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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23. 13:54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91 강은교의 시에 전화하기

 

강은교 지음

2005, 문학세계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5218

 

811.6

강6719시

 

토요일에 읽는 시

 

시는 확실히 삶에서 온다. 그 삶에서 온 이미지가 시인에게 포착되는 순간
보다 선명한 하나의 언어의 그림이 되어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이다.
시인은 그 그림을 자연스레 우리들의 삶에 대입한다.
삶에서 온 그 그림에 또하나의 삶이 안겨드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시는 안는 시이다. 시의 언어에 삶의 한 얼굴을 껴안는 시이다.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우리의 갈 수도 있고 안갈 수도 있는 길......
내일은 언제나 월요일이다.

시적 인식의 순간의 공간,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별로 가득 차는 것을 본다.
당신을 결코 사라지는 별이 아니다. 다시 뜨는 저 구름 뒤에 있는 별이다. 부재하므로 존재하는 얼
굴들. 시에는 분명 '그런 것'이 있다. 그런 상상의 내밀한 커튼이.
그 커튼이 있으므로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류類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시적 인식의 순간, 당신도 당신의 사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이 토요일,

잎 넓은 저녁으로 가는 따뜻한 희망 한 송이들이다.

한 편의 시에는 예언자적 기능도 있고,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기능도 있고, 고단한

인생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기능도 있어, 우리에게 자꾸 시를 읽고 싶게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우리의 혼탁해진 정신을 깨끗하게 해주는 시 치료적인 기능도 한다.

시를 읽으면서 새삼 인생을, 마음의 결의를 담아오라.

그 시, 짧은 몇 구절엔 시인의 마음의 결의가 담겨 있으니,

그리고 그동안 닳아져 버린 마음의 배터리들을 충전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셋방에서도 깊은 연못을 보는 사람, 사소함 속에서도 깊은 상상력을 펴는 사람.

그래서 혼자 있으면서 '도통'하려는 것이 아니라, 호젓한 산 속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려 하는 사람-그 사람이 시인이다. 그것은 돈 안 드는 '상상'이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시인은 꿈꾸는 리얼리스트이다. 시 읽는 이도 그렇다.

시 한 편 읽으면서 꿈꾸자. 꿈꾸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짧은 시 한 편 무심히 읽는 순간, 그러나 그 시의 주인공, 꽃은 이 세계의

투명한 뼈대가 된다. 그 푸른 줄기 위에 모든 산 것들의 사회는 서 있다.

지는 것을 고민하는 사회는 서 있다.

세계는 간다. 지는 꽃과 피는 꽃 사잇길로.

 

강은교

1945년 함남 홍원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성장함.

연세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시집 『시간은 주머니에 별 하나 넣고 다녔다』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어느 별 위에서의 하루』

『벽 속의 편지』 『소리집』 『빈자일기』 『풀잎』

『허무집』 육필시집 『가장 큰 하늘은 그대 등뒤에 있다』

100인 시선 『그대는 깊디깊은 강』 등.

시창작론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산문집 『사랑법-그 담쟁이가 말했다』 『허무수첩』

『잠들면서 참으로 잠들지 못하면서』 『그물 사이로』

『추억제』 등.

번역서 『예언자』 『소로우의 노래』 외에 동화 등이 있음.

현재 동아대학교 문창과 교수.

 

토요일에 읽는 시 * 차례

 

시에 전화하기

 

☎ 시에 전화하기___1월 첫째주  고정희  성스러운 밥그릇

☎ 시에 전화하기___1월 둘째주  윤중호 시는 어디 있는가

☎ 시에 전화하기___1월 셋째주  이경림 껴안기

☎ 시에 전화하기___1월 넷째주  천양희 단추의 말

☎ 시에 전화하기___2월 첫째주  김완하 새벽이 없으니까 새벽을 본다

☎ 시에 전화하기___2월 둘째주  이영식 북어 한 토막

☎ 시에 전화하기___2월 셋째주  손택수 김치국물의 깨우기

☎ 시에 전화하기___2월 넷째주  최영철 가끔 떠나고 싶다

☎ 시에 전화하기___3월 첫째주  최승자 숨가쁜 언어

☎ 시에 전화하기___3월 둘째주  박정만 언어의 꽃초롱에 얹힌 불빛

☎ 시에 전화하기___3월 셋째주  이희중 가위의 입술

☎ 시에 전화하기___3월 넷째주  이기철 희망 한 송이들

☎ 시에 전화하기___4월 첫째주  최정례 꽃구경

☎ 시에 전화하기___4월 둘째주  복효근 상처의 연속화

☎ 시에 전화하기___4월 셋째주  김정환 참, 큰 계란

☎ 시에 전화하기___4월 넷째주  김용택 언어의 화가

☎ 시에 전화하기___5월 첫째주  오장환 가끔 떠나는 것들을 배웅해 보시오

☎ 시에 전화하기___5월 둘째주  나태주 허공에 기대다

☎ 시에 전화하기___5월 셋째주  김광섭 별의 눈썹들

☎ 시에 전화하기___5월 넷째주  이수익 눈부신 그늘

☎ 시에 전화하기___6월 첫째주  임영조 다면형 시각의 비누

☎ 시에 전화하기___6월 둘째주  김광규 '낙'가 '너'가 되는 기적의 순간

☎ 시에 전화하기___6월 셋째주  정복여 꿈꾸는 리얼리스트

☎ 시에 전화하기___6월 넷째주  김종해 시인만의 고독

☎ 시에 전화하기___7월 첫째주  이육사 꿈의 혈관

☎ 시에 전화하기___7월 둘째주  문병란 은빛 소리

☎ 시에 전화하기___7월 셋째주  정일근 생각의 틀

☎ 시에 전화하기___7월 넷째주  김준태 바보 같은 질문

☎ 시에 전화하기___8월 첫째주  김기택 삶의 해답, 누운 혀

☎ 시에 전화하기___8월 둘째주  이준관 눈의 확장

☎ 시에 전화하기___8월 셋째주  오세영 지혜의 바람

☎ 시에 전화하기___8월 넷째주  이홍섭 당나귀 푸른 눈망울

☎ 시에 전화하기___9월 첫째주  이정록 포도송이가 걸어오는 소리

☎ 시에 전화하기___9월 둘째주  함민복 쌀과 시

☎ 시에 전화하기___9월 셋째주  최영미 지는 꽃 피는 꽃 사잇길로

☎ 시에 전화하기___9월 넷째주  이하석 못의 이야기 듣기

☎ 시에 전화하기___10월 첫째주  이성부 내일은 언제나 월요일

☎ 시에 전화하기___10월 둘째주  이성선 갑자기 절하며

☎ 시에 전화하기___10월 셋째주  황지우 정신의 순간적 운동장

☎ 시에 전화하기___10월 넷째주  곽재구 희망을 학습시켜 주는 시

☎ 시에 전화하기___11월 첫째주  노향림 닿을 수 없는 하늘가

☎ 시에 전화하기___11월 둘째주  이규리 모든 암호의 운명은 풀어지는 것이다

☎ 시에 전화하기___11월 셋째주  나희덕 작고-적게, 크게-많이 말하자

☎ 시에 전화하기___11월 넷째주  김혜순 매월 마지막 토요일

☎ 시에 전화하기___12월 첫째주  전다형 가시의 아름다움

☎ 시에 전화하기___12월 둘째주  이대흠 보편성의 새우깡

☎ 시에 전화하기___12월 셋째주  이윤택 변신의 연기들

☎ 시에 전화하기___12월 넷째주  이해인 당신의 마음표는?

 

詩人 시인에게 전화하기

☎ 질문과 대답 중에서

곽재구 김광규 김기택 김완하 김용택 김종해 김준태 김혜순 나태주 나희덕 노향림 문병란 복효근 손택수 오세영 윤중호 이경림 이규리 이기철 이대흠 이성부 이수익 이정록 이준관 이하석 이해인 이희중 전다형 정복여 정일근 천양희 최영미 최영철 최정례 함민복 황지우

 

임영조

이 시대의 희한한 성자聖者

친수성 체질인 그는

성품이 워낙 미끄럽고 쾌활해

누구와도 군말없이 친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온몸을 풀어 우리 죄를 사하듯

더러운 손을 씻어 주었다.

밖에서 묻혀오는 온갖 불순을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주었다.

 

그는 성역聖職도 잊고 거리로 나와

냄새 나는 주인을 성토하거나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라고

외치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들의 가장 부끄러운 곳

숨겨온 약점을 말없이 닦아 줄 뿐

비밀은 결코 발설하지 않았다.

 

살면 살수록 때가 타는 세상에

뒤끝이 깨끗한 소모消耗는

언제나 아름답고 아쉽듯

헌신적인 보혈로 생을 마치는

이 시대의 희한한 성자聖者,

 

나는 오늘

그에게 안수按手를 받듯

손발을 씻고 세수를 하고

속죄를 하는 기분으로 몸을 씻었다.

- 임영조 「비누」

 

정복여

 

내가 세들어 사는 이곳에 아주 오래된 연못 하나 있었다

계약서에는 없던 무수한 물방울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자

사각의 방 모서리를 허물며 둥글게 안으로 흘러들었다

내 호흡의 울림으로 연못은 여러 개의 둥근 원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둥글게 흔들린 물방울들이 놀라 서로의 몸을 바라보면

그 빛에 잠을 깬 물개암 나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수면 위에는 오래된 연잎이 몇몇 모여 아직 오지 않은

꽃을 기다린다고 말하였다

몸 기울여 연잎의 깊은 뿌리를 들여다보았을 때

그곳에 나 이전의 어떤 빛이 나를 보고 있었다

흰 달의 그림자 같기도 한 그 빛은 내게

무슨 말을 하는 듯

못의 한가운데에 솟은 작은 산 하나 보여주었다

산은 연못보다 더 오래된 깊이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사자처럼 생긴 바위는 연잎의 뿌리에 닿아

그 뿌리에 사는 빛의 그림자를 안고 있었다

나는 그 바위 아래서 잠이 들었다

내가 눕자 연못도 함께 누웠다

그러곤 보일 듯 말 듯한 바닥을 내게 주었다

그 이후 나는 날마다 내 열쇠 하나로

어떻게 이 연못을 잠가두고 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

- 정복여 「깊은 방」

 

김종해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말,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욱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 김종해 「바람부는 날」

 

김기택

 

수박을 우적우적 씹어삼키고 난 그의 입에서

대여섯 개의 수박씨가 차례로 튀어나왔다.

벙어리장갑처럼 뭉툭한 혀는

이빨 사이에서 힘차게 으깨지는 수박 속에서

정확하게 씨를 골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수박을 먹으며 그는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그가 수박씨 다음으로 내뱉는 말들이

수박 파편들을 피해가며 정확한 발음을 내도록

혀는 쉴새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작은 입으로 갈비와 맥주와 냉면이 들어가고

수박까지 남김없이 다 들어간 것은

입구멍 안에 어둡게 숨어 있는 혀 탓일 것이다.

먹을 만큼 먹어 더 먹을 마음이 없어진 혀는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주는 두툼한 손바닥처럼

이와 입술을 오랫동안 정성껏 핥아주었다.

실컷 먹고 마시고 떠들고 난 그는

개고기 끝내주는 집이 있는데 다음엔 거기 가자고

차만 안 막히면 한 시간에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중복 점심에는 다른 약속 하지 말라고

혀로 입맛을 다시며 내게 다짐을 받아두었다.

- 김기택 「혀」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 오세영 「바닷가에서」

 

곽재구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워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익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종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 곽재구 「은행나무」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 나희덕 「천장호에서」

 

이해인

 

우울한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맑은 물이

소리내며 튕겨울리는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맑아진답니다

 

애인이 그리운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물 속에 흔들리는

그의 얼굴이

자꾸만 웃을 거예요

 

기도하기 힘든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몇 차례 빨래를 헹구어내는

기다림의 순간을 사랑하다 보면

저절로 기도가 된답니다

 

누구를 용서하기 힘든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비누가 부서지며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마음은 문득 넓어지고

그래서 행복할 거예요

- 이해인 「빨래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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