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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 한국의 향교

 

글 / 김호일●사진 / 유남해

2010,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2

 

082

빛12ㄷ  235

 

빛깔있는 책들 235

 

김호일-------------------------------------------------------------------------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와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문교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교육연구관과 관동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수실장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 중앙대학교 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개항전후사』, 『한국근현대이행기 민족운동』, 『조선 후기 향약연구』(공저) 등의 저서와 「양성지의 관방론」, 「조선 후기 향안에 대한 일고찰「조선 후기 향교조사보고」 등의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유남해-------------------------------------------------------------------------

『진경산수화『한국전통회화』, 『조선시대고문서』, 『무등산』, 『전통 문양』, 『부석사』, 『운주사』 등 많은 사진집을 제작하였고 한국관광사진콘테스트에서 준우수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족문화편찬팀에 근무하면서 포토에세이 등을 통해 활약하고 있다.

 

|차례|

 

향교의 기원

건물의 구성과 배치 형식

직제와 운영

향교의 경제적 기반

향교의 기능

향교의 변화

소장 전적

향교의 역사적 의의

남한의 향교 일람표

북한의 향교 일람표

참고 문헌

 

향교와 서원의 비교

 

 설립 주체

 배향 인물

 설립 시기

 기능

 향교

 국가(관학)

 공자, 4성, 10철, 72현, 송조 6현,

우리나라 18현 등(일률적)

 고려

 교육 기관, 제향

 서원

 개인(사학)

 이황, 이이, 송시열 등

우리나라 명현(서원마다 다름)

 조선(16세기 이후)

 교육 기관, 제향

 

김산향교 전경

나주향교 대성전과 주줏돌  주춧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사찰들이 헐리면서 그 석재를 옮겨 사용한 흔적으로 여겨진다.

 

문선왕(文宣王) 공자(孔子, B.C.552~B.C.479년)

중국 춘추(春秋) 시대의 교육자이며 철학자, 정치사상가, 유교 창시자이다. 공부자(孔夫子)라고도 하며 본명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 노(魯) 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陬邑),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추현(鄒縣) 노원촌(魯原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숙량흘(叔梁紇)이며, 어머니는 안징재(顔徵在)로 니구산(尼丘山)에서 공자를 낳았기 때문에 이름을 구로, 자를 중니라 한 것이다. 그는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위리(委吏, 창고 관리)와 승전리(乘田吏) 등 말단 관리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4성

안자(顔子, B.C.514~B.C.483년)

중국 춘추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회(回)이며, 자는 자연(子淵)이다.

 

증자(曾子, B.C.505~B.C.436년 경)

중국 춘추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삼(參) 이며, 자는 자여(子輿)이다.

 

자사(子思, B.C.483~B.C.402년)

공자의 손자이며 공리(孔鯉)의 아들로 본명은 급(伋), 자는 자사이다. 어려서 증자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맹자(孟子, B.C.371~B.C.289년 경)

중국 전국(戰國)시대의 철학자로 본명은 가(軻), 자는 자여(子與) · 자거(子車 또는 子居)이다.

 

10철

민손(閔損)

자는 자건(子騫)이며,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15년 아래이다.

염경(冉耕)

자는 백우(伯牛)로 노나라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안민 다음으로 평가되며, 악질(惡疾)로 죽을 때 공자가 손을 잡고 병으로 죽음을 탄식하였다.

염옹(冉雍)

자는 중궁(仲弓)이며,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29년 아래이다.

재여(宰予)

자는 자아(子我)로 노나라 사람이다.

단목사(端木賜)

자는 자공이며, 위(衛)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31년 아래이다.

염구(冉求)

자는 자유(子有)이며,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29년 아래이다.

중유(仲由)

자는 자로(子路)이며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9년 아래이다.

언언(言偃)

자는 자유(子遊)이며, 오(吳)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5년 아래이다.

복상(卜商)

자는 자하(子夏)이며, 위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4년 아래이다.

전손사(顓孫師)

자는 자장(子張)이며, 진(陳)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8년 아래이다.

 

송조 6현

주돈이(周敦頤, 1017~1073년)

송나라 도주(道州) 사람으로 자는 무숙(茂叔)이었으나 왕의 이름과 같아 후에 돈이(敦頤)로 고쳤다. 호는 염계(濂溪)이며, 57세에 세상을 떠났다.

정호(程顥, 1032~1085년)

주돈이의 제자이며, 자는 백순(伯淳), 호는 명도(明道)로 송나라 하남(河南) 사람이다.

정이(程頤, 1033~1107년)

자는 정숙(正叔)이며 호는 이천(伊川)으로 정호의 동생이다.

소옹(邵雍, 1011~1077년)

자는 요부(堯夫)이며, 호는 강절(康節)로 하남 사람이다.

장재(張載, 1020~1077년)

자는 자후(子厚)이며, 호는 횡거(橫渠)로 대량(大梁) 사람이다.

주희(朱熹, 1130~1200년)

자는 원회(元晦)이며, 호는 회암(晦菴)으로 휘주(徽州) 사람이다.

주희 영정  주희는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장재 등과 함께 송조 6현으로 일컬어지며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동국 18현

설총(薛聰, 655~?년)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의 대학자로 자는 총지(聰智)이며, 경주 태생이다.

최치원(崔致遠, 857~?년)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자는 고운(孤雲) · 해운(海雲)이며,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시조이다.

최치원 영정과 위패  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시무책 10여 조를 올려 귀족의 부패와 지방 세력의 반란 등 사회 모순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읍 무성서원 소장.

안향(安珦, 1243~1306년)

고려의 명신(名臣)이자 학자로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초명(初名)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이다.

안향 영정  안향은 고려의 명신이자 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불린다.

정몽주(鄭夢周, 1337~1392년)

고려 말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영일(迎日)이며,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다.

김굉필(金宏弼, 1454~1504년)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서흥(瑞興)이며,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 · 한훤당(寒喧堂)이다.

정여창(鄭汝昌, 1450~1504년)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자는 백욱(), 호는 일두(一蠹)이다.

조광조(趙光祖, 1482~1519년)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이다.

이언적(李彦迪, 1491~1553년)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 또는 자계옹(紫溪翁)이다.

이황(李滉, 1501~1570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본관은 진보(眞寶)이며, 자는 계호(季浩) ·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 퇴도(退陶) · 도수(陶叟) · 도옹(陶翁)이다.

김인후(金麟厚, 1510~1560년)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 또는 담재(湛齋)이다.

이이(李珥, 1536~1584년)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며 정치가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 석담(石潭) · 우재(愚齋) 등이다.

성혼(成渾, 1535~1598년)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호원(浩原), 호는 묵암(默庵) · 우계(牛溪)이다.

김장생(金長生, 1548~1631년)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조헌(趙憲, 1544~1592년)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신, 의병장으로 본관은 배천(白川)이다.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 도원(陶原) · 후율(後栗)이며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김집(金集, 1574~1656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년)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 우재(尤齋)이다.

송시열 영정  송시열은 문장과 서체에 뛰어났으며, 조광조, 이이, 김장생으로 이어진 기호학파의 학통을 충실히 계승 발전시켰다.

송준길(宋浚吉, 1606~1672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은진이며,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박세채(朴世采, 1631~1695년)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 · 남계(南溪)이다.


폐쇄형 대성전  폐쇄형 대성전은 전퇴가 없이 전면에 바로 벽과 출입문을 설치한다. 고부향교.

전퇴 개방형 동무  동 · 서무는 대부분 3칸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배향하는 신위의 수가 많은 대설위의 경우 9칸이나 10칸으로 지어진 경우도 있다. 양주향교.

나주향교 명륜당  명륜당은 스승과 학생이 모여서 교육을 하는 곳이며, 일반적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는 형태를 취한다. 나주향교의 명륜당은 성균관의 명륜당을 모방하여 지은 것이다.

김제향교 명륜당과 동 · 서재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를 말하며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장수향교 외삼문  향교를 출입하는 정문을 가리키며, 대개 2층의 누 또는 솟을삼문 형태로 되어 있다.

옥천향교 내삼문  배향 공간과 교육 공간 사이를 통하는 문으로 상대적으로 외삼문보다 작다.

단양향교 풍화루  외삼문은 향교에 따라 '풍속과 교화', '만물을 교화한다'는 뜻의 풍화루, 만화루 등의 이름을 가진다. 풍화루와 외삼문이 별도로 건립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풍화루에서 외삼문까지 진입하는 동안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경주향교 존경각  경판교는 자료를 보관하는 곳으로 존경각이라 부르기도 한다.

장수향교 홍살문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나무 문으로 신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나 왕릉 등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표시물이다.

남원향교 하마비  하마비는 궁궐, 종묘, 문묘, 성현의 탄생지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워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게 한 것이다.

전주향교 계성사  이 건물은 5성인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의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장수향교 정충복비  향교 안이나 정문 밖으로 세워진 비석들이 주로 고을을 잘 다스린 관리들을 추모하는 공적 기념비인 데 비해, 장수향교 정문 앞의 정충복비는 노비 정경손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고 있다.

전학후묘의 향교 배치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향교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배치된다. 전학후묘의 형태는 다시 명륜당과 동 · 서재가 놓이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강릉향교(위)는 전당후재 형태를, 기장향교(아래)는 전재후당 형태를 하고 있다.

좌묘우학의 향교 배치  정면에서 보았을 때 대성전이 왼쪽에, 명륜당이 오른쪽에 있는 형태이다. 영암향교.

좌학우묘의 향교 배치  정면에서 보았을 때 대성전이 오른쪽에, 명륜당이 왼쪽에 있는 형태이다. 돌산향교.

강화향교 중수비  향교에서는 돈을 내고 입학하는 원납교생을 모집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향교 건물을 개수하거나 중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함이었다.

고성향교  향교촌은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하였던 제역촌의 일종으로 교촌 이외에 마을을 설정하여 군역 · 환곡 · 민고 · 잡역 등의 부담에서 면제 혜택을 주는 대신 향교에 일정한 부담을 하였다.

금산향교 입구

대구향교 양사재  조선 후기의 향교는 교육 기관으로서 기능을 상실하여 대신 그 기능을 담당할 기구를 필요로 하였고, 학교 부흥에 관심이 많은 지방관의 지원을 받아 교육장을 마련한 것이 양사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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