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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25. 17:1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7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천양희 詩로 쓴 영혼의 자서전

1998, 작가정신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358

 

811.6

천636그

 

시인 천양희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내색 않는 바위를 스승으로 삼아 동짓밤 같은 긴 침묵을 지켰다. 고통의 숟가락으로 자기 삶을 파먹으며 속 없는 공어空魚처럼 자기를 비우려 했다. 그것은 기다림이었고 천양희에겐 기다림이 곧 사는 것이었다. 죽은 듯한 겨울나무에서 봄꽃이 피지 않던가. 고독은 순수조차 진창에 빠지게 하지만 천양희는 결코 고독과 타협하지 않았다. 집념이라 할지라도, 선인장처럼 가시로 자신을 지키며 형벌 같은 사막에서 꽃이 피길 기다렸다. 긴긴 낮 하지에 수도승처럼 면벽하고, 정신의 시퍼런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독의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는 심연에서 잠언을 캐어와 현자처럼 우리에게 들려준다.

- 강석경(작가)

 

천양희 선생은 맨발로 물 위를 걷는 시인이다. 그는 물 위를 걷다가 물 속으로 발이 쑥 빠질 때마다 시를 쓰면서 다시 묵묵히 물 위를 걸어갔다. 시로 쓴 이 영혼의 자서전은 그가 일찍이 물 위를 걷다가 우리들에게 남겨놓은 고독의 신발 한짝이다. 나는 그 신발을 신고 물 위를 걸어가본다. 한번씩 발이 물에 쑥쑥 빠질 때마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인간의 외딴섬이 보인다. 고통스러우나 견딜 만한 인생의 비밀이 보인다. 쓸어도 쓸어도 늘 가슴이 아픈 사람들은 이 책을 가슴에 안고 길고 긴 밤을 맞으라. 아침이 되면 햇살처럼 맑고 따스한 시인의 손길이 당신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을 것이다.

- 정호승(시인)

천양희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정원 한때> 등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으며, 소월시문학상(1995), 현대문학상(1998)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는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사람 그리운 도시》《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이 있다.

 

차례

 

서문

침묵 / 한마디 / 외길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시간이 필요하다 / 사람의 일 / 여행 / 하루살이 / 외딴 섬 / 한잔 술 / 그때 / 너에게 쓴다 / 나의 숟가락 / 20년 동안 / 기차 / 탓 / 가시나무 / 자리 / 추억 / 관계 / 하루 / 숨바꼭질 / 봄 / 혼자서 가느냐? / 나의 변辨 / 나는 누구인가 / 붉은머리 오목눈 / 집 / 나무의 꿈 / 나는 공어空魚 / 나의 잔 / 아이 생각 / 아비 / 꽃점 / 파문 / 혼자되다 / 어둠 / 축복 / 허기 / 교감 / 여식女息 보아라 / 우두커니 / 닦는 일 / 근시 / 날씨 / 손 / 못 / 마음아 / 비 / 벽 / 귀뚜라미 / 시작과 끝 / 자취 / 몰두 / 동행 / 한 쌍 / 상실 / 지혜 / 어깨동무 / 계단 / 나의 거울 / 중요한 얘기 / 나는 알지요 / 자연 / 바람 부는 날 /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들 / 진실 / 반딧불 / 친구 / 길 / 실패 / 생각하는 사람 / 답答 / 밥 / 바보 / 주인공 / 차이 / 상처 / 하나밖에 없다 / 오래된 미래 / 결론 / 지독한 사랑 / 옷 / 눈 / 바위 / 말 / 단 한 번 / 열쇠 / 감 / 붉은 우체통 / 누가 내게 묻는다면 / 악수 / 무소새 / 마음에 점찍기 / 그 사람 / 화석 / 수족관 / 나의 기원 / 나이 / 가치 / 사람 / 발전소 / 연어 / 부재不在 / 폐허 / 중년 / 얼굴 / 마침표 / 좌우명 / 나의 죄 / 독신

고독의 심연에서 캐낸 영혼의 기록 / 강석경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그땐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계단

 

빛을 너무 옹호 마라

빛은 어둠을 통해서 왔거니.

매혹을 너무 탐하지 마라

매혹은 환멸을 통해서 왔거니.

행복을 너무 축복 마라

행복은 불행을 통해서 왔거니.

사랑을 너무 찬탄 마라

사랑은 이별을 통해서 왔거니.

죄를 너무 비난 마라

죄는 삶을 통해서 왔거니.

삶을 너무 믿지 마라.

세상은 끝간 데 없는 계단이니까.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