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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24. 12:58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22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

 

김용택 지음

2015, 샘터

 

대야도서관

SB107756

 

802

김65ㅅ

 

시인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기

 

아우름 07

 

다음 세대가 묻다

"내 생각을 써보라고 하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김용택이 답하다

"한 그루 나무를 보고 '나무에 새가 앉아 있다'고 쓰면 그게 글입니다.

하나를 자세히 보면 다른 것도 보입니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열을 쓰게 됩니다."

 

김용택

 

섬진강 시인이다.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장주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빚을 내서 오리를 키우다 망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교원양성소 시험을 치렀는데 덜컥 합격해 스물두 살에 모교인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되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다 보니 생각이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그것이 시가 되었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21인 신작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외 여덟 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발을 내디뎠다.
그 후 시집 《섬진강》, 《맑은 날》, 《그대, 거침없는 사랑》, 《그 여자네 집》, 《나무》, 《연애시집》, 《그래서 당신》, 《수양버들》, 《속눈썹》,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등을 냈고,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산문집으로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전8권), 《인생》,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 《사람》, 《오래된 마을》,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 등을, 자신이 사랑한 시를 묶어 평한《시가 내게로 왔다》(전5권)를 냈다. 동시집으로 《콩, 너는 죽었다》,  《내 똥 내 밥》,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등이 있다.
2008년 퇴직한 후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글을 쓰며 지낸다. 다가오는 봄, 태어나고 자란 진메마을 자기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15분 공부하고 45분 쉬는 학교를 열 생각인데, 그 학교의 이름은 '가끔 열리는 학교'다.

 

| 차 례 |

 

여는 글 | 받아들이는 힘이 세상을 새롭게 그려 낸다


1장. 보는 것이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이다
  

  임실 하면 뭐가 유명하지요?
  작고 하찮은 것들이 전부다
  오래된 마을 이야기
  여든여덟 개의 징검다리를 다 건너가려면
  시인과 느티나무


2장. 자연이 말해 주는 것을 받아쓰다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 땅 위에 적다
  가장 일찍 꽃이 피는 나무, 가장 늦게 잎이 피는 나무
  덕치면 꾀꼬리는 어떻게 울까
  두 줄 지푸라기 위에 뜬 하얀 달
  사람이 그러면 못써


3장. 가르치면서 배우다

  한 학교를 37년간 다니다
  가르치면서 동시에 배우다
  네 나무가 어떻게 하고 있데?
  뭘 써요, 뭘 쓰라고요?
  빡빡하게 칠해 봐


4장. 사는 것이 공부고 예술이 되어야지

  받아들이는 힘을 키우는 일, 공부
  오늘부터 엄마 말 듣지 마라
  새로운 땅을 딛게 해준 선생님, 책
  나름대로 잘 살면 된다


5장. 길 없는 산 앞에 서 있는 너에게(인터뷰)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먼저다
  무엇을 하며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삶이 해답을 가져다주리라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을 바라보는 일이다.

산을 바라보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눈이 오고, 바람 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우리들의 삶을 바라보는 일을 가르쳐야 한다.

바라보아야 무엇인지 알고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그것이 내 것이 된다.

그럴 때 아는 것이 인격이 된다.

 

 

들판 끝에 물드는 노을이 예술이다.

빈 논에 오는 눈이 그림이다.

산굽이 도는 물소리, 눈 위에 눈 오는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가 음악이다.

농부들이 널어 둔 벼가 그림이다.

나무 그늘 아래 서 있는 내 모습이 예술이다.

내 앞에 서 있는 네가 한 편의 시이고, 그림이고, 영화다.

 

 

어머니는 글자를 모른다. 글자를 모르는 어머니는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 땅 위에 적었다. 봄비가 오면 참깨 밭으로 달려갔고, 가을 햇살이 좋으면 마당에 호박 쪼가리를 널어 두었다가 점심 때 와서 다시 뒤집어 널었다.

아침에 비가 오면 "아침 비 맞고는 서울도 간다"고 비옷을 챙기지 않았고 "야야, 빗낯 들었다"며 비의 얼굴을 미리 보고 장독을 덮고 들에 나갔다. 바다를 보지 못했어도 아침저녁 못자리에 뜨는 볍씨를 보고 조금과 사리를 알았다. 감잎에 떨어지는 소낙비, 밤에 우는 소쩍새, 새벽하늘 한쪽 구석에 조각달, 하얗게 뒤집어지는 참나무 잎, 서산머리에 샛별이 글이었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난관에 처할 때마다 어머니는 살다가 보면 무슨 수가 난다고 했다. 세상에는 가보지 못한 수가 얼마나 많은가. 어머니는 사는 게 공부였고, 평생 공부했고, 배우면 써먹었고, 사는 게 예술이었다. 어머니는 해와 달이, 별과 바람이 시키는 일을 알고 그것들이 하는 말을 받아 땅에 적으며 있는 힘을 다하여 살았다.

 

 

가르치면서 배운다.

교육은 '자기 교육'이다.

 

 

느티나무 김경수

 

내 나무는 마을 앞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다.

아침에 학교에 오면서 보니까

느티나무 밑에

할아버지들이 놀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이 노는 그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시냇물 건너에는 들판이 있는데

들판에서는 사람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 강슬기

 

아버지의 일은 회사 일이다.

회사 일은 어렵겠다.

일이 꼬이면 풀기가 어려우니까

줄넘기 두 개가 꼬이면

풀기 어려운 거하고

회사 일은 같겠다.

 

 

중간고사 임채훈

 

오늘은 시험을

보는 날.

나는 죽었네.

나는 죽었어.

왜냐하면

꼴등을 할 테니.

 

 

뭘 써요, 뭘 쓰라고요? 문성민

 

시 써라.

뭘 써요?

시 쓰라고.

뭘 써요?

시를 써서 내라고!

네. 제목은 뭘 써요?

니 마음대로 해야지.

뭘 쓰라고요?

니 마음대로 쓰라고.

뭘 쓰라고요?

한 번만 더 하면 죽는다.

 

 

벚나무 윤예은

 

벚나무는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나는 아름다운 벚꽃을 보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나는 그게 아주 좋습니다.

 

 

언니 양승진

 

언니가 코를 골아요.

코굴코굴 참 시끄러워요.

숨이 팔딱팔딱 뛰어요.

동시를 안 쓰고 잤어요.

언니가요.

 

 

아침 김재영

 

거미줄에

이슬이

둥글둥글

바람에 흔들린다

가만히

들어 보면

음악이 들릴까?

 

 

콩, 너는 죽었다

 

콩 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서창우

 

쥐는 나쁜 놈이다

먹을 것을

살짝 살짝

다 가져간다

그러다가 쥐약 먹고 죽는다.

 

 

여름 서창우

 

이제

눈이 안 온다

여름이니까

 

 

새, 벌레들, 물소리,

물 흐르는 모양,

벌레 우는 소리,

앞산 나무와 곡식들,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고 또 노는 모습,

아무튼 너무 심심하니까 세상이 다 자세히 보인 거야.

자세히 보니까 생각이 일어났어.

그 생각들이 내 마음의 곡식 같아서 버리기가 아까운 거야.

그래서 그냥 옮겨 써봤어. 그랬더니 시가 되었어.

어느 날 내가 시를 쓰고 있어서 나도 놀랬다니까.

정말 심심해서 그랬어.

 

 

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주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문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을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잇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들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러면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봄, 이사(移徙) 김용택

 

버릴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것들도 다 내 것이니 트럭에 실었다.

내 살던 아파트

양지 쪽 베란다에 시 몇 편 놓아두었다.

너희들은 잘 있거라.

가을이 아니고, 뒤에서 꽃이 지닌 슬프다.

이제, 나는 별빛 한 가닥도

함부로 쓰지 않을란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