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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5. 17:07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09 서예 감상법

 

글, 사진 / 이완우

2009,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07

 

082

빛12ㄷ  228

 

빛깔있는 책들 228

 

이완우-------------------------------------------------------------------------

대전에서 출생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터어키어과를 졸업하였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 ·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한국서예사를 전공하였다. 현재 대전대학교 서예과 전임강사로 재직중이다. 논문으로는 「이광사 서예 연구」, 「석봉 한호 서예 연구」 등이 있다.

 

|차례|

 

서예를 감상하기 전에

서예에는 어떤 특성이 있는가

서예를 즐겁게 감상하려면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

형식에 맞게 감상하려면

서체에 맞게 감상하려면

서예 감상을 마치면서

찾아 보기

참고 문헌

 

서간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 종이 바탕, 31.5×39센티미터, 서울대박물관 소장.

평안첩(平安帖) · 하여첩(何如帖)  동진 왕희지, 당나라 모본(摹本), 왕희지의 필적은 대부분 서간이라는 실용적 기능을 지녔으면서도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몽전첩(夢奠帖)  당 구양순, 종이 바탕, 25.5×16.5센티미터, 옛 서예가들은 점획을 신체에 비유하여 골, 근, 육, 혈이 고루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구양순은 골을 강조한 뼈대가 강한 글씨를 썼다. 중국 랴오닝성박물관 소장.

시첩 부분  북송 휘종, 종이 바탕, 27.2×265.9센티미터(전체), 대상물의 형태를 뼈대 있는 필선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골법용필'을 극대화한 경우로 뼈대만 남은 글씨이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백씨초당기(白氏草堂記)  청 등석여, 종이 바탕, 점획의 이상적인 형태와 선질을 구사하기 위해 서예가글은 끊임없는 연구를 해왔다. 「백씨초당기」에서는 점획이 강한 글씨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일본 개인 소장.

「최자옥좌우명(崔子玉座右銘)  청 오희재(吳熙載), 종이 바탕, 획이 가는 글씨로 여백의 효과를 한층 높여 준다. 일본 개인 소장.

장계명첩(張季明帖)  북송 미불, 종이 바탕, 세로 25.8센티미터, 글씨는 한 번 쓰면 돌이킬 수 없다는 일회성을 가진다. 그리고 쓴 사람의 심리 상태까지 자연스럽고 뚜렷하게 표출된 글씨라야만 가치 있게 평가된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예기비(禮器碑)」의 앞부분  동한 156년, 내용이 긴 비문을 쓸 경우 제작자는 전체의 필치를 고르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비는 일정한 필치로 일관되어 있는 예이다.

백원첩(伯遠帖)  진(晉) 왕순(王珣), 종이 바탕, 25.1×17.3센티미터, 글씨는 글자를 읽지 않고 그 동세, 선질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형미를 느낄 수 잇다.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

단조로운 장법  균일하고 안정적이어서 통일미가 있다. 「장미화시(薔薇花詩)」, 청 이병수(伊秉綬), 종이 바탕, 110×50센티미터, 중국 랴오닝성박물관 소장.

변화로운 장법  변화와 율동감을 주어 전체적인 조화미를 느끼게 한다. 「논화어(論畵語)」, 청 하소기(何紹基), 종이 바탕, 94×57센티미터, 중국 개인 소장.

자간에 비해 행간이 넓은 장법  「태산각석(泰山刻石) 진, 기원전 209년, 탁본.

자간에 비해 행간이 좁은 장법  「장경잔비(張景殘碑)」, 동한, 159년, 탁본.

자간과 행간이 비슷한 장법  「석고문(石鼓文)」, 전국시대, 탁본, 28×18.2센티미터.

자간과 행간을 무시한 장법  「적벽부(赤壁賦)」, 明 축윤명, 종이 바탕, 31.3×1001.7센티미터, 중국 상하이박물관 소장.

여러 짜임의 '之'자들  한 작품에서 같은 글자의 짜임을 다르게 하는 것도 반복적인 표현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다. 곳곳에 보이는 '之'자가 각기 다른 점획과 짜임을 취하고 있어 왕희지의 뛰어난 조형 감각을 여실히 보여 준다. 「난정서」, 동진 왕희지, 당나라 모본(摹本),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

방필의 글씨  붓을 댄 곳과 뗀 고 그리고 꺾는 부분이 모난 글씨는 강렬하고 각박한 느낌을 준다. 「시평공조상기」 부분, 북위, 5세기 말, 탁본.

원필의 글씨  붓을 댄 곳과 뗀 곳 그리고 돌린 부분이 둥근 글씨는 부드러우면서도 원만한 느낌을 준다. 「정희하비」, 북위, 511년, 탁본(위), 「현묘관중수삼문기(玄妙觀重修三門紀)」부분, 원 조맹부, 종이 바탕,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아래)

「후신첩(風信帖)」 부분  헤이안시대 쿠카이, 812년경, 종이 바탕, 28.8×157.9센티미터, 쿠카이는 왕희지와 안진경의 서풍이 결합된 중국적 취향이 강한 글씨를 썼다. 일본 교토 교오고고쿠사(敎王護國寺) 소장.

「교쿠센첩(玉泉帖)」 부분  헤이안시대 오노노미치카제, 종이 바탕, 27.4×188센티미터, 오노노미치카제는 왕희지 서풍의 골격에 가나 글씨의 운치를 융합하여 일본 특유의 서풍인 '와요'를 완성시켰다. 일본 궁내청 소장.

화기(畵記)  조선 이광사, 1746년, 종이 바탕, 33×177센티미터, 고전적인 두루마리 글씨는 대개 세로 40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행수가 홀수인 축과 짝수인 축  행수가 홀수면 전체의 장법이 안정적이나, 짝수면 자칫 무게나 필세가 한쪽으로 치우쳐 전체 균형이 깨지기 쉽다. 오언율시, 조선 이지정(李志定), 17세기, 종이 바탕, 96.3×54.3센티미터,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위), 칠언절구, 조선 이광사, 18세기, 비단 바탕, 105.4×56.3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아래)

서몽시첩(書夢詩帖)  조선 신위,  18세기, 비단 바탕, 38×23센티미터, 원래 대폭이던 것을 서첩으로 개장한 경우이다. 개인 소장.

매오영(梅五詠)  조선 신위, 19세기, 종이 바탕, 17.5×50센티미터, 글자를 줄여 쓰지 않고 아래로 갈수록 행간을 줄이는 방식을 사용하여, 위로 갈수록 펼쳐지고 아래는 차분히 모아지는 느낌을 준다. 개인 소장.

서간  조선 이이(李珥), 1559년, 종이 바탕, 25×28.8센티미터, 개인 사이의 의사를 전달하는 편지는 보통 인사말, 전하는 말, 마침말, 기일 및 서명 그리고 추신으로 구성된다. 개인 소장.

오언율시  조선 이황, 종이 바탕, 57×34센티미터, 보물 548호, 『퇴도선생필법(退陶先生筆法)』에 실려 있는 것으로, 흘림의 정도에 따라 운필의 속도는 조금씩 빨라졌지만 근엄한 획법과 단정한 짜임의 방식은 지속되어 있다. 개인 소장.

편액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편액(위)은 김생이 썼다고 전하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편액(아래)은 공민왕이 썼다고 전하나 그들의 필적인 지 신빙하기 어렵다.

돈의문 편액  전(傳) 조윤덕(曺潤德),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유행한 설암풍으로 쓴 편액이다. 문화재관리국 소장.

지리산 천은사 편액  조선 이광사, 18세기 후반, 천은사의 화기를 막기 위해 물 흐르듯이 썼다고 한다.

춘종첩  원 설암, 1296년 씀, 조선시대 목판본, 설암체는 점획의 굵기가 굵고 획 사이의 여백이 매우 좁으며 점획의 시작, 끝, 전절 부분이 강조되는 특징이 있다. 개인 소장.

김약로묘표(金若魯墓表)  조선 한호, 1755년 건립, 한호의 『대자천자문』은 18세기 이후 비석 앞면의 제서로 집자되면서 널리 유행하였다.

호고연경(好古硏經)  조선 김정희, 19세기, 종이 바탕, 각 124.7×28.5센티미터, 예서 대련으로 의외의 짜임과 거침없는 필획을 구사하여 졸박하고 변화로운 특유의 품격을 보여 준다. 호암미술관 소장.

경남 양산 통도사 일주문의 주련  주련은 비바람에 노출된 곳에 걸리므로 종이에 쓴 것을 걸지 않고 이를 나무판에 새기고 건물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색칠하여 건다.

서울 흥천사 만세루의 주련  사찰의 주련판 위아래에는 연화문 등의 문양이 새겨지고 이를 단청하여 불전을 장엄하기도 한다.

전남 영광 불갑사 대웅보전의 주련  사찰의 주련은 불경이나 논장에 있는 글을 쓰기도 하며 고승들이 지은 게송을 쓰기도 한다.

산씨반(散氏盤)  서주시대, 탁본, 고대 문자에 대한 금석학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옛 서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산씨반은 고졸한 서풍을 지닌 대표적인 금문으로 여겨진다. 원물은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역산각석  진, 기원전 209년, 송나라 모각본, 8세기 이전에 이미 원석이 부서져 당나라 탁본에 의해 10세기 때 다시 새겨졌다. 모각되면서 균제적 자형과 균일한 획으로 변질되엇다.

낭야대각석  진(秦), 기원전 209년, 탁본, 소전의 창시자인 이사의 글씨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원각일 뿐만 아니라 글자 수도 많이 남아 있다.

이씨삼분기  당 이양빙, 767년, 탁본, 이양빙의 전서는 획이 곡선적이고 형태가 부드러워 긴장감이나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현묘관중수삼문기(玄妙觀重修三門記) 전액(篆額)  원 조맹부, 종이 바탕, 조맹부는 주요 서체를 터득하여 옛 서법을 재현하였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예서비  2세기 중 · 후반에는 수많은 예서비들이 세워져 한예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을영비(乙瑛碑)」, 동한 153년, 탁본(위), 「사신비(史晨碑)」, 동한 169년, 탁본(아래).

예서비  동한시대의 예서비들은 후대 비평가들로부터 다양한 품평을 이끌어내어 중국 서예사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조전비(曺全碑)」, 동한 185년, 탁본(위), 「장천비(張遷碑)」, 동한 186년, 탁본(아래).

임장천비(臨張遷碑)  청 하소기, 종이 바탕, 청대에는 금석학의 발전에 따라 그동안 위축되었던 전서와 예서가 신선한 생명력을 얻게 되엇다. 일본 개인 소장.

호주안씨묘지(湖州顔氏墓誌) 부분  청 등석여, 종이 바탕, 청나라 중반 이후의 서예가들은 이전과는 다른 신선한 서풍을 창출하여 학구적 성과와 예술적 성취를 함께 거두었다. 일본 개인 소장.

승선태자비(昇仙太子碑) 제액(題額)  당 측천무후(則天武后), 699년, 탁본, 비백은 궁궐 건물의 편액 글씨로 사용되는 등 주로 장식 서체로 쓰였다.

정희하비  북위 정도소, 511년, 원각(原刻), 중봉세의 부드러운 운필과 고풍스런 짜임으로 넉넉한 정취를 풍긴다.

장맹룡비  북위, 522년, 탁본, 방필의 방정한 골격이 잘 드러나며 호방하고 웅건한 풍격이 있다.

「황정경」 부분  동진 왕희지, 동진시대의 대표적인 해 필적으로 내용은 도교 경전이다.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당 우세남, 628년, 탁본, 우세남은 남조에 기반한 온화한 획법으로 근골을 함축한 듯한 점이 돋보인다.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  당 저수량, 653년, 탁본, 저수량은 붓끝의 정취를 살린 가는 획법과 부드럽고 경쾌한 운필로 유명하다.

천복사다보탑감응비(千福寺多寶塔感應碑)  당 안진경, 752년, 탁본, 안진경은 중년에 명확한 획법과 정밀한 짜임의 깔끔한 서풍을 구사하였다.

현비탑비(玄秘塔碑)  당 유공권, 841년, 탁본, 유공권은 이전 명서가들의 장점을 선별적으로 계승하여 이를 자신의 서풍으로 발전시켰다.

만안교비(萬安橋碑)  북송 채양, 1059년 이후, 탁본, 송해의 대표적인 명서가 채양은 안진경의 서풍을 바탕으로 정형적인 해서를 구사하였다.

금강반야바라밀경  남송 장즉지, 종이 바탕, 세로 32.1센티미터, 장즉지는 필획 사이를 유연하게 연결시키는 등 송나라 해서의 특성을 잘 정리해낸 서예가이다. 일본 교토 지적원(智積院) 소장.

이사훈비(李思訓碑)  당 이옹, 739년 이후, 탁본, 사선 방향으로 삐침을 길게 빼는 것과 같은 이옹의 서풍은 조맹부의 해서에 영향을 끼쳤다.

「출사표(出師表)」  명 축윤명, 1514년, 종이 바탕, 축윤명은 종요의 필적과 왕희지의 소해 법첩을 적극 수용하여 예스러운 풍격을 이루어냈다. 일본 개인 소장.

「낙화시권(落花詩卷)」  명 문징명, 1504년, 종이 바탕, 문징명은 왕희지의 소해 필적을 보다 경쾌하고 산뜻한 필치로 되살려내었다. 일본 개인 소장.

「하첩표」  위 종요, 219년, 각첩, 세로 24.6센티미터, 종요가 국가의 전승을 축하하고자 임금에게 올린 글로 행서의 초기 발전 단계에 해당되는 필적이다. 일본 서도박물관 소장.

난정서  동진 왕희지, 당 풍승소(馮承素) 모본, 신룡반인본(神龍半印本), 종이 바탕, 24.5×69.9센티미터, 이미 진적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이나 여러 임모본이 전하므로 왕희지 행서의 장법이나 운필의 특징을 살피는 데에는 충분하다.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

집자성교서  동진 왕희지, 672년 집자, 탁첩, 26×13센티미터, 당나라 궁중에 소장된 왕희지의 행서와 초서 필적을 모아 집자한 것으로 다양한 자형과 짜임을 학습하는 데 효과적이다. 개인 소장.

온천명  당 태종, 648년 탁본, 변화로운 짜임, 자신에 찬 운필, 유연한 붓끝의 움직임이 물씬 풍긴다. 프랑스 국립파리도서관 소장.

진사명  당 태종, 646년 탁본, 담담한 짜임, 침착한 운필, 장봉세의 간명한 획법이 눈에 뛴다. 중국 베이징도서관 소장.

「제질문고」  당 안진경, 758년, 종이 바탕, 28.8×77센티미터, 안징경이 안사의 난으로 살해된 조카의 영령을 추모한 제문으로 당나라 명서가의 진적으로는 매우 드문 예이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쟁좌위고」  당 안진경, 764년 탁본, 외형적 꾸밈이나 필획의 교묘함에 개의치 않고 솔직한 태도로 붓이 가는 대로 졸박한 필법을 이룬 안진경의 서풍은 솔직한 심회를 표현한 글씨로 높이 평가되면서 송대의 행서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

서간  송 소식, 종이 바탕, 소식은 송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그의 글씨는 황정견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의고  송 미불, 1088년, 비단 바탕, 미불은 이왕(二王) 행서의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여 후대의 서예사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예학명  남조 작자 미상, 514년경 탁본, 남조의 대표적인 마애각석으로 짜임이나 획법 등에서 황정견의 행서에 영향을 끼쳤다.

「송풍각시권(松風閣詩卷)」부분  송 황정견, 1102년, 종이 바탕, 34.2×554센티미터, 황정견은 풍부한 개성을 표현하여 왕희지의 전통에서 벗어나 행서의 표현 범위를 넓히는 선례가 되었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적벽부」 부분  원 조맹부, 1301년, 종이 바탕, 27.2×11.1센티미터, 조맹부의 행서는 왕희지 등의 고법을 바탕으로 가늘고 굵은 필선의 변화, 리듬감 있는 균형, 미묘한 붓끝의 연계성, 용필에서의 완벽성 등이 총체적으로 융화되어 있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문무첩(文武帖)  위 황상(皇象), 각본(刻本), 『순화각첩』 권3에 실려 있다.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장초 필적으로 당시 정비되어가던 금초 또는 해서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평복첩」  서진 육기, 종이 바탕, 23.8×20.5센티미터, 자연스러운 붓질의 편지 글씨이다. 겸손하고 꾸밈 없는 필치로 당시 초서가 장초로부터 금초로 변화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중국 베이징고궁박물관 소장.

십칠첩  동진 왕희지, 각첩, 행서와 초서의 집대성자로 불리는 왕희지는 장초나 금초를 모두 썼으며 이를 혼합한 초서도 썼다. 이 필적은 한 글자씩 떨어지는 독초(獨草)의 전형적인 예이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행양첩  동진 왕희지, 당대 모본, 24.4×8.9센티미터, 종이에 밀랍을 입힌 누런색의 경황이라는 종이에 구륵곽전의 방법으로 베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미술관 소장.

진초천자문  수 지영, 『진초천자문』은 현재 목적과 각본으로 전하는데, 이들 가운데 어느 것이 원형에 가까운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후대에 지속적 영향을 준 것은 아마 각본이었을 것이다. 당나라 임본, 종이 바탕, 서첩 높이 24.5센티미터, 일본 개인 소장(위), 각본, 1109년 간행,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아래).

『서보』 부분  당 손과정, 687년, 종이 바탕, 27.2×898.24센티미터, 장지 · 종요 · 왕희지 · 왕헌지 등 고대 명서가들의 우열을 비교하는 등 이왕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서예관을 보여 주는 유명한 서론이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중추첩  동진 왕헌지, 각본, 중추첩에 보이는 일필의 필세는 광초의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송 미불이 임서하였던 것을 뒤에 새긴 것으로 『여청재첩(餘淸齋帖)』에 실렸다. 일본 개인 소장.

압두환첩  동진 왕헌지, 비단 바탕, 세로 26.1센티미터, 시원한 일필세를 보기는 어렵지만 운필이 교묘하고 유려한 아름다움이 있어 왕희지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중국 상하이박물관 소장.

「고시사첩(古詩四帖)」 부분  전(傳) 장욱, 종이 바탕, 29.5×195.2센티미터, 장욱의 광초는 필획의 연명성이 강하고 짜임의 변화가 풍부하며, 획을 아래로 길게 빼거나 춤을 추는 듯한 쾌속함을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중국 랴오닝성박물관 소장.

「자서첩(自敍帖)」 부분  당 회소, 777년, 종이 바탕, 28.3×755센티미터, 회소가 어린 시절 불문에 들어가 틈틈이 글씨를 익혀 초서의 묘를 터득했다는 자전적 이야기를 쓴 것으로, 운필의 흥취가 매우 천연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자서첩」 말미의 낙관 부분

 「이백시권」 부분  송 황정견, 종이 바탕, 37×392.5센티미터, 회소의 서풍을 바탕으로 특유의 짜임새와 운필의 완급을 가미하였다. 일본 교토 후지이유린관(藤井有隣館) 소장.

초서시축  명 부산, 종이 바탕, 명나라의 광초는 파격적인 장법과 점획의 태세와 윤갈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서풍으로 대중화되어 갔다. 일본 개인 소장.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