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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6. 14:1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38 마야 - 잃어버린 도시들

 

클로드 보데 / 시드네이 피카소 지음, 김미선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7199

 

082

시156ㅅ  6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06

 

중앙아메리카의 밀림을 헤매던 한 탐험가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서는 순간 웅대한

피라미드가 그의 시선에 포착되었다.

수수께끼 같은 이 문명은 신의 작품인가, 인간의 작품인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예술가, 사진작가, 고고학자 들은

조각그림을 한데 모아 맞추어 보기 시작했고,

막연한 낭만적 추측 대신 과학적 연구가 자리 잡았다.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정교하고도

웅장한 도시의 건축 비법과 마야 문명의

진실에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잃어버린 도시,

살아 있는 자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도시,

오랜 세월 이름조차 사라졌던 도시.

찬란한 황금기가 지나고 9세기에 접어들면서 마야는

기근과 전쟁, 인구 감소현상을 겪었다. 그리고

마야인은 도시를 버렸다. 밀림이 도시를 뒤덮기

시작했다. 나무뿌리는 돌기둥을 친친 감아 무너뜨렸고,

나뭇가지는 신전 벽을 부수고 지붕을 뚫었다.

거의 800년이 흘러 밀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여행자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그는 잔뜩 뒤엉킨

수풀을 비집고 쏘아보는 석상의 눈빛과 마주쳤다.

그것은 꿈이었다. 누가 이토록 정교한

기념물을 세웠단 말인가?

 

군주와 총독은 탐험대를 파견했다. 그리고 화가와 시인,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이 그뒤를 따랐다. 19세기의 모험가들은

미지의 문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알프레드 퍼시벌 모슬레이는 팔렌케, 코판,

치첸 이트사, 키리과를 여행했다. 그는 밀림을

밀어 버리고 사진을 찍고 평면도를 작성했다. 주석이 달려

있는 모슬레이의 평면도는 놀라운 정확성을

지니고 있다. "치첸 이트사의 수녀의 집은 멋진 숙소를

주었다. 우리는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키리과에서 우리는 2월 초에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건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도르레와 임시로 설치해 놓은 기중기를 이용해 돌기둥을 바로 세울 수 있었고, 거기에 새겨 있던 상형문자의 탁본을 뜰 수 있었다."(코판)

 

"2층, 3층, 그리고 맨 위층의 사방벽에는 각각 거대한 창과 문이 나 있다. 창과 문에는 원래 나무로 된 성인방이 걸쳐져 있었다."(팔렌케)

 

"팔렌케 유적에 도착했을 때, 동쪽 뜰과 서쪽 뜰이 주변의 건물에서 무너져 내린 돌덩어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팔렌케의 이 건물은 궁전 동쪽 지역의 북쪽 중간 지점에 있다. 중앙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평행한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팔렌케 태양신전의 소벽(小壁) 장식은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뱀의 몸통과 머리의 일부분은 식별할 수 있었다."

 

"막대한 양의 돌덩어리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치첸 이트차에서 카스티요의 정확한 크기를 측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고된 작업과 말썽을 일으키는 일꾼들, 끊임없이 괴롭혀대는 열병……. 그렇지만 치첸 이트차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면 언제나 즐거워진다."

 

|차례|

 

제1장 정복자와 선교사

제2장 예술가와 모험가

제3장 학자의 시대

제4장 탐험을 떠난 사진작가

제5장 돌에 새긴 상징

제6장 관념에서 현실로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클로드 보데 Claude Baudez

클로드 보데는 탁월한 고고학자이자 프랑스 국립중앙 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코스타리카와 온두라스에 남아 있는 폐허를 연구해 왔다. 1971년 이래 마야 문명 탐구에 전념하기 시작한 그는 멕시코 토니나의 발굴작업과 온두라스 코판에 대한 탐사와 복원작업을 이끌었다.

 

시드네이 피카소 Sydney Picasso

시드네이 피카소는 라고아 산타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를 수행한 공식 사진 작가이다. 그는 현재 국립중앙 과학연구소에서 남아메리카의 바위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옮긴이 : 김미선

1964년 출생. 한국 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를 졸업한 후 불문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연인> <검은 탱고> <살갗 위의 소금> 등이 있다.

18세기 말에 그려진 이 그림은 정복자의 시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스페인인이 화폭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디오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배경으로 밀려나 있다. 중앙에 있는 인물은 후안 데 그리할바로 거만하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타바스코족 추장을 축성하고 있다. 맨발과 짧은 치마, 깃털장식을 한 '선량한 야만인'의 전형적인 모습인 이 인디오는 벌벌 떨면서 복종하는 자세를 하고 있다.

 

제1장

정복자와 선교사

 

1502년, 마야력으로 4아하우와 카툰의 두번째 해였다. 커다란 나무를 파서 만든 카누에 25명의 인디오가 타고 있었다. 그들은 과나하섬으로 가는 길이었다. 온두라스만에서 그 특이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히스파니올라의 콰칸드간 족장에게 선물을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아메리카》 제4권의 판화. 테오도르 드브리. 1594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신세계를 찾아 헤매는 데 전생애를 바쳤다. 그는 중국과 일본에 발을 딛겠다는 꿈을 꾸었다.

신세계 탐험대에서 앞선 여러 약탈자들과 사뭇 다르게 에르난 코르테스는 자신이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막강한 권한과 위대한 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계략, 또한 훌륭한 외교관으로서의 판단력과 수완을 겸비하고 있었다.

 

제2장

예술가와 모험가

 

1746년, 안토니오 데 솔리스 신부는 형제들과 그들의 아내, 그리고 여러 명의 조카를 이끌고 팔렌케의 산토도밍고에 발을 디뎠다. 농사지을 땅을 찾아 숲 속을 헤매던 그들 일행은 노래 전에 버려졌음직한 석조 건축물과 마주쳤다. 놀랍게도 그들은 가장 환상적인 마야의 유적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이 되었다.

유카탄에는 강이 없기 때문에 석회질층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천연 샘 세노트(마야어로 조노트)에서 식수를 얻었다. 샘은 일반적으로 땅속 깊이 있었다. 예를 들어 볼론첸에서 인디오는 물을 길러 내려가기 위해서 거대한 사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제3장

학자의 시대

 

마야 문명의 진정한 발견자로 생각되는 존 스테판스는 1805년 뉴잉글랜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앙아메리카 유적의 최초 발견자는 아니었지만, 글을 통해 대중에게 이 문명을 널리 소개한 공로는 그에게 돌아갔다. 스테판스의 등장과 더불어 마야 문명에 대한 낭만적 접근방식은 종말을 고했다.

욱스말에는 총독 궁전이라는 건물이 있다. 그 기능에 충분히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궁전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잇다. 중심부의 정면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는데 그중 세 개가 중요한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앙에 있는 문 위에는 성좌 위에 앉아 있는 왕자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양 옆의 작은 회랑들이 아치형 통로를 중심으로 분리되어 있다. 캐서우드의 판화에서 보듯 이 통로들은 나중에 폐쇄되었다.

카스티요

10세기 말 치첸 이트차는 거대도시로 성장했고 많은 이방인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이방인들 중 일부는 '깃털 달린 뱀'의 전설을 가진 케찰코아틀에 의해 이끌어지는 중앙멕시코의 톨테크족이었다. 이들은 경쟁세력에 의해 툴라(멕시코시티 북쪽에 위치한 톨테크족의 수도)에서 쫓겨났다. '카스티요'(성이라는 뜻, 스페인 정복자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그 시대의 건축양식이 '깃털 달린 뱀'의 테마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중심부의 정면뿐 아니라 피라미드의 각 면에는 머리가 경사면 아래로 향한 뱀 모양의 조각이 있다. 캐서우드의 그림에 이러한 뱀의 머리 중 하나를 볼 수 있다. 사원의 주요 입구는 세 개로 되어 있는데, 각 입구는 뱀 모양을 한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잇다. 뱀의 입 부분은 땅을 향해 있고 몸통은 기둥을 이루고 있으며 꼬리 부분이 상인방을 받치고 있다.

라브나의 아치형 문

유카탄의 푸크 지역에 있는 마야의 유적에서는 가운데 안뜰을 중심으로 네 개의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이 복합 건축물을 '사변형(quadrangle)'이라 부른다. 라브나에서는 인접해 있는 두 개의 사변형 건물이 대단히 큰 아치형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방문객들은 종종 이것을 개선문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통로의 각 면에는 방이 하나씩 있으며, 이 방문의 위쪽으로 오두막 모양의 벽감에 회반죽 조각상을 놓기도 했다. 오두막은 지금도 유카탄 지역의 원주민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초가지붕을 한 집들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모양이다. 이런 것들은 옥스말의 여승원 남쪽에 있는 건물에서도 볼 수 있는데, 스페인인이 '여승원'이라고 부른 이유는 수녀원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카탄의 툴룸

스테판스와 캐서우드가 툴룸에 있는 프레스코 신전을 측정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복되기 바로 전에 건설된 카리브해 연안의 이 작은 도시는 방어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대부분의 가옥은 주요 도로의 양옆에 있었으며,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다. 툴룸의 두 사원에는 검은색 바탕에 청록색으로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림들의 주제는 대개가 신화에서 특히 비의 신인 자크와 이스첼 여신을 그리고 있는데, 이 여신은 스페인인이 밀려올 무렵에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었다. 원주민들은 툴룸 북동쪽으로 50km에 있는 코주멜섬의 성전으로 순례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사말의 이트참나

이사말에 있는 건축불 중 하나에는 높이가 2m 넘는 회반죽 마스크가 잘 보존된 상태로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장식기법은 마야 건축에서 널리 사용되었지만, 공기에 노출된 상태에서 원형을 유지한 몇 안 되는 예들 중의 하나여서 스테판스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장면에 생동감을 주고 이상한 마스크가 새겨진 거대한 벽에 극적인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캐서우드는 어둠 속으로 도망가는 표범을 쫓고 있는 인디오와 사냥꾼을 그려 넣었다. 한편 디에고 데 란다가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원과 성당을 건립한 곳도 바로 고대 마야 도시의 파괴된 피라미드 지역 중의 하나인 이곳 이사말이었다.

환히 빛나는 제단 뒤로 신비스러운 비석 하나가 어렴풋이 보인다(위). 아무리 형태를 충실히 재현했다 하더라도 캐서우드는 때때로 코판의 돌무더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표현하기 위해 극적인 빛의 효과에 의존했다. 아래의 조각은 비석의 뒷면에 있는 비문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린 것이다.

이 곳 사바크체처럼 마야의 모든 마을에서 우물은 여자들의 사교공간 역할을 했다. 여자들은 물을 긷고, 모을 씻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식을 나누기 위해서 우물로 모이곤 했다. 캐서우드는 《성서》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분위기로 우물가를 묘사하고 있다.

 

"이 부락은 우물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우물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문명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최고급 호텔에서 느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쾌적해 보인다. 우리는 가시에 할퀴고 진드기에 물려 욱신욱신거렸으나 그럴수록 더욱 시원한 물에 목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말도 우물에서 아주 시원하게 목을 축였다. 여기서는 브러시나 빗이 없기 때문에 말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목욕을 시켜야 했다. 이 우물은 지금 이용하는 주민들이 만든 것이지만 예전에는 여기서 약 9km나 떨어진 타비까지 물을 길러 다녔다고 한다."

스테판스

《유카탄 여행기》

 

제4장

탐험을 떠난 사진가

 

1839년 8월, 은판 사진술의 출현으로 지식인 세계는 희망에 부풀었다. 사진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사진기를 동반한 탐험가 세대가 출현했으며 그들은 '객관적인' 진실을 찾아 나섰다.

 

제5장

돌에 새긴 상징

 

스테판스를 사로잡았던 다음과 같은 감동은 팔렌케 비문 신전에서 온통 상형문자로 덮인 석판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비록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이 그림들을 보면서 느낀 감동을 굳이 묘사할 필요가 있을까."

뱀을 표현한 다양한 그림문자

 

제6장

관념에서 현실로

 

1944년 사진작가 질르 힐리는 라칸하강 서쪽의 치아파스 밀림지대를 향해 출발했다. 유나이티드 프루트사의 간부가 이 깊은 계곡에 모여 사는 마야의 라칸돈족 사진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들은 고대의 전통을 거의 손상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그곳까지 찾아 들어간 탐험가는 거의 없었다.

1948년 재건한 테헤다 제2실의 북쪽 벽에서 볼 수 있는 그림. 왕과 신하가 죄수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벌거벗기고 손톱이 뽑힌 죄수들이 먼저 제물로 바쳐진다.

계단의 아래 부분에서는 전사들이 감시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위 부분에는 화려하게 치징한 귀족들이 왕을 중심으로 주위에 서 있다. 위 부분에 있는 띠 모양의 조각은 하늘을 나타낸 것으로 몇몇 별자리들의 기호이다.

석관의 뚜껑에 새겨진 죽은 왕의 모습. 이것은 대지의 신의 입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장면이다. 대지의 신의 입은 턱뼈로 만들어진 네모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왕의 몸 가운데에서 커다란 천국의 새에 덮여 있는 세상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왕은 죽음의 순간에 두 신의 속성을 갖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매년 부활을 상징하는 옥수수신이다.

상형문자 '치통'. 이것은 머리 주위를 싸맨 띠 때문에 그렇게 불렸고, 왕의 즉위를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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