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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0. 15:59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27 만인보  - 70년대 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1


811.6

고67 만 13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머리말

김상진 / 변선환 / 7세 제왕 / 진복기 / 황인성 / 공덕귀 / 정운갑 / 청담 스님 / 노무현 / 이총각 / 정일권 / 김정준 / 김옥길 / 김동길 / 경부고속도로 트럭 / 오재식 / 오두방정 / 강석주 / 박영복 / 김동완 / 신현봉 / 임병휴 형사 / 장윤환 / 김수온 / 이후락 / 임기윤 / 김  철 / 임수미 / 윤공희 / 조용술 / 서  승 / 서준식 / 서승의 누이 / 한상진 / 한경직 / 조영래 / 김재규 / 장님의 조상 / 김소영 / 이오덕 / 이우석 / 한태연 / 주명덕 / 승려 능운 / 운문사 사미니 혜관 / 저녁 무렵 / 김팔봉 / 도자와 / 김상근 / 심우성 / 이동원 / 혜  융 / 서인석 / 김용복 / 김종서 / 서울역 / 그 노처녀 / 청진동 니나노 / 박세경 / 조남기 / 손경산 / 호인수 / 유동우 / 김현옥 / 세 성받이 / 임정남 / 채희완 / 김택암 / 임진택 / 유근일 / 김낙중 / 윤정민 / 청량리 588 / 표문태 / 김벽창호 / 안남인 귀화 이씨 / 김제 망해사 / 서하에서 온 사람 / 김진우 / 만경강 / 첫사랑 / 석정남 / 청주 정진동 / 진주 오제봉 / 그 식모할멈 / 복부인 오여사 / 왕학수 / 청전 이상범 / 금영균 / 김경락 / 여익구 / 김학민 / 김인한 / 박동선 / 김병상 / 천승세 / 박암익 훈장 / 원병오의 휴전선 / 노영희 / 명노근 / 정홍진 / 윤형두 / 황주석 / 김진균 / 황인범 / 옥천역 청소부 / 어변갑 / 무릎 연적 / 예춘호 / 강창일 / 이길재 / 절도 9범 / 가짜소경 거지 / 방용석 / 김희택 / 이명준 / 고준환 / 원혜영 / 김희조 / 구  산 / 최기식 / 정광호 / 신중현 / 권대복 / 박선균 / 이안사 / 설대위 / 박순경 / 불효자는 웁니다


진복기


결국 박정희 그의 당선만을 위한

대통령선거로 너도 나도 뒤숭숭해지면

떴다 봐라

정의당 당수

코밑의 팔자수염

그 갈색 얼굴 가득한 실없는 웃음

진복기 후보가 나타난다

반드시


벌써 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

유신체제 이전의 직선제 시절


서울 무교동 허름한 노년 장년 단골의 다방이

그의 당사무실이었다

누구나 당비 얼마 내면

그리하여 입당원서에 지장이라도 찍으면

당장 담배연기 자욱한 거기

정의당 당원이 된다


어떤 위엄도

어떤 적의도 없는

이빨 누런 당수의 웃음이 고작이었다


낡은 기독교공화국을 꿈꾸는

저 미아리 넘어

삼양동 산동네 자택에서

무교동까지 오는 동안


대통령후보 기호 7번인지라

그가 버스 타면

그를 경호하는 사복경찰관

오라잇 !

차장 아가씨 걸쭉한 소리 따라

버스 타고 투덜대며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선거 기호 1번 박정희

기호 2번 윤보선

기호 1번 박정희

기호 2번 김대중


그렇게 죽느냐 사느냐의 혈전인데

그런 혈전 한구석에서

빙그레 웃음 스며나오는 후보가 있다


무교동 1가 거리 걸어가노라면

지나가던 고교생들

지나가던 여대생들

낄낄낄 웃어대니 복되어라

진복기


노무현


모든 것을 혼자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에 다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사법고시도 마친 뒤


그는 항상 수줍어하며 가난한 사람 편이었다

그는 항상 쓸쓸하고 어려운 사람 편이었다

슬픔 있는 곳

아픔 있는 곳에

그가 물속에 잠겨 있다가 솟아나왔다

푸우 물 뿜어대며


그러다가 끝내 유신체제에 맞서

부산항 일대

인권의 등대가 되어

그 등대에는

마치 그가 없는 듯이

무간수 등대가 되었다

힘찬 불빛으로


어디 그뿐이던가

사람들 삐까번쩍 광(光)내는데

그는 혼자 물러서서 그늘이 되었다

헛소리마저 판치는

텐트 밑에서

술기운 따위 없는 초승달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진실 때문에

정치를 할 수 없으리라

속으로

속으로 격렬한

진실 때문에


정일권


걸음걸이 늘 느릿하다 지구의 자전(自轉)을 터득했던가

흑백 TV화면에

오래 찍힌다

다른 지도자들은 종종걸음

TV화면에 짧게 찍힌다


함경도의 불우한 아이 하나

일본인 집에서

이 일 저 일 해주며 자라나서

만주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조선인

만주인

중국인

몽고인 등의 사관생도


거기서 박정희 이한림을 만났다


한국전쟁 전선에서

30대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이승만의 초애


박정희 정권에서

국무총리

국회의장

당의장 따위 다 지내다가

대통령만 넘보지 않는

그 영리하기 짝이 없는 무능으로

만능을 누렸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일본어

해방 이후의 영어

처세와 여색의 만능까지……


김옥길


크낙한 독 가득히

크낙한 배짱 차 있다

여인의 수줍음 따위

타고나지 않았다


대문 활짝 열어놓은 집

오래오래 독신

아우와 함께

그런 독신생활의 독선 없이 통이 크다

품이 크다


냉면 한그릇으로 천하일을 말하다가

남북적십자회담 때 나가

그 초등학교 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감정 호소의 연설 이전부터


학문이기보다

교무와 교육 쪽이라

일찍이 김활란 박마리아

그 뒤의 그녀로 이어져

누룩 다 녹아든 술항아리인가

술 한모금 모르는 옹기독 술항아리인가


김동길


머리숱 빽빽하다

나무꾼 못 들어오게

하루 내내 감시한 산주인 덕에

빼곡한 뒷산 앞산 숲인인 양

숲속 푸나무인 양 빽빽하다


그런 머리숱 올백머리에

어쩌다가 뻐꾸기 소리 건너가듯

새치 하나둘 숨겨져 있다


눈썹 진하다 먹물 진하다

코 굵직하다

코 아래 구레나룻 진하다


그 코 아래

입다운 입

크게 찢어지며

틀니 없이

하 ! 웃는다

하 ! 웃고 나

바로 닫힌다


그 웃음에는 여운이 없다

하 ! 하고 끝나버린다

그런 다음 바로 다른 사람 보고

하 ! 웃는다

그런 다음 고개 돌려 다른 사람 보고

하 ! 웃는다


평안도 낭림산맥 기슭 맹산 산골에서 태어난 장주

나비 달린 장부

누님 옥길 아우 동길

누가 누구인지 몰라 서로 그림자인가


70년대 한동안 사람이 모여들었는데……


이후락


시대의 사람은

항상 앞시대에서 나온다

이름없던 사람

여기저기 풀밭에서

세잎짜리 토끼풀에 지나지 않아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이었던 사람

이후락


그가 박정희의 둘레에서 지략이 치솟았다

『삼국지』 조조였던가

유비였던가

그 둘이 하나로 복제되었던가


1961년 5월 17일 이후

국가 권력의 핵심에서 떠나지 않은

권력 혹은 권력의 울짱이 되었다

하루아침이었다


중앙정보부장 취임사

박정희교

교주 박정희대통령 각하를 믿는 박정희교의 수제자

중앙정보부장으로

판문점을 넘어가

북한 평양의 4일간

김일성의 아우 영주와

김일성을 만났다


그의 목숨 걸고 갔다

유서 놔두고

그러다가 두번째는

두 아들과 사위마저 데리고 갔다

김일성이 영웅이오 하고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렇게 해서 7 · 4남북공동성명이 나왓다

그것이 박정희 장기집권의 전략이 아니었다면

진짜배기

한반도 잔치이었을 것을

그러나 그 뒤

남쪽에서는 유신헌법이

북쪽에서는 어버이 신헌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포되었다


김재규


1979년 YH사건과

부산마산항쟁을 겪으면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그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차지철을 쏘았다

그리고 박정희를 쏘았다


그는 육군을 휘어잡지 못했다

육군교도소 특별감방 제7호실

그 창 없는 감방에서

여름날 새벽

육군교도소 소장이 주는 커피 한잔

그것으로 서대문에 가서

목매달렸다

염주 가까스로 쥔 채


걸걸한 목소리

얼얼한 얼굴

몸에는 의리 가득한데

몸속에는 참을 수 없는 배역의 폭발이 있었던가

종신 대통령 박정희의 고향이 그의 고향이었다

그의 고향 선산의 조상 무덤들 다 파헤쳐졌다

떠돌아라

떠돌아라 그대 영원한 중음신(中陰身)으로


김현옥


일제시대 소학교 소사

조회시간 종을 쳤다

수업시간 종을 쳤다

일본인 교장실 티끌 하나 없이 청소했다

그 시절은 청소가 아니라 소제였다


그런 사람이 자라나

육군장교였다가

부산 시장

서울 시장을 지냈다


도시는 선(線)이다

이런 어설픈 표어도 내걸었다

여의도를

도시로 만들었다

밤섬을 폭파한 뒤


장승 같은 키로 박정희의 개발에 신났다

그가 세운 서민아파트

와우산 와우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의 개발은 숨가빴다

내무부장관 시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모든 성찰의 시간 떠나간 곳에서


박동선


백인 미녀를 비서로 뒤따르게 하고

백인 상류사회 한 부분을

한 손아귀에 넣어

호화찬란한 야회복의 밤이 있었다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 클럽 1977년

항상 엷은 썬글라스의

단정한 동양인

말과 몸짓이 자르르 기름졌다


그의 손아귀에는 미국 상원의원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으로

태평양 건너

한국의 박정희에게

불가결한 인물이 되었다

미국에서 박동선은 박정희의 조카로 통했다


미국쌀 중개상으로

모든 양국관계의 중개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상하 양원 실력자만 포착했다

신문기자들을 잊어버린 채


그리하여 뉴욕타임즈는

그를 일러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규탄했다


한국의 국제적 인물 하나가 시끌벅적 가라앉았다


예춘호


두 눈이 콧날에 달려와

두 눈이 의가 좋다

그만그만

목쉰 소리에 쇳내음이 났다


메주 뜬 방바닥인가

한번 나오면

어디가 서론이고

어디가 결론인지 몰라

긴 담론


저 60년대 초

부산의 한 대학강사가

혜성으로 떠올라

공화당 사무총장이 되었다


인명록은

그 이전의 인명록을 무시한다

거기에 새로

그의 이름이 빛났다


그러다가 박정희 3선개헌 반대로 무소속이었다

유신 말기

그는 재야에 다가섰다가

점점 재야의 골짜기에 내려왔다

마음에 맞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며


강창일


제주도 돌하르방 슬하에서 자라났다

네모졌다

한라산 눈송이 여섯모졌다

그 아래

열네모진 젊은이


제주해협 설문대할망 두 다리 건너


서울에서 정치학 전공의 젊은이

오류를 사절하라

견고하라


강창일

그대 턱에 고향의 수평선이 탁 걸려라


민청학련 사건 이래

상아탑적이기보다

집정관적이다

감찰관적이다


양심과 모순의 정치적 관계를

감시하는 이지


좀처럼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턱에

그대의 오랜 양식을 걸어버려라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