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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10. 12:17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01 1942 대기근

 

멍레이 · 관궈펑 · 궈샤오양 외 엮음 | 고상희 옮김

2013, 글항아리

 

삼백만 명이 굶어죽은 허난 대기근을 추적하다

 

누가 삼백만 명을 굶어죽게 만들었는가?

 

중국 정부가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던 대참사

뼛속 깊이 새겨진 기억을 세 명의 기자가 오랜 추적 끝에 복원하다

 

사상 최대의 아사자가 발생한 1942년 중국 허난河南 대기근

기러기 똥을 먹고, 흙을 먹고, 가죽을 끓여 먹고 사람고기를 먹은 자들도

결국은 모두 굶어 죽었다

 

생존자의 기억을 일일이 모아 이어붙인 1942년 대기근. 참사를 직접 겪은 당사자들이 들려주는 처참한 현장의 고통. 완전히 바뀌어버린 개인과 가족의 운명은 어떤 영화보다도 생생하다. 중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추적하다.

 

· 피난민들은 손톱을 씹고서야 자신이 먹은 것이 인육으로 만든 만두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누구도 상관하는 이가 없었다.

· 서쪽으로 가는 기차가 퉁관 역으로 들어오는데, 그 양옆에는 '인육 덩어리'를 가득 매달고 있었다. 바람에 말라서 베이컨처럼 납작해진 것도 있었다.

· 부모가 자식을 팔고, 남편이 아내를, 오빠가 여동생을 팔았다. 성읍 안에 형성된 인간시장에서는 피와 살을 나눈 가족이 생사가 엇갈려 울부짖는 광경이 펼쳐졌다. 더 이상 팔 것도 없고 굶주림을 참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차오리 사에 기거하던 어느 부부는 친딸을 먹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잡아먹힐 것이 무서워 어두운 밤을 틈타 도망가다가 길에서 굶어 죽었다. 성 동쪽에 있는 다왕 사당에 살던 여자는 더우후잉 마을에 사는 소년이 문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집안으로 꾀어 들인 뒤 삶아 먹었다.

· 야생의 성질을 되찾은 들개 무리가 여기저기서 시체를 제멋대로 뜯어먹고 있었다. 가장 오싹한 장면은 친자식을 삶아 먹는 어머니였다. 어느 집은 자산을 모두 내다 팔아 마지막 한 끼를 배불리 먹은 뒤 일가족이 자살했다.

 

엮은이

멍레이孟磊

1963년생. 1985년 허난일보사에 입사해 취재 · 편집 · 발행 업무를 거쳤다. 『허난일보』 기자, 편집위원, 뉴스국 부국장, 『국제경무보國際經貿報』 개혁준비팀 부팀장, 『성시조보城市早報』 부편집장, 『대하보大河報』 부편집장을 역임하고, 『대하문적보大河文摘報』 창간에 참여했으며, 『대하건강보大河健康報』 창간을 주도했다. 현재 허난일보 신문 그룹 산하의 『허난상보』 편집장이다.

 

관궈펑關國鋒

1974년 허난 뤄양 출생. 정저우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하보』 등에서 근무했다. 현재 허난일보 신문 그룹 산하의 『허난상보』에서 부편집장과 취재센터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궈샤오양郭小陽

1980년 6월 허난 샹청項城 출생. 시와 소설을 발표했고, 현재 『허난상보』 심층보도부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이

고상희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중국 톈진 난카이대 교환학생과 베이징 사범대 어학연수를 마친 뒤,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우울한 중국인』 『중국 여행이야기』 『중국 유적지 소개』등이 있다.

 

차례

 

들어가는 말|1942: 잃어버린 역사

|제1장| 산산이 부서진 산하

|제2장| 무심한 하늘
                 제1절 남김없이 먹고 팔아버리다
                 제2절 호황을 맞은 골동품 시장
                 제3절 어느 마을의 죽음

|제3장| 대참사
                 제1절 메뚜기 떼의 습격
                 제2절 자식을 팔아넘기는 부모
                 제3절 인육을 먹는 사람들

|제4장| 피난
                 제1절 사방이 사별과 생이별
                 제2절 계속 서쪽을 향해

|제5장| 힘겨루기
                 제1절 정부에 맞서다
                 제2절 탐욕으로 부패한 연회

|제5장| 힘겨루기
                 제1절 정부에 맞서다
                 제2절 탐욕으로 부패한 연회

|제6장| 분노
                 제1절 나라의 버림을 받은 사람들
                 제2절 민초들의 반격

|제7장| 재방문-다시 찾은 역사의 현장
                 제1절 사라진 대기근
                 제2절 방공호의 ‘아귀’
                 제3절 동굴을 파면 그것이 곧 내 집
                 제4절 남편을 찾으러 나갔다가 팔려간 여인
                 제5절 황량해진 기차역
                 제6절 옛길이 남긴 깊은 흔적
                 제7절 기차 양옆에 걸린 인육 덩어리
                 제8절 일본군 포대를 찾아서
                 제9절 피난민이었던 소년이 어느새 증손자를 둔 할아버지로
                 제10절 차축을 끌어안고 죽을 위험에서 벗어나다
                 제11절 도깨비시장에서의 삶
                 제12절 창샹위의 은혜
                 제13절 피난 행렬이 멈춰 선 곳

|제8장| 질문

|부록|
 대기근 속에 피어난 인정과 인간미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_쑹즈신 인터뷰
 사람이 살면서 한두 가지 일만 완수하면 돼 _궈안칭 인터뷰
 주제 관련 열람 자료

되찾아야 할 기억들
옮긴이의 말

 

 

대기근 중에 껍질이 모두 벗겨진 느릅나무.

1938년 화위안커우 제방 폭파 이후 '황하 범람지역'의 모습을 항공 촬영한 사진.

황하 범람지역의 주민들(위)과 물이 들어찬 땅 위를 지나는 피난민들(아래).

황하 범람지역의 난민에게 구호물자를 제공하고 있는 국민당 정부 구조대.

대기근 중에 아이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먹을거리로 나무껍질을 벗기는 사람들.

이재민에게 껍질이 벗겨진 채 길가에 서 있는 느릅나무.

기근에 허덕여 나무껍질과 잎, 뿌리를 캐서 파는 모습.

나무껍질을 벗긴 여인.

한 여인이 나무껍질, 뿌리 등을 광주리에 담고 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이재민들.

기근으로 쇠락한 거리와 상점들.

피난길에 지친 어른과 아이.

이재민이 피난을 떠난 뒤 텅 빈 마을.

기근을 피해 도망가는 일가족(위)과 죽은 가족 곁을 지키는 이재민(아래).

나무껍질을 뜯어 먹는 이재민.

대기근을 겪는 아이들.

피난길.

굶어 죽은 이재민.

죽어가는 여인.

길에 쓰러진 이재민.

굶어 죽은 이재민의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

대기근에 피난 가는 이재민들. 바퀴 하나짜리 수레에 가재도구를 다 실었다.

기차 위로 올라가는 이재민.

기차에 매달린 채 끌어올려지는 어린아이.

화물칸 지붕에 이재민을 가득 실은 기차가 룽하이 선을 지나고 있다.

음식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선 이재민들.

구호 음식을 배급받은 이재민.

『대공보』에 실린 '허난 재해 실록' 기사(위). 1943년 2월 2일자 『대공보』에 실린 왕윈성의 사설 '충칭을 바라보며 중원을 생각하다!'(아래).

미국 『타임』지 기자인 화이트가 1942년 허난 성에서 발생한 대기근을 취재했다. 그가 쓴 기사는 국제적으로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942년의 대기근과 관련해 이 책에 실린 역사 사진 자료는 모두 화이트와 해리슨 포먼이 촬영한 것이다.

취재 중인 『타임스』 기자 해리슨 포먼.

미국인 기자인 포먼과 화이트의 현장 조사를 환영한다는 내용의 공고문.

쑹메이링이 미국을 방문해 뜨거운 반응이 일었다. 그 후 그녀는 1943년 3월 1일자 『타임』지 표지에 실렸다.

마을로 구휼미를 운반하는 구호대원.

구휼 수당을 지급받기 위해 등록 중인 이재민들.

막막하고 무력한 모습의 기근 피난민.

1944년 7월 마오쩌둥 등과 기념사진을 찍은 미군 시찰단. 왼쪽에서 세 번째가 존 스튜어트 서비스다.

연설 중인 장제스.

중일전쟁 시기의 탕언보.

남루한 옷차림의 이재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이재민.

기차 위의 이재민들.

기차역 근처에서 구걸하는 이재민.

대기근을 겪는 아이들.

쓸쓸한 이재민.

굶주린 채 땅에 쓰러진 이재민.

기근으로 굶주린 두 아이.

대기근 기간에 황폐해진 거리.

대기근 시기에 황무지가 된 도시와 시골.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