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today
  • yesterday
2015. 2. 10. 08:07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16 만인보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7


811.6

고67만  9


창비전작시----------------------------------------------------------------------


나는 고은의 『만인보』를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종교적 연민을 배운다. 나는 사람의 삶의 형태에 따라서 어느 쪽인가 하면 사람과 미움의 마음이 분명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찌들어진 운명의 땅에 태어나 온갖 삶의 형태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사라져간 인간들에 대해서 사랑이나 미움보다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다만 『만인보』를 읽음으로 말미암아서 나 자신이 인간과 삶에 대해서 더욱 경건해지는 것만으로도 『만인보』와 그 작가 고은에 대해서 감사한다.

- 한양대 교수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이영희

 

일찍이 발자끄는 빠리의 호적부와 경쟁하겠다고 호언히였다. 뛰어난 소설가라면 모름지기 이만해야 한다. 그런데 한 시인이 있어 우리 민족의 호적부와 겨루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고난으로 축복받은 이땅에서 살아갔던 평균적 인물들의 눈부신 삶과 탁월한 역사적 개인들의 평균적 삶의 자태를 교직한 『만인보』에서 시인은 문득 일천 강물 위에 은빛 도장을 찍는 달빛이 되어 독자들을 저 망망한 민중사의 바다로 인도한다. 소도둑과 혁명가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을 백과사전적 전개 속에서 추구하는 『만인보』는 진실로 민족서사시적 위엄을 스스로 갖추고 있다.

- 문학평론가 최원식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이용문 / 방앗간집 딸 / 오복이 아버지 / 오복이 할머니 / 말감고 / 이현상 / 질경이 / 득순이 / 득순 어미 / 무녀리 / 문매기 / 김정호 / 남순이 / 유병렬씨 전실 딸년 / 남춘이 / 칠  수 / 최만식이 / 재룡이 / 정읍 여인 / 쌍  례 / 쌍례네 / 노래할지어다 / 생불이 할머니 / 생불이 할아버지 / 노래를 폐할지어다 / 옥순이 어머니 / 옥순이 아버지 / 옥순이 / 옥  상 / 이  녕 / 정분이 / 미자 어머니 / 미  자 / 박  연 / 사팔뜨기 노인둥이 / 정생 홍도 / 순임이 작은어머니 / 마서 심서방 / 김목공이 일대기 / 유  유 / 선  자 / 대장간 부자 / 한만걸이 마누라 / 박지원 / 단속곳 도둑놈 / 김용국 / 요까티 순자 / 의주 홍부자 / 넓적이 / 넓적이 어미 / 상이군인 / 그 처녀 / 채영묵 / 채영묵이 어머니 / 채병묵이 / 송시열 / 부  용 / 장터 영자 / 방의원 마누라 / 방의원 / 김개똥 / 순  자 / 생  피 / 마서 정연덕이 / 정연덕이 막내누이 / 공짜술꾼 / 오성륜 / 거짓말쟁이 / 이희광 / 추석 뒤 / 뻔뻔이 / 뻔뻔이 마누라 / 석금이 / 원오 화상 / 며느리고금 / 대복이 어머니 / 영실이 / 여서방 / 김호익 / 일본도 / 김서장 / 배불뚝이 / 임종면 / 임종면 재취 / 박봉양 / 재  례 / 장독대 / 검정몸뻬 / 검정몸뻬 아비 / 남의 옷 백 벌 / 팔마비 / 이  름 / 달치 포구 / 달치 포구 다정옥 / 이씨 종가 시엄씨 / 이득구 / 요까티 봉모 / 박진홍 / 최만석 주임 / 달 / 밤나무 주인 / 윤달이 / 응달 나무 / 소서방 / 융 / 쌍둥이 자매 / 이칠구 / 용이 할아범 / 도식이 마누라 / 낙서쟁이 / 장치기 김옥섭이 / 유장사 / 도두머리 우래옥 / 비인 과부 / 정씨 몸종 / 비인 장사와 판교 장사 / 풍 / 말  례 / 임두빈 / 임두빈 마누라 / 거지 계집애 / 우병덕이 / 조남술이 / 옥봉이 / 삽시도 이장 / 반공포로 / 한정기 / 운천석물 고석관 / 고석관이 아들 / 고석관이 딸 / 체장수 / 충승 충지 형제

찾아보기


오복이 아버지


딱 한번 추석때 와서

한 댓새 집에 머물다가

홀연히 또 떠나간다

꼬장꼬장한 오복이 아버지

옥생각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내일 모레 눈감을 어머니 있건만

염소똥 같은 외동아들 있건만

물에 물 탄 듯한 마누라

그러나 속 깊은 마누라 있건만

집에 붙어 있으면 숨차는지

벌떡 일어나

하늘 본다

하늘가 구름 본다

그러다가 아버지 무덤 벌초나 하고 나서

또 떠나가버린다


행색이야

늘 그 행색이매

여기저기 별 수 없는 떠도는 막일꾼으로

강원도 땅도

충주 제천도

안 다니는 데 없이

떠나가버린다


술에 약하여

술 두어 잔에 잠들어버린다

작년에 없던 흉터

새 흉터

팔에 그어져 번쩍거리건만

도시 이런 오복이 아버지 입 열어본 적 없이

또 떠나가버린다


이마적 고로롱고로롱 누워 있는 늙은 어머니

갈자리 갈대 도막 분질러대며

저런 인간을

내 뱃속에 두었으니

내 탓인지

영감 탓인지

하늘 탓인지


오복이 할머니


시름시름 누워 있다가도 조금만 빤하면 일어난다

이른 아침 이슬 차고

산 넘어 사래밭에 간다

누구 따라올까보아 달아나듯이 간다

그 비알진 밭에 가

한번 쭈욱 살펴보고

일면 자갈 주워내고

일면 풀 맨다

종일 사람 구경이라고는 씨도 없다

싸가지고 간

주먹덩어리 깡보리밥 삼키고

쉴 참도 없다

밥 먹고 바로 매던 풀 맨다

매어놓은 풀 벌써 시들어

그 풀냄새가 동무이런가

그런 하루 팍 저물어서야

물것 덤벼들고

잔솔 밑 물병 보이지 않게 어두워서야

허리 쳐 일어난다

가져갈 것 없으니

모깃불 덮을 풀이라도 한 다발

혼자 산 넘어 돌아오는데

밤새 솟적다 솟적다 벌써 청승떤다

돌아오는 마을이래야

어디 변변한 불빛 하나 있는가

그저 입에 넣을 것 넣고

어둠에는

고된 몸도 가려지매

바로 구들장 지는 마을이다

어머님 이제 오세유

하는 기어들어가는 며느리 말소리

귀하디귀한 손자놈이야

벌써 자빠져 잔다

마당 구석 나팔꽃 오른 데로

반딧불 두어개 난다


득순이


괜스러이 마른번개 친다 아침부터

쇠미 길갓집

외주물집

거기에 무슨 화초담쟁이겠는가

무슨 흙담이겠는가

무슨 놈의 싸리울 짚울타리이겠는가

거적때기 걸친 일도 없이

그냥 초가삼간 덜렁

길에 나붙어

문 열면

방안의 빈댓자국 붉은 댓잎사귀 다 나오고

득순네 머리 매고

누워 있는 것

다 보인다


그 길갓집 딸 득순이

누가 데려가야지

나이 스물아홉이면

두메 마을에서야

재취자리 아니면 갈 데 없는데

두 모녀 싸움 나면

득순네 청승떠는데

아이고 저년은 첩복도 없어 시앗복도 없어

첩살이도 못 가는 년이여

아이고 내 원수여

홀어미 욕이나 배불리 얻어먹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어느 날

득순이 떠나버렸다

누가

대천정거장에서 막차 타는 것 보았다 한다

장항 가는 버스 타는 것 보았다 한다

댕기 딴 머리

미장원에 가 다 잘라버리고

지지고 볶고 떠나는 것 보았다 한다


득순 어미


딸 도망간 뒤

다리병신으로

혼자 밥 끓여먹고

거미줄에 걸리고

혼자 나무해 끌고 오고

절뚝절뚝

혼자 군소리

끊이지 않고

오사할 년

오사할 년

어찌 이게 딸 욕인가

세상 욕이지

나무비녀 꽂으나마나

머리 숱 성겨

낭자라고 탱자만한데

남의 밭 고구마 캔 밭 더트며

잔 고구마 주워 담으며

혼자 군소리

참 내

참 내

그러나 단 한번도 슬퍼보지 않았다

어디에 슬플 만한 하늘 있는가


슬픔도 혹이로다

사람 이하에는

슬픔도 괜히 풍류로다


쌍례


대천 아랫갈머리 건너 쇠미에 가면

낯선 사람 가면

제일 먼저 쫓아나오는 계집아이

쌍례

하루내내 무슨 일이 있겠는가

낯선 사람 가면

지키고 있다가 반색하며

쫓아나오는 계집아이

쌍례

각시풀 뜯어다가

각시 만들어

너 가져라

너 가져라

나누어주는 계집아이

쌍례

그 사팔뜨기 눈으로

낯선 사람 가면

제일 먼저 쫓아나와 헤실헤실 웃는 계집아이

헌 광목치마 기워 입었을 뿐

단속곳도 안 입고

아무것도 안 입고

맨바람 숭숭 드나드는 계집아이

쌍례


딸만 아홉인데

그 가운데 딸 쌍둥이 한배 있어

쌍례하고

뒷례하고 자라나다가

뒷례는 묻혀버렸다

둘이 클 것을 혼자 커서 그런가

말만한 쌍례

그만 일찌감치 눈맞아

염소 풀 매러 나온

아랫갈머리 지동춘 영감한테

참빗도 받고

동전도 받고

눈깔사탕도 받더니

나이 열여섯 다 못되어

지영감 소실로 가버렸다


낮의 지영감

누가 오면 집안 계집아이라 하고

밤의 지영감

어서 어서 들어와

기명을랑 내일 식전에 치고

하며 안달하는데

어서 들어와 허리 주물러주어

안달하는데


어린 시절

그렇게도 사람께나 바치더니

사내라고

피 식은 영감땡감 몸이나 뎁혀주고

콧김이나 쐬어주는 등글개첩

쌍례


그러나저러나

밥이야 굶지 않으니

서방복 그만두고

식복으로 살어리랏다

쌍례


쌍례네


딸만 아홉에다가

슬슬 계명워리짓도 해

어느 놈은

딴 서방 소생이기도 하지만

다 본서방 성 받아

어엿이 임금 왕자 왕씨 딸들이라

그러나 딸부자가

어디 부자인가

태어난 코맹맹이 소리로

멸치젓 사아

갈치젓 사아

자하젓 사아


환갑 회갑 넘어서도

멸치젓 사아

새우젓 사아

갈치속젓 사아


이 세상 사는 일이

젓 이고 다니며 파는 일이요

젊어서는 사잇서방질도 더러 하는 일이요

가을 하늘 푸르건만

그 푸른 것이 무슨 까닭이겠는가

쌍례네야

하늘 모른다

구름 모른다


젓냄새밖에 낼 줄 모르는 쌍례네

달 밝은 밤에도

한숨 모른다

노여워 욕사발 퍼부으면 퍼부었지

한숨 따위 모른다

그것 하나 기막힌 힘이라

밤새 달빛 저 혼자 부서진다

딸년들 제 힘으로 시집갈 년은 가고

못 가는 년은 못 가

집이나 보거라

집 보다가 나가고 싶거든 나가거라


생불이 할머니


대천읍 관촌 앞

생불이네 집 송방집

옛날 보부상이나 개성 상인들 연락하던 송방집

이제는 그냥 성냥 엿 과자 등잔기름 따위

참숯 소주 사이다 따위

묵은 명태 따위 파는 잡화상이라

부엌 겸 술청 겸 막걸리도 팔았다

이러니 술장사라 하여

마을에서 상것으로 치부했다

딸 하나 달랑 있다가

시집가서

외손자 생불이가 태어나

생불이 외할머니가

생불이 할머니로 불리운들 어떠랴

안방에는 괜히 이대통령의 커다란 사진 걸려 있다

동네 어른들한테

상것 대접받는 값인가

동네 아이들한테는

욕 퍼부어대기 아니면

돌팔매 던지기 버릇 들었다

그러니 자식 없고 손자 없고

아무 짝에도

쓸 모서리 없는 외손자밖에 없지

아나 생불이 할머니

라고 한내장 말썽꾼 관모가 윽박질렀다

그러면 유리창 드르륵 닫아버린다

차 지나가며

흙탕물 튀어 붙은 유리창이었다


그 안에서 원통하고 절통한지

생불이 할머니 우는 소리 나다 말았다


생불이 할아버지


늘 신작로에 나가 어정거린다

길손이 길 묻거나

뉘 집 묻거나 하면

그것 자세자세 가르쳐주고

장날 촌에서 나오는 장꾼들하고

허드레 인사나 하고

아 하늘이 보아주어서

이번 장은 궂은 장 안되겠그만그려

어쩌고저쩌고

이런 인사가 소임이다


공연스러이 뒷짐깨나 지거나

팔짱 끼거나

너무 많이 나와 있었다 생각되면

송방 가서

덧문 세워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거나


가을바람 한 자락 기다렸다가

용케 그것 알아맞히고

물에 가

밀물새우나 징게미

체로 뜨거나

모기장 체로 둠벙에 가 훑어오거나 해서

오갈뚝배기에

손수 정성껏 쓿여

혼자 한잔 들어 흐뭇한가


어느새 여름 가네그려

낮달이 차츰

빛나기 시작하는 애저녁

60년 인생 깨쳐

부처나

지랄이나 될 만도 한가

어느새 여름 가네그려


옥순이 어머니


옥순이 생모

그러니까 옥순이 배다른오빠 김무공의 계모

갯것장수 소금장수 나물장수 채소장수

어느 장수 안해본 것 없다

워낙 밖으로 나다니는지라

거기에 무슨 알뜰살뜰한 것이 붙어 있겠는가

그저 정정한 몸 서서

무거운 것 이고 나다니는지라

한가위 송편 솜씨 없다

송편이라고 빚으면

넓적한 것이

꼭 제 귀만했다

큰 귀 두 개 가진 옥순이 어머니

나이 여든까지도

수수모가지 광주리 이고

저문 수수밭 휘영청 일어섰다

그 걸음밭에서 부싯돌불 빛났다

길하고 하나인 아낙

흙하고 둘이 아닌 아낙

고려 대지의 아낙

하늘이 무너져내려도 끄떡없는 아낙

옥순이 어머니

웬만한 사내 두엇인 듯

온 마을 든든했다


옥순이 아버지


옥순이 아버지

그러니까 정분이 아버지

그러니까 정분이 오빠

김목공이 아버지

평생 조끼 하나 입지 못하고

늘 동저고리 바람으로 살아온 가난이나 판 무식이나

세상 이치야 먼동 터 훤했다

술보다 담배가 좋다

금방 피우고 나

다시 담배 꾹꾹 눌러 불 붙인다

식구들이 채독 걸려도

겉으로는 놀라는 기색 내색지 않았다

한산 이씨 문구네 형

갈말 여릿재 골창에서

총 맞아 죽은 것을 달려가 묻어주었다

세월 흘러

그 무덤 면례도

정분이 아버지가 나서서 해주었다


모진 세월일수록

거기 반드시 인정 깊으나 깊은 사람 있다

변하는 세월일수록

세월 뒤켠에 변할 줄 모르는 사람 있다

간장은 짜고

물은 달다

이 세상 아무리 망해버려도

다시 세상 일으키는 사람 있다

그런 사람 가까이

멀뚱멀뚱 옛 마음씨 그대로인 사람 있다


옥순이


김목공이 여동생

찔레순 꺾어 먹고

장다리

공다리 꺾어 먹고

그렇게 커서

두근두근 시집가 어찌 사는지

친정 올 때 되었는데도


그렇게도 달음박질 잘 치던 처녀

장다리꽃 꺾어 들면

장다리밭 나비 따라와

나비하고 달음박질치던 처녀

시집간 지 3년 세월 어찌 사는지

아이 배어

아이 지워버렸다는 소식 있고

그 뒤로 어찌 사는지

목덜미 점 하나 어찌 사는지


미자 어머니


고향 한산에서

일찌감치 부모 저 세상 보내고

어찌 어찌 한내까지 흘러와

남의집살이하다가

김목공이와 눈맞았다


김목공이 거름으로 쓰느라

역전 이 집 저 집 뒷간 치워

그 거름 져나르는데

그때 눈맞고 배맞췄다

인연은 똥지게에도 있어

똥 구린내도

어엿이 사랑이었다


훗날 어디가 좋아 눈맞았느냐고 하면

그냥 다 좋았다고 했다


미자 낳아 길러

어느덧 미자하고 걸어가면

미자 어머니가 더 작은 키였다

그러나 쟁기질 빼놓고는

무슨 일이나 억척이었다

시부모 섬기는 것도 몸에 불났다


그런 미자 어머니 하는 말 있다

부자는 곡간에서 인심 나고

가난뱅이야 아침 이슬에서 복 나온다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하면

하늘이 우박이라도 내려주신다


미자


김목공이 딸

난리통에 어떻게 크는 줄도 모르게 컸다

먹은 것도 없이

복학으로 빈 배가 올챙이배였다

네 팔다리 무우말랭이로 말라비틀어져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개구리 고아 먹이는 것이 약이었다

회초리로

콩밭 뒤져 개구리 후려쳐 잡아다가

그것 고아 먹여서 키웠다

그 미자 커서

대천역전 나서면

사방의 눈길 쪼르르 모여든다

눈부셨다

다가가고 싶었다

수밀도 같았다

단 하나 아버지 김목공이 눈 닮아

먼데 바라보면 까닭없이

아버지처럼 세상이 싫어졌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라디오 가게 노래 쟁쟁하건만

대천역 모랫바람 부는 날

미자에게는 사랑도 싫다

그저 대천에서 홍성 갔다 오고

예산 갔다 오고

수덕사 일엽 스님 찾아갔다 오고

어느 때는 천안까지 갔다 온다

이런 미자의 뜻 알아주는 사람 하나

오직 미자 어머니

영감 잃은 미자 어머니

딸이 무슨 큰 일로 다녀온다고

올 시간 되면

대천역까지 마중 나가

조각달 뜬 밤

함께 돌아오기도 한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따지는 일 없이

오로지 딸의 말 몇 마디에

암만

암만

암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넓적이


잘난 놈은 잘났으나

못난 놈은 못난 놈끼리

무던히도 넓은 세상이구나


북선에서

북선 청천강 어디에서 피난 온

아이 윤정길이

엿목판 가슴 앞에 걸고

거기 미제 꿀 눈깔사탕 요깡 건빵 나부랭이

오징어 나부랭이 담겨

드문드문 팔렸다


앞뒤로 눌렀는지

얼굴 납짝하여

이름은 모르나

장터 술도가 옆 넓적이라면 다 안다

뒤통수에 돈짝만한 흉터 있어

넓적이라면

그 흉터에 햇빛 비쳐 번쩍번쩍 다 안다

끔 장사하다가

학교 편입해 학교 다녔으나

본바닥 아이들이 깔보아

친구 하나 없었다

그러더니 국민학교 졸업하고 어디로 갔다

어디 가 무얼 먹고 사는지

어디에 가

사람이 짝 있는 법이라

되게 얽은 여자라도 만나

서로 지고 들어가

아들딸 낳고 사는지


하늘이 너무 크니

하늘보고 짐작할 일 하나도 없다


그런데 누가 장항에서 넓적이 보았다 하고

장항 천안 사이

느려터진 완행열차 안에서

틀림없는 넓적이 보았다 한다

아니야

가면 멀리 갈 사람이여

전라도나

경상도 어디나

서울 하왕십리나


넓적이 어미


넓적이가 끔 판 돈

건빵 판 돈 다 모아

막걸리 사먹었다

막걸리 졸업하고

소주하고 배갈 사먹었다


들은 말인즉 피난길에서

미군 두 놈한테 강간당하고

그 길로 실성하여

그때부터 술꾼 되었다 한다


술 취하면

사내더러는 좆이라 하고

여자더러는 씹이라 했다


야 이 좆대가리 간나새끼 인사하고 가라우야

야 이 씹구멍에

꿩대가리 박은 에미나이야

나한테 인사하고 지나가라우


제 아들 넓적이 있거나 말거나

덜렁 덥지도 않은 날 저고리 벗어

젖통 다 드러내놓고


야 이 씹구멍에

날감자 박은 년아 인사하고 지나가라우야


채영묵


대천 떠난 30년 뒤

채영묵이 중동으로 돈 벌러 간 기술자 마누라 꼬여

수천만 원 갈취하고

더 가져오라고 때리고 패다가

고발당해 쇠고랑 찼다

부전자전이 아니라 모전자전쯤 된다

제 어머니 빼다 박아

늘 생글거리며

여자가 좋아하게 이쁘장한 영묵이

교도소 나와

사촌이 살고 있는 대천에 왔다 갔다

대천 사람들이 알아보고

술자리 만들어주었더니

술 먹고 엉엉 울었다

술집 색시가 손수건 꺼내

눈물 닦아주었다

아버지 맹꽁이차 운전수는 진작 죽었다 한다


채영묵이 어머니


채영묵이 아버지가 맹꽁이차 운전수였다

트럭 본네트가 짧아 맹꽁이차였다

거기에 짐도 가득 싣고

사람도 빼곡하게 실었다

그런 때

그 맹꽁이차에 탄 사람들

영락없이 콩나물같이 순했다

정기버스가 없던 시절이라

장날에는 장짐 실은 장돌뱅이가 독차지했다

좀처럼 크락숀소리 울리지 않았다

아무리 소가 길 막아도

아이들이 길 비키지 않아도


이렇게 채영묵이 아버지가 집 비우는 날 많자

채영묵이 어머니 방 하나 남아돌아

하숙 쳐 가양에 보태어 썼다

워낙 물색 좋은 여자라

국민학교 5학년 아이 어머니가 아니라

생처녀같이 싱그러웠다

검정 사지바지에

걸을 때마다 엉덩이가 보기 좋았다

진분홍 털스웨터 차림이었다

달밤의 박꽃처럼 어여뻤다

거기다가 생글생글했다

누구에게나 먼저 웃는 얼굴이엇다


그러더니 그만 나이 아래 하숙생하고

고등학생 하숙생하고 통정하고 말았다

대천농고 2학년 아이

그 아이도 학교 작파해버렸다

끝내 둘이 도망쳐버렸다

그렇게 되자 채영묵이 아버지도

남우세스러워 맹꽁이차에 제 짐 싣고

운전수 옆자리에 우는 영묵이 앉혀

대천바닥 썰렁하게 떠나버렸다

괜찮다 괜찮다 사람은 어디 가나 살 데 있다


방의원 마누라


본래 술집 돌던 여자인데

방준식이 만나

아이 배자 달라붙어 살기 시작했다

턱이 겹치고

귀가 길쭉하게 처져서

복덩어리라 했다

턱 뾰쪽 빤 준식이가

돈 벌고 출세한 것도

제 덕이 아니라

마누라 덕이라 했다

남편 면의원 된 뒤

그 마누라 한내 나들이갈 때

저만치 딸 순자 앞세우고

몸통 흔들며

두 팔 흔들어대며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가는 걸음걸이었다

그 전에는 먼저 인사하더니

이제는 누가 인사해야 아는 체한다

물론 금비녀 끼고

낭자도 사발만하게 커졌다

저런 ! 고개 돌려

땅보다 하늘하고 더 친하며


방의원


한내에서 술장사로 돈 벌었다

그러나 술장사라 해서 사람 대접 못 받는지라

그만 술장사 그만두고

논 7천 평 사고

밭 2천 평 사서

관촌으로 이사 왔다

그러나 술장사 내력 아는지라

누구하나 대접해주지 않았다

여기에 포한이 져서

면의원에 출마 당선되니

하루아침에 방준식이가

방의원이 되었다

방의원 마누라가 나서서

우리 방의원 방의원 하고

말머리에 달고 다녔다

어느덧 관촌 양반부스럭지들도

방준식이가 집 나서면

방의원 하고 대접했다


마서 정연덕이


마서 서룡리 웃말

서당에서 제일 공부 잘하던 연덕이

그런데 스물아홉에도 장가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고자라 했다


인물 한번 잘났는데

부리부리한 눈에

떡 벌어진 가슴팍

철이 바뀌어도 감기 못 들어온다


누이가 생피 붙은 이후

대천으로 이사 가 건어물전 벌였으나 맡겨두고

대천 앞바다에만 나갔다

하루내내 해수욕장 수박 먹고 나

그 수박씨 애잔한 잎새 틔워

파르라니 나 있는 것도 보며

느린 파도소리 들으며

바다 바라보며


드디어 바다 위 뱃놈 될 생각했다

다음날 대천ㅇ업조합 직원한테 줄 넣어

보령 제1호 갈치배 타기도 했다


그렇다 바다 위에서는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다

그날과

그날의 파도 끝없을 따름이다


정연덕이 막내누이


언니 연옥이가 생피 붙어버렸으니

누이 연복이야 시집갈 길 막혔다

언니 일로 운 것은

정작 연복이뿐이었다

늘 다정한 계집애


대천으로 이사 온 지 한 달 못되어

그 연복이 집 나갔다

계룡산 신중이 되어 흰고무신 신었는지

아니면 온양 온천에 가

늘어지게 잠자는 갈보가 되었는지


집안에 일 하나 생겨

이렇게 집안 식구 흩어져

흩어져

이 세상 넓은 것인가


집안 식구 빨래 다 하고도

손끝 놀리지 않던 계집애

누가 데려가면

그 집 복 찰 계집애

연복이


그러나 어디 가서 무슨 몸인지


뻔뻔이


요까티 강순달이

이발값 아껴

댂칼 갈아 거출거출 면도 시늉하고

면도 시늉하면

보는 사람이야 어쨌거나

면도하고 나서

얼굴에 물 바르고 나서면

그 기분 괜찮은지라


떡 본 김에 제사인지라

잔칫집이나

초상집 가서

하루 삼시 세때 잘 먹고

국수 두 그릇 먹어도

눈치 받지 않고

그것으로 부족하여라

반드시 남은 음식 걷어가지고 일어선다

돼지고기 비계에다

점잖은 윗손님 술상 홍어 찐 것도 걷어가지고

허리 아프지도 않으며

끙 ! 하고 일어선다


초상집 일가붙이 어른이 나와

자네는 문상 왔나

음식 챙기러 왔나

하는 점잖은 핀잔 따위야 코방귀이다

아니 자네 순달이 여전히 뻔뻔하네그려 하면

그래서 나를 뻔뻔이라 부르지 않소

강순달이라면 모르지만

뻔뻔이라면 오소산 이짝 저짝에서

나 모르고 어쩌겠소

하고 너스레 떨며 일어선다


먹던 묵

먹고 남은 고사리나물 숙주나물

흰 소금 따위

음식뿐 아니라

쓰고 남은 백지 조각 따위도 가지고 일어선다

찬바람 불면 누가 막아주겠나

문구멍 막아주는 것은 이것이여

문풍지 우는 밤

문바람 막아주는 것은 이것이여

하고


한번은 떨어진 옷고름 주워 담다가

옷고름 주인 순자 어머니한테 걸려

아니 한다 한다 하자니까

이제는 남의 옷고름까지 떼어가?

하자

떼어가다니요

줏어가는 것하고 떼어가는 것하고는

구별할 줄 알아야

이 세상에 하늘 있고 땅 있어요

참 내


순자네 개가 뻔뻔이 알아보고

꼬리깨나 흔들어 배웅한다

옷고름 빼앗기고 서운한 뻔뻔이 강순달이 뒤에서


뻔뻔이 마누라


낭자에 젓가락 비녀 꽂은 강순달이 마누라

눈은 뜨는지 감았는지

늘 째져 있을 뿐

그런 눈으로 용케 앞을 본다

앞뿐 아니라 뒤도 빤히 짐작한다


강순달이에

강순달이 마누라라고

어찌 서방과 딴판이겠는가

남의 집 부엌이나 뒤란에

그놈의 마당발 들여놓기 망정이지

그런 곳에 들어갔다 하면

누더기 앞치마에 감춰가지고 나오는 것

반드시 있다


친정에 가서는

단속곳 안에

친정조카 돌 선물 은수저 훔쳐 꽂은 것 떨어져

친정 올케와 대판 싸우고

발 끊겨버렸다


밤중에 잠 안 와 팔베개 고쳐 베고 나서

아니 요새 당신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니

하다못해 과부네 굳은 된장이라도

한 사발 가져오지 못하니

하자

서방 순달이도 한 마디

그러는 임자는 무엇이여

그 좋은 솜씨 어디다 처박아두고

손목 잘러버려

손목 잘러버려


밤중 귀뚜라니 소리 점점 줄어든다


임종면


장항부두 통통배 두 척

15마력짜리

10마력짜리

거기에다 중선 세 척의 선주 임종면이

그 임종면이 자전거 타고

허리 꼿꼿이 세우고 지나가면

서천군수도 서장도

읍장도

물 건너 군산항만청장도

저 앞에서부터 알아보고 굽신거린다

아직 수염 기를 나이 아닌데

여덟팔자 수염까지 단청했으니

절 받을 만한 임종면이

늘 양복 조끼에 시계금줄 걸려 있고

칠피구두는 자전거 페달과 함께 돌며 번쩍거린다

칠산바다 조기는 다 임종면이네 조기라 하고

마까오 물건은 다 임종면이네 물건이라 한다

돈으로 요 깔고 자고

돈으로 이불 해 덮고 잔다 한다

그런데 그 임종면이네 집

불행 있다

딱 하나

외아들이 간질병 나면

방바닥 나뒹굴며

비싸디비싼 옛날 백자 항아리 부수어버린다

흰 거품 물고

눈 흰자위 뒤집혀져

나자빠져

꼭 무당벌레 뒤집혀진 듯이 지랄한다

아버지 임종면이 들어와

그런 병신자식 지랄에

찬물 한 양철동이 퍼부어버린다

이 원수야


임종면 재취


임선주 임부자 본마누라 고생만 실컷 하고

배 한 척 두 척 사들이자

그만 병 들어

그 길로 칠성판 지고 갔다

지랄병 아들 달랑 남겨놓고 갔다

거기에 천안 처녀 하나

논 사주고 밭 사주고 가마 태워 왔는데

장항에 오니

당장 제1미인이라

눈 같은 살결에

눈동자는 흑진주 저리 가거라

앵두입술에

어느 때는 생대구 이리 같은 입술에

검은 머리 가리마 쪽 곧아 푸르러라


한 마디 더 보태자면

둥근 얼굴 영락없는 보름달이라

한번 나들이 나서면

그 누구 감히

그 자태 바라볼쏘냐

그저 쉬쉬쉬 꿀꺽

흘끔 바라보고 목젓 막혀버린다

그런 미인인지라

임종면이 재산 다

그 재취 베갯속에 간다 한다

아이고 어디 저게 사람이여

신선 아니면

백년 묵은 여우 둔갑한 것이여

저 치맛자락 땅에 닿은 것 좀 보아

그 밑에 고무신 버선발 좀 보아


그런데 그 임종면이 재취가

전실 자식 지랄병 아이 살인죄 쓰고 잡혀갔다

간질병으로 나뒹구는 아이를

수쳇구멍에 처박아 죽였다 한다

그러나 임종면이 배 한 척 팔아

그 재취부인 풀려나왔다

그리하여 그 재취 수덕사로 마곡사로

부여 고란사로

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고

칠성불공 앉히러 연락부절로 다녔다


3년 뒤 아들 하나 낳았다

기쁨 찼다

그러나 백일 넘기고 죽었다

장항거리 어디에도

그 재취부인 보이지 않았다

임종면이 통통배 다 넘어가고

중선 하나는 덕적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아름다움이여 파괴와 멸망이여


껌정몸뻬


1 · 4후퇴 피난민 행렬이

아랫녘으로 아랫녘으로 내려가다가

전선이 38선 언저리서 맞대어 완충 이루자

죽어도 서울 가서 죽어야 한다고

다시 올라갔다

큰 길로만 올라가다가

마을에 들러

보리 한 자쯤 자라난 이른봄

나물 캐어

화덕에 걸고 나물국 끓여먹었다

거기에 구호양곡으로 밥이라고 해먹었다


그 북행 피난민 행렬에서

동네 간장 얻으러 오는 처녀

껌몸뻬

흰 무명실로 더덕더덕 기워 입은

껌정몸뻬

검은 눈썹 두 마리 볼 만하다

그 처녀 들창코 내밀고

간장 달라고

한 집에 들어가

한 시간도 앉아 졸라댔다

아무리 인심 좋은 마을이나

간장 된장 다 떨어진 난리인지라

없다 해도

곧이 듣지 않고 졸라댔다


그러다가 숨겨둔 것 한 갱끼

기어이 얻어가고 마는 껌정몸뻬 아가씨

그게 어디 아가씨인가

그냥 돌멩이거나

황소 뿔이거나


흠 북선년 독한 년이여

어디 가서도 살기는 살어

어느 바위 너설에도

올라앉은 엉겅퀴꽃이여


껌정몸뻬 아비


제 딸 사는 힘 질기다고

제 딸 앞세워

먹을 것 얻어가는

껌정몸뻬 아비

황해도 사리원 영감

일제 때 수리조합장 했다 하나

그런 것 같지도 않은 영감

피난민 머무는 미창 창고에서

다른 사람들 다 부지런히

먹을 것

땔 것

입을 것

쓸 것 찾아다니는데

손 놓고

그냥 낯선 타관 한눈팔고 있는 영감

딸 없으면

어쩔 뻔했나

그냥 내려오다가

개성 토성 언저리서 죽었을 영감

아무나 보고 빙그레 웃으니

혹시 이쪽에서 긴가민가 계면쩍어

어이할 수 없이 빙그레 답례하는데

썩 근사한 한 마디

우리 좋은 세상 오우다 꼭 오우다

제 이마빡 먹사마귀 믿듯이


임두빈


무창포에서 멀리 대천 선창이 보인다

대천 바다에서 태어나

무창포로 와 흘러와 사는 암두빈

날마다 선창에서

갯바람에 절어 사는데

이따금 저 건너 대천 쪽 바라보지만

거기 가본 적 없다

가볼 생각 없다

잠깐 말미 내면

버스 타고 가면 금세 대천인데

아버지 보아도 그렇고

형을 보아도 그렇고

그냥 내리닫이 10년 20년을

무창포 선창 떠난 적 없다

 

충청도 사람 조상 유난히 섬기지만

임두빈이야

그런 조상 거들떠본 적 없다

그저 맞아들이는 것은

날마다 홍합배 갈치배라

만선 들어오면

그것 퍼내느라 숨쉴 겨를도 모자라

이렇게 선창 막일로 살아가며

계집 생기고

자식 생겨

밤 늦게 막걸리 먹고 집에 가면

그때에야

아이고 우리 상식이 잘 놀았느냐

하고 희끗희끗 수염발 문지른다

암 조상은 없어도 자식은 있다

 

임두빈 마누라

 

무창포로 흘러와

선창 구석 상밥집 식모살이하다가

임두빈 타진 옷 꿰메주고 나서

그 길로

임두빈 마누라 되어

참기름집 옆에다

방 얻어 살림났다

얼굴에 촘촘이 주근깨 덮여 있어

말할 때마다

웃을 때마다

그 주근깨 쏟아질 듯하지만

아기 낳아

그 아기 얼러대는데

얼씨구 얼씨구 하고 기뻐 어쩔 줄 모르는데

그렇게 얼러대는데

기쁜 주근깨도 함께

얼러대는데

밭에 밭이랑나비

바다에 물결이랑나비 큼직하기도 하여라

 

웅천석물 고석관

 

군산 밖 옥산에서 농사짓다가

투전 끝발에 논밭 날리고

군산 수산시장에서 생선 좀 만지다가

그 노릇도 작파하고

강 건너

웅천에 마음 붙여

검은 돌 만지기 시작했다

난리 지난 뒤라

한동안은

어디 비석 세울 자손 있던가

여기저기

집 들어서고

새 거리 트이면서

차츰 산에 언덕에 밭두렁에

그냥 맨무덤 두었다가

하나둘 비석 섰다

그때 날랜 고석관이 석물공장 차렸다

밤중까지 돌 쪼는 소리

돌 가는 소리

그러자니 먼 돈 가까이 왔다

그토록 달아나기만 하던 돈

이제 얼쑤얼쑤 어깻짓하며 왔다

고석관이 고부자 되었다

 

대천 미군부대 지프 한 대 사들여 타고 다녔다

그 차 지나가면

자갈길 먼지 자욱히 피어올랐다

땅딸보 고석관이

위가 아래인지

아래가 위인지 모르게 땅달보라

아무리 돈 많아도

술집 색시들 넌즈시 에누리했다

 

그래서 고석관이 술 취하면 틀림없다

술상 차고 일어난다

일어나 돈 뿌리고

문 밀치고 나와버린다

청천하늘에 별도 많아

뭇별들 넌지시 에누리한다

너도 사람이라고 술 취했구나 하고

 

별 뜬 하늘에 늦은 달 떠올라와

저 아래 조용한 술집 마당 내려비치며

허허 저기 저 술집에는

그 고석관이 안 왔구나

 

고석관이 아들

 

어머니 타겨

인삼 다려먹어도 파리파리하다

고석관이 아들 영수

나이 열일곱인데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두고

집안에서 논다

겨우 마당 맨드라미하고 논다

몸이 허약하매

눈뜨기보다

눈감고 있을 때가 좋았다

그러다가 눈이 좋아져

책을 읽었다

밤새도록 읽었다

진주탑 마도의 향불

어디 그뿐인가

수호지

어디 그뿐인가

토정비결까지

 

동네 사람들

공장 사람들 모르는 것 있으면

거기 가 묻는다

콧잔등에 푸른 심줄 돋아난 영수

그 영수 모르는 것 없다

 

끝내 계룡산 신도안 드나들다가

신도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훔치훔치 그 산중 굴속으로

 

고석관이 딸

 

어디서 날아 온 딸 정순이

영수하고

배다른 동생 정순이

이 계집애 돈에 밝아

어릴 때부터 돼지저금통 채워쌓더니

커서

아버지한테 타는 용돈 안 쓰고 모아

어느새 밭 하나 샀다

밭 2백 평짜리

 

아버지한테 밭 샀다고 말하자

술 취한 아버지 기뻐할 줄 알았으나

아니다

뭣이 ! 네가 밭을 사 저금통으로 밭을 사

네 에미하고 다른 데 하나도 없구나

네 에미도 돈이라면

죽고 못 살더니

 

그러나 오빠 집 나간 뒤

열네살 정순이 그 계집애

댕기머리 잘라

단발머리로

일꾼 꼼짝달싹 못하게 다스린다

아저씨 방아달 밭에 재 내가야지

왜 안 내가고 있어요?

집 안의 잿간에 재 차면

그 집이 어디 사람 사는 집이유?

 

한쪽 볼에 얕은 볼우물

그것이 덩달아

화난 얼굴 더하여준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