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1 동양철학 에세이 개정증보판

황영찬 2011. 11. 10. 07:58
2011-121 동양철학 에세이 개정증보판

김교빈 · 이현구 지음 | 이부록 그림
2006, 동녘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9978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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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녘선서 70

혼란 속에서 피어난 철학의 향연

인류 역사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우면서도 사상적으로는 가장 자유로웠던 춘추 전국 시대. 이 책에 나오는 사상가들은 550년에 걸친 그 긴 혼란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 혼란을 바로잡으려 한 사람들이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논리와 강한 실천 의지를 담고 있는 그들의 사상 속에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삶의 지혜가 가득하다.

지은이

김교빈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인문콘텐츠학회 회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지냈고, 현재 호서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철학 에세이》《하곡 정제두》가 있고, 여럿이 함께 지은 책으로 《강좌 한국철학》《기학의 모험》《동양철학과 한의학》등이 있으며, 여럿이 함께 옮긴 책으로《중국 고대의 논리》《중국 고대철학의 세계》《중국 의학과 철학》《기의 철학》등이 있다.

이현구

195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호서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동의과학연구소 편집위원 및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이, 여럿이 함께 지은 책으로 《박물관에서 꺼내온 철학 이야기》《기학의 모험》등이 있고, 여럿이 함께 옮긴 책으로 《중국 의학과 철학》《기의 철학》이 있다.

그린이

이부록

1971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동양학과를 졸업했다. 비디오아트, 일러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에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를 펴냈고,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그림을 그렸다.

차례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책 머리에

바로보기  우리들의 동양철학
공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자  인생의 보배를 간직하라
묵자  약자를 지키는 방패
장자  광활한 정신 세계의 끝없는 이야기
맹자  유가의 파수꾼
순자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법가  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한다
명가  상식을 부순 사람들
농가  영원한 농사꾼의 벗
주역  점쟁이와 철학자
돌아보기  남은 이야기들

더 읽으면 좋은 책

바로보기
우리들의 동양철학

환공이 어느 날 서재의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뜰에서 수레를 손질하던 늙은 일꾼이 그것을 보고 일손을 멈추고 환공에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이 읽고 계시는 것은 무슨 책입니까?"
"성인의 말씀이 적힌 책이다."
"그 성인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러면 그 책에 쓰여 있는 것은 성인의 찌꺼기 같은 것이군요."
환공이 벌떡 일어서며 칼자루를 잡고 말했다.
"일꾼 주제에 무례한 말을 지껄이는구나. 잘 해명하지 못하면 네 목숨을 잃을 줄 알아라."
그러자 늙은 일꾼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제 자신의 경험에서 그렇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제가 만드는 수레바퀴는 너무 꼭 끼게 하면 잘 돌아가지 않고, 너무 느슨하면 겉돕니다. 꼭 끼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고, 손에도 마음에도 딱 맞는 그 정도를 맞추는 요령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 녀석에게도 가르칠 수가 없어 이 나이가 되도록 직접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인이라는 분도 진정한 것은 말하지 못하고 죽어 버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책에 쓰여 있는 것은 성인의 찌꺼기 같은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장자》<천도>

공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공자가 제자들과 더불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도덕과 예의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부국강병의 논리가 아니라고 받아들여 주지 않는 무도한 임금에게 실망을 느끼고, 다시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 줄 새로운 임금을 찾아가는 고단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얼마를 가자 앞에 큰 강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일행 가운데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침 저만치에 밭을 가는 두 사람이 보였습니다. 혼탁한 세상을 떠나 숨어 사는 장저와 걸닉이었습니다. 공자는 제자 자로를 불러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루터 가는 길을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자로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나루터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자 장저가 되물었습니다.
"저기 수레에 올라앉아 점잖게 고삐를 쥐고 있는 사람은 누구냐?"
"공구이십니다."
"노나라의 공구란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그가 나루터 가는 길쯤은 알고 있을 텐데?"
장저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부지런히 제 할 일만 했습니다. 답답해진 자로가 이번에는 걸닉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걸닉도 자로에게 되물었습니다.
"나루터 가는 길을 묻는 너는 누구냐?"
"중유입니다."
"공구란 사람의 제자인가?"
"예,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물처럼 거세게 흘러가는데 누가 감히 고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니 자네도 나쁜 사람이나 피해 다니는 그런 공자 같은 사람을 따라다니지 말고 차라리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우리와 같이 지내는 게 어떠한가?"
걸닉도 더는 자로를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머쓱해진 자로가 돌아와서는 공자에게 그들이 한 얘기를 전했습니다. 말을 다 듣고 나서 공자가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날짐승이나 길짐승과 더불어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살겠느냐? 온 세상에 질서가 잡혀 있다면 내가 구태여 바꾸려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논어》<미자>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죽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
자로가 다시 물었다.
"귀신 섬기는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람도 다 못 섬기는데 어찌 귀신을 말하겠느냐?" 《논어》<선진>

"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서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찌 사람답다고만 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성인의 경지일 것이다. 요순도 오히려 그렇지 못할까 봐 항상 근심했다." 《논어》<옹야>

어느 날, 재아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삼년상이 너무 길지 않느냐고 하면서 1년 만에 상을 마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자는 재아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쌀밥을 먹고 비단 옷을 입어도 편하겠는가?"
"예, 편할 것 같습니다."
"군자가 상을 당했을 때는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맛있지 않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마음 편히 안락하게 거처할 수 없기 때문에 삼년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편하다면 네 생각대로 해라."
재아가 나가자 공자가 다른 제자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재아는 사람답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을 벗어날 수 있다. 삼년상은 세상 사람이 다 지내는 것이다. 재아도 부모에게 삼 년 동안 사랑을 받지 않았는가?" 《논어》<양화>

어느 날 만년의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나이 어린 제자 증삼을 불렀습니다.
"삼(參)아, 내 도는 하나로 꿰뚫어져 있다."
"예, 알고 잇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다른 제자들이 증삼에게 조금 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얘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증삼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도는 증과 서일 뿐입니다." 《논어》<이인>

위나라 임금의 초청을 받은 공자가 제자들과 더불어 위나라를 향해 가고 있을 때,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잘해 보려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떤 일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명분을 바로잡겠다."
"선생님은 사정에 너무 어두우십니다. 어째서 명분 같은 것부터 바로잡으려고 하십니까?"
"거칠구나, 자로여.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에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 법이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할 수 없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할 수 없고,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데가 없다." 《논어》<자로>

섭나라 임금이 공자에게 자기가 다스리는 어떤 마을에서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쳤는데 그 아들이 증인을 섰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 백성들의 정직함을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겨 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 줍니다. 정직이란 바로 그 속에 있습니다." 《논어》<자로>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경제를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세 가지 중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국방을 포기하겠다."
"둘 가운데 다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경제를 포기하겠다.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아예 사회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논어》<안연>

노자
인생의 보배를 간직하라

큰 도가 사라지니 인의(仁義)가 나오고 지혜가 생겨 큰 거짓말이 있게 되었다. 가까운 친척이 서로 화목하지 않자 효도니 사랑이니 하는 말이 생기고,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나오게 되었다. 《도덕경》18장

모기가 물어 대면 밤새잘 수가 없다. 지금 인의 도덕을 말하는 것은 귀찮게 인심을 어지럽혀 혼란만 더하는 것이다. 백조는 매일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매일 물들이지 않아도 검다. 하늘은 저절로 높고, 땅은 저절로 두껍고, 해와 달은 저절로 빛나고, 별은 저절로 늘어서 있고, 초목은 본래 종류가 여럿이다. 거기에 다시 인의를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마치 북을 두드려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과 같다. 《태평광기》<신선> 1장

천지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만물을 추구(芻狗)로 여긴다. 성인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백성을 추구로 여긴다. 《도덕경》5장

큰 덕의 모습은 도와 같다. 도는 오직 황홀하기만 하여 그 형상을 분간해 인식할 수 없다.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그 속에 물(物)이 있다. 잡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그 속에 형상이 있다. 도는 아득히 멀고 그윽이 어둡기만 한데, 그 속에 정기가 있다. 그 정기는 지극히 진실[眞]하다. 그 속에 믿음[信]이 있다. 《도덕경》21장

혼합하여 이루어진 것이 있는데, 천지보다도 먼저 생겼다. 고요히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다. 짝도 없이 홀로 있다. 언제나 변함이 없다. 어디나 안 가는 곳이 없건만은 깨어지거나 손상될 위험이 없다. 그것은 천하 만물의 어머니가 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부르는 이름이 '도'다. 억지로 이름 붙여 '큰 것[大]'이라 한다. 《도덕경》25장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니 '이(夷)'라고 한다.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니 '희(希)'라고 한다.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니 '미(微)'라고 한다. 이 세가지는 말로 밝힐 수 없다. 그래서 뒤섞어서 '하나(一)'라고 한다. 그것은 위가 더 밝지도 않고, 아래가 더 어둡지도 않다. 긴 끈처럼 꼬여서 이어져 있으니 이름 붙일 수가 없다.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이것을 꼴 없는 꼴이라 하고, 실체[物] 없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것을 황홀이라고 한다. 《도덕경》14장

도는 일(一)을 낳고, 일은 이(二)를 낳고, 이는 삼(三)을 낳는다. 만물은 음기(陰氣)를 곁에 가지고 양기(陽氣)를 안에 간직하며, 충기(沖氣)로 조화를 이룬다. 《도덕경》42장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나오고, 유는 무(無)에서 나온다. 《도덕경》40장

도는 비어 있는 듯하나, 그 작용은 가득 찬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깊고 아득하여 만물의 근원[宗]이며, 맑아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지식인지 모른다. 하느님보다 먼저인 듯하다. 《도덕경》4장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인간도 크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인간이 그중에 하나를 차지한다. 인간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 《도덕경》25장

나라가 작고, 백성 수가 적어야 한다. 온갖 도구가 있지만 쓰지 않게 하며 백성들이 생명을 중시하도록 하면, 살던 곳을 버리고 멀리 옮겨 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배나 마차가 있어도 탈 필요가 없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노끈을 묶어서 글자 대신 쓰던 고대의 소박한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면, 먹는 그대로 맛있고 입는 그대로 아름답고 사는 그곳이 편하다고 여기고 그 풍속을 즐겨서, 이웃 나라가 바라보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가 없을 것이다. 《도덕경》80장

총명과 지혜를 끊어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인과 이 같은 도덕을 끊어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인과 의 같은 도덕을 끊어 버리면 백성들이 옛날처럼 효성스럽고 자애롭게 될 것이다. 정교하고 편리한 물건들을 없애 버리면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 소극적 방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외모는 수수하고 마음은 소박하게 하며, 이기심과 욕망을 줄이게 한다. 《도덕경》19장

똑똑한 사람을 높이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만든다. 얻기 힘든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도적질하지 않게 한다. 욕망을 일으킬 만한 것을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며, 의욕을 줄이고 뼈를 튼튼히 하여 늘 백성들이 무지(無知)하고 욕심이 없게 만들며, 지식인들이 제멋대로 주장할 수 없게 만든다. 무위(無爲)로 다스리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도덕경》3장

천하는 불가사의한 그릇이어서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다. 잘하려고 애쓰면 실패하고, 꽉 잡고 장악하려 하면 천하를 잃고 만다. 《도덕경》29장

큰길이 넓으나 백성들은 샛길을 좋아한다. 관청은 깨끗하게 지었으나 논밭이 황무지가 되었고, 창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권력자들은 좋은 옷을 입고 고급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밤마다 연회를 열어 음식이 싫증날 정도다. 그러고도 재물을 남도록 가졌으니, 이것은 도둑질하여 사치에 쓰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도가 아니다. 《도덕경》53장

정치가 너그럽고 간섭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순박해진다. 정치가 자질구레한 구석구석까지 감시하면 백성들이 불만을 품게 된다. 《도덕경》58장

최고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고 칭송을 듣는다. 그 다음 수준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 아래는 백성들이 그를 경멸한다. 《도덕경》17장

장차 그것을 축소하려면 먼저 그것을 확장해야 한다. 장차 그것을 약화하려면 먼저 그것을 강화해야 한다. 장차 그것을 없애려면 먼저 그것을 진흥해야 한다. 장차 빼앗고자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은미한 지혜라 한다. 《도덕경》36장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강한 물고기가 부드러운 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를 이롭게 하는 수단을 백성들이 보게 해서는 안 된다. 《도덕경》36장

최고의 덕을 가진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난다. 수준이 낮은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고자 하며, 또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안달한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최상의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쓰지 않으며 그것을 바깥으로 자랑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낮은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깥에 나타내어 남에게 과시하려 한다. 《도덕경》38장

높은 덕은 오히려 골짜기처럼 낮아 보이고, 넓은 덕은 부족한 것처럼 보이고, 꾸준한 덕은 건전하지 않아 보이고, 진실한 덕은 변하기 쉬워 보인다. 《도덕경》41장

정말로 덕을 지닌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갓난아이는 무지하고 무심하므로 독충도 찌르지 않고 맹수도 덤벼들지 않고 사나운 짐승도 발톱을 대지 않는다. 뼈가 연약하고 근육이 부드러우나 꽉 움켜쥔 주먹은 단단하다. 아직 남녀의 성교도 모르는데 고추가 서 있다. 정기가 최고로 충만해 있다는 증거다. 하루 종일 울부짖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자연과의 조화가 최고로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다. 《도덕경》55장

지혜는 도의 시각에서 보면 단순한 장식물에 지나지 않고, 인간을 어리석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도덕경》38장

지식과 분별심이 발달하고 나서 인간의 기교에 의한 큰 거짓이 나타났다. 《도덕경》18장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아는 것은 최상의 지혜요,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모르는 것은 착오다. 착오를 자각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착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착오에 빠지지 않는다. 《도덕경》71장

제나라의 전씨가 저택 뜰에서 어떤 사람의 송별회를 열었다. 손님이 천 명이나 모여들었는데, 그중에 물고기와 기러기를 선물로 가져온 사람이 있었다. 전씨는 고마워하면서 말했다.
"아, 하늘의 은총이 참으로 깊도다. 인간을 위해 오곡을 만들고, 물고기와 새를 길러 인간에게 쓰이게 해 주시는구나."
둘러선 손님들이 입을 모아 전씨의 말에 찬동하였다. 그때 포씨의 열두 살짜리 아들이 나서며 말했다.
"당신의 말은 틀렸습니다. 천지 만물은 모두 우리와 같은 동료입니다. 동료들 사이에 귀천의 차별은 없습니다. 다만, 크고 작은 차이, 지혜와 힘의 차이에 따라 서로 잡아먹고 있을 뿐이지, 다른 것에게 소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제멋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잡아먹을 따름이지, 하늘이 인간에게 먹이기 위해 그것들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모기나 파리 떼가 인간의 피를 빨고 호랑이와 늑대가 동물들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하늘이 모기와 파리를 위하여 인간을 만들고, 호랑이와 늑대를 위해서 동물들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열자》<설부> 1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게 큰 이익을 주면서도 자기를 주장하여 다투지 않고, 누구나 싫어하는 낮은 장소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도의 본래 모습에 가깝다. 《도덕경》8장

만들어 내고도 소유하지 않으며, 일을 하고도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대로 간섭하지 않는다. 이것을 '심원한 덕[玄德]'이라고 한다. 《도덕경》51장

정말로 흰 것은 언뜻 보면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큰 사각형은 각이 보이지 않는다. 큰 그릇은 완성이 더디다. 큰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는다. 《도덕경》41장

정말로 똑바른 것은 마치 굽어 있는 것 같고, 정말로 능란한 것은 마치 몹시 서투른 것 같고, 진정한 웅변은 오히려 말주변이 없는 것 같다. 《도덕경》45장

수컷의 강함을 알고 암컷의 약함을 지켜 가면, 온갖 냇물이 모여드는 계곡이 된다. 그러면 도가 몸에서 떠나지 않고, 무심한 갓난아이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도덕경》28장

영광이 무엇인지를 다 안 다음에 치욕의 입장을 지켜 가면, 만물을 포용하는 골짜기가 된다. 그러면 도가 온전히 그 몸에 실현되어,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통나무같이 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상태로 되돌아간다. 《도덕경》28장

세상에서 물만큼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물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도덕경》43장

재주의 날카로운 칼끝을 누르고, 마음의 이해타산을 버리고, 지혜의 빛을 감추고, 속세의 먼지 속에 묻혀 산다. 이것이 도와 일체가 되는 것이다. 《도덕경》4장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운동 모습이며,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도의 작용 방식이다. 《도덕경》40장

모든 현상은 세계의 어머니[道]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다. 모든 현상의 근원인 도를 알아야 그 자식인 사물을 알고, 그래야 일생을 통해 불행이나 재난을 만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도덕경》52장

송나라의 한 시골 사람이 가종하지 않은 옥돌을 주워 대신인 자공에게 선물로 바치려 했다. 그런데 자공은 극구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나이가 자공을 만나 말했다.
"이것은 값비싼 보물입니다. 대신 같은 고귀한 분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지, 우리 같은 천한 자들이 가질 물건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거절하시는 겁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자네는 옥돌을 보배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지 않는 것을 보배라고 생각하네." 《한비자》<유로>

세상 사람들은 마치 진수성찬이라도 받아 놓은 듯 신바람이 났네.
화창한 봅날, 정자에 올라 꽃구경이라도 하듯이.
그러나 나만은 담담하고 조용하며 마음이 동하는 기미가 없네.
마치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마치 아주 지쳐 돌아갈 집도 없는 강아지처럼.
사람들은 무엇이든 남아돌 만큼 가지고 있지만,
나만은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네.
아, 나는 바보같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는 그저 멍청할 뿐.
남들은 딱 잘라 잘도 말하는데, 나만은 우유부단, 우물쭈물.
흔들흔들 흔들리는 큰 바다 같네.
쉴 줄 모르고 흘러가는 바람이네. 《도덕경》20장

묵자
약자를 지키는 방패

초나라에 공수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민 출신인데도 기술이 뛰어나서 대부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공수반은 아무리 높은 성에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구름까지 닿을 만큼 높은 사다리를 제작해 놓고 송나라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제나라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들은 묵자가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꼬박 열흘을 걸어 초나라로 와서는 공수반을 찾아갔습니다. 공수반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선생이 무슨 일로 이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북쪽 지방에 사는 어떤 사람이 나를 귀찮게 하는데, 당신이 그 사람을 없애 주었으면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공수반이 매우 불쾌해 하자 묵자는 다시 정중하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렇게 해 주면 첨금을 드리지요."
"나는 의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남을 죽이지 않습니다."
묵자는 마음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탄복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반에게 두 번 절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당신이 구름 사다리를 만들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던데 송나라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땅과 백성이 남아돌 정도로 많으면서 땅도 좁고 백성도 적은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더구나 죄 없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어질지 못합니다. 지혜롭지도 어질지도 못한 일임을 알면서도 임금에게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고, 잘못임을 지적하면서도 임금을 끝내 설득하지 못한다면 강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한 사람도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왜 많은 송나라 사람을 죽이려 합니까?"
묵자의 말을 들은 공수반은 그제서야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구름 사다리 공격 계획을 왕에게 보고한 뒤라 이제 와서 취소할 수는 없다며 난감해 했습니다. 묵자는 공수반과 함께 초나라 왕을 만났습니다.
묵자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이 가진 보잘 것없는 것을 훔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도벽이 있는 사람이겠지요."
"제가 보기에 넉넉하고 풍요로운 초나라가 가난하고 약한 송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도벽과 다를 게 없습니다. 더구나 임금께서는 포악하다는 비난만 듣게 될 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수반은 내게 구름 사다리를 만들어 주면서 반드시 송나라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소."
묵자는 허리띠를 끌러 땅에다 원형으로 둘러놓고 그 안에 들어가 선 다음, 품속에서 첩이라는 이상한 도구를 꺼냈습니다. 그러고는 공수반더러 모형 구름 사다리를 이용해 공격해 보라고 했습니다. 공수반이 아홉 가지 방법을 써서 공격했지만 묵자는 다 막아냈습니다.
공수반의 공격 기술이 바닥났는데도 묵자에게는 아직 쓰지 않은 방어 기술이 여럿 남아 있었습니다.
공수반이 묵자에게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생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알기는 하지만 말하지 않겠소."
"나도 당신이 얘기하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만 얘기하지 않겠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도대체 뭡닊?"
"공수반의 생각은 저를 죽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만 죽여 없애면 송나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송나라에선 제가 훈련시킨 제자 300명이 이 도구로 무장한 채 기다리고 잇습니다. 그러니 저를 죽여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초나라 왕은 공격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묵자》<공수>

묵자를 따르는 무리가 180명인데, 그들은 우두머리의 명령이 떨어지면 불 속에 들어가는 일이건 칼날을 밟고 서는 일이건 절대 주저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회남자》

진나라의 복돈이 거자를 맡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이 살인죄를 저질렀다. 복돈은 나이도 많은 데다가 대를 이을 사람이라곤 그 아들 하나뿐이었다.
진나라 혜왕이 복돈에게 말했다.
"당신은 늙었고 또 외아들이니 죄를 감해 주겠소."
"묵가의 법에 따르면 남을 죽인 자는 죽어야 하고, 남을 해친 자는 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온 세상의 대의입니다. 나는 묵가 사람이니 묵가의 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복돈은 이렇게 대답하고 자기 아들을 처형하였다. 《여씨춘추》<거사>

거자 맹승은 형나라의 양성군과 아주 가까이 지냈다. 양성군은 맹승에게 성을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 왕의 장례에 참석하러 갔다가,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망명해 버렸다. 그러자 형나라에서는 양성군의 땅을 몰수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맹승은 양성군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묵가 집단에게 성을 사수할 것을 명령했다.
한 제자가 반론을 제기했다.
"우리가 여기서 모두 죽는 것은 양성군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그러다간 묵가 집단이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묵가의 지휘권은 송나라에 있는 전양자가 계승할 것이니 묵가가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양성군과의 약속을 어긴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묵가 집단돠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맹승은 이렇게 말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명령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자결했고, 맹승과 그 부하들도 모두 전사하였다.
전양자에게 거자 자리를 넘겨 준다는 맹승의 서신을 전하러 간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신을 전하고 나서 전양자에게 말했다.
"저희는 이제 다시 돌아가 싸우다 죽겠습니다."
전양자가 그들을 말렸다.
"이제는 내가 거자이니 내 말을 들으시오."
그러나 두 사람은 극구 돌아가서 자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보인 행동은 후대 묵가 사람들에게 거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씨춘추》<상덕>

묵자는 자신의 사상을 인과 의라는 말로 자주 표현하였습니다. 어느 날 공수반이 이를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해전에서 상대방의 배를 잡아당기는 갈고리와 상대방의 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밀어내는 밀대를 만들었습니다. 선생은 걸핏하면 인이니 의니 하는데, 선생이 떠드는 인의에도 내가 만든 갈고리나 밀대 같은 것이 있소?"
"내가 만든 갈고리와 밀대는 당신이 만들어 낸 것들보다 더 훌륭하지요. 나는 사랑을 이용해서 남을 끌어들이고, 겸손을 이용해서 남을 밀어냅니다. 사랑이 아니면 남들이 당신을 가까이하지 않고, 겸손이 아니면 남들이 당신에게 대들게 되지요." 《묵자》<노문>

만일 당신이 무슨 일 때문에 어딘가로 떠난다고 하자. 맡은 임무가 위험하고 길이 험해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면, 당신은 처자식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자기 가족이나 다름없이 당신 가족을 돌봐 줄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아니면 당신 가족보다 자기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묵자》<겸애 하>

장자
광활한 정신 세계의 끝없는 이야기

아프리카에는 양과 닮은 스프링복이라는 야생 동물이 있답니다. 그 놈들은 수백,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풀밭을 찾아다니는데, 풀밭을 만나면 뜯어먹고 다 먹으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풀밭이 있어도 계속 달리는 경우가 있답니다.  그건 앞쪽에서 풀을 죄다 뜯어먹어 버려 먹을 게 없어진 뒷놈들이 앞에 가는 놈들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랍니다.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점점 더 빨라져 새로운 풀밭이 나타나도 먹지 못하고, 떼를 지어 계속 달리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한꺼번에 죽는 수도 있답니다.
장자의 눈으로 우리 현대인들을 본다면, 바로 이 스프링복이라는 양 떼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는 날마다 바쁘게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장자와 함께 산에 오르면 이런 대화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 아래 차들과 사람들을 보게. 분주히 무엇인가를 쫓아다니지 않는가? 저들이 무얼 찾고 있는지 알겠는가?"
"저 사람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바쁘게 뛰고 잇습니다. 벌건 눈으로 권력과 명예와 부와 사치 향락을 좇는 자들도 있겠지만, 저나 선생님처럼 실업자가 되어 산기슭이나 어슬렁거리는 것보다는 부지런히 살아가는 게 좋지 않습니까?"
"답을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왜 딴소리를 하는가? 나도 실업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닐세. 그건 그렇고 나는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바삐 찾아다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네. 저들은 매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게 분명해. 그러니까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저 사람들을 너무 바빠서 이제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장자》를 읽고 낸 독후감의 일부

한번은 장자가 문혜군이라는 왕을 초청해 놓고, 소 잡는 기술자를 강사로 내세워 도를 강의하게 했다. 강사는 먼저 실기로 왕에게 시범을 보였다. 그의 손놀림과 자세, 칼을 쓰는 동작은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문혜군이 경탄하며 말했다.
"아아, 훌륭하도다!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도 있는가?"
소 잡는 기술자가 칼을 놓고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입니다. 기술이 아니지요. 제가 처음 소 잡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보이는 것이 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소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으로 소와 만날 뿐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이 멈췄고, 마음만 움직입니다. 오직 소의 결대로 칼을 움직여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을 쪼개 벌리고, 뼈와 뼈 사이의 빈 곳에 칼을 밀어넣고, 소의 몸에서 원래부터 빈 곳을 따라가니, 뼈나 살이 엉겨 붙은 곳에 칼이 잫는 일이 없으며, 하물며 큰 뼈에 닿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솜씨 좋은 사람도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이 엉긴 곳을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다달이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칼은 지금 19년이 되었습니다. 잡은 소가 수천 마리는 됩니다. 그런데도 칼날이 금방 숙돌에 간 것 같습니다. 원래 소의 뼈마디 사이에는 빈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집어 넣으니, 자연히 넉넉하고 넓어 아무리 칼을 휘저어도 반드시 남는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19년이나 쓴 칼날이 아직도 금방 숫돌에 갈아 낸 것 같지요.
하지만 살과 뼈가 얽히고설킨 곳에서는 저 역시 어려워집니다. 두렵고 조심스럽기만 하고, 눈이 한곳에 고정되어 손놀림이 더뎌집니다. 따라서 칼의 움직임도 매우 미묘해집니다. 그래서 찢고 벌려 다 가르고 발라내면, 마치 흙덩이가 땅에 쌓이듯 고깃덩이가 쌓이는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저는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돌아보며 흐뭇해합니다. 그러고는 칼을 닦아 넣어 두지요."
"정말 훌륭하다. 나는 그대의 말을 듣고 비로소 양생의 비결을 알았다." 《장자》<양생주>

남쪽 바다의 황제는 숙이고, 부쪽 바다의 황제는 홀이며, 중앙 땅의 황제는 혼돈이다. 숙과 홀이 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나면 혼돈이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숙과 홀은 혼돈의 덕에 어떻게 보답할까 의논한 끝에 이렇게 결정했다.
"사람은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혼돈은 홀로 이것이 없으니 우리가 뚫어 주세."
그리하여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는데, 일주일째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장자》<응제왕>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알아야 할 것은 무한하다.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좇는 일은 위태로울 뿐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알았다고 여기는 것은 더욱 위태롭다. 착한 일을 하더라도 유명해지지 말고, 나쁜 짓을 하더라도 형벌에 걸리지는 말라. 중도(中道)를 기준으로 삼으면 몸을 상하지 않고, 생긴 대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으며,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타고난 수명을 다할 수 있다. 《장자》<양생주>

주나라 5대 천자인 목왕이 서쪽 제후국들을 둘러보는 길에 어느 나라에서 언사(偃師)라는 이름을 가진 기술자를 선물로 받았다. 그는 천자를 위해 특별히 솜씨를 발휘하여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었다. 걸음걸이도 능숙하고 몸놀림도 능란하여 살아 있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턱을 움직여 노래 부르고 손을 흔들어 춤추는 모양을 보고 천자는 진짜 인간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런데 연기를 한 차례 끝낸 이 인형이 천자를 모시고 있는 총희에게 윙크를 하는 게 아닌가.
천자는 크게 노하여 당장 언사를 죽이려 하였다. 언사는 벌벌 떨면서 인형을 풀어헤쳐 천자에게 보였다. 가죽 · 나무 · 아교 · 옻 · 백흑(白黑) · 단청(丹靑)을 합쳐서 만든 것이었다. 천자가 하나하나 살펴보니, 안에는 간 · 쓸개 · 심장 · 폐 · 비장 · 신장 · 창자 · 위장이 있고, 겉에는 근육과 뼈, 마디, 가죽과 털, 이빨과 머리털이 있는데 모두 모조품이었다. 천자가 시험 삼아 인형의 심장을 떼어내니 입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간을 없애니 눈으로 보지 못했다. 신장을 없애니 발로 걷지 못했다.
천자는 비로소 기뻐하며 말했다.
"사람의 기술이 이처럼 조물주와 같을 수 있는가!" 《열자》<탕문>

북쪽 바다에는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다. 변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붕의 등은 몇 천 리인지 알지 못한다. 한번 떨쳐 날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바다로 옮겨 간다. 남쪽 바다는 하늘의 못[天池]이다. 《제해》는 괴상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그 책에 "붕이 남쪽 바다로 옮길 때, 물길을 갈라 치는 것이 삼천 리요, 요동쳐 오르는 것이 구만 리이며, 여섯 달을 가서 쉰다"라고 하였다. 《장자》<소요유>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도는 어디에 있는가?"
"없는 곳이 없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지적하여 말해 보시오."
"쇠파리에 있다."
"도가 어찌 그렇게 지저분한 데 있는가?"
"가라지나 피 같은 잡초에 있다."
"어째서 더 하찮은 것에 있는가?"
"옹기 조각에 있다."
"왜 점점 더 심해지는가?"
"똥오줌에 있다."
"……."
장자가 말하였다.
"당신의 질문은 본질을 물은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사물을 벗어나 도를 이야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극한 도는 이와 같고, 위대한 말도 이와 같다." 《장자》<지북유>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짝을 여는 도둑에 대비하려면, 반드시 끈으로 묶고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현명함이다. 그러나 큰 도둑은 궤짝을 지고 상자를 들고 주머니를 둘러메고 달아나면서 오히려 끈과 자물쇠가 약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 세상에서 말하는 현명함이란 결국 큰 도둑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아닌가(지식인이란 자들은 나라를 전쟁으로 빼앗는 군주들의 종이 아닌가)? 《장자》<거협>

도덕은 명예욕 때문에 흔들리고, 지략은 전쟁 속에서 나온다. 명예욕은 서로를 파괴하고, 지략은 전쟁 무기가 된다. 이 두 가지는 흉한 것이니 추구할 만한 것이 아니다. 《장자》<인간세>

너와 내가 논쟁을 하여 네가 이겼다면, 과연 너는 옳고 나는 틀린 것인가. 내가 너를 이겼다면, 과연 나는 옳고 너는 틀린 것인가.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제삼자를 부른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바르게 판정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너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너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나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다른데 어떻게 바르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의견이 같은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같은 데 어떻게 바르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와 나와 제삼자가 모두 서로 알 수 없는데, 또 다른 사람을 부른다고 해결되겠는가. 《장자》<제물론>

(세계가 하나라면) 이미 하나라고 했으니 말한 것이 있지 않은가. 이미 하나라고 했으니 말한 내용이 있지 않은가. 하나인 세계와 하나라는 말이 있으니 둘이 되고, 둘과 하나가 셋이 된다. 이 이하는 계산이 뛰어난 사람도 다 헤아릴 수 없는데, 처음부터 여럿일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장자》<제물론>

장자와 혜자가 호의 다리 위에서 한가하게 거닐고 있었다.
장자 : 피라미가 자유롭게 놀고 있구나.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지.
혜자 :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 줄 아는가?
장자 :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을 아는가?
혜자 : 나는 자네가 아니니 자네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틀림없네.
장자 :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세. 자네가 나에게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 줄 아느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 말을 알아듣고 물은 것이네. 어떻게 알았는지 말하겠네. 나는 이 물가에서 알았네. 《장자》<추수>

장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옹이가 많고 구불구불한 수천 년 된 고목을 보고 "이 나무는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고 하면서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강의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주막에서 쉬는데, 주인이 잘 울지 않는 닭을 '쓸모가 없다'고 목을 비트는 것을 보고 장자는 '쓸모 잇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서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강의하였다. 《장자》<산목>

세계는 항상 홀연히 흘러가니 일정한 형태가 없다. 모든 존재는 무상하게 변화해 가는 것이다.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나는 자연과 함께 가는 것인가? 정신은 어디로 움직여 가는 것인가? 그들은 훌훌 어디로 가고 총총히 어디로 떠나는가? 모든 존재가 눈앞에 펼쳐져 있으되, 돌아갈 곳을 모르느구나! 옛날 도술에 이러한 것이 있었으니 장주(장자)가 듣고서 기뻐하였다.
ㄱ그는 언제나 터무니없는 환상, 황당한 이야기, 끝없는 변론으로 제멋대로 사설을 늘어놓지만, 편견을 고집하지 않았고, 한쪽 면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더러워서 정중한 말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두서없이 흘러가는 말로써 변화무쌍하게 담론하고, 옛 성현의 말씀으로 진실을 믿게 하고, 비유로써 도리를 펼쳤다. 그는 홀로 천지자연과 더물어 정신을 교류하였으나 스스로 뽐내어 다른 사물을 경시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세속에 섞여 살았다. …… 그의 정신은 위로는 천지를 만든 자와 함께 노닐었고, 아래로는 삶과 죽음, 처음과 끝을 넘어서 존재하는 자연과 벗이 되었다. 그의 철학 사상은 원대하고 넓고 깊고 무한하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조화와 적절함에 있으니,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잇다. 그러면서도 모든 변화에 적응하고 모든 존재를 해석하는 데에서 그의 이론은 무진장하다. 그 이론의 전개는 끝이 없고 홀홀망망하여 다 파악될 수 없도다!

맹자
유가의 파수꾼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들 말하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어찌 말하기를 좋아하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럴 뿐이다. 우임금은 황하를 다스려서 온 세상을 편하게 했고, 주공은 오랑캐를 막아 내고 사나운 짐승을 쫓아내서 백성을 편하게 했으며, 공자는 《춘추》를 지어 못된 신하와 불효자 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나는 이분들을 본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고 못된 이론들을 막아내려고 한다. 말솜씨가 뛰어난 것이 어찌 말하기를 좋아해서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맹자》<동문공 하>

입이 단맛을, 눈이 아름다운 빛깔을, 귀가 밝은 소리를, 코가 향기를 좋아하고 팔다리가 편안함을 원하는 것이 본성이긴 하다. 하지만 그 속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命]'이 있기 때문에 군자는 본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맹자》<진심 상>

대인이 할 일이 따로 있고, 소인이 할 일이 따로 있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여러 기술자들이 만든 물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일 그 모두를 반드시 스스로 만들어 쓰게 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을 끌어다가 일에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한다고 했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남을 먹여 주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에게 얻어먹는 것이 온 세상에 통하는 원칙이다. 《맹자》<동문공 상>

어느 날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났다. 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천릿길을 멀다 않고 저희 나라를 찾아 주셨으니 저희 나라에 무슨 이로운 일이 있게 될까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임금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로울까를 따지면 벼슬아치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에 이로울까를 따지게 되고, 선비나 일반 민중은 어떻게 하면 내게 이로울까를 따지게 됩니다. 그러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맹자》<양혜왕 상>

예전에 요임금이 순에게 왕위를 주었다. 그러자 순은 요의 아들이 있는데 자신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숨어 버렸다. 백성들이 모두 순을 쫓아갔다. 순은 신하인 우에게 왕위를 주었다. 우도 순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숨어 버렸다. 역시 백성들이 우를 쫓아갔다. 우도 신하인 익에게 왕위를 주었다. 익 또한 우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숨어 버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익을 쫓아가지 않았다. 《맹자》<만장 상>

순자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본성이 원래 악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자 하고, 천한 사람이 귀해지려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법가
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는 사랑 말고 그 무엇이 있다. 아들이 태어나면 부모는 서로 반가워하고, 딸이 태어나면 죽일지도 모른다. 아들과 딸은 다같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다. 그런데도 아들일 때는 기쁨이 따르고, 딸일 때는 죽음이 따르는 것은 어째서인가. 부모는 나중에 편할 것을 생각하고 장기적 이익을 계산한다. 부모까지도 자식과의 관계에서 이해타산적인 계산을 하고, 이에 따라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한비자》<육반>

하인이 주인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그가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에 대한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인이 하인을 잘 대우하는 것은, 그가 친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인이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은 이용 가치에 집중되고,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한다. 《한비자》<외저설 좌상>

사람은 이기적 목적으로 주고받는다. 이해관계가 맞으면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 화목하게 살 것이고, 이해가 충돌한다면 아비와 자식 사이라도 서로 충돌할 것이다. 《한비자》<육반>

뱀장어는 뱀을 닮았고, 누에는 송충이와 흡사하다. 사람들은 뱀을 보면 깜짝 놀라고, 송충이를 보면 소름이 오싹 끼치지만, 고기잡는 이들은 뱀장어를 손으로 주무르고, 여자들은 누에를 손으로 만진다. 이득이 생기기만 하면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용사가 되는 것이다. 《한비자》<설림 하>

수레 만드는 기술자는 사람들이 모두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기술자는 사람들이 일찍 죽기만 기다린다. 수레 만드는 사람이 더 착하고 관 만드는 사람이 더 악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관이 안 팔린다. 종사하는 일의 업종에 따라 이해타산이 서로 다르다. 이해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람이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한비자》<비내>

미자하라는 미소년이 위나라 왕의 총애를 받고 있을 때, 어머니 병환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왕의 수레를 몰래 훔쳐 급하게 타고 나간 일이 있었다. 위나라 법에는 국왕의 수레를 몰래 타면 다리를 자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왕은 그의 효심이 극진함을 가상히 여겨 문책하지 않았다. 또 어느 날 위나라 왕이 과수원에 나들이할 때 그가 함께 수행하여 복숭아를 따서 먹었다. 그 가운데 아주 단 복숭아 하나 있어 그것을 먹다가 말고 나머지 반쪽을 왕의 입에 넣어 맛보게 하였다. 왕은 이를 무례하다 아니하고 오히려 고맙게 여겼다.
그런 뒤 미자하가 늙고 보기 싫어지자 왕은 싫증이 나서 전에 한 일을 들추어 벌주었다. 미자하가 취한 행동은 달라진 게 없었으나, 앞서 칭찬 받은 그 일로 뒤에 벌을 받게 된 것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의 변화에서 온 것이다. 《한비자》<설난>

방경이 현령이 되어 시장 관리 책임자를 시장에 순찰을 보내게 되었다. 책임자를 내보내고 나서 다른 관리를 시켜 그를 다시 불러들인 다음, 잠시 같이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순찰하러 가게하였다. 시장 관리 책임자는 현령이 다른 관리에게 무언가 이야기한 것 같다는 생각에서 혹시 감시하고 있나 싶어 감히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한비자》<내저설 상>

이회는 위나라 문후에게 벼슬하여 태수가 되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활을 보급할 생각으로 이런 포고령을 내렸다.
"소송에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둘 다 활로 과녁을 쏘게 해서 맞춘 사람을 이긴 것으로 하고, 못 맞춘 사람을 진 것으로 한다."
포고령이 나붙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활을 배우기 시작하여 밤낮을 쉬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진나라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을 여지없이 쳐부수고 승리하였다. 모든 사람이 활을 잘 쏘았기 때문이다. 《한비자》<내저설 상>

진평공이 가까운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가 문득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임금이 되었다고 해서 이렇다 할 즐거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소리를 하든 내 말을 거역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장님 악사 사광이 거문고를 번쩍 들어 평공을 콱 찌르려 했다. 평공이 급히 피하는 바람에 거문고가 벽을 허물어뜨렸다. 평공이 놀라서 물었다.
"너는 지금 누구를 치려고 했더냐?"
"방금 옆에서 못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를 치려 했습니다."
"그게 바로 나다."
"아아, 그런 말은 임금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뒤에 일꾼들이 허물어진 벽을 고치려 하자 평공이 이를 중단시켰다.
"그대로 두어라. 나의 교훈으로 삼겠다." 《한비자》<난일>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우선 그 방패를 자랑하기를 "나의 방패는 아주 견고하여 어떤 것으로도 뚫을 수 없다"라고 하고, 곧 그 창을 칭찬하기를 "나의 창은 아주 예리하여 어떤 물건도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가 "너의 그 창으로 너의 그 방패를 뚫어보아라. 어찌 되겠는가?" 하니, 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했다.
무릇 꿰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같은 때에 함께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한비자》<난세>

오늘날 나라 안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치를 논하고 있고 관중과 상앙의 법률서를 가지지 않은 자가 하나도 없건만 토지는 자꾸 황폐해 간다. 이것은 농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은데 쟁기를 드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방법을 말하지만 우리의 군대는 자꾸 약해지고 있다. 이것은 병법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으나 무기를 드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한비자》<오두>

어떤 사람이 주나라 왕을 위해 말 채찍에 그림을 그렸는데, 삼 년이 걸려서야 일을 끝냈다. 왕이 그것을 받아 보니 보통 채찍에 옻칠한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왕이 버럭 화를 내니 그 사람이 말했다.
"두 길쯤 되는 높은 벽을 만들어 거기에 여덟 자 정도의 창문을 낸 다음,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채찍을 그 창에 비추어 자세히 보십시오."
왕이 들은 대로 방을 꾸미고 채찍을 보았더니, 거기에는 용과 뱀, 새와 짐승, 수레와 말, 그 밖의 여러 가지 모양들이 보기 좋게 새겨져 있었다. 왕은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이 채찍에 그림을 그린 재주는 과연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의 쓸모로 말하면 보통 채찍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한비자》<외저설 좌상>

옛날 송나라에 농부가 잇었다. 그 사람의 밭 가운데에 나무 그루터기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토끼 한 마리가 마구 달려와서 그루터기를 정면으로 들이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러자 이 농부는 쟁기를 버리고, 토끼가 또 와서 부딪쳐 죽기를 기대하며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당연히 더 잡을 수 없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었다. 만약 옛날의 통치 방법으로 오늘날의 민중을 다스리려 한다면, 이 농부와 똑같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한비자》<오두>

훌륭한 임금으로 기록된 요는 평민이었을 때 세 집을 다스리지 못했고, 폭군이었던 직은 황제가 되어 온 천하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권세와 지위가 반드시 필요하고, 지혜와 착함이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안다. …… 착함과 똑똑함으로는 민중을 복종시킬 수 없으나 권세와 지위로는 복종시킬 수 있다. 《한비자》<난세>

현명한 군주가 절대적 권능을 가지고 다스릴 때 신하들은 모든 비행을 삼간다. 그렇게 되면 신하들은 감히 군주를 속이려 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들이 군주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군주의 권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민중은 기꺼이 봉사할 것인데 그것은 군주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군주의 권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높은 지위에 있는 현명한 군주가 민중을 다스릴 수 있으며, 절대적 권능을 가진 사람이 백관을 제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민중과 백관이 명령에 복종하고, 군주의 지시 사항이 잘 시행된다. 군주가 존중을 받고 백관이 복종하게 된다. 그러므로 법에는 "군주는 높이고 백관은 천대한다. 그것은 특별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최고의 권능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한비자》<팔경>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 시와 역사, 예절과 음악, 도덕과 효도, 사랑과 신분 질서 등의 도덕과 문화가 있다고 해도 통치자가 나라를 지키고 싸우는 데 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셈이다. 만일 어떤 나라가 이런 것들로 다스린다면 적이 쳐들어오자마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적이 쳐들어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나라는 가난할 것이다. 《상군서》<거강>

한 나라가 항상 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항상 약한 채로 있을 수도 없다. 법이 엄격히 운영될 때 그 나라는 강하고, 법이 허술하게 시행될 때 그 나라는 약하다. 《한비자》<유도>

학생들은 교과서가 너무 간략하면 그 뜻을 멋대로 추리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이 지나치게 간결하면 민중은 그 의도를 이러쿵저러쿵 논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저술할 때 그 논지를 자세하고 명확하게 해 놓는다. 현명한 통치자는 법을 제정할 때 모든 우발 사건에 꼼꼼히 대비한다. 《한비자》<팔설>

상앙은 사소한 비행에 대하여 중벌을 제정하였다. 큰 죄를 범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사소한 비행은 잦다. 최선의 정책은 민중으로 하여금 범하기 쉬운 것을 피하고 큰 죄를 범하지 않도록 인도하는 데 있다. …… 그러므로 상앙은 "벌이 무겁다면 아무도 감히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처벌로 범죄를 없애는 방법이다"라고 말하였다. 《한비자》<내저설 상>

한자(한비자)는 도덕을 법률에 맞추도록 하되, 마치 먹줄을 친 것처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 줄을 벗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인정에 비추어 생각할 때는 절박한 일이요, 잘잘못을 분명히 가리자는 것은 좋으나, 결과적으로 인간의 따뜻한 아름다움을 없애는 일이다. 《사기》

법은 문서로 편찬하여 관청에 비치해 두고 인민에게 공포하는 것이지만. 술은 군주의 가슴속에 넣어 두고 신하의 언행 등 많은 단서를 수집하고 검토하여 은연중에 여러 신하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명확할수록 좋고, 술은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가 법을 말하면 나라 안의 비천한 자까지도 알아들어야 하며, 방 안에 가득 채워 두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한비자》<난삼>

임금으로서 술이 없으면 윗자리에서 정보에 어두워지고, 신하로서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혼란을 일으킨다. 이 술과 법은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모두 제왕이 쓰는 기구다. 《한비자》<정법>

옛날 정나라 무공이 오랑캐를 정벌하려 했다. 무공은 먼저 자기 딸을 오랑캐 나라 임금에게 시집보내 그로 하여금 안심하게 했다.
어느 날, 그는 신하들에게 물었다.
"내가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싶은데, 누구를 치는 것이 좋겠소?"
대부 관기사가 대답하였다.
"오랑캐를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공은 크게 노하여 그를 처형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랑캐는 이제 형제와 같은 나라인데, 네가 그를 치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
오랑캐 나라 임금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마침내 정나라를 방비하지 않았다. 그때 정나라 군대가 오랑캐 나라를 습격하여 점령해 버렸다. 《한비자》<설난>

명가
상식을 부순 사람들

"왕께서는 뿔이 양쪽으로 달린 달팽이를 잘 아시지요?"
"잘 압니다."
"옛날에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는 촉씨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고 오른쪽 뿔 위에는 만씨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항상 서로의 땅을 빼앗으려고 싸웠습니다. 한번 전쟁이 벌어지면 20일씩이나 싸우다가 물러나고는 했는데 죽거나 다친 사람이 수만 명씩 되었습니다."
얘기를 듣던 양혜왕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거 참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지어낸 얘기지요?"
대진인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지어낸 얘기라니요? 임금께서는 동서남북이나 위아래가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끝이 없겠지요."
"임금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끝없는 우주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지요. 끝없는 우주 속에서 양나라와 제나라는 달팽이 뿔 위에 있는 만씨의 나라와 촉씨의 나라보다 과연 얼마나 클까요?" 《장자》<칙양>

사물을 보는 방법 열가지 : 역물십사(歷物十事)

1. 지극리 커서 밖이 없는 것을 가장 큰 것[大一]이라고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가장 작은 것[小一]이라고 한다.
2.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지만 그 크기는 천 리가 된다.
3. 하늘과 땅은 높이가 똑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
4.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
5. 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가를 안다.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바로 그곳이다.
6. 오늘 월나라에 가서 어제 돌아왓다.
7. 해가 막 하늘 가운데 뜬 상태는 막 지는 상태이며, 어떤 존재가 막 태어났다는 것은 막 죽어 가는 것이다.
8. 많이 같은 것과 조금 같은 것은 다르다. 이것을 조금 같거나 조금 다른 것이라고 한다. 만물은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같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을 크게 같거나 크게 다른 것이라고 한다.
9. 둥근 고리는 풀 수 있다.
10. 만물을 사랑하라. 온 세상이 한몸이다.

나는 다른 것과 같은 것을 한데 합티기도 하고, 한데 붙어 있는 개념을 떼어 놓기도 했다. 나는 옳지 않은 것을 옳은 것으로 만들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장자》<추수> 공손룡

흰 말은 말이 아니다? - 공손룡

첫째, 말이라는 것은 모양을 가리키는 개념이고 희다는 것은 빛깔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빛깔을 가리키는 것은 형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
둘째, 말이라고 하면, 흰 말, 검은 말, 누런 말이 모두 해당되지만, 흰 말이라고 하면 누런 말이나 검은 말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
셋째, 말에는 여러 가지 빛깔이 있을 수 잇다. 그런데 말에서 빛깔을 빼 버리면 말 그 자체만 남는다. 흰 말은 바로 그러한 말에다가 흰색을 더한 것이다. 이처럼 말에다 흰색을 더한 것이 흰 말이기 때문에 흰 말은 말이 아니다. 《공손룡자》<백마론>

첫째, 흰 돌과 단단한 돌은 두 가지다. 왜냐하면 희다는 것은 보고 아는 것이고, 단단하다는 것은 만져 보고 아는 것이다. 따라서 보기만 해서는 단단한지를 알 수 없고 만지기만 해서는 희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흰 돌과 단단한 돌이라는 두 개념으로 나누어진다.
둘째, 희다는 것과 단단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보편 개념이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은 돌과 별개로 존재할 수 있다. 사실 물체 가운데는 희지만 단단하지 않은 것도 있고, 단단하지만 희지 않은 것도 있다. 따라서 희다는 것과 단단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임이 분명하다. 《공손룡자》<견백론>

농가
농사꾼의 영원한 벗

신농씨의 가르침대로 사는 허행이 초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임금 문공에게 아뢰었다. "먼 곳에 사는 사람이 임금께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치를 베푸신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살 곳을 얻어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등문공이 거처할 곳을 주었더니 굵은 베옷 입은 무리 수십 명이 몰려와 신발을 만들고 돗자리를 짜서 내다 팔아 먹고살았다. 얼마 뒤 진량의 제자인 진상이 아우 신과 함께 쟁기와 보습을 짊어지고 송나라에서 등나라로 왔다. 그리고 문공에게 "임금께서 성인의 정치를 하신다고 하니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등나라에 거처할 곳을 얻은 진공이 나중에 허행을 만나 보고 크게 기뻐하여 이제까지 한 공부를 다 버리고 허행에게 가서 배웠다.
어느 날 맹자를 만난 진상이 다음과 같이 허행의 말을 전하였다.
"등나라 임금이 참으로 어질기는 하지만 아직 도를 모릅니다. 어진 사람은 백성과 함께 밭을 갈아서 양식을 마련하며 직접 밥을 지어 먹으면서 정치를 하는 법인데, 지금 등나라에는 곡식과 재물 창고가 있으니 이는 백성을 뜯어다가 자신을 봉양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맹자가 물었다.
"당신 선생 허행은 반드시 곡식을 직접 심어서 먹는가?"
"그렇습니다."
"당신 선생 허행은 반드시 삼베를 직접 짜서 입는가?"
"아닙니다. 우리 선생님은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허 선생은 모자를 쓰시는가?"
"쓰십니다."
"어떤 모자를 쓰시는고?"
"흰 비단 모자를 쓰십니다."
"직접 짠 것을 쓰시는가?"
"아닙니다. 곡식을 주고 바꾼 모자를 쓰십니다."
"허 선생은 어째서 직접 모자를 만들어 쓰지 않으시는고?"
"농사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허 선생은 가마솥과 시루에 밥을 지으며 쇠로 만든 농기구로 농사를 짓는가?"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스스로 만든 것인가?"
"아닙니다. 곡식을 주고 바꿔 온 것들입니다."
그러자 맹자가 신이 나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곡식을 가지고 농기구를 바꾸는 일은 도자기 굽는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니, 구운 도자기나 농기구를 가지고 곡식과 바꾸는 일이 어찌 농부를 해치는 일이 되겠는가? 그리고 허 선생은 어째서 직접 도자기를 만들지 않으시는가? 도자기 만드는 가마를 집에 만들어 놓고 직접 구워서 쓰지 않고 어째서 번잡하게 온갖 기술자들과 물건을 바꾸시는가? 어째서 이러한 번거로움을 싫어하지 않으시는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상이 마지못해 한마디 하였다.
"온갖 기술자들의 일을 농사일과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자 맹자는 더 신이 나서 이야기를 끌어갔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은 농사일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큰 사람이 할 일이 있고 작은 사람이 할 일이 있는 법일세. 그리고 한 사람의 몸에 온갖 기술자가 할 일이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하여 반드시 무엇이건 자신이 직접 만들어 쓰게 한다면 이는 세상 사람 모두를 수고롭게 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하는 법이라서,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고 하였네.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여 살리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에게서 얻어먹는 것이 세상 이치라네." 《맹자》<등문공 상>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치는 반드시 경계를 제대로 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니, 경계가 바르지 못하면 백성들의 토지가 같지 않게 되고 벼슬아치들의 봉록이 고르지 않게 된다. 그런 까닭에 못된 임금이나 부패한 관리들은 반드시 그 경계 정하는 일을 태만히 하는 법이다. 이미 경계가 바로잡히면 농토를 나누고 봉록을 정하는 일은 앉아만 있어도 안정된다. …… 이렇게 되면 죽거나 집을 옮기더라도 고향 마을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니 고향 마을 같은 논에서 함께 일한 사람들은 나가고 들어옴에 서로 짝하고, 싸움에 나아가 지키고 망을 볼 때에도 서로 도우며, 병이 나면 서로 의지하고 도와서 화목하게 된다. 《맹자》<등문공 상>

무릇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백성들을 기르는 사람은 사시사철 때 맞추어 해야 할 일에 힘써야 하며, 창고에 재물이 넉넉하도록 해야 한다. 나라가 살 만하면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여기서 살려고 찾아 오며, 땅을 더 많이 개간하면 백성들이 그곳에 머물게 된다. 창고에 먹고살 것이 넉넉하면 백성들이 예절을 알게 되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족해지면 여예와 굴욕을 알게 된다. 《관자》<목민>

백성은 곡식이 아니면 먹을 수 없고, 곡식은 땅이 아니면 만들 수 없으며, 땅은 백성이 아니면 일할 자가 없으니, 백성이 일하지 않으면 재물을 모을 수 없다. 모든 생산물은 힘을 쓰는 데서 나오고, 힘쓰는 일은 몸을 수고롭게 하는 데서 나온다. 《관자》<팔관>

성인은 나라를 다스리는 요점을 알았기 때문에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에 마음을 쏟도록 하였다. 농사에 마음을 쏟으면 백성들이 순박해져서 바로잡을 수 있으며, 농사일에 열심이다 보면 부리기 쉬워진다. 《상자》<농전>

"허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면 시장의 물건 값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나라 안에 거짓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비록 어린아이를 물건을 사오라고 시장에 보내도 아무도 속이려 들지 않습니다. 면과 비단의 길이가 같으면 값도 같으며, 삼과 실, 비단실과 솜의 무게가 같으면 값도 같고, 곡식의 양이 같으면 값도 같으며, 신발의 크기가 같으면 값도 같을 것입니다." 《맹자》<등문공 상>

농사를 열심히 짓지 않는 자는 삶을 제대로 꾸려 갈 수 없고, 옷감을 열심히 짜지 않는 자는 몸을 제대로 가릴 수 없다. 넉넉함이나 모자람은 일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요롭게 되고 옳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먹고사는 일이 편안하고 정치적으로 아무 일도 없게 되어 세상이 두루 고르게 된다. 따라서 공자나 증자까지도 선을 주장할 일이 없다. 《회남자》<제속훈>

아주 옛날에는 임금도 없고 신하도 없었다. 사람들은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먹었으며,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었다.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로웠고, 편안하며 만족했다. 경쟁이 없고 영리를 바라지 않았으며, 명예도 없고 치욕도 없었다.
만물이 서로 화합하여 자연의 도에 들어가므로 역병이 유행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완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고, 마음이 착해서 욕심이 없었다. 입에 먹을 것을 물고 즐기면서 배를 두드리고 놀았다. 그들의 말은 화려하지 않았고, 그들의 행동에는 꾸밈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어떻게 무거운 세금을 매겨 백성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엄한 형벌을 받아 굴에 갇힐 수 있었겠는가?

임금과 신하의 신분이 생기면 변화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본래 수달이 많아지면 물고기가 놀라고, 매가 많아지면 작은 새가 근심하는 법이다. 부리는 사람이 늘어나면 인민은 고통스러우며, 위에 바치는 것이 많아지면 아랫사람은 가난해진다.

주역
점쟁이와 철학자

"나에게 몇 년만 더 삶이 주어진다면, 《주역》에 통달할 수 있을 것이다." - 공자

"수십 년간 역을 연구하였지만, 나 자신의 일을 가지고 점을 쳐 보지는 않았다." - 정약용

복희씨가 처음 팔괘를 그렸고 신농씨가 64괘로 나누었다. 주나라 문왕이 비로소 괘에 풀이하는 말을 붙여 역이란 이름이 생겼고, 그 후 문왕의 아들 주공이 <효사>를 지어 우선 완성되었다. 공자가 다시 십익, 즉 <단전> 상 하, <상전> 상 하, <계사전> 상 하, <문언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을 지어 보충 설명하였다.

1981년 1월, 미국 해군 천문대의 두 과학자는 태양계에 열 번째 행성이 존재한다고 예언하였다. 매스컴이 이 특종을 대서 특필하자, 사람들은 감격하고 토론하고 찬탄했다. 일찍이 1940년에 한 중국인 학자가 역학의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여, 열 번째 행성의 존재를 계산하고 목왕성이라고 이름 붙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940년 11월 1일,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통과된 쓰촨 출신 류쯔화(劉子華) 선생의 박사 학위 논문 <팔괘 우주론과 현대 천문학 - 한 행성에 대한 예측>이다.

최근 10년 동안 《주역》신봉파는 중국 학술계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점차 흥성하고 있다. 새로운 신봉파들은 근대 이후 국내외의 성과 외에도 《주역》속에 포함된 현대 과학 내용을 계속 끌어내고 또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였다. 《주역》을 중국 고대 자연과학 모든 분야의 원류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역》속에는 고대 천문학이 있고, 중국 의학의 기본 이론이 있고, 고대 수학의 성과가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요 몇 년 사이에 기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송대 이후 기공의 이론적 근원인 내단설은 역학의 도식을 많이 끌어왔으므로 기공의 유행 역시 역학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인체의 건강과 장수는 여러 요인에 달려 있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체에는 산과 바다를 움직이고 백만 대군을 막아 내는 능력이 얼마나 숨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신비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 과학의 진보로 일반인들은 우주의 신비는 이제 거의 없다고 생각하게 된 반면, 현대 의학의 결함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인체의 신비가 도리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인체의 신비는 태극, 음양, 오행, 팔괘, 선천 · 후천 따위의 관념 속에 들어 있고, 다양한 역학 도형 속에 들어 있다. 특히 흑백이 서로 휘감아 도는 '음양어도'는 더욱 사람들을 오묘 무궁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심코 만든 S형 곡선에 수학 원리가 있고, 물리학 원리가 있고, 천문 기상학이 있고, 인체의 신비가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중국 의학의 표시가 되었고, 기공 학회의 상징이 되었고, 《주역》의 대표가 되었고, 중국 고대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주희가 《주역》앞부분에 하도와 낙서를 붙였는데, 황백가는 이것을 '양자를 데려와서 할애비로 삼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음양어도'는 특별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만일 황백가가 지금 살아온다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리신(李申), 《주역지하설해(周易之河說解)》

《주역》의 괘상 배열은 2진법을 담고 잇다. 《주역》의 사상은 현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 양자론을 담고 있다. 《주역》의 방형도에서 디락 방정식, 화학 원소 주기율을 끌어낼 수 있다. 역수 속에 현대의 원자 모형이 들어 있다. 흑백이 서로 휘감고 있는 '음양어도'는 바로 양자도이며 이는 보어의 상보성 이론의 설명이고, 생물학자가 보면 그 그림은 동물의 배태다. 《주역》이론에 중국 의학의 모든 이론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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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들

공자 제사가 있었던 이튿날,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공자 사당에서 식어 버린 돼지 머리를 먹고 있었다. 그때 젊은이 넷이 주홍색 옻칠을 한 가마를 들고서 사당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가마 속에서 뺨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서양인이 나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칼 마르크스였다. 그 이름은 요즈음 인기가 높아서 이미 공자의 귀에까지 들려왔던 터였다.
공자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라는 말을 듣고는 너무나 놀라 기쁨에 넘쳐 외치듯 말했다.
"유붕 자원방래니 불역열호아! 마르크스 선생,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먼 길을 오셨습니까?"
이렇게 해서 공자와 마르크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저는 제 사상이 중국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제 사상과 선생님의 사상이 너무 달라서 선생님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제 사상이 실현될 수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선생님의 사상은 어떤 것입니까? 제 사상과 어디가 얼마나 다릅니까?"
"요즘 외국의 유명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여는 것이 우리나라의 최신 유행이니 선생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먼저 이야기하지요. 우선 제 사상의 출발점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종교가나 형이상학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현실 세계에서 최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가를 탐구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건 제 사상의 출발점과 똑같군요. 그러면 어떤 세상이라야 우리가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이상으로 삼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모두가 생활 보장을 받아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일이 없습니다. 이만하면 지상 천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선생의 이상 세계는 나의 대동 세계와 완전히 똑같군요. 제가 문장 하나를 읊을 테니 한번 들어 보십시오. '대도가 실행되면 천하는 공유된다. 덕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을 뽑아 정치를 맡기니 모두가 화목하다. 노인들은 편안히 여생을 마칠 수 있고, 젊은 이들은 능력을 발휘할 곳이 있으며, 아이들은 모두 양육된다. 이것이 대동 사회니라.' 어때요? 선생과 똑같지요?"
공자는 목소리를 길게 빼며 읊다가 나중에는 자기최면에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조금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힘을 주어 말한 마르크스는 연설을 하듯 말을 이었다.
"저는 공상가각 아닙니다. 저는 역사와 경제를 깊이 연구한 결과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자본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노동 계급의 투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래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아, 물론이지요. 저도 일찍이 '적음을 걱정 말고, 균등하지 못함을 걱정하라'하고 말했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적은 것도 걱정합니다. 저는 사유재산에는 반대하지만 산업의 발전은 적극 제창하는 사람입니다."
"예, 예. 저도 '먼저 민중을 부유하게 하고, 그 다음에 가르치라'하고 말했고, 경제력 · 군사력 · 민심 획득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선 산업을 발전시켜야 균등한 분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재물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싫어하지만, 반드시 자기 것으로 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물질을 아주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저기 있는 제 제자 자공만 해도 장사를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번 인물입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눈 마르크스는 비로소 감탄하기 시작했다. 공자의 사상이 자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공자도 2000년 동안이나 사당에서 식은 돼지 머리나 씹고 있는 마당에 자기의 사상이 중국에서 실현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전 이제 돌아가서 마누라 얼굴이나 보아야겠습니다."
공자는 부러워하며 말했다.
"아, 선생은 부인이 계시군요?"
"왜 없겠습니까? 제 마누라는 제 동지인 데다 굉장히 예쁩니다."
공자는 마르크스가 부인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모두가 부인이 있는데, 나 혼자만 없구나!"
그러나 공자는 이내 안색을 바꿔 마르크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우리집 어른을 공경함으로써 남의 집 어른에게까지 미치고, 우리집 아이들을 사랑함으로써 남의 집 아이들에게까지 미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 처를 사랑함으로써 남의 처에게까지 미치니, 선생의 부인도 내 처가 아니겠소?"
마르크스가 이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저는 공산을 외칠 뿐인데 선생님은 공처(共妻)까지 주장하시는군요. 선생님은 저보다 더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러고는 서둘러 사당을 빠져나갔다. 그는 공자가 정말 유럽까지 쫓아와 자기 부인을 공유하자고 할까 봐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