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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10. 09:33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11 한나 아렌트의 말 - 정치적인 것에 대한 마지막 인터뷰

 

한나 아렌트 | 윤철희 옮김

2016, 마음산책

 

마침내 숨결을 허락한 긴장감 어린 텍스트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의 생생한 목소리

 

상당히 오랫동안 아렌트의 저술들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냈지만 그녀의 책은 항상 긴장감을 갖고 읽어야 하는 난해한 텍스트였다. 내로라하는 영어 실력자들도 종종 오역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길고 정교한 문장들은 그녀의 숨결을 느끼도록 결코 허락하진 않았다. 이렇게 묶여 출판되는 네 편의 인터뷰는 비록 글로 이루어진 것이긴 해도 마치 아렌트와 직접 대화를 나누듯 그녀의 사상 속에 담긴 숨결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무척 반갑다. 아렌트 생각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명하고 또 새로운 면을 드러내고 있어서, 아렌트를 보다 생생하게 그리고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해준다.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독일 태생의 유대계 미국 정치이론가. 1906년 독일 하노버(당시 독일제국 린덴)에서 태어났다. 철학이 단독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통찰에서 시작한다는 점 때문에 철학자로 불리길 거부하고 세계 안에서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인류를 주목해 정치이론가를 자처했다.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지금은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와 베를린에서 유대인보다는 독일인에 가까운 정서를 지니고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반유대주의를 접하고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자각했다. 청소년기 선생님에게 반항하여 퇴학을 당했지만 1924년 마르부르크대학에 들어가 철학과 신학, 그리스어를 공부했고, 이 시기 스승이던 마르틴 하이데거와 깊이 교류하다 얼마간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하이데거의 나치 동조 전력 때문에 훗날 고초를 겪기도 했다. 뒤에는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실존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를 사사했다.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만난 귄터 슈테른과 1929년 결혼해 베를린에서 신문기자로 일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 게슈타포에 체포돼 일주일간 감금당했고 유대인 박해 속에서 파리로 망명, 그곳에서 반나치 운동과 유대인 피난을 도왔다. 1937년에는 첫 남편과 이혼을 했으며 같은 해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1940년 독일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시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재혼했는데 그즈음 독일의 프랑스 점령과 비시정부의 유대인 탄압으로 위기가 고조되자 1941년 미국 뉴욕으로 다시 한 번 망명길에 올랐고, 이후 학계와 언론에 공헌하며 더는 적籍이 바뀌는 일 없이 미국 시민으로 살았다.
지은 책으로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 『과거와 미래 사이』(1961) 『혁명론』(1963)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1968) 『공화국의 위기』(1972) 등이 있다.
1975년 12월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마지막까지 해로했던 하인리히 블뤼허 곁에 묻혔다.

 

옮긴이 윤철희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영화 전문지에 기사 번역과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캐스린 비글로』 『스탠리 큐브릭』 『알코올의 역사』 『런던의 역사』 『위대한 영화1, 2』 『히치콕』 『지식인의 두 얼굴』 『제임스 딘』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저 에버트』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해제 | 아렌트 숨결이 깃든 대화록

 

무엇이 남아 있느냐고요? 언어가 남아 있어요

아이히만은 터무니없이 멍청했어요

정치와 혁명에 관한 사유 - 하나의 견해

마지막 인터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언제인지를 알고,

그걸 집어 들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미국에서, 1944

<추어 페르손>에 출연한 한나 아렌트의 모습(1964)

파리 망명 후 2년 뒤의 모습(1935)

미국에서, 1944

아이히만 재판 중 대중의 주목을 촉구하는 이스라엘 측 검사 기드온 하우스너(1961)

파리로 망명하던 해의 한나 아렌트, 1933

젊은 시절의 한나 아렌트, 연도 미상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린 예루살렘 법정의 모습(1961)

재판을 받는 아돌프 아이히만(196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처음 연재된 〈뉴요커〉 표지와 연재면(1963)

미국으로 망명하던 해의 한나 아렌트. 1941

베를린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이 독일의 긴급조치법 채택에 반대하던 모습(1968)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와 함께. 1961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면서 새로 설정된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선 오데르-나이세 라인. 동독과 달리 서독은 1970년까지 이 선을 인정하지 않아 소련 등 동구권과 마찰을 빚었다.

말년의 한나 아렌트. 1975

웨슬리언대학교 재직 시절. 1960년대 초

『전체주의의 기원』(195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한나 아렌트 사후 독일에서 발행된 우표(1968)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