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황영찬

Tag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17. 3. 30. 13:38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12 이연주 시전집(1953-1992)

 

 

 

이연주

2016, 최측의농간

 

이연주

 

1953년  전라북도 군산 출생.

1985년  시 동인 '풀밭' 활동 시작.

1989년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 1」외 1편으로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

1991년  《작가세계》 가을호에 「가족사진」외 9편 발표. 정식 등단.

           첫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세계사) 출간.

 

1993년  유고 시집 『속죄양, 유다』(세계사) 출간.

 

차례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

15 겨울 석양
16 길
18 집행자는 편지를 읽을 시간이 없다
19 사람의 고향
20 장마의 시
21 시외전화
22 지리한 대화
24 집단무의식에 관한 한 보고서
25 가나마이신에게
26 가족사진
27 추억 없는 4 19
29 유토피아는 없다
31 위험한 진단
33 눈뜬 장님
35 어떤 길에 대한 추측
37 유한 부인의 걱정
38 비극적 삼각관계
39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40 어떤 행려병자
41 매음녀 1
42 매음녀 3
43 매음녀 4
45 매음녀 5
46 매음녀 6
47 매음녀 7
48 고물상에서의 한때
49 쓸데없는 추억거리 중
50 방화범
51 바다로 가는 유언
52 좌판에 누워
53 네거리에서
54 그렇게, 그저 그렇게
55 누구의 탓도 아닌, 房
56 낙엽이 되기까지
58 헛구역질
59 유배지의 겨울
60 풀어진 길
62 발 작
63 열차는 어디로 가고
64 악몽의 낮과 밤
65 문 밖에서 문 밖으로
66 커피를 마시는 쓰디쓴 시간
67 얕은 무의식의 꿈
68 무꾸리 노래
69 여섯 알의 아티반과 가위눌림의 날들
70 윤 씨
71 모가 난 밤의 공기 속에서
72 잡 초
73 모음의 부드러운 지령 앞에서
74 허공에 매달린 시대
75 난쟁이를 웃다
76 아버지, 11월
77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 1
78 무엇이 잘못
80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 2
81 차용된 인생
82 송신탑이 흠씬 젖어버렸을까
83 신생아실 노트
84 외로운 한 증상
86 끌과 망치가 필요한 때
87 마지막 페이지
88 삼촌 편지
89 담배 한 개비처럼
90 라라라, 알 수 없어요
91 고압지대에서 흐리고 한때 비
92 연애에 있어서
93 혼자 가는 뿔
94 불행한 노트
95 다림질하는 여자
96 아름다운 음모
97 폐물놀이
98 이십세기 최고의 행위
100 인큐베이터에서의 휴일
101 현대사적 추억거리
102 욕망의 우환
103 파동의 꼭지점에 와서
105 잠꼬대
107 구덩이 속 아이들의 희미한 느낌
109 네거티브
111 밥통 같은 꿈
113 빵과 나
115 긴다리거미의 주검
117 초록등거미와 거미줄의 마이너스적 관계
119 백치여인의 노래
120 세모여자
121 우리는 끊임없이 주절거림을 완성한다
122 비인칭의 엔트로피
123 출산 에피소드
124 길, 그 십년 후 비 오는 날
125 삼류들의 건배
126 길, 그 십년 후 비 오는 날 다음날

속죄양, 유다

129 익명의 사랑
130 겨울나무가 내 속에서
132 적과의 이별
133 사랑은 햇빛을 엑기스로 뽑아
135 우리라는 합성어로의 환생
137 탄생의 머릿돌에 관한 회상
139 따뜻한 공간이동
140 속죄양, 유다, 그리고 외계인
142 봉숭아 꽃물 들일 때 주검 저 너머에서는
143 성자의 권리 序
144 성자의 권리 1
146 성자의 권리 2
147 성자의 권리 3
149 성자의 권리 4
151 성자의 권리 5
152 성자의 권리 6
154 성자의 권리 7
155 성자의 권리 8
156 성자의 권리 9
158 성자의 권리 10
160 서역
161 제3의 살에게
162 재의 굿놀이
163 함박눈을 훔치다
165 두 개의 나사못을 위하여
167 흡혈귀
168 매맞는 자들의 고도
169 독재자
171 흰 백합꽃
173 우렁달팽이의 꿈
174 몰락에의 사랑
175 만일 누군가가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면
176 최후 사랑법
177 얼음석
178 할머니의 바다
179 무정부주의적 미립자의 고뇌
181 봄날은 간다
182 간증하는 여자
183 점 선 면
185 밤꾀꼬리에게의 고마움
187 사랑의 용병
188 수박을 밑그림으로
189 안개 통과
190 벌레를 불쌍히 여김
191 무덤에서의 기침
194 충격요법을 실험중인 진료실
200 성 마리아의 분만기
204 돌아가는 길
205 즐거운 일기
206 행로와의 이별
207 終 身

동인지 발표작

211 불의 서시
212 물의 사도
213 밀알
214 이 ~ 아 ~ 오
225 남은, 그리고
217 쓰레기 처리장
218 정신
219 동행 일기
220 겨울 강
221 등대
222 詩說 36
223 다시 봄
224 해바라기
225 산을 내려온 배암 1
226 산을 내려온 배암 3
227 산을 내려온 배암 4
228 산을 내려온 배암 5
229 산을 내려온 배암 7
230 산을 내려온 배암 8
231 산을 내려온 배암 9
232 산을 내려온 배암 10
234 산을 내려온 배암 11
235 산을 내려온 배암 12
237 산을 내려온 배암 13

시극

239 끝없는 날의 사벽

 

 

매음녀 1

 

 

팔을 저어 허공을 후벼판다.

온몸으로 벽을 쳐댄다.

퉁, 퉁 ---

반응하는 모질은 소리

사방 벽 철근 뒤에 숨어

날짐승이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녀의 허벅지 밑으로 벌건 눈물이 고인다.

한번의 잠자리 끝에

이렇게 살 바엔,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던

사내도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엔 ---

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쥐새끼들이 천장을 갉아댄다.

바퀴벌레와 옴벌레들이 옷가지들 속에서

자유롭게 죽어가거나 알을 깐다.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들추고 그녀는 매일 아침

자신의 시신을 내다버린다. 무서울 것이 없어져버린 세상.

철근 뒤에 숨어사는 날짐승이

그 시신을 먹는다.

정신병자가 되어 감금되는 일이 구원이라면

시궁창을 저벅거리는 다 떨어진 누더기의 삶은 ……

아으, 모질은 바람.

 

 

매음녀 4

 

 

함박눈 내린다.

소요산 기슭 하얀 벽돌 집으로

그녀는 관공서 지프에 실려서 간다.

 

달아오른 한 대의 석유 난로를 지나

진찰대 옆에서 익숙하게 아랫도리를 벗는다.

양다리가 벌려지고

고름 섞인 누런 체액이 면봉에 둘둘 감겨

유리관 속에 담아진다.

꽝꽝 얼어붙은 창 바깥에서

흠뻑 눈을 뒤집어쓴 나무 잔가지들이 키들키들

그녀를 웃는다.

 

반쯤 부서진 문짝을 박살내고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

그날도 함박눈 내렸다.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꼬물거린다.

한때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바다로 가는 유언

 

 

모든 폐기물들이 나와 함께

하수구를 흘러 내려간다

수런거리는 날들을, 내가 나를 덮고

온갖 찌꺼기들에 뒤섞여 유언 하나를 남긴다

땅 위에서는 아득히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사람들의 아우성

벽을 쳐대는 희미한 혼령의 소리도 들려왔다

잃는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이미

바다의 틈 사이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죽은 쥐들과 살육당한 동물들의 뼈다귀와

독한 냄새를 피우는 배설물들과

나는 강을 건널 것이며

물고기들은 바다로 흘러 들어온

지상의 폐기물들의 살을 먹는 것이다

바다는 요니의 자궁

 

문둥이가 와서 그 물에 손과 발을 씻었더니

그 병이 나았다 하더라.

 

 

낙엽이 되기까지

 

 

어젯밤에는 머리털이 한뭉치 빠졌다.

아침엔 잠에서 깨어보니 이가 하난 빠져 있다.

 

도둑고양이가 털갈이를 위해서

벌써 냉골의 나의 방

문짝을 발톱으로 긁고 있다.

 

나무 십자가를 내린다.

바삭거리는 종려가지에서 이파리들을 훑어내고

나는 잠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커튼은 잘 닫혀 있는지

 

어머니, 내 머리맡에서 유령처럼

여름날에 따두었던 탱자알로 즙을 만든다.

알레르기 돋은 살을 문지르고 있다.

「내 탓이었어요」

 

모두가 습관처럼 어깨를 들먹이고

등불에서 빛을 훔쳐낸 자들은 고해소로 간다.

몇십 알의 알약과 두어 병의 쥐약과

목걸대로 이용할 넥타이와, 유산으로 남기는

각자의 몫을 들고

 

바람은 액자의 틀을 벗긴다.

무수한 나뭇잎들이 떨어질 것이다.

엄숙한 햇살 한 점 밑에

나를 빠져나온 내가 뒹굴고 있다.

 

 

신생아실 노트

 

 

   방치된 탄생이 관 같은 요람 위에 누워 있다. 푸줏간의 비릿한 냄새, 온갖 경험을 거쳐 늙은이의 침묵에 이르기까지 누가 저것들을 그 먼 곳까지 인도할 수 있으리. 나는 세면대 가득 물을 받아 손을 씻는다.

   이곳은 불을 끄면 그대로 암흑이다. 어제 태어난 아이도 자궁 감자로 끄집어냈지 않나, 모두가 그렇다. 아니면 마취제를 전신에 걸고 절개수술로써 태어남의 시분초를 알리는 것이다. 전쟁터에 일개 보병으로 올려지는 시간이지. 나는 어린것 하나를 들어올려 벌써 노랗게 곪아가는 그 얼굴의 반점들을 지켜본다.

   이것 봐, 총과 칼로써 네 몸을 무장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 문제는 맨몸으로 기도문 한 구절 없이 버티는 용기와 저항의 힘이란다. 기도문이란 다만 죽은 자들을 위한 문장일 뿐이니까 …… 나는 알코올 솜으로 정성들여 손바닥을 문지른다. 제발 잊지 말아, 저 전깃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 ……

 

 

외로운 한 증상

 

 

   지하도 계단을 오르던 해직 근로자 오인환 씨는 갑자기 코끝을 찌르는 듯한 이상한 냄새 때문에 킁킁거리다가 무슨 냄새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두리번거리면서 지하도 계단을 빶나왔다.

   버스를 타고 덜그럭거리면서 종로통을 지날 때 그 역겨운 냄새가 다시 나는 듯하여 도대체 이놈의 냄새, 하며 눈살을 오므려 잡고 손바닥으로 쓱쓱 코를 문지르면서 돌아왔다.

   잠결에 또 그 냄새를 느낀 오인환 씨는 반쯤 꿈속에서 왜 그럴까, 이상도 하지, 어디서 나는 무슨 냄새일까, 마른 새우처럼 우등거린 채 다시 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옷장 뒤 어디 옴팡한 구석에서 나는 것 같은, 거리의 골목골목에서 무엇이 물컥물컥 썩고 있는 것 같은 냄새 때문에,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기분이 나빠 견딜 수가 없구나.

   술을 마시면 술잔에서 그 냄새가 나는 듯, 밥을 먹을 땐 구더기가 꼬물거리는 것 같아 숟가락을 던지듯 팽개치고 벌렁 드러누우면 요 때기와 이불에서,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마루 위를 덜컹덜컹 서성거렸다.

   마침내 냉장고에서 야채들이 썩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생선토막들이 줄줄 물을 흘리며 흐물텅 녹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후더분한 살 냄새가, 퀘퀘한 땀 냄새가 집안 곳곳에 배어가기 시작했다.

   옷장에서 옷가지들이 신발장에서 신발들이 살 아래 지방층 밑에 미세한 신경조직들이 늙은 창녀이 젖퉁이마냥 물컹거려 …… 냉장고를 열어보고 아, 호박이 썩고 잇구나, 냄비뚜껑을 열며 응, 생선이 썩고 있어, 오물더미 위에 앉아 오인환 씨는 젠장, 썩어가는 냄새는 정말 지독하군.

 

 

길, 그 십년 후 비 오는 날

 

 

빗물받이 홈통 속을 흘러 내려간다

날은 몹시 어둡고

「넌 끝장난 거야」

번개를 동반한 우뢰가 불안한 내일을 알린다

까딱하면 머리통이 깨질 수도

어깻죽 하나가 달아날 수도 있다

거꾸로 내리꽂히듯 나는 쿠당 쾅쾅 주르륵 죽,

몸을 가눌 수가 없구나

어쩐담,

혈액은 이미 늙었고 쓰다 만 기록물들

차갑게 식은 내 살을 떠나고 있다

빈대며 벼룩, 허연 서캐침들

이제 공짜의 내가 태어나는 시간이다

전도되어간다

주정뱅이에게로 장돌뱅이, 거렁뱅이에게로

한번은 방범창틀에 모가지 걸어 죽었었던 또 한번은

그 --- 다락방

오냐, 줄잣대를 버리마

요란한 눈물 피튀기듯 우릉, 우릉, 쾅! 쾅, 쾅,

빗줄기

허공에 매인 측량줄을 끊어 땅에 던진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