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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3.18 2015-031 선암사
  2. 2015.03.18 2015-030 만인보 ⑭ - 70년대사람들
2015. 3. 18. 16:42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31 선암사


글 / 이계표, 천득염, 최인선●사진 / 이돈기, 최인선

2003,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3


082

빛12ㄷ  236


빛깔있는 책들 236


이계표(연혁)--------------------------------------------------------------------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전남대, 목포대학교 사학과 강사와 광주시사편찬상임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광주대, 여수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는 한편 문화재전문위원, 남도불교문화연구회장으로서 불교사 조사 ·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신라 하대의 가지산문」, 「신돈의 화엄신앙과 공민왕」, 「전남의 사찰 Ⅰ(연혁)」 등 여러 편이 있다.


천득염(건축)--------------------------------------------------------------------

전남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하버드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수학하였으며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건축사, 서양건축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백제계석탑의 조형특성과 변천에 관한 연구」를 비롯하여 불탑 관련 논문을 20여 편 발표하였다. 저서로는 『전남의 전통건축』, 『운주사』, 『전탑』, 『향토사의 길잡이』, 『한국의 명원, 소쇄원』 등 다수가 있다.


최인선(유물)--------------------------------------------------------------------

전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겸 박물관 조사부장으로 있으며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 도선의 부도전지와 석관」, 「순천 금둔사지 석불비상에 대한 고찰」, 「강진 옥련사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복장」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가지산 보림사』, 『한국철불연구』, 『광양옥룡사지 Ⅰ』, 『호남의 불교문화와 불교 유적』 등 다수가 있다.


이돈기(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라남도 순천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궁』, 『탈』, 『전남 동부지역 유적과 유물』 등 전통 문화에 관련된 사진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차례|


천년 고찰 선암사

선암사의 역사와 승려

가람 배치와 건축

선암사의 유물

선암사 가는 길

참고 문헌


조계산 선암사 전경



선암사 장승  입구의 부도밭을 지나면 길가에 장승 한 쌍이 서 있는데 모두 남자이다. 밤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몸통에는 '방생정계(放生淨界)'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세 가닥 수염을 늘어뜨리고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왠지 친근한 느낌을 준다.

대각암 대선루  정유재란 때 전라도의 사찰은 왜군의 침략으로 거의 불에 타거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선암사 역시 초도화되어 대부분 흔적조차 없게 되었다. 이 건물은 순조 19년(1819)에 중수한 것이다.

선암사 차밭  장경각 뒤로 난 좁은 문을 지나 경내를 벗어나면 차밭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만든 차는 맛과 향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호암 약휴 영정  선암사의 제5차 중창주로 정유재란 이후 모두 불타버린 선암사를 복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선암사 소장. 사진 : 성보문화재연구원.

「선암사중창건도」  선암사의 각종 건물은 물론 다소 떨어진 암자까지 그려져 있는 귀한 자료로, 선암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특히 도면 위에 기문이 있어 가람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승선교  다리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속계에서 선계로 오르는 정취를 자아낼 만큼 주변의 경치나 분위기가 극적이고 아름답다. 반원형의 아치지만 물에 비친 반원과 이어져 가득한 원을 이룬다. 요석(중심돌, 아래) 아래는 조그마한 석재를 빼내어 신기한 모습을 이루는데 마치 용의 모습 같다.

강선루  사찰의 출입용 문루 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중층 누각이다. 사찰의 실질적인 경역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일주문  사찰의 권위를 표현하고 금표나 경계의 기능을 갖는다. 일주문 양쪽으로 담장이 연결되었고 돌계단으로 층계가 연결되어 있다.

만세루  강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건물이다.

대웅전  사찰의 주불전으로,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된 뒤 현종 원년에 경잠, 경준, 문정 세 대사가 주축이 되어 현재의 대웅전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모습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 양식의 팔작집으로 장엄하고 화려하다.

불조전  사찰의 개창자나 중창자, 중수자 및 역대 주지들이 모셔지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팔작기와집으로 주심포 형식에 익공 형식이 가미된 조선 후기 건물이다.

원통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아담한 건물로 정면에 각각 두 개의 기둥과 활주를 내어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T자형 평면을 이룬다. 내부에는 '대복전'이라는 순조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장경각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주심포와 익공 형식을 혼합한 모습으로 조선 후기 목조 건축에서 흔히 나타난다.

삼성각  대웅전 북서쪽에 있는 조그맣게 간결한 건물이다. 여느 사찰의 삼성각과 마찬가지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응진당  선암사의 경역 내에서는 가장 뒤쪽에 있는 조그마한 승원이며 이 영역의 주불전이다. 중심축 좌측에는 달마전이, 우측에는 진영당이 배치되어 있다.

진영당  선암사 큰스님들의 진영을 모셔 놓은 곳으로 조촐하고 조그마한 건물이다.

무우전  선암사에서는 제일 외진 곳에 위치하여 선방으로는 적격이다. 사찰의 요사체라기 보다는 양반집을 연상케 하는 건물이다.

대변소  '뒤ㅅ간'이라는 현판이 붙은 T자형 건물이다. 바닥의 짜임이 우수하고 남 · 여 칸을 구분하거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2열로 배치한 고려가 흥미롭다.

각황전 철조 여래좌상  각황전에 봉안되어 있는 주존불이다. 정유재란 때 크게 손상을 입어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으며 현재는 개금한 상태이다.

마애여래입상  높이가 5미터에 이르며 상호가 다소 이국적이다. 드러난 가슴 부위에는 卍자가 선명하고 크게 새겨져 있다.

천불전 금동 관음보살좌상  원대 라마교 불상 계열에 속한 이국풍의 보살상이다. 머리에 쓴 보관은 삼면관의 형태이며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처음 출토되었을 때는 검게 그을려 있었는데 지금은 개금하여 아주 화사해 보인다.

대웅전 목조 여래좌상  규모가 큰 목불로 위엄이 있어 보이나 조각 기법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조성 양식과 대웅전 건물의 중창 사실 등을 종합해 볼 때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응향각 목조 비로자나불좌상  높이가 5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소형 목조불로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인다.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오른손 전체를 감싸는 특이한 수인 형식을 보인다.

팔상전 목조 아미타여래상  높이 82센티미터에 비슷한 형식을 보이는 2구의 불상은 17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불조전 목조 53불상과 과거7불상  60불이 모두 거의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호를 약간 숙이고 눈은 수평이며 입은 작다.

동3층석탑  서쪽의 3층석탑과 함께 보물 제395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 개의 석탑은 외관상으로는 크기와 양식이 서로 비슷하여 동시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씩 다른 양식을 보인다.

동3층석탑 발견 금동사리탑  8각을 기본으로 한 원당형 탑이다. 중앙에 원추형의 기둥이 있는데 윗면을 반구형으로 파서 사리를 봉안하게 하였다. 그 기둥을 수정체 8각 뚜껑으로 덮고 다시 금동의 전각형 뚜껑을 덮게 되어 있다.

북부도  8각원당형으로 신라 석조 부도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선암사의 3부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작이다. 보물 제1184호.

동부도  선암사 부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석조물로서 기단부와 탑신부에 비해 옥개석이 과장되게 큰 것이 특징이다. 보물 제1185호.

대각암부도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 중대석이 균형을 잃고 있으나 옥개석의 장중함이나 하대석의 정교한 구름문은 통일신라시대의 기법을 보여 준다. 보물 제1117호.

선암사 입구 탑비전  현재 11기의 부도와 8기의 비가 있다. 이들 부도 형식은 대부분 오륜형이며, 계음당부도와 침굉당부도가 석종형을 하고 있고, 화산대사부도(아래) 만이 특수형으로 4사자부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부도전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 삼인당에 이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곳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약 100미터 정도를 올라가면오른쪽 산기슭에 서부도전이 위치한다. 여기에는 석종형과 오륜형의 조선시대 부도 12기가 봉안되어 있다.

선암사중수비와 사적비  2기 모두 귀부 위에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올려 놓은 통식의 귀부비이다.

괴불  가로 682센티미터, 세로 1,215센티미터의 거대한 석가모니 불화이다. 장중하면서도 간결하여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 준다.

대각국사 영정  선암사에는 여러 조사들의 영정이 소장되어 있는데, 대부분 기록이 없어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없다. 대각국사 영정은 가로 103센티미터, 세로 127센티미터로 오른쪽을 향한 측면상이다. 보물 제1044호. 사진 : 유남해.

'순치 14년' 명 범종  현재 대각암에 있으나 원래는 보성 대원사 부도암에 있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높이는 83.6센티미터이며 주조의 조각미가 뛰어나 조선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은입사 향로  전형적인 고려 향완 형식으로 은입사 기법을 이용하여 문양을 넣었다. 동제로 깊은 완형 위에 넓게 수평으로 퍼지는 전이 달린 노신과 밑이 나팔 모양으로 퍼지는 높은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높이 29.5센티미터.

'숭정 6년' 명 향로  노신과 받침이 분리되는 결구식으로, 나팔형으로 퍼지는 받침 하단 윗면에 가는 침을 사용해서 명문을 점선으로 새겼다. 전체 높이 32센티미터.

금란가사  대각국사 의천의 가사로 고려 선종 4년에 왕이 하사한 것으로 전한다. 긴 사각형이며 비단 바탕에 금실로 글자와 무늬를 전면에 가득 짜 넣었다.

용문탁의  금란가사와 함께 의천의 유품으로 전한다. 법상의 덮개, 곧 탁상보로 짐작되는 데 문양과 글씨를 금사로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길이 216.5센티미터, 너비 118센티미터.

삼인당  신라 경문왕 2년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한다. 타원형이며 연못 안에 긴 계란형 섬이 있다. 1996년 순천전통문화보존회(회장 박관수)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

달마전 석조  사각형의 석조 1기와 원형의 석조 3기가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 잇대어 있다. 서로의 높낮이와 크기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







posted by 황영찬
2015. 3. 18. 13:03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30 만인보  - 70년대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2

 

811.6

고67만  14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이우재 / 유영모 / 강희남 / 황한식 / 천영초 / 이호웅 / 민종덕 / 한  신 / 최권행 / 어느 고등학생 / 박희범 / 백작부인 이옥경 / 백영서 / 성남옥 / 안성열 / 박한상 / 김진홍 / 서임수 / 이위종 / 서경원 / 신인령 / 이양구 / 김영준 / 김  형 / 군부대신 이근택 / 정진동과 더불어 / 양  홍 / 권근술 / 손창섭 / 대전역 보선원 임씨 / 창신동 노파 / 고흥의 한 영감 / 오대영 / 권오헌 / 박영록 / 이이화 / 조승혁 / 박광서 / 은명기 / 김덕생 / 최정순 / 이을호 / 박지동 / 금호동 김씨 / 이경배 / 예  종 / 이종욱 / 음력 정월 명동성당 앞길 / 욕쟁이 아저씨 / 조정하 / 원  택 / 성  철 / 김사형 / 성  종 / 이직형 / 박종만 / 최민석 / 임중빈 / 문병란 / 지철로왕 / 한창기 / 이상신 / 조세희 / 이낙호라는 사람 / 스승들 / 삼  대 / 윤필용 / 윤구병 / 박완서 / 월산 선사 / 한경남 / 최장학 / 박재봉 / 김중배 / 어린이의 날 / 성한표 / 강문규 / 김지길 / 양관수 / 신라말 경명왕 / 제  칼 / 김도연 / 심재택 심재원 형제 / 정신 이상의 아내 / 권영빈 / 홍지영 / 정창렬 / 두 청소부 / 최  동 / 오직 '물러가라 !' / 신석초 / 송언형 / 김동우 / 이태복 / 함윤식 / 1971년 4월 19일 / 해남 일지암터 / 차옥숭 / 이근후 / 서중석 / 해부루 / 아브라함 집안 / 김상철 / 민주회복국민회의 / 조선 중종의 눈 / 김규동 / 김도현 / 이중한 / 최병서 김선주 / 조춘구 / 유인택 / 신직수 / 함병춘 / 이범석 / 안양노 / 박범진 / 박종태 / 김종규 / 안병직 / 김민기 / 양희은 / 재수생 / 단계벼루 / 김영환 / 박인배 / 양호민 / 윤걸이

 

조세희

 

우툴두툴한 마른 유자껍질 얼굴의 젊은 작가

갈색의 작가

막 건져올린

남대천 귀향의 연어이기도 한 작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것이 70년대 현실과 상징 사이

끈질긴 문학의 암초일 줄이야

 

그렇다 모두 다 난장이었다

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누구인가

 

조세희는 그것을 쓰고 시대의 잠수부가 되어

늘 물위에 떠오르지 않은 채

물속의 중세 근세를 헤험치다 솟아올라

물위의 오늘을 보았다

 

그는 끝내 글을 버리고 사진을 찍고 찍었다

 

박완서

 

개성 가는 길

개성 못 미쳐

개풍 있다

서울역에서 거기까지만 가도

경의선 살아나겠다

 

박완서

딸 여섯

아들 하나 출무성히 길러

시집 보낸 딸도 있는데

 

그 오랜 주부노릇 끝에 소설을 시작했다

 

저 50년대

전쟁과 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그 폐허의 순정이던

화가 박수근을 기억했다가 소설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가장 부지런한 소설가였다

때로는 인간에 대해서

무자비하리만큼 후벼내어

 

마치 고깔쓴 이승의 승무인 양 날렵하고

입안에 장수(長壽) 이빨이 다른 사람보다 많다

그 눈은 순하건만

세상을 볼 때는 칼날이기도 한가

 

그가 본 세상의 한 귀퉁이 피가 난다

 

이범석

 

놀랍다 그에게는 문학이 가능했다

어린 시절 경성고보 다니다가

그 길로 뛰쳐나가

대륙의 혁명가가 되었다

말 달리던 시절

그는 말 탄 전사가 되었다

그의 문학적 기질

그의 무용담(武勇談)의 주역이 되게 했다

 

청산리전투의 일선 지휘관

 

소만 국경

중국 오지

그리고 해방 후 돌아와

초대 국무총리였다

 

국가지상

민족지상

 

그러나 그의 민족청년단 계보는 무너졌다

어느 만큼 그의 우등불에는 허구가 깃들였고

어느만큼 그의 무골에는 낭만이 서려 있다

 

오로지 말 한필과

지난날의 벌판을 기억햇다

그러다가

말 남겨두고

그가 떠났다

철기 이범석

그의 이름 뒤에는 반드시 장군이었다


김민기


그 시절 비 오는 날

맨발로

도시의 거리를 헤매기도 하였지


어두운 시대

그가 지은 노래들은

국가(國歌)였지

독재의 나날

대학생에게도

제적생에게도


정작 그는 미행당하며

어디 가서 농사도 지었지


그러나 그의 노래는 한 시대의 광장과 골목에서 마음껏 퍼져나갔지


양희은


60년대 청년문화 그리고 통기타

서강대 사학과 여학생인데

이미 한 가족을 꾸려가는 가장이었다

양희은


그의 당당한 목소리에 와서

몇십년의 청승인 이난영 황금실 이미자가 아니었다

김추자가 나왔다


그런 노래 저쪽에서

70년대 「아침이슬」이 새로 들려왔다

응혈의 음색

투원반의 음향

슬픔도 슬픔이 아닌 의지


겨울공화국 나뭇가지들에 바람이 걸려 울었다


양희은과

양희은의 비겁할 줄 모르는 통기타


치사할 줄 모르는 노래

이 셋이 시대의 자유를 꿈꾸었다 모두와 함께

 

 

posted by 황영찬