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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10. 08:53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09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시집, 김덕용 그림

2008, 마로니에북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2467

 

811.6

박14ㅂ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본문 <옛날의 그 집> 중에서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횡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홍합

 

통영 항구의 동춘 끝을 지나고

해명 나루 지나고

작은 통통배

용화산 뒤편을 휘돌아 가니

첫개라는 어촌이 있었다

인가가 몇 채나 되는지 희미해진 기억

푸른 보석 같은 물빛만은

지금도 눈에 어린다

 

친지 집에서는 내가 왔다고

큰 가마솥 그득히 홍합을 삶아 내어

둘러앉아서 까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던 홍합

그때처럼 맛있는 홍합은

이후 먹어 본 적이 없다

 

내 나이 열두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 손님은

큰집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잠은 작은집에서 잤는데

아제씨는 여장에 가고 없었다

호리낭창한 미인 형의 아지매는

병색이 짙어 보였다

 

한밤중에

갑자기 두런거리는 소리가 났다

집 안에 불이 밝혀지고

발자욱 소리도 들려왔다

덩달아 파도 소리도 들려왔다

알고 보니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것

 

날이 밝고 보다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폐결핵인 아지매의 약으로

고양이 새끼의 탯줄이 필요했고

아지매는 고양이를 달래고 달래어

탯줄을 얻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이냐고도 했다

 

첫개라는 어촌의 하룻밤

홍합과 아지매와 고양이

얼마 후 나는

아제씨가 상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느질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천성

 

남이 싫어하는 짓을 나는 안했다

결벽증,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내가 싫은 일도 나는 하지 않았다

못된 오만과 이기심이었을 것이다

 

나를 반기지 않는 친척이나 친구 집에는

발걸음을 끊었다

자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싫은 일에 대한 병적인 거부는

의지보다 감정이 강하여 어쩔 수 없었다

이 경우 자식들은 예외였다

 

그와 같은 연고로

사람 관계가 어려웠고 살기가 힘들었다

 

만약에 내가

천성을 바꾸어

남이 싫어하는 짓도 하고

내가 싫은 일도 하고

그랫으면 살기가 좀 편안했을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은 훨씬 더 고달팠을 것이며

지레 지쳐서 명줄이 줄었을 것이다

 

이제 내 인생은 거의 다 가고

감정의 탄력도 느슨해져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무덤덤하며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빚진 것도 빚 받은 것도 없어 홀가분하고

외로움에도 이력이 나서 견딜 만하다

 

그러나 내 삶이

내 탓만은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한 가지 변명을 한다면

공개적으로 내지른 싫은 소리 쓴 소리,

그거야 글쎄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우주 만상 속의 당신

 

내 영혼이

의지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진작에 내가 갓어야 했습니다

당신 곁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찔레덩쿨을 헤치고

피 흐르는 맨발로라도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어머니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 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희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서

이렇게 나를 놓아주지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가을

 

방이 아무도 없는 사거리 같다

뭣이 어떻게 삐져나간 걸까

솜털같이 노니는 문살의 햇빛

 

조약돌 타고 흐르는 물소리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러고 있다

세월 밖으로 내가 쫓겨난 걸까

 

창밖의 저만큼 보인다

칡넝쿨이 붕대같이 감아 올라간 나무 한 그루

같이 살자는 건지 숨통을 막자는 건지

 

사방에서 숭숭 바람이 스며든다

낙엽을 말아 올리는 스산한 거리

담뱃불 끄고 일어선 사내가 떠나간다

 

막바지의 몸부림인가

이별의 포한인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하는

 

원죄로 인한 결실이여

아아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참혹한 계절이다 이별의 계절이다

 

까치설

 

섣달그믐 날, 어제도 그러했지만

오늘 정월 초하루 아침에도

회촌 골짜기는 너무 조용하다

까치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다

푸짐한 설음식 냄새 따라

아랫마을로 출타중인가

 

차례를 지내거나 고사를 하고 나면

터줏대감인지 거릿귀신인지

여하튼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골고루 채판에 담아서

마당이나 담장 위에 내놓던

풍습을 보며 나는 자랐다

 

까치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음식 내놓을 마당도 없는 아파트 천지

문이란 문은 굳게 닫아 놨고

어디서 뭘 얻어먹겠다고

까치설이 아직 잇기나 한가

 

산야와 논두렁 밭두렁 거리마다

빈 병 쇠붙이 하나 종이 한 조각

찾아볼 수 없었고

어쩌다가 곡식 한 알갱이 떨어져 있으면

그것은 새들의 차지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목이 메이게 척박했던 시절

그래도 나누어 먹고 살았는데

 

음식이 썩어 나고

음식 쓰레기가 연간 수천 억이라지만

비닐에 꽁꽁 싸이고 또 땅에 묻히고

배고픈 새들 짐승들

그림의 떡, 그림의 떡이라

아아 풍요로움의 비정함이여

정월 초하루

회촌 골짜기는 너무 조용하다

 

 

장마 그친 뒤

또랑의 물 흐르는 소리 가늘어지고

달은 소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데

어쩌자고 풀벌레는 저리 울어 쌓는가

저승으로 간 넋들을 불러내노라

쉬지 않고 구슬피 울어 쌓는가

 

그도 생명을 받았으니 우는 것일 게다

짝을 부르노라 울고

새끼들 안부 묻노라 울고

병들어서 괴로워하며 울고

배가 고파서 울고

죽음의 예감, 못다한 한 때문에 울고

다 넋이 있어서 우는 것일 게다

울고 있기에 넋이 있는 것일 게다

 

사람아 사람아

제일 큰 은총 받고도

가장 죄가 많은 사람아

소녀시절 박경리의 모습(왼쪽)

진주여고 졸업반이던 1944년 기숙사 연극 발표회에 참여한 박경리.(사진 왼쪽 끝)

사진을 제공한 박산매 시인은 "연극 대본도 직접 쓸 만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두고 친구인 박산매 시인에게 "졸업해도 서로 잊지 말자"며 노트에 그려준 그림.

그림의 주인공은 상상의 인물로, 여고생 박경리의 소녀적 감성을 엿보게 한다.

서른두 살 때 모습

옛날의 그 집(현 원주 토지문화공원)

토지문화관과 자택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