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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26. 10:46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79 상자들

 

이경림 시집

2005, 랜덤하우스중앙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7107

 

문예중앙시선 3

 

우리 시대의 불행을 이경림보다 더 지독한 말로 얽어 묶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자'는 이경림이 새로 발명한 불행의 인식론이다. 여기서 '불행의'란 '불행에 대해서'라는 뜻이기도 하고 '인시하려고 애쓰지만 가망 없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상자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죽은 몸을 담고 함께 썩어갈 관에 그치지 않는다. 사방이 문이어서 도리어 사방이 벽인 이 저주받은 운명의 음모에 그치지 않는다. 모진 기억들을 담고 괴다 흐르다 화농하는 시간의 물컹하거나 단단한 덩어리에 그치지 않는다. 희망 없이 강제된 노역으로 천천히 닮아지면서 굳어지는, 또는 담은 것이 너무 많아서 결국 아무 것도 끄집어낼 수 없게 되어버린 이 육체의 가죽부대에 그치지 않는다.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것들보다 먼저 달려와 눈앞을 가로막는 회한이나 절망감이라고 말해도 여전히 허룩하다. 그것들이 무엇이건 모두 상자의 형식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할 것도 없다. 오래되고 오래되어서, 끝내도 끝나지 않아서, 오히려 진부한 낯빛으로만 남은 그 불행들을 어느 구석에라도 쌓아두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먼저 알아서 상자가 되어야 한다. 아래에 눌린 것이 위의 것들을 견뎌내고, 가끔 어깨를 으쓱 올려 빛이 조금, 바람이 조금, 이경림의 말 같은 지독하고도 속도 빠른 말이 조금, 지나갈 틈을 만들기 위해서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을 골라서.                                       - 황현산(문학평론가)

 

이경림

1947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1989년 『문학과 비평』 봄호에 「굴욕의 땅에서」 외 9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토씨찾기』『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가 있고 엽편소설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시평집 『울어라 내 안의 높고 낮은 파이프』 등을 펴냈다.

 

시인의 말

 

이렇게 흐물흐물한

쾨쾨한

진물 질질 흐르는

다 떨어진 상자들 뒤집어쓰고

이 캄캄한 상자 속을

언제까지 헤매야 합니까

아버지!

 

2005년 여름

이경림

 

|차례|

 

● 제1부

 

작가

아파트 뒤쪽 후미진 바위에

덤프트럭은 어디로 질주하는가

이 상자

저기, 저녁이

시금치 사러 갔다가

나, ……

고구마, 고구마들

물가에서

여우

나는 걸어간다

아침

동백 울타리

식탁 위에는 먹다 만 사과 한 개가 있다

저 쭈글쭈글한 주전자

어처구니 상자들

칠성당들

그러니까 나는

 

● 제2부

 

정육점

적멸

구덩이

이놈으 상자야 말 좀 해봐라

또……

오렌지 한 쪽

분홍빛

가방장사를 때려치운 시인

밑도…… 끝도…… 없다……

상자와 상자 사이

합장(合葬)

걸친, 엄마

나야……

청바지를 입은 소년이

다큐멘터리 개미들의 세계를 보다가 문득

머리카락 이야기

그래, 종로쯤에서

바람이 하도 모질게 부니

그곳에는

허공이 실성실성해서

 

● 제3부

 

폭우

시선

옷걸이

대칭

벌목하러 떠난 아버지를 찾아

꿈에

부엌

까마귀들

근(根)

구덩이

사실적인, 사실, 적인

나는 오늘 종일 잤다

외등

모텔 파라다이스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고양이! 고양이!

환(幻) 1

악몽 공장

석탄박물관

심심하고 심심한, 이,

한담(寒談)

아홉 개의 상자가 있는 에필로그

 

|작품 해설| 이경호(문학평론가)

'닫혀 있는 상자'의 내밀함

 

작가

- 상자들

 

아버지는 늘 책상머리에 앉아 원고를 쓰고 있었다 백열등 불빛 아래 원고지 빈 칸이 끝이 없었다 그는 일생 거기에다 자신을 쓰고 지웠다 그는 자신을 팔아 자식들의 신발을 사고 쌀을 샀다 그의 손으로 팔아치운 자신들이 얼마인지 자신도 몰랐다 이따금 그는 꿈에 자신들의 동창회에 다녀왔노라고 불길한 꿈이라고 이마를 찌푸렸다

어느 날 나는 팔려간 수천 명의 아버지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빈 원고지 칸에다 진짜 아버지를 써넣는 것을 보았다 그때 아버지의 등에는 희고 투명한 날개가 돋아 있었다

 

아파트 뒤쪽 후미진 바위에

- 상자들

 

들고양이처럼 누워서야 보였다

 

하늘은 얼마나 깊은 못인가

다만, 스러지기 위해 구름은 어떻게 소용돌이치는가

등짝만한 바위를 에워싸고 얼마나 많은 잡풀들이 살고 있는가

누군가 먹다 버린 과자 봉지에 코 박고 생쥐 같은 시간은 어디로 가는가

바람은 왜 자꾸 낮은 데로 몰아치는가

 

이렇게 천천히

빙글

돌며

우리는 어디로 흐르는가,

 

아파트 뒤쪽 후미진 바위 같은 것

얼마나 서늘한가

 

나, ……

- 상자들

 

나는 그때 가 전신주 밑에서 조개를 까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백발이 성성한 의 주름투성이 얼굴은 진흙빛이었다 몇백 년 그 일만 했는지 그 민첩한 손놀림이라니…… 나는 에게 이천 원을 주고 조개 한 움큼을 샀다 진흙빛 주름투성이 의 손이 덥석 나의 손에서 이천 원을 나꿔챘다 많이 파세요 나는 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아아 나는 그 전신주 아래서 몇 년이나 조개를 까 팔았을까?

 

나는 그때 역전에서 에게 소매치기 당했다 나의 뒤를 따라오던 는 나의 핸드백을 슬쩍 열고 지갑을 꺼냈다 나의 옆구리에 의 손이 닿았을 때 나는 모골이 송연했다 왜 남의 가방을 여는 거야 나가 소리치자 는 씩 웃으며 내 거니까 했다 나의 가방은 이미 의 손에 찢어져 속이 다 보였다 도둑이야 나가 소리쳤다 당황한 는 나의 얼굴을 면도날로 찍 긋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때 나의 서슬이 얼마나 청청했는지 누구도 를 잡을 염도 내지 못하였다 피투성이가 된 나는 찢어진 가방을 들고 가 줄행랑친 길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나는 흔적도 없었다 나

 

는 그때 무엇엔가 쫓기는 가 헐떡거리며 골목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누런 갈기를 휘날리며 희번덕거리던 는 어리둥절한 나를 스치고 쏜살같이 내달았다 나의 몸은 허공에서 나는 듯했다 가 스쳐가는 아주 잠깐 동안의 길 수많은 문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여기저기 겁에 질린 가 컹컹 짖어댔다 노오란 달이 어떤 파문 속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아침

- 상자들

 

책상을 꼭 책상이라고

이불을 꼭 이불이라고

밥을 꼭 밥이라고

남편을 꼭 남편이라고

………………불러야 하는

슬픈 아침!

 

식구라고 불러야 하는 것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끓는 찌개 속으로 연신 숟가락을 들이밀며

어떤 죄 없는 몸의 가운데 토막을 떼어 먹는다

멸치라고 불러야 하는 것들이 새우처럼 오그리고

올려다보는 앞에서

 

어떤 물컹한 뭉치들이

저녁 소 같은 것들이

 

식탁 위에는 먹다 만 사과 한 개가 있다

- 상자들

 

식탁 위에는 이빨 자국이 갈색으로 변한 먹다 만 사과 하나가 있다

사과의 살 속을 파고들었던 그 이빨은 어디 갔을까?

 

'모임이 있어 늦을 거야'

 

흰 메모지를 방석처럼 깔고 앉은 사과

(시계가 아홉시를 친다)

갈색 이빨 자국에 아홉시가 거무스름 들러붙는다

이빨은 지금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노래방이라도 갔는지 모른다

 

나는 갈색 이빨 자국이 난 식당을 보글보글 끓인다

갈색 이빨 자국이 난 노래방을 무치고

갈색 이빨 자국이 난 커피숍을 볶아놓고

저녁을 먹는다

 

갈색 이빨 자국이 난 사과가 물끄러미 나를 본다

나도 그를 본다

사과 속에 노래방이 보이고 커피숍이 보인다

한 무리의 이빨들이 사과를 먹는 것이 보인다

사과를 마시고 사과를 부르며 마침내 사과가 되는 것이 보인다

사과 속은 지금 사과를 먹은 사과들의 노래로 가득하다


저 쭈글쭈글한 주전자

- 상자들


언제부턴가 그는 뒷베란다 세탁기 그늘에 죽은 듯 있네

쭈글쭈글한 몸통을 잔뜩 기울이고 뚜껑이 열린 채

속에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그는 언제 주전자였나 싶으잖네


한때 나는 그를 보면 때없이 물이 먹고 싶었네

옆구리에 날아갈 듯 붙은 손잡이를 잡고 통통한 엉덩이를 슬쩍 기울이면

오므린 듯 벌어진 그의 입에서

오래 참은 노래처럼 물이 아니 그의 속이 쏟아졌었네


다시 보니 골뚜껑이 열린 줄도 모르고 아득히 주저앉은

그것의 속이 생각보다 아늑하네

그 안에 아무도 모르게 그가 키운 것들,

개미, 그리마, 이름 모를 털벌레…… 저런!

느닷없이 들여다보는 눈을 피해 줄행랑 중인 바퀴벌레 몇 마리!


둥근 벽 위 거무스름한 얼룩에 털투성이 발을 붙이고

떨어졌다간 오르고 떨어졌다간 다시 오르네


저 아애, 바닥에는 습기로 뭉쳐진 먼지들의 산이 있고

마른 웅덩이 같은 것도 있네

그곳에 언제 무슨 폭발 있었는지 작은 분화구 같은 것도 보이네

벌레들, 그 위를 혼곤히 오르내리며 한나절이 다 가네


이녘에선 여전히 천둥 치듯 세탁기가 돌고

소용돌이 속 한 바다가 거칠게 철썩거리네


그러니까 나는

- 상자들


그러니까 나는 그 상자들의 도시에서 한 상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다시 쬐끄만 상자들을 낳았던 거죠


날새면 눈도 코도 귀도 없는 괴상자들이 막무가네 배달되어 왔죠

깨알만한 것들이, 집채만한 것들이

물렁물렁한 것들이, 딱딱한 것들이

필시 수세기를 달려왔을 그것들이

엄마 엄마 부르며 벌컥벌컥

문을 열어젖혔죠


그때 나는 매일 부엌에서 그것들의 먹이를 만드느라 바빴죠

그것들이 자라 낙타가 되고 치타가 되고 악어가 되고 물뱀이 되어

꼭 저 같은 것들을 뒤집어쓰고 어디론가 떠날 때까지

이런 봄날 하릴없이

잿빛 허공에 귀를 대고 있으니

목울대를 늘이고 귀신 소리로 우는 그것들의 울음이 들려요

그러면 문득

앞뜰을 뽀얗게 뒤집어쓰고 때 이른 목련이 솟구쳐 오르죠

글쎄 저 앙바틈한 나무 한 그루가 함뿍

희디흰 이파리 나풀거리는 여린 상자들을 매달고 달그락거리잖아요

낙타…… 치타…… 악어…… 물뱀……들이 가지마다 글쎄!


정육점

- 상자들


         보라!


저 핏빛 쇼케이스 속에

칸나처럼 피오오른 누군가의

찢어진

팔, 다리, 엉덩이, 가슴


적멸

- 상자들


헌 비닐하우스 속에서 살던 집에서 불났다

없는 지붕이,

훤히 보이던 하늘이, 순식간에


활활활활활활활활활활활활


타버린 뒤

소방관들이 만천하에 드러난 숯검댕이들을

집어올린다


숯검댕이 엄마, 숯검댕이 아빠,

영문 모르고 숯검댕이 된

아가……


둘!


밑도…… 끝도…… 없다……

- 상자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투명한 저 칠판에 누가


         새가 날아간다


라고 쓰고 있다


        날개를 갸우뚱거리며 해를 똥처럼 달고 간다


라고 쓰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물렁하고 뿌연 저 칠판에 누가


       나-무-가-어-두-워-진-다-


라고 쓰고 있다


       나무속에누군가푸우-먹물을 불어넣는다

       나무가 검정비닐봉지처럼 부풀어 오른다


라고 쓰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물컹하고 희뿌옇고 어슴푸레한 저

칠판에 누군가


아이를업은여자가지나간다  검정가방을든남자가지나간다

      전봇대와쓰레기통사이로개한마리지나간다

           골목은끝이 없고  저끝에서  누군가울고  있다


라고 쓰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크고 물컹하고 희뿌옇고 어슴푸레하고

……한 저 칠판에 누군가 종일 썼다 지운다 뼈가 다 비치는 투명한 어떤 손이

종일 저 크고 물컹하고 희뿌옇고 어슴푸레한 저 칠판에……


합장(合葬)

- 상자들


나는 산소를 손질하고

동생은 낫으로 무덤 쪽으로 자꾸 그늘을 드리우는

가지들을 잘라낸다 잔가지들이 잘린 자리마다

가지 모양의 하늘이 들어앉는다

잠자리 한 쌍이 벗어놓은 옷 위에서 짝짓기하고 있다

미동도 않는다


그래,

딱 한 번 저런 사랑 본 적 있다


일곱 식구가 누운 단칸(單間)의 밤이었다.

선잠 속,

돌아눕다 문득 본 그것!


검은 바위 같았다 아니

어떤 밤의 도도록한 봉분 같았다

숨소리 하나 없었다


돌 속 같은

…………

…………만

있었다.


이윽고

깊은 물소리 같은

숨죽인 흐느낌 같은……

………


'탁'

성냥 긋는 소리……

그쪽의…… 찰나가…… 불현, 환하다

말고…… 다시……

칠흑!


진자줏빛 담뱃불이 별처럼 멀었다


나야……

- 상자들


살아 계실 때 엄마는 이따금 전화하셔서는

  -나야……

하시곤 한참 뜸 들이다가 이쪽에서 별말이 없으면

  -바쁘……구나……밥……먹……었……니?

물으셨다 띄엄띄엄,

낮게,

무슨 큰 실례라도 한 사람처럼 ……

  -무슨 일예요?

(왜 나는 그때 그렇게 퉁명스러웠을까?)

  -아냐……, 그냥, ……

싱겁게,

그저 밥 얘기만 얼버무리다가 끊은 그

전화…… 오늘,

내가 한다 태평양 건너 딸에게


  -나야, …… 밥…… 먹었니…… 밥 잘 챙겨……

밥, …… 밥, …… 밥, ……

하다가 그만 목이 매어

가만히 있는데 딸애는

  -어! 어! 어!

  -엄마, 나 지금 바빠, 나중에……

일방적으로 전화…… 끊긴다.

전화선같이 가느다란 무엇이

태평양의 이쪽 저쪽을 붙잡고 위태롭게 흔들리다

툭, 끊어진다


나, 문득 '밥'의 ㅂ 속에 오도마니 갇혀

창밖을 본다

비행기 한 대 꽁무니에 희고 가느다란 끈을 달고

허공의 시퍼런 중심을 건너고 있다

나무들은…… 쥐 죽은 듯!

있다


나, 문득 저 나무에게 전화하고 싶다

저 이파리 뒤의 어둠에게

그 뒤의 뒤의 뒤의……

꼭 나뭇잎만한 터널 속 어딘가로 문득 사라진 식구(食口)에게


  -나야아…… 엄마…… 나야아,

  아버지이, …… 나야아…… 나아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나 지금

저 돌맹이 같은 것들에 대고!


다큐멘터리 개미들의 세계를 보다가 문득

- 상자들


개미굴 속으로 들어간다

  →

       허리

       가 잘

          록한                                없다              입구가

       개미                      한점                             출구인

 들이                                   바람

            구멍                        있다

            마다                                  뻗어

        빽빽                                        사방

  하다                                    사지

살같이            가는         길들이




                          개미새끼만한나무들은미동도없이서있다문득

       그림자하나없는길이미친듯떨린다

                                    저    문

                              밖에

                                무슨

                             일이

                        있나

                           ?????????????????????????



                                       곡괭이를들고일터

              맞대고 싸우는 놈                         가는 놈

                      더듬이를                                  집

                                     가는 놈                      지키

                                비틀                                 는

출구가                          지고                               놈

         입구인                          등에                요리

                그길                            것을        하는

           위                               먹을             놈

     더듬이를                           간다               애  보는

  한껏 세운                        오고                    놈 칼 가는

        개미들 정신없이                              놈               

                                                       장작

                                                          패는

                                                   놈 낚시

다있도놈은죽듯는자서에섶길금따이놈는하


그래, 종로쯤에서

- 상자들


우리, 한번 만나자

몸도 마음도 없이

파고다공원 벤치에 앉아 시시덕거리는

늙은 바람처럼

매연으로 찌든 홍매화처럼


그래, 거기, 한 늙도 젊도 않은 아낙이

낮도깨비같이 화장을 하고

장고를 치고 있으리라

한 늙은이는 공중변소 뒤에서 울고,

세월에 표정을 다 내어준 인생들이

데스마스크처럼 앉아 있으리라


그것들 위로

사월! 사월! 사월!

아우성치며 벚꽃잎 회오리치리라

그래, 회오리치는 것들의 그 아득함으로


고단(孤單)을 쓰개치마처럼 뒤집어쓰고 헤매던 날들의 그 막막함으로

우리 청진동쯤에서 한번 만나자

네거리에 갇혀 한 백 년 입 다문 인경처럼

어느 해장국집 푹 삶긴 시래기처럼……

……그렇게

…………물끄러미……우리………


바람이 하도 모질게 부니

- 상자들


집이 운다


집이 우는 것은 지붕이 우는 것 지붕 위의

기왓장이 우는 것 지붕 밑의

서까래가 우는 것 그 밑에

사방 벽이 우는 것 벽 속의

철근이 우는 것 철근을 에워싸고 있는

모래가 우는 것 모래 속에 잠든

수만 리 바다가 우는 것


집이 우는 것은 기둥이 우는 것 기둥이 된

적송(赤松)이 우는 것 몇 겁(劫)의 허공을 걸어와 소나무가 된

늙은 햇살이 우는 것


집이 우는 것은 바닥이 우는 것 그 아래

구들장이 우는 것 그 아래,

주춧돌이 우는 것 그것들이 네 발로 잡고

발이 부르트도록 굴리는

지구가 우는 것!


이 칠흑 속, 지구가 운다.

어느 막막한 날 새벽,

불 꺼진 방에 우두커니 앉아

속울음 들키던 아버지처럼!


그곳에는

- 상자들


어머니, 그곳에는 아직도 노오란 속이 다 보이는 길쭉길쭉한 상자들만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습니다 풀 한 포기 없었습니다 저마다 속에 캄캄한

층계를 감춘 그것들이 납작 눌린 돌맹이 같은 수많은 방들을 가진 그것들이

남몰래 치르르르 물소리를 흘리며 정수리에서 맴도는 해를 제 몸의 사방

벼랑으로 밀어내리며 떨어져 내린 해의 부스러기에 덴 발을 묻고 있었습니다


하여, 더욱 깊고 어두워진 길들을 대낮에도 불을 켜고 달렸습니다 밤마다 나는

빠알간 경고등을 켠 실핏줄 같은 길들이 그것들을 친친 감고 캄캄한 하늘을 날아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그곳의 밤은 제 빛에 그림자마저 빼앗긴 그것들이 스스로 어둠이 되어

우두망찰 서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디선가 자꾸 아이가 울었습니다


허공이 실성실성해서

- 상자들


물끄러미 유리창으로 들여다보고 있어

쥐 죽은 듯 조용한 방

늙은 탁자와 늙은 티브이와 늙은 소파가 쭈그리고 앉아 있어


…………탁

누군가 소리치며 복도를 지나가


  세 살배기 막내동생의 임종이 있어

  아이의 검다 못해 푸르른 눈동자 속에 아주 잠깐

  들어앉은 쬐끄만 세상이 보여


멀쩡하던 하늘에서 주먹만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해

순식간에 여기저기 고랑이 파이고 흙탕물이 넘칠 듯 쏟아져 내려

누군가의 생이 곤두박질치나봐


…………탁

누군가 아래층에서 소리치며 지나가


  외할아버지 돌아가신 날

  차비가 없어 장례에도 못 내려간 엄마가 넋 나간 듯 앉아

  있었어

  창백한 손으로 삯뜨개를 하고 있던 엄마

  백 년 전의 이야기야


나는 그때 허공이었어 허공에 둥둥 떠다니던

고봉밥이었어 원재네 국수집 구수한 멸치 국물이었어

동구 밖 팽나무에 걸려 있던 썩은 그네를 타고

한도 끝도 없이 날아올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달빛이었어


세…………탁

누군가 끝없이 계단을 내려가


늙은 탁자와 늙은 티브이와 늙은……

쥐 죽은 듯 쭈그리고

있어 (있어!)


부엌

- 상자들


  그때 그녀는 거기 머무르는 허공들처럼 아주 조용한 환자였다 매일 반복되는 한가지 일만 빼고는

  일은 대개 새벽녘에 터졌다 내가 잠든 틈을 타 그녀는 조용히 공격해왔다

  그녀는 소리 없이 산소 호스를 뽑고 침대를 내려가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문 쪽으로 갔다 인기척에 놀란 내가 억지로 그녀를 데려와 다시 침대에 뉘며물었다

  - 엄마 어디 가시는 거예요?

  - 어딜 가긴, 부엌에 가지, 빨리 밥을 지어야지

  - 아이구 엄마두 여긴 병원이에요 부엌은 없어요

  - 무슨 소리냐 부엌이 없다니 그럼 넌 뭘로 도시락을 싸가고 너희 아버진 어떻게 아침을 드시니?

  - 엄만 지금 아파요. 이제 밥 따윈 안 해도 된다구요!

  - 큰일날 소리! 아버지 깨시기 전에 서둘러야지

  - 엄마! 여긴 병원이라구요 부엌은 없어요!

  - 얘야, 세상에! 부엌이 없는 곳이 어디 있니? 어디나 부엌은 있지 저기 보렴 부엌으로 나가는 문이 비스듬히 열렸잖니?

  - 저긴 부엌이 아니에요 복도예요

  - 그래? 언제 부엌이 복도가 되었단 말이냐? 밥하던 여자들은 다 어딜 가구?

  - 밖으로 나갔어뇨 엄마. 밥 ㄸ윈 이제 아무도 안 해요 보세요. 저기 줄줄이 걸어나가는 여자들을요

  - 깔깔깔 (그는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얘야, 정말 어리석구나 저 복도를 지나 저 회색 문을 열고 나가면 더 큰 부엌이! 정말 큰 부엌이 있단다 저기 봐라 엄청나게 큰 밥솥을 걸고 여자들이 밥하는 것이 보이잖니? 된장 끓이는 냄새가 천지에 가득하구나

  - 엄마 제발 정신 차리세요. 여긴 병원이란 말예요

  - 계집애가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 게 아니란다 아버지 화나시겠다 어여 밥하러 가자 아이구 얘야, 숨이 이렇게 차서 어떻게 밥을 하니? (모기만한 소리로) 누가 부엌으로 가는 길에 저렇게 긴 복도를 만들었을까? 세상에! 별일도 다 있지 무슨 여자들이 저렇게 오래 걸어 부엌으로 갈까?

 

  엄마는 입술이 점점 파래지더니 까무러쳐서 오래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기어이 그 긴 복도를 걸어 나가 엄청나게 큰 부엌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엄마의 청국장 냄새가 중환자실에 가득했다

 

까마귀들

- 상자들

 

나는 까마득 높은 곳으로부터 까마귀 한 마리가 떨어져 내리는 꿈을 꿨어요

다시 잠이 들었고 두 마리 까마귀가 떨어져 내리는 꿈을 꿨어요 다시

잠이 들었고 세 마리 까마귀가 떨어져 내리는 꿈을 꿨어요

네 마리, 다섯 마리, 여섯 마리…… 길이 온통 까마귀로 가득할 때까지 나는

다시 잠이 들고 꿈을 꿨어요 죽은 까마귀들 위로 차들이 흘러가고

땀에 절은 사람들이 지나갔어요 그 자리, 희거나 불그죽죽한 목련들이

순식간에 피고 졌어요 그때 나는 그 까마귀들이 그대로 목련으로 피었다가

졌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누군가 봄이 다 갔다고 수군거렸어요

 

근(根)

- 상자들

 

그는 이미 온몸의 근육과 세포를 다 동원해서 숨쉬고 있었다

상기된 두 볼과 충혈된 눈으로 가까스로 그는 말했다

 

- 오줌이 마렵구나

- 소변기를 대드릴게요 아버지

- 나는 누가 보면 소변을 못 보는데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그의 근에다 소변기를 대니 피고름 같은 것이 간신히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때 그 근의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 끝에서 떨어져 내린 피고름이 수세기를 흘러온 냇물이라는 걸 알았다

어릴 적, 나는 트레머리를 하고 피부가 유난히 흰 젊은 엄마가

그 물에 쌀을 씻어 안치고 상추를 씻어 정갈하게 밥상을 차리는 걸 보았다

그때 나는 그 냇물이 밤새 아이 웃음소리를 내며 깔깔깔 흘러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구덩이

(그들은 이혼을 이야기한다)

- 상자들

 

(캘리포니아 작은 도시의 한 식당에서 그녀는 말했다)

사는 게 얼마나 지긋지긋한 건지 이제 알 것………………

남자는 다 그렇단다 철딱서니라곤 없는 동물………………

난 이제 정말 지쳤………………………………………………

그래도 살다 보면 혹시…………………………………………

내게 다시 그런 말………………………………………………

아이는 어떻………………………………………………………

 

한 스패니시 여인은 지치고 찌든 얼굴로 혼자 밥을 먹고

서너 살 먹은 서양 계집아이는 지나치게 화려한 캔디를 빨고

아이스크림을 든 산만한 엉덩이가 지나간다

 

털투성이 자본들이 사방에서 어슬렁거린다

 

나도 한땐 그런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왜 하지 못했…………………………………………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거짓말! 난 그게 얼마나 위선인지 알……………………!!!

 

바야흐로 그녀는 눈물로 식탁 위에 물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는 식도가 터져나가는 통증에 시달리며 중얼거린다

 

얘야 캘리포니아에는 왜 비가 내리지 않니 저녁 바람은 왜 이리 차니

왜 젖은, 젖은 빨래가 순식간에 과자처럼 바스락거리니

스컹크는 왜 밤마다………………………………………

그 런 데…… 얘야 …… 도대체…… 왜……매일……새파란 하늘에

독수리 같은 까마귀가………………

 

사실적인, 사실, 적인

- 상자들

 

이제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아버지 밖으로 사라졌다

본시, 세상은 아버지와 아버지,

또 아버지와 아버지들 사이에

사실적으로, 사실, 적으로 있었다

사실적인 아버지는 뜨거웠으나 사실, 적인 아버지는 얼음 같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들 사이에서 사실적으로 아니,

사실, 적으로 갈팡질팡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었다

아버지는 아버지 이후로 스며든 것일까

아버지 이전으로 돌아간 것일까?

생각해보니 사실적도, 사실, 적도 아니었던 아버지!

 

아버지가 지고 나니 세상이 사실적으로 캄캄하다

나는 밤마다 사실적인 아버지를 헤맨다

누르면 쑥쑥 둘어가는 묵 같은 아버지, 검은 안개 같은 아버지,

아아 사실적이 아닌, 사실, 적도 아닌 아버지는

왜 이리 슬픈가?

나는 눈물을 흘리며 사실적인 아닌 아버지 품에

사실, 적이 아닌 딸이 되어 안긴다

 

나는 오늘 종일 잤다

- 상자들

 

나는 오늘 종일 잤다

 

  허공이 조금조금 갈라지고

  갈라진 틈새로 면돗날 같은 햇빛이 내리긋고

 

나는 잤다

 

  소나기가 쏟아지고 우박이 퍼붓고

  세월에 부관참시(剖棺斬屍)된 집들의 지붕이 비스듬이 흘러내리고

 

나는

 

  지붕 아래 한 방의 노오란 구들장 속으로 수세기 내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막무가내 내리덮이는 눈꺼풀 사이에서

  한 짐승과 사랑하고 결혼하고 반인반수(半人半獸)를 낳고,

  낳으면서 다만, 눈 뜨기 위하여

 

잤다

 

  벽지 위에는 주근깨투성이 산나리꽃이 킬킬킬 피어 오르고

  깨진 유리창으로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날아들고

  청정 위에는 무언가 끊임없이 뚜벅,

  뚜벅 걸어가고 그 사이에서 나는

 

잤다

 

  졸린 생을 어쩌지 못해 잤다

  들숨 날숨이 뒤엉켜 캄캄해질 때까지 잤다

  멀건 대낮이 멀건 밤이 되고 멀건 밤이 멀건 아침이

  될 때까지 잤다

  팔 다리 엉덩이 배꼽이 몽땅 캄캄해질 때까지 잤다

  팔 다리 엉덩이 배꼽이 몽땅 환해질 때까지 잤다

  아아, 이 짧은 잠 속의

  기이인……………………………하루

 

모델 파라다이스

- 상자들

 

한 오십쯤 된 여자와 남자가 간다

 

수제(手製) 태양들이 줄지어 번쩍이는 밤,

사이사이, 창궐하는 어둠에 푹푹 빠지며,

 

자세히 보니 한 오백 살 된 계집아이와 사내아이가

묵은 느티나무 밑둥 같은 허리를 돌려 감고 간다

얼굴에 제 살아온 날의 지도를 펼쳐들고

무슨 음모처럼

컴컴한 골목으로 들어간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는 당뇨(糖尿)의 늙은 사자와,

수 세기 전 누군가 채워준 녹슨 족쇄를 절그렁거리는

저 다섯 살 철부지 노파!

엽기적으로 푸르스름한 시대의 인광(燐光)이 잡아 끄는

모텔 파라다이스로

키득키득

울며

 

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신생아실에서)

- 상자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얼마나 험한 길을 얼마나 오래 걸어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피투성이 주름투성이의 몸으로 조막만한 인류가

지금 막 도착해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울음을 그친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형광등 불빛을 보다가

창 쪽을 보다가

희고 높다란 벽을 보다가

흰 옷에 흰 투구를 쓴 직립의 괴짐승들을 보고는 그만

무슨 입맛 돋우는 먹을거리라고 생각했는지

라일락빛 입술을 씰룩거리며 이리저리

혀를 내두르다가

문득

 

단풍잎 같은 손을 들어

가만가만

가까운 허공을

긁어보는 것이었는데

 

환(幻) 1

- 상자들

 

성묘하러 갔다 보았죠

당신 무덤 앞 상석 위에서 당신이

손바닥만한 사마귀 한 마리로 환(幻)

하시어

갓 태어난 연둣빛 아기 메뚜기 한 마리 잡숫고 계시는 거

 

미칠 듯 고요하던 그 식사!

 

발 아래론 시뻘건 개비름의 날짜들이 기어가구요

아카시아 개여뀌 엉겅퀴 호라지좆

온갖 못난 것들이 뒤엉킨 굴헝이 있었구요

더 멀리는

모르는 척 산 모퉁이를 돌아가는

능청맞은 낙동강이 있었구요

 

악몽 공장

- 상자들

 

그 공장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멀리서 보면 그곳은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나는 하마터면 아,

하는 탄성을 입 밖으로 내보낼 뻔 하였다

 

누군가 말했다

그 속에 죽어도 꺼지지 않는 용광로가 있고 그 끝에서

펄펄 끓는 쇳물이 쏟아져 나와 불의 길을 만들고 있다고

사방에서 물고 물리는 기름투성이 기계들이 쩔꺽거리며

거대한 피댓줄을 돌리고 있다고

그 끝에 기막히게 정교한 세공품들이 쏟아진다고

주전자 모양으로, 커피잔 모양으로

쟁반 모양으로, 숟가락 모양으로

아집(我執) 모양으로, 고통(苦痛) 모양으로,

굴욕(屈辱) 모양으로

긍휼(矜恤) 모양으로

 

석탄박물관

- 상자들

 

박물관이 된 막장을 보았어

입구에 들어서면 은은하게 음악이 깔리고

- 어서 오십시오 **광업소 석탄박물관입니다

안내 방송이 들리고

잘 진열된 석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얼마나 죽은 듯,

얼마나 오래,

얼마나 납작하게 엎드려야

소나무 전나무 고사리 속새 도라지 더덕 만삼 좀딱취 같은 것들이

돌이 되는지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능구렁이 삼엽충 지네 전갈 같은 날짜들이

캄캄하게 석탄이 되는지

달걀만한 홀로그램으로 뜬 광부가 말하고 있었어

창백한 손가락을 들어 막장 쪽을 가리키며

 

저기! 사십오 도 각도로 곡괭이를 든 채 밀랍 인형이 되어버린

칠성이 아버지를 보라고

 

저기! 탄가루가 범벅인 도시락을 반쯤 남긴 채 홀로그램이 된

경식이 아버지도 있다고,

 

여기저기, 몰래 진폐(塵肺)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홀로그램이 되어가는 자들의 독거 막장이 보였어

 

곡괭이 같은 슬픔을 들쳐멘 쬐끄만 해의 광부들이

허공탄차에 실려 막장으로 쏟아지고 있었어

 

심심하고 심심한, 이,

- 상자들

 

가을날, 방바닥을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이,

가을날, 등때기와 배때기가 붙은, 이,

가을날,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이,

가을날, 속 있는 것들을 다 속으로 들어가버린, 이,

가을날, 천장에서 쥐새끼 한 마리 찍찍거리지 않는, 이,

가을날

 

  위층에서 유령들이 수군거린다 징징 짠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흐윽흐윽 흐흐흐

  흐느낌만 흐드러지는 이!

가을날,

  벽속으로 누군가 몰래 물을 들이붓는다

  물이 철근 기둥을 타고 하염없이 내려간다

  벽지에 스민다 집이 퉁퉁 불어터진다 흐물흐물 풀린다

 

더엉 더엉 더엉

처연하게

벽시계가 운다 치르르르르르

냉장고가 울고 텔레비전이 운다

가스레인지가, 신발장이, 탁자가, 의자가, 운다

(귀뚜라미는 울지 않는다)

 

심심하고 심심한,

이!……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