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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7. 12:48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0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

이여신 지음

2014, 예문당

 

대야도서관

SB093727

 

650.4

이64ㄱ

 

인물화 속 사람들에 얽힌 흥미진진한 역사적 이야기들

 

세계의 유명한 인물화와 함께 떠나는

나흘간의 역사 여행

 

자, 모두들 선생님의 수업에 온 걸 환영한다. 이번에 너희들과 함께할 수업의 제목은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이야.

"에이~ 선생님, 어떻게 사람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요?"

하하, 표현이 좀 이상했을 수는 있겠다. 사람이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아니고, 그림의 모델이 된 역사 속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자는 뜻이야.

잠깐 눈을 감고 각자 머릿속에 아무 그림이나 하나씩 떠올려 보렴. 어떤 그림이든 상관없어. 그냥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인상 깊게 봤던 그림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봐.

어때, 무슨 그림이 떠오르니?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이삭 줍는 사람들 같은 명화가 떠오를 수도 있고, 그냥 주변에서 흔히 봤던 그림이 떠오를 수도 있을 거야.

자, 그럼 이제 그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응시해보렴.

그들이 너희들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지 귀 기울여봐.

- 본문 중에서 -

 

지은이 이여신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졸업. 역사콘텐츠연구회 '어제그리고오늘'을 통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저서로 『미래를 열어주는 세계 역사박물관』, 『특목고 엄마들』, 『어린이를 위한 고대문명사』, 『위인들의 재능이야기』 시리즈, 『천하무적 속담왕』 등이 있고, EBS 초등영어교재 『요요플레이타임』, 『똑똑 영어놀이터』를 기획한 바 있다.

 

차례

 

수업을 들어가기에 앞서

 

1ST DAY 역사에 남은 왕과 왕비들

 

헨리 8세 여섯 명의 부인을 두었던 드라마틱한 왕

엘리자베스 1세 평생 처녀로 살다 간 철의 여왕

루이 14세 짐이 곧 국가다

마리 앙투아네트 사치의 대명사가 된 비운의 왕비

마리아 테레지아 뛰어난 정치력을 지닌 합스부르크 여제

나폴레옹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강희제 천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명군

서태후 황제 위에 군림한 여인

빅토리아 여왕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건설하다

철종 '강화도령'이라 불린 조선의 임금

 

2ND DAY 누구를 그린 것일까?

 

왕회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신들

대사들 젊은 대사와 주교가 만난 까닭

모나리자 그녀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

레카미에 부인 나폴레옹 시대 '사교계의 꽃'이라 불린 여인

미인도 조선 최고의 미인도

루돌프 2세 과일 얼굴의 예술가 황제

시녀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한복 입은 남자 이탈리아의 조선 상인

윤두서 강렬하고도 고독한 자화상

눈 없는 최북과 귀 없는 고흐 눈과 귀를 없애버린 천재 화가들

하연 부부와 조반 부부 부부를 나란히 그린 뜻

사대부 여인 정말로 조 대비의 초상화일까?

 

3RD DAY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구려 고분 벽화 놀이를 즐긴 고구려 사람들

단오풍정 단오를 즐기는 여인들

수계도권 선비들, 시와 풍류를 즐기다

김홍도의 풍속화 조선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다

셔틀콕을 가진 소녀 소녀와 배드민턴

도박사기꾼 누구를 속이려고 하는 걸까?

은행가와 그의 아내 오늘은 얼마를 벌었을까?

해부학 강의 어리석음의 치유

선상 파티의 점심 파리지앵의 한가로운 오후

 

4TH DAY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수스 전투 동방을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

최후의 만찬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만찬

카노사의 굴욕 교황은 태양, 왕은 달

잔 다르크의 오를레앙 입성 프랑스를 구한 '오를레앙의 여자'

신대륙에 발을 디딘 사람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미국의 독립 선언 '그레이트 아메리카'의 역사가 시작되다

조선 통신사 행렬도 '한류'의 원조였던 조선 통신사

화성 행차도 정조가 화성으로 간 까닭은?

 

헨리 8세, 한스 홀바인

 

애인이나 후궁을 두는 왕은 많았지만 왕비를 여섯 번이나 바꾼 왕은 헨리 8세가 유일할 거야.

더구나 이혼이 허락되지 않았던 중세 가톨릭 시대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선 대단한 사건이었어.

 

자, 이제 그 유명한 여인인 '천 일의 앤', 앤 불린이 등장할 차례야.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그녀는 왕비로 즉위한 지 1000일 후에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천 일의 앤'이라고 불리고 있어. 앤 불린 역시 헨리 8세가 그토록 기다리던 왕자를 낳지 못했단다.

 

엘리자베스 1세

 

아버지의 카리스마와 어머니의 미모를 물려받은 엘리자베스 1세는 조그만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을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들어 놓았어.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버지 헨리 8세가 초석을 잘 다져놓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지?

현명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버지의 '업적'이 결코 헛되지 않게 만들었어.

그래서 지금까지도 영국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단다.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스 1세

 

중세 유럽에서는 하얀 얼굴이 미인의 첫째 조건이었어.

그것도 지나치게 하얀 피부 말이야.

 

루이 14세

 

그는 안에 담비 털을 덧대고 황금 백합 무니가 수놓아진 파란색 대관식 망토를 입고서 연단 위에 서 있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왕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대관식용 검,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 가발과 황금 목걸이, 황금 백합 무늬의 푸른색 방석 위에 놓여 있는 프랑스의 왕관 등이 그가 프랑스 왕임을 알려주고 있지.

 

루이 14세의 권위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베르사유 궁전이야.

베르사유 궁전은 당대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이었고, 명성에 걸맞게 지금까지도 화려함과 웅장함을 뽐내고 있지.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왕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15번째 딸로 태어났어.

그리고 열다섯 살에 프랑스 왕자 루이 16세와 결혼했지.

당시 유럽의 모든 왕실이 그러했듯이 정략결혼이었어.

 

마리 앙투아네트, 비제 르브룅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프랑스 왕실에서는 비제 르브룅에게

왕비를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리라고 명령했어.

오늘날처럼 미디어가 없을 때니 그림이 유일한 홍보수단이었기 때문이야.

일종의 '공익광고'였던 셈이지.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는 당대 유럽 최고의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했어.

마리아는 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최고 명문인 합스부르크가의 공주였단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는 여인이었지.

 

나이 든 마리아 테레지아

 

프란츠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라고는 하나

진짜 상속녀는 그녀였던 만큼 실권은 그녀에게 있었어.

게다가 프란츠는 정치적으로 유능하지 못했어. 그녀는 그런 남편을 대신해

정치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사실상 여제나 다름없었단다.

 

나폴레옹, 자크 루이 다비드

 

사실 그는 프랑스의 외딴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시골뜨기'에 불과했어.

거기다 외모까지 아주 볼품이 없었단다. 키도 작고 왜소해서 어딜 가나 놀림감이 되었지.

그렇지만 그는 그런 놀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어.

자신은 조국 프랑스를 위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역시 크게 될 사람은 생각하는 크기도 다른가봐.

 

강희제

 

황금색은 세상에서 오로지 한 사람. 중국 황제에게만 쓸 수 있었어.

동아시아에서는 오직 중국에만 황제가 있었다는 건 알지? 중국 사람들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나라의 왕도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어.

거기다 동아시아 거의 모든 나라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지.

 

서태후

 

그녀는 빼어난 미모와 말재주까지 갖추고 있어서 함풍제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어렵지 않았어.

게다가 황제를 모시는 환관들의 지지까지 받고 있어서 더욱 황제와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고 해.

불행인지 다행인지 함풍제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어 6살 난 그녀의 아들 동치제가 황제가 되었지.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권력이 그녀 손아귀에 들어온 거야.

 

서태후가 부린 사치의 절정은 이화원이야. 지금은 중국의 유명한 관광명소가 된 이화원은 그녀의 별장이었단다. 서태후는 청일전쟁 당시 함대를 만들 돈을 빼돌려 이화원을 꾸몄어.

나라의 존망이 달린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 비용으로 처소를 꾸몄다니 상식 밖의 일이지.

이화원은 지금 봐도 그 화려함에 혀를 내두르게 돼.

특히 인공으로 만든 호수는 마치 바다와도 같이 넓단다.

 

빅토리아 여왕

 

19세기는 영국의 시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기를 맞이했단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여인이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야.

 

'위대한 영국'을 건설한 빅토리아 여왕은 이미 죽었지만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는 그녀의 이름이 남아있어.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 싱가포르,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많은 나라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장소들이 많아.

 

철종 어진

 

 

왼쪽의 그림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고 오른쪽 그림이 영조의 어진이야.

특히 영조의 어진은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어진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작품이지.

영조의 날카로운 눈매와 고집 세 보이는 표정 등이 당장이라도

그림에서 튀어나올 것 같이 사실적이지 않니?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많던 어진들은 하나둘씩 없어졌거든.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같은 큰 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 불타버렸고, 현재는 태조 이성계, 영조, 철종, 고종의 어진만 남아있단다.

 

왕회도

 

 

이 그림은 <당염립본왕회도>라는 직공도로 종이가 아닌 비단 위에 그려졌어.

중국에서는 조공하러 온 외국의 사신들을 이렇게 비단에 그려서 기록으로 남겼는데, 후세에 다시 그려진 것이란다.

 

대사들, 한스 홀바인

 

프랑스는 당시 영국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당트빌과 셀브를 영국에 보낸 거라고 기억하면 돼.

셀브는 1533년 5월 당트빌을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그때 홀바인에게 당트빌과 함께 그림을 의뢰했어.

그러니까 이 둘은 영국에서 할동한 프랑스 첩보원이었던 거지.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는 얼굴로 유명한데 그것은 그녀만의 개성이 아니야.

그 시기에는 넓은 이마를 가진 여인이 미인이었기 때문에 여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썹을 뽑았어.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이마가 넓어 보였을 테니까.

 

 

이 그림은 <모나리자> 못지않게 유명한 그림으로,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작품이야.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렸는데

네덜란드에서 절대로 해외 전시를 허락하지 않는 그림으로도 유명하지.

 

레카미에 부인, 자크 루이 다비드

 

그녀는 그림 속에서 우아한 흰 드레스를 입고 있지. 허리선이 가슴에 오는 드레스 말이야.

이 드레스는 '엠파이어 드레스'라고 불리는 당대 최고의 유행 패션이었어.

이 드레스가 얼마나 유행이었냐면 여인들이 한겨울에도 이 원피스 입기를 고집하다가 폐렴에 걸려 죽어나가기도 했다는구나.

이 드레스를 유행시킨 인물은 나폴레옹의 부인 조세핀이란다.

 

 

그녀가 제라르에게 의뢰했다던 초상화도 지금까지 남아 있단다.

그 그림 속 레카미에 부인은 다비드의 그림에 비해 훨씬 관능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미인도, 신윤복

 

서양은 여인의 그림을 상당히 많이 그렸지만, 동양에서는 여인의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단다.

그래서 미인도는 고사하고 여인의 초상화조차 남아있는 게 거의 없지.

특히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조선 시대에는 여인의 모습을 담는 것 자체가 금기였어.

 

루돌프 2세, 아르침볼도

 

이 '괴짜 황제' 루돌프 2세는 예술을 사랑한 황제로 유명해. 장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그는 황제라는 권위에는 관심이 없었어.

오로지 학문과 예술에 몰두해서 물리, 화학, 천문학 같은 과학 연구에 열정을 쏟는 한편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지. 당대 뛰어난 그림들을 수집하면서 화가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었고 말이야.

 

 

어려서부터 스페인에서 전통적인 궁중 법도를 익혀서인지

루돌프는 평생 점잖고 예의 바르고 조용했어.

점잖은 것이 지나쳐서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집안에 혼자 있기를 좋아했지.

그리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천문학이나 연금술 등

초자연적이고도 비밀적인 학문에만 흥미를 가졌어.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이 그림을 딱 보면 처음에는 예쁘고 깜찍한 공주에게 시선이 가지만 보면 볼수록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단다. 공주를 보고 난 다음에는 공주를 시중들고 있는 시녀들이 눈에 들어오지? 특히 오른쪽에 있는 여자 난쟁이 시녀는 한번 보면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 깊어.

 

 

그녀 역시 루돌프 2세처럼 합스부르크 왕가의 핏줄이기 때문에 주걱턱을 피할 수 없었어.

저번 시간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저주'라 불리는 주걱턱 얘기를 잠깐 했지?

이 기형적인 모습의 주걱턱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무서운 유전병이란다.

 

'한복을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 루벤스(Peter Paul Rubens, 벨기에, 1577-1640)

 

그림이 공개되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

그림 속 주인공이 한복을 입고 있었거든. 그림을 한번 보렴.

조선의 화풍과는 달라서 느낌이 다르지만 확실히 한복을 입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겠지?

 

윤두서 자화상

 

그림을 보면 그의 뛰어난 솜씨를 알 수 있어. 정면을 응시하는 눈과 매서운 눈매, 구레나룻과 턱수염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특히 수염 터럭을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그렸지.

 

눈 없는 최북과 귀 없는 고흐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고흐는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어.

경매로 나온 그의 그림들은 가장 비싼 값에 팔리고 있는데, 580억 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고 해.

 

하연 부부

 

하연은 바로 그 정몽주의 제자였어.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자 1396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지.

정몽주의 제자답게 항상 겸손하고 의연한 자세를 지녀 태종 이방원의 신임을 받았다고 해.

태종이 직접 그의 손을 잡고 치하할 정도였다니까 그의 학식이나 인품은 당대 최고였을 거야.

 

조반 부부

 

조반이라는 신하와 그의 부인으로, 앞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부부 초상화야.

조반도 하연과 마찬가지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때 사람이지.

 

사대부 여인의 초상화 - 조 대비?

 

조선 시대에는 여인의 초상화가 거의 그려지지 않았어. 사대부 집안 여인이나 여염집 아내, 그리고 기생까지 포함해 알려진 작품 수가 10점이 안 되지. 왕실 여인의 그림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조선 초기에는 왕비의 초상화가 그려진 사실이 있지만 후기로 갈수록 여인의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어.

 

장천 1호분 벽화

 

고구려 사람들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고 믿었어.

무덤 주인이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승에서 계속 살아남고 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무용총 무용도(위), 수산리고분 벽화(아래)

 

고구려 사람들은 가무와 놀이를 즐겼어.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풍악을 울리며 춤추고 노래했지. 그건 우리 민족의 특징이기도 하단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아.

 

단오풍정, 신윤복

 

수계도권, 유숙

 

왕희지는 중국 동진 시대의 서예가로 고금을 막론하고 첫째로 손꼽히는 서예가란다.

해서, 행서, 초서의 각 서체를 완성함으로써 서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지.

어장, 김홍도

 

 

누가 이 대장간의 주인일까?

모루 위에 쇠를 놓은 남자가 바로 대장간의 주인인 대장장이란다.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다 나이도 가장 많이 들어

보이는 걸로 봐서 쉽게 알 수 있지. 그는 숙련된 포즈로 달궈진 쇠를 다루고 있어.

 

김홍도는 우리나라 최고의 풍속화가답게 당시 조선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화폭에 담았단다. 조선 후기 우리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지.

 

 

먼저 아래 오른편에 웃통을 벗어 제치고 앉은 사람이 만지고 있느느것이 담뱃잎이야.

그렇게 담뱃잎을 가지런히 20장 정도 모아서 작두로 잎을 가늘게 써는 거지.

옛날에는 이렇게 자른 담뱃잎을 돌돌 말아 장죽에 넣어 피웠단다.

오늘날의 담배와는 많이 다르지.

 

힘겨루기를 하는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잡은 양손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구경꾼들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고유 겨루기인 씨름의 역동성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단다.

 

셔틀콕을 가진 소녀, 장바티스트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Simeon Chardin, 1699-1779)

 

배드민턴은 귀족들이 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엄격한 매너를 갖춰야 했어.

그래서 높은 컬러가 붙은 셔츠에 웃옷을 단정히 입고, 실크 해트(예장용 모자)를 쓴 복장으로 게임을 했단다.

도박사기꾼,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스페이드, 다이아, 하트, 클로버의 네 문양은 당시 유럽의 신분 계급을 상징하고 있어.

하트는 성직자의 성배, 스페이드는 군인의 검, 다이아몬드는 상인을 상징하는 화폐, 클로버는 농민을 상징하는 곤봉이지. 스페이드, 다이아, 하트, 클로버의 순서로 내려갈수록 힘이 약해진다고 해.

 

은행가와 그의 아내, 쿠엔틴 마시스(Quentin Massys)

 

아내의 행동도 아주 재미있어.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기도서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책보다는 돈을 세는 남편에게 집중하고 있어.

경건한 마음을 지녀야 하는 아내의 정신은 온통 돈에만 가 있는 거지.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렘브란트

 

기독교 중심 사회였던 중세 유럽에서는 사람의 목숨은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의술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지. 모든 걸 신에게 맡기면 되었으니까.

그나마 이슬람 문화권과 동양에서는 중세 유럽에 비하면 수준 높은 의학이 발달했어.

 

선상 파티의 점심, 르누아르

 

19세기 중반 파리에는 새로운 유행이 번지고 있었어.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 강을 찾아 뱃놀이를 즐기고 밤에는 물랭 루주에 모여 화려한 공연을 즐기는 것이었지. 파리 교외의 센 강 주변은 최고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는데 뱃놀이가 새로운 트랜드로 떠올랐다고 해.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 - 이수스 전투

 

로마의 도시 폼페이는 화산 폭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오랫동안 잊혀 있었어.

문헌을 통해 폼페이의 비극은 알려져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었지.

그러다가 18세기 중엽 스페인 국왕의 후원 아래 폼페이 유적이 대대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단다.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많은 화가들이 최후의 만찬을 그렸지만 다 빈치의 그림이 가장 유명한 것은 제자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야.

다 빈치는 이 그림에서 제자들의 반응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어.

마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때 그 장소에서 벌어진 일들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카노사의 굴욕

 

가톨릭교는 중세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정신세계까지도 지배하고 있었어.

오늘날처럼 하나의 신앙으로서 믿는 차원이 아니라 관습, 규범을 만들어냈고 성서의 말씀이 곧 법이나 다름없었지.

 

잔 다르크의 오를레앙 입성

 

잔 다르크는 백년전쟁이 끝나갈 무렵의 프랑스 동레미에서 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났어.

어렸을 때부터 신앙이 독실했던 잔 다르크는 16세 즈음 천사의 계시를 들었단다.

천사들은 그녀에게 샤를 왕세자를 도와 영국군과 그들을 돕는 부르고뉴를 몰아내고 프랑스를 구하라고 명령했다고 해.

 

신대륙에 발을 디딘 사람들

 

당시 유럽 사람들이 가장 멀다고 여긴 나라는 카다이(중국), 인도, 그리고 지팡구(일본)였어.

유럽 사람들에게 이곳은 비단과 향료, 황금과 보물이 넘쳐나는 꿈의 나라였지.

콜럼버스는 중국, 인도를 거쳐 일본까지 가서 황금을 얻고 싶어했단다.

거기에 또 하나, 부르는 게 값이었던 향신료레 대한 유혹도 컸어.

 

미국의 독립 선언, 존 트럼블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곳이 아메리카라는 걸 몰랐어.

이후 수많은 탐험가들이 그가 개척한 바닷길을 따라 항해에 나섰고, 남아메리카가 추가로 발견되면서 유럽 각국의 식민지화가 이루어졌단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싸웠지.

 

조선 통신사 행렬도

 

통신사들은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함께 데리고 갔어.

통역관과 군관은 물론이고 의원, 화가, 인쇄공, 악공도 데려갔단다.

그러니까 통신사는 단순한 외교사절이 아니고 문화 전파사였던 거야.

 

화성 행차도

 

조선 시대의 의궤 가운데서도 빼어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어.

장대한 행차와 회갑연 장면은 물론이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 행차에 동원된 사람이나 물건들, 궁중의 음식문화, 위풍당당한 군사들의 모습, 왕의 의장 행렬, 행사 기구 등 다양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야.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