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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7 화엄사

 

글 / 정병삼, 김봉렬, 소재구●사진 / 손재식

2005,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8

 

082

빛12ㄷ  241

 

빛깔있는 책들 241

 

정병삼(연혁)-------------------------------------------------------------------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한국불교사 전공). 1983년부터 간송미술관연구원을 거쳐 1991년부터 숙명여자대학교 문과대학 한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의상 화엄사상 연구』, 『그림으로 보는 불교이야기』, 『일연과 삼국유사』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통일신라 관음신앙」, 「의상 화엄사상의 사회적 의의」, 「통일신라 불교 철학」, 「진경시대 불교의 진흥과 불교문화의 발전」, 「추사의 불교학」 등이 있다.

 

김봉렬(건축)-------------------------------------------------------------------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문화 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 김수근 문화재단 전문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건축의 재발견(전3권)『한국의 건축 - 전통 건축편』, 『법주사』, 『한국 건축과 만남』(전3권) 등이 있고 한국 건축에 관한 30여 편의 연구 논문과 다수의 현대 건축 비평들이 있다.

 

소재구(유물)-------------------------------------------------------------------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에 근무하고 있으며 「원각사지 10층석탑의 연구」, 「동문선의 불탑자료」, 「우리나라의 불탑」, 「고달원지 승탑편년의 재고」 등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손재식(사진)-------------------------------------------------------------------

신구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불교 문화와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업을 주로 해오고 있다. 그동안 십여 권의 빛깔있는 책들에 이와 관련된 사진을 실었고 웅진출판사의 『한국의 자연탐험』 작업에 참여하였다. 현재 『사람과 산』의 객원 편집위원으로 있다.

 

|차례|

 

천년의 화엄 성지, 화엄사

화엄사의 역사

화엄사의 건축

화엄사의 유물

화엄사 가는 길

참고 문헌

효대에 있는 석등.

남악사 전경  신라 이래 국가에서 명산 대천으로 지목받아 제사지내던 곳으로 화엄사 초입에 있다.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사경  현존하는 신라 최고의 사경으로 백지 14미터에 각행 31자로 묵서하였다.

효대  각황전 뒤 언덕에 있는 이곳 효대에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쌍벽을 이루는 4사자3층석탑과 배례석, 석등 등이 서로 마주보는 상관 관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어버이에게 효성을 드리는 모습으로 전화되어 효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도선국사 영정  신라에서 고려에 걸쳐 이름을 드날렸던 도선국사는 15살에 이곳 월유산 화엄사에서 승려가 되어 화엄을 배웠다. 도갑사 소장.

가람 구성  거대한 석탑을 경계로 단 위와 단 아래로 나누어지는 화엄사의 가람은 중심 전각인 대웅전과 각황전은 단 위에, 보제루와 승방 요사들은 단 아래에 자리잡았다.

화엄사 배치도.

동서주축선상에서 본 북면.

만월동에서 바라본 범종각 및 중심 사역.

각황전  초창 때의 장륙전은 화엄석경을 위주로 한 강당 공간이었지만, 1702년 계파선사에 의해 중건되면서 각황전은 완벽한 예불 공간으로 바뀌었다.

각황전 중수 후 평면도(1층).

1 · 2층 모두 내외 2출목을 보이고 있는 각황전의 공포.

각황전 내부  전형적인 예불용 공간으로 3불 4보살이 모셔진 내부의 전면 바닥에는 가설 마루를 깔았고, 2층 외벽에 단 창문을 통해서 은은한 햇빛이 불상들의 얼굴을 비춘다.

대웅전 전경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은 임진왜란 이후인 1630년에 중건되었다.

대웅전 측면  측벽 중앙칸에는 X자 모양으로 결구한 가세가 설치되어 독특한 외관을 이룬다.

대웅전 평면도.

원통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크기나 형태로 볼 때 각황전과 대웅전의 중간에서 두 중심 건물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와도 같다.

보제루와 1층의 기둥들  1층에는 기둥만 세우고(아래), 2층에는 우물마루를 깐 전형적인 누각 형식을 취했으나 누 아래로의 출입은 불가능하다.

보제루 1층평면도.

대웅전에서 바라본 명부전  주심포 형식의 공포와 풍판을 단 맞배지붕 집으로 단정한 인상을 준다.

나한전  나한전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이익공 형식을 취한 맞배지붕 집으로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를 연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전  영전은 원통전과 대웅전 사이에 있는 전각으로 정면 55칸, 측면 3칸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 맞배지붕 집이다.

일주문  절의 진입로 입구에 세워진 작은 산문으로 절의 경계에 담장을 쌓고, 좌우로 두 개의 기둥을 세운 다음, 대문과 같은 모양으로 널판문을 달았다.

천왕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측면이 두꺼워서 외관이 당당해 보이며, 기둥이 높아 훤칠해 보인다.

천불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불전으로 가운데 칸이 양 협간보다 2배 정도 넓다.

천불보전  내부와 대방채의 생나무 기둥  계단형 불단에는 1,000구의 작은 불상들이 봉안되어 있으며(위), 모과나무를 생긴 그대로 잘라서 사용한 것으로 Y자형으로 갈라진 나무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 건축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여실히 보여 준다(아래).

4사자3층석탑  우리나라의 사자탑 가운데에서 가장 우수하면서도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사자탑 앞에는 머리에 석등을 이고 있는 석조 공양보살좌상이 탑을 향하여 공양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4사자3층석탑의 사자상  윗기단의 각 모서리에는 연꽃을 머리 위에 인 채로 윗단의 덮개돌을 떠받치고 있는 사자상을 배치하였다. 한가운데에는 공양상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서 있어 네 사자의 호위를 받고 있는 듯하다.

동5층석탑  모양새는 비슷하나 단층 기단이며 아무런 새김 장식이 없다는 점이 2층 기단에 새김 장식이 풍부한 서5층석탑과 대조를 이룬다.

서5층석탑과 탑신부의 여러 가지 조각 장식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이 탑의 꼭대기에는 간단한 상륜 부재를 장식하였으며(위), 1층의 몸돌 4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배치하였다(아래).

원통전 앞 사자탑  화엄사에만 존재하는 탑으로 사자탑 형식의 2층 기단을 구성하였고, 탑신부는 단층으로 되어 있다.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또는 그 이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황전 앞 석등  각황전의 위용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제작된 이 석등은 여러 가지 무늬 장식과 받침부의 변화 있는 조형으로 완화시켰으며, 상륜부를 강조함으로써 석등의 규모를 한층 신장시키는 효과를 얻었다.

당간지주  지주 끝부분이 앞뒤로 둥글게 깎여 있으며, 측면 모서리의 모를 죽이는 방식이 중간부까지만 나타나고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화엄석경  통일신라시대 벽면을 장식했던 석경의 전돌 모양 조각들을 통해 경전의 내용과 함께 변상도를 새겼을 가능성도 추측해 볼 수 있다.

벽암대선사비  임진왜란 때 승장으로 활약하고 화엄사 중건 사업에 헌신하다 입적한 벽암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이 비는 거북돌과 이맛돌의 형태가 소박하고 친근한 향토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구층암 3층석탑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하고 있는 이 석탑은 탑이 무너지고 난 뒤 절집이 들어서면서 탑과 건물의 향배가 어긋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구층암 석등  8각석등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이 석등은 전체적으로 매우 단정하다.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신라 석등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대웅전 목조 삼신불좌상  화려하게 장엄된 내부에는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석가여래불을, 왼쪽에는 노사나불을 봉안하였으며, 각 불상 위에는 독립된 닫집을 설치하였다.

각황전 목조 칠존불상  3구의 불상과 4구의 보살상들은 거구의 신체를 표현하면서도 외모의 변화를 억제하고 조형적인 통일성을 유지하였다.

사천왕상  흙으로 빚어낸 소조상으로 천왕문의 오른쪽에 있다. 갑옷을 입고 걸터앉은 자세로 비파를 들고 있는 소조상이 동방지국천왕이며, 갑옷을 입고 왼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이 남방증장천왕이다.

인왕상과 동자상  인왕상은 가람의 출입문을 지켜 주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바로 뒤편에 용맹을 상징한다는 문수동자가 사자의 등에 걸터앉아 있다.

화엄사 괘불  색채가 곱고 균형 잡힌 구도와 치밀한 선의 움직임이 돋보이는 이 불화는 임진왜란 이후 불타 버린 전각들을 중창하고 난 뒤 벽암대사를 비롯한 승려와 불자들이 공을 들이고 왕실을 축원하며 제작한 것이다.

범종각 범종  보제루 옆 종루(범종각) 안에는 화엄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범종이 걸려 있는데, 이 범종에는 18줄의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내용에 의하면 조선 숙종 때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