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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30. 13:25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09 스페인 내전

 

앤터니 비버 | 김원중 옮김

2013, 교양인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스페인 내전에 관해 더 덧붙일 것이 없는 책" _존 키건

 

The Battle for Spain

The Spanish Civil War 1936-1939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피카소의 <게르니카>, 로버트 카파의 <어느 병사의 죽음> 등 수많은 걸작의 배경이 된 전쟁, 현대사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수행된 이념 전쟁이자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던 전쟁,

스페인 내전을 빼놓고 20세기를 말할 수는 없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첫 장면부터 비버는 1930년대의 정치 풍토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놀라운 통찰력의 소유자인 비버는 백색 테러와 적색 테러가 난무하고, 혁명과 정치적 갈등이 전쟁의 경로를 바꾸며, 강대국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던 바로 그 내전의 한복판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 책은 스페인 내전을 다루는 모든 책들 가운데 첫 번째 자리에 오를 운명을 타고났다. _Santos Julia, El Pais

강렬한 서사와 냉정한 서술이 한데 섞여 놀라운 힘을 뿜어낸다는 점에서 앤터니 비버의 걸작 《스페인 내전》과 겨룰 작품은 없다. _Boyd Tonkin, The Independent

거장의 눈으로 포착한 전장의 인간 드라마가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무섭도록 생생한 전쟁 연대기. _Max Hastings, The Sunday Times

지난 수십 년 동안 출간된 스페인 내전 관련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책. _Rafael Nunez Florecio, El Mundo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책. 세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과 객관성의 측면에서 스페인 내전에 관한 최고의 책이다. _Richard Overy, The Evening Standard

명쾌하고 전문적이며 객관적이다. _The Economist

분열 과정에 놓인 국가와 사회를 생생하게 해부한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은 바로 우리 시대를 위한 정치 팸플릿이다. 《Stalingrad》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과 같은 풍부한 세부 묘사와 강렬한 서사의 힘으로 가장 그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_Piers Brendon, The Guardian 

비버는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둘러싼 정치적 책략을 탁월하게 분석했다. _Andrew Roberts, The Sunday Telegraph

마음을 사로잡는 책. 놀랄 만큼 선명하고 훌륭한 서사로 스페인 내전이라는 미로를 안내한다. _Allan Massie, The Literary Review

반드시 읽어야 할 책. _Raymond Carr, The Spectator

앤터니 비버의 저작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책이다. _Barrie Clement, Tribune

 

앤터니 비버(Antony Beevor, 1946~)

영국의 전쟁사학자이자 역사 저술가. 윈체스터 대학과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 1967~1970년 영국 제11경기병대 장교로 복무했다. 1975년 첫 소설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4편의 소설과 8권의 역사서를 출간했다. 치밀하고 객관적인 학자적 시각과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의 힘을 두루 갖춘 그의 역사 저술은 발표하는 책마다 찬사를 받았다. 스페인 내전 연구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스페인 내전은 2005년 스페인에서 먼저 출간되어 12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으며, 같은 해 스페인 최고 권위의 ‘라 방과르디아 상(La Vanguardia Prize)’을 받았다. 스페인

 

 

20세기 정치 이념들의 폭발 현장 '스페인 내전'의 결정판 

 

 

차례 

          감사의 말 
          머리말
          스페인 내전의 정당과 정치 단체들


제1부 제2공화정의 탄생
 

  제1장 스페인의 국왕들

           "백성과 만나는 것이 왕의 소망입니다."

  제2장 국왕의 퇴진

           "국민의 마음에서 왕은 죽었다."

  제3장 제2공화정

           "스페인은 민주공화국이다."

  제4장 인민전선

           "스페인 안에 러시아를 세우자."

  제5장 치명적인 무능

           "이것이 공화국인가?"

 

제2부 두 스페인의 전쟁

  제6장 장군들의 반란

           "우리와 뜻이 다른 자는 모두 적이다."

  제7장 주도권 다툼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8장 적색 테러

            "지하 세계가 혁명을 먹칠하고 있다."

  제9장 백색 테러

            "우리가 로르카를 죽였다."

  제10장 국민 진영

             "지성에 죽음을! 죽음 만세!"

  제11장 공화 진영

             "이제 여러분이 카탈루냐의 주인입니다."

  제12장 국민군 대 의용군

             "알카사르 이상 무." "규율은 죄악이다."


제3부 내전의 국제화

  제13장 외교 전쟁

             "공화 정부를 돕지 마시오."

  제14장 국가 만들기

             "하나의 조국, 하나의 카우디요."

  제15장 소련의 지원

             "스페인을 돕자, 은밀하게."

  제16장 국제여단

             "나는 붉은군대 출신의 용감한 수병."

  제17장 마드리드 사수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

 

제4부 대리인들의 세계 대전

  제18장 전쟁의 변모

             "단 1센티미터도 후퇴하지 말라."

  제19장 하라마 전투와 과달라하라 전투

             "파시즘과 무솔리니에게 치욕을!"

  제20장 바스크 전투

             "게르니카, 불타고 있음!"

  제21장 지식인들의 전쟁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제5부 내전 속 내전

  제22장 권력 다툼

             "공산주의자들에게 너무 많이 양보했다."

  제23장 전선의 분열

             "제5열의 정체가 드러났다. 트로츠키였다."

  제24장 브루네테 전투

             "이 버릇없는, 한심한 게릴라들."

  제25장 포위당한 공화국

             "구멍 뚫린 댐이지만 아직 쓸 만하다."

  제26장 아라곤 전투

             "스탈린주의 편집증이 다시 도졌다."

  제27장 공화주의 이상의 붕괴

             "우리의 지성을 모욕하지 말라."

 

제6부 파국으로 가는 길

  제28장 프랑코의 ‘승리의 칼’

             "프랑코의 칼이 스페인을 둘로 갈랐다."

  제29장 깨어진 평화 협상의 꿈

             "협상이라고?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제30장 스페인 만세!

             "위대한 지도자 돈 프란시스코 프랑코 바아몬데."

  제31장 에브로 강 전투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

  제32장 파시즘 진군과 유럽의 위기

             "국제여단 동지들이여! 여러분은 역사입니다."

  제33장 카탈루냐 함락

             "병든 바르셀로나는 정화되어야 한다."

  제34장 공화국의 붕괴

             "콘도르 군단의 임무가 끝났다."

 

제7부 끝나지 않은 전쟁

  제35장 옛 스페인의 귀환

             "나라를 구하려면 대수술이 필요합니다."

  제36장 망명자들

             "매일 100여 명이 죽어 나갔다."

  제37장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

             "제9중대라 불러주시오."

  제38장 무너진 대의명분

             "총알아, 증오 없이 죽여 다오."


          주석
          옮긴이의 말
          주요 인물
          스페인 연표
          찾아보기

 

국민 진영(nationalists)  공화 정부에 대항해 구데타를 일으킴으로써 내전의 계기를 제공한 우파 연합 세력을 가리킨다.

무어(Moor)인  아랍인, 스페인인, 베르베르인의 혼혈인 스페인계 이슬람교도. 무어인은 안달루시아 이슬람 문명을 창조했고, 그 후 11 ~ 17세기에 북아프리카에 피난민으로 정착했다.

재정복 운동  레콩키스타(Reconquista), 국토 회복 운동이라고도 한다. 718년부터 1492년까지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점령했던 이슬람교도들(무어인)로부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기독교 국가들이 벌인 일련의 전투.

이사벨 1세(Isabel Ⅰ, 1451 ~ 1504)  카스티야(1474 ~ 1504 재위)와 아라곤(1479 ~ 1504 재위)의 여왕. 1479년부터 남편인 페르난도 2세(1452 ~ 1516)와 함께 두 왕국을 공동으로 통치했다. 이들의 집권기에 스페인은 영구적인 통일을 이루었으며, 이사벨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스페인의 해외 식민 제국 시대가 열렸다.

알폰소 13세(왼쪽)와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 프리모 데 리베라는 1923년 9월 13일 프로눈시아미엔토를 단행하고 스스로 독재관의 지위에 올랐다. 알폰소 13세의 승인하에 권력을 장악한 그는 1930년 1월까지 정권을 유지했다.

1931년 4월 14일, 알폰소 13세가 왕위를 내놓고 스페인을 떠나자 거리로 몰려나와 환호하는 군중. 이날 스페인 제2공화국이 탄생했다.

1931년 7월 14일에 열린 제2공화국 헌법 제정을 위한 코르테스(의회) 개회식. 니세토 알칼라 사모라가 개회 연설을 하고 있다. 맨 앞줄이 의회 내 국무위원석인데, 오른쪽부터 알레한드로 레룩스, 페르난도 데 로스 리오스, 마누엘 아사냐, 산티아고 카세레스 키로가, 인달레시오 프리에토, 미겔 마우라, 마르셀리노 도밍고, 알바로 데 알보르노스, 프란시스코 라르고 카바예로가 앉아 있다.

1934년 10월, 아스투리아스 혁명이 실패하고 나서 치안대 대원들이 체포한 반란자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혁명은 겨우 2주 남짓 지속되었지만 사상자가 1천 명가량에 이르렀고 엄청난 재산 피해가 났다.

1936년 선거 유세 기간 중에 우익 진영과 인민전선은 치열한 선전전을 펼쳤다. 자치우익연합(CEDA)의 대표 힐 로블레스는 "저에게 절대 다수 의석을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위대한 에스파냐를 드리겠습니다."라고 쓰인 초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호세 안토니오 데 리베라(앞줄 가운데)와 그의 팔랑헤 동료들. 급진 우익 정당인 '에스파냐 팔랑헤당'은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유사한 권위주의적 독재 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다. 팔랑헤는 1936년 내전이 일어났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호세 안토니오 자신은 내전 초기에 인민전선 정부에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우파 지도자였던 호세 칼보 소텔로의 장례식. 좌우 대결이 폭력으로 분출되는 국면에서 소텔로는 1936년 7월 13일 좌파 쪽 젊은 장교들에게 암살당했고, 국민 진영은 이 사건을 쿠데타의 구실로 삼았다.

1936년 10월 4일, "저들은 결코 여기를 통과하지 못하리라(No Pasaran)"라는 구호를 만들어낸 돌로레스 아바루리, 일명 '라 파시오나리아'가 연설을 하고 있다.

돌격대와 전국노동연합 소속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들이 탈취한 야포를 끌고 바르셀로나 거리를 달리는 장면이다.

마드리드에서 군사 쿠데타는 계획부터 엉망이었고, 그 결과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다. 소총과 대검으로 무장한(물론 핸드백도 챙겼다) 여전사가 무장한 한 무리를 이끌고 있다.

카사데캄포는 '파세오'(처형하기 좋은 인적이 드문 곳) 장소로 유명했다. 공화군 병사들이 자신들이 막 처형한 것으로 보이는 2명의 민간인 시신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장면은 공화 진영의 최악의 이미지였고, 외국인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

스페인 내전으로 희생된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는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이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국민 진영에 의해 처형당했다.

20세기 스페인 문학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겔 데 우나무노. 스페인 내전 당시 살라망카 대학에 재직 중이던 우나무노는 국민 진영 지지자였음에도 공개석상에서 팔랑헤당과 반란군을 비판했다. 결국 그는 이 일로 가택 연금을 당했고 그해 말 사망하였다.

마드리드에서 활동한 공화 진영 여성 의용군. 내전 당시 전선에 배치된 여성 의용군은 1천 명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방에서 많은 여성들이 총을 들었고, 특히 마드리드에는 여성만으로 구성된 부대가 도시 방어에 참여했다.

1936년 7월, 국민 진영의 중요한 전력이었던 아프리카 군대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보내준 수송기 덕분에 본토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은 모로코에서 안달루시아의 세비야로 공수 작전을 펼친 독일 융커52기와 모로코 레굴라르들의 모습.

1936년 9월 중순 아라곤 전선에서 아나키스트 대장 부에나벤투라 두루티는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사진 속에서 그가 CNT(전국노동연합)라고 씌어진 지프차 위에서 농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프랑스 인민전선 연합 내각의 레옹 블룸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와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모리스 토레즈(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스페인 공화 정부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은 블룸 총리는 스페인의 분쟁이 더 넓게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영국의 경고에 따라 불간섭 정책을 택했다. 스페인 공화 정부는 서구 민주 국가들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독일 제3제국의 지도자 히틀러와 독일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 콘도르 군단을 비롯한 독일의 군수 지원은 국민 진영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괴링은 자기 부하들이 프랑코를 위해 싸우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공화 정부에 몰래 무기를 판매해 돈을 챙겼다.

'에스파냐'라는 비행단을 조직하여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군으로 참여한 작가 앙드레 말로. 그는 후에 스페인 내전을 다룬 《희방》을 발표하였다.

1936년 10월 부르고스에서 프랑코 장군(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총통 겸 국가 수반으로 임명된 직후에 찍은 기념 사진. 프랑코 오른쪽에 카바네야스 장군, 왼쪽에 살리케트 장군, 그리고 뒤에는 몰라 장군이 서 있다.

과다라마 산맥에 있는 공화군 군사 기지를 방문한 사회주의자 라르고 카바예로(가운데 중절 모자를 쓴 사람). '스페인의 레닌'이라 불렸던 급진적 사회주의자 라륵 카바예로는 1936년 9월 4일 히랄 총리가 퇴진한 뒤 새 정부의 총리가 되었다.

마드리드 외곽의 한 참호에서 <프라우다> 특파원인 미하일 콜초프(오른쪽)아 소련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로만 카르멘이 몸을 숨기고 있다. 이들이 보내온 스페인 내전 소식은 연일 모스크바의 극장과 신문을 장식했다. 소련은 스페인 공화 정부 지원을 소비에트 체제를 국내외에 선전하는 용도로 적극 활용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 진영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영국 작가 조지 오웰. 귀국 후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참혹하면서도 지리멸렬한 전장의 경험과 용감한 병사들의 이야기, 공화 진영을 자멸로 이끈 정치적 분열상 등을 적나라하게 그린 《카탈루냐 찬가》를 발표했다.

마드리드로 들어오는 국제여단 병사들. 내전 기간 동안 53개국에서 온 3만 5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국제여단 병사로 복무했다. 때로 짜릿한 스릴을 찾아서 또는 혁명적 낭만주의에 취해 자원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국제연단 병사 대부분은 이타적인 의도에서 파시즘을 막기 위해 참전했다.

엔리케 리스테르(가운데)와 혼성여단 병사들. 모스크바에서 군사 훈련을 받은 공산주의자 리스테르는 공화군에서 중요한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위험한 상황에서는 진군하지 않으려 하거나 허영심에서 적의 수를 몇 배나 부풀리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날 당시 마드리드 대사관에서 영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참혹한 전쟁과 가르시아 로르카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는 공화 진영 편에 서서 반(反)파시즘 운동에 앞장섰다. 열정적인 민중 시인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레케테(카를로스파 의용군)들이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한 사제로부터 축성(祝聖)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가톨릭 왕정을 지지했던 레테케들은 "승리에 대한 믿음과 신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지닌, 그리고 한 손에는 수류탄을, 다른 한 손에는 묵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페인 내전이 낳은 걸작 중 하나인 피카소의 <게르니카>. 피카소는 게르니카가 독일군의 융단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그림을 그렸다.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봄에 열린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스페인 공화 정부의 전시관은 <게르니카>로 유명해졌고, 이는 공화 진영이 선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화가 호안 미로가 공화 진영을 돕기 위해 1937년에 그린 우표 <스페인을 도웁시다(Aidez l'Espagne)>를 차용해 만든 공화 진영의 선전 포스터. 가장 혁신적인 선전 방법이었던 포스터는 충성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촉구하는 것에서 스파이와 성병을 경고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널리 활용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낚을 때 공화 진영 아나키스트 의용군 부대에 들어갔다. 평화주의자였던 그녀는 총을 들 수 없어 부대 취사병이 되었다. 그러나 요리를 하다가 끓는 기름에 심한 화상을 입어 포르투갈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통합노동자당 지도자 안드레스 닌(안경 쓴 사람)이 동료들과 함께 바르셀로나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1937년 5월 카탈루냐에서는 내전 속 내전이 일어나는데, 헤네랄리타트와 카탈루냐 공산당이 한편이 되고, 전국노동연합-아나키스트연합과 통합노동자당이 다른 한편이 되어 좌파 내 권력 장악을 위한 시가전을 벌였다.

아나키스트 지도자 후안 가르시아 올리베르가 카탈루냐에서 발생한 '5월사건' 기간 동안 냉정을 회복할 것을 호소하는 방송 연설을 하고 있다. 5월 사건의 결과는 아나키스트와 통합노동자당의 패배와 공산당의 승리였다.

1937년 5월 6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들어온 돌격대가 바르셀로나 시가지를 행진하고 있다.

브루네테 전투에서 제5군단 공산당 소속 지휘관 후안 모데스토. 외인군단 하사관 출신이며, 30대의 젊은 군인이었던 모데스토의 이 사진은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군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 선전물로 많이 쓰였다.

1937년 라르고 카바예로의 뒤를 이어 새로 총리에 오른 후안 네그린(왼쪽)과 국방부 장관을 맡은 안달레시오 프리에토. 온건 사회주의자였던 네그린은 소련의 후원으로 총리직에 올라 공화군이 패전할 때까지 내전을 지휘하였다.

 

전쟁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공화군을 열렬히 지지했던 카파는 <어느 병사의 죽음>을 비롯해서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던 중 자신의 연인이자 사진작가였던 게르다 타로를 잃었다.

스페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기여한 한 가지는 '푸른사단(Blue Division)'이라는 이름의 지원군을 보내 독일을 도운 것이다. 이 푸른사단은 1941년 7월부터 1943년 11월까지 러시아에서 싸웠다. 사진은 독일로 떠나는 푸른사단 병사들을 환송하는 군중의 모습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