5시에는 수은(Hg)을 금(Au)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1407년에 지어진 그의 집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집으로 알려져 있다.

거짓말을 한 연금술사를 교수형에 처한다는 발표문(뮌헨박물관 소장).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212).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시라쿠사 출신. 지렛대의 원리에 능통했던 그는 시라쿠사 왕 히에론 앞에서 "긴 지렛대와 지렛목(支點)만 있으면 지구라도 움직여 보이겠다"라고 장담했다. 하루는 왕이 자신의 금관에 은이 섞였다는 소문을 듣고 아르키메데스에게 이를 감정하라고 명했는데 그는 이 문제를 풀면서 중요한 원리를 발견한다.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싼 카르타고와 로마의 제2차 포에니전쟁(기원전 218~201) 때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의 편을 들어 로마군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게 되었다. 이때 아르키메데스는 70세를 넘긴 나이였지만 각종 투척기나 기중기 등 지렛대를 응용한 신형 무기를 고안해 로마의 대군을 크게 괴롭혔다. 몇 년 뒤 시라쿠사가 함락되었는데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기하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아르키메데스는 뜰의 모래 위에 도형을 그리며 기하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다가오는 사람의 그림자가 로마 병사 것인 줄도 모르고 도형이 망가진다고 물러나라고 외쳤다. 로마 병사 역시 그를 몰라보고 그의 목을 쳤다.

로버트 보일(1627~1691). 그는 모든 물질의 순수한 1차 구성 성분인 원소를 발견함으로써 오랜 연금술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다.

연금술을 상징하는 그림. 연금술은 실패했으나 과학의 발전에 남긴 공은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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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