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today
  • yesterday
2016. 11. 18. 17:07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5 신정일의 한강역사문화탐사

 

신정일 지음

2002, 생각의 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8567

 

981.1

신73한

 

탐사와산책 14

 

역사와 삶의 궤적을 쫓아, 천삼백 리 한강의 물길을 따라 걷다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___니체

 

신정일

1954년생. 문화사학자로 역사 관련 저술활동을 전개해 가고 있는 작가이자 도보여행가이다. 그는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펼쳤고,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사업회에 참가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손화중 장군 추모사업회를 조직하여 덕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는 데 노력하기

 

차례

 

발문 | 길을 떠나면서

 

제1구간 잠시 맡겼다가 돌아갈 뿐이다___검용소에서 아우라지까지

 

1일 봄물 드는 버들강아지를 바라보며 33km

      태백으로 가는 길 | 내린 눈 다 녹지 않고 | 보통 물보다 무거운 우통수 물 | 한강의 발원지 아래 첫 마을 안창죽 | 흔들흔들 구름다리를 지나 | 나는 신랑 얼굴도 몰라 | 그렇게 좋으면 와서 살아봐 | 석유를 배 아플 때 먹는 약이라고 여기던 시절

 

2일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서 있는 것도 위험하고 36km

      골지리가 아니고 고기리이다 | 흰구름 뜬 고개 위에 | 그림 같은 구미정 아래 강물은 흐르고 | 받아들인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 것

 

3일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아리랑 아라리요 13.5km

      사라진 물줄기 | 아우라지에 접어들다

 

제2구간 일백번 굽이친 강물은 멀리 바다로 흐르고___아우라지에서 문산나루까지

 

4일 얕은 내도 깊게 건넌다 38km

      아우라지에서 배를 타다 | 강가에는 수진달래가 피어 있고 | 시냇물에는 멈춰선 물길이 없다 | 낯선 곳에서 만난 남난희 씨| 꿩꼬치산적은 사라지고

 

5일 기억의 강, 망각의 강 35km

      잊어버릴 줄 모르는 이 마음이 슬픔 | 하늘이 낮아 재 위는 겨우 석 자 높이 | 일천 산엔 겹겹 푸르름이 가로놓였고 | 지루하고 가파른 산길만이 이어지다 | 떼돈을 벌었던 떼꾼들은 사라지고

 

6일 동강의 섬 절매마을에 갇혀서 12km

      백룡동굴은 강 건너에 | 황새여울에는 강물만 흘러가다 | 돌아가자 돌아가자 산을 휘돌아 돌아가자

 

제3구간 얕은 물은 요란스럽게 흐른다___어라연에서 충주나루까지

 

7일 동강의 절경 어라연 43km

      강가의 뽕나무엔 오디가 주렁주렁 | 떼꾼들의 무덤 된꼬까리여울 |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 꽃밭여울에 강물은 흘러가고 | 정조의 태실이 있는 계족산 | 상리나루에서 온달의 장사를 지내고 | 남한강변에 어둠이 내려앉다

 

8일 오른 만큼 내려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 28km

      온달산성에는 안개가 지욱하고 | 물맛이 단 단물내기 | 곳곳에 온달의 전설이 남아 | 올 때도 문득 오고, 갈 때도 문득 간다 | 도전리에서 태어난 삼봉 정도전

 

9일 나그네 꿈이 땅울림에 놀라 깨니 12km+배타고 40km

      수몰지에 얽힌 사연 | 꽃거리에 꽃은 없다 | 하늘로 통하던 다리 우화교 | 열 걸음을 걷는 동안에 아홉 번을 뒤돌아본다 | 물은 갈수록 겹겹이요, 또 산은 거듭거듭

 

제4구간 강산은 만고의 주인 사람은 백년의 손님___충주나루에서 이포나루까지

 

10일 내 마음이 네 마음이다 32km

        어디로 날아가는 새들이여! | 탐금대에는 신립의 자취가 남아 | 충주 달천의 물이 천하에 으뜸가는 물맛 | 나라의 중앙에는 중앙탑이 남아 | 목계나루에는 나룻배가 없다 | 강산은 만고의 주인 사람은 백년의 손님

 

11일 진리가 샘물처럼 솟아나다 30km

강여울에 떠가던 떼배는 사라지고 | 남한강으로 섬강이 접어들다 | 도는 어디로 뻗어 있는가 | 전국의 3대 선원 고달선원 | 고달사지에는 석물만 남아 있고 | 이색의 마지막을 지켜본 남한강 | 강물은 유유히 흘러서 가고

 

12일 그 아름다운 물집에 관한 보고서 20km

       열일곱 개의 물집 | 아파트 쇠창살 안에 갇힌 청심나루터 | 여주에서 북간도마을을 만나다 | 이포나루에서 여정을 풀다

 

제5구간 남한강과 북한강이 몸을 합하고___이포나루에서 뚝섬까지

 

13일 혼자 감당해 낸 그 세월의 그림자들 33km

파사산성에 피어난 달맞이꽃 | 진달래꽃이 많이 피는 꽃봉 | 양근포구에는 물결만 일렁이고 | 상심이나루와 한여울나루 | 드디어 두물머리를 만나다 | 서거정이 극찬한 수종사

 

14일 드디어 한강으로 거듭나다 32km

        다산의 탯자리 능내리 | 천주교의 은인 정약용 | 다시 꽃밭을 지나며 | 더 멀리 뛰기 위해 몇 걸음 뒤로 물러선다 | 길가에 열려 있는 천도복숭아 | 배암드리성이 바람드리성이 되다

 

제6구간 어머니의 젖줄 같은 달디단 강물___압구정동에서 보구곶리까지

 

15일 나루터마다 놓인 저 다리들 35km

       압구정에는 무지개 개울이 있다 | 뽕나무가 많았던 잠실 | 노량진에는 배다리가 설치되었다 | 마포 새우젓 장수 왕십리 미나리 장수 | 고려시대 귀양지 여의도 | 안양천에서 유전油田을 보다 | 방화대교 아래에서 고기를 낚다

 

16일 휴전선은 강물 위에도 있다 28km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보이다 | 적은 이곳을 보고 있다 | 애기봉을 목전에 두고 | 한강의 하구 보구곶리

 

참고문헌

 

쾌락은 우리를 스스로에게서 멀리 떼어놓는다.

그런데 여행은 우리를 제자리로 데리고 가는 하나의 고행이다. --- 카뮈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 니체

 

한강漢江은 도성 남쪽 10리 지점 곧 목멱산木覓山(남산) 남쪽(한남동)으로 옛날에는 한산하漢山河라 하였다. 신라 때에 북독北瀆, 고려조에서는 사평도沙平渡라고 하였는데 민간에서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 이름하였다. 그 근원이 강릉부의 오대산 우통于筒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충주 서북쪽에 이르러 안창수安倉水(섬강)와 합하고 양근군楊根郡 서쪽에 이르러 용진龍津과 합하며 광주 지경에 이르러 도미진渡迷津이 되고 광진廣津(광나루)이 되고 삼전도三田渡가 되며 두모포豆毛浦(두뭇개)가 되며 경성 남쪽에 이르러 한강도漢江渡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흘러서는 노량이 되고 용산강이 되며 또 서쪽으로 가서 서강西江이 되고 시흥현 북쪽에 이르러서 양화도楊花渡가 되며 양천현 북쪽에서 공암진孔巖津이 되며 교하군 서쪽에 이르러 임진강과 합하고 통진부 북쪽에서 조강祖江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 한강 『동국여지승람』

 

오대산 서대西臺 장령長嶺 밑에 샘물이 솟아나는데 그 빛깔이나 맛이 특이하였다. 무게도 보통 물보다 무거웠고 사람들은 그 샘물을 우통수于筒水라고 불렀다. 우통수는 바로 한강의 수원이다. 사람들은 우통수의 빛과 맛이 변하지 않음이 마치 중국 양자강의 경우와 마찬가지라는뜻에서 중령中泠이라고도 불렀다. 중령이란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물 이름인데 여러 줄기의 냇물이 모여서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지만 중령의 물만은 다른 물과 어울리지 않고 그 찬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고사를 말하는 것이다.

- 우통수 권근, 기문記文

 

걷는 것과 사고하는 것은 두 가지 형태의 동일한 개념이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다. 걷기를 선호하는 사람은 생각하기를 선호한다고. --- 토마스 베른하르트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맑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 공자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그날

빨갱이 마을이라 하여 남녀 중학생들을 금악 벌판으로 몰고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데 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아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 <한라산> 시인 이산하

 

 

풀리는 한강가에서

 

서정주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은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니풀 같은 것들

또 한 번 고개 숙여보라 함인가

황토언덕

꽃상여

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 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걸쳐놓은 하나의 밧줄이다.

하나의 심연을 건너가는 밧줄인 것이다.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그 위에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를 돌아보는 것도 위험하다. --- 니체

 

봉산리 강가의 구이정(구미정?)에서 목을 축이고

조선 숙종 때 이조참의를 지냈던 이치가 기사사화를 피하기 위해 이곳 봉산리에 은거하면서 세웠다고 한다.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귀거래사

 

도연명

 

그만 두어라

이 우주간에 몸 맡길 날이 얼마나 남았는가

어찌 마음대로 머물고 나아가지 못하는가

무엇을 위하여 허겁지겁 어디로 가려는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는

……

기분이 좋을 때는 홀로 나다니고

대대로 지팡이 꽂아놓고 김을 매노라

……

잠시 자연에 맡겼다가 돌아갈 뿐이다

 

침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은 어렵다. --- 니체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 --- 루소

 

봄 강에 홀로 낚싯대 드리우다

 

대숙륜

 

홀로 봄 강에 낚싯대 드리우니

봄 강의 흥취가 마냥 길구나

풀밭에 서린 안개 파랗고

꽃잎 떠가는 강물 향기롭다

마음은 백사장과 갈매기와 같아

뜬구름 같은 인생을 쪽배에 실었노라

연잎 옷은 애당초 먼지에 물들지 않았으니

무삼 창량수에 빨래를 하랴?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상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 정선아리랑

 

아우라지나루의 처녀상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옛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아우라지 건너편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연애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유천리에 있는 싸리골에서 서로 만나곤 하였다. 그러나 어느 가을에 큰 홍수가 나서 아우라지에 나룻배가 다닐 수 없게 되자 그 처녀는 총각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정선아리랑 가락에 실어 부르게 된 것이란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 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서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정선읍내 일백오십 호 몽땅 잠들여놓고서

이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을 넘자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저 건너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날과 같이 또 한 해 묵네

 

당신은 나를 흙싸리 껍질로 알아도

나는야 당신을 알기를 공산명월로 알아요

- 정선아리랑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어떠한 굳세고 강한 것도 물을 이기지는 못한다.

- 노자

 

모래내

 

김지하

 

목숨

이리 긴 것을

가도 가도 끝없는 것을 내 몰라

흘러 흘러서

예까지 왔나 에헤라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한없이 머릿속으로 얼굴들이 흐르네

막막한 귓속으로 애 울음소리 가득 차 흘러 내 애기

핏속으로 넋 속으로 눈물 속으로 퍼지다가

문득 가위소리에 놀라

몸을 떠는 모래내

철길에 누워

 

한 번은 끊어버리랴

이리 긴 목숨 끊어 에헤라 기어이 끊어

어허 내 못한다 모래내

차디찬 하늘

 

흘러와 다시는 내 못 가누나 어허

내 못 돌아가 에헤라

별빛 시린 교외선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어떠한 굳세고 강한 것도 물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것은 물보다 더욱 약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을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단지 실천하지 않을 뿐이다.

- 노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시냇물에는 멈춰선 물길이 없다.

- 곽백

 

청학동에 사는 남난희

- 내가 걷는 백두대간 28

 

이성부

 

세석에서 내려오니 남난희가 있더라

키를 넘는 산죽발 헤쳐서 몇 십 리

삼신봉 아래 청학동 골짜기

물어물어 찾아드니 그녀는 찻집 주인

다섯 살짜리 아들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내 마음 어디로 가는 길을 잃었구나

사람이 바라보는 것이 반드시

예전 그 자리 그대로는 아닌 것처럼

보여지는 것 또한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음을

산에 와서 내가 배운다

녹차 한 잔 마시고 책 한 권 빼어들고

뒤돌아보며 손짓하며 내려간다

내 슬픔도 포개어 배낭에 넣어두고

천천히 청학동을 내려간다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산 너머 고개 너머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나는 남따라 따라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왔네.

산 너머 고개 너머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 칼 부세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두보

 

좋은 비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곧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스며들어

소리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신다

들판 길 구름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의 불만이 밝다

새벽녘 분홍빛 비에 젖은 곳 보니

금관성錦官城에 꽃들 활짝 피었네

 

동강 12경

 

1경 - 가수리 느티나무와 마을 풍경

2경 - 운치리의 수동(정선군 신동읍) 섭다리

3경 - 나리소와 바리소(신동읍 고성리~운치리)

4경 - 백운산(고성리~운치리, 해발 882.5m)과 칠족령(덕천리 소골~제장마을)

5경 - 고성리 산성(고성리 고방마을)과 주변 조망

6경 - 바새마을 앞 뼝대

7경 - 연포마을과 홍토 담배 건조막

8경 - 백룡동굴(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9경 - 황새여울과 바위들

10경 - 두꺼비바위와 어우러진 자갈, 모래톱과 뼝대(영월읍 문산리 그무마을)

11경 - 어라연(거운리)

12경 - 된꼬까리와 만지(거운리)

 

가수리마을의 700년 된 느티나무 700여 년 전 강릉 유씨가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평화로운 정경을 자아낸다.

 

꽃은 누구를 위하여 피고 지는가

 

엄운

 

봄볕 아장아장 어디로 돌아가는가

새삼 꽃 앞에서 술잔 잡아들었네

종일토록 꽃에게 물어도 꽃은 말이 없는데

누굴 위하여 시들고 누굴 위하여 지는가

 

가자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 김수영

 

숲에서 혼자 그렇게 걸었다

아무것도 찾지 않으면서

그것이 내 의도였다

- 괴테

 

일천 산엔 겹겹 푸르름이 가로놓였으니 한 가닥 길은 푸른 공중으로 들어간다

- 이색

 

벼랑을 따라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길이 있구나.

옛 읍이 산을 의지하였는데 산은 성을 이루었네

- 한철중

 

하늘 모양은 작기가 우물 속에 비쳐서 보이는 것 같고 산의 푸르름은 멀리 구름 위에 가로놓였다.

- 정추

 

산마을에 돼지 배부름은 반드시 새벽에 물 먹인 것이 아니요 이웃집 닭이 살쪄도 날마다 훔쳐가는 자 없다

- 안축

 

피곤한 말이 실 같은 가는 길을 뚫고 가기를 근심하니 어지러운 산봉우리들이 높고 깎아지른 듯하여 겹으로 된 성과 같구나. 바람이 바위틈에서 나오니 대포의 수레가 구르는 것 같고, 물이 마을을 안고 흘러 한 필 흰 비단 가로놓은 것 같다. 몸은 이 세상 백 년에 두 귀밑이 희어졌고, 물과 산 처리 길에는 벼슬살이하러 다니는 심정이 서럽구나. 난간에 의지해 앉아 동산의 달을 기다리노니, 밤이 고요하여 시 생각이 오랠수록 더욱 맑아진다.

- 성현

 

물에는 원래 동쪽으로 흐르는 물, 서쪽으로 흐르는 물이라는 구분이 없다. 그러나 위로 흐르는 것,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는 구분도 없는가? 인간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 않는 물이 없다. 지금 만일 물을 손바닥으로 쳐서 튀어오르게 한다면 사람의 이마 위로 넘어가게도 할 수 있고 또 물길을 막아서 역류시킨다면 산 위로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는가? 그것은 단지 외부적인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일 뿐이다. 사람도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악한 짓을 할 수 있지만, 그 본성은 역시 물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 맹자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나룻배와 행인」

 

 

우리집의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셨나

 

 

강물은 돌고 돌아 바다로 나가지요.

이내 몸은 돌고 돌아 어디로 가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 정선아리랑

 

한가한 사람이 아니면 한가함을 얻지 못하니

한가한 사람이 바로 등한한 사람은 아니라네.

- 『문가유림』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가지만

돈으로 사귄 정은 잠깐이라네

돈 쓰던 사람 돈 떨어지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 맞은 국화라

놀다 가세요 쉬다 가세요

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

황새여울 된꼬까리에 떼 띄워놓았네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놓게나

 

 

나는 누구냐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미친 듯이 소리쳐 옛 사람에 물어보자

옛사람도 이랬더냐 이게 아니더냐

산아 네 말 물어보자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림자는 돌아다봤자 외로울 따름이고

갈림길에서 눈물 흘렸던 것은 길이 막혔던 탓

삶이란 그날 그날 주어지는 것이었으며

살아생전의 희비애락은 물 위의 물줄 같은 것

그리하여 말하지 않았던가

이룩한 미완성 하나가 여기 잇노라고

혼이여 돌아가자 어디인들 있을 데 없으랴

- 매월당 김시습

 

원통한 새가 되어서 제궁을 나오니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밤마다 잠들려 해도 잠 못 이루어

어느 때 되어야 이 한이 다 할꼬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 흘러서 봄꽃은 붉다

하늘도 애끓는 소리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시름에 찬 내 귀에는 잘도 들리는고

- 단종 <자규시>

 

남한강에서

 

김지하

 

덧없는

이 한때

남김없는 짤막한 시간

머언 산과 산

아득한 곳 불빛 켜질 때

 

둘러봐도 가까운 곳 어디에도

인기척 없고 어스름만 짙어갈 때

오느냐

이 시간에 애린아

 

내 흐르는 눈물

그 눈물 속으로

내 내쉬는 탄식

그 탄식 속으로

네 넋이 오느냐 저녁놀 타고

 

어둑한 하늘에 가득한 네 얼굴

이 시간에만 오느냐

남김없는 시간

머지않아 외투깃을 여미고

나는 추위에 떨며 낯선 여인숙을

찾아나설 게다

 

먼 곳에 불빛 켜져 주위는

더욱 캄캄해지는 시간

이 시간에만 오느냐

짤막한 덧없는 남김없는

이 한때를

애린

 

노을진 겨울강 얼음판 위를

천천히 한 소년이

이리로 오고 있다

 

 

이렇게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어느 날 문득

삶의 길에서 죽음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태어남, 만남,

그리고 죽음들이 길 위에서 비롯되고 길 위에서 끝맺음을 하니.

 

온달산성에 올라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의 사람이다. 얼굴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으나 속마음은 아주 맑았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구걸한 음식으로 어머니를 봉양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 공주가 장성하자 왕은 상부의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였다. 공주는 "대왕께서는 항상 '너는 필시 온달의 아내가 되리라'고 말씀하시더니 지금은 어찌 예전의 말씀을 고치십니까? 지금 대왕의 명령이 전과 틀리시니 저는 감히 따르지 못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 『삼국사기』 온달전에서

향산사의 삼층석탑 향산사는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가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을 꾼 후 세워졌는데, 그가 입적한 후 그의 제자들이 부도를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말이 전해진다.

가곡면의 홍수 흔적 기념비 1990년 9월 9일에 일어난 홍수 때 이 도로까지 물이 가득 찼다고 한다. 그 홍수 때 이 지역의 집 89채가 잠겼고 소, 돼지가 이 강물에 숱하게 떠내려갔다고 한다. 대단한 일이다. 이 길목까지 물이 찼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조마조마했을까?

단양팔경의 시작 도담삼봉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에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지난 뒤 을사년 장마 때 이곳까지 흘러흘러 왔는데 정선 땅의 관리들이 삼봉을 찾아 이곳으로 와서는 자기들의 것이라며 산세로 해마다 쌀 여섯 섬을 세금으로 걷어갔다. 그러던 어느 해 정선에서 관리들이 세금을 거두러 오자 정선의 한 아이가 나서서 "저 삼봉은 우리가 불러서 온 것이 아니고 제멋대로 온 것이요. 그렇게 중요하다면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

 

 

산은 붉은 단풍잎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삼봉엔 저녁노을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 잘 적에

달과 별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진다

- 퇴계 이황

 

 

떠나고 돌아오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세상이리라.

 

야이차의 공을 표창하다, 단양적성비 적성산성을 조사하던 중 비 하나를 발견했다. 비문은 모두 440자 가량으로 추정되지만 288자가 남아 있었다. 그 내용은 진흥왕이 이사부, 이간, 내예부, 대야간, 무력 등 10여 명의 고관에게 일러 야이차의 공을 표창하여 앞으로도 야이차와 같이 신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포상을 내리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장회원에 이르러 다시 말을 타고 길을 나서면 더욱 가경으로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 가득 버섯처럼 자라는 돌무더기를 발견했다. 산봉우리에서 봉우리를 연결한 푸른 아지랑이는 좌우와 동서를 분간하지 못하리란 말에 현혹하여 어떤 마술사의 기교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가은암 앞에 말을 세웟다. 아까보다 더 찬란한 연하는 더욱 길을 흐리게 하여 남가산의 꿈 같은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절경에 명칭이 없는 것이 매우 어색하여 대뜸 단구협丹丘峽이라 명명했다.

- 김일손

 

거북을 닮은, 구담봉 남한강 줄기를 따라 깍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괴석으로 그 형상이 거북과 같다고 하여 구담봉이라 부른다. 구담의 뱃놀이는 천하제일의 흥취로 꼽혔다.

비온 뒤의 죽순처럼, 옥순봉 봉우리들이 마치 비온 뒤의 죽순처럼 솟아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소금강이라고도 불리운다. 옥순봉 아래에는 물살이 급하여 벽력 같은 소리가 닜다고 하는 돌내기여울이 있었다고 하나 이미 지나간 옛일일 뿐이다.

 

나그네 꿈이 땅 울림에 놀라 깨니

가랑잎만 어지러이 창문을 두드리네

모를레라 이 밤에 강물로 흐른 비

구봉을 얼마나 깍아내는지

- 이인상

 

겨드랑이 밑에 절벽을 끼고

강물 위를 미끄러져 간다

누구나 나를 보면 하늘에서 온 줄 알리

구담에 비친 그림자

들여다보다 나도 속았네

구담봉 옛 주인은

어디 가 계시는고

나무학 타고 올라

바람 몰고 다니더니

그날에 학채 구름채

구름 속으로 갔나 보다

-율곡 이이

 

제 몫으로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 생각하라.

얼마나 무거워야 가벼워지는지를.

내가 아직 자유로운 영혼,

들새처럼 영혼의 힘으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 짐이 아직 충분히 무겁지 못하기 때문이다.

- 정현종

 

충주댐, 「홍수와 가뭄 다목적댐이 막아줍니다」 충주댐의 건설은 서울과 인천을 포함한 한강 유역권에 사는 사람들의 물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그 혜택은 외지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탄금대비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장병 8,000명과 함께 배수진을 치고 왜군을 맞아 싸운 전적지인 탄금대 내에는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탄금대비, 우륵추모비, 궁도장, 신립 장군 순절비, 탄금정 등이 있다.

중앙탑 신라 문성왕 때에 나라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신라 땅의 남쪽과 북쪽 끝에서 각각 출발한 두 사람이 이 탑에서 만났다고 한다. 이 중앙탑은 이 고장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사는 곳이 우리나라의 중심지라는 의삭을 심어주었다.

중원 고구려비 장수왕의 아들 문자왕 때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석은 고구려와 신라가 충돌하였으며 또 신라와 백제가 모의하여 고구려와 싸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충주를 포함한 이 고장은 고구려가 남쪽으로 뻗어내려 오면서 '나라의 들'이라는 국원성으로 불렸을 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곳이었다.

 

 

자연을 따르고 자연의 이치에 맞게 행동하라.

 

 

인간은 자연에 복종할 때에만 자연에 명령할 수 있다.

- 프랜시스 베이컨

 

목계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다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 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있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목계장터 시비

 

길이라는 것은 그렇다. 길이 없을 듯싶은데

어느 순간 문득 길이 환하게 열린다.

 

 

눈 덮인 산길을 어지러히 걷지 말라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리니

- 서산대사 휴정

 

석불대좌(보물 8호) 고달사지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석조유물이 석불대좌이다. 불상 없이 대좌만 있는데 보물 제8호로 지정된 것으로 보아 그 수법이 뛰어남을 짐작할 수 있다.

원종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보물 6호) 975년에 세워진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비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 위에 얹혔던 이수. 거북을 비의 받침으로 삼으니 귀부, 이무기를 지붕으로 삼으니 이수라 한다.

고달사지 부도탑(국보 4호) 혜목산문의 개산조였던 원감국사의 사리탑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팔각원당형 부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안정감이 잇는 빼어난 작품이다.

원종대사 부도탑(보물 7호) 하늘에서 춤을 추며 날아가는 듯한 비천상들과 금방이라도 살아움직일 것 같은 다섯 마리의 용의 모습에서 옛날 장인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원종대사가 입적한 지 19년이 되던 고려 경종 2년(977년)에 만들어졌다.

신륵사 대웅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봉미산 기슭에 위치한 이 절은 신라 진평왕 때 원화스님이 창건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절 신륵사가 유명해진 것은 고려 말의 고승 나옹선사가 이 절에서 열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신륵사 대장각기비 고려 말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선사의 문도와 함께 대장경을 인출印出하고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사실을 기록한 비문이다.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225호) 흰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신라나 고려의 석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룡문과 연화문, 그리고 물결 무늬와 구름무늬의 조각들이 빼어난 솜씨를 자랑하며 새겨져 있다.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226호) 아래로 남한강이 굽어보이고 강 건너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경치 좋은 바위 위에 이 전탑이 세워져 있다.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른다.

신륵사 조사당 조선 초기 예종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고려 말 기울어가는 불교계에 한 가닥 빛이 되었던 소위 '3화상和尙'이라 불리는 지공 · 나옹 · 무학의 덕을 기리고, 또 그들의 법력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중앙에 나옹, 그리고 좌우에 지공과 무학 선사의 영정을 봉안해 두고 있다.

나옹선사 석종부도 신륵사 조사당을 지나, 양지바른 구릉을 오르면 보제존자 나옹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가 있다. 부도는 종 모양을 닮았다 하여 석종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석등(보물 231호) 석종부도 앞에 있다. 부도의 주인에게 등불 공양을 올리는 공양구로 부도를 장엄하게 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규모는 자그마하지만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고려 말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인생이 무어 별건가. 오지 않는 내일 오지 그 무엇을

기다리다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도보 여행자에게는 신발이 전부다. 모자니 셔츠니 명예니 덕목이니 하는 것은 모두 그 다음의 문제다.

- 퇴퍼 『지그재그 여행』의 저자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잠자리에 들 때 촛불의 그을음을 알코올에 타서 그걸로 발을 문지르면 된다. 그러면 다음날 물집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차츰차츰 구두가 발에 익숙해지거나 발이 구두에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많이 쩔뚝거렸지만 굳은살이 단단해져서 이제는 오랫동안 걸어도 아프지 않다.

- 카크란

 

영월루 18세기 말의 건물로 추정된다. 원래 군청의 정문이었는데 1925년경 군청 이전 때 군수가 현 위치에 누각을 다시 세웠다. 마암 언덕에 서 있다.

 

여주 팔경 - 『동국여지승람

 

반도낙안 - 여강 언저리에 내려앉은 기러기

동대만월 - 동대인 청심루에서 바라본 달

연탄귀범 -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모연 - 학동의 저녁 연기

신륵종성 - 신륵사의 종소리

마암어화 - 마암 아래에 떠 있는 고깃배의 등불

어릉춘수 - 두 영릉의 신록

자수장림 - 팔대수의 우거진 숲

 

세종대왕 영릉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를 합장한 영릉英陵.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능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합장릉이므로 2개의 상석이 있다. 주위는 12개의 돌기둥을 세워 12간지를 표시했고 돌난간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행하고 가더라도 살아생전 젊은 여자가 잠자리를 같이 하고자 간청했을 때 거절한 남자는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할 것입니다.

- 『희랍인 조르바』 조르바 이야기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걸으면 나무도 숲도 외롭다.

- 헤르만 헤세

 

삼국시대 때 축성된 파사산성 천서리 파사산의 능선을 따라 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파사산이라는 이름의 연유는 옛날 파사국이 있었던 자리라서 그렇다는 설과 신라의 왕이었던 파사왕이 이곳에 성을 쌓아서라는 설이 있다. 산정에 오르면 여주, 이천, 양평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십 리 밖, 혹은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고, 혹은 유숙한 다음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장만해 둔다면 이것은 자손대대로 이어나갈 만한 방법이다. 옛날에 주부자朱夫子가 무이산武夷山의 산수를 좋아하여 냇물 굽이와 봉우리 꼭대기마다에 글을 지어서 빛나게 꾸미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다 살 집은 두지 않았다. 그는 일찍이 '봄 동안에 저곳에 가면 붉은 꽃과 푸른 잎이 서로 비치어서, 또한 제대로 나쁘지 않다' 하였다. 후세 사람으로서 산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을 본으로 삼을 일이다.

- 이중환 『택리지』 생리편

 

군읍의 15리 서쪽, 즉 파내탄波乃灘 하류에 대탄이 있다. 돌이 강 중간에 가로누워 있어 물이 넘치면 바위가 보이지 않고 물이 얕아지면 파도가 인다. 강물이 사납게 흘러내려 하도下道(영남지방을 의미함)의 조운선槽運船들이 자주 파선된다.

고려 때 왕강王康이 건의하여 암초를 조금 파냇으나 공사가 어려워 중단했는데 그 뒤로 물살이 더 심해졌다. 세조 때 구달충具達忠을 시켜 다시 파게 하였다. 물 가운데에 있는 그 돌의 둘레를 나무로 막고 물을 퍼내면서 팠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염여퇴艶澦堆와 비교한다.

- 대탄에 대해

 

양수리에 가면

 

김승희

 

가을이면

양수리에 닿고 싶어라

가을보다 늦게 도착했을지라도

양수리에 가면

가을보다 먼저

물과 물이 만나는 것을

볼 수 잇으니

 

가장 차갑고

가장 순결한

물과 물이 만나

그저 뼈끝까지 가난하기만한

물과 물이 만나

외로운 이불 서로 덮어주며

서러운 따스함 하나를 이루어

다둑다둑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가난한 것을

왜 그저 외롭다고만 하랴

외로운 것을

왜 그저 서럽다고만 하랴

 

양수리에 가면

가을보다 늦게 도착했을지라도

가을보다 먼저

물과 물이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헐벗은 가을나무

제 유언을 풀 듯

조용히 물그림자 비추어

스스로 깊어지는 혼자 외로움

겨울같이 전신으로 대면하고 있으니

 

가을이면

양수리에 가고 싶어라

어디선가 나뉘었던

물과 물이 합하여

물빛 가을이불 더욱 풍성해지고

가을나무 물그림자

마침내 이불 덮어 추위롭지 않으리니

 

홀로 서 있다 하여

어찌 외롭다 하랴

하늘 아래 헐벗었다 하여

 

어찌 가난하다고만 하랴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아담하면서도 화려한 탑신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기품이 있어 보이는 석탑이다. 62년도에 탑을 이전할 때 18점의 보물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양수리 수종사

 

서거정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하계下界에서는 연기와 티끌을 피할 곳이 없건만

상방上方(절)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네

흰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거나

누런 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내 동원東院에 가서 참선 이야기 하려 하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 울게 하지 말아라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 수종사 수종사는 운길산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절에서 보면 양수대교를 비롯한 양수리와 북한강 일대가 확연히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 장 루슬로

 

1925년 홍수 때 떠내려 갔던 것을 1975년 새로 복원한 다산의 생가

다산과 그의 아내 숙부인 풍산 홍씨를 합장한 묘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정양용은 학문을 실생활과 연관시키는 한편, 실학의 학문적 입장을 정리하는 데 힘썼다. 그는 서학과 청대의 고증학까지 수영하여 학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여 기존의 유학에서 독립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바다나루에서 팔당댐 호수 둘레에 당집이 여덟 군데가 있었다고 해서 팔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또 한편에선 한강가에 넓은 나루가 있었으므로 바다나루, 바대이, 바당이 하다 팔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팔당대교 팔당대교를 벗어난 물은 한강으로 흐를 것이다. 예로부터 한강을 낀 중부지방은 이 나라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한강을 얻으면 흥하고 빼앗기면 망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삼국시대의 전략 요충지 아차산성 이 성은 삼국시대의 전략 요충지로 삼국의 쟁탈대상이었다. 백제가 초기 광주에 도읍을 두었을 때 고구려의 남진에 대비하여 쌓았다고 한다.

삼전도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 김상헌

 

경복궁의 역사役事가 언제나 끝나 그리던 가속을 만나볼까

에에헤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도편수의 거동을 봐라 박통을 들고서 갈팡질팡한다

- <경복궁타령>

 

왕십리 처녀는 풋나물 장수로 나간다지 고비 고사리 두릎나물 용문산채를 사시래요

건드렁 건드렁 건드렁거리고 놀아보자…… 애오개 처녀는 망건 장수로 나간다지

인모망건 경조망건 곱쌀망건을 사시래요

- <건드렁타령>

 

한강수라 맑고 깊은 물에

풍덩실 빠져 애고 나는 못 죽어

- <한강수타령>

 

한강수 푸른 물아

너는 어찌 늙지 않어

만고불변 한결같이 흐르는데

…… 에헤야 무정할 손

사람만이 늙는구나

- <한강수타령> 평택지방

 

다리는 권력의 영역이 공간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모습이다.

- 헤겔

 

한강의 다리 노량나루에는 제1한강교가 놓여졌고, 양화나루에는 제2한강교가, 한강나루에는 제3한강교가, 송파나루와 광나루 부근에는 잠실대교와 천호대교가 놓여지며, 한강의 나루는 점차 없어져 간다.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산모롱이 사이로는 낚싯배가 아련하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남산에서 오르네

- 이병연

 

이태원이 목멱산 남쪽에 잇다. 입으로 전하는 말로는 임진왜란 후에 항복하고 귀순한 왜인들을 숭례문 밖 남산 아래에 살게 함에 스스로 한 마을을 이루고, 그 마을 이름을 이타방異他邦이라고 하던 것이 후에 이태원으로 바뀌었다.

- 『동국여지비고』 역원조

 

동東잠실이 성동 아차산 아래에 있다. 내시가 맡아본다. 지금 새로 새잠실을 한강 아래 원단동에 설치하고 역시 내시로 하여금 맡아보게 하고 있다.

서西잠실은 도성에서 서쪽으로 10여 리쯤에 있다. 곧 옛날의 연희궁이다.

이들 잠실마다 별좌別坐 2인으로 전담하게 하다가 별좌를 상의원尙衣院에 예속시키고 여름철에 현지로 가서 누에를 치고 그 일을 마치면 상의원으로 돌아와서 근무하게 하였다. 동서 잠실로 하여금 제각기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승정원에 납품하게 하고 이것을 검사하여 잘 되고 못 된 정도에 따라 상도 주고 벌하기도 한다.

남강에 있는 밤섬에서도 여러 가지 종류의 뽕나무를 심고 해마다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친다. 지난날에는 도성 안 지체 높은 집이라도 겨우 서너 집 정도가 누에를 치더니, 이제는 지체 높은 집뿐만 아니라 가난한 집 부녀자까지도 누에를 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므로 자연히 뽕잎 값이 폭등하여 요즈음에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뽕나무를 심어 이득을 챙긴다.

- 『용재총화』, 10권

 

강원도 뗏목장수 뗏목 빼앗긴 채 울고 가고 전라도 알곡장수 통배 빼앗기고 울고 가면 삼개(마포) 객주 발 뻗고 울고 노들나루 색주가 머리 잘라 판다.

- <한강원가>

 

성삼문 등 여섯 충신이 사형을 당할 당시 서울은 형용할 수 없을 지경으로 혼란에 빠졌던 까닭에 그들의 시체를 묻을 겨를조차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밤중에 남몰래 이곳에 시체를 모시었으니 창망중에 그 시체들이 제대로 챙겨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사육신 신도비

 

노량진의 사육신묘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사육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묘.

 

마포 8경

 

용호제월 - 용산강 물 위로 뜨는 달

마포귀범 - 마포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방학어화 - 강 건너 방학 언덕의 밤낚시

율도명사 - 밤섬의 깨끗한 모랫벌

농암모연 - 동바위마을의 저녁 연기

우산방축 - 와우산의 소 말 방축

양진낙조 - 양화나루의 석양 무렵의 낙조

관악청람 - 관악산의 맑은 날의 아지랑이

 

조선시대에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로 목덜미가 까맣게 탄 사람은 왕십리 미나리장수, 얼굴이 까맣게 탄 사람은 마포 새우젓장수라 하였다. 그 이유는 왕십리에서 아침에 도성 안으로 미나리를 팔러 오려면 아침 햇빛을 등뒤에 지고 와 목덜미가 햇빛에 탔기 때문이고, 마포에서는 아침에 도성 안으로 새우젓을 팔러 오려면 아침 햇빛을 앞으로 안고 와 얼굴이 햇빛에 새까맣게 탔기 때문이다.

- 『동명연혁고』 마포구편

 

한강 개발과 여의도 건설의 일환으로 하구를 넓혀 한강 물이 잘 흐르도록 총 17,393평의 밤섬을 폭파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부군당을 모시는 사당을 만들어 17대를 살아온 62가구 443명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어업과 도서업에 종사하고 있다. 밤섬은 주로 돌산으로 되어 있는데 서울특별시는 이 섬을 폭파하고 여의도 축석에 필요한 잡석 114,000㎥를 캐낼 방침이다. 서울특별시는 거주민에게 토지와 건물 보상비를 지급,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청평 대지에 연립식 주택을 건설하여 5가구씩 살게 할 방침이다.

- 동아일보 사회면 1968년 2월 10일자

 

밤섬에서는 친척끼리도 당사자들이 마음만 맞으면 시집도 가고 장가도 든다. 비록 4촌 5촌간의 근친이라 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홀아비나 과부가 생기면 따로 혼처를 구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을 조금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사방이 강물로 둘러서 이웃한 마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행하는 일이 남의 이목에 띄지 않는 것을 기화로, 깊고 얕은 강물을 건너 섬을 드나들 때면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는 등 음란하기 이를 데 없다.

- 《명종실록》 11년(1556년) 4월 초 당시 밤섬 풍습

 

찾으니 장강長江인데 강 건너 은모래벌

벌 지나 뫼이온데 뫼 넘어 구름일세

천지의 봄바람이 불어 왕래하더라

- 노상 이은상

 

천하엔 본시 일이 없건만

속인이 제 스스로 소란스럽네

 

이 시구는 정말 빼어나다. 그러나 속인이 소란스러운 것이야 그렇다 해도 지혜 있다는 자가 소란스럽게 되면 그 재앙이 크고 작음에서 반드시 구별이 있는 법이다.

- 주국정朱國禎 『자술』중에서

 

양화진의 절두산 마치 누에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어서 잠두봉이라 하였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정경은 그림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경치는 대원군에 의해 천주교인의 대량 처형장소가 되면서 지금은 절두산 천주교 성지가 되었다.

 

한강의 옛 나루터 양화라고 하는데

좋은 경치 골라 지으니 물가 가까우네

문득 들으니 우는 기러기 모래판에서 일어나네

- 예겸

 

경기지방의 경치로는 한강이 으뜸이다. 누대가 높이 구름을 막고 물이 푸르러 거울이 떴다. 나루로는 양화도가 있는데 물살이 번성하여 팔도의 물산을 모으고 나라의 빼어난 경치와 그 중요한 구실을 밝혀주고 잇고 옷깃과 같이 중요한 부분이 된다.

- 『동국여지승람』

 

양화도 어귀에서 뱃놀이 하니

별천지가 바로 예로구나

어찌 신선과 학을 타고 놀아야만 하는가

해가 서산마루에 지면서

황금의 물결 이루노니

흥이 절로 인다

- 서거정

 

한강변 최대의 명소 망원정 합정동에 위치하고 있는 옛 모습의 정자로서 1925년 큰 홍수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9년에 복원되었다. 세종의 형이었던 효령대군이 별장을 지어 강상의 풍경을 즐기던 곳이었다.

 

한강

 

박노해

 

한강의 가슴을 연다

여윈 여미의 가슴처럼

주름진 강심江心이 소리 없이 열려 흐른다

 

얼어붙은 겨울 속으로

숨죽이며 흐느낌으로 흐르던

눈물 강물

 

봄은 멀은데

병든 가슴, 지친 노동에

탄식하며 탄식하며 쓰러져

몰아치는 찬바람에

다시 아귀찬 이를 물며 일어서 흐르는

사랑이여 모진 생명이여

 

강물은 흐르고

더러움과 오욕에 뒤섞여

 

거칠게 한강은 흐르고

살얼음을 뒤척이며

어두운 겨울 속으로

봄을 부르며

봄을 부르며

 

소리 없이 열려 흐르는

눈물이여 강물이여

 

고려 공민왕 때에 평민 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워서 형에게 하나 주었다. 나루터에 와서 형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는데, 아우가 갑자기 금을 물 속에 던지므로 형이 괴이하게 여겨서 물으니, 대답하기를 "제가 평소에 형님을 독실하게 우애하였는데, 금을 나누어 가진 다음에는 형님을 꺼리는 마음이 갑자기 생깁니다.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니, 강에 던져서 잊어버리는 것이 낫겠습니다" 하였다. 형이 말하기를 "네 말이 참으로 옳다" 하고, 형도 또한 금을 물에 던졌다. 그때 같은 배를 탔던 자는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던 까닭에, 그 형제의 성씨와 거주하는 마을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 『동국여지승람』 투금탄(안양천 앞 한강여울)에 대해

 

방화대교 인천 영종도 국제공항과 육지를 연결한다. 한강 다리 중 가장 길며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행주대첩비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로, 행주치마의 전설을 안고 있는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비.

 

강 1

 

이성복

 

남들은 저를 보고 쓸쓸하다 합니다

해거름이 깔리는 저녁

미루나무숲을 따라갔기 때문이지요

 

남들은 저를 보고 병들었다 합니다

매연에 찌들려 저의 얼굴이

검게 탔기 때문이지요

저는 쓸쓸한 적도 병든 적도 없습니다

서둘러 그들의 도시를 지나왔을 뿐입니다

 

제게로 오는 것들을 막지 않으며

제게서 가는 것들을 막지 않으며

그들의 눈 속에 흐르는 눈물입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흙탕물에 젖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 파타

 

 

황지우

 

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 보면

조선팔도,

모든 명당은 초소다

 

한려수도, 내행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 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닻이었구나

 

휴전선의 남쪽 끝, 애기봉 쑥갓머리산에는 평안감사와 사랑을 나누었던 애기의 슬픈 사연이 서려 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봉에 비를 세웠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맹자

 

한강

 

이근배

 

내일로 흐르는 강

호랑이처럼 내닫고

용이 되어 오르는 강

꺼지지 않는 불꽃의 강

우리들의 비원인

통일을 실어오는 강

 

오오 일어서라

 

천둥처럼 지축을 흔들고

가슴에 담은 산 같은 기쁨 터뜨려

이 땅에 가득하리라

종소리가 되리라

목숨이 되리라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