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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1. 12:43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32 만인보 - 70년대 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3

 

811.6

고67만  15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한  현 / 김진현 / 강신석 / 젊은 그들 / 청주 한잔 / 정수일 / 이신범 / 백기범 / 문호근 / 이우회 / 가짜 김종필 / 오노다 / 입  심 / 춘  향 / 한명숙 / 호지명 / 홍길동 / 김윤식 / 박종규 / 박기출 / 어머니 ! / 김진수 / 어떤 조약돌 / 허  균 / 김성곤 / 차범석 / 민영규 / 민두기 / 동일방직 노동자 김옥순 / 귀  신 / 금강산 20년 / 이세중 / 대전 이일수 / 김경남 / 탈 / 여섯 대 과부들 / 백기완 마누라 / 반전태일 / 김태길 / 함석헌옹 부인 / 윤순녀 / 청맹과니 / 잡초 양승환 / 겨울 피란 / 이대용 / 장님 가수 이용복 / 임춘앵 / 지  선 / 다 내쳐버리고 / 김준보 / 전형필 / 채명신 / 모안영 / 한세옥 / 최형섭 / 눈 열 개 / 오창영 / 꼭  지 / 정인승 / 세 까마귀 / 이명박 / 이종찬 / 김사달 / 김효임 김효주 자매 / 쌍둥이 교도관 / 춘성 선사 / 그 할머니의 노망 / 게으름뱅이 / 청계천의 밤 / 지팡이 / 고광순 / 소  식 / 무덤도둑 유씨 형제 / 박영석 / 어떤 춘향가 / 임춘자 / 임종률 / 끄나풀 / 마루야마 천황 / 석  녀 / 늙은 농부 / 권정생 / 열두살짜리 점쟁이 / 월명과 더불어 / 성칠이 병국이 / 유성온천 옥화정 / 어떤 귀향 / 이학수 / 운허 스님 / 70년대 젊은이의 밤 유재현 / 백제 무왕 / 대기 주례 / 어린 함석헌의 스승 / 조학래 / 유종호 / 개집안 / 도동의 밤 / 신림동 산동네 이발사 / 김윤식 / 최인훈 / 이장규 / 정점이 할머니 / 임경명 / 섬진강 처녀 / 두 소리꾼 / 윤수경 / 이혜경 / 오  글 / 여  운 / 알몸 농성 / 탁명환 / 노여사 / 이승만 혹은 리승만 / 장봉화 / 초정약수 가족회 / 늙은 위안부 / 배꽃큰계집배움터 / 보리밭 / 에스컬레이터 / 어떤 아이 / 까  치 / '새얼' 모임 / 김진규 소장 / 강연균 / 거지 없는 날 / 허만 칸 / 김봉우

찾아보기

 

가짜 김종필

 

1961년 북한의 남로당 잔존인물 황태성이

임진강 건너

남한에 왔다 쉿

 

그는 경북 선산

김종필의 장모를 통해서

중앙정보부 김종필을 만나자 했다

김종필은 직접 만나기보다

그를 닮은

치안국 정보과 경감 박문병을 보냈다

서울 반도호텔 735호실

30대 미남이었던 김종필

그러나 그 무렵

아직 텔레비전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신문이나 잡지 동판사진이

흐릿하였으므로

 

가짜 김종필이 만나든지

아니

진짜 김종필이 만나든지

끝내 황태성은 박정희 김성곤과의 옛 동지임에도

교수형으로

그 시체 내려졌다

 

김성곤

 

눈 서글서글

코 아래 수염 서글서글

마음속 횅뎅그렁하다

아이들이 돈 10원 달라 하면 듬뿍 2백원 준다

해방 직후

대구의 어느해 10월

박상희 황태성과 함께

그 가을의 항쟁을 주도한 재정부장이었다

 

그 뒤 사변 지나

두 마리 용으로 이름 지어

쌍용시멘트

쌍용증권

그리고 동양통신

 

그 두꺼운 손바닥

그 깊숙한 주머니 항상 두둑했다

 

궂은 날 질퍽질퍽한 인심

70년대 초

정계에 발 들여놓아

여당 공화당을 손아귀에 쥐었는데

 

항명파동으로

그 수염 몽땅 뽑혔다 온몸 짓이겨졌다

남산 지하실에서

'이 새끼 이 빨갱이새끼 제 버릇 못 버리고!'

그곳에서 나와

정치도

사업도

그리고 삶도 허허벌판

떠도는 구름이 차라리 옳았다

그렇게 구름이 되어 불현듯 떠나갔다

 

차범석

 

옛날 이야기일까봐

접싯불

참기름불 맑은 불빛 밑

아리따운 아가씨

정성껏 수놓은 수(繡) 같은 사람

그 수틀 위

작약꽃이거나

한쌍 두루미 가운데

암두루미 같은 사람

 

그가 한국 현대연극의 무대 위에서나 뒤에서나

언제나 팔짱 끼고

꼼짝 않고 서 있는 사람

부지런하기는

묵은 빚 일부 받아낸 듯한 이른 아침 잰거름의 사람

 

어디 한 극단 '산울림'만인가

여기도

저기도

그가 가면 알뜰살뜰한 연극 3막 5장이

막 올려

관객들은 그 집안 식구였다

 

말 한마디도 바지 아래

곱게 맨 옥색 대님같이 얌전하기만 하다

 

목포 유달산 제1봉 바위 비탈 아래

나이 먹어도 그대로인

이렇듯 곱단이 꽃의 남정네 태어날 줄이야

차범석 그 사람

 

전형필

 

증조부는 종로 운종가 일대

배오개 일대

상권을 손아귀에 넣어

10만석 거부

 

일제시대 아버지 전영기는 중추원 의관

그런 거부와

그런 유산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 뒤

 

온갖 영달의 기회 가만히 놔두고

은근히

오세창과 교유하는 동안

일제가 가져가는 문화재들을 사들였다

고려청자 운학문 상감청자

그 향기로운 모습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석조 미륵보살 입상

아니

단원 혜원

아니 추사

그런 서화골동과 석물들이 모여

겨레의 문화를 너와 나 함께 지키다가 세상 떠나니

 

채명신

 

구 사이공 호치민시 도심에는

옛날 왕실 공주의 저택이었던 양관이 있다

그곳이 주월한국군사령부

첫 사령관 채명신은

그곳에만 있지 않았다

그 뒤의 이세호는 배가 나왔으나

그는 배가 나오지 않았다

눈썹이 처마처럼 튀어나와

건계의 햇빛이나 우계의 비를 막았다

 

월남전쟁은 무엇인가

월남전쟁으로 이룬 경기는 무엇인가

어쩔 수 없이

한국의 70년대의 자화상이었다

모독을 몰라야 하는

 

오창영

 

창경궁 동물원 이래

몇십년 동안

동물원의 새 한마리 남아 있지 않을 때

그 전쟁 이후

한푼

두푼 모급해서

 

호랑이와도 친구였고

돌고래와도

원숭이와도 친구였다

 

과묵하구나

다른 길 모르는 표정

머리숱 숯빛으로 짙구나

 

시시껄렁한 사람보다

짐승과 더 많이 산 사람

 

사람은 동물원 따위를 만들었다

그러기 전에 사람은

사람의 감옥을 만들었다

 

이명박

 

23세 이사

35세 사장

46세 회장

 

70년대 개발연대기에는

한 샐러리맨이 이렇게 솟아올랐다

 

그 이름 이명박은

언제나 정주영의 이름 옆에 있었다

 

부디 그의 신화가 더 이어질수록

개발이 악이 아니라 선이기를

개발이 정치가 아니기를

 

어디서 잠깐 스칠 때

그 작은 눈

그 볼품없는 얼굴만이 보인다

정작 그 지략과 추진력의 힘은 몸안에 있다

 

이종찬

 

일제 36년 끝장났을 때

중국 오지 중경에서

멀리 동으로 동으로

상해까지 오는 데도 아득하였다

 

상해에서는

바다 건너에 조국이 있다

 

작은할아버지 이시영옹 옆에

어린아이 종찬이 서서

사진 찍었다

 

그 어린이는 돌아와 가난했다

경기중학 다닌 뒤

그래서 사관학교로 갔다

흡사 서간도 신흥군관학교인 듯이

 

그 젊은이가 정보장교가 되어

여당에 몸담기까지

그 뒤

야당에 몸담기까지

그 정치 1번지 종로 일대의 한 시절

 

정치가 가야금 산조라면 얼마나 좋으리

달 밝은 밤

가야금 산조 마친 뒤의

그 고요라면 얼마나 좋으리

 

이승만 혹은 리승만

 

차라리 국부(國父)라는 것 없는 것도 심심치 않음이로다

리승만 혹은 승만 리

그의 구어체와 문어체의 무차별

지난날 상해 임시정부나

하와이 독립운동에서의

주머닛돈과 쌈짓돈의 무차별

오직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면 살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죽을 것이로다

 

그의 뜻대로

현대 한국정치는

그의 실패에 의해서 실패가 모방되고 있다

 

그의 생애는 갈등과 불화 그의 씰룩씰룩 안면 경련

그리고 전쟁이었다

그 전쟁 지나서 그는

지난날의 하와이로 떠났다

 

미국제 관에 누워 안면 경련 멈춘 평화로 굳어버린 채

고국에 돌아왔다

동아시아 군웅들이여

모름지기 그를 본받아 성취하고 실패하라

내일은 내일에 맡겨라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