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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8. 10:33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10 만인보

 

高銀

200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5

 

811.6

고67만 7

 

나는 고은의 『만인보』를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종교적 연민을 배운다. 나는 사람의 삶의 형태에 따라서 어느 쪽인가 하면 사람과 미움의 마음이 분명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찌들어진 운명의 땅에 태어나 온갖 삶의 형태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사라져간 인간들에 대해서 사랑이나 미움보다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다만 『만인보』를 읽음으로 말미암아서 나 자신이 인간과 삶에 대해서 더욱 경건해지는 것만으로도 『만인보』와 그 작가 고은에 대해서 감사한다.

- 한양대 교수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이영희

 

일찍이 발자끄는 빠리의 호적부와 경쟁하겠다고 호언히였다. 뛰어난 소설가라면 모름지기 이만해야 한다. 그런데 한 시인이 있어 우리 민족의 호적부와 겨루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고난으로 축복받은 이땅에서 살아갔던 평균적 인물들의 눈부신 삶과 탁월한 역사적 개인들의 평균적 삶의 자태를 교직한 『만인보』에서 시인은 문득 일천 강물 위에 은빛 도장을 찍는 달빛이 되어 독자들을 저 망망한 민중사의 바다로 인도한다. 소도둑과 혁명가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을 백과사전적 전개 속에서 추구하는 『만인보』는 진실로 민족서사시적 위엄을 스스로 갖추고 있다.

- 문학평론가 최원식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작자의 말

얼레지꽃 / 낮거리 / 조수길 / 화양댁 / 되  놈 / 단  군 / 두칠수 / 새 마누라 / 김은석 / 입분이 / 붕어집 양반 / 문봉안 영감 아들 / 널순이 / 상두소리패 / 순임이 이모 / 김진구 선생 / 교장 권오창 / 강중도 / 강중도 마누라 / 김덕령 / 조봉암 / 5대 독자 / 김옥균 / 이기섭 / 정자 누나 / 윤생원 / 청개구리 / 길모 누나 / 피  말 / 남궁 억 / 새터 고만종이 / 덕배 아재 / 길선생 / 황  소 / 남순이 / 가시내 / 고근상 / 홍복근 원장 / 째보선창 갑술이 / 신라 헌강왕 / 방  화 / 묵은장 상거지 / 군산 제일 부자 / 우정숙 / 나무꾼 시인 정봉 / 함신호 / 서재열 / 군산 건달 / 임두빈이 마누라 / 양  길 / 굴둑 동티 / 임두빈이 어머니 / 이제과점 / 윤명자 / 팔척 남매 / 한하운 ! / 김진숙 / 라쿤파르시타 / 이  훤 / 돛대봉 / 전대석 / 난순이 / 나운리 싸낙매기 / 계  모 / 조부희 / 썩을 년 임피댁 / 머슴 남수 / 혹부리 / 문남철 / 권평건 / 이달호 / 동국사 금하 스님 / 금하 스님 마누라 / 쩔뚝발이 영자 / 이용구 / 김갑영 / 목련 송기원 / 김순근 / 미스 박 / 김익순 / 김삿갓 / 이만복 / 도리도리 할아버지 / 꾕매기꾼 / 정윤봉 / 이덕 선생 / 윤여순 / 당북리 / 그 무덤 / 도둑 2대 / 오금덕이 내외 / 한서울댁 시어머니 / 박일룡 / 차칠선 / 백남운 / 고병조 / 사찰계장 이호을 / 조부희 오라버니 / 강일순 / 어부 고씨 / 이수복이 / 고씨 마누라 / 기영감 / 최  씨 / 어부 두남필이 / 전주사 / 게  막 / 오  씨 / 성덕대왕 신종 / 임 / 강철종 / 나병재 / 최영식 / 노비 욱면이 / 째보선창 주모 / 개 물린 도길이 / 응봉 스님 / 형사 이진표 / 김창환 / 돌 돌려 맹세하나니 / 김재희 / 김진강 / 화가 홍건직 / 문영감 / 최혁인 / 김상호 / 김교선 / 째보선창 천씨 / 설중매 / 이병훈 / 육손이 / 코찡찡이 애숙이 / 김  헌 / 김남현 스님

 

새 마누라

 

나운리 장영감

군산 장안관 기생 옥매 모셔다가

인력거로 모셔다가

안방 늙은 마누라

윗방으로 쫓고

함께 늙어가는 자식 사형제

다 제금나

혹은 정미소 하고

혹은 떡방앗간 하고

혹은 석유회사 차리고

혹은 금융조합 다니는데

그 자식들 불러다가

 

여기 너희들 새어머니다 인사 차려라 하니

마흔살짜리 큰아들부터

꼼짝달싹 못하고

그 비린내나는 기생년한테

새어머님 절 받으시지요

하고 절하니

이어서 절하니

어이

어이

어이

어이

하고

얼쑤 새어머니 제법 태깔닌다

 

나운리 장영감 새 마누라 얻은 지 2년 만에

논 2천 평짜리

스무 마지기짜리

또 3천 5백 평짜리

밭 천 평짜리

새마누라 앞으로 등기내 조고

금가락지 옥가락지

금반지

금팔찌

금비녀 은비녀

금덩어리까지 해다 바치고

 

그 색정이 무엇이관대

아냐

그 재물이 또한 무엇이관대

딱 3년 재미 보며

베개 베는 맛 새삼스럽다가 세상 떠났다

 

그 새어머니 눈썹 초생달로 그리고 나가버린 뒤

안방으로 돌아온 본마누라

아무도 없는데

마당 가운데 장닭 씨암탉 있는 데 대고

 

아이고 뒈져 싼 영감

아이고 내 영감 죽인 년

벼락 맞아 죽을 년

 

그러나 옥매 다시 장안관 가서 기생질하는데

이번에는 장영감 큰아들

장길순이가

새어머니 새어머니 하고 사로잡힌다

옥매 넉넉히

요사이 집안 다 무고하시고

어쩌고 하며

장길순이 어깨 주물러준다

 

강중도 마누라

 

서방 강중도가

워낙 손끝 하나 끄떡치 않는 놈팡이인지라

마당의 개오동나무 잎사귀도 끄떡치 않는지라

가을이라고 다 가면

아예 지붕 이을 때

아낙이

지붕 올라가 지붕 이고

아기 업고

빈 논에 나가 이삭 줍고

이듬해 봄 논에 나가 물꼬 보고

동네방네 내외 없이 나다니는데

그래도 서방은 제 서방인가

어쩌다가 서방 홍보는 소리 들으면

사람 인자 한 자가

어디 한 울님인가요

이 세상 흠없는 남정네 있거든 대보아요

정 화가 날 때면

이런 소리도 걷어버리고

뭣이 어쩌고 어쩌

네 서방 겨드랑이나 사타구니나 간지럼 태우거라

이 할일 없는 쏘가리 같은 년아

 

정자 누나

 

조금 눈동자가 코 쪽으로 모여

누구를 쳐다보는지 모르지만

늘 볼우물이 넘쳐

웃음 떠나지 않는 김정자

그렇다 이 세상에 나오기를 웃으려고 나왔다

아랫도리 몽당치마 훌렁 뒤집힐 때

무릎 위 커다란 흉터 징그럽지만

앞산 보고 웃고

뒷동산 보고 웃는다

그런 정자 살결 하나 분결이어서

하늘의 흰구름하고 수양어머니 수양딸이었다

하기야 어머니 진작 잃었으니

나이 어려서부터

밥하고 빨래하고 잔심부름하고

그러는 동안 흰구름 많이 바라보았다

딸기 덤불에 가서 딸기 따주고

솔밭에 가서

생솔방울 따주고

버섯도

먹는 버섯

못 먹는 버섯 가르쳐주었다

못 먹는 버섯은 으레 울긋불긋하단다 하고

 

솔바람소리 그 속에서

다섯 살 위인 정자더러

나는 입 속으로만 혼자 불렀다

정자 누나 !

 

길모 누나

 

어디로 시집이라고 갔다 하면

보퉁이 하나 들고 돌아오기만 하는가

세번째 시집살이

두 달 만에 돌아왔다

길모 누나

주근깨 골고루 뿌려진 길모 누나

길모 아버지가

이년 어디 가서

물에 빠져 뒈지지 않고

뭣하러 왔어

하고 장대 걷어 치려 하자

길모 어머니가 막아 대신 맞아야 했다

 

그런 매타작 치르고 나서야

그냥저냥 살아가는데

일손 귀한 터라

아예 친정살이로 밭일 논일

산에 올라 푸나무 하는 일

무슨 일인들 마다하랴

그저 친정 식구하고 함께 사는 것 하나로

그놈의 시집살이 원수 다 갚는데

 

이렇게 일 잘하는 길모 누나한테

눈독 들인

옥청골 고명곤이 영감

후살이로 데려가려고 수작 넣었으나

그 중신에미

코만 다치고 갔다

 

친정어머니하고 중신에미하고

쏙닥이는 것 엿듣고 나와

 

엄니 나 죽는 꼴 보려고 그려 ?

옥정골 양반

어서 넘어가시오

찬물 한 바가지 먹고 속 차리라고 가서 전하시오

내가 또 시집가면

개딸이여 돼지딸이여

우리 아버지 딸 아니여

 

눈물 그렁

슬픔과 노여움 하나 되어

그런 길모 누나 주근깨란 주근깨 다 살아나

얼굴 가득히 진하고 연하고……

 

임두빈이 마누라

 

서방 나가면

바로 욕질이라

뒈질 인간

탁 꺼꾸러져 뒈질 인간

상추에 모래쌈 싸먹고 뒈질 인간

 

어찌 서방 욕으로 직성이 풀리리요

어린것 하나 있는 것 마구 쥐어박으며

어서 너도 뒈져라

네 아비 빼다박은

네놈도 칵 뒈져버려라

 

그러는 임두빈이 마누라

어느덧 서방 닮아가는지

이웃집 아낙 머리끄덩이 잡기 일쑤이고

광주리장수 막아서서

마수걸이 떨이로 놓고 가라고

으름장 놓기 일쑤이고

 

이렇게 막 사는 사람 가운데는

으레 코찡찡이 애꾸 아니면 반벙어리

그렇지 임두빈이네 옆 옆집 반벙어리 아낙 나와

광주리장수 편들어 따져도

그 따지는 소리가 반벙어리 소리라

이 세상의 어느 나비인들 하늘하늘 알아들으리요

 

금하 스님 마누라

 

그 주근깨 많은 얼굴에

무슨 놈의 분 단장은 그리 하는지

지아비는

추운 법당에 서서 목탁 치는데

지어미는

다사로운 방 가운데 한가로이 경대 차리고

그 얼굴에 볼 두드린 다음 연지곤지 물들인다

 

어이할 수 없이 조금 고와라

 

고씨 마누라

 

어디 그물 한 벌 사들여

새로운 바다 나가겠는가

헌 그물 깁고 기워

누더기 그물일지나

바닷가 백사장에 얌전히 널었다가

잊어버리고

밀물에 떠내려간 뒤

영감 고봉관이한테

머리끄덩이 잡혀 질질 끌려갔다

 

아이고 이년아 어서 죽어라

죽을 데는

이 바다 사방에 있다

풍덩 빠져죽어라

 

그러나 새 그물 사서 배 떠날 때

고봉관이 중얼거리기를

잘된 일이여

그렇게나 되어야

새 그물 한번 펼치지 그려 그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