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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23. 12:17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03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

 

 

알랭 드 보통 지음 | 정진욱 옮김

2002, 생각의 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8922

 

101

보885삶

 

복잡하고 힘겨운 삶을 유쾌하게 만드는 삶의 거장들이 알려주는 행복의 철학

 

지은이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 프랑스어 · 독일어에 능통하다. 지은 책으로는 유머와 통찰력으로 가득한 철학적 연애 소설『로맨스』『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키스와 말』이 있으며, 독특한 문학평론서『프루스트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꿨나』, 여행에 관한 에세이『여행의 기술』(근간) 등이 있다. 그의 책은 현재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으며, 철학과(科) 졸업 프로그램을 지도하기 위해 런던 대학을 오가고 있다. 원제가 '철학의 위안The Consolations of Philosophy'인 이 책은 영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으며, 동시에 영국에서 <철학: 행복으로의 안내>라는 제목의 6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됐다. 알랭 드 보통의 웹사이트 www.alaindebotton.com에서 그의 근황과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정진욱

전문번역가. 옮긴 책으로는 <섹스의 영혼>, <독서의 역사>, <제1의 성>,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 등이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 몽테뉴

 

아직 철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거나

철학을 할 시기가 지나가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맞이하기에 너무 젊거나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 에피쿠로스

 

만약 우리의 나이가 2천 살이 아니고,

플라톤의 대화에 관심이 없고, 또 조용히 파묻혀 산다는 이유로

자신은 깨달음을 얻는 데 부적절한 존재라고 생각하기를 그만둔다면,

우리 모두도 현명한 아이디어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차례

 

1장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소크라테스 Socrates

          지적 회의로의 초대장

          상식에 대한 집착

          소크라테스식 삶의 방식

          소크라테스의 재판

          소크라테스의 죽음

 

2장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에피쿠로스 Epicurus

          행복, 구매 리스트 하나

          쾌락을 가르치는 철학자

          철학의 임무 - 에피쿠로스의 경우

          행복, 에피쿠로스파의 구매 리스트

          행복의 물질적 환상 - 소박함에 대한 옹호

          행복, 또 다른 구매 리스트 하나

 

3장 좌절에 대한 위안 세네카 Seneca

          세네카의 죽음

          좌절을 설명하는 세네카의 사전

          체념의 기술

 

4장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몽테뉴 Montaigne

인간에 대한 인정

성적 부적절함에 대하여

문화적 부적절함에 대하여

지적 부적절함에 대하여

 

5장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쇼펜하우어 Schopenhauer

염세적인 철학자의 연대기 - 쇼펜하우어의 일생

현대인의 러브 스토리 한 토막 - 쇼펜하우어의 해설을 곁들여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6장 곤경에 대한 위안 니체 Nietzsche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용 및 참고문헌

찾아보기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그대가 아는 것들은 그게 전부인가

 

Socrstes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이런 혹평을 할까? ……만약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을 삼간다면, 그 주된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인기 있는 것들을 옳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맨발의 철학자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 있는 그 무엇인가가 과연 이치에 닿는 것인지를 가리기 위해서 거듭 의문을 제기했다.

소크라테스 거리의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일과로 삼다가 결국 고발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아테네의 거리에서 청소년들과 마을의 유력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묻고 있는 모습으로 낯익다. 그 문답은 항상 '그것은 모른다'라고 하는 무지의 고백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모든 이의 의견을 다 존중할 필요는 없고 단지 몇 명만 존중하면 되고 다른 사람들은 무시해도 좋다는 사실……, 훌륭한 의건은 존중하되 나쁜 의견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실, 그것 참 멋진 원칙이라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고 훌륭한 의견은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의 것인 반면, 나쁜 의견은 이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것이지……. 그러니 훌륭한 나의 친구여,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 마음 쓸 필요가 없소.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의와 불공평의 문제에 대해 하는 말에는 신경을 써야 하오.

-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이 그림에서 소크라테스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철학의 본질을 보여주려는 듯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평범한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소크라테스의 죽음> 샤를-알퐁스 뒤프레누아가 그린 이 그림 역시 독배를 들이켜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를 둘러싼 친구들을 극적인 포즈로 그려 놓았다. 비통에 겨워 바닥에 무너진 인물들을 보라. 소크라테스만이 동요하지 않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18세기에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갖는 회화적 잠재력에 주목한 많은 화가들이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순간을 비애감을 가득 넣어 연출해 냈다. 자크 필립 조셉 드 생-켕틴(1762, 위), 피에르 페이론(1790, 아래)이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테네의 군인과 여성 그리스 남성들에게 전투에서의 승리는 영광된 행위였으며, 당당하게 적을 죽이는 용기는 최고의 덕목이었다. 반면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로 칭송받았다.

소크라테스 그는 일년 내내 똑같은 외투를 걸쳤으며 언제나 맨발로 걸어다녔다. 소크라테스와 마주친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그의 외모에 불편해했을 것이다.

철학자들의 도시 아테네 아테네가 철학자들의 도시가 된 까닭은 온화한 날씨와 도시계획 덕택이었을 것이다. 적당한 인구와 작은 크기, 좋은 날씨를 가진 도시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고 사색을 즐겼으리라.

파르테논 신전의 기병 조각 그리스인으로서 용맹스런 자가 되려면 군인이 되어야 햇으며, 전투에 나가 적을 죽여야 했다. 그리고 전투에서 무공을 세우거나 장렬하게 전사한 자들의 건강성과 용맹성은 도시 곳곳에서 기림을 받았다.

그리스 도자기 이 화려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그리스인들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을 차근차근 진행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그와 같이 실제로 어려운 작업일 테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식 사고방식

 

1. 확고하게 상식으로 인식되는 의견을 하나 찾아보자.

 

    용기 있는 행동에는 전장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덕을 쌓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2. 잠시 상상해 보자. 이런 의견을 내놓는 사람의 확신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 의견이 진실일 수 없는 상황이나 환경을 찾아보자.

   

    용기가 있으면서도 전쟁터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정말로 없을까?

    전쟁터에서 꿋꿋하게 전투에 임하면서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을까?

 

    돈을 가졌으면서도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없을까?

    돈은 없지만 덕이 높은 사람은 있지 않을까?

 

3. 예외가 발견되면, 그 정의는 틀렸거나 아니면 최소한 불명확한 것임에 틀림없다.

 

    용기가 있으면서도 후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쟁터에서 꿋꿋하게 전투에 임하고 있지만 용기가 없는 경우도 가능하다.

    돈을 가진 악한도 있다.

    가난하지만 덕은 높을 수도 있다.

 

4. 최초의 의견은 이런 예외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용기 있는 행동은 전쟁터에서 후퇴와 전진을 동시에 뜻할 수 있다.

 

    돈을 가진 사람은 그 돈을 고결한 방식으로 획득한 경우에만 덕이 있는 존재로 묘사될 수 있다. 그리고 돈을 가지지 못한 일부 사람들도 덕을 추구했으되 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살아왔다면 역시 덕이 높을 수 있다.

 

5. 그렇게 새로 정리한 주장에서 예외가 발견된다면, 앞에서 거쳤던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진실은,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언제나 더 이상 논박할 수 없는 주장 속에 담겨 잇어야 한다. 어떤 주장에 대한 이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곧 그 주장에 담겨 있는 그릇된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일이다.

 

6.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빗대어 뭘 말했든 간에, 사고의 산물은 직관의 산물보다 우월하다.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엘리펀트 맨 희귀병 때문에 끔찍하게 생긴 기형의 얼굴을 가진 주인공은 서커스단의 구경거리가 되어 온갖 학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사실 그는 세익스피어의 고전과 성경까지 섭렵한 아주 박식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소크라테스도 그처럼 슬픈 운명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나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Epicurus

종종 쾌락을 혐오하며 엄격하게 굴었던 사람들 중에 예외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철학자는 인생을 잘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고자 했던 것 같았다. 에피쿠로스, 그는 이렇게 썼다. "만약 미각의 쾌락을 빼앗고, 성적 쾌락을 빼앗고, 듣는 쾌감을 빼앗고, 또 아름다운 형태를 봄으로써 일어나는 달콤한 감정들을 빼앗아버린다면 나는 행복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피쿠로스 어려서부터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여행을 다닌 에피쿠로스는 그들의 가르침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십대 후반에 자신의 사상을 정리해 삶의 철학을 세우기로 마음 먹었다. 에피쿠로스 이전까지 유쾌한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을 그처럼 진솔하게 컬어놓았던 철학자는 없었다.

 

욕망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것들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하다. 또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긴 하지만 불필요하다. 그리고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도 있다.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 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이미 인생의 황혼녘에 다다른 마당에 나는 원하노라. 죽음이 덮치기 전에 쾌락의 충만함을 축하할 훌륭한 송가를 하나 만들어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된 사람들을 돕기를.

-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르세티 빌라 거대한 저택과 커다란 정원, 저택 앞에는 드넓은 잔디밭, 정원에는 과실수와 관상수 숲이 들어차 잇다. 여름철의 분수 물소리와 겨울철의 설경을 상상해 보라. 이보다 더 넘치게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폼페이의 이시스 사원 프레스코화 고대 로마의 식민도시였던 폼페이는 로마의 황제와 군인들의 여름 휴양지와 별장지로서 극장, 목욕탕, 바실리카, 신전 등이 지어졌으며, 상점, 수도(水道), 포장도로도 갖춰졌다. 화산재에 묻히기 전까지 도시는 호화로운 조각, 벽화,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성스러운 대화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화가인 지오바니 벨리니(1430~1516)는 종교적인 이야기식 표현을 강조하던 경향에서 자연스러운 배경과 풍경을 강조하는 대담한 자연주의를 전개했다. 그의 <성스러운 대화>에 등장하는 여인 또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테네 학당>의 에피쿠로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54명의 인물 중 에피쿠로스를 그린 부분이다.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에게 과연 절실히 원하는 것이 그 때문에 생길 고통과 고생을 감수해야 할 만큼 의미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바로 당신 곁에 있다.

 

좌절에 대한 위안

이게 진짜 내가 두려워했던 그 상황이란 말인가

 

SENECA

동물은 자신의 목을 매고 있는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지만 그것은 오히려 밧줄을 더 단단히 조이는 결과가 된다. ……순응하지 않고 마구 몸부림친다고 해서 묶여 잇는 동물의 고통이 덜해지도록 적당히 느슨하게 만든 멍에는 이 세상에는 절대로 없다. 저항할 수 없는 악에 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숙명에 굴복하며 참는 것이다.

 

세네카의 두상 '가벼운 슬픔은 말이 많고 큰 슬픔은 말이 없다' 등 수많은 격언으로 기억되는 철학자 세네카. 그는 스스로 세속에 물들면서도, 끝내 인간이 인간다운 까닭은 올바른 이성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모순과 불안에 찬 생애를 살았다.

 

사람이란 도대체 뭔가? 약간의 충격, 약간의 타격에도 터지고 말 혈관…… 자연 상태에서는 무방비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고, 운명의 여신이 내리는 모든 모욕에 고스란히 노출된, 허약하고 부서지기 쉽소 발가벗은 육체.

그대는 말하겠지.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라고. 그렇다면 그대는,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고, 그것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에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잇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만물의 질서를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영혼이 순응해야 하는 것은 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 법칙을 우리는 따라야 하고, 이 법을 우리는 준수해야 한다. ……당신이 개조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참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세네카의 죽음>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함께 세네카의 죽음은 철학적 죽음의 상징이다. 울부짖는 동료들에게 세네카가 보인 반응은, '철학'을 어디 내팽개쳤느냐는 꾸짖음이자 들이닥칠 불운에 맞서겠다는 결심이 어디 갔느냐는 힐난이었다.

루벤스가 그린 <세네카의 죽음>(1615) 세네카가 비통한 죽음을 견뎌낸 방식에 대한 기나긴 찬양의 역사는 로마시대 이후 많은 그림으로 남겨졌다. 이 그림에서 세네카는 위엄과 고매한 인격의 현자로 그려져 있다.

17세기에 그려진 <세네카의 죽음> 들 루카 조르다노(위, 1680), 게라르트 폰 흔토르스트가 그린 <세네카의 죽음>.

세네카와 소크라테스 가족과 친구들이 이성을 잃고 흐느끼는 가운데 너무도 평온하게 최후를 맞이했던 두 명의 고대 철학자들. 그들은 현실과 극단적인 갈등을 빚을 때도 절대로 의지박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래는 같은 조각에서 세네카의 얼굴.

 

세네카의 명상

 

 

운명의 여신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아.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인간의 운명도 도시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지.

엄청난 노고의 대가로, 그리고 신들의 위대한 배려로 수많은 세월을 두고 착실하게 올려진 건물일지라도 하루아침에 무너져 사라질 수 있나니, 아니지, '하루아침'이라고 말한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닥치는 불운을 감안하면 유예 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고 있어. 한 시간, 찰나의 순간도 제국을 넘어뜨릴 수 있거든.

아시아의 도시들이, 아카이아의 도시들이 얼마나 자주 단 한 차례의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던가? 얼마나 많은 시리아의 도시들이, 또 얼마나 많은 마케도니아의 도시들이 한 차례의 지진에 삼켜져버렸던가? 이런 참화가 얼마나 자주 키프로스를 쑥밭으로 만들었던가?

우리 모두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것들에 묻혀 살고 있네.

누구나 죽을 운명으로 태어났고, 우리 역시 죽을 운명의 아이를 낳는 법이야.

모든 것에 기대를 거는 한편으로 어떤 일이든 다 닥칠 수 있다고 예측해야지.

 

루벤스가 그린 <4명의 철학자> 고전학에 관심이 많았던 루벤스는 형이 사망하자 리프시우스, 그리고 그의 제자와 자신이 철학 토론을 벌이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배경으로 이들의 학문적 관심을 상징하는 세네카의 두상이 보인다.

로마의 수도교 주어진 그대로의 상태에 대한 인간의 저항을 보여 주는 위대한 상징물. 인간이 모든 좌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인류의 위대한 성취는 별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독창력의 원동력은 '그게 꼭 이런 식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심지어 더 이상 현실을 개조시킬 희망이 없을 때에도 끊임없이 변화와 진보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

네로의 두상 네로 앞에서는 인간에겐 이성이 있지만 개에겐 이성이 없다는 말이 무색해진다. 로마 황제 네로가 무차별 살해와 성적 가혹 행위에 몰입한 까닭은 무얼까. 네로는 세네카를 꼭 껴안으면서 사랑하는 가정교사를 해치느니 자신이 죽고 말겠노라고 맹세했지만 결국 세네카는 그에게 죽음을 당했다.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지식이란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MONTAIGNE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안고 있는 지적 우둔함을 간파한 사람이면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깃거리를 갖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력을 위대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그런 중요한 인물들에게서조차 그처럼 엄청난 잘못들을 발견할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몽테뉴의 초상 몽테뉴는 인간의 온전한 모습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 관심이 이었다. 그의 『수상록』은 그 전에 나온 심각한 책들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들로, 이성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몽테뉴 덕분에 인간은 자연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보다 넉넉하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은 한갖 멍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안고 있는 지적 우둔함을 간파한 사람이면 누구나 놀랄 만한 이야깃거리를 갖게 될 것이다. 인간의 지력을 위대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그런 중요한 인물들에게서조차 그처럼 엄청난 잘못들을 발견할 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 인간의 감각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사람이다.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치고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몽테뉴가 살았던 성 젊어서 프랑수아 1세의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하여 르네상스를 접한 몽테뉴의 아버지는 활동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라틴어 교육을 위해 집안의 모든 하인들에게도 라틴어를 말하게 한 환경에서 자란 몽테뉴는 서민들에게 애착을 갖도록 농부들에게 맡겨져 자유롭게 그들과 어울렸다.

몽테뉴의 원형 서재 독서광이자 애서가로 유명했던 몽테뉴는 이 탑 안의 원형 서재에서 평생 택을 읽고 사색했다. 독서는 몽테뉴에게 커다란 위안이었으며, 그는 삶이 버거울 때면 커다란 서재를 갖추고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기보다는 동물로 살아가는 삶의 이점을 검토했다.

몽테뉴 서재의 나무 들보 몽테뉴는 자신의 서재 천장 들보에 성경과 고전에서 따온 명구 57개를 새겼다. 여기에는 정신이란 것이 우리 인간에게 감사해야 마땅한 어떤 것을 주었는지 의심하는 금언들이 새겨져 있었다.

앙리 3세와 캐서린 데 메디치의 초상 우아한 부인들은 절대로 볼 일을 보지 않는다거나 근엄한 왕에게는 엉덩이가 없다는 터무니없는 통념은 몽테뉴로 하여금 그들도 똥을 눅 엉덩이를 가지고 잇다는 점을 이 세상에 상기시키도록 만들었다.

몽테뉴의 초상 토마스 데 뤼가 그린 몽테뉴의 정장 차림 공식 초상. 속내를 읽기 어려울 정도로 다소 장중한 이 초상 속의 몽테뉴는 그가 『수상록』에서 드러내기를 바랐던 그의 참 모습이 아니었다. 몽테뉴는 이런 이미지가 아닌 자신의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모사하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투피 인디오 몽테뉴의 지적 호기심은 세계로 열려 있었다. 그가 읽은 바로는 아메리카 인디언 종족인 투피 인디오 남자들은 부인을 한 명 이상 둘 수 있었으며 남자들은 부인 모두에게 똑같이 헌신한다. 그들의 윤리 제도는 오직 두 가지 조항으로 구성되는데, 전투에서의 단단한 결의와 부인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그려진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포괄적인 지식을 탐구한 인물이자 지나치게 똑똑한 저자. 그의 천재성은 후계자들로 하여금 창조적 작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앞선 지식을 회의하는 무례함을 저지를 용기를 갖지 못하게 한다.

『수상록』 1580년에 보르도에서 출판된 『수상록』 초판본 속표지. 에세이의 시조로 불리는 몽테뉴의 『수상록』은 자기 탐구의 고백서이자, 인간에 관련된 모든 것의 탐구서다. 몽테뉴는 이 책에서 '되도록 자세히 나를 살펴보고 끊임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지만 내 안에서 발견되는 허약함은 감히 입밖에 내어 말하기 힘들다. ……조금만 방향을 바꾸거나 관점을 바꾸면 내 안에서는 온갖 모순이 발견된다'고 털어놓았다.

키케로의 흉상 고대 로마의 최고의 지식인이자 변론가, 문필가로 불리는 키케로. 몽테뉴는 키케로의 책에 대해 공허한 이야기로만 가득 차 있다고 평했다. 몽테뉴는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을 가지고 잇기 때문이었다.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사랑이 삶을 지배하는 이유

 

SCHOPENHAUER

이 모든 소란과 흥분은 왜일까? 이런 조급함과 아우성, 고민과 격렬함은 왜일까? 왜 그런 하찮은 것이 이다지도 중요하게 다가올까? 여기 의문의 대상이 된 것은 결코 시시하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중요한 것은 성실하고 열정적인 노력으로 철저히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모든 사랑 놀음의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 삶의 다른 어떤 목표보다도 실제로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든지 아무리 심각해져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쇼펜하우어 염세주의 철학자요 생(生)의 철학적인 쇼펜하우어. 그는 자신이 철학의 주요 문제를 해결했다고 확신하고 자신의 사상이 수많은 책의 원천과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독한 철학자였던 그는 세상이 자신의 위대성을 인정해 주지않는 데 대해 실망하고 내면으로 화살을 돌려 자신의 영혼을 쉴 새 없이 괴롭혔다.

 

사랑이란 것은…… 성적 관심은 별도로 하더라도, 혐오스럽고, 경멸할만하고, 심지어 상극으로까지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맡기게 만든다. 그러나 종(種)의 의지는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연인은 자신의 것과 상반되는 모든 특질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모든 것을 간파하고, 모든 것을 그릇 판단하고, 자신의 열정의 대상과 자신을 영원히 묶어버린다. 그런 환상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그 환상은 종의 의지가 다 충족되고 나면 금방 사라지고 이제 평생을 혐오하면서 살아야 할 파트너만 남게 된다. 바로 여기서, 매우 이성적이고 심지어 탁월하기까지 한 남자들이 종종 잔소리가 심하고 악마 같기도 한 여자들과 사는 이유,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도 왜 자신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쇼펜하우어의 부모 쇼펜하우어의 아버지 하인리히와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는 이들 부부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가 고독하게 지내는 동안 어머니는 연회를 베풀었다. 또한 아버지가 극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동안 어머니는 즐겁게 지냈다. 그것이 여인들의 사랑이다……."

윔블던의 이글 하우스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루트르(Arthur)'라는 세례명을 받게 했는데, 그 까닭은 이 이름이 유럽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이 '아루트르'라고 발음되기에 후에 사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어린 쇼펜하우어가 '세계라는 큰 책'을 배울 수 있도록 프랑스와 영국 등지로 보내 외국어를 익히고 고급문화를 접하게 했다.

젊은 시절의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처음부터 철학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의학 공부를 먼저 하다가 칸트 연구가인 슐체의 강의에 감동 받아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그는 슐체를 통해 '신과 같은 플라톤'과 '경탄할 만한 칸트'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이 두 사람의 사상을 통해 그의 사상은 '염세주의'라고 할 만한 것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노년의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점점 더 울적해져서 공포와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발사가 면도칼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고 생각해 절대로 면도를 하지 못하게 했고, 잘 때에도 침대 밑에 권총을 넣어 두고 잤다. 죽음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안전과 건강에 극도로 신경 썼던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말년을 보낸 집 헤겔의 죽음은 쇼펜하우어에게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헤겔을 죽인 콜레라를 피해 프랑크푸르트로 간 쇼펜하우어는 이곳에서 비로소 성공을 맛보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차츰차츰 알려지기 시작햇고, 그는 이러한 성공에 매우 만족해햇으며, 자신의 명성을 보도한 기사를 찾아 읽고 매우 즐거워했다.

엘리자베스 네이와 그녀가 만든 쇼펜하우어의 흉상 사랑의 비통함에 관한 한, 아마도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존재일 쇼펜하우어는 말년에 가서 명성이 높아지자 여성에 관한 시각을 누그러뜨렸다. 폐렴으로 죽은 쇼펜하우어의 장례식은 아직 죽지 않은 상태로 매장되지 않을까 두려워한 그의 유언에 따라 죽은 지 며칠이 지난 후에야 치러졌다.

마사치오가 그린 <낙원에서의 추방> 아담과 이브가 낙원을 떠나면서 울부짖는 절망. 마사치오는 이 그림에서 절망의 정수를 표현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오류성과 연약함의 보편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을 떠나는 순간 우리 인간 모두가 그곳에서 추방된 셈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갖고 있다. 그것은 혼자서만 고통받고 외로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식'이다.

 

곤경에 대한 위안

피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NIETZCHE

인간이 걸리는 병중에서 가장 나쁜 병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다스리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치유로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그 치유의 대상이 되었던 병보다 더 독한 무엇인가를 낳았다. 즉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수단들, 마취와 도취, 소위 말하는 위안들은 무지하게도 치유책으로 여겨졌다. 여기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고통을 즉각적으로 진정시키는 방법들은 그 고통을 낳은 불만을 악화시키는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니체의 초상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첫 인상은 하나의 개인적인 특징일 뿐인데도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짓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신사답고 가장 합리적인 사람도, 만약에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잇다면, 언제나 기다란 턱수염에 딸린 존재로만 보일 뿐이다. 이를테면 쉽게 화를 내고 그러다 간혹 난폭해지기도 하는 군인형(型)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사람은 그런 인간형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나와 약간이라도 인연을 맺고 있는 인간 존재들에게 나는 고통과 절망, 질병, 냉대, 경멸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나는 그 사람들이 지독한 자기경멸과 자기불신의 고문, 패배당한 자의 열등감과 동떨어져 지내지 않기를 희망한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풍부한 결실을 남긴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그대 자신에게 악천후와 폭풍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들이 앞으로 거목으로 훌쩍 자랄 수 있을지를 한번 물어보라. 불운과 외부의 저항, 어떤 종류의 혐오, 질투, 완고함, 불신, 잔혹, 탐욕, 그리고 폭력, 이런 것들이 사실은 호의적인 조건에 속하지 않는지 곰곰 따져보라.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고는 어떠한 위대한 미덕의 성장도 좀처럼 이룰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와 악수하는 엘리자벳 니체 니체는 누이 엘리자벳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니체의 마지막 저작 『힘에의 의지』는 그의 사후에 엘리자벳에 의해 정리 출판되었다. 사진에서 나치에게 매료된 엘리자벳이 히틀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니체는 그녀를 '복수에 불타는 반유대주의자 멍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위버멘쉬 혹은 슈퍼맨 초기에 니체를 영어로 옮겼던 번역자들은 부주의하게도 위버멘쉬(초인)를 전설적인 만화의 주인공 슈퍼맨으로 옮겨 적었다. 그러나 니체의 위버멘쉬는 하늘을 휙휙 나는 인물이나 파시스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위버멘쉬란 지성보다도 본능, 합리보다도 의지, 이성보다도 정열, 사고보다도 육체를 존중할 줄 아는 의지의 인간을 말한다.

니체가 좋아한 인물들 니체는 살아 있는 인물 중에는 그다지 궁금한 인물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서,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완성에 가까운 삶을 산 것으로 여겨지는 몇몇 개인에 대한 회고를 늘어놓았다. 그들을 니체의 용어로 말하자면 위버멘쉬로 묘사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위에서부터 몽테뉴, 아베 갈리아니, 스탕달(앙리 바일), 괴테.

니체가 사랑한 괴테 니체는 괴테를 '숭고한 인물',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마지막 독일인'이라고 불렀다. 니체가 보기에 괴테가 원한 것은 총체감이었으며, 괴테는 이성과 관능, 느낌, 의지를 서로 분리하는 데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괴테는 10년 동안 바이마르 궁정의 문관을 지내며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폴레옹을 두 차례 알현했다.

질스-마리아에 있는 니체 박물관 서른다섯의 나이에 바젤대학의 교수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니체는 알프스 지역인 해발 1,800미터의 질스-마리아라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여름을 보내며 그의 주요 저서들을 썼다. 그는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정오까지 작업을 하고, 마을을 에워싸고 있던 산을 오르곤 했다. 그리고 밤이면 홀로 간소한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 농가는 '니체가 살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수수하게 단장한' 네체 박물관이 되었다.

라파엘로의 <니콜리니 코퍼 마돈나>를 위한 밑그림과 완성작 그림 소유자의 이름을 붙인 이 성모자 그림은 라파엘로가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스럽게 성모와 아기가 육체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결속된 느낌을 주는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로부터 배운 결과물이다.

라파엘로의 <한 젊은 여인의 초상>과 <한 여인의 초상>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메켈란젤로의 작품들을 찾아 그들의 밑그림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두 거장의 해부학적인 스케치에서 얻은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그들의 예를 따랐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라파엘이 쏟은 노력의 결과는 그 이전에 그린 <한 젊은 여인의 초상>과 몇 년 뒤 완성한 <한 여인의 초상>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파에스툼에 있는 그리스 사원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열정과 악을 지극히 자연스런 취향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들의 마음속에 간직된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찬양하는 일을 디오니소스 축제와 같은 공식적인 제식으로 제도화했다. 그들은 악과 의심, 그리고 적당한 해방을 절멸하려고 애쓰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열정을 상대로 한 전쟁 니체는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피하려 들지 말고 그것을 세련되게 활용하라고 말했다. 열정과 욕망이 지닌 어두운 힘을 두려워하고 피할 목적으로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은 니체가 보기에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로 보였다. 이빨이 아프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뽑아버리는 치과의사에게 누가 치료를 맡기겠는가.

본대학 시절의 니체 니체가 소속한 본대학 사교클럽. 사진 중앙의 몸을 한쪽으로 돌리고 있는 이가 니체다. 아래쪽 가운데에 맥주통이 보인다. 니체는 동료 학생들이 알코올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에 몹시 화를 냇다. 니체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면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권고했다.

베수비우스산의 폭발 1879년에 베수비우스산이 폭발하는 모습. "존재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성취와 가장 위대한 즐거움을 일궈내는 비결은, 위태하게 살아가는 것이지! 도시들을 베수비우스산 기슭에다 짓도록 하게나!"

뢰켄 교회 니체는 라이프치히 근처의 뢰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그의 어머니 또한 목사의 딸로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니체는 뢰켄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훗날 니체는 기독교를 가장 무서운 저주이자 가장 무서운 타락이라고 부르게 된다.

니체의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 니체는 '시골 목사의 완벽한 구현'이었던 아버지를 매우 사랑했으며 평생 동안 아버지의 기억을 숭배했다. 니체의 기억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자비로운 성격에 따뜻한 동정심과 재치 있는 대화로 정신적 안내자로서 농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니체에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상스러운 짓이었다.

코지마 바그너 그녀는 프란츠 리스트의 딸로서, 한스 폰 뵐로와 이혼하고 리하르트 바그너와 재혼했다. 니체는 이들 모두와 교류했는데, 그가 진정으로 사랑에 빠졌던 부인이 바로 바그너의 부인인 코지마라는 아이러니컬한 사건은 유명하다. 니체는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우정으로 교묘하게 위장했다.

니체와 루 안드레이-살로메 가운데 인물은 파울 레. 독특한 외모와 수줍은 성격으로 여성들로부터 연이어 퇴짜를 맞은 니체가 경험한 사랑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위대했던 사랑은 루 안드레아-살로메였다. 젊고 아름답고 똑똑하고 바람기가 많았던 그녀는 남자로서보다 철학자로서 니체에게 관심이 더 있었다. 루의 거부는 니체를 다시 한번 극심한 우울증에 몰아넣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