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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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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6. 14:47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3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  강 시집

2016,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전철 4호선,
선바위역과 남태령역 사이에
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구간이 있다.
숫자를 세어 시간을 재보았다.
십이 초나 십삼 초.
그사이 객실 천장의 조명은 꺼지고
낮은 조도의 등들이 드문드문
비상전력으로 밝혀진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
나는 고개를 든다.
맞은편에 웅크려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파리해 보인다.
기대지 말라는 표지가 붙은 문에 기대선 청년은 위태로워 보인다.
어둡다.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맹렬하던 전철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가속도만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
확연히 느려졌다고 느낀 순간,
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맹렬하게 덜컹거린다. 갑자기 누구도
파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나는 건너온 것일까?

 

시인 한  은 1970년에 태어나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이 실리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과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을 출간했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그는 침묵과 암흑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렸던 최초의 언어에 가닿고자 한다. 뜨겁고도 차가운 한강의 첫 시집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언어-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고통의 시금석인 셈이다.

 

시인의 말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불꽃 속에

둥근 적막이 있었다.

 

2013년 11월

한  강

 

차례

 

시인의 말

 

1부 새벽에 들은 노래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새벽에 들은 노래

심장이라는 사물

마크 로스코와 나

마크 로스코와 나 2

휠체어 댄스

새벽에 들은 노래 2

새벽에 들은 노래 3

저녁의 대화

서커스의 여자

파란 돌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2부 해부극장

조용한 날들

어두워지기 전에

해부극장

해부극장 2

피 흐르는 눈

피 흐르는 눈 2

피 흐르는 눈 3

피 흐르는 눈 4

저녁의 소묘

조용한 날들 2

저녁의 소묘 2

저녁의 소묘 3

 

3부 저녁 잎사귀

여름날은 간다

저녁 잎사귀

효에게. 2002. 겨울

괜찮아

자화상. 2000. 겨울

회복기의 노래

그때

다시, 회복기의 노래. 2008

심장이라는 사물 2

저녁의 소묘 4

몇 개의 이야기 6

몇 개의 이야기 12

날개

 

4부 거울 저편의 거울

거울 저편의 겨울

거울 저편의 겨울 2

거울 저편의 겨울 3

거울 저편의 겨울 4

거울 저편의 겨울 5

거울 저편의 겨울 6

거울 저편의 겨울 7

거울 저편의 겨울 8

거울 저편의 겨울 9

거울 저편의 겨울 10

거울 저편의 겨울 11

거울 저편의 겨울 12

 

5부 캄캄한 불빛의 집

캄캄한 불빛의 집

첫새벽

회상

무제

어느 날, 나의 살은

오이도

서시

유월

서울의 겨울 12

저녁의 소묘 5

 

해설 |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 조연정

 

피 흐르는 눈 3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초여름 천변

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앗던 순간에 대해서

 

(정말) 허락된다면 묻고 싶어

 

그렇게 부서지고도

나는 살아 있고

 

살갗이 부드럽고

이가 희고

아직 머리털이 검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

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

어떻게 피가 아니라 물이었는지

 

부서진 입술

 

어둠 속의 혀

 

(아직) 캄캄하게 부푼 허파로

 

더 묻고 싶어

 

허락된다면,

(정말)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니,

 

회복기의 노래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회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천지에도

남은 것들은 많았다 그해 늦봄

널브러진 지친 시간들을 밟아 으깨며

어김없이 창은 밝아왔고

흉몽은 습관처럼 생시를 드나들었다

이를 악물어도 등이 시려워

외마디소리처럼 담 결려올 때

분말 같은 햇살 앞에 그저

눈 감으면 끝인 것을

텃새들은 겨울부터 아니 그전 겨울부터 아니아니 그 전 겨울부터

목 아프게 지저귀고 있었다

때론 비가 오고 때론 개었다 세 끼 식사는 한결같았다 아아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린 동생의 브라운관은 언제나처럼 총탄과 수류탄으로

울부짖고 있었고 그 틈에 우뚝

살아남은 영웅들의 미소가 의연했다

그 해 늦봄 나무들마다 날리는 것은 꽃가루가 아니었다

부서져 꽂히는 희망의 파편들

오그린 발바닥이 이따금 베어 피 흘러도

봉쇄된 거리 벗겨진 신 한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천지에서 떠밀려온 원치 않은 꿈들이 멍든 등을 질벅거렸고

그 하늘

그 나무

그 햇살들 사이

내 안에 말라붙은 강 바닥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모든 것이 남은 천지에

남은 것은 없었던 그해 늦봄

 

그때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저녁의 소묘 4

 

잊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건

부스러질 것들

 

부스러질 혀와 입술,

따뜻한 두 주먹

 

부스러질 맑은 두 눈으로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

 

                                    무엇인가

                                   반짝인다

 

반짝일 때까지

 

파란 돌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을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러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캄캄한 불빛의 집

 

그날 우이동에는

진눈깨비가 내렸고

영혼의 동지(同志)인 나의 육체는

눈물 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다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꽃처럼 불 밝힌 이층집들,

그 아래서 나는 고통을 배웠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기쁨의 나라로

어리석게 손 내밀었다

 

가거라

 

무엇을 꿈꾸느냐 계속 걸어가거라

가등에 맺히는 기억을 향해 나는 걸어갔다

걸어가서 올려다보면 가등갓 안쪽은

캄캄한 집이었다 캄캄한

불빛의 집

 

하늘은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에서

텃새들은

제 몸무게를 떨치며 날아올랐다

저렇게 날기 위해 나는 몇번을 죽어야 할까

누구도 손잡아줄 수는 없었다

 

무슨 꿈이 곱더냐

무슨 기억이

그리 찬란하더냐

 

어머니 손끝 같은 진눈깨비여

내 헝클어진 눈썹을 갈퀴질하며

언 뺨 후려치며 그 자리

도로 어루만지며

 

어서 가거라

 

저녁의 소묘

 

어떤 저녁은 피투성이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가끔은 우리 눈이 흑백 렌즈였으면

 

흑과 백

그 사이 수없는 음영을 따라

 

어둠이 주섬주섬 얇은 남루들을 껴입고

 

외등을 피해 걸어오는 사람의

평화도,

오랜 지옥도

비슷하게 희끗한 표정으로 일히도록

 

외등은 희고

 

외등 갓의 바깥은 침묵하며 잿빛이도록

 

그의 눈을 적신 것은

조용히, 검게 흘러내리도록

 

새벽의 들은 노래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봄은 봄

 

숨은 숨

 

넋은 넋

 

나는 입술을 다문다

 

어디까지 번져가는 거야?

 

어디까지 스며드는 거야?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

 

다시는

 

이제 다시는

 

해부극장*

 

한 해골이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걸.)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 17세기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안드레아 베살리우스의 책. 수년간의 급진적 해부 연구 끝에 인간의 뼈와 장기, 근육 등 정교한 세부를 목판에 새겨 제작했다. 독특한 구도의 해골 그림들이 실려 있다.

 

해부극장 2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견딜 수 없다, 내가

 

안녕,

이라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말하고

정말이에요,

라고 대답할 때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닿았다 떨어질 때

 

*

 

그러니까 내 말은,

 

안녕.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

 

나에게

심장이 있다.

통증을 모르는

차가운 머리카락과 손톱들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 라고

견디며 말한다

일 초마다 오므렸다 활짝 펼쳐지는 것,

일 초마다 한 주먹씩 더운 피를 뿜어내는 것이 있다

 

*

 

수년 전 접질렸던 발목에

새로 염증이 생겨

걸음마다 조용히 불탈 때가 잇다

 

그보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다친 무릎이

마룻장처럼 삐걱일 때가 있다

 

그보다 더 오래전 으스러졌던 손목이

손가락 관절들이

다정하게

고통에 찬 말을 걸어온다

 

*

 

그러나 늦은 봄 어느 오후

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

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살갗이 없으니

물론 여위었고

역삼각형의 골반 안쪽은 텅 비어 있다

엉치뼈 위의 디스크 하나가

초승달처럼 곱게, 조금 닳아 있다

 

썩지 않을,

영원히 멈춰 있는

섬세한 잔뼈들

 

뻥 뚫린 비강과 동공이

곰곰이 내 얼굴을 마주 본다

혀도 입술도 없이

어떤 붉은 것, 더운 것도 없이

 

*

 

몸속에 맑게 고였던 것들이

뙤약볕에 마르는 날이 간다

끈적끈적한 것

비통한 것까지

함께 바싹 말라 가벼워지는 날

 

겨우 따뜻한 내 육체를

메스로 가른다 해도

꿈틀거리는 무엇도 들여다볼 수 없을

 

다만 해가 있는 쪽을 향해 눈을 잠그고

주황색 허공에

생명, 생명이라고 써야 하는 날

 

혀가 없는 말이어서

지워지지도 않을 그 말을

 

거울 저편의 겨울

 

1

 

불꽃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파르스름한

심장

모양의 눈

 

가장 뜨겁고 밝은 건

그걸 둘러싼

주황색 속불꽃

 

가장 흔들리는 건

다시 그걸 둘러싼

반투명한 겉불꽃

 

내일 아침은 내가

가장 먼 도시로 가는 아침

오늘 아침은

불꽃의 파르스름한 눈이

내 눈 저편을 들여다본다

 

2

 

  지금 나의 도시는 봄의 아침인데요 지구의 핵을 통과하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꿰뚫으면 그 도시가 나오는데요 그곳의 시차는꼭 열두 시간 뒤, 계절은 꼭 반년 뒤 그러니까 그 도시는 지금 가을의 저녁 누군가가 가만히 뒤따라오듯 그 도시가 나의 도시를 뒤따라오는데요 밤을 건너려고 겨울을 건너려고 가만히 기다리는데요 누군가가 가만히 앞질러 가듯 나의 도시가 그 도시를 앞질러 가는 동안

 

3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어

 

추운 곳

 

몹시 추운 곳

 

너무 추워

사물들은 떨지 못해

(얼어 있던) 네 얼굴은

부서지지도 못해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아

너도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

 

추운 곳

오래 추운 곳

 

너무 추워

눈동자들은 흔들리지 못해

눈꺼풀들은

(함께) 감기는 법을 모르고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거울 속에서

네 눈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너는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

 

4

 

만 하루 동안 비행할 거라고 했다

 

스물네 시간을 꼭꼭 접어서 입속에 털어넣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 도시의 숙소에 짐을 풀면

오래 세수를 해야지

 

이 도시의 고통이 가만히 앞질러 가면

나는 가만히 뒤처져 가고

 

네가 잠시 안 들여다보는

거울의 찬 뒷면에 등을 기대고

아무렇게나 흥얼거려야지

 

스물네 시간을 꼭꼭 접어서

따가운 혀로 밀어 뱉어낸 네가

돌아가 나를 들여다볼 때까지

 

5

 

  내 눈은 두 개의 몽당양초 뚜욱뚝 촛농을 흘리며 심지를 태우는데요 그게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은데요 파르스름한 불꽃심이 흔들리는 건 혼들이 오는 거라는데요 혼들이 내 눈에 앉아 흔들리는데요 흥얼거리는데요 멀리 너울거리는 겉불꽃은 더 멀어지려고 너울거리는데요 내일 당신은 가장 먼 도시로 가는데요 내가 여기서 타오르는데요 당신은 이제 허공의 무덤속에 손을 넣고 기다리는데요 기억이 뱀처럼 당신의 손가락을 무는데요 당신은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은데요 꼼짝하지 않는 당신의 얼굴은 불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데요,

 

거울 저편의 겨울 7

- 오후의 미소

 

거울 뒤편의

백화점 푸드코트

 

초로의 지친 여자가

선명한 파랑색 블라우스를 입고

두 병째 맥주를 마시고 있다

 

스티로폼 접시에

감자튀김이 쌓여 있다

 

일회용 소스 봉지는 뜯겨 있다

 

너덜너덜 뜯긴 경계에

달고 끈끈한 소스가 묻어 있다

 

텅 빈 눈 한 쌍이 나를 응시한다

 

너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라는 암호가

끌어올린 입꼬리에 새겨진다

 

수십 개의 더러운 테이블들이

수십 명의 지친 쇼핑객들이

수백 조각의 뜨거운 감자튀김들이

 

나를 공격할 생각은 마

 

너덜너덜 뜯긴

식욕을 기다리며,

 

거울 저편의 겨울 8

 

흰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눈먼 남자 둘이서

앞뒤로 나란히

구두와 지팡이의 리듬을 맞춰 걷고 있었다

 

앞의 남자가

더듬더듬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뒤의 남자는 앞의 남자의 등을

보호하듯 팔로 감싸며 따라 들어갔다

 

미소 띤 얼굴로

유리문을 닫았다

 

거울 저편의 겨울 4

- 개기일식

 

생각하고 싶었다

(아직 피투성이로)

 

태양보다 400배 작은 달이

태양보다 400배 지구에 가깝기 때문에

달의 원이

태양의 원과 정확하게 겹쳐지는 기적에 대하여

 

검은 코트 소매에 떨어진 눈송이의 정육각형,

1초

또는 더 짧게

그 결정의 형상을 지켜보는 시간에 대하여

 

나의 도시가

거울 저편의 도시에 겹쳐지는 시간

타오르는

붉은 테두리만 남기는 시간

 

거울 저편의 도시가

잠시 나의 도시를 관통하는

(뜨거운) 그림자

 

마주 보는 두 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서로를 가리는 순간

완전하게 응시를 지우는 순간

 

얼음의 고요한 모서리

 

(아직 피투성이로)

짧게 응시하는 겨울

의 겉불꽃

 

거울 저편의 겨울 9

- 탱고 극장의 플라멩코

 

정면을 보며 발을 구를 것

 

발목이 흔들리거나, 부러지거나

리듬이 흩어지거나, 부스러지거나

 

얼굴은 정면을 향할 것

두 눈은 이글거릴 것

 

마주 볼 수 없는 걸 똑바로 쏘아볼 것

그러니까 태양 또는 죽음,

공포 또는 슬픔

 

그것들을 이길 수만 있다면

심장에 바람을 넣고

미끄러질 것, 비스듬히

 

(흐느끼는 빵처럼

악기들이 부풀고)

그것들을 이길 수만 있다면

당신을 가질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중력을 타고 비스듬히,

더 팽팽한 사선으로 미끄러질 것

 

피 흐르는 눈

 

나는 피 흐르는 눈을 가졌어.

 

그밖에 뭘 가져보았는지는

이제 잊었어.

 

달콤한 것은 없어.

씁쓸한 것도 없어.

부드러운 것,

맥박 치는 것,

가만히 심장을 문지르는 것

 

무심코 잊었어, 어쩌다

더 갈 길이 없어.

 

모든 것이 붉게 보이진 않아, 다만

모든 잠잠한 것을 믿지 않아, 신음은

생략하기로 해

난막(卵膜)처럼 얇은 눈꺼풀로

눈을 덮고 쉴 때

 

그때 내 뺨을 사랑하지 않아.

입술을, 얼룩진 인중을 사랑하지 않아.

 

나는 피 흐르는 눈을 가졌어.

 

마크 로스코와 나 2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

 

스며오는 것

번져오는 것

만져지는 물결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의 피

 

어둠과 빛

사이

 

어떤 소리도

광선도 닿지 않는

심해의 밤

천년 전에 폭발한

성운 곁의

오랜 저녁

 

스며오르는 것

번져오르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방금

벼락 치는 구름을

통과한 새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마크 로스코와 나

- 2월의 죽음

 

미리 밝혀둘 것도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 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 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신기한 일이 아니라

쓸쓸한 일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

 

반 녹아 더 차가운 흙 속

그의 손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심장이라는 사물

 

지워진 단어를 들여다본다

 

희미하게 남은 선의 일부

또는 ㄴ이 구부러진 데

지워지기 전에 이미

비어 있던 사이들

 

그런 곳에 나는 들어가고 싶어진다

어깨를 안으로 말고

허리를 접고

무릎을 구부리고 힘껏 발목을 오므려서

 

희미해지려는 마음은

그러나 무엇도 희미하게 만들지 않고

 

덜 지워진 칼은

길게 내 입술을 가르고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질치는 나의 혀는

 

저녁의 소묘 5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

투명한 칼집들을 그었다

 

(살아 있으므로)

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저녁 잎사귀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온 것은 아침이었다

 

한 백년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내 몸이

커다란 항아리같이 깊어졌는데

 

혀와 입술을 기억해내고

나는 후회했다

 

알 것 같다

 

일어서면 다시 백년쯤

별 속을 걸어야 한다

거기 저녁 잎사귀

 

다른 빛으로 몸 뒤집는다 캄캄히

잠긴다

 

 

 

posted by 황영찬
2018. 10. 12. 08:50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2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1

 

 

 

이종호 글 · 사진

2015, 북 카라반

 

대야도서관

SB108008

 

911

이75ㅎ  1

 

불국사와 석굴암부터 백제역사유적지구까지

 

UNESCO World Heritage of KOREA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종묘, 남한산성, 백제역사유적지구,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 화성, 강화 · 고창 · 화순 고인돌 유적, 조선 왕릉,

불국사와 석굴암, 경주역사유적지구,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한국의 건축물을 대변하는 궁궐은 많지만, 창덕궁이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에 지명되었을 정도로 남다른 특이성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단일 목조 건물로 가장 규모가 큰 종묘와 남한산성도 한국의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이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백제역사유적지구와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 화성도 세계문화유산에 속한다. 한국은 '고인돌의 나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고인돌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데, 특히 강화도와 전남 화순, 전북 고창 지역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조선시대의 왕릉은 거의 전부 한양을 중심으로 100리 안에 잇다. 경주 지역은 1995년 한국의 간판스타라 볼 수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최초로 지정되었고,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경주시 전부를 포괄해 지정되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인 한라산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 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전2권), 『과학문화유산답사기』(전3권), 『미스터리와 진실』(전3권), 『황금보검의 비밀』, 『과학 삼국유사』, 『과학 삼국사기』, 『고대 신전 오디세이』,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파라오의 저주』, 『천재를 이긴 천재들』(전2권), 『세계 불가사의 여행』,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노벨상이 만든 세상』,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한국의 유산 21가지』 등 100여 권을 집필했다.

 

차례

 

머리말

 

제1장 창덕궁

한국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궁궐

공간 구성과 배치
돈화문 | 금천교 | 진선문 | 인정문 | 인정전 | 상의원 | 내병조 | 선원전 |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 경훈각 | 함원전 | 성정각 | 승화루 | 낙선재 | 궐내각사

한국 조원의 대명사, 후원
부용지 지역 | 연경당 지역 | 존덕정 일원 | 옥류천 일원

 

제2장 종묘

선왕에 대한 제사의 장소

종묘 제도

격식과 장엄함의 대명사, 종묘
신도와 어도 | 망묘루 | 향대청 | 공민왕 신당 | 재궁 | 정전 | 공신당과 칠사당 | 영녕전 | 악공청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제3장 남한산성

역사의 현장, 남한산성

남한산성 돌아보기
남문 | 암문 | 수어장대 | 서문 | 군포와 매탄지 | 옹성과 치 | 북문 | 벌봉 | 여장과 포루 | 장경사 | 성벽 | 동문 | 동암문

남한산성 행궁

 

제4장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주

공주 공산성 | 공주 송산리 고분군 | 무령왕릉 | 무령왕릉의 출토 유물

부여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 부여 능산리 고분군 | 부여 나성 | 부여 정림사지

익산

익산 왕궁리 유적 | 익산 미륵사지

 

제5장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하회마을

한국의 4대 길지

3년을 적선하라

전통적인 유교마을

마을 전체가 역사 유물
양진당 | 충효당 | 화경당 | 염행당 | 주일재 | 하동고택 | 원지정사 | 작천고택 | 옥연정사 | 겸암정사 | 삼신당 | 병산서원 | 화천서당

양동마을

양동마을의 건축
관가정 | 무첨당 | 향단 | 서백당 | 상춘헌 | 근암고택 | 두곡고택 | 이향정 | 심수정 | 안락정과 강학당 | 동강서원 | 옥산서원 | 독락당

 

제6장 해인사 장경판전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불력으로 외적을 격퇴하다

대장경을 만들다

고려 최대의 국책 프로젝트

장경판전

 

제7장 수원 화성

정조, 조선 제2의 도시를 짓다

신도시 건설이 최선이다

다목적 기능의 신도시

철저한 설계도면에 의한 다양한 건축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정약용의 설계안

첨단 과학 기자재를 사용하다

수원 화성 돌아보기
장안문 | 북서적대와 북동적대 | 서북공심돈 | 화서문 | 서장대와 노대 | 서암문 | 서포루 | 서남각루 | 팔달문 | 남수문 | 봉돈(봉화대) | 창룡문 | 동북공심돈 | 연무대 | 화홍문 | 방화수류정 | 창성사 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

 

참고자료

 

■ 창덕궁은 지형지세를 활용한 자유로운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변 경관과 조화를 중시해 한국적인 궁궐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 돈화문에서 돈화는 『중용』의 '대덕돈화大德敦化'에서 취한 것으로 '교화를 도탑게 한다'는 뜻이다.

■ 금천교 네 모서리에 있는 산예라는 상상의 동물은 그 표정은 무섭지 않고 오히려 귀엽고 친근감을 준다.

■ 인정전 좌우로 회랑이 감싸고 회랑 안에는 네모난 널찍한 마당이 있는데, 이 마당이 만조백관이라고 할 때의 '조朝', 백관들이 모여서 왕에게 조회를 하던 뜰 곧 조정이다.

■ 선정전은 '정치를 널리 펼친다'는 뜻을 갖고 있는 편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다포집이다.

■ 선정전이 공식적인 업무 공간이라면 희정당은 다소 사적인 업무 공간이다. 다시 말해 '여러 신하들을 한가로이 접견하는 곳'이다.

■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침실이자 왕자와 공주의 탄생지였고, 어린 왕자와 공주를 교육하던 곳이었다.

■ 경훈각은 대조전 서북쪽에 있는 단층 건물로 초익공계의 무익공 양식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 성정각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건물의 오른쪽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누마루가 있는데 남쪽에는 보춘정, 동쪽으로는 희우루가 있다.

■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을 위해 마련한 사적인 공간이다. 낙선재에는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처소인 석복헌과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의 처소인 수강재가 있다.

■ 정조는 즉위하자 역대 왕과 자신의 시문과 글씨 등 왕과 직접 관련되는 자료들을 보관할 집을 후원에 짓게 하니 이것이 규장각과 주합루다.

■ 옥당은 '옥같이 귀한 집'이란 의미로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곳 혹은 출세가 보장되는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 부용정은 후원의 꽃이라고도 불리는데 연꽃 모양을 형상화했다. 부용정 내부에 설치한 창은 팔각형으로, 인간을 의미한다.

■ 영화당에서 나와 왼편 담장으로 두 개의 문이 보이는데, 금마문과 불로문이다. 불로문(아래)은 창덕궁 안에서 돌로 된 유일한 문으로 늙지 않는 문이라는 뜻이다.

■ 궁궐 안의 다른 건물들이 단청과 장식을 화려하게 한 것에 비해 연경당은 단청을 하지 않았다.

■ 취규정(위)의 취규는 "별들이 문장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모여든다"라는 뜻이며, 취한정의 '취한'은 "푸른 소나무들이 추위를 업신여긴다"라는 뜻이다.

■ 역대 왕들을 모신 종묘는 최고의 사당 건축이자 가장 숭고한 신전이다.

■ 조선의 종묘는 정면이 매우 길고 수평성이 강조된 독특한 형식의 건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건축 유형이다. 종묘의 신위 배치도.

■ 신도는 혼령만이 드나드는 길이고 어도는 제사 담당자인 왕과 세자가 이동하는 의례의 길이다.

■ 망묘루는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 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 공민왕의 초상을 모신 사당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과 공민왕이 직접 그렸다고 전해지는 <준마도>가 봉안되어 있다.

■ 정전은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19칸, 그 좌우의 협실 2칸의 박공지붕 건물로 왕의 신위가 늘어나면서 계속 증축되었다.

■ 칠사당은 왕실 제례 과정에 관여하는 7명의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 영녕전은 제2대 정종이 사망하자 그의 신위를 봉안하기 위해 정전의 서쪽에 세운 별묘다.

■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의 모든 제례 중에서도 가장 격식이 높은 왕실 의례다.

■ 종묘대제는 2012년부터는 1년에 2차례씩 열리는데 '어가 행렬', '영녕전 제향', '정전 제향'으로 나뉘어져 더 품격을 높였다.

■ 남한산성의 남문은 성곽의 서남쪽에 있는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으로 유일하게 문루에 현판이 걸려 있다.

■ 남한산성에 현재 남아 있는 암문은 모두 16개인데, 제6암문은 1637년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군을 크게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이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고 부른다.

■ 장대는 전쟁 때나 군사훈련을 위해 마련한 장수의 지휘소여서 성내의 지형 중 높은 곳, 즉 지휘나 관측이 용이한 곳에 설치한다.

■ 장경사는 1894년 갑오경장으로 승군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전국에서 뽑힌 270여 명의 승려가 교대로 산성을 보수하거나 경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성벽을 보면 남한산성이 천혜의 요새라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 했으면 '천작지성'이라고 했을까?

■ 동문은 일반적인 성문 구조로 되어 있으며, 거칠게 다듬어진 자연석을 막돌쌓기로 하고 면만 바르게 쌓았다.

■ 현절사는 병자호란 때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우국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 행궁은 정궁에 대비되는 용어로 왕이 궁궐을 벗어나 거둥할 때 머무는 별궁 또는 이궁, 임시궁궐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 배치도.

■ 좌승은 '앉아서 이긴다'라는 뜻으로 반드시 이길 만한 계책을 써서 적을 물리친다는 의미다. 남한산성 행궁 내의 좌승당.

■ 금서루는 공산성 답사의 시작이다. 원래 그 터만 남아 있었는데 성내로 진입하는 차도로 이용되다가 1993년에 복원되었다.

■ 공북루는 공산성의 북문이다. 옛 망북루의 터에 신축한 것으로 강 사이를 왕래하는 남북 통로의 관문이다.

■ 송산리 고분군은 나지막한 구릉에 있는데, 이곳은 예부터 '송산소'라고 불리던 곳이다.

■ 무령왕릉의 구조는 단순한데, 자연 암반을 파내어 공간을 만든 뒤에 벽돌을 쌓은 것이다. 무령왕릉 내부 모습.

■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108종 2,906점에 이르고 있으며 국보로 지정된 유물만도 12점에 달한다. 위에서부터 관모, 금제 뒤꽂이, 왕비 귀걸이, 왕비 금동 신발.

■ 부소산은 해발 100미터 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으로 이곳에 고구려 군사를 방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왕궁과 시가를 방비하는 최후의 보루였던 부소산성을 건설했다. 부소산성 입구.

■ 능산리 고분군은 그 많은 고분 가운데 부여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봉분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규모면에서도 큰 축에 드는 무덤들이 모여 있다.

■ 정림사지에서는 여러 시대에 걸친 유물이 출토되었지만, 그중에서 정림사지 탑은 백제 시대의 부여를 대표한다.

■ 왕궁리 오층석탑은 익산의 미륵사탑을 본떠서 만든 백제계 석탑으로 높이 9미터, 기단 면석에 두 탱주를 갖추었다.

■ 동서로 172미터, 남북으로 148미터에 이르는 미륵사터에는 서석탑(위), 1993년에 복원된 동석탑, 당간지주 2기 등이 남아 있다.

■ 서석탑 해체 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어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해체 보수 중인 서석탑.

■ 하회마을의 물길이 S자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학자들은 S자보다는 태극 모양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회마을 전경.

■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대종가로 문중의 대소사가 이곳에서 논의되었다. '입암고택' 현판은 입암 류중영을 지칭한다.

■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으로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가옥이다.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서애 사후에 지은 집이다.

■ 화경당은 원래 만수당으로 불렸는데, 영남의 전형적인 사대부 집의 면모를 보여준다.

■ 염행당은 양진당, 충효당, 화경당과 더불어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4대 건축물이다.

■ 작천고택은 양진당, 충효당 사이의 길을 따라 서쪽으로 낙동강을 향한 우측에 있다. 1934년 대홍수로 유실되어 현재는 안채만 남았다.

■ 병산서원은 한국 최고의 서원 건축으로 꼽힌다. 경내에는 복례문, 만대루, 입교당, 동재, 서재, 고직사, 장판각, 내삼문, 존덕사, 전사청 등이 있다.

■ 관가정은 풍수적으로 지맥이 흘러드는 위치에 있는데, 관가정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 향단은 검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과시적 입지, 정면에서 보나 측면에서 보나 3개의 박공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등 특이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 서백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전통 건축의 대표라 할 수 있으며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 심수정은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을 추모해 지어진 정자다.

■ 안락정은 양동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앞쪽에 툇마루를 둔 '일一' 자형의 평면집이다.

■ 옥산서원은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이언적을 배향한 서원이고, 무변루는 끝이 없는 누각이라는 의미로 원래는 납청루였다.

■ 독락당은 정면 칸살이 4칸으로 일반적인 양식을 벗어나 있다. 이언적이 낙향한 이듬해 지어진 건물로 말년을 보냈는데, 옥산정사라고도 불린다.

■ 계정은 정자로 사용되었으며, 계곡의 반석 위에 가느다란 기둥을 세워 쪽마루를 덧댄 특이한 구조다. 편액은 한석봉의 글씨다.

■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불교 경전 일체를 한자로 새긴 현존 세계 유일이자 가장 완벽한 불교 문헌 목판 인쇄물이다. 가야산 해인사 입구와 팔만대장경 입구.

■ 목판의 양쪽에 새겨졌던 불전들은 원래 강화도의 선원사에 보관되었으나 1398년에 한양의 지천사를 거쳐 현재의 해인사로 이관되었다. 강화도 선원사터.

■ 일본은 1502년 오키나와 슈리성 밖의 원감지라는 연못에 건물을 짓고 고려대장경을 보관하기도 했다.

■ 유능한 각자공 1명이 경판 2장을 만들기도 어려웠을 텐데,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연인원은 무려 100만 명이 넘는다.

■ 「팔만대장경」은 몽골군의 공포에서 고려인이 살아남아 싸워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해인총림海印叢林 입구.

■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들은 그 이름과는 달리 무슨 창고나 헛간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 외관을 보고 실망하기도 한다.

■ 법보전은 앞의 건물과 같은 규격으로 나란히 놓여 있는데, 중앙 칸은 안쪽 높은 기둥열이 있는 곳까지 벽으로 되어 비로자나불상과 양측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했다.

■ 「팔만대장경」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목각판에 옻칠을 했다. 따라서 내구성이 강해 7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부패하거나 쥐와 좀벌레가 갉아먹는 일이 거의 없다.

■ 정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기로 했는데, 수원은 한양과 남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활동을 위한 도시였다.

■ 정조는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으로 고치고 어머니의 존호를 혜빈에서 혜경궁으로 높였다. 수원 <화성능행도> 일부.

■ 수원 화성이 다른 성곽과 차별되는 것은 상업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평산성 형태로 설계되었다.

■ 정조는 젊은 실학자 정약용에게 '삼남의 요충이요, 한양의 보장지지로 만세에 길이 의지할 만한 터'인 수원 화성을 건설토록 했다. 한강의 배다리 재현 모습.

■ 거중기는 적은 힘으로 큰 물건을 들어올림으로써 인력을 절약할 수 있고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 수원 화성에는 4개의 성문이 있는데 북문인 장안문과 남문인 팔달문이 가장 크다. 장안문은 건물 높이만 해도 32척9치로 반원형의 둥근 벽체로 벽돌로 축조되었다.

■ 수원 화성에는 적의 집중적인 공격이 예상되는 화서문과 팔달문 근처에 서북공심돈과 남공심돈을 두었고, 동북공심돈은 구릉지에 있기 때문에 치성 위에 구축할 필요가 없어 성벽 안쪽에 독립적으로 원형으로 축조했다. 동북공심돈(위)과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 서장대는 수원 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에 있는데, 돌로 쌓은 대 위에 있는 2층 누각이다. 서장대(위)와 서노대.

■ 서포루는 수원 화성 서장대 북쪽으로 약 200미터 거리에 잇는 성곽 시설물이다. 성 몸에 '철(凸)' 모양을 붙여 치성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 팔달문은 한양의 남대문이나 동대문과 같은데 문루의 네 귀에 높은 기둥이 없는 것이 다르다.

■ 봉화대는 변방에서 발생하는 군사적인 긴급 사태를 중앙에 급히 알리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 연무대는 전쟁 지휘소로 장수가 장병들을 모아 놓고 훈련을 하거나 지휘하는 곳이다. 그 주변에는 탁 트인 넓은 공터인 활터가 있다.

■ 방화수류정은 전시에 적군 감시와 지휘소 기능을 하면서도 평시에 휴식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