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 반가사유상
글 / 황수영●사진 / 황수영, 안장헌
1994,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0284
082
빛12ㄷ 124
빛깔있는 책들 124
황수영-------------------------------------------------------------------------
개성에서 출생하여 일본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장,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문화재 위원으로 있다.
|차례|
머리말
반가사유상 양식의 특색
삼국시대의 반가사유상
고구려의 반가사유상
백제의 반가사유상
고신라의 반가사유상
경주 이외 지역의 반가사유상
통일신라 초기의 반가사유상
한국 반가사유상의 일본 전래
미륵불상과 신라의 화랑
맺음말
우리나라 반가사유상 목록
참고 문헌
▲ 천룡산 석굴의 수하 반가사유상(부조) 이 반가사유상은 본디 천룡산 석굴(제3굴)의 벽에 장엄되어 잇던 부조상(浮彫像)의 일부이다. 나무 아래에서 깊은 명상에 잠긴 듯 고개를 깊이 숙인 모습이다. 본디 반가사유상이 싯달타 태자의 사유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이 부조도 그 예의 하나로 볼 수 있겠다. 태자 사유상은 붓다의 전기의 옛 풍습에 따라 파종식에 참여하였을 때 보습에 찍혀 나온 벌레를 새가 날아와 잡아먹는 것을 보고 약육강식이란 현실 세계의 고통을 직접 보고 크게 고뇌한다. 이때 나무 그늘에서 깊이 명상에 잠긴 태자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지만 해가 기울어도 나무 그늘은 싯달타 태자의 주변에만 드리우는 신비한 일이 벌어져 함께 온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는 것이 '수하관경'의 내용이다. 중국 동위시대. 높이 46.2센티미터.
▲ 간다라 석조 보살 반가사유상 간다라 지방에서 조성된 석조 반가사유상이다. 광배등에 조금 파손이 있으나 거의 완형을 보여 주고 있어 마투라 출토의 반가사유상과 더불어 인도에 있어서 반가사유상의 원류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등나무로 만든 의자에 허리를 기대고 오른발은 신발을 벗어 왼쪽 무릎에 얹고 약간 윗몸을 숙여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왼손은 연꽃 한 송이를 들고 있다. 조성 연대는 3세기로 추정. 높이 50.3센티미터. 일본 동경의 송강미술관(松岡美術館) 소장.
▲ 마투라 석조 보살 반가사유상 마투라 양식을 보여 주고 있는 반가사유상이다. 보관 속에 화불(化佛)이 표현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다. 보관에 화불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경우는 「무량수경」에 따르면 관음보살로 알려져 있어 이 상의 경우도 존명을 관음보살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 석굴의 경우 미륵보살에도 보관에 화불이 새겨진 실례가 있으므로 이 상 또한 미륵보살일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조성 시기는 2세기 후반 무렵 추정. 높이 67.4센티미터. 미국 크로노스(Kronos) 소장품.
▲ 로댕의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 파리의 로댕미술관에 있는 이 상은 '지옥의 문'의 상부 난간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 평양 평천리 금동 반가사유상 고구려의 옛 수도인 평양의 옛 절터에서 출토된 이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반가사유상 형식이 유행하였음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된다. 턱을 받치는 오른팔이 떨어져 나가 아쉽다. 머리 뒤쪽에는 길쭉한 광배꽂이가 달려 잇다. 국보 제118호. 높이 17.5센티미터. 서울 개인(김동현) 소장.
▲ 부여 부소산 납석제 반가사유상 허리가 잘려 상체는 떨어져 나가고 하반신만 남아 있다. 그러나 왼쪽 무릎에 얹은 반가한 오른발과 그 발목을 잡고 잇는 왼손 그리고 오른쪽 무릎에 남아 있는 흔적 등으로 미루어 반가사유상임을 알 수 있다. 아래쪽 끝부분에 타원형의 돌출부가 잇고 내려뜨린 왼쪽 다리 밑부분 역시 구멍이 나 있어 이 상을 받치는 대좌 부분이 따로 만들어졌음을 짐작케 한다. 높이 13.5센티미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방형 대좌 금동 반가사유상 안상이 새겨진 방형의 대좌 위에 다시 팔각형의 괴임을 두고 그 위에 길쭉한 꽃잎이 아래로 피어난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 또 줄기가 달린 조그만 연꽃 한 송이가 피어 올라 왼발을 받치고 잇는 표현도 멋잇다. 가는 허리와 X자로 교차된 영락 장식이 매우 이 상을 이채롭게 한다. 가는 허리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백제인의 솜씨를 엿보게 한다. 보물 제331호. 높이 28.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방형 대좌 금동 반가사유상(부분) 보관을 잃어버려 큼직하게 들어올린 보발이 드러나 보이며, 머리 앞과 좌우에 난 세 개의 구멍은 보관을 고정시켰던 못구멍이라고 짐작된다.
▲ 서산 마애 삼존불 전경(위)과 반가사유상(아래) 이 삼존불은 충남 서산의 가야산 계곡 가운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웃한 태안 마애 삼존불(보물 제432호),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보물 제794호) 등과 더불어 백제 문화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곧 이들이 자리한 지리적 위치는 태안반도에서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로 이어지는 옛날의 중요한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중국과 빈번한 교통이 이어지던 교통로인 까닭에 화려한 문화의 꽃이 피었던 것이다. 이 삼존불은 구도상에서도 매우 다른 특색을 보여 주고 있다. 곧 여래 입상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반가사유상이, 오른쪽에는 보살 입상이 각각 배치되어 잇다. 특히 여래의 왼쪽에 자리한 반가사유상은 신라 지역의 단석산 마애 반가사유상과 더불어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또한 대좌와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어 우리나라 반가사유상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국보 제84호. 삼존불 높이 2.8미터. 반가상 높이 1.66미터.
▲ 김제 대목리 동판 반가사유상 이 동판 반가사유상은 여래삼존상과 공양자상 그리고 화불로 보이는 인물 군상의 동판상과 더불어 백제의 옛 땅인 전북 김제에서 출토되었다. 반가사유상은 독존상이 아니라 좌우에 나한상이 시립한 삼존 형식인 점도 특색이다. 뿐만 아니라 반가사유상의 뒤쪽에 보이는 병풍을 펼친 듯한 장식은 일본 광륭사의 목조 반가사유상의 뒷장식과 유사하여 흥미로운데, 이는 앞서 간다라 출토의 석조 반가사유상에서 보이는 등나무로 만든 대좌와도 연결되고 있어 매우 고식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크기는 가로 6.4센티미터, 세로 6.4센티미터. 두께 0.6센티미터.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 연기군 비암사 비상의 미륵보살 반가 석상 납석으로 만든 이 석상은 그 생김새가 탑비(塔碑)와 닮았다고 하여 비상(碑像)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러한 비상은 중국 동 · 서위 시대에서 비롯되어 수 · 당시대까지 유행하였으며, 우리도 이 영향을 받았다. 대좌와 사면석 그리고 용이 새겨진 옥개(탑비에서 螭首라고 함)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잇다. 이 석상은 1960년에 충남 연기군에 있는 비암사에서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삼존 석상'(국보 제106호) '기축명 아미타여래제불보살 석상'(보물 제367호)과 함께 발견되었다. 장방형의 사면석에는 앞쪽에 반가사유상, 뒤쪽에 보탑 그리고 좌우에는 공양자상이 각각 새겨져 있다. 보물 제368호. 높이 41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연화사 무인명 석불상과 대좌 이 비상은 대좌와 사면석이 각기 따로 만들어져 조립된 구성을 갖추고 있는데 현재 개석은 잃어버렸으며, 지금의 대좌도 제짝은 아닌 듯하다. 납석제의 사면석은 앞쪽에 아미타오존상, 뒤쪽에 미륵삼존상을 새겼고, 좌우의 측면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모습인데 그 중앙에 행간을 민들고 명문을 음각하였다. 뒤쪽의 미륵삼존상은 주존이 반가사유상이고 그좌우엔 향로로 생각되는 지물을 든 보살상이 서 있다. 삼존상의 뒷배경이 되는 공간을 격자무늬로 채운 점도 눈길을 끈다. 또한 양쪽의 아미타오존이나 반가사유상면 모두 아래쪽에 물결무늬를 새기고 그 속에서 피어난 연꽃을 새기고 잇어 연못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는데 특히 양측면에 卍자무늬의 난간을 나타내고 있어 흥미롭다. 앞쪽에는 아미타오존을, 뒤쪽에는 미륵삼존을 배치하고 있는 점은 당시 불교 신앙의 추세를 반영하고 있어 이에 대한 연구가 요망된다. 보물 제649호. 비상 높이 52.4센티미터. 연기군 서면 연화사에 봉안.
▲ 나가노현 관송원 동제 반가사유상 오른손을 잃어 현재 나무로 보수 하였는데 반가사유형을 나타내였던 본래의 모습과 다르게 손모양을 처리하였다. 그 외에는 원형을 잘 남기고 있다. 상의 아래쪽에 턱이 나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대좌에 끼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서산 마애불에 보이는 반가사유상이나 단석산 신선사 마애 반가상 모두 대좌와 광배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 단석산 신선사 석굴의 전경 서쪽에서 굴을 바라다본 모습. 「동경잡기」에 "有巖屹立 高百餘尺"이라 특기하고 있듯이 높이 829미터의 단석산 정상 서남쪽 아래에 4개의 커다란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솟아 천연의 석실을 이루고 있는 이곳이 신선사의 옛 터이다. 그림에서 왼쪽(向左)이 북암인데 이 북암은 두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쪽 바위에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여러 상이 새겨져 있고, 안쪽 바위에는 이 석굴의 주존불인 여래 입상이 새겨져 있다. 큰 나무가 비껴 서 있는 오른쪽(向右) 바위가 남암으로 이곳에는 신선사란 명문과 보살 입상이 새겨져 있다. 그림의 중앙에 보이는 바위가 보살 입상이 새겨진 동암이다.
▲ 신선사 석굴의 북암(제2) 마애 불상군(부분) 북쪽 바위 가운데 굴 안쪽에 주존불이 새겨진 바위를 북암 제1이라고 하고 그 바깥쪽에 나란히 서 있는 바위를 북암 제2라고 한다. 이 바위에는 모두 불, 보살 인물상 등 모두 7구가 새겨져 있다. 굴을 향해 제일 안쪽 벽에 반가사유상이 있고 이어서 여래상 3구가 새겨 있는데 왼손이 모두 반가상 쪽으로 향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 경주 남산 금동 반가사유상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국보 제83호인 미륵반가상이다. 이 금동상의 출토지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전하고 있으나 최근까지의 현지 조사에 따르면 경주 남산의 선방골 곧 배리 삼존 석불(보물 제63호)이 서 있는 부근에서 출토되었고 그곳에서 개울을 건너 망월사 경내의 주지실터라고 일컫는 곳에 잠시 봉안되었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