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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7 萬人譜 18 사람과 사람들


高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6


811.6

고67만  18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이승만 / 이윤 상사 / 개성 노인 / 아기 채영진 / 김기희 / 옥례 남편 / 최규봉 / 이삼혁 / 유기연 / 강동정치학원 / 이태랑 중령 / 이원섭 대위 / 어느 장교 / 홍덕영 / 거문도 장도준 영감 / 용녀 / 신광수 / 어린놈 혼자 / 대문 / 육군 소위 / 미친 노인 / 연보수 노인 / 완주 봉동면 총소리 / 선우휘 / 전우익 / 사미승 동명 / 1950년대 한반도의 하늘 / 1953년 강릉 황소 / 김명국 / 동대문시장 김삼룡이 / 동대문시장 육도수 / 김종호 / 박기종 / 심분례 / 김달삼 / 김재복 / 세자 불공 / 어린 문석이 / 무남촌 제사 / 지나가는 여인 / 갈보 히라노 / 박영만 / 죽통미녀 / 심주식 / 석낙구 / 기만이 영감 / 중대장 오판남 소위 / 김필순 / 갈채다방 옆 뼉다구집 / 가두방송원 최독견 / 김현수 대령 / 금강 / 지귀 / 손달수 / 소녀 봉순이 / 역관 김을현 / 1952년의 풍경 / 고와마루 / 따발총알 / 명당 / 풍년초 / 참호 / 서울역전 / 1950년 10월 김성구 / 박충남 / 꿈 / 강신재 / 열한살 국민학생 / 이만석 / 이진상 / 민재우 / 김인태 목사 / 1950년 음력 4월 8일 밤 / 선우기성 / 이승희 / 이종형 / 귀머거리 할멈 / 얼음부자 노필순이 / 백만동이 / 어린 경태 / 수도약국 / 연탄재 / 임걸출 / 대장장이 조병하 / 상문이 / 이일선 스님 / 마지막 수업 / 아기 순열이 / 근초고왕 / 이접야 / 김종오 장군 / 박진경 중령 / 송호성 장군 부인 / 임행술 / 허인애 / 서울대 수학과 교수 최윤식 / 하조대 / 김매자 / 조소앙 / 수색 복자 / 노형중 할아버지 / 제주도 계용묵 / 기선이 어머니 / 이따 만나세 / 열두살 / 김춘식 중위 / 펀치볼 혈전 전야 / 척(尺) / 10월 22일 밤 / 안병범 대령 / 비원 윤황후 / 한 노인의 독백 / 카프카를 때려치운 한 청년의 일기장 / 이황 이완 형제 / 심득구 / 영섭이 엄마 / 이완 / 김삼봉 / 신노인 / 김정호 / 임종명 중사 / 균여 / 남신동이 마누라 / 의암호 중도 / 나의 가계 / 윤석이 아저씨 아주머니 / 권철 / 허난설헌의 참(讖) / 차복이 / 조향 / 오영수 / 실어(失語) / 통역 고예환 / 쥐 / 약혼녀 / 김동삼 / 주세죽 / 정인욱 / 바 나이아가라 / 인천 청년 / 혜화동 로터리 / 유언 / 왕십리 / 이도빈 / 김천다리 / 원천호수 / 지경 주막 / 명단이


이승만


나라의 불행을 잘 썼다

나라의 모순을 잘 쓰고 남겼다


이겼다


벗어나지 못한 봉건

망명지 하와이의 임종 침대

거기서 평생의 의식을 놓았다

남은 헛소리

어린 시절

고향 황해도 두메 사투리였다

날래 오라우 날래 오라우


두번째 양자가 서 있었다


이윤 상사


1950년 6월 28일 낮

중앙청과

서울 시청에 인공기가 올라갔다

잠시 비가 멈췄다


싱거운 전투가 있었다

국군 이용문 대령의 마지막 명령


각자 해산하라


그때 일등상사 이윤이 남았다

제 가슴을 권총으로 쐈다

쓰러지며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부모도 없다 아내도 묻어줄 전우도 하나 없었다


개성 노인


감자꽃이 피었다

어제까지

개성은 대한민국

오늘 아침까지도

개성은 대한민국


비 온 뒤

만월대 풀섶 나비떼 온데간데없다

1950년 6월 26일 낮

개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계철규 옹은 남아 있었다

큰아들 창희는

해주 외숙 만나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작은 아들 창섭은

막 대한민국 백선엽 사단 신병으로 후퇴했다


어쩔거나

달 뜨는 밤 자랑스럽던 7천평 삼포도 감자밭도 아무 소용 없다


거문도 장도준 영감


아홉살에

아버지 잃었다 아버지의 무덤 없다


아버지가 타던 배 탔다 엉엉 울었다


그 아홉살에 시작한 고기잡이

예순아홉살에도 놓지 않는다


이름 석자 쓸 줄 모르나

물 속 멸칫길 갈칫길

조깃길 홍엇길 훤하디훤하다

물 위 마파람 동부새

정월 하늬바람 훤하다

고래파도 충무공파도 큰애기파도 순실이파도 훤하다


한평생 강아지파도 훤하디훤하다


거문도에도 인민군 건너온다 한다

장영감이 그물 걷다가 중얼거린다

뭣하러 와 왔다가 바로 돌아갈 것을


사미승 등명


외금강 신계사

사미승 등명(燈明)


나뭇짐 벌떡 일어서면

저 비로봉 영랑봉 들도 눈을 껌벅여온다


어제의 고아

내일의 혁명가 홍범도의 한때 인연

신계사 앞

신계천 물소리 젖었다


저 청산리

저 시베리아

저 대륙 아득한 황무지 타슈켄트의 아비였다

그 아비의 전생이었다


1950년대 한반도의 하늘


석달 가뭄 하늘이 미웠던 적이 있습니다

석달 폭격 하늘이 없어졌습니다

석달 공포 하늘을 바라볼 겨를 없었습니다

석달 학살 하늘밖에 남은 것 없었습니다


하느님이란

하늘에 바치는 경칭일 뿐입니다


불발탄 캐내다

다리 하나 잃은

열네살 안병기 녀석한테는

저녁 낙조의 하늘이 살아서 돌아오는 아버지였습니다


어머니의 무덤도 모르는

열다섯살 필례에게는

별 몇개 나와 있는

구름 낀 하늘이 어머니의 무덤입니다


지나가는 여인


저게 누구?

저게 누구 마누라?

세모시적삼 속 살결

백옥

낭자머리 비녀

청옥


저게 누구?

헌병대장 사택으로 들어간다

허리 곧다


한달 전 빨갱이 마누라로 체포되었을 때

죽음 대신

대장의 세번째 네번째가 되었다


곧 양품점도 차린다 한다


기만이 영감


낮에는 뻐꾸기

밤에는 벌써 귀뚜라미


마누라가 영감의 입을 가져갔나

마누라 묻은 뒤로

기만이 영감

통 말문이 막혔다


소달구지에

물외 참외 개구리참외 잔뜩 싣고

시오리장에 다녀온다


밤중 빈 달구지

다 와서야


기만이 영감 입 열려

소도로 한 말 그것뿐

세상에는 말이 자꾸 늘어나는데

말싸움 늘어나는데

기만이 영감의 말은 마누라 무덤에 영영 묻혔나


김현수 대령


1950년 6월 28일 새벽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장 김현수 대령

전쟁 발발 4일째

이제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가 아니었다 다 도망쳤다

그는 혼자 남았다

명동 정훈국에서

정동방송국으로 갔다


인민군이 방송국을 접수한 뒤였다

정지! 수하?

그가 보도과장 김현수 대령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마자

따발총 몇발이 그의 몸을 뚫었다

쓰러진 채

권총을 뽑아들었다

세발 총탄은 허공을 뚫었다

단 한 사람 남아 있던 대한민국 장교 비겁하지 않았다

전남 보성 강골의 아버지 핏줄이었다

두달 뒤 아버지도 학살당했다


소녀 봉순이


휴전 반년이다

못 견디는 북소리 등등 들려온다

소녀 봉순이

빨래 걷어놓고 보따리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북소리 둥둥 들려온다

어디든지 갈 테야

어디든지 갈 테야


칫솔도 비누도 없이

모르는 길을 나섰다

이렇게 북소리의 다음이 시작된다


1952년의 풍경


오늘 최전방

철원이 없어지고

신철원이 생겨난다


중부전선

중공군 전사 70여명

인민군 전사 40여명

아군 전사 25명

미군 전사 3명

어제보다 전사자가 더 늘었다


오늘 후방의 8월

개의 하루가 지나간다

늘어지게 자고 나

앞다리를 뻗는다 썩는 냄새 부쩍 늘었다


후방이야말로 적이다


명당


서부전선 감악산 북쪽 기슭

포탄웅덩이

황토웅덩이

거기 민간인 시체 걸쳐 있다

명당이었다


어디서 태어난 누구인지

별이 빛나는 밤

연애는 해보았는지

감기는 몇번이나 앓았는지

결혼은 했는지


벌써 썩어 문드러진 부란(腐爛)의 사내 송장이었다

포탄웅덩이

천하제일 명당이었다 아서라 말어라


1950년 10월 김성구


오랜 정

오래 이어가는 정


천년 백성에게 남아 있는 그것


그것이 강도 같은 이데올로기로 다 없어져

우익 아버지

좌익 아저씨 다 죽고

나는 핏발 섰다

잿더미 위에서 내 이름은 김성구


달겨드는 짐승 같은 세월만이 나를 먹으리라


김인태 목사


1920년대 북만주 밀산

밀산 예배당

김인태 목사

머릿기름 발라

바람에도 머리 단정했다

심방길

중절모를 써 단정했다


그는 독립운동하는 사람들 만나면

민족 찾지 말고

하느님 찾으라

오로지 하느님만 찾으라

천당 가야 한다


아편장수한테도

하느님을 찾으라

그래야 아편도 잘 팔린다


북로군정서 이강훈을 만난다

그가 김목사에게 먼저 말했다

제발 하느님 찾지 말고

민족을 찾으시라


상문이


태풍이 왔다

2년째 누워 있던 환자 상문이

벌떡 일어났다

벌떡 일어나 소리질렀다

태풍으로 문짝 떨어져나갔다

상문이 신났다


태풍이 갔다

상문이 다시 누워버렸다


아주 누워버렸다 흰 천이 덮였다


아기 순열이


문산 남쪽

두 시간의 중포탄 포격이 뚝 멈췄다

1950년 6월 26일

적막 속

숨은 사람들이 나왔다

조심스레 입이 열려 말이 나왔다

너 살아 있었구나

아저씨도 무사하셨군요

전선은

벌써 남쪽 행주산성으로 내려가 있다


초가삼간

문짝 떨어져나간 방

돌 지난 아기 순열이 혼자

두 대째

지나가는 탱크를 보고 있다


멈춘 울음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방구석 저울대를 꼭 쥐고 있었다

엄마는 어디 갔나


김매자


화북마을 숨은 샘물

밀물에 숨은 샘물

어김없이

썰물에 나타납니다

밀물 때

밀물에 덮여 잠들어 있다가

썰물 때 나타나

비바리 물허벅에 가득 채워줍니다


스무살 김매자

물허벅 지고 돌담길 돌아옵니다

이마에 젖은 머리카락

센바람에도 일어날 줄 모릅니다

입속에는 무슨 웃음이 담겨 있는지

좀 들썩일 듯합니다

한라산이 뚜렷한 목소리로 다가옵니다

밀물 수평선 넘어 해조음도

우르르 달려옵니다

매자 혼잣말

인석씨는 잘 있는지 ……


비원 윤황후


비원 낙선재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아내 황후 윤씨

늙었다

늙어 단아했다 낭자머리 비녀에 무딘 존엄이 서렸다


세 상궁

오라버니 윤홍섭 옹

그밖의 자질구레 왕실 일가붙이 함께였다


마안 왕조의 뜰 바깥세상 없이 고요했다

닫힌 방

염주 구을리다 말다

서방정토 향해서 꽃 지듯 숨쉬고 있었다


그저 지나갈 까닭이 없다 이런 곳에도 땀이 밴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황후 윤씨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완


어디에도 그 쨍한 눈초리 닿았다

잠 속에서

잠들지 않았다

자객

칼기운이 오싹 다가오면

영락없이

칼집에서 칼이 벌써 나와 있었다


바스락


한밤중 3경

가랑잎새 구르는 소리이면

영락없이

칼집에 칼이 들어가 있다

어디에 고요만한 각성이 있는가


아침 저녁

부하나 구종배에게 시키지 않고

몸소 쑨 여물을 말 앞에 밀어준다


내일은 강 건너 오랑캐를 치러 간다

별들이 도우리라



폭격 뒤

삐쩍 마른 쥐가 왔다

반가웠다


너도

나도 어마나 배고프냐


다리 없는 기철이가 목침을 던져

녀석을 잡아 구워먹었다

죽을 때 내지른

녀석의 비명을 구워먹었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김천다리


휴전 뒤

폭파된 다리 다시 걸렸다

새 다리는 웅크라(UNKRA) 지원 현수교

강 건너

친구 만나러

목발 짚고 건넜다


친구는 세상 떠나고 없다

그 마을 동구밖

박넝쿨 올린 주막 주모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움이 푹 꺼져버렸다


아직 풀섶에 불발탄이 잠자코 숨어 있다


원천호수


며칠째 도박 단속 풀리지 않았다

망국의 도박 발본색원한다는 것


두 꾼

여봉철

하진섭


원천호수 배 타고

호수 복판에 가 화톳장 폈다


먼 데서 바라보면 잉어잡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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