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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6. 12:09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41 萬人譜 17 사람과 사람들

 

高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5

 

811.6

고67만 17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벽계정심 / 원혼 / 그 노파 / 공대순 영감 / 변계량 / 주철규 소령 / 논 / 파트너 / 임재열 / 머슴 장도셉이 / 김금덕 / 서울 3일 / 미리 온 사람들 / 신윤복 / 빨래 / 새 모닝코트 / 하달봉 / 두 사람의 죽음 / 고려 현종 / 꽃 / 미스 최 / 뒷동산 / 드골 장군 / 새벽 미아리고개 / 박응서 / 여관 풍경 / 아방궁 / 김황원 / 이인수 / 양소진 / 그들의 경어 / 눈싸움 7시간 / 김명순 / 국도극장 / 부자 이종두 / 적막 / 술 / 작은 의병들 / 어느 후손 / 오랜만의 방 / 외국 군대 / 현신규 / 서해 갯벌 / 어떤 김소희 / 난초 그림 / 후백제 견훤 / 달빛 / 두 소녀 / 어느날 / 또 어느날 / 오숙례 / 박낭자 / 신노인 / 구창서 씨 / 간첩신고 / 김학수 / 빈대떡집 / 명동의 밤 / 양지다방 철학자 / 유관옥 여사 / 근체시 한 보따리 / 머저리 / 창녀 금이 / 마이산 이갑룡 옹 / 선홍이 / 남산 이승만 / 이종락 / 귀향 / 파고다공원 / 이정의 무덤 / 육군 소위 이갑수 / 경기도 부천 아이들 / 김제남 / 미인 황정란 / 홍제동 화장터 / 열쇠장수 / 무덤 / 중학 동기 / 영도다리 / 무당 남공작(男孔雀) / 고아 이요한 / 지네춤 / 김진세 / 유정길 / 판잣집 보금자리들 / 소년 / 수원 남문거리 / 칠석 / 심혜숙 / 청계천 / 유시택 씨 / 여관 / 동우수첩(東尤手帖) / 기섭이 / 남산 공원 / 오산 상이군인 신영도 / 북만주 취원장 / 조국 / 무당 필례 / 그해 종이 태극기 / 영친왕 / 달팽이집 / 흑석동 / 정재호 / 고려 문종 / 넝마주이 짝꿍 / 서울역 지게꾼 / 김칠성 / DDT / 다섯 아버지 / 기섭 동무 / 장옥산 / 1920년 경신참변 / 소사역 / 삼피(三避) / 차일만 할아버지 / J. 하우스만 / 홍진수 / 신민회 / 어떤 풍경 / 김오남의 소설 / 그 아이 / 김재선 / 석주 이상룡 / 화전민 신두방 / 해당화 / 치순이 / 오대산 상원사종 / 바위 마을 / 구미 허씨들 / 허형식 / 권숙희

 

변계량

 

네살에 시를 달달 외웠다

여섯살에 시를 지었다

열세살에 진사시 급제

열네살에 생원시 급제하였다

 

이색의 제자 변계량

고려가 가고 조선이 왔다

 

태조

정종

태종

세종 4대를 잘 먹고 잘살았다

살기를 탐내고

죽기를 피하는 사람이라고 누가 말했다

 

시조 몇수도 있다

밋밋하고

그저 바르기만 했다

바른 바가 무엇인고 마른 꽃 아니던고

 

스승도 독살되고 동료도 척살되는데

그는 아무 탈 없이

대대로 살았다 살다가 스르르 눈감았다

 

방바닥 파리의 다리 넷인가 여섯인가 열인가


신윤복


아버지 신한평도 환쟁이

아들 신윤복도 환쟁이

아버지와 아들 술 취하면

어깨춤이 닮았다


건달을 그렸다

기생을 그렸다

다음날

옷 벗은 아낙과

그 아낙 몰래 보는 사내를 그렸다


신 오른 무당도 그렸다

어스름 달밤에

숨겨둔 임 만나러 가는 참판댁 마님도 그렸다


인간은 정숙하지 않아

인간은 경건하지 않아

속임수가 있어

인간은 야해 야하고말고

조선 주자학 임종 여기

조선 사대부의 허위 여기

인간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고

뭇 짐승의 한 핏줄 여기


박응서


영의정 박순의 서자 박응서

읽는 시마다

줄줄 외웠다

화술 뛰어나고 변론 힘찼다

시가 막힘없이 쏟아졌다

소나무 보면

소나무 시가 바로 나왔다

복숭아나무 보면

복숭아나무 시가 바로 나왔다


같은 산세

대감네 서자

참판네 서자

첩의 자식들 갈수록 세상 등져

술 질펀하고

시 흥건했다


그러다가 세상을 바꾸자고 뜻을 세웠다

 

그런 뜻이

우선 문경새재 은 장사꾼 죽이고

은 7백냥을 강탈했다

그 자리서 잡혔다

 

마침 조경의 모사 이이첨의 술수에 넘어가

어린 영창군을 옹립할 자금 때문에

은 강도 짓을 했다고 허위자백

 

이로 인해

어린 영창 죽고

여러 권신들 죽어갔다

 

이 참변 속에서

박응서 살아났으니

그뒤의 인조반정 주동자 왈

함께 뜻한 사람들만 죽고

어찌 네놈만 살았느냐

 

죽어야 했다

 

이인수

 

인문은 야만의 도구가 된다

인문은 재물이다

식민지시대

영국 옥스퍼드대 영문학 전공의 수재 이인수

해방 후

그가 돌아왔다

고려대 영문학부의 자랑이었다

 

목포의 한 영어교사가

그를 보러

이틀 동안 열차를 타고 서울에 왔다

한국 영문학의 자랑이었다

면도자국이 서늘하였다

입에는 과묵을 매달아두었다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다

학교와 집 사이를 오고갔다

전쟁이 났다

피난을 하지 못했다

인공 3개월간

월북했던 김동석이 내려왔다

그의 강권으로

대 미군 영어방송을 했다

변형태도 이인수의 영어를 따르지 못했다

 

수복 후

그가 검거되었다

고려대 김성수도

이승만에게 청원했다

여러 사람이

구명활동을 했다

 

신성모가 눈치 빠르게 처형해버렸다

 

영국 시절

이인수는 화려한 연구자였고

신성모는 거친 파도 선장이었다

늘 이인수가 원수였다 그때부터

키 작은 신성모가

키 큰 이인수를 없애버렸다 기어코

 

양소진

 

열두살

밤길 무서운 줄 모르고 걸어가며

혼자 춤을 추었다

혼자 바람소리 노래하였다

도랑에 빠졌다

 

도깨비도 만나 길을 잃어버렸다

 

저 해주 관석정 폭포 밑

소리

소리

새벽 빨래꾼들 올라올 무렵에나

소리 멈추고 내려갔다

 

장구없으면

몸이 장구였다

싸리나무 가지 장구채 되어

제 몸 장구치며 노래 달았다

 

일찍이 서방 잃고

아이 기르다

못 견뎌

못 견뎌

 

나이 마흔에 장구솜씨 노래솜씨 춤솜씨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그린 눈썹 지우면

눈썹 없는

심심한 눈

그 눈으로

인천 앞바다 오는 배 바라보았다

 

못 견뎌

못 견뎌

 

나이 예순에

벌렁벌렁

저녁 가슴 춤이 드는

밀물이었다

 

현신규

 

30년대 조선 총독주 임업시험장 기수

40년대 미 군정청 임업시험장장

50년대 휴전 뒤 학술원 첫 회원

60년대 서울대 농과대학 교수

 

일본 유학에도

미군정에서도

그 이후에도

늘 농담 한마디 없는 모범이었다

 

리기다 소나무 잡종송 종자를 퍼뜨렸다

양황철을 길러냈다

무엇보다 박정희 근대의 나무

희뿜한 잎새

은수원사시나무가 아니라

현신규

현사시나무라 했다

 

70년대 현사시나무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웃자랐다

빨리 뿌리내리고

빨리빨리 자랐다

바람 속에 떼지어 흔들렸다

 

유신시대의 영광 현사시나무였다

 

바로 뒷시대에는 눈병 부르는 나무 베어내는 나무였다

 

김학수

 

그믐밤

지리산 시루봉이 엉엉 울었다 한다

다음다음날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전과가 발표되었다

아이 김학수

학생복을 벗겨 태웠다

 

인월 고모네집에 다니러 왔다가 공비로 죽어야 했다

순창국민학교 4학년

작문이 자주 뽑혔다 습자시간을 좋아했다

눈이 컸다 잘 울었다

짜아슥 사내자슥이 울기는…… 한두번 아버지가 나무랐다

 

아버지는 공비 가족으로 다섯번 조사 받았다

끝내 아버지는 미쳐버렸다 

 

이종락

 

나라를 반드시 되찾겠다고 나선 망명이다

 

어느날 새벽 이종락은

고국의 가족이

하얀 옷들을 입고 손짓하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뒤 병을 앓기 시작했다

 

독일인 병원

일본인 병원을 전전했다

일본인 병원에서 죽기 싫다고

불란서 조계

병원으로 옮겼다

 

어느날

안창호가 병원을 찾았다

기독교를 믿으라 했다

병든 이종락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을 수 없으니

병이 나은 뒤 건전한 마음으로 믿겠다고 대답했다

 

어느날

동지 정화암에게 조용히 말했다

화암 이제 죽나보오 내 몫까지 싸워주시오

그는 동지의 손을 잡은 채

눈감았다

 

아직 이렇다 할 독립운동도 하지 않은 채

 

힘준 팔뚝에 송곳을 찔러도 찔러지지 않는 사람

바이올린에 능하고 스포츠에 능하고

술자리 노래도 유창한 사람

그 이종락이 시대의 모퉁이에 잠시 왔다 갔다

 

김제남

 

선조의 젊은 계비 인목대비의 친정아버지

김제남

 

선조 승하

광해군 등극

 

서궁으로 나앉은 인목대비 뒤에

친정아버지라도 있어야 했다

 

어린 외손자 영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누명 씌워

사약을 받아야 했다

 

사약 한사발 비우고

앉은 몸이 무너졌다

 

묻혔다

 

묻힌 뒤 3년

 

묻힌 몸 파헤쳐서

백골이 토막토막 잘리는

부관참시형을 또 받아야 했다

 

뒷날 광해군 밀어냈다

인조 등극 직후

옛 관직이 복귀되어야 했다

복귀되어 뭘 해

불운의 극한 다른 것이 되지 못한다

 

김진세

 

동지들 체포되었다

중국 천진으로 스며들었다

중국인 빈민굴

 

독립운동가 김규식

그의 아내 김순애

그의 아들 김진세

 

아버지도

어머니도

1928년생 아들한테 조선말을 가르치지 않았다

 

행여

중국아이들과 놀다

조선말이 튀어나오면 끝장

일본군 특무는

중국인 빈민굴에도 손을 뻗쳤다

 

김진세가 조국의 말을 배운 것은 서른살 뒤

 

상해에서

중경에서

임시정부 동포 사이에서

아주 서투른 조선말을 배웠다

 

중국말이 훨씬 좋았다

 

유정길

 

연탄은

대한민국 산천을 살렸다

대한민국 나무와 풀을 살렸다

 

연탄은

자주 대한민국 서민을 죽였다

 

유정길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김치멀국을 실컷 먹었다

병원으로 실려갔다가 돌아왔다

 

정릉 청수장 아래 방 두칸 자택

 

아내는 일하러 가고

딸은 고등학교

아들은 중학교 갓다

 

종일 멍청한 눈 뜨고

정릉천 물소리를 들었다

비 온 뒤

물소리 맹렬했다

콧구멍 터럭이 길게 뻗어나왔다

손톱도 길고 길었다

왕년의 어깨 유정길

연탄가스 중독 반신불수로 물소리를 들었다

 

길 건너 『순애보』의 작자 뚱보 박계주 씨도

연탄가스 중독으로 물소리를 들었다

 

심혜숙

 

전주 지방법원

법원장 딸 심혜숙과

버스 45대

전북 제일여객주식회사

사장 아들 오진구

 

오늘 맞선을 본다

법원장 부인

사장 부인 함께 있다가

두 사람 두고 자리를 떴다

 

심혜숙 머리를 들지 않는다

오진구 다른 데 보고 있다

반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 괜히 화가 났다

반 시간이 넘었다

 

심혜숙은 오줌을 참고 있었고

오진구는 피우고 싶은 담배를 참고 있었다

 

다방 가고파

현인의 「베사메무쵸」가 번들번들 들리고 잇었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일어섰다

 

그뒤로

심혜숙은 아버지 임기마다 맞선을 보았다

맞선 스물세번

스물세번째 사내

고시생과

결혼했다

처가살이 고시생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녀에게 추억이란 맞선 본 수많은 사내들

 

정재호

 

스카치 온더락스

얼음 세 조각 서걱이거라

괘종시계

열시를 쳤다

 

한모금 입안에 번졌다

괘종시계

똑딱

똑딱

바쁘다 온몸 안개 자욱하다

 

오늘은 마닐라 목재 두 척 들어왔다

내일은

일본 코오베에서

석탄6천톤 들어온다

 

전투가 치열할수록

후방에서

재벌은

더 치열한 재벌이 되어간다

 

정재벌 정재호 사장께서는

오늘도

취침 전 한잔을 잊지 않았다

 

김칠성

 

담벼락 밑

헌 구두 삐까번쩍 닦아서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구두들

벌받는 국민학교 아이들 같다

그 가운데

하얀 헌 운동화 한 켤레도

꼼짝없이 벌 받고 있다

여자 슬리퍼 한 켤레도

 

아예

남의 집 담벼락에 못을 박아

우산도 걸어두고

가죽가방도 걸어놓았다

데릴사위 같다

데릴사위 같다

 

모두 착하디착하다

 

해지면

구두를 지고 갈

큼지막한 륙색도 배고픈 채 걸려 있다

쪼그라진 파나마 모자 쓴 구두장수 김칠성

두꺼운 입술

째진 눈

날선 광대뼈

어디에도 서러움 따위 모른다

 

세살배기 딸이

천연두 앓으며

죽어가는데도

담배 한대 피우고 잊어버렸다

 

없던 것이

잠시 있는 것인가

 

홍진수

 

별명 자벌레

풀매는 날

하루 내내 말 한마디 없다

누구는

혼자 일할 때도

구시렁

구시렁

씻나락 까먹는데

자벌레 홍진수는 말 한마디 소용없다

해오라기 저쪽에서 왔다가 다시 간다

 

1951년 2월

제2국민병 징발 직전

마을 청년들

아주까리 기름 먹고 설사했다

몸무게를 줄여야 했다

45킬로그램 이하면 무종 불합격

 

그러다가 뒤로 가며

40킬로그램이건 30킬로그램이건 다 을종 합격으로 입대시켰다

자벌레는 오른손 검지 한도막

자귀로 찍어냈다

잘린 검지도막 뒷산에 묻었다

 

열이틀 뒤 검지 아물어들었다

신체검사 병종 불합격

 

안심하고 두부장수로 나섰다

두부판 어깨에 메고

식전 걸음

두부 사려

두부 사려

저녁 걸음

두부 사려

두부 사려

 

아버지 어머니 세상 떠난 뒤

어린 동생 넷의 입에 밥을 넣어주었다

팔고 남은 두부도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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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