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today
  • yesterday
2015. 1. 28. 19:57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11 HOW TO READ르트르 Jean-Paul Sartre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지음 · 변광배 옮김

2008,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8074

 

082

하66ㅇ 13

 

전세계 지성인들이 뜨겁게 열광했던 인물.

그는 살아서는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열정이었고

사후에는 지식인들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남았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유의미한 것은 그의 명성 때문이 아니다.

지식과 철학이 학문의 틀을 넘어

인간의 절대적 자유, 현실에 대한 책임과 결합할 것을

끝까지 추구한 끈질김에 있다.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지식인의 대표적인 초상, 사르트르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지성인 사르트르, 그러나 그가 이룩한 엄청난 성과는 하나의 단순한 이미지로 귀착되는 경향이 있다. 카페에 앉아 어려운 철학서를 집필하는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 책은 소설 《구토》, 희곡 《닫힌 방》, 정치 평론 《공산주의자들과 평화》를 비롯하여 주요 철학서 《존재와 무》 《변증법적 이성 비판》 등을 직접 읽음으로써, 개인적인 명성에 가려진 사르트르 사유의 핵심을 드러낸다. 또한 실존철학의 틀에 갇혀 있던 그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특히 철학자 사르트르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어떻게 학문 영역의 경계를 넘어 현실적 문제에 참여했는지를 살핀다. 새로운 형태의 실천,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의 참여가 요구되는 이때에 '지식인' 사르트르를 읽는 이유 자체가 재탄생한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Robert Bernasconi

미국 멤피스 대학교 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문제적 하이데거 Heidegger in Question : The Art of Existing》 《하이데거의 존재의 역사와 언어의 변형 The Question of Language in Heidegger's History of Being》 등이 있다. 이밖에 데리다, 레비나스에 대한 연구서와 인종 문제를 다룬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변광배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대우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같은 대학에서 강의 중이다. 프랑스 몽펠리에3대학에서 <사르트르의 소설과 극작품에 나타난 폭력>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프랑스 인문학 연구 모임 '시지프'를 이끌고 있다. 저서로 《존재와 무 :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제2의 성 : 여성학 백과사전》 《사르트르 참여문학론》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레비나스 평전》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외 다수가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철학과 대중 사이의 관계 잇기

 

1 나 역시 잉여존재다

: 《구토》

2 외부에, 세계 속에, 타인들 틈에

: <지향성>

3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

: 《닫힌 방》

4 그는 카페의 종업원을 연기한다

: 《존재와 무》

5 전쟁에서 무고한 희생자는 없다

: 자유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

6 나는 타인들의 자유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7 진정한 유대인은 자신을 유대인으로 만든다

: 《유대인 문제에 관한 성찰》

8 가장 혜택을 못 받는 자들의 시선

: 《공산주의자들과 평화》

9 봉쇄된 미래

: <방법의 문제>

10 인간은 폭력적이다

: 《변증법적 이성 비판》

 

■ 주

■ 사르트르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역자 후기 : 사르트르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

 

1

나 역시 잉여존재다

: 《구토》

 

부조리가 자신의 존재와 이 존재를 드러내는 구토를 이해하는 공통 열쇠라는 생각을 도입하면서,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로캉탱은 구토 체험에 대해 더 큰 확고함을 부여한다.

말하자면 그가 자신의 존재에 이르는 것은 사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구토를 통해서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구토를 통해 그는 실제로 존재의 부조리를 발견한다.

 

2

외부에, 세계 속에,

타인들 틈에

: <지향성>

 

사르트르는 실재론과 관념론의 논쟁에 대해, 특히 인간을 세계와 거리를 두는 생각에 이미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인간이 사물과 맺는 구체적 관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이 작업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은 인간이 세계 속의 사물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으로 철학 연구를 변환할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후설이 주장한 지향성 개념에서 그가 느낀 매력은 바로 이 개념을 통해 그 관계를 모두 기술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3

타인은 나의 지옥이다

: 《닫힌 방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르생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몇몇 비평가들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대사는 사르트르의 철학적 주장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런 경향은  《존재와 무》에서 제시된 인간관계에 대한 설명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어떤 쌍이든 각자는 주체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를 객체화하여 격하시키려고 경쟁한다고 말한다.

 

4

그는 카페의 종업원을

연기한다

: 《존재와 무

 

음료수를 나에게 가져다준 사람은 종업원으로 위장한 자가 아니다.

종업원이 되는 역할을 연기하는 종업원은 즐기기 위해 종업원을 흉내 내는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나에게 음료를 가져다준 종업원은 실제 종업원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종업원은 결코 한 명의 종업원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사르트르는 이것을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그 의미는 이렇다.

즉 내가 아무리 나의 손님들에게 한 명의 종업원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는 내 자신에게 있어서는 종업원이 아니라는 의미다.

왜냐하면 단지 내일이라도 당장 이 직업을 그만둘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일을 하는 것은 오직 나의 다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5

전쟁에서

무고한 희생자는 없다

: 자유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

 

프랑스가 해방된 1944년 이듬해에 그는 BBC 라디오에서 이렇게 선언한 바 있다.

"독일군이 점령했던 때보다 우리가 더 자유로웠을 때는 없었다."

그의 존재론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이 선언보다 더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다.

우리는 항상 완전히 자유다. 물론 정치적으로 보면 자유에는 정도가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자유롭게 말을 한다거나 혹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과 같은 개인의 권리를 통해 이 자유의 정도를 측정하는 대신에 사르트르는 어느 정도까지 자유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6

나는 타인들의 자유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사르트르의 신념에 따르면, 우리가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자기기만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이 경우 자유의 본성에 관련해 우리 자신이 우리를 속이는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억압이란 근본적인 실수 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르트르의 철학은 억압 계급의 이데올로기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으로 나타남과 동시에 피억압 계급과는 아주 잘 들어맞는 것으로 나타난다.

 

7

진정한 유대인은 자신을

유대인으로 만든다

: 《유대인 문제에 관한 성찰》

 

그의 유대인 연구는 본격적인 학술 연구도 아니며 실제로 그는 유대인의 역사를 거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이 혼자서는 반유대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확신, 사람이 반유대주의자를 범속한 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여긴다는 견해는 뛰어난 면이 없지 않다.

후일 그는 이런 생각을 식민주의의 인종차별적 토대를 분석하면서 더 발전시킨다.

사르트르는 반유대주의의 기원이 외적 요인에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8

가장 혜택을

못 받은 자들의 시선

: 《공산주의자들과 평화

 

사르트르는 점차 한 사회 구성원들 중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들, 즉 유린된 자들을 위한 참여의 기저를 향해 다가갔다.

그가 노동자들과의 연대성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에 사용했던 방법은 당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에 대한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자신만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의 비판적 목소리는 여전히 가장 혜택을 못 받는 자들의 편을 들고 있다.

너무 지쳐서 자신들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자들, 따라서 당을 필요로 하는 자들로 말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당에 대한 환멸에 이어 이 대중들에게 좀 더 나은 역할을 부여한다.

 

9

봉쇄된 미래

: <방법의 문제>

 

<방법의 문제>에서 그는 사회를 그것의 구성 요소인 계급들의 미래를 막거나 열어놓는 방식이라는 면에서 관찰하려 한다.

그가 여기에서 내세운 목표가 마르크스주의를 소생시키는 데 실존주의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오히려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오랫동안 하나의 구체적 철학이 되고자 했던 실존주의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0

인간은 폭력적이다

: 《변증법적 이성 비판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 사르트르는 단지 자유주의의 원자적 개인주의에 대해 도전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프랑스대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 체제의 폭력성을 설명할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이 저작이 출간되었을 때 파농과 같은 제3세계 운동가들은 즉시 이 책의 중요성을 알아차렸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 저작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기준에 적합한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저작은 그 자체로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은 철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주 독창적인 시도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르트르의 생애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나다.

190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다.

1917년 어머니가 재혼해서 새 가정을 꾸려 라로셀로 이사 가다. 이곳에서 불행한 시기를 보내면

             서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열정을 일시적으로 상실하다.

1920년 파리로 되돌아온 이후 책을 쓰는 열정이 다시 살아나다. 부모는 1921년까지 라로셀에서 거

             주.

1924년 전통의 명문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였지만, 4년의 재학 기간 동안 강의에 거의 참석하

            지 않다. 그 대신 아롱, 캉길렘(George Canguilhem), 이폴리트(Jean Hyppolite), 메를로

            퐁티,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니장(Paul Nizan) 등과 함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1927년 니장과 함께 야스퍼스(Karl Jaspers)의 《일반정신병리학 Allgemeine

             Psychopathologie》을 번역하다.

1928년 교수자격시험, 필기시험에서 낙방하다. 니장이 공산당에 입당하다.

1929년 7월 보부아르를 만나다. 교수자격시험을 같이 준비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다. 이 시험에

             서 사르트르는 수석을, 보부아르는 차석을 차지하다. 11월부터 생시르 육군사관학교에서

             18개월 동안 군 복무를 하다.

1931년 르아브르 소재 고등학교에 철학 교수로 발령을 받다. 보부아르와 결혼을 고려했으나 곧 포

             기하다. 그들에게는 결혼이, 자유를 제한하는 부르주아의 제도로 보임.

1933년 9월 베를린 소재 프랑스연구소에서 철학을 연구하다. 파시스트의 등장에 혐오감을 느끼긴

             했으나, 독일 체류로 인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님.

1936년 프랑스로 귀국해 다시 르아브르 소재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상상 력에 대한 초기

             연구인 《상상력 L' Imagination》을 출간하다. 하지만 보다 독창적인 부분은 4년 후에

            《상상계》라는 제목으로 출간.

1937년 파리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근하다. 1년 전에 파리로 전근한 보부아르와 더 자주 만나게 되

            다. 단편 《벽》을 발표하다.

1938년 첫 장편소설인 《구토》를 발표하다.

1939년 《감동론 소묘 Esquisse d'une theorie des emotions》를 출간하다. 단편집 《벽》이 대

            중들과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다. 9월에 전쟁에 동원되다. 군 복무 중에 했던 독서와 사색에

            대한 진지하고도 흥미로운 기록인 《기이한 전쟁 수첩》이 후일 유고집으로 출간됨.

1940년 35세가 되던 날 전쟁포로가 되다. 포로수용소에서 하이데거의 저작을 읽고, 종교적 성격을

            띤 한 편의 희곡을 쓰고, 동료 포로들과의 동지애를 경험하다. 이 경험이 후일 타인과의 관

            계를 설명하는 철학적 관점에 반영됨.

1941년 오른쪽 눈이 사시라는 신체적 특징을 이용해 석방되다. 군 복무에 적당하지 않다는 판결을

            받다. 파리로 귀환 즉시 철학 교수로 복직함과 동시에 '사회주의와 자유'라는 비밀 저항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했는데, 주로 정보를 모으고 전하는 일을 수행했음. 이 단계에서 사르

            트르가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을 했는가는 그 뒤로도 두고두고 문제가 됨.

1943년 희곡 《파리떼 Les Mouches》와 철학 저작 《존재와 무》를 출간하다.

1944년 7월에 《닫힌 방》을 처음으로 공연하다. 교육계를 완전히 떠나, 그 이후로 다시는 가르치

             는 일에 종사하지 않음.

1945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보도하기 위한 프랑스 특파원으

            로 미국을 방문해 이해의 첫 며칠을 보냄. 그가 쓴 비판적 기사는 종종 논쟁을 촉발시킴. 10

            월에 파리에서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 앞에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강연을

            하다. 대하소설 《자유의 길 Les Chemins de la liberte》 첫 두 권을 발표하다. 이 소설은

            1949년에 세 번째 권이 발표되나, 미완성으로 남게 됨.

1946년 다시 미국에서 몇 달을 보내다. 그 기간 동안 덜로리스라는 여자와 알게 되다. 보부아르는

            특히 덜로리스를 두려워했다고 함. 《유대인 문제에 관한 성찰》을 출간하다.

1947년 후일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한데 묶여 출간될 글들을 《현대》지에 따로따

            로 싣다.

1948년 상고르(Leopold Senghor)의 흑인 시선집의 서문인 《검은 오르페우스》를 쓰다. 교황청

            은 사르트르의 전체 저작을 금서 목록으로 지정했으며, 그 결과 가톨릭 신도들이 그의 저작

            을 읽는 것이 금지됨.

1952년 《성자 주네, 배우와 순교자 Saint Genet, comedien et martyr》를 출간하다. 이 저작은 일

           찍부터 플로베르를 대상으로 연구해보고자 했던 실존적 정신분석의 과정을 주네(Jean

           Genet)에게 적용한 연구의 결과임. 그 뒤 플로베르에 대한 연구는 사르트르의 평생의 연구

           주제로 남게 됨.

1954년 한 달 동안 소련을 방문하다. 방문 후에 가진 기자회견은 소련 체계에 대해 아무런 비판 내

           용을 담고 있지 않음. 2개월 동안 중공을 방문 후 다시 소련을 방문하다.

1956년 《현대》지에 <식민지주의는 하나의 체계다 Le colonialisme est un systeme>를 발표하다.

           10월 소련의 헝가리 침공 이후 소련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프랑스 공산당도 공격, 하지만 알

           제리전쟁을 일으킨 프랑스에 대한 공동보조로 인해 프랑스 공산당과는 관계를 유지함.

1957년 폴란드 잡지에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발표하다.

1960년 《변증법적 이성 비판》을 출간하다.

1961년 알제리 해방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사르트르의 아파트에 폭탄이 투척됨. 그 다음 해에 다시

            한 번 폭탄이 투척되었으나, 사르트르는 다른 곳으로 이미 이사를 한 참이었음. 파농의 《대

            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서문에서 혁명적 폭력을 강력하게 옹호하다.

1963년 어린 시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전적 소설 《말 Les Mots》을 발표하다. 이 작품에서 자

            신이 어떻게 글쓰기를 통해 삶을 영위해나가고자 하는 환상에 사로잡혔는가를 설명.

1964년 10월 지금까지 상 받기를 거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해 노벨 문학상 후보자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스웨덴 한림원에 보냄. 하지만 이 상을 수상하게

            됨.

1965년 미국의 코넬 대학교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바꾸다. 북베트남에 폭격을 계속 가하는 한 미국

            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선언.

1966년 베트남에서 저지른 미국의 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열린 러셀(Bertrand Russell) 초청 국제

            재판정에 참가하다. 런던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어 그다음 해에 미국이 테

            러 성격의 폭격을 가했다는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함. 이 재판은 스톡홀름에서도 열렸지

            만 후일 영국과 프랑스는 재판의 개정을 불허함.

1968년 파리에서 발생한 5월혁명에서 학생들을 지지하다. 이해에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소련의

            침공을 비난했을 뿐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파리떼》와 《더러운 손 Les Mains

            sales》의 공연에도 참석함. 이 두 작품은 그곳에서 저항군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으로 여

            겨짐.

1970년 마오이스트 성향의 신문 《인민의 대의》가 출간되다. 이 신문이 압수된 후 편집자 자격으

            로 출두 명령을 받음. 경찰에 체포되기 위해 길거리에서 이 신문을 판매함. 그러자 드골

            (Charles Andre Joseph Marie de Gaulle) 장군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김. "볼테르

            는 체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후 공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다른 급진적 성향의 신문들의

            편집에 관여하게 되다.

1971년 20여 년을 할애한 플로베르에 대한 실존적 연구서인 《집안의 천치》의 첫 두권을 출간함.

            1972년에 세 번째 권을 출간했으나, 네 번째 권(《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에 관련

            된)을 포기함.

1973년 유권자들이 고립된 개인들로 환원되고 마는 선거제도에 반대하는 <선거, 바보들을 위한 덫

            Elections, piege a cons>을 발표하다. 새로운 일간지 《리베라시옹 Liberation》지의 창

           간을 지원하고, 주필을 맡다.

1974년 각성제 남용과 다년간의 과로로 건강을 해쳐 좌파 성향 신문의 편집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

            만 여러 정치 토론에 참석함.

1980년 레비(Benny Levy)와의 대담집 《이제는 희망을 L'Espoir maintenant》을 출간하다. 이 대

            담집으로 인해 많은 논쟁이 촉발됨. 왜냐하면 몇몇 연구가들에 의하면, 젊은 레비가 사르트

            르에게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끔 강요했다는 것. 같은 해 4월 15일에 세상을 떠나다.  

 

'내가 읽은 책들 > 2015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13 만인보 ⑧  (0) 2015.02.02
2015-012 고대 로마를 찾아서  (0) 2015.01.29
2015-010 만인보 ⑦  (0) 2015.01.28
2015-009 동강  (0) 2015.01.27
2015-008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0) 2015.01.20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