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30 서울에 취하다

황영찬 2011. 11. 30. 16:48
2011-130  서울에 취하다
                         Mad for Seoul

글 · 사진 허한나
2011, 조선앤북



시흥시대야도서관
SB053166


981.1
허 62 ㅅ


한나가 서울에서 발견한 소소한 재미들

여행자의 마음으로 바라보세요.
여기는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넓고 깊은 도시 서울입니다

다시는 여길 못 올지도 모른다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서울을 바라보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따뜻하게 서울을 바라보게 된 뒤로는 낯선 곳에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의 여행이 가능하단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서울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 도시에 날아온 사람들이 그러하듯 수년 내에 다시는 못올 것처럼 매 순간을 오롯이 즐겼습니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하는 마음에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설레었습니다. 발걸음이 많아질수록 서울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인지 새록새록 깨달았습니다. 서울은 바라보면 볼수록 시간의 결이 느껴지는 넓고도 깊은 도시였으니까요.
- 허한나-

글 · 사진_ 허한나 다나루이

스니커즈 신고, 커다란 등짐 메고 발이 부르트도록 걷는 여행부터 스틸레토힐에 클러치백 쥐고 돌아다니는 여행까지 가리지 않고 즐기는 트래블홀릭. 초등학교 때 혼자 일본에 간 것을 시작으로 미국, 영국, 유럽, 동남아시아 등 수십여 개국의 골목골목을 누볐다. 며칠 만에 돌아오는 짧은 여행은 물론 1~2개월 혹은 1년 이상 다른 나라에 머무는 장기 여행도 기회만 찾아오면 서슴지 않는다. 대학에서 전자정보를, 대학원에선 마케팅을 공부한 뒤 다국적 기업에서 장 나가는 마케터로 근무하다 돌연 사표를 던지고 푹 빠졌던 나라 홍콩으로 날아가 4년간 홍콩살이를 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뒤로는 세계의 도시들을 여행했을 때처럼 여행자의 시선으로 서울 골목골목을 돌며 카메라에 담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홍콩에 취하다』『휘리릭 아이밥상』이 있으며, 블로그를 통해서도 그녀의 글과 사진을 만날 수 있다.

블로그 www.danalouis.com
트위터 twitter.com/Hanna_Her

CONTENTS

CHAPTER 1 천천히 걷고 싶은 서울 길

SEOUL POST 001_ 효자로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갤러리와 카페가 이어진 꽃길
SEOUL POST 002_ 영추문길 이곳에선 천천히 걷기
SEOUL POST 003_ 평창동 서울에서 가장 고상한 동네 한 바퀴
SEOUL POST 004_ 성북동 짧은 산책 서울의 두 가지 얼굴을 만나다
            BOOKMARK 3년간의 사랑 60년의 이별. 길상사
            BOOKMARK 길상사의 가을
SEOUL POST 005_ 혜화동에서 성북동까지 먼 산책 마음 한 자락 내려놓고 느리게, 느리게
            BOOKMARK 산책하는 또 하나의 재미, 필리핀 장터와 혜화동주민센터
SEOUL POST 006_ 계동길 고소한 참기름 동네
            BOOKMARK 풍성한 마을 계동에 가다
SEOUL POST 007_ 삼청동길 낮은 축대 위로 걸어보기
SEOUL POST 008_ 경복궁 돌담길 경복궁 담장 따라 걷기       
SEOUL POST 009_ 화개 1길 구름 위의 산책
            BOOKMARK 가로수길과 화개길의 공통점

SEOUL POST 010_ 복정길 한 길에서 만나는 소규모 박물관 세 곳 
SEOUL POST 011_ 가회로 북촌한옥마을, 그 로망에 대하여
            BOOKMARK 서울에서 가장 살고 싶은 곳, 가회동 31번지

SEOUL POST 012_ 북촌 8경 북촌을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법
SEOUL POST 013_ 세종문화회관 돌계단 그냥 앉아 있다만 와도 좋은 곳
SEOUL POST 014_ 덕수궁 돌담길 숨어 있는 산책로
            BOOKMARK 서울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
            BOOKMARK 아트벤치

SEOUL POST 015_ 정동길 1 근대 교육의 역사를 간직한 붉은 벽돌길
SEOUL POST 016_ 정동길 2 정동길에서 새문안길까지 거리 예술품 퍼레이드
SEOUL POST 017_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어느 오후의 한적한 산책
SEOUL POST 018_ 경희궁길 차분한 궁궐 동네 나들이
            BOOKMARK 도심 속 작은 조각공원, 성곡미술관 찻집
SEOUL POST 019_ 연대 동문길 대학가의 또 다른 얼굴
            BOOKMARK 서울에서 가장 고요한 천년고찰, 봉원사 가는 길
SEOUL POST 020_ 이슬람 거리 무슬림 언덕 산책
SEOUL POST 021_ 남산한옥마을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BOOKMARK 과거로의 시간여행, 서울천년타임캡슐

CHAPTER 2 서울의 공원, 서울의 자연

SEOUL POST 022_ 남산공원 북측 산책로 봄엔 꽃비, 가을엔 낙엽비
            BOOKMARK 남산의 어제와 오늘
            BOOKMARK 남산야생화공원과 오솔길
SEOUL POST 023_ 낙산공원 낙타를 닮은 마을
            BOOKMARK 낙산 공공미술프로젝트
SEOUL POST 024_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비 오는 가을날 박물관 야외 공원 산책
            BOOKMARK 용산가족공원에서의 여유
            BOOKMARK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SEOUL POST 025_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꿈결 속의 산책
            BOOKMARK 조각공원의 작품 구경
SEOUL POST 026_ 응봉산 이른 봄날 천국으로 가는 노란 계단
SEOUL POST 027_ 광나루 자전거공원 이색 자전거 체험장
            BOOKMARK 광진교 하부 전망쉼터, 리버뷰 8번가
SEOUL POST 028_ 양재문화예술공원 서울의 메타세쿼이아 길
SEOUL POST 029_ 선유도공원 사진 찍기 좋은 빈티지 공원

CHAPTER 3 예술의 아지트, 서울

SEOUL POST 030_ 가나아트센터 조각 테라스의 전망
            BOOKMARK 평창동 미술관, 문학관 순례법
SEOUL POST 031_ 서울옥션스페이스 예술은 비즈니스다
SEOUL POST 032_ 영인문학관 낡은 원고 속에 꽃핀 문학 사랑
SEOUL POST 033_ 그로리치, 새줄, 가인 평창동의 작지만 알찬 갤러리들
SEOUL POST 034_ 팔레 드 서울 경복궁을 품은 전망 좋은 갤러리
            BOOKMARK 서촌의 젊은 갤러리 순례법
SEOUL POST 035_ 대림미술관 재즈 콘서트가 열리는 미술관의 작은 정원
SEOUL POST 036_ 진 아트센터 정통 갤러리의 모든 것
SEOUL POST 037_ 갤러리 팩토리 젊은 아티스트들의 놀이터
SEOUL POST 038_ 브레인 팩토리 놀러 가는 미술관
SEOUL POST 039_ 보안여관 세월을 이어가는 문학청년들의 아지트
SEOUL POST 040_ 쿤스트독 갤러리, 쿤스트독 프로젝트 스페이스 신진 작가 발굴 프로젝트
SEOUL POST 041_ 김달진. 아트다, 옆집, 자인제노 창성동의 작지만 알찬 갤러리들
            BOOKMARK 성스러운 장소에서 얻는 평안, 자교교회
SEOUL POST 042_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미술관의 옥상 풍경
SEOUL POST 043_ 간송미술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최고의 사립 미술관
SEOUL POST 044_ 수연산방 수필의 계절에 만난 산방의 가을
SEOUL POST 045_ 서울남산국악당 아름다운 동행 다악
SEOUL POST 046_ 국립국악원 국악과 사랑에 빠지는 곳
SEOUL POST 047_ 초록음악회 우면산 별맞이터에서 만나는 청량 뮤직
            BOOKMARK 예술의 전당 카페, 모차르트
SEOUL POST 048_ 풍류 혼으로 승화된 예술의 장
SEOUL POST 049_ 호림아트센터, 에르메스메종 도산공원 앞에서 갤러리와 브런치 즐기기
            BOOKMARK 도시, 디다인을 입다.

CHAPTER 4 서울의 상상마당

SEOUL POST 050_ 일본문화원 일본 영화와의 행복한 만남 
SEOUL POST 051_ 독일문화원 자연 속에서 느끼는 독일 
SEOUL POST 052_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사용설명서 
SEOUL POST 053_ 연대캠퍼스와 더 키친 스무 살 여행자를 기억하며 
SEOUL POST 054_ 상상마당 지극히 홍대스러운 공간 
SEOUL POST 055_ 디앤북스 감각적인 동네 서점 
SEOUL POST 056_ 왓 더 북, 포린 북 오래된 책을 파는 이태원의 서점들 
SEOUL POST 057_ 가가린 창성동에 착륙한 헌책방 
SEOUL POST 058_ 유니세프 나눔으로써 나를 치유하는 시간 
SEOUL POST 059_ 정독도서관 삼청동에서 계절을 느끼기 가장 좋은 곳
            BOOKMARK 투고 커피 그리고 우드 앤 브릭 
SEOUL POST 060_ 씨네큐브 독립영화관의 역사를 말한다 
SEOUL POST 061_ 필름포럼 소규모 극장을 찾아서 
SEOUL POST 062_ 아트하우스 모모 영화를 통한 다양한 삶의 모색

CHAPTER 5 서울의 고궁을 가다 

SEOUL POST 063_ 종묘, 종묘제례악 사색의 공간 종묘를 걷다 
SEOUL POST 064_ 운현궁 함박눈 내리는 겨울의 궁 이야기 
SEOUL POST 065_ 창경궁 1 장희빈에서 사도세자까지 작지만 소란했던 궁궐 
SEOUL POST 066_ 창경궁 2 창경궁의 아침을 거닐다 
SEOUL POST 067_ 경복궁의 역사 경복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SEOUL POST 068_ 경복궁 교태전, 자경전 꽃담과 굴뚝 
SEOUL POST 069_ 경복궁 경회루 궁에서 어린 날을 추억하다
SEOUL POST 070_ 경복궁 북쪽 향원정, 취향교 그곳엔 아시아의 첫 가로등길이 있다?  
SEOUL POST 071_ 경복궁 건천궁 고종과 명성황후가 마지막을 보내던 곳
SEOUL POST 072_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한 자리에서 만나는 건축 역사
            BOOKMARK 어린이민속박물관과 추억의 거리 
SEOUL POST 073_ 경복궁의 궁문 옛 영화를 간직한 광화문에서 신무문까지 
SEOUL POST 074_ 광화문의 망루 동십자각 예술작품으로 변한 지하도 
SEOUL POST 075_ 국립고궁박물관 도심 속에서 만나는 왕실 문화 
SEOUL POST 076_ 덕수궁의 역사 가장 기구한 삶을 살았던 궁궐
            BOOKMARK 서울 최고의 관광 히트상품, 수문장교대식 
SEOUL POST 077_ 덕수궁 고궁 음악회 가을날의 해금 연주 
SEOUL POST 078_ 덕수궁 정관헌 고종이 커피를 즐기던 회랑 
SEOUL POST 079_ 선정릉 도시 한가운데 숲으로 소풍

CHAPTER 6 거장들의 건축 이야기
 
SEOUL POST 080_ 이화여대 ECC 도미니크 페로의 햇볕 잘 드는 지하 정원 
SEOUL POST 081_ 김옥길기념관과 로드 샌드위치 노출 콘크리트 건축의 절정 
SEOUL POST 082_ 서울대 모아미술관 거장 렘 콜하스의 건축 철학을 만나다 
SEOUL POST 083_ 어반 하이브와 테이크 어반 도심 속 벌집에서 즐기는 스마일 타임 
SEOUL POST 084_ 김종영미술관 소나무와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유리 미술관 
SEOUL POST 085_ 토탈미술관 미술관이 작품이다 
SEOUL POST 086_ 윤보선 고택 별궁길에서 만난 꽃보다 아름다운 집
SEOUL POST 087_ 대학로 건축문화 답사 김수근과 붉은 벽돌이 있는 풍경
            BOOKMARK 대학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SEOUL POST 088_ 쇳대박물관, 쇳대카페 쇠로 둘러싸인 공간
            BOOKMARK 대학로를 다시 연극의 메카로! 거울연극센터 
SEOUL POST 089_ 서울시립미술관 도시 생활의 꽃 미술관에서 놀기

CHAPTER 7 서울의 카페와 맛집 

SEOUL POST 090_ 죠셉의 커피나무 커피향 감도는 느릿한 공간 
SEOUL POST 091_ 테이크아웃 드로잉 커피 그리고 작가의 흔적을 테이크아웃하다 
SEOUL POST 092_ 카페 드 키미 도시에서 일탈을 꿈꾸다 
SEOUL POST 093_ 고궁 뜨락 고궁에서의 여유로운 식사 
SEOUL POST 094_ 압셍트 조용한 마을 속 파란 컵케이크 카페 
SEOUL POST 095_ 카페 디미 간판 없는 홈메이드 비스트로 
SEOUL POST 096_ 마르코의 다락방 효자동 숲 속 사랑방 
SEOUL POST 097_ 카페 스프링 소녀 감성 카페 
SEOUL POST 098_ 디어 플라잉팬 창성동의 소박한 샌드위치 가게
SEOUL POST 099_ B612 통의동의 차분한 북카페
SEOUL POST 100_ 통인시장 기름떡볶이 유희열의 익숙한 그 집 앞
SEOUL POST 101_ 소원 별궁길 작은 정원의 별미
SEOUL POST 102_ 삼청동 와플 카페 순례 나무에서 슬로우가든까지, 나만의 와플 찾기
SEOUL POST 103_ 옐로우 브릭스 파란 창문 한옥 카페
SEOUL POST 104_ 콩두 이야기 서울역사박물관 내 테라스 레스토랑
SEOUL POST 105_ 아모카 빈티지한 덴마크 스타일 카페
SEOUL POST 106_ 이마 일민미술관 카페에 얽힌 추억 둘
SEOUL POST 107_ 버즈 앤 벅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 자리에 들어선 카페
SEOUL POST 108_ 어반가든 따사로운 온실 속 레스토랑
SEOUL POST 109_ 숲 커피 플라워 쇠락의 장소에 활기를 불어넣는 플라워 카페
SEOUL POST 110_ 종로떡방 어느 가족의 찹쌀떡 이야기
SEOUL POST 111_ 미소 카페, 학림다방 대학로의 오래된 아지트
SEOUL POST 112_ 치어스 인생 별거 있나? 치킨에 맥주 한 잔이면 오케이!
            BOOKMARK 청운공원 산책하기
SEOUL POST 113_ 라 본느 타르트 달지 않은 유기농 타르트 전문점
SEOUL POST 114_ 딩동 트래블러스 카페에서 여행을 고민하다
SEOUL POST 115_ 호호미욜 폭스바겐 캠핑카와 여행의 로망
SEOUL POST 116_ 목멱산방 산방에서 맛보는 산채비빔밥
SEOUL POST 117_ 칠리 킹 잇츠 저스트 칠리!
SEOUL POST 118_ 자코비스 버거 배부른 브런치 식당
SEOUL POST 119_ 경리단길 맛집 답사 이태원에서 타국 음식 즐기기
            BOOKMARK 회나무길 산책하기

CHAPTER 8 소품 파는 카페 

SEOUL POST 120_ 리유 도예 작가가 빚어내는 그릇에 담긴 맛
SEOUL POST 121_ 어바웃 더 라이프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
SEOUL POST 122_ 타센 대학로 아트북 카페
SEOUL POST 123_ mk2 베를린을 닮은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 카페
SEOUL POST 124_ MMMG 카페 작은 소품에서 얻는 행복 하나
SEOUL POST 125_ 스프링 컴 레인 폴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빈티지 잡화 카페
SEOUL POST 126_ 데미타스 북유럽 감성이 담긴 심야식당
SEOUL POST 127_ 스탐티쉬 앤 까레닌 바느질하고 싶은 감성 패브릭 카페

INDEX

어떤 도시를 걸어 다니면서
자신의 숨은 모습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초현실주의자들처럼 표류하듯
그 도시의 골목들을 이리저리 흘려 다녀 보는 일이다.
- 다비드 르 브로통, 「걷기 예찬」중에서

3년간의 사랑 60년의 이별,
길상사


나는 시인 백석과 1936년 가을 함흥에서 만났다. 그의 나이 26세. 내가 스물둘이었다.
어느 우연한 자리였었는데, 그는 첫 대면인 나를 대뜸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중략)…
자리가 파하고 헤어질 무렵, 그는 "오늘부터 당신은 이제 내 마누라요"하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식은 거의 아득해지면서 바닥 모를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했다.
그것이 내 가슴 속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애틋한 슬픔의 시작이었다.
- 김영한.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중에서

가난하게 자란 김영한이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1932년 요정에 들어가 기생이 되어 여창 가곡, 궁중무 등을 배워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한다.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삼천리문학>에 수필을 발표하였으며,
특출한 재능을 알아본 신윤국 선생 도움으로 1935년 일본 유학길에도 오른다.
그녀는 도쿄에서 유학 중 신윤국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평양으로 달려가지만 만날 수 없었고 유명한 기생이 되면 법조계 인맥을 통해
스승을 면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 길로 함양 요정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함흥영생여고 영어교사인 잘생긴 청년 시인 백석을 만나게 된다.
첫눈에 반한 백석은 그녀에게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에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라며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자야를 처음 만난 그날 이후 백석의 삶은 자야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허나 부모가 기생과 사귀는 백석을 그냥 놔둘 리 없었고,
그는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결혼식을 치르지만 그날로 자야에게 도망쳐 온다.
자야는 백석을 몰래 떠나지만, 백석은 또다시 자야를 찾아나서고,
서울에서 자야를 다시 만난 백석은 선생도 그만두고 자야와 함께 정착한다.
이때부터 3년 동안 둘은 부부처럼 살았고, 백석은 여러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쓴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와 「바다」등은 자야를 떠올리며 쓴 시들, 그러나 1939년 백석은
또다시 부모에 의해 강제 결혼을 하게 되고 또다시 자야에게 도망쳐 온다.
부모에 대한 효심과 자야에 대한 사랑 사이에 괴로웠던 백석은
만주로 건너가 시 100편을 쓴다며 함께 도피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백석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기 싫었던 자야는 거절한다.
백석은 혼자 만주로 건너가고, 그것이 둘의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다.
당시 백석 나이 스물여덟, 자야 나이 스물넷. 이후 백석은 최고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고,
자야는 최고 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의 안주인이 되었다.
백석과의 3년간의 사랑을 잊지 못한 자야는 60년을 기생으로 홀로 살았다.
1988년에는 회고기록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1995년에는 에세이 『내 사랑 백석』을 출간하였고, 1997년에는 창작과비평사에
2억 원을 내 백석문학상을 제정했다. 그보다 이른 1995년에는
시가 1,000억 원에 달하는 대원각을 법정스님을 설득해 기증했다.
1987년부터 간청했으나 주지 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법정스님은
네 번이나 거절하였고 마침내 수락한 것이다. 처음엔 대법사란 이름으로 시작했으나
1997년에는 자야 김영한의 법명인 길상화를 따 길상사로 바꾸게 된다.
이젠 백석과 자야도, 자야의 뜻에 따라 길상사를 지은 법정스님도,
길상사에 도움을 주었던 김수한 추기경도 모두 이 세상에 없다.
길상사에 앉아 공수래공수거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자야와 백석은 행복한 사람들.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중략)…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 이생진.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중에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는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중에서

제 아무리 호사스런 도시도,
제 아무리 웅대한 풍경도 우연히 구름과 함께 만들어 내는
저 신비한 매력에는 미치지 못했고,
욕망은 쉴 새 없이 우리를 안달하게 했다.
- 보들레르, 「여행」중에서

때때로 인생은 단지 커피 한 잔의 문제
혹은 커피 한 잔이 가능하게 해주는
따스함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예술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일상생활의 먼지를 털어준다.
- 피카소

박물관을 만들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그냥 사장해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 자료들은 수십 년 동안 나를 많이 괴롭혔다. …(중략)… 그런데도 그것들을 어쩌지 못한 것은 거기에 묻어 있는 문학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김동인의 낡아빠진 명함 조각이나, 글씨도 판독하기 어려운 이상의 초고 같은 것을 누가 나만큼 사랑하랴, 였던 것이다. …(중략)… 내게 있어서 삶의 마지막 시간에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낡은 원고 속에서 사는 것이다.
- 강인숙. 「나는 왜 문학관을 하게 되었는가」중에서

아침마다 앞마당에 올라가 칫솔에 치약을 묻혀 들고
돌아서면 눈은 으레 건너편 산마루에 끌리게 된다. ……
한참 쳐다보노라면 성벽에 드리운 소나무 그림자도,
성돌 하나하나 사이도 빤히 드러난다.
내 칫솔은 내 이를 닦다가 성돌 틈을 닦다가 하는
착각에 더러 놀란다.
그러다가 찬물에 씻은 눈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면
성벽은 역시 조광(朝光)보다는
석양의 배경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느끼곤 한다.
- 이태준 수필집 『무서록』중에서

이 세상 도처에서 내 편히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아켐피스

가장 멋진 건축물은 경회루다.
이 거대한 경회루 집채를 떠받치고 있는
화강석 돌기둥의 우람한 주열을 보고 있으면
잔재주를 부릴 줄 모르는 한국인의 성정과
솜씨가 너무 잘 나타나 있어서
바로 이런 것이 실질미와 단순미를
아울러 지닌 한국의 멋이로구나 싶어진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중에서

건축은 꿈에 속한다. 인생은 꿈이다.
예술은 이처럼 꿈속의 환상이다.
- 지오 몬티

조선 시대 내내 서울 북촌은 전국 최고의 주거지였다.
화동, 재동, 계동, 가회동, 안국동, 경운동 등지에는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흔아홉 칸의 저택이 도처에 웅자를 뽐내고 있었다.
세상이 일변하매 그 집들은 태반이 요정이 되었다가
그 20여 년 사이에 필지 분할되어 빌라 단지가 되어버렸다.
- 전우용. 『서울은 깊다』중에서

그 곳은 따뜻하고 깨끗하며 정겨웠던 즐거운 카페였고
나는 낡은 외투를 말리기 위해 옷걸이에 걸고
비에 젖은 낡은 펠트 모자는
긴 의자 위의 모자걸이에 걸어놓고 카페오레를 주문햇다.
-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중에서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쯤 어디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이 초현대, 초거대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데가 몇 군데나 될까?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을 곁들여서
- 문학평론가 황동일의 메모 중에서

나는 아주 작은 일에서 느끼는 기쁨을 좋아한다.
이것은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
나를 지탱해주는 원천과 같은 존재이다.
- 오스카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